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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16

소년탐정 김전일 2부 13 - 게임관 살인사건 : 별점 1점

소년탐정 김전일 2부 13 - 4점
아마기 세이마루 지음, 사토 후미야 그림/서울문화사(만화)

유원지에 놀러간 김전일과 미유키는 일행과 떨어져 지나가던 버스를 잡아탔다. 그러나 버스는 통째로 납치당했고, 승객들은 기이한 생존 게임에 참여하게 되는데...

최근에는 이상하게 만화만 읽게 되네요. 여러모로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 해서 마음의 여유가 없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여튼 간만에 읽은 김전일 시리즈입니다. 발표된 지 2년이나 지났지만 제 기준으로는 가장 최신작이죠.

특징이라면 특정한 일련의 사람들을 특정 장소에 모아놓고 펼치는 일종의 '게임'을 다루는 '폐쇄형 게임 미스터리' 장르를 김전일 시리즈에 결합시켰다는 점입니다. 한창 유행했던 장르로 "큐브", "극한추리 콜로세움", "인사이트 밀", "크림슨의 미궁", "페르마의 밀실", "24시간 7일", "쏘우 1", "다우트", "누가 울새를 죽였나", "라이어 게임", "살해하는 운명카드", "다크 존" 등 관련 콘텐츠도 엄청나게 많은데, 김전일 시리즈답게 게임보다는 추리물적인 접근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는 점에서 차별화됩니다.

그런데 이러한 접근은 실패였습니다. 범인이 너무나도 쉽게 드러나는 탓입니다. 마지막 증언에서 버스가 어두워 일행을 못 찾았다는 것이 결정적이었어요. 일행인 딸이나 바텐더가 버스를 한 번도 훑어보지 않았다는 게 말이 될까요? 승객이 열 명도 안 되는데!

또 게임을 벌이는 이유를 설득력 있게 제시하기 위한 동기인 100억의 유산도 그다지 와닿지 않습니다. 거액이기는 하지만 외딴 곳에 이 정도의 시설을 갖춰 놓고 살인 게임쇼를 벌일 정도의 재력과 노력이라면 딸에게 전해주기에 충분했을텐데, 뭐 하러 사람까지 죽이는지 모르겠거든요. 이보다는 사람을 고용해서 그냥 한 명씩 교통사고 같은 걸로 죽이는 게 훨씬 쉽고 싸게 먹혔을 겁니다.

그리고 게임을 벌이는 이유가 밝혀지다 보니, 내용도 어처구니 없어져 버립니다. 게임에 참여한 사람 중 2명을 원하는 순서로 살해하기 위해서라면, 별 관계도 없는 사람들을 끌어들여 게임쇼를 벌이는 것은 말도 안 됩니다. 요새같이 검시가 발달한 상황에서 목격자 증언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테니까요. 무엇보다도 바텐더와 딸까지 끌어들인 이유는 도저히 설명되지 않습니다. 참여한 피해자들의 관계만 조사해도 동기가 손쉽게 들통날테니까요. 아니, 참석하지 않았더라도 무기 마담 주변 인물의 조사만으로도 드러날 동기였기에 애초부터 게임쇼 자체가 불필요했던 행위였습니다.

그렇다면 폐쇄형 게임 미스터리 장르물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게임'이 재미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첫 번째만 게임이고, 두 번째의 고리 풀기, 세 번째의 컵라면과 마지막의 에티켓은 게임이라 부를 수도 없으니까요. 또 에티켓에서의 와인 라벨은 와인에 취미가 없어도 알 수 있는 정보인데 너무 1차원적으로 접근한 듯 합니다. 첫 번째를 제외한 모든 게임에서 피해자를 특정할 수 있었을지도 의문이고요.

물론 아주 건질 게 없는 것은 아닙니다. 트릭과 잘 결합된 첫 번째의 네 자리 숫자 맞추기 게임은 나름 괜찮았습니다. 두 번째 컵라면 이야기에서 컵라면 밑바닥에 열쇠가 없는 상황을 추리에 접목시킨 것도 나쁘지는 않았고요. 첫 번째 게임의 경우 재미있는 추리일 뿐 '증명할 수 없다'는 큰 문제점이 있기는 하지만요.

그래도 이 정도 장점으로는 턱도 없습니다. 전체적인 완성도와 재미는 기대 이하였고, 추리적으로도 별로이며 마지막 결말까지 용서하기 힘들 정도로 억지스러워서 도저히 점수를 줄 수가 없군요. 별점은 1점입니다. '폐쇄형 게임 미스터리' 장르물의 재미가 어디에 바탕을 두고 있는지 전혀 고려되지 않은, 김전일은 이미 끝났다는 것을 다시금 확신시켜준 망작입니다. 돈 주고 사지 않은 게 다행일 뿐입니다.

2024/05/25

내가 읽었던 폐쇄형 게임 미스터리 분석

제 멋대로 '폐쇄형 게임 미스터리'라고 이름 붙힌 장르가 있습니다. 알 수 없는 장소에서, 모르는 사람들이, 알 수 없는 힘(또는 조직)에 의해 모인 뒤 보상을 받기 위해 노력한다는 설정의 작품을 뜻합니다. 특별한 게임에서 이기거나, 특별한 조건을 충족시켜야 정해진 보상을 받을 수 있는데 이 게임, 혹은 찾아내야 하는 특별한 조건이 재미의 핵심입니다. 아래의 조건들을 충족시키면, 누가 뭐래도 잘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겠지요.
  1. 게임, 혹은 특별한 조건은 참가자들 모두에게 합리적이고 공평한가?
  2. 게임, 혹은 특별한 조건은 독자도 쉽게 이해해서 이야기에 동참할 수 있는가?
  3. 게임, 혹은 특별한 조건을 충족시키는 과정에서 긴장감을 느낄 수 있는가?
이 세 가지 기준에 완벽하게 부합하는 걸작은 "도박묵시록 카이지"의 첫 에피소드인 '한정 가위바위보'입니다. "오징어 게임"은 2번과 3번은 충분히 합격점을 줄 수 있지만 1번 측면에서는 다소 아쉽지요. 운과 체력이 중요한 게임이 많으니까요.
이 기준으로 제가 읽었던 폐쇄형 게임 미스터리 소설들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영화와 만화도 많지만 그런 작품들은 워낙에 유명하니.... 작품별 상세 리뷰는 링크를 통해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구로타케 어신화 저택" 미야베 미유키
  • 누가 모이는가? 죄를 지은 여섯 명의 사람들
  • 보상과 조건은? 보상은 생존,유일한 생존자만 가능.

"거울 속 외딴 성" - 츠지무라 미즈키
  • 누가 모이는가? 왕따를 당하는 일곱 명의 아이들
  • 보상과 조건은? 보상은 어떤 소원이라도 이루어 줌, 조건은 정해진 시간 내에 소원의 방을 열 수 있는 열쇠를 찾아낼 것.

"앨리스 살인게임" - 가코야 게이이치
  • 누가 모이는가? 가상 공간 '앨리스'에 갇힌 사람들.
  • 보상과 조건은? 보상은 생존, 조건은 다른 생존자들을 죽일 것.

"인사이트 밀" - 요네자와 호노부
  • 누가 모이는가? 일주일간 진행되는 실험 아르바이트에 지원한 12명.
  • 보상과 조건은? 보상은 돈. 살아남으면 복잡한 조건에 따라 돈을 수령하게 됨.

"살해하는 운명카드" - 윤현승
  • 누가 모이는가? 게임의 승자가 되면 거액을 받는다는 조건으로 참가한 5명.
  • 보상과 조건은? 보상은 돈. 각자 받은 운명 카드의 운명을 거스르면 승리.

"24시간 7일" - 짐 브라운 : 별점 2점
  • 누가 모이는가? 미국 방송사 리얼리티 쇼 참가자 12명.
  • 보상과 조건은? 보상은 생존, 조건은 시청자들 투표를 통해 살아남을 것.

"크림슨의 미궁" - 기시 유스케
  • 누가 모이는가? 아르바이트에 응모한 10명의 플레이어
  • 보상과 조건은? 보상은 상금 500만엔. 조건은 유일한 생존자가 되는 것.

2012/01/31

살해하는 운명카드 - 윤현승 : 별점 3.5점

살해하는 운명카드 - 8점 윤현승 지음/새파란상상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30대 초반에 이미 십억 가까운 빚을 지고 주유소 아르바이트로 살아가는 루저 종민의 앞에 정체불명의 인물이 나타났다. 그는 모종의 게임을 제안하며, 게임의 승자가 되면 거액을 받을 수 있다고 유혹했다. 

게임에 참가한 종민과 알 수 없는 다른 4명의 참가자들은 각각 잭 - 킹 - 조커 - 에이스 - 퀸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한 장씩의 '운명카드'를 받아들었다. 게임에서 이기려면 운명카드에 적힌 운명을 거스르면 되는데, 잭 종민에게 주어진 운명은 "누군가를 살해할 운명!"

이 작품은 불특정한 사람들을 특정 장소에 모아놓고 벌어지는 일종의 "게임"을 다룬 "폐쇄형 게임 미스터리" 장르의 작품입니다. 제가 접해본 이런 류의 작품만 해도 한 손으로 세기 힘들 정도로 많을 정도로 흔한 설정이기도 하죠. 이 장르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큐브"에서부터 시작해 "극한추리 콜로세움", "인사이트 밀", "크림슨의 미궁", "페르마의 밀실", "24시간 7일", "쏘우 1", "다우트", "누가 울새를 죽였나", "라이어 게임" 등 수많은 작품이 존재합니다.

저는 이 장르물에서 핵심 요소는 얼마나 게임이 합리적이고 재미있게 구성되었는지 여부라고 생각합니다. 어차피 현실적인 설득력을 갖추기 어려운 설정이니, 게임이 독자의 눈길을 사로잡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또 너무 어려우면 안 된다는 조건도 충족해야 합니다. 독자도 함께 게임을 즐길 수 있어야 하는데, 난해한 수학 공식같은게 난무하면 일반인 입장에서는 재미를 느낄 수 없을 테니까요.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이 작품은 충분히 합격점을 줄 만합니다. 게임 자체는 간단하지만, 규칙이 공정하게 짜여 있다는 점에서 만족스러웠습니다. 또한, 게임의 규칙을 설명할 때 중요해 보였던 것들 - 언제든 나갈 수 있음 / 상대방에 대해 묻지 말 것 / 운명 카드를 보여주거나 강제로 보지 말 것 -보다, 오히려 별로 중요하지 않게 보였던 - 식사 시간을 반드시 지킬 것 / 반드시 포커 게임에 참가할 것 / 돈을 어떻게 받아갈지 정할 것 -이 더 중요한 규칙이었다는 의외성도 돋보였고요.

게임의 규칙과 중간중간 탈락하거나 살해당하는 사람들이 정교하게 엮이는 전개도 훌륭하며, 서스펜스와 스릴도 굉장합니다. 너무 재미있어서 다 읽는 데 2시간도 걸리지 않을 정도였어요.

그러나 곳곳에 헛점도 많습니다. 에이스의 무리한, 합리성을 잃은 배팅에 대한 설명이 부족한 점, 킹은 본인이 조심만 했어도 "살해당한다"는 운명을 거스르기 가장 쉬운 존재였다는 점 등이 그렇죠.

무엇보다도 퀸이 다른 사람들을 살해해서 돈을 모두 자기 것으로 만들려는 시도는 정말 말이 안 됩니다. 20억이면 충분했을 텐데 100억이라니? 거기에 에이스가 종민의 운명카드를 우연히 보게 된 뒤 퀸이 그 정보를 입수했다는 전제가 너무 크게 작용하고 있을 뿐더러(숟가락을 이용한 공작이 대표적입니다), 누군가 한 명이 죽으면 다른 참가자들이 경계하는 것이 당연한데, 하루 만에 모든 일이 이루어져야만 의미가 있었다는 점 등은 여러모로 어설펐습니다. 조커를 구태여 자살로 위장하려 했던 것도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어렵고요. 마지막 종민의 상황 역시 충분히 정당방위로 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토리 전개를 위해 억지로 몰아간 느낌이 강했습니다.

그리고 게임의 구성이 나름 신경 써서 짜였음에도 불구하고, 캐릭터와 이야기 전개에서는 그러한 고민이 느껴지지 않는 점도 아쉬웠습니다. 예를 들면, 주인공 종민은 다른 사람들과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어릴 적 저지른 작은 실수에 집착하는 전형적인 루저로 묘사되는데, 아무리 봐도 주인공감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후반부에서 갑자기 의외의 행동력을 발휘하는 전개가 전혀 와닿지 않았습니다. 또한, 게임 참가자들이 과거에 뭔가 인연이 있었다는 듯한 분위기도 굳이 필요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접해왔던 "폐쇄형 게임 미스터리" 장르물 중에서도 재미 하나만 놓고 본다면 손에 꼽을 만한 작품입니다. 미스터리, 추리 요소가 적다는 단점은 있지만, 에이스의 광기 어린 행동과 종민의 심리 묘사 등이 오싹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심리 서스펜스 스릴러로서의 가치는 상당히 높습니다. 때문에 별점은 3.5점입니다. 현실적이지 못한 설정과 앞서 언급한 단점들 때문에 최고점을 주기는 어렵지만, 충분히 인상적인 작품이었습니다. 앞으로도 작가님의 건투를 빕니다.

덧: 좋은 추리소설 소개로 자주 방문하는 카구라님 블로그에서 리뷰를 보고 읽게 된 책인데, 카구라님께도 감사드립니다. 소개가 없었다면 읽어보지 않았을 것 같거든요. 앞으로도 좋은 리뷰 많이 부탁드립니다!

2010/10/23

크림슨의 미궁 - 기시 유스케 / 김미영 : 별점 3점

크림슨의 미궁 - 6점
기시 유스케 지음, 김미영 옮김/창해

주의: 스포일러 있습니다

대기업 증권회사에서 근무하다가 회사가 도산해 실업자가 된 뒤 전락한 후지키는 아르바이트에 응모했다가 정신을 잃고 말았다. 그가 정신이 든 곳은 '화성' 이라는 설정의, 오스트레일리아에 위치한 '벙글벙글' 국립공원이었다. 후지키는 그곳에 모인 사람들과 함께 '게임'을 시작하게 되는데....

"검은집", "유리망치" 단 두 편만 읽었지만, 두 작품 모두 인상적이었던 기시 유스케의 장편입니다. 타자로 비유하자면 타율과 장타력을 겸비한 작가라고 할 수 있겠네요.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절반의 성공을 거둔 작품입니다. 가장 큰 장점은 단연 재미입니다. 후지키가 알 수 없는 게임에 휘말린 뒤 4가지 '선택지' 중 '정보'를 선택하고, 이후 게임의 단계별로 벌어지는 전개가 상당히 흥미진진합니다. 후지키가 자신의 정보와 아이템을 활용해 위기를 벗어나는 과정에서는 두뇌게임의 묘미도 느낄 수 있으며, '식시귀'라 불리는 식인종과의 마지막 추격전은 손에 땀을 쥐게 만들 정도로 긴장감이 넘칩니다. 재미만 놓고 본다면 매우 높은 점수를 줄 수 있습니다.

또한, 오래된 '게임북'이 중요한 역할을 하거나, '정보'라는 선택지를 통해 얻은 단서들이 복선처럼 기능하는 부분도 작품을 더욱 풍성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단점도 분명합니다. 가장 큰 단점이 작품의 핵심이기도 한 '게임'이고요.

이 작품처럼 '모종의 알 수 없는 단체나 집단에 의해 원치 않는 게임에 참가한 이들이 벌이는 생존 경쟁과 학살극'이라는 설정은 이미 수많은 작품에서 사용된 익숙한 구도입니다. 개인적으로는 "폐쇄형 게임 미스터리" 라 칭하는데, 이러한 설정의 작품들이 차별성을 가지려면 '게임' 자체가 얼마나 설득력 있고, 정교하며, 흥미로운지가 핵심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작품의 '게임'은 초반의 4가지 선택지와 '정보'의 중요성을 제외하면 전체적으로 구조가 허술합니다. 예를 들어, 초반 선택지에서 '호신용'이라는 선택지의 중요성이 간과된 점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특별한 이변이 없다면 키가 2m에 달하는 세노오가 게임을 제압하는 것은 일도 아닐 것이기 때문입니다. 애초에 플레이어 선택 과정에서 세노오 같은 특출난 인물이 포함되었다는 것 자체가 오류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게임'의 목적이나 단계별 과정이 명확하게 제시되지 않는 것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만약 참가자들이 아이템을 공정하게 공유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최소한 '식량'이라도 공유되었다면 이야기가 전개되지도 않았을 테니, 이러한 요소들은 작위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그럴 일은 없다'는 아야의 주장도 어느 정도 타당성은 있지만, 최소한의 논리적인 설명이 더 필요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게임 마스터'와 '촬영자'라는 설정이 흥미로운 요소임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작중에서 거의 하는 일이 없다는 것도 아쉬운 점입니다. 게임 수행 과정에서 게임 마스터가 아무 역할도 하지 않는 것은 왜 존재하는지 의문을 갖게 만듭니다.

상술한 요소 중 하나라도 문제가 발생했더라도 게임은 실패했을 겁니다. 때문에 후지키의 추측대로, 이 게임이 모종의 단체가 스토리가 있는 살육극을 스너프 필름으로 제작하고 판매하기 위한 목적이었다면 훨씬 더 정교한 구성이 필요했습니다. 수십억의 돈이 들어간 거대한 프로젝트니까요. 이러한 점에서 게임 설정의 설득력이 너무 부족했습니다.

이와 비교하면, 게임을 기획하고 실행한 주체가 끝까지 밝혀지지 않는 점이나 설명이 두루뭉술하게 넘어가는 점은 오히려 단점으로 보이지도 않을 정도입니다. 사실, 이러한 유형의 작품 대부분이 비슷한 방식을 취하긴 하지요...

결론적으로, 별점은 3점입니다. 만약 '게임' 설정이 좀 더 정교하고 설득력 있게 짜여 있었다면, '폐쇄형 게임 미스터리' 장르 내에서도 단연 빛나는 작품이 되었을텐데 여러모로 아쉽습니다.

2022/10/08

거울 속 외딴 성 - 츠지무라 미즈키 / 서혜영 : 별점 2점

거울 속 외딴 성 - 4점
츠지무라 미즈키 지음, 서혜영 옮김/알에이치코리아(RHK)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코로는 중학교 입학 직후, 반 친구의 왕따 때문에 등교 거부를 하다가 방의 거울을 통해 기묘한 외딴 성으로 갈 수 있다는걸 알게 되었다.
그 곳에 모인 일곱 명의 아이들 앞에 늑대 머리 탈을 쓴 소녀가 나타나 오늘부터 내년3월까지, 성 안에서 소원의 방을 열 수 있는 열쇠를 찾아내야 한다고 말했다. 보상은 어떤 소원이라도 이루어 준다는 것. 다만 매일 성이 열리는건 일본 시간으로 아침 아홉 시부터 오후 다섯 시까지 뿐이며. 그 이후까지 성에 누군가 남아있으면 그날 성에 왔던 다른 아이들 모두가 늑대에게 잡아 먹히는 무서운 벌칙을 받게 된다는 조건이었다.
중학교 1학년 ~ 3학년 사이의 아이들은 서로 친해지면서 그들 대부분이 똑같은 중학교 학생이며, 등교 거부를 하고 있다는 등 서로의 비밀을 하나 씩 알게 되는데....


신간을 취급하는 서점 직원들이 가장 팔고 싶은 책을 꼽는 '서점 대상'이라는 상이 있습니다. 다른 상들보다는 '재미'가 어느정도 뒷받침되어야 하는, 비교적 일반적이고 공정한 시각의 상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이 작품은 2018년 서점 대상 1위를 2위와 300점 넘는 차이를 보이며 수상했다는 점에서, 2018년 출간 소설 중에서는 가장 재미있고, 누구에게나 추천할만한 책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최근 소개해드렸던 모 랭킹에서 최고의 초보자용 미스터리 중 한 권으로 추천하기도 했었고요. 츠지무라 미즈키는 과거 한 권 밖에 읽어보지 않았었고 평가도 딱히 높지 않았지만 다른 여러 작품들이 좋은 평가를 받는 작가이기도 해서, 겸사겸사 연휴를 맞아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여러 명의 사람들이 특별한 곳으로 이동하여 미션을 수행한다는 설정의 작품은 많습니다. 왕따를 겪던 아이가 모험을 통해 성장한다는 성장기도 마찬가지고요. 하지만 이 작품은 아이들 캐릭터가 잘 묘사되어 있고, 약간의 추리적이면서도 의외의 요소들이 설정에 녹아들어 있어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리온이 알고보니 하와이에 있는 중학교에 다니고 있었다는 것 처럼요. 이들 각자의 비밀이 밝혀지는 과정도 흥미로왔고요.
아울러 고코로에게 닥쳤던 왕따 행위에 대한 이야기는 딸 아이 아빠로서 감정 이입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주모자 미오리, 담임 이다 선생의 뻔뻔하고 무책임한 언행에 대해서 저는 어떻게 해야 할 지 고민하게 만들기도 했어요. 이에 대한 기타지마 선생님의 이야기도 새겨 들을 만 하더군요. 그 중에서도 왕따 가해자 미오리가 고코로에게 뜬금없이 편지를 보낸 뒤, 그 편지에 대한 답을 받지 못해 무시당했다고 생각한다는 것에 분개하던 고코로에게 '미오리의 생각은 그럴 수 있다, 하지만 그건 고코로가 이해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마무리도 멋졌습니다. 누구나 친구가 되고 싶어하는 전학생 리온이 고코로에게 인사를 건네는 장면인데, 서두에서부터 수미쌍관 식으로 이어지는 멋진 마무리였어요. 애니메이션이 발표된다고 하는데, 이 장면만큼은 기대가 크네요. <<너의 이름은>>의 마지막 장면 느낌이 들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좋은 점수를 줄 수 있냐?면 그렇지는 못합니다. 여러 명이 폐쇄된 장소에서 특정 미션을 수행하고 1등은 그에 따른 보상을 얻는다는 전형적인 '폐쇄형 게임 미스터리'물 설정을 갖추고 있지만. 정작 내용과 전개는 그런 장르적 속성을 전혀 드러내지 못하는 탓에, 추리 소설이나 이쪽 장르물로 보기는 힘든 탓입니다.
우선 폐쇄형 게임 미스터리라고 하기에는 긴장감이 턱없이 부족합니다. 거울 속 외딴 성에 오고 가는건 순전히 개인의 자유이며, 미션을 성공하지 못해도 아무런 벌칙이 없는 탓입니다. '열쇠'와 '소원의 방'을 찾아야 한다는 미션 자체도 그렇게 비중있게 언급되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이를 찾는 묘사는 아이들의 말 뿐, 극중에서는 전혀 등장하지 않을 정도에요. 그렇게 절박하게 찾는 아이들도 딱히 없고요. 오히려 아이들은 성에서 시간을 보내며 서로 커뮤니케이션을 나누기만 합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오징어 게임>>에서 게임은 안하고 서로 대기만 하다가 이야기가 끝나는 셈이에요. 갇힌 것도 아니고, 미션에 실패해도 죽는게 아니니 긴장감이 생길 턱이 없지요.

미션 자체의 흥미도 떨어집니다. '열쇠'와 '소원의 방'을 찾을 수 있는 단서가 별 볼일 없기 때문입니다. 아키가 돌아가지 않아서 늑대에게 잡아 먹히게 된 리온이 마지막으로 고코로에게 했던 '빨간 모자가 아니야' 라는 말 하나로 해결될 정도로 말이죠. 이 성은 <<늑대와 일곱 마리 어린 양>> 이라는 동화의 세계였고, 그래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어린 양이 숨었던 벽시계속에 열쇠, 그리고 소원의 방 입구가 있었다는게 전부거든요. 뭔가 고민하거나, 생각할 필요도 없어요. 그냥 이 동화 자체가 너무나 직접적인 해답입니다.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쉬워요. 이렇게 동화를 소재로 삼을 경우, 복잡한 설정을 간단하게 전달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는 좋은 아이디어이지만 그에 더한 고민은 전무해서 아쉬웠습니다.
게다가 벽시계 안에 있는게 전부라면, 사실 동화에 대해서는 전혀 몰라도 됩니다. 그냥 성 내부를 샅샅이 뒤지기만 했어도 충분히 찾아낼 수 있었을테니까요. 이를 열심히 찾아보았다는 아키 등이 발견하지 못한건 도무지 이해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동화의 정체를 미리 알고 있었던 듯한 리온이 진작에 찾아내지 않은 이유도 모르겠고요.
외딴 성의 정체가 리온의 누나 미오가 만들어낸 공간이라는 진상도 뜬금없었습니다. 유이한 단서는 전기만 들어오는 인형의 집과 7의 배수로 소환된 아이들 사이에 빠져있던 미오의 나이가 전부입니다. 추리의 여지가 없으며, 미오가 어떻게 이런 공간을 만들어 냈는지에 대한 설명도 없어서 작가가 마지막에 대충 추가한 설정이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였어요.

그나마 추리적으로 눈여겨 볼만했던건 약간의 서술 트릭스러운 구성입니다만, 이 역시 그렇게 대단하지는 않아요. 아이들 대화를 통해 서로가 사는 세계가 미묘하게 다르다는건 쉽게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에요. 스바루가 듣는 워크맨, 마사무네가 가지고 노는 차세대 게임기, 기타지마 선생님에 대한 시각이 미묘하게 다른 등 정보가 너무 많으니까요. 게다가 서로 같은 중학교에 다녀서 모두 근처에 살 텐데 서로 본 적이 없다면? 아이들이 사는 시대가 다를 수 밖에 없다는건 너무 뻔하지요. 주어진 정보를 시각화하기 어려운 책을 읽는 독자들이라면 모를까, 명백하게 다른 사물들을 직접 보고 느꼈을 작품 속 아이들이 진상을 빨리 깨닫지 못한 것도 납득하기 어려웠습니다. 아울러 아이들이 학교, 그리고 기타지마 선생님으로 연결된다는 점에서 기타지마 선생님이 미래의 '아키'일 것이라는 짐작도 어렵지 않았습니다.

고코로가 여러가지 아픔이 있는 다른 아이들과 함께 하면서 왕따를 극복해 나가는 성장기로 보기에도 조금 애매했습니다. 지나칠 정도로 타인의 언행에 신경쓰며 소심한 탓에 읽는 내내 짜증을 불러 일으키는 고코로의 행동이야 왕따를 당했던 경험때문에 그렇다 쳐도, 정작 왕따를 극복하는데 있어서 외딴 성과 친구들은 별로 중요하지 않거든요. 극복의 핵심은 모에가 해 주었던 '그래봤자 학교'라는 말이었으니까요. 즉, 고코로가 왕따를 극복하는데에는 기타지마 선생님과 친구 모에만 있었다면 충분했습니다. 외딴 성과 친구들은 필요가 없었어요. 오히려 아키가 기타지마 선생으로 거듭날 수 있었던 건 외딴 성에서의 경험 덕분이었다는 측면에서는 주객이 전도된 느낌도 들었습니다. 다른 아이들의 왕따와 등교 거부에 대한 과거도 대체로 전형적이라 딱히 새로울게 없었고요. 특별히 재능이 우위에 있지 않은데도 엄마가 사력을 다해 피아노를 치게 한 후카 이야기 정도만이 기억에 남을 뿐입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재미가 없지는 않습니다. 허나 기대했던 추리물로의 가치는 전무하기에 감점합니다. 이쪽 장르물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점수를 준다면 더 줄 수도 있겠지만, 왕따 소녀의 성장기에 청춘 모험물을 더한 이야기로 밖에는 보이지 않네요. 아직 읽지 않으신 분들이라면 곧 개봉할 애니메이션으로 감상하기를 권해드립니다.

2010/08/19

다우트 1~4 - 요시키 토노가이 : 별점 1점

다우트 4 - 2점
요시키 토노가이 지음/서울문화사(만화)

미지의 공간에 갇힌 사람들이 생명을 걸고 게임을 한다는, "극한추리 콜로세움"이나 "인사이트밀"과 같은 폐쇄형 게임 미스터리물. 어딘가에서 꽤 호평인 리뷰를 읽고 관심이 가던 차에 '추리만화 몰아쳐 읽기' 시즌에 읽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무척이나 실망스럽습니다. 완성도가 높다고 할 수 없는 작화와 전개는 둘째치고서라도, 게임의 구성 자체가 한심했기 때문입니다.
게임의 룰부터 살펴보자면 '누가 늑대인지를 찾는 것'입니다. 그러나 암묵적인 기본 법칙인 '단체 행동' 부터 결여된 초반부터 심상치 않더니만, 아니나다를까 늑대를 찾기 위한 두뇌 게임은 전무하더군요. 단지 서로가 계속해서 다투다가 하나씩 죽어갈 뿐입니다. 조금이라도 머리를 쓰는 장면은 아예 등장하지 않습니다.
또 '누가 늑대(범인)인가?'라는 수수께끼를 풀어내는데 있어 필요한 긴장감도 느끼기 어렵습니다. 누가 늑대인지 초반부에 알려주는 듯한 묘사와 더불어 초반에 갇혀있는 6명 중 3명이 죽어버리는 탓에 긴장감을 느낄 여지가 없거든요. 주인공 빼면 남는건 둘. 그리고 한 명은 확실히 수상함. 이걸로 이미 게임 끝이죠 뭐...
게다가 '각자 몸에 새겨진 바코드로 문 하나 만을 열 수 있다'라는 제약은 왜 등장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제약으로 범인을 특정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단지 내부 분열의 소재로만 쓰일 뿐이니까요.

마지막으로 반전과 진상이 너무나 황당한 수준이라는 것도 큰 문제입니다. 초반에 범인이 드러난다는 결정적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반전을 집어넣어 이야기를 꼬아보려고 시도하는데 되려 작품을 안드로메다로 보내버리고 맙니다. 뜬금없는 최면술을 이용한 결말은 도대체 밑바닥이 어딘지 가늠하기조차 힘들게 만들었고요. 

이러한 기본적인 단점과 비교하자면 애시당초 미약한 동기, 어떻게 먹잇감(?)을 찾아내었는지에 대한 설명의 부재, 그리고 이렇게 죽일거라면 뭐하러 게임이랍시고 공들여 장치를 세팅하는지조차 제대로 설명되지 않는 것 정도는 걍 지나쳐버릴 정도의 사소한 문제로 보입니다.

한마디로 폐쇄형 미스터리 장르물의 재미가 어디서 비롯되는지는 전혀 생각하지 않은 수준낮은 졸작입니다. 야구 만화에서 야구 시합 장면이 재미가 없다면, 도박 만화에서 도박 승부가 재미가 없다면 그 작품이 좋은 작품일리가 없잖아요?
그나마 다른 유사 설정 작품들처럼 '막대한 돈' 운운하는 대신 단지 생존을 위해서 게임을 한다는 점 하나만 다른데, 어차피 현실성 제로인 만화같은 설정이라면 차라리 "라이어게임"이나 "도박패왕전 제로"와 같이 '거액의 돈을 둘러싼 두뇌게임' 쪽으로 끌고가는게 훨씬 좋았을겁니다. 아니면 최소한 "누가 울새를 죽였나?"처럼 덫에 걸린 사람들끼리의 긴장감 넘치는 두뇌 게임이라도 펼쳐주었어야죠. 아무리 생각해도 점수를 줄만한 여지가 없네요. 별점은 1점입니다.

2021/10/16

오징어 게임 (2021) - 황동혁 : 별점 3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마 다 보셨겠지만>>

전 세계를 강타한 대 흥행작. 얼마전 감상했습니다.

사실 이런 류의 설정은 서브 컬쳐, 장르 문학 애호가들에게는 친숙합니다. 여러 사람이 갇힌 공간에서 거액이 걸린 게임을 펼친다는건 제가 '폐쇄형 게임 미스터리' 라고 이름 붙인 장르물에 흔하게 있으니까요. 대표적인건 <<도박묵시록 카이지>>, <<라이어 게임>>, <<살해하는 운명 카드>> 등이 있습니다. 김전일도 <<게임관 살인사건>>이라는 희대의 망작으로 이 장르에 뛰어들었던 적이 있을 정도로 한때 크게 유행했었습니다. 게임에서 패할 경우 죽느냐, 거액의 빚을 떠 앉느냐 정도의 차이일 뿐 대체로 비슷하지요.

그러나 이 작품은 456명의 참가자라는 거대한 스케일, 그리고 이해하기 쉬운, 친숙한 게임을 게임에 사용했다는 점이 돋보였습니다. "마작"을 가지고 목숨을 건 배틀을 벌인다면 내용을 이해하기 어렵지만,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에서 움직이면 죽는다는건 전 세계 누구나 이해할 수 있으니까요. 달고나에서 모양 뜯어내는 것도 마찬가지고요. 이런 게임이 초반 탈락자들을 다수 발생시키는데 유리했을 거라는 점에서도 높이 평가하고 싶어요.
그리고 보통 이런 장르물은 게임을 벌이는 주최측에 대한 설명이 거의 없는데, 이 작품은 경찰이 잠입해서 나름 배경과 진상에 대해, 그리고 게임을 이끄는 프론트맨의 정체를 밝혀내는 등의 활약을 펼치고, 진짜 마지막에서 흑막의 일단락을 드러내 주는데 나름 괜찮았습니다.
또 캐릭터별 서사와 게임이 시작된 후, 한 번 사회로 돌아가는 설정이 좋았습니다. 이를 통해 참가자들 모두 지옥에서 살고 있으며, 오징어 게임에 참가하는 것 말고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걸 보여주어서 게임에 참가하는 것에 대한 설득력을 높여주거든요. 동네 친구였던 상우가 최종 보스급 악역으로 진화하는 과정도 잘 그려졌으며 장덕수, 한미녀 같은 조역들도 설정은 뻔했지만 좋은 연기력 덕분에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게 해 줍니다.

반면 두뇌가 개입할 여지가 별로 없었다는건 조금 아쉬웠습니다. 대부분 운과 체력에 의존하는 게임이었던 탓입니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는 첫 게임으로 패닉을 일으켜 많은 사람을 탈락시키기 위한 의도였겠지만, 그 뒤에 이어지는 게임 중 달고나 뽑기와 유리 다리 건너기는 명백히 운이 중요했고, 줄다리기는 당연히 체력이 가장 중요하니까요. 그나마 두뇌가 개입할 여지가 있던건 구슬 따먹기가 전부였습니다. 상우가 알리를 등쳐먹는 걸로 잘 보여주고 있지요. 여기서는 기훈과 일남의 서사가 더 중요해서 묻혀버리고 말았지만... 그래서 마지막 기훈과 상우가 오징어 게임으로 펼치는 결승전에서 기훈이 동네에서 제일 유명했던 천재 상우에게 두뇌로 한 방 먹이는 장면을 기대했는데, 처절한 아재들의 몸싸움이 전부라 실망스러웠습니다. 상우의 자살도 허무했고요.
누군가를 이겨서 죽게 만들어야 살아남는 게임이라는 기본 원칙 그대로 전개와 결말을 가져갈 필요가 있었을지도 의문입니다 . 주최측 의도를 나름대로 농락하는 전개였다면 두뇌 싸움 느낌도 나고 좋았을텐데요. 최소한 '유리 다리 건너기'는 옷으로 끈을 만드는 식으로 협력이 충분히 가능했지요. <<도박묵시록 카이지>> 에서 카이지는 게임의 헛점을 잘 이용해서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살아남게끔 도와주었는데, 이런 점에서는 카이지의 초반부 몇 에피소드들이 더 나아 보였습니다. 하긴, 카이지 초반부 몇 에피소드는 이쪽 장르에서는 길이 남을 희대의 걸작이라 단순 비교는 좀 어렵겠지만요.
마지막으로, 에필로그도 너무 길었으며, 후속 시즌을 노리는 느낌이 강해서 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았습니다. 주최측이 원하지 않는 한, 기훈이 다시 게임에 참가할 방법은 애초에 없잖아요?

이렇게 아쉬움이 없는건 아니지만, 재미 측면에서는 두말할 나위 없었습니다. 이런 류의 장르물로 볼 때 우수한 편이에요. 별점은 3점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 만한 작품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작품의 대박을 계기로 앞으로 우리나라 장르물이 더 활발히 제작되고 확산되면 좋겠네요.

2010/11/22

24시간 7일 - 짐 브라운 / 하현길 : 별점 2점

24시간 7일 - 4점
짐 브라운 지음, 하현길 옮김/비채

다나는 미국 TV 리얼리티 쇼 "24시간 7일"에 참가하게 되었다. 쇼가 열리는 곳은 자메이카와 아이티 사이의 무인도 '바사섬'으로, 무인도였지만 쇼를 위해 완벽하게 준비된 상태였다. 그러나 쇼가 시작되자마자 참가자 12명을 제외한 모든 스태프가 괴바이러스로 사망하고, 참가자 12명도 시청자 투표를 통해 1명씩 바이러스에 의해 희생될 운명에 빠졌다. 방송은 차단되었지만, 인터넷과 위성방송 수신기를 통해 중계가 계속 되었고 미국 대통령까지 직접 나서 이 사건의 추이를 검토하며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데...

도서출판 비채의 트위터 이벤트에 당첨되어 읽게 된 작품입니다. 비채 관계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줄거리 소개대로 무인도에 고립된 리얼리티 쇼 참가자들이 생존을 위해 싸워나간다는 내용은 "폐쇄형 게임 미스터리"의 공식에 충실한 듯 보이지만, 앞서 접했던 일본 작품들과는 확연한 차이점이 있습니다. 바로 게임을 어떻게든 설득력 있게 만들려는 배경 묘사가 충실하다는 점입니다. 리얼리티 쇼를 자기 마음대로 조종하는 '컨트롤'이라는 수수께끼의 인물과, 그가 이 게임을 진행하는 이유를 나름대로 설명해 줍니다.

반면 이 장르의 핵심은 '참가자들이 어떻게 생존을 위해 싸워나가는지?'라는걸 잊은 듯합니다. 이 장르물은 대체로 폐쇄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스릴과 서스펜스를 보장하기 때문에, 이를 넘어선 무언가를 독자에게 전달하려면 흥미진진한 두뇌 게임이나 참가자 간의 갈등이 잘 표현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그러한 요소를 찾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참가자들의 생존을 결정하는 것이 그들 스스로가 아니라 '시청자'들의 투표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는 극단적인 시청률 경쟁이 낳은 비윤리적인 미디어의 행태를 비판하는 의도를 담고 있겠지요. 문제는 게임 참가자들이 할 수 있는게 거의 없다는겁니다. 그래서 긴장감과 재미는 떨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약간의 게임 요소, 그리고 시청자를 현혹하기 위한 작전이 등장하지만 전개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는 못합니다. 오히려 사족처럼 느껴졌어요.

또한 지나치게 헐리우드스럽다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네요. 등장 인물들과 스케일 모두 헐리우드 영화를 보는 느낌이거든요. 불치병에 걸린 딸을 살리기 위해 반드시 살아남아야 하는 여주인공 다나(밀라 요보비치?)와, 전직 비행기 조종사로 뛰어난 육체와 지능을 갖춘 저스틴(매튜 맥커너히?) 같은 스테레오 타입의 캐릭터 설정은 진부합니다. 결말 또한 너무나 완벽하게 정리된, 그야말로 한 편의 헐리우드 영화 같았고요. 거창한 스케일도 겉보기에는 화려할 뿐, 결국 속이 빈 강정처럼 허술한 부분이 많습니다. 바사섬이 공격받는 상황에서 탈출한 생존자들이 '헬리콥터'로 미사일을 피한다는 묘사가 대표적입니다. 무엇보다 이런 거대한 작전이 미국 정부 모르게 진행된다는 설정부터 납득하기 어려웠습니다.

게다가 여러 복선과 단서들이 단순한 '떡밥'처럼 보인다는 점도 단점입니다. 이야기를 촘촘하게 구성한 후, 그에 맞춰 단서를 배치한 것이 아니라, 단순히 긴장감을 조성하기 위한 장치로 넣은게 아닌가 의심스러워요. '컨트롤'의 계획 역시 허술합니다. 참가자 중 누군가가 섬을 탈출하거나, 미군이 섬을 초토화시키는 방식으로 개입했다면 어떻게 되었을지에 대한 고려가 부족했고, 계획이 진행되는 과정에서도 허점이 많았습니다. 전개에 중요한 요소였던 '컨트롤의 협력자'에 대해 방송에서 오판한 로릭 박사에 대한 후속 언급이 전혀 없다는 점, 그리고 '컨트롤'의 동기와 사건의 배경이 지나치게 작위적이라는 점도 감점 요소입니다.

퍼즐 천재로 사건 해결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터커는 매력적이었고, 기본적으로 스릴과 서스펜스가 보장되는 장르물에 미디어 비판 요소를 결합하려 했던 시도도 나쁘지는 않았어요. 그러나 아무래도 작가의 욕심이 지나쳤던게 아닌가 싶네요. 장르물에 집중하거나, 아니면 미디어 비판에 집중하고 스케일을 줄여서 설득력 있게 진행하는 것이 나았을 겁니다. 현재의 결과물은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한 헐리우드식 스릴러일 뿐입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이벤트로 읽게 된 도서라 보다 좋은 평을 남기고 싶었지만, 솔직한 리뷰를 남기는 것이 맞겠지요. 아마 앞으로 이벤트 당첨은 힘들 것 같습니다...

2022/09/24

앨리스 살인게임 - 가코야 게이이치 / 김현화 : 별점 2점

앨리스 살인게임 - 4점
가코야 게이이치 지음, 김현화 옮김/㈜소미미디어

<<아래 리뷰에는 진상과 트릭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2061년, 식량 부족으로 파국을 맞은 지구, 하루는 돈을 벌기 위해 VR로 가상 현실 세계 '앨리스'에 접속했다가 정체불명의 여자를 만났다. 그리고 그녀 때문에 로그 아웃도, 다른 곳으로 이동도 불가능하며 다치거나 죽을 수도 있는 시스템 컨트롤 불가 영역으로 끌려들어가고 말았다. '피노키오'라고 불리우는 이 새로운 공간에서, 가이드를 따라 목숨을 걸고 '빨간 새우의 집'에 도착한 하루는, 자기와 같이 끌려온 다른 생존자들을 만났다. 그리고 생존자들이 죽을 때마다 집의 잠겨진 문이 열린다는 사실을 알고 난 후, 그들은 마지막 생존자가 되기 위해 사생결단의 싸움을 벌이게 되는데...

가상 공간을 무대로 한 액션 스릴러입니다. '피노키오'의 정체는 무엇인지? 그리고 그들을 해방시켜 줄 수 있는 '푸른 머리의 소녀'는 누구인지?에 대한 수수께끼 풀이도 있어서 약간의 추리물적인 성향도 갖추고 있고요.
액션 스릴러적인 성향은 "빨간 새우의 집"으로 향하는 과정에서 강을 건널 때 그 편린을 살짝 보여준 뒤, 빨간 새우의 집 안에서 생존자들이 목숨을 건 생존 게임을 벌이면서 절정에 달합니다. 하루가 LK와 사투를 벌이는 장면이 클라이막스고요. 여기서 가상 현실을 잘 이용한 두뇌 게임은 상당한 볼거리였습니다. 하루가 시스템 내에서 아바타 외모를 다른 사람처럼 바꿀 수 있다는 걸 알아내고 시체를 자기로 위장시킨다던가, 공간에 자기처럼 보이는 영상을 투영한 뒤 급습한다는 식인데 꽤 그럴듯했거든요.
가상 공간 피노키오에 대한 진상도 신선했습니다. 앨리스 시스템 내의 다른 공간이 아니라, 앨리스에서 접속할 수 있는 또다른 가상 공간이었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현실에서 앨리스에 접속했을 뿐인 하루 등은 어떻게 피노키오에 접속할 수 있었나? 라는 수수께끼가 새로 불거지는데, 이는 하루가 앨리스 내에서 활동하는 인공지능이었다는 반전으로 이어집니다. 즉, 하루는 현실에서 앨리스에 접속한게 아니라, 앨리스에서 피노키오에 접속했었던 겁니다. '푸른 머리의 소녀'는 하루를 만들어낸, 진짜 현실의 인공지능 연구자였고요. 앨리스 안에서 인공지능을 만들어냈던건 현실 세계에서 대파국 이후 인구가 급속도로 줄어들었기 때문입니다. 인간을 대신해 앨리스 안에서 생활할 인공지능이 필요했다는 거지요.
이렇게 인공지능을 만들어 내려 했던 이유는 나름대로 합리적으로 설명하고 있어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야기의 개연성이 터무니없다는 점입니다. 극한의 상황에 밀어 넣지 않으면 본성을 알 수 없어서 다양한 프로토타입을 특정 공간에 가두었다는 발상부터가 납득하기 어려웠어요. 이런다고 인간의 본성이 드러날까요? 설령 그렇다쳐도, 구태여 <<피노키오의 모험>>에서 불필요한 설정들을 따 오면서, 이상한 공간에서 생존 게임을 벌이게 할 이유는 없습니다. 생존 게임으로 알 수 있는건 가장 싸움을 잘하고 강한 인공지능이 누구인지일 뿐이니까요. 극한 상황이 필요했다면 앨리스 시스템 내의 문제로 시스템 컨트롤을 할 수 없는 특정 클러스터 - 현실의 무인도같은 - 에 갇히게 되었다는 설정으로 충분했을 겁니다. 생존자들에게 '푸른 머리의 소녀'라는 수수께끼를 던져준 이유도 설명되지 않습니다. 추리력은 인간 본성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어요. '피노키오'를 가져다 붙인 것도 억지스럽고요.
생존 게임도 앞서 소개했던 배틀 자체는 그럴싸하지만, 설정은 진부합니다. 전형적인 폐쇄형 게임 미스터리들과 별로 다른 점이 없기 때문입니다. 과묵한 전사, 쎈 언니, 이해심 높은 조력자, 양아치 (?) 등 등장 인물들도 진부한데다가, 설정상 오류가 크게 느껴집니다. 이 등장 인물들은 모두 앨리스 내부에서 활동할 인공지능이라는 설정입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평범한 인물들이었어야 했습니다. 문신충 앗슈라던가, 사교성없고 폭력적인 LK는 인공지능 프로토타입으로는 지극히 비상식적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테스트를 반복해서 하루에게 부담이 걸렸다고 하는데, 이게 과연 말이 되는 이야기인지 모르겠습니다. 시스템 설계를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초기화 후 업데이트된 버젼으로 테스트했다면 이전 히스토리를 알 수 없는게 당연할텐데요. 찬호께이의 <<S.T.E.P>>에서의 시뮬레이션처럼, 각 테스트는 모두 독립적으로 수행되는 결과라는 설정이 더 이치에 맞습니다.

그래서 제 별점은 2점. 좋았던 아이디어와 설정에 기묘한 생존 게임을 더해서 이야기가 산으로 가 버린 작품입니다. 아이디어를 잘 살렸다면 더 좋은 작품이 되었을 것 같은데 많이 아쉽습니다.

2015/07/23

큐이디 Q.E.D 50 - 카토우 모토히로 : 별점 2점

큐이디 Q.E.D 49 - 카토우 모토히로 : 별점 2점

아직 국내 출간되지는 않았습니다. 우연찮게 원서로 읽게 되어 리뷰 남깁니다.

이번 권에는 두편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는데 두 작품 평균한 전체 별점은 2점입니다. "50"이라는 권수가 의미가 있는 만큼, 기대가 컸는데 영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습니다. 특유의 일상계스러운 이야기가 없는 것도 아쉽고요. 다음 권을 기대해봐야 겠습니다.

수록작별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관측"

토마의 MIT 공대 시절 동기 샐리 브라이스는 졸업 후 실험 관측장치를 제조하는 브라이스사를 세웠다. 그러나 납품한 냉각장치의 연이은 고장으로 궁지에 몰렸고, 그녀는 토마에게 도움을 요청하는데...

원통 구조의 터널에서 양쪽 입구로 추적대가 진입하였는데 범인은 어디로 도망갔는지? 에 대해 현실적이면서도 참신한 트릭이 등장합니다. 실제로는 여러가지 문제가 있었을 수 있지만, 상황에 대한 설득력만큼은 상당해서 재미있었습니다. 관측에 대한 상세한 설명과 함께 CCD, LHC가 무엇인지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어서 학습만화로서의 가치 또한 높고요. 토마의 과거사를 약간이나마 더 알게된 것도 오랜 팬에게는 선물같은 부분입니다.

그러나 추리만화라기보다는 샐리가 부모님의 속박을 끊고 날아오른다는, 일종의 성장기 만화로 보는게 더 타당합니다. 때문에 재미가 없지는 않지만 대폭 감점하여 별점은 2점입니다.

그나저나... 마지막 장면에서 샐리가 토마에게 뭐라고 말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추후 가나의 라이벌로 다시 등장하게 될지 사뭇 궁금해지네요.

"탈출"

한 소년이 밀실과 마찬가지인 창고에서 살인을 저지른 범인이 기발한 방법으로 탈출하는걸 목격했다. 16년 후, 가나에게 이스케이프 게임을 제작해달라는 의뢰와 함께 설계도와 20만엔이 보내졌다. 게임을 완성한 가나와 토마 앞에 게임에서 우승하면 100만엔의 상금을 주겠다는 전단을 받은 5명의 손님이 나타났고, 가나와 토마는 함께 게임을 진행하는데...

특정 장소를 빠져나가기 위해서는 퍼즐을 풀어야 한다는 전형적인 폐쇄형 게임 미스터리 장르물. 다른 유사 장르물과의 차이점은 이 작품은 정말로 게임이라는 점입니다. 16년 전의 범행을 밝혀내기 위한 일환으로 상황을 긴박하게 몰고가기 위한 일종의 함정이 등장하기는 하지만요.

이런 장르물에서는 그전 리뷰에서도 계속 이야기했지만 퍼즐, 수수께끼가 가장 중요한데 다행히 이 작품에서의 퍼즐은 꽤 재미있는 편입니다. 특히 "今"을 오른쪽으로 돌려놓은 암호문, "A"가 가리키는 색깔을 알아내는 퍼즐은 아주 그럴싸했어요. 중간 중간의 대사, 장면을 복선으로 활용하여 과거의 진범을 드러내는 전개도 기가 막히고요.

그러나 소년이 아무리 트라우마가 있다한들, 본인 돈으로 거대한 장치를 꾸미고 범인을 도발하여 옭아매려 한다는 동기는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또 목적이 명확하다면, 앞선 퍼즐은 사실 나올 필요가 없었습니다. 마지막 밀실로 바로 이동해도 상관이 없으니까요. 무엇보다도 핵심 트릭이라 할 수 있는 마지막 밀실에서 탈출하는 방법은 아주 별로였습니다. 문에 아무런 상처가 나지 않았을지, 경첩이 안전했을지, 뒤로 받쳐둔 나무토막이 제대로 눈에 안 띄게 떨어졌을지 등 문제가 많이 보였던 탓입니다.

때문에 별점은 2점. 주변요소는 재미있지만 핵심이 미흡한, 그런 작품이라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네요.

2025/07/13

기암관의 살인 - 다카노 유시 / 송현정 : 별점 2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추리 매니아 프리터인 사토는 아르바이트로 카리브 해의 외딴 섬 저택 '기암관'으로 향했다. 정해진 설정에 따라 연기를 하며 3일간 지내면 100만엔을 준다는 아르바이트였다. 사토에게는 반 년 전 사라진 일용직 친구 도쿠나가를 찾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기암관은 부호 미에이도 하루사다의 저택으로, 사토는 하루사다의 친구로 방문했다는 설정이었다. 그리고 여러 명이 방문한 기암관에서의 첫 날 밤, 쾌활했던 손님 텐가와가 밀실에서 살해당한채 발견되었다. 알고보니 이 모든 건 부자들의 유희를 위해 벌이는 진짜 살인 게임이었고, 사토는 살아남기 위해 최선을 다하게 되는데...

고전적인 제목이 마음에 들어 집어든 작품입니다. 

특징이라면 '폐쇄형 게임 미스터리'물의 설정을 작품의 핵심 소재로 풀어냈다는 점입니다. 실제 살인을 포함한 추리 게임을 유료 서비스로 제공하는 회사가 있다는 설정입니다. 추리를 즐기고 싶어 하는 부유한 클라이언트가 거액을 지불하고 사건을 의뢰하면, 회사는 추리 소설가가 만든 각본을 준비하고 배우를 모집해 실제 살인을 연출합니다. 이 회사는 전 세계에 지사가 있고요.

이야기는 영문도 모른 채 이러한 추리 게임에 참여한 뒤 살아남기 위해 분투하는 사토와, 회사측 운영 담당으로 도서 추리소설처럼 모든 범행을 지휘하며 예기치 못한 사고를 수습하는 고엔마의 시선이 교차하며 전개됩니다.

사토는 평범한 프리터로, 3일에 100만엔이라는 고액 아르바이트로 고용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설정된 조연 역할만 수행하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사람이 죽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부터는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합니다. 다행히 '추리 매니아'인 덕분에 여러 위기를 추리를 통해 해결하면서요. 여기서 생기는 딜레마도 재미있습니다. 직접 사건을 해결하면 고액을 지불한 클라이언트 탐정의 등장이 무의미해지는 탓에 살해당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딜레마지요. 때문에 조수 역할에 머무르며 단서를 간접적으로 전달하려고 노력하고, 마지막 날 밤에는 모두 함께 밤을 보내자는 현실적인 대응도 시도합니다.
반면 고엔마는 이 게임을 기획한 회사 직원이자 운영 총괄로, 작가가 쓴 각본에 따라 전체 사건을 총괄하며 참가자들의 돌발 행동과 예기치 못한 사고를 수습해 나갑니다. 클라이언트의 만족을 최우선으로 하며, 기획된 시나리오에서 벗어나는 변수는 가능한 한 배제하고요. 그래서 사토가 무대의 흐름을 바꾸려는 조짐을 보일 때마다 이를 조용히 차단하려 합니다.
이러한 두 인물의 시점을 오가며 둘의 입장 차이를 극명하게 드러내고, 대립도 선명하게 만드는 전개는 인상적입니다.

추리적으로도 볼 만 합니다. 일종의 암호를 통해 예고되는 살인과 선보이는 트릭들은 만화적이지만 재미있기는 하거든요. 텐가와가 사망한 밀실 트릭은 '인간 의자'를 응용한 방식이며, 시즈쿠 사건에서는 목각상 머리를 활용해 밀실을 구성하는데 다소 과장되어 있지만, '사체의 목을 잘라낸' 분위기와는 잘 어울립니다. 여러 고전 추리를 패러디하면서 어떻게든 범행을 대본에 어울리게끔 저지르는 악전고투도 생생하게 묘사되어 재미를 더해주고요.
사토가 기암관에서 벌어진 사건의 구조적 문제를 간파하고, 회사 관계자들 앞에서 그 허점을 조목조목 지적하는 결말도 볼거리입니다. 추리소설 애호가라면 납득할 만한 주장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작품 안에서 가장 논리적인 추리가 펼쳐지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기획된 시나리오가 실제 사건의 변수에 따라 계속 수정되며 혼선이 생기는 부분은 블랙 코미디같습니다. 원래 탐정 역할이었던 텐가와가 또 다른 클라이언트의 의뢰로 살해당하고, 범인 역할로 설정된 시라이가 예기치 않게 죽자 급하게 고사카를 새로운 범인으로 설정하는 식인데, 특히 고사카가 법의학자 출신이었다는 설정이 갑작스레 등장하는 장면은 제법 웃깁니다.

하지만 완성도가 높다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지나치게 만화적인 설정에 더해 인물들이 전형적이고, 감정적으로 설득력 있는 묘사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사토가 마지막에 갑자기 천재 추리 작가로 변신하는 결말은 뜬금없고 어색합니다. 살인극이 라이브 스트리밍으로 중계되고 있었다는 설정도 지나치게 비현실적이고요. 이렇게 후반부에 억지스러운 장치들이 겹치는 탓에 몰입도가 떨어져버리고 맙니다. 시라이가 왜 죽었는지에 대한 설명도 부족하고, 선장이 언급만 되고 등장하지 않는 점 역시 이야기의 완성도를 저해합니다.

사토라는 인물도 영 별로입니다. 그는 이전 일용직 동료인 사토나가의 실종에 대한 단서를 찾기 위해 이 아르바이트에 참여했고, 히로인 시즈쿠에 대해서도 동경의 감정을 품는걸로 표시됩니다. 그러나 두 사람의 죽음을 알고난 이후에 특별한 감정 변화를 보이지 않습니다. 복수심이나 애도는 거의 언급되지 않아요. 오히려 회사의 전속 작가가 되기 위한 포부를 밝히는 데 집중합니다. 단순히 살아남기 위한 선택이었다고 보기에는 설명이 너무 부족했어요. 사토보다는 차라리 고엔마가 더 매력적이었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교차 시점 구성과 일부 트릭은 인상적이지만, 인물의 설득력 부족과 과도한 작위적 설정은 큰 감점 요소입니다. 구태여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2018/12/30

10년 만의 인사이트 밀 - 요네자와 호노부 / 최고은 : 별점 2.5점

The Incite mill 인사이트 밀 - 6점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최고은 옮김/학산문화사(단행본)

2008년 발표된 작품으로 저 스스로는 "
폐쇄형 게임 미스터리" 라고 부르는 장르물의 대표작이자 요네자와 호노부의 출세작 중 하나로 2010년에는 영화까지 제작되어 개봉되었을 정도로 많은 인기를 끈 작품입니다. 연말을 맞아 책 정리를 하다가 10년만에 다시 읽게 되었습니다.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러서 그런지, 내용이 기억이 나지 않아서 처음 읽는 것처럼 읽을 수 있었네요.

재미는 있지만 비현실적인 설정은 조금 거슬린다는 개략적인 느낌은 10년 전과 별로 다르지는 않습니다. 특히나 이후 읽었던 다른 장르물에서는 "일단의 무리를 폐쇄 공간에 모으는 이유"를 설득력은 떨어지지만 복수라던가 살육극의 중계 등으로 최소한 설명하려고 노력하는 것에 비해 이런 내용을 전부 무시하고 "암귀관" 에서의 이야기만 묘사되는건 선택과 집중 측면에서는 바람직하더라도 완성도 측면에서는 아쉬움을 남깁니다.
또 유사 장르물에 비하면 "암귀관" 에서의 게임 조건(?) 도 그다지 잘 짜여져 있지 않아요. 작중에서는 니코틴을 가장한 "약살" 이 파워 밸런스를 붕괴시킨다며 문제삼지만 사실 전체적인 흉기의 파워 밸런스 자체가 문제니까요. 멋을 부리면서 유명 추리소설에 등장한 흉기를 배치하고, 이를 트릭으로 삼은건 그렇다쳐도 공기 피스톨과 보우건, 슬링샷같은 원거리 무기를 확보한 사람이 유리한건 당연하죠. 밧줄이나 자살용 칼은 정말이지 이게 뭔가 싶거든요.
그리고 10년 전에는 무심히 넘겼지만 모든 식사가 포크나 나이프와 같은 흉기가 될 도구가 불필요한 샌드위치나 도시락으로 준비되었다는 이야기도 역시나 문제에요. "젓가락"도 충분히 흉기가 될 수 있지 않았을까요? 이 역시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마지막 에필로그는 솔직히 불필요했고 말이죠. 

그래서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10년의 세월 동안 0.5점이 감점되었는데, 이는 보다 나은 다른 유사 장르물이 많이 발표된 탓으로
인기 작가 요네자와 호노부 작품의 원형 중 하나로 다시 읽어도 충분한 재미를 선사하지만 동일 장르물에서 손에 꼽을 걸작이냐 하면 그렇지는 않습니다. 이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2021/06/18

눈물점 - 미야베 미유키 / 김소연 : 별점 2점

눈물점 - 4점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북스피어

미야베 미유키의 에도물인 미시마야 시리즈 6권째 작품. 모두 4편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이번 권 부터는 전작에서 시집간 오치카를 대신해서 도미지로가 괴담을 듣는 역할을 맡습니다. 그런데 전작에서부터 예견된 이 교체는 별로 기대가 되지 않는다고 말씀드렸었지요. 결과물은 역시나 실망스러웠습니다. 그냥 괴담 이야기 듣기를 좋아하는 한량이라서, 괴담 이야기를 듣는 진지한 목적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괴담 이야기에 대한 별다른 책임감도 느낄 수 없었고요. 그 외에도 전작들에 비하면 괴담들의 섬찟함이나 무서움이 훨씬 덜한 편이라는 점, 그리고 가장 대작인 <<구로타케 어신화 저택>>이 특히 지루했던 점 등도 감점 요소였습니다. 그래서 전체 별점은 2점입니다. 도미지로로의 주역 교체에 대해 갖고 있던 불안감이 현실이 된 만큼, 이후 이 시리즈를 읽을 일은 없을 듯 합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읽으시기 전에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눈물점>>
도미지로에게 어린 시절 소꿉친구였던 하치타로가 찾아왔다. 그는 과거 자신의 집이었던 두부가게 '마메겐' 일가족을 파괴했던 눈물점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었다.
과거 마메겐에서는 형수들과 누나가 남자 가족을 잇달아 유혹했었다. 마지막에 큰 누나가 아버지를 유혹하는 상황에서 어머니가 큰 누나의 '눈물점'을 잡아 뜯어 잘근잘근 씹어버렸지만, 죄책감에 시달리던 아버지는 가출한 뒤 죽었고 가족은 뿔뿔이 흩어졌다는 이야기였다.


악령이 눈물점 형태로 여자에게 씌워지면, 남자를 유혹하게 된다는 뻔한 이야기. 거기에 더해 악령이 '마메겐' 여자들에게 씌워져 가문을 박살낸 이유에 대한 설명이 없어서 답답했습니다. 아버지가 사과했다던가, 가출했다던가 하는걸 미루어보면 뭔가 여자에게 원한을 산 듯 한데, 암시만 줄 뿐 속 시원하게 밝혀지는건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그냥 재수없게 귀신에게 씌웠다라고 한다면, 아버지가 가출해서 죽을 필요는 없었습니다. 창피해서? 그렇다면 눈물점의 여자가 아버지가 죽은 자리에 귀신으로 나타날 이유는 없지요. 어머니가 가족이 흩어지는걸 허락한 이유도 불분명하고요.

하치타로의 부인은 얼굴이 점투성이었다는 결말과, 어린아이답지 않게 똑똑했던 막내 누나 치이 캐릭터는 괜찮았습니다. 치이는 눈물점이 수상하다는건 알지만, 이를 방관하는걸로 그려지는데, 차이가 주도적으로 활약하면서 이야기를 끌어갔더라면 훨씬 좋았을텐데 아쉽네요. 하지만 장점보다는 아무래도 단점이 더 많았다고 생각되기에, 별점은 2점입니다.

<<시어머니의 무덤>>
꽃놀이 철, 비단 장사집 노부인 오하나가 찾아와 고향 벚꽃 마을에서 있었던 무서운 과거를 이야기해주었다. 마을에는 묘지 언덕에서 꽃놀이를 하는 관습이 있었다. 그러나 오하나의 집 가가리야의 여자들은 참석할 수 없었다. 가가리야 증조 할머니가 며느리를 미워하다가 자살한 뒤 가가리야 여자들은 꽃놀이 때 묘지 언덕에 오르면 죽는 저주에 걸렸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중 가가리야에 며느리 오케이가 들어온 뒤, 당찬 그녀의 주도로 가가리야 여자들은 묘지 언덕 청소를 위해 꽃놀이 전날 묘지 언덕에 올라갔다. 그 때 무언가에 씌인 어머니가 며느리를 죽였고, 그 뒤 행복했던 가족은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과거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내렸다는 저주에 대한 괴담. 미야베 미유키가 얼마나 뛰어난 이야기 꾼인지 새삼 느끼게 해 준 작품입니다. 꽃놀이 묘사에서 시작해서 평화로왔던 벛꽃 마을 묘사, 말괄량이 며느리 등 저주와는 관계없어 보이는 시시콜콜한 내용을 재미있게 묘사하다가, 과거 증조 할머니의 저주와 그 저주의 재림이 이어지는 클라이막스까지 달려가는 전개가 절묘하고, 호흡과 긴장감도 최고 수준이기 때문입니다.
앞서의 <<눈물점>>처럼 저주에 대한 이유 설명이 없지 않다는 점도 마음에 듭니다. 증조할머니가 비정상적으로 며느리를 미워해서 생겨난 것으로 설명되고 있거든요. 물론 왜 미워하는지에 대한 설명은 부족한 편입니다. 며느리 뱃속 아기까지 죽인다는건 납득하기 어려웠고요. 심지어 그 저주가 미워하는 대상인 며느리가 죽고 나서도 몇 대를 이어서 내려올 까닭도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이 정도라도 설명이 없는 것 보다는 훨씬 낫긴 합니다. 괴담이나 퇴마물에서 저주는 어쨌건 이유가 명확해야 이야기가 성립되니까요. 저주를 없애기 위해서, 혹은 저주 때문에 죽거나 피해를 받더라도 이유를 알아야 하는 탓이지요.

그러나 이 괴담이 현실화된 과정은 조금 아쉬웠습니다. 벚꽃 마을 사람들 행동이 너무 이상하게 느껴졌거든요. 마을의 유력자인 가가리야 가문 며느리가 꽃놀이 때 저주로 비참하게 죽었다면 꽃놀이를 계속 그 곳에서 하는건 말이 안되잖아요... 최소한 위험한 묘지 언덕을 오르는 계단은 보수했었어야 합니다. 이래서야 저주로 인한 죽음을 그냥 가만히 기다린 것에 불과해 보입니다. 너무 설득력이 없어요.
마지막에 도미지로가 오하나에게 위안을 주기 위해 "어깨의 손자욱은 밀기 위함이 아니라 안아주기 위함이다."라고 말한 것도 멋지기는 하지만 도미지로가 말해서 별로 어울리지 않더군요. 결혼도 안 했고, 당연히 아이도 없으며 여자도 아니고 그리 오래 살지도 않았고 아픈 경험도 딱히 겪어본 적 없는 도미지로가 한참 어른인, 산전수전을 다 겪은 오하나에게 할 말은 아닌 듯 싶었거든요. 도미지로가 이야기를 듣는 역할로는 별로 어울리지 않는다는 제 생각이 더욱 굳어지게 만든 결말이었어요.

그래서 별점은 2.5점. 괴담으로의 재미는 확실했고, 미시마야 시리즈 특징을 잘 살린 작품이지만 단점도 명확해서 감점합니다.

<<동행이인>>
이번에 이야기를 해 주기 위해 미시마야를 찾아온 건 나이 쉰 살의 파발꾼 출신 지배인 가메이치였다. 그는 파발을 위해 달리던 어느날 들러붙었던 귀신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귀신이 그에게 들러 붙었던 이유는, 귀신 간키치처럼 가메이치도 당시 처자식을 잃고 슬픔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른 작품들과 장, 단점이 완전히 반대인 작품입니다. 장점이자 차이점이라면, 귀신 및 기타 기묘한 현상에 대한 설명이 완벽하다는 점이에요. 가메이치에게 귀신이 달라붙은 이유는 줄거리 소개와 같고, 간키치가 귀신이 되어 아버지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 앞에 나타난건 더 이상 울지 않는다는걸 보여주기 위함이고 (얼굴이 없으므로), 얼굴없이 가메이치를 뒤 쫓을 때 고개를 계속 끄덕이던건 울고 있어서였습니다. 아버지 찻집에 벼락이 떨어진건 단순히 운이 나빴기 때문이고요. 물론 여관 부뚜막에서 화재를 일으킨 이유는 애매합니다만, 이 정도면 귀신에 관련된 거의 모든 현상에 대해 충실하게 설명해 준 셈이지요.
파발꾼 이야기답게, 당시 에도에서 도카이도를 통해 가는 지방과 길에 대한 풍부한 묘사도 특징입니다. 이런 부분에서 시대물이지만 약간 여정 미스터리 느낌도 전해주네요. 파발꾼과 파발 업무에 대한 세세한 설명도 좋았고요.

하지만 전혀 무섭지 않다는 단점이 너무 명확합니다. 가족을 잃은 슬픔과 치유에 대한, 감동 계열의 이야기인 탓입니다. 솔직히 이게 괴담인가? 싶을 정도에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괴담이라면 일단 무섭고 봐야 하는데, 그런 점에서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구로타케 어신화 저택>>
정체 불명의 저택에 여섯 명의 사람이 모였다. 괴저택은 죽을 죄를 지은 사람들을 모아 신처럼 그들을 가지고 놀 속셈이었다. 과거 예수교를 믿었었지만, 기도에 보답받지 못하고 오히려 비참한 일을 겼었던 저택 주인의 분노와 원념 탓이었다.
올곧은 무사 긴에몬이 지휘했지만 여섯 명은 차례대로 비참하게 죽어갔고, 결국 긴에몬, 진자부로, 오아키 3명만 남게 되었다. 그들은 최후의 힘을 모아 탈출하기로 결심하고 저택의 심장부인 불타는 화산 장지문을 뚫고 나갔다. 그 때 긴에몬은 저택 주인인 검은 무사와 싸운 뒤 용암에 삼켜졌지만 진자부로와 오야키는 살아서 돌아오는데 성공했다.
그로부터 10년 뒤, 저택에서의 일로 건강을 해친 진자부로는 죽기 전 이 경험을 도미지로에게 이야기해 주는데...


한 편의 장편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의 분량을 자랑하는 대작.
정체불명의 장소에서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자기들이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모인 뒤, 살아남기 위해 노력한다는건 "폐쇄형 게임 미스터리" 장르물을 연상케 합니다. 제가 명명한 명칭인데 (원조!), 이 장르는 보통서로 경쟁해서 이겨야 살아남는 방식, 또는 갇힌 공간의 수수께끼를 풀어서 탈출하는 방식 중 한 가지 방식을 따릅니다. 특정한 룰을 따라야 한다는 전제 조건이 있다는건 동일하고요. 이 작품에서의 룰은 "6명 중 5명이 죽어야 탈출할 수 있다", 즉 최후의 한 사람만 탈출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택은 초반에 이를 노골적으로 가르쳐 주지요. 그래서 첫 번째 방식, 즉 사람들간의 아귀다툼과 생존경쟁으로 진행되나 싶었어요. 그러나 의외로 이야기 전개는 두 번째 방식이더군요. 서로 힘을 합쳐서 어떻게든 탈출하는 방법을 찾아내기 위해 노력하니까요. 이는 인격자이자 참 리더인 긴에몬의 존재 덕분입니다. 하긴, 한 명만 살아남는다면 검술에 능한 무사를 하녀와 부잣집 마나님, 도박에 미친 한량과 주정뱅이 목수, 약국집 후계자가 이길 수 있을 턱도 없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요.

문제는 탈출하는 방법을 합리적으로 밝혀낸다는, 이러한 전개의 핵심 재미요소를 간과했다는 점입니다. 이들이 저택에 갇히고, 죽을 위기에 처한건 모두 초자연적인 힘에 의한 것이며, 제령이나 퇴마의 방법도 합리적이지 못한 탓입니다. 애초에 이 현상이 왜 일어났는지 합리적인 설명이 없으니, 없애는 방법이 합리적일리 없지요. 마지막 탈출도 모 아니면 도 방식으로 우격다짐에 불과했고요.
또 모두 힘을 합쳐 노력하다보니 별로 무섭지도 않다는 점도 단점이에요. 차라리 첫 번째 방식으로 서로 살아남고자 서로를 죽이려고 하는 식으로 전개하는게 더 좋았을겁니다. "사람이 더 무섭다"는건 전형적이기는 하지만, 호러물에 꽤 잘 아울리는 방식이니까요. 미시먀야 시리즈 초반에 비슷한 이야기가 몇 편 있었지요. 이 시리즈도 점점 인간미, 세상은 그래도 살만하다는걸 알려주는 이야기가 많아지는걸 보면, 미야베 미유키도 나이를 먹었구나 싶네요. 아울러 이런 전개로 반전이라면 반전인, "진자부로는 죽을 죄를 짓지 않았다"는 설정을 잘 살리지 못한 것도 유감스러웠습니다.

이야기도 다른 작품들에 비교하면 지루한 편입니다. 저택이 악의를 드러내는 과정까지가 너무 긴 탓이 큽니다. 우선 오아키가 한텐을 보내어 에둘러 이야기거리가 있다고 요청하는 시작부터 진자부로의 이야기까지의 분량 낭비가 심했어요. 괴저택의 기묘한 디테일도 어린아이들 동화같은 내용과 분위기라 지루하기는 마찬가지였고요.
내용에서 불거지는 "예수교" 설정도 전개에는 불필요한, 분량 낭비였습니다. 저택 주인의 원한과 분노의 원인이기는 하지만, 그렇게 설득력있게 그려지지도 못했어요.꽤 괜찮은 설정이었는데, 불필요한 정보로 낭비된 느낌이 들어 아깝더군요.
화자인 진자부로도 등장 인물들 중 가장 호감가지 않는 인물이라 읽는 재미를 반감시킵니다. 가진 재주도 없고, 용기도 없고, 별다른 계획도 없으면서 일행 마사키치를 질투하는 꼴사나운 모습만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진자부로가 도박에 미쳤다는 묘사도 지나치게 많고요. 엄연히 진자부로가 도미지로에게 해 주는 이야기이니만큼, 이런 쓸데없는 묘사들은 좀 걷어내는게 좋았을거에요.

그리고 이 작품을 통해 도미지로가 최악이라는걸 다시금 느꼈습니다. 마지막에 예수교 관련 천조각이 들어간 한텐을 한 번 만났던 골동품 가게에 맡기는 행동 때문입니다. 여러 명의 목숨이 걸려 있을 물건인데, 굉장히 무책임했어요. 이야기 때 무슨 과자를 먹을지 정도의 고민도 하지 않은 듯한 행동이었습니다. 이래서야 오야키가 '미시마야의 괴담회는 단순한 놀이일 뿐'이라고 일갈해도 할 말이 없겠지요. 제 생각도 오야키와 같습니다.

그래도 저택이 악의를 드러낸 뒤, 이노스케가 딸을 사창가에 팔아먹은 죄를 고백하고 검은 무사에게 참살당하는 장면에서부터 생존자들이 탈출할 때까지 달려주는 부분만큼은 꽤 재미있었습니다. 괴현상이 사람을 집어삼키는 묘사가 탁월하고, 괴저택과 그 안의 괴이 현상에 대한 상상력도 빼어난 덕분이지요.
에도 시대에 대한 디테일도 역시나 최고 수준으로, 특히 예수교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이 어땠는지 잘 알 수 있었습니다. 예수교라는 말만 듣고도 도미지로가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장면을 통해, 평범한 사람이 예수교를 얼마나 배척했는지 드러내고 있는데, 이런 작품은 이전에 본 적도 없네요. 신불을 믿는 사람이 예수교 교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그럴듯하게 설명되고 있고요. 현재와 사뭇 다른 당대 상황에 대한 설명과 묘사는 그 외에도 많습니다. 마사키치가 이노스케가 죽은 뒤 충격으로 미쳐버렸다는 설정이 대표적이에요. 온갖 자극에 익숙해진 현대인이라면 이 정도로는 정신이 무너지지 않겠지요.

이렇게 장점이 없지는 않습니다만, 무섭지도 않았고, 설명도 부족하며, 도미지로의 부족함이 두드러진 작품이기에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2023/09/29

방주 - 유키 하루오 / 김은모 : 별점 2.5점

방주 - 6점
유키 하루오 지음, 김은모 옮김/블루홀식스(블루홀6)

<<아래 리뷰에는 진범, 진상, 반전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슈이치는 대학 동창들, 그리고 사촌형 쇼타로와 함께 유야의 별장에 놀라왔다가 유야가 발견했다는, '방주'라 불리우는 거대한 지하 시설을 찾았다. 일행은 버섯을 따러 왔다가 길을 잃었다는 야자키 가족과 하룻밤을 '방주'에서 보냈는데, 지진 탓에 그만 갇히고 말았다. 
지하에서부터 물이 차올라 일주일 안에 탈출해야 했지만, 방법은 입구를 막은 돌을 떨어트리는 것 뿐이었다. 하지만 돌을 떨어트린 사람 혼자 방주에 남게 되는 문제가 있었다. 마침 유야가 살해되었고, 일행은 유야를 죽인 범인을 방주에 남도록 하자는 암묵적인 동의를 이뤘다. 
그러나 증거가 없어 시간이 흘러가던 차에, 사야카와 야자키도 차례로 살해당했다. 그리고 최후의 순간, 쇼타로가 추리쇼를 벌여 범인을 밝혀냈다.

2022년 '주간문춘 미스터리 베스트 10' 1위, 2023년 '본격미스터리 10' 2위에 선정되는 등 최근 가장 뜨거운 작품. 추석 연휴를 맞아 읽어보았습니다. 찬사를 받은 이유는 바로 알겠더군요. 일반적인 클로즈드 써클 (클로즈드서클) 장르의 틀을 완전히 깨버린 덕분입니다. 이렇게 닫힌 공간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이 벌어지고 이를 해결하는 이야기는 한, 두편이 아닙니다. 산장이나 섬같은 고전적인 장소에서 현대적인 빌딩이나 기묘한 이공간 등으로 장소도 확장되어 왔고, 고립되는 이유도 폭설이나 홍수 등의 자연재해에서 정전 등의 현대적인 이유, 특수한 집단이 납치하여 게임을 벌이거나 좀비가 등장하는 식의 특수 설정까지 다양한 상황을 선보여 왔고요.
그런데 이 작품은 고립된 장소도 독특하지만, '범행을 벌이는 동기'를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범인 마이가 범행을 저지른 이유는 원한따위가 아닙니다. 오로지 "고립된 장소에서 탈출해서 살아남기" 위해서에요. 게다가 이를 위해서 범행이 결국 밝혀지도록 유도하기까지 하고요. 전에 보지 못한 신선한 발상이었습니다.
고립된 장소인 '방주' 설정도 좋습니다. 출입구를 거대한 바위로 막을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는 이유는 물론, 반전에 유용하게 활용되는 출입구와 비상구를 감시하는 카메라의 존재를 오래전 과격 분자나 사이비 종교 단체가 이용했기 때문이라고 하는건 충분한 설득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방주 내에 이런저런 시설과 장비, 음식 등이 갖추어져 있는 것도 같은 이유로 말이 됩니다. 지하 3층에서부터 물이 차오르고 있어서 모두가 살아남을 수 있는 시간이 제한되어 있다는 것도 긴장감을 불러 일으키는 좋은 장치였습니다. 이렇게 '방주'의 존재감이 너무 확실해서 초, 중반부까지는 방주가 주인공인 느낌마저 전해줍니다.

그러나 문제도 많습니다. 첫 번째는 '범인'에게 닻감개로 바위를 치우고 홀로 고립될 역할을 맡긴다는 암묵적인 동의입니다. 범인이 누구든간에 자기 범행이 드러났다고 그런걸 순순히 받아들일 이유는 없습니다. 만약 범인이 피트니스 센터 강사 류헤이였다면? 완력으로 제압하여 굴복시키기도 어려웠을테지요. 그리고 침수 중이라 시간 제한이 있다면 범인을 찾아서 희생하라고 설득하느니, 누구든 빨리 돌을 치워 사람들을 탈출시키고 구조를 기다리는게 빨랐을겁니다. 아무리 산사태가 일어났어도 한나절 만에 올라온 산을 내려가는데 1주일이나 걸릴리가 없잖아요? 기본적인 상식을 부정하는 설정이었습니다. 같은 이유로 아무도 공기통을 활용하여 지하 3층을 지나 비상구로의 탈출을 시도하지 않는 것도 이해할 수 없었어요. 범인을 밝히는 것 외에 최소한의 생존을 위한 노력도 하지 않는건 설득력이 약합니다.

마이가 범행을 저지르는 일련의 과정도 작위적입니다. 물론 마이가 곧바로 범행을 저지른 이유는 제비뽑기 같은 것으로 희생자(?)를 고르기 전에 상황을 바꿔야 했기 때문이라는건 어느정도 말은 됩니다. 전에 '방주'에 왔던 경험이 있는 유야는 출입구와 비상구가 바뀐걸 눈치챘을지도 몰랐기에 제일 먼저 죽였다는 것, 유야 사건에 증거가 남지 않고 모두가 범행이 가능했다는 것 역시 마찬가지로 납득할 수 있어요. 
하지만 사야카의 핸드폰 속 사진이 출입구와 비상구가 바뀐걸 나타낼 수 있어서 죽였고, 사야카가 핸드폰을 분실해서 어쩔 수 없이 목을 잘랐다 - 핸드폰이 안면인식으로 잠금 해제가 되는 모델이라 - 는 것까지는 그렇다쳐도, 애써 종이 타월을 가져오면서까지 증거 인멸을 위해 노력했다는건 설명이 안됩니다. 어차피 범인임을 드러내어 희생양이 될 목적이었다면 시체의 목을 자르다가 들통나는게 더 확실했을거에요. 제한 시간까지 기다리면서 범행을 드러내는 것 보다는 말이지요. 사체의 목을 자르는 행동이 의심을 불러 일으킬까봐 그랬다? 그래도 상황은 바뀌지 않았을겁니다. 생명이 경각에 달린 고립된 사람들 앞에서는요. 마지막 쇼타로의 추리쇼에서 어떤 사진 때문에 사야카를 죽였는지에 대해 마이가 설명한걸 아무도 부정하거나 지적하지 않았던 것처럼요. 또 마지막 추리쇼에서 마이가 범인이라는건 증명하지만, 앞서 쇼타로가 말했듯 "동기가 없다"는 이유는 간과하고 있습니다. 식량이 부족했다던가, 유야가 방주로 일행을 억지로 데리고 왔다는 등의 설정을 덧붙였더라면 좋았을겁니다.
마이가 탈출에 성공했다 한들, 이후 다른 사람들의 실종과 죽음을 어떻게 설명하려 했는지도 잘 모르겠고, 테이프의 존재를 몰랐던 사람이 범인이라던가 유야의 손톱깎기와 지퍼백을 범인이 가지고 왔던 이유는 핸드폰이 방수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추리도 억지스러웠습니다. 테이프 정도야 잊어버릴 수도 있지요. 지퍼백의 용도도 지나치게 국한되어 있고, 발표 시점에 생활 방수가 되지 않는 핸드폰을 사용하는 MZ 세대가 있을걸로 보이지도 않고요. 

이렇게 장점도 확실하고 단점 또한 확실한 그런 작품입니다. 돌직구 하나로 마운드에 오르는 투수를 보는 느낌이랄까요? 변화구도 적절하게 섞어주지 않으면 버티기 힘듭니다. 세상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아요. 그래도 한 가지 장점으로 정면 승부를 벌일만큼의 매력도 충분합니다.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비슷한 설정들에 지친 추리 소설 애호가분들이라면 즐겁게 읽으실 수 있을겁니다.

덧붙이자면, 10명에 불과한 등장인물 - 심지어 3명은 중간에 살해당함 - 과 폐쇄된 공간, 일주일의 시간 제한 등의 설정은 '무대'에 잘 어울릴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금만 각색해도 괜찮은 연극이 될 수 있을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