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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31

2016 내 블로그 리뷰 총결산

2015 내 블로그 리뷰 총결산

13차, 열 세번째를 맞는 블로그 결산입니다. 숫자부터 정리해보면, 2016년 읽은 책 중 리뷰를 남긴 책은 추리 / 호러 장르문학 53 (53)권, 기타 장르문학 8 (10)권, 역사서 18 (12)권, 디자인 및 스터디 도서 4 (5)권, Food 및 구루메 관련 도서 9 (7)권, 기타 도서 15 (21)권으로 모두 107 (107)권입니다(괄호는 작년). 작년과 거의 비슷하군요.

각 항목별 베스트 - 워스트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올해 발표된 작품 기준이 아니라 제가 올 한해 보고 읽은 것들 기준입니다.


2016년 베스트 추리소설 : 

"탐정은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 

단평 : 세상은 넓고, 모르는 작가도 많고, 재미있는 작품도 아직 이렇게나 많다! 

올해 추리, 호러 장르물 중 별점 4점 이상 작품은 단 한편도 없습니다. 그런데 별점 3점짜리는 "별도 없는 한밤에", "천사들의 탐정", "미스테리아 8호", "사냥개 탐정", "검은 수도사", "가면 무도회 1,2", "탐정은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 "엠브리오 기담"의 여덟 편이나 됩니다. 

다 좋은 작품들이지만 한편을 꼽기 위해서 우선 잡지인 "미스테리아 8호"를 뺐습니다. 호러 성향이 강한 "별도 없는 한밤에", "엠브리오 기담"과 역사 모험물 성격이 강한 "검은 수도사"도 빼면 네 편이 남네요. 다 좋은 작품들이지만 이 중 추리적으로도 괜찮고 재미도 있으며, 무엇보다도 새로운 발견의 기쁨을 선사한 "탐정은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를 올해의 베스트로 꼽습니다.

2016년 워스트 추리소설 :

"추억의 시간을 수리합니다" 

단평 : '미스터리'가 아니었다... 

2016년에는 별점 2점 이하의 작품이 무려 16편이라고 한탄했는데 올해는 26편입니다! 읽은 작품 중 반 가까이가 수준 이하였다는 이야기지요. 참으로 너무합니다. 최악인 별점 1.5점 이하도 무려 열 편이나 되고요.

하지만 최악 중의 최악인 별점 1점을 획득한 작품은 이 작품 뿐입니다. 최악인 이유는 책의 완성도를 떠나 '미스터리'가 아닌 탓이에요. 그냥 청춘 연애물일 뿐이거든요. 작품의 수준을 떠나 구태여 추리물이라고 소개하여 제 시간을 낭비하게 만든 괘씸한 마케팅 때문에 올해의 워스트로 꼽습니다.

2016년 베스트 기타 장르문학 : 

"제라르 준장의 회상" 

단평 : 시대를 뛰어넘다. 

올해의 기타 장르문학에서는 별점 3.5점의 이 작품이 베스트입니다. 모두 10권도 읽지 않아 한권의 베스트를 꼽기는 좀 애매하지만요. 여튼 코난 도일 경의 실력이 유감없이 발휘된 고전 명작 모험물입니다.

2016년 워스트 기타 장르문학 : 

"양심의 문제" 

단평 : 바탕에 깔린 사상 문제. 

도서출판 불새의 용기있는 행보에는 항상 박수를 보내는 바이지만... 이 작품만큼은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습니다. 역겨운 식민지 시대의 유산인 제국주의적 세계관을 은연 중에 포장하여 강요하기 때문입니다.

2016년 베스트 역사 도서 : 

"신들의 연기, 담배" 

단평 : 교양과 재미의 절묘한 결합. 

이 책은 올해의 유이한 별점 4점짜리 책입니다. 교양과 재미, 두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놀라운 결과물이죠. 제가 꼭 흡연자이기 때문은 아닙니다.

2016년 워스트 역사 도서 : 

"조선의 武와 전쟁" 

단평 :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역사 도서는 좀 가려읽는 편이라 워스트가 대체로 없는 편인데 올해는 이 책이 뽑혔습니다. 단평대로 기대한 내용에 전혀 미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도저도 아닌 결과물이었어요.

2016년 베스트 디자인 / 스터디 도서 : 

올해 이 분야는 달랑 4권만 읽었기에 별도로 평하지는 않겠습니다. 내년에는 이 쪽 분야도 좀 더 열심히 읽겠습니다.

2016년 베스트 Food / 구루메 도서 : 

"백미진수" 

단평 : 실력자가 애정을 담아 쓴 미식 에세이의 진수.

이 책은 올해 유이한 별점 4점짜리 책입니다. 읽는 내내 즐거우면서도 유용한 좋은 에세이였어요.

2016년 워스트 Food / 구루메 도서 :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레시피" 

단평 : 발췌에 이은 레시피 소개에 그친, 날로 먹은 책 

제목 그대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등장한 음식, 요리를 발췌한 후 해당 레시피 소개가 전부인 책. 저자의 아이디어는 눈꼽만치도 들어있지 않습니다.

2016년 워스트 기타 도서 :

"서프라이즈 : 인물편" 

단평 : 이 책이 존재할 이유를 모르겠다. 

올해 기타 도서는 전부 고만고만해서 베스트를 꼽기는 쉽지 않네요. 별점 3점짜리 작품이 있기는 하지만 ("장서의 괴로움") 독보적이라고 하기는 어렵거든요. 하지만 워스트는 확실합니다. 총 4편의 별점 1.5점짜리 망작들 중에서도 이 책이 선명하게 빛나기 때문입니다. 왜 책이 나왔는지 이유 자체를 모를 무의미한 결과물입니다.

2016년 베스트 기타 Comic :

"피너츠 완전판" 

단평 : 발간만으로도 감사한 완전판! 

올해 별점 3점을 넘는 만화는 많았지만 그렇다고 압도적으로 점수가 좋은 작품도 없습니다. 그렇기에 총 4권을 읽었고, 대체로 별점이 우수했던 "피너츠 완전판"을 올해의 작품으로 꼽아봅니다. 단평 그대로 발간된 것 만으로도 감사드릴 따름입니다.

2016년 워스트 기타 Comic : 

"역시 빵이 좋아!" 

단평 : 만화로 보기에는 여러모로 애매했다. 

올해 별점 1점짜리 망작은 본 작 외에 "스파이 vs 스파이", "산적 다이어리 2"가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작품들은 최소한 '만화' 이기는 한데 이 작품은 아무리 봐도 만화가 아닙니다. 빵 소개서를 만화처럼 만든 것에 불과하니까요. 최소한의 이야기와 재미도 없기에 올해의 워스트로 꼽습니다.

그외 영화, 만화 등은 대체로 부분별로 5편 이상 감상한 것이 없기에 올해는 선정하지 않습니다.


결산평 : 

총 독서 권수가 작년과 똑같다는게 놀라운데 여튼 올해도 100권을 넘겼습니다. 이 정도면 취미인으로 할만큼 했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제가 나이가 든 탓인지, 아니면 출간작들의 수준이 갈 수록 떨어지는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평균 이하의 작품들 수가 급증했다는 겁니다. "장서의 괴로움"에 나온 유명한 장서가 다니자와의 명서 감정술처럼 - "명저라는 홍보에 넘어가 샀던 책은 거의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이류 이하 책을 이것저것 찾아 읽지 않았다면 초일류를 초일류라고 인정할 수 없었을지 모른다" - 좋은 작품을 만나기 위한 통과의례일 수는 있겠지만, 몇몇 망작들은 그야말로 읽는 시간조차 아깝기 그지 없었습니다. 뭐 좋게 생각하면 이런 작품들을 소개하는게 제 미미한 블로그의 존재 의미겠죠. 찾아주시는 분들의 시간이라도 아껴야 할 테니까요.

하여튼, 제 블로그를 찾아주시는 여러분들도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내년에는 올해보다 더 많은 것을 이루고 성취하시는 한해가 되셨으면 합니다. 

작년에도 말씀드렸지만 제 블로그를 찾아주시는 분들이라면 남들이 관심갖지 않는 사소하고 디테일한 것들에도 관심을 가지시는, 정말로 세심한 분임이 분명할테니 내년에는 더욱 잘 되실거에요. 사랑합니다~!

2006/01/06

후루하타 닌자부로(古畑任三郞) 1,2기 및 스페셜

최근 보고 있는 일본 드라마들 속에서 눈에 띄는 추리 드라마라 소개합니다. 10년도 넘은 시리즈라 아는 분은 다 아시겠지만요.
경시청 수사 1과 경부보 후루하타 닌자부로가 주인공으로 형사 콜롬보식의 도서식 추리물 옴니버스 시리즈입니다. 도서 추리물답게 범인이 사건을 저지르는 것을 먼저 보여주고 후루하타 닌자부로가 범인의 계획을 하나씩 밝혀내어 사건을 해결하는 식인데 마지막에는 "시청자에 대한 도전" 같은 장면도 등장하고 있습니다.

일단 이 작품의 최대 장점은 정통파 추리 시리즈물은 보통 추리 매니아 등 특정 시청자를 대상으로 하는데 비해, 이 시리즈는 후루하타 닌자부로의 자만심 넘치고 안하무인에 범인을 괴롭히는 능청스러운 연기를 비롯해서, 부하 이마이즈미의 코믹한 설정과 연기 등 전체적으로 유머러스한 분위기가 넘쳐나고, 내용상의 트릭도 상당히 이해하기 쉽고 전개가 논리적이라 추리물을 많이 접하지 않은 일반 시청자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점입니다. 전혀 다른 분위기이지만 형태면에서는 "제시카의 추리극장" 같다고나 할까요? 쉬운 추리물의 교과서적인 작품 그 자체에요.
그 외에도 작품 전체를 통해 "완전범죄는 없다!" 라는 메시지를 일관되게 전해 주는 것도 마음에 들고요.
아울러 정통파 퍼즐 미스터리 추리물로 트릭자체가 꽤 괜찮은 작품도 많이 있는 편이에요.
또한 게스트 (주로 범인역)으로 유명 스타들이 등장해 주는 것도 상당히 이색적인 재미를 안겨다 줍니다. 워낙 오래된 시리즈이고 젊은 스타의 비중이 적어 제가 아는 배우는 나카모리 아키나와 스즈키 호나미, 기무라 타쿠야, 그리고 범인은 아닌 중요 참고인 역이었던 마츠 다카코 정도지만 일본 영상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더욱 많은 친숙한 얼굴을 찾을 수도 있겠더군요.

다만 마지막에 범인에게 사건의 진상을 설명하고 범행을 인정케 하는 결론 부분에서 드러나는 증거가 빈약한 편이 많은 것이 약간 약점이긴 합니다. 실질적인 눈에 드러나는 증거보다는 후루하타 닌자부로의 "말빨"로 범인을 옭아매는 편이 좀 많거든요.

그래도 다른걸 다 떠나서라도 타무라 마사카즈가 연기하는 후루하타 닌자부로라는 멋진 캐릭터를 보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운 시리즈였습니다. 아울러 전체적으로 대사가 꽤 쉬운 편이라 일본어 공부에도 크게 도움이 될 것 같아 더욱 좋더군요. 저는 1, 2기와 1,2기 스페셜만 구해 볼 수 있었는데 3기는 물론 인기 탓에 번외편 같은 작품도 존재한다고 하네요. 빨리 3기와 다른 시리즈도 어떻게든 구해 보고 싶네요. 별점은 4점입니다.

제가 본 1, 2기와 스페셜 내용의 간단한 목차는 아래와 같습니다.

출처는 토끼님의 블로그 입니다.

후루하타 닌자부로 1기(1994.04.13 ~ 06.29)
01. 죽은 자로부터의 메시지(나카모리 아키나) : 인기 순정만화가의 애인?살인사건
02. 움직이는 시체(사카이 마사아키) : 가부키 배우의 경비원 살인사건
03. 웃는 시체(코테가와 유코): 정신과 의사의 애인 살인사건
04. 살인 팩스(쇼호쿠테 츠루베): 추리소설작가의 부인 살인사건
05. 더럽혀진 장기말(반도 야소스케): 일본장기기사의 살인사건
06. 피아노 레슨(키노미 나나): 피아니스트의 살인사건
07. 살인 리허설(코바야시 넨지): 시대극 배우의 촬영소사장 살인사건
08. 살인특급(카가 다케시): 치과의사의 흥신소사장 살인사건
09. 살인공개방송(이시쿠로 켄): 초능력자가 일으킨 살인사건
10. 모순투성이의 시체(코사카이 카즈키): 대의원 비서의 살인사건
11. 잘있어요, DJ(모모이 카오리): 인기 DJ의 살인사건
12. 마지막 인사(스가와라 분타): 손녀를 잃은 형사의 복수 살인



후루하타 닌자부로 스페셜1(1995.04.12)
웃는 캥거루(진나이 다카노리/미즈노 마키): 수학자의 파트너 살인사건



후루하타 닌자부로 2기(1996.01.10 ~ 03.13)
01. 너무 많이 말한 남자(아카시야 산마): 변호사의 정부 살인사건 上, 下
02. 웃지 않는 여자(사와구치 야스코): 기숙사 여사감의 동료 살인사건
03. 게임의 달인(쿠사가리 마사오): 주치의의 추리소설작가 부부살인사건
04. 파랑인가, 빨강인가(키무라 타쿠야): 대학조교의 유원지폭파미수사건
05. 위선의 보수(가토 하루코): 인기각본가의 여동생 살인사건
06. Vs 퀴즈왕(카라사와 토시아키): 퀴즈왕의 방송스탭 살인사건
07. 動機鑑定(사와무라 토쥬로): 골동품 가게 주인의 살인사건
08. 마술사의 선택(야마시로 신고): 마술사의 젊은 조수 살인사건(마츠 다카코도 나와요)
09. 실수한 남자(카자마 모리오): 잡지 편집장의 호텔 도어맨 살인사건
10. 뉴욕에서의 사건(스즈키 호나미): 남편을 살해하고 무죄판명된 여자의 이야기



후루하타 닌자부로 스페셜 2(1996.03.27)
잠깐의 이별(야마구치 토모코): 전위 화예가의 가주(이에모토) 살인사건


2006/11/25

미궁과(迷宮課) 사건부 - 로이 비커즈 / 이종수 (자유 추리문고 19) : 별점 2.5점

자유 추리문고로만 접할 수 있는 희귀본이죠. 국내 굴지의 추리 동호회 사이트인 Howmystery.com 회원분의 도움으로 입수하게 되었습니다.

원제는 "The Department of Dead ends". 미궁과는 경시청의 한 부서로 여러가지 미해결 사건이나 증거, 정보들이 모이게 되어 결국 해결하게 된다는 부서로 이러한 설정은 일본 드라마 "케이조쿠"를 생각나게 합니다. 그러나 이 작품의 특이한 점은 단편이지만 전 작품이 모두 범인과 범행과정을 치밀하게 묘사, 서술하고 그 사건이 미궁에 빠진 뒤에 미궁과에서 남겨진 몇몇 단서를 가지고 추리하여 사건을 해결한다는 도서 추리 소설 형태로 쓰여져 있다는 점입니다. 도서 추리 단편집은 처음 접해 보았네요. 그래서인지 범행에 대한 내용이 대부분이라 실제 미궁과의 활약, 특히 미궁과의 수장격인 레이슨 경감의 비중은 굉장히 낮다는 것도 이색적이고요.

또다른 특징은 도서 추리물이기 때문에 범행의 치밀함, 특히 완전범죄를 이루려는 범인의 노력이 주가 되어야 이야기 전개가 매끄러울텐데 이 작품집의 거의 모든 범죄는 "우발적"으로 이루어진다는 것 역시 독특한 부분이었습니다. 전부 10편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는데 "웃은 부인"과 "보트의 푸른 수염", "장님의 망집" 3편이 그나마 범인의 치밀한 범행 계획을 담고 있으며 다른 작품들은 범행 자체가 우발적으로, 즉흥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자면 전체적으로 작품들의 수준이 딱히 우수하진 않더군요. 기대에는 많이 미치지 못했습니다. 실질적으로 "추리"라는 요소가 많이 결여된 느낌이에요. 도서 추리물이기에 범인과 탐정의 두뇌싸움이 보다 치밀하게 그려질 수도 있을텐데 우발적 범행이 주를 이룬다는 특징 때문인지 우연찮게 얻어진 증거로 범행이 드러나게 된다는 구성이 많습니다. 또한 작품마다 비슷한 내용이 반복된다는 것도 실망스러운 부분이었어요.

결론내리자면 엘러리 퀸 마저도 높이 평가한 미궁과의 제 1작 "고무나팔"은 무척이나 신선하고 새로운, 단편으로서 완성도도 높으면서도 이후 시리즈에 기대를 갖게 하는 수작임에는 분명하나 다른 작품들이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기에 전체 별점은 2.5점입니다. 아직 읽지 못하신 분들도 나중에 "고무나팔" 한편만 읽어보셔도 될 것 같네요.

1. 고무나팔
어머니의 과보호 하에서 성장한 유약한 청년 조지는 에셀이라는 아가씨와 마음에 없는 결혼을 한 뒤 노처녀 콜래미어와의 관계 때문에 그녀를 살해한다. 그런데 그가 자신의 존재를 숨기고 에셀과 교제했기에 경찰은 그를 찾지 못하고 사건은 미궁과로 넘겨진다.
기념비적인 "미궁과" 시리즈 1작. 추후 시리즈화된 것이 당연할 정도로 매력적인 요소가 많은 수작입니다. 우발적이지만 완벽한 완전범죄, 그리고 그 범죄가 파헤쳐지는 극히 사소한 단서라는 요소가 교묘하게 결합되어 있거든요. 미궁과의 특징인 "상상력"이 가장 잘 발휘된 작품이기도 하죠. 마지막 문장까지 인상적인 좋은 작품입니다. 별점은 4점입니다.

2. 웃은 부인
유명한 광대 스펜글레이브는 자신의 아내가 자신을 남자로 인식하지 않고 "광대"로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뒤 그녀에게 살의를 품게된다.
전작과는 달리 범인이 범행에 대한 상세한 계획을 세워 실행한다는 것이 차이점인 작품인데 미궁과가 등장할 필요가 없는 강력한 단서가 존재하기에 높은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경찰이 그 차이점을 먼저 깨달았어야 하지 않을까요? 별점은 2점입니다.

3. 보트의 푸른 수염
조지 매커트니는 알고 지내던 하녀와 보트를 타다가 우연히 일어난 사고 덕에 "완전범죄"의 방식을 깨닫게 된 후 아내에게 보험을 가입하게 하고 그녀를 보트사고로 위장시켜 살해하는 수법으로 재산을 늘려나간다. 경찰은 그의 범행을 확신하지만 증거가 없어 체포하지 못하고 사건은 미궁과로 넘어간다.
이 작품도 범인 이름이 조지네요. 작가가 조지라는 친구한테 사기라도 당했었나? 어쨌건 이번에는 연쇄살인극이네요. 그러나 범행 사실을 입증하기 힘들다는 것이 믿기 힘들 정도로 범행 수법이 너무나 뻔하고 얄팍한데다가 사건의 해결이 지극히 우연에 기반하고 있기에 좋은 평을 주기 힘들군요. 별점은 1.5점입니다.

4. 없어진 두개의 다이아몬드
블렌든 집안의 11대째 백작인 헨리 어시웬 경은 희극 여배우 넬리 해이드와 깊은 관계를 맺는다. 그러나 그녀가 결혼을 요구한 직후 살해되고 보석을 훔쳐간 건달 짐이 살인 혐의로 교수형을 받는다. 그러나 2년여의 세월이 흐른 뒤 도둑맞은 보석이 새롭게 발견되고 미궁과는 사건 해결을 위해 헨리경을 다시 찾게 된다.
원제는 "속물의 살인", 우발적 범행을 다룬 작품으로 사건 해결 역시 우연에 의지하고 있습니다. 범행 관련 당시의 물품을 그대로 소지하고 있던 범인의 사고 방식도 이해하기 어렵지만 사건의 결정적 단서 역시도 납득하기 어려운, 평균 이하의 작품이었습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5. 옥스퍼드 거리의 카우보이
앤드류 애머셤은 자그마한 체구의 소심한 사나이로 자신의 아내가 다른 남자와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을 묵인하고 살다가 어느날 분노가 폭발한다...
제목과 설정에서 뭔가 정교한 트릭이 한번쯤 등장해 봄직한 느낌을 전해주는데 트릭이 너무 간단해서 좀 맥이 빠지네요. 사건 해결의 단초가 되는 시계의 묘사와 설정 만큼은 마음에 들었기에 별점은 2.5점. 문제는 이 설정을 이후 계속 작가가 써먹는다는 것이죠...

6. 빨간 카네이션
변호사 웨이컬링은 한때 자신이 사랑했지만 캐스버트라는 인물과 결혼을 약속한 여성 지니를 10여년 뒤 그녀가 출소하는 교도소 앞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녀가 병으로 사망한 후 그는 그동안 만나지 않았던 캐스버트를 찾아가 살해하는데...
역시 우발적 살인을 다룬 작품으로 멜로드라마의 전형같은 범행 동기와 과정이 그려진 것은 특이했습니다. 카네이션과 포장지를 단서화 시키는 식으로 범행의 중요한 단서가 되는 물건을 찾는 이야기도 설득력 있었고요. 그러나 너무 많은 곳에서 범인이 얼굴을 드러냈기 때문에 구태여 미궁과가 출동할 필요가 있었는지는 좀 의심스러웠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7. 노랑 잠바
여자 기숙 학교의 선생인 루스 워틀링턴은 같은 학교의 교사 허버트와 이성으로서가 아닌 우정을 오래 지속하던 중 그가 리타 스티븐즈라는 새로 부임한 선생과 결혼한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진심으로 축하를 전하지만 결혼 선물과 관련하여 리타와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 그녀가 자신과 맞지 않는 가치관을 털어놓자 순간적으로 살인을 저지르는데...
역시 순간적 충동에 의한 범죄, 그러나 그 범죄가 완전 범죄에 가깝게 흘러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래도 동기나 범행 과정에 대해 합리적으로 묘사하고 있으며 정말 사소하고 작은 단서에 의해 사건이 해결된다는 점은 마음에 듭니다. 단, 범인이 빠져나가려고 노력했다면 빠져나갈 수 있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들긴 하네요. 별점은 2.5점입니다.

8. 사교계의 야심가
대부호 은행가 스텐틀러는 해디넘경과 어린 시절 기숙 학교에서부터 친분을 유지했던 관계로 서로의 아들 딸이 곧 결혼을 앞둔 사이이기도 하다. 또한 사교계의 정점에 선 인물들만 가입할 수 있는 클럽 가입에 20여년의 세월을 바쳐 결국 딸의 결혼과 클럽 입성이 눈 앞에 보이는, 행복의 정점에 다다랐다고 믿는다. 그러나 해디넘경과의 식사 자리에서 자신의 클럽 가입이 거부되었다라는 것을 알게 되는데...
원제는 "신분 상승자의 사건" 정도 될까요? 이 작품에서 귀족들 이야기가 많이 나오긴 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 최고위층 인물이라는 것이 독특한 작품입니다. 그러나 사건을 풀어나가는 방식이 너무 뻔해서 조금 실망스러웠어요. "극히 사소한 단서" 라는 전제가 있지만 범인의 아주아주 작은 실수를 통해 드러나는 구조는 이 시리즈 전체에서 너무 많이 반복되는 방식이라 생각되거든요. 별점은 2점입니다.

9. 공처가의 살인
커머튼은 아내 거트루드에게 꽉 잡혀 사는 공처가로 아내와 전혀 다른 타입의 비서 이자벨과 은밀한 관계를 맺는다. 그러나 그 사실이 들통나고 이자벨에게도 많은 돈을 요구받게 되자 그녀를 살해한 뒤 그 사실을 아내에게 털어놓는다.
이 작품은 그간 보아왔던 "미궁과" 시리즈의 전형을 답습하고 있는 작품으로 그다지 좋은 평을 내리기는 어렵네요. 사건을 해결하는 결정적 단서가 너무 뻔할 뿐더러 기존 트릭의 반복일 뿐이었습니다. 평균 이하의 아류작이기에 별점은 1.5점입니다.

10. 장님의 망집
유망한 변호사 로버트는 자신의 변호에 앙심을 품은 여인의 테러로 장님이 되지만 곧바로 성공한 작가로 자리매김한다. 그러나 자신의 아내에게 호감을 가진 웨인이라는 인물때문에 자신의 장애를 깨닫게 된 뒤 그를 살해할 계획을 짜기 시작한다.
역시 비슷한 주제로 비슷하게 써 내려간 전형적 작품. 설정은 두번째 단편 "웃은 부인"의 판박이, 범행 계획 및 실행은 "옥스퍼드 거리의 카우보이", 그리고 해결되는 과정은 "옥스퍼드 거리의 카우보이"와 "사교계의 야심가" 등과 동일합니다. 솔직히 다른 작품으로 보기 힘들 정도에요. 별점은 1.5점입니다.

2008/12/29

2008년도 읽은 책 총 결산

2007년도 읽은 책 총 결산

올해 읽은 책 총 결산의 다섯번째입니다. 5년차에 접어들었군요. 보통 이글루 결산에 이어 진행했는데 올해는 이글루 결산이 좀 늦어서 먼저 포스팅합니다.

어쨌건 올해는 작년보다는 독서량이 증가해서 총 82권 읽었네요. 작년에는 55권이었니 약 50% 정도 증가했습니다. 올해는 이런저런 이벤트를 통해 고맙게 읽은 책이 꽤 되기도 하고, 선물받은 책들도 있어서 그런 것 같아요. 좀 증가하는 추세이니 안도했달까요?

그럼 결산 들어갑니다~ 언제나처럼 제 블로그에 올린 리뷰들 중에서만 선정했습니다.

2007년 베스트 추리소설 : 이중구속 - 크리스 보잘리언

2007년 워스트 추리소설 : 유니버셜 횡메르카토르 지도의 독백 - 히라야마 유메아키

2007년 베스트 장르 문학 : 1권 밖에 읽지 않아서.. 베스트는 없음. 카테고리를 없애야 하나?

2007년 워스트 장르 문학 : 상동

2007년 베스트 역사 관련 도서 : 경성을 뒤흔든 11가지 연애사건 - 이철

2007년 워스트 역사 관련 도서 : 조선을 뒤흔든 16가지 살인사건 - 이수광

2007년 베스트 전공관련 / 스터디 도서 :  디자인의 디자인 - 하라 켄야 / 민병걸

2007년 워스트 전공관련 / 스터디 도서 : 혼다 디자인 경영 - 이와쿠라 신야 외 / 박미옥

2007년 베스트 기타 도서 : 사이먼 싱의 암호의 과학 - 사이먼 싱 / 이원근

2007년 워스트 기타 도서 : Eye_26세, 나는 세상으로 뛰쳐나갔다.

2007년 베스트 단편 : 광화사 (From "경성탐정록 / 파우스트 Vol.5")

결산평 : 
올해의 특징이라면 별점이 더 후해졌다는 것! 을 들 수 있겠네요. 그런데 외려 추리장르에서는 별 5개짜리가 없다는 것도 특징이라면 특징이군요.

추리문학 베스트 "이중구속"은 별점 4점을 받은 많은 작품들 중 한편으로, 별점 4점을 받은 작품들이 좀 오래되거나 절판된 도서들도 있어서 최근 작품 중에서 고르다 보니 선정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정통 추리물은 아니라 무게감이 약간 떨어지는 감이 없잖아 있긴 합니다만... 그리고 워스트인 "유니버셜~" 은 너무나도, 지나칠 정도로 제 취향이 아니라서 저에게는 거의 재앙급의 작품이었기에 주저없이 뽑을 수 있었습니다. 이건 아무래도 취향 문제로 보이기는 하지만요.

역사관련 도서의 베스트 "경성을 뒤흔든~" 은 유일한 해당 카테고리의 별점 5점짜리 책이기에 당당히 뽑혔습니다. 재미와 자료적인 가치 모두 수준급인 좋은 책이었죠. 같은 계열 시리즈이긴 하지만 워스트로 뽑힌 "조선을 뒤흔든~" 은 사실 별점 2점이라 워스트로 꼽기는 좀 야박하기도 한데 어쩌겠습니까. 워스트는 워스트니까요.

전공관련 도서는 올해는 그다지 많이 읽지 못했더군요. 하지만 베스트인 하라 켄야의 "디자인의 디자인"은 언제 읽었더라도 베스트로 꼽을 수 있는 아주아주 좋은 책이었습니다. 디자인 전공자나 디자인에 관심있으신 분들께 꼭 추천해 주고 싶은 책으로 당연히 별점도 5점이지요. 워스트인 "혼다의 디자인경영"은 별점 2점으로 워스트인데 좀 억울할려나요?

기타 도서 베스트는 당연히 "사이먼 싱의 암호의 과학"입니다. 별점도 5점이지만 저에게는 아주 도움이 되기도 했으니까요. 워스트인 "Eye-26세..."는 회사에 공짜로 들어와서 30분만에 읽은 짤막한 여행기로, 읽고나서 30초만에 책에 대한 기억이 휘발되는 그런 알맹이 없는 책이었어요. 대관절 이런 듣보잡 책을 왜 번역해 냈는지가 더 궁금합니다.

마지막으로 베스트 단편은 두말할것도 없이 경성탐정록 시리즈인 "광화사" 입니다. 다른 좋은 작품들도 많이 읽었던 한해였지만 (예를 들면 천사가 지나갔다 (From "러시아 추리작가 10인 단편선") 같은 작품은 아주 좋았죠) 광화사라는 작품이 저와 저의 형에게 너무나 큰 의미를 지니는 작품이기에 선정하지 않을 수가 없네요. 단 한가지 걸리는 것은 단편이라기엔 좀 긴 분량이라는 것이죠^^

아울러 기타 분야를 살짝 언급하자면, 올해 읽은 만화 중 베스트는 "왓치맨 - 알란 무어 / 정지욱" 이었고 워스트는 막판에 등장한 "소년탐정 김전일 2부 7권" 입니다. 원래는 "본격 제 2차 세계대전 만화 1권 - 굽시니스트 " 였습니다만 막판에 김전일이 등장하여 당당히 워스트 탑을 차지했네요. 이유는 리뷰에 언급되어 있으니 생략하겠습니다.

그리고 올해 본 영화 중 베스트는 "Wall-E" 이고 워스트는 "사랑의 은하수 (Somewhere In Time) - 자노 슈와르크 " 였습니다. 베스트는 올 한해 본 작품들이 다 고만고만한 작품들이라 고민했는데 시즌 막판에 본 Wall-E가 워낙 좋아서 선정에 무리가 없었습니다. 워스트 "사랑의 은하수" 역시 어떻게 보면 당연하겠죠. 그만큼 저에게는 너무나지루하고 졸린 영화였거든요. 너무 낡았어요...

이상으로 올해 결산을 마칩니다~

2010/05/23

문은 아직 닫혀 있는데 - 이시모치 아사미 / 박지현 : 별점 3점

문은 아직 닫혀 있는데 - 6점
이시모치 아사미 지음, 박지현 옮김/살림

대학 경음악부 '알코올중독분과회'의 멤버로 술을 좋아해서 친하게 된 대학 동창들이 오랫만에 동창 중 한명인 안도의 가족이 운영하던 초고급 펜션에서 동창회를 갖는다. 그리고 저녁식사 직전 동창회의 리더이기도 한 후시미 료스케는 후배 니이야마를 죽이고 완벽한 밀실 살인을 만들어낸다. 저녁식사 이후까지 모두들 니이야마가 피곤하여 쉬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서서히 의심이 쌓여가고, 후배인 우스이 유카가 합리적인 추리를 통해 서서히 범행을 재현해 나가기 시작하는데...

"네이버 일본 미스터리 즐기기 카페에서 뽑은 2009년 미스터리"에서 17위를 차지한 작품입니다. 사실 이 작가는 예전에 "귀를 막고 밤을 달리다"라는 작품에서 너무 실망이 컸기에 다시 작품을 구해볼 생각은 없었는데 블로그 지인이신 kisnelis님 의 평도 좋고 마침 도서관에도 비치되어 있어서 읽게 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두 가지 독특한 포인트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주인공 후시미가 완벽한 밀실 트릭으로 살인을 저지르는 장면에서 시작하는 도서 추리물이면서도, 뒷 부분에서 밝혀지는 이유 때문에 시간까지 철저히 계산된 계획에 따라 밀실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러니까 완벽한 밀실 트릭으로 살인을 저지르는 것에는 성공했지만, 그것이 곧바로 밝혀지면 안 되는 상황을 일정 시간, 즉 10시간 동안 유지해야만 하는 것이죠.

두 번째는 이 시간 동안 밀실을 앞에 두고, 제목 그대로 '문이 아직 닫혀 있는 동안' 탐정역인 유카와 후시미가 불꽃 튀는 두뇌 대결을 펼쳐 나간다는 점입니다. 유카는 "현상"을 지속적으로 관찰하며 방 안과 니이야마의 상태를 추리하고, 후시미는 이러한 추리를 다른 방향으로 돌리면서 첫 번째의 이유, 즉 '밀실 상태를 일정 시간 유지해야 하는 이유'로 인해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여론을 조성하려고 애쓰는 대결 구도가 이루어집니다.

도서 추리물에서 탐정과 범인이 두뇌 싸움을 벌이는 작품이 흔하지만, 특정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벌이는 배틀은 자주 접하지 못한 설정이라 굉장히 신선했습니다. 추리 배틀 자체도 완성도가 높고요. 특히 탐정과 범인의 지력이 대등한 수준이라 서로 주고받는 심리전이 흥미진진했습니다. 주로 유카가 먼저 논리적인 펀치를 날리는데, 예를 들어 방을 밀실로 만든 이유가 무엇인지, 도어스토퍼를 사용한 이유는 무엇인지, 창밖에서 내부를 확인할 방법은 없는지 등, 합리적이면서도 이야기 전개에 걸맞은 단계별 논리를 선보입니다. 앞부분에 제공되는 단서들, 예컨대 위스키 병이나 니이야마의 시력 등은 독자에게 공정하게 제공되어 독자도 추리에 참여할 수 있게끔 배려된 점도 좋았습니다. 이런 면에서는 "마사토끼"의 만화를 떠올리게 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유카와 다른 동창생들의 발언과 추리가 촉발시키는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오는 서스펜스도 상당히 뛰어났습니다.

그러나 단점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가장 큰 문제는 이전 작품과 마찬가지로 '동기' 부분에서의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점입니다. 이 작품에서의 동기를 쉽게 설명하자면, '몸 상태가 좋지 않아 부상 위험이 있는 선수가 월드컵 대표팀에 선발되어 팀에 피해를 주지 못하게 하려고 그 선수를 죽인다'는 이야기와 다름없습니다. 이런 설정은 작가 미쓰하라 유리가 책 뒤에서 해명하고 있지만, 쉽게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또한, 우연과 운에 의존하는 전개가 많다는 점도 아쉬웠습니다. 니이야마가 약에 의해 수면 상태에 빠지는 것이 대표적이며, 다른 동창생들의 심리가 후시미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는 것 역시 운에 의지한 억지 설정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거든요. 작 중에서 이런 우연을 작가가 스스로 해명하기도 했지만, 차라리 작가가 책 뒤에서 설명한 대로 '심야에 범행을 저지르는 설정'이 훨씬 설득력이 높았을 겁니다. 물론 그런 방식이었다면 소설로서의 재미가 크게 줄어들었겠지만요.

이렇게 단점이 없지는 않으나, 정통 본격 추리소설의 매력을 잘 살려 재미있게 몰입해 읽을 수 있었으며, 번역도 훌륭하고 책의 디자인도 마음에 듭니다. 그래서 별점은 3점입니다. 무엇보다도 이 작품을 통해 이시모치 아사미라는 작가에 대해 새롭게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된게 좋았어요. 앞으로 작품 한두 개만으로 작가에 대한 선입견을 가지지 말아야겠습니다.

2010/08/26

데드트릭 1,2 - 카린펜 (華倫変) : 별점 3점


나나모토서에 근무하는 순사장 이치모리 잇페이, 과학수사 연구소 수사관 도쿠가와 도쿠코, 그리고 변태 명탐정인 경시청 수사1과 경부 하다케야마 미치아키가 나나모토서 관할구역에서 발생한 기상천외한 범죄사건을 수사하여 해결하는 정통파 수사 추리만화입니다. 국내 소개된 작품은 아니고 원서로 구해봤죠.

슥 한번 훝어봤을때는 작화나 전개가 왠지 어설픈 부분이 많이 보여서 크게 기대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1권을 읽었을 때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평범한 추리만화 이상의 완성도를 갖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게 추리강국 일본의 힘이겠죠?
범인이 앞부분에서 살짝 드러나는 도서 추리물 형태임에도 진상과 트릭은 끝까지 숨겨놓고 수사가 중심이 되는 본격 추리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솜씨도 제법이지만 독자가 추리의 과정에 동참할 수 있는 만큼의 정보와 단서를 수사과정과 맞물려 제공하는 전개방식 역시 정통 본격 추리물에 걸맞는 수준이라 만족스러웠어요. 곳곳에서 느껴지는 추리라는 장르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더불어 과학수사에 대한 세밀한 자료조사 역시 돋보이는 부분이었고요.

작화, 컷 구성 등 만화적인 완성도가 떨어지며 캐릭터들이 그다지 매력적이지 못한 점 (주역인 도쿠코조차 전개에 사실 큰 필요가 없습니다), 1권에 비해 2권은 완성도가 현저히 낮은 수준이라는 것은 아쉬우나 기대 이상의 신선한 재미를 만끽할 수 있었던 작품이었습니다. 전체 평균 별점은 3점입니다.

생전 처음 들어보는 작가라 궁금해서 자료를 찾아보았더니 카린펜 (華倫変 かりんぺん)은 에로망가 출신 작가로 5권의 작품만 남기고 2003년 급성심부전증으로 사망했다고 하네요. 젊은 나이에 사망한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국내 출간은 어려워 보이지만, 이 작품이라도 소개되면 좋겠습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1권 : "연속자궁 강탈 살인사건"
나나모토 고교 여고생과 양호 교사가 살해된 시체로 발견되었다. 두 사체 모두 자궁이 적출된 상태였다. 경찰은 나나모토 고교에서 발견된 육망성 표식 등을 근거로 '악마 숭배' 의식이 관련되어 있을 것이라 추정했다. 유력한 용의자로 떠오른 것은 왕따이자 저주와 주술 등에 취미를 가지고 있던 2학년생 츠지모토 가즈야였다.

제목 그대로 '자궁 적출'이라는 잭 더 리퍼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는 연쇄살인극이 펼쳐집니다. 그러나 연쇄살인극이 단지 악마 숭배나 잔혹함을 위해서가 아닌 다른 진상을 내포하고 있으며, 용의자에게 사건을 뒤집어 씌우기 위한 주도면밀한 계획이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네요. 공정하게 독자를 속인다는 점에서 정통 고전 본격 추리물 성향을 잘 따른다고 할 수 있고요.
그 외에도 추리 애호가를 사로잡을만한 요소가 많습니다. 잭 더 리퍼 사건의 가설 중 하나를 채용한 진상이라던가, 탐정역인 하다케야마가 진범을 찾아가 이런저런 이야기로 진상을 풀어낸다는 결말은 형사 콜롬보를 연상케하는 식으로 말이지요.
증거를 제시하라는 범인 앞에서 범인의 통화 녹음을 듣고 주변 소음으로 위치를 추적한 뒤, '공중전화'라는 사실을 알아내고 그 공중전화에서 범인의 지문이 묻은 동전을 찾아내는 등의 과학에 기반한 철저한 수사도 볼거리였고요.

과연 자궁 적출이라는 행위를 단시간에 처리할 수 있었을지에 대한 의문 등 설명이 부족한 부분도 있고, 작품과 어울리지 않는 유머 등이 지나치게 길다는 점, 작화면에서 세련되지 못한 점이 아쉽지만 기대 이상의 재미를 선사하기에 별점은 3.5점입니다.

2권 : "도쿠코의 범죄"
연휴에 도쿠코에게 친구 미에가 찾아온다. 그녀와 술을 마시다 잠들어버린 도쿠코는 자신의 옷이 피에 젖어 있다는 것, 그리고 피로 물든 칼이 놓여있는 것을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한다. 4일 후 다카이라는 청년이 살해된 시체로 발견되었고, 도쿠코가 용의자로 지목되었다. 도쿠코 옷과 칼의 피가 피해자의 것이었고 그녀의 모발이 피해자 방에서 발견된 것!
도쿠코를 구하기 위해 이치모리는 하다케야마의 도움을 요청하는데...

도쿠코가 범인일리가 없기 때문에, 독자는 미에가 범인임을 확실히 알고 이야기를 읽기 시작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미에는 피해자 사망 추정시각에 교통사고로 체포되었는데, 체포장소에서 범행장소까지는 차로 2시간이 걸려서 그녀는 범인일리 없다'는 알리바이 트릭을 어떻게 깰 것인지에 대해 자연스럽게 촛점을 맞추게 되고요.

그러나 이 트릭은 특별한 조작이 있던건 아니었고, 경찰 수사의 헛점으로 철벽의 알리바이가 생겼다라는 설정이라 좀 별로였습니다.
오히려 도쿠코가 범인이 아님을 증명하는 철저한 과학 수사가 더 인상적이었어요. 모발의 상태와 헤어 스프레이의 성분조사를 통한 오류 증명 - 현장에서 발견된 모발은 두종류의 스프레이가 뿌려져 있기에 같은날 떨어진 것으로 볼 수 없다 - , '곤약'은 위에서의 소화시간이 길기 때문에 사망시간 추정할 때 감안해야 한다는 것, 이문(耳紋)의 채집을 통해 범인 미에가 현장에 있었다는걸 증명하는 것 모두가 철저한 과학 수사에 기반합니다. 이런 류의 다른 컨텐츠들에 못지 않은 수준으로요.

설정과 내용에 비하면 지나치게 길다는 단점은 있습니다. 추리적으로는 앞서 말했듯 경찰 수사의 헛점으로 우연히 발생하는 알리바이가 핵심이고, 범인의 동기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는 문제도 있고요.

그래도 평작은 충분히 됩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제대로 된 편집자가 붙어서 보강했더라면 아주아주 좋은 작품이 되었을텐데 조금 아쉽네요. 

"이치모리군의 도전장"
이치모리가 자신이 신참때 해결한 사건을 도쿠코에게 풀어보라고 소개하는 이야기. 
밀실에서 소녀가 교살된 시체로 발견되는데 열쇠를 가진 사람은 경비원 뿐이었고, 처음에 아이 어머니와 조사할 때 방은 비어있었다. 다시 조사할 때 시체를 발견하였으나 경비원은 항상 아이 어머니와 함께였다. 범인은 경비원인데 어떻게 살해했나? 라는 문제였다. 
단서는 처음 시체 발견 시에는 모포가 뒹굴고 있었으나, 구급차를 부르고 돌아왔을 때에는 모포가 사라졌다는 것 뿐.

미스터리 매니아 이치모리의 추리소설담이 펼쳐지는 소품으로 쩌리 이치모리가 낸 문제답게 추리적으로는 별볼일 없습니다. 작중 토쿠코가 이야기하듯 흔해빠진 거울 트릭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미스터리 매니아 이치모리의 장황한 이야기가 나름 재미를 줍니다. 특히나 본격물은 프로레슬링, 사회파는 아마레슬링이라고 비유하는게 기억에 남네요. 아마레슬링이 각본없는 진정한 승부지만 작위적인 프로레슬링이 훨씬 재미있다는 논리죠. '바보같지만 재미있어!'랄까요.

또 사건의 동기와 이후 이야기를 작위적으로 짜맞추는 이치모리의 모습에서 최근 추리만화를 풍자하는 느낌이 풍기는 것도 재미있었어요. 별점은 2점입니다.

2026/02/21

잔혹한 여로 - 야마무라 미사 : 별점 2점

일제 강점기 당시 조선에서 거주한 적이 있을 정도로 우리와 인연이 있는데, 국내에는 제대로 소개된 적이 없는 일본 여성 추리작가 야마무라 미사의 초기 단편집입니다. 설 연휴 때 원서로 읽었습니다. 

모두 일곱 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의외였던건, 수록작 중 세 편은 트릭을 전면에 내세우는 정통파 본격 추리물이라는 점입니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는데 말이지요.

특히 "공포의 연하장"이 아주 괜찮습니다. 트릭은 다음과 같습니다.
남겨진 유류품을 통해 피해자는 당첨된 연하장을 상품인 우표와 오전 9시 이후에 교환한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러나 유력한 용의자인 거래 증권회사 직원 가사하라는 오전 8시 40분에 출근했다는 철벽의 알리바이가 있습니다. 연하장은 가사하라가 보냈지만, 사전에 당첨 유무를 아는건 불가능해서 미리 알리바이를 만들 수도 없고요.
다카기 경부는 연하장에 소인이 없는 점(연하장은 12월 22일까지 접수분은 1월 1일 도착 보장이라 소인이 찍히지 않음)에 주목해서, 빌견된 당첨 연하장은 가사하라가 사건 당시에 가지고 간 것이라고 추리합니다. 당첨 연하장을 가사하라가 미리 확보할 수 있었던 건 증권회사가 직원에게 연속 번호의 연하장 500장을 주는 전통 때문이었습니다. 연하장 추첨에서 최하등 우표는 100장당 반드시 3장 당첨되므로, 가사하라는 보내지 않고 남겨 둔 100장의 연속 번호 연하장만 있어도 반드시 당첨 엽서를 확보할 수 있었지요. 즉 가사하라는 당첨 번호 발표 후 보관 중이던 연하장 중 당첨된 것을 고른 뒤, 사건 당일 피해자 집에 들고 가서 피해자를 살해하고 집에 있던 자기가 보낸 진짜 연하장과 바꿔치기했던 겁니다. 상품은 따로 교환해서 시체를 발견하러 갔을 때 몰래 피해자 주머니에 넣었고요.

이렇게 일본의 연하장 풍습과 증권 회사의 전통 등을 잘 결합하여 만들어 낸, 최근 본 작품 중에서도 손에 꼽을 만큼 멋진 트릭입니다. 완벽한 알리바이였지만, 가사하라가 원래 피해자에게 보냈던 연하장이 드러나면서 범행이 밝혀지는 결말까지 깔끔합니다.

피해자와 가사하라의 육체 관계와 같은 불필요한 설정과 진짜 연하장이 발견되는건 순전히 운이었다는 단점은 있지만, 이 정도면 별점 4점도 충분한 수준입니다.

"검은 테두리의 사진"은 오사카로 출장간 범인이 전날 사진으로 찍어 두었던 방송이 오사카에서는 그날 방송된다는걸 알고난 뒤, 전날 찍었던 사진을 알리바이에 이용한다는 도서 추리물입니다.
사실 트릭이 대단하다고 보기는 어렵고, 우연과 운이 지나치게 많이 좌우되는 전개도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듭니다. 도쿄와 오사카에서는 같은 방송이라도 방송하는 채널이 다른데, 경찰이 이를 눈치채고 체포한다는 결말도 설득력이 약했고요. 앞서 범인 오사와는 '화면만 사진에 담았다'고 분명히 말하고 있으니까요. 채널 다이얼이 어떻게 보였다는건지 모르겠습니다. 게다가 결말에서 호텔 종업원이 오사와의 알리바이를 깨는 증언을 했다고 증언했다니, 사진 따위는 아무런 증거가 될 수 없습니다. 사실 사진은 다른 사람이 찍어줄 수도 있으니, 애초에 그리 탄탄한 증거라고 하기는 어렵지요.

그래도 TV를 찍은 사진을 알리바이에 사용한다는 설정만큼은 독특해서 눈길이 갑니다. 현재 시점에서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아날로그 방식인 덕분입니다. 시대를 초월하지는 못했지만, 시대상을 잘 반영한건 분명합니다.

"죽은 자의 손바닥"에서는 셀로판지를 이용하여 이미 죽은 사람의 손바닥 도장을 찍는 트릭이 나옵니다. 그러나 이 작품은 위의 두 편 보다는 별로에요. 범죄물, 수사물, 추리물의 모든 측면에서 기대 이하거든요. 경찰의 추리는 근거없는 첫인상에 기반하고 있고, 범행 방법도 제대로 설명되지 않는 탓입니다.

그런데 위의 세 작품을 제외하면 다른 작품은 모두 추리물로 보기도 어렵고, 내용도 그냥저냥합니다.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들어요. 간략하게 소개드리자면 아래와 같습니다.

"잔혹한 여로"는 일종의 범죄 반전물입니다. 진범이 드러난 뒤 진범마저 개미지옥에 빠진다는 마지막 부분은 꽤 그럴 듯 합니다. "50퍼센트의 행복"은 오래 전 친자 감정 방식에 대한 상세한 소개가 볼만했던 치정 드라마이고요. 그러나 두 작품 모두 지금 시점에 읽기에는 너무 뻔합니다. 결말도 안이하고요.

"고독한 증언"은 일본항공 123편 추락 사고를 떠오르게 만드는 드라마입니다. 비행기 추락 사고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생존자 가사이 나오미의 증언을 회사측, 유족측이 제각각 제멋대로 유리하게 이용하려 한다는 내용이지요.
설정은 나쁘지 않지만 나오미의 고뇌를 심도깊게 다루지도 못했고, 밝혀진 진상 - 폭탄 테러 - 도 설득력이 약하며, 가사이 나오미가 결국 자고 있었다며 입을 다무는 결말도 영 아닌 탓에 점수를 주기는 어렵습니다.

"살의의 축제"는 오래전 살인 사건의 범인이 공소 시효가 지난 뒤, 돈으로 진범을 날조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동기가 되는 살인범으로 몰린 사람은 가족마저도 영원히 떳떳하게 살아갈 수 없는 일본의 분위기 묘사, 그리고 당시 범인과 유족 측 인물들이 당시 상황을 복잡하게 밝히는 결말은 꽤 인상적입니다.
그러나 이 작품은 이미 국내에 소개된 걸 읽은 바람에 다소 김이 빠진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전체 평균 별점은 2점입니다만, 잘 모르는 작가의 진면모를 어느 정도 느낄 수 있었다는 점에서는 좋은 독서였습니다. "공포의 연하장"만큼은 국내에 소개되면 좋겠습니다.

2021/06/13

나이브스 아웃 (2019) - 라이언 존슨 : 별점 3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베스트셀러 작가 할런 트롬비가 85세 생일 파티 다음 날, 칼로 목이 베어진 채로 가정부에게 발견되었다. 누군가 유명 탐정 브누아 블랑에게 사건을 의뢰했기 때문에 블랑이 수사에 함께 했다. 하지만 모든건 할런의 간병 간호사 마르타의 실수 때문에 할런이 꾸민 것이었고, 마르타에게 전 재산을 상속한다는 할런의 유서가 공개되면서 사건은 마르타가 통제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는데....

웰 메이드 추리 영화로 유명한 작품이지요. 넷플릭스로 감상하였습니다.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는 잘 알 수 있었습니다. 정말 잘 만든 본격 추리물이거든요. 구조도 정교하고, 복선과 단서 제공도 공정한 덕분입니다.

마르타가 실수로 할런에게 모르핀을 주사한 뒤, 할런이 그 실수를 덮기 위해 자살하고 그녀는 범인으로 몰리지 않게끔 수를 쓴게 초반에 등장하는 탓에 도서 추리물로 보였습니다. 자살로 위장하기는 했지만, 실수와 단서가 드러나자 그걸 덮고자 하는 마르타의 필사적인 노력이 이어지니까요. 하지만 이 모든건 유산을 받지 못하게 될 위기에 처하자, 마르타를 살인범으로 몰려고 했던 할런의 손자 휴의 작전이었다는 결말은 감탄을 자아냅니다. 증거는 빈약하지만, 앞서의 이런저런 사소한 대사와 휴의 행동으로 정교하게 짜맞추고 있을 뿐더러, 휴의 작전이 실패하고 마는 결말까지 완벽했어요. 실패한 결정적인 이유가 마르타의 '선한 마음' 때문이었다는 것도 아주 신선했던 발상이고요. 또 부족했던 증거는 휴의 자백으로 채워지는데, 이 장면에서 마르타가 거짓말을 하면 토한다는 특징을 활용하여 통쾌한 맛을 전해주는 것도 좋았습니다. 제목 그대로 휴가 칼을 뽑아 들지만, 가짜 칼이어서 마르타 카브레라가 살아남고 결국 재산을 모두 손에 넣는다는 완벽한 해피엔딩도 제 취향이었습니다.

본격 추리물에서 빼 놓을 수 없는 명탐정과 추리쇼도 확실히 선 보여 줍니다. 사실 명탐정은 현재극에서 제대로 그려내기 힘듭니다. 수사 기법이 발달한 탓입니다. 그래서 순수한 '추리' 영역으로만 승부해야 하는데, 이 작품에서의 브누아 블랑의 중반부까지는 실망스러웠습니다. 피아노 건반을 하나씩 치는 첫 등장부터, 온갖 현란한 대사를 떠벌이는 모습은 뻔한 과거 고전 시대 명탐정의 과장된 모습을 답습하는 느낌이었거든요. 추리라는걸 별로 보여주지도 않고요. 또 다니엘 크레이그라는 배우도 지적인 명탐정역에 별로 잘 어울려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추리쇼 장면에서 이런 실망감을 모두 날려보내 줍니다. 멋진 추리력을 잘 드러내는 것은 물론이고, 샌님스러운 모습이 아니라 힘과 행동력이 느껴지는 모습이 좋았던 덕분입니다. 기생충같은 가족들 앞에서 한 푼도 받지 못할거라고 시원하게 일갈하는 모습, 경찰에게 붙들린 휴 앞에서 유산은 모두 할런이 이룬 것이라고 비웃는 모습 등은 과거 명탐정들에게는 보기 힘든 멋진 퍼포먼스였어요.

이런 류의 영화에서 많이 보는, 유명 배우들로 이루어진 화려한 캐스팅도 볼거리더군요. 제임스 본드 다니엘 크레이그를 비롯하여 폰 트랩 대령으로 유명한 크리스토퍼 플로머 (아직 살아 계시다니!), 왕년의 호러 퀸 제이미 리 커티스, 마이애미 바이스 돈 존슨, 캡틴 아메리카 크리스 에반스 등이 관객을 즐겁게 해 줍니다.

하지만 단점도 있습니다. 2시간이 훌쩍 넘는 긴 상영 시간은 너무 길었어요. 특히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아버지의 돈만 노리고, 그 돈에만 기대어 사는 트롬비 가족들의 모습은 뻔하고 진부했을 뿐 아니라, 이에 대한 설명도 지나쳤습니다. 이런저런 풍자와 조롱의 대상으로 여긴 듯 한데, 그런 장치까지 넣을 필요는 없었지요. 가족 수를 줄인다던가, 무능함과 불성실한 모습에 대한 설명을 줄였더라면 훨씬 좋았을겁니다. 또 휴가 나쁜 짓을 했다는 증거를 잡은 프랜이 그를 불러낸 뒤 무력하게 살해당한다는건 설득력이 떨어졌습니다. 협박으로 돈을 뜯어내려는게 아니라, 비난이 목적이었다면 더더욱 그러하지요. 범인일지도 모르는 사람을 만나 증거를 들이대는데 아무런 대책도 하지 않는다? 현대물이라면 휴대폰을 이용한 녹음이라던가, CCTV 등 다양한 대책이 가능했을텐데, 납득하기 어렵지요.

그래도 오랫만에 재미있는 추리 영화를 감상했네요. 제 별점은 3점입니다. 고전 본격 추리물을 좋아하시는 분들께 추천드리는 바입니다. 브누아 블랑이 등장하는 다음 작품도 보고 싶네요.

2008/12/11

새비지 가든 - 마크 밀스 / 강수정 : 별점 3점

새비지 가든 - 6점
마크 밀스 지음, 강수정 옮김/비채

영국 대학생 애덤은 지도교수 크리스핀으로부터 한가지 제안을 받는다. 제안의 내용은 교수의 오랜 지인인 이탈리아 투스카니의 명가 도치가문의 여주인 도치 여사 저택에 있는 16세기에 건설된 정원에 대한 연구를 해 보는 것. 수락한 애덤은 다양한 조사 끝에 페데리코가 사랑하는 아내 플로라를 기리기 위해 건설되었다는 정원의 진짜 의미를 서서히 깨닫게 되며, 또한 혼란스러웠던 2차대전의 막판에 도치 가문에서 벌어진 총격 사건의 진상 역시 파헤치게 된다.

"하우미스터리"의 이벤트에 응모해 당첨된 소설입니다. 일단 이 자리를 빌어 하우미스터리 관계자 분들과 도서출판 비채 관계자 분들께 먼저 감사드립니다.

그나저나... 이 소설의 쟝르를 뭐라고 해야 할까요. 역사 추리물이라고 하기에는 허구의 가문과 허구의 역사, 허구의 정원이 주제이기에 썩 타당해 보이지는 않고, 정통 추리물이라고 하기에는 단서의 공정한 제공이 부족하여 별로 어울리지 않네요. 솔직히 추리물로서는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든 작품이었습니다. 구태여 정의내리자면 추리물의 성격을 띈 대학생의 성장기 정도인 것 같네요. 그만큼 애덤이라는 주인공이 서서히 자기 자신의 능력과 타인에 대한 여러가지를 깨달아 가는 과정이 이야기의 가장 큰 핵심 요소이니까요.

그럼 좀 더 자세히 들여다 보자면, 이 작품의 두가지 주요 소재 중 먼저 정원 관련 이야기를 해야겠죠? 제목 그대로 "새비지 가든" 이라 할 수 있는 이 정원에 대한 묘사는 대단하고 치밀하며, 단테의 "신곡" 과 매치시켜 진상을 드러내게끔하는 전개는 탁월합니다. 역사속에 감추어진 미스테리를 밝혀내는 과정에 수반되는 지적 흥분이랄까, 하여간 그런 요소는 확실히 잘 짚고 있어요.
그러나 정원의 디테일이 생각만큼 머리속에 잘 드러나지 않고, 단테의 신곡 역시 그다지 친숙한 소재가 아니기에 뭔가 무릎을 칠만한 획기적인 무언가를 기대하기는 어렵더군요. 신곡을 제가 제대로 안 읽은 탓이 제일 크겠지만 그만큼 국내에는 적합한 소재가 아니라는 이유도 있겠죠. 그리고 정원에 대한 최소한의 도판이나 약도 정도로 설명해주는 센스가 좀 아쉬웠어요. 진상이라는 것이 과연 4세기 동안 아무도 깨닫지 못할 만큼 잘 숨겨져 있냐 하면 그건 또 아니지 않나 싶기도 했고요.

두번째 핵심 사건인 도치 여사의 장남 에밀리오의 총기 피살 사건은 정원 이야기에서 서서히 확장되어 가면서 의외로 독자를 끌어들이는 솜씨가 놀라울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이 쪽은 "정원"에 비한다면 더더욱 알맹이 없는, 추리물로 보기에는 너무나 어이없는 수준이라 뭐라 할 말이 없습니다... 이 사건의 진상보다는 누구나 눈치챌 수 있지만 범인이 스스로를 드러내게끔 하기 위해 벌인 모종의 공작(?) 쪽이 차라리 더 흥미진진하더군요. 아주 제대로 주객전도가 된 느낌이랄까요? 가장 큰 트릭이라고 할 만한 것이 과거 사진을 보고 "멘델의 법칙"을 통해 유추하는 가계에 대한 진상.. 이라는 것이니 말 다했죠.

그래도 400여페이지나 되는 대 장편임에도 불구하고 치밀한 묘사, 잘 짜여진 구성 등으로 재미있게 읽을 수는 있었습니다. 캐릭터들도 확실하게 잘 살아있고 무엇보다도 16세기 정원에 대한 묘사가 그만큼 뛰어났으니까요. 게다가 제가 좋아하는 아주아주 완벽한 해피엔딩이라는 것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추리물"을 기대한다면 아무래도 실망이 더 앞서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긴 하지만요. 별점을 주자면 앞서 말한 이유들 때문에 추리물로서의 점수보다는 순수한 재미 측면에서 3점주겠습니다. 돈을 주고 구입했더라면 좀 아깝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네요

2021/12/31

2021 내 블로그 리뷰 총 결산

열 여덟번째 블로그 리뷰 총 결산입니다. 블로그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나이라니 감개무량합니다. 다 컸으니 이제 돈을 좀 벌어 와야 할 텐데 말이지요.

하여튼, 올해도 작년과 마찬가지로 코로나 사태 장기화 탓에 많은 책을 읽었습니다. 그러나 작년보다는 줄었어요. 작년에는 133권을 읽었는데, 올해는 추리 / 호러 장르문학 57 (77)권, 기타 장르문학 3 (4)권, 역사서 17 (9)권, 디자인 or 스터디 1 (4), Food 및 구루메 관련 도서 15 (25)권, 기타 도서 24 (14)권으로 다 합쳐서 117권을 읽었으니까요. 이유는 백신 접종과 위드코로나 정책 덕분에 다른 활동으로 보낸 여가 시간이 늘었던 탓입니다. 올림픽도 열심히 관전했고요. 거기에 더해 작년에는 '추리 소설 1,000권 읽기'라는 개인적인 큰 목표 달성을 위해 더 열심히 달리기도 했었지요. 여러모로 작년이 역대급이었던 셈으로, 당분간은 작년처럼 책을 많이 읽는 해는 오지 않을거라 생각되네요. 그래도 최소한의 목표인 100권은 훌쩍 넘겼으니 만족합니다.

그럼 언제나처럼 각 항목별 베스트 - 워스트를 소개해드립니다.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올해 발표된 작품 기준이 아니라 제가 올 한해 보고 읽은 것들 기준입니다.

2021년 베스트 추리소설 : 

"하드보일드 센티멘털리티" 
별점 4.5점! 20세기 미국 범죄 소설, 그 중에서도 하드보일드 장르의 흐름을 미국 역사 흐름과 비교하여 분석하는 문학사 서적. 상세 리뷰는 링크 참고하시길.

"나는 언제나 옳다" 
별점 4점! 복잡한 복합 장르 구성을 재미있게 풀어낸 작품. 단편 분량인 만큼 아직 읽지 않으신 분들께 강력하게 추천드립니다.

2021년 워스트 추리소설 :

"ON 온"
올해의 워스트 후보작은 "그녀는 증인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서술트릭의 모든 것",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밀실 대도감", "가면병동", "최후의 일격, "범죄 캘린더"와"On 온"의 7편이나 됩니다. 모두 별점 1.5점짜리였지요. 거장 엘러리 퀸의 작품이 두 편이나 포함되어 있는게 놀라운데, 한 편은 나이 탓에, 또 한 편은 양산 모드로 쓰여졌기에 어쩔 수 없었던 결과물이라 생각됩니다. 

그래도 "최후의 일격"은 괜찮은 발상의 트릭이 사용되기는 했고, 단편집 "범죄 캘린더"는 별점 2~2.5점짜리 작품이 수록되어 있어서 워스트 급은 아닙니다.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밀실 대도감"은 책 자체 내용 문제보다는 다른 문제로 인한 감점 요인이 더 컸고요. 단편집 "서술트릭의 모든 것"은 "범죄 캘린더"와 같은 이유로 제외하면, 진짜 워스트 후보작은 "그녀는 증인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와 "가면병동", "On 온"의 세 편이 남습니다. 

이 중 올해의 워스트로는 "On 온"을 꼽습니다. 유치한 설정, 합리적이지 못한 전개, 스테레오 타입의 뻔한 주인공들이 어우러진 싸구려 스릴러니까요. 다른 두 편은 약간이나마 추리적인 요소가 들어갔다는 점에서 그나마 "On 온"보다는 조금 나았습니다. 물론 도긴개긴입니다만....

2021년 베스트 / 워스트 기타 장르문학 : 

올해 기타 장르문학도 3권 밖에 읽지 않아서 뽑기가 어렵네요. 재미만큼은 확실했던 별점 3점의 "사라진 세계"가 베스트였어요. 워스트는 따로 뽑지 않겠습니다.

2021년 베스트 역사 도서 :

"나는 황국신민이로소이다"
별점 5점! 역사 바로 세우기 측면에서 모든 분들이 꼭 읽었으면 하는 책입니다. "국보, 역사의 명장면을 담다"와 "영어 조선을 깨우다 1"도 별점 4점을 받은 좋은 책이었는데, 아쉽게도 탈락했네요.

2021년 워스트 역사 도서 : 

"지도로 읽는다 리스타트 한국사 도감"
별점 1점. 편협한 개인 의견을 잔뜩 투입해서 불쾌하기 짝이 없었던, 그냥 '나쁜' 책입니다.

2021년 베스트 / 워스트 디자인 or Study :

딱 한 권 밖에 읽지 않아서, 올해는 평가할게 없네요. 공부가 부족했던 한해네요....

2021년 베스트 Food / 구루메 도서 : 

"홍차 애호가의 보물상자"
올해 이 쪽 분야 책들은 다 고만고만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카레로 보는 인도 문화", "경양식집에서", "홍차 애호가의 보물상자", "음식으로 읽는 중국사", "가스트로노미"의 5권이 별점 3점을 받았습니다. 이 중 재미와 자료적인 가치, 책의 완성도 등 모든 면을 고려하여 "홍차 애호가의 보물상자"를 베스트로 꼽겠습니다. 1부만 한정하면 별점 4점 이상도 충분했던 책이니까요.

2021년 워스트 Food / 구루메 도서 : 

올해는 2점 이하의 별점이 없어서, 워스트는 따로 뽑지 않습니다.

2021년 베스트 기타 도서 :

"이상한 나라의 언어 씨 이야기"
별점 4점을 받은 책은 "1달러의 세계 경제 여행", "이상한 나라의 언어 씨 이야기", "n분의 1의 함정"의 세 권이었습니다. 다 좋은 책이었지만, 이 중 재미에 더해 제 전공 분야인 커뮤니케이션과 상호 작용에 대해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만들어 준 "이상한 나라의 언어 씨 이야기"를 올해의 베스트로 꼽습니다.

2021년 워스트 기타 도서 : 

"과학자는 전쟁에서 무엇을 했나"
별점 1.5점을 받은 올해의 워스트 후보작은 "재미있는 식물 산책 도감", "과학자는 전쟁에서 무엇을 했나", "만화로 보는 99가지 발명품 이야기"의 3권입니다. 이 중 사람 열받게 만드는 가소로운 자기 주장을 담고 있는 "과학자는 전쟁에서 무엇을 했나"가 올해의 워스트입니다.

2021년 베스트 Movie : 

"나이브스 아웃"
훌륭하게 현대에 되살린 본격 추리물! 별점 3점.

2021년 워스트 Movie : 

"철권을 가진 사나이"
황당무계하고 유치했던, 심지어 액션마저 별 볼일 없었던 '가짜' 무협 영화.

2021년 베스트 Comic - 추리 or 호러 : 

전체적인 별점은 고만고만해서 베스트랄건 없네요. 에피소드 기준으로는 "Q.E.D iff 증명종료 14" 수록작 "1억엔과 여행하는 남자"가 오랫만에 별점 4점짜리 에피소드였습니다.

2021년 워스트 Comic - 추리 or 호러 : 

"Q.E.D iff 증명종료 16"
수록작 3편 중 2편이 별점 1.5점, 1편이 별점 1점을 받은 워스트 오브 워스트. 그 외 "씨엠비 CMB 박물관 사건목록 43"의 "앙숙"도 별점 1점짜리 망작이었습니다. 별점 1.5점 짜리 에피소드들은 언급하기도 힘들만큼 숱하게 있었고요. 추리 만화 분야는 영 실망스러웠던 한해였네요.

2021년 베스트 Comic - 기타 : 

"그리고, 또 그리고 1~5"
별점 4점짜리 책은 이 책 외에도 "피너츠 완전판 19 : 1987~1988"이 있었습니다. 이 책을 베스트로 꼽은 이유는 재미와 감동에 더해 미대 졸업생인 저에게 많은걸 생각하게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고요. 하여간, 극히 일부의 예외는 있지만 만화가가 그린 자기 이야기는 무조건 최고에요.

2020년 워스트 Comic - 기타 : 

최저 별점이 2점이라서, 워스트는 따로 꼽지 않겠습니다.

결산평 : 

이상으로 2021년 블로그 결산을 마칩니다. 올 한해는 저 개인적으로는 큰 의미가 있는 한해였어요. 인생의 큰 목표 중 하나였던 '추리 소설 1,000권 읽고 리뷰 쓰기'를 완료했기 때문이거든요. 저도 하루하루, 한달한달, 한해한해가 더욱 소중한 나이가 되었는데, 2022년에도 저 개인적으로 내세울 수 있고 자부심을 가질만한 한 해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제 블로그를 찾아주신 모든 분들께서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의미있고 가치있는 2022년 되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감사했고, 또 감사드립니다!

2020 내 블로그 리뷰 총 결산

2009/12/30

2009 내 블로그 리뷰 총결산

여섯번째 결산 보고입니다. 6년차에 접어들었군요. 12월은 아직 남아있지만 남은 기간 동안 책을 더 읽을 일은 없을 것 같아 포스팅올립니다.

올해는 만화와 잡지류 제외하고 총 90권을 읽었네요.
분포는 1월달 7권 / 2월달 9권 / 3월달 9권 / 4월달 8권 / 5월달 8권 / 6월달 9권 / 7월달 11권 / 8월달 6권 / 9월달 3권 / 10월달 6권 / 11월달 7권 / 12월달 7권인데 9월달에 굉장히 부진한 것이 눈에 뜨입니다. 프로야구 시즌 막판이라 야구에 너무 집중한 탓이죠....9월달에 몇권만 더 읽었어도 100권 채울 수 있었을것 같아 너무 아쉽네요. 또 90권 중 추리 / 호러관련 독서가 무려 60권이라 지나칠 정도로 장르편식이 심했던 것도 반성해야겠습니다.
그래도 작년의 82권보다는 독서량이 약간이나마 증가했다는 사실에 위안을 삼아야겠네요.

그럼 결산 들어갑니다~ 언제나처럼 제 블로그에 올린 리뷰들 중에서만 선정했습니다.


2009년 베스트 추리소설 :
경성탐정록 - 한동진
단지 재미로서만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너무나 의미있는 책이기에 반드시 꼽고 싶습니다.
내년도 베스트에는 경성탐정록 2편이 선정될 수 있으면 좋을텐데 어떻게 될지 잘 모르겠네요.


2009년 워스트 추리소설 : 별점 1점짜리가 올해에는 두작품이네요.
귀를 막고 밤을 달리다
블로그에 올렸던 평을 한줄로 요약하자면, 추리물도 아니고 스릴러도 아니고 호러도 아닌 애매모호함에 더불어 제가 싫어하는 잔인한 고어적 묘사 등 좋은 면을 도저히 찾아보기 어려웠던 작품.

"기세이혼센 살인사건"
블로그에 올렸던 평을 한줄로 요약하자면, 엔간한 졸작은 수작으로 보일만큼 추리와 설정, 내용 모두 별로였던 작품.


2009년 베스트 장르 문학 :
앨저넌에게 꽃을
블로그에 책 리뷰를 올린 6년 동안에 처음으로 (아마도?) 나온 별점 5점짜리 작품. 뭐 더 말이 필요 없죠.


2009년 워스트 장르 문학 :
도서실의 바다
수록 작품 중 좋은 작품도 있었고 별 2점으로 워스트라고 하면 좀 섭섭하겠지만... 예고편을 돈받고 파는 행태는 참기 힘들기에 선정합니다.


2009 베스트 역사 관련 도서 :
별난 전쟁, 특별한 작전
재미와 지식전달 모두 만점에 가까운 책입니다. 별점은 4점입니다.
(그 외에는 다 고만고만해서 특별한 워스트는 없습니다)


2009년 베스트 전공관련 / 스터디 도서 :
"초난감기업의 조건"
올해 전공관련하여 읽은건 딱 한권! 하지만 별 4점짜리인 알짜배기였습니다.


2009년 베스트 기타 도서 :
"야구란 무엇인가"
굉장히 특이한 케이스의 별 5점짜리 도서입니다. 야구를 좋아한다면 별 5점짜리 걸작 도서죠. 야구를 싫어한다면 별점 1점의 값어치도 없을테지만... 그나저나 올해는 유래없이 별 5점짜리 책이 두권이나 되는군요.

2009년 워스트 기타 도서 :
2012 아마겟돈인가, 제 2의 에덴인가?
아주아주 약간의 자료적 가치 외에는 건질 요소가 전무한 책입니다. 읽은 시간이 아까울 정도였어요.


2009 베스트 추리 / 호러 만화 :
"환영박람회 2" 와 "QED 33권" 동시수상
단편 옴니버스 두 작품이 별점 4점의 영광을 안았습니다! QED는 무려 33권임에도 여전한 재미를 준다는 것이 정말 대단하네요. 환영박람회도 작화와 내용 모두 안정적인 좋은 작품이었고요.


2009 워스트 추리 / 호러 만화 :

"탐정이 되는 893가지 방법 3권"
이론의 여지가 없는 최악의 만화. 쓰레기라는 말이 더 잘 어울릴 단지 시리즈를 매듭짓기 위한 어처구니 없는 완결편. 차라리 안 나왔더라면 시리즈 전체가 욕먹지도 않았을텐데 앞작품의 좋은 인상마저 쌈싸먹은 망작입니다.


2009 베스트 영화 :
슬럼독 밀리어네어 :
아카데미의 선택이 옳았음을 증명한 올해 최고의 영화!
(워스트는 별 2점짜리가 많기에 생략합니다)


결산평 :

일단 추리 소설 쪽에서는 많은 고전과 명작들이 많이 소개되어 참으로 풍부한 한해가 아니었나 싶네요. 하지만 널리 알려진 고전임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작품 자체는 그닥인 작품들이 많다는 것이 좀 의외였달까요? 그래도 추리소설 독자로는 무척이나 즐거운 한해였던 것은 분명합니다. 기타 다른 도서들은 많이 읽지는 않았지만 역시나 새롭게 접한 작가들의 좋은 책이 많았던 것 같네요.

내년에도 많은 책들과 함께 하는 한해가 되었으면 합니다.

이상으로 올해 결산을 마칩니다~

2016/03/22

추억의 시간을 수리합니다 - 다니 미즈에 / 김해용 : 별점 1점

추억의 시간을 수리합니다 - 2점
다니 미즈에 지음, 김해용 옮김/예담

헤어 디자이너 니시나 아카리는 연인과 헤어진 뒤, 어렸을 때 잠시 머물던 "헤어살롱 유이" 건물을 임대하여 살기 시작했다.
쇠락해가는 상점가지만 상점가 회장이자 시계방 주인인 슈, 근처 쓰쿠모 신사 식구인 다이치와 친해지며 아카리는 새로운 삶을 맞이하는데....

"추억이 필요한 건 살아 있는 인간뿐이잖아?" - 다이치. 젊은 아가씨가 유령이 아닐까 의심한 아카리의 말을 반박하며 하는 말.

좋은 리뷰로 존경해 마지않는 LionHeart님의 리뷰를 통해 알게 된 작품입니다. LionHeart님의 평도 썩 좋지는 않았지만 이상하게 기억에 남아 있어서 읽게 되었네요.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아주 실망스러웠습니다. 책의 완성도를 떠나 "미스터리"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책 뒷표지에 "청춘 연애 미스터리"라고 소개되고 있으며 인터넷 서점 알라딘의 도서 분류도 추리/미스터리 장르로 되어 있는데 절대로! 아닙니다. 이건 그냥 청춘 연애물이에요! 수록된 5편의 단편 중 추리물적인 성향을 지녔다고 볼 수 있는 것은 첫 번째 "사건 1 낡은 오르골의 주인"에 불과합니다. 그나마도 완전치 않고요.

게다가 수록작 대부분이 약간의 판타지스러운 설정과 묘사를 통해 일상 속의 소박한 기적을 그리는데 이 역시 너무나 제 취향이 아니었고요. 

그래서 제 별점은 1점입니다. 별점이 쓰레기급인 이유는 추리물이라고 홍보한 괘씸한 마케팅 탓이 더 큽니다. 그냥 연애물로 포장했더라면 이보다는 좋은 점수였을 거에요. 추리물이라고 해서 저에게 시간 낭비를 하게 만든건 용서가 안되네요. 추리물 애호가라면 쳐다보시지도 마시길 바랍니다.

덧붙이자면, LionHeart님 말대로 1권으로 이야기가 마무리되는데도 불구하고 후속권이 계속 나온 이유도 잘 모르겠군요. 당연히 저는 더 알고 싶지도 않고, 더 읽어볼 생각 역시 없습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사건 1 낡은 오르골의 주인"

다이치가 신사에서 주워온 오르골 속 사진에 대한 수수께끼(?)를 풀어낸다는 내용입니다. 

사진을 찍어 준 사진사와 사진을 찍은 장소 (옆 동네 사진관)를 연결시켜 숨겨진 진상을 추리하는 것 자체는 괜찮습니다.

문제는 진상의 진위 여부는 결국 밝혀지지 않는 슈의 추리일 뿐이라는 겁니다. 이건 물론 일상계 작품 대부분이 지닌 문제이긴 합니다만... 그리고 오래된 "고양이"에 대한 설정은 불필요했습니다. 현실적이지도 않았고요.

그나마 수록작 중 가장 추리물에 가깝긴 하지만 좋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사건 2 못 다한 고백, 오렌지색 원피스의 비밀"

상점가를 떠나게 된 양잠점 주인 하루에 씨의 부탁으로 아카리가 오렌지색 드레스를 입고 엔니치날 (신사 제사) 슈와 데이트를 한다는 내용입니다. 수십 년 전 하루에 씨가 마음에 두고 있던 남자와 엔니치날 시간을 함께 하다가 사소한 이유로 틀어진 뒤, 다시는 만나지 못하게 된 과거에 대한 미련 때문이었지요.

아카리와 슈 커플이 당시 남자의 마음을 알아내어 하루에 씨에게 전해주게 된다는 훈훈한 결말은 나쁘지 않았습니다. 수십 년의 시간을 초월하여 받지 못한 남자의 마음을 받는다는 애틋함이 잘 전해졌거든요.

하지만 언제든 드레스 주머니만 뒤져보았어도 쉽게 끝났을 내용이라 추리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아카리와 슈와의 인연을 만들기 위한 이벤트용 이야기로밖에는 보이지 않더군요. 별점은 1.5점입니다.

"사건 3 행방불명 모녀와 아기 돼지 인형"

15년 전 딸이 행방불명 되었다는 중년 부인, 그리고 기묘한 복장의 20대 여성이 오래 전 유행했던 아기 돼지 인형을 찾는다는 이야기입니다.

중년 부인과 20대 여성이 모녀 지간이라는 것 정도만이 수수께끼랄까요? 하지만 중년 부인이 유령인지 아닌지를 애매하게 처리한 이유는 이해 불가입니다. 아울러 아카리는 인형만 찾아서 주면 되었습니다. 나머지 사정은 둘이 만나서 이야기하는게 맞고요. 즉, 이야기 자체가 쓸데없는 오지랖의 발로에 불과합니다. 별점은 1점입니다.

"사건 4 슈지 이야기 : 빛을 잃은 시계사"

슈의 옛 연인이라는 마유코가 찾아오고, 그녀를 통해 아카리는 슈와 형, 그리고 마유코에 얽힌 오래전 사건에 대해 알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마침내 슈가 고백을 하는 것이 이야기의 핵심입니다. 슈가 헤어살롱 유이의 손녀 시계를 고쳐준 것을 계기로 시계사를 꿈꾸게 되었다는 과거사와 함께요. 

약간 드라마틱한 과거사가 등장하기는 하지만 추리물이 아니기에 점수를 줄 만한 부분이 없었습니다. 별점은 1점입니다.

"사건 5 아카리 이야기 : 그해 봄의 비밀"

전편에서 바로 이어지는 이야기로 아카리가 자신이 헤어살롱 유이의 친손녀가 아니라는 이유로 슈를 밀쳐내지만, 마지막에 유이 할머니의 등장으로 진상을 알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결국 두 연인이 사귀게 되는 것으로 끝납니다.

아무리 어린 시절의 기억이라지만 이렇게까지 과거를 잊어버린다는 게 말이 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사랑이 이루어지는 과정에 드라마를 부여하려 무리수를 둔 느낌이에요. 죽은 줄 알았던 유이 할머니의 깜짝 등장 역시 공정하지 못한 깜짝쇼로 보이고요. 그래서 별점은 1점입니다.

2008/04/06

네 탓이야 - 와카타케 나나미 / 권영주 : 별점 3점

 

네 탓이야 - 6점
와카타케 나나미 지음, 권영주 옮김/북폴리오

캬캬. 결혼하고 간만에 몇만원 이상되는 추리소설을 질렀습니다. 첫번째로 읽은 것은 바로 이 책 "네 탓이야" 입니다. 이전에 "나의 미스터리한 일상"을 재미있게 읽었었고 제가 좋아하는 단편집이기도 하니 안 살 이유가 없었죠. 책이 집에 도착하자마자 읽어 보았습니다.

일상계라고 생각했던 작가의 작풍과는 다르게 정통 추리 단편의 모양새를 많이 가지고 있다는 점, 그리고 탐정역으로 두명의 인물, 프리터인 하무라 아키라와 시경 형사과 경위인 고바야시 순타로 2명이 번갈아 등장하여 사건을 해결한다는 독특한 전개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특히 하무라 편은 하무라 1인칭으로 사건 발생 후 단서를 추적하여 밝혀내는 정통 트릭물, 고바야시 경위 편은 범인 1인칭으로 도서 추리물에 가깝게 표현하고 있다는 점이 아주 새롭게 느껴졌습니다.
또 작가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인칭과 시점, 시공간의 변경이 대부분의 작품에서 보이는 것도 특징입니다. 물론 너무 남용되는 느낌이 있기에 좀 거슬리는 부분도 있고 "나의 미스터리한 일상" 에서도 어느정도 써먹은 것이긴 합니다만...

그러나 물론 정통 트릭물로 보기에는 트릭들이 좀 약하긴 했습니다. 전개도 무척 쉬운 편이고요. 읽어나가면서 "범인이 누굴까" 라는 고민을 별로 하지 않게 만드는 작품이랄까요? 일상물과 정통물의 중간 정도에 위치한 "이해하기 쉬우면서도 조금은 섬뜩한" 작품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겠습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추리물로의 완성도는 약합니다. 
신경날카로운 노처녀와 약간 독특하고 순박해 보이는 형사는 전형적인 스테레오 타입이라서 징글징글한 묘사 외에 신선한 맛은 부족했고요.

그래도 대부분의 작품이 의표를 찌르는 맛과 약간의 섬뜩한 느낌, 그리고 반전이 있어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추리적으로는 작품마다 편차가 제법 있고 추리물로 보기에는 완전히 에러인 작품도 있기에 정통 추리 팬이라면 약간 애매한 작품이긴 할 것 같네요. 뭐 시대가 변한만큼 추리 단편의 속성도 변한 것이겠죠. 빠른 전개와 흡입력 있는 묘사는 추리팬 뿐만 아니라 일반 독자들에게도 꽤 먹힐거 같기도 하고요. 단, 일반 독자에게는 "나의 미스터리한 일상"을 더 권하고 싶습니다.

개인적인 베스트는 정통 추리적인 요소를 따진다면 "바다 속"과 "살인공작", 작가 특유의 시점과 공간의 변경을 느낄 수 있는 이색작으로는 "재생"을 추천합니다.

첫번째 이야기 "바다 속"
하무라 아키라 이야기. 바다가 내다보이는 고급 호텔로 하무라 아키라는 대학 선배 엔도의 부름을 받고 달려간다. 불려간 이유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신인 작가 아카쓰키 부이치의 실종과 관련된 핏자국을 지우는 일. 다양한 프리타 생활로 청소쪽도 능통한 하무라는 불만을 가지면서도 핏자국을 지운 뒤, 스스로 사건의 진상을 추리해 낸다.
작품집의 시작과 캐릭터의 소개를 알리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작품으로 무대공간의 독특함, 그리고 시작과 끝이 인상적으로 연결되는 구조가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사건의 진상은 독자가 예상할 수 있는 범위안에 있다는, 어떻게 보면 좀 쉬운 이야기이긴 하지만 설정과 설득력있는 전개 덕분에 읽는 재미가 충분했습니다.


두번째 이야기 "겨울 이야기"
고바야시 경위 이야기. 나는 소꼽친구이지만 나를 이용해 자신의 이득을 챙긴 요시모토를 살해하고 시체를 은닉한다. 며칠 뒤, 시경 형사과의 고바야시 경위가 찾아오는데...
고바야시 경위 이야기로 겨울 분위기를 잘 살린 작품입니다. 범인 시점의 전개와 디테일한 완전 범죄 시나리오의 구성은 미국 미스테리 단편을 읽는 듯한 느낌을 전해 주더군요. 이 작품도 "소금"이라는 단서를 통한 결말부는 사실 예상 범위 안에 있긴 한데 고바야시 경위와 범인과의 문답을 통한 반전이 효과적이라 그러한 단점이 묻히면서 재미를 극대화 시켜 주는 점이 참 탁월했습니다.

세번째 이야기 "당나귀 구덩이"
하무라 아키라 이야기.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전화 고민 상담소에서 일을 시작한 하무라. 그러나 일을 시작한지 얼마 안되어 상담원 중 한명이 자살하고, 최근 그 회사 직원 중 여러명이 자살한 사건 때문에 경찰의 수사가 시작된다.
이 작품은 "일상계"와 어느정도 맞닿아 있는 작품입니다. 직접적이고 노골적인 범행이 아닌 정신적 공격을 통한 범행이라는 것이 그러한데요. 자살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 정도의 전화라는게 어떤 것인지 영 감이 안와서 설득력이 좀 떨어지긴 했고 결말이 너무 뜬금없었습니다. 걍 그냥저냥한 수준이랄까요.

네번째 이야기 "살인공작"
고바야시 경위 이야기. 나는 어린 시절부터의 친구 하루미의 사체를 은인 가타쿠라 조교수의 사체와 같이 놓아 두어 동반 자살로 위장한다...
세번째 이야기와 같이 이 작품도 직접적 살인을 담고 있는 작품은 아닙니다. 일종의 누명 공작 이야기인데 작품 전체에서 보이는 공작이 너무 허술하고 단서가 굉장히 쉽게쉽게 드러나는 등 추리적으로 높은 점수를 주기는 힘들더군요. 약간의 반전이 있긴 하지만 작품 자체는 평이한 수준이었습니다.

다섯번째 이야기 "네 탓이야"
하무라 아키라 이야기. 하무라는 대학 동창이긴 하지만 과거의 악연으로 얽힌 가요코의 일방적 약속 통보를 받은 뒤 약속을 어기고 술을 먹으러 나가지만 그 뒤 해당 시간에 있었던 가요코의 연적 피살 사건에 연루된다. 결국 가요코에게서 탐정사무소에서 일을 하는 인연으로 사건을 반 강제로 의뢰받게 되는데...
작품집의 표제작이기도 한 단편으로 작품 자체의 완성도 보다는 사건이 일어나는 전반적인 동기, 즉 "네 탓이야" 마인드에 대해 다루고 있는 부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 어떤 일도 자기 때문이 아닌 남 탓으로 여기는 이 마인드에서 벌어지는 범행이라는 것이 무척 독특했거든요. 추리적으로는 단 한번의 돌발 사건에 의해 범인이 밝혀지기에 썩 완성도 있다고 보이지는 않지만 동기와 심리묘사가 좋아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여섯번째 이야기 "프레젠트"
고바야시 경위 이야기. 사에키 리리의 피살 사건 이후 1년이 지난 날, 피살 사건 당일 그녀의 생일 파티에 초대되었던 지인들이 다시 한자리에 모여 진범이 누구인지 밝혀내기 위한 진실게임을 시작한다.
이 작품은 다양한 사람들의 증언을 통해 그 중에 숨겨진 진실을 밝혀내는 전개로 이루어진 작품입니다. 솔직히 증언들의 배후에 감추어진 진상이 그다지 놀랍지도 않고 증언 자체들도 별로 꼬이거나 숨겨진 부분이 없어서 추리적으로는 낙제점에 가깝더군요. 범인이 내뱉는 말들이 정말 뜬금없이 등장하기에 범인이 누구인지 특정하기가 땅짚고 헤엄치기였으니까요. 이런류의 작품은 정교한 플롯이 제일 중요할텐데 시작부터 설득력이 없어서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이 작품이 표제작이라 의외였습니다. 작품의 수준도 별로고 1인칭 주인공 하무라가 아닌 고바야시 경위 이야기가 표제작이라니 좀 난데없었거든요. 저와는 달리 작가는 의외로 이 작품이 마음에 들었을지 모르겠군요.

일곱번째 이야기 "재생"
하무라 아키라 이야기. 하무라가 일하는 탐정 사무소에 사무소장의 친구인 작가가 찾아와 사건을 의뢰한다. 사건은 자신이 작품때문에 방에 갖혀 있던 어느날, 알리바이를 위해 몰래 비디오 카메라를 셋팅하고 잠깐 방을 비운 뒤 카메라에 찍힌 영상 때문. 그날 벌어진 살인사건의 단서가 될 수 있는 증거인데...
첫번째 이야기에 등장했던 하무라의 선배가 등장하는 작품으로 인칭의 혼용을 통해 소설적 트릭을 구사하는 작품입니다. 단서가 명확하게 마지막에 등장하기에 그다지 놀라운 반전은 없지만 발상 하나만큼은 기발하네요. 추리적 요소보다는 심리묘사와 아이디어가 돋보인 작품이었습니다. 단, 이 작품처럼 두명이 동일한 시간에 동일한 장소에서 동일한 트릭을 동일한 장치로 구현한다는 것이 과연 현실적인지는 의문입니다만....

여덟번째 이야기 "트러블메이커"
하무라 아키라와 고바야시 경위 만나다. 빈사상태의 여성이 발견되고 그 여성의 소지품을 통해 여성의 신원을 하무라 아키라로 파악한 고바야시 경위는 사건 조사를 위해 도쿄로 향한다.
이 단편집의 마무리 작품입니다. 하무라 아키라 시점에서 전개되는 사건과 고바야시 경위가 진상을 밝혀내기 위해 뒤쫓는 사건이 절묘하게 결합되는 재미있는 작품이었습니다. 작가의 특기이기도 한 시점과 시공간의 변경이 가장 잘 드러난 작품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물론 단서가 애매하고 범인들의 조작이 좀 치졸해 보인다는 약점도 있지만 마지막 부분까지 긴장감을 가지고 읽어나갈 수 있도록 잘 짜여진 작품이었습니다. 한국 판형에서만의 특징인지는 몰라도, 섬뜩한 마지막 대사 한줄이 마지막 페이지에 실려있는 책의 구성도 인상적입니다.

2013/10/30

킹을 찾아라 - 노리즈키 린타로 / 최고은 : 별점 2.5점

킹을 찾아라 - 6점
노리즈키 린타로 지음, 최고은 옮김/엘릭시르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기이한 별명의 네 사람이 모여 교환살인을 모의하고 대상과 순번을 정했다. 방법은 트럼프 카드 뽑기. 첫 번째 범인 와타나베 기요시의 범행을 시작으로 아무 관련 없는, 그러나 유력한 용의자의 알리바이는 명확한 살인사건이 연달아 일어났다. 노리즈키 총경은 아들 린타로와 함께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는데...

노리즈키 린타로 장편. 이 작가 장편은 "잘린 머리에게 물어봐" 이후 두 번째네요.

작품의 시작은 네 명의 사람이 모여 교환살인을 모의하는 장면에서 시작하기 때문에 일종의 도서 추리물 느낌을 전해 줍니다. 이후 범인 중 한 명인 와타나베 기요시의 범행을 디테일하게 묘사함으로써 더욱 그러한 생각을 갖게 만들었고요. 이후는 일반적인 추리물 형식이긴 하지만요.

어쨌거나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전작보다는 쉽게 읽힙니다. 그러나 추리적인 완성도는 별로입니다. 이유는 우연과 작위적인 전개에 더해, 내용에서 경찰 수사의 헛점이 여실히 보이기 때문입니다. 완벽해 보이는 교환살인이 발각되는 이유가 와타나베의 바보 같은 실수였다는게 대표적인 예입니다. 이 실수는 노리즈키 총경이나 주변 증인들의 말을 빌리면, '한 번만 만져보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위조지폐'로 비롯된 것인데, 와타나베는 맨손으로 지폐를 만져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것일까요? 또 지갑에는 어떻게 넣었을까요? 이후 와타나베가 은행에서 도주하다가 차에 치어 죽는다는건 작위적인 전개의 극치입니다. 여기서 체포되었더라면 진상은 한 번에 밝혀졌을 테니까요. 교환살인 추리의 근거가 되는 카드 발견 역시 나라자키가 카드를 남겨두고 도주한 탓으로, 순전히 운에 불과했습니다.

또 카드 발견 이후, 노리즈키 린타로가 등장하여 교환살인에 대해 두 명이 아니라 세 명, 세 명이 아니라 네 명이 얽혔다고 추리하는데 이건 딱히 대단한 추리로 여겨지지 않았습니다. 두 명이 아니라 세 명이었다면 네 명도 당연히 가능하겠죠. 추리라고 부르기도 어려워요.

이러한 점들로 인해 페이지가 중간을 넘어갈 때까지는 솔직히 별볼일 없었습니다. 작가의 이름값에서 기대되는 정통 추리물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였어요.

그러나 후반부, 경찰이 숨통을 조여오고 위조된 협박장을 받은 이후 범인들이 오히려 자수하여 혐의를 축소하려는 공작을 벌이는 부분부터는 괜찮습니다. 첫 장면부터 독자를 범행모의에 끌어들여 앞부분 전개를 지루하게 만들지만, 중요한 정보를 교묘하게 감춘 탓에 독자와의 두뇌게임이 제대로 벌어지는 덕분입니다. 노리즈키 린타로와 독자가 공정한 정보를 제공받는 것은 물론이고요.

덧붙이자면 진상에 대한 아이디어도 탁월합니다. 교환살인을 테마로 한 작품은 많았지만 여태 이런 발상의 작품은 본 적이 없네요. 남겨진 용의자가 "살인을 모의했지만 나는 저지르지 않았다!"라고 주장한다니! 교환살인 모의가 중죄일 수는 있으나 범행 실행 이전이라면 그 형량은 상대적으로 낮을 것이라는 것을 이용한 건데, 교환살인의 가장 큰 맹점인 '첫 범행으로 이득을 본 뒷사람은 범행을 주저하게 되기 때문에 누가 먼저 범행을 저지르냐가 중요하다'를 한방에 해결해 준다는 측면에서도 아주 좋은 아이디어였습니다. 이 작품의 진상과는 살짝 어긋나지만, 누가 살인을 저지른 다음이라면 뒤에 남은 사람은 "사실은 그럴 생각이 없었다. 반은 장난이었다"라고 자수하면서 범행을 불어도 되니 정말로 타당한 발상이죠. 한 가지 궁금한 것은 이 경우에도 보험금을 받을 수 있나라는 것인데, 순수하게 원한 관계였다면 아무 문제 없으리라 생각되네요. 단지 이 맹점만을 가지고 작품을 쓴 게 패트리샤 하이스미스의 "낯선 승객"이라면, 이 작품은 이 맹점을 가지고 두뇌게임을 벌인다는 점에서 발전된 모습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작품의 완성도와는 별개로요.)

허나 탁월한 발상과 빅재미의 후반부 역시 아쉬운 점이 없지는 않습니다. 먼저 앞서 이야기한 대로 경찰 수사의 헛점 부분인데, 세키모토 마사히코에 대해 충실히 수사했다면, 그래서 그의 진짜 동기를 알아내었더라면 사건은 보다 빨리 해결되었을 겁니다. 이런 대형사건이 자수한 용의자의 자백에만 의지하여 수사가 진행된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웠어요. 그리고 나라자키를 살해했다는 내용은 완전히 사족이었습니다. 나름 교묘한 작전으로 혼자서는 충분히 빠져나갈 수 있었던 조시마에게 철퇴를 내리기 위한 작가적 의도로 보이긴 했지만, 좀 오버한 듯 싶더군요.

마지막으로 카드에 이름을 맞추었다는 발상과 그에 따른 진상은 꽤 그럴듯하고 재미도 있긴 하나 작위적이라는 점에서는 감점 요소이긴 합니다. 사실 카드가 킹이냐 조커냐는 별로 중요한 것도 아니었으니까요.

결론적으로 별점은 2.5점. 설정과 전개는 진부하고 사건은 우연이 많이 개입되어 추리적으로 눈여겨볼 부분이 많지 않으나 마지막 부분의 아이디어는 돋보입니다. 후반부 아이디어를 보강하고, 정통파 추리소설보다는 범죄 스릴러로 전개하는 편이 훨씬 나았을 겁니다.

2011/10/27

피의 굴레 - 한동진 : 어쨌건 나에게는 별점 5점!

피의 굴레 - 10점
한동진 지음/북홀릭(bookholic)

그간 격조했습니다. 뜻밖의 집안 공사 관계로 외지를 떠돌다 보니 블로그에 신경을 쓰지 못했네요. 다들 안녕하셨나요? 이번에 리뷰할 소설은 바로 "경성탐정록" 후속작이자 두 번째 이야기인 "피의 굴레"입니다.

제 블로그를 방문하신 분들은 이미 아시겠지만, 제가 원안이라는 이름으로 참여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전작과 달리 이번에는 제가 첫 아이 출산과 이직 등 개인적인 사정으로 거의 신경을 쓰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원안을 맡았다고 소개되기에는 부끄럽네요. 총 네 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지만, 제 비중은 많이 줄었습니다.

어쨌든 작품을 소개해 보자면, 첫 작품 "외과의"는 범인의 일기 형태로 전개되는 독특한 1인칭 도서 추리물입니다. 형이 부산에서 병원을 운영하는 작은 고모부의 경험담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집필한 작품이지요. 범인 시점에서 하나씩 단서가 밝혀지며 심리적으로 쫓기는 묘사가 잘 드러나 있습니다. 마지막 부분에서 과학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으로 진상을 증명해낸다는 점도 흥미로운데, 범인의 심리 묘사와 과학적 증명의 조합은 에도가와 란포의 "심리시험"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두 번째 작품 "안개 낀 거리"는 이전에 "무가"라는 제목으로 네이버캐스트 '오늘의 문학'에 소개된 바 있습니다. 미두 시장의 거물 신타로 살해 사건을 설홍주가 풀어나가는 과정이 당시 조선의 사회상과 맞물려 전개되는데, 일제 강점기라는 역사적 배경 속에서 하드보일드 탐정물의 분위기를 제대로 살린 작품입니다. 사실 제 오리지널 시놉은 정통 추리물 형태였는데, 형이 피해자 설정만 가져와 재창조했지요. 셜록 홈즈보다는 필립 말로우 스타일에 가까운데, 주인공 이름이 '마노우'였다면 더 어울렸을 것 같네요.

세 번째 작품이자 표제작인 "피의 굴레"는 원래 장편으로 완성했으나, 학산출판사 담당 편집자의 의견에 따라 지금의 형태로 개작되었습니다. 원래의 장편 느낌이 좋았었기에 다소 아쉽지만, 현재의 형태도 충분히 만족스럽습니다. 무엇보다도 제가 고안한 트릭만큼은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등장인물 설정 및 시대적 배경과도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니까요. 빠른 전개 속에 연극, 여배우, 사진관 등 당대 분위기와도 어울리는 요소들을 적절히 배치하여 팩션 느낌도 전해줍니다. 때문에 한국 추리문학계에서 찾아보기 힘든 수준의 정통 역사 추리물이라 감히 자부합니다.

마지막 작품은 비교적 소품 느낌이 강한 "날개 없는 추락". 제가 쓴 시놉을 형이 마음에 들어 해 거의 그대로 쓰여진 작품입니다. 정교한 트릭 없이, 단서를 통해 진범을 추리하는 과정에 더 비중을 둔 작품으로, 추리 애호가가 아니더라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경쾌한 단편이지요. 마지막에는 잘 알려진 게임이론 '죄수의 딜레마'까지 등장하며, 다양한 요소가 어우러져 흥미로운 구성을 보여줍니다.

결론적으로 별점은 5점! 제가 직접 참여한 작품이라 5점을 주는 것이 막장일까요? 하지만 누구에게 소개해도 부끄럽지 않은 결과물이라 자신합니다. 최근 부흥하는 국내 창작 추리소설계에 작은 보탬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꼭 한 번 읽어보시길 권해드립니다!

2014/12/30

요리코를 위해 - 노리즈키 린타로 / 이기웅 : 별점 3점

요리코를 위해 - 6점
노리즈키 린타로 지음, 이기웅 옮김/포레
<하기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가족의 보물이라 할 수 있는 딸 요리코가 교살당했다. 대학 교수인 아버지 니시무라는 범인을 직접 찾아 응징하기 위해 스스로 수사에 나섰다. 니시무라는 요리코의 담임 히이라기를 범인으로 지목하여 살해했고, 모든 것을 기록한 수기를 유서 대신 남긴 채 자살을 기도했다. 그러나 니시무라는 죽지 않았고, 노리즈키 린타로에게 사건의 진상을 밝혀달라는 의뢰가 복잡한 의도와 함께 전달되었다. 노리즈키는 수기를 읽고 탐탁지 않은 점을 밝혀내기 위해 수사에 뛰어드는데...

노리즈키 린타로의 초기 장편입니다. 작가의 초기 대표작이라고 하네요. 범죄 계획, 과정이 쓰여진 전체 분량의 1/5 정도 되는 수기에서 시작해서, 노리즈키 린타로의 수사와 추리로 진상이 밝혀지는 구성입니다. 초반의 수기는 한 편의 추리 소설이라고 보아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잘 짜여져 있고, 그 자체가 완벽한 범행 계획이기도 하여 도서 추리물로 보였습니다. 또 이 수기 부분은 굉장히 깊이 몰입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저 역시 딸 아이의 아빠로 니시무라를 응원할 수밖에 없었으니까요.
그런데 수기는 완전 범죄를 위한 수단에 불과했고, 충격적인 진상은 따로 있다는 반전으로 이어집니다. 이 반전의 충격과 묘미는 상당한 수준이에요. 수기 - 추리로 이어지는 구성의 승리이기도 하죠. 특히 요리코 아이 아버지의 정체와 그에 따른 진상, 반전은 발표된 지 20여 년이 지난 작품이지만 지금 읽어도 충분히 충격적입니다. 1990년이라는 발표 시점에 접했다면 깜짝 놀랐을 수도 있겠어요. 아이 아버지의 정체는 중요한 것은 아니고 일종의 도화선, 트리거 역할만 했지만요.

그러나 신본격 작가의 작품임에도 정통 본격 추리물로 보기는 다소 어렵습니다. 노리즈키 린타로의 수사는 전형적인 관계자 탐문 인터뷰에 지나지 않고, 이 과정에서 모든 단서가 밝혀지기 때문에 딱히 명탐정이 필요한 내용은 아닌 탓입니다. 범행이 우발적인 연쇄 성폭행범의 소행이 아니라면, 유리코가 임신한 아이와 관련된게 분명해서 용의자가 좁혀질 수밖에 없으니까요. 어차피 구니코와 같은 최측근은 이미 진상을 눈치채고 있기도 했고요.
개인적으로 이런 내용이었다면 차라리 구니코 (아니면 다카다군)이 탐정역을 수행하는 게 더 낫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명탐정이 등장한다는건 아무래도 이야기를 조금 비현실적으로 만들기 때문입니다. 등장하는 이유도 사이메이 학원 측에서 이 사건을 덮기 위해서 명탐정이 수사한다는 소문을 퍼뜨리려 한다! 는 것인데 납득하기도 힘들고요. 아무래도 작가가 시리즈로 끌어가고 싶은 욕심이 너무 과했던 게 아닌가 싶네요.

그래도 등장했더라면 뭔가 명탐정스러운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데 그것도 아닙니다. 이 작품에서 노리즈키 린타로의 역량은 의심스럽기만 합니다. 특히 니시무라의 자살을 방조한 것은 용서하기 어려운 행동일 뿐 아니라, 이런 행동을 취한 이유가 설명되지 못합니다. 경찰 취조가 이어졌더라도 니시무라가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면 바뀌는건 없고, 니시무라는 이후 개인적으로 얼마든지 자살할 수 있었을 테니까요.
또 범인이 적은 수기에서 발견된 사소한 오류, 고양이가 이미 죽어 있었다는 것 정도는 증거로 보기에는 터무니없이 빈약하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수기의 오류는 얼마든지 창작자가 고칠 수 있는 수준으로 보이고. 고양이 이야기는 너무나 불필요해서 외려 수기에 적은 게 이해가 되지 않았던 탓입니다.
이러한 점에 더하여 극적 반전에 많이 기대고 있다는걸 고려하면, 정통 본격 추리물이라기 보다는 심리 스릴러로 보는 게 타당합니다.

또 작위적이고 억지스러운 설정이 존재하는 것도 단점입니다. 경찰 수사가 허술한 것이 대표적입니다. 요리코가 다니던 명문 여학교 사이메이와 사이메이 이사장의 오빠인 중의원 의원 측에서 압력을 행사했다는데 정도가 지나쳐요. 최소한 히이라기라는 쓰레기 교사의 정체는 매스컴을 통해 충분히 밝혀졌을 터이기에 어차피 사이메이 학원의 평판은 바닥에 떨어졌을게 뻔합니다. 이는 억지로 노리즈키를 엮어 넣기 위한 장치로 밖에는 생각되지 않네요.

사건의 핵심 동기라 할 수 있는 니시무라 증오의 원인, 즉 니시무라가 요리코를 미워했다는 것도 전혀 와닿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런 일 - 어린 딸아이의 돌발 행동으로 임신한 아내가 차에 치어 불구가 되고 아이마저 잃었다 - 이 벌어졌더라도 무사히 한 명의 아이라도 살아난 것을 감사했을 겁니다. 아무리 사람에 따라 생각이 다를 수 있다 하더라도 이건 너무 억지에요. 니시무라와 우미에의 오래된 관계를 길게 설명하며 어떻게든 설득하려 시도하고 있는걸 보면 작가도 억지라는걸 알고는 있었던 듯 합니다. 
그러고 보니 요리코의 작전도 이해하기 어렵기는 마찬가지군요. 히이라기와 관계를 가진 뒤 임신하지 못했다면 어쩔 셈이었을지 잘 모르겠어요. 임신이 그렇게 쉽게 되는 것은 아닌데 말이죠. 아버지가 술에 취할 때를 또다시 노렸을까요? 참으로 복잡한 인생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미에가 이 모든 것을 조종했을 것이다라는 에필로그는 불필요했습니다. 이 에필로그 없이 그냥 노리즈키가 병실 문을 닫고 나가는 것으로 끝나는 게 더 깔끔했을 겁니다.

그래도 별점은 3점입니다. 불만과 단점을 잔뜩 써 놓기는 했지만, 읽는 재미는 충분하며 여러모로 생각해볼 만한 거리도 많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노리즈키 린타로라는 작가의 역량은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고요. 독자가 아이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평이 갈릴 것 같다는 생각도 드네요. 그나저나, 비슷한 내용, 설정의 작품을 어디에선가 본 것 같은데 한 번 찾아봐야겠습니다.

2024/02/09

더는 잠들지 못하리라 - P.D. 제임스 / 이주혜 : 별점 2.5점

더는 잠들지 못하리라 - 6점
P. D. 제임스 지음, 이주혜 옮김/아작

P.D. 제임스 단편집. "겨우살이 살인사건"과 같은 출판사에서 동일한 판형으로, 비슷한 디자인으로 출간한 시리즈 도서. "겨우살이 살인사건"을 아주 재미있게 읽었기에 선택했습니다.

하지만 "겨우살이 살인사건"보다는 별로였습니다. 정통 고전 영국식 본격 추리물보다는 범죄 심리물이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반전이 중심인 몇몇 작품들은 대체로 헨리 슬레사등 미국 단편 전문 작가들 스타일이라 신선함을 느끼기도 힘들었고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대체로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수록작별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내용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으니 읽으시기 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요요
인기없는 선생을 하인이 살해하는걸 목격한 소년은 거짓말을 지어내서 하인을 구해준다.
소년이 본능적으로 거짓말을 꾸며내고, 의도한대로 사건 수사가 흘러가도록 주도한다는 내용의 심리 범죄물. 요요를 통해 옛 추억을 떠올리고, 소년이 이 때 받은 인상으로 법조인이 되었다는 등의 디테일은 좋았습니다. 
그러나 '소악마'라는 측면 외에는 특별한건 없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피해자
완전 범죄 계획을 꾸미고 실행하는 과정이 그려진 범죄 소설이자 도서 추리물. 완전 범죄물로의 가치도 높고, 전처 엘시가 완전 범죄가 가능하게끔 안배했다는 반전도 깔끔합니다.

그러나 거의 30년 전에 다른 추리소설 걸작 단편선 앤솔러지를 통해 이미 읽어보았기에 신선함은 느끼기 힘들었습니다. 결말의 반전을 모두 기억하고 있었던 탓입니다.
물론 30여년 전에 읽었던 작품의 기억이 생생하다는건 그만큼 이 작품이 빼어난 작품이라는걸 증명하지만, 이전 번역은 주인공의 협박 편지 속 오타까지 한글화했었는데 반해 이 책의 번역은 그 맛은 살리지 못해 아쉬웠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산타클로스 살인 사건
추리소설가 찰스 미클도어는 1939년 16살 때의 의붓삼촌 살인 사건의 재조사를 시작했다.
삼촌은 크리스마스 이브날 협박 편지를 받은 뒤 편지대로 그날 밤 살해당했다. 그런데 찰스를 제외한 저택의 초대 손님들과 주변 이웃들도 삼촌을 살해할 동기가 있었다...

저택에서 벌어지는 크리스마스 파티, 다양한 초대 손님들이라는 무대 구성부터 정통 고전 본격 미스터리의 느낌을 강하게 전해주는 작품.
추리적으로는 그리 높은 점수를 주기는 힘듭니다. 범인이 너무 명확하거든요. 찰스가 목격했던 산타는 장갑을 끼고 있었는데, 발견된 삼촌 - 산타로 분장했던 - 은 장갑을 끼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찰스가 목격했던 산타는 누군가가 변장하고 있었다는 의미이며, 그가 범인일 가능성이 제일 높습니다. 손님 중에서 찰스 삼촌과 키가 비슷했던건 콜드웰 뿐이었고요. 콜드웰이 방을 바꾸자고 한 등의 정황증거들도 차고 넘치니 범인은 콜드웰입니다!
범인이 뻔하니 흥미를 돋우기 위해 터빌 부부를 수상하게 보이게 만드는 묘사를 시도했는데, 이는 실패에 가깝습니다. 알고보니 부부가 성모상을 훔쳐갔다는건 드러난 정보로는 추리가 불가능했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한 번 정도 이야기를 꼬아서, 누군가 키높이 구두를 신었다던가 하는 식으로 풀어나갔어야 했어요.
전개도 아쉽습니다. 찰스와 당시 사건 수사 담당이었던 존 포팅어 경감 시선을 오갈 필요는 없었습니다. 관계자들 모두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는 에필로그 역시 불필요했고요.
한마디로 초기작 느낌이 물씬 났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묘지를 사랑한 소녀
어린 시절 고아가 된 뒤 숙모집에 머물게 된 소녀는 묘지에 푹 빠졌다. 어른이 된 뒤 오래전 살던 집을 찾아 나섰다. 그리고 잊었던 기억을 떠올렸다.
옛 집을 찾아가서 어린 시절 봉인되었던 살인 사건의 기억을 다시 떠올린다는 내용의 범죄물. 아버지는 할머니를 살해했다는 죄로 사형당했는데, 사실 할머니를 죽인건 소녀였다는 반전은 미국식 단편 범죄물 느낌인데, 심리 묘사로 잘 드러내서 섬뜩함을 안겨줍니다.
그러나 묘지를 사랑한다는 설정은 비일상적이라 억지스러웠고, 반전과 잘 이어지지는 못합니다. 아버지는 사형수라 감옥 묘지에 묻혀있어 아버지 묘지에 갈 수 없다는걸 드러내는 결말은 작위적이었고요. 별점은 2.5점입니다.

아주 바람직한 거주지
종합 중등학교 교사 해럴드 빈스는 아내 에밀리를 학대하다가, 에밀리 살인 미수 사건을 저질러 유죄판결을 받았다.
동료 교사였던 나는 이혼한 에밀리와 재혼해서 그녀의 소유였던 멋진 주택에 입주했다. 사실 살인 미수 사건은 모두 나와 에밀리가 사전에 모의해서 꾸며냈던 것이었다....

자기가 원하는 것을 차지하기 위해 공을 들였지만, 알고보니 덫에 걸려버렸다는 내용의 단편. 나는 에밀리를 위해 범행을 계획하고 도와주었지만, 에밀리가 먼저 죽으면 해럴드에게 누명을 씌웠던 범죄가 공개된다는 협박(?)을 받고, 원했던 주택마저 에밀리가 파는걸 내버려 둘 수 밖에 없는 채 결혼 지옥이라는 구렁텅이에 빠지게 되지요.
공들인 살인 미수 계획은 눈길을 끌지만, 설정과 전개, 결말 모두 전형적이고 흔한 미국식 범죄 스릴러물 단편을 연상케해서 아쉽습니다. 남편을 지옥에 빠트리는 에밀리라는 캐릭터의 마성(?)도 잘 드러나지 못했고요. 별점은 2점입니다.

밀크로프트씨의 생일
밀드레드와 로드니 남매는 아버지의 생일 파티를 위해 양로원을 찾았다. 아버지는 과거 유산 때문에 동생을 독살했었는데, 비싼 다른 양로원으로 옮겨주지 않으면 이를 폭로하겠다고 위협했다. 남매는 옛날에 살던 저택에서 증거인 비소병을 몰래 회수하려했지만, 오히려 현 주인에게 들켜 약점을 잡히고 말았다.
결국 원하는 양로원으로 옮겨간 아버지는, 친구 '준장'과 함께 작전 성공을 자축하는데....

약간 코믹한 범죄극. 알고보니 아버지가 자식들에게 거짓말을 했고, 약병의 회수와 관련된건 친구 준장과 함께 계획했던 작전이었다는 반전에 이어, 정말 아버지가 모티머 삼촌을 살해했다는 반전까지 이어지는 과정이 깔끔합니다. 별 것 아닌 듯 했던 나무 구멍 속 비닐봉지를 반전으로 이어가는 솜씨는 과연 거장답다 싶었어요. 설득력도 높고요.
수록작 중 최고로 꼽습니다. 별점은 4점입니다.

2024/01/27

초대받지 않은 손님들을 위한 뷔페 - 크리스티아나 브랜드 / 권도희 : 별점 2점

초대받지 않은 손님들을 위한 뷔페 - 4점
크리스티아나 브랜드 지음, 권도희 옮김/엘릭시르

"녹색은 위험", "제제벨의 죽음"으로 유명한 크리스티아나 브랜드의 단편집. 5부 구성으로 모두 16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정통 본격물, 범죄물, 심리 서스펜스 스릴러 등으로 수록작 장르도 다양합니다.

그런데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습니다. 기대했던 정통 본격물의 비중은 무척 적은 탓입니다. 트릭도 거의 등장하지 않으며 추리도 억지스러워서 추리적으로는 점수를 주기 어려운 작품들이 많아요. '기묘한 맛' 장르 느낌으로 마지막 한 줄, 한 문단으로 반전의 매력을 전해주려고 노력한 티는 역력하지만 이 역시 모두 성공한건 아니고요. 그래서 제 별점은 2점입니다.

덧붙이자면, 5부 구성도 1부 코크릴 칵테일을 코크릴 경감 시리즈로만 모아 놓았다는 것 외에는 어떤 의도로 분류하여 구성되었는지 모르겠더라고요. 예를 들어 "살인 게임"은 앙트레로 묶기 어려운, 이 단편집 최고의 메인 요리라 생각되거든요. 오히려 앙트레 선택에 5부 블랙 커피에 수록된 심리물들을 포함시키고, 범죄물을 메인 요리로 묶어 구성하는게 더 일목요연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범죄물도 심리 묘사가 중심이거나 조금 가벼운 이야기와 묵직한 본격물을 구분하여 배치하고요. 제 구성은 다음과 같습니다.

1부 아페리티프(식전주) : 코크릴 칵테일
"사건이 막을 내린 뒤에"
"피를 나눈 형제"
* 기존 구성에서 코크릴 경감의 등장을 알리는 작품 한 편, 그리고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을 선정.

2부 앙트레 선택
"이 집에 축복을"
"수군거림"
"발코니에서"
"더이상 5월 축제는 없다......"
* 심리 묘사 중심의 작품들로 구성.

3부 르 푸아송 (생선 요리)
"말벌집"
"너무나 괜찮은 사람"
"신의 힘"
"곰곰이 생각해보니까"
* 말벌집은 '굴'이 사용되어서 생선 요리로 분류했고 다른 작품들은 심리 중심의 범죄물들.

4부 리플렛 프로스펠 (메인 요리)
"살인 게임"
"희생양"
"여기 잠들다"
"회전 목마"
정통 본격 추리 범죄물들.

5부 데세르 (디저트)
"스코틀랜드에서 온 조카딸"
가볍고 유쾌한 이야기.

6부 블랙 커피
"잔 속에 든 독"
도서 추리물로 '커피'가 핵심 소재라는 점에서 블랙 커피로 분류.


마지막으로 수록작들의 간략한 리뷰는 아래에 요약하였습니다. 일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는 점, 읽으시기 전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1부 코크릴 칵테일.
코크릴 경감이 활약하는, 늙은 형사의 회고담인 "사건이 막을 내린 뒤에", 뺑소니 살인과 정부 살인 사건을 저지른 쌍둥이 형제의 이야기인 "피를 나눈 형제", 성질 고약한 부자 노인이 후처를 맞은 결혼식 날 독살당한다는 "말벌집", 남편의 정부라고 주장하는 여자를 독살한 아내 시점의 도서 추리 소설 "잔 속에 든 독"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모두 범인의 조작을 코크릴 경감이 간파한다는 작품들로 "사건이 막을 내린 뒤에"에서는 유명 극단의 톱 스타 주연 배우 제임스 드래건의 아내가 살해당했는데, 극단 배우들이 모두 나서 경찰 앞에서 연극을 펼칩니다. 이를 통해 제임스 드래건이 경찰에 연행되지만, 알고보니 범인이 제임스가 아니라 그의 아버지 아서 드래건이었다는게 밝혀집니다.
"피를 나눈 형제"에서는 쌍둥이 형제 둘 중의 한 명이 범인이고, 한 명은 알리바이가 확실히 있었다면 누구를 체포해야 하는지?에 대한 딜레마가 흥미롭게 전개됩니다. 둘 다 자기가 알리바이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이를 밝혀내는건 쉽지 않아 보였거든요. 쌍둥이 형제가 서로 상대방의 옷에 증거를 남겼다는 반전도 기발했고, 결국 진흙탕 속으로 서로를 밀어넣어 파멸하는 결말도 깔끔했습니다.
"말벌집"은 1부 수록작 중에서는 제일 처집니다. 1966년 "엘러리 퀸 미스터리 매거진"이 후원한 영국추리작가 협회 회원 대상 단편소설 경연대회 1등상 수상작이라고 해서 기대가 컸는데 말이죠. 이유는 범인 엘레자베스를 체포할 근거가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훈제 연어를 준비하는게 어려웠다'는 말이 그렇게 큰 증거가 된다는건 믿기 힘듭니다. 엘리자베스가 사건을 연출했다는 것도 정황 증거에 불과하며 굴 안에 청산가리 캡슐을 숨겨 먹였다는 트릭도 억지스러웠고요.
"잔 속에 든 독"은 범인 스텔라가 범인으로 몰리자, 임기 응변으로 남편 등을 범인으로 지목한다는 내용으로 도서 추리 소설과 심리 스릴러를 잘 결합한 좋은 작품입니다. 완벽하게 처리한 줄 알았던 독이 든 커피잔이 결정적 증거가 된다는 마지막 한 마디도 좋았고요. 1부 수록작 중에서는 제일 괜찮았어요.

2부 앙트레 선택.
유명한 밀실 트릭이 등장하는 "살인 게임", 일종의 시간차 알리바이 트릭이 등장하는 "희생양", 거짓 증언으로 선량한 히피가 파멸에 이른다는 "더이상 5월 축제는 없다......"의 세 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살인 게임"은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밀실 대도감"에서도 소개되었던 단편이지요. 이전에 다른 단편집을 통해 읽었던 작품이기도 합니다. 범인이 경찰로 변장한 뒤 밀실이었던 현장에 숨어있다가, 밀실 문을 부수고 들어온 경찰 중 한 명으로 위장했다는 트릭이 기발합니다. 마지막에 이야기를 듣던 노인의 한 마디로 그의 정체가 밝혀지는 반전도 서늘했고요. 다만 범죄자의 혈통은 유전된다는 주장이 강하게 녹아들어 있다는건 현재 시점에서 보기에는 낡은 사고방식이라 아쉽네요. 그래도 2부에서는 최고작입니다.
"희생양"은 13년 전, 유명 마술사 미스테리오소가 저격당해 충직한 하인 톰이 대신 죽었던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이야기입니다. 저격용 총의 방아쇠에 묶인 끈에 사과 봉투를 위에서 떨어트린 장치 트릭인 것 처럼 풀어나가지만, 일종의 시간차 트릭이 사용되었습니다. 하지만 트릭이 너무 별로라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드네요. 범인이었던 경찰이 사과 봉투를 터트려 총소리를 위장한 뒤 진짜 저격은 나중에 벌였다는데, 사과 봉투를 터트려 먼 곳에 있는 사람들까지 총 소리로 착각하게 만들었다는 것 부터가 비현실적입니다. 두 번째 총소리는 어떻게 숨겼는지에 대한 설명도 없고요. 마지막에 소년이 미스테리오소를 살해한다는 결말은 이게 뭔가 싶더군요. 마지막에 반전 요소를 집어넣어야 한다는 강박같은게 있었던걸까요? 2부, 아니 수록작 전체를 통틀어서 최악의 작품이었습니다.
"더이상 5월 축제는 없다......"는 웨일스를 무대로, 아이들이 자신들의 일탈이 드러나지 않기 위해 했던 거짓말에서 시작된 거짓말의 연쇄가 진범의 알리바이를 굳건하게 만들며 선량한 히피 무리의 리더 크리스토가 누명을 쓰고 마는 과정이 숨이 턱턱 막히도록 묘사됩니다. 셜리 잭슨이나 퍼트리샤 하이스미스를 방불케할 정도에요. 정통 추리물은 아니지만 볼만한 범죄 심리 스릴러였습니다.

3부 입가심
"스코틀랜드에서 온 조카딸" 한 편이 소개됩니다. 블란쳇 부인의 진주 목걸이를 훔치려는 컴퍼트 양과 스네이스 씨의 작전, 그리고 이들을 농락하는 진짜 '스코틀랜드에서 온 조카딸' 호지 양이 얽힌 재미난 범죄극이 펼쳐집니다. 진짜 도둑은 하녀 글래디스였다는 마지막 반전도 일품이고요. 그야말로 '입가심'에 적절한 유쾌하면서도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쾌작입니다.

4부 프티 푸르
'프티 푸르'는 한 입 디저트라고 하는데, 수록작들 대부분이 완전범죄 계획 살인물입니다. 한 입에 먹기에는 다소 부담스러운 내용들이네요.
하여튼, "여기 잠들다"는 아내를 사고사처럼 위장하여 죽이려는 제럴드의 치밀한 계획을 그립니다. 아내가 수영을 좋아해서 익사시킨다는 계획은 나쁘지 않았어요. 실제로도 거의 성공했고요. 하지만 알리바이를 위해 고용했던 타이피스트 부처 부인이 제럴드를 죽인다는 반전은 뜬금없었습니다. 부처 부인의 외모라던가 성격 묘사를 덧붙여주었다면 훨씬 좋았을 것 같네요.
"회전 목마"는 자신을 협박하던 빈들 씨를 살해한 하틀리 부인의 이야기입니다. 범죄물로도 좋은 수준이지만, 빈들 씨와 하틀리 부인의 꼬마 아이들이 범죄에 대해 모든걸 알고 서로의 속내를 감춘채 진상을 이야기하는 묘사도 서늘했습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까"는 악당 호러호러 족장을 살해한 이야기인데, 계획에 따른 완전범죄는 아니었습니다. 범인이 풀려났던건 목격자였던 존스 부인이 유리창 반사로 일으켰던 착각 탓이었지요.
"발코니에서"는 위에서 자신을 내려다보는 이웃 때문에 히스테리를 일으킨 제닝스 부인이 남편을 살해하기에 이른다는 내용의 심리 스릴러 범죄물입니다. 히치콕의 "이창"을 뒤집어 놓은 설정과 제닝스 부인을 바라보는 이웃 시점의 묘사를 곳곳에 삽입하다가, 이웃들이 실존하지 않았다는게 마지막 반전으로 드러나는 결말이 독특했습니다.

5부 블랙 커피
수록작 네 편 중 세 편은 여자의 심리 중심의 이야기입니다. "이 집에 축복을"은 자신의 집에서 태어난 아이를 예수라고 믿는 여자의 심리를, "너무나 괜찮은 사람"은 그야말로 딱 한가지만 제외하고는 너무나 괜찮았던 남자를 죽일 수 밖에 없었던 여자의 심리를, "수군거림"은 자신의 실수로 거짓말을 지어내서 사촌과 아빠를 죽음에 이르게 만든 여자의 심리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작품 "신의 힘"은 완전 범죄물입니다. 범인 에반스 경관의 범행 계획은 그냥저냥이지만, 딸과 손녀를 죽게만든 범인 젤링크스를 옭아맨 설정은 일품이었습니다. 에반스 경관의 거짓 증언으로 젤링크스는 반박하지 못하고 무죄를 받아들인 뒤 협박받을지 모르는 두려움에 떨게 되었다는건 충분히 설득력있는 이야기였습니다.

2013/10/24

시간의 습속 - 마쓰모토 세이초 / 김경남 : 별점 3점

시간의 습속 - 6점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김경남 옮김/모비딕

도쿄 근교의 휴양지 사가미 호수에서 목졸라 살해당한 시체가 발견되었다. 피해자는 "교통문화정보" 신문의 발행인 겸 편집자 도이 다케오였다. 주변 인물을 탐문하던 경시청 수사1과의 미하라 기이치 경위는 굣코 교통의 전무 미네오카 슈이치가 수상하다고 느꼈다. 그러나 미네오카 슈이치는 사건 당시 후쿠오카 근처 모지의 메카리 제사에 참석했다는 완벽한 알리바이가 있었다. 미하라는 이전 사건으로 알게 된 후쿠오카의 도리카이 주타로 형사에게 미네오카의 알리바이를 문의했으나 수수께끼를 밝혀내지 못하던 중, 후쿠오카에서 정체불명의 사체가 발견되는데...

마쓰모토 세이초의 1961년도 발표작. "점과 선" 발표로 일약 인기작가가 된 세이초가 4년 후, "점과 선"이 연재되었던 월간지 "여행"에 다시 연재했던 작품입니다. "점과 선"의 주역인 미하라 - 도리카이 컴비가 다시 등장합니다. 세이초 작품으로는 유일한 속편이라고도 하네요.

전작과 같이 정통 알리바이 파헤치기 추리물입니다. 사건의 핵심인 미네오카 슈이치의 알리바이 트릭, 즉 "어떻게 그가 메카리 제사 사진을 찍을 수 있었나?"와 더불어 미네오카가 도쿄와 후쿠오카를 어떻게 오갔는지, 사건 당일 도이와 함께 있었던 여자는 누구이며 어떻게 현장을 빠져나갔는지, 후쿠오카에서 발견된 피해자는 누구이며 현장에 있던 여성용 양가죽 장갑은 무엇인지, 가짜로 발급한 정기권의 용도가 무엇인지 등 다양한 트릭 및 추리가 화려하게 펼쳐집니다. 수준도 높습니다. 그 중 핵심 트릭인 알리바이용 사진 트릭은 필름 교체 및 재촬영, 조작이라는 복잡한 것인데 전문가적 지식을 활용하여 설득력이 충분할 뿐더러, 미하라 경위의 여러 가지 아이디어 - "TV를 찍은 것이 아닐까?" "예전 사진은 아닐까?" "영화 뉴스를 찍은 것이 아닐까?" 등 - 까지 검증해 주는 꼼꼼함이 돋보입니다. 마지막에 등장하는 원래 사진을 촬영한 가지와라에게 들키지 않고 필름을 빼돌리는 방법 역시 기가 막히고요. 아울러 공범인 여성의 정체, 그리고 그 정체를 밝혀주는 단서가 되는 사체가 끼고 있던 장갑 역시 당시 시대를 앞서갔다고도 보여지는 괜찮은 아이디어였어요.

미하라 경위의 직감에 의지한 추리와 도리카이 형사의 성실하고 꾸준한 수사도 전작 "점과 선" 못지 않게 잘 그려지고 있는 것은 전작의 팬으로 마음에 든 점입니다.

또 연재된 월간지가 "여행"인 탓이었을까요? 서두에 등장하는 모지의 메카리 제사를 비롯하여 사가미 호수, 그리고 그 외의 후쿠오카의 명승지를 소개하는 여정 미스터리로서의 모습도 보이는 것이 이채롭더군요. 심지어는 오사카로 출장 가는 형사들의 기차 여행까지 디테일하게 묘사될 정도니 말 다했죠. 어떻게 보면 예전 작품의 여유로움 같은 게 느껴지는 부분이라 괜히 흐뭇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제법 됩니다. 그중 가장 알 수 없었던 것은 애초에 미하라 경위가 왜 미네오카 슈이치가 수상하다고 생각했는지입니다. 알리바이가 누가 봐도 완벽한데 거기서 의심을 품고 파헤칠 생각에 집착한다는 것은 상식에 어긋나죠. 반대로 해석하면 무죄인 미네오카가 미하라 경위의 편집증적 망상의 희생자가 될 수도 있는 거잖아요? 이 문제는 피해자 도이가 최초에는 나름 인격자로 묘사되는 등, 동기를 드러내지 않은 탓입니다. 최소한 도이에게 흘러간 거금의 일부에 미네오카가 관련되어 있었기 때문에 수사가 미네오카에게 집중되었다는 설명은 필요했습니다. 아니면 차라리 미네오카가 범행을 저지르는 것을 확실하게 독자에게 보여주는 도서 추리물의 형태였다면 더 낫지 않았을까 싶네요.

그리고 두 번째로 미네오카 트릭의 핵심인 메카리 제사 사진 공작도 조금 이상했어요. 원래 사진을 찍은 가지와라가 제사 당일에 컬러 슬라이드로 사진을 찍었을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 것이었을까요? 잡지에서 가지와라라는 이름만 보았을 뿐, 미네오카가 가지와라와 대면한 것은 사건 발생 얼마 전 딱 하루 만난 것에 불과한 것으로 묘사되기 때문에 더더욱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무려 두 건의 살인사건을 저지르는 범행에 대한 확신을 얻어갔다고 보기는 아무래도 힘들지 않을까 싶거든요. 첫 대면 이후에도 지속적인 연락을 취했다는 정도의 부연설명이라도 해 주었더라면 더 좋았을 겁니다.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3점. 사회파 작가로 유명하지만 (뭐 본인은 그닥 좋아한 명칭은 아니라곤 해도) 정통 추리 분야에서도 탁월한 모습을 여지없이 보여주는 좋은 작품이었어요. 장편다운 꼼꼼하고 디테일한 묘사도 인상적이었고요. 작위적이고 억지스러운 부분이 있어서 감점했으나 추리 애호가라면, 특히 알리바이 파헤치기 류에 관심 있으시다면 꼭 한번 읽어보시길 권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