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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9/11

아리스가와 아리스에게 바치는 일곱 가지 수수께끼 - 아오사키 유고 외 : 별점 2.5점

아리스가와 아리스 데뷰 35주년을 기념하여, 젊은 작가 일곱 명이 '아리스가와 세계관'으로 발표한 단편을 모아 놓은 단편집입니다. 아리스가와 아리스 세계관이지만 히무라 히데오 시리즈가 가장 많습니다. 또 다른 대표 시리즈인 학생 아리스 시리즈의 명탐정 에가미 지로 등장 작품은 한 편 밖에 없고요. 행각승 지장 스님 시리즈도 한 편 있을 정도인데 말이지요.

하여튼, 꽤 신선한 기획인데 작품들 수준도 괜찮아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워낙 유명한 젊은 작가들이 다수 포진해 있는 덕분입니다. 대부분 아리스가와 월드를 충실히 구현한, 전통적인 신본격 추리물이라는 점도 마음에 든 점이고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가볍게 즐기기에 적당합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스포일러 포함되어 있습니다.

"끈, 밧줄, 로프" 아오사키 유고

야스미 노도카가 모아이 도자기 상으로 머리를 얻어맞아 살해당한채 발견되었다. 동기는 희귀 게임 카드이며 범인은 새시를 통해 시체를 밖으로 운반한 뒤, 바다로 시체를 내던진 것으로 보였다. 여러 현장 상황을 통해 범인은 자동 잠금장치가 설치된 아파트 주민 29명 중 한 명이며, 그 중에서도 당일 오전, 로프같은걸 버린 세 명 중 한명일 가능성이 높았다. 피해자가 죽기 전 로프 같은 것으로 묶여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각자 버린 건 다용도 마끈, 안전용 수평 구명줄, 반사 소재 텐트 로프였다. 

히무라 히데오가 '필드 워크'를 통해 범인을 밝혀내는 전형적인 신본격 단편입니다. '헤이세이의 엘러리 퀸' 아오사키 유고답게 추리적인 부분은 완벽에 가깝습니다. 

히무라는 피해자가 둔기에 맞았을 때 안경을 끼고 있다는 것을 통해, 범인이 피해자가 깨어있을 때 침입했고 흉기로 위협했다고 추리합니다. 그리고 뭔가에 묶인 피해자를 나르는 범인을 목격했다는 증언을 통해, 범인이 피해자 사체를 유기하기 직전에 묶은 끈을 회수했다고 추리하고요. 사체 유기가 실패했다는걸 알 수 없을 정도로 어두웠기 때문에, 끈을 푸는 데에는 위협에 사용했던 칼을 사용했습니다. 다음날 범인은 토막난 끈을 버려야 했으며, 이는 쓰레기 버릴 때 종이 팩을 사용했다고 지적받았던 시나다의 행동과 이어집니다. 즉, 시나다가 범인입니다. 시나다는 매일 종이 팩 쥬스를 마시는 습관이 있어서 그게 재활용이라는걸 모르지 않았다는 것도 증거이고요.

사건과 범인이 로프를 그날 버린 이유모두 합리적으로 설명되며, 핵심 단서인 '로프'를 가지고 기둥서방 시나다의 유력한 동기였던 '동아줄'로 이어지는 일종의 언어유희적인 전개도 괜찮습니다.

다만 설정 자체가 조금 억지스럽다는 문제는 있습니다. 현대 법의학, 법과학으로 범인을 충분히 밝혀낼 수 있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요. 그래도 수수께끼 풀이용 단편으로는 충분한 수준입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덧붙이자면, 정통파 추리 소설에 대한 작가의 고민도 흥미롭습니다. 아래의 말을 빌어서, 추리 소설가의 필사적인 창작은 결국 AI도 만들 수 있는, 독창적인 요소가 없는 결과물일거라는게 요지인데 저 역시 동의하는 바입니다. 

  • '정보를 수집하고 검토해 논리적으로 수수께끼를 풀어낸다. 추리 소설이라는 장르가 하는 일은 따지고 보면 그 해법의 반복에 지나지 않는다.'
  • "수수께끼 풀이 자체는 누가 설명해도 마찬가지인, 개성없는 장면이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야. 애초에 누구나 풀 수 있는 수수께끼가 아니면 본격 미스터리로 성립할 수 없다는 딜레마도 있어. 결국 탐정 캐릭터들도 '모범 답안'을 독자에게 전하기 위한 장치에 지나지 않는 걸지도 몰라."

물론 이 논리는 미스터리는 과학이 아니라 유사 과학이라는 히무라의 입을 빌어 작가 본인 스스로 타개하고 있기는 합니다. 탐정들은 미스터리의 신의 말을 전하는 선교사인데, 시대와 장소에 따라 다른 의견을 내 놓는 과학자와 다른 집단이라면서요. 그래도 AI도 만들 수 있다는 결과물이라는게 변하지는 않지만요...

"클로즈드 클로즈" 이치오 미치

아리스와 히무라는 여고에서 일어났던 교복 도난 사건 해결을 부탁받았다. 교복을 도난당한 다즈하라 시게오는 같은 3학년 부원인 고미야 리오와 반목이 있었다. 그러나 고미야는 이미 수개월 전 전학을 간 상황이었다. 

다즈하라가 고미야에게 교복을 빌려줬는데, 다른 친구에게 빌린 거울이 들어 있어서 도난 소동으로 발전했다는게 진상입니다. 그런데 추리적으로 딱히 눈여겨 볼 부분은 없습니다. 히무라가 이렇게 추리해 낸 과정이 제대로 선보이지 않는 탓입니다.

또한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팬에게서 만족감을 주지 못합니다. 아리스와 히무라가 여고에서 가짜 신분(?)으로 활동하는 일상계 추리물이라는 설정은 독특하지만, 둘의 대화와 전체적인 분위기가 모두 여성 작가가 쓴 듯한 느낌이 많이 들기 때문입니다. 더 건조하게 묘사했어야 했는데 말이지요.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흉내내기에 불과해 보였어요. 수록작 중 최악입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히무라 히데오에게 바치는 괴담" 오리가미 교야

도쿄에서 열린 이벤트에 참석했던 아리스와 히무라는 그날 밤 찾은 바에서 서점 직원 쓰지와 합석하게 되었다. 쓰지는 둘에게 자신이 겪었던 괴담을 들려주었고, 히무라는 자신만의 추리로 괴담의 진상을 풀어냈다.

쓰지가 네 편의 괴담을, 그리고 마지막에 합류한 바 손님이 한 편의 괴담을 들려주어 총 다섯 편의 괴담이 선보입니다. 쓰지가 겪거나 들었던 괴담은 모두 추리를 통해 진상이 밝혀지는데, 아래와 같습니다.

  • 후배 하숙집에서 심야에 전자기기가 오작동하는 사건이 자꾸 일어났다. 심지어 어느 날은 한밤중에 탄내까지 났다.
    진상: 개조한 불법 무선기로 통신하는 장거리 트럭이 원인이었다. 심야에 발생한건 장거리 트럭은 고속도로 통행 요금이 할인되는 심야에 운행하기 때문이며, 탄내는 오작동한 전열기구 때문이었다.
  • 쓰지는 대학 시절에 동창과 숲에서 고개를 돌리며 짐승 울음 소리를 내었던 인형 탈을 보았다.
    진상: 몸은 땅 속에 묻힌 사람에게 인형 탈을 씌워 숲속에 방치해 둔 것이었다. 짐승 울음 소리는 재갈이 물려있던 탓이며, 비성수기 휴양지 산속이라는 현장이 근거이다.
  • 등산을 좋아하는 쓰지의 친구는 안개로 뒤덮인 산길에서 똑같이 생긴 오두막을 등산로에서 연이어 발견했다.
    진상: 그냥 오두막이 두 채 있었다.
  • 쓰지는 방학 때 고향 친구 가가와, 가가와의 선배 유모토와 함께 폐업한 유원지에서 담력 시험을 하기로 했다. 그런데 유모토가 미러 하우스 안으로 들어간 뒤 사라져버렸고, 그를 찾으러 들어간 쓰지는 미러 하우스 속 거울에서 무언가 움직이는 형체를 보고 혼비백산하여 도주했다. 그 뒤 가가와와 유모토와는 연락이 끊겼다.
    진상: 고객을 놀라게 만드는데 사용했던 매직 미러를 이용하여 유모토가 쓰지를 놀라게 만든 장난이었다. 

첫 번째 괴담은 재미있고, 네 번째 괴담도 추리만큼은 그런대로 합리적이지만 다른건 별로입니다. 그리고 모두 진상을 증명할 수 없다는 문제도 크고요. 

이보다는 바 손님인 이토가 이야기한 진짜 괴담이 더 괜찮았습니다. 이토는 교통사고 현장에 놓여있던 시들어진 조화를 버리고 새로 꽃을 사서 갖다 둔 뒤, 원망하는 표정의 여자 귀신에게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분명 선의로 행한 일인데 왜 귀신은 원망을 가졌을까요? 아리스의 추리는 '꽃이 문제였다'는 겁니다. 즉, 원래 놓여있던 시든 꽃이 귀신에게 소중한 사람이 놓아둔 꽃이었다는 것이지요. 이 역시 증명할 수 없다는 문제는 있지만 의표를 찌르는 맛도 좋고, 아리스가 추리를 펼친다는 의외성도 좋았습니다.

그 외에 저는 잘 모르는 '심령 탐정'이라는 아리스가와 월드 속 다른 주인공이 언급되는 등, 헌정물로는 여러모로 즐길거리가 많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블랙 미러" 시라이 도모유키

'나'는 대학 미스터리 동호회 때 친구였던 가가미 에이지로부터 오랫만에 연락을 받고 만났다. 그 뒤, 경찰을 만나 에이지와 그의 형 고이치가 연루된 살인사건에 대해 들었다. 상황은 에이지가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해 '나'와의 만남을 진행한 것으로 보였지만, 알리바이 트릭은 완벽해서 깨기 힘들어 보였다. 하지만 추리소설가를 꿈꾸던 '나'와, 경찰을 돕던 건방진 교수 히무라가 힘을 합쳐 알리바이를 깨는데 성공한다.

복잡한 시간표로 구성된, 전형적인 시간표 알리바이 트릭물입니다. 쌍둥이인 에이지와 고이치가 어느 시점에 교체하여 서로의 알리바이를 만든게 진상입니다. 핵심은 고이치가 엄지손가락을 절단한 뒤, 그걸 가지고 에이지가 고이치의 비밀금고를 열었던 것이고요. 이는 고이치가 범행을 저지른 뒤, 생수병 뚜껑을 따지 못해 머그컵으로 물을 마셨던 상황 등으로 추리됩니다.

하지만 지금 시점에서 보기에는 비현실적이라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습니다. 70년대라면 모를까, 지금은 CCTV가 여러 곳에 가득한데 자신의 노출을 이렇게까지 숨기면서 짜여진 시간표 동선대로 이동한다는건 말오 안되니까요. 히무라가 사건에 뛰어든 이유가 역에서 뛰어나가던 에이지와 부딪혔기 때문이었다는 우연도 작위적이고요.

본인을 주인공으로 한 일종의 메타적인 설정은 나쁘지 않지만, 현재 가장 뜨거운 작가 중 하나인 시라이 도모유키의 작품치고는 영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아리스가와 아리스 안티의 수수께끼" 유키 하루오

추리 소설가인 '나'는 신작 구상을 위해 담당 편집자 미토베 씨와 함께 취재차 온천 휴양지를 찾았다. 그런데 그곳 식당에서 만난 점원 후쿠나가 아이가 아리스가와 아리스를 극도로 싫어하는 사촌 이야기를 해 주었다. 둘은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후쿠나가의 사촌 아버지인 외삼촌 거처를 찾았고, 그곳에서 미토베 씨는 사촌의 행동을 추리해 내는데...

작품을 다 읽었지만 극도로 싫어한다는 사촌의 기묘한 언행에 대한 진상을 밝혀내는 일상계 추리물입니다.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유명 작품들이 다수 등장하지만, 무대와 설정은 아리스가와 월드가 아니라는게 특징입니다. 

추리는 사촌이 후쿠나가에게 아리스가와 아리스 책을 빌려주지 않으려고 거짓말을 했다는 데에서 시작합니다. 서재에 있던 아리스가와 아리스 책은 커버와 띠지만이며, 내용물은 다른 책으로 바뀌어져 있었기 때문이고요. 사촌은 별채에 침입하여 아버지의 만년필을 훔쳤습니다. 그러나 눈이 오는 바람에 별채에서 탈출하지 못했고, 별채는 난방이 안되어서 너무 추웠던 탓에 아리스가와 아리스 책을 난로에 태웠던 겁니다. 후쿠나가의 외삼촌은 모든 장서를 서재와 별채, 두 곳에 비치하였기 때문에 다음날 외삼촌이 돌아오기 전 사촌은 서재의 책을 별채로 옮기고, 때우지 않았던 띠지와 표지를 서재에 있던 다른 책에 씌워 위장했고요. 책은 새로 주문했지만 도착까지는 시간이 걸려서 당장 후쿠나가에게 책을 빌려주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안티인 척을 했던 거지요.

위의 추리를 위한 모든 정보는 공정하게 제공되는 좋은 추리물입니다.  유명 작품은 물론 히무라 히데오 시리즈의 TV 방영까지를 작품 설정에 녹였다는 점에서 '헌정'이라는 취지에도 딱 들어 맞고요. '아리스가와 아리스 안티'를 표방한 사촌의 주장은 헌정이라는 취지와 정 반대이기는 하지만, 이런게 또 기획의 묘미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3점입니다. 제가 읽었던 유키 하루오의 작품은 비현실적인 설정이 문제였는데, 소규모 일상계로 설정을 좁혀 놓으니 훨씬 낫네요.  

"행각승 지장 스님의 낭패" 아쓰카와 다쓰미

20년 전, 행각승 지장 스님의 이야기를 '에이프릴'에서 들은 멤버였던 '나'와 도코가와는 오랫 만에 한 잔 하기 위해 '풀스 메이트'라는 가게를 찾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20년 전과 똑같이 사건 이야기를 들려주는 행각승을 만났다. 그러나 그는 20년 전과는 다르게, 손님들의 공격과 의문에 제대로 대답을 하지 못하는 풋내기였다.

"행각승 지장 스님의 방랑"은 그렇게 인기가 많은 작품은 아니라고 알고 있는데, 이 작품을 헌정물로 새롭게 써 낸게 좀 신기하네요. 일종의 '도라에몽 세계관'인 히무리 히데오 시리즈와는 다르게, 지장 스님이 활약한 20년 후인 현재를 무대로 협박범 구로사와가 살해당했는데, 사체는 피해자가 수집했던 나비 표본 수십 개로 둘러 쌓여 있었던 사건에 대한 추리가 펼쳐집니다.

나비의 이름이 범인을 특정하는데, 나비 표본 하나만 꺼내어져 있으면 범인이라는게 바로 드러나서 어쩔 수 없이 표본을 전부 꺼냈다는게 진상입니다. 범인은 나비 표본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 모르는 아사기 유즈루였고요.

이 뒤에 등장인물의 이름, 수를 가지고 딴지를 거는 손님에게 진짜 지장 스님이 나타나 보강하는 추리를 펼치며 이야기가 마무리 됩니다. 

여러모로 추리 퀴즈에 가까우며, 작위적이고 설득력이 낮다는 점에서 원전과 비슷한 점이 많네요. 제 별점은 2점입니다.

"시체의 실루엣은 말한다" 이마무라 마사히로

에이토 대학 추리 소설 연구회 멤버 5명은 고향 나고야로 취업 활동을 갔다 온 오다가 가져온 수수께끼 풀이에 나섰다. 오다가 만난 동향인 고바야시가 친구가 남긴 암호를 해독해 달라고 부탁했기 때문이었다.

드디어 나왔습니다. "학생 아리스" 시리즈! 이 시리즈 단편은 읽은 적이 없는데, 젊은 작가가 일종의 일상계로 풀어낸게 신선하게 다가옵니다.

형식만 신선한게 아니라 추리적으로도 괜찮습니다. 고바야시의 친구 바토 씨가 남긴 낙서와 다이잉 메시지를 풀어내는 과정이 추리 소설 연구회 5명의 대화를 통해 펼쳐지는데, 정말로 모든 있을 수 있는 상황을 가정하고 추리와 의견들을 내 놓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를 토대로 드러나는 진상은 꽤 합리적으로 느껴져요. 대화로 일종의 추리 대결을 펼쳐나간다는 점에서는 작가의 전작 "시인장의 살인" 속 학생 식당 메뉴 맞추기 게임도 떠올랐습니다.

그러나 고바야시와 바토가 헤어졌고, 이 사건은 바토가 고바야시가 계속 어울려 줄 것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벌인 일종의 게임이라는 치명적인 단점은 있습니다. 결국 진상은 절대로 드러나지 않는 탓이에요. 다이잉 메시지도 AOK로 읽히는데 이건 All-OK라는 추리 역시 근거없는 공허한 주장일 뿐이지요.

논리적으로 즐길거리는 많은데 다소 맥이 빠진다는건 어쩔 수 없습니다.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에가미 선배의 신상에 대한 이야기 등 팬이라면 소소히 즐길거리가 있지만, 그리 추천할만한 작품은 아닙니다.


2008/03/04

월광게임 : Y의 비극 88 - 아리스가와 아리스 / 김선영 : 별점 2점

월광 게임 - Y의 비극 '88 - 6점
아리스가와 아리스 지음, 김선영 옮김/시공사

대학 신입생 아리스가와 아리스는 추리 소설 연구회 멤버들과 같이 여름 방학 캠핑에 나섰다. 때마침 같은 캠핑장을 이용하게 된 다른 대학교 학생들과 어울려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중, 캠핑장이 위치한 야부키 산이 갑작스럽게 분화를 시작했다. 일찌감치 이유를 알 수 없는 메모를 남기고 하산한다고 사라진 사유리를 제외하고 고립된 그들에게 매일 밤 한명씩 사라지거나 살해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결국 구조를 기다림에 지친 그들은 하산을 감행하는데....

아리스가와 아리스는 신본격 1세대 작가로 유명하죠. 이 작품은 작가의 데뷰작으로 국내에서는 아리스가와 아리스 작품의 첫 출간이기도 하고, 원서로 몇번 접해보았을때 꽤 괜찮았던 기억으로 구입해서 읽은 작품입니다. 그러고보니 최근 읽은 작품 두개가 모두 아리스와 관련되어 있네요. (아리스가와 "아리스" / 나선계단의 "아리스")

일단 기본적인 재미는 보장됩니다. 클로즈드 써클(닫힌 공간) 퍼즐 미스테리치고는 많은 인물들이 등장해서 각각 개성적인 모습을 선보이는 점도 좋고, 살인 사건을 비롯한 각종 사건들이 흥미진진해서 한번에 몰입해서 읽을 수 있습니다.
제가 읽었던 단편 시리즈는 히무로-아리스 컴비가 등장하는 시리즈였는데, 이 작품은 이른바 "학생 아리스" 시리즈라서 다양함을 느낄 수 있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아리스는 화자이며 탐정역할은 추리 소설 연구회 대선배인 에가미 지로가 맡고 있는데, 히무로와 에가미가 같이 등장하는 크로스 오버 작품도 왠지 기대가 되네요.


그러나 솔직히 본격물로서, 추리물로서의 점수는 주기 힘듭니다. "동기" 측면에서의 설득력이 약한 탓입니다. 캠프장에서 처음 만나 단 이틀을 같이 보낸 정도로 살의를 품게 된다? 솔직히 억지입니다. 게다가 우발적 범행도 아니고, 범인이 그런대로 머리를 써 가며 범행을 저지른것 치고는 살해 방법 자체도 말이 안됩니다. 화산 폭발이라는 자연 재해를 이용하여 사고로 위장하면 되었을텐데, 용의자가 한정되는 위험을 무릅쓰고 무리하게 살인 사건을 저지른다는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니까요.
무엇보다도 가장 결정적인 단서인 다이잉 메시지 "Y"에 대한 설명이 완전 별로였습니다. 일본적인 트릭이기도 하지만, 작위적이기도 하고 등장해야 하는 당위성을 느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어두운 숲길을 걷기 위해 사용한 성냥에 관련된 트릭은 무척 깔끔하고 괜찮았는데, 다이잉메시지 때문에 전체적인 추리의 완성도가 많이 떨어져 버리고 말았네요.

때문에 별점은 2점입니다. 20여년전의 작품인데다가 작가의 데뷰작이기도 하고, 작가의 대표작도 아닌 만큼 큰 기대는 접어야겠지만 완성도면에서는 많이 부족합니다. 추리소설 매니아 (그것도 엘러리 퀸의)가 쓴 습작 느낌이 강하달까요? 작품 후기를 보니 고등학교 때 이미 완성한 작품을 서너번 고쳐서 이런저런 경로를 통해 출판, 데뷰하게 된 작품으로 설명하고 있는데 이런 저런 경로에서 탈락할 만 하다... 는 생각이 들더군요.
작가의 대표작인 "쌍두의 악마"가 출간된다면 좀 다르지 않을까 싶긴 한데, 이 작품으로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작품을 처음 접할 국내 독자는 실망이 더 클 것 같습니다.

2009/07/28

46번째 밀실 - 아리스가와 아리스 / 최고은 : 별점 2.5점

46번째 밀실 - 6점
아리스가와 아리스 지음, 최고은 옮김/북홀릭(bookholic)

추리소설가 아리스가와 아리스는 일본의 딕슨카라 불리우는 밀실 추리소설계의 거장 마카베 세이치의 별장에서 열리는 크리스마스 파티에 친구인 에이토 대학 조교수이자 임상범죄학자인 히무라 히데오와 함께 초대받는다. 파티에 참석한 인물은 마카베 세이치의 가족을 제외하면 모두 추리소설작가와 편집자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마카베 세이치는 이번에 발표할 46번째 밀실작품을 끝으로 밀실 추리소설을 그만둘 것을 선언하는데 그날 밤 그는 밀실에서 살해된 시체로 발견된다.

일본 신본격 추리작가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다섯번째 장편으로 그의 명탐정 캐릭터 중 1인인 임상범죄학자 히무라 히데오와 추리소설작가 아리스가와 아리스 컴비의 데뷰작입니다. 이 컴비의 시리즈는 제 블로그에서도 여러번 ("하얀 토끼가 도망친다", "절규성 살인사건" , "러시아 홍차의 비밀" ) 소개했었지만 장편은 처음 읽어 보네요.

일단 장점과 단점이 확연한데, 장점이라면 제목에서부터 독자에게 도전하는 듯한 밀실 트릭이 괜찮다는 것, 그리고 사건의 전개와 결말이 작가의 다른 작품들보다는 매끄럽게 흘러간다는 것을 들 수 있습니다. 특히 "트릭"에 집착해서 이야기 전개에 설득력을 잃어버리던 다른 전작들과 비교했을 때 이 작품에서의 "트릭"은 아주 효과적으로 사용되어 내용과 잘 결합되고 있다는 것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네요. 추리소설이라면 당연하지만 의외로 내용과 트릭이 잘 결합된 작품을 최근에 찾아보기는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니까요. 아울러 가장 중요한 단서가 초반부터 설명되고 있는 등 추리적으로 공정하게 독자와 승부하려는 작가의 모습도 마음에 듭니다. 일본의 "엘러리 퀸" 다운 모습이랄까요?
또한 단편에서는 느끼기 힘들었던 히무라 히데오와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과거 및 심리 묘사, 작가의 추리관을 엿볼 수 있었던 추리소설가들의 대화라던가 밀실 트릭에 대한 소개 등 작품 외적으로 즐길거리도 많아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네요. 예를 들자면 작가가 소개한 "Locked Room Murders"라는 책, 그리고 그 책을 통해 소개하는 미국 추리소설 작가 댈리 킹의 트레비스 타란트 시리즈 "트멘트 4세호 에피소드"는 정말이지 읽고싶어지게 만들더군요.

그러나 작가 특유의 단점, 예를 들어 추리소설작가들과 편집자들의 크리스마스 파티가 벌어진 눈 덮인 고원 별장에서의 밀실 살인사건이라는 작위적인 무대 설정이라던가, 사건의 실질적인 동기가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점 등의 단점도 여전합니다. 특히나 동기 측면에서는 아직도 이해하기가 좀 어렵습니다. "살인"이라는 범행을 시도하기 전에 진실을 고백하려고 시도하는 것이 당연하잖아요. 밑져야 본전일텐데 말이죠.
그리고 서재를 밀실로 만든 이유에 대해서는 명쾌하게 설명되고 있지 못한 것은 확실히 옥의 티입니다. 범인이 기상천외한 범행을 저지른 목적은 자기 자신의 알리바이를 확보하기 위함이었는데 결과론적으로는 이 의도와 서재를 밀실로 만든 이유는 별로 관련이 없어보입니다. 차라리 목격자인 아리스가와 아리스를 살해하는 것이 더 설득력 넘치는 상황이죠. 어차피 두명죽이나 세명죽이나 별반 차이도 없잖아요. 그리고 아리스를 만약 살해했더라면 범인이 결국 빠져나갈 수 있었던 상황이라는 점 (가장 중요한 발자국에 대해 넘어갈 수 있었기 때문에) 에서 더더욱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그 외에 불필요한 암호 트릭 등은 사족으로 느껴졌고요. (차라리 손빈처럼 "여기서 방연이 죽다" 정도가 어땠을까요?)

이렇게 좋은 점과 나쁜 점이 골고루이기 때문에 별점은 2.5점입니다. 그래도 국내 출간된 히무라 히데오 시리즈 중에서는 베스트라 생각되며 일본의 엘러리 퀸 다운 모습을 즐기기에는 충분한 작품이니만큼, 일본 신본격 작품에 관심있으신 분들은 한번쯤 읽어보셔도 괜찮을 것 같네요. 저는 최고 걸작이라는 "쌍두의 악마"나 차분하게 기다려 봐야겠습니다.

덧붙여, 학산의 "북홀릭"에서 출간되었는데 표지, 편집 모두 마음에 듭니다. "경성탐정록"도 다음에는 조금 더 신경써 주시길~^^

2016/11/09

말레이 철도의 비밀 - 아리스가와 아리스 / 최고은 : 별점 2.5점

말레이 철도의 비밀 - 6점
아리스가와 아리스 지음, 최고은 옮김/북홀릭(bookholic)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희망은 버리지 않았습니다."
"아름다운 말이군요.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절망적인 상황에서 그런 말을 하죠."
출국 시간이 정해져있는 히무라에게 아즈란이 시간 내 사건 해결이 가능할지를 물은 상황에서 오가는 대사.

히무라와 아리스가와는 말레이시아의 낭만적인 휴양지 카메론 하일랜드로 여행을 떠났다. 대학시절 친구 타이론 덕분에 여유로운 여행을 즐기던 그들은, 우연히 알게 된 일본인 모모세 준코의 초대로 그녀의 집을 방문했다. 그러나 둘은 그곳에서 의문의 변사체를 발견했고, 뒤이어 일어나는 사악한 범죄에 빠져드는데…

일본의 신본격 작가인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시리즈 탐정인 범죄학자 히무라 히데오, 추리소설가 아리스가와 아리스 컴비가 등장하는 국명 시리즈 장편입니다. 이 시리즈는 단편집으로 두어권 읽어 본 정도이며 장편은 처음입니다.

읽기 전에는 별로 기대를 하지는 않았습니다. 작가의 타율 자체가 낮은 편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읽어보니 생각보다 괜찮았습니다.

가장 큰 장점이라면 신본격 기수 중 한명이라는 작가의 명성, 그리고 엘러리 퀸 국명 시리즈를 오마쥬하고 있는 시리즈 특성에 걸맞는 수준의 고전적인 본격 추리물이라는 점입니다. 첫 사건부터 본격물다운 굉장히 기묘한 밀실 - 피해자 웡후가 살해된 채 발견된 트레일러 하우스의 모든 출입문, 창문은 안쪽에서 테이프로 봉해져 있는 상태였다는 - 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이라는  불가능 범죄를 선보이고 있거든요. 
트릭도 상당히 괜찮습니다. 사건 현장을 외부에서 조작하여 범인이 원하는 밀실로 만들었다는건 오래 전에 읽었던 삼색털 고양이 홈즈 시리즈 첫 작품 "삼색털 고양이 홈즈의 추리"와 비슷합니다. 하지만 "삼색털 고양이 홈즈의 추리"에서는 거대한 크레인이 필요하다는 점 탓에 현실성이 떨어졌다면, 이 작품은 간단하게 차량수리용 잭을 활용하여 실현할 수 있어서 보다 설득력이 높습니다.
이를 설득력있게 만들기 위해 묘사된 습도 조절용 물컵과 같은 디테일도 빛납니다. 컵을 접착제로 붙이고 물을 얼려놓는다는 설정은 그 자체만으로 트릭으로 사용될 수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마음에 들었어요.

정보와 단서 모두가 독자에게 모두 공정하게 제공된다는 점 역시 본격물답습니다. 특히 기발했던 부분은 아리스가와 아리스가 영어실력이 부족하다는 설정, 현지 카페 주인 존을 영국인 작가 앨런 글래드스턴이 영국식으로 '잭'이라고 부른다는 설정을 교묘하게 결합하여 글래드스턴 살인 사건으로 이르는 동기와 범인을 밝혀내게끔 하는 부분이었습니다. 최근 읽었던 작품 중에서도 손에 꼽을만큼 잘 짜여진 장면이었습니다.

두 컴비가 오래전 지인 위 타이론을 만나기 위해 말레이시아의 휴양지 카메론 하일랜드(하이랜드) 여행을 떠나는 설정 덕분에 여정 미스터리물 느낌도 많이 난다는 점도 독특했습니다. 아름다운 자연 풍광과 현지 명소에 대한 묘사가 많아서 읽는게 즐거웠어요.

그러나 단점도 분명합니다. 일단 아리스가와 아리스 작품에서 항상 느낄 수 있는 점인데, 그다지 글을 잘 쓴다는 느낌이 들지 않습니다. 불필요한 설정과 묘사가 너무 많아요. 딱히 필요해 보이지 않는 페미니즘 관련 묘사가 대표적입니다. 반딧불 어쩌구 하면서 사랑 이야기를 장황하게 풀어내는 것도 별로 마음에 들지 않고요.

그리고 대부분의 본격물이 가지고 있는 문제인 작위적인 상황 설정도 눈에 거슬렸습니다. 첫 번째 범행인 웡후 살인부터 그러합니다. 복수를 위해 모모세를 덮치지만 되려 살해당한다는 것부터 작위적이며, 말레이시아 법률은 잘 모르겠지만 모모세가 웡후 살인 사건을 자살, 혹은 다른 범죄로 위장할 이유가 있어 보이지 않은 탓입니다. 림 의사를 살해한건 히키이며 모모세는 실행범이 아닙니다. 아무런 증거없이 죽어가는 히키의 전화만으로 모모세가 범인이라 우길 근거는 너무 빈약하지요. 제가 모모세라면 모든건 오해라고 당당하게 맞섰을 겁니다. 웡후를 죽인 후에라도 같은 이유로 경찰에게 역시 당당했을 수 있었을테고요.
게다가 두번째 츠쿠이 살인은 순전히 우연에 기인한 것입니다. 아울러 앞부분 묘사에서 모모세 준코의 차에 잭이 있다는 것이 설명되니 모모세가 잭을 구하러 멀리 갈 필요도 없고요. 

또 앞서 트릭을 칭찬하기는 했지만 현장을 조작하는 방법 외에는 약점도 존재합니다. 실제로 트레일러하우스를 좀 기울이는 정도로 과연 창문의 테이프를 잘 붙일 수 있었을지는 의문이거든요. 

마지막으로 모모세가 과거 보험금으로 사업을 일으킨 점 등 트릭을 모르더라도 정황 증거만 조합하면 대충 범인이 누군지 답이 나온다는 것도 조금은 아쉬웠고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추리만 놓고보면 나쁘지는 않지만 이런저런 단점과 구멍도 존재합니다. 그래도 본격물 팬이라면 추리적으로 즐길거리가 많으니 한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덧 : 초반 언급되는 마츠모토 세이초가 썼다는, 카메론 하일랜드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과 타이의 실크왕 짐 톰슨 실종사건을 엮어서 만든 "뜨거운 비단"이라는 작품이 궁금해집니다.

2006/01/14

러시아 홍차의 비밀 - 아리스가와 아리스 : 별점 2점

ロシア紅茶の謎 (講談社文庫) (文庫) - 4점
아리스가와 아리스/講談社

범죄 심리학 조교수이자, 실제 사건에서의 활약으로 "임상 범죄 학자"라는 별명으로도 불리는 천재 히무라 히데오와 추리작가 아리스가와 아리스 컴비 시리즈 단편집. 아리스가와 아리스(저자)의 첫번째 단편집이기도 합니다. 그의 "국명 시리즈" 중 하나이기도 하고요. 책에는 전부 6개의 단편과 작가 해설 등이 담겨있습니다.
일본 여행 가서 구입한 책으로 장편이 아니라 단편집이라 부담없이 읽을 수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중간에 번역 한번 해 볼까 하고 삽질하느라 걸린 시간도 있어서 이래저래 거진 한달이 걸렸네요.... 2006년 들어서는 처음으로 완독한 책인 것 같습니다. (만화책은 수도없이 읽었지만서도)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기대 이하였습니다. '일본의 엘러리 퀸'이라고도 불리우는 신본격 작가라서 굉장히 기대했는데 말이지요. 이유는 작품 대부분이 "트릭을 위한" 이야기들이라 트릭에 매몰된 듯한 느낌인 탓입니다. 트릭도 만들기 쉬운 암호 미스테리가 많아서 별로였고요. 표제작이며 작가 스스로 마음에 든다는, 이른바 국명 시리즈인 "러시아 홍차의 비밀"이 제일 어처구니 없고 수준이하였다는 점도 당황스러웠습니다.
또한 탐정역의 히무라 히데오의 캐릭터가 너무 전형적이라는 것도 감점 요인입니다. 캐릭터를 돋보이게 하기에는 단편이라는 특성상 쉽지 않은 부분이 많았겠지만, 잘난척 하는 천재라는 고전적 스테레오 타입 그대로의 인물이라 새로운 면이 하나도 없었어요.
그래도 신본격답게 문제-해결이 명확하고 이야기 하나하나가 깔끔하게 매듭지어지는 것은 좋았습니다. 용의자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이고 단서에 대한 범위를 좁혀줌으로써 이해를 돕는 추리만화 타입의 전개도 쉽게 읽는데 큰 도움을 주었고요.

결론내리자면 그냥저냥한 평작이랄까요. 별점은 2점입니다.
트릭 자체는 제법 괜찮은게 있고, 뛰어난 작품도 분명있기는 합니다. 위에 말한 단점은 장편을 보면 많이 상쇄될 것도 같고요. 다음번에는 장편에 한번 도전해 봐야 겠다는 생각도 드네요. 한 3개월은 걸리겠지만....

개인적인 베스트는 "동물원의 암호"와 "팔각형의 함정" 입니다.

작품별 상세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1. 동물원의 암호 :
동물원 원숭이 우리에서 살해된 시체로 발견된 사육사. 그는 죽기 직전 암호로 된 쪽지를 남긴다. 그 암호는 퍼즐광이었던 피해자가 공들여 만든 것으로 암호를 해독하면 범인을 알 수 있으리라는 판단 하에 주인공 컴비는 동물 이름으로 구성된 암호 해독에 도전하는데...
"동물 이름으로 구성된 암호" 자체가 무척 괜찮습니다. 기발하면서도 수긍이 가는 그런 암호거든요. 일본 거주자가 아니면 풀기 힘들다는 약점은 있지만 말이죠. 내용 전개도 명쾌하고 논리적이라 가장 마음에 드는 단편 중 하나였습니다.

2. 지붕 밑의 산보자 :
하숙집 주인이 살해되는데 경찰 조사로 발견한 그의 일기에서 그가 하숙집 지붕을 밤에 돌아다니는 변태적인 취미가 있었다는 사실과 하숙인들 중 인근 연쇄 강간마로 짐작되는 인물이 있다는 것도 밝혀진다. 그런데 하숙인들을 암호화된 이니셜로 표기하고 있어서 정체를 모르는 상태. 연쇄 강간마이자 하숙집 주인 살인 사건의 범인인 그 하숙인을 찾기 위해 두 컴비가 나선다.
역시 암호 트릭입니다. 이 작품은 암호 자체는 무척 간단한 편이라 정교한 맛은 좀 없더군요. 그래도 에도가와 란포의 동명 단편을 응용한 센스와 마지막의 살짝 등장하는 반전은 무척 좋았다 생각됩니다.

3. 붉은 도처 (稻妻) :
한 여인이 투신 자살한 시체로 발견되는데 히무라 히데오의 제자인 학생이 목격자로 나서 그 여자가 방에서 밀려 떨어졌다는 것을 증언한다. 그러나 그 여자의 방은 완벽한 밀실 상태.
밀실 트릭물입니다. 그러나 트릭의 정교함은 떨어지는 편이고 작품에 흥미를 느낄만한 요소가 너무 적어서 이상할 정도였어요.

4, 룬의 가르침 :
외국인 기자 살인 사건을 해결하는데 도움을 요청받아 찾아간 히무라 히데오. 그는 피해자가 손에 쥐고 죽은 "룬 문자판" 4개의 수수께끼를 푸는데 주력한다.
이 책의 단편들 중에서 전개가 가장 이색적인 작품이었습니다. 히무라 히데오의 방에 놀러간 아리스가와 아리스가 책상위에 놓여진 룬 문자판을 보게 되자 히무라 히데오가 그것에 관련된 사건을 들려주는 셜록 홈즈물 스타일의 전개로 이루어지거든요. 트릭은 역시나 일본 독자들만이 풀 수 있는 암호인데 평이하기도 하지만 좀 억지성이 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룬 문자"라는 요소가 왜 들어갔나 싶게 쌩뚱맞아서 의아했는데 책 뒤의 작가 후기를 보니 "고대문자"에 관련된 트릭 추리물을 써 달라는 의뢰의 결과물이더군요. 뭐 그냥저냥한 수준의 작품입니다. 

5. 러시아 홍차의 비밀 :
인기 작사가 독살 살인 사건에 참여한 컴비. 아무도 그의 찻잔에 독을 주입할 기회가 없었던 상황에서 사건의 해결에 도전한다.
표제작이자 국명 시리즈라는 작품입니다. 솔직히 저는 이 책에서 이 작품이 제일 마음에 들지 않더군요. 트릭도 억지에다가 범인이 왜 그런 트릭을 썼는지에 대한 타당성 자체가 불분명 합니다. "아무도 죽일 수 없는 상황" 이라고 해서 자기 자신이 쉽게 빠져나갈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거든요. 어차피 제일 의심 받을 수 밖에 없는 인물이었는데.... 본격물의 정도를 벗어나 너무 트릭에만 집착한 씁쓸한 결과물로 보입니다.

6. 팔각형의 함정 :
아리스가와 아리스 원안의 추리극을 상연하는 연극 예행 연습에 초대된 두 컴비는 실제로 살인 사건에 직면하게 되는데....
이런게 실제로 있군요! 만화에서만 보던 "추리극" 공연과 관객이 함께 하는 범인 맞추기 이벤트라는 연극을 위해 아리스가와 아리스(작가)가 실제로 원안을 제공했던 연극 각본의 소설화 작품이라고 합니다. 작품도 본격물에 걸맞는 깔끔하고 완벽한 구성을 보여주는 모범적인 작품이었습니다. 트릭도 아주 약간을 제외한다면 수긍할 만 했고 범인이 왜 그렇게 트릭을 만들었는지에 대한 설명 역시 합당하며 범인을 알게 되는 단서 역시 이치에 맞거든요. 일종의 문제편 격인 서술 뒤에 "독자에게의 도전장" 이 있는 것도 인상적이었고요. 재미있는 작품이었습니다. 연극으로 본다면 더욱 재미있을 것 같아요.

2021/11/19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밀실 대도감 - 아리스가와 아리스 / 김효진 : 별점 1.5점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밀실 대도감 - 4점
아리스가와 아리스 지음, 이소다 가즈이치 그림, 김효진 옮김/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추리작가 아리스가와 아리스가 선정한 밀실 트릭 걸작 40편을 일러스트레이터 이소다 가즈이치의 그림과 함께 소개하는 책입니다. 

몰랐던 작품에 대해 알게 된게 가장 큰 수확입니다. 어떤 트릭이 사용되었을지? 생각하게 만드는 글솜씨와 저는 별로였던 작품에 대해 호평하는 이유 등 아리스가와 아리스만의 시각도 볼 만 했고요. 저는 폄하했던 작품에 대해 높이 평가한 글들은 저 역시 리뷰어로서 많은 공부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솔직히 다른 점들은 거의 모두 기대 이하였습니다. 이런 리뷰 모음인 줄은 몰랐던 탓입니다. 밀실 트릭에 대한 분류와 대표작 소개 등, 이론적으로 접근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구입했는데 예상과 너무 다르더군요. 

게다가 소개된 트릭의 비밀을 완벽하게 숨기는 것도 큰 문제입니다. 서두에서 이 책은 일종의 '초대장' 임을 분명히 밝히며 앞으로 이 작품을 읽어보라는 취지의 리뷰이니 이렇게 쓴 건 당연합니다만... 절반에 가까운 작품이 국내 출간되지 않은게 문제지요. 국내에는 서양 미스터리 20선 중에서 11편 - 빅 보우 미스터리, 13호 독방의 문제, 노란 방의 비밀, 급행열차 안의 수수께끼 ("세계 미스터리 걸작선 1"에 수록), 시계 종이 여덟 번 울릴 때, 개의 계시, 세 개의 관, 모자에서 튀어나온 죽음, 킹은 죽었다, 벌거벗은 태양, 투표 부스의 수수께끼 ("샘 호손 박사의 불가능 사건집" 수록) -, 일본 미스터리 20 + 1 중에서도 11편 - D 언덕의 살인사건, 거미, 완전 범죄, 등대귀, 혼진 살인 사건, 문신 살인 사건, 호로보의 신 ("아 아이이치로의 낭패"에 수록), 천외소실 사건, 인형은 텐트에서 추리한다, 녹색 문은 위험, 모든 것이 F가 된다 - 이 출간되어 있습니다(2021년 11월 기준). 41편 중 무려 19편이 미출간된 상황이에요. 이래서야 거의 절반 가까이는 정답을 알래야 알 수 없는 퀴즈집을 읽은 셈이라 짜증이 날 수 밖에 없습니다. 

소개된 작품들이 선정된 이유도 여러가지를 대고 있지만, 결국 트릭만 멋지면 다른건 다 간과하는 듯한 리뷰도 불만스럽습니다. "녹색문은 위험" 같은 작품을 선정한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애초에 이 작품 속 트릭은 기발하기만 할 뿐 현실성은 전혀 없거든요. 하긴, 밀실 자체가 범인이 일부러 만들 이유가 없다는 점을 너무 대충 넘어가는 것 부터가 이상해요. 애초에 밀실 '살인'은 말이 안됩니다. 밀실에서 죽었다면 자살이어야죠.

수록 일러스트들도 실망스럽습니다. "거미" 속 거미 연구소처럼 몇몇 작품 속 건물에 대한 일러스트는 나름 반가왔지만 대체로 간단한 평면도와 밀실이 있는 건물의 간략한 스케치 수준에 불과해서, 예쁘기만할 뿐 가치는 없습니다. 책도 꼼꼼히 읽고, 관련 자료도 열심히 수집했다는 일러스트레이터의 설명이 무의미하게 여겨질 정도로요. 이왕 밀실 트릭 해설을 위한 그림을 싣는다면, 트릭을 설명하는 용도가 훨씬 좋았을거에요. "급행열차 안의 수수께끼"의 복잡한, 기차 내부 장치들을 활용하여 만든 장치 트릭을 그려 주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게 '밀실 대도감' 취지에도 더 잘 맞았을테고요. 이런 문제에 더해 3만원에 육박하는 가격도 용납하기 어렵습니다. 내용을 떠나 분량, 완성도 등 모든 면에서 이 가격을 받을 책은 절대로 아닙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1.5점입니다. 조금 조사해봤더니 저와 같은 이유 - 단순한 리뷰 모음, 트릭 설명 없음, 무의미한 그림들 - 로 이 책에 실망하신 분들이 많더군요. 저도 좀 조사해보고 구입할걸 그랬습니다.

마지막으로, 너무 궁금했던 나머지 인터넷을 뒤져 알아낸, 국내에서 구할 수 없는 작품들 트릭을 몇 개 찾아서 소개드립니다. 당연히 스포일러입니다. 혹시라도 국내 출간에 기대를 걸고 계시다면, 절대 읽지 마세요.

"밀실의 수행자" 비록 국내 소개된 작품은 아니지만 트릭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세계의 명탐정 50인"에 소개된 적이 있기 때문이지요. "소년탐정 김전일"의 "이진관촌 살인사건"에서도 살짝 비틀어 사용되기도 했고요. 진상은 인도인 하인들이 위의 창을 통해 침대를 천장까지 끌어올렸던 겁니다. 백작은 고소공포증이 있던 탓에 침대에서 탈출하지 못하고 굶어 죽게 된 거지요.

"엔젤 가의 살인" 엘리베이터 천장 창문을 통해 엘리베이터가 내려가면 칼이 떨어진다는 장치 트릭. 작품을 읽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칼을 3층 천정쪽에 묶은 끈으로 엘리베이터 천정에 매달아 놓으면, 엘리베이터가 내려가면서 끈이 끊어지고, 칼이 떨어져 아래 사람에게 꽂힌다는 걸까요?

"고블린 숲의 비밀" 뒷문 쪽에 있던 사촌이 잽싸게 집에 들어가 비키를 죽이고, 방수 시트 위에서 잽싸게 시체를 해체해서 짐 속에 나누어 넣었다. 그리고 뒤따라 온 사촌이 비키를 찾는 척 정문으로 들어간 뒤 뒷문을 잠근 것. 그리고 짐을 차에 싣고 돌아간게 진상이었다.

"지미니 크리켓 사건" 이야기를 들려주는 자일즈가 범인이었다. 그는 경찰복을 입고 큰아버지를 살해한 후 방 안에 숨어있다가, 루퍼트가 들어온 뒤에 경찰들과 함께 들어온 것처럼 속였던 것. 납치했던 경찰관을 죽였던건 경찰복을 돌려주기 위해서였다. 루팡 3세 애니메이션에도 사용된 트릭이라지요. 조금 조사해보니, 자일즈와 노인의 관계에 대한 반전도 인상적이라고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51번째 밀실" 범인이 지붕을 떼어내고 탈출하는 트릭. 그림만 봐서는 잘 모르겠네요. 범행을 저지른 동기 쪽이 더 재미있어 보였습니다.

"그리고 죽음의 종이 울렸다" 조각상 밑에 쐐기를 꽂아 놓아 쓰러지기 쉽게 해 놓은 뒤, 창 밖에서 푸코의 진자를 움직이면, 진자가 조각상에 맞아 쓰러지게 만든 것. 설명만 읽어서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런 트릭의 작동 원리를 그려 주었어야죠!

"보이지 않는 그린" 살해 장소인 화장실의 작은 환기구로 고무 보트를 들여놓은 뒤, 좁은 화장실 안에서 고무보트를 부풀려 심장 빌작을 일으킨 것.

"다카마가하라의 범죄" 현인신은 신이라서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는다. 무녀가 조서를 들고 2층에서 내려왔기 때문에 신과 같은 존재가 되어 보초 눈에 보이지 않았던 것. 찾아본 결과로는 이러하던데, 이게 말이 되나요?

"구혼의 밀실" 어린 아이가 범인. 피해자와 범인이 협력하여, 피해자 어깨 위로 범인이 올라가서 3미터 이상 높이였던 천장 채광창으로 탈출한 것.

"로웰성의 밀실" 만화책 37페이지에 있던 엘로라를 맞은편 36페이지에 있던 홀리가 손을 뻗어 살해한 것. 3차원의 인물이 2차원에서 저지른 사건으로, 이소다 씨의 일러스트가 나름 힌트가 되기는 하네요. 이걸 트릭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밀실대도감

2008/10/09

하얀 토끼가 도망친다 - 아리스가와 아리스 / 김선영 : 별점 3점

하얀 토끼가 도망친다 - 6점
아리스가와 아리스 지음, 김선영 옮김/시작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작가 아리스 시리즈 중,단편집입니다. 이 시리즈의 탐정은 범죄 심리학 조교수 히무라 히데오로 작가 아리스 시리즈라 불리우는 이유는 작품의 왓슨 역이 저자 이름과 같은 추리소설가 아리스가와 아리스이기 때문입니다. 전에 원서로 읽고 리뷰를 남긴 “러시아 홍차의 비밀” 도 같은 시리즈의 한권이죠. 뭐 제가 좋아라 하는 일본 본격 추리 단편집이니 당연한 마음으로 사서 읽었습니다. 작가 아리스 시리즈 대표작은 “국명 시리즈”로 알고 있는데 좀 엉뚱한 시리즈가 먼저 번역되어 소개된 것이 좀 의아하긴 했습니다만.

감상평은 뭐랄까, 좀 애매하네요. “국명 시리즈” 이기도 한 “러시아 홍차의 비밀” 보다 재미와 수준이 떨어지기도 하고요. 전체적인 책 자체의 평균은 비슷하지만 “러시아 홍차의 비밀” 은 수록작품의 편차가 커서 좋은 작품은 굉장히 좋은 반면, 이 책에 실린 작품의 수준은 엇비슷하지만 고만고만한 수준의 작품들이 모여 있어서 딱히 끌리는 작품은 없거든요. 또한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특징이기도 한 정교한 트릭에 매몰되어 이야기 전개가 매끄럽지 않은 부분도 눈에 많이 거슬렸고요. 이런 단점까지 존경한다는 엘러리 퀸을 닮을 필요는 없었을텐데... 어쨌건 별점은 3점입니다. 신본격 대표작가의 정통 추리 단편집을 국내에서 접하기는 쉽지 않기에 가산점을 더했습니다.^^

총 4편의 중단편이 실려있는데 작품별로 자세하게 이야기하자면,

부재의 증명
일종의 알리바이 트릭 + 순간이동 트릭 등이 결합된 정통 퍼즐 미스터리물입니다. 아주 약간의 시간차를 이용한 결정적 단서 포착 부분은 좋았으며 동기와 범행 방식, 범인의 행동도 설득력이 넘쳐서 완성도가 높더군요. 개인적으로는 이 단편집에서의 베스트 작품이었습니다.

지하실의 처형
형사가 수배중인 테러리스트 들에게 사로잡힌채 그들의 처형 의식의 목격자가 된다는 기본 설정은 독특했지만 애당초 범인이 둘중 하나라는 근본적 한계 때문에 꽉 짜여진 긴장감을 느끼기 어려운 작품이었습니다. 히무라의 추리 역시 경찰의 수사 결과를 토대로 이루어지기에 그다지 대단하거나 놀라운 진상이 밝혀지는 것도 아니고요. 차라리 논리 퍼즐 형태의 미스터리로 가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 싶네요. 어쨌건 정통 추리의 맛을 느끼기 어려웠고 그다지 높은 점수를 주기도 어렵기에 이 단편집에서의 워스트 작품으로 꼽겠습니다.

비할 바 없이 성스러운 순간
2건의 다이잉 메시지가 중요하게 사용되는 퍼즐 미스터리입니다. 그런데 2건 중 첫번째 메시지는 너무나 특정한 정보를 나타내는 것이며, 중간의 히무로의 착안이 명확하기에 해당 정보를 알고 있다면 크게 수수께끼로 남을 것 같지 않아 그다지 정교한 트릭으로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무엇보다도 죽어가는 사람이 그런 정교한 도안을 그릴 수 있었을까 하는 근본적인 의문이 생기기도 하고요. 두번째 메시지는 피해자의 행동이 그럴싸 하다는 점에서는 합격점을 줄 만 하고 피해자의 의도와 다른, 하지만 정확한 결론이 도출된다는 점은 신선한 발상이 엿보였습니다. 첫번째 메시지의 작위성만 없었다면 괜찮았을텐데 아쉽네요.

하얀 토끼가 도망친다.
이 책에서 가장 긴, 중편분량의 정통 추리물로 고전적인 시간표를 이용한 알리바이 트릭을 다루고 있습니다. 긴 분량에 걸맞게 트릭 자체는 공들여 잘 만들어진 트릭으로 추리적으로는 만족할 만 한 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야기 전개에 있습니다. 범인이 범행을 하는 동기를 만들어 내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동기가 되는 첫 사건의 동기는 전혀 설명되지 않으며, 애당초 첫번째 범행에서의 증거가 너무나 결정적이기에 두번째 사건이자 주 사건의 알리바이 트릭을 파헤치는 것은 전혀 의미가 없다고 보여지거든요. 한 사건의 범인임이 명백하고 증거도 확실한데 왜 다른 사건에 시간과 공을 들이는지 영문을 모르겠습니다. 또한 작품 전반에 걸쳐 “토끼”라는 상징이 지속적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작품의 내용과는 전혀 상관없어서 나중에는 짜증마저 일었고요. 추리적 완성도가 높은, 잘 짜여진 작품이지만 이야기 전개에 실패한 작품으로 보이기에 아쉬움이 큽니다.

2010/06/19

쌍두의 악마 1,2 - 아리스가와아리스 / 김선영 : 별점 2.5점

 

쌍두의 악마 2 - 6점
아리스가와 아리스 지음, 김선영 옮김/시공사

"이하 내용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마리아는 '외딴섬 퍼즐' 사건 이후 정신적 충격으로 예술가들의 촌락 기사라 마을에 은둔해 버렸다. 그녀를 데려오기 위해 에이토 대학 추리연구회 일동이 출동했다. 하지만 기사라 마을은 여러가지 이유로 외부인을 들이지 않는 탓에, 추리연구회는 심야에 침투작전을 벌여 에가미 선배 홀로 겨우 침투에 성공했다. 아리스를 비롯한 나머지 연구회원들은 예술가 마을 바로 옆의 나쓰모리 촌락으로 후퇴한 뒤 선배와 마리아를 기다렸다.
그러나 기사라 마을의 화가 오노가 살해된 시체로 발견되고, 사건 해결을 위해 잠시 남기로 한 에가미 선배의 전화를 마지막으로 기사라 - 나쓰모리를 잇는 유일한 다리가 폭우로 유실되고 전기와 전화마저 끊겼다. 뒤이어 나쓰모리 마을에서도 카메라맨 아이하라가 살해된 시체로 발견되는데...


일본 신본격 미스터리의 대표 작가 중 하나인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작품. 작가의 두개의 시리즈 중 - 하나는 에이토 대학 추리 연구회 회원인 대학생 아리스가 화자로 등장하고 에이토 대학 추리 연구회의 대선배인 에가미 지로가 탐정으로 등장하는 "학생 아리스"시리즈. 그리고 또 하나는 추리소설가 아리스가 화자이며 그의 친구이자 임상병리학자로 유명한 조교수 히무라 히데오가 탐정으로 등장하는 "작가 아리스"시리즈 - 학생 아리스 시리즈로 그간 읽어왔던 작가의 작품들 중 가장 긴, 800여페이지가 넘는 대장편입니다.
시리즈 작품답게 학생 아리스 시리즈의 전작 설정과 유사하면서도, 신본격 작가다운 고전적인 설정과 전개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시골 마을의 폐쇄적 공동체와 이 공동체가 천재지변으로 고립된다는 전형적인 클로즈드 써클 미스터리거든요. 그리고 연쇄 살인극이라는 것도 전작들과 유사하고요.

그동안 예닐곱편의 작품을 읽어온 것에 따르면, 아리스가와 아리스는 공정한 단서 제공과 합리적인 추리라는 장점과 작위적인 설정이라는 단점을 함께 가지고 있는 작가라 생각됩니다. 그러나 이 작품은 장점이라 생각했던 추리적인 부분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대표작이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요.
첫번째 사건부터 문제에요. 향수를 뿌릴 수 있는 사람이 야기사와 뿐이었다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어차피 우산 안이라면 접혀져 있을때 향기가 나지 않아서 은폐가 가능했을테니까요.
향수를 뿌리는 것이 가능했다 하더라도, 동굴 안에서 살해할 이유가 설명되지 않는 것도 문제에요. 작중에서 설명되듯 그냥 동굴 입구에서 살해해도 되잖아요. 입구가 2개라서 어디서 나올지를 몰랐기 때문이라는 것은 설득력이 약합니다. 향기에 의지해서 어두컴컴한 동굴 속에서 누군가를 미행한다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요? 설령 가능하더라도 피해자에게 발각될 위험성이 너무 높아요. 그러느니 차라리 50% 확률로 입구에서 기다리겠습니다...

그리고 계약에 따라 혐의를 벗겨주기 위한 작위적인 장치 설정도 무리수였습니다. 여자 힘으로 불가능했을 것이다라는 것은 가정일 뿐, 현실적인 단서가 되기는 어려운 탓입니다. 이럴 바에야 확고한 알리바이를 만들어 주었어야 했습니다. 증거로 귀를 잘라낸다는 발상도 썩 와 닿지 않았고요. 차라리 시체를 강물에 던져버렸으면 모든 것이 깔끔했을텐데, 이래서야 범행을 위한 범행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네요. "계약서"라는 것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한다면 "귀"는 무가치하며 외려 범인에게는 불리한 증거물 이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니까요.
두번째 사건인 사진작가 아이하라 살인사건은 그래도 깔끔한 편이지만, 이 사건은 저도 범인을 짐작할 수 있었을 만큼 너무 간단하고 명쾌하다는게 문제입니다. 솔직히 추리적으로는 재미가 너무 부족했어요. 핵심 단서에 대한 정보 제공이 너무나 공정한 탓에, 용의자의 직업만 가지고도 범인을 특정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무로키의 팔레 이데알 이야기도 너무 많이 나와서 뭔가 사건에 연관이 있으리라 생각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트릭이 패트리시아 하이스미스의 "낯선 승객"과 동일한 트릭이라 신선함이 떨어진다는 것도 아쉬웠던 점입니다. 그나마도 중간 과정을 너무 대충대충 넘기고 있기도 하고요.

동기면에서도 오노야 당연히 누구나 죽이고 싶어하는 인물이라 열외이지만 (종유동에 벽화따위나 그리는 놈은 죽어도 싸지) 야기사와의 살의는 살인 말고라도 여러가지 방법 - 돈이나 필름을 회수하거나 하는 방법 - 이 있었을테고 세번째 살인 역시 무로키가 체포된다면 불필요한 살인이기에 무의미해 보여 별로 와닿지 않았습니다. 어차피 경찰 수사가 시작되면 고립된 기사라 마을에서 한정된 인물들 대상으로 범인이 결국 밝혀졌을테고 말이죠.

아울러 작가의 전통적인 단점 역시나 그대로입니다. 고립된 상황을 만들기 위한 작중 설정부터가 억지스러워요. 특히나 몇몇 한정된 선택받은 사람들로만 구성된 외딴 마을의 예술가 공동체는 정말 어처구니 없는 설정이죠. 예술가들이 이런 촌구석에 처박혀서 버틴다는건 이해가 되지 않았으니까요. 지나칠 정도로 "고립"에 집착하는 모습은 과히 좋아보이지는 않네요.

물론 기사라 마을 - 나쓰모리 마을 두개로 나뉘어져 전개되는 방식은 상당히 재미있고, 이렇게 두개의 시점으로 전개되는 사건이 결국 하나로 엮인다는 결말도 굉장히 잘 만들어져 있기는 합니다. 사건도 모두 3건이나 등장해서 대장편다운 풍성함을 전해주고요.
또한 세번째 사건인 음악가 야기사와 살인사건은 주요 단서가 명쾌하고 설득력 넘치게 짜여진 잘 만들어진 이야기였습니다. 사실 트릭이라기 보다는 왜 X가 범인인가? 에 대한 설명이 핵심이지만 굉장히 합리적이고 깔끔하게 전개되고 있을 뿐더러, 고전적이며 본격 추리소설같은 느낌이 잘 전해지기 때문에 마음에 들었어요 . 구태여 변명하려면 변명할 수 있는 단서이기는 하지만...

결론내리자면 공정한 단서제공과 본격 추리소설다운 지적인 재미는 존재하나 하나의 장편으로서의 완성도는 그에 미치지는 못한 작품이라 생각됩니다. 벌려놓은 것에 비하면 알맹이는 빈약한 편이니까요. 엄청나게 긴 분량 역시 감점 요소였어요. 분량에 걸맞게 디테일하지도 못한데 차라리 조금 더 짧았더라면 훨씬 좋았을것 같습니다.개인적으로는 작가 아리스 시리즈가 조금은 더 나아 보이네요. 별점은 2.5점입니다.

현대 사회에 클로즈드 써클 미스터리물을 만들고자 노력한 작 가의 노고에는 경의를 표합니다만 왜 이 작품이 대표작으로 인정받는지는 잘 모르겠군요. 아무래도 작가가 트릭과 추리적인 발상에 비하면, 소설가로서의 글 쓰는 능력은 부족해 보입니다.

2026/09/13

Q.E.D - 증명 종료 - THE BEST 有栖川有栖(아리스가와 아리스) SELECTION

아리스가와 아리스 관련 자료를 인터넷에서 찾다가 발견한 책입니다. 제목 그대로 아리스가와 아리스가 골라 뽑은 Q.E.D 에피소드 5편을 모아 놓았습니다. iff가 아닌 시즌 1의 50권이 대상임니다. 선정된 수록작은 아래와 같습니다.

그런데 다른 세 작품은 괜찮지만 "쿠로가네 저택 살인 사건"과 "Question!"은 좋은 점수를 줄 만한 작품이 아닌데 의외였습니다. 제 별점은 2점이었지요. 여러모로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취향은 저와 많이 다르다는걸 다시금 느끼게 됩니다.

덧붙이자면 같은 기획으로 다나카 요시키 selection도 있더군요.

제 개인적인 기준으로는 다나카 요시키 선정작이 아리스가와 아리스 선정작보다는 훨씬 낫습니다. 제 별점은 이쪽이 훨씬 높거든요. 다나카 요시키 선정작은 제 기준으로 모두 평균 이상은 됩니다. 만약 두 Selection 중 한 권만 읽어야 한다면 다나카 요시키 선정작을 추천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제 개인적인 시즌 1의 Best는 아래와 같습니다.

2010/05/20

행각승 지장 스님의 방랑 - 아리스가와 아리스 / 권영주 : 별점 2점

행각승 지장 스님의 방랑 - 4점
아리스가와 아리스 지음, 권영주 옮김/비채

한 지방 촌도시에 있는 바 에이프릴에 토요일 밤마다 다양한 사람들 - 비디오 가게 주인과 사진관 주인 부부, 신사복점 아들, 돌팔이 치과의사 - 이 모인다. 모이는 이유는 토요일 밤, 바를 찾는 슈겐도의 행각승 지장 스님에게서 재미난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였다. 

일본 작가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단편집입니다. 학생 아리스와 작가 아리스 이외의 시리즈가 있는지는 처음 알았네요.

범죄와 미스터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에서 추리 이야기가 펼쳐진다는 설정의 작품은 많습니다. 대표적인 것은 "흑거미 클럽"이겠지요. 에도가와 란포 단편에도 이러한 모임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룬 작품이 몇 개 있고요. 스님 탐정이라는 점에서는 "A 사이즈 살인사건"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고전적인 설정을 도입한 작품답게, 수록된 일곱 편의 단편 모두 고전적이면서도 전형적인 퍼즐 미스터리이자 수수께끼 풀이입니다. "문제"편과 "해답"편으로 이루어져 있는 구성도 고전적이고요.

하지만 좋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습니다. 제가 이런 고전적인 단편들을 좋아라 하는데도 불구하고 말이지요.
첫 번째 문제는 설정입니다. "흑거미 클럽"은 클럽 회원들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독자에게 공정한 단서를 제공해 준다는 점에서 "구석의 노인"같은 이야기 전달자와 탐정 등장 구조에서 한 단계 진보한 설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는 이야기의 화자와 탐정을 모두 행각승 지장 스님이 맡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간단한 의견을 약간 전달할 뿐, 하는게 거의 없어요. 때문에 지장 스님이 등장하는 3인칭 추리 단편으로 만드는 게 나았습니다. 

두 번째 문제는 슈겐도의 행각승이라는 주인공이자 탐정 지장 스님입니다. 강인한 체력에 무술도 어느 정도 갖추고, 술이나 고기도 사양하지 않는 - 좋아하는 칵테일이 "보헤미안 드림"(조사해봤는데 존재하지 않는 칵테일 같네요)일 정도로 - 만화같은 설정도 별로지만, 주인공이 스님이어야 할 이유가 없는 탓입니다. 앞서 언급한 "A 사이즈 살인사건"에서는 그나마 "선문답"이라는 형식을 통해 추리를 피력하는 등 스님 설정의 당위성을 가져가는데 반해, 이 작품에서는 "떠돌이"라는 설정 이외에는 행각승이 주인공이어야 하는 이유가 없습니다. 

그 외에도 전체적인 분위기 모두가 소설이 아닌 TV 단막극에 더 어울리는 내용들이었고, 트릭들도 영상화되는 것이 더 깔끔하게 설명될 수 있을것 같아서 TV 시리즈를 소설로 만든게 아닌가하는 의심마저 듭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입니다 .미스터리 매니아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고전 스타일 구현을 위한 무리한 욕심은 가상합니다만, 썩 잘 만들어졌다고 보기 힘듭니다. 이 작가는 소설가보다는 "원작가"로 활동하는게 더 낫지 않을까 싶기도 하네요. 수록작별 상세 소개는 아래와 같습니다. 개인적 베스트로는 "독 만찬회"를 꼽습니다.

"지방 철도와 신데렐라" 

고전적인 구성과 더불어 독자에게 주는 정보도 공정한 정통 퍼즐 미스터리입니다. 상-하행선이 번갈아 운행하는 시골 기차라는 설정을 바탕으로 한 트릭이 등장하고요. 아이돌과 매니저가 등장하는 설정은 뻔한 감이 없잖아 있지만 재미있었어요. 별점은 3점입니다.

"저택의 가장파티" 

벼락부자 졸부의 가장 파티장에서 배트맨 분장을 한 사람이 피해자를 찾아간 뒤, 다스베이더가 피해자와 배트맨의 시체를 발견한다는 내용입니다.

영상화되는 것이 더욱 어울릴법한 트릭으로 그다지 현실적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범인이 곧바로 밝혀졌으리라 생각도 들고요. 별점은 2.5점입니다.

"절벽의 교주" 

사이비 종교 단체의 절벽 아래 수행장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 이야기입니다. 

공들여 만든 자연적인 밀실을 무대로 한 밀실 살인물인데 설정부터가 억지스러워요. 트릭도 너무 만화같고요. 범행이 작품에서처럼 한 번에 성공했다는 것도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독 만찬회" 

가족 만찬회장에서 벌어진 독살 사건이라는 고전적 설정도 좋지만, 트릭이 굉장히 깔끔하고 기발해서 마음에 듭니다. 동기도 합당하고요. 우연에 의한 일종의 사고라는 문제가 있긴 한데 수수께끼 풀이로는 적당한 수준이었다 생각되네요. 뭐 이런게 더 현실적이기도 하겠죠. 별점은 3.5점입니다.

"죽을 때는 혼자" 

전직 야쿠자가 총에 맞아 죽은 시체로 발견되는데 범인의 도주로는 완전히 차단된 상태였다는 내용으로, 뭔가 거창한 밀실 트릭이 쓰였을 것 같은데 실상 알맹이는 별 게 없어서 아쉬웠습니다. 범인이 중요한 단서를 간과했기 때문에 사건이 복잡해진 것 뿐이거든요. 좀 흔한 내용이기도 하고요. 별점은 2점입니다.

"깨진 유리창" 

일종의 순간 이동 트릭이 등장합니다. 피해자가 사망할 때가 아니라, 범인이 도주하고 나서 사망 시간을 조작하기 위해 유리창을 깼다는 것이지요. 어디서 많이 본 듯 싶어요. 

그러나 트릭이 정말로 조잡하고 유치한 수준입니다... 수사를 통해 곧바로 드러날 장치 트릭이라는 문제도 크지만, 안에서 깬 유리와 밖에서 깬 유리의 형태가 당연히 다를 것이라는 기본조차 망각하고 있는 탓입니다. 별점은 1점입니다.

"덴마 박사의 승천" 

우연히 만난 발명가의 괴상한 죽음의 진상은 무엇인가?에 대한 내용입니다. 자살 같지만, 현장까지 술에 취한 듯한 엉망진창의 피해자 신발 자국이 남겨져 있었다는건데, 수준을 떠나서 솔직히 반칙이었다 생각됩니다. 작위적이면서 억지스럽기도 했고요. 차라리 바 손님들의 아이디어가 진상보다 더 나았습니다. 별점은 1점입니다.

2006/01/28

[Y]의 비극 - 앤솔로지 : 별점 2.5점

엘러리 퀸의 "Y의 비극"을 테마로 4명의 추리작가에게 의뢰한 중편을 모아 출간한 앤솔러지.
작가의 구성이 꽤나 화려한 것이 먼저 눈에 띕니다. 첫 작품 "어떤 Y의 비극"은 아리스가와 아리스, 두번째 작품인 "다이잉 메시지 Y", 이 작품은 잘 알지는 못하지만 나름대로 지명도는 있는 듯한 (건축탐정 사쿠라이 쿄스케 시리즈가 대표작인 듯 하군요) 시노다 마유미, 세번째 작품 "Y의 비극 - Y가 늘어나다"는 니카이도 레이토, 마지막 네번째 작품은 "이콜 Y의 비극"으로 노리츠키 린타로의 작품입니다. 각 100여페이지 분량의 중편들이죠.
일본 여행에서 구입한 책중 하나인데 우연히 헌책방을 지나다가 발견해서 작가의 면면이 꽤 믿음직하고 제목과 기획 의도도 마음에 들어 구입해서 읽기 시작했습니다.

수록작들의 공통점이라면 모두 "Y"라는 글자가 포함된 다이잉 메시지 해독이 중요 트릭이라는 것, 그리고 엘러리 퀸의 원저 느낌을 많이 가져 오려고 노력한 느낌이 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니카이도 레이토의 쓰레기를 제외하면 다 얼추 읽을만하며 정통 퍼즐 미스터리로서 "트릭"을 푼다는 재미도 제법 있는 편이었어요.
또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히무라-아리스 컴비, 니카이도 레이토의 작품에 등장하는 명탐정 죠우카 박사와 예술연구 그룹 "뮤즈"의 멤버들, 노리츠키 린타로의 노리츠키 경시와 아들 노리츠키 린타로 컴비 등 유명 캐릭터와 다양한 작가들의 새로운 작풍을 접할 수 있다는 것도 나름 괜찮은 수확이라 할 수 있겠죠.

그러나 결론적으로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습니다. 고전걸작으로 명망높은 "Y의 비극"이기에 후배작가들이 존경을 표하고 싶은 마음, 그리고 욕심은 충분히 이해가 되지만 작품의 수준은 아쉽게도 부족기 때문입니다. "이콜 Y의 비극"을 제외한다면 딱히 평가할 부분도 많지 않을 뿐더러 무엇보다도 니카이도 레이토의 작품이 용서가 불가능한 수준이라 점수를 너무 많이 깎아먹기도 하고요.
올해 들어 두번째 읽은 책인데 솔직히 약간은 실망스러웠어요. 뭐 원서를 직접 읽어 보았다는데 의미를 둘까 합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수록 작품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1. 어떤 Y의 비극 - 아리스가와 아리스
인디 록 밴드 "유메노 도구라 마구로"의 기타리스트가 자신의 기타에 맞아 살해당한다. 그가 남긴 것은 벽에 피로 쓴 "Y"라는 글자. 히무라와 아리스 컴비가 다이잉 메시지의 해독에 도전한다.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작품으로 원저의 느낌을 잘 살린 여러 설정 (기타에 의한 죽음이라던가)과 꽤 잘 짜여진 구성은 마음에 들며 나름대로 재미있게 읽긴 했습니다.
허나 결정적 부분에서 일본인만이 이해가능한 요소가 있어서 높은 점수를 주긴 힘드네요. 그 부분 때문에 트릭 자체를 수긍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결론내리자면 그냥 평균적인 수준이었습니다. 별점은 2.5점.

2. "다이잉 메시지 Y' - 시노다 마유미
나는 고등학교 동창이 인터넷 채팅으로 사귄 "EMI"라는 아이의 죽음을 목격했었다. 그녀는 "Y가 죽였다"라는 글귀를 남기고 죽은 시체로 발견되었고 결국 자살한 것으로 처리 되었다. 그리고 2년후, 나는 우연히 신문에서 그 죽음의 장소였던 학교 건물이 철거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다시 그곳을 찾아볼 결심을 하는데....
시노다 마유미라는 여성 작가의 60여페이지 정도의, 단편보다는 약간 길고 중편보다는 약간 짧은 길이의 작품.
굉장히 여성적이라는 느낌의 작품으로 현재와 과거를 넘나드는 구성도 좋았지만 작품 내용에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던 연극에 대한 설정이 치밀하고 괜찮았습니다. 마지막에 진상이 밝혀지며 드러나는 반전도 좋았고요. 
추리적으로 그다지 특기할 것은 없다는 것이 조금 아쉽지만 이 정도면 평균 이상이죠. 별점은 3점입니다.

3. "Y의 비극 - Y가 늘어나다" - 니카이도 레이토
예술 연구 그룹 "뮤즈"의 멤버들은 어느날 핵공격에 대비한 안전시설인 핵 셸터의 안에 갇히고 부장인 마리오가 닫힌 밀실에서 "Y"라는 글자 하나만 남긴채 죽은 시체로 발견된다. 아무도 들어올 수 없는 완벽한 밀실에서의 사건 해결에 명탐정 죠우카 박사가 도전한다!
이름은 몇번 들어본 작가인 니카이도 레이토의 작품. 
작품은 처음 접해보았는데 정말이지 너무하더군요. 이른바 "메타 미스터리"라는 이름하에 주인공들이 독자에게 말을 거는 독특한 전개를 보여준다는 식인데 이러한 구성에 너무 기댄 탓인지 다른 것들은 모두 수준 이하입니다. 트릭도 황당무계할 뿐더러 다이잉 메시지의 의미조차 반은 장난으로 여겨질 정도의 치졸한 작품으로 모든 면에서 그다지 논할 것이 없는 쓰레기였어요. 별점은 1점입니다.

4. "이콜 Y의 비극" - 노리츠키 린타로
세타가야의 맨션에서 아다치 아카네라는 여성이 살해된 시체로 발견된다. 현장에서 발견된 물품 중에 메모지에 볼펜으로 쓴 "=Y"라는 기호의 흔적이 발견되며 유력한 용의자로 피해자 언니의 남편과 그 불륜상대가 지목되지만 그들의 알리바이는 확실한 상태. 사건이 답보상태에 머무르게 되자 사건을 맡은 노리츠키 경시는 자신의 아들 린타로에게 사건의 해결을 요청한다.
신본격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한명인 노리츠키 린타로의 작품. 그의 유명한 시리즈 캐릭터 노리츠키 린타로가 등장하는 본격물입니다. 
일단 "다이잉 메시지"의 의미가 확실하고 그 내용을 작품속에서 치밀하고 논리적으로 구성함으로써 본격 퍼즐 트릭물로서 충분히 제 값을 하는 것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일본이라는 지역적 특성이 살아있는 트릭이긴 하지만 상당히 설득력있는 편이라 꽤 수긍할만 했어요. 앞부분에 등장하는 전혀 상관없었던 짤막한 에피소드가 본편에서 중요한 장치가 되는 구성도 좋았고요.
그러나 다른 부분들, 예를 들자면 범인의 동기라던가 하는 부분에서 빈약함이 많이 느껴지는 것은 분명 약점이기도 합니다. 그래도 이 앤솔로지 최고의 작품으로 꼽고 싶네요. 저는 무척 재미있게 읽었거든요. 개인적으로 시간만 허락된다면 번역의 욕심도 조금 나긴 하는데 너무 일본적인 트릭일 수도 있어서 약간 고민 되긴 하네요. 별점은 3.5점입니다.

2012/09/18

달리의 고치 - 아리스가와 아리스 / 최고은 : 별점 1.5점

달리의 고치 - 4점
아리스가와 아리스 지음, 최고은 옮김/북홀릭(bookholic)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예술가 살바도르 달리를 신봉하던 연매출 100억 엔대의 주얼리 브랜드 사장 도죠 슈이치가 살해당했다. 주말을 보내러 내려간 별장에서 발견된 사장의 시체는 현대판 고치, 프로트 캡슐이라는 명상 기계 안에 알몸인 채로 방치돼 있었다. 게다가 그의 트레이드마크였던 달리 수염은 잘려 나간 상태. 그 밖에도 살해 현장은 이해하기 어려운 메시지로 가득한 가운데, 여러 인물들이 차례차례 용의선상에 오르는데…

"일본의 엘러리 퀸"이라는 별명을 가진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작가 아리스 시리즈 두 번째 작품입니다. 작가의 별명에 걸맞게 기이한 현장의 모습과 그것을 설명하는 논리적인 진상은 엘러리 퀸을 연상케 합니다. 

그러나 전체적인 완성도에서는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현격한 차이가 납니다. 우선, 살바도르 달리나 고치와 같은 불필요한 설정과 장황한 묘사가 짜증나는 탓입니다. 달리는 "수염"을 이용한 트릭에 당위성을 부여하기 위하여 끌어들인 것 같은데, 지나치게 작위적입니다. 과장된 설정 탓에 현실감도 전혀 느껴지지 않았고요. 고치 역시 그냥 별장에 사우나 시설이 있었다 정도로 해도 충분했을 텐데 지나치게 멋을 부린 느낌이고요. 완전 방음이 된다면야 좀 더 그럴싸했을 텐데 그것도 아니니...

또 진상으로 밝혀진 도죠 슈이치의 구멍투성이 계획도 황당합니다. 공을 많이 들이기는 했으나 번거롭기만 한 흉기 입수 작전에서부터 시작해서, 과연 나가이케가 방문하기로 약속된 시간에 요시미즈가 정확하게 고치를 이용하려 했을지, 나가이케는 정각에 제대로 방문했을지, 요시미즈가 고치를 이용하는 도중에 범행을 조용하고 완벽하게 저지른 뒤 40~50분 동안 시체를 숨기고 옮길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가장 유력한 용의자가 될 것은 뻔한데 알리바이가 좀 약하지 않았을지, 그리고 나가이케가 별장 방문을 과연 함구하고 있었을지 등등 세세한 부분에서 허점이 너무 많아서 도저히 좋게 봐 줄 수 없었어요. 이래서야 수염을 깎고 변장한 뒤 나가이케 집에 쳐들어가서 범행을 저지르는 게 더 쉬웠을 겁니다.

그리고 중요 용의자의 혐의가 차례대로 너무 쉽게 벗겨지고, 마지막에는 도죠 슈지 외에 그럴듯한 용의자가 남지 않는다는건 본격 추리 장편으로는 심각할 정도의 문제라 생각됩니다.

고치에 의미를 부여하여 작가 아리스의 첫사랑과 추리소설을 쓰게 된 계기 등 자전적인 의미가 들어가 있기는 하나 너무 감상적이라는 것도 개인적으로는 옥의 티였고요.

물론 단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앞서 말했듯 기이한 사건 현장과 그것을 설명하는 트릭의 합리성만큼은 괜찮습니다. 히무라 히데오가 휘파람으로 롤링스톤즈의 "김미 쉘터"를 분다던가 하는 디테일, 작가 아리스의 과거 등 시리즈 팬이라면 나름 즐길 거리가 있기는 해요. 이세와 미키모토 코키치의 섬이 기념품 가게와 맞물려 등장하는 부분에서 여정 (여행) 미스터리의 풍취가 느껴지는 등의 독특한 부분도 좋았고요. 차라리 더 함축하여 중단편화했더라면 훨씬 좋았을 텐데 아쉽습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덧 : 아무리 생각해도 이 작가의 별명은 과장된 것이 분명합니다...

덧2 : 어느덧 추리소설 리뷰가 550편째~!

2008/07/13

외딴섬 퍼즐 - 아리스가와 아리스 / 김선영 : 별점 3점

외딴섬 퍼즐 - 6점
아리스가와 아리스 지음, 김선영 옮김/시공사

에가미 지로와 아리스는 에이토 대학 추리 동호회의 홍일점인 아리마 마리아의 초대로 아리마가의 별장이 있는 섬으로 여름 휴가를 떠나게 된다. 목적은 마리아의 할아버지인 아리마 데츠노스케가 섬에 숨겨두었다는 보물을 찾기 위함. 섬에 휴가 때마다 모이는 가족들과 손님들이 모두 도착하고 즐거운 휴가가 시작되나 곧바로 마리아의 고모부와 사촌누나가 밀실에서 총에 맞아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지고 연달아 살인 사건이 일어난다. 에가미 지로는 최후의 순간에 진상을 꿰뚫고 아리스에게 자신의 이론을 설명하게 되는데…


국내에 두번째로 소개된 학생 아리스 시리즈 작품입니다. 전편 "월광게임"의 경우 아마츄어 미스터리 매니아의 데뷰작이라는 느낌이 너무 강해서 높은 점수를 주기는 힘들었는데 이 작품은 첫 작품에서의 단점을 보완하여 확실히 업그레이드했네요. 물론 클로즈드 서클이라고 불리우기도 하는, 고립된 섬이라는 무대와 일본 추리 소설에서 흔히 보이는 부자 가문의 복잡한 인간관계라는 기본 설정은 골든 에이지 시절의 영국쪽 퍼즐 미스터리와 고전 일본 추리물의 영향을 부인하기 어려울 정도로 뻔했지만 저도 이런 고전적 설정을 무척 좋아하기에 굳이 단점으로 꼽기는 어렵겠죠? 뭐 이런게 정통 아니겠습니까 .

작품은 크게 주어진 단서를 이용하여 섬에 숨겨진 보물을 찾는 이야기와 더불어 3건 (피해자는 4인)의 살인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일단 보물찾기 이야기는 암호 트릭으로 꽤 잘 만들어진 트릭입니다. 작위적이긴 하지만 기본 개념자체는 나쁘지 않았고 독자도 함께 할 수 있는 수준이라는 점에서 마음에 들었어요. 반면 살인사건 트릭은 그냥저냥하더군요. 밀실 트릭은 좀 대충 만든 것 같은 생각이 들기에 높은 점수를 주기는 힘들었고 다이잉 메시지는 그냥 그러한게 있었다 수준이거든요. 그 외에는 별다른 트릭 없이 “범인이 누구인가?” 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등 트릭물로 보기는 좀 어렵기도 합니다. 하지만 떨어진 지도에 남은 자전거 바퀴 자국을 토대로 하여 범인을 이끌어내는 전개는 좋았습니다. 이치에 합당할 뿐더러 전개도 합리적이고 수긍할만 했기 때문에요. 에가미 지로가 범인을 밝히는 마지막 장 앞에 “독자에 대한 도전”이 있는 것이 만용으로 보이지 않을 만큼 공정하면서도 치밀한, 잘 짜여진 이야기라 생각되네요.
그러나 범인이 단 한명으로 좁혀지는 결과를 낳은 것은 굉장히 아쉬웠어요. 전작 “월광게임”이 초딩스러운 불합리한 동기 부여로 작품의 수준이 바닥이었던것에 비교한다면 이번에는 범행의 동기 부여 부분에 있어서는 확실히 진일보하여 설득력을 갖추긴 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설득력을 제공하는 부분이 너무 자세하게 표현되어 버려서 범행의 과정이나 트릭은 몰라도 결국 범인이 누구인지 쉽게 알 수 있었어요. 닫힌 공간에서 연쇄 살인이 벌어진다면 “누가 범인인가?” 부분을 좀 더 흥미진진하게 만들기 위해서라도 캐릭터간의 갈등을 보다 디테일하게 묘사했어야 하는데 이 작품에서는 마키하라 준지 이외의 등장인물들은 갈등 자체가 묘사되지 않아서 마지막 부분에서 동기가 확인되자마자 김이 확 빠져버렸습니다.

그 외에도 실제 범행이 아리스가 이야기하듯 “철인 3종 경기” 같은 체력이 필요했다는 점, 어차피 복수극이었다면 에가미와 아리스 같은 외부 손님이 없는 다른 시기 (몇 년 뒤가 되더라도) 에 범행을 저지르는 것이 더욱 합리적이지 않았을까 하는 것들도 보완해야 할 점입니다. 보물찾기 트릭도 단서가 너무 명확한 장소를 나타내고 있어서 구태여 암호를 풀지 않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몇년간 찾았으면 결국 발견하지 않았었을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시대가 많이 흐른 탓이기도 하겠지만 지금 읽기에는 "김전일"스러운 전개 (혐오스러운 범행때문에 발생한 눈물의 범죄. 동정할 수 밖에 없는 범인 등)가 약간 거슬리기도 했고요.

아쉬운 점들 때문에 재미있게 읽기는 했지만 뭔가 2% 부족한 느낌은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도 전작보다는 확실히 좋아졌기에 별점은 3점입니다. 계속 발전하는 모습이니 다음 작품 “쌍두의 악마”는 이 작품에서 드러나는 몇가지 문제점을 보완하여 그야말로 확실한 정통 고전과 같은 맛을 충분히 전해주지 않을까 생각되어 기대가 큽니다. “쌍두의 악마”는 그렇잖아도 걸작이라는 평도 많으니 올 여름 시즌 지나기 전에 나와주면 좋겠네요.

2009/04/18

절규성 살인사건 - 아리스가와 아리스 / 최고은 : 별점 3점

절규성 살인사건 - 6점
아리스가와 아리스 지음, 최고은 옮김/북홀릭(bookholic)

범죄 심리학 조교수이자 실제 사건에도 뛰어들어 활약하여 "임상 범죄 학자"라는 타이틀로도 불리우는 천재 히무라 히데오가 탐정역으로, 그의 대학동창이자 친구인 추리작가 아리스가와 아리스가 도우미로 활약하는 단편집으로 "하얀 토끼가 도망친다" 이후 두번째로 국내에 출간되었네요. "하얀 토끼가 도망친다" 때와 똑같이 이 컴비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국명 시리즈" 이외의 작품이 계속 출간되는 것은 여전히 궁금합니다만, 제가 좋아하는 일본 추리 단편집이라 주저없이 구입해서 읽게 되었습니다.

이 단편집에는 전부 6개의 단편이 실려 있는데 모두 작가 후기에 등장하는 작가의 의도, 즉 "... 살인사건" 이라는 주제로 단편 연작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충실하게 따른 단편들입니다. 연작 시리즈 답게 일종의 "저택"을 무대로 해서 밤에 일어나는 사건이라는 연관성을 가지게 하겠다라는 것 역시 동일하고요. 그러나 "저택"을 무대로 하는 것이 의미가 있었겠구나... 싶은 작품은 "월궁전"과 "홍우장" 2편 정도? 나머지는 그냥 다른 이야기로 꾸미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 싶었습니다. 추리적으로 필요도 없는데 "저택"을 무대로 하는 설정을 도입하는 것은 작가의 욕심에 불과해 보였거든요. 트릭 자체는 신본격의 대표 작가답게 괜찮은 것들이 있긴 합니다. 그러나 작가의 욕심, 그리고 거기서 비롯된 지나친 작위성 때문에 외려 완성도가 낮아진 것이 아닌가 싶네요. 그냥 놓고 본다면 괜찮은데 작위적인 설정 덕에 단편마다 완성도의 편차가 심하게 느껴지기도 했고요.

사실 이 작가의 가장 큰 단점이라 할 수 있는 "스스로의 설정에 매달리는" 모습은 작가의 작품을 여러권 읽어왔지만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고 거슬리기만 하는데, 이제는 계속 구입해 봐야 하는건지 솔직히 의심스러운 수준인 듯 합니다. 별거아닌 트릭을 작위적으로 포장한 얄팍하고 빈약한 과대포장된 선물상자같은 느낌이라서 말이죠... 작가의 최고 걸작이라는 "쌍두의 악마" 가 출간되면 읽어보고 최종 평가를 내려야겠지만 현재로는 위험수준!입니다.

그나마 별점은 실망스러운 감상평과는 별도로 수준높은 작품 몇편이 끌어올리고 있어서 평균점 자체는 괜찮은 편이네요. 괜찮았던 작품은 "흑조정", "홍우장" 두편이었고 "호중암", "월궁전", "절규성" 은 평작~범작 수준, 그리고 "설화루"는 절망적인 쓰레기 수준으로 토탈 평균은 한 3점 되겠습니다. 덧붙이자면, 책의 사이즈, 장정, 디자인, 커버는 모두 아주아주 마음에 들더군요. 같은 학산계열인데 "경성탐정록"과는 비교가 되는 수준인데, 앞으로 출판사에서 경성탐정록도 신경좀 써줬으면 좋겠네요.

단편별로 조금 더 자세하게 이야기하자면,

"흑조정 살인사건"
히무라와 아리스는 대학 동창인 화가 아마노의 요청으로 그가 거주하는 시골 저택 "흑조정"을 방문한다. 과거 "흑조정"의 주인이었지만 자살한 것으로 알려졌던 전 은행가 나미키 마사토의 죽은지 얼마 안되는 시체를 발견한 아마노는 기이한 사건의 해결을 부탁하는데....
"흑조정"이라는 설정을 도입할 필요는 전혀 없었던 단편이지만 작품에 등장하는 아마노의 딸 마키를 통해 다양한 복선과 수수께끼를 전달하는 이야기 구성이 무척 좋았던 작품이었습니다. 스무고개 퀴즈를 작품에 녹여내는 전개와 이솝우화를 가지고 풀어낸 트릭도 마음에 들었고요. 짤막하지만 복선과 단서가 잘 배치되어 있어서 단편의 왕도를 걷는 작품이라 생각되기에 개인적으로는 이 단편집의 베스트로 꼽고 싶네요. 별점은 4점 주겠습니다.

"호중암 살인사건"
"호중암"이라 불리는 지하의 밀실에서 기묘하게 살해된 시체가 발견된다. 피해자 츠보우치 토마의 시체가 밀실에서 항아리를 뒤집어쓴채 매달려 있었던 것.
밀실 트릭물입니다. "호중암"이라는 밀실의 이름과 피해자의 이름, 사체의 상태를 연결시킨 것은 흡사 엘러리 퀸의 억지스러운 본격물 트릭을 연상케 하더군요. 21세기에 먹히기는 어려운 설정이죠. 그래도 기계적인 장치를 사용한 트릭은 깔끔한 편이라 중간정도는 되는 작품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너무 작위적이고 장치적이라 "만화"에 더 적합해 보이긴 했다는 것은 단점이겠죠. 별점은 3점입니다.

"월궁전 살인사건"
히무라와 드라이브 도중 아리스는 우연히 자신이 발견했던 황당했지만 예술성있던 노숙자의 무허가 건물을 이야기한다. 근처에 도착한 그들은 그 집을 찾아보는데 마침 "월궁전"이라 불리우던 그 집이 방화로 불타고, 노숙자도 사망한 것을 알게된다.
"월궁전"이라는 단어에서 뽑아내어 집과 연결시킨, "집" 이라는 설정과 트릭이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단편입니다. 깔끔하게 정리해서 마무리했기 때문에 읽기도 편했고 완성도도 높은 편입니다. 그러나 아이디어가 단순해서 정통 본격물이라기 보다는 소품에 가까운 작품이라는 것이 좀 아쉽더군요. 별점은 3점입니다.

"설화루 살인사건"
"설화루"라 불리우는 공사가 중단된 여관건물에서 거주하던 남자가 살해당한다. 처음에는 자살로 생각되었지만 머리에 둔기에 의한 상처가 발견되어 살해된 것으로 판단되나, 눈오는 건물 옥상에는 남자의 발자국만 남아있던 상태.
불가능범죄를 테마로 한 작품인데 작위적인 수준을 떠나서 황당 그 자체의 우연을 다룬, 추리적으로 일고의 가치도 없는 쓰레기같은 작품이었습니다. 작중 아리스가 이야기하는 다양한 가설 (예를 들면 부메랑 같은) 이 차라리 트릭으로 더 의미가 있는게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말이죠. 이 단편집의 워스트입니다. 작가 스스로는 영화 "매그놀리아" 이야기를 하면서 어물쩍 빠져나가고 있는데 택도 없는 소리죠. 별점? 1점도 아깝다.

"홍우장 살인사건"
화장품 회사의 CEO였다가 은퇴한 이지마 쇼코의 자살로 위장한 사체가 "홍우장"이라 불리우는 그녀의 자택에서 발견되고, 출동한 경찰과 히무라 - 아리스는 세간에 진짜 "홍우장"으로 알려져 있는, 과거 영화촬영 세트로 쓰여 유명한 저택에 살고 있는 이지마 쇼코의 자녀들을 찾아가게 되는데...
저택과 살인사건, 그리고 트릭이 유기적으로 결합된 두번째 작품입니다. 트릭의 완성도도 높고 사건이 밝혀지는 중요 단서도 설득력이 있으며 동기도 확실한 편이라 추리적으로는 확실한 수준을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하죠.
그러나 범인의 동기가 좀 작위적이고 우연이 겹쳐져 사건이 이루어 졌다는 것, 그리고 단편 전체적으로 이 저택이 유명세를 타게 된 "바람도 모른다"라는 영화 이야기를 계속 등장시키는 것 등은 확실히 단점으로 생각됩니다. 그래도 단편으로 풀어내기에는 괜찮은 소재이고 작품 자체도 잘 썼기에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별점은 4점 주겠습니다.
그나저나 홍우장에서는 "청소"라는 것을 하지 않는것일까요? 저도 가끔 테이블은 걸레로 닦아 주는데.... 사소한 점이지만 추리의 완성도에 큰 영향을 주는 부분이니 만큼 작중에서 설명을 좀 해주었더라면 좋았을 것 같네요.

"절규성 살인사건"
'나이트 프라울러' 라고 자칭하는 부녀자 연쇄 살인범의 등장으로 전 일본이 공포에 빠진다. 결국 네번째 피해자가 발생하고, 히무라는 사건을 조사하여 그 뒤에 숨겨진 진상을 파악하게 된다.
"절규성"이라는 게임을 테마로 살인사건이 일어난다는 이야기를 다룬 작품으로 연쇄살인을 다루고는 있지만 트릭이 별게 없어서 아쉬웠습니다. 주제는 상당히 묵직했는데 결말이 좀 안이해서 중간 이후 트릭과 진상을 짐작할 수 있도록 이야기가 흘러가거든요. 때문에 추리적으로는 높은 점수를 주기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게임"과 현실을 잘 믹스한 설정, 특히 "게임"에 대한 설정이 괜찮기에 작품 전체 수준을 놓고 본다면 평작 이상 수준은 된다고 할 수 있겠네요. 별점은 3점 주겠습니다.

2025/05/23

여왕국의 성 1,2 - 아리스가와 아리스 / 김선영 : 별점 2.5점


아래 내용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에이토 대학 추리소설 연구회 EMC 회원인 모치즈키, 오다, 아리스가와, 마리아 네 명은 렌트카로 가미쿠라로 향했다. 가미쿠라에 위치한, 외계인을 믿는다는 신흥종교집단 '인류협회' 본거지로 떠났던 에가미 선배의 연락이 끊긴 탓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에가미 선배를 만나는데 성공했지만, 그들은 인류협회의 '성'에서 일어난 연쇄 살인 사건에 휘말리고 말았다. 하지만 인류협회는 경찰을 부르지 않고 오히려 그들을 감금하였고, 에가미 선배와 일행은 성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사건을 해결하려고 노력하는데...

아리스가와 아리스는 시마다 소지의 계보를 잇는 일본 신본격 미스터리 작가이지요. 국내에도 많은 작품들이 소개되었는데, 이 작품은 작가의 유명 시리즈 중 하나인 '학생 아리스' 시리즈(또 다른 시리즈는 명탐정 히무라 히데오가 등장하는 '작가 아리스' 시리즈) 장편입니다. 신흥 종교집단의 본거지인 ‘성’을 배경으로 일어난 연쇄 살인 사건을 다루는데, 1권과 2권을 합쳐 900여 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을 자랑합니다. 완독에 1주일 정도 걸렸네요.

명성답게 추리적으로는 상당히 볼거리가 많았습니다. 2008년 '주간분슌 선정 본격 미스터리 베스트 1위", '제 8회 본격 미스터리 대상'을 수상했다는게 이해가 될 정도로요.
우선, 공정한 단서 제공이 단연 돋보입니다. 작가는 독자에게 사건 해결에 필요한 정보들을 모두, 하나도 빠짐없이 제공해 줍니다. 마지막 추리쇼 직전에는 ‘독자에의 도전장’이 삽입되어 있기도 하고요. 전통적인 본격 추리물 애호가라면 누구나 사랑할 수 밖에 없는 구성이지요.

사건과 트릭, 추리도 나쁘지 않습니다. 11년 전 총기 실종 사건 트릭은 단순하면서도 현실적인 조건을 이용하고 있다는게 마음에 들었어요. 밀실인 현장에서 자살한 피해자의 총기를 가져간 범인은 어린아이로, 아이는 작은 체구를 이용해 쓰러져있던 사체 뒤에 숨어 창 밖에서 바라보던 쓰바키 등 목격자 시야에서 벗어났습니다. 사람들이 방 안에 들어왔을 때는 문 뒤에 숨었고요. 그리고 쓰바키가 경찰이 올 때 까지 정문 앞을 지킬 때 총을 가지고 뒷문으로 탈출했던 겁니다. 복잡한 장치를 활용한 트릭이 아니라, 상황과 조건을 정교하게 활용한 현실적인 트릭이라는 점에서 설득력이 높고, 어린 아이라는 범인 특징과도 잘 어울렸습니다.

현재 시점의 연쇄 살인 사건은 전형적인 후더닛 추리인데, 아래 의문이 핵심입니다. 

  • 첫째, 총기는 어떻게 삼엄한 보안이 이뤄진 인류협회 본부로 반입되었는가? 
  • 둘째, 어떻게 총기가 11년전 사라졌던 그 총일 수가 있었는가? 

이에 대한 추리는 아래와 같고요.

  • 첫째, 총기는 성스러운 동굴 안에 숨겨져 있었는데, 인류협회 쪽이 아닌 마을에서 들어오는 입구는 좁아서 어린 아이만 들어올 수 있었다. 즉, 총기를 숨긴건 어린 아이였다. 
  • 둘째, 총기가 11년 전 사건의 흉기였던 권총이기 때문에, 범인은 11년 전 사건에서 총기를 훔쳤던 사람이다. 

이렇게 범인은 11년 전 마을에 살고 있던 어린 아이라는게 밝혀집니다. 현재 인류 협회 소속 인원 중에서 이에 해당되면서, 사건 당시에 알라바이가 없는건 아오타밖에 없고요. 즉 아오타가 범인입니다!

이런 추리적 요소와 더불어 사건들이 벌어지는 배경인 인류협회의 설정도 흥미롭습니다. 외계인을 신으로 믿는다는 다소 황당한 설정에도 불구하고, 그 내부의 교리, 협회의 구성, 생활 방식과 본거지 '성'이 구체적으로 묘사되어 있어 현실감을 부여합니다. 교주 노사키 기미코가 유괴당해서 에가미 일행이 감금될 수 밖에 없었다는 진상 역시 그럴듯했어요.

등장인물들의 성격 묘사와 팀워크도 돋보입니다. EMC 멤버인 모치츠키, 오다, 아리스, 마리아 모두 톡톡 튀는 매력을 갖추고 있으며 중반부에 '성'에서 탈출하려는 모험도 풋풋하고 귀엽게 그려지고 있는 덕분입니다. "아르키메데스는 손을 더럽히지 않는다"보다는 이 작품 쪽이 더 "청춘 미스터리"의 범주에 들어맞는게 아닌가 싶네요. 버블 경제 몰락 직전의 분위기에 대한 언급, 그리고 멤버들을 통해 중간중간 등장하는 문학, 드라마, 영화에 대한 인용도 읽는 재미를 더해줍니다. 카프카의 "성"을 이렇게 읽어보고 싶게 만들게끔 소개한 글은 정말이지 처음 봅니다.

다만 몇 가지 아쉬움도 있습니다. 우선, 전체 분량이 과합니다. 거의 900페이지 분량 중 인류협회와 '성'에 대한 설명에 많은 분량이 할애되는데 이렇게까지 길 필요는 없었습니다. 특히 '성'의 경우, 내부 구조도까지 곁들인 상세한 묘사로 과다한 정보를 주지만 이는 실제 사건과 거의 관계가 없어서 허무하게 느껴지기까지 합니다. 이야기 중간에 마리아의 시점으로 전환되는 장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시점 변경이 새로운 정보나 심리적 깊이를 제공하기보다는 서사 전개의 리듬을 끊는 것에 불과하거든요. 지루함도 가중시키고요.

그리고 사건 해결의 중요한 단서가 되는 장면에서 지나치게 절묘한 우연이 개입되었다는 점은 아쉽습니다. 번역자도 후기를 통해 언급한 문제인데, 범인이 5시 경에 동굴 입구를 지키고 있던 도이를 살해한 뒤 곧바로 동굴에 들어가 총기를 꺼냈다면, 지즈루와 일정 시간 동굴 내부에 함께 있었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어느 한쪽이 인기척이나 이상한 낌새를 느꼈어야 하는데 이에 대한 설명은 없습니다. 이보다는 차라리 범인이 마주친 지즈루마저 살해하여 사체를 숨겼다가 발각된 후, 지즈루가 동굴 안에 있던 시간을 여러가지 증거(깨진 시계라던가, 할아버지 증언이라던가...)로 알아내어 범인을 특정한다는 이야기가 추리적으로는 더 나았을 겁니다. 잔혹하긴 하지만요.

아울러 에가미의 추리도 돌이켜 생각해보면 문제가 많습니다. '어린아이만 동굴을 통과할 수 있다'는 전제 조건이 특히 그러합니다. 입구 측에서 총을 종이와 비닐 등으로 공 모양으로 감싸 던진 뒤 출구 쪽('성'의 동굴)에서 회수하거나, 개에 묶어서 들여보내는 등 여러가지 대안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애초에 저 권총을 흉기로 써서 꼬리를 밟힐 이유부터 설명이 부족합니다. 인류협회에 대한 원한으로 예언을 망치기 위해 살인을 저지렀다는 동기부터 비현실적이지만, 정말로 이게 목적이었다면 둔기나 칼을 사용해도 문제가 없었으니까요. 

아오타가 사체 강직을 이용해 총을 쏘게 만든 이상한 알리바이 트릭도 억지스러웠습니다. 앞서의 동기가 진짜라면, 에가미의 말대로 자기가 범행을 저질렀다며 세상에 진상을 드러내는게 더 좋은 방법입니다. 알리바이 트릭을 써 가며 은폐를 기도할 이유는 없어요. 심지어 제대로 동작할지도 모르는 애매한 방식의 트릭이기도 하고요.

이러한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정통 본격 추리의 규칙을 철저히 따르면서도, 현대적인 감성과 설정을 조화롭게 결합한 신본격 추리 소설이 뭔지 잘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일단 재미는 있습니다.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본격 추리물 애호가시라면 한 번 읽어보셔도 좋을겁니다.

2010/09/26

도박 눈 - 미야베 미유키 외 / 정태원 : 별점 3점

도박 눈 - 6점
미야베 미유키 지음, 정태원 옮김/태동출판사

카파 노블스 창간 50주년을 기념하여 9명의 작가들이 '50'이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써 내려간 단편들을 모아 놓은 단편 앤솔로지입니다. 추석 연휴 마지막 날을 장식한 따끈따끈한 신간이죠.

이렇게 여러 작가들이 하나의 키워드로 모인 앤솔로지는 이전에 "Y의 비극" 등을 통해 접해본 적이 몇 번 있습니다. 그래서 9명의 작가들이 한자리에 모이기도 어려운, 드림팀이라 부를 만한 저명한 작가들이거나, 어떻게 보면 출판사 기획 도서에 가깝다는 점을 알고 있었기에 기대 반, 우려 반이었는데 생각보다 아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아무래도 정통 추리 단편이 아니라 작가들이 쓰고 싶은 장르의 이야기를 썼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추리뿐만 아니라 괴담이나 일반적인 드라마까지 장르의 스펙트럼이 넓은 편이거든요.

그러나 '50'이라는 키워드를 작품에 잘 녹여낸 작품이 많지 않다는 점은 아쉽더군요. 아야쓰지 유키토와 미치오 슈스케 작품만이 '50'을 이야기의 핵심 요소로 사용했을 뿐, 다른 작품들은 그냥 있으나 없으나 한 설정에 불과하니까요. 하나의 키워드를 가지고 이야기를 창작한다는 게 쉽지는 않겠지만, 이왕 쓴다면 좀 더 작품에 잘 녹아들게 하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개인적으로는 '50번째 임무를 수행하면 자유의 몸이 되는 조직의 킬러' 같은 설정이 떠오르네요.)

전체 평균 별점은 반올림해서 3점. 베스트 작품으로는 재미 측면에서는 "도박눈", 추리 요소로는 "여름의 빛" 두 작품을 꼽겠습니다.

수록작별 간략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절단" - 아야쓰지 유키토

화자가 작가 아야쓰지 유키토라는 것도 특이하지만, 생각보다 심리 스릴러와 크리처물에 가까운 작품이라 무척 의외였습니다. '칼질 50번으로 *****의 사체를 50조각 냈다'는 사건이 발생하는데, 범인은 이미 잡힌 상황이며 단지 '왜 51조각이 아니고 50조각인지?'에 대한 의문만을 탐구합니다.

그러나 역시나 명성에 걸맞은 작품이었습니다. *****의 정체를 끝까지 밝히지 않고, 이게 현실인지 정상적인 세계인지도 알 수 없는 비현실성 속에서도 느껴지는 서늘함이 일품이었습니다. '50'이라는 키워드도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되어 마음에 들었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눈과 금혼식" - 아리스가와 아리스

'작가 아리스' 시리즈로 임상 법의학자 히무라 히데오와 작가 아리스가와 아리스가 등장하는 단편이며, '50'이라는 키워드는 노부부의 행복한 금혼식을 테마로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신본격 단편임에도 불구하고 트릭이 너무나 변변찮고, 추리라고 할 만한 요소가 거의 없어서 높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네요. 다도코로 유지의 당일 행적만 경찰이 조사했더라도 금방 해결되었을 사건이라 왜 히무라 히데오가 등장하는지조차 알 수 없거든요. '50' 역시 억지로 끼워 맞춘 설정에 불과합니다. 금혼식이 아니라 생일이나 결혼기념일이어도 무방하니까요.

한마디로 이 앤솔로지의 워스트. 별점은 1.5점입니다.

"50층에서 기다려라" - 오사와 아리마사

'신주쿠 상어' 사메지마가 등장하는 단편으로, 일종의 도시괴담을 이용한 범죄 사기극을 그리고 있습니다. 내용은 약간 뻔하지만 그래도 재미있게 풀어나간 것 같습니다.

다만 제목 그대로 '50층'을 뜻하는 키워드 '50'이 다소 억지로 쓰인 감이 있습니다. 호텔 50층을 임대하는 비용으로 충분히 사람을 고용할 수도 있었을 텐데, 굳이 이 설정을 사용해야 했을까 싶네요. 별점은 2.5점입니다.

"영국 세필드" - 시마다 소지

작가의 명탐정 미타라이가 등장하는 작품이지만, 추리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작품이었습니다. 뇌성마비 장애인을 다룬 진지한 인간 승리 드라마인데, 이외의 다른 작품들이 장르 문학에 속하는 것과 달라서 이질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소재도 흔하고요.

하지만 '역도'라는 스포츠를 활용한 점이 독특했고, 나름 재미도 있었습니다. 키워드 '50'도 약간 억지스럽기는 하지만 적절히 활용된 편입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여름의 빛" - 미치오 슈스케

요즘 미치오 슈스케의 작품을 자주 읽게 되네요. 초등학생이 마을 들개의 죽음에 얽힌 진상을 밝혀낸다는 내용은 "해바라기가 피지 않는 여름"을 연상케 합니다.

그러나 보다 밝은 분위기에 깔끔한 전개가 돋보이며, 초등학생은 알지 못하는 카메라 용어가 사건 해결의 열쇠가 된다는 점이 재미를 더했습니다. 왜 미치오 슈스케가 요즘 인기가 많은지 알 수 있게 해주는 단편이었습니다. 별점은 3.5점입니다.

"도박눈" - 미야베 미유키

미야베 미유키의 에도물. 정통 괴담에 가깝습니다. 정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간장 도매상 오미야에 찾아온 괴이한 요괴 '도박눈'을 퇴치하는 이야기인데, 에도 시대의 정취가 물씬 풍기면서도 긴장감을 놓지 않는 구성력이 뛰어난 덕분입니다. 특히 요괴의 정체를 밝히지 않은 채 끌고 가는 초반부 이후, 마을 신사의 고마이누를 통해 퇴치 방법을 알게 되고 마지막 결말로 향하는 전개가 아주 흥미진진했어요. 이런 유형의 이야기의 교과서적인 작품이라 생각됩니다. 

그래서 별점은 4점, 이 앤솔로지의 베스트입니다.

"미래의 꽃" - 요코야마 히데오

"종신검시관" 시리즈 단편으로, 병원에 입원한 구라이시 검시관이 협조 요청차 찾아온 경찰이 제공한 자료와 사진만으로 사건의 진실을 밝혀낸다는 이야기입니다. 전형적인 안락의자 탐정물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단서 제공도 공정하고, 이야기 전개도 설득력 있어서 마음에 들었어요.

'50'이라는 키워드의 사용이 억지스럽다는 단점은 있지만, 시리즈 전체적으로 봤을 때 평균 수준은 됩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2026/09/12

내가 읽었던 아리스가와 아리스 작품 순위

어제 아리스가와 아리스 데뷰 35주년 헌정 단편 앤솔로지를 읽은 뒤 탄력받아 정리해 보았습니다. 원서 포함해서 모두 12권 입니다. 국내 소개된 작품 중에서는 여섯 권을 빼고는 전부 읽었습니다.

평균 별점을 확인해보니 2.3점입니다. 생각보다는 평균 별점이 높아서 의외인데, 제가 좋아하는 본격 미스터리라는 장르에 충실한 덕분이라 생각되네요.

제 순위와 별점은 아래와 같습니다. 

공동 1위: 별점 3점

공동 4위: 별점 2.5점

공동 8위: 별점 2점

공동 11위 : 별점 1.5점

2017/06/18

미스테리아 5호 - 미스테리아 편집부 : 별점 2점

미스테리아 5호 - 6점
미스테리아 편집부 엮음/엘릭시르

구하게 되면 읽곤 하는 장르문학 전문 잡지 미스테리아 5호입니다. 작년 초에 출간된 한참 전 과월호지요. 언제나처럼 특집 기사와 신간 소개, 이런 저런 연재 기사, 인터뷰, 수록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가장 관심 있던건 특집입니다. "음식 미스터리"가 주제이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으로 '장르 문학 속 요리'에 대해 진행하는 프로젝트가 있어서 좋은 비교, 혹은 참고가 되지 않을까 싶었거든요.

그런데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아주 별로였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소재가 진부하다는 겁니다. 추리 애호가라면 누구나 쉽게 떠올릴 수 있는 흔해 빠진 내용이에요. 도입부의 식인 천재 범죄자 한니발 렉터, 미식가 탐정 네로 울프가 대표적입니다. 그나마도 인터넷을 뒤지면 알 수 있는 내용일 뿐이고요. 정작 기대했던 내용은 실려있지도 않습니다. 저라면 한니발 렉터의 '전두엽 소테'나 네로 울프의 '소시스 미뉴이'를 소개할 때 최소한 해당 음식의 레시피와 조리 사진을 수록했을 겁니다.
이어지는 애거서 크리스티 작품 속 독약에 대한 소개는 '음식 미스터리'의 범주에 넣기는 무리입니다. 차라리 "크리스마스 푸딩의 모험" 같은 작품 소개가 더 적절했을 것입니다.

작품 속 요리를 재현하는 코너 역시 실망스럽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주제와 연결되는 요리들이 등장하는 것도 아니고, 미스테리아 측에서 별다르게 창작한 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모두 참고 도서 속 - 주로 "미국 미스터리 작가들의 요리책" -  요리를 재현한 것에 불과해요. 그나마 셜록 홈즈가 '해군 조약문'을 극적으로 등장시키기 위한 장치로 사용했던 "해군 조약문" 속 치킨 커리 정도만 어느정도 주제에 값할 뿐, 재현한 요리가 작품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지도 않았고요. 

마지막의 '10권의 맛있는 미스터리' 소개는 실망의 정점을 찍습니다. 기준, 근거를 알기 어려운 탓입니다. 일단 소개작 중 "스위트 홈 살인사건", "우리는 언제나 성에 살았다", "기나긴 이별"은 절대로 음식 미스터리로 포장할 수 없습니다. 억지에요. "어느 백만장자의 죽음"은 아슬아슬하게 음식 미스터리 범주 안에는 들기는 한데, 지금은 절판되어 구하기 힘든 책을 추천 도서로 떡 하니 내미는 행위는 받아들이기 힘드네요. 조앤 플루크의 한나 스웬슨 시리즈는 빈말로도 좋은 작품이라 하기 어렵습니다. 그 외 작품들도 음식 미스터리로는 볼 만 하지만, 추천할만한 수준의 작품인지는 잘 모르겠네요. 개인적으로는 "특별 요리"와 "맛" 외에는 모두 추천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래서 점수를 주자면 1.5점 정도? 제 개인 프로젝트에 필적할만한 내용이 없다는 점에서는 조금 안심했지만, 여러모로 점수를 주기 힘든 기획입니다. 

다행히 특집 외에는 나쁘지 않습니다. 특히 빼어난 리뷰가 많아서 "미스테리아"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신간 소개 코너는 역시나, 사람을 혹하게 만드는 좋은 리뷰들이 많더군요. 솔직히 읽어본 결과에 따르면 좀 과한 홍보의 결과물이라 생각되기는 합니다만, 그래도 이번에 소개된 작품 중 마쓰모토 세이초의 "범죄자의 탄생"은 꼭 읽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원작, 영화를 함께 소개하는 코너에서 "검은 옷을 입은 신부"가 "상복의 랑데뷰"보다 낭만적인 애상으로 넘쳐흐른다는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네요. 완성도 면에서 천지차이니까요. 영상화된 작품이라는 이유로 소개되기는 했지만, 정보는 공정하게 제공해 주면 좋겠습니다.

연재물인 아리스가와 아리스와 건축가 야스이 도시오의 밀실에 대한 대담은 재미있었습니다. 일본에 대한 이야기가 대부분이라 써먹기는 힘들다는 단점은 있지만 참고할 만한 내용이 많았어요. 특히 다다미를 걷어내면 아마추어는 다시 깔 수 없다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아울러 이 코너를 통해 소개되는 정보를 토대로 아리스가와 아리스가 내 놓는 아이디어 - 다양한 기술자들이 등장하는 탐정물 - 도 재미있을 것 같았습니다. 미로관을 예로 들며 전기비가 많이 들었을 것이라는 언급을 하는 등 건축 전문가의 식견이 느껴지는 여러 코멘트들도 기억에 남고요.

한국의 50~60년대 추리 소설을 발굴한 추리소설 평론가 박광규 씨와의 인터뷰 역시 좋습니다. 새로운 사실을 많이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화재 사고와 관련된 논픽션, 폴란드에서 실제로 있었던 젊은 지식인 발라가 자신이 저지른 살인 사건을 바탕으로 쓴 소설 이야기도 아주 흥미로웠는데, 특히 범인 크리스티안 발라와 그의 작품 "아목", 형사 브로블레브스키라는 키워드는 꼭 기억해두었다가 나중에 찾아봐야겠습니다.
 한국 미스터리 소설의 계보를 추적하며 잃어버린 고리를 찾는다는 기획물인 '동아시아 미스터리, 정치적 죄와 서스펜스'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식민지 대중 서사의 최고봉이라는 이병주의 "관부 연락선", "별이 차가운 밤이면"과 김내성의 "청춘 열차"는 틈 나는 대로 한번 읽어봐야 겠습니다.
마지막에 수록된 두 편의 단편도 나쁘지 않았어요.

하지만 전체 별점은 2점입니다. 척박한 한국 장르 문학의 구심점 역할을 해 주는 좋은 잡지이지만, 이번호는 특집이 너무 별로라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듭니다. 

마지막으로 수록된 2편의 단편의 짤막한 리뷰로 글을 마칩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합니다.

"나비 부인의 커튼콜" 

전직 사회부 기자 박희윤과 퇴출 형사 갈호태, 두 남자가 운영하는 카페 '이기적인 갈 사장' 건너편에 '나비 부인'이라는 카페가 개업했다. '나비 부인'은 가면을 쓰고 서빙하는 독특한 컨셉과 인테리어, 커피 맛이 입소문을 타 맛집으로 유명해졌다. 그러던 중, 기묘한 노인이 '나비 부인'에서 진상을 부린 다음 날 '나비 부인' 사장이 살해된 시체로 발견되는데...

최혁곤의 단편입니다. 시리즈 캐릭터로 전직 사회부 기자 박희윤과 퇴출 형사 갈호태 콤비가 등장하는 단편집 "탐정이 아닌 두 남자의 밤"에서 이어지는 시리즈입니다.

전작은 읽어보지 않았지만 한국에서는 보기 드문, 유쾌한 분위기의 버디물인데, 아쉽게도 추리적으로는 그닥입니다. 별로 대단한 트릭이 등장하지 않는 탓입니다. 초반에 나왔던 수상쩍은 노인이 범인으로 체포되는 등 수수께끼의 여지도 없고요. 

특히 후더닛 물로는 영 아니올시다에요. 오히려 인터넷 상에서 사람을 공격하여 죽게 만드는 일종의 '사이버 테러'에 대해 경종을 울리는 사회파적 측면이 강하며, 이것이 동기로 밝혀지는 과정이 이야기의 핵심인 와이더닛물에 더욱 가깝습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좀 가볍고 유머러스한 분위기와 사회파적 설정이 잘 어울리지는 않네요. 인터넷의 비방글로 자살을 한다는 것도 와 닿지 않고요. 또 고3 수험생 투신 사건도 불필요할 정도로 질질 끄는 느낌입니다. 동기 부분을 잘 드러내지 못한다는 점도 와이더닛물로는 치명적인 약점입니다. 진범 검은 뿔테가 살인을 저지른 이유도 불분명하니까요. 남자 친구이기 때문에? 설득력이 낮아요.
진소담의 가족 관계 증명서 정도만 나름 증거일 뿐, 추리가 모두 정황 증거에 기반한다는 약점도 크고요. 

그래서 제 별점은 2점입니다. 읽는 재미는 있지만 추리적으로는 기대 이하였던 범작이었습니다. 그래도 버디물로서는 충분히 즐길만한 캐릭터가 등장하는 만큼, 단편집은 한번 읽어 볼 생각입니다. 

"죽음이 갈라 놓을 때" 

기흥 보리산 자락에 있는 무당의 당집에서 처참한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완벽한 밀실 안에서 홀로 생존한 채 발견된 유홍석이 유력한 용의자로 체포되어 사형이 구형되었다. 그러나 판사에게 유홍석의 편지가 도착하는데...

한국에서 보기 드문 본격 추리물들을 발표하고 계신 도진기 판사님 - 현 시점에서 변호사가 되셨지만 - 의 스탠드얼론 단편입니다.

다른건 몰라도 작가가 뼛속까지 고전 본격물 애호가라는 것이 잘 드러나 있는 작품입니다. 1인칭의 수기 형태로 전개되며, 끔찍한 사건이 초자연적인 현상과 얽혀 일어난다는 점이 완전 고전 스타일이었거든요. 비교하자면 코난 도일경의 "J. 하버쿡 젭슨의 진술"이라던가, 앰브로스 비어스의 "아울크리크 다리에서 생긴 일"에 수록된 작품들이 떠오릅니다. 제가 워낙 고전물을 좋아하기에, 완전 제 취향이라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게다가 단지 스타일을 따온 것에 그치지 않고, 무당 '인문희'가 압도적인 존재감을 뽐내는 덕분에 독특한 한국적 오컬트물로 보아도 손색이 없다는 점도 큰 장점이에요. 특히 그녀가 서상표의 집에 몰래 부적을 붙인게 드러나는 장면은 굉장히 섬찟합니다. 만약 영상화한다면 클라이막스로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어요.

그러나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문희에 비하면 서상표는 전형적인 한국 쓰레기 남자와 다를 바 없어 지루합니다. 무엇보다도 진상은 정말이지 어이가 없었어요. 괜찮은 고전 오컬트물이 갑자기 크리쳐 호러로 변질되는데 영 어울리지 않았던 탓입니다.
게다가 잘린 목이 경동맥을 물어 뜯었다면 부검으로 밝혀지는게 당연한데 간과되고 있고, 유홍석이 현장 문을 잠가 밀실로 만든 이유도 끝까지 설명되지 않는 등 디테일에서도 문제가 많아요.

하지만 한국에서 보기 드문, 고전 스타일 오컬트 호러 스릴러임에는 분명합니다. 취향에 따라 호불호를 굉장히 탈 텐데 저한테는 호 쪽에 가깝습니다. 무엇보다도 앞서 말씀드린 부적이 드러나는 장면 하나만으로도 별점 2.5점은 충분합니다.

2022/07/10

킹은 죽었다 - 엘러리 퀸 / 이희재 : 별점 1.5점

킹은 죽었다 - 4점
엘러리 퀸 지음, 이희재 옮김/검은숲

아래 리뷰에는 진범과 트릭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자택에서 아침을 준비하던 퀸 부자는 여러 명의 남자들에게 습격당했다. 그들은 군수 산업계의 거물 킹 케인 벤디고의 부하들이었고, 케인의 동생 아벨이 형의 살해 협박에 대한 도움을 요청했다. 방법은 마땅치 않았지만 '워싱턴'의 지시도 있어서, 퀸 부자는 아벨과 함께 킹이 지배하는 섬으로 향했다. 그곳은 그야말로 작은 도시였고, 킹은 그 섬의 독재자였다. 

엘러리의 조사로 킹에게 보내진 협박장은 킹의 둘째 동생 유다의 짓이라는게 드러났다. 유다는 발각된 뒤에도 반드시 형을 예정된 시각에 죽이겠다고 말했기에, 퀸 부자는 완벽한 밀실 안에서 일하는 킹과 자기 방에 갖혀 있는 유다를 각각 범행 시각까지 직접 감시하게 되었다. 그리고 예정된 자정 12:00, 자기 방에서 유다는 빈 총을 밀실을 겨냥해 쏘았고, 곧이어 킹이 밀실 안에서 총에 맞은채 발견되고 마는데...

엘러리 퀸의 장편 추리 소설입니다.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밀실 대도감"에 소개되었던 작품이지요. 여름 더위를 잊어볼까 해서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기대를 놓아버린 '국명 시리즈'와는 다르게, 그래도 읽을만했던 '라이츠빌 시리즈' 와 이어지는 작품이기도 했고, "밀실 대도감"에서 소개된 불가능 범죄 상황이 정말로 호기심을 자아냈던 탓입니다. 밖에서 빈 총을 쐈는데, 밀실 안의 사람이 총에 맞는다니!

그러나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실망스럽기 짝이 없었습니다. 제일 큰 문제는 만화라 해도 설득력이 없어보일 설정들입니다. 군수 산업계의 거물로 전 세계적인 위세를 떨치는 킹 케인 벤디고와 그가 머무는, 아무도 알지 못하는 섬에 있다는 어마어마한 제국에 대한 묘사는 황당함이 지나치다 못해 어이가 없습니다. 일개 군수업자가 순양함과 잠수함 여러 척을 포함하여 육,해, 공군을 갖추고 있고, 비밀 섬은 아무도 그 위치를 모르지만 최소 몇 천~ 몇 만 명 정도의 인구가 거주하는 대도시 같다니까요. 후대 007 시리즈의 악당들 비밀 기지 정도는 애저녁에 능가합니다. 킹이 알고보니 남미 혁명과 2차 대전을 일으키게끔 획책했다는 뒷부분 설명도 어이가 없는건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런 어처구니 없는 설정이 작품의 2/3를 차지할 정도로 긴 것도 문제에요.

게다가 왜 이런 설정을 했는지도 모르겠어요. 이야기의 핵심은 어쨌건 킹이 밀실에서 살해당할 뻔한 트릭이 전부이며, 나머지는 전부 곁가지에 지나지 않습니다. 007의 닥터 노 같은 빌런을 상상해서 이야기를 썼나 싶어 조사해보니 오히려 "닥터 노" 보다도 빨리 발표되었던데, 영문을 알 수가 없군요.

기대했던 밀실 트릭 역시 별볼일 없었습니다. "완벽한 밀실에서 한 남자가 총에 맞았는데 총은 밀실 안을 아무리 뒤져도 발견되지 않았다."라는 상황인데, 정작 트릭은 "총을 잘 숨겨 두었었다!"가 전부거든요. 즉, 엘러리 퀸과 퀸 경감의 수색이 실패했을 뿐입니다. 물론 유다 말고도 충신으로 보였던 아벨, 그리고 킹의 아내 칼라 모두가 공범이었다는 진상은 나쁘지는 않습니다. 총을 숨겼던 장치가 술병이라는 것도 유다가 섬 곳곳에 술병을 숨겨두었다는걸 사전에 잔뜩 설명함으로써 독자에게 잘 숨기고 있고요. 이 술병이 유일하게 밀실 밖으로 나간 물건이었다는 것 역시 독자에게 공정하게 설명합니다. 즉, '공정함' 측면에서는 나무랄데 없습니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한 대로, 탐정의 실수에 기반하고 있다는 치명적인 약점이 워낙 커서 좋은 트릭으로 보이지는 않네요. 

킹과 유다, 아벨 형제의 고향이었던 라이츠빌에서의 여러 증언을 수집하여 알아내는 동기도 괜찮은 편이지만, 지나치게 장황하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단지 '수영을 잘해서 동생 아벨을 구해주었다는건 거짓말이었다!'는 사실을 드러내기 위한 곁다리 이야기가 너무 많았어요. 또 앞 부분에서 킹이 수영을 못한다는걸 크게 강조한 탓에 독자들도 뭔가 이상하다는건 쉽게 눈치챌 수 있습니다. '술병'처럼 정교하게 존재를 숨기는데 실패한 셈이지요. 그리고 킹이 과거 거짓말을 했다 한들, 그게 아벨의 살의에 불을 붙인 이유가 되는지는 설명이 부족했습니다. 차라리 유다처럼 킹이 악당이라서 죽여야겠다!고 생각했다는게 더 말이 될 것 같아요. 두 형제와 칼라가 손을 잡은 이유 역시 설명되지 않고요. 그녀가 킹을 두려워했다는 묘사는 있지만, 살인은 다른 이야기잖아요?

게다가 아벨과 유다, 칼라가 다시 킹을 자살로 위장하여 살해하고(이는 퀸 경감에 의해 바로 들통납니다), 섬의 모든 사람들과 함께 떠난 뒤 섬을 날려버리는게 결말은 제가 읽어왔던 작품 중 수위를 다툴 정도로 엉망입니다. 이렇게 쉽게 자살로 위장해 죽일 수 있었는데, 왜 퀸 부자를 강제로 데려와서 기묘한 밀실극을 펼쳤을까요? 일부러 자기들 범행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아니었을텐데 말이지요. 이 결말 탓에 밀실 트릭의 존재 이유도 사라져 버리고 맙니다.

그나마 딱 한 가지, 유다가 범행 예고 시각에 자기 방에서 빈 총을 쏘고, 그 시간에 킹이 아내 칼라에게 총을 맞는 장면의 묘사만큼은 아주 대단했습니다. 유다를 감시하는 엘러리의 시점에서, 유다의 행동이 굉장히 광기어리게 묘사되어서 좋았어요. 개인적으로는 이외수 작가의 "꿈꾸는 식물"에서 정신분열자인 둘째 형이 벽을 통과하려고 시도하는 장면이 떠오를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단점이 워낙 많았기에 제 별점은 1.5점입니다.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책을 읽고 굉장히 흥미가 생겨서 읽어보게 되었는데, 전반적으로 아쉬움과 부족함이 더 많이 느껴지는 평균 이하의 작품이었습니다. 유일하게 기대해 봄직했던 트릭마저도 시원치 않았으니 점수를 줄 수가 없네요.

2021/01/24

추리 소설 1,000편 리뷰 분석

추리 소설 1,000번째 리뷰 등록!

염원했던 추리소설 리뷰 1,000편 올리기를 달성했습니다. 1,000편의 리뷰를 작성하면서, 책 한 권을 출간하는 소기의 성과도 있었지요. 1,000편 업로드 기념 및 개인적인 자료 정리 차, 여태 읽었던 추리소설 리뷰 1,000편에 대한 간략한 데이터를 정리하여 공개합니다.

리뷰 갯수 1,000 

당연하겠지요?

책 권수 1,049권 

"브라운 신부"나 "크리시" 리뷰와 같이 여러 시리즈를 한 편 리뷰에서 정리한 경우도 있고, "그것" 처럼 작품 한 편이 여러권으로 이루어져 있어도 리뷰 한 편으로 소개한 경우가 많아서 권수는 더 많습니다.

책 종수 1,008종 

권 수가 많은 이유에 더해, 중복하여 작성한 리뷰도 있어서 이를 빼면 최종적으로 리뷰한 책은 총 1,008종입니다.

국가별 

일본 454, 영미 394, 한국 63, 프랑스 29, 독일 13, 그외 55

예상대로 일본 작품 비중이 거의 절반 가까이이며, 영미 작품까지 포함하면 전체의 85%가까이 되는 압도적인 비중입니다. 국내 출간되는 작품들과 제 취향을 보면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겠네요.

장르별 

본격물 성향 작품 리뷰가 357, 스릴러는 229, 경찰/수사 127, 일상계가 80, 호러 73, 하드보일드 69, 역사 추리 55, 모험물 54 순입니다. 본격물을 좋아하는 제 취향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장르 불문하고 단편집은 137편의 리뷰를 작성하였고요. 

참고로 본격물이면서 수사물인 작품이거나, 본격물이면서 일상계인 작품 등 키워드는 중복하여 체크된 결과입니다.

별점별 

경성탐정록 두 편은 제외한 총 1,006 종의 책 별점 분포는 아래와 같습니다. 

5점 : 4, 4.5점 : 7, 4점 : 71, 3.5점 : 48, 3점 : 271, 2.5점 : 259, 2.4점 : 1, 2.3점 : 1, 2점 : 227, 1.5점 : 88, 1점 : 26, 0.5점 : 1, 0점 : 1, 없음 : 1

평균 이상 별점인 2.5점 이상 작품이 660종으로 전체의 2/3를 차지합니다. 꽤 괜찮은 작품들을 읽어왔었다는 의미지요. 나름 뿌듯하네요. 별점 5점을 받은 작품, Hall of Fame만 별도로 소개해 드리자면 아래와 같습니다. 

"9마일은 너무 멀다" 

"옥스퍼드 운하 살인사건" 

"도끼" 

"특별요리" 

* 특별요리는 2003년도 동서 버젼이었고, 2015년에 다시 읽었던 엘릭시르 버젼은 별점 4점이었습니다.

참고로 책 별점과는 별개로, 단편집 단편별 중 별점 5점을 받았던 단편은 아래와 같습니다. 

"살의" (in "세계 추리소설 걸작선 2")

"무시무시하고 이상한 침대", "결산", 위험천만한 게임" (in "클래식 미스터리 걸작선")

"우체국에서 생긴 사건" (in "오른쪽 주머니에서 나온 이야기")

"사기꾼의 카드" (in "클로버의 악당들")

"새", "성모상" (in "대프니 듀 모리에") 

"국화의 먼지" (in "저녁싸리 정사")

"죽음" (in "악몽을 파는 가게 1") 

이 역시, 저의 고전 본격물 취향을 잘 드러내 주네요.

작가별 

1. 작가별 리뷰한 작품 갯수 순위

1. 히가시노 게이고 : 48
2. 애거서 크리스티 : 33
3. 요네자와 호노부 : 21
4. 스티븐 킹 : 18
5. 마쓰모토 세이초 / 엘러리 퀸 : 16
7. 존 딕슨 카 (+에이드리언 코난 도일) : 13
8. 요코미조 세이시 : 12
9. 와카타케 나나미 : 11
10. 아리스가와 아리스 / 에드 멕베인 : 10 
12. 미쓰다 신조 / 아서 코난 도일 / 조르주 심농 / 시마다 소지 : 9
16. 다카기 아키미쓰 / 미야베 미유키 : 8
18. 에도가와 란포 / 노리즈키 린타로 / 도진기 : 7
수많은 작가가 있지만, 공통 18위 까지만 선정합니다. 일본, 영미 작가가 많은건 국가별 순위와 동일합니다. 프랑스 작가 조르주 심농이 12위에, 한국작가 도진기가 18위에 위치하고 있을 뿐이네요.

2. 작가별 평균 별점 순위 (5권 이상 작품을 읽은 경우)

1. 콜린 덱스터 : 6권 리뷰, 평균 별점 3.6666...
2. 로스 맥도널드 : 5권 리뷰, 평균 별점 3.6
3. 기리노 나쓰오 : 5권 리뷰, 평균 별점 3.4 
3. 모리스 르블랑 : 5권 리뷰, 평균 별점 3.4
5. 존 딕슨 카 (+에이드리언 코난 도일) : 13권 리뷰, 평균 별점 3.269...
6. 미쓰다 신조 : 9권 리뷰, 평균 별점 3.055....
7. 딕 프랜시스 : 5권 리뷰, 평균 별점 3
8. 다카기 아키미쓰 : 8권 리뷰, 평균 별점 2.875
8. 미야베 미유키 : 8권 리뷰, 평균 별점 2.875
10. 마쓰모토 세이초 : 16권 리뷰, 평균 별점 2.84375
11. 와카타케 나나미 : 11권 리뷰, 평균 별점 2.8181...
12. 우타노 쇼고 : 5권 리뷰, 평균 별점 2.8
13. 요코야마 히데오 : 6권 리뷰, 평균 별점 2.75
14. 코넬 울리치 : 5권 리뷰, 평균 별점 2.7
15. 아서 코난 도일 : 9권 리뷰, 평균 별점 2.6666667
15. 조르주 심농 : 9권 리뷰, 평균 별점 2.6666667
15. 기시 유스케 : 6권 리뷰, 평균 별점 2.6666667
18. 엘러리 퀸 : 16권 리뷰, 평균 별점 2.65625
19. 미치오 슈스케 : 6권 리뷰, 평균 별점 2.583333
20 애거서 크리스티 : 33권 리뷰, 평균 별점 2.5757576
21. 에도가와 란포 : 7권 리뷰, 평균 별점 2.5714286
22. 요코미조 세이시 : 12권 리뷰, 평균 별점 2.541...
23. 미카미 엔 : 6권 리뷰, 평균 별점 2.5
비슷한 주제로 13년 전 글을 올린 적이 있는데 순위가 대폭 바뀌었네요. 최소 2권 이상의 작품을 읽은 작가는 114명, 어느정도 평균을 낼 수 있는 수치인 5권 이상 읽고 리뷰를 남긴 작가는 33명입니다. 이 중 평균 2.5 이상 별점을 유지한 작가는 콜린 덱스터 외 24명입니다. 프로야구로 따지면, 1군 소속 선수의 72% 정도가 평균 이상이었던 셈이니 굉장히 훌륭한 성적이지요. 25명에 들지 못한 8명 중에서도 요네자와 호노부, 시마다 소지, 스티븐 킹, 아리스가와 아리스 등은 평균 2.4점대로 아쉽게 이름을 올리지 못했으니 더욱 그러합니다. 명성이 있는 작가는 확실히 이름값을 한다는 증거죠. 가장 많은 작품을 읽은 히가시노 게이고 작품 평균 별점은 2.32점인데, 이건 어쩔 수 없습니다. 유명한 대표작, 걸작만 추려서 읽은 경우는 별점이 높을테고 많이 읽을 수록 평균 별점은 불리할 수 밖에 없으니까요. 크리스티 여사님 평균 별점이 비교적 낮은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위권을 살펴보면, 5권 이상 읽은 작가 중 꼴찌는 6권 평균 별점이 2.083점인 니시무라 교타로, 전체 꼴찌는 읽은 작품 4권 별점 평균이 1.1점에 불과한 제임스 패터슨이었습니다. 니시무라 교타로는 모르겠지만, 두 번 다시 제임스 패터슨 작품을 읽을 일은 없겠습니다.

탐정별 (5권 이상 읽은 작품만 뽑아봅니다)

1. 탐정별 리뷰한 작품 갯수 순위

1. 에르큘 푸아로 : 15권 리뷰
2. 엘러리 퀸 : 13권 리뷰
3. 셜록 홈즈 : 12권 리뷰
4. 긴다이치 코스케 : 11권 리뷰
5. 가가 (학생 ~ 형사) : 10권 리뷰
6. 87분서 : 9권 리뷰
7. 메그레 경감 : 7권 리뷰
8. 고전부 / 기디온 펠 박사 / 노리즈키 린타로 / 모스 경감 / 히무라 히데오 : 6권 리뷰
13. 미스 마플 / 미타라이 기요시 / 시오리코 / 토츠카와 경부 (+가메이 형사) : 5권 리뷰
2. 탐정별 평균 별점 순위
1. 모스 경감 : 3.66666
2. 셜록 홈즈 : 2.958333...
3. 기디온 펠 박사 : 2.9166...
4. 엘러리 퀸 : 2.6923...
5. 긴다이치 코스케 : 2.6363...
6. 시오리코 : 2.6
7. 고전부 : 2.58333
8. 메그레 경감 : 2.5714...
9. 가가 (학생 ~ 형사) : 2.55
10. 에르큘 푸아로 / 미스 마플 / 미타라이 기요시 : 2.5
13. 87분서 : 2.4444...
14. 히무라 히데오 : 2.41666...
15. 노리즈키 린타로 : 2.25
16. 토츠카와 경부 (+가메이 형사) : 2.2
입니다. 원탑 모스 경감 밑으로 셜록 홈즈, 기디온 펠 박사까지는 평균 이상의 빼어난 별점을 자랑합니다. 확실히 탐정은 영미권 탐정이 더 제 취향이라는걸 알 수 있었습니다.

이로서 간략하게 추리소설 1,000편의 리뷰에 대한 요약 정리를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