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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16

밀실살인게임 2.0 - 우타노 쇼고 / 김은모 : 별점 2.5점

밀실살인게임 2.0 - 6점
우타노 쇼고 지음, 김은모 옮김/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이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약간 포함되어 있습니다.

채팅으로 대화를 나누는 동호인 다섯명. 반도젠 교수, 두광인, aXe, 쟌가, 044APD. 이 커뮤니티는 실제로 살인을 저지르고 그것을 다른 사람들이 추리하는 '리얼탐정놀이' 커뮤니티였다.

저는 추리소설도 좋아하지만 야구도 무척 좋아합니다. 그리고 두 분야 모두 정통파를 좋아하지요. 추리는 정통파 본격 미스터리, 야구는 정통파 강속구 완투형 에이스 투수라는 식으로 말이죠. 그러고보니 멸종해가고 있다는 공통점도 있네요.

어쨌건 이러한 야구 시각으로 본다면, 우타노 쇼고는 정통파 강속구 투수라기 보다는 제구력과 다양한 변화구로 승부하는 기교파 투수입니다. 잘 짜여진 플롯과 동기, 복잡한 인간관계가 씨줄과 날줄처럼 얽힌 와중에 트릭을 통한 두뇌게임이 펼쳐지는 고전적인 본격물보다는 기발한 트릭과 그에 따르는 전개에 치중하는 작품이 많기 때문입니다. 최소한 제가 읽은 작가의 다른 작품은 트릭이 중심인 기교파 소품들이었습니다.

물론 이게 나쁜건 아니에요. 이러한 방식으로도 역대급 작품이 된 "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 하네" 같은 강력한 결정구가 있으니까요. 다른 구질(작품)들도 충분히 제 몫을 하며, 팬들에게도 항상 기쁨을 주는 유형이니까요. 실제 야구에서도 이런 투수가 화려하지는 않지만 그만큼 꾸준하고 성실한 활약을 보여주는 선수들이죠. 팔색조 조계현 선수처럼요.

이 작품 역시 이러한 비유에 딱 맞는 작품입니다. 트릭이 풍성하고 설정을 독특하게 가져가며 등장인물 캐릭터에도 트릭이 숨어 있는 등 특유의 화려한 퍼즐러, 트리커 스타일이라는 점에서 말이지요. 그러나 기교파로서의 단점 또한 도드라져서 안타깝습니다. 트릭, 즉 변화구의 각도와 위력은 좋았지만 동기와 설득력, 이야기 전개라 할 수 있는 제구가 영 꽝이었던 탓입니다. 온전히 트릭을 위해 짜맞춰진 작위적인 설정과 전개였거든요. 트릭이 없다면 작품으로 성립이 힘들 정도입니다. 이래서야 소설보다는 추리 퀴즈에 더 어울리는 것 아닌가 싶을 정도에요.

또한 아무리 사회부적응 잉여 오타쿠들이더라도 살인을 저지르면서까지 얼굴도 모르는 인물들과 어울리는 것에 대한 당위성을 부여하는 것 역시도 불가능합니다. 실제 범행 과정에 소요되는 돈과 노력, 리스크를 감안한다면 더더욱 그러합니다.

이럴 바에야 차라리 첫번째 에피소드처럼 미디어에 보도된 미궁에 빠진 사건을 아마추어 추리 애호가들이 모여 추리한다거나, 각자 생각한 트릭을 문제로 낸 뒤 서로 해결하기위해 머리를 짜내는 이야기 쪽이 훨~씬 좋았을거에요. 이편이 보다 스트라이크에 가까웠겠죠. 지금의 결과물은 트릭을 풀어나가는 면에서는 헛스윙을 기대할 수는 있지만 공 자체는 볼입니다.

때문에 별점은 2.5점입니다. 트릭이 비록 추리소설에서 중요한 요소이기는 하나 전개면에서 현실성과 합리성을 지녀야 완성도를 인정받을테니 당연한 결과겠죠. 볼의 위력이 좋아도 도망다니는 투수보다는 일단 스트라이크를 던질 줄 아는 투수가 진짜 투수인 처럼요. 그래도 트릭만큼은 괜찮은 부분이 있었던만큼 다음 투구에서는 보다 제구력이 동반된 피칭을 기대해 봅니다.

이하 에피소드 상세 소개에는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Q1. 다음은 누가 죽입니까?

이야기의 시작. 다섯 명의 멤버가 접한 살인 사건 보도. 그들은 사건이 살인게임이라는 것을 직감한 뒤 진상을 추리하기 시작한다...

살인게임 동호인이 많다는 설정 자체도 넌센스에다가 아무리 오타쿠 추리 매니아들이더라도 추리를 하는 과정의 정도가 너무 심해서 단편집의 시작임에도 불구하고 그닥 마음에는 들지 않았던 에피소드입니다. 트릭도 별다른 것은 없고 순수한 수사와 추리로 이루어져 있으며 독자의 공정한 참여가 차단되는 측면이 강해 높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딱 한 가지, 달력에 예고를 남기는 것이 단지 날짜와 술래를 정하는 것이 아니라 범행 장소인 맨션의 형태와 관련이 있다는 아이디어는 괜찮았지만 전체적으로 작위적이라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더군요. 달력처럼 구성된 맨션의 체크된 날짜와 호수를 일치시켜 범행을 저지른다는 게 솔직히 말이나 됩니까... 애시당초 일반인에 가까운 커뮤니티 멤버가 도출 가능했던 연관된 살인사건에 대한 정보를 경찰이 모르고 넘겼을 가능성도 낮고요. 

놀라운건 이 에피소드가 멤버들의 범행이 아닌 조사와 추리로 진행된다는 점에서 그나마 가장 현실적이라는 겁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Q2. 밀실 따위는 없다.

Q1에서 반도젠 교수가 낸 수수께끼와 그것을 응용한 두광인의 수수께끼에 대해 다루는 간단한 소품.

수수께끼 수준이라 딱히 언급할 것은 없습니다. 밀실살인은 현실에 대한 안티테제로 성립한 것으로, 밀실을 만드는 것 자체가 목적이라고 열변을 토하는 aXe의 발언이 더 인상적이었습니다. 추리 애호가로서 공감가기도 했고요. 별점은 2점입니다.

Q3. 살인마 잭 더 리퍼, 삼십 분의 고독

Q2에서 범행을 예고한 쟌가가 토막살인으로 밀실을 만든 뒤 그것을 모두가 추리하는 이야기.

다리 두 개를 문에 놓아둔 것만으로 밀실이라는 설정은 어이가 없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다리 두 쪽이 문에 기대어져 있다 한들 문을 여는 정도는 어렵지 않았을 것 같거든요.

그래도 핵심 트릭은 충분히 한 번 정도는 써봄직한 괜찮은 아이디어이긴 했습니다. 시체를 훼손한 이유도 연관되어 있으니까요. 또 다른 작품 속 트릭이라 할 수 있는 온도계를 이용한 미끄럼틀 아이디어도 나쁘지는 않았고 말이죠. 물론 트릭대로 잘 됐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그런데 시체 속에 숨어 있었다는 트릭을 이용할 것이면 더 교묘한 밀실을 만들 수도 있었을 텐데 조금 아쉽긴 하네요. 피해자와 딸만 가지고 있는 열쇠를 이용한다든가 하는 식으로 충분히 완전범죄를 저지를 수 있었을텐데 급하게 마무리 지은 느낌입니다. 그래도 트릭은 괜찮았기에 별점은 3점입니다.

Q4. 상당한 악마

Q3에서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두광인의 귀축 단두살인사건 예고에 이어지는 이야기입니다. 핵심 트릭은 두광인이 화상 채팅으로 커뮤니티 멤버들에게 특정 장소를 보여주고 알리바이를 만드는 것이었고요. 커뮤니티 멤버가 일종의 증인이 되어 두광인의 알리바이가 완벽하다는걸 증명하게 된다는 발상의 전환은 좋았습니다.

하지만 핵심 트릭이 그닥 와닿지는 않았습니다. 과연 잘 됐을까 하는 의문도 들고요. 피해자 루카가 통화 중 실수 한 번만 하더라도 모든 게 틀어질 테니까요. 또 두광인의 정체가 밝혀지는 마지막 반전은 괜찮았지만 이 커뮤니티처럼 위험한 인간들에게 자신의 정체를 공개한다는 것은 전혀!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트릭과 반전이 합리적 전개보다 우선한 나쁜 사례죠. 별점은 2점입니다.

Q5. 세 개의 빗장

aXe군이 공들여 준비하고 있다는 트릭을 이용하여 구현한 눈 속의 밀실살인이 수수께끼로 던져지는 에피소드.

눈이 그친 이후에도 피해자가 살아 있다는 증거가 제시되나, 시체가 발견된 곳은 발자국 하나 없는 쓰레기장 한가운데의 전화박스 형태의 박스였습니다. 박스는 세 개의 빗장이 걸려있는 이중밀실이었고요. 이를 위해 aXe군이 계속 이야기하는 정교한 장치 트릭이 선보입니다.

이런 류의 트릭은 극 중 aXe의 입을 통해 말해지듯 시간과 노력이 너무 들어서 실효성이 없어서 설득력이 떨어지지만, 이 작품처럼 순수하게 트릭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설정에는 제법 잘 어울렸습니다. 개인적으로 장소와 도구가 잘 맞아떨어진 괜찮은 트릭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장치의 정교함에 대한 묘사와 함께 숨은 그림 찾기와 같은 단서 제공이 필요해서 만화에 더 잘 어울렸겠지만, 평작 수준은 되는 에피소드라 별점은 2.5점입니다. 

덧붙이자면 경찰 수사가 제대로 이루어졌다면 추리 게임의 필요도 없이 진상은 이미 밝혀졌을 텐데, 경찰을 너무 우습게 보는 게 아닌가 싶긴 했습니다.

Q6. 밀실이여. 잘 있거라

멤버 중 명탐정 역할을 담당한 044APD가 낸 수수께끼. 관리인과 현관 자물쇠로 잠긴 이중밀실에서 아무런 관계가 없는 남녀가 살해된 시체로 발견된다는 내용입니다.

트릭은 범인이 피해자이며 탐정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신데렐라의 함정"을 생각나게 합니다. 핵심 트릭인 밀실살인 외에도, 별로 대단하지는 않지만 암호 트릭까지 등장하는 등 추리적으로 확실히 풍성합니다.

그러나 네 명이나 되는 사람들과 채팅을 하면서 자신의 죽음을 숨기고 일반적인 대화를 나눈다는 것은 말도 안 되죠. 거기에다가 044APD와 마미야가 동일인물이라는 진상은 정말 트릭을 위한 것일 뿐, 동기 측면에서는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았습니다. 왜 자기 자신을 배달해서 죽일 필요가 있었을까요? 트릭은 화려하지만 그 외의 것은 뭐 하나 합리적인 것이 없기에 별점은 2점입니다. 이런 식으로 마무리할 트릭은 아닌데, 트릭이 아깝네요.

2021/11/28

서술트릭의 모든 것 - 니타도리 케이 / 김은모 : 별점 1.5점

서술트릭의 모든 것 - 4점
니타도리 케이 지음, 김은모 옮김/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서점의 명탐정"의 작가 니타도리 케이단편집입니다. 원제는 간단하게 "서술트릭 단편집"이네요.

처음에는 서술트릭을 쓴 작품들을 모아놓고, 트릭들을 분석해 놓은 책일거라 생각했는데 단편집이라서 의외였습니다. 서술트릭은 작가가 독자를 속이는게 핵심인데, 이 책에 수록된 단편은 모두 서술트릭물이다! 라고 서두에서 알려주는 것도 독특했고요. 한 마디로 "속일테니 맞춰봐라!"라는 마술사의 마술 공연같은 발상이었달까요? 독특하면서도 신선했고, 그 패기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러나 작품들 수준은 영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서술 트릭을 사용하려고 무리수를 둔 작품들이 많은 탓도 크지만 가장 큰 문제는 만화적이고 과장된 탐정 캐릭터 벳시의 존재때문입니다. 그래서 전체 평균한 별점은 1.5점입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뻥 뚫어주는 신" 

주식회사 세븐티즈의 2층 화장실 변기가 막혀 물이 넘쳤었는데, 업자를 부르기 전에 뚫렸고 바닥도 깨끗하게 청소된 채 발견되었다. 누가 몰래 이런 기특한 짓을 하였을까? 궁금해하던 직원들에게, 지나가던 프리랜서 기자 벳시가 난입해 사건을 해결한다.

한 명을 제외한 등장인물들 모두가 70세가 넘은 노인들이라는게 서술트릭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좋은 작품은 아니었습니다. 내용에서 설득력이 거의 전무한 탓입니다. 막힌 변기를 뚫고 바닥 청소를 하는걸 몰래 할 필요가 없잖아요? 그것도 1층 화장실 창문을 통해 2층 화장실 창문으로 몰래 기어 올라가면서까지 말이죠. 때문에 이런 무리한 활약은 노인인 다른 사람들에게는 무리였고, 그래서 유일한 여고생인 아르바이트 우미짱이 범인이었다! 는 추리도 억지스러웠어요. 서술 트릭은 중요하게 사용되지도 못한 셈이지요. 화장실 매니아 벳시는 억지를 넘어선, 만화같은 존재라 더 와닿지 않았고요.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등을 맞댄 연인" 

호리키 히카루는 히라마쓰 시오리가 블로그에 올리는 사진을 본 뒤,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다. 시오리도 히카루의 다정한 모습을 먼 발치에서 바라보고, 똑같은 감정을 품기 시작했다. 그러나 두 명 다 서로에게 다가갈 기회를 찾지 못해 애태우던 와중에, 시오리가 속해 있던 사진부에서, 암실 사진 확대기 필터가 0호로 바꿔치기된 사건이 일어났다. 유력한 용의자는 사진부 부장의 연인으로 부장과 싸운 뒤, 부장에게 복수심을 품었을 마쓰모토였다. 그러나 그녀는 범행 시각에 사진부와는 반대쪽에 있는 도서관 앞에서 호리키 히카루에 의해 목격되었다는 완벽한 알리바이가 있었다.

호리키 히카루와 히라마쓰 시오리가 서로에게 호감을 갖고, 서로에게 다가가기 위해 각자 계획을 세우는 이야기를 시점을 바꿔가며 전개하는 청춘 연애물에서 급작스럽게 일상계 추리물로 전환되는 작품입니다. 

청춘 연애물로는 좋습니다. 두 청춘의 감정이 풋풋하면서도 귀엽게 묘사되고 있으니까요. 트릭도 깔끔합니다. 서술 트릭의 핵심은, 호리키 히카루가 마쓰모토라고 생각했단건, 사실은 히라마쓰 시오리였다는 겁니다. 그래서 마쓰모토의 알리바이는 없어지고, 그녀가 범인이라는게 밝혀지게 되지요. 호리키 히카루가 시오리를 마쓰모토로 오해하게 된 계기도 잘 설명되고 있으며, 서술 트릭을 위한 억지도 눈에 뜨이지 않아서 좋았습니다.

그러나 '벳시'라는 지극히 비현실적인 인물을 끼워넣은게 문제입니다. 자연스러운 일상계 추리물에 갑자기 만화 주인공이 등장한 느낌이거든요. 부자연스러울 뿐 아니라, 묘사와 행동은 유치할 정도였습니다. 벳시를 등장시켜 전체을 연작 단편 시리즈로 묶으려는 어리석은 노력을 하느니, 차라리 독립된 단편 작품으로 만드는게 훨씬 좋았을 겁니다. 모두가 한 자리에 모인 상태에서 서로 이야기를 하다보면, 사람을 잘못 알았다는건 바로 드러났을테 어차피 탐정이 필요하지도 않으니까요. 오해의 원인은 호리키 히카루의 여동생 소라나가 등장해서 설명해주면 되고요.

결론적으로 별점은 2.5점입니다. 서술트릭이 사용된 완벽한 청춘 연애 일상계 추리물이 될 수 있었는데, 벳시의 존재가 오점을 남겨 아쉽습니다.

"갇힌 세 사람과 두 사람"

강도단의 일원 아담, 해밀턴, 윌은 서로를 의심하고 있었다. 세 명이 잠깐 자리를 비운 틈에 샘슨이 누군가에게 살해당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산장에 있던 일본인 두 명은 꽁꽁 묶어 놓아서 움직일 수 없었다....

서술 트릭은 강도단이 묶어 놓은 일본인 2명이 벳시와 조수 우미가 아니었다는 겁니다. 둘은 강도단이 나오는 영화를 보러 왔던 거지요. 처음부터 미국을 무대로, 미국인 강도단이 나와서 뭔가 싶더라고요. 너무 비현실적이었으니까요. 진상도 역시나였고요. 왜 일본을 무대로, 일본인들이 등장하는 영화가 아니었을지 의문입니다. 독자를 속이는게 목적이 아니라, 이렇게 속일 수도 있다는걸 과시하기 위한 목적이었을까요?

서술트릭을 사용한 단편이라는 목적에는 충실했고, 강도단이 서로를 범인이라고 단정지으며 죽이는 과정의 추리는 제법 볼만했지만 작위적이었다는 느낌을 지우기는 힘드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별 생각없이 산 책의 결말"

벳시가 바텐더로 일하는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나는 잡담을 나누다가, 최근에 읽었던 책 속 트릭을 풀어내는 퀴즈를 내었다. 형사 사에지마 시리즈로, 산에서 낚시를 하던 네기시 기요시가 살해당한 사건이었다...

'나'와 벳시의 잡담 이후, 곧바로 '형사 사에지마 시리즈' 이야기가 이어지는, 일종의 액자 소설 구성을 갖추고 있습니다. 

너무나 착하고 성실했던 네기시 기요시가 살해당했던 이유는, 단골 스낵바에서 다른 단골 아라이에게 억지로 술을 권해서 먹였기 때문입니다. 아라이는 술만 먹으면 사람이 변해 폭력적이 되는 탓에, 오래 금주를 해 왔지만 네기시의 권유로 실패하고 말았던 거지요. 아라이의 음주 폭력으로 가족은 지옥같은 상황에 처했고, 그래서 둘째 아들 데쓰야가 복수를 하게 된 겁니다. 사용된 서술 트릭은 시점을 착각하게 만든 것이고요. 소설은 오래 전, 80년대에 발표되었던 작품이거든요. 

그러나 문제는, 이 서술 트릭은 사에지마 사건의 트릭을 풀어내는 것과는 무관했다는 겁니다. 데쓰야의 알리바이 - 범행 시각에 친구 누마타가 전화를 받았다 - 는 그 시간에 집 근처에서 있었던 선거 연설 방송을 다른 동네에서 미리 녹음해 두고, 친구에게 전화할 때 그 녹음을 틀었다는 간단한 조작이기 때문입니다. 이건 휴대용 플레이어만 있다면 어느 시대에나 가능했을 이야기입니다. 

'수화기를 내려 놓았다'는 묘사로 1985년 단기간에 생산되었던 NTT의 숄더백 핸드폰 '숄더폰'을 썼다고 추리하는건 완전 억지스러웠어요. 수화기 내려놓는 소리도 녹음했다가 틀면 되잖아요? 사에지마 소설 속 이런저런 디테일로 그 작품이 80년대 작품이라는걸 밝히는건 재미있었지만, 서술 트릭을 사용하기 위한 목적 외에는 작품의 시점이 다를 이유를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또 벳시 씨는 책이 오래 전 발표되었을 수도 있다는걸, 그동안 있었던 동네 서점 이벤트로 잘 알고 있었으리라는 점에서 공정함도 부족한 편이고요.

그냥 사에지마 시리즈 단독으로만 보아도, 녹음기 트릭이 잘 사용되었다고 보기는 힘듭니다. 이 트릭이 없었어도 범인 체포는 어렵지 않았을 거에요. 매주 일요일 네기시를 감시했던 데쓰야의 행동에 대한 증언이 나왔다면 바로 체포할 수 있었을테니까요. 아라이 가족에 대해 수사하고, 아라이 이사무의 주폭 행위를 추리해 내는 등의 디테일은 괜찮았지만, 기본적으로 좋은 작품으로 보기는 힘들어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트릭은 많이 사용된 편이지만, 핵심 서술 트릭은 무의미했고, 이야기의 설득력도 약해서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드네요.

"빈궁장의 괴사건" 

너무나도 저렴한 방세 덕분에 외국인 유학생과 고학생들에게 인기있는 '유명장'은 흡사 교도소나 폐가같은 상태로 '유령장' 이라고도 불리우고 있다. 어느날, 세입자 중 한 명인 중국인 리의 귀중한 '하이셴'이 도난당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범인은 사건 발생 시간에 있었던 유령장 세입자가 분명했다. 일본인 유아사, 세네갈인 응가보, 태국인 마시, 한국인 최선배였다...

태국인이 두 명이었다는게 서술 트릭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마시 오카를 닮은 라챠시챠나논미챠시브와실라, 잘생기고 양복을 입는 '챵' 라챠시챠논이챠시브와실라 두명이었던 거지요. 챵은 왼손잡이인데, 범인은 오른손잡이라는게 증명되었습니다. 하지만 둘이 '마시 오카' 한 명으로 오인된 탓에 그가 범인이 아닌 것 처럼 착각하게 만든 겁니다. 하지만 실제 소설 속 사람들에게는 명백히 두 명이라서, 이 서술 트릭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긴 태국인 이름의 글자 한 자를 바꿔쳐서 독자를 속이려고 했던건 너무 조잡해 보였어요.

마시 오카가 벽 시계 위에 가짜 시계를 붙여서 응가보가 시간을 착각하게 만든 장치 트릭이 더 중요하게 사용되고 있는데, 이 장치 트릭은 나쁘지 않고, 나름 설득력은 있었던 만큼, 억지로 서술 트릭을 넣으려고 몸부림 치는 것 보다는, 이 장치 트릭 중심으로 풀어나갔더라면 훨씬 좋았을 것 같아요. 벳시의 등장도 유치하고 만화적이었던건 마찬가지라, 당연히 빼는게 더 나았을 테고요.

제 별점은 2점입니다. 서술트릭 연작을 만들기 위해 잃은게 더 많았던 작품입니다. '하이셴'이 결국 무엇이었는지 끝까지 밝혀지지 않는 등 유쾌한 분위기만큼은 나쁘지 않았기에, 여러모로 아쉽네요.

"일본을 짊어진 고케시 인형" 

벳시 탐정 사무소에 정계 여당의 거물 다와라다 고사부로가 찾아왔다. 그는 일본의 미래를 걸고, 일본 내 유명 동상에 장난을 치는 걸로 유명해진 헤드헌터를 붙잡아 달라고 부탁했다. 벳시는 헤드헌터의 다음 목표물이 미야기현 센다이에 있는 세계 최대 고케시 오타네 짱이라는걸 알아냈고, 우미와 함께 현장으로 향해 잠복했다. 그러나 잠복에도 불구하고 오타네 짱도 헤드헌터의 장난 대상이 되어 버리고 말았는데....

단편집 대미를 장식하는 마지막 작품입니다. 그런데 결과물은 수록작 중 최악이었어요. 헤드헌터의 장난은 정부에 비판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정치단체 모션을 몰락시키기 위한 음모 - 모션의 리더가 연설하는 장소에서 헤드헌터가 장난을 친 뒤, 모션의 리더가 헤드헌터라고 음해할 목적 - 였다는 발상부터가 유치했고, 등장하는 벳시 씨가 전부 5명이었다는 서술 트릭도 한 번 속여보겠다!는 의도가 지나쳤어요.

뭐 이것까지는 그럴 수 있다 쳐도, 코케스 오타네 짱 얼굴에 낙서를 한 핵심 트릭은 황당하기 그지 없습니다. 벳시 씨 5명이 잽싸게 인간 사다리를 만들어서, 도장을 찍듯 낙서를 완성했다는건데 할 말을 잃게 만드네요. 이게 가능할거라고, 그것도 짧은 시간에 가능할거라고는 도무지 생각되지 않습니다. 3명 정도였다면 모르겠지만요. 오타네 짱이 있는 곳이 아니라, 오타네 짱으로 향하는 입구에만 카메라를 설치한 비상식적인 행동도 나중에나 트릭 때문이었다고 설명되지, 실제 잠복할 때에는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는 것도 설득력이 떨어지고요.

이전 이야기에 등장했던 벳시 씨는 모두 다른 사람이었고, 등장했던 우미 짱도 이전 이야기에 전부 등장했다는 등의 소소한 디테일도, 작품 내용이나 추리하고는 무관했습니다. 그야말로 최악이라, 별점은 1점입니다.

"작가 후기" 

간단한 소설과 함께 에필로그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소설은 딱히 언급할 수준이 아니었고, 앞서의 '독자에게 보내는 도전장'에 모든 작품을 풀기 위한 열쇠가 숨겨져 있다며 공개하는데, 나쁘지는 않았습니다만 "빈궁장의 괴사건"에서 등장인물 이름을 메모해보라는 것 외에는 그다지 도움이 되는 열쇠는 없더군요. 앞서 말씀드렸듯 이름을 가지고 장난친 조잡한 트릭에 지나지 않는 탓입니다.

2016/01/12

모방살의 - 나카마치 신 / 최고은 : 별점 2.5점

모방살의 - 6점
나카마치 신 지음, 최고은 옮김/비채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7월 7일 7시, 추리작가 사카이 마사오가 청산가리를 음독하고 사망했다. 정황상 자살로 추정되었으나, 사카이의 약혼자 나카다 아키코와 친구 쓰쿠미 신스케는 의문을 품고 각자 사건의 진상을 추적해 나가는데.....

이런저런 추리 커뮤니티와 애호가들 사이에서 좋은 평을 받아서 관심 가던 차에 읽게 되었습니다. 읽어보니 확실히 추리적인 요소, 특히 트릭은 상당히 빼어나더군요. 추리 애호가들의 입소문을 타기에는 충분하다 싶을 정도로요.

추리소설가 사카이의 자살을 사카이의 약혼자 아키코와 친구이자 동료인 신스케가 각자 진상을 추적하는 과정을 교차하며 보여주는 전개가 가장 큰 특징입니다. 두 명의 시점을 오가는 교차 전개를 지닌 작품은 많지요. 그런데 이 작품은 여기에 트릭을 결합시켜 놓았습니다. 두 시점이 서로 다르다는 서술 트릭이지요.
핵심 트릭 중 하나인 '두 명이 알고 있는 사카이는 다른 사람이다!'는 중반 정도에 비교적 쉽게 눈치챌 수 있기는 합니다. 나카다 아키코의 약혼자 사카이는 출판사에서 정서 아르바이트를 할 정도로 깔끔한 원고를 쓰는 사람인데 신스케의 친구 사카이의 원고는 지저분하다는 설명이 가장 큰 단서였어요. 트릭을 알고 나니 그 외의 몇 가지 자잘한 단서들도 눈에 뜨이더군요. 아키코가 약혼자 사카이의 신인상 수상을 몰랐다던가... (다른 사람이니까)
하지만 이는 단점은 아니에요. 외려 공정하다는 측면에서는 높이 평가합니다. 또 작품이 발표된 시기를 고려해 본다면 (첫 발표는 1970년대) 상당히 앞서나간, 놀라운 아이디어라 생각됩니다. 저도 다른 서술 트릭물을 많이 접해보았으니 눈치챘지, 그렇지 않았다면 아마 무척 놀랐을 것 같네요.

게다가 이 트릭 하나에 그치지 않는 점도 대단합니다. 즉 두 사건이 1년의 시차를 두고 벌어졌다는 다른 서술 트릭도 등장하며, 곁가지로 사용된 트릭들도 나무랄 데 없습니다. 아키코 - 사카이 사건에서의 사진을 활용한 알리바이 트릭, 신스케 - 사카이 사건에서 열차와 충돌한 트럭에 쓰여진 회사 이름("오코노기" / "고시바")를 활용한 트릭 등이 그러합니다. 물론 이건 트릭이다! 라는게 노골적이라서 약간은 추리 퀴즈 느낌이 들기는 하지만, 수준도 높고 작품과 잘 연결되어 재미있게 묘사됩니다.
서술 트릭과 함께 이러한 트릭들이 연이어 펼쳐진다는 점에서 작가의 노력이 여실히 느껴지네요. 이렇게까지 아이디어를 아낌없이 투입한 역작은 최근에 본 적이 없으니까요.

범행에 관련된 동기도 비교적 설득력이 높아서 와이더닛 물로도 괜찮습니다. 아키코 - 사카이 사건에서 뇌성마비 아이와 관련된 유괴, 거액의 현금이라는 동기와 신스케 - 사카이 사건에서의 유명 작가 표절에 얽힌 동기 모두 그럴듯했어요. 특히나 신스케 - 사카이 사건에서 거장 세가와의 작품을 표절한 것으로 알려진 사카이의 작품에 얽힌 진상 - 사실 세가와가 1년 전에 죽은 사카이의 작품을 표절한 것이었고, 이 노트를 이름이 같다는 이유로 우연히 입수한 1년 후의 사카이가 표절한 것이라는 표절의 윤회 - 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제목 그대로 첫 번째 사건을 "모방"한 이유도 비교적 타당하고요.

하지만 이러한 장점들에도 불구하고 좋은 작품이냐고 하면 선뜻 그렇다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우선 이름이 같은 다른 두 사람이 1년의 시차를 두고 같은 날 같은 시간에 같은 방법 (청산가리 음독)으로 자살한다는 것부터 트릭을 위해 사건을 만든 느낌이 드는 탓입니다.

물론 이런 작위적이라는 굴레는 본격물이 숙명적으로 가질 수밖에 없고, 트릭이 빼어나서 단점이라고만 하기 어렵습니다만, 소설로서의 완성도에는 문제가 있습니다. 아키코와 신스케가 각자 범인으로 지목한 인물들, 즉 도가노 리쓰코(아키코)와 야나기사와 구니오(신스케)를 대면하자마자 즉흥적으로 범인임을 확신하고 공격하는 등 이야기의 밀도와 설득력이 낮기 때문입니다. 택시에서 몇 마디 들은 것을 가지고 처음 만난 사람을 살인범으로 몬다는 건 말도 안 되잖아요.

또 비교적 공들인 트릭인 사진을 이용한 알리바이 트릭을 사용했음에도 첫 번째 사카이의 죽음은 자살이라는 것이 밝혀진다던가, 마찬가지로 알리바이를 공작한 편집장 야나기사와 구니오가 실제로 범인이 아니었다는 결말도 허탈했고요.

작가 스스로도 정말 여러 번 고쳐서 발표한 작품이라는데, 고쳐 쓴 작품이 이 정도라면 역량 부족이라고 밖에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괜한 욕심에 여러 가지 트릭을 넣어 이야기를 키우지 말고, 차라리 서술 트릭에 1년간의 시차를 이용한 표절의 윤회 중심으로 보다 짧게 썼더라면 완성도는 높았을텐데 아쉽습니다. 사카이 유괴 사건과 그로 인한 자살, 슌스케의 사카이는 표절의 진상 폭로를 걱정한 나카이에게 살해당한다 정도면 아주 깔끔했을 텐데 말이지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좋은 트릭들이 결합된 좋은 추리물입니다. 지나치게 작위적이고 캐릭터와 묘사 역시 트릭에 비하면 좋다고 하기 어렵기에 감점하지만, 추리 애호가라면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2013/11/08

자물쇠가 잠긴 방 - 기시 유스케 / 김은모 : 별점 2점

자물쇠가 잠긴 방 - 4점
기시 유스케 지음, 김은모 옮김/북홀릭(bookholic)

"유리망치""도깨비불의 집"이라는 두 권의 책으로 접했던 기시 유스케의 에노모토 - 준코 컴비 단편집. 이전 단편집 "도깨비불의 집"은 다소 실망스러웠지요. 그래도 좋아하는 작가이기에 다시 집어들게 되었습니다.

자물쇠 전문가 에노모토 시리즈답게, 밀실 트릭을 다룬 본격 퍼즐 미스터리 4편이 실려 있습니다. 목차는 아래와 같습니다.

  1. 서 있는 남자
  2. 자물쇠가 잠긴 방
  3. 비뚤어진 상자
  4. 밀실 극장

읽고 나서 바로 생각난 것은 바로 히가시노 게이고의 갈릴레오 유가와 시리즈입니다. 두 시리즈 모두 과학을 근거로 한 불가능 범죄를 다룬 정통 퍼즐 미스터리로 영상화 되었을 뿐 아니라 탐정역인 유가와 - 에노모토 모두 시니컬하면서도 자신만의 전문 영역을 확고히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유사하거든요. 대표 장편으로 수작인 "용의자 X의 헌신"과 "유리망치"가 존재하는 점도 동일하고요.

그러나 확실히 히가시노 게이고 쪽이 좀 더 대중적이긴 합니다. 에노모토 시리즈는 트릭에 너무 집중한 탓에 읽는 재미는 떨어지거든요. 범인들의 동기도 너무 확실한 탓에, 밀실 트릭을 사용했다 하더라도 경찰이 수사로 체포하지 못한다는건 직무유기가 아닐까 생각되기도 했고요. 완벽한 알리바이 트릭을 단지 수상하다는 느낌만으로 파헤치던 선배 형사들의 근성은 다 어디 갔는지 모르겠네요.

또, 대중적인 인기를 위함이었는지 개그 욕심이 과한데 작품과 잘 맞지 않더군요. 준코야 그렇다 쳐도 에노모토까지 희화화시킨 것은 실수였습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별점은 전체 평균으로 2점. 쉽게 쉽게 읽히고 보기 드문 밀실 집중 본격물이라는 것은 반갑지만 트릭 외의 부분은 점수를 주기 어려웠습니다. 그나마 두 편은 트릭마저 별로라... 팬이시라면 괜찮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딱히 추천해드릴 작품은 아닙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서 있는 남자"

장례업체 사장의 의문의 자살 사건을 다룬 작품. 

밀실 트릭에서는 거의 보기 힘들었던 일종의 "막"과 시체 강직을 이용한 트릭의 아이디어는 돋보입니다.

허나 너무 복잡하고 장치 의존도가 높아서, 과연 생각대로 잘 됐을까는 의문입니다. 글로 설명하기는 어려운 트릭이라서 만화나 영상물이 더 잘 어울렸을거라는 생각도 들고요. 아울러 마지막 장면처럼 범인을 옭아매는 것은 쉬워 보이지 않았다는 단점도 큽니다. 막에 남은 DNA는 그렇게 유력한 증거로 보이지 않으며, 끝까지 사장이 직접 쓴 유서가 맞다, 자살이 맞다라고 주장하면 결국 명확한 증거가 없기에 유죄 처리하기는 어려웠을 테니까요.

결론적으로 별점은 2점입니다.

"자물쇠가 잠긴 방"

'섬턴 돌리기'라는 전문적인 털이범의 수법이 등장하는 것도 재미있지만, 이러한 등장인물의 직업을 이용하여 보다 완벽한 알리바이 트릭을 꾸민 범인의 천재적 작전이 빛을 발하는 작품.

갈릴레오 시리즈라고 해도 믿을 만큼 과학적인 트릭이 등장하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기도 합니다. 범인이 과학교사인 덕분인데, 정전기와 기압차를 이용한 밀실 트릭은 정말 환상적이었어요. 실제 구현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간단한 조작으로 가능하다는 장점도 크고요.

그러나 너무나 동기가 확실한데 경찰이 그냥 자살 처리했다는건 설득력이 너무 떨어집니다. 또 앞선 트릭들에 비해 자물쇠를 잠그기 위한 종이 테이프 트릭은 잘 와닿지 않았어요. 이 부분은 핵심 증거를 위해 추가적인 장치로 들어갔을 수는 있는데, 과연 증거 능력이 있는 것인지도 잘 모르겠더라고요. "나중에 만든 거다!"라고 범인이 우기면 해명할 방도가 있던 것인지...

때문에 약간 감점하여 별점은 3점. 그래도 표제작답게 이 단편집의 베스트 작품이기는 합니다.

"비뚤어진 상자"

건축업자 탓으로 신혼집이 망가지자, 예비신랑이 살의를 품는다는 내용입니다. 동기인 부실 건축물을 트릭에 활용하는 아이디어는 괜찮고, 조금은 이색적인 도서 추리물의 형태를 띄고 범인에게 감정이입하게 만드는 전개와 묘사도 그럴싸합니다.

그러나 트릭이 너무 작위적입니다. 핵심 설정인 망가진 집이라는 무대가 지나치게 극단적이라 현실적으로 느껴지지 않을 정도거든요. 게다가 공으로 두들겨도 흔적이 남는다는 것은 상식 아닌가요? 범인이 고교야구 감독이고, 집안에서 테니스공이 발견되었고, 외부와 연결된 적당한 크기의 구멍이 있다라는게 다 드러나버리면 트릭도 풀어내기가 별로 어렵지 않고요.

트릭 중심의 작품에서 트릭이 별로이니 점수를 주기도 힘드네요. 별점은 1.5점입니다.

"밀실 극장"

전편에 등장했던 살인 사건의 배경이 되었던 연극단이 등장합니다. 황당한 연극과 함께 살인사건이 벌어진다는 내용이지요.

분위기는 흥미롭고 웃기기까지 하지만 트릭은 별볼일 없고 사건도 우발적으로 벌어진 것이라 정교함이 떨어지는 등 본격물로 보기는 어려운 작품입니다. 캐릭터들의 개그가 만개하는, 그냥 쉬어가는 느낌의 블랙 코미디였달까요? 단 문제는 별로 웃기지 않는다는 것이죠.

기시 유스케의 작품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수준의 졸작입니다. 별점은 1점입니다.

2021/02/07

Q.E.D Season 1 정주행, 내맘대로 Best - part 2

거의 10년 전, Q.E.D 1권부터 30권 까지 중 베스트 에피소드를 정리했던 적이 있습니다. 시즌 1이 50권으로 마무리되었으니, 이어서 나머지 31~50권 중 베스트 에피소드를 꼽아봅니다. 시즌 2라고 할 수 있는 iff도 넘버링이 10을 훌쩍 넘어간 지금 시점에서는 다소 뒤 늦은 감이 있지만요.

"베스트 5" 

32권 "매직 & 매직" 

추리마술, '트릭' 이라는 요소가 핵심이라는건 동일하지만, 추리는 트릭을 밝혀야 하는 반면 마술은 트릭을 밝히면 그 가치가 없어져 버린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이 차이를 잘 드러내는 내용으로, 토마마저 놀라게 만드는 반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34권 "모야당" 

두 개의 트릭이 등장하는 본격물. 특히 기발하면서도 독자의 허를 찌르는 첫번째 밀실 트릭이 좋았습니다. 풀장에서 심장 마비를 일으키게 만든 두 번째 트릭도 주요 단서가 명확하게 남아있을 뿐 아니라 다이빙하는 시간을 특정할 수가 없는 등 문제는 있지만 나쁘지 않았고요. 무엇보다도 제목인 '모야당'이라는 전설과 사건 내용을 절묘하게 결합시킨 전개가 일품이었던 작품입니다. 

35권 "크리스마스 선물" 

언제나 기본 이상 재미를 보장해 주는 에나리 회장과 추리 동호회가 등장하는 일상계 작품. 토마가 쓴 각본으로 공연되는 연극 "오각관 살인사건"에 관련된 사건을 다루고 있는데, 다른 추리적인 요소 모두 좋았지만 특히 연극이라는 상황에 최적화되어 있는 "오각관 살인사건" 속 밀실 트릭이 귀엽고 유쾌해서 마음에 들었어요.

42권 "에셔호텔" 

제목 그대로 에셔의 작품을 모티브로 한 기이한 호텔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에 사용된, 에셔의 작품을 응용한 트릭이 좋았습니다. 범인이 살인을 저지른 눈물나는 동기를 듣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진상을 밝히고 범인을 옭아매는 토마의 냉정함도 인상적이었고요. Q.E.D만의 특징을 잘 드러내는 작품이라 할 수 있겠네요.

46권 "순례" 

여러가지 증언 속에서 진실을 찾아낸다는 Q.E.D에 자주 등장하는 전개의 작품. 하지만 일본군과 장개석의 국민당 정부가 전투를 벌이던 당시를 무대로 해서 시대 상황을 이야기에 잘 녹여낸, 완성도 높은 역사 추리물이었습니다. 결말도 깔끔해서 만족스러웠어요.

이렇게 5편이 제가 선정한 후반부 베스트 5입니다. 이전 선정작과 합쳐 저만의 'Q.E.D season 1 (1~50권)의 베스트 에피소드 10'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덧붙여, 아깝게 베스트로 선정되지 못한 가작들도 소개해드립니다.

33권 "추리소설가 살인사건" 

추리 소설가가 트릭 때문에 살인을 저지른다는건 "Nervous Breakdown"에서도 등장했었던 설정이지요. 거기에서도 '미키가 노래하는 미버'라는 초월 번역이 돋보이는 좋은 작품이었지만, 이 작품도 만만치 않아요. 괜찮은 밀실 트릭과 추리 소설가들의 심리를 잘 그려낸 덕분입니다. 아쉽게도 용의자가 너무 적고, 트릭이 만화적이라는 단점 때문에 살짝 감점하나 가작으로는 충분합니다.

35권 "두 용의자" 

강도 사건에 대한 추리물로 이야기 자체는 뻔합니다. 하지만 본 사건과 관계없는 과거의 사건을 들먹여 독자를 속이려고 시도하는, 추리 소설에 흔히 등장하는 전개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 굉장히 인상적이었기에 가작으로 선정합니다.

38권 "17" 

일본 수학인 "화산"을 다루고 있는 일종의 가상 역사 수학물로, 추리적인 요소보다 현학적인 측면에서 큰 만족감을 안겨다 주었습니다. 이런 점도 Q.E.D의 핵심 재미 요소라고 할 수 있겠지요.

40권 "밀실 No.4" 

금고 속 돈을 훔치는 방법에 대한 트릭이 돋보였던 일상계 소품이었던 "4각관계"도 좋았지만, 추리 동호회의 에나리가 등장하는 본격물인 "밀실 No.4"야 말로 진정한 가작입니다. 밀실 살인 사건 해결을 테마로 한 여행 상품 체험 중 벌어진 진짜 밀실 살인 사건에 대한 이야기지요. 여행 상품 속 밀실 트릭은 억지스럽지만 재미는 있었습니다. 실제 살인 사건에 사용된, 촛불을 이용한 시간 착오 트릭도 괜찮은 착상이었고요. 그러나 이 작품의 핵심은 토마가 용의자에게 하는 말이었습니다. 덕분에 가작으로 꼽습니다. 상세 내용은 링크 속 리뷰를 참조하시길.

41권 "카프의 탑" 

추리적으로는 별 볼일 없어요. 그러나 논리 퍼즐에 대한 학습 만화로는 최고 수준이었습니다. 이런 학습 만화적인 부분도 Q.E.D만의 볼거리이자 매력 포인트라고 생각하기에, 가작으로 꼽습니다.

2022/08/06

미스터리 클락 - 기시 유스케 / 이선희 : 별점 1.5점

미스터리 클락 - 4점
기시 유스케 지음, 이선희 옮김/창해

아래 리뷰에는 트릭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기시 유스케에노모토 케이 시리즈 단편집으로 모두 네 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철저하게 '밀실'을 테마로 삼고 있는, 제대로 된 정통 본격 추리 단편들입니다.

그러나 재미도 없고, 대체로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본격 추리물임에도 독자가 추리할 수 있는 여지가 거의 없다는 단점 탓입니다. 그 중에서도 최악은 첫 번째 수록작인 "완만한 자살"입니다. 꽁꽁 잠긴 밀실 안에서 총을 입에 대고 쏘아 죽은 시체가 발견됩니다. 에노모토 케이가 밝혀낸 진상은 범인이 실제 총과 똑같이 생긴 물총 안에 위스키를 넣고 입 안에 쏘아 넣는 모습을 보여준 뒤, 진짜 총으로 바꿔치기 해서 일종의 자살을 유도했다는 거지요.
그러나 공정성 면에서는 빵점입니다. 독자에게 제공되는 단서는 피해자가 알코올 중독이었다는 것, 그리고 방 안에 감돌았던 위스키 향기밖에는 없거든요. 이 정도로 저 진상을 추리해는건 불가능합니다. 게다가 아무리 소설이라고 해도 그렇지, 진짜 총과 똑같이 생긴 물총이라는 트릭은 너무 했어요. 아주 오래 전 "거꾸로 들고 쏘면 되는 총"이 등장하는 이현세의 망작이 있었는데, 이 트릭은 그보다도 엉망입니다. 

"거울 나라의 살인"에서는 미로의 여러 장치들과 편광 유리를 활용하여 CCTV를 속이는 트릭, "미스터리 클락"에서는 정교하게 시계에 덧대어 붙인 장치 트릭이 등장하는데, 이 작품들 역시 정보 제공이 공정하지 않습니다. "거울 나라의 살인"에서 미로의 인형 얼굴이 볼록한지, 오목한지라던가 CCTV의 위치와 거울과의 관계, 그리고 "미스터리 클락"에서 시계에 덧붙인 장치는 글로는 트릭을 알아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시각 정보가 핵심인 탓입니다. 소설보다는 영상물이나 만화에 사용되었어야 할 트릭이에요. 독자가 추리할 수 있는 여지는 없습니다. 이런 장치 트릭들은 너무 정교해서 범인 의도대로 잘 동작했을 것으로 보기도 힘들고요.

또 트릭에만 집중한 탓에 이야기들의 설득력도 턱없이 부족합니다. 예를 들어 "거울 나라의 살인"에서는 미술관 관장이 살해당한건 완벽한 밀실로 보였지만, 경찰은 에노모토 케이가 밀실을 뚫고 잠입했다는걸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경찰은 "계획살인이었다면, 이 세상 어느 바보가 자기 외에 범행이 불가능한 상황을 만들고 사람을 죽이겠나?"라며 에노모토 케이 대신 다른 범인을 찾습니다! 하지만 이건 말도 안되는 주장입니다. 범인 에노모토 케이가 CCTV가 숨겨져 있어서 자기가 찍히는 줄 모르고 불가능 범죄를 저질렀다고 보는게 당연하니까요. 당장 에노모토 케이를 체포해야 했어요.

"미스터리 클락"은 범인 도키자네가 직접 범인을 잡겠다며 참석자들을 협박한다는 전개 자체는 그럴싸했습니다만, 동기를 도무지 알 수 없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부유하고 성공한 아내를 남편이 살해하는건 보통 돈과 다른 여자 때문이지요. 그러나 이 이야기 속에서 도키자네는 다른 여자가 있다거나, 돈에 그렇게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아내 레이코는 도키자네를 깊이 사랑하는 것으로 묘사되고요. 사건이 일어날 개연성, 즉 와이더닛 측면에서의 설명이 전무하고 하우더닛, 후더닛에만 집중했는데 완성도 측면에서 썩 좋은 결과물이라고 보기는 어렵네요. 만화적인 설정과 묘사들이 많은 점도 영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미스터리 클락"에서의 휴대폰 통화도 되지 않는 오지의 저택에서 고가의 시계 순서 맞추기 게임을 한다는 식으로 말이지요.

캐릭터 묘사 역시 문제가 많아요. '거울 나라의 살인"에서의 안면 인식 장애가 있는 앨리스 전문가처럼요. 준코 변호사가 살인 사건이 벌어진 심각한 상황에서 본인의 억지 추리를 말했다가 놀림거리가 되는 역할로만 묘사되는 것도 마찬가지겠지요. 안티 히어로같은 존재인 에노모토 케이의 매력도 제대로 발휘되지 못합니다.

그나마 마지막 수록작 "콜로서스의 갈고리 발톱"은 괜찮았습니다. 특히 바다 한 가운데 떠 있는 보트가 일종의 밀실과 같다는 독특한 설정은 마음에 들었습니다. 살해했던 근처 어디에서도 접근하는 사람이나 배는 없었다는게 소나 관측으로 증명되었거든요. 하지만 바닷 속에서 올라오는 것 까지는 탐지할 수 없었던 소나 관측의 헛점과 기압에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한 상황을 역이용한 트릭이 선보이는데 나쁘지 않아요. 과거 나기사를 동갈치에 찔려 죽였던 것으로 위장했던 사건의 트릭까지 함께 밝혀지는 등 추리적으로 풍성하다는 것도 장점이고요. 하지만 굉장히 특수한 장치 (잠수복)가 필요했다는 점에서 좋은 트릭이었는지는 고개를 갸웃하게 됩니다. 이런 전문적인 장치의 존재를 알지 못한다면 독자가 풀어낼래야 풀어낼 수 없었던 트릭이니까요. 즉, 독자가 추리할 수 있는 여지가 많지 않다는건 다른 작품들 단점과 비슷합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1.5점입니다. 트릭에만 매몰되어 이야기 완성도가 떨어지는데, 그 트릭마저도 별로라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드네요. 이제 이 시리즈도 그만 읽어봐야 겠습니다.

2010/12/01

기묘한 사건, 사고 전담반 - 존 딕슨 카 / 임경아 : 별점 3점

기묘한 사건.사고 전담반 - 6점
존 딕슨 카 지음, 임경아 옮김/로크미디어

불가사의한 사건·사고를 전담하는 런던 경시청의 D-3 부서에서 마치 대령과 로버트 경위가 다양한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이야기 7편과 기타 단편 4편이 실려 있는 단편집.

"미궁과 사건부"나 현대의 "X-File"처럼, 상식을 뛰어넘는 사건을 다루는 전담 부서는 여러 작품에서 변주된 설정입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1940년에 발표된, 거의 원조격인 작품이지요. 다만 후대의 다른 작품들에 비해 D-3 부서의 설정이 크게 활용되지 않고, 오히려 마치 대령이 활약하는 전형적인 명탐정물에 가깝다는건 아쉽습니다. 좋은 설정을 잘 살리지 못했어요. 마치 대령이 딕슨 카의 다른 명탐정들—펠 박사나 헨리 메리베일 경—과 별다른 차이가 없다는 점도 작품의 개성을 살리는 데에 크게 기여하지 못합니다.

1940년 발표작이라는 점에서 이 작품을 바라보는 시각은 두 가지로 나뉠 수 있을 것 같네요. 하나는 낡고 진부한 트릭이 가득한 오래된 작품이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트릭 자체는 익숙할지라도 거장의 솜씨로 완성도를 높인 고전 명작이라는 평가로요. 개인적으로는 후자 쪽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등장하는 이야기들의 트릭이 오래된 것은 사실이지만, 발표된 시기를 감안하면 단점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시대를 앞서갔던 요소로 볼 수 있거든요. 이러한 트릭과 구성만으로도 흥미로운 이야기를 조리 있게 진행하는 딕슨 카의 솜씨도 감탄할 수밖에 없었고요. 뻔한 설정이라도 동기를 합리적으로 처리하고, 기발한 발상으로 단서를 포착하는 묘사와 전개 방식은 추리 소설 작법 측면에서 읽어볼 가치가 충분합니다. 특히 D-3 부서 시리즈 이외의 네 편은 딕슨 카 특유의 고딕 호러·역사극 스타일이 살아 있는 작품들이어서 더욱 반가왔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트릭의 신선함을 잃은 탓에 추리물로서 가장 중요한 '재미'가 반감되기는 했지만, 고전 정통 본격 추리 단편의 맛이 잘 살아 있어서 고전을 사랑하는 독자라면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좋은 책입니다. 별점은 전체 평균 2.7점으로, 반올림해서 3점 주겠습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아주 약간의 스포일러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건 1: 투명 인간 살인"
맞은편 방을 엿보던 남자는 그 방에서 아무도 없는데 갑자기 총이 떠올라 사람을 쏘는 것을 목격한다.

삼각다리 테이블이라는 무대 장치 덕에 트릭을 쉽게 간파할 수 있었던 작품. 그러나 동기가 합리적이고 깔끔하게 마무리된게 인상적이에요. 결정적 단서가 영어 단어 표현에서 기인했다는 점, '총알 자국'이 단순한 우연이라는 점은 아쉬웠지만요. 별점은 3점입니다.

"사건 2: 사라진 방"
술에 취해 아파트로 돌아온 로널드 던햄은 정신을 차리자 자신이 있는 곳이 다른 방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게다가 그 방에는 시체가 있었다.

모든 방의 가구 배치가 동일하다는 설정을 이용한 트릭이 돋보이는 작품. 시체가 레인코트의 앞, 뒤를 바꿔 입고 있었다는 등의 세부 묘사가 사건의 흥미를 더해줍니다. 트릭 자체는 뻔하지만 이야기 전개 방식이 뛰어나서 끝까지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던 작품이에요. 다만, 결정적 단서인 그림의 '세피아'라는 묘사가 애매하게 번역되어 독자에게 공정한 정보를 제공하지 못한 점이 아쉽더군요. 별점은 3.5점입니다.

"사건 3: 핫머니"
강도단이 강탈한 현금과 채권이 변호사 사무실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밀실에서 사라진 서류 가방을 다룬 소실 트릭물. "도둑맞은 편지"처럼 사람의 맹점을 찌르는 설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상당히 불공정한 트릭이었습니다. 경찰이 조금만 더 꼼꼼하게 수사했더라면 충분히 밝혀질 수 있었다고 생각되네요. 제목과 내용을 연관시키는 유머러스한 전개는 좋았지만, 추리적인 요소가 약해서 별점은 2점입니다.

"사건 4: 새벽, 해변의 죽음"
아무도 없는 해변에서 한 사업가가 목격자들 앞에서 쓰러진다. 의사는 그가 날카로운 무기에 찔려 사망했다고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예상하기 어려웠지만 알고 나면 별거 아닌, 현실적이면서도 간단한 트릭이 사용된 작품. 다만, 불가능한 상황을 강조하는 전개가 지나쳐서 무리수가 많은건 단점입니다. 특히 범인이 고무공을 이용하기 위해 장난감 병정 세트를 샀다는 설정은 지나치게 작위적이었어요. 별점은 2점입니다.

"사건 5: 허공에서 찍힌 발자국"
강도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는 피해자와 크게 다투었던 옆집 소녀. 그녀를 용의자로 만든 증거는 눈 위에 찍힌 발자국이었다.

이 작품의 가장 큰 문제점은 피해자가 살아 있다는 점입니다. 피해자가 증언하면 범인은 밝혀질 수 밖에 없어서 긴장감이 떨어집니다. 트릭도 허술한 편이고요. 뤼팽 시리즈 "팔점종"에서 등장했던 발자국 트릭과 비교해 본다면, 세부 설명이 부족했어요. '몽유병'이라는 설정 역시 설득력이 떨어졌고요. 거장의 솜씨가 엿보이긴 하지만 완성도는 그리 높지 않은 평작 수준 이하의 태작입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사건 6: 분장실의 시체"
인기 댄서 래포트 양이 분장실에서 살해된 채 발견된다. 그러나 가장 유력한 용의자의 알리바이는 확고한 상황.

흔한 변장 트릭이 사용되었지만, 전반적으로 공정하게 단서를 배치해 추리의 과정을 잘 풀어내고 있는 작품. 사건의 동기도 설득력 있게 잘 짜여져 있고요. 짧은 소품이라 이야기가 풍성하지 못한 것이 조금 아쉽지만, 큰 흠은 아닙니다. 별점은 3.5점입니다.

"사건 7: 은빛 장막 속에서"
카지노에서 전 재산을 잃고 궁지에 몰린 윈턴. 수수께끼의 남자 데이보스에게 거액이 걸린 의뢰를 받지만, 그 직후 데이보스가 의문의 살인을 당한다.

여러 추리 퀴즈에서 자주 소개되는 유명한 트릭이 등장합니다. 간단한 트릭이지만 전개가 워낙 탁월해서 완성도를 높입니다. 사건의 동기가 되는 밀수 사건도 설득력 높았고요. 수록작 중 최고작입니다. 별점은 4점입니다.

이 외에도 "합법적인 사형집행인"(별점 4점), "살아 있는 자를 위한 죽은 자의 복수"(별점 2점),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흉기"(별점 2점) 등 다양한 단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2021/11/19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밀실 대도감 - 아리스가와 아리스 / 김효진 : 별점 1.5점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밀실 대도감 - 4점
아리스가와 아리스 지음, 이소다 가즈이치 그림, 김효진 옮김/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추리작가 아리스가와 아리스가 선정한 밀실 트릭 걸작 40편을 일러스트레이터 이소다 가즈이치의 그림과 함께 소개하는 책입니다. 

몰랐던 작품에 대해 알게 된게 가장 큰 수확입니다. 어떤 트릭이 사용되었을지? 생각하게 만드는 글솜씨와 저는 별로였던 작품에 대해 호평하는 이유 등 아리스가와 아리스만의 시각도 볼 만 했고요. 저는 폄하했던 작품에 대해 높이 평가한 글들은 저 역시 리뷰어로서 많은 공부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솔직히 다른 점들은 거의 모두 기대 이하였습니다. 이런 리뷰 모음인 줄은 몰랐던 탓입니다. 밀실 트릭에 대한 분류와 대표작 소개 등, 이론적으로 접근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구입했는데 예상과 너무 다르더군요. 

게다가 소개된 트릭의 비밀을 완벽하게 숨기는 것도 큰 문제입니다. 서두에서 이 책은 일종의 '초대장' 임을 분명히 밝히며 앞으로 이 작품을 읽어보라는 취지의 리뷰이니 이렇게 쓴 건 당연합니다만... 절반에 가까운 작품이 국내 출간되지 않은게 문제지요. 국내에는 서양 미스터리 20선 중에서 11편 - 빅 보우 미스터리, 13호 독방의 문제, 노란 방의 비밀, 급행열차 안의 수수께끼 ("세계 미스터리 걸작선 1"에 수록), 시계 종이 여덟 번 울릴 때, 개의 계시, 세 개의 관, 모자에서 튀어나온 죽음, 킹은 죽었다, 벌거벗은 태양, 투표 부스의 수수께끼 ("샘 호손 박사의 불가능 사건집" 수록) -, 일본 미스터리 20 + 1 중에서도 11편 - D 언덕의 살인사건, 거미, 완전 범죄, 등대귀, 혼진 살인 사건, 문신 살인 사건, 호로보의 신 ("아 아이이치로의 낭패"에 수록), 천외소실 사건, 인형은 텐트에서 추리한다, 녹색 문은 위험, 모든 것이 F가 된다 - 이 출간되어 있습니다(2021년 11월 기준). 41편 중 무려 19편이 미출간된 상황이에요. 이래서야 거의 절반 가까이는 정답을 알래야 알 수 없는 퀴즈집을 읽은 셈이라 짜증이 날 수 밖에 없습니다. 

소개된 작품들이 선정된 이유도 여러가지를 대고 있지만, 결국 트릭만 멋지면 다른건 다 간과하는 듯한 리뷰도 불만스럽습니다. "녹색문은 위험" 같은 작품을 선정한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애초에 이 작품 속 트릭은 기발하기만 할 뿐 현실성은 전혀 없거든요. 하긴, 밀실 자체가 범인이 일부러 만들 이유가 없다는 점을 너무 대충 넘어가는 것 부터가 이상해요. 애초에 밀실 '살인'은 말이 안됩니다. 밀실에서 죽었다면 자살이어야죠.

수록 일러스트들도 실망스럽습니다. "거미" 속 거미 연구소처럼 몇몇 작품 속 건물에 대한 일러스트는 나름 반가왔지만 대체로 간단한 평면도와 밀실이 있는 건물의 간략한 스케치 수준에 불과해서, 예쁘기만할 뿐 가치는 없습니다. 책도 꼼꼼히 읽고, 관련 자료도 열심히 수집했다는 일러스트레이터의 설명이 무의미하게 여겨질 정도로요. 이왕 밀실 트릭 해설을 위한 그림을 싣는다면, 트릭을 설명하는 용도가 훨씬 좋았을거에요. "급행열차 안의 수수께끼"의 복잡한, 기차 내부 장치들을 활용하여 만든 장치 트릭을 그려 주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게 '밀실 대도감' 취지에도 더 잘 맞았을테고요. 이런 문제에 더해 3만원에 육박하는 가격도 용납하기 어렵습니다. 내용을 떠나 분량, 완성도 등 모든 면에서 이 가격을 받을 책은 절대로 아닙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1.5점입니다. 조금 조사해봤더니 저와 같은 이유 - 단순한 리뷰 모음, 트릭 설명 없음, 무의미한 그림들 - 로 이 책에 실망하신 분들이 많더군요. 저도 좀 조사해보고 구입할걸 그랬습니다.

마지막으로, 너무 궁금했던 나머지 인터넷을 뒤져 알아낸, 국내에서 구할 수 없는 작품들 트릭을 몇 개 찾아서 소개드립니다. 당연히 스포일러입니다. 혹시라도 국내 출간에 기대를 걸고 계시다면, 절대 읽지 마세요.

"밀실의 수행자" 비록 국내 소개된 작품은 아니지만 트릭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세계의 명탐정 50인"에 소개된 적이 있기 때문이지요. "소년탐정 김전일"의 "이진관촌 살인사건"에서도 살짝 비틀어 사용되기도 했고요. 진상은 인도인 하인들이 위의 창을 통해 침대를 천장까지 끌어올렸던 겁니다. 백작은 고소공포증이 있던 탓에 침대에서 탈출하지 못하고 굶어 죽게 된 거지요.

"엔젤 가의 살인" 엘리베이터 천장 창문을 통해 엘리베이터가 내려가면 칼이 떨어진다는 장치 트릭. 작품을 읽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칼을 3층 천정쪽에 묶은 끈으로 엘리베이터 천정에 매달아 놓으면, 엘리베이터가 내려가면서 끈이 끊어지고, 칼이 떨어져 아래 사람에게 꽂힌다는 걸까요?

"고블린 숲의 비밀" 뒷문 쪽에 있던 사촌이 잽싸게 집에 들어가 비키를 죽이고, 방수 시트 위에서 잽싸게 시체를 해체해서 짐 속에 나누어 넣었다. 그리고 뒤따라 온 사촌이 비키를 찾는 척 정문으로 들어간 뒤 뒷문을 잠근 것. 그리고 짐을 차에 싣고 돌아간게 진상이었다.

"지미니 크리켓 사건" 이야기를 들려주는 자일즈가 범인이었다. 그는 경찰복을 입고 큰아버지를 살해한 후 방 안에 숨어있다가, 루퍼트가 들어온 뒤에 경찰들과 함께 들어온 것처럼 속였던 것. 납치했던 경찰관을 죽였던건 경찰복을 돌려주기 위해서였다. 루팡 3세 애니메이션에도 사용된 트릭이라지요. 조금 조사해보니, 자일즈와 노인의 관계에 대한 반전도 인상적이라고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51번째 밀실" 범인이 지붕을 떼어내고 탈출하는 트릭. 그림만 봐서는 잘 모르겠네요. 범행을 저지른 동기 쪽이 더 재미있어 보였습니다.

"그리고 죽음의 종이 울렸다" 조각상 밑에 쐐기를 꽂아 놓아 쓰러지기 쉽게 해 놓은 뒤, 창 밖에서 푸코의 진자를 움직이면, 진자가 조각상에 맞아 쓰러지게 만든 것. 설명만 읽어서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런 트릭의 작동 원리를 그려 주었어야죠!

"보이지 않는 그린" 살해 장소인 화장실의 작은 환기구로 고무 보트를 들여놓은 뒤, 좁은 화장실 안에서 고무보트를 부풀려 심장 빌작을 일으킨 것.

"다카마가하라의 범죄" 현인신은 신이라서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는다. 무녀가 조서를 들고 2층에서 내려왔기 때문에 신과 같은 존재가 되어 보초 눈에 보이지 않았던 것. 찾아본 결과로는 이러하던데, 이게 말이 되나요?

"구혼의 밀실" 어린 아이가 범인. 피해자와 범인이 협력하여, 피해자 어깨 위로 범인이 올라가서 3미터 이상 높이였던 천장 채광창으로 탈출한 것.

"로웰성의 밀실" 만화책 37페이지에 있던 엘로라를 맞은편 36페이지에 있던 홀리가 손을 뻗어 살해한 것. 3차원의 인물이 2차원에서 저지른 사건으로, 이소다 씨의 일러스트가 나름 힌트가 되기는 하네요. 이걸 트릭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밀실대도감

2025/10/10

밀실 황금 시대의 살인 (눈의 저택과 여섯 개의 트릭) - 가모사키 단로 / 김예진 : 별점 2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밀실 황금 시대의 살인"은 제목과 '여섯 개의 트릭'이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 여섯 개의 밀실 수수께끼를 전면에 내세운 장편입니다. 수수께끼를 정리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설백관 밀실사건(간자키 살인 재현)
— 수수께끼: 잠긴 방문, 유일한 열쇠는 시체 옆 닫힌 플라스틱 뚜껑 달린 병 안에 있었고 창문은 열려 있으나 촘촘한 창살 때문에 방 안으로 병을 던져 넣을 수 없었다. 
— 해답: 고무줄-추-식칼을 연동한 장치 트릭. 고무줄을 병 뚜껑 고리에 꿴 뒤 방 안에서 창살을 통과시켜 투입 → 추를 창밖 고무줄 끝에 달아 장력 형성 → 사체에 꽂힌 식칼 주위를 통과하도록 병을 잡아 당겨 문을 나선다 → 문을 잠근 뒤 열쇠를 병에 넣고 병을 문 아래 카펫 속에 은닉 → 강제 개방하면 장력으로 병이 실내로 튕기고, 식칼에 의해 고무줄은 절단된다. 추에 의해 고무줄은 창밖으로 떨어진다.

시하이 씨 식당 살인
— 수수께끼: 사망 추정 시각에 누구도 식당동 출입 없음. 피해자는 모조 핼버드에 반복 찔림.
— 해답: 리모컨 슬라이드 식기장을 이용했다. 식기장이 비밀 통로의 숨은 출입구 겸 레일 구조 → 핼버드를 고정한 채, 외부에서 리모컨으로 식기장을 왕복 이동시켜 살해 → 핼버드는 액체 질소로 고정되어 시간이 지나자 녹아 떨어졌다.

사구리오카 방 내 사망
— 수수께끼: 내부 잠금 상태에서, 피해자는 머리에 총상을 입고 죽었다.
— 해답: 시한 폭발 탄환 장치에 의한 것. 침대 밑에 놓였던 장치를 발견한 피해자가 장치 확인을 위해 수면등 아래로 옮기다가 폭발해 사망했다.

마네이 도미노 밀실 사건
— 수수께끼: 피해자 주변을 감싼 채 문까지 잇는 도미노 띠가 놓여 있었고, 문은 잠김. 열쇠는 시체 옆에 놓여 있었다.
— 해답: 액체질소 얼음 고정틀 + 데드볼트 임시 고정을 사용. 문에 얼음틀로 고정한 도미노를 붙임  → 데드볼트 일부를 잘라냄  → 도어 레버를 소폭만 돌린 상태에서 얼음으로 고정 → 문을 닫으면 도미노 얼음틀은 시체 주위와 문을 잇게 됨  → 도어 레버 얼음이 녹으면 도어락 자동 잠김  → 얼음틀 소멸로 도미노만 남음.

야시로 씨 도서실 밀실 사건
— 수수께끼: 문 잠김, 도서실의 유일한 열쇠인 동쪽 동 마스터 키는 시체 옆 꽉 닫힌 잼병 안에서 발견됨, 문 내부 레버엔 가샤폰 돔 커버가 덮여 있었음.
— 해답: 문짝 바꿔치기. 시신을 도서실로 옮김  → 마스터 키를 잼병에 넣고 시체 옆에 놓음  →  자신의 방 문짝과 도서실 문짝을 교환 → 안쪽 레버에 가샤폰 돔 커버 설치  → 문을 닫고 나가서 자기 방 열쇠로 문을 잠금.

미쓰무라의 과거 완전 밀실
— 수수께끼: 완전하게 잠긴 방문과 고정식 창으로 완전 밀폐된 현장, 스페어 키 없는 유일한 방 열쇠는 시체 옆 서랍 속(서랍은 시체 주머니 열쇠로 잠김).
— 해답: 문짝 바꿔치기 + 다른 방 스페어 키를 이용. 현장 외 다른 방에는 스페어 키가 있었음. 범행 후 현장과 다른 방의 문짝 교환 → 다른 방 열쇠를 현장에 남기고 스페어 키로 외부에서 잠금 것.


이렇게 여섯 개의 사건과 트릭이 펼쳐지는데, 이 중 고전적인 장치형 트릭의 맛을 잘 살린 몇몇 사건들은 볼 만 합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첫 번째 설백관 밀실사건과 다섯 번째 야시로 씨 도서실 사건이었습니다. 설백관 사건은 고전적인 장치형 트릭을 현대적으로 변형한 사례로, 사용된 도구는 물론 현장 상황까지가 모두 실제로 범행에 필요했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높습니다. 특히 녹음기나 불 꺼진 방 같은 설정이 단순한 분위기 조성이 아닌 트릭의 일부라는 것도 대단했어요. 비교적 간단한 장치로 복잡하지 않으면서 정교한 느낌을 주며, 독자가 충분히 추리 가능하도록 공정하게 정보를 제공해 주고 있고요.

도서실 사건 트릭은 정말 완성도가 높습니다. 무엇보다도 범인의 방 문짝과 도서실 문짝을 교체하는 트릭은 앞서 구즈시로의 대사를 통해 힌트를 제공함으로써 독자에게도 충분히 추리할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만 합니다. 단서 제공 역시 철저하게 이루어지며, 도서실만이 마스터 키로만 열 수 있다는 설정도 좋았습니다. 같은 방식을 사용하더라도 현장이 다른 방이었다면 문 안에 두 개의 열쇠(마스터 키, 방 열쇠)를 남기게 되고, 그 때 방 열쇠로 문을 열 수 없게 되니까요.

하지만 여섯 개의 트릭 모두 완성도 높게 제공하는 건 어려웠던 듯 합니다. 특히 시하이 씨 사건의 핼버드 트릭과 사구리오카 사건은 유치하고 황당한 수준이었어요. 사구리오카 사건에서 탄환을 발사한 시한 장치는 도대체 어디로 사라졌는지도 잘 모르겠고요.

액체질소를 만능 도구처럼 쓴 트릭들도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대표적인게 마네이 사건의 도미노 트릭입니다. 너무 억지스러워서 납득이 되지 않았습니다. 도미노 설치를 위한 얼음판을 만들려면, AI의 확인 결과 약 7.3리터의 물이 필요하다는 계산이 나오는데, 이 정도의 얼음이 녹아 흐른다면 흔적이 남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바닥재가 물이 스며드는 소재였다는 정도로 대충 넘어가는건 무리에요. 몰래 만드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닐테고요. 데드볼트 잠금만으로도 충분히 효과적으로 밀실을 만들 수 있어서 도미노까지 이용한 이중 밀실을 구현할 이유도 없습니다.

미쓰무라 과거 사건에서 사건 현장 외 다른 방의 열쇠는 스페어가 있었다는 중요한 정보를 서술 트릭처럼 숨긴건 반칙처럼 느껴집니다. 이런걸 경찰이 알아채지 못했다는건 설득력이 떨어지고요.

밀실 트릭 외의 추리적인 부분도 한심한 수준입니다. 트릭을 풀어낸 뒤, 이걸 저지를 수 있는건 ooo뿐이야!는건 워낙에 용의자가 적은 탓에 별다른 감흥이 없고, 동기도 설득력이 약하기 때문입니다. 꽤나 장황하게 설명하는 트럼프 연쇄 살인과 ‘녹스의 십계’, 그리고 단순한 십계 설정은 억지스럽기 짝이 없고요. 이를 통해 어떻게든 살인의 타당성을 보여주려 애쓰지만, 희생자들이 죽을 만큼 잘못한 것도 아니고 범인을 특정할 수 있는 단서도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결과에 과정을 꿰어 맞추는 느낌이라서 거슬리기만 했습니다. 

설정의 완성도는 더 문제입니다. 밀실을 풀 수 없으면 무죄 판결을 받는다는 핵심 세계관 설정부터가 성립하기 힘든 탓입니다. 마스터 키나 스페어 키가 존재하지 않음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는지 설명도 없으며, 21세기에 열쇠 복제가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니까요. 작품의 세계관에 동의할 수 없으니, 재미를 느끼고 몰입하기란 애초부터 불가능합니다. 

주요 인물들 역시 만화적이고 비현실적입니다. 완벽한 밀실 살인으로 무죄를 받은 미소녀 미쓰무라 시쓰리, 아이돌이자 밀실 제조사로 범행을 저지르는 리리아, 살인 현장을 숭배한다는 종교단체 ‘새벽의 탑’과 17세 소녀 주교 펜릴 앨리스해저드 등은 지나치게 작위적이고, 이들의 언행은 독자의 몰입을 방해하는 수준입니다. '빙해' 어쩌구하는 대사는 제가 다 창피해지더라고요.

그래서 별점은 한없이 1.5점에 가까운 2점입니다. 몇몇 밀실 트릭은 고전 본격물의 정수를 잘 살려 볼 만합니다. 하지만 억지 설정과 조악한 추리 요소, 몰입을 방해하는 세계관과 캐릭터는 치명적인 탓에 완성도 높은 작품이라고 하기 어렵습니다. 솔직히 이 리뷰를 쓰는데 걸린 시간이 아까울 정도의 망작이에요. 밀실 트릭물의 광팬이 아니라면 추천하지 않습니다. "이 미스터리가 굉장해" 대상작이라는데, 이 정도까지 수준이 떨어졌는지 몰랐네요.

2006/07/15

쭉쭉빵빵 꽃미녀 탐정단 (전 18권) - 키타자키 타쿠 : 별점 2점

스피드 걸이라는 만화로 조금 알려진 키타자키 타쿠의 정통(?) 추리 만화입니다. 

일단 간단하게 추리만화에 대해 썰을 좀 풀어보자면, 추리 만화는 그동안 많이 있었고, 특히 추리강국 일본에서야 데즈카 오사무가 초기부터 쟝르물을 시도했을 정도로 그 저변이 깊고 넓습니다. 하지만 요새와 같이 하나의 "쟝르"로서 정의되고 다양한 작품이 쏟아져 나온건 아무래도 "긴다이치 소년의 사건부 (소년탐정 김전일)" 대박의 영향이 크지 않나 싶어요. 이후에 나온 이른바 "시리즈" 작품만 해도 한두개가 아니며 그 중에서도 "긴다이치 하지메" 처럼 누구누구의 후손이 활약한다는 이야기만 해도 제가 본 것만 두, 세개는 넘으니까요. 

하지만 이러한 시리즈는 유행에 편승했을 뿐 성공한 작품이 거의 없습니다. 이유는 캐릭터나 추리적인 분위기만 유사하게 잡았을 뿐, 추리물의 기본 - 잘 짜여진 단서들, 정교한 트릭 등 - 에 대한 고려가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긴다이치 소년이 추리만화 쟝르의 시발점이 되었지만, 다른 유행에 편승한 작품들이 인기에 있어서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을 때 혜성처럼 나타나 쟝르가 활성화 되는데 공헌한 건 "명탐정 코난"입니다. 조금 낮은 연령 취향의 설정을 가지고는 있지만, 나름대로 정교한 트릭을 선보이며 정통 추리물로서 확고한 자리매김을 하며 긴다이치 소년과 추리만화의 양대산맥을 이루었지요. 긴다이치와 코난의 성공과 "학원 추리물"이라는 쟝르물로서의 확고한 자리매김으로 이후에 등장하는 작품들도 정해진 공식을 잘 따라 추리와 트릭만 뒷받침 된다면, 충분히 성공할 수 있는 쟝르로 인정받게 된 것 같습니다. 이후의 작품들로 준척급 이상의 성과를 거둔 작품은 "미스터리 민속탐정 야쿠모"나 "탐정학원 Q", "Q.E.D" 등이 있겠네요.

서론이 좀 길어졌는데 지금 소개할 이 "쭉쭉빵빵 꽃미녀 탐정단"도 이러한 "추리물"과 "시리즈물"이라는 정해진 공식에 충실합니다. 그 중에서도, 시리즈를 끌고가는 탐정 캐릭터의 독특함이라는 점에서는 충분히 합격점을 줄 만 합니다. 제목에서도 짐작할 수 있지만 이 작품의 주인공은 여성 3인조 아이돌 그룹 "TriColore"의 멤버인 시라세 아키라거든요. 여자라는 점과 아이돌이라는 신분이 타 추리물 탐정과 비교해도 꿀리지 않을 정도로 독특하죠. 

주인공의 라이벌로 "괴도 리스트"라는 인물이 등장하는 것 역시 공식에 충실한데 김전일의 괴도신사나 코난의 괴도 키드와 동일한 역할을 수행합니다. 거기에 시리즈 중반 이후에 등장하기는 하지만, 작품 전체를 꽤뚫는 악역인 - 김전일의 요이치나 코난의 검은 코트의 사나이들에 대응하는 - 연쇄살인마 "산타클로스"의 존재마저도 공식대로입니다. 

또한 옴니버스 시리즈물로 구성되어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TriColore"가 연예계에서 성공하기 위한 큰 기둥 줄거리를 가지고 이야기가 전개됨으로서 단편물로서만이 아니라 긴 호흡의 이야기로도 충분히 즐길 수 있다는 것도 마찬가지며, 그 외에도 고교생인 아키라의 학교 생활이나 청춘물 같은 사랑 이야기, 협력자 격인 경찰, 여러 다양한 친구들 등 친숙한 설정이 많이 등장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기본 공식에 충실하다고 다 좋은 추리만화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앞서도 말씀드렸지만 이러한 공식보다는 추리, 그리고 트릭이 추리만화라는 쟝르의 가장 중요한 점인데 이 만화는 유감스럽게도! 정통 추리물에 걸맞는 멋진 추리적 요소는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이야기의 동기나 배경 설명 등은 꽤 그럴싸하지만 본격적인 추리 부분에 들어가면 이야기가 맥이 빠질 정도로 어이가 없거든요. 다이잉 메시지, 과학적 트릭, 공간이동 트릭, 밀실 살인 트릭 등 거의 모든 추리적 트릭이 등장하고 있지만 문제가 없는 트릭은 전무하다시피 합니다. 학교에서 벌어지는 간단한 사건들의 소박한 트릭이 더욱 와 닿는 것은 정말이지 안타깝기만 하네요. 작가가 굉장한 트릭을 구상하기 위해 머리를 싸매고 있는 장면이 눈에 선하긴 한데 원체 트릭들이 한심한지라....

또 트릭이 별볼일 없는 데 비해 이야기가 너무 장황한 것은 작가 스스로도 그러한 약점을 잘 알고 있기에 어쩔 수 없이 선택한 방법이겠지만 외려 이야기의 흐름을 지루하게 만들 뿐입니다. 예를 들자면 시라세 아키라의 아버지가 고고학자라는 설정, 다른 멤버인 리나, 카나코의 가족 이야기들은 군더더기라고 밖에는 보이지 않거든요. 시라세 아키라가 학교에서는 정체(?)를 숨기고 히유가 아키라라는 본명으로 안경하나 끼고 다니면서 정체를 숨긴다는 슈퍼맨같은 변장 설정 역시 사족에 불과하고요. 그 외에도 후반부로 가면 그림쪽은 확실히 좋아지긴 하지만 전작에 비해 뭔가 무뎌진 듯한 뎃셍 등 그림에서의 문제도 눈에 많이 띄는 것, 노출이나 므흣(?)한 장면들로 승부수를 던지는 것도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든 부분이었습니다.

물론 추리할 때에는 찬물을 머리에 끼얹고 추리하는 아이돌 시라세 아키라라는 존재만으로도 인기 시리즈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은 충분하긴 했습니다. 추리물을 제외한 부분은 여러 인물들의 애정 관계나 인물 설정, 그리고 아이돌에 관한 여러 디테일 등으로 비록 뻔하지만 재미있게 즐길 수 있었던 부분이었고요. 개인적으로는 주요 멤버인 카나코가 개인 사정으로 탈퇴하는 것으로 하여 그룹의 멤버 체인지를 한다던가, 이야기가 흘러가면서 주인공들의 헤어 스타일이 바뀐다던가 하는 디테일이 마음에 들더군요. 이러한 재미때문에 18여권에 이르는 꽤 긴 시리즈로 연재된 것 같지만 위에서 설명한 추리만화로서 가지고 있는 결정적 약점, 즉 트릭이 후지다!는 것 때문에 성공하지 못한 것 같아서 조금 아쉽습니다.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 인기가 없는 것을 떠나 다른 어디서도 관련 글을 찾아볼 수 없는 철저한 마이너 만화이지만 추리 매니아로서 의무감을 가지고 얼마전 완결편까지 전권 구입에 성공한 기념으로 리뷰를 남깁니다. 차라리 절판된다면 책의 가치가 본의 아니게 올라갈지도 모르겠군요.

2020/02/22

추리소설 속 트릭의 비밀 - 에도가와 란포 / 박현석 : 별점 2.5점

추리소설 속 트릭의 비밀 - 6점
에도가와 란포 지음, 박현석 옮김/현인

일본의 추리 소설가 에도가와 란포의 전설적인 에세이입니다. 늦은 감은 있지만 드디어 출간되었네요. 오래 전 부터 존재를 알고 있던 책이기도 하고, 저 역시도 추리 소설(요리 중심이지만)에 관련된 에세이를 출간한 경험이 있기에 기쁜 마음으로 구입해 읽었습니다.

책은 1956년에 출간되었으며, 주로 1950년대 "환영성" 등 이런저런 잡지들에 기고했던 에세이들을 모아 놓은 구성입니다. 1953년, 에도가와 란포가 영미 탐정소설에서 예전부터 사용되던 트릭을 800여개 수집하여 쓴 "유형별 트릭 집성"이라는 글이 유래이며, 이 글로부터 여러가지 에세이들이 파생되어 이런저런 잡지들에 수록되었다고 하네요.

목차는 아래와 같습니다.

서 ―이 책의 탄생과정
1. 기발한 착상
2. 뜻밖의 범인
3. 흉기로써의 얼음
4. 특이한 흉기
5. 밀실 트릭
6. 은닉 방법에 관한 트릭
7. 프로버빌리티의 범죄
8. 얼굴 없는 시체
9. 변신 소망
10. 이상한 범죄동기
11. 탐정소설에 나타난 범죄심리
12. 암호기법의 종류
13. 마술과 탐정소설
14. 메이지의 지문 소설
15. 원시 법의학서와 탐정소설
16. 스릴에 대해서

각 주제별로, 에도가와 란포가 직접 이런저런 소설의 예를 충실히 들어가며 설명해 줍니다. 책의 특성 상 당연히 핵심 트릭이 까발려지고요. 노리즈키 린타로"나쁜 놈들은 추리 작가가 피를 토하는 노력 끝에 고안한 트릭을 쏙 빼다가 미스터리 가이드북이라는 이름으로 팔아먹는 녀석들이지. 이쯤 되면 기생충 수준이야."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그런 기생충같은 책인거지요.

그나마 다행인건 지금은 읽기 힘든, 오래전 잊혀진 작품들이거나 우리가 접하기 힘든 일본 고전들, 아니면 너무나도 유명한 작품이 많다는 것입니다. 에도가와 란포 자신의 작품 이야기도 많이 소개된다는 점에서는 약간의 면죄부를 줄 수 있지 않나 싶기도 하고요.
또 미스터리 가이드에서처럼 어떤 작품에서 어떤 트릭이 쓰였다고 명확하게 이야기해 주고 있지는 않습니다. 좀 두루뭉실, 애매하게 소개하고 있거든요. 뭐 그래도 알 사람은 다 알겠지만... 

그리고 거장이 쓴 책 답게, 단순히 트릭을 분류하여 정리하는 것에 그치지는 않습니다. 본인 스스로의 분석을 통해 깊이있는 식견을 보이는 글도 많아요. 마지막 16장인 "스릴에 대해서"가 좋은 예입니다. 스릴의 종류를 상세히 분류하여 이를 단계별로 설명하는 내용인데, 실로 이치에 맞고 설명도 적합하여 무릎을 치게 만듭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들을 예로 드는 것도 아주 좋았고요.

그러나 기대에 미치지 못한 글들도 제법 눈에 뜨입니다. 가장 큰 이유는 이 책이 처음 발표된 시점에서 60여년 이상 지난 탓이 가장 큽니다. 대표적인 예는 "이상한 범죄 동기"에서 결코 좋은 작품이라 할 수 없었던 "대통령의 미스터리"를 길게 설명하는 부분입니다. 이 책이 발표되었을 당시에는 일본에는 거의 읽어본 사람이 없는 책이라 특별히 소개했던 모양인데, 지금 상황에는 너무나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암호 기법의 종류"도 마찬가지로, 지금 읽기에는 다른 비슷한 책에 비하면 내용이 굉장히 부실한 편이에요. 메이지 시대 지문을 증거로 삼는 소설이 처음 등장했다는 역사적 사실만 소개하는 "메이지의 지문 소설"도 시대에 걸맞지 않은 이야기였고요.

아울러 하나의 트릭으로 완전히 자리잡은 서술 트릭이 빠져 있는 등, 현대적인 작품 속 최신 트릭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점도 문제입니다. 시대적으로 어쩔 수 없었더라도, 출판사나 후대의 작가가 증보판을 출간하는 선택지는 없었을까요? 제가 가끔 읽는 'oo의 지구사' 시리즈에 주영하 씨가 한국의 상황에 대해 수록한 글처럼, 다른 작가가 부록 형식으로 뒤에 최신 트렌드를 덧붙이는건 얼마든지 가능했을텐데 말이지요.

그 외에도 책의 완성도, 모양새 역시 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고 도판도 부실합니다. 또 책 속에서 소개된 작품이 국내에 출간되었는지 여부, 그리고 출간되었다면 무슨 제목으로, 어디에서 출간되었는지를 따로 소개해 주는 정도의 노력은 필요했어요. 어차피 추리 소설의 애호가들만 구입할 이런 류의 책에서는 필수적인 정보인데 여러모로 아쉽네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나름의 가치는 분명하나 여러모로 지금 읽기에는 낡은 결과물입니다. 책의 완성도도 부족하고요. 추리 소설의 대단한 애호가가 아니라면 구해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물론 추리 소설 애호가시라면 즐길 거리가 제법 되는 만큼, 한 번 읽어보셔도 나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게 누가 되었건, 누군가가 21세기에 걸맞게 내용을 수정하고 덧붙여 개정증보판 형식으로 재출간해 주면 더욱 좋겠습니다.

2013/03/09

인형은 왜 살해되는가 - 다카기 아키미쓰 / 김선영 : 별점 2.5점

인형은 왜 살해되는가 - 6점
다카기 아키미쓰 지음, 김선영 옮김/검은숲

아래 리뷰에는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마술쇼를 위해 준비한 인형의 목이 사라지는 사건이 일어난 뒤, 아야노코지 가문의 딸 유리코가 무대 장치 길로틴으로 목이 잘린 시체로 발견되었다. 마술 협회 회원들이 모인 별장 지수장 근처 철길에서 마네킹이 열차에 치인 뒤, 둘째딸 요시코마저 열차에 치어 죽자 명탐정 가미즈 교스케가 사건 해결을 위해 나섰다.

다카기 아키미쓰의 대표작 중 한 편입니다. 얼마 전 국내에 번역 출간되었지요. "주간문춘 동서 미스터리 100"에도 실려있기에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좋은 점부터 이야기하자면 다채로운 트릭들입니다. 무려 4건의 살인사건이 벌어지는데, 이 모든 사건들에 나름의 트릭이 구사되고 있거든요. 특히나 두 번째 사건의 트릭이 좋아요. 제목인 "인형은 왜 살해되는가"와 부합되는, 그야말로 상식을 깨는 멋진 알리바이 트릭이었습니다. 간단한 소실 트릭이나 현실적이고 "마술"을 테마로 한 작품에 어울리는 첫 번째 트릭, 사건 전체 음모의 핵심이자 배경이 되는 바꿔치기 트릭인 네 번째 사건 트릭도 괜찮았고요.

퍼즐 미스터리의 자존심? 이라고 할 수 있는 독자에의 도전이 수록되어 있을 정도로 완벽한 정통 본격물이라는 점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러나 트릭 외의 부분은 모두 실망스럽습니다. 그간 읽어왔던 작가의 다른 작품과 비교해 볼 때 이야기 수준이 너무 낮은 탓입니다. 우선, 일단 일본 굴지의 명탐정이라는 가미즈 교스케가 너무나 하는 일이 없습니다. 그나마의 추리도 스기우라와 나카타니 죠지가 전한 자료와 단서에 근거하고 있고요. 이 둘보다도 추리력이 떨어진다는 뜻이잖아요? 결국 결말도 죽을 사람들은 다 죽고나서야 범인을 밝혀낸다는 것이니 이래서야 왜 명탐정인지 알 수가 없네요.

작위적인 전개와 설정도 짜증을 유발합니다. 예를 들어 스기우라가 진상에 대해 남긴 글입니다. 누구나 알아볼 수 있는 글이 아니라 암호같은 문구로 남긴건 추리를 위해서만 존재하는 작위적 설정에 불과합니다. 앞서 장점에서 이야기했던 기차 트릭은 분명 걸작이지만, 범행이 실패했다면 결국 요시코와 미즈타니가 결혼하여 아야노코지 가문의 재산을 얻을 기회는 영원히 없었으리라는 점에서 마찬가지로 작위적이었고요. 그 외에도 첫 사건에서의 마술 트릭 후 유리코가 보험에 가입한 이유, 나카타니 죠지의 정체가 무엇이며 무슨 꿍꿍이였는지, 요시코가 준비했다는 덫은 과연 무엇이었는지, 사와무라가 진상을 눈치챘으나 왜 아무런 말도 안하고 혼자 겁에 질려있다가 살해당하는지 등 설명되지 않는 것도 너무 많습니다.

마술이라는 소재도 도입 자체는 나쁘지 않지만, 올드 블랙 매직 어쩌구라는 악마 미사까지 등장시키면서 마법의 영역으로까지 분위기를 몰고가는 것은 지나쳤습니다. 딕슨 카의 고딕 호러 스타일 추리물의 아류작이라는 느낌만 전해 줄 뿐이었습니다. 변격물의 분위기가 남아있는 낡은 스타일의 문체는 작품이 발표된 시기를 감안하면 어쩔수 없었더라도, 지금 읽기에는 촌스러웠고요.

뒷부분에 실려있는 두편의 단편 "무고한 죄인"과 "뱀의 원"도 국내 초역이라는 점은 높이 평가하지만, 두 작품 모두 가미즈 교스케가 하는 일이 별로 없다는 점과 동기나 전개 모두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점에서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뱀의 원"에서 서로의 꼬리를 물고 맞물려 있는 두마리 뱀에 대한 이야기 정도는 괜찮았지만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입니다. 추리적으로는 수준 이상이지만, 완성도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인형을 이용한 트릭을 먼저 떠올리고 억지로 장편으로 끼워 맞춘 듯한 작품이었어요. 고전 추리 애호가분들께는 출간 자체가 기쁜 소식이기는 하지만 지금 출간되기에는 너무 늦은 듯 싶습니다.

덧붙이자면, 띠지에서부터 일본 3대 명탐정 어쩌구하고 광고를 하는데 이런 리스트는 대체 누가 뽑는지 모르겠네요. 맥락도 없고 기준도 없고...

2013/03/26

수수께끼 풀이는 저녁식사 후에 2 - 히가시가와 도쿠야 / 현정수 : 별점 2점

수수께끼 풀이는 저녁식사 후에 2 - 4점
히가시가와 도쿠야 지음, 현정수 옮김/21세기북스(북이십일)

요새 한창 인기인 작가 "히가시가와 도쿠야" 작품. 전작에 뒤이은 시리즈 2탄입니다.

만화 같은 인물들이 가득하지만, 정통 추리 단편집입니다. 그럴듯한 트릭에 더해 호쇼 레이코가 모든 수사를 끝내고 단서를 가게야마에게 이야기하면, 가게야마가 답을 낸다는 전개의 전통적인 안락의자 탐정물이거든요. 독자와의 승부도 공정하고요.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좋아하는 장르라 아주 즐겁게 읽었습니다. 작가 특유의 유머러스한 문체 덕분에 쉽고 재미있게 읽힌다는 장점도 큽니다.

그러나 단점도 명확합니다. 첫 번째로 앞서 말했듯 인물들의 설정이 너무 과하다는 점입니다. 대재벌 호쇼 가문의 따님이 주인공이고, 그의 상사는 자동차 회사 가자마쓰리 모터스의 도련님이라? 거기에 아가씨를 쥐락펴락하는 독설 집사 캐릭터? 만화에서나 봄직한 설정이지요. "부호형사"의 경우는 주인공이 형사로 일하는 이유라도 있지만, 이 작품에는 그런 것 하나 없어서 설정의 설득력도 전무합니다. 전편에서는 나름 신선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두 번째 작품이 되다 보니 식상해서 영 별로였습니다. 좋아하시는 분들도 있겠지만요.

두 번째는 작품들의 수준이 고르지 못하다는 점입니다. 모든 추리 단편집이 가지고 있는 단점이겠지만, 이 책의 경우는 평작 정도 수준의 작품과 평작도 안 되는, 졸작들이 섞여 있다는게 문제입니다. 한, 두 편 정도는 아주 좋은, 별점 3점 이상의 작품들이 있어야 어느 정도 균형이 맞았을텐데, 이래서야 완성도는 저열해 보일 수 밖에 없습니다.

때문에 전체 평점은 2점 정도밖에는 안될 것 같습니다. 트릭은 괜찮은 것이 있고, 읽는 재미는 있는 만큼 추리 소설 초심자 분들이라면 한 번 읽어 보셔도 괜찮겠지만, 수준이 높다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작품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첫 번째 이야기

알리바이 트릭물인데 트릭 자체는 대단치 않습니다. 그래도 나름 기발한 상황에 대한 해석에 더해, 범인의 대사에서 뽑아낸 상황을 중요 단서로 삼는다는 점은 괜찮았습니다. 마지막까지 사건성을 주는 것도 좋았고요. 평작 수준은 됩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두 번째 이야기

피해자 옷장에서 왜 모자가 없어졌을까?에 대한 수수께끼 풀이가 펼쳐집니다. 그러나 범인이 사용한 모자만 챙기고 남아있던 모자 아무거나 선반에 올려놓는 게 더 상식적이지 않았을까요? 게다가 모자를 사용한 용도도 솔직히 이해하기는 좀 어려웠습니다. 한쪽 눈으로 운전하는 게 그렇게나 큰 문제였을까 싶기도 하고요. 

트릭을 위해 존재하는 작위적인 이야기이기에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별점은 1.5점입니다. 새로운 캐릭터인 모자 가게 아가씨가 통통 튀는 매력을 선보이는 점 하나만 볼만했어요. 

세 번째 이야기

의도된 트릭이 아니고 우연에 의한 것이라는 점에서 사건적인 측면의 재미는 덜합니다. 

그래도 알렉산드라이트의 특성을 이용한다는 단순한 소재 이용 트릭은 아니고, "서로 모르는 사이"라는 것을 중요하게 부각시키는 일종의 심리 트릭을 추가한건 좋았어요.

그래도 전체적으로는 그냥저냥한 작품이었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네 번째 이야기

눈 덮인 현장에서 탈출하는 방식에 대해 꽤 괜찮은 트릭이 선보입니다. 누군가의 눈에 띄면 어떻게 되었을까...라는 현실적인 요소가 배제되어 있어서 추리퀴즈 같은 느낌도 들지만, 아이디어는 마음에 들었습니다. 사건 현장과 주요 용의자에 대한 설명만 듣고 범인을 좁혀가는 가게야마의 소거법도 볼만했고요. 별점은 2.5점입니다.

다섯 번째 이야기

왜 피해자의 머리카락이 잘려있는지에 대한 의문 자체는 좋은 소재였습니다.

문제는 영 별로인 결말입니다. 머리카락을 보관하고 있었다는 것도 이해하기 어렵고요. 동기, 트릭, 전개 등등 모든 면에서 수준 이하이기에 별점은 1점입니다.

여섯 번째 이야기

"경성탐정록"에 써먹으려 했던 트릭이 비스무레하게 등장해서 조금 신경이 쓰였습니다. (물론 방식은 전혀 다르지만요) 허나 일제강점기가 아니라 21세기에 경찰 수사력으로 밝혀내지 못할 이유가 없었을 트릭이라는 점에서 도저히 좋은 점수를 줄 수가 없군요.

게다가 상황 자체가 넌센스에요. 여자를 끌어들여 불륜 밀회를 하기 위한 비밀의 방을 만든다는 게 말이나 될까요? 그냥 밖으로 나가는 비상구 정도로만 만들어서 여자 집에 가서 즐기면 충분했을 텐데 말이죠. 가게야마의 추리는 여전히 볼만하나 그 외에는 건질 게 없기에 별점은 1.5점입니다.

2006/01/14

러시아 홍차의 비밀 - 아리스가와 아리스 : 별점 2점

ロシア紅茶の謎 (講談社文庫) (文庫) - 4점
아리스가와 아리스/講談社

범죄 심리학 조교수이자, 실제 사건에서의 활약으로 "임상 범죄 학자"라는 별명으로도 불리는 천재 히무라 히데오와 추리작가 아리스가와 아리스 컴비 시리즈 단편집. 아리스가와 아리스(저자)의 첫번째 단편집이기도 합니다. 그의 "국명 시리즈" 중 하나이기도 하고요. 책에는 전부 6개의 단편과 작가 해설 등이 담겨있습니다.
일본 여행 가서 구입한 책으로 장편이 아니라 단편집이라 부담없이 읽을 수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중간에 번역 한번 해 볼까 하고 삽질하느라 걸린 시간도 있어서 이래저래 거진 한달이 걸렸네요.... 2006년 들어서는 처음으로 완독한 책인 것 같습니다. (만화책은 수도없이 읽었지만서도)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기대 이하였습니다. '일본의 엘러리 퀸'이라고도 불리우는 신본격 작가라서 굉장히 기대했는데 말이지요. 이유는 작품 대부분이 "트릭을 위한" 이야기들이라 트릭에 매몰된 듯한 느낌인 탓입니다. 트릭도 만들기 쉬운 암호 미스테리가 많아서 별로였고요. 표제작이며 작가 스스로 마음에 든다는, 이른바 국명 시리즈인 "러시아 홍차의 비밀"이 제일 어처구니 없고 수준이하였다는 점도 당황스러웠습니다.
또한 탐정역의 히무라 히데오의 캐릭터가 너무 전형적이라는 것도 감점 요인입니다. 캐릭터를 돋보이게 하기에는 단편이라는 특성상 쉽지 않은 부분이 많았겠지만, 잘난척 하는 천재라는 고전적 스테레오 타입 그대로의 인물이라 새로운 면이 하나도 없었어요.
그래도 신본격답게 문제-해결이 명확하고 이야기 하나하나가 깔끔하게 매듭지어지는 것은 좋았습니다. 용의자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이고 단서에 대한 범위를 좁혀줌으로써 이해를 돕는 추리만화 타입의 전개도 쉽게 읽는데 큰 도움을 주었고요.

결론내리자면 그냥저냥한 평작이랄까요. 별점은 2점입니다.
트릭 자체는 제법 괜찮은게 있고, 뛰어난 작품도 분명있기는 합니다. 위에 말한 단점은 장편을 보면 많이 상쇄될 것도 같고요. 다음번에는 장편에 한번 도전해 봐야 겠다는 생각도 드네요. 한 3개월은 걸리겠지만....

개인적인 베스트는 "동물원의 암호"와 "팔각형의 함정" 입니다.

작품별 상세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1. 동물원의 암호 :
동물원 원숭이 우리에서 살해된 시체로 발견된 사육사. 그는 죽기 직전 암호로 된 쪽지를 남긴다. 그 암호는 퍼즐광이었던 피해자가 공들여 만든 것으로 암호를 해독하면 범인을 알 수 있으리라는 판단 하에 주인공 컴비는 동물 이름으로 구성된 암호 해독에 도전하는데...
"동물 이름으로 구성된 암호" 자체가 무척 괜찮습니다. 기발하면서도 수긍이 가는 그런 암호거든요. 일본 거주자가 아니면 풀기 힘들다는 약점은 있지만 말이죠. 내용 전개도 명쾌하고 논리적이라 가장 마음에 드는 단편 중 하나였습니다.

2. 지붕 밑의 산보자 :
하숙집 주인이 살해되는데 경찰 조사로 발견한 그의 일기에서 그가 하숙집 지붕을 밤에 돌아다니는 변태적인 취미가 있었다는 사실과 하숙인들 중 인근 연쇄 강간마로 짐작되는 인물이 있다는 것도 밝혀진다. 그런데 하숙인들을 암호화된 이니셜로 표기하고 있어서 정체를 모르는 상태. 연쇄 강간마이자 하숙집 주인 살인 사건의 범인인 그 하숙인을 찾기 위해 두 컴비가 나선다.
역시 암호 트릭입니다. 이 작품은 암호 자체는 무척 간단한 편이라 정교한 맛은 좀 없더군요. 그래도 에도가와 란포의 동명 단편을 응용한 센스와 마지막의 살짝 등장하는 반전은 무척 좋았다 생각됩니다.

3. 붉은 도처 (稻妻) :
한 여인이 투신 자살한 시체로 발견되는데 히무라 히데오의 제자인 학생이 목격자로 나서 그 여자가 방에서 밀려 떨어졌다는 것을 증언한다. 그러나 그 여자의 방은 완벽한 밀실 상태.
밀실 트릭물입니다. 그러나 트릭의 정교함은 떨어지는 편이고 작품에 흥미를 느낄만한 요소가 너무 적어서 이상할 정도였어요.

4, 룬의 가르침 :
외국인 기자 살인 사건을 해결하는데 도움을 요청받아 찾아간 히무라 히데오. 그는 피해자가 손에 쥐고 죽은 "룬 문자판" 4개의 수수께끼를 푸는데 주력한다.
이 책의 단편들 중에서 전개가 가장 이색적인 작품이었습니다. 히무라 히데오의 방에 놀러간 아리스가와 아리스가 책상위에 놓여진 룬 문자판을 보게 되자 히무라 히데오가 그것에 관련된 사건을 들려주는 셜록 홈즈물 스타일의 전개로 이루어지거든요. 트릭은 역시나 일본 독자들만이 풀 수 있는 암호인데 평이하기도 하지만 좀 억지성이 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룬 문자"라는 요소가 왜 들어갔나 싶게 쌩뚱맞아서 의아했는데 책 뒤의 작가 후기를 보니 "고대문자"에 관련된 트릭 추리물을 써 달라는 의뢰의 결과물이더군요. 뭐 그냥저냥한 수준의 작품입니다. 

5. 러시아 홍차의 비밀 :
인기 작사가 독살 살인 사건에 참여한 컴비. 아무도 그의 찻잔에 독을 주입할 기회가 없었던 상황에서 사건의 해결에 도전한다.
표제작이자 국명 시리즈라는 작품입니다. 솔직히 저는 이 책에서 이 작품이 제일 마음에 들지 않더군요. 트릭도 억지에다가 범인이 왜 그런 트릭을 썼는지에 대한 타당성 자체가 불분명 합니다. "아무도 죽일 수 없는 상황" 이라고 해서 자기 자신이 쉽게 빠져나갈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거든요. 어차피 제일 의심 받을 수 밖에 없는 인물이었는데.... 본격물의 정도를 벗어나 너무 트릭에만 집착한 씁쓸한 결과물로 보입니다.

6. 팔각형의 함정 :
아리스가와 아리스 원안의 추리극을 상연하는 연극 예행 연습에 초대된 두 컴비는 실제로 살인 사건에 직면하게 되는데....
이런게 실제로 있군요! 만화에서만 보던 "추리극" 공연과 관객이 함께 하는 범인 맞추기 이벤트라는 연극을 위해 아리스가와 아리스(작가)가 실제로 원안을 제공했던 연극 각본의 소설화 작품이라고 합니다. 작품도 본격물에 걸맞는 깔끔하고 완벽한 구성을 보여주는 모범적인 작품이었습니다. 트릭도 아주 약간을 제외한다면 수긍할 만 했고 범인이 왜 그렇게 트릭을 만들었는지에 대한 설명 역시 합당하며 범인을 알게 되는 단서 역시 이치에 맞거든요. 일종의 문제편 격인 서술 뒤에 "독자에게의 도전장" 이 있는 것도 인상적이었고요. 재미있는 작품이었습니다. 연극으로 본다면 더욱 재미있을 것 같아요.

2023/09/24

붉은 집 살인사건 - 도진기 : 별점 2점

붉은 집 살인사건 - 4점
도진기 지음/황금가지

<<아래 리뷰에는 진범, 트릭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진은 암으로 여생이 얼마 남지 않은 오빠 남성룡의 유산 상속에 대해 의뢰한 남광자를 만나러 우면동 붉은 집에 방문했다. 붉은 집 1층에는 서씨 가문, 2층에는 남씨 가문이 거주하고 있었다. 고진은 1순위 상속자인 남성룡의 딸 남진희가 모든걸 상속받기에 상속은 오빠와의 협의가 전부라며 자리를 뜨려 했지만, 과거 있었던 2건의 사건 이야기를 듣고 마음을 바꾸었다. 과거 서씨 가문의 가장 서판곤이 남씨 가문의 모친 이분희와 재혼 후 아내를 잔혹하게 살해하고 백솔 사체로 발견되었던 사건과 서판곤의 아들이자 현재 서씨 가문의 가장 서태황의 아내 박은순이 강도에게 살해당했던 사건이었다.
이는 우연이 아니며, 뒤이어 다른 사건이 일어날거라 여겼던 고진의 직감대로 6개월 뒤 남진희가 실족사라는 형태로 사망했다. 고진은 짧은 만남이었지만 미모의 맹인 남진희에게 매료되었던 탓에 사건의 진상을 밝혀낼 것을 결심하고 친구이자 우면동관할서의 반장 이유현과 함께 사건 수사에 뛰어드는데....

과거 판사였던 도진기 씨의 데뷰작이자 '어둠의 변호사' 시리즈 첫 작품. 제목이 달라져서 몰랐는데, 10여년 전에 읽었던 <<어둠의 변호사>>와 같은 작품이더군요. 오래전에 읽어서 기억이 가물가물했는데 바뀐 제목에 낚여서 다시 완독하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주요 트릭과 진상은 대충 잊어버렸던 터라 새롭게 읽는 마음으로 읽을 수 있었네요.

한국 작가의 작품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다채로운 트릭과 두뇌 싸움, 복선이 가득하다는게 가장 큰 장점입니다. 크게는 아래와 같이 서형일이 만든 트릭 세 가지, 그리고 남성룡의 계획 두 가지가 눈에 뜨입니다.

서형일의 트릭
  1. 박은순 살해 당시 알리바이 트릭
  2. 남진희 사건을 일으킨 원격 조종 트릭
  3. 남진희 사건 당시 알리바이 트릭
남성룡의 계획
  1. 서형일의 다아잉 메시지를 이용하여 서태황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려던 계획
  2. 서형일을 움직여 남진희를 살해하도록 만든 계획

서형일의 첫 번째 알리바이 트릭은 유럽 여행 중 살인을 위해 이미 한국에 들어왔지만, 유럽에 남아있던 지인애게 당일 한국 날씨를 확인하여 엽서를 보내도록 만든 것입니다. 단순히 '서형일의 필적'이 근거라는건 증거로 삼기에는 다소 부족해 보이지만, 한국 날씨 예보 종류는 몇 개 없기에 날씨에 대해서만 여러가지로 다르게 기입한 엽서를 준비해서 - 같은 내용으로 "맑음", "흐림", "비" 등으로 만들어 놓는 식으로 - 해당 날짜 예보에 맞는 엽서를 골라 보냈다는 아이디어는 좋았습니다. 문제는 인어공주 동상에 돼지 피를 뿌린 것도 서형일의 공범이었다는 겁니다. 만약 현장에서 체포되었더라면 어쩔 셈이었을까요? 최대한 몸조심하면서 숨어다녀도 모자랄 판인데 이런 조작까지 해 가면서 엽서를 만들어 보낼 필요는 없었습니다.
두 번째의 원격 조종 트릭은 남진희 침실 구조를 이용하였습니다. 남진희가 수면제에 취한 틈에 침대 위치를 정 반대, 대각선 위치로 옮겨놓았던 겁니다. 원래 위치에서 문을 열면 거실로 나갈 수 있지만, 바뀐 위치에서 문을 열면 계단으로 추락하도록요. 수면제, 방의 구조 등 여러가지 단서와 상황을 잘 조합한 멋진 트릭이었습니다.
세 번째는 침대 위치를 옮기는 조작을 위해 사고 전날 부산으로 이동할 때 알리바이를 만든 트릭입니다. 상, 하행선 고속도로 휴게소를 오갔다는 다소 간단한 내용이지만 실행이 용이하다는 점에서는 현실적이었어요.
 
남성룡의 첫 번째 계획은 서형일이 남긴 '아버지'라는 말이 녹음되었다는걸 알고 녹음기를 그대로 두었던 겁니다. 자신이 서형일의 친부라는건 아무도 모르니, 서형일의 양부 서태황이 죄를 뒤집어 쓸 거라 여겼기 때문이지요. 사건의 진상과 동기 를 밝히는 핵심 소재가 된다는 정메서 눈여겨 볼 만 합니다.
남성룡이 서형일을 조종하기 위해 유언장 정보를 흘려 살의를 부추켰다는건 뻔했지만, 언제나 설득력을 보장하는 동기인건 분명하고요.

하지만 확실히 처음 읽었을 때 보다는 별로였습니다. 일단 '잘 쓴' 작품은 아닙니다. 묘사가 튀는 부분이 많고, 고진과 이유현의 추리가 중구난방으로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고진이 중심을 잡고 사건을 끌고가는 맛이 부족해요.
인물 설정과 묘사도 별로입니다. 일본 변격물을 연상케하는 엽기 범죄가 명문가 - 서울대학교 교수와 2성 장군 집안이니... - 에서 이어진다던가, 맹인과 트랜스젠더가 혼재하는 복잡한 가족 설정들 모두가 비현실적이었거든요. 거의 마지막까지 서태황과 서두리를 악역으로 묘사하는건 '얘네들이 범인일거야! 그렇겠지?'라는 작가의 의도가 심하게 드러났고요. 무엇보다도 범죄자의 피는 유전된다는 이론을 작품 전체의 밑바탕에 깔고 있는건 정말이지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고루할 뿐더러 굉장히 위험한 발상입니다. 전혀 찬동할 수 없어요.
그리고 본격 추리물을 추구한 작풍 탓이겠지만, 작 중에서 주요 정보를 노골적으로 알려주어서 추리하기 쉬웠다는건 다소 아쉬웠습니다. 뭔가 상세한 묘사가 있거나 하면 금새 이게 단서구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남진희가 추락사한 침실 현장에 대한 극도로 상세한 묘사, 그리고 박은순 사건 당시 서형일의 알리바이에 관련된 묘사들이 대표적입니다. 남진희 사건은 묘사만 보아도 트릭은 잘 몰라도 수면제로 깊이 잠든 남진희와 방의 구조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걸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서형일의 알리바이도 신문 기사를 통해 곧바로 가짜라는게 드러나고요. 날씨에 대해서 어떻게 조작했는지는 몰라도, 범인이 서형일이라는건 금방 알 수 있어요.
남진희 사건 때 서형일이 톨게이트에서 소란을 피웠다는 것도 알리바이 조작일거라는게 너무 뻔했습니다. 작품 발표 시기는 2000년대 이후인데, 이 때 고속도로 CCTV가 없었을거라는 생각도 들지 않고요. 무슨 차를 탔는지를 알면 고속도로를 이용한 서형일의 알리바이는 금방 깨트릴 수 있었을 겁니다. 이외에도 경찰 수사를 거의 없다시피 묘사한 것도 옥의 티입니다. 서형일은 유럽 여행에서의 알리바이, 고속도로 휴게소 알리바이 모두 협력자가 필요했습니다. 주변 인물과 연락 내용만 살폈어도 협력자를 알아내어 범행을 밝힐 수 있지 않았을까요? 최소한 그런 수사는 벌였어야 했는데 수사에 대한 묘사는 전무하다시피 합니다.
남성룡이 서형일을 살해하고 그 죄를 서태황에게 뒤집어 씌우려 한 것도 억지스러웠습니다. '아버지'라는 말이 녹음된건 우연에 불과합니다. 그 다이잉 메시지(?)만 없었어도, 남성룡 역시 용의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아무리 살의가 넘쳤다 한들, 이렇게 무모하게 범행을 저지를 이유는 설명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제 별점은 10여년 전 보다 감점하여 2점입니다. 데뷰작인 탓에 여러모로 욕심을 부린 티가 많이 납니다. 서형일의 억지스러운 알리바이 트릭에 관련된 이야기는 다 빼고, 남성룡이 남진희에게 살의를 품은 이유 - 아내가 떠나면서 자기 딸이 아니라고 말했기 때문 - 와 괜찮았던 남진희 원격 살해 트릭만 가지고 짧고 깔끔하게 다듬는게 더 나았을 것 같네요.

2020/11/20

움직이는 집의 살인 - 우타노 쇼고 / 박재현 : 별점 2점

움직이는 집의 살인 - 4점
우타노 쇼고 지음, 박재현 옮김/폴라북스(현대문학)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가자마 아키라가 이끄는 극단 '마스터 스트로크'는 연극 "신은 예술가를 좋아해" 공연 연습에 한창이었다. 이 공연은 6년 전 무대에서 사고로 죽은 이자와 기요미 추모 공연으로, 그녀의 아버지인 유명 건축가 이지와 야스노리가 직접 만든 극장인 시어터 KI에서 공연될 예정이었다. 시어터 KI는 계란 형태로 생겨서, 가운데 노른자 부분인 무대가 회전하는 독특한 극장이었다. 

시나노 조지는 이 공연 제작 스태프로 참여하면서, 단원인 모리 쿄코와 연인이 되었다. 그런데 연극 공연 당일 배우 스미요시 가즈오가 부상을 입는 사고가 일어났다. 소품인 칼이 진짜 칼로 바꿔치기 된 탓이었다. 그럼에도 단원들은 공연을 강행하는데, 마지막 공연에서 각본가 겸 배우 다키가와 요스케가 무대에서 똑같은 소품용 칼에 찔려 죽고 말았다. 경찰은 칼을 바꿔치기 할 수 있던 단원들을 의심하고, 단원들은 내분에 휩싸이지만 시나노 조지는 극장 구조를 검토한 뒤 외부 인물이 범행을 저지를 수 있는 유일한 방법 한 가지를 깨닫게 되는데...

1980년대 중반 이후, 일본에서 태동하여 대 유행한 본격 미스터리를 '신본격'이라고 부릅니다. 본격 미스터리의 논리성과 게임성을 중시하는 작품들이지요. 문제는 비현실적인 설정과 트릭이 많다는 점이고요.

이 작품은 전형적인 신본격물입니다. 설정과 캐릭터, 트릭 등 모든게 비현실적, 만화적이며 과장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선, 연극을 공연하는 무대에서 사람이 다치고 죽는다는 설정부터가 비현실적입니다. 핵심 등장 인물들인 극단 '마스터 스트로크' 인물들도 마찬가지에요. 연극에 미쳐 다른 건 돌아보지도 않는 성격에, 대체로 사회성이 부족하고 비인간적이며 자기 이익만 챙기는 극단적인 캐릭터들이 대부분이거든요. 대마초를 재배해서 피우고, 민폐 끼치기가 일쑤인 탐정 시나노 조지야 더 말할 것도 없겠죠.
연극 "신은 예술가를 좋아해" 무대에서 벌어지는 살인 사건도 비현실적입니다. 애초에 소품을 잘못 써서 사고가 일어났다면, 장난감이나 가짜로 바꾸는게 당연한거 아닐까요? 또 연극용 소품으로 만들어진, 몸에 닿으면 쑥 들어가는 장치가 된 칼을 진짜 등산용 칼로 바꿔치기 하여 사건이 벌어진다던가, 한 명이 부상을 입은 뒤, 또 다른 한 명이 같은 흉기로 살해된다는 전개는 너무 뻔해서 당황스러울 정도였어요.

무엇보다도 시나노 조지가 진상이라고 설명하는, 객석이 무대를 중심으로 회전하고 있었다는 거대한 장치 트릭이야말로 과장된 이야기의 정점입니다. 무대가 회전하는 줄 알았지만 반대였다는건데 "웃지 않는 수학자"같은 트릭이지요. 이를 통해 건축가 이자와가 나갔을 때 문은, 원래 방향과 정 반대로 분장실과 이어지게 된다는 겁니다.
그러나 당연히 현실성이 낮습니다. "웃지 않는 수학자"는 개인 건물에서 단 몇 명만 속이면 됐지만, 그리고 천문대가 회전하는건 말이 되는데 거대한 극장 객석이 회전한다는건 전혀 그렇지 않으니까요. 300명의 관객이 좌석이 회전한다는걸 모두 몰랐다던가, 중간에 아무도 화장실을 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건 아무리 신본격이라 하더라도 면죄부를 줄 수 없는 비현실적인 생각이에요. 문을 빠져나가 칼을 바꿔치기 하고 다시 돌아오려면, 객석이 회전하고 있으므로 문 위치가 틀어졌을텐데 그 해결 방법도 설명되지 않고요.
또 이자와 혼자만이 아니라 극장을 만든 모든 사람들, 그리고 범행 당시 무대 조작하는 사람 도움이 필요하다는 문제도 있으며, 무엇보다도 경찰이 조금만 조사해도 금방 알 수 있다는 문제도 큽니다. 읽으면서도 어처구니가 없었어요. 그나마 다행인건 이 트릭은 사실이 아니었다는겁니다. 경찰 조사 결과 객석은 회전하지 않았고, 이자와는 무죄로 풀려나게 되지요.

이후 시나노 조지는 피해자 다키가와가 자살했다고 추리하는데, 좀 시시하기는 하지만 현실적이라는 점에서 앞서 추리보다는 낫더군요. 연극에 미친 사나이가 자신이 직접 쓴 연극 무대를 자살 장소로 삼았다는건 과장된 캐릭터성에 기초하고 있기는 하나, 미래에 대해 절망한 차에 옛 연인 기요미 추모 공연이 도화선이 되었다는 등, 여러가지 동기에 대한 설명이 꽤 설득력 있었기 때문입니다.
반면 자살이라서 별다른 트릭이 없다는 문제는 존재합니다. 앞서 가즈가 다친건 우연한 사고에 불과했다는 설명이지요. '신본격'의 전형적인 틀을 깨고는 있는데, 이래서야 '신본격'이라고 부르기는 또 애매한, 그런 기묘한 장르물이 되어 버렸네요.

작가도 뭔가 트릭에 대한 사명감을 느꼈는지, 연극 무대 살인 사건과는 별개로 핵심 트릭이 따로 등장하기는 합니다. 극단 '마스터 스트로크' 제작 담당으로 일했던, 주인공인 시나노 조지가 사실은 시나노 조지가 아니었다는 일종의 서술 트릭이 그것입니다. 그는 소극장을 상대로 일 년에 한 두번 씩 5년 동안 수익금을 빼돌려 왔던 사기꾼 오니쓰카 도시였지요. 시나노 조지가 등장하는 전작은 읽어본 적이 없지만, 전작을 읽었던 사람들은 놀랄만한 트릭일거에요. 변장을 위해 착용했던 선글라스와 마스크, 수염을 기르는 행위 등을 절묘하게 드러내는 전개도 나쁘지 않았고요. 그러고보니 제목도 트릭이네요. '움직이는 집' 에서 '살인' 이 일어나지는 않았으니까요.

하지만 가짜 시나노 조지가 사기꾼이라는걸 눈치챈 배우 사이키와 다투다가 머리를 부딪혀 죽은 뒤, 트릭이 밝혀지면서 나름 추리력을 보여준 가짜 시나노 조지 캐릭터가 엉망이 된건 아쉽습니다. 그의 말대로 5년 동안 일 년에 한두 번씩 극단 상대로 사기를 쳤다면 최소 5번에서 10번 정도 반복했다는건데 진작에 들키지 않았을 이유가 없습니다. 연극계가 발이 좁다는 묘사는 작품에 넘쳐나니까요. 진짜로부터 신분을 훔친 방법도 '우연히' 보험증을 손에 넣은게 전부고요. 이래서야 나름대로 추리력을 보여 주었던 치밀한 범죄자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시시한 죽음을 맞은건 당연해 보입니다. 서술 트릭도 곱씹어보면 이야기와는 무관한 곁가지 이야기에 불과하고요.

그나마 가짜가 죽은 뒤 진짜 시나노 조지는 대마 불법 소지 및 재배 혐의로 체포되고, 모리 쿄코가 투신하는 장면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건 좀 괜찮았습니다 . 과장된 세계에 종지부를 찍는 작가 나름의 의식으로 보였기 때문이에요. 모든 비현실적인 캐릭터가 죽음, 아니면 감옥으로 현실의 굴레에 갖혀버리고 만 셈이니까요. 작가가 쓴 서문을 보면 본격 추리물을 쓰기 위해 등장시켰던 시나노 조지를 퇴장시키기로 결심한 작품이라고 하는데, 그 결심에 어울리는 결말이라 생각됩니다. 더 제대로 쓰려면, 시나노 조지를 진짜로 죽여버리는게 나았겠지만요. 

그래도 이 정도로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본격 추리, 신본격 소설이면서도 트릭은 별볼일 없는데다가, 신본격 소설들이 갖춘 단점들도 두드러지는 탓입니다. 제 별점은 2점입니다. 딱히 권해드릴만한 작품은 아닙니다.

2011/06/25

Q.E.D 정주행. 1권부터 30권까지 내맘대로 Best

뭔가 꽉 막힌 듯 답답한 게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 요즘입니다. 좋아하는 독서를 마음 편히 즐긴 것도 오래전 일인 것 같네요. 그래서 기분 전환 삼아 쌓아둔 "Q.E.D"를 1권부터 다시 정주행했습니다. 누군가의 말처럼 "책장 어디를 펼쳐도 마음에 드는" 그런 작품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최소한 스트레스가 해소되는 느낌은 드니까요.

이왕 다시 정주행하는 김에 개인적으로 최고의 에피소드를 뽑아보았습니다. 생각보다 일상계 작품이 적어서 좀 의외였어요. 다른 분들의 선택이 어떨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베스트 5

4권 - 야곱의 사다리

오늘날 "Q.E.D" 장기 연재의 발판이 된 작품이 아닐까 싶습니다. 캐릭터는 독특했지만, 다소 뻔했던 이전 에피소드들과 차별화되는, 이른바 수학·과학적 지식이 실제 사건과 잘 결합되면서 만화적 전개를 통해 그 시너지를 극대화시킨다는 "Q.E.D"만의 장점이 잘 드러난 에피소드이기 때문입니다. 동기가 좀 어이없기는 하지만, 이 정도면 스케일도 적당한 편이고, 무엇보다도 인공생명을 의인화하여 성경 속 이야기와 결합한 전개가 아주 절묘했어요.

10권 - 마녀의 손안에

역시나 "Q.E.D"스러운 명 에피소드입니다. 토마가 10살 때인 MIT 재학 시절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역사적 사실인 샐럼 마녀재판과 현대의 살인사건을 접목한 전개도 좋지만, 무엇보다도 범인이 1년여에 걸쳐 계획한 범죄와 트릭이 최고 수준입니다. 법정 드라마스러운 전개도 좋았고요. 전체 시리즈를 통틀어도 최고로 꼽을 만 합니다.

16권 - 죽은 자의 눈물

핵심 트릭으로 시체 감추기 + 알리바이 위장 공작이 등장합니다. 본격물답지만 흔해빠진 설정인데, 트릭의 설득력도 높고 범인의 계획이 꼼꼼하게 짜여 있는 웰메이드 추리물입니다. 토마가 범인을 눈치챈 이유도 깔끔해서 좋았고요. 무엇보다도 만화로는 보기 드문 심리 서스펜스를 묘사가 베스트로 선정한 가장 큰 이유입니다. 마지막 토마의 '사기극(?)' 역시 눈여겨볼 만한 부분입니다.

20권 - 다망한 에나리 씨

탐정 동호회 회장 에나리의 할머니에게 닥친 수수께끼 같은 사건을 그린 전형적인 일상계 소품입니다. 정말로 별거 아닌 사건을 진지하게 본격 추리물로 구성한 일상계의 왕도! 그 와중에 웃음과 재치를 빼놓지 않은 점도 높이 평가할 만 합니다. 베스트로 선정되는 것이 당연한 에피소드입니다.

27권 - 입증 책임

학교 내 모의재판으로 배심원제도를 체험하는 행사에 참관하게 된 토마가 과거 실제 있었던 사건의 진상을 알게 된다는 작품. 

배심원 제도를 이해하는 데 아주 효과적이었던, 역시 "Q.E.D"의 장점인 학습만화스러운 전개가 빛나며, 사건의 맹점을 파헤치는 추리적인 부분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법정물스러운 분위기도 합격점이고요. 마지막에 진상을 꿰뚫고 있으면서도 검찰의 입증 책임 때문에 무죄 쪽에 힘을 실어준 토마의 행동이 역시나 토마답다는 것도 좋았어요. 캐릭터가 이렇게 일관되게 유지되기도 힘든 일이잖아요?

그리고 아래는 아쉬운 가작들. 좋은 작품들이지만 아주 약간 아쉬움이 남아 베스트 5에는 아깝게 선정되지 못한 에피소드들입니다.


아깝다, 가작!

9권 - 얼어붙은 철퇴

이미 잊혀진 과거의 사건을 현재에 밝혀낸다는 줄거리인데, 흡사 "용의자 X의 헌신"을 보는 듯한 두 천재 수학자의 대결이 볼만합니다(선·악의 캐릭터가 뒤바뀐 감은 있지만요). 특히 결말 부분에서 카치도키 다리가 다시 열리는 순간의 재회라는 극적 장치 덕분에 굉장히 드라마틱한 작품으로 완성되었습니다. 아쉽게도 핵심 트릭인 카치도키 다리 관 속에 시체를 넣는다는 트릭이 별로라서 가작이지만, 전개만큼은 높이 평가하고 싶습니다.

11권 - 겨울 동물원

무명 추리작가가 자신이 고안한 트릭으로 사건을 저지른다는 일상계스러운 본격물입니다. 추리작가의 유령이 사건을 끌어가는 유머러스한 진행도 좋지만, 유치한 트릭을 한 번 더 포장하는 결말이 마음에 들어 가작으로 선정합니다. 그런데 궁금한 게 한 가지. 토마는 유령의 존재마저 눈치챘던 걸까요?

13권 - 재난의 사나이

로키와 에바 다음으로 출연 비중이 높은 토마의 대학 동기 알렌 브레이드와의 두뇌게임을 그린 에피소드. 렘브란트의 작품으로 장물이기도 한 그림을 놓고 벌이는 게임이 상당히 흥미진진합니다. 후쿠모토 노부유키나 카이타니 시노부 같은 게임 만화 거장들의 작품처럼 긴박감 넘치는 전개가 있었더라면 더 좋았겠지만,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에피소드입니다.

17권 - 까마중

영화 촬영장을 무대로 한 밀실 트릭이 등장하는 에피소드로, 트릭 자체는 경찰 수사로 밝혀질 수준이라 높은 수준은 아닙니다. 하지만 설정과 트릭이 작품 속 영화 "까마중"과 병렬로 진행되며 완벽하게 맞물리는 점이 아주 인상적이었어요. 트릭만 좀 더 정교했다면 만점을 받아도 될 만한 작품입니다.

24권 - 크리스마스 이브이브

크리스마스이브의 밤, 엄청나게 바쁜 노래방에서 벌어진 희한한 사건을 그린 일상계 에피소드. 소소하지만 짜임새 있는 전개와 함께 일종의 암호 트릭이 등장하는 등 풍성함이 좋았습니다.

25권 - 여름의 타임캡슐

가나가 초등학교 때 묻은 타임캡슐 속 보물에 대한 기억을 더듬어가는 이야기. 사건의 동기가 설득력 있고, 추리의 과정도 합리적일 뿐만 아니라 추억의 소중함을 알려주는 여운이 인상적인 작품이라 가작으로 선정했습니다.

2005/05/04

초고층 호텔 살인사건 - 모리무라 세이이치 : 별점 3점

초고층 호텔 살인사건 모리무라 세이치 지음, 김정우 옮김/해문출판사

크리스마스 이브, 동양 최대의 호텔인 이하라 호텔의 개장을 기념하는 파티가 열리던 중, 이하라 호텔의 거대한 빛의 십자가 모양의 조명 앞으로 사람이 떨어져 죽는 것을 수많은 사람들이 목격하게 된다.
피해자는 미국 넬슨사에서 파견된 이하라 호텔의 지배인 토마스 소렌센. 그의 죽음은 살인사건으로 보이지만 그가 투숙해 있던 16층의 방은 사실상 밀실 상태여서 사건은 미궁에 빠진다. 그 뒤, 이하라 그룹 사장 비서 오자와가 살해된 시체로 발견되고 오자와의 부하 직원의 증언으로 경찰은 소렌센 사건에서의 트릭 및 소렌센-오자와 사건의 범인이 누구인지 짐작하게 된다.
하지만 철벽의 알리바이를 깨지 못해 고민하던 중, 이하라 그룹의 라이벌인 부용은행의 차남 고레나리 도시히코마저 밀실에서 살해된 시체로 발견되며, 경찰은 이 세 사건의 연관성을 연구하여 철벽의 알리바이와 밀실트릭을 깨트리고 진범을 검거하게 된다.


모리무라 세이이치의 작품. 꽤 유명한 작품이지만 예전 번역본은 구하기가 어려워 손을 놓고 있던 차에 해문의 미스테리 베스트로 출간되어 읽게 되었습니다.

작가의 1971년 작품으로 비교적 초기작에 속하고, 이 작가의 초기작은 꽤 괜찮은 작품이 많아 읽기 전 부터 상당히 기대를 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사실 이 작가의 후기작은 작품이라 부르기 미안한 수준의 작품마저 양산한 작가라서.....

여튼, 이전에 읽었던 "고층의 사각"과 유사하다는 것이 눈에 먼저 뜨이네요. 호텔에서 실제로 근무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설정이 꽤나 요긴하게 쓰이는 점, 그리고 고층의 호텔 밀실이라는 점은 판박이로 보여져요.
그러나 데뷰작 이후 어느정도 내공이 쌓인 덕인지, 인물과 드라마는 훨씬 복잡하게 전개됩니다. 무엇보다도 호텔에서 발생한 밀실 살인 트릭과 시간차를 이용한 장소이동 알리바이 트릭, 그리고 체인으로 밀실을 만드는 3종의 트릭이 등장해서 추리적인 재미를 마음껏 느끼게 해 주는 것은 최대의 장점이겠죠.
허나 "고층의 사각"에 비해 너무 흥행을 의식한 티가 나는 것은 감점 요소입니다. 난잡한 상류계층의 생활과 범죄를 그리는 것이야 모리무라 세이이치 작품의 특징이라 치더라도 이 작품은 그 정도가 너무 지나쳐서 만화같은 느낌마저 들거든요. 인물 및 배경 설정에서 현실감이 너무 떨어지기도 하고요. 모리무라 작품에서 항상 느껴왔던 것이지만 이러한 설정들이 좋은 트릭과 전개를 너무 흐리고 있어서 아쉽습니다.

그래도 그냥 트릭만 놓고 본다면 모리무라 세이이치 작품에서도 꽤 높은 수준이기는 합니다. 개인적으로 평가한다면 첫번째 사건 -초고층 호텔 살인사건- 은 제목으로까지 쓰인 임팩트 있는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트릭은 수긍하기 어려운, 그냥저냥한 수준이었지만 다른 2개의 트릭은 상당히 재미있고 깔끔하니까요. 특히나 2번째 시간차 알리바이 트릭이 아주 좋은 편인데, 기발하기도 하거니와 범인들이 보다 치밀한 함정을 파기 위한 공작을 벌이다가 오히려 꼬리를 잡히게 되는 전개가 마음에 듭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3점. 작가의 최고 대표작이라고 보기는 무리가 있지만 추리작가로서의 모리무라 세이이치를 잘 느낄 수 있고, 길이도 그다지 길지 않아 쉽게 읽을 수 있어서 심심풀이 독서로는 괜찮은 선택이었다 생각됩니다.
아울러 접하기 힘든 작품을 과감하게 선정해서 소개해 주는 점, 거기에 계보도까지 그려놓고 시간차 트릭을 깨기위한 시간대를 표로 구성하여 삽입한 출판사의 센스에도 박수를 보냅니다. 역시 추리전문 출판사는 다르군요.

2011/11/17

로트레크 저택 살인사건 - 쓰쓰이 야스타카 / 김은모 : 별점 2점

로트레크 저택 살인 사건 - 4점
쓰쓰이 야스타카 지음, 김은모 옮김/검은숲

이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상당히 포함되어 있습니다. 주의하여 주세요.

8살 때 친구 때문에 허리를 다쳐 하반신 불구가 되고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한 시게키는 어렸을 적 살던 로트레크 저택에 친구와 함께 방문했다. 그들이 아름다운 아가씨들, 멋진 그림과 함께 보낸 즐거운 시간은 곧이어 벌어지는 연쇄살인 사건으로 악몽으로 돌변하는데...

"시간을 달리는 소녀"로 잘 알려진 천재 중의 천재라는(그러나 개인적으로 솔직히 이해하기는 어려운) 쓰쓰이 야스타카의 몇 안 되는 본격 추리물입니다. 명성은 익히 들어왔습니다. 이런저런 리스트에 선정된 작품이기도 하고, 예전에 이런 글을 남겼을 정도로요.

쭉쭉 읽히는 재미는 확실해서 한 번에 읽을 수 있다는 점은 확실히 명성에 값합니다. 무려 3건의 살인 사건이 벌어져서 지루할 틈도 없고, 호흡과 길이도 적당한 덕분입니다.

무엇보다도 출판사 비밀 홈페이지에서 밝혔듯, 나름 공정하면서도 디테일한 여러 장치들이 공들여 짜여져 있어서 본격물로서의 가치가 아주! 높다는게 가장 큰 장점입니다. 약도를 비롯한 디테일들을 되짚어 보면 정말 감탄이 저절로 나올 정도예요. 예쁘게 만든 책의 만듦새도 좋습니다. 곳곳에 삽입된 로트렉 작품 컬러 화보 등의 디테일도 마음에 들고요.

하지만... 아쉽습니다. 국내 출간이 너무 늦었어요. 인칭을 교묘하게 이용하는 전형적인 서술 트릭 작품인데, 정확하게 트릭을 파악하지는 못했지만 초반의 도입부부터 "아, 이렇게 독자를 속이려고 하는구나"라는 게 티가 팍 났거든요. 이 모든 게 "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 "살육에 이르는 병", "통곡", 오리하라 이치의 "도착 시리즈" 등 후대의 서술 트릭물을 너무 많이 접한 탓이지요.

또 다른 서술 트릭의 걸작들과 비교하면, 진범을 숨기려는 노력이 너무 작위적이라 거슬리기까지 했습니다. 분명히 한 명이 더 있는데 그것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하다 보니 묘사의 설득력이 많이 떨어지고, 억지스러운 부분이 있어서 공정한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거든요.

국내에서는 친숙하지 않은 일본 이름을 이용한 전개도 불만스러운 부분이었습니다. 이름을 이용할 것이었다면 차라리 "십각관의 살인"처럼 결정적 트릭으로 써먹었더라면 모르겠지만 하마구치 - 시게키 - 구도라는 등장인물의 호칭이 성인지 이름인지를 불명확하게 흐린 점은 서술 트릭을 위한 꼼수로 밖에는 느껴지지 않더군요.

아울러 추리적으로 본다면 서술 트릭 외에는 점수를 줄 부분이 거의 없습니다. 최소한 다른 트릭이나 장치가 한 개 정도 더 있어야 했습니다. 사건 자체의 수수께끼나 트릭은 없고 결국 경찰이 사건을 해결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 별점은 2점입니다. 트릭만 놓고 보면 시대를 앞서간 좋은 작품이고, 나름 정교한 부분은 높이 평가할 만합니다. 20년, 아니 10년만 먼저 출간되었더라도 꽤 충격을 가져다줄 수 있었을 텐데 안타까울 뿐이네요.

여러 서술 트릭 작품을 많이 읽지 않으신 독자분들께는 추천하지만 그렇지 않은 추리 애호가분들에게는 좀 심심한 작품일 수 있다는 점 염두에 두시길 바랍니다. 그러고 보면 아이디어에 의존하는 작품의 아이디어가 퇴색하는 순간 작품 자체가 빛을 잃는다는 예술사 고유 명제를 증명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2011/04/17

Q.E.D - 36 / 37 - 카토우 모토히로 : 별점 2점씩

Q.E.D 큐이디 36 - 4점
카토우 모토히로 지음/학산문화사(만화)

오래간만의 Q.E.D. 이번에는 조금 긴 호흡의 이야기 두 편이 실려있습니다.

두 편 평균 별점은 1.75점... 반올림해서 2점주겠습니다. 간만에 봤는데 심하게 평균 이하라 안타까왔습니다.

"쿠로가네 저택 살인사건".

물리학과 교수의 자살, 그리고 뒤이은 교수 장례식장에서 벌어지는 살인 사건이라는 두 개의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자살로 위장한 교수 살인 사건은 트릭은 없지만 간단한 모순을 통해 사건의 진실을 꿰뚫어 보고, 두 번째 사건에서는 화살을 이용한 장치 트릭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 중 첫 번째 사건은 Q.E.D스러운 분위기, 자연스럽지만 모순이 존재하는 상황을 잘 끄집어 내었다는 점에서 괜찮았습니다. 그러나 두 번째 화살 트릭은 정말 실망스러웠습니다. 도저히 한번에 제대로 성공할 수 있으리라 생각 되지 않는, 운과 우연이 크게 좌우하는 트릭이었던 탓입니다. 차라리 극중 토마의 말처럼 공기총으로 화살을 쐈다고 하던가... 이 졸렬한 트릭 때문에 교수님이 직접 세운 복잡한 계획임에도 불구하고 전개에서 현실성이 떨어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단박에 불가능한 트릭이라는 결론이 내려져버리니, 기껏 용의자를 만들어 놓은 의미 자체가 없어져 버렸으니까요. 

전개도 문제가 많습니다. 앞서서는 계속 동기 부분을 흐려놓다가 마지막에 그 동기가 사실이었다는 결론인데, 오랜시간 참아왔던 욕구가 별다른 이유없이 표출된다는건 말이 안됩니다. 

심각한 사건을 담백하게 진행하는 Q.E.D스러운 분위기와 함께 제논의 화살과 같은 현학적인 재미마저도 없었다면 점수를 줄 수 있는 부분이 전무한 평균 이하의 작품이였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Q and A"

에게해에 있는 부유한 은행가 글래스 로스펠더의 별장에 자식들이 모입니다. 이들 중 후계자가 될 사람에 대한 판정을 토마가 내리는 임무를 맡는다는 이야기지요. 와중에 벌어지는 이상한 사건들과 섬에 전해져 내려온다는 수수께끼 같은 시도 하나로 엮이고요. 

동-서의 교차점이었던 에게해의 별장, 부유한 은행가의 후계자들, 섬에 전해져 내려오는 수수께끼와 같은 시, 거대한 음모가 펼쳐지는 듯한 전개 등에서 상당히 큰 스케일이 느껴지긴 했습니다. 

그러나... 완성도 면에서는 평범한 일상계 작품보다도 훨씬 못했습니다. 아무리 읽어봐도 시와 자식들을 평가하는 심사가 무슨 관계가 있는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심사도 너무 뻔했고요. 작가 스스로 괜찮은 아이디어라 생각하고 그리기 시작했지만, 그리다 보니 혼란에 빠진게 아닌가 싶었어요. 추리적인 부분과 일반적인 재미 두가지 모두에서 실패한 졸작입니다. 스스로 악당임을 자처하는 토마의 새로운 모습을 본것 하나 정도만이 위안거리였습니다. 별점은1.5점 입니다.

Q.E.D 큐이디 37 - 4점
카토우 모토히로 지음/학산문화사(만화)

이어지는 37권 역시 두 편의 이야기가 담겨있습니다. 수록된 두 이야기 합쳐 평균 2점... 첫번째 작품이 그래도 선방해 주기는 했지만 두 권 모두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습니다. 다음 권에서는 만회해 주었으면 좋겠네요. 

솔직한 심정으로는 C.M.B와 아이디어를 나누지 말고 하나로 합쳐서 하나의 시리즈에 주력해 주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살인강의" 

토마는 미즈하라 경위의 부탁으로 이즈반도 경시청 연수시설에서 진행된 범죄 프로파일링 강습회에 참석했다. 그러나 그날, 경찰관 대상의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

피해자와 용의자들 모두가 같은 강습회에 참석한 경찰관들로 밀실 트릭과 심리 트릭을 교묘하게 이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범인이 아무리 궁지에 몰렸다고 하더라도 경찰관들이 연수를 받는 건물 안에서 대담하게 범행을 저지른 것에 대한 설명이 많이 부족했다는 점, 그리고 핵심 트릭이 너무 장난스럽고 유치하다는게 아쉬웠습니다. 애시당초 자기 옆방이 누구 방인지 모른다는 것이 말이 안되잖아요? 관리인만 나와도 쉽게 해결될 문제이기도 하고요. 

트릭이 기본만 해 주었더라면 전개 자체는 몰입할만해서 훨씬 높은 점수를 줄 수 있었는데 아쉽네요. 별점은 2.5점 입니다.

"아니마"

애니메이션 원화 하청업체서 벌어진 원화 훼손 사건을 해결하는 전형적인 일상계 작품. 

그런데 핵심적인 사건과 트릭이 빈약해서 이렇게까지 길게 끌고갈 필요가 있나 싶었습니다. 특히나 아니메에 아니마(생명, 영혼)을 바친다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너무 길고 지루해서 불만스러웠어요. 일하다보면 지칠 수도 있고 하는 일에 대한 회의가 밀려올 수도 있다는 것, 그래서 지치고 힘들어서 직장을 그만둘 수도 있다는 것은 10년 이상 일해본 직장인 누구나 겪어본 이야기일텐데 그게 뭐 그리 대단하다고 아니마 어쩌구 하면서까지 표현한건지 당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아니 동의할 수 없어요. 

덧붙여 추리적으로도 굉장히 허술하고 말이 안되는 상황이 있어서 높은 점수를 주기는 불가능했습니다. 평범 이하의 작품이었어요. 별점은 1.5점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