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7 - ![]() 미카미 엔 지음, 최고은 옮김/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hansang.egloos.com 의 이사한 곳입니다. 2021년 1월, 추리소설 리뷰 1000편 돌파했습니다. 이제 2000편에 도전해 봅니다. 언제쯤 가능할지....
2023/04/08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7 - 미카미 엔 / 최고은 : 별점 2.5점
2015/05/13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4 - 미카미 엔 / 최고은 : 별점 2.5점
|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4 - |
고서 전문 헌책방 비블리아를 무대로 한 연작 옴니버스 추리 단편집의 네 번째 권.
다른 시리즈와는 다르게 책 한 권이 하나의 긴 호흡으로 이어지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프롤로그, 에필로그 및 크게 세 개의 단락 구성은 동일한데, 세개의 단락이 독립적인 이야기가 아니거든요. 에도가와 란포 매니아 가야마씨의 내연녀 기시로 게이코가 자신이 물려받은 소장품을 비블리아에 파는 대신, 가야마가 남긴 금고를 열어달라는 의뢰를 해결해 주는 큰 흐름의 이야기입니다. 한 권짜리 긴 장편같은 느낌을 전해 주지요.
단락별로 짧게 소개해 드리자면, 첫 번째 단락인 "외딴섬 악마"에서는 기시로 게이코의 의뢰가 소개됩니다. 도입부 성격이라 당연히 추리적인 요소는 거의 없습니다. 의뢰인 기시로 게이코가 시오리코를 테스트하는게 전부에요. 셜록 홈즈 단편에서 서두에 홈즈가 의뢰인에 대해 추리해내는 추리쇼를 보여주는 것과 같은 느낌이랄까요?
다만 커버를 씌워 놓은 란포의 작품 초판본을 맞춰보라는 테스트는 문제입니다. 주어진 단서를 가지고 결론을 이끌어 낸다는 점에서는 추리물이지만, 일반인은 작중 고우라의 반응 정도만 가능할 뿐이며 고서 전문가 외에는 해결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시오리코는 쉽게 맞춰 버리기는 합니다만.
두 번째 단락 "소년 탐정단"은 금고를 열기 위해 필요한 열쇠를 내연남인 가야마씨 본가에서 찾는 내용입니다.
"소년 탐정단"의 이야기들과 흡사한 보물 찾기가 펼쳐진다는 점에서, 소개되는 책과 본편 내용이 비슷하게 일치하는 다른 비블리아 시리즈 단편과 유사합니다. 3권에서 시오리코와 문제가 있었던 고서당 히토리 서방의 주인과 가야마 나오미에 얽힌 소소한 이야기를 해결하는 일상계스러운 내용도 나쁘지 않았고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시오리코씨가 활약하는 부분이 거의 없다는건 단점이네요. 가야마 나오미를 도발한 뒤 보물이 어디 있는지 찾게 만든다는, 홈즈 시리즈인 "보헤미아의 스캔들"과 동일한 트릭 외에는 특별한 추리가 선보이지는 않는 탓입니다. 더 중요한 초판본이 따로 숨겨져 있었다는 반전이 있기는 한데 특별하다고 생각되지는 않은 정도고요.
마지막 단락인 "오시에와 여행하는 남자"는 금고를 여는 세가지 장벽 중 마지막 남은 하나인 히라가나 암호를 맞추는 트릭이 핵심입니다. 또 시오리코의 어머니 지에코가 전면에 등장하여 "과연 금고에 뭐가 들었을지?"를 주제로 시오리코의 승부를 벌이는 내용이라 여러모로 볼거리가 많습니다. 무엇보다도 가야마씨 부친의 과거 직업과 "오시에와 여행하는 남자" 원고에 얽혔던 사건을 엮어 이만큼이나 픽션을 짜 맞춘건 실로 대단한 능력이라 생각됩니다. 실제로 그랬다면 어땠을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고, 가야마씨가 어떻게 썼을지도 좀 궁금해지네요.
하지만 앞선 단락들 - 특히 첫 단락과 - 과 동일한 단점을 가지고 있는데 바로 일반 추리물로 보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란포의 데뷰작 "2전 동화"에 사용된 소품 및 암호, 그리고 란포가 초판 발행 시 범했던 실수까지 인용한 란포 매니아, 아니 란포광(狂)을 위한 트릭이거든요.
또 제가 싫어하는 시노카와 지에코가 실제로 등장해서 의도를 드러낸다는 내용은 역시나 마음에 들지 않네요. 시오리코를 자신의 길로 유혹하기 위한 의도는 충분히 설득력이 있기는 합니다. 문제는 완벽한 최종 보스로 그려진 것에 비하면 계획이 너무 즉흥적이고 치밀하지 못하다는 것이죠. 이럴 거였으면 본인이 금고를 연 뒤 원고를 갖고 도망치는게 시오리코를 더 자극하는 방법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고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란포 작품들과 함께 흘러가는 이야기는 추리소설 애호가로서 즐겁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이 시리즈 최초로 주요 등장 작품을 다 읽은 것은 처음이라 더욱 반갑기도 했고요. 허나 추리적으로는 건질게 너무나 없기에 감점합니다. 비블리아 고서당 시리즈를 좋아하신다면 놓치지 말으셔야 겠지만 단품으로서의 완성도는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습니다.
덧 1 : 제가 가지고 있는 에도가와 란포 전단편집 3에 "오시에와 여행하는 남자"가 "누름꽃과 여행하는 남자"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네요. 읽을 당시에는 그렇게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었죠. 마침 시오리코씨가 극찬한만큼 다시 한번 읽어보았는데 역시나, 딱히 대단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네요. 지금 읽기에는 너무 뻔한게 아닌가 싶거든요. 어떤 점이 그렇게나 좋았을까요? 참으로 궁금해집니다.
덧 2 : 제가 가지고 있는 에도가와 란포 전단편집 1,2,3 역시 절판되었네요. 이것도 인연이라면 인연이겠죠?
2013/12/27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3 - 미카미 엔 / 최고은 : 별점 3점
|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3 - 미카미 엔 지음, 최고은 옮김/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 미카미 엔 / 최고은 : 별점 2.5점"
왠일인지 2권을 건너뛰고 읽어버렸네요. 2권과 연결된 내용이 적지는 않았지만, 수록작은 독립적으로 읽는 데에 별 지장은 없었습니다.
총 3편의, 연작식으로 구성된 중편들이 수록되어 있는데, 긴 이야기의 실타래가 하나씩 풀려나가는 구성은 여전히 좋습니다. 적절하게 삽입된 복선 역시 짜임새를 느끼게 해 주고요. 일상계스러운 분위기와 함께하는 잔잔한 묘사 역시 마음에 들었습니다.
특히, 이번 권에서부터 본격적인 "책탐정"으로서의 활약이 시작되는데 책에 대한 자료 조사와 설정이 정말 대단합니다. 책 자체가 이야기의 소재가 되고 추리의 단서가 되는 구성은 절묘해서 탄복을 자아낼 정도예요. 앞으로는 "뒤마클럽"처럼 정말 희귀한 책을 찾아나서는 모험물스러운 에피소드가 등장해도 괜찮을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시오리코의 어머니에 관련된 비밀이 비중 있게 등장하는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이런 배경 설정 없이도 비블리아 고서당과 관련된 책, 사람들 이야기로도 충분히 매력적인 작품이 될 수 있으니까요. 추리적으로 조금 뜬금없다는 점도 여전하고요.
또 고우라의 활약이 전무하다는 점도 아쉽습니다. 독자에게 정보를 공정하게 제공하기 위한 화자 역할에는 충실하지만, 추리적으로 너무 하는게 없다 보니 역할이 미미해져버렸어요. 이래서야 말없고 힘좋은 머슴과 다를 게 없지요. 한때 유행했던 말없는 보디가드 같은 존재? "경성탐정록"의 왕도손이 떠오르기도 하는데, 반성해야겠네요.
덧붙이자면 책의 표지와 내지는 예쁜데, 각 단락별로 추가된 일러스트는 전혀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책과도 별로 잘 어울리지 못했고요.
그러나 이런 단점들은 사소합니다. 장점을 희석할 정도는 아닙니다. 추리소설, 그리고 책을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놓치지 마시길. 별점은 3점입니다.
그나저나, 저도 생각난 김에 가지고 있는 절판본이라도 정리해서 "hansang 고서당"이라는 카테고리나 만들어 추가해봐야겠네요. 전문 콜렉터분들이 가지고 계신 것에 비하면 창피하기 그지없지만요.
2014/12/16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5 - 미카미 엔 / 최고은 : 별점 2.5점
|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5 - 미카미 엔 지음, 최고은 옮김/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의도는 아니지만 짝수권은 건너 뛰고 홀수권만 띄엄띄엄 읽게 된 "비블리아 고서당" 시리즈 다섯 번째 이야기입니다.
모두 세 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으며, 특정 고서와 얽힌 이야기를 탐정역의 시오리코가 풀어낸다는 잔잔한 일상계 단편입니다. 지에코가 시오리코의 주변을 맴도는 이유, 다이스케의 고백에 대한 답변 같은 긴 실타래가 하나씩 풀려 나가는 연작 구성이라는 점은 전작과 같고요.
개인적으로는 다이스케의 고백과 시오리코의 답변을 정말 순진하고, 착하고, 예쁘게 묘사한게 인상적이었습니다. 고서당을 무대로 한 작품다운 고풍스러운 묘사였고, 덕분에 고우라 다이스케의 비중도 단순 화자보다는 조금 커진 것 같아 좋았습니다. 그런데 이 정도면 애정이 아니라 거의 숭배에 가까워 보이기는 합니다.
"비블리아 고서당" 시리즈답게 등장하는 책들에 대한 소개도 충실한데, 이번 권에서는 지나가는 이야기에 등장하는 오누마 단의 "검은 손수건"이라는 추리소설이 특히 땡기네요. 책 정보가 전혀 등장하지 않아서 더 궁금해집니다.
다만 아쉬운 점이라면 추리적으로 특기할 만한 작품이 이번 권에서는 없다는 점입니다. 너무 일상적인 이야기거나 추리에 있어 비약이 심한 이야기들뿐이었거든요.
그래서 결론 내리자면 별점은 2.5점. 작품의 재미가 부족한 것은 아닌 만큼 시리즈의 팬이라면 읽을 가치는 충분합니다.
수록작 별 상세 소개는 아래와 같습니다.
"월간 호쇼"
고서와 고서점을 테마로 한 잡지인 "월간 호쇼"를 팔러 다니는 노부인에 대한 이야기. 노부인이 잡지를 판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회수해 가는 이유를 밝혀내는 내용입니다.
수수께끼가 신빙성 있게 짜여져 있을 뿐 아니라, 이전에 등장했던 책 판매 노숙자 시다 씨가 중요한 역할로 나오는 것이 인상적입니다. 시다 씨와 함께 다니는 노신사가 뭔가 역할을 할 것처럼 보이다가 밝혀지는 반전도 마음에 들었고요. 특히나 시다 씨 첫 등장에 함께 나왔던 고야마 기요시의 "이삭줍기, 성 안데르센"이 다시 등장해서 반가웠습니다. 그것도 그냥 나온 게 아니라 나름 역할이 있다는 점에서 작가의 치밀함을 느낄 수 있어 좋았어요.
아울러 "월간 호쇼"라는 잡지가 실제 있다는 것도 이번에 처음 알았는데, 무척 재미있어 보입니다. 과월호라도 구할 수 있다면 한번 구해보고 싶네요.
그러나 추리적으로 공정하다고 보기는 어렵고, 동기 측면에서도 비약이 심할 뿐 아니라 일본인만 알 수 있는 트릭이라는 문제는 있습니다. 때문에 별점은 2.5점입니다.
"블랙잭"
햐~ 이 작품까지 나오다니! 저도 한국어 판으로 다 구입했을 뿐더러, 작중 소개되는 양장본은 형이 학창시절 초판으로 구입했던 기억이 나서 더 반가웠습니다(블랙잭을 실사처럼 묘사한 까만 커버). 작중 주요한 소재인 4권의 "식물인간" 이야기도 다른 블로거분의 글에서 본 적이 있어서 익히 알고 있는 내용이었고요. 이렇듯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내용을 더 깊이 파고들어 이런 이야기를 창조해 낸 작가의 상상력에는 경의를 표하고 싶습니다. 저도 창작자를 지향하는 사람이라서 많이 반성이 되네요.
이야기 구성도 어머니 임종 시에 굳이 책을 구입하려 한 아버지의 행동을 밝혀내는 것이고, 그 의도가 무척이나 따뜻한 내용이라 아주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야말로 일상계의 왕도랄까요. "블랙잭"이라는 작품 테마에도 잘 어울리고요.
또한 시리즈답게 "블랙잭"의 다양한 판본을 상세하게 설명해주는 매니악한 부분도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똑같은 책이 두 권 있는 이유도 생각지 못했던 것인데 합리적으로 설명해 주고 있으며, 아버지가 구입한 마지막 책 상태와 구입한 이유를 설명해주는 것도 추리적으로 완벽했습니다.
한마디로 이번 권의 베스트 단편입니다. 별점은 4점입니다.
"나에게 5월을"
망나니 동생이 형의 임종 후 찾아와, 형이 소중하게 여기던 귀한 책을 자신에게 유품으로 남긴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이야기입니다.
추리적인 부분은 별로 건질 게 없었던 작품입니다. 이야기의 시작부터 비약이 심할 뿐더러, 미망인 히사에가 모든 수수께끼를 쥐고 있다는 것이 전부니까요. 이야기의 발단이 된 스미오의 행동도 딱히 합리적이지 않고, 고인이 죽기 전 진상을 파악했다는 것도 근거가 없습니다. 평생 모르다가 죽기 직전에 알았다는 설정도 설득력이 떨어지고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히사에가 아무런 관계도 없는 고서당 사람에게 평생 숨겨온 비밀을 털어놓을 이유가 있었을까요? 저 같으면 끝까지 부정했을 겁니다.
데라야마 수지라는 작가에 대해 관심이 생긴 것 정도만 수확일 뿐, 그냥저냥한 평작입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2015/05/12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2 - 미카미 엔 / 최고은 : 별점 2.5점
|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2 - |
고서 전문 헌책방 비블리아를 무대로 펼쳐지는 연작 옴니버스 추리 단편집 두 번째 권입니다. 이번에는 세 편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그 중 두 편은 중학생 소녀의 독후감, 헌책 출장 감정과 같은 지극히 현실적이고 일상적인 소재를 그리는 전형적인 일상계입니다. 시오리코씨 어머니와 수백만엔에 이르는 책 도난 사건에 대한 마지막 이야기의 과거편은 단순 일상계로 보기는 어렵지만, 현재편은 책을 팔려고 내 놓은 뒤 사라진 손님을 찾아 나선다는 점에서 일상계로 볼 수 있습니다. 이 정도면 완벽한 일상계 추리물인 셈이지요. 개인적으로는 일상계 추리물을 좋아하고, 독서와 헌책방 역시 좋아하기 때문에 즐겁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전 리뷰에서도 언급했었지만, 시오리코씨 어머니 이야기는 등장하지 않는게 좋았을겁니다. 최종보스 느낌인데 작품과는 영 어울리지 않았거든요. 책을 좋아하는 미녀 시오리코씨, 그녀를 흠모하는 근육 알바 고우라 다이스케의 순진무구한 사랑 이야기와 더불어 그들 주변, 동네의 소소한 책 관련 사건으로도 충분했을텐데 말이지요.
다른 시리즈에 비하면 추리적으로 건질게 별로 없다는 단점도 큽니다. 첫 번째 이야기는 시오리코씨가 당사자 중 한 명이라서 추리라고 부르기 애매하고, 두 번째 이야기는 시오리코씨가 책을 확인하지 못했던 실수가 더 크게 다가오는 탓입니다. 마지막 이야기는 추리적으로는 가장 괜찮지만, 앞서 이야기한대로 가장 마음에 들지 않는 소재와 설정이었고요.
덧붙여, 시리즈 다른 편들과는 다르게 등장하는 책들 중 딱히 읽고 싶은 마음이 든 책이 없다는 점, 그리고 책의 완성도는 좋지만 각 단락별로 추가된 일러스트는 전혀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책과 어울리는 것 같지 않은 점도 실망한 부분입니다.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재미만 놓고 보면 나쁘지는 않지만 아주 좋지도 않은, 뭐 그런 느낌이랄까요. 그래도 "비블리아 고서당" 시리즈 중 한권으로는 충분히 읽을만 합니다.
각 에피소드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앤서니 버지스 "시계태엽 오렌지"
1권에서도 등장했었던 고스가 나오가 자신의 똑똑한 여동생 유이가 쓴 "시계태엽 오렌지" 독후감으로 생긴 문제를 고우라에게 의논하며 벌어지는 이야기.
독후감으로 생긴 문제라니! 책 관련 추리 소설 중 이 정도까지 사건성을 낮춘 일상계가 있었을까요? 여튼, 소재는 정말이지 참신했습니다. "시계태엽 오렌지" 영화로 잘 알려진 내용은 '불완전판'이며, 원래는 알렉스가 개과천선하여 과거의 삶과 결별하고 새롭게 시작하려 한다는 결말이 '완전판'으로 존재한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고요. 무엇보다도 이 사실이 내용과 잘 어우러지는 전개가 아주 일품이었습니다.
그러나 독후감은 상당히 잘 쓴 내용으로 큰 문제는 없어보이는데 외려 주위의 설레발이 너무 심한게 아닌가 싶더군요. 원칙적으로는 중학생이 "시계태엽 오렌지"를 읽은 것 부터가 문제가 아닌가 싶은데 왜 그런건 지적하지 않는지 잘 모르겠고요.
또 사건의 진상을 밝혀나가는 과정은 치밀해서 괜찮기는 하지만, 결국 원본은 시오리코씨가 썼다는 일종의 반전 때문에 추리적으로는 뭐라 이야기할 거리가 없습니다. 결말을 알고 나서 단서를 짜맞추는 방식과 다를게 없으니까요.
때문에 별점은 3점입니다. 일상계의 왕도를 걷는 점에서는 별점 4점도 충분하지만 추리적 요소가 약해 약간 감점합니다.
후쿠다 데이치 "명언수필 샐러리맨"
고우라 다이스케가 대학교 1학년때까지 사귀었던 옛 동창 아키호로부터, 그녀의 돌아가신 부친의 수집 도서 정리를 의뢰받은 뒤의 이야기.
고우라의 과거사, 그리고 현재 그의 마음이 잘 드러나는 푸근한 이야기로, 첫 시작에서 비블리아 고서당으로 팩스와 전화가 온 사실과 아키호가 출장 감정을 의뢰한 이유가 연결되는 치밀한 구성도 괜찮습니다.
알 수 없는 가족간의 사랑이라는 주제와 그것을 드러내는 묘사들, 그리고 후쿠다 데이치가 유명작가 시바 료타로의 본명이며, "명언수필 샐러리맨"은 성공 전에 발표한 책이라는 잡학 지식도 좋았고요.
그러나 내용에는 여러모로 문제가 많습니다. 일단 아무리 엿듣는 사람이 많았고, 부녀가 만날 때마다 싸우는 등 복잡한 가정 사정이 있었다지만, 귀중한 책을 몰래 물려주려 했다는 설정이 전혀 와닿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물려줘봤자 받는 사람이 그 가치를 영원히 알 수 없다면 이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싶기도 하고요.
무엇보다도 이 에피소드가 사건으로 성립하게 된 결정적 이유가 출장 감정을 나선 시오리코가 귀중한 책을 놓쳤다는 것인데, 이건 큰 문제입니다. 아팠다는 설정은 있지만 그래도 그간 보여주었던 책에 관련해서는 너무나 완벽했던 캐릭터성이 무너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감기로 인해 시오리코씨는 출장 감정을 나서지 않고 고우라에게 원격으로 지시했기 때문에 책을 놓쳤다... 라는 식으로 전개했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군요. 별점은 2점입니다.
아시즈카 후지오 "utopia"
시오리코씨의 어머니 이야기가 첫 등장하는 에피소드.
일단은 시오리코씨의 어머니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설명하기 위한 목적에는 충분히 부합하는 이야기입니다. 수상한 손님이 판매를 의뢰한 책만 가지고 주소를 짐작하여 찾아오는 부분에서는 그녀의 뛰어난 추리력을 알려주며, 이후 깨우친 진상을 가지고 협박하여 손에 넣기 어려웠던 휘귀본을 입수한다는 부분에서는 사악함을 알려주기 때문이죠. 아울러 "선의의 제삼자"가 되기 위한 교묘한 장치, 즉 장물인 "최후의 세계대전"에 2,000엔이라는 가격표를 붙여 책을 판매, 구입한 것에 대해서는 법적 처벌이 없게끔 안배하는 '악마의 술책' 역시도 돋보였어요.
개인적으로는 만화가 후지코 후지오를 좋아해서 더욱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허나 앞서 이야기했듯이 시오리코 씨의 어머니가 이렇게 넘을 수 없는 산과 같은, 그야말로 최종보스로 등장해야 하는 이유는 잘 모르겠어요. 긴장감을 높이기 위한 장치치고는 너무 거창하잖아요? 평범하고 소소한 일상이 훨씬 마음에 들기도 하고요. 별점은 2.5점입니다.
2016/12/05
니시우라 사진관의 비밀 - 미카미 엔 / 최고은 : 별점 2점
| 니시우라 사진관의 비밀 - 미카미 엔 지음, 최고은 옮김/arte(아르테) |
"비블리아 고서당" 시리즈로 홈런을 날린 작가 미카미 엔의 또다른 일상계 연작 단편집입니다. 유명 휴양지 에노시마에 위치한, 돌아가신 할머니의 "니시우라 사진관"을 정리하기 위해 찾아온 손녀 마유가 이런저런 일상 속 수수께끼를 해결해 나가는 내용입니다. 모두 네 편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특징이라면 제목에서처럼 '사진'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이야기에 녹여내었다는 점입니다. "비블리아 고서당" 시리즈가 책에 대한 정보를 활용하는 것 처럼요. 별다르지는 않지만 호기심을 자아내는 수수께끼들이 등장한다는 일상계 느낌의 전개와 소소하면서도 훈훈한 분위기도 "비블리아 고서당"스럽고요.
그러나 설정과 분위기만 비슷할 뿐 "비블리아 고서당" 수준에는 여러모로 미치지는 못합니다. 우선 추리적으로 내세울게 없는 탓입니다. 2장과 3장은 범인(?)이 너무 뻔하며, 4장은 설정이 극히 작위적이라 전혀 와 닿지 않기 때문입니다. 도입부인 1장이 그나마 괜찮지만 전체적으로는 기대 이하입니다.
탐정역이자 주인공이기도 한 가쓰라기 마유 역시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시오리코씨의 안 좋은 부분인 소심하고 나약한 성격을 극대화한 것에 더해, 대학 시절의 민폐 행각을 부각시킨 탓에 영 호감이 가지 않더라고요. 사진에 있어서도 대학 시절 전공했던 정도라 딱히 대단한 전문가라고 하기 어렵고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라 추리 소설에 입문하시는 분들께는 적합할지 모르나 그렇지 않다면 딱히 권해드리기는 어렵습니다. 루이가 아직 사진관 근처에 살고 있다는 것을 마유가 깨닫고, 이후 루이와 다시 만나는 마무리는 후속작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이지만 다음 권을 읽을 생각이 들지는 않네요.
마지막으로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세요.
1장
가쓰라기 마유는 에노시마에 위치한 니시우라 사진관을 찾았다. 폐암으로 사망한, 100년 동안 영업했던 사진관의 마지막 주인이었던 외할머니 니시우라 후지코의 유품을 정리하기 위해서였다.
정리를 시작한 마유는 '미수령 사진' 이라고 적힌 양철 상자를 발견했고, 그 속에서 '마도리 마사카즈 님'이라고 적힌 봉투를 열어 보았다. 그 속에는 100여년전 사진과 70여년 전, 20여년 전, 그리고 지금 현재의 에노시마를 무대로 거의 25년 단위로 찍은 한 남자의 사진 4장과 필름 3개가 들어있었다. 그런데 사진 속 인물은 모두 동일 인물로 보이는데 합성은 아니었다.
마침 사진을 맡긴 마도리 마사카즈가 방문했고, 그는 치매에 걸린 할머니의 소중한 사진에 얽힌 수수께끼를 밝혀달라고 마유에게 부탁하는데...
'동일한 장소에서 찍은, 거의 25년 단위로 찍은 한 남자의 사진 4장'에 얽힌 수수께끼가 등장하는 시리즈의 첫 작품. 수수께끼가 상당히 흥미롭습니다. 100여년전 사진과 70여년 전, 20여년 전, 그리고 지금 현재의 에노시마를 무대로 한 사진 속 인물이 모두 동일 인물로 보이는데 합성은 아니다! 라는 것으로 괴담 등에서 많이 변주되었었죠.
그러나 이 작품은 괴담이 아닌지라 나름 합리적인 트릭이 등장합니다. 그것은 바로 '첫번째 사진은 에어브러시를 이용한 가필, 두번째는 현재를 살아가는 인물의 할아버지, 세번째는 아버지가 약간 분장한 것이고 네번째 사진 속 모델 마도리 마사카즈는 할아버지와 꼭 닮은 사람이었다'라는 겁니다. 특히 '에어브러시'라는 아이디어가 좋습니다. 합성보다는 한 발자욱 더 나아간, 사진이라는 설정을 활용한 아이디어라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디지털로 모든 것이 바뀐 현재의 상황에서는 잘 모를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설득력 높기도 하고요.
물론 에어브러시로 그렇게까지 똑같게 사람을 그릴 수 있었을까?라는 문제는 있습니다. 하지만 이 정도면 이야기의 시작으로 아주 괜찮았다 생각되네요. 별점은 2.5점입니다.
2장
마유가 4년전 사진을 그만둔 계기는 소꼽친구로 인기 아이돌이었던 "루이"의 개인적 비밀(특정 사이비 종교를 믿는다는)을 드러내는 사진을 찍었다가, 그 사진이 유출되어 루이의 인생을 망쳐버린 과거 탓이었다.
그런데 마도리 마사카즈와 사진관을 정리하던 마유는 당시 사건에 연류된 선배 고사카가 비교적 최근에 찍은 루이의 사진을 발견했다. 사진을 전해주기 위해 고사카를 다시 만난 마유는 고사카와의 대화를 통해 마유는 사진 유출의 진상과 이후 루이의 삶에 대해 알게 되는데...
루이의 사진을 누가 유출시켰는지? 에 대한 것이 핵심 수수께끼인데 사실 별 내용은 없습니다. 아날로그로 사진을 찍은 것을 전문 카메라맨이 된 아키호가 몰랐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즉 사진을 잘 모르는 다른 서클 사람들이 한통속이 되어 유출했다는 진상을 몇 년 간이나 알지 못하고 끙끙대었다는 것 부터가 설득력이 낮은 탓입니다. 합숙을 하느라 통신이 불가했다는건 알리바이가 될 수 없으니까요.
그리고 내용을 읽어보면 당시 마유가 서클 사람들에게 잘못한 부분이 있는 것도 분명해서 딱히 불쌍하다는 생각도 들지 않습니다. 그래서 감정 이입도 하기 어려웠어요. 아무리 비공개 SNS라도 사진을 올린건 마유의 실수라는게 명백하기 때문입니다.
또 루이에 대한 설정도 딱히 잘 짜여졌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소꼽친구, 엄청난 미남, 성공한 아이돌이라는 설정은 현실적으로 느껴지지 않더군요. 루이가 추락하게 된, 사이비 종교의 신자로 교주의 목소리가 들린다는 설정 역시 마찬가지고요.
아울러 해당 종교가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더라도 루이는 분명 피해자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 것도 문제입니다. 때문에 면죄부를 주기는 어렵더라도, 세간의 비난을 받고 은퇴할만한 일로는 보이지 않았어요. 작중에서 본인이 계속 그만두겠다는 의지를 보였으며, 마침 사진은 좋은 계기가 된 것에 불과해 보이는데 만약 그렇다면 마유는 죄책감을 안고 살아갈 필요가 없지요.
여튼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1.5점입니다. 뭔가 있어보이는 마유의 과거사를 드러내는 수단에 불과할 뿐더러, 과거사가 만화와 같은 설정으로 가득차 있어 전혀 와 닿지 않은 작품입니다. 점수를 줄 부분이 별로 없네요.
3장
기념품 가게 주인 겐지에게는 말 못할 비밀이 있다. 그는 지금의 아내 요코에게 청혼할 때 필요한 자금이 없어서 삼촌 오사무와 함께 니시우라 사진관에서 은덩이를 훔쳤었다. 잠깐 빌려간다는 의미로 차용증을 써서 남겼었는데, 겐지는 마유에게 들키기 전 차용증을 빼돌릴 결심을 한다...
은은 과거 니시우라 사진관에서 일했던 오사무 삼촌이 현상 과정에서 나오는 폐약에서 추출한 것, 캐비닛이 일종의 미니 암실?이어서 그것이 열렸다면 증거가 남는다는 설정만큼은 괜찮았습니다. 사진관이라는 무대에 잘 맞는 소재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이후 이야기 전개는 영 별로입니다. 캐비닛과 함께 있었던 유일한 인물이 겐지인데 뭐 이렇게 복잡한 설명이 필요했을지 잘 모르겠어요. 상세한 설명 없이 그냥 경찰을 부르는 게 빠른 방법이잖아요? 겐지가 은덩이를 훔친 것으로도 모자라 차용증까지 훔치려 한 것은 엄연한 범죄라 정상참작의 여지도 전혀 없고요.
그리고 캐비닛 속의 필름이 감광되었다 하더라도 열은 것이 겐지라는 증거가 되기에는 부족합니다. 단지 캐비닛이 열렸다는 증거 정도밖에는 안되죠. 시간을 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한마디로 괜찮았던 소재를 억지스러운 전개로 망친 느낌입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4장
마유는 정리 중 발견한 마도리 부자의 사진을 전해주기 위해 마도리 가문의 별장을 찾았다. 그 곳에서 마유는 아키타카의 아버지 료헤이가 아들을 대하는 매몰찬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그 와중에 발견한 여러 가지 이상한 점 — 겐지가 전해준 아키타카는 이전의 모습이 아니다, 별장과 본가를 아키타카의 사진이 온통 장식하고 있다, 부자의 사진에 알 수 없는 그림자가 있다 등 — 을 토대로 아키타카에 대한 깜짝 놀랄만한 사실을 깨닫는데...
역시나 핵심 트릭은 사진에 관련되어 있습니다. 료헤이와 아키타카가 찍은 사진은 아주 오래전 료헤이가 찍은 사진에 현재의 아키타카의 모습을 합성했다는 것이죠.
하지만 '합성'은 사진에 있어서는 엄청나게 뻔한 조작이라 트릭이라고 부르기는 조금 어려우며, 이렇게 복잡한 공작을 할 필요에 대해서는 제대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구태여 조작까지 해서 사진을 전시할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그냥 현재의 아키타카의 모습을 사진으로 전시해 놓는 것으로 충분했을 테니까요.
게다가 아버지가 얼굴을 바꾼 이유가 제대로 설명되지 않는 것도 단점입니다. 너무나 미워했던 전처의 얼굴과 똑같이 생긴 탓이 컸다던가... 하는 식의 배경 설명이 반드시 필요했어요. 물론 그랬다면 "블랙잭"의 한 에피소드, 블랙잭이 자신과 어머니를 버린 아버지의 후처 얼굴을 어머니 얼굴로 바꾸어 놓는 에피소드와 똑같은 내용이기는 했겠지만요.
아키타카가 아버지에게 강하게, 논리적으로 반항하는 결말 정도만 깔끔할 뿐, 여러모로 부족함과 억지가 많이 느껴지기에 좋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네요. 별점은 1.5점입니다.
2021/10/23
커피점 탈레랑의 사건 수첩 1 - 오카자키 다쿠마 / 양윤옥 : 별점 2점
![]() | 커피점 탈레랑의 사건 수첩 1 - 오카자키 다쿠마 지음, 양윤옥 옮김/㈜소미미디어 |
커피 애호가 아오야마는 여자친구와의 트러블 직후, 카페 탈레랑 간판을 발견한게 계기가 되어 인생 커피를 만났다. 아오아먀는 탈레랑의 명언과 같은 달콤한 커피를 찾아 헤메었는데, 탈레랑에서 그런 커피를 맛 본 것이었다. 커피를 내린 바리스타는 기리마 미호시로, 아오야마보다도 연상이었다. 그녀는 아오야마의 이메일 주소만으로 그의 이름을 추리해 내는 뛰어난 추리력을 선보인 뒤, 아오야마의 우산이 사라잔 이유 등의 소소한 일상 속 수수께끼를 커피를 갈면서 풀어내었다. "그 수수께끼, 이제 잘 갈아졌어요."라는 말과 함께.
특정 분야 전문가가 탐정으로 등장하는 흔해빠진 일상계 단편 추리물. 이런 류의 작품은 엄청나게 많지요. 제가 읽었던 것만 해도 아래와 같습니다.
이 작품은 이 중에서도 여러모로 "비블리아 고서당" 시리즈를 연상케 합니다. 뛰어난 추리력을 가진 젊은 전문가 아가씨 탐정, 그리고 그녀를 연모하는 어수룩한 남성 화자 컴비가 주인공이라는 점에서요. 그러나 "비블리아 고서당" 시리즈에서는 헌 책의 역할이 중요했었는데, 이 작품에서는 '커피'의 역할은 미미하다는 차이는 큽니다. 카페 탈레랑은 사건이 발생하고, 사건이 모이는 장소이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사건과 해결은 커피, 그리고 바리스타와는 무관하거든요. 그나마 관련이 있는건 "제 2장 비터스위트 블랙" 정도 뿐입니다. 이래서야 바리스타가 탐정일 필요도 딱히 없지요. 추리를 하는 동안은 핸드밀로 커피를 갈다가, 추리를 마친 뒤 "그 수수께끼, 이제 잘 갈아졌어요."라는 말을 하는게 바리스타가 탐정일 유일한 이유입니다. 문제는 너무 만화적이고 유치했다는 거지요.
- 헌책방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 서점 <<명탐정 홈즈걸>>, "서점의 명탐정"
- 맥주바 "꽃 아래 봄에 죽기를"
- 화과자점 "화과자의 안", "변두리 화과자점 구리마루당"
- 시계방 "추억의 시간을 수리합니다"
- 사진관 "니시우라 사진관의 비밀"
- 중고매장 "가사사기의 수상한 중고매장", "흐리거나 비 아니면 호우"
- 수프가게 "수수께끼가 있는 아침 식사"
- 프렌치 비스트로 "타르트 타탱의 꿈"
- 절 "도연사의 쌍둥이 탐정일지"
- 초등학교 선생 "비정근"
추리적으로도 비약과 억지가 눈에 띄는 이야기가 많아서 그다지 마음에 들지는 않았어요. 바리스타 미호시가 상처입었던 과거 이야기가 조금 긴 호흡으로 설명되며, 묻지마 폭행이라는 강력 범죄가 연루되는 마지막 에피소드는 최악이었고요. 과거 미호시의 접대를 개인적 호감으로 착각했던 스토커가 있었다는건 설득력없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4년이나 지났는데 아직도 정신못차리고 주변을 맴돈다는건 현실적이지 못했습니다. 긴 호흡의 심각한 이야기가 등장하는 것도 "비블리아 고서당"과 살짝 비슷하네요. 별로 마음에 드는 이야기가 아니었다는 점도 말이죠. 이외에도 서술 트릭이 과하다 싶을 정도로 사용되고 있는 것도 문제에요. 마지막 에필로그에서는 지겹기까지 했습니다. 분량을 조절했더라면 훨씬 좋았을텐데 낭비된 느낌입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커피'가 보다 중요하게 사용되었더라면 좋았을텐데 아쉽습니다. 지금은 그냥 흔해빠진 양산형 일상계 단편에 불과하네요. 2권에서는 보다 폭넓게 커피가 활용되기를 기대해봅니다.
에피소드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제1장 사건은 두 번째 방문 때"
아오야마가 탈레랑을 처음 찾는 이야기로 시리즈의 도입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호시가 이메일 주소만 가지고 아오야마의 이름을 알아낸 추리는 마음에 들었어요. 커피 애호가라고 소개되기에 "블루 마운틴"은 커피인줄 알았는데, 이런저런 단서로 그게 이름을 의미한다는걸 추리하는게 지극히 합리적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오야마의 우산이 사라지고, 새빨간 우산이 남아있었던 상황에 대한 추리는 조금 억지스러웠습니다. 애초에 이미 헤어진 여자 친구의 친구가 아오야마를 비난할 자격 따위는 없고요. 코믹하고 당황스럽기는 하지만, 설득력없는 이야기였어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제2장 비터스위트 블랙"
아오야마의 친척 아가씨 고스다 리카의 남자친구가 바람을 피우는지 여부를 알아내는 이야기. 진상은 리카만 남자친구라고 생각했을 뿐, 그 남자의 진짜 연인은 따로 있었다는 겁니다.
리카가 외국에서 살다왔던 탓에 오해가 생긴 것이었는데, 이를 '블랙 커피'를 통해 드러내는 묘사는 일품이었어요. 일본에서 블랙커피는 설탕도 밀크도 넣지 않은 스트레이트 커피를 가리키는 경우가 많지만, 미국에서는 커피 색깔만을 의미한다네요. 그래서 리카는 머그컵만 보고서 블랙커피라고 단정했지만, 쓴 커피를 마시지 못하는 남자 친구는 혼자 설탕을 넣은 커피를 마셨던 것이라고 합니다. 문화의 차이를 세련되게 드러낸 좋은 장면이지요.
남자친구 녀석도 리카와 하룻 밤을 같이 보낸건 사실인데 아오야마가 그 녀석을 좋게 바라보는건 납득이 가지 않더군요. 그 녀석은 리카가 오해할만한 행동을 저지른건 맞습니다. 단지 '오해'라고 넘어가는건 무리에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제3장 유백색에 하트를 숨기다"
아오야마는 창 밖에서 뛰어가던 혼혈아 켄토에 대한 이야기를 미호시에게 해 주었다. 켄토에게 가끔 우유를 사 주며 친해졌지만, 교토 여름의 풍물시 오쿠리비 축제 날, 다친 켄토를 걱정해주다가 다투고 말았다는 내용이었다. 아오야마의 이야기와 켄토의 행색에 주목했던 미호시는 카페 밖으로 달려나가 켄토를 찾기 시작하는데...
아오야마가 처음에 커피 맛이 떨어졌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미호시와 함께 다른 카페에 왔다는 것, 그리고 아오야마가 켄토에게 우유를 사 준게 아니라 단지 전해들은 이야기라는 두 가지의 서술 트릭이 숨어있는 작품.
서술 트릭은 신선했지만, 정작 다른 수수께끼들은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우선 다른 카페의 커피가 탈레랑과 맛이 같았던건 우연히 같은 원두를 사용했기 때문이지요. 이는 미호시가 탈레랑 커피 원두 구입처를 앞에서 설명해주기 때문에 수수께끼라고 하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이 이야기를 듣고 이유를 눈치채지 못했던 아오야마가 멍청한 거지요.
켄토가 돌보던 고양이를 나쁜 아이들이 괴롭힌다는걸 미호시가 간파했던 건, 넘겨 짚은 것에 불과할 뿐 추리라고 하기 어렵습니다. 비약이 심했던 탓입니다. 방학, 그리고 매일같이 축구를 핑계로 학교를 가면서 우유도 가져갔지만, 정작 축구 실력은 전혀 늘지 않았다는 이야기에서 학교에서 고양이를 키웠다는 진상을 끄집어 낸건 나쁘지 않아요. 문제는 아이들이 고양이를 빼앗아 죽이려고 했다는건 증명이 불가능했다는 겁니다. 급식 주머니는 단서가 되기 힘들었으니까요. 미호시 스스로도 확신을 가지지는 못했다는 말을 할 정도였지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제4장 바둑판 위의 추격전"
아오야마는 산책 도중 전 여자친구 마미를 만났다. 그녀를 피해 도주하던 끝에 탈레랑으로 향했지만, 마미가 그곳까지 쫓아온 탓에 아오야마는 미호시를 새 여자친구라고 소개해버리고 말았다. 마미는 잠자코 물러났지만, 그녀는 어떻게 아오야마가 탈레랑으로 도망쳐 올 것이라는걸 미리 알았던 것일까?
제목의 바둑판은 탈레랑이 있는 상점가 거리를 의미합니다. 바둑판과 같이 직선으로 나누어진 구획의 거리라는 설정이지요. 상점가 거리를 비롯하여 교토 시내를 무대로 펼쳐지는 아오야마의 산책과 도주 과정은 여정 미스터리 느낌을 전해줍니다. 교토 시내 거리에 대한 설명이 자세한 덕분입니다. 그 와중에 "마루타마치 르부아"의 마루타마치 시가 등장하는 것도 반가왔고요. 풋풋한 사랑 싸움, 그리고 도라야 마미와의 옛 추억을 잃어버린건 슬픈 일이라는걸 아오야마가 깨닫는 결말은 여운이 남겨져서 좋았습니다.
문제는 추리적인 부분입니다. 모카와 마타지가 전화로 알려주었다는게 진상인데, 모카와 할아버지가 마미와 어떻게 연결되는지에 대한 단서가 사전에 제공되지 않기 때문에 추리의 여지가 전무했거든요. 아무리 '일상계' 작품에 대단한 추리가 등장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래서야 추리물이라고 부르기도 힘들지요. 별점은 2점입니다.
"제5장 past, present, f*****?"
아오야마는 잡화점에서 고가의 다트를 보고 홀딱 빠졌지만 막상 사려고 하자 이미 팔리고 없었다. 잡화점을 나온 아오야마는 미호시를 우연히 만났고, 함께 저녁을 먹기로 했다. 미호시는 저녁 술자리에서 아오야마의 깜짝 생일 축하 파티를 열어주었고, 선물로 그 다트를 주었다. 그런데 다트가 마음에 들었다는걸 미호시는 어떻게 알았을까? 다음날, 아오야마는 고나이라는 남자를 만나, 미호시의 과거 이야기를 듣게 되는데...
수수께끼는 흥미롭지만 진상은 전편과 같습니다. 잡화점에서 아오야마를 보고 미호시에게 정보를 알려준 공범(?)이 있었던 거지요. 다행히 전편보다는 잘 활용하고 있습니다. 공범의 정체를 진작부터 노출시키고 있는 덕분이지요. 아오야마도 진상을 추리해 내는데 거의 성공하고요.
하지만 고나이를 통해 드러나는 미호시의 과거는 뜬금없었고, 고나이도 굉장히 작위적인 설정이라 마음에 들지 않네요. 누구에게나 친절했던 미호시의 다정함을 사랑이라고 착각했던 찐따가 위험한 스토커가 되었다는건 지나치게 뻔했을 뿐더러, 고나이가 아오야마아게 접근해 이런 이야기를 털어놓을 이유도 잘 설명되고 있지 못합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제6장 Animals in the closed room"
아오야마는 환상의 커피인 몽키 커피 원두를 구했다는 말로 미호시를 자기의 방으로 초대하는데, 그리고 이 때 그녀에게 깜짝 선물을 주려는 계획까지 성공했다. 그러나 선물이었던 테디 베어 인형은 날카로운 무언가로 찢긴 채였다. 밀실인 자취방에서 인형을 찢은건 누구였을까?
탈레랑의 고양이 샤를이 미호시 토트백 안에 숨어 몰래 들어와 인형을 찢었다는게 진상인데, 여러모로 지나치게 작위적이었습니다. 첫 번째로, 샤를이 가방 안에 들어간걸 눈치채지 못할 수 있을까요? 약에 취해 잠들었다는 설정이 붙어있기는 합니다. 그럼 깨어나서 인형을 찢었다는건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두 번째로, 샤를이 마침 아오야마가 미호시가 자리를 비운 틈에 가방에서 빠져나와 인형을 찢은 뒤, 아오야마와 미호시가 도착하기 전 조용히 옷장 안에 숨어 들어가 잠들었다는 우연도 과합니다. 세 번째로 새끼 고양이가 인형을 찢었다면, 작 중 묘사처럼 날카로운 날붙이로 악의를 가지고 찢은 것 같았을리가 없습니다. 조금 긁히고 만 정도가 아니었을까요? 이외에도 아오야마가 선물을 미호시 몰래 등장시키기 위해, 낚시줄과 후크를 이용해 만든 복잡한 장치 트릭도 억지스러웠습니다.
수상해 보였던 신문배달원(?)과 아오야마가 침대 밑에서 발견한 머리카락의 등장을 통해 위험인물 고나이의 존재를 다사금 떠올리게 만들고, 다음 에피소드를 위한 복선으로도 적절히 사용한건 괜찮았지만 그 외에는 앞서의 이유로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제7장 다시 만난다면 당신이 내려준 커피를"
고나이 나미카즈는 미호시가 아오야마와 사이좋게 지내는걸 참지 못하고 복수를 결심했다. 그리고 어두운 밤, 미행 끝에 브래스 너클로 폭행을 가하는데 성공했다. 아오야마는 이 폭행은 자신이 미호시와 만남을 가졌다는 것 때문이라는걸 깨닫고, 전에 받았던 고나이의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어, 더 이상 미호시를 만나지 않겠다고 말하는데...
1권의 마지막 이야기. 고나이의 폭행으로 입원한 당사자가 아오야마였다는 서술 트릭이 사용된 작품입니다. 전편의 괴한은 아오야마의 전 여친 마미로, 유도부원이었던 그녀가 고나이를 처절하게 응징한 뒤 우여곡절끝에 모든게 제자리로 돌아가는 결말도 깔끔했어요. 독자는 아오야마를 미호시로 착각하고, 고나이는 마미를 미호시로 착각하는 이중의 서술 트릭이 사용된 셈이지요. 아오야마의 정체가 다른 카페 바리스타였고, 본명도 아오야마가 아니라 아오노 야마토라는 것도 밝혀지는데, 이에 대한 미호시의 추리도 좋았습니다.
그러나 커피맛을 훔치러 왔다는 둥, 사랑 싸움같은 중반부 전개와 고나이가 폭행을 결심하는 이유가 잘 납득되지 않는건 단점이에요. 고나이의 생각을 잘 모르겠더라고요. 아오야마가 경찰에 신고하지 않을 이유는 없었는데 말이지요. 오히려 미호시를 생각한다면, 고나이같은 위험인물은 감옥에 보내는게 당연하잖아요? 서술 트릭도 병문안을 온 사람까지는 등장시킬 필요가 없었습니다. 다친 사람은 미호시, 병문안을 온 사람은 아오야마라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한 장치였는데, 지나쳤습니다. 병문안을 온 건 그럼 도대체 누구랍니까? 마미? 이런 단점들 탓에 별점은 2점입니다.
"에필로그"
모든게 제자리로 돌아왔다는걸 공식적으로 알리는 짤막한 분량의 에필로그. 바리스타 고나이가 카페 로크온이 아니라 탈레랑에 있다는게 서술 트릭 형태로 밝혀지는데, 이 쯤 되니까 지겹네요. 점수를 주기 애매한 분량이라, 별점은 따로 없습니다.
2013/12/26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 미카미 엔 / 최고은 : 별점 2.5점
|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 미카미 엔 지음, 최고은 옮김/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12.24일이 회사의 대체휴무일이었습니다. 연휴가 생긴 덕에 폭풍 독서를 진행했네요.
이 작품은 고서 전문 헌책방 '비블리아'에 책을 팔러 온 손님과 책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지는 일상계 중단편 연작집입니다. 단편이라고 보기는 조금 긴 호흡인, 총 네 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수록작 별로 주제가 되는 책이 있고 그 책에 관련된 인물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책과 관련된 사건이 책과 인물과 연계선상에 놓이고요. 이를 충분히 있음직한 소소한 일상계로 그려내고 있는게 특징인데, 방식은 미야베 미유키의 "쓸쓸한 사냥꾼"과 동일하지만, 이 작품 쪽이 보다 일상계스럽고 책 자체에 집중하고 있다는 차이점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마음에 들었습니다. 헌책방을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이지요. 몇 년 전 추리소설 절판본을 찾아 인터넷과 오프라인 헌책방을 유람하던 때가 떠올랐거든요. 원하던 책을 발견했을 때의 짜릿한 쾌감은 잊기 힘들지요. (이런 것들이죠) 당시 귀했던 절판본이 속속 재간되고 있어서 지금은 빛이 많이 바래긴 했지만요.
하지만 비현실적인 설정과 등장인물은 조금 거슬렸고, 추리도 비약이 심하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특히 등장인물의 비현실성이 심한 편입니다. 추리력 뛰어난 고서점 점장은 "명탐정 홈즈걸"과 같이 유사한 전례가 있으니 그렇다 쳐도, 긴 생머리 - 거유 - 중증의 독서 중독자라는 설정은 "R.O.D"의 요미코 리드맨과 똑같은데 너무 만화스럽습니다. 게다가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로 책을 못 읽게 된 고우라는 더 와닿지 않았고요. 그냥 운동계열 근육 백수가 시오리코의 미모에 끌렸다는 설정이 더 현실적이었을텐데 말이죠. 아니면 차라리 일본어를 잘 못 읽는 외국인이라고 하던가... "더 리더"를 반대로 비튼 설정인데, 영화만큼의 설득력을 보이지 못해 유감스러웠어요. 아울러 마지막 에피소드는 작품과 별로 어울리지 않았다는 것도 아쉬운 점이었고요.
때문에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입니다. 헌책방과 추리, 그리고 일상계를 사랑하는 저에게는 딱 맞는 성격의 작품이긴 합니다만, 전체적으로는 약간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어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내용이니만큼 추리소설 입문자분들께는 추천드립니다. 만화나 드라마와 같은 콘텐츠에 더 적합한 이야기일 것이라 생각되는데, 있다면 한번 찾아봐야 겠습니다.
그나저나... 생각난 김에 자주 가던 헌책방 사이트나 한번 둘러봐야겠습니다.
2017/12/03
독서광의 모험은 끝나지 않아! - 미카미 엔, 구라타 히데유키 / 남궁가윤 : 별점 2.5점
![]() | 독서광의 모험은 끝나지 않아! - ![]() 미카미 엔.구라타 히데유키 지음, 남궁가윤 옮김/북스피어 |
"비블리아 고서당" 시리즈의 작가 미카미 엔과 "R.O.D"의 작가 쿠라타 히데유키가 여러가지 책에 대해서 이야기한 대담을 모아놓은 책입니다. 얼마 전에도 읽었던 북스피어의 '박람강기' 프로젝트의 한 권이지요.
자연스러운 일상생활 속 대화같은 대담이 인상적입니다. '술집 옆자리에서 두 남자가 주고받는 대화를 귀 기울여 들었더니 꽤 재미있더라'는 책 뒤 소갯글 그대로의 내용이에요. 구라타 스스로도 북 가이드라고 할 수는 없다고 말하기도 하고요.
그런데 이런 시시콜콜한 대담까지 책으로 출간되는 일본 출판 시장이 부럽기도 하네요. 우리나라 같으면 팟캐스트나 유튜브 방송 정도로 소모되고 끝날 내용이거든요. 좋게 말하자면 읽기 쉽고 나름 재미도 있지만, 나쁘게 말하자면 그다지 깊이가 있거나 진지한 내용은 아닙니다.
그래도 독서광 작가들이 모여 수다를 떤 내용이라서, 독서광까지는 아니더라도 독서에 있어 명함을 내밀 정도는 되는 저로서는 여러모로 흥미로운 부분이 많았습니다. 순서대로 한 번 살펴볼까요?
우선 모던 호러가 주제인 수다에는 스티븐 킹, 딘 쿤츠, 클라이브 바커 등 익숙한 작가들의 이름이 많이 나옵니다.
다만 내용은 딱히 새롭지 않아요. 모던 호러라는 주제를 이야기하면 누구나 이야기할만한 내용이었거든요. 뛰어난 작품이라고 생각되지 않는 "롱 워크"를 극찬하는 등 저와 취향이 다른 탓도 크고요.
하지만 잭 케첨 소개는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구라타 히데유키 말에 따르면 "이웃집 소녀"는 구입한 그 날,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책을 다 읽지 않으면 오늘은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을 거야 라고 생각했을 정도라니 꼭 읽어 봐야 겠습니다. 마침 국내에 유일하게 소개되어 있기도 하고요. 그 외에도 소니빈 사건을 소재로 삼았다는 데뷔작 "비수기" 와 후일담 "더 우먼"도 굉장히 재미있을 것 같은데, 이 두 작품은 아쉽게도 국내에는 소개되지 않았네요.
요코미조 세이시와 에도가와 란포, 야마다 후타로를 소개하는 챕터는 너무 뻔하더군요. 다 알고 있는 내용이거든요. 그래도 딱 한 가지, 일본 초등학생이 읽기 힘들어했다는 토로는 색달랐지만요. 구라타 왈, 모르는 단어가 많이 나와서라고 하는데 저는 그런 인상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번역을 잘 한건지 아니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만큼 역사와 과거에 대해서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인지는 모르겠네요. 그냥 일본 초등학생보다는 제가 이해력이 좋기 때문인걸까요?
그래도 좋아한다고 언급하는 작품들이 대체로 저 역시 좋아하는 작품들이라 마음에 들었습니다. "백일홍 나무 아래" 만 빼고 말이죠. 그 외 작품으로는 읽어본 적 없는 식인 테마 작품인 "어둠에 꿈틀거리다"가 궁금했습니다. 국내 출간되었는지 찾아봐야겠군요.
그런데 갑자기 야마다 후타로와 "마계전생" 이야기로 넘어가는건 좀 당황스러웠습니다. 야마다 후타로의 대표작이라는 "인법첩" 시리즈도 영화, 만화로 접한게 전부라 딱히 수다에 공감하거나 이해할 내용도 별로 없었고요.
영화화된 작품 원작에 대한 수다는 가도카와 하루키가 이끌던 가도카와 문고와 영화 전성 시대에 국한되어 있습니다. 작가 시점에서 아카가와 지로를 나름 극찬하는 - 쉽게 대사를 쓴, 일종의 라이트 노벨 선구자라는 등 - 정도만 눈에 뜨일 뿐 특별한 것은 없습니다.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듯한 아카가와 지로가 쓴 크리쳐 호러 소설 "밤"이 그나마 궁금하지만, 최고 걸작이라는 "마리오네트의 덫" 수준을 미루어 본다면 구태여 읽어볼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좌절본은 읽다가 포기하거나 여러가지 이유로 아예 그 생각이 없었던 작품들에 대해 수다를 떠는 챕터로 보통은 어려운 책 - 커트 보니컷의 "제 5 도살장"이나 케플러의 "우주의 신비" 등 - 이거나 너무 길어 포기한 작품들이 대부분입니다. 100권이 넘는 "구인사가", 미완으로 끝났다는 일본의 시대소설 "대보살고개" 등이 그러합니다.
하지만 "제 5 도살장" 이 어렵다는 주장은 동의하기 어렵고 "삼국지" 나 "삼총사" 같이 재미도 있고, 읽기도 쉬운 작품이 좌절본에 포함되어 있는 등 제 생각과는 조금 달라서 의외였습니다. 미카미보다는 구라타 취향이 특히 그런데, 뭐 이런 것이야 말로 개인 취향이겠지요. 허나 오래전 작품이라 요새 취향과 맞지 않기 때문에 읽기 힘들다는 이유로 "반지의 제왕" 은 좌절본이다!라는 의견만큼은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입니다.
이런 류의 독서광들 수다라면 빼 놓을 수 없는 진귀한 책, 기이한 책이 이야기도 물론 들어가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정말 희귀 도서들보다는 재미있는 아이디어의 책들 소개가 더 인상적이었어요. 아와사카 쓰마오의 "산 자와 죽은 자 - 명탐정 요기 간지의 투시술" 이 대표적입니다. 모든 페이지가 16 페이지 단위로 봉해져 있어서 그대로 읽으면 25페이지 짜리 단편이지만, 다 읽고 봉한걸 풀면 새로운 장편 소설이 된다는 책으로 여러모로 신기했거든요.
우리나라에도 소개되다 만 게모노기 야세이의 만화 "Palm" 소개도 기억에 남습니다. 무려 30년간 이어진 연재의 설정을 초기에 확립하여 그대로 끌고갔다니 대단해요. 미카미 엔이 혀를 내두르며 감탄하는게 이해가 되더라고요. 국내에는 절판되어 말 그대로 진귀한 책이 되어버렸는데, 어떻게 다시 구해보고 싶어 지네요.
추억 속에 깊게 남은 인상적이었던 책도 언급하는데, 구라타를 독서가로 이끈 책은 "투명인간", "우주전쟁" 이라고 합니다. 덕분에 SF에 빠졌다가 미스터리로 관심이 이동한 전형적인 장르 애호가 루트를 밟았더군요. 또 다른 추억의 책은 폴란드 아동문학인 "크레크스 선생님의 학교"를 꼽았고요.
미카미 엔은 "마더 구스", 히노 히데시의 만화 "죠로쿠의 기묘한 병"를 이야기하는데 이 책들은 국내 소개되지 않았으니 잘 모르겠습니다.
그나마 미카미 엔이 소설을 쓰자고 마음먹은 계기가 되었다는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단편집 "에렌디라" 속 수록작인 "단순한 에렌디라 와 무정한 할머니의 믿을 수 없이 슬픈 이야기" 정도만 국내 출간되었을 뿐입니다. 마르케스 작품은 많이 읽어보지 못했는데 '일정한 틀의 캐릭터에서 빠져나온 뭔가를 소설에서 배운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라는 미카미의 말이 마음에 들기에 한 번 읽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저런 만화 이야기도 하는데, "블랙잭" 이야기에서는 확실히 두 사람의 깊은 내공이 느껴지더군요. 미카미 엔이야 블랙잭이 "비블리아 고서당" 시리즈 한 편에서도 소개되었으니 그렇다 쳐도, 그에 뒤지지 않는 구라타가 참 대단했습니다.
후지코 후지오 이야기는 제가 좋아하는 작가라 더 반가왔어요. "Utopia"도 아마 "비블리아 고서당" 에서 소개되었었죠? 개인적으로는 "만화의 길" 에서 접했기에 더욱 반가왔고요. 어차피 지금은 복간되어 구하기 그리 어렵지 않기는 하지만요. "모쟈코"와 "에스퍼 마미"는 개인적으로 좋아해서 언급되는게 기뻤습니다. 또 "유혈귀" 라는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의 내용을 상당히 길게 언급하는데 결말이 뭔지 궁금해 미칠 지경으로 만들어서 구해 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흡혈귀는 신인류고, 구인류는 선량한 신인류의 피를 흘리게 만드는 유혈귀였으며 결국 주인공도 신인류?가 되어 즐겁게 살아간다는, 발표 시기를 감안하면 굉장히 시대를 앞서간 호러물이더군요. "만화의 길" 에서는 데즈카 오사무, 이시노모리 쇼타로, 아카츠카 후지오 등 다른 거장들보다 못한 모습으로 그려지지만, 누가뭐래도 후지코 후지오 역시 뒤지지 않는 천재임에는 분명해요.
그리고 소설가로 계속 활동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도 기억에 남습니다. 소설가가 되고 처음 안 사실은 계속 하는게 정말 어렵다는 점이라는군요. 지금까지의 인생에서 쌓아두었던 것을 토해내면 첫 번째 책은 어떻게든 모양은 갖출 수 있지만, 문제는 그 뒤로 세 번째, 네 번째 때 제대로 쓸 수 있는 사람만이 프로로서 해 나갈 수 있다는 말인데 여러가지 생각할 거리를 많이 전해줍니다. 데뷰작이 가장 좋은 작가들이 많은 이유도 마찬가지겠지요.
책을 사랑해서 벌어진 에피소드들도 이야기하는데, 주로 재미있는 책을 읽었을 때의 경험들에 대한 수다입니다. 미카미 엔이 코니 윌리스의 "항로" 라는 소설을 읽을 때, 절묘한 부분에서 상권이 끝났지만 한밤중이라 문을 연 서점이 없었다는 이야기처럼요. 저도 이런 경험이 몇 번 있습니다. "용오"의 복제 예수 에피소드 다음 권을 사기 위해 업무 중 홍대 앞 한양 문고로 뛰어갔던 적도 있고, "불멸의 용병" 이라는 해적판으로 접한 "베르세르크" 의 그리피스 편 다음을 읽기 위해 한 밤중에 도서대여점을 돌아다닌 적도 있으니까요.
페이지를 접거나 메모하는 행동에 대한 대화도 정말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 이야기같아 좋았습니다. 저는 둘 다 안합니다만.
책 때문에 담배를 끊고 심지어 하루에 라면 한 개로 버틴다는 이야기는 좀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지막의 베스트셀러는 왠지 꺼린다는 미카미와 구라타의 말도 공감이 갔습니다. 저도 좀 청개구리과라서, 인기가 있다고 하면 그냥 좀 싫거든요.
이렇게 다양한 책에 대한 수다가 장황하게 펼쳐지는데, 공감가는 이야기도 있고 동의하지 못하는 이야기도 있고, 재미있는 이야기도 있고 뭐 그렇습니다. 그래도 재미만 놓고보면 나쁘지는 않았어요. 별점은 2.5점입니다.
그러나 "탐정, 범죄, 미스터리의 간략한 역사" 리뷰에서 적었듯이, 수다 중 언급되는 작품들 중 국내 출간된 작품 정도는 조사하여 알려주었어야 했습니다. 하루도 안 걸렸을 것 같은데, 이 정도 수고도 하지 않는 이유를 도무지 모르겠네요.
2014/04/19
알라딘 중고서적을 잘 찾아보면... 온라인 비블리아 고서당
여러모로 뒤숭숭하고 힘들고 어려운 시기네요. 책도 손에 잘 잡히지 않을 정도로 말이죠. 세월호 생존자 구조가 모쪼록 잘 이루어지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이번에는 읽은 책도 없고 하니, 오무라이스 잼잼 리뷰에서 언급했던 알라딘 중고서적에 대해 조금 썰을 풀어보겠습니다.
개인적으로 알라딘 중고도서 헌터인데 왠만한 책은 알라딘 직배송으로만 구입합니다. 회원 판매가격은 이해불가 가격도 많고 배송비가 얄짤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완벽하게 절판되었고 희귀본이라면? 당연히 회원 판매를 알아봐야죠. 알라딘 판매 회원 중에도 몇몇 절판 희귀본 전문 셀러가 있습니다.
"비블리아 고서당"의 온라인 버전인 셈이지요.
그 중 한 셀러의 판매 목록에 들어가서 훑어보니 참 많은 책들이 출간되고 절판되었다는데 놀랐습니다. 이런 책까지 나왔었나? 싶은 책도 있고요.
가장 놀라운 가격의 책은
요거입니다. 출간된 지 10년도 안 된 책인데 가격이 상당해요.
보통 절판 희귀본의 시세는 정가의 1.5~2배인데, 이 책은 3배에 달할 뿐더러 원래 정가도 고가의 책이라 높은 가격이 형성된 듯 싶습니다.
이런저런 정보를 접하니 제가 가진 고서들의 가격이 궁금해져서 저만의 다카키 아키미쓰 컬렉션을 한번 찾아보았습니다. 다른 책은 아예 검색도 안 되고, 그나마 검색된 "제로의 밀월"은 2,000원... 그 외의 추리소설들 모두 가격이 형편없더군요. 재간되기 전의 "점성술 살인사건"과 "관 시리즈", "불야성" 등을 소장했을 때에는 중고가격이 상당했었는데... 다 오래전 일이 되어버렸네요. 아쉽...
제가 가진 책이야 망했지만, 그래도 잘 관심을 가지면 갖고 싶은 책을 건질 수 있는 만큼 앞으로도 중고도서 헌터짓은 계속할 예정입니다. 바로 오늘도 이 책을 5,000원 대에 건졌거든요! 이러니 헌터짓을 그만둘 수 없지요.
2014/01/13
민들레 소녀 - 로버트 F 영 / 조현진 : 별점 3점
| 민들레 소녀 - 로버트 F. 영 지음, 조현진 옮김/리젬 |
전부 15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는 SF 단편집.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3"을 읽고 읽게 되었습니다. 뭐 도저히 안 읽을 수 없게 소개를 해 놔서... 도대체 그 소녀가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었어요. 참고로 "비블리아.." 이전에 일본 애니메이션 "클라나드"에서 비중 있게 언급된 것을 계기로 되어 국내에 번역 출간되었다고 해설에서 소개해 주네요. 일본 SF 쪽에서는 그만큼 잘 알려진 작품이라는 뜻이겠죠?
여튼 각설하고, 이 책의 가장 대단한 점은 넓은 장르 범위를 커버한다는 점입니다. 작품의 폭이 넓은 작가야 스티븐 킹 등 이쪽 분야에서는 널리고 널렸습니다만, 모든 장르 자체를 섭렵하여 넘나드는 작가는 보기 드물지요. 킹의 코미디야 있다고 쳐도, 달달한 러브 스토리는 쉽게 연상이 되지 않잖아요? 그러나 이 단편집은 러브 스토리에서 시작해서 코미디, 풍자극, 정통 SF, 쇼트-쇼트 스타일 꽁트 등 다양한 장르로 가득차 있습니다. 어떤 작품에서는 젤라즈니의 문학적인 SF, 어떤 작품에서는 호시 신이치의 '쇼트쇼트'가, 어떤 작품에서는 아시모프의 묵직한 종교적 SF가, 어떤 작품에서는 레이 브래드버리의 블랙 유머나 '기묘한 맛'이 떠오르거든요.
보다 자세하게는, 달달하고 잔잔한 사랑 이야기로 딱 한 번 남은 시간여행을 어떻게 사용했는지에 대한 깜짝 반전이 괜찮은 타임슬립 SF "민들레 소녀", 유쾌한 결말이 돋보이는 깜찍한 SF 요정물(?) 코미디인 "프라이팬 조종사", 자본가들의 계획으로 단순 소비재인 자동차와 TV에 매몰되어 정작 중요한 것을 잃어가는 소시민들을 통해 자본주의를 비판 및 풍자하는 "21세기 중고차 매장에서", "팝콘 튀기는 TV", 종교적인 성찰을 다룬 "과거와 미래의 술"과 "약속의 별", 문학의 중요성을 문학에 대해 잘 모르는 안드로이드들을 통해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시인과 사랑에 빠진 큐레이터", "당신의 영혼이 머물 자리", 우주비행사의 고독을 일상계스러운 분위기로 굉장히 설득력 있게 그려낸 분위기 있는 정통 SF "별들이 부른다", 가벼운 쇼트-쇼트 스타일 콩트 코미디인 "파란 모래의 지구", "하늘에 새겨진 글자", "시계장치 오렌지"를 연상케 하는 끔찍한 마인드컨트롤 설정이 돋보이는 기묘한 맛 류의 "붉은 학교", 일종의 타임 패러독스 SF "시간을 되돌린 소녀" 등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수록작들의 완성도 역시 명성에 걸맞으며 책장도 쭉쭉 넘어가는, 쉽게 읽히면서도 독자의 흥미를 끄는 작품들이었어요.
하지만 지금 읽기에는 시대가 너무 많이 지난 듯한 느낌이 드는 작품도 많습니다. 유쾌한 꽁트나 코미디 쪽은 괜찮은데 종교적인 주제의 작품, 풍자적인 작품의 경우는 많이 낡아 보였어요. 종교적 색채가와 설교적 분위기가 과한 것도 그리 마음에 들지는 않았고요.
아울러 전체적으로 독자에게 설명이 부족합니다. 여운을 많이 남기고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고자 하는게 작가의 스타일로 보이지는 하지만, 남용된 느낌입니다.
그래도 완성도 높은 단편집임에는 분명합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개인적인 베스트는 "민들레 소녀" , "프라이팬 조종사"와 "붉은 학교"를 꼽겠습니다. "민들레 소녀"는 SF 장르물 중에서는 손 꼽을만한 멋진 러브 스토리이며, "프라이팬 조종사"는 기발한 상상력을 높이 평가하기 때문입니다. "붉은 학교"는 교육에 대한 서늘한 비판이 인상적이었고요. 다른 작품들도 괜찮은 만큼 읽기 편한 SF 장르물을 좋아하시는 분들께 추천드립니다.
참고로 이 책을 소개한 다른 창작물에 의해 접하고 흥미를 가지신 분들이라면, 와닿지 않을 작품이 제법 많다는 점은 꼭 염두에 두시길 바랍니다.
2025/03/21
마트료시카의 밤 - 아쓰카와 다쓰미 / 이재원 : 별점 2.5점
![]() | 마트료시카의 밤 - ![]() 아쓰카와 다쓰미 지음, 이재원 옮김/리드비 |
94년에 출생하여 2017년 데뷰한 추리 소설계의 신성이 발표한 두 번째 책입니다. 신예 작가의 재기넘치는 아이디어가 가득한 단편 네 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특징이라면 마지막 수록작 외의 수록작 모두에서 추리 소설 매니아의 향취를 짙게 풍긴다는 점입니다. 모두 코로나 시기를 무대로 하고 있어서, 등장인물들이 철저하게 마스크를 하고 있는 것도 눈에 뜨이고요. 추리적으로도 볼만했고, 기발한 작품이 많아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다만 억지스러운 설정이 많고, 너무 트릭과 반전에 열중한 느낌이 드는건 좀 별로였습니다. 그래서 전체 평균한 별점은 2.5점입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스포일러 포함되어 있는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위험한 도박 - 사립 탐정 와카쓰키 하루미"
제목은 와카타케 나나미의 하무라 아키라 시리즈를 연상시킵니다. 서점과 관련된 여탐정이 등장한다는 설정도 비슷하고요. 헌책방이 주요 무대라는 점에서는 "비블리아 고서당" 시리즈가 떠오르기도 합니다.
작 중 핵심 소재인 유가미 유즈류의 "얼룩무늬 눈밭"은 가공의 작품이지만, 이외에는 모두 실존하는 유명 작품들이 대거 언급되어 재미를 더해 줍니다. "병든 대형견들의 밤"이라는 작품을 극찬하는데 한 번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그 외 작품들에 대한 소개도 인상적이고요. 책 소개만 써도 먹고 살겠다 싶을 정도로 잘 쓰네요.
추리적으로도 볼 만 합니다. 마키무라 신이치의 뒤바뀐 가방을 찾던 탐정 '와카쓰키 하루미'가 알고보니 신이치를 살해한 범인이었다는게 진상인데, 이를 서술 트릭을 도입해서 효과적으로 풀어내고 있습니다. 이를 와카쓰키 하루미의 명함이 단 한 장 뿐이었다는 핵심 증거를 통해 잘 알려주고요. 와카쓰키 하루미가 추리작가 히루마 다카하루와 동일인이라는 반전도 괜찮았어요.
그러나 마침 마키무라를 죽인 날, 범인의 살인 증거가 담긴 가방이 뒤바뀌었다는 상황은 억지스럽고, 명함이 한 장이라는게 증거라는 주장은 빈약합니다. 명함이 정말 한 장 밖에 안 남았을 수도 있으니까요. 또, 명함은 얼마든지 추가로 만들 수 있는데 탐정 명함 한 장으로 탐문 수사를 이어나가는 모습도 비현실적이었습니다. 경찰 신분증도 아니잖아요?
그래서 별점은 2.5점. 헌책방, 고전 추리 명작, 추리 매니아 등 좋아하는 소재는 한 가득인데, 추리적으로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2021년도 입시’라는 제목의 추리소설"
추리 소설 애호가라면 꿈꿀만한 작품. 대학교 입시에 추리 소설의 진범 찾기가 출제된다는 설정이거든요. 출제 범위로 아유카와 데쓰야, 다카기 아키미쓰, 엘러리 퀸, 아야쓰지 유키토,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작품이 언급되며, 실제 시험 문제도 한 편의 추리 소설의 문제 편입니다. 이런 대학이 있다면 꼭 한 번 시험에 응시해 봐야 겠습니다.
전통적인 소설 구성이 아니라 뉴스, 인터뷰, 각종 보도 자료와 커뮤니티 의견들로 진행되는 것도 독특했습니다. 여러 명이 각자의 추리를 펼치는데 효과적이었다 생각되네요. 해답으로는 유명 학원 강사, 수험생 및 대학 측의 제시되어 추리적으로도 풍성하고요.
이 중 학원 강사는 6분할 화면, 생일 선물이 놓여진 탁자 위에 놓여진 사물의 개수가 6개라는 점에 착안하여, 원격 생일 파티에 참석한 사람은 5명이 아니라 6명이었다는 추리를 내 놓습니다. 이 친구는 왕따라 모두가 없는 사람이라 여겼는데, 범인이 선물한 탁상 선풍기가 현장의 연기를 흩날리게 만들어 컴퓨터 위치를 알아냈다면서요. 어떻게 범행을 저질렀는지에 대한 설명이 빈약하여 제대로 된 추리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착안점은 재미있었습니다. 범인 이름까지 소설 내에서 짚어내는 발상은 놀라왔고요. 확실히 카리스마 학원 강사는 뭐가 달라도 다르네요.
수험생의 추리는 범인은 코드를 더듬어 컴퓨터 위치를 알아낼 수 있었고, 그렇다면 범인은 피해자 방에서 나타났으며, 범인은 에나미 에리라고 추리합니다. 이에 대한 근거도 앞의 지문을 통해 상세하게 들고 있고요. 이 정도면 합격을 시켜도 무방한 좋은 추리였습니다.
이 둘에 비하면 대학 측에서 제기한 해답은 형편없는 수준입니다. 피해자가 쓰러진건 연극이었고, 피해자에게 가장 먼저 달려갔던 친구 오우가 범인이었다는 지극히 상식적이고 간단한 답이거든요. 이런걸 해답이라고 제시하고, 앞서 지문에 있던 단서들 중 불리하거나 오독할 수 있는걸 멋대로 삭제해 버렸으니 이 수험을 주도한 기자키 교지로 교수가 짤리는건 당연합니다. 제가 수험생이더라도 가만 두지 않았을거에요.
이렇게 재미있는 아이디어를 잘 펼쳐놓고는 있는데, 딱 한 가지가 아쉽습니다. '무한대'라는 대학 내 동아리가 마음에 들지 않는 교수를 찍어내기 위해 이런 입시 시험을 기획했고, 시험에 통과했던 신입생을 낚아챈다는 진상이자 반전입니다. 이는 완전히 불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일개 동아리가 입시를 의도한대로 진행시킬 수 있다는건 현실적이지도 않고요.
추리 소설 애호가로서, 차라리 획기적인 새로운 대학 입학 시험이 도입되었다는 설정으로 문제편, 여러 사람의 해답편을 소개하고 결말로 정말 좋은 제도였다!며 추리 시험이 전국으로 확산된다는 결말이 더 낫지 않았을까 싶네요. 별점은 2.5점입니다.
"마트료시카의 밤"
무대에서 2인극을 펼치면서, 과거 있었던 사건의 진상을 드러낸다는 내용으로 작가가 편집자에게 연극을 제안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알고보니 편집자는 작가의 부인과 불륜 관계였고, 작가는 편집자의 지문을 과도에 묻히기 위해 연극을 벌였습니다. 이미 아내를 과도로 살해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편집자가 이 사실을 알아채고 협박에 나섭니다. 궁지에 몰린 작가는 편집자가 진짜 범인이라는걸 추리해내고요.
이렇게 계속해서 새로운 진상이 밝혀지는 구조가 재미있었습니다. 까면 깔 수록, 열면 열 수록 계속 새로운 진상이 밝혀진다는 것에서 제목이 유래한 것으로 보입니다. 작가는 이를 '양파형'이라고 부르는데, "발자국"이라는 영화를 참고한 모양이네요.
작 중 금고 다이얼을 여는 암호로 "심장과 왼손", "요도妖盜 S 79호", "붉은 오른손", "대여 보트 13호", "화려한 유괴", "다이얼 7을 돌릴 때"이 언급되는건 과연 추리 매니아구나 싶었고요. 이 작품들의 구성도 작가의 장치 중 하나라는 것, 그 외 사소한 대사들이 모두 단서가 된다는 구성도 치밀한 편입니다.
하지만 원작자인 소설가가 진짜 살인을 저질렀다는걸 연극 연출가가 알아채 협박하기 위해 무대를 꾸몄고, 소설가가 이를 이용해 연출가와 손을 잡고 다른 작가들을 협박할 계획을 세운다는 결말은 억지스럽습니다. 소설가가 아내를 죽였던 사건의 진상을 무대에서 폭로한다고 해도 그게 소설가에게 타격을 줄 수 있을까요? 이미 십여년 전 사건인데다가 증거도 없는데 말이지요. 저는 오히려 연출가가 무고죄로 고소당할거라고 생각합니다. 소설가는 과거 사건을 일종의 노이즈 마케팅으로 이용하면 되니 일석이조일거에요. 게다가 이 뒤에 이어지는, 이건 전부 영화였다는 반전도 억지스럽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지나치게 '까서' 오히려 감점이 되어 버리고 말았네요. 뭐든 지나치면 좋지 않은 법입니다. 그냥 앞부분 연극으로만 끝내는게 좋았을겁니다. 실제로 연극으로 만들어도 재미있었을 이야기니까요.
"6명의 격앙된 마스크맨"
대학교 복면 레슬러들이 모인 자리에서, 가장 뛰어났던 레슬러 '센론 마스크 49세(하자마 지로)'가 살해당한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내용입니다.
복면 레슬러의 마스크가 찢어져 있었던 것, 그리고 마스크 내부 혈흔에 주목하여 진범이 누구인지 알아내는 추리는 좋습니다. 앞서의 작품들과는 다르게 레슬링에 대한 애정을 담뿍 담은 구성도 마음에 듭니다. 사람들이 하자마 지로로 알고 있던 '센론 마스크 49세'의 정체는 지로의 형 가즈토시였고, 피해자 하자마 지로가 가즈토시를 죽이려다 되려 죽고 말았으며 이 탓에 복면을 찢을 수 밖에 없었다는 진상은 '복면 레슬러'가 범인이자 피해자였기에 가능했기 때문입니다. 그 외 여러가지 설정 - 마람프와 지로가 전날 술을 마셨던 영수증 등 - 도 단서로 활용될 수 있도록 잘 짜여져 있습니다. 유쾌하고 떠들썩한 분위기도 잘 어울리고요.
그래서 별점은 3점입니다. 프로 레슬링 팬으로서, 세계 최초라고 해도 무방할 복면 레슬러 살인 사건을 다룬 추리 소설에는 나쁜 점수를 주기 어렵지요. 수록작 중에서 완성도로는 가장 좋기도 하고요.
2015/04/04
위험한 책 - 카를로스 마리아 도밍게스 / 조원규 : 별점 2점
| 위험한 책 - 카를로스 마리아 도밍게스 지음, 조원규 옮김/들녘 |
케임브리지 대학의 여교수 블루마 레논은 에밀리 디킨슨의 시집을 읽다가 교통사고로 죽었다. "나"는 과거 블루마의 연인이었는데, 그녀 앞으로 보내져 온 조셉 콘래드의 책 "섀도 라인"을 전달받았다. 책은 시멘트가 앞뒤로 발라져 먼지가 끝없이 떨어지는 상태였다. "나"는 책을 보내온 남자 카를로스 브라우어를 찾아 나서는데...
아르헨티나 출신으로 우루과이에서 활동하는 작가의 작품입니다. 정말 오랜만에 읽는 제3세계 문학으로, 100여 페이지를 조금 넘는 정도의 중편 소설입니다. 수집광의 광기를 드라마틱하게 그리고 있지요.
특정 수집광(?)의 변태적인 행위를 그린 작품은 많이 있습니다. 대표작은 "나폴레옹 광"일테고요. 도서 수집광을 소재로 다룬 작품도 당연히 많습니다. 특정 도서의 희귀본을 수집하기 위해 범죄까지 불사하는 인물이 등장하는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 수첩", 책 수집광의 아내가 살해당한다는 "시미가의 붕괴"가 그러합니다. 조금 방향성은 다르지만 레베르테의 "뒤마클럽"에서는 책 사냥꾼이 주인공으로 등장하고요. 이런 작품들에서는 보통 수집광의 수집에 대한 욕구가 핵심 소재로 그려지는데, 이 작품은 책 수집광이 책과 함께 살기 위해 어떤 결론에 도달하는지를 중심으로 그리고 있다는 점이 다릅니다.
그러나 카를로스 브라우어가 책과 함께 살기 위해 "책으로 된 집을 짓는다"는 설정은 그리 새롭다고 보긴 어렵습니다. 수집광들이 자신이 모은 수집품으로 무언가를 만든다는 이야기는 이전에도 종종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책이라는 소재와는 잘 어울리는 설정이었고, 블루마의 요청으로 결국 그 집을 다시 허문다는 결말이나, 핵심만 간결하게 전개되는 압축된 구성은 나름 괜찮았어요. 다만 전체적으로 신선하다는 느낌까지는 들지 않았던게 문제이지요.
무언가의 진상을 찾는다는 점에서는 추리 소설 스타일을 따르고 있고, 책 소개에서도 미스터리 형식이라고 소개하고 있지만 추리적으로는 별볼일 없다는 것도 감점 요소입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입니다. 새로운 무언가를 기대했지만 정작 내용은 별로 건질 게 없었습니다. 이미 절판되었으니 구해보시기 어렵겠지만, 구태여 구해 읽어보실 필요도 없습니다.
2014/07/01
알라딘 중고서적 헌팅 중....
알라딘 중고서적을 잘 찾아보면... 온라인 비블리아 고서당
알라딘 헌팅(?) 중 기이한 헌책방을 발견했습니다. 어마어마한 고가에 형성된 다양한 절판본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쿼런틴"이 거의 20만 원! 소장 중인 형이 아주 좋아하겠군요. 그 외에도 얼마 전 읽었던 "반전"은 14만 원, "마술사가 너무 많다"는 거의 20만 원이고... 만화는 다이나믹프로 전성기 화백의 "돌아온 권법소년 1, 2"가 무려 80만 원! "로보트 킹과 별나라 왕녀", "우주의 전사대와 로보트 킹"은 각각 170만 원! 이건 제가 초등학생 때 구입한 책이 아직 본가에 있어서 더 두근두근합니다. 무척 낡고 헐긴 했지만 과연 얼마나 받을지 궁금해집니다.
본가를 뒤지면 절판된 책은 제법 많이 발굴할 수 있을 텐데, 이 헌책방과 자웅을 겨룰 수 있을까요? 물론 그 전에 과연 팔리는 책인지부터 알아봐야겠지만요.
2014/02/11
2013년 하우미스터리 선정, 올해의 추리소설!
국내 최고의 추리 애호가 커뮤니티 하우미스터리에서 진행한 투표입니다. 2013년 출간된 추리소설을 대상으로 각자 3권씩 투표하여 결과를 합산하는 방식입니다. 진짜 추리 애호가들이 뽑은 리스트인 셈이지요. 그리고 디자인이 좋은 책도 한 권 뽑게 되어 있고요. 1위~3위는 아래와 같습니다. 전체 순위는 여기서 확인하시길.
1위 14표
"64" 요코야마 히데오, 검은 숲
"살의의 쐐기" 에드 맥베인, 피니스 아프리카에
3위 6표
"나를 찾아줘" 길리언 플린, 푸른숲
"레드 브레스트" 요 네스뵈, 비채
"작자미상, 미스터리 작가가 읽는 책" 미쓰다 신조, 한스미디어
베스트 커버 디자인
3표
소실점의 적절한 성공 사례 "허구추리"
두 권이 손을 맞잡는 "작자미상, 미스터리 작가가 읽는 책"
핸디한 판형, 안정적인 시리즈의 전개 "87분서 시리즈"
참고로 제가 선정한 1, 2위는 에드 맥베인의 "살의의 쐐기"와 "킹의 몸값", 3위는 5편의 공동 3위 중 별점 4점짜리 단편이 수록되어 있는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3"이고 디자인은 "구석의 노인 사건집"을 꼽았습니다. 순위는 제 리뷰 별점에 따랐고, 디자인은 엘릭시르, 피니스 아프리카에 등 신진 출판사와 레이블의 디자인이 아주 돋보여서 한 권을 꼽기는 정말로 어려웠지만 "구석의 노인 사건집"이 판형부터 마음에 들 뿐더러, 레이블의 통일성을 유지하면서도 수준 높은 일러스트들을 각 챕터마다 배치하고 관련된 정보까지 전달하는 등의 디테일이 빼어났기 때문에 선정했습니다.
제 1위인 "살의의 쐐기"가 전체 1위를 해서 기쁘기도 한데, 공동 1위인 "64"도 꼭 읽어봐야겠네요.
2013/12/31
2013 내 블로그 리뷰 총결산
10년차, 열 번째 블로그 결산 보고입니다. 강산이 변했네요.
2013년 읽은 책 중 리뷰를 남긴 책은 추리 / 호러 장르문학 58 (47)권, 기타 장르문학 3 (8)권, 역사서 21 (15)권, 디자인 및 스터디 도서 0 (4)권, Food 및 구루메 관련 도서 4 (4)권, 기타 도서 13 (17)권으로 모두 99 (95)권입니다(괄호는 작년). 작년보다 좀 늘기는 했는데 결산의 기준이 될만한 10권 이상 읽은 분야는 작년과 마찬가지로 추리 / 호러, 역사서, 기타 도서 뿐입니다.
결산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2013년 베스트 추리소설 :
단평 : 명불허전의 고전명작.
올해도 추리소설은 읽은 양에 비하면 흉작이었습니다. 작년보다는 낫지만 별점 4점을 넘는 작품이 딱 두 개, 별점 4.5점인 이 작품과 4점인 "미스터리의 계보" 두 편에 불과했으니까요. 때문에 이 작품이 올해의 베스트입니다.
덧붙이자면, 올해는 단편집에서 성과가 많았는데 특히나 "순서의 문제"와 "꽃 아래 봄에 죽기를",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1, 3"에서 별점 4점짜리 단편이 있었으니 참고하시길.
2013년 워스트 추리소설 :
단평 : 소설 이하
별점 2점 이하의 작품도 수두룩했던 올 한 해이지만 이 책은 그 중 군계일학이라 칭할 만합니다. 소설이라고 부르기도 어려운 잡문에 불과하거든요. 자료적 가치 때문에 점수를 좀 주기는 했지만 솔직히 별점 1점도 과합니다.
2013년 베스트 역사 도서 :
단평 : 내용과 자료적 가치 모두 최고
두말할 것도 없는 올해의 베스트. 모든 면에서 만족스러운데 심지어 50% 할인된 가격에 구입했다는!
2013년 워스트 역사 도서 :
단평 : 추억팔이치고는 과한 가격
재미 측면에서는 딱히 나쁘다고 하기는 어려우나, 옛 추억을 되새기며 구입한 가격에 비하면 책의 완성도가 너무 떨어져서 워스트로 꼽습니다. 역시나 추억은 추억일 때가 아름다운 법이네요.
2013년 베스트 기타 도서 :
단평 : 명불허전의 고전명작 (2)
딸아이를 위해 구입한 동화인데 여전한 재미와 흥분을 가져다주는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일러스트까지 최고예요.
2013년 워스트 기타 도서 :
단평 : 치졸한 홈즈 이름팔이
홈즈의 이름을 빌어 팔아먹으려는 얄팍한 상술이 돋보이는 퍼즐책.
결산평 :
작년보다는 많이 읽고 개인적 목표인 100권에 근접했기에 나름 만족합니다. 아무리 추리소설 블로그라고 하더라도 편식이 심하기는 한데, 제가 재미있게 생각하고 읽고 싶어하는 책을 읽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니 어쩔 수 없죠.
여튼 이제 10년차에 접어들었군요. 이글루스도 안정화의 희망이 슬슬 보이는 듯해서 다행입니다. 제 목표인 추리소설 1,000권 읽고 리뷰하기까지 370권이 남았는데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때까지 잘 버텨주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블로그에 들러주시는 여러분들도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내년에는 올해보다 더 많은 것을 이루고 성취하시는 한 해가 되셨으면 합니다. 제 블로그를 들러주신다면 일상 생활의 소소한 것과 남들이 관심 두지 않는 것에도 관심을 가지시는 진짜 디테일한 분임이 분명하니 내년에는 정말 잘 되실 겁니다~! 해피뉴이어~!
2016/09/16
변두리 화과자점 구리마루당 1 - 니토리 고이치 / 이소담 : 별점 2.5점
![]() | 변두리 화과자점 구리마루당 1 -
니토리 고이치 지음, 이소담 옮김/은행나무 |
제목 그대로 아사쿠사 변두리의 3대째 이어져 내려오는 화과자점 구리마루당의 주인 구리타 진과 수수께끼의 미녀 아오이가 소소한 수수께끼와 갈등을 해결해 나간다는 내용의 일상계 중단편집입니다. 모두 3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동일하게 화과자점을 주제로 한 일상계 작품인 "화과자의 안"을 이전에 읽어보았는데 두 작품을 비교해보자면, 이 작품이 추리적 요소는 덜하고 로맨스, 인간 드라마가 더욱 강조되어 있습니다. 특정 영역의 전문가가 등장하는 로맨틱 일상계라는 점에서 "비블리아 고서당" 시리즈 히트에 편승한 느낌이 듭니다.
이러한 선입견 탓에 그동안 선뜻 손이 가지 않았습니다. 비슷한 류인 "추억의 시간을 수리합니다"가 명백한 지뢰였던 탓도 컸고요. 하지만 추석 맞이로 가볍게 집어들고 읽어 본 결과, 의외로 만족했습니다.
물론 "추억의 시간을..."과 마찬가지로 추리적 요소가 많이 부족하다는 단점은 명확합니다. 과연 이 작품을 일상계 추리물로 부를 수 있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에요. 그러나 그런대로 재미있게 읽었던건 제가 "요리"와 "음식"이라는 분야에도 큰 관심이 있는 덕분입니다. 수록작 세 편 모두 "음식의 맛"이 가장 중요한 소재거든요. 첫 번째 이야기에서 '과거의 맛이 현재에 재현되지 못한 이유'가 대표적이며, 다른 이야기들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화과자를 싫어하는 친구에게 화과자를 좋아하게 만드는 방법, 와산본이 무엇인지 등 "화과자"와 해당 분야의 전문 지식에 집중하여 이야기를 풀어가서 음식, 요리에 대해 흥미를 느낀다면 즐길거리가 제법 많습니다.
또 첫번째 이야기 "마메다이후쿠" 만큼은 부족하더라도 분명한 일상계 추리물이기도 합니다. 브라질로 출국한 후 20년만에 구리마루당을 찾은 다나베의 말 실수를 토대로 숨겨진 진상을 알아낸다는 전개는 그야말로 일상계의 왕도죠. 이에 더해 "곶감 맛 자체는 담백해서 기억이 나지 않는다."라는 표현에서 수상함을 느낀 이유가 "주인공이 화과자 전문가"였다는 점에서 작품의 특징과 잘 어울리고요. 하기사 주어진 정보를 토대로 맛의 비결이나 레시피를 찾는 이야기 역시 넓게 보면 추리의 영역이지요.
아울러 만화적이기는 해도 캐릭터의 매력도 상당합니다. 특히 주인공인 구리마루당 3대인 구리타 진이 괜찮았어요. 화과자 가게를 잇기 위해 어렸을 때부터 수련을 쌓았지만, 반항기에 한창 엇나가다가 부모님의 급작스러운 죽음으로 마음을 다잡고 가게를 이었다는 설정입니다. 이러한 독특한 이력 덕분에 이런저런 이야기에 위화감 없이 녹아듭니다. 어린 시절의 수련과 재능으로 실력은 나름 확실하나 그에 걸맞는 연륜과 경험은 갖추지 못했다는 점에서는 "맛의 달인" 지로와 약간 비슷하네요.
컴비로 등장하는 화과자에 정통한 정체불명의 미녀 아오이 역시 설정만큼은 완전 스테레오 타입이지만 지독할 정도로 순진하고 착한 면에 관심 분야에 대한 초인적인 호기심이 부각되어 나름의 매력을 전해줍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조용하고 고즈넉한 동네 풍경 속 잔잔한 드라마라는 측면에서는 볼만합니다. 단, 추리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수록 이야기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마메다이후쿠"
화과자점 구리마루당에 20년 전 신세를 졌다는 다나베라는 손님이 찾아왔다. 그는 20년 전 먹었던 마메다이후쿠를 주문했지만, 맛이 다르다고 말했다. 구리마루당 주인 구리타 진은 충격을 받은 나머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지인인 카페 마스터가 소개해 준 아오이라는 수수께끼의 미녀에게 의지하게 되는데...
요리만화에 흔히 나옴직한 "추억의 맛을 찾아드립니다." 스타일의 이야기입니다. 첫번째 에피소드답게 구리타 진과 그 주변 인물 관계도 상세하게 설명되고요.
수록작 중 거의 유일한 추리물로 "왜 마메다이후쿠의 맛이 다른지?"에 대한 설명(시부키리가 너무 많았다), 그리고 앞서 말씀드렸던대로 다나베의 "곶감"에 대한 말실수를 "곶감"의 정의를 통해 밝혀 진상을 드러내는 전개는 괜찮습니다. 망해가는 구리마루당을 살리려는 소꼽친구 유카의 작전이라는 동기도 그럴듯했고요.
다나베가 20년 전 먹었던 마메다이후쿠의 맛과 지금의 맛이 다르다는 것을 강력하게 주장할 정도로 절대 미각의 소유자라는 것은 영 설득력이 없으며, 구리타 진은 기본적인 부분에서 새로운 시도는 하지 않는 무능한 장인인지 의심스럽다는 약점은 있지만 시리즈의 첫 작품치고는 괜찮았던 소품입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도라야키"
"이러쿵저러쿵해도 이미지는 실체가 없는 거니까요. 실제 체험에는 절대 못 이겨요. 자기 눈으로 보고 자기 손으로 만지고...... 그렇게 실제로 경험하면 이미지는 간단히 바뀌죠. 말하자면 이미지란 불완전한 정보, 즉 선입견이니까요."
어렸을 때부터 구리타의 라이벌인 아사바가 대학 축제에 구리타를 초대했다. 구리타는 아사바가 만든 "베이비 카스텔라"의 맛을 인정했지만, 아사바는 화과자를 싫어한다는 말로 구리타를 자극했다.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아오이는 아사바에게 화과자 혐오를 고쳐주겠다고 약속하는데...
드라마는 별게 없지만 카스테라, 다이나곤 팥과 같은 기본 재료 설명은 물론, 1등 상품인 팥을 구하기 위해 "화과자 퀴즈 대회"에 나가 각종 화과자 관련 상식을 화려하게 펼쳐내는게 특징인 작품입니다.
또 카스테라는 좋아하는 아사바의 화과자 혐오를 고쳐주기 위해, 카스테라 반죽에 팥소를 더하여 도라야키를 만들어 준다는 결말은 깔끔하며 설득력 높습니다. 다툼과 갈등이 "맛있는 음식을 먹고 해결!" 된다는 "맛의 달인" 류의 작품에서는 억지스러운 전개가 가끔 보이기도 하는데, 이 작품 정도면 잘 마무리된 것 같아요. 이게 맛이 없을리가 없을 뿐더러, 맛이라는 것은 작중 아오이의 말 그대로 경험이 가장 중요한 것이니까요.
그래서 추리적으로는 별볼일 없지만 별점은 3점입니다. 화과자 관련 이야기로는 최고라 할 수 있겠습니다.
"히가시"
"화과자를 다루는 사람으로서 고안할 방법은 딱 한 가지. 입으로 말해서 못 알아듣는 사람에게는 먹여서 알게 해주자고요!"
어린 시절 공부를 가르쳐주곤 했던 동네 누나 고하루를 오랫만에 만난 구리타는 고하루의 집을 누군가 엿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바닥에 흘린 과자 부스러기와 엿보기를 당한 날짜를 토대로, 범인은 고하루와 거의 의절상태인 친아버지 기라라는게 드러났다. 구리타는 기라를 찾아가 설득하려 했지만 실패하는데....
수록작 중 가장 처지는 이야기입니다. 이야기부터가 별게 없는 탓입니다. 엿보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내려면, 그가 남긴 과자 부스러기를 조사하는 것보다 잠복해서 잡는게 가장 확실한 방법이니까요.
게다가 맛있는 과자를 먹었다고 모든 갈등이 눈녹듯 사라지는 마무리는 솔직히 어처구니 없습니다. 이런 류의 이야기에서 가장 조심해야 하는 전개였습니다. "도라야키"에서처럼 설득력 있게 넘어가면 모를까, 갈등과는 하등의 상관이 없는 과자를 맛보고 갈등이 해결된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아요. 그렇다면 북경오리나 프랑스 요리를 먹어도 되는 게 아니었을까요?
구리타 진의 부모님에 대한 생각이 넘쳐나는 마무리는 좋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점수를 줄 만한 부분이 없네요. 별점은 1.5점입니다.
2015/11/30
화과자의 안 - 사카키 쓰카사 / 김난주 : 별점 3점
| 화과자의 안 - |
모두 5편의 단편이 실려 있는 가벼운 일상계 단편집입니다. '키 150cm, 체중 57kg'의 주인공 우메모토 교코가 고등학교 졸업 후 도쿄 백화점 지하에 있는 화과자점 "미쓰야"에서 일하게 된 뒤 만나는 소소한 사건들을 다룹니다.
잘 모르는 작가의 작품으로 충동적으로 읽게 되었는데,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꽤 괜찮았습니다. 쉽게 읽히는 재미는 물론 추리적으로도 제법이며 잘 몰랐던 화과자에 대한 현학적인 매력도 넘친 덕분입니다.
캐릭터들의 매력과 배분도 아주 적절합니다. 사건 해결은 괴인 츠바키 점장이 맡고, 이야기는 우메모토 교코가 빠른 눈치와 추진력으로 템포 있게 유지시키며, 화과자에 대한 지식은 게이 성향이 있는 화과자 장인 지망 베테랑 아르바이트생 다치바나가 덧붙여 주는 식으로 황금 분할이 이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연산 - 파워 - DB의 3위 일체네요.
허나 화과자에 대해 알고 있어야만 추리를 따라갈 수 있기에 평범한 일반인, 그것도 한국인 독자가 추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단점은 있습니다. 일상계이지만 전문가적 지식이 발휘되는 작품이라는 측면에서는 "비블리아 고서당" 시리즈나 "명탐정 홈즈걸"과 같은 스타일이지요.
물론 현학적인 재미로 보상해 주는 만큼 단점이라고만 보기 어렵습니다. 저 역시 아주 좋아하는 장르입니다. 여기서 조금 더 나아가면 "갤러리 페이크"가 될 테고요.
별점은 3점입니다. 전문가 일상계 추리물의 교과서 같은 작품으로 추리소설에 입문하시는 분들께 추천드리고 싶네요. 이야기도 소소하니 따뜻하고 즐거우며 맛있기까지 하니 더 바랄 게 뭐가 있겠습니까.
각 단편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화과자의 안"
회사원 아가씨가 생과자 "오토시부미" 1개에 "투구" 9개를 사간 이유에 대한 추리가 펼쳐지는 작품.
츠바키 점장은 오토시부미를 특정 인물 1명 앞에 내어 놓을 필요가 있었으며, 그 이유는 "오토시부미"의 사전적 의미 — '공공연하게 말할 수 없는 내용을 쓴 무기명의 문서' — 에 따라 그 과자를 받는 사람은 뭔가 부정이 있다!라고 다도에 박식한 상관에게 넌지시 고하기 위함이라고 추리합니다.
그리고 다음에 회사원 아가씨가 과자를 사러 왔을 때에는 사건이 해결된 것을 알아차리고 '액막이용 과자'인 "물의 달"을 바로 내어주었지요.
화과자에 대해 잘 모르면 추리에 동참할 수 없다는 단점은 있지만 시리즈의 시작으로 캐릭터들의 소개와 더불어 이 작품이 화과자에 대한 일상계 추리물이구나! 라는 것은 충분히 알려줍니다. 현학적인 재미도 넘쳤고요. 별점은 2.5점입니다.
"1년에 한 번 하는 데이트"
견우와 직녀가 만난 뒤의 칠석 과자 "까치"를 사러 온 여대생은 대만에 있는 남자친구와 원거리 연애 중으로 비행기를 타야 했고, 단골인 스기야마 할머니가 사 가는 과자는 사실 불단에 올릴 목적이었다는 내용입니다.
첫 번째 에피소드와 동일한 문제가 여전합니다. 일반인이 추리하기 어렵다는 것이죠. 그나마 여대생의 원거리 연애 에피소드는 독자도 추리할 만한 여지가 있긴 했습니다만, 스기야마 할머니 이야기는 정말 무리예요. 특히 할머니의 독특한 복장이 사실은 화과자의 "상제" 색 조합과 관련이 있었다는 것은 일반인의 영역은 아니니까요.
그래도 전문가적 지식을 토대로 한 일상계 추리물의 교과서적인 전개를 보여주는 작품으로 캐릭터들이 나름 성장하기도 하고, 츠바키 점장의 개인사도 살짝 엿보이는 등 읽는 재미도 충분했습니다. 별점은 3.5점입니다. 개인적으로 이 단편집에서는 베스트로 꼽고 싶네요.
"싸리와 모란"
야쿠자가 와서 시비를 거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다치바나의 사부가 가게의 전문성을 시험하느라 이런저런 전문 용어를 사용한 것이라는 이야기.
요약된 줄거리 그대로 추리의 여지는 거의 없습니다. 그냥 화과자에 대한 정보 전달이 주인 탓에 일상계 추리물이라기보다는 "갤러리 페이크"에 더 가까워요.
허나 워낙 재미있는 내용들이라 지루하지는 않았습니다. 아니, 아주 재미있었어요. 화투에 멧돼지와 싸리가 반드시 같이 그려져 있는 이유가 멧돼지 = 보탄(모란) → 모란떡은 오하기 → 하기는 싸리, 그래서 같이 그린다라는 언어유희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등의 이야기인데, 다른 작품에서 접하기 힘들 뿐 아니라 지루할 수 있는 이야기를 야쿠자스러운 말투와 엮어 재미나게 풀어내는 솜씨가 탁월해서 감탄할 정도였습니다.
신 캐릭터인 다치바나의 사부도 전형적인 스테레오 타입이긴 하지만 그런대로 작품과 잘 어울렸고요. 별점은 3점입니다.
"스위트 홈"
백화점 내 양과자집 "황금사과"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생 가쓰라자와가 팔다 남은 케이크를 "오빠"에게 가져가는 이유는?
"오빠에게 가져간다"는건 착각이었고 케이크를 "오빠", 즉 나이가 많은, 전날 팔다 남은 케이크라고 이야기했다는 내용인데 실제 자료 조사가 토대가 된 듯한 일종의 언어유희가 돋보였습니다. 화과자에 대해 몰라도 풀어낼 수 있는 이야기라는 것도 큰 장점이지요.
곁들여 주류 코너에서 일하는 구스다 씨가 떨이 도시락을 사재기한 이유가 함께 밝혀지는 구성도 참 좋았습니다. 가슴 따뜻해지는 이야기였으니까요.
아울러 양과자와 화과자의 차이를 설명하는 것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양과자와는 다르게 화과자는 이 나라에서 나는 재료를 사용해 이 나라의 기후와 습도에 맞게 만들어 관혼상제를 채색하기 위한 목적이 크다는 것인데 정말 공감됐습니다. 한천은 여름에도 녹지 않는다는 일종의 화과자 부심(?)도 귀여웠고요. 그래서 별점은 3점입니다.
"쓰지우라의 향방"
미쓰야에서 판매한 새해맞이 과자 "쓰지우라" 안에서 이상한 암호문이 나와 그것을 해독한다는 내용으로 암호 해독이 중심인 작품입니다.
종이는 누군가 바꿔치기한 것에 불과하고, 암호문은 일본어로만 풀어낼 수 있는 것이라 추리의 여지가 거의 없습니다. 화과자가 중요하게 사용되지도 않아서 시리즈와 연계성도 조금 떨어지고요.
점장이 기다리던 사람이 누구였는지 (2화에 언급된) 설명되어 독자의 궁금증을 풀어주기는 하지만, 점장의 연인이었던 과자틀 장인 "형풍"이 죽기 전 남긴 과자틀 반쪽을 안짱이 골동품 벼룩시장에서 건진다는건 우연이라도 너무 심합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추리도 별로고 작위적이라 점수를 주기 힘드네요. 여러모로 마무리가 약한 느낌입니다.
2017/10/06
하늘을 나는 말 - 기타무라 가오루 / 정경진 : 별점 3점
![]() | 하늘을 나는 말 - ![]() 기타무라 가오루 지음, 정경진 옮김/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기타무라 가오루의 전설적인 일상계 연작 단편집입니다. "동서 미스터리 100"의 일본편 17위를 차지할 정도로 그 가치를 인정받는 걸작이지요. 오래 전 부터 국내 출간을 기다리던 작품입니다.
사실 국내 소개가 이렇게나 늦어진 것 자체가 굉장히 의외에요. 앞서 말씀드린 "동서 미스터리 100"선 상위 20개 작품 중 국내 미출간 작품은 이 작품과 아유카와 데쓰야의 "검은 트렁크" 두 작품이 유이할 정도거든요. 이 중 "검은 트렁크"는 1950년대 출간된 묵직한 고전이지만, 이 작품은 80년대 발표된 나름 신세대 미스터리 작품인데 말이지요. 게다가 일상계 미스터리는 국내에서도 요네자와 호노부의 작품들이나 "비블리아 고서당" 시리즈 등으로 제법 인기를 확보하고 있기도 하고요. 온갖 수준 이하의 작품들까지 번역되는 일상계 추리물의 홍수 속에 이 유명 작품이 이제서야 소개된 것 자체가 미스터리같습니다. 무슨 어른의 사정이 있는지 조금은 궁금하네요.
여튼, 그만큼 기대가 컸는데 다행히 재미있었습니다.
작가가 여성이 아닐까 생각될 정도의 섬세한 묘사들이 가득하여 푸근하고 따뜻한 느낌을 전해주며, 추리적으로도 정통에 가까운 이야기들인 덕분입니다. 기묘한 이야기가 선보이고, 그것을 엔시씨가 주어진 단서만으로 풀어낸다는 고전적인 안락의자 탐정 스타일인데, 대체로 설득력있고 합리적입니다.
국문학을 전공하는 화자 "나"와 라쿠고가 탐정 엔시 씨 캐릭터도 좋아요. 작가의 섬세한 필치로 매력적으로 묘사되고 있음은 물론, 주인공의 "국문학도" 로서의 전문가적인 지식과 엔시 씨의 "예인"으로서의 특수 능력 - 놀라운 기억력과 라쿠고 연기를 통해 단련한 사람의 심리를 꿰뚫어보는 능력 - 이 이야기와 잘 결합되고 있는 덕분입니다.
단점이라면 분량에 비해 추리적인 부분이 좀 부족하다는 것 정도? 이것은 엔시씨와 나, 그리고 그 외 등장 인물들과 본 편 추리와는 무관한 배경 묘사 비중이 높은 탓입니다. 덕분에 캐릭터가 생동감있게 다가오고, 전개에 있어서도 설득력이 더해진다는 장점은 있습니다만, 추리 부분의 비중이 작아진건 개인적으로 아쉬웠어요. 국내 소개되었던 작가의 다른 단편집 - "시미가의 붕괴" - 등에 수록된 이야기들은 굉장히 빠른 호흡으로 전개되었기에 의외이기도 했고요. 아무래도 이 작품이 발표된 해가 버블의 정점이었던 1989년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네요. 여유있고 풍요로왔던 시대에 어울리는 느긋한 분위기가 가득 느껴지니까요.
그래도 숨 넘어갈 것 처럼 달리는 와중에도, 쉬어갈 필요는 있는 법이지요. 단점은 사소할 뿐, 시대를 뛰어넘는 재미를 전해주는 좋은 일상계 소품입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일상계 미스터리를 좋아하신다면 놓치지 마시길 바랍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다음과 같습니다. 스포일러 가득한 점, 읽기 전 참고하세요.
"오리베의 망령"
"나"는 우연히 대학교 은사 가모 교수의 부탁으로 라쿠고가 엔시씨 인터뷰에 동행했다. 인터뷰 후 회식 자리에서 가모 교수는 어린 시절 꾸었던 기묘한 꿈 이야기를 했는데, 엔시 씨는 이야기만 듣고 진상을 알아냈다. 그리고 그는 증거 보완을 위해 한 달의 시간을 요청하는데...
화자인 "나"와 탐정역인 라쿠고가 엔시씨가 등장하는 기념할만한 시리즈 첫 편입니다. 섬세하면서도 느긋하고, 조금은 할머니 취향인 "나"와, 뛰어난 기억력을 갖추고 사람들을 꿰뚫어보는 엔시 씨가 제대로 소개됩니다. 전통 일본적 소재인 라쿠고와 오리베 자기, 그리고 교수님 꿈 이야기가 한데 어우러지는 전개도 괜찮고요.
추리적으로도 단서가 공정하게 제공됩니다. 교수님 꿈의 이유가 된 숙부님이 평소 책을 함부로 대했다는게 핵심이거든요. 물론 교수님이 어렸을 때의 일본 사회 분위기, 당시 경매 제도 디테일 등은 국내 독자로서 알아내기는 불가능하다는 단점은 있습니다만, 일본 한정으로는 충분히 설득력을 가질 수 있으리라 생각되네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시리즈 시작으로는 적절한 수준의 이야기였습니다.
"설탕 합전"
"나"는 어느 날 엔시 씨를 우연히 만나 함께 홍차를 마시게 되었다. 이야기를 나누던 중 "나"는 앞 테이블에 앉은 3인조의 기묘한 행동에 신경을 쓰게 되는데...
사소한 것에서 진상을 꿰뚫어보는 엔시 씨의 능력이 잘 드러나는 작품입니다. 핵심 추리는 "왜 세 명의 마녀(?)가 설탕 합전을 벌이는가?" 이지만, 돌아보지도 않고 "나"가 신경쓰는 사람들이 세 명의 여자 아이라는 것을 알아내고, 그녀들이 반드시 다시 돌아올 거라는걸 예언하는 등의 소소한 추리도 아주 볼만했습니다. "설탕을 홍차에 타려고 한 것이 아니라 설탕을 꺼내려는 목적이었다"에서 시작되는 핵심 추리의 흐름 및 진상도 충분히 합리적이고요. 변장과 연기(?)로 사건을 완벽하게 해결하는 엔시 씨의 활약까지 더해지기 때문에, 그야말로 완벽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나"가 무언가 이상한 것(소금)을 넣는 것을, 원래 퍼낸 설탕을 다시 넣는 것으로 착각한 이유가 불분명하다는 단점은 있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다른 용기에 담아온걸 넣었을 텐데, 이걸 착각한다는건 무리니까요. 앙심을 품은 알바생이 너무 자신을 드러내놓고 가게에 출입하는 것도 설득력이 떨어지고요.
그래도 단점보다는 장점이 훨씬 많은, 시대를 전혀 느낄 수 없는 아주 좋은 일상계 소품임에는 분명합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호두 껍데기 안의 새"
"나"는 친구 다카오카 쇼코와 함께 도호쿠 여행을 떠났다. 엔시 씨의 공연도 보고, 온갖 절경을 감상하며 여행을 즐기던 중, 현지에서 만난 친구 에미의 차 시트가 모두 벗겨진 채로 발견되는데...
분량은 약 90페이지에 가까운데, 80여 페이지에 걸쳐 도호쿠 여행담이 소개됩니다. 아무리 일상계 작품이라지만 이래서 되나 싶을 정도로 무관한 배경 묘사 비중이 높아서 마음에 들지 않네요. "나"와 친구들 사이의 대화 역시 지나치고요.
작품 속 추리 역시 억지스럽습니다. 동일 차종의 차 커버를 벗겨 위장한다는게 대표적입니다. 단지 시트 커버만 벗긴다고 차가 비슷해질까요? 그 안의 모든 디테일, 소품이 다를텐데 말이지요. 아울러 이렇게 위장하려고 했던 대상이 어린 여자아이라는걸 쉽게 떠올리는건 너무 심한 비약입니다.
물론 배경 묘사는 아주 근사합니다. 일본 인형 코케시의 고장이라고도 하는 "자오산"의 풍광이 정말 매력적으로 그려지는 덕분입니다. "나"가 문학에 대해 정말 조예가 깊다는게 잘 드러나는 점도 좋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추리적으로는 아쉬움이 있기에 감점합니다.
"빨간 모자"
"나"는 동네 치과에서 우연히 함께 대기실에 있던 "점 여사"로부터 기묘한 이야기를 들었다. "나"도 알고 있는 점 여사의 동창 모리나가 유미코 씨의 집 앞에, 매주 일요일 밤마다 빨간 옷을 입은 소녀가 나타난다는 이야기였다.
전편에서 이어진다고 할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전편의 결과(아이를 버린 어머니)를 궁금해 한 엔시 씨가 "나"를 공연에 초대한 후 이야기를 듣는다는 설정과 본편 이야기가 이혼에서 비롯되어 있다는 점에서요.
추리적으로는 무난합니다. "빨간 모자" 이야기는 사실 모리나가 유미코의 창작으로, 점 여사가 찾아온 날 화장실 옆에서 신발장을 정리한게 핵심 단서라는 것은 괜찮았어요. 충분히 일상계스러우면서도, 독자에게도 공정하게 정보를 제공해 준 셈이니까요. 그날 목격한 "빨간 모자"는 유미코의 딸일 것이며, 이 모든 것이 점 여사의 남편과 모리나가 유미코가 불륜 관계였기 때문이라는 추리도 충분히 설득력 있습니다.
그러나 지나치게 인간 관계, 인간 심리를 그려낸 묘사는 부담스러웠습니다. 점 여사의 방자한 태도, 마지막에서 "나"가 사고가 날 뻔한 상황 등에 대한 묘사는 솔직히 불필요했고요. 본 편 추리하고는 동떨어져 있는 모리나가 유미코의 "빨간 모자" 동화 묘사도 지나치게 깁니다. 이러한 점은 한 편당 80여 페이지라는 분량을 맞추기 위한 목적이 아니었나 의심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그냥저냥한 수준의 이야기였습니다.
"하늘을 나는 말"
"나"는 집 근처 상점 "모퉁이 집"의 젊은 사장 구니오 씨가 연인과 함께 있는 것을 우연히 목격했다. 이후 "나"는 부탁을 받아 유치원 크리스마스 공연 비디오 촬영을 나섰는데, 그 곳에서 산타클로스로 분장한 구니오 씨를 다시 만났다. 그날 그는 유치원에 가게에 있던 목마를 선물로 기증했다. 그런데 이웃집 며느리로부터, 유치원 마당에 놓여져 있던 목마가 순간 사라졌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는데...
표제작으로 일상계 단편집 마무리에 어울리는 가슴 따뜻하고 훈훈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추리적으로 수수께끼 자체는 평이하지만, 다무라씨(구니오씨의 연인)가 날짜를 착각했다는게 잘 설명되고 있는 만큼 즐길거리는 충분합니다. 일상계에 딱 어울리는 정도의 수수께끼였어요.
무엇보다도 제가 읽었던 크리스마스용 소품들 중에서는 최고입니다. "나"의 생일이 크리스마스이고, 소재가 크리스마스 선물이며, 이야기의 핵심이 "최고의 크리스마스 선물"이니 이만큼 좋은 작품이 또 있을까요? 크리스마스의 즐거움을 더해 별점은 3.5점입니다.
2021/07/31
서점의 명탐정 - 니타도리 게이 / 이희정 : 별점 2점
![]() | 서점의 명탐정 - 니타도리 게이 지음, 이희정 옮김/㈜소미미디어 |
니시후나바시에 있는 작은 서점에서 화자인 고참 아르바이트생 아오이가 탐정역인 점장과 함께 이런저런 사건을 해결해 나간다는 일상계 추리물입니다.
제목과 표지만 보았을 때, 명탐정 홈즈걸 시리즈처럼 '서점에서 일어난 사건'을 다룰 것이라 생각했는데, 역시나 생각대로였습니다. 심지어 책 뒤 소갯글을 보니, 명탐정 홈즈걸 시리즈의 저자 오사키 고즈에가 '서점'으로 테마를 정했던 앤솔러지에 기고했던 것에서 시작된 이야기라고 하네요. 최근 무거운 작품들만 읽어서 기분전환차 집어들게 되었습니다.
서점이 주요 무대이며 점장이 탐정이라는 점에서는 "특정 분야의 전문가가 등장하는 일상계 추리물" 카테고리에 속합니다. 서점을 무대로 한 작품도 많지요. 그러나 이 작품만의 특징이 존재합니다. 바로 "책" 자체가 수수께끼가 되는 이야기는 없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비블리아 고서당 시리즈의 경우는 책들이 중요 소재였던 반면, 이 작품에서는 서점이라는 공간이 이야기의 핵심입니다. 수록작 중 "모든 것은 에어컨을 위해"의 경우, 특정한 책의 도난 사건을 다루고 있기는 하지만 어떤 책인지는 별로 상관이 없다는 점에서 마찬가지에요. 훔쳐낸 방법이 핵심 내용이니까요. 이런 방향도 꽤 괜찮더군요. 서점이라는 장소, 그리고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 이야기를 풀어내는데에는 아주 적합했기 때문입니다.
수록작 중에서 "일곱 권으로 바다를 건널 수 있다"는 서점과 책의 특성을 잘 살린 좋은 이야기였습니다. "서점이여 영원히"는 서점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이 한 번쯤 생각해 볼만한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고요. 그리고 손님이 원하는 책을 찾아주는 역할이 서점 직원의 중요 업무 중 하나로 등장하는데, 이런 내용의 시리즈가 나와도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래 전 먹었던 요리에 대한 기억만 듣고 추억속 요리를 재현해 주는 "추억을 파는 식당" 처럼 말이죠.
하지만 좋은 작품이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여러모로 문제가 많은 탓입니다. 특히 과장된 캐릭터들은 영 적응이 안되더군요. 점장부터가 그러합니다. ‘니시후나바시 POP 광고의 여왕’ 과 같은 별명, 바쁜 현장에서 빠져나와 게으름을 피우는 모습 등 세세한 설정들은 만화 주인공같은 느낌만 전해 주거든요. 여기에 집사 역할을 수행하는 성실한 고참 아르바이트 아오이 설정은 진부하기 짝이 없습니다.
추리적으로도 나쁘지는 않지만, 미묘합니다. 등장하는 트릭들이 문제입니다. 대체로 억지스러워서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오히려 별다른 추리가 등장하지 않고, 상황만으로 사건과 이야기를 풀어내는 "일곱 권으로 바다를 건널 수 있다"가 가장 마음에 들더라고요. "서점이여 영원히"도 점장의 어설픈 추리를 뺐더라면 훨씬 좋았을테고요.
한마디로, 전형적인 가벼운 양산형 전문가 일상계 추리물입니다. 가볍게 읽기는 수록작 네 편 중 수준 이하였던 두 편이 점수를 너무 깎아 먹어서 별점은 2점입니다만, 쓱 한 번 읽기에는 적당했습니다. 일본의 서점 관련된 작품들을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한 번 읽어보셔도 괜찮을 듯 싶네요.
덧붙여 실제 서점 근무 경험은 없다는 저자의 후기에는 조금 놀랐습니다. "서점 직원에게 책이 어디 있는지 물어보러 오는 사람들은 대체로 책 제목을 잘못 기억하고 있다"던가, 서가로 문고본을 옮길 때 띠지는 손톱 밑으로 파고들어 다칠 수 있고, 찢어지기도 쉬워서 일부러 빼 놓는다는 등 디테일은 서점 근무 경험이 없다면 알 수 없었을 정보라고 생각했었는데 말이죠. 저자는 구제 반코의 "망나니 서점원 (暴れん坊本屋さん)"을 참고했다는데, 그 외에도 이런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컨텐츠가 많았으리라 생각됩니다. 저도 읽어 보았던 '해골 서점 직원 혼다씨' 처럼요. 이런 점은 조금 부럽네요. 하긴, 소설을 쓰기 위해서 모든걸 직접 경험할 필요야 없는게 맞기도 할 테고요.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일곱 권으로 바다를 건널 수 있다"
서점 서가에 꽃혀있는 책을 습관적으로 정리하고 있던 손님은, 알고보니 다른 용무가 있었다. 그는 미국 유학으로 장거리 연애를 하게 된 연인으로부터 책들을 받았는데 무슨 의미인지 알 수가 없던 차에, 이 서점에서 주문을 받았다는걸 알고 도움을 청하기 위해서 찾아왔던 것이었다. 연인은 급작스러운 유학 이야기를 들은 뒤 연락 두절 상태였다. 일곱 권의 책은 그림책, 소설, 인문학, SF 등 장르가 다양했고 받았을 당시 제일 위에 "네가 없어도 괜찮아"가 놓여 있었다...
주요 등장인물들과 무대가 되는 서점에 대한 간략한 소개와 함께 시작되는 첫 이야기로, 손님이 '정리꾼'이라는 설정을 활용해서 풀어내는 간단한 암호 트릭이 등장합니다. 책들은 크기별로 놓으면 "스카이프 가입해"라는 메시지가 표시되게 되어 있었습니다. 이를 위해 문고판이 나온 오래전 소설의 단행본을 구태여 주문하는 등의 단서도 등장하고요.
책을 주문하고 배달된 날짜, "네가 없어도 괜찮아"가 상자 맨 위에 놓여 있었던 이유 등을 근거로 정리꾼의 애인은 서점 아르바이트생 히라노라는 추리도 괜찮았습니다. 주문과 배달에 보통 1주일이 소요되는데, 몇 일 걸리지 않았던게 단서였습니다. 서점에 재고가 있다는걸 완벽하게 파악했어야 하는데, 이를 조사하기 위해 서가를 훝고 다니는 손님은 없었으니 그 연인이 서점 직원이라는건 꽤 그럴듯 했어요. 포장 역시 단서였습니다. 판형이 다른 특정 책이 맨 위에 올라가려면, 직원이 직접 포장했어야 하니까요.
하지만 정리꾼이라는 손님이 책을 선물받고 정리도 하지 않은채 집에 두었을지는 솔직히 의문입니다. 책 제목 앞 글자만 따서 읽으면 되는 간단한 암호라서, 의지만 있었다면 책을 정리하지 않았어도 풀 수 있었을테고요. 경우의 수는 5천개 정도밖에 안되니까요. 무엇보다도 이런걸 물어보려고 서점에 올 것 같지는 않네요.
그래도 서점이라는 특성을 잘 살린 일상계 추리물로 기본은 해 주는 에피소드였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모든 것은 에어컨을 위해"
서점을 찾은 손님 시마지리는 아르바이트 생 이케베의 친구였다. 그는 서점 직원들에게 이케베가 자신의 소중한 책을 훔쳐간 것 같다며 도움을 요청했다. 문제는 이케베는 도저히 책을 가져갈 수 없었던 상황이었고, 방법에 대해 서점 직원들이 모여 여러가지 아이디어를 내 놓기 시작하는데...
도난품은 유명 라이트노블 작가 하스미 쿄의 사인본으로 시마지리의 가방 속에 들어 있었습니다. 시마지리가 잠깐 쓰레기를 버리러 자리를 비운 사이, 방에 있었던 이케베가 훔쳐갔다는 거지요. 하지만 이케베의 몸 속 어디에도 책은 숨길 수 없었고, 그가 가져갔던 문고본이 가득했던 상자 안에는 책을 더 이상 넣을 방법이 없었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케베가 책을 어떻게 훔쳐내었는지?에 대해 서점 직원들이 각자 추리를 이야기하는, 일종의 추리 배틀이 핵심인데, 나름대로 재미있었습니다. 이를 통해서 정말로 훔쳐낼 방법이 없었다는 상황을 알려주는 전개도 괜찮았고요. 결국 책이 빠져나가기 위해서는, 문고본이 가득찼던 상자 안에 넣는 방법 밖에 없었다는게 증명되거든요. 상자안의 책들 커버를 벗겨서 책 한 권이 더 들어갈 공간을 만들었다는게 진상도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그야말로 서점에서 일하는 사람들만 알 수 있는 지식이 사용된 트릭이라고 할 수 있어요. 덧붙여, 시마지리가 방법을 알기 위해 서점에 찾아온 이유도, 보통 손님들은 서점 직원이라면 ‘무엇이든 알고 있다’고 곧잘 생각한다는 것의 연장선상이라는 것인데 꽤 그럴듯했어요. 이런저런 다른 서점 동료들 캐릭터들도 읽는 재미를 더하고요.
하지만 벗겨낸 책 커버의 처리 방법은 설득력이 떨어지더군요. 상자 골판지 앞, 뒤를 뜯어낸 사이에 집어넣었다는데, 시마지리가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데, 50권이나 되는 책 커버를 완벽하게 안에 집어넣고 재포장하는건 무리라고 생각됩니다. 쓰레기 버리러 갔다 오는게 20분 이상 걸리지는 않았을테고, 설령 시간 내 집어 넣었더라도 티가 전혀 나지 않았을 것 같지도 않았고요. 이보다는 조금 더 큰 다른 상자를 미리 마련해서, 이미 포장해 두었던 박스와 책을 함께 넣었을 거라는 히라노의 추리가 더 그럴듯하게 느껴졌습니다. 시마지리가 상자를 직접 들었기 때문에 그럴리 없다고 했지만, 미묘한 크기 차이를 알아내는건 힘들지 않았을까요?
작가로 성공한 친구 싸인본을 질투심에 버렸지만, 그 작가 친구가 집에 자러올지도 몰라서 싸인본을 훔쳤다는 동기도 이상했어요. 진상을 알고 난 시마지리가 흔쾌히 용서하면서, "또 사서 사인 받으면 된다"고 말하는 장면과 배치되었기 때문입니다. 시마지리는 다시 싸인을 받아도 되고, 이케베는 안 될 이유가 있을까요? 또 이름 부분 필적이 다르면 눈치채지 않을까? 싶기도 했고요. 이렇게 흔쾌히 용서할거면 시마지리가 이런 소동아닌 소동을 일으킬 필요가 있었을지도 의문입니다.
게다가 애초에 책을 훔치는게 목적이었다면, 이런 상황에서 훔칠리기 만무합니다. 어떤 트릭을 써도 용의자는 자기밖에 없으니까요. 시마지리 집에 놀러가서 몰래 가방에 넣고 오는 것과 같은 상황이니, 상자 골판지를 뜯어내는 등의 불필요한 노력을 할 이유가 없어요. 문고본이 박스안에 정말로 "가득차 있었다"도 우연이었다고 생각되고요. 억지와 우연이 만들어낸 불가능 범죄인 셈입니다.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서점 업무에 대한 여러가지 디테일은 좋았지만 트릭, 동기, 상황 모두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일상 업무 탐정단"
하스미 쿄의 사인회가 있던 날 밤, 서점에 누군가가 침입하려 했었다. 다음날 출근 때, 정문 쪽에 테디베어가 목매달렸고, 가게 안 쪽에서 붙여놓은 하스미 쿄가 친필 사인한 포스터에는 핑크색 마커로 불경과 낙서가 가득 적혀져 있었다. CCTV 확인 결과 테디베어가 매달리던 새벽 3시 36분에는 포스터에는 낙서가 없었다. 이후 아침에 발견될 때 까지 모든 출입구는 잠겨 있었고, 뒷문 오토록도 열린 기록이 없었는데, 범인은 어디서 들어와 어디로 나갔을까?
아오이, 히라미, 코미야마 모두 서점 일을 하며 트릭을 파헤치고 범인을 잡자는 결의를 다지던 와중에, 서점의 단골 손님 타와타가 밤 중에 하스미 쿄의 편집자가 도망가는걸 목격했다고 말하는데....
직전 이야기에서 인기 작가로 소개된 하스미 쿄가 주요 소재로 등장합니다. 스토커 타와타가 하스미 쿄의 지문을 노리고 그가 서명한 포스터를 얻기 위해 이런저런 범죄를 저지른다는 내용이지요.
핵심인 포스터 낙서는 자동차 헤드라이트 빛이 핑크색을 띄게 만든 뒤 비치면 핑크색 낙서는 사라져서 보이지 않는다는 트릭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즉, 테디베어를 매달던 시점 전에 낙서를 했던 것입니다. 초등학생 과학 실험같은 느낌인데, 실제로 잘 되었을지도 의문이지만 무엇보다도 작 중에서도 언급되듯, CCTV가 흑백이라는 전제가 있어야 가능하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마침 CCTV가 흑백이었던건 단지 운이 좋았을 뿐이지요. 이 트릭 보다는, 창 밖으로 멀쩡한 포스터를 붙여서 위장했다는 히라노의 아이디어가 더 괜찮았어요. 붙인 포스터를 뗀 건 CCTV에 찍히지 않아서 기각되긴 했지만요.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이렇게 해서 낙서를 언제 했는지를 모르게 만든 이유가 불명확하다는 점입니다. 범인 타와타는 밤중에 낙서를 하고 달아나다가 점장과 아오이에게 목격되었었죠. 이 때 타와타는 자기 정체가 드러났다고 생각하고, 최소한 낙서에 대한 혐의는 벗어나기 위해 이런 트릭을 사용했다고 설명됩니다. 처음 발견한 사람이 낙서를 했다고 의심받았을 거라면서요. 그런데 점장과 아오이가 달아난 사람이 타와타라는걸 알았다면, 이런 공작을 했든 안했든 그녀가 범인이라고 생각했을게 뻔합니다. 현장을 처음 발견한 사람이 아르바이트가 아니라 점장이었을 가능성도 있고요. 타와타가 편집자 유루즈메가 도망치는걸 목격했다고 한 증언도 억지스러워요. 유루즈메가 완벽한 알리바이가 있었더라면 어떻게 할 생각이었을까요? 어차피 자기가 범인으로 특정되지 않았다면, 다른 누군가를 범인으로 몰 까닭도 없고요. 괜히 유루즈메가 수상하지 않다는걸 드러내는 빌미가 되었을 뿐입니다.
낙서로 포스터를 훼손한 동기도 납득이 가지 않아요. 서점이 포스터를 버리면 그걸 손에 넣기 위해서였으며, 하스미 쿄가 사인할 때 손바닥을 찰싹 붙이는 버릇에서 착안하여, 코트지로 만들어진 포스터에서 잔류 지문을 회수하여 집에 몰래 침입할 의도였다는데 그게 과연 가능했을까요? 또 이렇게 엄청난 공을 들여 포스터를 훔치느니, 사인할 때 버릇을 이용하여 직접 사인을 받는게 낫지 않았을까요?
이런 문제들 때문에 서점에 대한 디테일은 여전히 좋습니다만,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별점은 1.5점입니다. 세금 관련되어 히가시노 게이고 작품이 등장하는게 기억에 남을 뿐인 졸작이에요. 히가시노 게이고의 단편 "초세금 대책 살인 사건"은 추리 작가가 세금을 낼 수 없게 되자, 경비를 부풀리기 위해 개인적으로 산 물건, 여행지 등을 억지로 원고에 등장시킨다는 내용이라는데 재미있을 것 같네요.
"서점이여 영원히"
아오이가 일하는 사사쿠라 서점은 경영이 악화되고 있었다. 어떻게든 서점을 살리려고 문예서 담당인 이치노세와 아오이는 힘을 합쳤지만, 점장의 얼굴을 보기도 힘든 하루하루가 이어지고 있었다. 그 때 잡지에 "진열대에서 빼지 않으면 유해 서점으로 간주하겠다"는 협박장을 꽂아놓고 가는 사건이 일어났고. 거액의 사진집이 도난 당한 날에는 "유해 서점으로 지정되었다"며 밤 11시에 뒷문 앞으로 모이라는 협박장이 발견되었다. 그리고 그 시간에 누군가 서점에 불을 지르는데...
약간의 서술 트릭이 도입된 작품으로 점장 이치노세와 고참 아르바이트 아오이가 처음 만났던 '사사쿠라 서점'에서 일어났던 과거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여기서 의욕없고 자리를 자주 비우는 점장은 남자인 사사쿠라 점장인거지요. 이걸 마지막에 드러내고 있는건 꽤 그럴듯 했습니다.
실제 사건에 대한 추리 역시 괜찮은 편이에요. 서점 밖에서 서점 안 화재 경보기를 작동시킨 방법은 유치했지만, 범인이 누구인지에 대한 추리는 합리적이면서, 서점의 특징을 잘 살리고 있거든요. 예를 들어 협박장인 빨간 괴문서는 언제나 반품 직전 잡지에서 나왔는데, 인기 잡지들이라 손님이 먼저 가져갈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한 번도 그렇지 않았다는 점에 착안해서, 협박장을 보낸건 서점 내부 사람이라는걸 밝혀내는 식입니다. 협박장을 꽂은 잡지를 눈여겨 보고 있었다는 뜻이니까요.
여기에 더해, 착화제가 남자 화장실에 버려졌다는걸 단서로 이치노세는 범인이 서점 내부의 남성이라고 확신합니다. 남자 화장실 휴지통에 착화제를 버리고 뚜껑을 닫은건 조작이 아니라 정말로 버린 것이며, 그렇다면 다른 성별로 위장할 필요가 없다는 추리였는데, 아주 그럴듯했어요.
하지만 이 이야기의 가장 큰 장점은 사사쿠라 점장이 불을 지른 동기입니다. 점장은 목적은 보험금 때문이었다면서 서점은 이제 사라질 것이라면서, 아무도 책을 읽지 않게 됐다고 합니다. 책 말고도 오락거리가 넘쳐난다면서요. 문고본과 만화 매출은 늘어나지 않았냐는 이치노세의 반론에, "다 도서관에서 빌려본다, 아니면 중고 서점에서 산다, 요즘은 잘 나가는 책만 들여놓는 편의점 수익이 훨씬 높다. 어차피 인터넷 서점에는 상대가 안된다"며 자신의 좌절감을 강하게 토로하는데, 저도 모르게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저 역시 도서관, 중고 서점을 애용하고, 인터넷 서점으로 책을 사니까요. 동네 서점이 사라지는데 일조하고 있나 싶어 미안한 마음도 들었고요.
하지만 "책과 서점은 다르다. 서점에서 보고 싶은 책을 발견하는 것이다"는 이치노세의 말과 그 외에도 즐기는 공간으로 바뀌어서, 카리스마 직원의 힘을 빌려서, 전문성을 특화시켜서, 지역 밀착형 등으로 살아남고 명맥을 이어나갈 것이라는 아오이의 생각, 그리고 뒤이어 서점은 없어지지 않을 거라는 희망섞인 기대와 함께 끝나는 결말 덕분에 마음의 평화를 찾았습니다. 암요, 책만 파는 공간은 비디오, DVD 대여점처럼 언젠가 없어질게 분명해요. 살아남으려면, 시대 흐름에 맞춰서 계속 변화해야지요. 어떻게 변화하는게 좋을지는 저도 잘 모르겠지만요.
그래도 작중 등장하는, 지금의 니시후나바시에 위치한 서점이 꽤 잘 되어가고 있는 것 처럼, 동네 서점들이 꾸준히 살아남아 주면 좋겠네요. 저도 동네에 이런 서점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 밖에도, 암에 걸릴 것 같던 만화책 절도 사건 등 여러가지 디테일도 좋았기에 별점은 3점입니다.
덧붙이자면, 도나 조 나폴리가 썼다는 "도망친 숲의 마녀"라는 책이 중요하게 등장하는데, 한 번 읽어보고 싶어졌습니다. 헨젤과 그레텔 마녀를 주인공을 했다는 소개가 꽤 재미있었거든요. 아쉽게도 우리나라에는 아직 출간되지 않았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