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주신 분들께 안내드립니다.

검색어 nervous breakdown에 대한 글을 날짜를 기준으로 정렬하여 표시합니다. 관련순 정렬 모든 글 표시
검색어 nervous breakdown에 대한 글을 날짜를 기준으로 정렬하여 표시합니다. 관련순 정렬 모든 글 표시

2023/10/05

Nervous Breakdown 너버스 브레이크다운 1~13 - 타가미 요시히사 : 별점 3점


90년대 초, 중반에  '타누마 사립탐정 사무소' 멤버들이 - 특히 브레인 역할인 안도와 액션 전담 미와 컴비 - 이런저런 사건을 해결한다는 추리 만화. 지금은 없어진 월간지 "코믹 NORA"에 연재했었지요. "그레이" 등 성인 취향의 어둡고 비정한 SF, 범죄물로 유명한 타가미 요시히사의 작품입니다. 저는 "그레이" 때부터 좋아했던 작가라 이런저런 작품들 - 예를 들어 "화석의 기억" - 을 원서로 구해 읽었었는데, 이 작품은 "메탈헌터"와 함께 공식적으로 우리나라에 소개된 유이한 작품입니다. 소개 당시 한 권씩 구입해서 읽었고, 지금까지 소장하고 있지요. 
예전에 스핀오프 "Night Adult Children" 리뷰를 올렸던 적은 있었는데, 추석 연휴를 맞아 옛날 생각도 나고 해서 전 13권을 처음부터 다시 한 번 천천히 읽어보았습니다.

등장인물들이 3등신과 8등신을 오가는 작화가 가장 큰 특징으로, 대부분의 경우 3등신인데  아래와 같이 특정 컷에서만 8등신으로 등장하는 식입니다. 


3등신 캐릭터들이 살인을 저지르고, 추리를 하고 시니컬하고 분위기있는 대사를 내뱉는게 묘한 재미를 선사합니다. 

특별히 모든 등장인물들이 8등신으로만 등장하는 에피소드도 두 편 있습니다. - 안도가 주인공인 "고즈에로 가는 마지막 버스", 미와가 주인공인 "살인자에게 인사를" - 두 편 모두 의외의 재미를 가져다주는 좋은 작품으로, 전부 8등신으로 진지하게 그렸어도 좋았을 것 같아요.

등장인물들도 독특합니다. 안도는 포지션은 전형적인 명탐정이지만, 정의보다는 자신의 감정에 충실한 이기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인물이거든요. 사건의 진상을 밝히고, 진범을 체포하는데에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정해진 보수를 받은 만큼 일하고요. 사건 도중에 일어난 트러블은 적극적으로 나서서 해결하려 하지 않습니다. 의뢰인에 대해서 "그 여자가 죽건 말건 난 상관없어"라고 말할 정도고, 아래처럼 지인의 죽음에도 눈 하나 깜빡않는, 인정머리 없는 남자입니다.



몸이 굉장히 약하고, 여자들이 쉽게 반하는 미남이라는 속성도 붙어 있는데 이런 캐릭터는 지금까지도 본 적이 없네요. 아래와 같이 멋진 말을 남기는 장면은 과연 여자들이 반할만하다 싶기도 하고요.

"미야한테 전할 말이 있는데...."

미와는 지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개그 캐릭터에 가깝지만, 그 초인적인 체력이 유용하게 활용될 때가 많다는 점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캐릭터입니다. 아래와 같이 가끔은 멋지게 등장합니다. 그냥 개그컷에 가깝지만....


추리적으로도 볼 만 합니다. 작가의 추리물에 대한 나름대로의 애정이 잘 녹아 있거든요. 목차부터가 고전 명작의 패러디들이 많을 정도로요. 
하지만 트릭이 사용된 본격물보다는 범죄 드라마, 스릴러에 가까운 에피소드들이 더 완성도가 높습니다. 긴장감을 불러 일으키는 전개도 좋고, 사건에 몰입하게 만드는 상황과 심리 묘사가 탁월한 덕분입니다. 작가도 이런 특성을 알아챘는지 뒤로 갈 수록 트릭보다는 드라마에 집중하며, 덕분에 더 볼 만해집니다.
이외에도 죽어가는 남편의 첫사랑을 찾아달라는 의뢰를 받고 조사에 나선다는 "어느 조용한 죽음" 처럼 잔잔한 일상계로 인간 관계를 되새기게 만드는 에피소드들도 독특합니다. "고백의 십자가", "마지막 Chiristmas" 같은 일상계 러브 스토리까지 수록되어 있는 등 다루는 장르의 폭도 넓고요. "노리코의 죽음"같이 SF 등 다른 장르물과 혼합된 사랑 이야기(?), 미와가 맹활약하는 액션물들도 괜찮습니다. 

정통 본격물 맹점들에 대한 통렬한 비판, 패러디들도 큰 재미를 가져다 줍니다. 과거 잔혹한 연쇄 살인 사건이 발생했던 곳에서 실종자가 한 명 나왔지만 안도가 "아직 기껏해야 실종에 지나지 않으니까. 이런 사건은 다음 피해자가 나오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어."라고 말하는 장면처럼요. 아래의 밀실 살인에 대한 비판 역시 공감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추리 만화로서 논리적이거나, 감탄할만한 트릭이 등장하는 에피소드가 많지 않다는건 다소 아쉽습니다. 만들기 쉬운 암호 트릭 - 10권 "산쥬노출"의 "미키가 노래하는 미버 (タレラヤ小さぃ子羊肉)"처럼요 - 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점, 오히려 트릭이 사용된 에피소드는 다소 억지스럽다는 점은 단점입니다. 예를 들어 "바이바이 엔젤"에서는 수조로 이루어진 밀실에서 수조를 치우는건 불가능하다고 등장인물들이 이야기하지만, 수조를 어떻게든 치웠다는게 진상이었습니다. 이런건 반칙을 넘어서는 억지죠. 

3등신 캐릭터가 등장하기 때문인지 개그도 많은데, 안도의 약한 체력과 미와의 야수같은 육체, 의뢰인이었다가 타누마 탐정 사무소에서 일하게 되는 미야가 재벌 이나바 테츠노스케의 손녀라는 등의 캐릭터 설정을 활용한게 많습니다. 문제는 다소 뻔하고 식상한 개그들이라는 겁니다. 반복적이기도 하고요. "15세" 딱지가 붙을 정도로 외설적인 개그도 많은데, 작품과 잘 어울리지 않아서 안 나오느니만 못했습니다. 마지막 에피소드 "마지막은 참극"은 미와가 등장인물 모두를 죽이는 꿈을 꾼다는 내용인데, 마지막을 장식하기에는 영 어울리지 않았고요.
아울러 학산 문화사 초기 번역 소개작이라 그런지 여성의 노출 장면을 어거지로 덧칠하는 등의 문제도 크며, 3등신 캐릭터들의 얼굴 구분이 쉽지 않다는 문제도 있습니다. 3권의 "모두가 닮은 사람"이라는 에피소드에서 모두가 닮았다는걸 트릭으로 써먹기까지 할 정도입니다.

그래도 다시 읽어도 여전한 재미를 가져다주는건 분명합니다. 수록작들 편차는 크지만 몇몇 작품들은 충분히 '걸작' 소리를 들을만 하다 싶고요. 제 별점은 3점입니다.

마지막으로 각 권별 수록작들 제목을 소개해드리며 글을 마칩니다. 제가 아는 한 원제를 달아보기는 했는데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1권 :
갑자기 사라져 버린 케이코
그래도 사랑스러운 여인이여
원과 면 : 점과 선
황색의 연구 : 주홍색 연구
 
2권
일요일은 죽는 날
걱정일세, 여탐정!
여름빛깔 카루이자와
타누마 소장 최후의 사건 : 트렌트 마지막 사건
얼어붙은 파도 : 얼어붙은 섬 또는 얼어붙은 송곳니
 
3권
도둑은 가득히 : 태양은 가득히
모두가 닮은 사람 : 당신을 닮은 사람
제로의 정점 : 제로의 초점
한여름 낮의 꿈 : 한여름 밤의 꿈
어느 조용한 죽음

4권
하얀 커튼 : 검은 커튼
입학 : 졸업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 : 추운 나라에서 온 스파이
새빨간 거짓말
사라질 뻔한 탐정 : 사라진 남자 (?)
 
5권
새벽녘의 시선 : 새벽의 데드라인
그리고 소녀는 사라졌다 :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
변호인측 괴인 : 검찰측 증인
다이아몬드는 영원히 : 다이아몬드는 영원히
내일도 무사하게 하소서

6권
오발탄
타누마 가의 일족 : 이누가미 일족
노리코를 위하여 : 요리코를 위해
분수령
마진테 부인은 죽었다

7권
귀여운 설녀
어느 비오는 오후 갑자기
Midnight Fool
매장 지도
50의 살인

8권
시체와 여행하는 남자 : 오시에와 여행하는 남자
고백의 십자가 : 공허한 십자가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남자들
토모여, 고이 잠들라 : 친구여 조용히 잠들라 (기타가타 겐조)

9권
바이바이 엔젤 : 바이바이, 엔젤
추억의 매장
모르그 가의 살인 : 모르그 가의 살인
레이디 하트브레이크
" " (무제)

10권
산쥬노출
마지막 Chiristmas
고즈에로 가는 마지막 버스 : 우드스톡으로 가는 마지막 버스
불타는 사나이 (Man on Fire) : Man on Fire (크리시 시리즈)
치에는 어디에
사람은 어째서 살해당하는가 : 인형은 왜 살해되는가

11권
악몽같은 여자 : 악마같은 여자 ("디아볼릭")
환상의 여인 : 환상의 여인
의뢰인으로부터 한마디 (과거 연재작 특별편) 시리즈
  • 귀여운 여인
  • 설녀가 보고 있었다, 또는 "고립된 산장"을 주제로
  • 울부짖는 여자

12권
보디가드
살인자에게 인사를
셀룰로이드 살인
어설픈 시체
움직이는 시체

13권
여자에게는 맞지 않는 직업 : 여자에게 어울리지 않는 직업
사랑의 탐정들
가장 위험한 유행 : 가장 위험한 게임
도중의 집 : 중간 지점의 집
리틀 루즈 걸 : 리틀 드러머 걸
마지막은 참극


본편 외에도 "스페셜 리포트"라는 제목으로 아래와 같이 유명 추리 소설들을 패러디한 4컷 만화들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덧붙이자면, 이 당시에 만화책이 3,500원이었다는 것도 놀랍습니다. 모든 물가가 3배 이상은 올랐을텐데, 만화책만은 거의 오르지 않았네요.

2021/02/07

Q.E.D Season 1 정주행, 내맘대로 Best - part 2

거의 10년 전, Q.E.D 1권부터 30권 까지 중 베스트 에피소드를 정리했던 적이 있습니다. 시즌 1이 50권으로 마무리되었으니, 이어서 나머지 31~50권 중 베스트 에피소드를 꼽아봅니다. 시즌 2라고 할 수 있는 iff도 넘버링이 10을 훌쩍 넘어간 지금 시점에서는 다소 뒤 늦은 감이 있지만요.

"베스트 5" 

32권 "매직 & 매직" 

추리마술, '트릭' 이라는 요소가 핵심이라는건 동일하지만, 추리는 트릭을 밝혀야 하는 반면 마술은 트릭을 밝히면 그 가치가 없어져 버린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이 차이를 잘 드러내는 내용으로, 토마마저 놀라게 만드는 반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34권 "모야당" 

두 개의 트릭이 등장하는 본격물. 특히 기발하면서도 독자의 허를 찌르는 첫번째 밀실 트릭이 좋았습니다. 풀장에서 심장 마비를 일으키게 만든 두 번째 트릭도 주요 단서가 명확하게 남아있을 뿐 아니라 다이빙하는 시간을 특정할 수가 없는 등 문제는 있지만 나쁘지 않았고요. 무엇보다도 제목인 '모야당'이라는 전설과 사건 내용을 절묘하게 결합시킨 전개가 일품이었던 작품입니다. 

35권 "크리스마스 선물" 

언제나 기본 이상 재미를 보장해 주는 에나리 회장과 추리 동호회가 등장하는 일상계 작품. 토마가 쓴 각본으로 공연되는 연극 "오각관 살인사건"에 관련된 사건을 다루고 있는데, 다른 추리적인 요소 모두 좋았지만 특히 연극이라는 상황에 최적화되어 있는 "오각관 살인사건" 속 밀실 트릭이 귀엽고 유쾌해서 마음에 들었어요.

42권 "에셔호텔" 

제목 그대로 에셔의 작품을 모티브로 한 기이한 호텔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에 사용된, 에셔의 작품을 응용한 트릭이 좋았습니다. 범인이 살인을 저지른 눈물나는 동기를 듣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진상을 밝히고 범인을 옭아매는 토마의 냉정함도 인상적이었고요. Q.E.D만의 특징을 잘 드러내는 작품이라 할 수 있겠네요.

46권 "순례" 

여러가지 증언 속에서 진실을 찾아낸다는 Q.E.D에 자주 등장하는 전개의 작품. 하지만 일본군과 장개석의 국민당 정부가 전투를 벌이던 당시를 무대로 해서 시대 상황을 이야기에 잘 녹여낸, 완성도 높은 역사 추리물이었습니다. 결말도 깔끔해서 만족스러웠어요.

이렇게 5편이 제가 선정한 후반부 베스트 5입니다. 이전 선정작과 합쳐 저만의 'Q.E.D season 1 (1~50권)의 베스트 에피소드 10'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덧붙여, 아깝게 베스트로 선정되지 못한 가작들도 소개해드립니다.

33권 "추리소설가 살인사건" 

추리 소설가가 트릭 때문에 살인을 저지른다는건 "Nervous Breakdown"에서도 등장했었던 설정이지요. 거기에서도 '미키가 노래하는 미버'라는 초월 번역이 돋보이는 좋은 작품이었지만, 이 작품도 만만치 않아요. 괜찮은 밀실 트릭과 추리 소설가들의 심리를 잘 그려낸 덕분입니다. 아쉽게도 용의자가 너무 적고, 트릭이 만화적이라는 단점 때문에 살짝 감점하나 가작으로는 충분합니다.

35권 "두 용의자" 

강도 사건에 대한 추리물로 이야기 자체는 뻔합니다. 하지만 본 사건과 관계없는 과거의 사건을 들먹여 독자를 속이려고 시도하는, 추리 소설에 흔히 등장하는 전개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 굉장히 인상적이었기에 가작으로 선정합니다.

38권 "17" 

일본 수학인 "화산"을 다루고 있는 일종의 가상 역사 수학물로, 추리적인 요소보다 현학적인 측면에서 큰 만족감을 안겨다 주었습니다. 이런 점도 Q.E.D의 핵심 재미 요소라고 할 수 있겠지요.

40권 "밀실 No.4" 

금고 속 돈을 훔치는 방법에 대한 트릭이 돋보였던 일상계 소품이었던 "4각관계"도 좋았지만, 추리 동호회의 에나리가 등장하는 본격물인 "밀실 No.4"야 말로 진정한 가작입니다. 밀실 살인 사건 해결을 테마로 한 여행 상품 체험 중 벌어진 진짜 밀실 살인 사건에 대한 이야기지요. 여행 상품 속 밀실 트릭은 억지스럽지만 재미는 있었습니다. 실제 살인 사건에 사용된, 촛불을 이용한 시간 착오 트릭도 괜찮은 착상이었고요. 그러나 이 작품의 핵심은 토마가 용의자에게 하는 말이었습니다. 덕분에 가작으로 꼽습니다. 상세 내용은 링크 속 리뷰를 참조하시길.

41권 "카프의 탑" 

추리적으로는 별 볼일 없어요. 그러나 논리 퍼즐에 대한 학습 만화로는 최고 수준이었습니다. 이런 학습 만화적인 부분도 Q.E.D만의 볼거리이자 매력 포인트라고 생각하기에, 가작으로 꼽습니다.

2017/11/05

화석의 기억 1~3 - 타가미 요시히사 : 별점 2.5점 (국내 미출간)

도쿄에 사는 미나기 류이치는 어린 시절 살던 시골 마을(정확하게는 '붉은 숲'이라는)에서 "누시"라는 큰 곰(?)에 의해 어머니 후유코를 잃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본 TV 뉴스를 통해 누시가 다시 나타났다는걸 짐작하고 복수를 결심했다.
교제하던 유키에와의 성관계 동영상으로 그녀의 아버지를 협박하여 300만엔이라는 자금을 마련하여 시골 마을로 향한 류이치는 대학 조교 혼조 테츠야를 만났다. 그는 백악기(7,000만년전) 지층에서 호모 사피엔스의 두개골 화석을 발굴하고 있었다.
이후 이 '오파츠'가 교수에 의해 부정당한 테츠야는 홀로 조사를 떠나는데....

국내에는 "nervous breakdown" , 그리고 "초공속 가루비온"의 캐릭터 디자이너로만 알려진 타가미 요시히사의 1980년대 작품입니다. 정확하게는 1985~87년까지 연재되었는데, 대표작이라고 하는 "카루이자와 신드롬" 연재 종료 직후(1982~85) 시기이니 작가 인생 최전성기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다른 대표작 "grey"와도 년도가 겹치네요. 굉장히 진지한 SF물이면서도 크리쳐 물이기도 하고, 미스터리 스릴러물 성격도 포함된 복잡한 장르물입니다.

위의 줄거리만 보셔도 아시겠지만, 오파츠가 등장하는 부분까지는 아주 흥미롭습니다. 누시가 무엇인지도 궁금하지만 무엇보다도 7,000만년 전의 호모 사피엔스 화석 정체는 특히나 궁금증을 자아내니까요. "별의 계승자"가 살짝 떠오르기도 하고요.

뒤이어 모든 것은 타임머신 때문이었다는게 밝혀지는 전개와 여기서 불거지는 '타임 패러독스'도 볼만합니다. 등장하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뭔지도 모르면서 찾아 헤메는, 그리고 타임 머신으로 밝혀지는 "용고"의 정체는 원래 지구에서의 생존이 어려워져 만들어낸 외계로의 도망 우주선이었습니다. 그런데 엔진 (용고)의 폭주로 시공을 뛰어넘어 1987년 붉은 숲에 떨어졌고, 이 "용고"가 계속 시공간을 뒤튼 탓에 7,000만년전과 연결되어 있게 된 겁니다. 누시는 7,000만년 전 숲에 살던 공룡이었고, 7,000만년전 지층에서 발견된 호모 사피엔스 화석은 마찬가지 이유로 과거로 점프한 현대 인류의 것인거지요.
이렇게 원인과 결과가 동일한 타임 패러독스는 도라에몽에서도 익히 보아 온 것입니다. 작 중에서도 용고는 노비타의 책상 서랍이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이니까요. 그러나 진지한 SF 스토리에 약간의 추리적 요소를 가미한 덕에 꽤 재미나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용고"의 위치를 찾아내기 위한 단서가 오래전 한 할머니가 남긴 일기라는 것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누시가 12간지의 움직임을 보이는, 일종의 시계 같은 장소에 나타나며 이를 통해 한 가운데임을 추리하는 식이지요.

그러나 아쉽게도 결말이 완성도를 떨어트립니다. 류이치가 깨닫는 것, '조금씩의 차이가 결과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을 그려내기에는 너무 서둘러 마무리된 탓입니다. 관련자들을 타임 머신이 부른 이유 - 동일한 역사 반복을 위해 - 에 대한 설명도 부족했고요. 설득력을 갖추려면 또다시 시공을 점프한 후, 류이치가 다른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여 현 시점(1987년)에 "용고"가 없는 평안한 인생을 손에 넣는다는 결말 정도는 보여줬어야 합니다. 마지막 장면이 현세의 기차에서 내리는 류이치가 어머니 후유코와 포옹하는 것이었다면 좀 낫지 않았을까요? "죠죠의 기묘한 모험" 6부 스톤 오션의 결말이나 영화 "프리퀀시"의 클라이막스처럼 말이죠. 뭐 그만큼의 설득력은 조금이나마 쌓아 올렸어야 하겠지만... 여튼 지금의 결말은 역사가 단순 반복되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아 작가 의도가 제대로 반영된 것인지 의심스럽습니다.

또 흥미로운 본편 전개에 비하면, 곁들여지는 사이드 에피소드들이 이야기에 잘 녹아들지 못한다는 것도 단점입니다. 누시의 정체가 공룡이라는 것도 너무 빨리 밝혀져서 몰입을 저해하고, 누시보다 주인공들 혈족에 전해지는 "용고"를 찾아내려는 음모 이야기는 솔직히 지루했습니다. 이 부분의 핵심인 기업, 친족 간의 파벌 싸움이 이야기에 잘 녹아나지도 않았고 말이죠.
아울러 주인공 캐릭터가 너무나 별로에요. 여중생 섹스 파트너와의 성관계 비디오를 그 아버지에게 팔아 넘겨 자금을 마련하는 쓰레기인데다가, 어머니인 후유코를 제외한 거의 모든 여성 등장 인물들과 정사를 갖는 등 전반적으로 쿨함을 강조하기에는 도가 지나칠 뿐더러 너무 자극적으로 접근하려 한 것 같아 영 마음에 들지 않네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꽤나 흥미로운 소재이지만 지루한 전개에 더해 작가 특유의 허무한 결말이 더해진 결과물입니다. 본 편 이야기에 집중하여 조금만 더 긴 호흡으로 가져갔더라면 더 좋았을텐데 아쉽습니다.

2016/08/09

사쿠라코 씨의 발밑에는 시체가 묻혀 있다 1 - 오타 시오리 / 박춘상 : 별점 1.5점

사쿠라코 씨의 발밑에는 시체가 묻혀 있다 1 - 4점
오타 시오리 지음, 박춘상 옮김/디앤씨북스(D&CBooks)

소설 리뷰를 하면서 별점을 주는 데에는 나름의 기준이 있습니다. 캐릭터가 얼마나 매력이 있는지, 이야기는 재미가 있는지, 묘사를 비롯한 전체적인 완성도와 설득력, 독특한 아이디어가 있는지, 그 외의 다른 가치가 있는지 등을 놓고 검토합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기준으로 볼 때 이 작품은 점수를 줄 부분이 거의 없습니다.

전통적인 양갓집 아가씨로 엄청난 미인이지만 별난 성격에 "뼈"에 집착한다는 설정의 탐정역인 사쿠라코 씨 캐릭터부터 별로입니다.
양갓집 미인 아가씨라는 것은 진부함의 극치, 그리고 별난 성격은 도가 지나쳐 거북합니다. 누구를 대하더라도 반말조에, 상대방을 위한 배려 등 최소한의 예절도 갖추지 않아서 호감을 갖기 어려운 탓입니다. 만화에서 봄직한, 외계에서 와서 지구 습관을 잘 모르는 미녀 외계인 캐릭터 같은데 만화라면 모를까 현실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어요. 왜 이런 성격이 되었는지에 대한 설명도 전무하고요.
탐정이 건방진건 문제가 아닙니다. 고전 본격물 황금기의 명탐정들은 대체로 잘난 척 대마왕들이기도 했으니까요. 허나 그들은 모두 자신들의 실력, 지위, 실적이 그들의 건방짐을 뒷받침했고, 아무에게나 무례하게 대하지는 않았습니다. 실력, 지위, 실적 중 그 무엇도 갖추지 못하고 그냥 건방지기만 한 사쿠라코 씨는 인간 말종으로밖에는 보이지 않아서 혐오스러울 정도였습니다.

사건에 엮이는 원인이 되는 "뼈"에 대한 집착도 문제입니다. 진부함을 타개하기 위한 작가의 노력은 눈물겹지만 설득력이 부족합니다. 이야기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도 못하고요. 왜 이렇게까지 독특함에 집착했는지 알 수 없지만, 차라리 진부하더라도 뼈와 연관이 있는 전문 직종을 엮는 게 훨씬 좋았을 겁니다.

이렇듯 캐릭터 문제가 너무 심각해서 이야기가 대단히 재미있지 않다면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든데, 재미 역시 합격점을 주기 어렵습니다. 추리적으로도 별볼일 없고요. 세 편 모두 정교함이나 트릭이 돋보이지도 않고 억지가 너무 심하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특이한 점이라면 북일본 아사히카와라는 독특한 지역을 무대로 그곳의 지형이라던가 명소, 특산물 등에 대한 묘사가 이루어진다는 정도인데, 딱히 중요한 부분은 아닙니다. 그냥 지엽적인 묘사에 그칠 뿐이거든요.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라이트*캐릭터*미스터리*읽는 재미'라는 취지로 디앤씨북스에서 나온 시리즈 중 하나인데, 이 중 라이트(가볍게 읽을 만하다는 정도?) 외에는 해당되는 게 없네요. 사쿠라코 씨 신상에 뭔가 변화가 있을 것 같은 암시를 주는 등 노골적으로 시리즈임을 드러내지만, 후속작을 읽을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추리물을 좋아하시는 애호가라면 근처에도 가지 마시고, 제 덕분에 지뢰 하나 피했다 생각하시길 바랍니다.

수록작별 상세한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합니다. 제 리뷰를 여기까지 읽으셨다면 이 책을 읽으시리라 생각은 되지 않지만요.

"아름다운 사람"

화자인 나는 사쿠라코 씨의 호출로 그녀를 찾았다. 그녀가 가자미 뼈를 선물하는 와중에 화자 어머니의 전화가 걸려왔다. 여러 채의 임대 주택을 운영하는 어머니가 연락이 두절된 입주자 방문을 여는데, 입회해 달라는 부탁 전화였다. 내용을 전해들은 사쿠라코 씨는 자신이 사체 전문가라며 동행을 요구했고, 일행은 입주자 미즈시마 키요미의 방문을 열어 그녀의 사체를 발견했다. 그런데 방은 완벽하게 밀폐된 상태였다...

사쿠라코 씨와 주인공 소개와 함께 이야기가 펼쳐지는 시리즈 첫 작품입니다. 

밀실을 만드는 것은 제삼자가 개입했다는 사실을 지우기 위해서로, 얼핏 보아도 살인 사건으로 보이는 상황에서 밀실을 꾸며야 할 이유는 없다는 사쿠라코 씨의 이론만큼은 그럴싸합니다. 

그러나 이 이론은 20여 년 전 "nervous breakdown"에서 이미 접했던 것이라 신선하지는 않습니다. 그 외의 추리적인 내용은 거의 모두 억지스러웠고요. 우선 피해자의 동생 요시미와 피해자의 약혼자 하시구치가 불륜 관계였다는 것을 밝히는 추리부터 억지입니다. 언니의 죽음을 접하고 예비 형부에게 안겨 우는 것이 뭐 그리 이상한 일일까요? 요시미의 스타일을 언급하는 것도 불필요했고요.
또 피해자가 독초 열매를 따먹고 죽은 것이라는 진상은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약사가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약물을 사용하지 않고 식물원까지 가서 열매를 몰래 따는 수고를 감행할 필요는 없으니까요. 극심한 고통도 예상되고, 사후 동공 확장 등으로 아트로핀 과다 섭취가 충분히 의심될 수 있어서 진상을 숨길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그냥 고통 때문에 방이 어질러졌다는 상황을 만들기 위함으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작위적이며 설득력이 낮아요.

때문에 별점은 1.5점입니다. 캐릭터, 내용, 추리 모두 수준 이하로 점수를 줄 만한 부분이 없네요.

"머리"

사쿠라코 씨의 "뼈 줍기"에 동행한 나는 마시케 초로 향했다. 해변에서 사람 두개골의 일부를 발견한 나는 경찰에 신고했다. 출동한 경찰 야마지 씨로부터 동반 자살 시체가 발견되었다는걸 들은 사쿠라코 씨는 잠깐만 사체를 보게 해 줄 것을 부탁했고, 잠깐의 관찰로 사건의 진상을 알려주는데...

오른손잡이가 오른손을 묶은 이유, 보우라인 매듭이라는 독특한 매듭을 사용한 것과 매듭의 위치 정도의 단서로 자살이 아니라 타살임을 주장한다는 내용입니다.

추리만 놓고 보면 나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연히 발견된 변사체에 대한 추리를 펼치는 것이기에 사건성이 있다기보다는 그냥 '여흥'에 불과하다는게 아쉽네요. 매듭을 묶은 손, 매듭의 위치 등 매듭 관련 추리는 이전의 많은 작품에서 반복된 것으로 새로운 무언가를 보여주지도 못하고요.

이 추리보다는 차라리 우연히 발견한 반려동물의 사체를 주인에게 가져다 주며 펼치는 추리가 더 괜찮습니다. 왜 사체가 정류장 지붕 위에 있었는지, 사인이 무엇인지 등을 담담하게 설명하는데 설득력이 아주 높아요. 이 이야기만 가지고 일상계처럼 푸는 게 훨씬 좋았을 겁니다.

이렇게 본편 이야기보다는 곁다리 이야기, 그리고 마시케 초의 먹거리(단새우 등)에 대한 소개가 더욱 돋보였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그나마 수록작 중에서는 베스트네요.

"장미 나무 아래"

나와 사쿠라코 씨는 사쿠라코 씨의 지인인 장미원 운영자 쇼코 씨의 저택으로 향했다. 병문안을 위한 장미꽃을 얻기 위해서였다. 쇼코 씨의 부탁으로 저택에서 진행되는 강령회에 참석한 둘은, 강령회에서 영매를 통해 쇼코 씨의 죽은 남편 아키히토 씨가 사실은 살해당했다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게 되는데...

아... 뭐라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총체적 난국인 작품입니다. '강령회'라는 주요 설정부터가 그러합니다. 이게 현대 일본에서 가당키나 한 것일까요? 게다가 강령회를 이용하여 사기극을 벌인 이유가 사실은 피해자와 동성애 관계였다, 그것을 찍은 은밀한 비디오가 있었다는 진상은 어이를 상실케 만듭니다. 잘나가는 기업가, 정치가, 신부 등이 엮인 단체 동성애 그룹이라니 이거 참 소라넷을 능가하는 어처구니없는 이야기 아닌가 싶네요. 그 외 영매를 가장한 요크 신부의 몇 가지 사기극은 너무나 유치했고요.

현실적이지도 않고, 설득력도 없고, 추리적으로도 뭐 하나 내세울 게 없는 이야기로 별점은 0.5점입니다. 이 시리즈를 다시 볼 이유가 없게 만들었다는 것이 유일한 가치라 할 수 있습니다.

2015/10/16

푸른 묘점 - 마쓰모토 세이초 / 김욱 : 별점 2.5점

푸른 묘점 - 6점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김욱 옮김/북스피어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모두가 싫어하는 정보상 다쿠라 요시조가 휴양지 절벽에서 추락해 죽었다. 그의 죽음이 여류작가 무라타니 아사코의 표절 의혹과 관련이 있음을 추리한 잡지사 편집부원 노리코와 다쓰오는 힘을 합쳐 사건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조사를 통해 둘은 아사코의 소설이 그녀의 아버지 시시도 간지의 제자 중 한 명인 하타나카 젠이치의 작품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러나 아사코의 남편 실종 후 아사코도 정신병원 입원 후 종적을 감추었고, 다쿠라 요시조의 처남 사카모토 고조도 동료를 살해하고 도주하는 등의 사건이 잇달아 일어났다...

마쓰모토 세이초의 1958년 작품으로 비교적 초기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500페이지가 넘는 대장편입니다.

일단 작가의 다른 작품들과는 확연히 다른 차이점이 눈에 띕니다. 제가 읽은 작가의 장편 중에서는 이례적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요. 첫 번째는 사회파 미스터리 거장의 작품임에도 사회적 문제를 건드리지 않는다는 점, 두 번째는 탐정역의 주인공들도 평범한 잡지사 편집부원들이라는 점, 세 번째는 두 남녀의 풋풋함 - 여성인 노리코 시점이지만 - 이 가득한 점, 마지막은 일본 각지를 누비는 여정 미스터리의 풍취가 강해서 후배작가 우치다 아스오의 작품 느낌이 난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차이점이 작품의 질을 떨어트리지는 않으며, 엄청난 두께임에도 술술 넘어가는 재미는 기본적으로 보장한다는게 과연 거장의 작품답습니다. 무엇보다도 추리적으로 굉장히 풍성한 덕이 큽니다. 특히 등장 인물들의 관계를 활용한 반전, 진상이 탁월합니다. 반세기 전의 아이디어인데 지금 보아도 신선했어요. 제가 가장 놀랐던 것은 다쿠라 요시조의 아내가 함께 살고 있지 않았다는 것이 밝혀지는 부분입니다. 아내라고 생각했던 여자가 사실은 아내가 아니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사건의 복잡성과 의외성이 증가하게 되는 멋진 설정이었어요. 비슷한 발상이긴 하지만 무라타니 아사코를 다쿠라 요시조가 협박한 것이 아니라 그는 일종의 '원본 소스 판매자'였다는 진상 역시도 놀라왔고요. 정말 예상하지 못했으니까요.
아울러 시종일관 무라타니 아사코의 남편 료조라던가 시라이 편집장을 범인, 혹은 조력자로 몰아가서 긴장감을 높이는 분위기도 나쁘지 않습니다.

그러나 완성도 높은 걸작이라고 하기는 애매합니다. 우연으로 엮이는 작위적인 부분이 많은 탓입니다. 대표적인 예로 다쿠라가 여관을 빠져나간 직후 길에서 수면제 때문에 휘청휘청할 때, 마침 그곳을 지나던 트럭 운전수 사가모토 코조와 마주친다는 것을 들 수 있겠지요. 이건 우연이라고 쳐도 너무 심합니다. 작가의 작품을 빌어 이야기하자면 "10만 분의 1의 우연" 정도의 확률이 아닐까요? 그 외의 인간 관계들이라던가 단서, 복선이 등장하는 과정들도 작위적입니다.

석연치 않은 부분도 많습니다. 갑자기 뛰쳐나간 다쿠라가 대체 술을 먹다가 그 시간에 어디를 나간 것인지에 대해서는 설명이 부족하고, 하타나카 구니코가 사카모토 고조와 연결되는 과정도 설득력이 없으며, 무라타니 아사코의 자살 이유 역시 와 닿지 않았습니다. 작중 설명된대로 정신병원 입원 후 사라지는 결말이면 충분했을 텐데 말이지요.

무엇보다도 편집부원 두 명이 하타나카 젠이치의 동인시절 글을 읽고 한 번에 알아챈 무라타니 아사코의 표절을 동인 동료였으며 잡지계에서도 잔뼈가 굵은 시라이 편집장이 알아채지 못했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초반부터 사건에 관련되어 있는 것으로 밝혀진 시라이 편집장이 노리코와 다쓰오에게 조사를 시킨 이유가 설명되지 않는 것도 당혹스러웠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구니코를 보호했어야 하지 않았을까요?

아울러 추리적으로 풍성하다고는 했지만 정작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다쿠라 요시조의 추락사 관련 트릭이 별볼일 없고 설득력이 낮다는건 단점입니다. 자동차 헤드라이트에 절벽이라는 장소를 더한 살해 방법인데 번거롭기 짝이 없더군요. 원래 추리대로 그냥 절벽에서 밀어버리면 되지 뭘 시간까지 들어가면서 이렇게까지 했는지에 대한 이유도 불분명합니다.

마지막으로 이건 단점이라고 하기는 뭐하지만... 다쿠라 요시조가 친구의 연인을 빼앗고, 친구의 동생을 겁탈하고, 아내를 학대하고, 친구의 원고를 팔아먹는 등 죽어도 싼 희대의 악인인데 반해 그러한 모습이 선명하게 드러나지 못한 부분도 아쉬웠어요.

쓰다 보니 단점을 잔뜩 나열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앞서 말씀드렸듯 읽는 재미만큼은 충분했습니다. 여정 미스터리, 청춘 미스터리의 원형격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좋았고 추리적으로 풍성하기도 했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비교적 별볼일 없는 후기작, 아류작들에 비하면 충분히 읽을 만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덧붙이자면, 무라타니 아사코의 표절 관련 설정은 Nervous Breakdown의 "산쥬(삼중) 노출"편이 떠오릅니다.

2014/06/02

탐정사전 - 김봉석, 윤영천, 장경현 : 별점 1.5점

탐정사전 - 4점
김봉석.윤영천.장경현 지음/프로파간다

제가 어렸을 적, 국내 최고의 추리문학 출판사였던 해문은 "세계의 명탐정 50인"(이후 일본 탐정을 뺀 44인으로 축약 재간)이라는 책을 출간했었습니다. 명탐정들에 대한 간략한 소개에 명탐정이 등장하는 추리 퀴즈를 한 개 선보이는 형식으로 구성된 책이었죠. 이런 핵심 내용 외 일러스트, 수록된 여러가지 추리 관련 정보도 인상적이었고요. "스포일러"라는 점에서는 비난받을 수 있지만, 추리문학에 대한 호기심을 키워나가던 추리 키드에게는 정말로 좋은 선물 같은 책이었습니다. "세계의 위인은 명탐정"이라는 동일 구성의 유사 도서가 연이어 출간되었던 걸로 보면 꽤 인기를 끌었던 것 같네요.

이 책 "탐정 사전"의 출간 정보를 들었을 때에는 "세계의 명탐정 50인"의 현대적인 재구성이 될 걸로 예상했습니다. 스포일러 문제 및 저작권 이슈로 추리 퀴즈 부분이 빠지더라도 그만큼 잘 만들어진 책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가 좋아할 수밖에 없을거라는 확신이 들었기에, 출간과 거의 동시에 구입했습니다.

그러나 생각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솔직히 실망이 큽니다. 이 책이 대체 누구를 위한 목적으로 쓰여졌는지 알 수가 없는 탓이 큽니다. 추리 문학 초보자를 위한 책이라면 정말로 추리 소설사에 길이 남을 걸작들을 엄선하여, 그중 등장한 탐정들을 중심으로 소개했어야 했습니다. 애호가를 위한 책이라면 잘 알려지지 않은 탐정을 소개하거나, 기존에 소개된 탐정이라도 다양한 정보를 충실히 실었어야 하고요. 그런데 이 책은 이도 저도 아닙니다. 뷔페에서 맛이나 코스 구성은 염두에 두지 않고 닥치는 대로 음식을 얹어놓은 쟁반을 보는 느낌이 들 정도로요.

일단, 어떤 기준으로 탐정들이 선정되었는지 전혀 알 수 없습니다. 동서고금의 모든 탐정을 담는 건 당연히 불가능하지만, 선정 기준은 막연하게라도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게 전혀 느껴지지 않습니다. 출판물이라면 판매 부수나 시리즈 권수, 방송물이라면 시청률이나 방영 횟수, 또는 역사적 의의 등의 기준이 있어야 했을 텐데 말이지요. 솔직히 선정 기준은 그냥 저자들의 팬심이라고 밖에는 생각되지 않았습니다. 대표적인 예로는 "IWGP"의 마시마 마코토, "트릭"의 야마다 나오코와 우에다 지로, 니시오 이신의 이짱을 들 수 있습니다. 이들이 일본의 3대 탐정 중 하나인 가미즈 교스케, 다카기 아키미쓰의 기리시마 사부로 검사, 시마다 소지의 요시키 형사, 우치다 야스오의 시나노의 콜롬보 다케무라 이와오나 경시청의 오카베 경부, 여정 미스터리의 대가 니시무라 교타로의 도쓰가와 경부 등을 제치고 소개될 만큼 비중 있는 인물이라고 할 수는 없으니까요.

꼭 다른 누군가와 비교하지 않더라도, 수많은 걸작에서 활약했으며 추리사적으로도 의미 있는 탐정들 중 소개되지 않은 이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프렌치 경감, 커크릴(콕크릴) 경감, 방코랑은 그렇다쳐도, 대체 뤼뺑은 왜 빠졌는지 모르겠습니다. 유명 탐정을 의도적으로 배제했다고 보기엔, 그 외의 황금기 명탐정은 거의 수록되어 있으니까요.

"차일드 44"의 레오 데미노프와 같은 스탠드얼론 작품의 주인공이 포함된 것도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해당 작품이 추리 역사에 길이 남을 걸작이라고 보기도 어렵고, 레오 데미노프가 전통적인 ‘탐정’ 역할에 충실한 인물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구소련이라는 특수한 환경을 평가하고 싶었다면, 시리즈 캐릭터인 아르카디 렌코가 더 타당했을 것입니다. "토로스 & 토르소"의 헥터 라시터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시리즈라고는 하나 국내에선 한 권만 소개되어 있어 스탠드얼론으로 보이고, 탐정 같지도 않은 인물인데 뤼뺑마저 빠진 명단에 포함되었다니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나마 탐정이라면 이해하겠지만, "시티헌터"의 사에바 료가 실려 있는 부분은 어이없음의 극치입니다. "지뢰진"의 이이다 쿄야까지는 그러려니 하겠지만요. 굳이 추리만화에서 뽑고 싶었다면 "Nervous Breakdown"의 두 컴비나 "절대미각 식탐정"의 다카노 세이야를 꼽는 게 나았을 겁니다. 완성도를 떠나 최소한 ‘추리 만화’이긴 하니까요. 대중문화적 아이콘으로 넣고 싶었다면 "춤추는 대수사선"의 아오시마가 더 적절했을테고요.

지금은 구하기 어려운 절판본이나 국내 미출간작에 등장한 탐정을 소개한 점도 아쉬웠습니다. 카렐 차페크의 메이즈리크 시리즈를 소개하며 국내 절판이라 언급했는데, 이런 식이면 독자보고 어쩌라는 건가요? 커트 캐넌 시리즈도 한 권만 출간되었는데, 현재 절판입니다. 뒤렌마트의 베르라하(베를락) 경감 시리즈, 모돌이 탐정도요.

캐릭터별 글 수준이 들쭉날쭉한 것도 문제입니다. 말 그대로 사전이라면 구성 면에서 일관성이 있어야 합니다. 어떤 캐릭터는 단순히 정보만 나열하는 반면, 어떤 경우는 작품 분석과 작가 소개까지 이어집니다. 인터넷 검색으로 충분히 얻을 수 있는 정보 이상의 가치를 제공하지 못한 항목도 많습니다. 반 두젠(밴 듀슨) 교수의 경우, '생각하는 기계'라는 별명과 대표작 "13호 독방의 문제" 언급만으로 그치는데, 이런 내용이라면 하루에도 수십 개 작성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차라리 소개를 하지 않는 것이 나았을 겁니다. 대부분의 항목에서 주요 작품과 그 속에서의 활약상이 생략되어 있다는 점도 문제에요. 

그 외, 탐정들의 배열도 시대순이나 장르순이 아니라 이름순이라는 점도 의아했으며 실제 캐릭터가 묘사된 일러스트조차 특별함을 느끼기 어려웠습니다. 

물론 건질 만한 부분도 없진 않았습니다. 결과물 자체는 아쉬웠지만, 고전 본격물부터 하드보일드, 현대물, 대체역사 판타지, SF, 만화, 드라마까지 아우르는 풍성한 범위는 장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기리노 나쓰오의 무라노 미로, 하라 료의 사와자키에 대한 소개는 흥미롭게 읽었고, 미야베 미유키의 스가무라 사부로 시리즈, 센도 타카시의 "폐허에 바라다"는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클로버의 악당들"의 빌 파믈리, 토니 힐러만의 인디언 탐정 조 리프혼과 짐 치처럼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았거나, "Q.E.D"의 토마 소같이 많이 소개되었지만 의외로 아는 사람이 적은 탐정 소개도 반가왔던 점입니다. "Q.E.D" 소개글은 작품의 매력을 잘 전달하지 못하고 있기는 하지만요.

그러나 장점보다 단점이 훨씬 크게 느껴졌기에, 제 별점은 1.5점입니다. 괜찮았던 몇몇 항목에 비해 전체적인 만족도가 너무 낮기 때문입니다. 방향성이 없는 기획과 인터넷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수준의 정보들이 대다수인 탓이지요. 30여 년 전 읽었던 "세계의 명탐정 50인"과 비교해 특별히 나은 점도 없고요. 가격까지 고려하면 도저히 좋은 점수를 줄 수가 없네요.

덧붙여 눈에 띈 몇 가지 오류를 정리해봅니다. 엉클 애브너 항목에서 "나보테(나봇)의 포도원"을 "나보프의 포도밭"이라 오기한 부분, "차이나타운" 작가 소개 영역에서 감독 로만 폴란스키가 표기된 점(각본가가 언급되었어야 함), 유불란의 후속작이 없다고 언급한 점 등입니다.

2012/01/25

명탐정의 저주 - 히가시노 게이고 / 이혁재 : 별점 3점

명탐정의 저주 - 6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혁재 옮김/재인

이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약간 포함되어 있습니다.

기존 본격 추리물을 비웃는 블랙코미디였던 시리즈 전작과는 다르게, 작가인 주인공이 일종의 유체이탈을 통해 자신이 구상한 작품 속 세계에서 활약한다는 동화 같은 설정의 독특한 연작 단편집입니다. 

전작과의 공통분모는 제목, 주인공의 이름을 제외하면 거의 없습니다. 본격 추리에 대한 비꼼이 약간 등장하기는 하지만, 본격 추리에 대한 따뜻한 애정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요. 동화 같은 설정은 "시미가의 붕괴"가 연상되기도 했는데, 확실하게 차별화되는 점은 비교적 진지한 내용을 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작품은 동화적인 설정임에도 동기와 전개, 트릭 모두 확실한 본격 추리소설의 모양새를 갖추고 있거든요.

개인적으로는 무차별한 비난이 즐거웠던 전작이 더 취향에 맞았지만, 본격 추리물이 무엇인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드는 이번 작품도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어느 정도 이쪽 장르에 대한 지식이 있는 사람이 읽어야 진짜 재미를 느낄 수 있다는 점은 여전하지만, 전작보다는 더 일반적인 추리소설에 가깝다는 것도 확실한 장점이라 생각됩니다. 별점은 전체적으로 평균하여 3점입니다.

수록작 간단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기념관

주인공이 덴카이치가 되어 이상한 마을로 소환된 뒤, 의뢰받은 사건을 수사하기 시작하는 이야기입니다. 주인공과 여러 등장인물들, 사건의 무대가 되는 기이한 마을에 대해 소개하는 도입부 역할이 강한 에피소드입니다. 짧은 분량 안에서 많은 것을 설명하려다 보니, 추리적으로 특별히 눈여겨볼 점은 없습니다. 덴카이치가 기념관 수위의 팔뚝에 난 자국을 보고 그가 낮잠을 자고 있었으리라 추리하는 부분 정도가 유일할 정도죠.

그러나 동화 같은 마을에 대한 묘사와 더불어, 마을의 크리에이터라는 미이라, 미이라 발굴 직후 도난당한 30cm 정도 되는 직사각형의 정체를 알 수 없는 물건, "Who done it?"이라는 문구 등 상상력을 자극하는 볼거리가 많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자산가

기념관 보존 위원회 멤버이자 마을 제일의 자산가 미즈시마 유이치로를 찾아갔다가, 그가 밀실 속에서 시체로 발견되는 이야기입니다. 전형적인 밀실 추리극이 펼쳐지는데, "명탐정의 저주"라는 제목에 어울리는 덴카이치 시리즈 특유의 추리소설 비꼬기가 다수 등장합니다. 대표적인 예가 피해자의 아들 아키오가 "먼저 타살이라고 결론을 내린 뒤, 출입이 불가능한 상황에 대해 의심해 보라고 한다"는 밀실 트릭의 문제를 비판하는 부분이겠죠. 당연한 이야기지만, 밀실에서 발견된 시체는 자살한 것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니까요. 걸작 추리만화 "nervous breakdown"에서도 언급된 내용이라 반가웠습니다.

이렇듯 밀실을 비꼬고는 있지만, 트릭 자체는 합리적이기에 추리적으로는 나무랄 데 없는 작품입니다. 간단한 트릭이지만, 사건의 무대가 효과적으로 설정되어 있어서 완성도가 높습니다. 또한, 밀실의 일곱 가지 종류라는 덴카이치의 이론도 추리 애호가로서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이 에피소드에서부터 이 마을이 '본격 추리'라는 개념을 전혀 모른다는 것과, 마을 자체가 짜여진 무대장치 같은 설정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보다 효과를 극대화하는 점도 재미있었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소설가

덴카이치 탐정이 기념관 보존 위원회 멤버인 소설가 히다를 방문한 직후, 히다가 살해된 시체로 발견되는 이야기입니다. 범인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인간 소실' 트릭이 펼쳐집니다.

본격 추리물에 대한 나름의 작가론이 담겨 있는 점은 인상적이지만, 트릭이 너무 쉽다는 점과 "자산가" 에피소드와 유사한 느낌이 강해서 좋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네요. 그냥저냥 평작 수준으로 별점은 2.5점입니다.

위원회

남은 기념관 보존 위원회 멤버들이 시장의 별장에 모인 뒤, 벼락으로 인해 고립된 후 한 명씩 살해되기 시작하는 전형적인 클로즈드 서클 연쇄살인극입니다. 고립된 별장, 요일에 해당하는 이름을 가진 참석자들, 살인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이를 예언한 듯한 살인마의 장치 등, 설정만 봐도 작가의 의도가 뻔히 보입니다. 마치 "이게 왕도다!"라고 선언하는 듯한 패기마저 느껴집니다.

물론 작가가 이러한 작위성을 의도적으로 설정한 것이기에 단점은 아니며, 오히려 진부하고 뻔한 클리셰를 동화적인 설정과 결합해 효과적으로 구현한 점이 흥미로웠습니다. 트릭 역시 예측 가능하지만, 작품과 잘 어우러져 나쁘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도 본격 추리에 대한 작가의 향수와 애정이 잘 느껴지는 점이 좋았습니다. 아무리 낡고 오래된 장르라 하더라도, 추리물의 원류는 본격 추리물이기 마련이고, 이 장르에 대한 애정은 추리 애호가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을 테니까요. 별점은 3.5점입니다.

2011/03/12

명탐정의 규칙 - 히가시노 게이고 / 이혁재 : 별점 3점

명탐정의 규칙 - 6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혁재 옮김/재인

히가시노 게이고가 1996년에 발표한 작품입니다. 이른바 '본격', '정통'이라고 하는 작품들의 작위적인 설정을 비웃는 형식이죠. 덕분에 패러디 개그물 느낌도 납니다. "33분 탐정"이 연상되기도 했고요.

그러나 이 장르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제대로 갖고 놀았달까요? 진부하고 뻔하기까지 한 밀실, 고립된 산장, 다잉 메시지, 시간표 트릭, 기발한 흉기와 같은 요소를 비롯하여 범인의 의외성이나 토막 살인, 동요 살인과 같은 플롯까지 주인공인 오가와라 반죠 경감과 명탐정 덴카이치의 입을 빌어 철저하게 조롱합니다. 조롱하는 이유도 모두 이치에 합당하고요. 그래서 통쾌함을 느낄 수 있었어요. 

아울러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에 대한 조롱은 물론, 추리 독자들을 향한 날선 비판 – 아무도 시간표나 저택 구조도를 들여다보지도 않고 정해진 단서들로 추리하지 않으며 단지 감으로 범인을 때려 맞출 뿐이라는 이야기 – 역시 수긍이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작가 스스로도 이 작품 이후부터 전형을 깬 작품들을 발표했다고 하니, 본인 스스로에 대한 반성도 묻어났던 것 같네요.

이러한 조롱과 비판을 제대로 된 추리물 형식으로 녹여냈을 뿐 아니라, 몇몇 이야기에서는 상당한 아이디어와 트릭이 펼쳐진다는 것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덕분에 단순한 패러디 개그물에 그치지 않고 독특한 추리물로 보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자면 다잉 메시지의 뜻이라든가, 토막 살인과 목 없는 시체 사건의 진상, 보이지 않는 흉기의 정체 같은 것은 재미도 있지만 하나의 트릭으로도 충분한 수준이었어요. 오가와라 반죠와 덴카이치 탐정이라는 캐릭터로 정통 본격물의 구조를 비트는 서술 트릭들도 괜찮았고요. 이렇게 추리적 트릭에 대한 비판과 정통 추리물을 조합했다는 점에서는 만화 "Nervous Breakdown"이 떠오르기도 하더군요. 비판의 정도는 좀 다르지만.

에피소드별로 편차가 좀 있다는 단점이 있기는 하지만 저 개인적으로는 상당히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그런데 추리소설이라기보다는 추리소설이라는 장르 자체를 즐길거리로 만드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아무래도 추리소설에 대해 어느 정도 지식이 있어야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작품이 아닌가 싶어서 추천하기는 약간 애매하네요. 일반적인 히가시노 게이고 작품의 팬들에게도 마찬가지. 작풍이 너무 다르거든요. 열린 마음의 추리소설 애호가분들에게 추천합니다.

2009/05/14

Night Adultchidren (ないと☆あだるとちるどれん) 02 - 다카미 요시히사


"Nervous Breakdown"이라는 옴니버스식 추리만화로 추리만화계 일각에서 작지만 큰 반향을 일으켰던 다카미 요시히사의 후속작으로 전작과 동일한 "코믹 노라" 에 연재된 작품입니다. 전 2권 완결인데 저는 2권만 우연찮게 구입해서 읽게 되었습니다. 1998년 연재작이라니 10년 전의 작품이네요.

전작 "Nervous Breakdown"과 동일한 스타일(3등신 캐릭터와 8등신 캐릭터의 혼용)과 세계관을 유지하고 있는 시리즈물로 카페 "Night"에 모여 행동하는 전문 털이범들, 특히 소매치기 전문 다나카 후타로(통칭 "뿌~")와 금고털이 전문 쿠로누마(통칭 "블랙 스파이더")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또한 "Nervous Breakdown"의 스핀오프라고 할 수도 있어서, 탐정역인 안도가 이 작품에서도 탐정으로 등장해서 사건 진행을 돕는 역할을 수행하며, 그외에 용병 구츠키, 미와의 숙부라는 고에몽 형사 등 시리즈에 연결되는 캐릭터가 다수 등장하기 때문에 전작의 팬에게는 일종의 향수마저 불러일으킵니다.

그러나... 솔직히 수준 이하였습니다. 추리물로 보기에는 많이 부족하고, 잘 짜여진 범죄물로 보기에는 범죄 자체가 별로 등장하지 않거든요. 뭐 추리적인 요소나 개인적 흥미거리를 배재한 단순한 드라마로 본다면 그런대로 괜찮은 이야기라 할 수도 있겠지만 전작의 재미에 기댄 요소가 많기에 독자적인 작품으로 성립하기는 조금 어려운 점이 많다는 것이 정답인 듯 합니다. 일본 웹에서 찾아보았는데 인기없는 작품인 탓에 자료도 별로 없을 뿐 아니라(심지어 작품 관련 이미지조차 찾을 수 없었습니다) 역시나 대체로 평이 좋지 않군요. "최악의 엔딩이다" 라는 글까지 있으니 말 다했죠.
2권에 실려있는 "스토커", "슬픈 무희", "발렌타인데이", "16년째의 결말", "강도살인용의도주자 약 2명", "최후의 표적" 이렇게 6편 중에서 그나마 괜찮은 작품은 "무희"라 불리우는 조각상을 훔치려고 잠입한 집에서 살인사건이 벌어져 진범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는 "슬픈 무희" 단 한 편입니다. 사실 이 작품도 도둑이 시체를 발견하여 제 1 용의자로 몰린다는 설정 이외에는 사건이 우연하게 벌어지고, 동기도 뻔하며, 별다른 트릭이 등장하지도 않는 등 정통 추리물로 보기에는 무리가 따릅니다. 다른 작품들이 워낙 별볼일 없어서 상대적으로 두드러진 것 뿐이지요.

더군다나 Night에 모이는 범죄자들 패거리는 6명이나 되는데 앞서 이야기한 두명을 제외하고는 비중이 낮아서 도대체 왜 등장해서 페이지를 잡아먹는지도 알 수가 없더군요. 1권을 안봐서 잘은 모르겠지만, 2권만 놓고 본다면 정말이지 불필요한 캐릭터들이었어요. 장기 연재를 염두에 둔 포석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괜히 시선만 분산된 것 같습니다.

개인적인 별점은 2점. 이 작품에서 건질 수 있던 단 하나의 좋은 점은 "Nervous Breakdown"의 안도가 아내 교코와 아이와 함께 그런대로 잘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는 것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2007/02/25

근황

1. 경성탐정록 4번째 이야기의 시놉을 완성했습니다. 아이디어에서 시놉 완성까지 한달 넘게 걸렸네요. 제가 추구하는 정통 추리물은 사실 별게 아닙니다. 너무 작위적인 트릭이나 기계장치, 우연에 의지하지 않으면서도 동기가 확실한, 그런데도 불구하고 범인을 특정하기 힘들다는 이야기를 꾸며나가고 싶을 뿐이죠. 그렇기 때문에 말도 되지 않는 여러가지 작위적인 이야기들, 예를 들자면 밀실 살인인데 힘들여 밀실로 꾸몄는데 살인으로 밝혀지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당연히 자살로 위장해야죠. (Nervous Breakdown의 안도의 명언이죠^^) 이번 이야기도 저희 형에 의해 완성되려면 좀 걸리겠지만 위의 제 철학을 담으려고 노력하긴 했습니다. 아직은 많이 부족하더라도 많은 분들이 마음에 들어해 주셨으면 합니다.

다음 작품은 좀 단순하고 간단한 사건을 써 볼까 하는데 설홍주가 수학과 출신이라는 설정이 있으니 관련 이야기를 좀 풀어보고 싶네요. 너무 QED 스럽지 않게, 간단한 것으로^^

2. NDSL은 이제 흥미가 한풀 꺾였습니다. 요새는 그냥 출퇴근할때 하는 정도로 띄엄띄엄 "Wish Room"이라는 게임만 계속 붙잡고 있는데 클리어하려면 한참 남았지만 이걸 클리어하면 다른걸 잡고 하게 될 것 같지는 않군요. 사실 이 게임도 그렇게 재미있지는 않고요. 원래 게임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지만 이번에도 역시 호기심과 흥미가 너무 빨리 식은 듯한 느낌이 들어서 조금 아깝기도 합니다.

3. 회사생활이 좀 어렵고 복잡하네요. 직장 경력이 10년차도 안되는데 벌써 7번째 회사를 다니고 있는데 이러다가는 8번째 회사를 알아봐야 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번에는 되도록 오래 남아 있으려고 했는데 주위 환경이 여의치 않군요. 일단은 사태 추이를 관망해야 하는 상황이니 그냥 마음 편하게 지내려고 노력은 하고 있습니다. 단, 이 이유 때문에 최근 포스팅을 하기가 좀 어렵네요. 제가 직장운이 정말 없는건지 모르겠지만 이거 굿이라도 한번 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2005/07/28

비밀의 백화점에 실린 추리만화에 대한 개인적 보완..

대중문화평론가이신 이명석씨가 아래 언급한 "비밀의 백화점"에서 짤막하게 글을 쓰셨는데 개인적으로 아쉬운 작품이 너무 많이 있어서 몇개 추가할 까 합니다.

먼저 정통 추리물에서는 "Nervous Breakdown"이 빠진 것을 용납할 수 없습니다. 3등신 캐릭터가 활약하다가 결정적 순간에 등신대의 인물로 바뀌는 등의 형식적인 독특함도 돋보이지만 트릭과 전개도 뛰어나며 무엇보다 기존 걸작들에 대한 풍자와 비판의 정신도 뚜렷한 걸작입니다. 한마디로 제가 읽은 추리 만화에서는 베스트라 할 수 있는 제가 엄청나게 좋아하는 작품인데 언급조차 되지 않아 유감이더군요. 
그리고 제가 이전에 소개했던 "탐정 레이디X 시리즈"는 워낙 마이너이니 넘어갈 수 있지만 "어둠의 인형사 사콘"은 빠진게 의외더군요. 애니메이션까지 만들어진 나름 비중있는 작품인데 왜 빠졌을까요? 추리적인 요소는 약간 허술하지만 완벽한 그림과 독특한 설정으로 한몫하는 작품인데 말이죠. 
순정 만화 스타일로는 "미궁시리즈"의 몇몇 에피소드들이 상당히 괜찮으며 가벼운 소품으로 잔잔하게 즐길 수 있는 "할아버지와 나의 사건수첩"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작품입니다. 초등학교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가벼운 사건들을 다루고 있는 독특한 일상계 추리물이라서 저는 무척 좋아하거든요. 꼭 추리 쟝르에서 강력 사건이 벌어지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재미를 줄 수 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죠. 잔잔하기로는 베이비시터 탐정이 등장하는 "카즈는 행복해" 시리즈도 빼 놓을 수 없지만 이것 역시 너무 마이너하니 패스.

스릴러에서는 "바나나피쉬"가 없더군요. 중반이후 삼천포로 빠지는 감이 있긴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우직하게 진행되며 독자를 몰입시키는 맛이 뛰어난 스릴러로 추천할 만 합니다. 

전문가 등장 작품의 리스트에서는 "검찰관 기소가와"가 빠지더라도 "사이코 닥터"가 반드시 포함되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신분석 전문가 카이가 등장하는 작품으로 각 사건의 설득력이 뛰어나며 치밀한 심리 분석 사례가 일품인 작품이죠. 1, 2부가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1부를 더 추천합니다. 
범위를 살짝 더 넓혀 본다면 "용오"는 교섭인이 등장하는 작품으로 옴니버스물의 특성상 모든 에피소드가 뛰어난 것은 아니지만 전체적으로 고른 수준의 서스펜스와 재미를 전해주는 작품입니다.

마지막으로 국내 작품에 소홀한 것은 제일 아쉬운 부분입니다. "푸른길"을 언급하긴 했지만 이 작품은 일본 작가가 글을 쓰고 일본 잡지에 연재된 작품이기 때문에 권가야씨의 그림을 뺀다면 국내 작품으로 보기 어려운 요소가 더욱 많은 작품이죠. 완성도 역시 높이 평가하기 어려운 작품이고요. 차라리 한혜연씨의 "M노엘"을 추천하는게 낫지 않았을까요? 자료조사가 거의 없었던 것 같은 허전한 그림과 만화 스토리 전개의 미숙함, 왠지 익숙치 않은 순정만화체에 부담스러울 수 있지만 기본적인 아이디어와 트릭은 괜찮은 작품입니다. 
드라마로 더욱 유명하지만 "다모" 그리고 국내 만화에서 보기 드문 역사 추리물의 시리즈 탐정인 이두호씨의 "장독대 시리즈 ("뛰어야 벼룩이지" 등등)" 역시 추천 작품입니다. 아주 고전으로는 방학기씨의 다른 여러 작품들, "사라진 낡은 집"이나 "초립동이", 이우정씨의 "모돌이 탐정" 등도 포함되겠지만 지금은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이니 패스...  (*모돌이 탐정은 2022년에 복간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솔직히 선정 기준에 의심이 많이 가는 리스트였습니다. 추리 만화는 하늘의 별 만큼 많고 지면은 한정되어 있으니 이명석씨의 고충은 어느정도 이해가 되지만 이름값에 기댄 작품이 너무 많아 실망스웠습니다. 보다 다양한 접근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싶네요.
덧붙이자면 QED작가의 독특한 작품인 "로켓맨"이나 과학 스릴러에 가까운 "레밍의 행방", "비밀", 호러가 약간 가미된 "백작 카인 시리즈 (특히 초반부)"도 추천할 만 합니다. "로켓맨"과 "레밍의 행방"은 아까짱님의 블로그에 정리된 포스트가 있으니 참고하셔도 좋을 것 같네요.

2004/02/19

おざなりダンジョン - Motoo Koyama : 별점 3점

일찍이 대원에서 “전사 모카”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나왔던 판타지 만화. 작가 코야마 모투의 데뷰작이자 최대 히트작(인 모양)으로 전 17권으로 완결된 작품입니다. 일본에서도 상당히 매니악한 만화만 연재되던, 하지만 제가 좋아했던 코믹 NORA의 최대 히트작 중 한편으로 애니메이션화까지 되었었죠. (NORA의 다른 만화로 국내 소개된 것은 “MAPS”와 야스히코 요시카즈의 “비너스 전기”, 타카미 요시히사의 “Nervous Breakdown”, 그리고 “수인성역” 등이 있습니다)
곤드와나 대륙이라는 가상의 대륙을 무대로 다양한 국가, 조직들과 여러 형태의 주민들(인간형, 동물형, 지오사우르스의 파충류형…)에 얽힌 여러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내용으로 세계관이 아주 매력적인 작품이에요. “마력”을 에너지로 하는 동력기관이 있는 세계라는 설정을 기본으로 하여, 군사적 우위에 있는 과학+마법집단 길드, 일종의 평화 수호 단체(?) 매직 아카데미와 그 일원들인 아스트랄 등의 독특한 설정이 가득하거든요. 이를 무식하지만 힘 하나는 일품인 주인공인 전사 “모카”, 유능한 도둑 “블루맨”, 말없는 개그 메이커이지만 사실은 상당한 실력의 마법사인 “키린맨”의 파티에 백룡의 기사 활코와 길드 최강 검사인 변태 사나이 바스터 키톤 등의 재미있고 다채로운, 디자인도 화려한 캐릭터로 뒷받침하고 있고요.

처음에는 단편 연재로 시작했다가 꾸준한 인기로 장편화 된 때문인지 초반부는 짤막 짤막하고 유쾌한 옴니버스 스타일의 모험담이 주를 이루지만 중반 이후는 아카데미에 소속된 아스트랄이라는 초월적인 존재였으나 자신의 과거, 즉 과거에 번영했지만 지금은 멸망한 용족의 후예라는 사실을 각성한 뒤 세계를 파멸시키고자 하는 흑룡 “로고스”와 인간이 되고자 하는 백룡 “나가”의 싸움을 축으로 하는 장대한 이야기와 같이 병행하여 독립적인 사이드 스토리가 전개됩니다. 이 긴 호흡의 이야기를 다루는 전체적인 흐름은 거칠고 이야기가 툭툭 튀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약간 미숙함이 엿보입니다만 그런대로 결말까지 꽤 깔끔하게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3점. 독특한 세계관 만큼은 한번 볼만한 가치가 충분합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슬레이어즈”의 한 토막과도 좀 유사한 부분이 있기도 한데, 비교해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네요. 그나저나, 트라이였던가..넥스트였던가…

덧 1 : 개인적으로 “코믹NORA”에 연재할 때부터 관심있게 봤었고 좋아했었으며, 단행본 뒤에 끼어있는 저자의 초기 단편들도 재미있었던 등 여러모로 마음에 들어서 대원에서 정식 발매한 번역본을 출간할 때 마다 한권씩 꾸준히 사 모았습니다. 그런데 이게 왠일! 오 마이 갓! 딱 한권만 남겨두고 16권까지만 나온채로 책이 절판되어 버렸습니다. 아니 이런 X같은 경우가….! 차라리 중반부터 안나왔으면 모를까 딱 한권 남겨두고 안 나오다니....
우연한 기회에 마지막 권을 구할 수 있었다는게 그나마 다행일 뿐입니다. 원서였지만 이해가 아주 안 될 정도는 아니었고 오히려 오랜 숙제를 끝낸 느낌마저 드는 괜찮은 완결이었어요. 그래도 대원의 만행은 절대 용서할 수 없습니다!

덧 2 : 스스로 2부라는 “なりゆきダンジョン” 이라는 작품을 연재했었나 본데 이 후속작은 별 주목을 받지 못한 듯 하네요.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뭐 이런 류의 후속작이 걷는 뻔한 자가복제 루트를 타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덧 3 : 국내에는 코야마 모투의 다른 작품 “기억의 환무” (이 책은 다행히! 4권 완결이 전부 발간 되었습니다…)도 번역되어 있습니다. 참고로, 같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설정이나 캐릭터 등도 독특하고, 짤막하고 유머러스한 모험담으로는 재미있지만, 긴 호흡의 심각한 장편 스토리 부분은 재미가 없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