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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2/14

문예춘추 선정 일본 미스테리 100선

원 출처는 심농님의 홈페이지였으며 (현제 폐쇄), 내용은 국일미디어 간 "유령신사" 뒷부분에도 실려있습니다. 해설은 원본 작성하신 분과 제 의견이 섞여 있습니다. 이런 리스트는 사실 별 의미는 없지만 제목만 보는것도 꽤 재미있더라고요.

001 옥문도 1947 요코미조 세이시 /요코미조 세이시는 긴다이치 하지메(김전일)의 할아버지 긴다이치 코스케의 창조자입니다. 뛰어난 본격 작가죠.
002 허무에의 공물 나카이 히데오 / 이번에 동서에서 나오는 모양입니다.
003 점과 선 1957 ; 마츠모토 세이초 / 열차 시간표를 이용한 트릭
004 불연속 살인사건 1947 ; 사카구치 안고 /ㅎㅎ 바로 전에 읽었던 작품이죠. 동서에서 이번에 나왔습니다.
005 흑사관 살인사건 1934 ; 오구리 무시타로 / 동서에서 나오는 모양입니다.
006 도구라 마구라(환마술) 1935 ; 유메노 규사쿠 / 역시 이번 동서 리스트에.. (대체 언제 나올지는 의문입니다만)
007 혼진 살인사건 1945 ; 요코미조 세이시 /긴다이치 코스케가 처음으로 등장하는 작품이죠. 트릭은 수긍하기 힘들지만 역사적인 의미가 더 큰 듯 싶습니다.
008 검은 트렁크 1956 ; 아유가와 데츠야 / 동서에서 역시 이번에...
009 회귀천 정사 1980 ; 렌죠 미키히코 / 앗 모르는 작품 (*2011년 시공사에서 출간됨. 걸작입니다)
010 문신 살인사건 1948 ; 다카키 아키미츠 / 유명한 작품이죠. 어서 제대로 다시 소개가 됐으면 좋겠네요. (*동서에서 출간)
011 산고양이의 여름 1984 ; 후나토 요이치 / ?
012 대유괴 1997; 텐도 신 /텐도 신의 대유괴도 참 많이 들어본 작품입니다. (*출간되었습니다. 좋은 작품이에요)
013 이전동화 1923 ; 에도가와 람포 / 국내 소개 됐고 단편입니다. 데뷰작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일종의 암호 트릭. 동서 "음울한 짐승"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에도가와 란포 전단편집 1에도 수록)
014 음수 1928; 에도가와 람포 / 에도가와 람포의 초기 작품 중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알려져 있죠? 동서의 "음울한 짐승" 입니다. (*에도가와 란포 전단편집 2권에도 수록)
015 제로의 초점 1959 ; 마츠모토 세이초 /0의 초점으로 국내에 출간돼 있죠. 저도 하서판으로 갖고 있는데 전형적인 사회파 작품입니다.
016 11매의 트럼프 1976 ; 아와사카 츠마오
017 아 아이이치로(악애일랑)의 낭패 1978 ; 아와사 카츠마오 / 이 작품도 많이 상위권에 언급되는 작품입니다만.. (*시공사에서 출간, 좋은 작품입니다)
018 기아해협 1962 ; 미나카미 츠도무
019 고메스의 이름은 고메스 1962 ; 유키 쇼지 /역시, 낯이 익습니다. 흠. (*검은숲에서 출간) 
020 위험한 동화 1961 ; 츠치야 다카오 / 작가는 낯이 익은데..
021 점성술 살인사건 1981 ; 시마다 소지 / 나왔군요! 걸작~
022 복잡한 기계 장치 1978 ; 아와사카 츠마오
023 사건 1977 ; 오오카 쇼헤이
024 우리 1983 ; 기타가타 겐조
025 심리시험 1925 ; 에도가와 람포 /동서 "음울한 짐승"에 수록. 조금 낡은 트릭입니다만, 재미 있습니다. (*에도가와 란포 전단편집 1에도 수록)
026 상자 속의 실낙 1978 ; 다케모토 겐지
027 굶주린 늑대 1981 ; 시미즈 다츠오
028 대낮의 사각 (백주의 사각) 1959 ; 다카키 아키미츠 / 이 작품도 대표작 중 하나라고 알고 있습니다. 동서에서 나온다곤 하는 것 같은데요.. (*검은숲에서 출간)
029 황토의 분류 1965 ; 이쿠지마 지로
030 도망의 거리 1982 ; 기타가타 겐조
031 야수는 죽어야 한다 1958 ; 오야부 하루히코 / 고려원에서 문고판으로 나온 책입니다.
032 인형은 왜 살해되는가? 1955 ; 다카키 아키미쓰 / 아키미쓰의 작품이 세 개나;; 흠 보고 싶어요. (*검은숲에서 출간됨)
033 나메쿠지 쵸야 체포 소동 1968 ; 츠츠키 미치오.
034 끝없는 추적 1967 ; 이쿠지마 지로
035 고양이는 알고 있다 1957 ; 니키 에츠코 /역시 들어봤던 작품 (*시공사에서 출간되었습니다)
036 묵시록의 여름 (섬머 아포칼립스) 1981 ; 가사이 기요시
037 고도의 마인 1929 ; 에도가와 람포 /국내에 나와 있죠. 하서판으로 읽었는데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좋은 작품입니다.
038 검은 백조 1959 ; 아유가와 데츠야
039 타오르는 파도 1982 ; 모리 에이
040 변호 측 증인 1963 ; 고이즈미 기미코 / 검찰측 증인인가...^^ (*검은숲에서 출간, 무난했습니다)
041 그림자의 고발 1963 ; 츠치야 다카오 /오 제목이 정말 멋지군요.
042 악마의 공돌이 노래 1957 - 요코미조 세이시 /흠 정말 보고 싶었던 작품.
043 기울어진 저택의 범죄 1982 ; 시마다 소지 /미타라이 탐정의 두 번째 사건. 너무 보고 싶어요. (*시공사에서 출간)
044 여덟 개의 묘가 있는 마을 1949 ; 요코미조 세이시 / 팔묘촌..
045 신사동맹 1980 ; 고바야시 노부히코
046 징기스칸의 비밀 1958 ; 다카키 아키미츠 /이 소설도 상당히 유명한 작품으로 역사 미스테리로 알고 있습니다.
047 갈라진 해협 1983 ; 시미즈 다츠오
048 리라 장 사건 1968 ; 아야가와 데츠야
049 오시에와 여행하는 남자 1929 : 에도가와 람포
050 마른 풀의 뿌리 1961 ; 친신
051 밤의 오딧세이아 1981 ; 후나토 요이치
052 고층의 사각 1969 ; 모리무라 세이이치 /정말 엄청나게 끈질긴 작품입니다. 하서 수록.
053 모래그릇 1960 ; 마츠모토 세이초 /역시 하서. 당시로서는 기발한 흉기가 나오는 전형적인 사회파 작품
054 바이 바이 엔젤 1979 ; 가사이 기요시
055 한시치 체포록 1917 ; 오카모토 기도 / 와 정말 옛날 작품이네요. (*책세상에서 출간)
056 파노라마 섬 기담 1926 ; 에도가와 람포
057 한 개의 납 1959 ; 사노 요 /단편이 국내에 소개가 됐어요
058 사루마루 환상 여행 1980 ; 이자와 모토히코
059 고양이 혀에 못을 박아라 1961 ; 츠즈키 미치오
060 초대받지 않은 손님 1980 ; 사사자와 사호 /사사자와 사호도 많이 언급되는 작가.
061 짙은 갈색의 파스텔 1982 ; 오카지마 후다리
062 인생의 바보 1936 ; 기키 다카타로
063 배덕의 메스 1960 ; 구로이와 쥬고 /제목 참;;
064 증발 1972 ; 나츠키 시즈코 / W의 비극이 대표작아닌가요? 이 작품은 잘 모르겠는데 더 순위가 높네요.
065 나폴레옹 광 1979 ; 아토다 다카시 /단편입니다. 월간 미스터리에 수록된 작품. 단편집도 국내에 출시가 됐었는데요. 저는 참 좋아하는 작가입니다. 서늘~합니다.
066 부호 형사 1978 ; 츠츠이 야스다카 / SF소설가로 더 유명한 작가인 듯 한데 이 작품도 보고 싶네요. (*검은숲에서 출간, 솔직히 실망스러웠습니다)
067 샤라쿠 살인사건 1983 ; 다카하시 가츠히코
068 잠 없는 밤 1982 ; 기타가타 겐조
069 나비부인 살인사건 1946 ; 요코미조 세이시 / 동서에서 나왔습니다. "혼진 살인사건"과 같이 수록 되어 있습니다.
070 죽음이 있는 풍경 1965 ; 아유가와 데츠야
071 살인귀 1931 ; 하마오 시로
072 불꽃에 그림을 1966 ; 친신
073 검은 화집 1960 ; 마츠모토 세이초
074 아쿠쥬로 체포기록 1939 ; 히사오 쥬란
075 W의 비극 1982 ; 나츠키 시즈코 / 좋은 작품입니다.
076 베를린 1888년 1967 ; 가이도 에이오
077 안녕 아프리카의 여왕 1979 ; 모리 에이
078 단쥬로 할복 사건 1959 ; 도이다 야스지
079 거대한 환영 1962 ; 도가와 마사코 / 국내 소개된 작품은 "레이디 킬러"
080 마리오네트의 덫 1977 ; 아카가와 지로 / 유명세에 비하면 작품은 사실 좀 별로라는 생각이...^^ (*국내 출간, 쓰레기였습니다)
081 완전범죄 1933 – 오구리 무시타로
082 내일 날씨로 해두게 1983 ; 오카지마 후다리
083 삼중노출 1964 - 츠즈키 미치오
084 살아나는 황금늑대 1964 ; 오야부 하루히코
085 어두운 낙조 1965 ; 유키 쇼지
086 인간의 증명 1975 ; 모리무라 세이이치 / 어머니.. 그때 그 밀짚모자...
087 유령 열차 1976 - 아카가와 지로 / 아마 데뷰작이죠? (*국내 출간,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습니다)
088 뺑소니 1969 ; 사노 요
089 유괴작전 1962 - 츠즈키 미치오
090 비합법원 1969 ; 후나토 요이치
091 장미여자 1983 : 가사이 기요시
092 스탈린 암살 계획 1978 ; 히야마 요시아키
093 친구여 조용히 잠들라 1983 ; 기타가타 겐조
094 돌밑의 기록 1948 - 오시타 우타루
095 추락 1958 ; 다카가와 교
096 우리들의 시대 1978 ; 구리모토 가오루
097 호크씨의 타향의 모험 1983 ; 가노 이치로
098 북의 유즈루, 저녁 하늘을 나는 학 1984 ; 시마다 소지 /보고 싶어요;; (*국내 출간)
099 50만 년의 사각 1976 ; 도모노 로
100 살인에의 초대 1973 ; 텐도 신

2008/10/04

에도가와 란포 전단편집 3 기괴환상 - 에도가와 란포 / 김은희 : 별점 3점

에도가와 란포 전단편집 3 - 6점
에도가와 란포 지음, 김은희 옮김/두드림

이 책은 국내 굴지의 추리 동호인 커뮤니티인 하우미스테리의 이벤트에 응모해 당첨된 책입니다. 이 자리를 빌어 하우미스테리 운영진여러분과 도서출판 두드림 관계자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이전에 구입해서 읽었던 전단편집 1편인 본격추리 1과 동일한 포맷과 기획의, 초기 에도가와 란포의 단편을 모아놓은 단편집으로, 제목 그대로 기괴환상이라는 주제에 맞는 단편만 골라 모아놓은 책입니다. 전부 22편의 작품이 실려 있습니다.
하지만 미완성 작품인 "공기사나이"와 "악령" 2편이 거의 100여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으로 실려있는 것은 이 기획이 에도가와 란포의 단편 모두를 소개하자는 취지라고는 하더라도 솔직히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었으며, "붉은 방"과 "인간의자", 그리고 "천의 얼굴을 가진 배우" 3편은 에도가와 란포가 후기에서도 직접 언급하듯이 "여태까지 이야기는 사실은 거짓말이었다며 빠져나가는" 류의 작품으로 설정이나 전개는 좋았지만 결말의 완성도가 아주 높다고 보기는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그 이외의 작품들은 역시 명불허전이랄까, 거장 에도가와 란포의 상상력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좋은 작품들이라 생각됩니다. 그 중에서도 개인적인 베스트는 기괴하고 음울한 상상력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최고 걸작 "고구마벌레" 를 꼽고 싶네요. 전쟁 직후의 참혹한 상황과 인간의 잔인함을 특유의 그로테스크한 감각을 마음껏 펼쳐 묘사한 작품이거든요.
시대를 앞서간 비쥬얼적 감각을 보여주는 "백일몽"과 "화성의 운하", "거울지옥" 도 좋은 작품으로 광기어린 상상을 표현하는 묘사가 굉장히 디테일하면서도 적나라한 것이 란포 월드 그 자체였습니다. 한국 추리소설가 김래성씨의 단편집 "비밀의 문"에 엄청난 영향을 준 것이 확실하다는 생각 역시 갖게 되었고요.
추리적 성향이 가득 묻어나는 "쌍생아", "메라 박사"와 "벌레"도 추리소설가로서의 에도가와 란포의 내공을 보여주는 작품이라 생각됩니다. "메라박사"의 기발한 원격조종트릭은 다소 환상적인 성향에 기대고 있지만 "쌍생아"의 지문 트릭은 그럴듯 해서 정통 추리로 보아도 손색없는 작품으로 보이네요.

좀 섬뜩하고 기괴한 이러한 작품군이 취향은 아니었으며 지금 읽기에는 좀 낡아보이는 감도 없잖아 있지만, 에도가와 란포의 명성에 걸맞는 일정 수준 이상의 완성도를 보여주는 작품이 많아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에도가와 란포의 후기도 자료적 가치가 충분하고요. 약간의 단점과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별점 3점은 충분한 고전이라 생각됩니다.

덧붙이자면, "고구마벌레"와 "화성의 운하", "거울지옥", "벌레"라는 기괴한 상상력의 극단을 달리는 4작품을 모아 "란포지옥"이라는 영화가 제작된 모양인데 영화에 정말 어울리는 상상력이라 생각되는 만큼 영화도 기대가 됩니다. 

2010/06/11

에도 일본 - 모로 미야 / 허유영 : 별점 2.5점

에도 일본 - 6점
모로 미야 지음, 허유영 옮김/일빛

바쿠후 시대의 에도의 문화와 풍속을 다룬 미시사 서적입니다. 크게 음식 - 생활 - 오락 - 사랑 - 바쿠후 - 의협 - 괴담으로 목차가 나뉘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 에도 문화를 다루는 것은 사랑까지고 바쿠후는 바쿠후 쇼군들의 간략한 소개, 의협은 쥬신쿠라 이야기, 괴담은 한시치 체포록의 한 단편을 실어놓은 것이라 실망스러웠습니다. 그래도 음식 - 생활 - 오락 - 사랑에 대한 이야기는 다행히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음식"의 경우, 바쿠후시대의 에도는 동시대 세계 다른 어느곳 보다도 외식문화가 발전했던 곳이었다던가, 복어에 대한 이야기도 새로왔지만 장어 이야기가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나무젓가락이 에도시대 우나돈 식당 주인의 발명품이라는 것은 처음 알았네요.
"생활" 부분에서의 기모노와 화장 등은 저자가 여성이기 때문인지 관심가졌던 분야 같은데 역시 새롭게 알게된 것들이 많았습니다. 작가가 소개한 이시노모리 쇼타로의 "화장사"를 구해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뭐니뭐니해도 "사랑"이 가장 재미있었는데 단지 사랑뿐만이 아니라 요시와라와 같은 유곽에 대해 아주 자세하게 다루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런저런 정보가 많지만 유녀와 하룻밤 보내는데 모두 합쳐 거의 100냥 (1냥은 12만엔 정도?) 정도 들었다는건 놀라왔습니다. 지금 돈으로 1억이 넘으니 어마어마하잖아요? 에도시대 유명한 부호였던 기노쿠니야의 기행 같은건 독립된 이야기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고요.

그 외의 내용도 백과사전같은 재미는 충분합니다. 예를 들면 에도시대 의적으로 알려진 괴도 네즈미코조에 대한 이야기같은 것이죠. 10년동안 다이묘저택 19곳을 도둑질해서 모두 3,200냥정도의 돈을 훔쳤다니 놀라울 뿐이네요. 실존인물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정보를 직접 접한 것은 처음이었어요. 처형당한 뒤 묘지가 도쿄 스미다구 에코인(回向院)에 위치하는데 비석 조각이 수험생들 호신부로 인기라고도 하니 (모든 관문 통과!) 다음에 도쿄에 가게 된다면 한번 찾아가 봐야 겠습니다.^^ 잠깐 찾아보니 근처에 에도박물관도 있네요.

절반정도는 별반 새로울 것이 없고 너무 잡다한 내용을 모아놓은 느낌도 강해서 별점은 2.5점입니다만, 그래도 이 책에서만 알 수 있었던 것들도 많아서 자료적 가치는 충분한 만큼 에도에 대해 관심있으신 분들께 추천드립니다. 책도 재미있게 잘 쓰여진 편입니다.

2019/01/20

만족을 알다 - 애즈비 브라운 / 정보희 : 별점 2.5점

만족을 알다 - 6점
애즈비 브라운 지음, 정보희 옮김/달팽이

1798년, 일본 연호로 간세이 9년에 일본 에도 주변의 농가와 에도 시내 간다의 나가야, 이치가야의 무사 저택 3 곳을 방문하여 당시 농민과 상공인, 무사가 어떻게 살았는지를 상세하게 기록한 가상의 기행, 탐방문이자 미시사 서적입니다. 주로 농민은 자급자족, 상인은 편리함과 협력 중심으로 생활이 이루어지고 무사는 농민과 상인의 중간 정도의 삶으로 상당히 검소한 삶을 추구했다는 내용이 이어집니다. 

책이 쓰여진 목적은 당시 에도와 그 주변의 삶이 얼마나 친환경적이고 에너지 절약적이었는지를 설명하며 이를 현대 사회에 도입해야 한다는 것으로 보이네요. 실제로 이 정도였나? 싶은 의문이 생길만큼 당대 에도 주민들의 친환경 에코 라이프에 대한 칭송이 가득합니다.

하지만 단순히 옛날이 좋았다는 류의 이야기로 그치는 건 아닙니다. 이러한 삶을 현대 생활에 도입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견도 잘 정리되어 있고, 현 시점에 새겨들어야 하는 내용이 많은 덕분입니다. 다양한 주택 건설에 응용된 친환경 소재에 대한 이야기 및 에너지 절약과 폐기물 제로를 위한 다양한 아이디어들, 산림 자원 보호에 대한 이야기들이 특히 인상적입니다. 심지어 식생활마저도 많은 자원을 소모하는 육류 중심의 식생활 대신 에도 시민들처럼 벼농사와 다양하게 자연으로 부터 얻을 수 있는 수확물, 그리고 어패류에 의존하는 생활 방식을 추구해야 한다는 주장도 눈여겨 볼 만 합니다.
그런데 당시 농민들은 소출의 50%를 바쳐야 했고 아이들도 2명 이상 키우기는 힘들었다던가, 솜씨있는 목수라도 다다미 6장 정도에 불과한 공간에서 가족과 함께 살 수 밖에 없었고 무사마저도 텃밭을 가꾸어 어느정도 자급자족해야 했다는 팍팍한 삶에 대한 설명은 조금은 납득이 가지 않았습니다. 이렇게까지 아끼고, 자연과 조화를 이루면서 살아도 결국 삶의 질이 이 정도밖에 안된다면 뭘 위해 아끼고 살아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거든요. 현실은 가혹한 법이겠지만 좀 너무한 수준이에요.

하여튼, 이러한 친환경적이고 에너지 절약에 대한 설명도 나쁘지 않지만 당시 에도의 삶을 잘 들여다 볼 수 있는 디테일들도 최고입니다. 당시 주택이 어떻게 생겼고, 각 방들은 어떻게 구성되었으며 화장실은 어떻게 생겼는지, 집은 어떻게 만들고 어떻게 수리하는지, 당시 거리 풍경과 행상인들에 대한 소개 및 무사 저택에 대한 설명이 상세한 일러스트와 함께 소개되기 때문입니다. 일러스트도 깔끔하지는 않지만 내용을 이해하는 데에는 충분하고요. 궁금하시다면 이 링크로 한 번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이런 내용 중에서는 무사 저택의 구조가 아주 그럴듯해서 기억에 남습니다. 통풍과 환기에도 치중하며 자연을 집 안으로 들이는 일본 주거 공간의 진수라는 구조는 한 번 따라해 보고 싶을 정도였거든요. 문제는 이 책에 나온대로 문을 열고 살면 겨울에는 정말 추울 것 같아 보인다는건데, 일본인들에게는 별 문제가 없던 걸까요? 하긴 지금도 일본인들이 우리보다 추위에 강해 보이는걸 보면 예전부터 단련된 덕분이 아닌가 싶네요.

이렇게 에도 시대 삶에 대한 디테일을 들여다 볼 수 있다는 점에서는 괜찮았던 독서였습니다. 친환경에 대한 이야기가 장황해서 지루한 면은 없지는 않으나 이 정도면 별점 2.5점은 충분하죠. 근대 직전 에도 주민들의 삶이 궁금하신 모든 분들께 추천드리는 바입니다.
특히 에도 문화를 좋아라하는 "술 한잔 인생 한입"의 소타츠에게는 필독서라 생각됩니다. 먹거리에 대한 소개도 자급자족하는 농산물에서 시작하여 밥 짓는 방법이라던가 각종 절임과 같은 반찬, 장류, 행상인이 파는 음식들까지 상세하지는 않으나 적당한 수준으로 실려 있기도 하니까 말이죠. 아울러 환경과 자연을 생각하시는 분들도 꼭 한 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이제는 정말이지 저자의 주장대로 항상 편하게만 살려는 생각을 좀 버려야 할 때니까요.

덧붙이자면, 다음에 일본에 가게 되면 이 책에 나온대로 다카나와 관문을 지나 니혼바시까지 7Km 정도 된다는 상가거리를 한 번 걸어서 지나가보고 싶어지네요. 지금은 많이 바뀌었겠지만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2015/06/03

에도 명탐정 사건기록부 - 오카모토 기도.노무라 고도.히사오 주란 / 김혜인.고경옥.부윤아 : 별점 2.5점

에도 명탐정 사건기록부 - 6점
오카모토 기도.노무라 고도.히사오 주란 지음, 김혜인.고경옥.부윤아 옮김/엔트리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20세기 초반, 주로 1930년대 발표된 에도물 단편 모음집. 노무라 고도의 제니가타 헤이지, 오카모토 기도의 한시치, 히사오 주란의 센바 아코주로 시리즈 단편이 각 세 편씩 수록되어 있습니다. 목차는 아래와 같습니다.

  • "제니가타 헤이지 체포록"
    • 금빛 여인
    • 은비녀의 저주
    • 일곱 명의 신부
  • "한시치 체포록"
    • 간페이의 죽음
    • 봄눈 녹을 무렵
    • 고양이 소동
  • "아고주로 체포록"
    • 버림받은 구보
    • 유배선
    • 고양이 눈의 남자

오래된 작품이고 마치부교나 요리키, 도신, 오캇피키 등 잘 모르는 일본 고어가 난무하는 등 우리와는 거리가 먼 일본 에도 시대가 배경이라서 큰 재미를 느끼기 힘들걸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아주 재미있었어요. 흥미로운 사건들이 등장하고, 이를 주인공들의 활약으로 해결한다는 추리물이자 모험물 성격의 이야기들이니 재미가 있을 수 밖에요.

개성 강한 주인공들도 인상적입니다. 모두 확실한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제니가타 헤이지는 주로 발로 뛰는 행동형 액션 히어로에 가까우며 한시치는 조용하지만 강한, 우직한 노송 같은 이미지고 아고주로는 난봉꾼에 되는대로 사는 호걸입니다. 이러한 재미와 캐릭터 설정을 보면 당대의 인기는 물론, 지금까지 명맥이 유지되는 게 당연하다 싶네요.

그래서 전체 별점은 2.5점. 조금 낡긴 했고 우리 정서에 잘 안 맞을 수도 있지만 독특한 추리물, 모험물로 충분히 읽을 만한, 가치 있는 작품들이었어요. 에도물을 좋아하신다면 놓치지 않으시기 바랍니다. 조금 성향은 다르지만 미야베 미유키의 에도물도 그렇고, 예전에 읽었던 마노스케 이야기도 그렇고, 에도물은 항상 기본은 해 주는 것 같네요.

수록 시리즈별 간단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제니가타 헤이지는 루팡 3세의 숙적 이름으로 잘 알고는 있었지만 실제로 읽어본 것은 처음이네요. 앞서 말씀드린 대로 액션 히어로에 가까운 열혈 청년이라 추리적으로 특기할 부분은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쇼군에게 복수하기 위한 어약원 본초가의 음모에 이상한 종교 의식이 얽히고, 미녀들이 연이어 눈에 은비녀가 꽂힌 시체로 발견되고, 혼례를 치르던 신부 일곱 명이 납치된다는 이야기들이라 모험물적인 성격과 스케일은 가장 커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어요. 등장인물, 특히 제니가타의 정인 오시이가 엄청난 미녀로 묘사되고, 제니가타의 동전 던지기가 대단한 비술로 그려지는 등의 볼거리 역시 화려하고요.

추리적으로도 "은비녀의 저주"에서 처음 죽은 게이샤가 만자부로의 하오리에서 떨어진 히모를 쥐고 있었기 때문에 만자부로가 범인이라는 주장을 논리적으로 반박하는 장면 등 괜찮은 부분도 제법 있습니다. 평균 별점은 2.5점입니다.

"한시치 체포록"은 단편집을 읽어본 적은 있습니다. 다행히 수록 작품이 겹치지 않는군요. 유명세에 걸맞게 완성도는 세 가지 시리즈 중에서 가장 높습니다. 추리적으로도 볼만할 뿐만 아니라, 인간관계로 인해 범죄가 발생하는 드라마가 잘 짜여져 있거든요.

이 중 개인적으로는 "봄눈 녹을 무렵"이 마음에 들더군요. 맹인 안마사 도쿠주가 안마를 거부한 이유가 결말 부분에서 설명되는 것이 아주 괜찮았기 때문이에요. 에도물에 딱 맞는 설정인데 정말이지 생각도 못했네요. 이 작품만큼은 별점 3점은 충분합니다. 하지만 다른 작품들 두 편은 평범합니다. 때문에 전체 평균 별점은 역시나 2.5점입니다.

마지막 아고주로 시리즈는 처음 알게 된 작품인데, 일단 "우주해적 코브라" 느낌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주인공이 호걸이자 해결사이며 약간 안티 히어로로 등장한다는 점, 그리고 전체적으로 유머러스하게 이야기가 전개된다는 점 때문입니다. 모든 이야기에서 일종의 트릭이 등장한다는 점에서는 가장 추리물에 가까운 작품이라고 할 수 있고요.

첫 번째 작품인 "버림받은 구보"는 시리즈의 도입부 성격이 강해서 눈여겨볼 부분이 많지는 않지만 귀중한 상자 메야스바코를 훔쳐내기 위한 담대한 심리 트릭이 돋보입니다. 백주대낮에 당당하게 상자를 훔친 뒤, 도둑을 쫓는 모습을 가장하여 도주한다는 것인데 시대와 딱 들어맞는 괜찮은 트릭이었습니다.

"유배선"은 "마리 셀레스트호" 사건에서 따온 듯한 에도 시대 유배선의 승무원들 실종 사건을 그린 작품입니다. 정말 발상의 전환이 대단한, 기발한 작품이에요. 정말이지 이 사건이 에도물로 변주가 가능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을 뿐더러, "방금 전까지 밥을 짓고 있었던" 상황을 트릭으로 이용한 점이 아주 기가 막히거든요. 이 트릭이 신겐에게서 따온 것이라는 마지막 대사에서는 무릎을 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희대의 미스터리를 잘 짜여진 에도물로 리메이크한 솜씨도 발군이지만 실제 일본 역사 속 이야기를 트릭으로 잘 활용한 솜씨도 인상적입니다. 단연코 이 작품집 수록작 중 최고입니다.

덧붙이자면 아고주로의 활약도 대단합니다. 상가집에서 진상을 깨우치고, 편지를 어디서 받았는지에 대한 증언 하나만으로 실종자가 어디에 있는지 추리해 내는 방식은 셜록 홈즈의 방식과 똑같더군요.

"고양이 눈의 남자"는 깜깜한 어둠 속에서 벌어진 일가족 참살 사건을 그린 작품으로 오징어를 이용한 트릭은 나쁘지는 않지만, 범인과 동기도 뻔하고 비약이 심해서 다른 작품들에 비하면 좀 처지는 범작입니다.

2017/07/09

식물도시 에도의 탄생 - 이나가키 히데히로 / 조홍민 : 별점 2점

식물도시 에도의 탄생 - 4점
이나가키 히데히로 지음, 조홍민 옮김/글항아리

에도와 관련된 식물 이야기가 나올 것이라 생각하고 읽은 책입니다. 소갯글도 그럴듯하고, 만든 모양새도 예뻐서 집어들게 되었네요.

그런데 생각과는 무척 달랐습니다. 우리가 익히 아는 에도 시대, 즉 도쿠가와 막부 시대 뿐만이 아니라 일본 각지, 다양한 시대를 망라하여 여러가지 식물 관련 정보를 전해주거든요. 에도 시대로 한정하면 내용이 많지 않은건 당연하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겠지만, 이래서야 제목과의 괴리감이 너무 큽니다. 게다가 우리나라 이야기도 아니라서 큰 재미를 느끼기도 힘들었어요. 딱히 식물에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닌 탓에 더욱 그러했죠.

또 등장하는 해석도 과장되거나 오버스러운 것이 많습니다. 에도가 인분을 기반으로 벼농사를 지어서 오물 통제가 가능한, 완벽한 '에코 - 리싸이클링 도시' 였다고 이야기하는게 대표적인 예입니다. 조금 남은 오물 잔류물도 바다에 영양을 공급하여 전설의 황금어장 '에도마에'를 만들었다고 하는데 설득력이 낮습니다. 인분을 비료로 쓴 곳이 일본, 에도에 한정된 것은 아니잖아요? 닌자들이 직업 특성 상 각종 식물, 약재에 능통한 전문가들이었다고 설명하는 부분도 오버스럽기는 마찬가지고요.

물론 분량도 길고 주제가 독특한만큼 볼만한 정보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앞서 이야기한 닌자 이야기 중, 닌자가 '호로쿠다마'라 불리는 화약 장착 수류탄을 무기로 이용했는데 그 재료가 식물 쑥이었다는 이야기가 가장 기억에 남네요. 초석은 질산칼륨의 결정으로, 닌자는 쑥에 오줌을 뿌려 흙 속에 묻은 후 미생물을 발효시켜 오줌 속 암모니아와 쑥에 함유되어 있는 칼륨을 반응시켜 질산칼륨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어떻게 이런 것을 알았는지 모르겠지만 정말로 대단해요.
가토 기요마사가 구마모토 성을 축성할 때, 과거 조선 출병 시 농성전을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다다미의 심으로 짚 대신 토란 줄기를 사용했다는 이야기도 인상적입니다. 일종의 보존식으로 벽에는 박으로 만든 박고지까지 발라 넣었다고 하네요. 지금 구마모토의 명물인 가라시렌콘(삶은 연근 구멍에 물에 갠 겨자와 된장 섞은 것을 넣고 밀가루와 콩고물을 묻혀 튀긴 향토요리)의 재료인 연근 역시 구마모토 성 해자에 비상 식량으로 재배되고 있었다니, 조선에서 어지간히 고생했나 봅니다.

하지만 이런 재미난 이야기들 역시 과학적인 사실에 기반한 것도 아니고, 출처나 자료가 제대로 제시되지 않아서 대체 무슨 사료를 기반으로 이야기하는지 불분명하다는 단점은 큽니다. 대표적인게 전국 시대 무장들이 어떻게 초식만 먹고 싸울 수 있었는지에 대한 고찰입니다. 무장들은 하루에 현미 5홉 정도를 먹었는데, 단백질도 없이 이 정도 식사로 갑옷을 입고 어떻게 전투를 할 수 있었나?를 전투민족 파푸아뉴기니인들과 연결시켜 설명하거든요. 파푸아뉴기니인들도 바나나와 타로, 토란 등 식물만 먹는데, 이를 통해 전국 무장들이 파푸아뉴기니 사람들 처럼 장내에서 질소를 흡수해 채내에서 단백질을 합성할 수 있었다고 주장합니다. 당연히 과학적으로 증명 되지 않은 추론에 불과한 내용이지요. 발상은 재미있지만 여러모로 무리였어요.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사랑했던, "맛의 달인"에서도 간혹 언급되던 '핫초 된장'의 유래와 같이 내용 자체가 부실한 이야기도 제법 됩니다. 이 이야기에서 건질 것은 이름의 유래밖에는 없어요. 이에야스가 태어난 오카자키 성으로부터 8정 떨어진 핫초 마을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이라는데 이건 사실이겠지요. 그러나 그 외 된장의 특성에 대해서는 딱히 대단한게 없습니다. 핫초 마을은 야하기 강 자연 제방 위에 위치해 된장 만들기에 필요한 용천수가 충분했고, 야하기 강을 통해 수로 운송도 용이해서 된장이 발달할 수 있었다. 아울러 핫초 된장 제작에는 성을 쌓는 기술도 응용되어 있는데, 찐 콩을 동그랗게 뭉쳐 누룩균을 묻힌 된장 덩어리를 직경 2미터 정도의 거대한 삼나무 통에 채워 넣고, 된장 덩어리와 같은 무게가 될 정도의 돌을 눌러 쌓아 숙성시키는 것으로 이것은 성의 석벽을 쌓는 것과 같은 이치다라는 겁니다. 그러나 이 정도 환경을 갖춘 지역이야 널리고 널렸을테고, 제작 방식도 축성 기술을 응용했다고 보기에는 여러모로 무리인데 너무 억지로 대입시킨 느낌입니다. 예컨데 순창 고추장에 대한 설명 - 기후상 습지가 많은 분지 지역이라는 특성 덕분에 고추장 발효가 활발해져서 다른 고추장에 비해서 장맛이 깊고 빛깔 또한 곱다 - 정도의 설득력이 있지는 않아요. 이런 이야기가 '식물'을 이야기하는 책의 주제와 맞는지도 잘 모르겠고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기획의도와 주제, 만든 모양새는 여러모로 마음에 들지만 내용은 별로 기대에 미치지 못햇습니다. 단점도 많으며 내용에서 딱히 신뢰가 가지도 않았기에 좋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네요.

2022/01/15

기타기타 사건부 - 미야베 미유키 / 이규원 : 별점 2.5점

기타기타 사건부 - 6점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규원 옮김/북스피어

미야베 미유키에도물인데 '제 2막'이라는 부제처럼 새로운 시리즈입니다. 가난한 16세의 고아 기타이치가 주인공이지요. 기타이치는 '붉은 술 문고' 행상이면서, 동네에서 일어나는 사건들 해결에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는 설정입니다. 자신을 돌봐주었지만 복어를 먹다 비명횡사해버린 오카핏키 센키치 대장의 유지를 받들기 위해서요. 

그러나 외모가 출중하거나 대단히 머리가 좋은 건 아니에요. 관찰력과 판단력은 나름 괜찮지만 몸도 약한 편이고요. 그래서 탐정 역할이자 두뇌는 주로 대장의 미망인인 장님 마쓰바가 맡고 있습니다. 기타이치는 주로 발로 뛰면서, 단서들을 모아 안락의자 탐정같은 마쓰바 부인에게 전달해주는 역할 담당입니다. 주체적인 행동력을 갖춘 조수가 주인공이라는 점에서는 '네로 울프' 시리즈가 떠오르기도 하네요. 물론 기타이치는 아치 굿윈과 같은 인생 경험이나 넉살을 갖추지는 못했지만요. 아울러 부족한 액션을 보충하기 위해, 목욕탕 가마 담당이지만 귀한 집안 후예로 굉장한 무술을 지닌 기타조가 은밀히 기타이치를 도와준다는 설정도 덧붙여져 있습니다. 그래서 제목이 '기타(이치)기타(조) 사건부'가 된 걸로 추측됩니다.

이전의 다른 에도물과 다른 새로운 시리즈만의 특징이 몇 가지 눈에 뜨입니다. 첫 번째는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들이라는 점입니다. 수록작 네 편 중 실제 괴담이 등장하는 작품은 한 편 뿐이며, 그 이야기도 결말과 진상은 합리적으로 설명되기 때문입니다. 수록작들 네 편이 모두 종류가 조금씩 다르다는 점도 특징이에요. 전형적인 괴담물, 괴담물인줄 알았지만 일상계, 일종의 모험물, 추리물로 명확하게 구분됩니다. 

비교적 현실적인 사건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들이 많다는 특징도 있습니다. 이는 주인공 기타이치의 설정 때문입니다. 사회적 지위와 신분이 낮고 하루하루 살아가기가 팍팍하니, 규모가 크고 복잡한 사건보다는 아무래도 현실에 맞닿은 이야기들이 중심이 될 수 밖에 없었을테지요. 작가가 '미시마야'와 같은 기존 시리즈 대신 새로운 시리즈를 시작한 이유도 에도 서민들 삶에 맞닿아 있는 이야기를 쓰고 싶어했던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런 현실적인 배경 덕분에, 에도 서민 생활에 대한 묘사도 굉장히 상세합니다. 기타이치가 홀로 '나가야'에 세를 얻어 살면서 문고 행상을 하고, 이런 저런 가게를 탐문하는 등 모든 장면에서의 묘사는 정말 손에 잡힐듯하니까요. 작가가 에도라는 곳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세삼 깨닫게 해 줍니다. 대한민국 독자가 이런 묘사를 모두 이해하기는 좀 힘들다는게 문제이기는 하지만요. 이전에 읽었던 "만족을 알다" 등 에도 관련 책과 함께 읽어야 대충 배경이 머릿 속에 그려질 것 같습니다. 

수록작별로 짤막하게 소개해 드리면 아래와 같습니다. 스포일러 포함되어 있습니다.

"복어와 후쿠와라이"

수록작 중 유일하게 진짜 괴담이 주요 소재입니다. 저주받은 후쿠와라이 때문에 소동이 빚어지게 되거든요. 그러나 결말은 굉장히 현실적이에요. 저주를 풀기 위해 마쓰바 부인이 눈을 가리고 후쿠와라이를 완벽하게 완성하는데, 지극히 논리적인 방법이 사용되었기 때문입니다. 스타크래프트로 따지면 일종의 '귀맵'을 썼다는게 진상이니까요.

"쌍륙 가미가쿠시"

'저주받은 쌍륙'에 의해 '가미가쿠시 (아이 실종)'가 일어나는 내용으로 괴담물로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알고보니 아이들의 거짓말이었다는게 진상입니다. 

이를 밝혀내는 과정과 진상, 일종의 트릭과 추리 과정 모두 일상계같은 느낌을 전해주어서 현실적이면서도 와 닿게끔 잘 그려내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기타이치 혼자서 수수께끼를 풀어내는 모습을 통해, 그가 장차 센키치 대장의 뒤를 이을거라는걸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는 시리즈에서 중요한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말이 없는 지킴이"

기타이치가 연고없는 유골을 수습하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알고보니 목욕탕 가마 담당 기타조의 아버지 유골이었고, 기타조는 은혜를 갚기 위해 도미칸 납치 사건을 기타이치가 해결한걸로 만들려고 한다는 내용입니다. 

수록작 중 유일하게 괴담이 거의 언급조차 되지 않으며, 대체로 '모험물'에 가깝다는게 특징입니다. 그래서 추리물로는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도미칸 납치 사건은 추리의 여지가 전혀 없었고, 사건도 반 쯤은 우연에 의해 해결되는 탓입니다. 앞서 도미칸이 과자가게 이나다야의 난봉꾼 차남을 응징하는 장면은 재미있었고, 또 다른 주인공 기타조가 첫 등장하는 등 건질게 없지는 않지만, 수록작 중에서는 가장 처지는 작품입니다.

"저승에서 돌아온 신부"

밥집 딸 오사키가 자신이 된장가게 아들 만타로의 죽었던 아내 환생이라고 주장한 뒤 일어난 일련의 살인 사건을 그리고 있습니다. 살인 사건이 두 건이나 일어나는 잔인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다른 수록작들과 결을 좀 달리합니다. 사건을 추리해서 풀어가는 내용도 비교적 정통 추리물에 가깝고요. 환생이 아니라 사기극이었다걸 드러내는 추리의 과정도 괜찮았습니다. 사건 해결은 오사키의 자백에 의한 것이라는 단점은 있지만, 이는 에도라는 시대 특성상 어쩔 수 없었던 점이라 생각되네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이렇게 평균 수준의 작품이 세 편 이상은 되기에,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미야베 미유키의 에도물을 좋아하신다면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추리물 속성이 옅고, 기타이치가 오카핏키가 되어가는 과정을 그린 성장기이자 모험물 속성이 강해서 제 취향은 아니었지만요. 왠지 리뷰를 쓰기도 힘들었기에 후속권은 읽어볼 것 같지 않네요.

2014/11/17

미야베 미유키 에도 산책 - 미야베 미유키 / 김소연 : 별점 2.5점

미야베 미유키 에도 산책 - 6점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북스피어

미야베 미유키가 출판사 신초샤와 함께 한 기획 기행문.

쥬신쿠라의 아코 낭사들이 기라 저택을 습격한 후 센가쿠지 절로 철수했던 길을 따라 걷기, 시중에 조리돌리기한 뒤 효수했다는 당시 루트를 따라 걷기, 하코네 관문을 돌파하여 나가기 등 실제 에도시대의 역사적인 일이나 풍습, 관습을 체험하며 따라 해 보는 재미난 기획물입니다. 미야베 미유키의 에도 사랑을 느낄 수 있을 뿐더러, 당시 있었던 실제 디테일을 자세히 설명해 주고 있는 덕분입니다. 조리돌리기 편에서 어떤 죄가 이에 해당되는지를 알려주는 식으로요. 에도시대에 관심이 많다면 분명 재미있게 읽을 수 있습니다. 번역도 꼼꼼히 잘 되어 있으며 주석도 충실해 공부하면서 읽는 맛도 괜찮았어요. 글 자체도 맛깔나고 재미있게 쓰여 있고요.

아울러 미야베 미유키에 대해서 새롭게 알게 된 점들도 반가왔습니다. 의외로 유쾌한 분이더군요. 진중한 여사님 이미지와 달리 에도 토박이임을 강조하면서 자학개그를 펼친다든가, 함께 하는 멤버들에게 제멋대로 별명을 붙이는 등 유쾌발랄한 분위기가 가득합니다. 글을 통해 자신의 작품 "혼조 후카가와의 기묘한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언급하는 솜씨도 일품입니다. 물가에 가면 "스케키요의 다리"가 꽂혀 있을 것 같다는 추리소설가다운 코멘트도 좋았고, 편집자가 이야기한 가도카와에서 투자하는 관람형 설치물(스케키요의 다리가 위아래로 움직인다는 장치) 이야기도 인상적이었어요. 실제 설치되었다면 정말 재미있었을 것 같네요.

그러나 세 번째까지는 기획 의도에 충실한 산책 기행문인데, 이후에는 황거를 둘러보거나 유배지였다는 하치조지마로 바캉스 여행을 떠나는 등 내용이 다소 변질되어 아쉽습니다. 끝까지 제대로 달려주었다면 아주 좋았을 텐데 흐지부지 끝난 느낌이에요. 이렇게 마무리할 거였다면 중반에 나온 "독부 미유키" 설정을 끝까지 유지해서 다른 기획으로 이어갔어도 좋았을 텐데 말이죠.

또한 지루한 부분은 정말 지루합니다. 본인들도 별 의미 없이 편해서 선택했다는 혼죠 7대 불가사의 탐방이 대표적입니다. 애초에 별거 없는 불가사의일 뿐더러, 현대에 전해지는 것도 아니고 심령 포스트라도 찾으면 모를까, 본인들도 어딘지 잘 모르고 두서없이 돌아다니는 것뿐이니 딱히 이야기할 것도 없습니다. 이래서야 흔해빠진 "고독한 미식가"류의 구루메 탐방이 차라리 더 낫지 싶네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초기 기획은 너무 마음에 들었는데 실망만 안겨준 후반부는 도저히 점수를 주기 어렵습니다. 그래도 글 자체는 나쁘지 않습니다. 기행문이기는 하나 개인 의견이 많이 들어가 있고 유머러스하다는 점에서는 "동경산책"이 연상되는데, 미야베 미유키의 팬이라면 읽을 가치는 충분하고 에도 시대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꽤 흥미로운 텍스트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후보군이 너무 좁다!). 특히 일본 여행, 특히 도쿄를 앞두고 계신 분들이라면 꼭 한 번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저도 황거는 다시 한 번 가보고 싶군요.

덧붙이자면 우리도 둘레길 등 산책로가 급부상하고 있는데, 단지 경관만 즐기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역사와 결합해 의미 있는 코스를 만드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지식이 짧아 당장 추천하고 싶은 게 떠오르진 않지만요.

2008/06/07

에도가와 란포 전단편집1 - 에도가와 란포 / 김소영 : 별점 4점

에도가와 란포 전단편집 1 - 8점
에도가와 란포 지음, 김소영 옮김/두드림

일본 추리 문학의 거장인 에도가와 란포본격 추리 단편집. 예전 일본 여행 갔을 때 보고 군침만 흘리던 바로 그 책이라 일말의 고민없이 곧바로 구매하였습니다.

일단 550페이지가 넘는 분량에 22편이나 되는 단편이 실려있는 풍성함은 아주 마음에 들었습니다. 22편 중 동서 출판사의 "음울한 짐승"에서 이미 접했던 4편의 작품이 실려 있긴 하지만 워낙에 번역이 별로였기에 이번에 새로운 번역으로 새롭게 읽는 맛도 괜찮더군요(참고로 그 4편의 작품은 "2전짜리 동전", "심리시험", "D언덕의 살인사건", "두 폐인" 입니다)

대부분의 수록작들은 "본격 추리"라는 타이틀에 어울리는 나름대로 트릭을 가지고 있는 본격물들입니다. 그런데 워낙 다작을 한 작가라서 그런지 모든 작품, 그리고 트릭들의 수준이 고른 편은 아니긴 합니다. 내용도 익히 알고있던 변격물 스타일이 아닌 다양한 내용을 시도하고 있는데 그러한 시도 역시 모두 성공적으로 보이지 않았고요. 아케치 코고로 시리즈도 명성에 비하면 아주 높은 수준의 작품은 그다지 많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전에 읽었었지만 걸작인 "2전짜리 동전"을 비록해서 "심리시험", "D언덕의 살인사건" 같은 대표작 이외에 베스트를 꼽아보자면 "일기장". "도난", "재티", "의혹", "영수증 한장" 등이 특히 마음에 들었습니다(물론 다른 작품들도 일독의 가치가 충분합니다).

조금 더 자세하게 이야기하자면, 죽은 동생의 일기장을 통해 모종의 암호문과 그 뒤에 숨겨진 사랑을 다룬 "일기장"은 이 작품집에 상당수 실려있는 "2전짜리 동전"과 유사한 50음도와 숫자를 이용한 암호문을 등장시킨 작품인데, 그 중에서도 상당히 인상적이었을 뿐 아니라 익히 알고 있던 에도가와 란포의 변격물적인 요소가 전혀 없이 부드럽고 잔잔하게 전개되는 것이 괜찮았습니다.
사이비종교에서 벌어진 황당무계한 도난 사건을 다룬 "도난"은 결말 부분이 조금 아쉽긴 했지만 도난 사건에 관련된 트릭의 기발함이 빼어나고 기대하지 않았던 유머러스한 분위기가 좋았고요.
"재티" 는 우발적 범행을 은폐하기 위한 공작을 그리고 있는데 도서 추리물의 전형적 형태를 띄고 묘사와 전개가 명성에 값합니다. 

그 외에 아버지의 살해로 촉발된 가족간의 의심을 다룬 "의혹"은 디테일한 심리묘사가 돋보였고 정통 본격 추리물이라 할 수 있는 "영수증 한장" 은 독창적인 부분이 많아 높이 평가할 만 하다고 생각되네요.

결론적으로, 일본 추리 소설계의 대부라 할 수 있는 에도가와 란포의 매력을 충분히 보여주는, 부족함 없는 재미를 선사하는 좋은 작품집입니다. 분량과 두께에 비한다면 가격도 아주 착한 편이고 말이죠. 이제서야 소개된다는 것이 외려 늦은거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네요. 책 뒷부분의 해설도 굉장히 잘 되어 있어서 자료적 가치도 충분합니다. 별점은 4점입니다. 빨리 다음권이 나와주면 좋겠네요. 

그나저나, 이 책까지 출간되는걸 보니 확실히 우리나라도 쟝르문학 시장이 많이 커지긴 커졌나 봅니다.

2010/03/16

마노스케 사건 해결집 - 하타게나카 메구미 / 김소연 : 별점 3점

마노스케 사건 해결집 - 6점
하타케나카 메구미 지음, 김소연 옮김/가야북스

한시치 체포록에 이어 연이어 읽게 된 에도물. 마을의 나누시 (일종의 동네 이장?) 후계자인 주인공 마노스케가 마을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문제들을 중재하는 이야기가 실린 단편 옴니버스물입니다. 제목은 "사건해결집"이라고 되어 있고 홍보도 일상 미스터리라고 하고 있는데 반해 그다지 대단한 추리물은 아닙니다. 하긴 17~18세기의 에도에서 봉행소에서 관여할 정도가 아닌, 소소한 상인급 인물들의 재정이 주였던 나누시에게 대단한 사건이 있을리가 없었겠지만요. 추리물보다는 일상 속 유쾌하면서도 소소한 드라마 정도로 보는게 맞습니다.

그래도 일단 에도시대를 배경으로 한 일상계 작품이라는 특이함이 좋았고, 워낙에 작품 자체가 유쾌하면서 사람사는 냄새가 물씬 나는 이야기들이라 가벼운 마음으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사건을 의뢰하는 사람이 있고 그것을 해결하는 것이 주요 이야기이기에 추리적인 부분도 약간이나마 포함되어 있으며, 주인공 마노스케와 그의 친구들같은 독특한 캐릭터가 그야말로 작품에서 뛰어논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톡톡튀는 맛도 좋습니다. 나누시의 후계자이지만, 알 수 없는 이유로 청년이 되면서 정줄을 놓아버렸다는 평가를 받는 허술해보이고 장난기넘치지만 의외로 총명한 청년 마노스케가 아주 마음에 들기도 했고요.
에도물다운 치밀한 묘사 역시 볼거리입니다. 에도의 유곽 요시와라와 기녀들에 대한 묘사, 당대 사람들의 생활사도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요시와라같은 경우 생각보다는 꽤 자유분방하고 일반 백성들과 연계된 오픈된 공간으로 묘사되는 등 참고할만한 (?) 내용이 많더라고요. 차남은 완전히 찬밥신세였다던가, 가게를 이어나가는 우선순위 같은 당대의 시대상을 알게되는 현학적 재미도 충분하고 말이죠.

딱 한가지 아쉬운 점은 결국 마노스케와 세이주로도 철이 들고 성장한다... 는 성장기 같은 느낌도 전해주는 탓에 만약 시리즈가 이어진다 하더라도 이전만큼 유쾌한 모습은 보여주지 못할 것 같다는 것입니다. 마노스케의 유쾌한 매력을 계속 즐기고 싶은데 후속작 소식도 없고 하니 작가의 다른 작품이나 찾아봐야겠네요.

개인적인 별점은 3점으로 추리적 요소가 부족해서 점수를 좀 짜게주기는 했는데 좋은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나오키상 후보에 오를 정도의 작품인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어쨌건 역사물을 좋아하시면서도 유쾌하고 가벼운 소품을 좋아하시는 분들께 추천하고 싶네요.

덧붙이자면, 저자는 원래 만화가 출신이라고도 하는데 작가 정보에 만화쪽 이력은 나와있지 않군요. 작품에서의 디테일한 묘사와 유쾌한 분위기 때문에 만화도 한번 찾아보고 싶었는데 약간 아쉽네요. 설마 일본에서도 만화쪽을 소설에 비해 차별하는 풍토가 있는건 아니겠죠? 혹 작가의 만화 작품 아시는 분 계시면 소개 부탁드립니다.

<오노부의 진실>
시집안간 마을 처녀가 임신했는데 아버지를 찾아달라는 그 가족의 청을 마노스케가 묘한 인연으로 받아들인다는 이야기로 마노스케가 사건에 발을 담그게 되는 과정부터 시작해서 결말까지 일사천리로 달려주는 유쾌한 작품입니다. 추리적으로는 대단한 것은 없지만 "함정수사"의 초창기같은 발상이 에도시대 분위기와 맞물려 무릎을 치게 만들더군요.

<감 반개>
자수성가했지만 상처한 뒤 홀로 살아가는 전당포 주인의 감나무에서 감을 훔쳐 따 먹은 인연으로 마노스케와 친구들이 전당포 주인의 옛 사랑 이야기와 엮이게 되는 내용인데 그야말로 소품이라 별로 언급할건 없네요. 일상 속 드라마 그 자체라 생각되긴 합니다.

<만년청의 주인은?>
고가라고는 하지만 결국은 화분일 뿐인 "만년청"이라는 화분의 소유권 다툼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 작품의 재미 포인트는 세가지인데 첫번째는 에도시대 유행했다는 "만년청"이라는 화분에 대한 현학적 재미, 두번째로는 갑자기 등장한 마노스케의 약혼자(?)와 그에 따른 왁자지껄하는 분위기, 세번째는 주인이 누구인가에 대한 나름 진지한 추리적인 탐구가 벌어지는 것이죠. 약혼자를 자칭한 오스즈씨의 당찬 모습과 설득력있는 추리가 마음에 들었던 작품입니다.

<누구의 아이인가>
다이묘 휘하 무사가 자신의 후계자인 손자를 찾는 이야기로 한장의 편지를 통해 진지한(?) 수사를 펼쳐 결과를 도출하는 과정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중간에 삽입된 유령 이야기를 통한 복선과 결말도 마음에 들었고요. 그 외에도 마노스케가 갑자기 정줄을 놓아버린 이유를 짐작케 하는 에피소드가 등장하는 등 여러가지로 즐길거리가 많아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병문안 가는 길>
마노스케가 약혼자 스즈와 인연이 있는 마타시로를 병문안 가는 길에 선물을 사기 위해 들른 가게에서 주운 개(칭)와 불량배들에게서 구해준 아가씨 오신을 둘러싼 소동이 벌어지는 이야기인데 이 단편집 안에서 가장 추리적인 재미가 많은 작품입니다. 정체를 숨기려고 하는 오신이 어느 동네 사람인지를 맞추는 과정이 셜록 홈즈식의 디테일한 관찰에 따른 추리로 펼쳐지는 것도 볼만했고 오카핏키가 찾는 고린이라는 아가씨의 정체를 밝히는 마노스케의 모습 역시 추리적으로 비약이 심하긴 하지만 나름의 설득력은 갖추고 있더군요. 그 외에도 마노스케가 정줄을 놓아버린 이유가 살짝쿵 등장하기도 하는 등 잔재미도 쏠쏠해서 이 단편집의 베스트로 꼽고싶네요.

<고타 유괴사건>
마노스케의 친구이자 역시 나누시의 후계자인 세이주로의 동생 고타가 유괴되는 이야기로 에피소드들 중에서 가장 강력범죄가 일어납니다. 마지막 편이기 때문인지 모든 등장인물이 총 출동하며 - 마노스케의 첫사랑 오유와 드센 약혼자 오스즈양까지! - 추리적으로도 재미가 쏠쏠해서 몸값의 에도스러운 전달방법도 기발하고 사건 해결까지의 과정 역시 설득력있게 잘 짜여져 있습니다. 결국 마노스케의 결혼식으로 마무리되는 대단원 역시 깔끔하게 정리되고 있어서 단편집을 잘 마무리하고 있다 생각되네요. (마노스케의 성장으로 대미를 장식하는데, 앞서 이야기했듯이 개인적으로 조금 아쉬운 부분이기도 했습니다.)

2021/04/17

안주 - 미야베 미유키 / 김소연 : 별점 2.5점

안주 - 6점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북스피어

에도 간다에 있는 미시마야는 장신구와 주머니를 파는 주머니 가게로 멋스러운 주머니 외에도, 또 하나의 명물이 있다. 주인 이헤에가 최근에 재미를 붙인 특별한 도락으로, 실제로 있었던 괴담을 모으는 괴담 대회이다. 이야기를 듣는 건 이헤에의 조카딸 오치카로, 그녀는 약혼자를 소꿉친구에게 잃은 뒤 마음에 상처를 입고 숙부가 운영하는 주머니 가게에 '예절 견습'이라는 명목으로 맡겨진 소녀였다.

미야베 미유키의 '에도물'은 한 두어권 읽기는 했지만 딱히 좋아하는 이야기는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관심을 두지 않았었는데, 우연찮게 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읽다보니 이게 전작이 있는 이야기더군요. 오치카가 겪었던 이전 사건이 계속 인용되더라고요. 그 외에도 이야기들 모두가 연결되어 있다는 특징도 있습니다. 다행히 따로 읽어도 무방한 단편들로 구성되어 있어서 읽는데 지장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기대하고는 조금 달랐습니다. 별로 무섭지는 않은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이건 제가 '괴담'이 '무서운 이야기'라고 잘못 생각한 탓입니다. 사실 '괴담'의 '괴 (怪)'는 괴이하다는 뜻이지요. 괴담도 '괴상한 이야기'라는 뜻이고요. 등장하는 이야기들 모두 괴이하다는 점에서 괴담의 사전적 정의에 부합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정서에 맞지 않는 부분은 분명 있습니다. 모든 여성 이름들 앞에 '오'가 붙어서 혼란스러운 것과는 별개로요. 또 "으르렁거리는 부처" 외에는 모두 지나치게 평이한 이야기가 아니었나 싶기는 해요. "달아나는 물"은 심지어 뻔하기까지 했고요.

그래도 괴이함이 에도라는 공간과 미야베 미유키라는 작가의 글 솜씨로 결합되어 뿜어내는 독특함은 마음에 들었어요.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전편도 찾아 읽어볼 생각입니다.

각 수록 단편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달아나는 물" 

오래전 마을을 보호하는 신으로 숭배받았지만, 오랜 세월이 흘러 지금은 찬밥 신세가 되어 허물어지는 신사에 봉인되었던 뱀신 오히데리는 우연히 만난 마을 소년 헤이타의 도움으로 봉인에서 풀려났다. 그리고 헤이타에게 씌워져 마을에 돌아온 뒤, 마을 물을 마르게 하는 복수를 벌였다. 마을 고노기의 쇼야 (마을 사무를 맡아보는, 일종의 면장 직무)는 소년을 에도로 보내 버렸지만, 에도에서도 마찬가지 소동을 일으켰다. 다행히 이야기를 들은 주인공 오치카가 살뜰히 보살펴 에도에 무사히 적응한 헤이타는 물을 좋아하는 오히데리를 위해 소년은 뱃사공이 될 결심을 한다.

오래된 무언가에 깃든 요괴가 속박에서 해방되어, 누군가에게 씌워진다는 이야기는 하늘의 별처럼 많습니다. 따지고 보면 "알라딘" 부터가 그런 이야기지요. 천진난만하면서도 의리있는 주인공 소년, 본체는 뱀이지만 귀여운 소녀인 요괴라는 조합도 전형적인 소년 만화스러운 설정이고요. 훈훈한 전개와 결말 역시 소년 만화같다는 느낌을 강하게 전해줍니다. 아동용 이야기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요.

뱀 요괴가 신이 되었다가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게 된 이유에 대한 설정은 탄탄하고, 이야기 전개에 있어 에도라는 시공간을 잘 활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진부하다는 점에서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덤불 속에서 바늘 천 개" 

미시마야 이웃인 바늘상 스미요시가에는 20대 후반이 될 때까지 혼인하지 못한 고명딸 오우메가 있었다. 그녀가 시집을 간 뒤, 그녀가 왜 시집을 늦게까지 가지 못했으며 결혼식날 있었던 이런저런 기묘한 일들은 무엇 때문이었는지를 그녀의 어머니 오미치가 이야기해 주기 위해 '흑백의 방'을 찾아온다.

오미치 말에 따르면, 오우에가 시집을 늦게 간 건 그녀의 쌍둥이 자매 오하나가 병사한 뒤. 쌍둥이를 싫어했던 할머니의 저주 때문이었습니다. 오우메 혼자서 무언가를 누리게 되면 저주를 받기 때문에, 죽은 오하나와 똑같이 생긴 인형을 만들어 돌보았고, 그래도 오우메가 혼자 이득을 얻는게 있다면 오하나 인형에 바늘이 꽂히고, 오우에는 지독한 습진을 앓는 식으로요. 그런데 결혼은 혼자서 이득을 얻으니, 도무지 벗어날 방법이 없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여러모로 이해하기 힘든 저주라서 영 와 닿지 않았습니다. 저주의 핵심인 '상인은 예로부터 쌍둥이를 싫어한다'라는 말부터 이해 불가였어요. 친할머니가 이 말 때문에 쌍둥이와 며느리를 저주했다는 것 역시도 납득할 수 없었고요. 에도 시대 일본 정서가 이랬던건지는 모르겠지만, 현대의 우리나라 사람으로서는 도무지 알 수가 없는 이야기였습니다.

인형에 바늘을 꽂은건 사람이었다는 진상도 와 닿지 않기는 마찬가지에요. 친딸이지만 강제로 동생 집에 딸을 보내고, 자기들은 인형과 함께 살며 재산까지 나눈 다에몬 부부, 친딸처럼 키워 온 양녀를 잃게 될 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센에몬 부부 사이에 알력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를 오하나 인형에 바늘을 꽂는 형태로 표출했다는건 비약이 심했습니다. 또 두 형제가 집을 합치려고 할 때 처음으로 저주가 발생했으니, 바늘을 꽂은 건 둘째 부부여야 말이 됩니다. 양녀를 잃기 싫었다면요. 그렇다면 합치지 않기로 한 뒤에 바늘이 꽂힌건 설명이 되지 않지요. 이렇게 두루뭉실하게 풀어내지 말고, 정말 오우메를 증오한 누군가가 있다는걸 증명했어야 했습니다. 

아울러 바늘이 꽂힌 뒤 실제로 오우메가 습진을 앓았다던가, 할머니가 모든 가족들 꿈에 나타나 저주를 했다던가, 오카쓰가 대신 저주를 뒤집어 쓰는 역할을 한 뒤 모든 저주가 사라졌다는 등 이야기 속 주요 설정들에 대한 설명도 부족합니다.

처음에 나타난 오하나 유령이 '눈을 깜박이지 않았다'는 대사 하나는 조금 섬찟했고, '인형'과 같았다는 설명은 괜찮았습니다. 그러나 앞서 말씀드렸던 이유로 수록작 중에서는 가장 처지는 이야기였다 생각됩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안쥬" 

수국 저택이라고 불리우는, 지금은 폐허가 된 무가 저택에서 불이 나 3명이 죽었다. 사망자의 아들 나오는 어려워진 집안 사정으로 아버지의 사촌인 야채상 야오노에 양자로 가게 되었다. 그러나 바뀐 환경에 적응을 잘 하지 못해 불안해 하던 차에, 미시마야 하인으로 습자소 친구인 신타를 폭행하는 사고를 치고 말았다. 그 뒤 나오를 개인적으로 돌봐주는 습자소 선생 아오노 리이치로가 나오 아버지가 죽은 저택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표제작입니다. 읽기 전에는 술안주 할 때의 안주라 생각했었는데, '暗獸'의 일본어 발음이더군요. 

특징은 추리물 성향이 짙다는 겁니다. 나오의 아버지 요헤이가 죽은 화재 사고에 대한 진상을 괴담을 통해 추리해내기 때문입니다. 

아오노 리이치로의 말에 따르면, 수국 저택에는 아오노 리이치로의 스승 부부가 은퇴 후 살았던 적이 있었습니다. 전 주인 아내의 유령이 나온다는 소문으로 집 값이 쌌던 덕분이었지요. 그 곳에서 부부는 저택의 염 '구로스케'를 만나 친해지지만, 구로스케가 사람 때문에 약해진다는걸 알게 된 뒤 저택을 떠납니다. 그러나 주인 때문에 도망갈 생각이었던 옆 저택에서 일하던 하인과 하녀, 그리고 이 둘을 도와주던 나오의 아버지 요헤이가 마침 빈 수국 저택에서 계획을 모의할 때 주인이 덮쳤고, 이를 막으려던 구로스케를 본 사람들이 놀라 도망치다가 죽은게 사건의 진상입니다.

추리물 애호가로서 이러한 작풍도 마음에 들었지만, 스승 부부와 구로스케가 보냈던 날들에 대한 상세한 묘사도 아주 좋았습니다. 노래라던가 공놀이를 가르쳐주고, 함께 시간을 보내며 정을 나누는 모습이 아주 훈훈했기 때문입니다. 아래와 같이 구로스케의 '귀여움'도 폭발하고요.

판타지물에서 슬라임과 교분을 나누는 노학자 부부의 모습이 이렇지 않을까요? 사람과 가까워지면 질 수록 약해진다는 설정도 좋았어요.

하지만 결국 사람이 3명이나 죽은건 분명하고, 원인을 제공했던 관리 나마즈히게가 딱히 대단한 응징을 받지 않았다는 결말은 개운치는 못했습니다. 이는 구로스케의 귀여움, 사랑스러움과는 너무 상반되는 이야기인 탓도 큽니다. 귀엽고 사랑스러워도, 괴이한 이형은 결국 사람에게 불행을 가져온다는 뜻이겠죠? 

그리고 에도 시대에 그렇게 높은 관직도 아닌데 하인과 고용인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게 죽일 수 있었다는 것도 조금 놀랐습니다. 하인이야 그렇다쳐도, 요헤이는 엄연한 고용인인데 말이지요. 나오가 양자로 간 야오노 가에서 겪는 불합리한 대우를 참고 견디는 모습 등도 우리나라 정서와는 잘 맞지 않아 보였어요.

그래도 이 정도면 충분히 재미있는 이야기였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으르렁거리는 부처" 

아오노 리이치로의 지인인 괴승 교넨보가 미시마야를 찾아와서 과거 깊은 산 속 '다테나리'라는 마을에서 겪었던 일을 오치카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다테나리는 고신지라는 절의 스님 가쿠넨이 다스리는 풍요로운 마을이었는데, 도미이치라는 주민이 마을의 풍요에 대한 소문을 내려다 '반작'이라는 형벌을 받게 되었다. 도미이치의 아내와 갓난아기는 굶어죽었고, 광인이 된 도미이치는 장작에 불상을 새기는데 그 불상이 신통력을 발휘해 마을에 내분이 생겨 붕괴했다는 이야기였다...

마을 관습, 또는 집단 이기주의로 피해를 받았던 누군가가 복수한다는 이야기는 흔한 편입니다. 하지만 다테나리 마을과 '반작'이라는 설정은 탄탄하고, 수록작 중 제가 기대했던 '괴담'의 정의에 가장 충실해서 무척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교넨보가 겪었던 다테나리에서의 체험은 섬찟하면서도 이야기도 완성도가 높았기 때문입니다. 복수심에 불탔던 도미이치가 마을을 붕괴시키는 전개는 정말로 설득력이 넘치거든요. 혼자서는 역부족인 상황에서, 일종의 '초능력(?)'으로 가쿠넨 스님의 지배력을 무너트리는 과정이 아주 생생하면서도, 그럴듯했습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만으로도 충분했을텐데, 도적단이 미시마야를 습격한다는 이야기는 왜 등장시켰을까요? 억지스럽고, 이야기에 별로 도움도 안 됐는데 말이죠. 아오노 리이치로와 오치카의 관계를 진전시키기 위한 수단이었겠지만, 둘의 관계도 급발진 느낌이 강했습니다.

그래도 수록작 중에서는 베스트로 꼽겠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덧붙이자면, 이 작품은 영상물로 만든다면 아주 볼 만 할 거라는 확신합니다. 특히 마지막에 '이형'이 된 도미이치가 "이 세상에 부처 따위는 없다!"고 외치는 장면이 말이죠. 조금 찾아보니 전작은 TV 드라마화가 된 것 같은데, 이 작품도 드라마로 나오면 좋겠습니다.

2009/08/17

에도가와 란포 전단편집 2 - 에도가와 란포 / 김은희 : 별점 3.5점

에도가와 란포 전단편집 2 - 6점
에도가와 란포 지음, 김은희 옮김/두드림

제목 그대로 일본 추리소설의 아버지이자 변격물의 창시자라 할 수 있는 에도가와 란포의 단편선집입니다. 1권 다음에 3권이 먼저 나온 뒤 나온 2권입니다. 순서조차 엽기적이군요.... 1권과 3권을 이미 읽고 소장하고 있기에 구입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제가 이런 추리 단편을 워낙 좋아라하기도 하고 말이죠.
그러나 아쉽게도 이미 접한 작품도 많고 "본격물" 로 보기에는 어려운 작품들도 제법 많아서 1 - 3 권을 읽고 느꼈던 것보다는 조금 못합니다. 그래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단편집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겠죠. 전체적인 평점은 3점입니다.

최고 베스트는 "음울한 짐승" 이긴 한데, 너무 잘 알려진 작품이라 조금 식상하다면 "그는 누구인가"를 꼽고 싶네요. "악귀"도 괜찮았고요.

좀더 자세하게 이야기하자면,

호반정 사건 :
거울장치로 남을 엿보는 취미가 있는 주인공인 나는 묵고있던 여관 목욕탕에 몰래 숨겨놓은 장치를 통해 한 여인이 살해당하는 장면을 목격한다. 여관에서 친구가 된 코우노와 함께 사건의 조사에 착수한 나는 사건이 벌어진 이후 여관 잔치에 불려나왔던 기생 쵸키치가 실종되고 정체불명의 손님들이 커다란 트렁크를 든 채 서둘러 도망갔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경찰까지 수사에 나서지만 결국 사건은 미궁에 빠지는데...
작가의 변격적인 취향이 잘 반영된 "거울장치"라는 설정은 인상적이지만 본격물에는 미치지 못한 조금은 애매한 작품입니다. 본격물로 기능하기 위한 트릭은 그런대로 합격점이긴 하며 쵸키치의 실종이라던가 군불지기 산조우의 존재 등을 통해 이야기도 나름 설득력 있게 전개하고는 있지만 "거울장치"라는 소도구 자체가 우연을 토대로 한다는 점과 정체불명의 손님들과 거액의 돈이라는 설정 역시 지나칠정도로 작위적이기에 높은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이야기는 중편 길이에 가까우나 알맹이가 없는 작품이라 별점은 2점입니다.

악귀 :
추리소설가 토노무라 쇼우이치는 고향에서 우연히 친구인 오야 코우기치가 연루된 사건에 휘말린다. 오야의 정혼자 츠루코가 참혹하게 훼손된 시체로 발견되었기 때문. 마침 오야는 파혼을 주장하며 유키꼬라는 아가씨와 사귀고 있었기에 완벽하게 범인으로 몰린다. 결국 토노무라는 친구의 누명을 벗어주기 위해 나서는데...
작가 스스로도 책 뒤의 해설에서 이야기하듯 결정적 트릭을 홈즈 단편 중 하나인 "브루스파팅턴 잠수함 설계도의 모험"에서 차용한 작품으로 정통 본격물입니다. 비록 중요 트릭이 모방이라 하더라도 다른 트릭들, 즉 1인 2역 트릭 같은 것들이 중요 트릭과 함께 작품과 잘 결합되어 있어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결말이 조금은 쌩뚱맞긴 한데 그래도 이 정도면 충분히 합격점을 줄 만한 작품이죠. 별점은 3점입니다.

지붕 속 산책자 :
백수 코우다는 명탐정 아케치 코고로와 친분을 맺은 뒤 "범죄"에 관심을 갖게 된다. 그러던 중 새로 이사한 하숙집 천장으로 통하는 통로를 우연히 발견한 그는 다른 하숙생들을 염탐하는 취미에 빠져들다가 싫어하는 하숙생 엔도우를 완벽하게 살해할 수 있는 계획을 실행하게 된다...
대표작 중 하나로 과거 동서 추리문고의 "음울한 짐승"을 통해 먼저 접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변격물적인 성향에 더해 범행이 먼저 이루어지는 약간은 도서추리적인 전개, 그리고 사건을 밝혀내는 아케치 코고로의 추리쇼가 돋보이며, 특히나 범행을 행하는 과정까지의 서스펜스가 정말 장난이 아니라 무척이나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죠.
코우다를 주인공으로 하여 그의 심리묘사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는 점과 범행의 유력한 증거가 결국 끝까지 밝혀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본격물로 보기는 힘들겠지만 에도가와 란포라는 작가의 진면목을 알기 위해서라면 꼭 한번 읽어봐야 하는 작품이 아닐까 싶네요. 별점은 3점.

그는 누구인가 :
유우키 소장의 아들 히로카즈가 도둑에게 저격당해 불구가 된다. 그러나 범인이 남긴 불가사의한 발자국 등 알 수 없는 여러 정황증거 때문에 사건이 미궁에 빠진다. 결국 추리광인 히로카즈 스스로 탐정역을 소화하려 하고, 유우키 가문의 손님인 아카이씨 역시 사건 해결에 나서는데...
범인이 하늘로 꺼지는 발자국이라는 불가능 범죄의 설정을 가진 본격물입니다. 지도까지 도입한 치밀한 구성, 잘 짜여진 캐릭터 구도와 완벽한 동기 등 본격물의 모든 요소를 갖추고 있죠. 덕분에 상당한 길이의 중편이지만 작품 내내 계속 호기심을 자극하는 요소가 많아 지루하지 않게 읽은 작품이기도 합니다. 아케치 코고로가 등장한다는 것 역시 팬으로서는 반가운 일이었고요.
저자 스스로는 자신의 냄새가 많이 나지 않아 별로 화제가 되지 못했다고 이야기하지만 후대의 팬으로서는 오히려 기대하지 않았던 보석을 발견한 듯한 기쁨이 느껴지는 작품이었습니다. 별점은 3.5점입니다.

달과 장갑 :
카츠히코는 고리대금업자 마타노를 우발적으로 살해한 뒤 자신의 애인이기도 한 마타노의 아내 아케미와 공모하여 사건을 은폐할 결심을 한다...
장치를 이용한 일종의 알리바이 트릭이 등장하는 도서 추리물입니다. 작가 후기에서 "황제의 코담배갑" 같은 "범인이 자신의 범행을 멀리서 바라본다"라는 알리바이 트릭을 언급하는데 사실 그 정도는 아니죠. 완전 오버에요... 이 작품은 트릭 자체는 별게 없고 오히려 이를 밝혀내기 위한 경찰의 수사망이 좁혀오는 서스펜스가 더욱 돋보이는 스릴러적인 성향이 강한 작품입니다.
아케치 코고로의 이름이 잠깐 언급되는 것도 눈여겨볼만 합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호리코시 수사1과장 귀하 :
도쿄 경시청의 호리코시 수사1과장은 5년전 관내에서 벌어진 미궁의 천만엔 도난사건에 대한 편지를 받는다...
서간문 형식으로 이루어진 작품으로 1인 2역 트릭을 다루고 있습니다. 트릭과 설정은 뻔해서 역시나 본격물로 보기에는 무리가 따르지만, 전개과정이 뻔한 아이디어를 덮을 수 있을 만큼 흡입력이 있어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모처럼 결말까지 깔끔할 뿐 아니라 훔친 돈의 은닉에 대한 몇가지 아이디어 등도 재미있었기에 별점은 3점. 무난하고 평이했습니다.

음울한 짐승 :
추리작가인 나는 실업가 오야마다 로쿠로의 부인인 오야마다 시즈코라는 여성과 우연히 친분을 쌓게 된다. 그러던 어느날 그녀가 나에게 오에 슌데이라는 정체를 알기 어려운 추리작가에 대해 문의하고, 나는 오에 슌데이가 과거의 연인이었다가 스토커로 돌변한 히라타 이치로라는 그녀의 고백을 듣게 된다. 히라타 이치로의 스토킹과 편지의 강도가 세지던 와중에 결국 오야마다 로쿠로가 살해된 시체로 발견된다...
나왔다! 이 작품도 동서추리문고를 통해 소개된 대표작이기도 한 변격물입니다. 에도가와 란포 스스로 작중의 오에 슌데이, 즉 히라타 이치로라는 인물에 자기 자신을 투사하여 작품을 써 나갔기 때문에, 란포의 여러 작품들이 오에 슌데이의 작품으로 인용되는 등 작가와 왠지 일체화된 느낌이 강한 작품이기도 해서 대표작으로 인정받는 것이 아닐까 싶네요.
비록 읽어본 작품이기는 하지만 번역이 다른 탓에 굉장히 신선한 기분을 느끼면서 새롭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스토킹이나 가학증 등 변격물적인 성향도 잘 드러나 있지만 본격물로 보아도 손색없을 정도로 여러가지의 트릭 - 특히 오야마다 로쿠로 살인사건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볼거리입니다 - 이 복합적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약간 여운을 남기는 애매한 결말까지도 인상적이라 에도가와 란포 작품 중에서도 탑 클래스에 들만한 좋은 작품이기에 별점은 4점입니다.

2020/02/22

추리소설 속 트릭의 비밀 - 에도가와 란포 / 박현석 : 별점 2.5점

추리소설 속 트릭의 비밀 - 6점
에도가와 란포 지음, 박현석 옮김/현인

일본의 추리 소설가 에도가와 란포의 전설적인 에세이입니다. 늦은 감은 있지만 드디어 출간되었네요. 오래 전 부터 존재를 알고 있던 책이기도 하고, 저 역시도 추리 소설(요리 중심이지만)에 관련된 에세이를 출간한 경험이 있기에 기쁜 마음으로 구입해 읽었습니다.

책은 1956년에 출간되었으며, 주로 1950년대 "환영성" 등 이런저런 잡지들에 기고했던 에세이들을 모아 놓은 구성입니다. 1953년, 에도가와 란포가 영미 탐정소설에서 예전부터 사용되던 트릭을 800여개 수집하여 쓴 "유형별 트릭 집성"이라는 글이 유래이며, 이 글로부터 여러가지 에세이들이 파생되어 이런저런 잡지들에 수록되었다고 하네요.

목차는 아래와 같습니다.

서 ―이 책의 탄생과정
1. 기발한 착상
2. 뜻밖의 범인
3. 흉기로써의 얼음
4. 특이한 흉기
5. 밀실 트릭
6. 은닉 방법에 관한 트릭
7. 프로버빌리티의 범죄
8. 얼굴 없는 시체
9. 변신 소망
10. 이상한 범죄동기
11. 탐정소설에 나타난 범죄심리
12. 암호기법의 종류
13. 마술과 탐정소설
14. 메이지의 지문 소설
15. 원시 법의학서와 탐정소설
16. 스릴에 대해서

각 주제별로, 에도가와 란포가 직접 이런저런 소설의 예를 충실히 들어가며 설명해 줍니다. 책의 특성 상 당연히 핵심 트릭이 까발려지고요. 노리즈키 린타로"나쁜 놈들은 추리 작가가 피를 토하는 노력 끝에 고안한 트릭을 쏙 빼다가 미스터리 가이드북이라는 이름으로 팔아먹는 녀석들이지. 이쯤 되면 기생충 수준이야."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그런 기생충같은 책인거지요.

그나마 다행인건 지금은 읽기 힘든, 오래전 잊혀진 작품들이거나 우리가 접하기 힘든 일본 고전들, 아니면 너무나도 유명한 작품이 많다는 것입니다. 에도가와 란포 자신의 작품 이야기도 많이 소개된다는 점에서는 약간의 면죄부를 줄 수 있지 않나 싶기도 하고요.
또 미스터리 가이드에서처럼 어떤 작품에서 어떤 트릭이 쓰였다고 명확하게 이야기해 주고 있지는 않습니다. 좀 두루뭉실, 애매하게 소개하고 있거든요. 뭐 그래도 알 사람은 다 알겠지만... 

그리고 거장이 쓴 책 답게, 단순히 트릭을 분류하여 정리하는 것에 그치지는 않습니다. 본인 스스로의 분석을 통해 깊이있는 식견을 보이는 글도 많아요. 마지막 16장인 "스릴에 대해서"가 좋은 예입니다. 스릴의 종류를 상세히 분류하여 이를 단계별로 설명하는 내용인데, 실로 이치에 맞고 설명도 적합하여 무릎을 치게 만듭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들을 예로 드는 것도 아주 좋았고요.

그러나 기대에 미치지 못한 글들도 제법 눈에 뜨입니다. 가장 큰 이유는 이 책이 처음 발표된 시점에서 60여년 이상 지난 탓이 가장 큽니다. 대표적인 예는 "이상한 범죄 동기"에서 결코 좋은 작품이라 할 수 없었던 "대통령의 미스터리"를 길게 설명하는 부분입니다. 이 책이 발표되었을 당시에는 일본에는 거의 읽어본 사람이 없는 책이라 특별히 소개했던 모양인데, 지금 상황에는 너무나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암호 기법의 종류"도 마찬가지로, 지금 읽기에는 다른 비슷한 책에 비하면 내용이 굉장히 부실한 편이에요. 메이지 시대 지문을 증거로 삼는 소설이 처음 등장했다는 역사적 사실만 소개하는 "메이지의 지문 소설"도 시대에 걸맞지 않은 이야기였고요.

아울러 하나의 트릭으로 완전히 자리잡은 서술 트릭이 빠져 있는 등, 현대적인 작품 속 최신 트릭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점도 문제입니다. 시대적으로 어쩔 수 없었더라도, 출판사나 후대의 작가가 증보판을 출간하는 선택지는 없었을까요? 제가 가끔 읽는 'oo의 지구사' 시리즈에 주영하 씨가 한국의 상황에 대해 수록한 글처럼, 다른 작가가 부록 형식으로 뒤에 최신 트렌드를 덧붙이는건 얼마든지 가능했을텐데 말이지요.

그 외에도 책의 완성도, 모양새 역시 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고 도판도 부실합니다. 또 책 속에서 소개된 작품이 국내에 출간되었는지 여부, 그리고 출간되었다면 무슨 제목으로, 어디에서 출간되었는지를 따로 소개해 주는 정도의 노력은 필요했어요. 어차피 추리 소설의 애호가들만 구입할 이런 류의 책에서는 필수적인 정보인데 여러모로 아쉽네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나름의 가치는 분명하나 여러모로 지금 읽기에는 낡은 결과물입니다. 책의 완성도도 부족하고요. 추리 소설의 대단한 애호가가 아니라면 구해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물론 추리 소설 애호가시라면 즐길 거리가 제법 되는 만큼, 한 번 읽어보셔도 나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게 누가 되었건, 누군가가 21세기에 걸맞게 내용을 수정하고 덧붙여 개정증보판 형식으로 재출간해 주면 더욱 좋겠습니다.

2010/10/08

시체를 사는 남자 - 우타노 쇼고 / 김성기 : 별점 3점

시체를 사는 남자 - 6점
우타노 쇼고 지음, 김성기 옮김/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몽환" 시리즈로 굴지의 명성을 얻었으나 더 이상 작품을 쓰지 못해 절필을 선언한 추리작가 호소미 다쓰토키는 잡지 "월간 신소설"에 연재된 작품 "백골귀"를 읽고 묘한 느낌에 사로잡혔다. "백골귀"는 에도가와 란포를 주인공으로 하여, 란포가 말려든 시라하마 삼단벽에서의 괴이한 자살 사건을 친구 하기와라 사쿠타로와 함께 해결해 나가는 3부작 연재 소설이었다.

"백골귀"의 작가 니시자키 가즈야는 호소미 다쓰토키를 만난 뒤, 작품의 원전이 되는 사건을 경찰 출신 외할아버지의 유품을 통해 알게 되어 창작했다는 사실을 털어놓았다. 이에 호소미 다쓰토키는 작품의 저작권을 자신에게 줄 것을 요청하는데...

"백골귀"라는 소설이 포함되어 전개되는, 이른바 액자 소설의 구성을 취한 작품입니다. 전형적인 에도가와 란포 풍의, 1930년대 분위기가 물씬 나는 "백골귀"의 잡지 한 회 연재 분량(총 3회) 사이에, 현 시점인 1990년에 그 소설을 접한 추리 소설 작가 호소미 다쓰토키의 이야기가 겹쳐지고, 두 이야기가 결국 하나의 완성된 결말로 향합니다. 그런데 "백골귀"의 비중이 상당히 큰 편인 등, 여러 가지 면에서 다른 액자 소설과는 조금 다른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백골귀"는 앞선 줄거리에서 이야기했듯이 1930년대를 무대로, 에도가와 란포와 그의 친구로 알려진 시인 하기와라 사쿠타로가 등장하여 시라하마의 '삼단벽'에서 발생한 자살 사건의 진상을 추적한다는 내용이에요. 탐정 역할은 하기와라 사쿠타로가 맡고 있으며, 란포는 일본 추리소설에 흔히 등장하는 '심약한 조력자'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특징이라면 1930년대 란포의 작품과 유사한 분위기를 조성하려 노력한 흔적이 역력하다는 점입니다. 시대적 배경을 충실히 살린 것은 물론, 대단치 않아 보이는 요소들을 '괴이'의 세계로 끌어들이는 묘사가 특히 그러합니다. 또한, 소제목을 란포의 작품에서 빌려오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란포의 작품을 인용하는 점도 인상적이었고요.

그러나 단순히 분위기와 캐릭터를 차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하나의 추리 작품으로서의 완성도도 높습니다. 사건 해결의 결정적 단서가 초반에 공정하게 제공되며, 다양한 복선이 깔려 있어서 반전도 효과적으로 작용하거든요.

다만, 살해 동기가 단순한 분노라는 점은 납득하기 어려웠고, 반전으로 이어지는 중요한 설정이 '쌍둥이 형제'라는 다소 뻔한 장치라는건 아쉽습니다. 따라서 "백골귀"만 놓고 본다면 평균 이상의 점수를 주기는 어렵습니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액자소설의 형식을 빌려, 현재 시점에서의 호소미 다쓰토키 이야기가 삽입된 것으로 보입니다. "백골귀"라는 작품과 호소미 다쓰토키의 이야기가 맞물려 최종 결말로 이어지면서, 작품의 재미와 완성도가 함께 상승하는 것이죠. 이 과정에서는 앞서 언급한 동기와 다소 진부한 설정의 한계를 완전히 극복하지는 못했지만, 우타노 쇼고 특유의 설득력 있고 예상을 벗어나는 전개가 아주 돋보입니다. 독자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그야말로 뒤통수를 강타합니다.

결과적으로 액자소설의 새로운 형식을 보여준 점이 가장 인상적인 작품으로, 별점은 3점입니다. 개인적으로는 1930년대 분위기의 작품을 매우 좋아하는 만큼, 이 작품에서 끝내지 않고 에도가와 란포가 등장하는 후속 작품이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 생깁니다.

덧붙이자면, 역자의 해설에도 언급되었지만, 다 읽고 나서도 제목이 왜 "시체를 사는 남자"인지 명확하게 와닿지는 않았습니다. 시체가 "백골귀"라는 작품을 은유하는 것인지, 아니면 역자의 애너그램 풀이처럼 과거를 그리워하는 의미가 내포된 것인지 다소 애매하네요.

2024/04/06

파노라마 섬 기담 - 에도가와 란포 / 박용만 : 별점 2점

에도가와 란포 파노라마 섬 기담 - 4점
에도가와 란포 지음, 박용만 옮김, 이성규 감수/시간의물레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상상 속에서 유토피아를 그리는게 취미인 인기없는 작가 히토미 히로스케는 어느날, 친구로부터 대학 동창인 거부 고모다 겐자부로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고모다와 히토미는 쌍둥이처럼 닮았었기에, 히토미는 자신이 고모다가 될 계획을 꾸몄다.
계획이 성공해서 고모다가 된 히토미는 고모다가의 돈을 이용하여 공상하던 자신의 유토피아를 실제로 만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고모다의 아내 치요코가 히토미의 정체를 눈치챘고, 히토미는 어쩔 수 없이 그녀를 살해할 결심을 굳히는데....


에도가와 란포의 대표작 중 한 편. 1926년에 발표된 비교적 초기작입니다. 중편 분량으로 히토미가 고모다가 되기 위해 벌이는 작전을 그린 전반부, 고모다의 재산으로 꿈꿔오던 유토피아를 만든 뒤 그곳을 아내 치요코와 둘러보는 후반부로 나뉩니다.

전반부는 꽤 재미있습니다. 단순하지만 효과적이었던 변장, 자살로 위장하여 히토미 히로스케의 존재를 없앤 방법, 원래 있었던 고모다의 시체를 파낸 뒤 옆의 다른 묘에 묻어 은닉한 방법 등 모두 비교적 현실적이면서 정교하게 짜여져 있는 덕분입니다. 간질 발작으로 사망한 뒤 다시 살아난 사례를 그럴듯하게 설명하고 있어서 설득력도 높고요. 에도가와 란포 특유의 공포심을 자아내는 묘사도 볼거리입니다. 특히 고모다의 시체를 파내는 장면에서 빛을 발합니다. 그렇잖아도 공포스러운 상황을 자극적으로 풀어나가는 솜씨는 역시다 싶더군요.
다만 아무런 조명도 없는 칠흙같은 밤에 무덤을 파내어 시체를 꺼낸 뒤 옆의 무덤에 파묻어 깜쪽같이 위장한다는건 실제로는 무척 어려웠을겁니다. 약간 부가적인 설명이 덧붙여졌더라면 좋았을겁니다.

반면 후반부의 유토피아(아마도 '파노라마 섬')를 치에코와 둘러보는 장황한 묘사는 별로였습니다. 상상력만큼은 인정합니다. 하지만 글로 풀어내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아래와 같이 그림이 곁들여지지 않으면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였으니까요.
설득력도 낮습니다. 아무리 눈의 착각을 이용했다고 하더라도, 넓이 자체를 혼돈할 만큼의 조작을 자연 환경에서 구현했다는건 어림반푼어치도 없지요. 게다가 이 공간을 많은 사람들까지 고용하여 채웠다는건 더욱 현실성이 떨어집니다. 숙식 및 기본 생활에 대한 설명이 전무한 탓입니다. 차라리 제목처럼 거대 파노라마를 만들었다고 하는게 말이 되었을겁니다.
치에코를 살해한 뒤 기둥에 숨겼는데, 이를 탐정 기타미 고고로(아마도 아케치 고고로?)에게 들킨 뒤 자살한다는 결말도 급작스러웠으며, 기타미 고고로가 고모다의 정체가 히토미라는걸 눈치챈건 히토미가 과거 습작처럼 투고했던 습작 때문이었다는건 억지스러웠어요. 쌍둥이처럼 닮았다는건 대학 동창들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었을테니, 이런 증거를 내세울 필요도 없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제 별점은 전반부만 따로 떼 보면 2.5점, 전체 통합해서는 2점입니다. 발표 당시 시점으로 본다면 볼만한 가치가 충분했겠지만, 지금 시점에서는 그할만한 가치는 없습니다. 다양한 상상력으로 구현한 이상한 공간들을 수없이 접한 시대니까요.

2026/05/17

콘 비프 샌드위치를 먹는 밤 Season 2 : (3) 무덤 위 에로그로 식탁

이번에 소개할 작품은 "이단자의 사랑"입니다. 이 작품은 일본 유학 시절이던 1934년에 단편 "타원형의 거울"로 데뷔한, 국내 최초의 본격 추리소설 작가 김내성의 단편입니다. 저는 절판된 지 오래된 단편집 "비밀의 문"을 통해 이 작품을 접했는데, 다행히 최근 복간되어 이제는 쉽게 읽을 수 있습니다. 전자책으로도 출간되었으니 참고하세요.

의사 김철하는 애련과 약혼했지만, 1년에 한 번만 그녀를 볼 수 있게 해 달라는 조건을 걸고 그녀를 시인 추강에게 양보합니다. 추강이 그녀의 첫사랑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애련은 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추강은 그녀의 묘 위에 복숭아나무를 심습니다. 애련의 살과 피로 자라난 복숭아 열매를 김철하가 보는 앞에서 홀로 독점해 맛보기 위해서였지요. 추강은 김철하가 찾아오는 날마다 복숭아를 따 먹으며 그의 앞에서 자신의 승리를 과시합니다.

이 장면은 추강의 광기 어린 독점욕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데, 묘사가 정말 일품입니다. 탐미적이면서도 에로틱하고, 변태스러우면서도 그 과즙이 입안에 흥건하게 고이는 느낌을 줄 정도로 사실적이기 때문입니다. 미녀의 무덤에서 자란 과일로는 복숭아만 한 게 없다는 생각도 듭니다. 복숭아는 원래 미녀를 상징하는 과일이기도 하니까요.

복숭아는 본래 "손오공"에 등장하는 천도복숭아처럼 장수의 상징이자 귀신을 쫓는 신령스러운 과일로 여겨졌습니다. 그런데 언제가부터 농밀한 여인의 이미지가 덧붙여졌는데, 복숭아의 특성과 맛 때문일 겁니다. 맛있는 복숭아를 뜻하는 '수밀도'라는 단어만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껍질이 얇고 살과 물이 많으며 달콤한 맛'이라는 뜻이 미녀와 연결되는 건 자연스러운 흐름이니까요. 뜻 뿐만이 아니라, 높은 당도에도 불구하고 저칼로리에 수분과 식이섬유가 풍부해 다이어트에 좋고, 비타민도 많아서 피부 미용에도 좋으며, 피부의 멜라닌 생성을 촉진하는 타이로시나아제라는 성분을 억제해서 피부 미백 효과도 볼 수 있다니, 미인이라면 놓쳐서는 안 될 과일입니다.

그리고 작품 속에서 추강은 한여름 날 복숭아를 따서 껍질째 먹는데, 이 방식이야말로 복숭아를 제대로 먹는 방법입니다. 껍질에 비타민 E 등 유익한 성분이 많고, 높은 온도에서 단맛이 더욱 증가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추강의 도발에도 불구하고 김철하는 복숭아를 거들떠보지 않습니다. 대신 자신이 가져온 고래고기 통조림만 먹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고래고기의 정체를 알아챈 추강에게 김철하가 "고래고기다!"라고 외치며 이야기는 마무리됩니다.

이 작품이 발표된 1943년은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였던 시절입니다. 당시 고래고기는 가장 싸고 대중적인 고기였습니다. "맛의 달인" 등에서도 전쟁 전후에 고래고기가 저렴한 서민 음식으로 자주 언급되지요. 우리나라에서도 1980년대 이전에는 포획량이 많아 흔한 음식이었습니다. 지금은 포경 금지로 인해 귀하고 비싼 음식이 되었지만요.

고래고기는 육고기와 생선의 중간 맛 정도로,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회나 수육으로 먹었고 일본에서는 스테이크나 꼬치 요리로도 소비되었습니다. 외국 사례를 보면 "모비 딕"에서는 스테이크로 먹는 묘사가 등장하고, 아이슬란드에는 고래고기 꼬치가 전통 요리 가운데 하나라고도 하네요.

콜레스테롤 없는 불포화지방산을 다량 함유하고 있고, 온갖 비타민도 골고루 들어 있어 영양가도 뛰어나지만, 특유의 냄새 때문에 호불호가 갈립니다. 철 성분이 많은 고래의 피가 썩으면서 나는 냄새인데, 고래는 죽자마자 바로 피가 부패되기 시작합니다. 육지 동물보다 산소를 운반하는 헤모글로빈 수치가 높은 탓이지요. 헤모글로빈은 단백질이라 곧바로 썩거든요. 그런데 고래는 정식으로 잡을 수 없어서 그물에 걸려 죽은 경우 등에 한해서만 유통되고 있습니다. 이 경우에는 피를 곧바로 뺄 수 없어서 냄새가 나게 됩니다.

작품에서처럼 통조림으로 만들 때는 냄새가 심한 싸구려 고기를 사용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래서 보통은 진한 양념을 사용해 냄새를 잡고 맛을 균일화하는 조림 방식으로 만듭니다. 대표적으로 일본의 '야마토 조림' 고래고기 통조림이 있습니다. 설탕, 생강, 간장 등으로 조린 이 요리는 냄새를 잡고 고기를 부드럽게 만듭니다. 다만 고기 맛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하지만 짐작하시듯, 작품 속 고래고기 통조림 속의 고기는 고래고기가 아닙니다. 조리 방식도 장기 보존을 위해 소금에 절인 뒤 말렸을 뿐이지요. 같은 재료, 같은 방식으로 만들어진 육포는 야마시로 아사코의 "엠브리오 기담" 수록작 "지옥"에도 등장합니다. 산적들에게 잡힌 주인공이 구덩이에 갇혀, 산적들이 던져 준 육포로 연명하다가 함께 갇혔던 신혼부부 중 신부가 도망친 날, 신선한 고기가 던져졌다는 내용이 압권이지요. 지옥 구덩이에서 주인공이 탈출에 성공해 산적 일가를 구덩이에 가둔 뒤 벌어진 참상도 상상을 초월하고요. 참고로 야마시로 아사코는 "ZOO""GOTH"의 작가 오츠 이치의 또 다른 필명입니다. 작품도 과연 오츠 이치구나 싶어요.

"이단자의 사랑"은 지금 기준으로 뛰어난 작품이라 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당시 유행했던 '에로그로' 코드가 과도하고, 에도가와 란포의 영향이 짙으며, 흔한 삼각관계 치정극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시인과 과학자의 대결 구도도 다소 부자연스럽고요. 그러나 반전만큼은 강렬합니다. 제 아버지께서는 약 50년 전에 이 작품을 읽으셨는데도 이 반전을 아직도 기억하실 정도입니다. 반전을 위해 사용된 복숭아와 고래고기의 대조도 매우 흥미롭습니다. 복숭아는 농밀하고 탐미적인 에로스를, 고래고기는 거칠고 냉혹한 그로테스크를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에로그로'라는 키워드를 음식으로 명확하게 보여 주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리메이크한다면 어떤 통조림이 적합할까요? 저는 골뱅이 통조림을 떠올렸지만, 고기 형태가 너무 달라 쉽게 들통날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통조림이 어울린다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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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10

유령탑 - 에도가와 란포 / 민경욱 : 별점 1점

유령탑 - 2점
에도가와 란포 지음, 미야자키 하야오 그림, 민경욱 옮김/북홀릭(bookholic)

'아케치 코고로'나 '괴인 20면상', '소년 탐정단' 시리즈가 아닌 에도가와 란포의 스탠드 얼론 장편으로 쇼와 12년, 즉 1937년 첫 연재가 시작되었던 초기작입니다. 쿠로이와 루이코의 번역서를 에도가와 란포가 다시 재가공하였으며, 원작은 앨리스 M 윌리엄슨의 "회색빛 여인" 이라고 하네요.

사실 큰 관심은 없었습니다. 발표 시기나 발표된 형태(번역서의 재가공)를 볼 때 구릴 것이다! 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집어든 이유는 딱 한 가지, 미야자키 하야오가 직접 그리고 해설한 서두 몇 페이지의 일러스트와 콘티가 마음에 들었던 덕분입니다. 지브리 미술관에서 "유령탑에 어서 오세요 전시 - 통속 문화의 왕도" 라는 기획전을 개최할 때 전시되었던 자료라 생각됩니다.

그러나 본 편은 역시나, 생각만큼 구립니다. 별로에요. 설정은 작위적이기 짝이 없으며 모든 내용은 우연에 의지하고 있는 탓입니다. 키타가와 미츠오와 노즈에 아키코가 폐허가 된 유령탑에서 처음 만나는 장면부터 작위적이며, 뒤로 가면 갈 수록 이야기는 걷잡을 수 없이 망가집니다. 저택에서 열린 파티에 곡마단에서 탈출한 호랑이가 난입하고, 협박범을 미행하면서 탄 열차가 탈선 사고를 일으켜 협박범의 집에 잠입하게 되는 식의 어처구니 없는 설정과 전개는 슬랩스틱 개그물을 방불케 하거든요. 게다가 이를 공포스럽게 묘사하는 에도가와 란포 특유의 과장된 문체는 정말 가관입니다. "아아!" 라는 감탄사가 대표적이에요. 뭔 일만 일어나면 "아아...!" 거리니 이거 참 뭐라고 해야 할지도 잘 모르겠네요.

작위적이라도 이야기 전개가 탄탄하고 결말에 이르는 과정이 설득력있고 합리적이라면 참아줄만 했을겁니다. 그러나 역시나, 그럴리가 없죠. 짜임새가 헐거워서 극적인 재미를 느끼기 힘듭니다. 이야기는 초반부의 "유령탑에 얽힌 비밀"을 풀어내어 보물을 찾는 이야기에서, 중반부터의 노즈에 아키코의 정체가 무엇인지? 에 대한 이야기로 흘러갑니다. 유령탑에 얽힌 비밀은 고딕 호러에 모험물이 섞인 느낌이고, 노즈에 아키코의 정체는 전형적인 추리 서사라고 할 수 있죠. 그러나 두 이야기 모두 짜임새가 헐거워 완성도가 낮습니다 .

보물을 찾는 과정은 고딕 호러같은 유래에 아주 약간의 암호 트릭이 결합된 전형적인 모험물인데, 결론적으로 보면 너무 쉬워서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초록색 문(?)이 열린다는건 비밀이라고 할 수도 없어요. 그냥 시계탑에서 쳐다만 봐도 알 수 있는 것이니까요. 그리고 미로로 들어간 뒤에는 아키코의 발자욱을 따라 걸어갈 뿐이라 극적 긴장감을 느끼기는 힘듭니다. 아키코가 어떻게 미로의 비밀을 풀어냈는지 설명도 되지 않고요. 단지 연구로 미로의 비밀을 풀어냈다는건 너무 유치한 발상이잖아요? 최소한의 암호 트릭이나 비슷한 무언가는 독자에게 전해주었어야 했습니다.
노즈에 아키코의 정체 관련 이야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녀가 과거 양어머니를 살해한 혐의로 무기 징역을 선고받았던 죄수 와다 긴코였다! 까지는 뭐 그럴 듯 합니다. 하지만 노즈에 아키코, 즉 와다 긴코가 유령탑의 보물을 찾고 진범을 찾으려고 하는 사명이 있다는 설정은 도무지 이해하기 힘들어요. 복수를 위해 진범을 찾고자 하는건 알겠지만, 보물을 찾는게 왜 사명이 될까요? 그리고 애초에 유령탑에 살 때에는 왜 찾을 생각을 하지 않았던 걸까요? 또 변호사 쿠로카와를 제외한 잔챙이 악당들의 협박에 휘둘리는 것도 설명이 부족합니다.

그리고 번역작이기 때문인지는 모르겠는데, '그라니르' 라는 독약을 이용하여 와다 긴코를 탈옥시킨 작전은 "몽테크리스토 백작" 과 너무나 똑같습니다. 지금 시점으로 본다면 표절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정도에요. 아울러 처음에 아키코의 정체는 살해된 노파의 하녀 아카이 도키코가 아닐까? 라고 의문을 던지지만 아키코가 항상 손목을 감추고 있다는 묘사로 그녀가 와다 긴코라는건 처음부터 명백하게 드러납니다. 이는 분량 낭비일 뿐입니다.

주인공의 모험도 앞서 말씀드렸듯 우연이 이어지는 전개이며, 차례로 수수께끼에 대해 증언이 이어지는 식이라 추리가 개입될 여지는 전무합니다. 무엇보다도 진범이 나카다 초조로 밝혀지는 장면도 어처구니 없습니다. 열 두 시 종소리에 공포를 느낀게 증거라니? 그리고 공포를 느껴 죽은게 천벌이라니? 20세기 초기의 사고 방식으로 밖에는 설명되지 않는 말도 안되는 주장입니다. 당시 나카다 초조에게는 완벽한 알리바이가 있어서 혐의를 벗었다는데, 그 알리바이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다는 것도 황당합니다.

딱 한가지 건질만 했던 부분은 죽은 와다 긴코가 어떻게 다르게 생긴 노즈에 아키코로 돌아왔는지? 에 대한 수수께끼입니다. 현재로서는 별거 아닌 미용 성형을 무슨 대단한 과학 기술인양 포장하여 묘사한건 우습게 느껴지지만 쓰여진 시기를 감안하면 참아줄 만 합니다.

하지만 괜찮은 부분은 전체 분량의 1/10도 안되는 느낌이에요. 우리나라로 따지면 근대 직전의 신소설 느낌이 날 정도로 낡은 작품입니다. 그 어떤 가치도 찾기 힘들기에 제 별점은 1점입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이름에 낚이지 마시길 바랍니다. 차라리 미야자키 하야오의 해설 부분만 떼어내어 1/10 가격으로 파는게 더 좋지 않았을까 싶네요.

2006/05/15

에도가와 란보상 수상작가 걸작선 - 이경재 / 정태원 : 별점 2점

에도가와 란보상 수상작가걸작선
이경재 옮김/명지사

에도가와 란보상을 수상한 작가들의 단편을 모아놓은 앤솔로지입니다. 총 11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니시무라 교타로와 니키 에쓰코의 작품이 2편씩 실려 있기 때문에 소개된 작가는 9명입니다.

그러나 에도가와 란보상을 수상한 경력이 있는 작가들의 단편 (수상작이 아닌!)을 아무 생각없이 수록했다고 생각될 정도로 작품 수준 편차가 심하고 작품들의 성격도 천차만별이더군요. 이렇게 소개할 바에야 실제로 에도가와 란보상을 수상한 작품을 시리즈로 하나씩 출간하는게 낫지 않을까 싶은데 말이죠.
또한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작품이 아닌 작품도 여러편 실려 있어서 신선함도 많이 떨어집니다. 그나마 그 작품이 모두의 공감을 얻을 정도로 뛰어난 작품이라면 이야기는 다르지만 진슌신의 "얼룩 화필" 같은 작품은 이렇게 많은 앤솔로지에서 소개될 정도로 뛰어난 작품은 아닌데 솔직히 의외에요. 니시무라 교타로의 "친절한 협박자"역시 마찬가지고요.
무엇보다도 작품의 존재 의미를 알 수 없는 졸작들, 도가와 마사코의 "잠자는 추녀"라는 맥락 없는 어설픈 작품과 추리 퀴즈용 꽁트 수준으로 보이는 "홍콩 힐튼 살인사건" 이 두편은 정말이지 이런 앤솔로지에 속할 수 있는 작품이 아니었다고 생각되요. 도가와 마사코는 자기 자신이 좀 환상적이고 기묘한 설정에 재능이 있다고 생각되는지 예전에 읽었던 "노란 흡혈귀"와 비스무레한 설정으로 작품을 써 내려간 것 같은데 당최 이해가 되지 않는 발상과 전개를 보여줍니다. 이건 단지 제 취향과 맞지 않다고 보기 이전의 문제에요. 무슨 이야기인지 모르겠으니까요.
또 "홍콩 힐튼 살인사건"은 뭐 작품 자체가 말이 안되는 수준이니.... 이런 수준 이하의 작품들을 어거지로 끼워넣는 것은 독자에 대한 모독이 아닐까요?

그래도 니키 에쓰코의 "빨간 고양이" 는 정통 추리 단편의 전통과 설정을 잘 계승한 좋은 작품이라 생각되고 구사카 게이스케의 "꾀꼬리를 부르는 소년"도 섬세한 묘사와 더불어 이야기의 전개가 깔끔한 재미난 작품이었습니다. 특히 "빨간 고양이"는 미스 마플의 일본판 재림을 보는 것 같아 인상적이었는데 이 두 편이라도 최소한의 값어치는 해 주니 다행이었지 안 그러면 정말 화날뻔 했습니다.

결론내리자면 매니아와 일반 독자를 모두 노린 괜찮은 기획이긴 했지만 작품 수준이 어설퍼서 이도저도아닌 실패작이 된 듯 싶네요. 앞서 말한대로 란보상을 실제로 수상한 작품집으로 제대로 출간되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니키 에쓰코씨의 데뷰작이자 란보상 수상작인 "고양이는 알고 있다"가 곧 출간된다고 하는데 이 작품이나 꼭 사 봐야 겠습니다.

PS : 이렇게 엄한 작품들이 하나둘씩 실려있는 앤솔로지보다는 추리 매니아들이 엄선한 단편만 실어놓은 앤솔로지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이 갑자기 드는군요. 아니면 매니아들이 한편씩 번역해서 싣는다던가.... 제가 번역한 "긴 추락"은 어떨까요?^^
한밤중의 살의 - 오타니 료타로
불륜관계에 있던 남자의 아내를 죽였다는 혐의로 고민하던 주인공 가와베 유미코는 남자가 자신과의 정사 후 되돌아가 아내를 죽인 것이 아닐까 하는 단서를 포착하는데...

꾀꼬리를 부르는 소년 - 구사카 게이스케
지방신문 기자 오케다니는 한 남자의 살해혐의로 체포된다. 피해자는 자신이 예전에 쓴 기사로 인해 집안이 몰락한 병원 가문의 외동아들. 오케다니는 자신과 밀회하던 다구치 히사에의 아들 마사오에게 농담삼아 한 말로 꼬투리를 잡히지만...

수험 지옥 - 니시무라 교타로
기무라 마사히코는 T대의 입시 시험날 늦잠을 자게된다. 그는 시험 시작 시간에 도저히 맞추어 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학교에 한통의 전화를 걸게 된다...

친절한 협박자 - 니시무라 교타로
이발사 신키치는 뺑소니 사건의 기억으로 괴로워 하던 중 그 사실을 목격한 한 남자에게 협박받게 된다...

수직의 함정 - 모리무라 세이이치
다카무라는 아들 신이치가 산악부에 들어가는 것을 반대한다. 그 이유는 20여년 전 자신과 친구 에나쓰가 저지른 살인 때문이었던 것. 하지만 아들의 고집을 꺾지는 못하고 결국 아들이 20여년전의 친구 에나쓰의 아들과 위험한 등반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데...

얼룩 화필 - 진슌신
조직 폭력배의 살인현장을 목격한 화가가 그들에게 자살을 가장하여 살해당하지만 그는 한통의 유서와 마지막 유작을 남기는데 성공한다...

빨간 고양이 - 니키 에쓰코
누마데 다카코는 어렵게 살아오던 중 한 노부인의 말벗으로 취직하는데 성공한다. 노부인 이쿠씨는 70대 중반으로 몸도 불편하지만 사실은 뛰어난 추리력을 가진 인물로 다카코의 어린 시절의 살인 사건의 진범을 알아내게 되는데...

엄마는 범인이 아니다 - 니키 에쓰코
어느날 엄마가 같이 사는 불량배를 살해했다는 혐의를 뒤집어쓰고 경찰에 잡혀가게 되지만 "나"는 엄마가 진범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잠자는 추녀 - 도가와 마사코
도망친 아내가 한 병원에서 의식 불명의 상태로 입원해 있다는 소식을 접한 구보다니 고지는 병원을 방문하여 기묘한 환경과 조우하게 되는데...

에노시마 비가 - 사이토 사카에
이시가미는 같은 아파트 단지의 직업 매춘부와의 관계를 끝내기 위해 그녀를 살해할 결심을 한다...

홍콩 힐튼 살인사건 - 도모노 로
추리소설 작가 이치무라 후미히데는 홍콩 여행 중 자신에게 실언을 한 호텔 직원에게 취중 폭언을 하게 되고 그 직원이 살해당하는 소설의 초고를 작성하지만 그 직원이 실제로 살해당하자 유력한 용의자로 몰려 체포당하게 된다...

2019/11/03

종횡무진 밥상견문록 - 윤덕노 : 별점 2.5점

종횡무진 밥상견문록 - 6점
윤덕노 지음/깊은나무

음식 관련 저서로는 국내에서 손꼽히는 다작가인 윤덕노의 2017년 발표작입니다. 전작들은 특정 요리, 음식에 대해 탐구하는 내용이 많았었는데, 이 책은 부제인 "같은 재료 다른 요리 한중일 음식 문화사" 처럼 특정 재료나 요리가 '한중일' 3개국에서 어떻게 다르게 조리해서 먹는지, 그 이유는 무엇인지 등을 고찰하여 설명해준다는 차이점이 있습니다.

모두 여섯 개의 파트, 28편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는데 개인적으로 재미있었던 이야기 몇 가지를 소개해드리면 아래와 같습니다.

우선 전복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중일 3개국 모두에서 최고의 귀한 재료로 인정받은 거의 유일한 재료라고 하네요. 중국에서는 조조의 셋째 아들 조식이 아버지를 위해 전복 200개를 얻었다고 자랑하는 이야기가 대표적입니다. 가격이 어마어마하고 구하기도 쉽지 않았다는 뜻이지요. 조선에서도 영조를 비롯하여 세종과 문종 등 왕들의 수라 단골 손님이었고요. 일본에서는 행운의 상징으로 쓰일 만큼 귀한 음식이었다는군요. 전쟁을 떠나는 무사들이 신에게 바치는 세 가지 음식 - 얇게 편 전복, 말린 밤, 다시마 - 일 정도로 말이지요. 

밥을 지을 때 생길 수 밖에 없는 누룽지 역시 한중일 3개국에서 흔히 먹은 식재료입니다. 이 중 한국의 숭늉은 소화제 역할을 톡톡히 했습니다. 과학적으로도 증명되었다고 하네요. 숭늉이라는 말이 한자어 숙냉 (熟冷)에서 비롯되었다는건 처음 알았고요. 이렇게 한국에서는 일종의 부산물로 생각하고 음식 재료로는 생각하지 않았던 반면 중국에서는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누룽지탕'이라는 요리로 발전하였습니다. 일본은 한국과 중국처럼 일반적이지는 않지만 주로 과자 재료로 활용했습니다. 중국인들의 요리에 대한 집념이 새삼 느껴집니다.

조기는 한국과 중국에서는 자주 먹는 생선입니다. 중국에서는 '황어'라고 부르는데 황금이 들어온다는 의미가 되어서 맛 이외에도 행운을 바라는 전통적인 재료로 많이 쓰인다네요. 하지만 일본에서는 어묵 재료로나 쓰는 잡어라니 좀 신기합니다. 온갖 해산물에 대해 최고의 맛을 끌어내도록 처리하여 만든다는 '에도마에' 전통이 왜 조기에는 해당되지 않았을지 의문이에요.

그 외에 가지는 중국과 일본에서는 귀한 채소로 취급받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그렇지 않았는데, 이유는 중국과 일본과는 다르게 신라시대부터 재배해서 풍부했던 탓이라는 설도 기억에 남습니다. 보통 외래종 산물은 중국을 통해 전해지는게 일반적인데 인도에서 신라로 바로 전해진 뒤, 다시 중국으로 이동했을 거라는 설을 다양한 사료로 증명하고 있거든요.

재료들 관련 이야기말고 조리된 음식을 가지고 풀어내는 이야기도 많습니다. 점심과 딤섬과 같은 식문화 자체를 다룬 이야기도 있고요. 이 중 송편과 월병, 츠키미당고의 관계가 재미있었습니다. 추석, 즉 보름을 기념하는 음식답게 월병과 츠키미당고는 모두 동그랗고 이름에도 달이 들어가는데 송편만 이질적이지요. 둥그렇지도 않고 이름도 소나무를 의미하니까요. 이건 송편은 추석 고유의 명절 음식이 아니었다는걸 의미한답니다. 또 솔잎으로 찌는 이유는 향 때문이 아니라 보관성을 높이기 때문이라네요.

합격을 기원하며 선물하는 엿, 찹쌀떡 이야기에서 이런 습관의 유래는 당나라부터였다는 설도 인상적입니다. 과거 제도는 수나라 때 부터 있었으니 그 이후부터 이런 전통이 생겼을 것이며 당나라 때로 확인된다는 거지요. 당시 합격 기원 음식은 돼지족발이었다고 하고요. 이유는 장원급제한 사람을 알리는 대자보는 붉은 글씨로 제목을 써서 주제 (朱題)라고 했는데 중국어 발음으로는 '쭈티'입니다. 그런데 이게 돼지족발 발음과 같다는군요. 재미있죠? 그러나 중국에서도 지금은 찹쌀떡의 일종인 장원떡을 먹는다는군요. 합격죽도 먹는다고 하는데 이는 "맛의 달인"에도 소개된 적이 있었지요.

그러나 약간 아쉬운 점도 없지는 않습니다. 우선, 다른 글에서 많이 본 이야기가 더러 있다는 점입니다. 저자 스스로도 이런 류의 책을 열 권이 넘게 썼으니 오죽하겠습니까... 짜장면이나 다꾸앙, 스키야키와 승기악탕 등의 이야기는 그만큼 많이 보아왔던 내용들이에요.
3개국은 무리였는지 한일, 한중과의 관계만 쓰여있는 소재들도 더러 있습니다. 신선로와 스키야키, 어묵과 오뎅, 한국식 짜장면과 중국의 짜장면이 그러합니다. 어쩔 수는 없겠지만 약간은 반칙같다는 느낌을 지우기 힘드네요. 이럴 바에야 주제를 줄여서 더 깊게 접근하는게 좋았을 겁니다. '누룽지'는 자포니카 종으로 밥을 하는 나라에서만 생기는 부산물이니 만큼, 그런 쌀로 밥을 만들게 된 이유라던가 전파 경로 등을 함께 알려주는 식으로 말이죠. 그게 더 깊이있는 이야기였을 겁니다.

또 무리수를 둔 이야기도 제법 됩니다. 대표적인건 아귀가 우리나라, 중국과 다르게 일본에서는 나름 고급 음식 재료로 꼽힌 이유입니다. 적당히, 많이 잡혔기 때문이라는 이론인데, 이건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잖아요? 차라리 많이 잡히지 않아서 귀하게 대접받았다면 모를까, 저는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윤덕노의 다른 저작들처럼 부족한 도판, 그리고 왠지 모르게 조금 읽기 힘들었다는 것도 감점 요소이고요.

그래도 이 정도면 재미와 함께 나름 현학적인 욕심도 만족시키는 괜찮은 독서였다 생각됩니다. 한중일 요리 문화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한 번쯤 읽어보셔도 좋겠네요. 제 별점은 2.5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