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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16

밀실살인게임 2.0 - 우타노 쇼고 / 김은모 : 별점 2.5점

밀실살인게임 2.0 - 6점
우타노 쇼고 지음, 김은모 옮김/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이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약간 포함되어 있습니다.

채팅으로 대화를 나누는 동호인 다섯명. 반도젠 교수, 두광인, aXe, 쟌가, 044APD. 이 커뮤니티는 실제로 살인을 저지르고 그것을 다른 사람들이 추리하는 '리얼탐정놀이' 커뮤니티였다.

저는 추리소설도 좋아하지만 야구도 무척 좋아합니다. 그리고 두 분야 모두 정통파를 좋아하지요. 추리는 정통파 본격 미스터리, 야구는 정통파 강속구 완투형 에이스 투수라는 식으로 말이죠. 그러고보니 멸종해가고 있다는 공통점도 있네요.

어쨌건 이러한 야구 시각으로 본다면, 우타노 쇼고는 정통파 강속구 투수라기 보다는 제구력과 다양한 변화구로 승부하는 기교파 투수입니다. 잘 짜여진 플롯과 동기, 복잡한 인간관계가 씨줄과 날줄처럼 얽힌 와중에 트릭을 통한 두뇌게임이 펼쳐지는 고전적인 본격물보다는 기발한 트릭과 그에 따르는 전개에 치중하는 작품이 많기 때문입니다. 최소한 제가 읽은 작가의 다른 작품은 트릭이 중심인 기교파 소품들이었습니다.

물론 이게 나쁜건 아니에요. 이러한 방식으로도 역대급 작품이 된 "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 하네" 같은 강력한 결정구가 있으니까요. 다른 구질(작품)들도 충분히 제 몫을 하며, 팬들에게도 항상 기쁨을 주는 유형이니까요. 실제 야구에서도 이런 투수가 화려하지는 않지만 그만큼 꾸준하고 성실한 활약을 보여주는 선수들이죠. 팔색조 조계현 선수처럼요.

이 작품 역시 이러한 비유에 딱 맞는 작품입니다. 트릭이 풍성하고 설정을 독특하게 가져가며 등장인물 캐릭터에도 트릭이 숨어 있는 등 특유의 화려한 퍼즐러, 트리커 스타일이라는 점에서 말이지요. 그러나 기교파로서의 단점 또한 도드라져서 안타깝습니다. 트릭, 즉 변화구의 각도와 위력은 좋았지만 동기와 설득력, 이야기 전개라 할 수 있는 제구가 영 꽝이었던 탓입니다. 온전히 트릭을 위해 짜맞춰진 작위적인 설정과 전개였거든요. 트릭이 없다면 작품으로 성립이 힘들 정도입니다. 이래서야 소설보다는 추리 퀴즈에 더 어울리는 것 아닌가 싶을 정도에요.

또한 아무리 사회부적응 잉여 오타쿠들이더라도 살인을 저지르면서까지 얼굴도 모르는 인물들과 어울리는 것에 대한 당위성을 부여하는 것 역시도 불가능합니다. 실제 범행 과정에 소요되는 돈과 노력, 리스크를 감안한다면 더더욱 그러합니다.

이럴 바에야 차라리 첫번째 에피소드처럼 미디어에 보도된 미궁에 빠진 사건을 아마추어 추리 애호가들이 모여 추리한다거나, 각자 생각한 트릭을 문제로 낸 뒤 서로 해결하기위해 머리를 짜내는 이야기 쪽이 훨~씬 좋았을거에요. 이편이 보다 스트라이크에 가까웠겠죠. 지금의 결과물은 트릭을 풀어나가는 면에서는 헛스윙을 기대할 수는 있지만 공 자체는 볼입니다.

때문에 별점은 2.5점입니다. 트릭이 비록 추리소설에서 중요한 요소이기는 하나 전개면에서 현실성과 합리성을 지녀야 완성도를 인정받을테니 당연한 결과겠죠. 볼의 위력이 좋아도 도망다니는 투수보다는 일단 스트라이크를 던질 줄 아는 투수가 진짜 투수인 처럼요. 그래도 트릭만큼은 괜찮은 부분이 있었던만큼 다음 투구에서는 보다 제구력이 동반된 피칭을 기대해 봅니다.

이하 에피소드 상세 소개에는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Q1. 다음은 누가 죽입니까?

이야기의 시작. 다섯 명의 멤버가 접한 살인 사건 보도. 그들은 사건이 살인게임이라는 것을 직감한 뒤 진상을 추리하기 시작한다...

살인게임 동호인이 많다는 설정 자체도 넌센스에다가 아무리 오타쿠 추리 매니아들이더라도 추리를 하는 과정의 정도가 너무 심해서 단편집의 시작임에도 불구하고 그닥 마음에는 들지 않았던 에피소드입니다. 트릭도 별다른 것은 없고 순수한 수사와 추리로 이루어져 있으며 독자의 공정한 참여가 차단되는 측면이 강해 높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딱 한 가지, 달력에 예고를 남기는 것이 단지 날짜와 술래를 정하는 것이 아니라 범행 장소인 맨션의 형태와 관련이 있다는 아이디어는 괜찮았지만 전체적으로 작위적이라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더군요. 달력처럼 구성된 맨션의 체크된 날짜와 호수를 일치시켜 범행을 저지른다는 게 솔직히 말이나 됩니까... 애시당초 일반인에 가까운 커뮤니티 멤버가 도출 가능했던 연관된 살인사건에 대한 정보를 경찰이 모르고 넘겼을 가능성도 낮고요. 

놀라운건 이 에피소드가 멤버들의 범행이 아닌 조사와 추리로 진행된다는 점에서 그나마 가장 현실적이라는 겁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Q2. 밀실 따위는 없다.

Q1에서 반도젠 교수가 낸 수수께끼와 그것을 응용한 두광인의 수수께끼에 대해 다루는 간단한 소품.

수수께끼 수준이라 딱히 언급할 것은 없습니다. 밀실살인은 현실에 대한 안티테제로 성립한 것으로, 밀실을 만드는 것 자체가 목적이라고 열변을 토하는 aXe의 발언이 더 인상적이었습니다. 추리 애호가로서 공감가기도 했고요. 별점은 2점입니다.

Q3. 살인마 잭 더 리퍼, 삼십 분의 고독

Q2에서 범행을 예고한 쟌가가 토막살인으로 밀실을 만든 뒤 그것을 모두가 추리하는 이야기.

다리 두 개를 문에 놓아둔 것만으로 밀실이라는 설정은 어이가 없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다리 두 쪽이 문에 기대어져 있다 한들 문을 여는 정도는 어렵지 않았을 것 같거든요.

그래도 핵심 트릭은 충분히 한 번 정도는 써봄직한 괜찮은 아이디어이긴 했습니다. 시체를 훼손한 이유도 연관되어 있으니까요. 또 다른 작품 속 트릭이라 할 수 있는 온도계를 이용한 미끄럼틀 아이디어도 나쁘지는 않았고 말이죠. 물론 트릭대로 잘 됐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그런데 시체 속에 숨어 있었다는 트릭을 이용할 것이면 더 교묘한 밀실을 만들 수도 있었을 텐데 조금 아쉽긴 하네요. 피해자와 딸만 가지고 있는 열쇠를 이용한다든가 하는 식으로 충분히 완전범죄를 저지를 수 있었을텐데 급하게 마무리 지은 느낌입니다. 그래도 트릭은 괜찮았기에 별점은 3점입니다.

Q4. 상당한 악마

Q3에서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두광인의 귀축 단두살인사건 예고에 이어지는 이야기입니다. 핵심 트릭은 두광인이 화상 채팅으로 커뮤니티 멤버들에게 특정 장소를 보여주고 알리바이를 만드는 것이었고요. 커뮤니티 멤버가 일종의 증인이 되어 두광인의 알리바이가 완벽하다는걸 증명하게 된다는 발상의 전환은 좋았습니다.

하지만 핵심 트릭이 그닥 와닿지는 않았습니다. 과연 잘 됐을까 하는 의문도 들고요. 피해자 루카가 통화 중 실수 한 번만 하더라도 모든 게 틀어질 테니까요. 또 두광인의 정체가 밝혀지는 마지막 반전은 괜찮았지만 이 커뮤니티처럼 위험한 인간들에게 자신의 정체를 공개한다는 것은 전혀!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트릭과 반전이 합리적 전개보다 우선한 나쁜 사례죠. 별점은 2점입니다.

Q5. 세 개의 빗장

aXe군이 공들여 준비하고 있다는 트릭을 이용하여 구현한 눈 속의 밀실살인이 수수께끼로 던져지는 에피소드.

눈이 그친 이후에도 피해자가 살아 있다는 증거가 제시되나, 시체가 발견된 곳은 발자국 하나 없는 쓰레기장 한가운데의 전화박스 형태의 박스였습니다. 박스는 세 개의 빗장이 걸려있는 이중밀실이었고요. 이를 위해 aXe군이 계속 이야기하는 정교한 장치 트릭이 선보입니다.

이런 류의 트릭은 극 중 aXe의 입을 통해 말해지듯 시간과 노력이 너무 들어서 실효성이 없어서 설득력이 떨어지지만, 이 작품처럼 순수하게 트릭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설정에는 제법 잘 어울렸습니다. 개인적으로 장소와 도구가 잘 맞아떨어진 괜찮은 트릭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장치의 정교함에 대한 묘사와 함께 숨은 그림 찾기와 같은 단서 제공이 필요해서 만화에 더 잘 어울렸겠지만, 평작 수준은 되는 에피소드라 별점은 2.5점입니다. 

덧붙이자면 경찰 수사가 제대로 이루어졌다면 추리 게임의 필요도 없이 진상은 이미 밝혀졌을 텐데, 경찰을 너무 우습게 보는 게 아닌가 싶긴 했습니다.

Q6. 밀실이여. 잘 있거라

멤버 중 명탐정 역할을 담당한 044APD가 낸 수수께끼. 관리인과 현관 자물쇠로 잠긴 이중밀실에서 아무런 관계가 없는 남녀가 살해된 시체로 발견된다는 내용입니다.

트릭은 범인이 피해자이며 탐정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신데렐라의 함정"을 생각나게 합니다. 핵심 트릭인 밀실살인 외에도, 별로 대단하지는 않지만 암호 트릭까지 등장하는 등 추리적으로 확실히 풍성합니다.

그러나 네 명이나 되는 사람들과 채팅을 하면서 자신의 죽음을 숨기고 일반적인 대화를 나눈다는 것은 말도 안 되죠. 거기에다가 044APD와 마미야가 동일인물이라는 진상은 정말 트릭을 위한 것일 뿐, 동기 측면에서는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았습니다. 왜 자기 자신을 배달해서 죽일 필요가 있었을까요? 트릭은 화려하지만 그 외의 것은 뭐 하나 합리적인 것이 없기에 별점은 2점입니다. 이런 식으로 마무리할 트릭은 아닌데, 트릭이 아깝네요.

2021/02/07

Q.E.D Season 1 정주행, 내맘대로 Best - part 2

거의 10년 전, Q.E.D 1권부터 30권 까지 중 베스트 에피소드를 정리했던 적이 있습니다. 시즌 1이 50권으로 마무리되었으니, 이어서 나머지 31~50권 중 베스트 에피소드를 꼽아봅니다. 시즌 2라고 할 수 있는 iff도 넘버링이 10을 훌쩍 넘어간 지금 시점에서는 다소 뒤 늦은 감이 있지만요.

"베스트 5" 

32권 "매직 & 매직" 

추리마술, '트릭' 이라는 요소가 핵심이라는건 동일하지만, 추리는 트릭을 밝혀야 하는 반면 마술은 트릭을 밝히면 그 가치가 없어져 버린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이 차이를 잘 드러내는 내용으로, 토마마저 놀라게 만드는 반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34권 "모야당" 

두 개의 트릭이 등장하는 본격물. 특히 기발하면서도 독자의 허를 찌르는 첫번째 밀실 트릭이 좋았습니다. 풀장에서 심장 마비를 일으키게 만든 두 번째 트릭도 주요 단서가 명확하게 남아있을 뿐 아니라 다이빙하는 시간을 특정할 수가 없는 등 문제는 있지만 나쁘지 않았고요. 무엇보다도 제목인 '모야당'이라는 전설과 사건 내용을 절묘하게 결합시킨 전개가 일품이었던 작품입니다. 

35권 "크리스마스 선물" 

언제나 기본 이상 재미를 보장해 주는 에나리 회장과 추리 동호회가 등장하는 일상계 작품. 토마가 쓴 각본으로 공연되는 연극 "오각관 살인사건"에 관련된 사건을 다루고 있는데, 다른 추리적인 요소 모두 좋았지만 특히 연극이라는 상황에 최적화되어 있는 "오각관 살인사건" 속 밀실 트릭이 귀엽고 유쾌해서 마음에 들었어요.

42권 "에셔호텔" 

제목 그대로 에셔의 작품을 모티브로 한 기이한 호텔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에 사용된, 에셔의 작품을 응용한 트릭이 좋았습니다. 범인이 살인을 저지른 눈물나는 동기를 듣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진상을 밝히고 범인을 옭아매는 토마의 냉정함도 인상적이었고요. Q.E.D만의 특징을 잘 드러내는 작품이라 할 수 있겠네요.

46권 "순례" 

여러가지 증언 속에서 진실을 찾아낸다는 Q.E.D에 자주 등장하는 전개의 작품. 하지만 일본군과 장개석의 국민당 정부가 전투를 벌이던 당시를 무대로 해서 시대 상황을 이야기에 잘 녹여낸, 완성도 높은 역사 추리물이었습니다. 결말도 깔끔해서 만족스러웠어요.

이렇게 5편이 제가 선정한 후반부 베스트 5입니다. 이전 선정작과 합쳐 저만의 'Q.E.D season 1 (1~50권)의 베스트 에피소드 10'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덧붙여, 아깝게 베스트로 선정되지 못한 가작들도 소개해드립니다.

33권 "추리소설가 살인사건" 

추리 소설가가 트릭 때문에 살인을 저지른다는건 "Nervous Breakdown"에서도 등장했었던 설정이지요. 거기에서도 '미키가 노래하는 미버'라는 초월 번역이 돋보이는 좋은 작품이었지만, 이 작품도 만만치 않아요. 괜찮은 밀실 트릭과 추리 소설가들의 심리를 잘 그려낸 덕분입니다. 아쉽게도 용의자가 너무 적고, 트릭이 만화적이라는 단점 때문에 살짝 감점하나 가작으로는 충분합니다.

35권 "두 용의자" 

강도 사건에 대한 추리물로 이야기 자체는 뻔합니다. 하지만 본 사건과 관계없는 과거의 사건을 들먹여 독자를 속이려고 시도하는, 추리 소설에 흔히 등장하는 전개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 굉장히 인상적이었기에 가작으로 선정합니다.

38권 "17" 

일본 수학인 "화산"을 다루고 있는 일종의 가상 역사 수학물로, 추리적인 요소보다 현학적인 측면에서 큰 만족감을 안겨다 주었습니다. 이런 점도 Q.E.D의 핵심 재미 요소라고 할 수 있겠지요.

40권 "밀실 No.4" 

금고 속 돈을 훔치는 방법에 대한 트릭이 돋보였던 일상계 소품이었던 "4각관계"도 좋았지만, 추리 동호회의 에나리가 등장하는 본격물인 "밀실 No.4"야 말로 진정한 가작입니다. 밀실 살인 사건 해결을 테마로 한 여행 상품 체험 중 벌어진 진짜 밀실 살인 사건에 대한 이야기지요. 여행 상품 속 밀실 트릭은 억지스럽지만 재미는 있었습니다. 실제 살인 사건에 사용된, 촛불을 이용한 시간 착오 트릭도 괜찮은 착상이었고요. 그러나 이 작품의 핵심은 토마가 용의자에게 하는 말이었습니다. 덕분에 가작으로 꼽습니다. 상세 내용은 링크 속 리뷰를 참조하시길.

41권 "카프의 탑" 

추리적으로는 별 볼일 없어요. 그러나 논리 퍼즐에 대한 학습 만화로는 최고 수준이었습니다. 이런 학습 만화적인 부분도 Q.E.D만의 볼거리이자 매력 포인트라고 생각하기에, 가작으로 꼽습니다.

2023/06/08

걸작 밀실 미스터리 : 불가능 범죄 베스트 10


짧게 번역해 보았습니다. 오역이 많은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영국의 추리 소설가 톰 미드(국내에 소개된 적은 없네요)가 밀실 미스터리의 장대한 역사와 밝은 미래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먼저 "밀실 미스터리"라는 용어는 정확히 무엇을 의미할까요? 밀실 미스터리를 다른 장르와 차별화하는 요소는 '불가능'이라는 요소입니다. 사실 저는 이 용어를 '불가능한 범죄'와 동의어로 사용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에서 범죄(보통 살인)가 저질러지는 이야기를 의미합니다. 이러한 이야기는 종종 초자연적인 사건과 불길한 분위기로 으스스하고 섬뜩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그러나 (그리고 이것이 중요한 부분입니다.) 결국 모든 것이 기발한 추리와 합리적인 설명에 의해 눈부신 스타일로 풀리게 됩니다.

그렇다면 이 장르는 어디서 시작되었을까요? 에드거 앨런 포의 <<모르그 거리의 살인>>은 최초의 밀실 미스터리로 꼽히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소설은 미스터리라기보다는 공포, 호러 소설에 가깝고 실제로 탐정이 거의 등장하지 않기 때문에 논란의 여지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큰 영향을 미쳤으며 이후 몇 년 동안 장르의 틀을 세우는 데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초기 작품으로는 윌키 콜린스의 단편 소설 <<무시무시하고 이상한 침대>>가 있습니다 (물론 콜린스는 최초의 제대로 된 '탐정 소설'인 <<월장석>>을 쓴 작가로 인정받고 있기도 합니다). 아서 코난 도일의 <<얼룩 띠>>도 마찬가지입니다.
20세기에 접어들면서 밀실 미스터리는 본격적으로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습니다. 이스라엘 장윌의 <<빅 보우 미스터리>>와 가스통 르루의 <<노란 방의 비밀>>은 상승 궤도에 있던 장르의 초기 하이라이트를 장식했습니다.

탐정 소설의 황금기에는 밀실 미스터리의 인기가 붐을 이루었습니다. 밀실 미스터리는 퍼즐이 핵심인 '공정한 페어플레이 미스터리'에서 특히 도전적인 하위 장르이기도 합니다. 아가사 크리스티, 도로시 L. 세이어스, 엘러리 퀸과 같은 위대한 작가들은 독자가 가상의 범죄를 스스로 해결하는 데 필요한 모든 단서를 제공함으로써, 독자와 공정하게 경쟁하는 것을 중요시했는데 이는 밀실 미스터리의 주요 요소이자 오늘날 우리가 이해하는 장르의 중요한 요소이기도 합니다.
존 딕슨 카가 문학계에 충격을 주며 등장한건 1930년대 초, 황금기가 절정에 달했을 때였습니다. 카는 최고의 밀실 미스터리의 대가이자 저에게 끊임없는 영감의 원천입니다. 그는 30년대와 40년대에 걸쳐 걸작을 연이어 썼으며, 그의 경력은 풀리지 않을 것 같은 문제를 놀라운 감각으로 풀어내는는 능력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는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30년대와 40년대 대부분을 영국에서 살았습니다. 따라서 그는 영국 범죄소설 커뮤니티에서 환영을 받았으며, 권위 있는 영국 탐정 협회에 입회한 단 두 명의 미국인 중 한 명이기도 했습니다.

밀실 미스터리는 제2차 세계대전의 여파로 인기가 하락했지만 (이후 수십 년 동안에도 여전히 훌륭한 작품이 많이 출판되었지만), 다시 운이 트이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Jonathan Creek, Monk, Death in Paradise와 같은 TV 쇼는 새로운 세대에게 불가능한 문제의 즐거움을 소개했습니다. 다니엘 스태샤워와 빌 프론지니 같은 작가들이 기억에 남는 상상력 넘치는 작품을 계속 발표하면서 책으로도 계속 인기를 얻고 있고요. 하지만 이 장르를 처음 접한다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요? 시작을 돕기 위해 제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밀실 미스터리 10편의 목록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이 목록은 지난 세기 동안 정말 눈부신 작품을 만들어낸 장르의 최고를 대표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작가당 한 권의 소설만 선정하였고 (그 자체로 거의 불가능한 작업이었죠), 매일 새로운 작품을 발견하여 빠르게 늘어나는 책장에 추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긴장감을 위해 역순으로 제 상위 10권을 소개합니다:

WHISTLE UP THE DEVIL : 데릭 스미스 (1953) (국내미출간)
데릭 스미스에게 특별한 친밀감을 느끼는 이유는, 그도 저처럼 자신이 존경하는 거장들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밀실 미스터리를 쓰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1953년에 처음 출간된 WHISTLE UP THE DEVIL은 두 건의 불가능한 살인 사건으로 이 장르에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모든 것은 비 오는 어느 날 밤, 로저 퀘린이라는 남자가 살해되면서 시작되지요.
슬프게도 이 소설은 스미스의 생애에서 출판 된 유일한 소설이었습니다. 스미스가 워싱턴 포스트에서 걸작으로 칭송받은 WHISTLE UP THE DEVIL로 찬사를 받기 시작한지는 고작 10년밖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BLOODHOUNDS : 피터 러브시 (1996)
피터 러브시는 고전적인 스타일의 퍼즐 미스터리를 대표하는 작가로, 그의 피터 다이아몬드 시리즈는 고전 본격물의 공정함과 경찰 수사를 완벽하게 조화시켰습니다. BLOODHOUNDS는 미스터리 소설 애호가 그룹이 실제 밀실 미스터리에 휘말리는 이야기를 다룬 대표적인 소설입니다. 따라서 존 딕슨 카의 이름이 자주 언급됩니다. 잠겨 있고 뚫을 수 없는 운하 바지선에서의 살인 사건이라는 매우 특이한 문제도 등장합니다. 이 장르가 처음이고, 잘 알지 못한다면 이 작품부터 시작해도 좋습니다.

INVISIBLE GREEN : 존 슬래덱 (1977)
존 슬래덱은 공상 과학 소설계에서 중요한 인물이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뛰어난 불가능한 범죄 소설인 Black Aura와 INVISIBLE GREEN은 오랫동안 외면당해 왔어요. 특히 INVISIBLE GREEN은 작가의 다재다능한 상상력, 생동감 넘치는 묘사, 예리한 논리를 보여줍니다. 고전 본격물의 황금기가 끝난 지 한참 지난 1970년대에 출간되었다는 점에서 이례적인 작품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마추어 탐정 태커이 핀은 에드먼드 크리스핀의 저비스 펜과 같은 수준의 황금기 밀실을 완벽하게 보여줍니다. 슬래덱이 공상 과학 소설을 위해 그를 버리기 전까지 핀은 단 두 편의 소설과 단편 소설에만 등장했을 뿐인데 정말 안타깝습니다. 그가 또 무엇을 성취할 수 있었을지 누가 알겠습니까?

NINE TIMES NINE : H.H. 홈즈 (앤서니 부셰) (1940)
앤서니 부셰는 미스터리 장르의 진정한 학자였으며, 실제로는 미스터리를 거의 쓰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Bouchercon' 덕분에 그의 명성은 계속 높아져 갔습니다. 하지만 그가 쓴 몇 편의 미스터리는 놀라울 정도로 훌륭합니다. NINE TIMES NINE에는 빛의 아이들이라는 사악한 종교가 등장합니다. 이 종교를 믿지 않는 사람이 빛의 아이들을 이끄는, 수수께끼 같은 두건을 쓴 지도자에게 저주를 받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매우 모호한 상황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노란 가운을 입은 의문의 남자가 범죄 현장에서 목격된 후 사라지고요. 우르술라 수녀는 이 복잡한 사건의 여러 얽힌 실타래를 풀 수 있는 유일한 인물입니다.

MR. SPLITFOOT : 헬렌 맥클로이 (1969)
밀실 미스터리에 관한 한, 헬렌 맥클로이의 <<어두운 거울 속에>>는 비평적 논의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작품이며, 당연히 그럴 만합니다. 심리학자 바질 윌링 박사가 등장하는 이 시리즈는 도플갱어의 출현이라는 불가능해 보이는 문제를 다룬 멋진 작품입니다. 매우 불길하면서도 몽환적인 분위기와 잊혀지지 않는 결말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여기에 포함하기로 한 맥클로이 작품은 바질 윌링 시리즈의 후기 작품입니다. 말 그대로 밀실 미스터리에 더 가깝기 때문입니다. <<어두운 거울 속에>>와 마찬가지로 MR. SPLITFOOT 역시 특유의 분위기를 놓치지도 않고요. 예를 들어, 제목은 다름 아닌 사탄에 대한 언급입니다. 
이 소설은 밤을 보낸 사람은 아침에 시체로 발견된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유령의 방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모두의 예상대로, 전설을 시험해 보려는 자원자가 곧바로 등장합니다....

<<혼진 살인사건>> : 요코미조 세이시 (1946)
요코미조 세이시는 일본에서 셜록 홈즈에 버금가는 탐정 긴다이치 코스케를 만들어낸 전설적인 작가입니다. 혼진 살인 사건은 킨다이치가 요코미조의 소설에 출연한 77편의 작품 중 첫 번째 작품으로, 결혼식 날 밤 잔인하게 살해당한 채 발견된 한 쌍의 신혼 부부 사건을 해결하는 내용입니다.

<<모자에서 튀어나온 죽음>> : 클레이튼 로슨 (1938)
마술과 문학을 결합하는걸 전문으로 하는 작가의 놀라운 데뷔작입니다. 그는 마술사이자 존 딕슨 카의 절친한 친구이기도 했습니다. 카처럼 클레이튼 로슨도 해리 후디니와 같은 과거의 전설적인 마술사들을 존경했습니다. 로슨의 탐정인 위대한 멀리니에는 분명히 후디니의 요소가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 멀리니 이야기는 가장 순수한 '미스디렉션'을 보여줍니다.

THE CRIMSON FOG : 폴 할터 (1988)
폴 할터는 종종 존 딕슨 카의 후계자로 설명되는데,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는 독특한 문제를 제시할 뿐만 아니라 긴장감과 불안감을 조성하는 데에도 탁월한 재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의 모든 소설을 강력히 추천하지만, 마술 쇼 중 무대에서 벌어지는 불가능한 살인을 다룬 THE CRIMSON FOG는 그의 작품을 처음 접하는 독자들에게 이상적인 출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대담하니까요! 또 잭 더 리퍼가 직접 카메오로 출연하기도 합니다.

RIM OF THE PIT : 해크 탤벗 (1944)
서프라이즈! 또 다른 마술사, 해크 탤벗은 프로 마술사 헤닝 넬름스가 두 편의 환상적인 밀실 미스터리인 The Hangman’s Handyman과 RIM OF THE PIT을 출간할 때 사용한 가명이었습니다. 두 작품 모두 모험가이자 탐정인 로건 킨케이드가 등장하며, 작가의 기발한 상상력을 풍부하게 선보입니다. 
RIM OF THE PIT에서는 초현실적이고 악마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며, 눈 덮인 시골을 배회하는 섬뜩한 유령이 등장합니다. 하지만 물론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제제벨의 죽음>> : 크리스티아나 브랜드 (1948)
크리스티아나 브랜드는 정말 뛰어난 미스터리 작가였습니다. 더 많은 작품을 쓰지 못한 것이 아쉽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야전 병원으로 사용되었던 영국의 시골집을 배경으로 한 그녀의 책 <<녹색은 위험>>은 그녀의 작품 중 가장 널리 읽힌 작품입니다. 정말 위대한 황금기 미스터리지요. 
하지만 밀실 미스터리와 불가능한 범죄로는 <<제제벨의 죽음>>이 최고입니다. 시리즈 탐정 코크릴 경감이 등장하는 이 작품은 특히나 독특하고 수수께끼 같은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노쇠하고 악연이 깊은 여배우가 무대에서 살해당한 미스터리한 상황을 말이지요. 퍼즐에 대한 해답은 놀랍기 그지없습니다. 반드시 읽어보아야 할 작품입니다!

<<세 개의 관>> : 존 딕슨 카 (1935)
각 작가가 하나의 작품만 선택해야 한다고 강조한 이유가 있습니다. 존 딕슨 카는 "걸작"이라는 범주에 속하는 책을 너무 많이 썼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그의 작품을 낭송하는 것만으로도 목록을 쉽게 채울 수 있지요. <<세 개의 관>>은 아마도 그의 가장 유명한 작품일 것이며, 무한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소설입니다. 처음 읽은 지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 있네요. 기디온 펠 박사가 눈이 내리는 런던의 거리에서 보이지 않는 살인범과 사투를 벌이는 이야기입니다.
아울러, 그는 자신의 이름으로 기디온 펠 미스터리를 썼지만 카터 딕슨이라는 필명으로 다른 시리즈도 썼는데, 이 시리즈에는 친구들에게 H.M.으로 알려진, 거구의 탐정 헨리 메리벨 경이 등장합니다. 이 작품들은 모두 찾아볼 가치가 있습니다. 기디온 펠 이야기와 H.M. 작품들 중 일부는 불가능에 대한 힌트가 없는 단순한 후더닛이지만, 모두 눈부실 만큼 훌륭합니다! 존 딕슨 카와 그의 놀라운 작품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려면 더글러스 그린의 전기 he Man Who Explained Miracles를 강력 추천합니다.

밀실 단편 소설
밀실 미스터리는 장편 소설에만 국한된 것은 아닙니다. 엘러리 퀸 미스터리 매거진과 같은 출판물에서는 과거와 현재의 작품을 계속해서 출판하고 기념하는 등 밀실 미스터리는 단편 소설 형식으로도 활발히 발표되고 있습니다. 저도 여러 편의 밀실 미스터리 단편 소설을 직접 썼기 때문에 (“The Indian Rope Trick”. “The Footless Phantom”은 모두 EQMM에 실렸어요), 불가능해 보이는 문제를 몇 페이지 안에 공정하고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에드워드 D. 호크와 같은 작가를 깊이 존경합니다. 특별한 순서는 없지만, 여기 몇 가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늙은 떡갈나무의 수수께끼>> 에드워드 D. 호크 (1978)
제가 단편 작품 섹션을 포함시킨 주된 이유는 호크 때문입니다. 그는 카에 필적할 만한 상상력을 가졌지만, 거의 전적으로 단편 소설을 전문으로 하여 평생 동안 1,000편에 가까운 작품을 썼습니다. 그의 작품 중 단 한 편을 꼽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지만, 아마도 그의 가장 유명한 시리즈는 작은 마을의 의사가 탐정으로 변신한 샘 호손이 등장하는 시리즈일 것입니다. 호손의 모든 이야기 중에서도 <<늙은 떡갈나무의 수수께끼>>는 독창성과 문학적 성취로 특히 주목할 만합니다.

<<>> 아가사 크리스티 (1937)
황금기 미스터리 관련 글에서 아가사 크리스티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녀는 밀실 추리 소설을 많이 쓰지는 않았지만, 그녀의 포와로 시리즈 작품인 <<에르큘 포와로의 크리스마스>>와 <<메소포타미아의 살인>>에는 교묘하게 고안된, 불가능 문제들이 등장합니다. 그녀의 대표작인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가 밀실 미스터리에 포함되는지 여부에 대한 논쟁도 있고요. 저는 여기에 포함시키지 않기로 결정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걸작인건 분명합니다. 이 작품 대신 벨기에의 작은 회색 뇌세포가 꿈에서 예언된 밀실 살인 사건에 휘말리는 단편 소설 <<꿈>>을 선택했습니다.

<<붉은 밀실>> 아유카와 테츠야 (1954)
일본에서 밀실 미스터리와 본격 미스터리의 신조를 확립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친 (그리고 끔찍한) 이야기입니다.

<<녹색 문은 위험>> 노리즈키 린타로 (1991)
완벽한 퍼즐 미스터리이자 신본격 장르의 주옥같은 작품.

<<The Name on the Window>> : 에드먼드 크리스핀 (1953)
크리스핀은 뛰어난 재치를 지닌 작가이자 저처럼 카의 열렬한 팬이었습니다. 그의 시리즈 탐정인 저비스 펜과 이 깔끔한 밀실 문제를 통해, 크리스핀은 자신이 거장의 제자임을 증명했습니다.

<<The House in Goblin Wood>> : 카터 딕슨(존 딕슨 카) (1947)
헨리 메리 베일 경은 이 진정으로 감각적인 작품에서 불가능해 보이는 실종에 맞서 그의 재치를 발휘합니다.

<<The Border-Line Case>> : 마저리 앨링엄 (1936)
앨링엄은 크리스티와 마찬가지로 밀실이나 불가능한 범죄 이야기를 전문으로 하지 않은 또 다른 '범죄의 여왕'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The Border-Line Case은 이 장르의 훌륭하고 완벽하게 구성된 예입니다.

<<From Another World>> : 클레이튼 로슨 (1948)
강령회가 예상치 못한 기괴한 결과를 낳는 단편 걸작.

<<13호 독방의 문제>> : 자크 푸트렐 (1905)
장르의 초석을 다진 작품. 반드시 읽어야만 합니다.

<<개의 신탁>> : G.K. 체스터턴 (1926)
체스터턴브라운 신부는 홈즈, 포와로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위대한 탐정입니다. 체스터턴 자신이 존 딕슨 카의 기드온 펠의 모델이었다는 사실은 말할 것도 없죠!

<<The X Street Murders>> : 조셉 커밍스 (1957)
조셉 커밍스는 슬프게도 잘 알려지지 않은 또 다른 작가로, 시리즈 캐릭터 브룩스 U. 배너 상원의원은 헨리 메리베일 경의 후계자라 할 수 있습니다.

<<The House of Haunts>> 엘러리 퀸 (1935)
엘러리 퀸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미스터리 작가 중 한 명입니다 (사실 그는 두 명입니다. 사촌 프레드릭 다네이와 맨프레드 리가 만든 가명이었죠). 안타깝게도 두 사람은 밀실 미스터리를 많이 쓰지 않았지만, 그들이 쓴 밀실 미스터리는 모두 읽을 만한 가치가 있었습니다. <<차이나 오렌지의 비밀>>과 <<the Door between>>모두 밀실 문제를 다룬 훌륭한 소설이지만, 두 작품 모두 불가능성이 다른 더 눈부시고 기발한 플롯 요소에 가려져 목록에 포함시키지 않았습니다. 하우더닛보다는 후더닛으로 읽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존 딕슨 카를 읽은 남자>> 윌리엄 브리튼 (1966)
이 책도 꼭 포함시켜야 했어요. 제목만 봐도 알 수 있죠! 마지막에 유쾌한 반전이 있는 멋진 블랙 코미디 작품입니다.

밀실 미스터리의 미래
그렇다면 이제 어디로 가야 할까요? 다행히도 밀실 미스터리 장르가 다시금 르네상스를 맞이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현대 작가들의 새로운 작품이 매일 출간되고 있고, 이 장르에서 부당하게 외면받았던 고전이 재발간되는 것을 보면 정말 기쁩니다. 최근 신작으로는 Gigi Pandian의 Under Lock과 Skeleton Key, 짐 노이의 <<붉은 죽음 살인 사건>> (에드거 앨런 포의 "붉은 죽음의 가면"을 매혹적으로 재해석한 작품!), 제임스 스콧 번사이드의 <<배링턴 힐스 뱀파이어 사건>> 등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또한 마틴 에드워즈의 뛰어난 레이첼 새버네이크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인 <<블랙스톤 펠>>은 밀실 요소가 특징인 것으로 알고 있고, 로버트 소로굿의 아늑한 미스터리 시리즈 두 번째 작품인 <<말로우에 죽음이 찾아왔다>>도 기대가 됩니다. 앞으로도 밀실 미스터리와 불가능한 범죄가 계속 번성하기를 바랍니다.

2025/10/10

밀실 황금 시대의 살인 (눈의 저택과 여섯 개의 트릭) - 가모사키 단로 / 김예진 : 별점 2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밀실 황금 시대의 살인"은 제목과 '여섯 개의 트릭'이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 여섯 개의 밀실 수수께끼를 전면에 내세운 장편입니다. 수수께끼를 정리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설백관 밀실사건(간자키 살인 재현)
— 수수께끼: 잠긴 방문, 유일한 열쇠는 시체 옆 닫힌 플라스틱 뚜껑 달린 병 안에 있었고 창문은 열려 있으나 촘촘한 창살 때문에 방 안으로 병을 던져 넣을 수 없었다. 
— 해답: 고무줄-추-식칼을 연동한 장치 트릭. 고무줄을 병 뚜껑 고리에 꿴 뒤 방 안에서 창살을 통과시켜 투입 → 추를 창밖 고무줄 끝에 달아 장력 형성 → 사체에 꽂힌 식칼 주위를 통과하도록 병을 잡아 당겨 문을 나선다 → 문을 잠근 뒤 열쇠를 병에 넣고 병을 문 아래 카펫 속에 은닉 → 강제 개방하면 장력으로 병이 실내로 튕기고, 식칼에 의해 고무줄은 절단된다. 추에 의해 고무줄은 창밖으로 떨어진다.

시하이 씨 식당 살인
— 수수께끼: 사망 추정 시각에 누구도 식당동 출입 없음. 피해자는 모조 핼버드에 반복 찔림.
— 해답: 리모컨 슬라이드 식기장을 이용했다. 식기장이 비밀 통로의 숨은 출입구 겸 레일 구조 → 핼버드를 고정한 채, 외부에서 리모컨으로 식기장을 왕복 이동시켜 살해 → 핼버드는 액체 질소로 고정되어 시간이 지나자 녹아 떨어졌다.

사구리오카 방 내 사망
— 수수께끼: 내부 잠금 상태에서, 피해자는 머리에 총상을 입고 죽었다.
— 해답: 시한 폭발 탄환 장치에 의한 것. 침대 밑에 놓였던 장치를 발견한 피해자가 장치 확인을 위해 수면등 아래로 옮기다가 폭발해 사망했다.

마네이 도미노 밀실 사건
— 수수께끼: 피해자 주변을 감싼 채 문까지 잇는 도미노 띠가 놓여 있었고, 문은 잠김. 열쇠는 시체 옆에 놓여 있었다.
— 해답: 액체질소 얼음 고정틀 + 데드볼트 임시 고정을 사용. 문에 얼음틀로 고정한 도미노를 붙임  → 데드볼트 일부를 잘라냄  → 도어 레버를 소폭만 돌린 상태에서 얼음으로 고정 → 문을 닫으면 도미노 얼음틀은 시체 주위와 문을 잇게 됨  → 도어 레버 얼음이 녹으면 도어락 자동 잠김  → 얼음틀 소멸로 도미노만 남음.

야시로 씨 도서실 밀실 사건
— 수수께끼: 문 잠김, 도서실의 유일한 열쇠인 동쪽 동 마스터 키는 시체 옆 꽉 닫힌 잼병 안에서 발견됨, 문 내부 레버엔 가샤폰 돔 커버가 덮여 있었음.
— 해답: 문짝 바꿔치기. 시신을 도서실로 옮김  → 마스터 키를 잼병에 넣고 시체 옆에 놓음  →  자신의 방 문짝과 도서실 문짝을 교환 → 안쪽 레버에 가샤폰 돔 커버 설치  → 문을 닫고 나가서 자기 방 열쇠로 문을 잠금.

미쓰무라의 과거 완전 밀실
— 수수께끼: 완전하게 잠긴 방문과 고정식 창으로 완전 밀폐된 현장, 스페어 키 없는 유일한 방 열쇠는 시체 옆 서랍 속(서랍은 시체 주머니 열쇠로 잠김).
— 해답: 문짝 바꿔치기 + 다른 방 스페어 키를 이용. 현장 외 다른 방에는 스페어 키가 있었음. 범행 후 현장과 다른 방의 문짝 교환 → 다른 방 열쇠를 현장에 남기고 스페어 키로 외부에서 잠금 것.


이렇게 여섯 개의 사건과 트릭이 펼쳐지는데, 이 중 고전적인 장치형 트릭의 맛을 잘 살린 몇몇 사건들은 볼 만 합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첫 번째 설백관 밀실사건과 다섯 번째 야시로 씨 도서실 사건이었습니다. 설백관 사건은 고전적인 장치형 트릭을 현대적으로 변형한 사례로, 사용된 도구는 물론 현장 상황까지가 모두 실제로 범행에 필요했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높습니다. 특히 녹음기나 불 꺼진 방 같은 설정이 단순한 분위기 조성이 아닌 트릭의 일부라는 것도 대단했어요. 비교적 간단한 장치로 복잡하지 않으면서 정교한 느낌을 주며, 독자가 충분히 추리 가능하도록 공정하게 정보를 제공해 주고 있고요.

도서실 사건 트릭은 정말 완성도가 높습니다. 무엇보다도 범인의 방 문짝과 도서실 문짝을 교체하는 트릭은 앞서 구즈시로의 대사를 통해 힌트를 제공함으로써 독자에게도 충분히 추리할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만 합니다. 단서 제공 역시 철저하게 이루어지며, 도서실만이 마스터 키로만 열 수 있다는 설정도 좋았습니다. 같은 방식을 사용하더라도 현장이 다른 방이었다면 문 안에 두 개의 열쇠(마스터 키, 방 열쇠)를 남기게 되고, 그 때 방 열쇠로 문을 열 수 없게 되니까요.

하지만 여섯 개의 트릭 모두 완성도 높게 제공하는 건 어려웠던 듯 합니다. 특히 시하이 씨 사건의 핼버드 트릭과 사구리오카 사건은 유치하고 황당한 수준이었어요. 사구리오카 사건에서 탄환을 발사한 시한 장치는 도대체 어디로 사라졌는지도 잘 모르겠고요.

액체질소를 만능 도구처럼 쓴 트릭들도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대표적인게 마네이 사건의 도미노 트릭입니다. 너무 억지스러워서 납득이 되지 않았습니다. 도미노 설치를 위한 얼음판을 만들려면, AI의 확인 결과 약 7.3리터의 물이 필요하다는 계산이 나오는데, 이 정도의 얼음이 녹아 흐른다면 흔적이 남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바닥재가 물이 스며드는 소재였다는 정도로 대충 넘어가는건 무리에요. 몰래 만드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닐테고요. 데드볼트 잠금만으로도 충분히 효과적으로 밀실을 만들 수 있어서 도미노까지 이용한 이중 밀실을 구현할 이유도 없습니다.

미쓰무라 과거 사건에서 사건 현장 외 다른 방의 열쇠는 스페어가 있었다는 중요한 정보를 서술 트릭처럼 숨긴건 반칙처럼 느껴집니다. 이런걸 경찰이 알아채지 못했다는건 설득력이 떨어지고요.

밀실 트릭 외의 추리적인 부분도 한심한 수준입니다. 트릭을 풀어낸 뒤, 이걸 저지를 수 있는건 ooo뿐이야!는건 워낙에 용의자가 적은 탓에 별다른 감흥이 없고, 동기도 설득력이 약하기 때문입니다. 꽤나 장황하게 설명하는 트럼프 연쇄 살인과 ‘녹스의 십계’, 그리고 단순한 십계 설정은 억지스럽기 짝이 없고요. 이를 통해 어떻게든 살인의 타당성을 보여주려 애쓰지만, 희생자들이 죽을 만큼 잘못한 것도 아니고 범인을 특정할 수 있는 단서도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결과에 과정을 꿰어 맞추는 느낌이라서 거슬리기만 했습니다. 

설정의 완성도는 더 문제입니다. 밀실을 풀 수 없으면 무죄 판결을 받는다는 핵심 세계관 설정부터가 성립하기 힘든 탓입니다. 마스터 키나 스페어 키가 존재하지 않음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는지 설명도 없으며, 21세기에 열쇠 복제가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니까요. 작품의 세계관에 동의할 수 없으니, 재미를 느끼고 몰입하기란 애초부터 불가능합니다. 

주요 인물들 역시 만화적이고 비현실적입니다. 완벽한 밀실 살인으로 무죄를 받은 미소녀 미쓰무라 시쓰리, 아이돌이자 밀실 제조사로 범행을 저지르는 리리아, 살인 현장을 숭배한다는 종교단체 ‘새벽의 탑’과 17세 소녀 주교 펜릴 앨리스해저드 등은 지나치게 작위적이고, 이들의 언행은 독자의 몰입을 방해하는 수준입니다. '빙해' 어쩌구하는 대사는 제가 다 창피해지더라고요.

그래서 별점은 한없이 1.5점에 가까운 2점입니다. 몇몇 밀실 트릭은 고전 본격물의 정수를 잘 살려 볼 만합니다. 하지만 억지 설정과 조악한 추리 요소, 몰입을 방해하는 세계관과 캐릭터는 치명적인 탓에 완성도 높은 작품이라고 하기 어렵습니다. 솔직히 이 리뷰를 쓰는데 걸린 시간이 아까울 정도의 망작이에요. 밀실 트릭물의 광팬이 아니라면 추천하지 않습니다. "이 미스터리가 굉장해" 대상작이라는데, 이 정도까지 수준이 떨어졌는지 몰랐네요.

2008/04/27

세 개의 관 - 존 딕슨 카 / 김민영 : 별점 3점

세 개의 관 - 6점
존 딕슨 카 지음, 김민영 옮김/동서문화동판주식회사

수수께끼의 남자가 나타난 뒤 방 안에서 연기와 같이 사라진 그리모 교수 살인 사건과 거리 한복판에서 유령과 같은 목소리와 함께 살해된 카리오스트로 거리의 마술사 살인 사건, 불가능해 보이는 두 사건의 해결을 위해 기디온 펠 박사가 나섰고, 의외의 진상을 밝혀낸다.

존 딕슨 카 최고 작품 중 하나라는 작품입니다. 번역된지는 꽤 되었지만, 기디온 펠 박사 시리즈는 취향이 아닌 탓에 통 손이 가지 않아서, 이제서야 완독하게 되었습니다. 추리 소설 역사에 길이 남을 명탐정이긴 하지만 기디온 펠 박사를 싫어하는 이유는 잘난척하는 캐릭터와 장황한 언변으로 엘러리 퀸이나 파일로 밴스 같은 짜증 계열 탐정으로 저한테는 분류되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방코랑 탐정이 개인적으로는 더 취향이에요.

하여튼, 이 작품은 고딕 호러물과 추리물의 결합이 특기인 딕슨 카의 작품답게 "트란실배니아의 흡혈귀 전설"이라는 호러적인 소재를 도입하고 있으며. 흡혈귀 전설에서 유래한 관, 그리고 관에서 살아나온 시체라는 설정을 "불가능 살인"의 기묘함과 잘 결합시키고 있습니다. 눈 위에 발자국 하나 남기지 않고 사라진 범인이라는 설정은 그 자체만으로도 흡혈귀나 마술사와 딱 맞아 떨어지는 이야기니까요.

또한 이러한 불가능 살인 사건이 무려! 두 건이나 벌어지며 - 모두 밀실 살인 사건으로 한 건은 자신의 방에서 살해된 그리모 교수 사건이고, 또 하나는 눈이 쌓인 거리 한 복판에서 총에 맞아 살해된 마술사 프레이 사건입니다 -   두 건 모두 의외의 진상을 보여주는 덕분에 추리적인 재미는 상당합니다. 아무래도 하나보다는 두개가 낫지요.

하지만 그리모 교수 사건은 완벽한 트릭과 장치에 의한 정교한 밀실 살인 사건인 반면, 프레이 사건은 우연과 특수한 상황이 결합된 돌발 상황일 뿐이라는건 조금 아쉬웠습니다. 범인 자신도 예상하지 못한, 우연과 우연이 여러 개 겹친 상황이라는 점에서 아무래도 높은 점수를 주기 힘드네요.
그리고 첫번째 사건도 아주 정교하고 공들인 장치와 트릭이 어우러진 밀실 사건이라는 점에서는 명성에 값하나, 가장 중요한 부분에서 범인의 "체력"에 너무나 많은 것을 기대고 있다는건 설득력이 다소 부족합니다. 때문에 트릭 면에서는 알려진 것 만큼 완성도가 높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기대가 너무 큰 탓도 있겠지만요.

그래도 흡혈귀 전설에서 시작해서 마술에 이르기까지 풍부한 지식과 다양한 이야깃거리를 작품과 트릭에 녹여내는 솜씨 하나만은 과연 대단합니다. 트란실배니아의 이야기는 정말 재미있었거든요. 또 기디온 펠 박사의 밀실 살인 사건에 대한 장황한 강의 역시 인상적이었고요. 아울러 해드리 경감과 랜폴 등 시리즈 캐릭터의 등장도 반가왔습니다.
추리적으로는 아쉬운 부분이 있고 기디온 펠 박사는 여전히 짜증 계열 타입이기는 하지만 재미, 작품의 역사적인 의의를 되새겨 볼 때 별 세개는 충분히 줄 수 있는 작품으로 보입니다.

PS : 그리고 이 작품을 마지막으로 국내에 출간된 딕슨 카 작품 은 거의 다 읽은 것 같네요.

작품목록 : 연속살인사건 (고성의 괴사건) / 해골성 / 황재의 코담배갑 (황제의 코담배케이스) / 세개의 관 / 화형법정 / 모자수집광사건 / 감미로운 초대 (밤에 걷다)

이 중 딱 세 작품만 꼽아 본다면 저의 영원한 베스트 "황제의 코담배케이스", 정통 추리와 고딕 호러의 완벽한 결합체인 "해골성", "화형법정" 을 꼽겠습니다.

2022/09/04

대단한 밀실 트릭! 신비로운 고전 걸작 5편 소개 (from 'honto')

일본의 전자책 서점 honto에는 책 전문가인 북 큐레이터가 특정한 주제를 가지고 선정하여 소개해주는 서비스 '북트리'가 있습니다. 그 중 밀실 트릭 고전 걸작 소개입니다. '고전 걸작'이라는 말에 어울리는, 고전이면서도 트릭면에서 나무랄데없는 좋은 작품들입니다. 이런 류의 추천치고는 일본 작품 비중이 비교적 낮다는 것도 장점이고요. 이 서비스를 좀 더 이용해 보아야겠네요.

소개작은 아래와 같습니다.

1. "모르그 거리의 살인" 에드거 앨런 포 

밀실에서 일어난 범행이라는 수수께끼, 홈즈의 원형이라고 불리우는 명탐정 듀팽, 논리적인 해결, 의외의 범인 등의 요소로 '추리 소설'이라는 장르의 막을 연 작품.

2. "노란 방의 비밀" 가스통 르루 

"오페라의 유령" 원작자로도 유명한 저자가 그려낸 '완벽한 밀실'인 노란 방에서의 범행, 거기에 두 개의 인간 소실 수수께끼까지 더해져 있다. 고전 모험 활극의 향기도 느껴지고, 밀실 추리물 최고의 걸작이라고 칭송받기도 하는, 올 타임 베스트에 단골 선정되는 명작.

3. "유다의 창" 존 딕슨 카 

엘러리 퀸, 크리스티 여사님과 함께 황금 시대 (골든 에이지) 삼대 거장이라고 불리우는 딕슨 카의 작품. 밀실의 거장이라고도 불리운 카의 작품답게 밀실 살인과 법정 미스터리가 결합되어 있다. 밀실에서 피해자와 함께 있었던 피고를 명탐정인 법정 변호사 헨리 메리베일경이 변호하는 내용으로, 아주 유명한 트릭이 사용되었지만 트릭을 알아채더라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작품.

4. "혼진 살인사건" 요코미조 세이시 

명탐정의 대명사 긴다이치 코스케의 데뷰작. 열쇠도 없고, 장지문으로 만들어져 밀실에는 적합하지 않은 일본 가옥을 무대로 한 최초의 밀실 추리물로도 유명한 불후의 명작.

5. "문신 살인 사건" 다카기 아키미쓰

다카기 아키미츠의 데뷔작으로 명탐정 카미즈 교스케가 처음으로 등장한다. 유명 문신가의 문신을 한 3자매 중 한 명이 토막난 사체로 밀실에서 발견된다. 쌍둥이 자매, 토막난 시체, 욕실이라는 밀실에서의 살인이라는 본격 추리물의 재료가 가득한 작품. 트릭도 훌륭하다.

2023/12/03

하쿠바산장 살인사건 - 히가시노 게이고 / 민경욱 : 별점 2점

하쿠바산장 살인사건 - 4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알에이치코리아(RHK)

<<아래 리뷰에는 진범, 트릭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대생 나오코는 친구 마코토와 함께 펜션 마더구스를 찾았다. 1년 전 마더구스의 밀실인 방에서 자삻했던 오빠 고이치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기 위해서였다. 펜션은 방마다 '마더 구스' 동요가 쓰여진 패널이 걸려져 있었는데, 이 동요들이 암호라는걸 눈치챈 둘은 암호 해독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손님 중 한 명인 오오키가 추락사했고, 이는 교묘하게 계획된 살인이라는게 드러났다.
결국 암호를 풀어낸 둘은 오빠 죽음의 진상과 범인을 밝혀내는데....


히가시노 게이고의 초기작. "가면 산장 살인사건"의 또다른 번역본이라 생각했었는데, '마더 구스' 동요를 이용한 암호 트릭이 등장한다는 광고글을 보고 착각을 깨우친 뒤 읽게 되었습니다.

추리적으로 볼거리가 많다는게 장점으로 외딴 산장이라는 무대에서부터 시작해서, 밀실 살인, 원격 조종 살인이 등장하고 '마더 구스' 동요를 활용한 암호까지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 중 가장 먼저 밝혀지는건 오오키를 살해한 원격 조종 트릭인데 '다리를 대신할 수 있는 판자를 썩은 것으로 바꿔치기해서 추락하게 만들었다'는 간단명료함도 좋았지만, 단순히 장치 트릭에 그치지않고 이를 범인이 특정될 수 있는 중요 단서로 활용하는게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원래 판자와 비슷하면서도, 사람이 올라가면 부서져 떨어질 판자를 고르는건 상당히 전문적인 안목이 필요하므로, 목재에 대한 전문가가 범인이다!는 논리인데 꽤 합리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오빠 고이치가 자살한 것으로 위장했던 밀실 살인 트릭은 '범인은 방에 숨어 있었다'는 단순한 것이지만, 공범을 활용한 변주가 괜찮았습니다. 먼저 구루미가 침실 창문과 문을 잠그고 다카세가 창문도 잠겼다는걸 확인하게 합니다, 그리고 구루미는 창문을 통해 탈출했고요. 에나미는 다카세에게 다시 고이치를 불러오라고 시킵니다. 이 때 문이 잠겼다는걸 다시금 다카세에게 확인시키고 마지막으로 에나미가 열려있던 창문으로 침입하여 창문을 잠근 뒤 방 안에 숨어서 밀실을 만들었던 겁니다. 에나미 혼자 실행도 가능한 트릭이지만, 오랜 시간 자리를 비우면 당연히 눈에 띄였겠지요. 구루미가 산장 펜션 종업원이었던 덕분에, 때맞춰 다카세를 피해자 방으로 자연스럽게 유도할 수도 있었고요. 이 때 구루미와 에나미가 포커가 아닌 백개먼을 했다는 등의 디테일도 좋았습니다. 단서와 정보 제공도 공정한 편이에요.

하지만 장점보다는 단점이 더 많습니다. 우선 이야기의 가장 중요한 '마더 구스 동요'를 활용한 암호 트릭이 별로였어요. 쉼표를 활용해서 문장을 이어 붙이는 것까지는 나름대로 말이 되지만, '말을 반대로 바꿔야 한다', 즉 '다리가 부서지는게 아니라 세워지는것' 이라는건 제대로 설명되지 못한 탓입니다. 분명 중간까지는 나름 논리적으로 풀리는데, 그 뒤는 완전 국문학적(?)으로 풀어내야 한다는건 억지스러워요. 마더 구스 동요에서 끝냈어야 하는데, 갑자기 휴게실의 마리아 - 알고보니 마녀 - 조각상이 필요했다는 것도 와닿지 않았습니다.
와닿지 않는건 암호 해독의 결과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녁 노을이 질 때, 부서진 다리가 그림자 이어지는 곳'이라는 결과를 1년 전에 손에 넣었던 범인들이 왜 1년을 기다렸을까요? 여름이라도 그림자의 변경 추이만 관찰해도 겨울 철 그림자가 어디 위치하는지는 충분히 알아낼 수 있었을텐데 말이지요. 구루미는 몰랐다쳐도 에나미는 이과계 연구원이라는 설정인데,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설령 에나미가 측정에 실패해서 겨울철 될 때까지 기다렸다고 치죠. 그래도 1년 중 아는 사람이 가장 많을 때 보물을 파내려고 시도할 까닭은 무엇이었을까요? 정 그 날짜가 필요했다면, 장소만 사진을 찍어두던가 해서 표시하고 나중에 파내면 되었습니다.

오빠 고이치를 자살로 위장하여 살해한건 밀실 트릭만큼은 앞서 설명했듯 괜찮은 부분이 없지 않으나, 밀실을 만들어야 했을 이유는 불분명합니다. '밀실이라서 자살이다!'라기보다는, 원래 노이로제가 있었고 펜션 손님들과 아무런 접점이 없었다는 정황이 자살설의 핵심 근거였습니다. 즉, 밀실은 자살설에 무게를 더해주기는 했지만 절대적인건 아니었어요. 게다가 노이로제에 대해서는 범인을 비롯한 펜션 손님들은 아무도 몰랐었는데, 단지 밀실이라는 상황만으로 자살로 몰고가려 했던건 비현실적입니다. 에나미가 나오코와 마코토에게 '오빠는 살해당했다'며 접근한 행동도 납득이 가도록 설명되지 못하고요. 이는 나오코과 마코토가 에나미를 의심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불필요했습니다.

그 외에도 구루미가 최초 보석상 가와사키를 살해한게 모든 사건의 시작이었다던가, 영국 여자가 아들을 죽게 만든 마스터에게 복수와 경고의 의미로 암호를 남겼다던가, 보석상의 혼외자가 다카세였다던가, 보석은 가짜였다던가 하는 등의 에필로그도 별로 자연스럽게 느껴지지는 않았습니다. 손님 중 한 명인 가미조가 보석상 가족의 요청으로 이 사건을 3년이나 추적했던 탐정(?)이라는 설정도 과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명탐정 '가미즈 교스케'와 비슷한 이름을 가지고 있어서 나름 활약을 기대했는데, 하는거라곤 마지막에 구루미의 범행을 밝히는 것 뿐이라는 것도 좀 허무했어요. 일종의 맥거핀에 낚인 셈이지요.

그래서 별점은 2점. 초기작답게 여러가지 시도는 돋보이나 단점 또한 많아서 감점합니다. 구태여 찾아 읽어보실 필요는 없겠습니다.

2021/11/19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밀실 대도감 - 아리스가와 아리스 / 김효진 : 별점 1.5점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밀실 대도감 - 4점
아리스가와 아리스 지음, 이소다 가즈이치 그림, 김효진 옮김/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추리작가 아리스가와 아리스가 선정한 밀실 트릭 걸작 40편을 일러스트레이터 이소다 가즈이치의 그림과 함께 소개하는 책입니다. 

몰랐던 작품에 대해 알게 된게 가장 큰 수확입니다. 어떤 트릭이 사용되었을지? 생각하게 만드는 글솜씨와 저는 별로였던 작품에 대해 호평하는 이유 등 아리스가와 아리스만의 시각도 볼 만 했고요. 저는 폄하했던 작품에 대해 높이 평가한 글들은 저 역시 리뷰어로서 많은 공부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솔직히 다른 점들은 거의 모두 기대 이하였습니다. 이런 리뷰 모음인 줄은 몰랐던 탓입니다. 밀실 트릭에 대한 분류와 대표작 소개 등, 이론적으로 접근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구입했는데 예상과 너무 다르더군요. 

게다가 소개된 트릭의 비밀을 완벽하게 숨기는 것도 큰 문제입니다. 서두에서 이 책은 일종의 '초대장' 임을 분명히 밝히며 앞으로 이 작품을 읽어보라는 취지의 리뷰이니 이렇게 쓴 건 당연합니다만... 절반에 가까운 작품이 국내 출간되지 않은게 문제지요. 국내에는 서양 미스터리 20선 중에서 11편 - 빅 보우 미스터리, 13호 독방의 문제, 노란 방의 비밀, 급행열차 안의 수수께끼 ("세계 미스터리 걸작선 1"에 수록), 시계 종이 여덟 번 울릴 때, 개의 계시, 세 개의 관, 모자에서 튀어나온 죽음, 킹은 죽었다, 벌거벗은 태양, 투표 부스의 수수께끼 ("샘 호손 박사의 불가능 사건집" 수록) -, 일본 미스터리 20 + 1 중에서도 11편 - D 언덕의 살인사건, 거미, 완전 범죄, 등대귀, 혼진 살인 사건, 문신 살인 사건, 호로보의 신 ("아 아이이치로의 낭패"에 수록), 천외소실 사건, 인형은 텐트에서 추리한다, 녹색 문은 위험, 모든 것이 F가 된다 - 이 출간되어 있습니다(2021년 11월 기준). 41편 중 무려 19편이 미출간된 상황이에요. 이래서야 거의 절반 가까이는 정답을 알래야 알 수 없는 퀴즈집을 읽은 셈이라 짜증이 날 수 밖에 없습니다. 

소개된 작품들이 선정된 이유도 여러가지를 대고 있지만, 결국 트릭만 멋지면 다른건 다 간과하는 듯한 리뷰도 불만스럽습니다. "녹색문은 위험" 같은 작품을 선정한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애초에 이 작품 속 트릭은 기발하기만 할 뿐 현실성은 전혀 없거든요. 하긴, 밀실 자체가 범인이 일부러 만들 이유가 없다는 점을 너무 대충 넘어가는 것 부터가 이상해요. 애초에 밀실 '살인'은 말이 안됩니다. 밀실에서 죽었다면 자살이어야죠.

수록 일러스트들도 실망스럽습니다. "거미" 속 거미 연구소처럼 몇몇 작품 속 건물에 대한 일러스트는 나름 반가왔지만 대체로 간단한 평면도와 밀실이 있는 건물의 간략한 스케치 수준에 불과해서, 예쁘기만할 뿐 가치는 없습니다. 책도 꼼꼼히 읽고, 관련 자료도 열심히 수집했다는 일러스트레이터의 설명이 무의미하게 여겨질 정도로요. 이왕 밀실 트릭 해설을 위한 그림을 싣는다면, 트릭을 설명하는 용도가 훨씬 좋았을거에요. "급행열차 안의 수수께끼"의 복잡한, 기차 내부 장치들을 활용하여 만든 장치 트릭을 그려 주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게 '밀실 대도감' 취지에도 더 잘 맞았을테고요. 이런 문제에 더해 3만원에 육박하는 가격도 용납하기 어렵습니다. 내용을 떠나 분량, 완성도 등 모든 면에서 이 가격을 받을 책은 절대로 아닙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1.5점입니다. 조금 조사해봤더니 저와 같은 이유 - 단순한 리뷰 모음, 트릭 설명 없음, 무의미한 그림들 - 로 이 책에 실망하신 분들이 많더군요. 저도 좀 조사해보고 구입할걸 그랬습니다.

마지막으로, 너무 궁금했던 나머지 인터넷을 뒤져 알아낸, 국내에서 구할 수 없는 작품들 트릭을 몇 개 찾아서 소개드립니다. 당연히 스포일러입니다. 혹시라도 국내 출간에 기대를 걸고 계시다면, 절대 읽지 마세요.

"밀실의 수행자" 비록 국내 소개된 작품은 아니지만 트릭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세계의 명탐정 50인"에 소개된 적이 있기 때문이지요. "소년탐정 김전일"의 "이진관촌 살인사건"에서도 살짝 비틀어 사용되기도 했고요. 진상은 인도인 하인들이 위의 창을 통해 침대를 천장까지 끌어올렸던 겁니다. 백작은 고소공포증이 있던 탓에 침대에서 탈출하지 못하고 굶어 죽게 된 거지요.

"엔젤 가의 살인" 엘리베이터 천장 창문을 통해 엘리베이터가 내려가면 칼이 떨어진다는 장치 트릭. 작품을 읽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칼을 3층 천정쪽에 묶은 끈으로 엘리베이터 천정에 매달아 놓으면, 엘리베이터가 내려가면서 끈이 끊어지고, 칼이 떨어져 아래 사람에게 꽂힌다는 걸까요?

"고블린 숲의 비밀" 뒷문 쪽에 있던 사촌이 잽싸게 집에 들어가 비키를 죽이고, 방수 시트 위에서 잽싸게 시체를 해체해서 짐 속에 나누어 넣었다. 그리고 뒤따라 온 사촌이 비키를 찾는 척 정문으로 들어간 뒤 뒷문을 잠근 것. 그리고 짐을 차에 싣고 돌아간게 진상이었다.

"지미니 크리켓 사건" 이야기를 들려주는 자일즈가 범인이었다. 그는 경찰복을 입고 큰아버지를 살해한 후 방 안에 숨어있다가, 루퍼트가 들어온 뒤에 경찰들과 함께 들어온 것처럼 속였던 것. 납치했던 경찰관을 죽였던건 경찰복을 돌려주기 위해서였다. 루팡 3세 애니메이션에도 사용된 트릭이라지요. 조금 조사해보니, 자일즈와 노인의 관계에 대한 반전도 인상적이라고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51번째 밀실" 범인이 지붕을 떼어내고 탈출하는 트릭. 그림만 봐서는 잘 모르겠네요. 범행을 저지른 동기 쪽이 더 재미있어 보였습니다.

"그리고 죽음의 종이 울렸다" 조각상 밑에 쐐기를 꽂아 놓아 쓰러지기 쉽게 해 놓은 뒤, 창 밖에서 푸코의 진자를 움직이면, 진자가 조각상에 맞아 쓰러지게 만든 것. 설명만 읽어서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런 트릭의 작동 원리를 그려 주었어야죠!

"보이지 않는 그린" 살해 장소인 화장실의 작은 환기구로 고무 보트를 들여놓은 뒤, 좁은 화장실 안에서 고무보트를 부풀려 심장 빌작을 일으킨 것.

"다카마가하라의 범죄" 현인신은 신이라서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는다. 무녀가 조서를 들고 2층에서 내려왔기 때문에 신과 같은 존재가 되어 보초 눈에 보이지 않았던 것. 찾아본 결과로는 이러하던데, 이게 말이 되나요?

"구혼의 밀실" 어린 아이가 범인. 피해자와 범인이 협력하여, 피해자 어깨 위로 범인이 올라가서 3미터 이상 높이였던 천장 채광창으로 탈출한 것.

"로웰성의 밀실" 만화책 37페이지에 있던 엘로라를 맞은편 36페이지에 있던 홀리가 손을 뻗어 살해한 것. 3차원의 인물이 2차원에서 저지른 사건으로, 이소다 씨의 일러스트가 나름 힌트가 되기는 하네요. 이걸 트릭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밀실대도감

2012/06/10

혼진 살인사건 - 요코미조 세이시 / 정명원 : 별점 2점

혼진 살인사건 - 4점
요코미조 세이시 지음, 정명원 옮김/시공사

"혼진 살인사건"은 이미 예전에 동서 추리문고로 읽었지만, 이번에 시공사에서 새로운 번역으로 출간되어 다시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이 책에는 세 편의 중, 단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수록된 작품은 중편인 "혼진 살인사건"과 단편인 "왜 도르레 우물은 삐걱거리나", 중단편 길이의 "흑묘정 사건"입니다.

수록작의 전체 평균 별점은 2점. 표제작 외 다른 두 작품이 점수를 좀 깎아먹은 탓입니다. 이 책에 실린 단편들보다는 예전 동서 추리문고의 "나비부인 살인사건"이 더 좋았습니다. 이쪽은 별점 3점은 충분했던 것 같은데 말이지요. "나만의 요코미조 세이시 순위"에 추가한다면, "혼진 살인사건"은 공동 2위이고 이 책 전체적으로 따지면 7위입니다. 긴다이치 시리즈 팬분들께는 추천드리지만 그냥 추리 애호가분들께는 호불호가 많이 갈릴 수 있다는 점 참고하세요.

수록작 간단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혼진 살인사건"

이 작품은 기념할 만한 긴다이치 시리즈 첫 작품으로 시리즈의 전형적 특징 - 시골 마을 지역 유지 가문에 얽힌 원한 관계와 오싹한 살인사건, 그것을 해결하는 명탐정 긴다이치 코스케! -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밀실 살인사건이 펼쳐지며, 공들인 트릭이 등장하는 본격 추리소설의 모양새를 갖추고 있다는 점도 시리즈 다른 작품들과 같습니다.

그러나 공정함에 있어 큰 문제가 있긴 합니다. 작품 속 공개된 정보만 가지고 트릭을 독자가 풀어내기는 거의 불가능한 탓입니다.

그래도 기념비적인 시리즈의 첫 작품으로 역사적 의미도 확실하며, 지금 읽어도 충분한 재미를 전해줍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왜 도르레 우물은 삐걱거리나"

전형적인 긴다이치 시리즈다운 소품. 긴다이치는 아주 잠깐 언급될 뿐 화자는 혼이덴 가문의 병약한 막내딸 쓰루요로, 그녀의 1인칭 시점 서간문으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그러나 좋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습니다. 추리적으로는 스기 죽음의 진상과 에마를 숨긴 이유를 쓰루요에게 숨긴 이유가 전혀 설명되지 않은 탓입니다. 게다가 오노 가문의 쇼지가 죄를 뒤집어쓰고 자수했다는 결말부는 어이가 없더군요. 강도, 퍽치기 전과가 있는 인간이 약간의 호의 때문에 살인죄까지 뒤집어써 준다는 게 말이 되나요? 협박을 하면 했지...
편지로 진행되는 전개 역시도 몇몇 단락을 제외하면 그냥 소설이라 해도 될 정도로 편지 특성을 살리지 못했고요.

한마디로 쓰루요의 쓸데없는 오해가 내용의 대부분인 작품으로, 일종의 순간이동 알리바이 트릭은 괜찮았지만 그 외의 내용이 너무나 부실하기 때문에 별점은 1.5점입니다.

"흑묘정 사건"

추리소설가 Y가 긴다이치 코스케와 함께 밀실 살인, 1인 2역, 얼굴 없는 시체라는 전통적 추리소설 트릭에 대한 견해를 나눈 뒤, 얼굴 없는 시체에 관련된 사건을 실제로 긴다이치가 해결하고 알려준다는 내용입니다.

얼굴 없는 시체 트릭은 전형적인 피해자·가해자 바꿔치기 트릭에서 한 발자국 정도 더 나아간, 나름 고심한 트릭이 펼쳐집니다. 특히 장지문과 다다미에 묻은 혈흔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이 체계적이고 논리적이라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러나 뜬금없이 오노 지요코라는 여인이 등장해서 딱 맞는 역할을 수행하고 사라진다던가, 그냥 봐도 수상한 변장과 뒤이은 밀회 쇼를 그냥 성격 문제였다는 식으로 얼렁뚱땅 넘기는 부분은 심하게 거슬렸습니다. 트릭 자체도 지금 읽기에는 많이 낡았고요. 아유코와 시게가 동일 인물이라는 것은 너무 뻔했어요. 그 외에도 닛초가 공범이 되는 동기와 이유가 밝혀지지 않는 것도 석연치 않았습니다.

그래도 긴다이치 코스케의 개그스러운 만담과 과거사가 잠깐이나마 펼쳐져 팬으로서는 즐길 거리가 있고, 본격 추리 소설로서는 나쁘지 않습니다. 지금 읽기에는 너무 낡았다는게 아쉽기만 합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2006/01/16

우치다 공포만화 컬렉션 - 우치다 야스오 원작 : 전체 평균 별점은 1.5점


프리랜서 라이터 아사미 미츠히코를 탐정으로 내세운, "여정 미스터리"라는 분야에서 유명한 우치다 야스오의 여러 작품들을 만화화하여 출판한 기획물. 현재 1권에서 11권까지 나와 있으며, 아사미 미츠히코 만이 아닌 다른 명탐정들, 이른바 우치다 야스오의 3대 명탐정이라는 시나노의 콜롬보 다케무라 이와오, 경시청의 오카베 경부 등을 망라하여 소개하고 있습니다.

한 작가의 작품을 만화 시리즈화해서 출간하는 기획의 시도는 높이 살 만 하고, 국내에 많이 소개되지 않은 작가인 탓에 만화로라도 번역된 것 역시 고마와 해야 할 일이겠죠. 그런데 문제는 작품의 수준만 본다면 오히려 돈이 아까운 것도 많다는 것입니다. 계속 사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이것 참 고민되네요.

이유로는, 일단 권마다 다른 작가들을 쓰고 있는데 기획한 곳이 순정만화 전문지인지 대체로 작화가 순정체입니다. 순정체라는게 문제가 될 수는 없겠지만 수준 자체가 낮은 작품이 많아요. 솔직히 작품과 잘 어울리지도 않고요.
또 우치다 야스오 소설은 한권밖에는 읽어보지 않았지만 "추리" 보다는 이색적인 풍광에 왠지 더 치우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는데 이 만화 시리즈도 역시나 추리적인 요소에서는 높은 점수를 주기 힘든 작품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리고 한권 분량으로 페이지수가 제한된 탓에 축약이 너무 심한 것도 문제에요. 쉽게 읽히기는 하지만 이해하기는 어려운 작품이 있을 정도니까요.

결론적으로, 만화화 자체에는 실패한 듯한 느낌입니다. 내용도 좀 낡고 고리타분한 것이 많아 21세기에 읽기에는 지나칠 정도로 구식이 아닌가 싶은 작품이 많은 것도 감점 요인이고요.
만화 쪽으로 실력을 인정받는 탄탄한 작가 혼자서 전체를 맡아 작업했더라면 더욱 좋은 결과가 있지 않았을까 싶어서 아쉽네요. 원작 작품 선정에서부터 만화적인 구성 모두 높은 점수를 줄 수 없는 것을 볼 때, 좋은 기획을 살릴 수 있는 좋은 편집자를 구하지 못한 티도 많이 나서 더더욱 아쉽습니다.

저같은 매니아라면 구입하셔도 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3만원이 넘는 재앙이 되리라 생각되니 빌려서 보시는 것이 보다 나은 선택이 될 것 같네요. 그나마 볼만한 책은 4권 "밀실 살인 사건", 7권 "트럼프 책의 비밀", 9권 "시인의 망령", 10권 "여섯개의 숫자" 정도입니다. 전체 평균 별점은 1.5점정도?
권별 상세 리뷰는 아래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제목이 왜 "우치다 공포만화 컬렉션" 인지는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습니다....

1권 바람의 레퀴엠 - 책이 어디있는지 모르는 관계로... 추후 추가하겠습니다.

2권 북쪽에서 온 남자 : 그림 히다카 료
가수 지망생 쇼코의 신변에서 일어난 두개의 살인사건. 두 사건을 연결하는 "북쪽에서 온 남자" 란 과연 누구인가?
아오모리현 시모키타 반도를 부대로 무녀의 예언을 등장시켜 이색적인 분위기를 전해주는 작품.. 이지만 결정적인 추리 부분에서 문제가 많습니다. 왜 두명을 죽였는지에 대한 당위성 자체가 없고 예언과 우연에 너무 많은 것을 기대고 있으며 만화로 구성된 전개 자체도 마음에 들지 않는 별볼일 없는 작품이었습니다.

3권 장미의 살인 : 그림 토바 쇼코
여고생 유괴 살인 사건의 용의자로 먼 친척 동생 오가타 사토시가 의심받게 되자 아사미 미츠히코가 직접 진상을 밝히기 위해 사건에 뛰어든다.
여정보다는 "다카라즈카"라는 극단을 주요 소재로 삼은 작품입니다. 이외에도 유명 연예인이 등장하는 등 예능계를 무대로 했다는 점에서는 다른 아사미 미츠히코 시리즈와는 사뭇 다른 느낌과 재미를 전해 주더군요. 추리 부분에서도 맥락이나 단서를 하나씩 쫓아나가는 전개도 좋았고요. 하지만 제일 중요한 결말이 너무 시시해서 결과적으로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4권 밀실 살인 사건 : 그림 에구치 유
우에노 역사 재개발을 둘러싸고 상인회의 갈등이 팽배해 있던 중 개발 회사의 중역인 와다 후미오의 살인 용의로 궁지에 몰려 있던 테라야마 코지 마저 자살한 시체로 발견된다. 자살 전 테라야마의 사건 의뢰 편지를 받은 아사미 미츠히코가 사건 해결을 위해 나선다.
우에노 역이라는 꽤 친숙한 소재를 등장시킨 아사미 미츠히코 시리즈 중 한편입니다. 밀실 살인 사건이라는 제목에 걸맞는 그다지 기발한 트릭은 등장하지 않지만 추리와 동기, 전개가 납득할 만 하고 결말까지 확실한 작품이었습니다.

5권 백화점 연쇄 살인 사건 : 그림 시토 료코
하카타의 백화점 경쟁 관계를 둘러 싼 기업간의 전쟁이 극심한 상황에서 우연히 사적 발굴현장에 참석한 아사미 미츠히코는 백골이 된 사체를 발견하고 사체의 정체가 밝혀진 후 자신의 옛 연인과 친구가 사건에 관련된 사실을 알게된 형이 직접 아사미 미츠히코에게 사건을 의뢰하는데...
일단 그림, 만화적인 수준에서 제일 처지는 작품이었습니다. 컷의 배열이나 전개가 도대체 알아먹기 힘들 정도의 수준이라 화가 날 정도더군요. 추리와 단서 등도 맥락에 맞는 것이 거의 없었지만 일단 내용 이해 자체가 어려웠습니다. 거의 쓰레기에 가까운 수준의 작품이라 할 수 있겠네요...

6권 나비부인의 눈물 : 그림 타마이 마키코
나가사키에서 악덕 카스테라 업자 야마오카 쇼지가 살해되고 전통 카스테라 업자 마츠나미가 용의자로 몰린다. 마츠나미의 딸인 하루카는 추리작가 우치다의 소개로 아사미 미츠히코를 알게 되고 그를 초청하게 된다. 이후 저명 유명인사가 2명이나 연쇄적으로 살해되는 사건으로 발전하는데...
나가사키를 무대로 한 본격 여정 미스테리로 우치다 선생이라는 추리작가가 등장하는 것이 재미나네요. 그림도 꽤 마음에 들고 만화적으로는 나무랄데 없는 구성이라 읽기에는 편했습니다. 단지 "공원 나비부인 동상에 걸어놓은 펜던트"같이 정통파 미스테리 비스무리하게 거창하게 벌려놓은, 그것도 여러명이 죽어나가는 사건의 무게에 비해서 추리의 전개가 얄팍해서 아쉬울 뿐입니다.

7권 트럼프 책의 비밀 : 그림 츠키시마 츠구미
시오리는 살해당한 아버지가 최후로 남긴 단서인 "트럼프의 책"이라는 단어를 두고 고민하던 중 탐정이라는 아사미 미츠히코라는 인물을 알게 된다. 그가 사건 해결을 위해 도와주면서 동분 서주 하던 중 아버지의 부하직원도 살해당하는 등 사건은 계속 커져만 가는데...
쿠슈 야나가와를 주로 하여 펼쳐지는 진정한 본격 여정 미스테리입니다. 다른 작품들에 비해 "쿠슈 야나가와"라는 지역 자체가 이야기에서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 구조로 진정한 여정 미스테리라 볼 수 있는 작품인 것 같습니다. 다른 작품은 여정이라는 것이 사실 이색적 풍광을 보여주는 것 이외의 추리적 의미는 거의 없었거든요. 다이잉 메시지 해독 트릭이 주 트릭인데 괜찮은 수준이었고 무엇보다도 반전이 인상적인 작품이라 높이 살 만 합니다. 만화로서도 그림은 그다지 잘 그린 건 아니지만 만화적으로 전개해 나가는 솜씨가 좋아서 마음에 들었고요.

8권 침묵의 돌 : 그림 히다카 료
신주쿠와 쿠라시키에서 일어난 두개의 살인사건을 연결하는 단서는 무엇인가? 명수사관 오카베 경위의 추리로 사건의 실마리가 서서히 풀리기 시작하는데...
경시청의 천재 오카베 경위 시리즈입니다. 하지만 주인공은 히카리라는 여대생이라 전개 방식이 상당히 독특한 느낌을 가져다 주더군요. 두개의 살인사건이 벌어진 당위성 자체가 상당히 설득력 있고 주인공 히카리의 전문 지식을 이용한 결정적 단서 제공 같은 재미가 살아 있어서 결정적인 추리와 동기 부분에 비록 문제는 약간 있지만 저는 재미나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뒤에 실린 단편 "잠자는 불꽃"도 치정극으로 보이는 전개속에 은근한 재미를 주는 작품이라 좋았고요.

9권 시인의 망령 : 그림 사토미 유
사쿠타로라는 작가의 시와 똑같이 구현된 살인 사건이 연쇄적으로 일어난다. 오카베 경위가 사건을 맡은 후 스가이 쿠니오라는 은퇴한 전직 형사의 도움을 받으며 점차 용의자에게 접근하던 중 스가이마저 살해당하게 되는데...
역시 오카베 경위 시리즈로 "시를 따라한 연쇄 살인"이라는 착상이 일단 좋았습니다. 이 시리즈 중에서는 최고 수준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그림도 괜찮은 편이었고 스토리 전개를 만화적으로 잘 구현해 내기도 했고요. 하지만 추리적으로는 "ABC 살인사건" 과 유사한 전개로 참신함보다는 의외성에 기대는 느낌이 강했으며 동기와 과정 역시지 설득력이 떨어지더군요. 한마디로 어렵고 복잡하게 이야기를 전개하기 위해 무리수를 둔 느낌이 강했습니다. 그래도 재미는 있는, 나름대로 흥미진진한 작품이었습니다. 뒤에 단편 "거울 속의 여인" 이 실려있는데 이 단편도 추천작입니다.

10권 여섯개의 숫자 : 그림 츠키시마 츠쿠미
동경 타마호반에서 의문의 사체가 발견되는데 그가 남긴 것은 6개의 숫자가 적힌 종이 쪽지 뿐. 오카베 경위는 피해자의 딸 치아키에게서 피해자가 마지막으로 한 "침없는 벌"이라는 의문의 단서를 접한다. 한편 치아키와 은퇴를 앞둔 베테랑 형사 카와 반장의 컴비가 오카베 경위의 적극적 지원으로 점차 사건의 진상에 접근해 나간다...
오카베 경위 시리즈이긴 한데 실제 탐정역은 치아키라는 소녀라 이색적이더군요. 치아키와 베테랑 형사 카와 반장이라는 컴비가 꽤 재미난 설정이라 좋았습니다. 여섯개의 숫자와 "침없는 벌"이라는 단서로 점차 사건의 진상에 접근해 나가는 과정의 묘사 역시 합리적인, 이치에 맞는 깔끔한 전개를 보여주고요. 책 뒤의 해설을 보니 영상화도 두번이나 된 인기 작품으로 여기서 결성된 (?) 이 컴비 주연의 단편 시리즈도 있다고 하는데 그 작품들도 기대되더군요. 어쨌거나 재미있는 작품이었습니다.

11권 여신의 저주 : 그림 나가오 후미코
귀신 모미지 전설의 마을 토가쿠시에서 전설을 모방한 연쇄 살인사건이 일어나는데... 수사를 지휘하는 다케무라 경위는 사건의 그림자에 숨겨진 비참한 사연을 밝혀내게 된다.
나가노현 경찰 본부 수사1과 경위 다케무라 이와오 (시나노의 콜롬보) 시리즈입니다. 하지만 내용만 놓고 본다면 "미스터리 민속탐정 야쿠모"와 비슷한 전통 무속과 살인 사건의 조합이라는 전개라 그다지 신선하지 않았고 무엇보다도 추리적으로 문제가 많은 작품이라 생각됩니다. 옛날이라면 모를까 21세기에 읽기에는 너무나 고리타분하면서도 이해가 되지 않는 전통 신앙에 많은 것을 기대는 설정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고 내용 역시 그냥 뻔한 복수극일 뿐이었습니다. 새로운 탐정을 만나는 재미 이외에 특기할 만한 점은 없는 작품이네요.

2023/09/01

본격 미스터리의 진수를 만끽! 흉내내기 (따라하기) 살인을 테마로 한 걸작

honto 북트리 서비스를 통한 추리 소설 추천. 모두 국내 소개된 작품입니다. 구하기도 별로 어렵지 않고요. 하지만 언제나처럼 일본 추리 소설 소개가 많은게 아쉽네요. <<옥문도>>나 <<묵시록의 여름>>은 소개되어도 무방한 수작이지만, <<명탐정에게 장미를>>은 참고 보기 어려운 졸작이었거든요. 이보다는 세계적으로도 널리 알려지고 유명한 <<장미의 이름>>이 대신 선정되는게 맞을 것 같습니다.
   
'흉내내기 살인'은 동요나 시, 전설이나 이야기에 빗대어 살인을 저지르거나 살인 현장에 장식을 하는 것을 말한다. 범인은 왜 그런 번거로운 일을 해야 하는가? 그 동기와 목적이 핵심이며, 정통 미스터리의 진수와 매력을 만끽할 수 있다. 그래서 여기서는 흉내내기 살인을 주제로 한 미스터리 소설의 명작들을 소개한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 애거서 크리스티
절해의 외딴섬이라는 폐쇄된 서클, 서로를 모르는 초대 손님들, 만찬 자리에서 밝혀지는 범죄, 마더구스의 가사대로 죽어가는 살인, 줄어드는 인형들.... 이 책에서 아가사 크리스티는 후대에까지 이어지는 다양한 요소들을 확립했다. 미스터리 소설의 최고 걸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금자탑 같은 작품이다.

"비숍 살인사건" - 반 다인
'누가 코크 로빈을 죽였지?'라는 유명한 구절로 시작하는, 마더구스 동요에 빗대어 벌어지는 연쇄살인 사건에 탐정 파일로 밴스가 도전한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보다 먼저 발표되어 동요 살인, 흉내내기 살인의 효시로도 유명. 미스터리 소설의 고전 걸작으로 항상 손꼽히는 작품이다.

"명탐정에게 장미를" - 시로다이라 쿄
"메르헨 난쟁이 지옥"이라는 동화가 미디어에 소개된 뒤, 이를 모티브로 한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2부로 구성된 이 책은 1부만으로도 훌륭한 본격 미스터리를 맛볼 수 있지만, 2부에서 분위기가 확 바뀌는데, 2부부터가 메인이다. 기억에 남는 한 권이 될 것이 분명한, 마니아들 사이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명작이다.

"옥문도" - 요코미조 세이시
거장 요코미조 세이시가 <<비숍 살인사건>>과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에서 영향을 받아 일본답게 '병풍에 쓰여진 하이쿠'를 바탕으로 완성시킨 추리 미스터리. 명탐정 긴다이치 고스케가 옥문도라는 외딴 섬에서 벌어지는 연쇄살인 사건에 도전한다. 작가의 최고 걸작으로 꼽히는 명작이다.

"묵시록의 여름" - 가사이 기요시
밀실 살인, 비보 전설 등 다양한 미스터리 요소가 산재되어 있는 현상학 탐정 야부키 카케루 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 남프랑스를 배경으로 요한계시록에 빗댄 살인이 벌어진다. 다소 난해하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지만, 이를 포함한 독특한 분위기가 매우 매력적이어서 본격 미스터리의 묘미를 느낄 수 있다. 시리즈 1편부터 읽는 것을 추천한다.

2022/08/28

밀실 추리물을 좋아하는 분들께 추천하는 명작 10선 (출처 : 서스펜스 라이프)

서스펜스를 좋아하고, 서스펜스를 위한 일본의 추리 소설 전문 사이트 서스펜스 라이프에서 발견한 밀실 추리 추천작 리스트.

추리 소설에는 많은 종류가 있는데, 그 중에서도 밀실 추리물은 인기가 많습니다.

모든 문이 잠겨 있는 방 안에서 시체가 발견되었다, 범인은 어떻게 피해자를 살해하고 도망쳤을까? 이러한 여러가지 밀실의 수수께끼 풀이를 즐기고, 작가가 교묘하게 만들어낸 수수께끼에 도전해 보고 싶으신 모든 분들께 추천하는 밀실 추리물 10편을 소개해 드립니다.

1. <<밀폐 교실>> 노리즈키 린타로 *국내 미출간

노리즈키 린타로의 데뷰작으로 수많은 트릭이 사용되고 있다. 학교의 밀실 상태 교실에서 일어난 수상한 죽음, 자살인가 타살인가!
읽기 쉽고 즐길만한 요소가 많은, 밀실 추리물 초심자에게 추천하는 작품입니다.

2. <<혼진 살인 사건>> 요코미조 세이시

긴다이치 코스케가 첫 등장하는 요코미조 세이시의 대표작.
겹겹이 쌓여진 복선이 인상적으로, 밀실 트릭의 개척자격인 작품입니다.

3. <<자물쇠가 잠긴 방>> 기시 유스케

밀실을 주제로 한 4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는 연작 단편집.
방범 컨설턴트 에노모토와 변호사 준코 컴비가 밀실 살인 사건 해결에 도전한다.
짧은 시간 안에 여러가지 밀실 추리물을 읽고 싶은 분들께 딱 맞는 작품.

4. <<꽃의 관>> 야마무라 미사 *국내 미출간

야마무라 미사의 교토 무대 시리즈 첫 작품. 명탐정 캐서린이 처음으로 등장하며, 잘 고안된 메인 트릭도 볼거리. 무엇보다도 교토의 정서를 맛볼 수 있다는게 포인트입니다.

5. <<46번째 밀실>> 아리스가와 아리스

명탐정 히무라 히데오의 첫 등장 작품으로 눈으로 갇힌 저택을 무대로 한 완벽한 밀실 추리물.
간단한 트릭이 사용되었지만 풀어내기는 어렵습니다.

6. <<밀실의 열쇠 빌려드립니다>> 히가시가와 도쿠야

히가시가와 도쿠야의 데뷰작.
유머스러움이 가득하지만, 밀실 트릭도 충분히 즐길만 합니다.

7. <<날개 달린 어둠>> 마야 유타카

마야 유타카의 데뷰작.
부유한 일족이 사는 외딴 저택에서 벌어지는 연속 살인극을 그리고 있습니다.
본격 추리물다운 설정과 소재도 눈에 띄지만 무엇보다도 반전이 많아서 반전을 좋아하는 분들께 추천합니다.

8. <<지나가는 바람은 초록색>> 쿠라지 아츠시 *국내 미출간

고양이 마루 선배 탐정 시리즈 두 번째 작품. 아이디어도 좋고, 고양이 마루 선배의 개성과 상냥함이 잘 표현되어 있습ㄴ다.

9. <<방과 후>> 히가시노 게이고.

히가시노 게이고의 데뷰작. 긴 여운을 남기는 청춘 미스터리로 결말도 놀랍습니다. 팬이라면 놓치면 안되겠지요.

10. <<일곱 개의 관>> 오리하라 이치

오리하라 이치의 데뷰 단편집.

데뷰작이 많다는게 특이한데, 다 읽어본건 아니지만 제가 보기에는 '명작' 이라고 부를만한 작품들은 아닙니다. 전부 일본 작품이라는 한계도 분명하고요. 언제나 그렇듯 이런 류의 리스트는 그냥 참고만 하시는게 좋겠습니다.

2013/06/17

모자에서 튀어나온 죽음 - 클레이튼 로슨 / 장경현 : 별점 2.5점

모자에서 튀어나온 죽음 - 6점
클레이튼 로슨 지음, 장경현 옮김/피니스아프리카에

아래 리뷰에는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컬트 신봉자 세자르 사바트 박사가 완벽한 밀실에서 교살된 시체로 발견되었다. 그를 찾아온 사람들 등 유력한 용의자들은 모두 마술사였다. 개비건 경감은 사건의 특수성 때문에 마술사 그레이트 멀리니에게 도움을 요청하는데...

말로만 들었던 클레이튼 로슨의 마술사 멀리니 시리즈 대표작. 출간은 작년에 되었는데 이제서야 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습니다. 첫 번째 이유는 멀리니가 영 별로였습니다. '괴도 키드'와 같은 후배들의 원조답게 굉장히 개성적일 것으로 기대했는데, 직업만 특이할 뿐 고전 황금기 시대의 다른 명탐정들과 딱히 구분되는 점이 없는 스테레오 타입의 뻔한 캐릭터였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그 스테레오 타입 형태도 개인적으로 가장 싫어하는 ‘말 많은 천재형’이며, 그중에서도 최악인, 자신의 지식을 과시하기 위한 쓸데없는 말만 많고 정작 중요한 것은 잘 알려주지 않는 타입(초기의 엘러리 퀸이나 파일로 밴스 타입)이라 더 화가 나더라고요. 범인이 누군지 알면 증거나 단서를 잡기 전에 행동부터 좀 하란 말이죠! 하여간 말이 많아도 너무 많아서 개비건 경감이 어떻게 참고 있는지가 궁금할 정도였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트릭입니다. 나쁘지는 않은데, ‘걸작’이라는 말을 듣기에는 부족해 보였습니다. 특히 범인이 마술사라는 점에 너무 많이 의지한다는게 문제에요. 예를 들자면, 첫 번째 사건에서의 손수건 바꿔치기, 두 번째 사건에서의 최면술 같은 건데, 이 정도 능력이면 거의 초능력 수준이라 일반적인 상황과 상식에서는 구현할 수도 없어 보입니다. 그래서 높은 점수를 주기는 어려웠어요. 마술에 의지한다는 점 때문에 독자와의 두뇌게임 역시 공정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도 문제고요. 최면술 같은 것을 사전에 단서로 공유해주는 것을 누가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세 번째 이유는 멀리니도 말하듯 증거가 너무 없다는 겁니다. 게다가 이렇게 완벽하게 살인계획을 짤 생각이었다면 단순한 밀실 살인이 아니라, 범인으로 옭아맬 희생양도 필요했을 텐데 그냥 불가능 범죄를 연출했을 뿐이라는건 솔직히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범인 입장에서는 들인 공에 비하면 별로 얻은 게 없는 상황이니까요. 이럴거라면 애초에 왜 밀실을 만들었을까요? "너버스 브레이크다운"의 안도가 말했지만, 가장 완벽한 밀실 살인은 자살이어야 합니다. 그게 살인으로 밝혀지면 범인에게 무슨 이득이 있겠습니까...

마지막 이유는 경찰력의 무능함을 극대화시킨 전개입니다. 중간에 등장하는 5만 달러나 되는 큰돈이라는 유력한 동기를 간과하고 멀리니에게만 기댄다? 직무유기에 가깝습니다. 이 부분에 주목해서 경찰 수사가 이루어졌더라면 범인을 잡아낼 수도 있었을 겁니다.

고전 황금기 시대 이름을 날린 작품다운 점도 없지는 않습니다. 마술의 미스디렉션을 살인의 기법과 연결시키는 발상 하나만큼은 높이 쳐주고 싶고, 초반의 타로가 사라지는 간단한 마술 트릭이라든가 첫 번째 사건에서의 바꿔치기 트릭 하나만큼은 치밀하게 짜여져 있어서 ‘과연 추리 소설사에 이름을 남길 만하구나’ 싶은 생각이 들기는 합니다. 중간중간에 등장하는 딕슨 카의 밀실 추리 이론 등 다양한 작품과 이론에 대한 소개 역시 볼거리이고요.

그러나 저의 컸던 기대를 충족시키기에는 부족함이 더 컸다 생각되기에 별점은 2.5점입니다. 번역 출간 자체는 반갑지만, 저 같은 고전 본격물 애호가가 아니시라면 권하기 어려울 정도로 애매한 작품이었어요. 멀리니의 장광설만 좀 줄이고, 두 번째 사건에서의 최면술 트릭 하나만 보완했더라면 훨씬 좋았을 텐데 안타깝네요. 멀리니가 등장하는 단편집이 소개되기를 기대해봅니다.

2011/07/31

소년탐정 김전일 2부 11~12 연금술 살인사건 - 아마기 세이마루 / 사토 후미야 : 별점 0.5점

소년탐정 김전일 2부 12 - 2점
아마기 세이마루 지음, 사토 후미야 그림/서울문화사(만화)

이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2권을 한 번에 읽었네요. 장편에 조금 못 미치는 길이의 "연금술 살인사건"과 단편 "고도 1만 미터의 살인" 두 편이 실려 있습니다.

먼저 "연금술 살인사건"을 소개하자면, 김전일이 주식 투자로 저축을 날려버린 겐모치 경부의 부탁을 받고, 거액의 금이 숨겨져 있다는 섬 '연금도'로 떠난 후 연쇄살인사건에 휘말린다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정말 해도 너무한 망작입니다. 하나의 통짜 금속으로 이루어진 문을 하룻밤 사이에 원하는 부분만 녹여서 돌파한 뒤, 나오면서 다시 완벽하게 메꾸어 밀실을 만든다는 트릭이라니... 벽을 뚫고 나간 후 다시 메워서 밀실을 만든다는 황당한 아이디어보다도 더 말이 안 되는 , 만화적 상상력에 불과한 이야기였습니다. 아무리 융점이 낮은 금속이라 해도, 하룻밤 만에 이 모든 작업을 완벽하게 마무리한다는 건 범인이 용접의 신이라도 불가능했을 겁니다.

게다가 범인을 옭아매는 단서인 제비뽑기도 설득력이 부족합니다. 종이 한 장의 번호가 다르다는 게 그렇게 중요한 단서인지 납득하기 어려웠어요. 처음에 카미오카가 "나는 후카모리 호타루의 팬이라 참여했다"고 말했던 만큼, 충분히 넘어갈 수 있는 부분이었으니까요.

또한 경찰이 신상만 조사해도 동기가 누구에게 있는지 뻔히 드러나는데, 이런 외딴섬에서 불편하게 살인을 저지를 이유를 찾을 수 없다는 점도 지나치게 작위적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인기 있을 만한 소재들—외딴섬의 저택, 보물찾기, 밀실 살인사건, 연쇄살인, 고정 캐릭터 출연 등—을 긁어모아 작위적인 모래성을 쌓은 것, 그것이 이 작품의 정체입니다. 모든 면에서 부실하고 허술하기 짝이 없어요. 별점은 0.5점입니다.

두 번째 작품 "고도 1만 미터의 살인"도 마찬가지로 어처구니없는 내용이었습니다. 뻔한 전개도 문제지만, 그나마의 증거라는 것이 '냄새'라는 점도 황당했습니다. 무엇보다도, 마약 밀수를 파헤친 부하와 함께 비행하는 기장이 세상천지에 어디 있을지 궁금하기 짝이 없네요. 간만에 등장한 아케치 경시가 또다시 슈퍼맨 같은 능력을 선보이는 것 외에는 건질 것이 없는 작품이었습니다. 별점은 역시 0.5점.

그래서 두 작품 합친 별점도 0.5점입니다. 이제는 정말 이 시리즈가 왜 계속되는지 모르겠네요. 최근 몇 년 사이 계속된 망작들 출간에도 사람들에게 기대감을 남겨준 이름값이 있었지만, 이젠 그마저도 완전히 사라진 느낌입니다. 차라리 김전일이 죽어버려서 시리즈를 끝내는 것이 늦었지만, 남아 있는 유일한 선택이 아닐까 싶네요. 어쨌든 저는 이제 더 이상 이 시리즈를 찾아볼 일이 없을 것 같습니다.

2009/07/28

46번째 밀실 - 아리스가와 아리스 / 최고은 : 별점 2.5점

46번째 밀실 - 6점
아리스가와 아리스 지음, 최고은 옮김/북홀릭(bookholic)

추리소설가 아리스가와 아리스는 일본의 딕슨카라 불리우는 밀실 추리소설계의 거장 마카베 세이치의 별장에서 열리는 크리스마스 파티에 친구인 에이토 대학 조교수이자 임상범죄학자인 히무라 히데오와 함께 초대받는다. 파티에 참석한 인물은 마카베 세이치의 가족을 제외하면 모두 추리소설작가와 편집자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마카베 세이치는 이번에 발표할 46번째 밀실작품을 끝으로 밀실 추리소설을 그만둘 것을 선언하는데 그날 밤 그는 밀실에서 살해된 시체로 발견된다.

일본 신본격 추리작가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다섯번째 장편으로 그의 명탐정 캐릭터 중 1인인 임상범죄학자 히무라 히데오와 추리소설작가 아리스가와 아리스 컴비의 데뷰작입니다. 이 컴비의 시리즈는 제 블로그에서도 여러번 ("하얀 토끼가 도망친다""절규성 살인사건" , "러시아 홍차의 비밀" ) 소개했었지만 장편은 처음 읽어 보네요.

일단 장점과 단점이 확연한데, 장점이라면 제목에서부터 독자에게 도전하는 듯한 밀실 트릭이 괜찮다는 것, 그리고 사건의 전개와 결말이 작가의 다른 작품들보다는 매끄럽게 흘러간다는 것을 들 수 있습니다. 특히 "트릭"에 집착해서 이야기 전개에 설득력을 잃어버리던 다른 전작들과 비교했을 때 이 작품에서의 "트릭"은 아주 효과적으로 사용되어 내용과 잘 결합되고 있다는 것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네요. 추리소설이라면 당연하지만 의외로 내용과 트릭이 잘 결합된 작품을 최근에 찾아보기는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니까요. 아울러 가장 중요한 단서가 초반부터 설명되고 있는 등 추리적으로 공정하게 독자와 승부하려는 작가의 모습도 마음에 듭니다. 일본의 "엘러리 퀸" 다운 모습이랄까요?
또한 단편에서는 느끼기 힘들었던 히무라 히데오와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과거 및 심리 묘사, 작가의 추리관을 엿볼 수 있었던 추리소설가들의 대화라던가 밀실 트릭에 대한 소개 등 작품 외적으로 즐길거리도 많아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네요. 예를 들자면 작가가 소개한 "Locked Room Murders"라는 책, 그리고 그 책을 통해 소개하는 미국 추리소설 작가 댈리 킹의 트레비스 타란트 시리즈 "트멘트 4세호 에피소드"는 정말이지 읽고싶어지게 만들더군요.

그러나 작가 특유의 단점, 예를 들어 추리소설작가들과 편집자들의 크리스마스 파티가 벌어진 눈 덮인 고원 별장에서의 밀실 살인사건이라는 작위적인 무대 설정이라던가, 사건의 실질적인 동기가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점 등의 단점도 여전합니다. 특히나 동기 측면에서는 아직도 이해하기가 좀 어렵습니다. "살인"이라는 범행을 시도하기 전에 진실을 고백하려고 시도하는 것이 당연하잖아요. 밑져야 본전일텐데 말이죠.
그리고 서재를 밀실로 만든 이유에 대해서는 명쾌하게 설명되고 있지 못한 것은 확실히 옥의 티입니다. 범인이 기상천외한 범행을 저지른 목적은 자기 자신의 알리바이를 확보하기 위함이었는데 결과론적으로는 이 의도와 서재를 밀실로 만든 이유는 별로 관련이 없어보입니다. 차라리 목격자인 아리스가와 아리스를 살해하는 것이 더 설득력 넘치는 상황이죠. 어차피 두명죽이나 세명죽이나 별반 차이도 없잖아요. 그리고 아리스를 만약 살해했더라면 범인이 결국 빠져나갈 수 있었던 상황이라는 점 (가장 중요한 발자국에 대해 넘어갈 수 있었기 때문에) 에서 더더욱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그 외에 불필요한 암호 트릭 등은 사족으로 느껴졌고요. (차라리 손빈처럼 "여기서 방연이 죽다" 정도가 어땠을까요?)

이렇게 좋은 점과 나쁜 점이 골고루이기 때문에 별점은 2.5점입니다. 그래도 국내 출간된 히무라 히데오 시리즈 중에서는 베스트라 생각되며 일본의 엘러리 퀸 다운 모습을 즐기기에는 충분한 작품이니만큼, 일본 신본격 작품에 관심있으신 분들은 한번쯤 읽어보셔도 괜찮을 것 같네요. 저는 최고 걸작이라는 "쌍두의 악마"나 차분하게 기다려 봐야겠습니다.

덧붙여, 학산의 "북홀릭"에서 출간되었는데 표지, 편집 모두 마음에 듭니다. "경성탐정록"도 다음에는 조금 더 신경써 주시길~^^

2013/12/30

미타라이 기요시의 인사 - 시마다 소지 / 한희선 : 별점 2점

미타라이 기요시의 인사 - 4점
시마다 소지 지음, 한희선 옮김/검은숲

총 네 편의 중단편이 수록된 미타라이 기요시" 시리즈 초기 작품집.

"점성술 살인사건"은 일본에 추리문학의 새로운 바람을 불러온 걸작임에는 분명합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미타라이라는 탐정을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이후 작품들도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고요. 엘러리 퀸과 반 다인의 뒤를 잇는 잘난척 덩어리에다가, 뭐 하나 못하는 게 없는 잘난 인물로 묘사되니 마음에 들래야 들 수가 없었습니다. 특히나 "마신유희"에서는 그 정점을 찍었었죠.

다행히 이 책 수록작들은 위의 단점이 두드러지지는 않습니다. "점성술 살인사건" 바로 직후에 이어지는 초기작인 덕분이겠지요. 신본격 시대를 연 작가답게 고전적인 퍼즐 미스터리 스타일 정통 본격 추리물들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네 편의 이야기 모두 장르가 조금씩 다른 것도 재미를 더합니다. 첫 번째 작품은 전형적인 알리바이 깨트리기가 밀실 살인과 결합되어 있으며, 두 번째 작품은 일종의 순간 이동 트릭이 등장합니다. 세 번째는 붉은 머리 클럽이 연상되는 일종의 사기극을 그린 소품이고 네 번째는 유괴극이거든요.

또 두 번째, 세 번째 작품의 화자가 이시오카가 아니라는 것도 특이한 점이에요. 물론 두 번째 작품은 화자가 다르다고 해서 딱히 달라진건 없습니다. 미타라이의 경이적인 재즈기타 실력을 설명하기 위한 장치에 불과하고요. 반면 세 번째 작품은 사건이 워낙에 독특하고, 화자의 버릇이 사건의 핵심 중 하나라는 점에서 화자 변경이 꽤 효과적으로 사용된 편입니다.

결론내리자면, 작품마다 편차가 크고 불필요한 설정, 묘사가 많기 때문에 별점은 2점입니다만, 최악이라 할 수 있는 두 번째 작품 "질주하는 사자"만 빠졌어도 별점 0.5점은 더 줄 수 있습니다. 다른 작품들은 비교적 괜찮고, 무엇보다도 트릭만큼은 신본격의 장을 연 작가의 명성에 어울립니다. 본격 퍼즐 미스터리 애호가시라면 한 번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네요. 장르소설의 명가 "검은숲"에서 출간된 책답게 장정과 디자인도 괜찮습니다.

덧붙여, 작가의 후기에서 미타라이 작품의 영상화를 반대하는 이유가 전형적인 일본인과는 정반대의 캐릭터를 구현하고 싶었다는 캐릭터론이 펼쳐지는데, 전형적인 일본인에 대한 설명은 수긍이 가지만 미타라이라는 캐릭터가 그것에 반하는 캐릭터라는 것에는 절대 수긍할 수 없었습니다. 경찰을 싫어하고, 높은 사람을 싫어하는 잘난척하는 독설가에다가 사람의 본성에 관심이 많으며, 음악 등 다방면에 조예가 깊다는 점에서 아무리 봐도 "셜록 홈즈"의 판박이에 불과하니까요.

수록작별 간단한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스포일러 포함되어 있는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숫자 자물쇠"

"점성술 살인사건"에 등장했던 다케코시 형사가 미타라이에게 미궁의 밀실 살인 사건의 해결을 부탁하는 내용으로, "점성술 살인사건" 바로 직후에 이어지는 초기작입니다.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한 순간 이동 트릭(정체되는 도로 위 트럭 짐칸에 있던 범인이 몰래 빠져나와 지하철로 이동하여 범행을 저지르고 다시 복귀!) 만큼은 아주 좋았습니다. 과연 짐칸을 향해 아무도 말을 걸지 않았을지는 의심스럽지만, 습관처럼 계속된 출근 방법이라는 전제가 있으니 딱히 문제라 할 수 없겠지요. 미타라이가 의외의 자상한 면을 드러내는 것도 인상적이었고요.

그러나 밀실 트릭 자체는 별게 아니고, 초반 3단 숫자 자물쇠의 조합에 대한 경우의 수가 의도적으로 잘못 전달되기 때문에 높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총 3자리의 번호가 1부터 0까지로 조합된다면 누가 생각해도 10*10*10으로 경우의 수는 1,000개밖에 없잖아요.

아울러 범인이 왜 번호를 하나씩 시험해가며 문을 열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등장하지 않는 것도 이해불가예요. 어차피 죽일 생각이었고 딱히 미궁에 빠뜨리려는 의도로 보이지 않은 만큼 그냥 힘으로 뜯어도 됐을 텐데 말이죠. 동기 역시 설득력이 약해 아쉽더군요.

때문에 별점은 2점. 숫자 자물쇠 이야기를 빼고 좀 더 짧고 깔끔하게, 설득력 있는 동기로 전개하는 게 좋았을 겁니다.

"질주하는 사자"

재즈 동호인 모임에서 진주목걸이 도난 사건이 벌어졌다. 그리고 유력한 용의자 구도는 기차에 치인 시체로 발견되는데...

구도가 죽는 순간까지 도저히 기차에 치인 장소로 갈 수 없다는 불가사의를 다룬 작품.

앞선 리뷰에서 말씀드렸듯 수록작 중 최악입니다. 일단 트릭부터 설명하자면, 조잡한 장치 트릭입니다. 문제는 작품 내에서의 설명으로는 독자가 떠올리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T자형으로 이루어진 맨션에 대해 작품 내에서 계속 장황하게 설명하기 때문에 미루어 짐작할 수는 있지만요.

범행의 동기도 어이가 없기는 마찬가지예요. 몇 명 없는 모임에서 보석 도난 사건이 일어난다면 용의선상에 오를 건 분명한데 어떻게 빠져나갈지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다는 것도 황당하지만, 사람들이 한둘이 아닌 모임에서 목을 졸라 살해한다는 건 정말 말도 안 돼지요.

작품과는 무관한 미타라이의 세계급 재즈기타 실력 설정 역시 짜증나는 요소였습니다. 이러한 다양한 천재성의 묘사가 캐릭터에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전혀 점수를 주고 싶지 않아요.

결론적으로 별점은 1점입니다. 점수를 준 부분은 진주목걸이 절도와 관련된 마술 트릭과 마지막 숫자 "7"에 대한 가벼운 농담 같은 반전뿐입니다.

"시덴카이 연구 보존회"

화자인 세키네가 부장에게 자기가 겪은 가장 희한한 일을 이야기하는데 옆에 있던 미타라이가 간단하게 그 진상을 풀어 알려주는 이야기.

핵심은 이른바 시덴카이 연구 보존회 회장이라는 젠키치 할아버지의 사기극인데, 미타라이의 추리는 비약이 심해 논리적으로 보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젠키치 할아버지의 웅대한 이상이 너무 맛깔나게 묘사되어 재미있게 읽을 수는 있었습니다.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 추리와 트릭은 영 아니더라도 "시덴카이 연구 보존회"라는 발상에 점수를 줍니다. 희한한 일, 기이한 조직, 그리고 예상치 못한 범죄의 결합이라는 측면에서 "붉은 머리 클럽"에 대한 오마주로 보이기도 하네요.

"그리스 개"

그리스의 일본인 해상왕 아들이 유괴된 사건을 다루는 전형적인 유괴극인데, 유괴극의 가장 큰 숙제인 몸값 전달에 대한 신선한 아이디어가 돋보입니다. 등장하는 암호 트릭도 꽤 기발했고요. 초반의 타코야키 가게 도난 사건까지 엮어 전개하는 짜임새도 괜찮았습니다.

범인이 누군지 피해자가 눈치챈 시점에서 이미 게임은 끝난 거 아닌가라는 문제, 그리고 "개"에 대해 지나치게 비중을 둔 전개는 약간 의아하지만 평작은 됩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2023/06/10

유리탑의 살인 - 치넨 미키토 / 김은모 : 별점 2점

유리탑의 살인 - 4점
치넨 미키토 지음, 김은모 옮김/리드비
<<아래 리뷰에는 진범, 반전, 트릭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약물 전달 시스템 트라이던트를 개발하여 엄청난 부를 거머쥔 코즈시마 타로는 자신의 저택 '유리관'에 조촐한 행사를 위해 여러 손님 - 유명 추리 소설가 쿠루마 코신, 편집자 사쿄 코스케, 영능력자 유메요미 스이쇼, 형사 카가미 츠요시, 그리고 명탐정 아오이 츠키요 - 을 초대했다. 유리관에는 손님 외에 집사 오이타 신조, 메이드 토모에 마도카, 요리사 사카이즈미 타이키와 코즈시마 타로의 주치의 이치조 유마가 함께 있었다.
행사 직전, 이치조 유마는 코즈시마 타로를 독살했다. 코즈시마가 동생의 난치병 치료를 특허 분쟁으로 막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연사로 위장할 계획은 즉사하지 않은 코즈시마가 전화를 건 탓에 실패해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뒤이어 집사 오이타, 메이드 마도카가 연달아 밀실에서 살해당한채 발견되자, 유마는 명탐정 아오이 츠키요의 조수, 왓슨 역을 자처하여 컴비를 이루게 되었다. 두 사건의 범인에게 코즈시마 살해까지 떠넘기기 위해서였다.


발표 당시, 미스터리 애호가들 사이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던 작품. 이제서야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 대부호가 만든 기묘한 저택이라는 무대
  • 저택이 고립된 상황에서 벌어지는 3건의 연쇄 살인 사건
  • 모든 사건들은 일종의 밀실 상황
  • 사건은 명탐정이 해결
는 점에서 전형적인 클로즈드 서클 본격 미스터리입니다. 이 중 한 사건은 화자인 이치조 유마가 이미 저지른 도서 추리물이기도 하고요. 미스터리 애호가들이 좋아할만한 요소는 모두 들어가 있는 셈입니다.

또 사건의 이런 저런 상황이 여러 미스터리 명작들과 관련되어 있다는 점도 애호가들을 자극하는 요소입니다. 저택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을 <<유리관의 살인>>이라고 부르고, 코즈시마가 남긴 다이잉 메시지는 <<비뚤어진 집>>, <<Y의 비극>>, <<독 초콜릿 사건>>을 의미한다던가, 마도카 사건에서 남겨져 있던 메시지는 '관 시리즈'와 관련이 있으며, 결국 이 모든 진상은 '관 시리즈'와 연결된다는 식입니다.
트릭도 모두 유명 작품에서 따 왔습니다. 오이타 신조 사건에서 특정 시간에 자동 발화시킨 트릭은, 의도적으로 창문이 아침 햇빛을 집중시키도록 만들었다는 점에서 엉클 애브너 시리즈인 <<둠도프 사건>>과 유사합니다. 토모에 마도카의 시체를 밀실 안으로 집어넣는 트릭은 작 중에서도 언급되듯 <<기울어진 저택의 범죄>>가 떠오르고요. 만화 <<외천루>>에서는 아래와 같이 아예 동일하게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더라도, 주요 등장인물들이 모두 미스터리 애호가들이라 별로 중요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온갖 작품들이 언급되고 있어서 읽는 재미를 더해줍니다.
후기 퀸 문제 - 작품 속 해결이 진짜 해결인지를 작품 속에서는 증명할 길이 없다 - 를 진지하게 고민하게 만든다던가, 비밀 통로와 암호, 심지어 '독자에게의 도전장'까지 삽입된건 그야말로 미스터리 애호가의 피를 끓게 만들지요.

무엇보다도 '작위적인 상황들은 알고보니 저택 주인 코즈시마 타로가 꾸민 연극이었기 때문이었다!'는 반전은 신선했습니다. '작위적'인게 당연한 상황을 설득력있게 만드는데 이보다 나은 아이디어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괜찮았어요. 엄청난 부자인 코즈시마 타로는 미스터리에 푹 빠진 나머지, 스스로 위대한 걸작을 쓰고 싶어서 트릭을 고안한 뒤, 추리와 관련된 이런 저런 손님들 - 명탐정, 추리 소설 작가, 편집자, 영매 - 을 초대하여 실제로 추리를 하게 만든 것입니다. 연극이니 당연히 코즈시마를 비롯한 피해자들은 죽지 않았었습니다. 지하 감옥에서 등산 조난자들을 대상으로 생체 실험을 한게 들통나서 살해당했다는 유치한 동기 역시 가짜였고요.
코즈시마가 연극을 위해 '유리탑' 안에 이중 나선 구조와 같은 비밀 나선 계단을 설치했다는 진상도 적절하게 써먹고 있습니다 (이 진상이 <<미로관>>과 유사하다는 점도 과연 코즈시마 타로답더군요). 영능력자 유메요미, 그리고 화자 유마까지 알 수 없는 인기척을 계속 느꼈다는 식으로 비밀 계단과 통로에 대한 단서도 공정하게 제공되고 있고요.
트릭도 다른 작품에서 따 온게 많다고는 했지만, 그런대로 볼만했습니다. 특히 오이타 사건에서 식당을 밀실로 만든 트릭은 괜찮았어요. 각설탕을 회전 빗장에 꽂아 넣고 화재를 일으키면, 스프링쿨러가 작동하여 각설탕이 녹아서 빗장이 걸린다는 것인데 현실적이라 마음에 들었습니다. 시체에 등유를 끼얹어 화재를 일으킨 원인도 위장하는 등 디테일도 꼼꼼했고요. 명탐정 아오이 츠키요가 괜찮았다고 말할만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미스터리 애호가를 위한 장치와 반전 외에는 과연 그렇게까지 절찬을 받을만한 작품인지 고개를 갸웃하게 만듭니다.
우선 본인이 명탐정임을 주장하는 아오이 츠키요는 작위적인걸 넘어서는, 그야말로 현실과는 백만광년은 떨어진 듯한 만화같은 캐릭터라 영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이래서야 "모든게 '연극' 이라서 작위적이었다"는 아이디어는 빛이 바랩니다. 그래봤자, 핵심 등장인물이 가짜보다 더 한 만화라서 영 와 닿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작품을 위해서는 보다 진지한, 현실적인 탐정으로 묘사되는게 바람직했습니다.
아오이 츠키요의 비현실성은 진상 부분에서 극에 달합니다. 그녀는 연쇄 살인이 연극임을 초반에 간파하고 실제로 피해자들을 살해했다고 합니다. 졸작 <<유리관의 살인>>을 납득할 수 없어서 본인이 범인이 되는 걸작 메타 미스터리로 만들기 위해서라고요. 이게 무슨 말일까요? 살인이 무슨 장난도 아니고..... 이러한 '메타' 방식 설정은 일본 일부 작품에서 가끔 보곤 했는데, 적절히 잘 사용된 경우는 생각나지 않네요.
명탐정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명탐정을 부르기 위해 불가능 범죄를 저지르곤 했다는 아오이 츠키요의 또다른 배경 설정도 한심하기 그지 없었어요. 시로다이라 쿄의 <<명탐정에게 장미를>>에도 등장했던 설정인데, 그 때도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리뷰를 남겼었지요.
그리고 악당 - 명탐정 대신 명범인 - 이 되기로 결심하고 살인을 저질렀다면, 초지일관 그렇게 나갔어야죠. 마지막 순간에 유마를 구해주고 키스까지 한 다음 사라지는건 최악이었습니다. 캐릭터만 희미하게 만들었을 뿐입니다. 만화나 라이트 노벨 세계관이라면 모를까, 정통 본격물에는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코즈시마 타로의 추리 소설이 엉망이라는건 츠키요가 이미 언급했지만, 실제로도 트릭 외에는 건질게 없습니다. 소설에서 진범은 카가미였습니다. 딸이 코즈시마 일당 - 코즈시마와 집사 오이타, 메이드 마도카 - 에게 납치되어 생체 실험을 받다가 죽었다는걸 알고 복수하기 위해서였지요. 그는 모든 진상이 밝혀지고 난 뒤 어차피 죽을 생각이었다며 자살합니다. 그렇다면, 복수를 마치고 죽을 결심을 한 범인이 밀실 살인 사건을 저질렀다는건데, 이게 말이 됩니까?
그리고 경찰이 수사에 본격적으로 나섰다면, 카가미의 동기가 밝혀지는건 시간 문제였습니다. 어차피 빠져나갈 방법도 없으니 트릭을 사용해 범행을 저지를 이유도 없지요. 손님들이 초대되었을 때 범행을 저지를 이유도 당연히 없습니다. 카가미는 이전에도 코즈시마를 방문해서 같이 식사를 한 적도 있었습니다. 다음에도 혼자 찾아와 모두를 죽이는게 더 쉬운 복수였을거에요. 관 시리즈, 특히 <<십각관의 살인>>이 걸작인 이유 중 하나는 범인이 트릭을 만든데 타당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작품처럼 아무런 설득력없이 수수께끼를 만들기 위해 트릭을 사용한게 아니고요.
또 딸의 복수를 위해서였다면, 조가타케산 사건을 언급하는 것도 이상했고 - 딸은 조가타케산 사건의 피해자라기 보다는, 최근 사건의 실종자이므로 -, 코즈시마 일당의 범행을 드러내기 위해서였다면 돌려 말할 까닭도 없습니다. 직접적으로 복수의 이유를 쓰면 되지요. 나카무라 세이지를 죽이라면서 비밀 통로를 은근히 알려주는건 도무지 납득할 수 없었습니다.
코즈시마가 유마가 자신을 독살하게끔 유도하여 연기했다는 설정도 어처구니를 상실케 했고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 원래는 모든게 연극이었다는 발상을 제외하고는 딱히 건질게 없었습니다. 쉽게 읽히는 라이트 노벨스러운 작풍은 분명한 장점이지만, 추리적으로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네요. 진지한 본격 추리물과는 거리가 멉니다.
예전 <<데드 트릭>>리뷰 에서, 본격 미스터리는 프로레슬링과 비슷하다는 말에 동의한다고 했었는데, 프로레슬링도 형편없고 장난스러운 각본은 욕을 먹기 마련입니다. 제가 나이가 있는 탓에 요새 트렌드와 거리가 있어서 이런 작품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건 사실이겠지만, 살인을 장난스럽게 다루는 작품은 진심으로 없었으면 합니다. 

2005/05/04

초고층 호텔 살인사건 - 모리무라 세이이치 : 별점 3점

초고층 호텔 살인사건 모리무라 세이치 지음, 김정우 옮김/해문출판사

크리스마스 이브, 동양 최대의 호텔인 이하라 호텔의 개장을 기념하는 파티가 열리던 중, 이하라 호텔의 거대한 빛의 십자가 모양의 조명 앞으로 사람이 떨어져 죽는 것을 수많은 사람들이 목격하게 된다.
피해자는 미국 넬슨사에서 파견된 이하라 호텔의 지배인 토마스 소렌센. 그의 죽음은 살인사건으로 보이지만 그가 투숙해 있던 16층의 방은 사실상 밀실 상태여서 사건은 미궁에 빠진다. 그 뒤, 이하라 그룹 사장 비서 오자와가 살해된 시체로 발견되고 오자와의 부하 직원의 증언으로 경찰은 소렌센 사건에서의 트릭 및 소렌센-오자와 사건의 범인이 누구인지 짐작하게 된다.
하지만 철벽의 알리바이를 깨지 못해 고민하던 중, 이하라 그룹의 라이벌인 부용은행의 차남 고레나리 도시히코마저 밀실에서 살해된 시체로 발견되며, 경찰은 이 세 사건의 연관성을 연구하여 철벽의 알리바이와 밀실트릭을 깨트리고 진범을 검거하게 된다.


모리무라 세이이치의 작품. 꽤 유명한 작품이지만 예전 번역본은 구하기가 어려워 손을 놓고 있던 차에 해문의 미스테리 베스트로 출간되어 읽게 되었습니다.

작가의 1971년 작품으로 비교적 초기작에 속하고, 이 작가의 초기작은 꽤 괜찮은 작품이 많아 읽기 전 부터 상당히 기대를 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사실 이 작가의 후기작은 작품이라 부르기 미안한 수준의 작품마저 양산한 작가라서.....

여튼, 이전에 읽었던 "고층의 사각"과 유사하다는 것이 눈에 먼저 뜨이네요. 호텔에서 실제로 근무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설정이 꽤나 요긴하게 쓰이는 점, 그리고 고층의 호텔 밀실이라는 점은 판박이로 보여져요.
그러나 데뷰작 이후 어느정도 내공이 쌓인 덕인지, 인물과 드라마는 훨씬 복잡하게 전개됩니다. 무엇보다도 호텔에서 발생한 밀실 살인 트릭과 시간차를 이용한 장소이동 알리바이 트릭, 그리고 체인으로 밀실을 만드는 3종의 트릭이 등장해서 추리적인 재미를 마음껏 느끼게 해 주는 것은 최대의 장점이겠죠.
허나 "고층의 사각"에 비해 너무 흥행을 의식한 티가 나는 것은 감점 요소입니다. 난잡한 상류계층의 생활과 범죄를 그리는 것이야 모리무라 세이이치 작품의 특징이라 치더라도 이 작품은 그 정도가 너무 지나쳐서 만화같은 느낌마저 들거든요. 인물 및 배경 설정에서 현실감이 너무 떨어지기도 하고요. 모리무라 작품에서 항상 느껴왔던 것이지만 이러한 설정들이 좋은 트릭과 전개를 너무 흐리고 있어서 아쉽습니다.

그래도 그냥 트릭만 놓고 본다면 모리무라 세이이치 작품에서도 꽤 높은 수준이기는 합니다. 개인적으로 평가한다면 첫번째 사건 -초고층 호텔 살인사건- 은 제목으로까지 쓰인 임팩트 있는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트릭은 수긍하기 어려운, 그냥저냥한 수준이었지만 다른 2개의 트릭은 상당히 재미있고 깔끔하니까요. 특히나 2번째 시간차 알리바이 트릭이 아주 좋은 편인데, 기발하기도 하거니와 범인들이 보다 치밀한 함정을 파기 위한 공작을 벌이다가 오히려 꼬리를 잡히게 되는 전개가 마음에 듭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3점. 작가의 최고 대표작이라고 보기는 무리가 있지만 추리작가로서의 모리무라 세이이치를 잘 느낄 수 있고, 길이도 그다지 길지 않아 쉽게 읽을 수 있어서 심심풀이 독서로는 괜찮은 선택이었다 생각됩니다.
아울러 접하기 힘든 작품을 과감하게 선정해서 소개해 주는 점, 거기에 계보도까지 그려놓고 시간차 트릭을 깨기위한 시간대를 표로 구성하여 삽입한 출판사의 센스에도 박수를 보냅니다. 역시 추리전문 출판사는 다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