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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11

에도 일본 - 모로 미야 / 허유영 : 별점 2.5점

에도 일본 - 6점
모로 미야 지음, 허유영 옮김/일빛

바쿠후 시대의 에도의 문화와 풍속을 다룬 미시사 서적입니다. 크게 음식 - 생활 - 오락 - 사랑 - 바쿠후 - 의협 - 괴담으로 목차가 나뉘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 에도 문화를 다루는 것은 사랑까지고 바쿠후는 바쿠후 쇼군들의 간략한 소개, 의협은 쥬신쿠라 이야기, 괴담은 한시치 체포록의 한 단편을 실어놓은 것이라 실망스러웠습니다. 그래도 음식 - 생활 - 오락 - 사랑에 대한 이야기는 다행히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음식"의 경우, 바쿠후시대의 에도는 동시대 세계 다른 어느곳 보다도 외식문화가 발전했던 곳이었다던가, 복어에 대한 이야기도 새로왔지만 장어 이야기가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나무젓가락이 에도시대 우나돈 식당 주인의 발명품이라는 것은 처음 알았네요.
"생활" 부분에서의 기모노와 화장 등은 저자가 여성이기 때문인지 관심가졌던 분야 같은데 역시 새롭게 알게된 것들이 많았습니다. 작가가 소개한 이시노모리 쇼타로의 "화장사"를 구해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뭐니뭐니해도 "사랑"이 가장 재미있었는데 단지 사랑뿐만이 아니라 요시와라와 같은 유곽에 대해 아주 자세하게 다루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런저런 정보가 많지만 유녀와 하룻밤 보내는데 모두 합쳐 거의 100냥 (1냥은 12만엔 정도?) 정도 들었다는건 놀라왔습니다. 지금 돈으로 1억이 넘으니 어마어마하잖아요? 에도시대 유명한 부호였던 기노쿠니야의 기행 같은건 독립된 이야기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고요.

그 외의 내용도 백과사전같은 재미는 충분합니다. 예를 들면 에도시대 의적으로 알려진 괴도 네즈미코조에 대한 이야기같은 것이죠. 10년동안 다이묘저택 19곳을 도둑질해서 모두 3,200냥정도의 돈을 훔쳤다니 놀라울 뿐이네요. 실존인물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정보를 직접 접한 것은 처음이었어요. 처형당한 뒤 묘지가 도쿄 스미다구 에코인(回向院)에 위치하는데 비석 조각이 수험생들 호신부로 인기라고도 하니 (모든 관문 통과!) 다음에 도쿄에 가게 된다면 한번 찾아가 봐야 겠습니다.^^ 잠깐 찾아보니 근처에 에도박물관도 있네요.

절반정도는 별반 새로울 것이 없고 너무 잡다한 내용을 모아놓은 느낌도 강해서 별점은 2.5점입니다만, 그래도 이 책에서만 알 수 있었던 것들도 많아서 자료적 가치는 충분한 만큼 에도에 대해 관심있으신 분들께 추천드립니다. 책도 재미있게 잘 쓰여진 편입니다.

2017/07/09

식물도시 에도의 탄생 - 이나가키 히데히로 / 조홍민 : 별점 2점

식물도시 에도의 탄생 - 4점
이나가키 히데히로 지음, 조홍민 옮김/글항아리

에도와 관련된 식물 이야기가 나올 것이라 생각하고 읽은 책입니다. 소갯글도 그럴듯하고, 만든 모양새도 예뻐서 집어들게 되었네요.

그런데 생각과는 무척 달랐습니다. 우리가 익히 아는 에도 시대, 즉 도쿠가와 막부 시대 뿐만이 아니라 일본 각지, 다양한 시대를 망라하여 여러가지 식물 관련 정보를 전해주거든요. 에도 시대로 한정하면 내용이 많지 않은건 당연하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겠지만, 이래서야 제목과의 괴리감이 너무 큽니다. 게다가 우리나라 이야기도 아니라서 큰 재미를 느끼기도 힘들었어요. 딱히 식물에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닌 탓에 더욱 그러했죠.

또 등장하는 해석도 과장되거나 오버스러운 것이 많습니다. 에도가 인분을 기반으로 벼농사를 지어서 오물 통제가 가능한, 완벽한 '에코 - 리싸이클링 도시' 였다고 이야기하는게 대표적인 예입니다. 조금 남은 오물 잔류물도 바다에 영양을 공급하여 전설의 황금어장 '에도마에'를 만들었다고 하는데 설득력이 낮습니다. 인분을 비료로 쓴 곳이 일본, 에도에 한정된 것은 아니잖아요? 닌자들이 직업 특성 상 각종 식물, 약재에 능통한 전문가들이었다고 설명하는 부분도 오버스럽기는 마찬가지고요.

물론 분량도 길고 주제가 독특한만큼 볼만한 정보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앞서 이야기한 닌자 이야기 중, 닌자가 '호로쿠다마'라 불리는 화약 장착 수류탄을 무기로 이용했는데 그 재료가 식물 쑥이었다는 이야기가 가장 기억에 남네요. 초석은 질산칼륨의 결정으로, 닌자는 쑥에 오줌을 뿌려 흙 속에 묻은 후 미생물을 발효시켜 오줌 속 암모니아와 쑥에 함유되어 있는 칼륨을 반응시켜 질산칼륨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어떻게 이런 것을 알았는지 모르겠지만 정말로 대단해요.
가토 기요마사가 구마모토 성을 축성할 때, 과거 조선 출병 시 농성전을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다다미의 심으로 짚 대신 토란 줄기를 사용했다는 이야기도 인상적입니다. 일종의 보존식으로 벽에는 박으로 만든 박고지까지 발라 넣었다고 하네요. 지금 구마모토의 명물인 가라시렌콘(삶은 연근 구멍에 물에 갠 겨자와 된장 섞은 것을 넣고 밀가루와 콩고물을 묻혀 튀긴 향토요리)의 재료인 연근 역시 구마모토 성 해자에 비상 식량으로 재배되고 있었다니, 조선에서 어지간히 고생했나 봅니다.

하지만 이런 재미난 이야기들 역시 과학적인 사실에 기반한 것도 아니고, 출처나 자료가 제대로 제시되지 않아서 대체 무슨 사료를 기반으로 이야기하는지 불분명하다는 단점은 큽니다. 대표적인게 전국 시대 무장들이 어떻게 초식만 먹고 싸울 수 있었는지에 대한 고찰입니다. 무장들은 하루에 현미 5홉 정도를 먹었는데, 단백질도 없이 이 정도 식사로 갑옷을 입고 어떻게 전투를 할 수 있었나?를 전투민족 파푸아뉴기니인들과 연결시켜 설명하거든요. 파푸아뉴기니인들도 바나나와 타로, 토란 등 식물만 먹는데, 이를 통해 전국 무장들이 파푸아뉴기니 사람들 처럼 장내에서 질소를 흡수해 채내에서 단백질을 합성할 수 있었다고 주장합니다. 당연히 과학적으로 증명 되지 않은 추론에 불과한 내용이지요. 발상은 재미있지만 여러모로 무리였어요.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사랑했던, "맛의 달인"에서도 간혹 언급되던 '핫초 된장'의 유래와 같이 내용 자체가 부실한 이야기도 제법 됩니다. 이 이야기에서 건질 것은 이름의 유래밖에는 없어요. 이에야스가 태어난 오카자키 성으로부터 8정 떨어진 핫초 마을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이라는데 이건 사실이겠지요. 그러나 그 외 된장의 특성에 대해서는 딱히 대단한게 없습니다. 핫초 마을은 야하기 강 자연 제방 위에 위치해 된장 만들기에 필요한 용천수가 충분했고, 야하기 강을 통해 수로 운송도 용이해서 된장이 발달할 수 있었다. 아울러 핫초 된장 제작에는 성을 쌓는 기술도 응용되어 있는데, 찐 콩을 동그랗게 뭉쳐 누룩균을 묻힌 된장 덩어리를 직경 2미터 정도의 거대한 삼나무 통에 채워 넣고, 된장 덩어리와 같은 무게가 될 정도의 돌을 눌러 쌓아 숙성시키는 것으로 이것은 성의 석벽을 쌓는 것과 같은 이치다라는 겁니다. 그러나 이 정도 환경을 갖춘 지역이야 널리고 널렸을테고, 제작 방식도 축성 기술을 응용했다고 보기에는 여러모로 무리인데 너무 억지로 대입시킨 느낌입니다. 예컨데 순창 고추장에 대한 설명 - 기후상 습지가 많은 분지 지역이라는 특성 덕분에 고추장 발효가 활발해져서 다른 고추장에 비해서 장맛이 깊고 빛깔 또한 곱다 - 정도의 설득력이 있지는 않아요. 이런 이야기가 '식물'을 이야기하는 책의 주제와 맞는지도 잘 모르겠고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기획의도와 주제, 만든 모양새는 여러모로 마음에 들지만 내용은 별로 기대에 미치지 못햇습니다. 단점도 많으며 내용에서 딱히 신뢰가 가지도 않았기에 좋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네요.

2014/11/17

미야베 미유키 에도 산책 - 미야베 미유키 / 김소연 : 별점 2.5점

미야베 미유키 에도 산책 - 6점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북스피어

미야베 미유키가 출판사 신초샤와 함께 한 기획 기행문.

쥬신쿠라의 아코 낭사들이 기라 저택을 습격한 후 센가쿠지 절로 철수했던 길을 따라 걷기, 시중에 조리돌리기한 뒤 효수했다는 당시 루트를 따라 걷기, 하코네 관문을 돌파하여 나가기 등 실제 에도시대의 역사적인 일이나 풍습, 관습을 체험하며 따라 해 보는 재미난 기획물입니다. 미야베 미유키의 에도 사랑을 느낄 수 있을 뿐더러, 당시 있었던 실제 디테일을 자세히 설명해 주고 있는 덕분입니다. 조리돌리기 편에서 어떤 죄가 이에 해당되는지를 알려주는 식으로요. 에도시대에 관심이 많다면 분명 재미있게 읽을 수 있습니다. 번역도 꼼꼼히 잘 되어 있으며 주석도 충실해 공부하면서 읽는 맛도 괜찮았어요. 글 자체도 맛깔나고 재미있게 쓰여 있고요.

아울러 미야베 미유키에 대해서 새롭게 알게 된 점들도 반가왔습니다. 의외로 유쾌한 분이더군요. 진중한 여사님 이미지와 달리 에도 토박이임을 강조하면서 자학개그를 펼친다든가, 함께 하는 멤버들에게 제멋대로 별명을 붙이는 등 유쾌발랄한 분위기가 가득합니다. 글을 통해 자신의 작품 "혼조 후카가와의 기묘한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언급하는 솜씨도 일품입니다. 물가에 가면 "스케키요의 다리"가 꽂혀 있을 것 같다는 추리소설가다운 코멘트도 좋았고, 편집자가 이야기한 가도카와에서 투자하는 관람형 설치물(스케키요의 다리가 위아래로 움직인다는 장치) 이야기도 인상적이었어요. 실제 설치되었다면 정말 재미있었을 것 같네요.

그러나 세 번째까지는 기획 의도에 충실한 산책 기행문인데, 이후에는 황거를 둘러보거나 유배지였다는 하치조지마로 바캉스 여행을 떠나는 등 내용이 다소 변질되어 아쉽습니다. 끝까지 제대로 달려주었다면 아주 좋았을 텐데 흐지부지 끝난 느낌이에요. 이렇게 마무리할 거였다면 중반에 나온 "독부 미유키" 설정을 끝까지 유지해서 다른 기획으로 이어갔어도 좋았을 텐데 말이죠.

또한 지루한 부분은 정말 지루합니다. 본인들도 별 의미 없이 편해서 선택했다는 혼죠 7대 불가사의 탐방이 대표적입니다. 애초에 별거 없는 불가사의일 뿐더러, 현대에 전해지는 것도 아니고 심령 포스트라도 찾으면 모를까, 본인들도 어딘지 잘 모르고 두서없이 돌아다니는 것뿐이니 딱히 이야기할 것도 없습니다. 이래서야 흔해빠진 "고독한 미식가"류의 구루메 탐방이 차라리 더 낫지 싶네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초기 기획은 너무 마음에 들었는데 실망만 안겨준 후반부는 도저히 점수를 주기 어렵습니다. 그래도 글 자체는 나쁘지 않습니다. 기행문이기는 하나 개인 의견이 많이 들어가 있고 유머러스하다는 점에서는 "동경산책"이 연상되는데, 미야베 미유키의 팬이라면 읽을 가치는 충분하고 에도 시대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꽤 흥미로운 텍스트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후보군이 너무 좁다!). 특히 일본 여행, 특히 도쿄를 앞두고 계신 분들이라면 꼭 한 번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저도 황거는 다시 한 번 가보고 싶군요.

덧붙이자면 우리도 둘레길 등 산책로가 급부상하고 있는데, 단지 경관만 즐기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역사와 결합해 의미 있는 코스를 만드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지식이 짧아 당장 추천하고 싶은 게 떠오르진 않지만요.

2015/06/03

에도 명탐정 사건기록부 - 오카모토 기도.노무라 고도.히사오 주란 / 김혜인.고경옥.부윤아 : 별점 2.5점

에도 명탐정 사건기록부 - 6점
오카모토 기도.노무라 고도.히사오 주란 지음, 김혜인.고경옥.부윤아 옮김/엔트리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20세기 초반, 주로 1930년대 발표된 에도물 단편 모음집. 노무라 고도의 제니가타 헤이지, 오카모토 기도의 한시치, 히사오 주란의 센바 아코주로 시리즈 단편이 각 세 편씩 수록되어 있습니다. 목차는 아래와 같습니다.

  • "제니가타 헤이지 체포록"
    • 금빛 여인
    • 은비녀의 저주
    • 일곱 명의 신부
  • "한시치 체포록"
    • 간페이의 죽음
    • 봄눈 녹을 무렵
    • 고양이 소동
  • "아고주로 체포록"
    • 버림받은 구보
    • 유배선
    • 고양이 눈의 남자

오래된 작품이고 마치부교나 요리키, 도신, 오캇피키 등 잘 모르는 일본 고어가 난무하는 등 우리와는 거리가 먼 일본 에도 시대가 배경이라서 큰 재미를 느끼기 힘들걸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아주 재미있었어요. 흥미로운 사건들이 등장하고, 이를 주인공들의 활약으로 해결한다는 추리물이자 모험물 성격의 이야기들이니 재미가 있을 수 밖에요.

개성 강한 주인공들도 인상적입니다. 모두 확실한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제니가타 헤이지는 주로 발로 뛰는 행동형 액션 히어로에 가까우며 한시치는 조용하지만 강한, 우직한 노송 같은 이미지고 아고주로는 난봉꾼에 되는대로 사는 호걸입니다. 이러한 재미와 캐릭터 설정을 보면 당대의 인기는 물론, 지금까지 명맥이 유지되는 게 당연하다 싶네요.

그래서 전체 별점은 2.5점. 조금 낡긴 했고 우리 정서에 잘 안 맞을 수도 있지만 독특한 추리물, 모험물로 충분히 읽을 만한, 가치 있는 작품들이었어요. 에도물을 좋아하신다면 놓치지 않으시기 바랍니다. 조금 성향은 다르지만 미야베 미유키의 에도물도 그렇고, 예전에 읽었던 마노스케 이야기도 그렇고, 에도물은 항상 기본은 해 주는 것 같네요.

수록 시리즈별 간단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제니가타 헤이지는 루팡 3세의 숙적 이름으로 잘 알고는 있었지만 실제로 읽어본 것은 처음이네요. 앞서 말씀드린 대로 액션 히어로에 가까운 열혈 청년이라 추리적으로 특기할 부분은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쇼군에게 복수하기 위한 어약원 본초가의 음모에 이상한 종교 의식이 얽히고, 미녀들이 연이어 눈에 은비녀가 꽂힌 시체로 발견되고, 혼례를 치르던 신부 일곱 명이 납치된다는 이야기들이라 모험물적인 성격과 스케일은 가장 커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어요. 등장인물, 특히 제니가타의 정인 오시이가 엄청난 미녀로 묘사되고, 제니가타의 동전 던지기가 대단한 비술로 그려지는 등의 볼거리 역시 화려하고요.

추리적으로도 "은비녀의 저주"에서 처음 죽은 게이샤가 만자부로의 하오리에서 떨어진 히모를 쥐고 있었기 때문에 만자부로가 범인이라는 주장을 논리적으로 반박하는 장면 등 괜찮은 부분도 제법 있습니다. 평균 별점은 2.5점입니다.

"한시치 체포록"은 단편집을 읽어본 적은 있습니다. 다행히 수록 작품이 겹치지 않는군요. 유명세에 걸맞게 완성도는 세 가지 시리즈 중에서 가장 높습니다. 추리적으로도 볼만할 뿐만 아니라, 인간관계로 인해 범죄가 발생하는 드라마가 잘 짜여져 있거든요.

이 중 개인적으로는 "봄눈 녹을 무렵"이 마음에 들더군요. 맹인 안마사 도쿠주가 안마를 거부한 이유가 결말 부분에서 설명되는 것이 아주 괜찮았기 때문이에요. 에도물에 딱 맞는 설정인데 정말이지 생각도 못했네요. 이 작품만큼은 별점 3점은 충분합니다. 하지만 다른 작품들 두 편은 평범합니다. 때문에 전체 평균 별점은 역시나 2.5점입니다.

마지막 아고주로 시리즈는 처음 알게 된 작품인데, 일단 "우주해적 코브라" 느낌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주인공이 호걸이자 해결사이며 약간 안티 히어로로 등장한다는 점, 그리고 전체적으로 유머러스하게 이야기가 전개된다는 점 때문입니다. 모든 이야기에서 일종의 트릭이 등장한다는 점에서는 가장 추리물에 가까운 작품이라고 할 수 있고요.

첫 번째 작품인 "버림받은 구보"는 시리즈의 도입부 성격이 강해서 눈여겨볼 부분이 많지는 않지만 귀중한 상자 메야스바코를 훔쳐내기 위한 담대한 심리 트릭이 돋보입니다. 백주대낮에 당당하게 상자를 훔친 뒤, 도둑을 쫓는 모습을 가장하여 도주한다는 것인데 시대와 딱 들어맞는 괜찮은 트릭이었습니다.

"유배선"은 "마리 셀레스트호" 사건에서 따온 듯한 에도 시대 유배선의 승무원들 실종 사건을 그린 작품입니다. 정말 발상의 전환이 대단한, 기발한 작품이에요. 정말이지 이 사건이 에도물로 변주가 가능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을 뿐더러, "방금 전까지 밥을 짓고 있었던" 상황을 트릭으로 이용한 점이 아주 기가 막히거든요. 이 트릭이 신겐에게서 따온 것이라는 마지막 대사에서는 무릎을 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희대의 미스터리를 잘 짜여진 에도물로 리메이크한 솜씨도 발군이지만 실제 일본 역사 속 이야기를 트릭으로 잘 활용한 솜씨도 인상적입니다. 단연코 이 작품집 수록작 중 최고입니다.

덧붙이자면 아고주로의 활약도 대단합니다. 상가집에서 진상을 깨우치고, 편지를 어디서 받았는지에 대한 증언 하나만으로 실종자가 어디에 있는지 추리해 내는 방식은 셜록 홈즈의 방식과 똑같더군요.

"고양이 눈의 남자"는 깜깜한 어둠 속에서 벌어진 일가족 참살 사건을 그린 작품으로 오징어를 이용한 트릭은 나쁘지는 않지만, 범인과 동기도 뻔하고 비약이 심해서 다른 작품들에 비하면 좀 처지는 범작입니다.

2023/02/11

닌자의 세계 - 야마키타 아쓰시 / 송명규 : 별점 2.5점

닌자의 세계 - 6점
야마키타 아쓰시 지음, 송명규 옮김/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제목 그대로 닌자에 대한 모든걸 정리하여 알려주는 책. 구성은 몇 권 읽어보았던 다른 AK 트리비아 북 시리즈와 동일합니다. 한 개의 주제에 한페이지 설명과 한 페이지 도표, 도판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책은 닌자의 역사에 대해 통사적으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닌자가 정말로 존재했을까? 라는 의문에서 시작되거든요. 전국시대 당시 첩보를 하는 인간들은 분명 존재했다고 설명해 줍니다. 이들을 모두 '시노비'라고 부르게 되었던건 도쿠가와 막부가 고용했던 이가 사람들이 시노비였기 때문이라고 하고요. 닌자라는 말은 2차대전 이후 야마다 후타로가 쓴 인법장 시리즈 등으로 널리 퍼지게 되었답니다. 당연히 만화 등에 나오는 화려한 인법보다는 첩보, 정찰 업무가 주였고, 인술비전서 최고의 인술로도 '모략'이 소개되고 있다는군요. 원래도 대단치않은 기술을 보유했었고, 전국 통일 후에는 대부분 평범한 하급 무사가 되었버려서 그나마의 인술도 잊혀졌지만, 이가에서만 이가를 맡았던 다카토라에 의해 기술을 발전시킬 '무족인' 제도가 도입되어 기술이 유지되었다고 합니다. 그 덕분에 막부 말기 이른바 최후의 닌자로 이가의 무족인이었던 '사와무라 진자부로' 가 페리 함대에 잠입해서 조사했던 기록이 남아있는 것이고요. 뭐, 이것도 인술이라기 보다는 단순한 첩보 활동이었다고는 하지만요. 이가만큼이나 유명했던 코가 닌자는 무족인과 같은 특권을 받지 못해 결국 멸망했다고 합니다.
그래도 에도시대에 예능이 성행하면서 시노비의 기술이 기예로 인기를 끌어 널리 퍼졌다고 합니다. 즉, 현재의 닌자 캐릭터는 일종의 광대극 캐릭터인 셈입니다.
이 뒤에는 닌자의 기원에 대한 이론, 유명한 이가와 코가 닌자의 유래와 그 관계, 핫토리 한조와 그 후계자들에 대한 설명이 이어집니다. 막부 시대 밀정은 닌자는 아닙니다만, 후계자라면 후계자라면 할 수 있겠지요. 에도 시대 호조 가문의 시노비였던 후마 코타로가 도적이 되었고, 그를 잡는데 도움을 주었던 카이의 시노비 코사카 진나이도 결국 잡혀 죽었다는건 역사적 사실로 보여 흥미로왔습니다.

닌자의 도구, 기술 설명 부분도 흥미로왔습니다. 닌자의 옷이 검은색으로 알려진건 에도 시대 무대 공연 때문일 뿐, 실제로는 저렴하게 물들일 수 있는 감즙색 옷이 많았다는 사실에 기반한 정보들도 좋았고, 시노비 두건 쓰는 법, 닌자의 속옷, 수리검이라고 불린 차검의 다양한 형태와 봉수리검과의 차이, 항아리 뗏목, 소형톱 시코로 등위 도구와 자사구리, 츠리가타나, 사게오칠술 등의 인술처럼 도판이 효과를 발휘하는 항목도 많아서 마음에 들았습니다.
닌자는 가난하다는 기본 상식을 가지고 도구 이야기를 풀어내니 얼마나 창작물이 허구인지도 잘 알 수 있었어요. 한번 쓰고 버릴 수리검에 돈을 투자할 이유가 없지요. 줄에 가로대를 달고 끝에 갈고리를 붙여 올라가는 사다리 카기시바고는 잘 알려져 있기는 한데, 걸 때 소리가 나서 실제로는 잘 쓰이지 않았을 거라는 설명도 좋았습니다. 이상과 현실은 다른 법이겠지요. 이렇게 실제로는 무의미했을 창작품은 그 외에도 물 위를 걷는 신발 미즈구모(실제로는 두께가30cm이상 되었어야 함) 등이 있다네요.
인술비전서도 당연히 후대의 창작품이지만 그 중 <<만천집해>>는 그래도 상당한 연구가 겻들여진 수작이라는걸 알려줍니다. 도판도 곁들여져 있다하니까요.

인술이 나름 효과있는 술법이라는 주장도 그럴듯했습니다. 급박한 전투에서는 간단하고 실용적이며 빠르게 쓸 수 있는 술법이 사용된게 당연하지요. 한 번 성공하면 상대를 죽일 수 있으니 비밀도 지켜지고요. 이런건 후대 닌자 만화 설정과 비슷하네요. 당연한 일을 좀처럼 할 수 없는게 인간이라 일부러 술이라는 이름을 붙였다는 해석은 꿈보다 해몽이 좋은 격으로 보이지만요. 물론 설명되는 인술은 무슨무슨술....처럼 이름은 거창하지만 뻔하고 어이없는 것들도 많기는 했습니다. 그나마 고양이 눈으로 시간을 확인한다는 찰천술은 기억에 남네요. 죽은 시체의 동공으로 시간을 확인했다는 클락성 살인사건의 추리가 떠올랐거든요. 정원 한복판에서 등을 둥글게하고 머리를 숨기며 가만히 있는 메추라기 은신술도 나름대로 그럴듯했고요.
참고로 여우 은신술은 물 속에 숨는 술법인데 만화에서처럼 대나무로 호흡하지는 않았다네요. 굵은 나무가 튀어나와 있으면 이상하니까요. 원래는 얼굴에 나뭇잎 등을 붙이고 얼굴째 내밀어 호흡했다고 합니다. 삼베 뛰어넘기 훈련법은 삼베가 아니라 모시풀이었을거라는 추정도 재미있었어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책은 창작물 속 닌자들 소개로 마무리됩니다. 타츠카와 문고의 사루토비 사스케, 야마다 후타로의 인법첩 시리즈 특징과 주요 대결구도, 시라토 산페이의 닌자 만화 시리즈 소개, 지라이야 소개 등. 시라토 산페이의 만화에서 인술을 합리적으로 설명했다는건 신선했습니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닌자의 체술이 바탕이 되었다고는 해도, 아예 마법같은 것 보아야 현실적인 느낌을 가져다 주었겠지요. 그러나 이 부분은 설명 도판이 아쉬웠습니다. 인술을 합리적으로 설명했다는 부분을 실제 만화 이미지로 보여주었더라면 좋았을거에요.
지라이야의 유래가 중국 소설에 등장하는 도적으로, 도둑질 한 곳에 아래야라는 메모를 담겨둔 것에서 시작되었다는건 처음 알았고요.
마지막 100번째 항목은 실존하는 무술 Ninjutsu입니다. 해외에서는 유명하지요. UFC 초창기(시즌 2)에 닌쥬츠 고수가 나왔던 시합이 기억납니다.

하지만 닌자 역사에 대한 설명 중 야규 일족, 마미야 린조 등 암살, 밀정 활동을 한 실존 인물을 닌자처럼 설명하는건 와 닿지 않았고, 사이고 다카모리까지 언급하는건 도가 지나쳤습니다. 이시카와 고에몬도 닌자였을 수 있다는건 좀 억지스러웠습니다. 비슷한 기술을 지니고 있있으니 전국시대가 끝나고 도둑이 된 닌자가 많았을거라는건 단순한 추측에 불과하니까요. 마츠오 바쇼 닌자설도 마찬가지, 많이 걸었다는 것과 여비를 누구도 주었는지로 닌자일 수 있다는건 억지입니다.
다른 트리비아북 시리즈에는 파워포인트스러운 도표가 대부분인 책도 있었는데, 이 책은 그래도 일러스트를 통한 설명이 많은 편이지만 그래도 성에 차는 수준은 아니고요,

그래서 별점은 2.5점. 그리 깊이있는 내용이 담겨있다고 할 수 없고 가성비도 좋나고 보기 어려우나 실제 역사와 근거에 기반한 설명과 시리즈 취지에 걸맞는 잡다한 정보가 많은건 분명한 장점입니다. 닌자에 대해 궁금하시다면 한 번 읽어보셔도 나쁘지 않을 듯 합니다.

2010/03/16

마노스케 사건 해결집 - 하타게나카 메구미 / 김소연 : 별점 3점

마노스케 사건 해결집 - 6점
하타케나카 메구미 지음, 김소연 옮김/가야북스

한시치 체포록에 이어 연이어 읽게 된 에도물. 마을의 나누시 (일종의 동네 이장?) 후계자인 주인공 마노스케가 마을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문제들을 중재하는 이야기가 실린 단편 옴니버스물입니다. 제목은 "사건해결집"이라고 되어 있고 홍보도 일상 미스터리라고 하고 있는데 반해 그다지 대단한 추리물은 아닙니다. 하긴 17~18세기의 에도에서 봉행소에서 관여할 정도가 아닌, 소소한 상인급 인물들의 재정이 주였던 나누시에게 대단한 사건이 있을리가 없었겠지만요. 추리물보다는 일상 속 유쾌하면서도 소소한 드라마 정도로 보는게 맞습니다.

그래도 일단 에도시대를 배경으로 한 일상계 작품이라는 특이함이 좋았고, 워낙에 작품 자체가 유쾌하면서 사람사는 냄새가 물씬 나는 이야기들이라 가벼운 마음으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사건을 의뢰하는 사람이 있고 그것을 해결하는 것이 주요 이야기이기에 추리적인 부분도 약간이나마 포함되어 있으며, 주인공 마노스케와 그의 친구들같은 독특한 캐릭터가 그야말로 작품에서 뛰어논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톡톡튀는 맛도 좋습니다. 나누시의 후계자이지만, 알 수 없는 이유로 청년이 되면서 정줄을 놓아버렸다는 평가를 받는 허술해보이고 장난기넘치지만 의외로 총명한 청년 마노스케가 아주 마음에 들기도 했고요.
에도물다운 치밀한 묘사 역시 볼거리입니다. 에도의 유곽 요시와라와 기녀들에 대한 묘사, 당대 사람들의 생활사도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요시와라같은 경우 생각보다는 꽤 자유분방하고 일반 백성들과 연계된 오픈된 공간으로 묘사되는 등 참고할만한 (?) 내용이 많더라고요. 차남은 완전히 찬밥신세였다던가, 가게를 이어나가는 우선순위 같은 당대의 시대상을 알게되는 현학적 재미도 충분하고 말이죠.

딱 한가지 아쉬운 점은 결국 마노스케와 세이주로도 철이 들고 성장한다... 는 성장기 같은 느낌도 전해주는 탓에 만약 시리즈가 이어진다 하더라도 이전만큼 유쾌한 모습은 보여주지 못할 것 같다는 것입니다. 마노스케의 유쾌한 매력을 계속 즐기고 싶은데 후속작 소식도 없고 하니 작가의 다른 작품이나 찾아봐야겠네요.

개인적인 별점은 3점으로 추리적 요소가 부족해서 점수를 좀 짜게주기는 했는데 좋은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나오키상 후보에 오를 정도의 작품인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어쨌건 역사물을 좋아하시면서도 유쾌하고 가벼운 소품을 좋아하시는 분들께 추천하고 싶네요.

덧붙이자면, 저자는 원래 만화가 출신이라고도 하는데 작가 정보에 만화쪽 이력은 나와있지 않군요. 작품에서의 디테일한 묘사와 유쾌한 분위기 때문에 만화도 한번 찾아보고 싶었는데 약간 아쉽네요. 설마 일본에서도 만화쪽을 소설에 비해 차별하는 풍토가 있는건 아니겠죠? 혹 작가의 만화 작품 아시는 분 계시면 소개 부탁드립니다.

<오노부의 진실>
시집안간 마을 처녀가 임신했는데 아버지를 찾아달라는 그 가족의 청을 마노스케가 묘한 인연으로 받아들인다는 이야기로 마노스케가 사건에 발을 담그게 되는 과정부터 시작해서 결말까지 일사천리로 달려주는 유쾌한 작품입니다. 추리적으로는 대단한 것은 없지만 "함정수사"의 초창기같은 발상이 에도시대 분위기와 맞물려 무릎을 치게 만들더군요.

<감 반개>
자수성가했지만 상처한 뒤 홀로 살아가는 전당포 주인의 감나무에서 감을 훔쳐 따 먹은 인연으로 마노스케와 친구들이 전당포 주인의 옛 사랑 이야기와 엮이게 되는 내용인데 그야말로 소품이라 별로 언급할건 없네요. 일상 속 드라마 그 자체라 생각되긴 합니다.

<만년청의 주인은?>
고가라고는 하지만 결국은 화분일 뿐인 "만년청"이라는 화분의 소유권 다툼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 작품의 재미 포인트는 세가지인데 첫번째는 에도시대 유행했다는 "만년청"이라는 화분에 대한 현학적 재미, 두번째로는 갑자기 등장한 마노스케의 약혼자(?)와 그에 따른 왁자지껄하는 분위기, 세번째는 주인이 누구인가에 대한 나름 진지한 추리적인 탐구가 벌어지는 것이죠. 약혼자를 자칭한 오스즈씨의 당찬 모습과 설득력있는 추리가 마음에 들었던 작품입니다.

<누구의 아이인가>
다이묘 휘하 무사가 자신의 후계자인 손자를 찾는 이야기로 한장의 편지를 통해 진지한(?) 수사를 펼쳐 결과를 도출하는 과정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중간에 삽입된 유령 이야기를 통한 복선과 결말도 마음에 들었고요. 그 외에도 마노스케가 갑자기 정줄을 놓아버린 이유를 짐작케 하는 에피소드가 등장하는 등 여러가지로 즐길거리가 많아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병문안 가는 길>
마노스케가 약혼자 스즈와 인연이 있는 마타시로를 병문안 가는 길에 선물을 사기 위해 들른 가게에서 주운 개(칭)와 불량배들에게서 구해준 아가씨 오신을 둘러싼 소동이 벌어지는 이야기인데 이 단편집 안에서 가장 추리적인 재미가 많은 작품입니다. 정체를 숨기려고 하는 오신이 어느 동네 사람인지를 맞추는 과정이 셜록 홈즈식의 디테일한 관찰에 따른 추리로 펼쳐지는 것도 볼만했고 오카핏키가 찾는 고린이라는 아가씨의 정체를 밝히는 마노스케의 모습 역시 추리적으로 비약이 심하긴 하지만 나름의 설득력은 갖추고 있더군요. 그 외에도 마노스케가 정줄을 놓아버린 이유가 살짝쿵 등장하기도 하는 등 잔재미도 쏠쏠해서 이 단편집의 베스트로 꼽고싶네요.

<고타 유괴사건>
마노스케의 친구이자 역시 나누시의 후계자인 세이주로의 동생 고타가 유괴되는 이야기로 에피소드들 중에서 가장 강력범죄가 일어납니다. 마지막 편이기 때문인지 모든 등장인물이 총 출동하며 - 마노스케의 첫사랑 오유와 드센 약혼자 오스즈양까지! - 추리적으로도 재미가 쏠쏠해서 몸값의 에도스러운 전달방법도 기발하고 사건 해결까지의 과정 역시 설득력있게 잘 짜여져 있습니다. 결국 마노스케의 결혼식으로 마무리되는 대단원 역시 깔끔하게 정리되고 있어서 단편집을 잘 마무리하고 있다 생각되네요. (마노스케의 성장으로 대미를 장식하는데, 앞서 이야기했듯이 개인적으로 조금 아쉬운 부분이기도 했습니다.)

2021/01/10

일본요리 뒷담화 - 우오쓰카 진노스케 / 장누리 : 별점 2.5점

일본요리 뒷담화 - 6점
우오쓰카 진노스케 지음, 장누리 옮김/글항아리

제목이 꽤 강렬해서 관심이 갔던 책. 저자는 일본 최초 요리점 중 하나 우오쓰카 가문에서 태어났지만, 고물상을 운영하는 등 자신만의 삶을 산 괴짜 우오쓰카 진노스케입니다. <<격식 파괴 요리책 한 그릇 더!>>의 원작가로 더욱 친숙한 인물이지요. <<한 그릇 더!>>에서는 싸게, 쉽게, 간단하게 만들 수 있는 레시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면, 이 책은 일본 식문화 전반에 대한 여러가지 의견을 담고 있습니다. 뒷담화라기보다는 일본의 식문화에 관련된 여러가지 주제를 '교육'이라는 큰 틀로 묶어 풀어내었다고 보는게 맞습니다. 건강하게 먹는 방법에 대한 교육, 제대로 된 일본 요리와 식문화에 대한 교육, 음식에 대해 정확하게 정보를 파악하는 교육 등이 수록되어 있거든요.

하지만 딱딱하지 않고 재미있게 쓰여져 있습니다. 에세이 형식으로 읽기 쉬웠으며, 흥미로운 내용도 제법 많았던 덕분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참치회에 대한 이야기처럼 일본 요리에 대해 알려진 상식들을 깨는 이야기들이 제일 좋았습니다. 원래 참치회는 굉장히 쌌고, 특히 대뱃살은 거의 버리는 재료였는데, 전후 사람들이 진한 맛을 추구하면서 대뱃살 인기가 폭발해서 현재의 위치에 올랐다고 알고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책에 따르면 이미 1915년에도 대뱃살은 최고급 재료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에도 시대나 다이쇼 시대에는 보존, 유통 기술이 부족해서 지방이 많아 상하기 쉬운 대뱃살을 유통하기 어려웠을 뿐으로, 보존과 유통 기술이 발달하면서 원래도 맛있었던 대뱃살이 각광받게 된 것이라네요. 입맛이 변한게 아니라요.
고래 고기 이야기는 충격적이기 까지 합니다. <<맛의 달인>>에서도 일본 전통 식문화라고 강하게 주장했었는데, 고래 고기도 원래 잘 먹지 않았다고 설명되어 있기 때문이에요. 1939년 잡지에 실린 기사를 통해 1935년 남극 빙해 지역 포경 시작 전까지 대다수 일본인에게 고래고기 요리법이나 맛은 익숙하지 않았다고 알려주고 있습니다. 오래 된 일본 고유 풍습이 아니라는 거지요. 잡지 기사 하나만으로 근거를 삼는건 좀 애매한데, 과연 뭐가 맞는건지 자료를 더 찾아보고 싶어지는군요. 이전에 썼던 글을 아예 고쳐야 할 지도 모르겠어요.
옛 일본에서는 회를 찍어먹을 때 술을 졸여서 조미료로 썼다는 이야기도 재미있었습니다. '이리자케'라는 조미료로 우메보시, 술, 가쓰오부시를 졸여서 만듭니다. 짭쪼름하면서도 시큼 달큼할 것 같습니다. 한 번 시도해보고 싶군요. 맛술에 액젓, 식초를 조금 섞으면 비슷할까요?
마지막으로 처음 알게 된 사실인데, 우리에게도 익숙한 '신토불이'는 원래 '인과응보'와 같은 뜻의 불교 용어라고 하네요! 이를 1907년 일본 육군의 이시즈카 사겐이 일본인은 일본 식자재를 일본 전통적인 방식으로 먹자며 제안한 사상의 슬로건으로 유명해진게 지금에 이른 것입니다. 저는 우리나라에서 만든 말인줄 알았는데, 정말 의외였어요.

제목의 '뒷담화'에 가까운 쓴소리들도 일부 실려 있습니다. 지금은 옛날과 같은 '단란한 식탁'은 없는 시대이다, 지금의 현미는 다이쇼 이전 현미와 다르며 에도 시대 사람들은 백미에 치우친 극단적 편식을 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으니 현미를 고집할 필요는 없다 등이 그러합니다. 이 중 '장수한 사람들이 먹은 식품을 예로 들어 이런걸 먹어야 장수한다!'는 억지라는 주장은 굉장히 와 닿더군요. 100세가 넘으신 어르신들이라면, 아무래도 태어난 곳에서 줄곧 먹어온 음식은 한정적이었을게 뻔하다는 논리인데 그럴듯해요.
많지는 않지만 <<한 그릇 더!>>와 같은, 간단한 비법 레시피들도 마음에 들었어요. 특히 초반부에 등장하는, '다이소'에서 1000원으로 구입 가능한 재료'로 만든 요리들은 <<한 그릇 더!>> 그 자체더라고요.

하지만 저자가 주장하는 내용에 모두 공감할 수 있었던건 아닙니다. 보존식을 만들어서 두고두고 먹고, 여러가지 방법으로 낭비되는 재료 소모를 줄이자는 주장이 그러합니다. 전통을 지키고, 더 맛있고 영양가 있게 음식을 먹자는 취지는 알겠지만 시대에 역행하는 주장이라 생각되었거든요. 이미 조리는 극도로 단순한 형태로 제한하는 상품들이 소비자들에게 받아들여지고 있고, 빠르고 편한 조리가 더욱 각광받는건 어쩔 수 없는 흐름이니까요. 이런 주장을 펼치느니, 차라리 유기농으로 재배한 재료를 전통 방식으로 조리하여 밀키트나 통조림, 레토르르 형태로 제공하는 기업체를 스스로 차리는게 나을겁니다. 햇볕에 쬔 고기가 맛있다면, 직접 만들어서 팔면 되잖아요?
또 지금은 제철인 음식이 없는데, 제철 음식을 먹자는 주장은 무슨 이야기인지 잘 모르겠어요. 우리가 사시사철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건 농작물 재배 방식이 발전되고, 해산물은 양식이 가능해진 덕분입니다. 반대로 이를 제철에만 먹는다면 오히려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높아요. 해당 계절에 작황이 불량하면 그 해에는 특정 작물을 못 먹게 될 수도 있으니까요. 현대 사회에서 양식없이 조업으로만 해산물을 채취한다는건 더 말이 안되지요. 해산물 자원 씨가 마르고, 가격도 폭등할게 뻔합니다. 제철이 없어짐으로 음식과 재료에 고마와하는 마음이 희박해진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 역시 현대 사회에서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에요. 오히려 최대한 기술을 활용하여 먹거리를 제공하는게 먹는 것 만큼은 빈부격차를 최소화하는게 제대로 된 발전 방향이라 생각되네요.
마지막으로, 일본 관점에서만 쓰여졌다는 것도 우리 입장에서는 단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간단 레시피만 해도, 우리나라에서 파는건 별로 없어 보여서 재현은 어려워 보이더군요.

그래서 별점은 2.5점. 재미있는 이야기도 많지만, 저자 주장에 모두 동의할 수 없고, 근거가 더 보강되어야 하며 일본 시각으로만 쓰여진 글들도 제법 많아서 감점합니다. 일본 요리에 대해 깊은 관심이 있는게 아니라면, 딱히 권해드릴 책은 아닙니다.

2024/12/28

사카나와 일본 - 서영찬 : 별점 3점

사카나와 일본 - 6점
서영찬 지음/동아시아

에도시대부터 현대까지 해산물이 일본 사회와 문화에 끼친 영향을 다루며, 단순한 먹거리를 넘어 사회적, 경제적, 역사적 의미까지 조명하는 책. 총 570여 페이지의 방대한 분량을 6장 34항목으로 나누어, 항목별로 해당되는 해산물, 어식에 대해 상세하게 알려줍니다. 몇 가지 인상적이었던 내용을 요약해서 소개하자면 아래와 같습니다.

먼저, 정어리는 에도 시대 서민들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생선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하급 무사 사카이 반시로의 일기에서도 모두 42회 나올 정도로 서민들이 가장 자주 소비하던 음식이자, 당시 가난과 서민 문화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식재료였습니다. '서민이 자주 먹는 밥반찬은 무엇인가'라는 테마의 '반즈케'에서도 생선 부문 1위는 이와시(정어리)였다고 하고요.
단순히 식탁 위의 먹거리일 뿐만 아니라, 어비(생선 비료)로 활용되어 농업 생산력을 높이는 데 기여하기도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농업 생산력의 증가는 화폐 경제를 발달시켰고, 쌀을 중심으로 돌아가던 사무라이 정권 체제 기반인 석고제가 흔들리게 되었습니다. 정어리의 활용은 단순한 생선을 넘어 일본 사회에 실질적인 영향을 끼쳤던 것이지요.

다시마는 일본 경제와 사회 변화를 이끌어낸 중요한 해산물로, ‘다시마 길’이라 불리는 무역 루트를 통해 일본 상업 경제의 중심축이 되었습니다. 홋카이도의 다시마가 교토와 오사카로 수송되던 이 루트는 일본 자본주의의 씨앗을 뿌린 경제적 기초였습니다. 한 차례 항해로 현재 화폐 가치로 따지면 1억 엔 정도를 벌어들였다니 대단하네요. 사쓰마번은 불법적인 대중국 다시마 무역으로 축적한 부를 바탕으로 무기류를 수입하며, 이 무기가 훗날 막부 정권을 무너뜨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즉, 단순한 식재료가 아닌 일본 역사를 바꾼 거대한 동력이었던 것이지요. 조금 과장된 느낌이지만 재미있는 발상이었어요.

쿠사야는 독특한 냄새와 풍미를 가진 일본 전통 발효 생선입니다. "어시장 삼대째"를 통해 단순한 건어물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쿠사야액'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건 처음 알았네요. 그리고 쿠사야는 해산물이 사회에 영향을 끼친 사례와는 달리, 당시 열악한 환경이 만들어낸 독창적인 생존 방식에서 비롯되었다는 게 인상적이었습니다. 근대 이전 유배지로 알려진 이즈제도와 고토열도에서는 자원이 부족해 소금물을 재활용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 과정을 통해 쿠사야액이 만들어지고 쿠사야가 탄생하게 되었거든요. 이는 단순히 발효 음식을 넘어, 생존 전략으로서의 음식 문화를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덴푸라는 에도 시대에 스시, 소바와 함께 미식을 대표하던 외식 메뉴였습니다. 값이 싸고 맛이 좋아 에도의 삼미(三味)로 꼽힐 만큼 큰 인기를 끌었지요. 덴푸라와 관련된 흥미로운 역사적 일화 중에는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있습니다. 건강을 중시하던 이에야스는 교토에서 유행하던 도미튀김을 처음 맛보고 지나치게 많이 먹는 바람에 복통을 겪었고, 이후 건강이 악화되었다는 군요. 그 외 덴푸라가 =일본 음식 문화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을 엿볼 수 있는 흥미로운 사례들이 다수 소개됩니다.

명절 음식으로 서일본에서는 방어가, 동일본에서는 연어가 명절 요리로 소비되며, 이는 지역적, 계절적 특성을 반영한 결과입니다. 방어는 도야마만에서 잡혀 염장되어 집합지인 내륙의 히다, 그리고 주요 소비처로 운송되었으며 귀족과 무사 계급에게 주로 소비되었습니다. 도야마 - 히다 - 다카야마 - 마쓰모토 - 니가타를 이은 U자 모양 지역이 서일본 방어와 동일본 연어를 구획하는 경계선이 되었습니다. 두 갈래 방어 길은 수백 년간 지탱되면서, 각자 고유한 문화가 나뉘는 경계선으로 자리매김하였고요.

가쓰오부시는 2차 대전 당시 남태평양에서도 만들어진 적이 있다고 합니다. 가쓰오부시의 본고장 야이즈는 어선이 징발되면서 마을 기간산업이 존폐 위기에 몰린 탓에, 남태평양의 마리아나제도, 팔라우 공화국, 미크로네시아 연방, 마셜 제도를 포함하는 남양군도로 집단 이주해 가다랑어 잡이와 가쓰오부시 제조를 이어나갈 계획을 세웠습니다. '난요부시'가 이때 탄생한 것이지요. 야이즈부시와 태평양전쟁 군납에 얽힌 일화도 있습니다. 1942년 해군은 항공대 식량으로 쓰려고 가쓰오부시 가루를 압축해 만든 사각형 조각에 대해 야이즈 업자에게 조언을 구했습니다. 업자는 습기와 기온에 따라 부스러질 수 있으니 캐러멜처럼 말캉말캉하게 만들자고 제안했습니다. 제안대로 납품 계약이 체결되었고요. 군납 제품명은 '반키리 가쓰오부시'로 '적군 만 명을 벤다'는 의미였습니다.
한편 난요부시는 어떻게 되었냐 하면, 전황이 악화하면서 남양군도의 야이즈 주민은 수시로 징집돼 전장에 투입되어 죽어갔습니다. 결국 야이즈 주민 620명이 남양군도로 건너가 286명이 전사했고, 46%는 영영 고국 땅을 밟지 못했습니다. 일본의 패망은 자업자득이지만, 어민들은 좀 안됐군요.

그 외에도, "술 한잔 인생 한입"에서도 자주 언급되었던 장어 먹는 날 '도요노우시노히'의 유래, '청어 소바'의 유래 등 재미있는 정보가 가득합니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도판이 거의 없다는 점입니다. 생선의 생김새, 특징과 소개된 요리들의 실제 모습과 조리법을 그림과 사진으로 설명해주었더라면 정말 좋았을 겁니다. 방어길과 다시마길은 지도가 함께 있었더라면 훨씬 쉽게 이해할 수 있었을 테고요.

또 해산물을 단순한 식재료로 다룬 내용도 많은데, 이 경우는 스시, 타코야키, 사시미나 라멘의 유래처럼 이미 잘 알려진 게 많아서 다소 지루했습니다.

그리고 사회적 맥락을 짚어주는 부분도 애매한 게 제법 있습니다. 대표적인 게 동과 서를 나누는 방어길입니다. 히다에서 왜 동쪽으로는 방어를 옮기지 않았을까요? 나가노에서 니가타까지의 거리와 도쿄까지는 별로 차이가 없어 보이는데 말이지요. 단순히 동쪽에서는 연어를 먹는 걸로 정해져 있었다는 설명으로는 부족했습니다. 이 주제 하나를 더 깊이 있게 파고들었다면, 마크 쿨란스키의 "대구"에 버금가는 이야기가 될 수 있어 보였는데 아쉬웠어요.

그래도 일본의 해산물과 엮인 문화사 서적이라는 점에서 충분히 흥미로운 읽을거리임에는 분명합니다. 해산물이 일본 사회에서 어떤 의미인지 궁금한 독자라면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제 별점은 3점입니다.

2019/01/20

만족을 알다 - 애즈비 브라운 / 정보희 : 별점 2.5점

만족을 알다 - 6점
애즈비 브라운 지음, 정보희 옮김/달팽이

1798년, 일본 연호로 간세이 9년에 일본 에도 주변의 농가와 에도 시내 간다의 나가야, 이치가야의 무사 저택 3 곳을 방문하여 당시 농민과 상공인, 무사가 어떻게 살았는지를 상세하게 기록한 가상의 기행, 탐방문이자 미시사 서적입니다. 주로 농민은 자급자족, 상인은 편리함과 협력 중심으로 생활이 이루어지고 무사는 농민과 상인의 중간 정도의 삶으로 상당히 검소한 삶을 추구했다는 내용이 이어집니다. 

책이 쓰여진 목적은 당시 에도와 그 주변의 삶이 얼마나 친환경적이고 에너지 절약적이었는지를 설명하며 이를 현대 사회에 도입해야 한다는 것으로 보이네요. 실제로 이 정도였나? 싶은 의문이 생길만큼 당대 에도 주민들의 친환경 에코 라이프에 대한 칭송이 가득합니다.

하지만 단순히 옛날이 좋았다는 류의 이야기로 그치는 건 아닙니다. 이러한 삶을 현대 생활에 도입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견도 잘 정리되어 있고, 현 시점에 새겨들어야 하는 내용이 많은 덕분입니다. 다양한 주택 건설에 응용된 친환경 소재에 대한 이야기 및 에너지 절약과 폐기물 제로를 위한 다양한 아이디어들, 산림 자원 보호에 대한 이야기들이 특히 인상적입니다. 심지어 식생활마저도 많은 자원을 소모하는 육류 중심의 식생활 대신 에도 시민들처럼 벼농사와 다양하게 자연으로 부터 얻을 수 있는 수확물, 그리고 어패류에 의존하는 생활 방식을 추구해야 한다는 주장도 눈여겨 볼 만 합니다.
그런데 당시 농민들은 소출의 50%를 바쳐야 했고 아이들도 2명 이상 키우기는 힘들었다던가, 솜씨있는 목수라도 다다미 6장 정도에 불과한 공간에서 가족과 함께 살 수 밖에 없었고 무사마저도 텃밭을 가꾸어 어느정도 자급자족해야 했다는 팍팍한 삶에 대한 설명은 조금은 납득이 가지 않았습니다. 이렇게까지 아끼고, 자연과 조화를 이루면서 살아도 결국 삶의 질이 이 정도밖에 안된다면 뭘 위해 아끼고 살아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거든요. 현실은 가혹한 법이겠지만 좀 너무한 수준이에요.

하여튼, 이러한 친환경적이고 에너지 절약에 대한 설명도 나쁘지 않지만 당시 에도의 삶을 잘 들여다 볼 수 있는 디테일들도 최고입니다. 당시 주택이 어떻게 생겼고, 각 방들은 어떻게 구성되었으며 화장실은 어떻게 생겼는지, 집은 어떻게 만들고 어떻게 수리하는지, 당시 거리 풍경과 행상인들에 대한 소개 및 무사 저택에 대한 설명이 상세한 일러스트와 함께 소개되기 때문입니다. 일러스트도 깔끔하지는 않지만 내용을 이해하는 데에는 충분하고요. 궁금하시다면 이 링크로 한 번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이런 내용 중에서는 무사 저택의 구조가 아주 그럴듯해서 기억에 남습니다. 통풍과 환기에도 치중하며 자연을 집 안으로 들이는 일본 주거 공간의 진수라는 구조는 한 번 따라해 보고 싶을 정도였거든요. 문제는 이 책에 나온대로 문을 열고 살면 겨울에는 정말 추울 것 같아 보인다는건데, 일본인들에게는 별 문제가 없던 걸까요? 하긴 지금도 일본인들이 우리보다 추위에 강해 보이는걸 보면 예전부터 단련된 덕분이 아닌가 싶네요.

이렇게 에도 시대 삶에 대한 디테일을 들여다 볼 수 있다는 점에서는 괜찮았던 독서였습니다. 친환경에 대한 이야기가 장황해서 지루한 면은 없지는 않으나 이 정도면 별점 2.5점은 충분하죠. 근대 직전 에도 주민들의 삶이 궁금하신 모든 분들께 추천드리는 바입니다.
특히 에도 문화를 좋아라하는 "술 한잔 인생 한입"의 소타츠에게는 필독서라 생각됩니다. 먹거리에 대한 소개도 자급자족하는 농산물에서 시작하여 밥 짓는 방법이라던가 각종 절임과 같은 반찬, 장류, 행상인이 파는 음식들까지 상세하지는 않으나 적당한 수준으로 실려 있기도 하니까 말이죠. 아울러 환경과 자연을 생각하시는 분들도 꼭 한 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이제는 정말이지 저자의 주장대로 항상 편하게만 살려는 생각을 좀 버려야 할 때니까요.

덧붙이자면, 다음에 일본에 가게 되면 이 책에 나온대로 다카나와 관문을 지나 니혼바시까지 7Km 정도 된다는 상가거리를 한 번 걸어서 지나가보고 싶어지네요. 지금은 많이 바뀌었겠지만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2008/10/04

에도가와 란포 전단편집 3 기괴환상 - 에도가와 란포 / 김은희 : 별점 3점

에도가와 란포 전단편집 3 - 6점
에도가와 란포 지음, 김은희 옮김/두드림

이 책은 국내 굴지의 추리 동호인 커뮤니티인 하우미스테리의 이벤트에 응모해 당첨된 책입니다. 이 자리를 빌어 하우미스테리 운영진여러분과 도서출판 두드림 관계자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이전에 구입해서 읽었던 전단편집 1편인 본격추리 1과 동일한 포맷과 기획의, 초기 에도가와 란포의 단편을 모아놓은 단편집으로, 제목 그대로 기괴환상이라는 주제에 맞는 단편만 골라 모아놓은 책입니다. 전부 22편의 작품이 실려 있습니다.
하지만 미완성 작품인 "공기사나이"와 "악령" 2편이 거의 100여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으로 실려있는 것은 이 기획이 에도가와 란포의 단편 모두를 소개하자는 취지라고는 하더라도 솔직히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었으며, "붉은 방"과 "인간의자", 그리고 "천의 얼굴을 가진 배우" 3편은 에도가와 란포가 후기에서도 직접 언급하듯이 "여태까지 이야기는 사실은 거짓말이었다며 빠져나가는" 류의 작품으로 설정이나 전개는 좋았지만 결말의 완성도가 아주 높다고 보기는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그 이외의 작품들은 역시 명불허전이랄까, 거장 에도가와 란포의 상상력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좋은 작품들이라 생각됩니다. 그 중에서도 개인적인 베스트는 기괴하고 음울한 상상력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최고 걸작 "고구마벌레" 를 꼽고 싶네요. 전쟁 직후의 참혹한 상황과 인간의 잔인함을 특유의 그로테스크한 감각을 마음껏 펼쳐 묘사한 작품이거든요.
시대를 앞서간 비쥬얼적 감각을 보여주는 "백일몽"과 "화성의 운하", "거울지옥" 도 좋은 작품으로 광기어린 상상을 표현하는 묘사가 굉장히 디테일하면서도 적나라한 것이 란포 월드 그 자체였습니다. 한국 추리소설가 김래성씨의 단편집 "비밀의 문"에 엄청난 영향을 준 것이 확실하다는 생각 역시 갖게 되었고요.
추리적 성향이 가득 묻어나는 "쌍생아", "메라 박사"와 "벌레"도 추리소설가로서의 에도가와 란포의 내공을 보여주는 작품이라 생각됩니다. "메라박사"의 기발한 원격조종트릭은 다소 환상적인 성향에 기대고 있지만 "쌍생아"의 지문 트릭은 그럴듯 해서 정통 추리로 보아도 손색없는 작품으로 보이네요.

좀 섬뜩하고 기괴한 이러한 작품군이 취향은 아니었으며 지금 읽기에는 좀 낡아보이는 감도 없잖아 있지만, 에도가와 란포의 명성에 걸맞는 일정 수준 이상의 완성도를 보여주는 작품이 많아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에도가와 란포의 후기도 자료적 가치가 충분하고요. 약간의 단점과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별점 3점은 충분한 고전이라 생각됩니다.

덧붙이자면, "고구마벌레"와 "화성의 운하", "거울지옥", "벌레"라는 기괴한 상상력의 극단을 달리는 4작품을 모아 "란포지옥"이라는 영화가 제작된 모양인데 영화에 정말 어울리는 상상력이라 생각되는 만큼 영화도 기대가 됩니다. 

2011/10/21

일본의 탐정소설 - 이토 히데오 / 유재진 외 : 별점 3점

일본의 탐정소설 - 6점
이토 히데오 지음, 유재진 외 옮김/문

메이지 시대 구로이와 루이코로 대표되는 다양한 번안소설과 실화소설, 다이쇼 시대 영화 지고마의 인기로 촉발된 모험·탐정 활극의 유행, 그리고 잡지 신청년을 중심으로 한 창작 단편들, 마지막으로 쇼와 전기의 에도가와 란포와 오구리 무시타로의 번안·창작 소설까지—추리 강국 일본의 초기 추리소설 역사를 시대별 대표 작가와 작품을 통해 설명하는 책입니다.

저처럼 일본 추리소설을 애호하는 독자나 다이쇼·쇼와 시대 자료가 필요한 창작자에게는 반드시 구입해야 할 책이긴 합니다. 하지만 일반적인 추리소설 애호가에게 선뜻 추천하기는 어렵네요. 가장 큰 이유는 각 시대별 대표작의 줄거리 요약이 지나치게 간략하고 건조해서 읽기 쉽지 않다는 점입니다.

실존했던 탈옥의 명수를 소재로 한 "실화소설 탈옥수 후지쿠라", 타이완의 광산 조사를 배경으로 한 "광산의 마왕", 메이지 시대를 풍미한 모험소설 작가 오시카와 슌로의 "전기소설 은산왕", 마에다 쇼잔의 "뒤쫓는 그림자", 국내에도 널리 알려진 요시카와 에이지의 "에도 삼국지" 등 흥미로워 보이는 작품이 다수 소개되지만, 정작 본문에서 이를 효과적으로 전달하지 못한 점이 아쉽습니다.

원작 자체가 그런 특성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지만, 좀 더 보기 좋고 읽기 쉽게 각색했더라면 자료적 가치뿐만 아니라 읽는 재미까지 더할 수 있었을 텐데요.

덧붙이자면, 이 책에서 다루는 작품들이 엄밀한 의미의 '추리소설'이라기보다는 '탐정소설'—즉, 정교한 트릭보다는 모험담에 가까운 이야기들이 대부분이라는 점도 조금 아쉬운 부분입니다.

그래도 자료적 가치가 크다는 점은 분명하기에 별점은 3점입니다. 단, 순전히 개인적인 기준에 따른 평가이며, 일본 추리소설의 깊은 애호가가 아니거나 근대를 무대로 한 창작물을 준비하는 분이 아니라면 다소 흥미를 느끼기 어려울 수도 있다는 점을 참고해 주세요.

2021/04/17

안주 - 미야베 미유키 / 김소연 : 별점 2.5점

안주 - 6점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북스피어

에도 간다에 있는 미시마야는 장신구와 주머니를 파는 주머니 가게로 멋스러운 주머니 외에도, 또 하나의 명물이 있다. 주인 이헤에가 최근에 재미를 붙인 특별한 도락으로, 실제로 있었던 괴담을 모으는 괴담 대회이다. 이야기를 듣는 건 이헤에의 조카딸 오치카로, 그녀는 약혼자를 소꿉친구에게 잃은 뒤 마음에 상처를 입고 숙부가 운영하는 주머니 가게에 '예절 견습'이라는 명목으로 맡겨진 소녀였다.

미야베 미유키의 '에도물'은 한 두어권 읽기는 했지만 딱히 좋아하는 이야기는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관심을 두지 않았었는데, 우연찮게 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읽다보니 이게 전작이 있는 이야기더군요. 오치카가 겪었던 이전 사건이 계속 인용되더라고요. 그 외에도 이야기들 모두가 연결되어 있다는 특징도 있습니다. 다행히 따로 읽어도 무방한 단편들로 구성되어 있어서 읽는데 지장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기대하고는 조금 달랐습니다. 별로 무섭지는 않은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이건 제가 '괴담'이 '무서운 이야기'라고 잘못 생각한 탓입니다. 사실 '괴담'의 '괴 (怪)'는 괴이하다는 뜻이지요. 괴담도 '괴상한 이야기'라는 뜻이고요. 등장하는 이야기들 모두 괴이하다는 점에서 괴담의 사전적 정의에 부합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정서에 맞지 않는 부분은 분명 있습니다. 모든 여성 이름들 앞에 '오'가 붙어서 혼란스러운 것과는 별개로요. 또 "으르렁거리는 부처" 외에는 모두 지나치게 평이한 이야기가 아니었나 싶기는 해요. "달아나는 물"은 심지어 뻔하기까지 했고요.

그래도 괴이함이 에도라는 공간과 미야베 미유키라는 작가의 글 솜씨로 결합되어 뿜어내는 독특함은 마음에 들었어요.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전편도 찾아 읽어볼 생각입니다.

각 수록 단편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달아나는 물" 

오래전 마을을 보호하는 신으로 숭배받았지만, 오랜 세월이 흘러 지금은 찬밥 신세가 되어 허물어지는 신사에 봉인되었던 뱀신 오히데리는 우연히 만난 마을 소년 헤이타의 도움으로 봉인에서 풀려났다. 그리고 헤이타에게 씌워져 마을에 돌아온 뒤, 마을 물을 마르게 하는 복수를 벌였다. 마을 고노기의 쇼야 (마을 사무를 맡아보는, 일종의 면장 직무)는 소년을 에도로 보내 버렸지만, 에도에서도 마찬가지 소동을 일으켰다. 다행히 이야기를 들은 주인공 오치카가 살뜰히 보살펴 에도에 무사히 적응한 헤이타는 물을 좋아하는 오히데리를 위해 소년은 뱃사공이 될 결심을 한다.

오래된 무언가에 깃든 요괴가 속박에서 해방되어, 누군가에게 씌워진다는 이야기는 하늘의 별처럼 많습니다. 따지고 보면 "알라딘" 부터가 그런 이야기지요. 천진난만하면서도 의리있는 주인공 소년, 본체는 뱀이지만 귀여운 소녀인 요괴라는 조합도 전형적인 소년 만화스러운 설정이고요. 훈훈한 전개와 결말 역시 소년 만화같다는 느낌을 강하게 전해줍니다. 아동용 이야기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요.

뱀 요괴가 신이 되었다가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게 된 이유에 대한 설정은 탄탄하고, 이야기 전개에 있어 에도라는 시공간을 잘 활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진부하다는 점에서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덤불 속에서 바늘 천 개" 

미시마야 이웃인 바늘상 스미요시가에는 20대 후반이 될 때까지 혼인하지 못한 고명딸 오우메가 있었다. 그녀가 시집을 간 뒤, 그녀가 왜 시집을 늦게까지 가지 못했으며 결혼식날 있었던 이런저런 기묘한 일들은 무엇 때문이었는지를 그녀의 어머니 오미치가 이야기해 주기 위해 '흑백의 방'을 찾아온다.

오미치 말에 따르면, 오우에가 시집을 늦게 간 건 그녀의 쌍둥이 자매 오하나가 병사한 뒤. 쌍둥이를 싫어했던 할머니의 저주 때문이었습니다. 오우메 혼자서 무언가를 누리게 되면 저주를 받기 때문에, 죽은 오하나와 똑같이 생긴 인형을 만들어 돌보았고, 그래도 오우메가 혼자 이득을 얻는게 있다면 오하나 인형에 바늘이 꽂히고, 오우에는 지독한 습진을 앓는 식으로요. 그런데 결혼은 혼자서 이득을 얻으니, 도무지 벗어날 방법이 없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여러모로 이해하기 힘든 저주라서 영 와 닿지 않았습니다. 저주의 핵심인 '상인은 예로부터 쌍둥이를 싫어한다'라는 말부터 이해 불가였어요. 친할머니가 이 말 때문에 쌍둥이와 며느리를 저주했다는 것 역시도 납득할 수 없었고요. 에도 시대 일본 정서가 이랬던건지는 모르겠지만, 현대의 우리나라 사람으로서는 도무지 알 수가 없는 이야기였습니다.

인형에 바늘을 꽂은건 사람이었다는 진상도 와 닿지 않기는 마찬가지에요. 친딸이지만 강제로 동생 집에 딸을 보내고, 자기들은 인형과 함께 살며 재산까지 나눈 다에몬 부부, 친딸처럼 키워 온 양녀를 잃게 될 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센에몬 부부 사이에 알력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를 오하나 인형에 바늘을 꽂는 형태로 표출했다는건 비약이 심했습니다. 또 두 형제가 집을 합치려고 할 때 처음으로 저주가 발생했으니, 바늘을 꽂은 건 둘째 부부여야 말이 됩니다. 양녀를 잃기 싫었다면요. 그렇다면 합치지 않기로 한 뒤에 바늘이 꽂힌건 설명이 되지 않지요. 이렇게 두루뭉실하게 풀어내지 말고, 정말 오우메를 증오한 누군가가 있다는걸 증명했어야 했습니다. 

아울러 바늘이 꽂힌 뒤 실제로 오우메가 습진을 앓았다던가, 할머니가 모든 가족들 꿈에 나타나 저주를 했다던가, 오카쓰가 대신 저주를 뒤집어 쓰는 역할을 한 뒤 모든 저주가 사라졌다는 등 이야기 속 주요 설정들에 대한 설명도 부족합니다.

처음에 나타난 오하나 유령이 '눈을 깜박이지 않았다'는 대사 하나는 조금 섬찟했고, '인형'과 같았다는 설명은 괜찮았습니다. 그러나 앞서 말씀드렸던 이유로 수록작 중에서는 가장 처지는 이야기였다 생각됩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안쥬" 

수국 저택이라고 불리우는, 지금은 폐허가 된 무가 저택에서 불이 나 3명이 죽었다. 사망자의 아들 나오는 어려워진 집안 사정으로 아버지의 사촌인 야채상 야오노에 양자로 가게 되었다. 그러나 바뀐 환경에 적응을 잘 하지 못해 불안해 하던 차에, 미시마야 하인으로 습자소 친구인 신타를 폭행하는 사고를 치고 말았다. 그 뒤 나오를 개인적으로 돌봐주는 습자소 선생 아오노 리이치로가 나오 아버지가 죽은 저택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표제작입니다. 읽기 전에는 술안주 할 때의 안주라 생각했었는데, '暗獸'의 일본어 발음이더군요. 

특징은 추리물 성향이 짙다는 겁니다. 나오의 아버지 요헤이가 죽은 화재 사고에 대한 진상을 괴담을 통해 추리해내기 때문입니다. 

아오노 리이치로의 말에 따르면, 수국 저택에는 아오노 리이치로의 스승 부부가 은퇴 후 살았던 적이 있었습니다. 전 주인 아내의 유령이 나온다는 소문으로 집 값이 쌌던 덕분이었지요. 그 곳에서 부부는 저택의 염 '구로스케'를 만나 친해지지만, 구로스케가 사람 때문에 약해진다는걸 알게 된 뒤 저택을 떠납니다. 그러나 주인 때문에 도망갈 생각이었던 옆 저택에서 일하던 하인과 하녀, 그리고 이 둘을 도와주던 나오의 아버지 요헤이가 마침 빈 수국 저택에서 계획을 모의할 때 주인이 덮쳤고, 이를 막으려던 구로스케를 본 사람들이 놀라 도망치다가 죽은게 사건의 진상입니다.

추리물 애호가로서 이러한 작풍도 마음에 들었지만, 스승 부부와 구로스케가 보냈던 날들에 대한 상세한 묘사도 아주 좋았습니다. 노래라던가 공놀이를 가르쳐주고, 함께 시간을 보내며 정을 나누는 모습이 아주 훈훈했기 때문입니다. 아래와 같이 구로스케의 '귀여움'도 폭발하고요.

판타지물에서 슬라임과 교분을 나누는 노학자 부부의 모습이 이렇지 않을까요? 사람과 가까워지면 질 수록 약해진다는 설정도 좋았어요.

하지만 결국 사람이 3명이나 죽은건 분명하고, 원인을 제공했던 관리 나마즈히게가 딱히 대단한 응징을 받지 않았다는 결말은 개운치는 못했습니다. 이는 구로스케의 귀여움, 사랑스러움과는 너무 상반되는 이야기인 탓도 큽니다. 귀엽고 사랑스러워도, 괴이한 이형은 결국 사람에게 불행을 가져온다는 뜻이겠죠? 

그리고 에도 시대에 그렇게 높은 관직도 아닌데 하인과 고용인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게 죽일 수 있었다는 것도 조금 놀랐습니다. 하인이야 그렇다쳐도, 요헤이는 엄연한 고용인인데 말이지요. 나오가 양자로 간 야오노 가에서 겪는 불합리한 대우를 참고 견디는 모습 등도 우리나라 정서와는 잘 맞지 않아 보였어요.

그래도 이 정도면 충분히 재미있는 이야기였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으르렁거리는 부처" 

아오노 리이치로의 지인인 괴승 교넨보가 미시마야를 찾아와서 과거 깊은 산 속 '다테나리'라는 마을에서 겪었던 일을 오치카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다테나리는 고신지라는 절의 스님 가쿠넨이 다스리는 풍요로운 마을이었는데, 도미이치라는 주민이 마을의 풍요에 대한 소문을 내려다 '반작'이라는 형벌을 받게 되었다. 도미이치의 아내와 갓난아기는 굶어죽었고, 광인이 된 도미이치는 장작에 불상을 새기는데 그 불상이 신통력을 발휘해 마을에 내분이 생겨 붕괴했다는 이야기였다...

마을 관습, 또는 집단 이기주의로 피해를 받았던 누군가가 복수한다는 이야기는 흔한 편입니다. 하지만 다테나리 마을과 '반작'이라는 설정은 탄탄하고, 수록작 중 제가 기대했던 '괴담'의 정의에 가장 충실해서 무척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교넨보가 겪었던 다테나리에서의 체험은 섬찟하면서도 이야기도 완성도가 높았기 때문입니다. 복수심에 불탔던 도미이치가 마을을 붕괴시키는 전개는 정말로 설득력이 넘치거든요. 혼자서는 역부족인 상황에서, 일종의 '초능력(?)'으로 가쿠넨 스님의 지배력을 무너트리는 과정이 아주 생생하면서도, 그럴듯했습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만으로도 충분했을텐데, 도적단이 미시마야를 습격한다는 이야기는 왜 등장시켰을까요? 억지스럽고, 이야기에 별로 도움도 안 됐는데 말이죠. 아오노 리이치로와 오치카의 관계를 진전시키기 위한 수단이었겠지만, 둘의 관계도 급발진 느낌이 강했습니다.

그래도 수록작 중에서는 베스트로 꼽겠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덧붙이자면, 이 작품은 영상물로 만든다면 아주 볼 만 할 거라는 확신합니다. 특히 마지막에 '이형'이 된 도미이치가 "이 세상에 부처 따위는 없다!"고 외치는 장면이 말이죠. 조금 찾아보니 전작은 TV 드라마화가 된 것 같은데, 이 작품도 드라마로 나오면 좋겠습니다.

2014/03/05

기발한 발상, 하늘을 움직이다 - 시마다 소지 / 한희선 : 별점 2.5점

기발한 발상, 하늘을 움직이다 - 6점
시마다 소지 지음, 한희선 엮음/시공사

아사쿠사의 건어물 가게에서 소비세 12엔을 내려 하지 않던 노인이 가게 주인을 칼로 찔러 살해하고 말았다. 범인이 명확해서 사건은 쉽게 종결될 수 있었지만, 노인의 범행 동기에 석연치 않은 점을 느낀 요시키 형사는 수사 끝에 사건이 30여 년 전 있었던 기이한 사건과 관련되어 있다는걸 알아내는데...

시마다 소지의 요시키 형사 시리즈. 작가의 다른 작품들과는 다르게 사회파 추리소설과 같은 사회 고발 의식이 강하게 담겨 있습니다. 범인인 나메카와 — 여태영이 일제 강점기 때 강제징용된 조선인으로 본인과 가족 모두가 불행한 삶을 살았다는걸 드러내는게 작품의 핵심이라는 점이에서요. 여태영의 인생은 일본 때문에 그야말로 기구하다는 말로 표현이 안 될 정도로 꼬일 대로 꼬여서 불행의 극을 달리기에 굉장히 처절한 느낌을 전해줄 뿐 아니라, 작중에서 "전쟁 탓이라고 해도 변명이 되지 않는다. 이런 도리에 어긋난 일들을 해결하지 않으면 일본은 진정한 일등 국가가 못 될 것이다"라고 일갈하기까지 합니다. 최근 일본의 우경화가 심각한 상황인데, 일본인이 사죄해야 한다는 글을 보니 작품 완성도와는 별개로 무척 반갑더군요. 덕분에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감정이입이 용이하다는 점도 장점입니다.

또 "누명"이란 무리한 질서 유지 혹은 치안 유지의 결과로 경찰에 대한 불신을 심어주지 않기 위한, 이른바 '일본인의 행복을 위해 행해지는 정의라는 명목의 불합리한 폭력'이며, 데이코쿠 은행 사건, 시마다 사건, 마루쇼 사건, 무레 사건의 범인들은 모두 누명을 썼다고 확신한다고 작중 인물인 하타노의 입을 빌어 말하고 있는 점, 일종의 파시즘적인 광기를 비판하는 점 역시 마찬가지로 사회파적 사회 고발로 볼 수 있습니다. 단체로 광기를 벌이지 않으면 일본인은 타인을 죽이는 전쟁을 거국적으로 행할 기력을 일으킬 수 없는 인종이라고 단정짓는데 상당히 그럴듯했어요.

그리고 요시키 형사 시리즈가 다 이런지는 모르겠지만 여정 미스터리 느낌을 준다는 게 특이했는데, 홋카이도나 센다이는 물론이고 도쿄를 상세히 설명해주는 것이 좋았습니다. 그리 멀지 않은 감성으로 접할 수 있으니까요. 첫 사건이 벌어지는 아사쿠사라던가 요시와라, 구레시타 노인의 산책길인 세이로카 병원 – 쓰쿠타오하시 다리 근처에 대한 묘사 등이 대표적입니다. 아사쿠사만 어렴풋이 기억나는데 한 번 가 보고 싶어집니다. 그러고 보니 일본 여행도 갔다 온 지 참 오래되었군요.

아울러 거의 50여 페이지에 걸쳐 에도시대 요시와라 유흥 문화에 대해 설명해 주는 것도 현학적인 측면에서 나쁘지 않았습니다. 요시키 형사가 피해자의 과거 근무처였던 요시와라를 탐문하며 요시와라와 에도시대 유곽 문화에 대해 설명을 듣는 식인데, 디테일이 상당한 수준이었거든요. "에도 일본"에서 읽었던 것과 비슷하지만 훨씬 상세했어요.

그러나 이러한 사회파, 여정 미스터리, 현학적 요소 외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작가의 명성에서 기대했던 신본격 추리소설로의 가치는 기대 이하라 아쉽습니다. 무려 500페이지나 되는 대장편임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사건만 놓고 보면 스케일 크고 전개도 꽤 흥미롭긴 합니다. 열차 안에서 피에로가 화장실에 틀어박혀 권총 자살을 하였는데 그 직후 시체가 사라졌다, 투신 자살로 머리가 잘린 시체가 벌떡 일어나 걸어 나왔다, 달리던 열차가 갑자기 하늘로 들려 올라가 기차가 탈선했다는 등의 상상하기 어려운 불가능 범죄가 연이어 펼쳐지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불가능 상황에 여름벌레의 날갯소리와 같은 소리가 들려왔고, 빨간 색으로 눈이 빛나는 거인이 보였다는 등의 기이함도 더해져 있고요.

하지만 밝혀진 진상은 지나치게 작위적이라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피에로 사건만 해도 여태영이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해서라는게 동기라는고 설명되데, 여태영은 그냥 도망쳤어도 아무 상관없었습니다. 여태명과 아라마사의 시체가 함께 발견되면 서로 싸우다 죽은 것으로 사건이 종결되었을 테니까요. 아니면 여태명의 시체만 중간에 숨기고 그냥 삿쇼선을 타고 도주하면 되잖아요? 어릿광대가 여태영이라는 게 밝혀지는 것도 아니고... 여튼 들인 노력에 비하면 얻은 게 별로 없습니다. 실제로 아라마사 사건의 경우 여태영은 용의선상에조차 오르지 않았으니 완벽한 뻘짓이었어요.

게다가 열차의 탈선은 순전히 우연이었고 거인의 정체가 제대로 밝혀지지 않는다는 점도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작중에서 "기발한 발상이 하늘을 움직인 결과"라고 설명될 정도로 우연에 기인한 현상으로, 불필요한 장치였습니다. 이야기의 복잡성을 더하기 위해 억지로 집어넣은 느낌이에요. 어차피 독자가 여태영 – 여태명 형제의 존재를 알게 되면 투신 자살한 시체와 트릭에 대해 어느 정도 감을 잡을 수 있는 사건이기도 하고요.

그 외에도 기차 시간표가 등장하지만 핵심 요소는 아니고, 오히려 공정한 추리를 방해한다는 점도 문제입니다. 지도를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은 탓에 핵심 트릭이 뒤늦게 밝혀지는데, 그 동네 사는 사람이면 누구나 알 법한 트릭이라서 오랫동안 밝혀지지 않은 게 외려 더 이상했습니다. 참고로, 조금 이채로웠던 것은 우시코시 형사가 요시키와 만나기 위한 편지에서 기차 시간표를 보고 어떤 기차 몇 호를 타라고 지정하는 문구가 있다는 것입니다. 뼛속까지 기차 시간표 형사구나 싶은 생각이 들어서 좀 웃겼어요.

마지막에 진상이 밝혀지니 나메카와(여태영)가 처음에 살인 사건을 저지르는 상황에 대한 설득력이 없어진다는 것도 그닥입니다. 소비세 때문에 우발적인 살인을 저지른 것으로 하거나, 과거 사건의 복수 때문으로 밝혀지거나 아무 상관이 없잖아요? 아라마사를 죽인 것 때문이라면 어차피 공소시효가 지난 것일 뿐 아니라 당시 상황은 충분히 정상 참작을 받을 만한 것인데... 왜 치매에 걸린 것처럼 위장해서 입을 다물었는지가 설명되지 않아 답답했습니다. 초절정 미소녀였던 사쿠라이가 30년이 지난 뒤 폭삭 삭아버린 것에 대해서 설명이 없는 것도 조금 의아한 점이었고요.

그리고 일본 연호로 연도를 표시한 것도 아쉬운 부분입니다. 국내 독자를 위해 모두 현대의 서력을 병기하여 주는 배려가 필요했습니다. 조금은 어색한 문체, 예를 들자면 "신호에 멈추어 섰다. 횡단보도의 신호가 빨강이었다. 바람에 봄 냄새가 섞여 있었다. 그것은 벚꽃 냄새와 비슷했다. 따뜻하지만 희미한 광기를 품고 있는 것 같았다. 노인은 학생처럼 보이는 옆에 선 젊은이의 어깨 밑에 가려질 정도로 키가 작았다"와 같은 묘사는 신호에 멈춘 것과 벚꽃 냄새, 노인의 체구를 두서없이 나열한 느낌이고요. 보다 깔끔하게 "신호가 빨강이라 멈추어 섰다. 따뜻하지만 희미한 광기가 느껴지는 봄 냄새 섞인 바람이 불어왔다..." 라는 식으로 정리하는 게 더 좋았을 것 같아요. 뭐 제가 문체를 지적할 수준의 전문성이 있는건 아닙니다만.

그래서 결론적으로 별점은 2.5점. 사회고발적인 성격은 높이 평가할 만하고 특히 강제 징용 조선인에 대한 부분은 만점을 주고 싶습니다. 시마다 소지의 또 다른 면을 접한 것도 반가왔고요. 그러나 추리적인 요소가 500페이지나 되는 대장편치고는 알맹이가 없어서 감점합니다.

그래도 일본인 작가가 반성의 의미로 쓴 "강제 징용된 조선인"에 대한 텍스트로는 추천드리는 바입니다. 시마다 소지라는 작가에 대해 다시 보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2003/12/14

문예춘추 선정 일본 미스테리 100선

원 출처는 심농님의 홈페이지였으며 (현제 폐쇄), 내용은 국일미디어 간 "유령신사" 뒷부분에도 실려있습니다. 해설은 원본 작성하신 분과 제 의견이 섞여 있습니다. 이런 리스트는 사실 별 의미는 없지만 제목만 보는것도 꽤 재미있더라고요.

001 옥문도 1947 요코미조 세이시 /요코미조 세이시는 긴다이치 하지메(김전일)의 할아버지 긴다이치 코스케의 창조자입니다. 뛰어난 본격 작가죠.
002 허무에의 공물 나카이 히데오 / 이번에 동서에서 나오는 모양입니다.
003 점과 선 1957 ; 마츠모토 세이초 / 열차 시간표를 이용한 트릭
004 불연속 살인사건 1947 ; 사카구치 안고 /ㅎㅎ 바로 전에 읽었던 작품이죠. 동서에서 이번에 나왔습니다.
005 흑사관 살인사건 1934 ; 오구리 무시타로 / 동서에서 나오는 모양입니다.
006 도구라 마구라(환마술) 1935 ; 유메노 규사쿠 / 역시 이번 동서 리스트에.. (대체 언제 나올지는 의문입니다만)
007 혼진 살인사건 1945 ; 요코미조 세이시 /긴다이치 코스케가 처음으로 등장하는 작품이죠. 트릭은 수긍하기 힘들지만 역사적인 의미가 더 큰 듯 싶습니다.
008 검은 트렁크 1956 ; 아유가와 데츠야 / 동서에서 역시 이번에...
009 회귀천 정사 1980 ; 렌죠 미키히코 / 앗 모르는 작품 (*2011년 시공사에서 출간됨. 걸작입니다)
010 문신 살인사건 1948 ; 다카키 아키미츠 / 유명한 작품이죠. 어서 제대로 다시 소개가 됐으면 좋겠네요. (*동서에서 출간)
011 산고양이의 여름 1984 ; 후나토 요이치 / ?
012 대유괴 1997; 텐도 신 /텐도 신의 대유괴도 참 많이 들어본 작품입니다. (*출간되었습니다. 좋은 작품이에요)
013 이전동화 1923 ; 에도가와 람포 / 국내 소개 됐고 단편입니다. 데뷰작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일종의 암호 트릭. 동서 "음울한 짐승"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에도가와 란포 전단편집 1에도 수록)
014 음수 1928; 에도가와 람포 / 에도가와 람포의 초기 작품 중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알려져 있죠? 동서의 "음울한 짐승" 입니다. (*에도가와 란포 전단편집 2권에도 수록)
015 제로의 초점 1959 ; 마츠모토 세이초 /0의 초점으로 국내에 출간돼 있죠. 저도 하서판으로 갖고 있는데 전형적인 사회파 작품입니다.
016 11매의 트럼프 1976 ; 아와사카 츠마오
017 아 아이이치로(악애일랑)의 낭패 1978 ; 아와사 카츠마오 / 이 작품도 많이 상위권에 언급되는 작품입니다만.. (*시공사에서 출간, 좋은 작품입니다)
018 기아해협 1962 ; 미나카미 츠도무
019 고메스의 이름은 고메스 1962 ; 유키 쇼지 /역시, 낯이 익습니다. 흠. (*검은숲에서 출간) 
020 위험한 동화 1961 ; 츠치야 다카오 / 작가는 낯이 익은데..
021 점성술 살인사건 1981 ; 시마다 소지 / 나왔군요! 걸작~
022 복잡한 기계 장치 1978 ; 아와사카 츠마오
023 사건 1977 ; 오오카 쇼헤이
024 우리 1983 ; 기타가타 겐조
025 심리시험 1925 ; 에도가와 람포 /동서 "음울한 짐승"에 수록. 조금 낡은 트릭입니다만, 재미 있습니다. (*에도가와 란포 전단편집 1에도 수록)
026 상자 속의 실낙 1978 ; 다케모토 겐지
027 굶주린 늑대 1981 ; 시미즈 다츠오
028 대낮의 사각 (백주의 사각) 1959 ; 다카키 아키미츠 / 이 작품도 대표작 중 하나라고 알고 있습니다. 동서에서 나온다곤 하는 것 같은데요.. (*검은숲에서 출간)
029 황토의 분류 1965 ; 이쿠지마 지로
030 도망의 거리 1982 ; 기타가타 겐조
031 야수는 죽어야 한다 1958 ; 오야부 하루히코 / 고려원에서 문고판으로 나온 책입니다.
032 인형은 왜 살해되는가? 1955 ; 다카키 아키미쓰 / 아키미쓰의 작품이 세 개나;; 흠 보고 싶어요. (*검은숲에서 출간됨)
033 나메쿠지 쵸야 체포 소동 1968 ; 츠츠키 미치오.
034 끝없는 추적 1967 ; 이쿠지마 지로
035 고양이는 알고 있다 1957 ; 니키 에츠코 /역시 들어봤던 작품 (*시공사에서 출간되었습니다)
036 묵시록의 여름 (섬머 아포칼립스) 1981 ; 가사이 기요시
037 고도의 마인 1929 ; 에도가와 람포 /국내에 나와 있죠. 하서판으로 읽었는데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좋은 작품입니다.
038 검은 백조 1959 ; 아유가와 데츠야
039 타오르는 파도 1982 ; 모리 에이
040 변호 측 증인 1963 ; 고이즈미 기미코 / 검찰측 증인인가...^^ (*검은숲에서 출간, 무난했습니다)
041 그림자의 고발 1963 ; 츠치야 다카오 /오 제목이 정말 멋지군요.
042 악마의 공돌이 노래 1957 - 요코미조 세이시 /흠 정말 보고 싶었던 작품.
043 기울어진 저택의 범죄 1982 ; 시마다 소지 /미타라이 탐정의 두 번째 사건. 너무 보고 싶어요. (*시공사에서 출간)
044 여덟 개의 묘가 있는 마을 1949 ; 요코미조 세이시 / 팔묘촌..
045 신사동맹 1980 ; 고바야시 노부히코
046 징기스칸의 비밀 1958 ; 다카키 아키미츠 /이 소설도 상당히 유명한 작품으로 역사 미스테리로 알고 있습니다.
047 갈라진 해협 1983 ; 시미즈 다츠오
048 리라 장 사건 1968 ; 아야가와 데츠야
049 오시에와 여행하는 남자 1929 : 에도가와 람포
050 마른 풀의 뿌리 1961 ; 친신
051 밤의 오딧세이아 1981 ; 후나토 요이치
052 고층의 사각 1969 ; 모리무라 세이이치 /정말 엄청나게 끈질긴 작품입니다. 하서 수록.
053 모래그릇 1960 ; 마츠모토 세이초 /역시 하서. 당시로서는 기발한 흉기가 나오는 전형적인 사회파 작품
054 바이 바이 엔젤 1979 ; 가사이 기요시
055 한시치 체포록 1917 ; 오카모토 기도 / 와 정말 옛날 작품이네요. (*책세상에서 출간)
056 파노라마 섬 기담 1926 ; 에도가와 람포
057 한 개의 납 1959 ; 사노 요 /단편이 국내에 소개가 됐어요
058 사루마루 환상 여행 1980 ; 이자와 모토히코
059 고양이 혀에 못을 박아라 1961 ; 츠즈키 미치오
060 초대받지 않은 손님 1980 ; 사사자와 사호 /사사자와 사호도 많이 언급되는 작가.
061 짙은 갈색의 파스텔 1982 ; 오카지마 후다리
062 인생의 바보 1936 ; 기키 다카타로
063 배덕의 메스 1960 ; 구로이와 쥬고 /제목 참;;
064 증발 1972 ; 나츠키 시즈코 / W의 비극이 대표작아닌가요? 이 작품은 잘 모르겠는데 더 순위가 높네요.
065 나폴레옹 광 1979 ; 아토다 다카시 /단편입니다. 월간 미스터리에 수록된 작품. 단편집도 국내에 출시가 됐었는데요. 저는 참 좋아하는 작가입니다. 서늘~합니다.
066 부호 형사 1978 ; 츠츠이 야스다카 / SF소설가로 더 유명한 작가인 듯 한데 이 작품도 보고 싶네요. (*검은숲에서 출간, 솔직히 실망스러웠습니다)
067 샤라쿠 살인사건 1983 ; 다카하시 가츠히코
068 잠 없는 밤 1982 ; 기타가타 겐조
069 나비부인 살인사건 1946 ; 요코미조 세이시 / 동서에서 나왔습니다. "혼진 살인사건"과 같이 수록 되어 있습니다.
070 죽음이 있는 풍경 1965 ; 아유가와 데츠야
071 살인귀 1931 ; 하마오 시로
072 불꽃에 그림을 1966 ; 친신
073 검은 화집 1960 ; 마츠모토 세이초
074 아쿠쥬로 체포기록 1939 ; 히사오 쥬란
075 W의 비극 1982 ; 나츠키 시즈코 / 좋은 작품입니다.
076 베를린 1888년 1967 ; 가이도 에이오
077 안녕 아프리카의 여왕 1979 ; 모리 에이
078 단쥬로 할복 사건 1959 ; 도이다 야스지
079 거대한 환영 1962 ; 도가와 마사코 / 국내 소개된 작품은 "레이디 킬러"
080 마리오네트의 덫 1977 ; 아카가와 지로 / 유명세에 비하면 작품은 사실 좀 별로라는 생각이...^^ (*국내 출간, 쓰레기였습니다)
081 완전범죄 1933 – 오구리 무시타로
082 내일 날씨로 해두게 1983 ; 오카지마 후다리
083 삼중노출 1964 - 츠즈키 미치오
084 살아나는 황금늑대 1964 ; 오야부 하루히코
085 어두운 낙조 1965 ; 유키 쇼지
086 인간의 증명 1975 ; 모리무라 세이이치 / 어머니.. 그때 그 밀짚모자...
087 유령 열차 1976 - 아카가와 지로 / 아마 데뷰작이죠? (*국내 출간,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습니다)
088 뺑소니 1969 ; 사노 요
089 유괴작전 1962 - 츠즈키 미치오
090 비합법원 1969 ; 후나토 요이치
091 장미여자 1983 : 가사이 기요시
092 스탈린 암살 계획 1978 ; 히야마 요시아키
093 친구여 조용히 잠들라 1983 ; 기타가타 겐조
094 돌밑의 기록 1948 - 오시타 우타루
095 추락 1958 ; 다카가와 교
096 우리들의 시대 1978 ; 구리모토 가오루
097 호크씨의 타향의 모험 1983 ; 가노 이치로
098 북의 유즈루, 저녁 하늘을 나는 학 1984 ; 시마다 소지 /보고 싶어요;; (*국내 출간)
099 50만 년의 사각 1976 ; 도모노 로
100 살인에의 초대 1973 ; 텐도 신

2008/04/12

혼조 후카가와의 기이한 이야기 - 미야베 미유키 / 김소연 : 별점 3.5점

혼조 후카가와의 기이한 이야기 - 8점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북스피어

"대답은 필요없어" 이후 정말이지 간만에 읽은 미야베 미유키 책이네요. 사실 "쓸쓸한 사냥꾼"과 착각하고 구입한 책입니다. 단편 미스터리물이라고 해서 착각했어요.
 7가지의 불가사의한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는 에도시대의 혼조 후카가와를 무대로 한 단편 연작 미스터리 물(?)로, 탐정겸 형사로 오캇피키 모시치가 전편에 등장하고 있고 장소와 시간대가 동일하기에 연작 미스터리라고 칭한 듯 합니다.
7개의 이야기는 '외잎 갈대, 배웅하는 등롱, 두고 가 해자, 잎이 지지 않는 모밀잣밤나무, 축제 음악, 발 씻는 저택, 꺼지지 않는 사방등'입니다. 뻔한 괴담들이긴 하지만 작품 내용과 잘 맞아 떨어지는 것이 참 재미있게 꾸며놓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역자 후기를 보니 원래 전승되는 이야기라고 해서 또 한번 놀랐습니다. 원래 있던 이야기와 연관되도록 이야기를 또 꾸미는 작업이 쉽지만은 않았을텐데 참 대단한거 같아요. 무엇보다도 모든 작품에서 "희망"을 느낄 수 있는 메시지가 전해지는 것이 마음에 들더군요.
재미있게 읽었고 워낙 좋은 작품이라 별점은 3.5점입니다. 아울러 개인적인 베스트는 "두고 가 해자" 였습니다. 모두 다 일정 수준 이상의 단편들이지만 추리적 요소가 가장 많이 담겨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미스터리보다는 시대물 + 드라마적인 요소가 강했습니다. 대부분의 사건에서 범인 체포는 함정수사나 잠복에 의존하고 있고 추리라는 것은 거의 찾아볼 수 없거든요. 미야베 여사의 필력이 느껴지는 좋은 작품인 것은 분명하나 추리팬에게 추천하기는 조금 난감하다는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작품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약간의 스포일러 포함되어 있습니다.

외잎 갈대는 초밥집 오우미야의 주인 도베에의 강도 살해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7개의 이야기 중에서 기이한 이야기와 제일 연관이 없다는게 특징입니다. 그래도 작품의 완성도도 높고 내용도 마음에 들었어요. 문제는 사건을 해결이 가장 중요한 단서인 "나무 부스러기"를 통해 이루어지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우연이 많이 좌우하고 있어서 추리물로 보기는 힘들다는 겁니다.

배웅하는 등롱은 주인 아가씨의 사랑을 이루어주기 위해 한밤중에 에코인으로 매일 다녀와야 하는 하녀 오린의 이야기입니다. 사건의 진상이 드러나는 부분이 있기는 한데 추리물은 아닙니다. 여성 작가 특유의 섬세한 심리묘사로 애틋한 느낌이 잘 살아난 서정적인 드라마라고 할 수 있지요. 과연 등롱을 들고 오린을 매일 바래다 주는 것은 누구였을까요?

두고 가 해자는 남편이 살해당한 오시츠의 이야기입니다. 원래 전해진다는 기이한 이야기도 제일 괴담에 가까우며 내용도 추리물로 보기에 충분할 정도로 잘 만들어진 작품입니다. 단서와 복선이 명확하게 제시되고 있고 전개도 아주 명확하거든요. 물론 아주아주 정교한 내용은 아니고 결국은 함정수사지만, 뭐 에도시대니까요.

잎이 지지 않는 모밀잣밤나무는 잡곡가게 오하라야 근처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을 계기로, 오하라야의 며느리 후보 오소데가 낙엽을 열심히 치우는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사건 자체가 불명확하며 전혀 뜻밖의 인물이 등장하는 등 좀 모호한 부분이 많다는 단점은 있지만, 따뜻한 내용이 좋았던 작품입니다. 오소데가 뭐라고 편지를 썼는지는 궁금한데, 이런 부분을 드러내지 않음으로 해서 여백의 미를 살린 것도 좋았습니다.

축제 음악은 상상속에서 사람을 죽이는 아가씨 오요시와 모시치의 조카딸 오토시에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얼굴베기"라는 악당을 실제 검거하기 위한 노력과 오토시의 질투가 얽히는 추리적인 요소도 있지만, 뭐니뭐니해도 축제 음악이라는 비유가 아주 적절하게 쓰이고 있어서 인상적이었습니다. 워낙에 심리묘사가 탁월하기에 더 와 닿기도 했고요.

발 씻는 저택은 재산을 노리는 연쇄 살인범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야기 곳곳에서 수수께끼들과 기이한 상황들이 계속 발생하지만 추리적인 요소는 거의 없다는 것이 의외라면 의외였던 작품입니다. 진상이 그다지 새롭게 느껴지지 않는 평이한 것이기에 더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이의 시점과 심리를 통해 진행되는 묘사는 좋았지만, 평범한 수준입니다.

꺼지지 않는 사방등은 홀로 열심히 살아가는 오유라는 아가씨가 부자집인 이치케야의 정신나간 사모님을 위해 딸 역할을 부탁받는 이야기. 추리적 요소는 거의 없는 부부간의 치정극으로 역시나 평범한 수준입니다. 사방등과 부부간의 관계를 빗대어 사방등의 연료, 불꽃을 지피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묘사와 디테일은 과연 미야베 미유키구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이기는 한데, 워낙 이야기가 알맹이없고 별다른 것이 없어서 연작집의 마지막을 마무리 할 만한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2016/04/09

그들이 본 임진왜란 - 김시덕 : 별점 2점

그들이 본 임진왜란 - 4점 김시덕 지음/학고재

17~19세기 일본 에도 시대 베스트셀러였다는 오제 호안의 "다이코기", 하야시 라잔의 "도요토미 히데요시보", 호리 교안의 "조선정벌기", 그리고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 유행한 장편 역사 소설 "에혼 다이코기"를 통해 당시 일본인들이 임진왜란을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설명해 주는 책입니다. 주제가 흥미로워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왜 임진왜란을 일으켰는지부터 시작하여, 전쟁의 전초기지인 나고야성 건립, 고니시 유키나가와 가토 기요마사를 중심으로 한 전쟁 서사, 명나라 원군의 출정과 화의 시도, 정유재란과 히데요시의 죽음, 그리고 전쟁의 종결까지를 순차적으로 설명해 주는데,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 많아 특별히 새로운 정보는 없었습니다. 시각의 차이는 존재해도, 역사적 사실 자체는 크게 다르게 다루어지지는 않은 탓입니다.

그래도 인상적인 부분이라면, 통역에 대한 설명이 가장 흥미로웠습니다. 전쟁 중이니만큼 통역은 필수였고, 쓰시마번의 소 요시토시가 보유한 통역뿐 아니라 점령지에서 확보한 인력도 활용했다고 합니다. 그 중 가장 놀라웠던 것은 "고려말에 대하여"라는 한국어 회화집이 존재했다는 점이었습니다. 거기에는 "이 길인가", "곧이 이르라", "나이 몇이고", "자식 있는가" 같은 질문형 문장부터, "피리 부는가", "장인인가", "글 하는가"처럼 포로 중 유능한 인물을 식별하기 위한 문장들, "잘 씻으라", "술 덥혀라", "이거 가지고 있어라" 등 포로를 부리기 위한 표현, 그리고 "사람 많이 죽였다", "네 목 벨 것이야"처럼 위협적인 문장까지 수록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실전 상황에서 상당히 활용되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가장 씁쓸했던건 여성을 성폭행하기 위한 표현입니다. "고운 각시 더불어 오라", "옷을 벗으라" 같은 문장이 회화집에 있었다는 설명은 읽는 것만으로도 불쾌하고 안타까웠습니다.

가토 기요마사가 함경도로 진출하여 '오란카이'라는 말을 듣고 '오랑캐'를 상대하겠다며 여진족 지역을 침공했다는 이야기도 기억에 남고, 당시 함경북도 병마절도사 한극함을 공격해 승리한 전투가 문헌상에 "세루토스"라는 거인을 이긴 전투로 묘사되는데 '세루토스'는 절도사를 의미하는 표현이었다는 것도 재미있었습니다. 일본 측 문헌이긴 하지만, 조선군 인물의 활약도 일부 언급됩니다. 유극량을 비롯해 송상현, 류성룡, 신각, 곽준, 곽재우 등이 기록되어 있고, 이순신은 아예 '영웅'으로 칭해집니다. 물론 이러한 서술은 일본군의 우수함을 부각하기 위한 장치였겠지만, 그럼에도 조선 인물의 언급 자체는 반가웠습니다. 행주산성 전투에 이가 지역의 닌자가 투입되었다는 기록도 꽤 신선하게 느껴졌고요.

다만 이 책에서 묘사된 전쟁은 삼국지의 장면처럼 과장되고 영웅화되어 있다는 인상을 줍니다. 특히 가토 기요마사는 영웅으로 이상화된 반면, 고니시 유키나가는 부정적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는 에도 시대 가치관과 무관하지 않다고 합니다.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패전한 고니시가 할복하지 않고 처형된 천주교 신자였기 때문에 당시의 유교적 가치와 충돌했다는 해석이 붙습니다. 흥미롭기는 했지만, 사료적 가치 측면에서는 그리 높다고 보기는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깊이 있는 내용도 부족하고, 이야기 자체도 흥미롭다고 하기에는 다소 평이해서 추천드리기는 어렵습니다. 이 책 보다는 "징비록" 정도만 읽어도 충분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2023/03/05

亂れからくり 복잡한 기계장치 - 아와사카 쓰마오 : 별점 3.5점

亂れからくり (創元推理文庫) (文庫) - 8점
泡坂 妻夫/東京創元社

<<아래 리뷰에는 진범, 트릭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완구회사 해바라기 공예의 후계자인 마바리 토모히로는 아내 마사오와 함께 해외 출장을 위해 공항으로 향하던 중, 떨어지는 운석에 맞아 사망하고 만다. 토모히로의 의뢰로 그 뒤를 쫓던 흥신소 사장 우나이 마이코와 조수 카츠 토시오의 바로 앞에서였다. 마이코와 토시오는 사고 당시 마사오를 구해준 인연으로 은근슬쩍 마바리 가문에 접근하는데, 장례식날 토모히로의 어린 아들 토우이치를 시작으로 뒤이어 토모히로의 동생 카오리, 소우지, 가문의 당주 테츠마까지 차례대로 살해되는걸 목격하게 되었다. 마사오에게 마음을 빼앗긴 토시오는 유력한 용의자 마사오와 함께 도주하게 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아 아이이치로' 시리즈만 소개되어 있는 아와사카 쓰마오의 미소개 장편. 1977년 일본추리작가협회상 수상작이기도 하지요. 작가의 대표작 중 하나로 예전부터 읽고 싶었는데, 이번 기회에 도전해 보았습니다. 원서를 읽는건 언제나 힘든데, 이 작품은 기계장치 자동 인형에 대해 장황한 소개가 포함되어 있어서 더 힘들더군요. 그래도 완독을 하기는 했네요. 무려 4명이나 되는 사람이 살해당할 뿐더러, 마바리 가문의 호도가 만들었다는 기묘한 나사 저택과 정원에 있는 미로, 그리고 여러 장난감과 기계 장치 인형 들이 중요하게 등장하여 흥미를 계속 자극하는 매력이 넘치는 덕분입니다. 여러가지 번역기의 도움도 컸고요.

정통 본격물 작품을 발표했던 작가 답게 굉장히 트릭넘치는 살인 사건들이 인상적인데, 우선 어린 토우이치의 수면제 과다 복용에는 뚜렷한 단서가 있지는 않습니다. 토모히로가 단 것을 주지 않는 교육을 했다는 등은 모두 정황 증거일 뿐이지요. 하지만 아무도 접근하지 않은 정자에서 눈에 총을 맞고 죽은 카오리, 기계에 장치된 독극물 주사로 살해당한 소우지, 아무도 건드릴 수 없었던 약병 속 약을 독약으로 바꿔치기 당해 죽은 테츠마 사건은 모두 불가능 범죄로 추리 애호가의 상상력을 자극합니다.
사용된 트릭도 기발했습니다. 카오리는 알고보니 총에 맞은게 아니라, 총알이 발사되도록 장치된 만화경을 들여다보다 죽었던 겁니다. 앞서 카오리가 만화경에 관심이 많다는 설명도 있고, 그녀가 죽기 전 '마른 우물 (카레이도)' 이라는 말을 남겼다는건 확실한 단서이기 때문에 - 카레이도스코프 (만화경) 이라는 말을 하려고 했던 것임 - 공정함 측면에서도 만점을 주고 싶네요.
소우지 사건은 거꾸로 서는 기계 인형 태엽 장치에 설치된 주사기가 금방 드러나는데, 이는 굉장히 기묘한 수수께끼로 이어집니다. 소우지가 마사오, 마이코와 토시오 앞에서 기계 인형을 조작하다가 죽지 않았다면, 인형 속에 설치된 주사기는 쉽게 발견되기 어려웠을 겁니다. 최소한 카오리 살해 직후에는 장치를 설치해서 범행을 저지른다는건 말이 안되는 상황이었어요. 저택 안에 경찰이 가득했으니까요. 이는 토모히로 장례식으로 관계자가 많았던 시점에 토우이치를 살해할 이유가 무엇이었는지?에 대한 추리로 이어져 범인이 누구인지 드러내는 중요한 단서가 됩니다.
테츠마의 약을 바꿔치기한 범행도 기발하다는 점에서는 뒤지지 않습니다. 토시오는 알약 하나만 바꿔치기한 일종의 시한폭탄 장치라 생각했지만, 경찰 조사결과 약병 안의 캡슐 내용물은 모두 독약이었다는게 밝혀집니다. 즉, 약병 내용물을 통째로 바꿔치기했어야 했다는거지요. 하지만 테츠마는 연이은 살인 사건으로 극도로 조심하고 있었기에 이는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그래서 미로에서 이어지는 비밀 통로를 알고 있던 마사오가 유력한 용의자로 떠오르게 되고요. 그녀가 비밀 통로로 밤중에 테츠마의 방에 몰래 침입해서 약을 바꿔치기했다는 거지요. 하지만 진상은 애초 - 모든 사건이 일어나기 전부터 - 에 약은 바꿔치기되어 있었고, 다만 딱 한개만 몸 속에서 녹는 재질의 캡슐이었다는 겁니다. 다른 캡슐은 모두 녹지않는 플라스틱이었던거지요. 일종의 시한폭탄 장치는 맞는데, 그 발상을 한 번 더 꼬아 놓은 발상은 신선했습니다.

그리고 저택 내 오각형 미로에 얽힌 수수께끼도 볼만했습니다. 단순한 여흥거리가 아니라, 비밀 통로로 이어지는 장치가 되어있었으며 이 비밀 통로는 실존인물 제니야 고헤에의 숨겨진 재산과 관련이 있었다는건데, 에도 시대 상인 제니야 고헤에, 그리고 에도 시대 일본 발명가인 오노 벤키치와 같은 인물을 중심으로 그럴듯하게 짜 낸 서사는 상당히 설득력있었습니다. 제니야 고헤에가 변화하는 시대에서 혹시 모를 위협을 대비해 재산 일부를 은닉하려 했다는건 충분히 그럴싸했으니까요. 덕분에 <<다빈치 코드>>같은 팩션 보물찾기 모험물스러운 재미를 전해주기도 합니다.
토시오가 처음 미로에 들어갔었을 때 담벼락을 따라 갔지만 중심부에 갈 수 없었던건, 미로 내부의 구조가 바뀌었기 때문이라는 추론으로 이어지는 전개도 좋았습니다. 미로에 대해서도 기계 장치 인형만큼이나 상세하게 설명되는데, 이 역시 현학적인 재미는 충분히 충족시켜 주고요.

범인도 합리적으로 설명됩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범인은 토우이치 군이 죽은 날 많은 사람들이 토모히로 씨 장례로 모일 줄 몰랐던 사람입니다. 다시 말해, 토모히로 씨가 죽었다는 사실을 몰랐던 사람이죠. 또 카오리 씨가 죽은 날, 카츠 일행이 나사 저택에 가는 것을 몰랐던 사람이며 같은 날, 마사오 씨가 소우지의 방에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고, 마지막으로 데츠바 씨가 살해당했을 때, 마사오 씨가 나사 저택에서 잠을 자고 있을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사람입니다. 즉, 범인은 토모히로였고, 토모히로는 알리바이를 위해 자기가 출장간 동안 사건이 일어나도록 정교한 장치를 만들었던 것입니다. 과연 장난감 전문가다운 발상의 범행이었달까요. 범행 동기인 제니야 고헤에의 재산과 친부 류키치 때문에 생긴 원한도 모두 공정하게 제공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나치게 작위적인 설정이 많다는건 조금 아쉬웠습니다. 무엇보다도 이해가 안되는건 마바리 호도가 나사 저택과 미로를 만든 이유입니다. 호도는 제니야 고헤에의 숨겨진 재산을 이미 찾아내었던걸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재산을 모두 현금화하거나, 아니면 최소한 그 재산만 따로 숨기면 될 일이었어요.
게다가 미로는 비밀 통로 어디에 보물이 놓여져 있는지를 알려주는 역할도 하는데, 도대체 뭘 위해서 이런걸 만들었을까요? 자식들에게 알려주려면 그냥 말로 설명해줘도 충분했을텐데 말이죠. 지상에 거창한 미로이자 보물 지도를 만들 까닭은 없었습니다. 마이코는 나사 저택을 이상하게 만든건, 미로가 이상하다는걸 숨기려는 목적이었다는데 그럴거면 아예 안 만드는게 훨씬 낫잖아요?
그리고 토모히로가 완벽한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해 자동 살인 장치를 만들었다는건 합리적이지만, 카오리가 살해된 뒤에는 경찰이 저택에 깔리는건 마찬가지였을겁니다. 즉, 소우지와 테츠마마저 연이어 살해된다면 현장에 없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빠져나갈 수 있었을지는 의문이 드네요. 이런 거창한 범죄를 저지르는 것 보다는 이미 위치를 파악한 보물을 그냥 빼돌리는게 더 현실적이기도 하고요.
마이코의 과거 경찰 시절 누명을 증명해줄 사람이 마바리 테츠마였다던가, 카츠 토시오가 마사오에게 첫눈에 반한다는 설정도 다소 억지스러웠습니다. 솔직히 불필요한게 아니었나 싶기도 하네요.

그래도 단점은 사소할 뿐, 이런저런 리스트 (이런 거라던가 이런거이런거....)에서 빠짐없이 언급될 정도의 재미를 안겨다주는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제 별점은 3.5점입니다.
언젠가 국내 출간이 되어서 많은 분들이 쉽게 접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참고로, 오노 벤키치의 가라쿠리 인형 (기계 장치 자동 인형) 소개 동영상이 있더군요. 생각만큼 자연스러운 움직임은 아니긴 한데, 에도 시절에는 충분히 먹혔음직 해 보입니다. 아울러 덧붙이는데, 발표 직후인 1979년에 영화화되었었는데 주연이 무려 마츠다 유사쿠! 낡은 느낌 가득하지만 영화도 한 번 찾아보고 싶어집니다.

2019/05/03

학교사로 읽는 일본근현대사 - 역사교육자협의회 / 김한종 외 : 별점 2.5점

학교사로 읽는 일본근현대사 - 6점
역사교육자협의회 엮음, 김한종 외 옮김/책과함께

제목 그대로 일본 근현대 학교 역사를 다루고 있는 미시사 서적입니다. 이전 다른 책 리뷰에서도 소개했었지만, 에도 시대에서부터 메이지 시대까지의 일본 역사와 문화에 대해 개인적으로 관심이 있기 때문에 어쩌다보니 구입하게 되었네요.

상세하고 자세하다는 측면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몇 가지 소개해 드리자면 아래와 같습니다.

  • 수업 시작을 알리는 신호음은 1872년 오사카부에서는 큰 북, 1874년 치쿠마현에서는 종소리, 1887년 미야기현에서는 딱따기였다.
  • 수업 시작 할 때의 인사는 1874년에 이미 교사가 리쓰레이 - 하나로 기립 - 둘로 인사 - 셋으로 다시 기립 (차렷) - 넷에 앉는다고 정해졌다.
  • 군대식 훈련과 체조가 이미 1886년에 도입되었다.

이런 식으로 교재와 학용품은 어떤 것이었는가, 학교 의식과 행사는 언제 어떤 것들이 시작되었는가 등이 각종 자료와 함께 설명됩니다.
학교 급식이라던가 운동회, 입학식과 졸업식, 수학 여행과 소풍, 교복, 시험 등 학교 제도에 대한 역사도 상세합니다. 심지어는 보건실과 청소당번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까지 알려주니 말 다했지요. 참고로 청소당번은 1897년 문부성 훈령으로 도입되었다네요. 

이러한 학교에 대한 시시콜콜한 역사가 실제 일본 당시 역사와 어떤 식으로 관련되어 시작되고 발전해갔는지에 대한 설명도 상당히 흥미롭습니다. 정식 학교사 외에도 아이누 학교, 한센병 환자들을 위한 젠쇼 학교, 야간 중학 등 이외 학교에 대한 역사도 수록되어 있는 등 그야말로 학교사 전반을 다루고 있다는 점도 좋았고요.
대표적으로 '란도셀'의 보급과 역사를 소개해드립니다. 유래는 막부 말기 일본에 서양식 군사 훈련이 도입되었을 때 함께 도입된 천으로 된 배낭입니다. 어원은 네덜란드어 'ransel' 을 일본어로 발음하기 쉽도록 의도적으로 '도'를 넣은 것이고요. 학교에서 사용하기 시작한건 1885년 황족, 화족학교인 가쿠슈인에서 쓰이고 부터입니다. 가쿠슈인은 학생들의 유약함을 바로잡기 위해 등교할 때 학교까지 마차나 인력거를 타고오는 걸 금지했고, 교과서나 학용품도 시종에게 맡기지 말고 직접 가져오라고 지시했는데 그래서 교과서나 학용품을 챙겨오기 위한 용구로 배낭이 쓰이게 되었던 겁니다. 군국주의로 치닫던 시대를 반영한 결과물인 셈이지요. 그리고 1890년 7월 가쿠슈인이 '배낭은 검은 가죽으로 한다' 는 규칙을 발표하여 현재의 란도셀이 시작되었습니다. 참고로, 1887년 이토 히로부미가 다이쇼 천황이 된 황태자 입학 축하를 위한 특별 주문품에서 시작되었다는 설도 있습니다.

특정 아이템 뿐 아니라 청일, 러일 전쟁이라던가 조선 병합, 메이지 천황의 죽음 (붕어), 간토 대지진, 2차 대전과 종전 때 학교가 어떠했는지를 당대 사료와 인터뷰, 기사들로 설명해주는 부분도 기억에 남습니다. 이 중에서도 특히 간토 대지진 때 도쿄 메구로구 소학교 교사 자이젠 유타카의 수기가 그러해요. '불령선인'이 난동을 일으켰다는 소문을 진짜로 받아들인 내용이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교가를 분석하여 시대를 분석한 항목도 인상적입니다. 전후 평화를 주제로 교가 가사가 바뀌었다는 사례를 들고 있는데, 당연한 내용과는 별개로 엄청나게 꼼꼼한 조사와 정리가 대단하다 느껴졌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딱딱한 문체는 아쉽습니다. 지나치게 논문처럼 서술되고 있는 탓입니다. 재미있는 내용일 수 있는데 이래서야 몰입해서 읽기는 힘들어요. 이 쪽 분야에 관심이 있는 분이나 연구자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정보일 테지만, 저같은 일반인에게는 쉽게 읽히지는 않습니다. 또 번역도 여러모로 아쉬우며 책의 구성도 정리된 느낌이 들지않고 도판 역시 썩 좋은 수준이 아닙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우리와도 관련이 있는 여러가지 몰랐던 학교 관련 역사를 알게된 건 수확이지만 책의 완성도가 높은 편은 아니라 감점합니다. 수준과 완성도에 비하면 가격도 엄청나게 높은 편이고요. 학교에 대해 연구하시는 연구자, 학생이 아니라면 구태여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2022/04/30

조선의 뒷골목 풍경 - 강명관 : 별점 3점

조선의 뒷골목 풍경 - 6점
강명관 지음/푸른역사

"조선에 온 서양 물건들"이라는 미시사 서적으로 접했던 강명관 교수의 초기작입니다. 2003년 첫 발표되었으니 거의 20여년 전 책이네요. 제목처럼 조선 시대, 정사 등으로는 언급되기 힘들었던 여러가지 생활사를 다양한 사료를 통해 설명해 줍니다.

첫 번째 주제인 "수만 백성 살린 이름없는 명의들|민중의" 에서는, 일반 백성들이 어떻게 병을 치료했을까?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해줍니다. 조선 시대의 공식적인 의료 기관과 의사들은 왕과 권력자들을 위해서 존재했는데, 일반 백성들은 '민중의'를 믿고 의지할 수 밖에 없었다네요. 방법도 침술과 흔하게 구할 수 있는 약재를 처방하는 수준에 그쳤다니, 참 민중들은 살기 힘들었던 시대였을 겁니다.

"모이면 도적이 되고 흩어지면 백성이 된다|군도와 땡추"는 '군도', 즉 무리를 지은 도둑 집단과 이 군도 무리의 핵심 세력이었다는 '땡추'에 대해 자세히 알려줍니다. 보원 스님 등 여러 분의 증언에 기반하고 있는데, '땡추'는 '당취'에서 나온 말로 조선 초 강력한 배불 정책 이후 금강산으로 들어가버린 종파가 그 유래였다고 합니다. 이들은 배불 정책을 반대하니 당연히 반체제 집단이었고, 민중 교화 뿐 아니라 민중 구제까지 겸해서 산적과 결탁하게 되었다는군요. 1908년, 화적 집단이 체포되었고, 그 중 스님 송학이 동료들을 팔아넘겼다는 기사가 황성 신문에 실렸으며 김구의 "백범일지"에도 관련된 기록이 있다니, 한 번 찾아봐야겠습니다.

"투전 노름에 날새는 줄 몰랐다|도박"은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이었습니다. 우선은 제목 그대로 조선 시대 도박에 대한 상세히 소개 때문입니다. 조선 후기 도박계의 패권을 차지한 것은 '투전'으로, 가장 널리 알려졌던 '돌려대기'는 40장 투전목을 써서 다섯 명이 5장씩 나누어 가진 뒤 각기 3장을 모아서 10, 20, 30을 만들고 나머지 2장의 숫자에 따라 승부를 결정하는 방식이었답니다. 남은 2장은 여러가지 족보가 있는데 이는 현재 화투 도박 족보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네요. 

물론 이런 내용은 "다산과 연암, 노름에 빠지다"에서 더욱 상세하게 소개해주었기에 새롭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 책의 가치는 도박과 관련된 다른 일화 소개입니다. 18세기 조선 투전계 최고의 타자 (打子 투전고수)가 효종 딸 경숙옹주의 손자이자 병조판서, 이조판서를 지냈던 원경하의 아들로, 그리고 본인 역시 이조판서에 우의정까지 올랐던 원인손이었다는 이야기처럼요. 당시 양반 사회 최상부층까지 투전이 침투했었다는걸 극명하게 드려내주는 일화라 생각됩니다. 

투전 이야기 짤막하게 뒤에 언급된 조선 후기 도박 성행의 이유와 그와 관련된 '언막이', '보막이' 등의 이야기는 정말 머리를 세게 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저자는 조선 후기 도박 성행의 이유 중 핵심으로 개인의 재능과 노력과 사회적 성취가 정비례하지 않았던 불확실성에서 유래되었다고 봅니다. 즉, 사람들이 큰 성공을 하려면 정상적인 방법보다는 극한의 위험을 짊어지고 '한탕'을 노릴 수 밖에 없었다는 뜻이지요. 공한지에 둑을 쌓아 논을 만든다는 '언막이', '보막이', 광산을 찾는다는 금점, 은점도 이런 사회적 불확실성으로 조선 후기 널리 유행했다고 하고요. 조선 후기로부터는 거의 200여년, 이 책이 발표된지도 20년 가까이 되었지만 이런 상황이 2020년대 현재 시점에 우리 사회에 만연되어 있다는게 정말 놀랍지 않나요? 젊은이들이 '노오력'에 대한 정당한 성취를 얻지 못해서 좌절하고, 심지어 주식과 코인, 부동산에 '투자' 하지만 이는 '언막이'나 '보막이' 처럼 위험부담이 크고 심지어 사기와 불법으로 점철되어 있는게 많아서 더 큰 좌절을 맛볼 수 있다는 점에서요. 정말 세상이 변한게 없다는걸 이렇게 뼈저리게 느끼게 만든 글은 최근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마셨다 하면 취하고, 취했다 하면 술주정|금주령과 술집"에서는 연암 박지원이 알려주는 조선 시대 음주 문화(?)가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열하일기"에서 중국의 청결하고 화려했던 술집과 조선 술집을 비교하며, 조선 술집은 운치도 없을 뿐더러 술 마시는 양은 너무 커서 큰 사발에 철철 따라서 들이 붓는 식으로 마셔서, 마셨다 하면 취하고 취했다 하면 싸움질이라며 한탄했거든요. 그런데 이게 뭐 한탄할 일이랍니까? 술은 취하기 위해서 마셔야죠! 조선 사나이, 남자일세! 그 외에도 술집은 목로술집, 내외술집, 사말막걸리집, 모주집, 색주가로 구분되며 술집은 쳇바퀴로 등롱을 달아 술집임을 표시했다는 등의 디테일, 영조가 금주령을 강하게 시행하여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귀양을 갔다는 이야기도 흥미로왔습니다.

"서울의 게토, 도살면허 독점한 치외법권 지대|반촌"과 "조용한 아침의 나라를 뒤흔든 무뢰배들|검계와 왈자", "조선 후기 유행 주도한 오렌지족|별감", "은요강에 소변 보고 최음제 춘화 가득하니|탕자"는 전체적으로 조선 시대 풍류를 즐기던 일종의 협객? 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반촌은 성균관 잡역을 세습적으로 맡아보던 사람들이 살던 곳으로 이곳 남자들은 사치스러운 복색, 호협한 기질과 폭력적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는 검계와 왈자의 성격과 크게 다르지 않았어요. 다만 가진 신분의 차이만 있을 뿐, 일종의 폭력 집단(?) 속 남자들이라는건 똑같으니까요. 거지들이 모인 개방과 나름 문무를 겸비한 인재들이 모인 명문정파도 결국 폭력으로 모든걸 해결한다는 무협지 속 세계인 셈이지요. 별감은 화려함, 그리고 풍류를 추구하는 이른바 유흥의 최전선에 있으며 '오락'을 담당한다는 점에서 이들 폭력 집단과 연결되는데 영화 배우들을 장악했었던 홍콩 흑사회 조직이 떠오릅니다. 탕자는 이들과 어울리며 돈을 물쓰듯 쓰던 사람들이니 역시 한 배를 탄 인물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소개들과 함께 조선 후기의 풍류와 오락, 그리고 당대 패션 리더 별감이 입었던 화려한 옷차림이 무엇인지 등 흥미로운 정보들이 가득 제공되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과거 시험이나 어우동의 이야기를 다룬 부분은 다른 책에서 많이 접했던 이야기라 별로 새롭지 않았으며, 사료가 조선 후기에 집중되어 있으며, 그나마도 특정 인물 증언에 지나치게 의지한다던가, "이춘풍 전"과 같은 소설 등 그 근거가 다소 희박하다는 점 등이 그러합니다. 도판도 이야기를 뒷받침해주는 용도보다는 일종의 일러스트(?) 개념으로 들어간 그림들이 많아서 실망스러웠고요.

하지만 단점은 크지 않습니다. 이렇게 조선의 풍속과 문화에 대해 관심이 있다면 꼭 읽어봐야 할 책이었다 생각되네요. 앞서 말씀드렸듯, 현재와 다르지 않은 과거를 통해 현재를 반성케하고 미래를 고민케 만드는 부분도 있었고요. 그래서 제 별점은 3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