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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8/21

그리고, 또 그리고 1~5 - 히가시무라 아키코 / 정은서 : 별점 4점

그리고, 또 그리고 1 - 10점
히가시무라 아키코 지음, 정은서 옮김/애니북스

일본의 순정만화가 히가시무라 아키코의 자전 만화입니다.

저는 만화가가 그린 자기 이야기는 무조건 재미있다는 지론을 가지고 있습니다. "만화의 길"이라던가 거장의 단편 "종이 요새"과 같은 고전은 물론, "아오이 호노오", "만화가 상경기", "바보도 따라할 수 있는 만화 교실" 등 대부분의 작품은 제게 실망을 준 적이 없으니까요. 전기 만화인 "블랙잭 창작 비화", 아니면 만화가가 주인공인 "호에로 펜", "바쿠만"이나 "만화가의 사랑"같은 픽션들도 본전치기 이상은 충분했고요. 

이 작품도 제 지론을 증명해 주는 좋은 예입니다. 재미와 감동,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수작입니다.

고등학교에서 미대를 진학하여 졸업하고, 순정만화가로 데뷰하기까지의 삶에서 그녀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쳤던 화실 선생님인 은사 히다카 켄조 선생과의 이야기를 그리 길지 않은 분량으로 그리는데, 크게 세 개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미대를 목표로 했던 미야자키 소녀 아키코의 입시 분투기, 대학에서 방탕한 허송세월을 보내다가 졸업 후 직장 생활을 하며 만화가를 꿈꾸던 시기의 이야기, 만화가로 데뷰한 뒤 켄조 선생이 폐암으로 죽을 때 까지의 이야기로요. 히가시무라 아키코라는 작가가 미대에 진학하여, 만화가를 꿈꾸다가 데뷰하여 만화가가 되는 과정에 중요했던 인생의 변곡점만을 콕 찍어 그려낸 거지요.

이 중 초반부를 담당하는 입시 분투기와 헐레벌레한 대학 생활 이야기는 굉장히 웃겼습니다. 수험 공부가 아니라 문제 푸는 비결을 터득하여 고득점을 기록했다던가, 단지 게가 먹고 싶어서 가나자와 미대에 지원했다던가 하는 상상을 초월하는 경험이 많은 덕분이에요. 입시 대응 전략은 "수험의 제왕"이 떠오르기도 했고요. 

무엇보다도 제가 미대를 다녔기에 더 와 닿는 이야기였습니다. 제 이야기를 잠깐 풀자면, 만화와 애니메이션의 빠져있었던 고등학교 당시의 저는 갑자기 미대 진학을 결심했었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 올라가기 직전 겨울 방학에요. 그런 걸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에 내렸던 충동적인 결정이었지요. 그래서 1년도 안 되는 짧은 미대 입시 준비 기간을 가졌었지만, 정말 운 좋게 원하는 대학, 원하는 학과에 바로 입학할 수 있었지요. 평생 운을 거진 다 끌어 쓴 것 같아요. 그러나 정작 대학 입학 후에는 그 꿈을 바로 접었습니다 너무 힘들다는 걸 금방 알아버렀기 때문이죠. 그래서 대학교 4학년 내내 놀았던 기억 밖에는 없네요. 충동적인 대학 선택과 유흥과 음주밖에 기억에 남지 않은 대학 생활 모두가 이 책에 나오는 히가시무라 아키코와 똑같습니다... 미대에 대해 작가가 말한 아래의 비판은 정확합니다! 미대생 학부형 분들은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중반 이후, 대학 졸업 이후 나름의 좌절을 겪다가 만화가가 되는 과정은 담담하게, 진지한 톤으로 전개됩니다. 그렇게 드라마틱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많은걸 생각하게 해 줍니다. 당시 자기는 핑계만 대며 도망치기만 했다는 아키코의 후회섞인 고백이 특히 그러했어요. 저도 많이 반성하게 만드네요. 그림이 너무 좋아서, 다른 사람들까지 그런 줄 알고 대했던 그림 바보 켄조 선생과, 현실과 타협한 속물인 히가시무라 아키코의 갈등도 재미 요소였고요. 

사실 미대 진학에 성공한 뒤에도, 켄조 선생이 아키코에게 집착하여 그림을 강요한건 좋아 보이지만은 않았습니다. 하지만 아키코가 작가로 성공할 수 있었던건 은사 켄조 선생님 덕분인건 분명해요. 수백장, 수천장의 그림을 그렸고, 그림과 만화와 삶에 대한 고민을 어린 나이에 충분히 할 수 있었으니까요. 그림이 너무 좋아서, 다른 사람들까지 그런 줄 알았던 그림 바보인데, 그 순수함과 열정은 정말 놀랍고, 이런 분을 어린 시절에 만나 좋은 쪽으로 영향을 받은 아키코가 너무나 부럽기만 합니다. 켄조 선생이 폐암으로 별세하면섣, 끝까지 '그려라'는 말을 중요하게 생각했다는 점도 큰 울림을 가져다 줍니다. 켄조 선생님 장례식까지 담담하게 그려나가다가 마지막에 눈물샘을 터트리는 전개도 효과적이었고요. 죽는다는걸 알고 읽기는 했지만, 정말 뭉클했어요.

켄조 선생이 지나치게 자기 중심적인 사고방식으로 아키코를 휘둘렀고, 아키코도 지나치게 죄의식이나 후회를 갖고 있는게 아닌가 싶은 묘사는 다소 아쉽지만, 재미와 성장기 측면에서, 그리고 감동 측면에서 뭐 하나 빠지지 않는 작품입니다. 2015년 만화 대상을 수상했는데, 충분히 그럴만한 값어치가 있다고 생각되네요. 별점은 5점입니다. 미술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특히 미술 대학 쪽과 관련이 있으신 분들이라면 꼭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덧붙이자면, 도베르만 형사를 그렸던 하라마츠 신지의 "극도 만화가 이야기"는 제 지론이 틀렸던 실패작이었습니다. 만화가 자신의 실제 이야기를 그려낸 자전 만화인건 분명한데, 뒤로 가면 갈 수록 억지스러운 마쵸 세계관 설정이 삽입된 기묘한 판타지가 되어버렸지요. 두 눈 뜨고 보기 힘든 졸작으로, 연재도 조기 종료된 듯 한데 다행히 우리나라에 정식 발매되지는 않았습니다.

2021/12/31

2021 내 블로그 리뷰 총 결산

열 여덟번째 블로그 리뷰 총 결산입니다. 블로그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나이라니 감개무량합니다. 다 컸으니 이제 돈을 좀 벌어 와야 할 텐데 말이지요.

하여튼, 올해도 작년과 마찬가지로 코로나 사태 장기화 탓에 많은 책을 읽었습니다. 그러나 작년보다는 줄었어요. 작년에는 133권을 읽었는데, 올해는 추리 / 호러 장르문학 57 (77)권, 기타 장르문학 3 (4)권, 역사서 17 (9)권, 디자인 or 스터디 1 (4), Food 및 구루메 관련 도서 15 (25)권, 기타 도서 24 (14)권으로 다 합쳐서 117권을 읽었으니까요. 이유는 백신 접종과 위드코로나 정책 덕분에 다른 활동으로 보낸 여가 시간이 늘었던 탓입니다. 올림픽도 열심히 관전했고요. 거기에 더해 작년에는 '추리 소설 1,000권 읽기'라는 개인적인 큰 목표 달성을 위해 더 열심히 달리기도 했었지요. 여러모로 작년이 역대급이었던 셈으로, 당분간은 작년처럼 책을 많이 읽는 해는 오지 않을거라 생각되네요. 그래도 최소한의 목표인 100권은 훌쩍 넘겼으니 만족합니다.

그럼 언제나처럼 각 항목별 베스트 - 워스트를 소개해드립니다.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올해 발표된 작품 기준이 아니라 제가 올 한해 보고 읽은 것들 기준입니다.

2021년 베스트 추리소설 : 

"하드보일드 센티멘털리티" 
별점 4.5점! 20세기 미국 범죄 소설, 그 중에서도 하드보일드 장르의 흐름을 미국 역사 흐름과 비교하여 분석하는 문학사 서적. 상세 리뷰는 링크 참고하시길.

"나는 언제나 옳다" 
별점 4점! 복잡한 복합 장르 구성을 재미있게 풀어낸 작품. 단편 분량인 만큼 아직 읽지 않으신 분들께 강력하게 추천드립니다.

2021년 워스트 추리소설 :

"ON 온"
올해의 워스트 후보작은 "그녀는 증인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서술트릭의 모든 것",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밀실 대도감", "가면병동", "최후의 일격, "범죄 캘린더"와"On 온"의 7편이나 됩니다. 모두 별점 1.5점짜리였지요. 거장 엘러리 퀸의 작품이 두 편이나 포함되어 있는게 놀라운데, 한 편은 나이 탓에, 또 한 편은 양산 모드로 쓰여졌기에 어쩔 수 없었던 결과물이라 생각됩니다. 

그래도 "최후의 일격"은 괜찮은 발상의 트릭이 사용되기는 했고, 단편집 "범죄 캘린더"는 별점 2~2.5점짜리 작품이 수록되어 있어서 워스트 급은 아닙니다.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밀실 대도감"은 책 자체 내용 문제보다는 다른 문제로 인한 감점 요인이 더 컸고요. 단편집 "서술트릭의 모든 것"은 "범죄 캘린더"와 같은 이유로 제외하면, 진짜 워스트 후보작은 "그녀는 증인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와 "가면병동", "On 온"의 세 편이 남습니다. 

이 중 올해의 워스트로는 "On 온"을 꼽습니다. 유치한 설정, 합리적이지 못한 전개, 스테레오 타입의 뻔한 주인공들이 어우러진 싸구려 스릴러니까요. 다른 두 편은 약간이나마 추리적인 요소가 들어갔다는 점에서 그나마 "On 온"보다는 조금 나았습니다. 물론 도긴개긴입니다만....

2021년 베스트 / 워스트 기타 장르문학 : 

올해 기타 장르문학도 3권 밖에 읽지 않아서 뽑기가 어렵네요. 재미만큼은 확실했던 별점 3점의 "사라진 세계"가 베스트였어요. 워스트는 따로 뽑지 않겠습니다.

2021년 베스트 역사 도서 :

"나는 황국신민이로소이다"
별점 5점! 역사 바로 세우기 측면에서 모든 분들이 꼭 읽었으면 하는 책입니다. "국보, 역사의 명장면을 담다"와 "영어 조선을 깨우다 1"도 별점 4점을 받은 좋은 책이었는데, 아쉽게도 탈락했네요.

2021년 워스트 역사 도서 : 

"지도로 읽는다 리스타트 한국사 도감"
별점 1점. 편협한 개인 의견을 잔뜩 투입해서 불쾌하기 짝이 없었던, 그냥 '나쁜' 책입니다.

2021년 베스트 / 워스트 디자인 or Study :

딱 한 권 밖에 읽지 않아서, 올해는 평가할게 없네요. 공부가 부족했던 한해네요....

2021년 베스트 Food / 구루메 도서 : 

"홍차 애호가의 보물상자"
올해 이 쪽 분야 책들은 다 고만고만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카레로 보는 인도 문화", "경양식집에서", "홍차 애호가의 보물상자", "음식으로 읽는 중국사", "가스트로노미"의 5권이 별점 3점을 받았습니다. 이 중 재미와 자료적인 가치, 책의 완성도 등 모든 면을 고려하여 "홍차 애호가의 보물상자"를 베스트로 꼽겠습니다. 1부만 한정하면 별점 4점 이상도 충분했던 책이니까요.

2021년 워스트 Food / 구루메 도서 : 

올해는 2점 이하의 별점이 없어서, 워스트는 따로 뽑지 않습니다.

2021년 베스트 기타 도서 :

"이상한 나라의 언어 씨 이야기"
별점 4점을 받은 책은 "1달러의 세계 경제 여행", "이상한 나라의 언어 씨 이야기", "n분의 1의 함정"의 세 권이었습니다. 다 좋은 책이었지만, 이 중 재미에 더해 제 전공 분야인 커뮤니케이션과 상호 작용에 대해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만들어 준 "이상한 나라의 언어 씨 이야기"를 올해의 베스트로 꼽습니다.

2021년 워스트 기타 도서 : 

"과학자는 전쟁에서 무엇을 했나"
별점 1.5점을 받은 올해의 워스트 후보작은 "재미있는 식물 산책 도감", "과학자는 전쟁에서 무엇을 했나", "만화로 보는 99가지 발명품 이야기"의 3권입니다. 이 중 사람 열받게 만드는 가소로운 자기 주장을 담고 있는 "과학자는 전쟁에서 무엇을 했나"가 올해의 워스트입니다.

2021년 베스트 Movie : 

"나이브스 아웃"
훌륭하게 현대에 되살린 본격 추리물! 별점 3점.

2021년 워스트 Movie : 

"철권을 가진 사나이"
황당무계하고 유치했던, 심지어 액션마저 별 볼일 없었던 '가짜' 무협 영화.

2021년 베스트 Comic - 추리 or 호러 : 

전체적인 별점은 고만고만해서 베스트랄건 없네요. 에피소드 기준으로는 "Q.E.D iff 증명종료 14" 수록작 "1억엔과 여행하는 남자"가 오랫만에 별점 4점짜리 에피소드였습니다.

2021년 워스트 Comic - 추리 or 호러 : 

"Q.E.D iff 증명종료 16"
수록작 3편 중 2편이 별점 1.5점, 1편이 별점 1점을 받은 워스트 오브 워스트. 그 외 "씨엠비 CMB 박물관 사건목록 43"의 "앙숙"도 별점 1점짜리 망작이었습니다. 별점 1.5점 짜리 에피소드들은 언급하기도 힘들만큼 숱하게 있었고요. 추리 만화 분야는 영 실망스러웠던 한해였네요.

2021년 베스트 Comic - 기타 : 

"그리고, 또 그리고 1~5"
별점 4점짜리 책은 이 책 외에도 "피너츠 완전판 19 : 1987~1988"이 있었습니다. 이 책을 베스트로 꼽은 이유는 재미와 감동에 더해 미대 졸업생인 저에게 많은걸 생각하게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고요. 하여간, 극히 일부의 예외는 있지만 만화가가 그린 자기 이야기는 무조건 최고에요.

2020년 워스트 Comic - 기타 : 

최저 별점이 2점이라서, 워스트는 따로 꼽지 않겠습니다.

결산평 : 

이상으로 2021년 블로그 결산을 마칩니다. 올 한해는 저 개인적으로는 큰 의미가 있는 한해였어요. 인생의 큰 목표 중 하나였던 '추리 소설 1,000권 읽고 리뷰 쓰기'를 완료했기 때문이거든요. 저도 하루하루, 한달한달, 한해한해가 더욱 소중한 나이가 되었는데, 2022년에도 저 개인적으로 내세울 수 있고 자부심을 가질만한 한 해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제 블로그를 찾아주신 모든 분들께서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의미있고 가치있는 2022년 되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감사했고, 또 감사드립니다!

2020 내 블로그 리뷰 총 결산

2016/05/20

책장의 정석 - 나루케 마코토 / 최미혜 : 별점 2.5점

책장의 정석 - 6점
나루케 마코토 지음, 최미혜 옮김/비전비엔피(비전코리아,애플북스)

일본 유명 독서가 나루케 마코토의 책장 관리법을 설명해 주는 책입니다. 4개의 단락 - 책장에 대한 정의, 그리고 저자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책장과 책 관리법, 저자가 생각하는 책 선택법과 독서법, 그리고 마지막 부록으로 웹에서 호평받는 서평 쓰는 법 - 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책을 쓴 저자 나루케 마코토는 저자는 1955년 생으로 1991년 일본 마이크로 소프트 법인 사장으로 취임하여 2000년까지 역임했으며, 이후 투자 컨설팅 회사를 설립한 비즈니스 맨입니다. "honz"라는 서평 사이트의 개설자로 마음에 드는 책을 무조건 사고, 1년에 200권도 넘는 책을 읽는다는 독서가이기도 하고요. '시마 사장'이 떠오르는 화려한 이력의 소유자인데 독서가답게 글도 잘 쓰고 나름의 철학도 분명히 있는 사람이더군요. 무엇보다도 자신만의 독서관이 명확하다는 점은 높이 평가하고 싶습니다.

이런 저자의 책장 관리법을 간략하게 설명드리자면, '보기 편할 것', '20퍼센트의 여백이 있을 것'과 '승부수가 될 책만 둘 것', '다양성은 갖되 위화감을 없앨 것', '언제나 변화할 것' 입니다. 보기 편한 것과 여백은 그렇다 치고, 승부수가 될 책만 둔다는게 독특했습니다. 소설이나 만화는 일절 꽂지 않고 오로지 논픽션 중심으로만 책장을 관리한다는 의미로, 소설과 만화는 이미 완성되어 있어서 정보의 업데이트가 필요 없어서 책장에 계속 남아있게 되기 때문에 결국 공간을 차지하게 되어 나중에는 버리게 되는 탓이라고 합니다.
다양성은 테마를 정해 두는 것입니다. 저자의 테마는 '남들이 읽지 않는 재미있는 책' 이며, 테마는 약 5년 정도? 주기로 바꾸면 좋다는군요.
그리고 마지막 '언제나 변화하는 책장'이 바로 책장 관리의 핵심입니다. 우선 앞으로 읽을 책, 지금 읽고 있는 책을 두는 공간인 "신선한 책장" (장소는 집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내며 편안한 곳에, 책을 눕힌 채로 놓고 책등의 제목이 보이게 쌓는, 즉 서점의 '평대' 느낌)이 있습니다. "신선한 책장"에서 다 읽은 책은 "메인 책장"으로 옮깁니다. "메인 책장"에 넣는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저자의 기준은 '1. 재미있는가 2. 새로운가 3. 정보가 많은가'이고요. 그리고 앞서 말한 20퍼센트의 여백과 같은 공간 관리에 신경쓰며 주, 혹은 한 달에 한 번 "메인 책장"을 정리하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책장이 꽉 차면 결국 책을 처분해야 하지만 나름 선별한 것이라 버리기 어려우면, 시간을 두고 고민할 수 있게 따로 공간을 만들어 관리한다고 하네요.

그런데 이렇게 관리하면 역사 관련 서적은 어떻게 하는지 좀 궁금해집니다. 역사는 정보가 새롭게 바뀔 여지가 아무래도 적잖아요? 이미 정해진 과학, 수학 쪽 논픽션도 마찬가지일테고요. 또 정말로 '소장하고' 싶은 책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물어보고 싶네요. 1년에 1~2권만 건진다고 해도 수십년이면 엄청 많아질텐데 말이죠.

이러한 책장 관리법 외에 저자가 추천하는 좋은 책을 고르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를 것 같아 딱히 언급할 건 없습니다. 하지만 독서법에서 포스트 잇을 유용하게 활용한다는 것은 괜찮더군요. 요건 바로 따라해봐야 겠어요.

마지막 서평 쓰는 법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좋은 책만 서평을 쓴다는 점에서 저와 차이는 있지만 같이 서평, 독서 감상문을 쓰는 사람 입장에서 참고될만한 내용이 많았기 때문이에요. 예를 들어 작법 측면에서 '1) 책 제목은 반드시 겹화살괄호로 쓸 것 2) 어미는 통일 할 것 3) 수식어와 피수식어를 너무 떨어뜨리지 말 것 4) 같은 표현을 반복하지 말 것'을 강조하는데 2번과 4번은 저도 항상 쓰면서 고민하는 부분이라 확실히 이해가 되더군요. 참고로, 1번도 따라해보려고 했는데 html 태그 오류가 잦아서 결국 포기했습니다.

그리고 글의 구성에 대한 설명도 참고가 많이 되었습니다. '총괄 1,2 - 에피소드 1,2 - 감상 - 저자 - 일러스트나 장정 - 대상 독자 - 정리의 순으로 적는다'는게 핵심입니다.
우선 총괄 1에서 그 책이 어떤 식으로 재미있는지를 분명하게 소개하고(이것만 따로 잘라 내도 서평으로 구성될 수 있는 참신한 핵심 내용), 총괄 2는 총괄 1에서 다 말하지 못한 재미를 자신만의 언어로 표현합니다. 1이 '재미있다'라면 2는 '정말로 재미있다'라고 재 확인하는 것이지요. 에피소드 1에서는 재미를 구체적으로 쓰고, 2에서는 이 책에서 가장 재미있는 내용을 구체적으로 쓰고요, 감상은 에피소드들이 어떻게 재미있었는지를, 다음은 이렇게 재미있는 책을 쓴 사람이 누구인지 소개하고 일러스트와 장정 등 글 이외의 요소 언급하며 예상되는 독자층에 대해 쓰고 마지막으로 정리합니다.
정리와 총괄의 차이는 서평을 읽은 사람에게 책에 대해 결단을 내리게 만드는 것이라는 것인데 확실히 예비 독자들에게 꽤 유용하겠다 싶네요. 실제로 이렇게 쓴 서평 예문도 괜찮았으니까요. 지금 쓰고 있는 이 서평도 이러한 이론에 기초해서 쓴 것인데, 앞으로도 많이 써먹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 앞서 말씀드렸듯 책장 정리에 대한 욕심이 솟구치게 만드는 책입니다. 확실히 고수의 책장 관리와 독서법은 남다른데가 있는 것 같습니다. 별거 아닌 거 같은데 확실한 자신만의 철학으로 관리한다는 것은 놀랍기도 했고요. 자신이 독서가라고 생각되신다면, 그리고 집에 쌓이는 책 정리에 고심하고 계시다면 한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저 역시 이사가게 되면 책장에 여유를 좀 두고 자주 정리해서 안 읽게 된 책은 정리해야 겠습니다.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요.

마지막으로 저자가 추천하는 책 중 국내에 소개된 책들만 따로 모아보면, 아래와 같습니다(2016.05 기준).

  • 만지트 쿠마르, 이덕환 "양자혁명 : 양자물리학 100년사" 까치 글방
  • 크리스틴 바넷, 이경아 "제이콥, 안녕? 자폐증 천재 아들의 꿈을 되찾아 준 엄마의 희망 수업" 알에이치코리아
  • 다니엘 T 맥스, 강병철 "살인단백질 이야기 : 식인풍습과 광우병, 영원히 잠들지 못하는 저주받은 가족" 김영사
  • 오코우치 나오히코, 윤혜원 "얼음의 나이 : 자연의 온도계에서 찾아낸 기후 변화의 메커니즘" 계단
  • 구메 구니타케, 정애영 "특명전권대사 미구회람실기 1~5" 소명출판
  • 궁리출판편집부 "세계만물 그림사전" 궁리
  • 마크 레빈슨, 김동미 "더 박스 : 컨테이너 역사를 통해 본 세계 경제학" 21세기 북스
  • 빌 로스, 이지민 "철도, 역사를 바꾸다" 예경

2011/12/12

밀리터리 실패열전 - 홍희범 : 별점 2.5점

밀리터리 실패열전 - 6점
홍희범 지음/멀티매니아호비스트

호비스트에서 출간했던 월간지 플래툰에 연재되었던 칼럼들을 책으로 엮은 것. 작전편에서 시작해 해상, 항공, 지상, 총기 파트로 크게 나뉘어 있습니다. 상세한 목차는 아래와 같습니다.

ㆍ작전편
1. 무능한 대장이 부하를 잡는다 - 임팔 작전
2. 미국의 오판 - 피그만 침공
3. 구출 아닌 구출 작전? 마야게즈호 사건
4. 병력은 단순한 소모품? 솜므 대공세
5. 첩보전 최악의 실패: 독일의 대영 첩보전

ㆍ해상편
1. 훈련 중의 대형 사고 연속 발생
2. 이라크 미사일, 미군 함정 피격
3. 이지스의 비극 - 이란 여객기 오인 격추
4. 군과 민간 사이에서 망한 여객선
5. 소련-러시아 원자력 잠수함의 사고 연발
6. '위스키 온 더 락', 구형 잠수함도...
7. 미국 원자력 잠수함의 사고 2연타
8. 미 항모 최대의 적은...?
9. 너무 요동치는 미드웨이
10. 결국 못다 한 꿈 - 나치 독일의 항모

ㆍ항공편
1. '막 떨어지는' 전투기? 과부 제조기 F-104
2. 아군기를 쏘면 안 되지...! 항공 오사
3. 위대한 꿈, 충돌로 끝장 - B-70 발키리
4. 너무 앞선 무인 헬기 - DASH(QH-50D)
5. 성공과 실패는 종이 한 장 차이 - B-17
6. 자국산 전투기 개발의 꿈과 나치 독일
7. 항공기 자폭 테러의 원조는 테러도 아니다?
8. 미 해병대, 스키 리프트 격추?
9. 소련 VSTOL기의 우울
10. F-20 '타이거 샤크'의 실패

ㆍ지상편
1. 여러모로 패착: 2차 대전의 일본 전차들
2. 폼만 나면 좋나? 소련의 다포탑 전차
3. 욕심이 지나쳐도... 미국의 MBT-70
4. 세계 최대의 '실패한 쥐', 마우스
5. 너무 무거운 경전차, 1호 F형
6. 궁합 맞는 짝이 없다? 17파운드포 탑재 작전
7. 뭔가 안 맞는... 연합군의 중전차들

ㆍ총기편
1. 좌충우돌 - 미국의 경기관총 프로젝트
2. 이래 가지고 전차를 어떻게 지켜? M73
3. 또 다른 전차용 기관총의 실패: M85
4. 절약이 능사는 아니다 - 일본 11년식 경기관총
5. 무고장 소총의 꿈... 꿈은 꿈일 뿐? LMR
6. 나치 독일 최후의 발악: 국민 돌격병기
7. 사공이 많으면... GEW88
8. '일석이조'의 실패
9. 대영제국의 SA80, 이름값 못 하다
10. '곡사총'의 꿈

각 소주제별 제목만 보아도 흥미진진하지요? 인상적인 이야기를 꼽아보자면 "에어리어 88"에서 주인공의 기체로 높이 평가했던 (비싼 값을 주고 산 거야!) 타이거 샤크의 실패에 대한 이야기와, 위대한 꿈이었던 초초음속 전폭기 발키리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발키리는 영화 "파이어폭스"가 바로 떠오르더군요. 멋진 실루엣의 디자인도 충분히 감동적이지만, 실제 시제품이 존재해 비행까지 성공했다는 것은 처음 알았습니다. "소련 VSTOL기의 우울"에서 등장하는 수직 이착륙기 이야기도 "하야미 라센진의 육해공 대작전"에서 잠깐 접했던 것이라 반가웠고요.

그 외에도 나치 독일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전투기 국산화를 꿈꾸었던 아르헨티나의 풀퀴 2와 인도의 마루트, 그리고 아랍권의 HA-300 전투기 이야기도 신선했습니다. HA-300은 빌리 메서슈미트 박사의 설계였다는 점에서 더욱 아쉬움이 느껴졌습니다. 이집트가 산유국이었다면 지금쯤 하늘을 날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네요.

마지막으로, 2차 대전 당시 일본의 무식한 전차들의 역사도 재미있게 (그리고 어이없게) 읽은 내용입니다. 섬이나 정글 등의 야전이 많았던 전장 특성상 개발이 더뎠다고는 하지만, 황당할 뿐이죠. 이 이야기도 "하야미 라센진의 육해공 대작전"에 실려 있던 중전차 치하 이야기가 떠올라 더 기억에 남았습니다.

그러나 많은 부분이 현재는 나무위키 등의 사이트에서 쉽게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것들이라는 점은 아쉽습니다. 그리고 호비스트 출판 도서 전체의 문제이기도 한데, 전문적인 지식을 전달하는 방식이 다소 부족하고 가벼워 보인다는 점, 그리고 책의 만듦새와 완성도에 비해 생각보다 비싼 가격 (13,000원)도 단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프트한 밀리터리 애호가에게는 제법 괜찮은 즐길거리임에는 분명합니다. 또한, 이런 류의 책 중에서는 대안을 찾기 어려운 군계일학적인 측면도 확실히 있는 만큼, 지금은 절판 상태이지만 주위에서 구할 수 있다면 한 번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2013/10/21

이럴수가~! 또 이겼다! 두산베어스 한국 시리즈 진출!

참... 역시나 야구 몰라요. 누가 봐도 LG가 유리한 대전이었는데 3승 1패로 두산이 이겨버리네요. 두산이 잘해서 이겼다기보다는 상대방이 실수한 게 더 크긴 하지만 어쨌거나 이긴 건 이긴 거니~

전체적인 플레이오프를 간단하게 평해보자면 우선 1차전에 리즈 선수가 나오고 2차전에 류제국 선수가 나왔다면 1, 2차전 모두 LG가 가져갈 확률이 높았고, 2승을 먼저 한 상태였다면 LG가 무난하게 진출했을 텐데 왜 1, 2 선발 순서를 바꿨는지는 잘 모르겠네요. 누가 봐도 두산은 2차전은 버리는 카드가 나오는 경기인데 리즈 선수를 붙일 이유가 있었을까요? 최소한 리즈 선수를 5차전 경기라면 두 번 활용할 생각은 했어야 했습니다. 리즈 선수는 올 시즌의 압도적인 퍼포먼스라면 상위리그로 갈 확률이 높은 만큼 LG로서도 좋은 기회를 놓친 것 같아요. 또 내일이 없는 4차전에서의 투수 기용 역시 이해하기 어려웠어요. 우규민 선수를 한 템포 더 빨리 내렸어야 하지 않나 싶고... 물론 봉중근 선수가 갑자기 무너진 탓이 크지만 최종전 같은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수비에서만큼은 확실히 두산이 우위라는 것을 여러모로 보여준 시리즈가 아닌가 싶습니다. 내·외야의 두터운 뎁스는 물론 포수 수비력에서는 확실히 두산이 압도한 것 같아요. 특히나 최재훈 선수가 지친 나머지 시리즈 후반에는 도루 저지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정신력으로 버텨준 것이 승인의 하나로 생각됩니다. "최재훈 시리즈"라고 불려도 좋은 시리즈였어요. 그에 반해 LG의 윤요섭 - 현재윤 배터리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죠. 특히 5차전 현재윤 선수의 패스트볼은 결정적이었어요. 선발진이 신재웅 선수를 제외하면 모두 잘 버텨준 만큼, 등판조차 하지 못한 정현욱, 신정락 선수 대신 최경철 선수라도 엔트리에 넣었으면 차라리 대타, 대주자 작전에서 조금 더 낫지 않았을까 싶은데 많이 아쉽겠더군요.

그 외에 LG는 잔루도 많고 잘 맞은 타구가 호수비에 걸리는 등 전체적으로 운이 따르지 않았습니다. 3차전 9회의 2번의 홈보살은 정말이지...

여튼 선수들 모두 수고 정말 많으셨습니다. 그럼 한국시리즈 전망을 해볼까요?
두산은 5차전을 치르지 않아도 되기에 3일이나 되는 휴식시간을 벌은 것은 다행이나 뭐 누가 봐도 삼성이 우세인 시리즈죠. 선발진이 비슷하다고 해도 불펜과 마무리는 그야말로 넘사벽일 뿐더러 타격과 수비는 삼성이 두산에 비해 절대 떨어지는 팀이 아니니까요. 그나마 변수라면 올 시즌 잘해준 김상수 - 조동찬 선수가 못 나온다는 것 정도인데 삼성의 뎁스를 감안한다면, 그리고 시즌 중 백업선수들의 활약을 본다면 크게 마이너스가 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그에 반해 두산은 선발진 3명이 돌아간다는 점은 긍정적이나 니퍼트 선수가 부상 후유증인지 별로 좋지 못하고 중간과 불펜은 정말이지 홍상삼 선수밖에 없는 모습을 보여줬죠. 삼성전에서는 정말이지 윤명준, 변진수, 오현택 선수가 해줘야 하는데 어떨지...

그러나 팬 입장에서 이겨주면 좋겠지만 LG를 이긴 것으로 이미 올 시즌은 성공한 시즌이라 생각하기에 개인적으로는 정재훈, 홍성흔, 김현수 선수를 엔트리에서 빼고 다른 선수들을 충원하였으면 합니다. 양의지 선수 상태는 잘 모르겠지만 지금 같은 모습이라면 차라리 빼고 박세혁 선수라도 올리던가요. 어차피 지더라도 최선을 다하고 후회는 없게, 그리고 젊은 선수들 경험을 위해서라도 조금 더 파격적인 선수 기용을 보고 싶거든요. (그런 면에서 어제 최주환 선수 스타팅 기용은 굿!)

어쨌거나 당분간 더 야구를 볼 수 있다는 점에 감사드리며, 이제부터는 무리하지 말고 즐기는 야구를 합시다! 파이팅 허슬~두!

2021/05/31

2021, 5월과 6월의 두산 베어스 단상


2021, 개막 후 4월까지의, 그리고 5월의 두산 베어스 단상

위의 3, 4월 감상평에 이은, 5월의 두산 베어스 평입니다.
이전 글에서 5월은 4월보다는 좋은 성적을 기대한다고 썼었습니다. 이영하 선수를 대체할 곽빈 선수, 그리고 징계를 마치고 복귀할 강승호 선수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썩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네요. 물론 끈질기게 한 주에 5할 이상 승률은 어떻게든 유지해서, 1위와 3게임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중위권에 위치하고 있는건 대단한 성과라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아무래도 선발진 탓이 컸던 듯 합니다. 선발진이 무너진 경기를 잡는 경기는 그렇지 않아도 힘든데, 외국인 2선발 미란다 선수의 퐁당퐁당 피칭은 그 정도가 심했고, 유희관 선수는 월초 두 경기를 제외하면 완전히 무너졌으며, 대체 선발을 내세운 경기는 초반에 대량 실점을 하고 말았으니까요. 또 복귀 전력만큼이나 전력 누수도 심했습니다. 중간 계투의 핵 박치국, 이승진 선수가 번갈아가며 2군으로 향한게 가장 컸습니다.

타선도 제 몫을 다 했다고 보기에는 조금 부족했습니다. 박계범 선수는 부상으로 빠졌고, 박건우 선수도 몸상태가 좋지 않으며, 김재환, 양석환 선수도 부침이 심했던 탓입니다. 장승현 선수도 피로와 상대팀 분석 탓인지 최근 몇 경기는 아주 좋지 못하지요. 덕분에 투타 엇박자를 여실히 보여주는 1점차 패배가 많았었습니다.

그래도 6월은 아주 약간이지만 더 기대가 됩니다. 패배가 거의 확실시 되었던 5선발 경기에 약간이나마 기대를 걸어볼 수 있게 된게 가장 큰 수확이지요. 유희관 선수 대신 누가 선발로 투입되더라도 더 나을테니까요. 유희관 선수를 대신하는게 박정수 선수라는 점도 기대 요소에요. 이용찬 선수 대신에 선발로 벌써 3승을 거둔 투수를 확보했다는건 어쨌거나 나쁘지 않지요. 이용찬 선수는 어차피 올 시즌 제대로 된 전력으로 치지도 않았으니까요. NC에서의 평균 방어율 정도의 투구만 보여주어도 더 바랄게 없겠습니다. 유희관 선수는 두산의 영원한 레전드로 남겠지만, 향후 1군 선발 투입은 2군에서 신중히 지켜본 후 결정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투수진은 이승진 선수만 돌아오면 건-치-승-률 필승조는 나름 탄탄하고, 최근 장원준 선수 페이스도 나쁘지 않습니다. 2군에서 준비 중인 투수들이 많다는 점도 긍정적인 부분입니다. 이름값으로는 두말하면 서러울 이영하, 이현승, 이형범 선수의 이씨 트리오를 비롯하여 기대주 영건들인 유재유, 최세창, 권휘 선수 들 중 한 두명만 전력이 되어도 한 시즌을 꾸려나가기에는 충분할 것 같습니다. 두산 베어스 투수진이 이렇게 나름 안정적인 뎁스를 갖춘게 얼마만인지 정말 감개 무량하네요.
타선은 투수진에 비하면 기대 요소가 덜하기는 한데, 정수빈 선수가 감을 찾고 있는 듯 하고, FA로이드를 제대로 맞은 박건우 선수 및 부상으로 빠진 박계범 선수와 박세혁 선수가 건강히 복귀 한다면 5월보다는 타순 짜기가 훨씬 수월해 질 테고요.

걱정이라면 필승조가 점점 힘에 부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입니다. 제발 지는 경기에서 필승조 투입은 자제했으면 하는데, 어떻게 될련지...

그래도, 6월은 걱정보다는 기대가 더 크네요. 김태형 감독님께서도 반격을 천명하신 달이고요. 5위 정도를 예상하고 있는 올 시즌이지만, 역대급 혼전이 펼쳐지고 있는 만큼, 전력이 좋을 때 열심히 달려서 조금이라도 높은 순위를 기록하면 좋겠습니다. 화이팅 허슬~두~!!!

2021/06/30

2021, 6월의 두산 베어스 단상과 7월 전망, 그리고 기대

 


2021, 5월과 6월의 두산 베어스 단상

6월의 두산 베어스 평입니다.

그런데 결론부터 말하죠. 완전히 망했습니다. 이전 글에서 썼던 약간의 기대감 따위는 아득하게 날아가 버렸어요.
1,2,3 선발은 대체로 좋은 성적을 거둬주고 있고, 모처럼 4, 5 선발이 좋은 모습을 보여주어도 1점차 패배가 잦은 이유는, 이길만한 점수를 뽑지 못하는 타선 탓입니다. 상대 투수가 누가 나오든 리그 굴지의 에이스로 만들어주고, 계투진과 마무리는 누가 나오든 필승조로 만들어 주는데 정말 환장하겠네요.
이에 반해 투수진, 특히 중간 계투진은 1실점씩 해서 패배의 빌미를 제공했지만 큰 잘못이 없습니다. 6월 시작과 동시에 주전 마무리 김강률 선수가 엔트리에서 빠지고, 이승진 선수도 부진으로 2군을 오가는 등 필승조 "건-치-승-률'이 제대로 가동된 날이 단 하루도 없기도 했고요. 오히려 계투진은 잦은 혹사에서도 분투하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실점은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이었고, 복귀한 이현승 선수, 그리고 필승조로 승격한 윤명준 선수의 활약은 눈부실 정도였어요.

문제는 7월은 더 기대가 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문제가 되는 타선은 박건우 선수의 질책성 2군행, 김재환 선수의 부상에 따른 2군행 등 악재가 더 겹쳤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탄탄했던 투수진도 로켓과 박치국 선수의 부상으로 암울해졌습니다...
솔직히 지금의 상황은 김태형 감독님 탓도 어느정도 있습니다. 리그 최고 수준의 1,2,3 선발을 갖추었다면 5할 이상의 승률을 보여야 합니다. 번트나 스퀴즈 등 어떤 짜내기 작전을 써서라도 점수를 냈어야 해요. 선발 투수가 최고의 투구를 펼쳤는데도 불구하고, 한 경기 6병살 같은 추태를 보이면서 패배하는건 감독으로서 자격이 없는 행동입니다. 지나친 오재원, 강승호 선수 편애 등 경직된 라인업 운영도 비판받아야 마땅하고요.
또 계속 문제를 일으키는 4, 5 선발은 어차피 시즌 전 부터 문제라는걸 알고 있었습니다. 이영하, 유희관 선수가 부진했더라면 빠르게 대안을 투입했어야 했습니다. 이미 작년부터 부진해 왔던 선수들이기도 하고요. 김민규 선수라는 대안도 이미 준비되어 있었잖아요? 이들이 본 경기에서 폼을 회복하기를 기대하는건 무책임한 처사였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날려먹은 경기도 경기지만, 초반 강판으로 계투진 투입이 잦아진게 부메랑으로 돌아오게 되었지요.
항상 핑계로 이야기하는 선수 유출도 이제 더 이상 탓이라고 하기 어렵습니다. MVP급 성적을 거두었던 외국인 투수들은 모두 그만한 선수들로 교체되었습니다. 알칸타라와 플렉센 선수의 WAR은 11.78인데,로켓과 미란다 선수의 추정 WAR은 12.31로 오히려 더 높으니까요. (물론 로켓 선수는 부상으로 빠졌으니 이 수치는 하락할 가능성이 높지만요) 오재일 선수의 공백 역시 양석환 선수가 완벽하게 메우고 있습니다. 즉, 전력 누수는 최주환 선수의 2루 자리 뿐입니다. 이 정도 누수가 없는 팀은 없어요. 최주환 선수도 부상으로 한동안 자리를 비우기도 했었고요.

이런 상황이라면 차라리 무리하지말고 재정비하는 시즌으로 삼아도 될텐데, 그러기에는 7위라는 순위는 미묘하네요. 5위까지는 노려볼만 하니까요. 그래서 저는 미란다, 최원준 선수 경기와 이영하, 김민규 선수 경기 중 한 경기를 꼭 잡는 전략으로 가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지는 경기는 당연하고, 비기는 경기에서 필승조 투입만 하지 않으면 계투진 부하도 덜 수 있을거에요. 땜빵 선발 경기는 이기면 고마운 셈 치고요. 신인이나 새 얼굴 활약을 기대해 보는 거지요. 박종기, 박웅 선수들이 버텨주고, 2군에서 조정한 곽빈 선수가 가세한다면 어떻게든 굴러는 가지 않을까요?
이렇게 5할 승부에만 주력하면서 힘을 비축했다가 부상 선수들이 돌아올만한 시기에 승부를 보면 좋겠습니다.

아니, 아무튼간에 김태형 감독이 지금이라도 실수를 인정하고, 나아지는 모습을 보여주기만 해도 더 바랄게 없겠네요. 지거나 비기는 경기에 주력 계투진을 투입하지 않고, 공격 시에 작전을 적절하게 쓰고, 라인업과 선수 기용은 실력 위주로 해서 제발 대타에 오재원 선수를 쓴다던가 하는 운영만 하지 않는다면,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하더라도 납득하겠습니다. 지금 라인업과 경기 운영은 이기자는 건지, 신인을 키우겠다는 건지도 영 모르겠으니까요.

그래도 제발 5할 승률이라도 하기를 바라며, 파이팅 허슬~두.

2020/08/09

테미스의 검 - 나카야마 시치리 / 이연승 : 별점 3점

테미스의 검 - 6점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이연승 옮김/블루홀식스(블루홀6)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인간이 저지른 죄를 동족 인간이 판단하는 행위 자체가 불손하고 오만하네. 구로사와 재판관 (시즈카 재판관의 스승) 

쇼와 59년 (1984), 부동산업자 구루마 부부가 살해당했다. 우라와 경찰서 검거율 1위인 나루미 경부보는 유력한 용의자 구스노키 아키히로를 불법으로 연행하여 심문한 뒤 자백을 이끌어냈다. 나루미의 파트너인 신참 형사 와타세는 나루미의 방식에 거부감을 느꼈지만, 말없이 따랐다. 재판에서 사형 판결을 받은 아키히로는 결국 몇 년 뒤 구치소에서 자살했다. 

헤이세이 1년 (1989) , 나루미의 은퇴 후 도지마와 파트너가 된 와타세는 가미키자키에서 발생한, 고급 주택에서 아이와 아이 엄마가 강도에게 살해된 사건 수사에 나섰다. 주변에 목격자가 없는 환경이라 수사는 난항을 겪지만, 도지마와 와타세 컴비는 이 사건이 단순 빈집털이 사건인 오하라 현장과 유사하다는걸 알아낸 뒤, 흉기와 도구에서 열쇠에 대한 전문적 지식을 확인하고 관련자들을 수사해 나간 끝에 범인 사코미즈를 체포했다. 그리고 와타세는 이 사건이 쇼와 59년 부동산업자 살인 사건과 유사하다는걸 깨닫고 심문을 통해 사코미즈가 진범임을 밝혀냈다. 

와타세는 사건의 진상을 밝히려다가 조직으로부터 강한 압박을 받지만, 시즈카 재판관 등의 조언을 받고 사코미즈의 조서를 공개했다. 이후 언론의 대대적인 공세와 함께 사건 관계자들은 모두 좌천되거나, 해임되고 말았다. 그러나 핵심 수사관이었던 나루미는 이미 퇴임한지 3년이 지났기 때문에, 그리고 와타세는 내부 고발자로서 온다 검사로부터 보호받아 처분에서 빠져나갔다. 와타세 본인은 이에 대해 크게 자책하며 두 번 다시 수사에 오점을 범하지 않는 형사가 될 것을 결심한다.

23년 뒤인 헤이세이 24년 (2012).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던 사코미즈는 출소 직후 공중 화장실에서 누군가에게 살해당했고, 수사 1과 1반을 맡는 경부가 된 와타세는 독자적인 사건 수사에 나선다...

"연쇄 살인마 개구리 남자" 시리즈 등으로 접했던 작가 나카야마 시치리의 장편입니다. 잘못된 수사와 판결에 의한 '원죄'를 주 소재로 하고 있으면서 왜 가해자보다 피해자 가족이 더 비참해져야 하는지, 흉악한 살인범도 인권이라는게 있는지 등 여러가지 질문을 많이 던져준다는 점에서 일종의 사회파 소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또 사회파스러운 소재에 더해진 본격 추리라는 작풍이 작가의 특징인 듯 한데 이 작품 역시 마찬가지에요. 특히 '재판, 특히 사형 판결을 내린다는게 얼마나 무거운 행위인지' 알려주는 작품은 여러 편 보아 왔지만 묵직한 내용을 추리적으로 잘 포장한 작품은 "데이비드 게일" 외에는 찾아보기 어려웠는데, 그런 점에서는 합격점을 줄 만 합니다.

이야기는 시대순으로, 사건별로 구분되어 전개되지만 크게는 두 부분으로 나뉩니다. 첫 번째는 중반부까지 이어지는, 부동산 업자 부부 살인사건 용의자 아키히로의 자백을 받아내어 그는 사형 선고를 받지만, 5년 뒤 일어난 고급 주택가 모자 강도 살인 사건 수사를 통해 진범이 드러난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과정에서 수사에 대한 묘사는 빼어납니다. 우선 부동산 업자 부부 살인 사건에서는 나루세 경부보가 용의자 아키히로를 옭아매는 조작 수사와 그 결과에 의한 재판이 아주 상세하고, 5년 뒤 일어난 고급 주택가 모자 살인 사건에서는 와타세 형사의 추리에 이은 수사에 대한 설득력이 높습니다.
모자 살인 사건 범인은 '열쇠업자' 일거라는 착안이 특히 빼어납니다. 범인은 도주하면서 직접 만든 자물쇠 따는 도구인 '피크'를 버렸는데, 와타세는 다시 만들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추리한 뒤 관련자 수사에 나서 범인을 체포하게 되거든요. 이후 범인 사코미즈가 전편에 등장했던 부동산업자 살인도 저질렀다는걸 알아차리는 과정 역시 이치에 합당합니다.

두 번째 이야기는 중반 이후, 진범 사코미즈가 모범수로 감형되어 23년 후 출소하자마자 살해된 사건에 대해서 다룹니다. 앞서 사건들과 마찬가지로 수사 중심이지만, 의외로 본격 추리물 느낌도 강하게 전해 줍니다. 알리바이 조작, 흉기 은닉과 같은 정통 트릭이 등장하는 덕분입니다. 마지막에 와타세 경부가 범인인 아키히로의 부친을 찾아가 사건 시각에 경운기에 탔던건 치매에 걸린 아내이고, 흉기는 농기구인 경운기 부품이었다고 밝히는 장면은 추리쇼와 다를게 없고요. 여기에 사코미즈 사건의 배후에 숨겨진 반전 -그를 죽이려는 온다 검사의 음모였다는 - 까지 더해져 추리적으로는 아주 풍성한 편입니다.

주인공인 와타세 경부도 매력적이에요. "연쇄 살인범 개구리 남자"에서는 피도 눈물도 없는 냉정한 수사 기계처럼 등장했었는데, 이 작품에서 그 이유가 잘 드러납니다. 과거 원죄를 저지른 과오를 깊게 인식하고 두 번 다시 수사에 오점을 범하지 않는 형사가 될 것을 결심하는 모습이 그려지기 때문입니다. 단순한 수사 기계보다는 인간적인 모습, 고뇌하고 고민하는 입체적인 모습이 많이 보여져서 좋았습니다. 내부 고발자라 주위의 눈총을 받는 탓에 출세를 포기하고 범인 체포에 열중하는 모습도 설득력 높고요. 작품 속 진짜 수사 기계인 나루미 경부보는 알고보니 사건 해결에만 집착하는, 자기 중심적인 악당이라서 대비가 강렬했던 탓에 더 매력적으로 느껴진 것 같습니다. 본 작품이 와타세 경부 시리즈 첫 번째 작품이라는데, 후속권도 계속 읽어보고 싶어집니다. "개구리 남자"의 주인공이었던 고테가와의 카메오 출연도 반가왔고요.

그러나 '진짜 흑막은 온다 검사!'라고 내세운 반전은 지나쳤습니다. 초반에 정의로운 모습을 보였던 온다 검사가 부동산 부부 살인 사건의 목격자로, 사건 당시 현장 근처 러브호텔에서 불륜을 저지르다가 범인을 목격했지만 나서서 증언하지 않은 바람에 애꿎은 아키히로가 사형 선고를 받고 죽게 되었다는 설정까지는 그럴싸 합니다. 범인 사코미즈도 '커플에게 들켰지만 경찰은 찾아내지 못한것 같다'고 이야기하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비오는 밤에 커플이 사코미즈의 얼굴을 기억했을지 여부도 불투명하거니와, 사코미즈가 당시 목격자인 온다 검사의 얼굴을 기억하여 협박하려 했다는건 정말이지 상상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무려 28년 전 비오는 밤에 잠깐 본 사람의 얼굴을 기억한다? 그게 가능한 사람은 거의 없을겁니다.

또 와타세 경부의 수사처럼, 28년 전 사건의 첫 목격자가 당시 '유명 연예인을 닮은 사람'을 보았던걸 떠올린 덕분에 그 선을 수사하여 진상을 알아냈다는건 그나마 말은 됩니다. 허나 이 역시 그 연예인 닮은 사람이 진짜 그 연예인이었다는건 지나친 우연으로 느껴집니다. 이런 불확실한 목격 증언에 기대는 것 보다는, 사코미즈가 출옥한다는 편지를 피해자 가족에게 보낸 누군가를 상세히 캐 보는게 더 현실적이지 않았을까 싶군요.

그리고 사코미즈가 아키히로 부친에게 살해당한다는건 더욱 억지스러웠습니다. 직접적인 피해자 가족인 부동산 업자 부부의 딸이나, 모자 살인 사건의 남편이 살해했다면 말은 됩니다. 하지만 아키히로의 부친이 진범 사코미즈를 살해한다? 부친이 원죄 사건에 대해 복수를 하고자 하면 최우선 목표는 나루미 경부보가 되어야 합니다. 사코미즈는 원죄의 원인이기는 하지만, 아키히로가 사형 판결을 받고 자살한건 경찰의 무리한 수사, 검찰의 무리한 기소, 그리고 이를 제대로 확인못한 재판관의 잘못이니까요. 그리고 와타세 경부도 이야기 하듯, 무려 28년을 (아키히로가 자살한 것부터로는 25년 쯤?)참고 살다가 급작스럽게 복수를 결심한다는건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아울러 이 세 명이 범행을 저지르지 않았다면 온다 검사는 어쩔 셈이었는지 설명되지 않는 것도 문제에요. 사코미즈를 없애기 위해서는 세 명의 피해자 가족에게 편지를 보내는 정도로는 불충분했을텐데 말이죠. 애초에 편지를 보내는 것 보다는 그냥 사코미즈의 주장을 무시하는게 정답이 아니었을까 싶네요.

그리고 중반부에서 경찰 조직이 과거의 실수를 알아채고 증거 (조서)까지 확보한 와타세가 이를 밝히려하자 철저히 격리시키고, 심지어 폭행까지 저지르는 과정이 지나치게 뻔하다는 단점도 있습니다. 조직의 잘못을 알게 된 언론도 대중과 영합하여 총 공격에 나서며, 관계자들이 여러가지 이유로 보호되고 처벌받으며 이 와중에 지나친 관료 주의가 대두되는 등등 모두가 이런 류의 작품에서 너무 많이 보아왔던 묘사들이에요. 게다가 와타세가 관계자들에게 악영향을 끼쳤다며 사죄하는 모습은 솔직히 어이가 없더군요. 당연한 결과인데 말이지요. 본인이 아무런 징계를 받지 않은 것은 의아해할 수 있어도, 이는 조직에서는 응당 해야 할 일입니다. 내부 고발자는 보호하는데 마땅하니까요. 와타세는 나루미 경부보만 처벌받으면 된다는 순진한 생각을 한 것일까요? 말리는 선배까지 힘으로 눌러버리던 모습은 다 어디갔는지 모르겠네요. 이런 묘사는 와타세 경부라는 캐릭터를 위해서는 불필요했다 생각됩니다.

그래서 별점은 3점입니다. 비록 단점은 있지만 묵직한 주제를 추리적으로 재미있게 포장했다는 점은 높이 평가합니다. 원죄에 대한 뻔한 묘사는 조금 줄이고, 온다 검사 수사에 조금만 더 설득력을 부여했더라면 별점 4점도 충분했을거에요. 물론 이 정도로도 충분히 좋은 작품이니만큼, 아직 읽어보지 않으신 분들께 권해드리는 바입니다.

2014/02/24

비정근 - 히가시노 게이고 / 김소영 : 별점 2.5점

비정근 - 6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소영 옮김/살림

비정근 교사인 주인공이 임시 담임을 맡은 학교와 반에서 벌어진 사건을 해결한다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단편집.

살인사건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일상계에 가깝습니다. 당연하지요. 초등학교에서 대단한 강력 범죄가 벌어질 확률은 낮으니까요. 허나 평범한 일상 속 사건을 흥미진진하게 전개하는 작가의 능력만큼은 확실히 인정할만 합니다. 별거 아닌데 몰입하게 되더라고요.

또 주인공 설정이 괜찮았어요.  뭔가 오래전 "떠돌이 해결사" 느낌을 현대적으로 구현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쿨하고 차갑지만 사실은 따뜻한 남자로, 마을의 위기를 해결하고 떠나는 무사같은 느낌이요. 귀찮은 것을 싫어하지만 냉정하고 분석력이 빠르며, 일을 맡기면 똑 부러지게는 하지만 더 이상의 무언가는 절대로 하지 않을 성격도 마음에 들고요. 사건을 겪으면서 조금씩 "선생님"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점도 좋았습니다. 이렇게 맡는 학교마다 크건 작건 사건이 일어나면 비정근 교사로 먹고살기는 점점 힘들어지겠지만....

그러나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일본인이 아니면 풀 수 없는 트릭이 거의 대부분이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추리에 동참하거나 공감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물론 이 자체는 단점은 아니지만 번역할 때 국내 실정에 맞게 조금 더 신경썼더라면.. 하는 생각은 듭니다.

결론적으로 별점은 2.5점. 작가 특유의 몰입감 있는 전개가 인상적인, 무난한 단편집입니다. 일상계스러운 재미는 충분한 만큼, 일상계 추리물을 좋아하시는 분들께, 또 추리소설을 처음 접하시는 초심자분들께 추천드립니다. 주인공이 독특한만큼 드라마로 만들어도 좋지 않을까 싶네요.

수록작별 간단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6*3"

3개월 한정의 비정근 교사로서 5학년 3반의 담임을 맡게 된 주인공이 기묘한 살인사건을 해결한다는 내용입니다.

주요 트릭이 다이잉메시지인데 원래의 메시지가 있었더라면 범인이 곧바로 체포되었겠지만, 작위적으로 메시지를 변경하여 이야기를 어렵게 꼬아놓았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기 어렵습니다. 그래도 원래의 메시지가 변경된 이유를 설득력있게 설명하는건 괜찮아서 평작 수준은 충분합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1/64"

반 아이들이 나누는 1/64 라는 단어와 반에서 일어난 지갑 도난 사건의 진상을 그린 작품.

평이하고 무난한 일상계지만 아쉬운 것은 "바카도지"라는 일종의 암호입니다. 일본식 암호로 국내 독자가 해석하기에 무리가 따를 뿐더러, 그 자체가 너무 작위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두엘기삼" 같은 건데 이게 우연히 단어처럼 보이게 되었다는건 너무 우연이 심해요. 또 요시오카가 돈을 빼앗긴 것을 밝히지 않은 것도 의문입니다. 그게 도박의 증거가 될 수는 없잖아요? 때문에 별점은 2.5점입니다.

"10*5+5+1"

주인공이 다른 학교 5학년 3반의 임시 담임이 된 뒤 이전 담임 모리모토의 추락사에 대한 진상을 밝힌다는 내용.

나름 무난한 일상계인데 공식의 결과인 56이 모리모토의 체중이었다는게 어머니를 통해 증언되었다면 좀 더 쉽게 풀렸을텐데, 괜히 어렵게 꼰 느낌입니다. 동기 역시도 억지스러웠어요. 이해가 안가는건 아니지만 다른 해결 방법이 얼마든지 있었을 것으로 보이거든요. 때문에 별점은 2.5점입니다. 그래도 인간이란 약한 존재라는 주인공의 독백은 마음에 들었습니다.

"우라콘"

이번에는 반도 시키 초등학교의 6학년 2반을 무대로 하여 학생인 나가세 아키호의 투신자살 미수, 그리고 그와 관련된 “우라콘"이라는 단어의 뜻을 알아낸다는 내용.

처음으로 제목이 공식이나 숫자가 아니라서 의외였던 작품인데, "우라콘"의 뜻만 알면 진상은 쉽게 드러나지만 뜻을 알아내는 과정을 흥미롭게 풀어낸 솜씨가 아주 인상적입니다. 일상계인데 이 솜씨 덕분에 그야말로 미스터리가 됐달까요. 별점은 3점입니다.

한가지 아쉬운 것은 일본식 조어인 "우라콘" 입니다. 한국식으로 "뒷담투"와 같이 번역했더라면, 최소한 각주 정도로 표기해 주었더라면 어땠을까 싶네요.

"무토타토"

이번에는 고린 초등학교 6학년 3반. 수학여행을 중지하지 않으면 자살하겠다는 협박장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트릭은 일본인이 아니면 풀 수 없는 트릭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억지스럽더라도 번역할 때 "이외"라는 한글을 풀어서 "0151"과 같이 표기했더라면 더 낫지 않았을까 싶더군요.
그래도 야노의 계획에 나카야마가 숟가락을 얹어서 사건이 복잡해진 점, 동생을 활용했다는 점, 그리고 그것을 찾아낸 발상은 좋았습니다. 무엇보다도 주인공이 꽤 괜찮은 교사임이 드러나는 결말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이러니저러니해도 주인공은 주인공다워야하는 법이죠! 별점은 2.5점입니다.

덧붙이자면 초등학교 6학년생이 이즈라는 지명을 듣고 마쓰모토 세이초의 작품을 언급하다니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저는 많은 작품을 읽어봤지만 정작 지명은 잘 모르는데... 국내가 아니라서 뇌리에 깊게 남지 않았다 위안을 삼아봅니다...

"신의 물"

이번에는 롯카쿠 초등학교 6학년 3반. 반 학생이 음독으로 쓰러진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내용.

일단 트릭은 "신의물"이라는 페트병에 쓰인 글자가 핵심인데 역시나 일본인만 알 수 있는 트릭입니다. 감점 요소는 아니지만, 아무리 아이들이어도 초등학교 6학년 정도면 음독과 고양이 먹이 주기라는 일의 경중을 파악하기는 어렵지 않았을텐데 경찰에 진상을 밝히지 않은 것은 이해할 수 없네요. 아예 저학년이었다면 모를까... 때문에 별점은 2점입니다. 완성도가 높은 작품은 아니었어요.

"방화범을 찾아라"

고바야시 류타라는 초등학생이 화자이자 탐정역으로 등장하는 짤막한 단편. 주인공은 물론 등장하는 일종의 밀실 트릭도 순간접착제를 이용했다는 진상은 유치할 뿐더러 잘 됐을 것 같지도 않아서 실망스러웠습니다. 작가가 "명탐정 코난"같은 아동용 추리물에 관심을 가진 결과물이라 생각됩니다. 만화였다면 더 나았을지 모르지만 소설로는 영 아니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유령이 건 전화"

고바야시 류타 화자의 일상계. 반 아이들에게 걸려온 장난전화의 진상을 밝혀내는 이야기로 이번에는 탐정역으로 동급생 아사쿠라 도모미가 활약합니다.

단순한 장난이라 추리의 여지가 별로 없는 이야기를 이만큼이나 흥미롭고 풍성하게 만든건 작가의 능력이겠지요. 훈훈하고 따뜻한 괜찮은 소품으로 별점은 3점입니다.

2014/12/29

대한민국 치킨전 - 정은정 : 별점 2.5점

대한민국 치킨전 - 6점
정은정 지음/따비

한국 치킨의 역사와 의미, 그리고 산업적인 부분까지 다루는 치킨 관련 식문화사 서적입니다. 목차는 아래와 같습니다.

  • 1부 치킨은 어떻게 한국인의 소울푸드가 되었나
  • 2부 치킨집 사장으로 산다는 것은
  • 3부 치킨은 무엇으로 사는가
  • 4부 대한민국 치킨약전略傳 1
  • 5부 대한민국 치킨약전略傳 2

개인적으로 음식 관련 서적이나 미시사 서적을 좋아해서 읽게 되었는데, 제 생각과는 조금 다르더군요. 치킨에 대한 미시사 서적이라기 보다는, 치킨을 소재로 한 문화 비평서에 가까운 탓입니다.

물론 기대했던 미시사적인 접근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1부에서 치킨이 대한민국의 소울푸드가 된 과정 및 현재 치킨의 의미를 자세히 짚어주고 있으니까요. 개신교의 영향, 그리고 미국 문화의 수입에 따라 축제 음식이 자연스럽게 일상식으로 전환되었다는 내용이 핵심입니다. 치킨의 계보 역시 자세하게 소개해 줍니다. 몰랐는데, 치킨의 대명사라 할 수 있는 후라이드 치킨도 시대별로 많은 변화를 겪었더라고요. 간략하게 소개하자면
1세대 후라이드 치킨은 엠보 치킨. 보드람, 치킨뱅이, 둘둘치킨, 림스치킨 등에서 파는 것으로, 작은 닭을 '한방 염지'나 '야채 염지'라고 불리는 염지액에 담근 뒤 파우더를 얇게 입혀 압력 튀김기에서 튀겨낸 방식입니다. 물반죽 없는 건식 치킨이죠. 최근의 또봉이 통닭 역시 이 계열일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스타일입니다.
2세대 후라이드는 민무늬 치킨으로, 물반죽 단계에서 바로 튀김기에 들어가는 방식이며, 시장 통닭이 대표적이라고 하네요. 양념을 묻히기 쉬운 것이 장점입니다.
3세대는 크리스피 치킨으로, 튀김가루를 묻히고 코팅 효과를 주기 위해 베터믹스(물반죽코팅)에 담갔다가 다시 튀김가루를 묻혀 튀기는 방식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내용이 소개되는 1부 외에는 사회·문화 비평서에 가깝습니다. 특히 대한민국 현대사와 자본가-노동자의 관계를 치킨 시장에 빗대어 풀어낸 내용이 많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프랜차이즈 치킨 사업과 양계 산업에 대한 서술입니다.
프랜차이즈 창업에 대한 부분은 "프랜차이즈" 사업이 어떻게 돈을 버는지 거의 폭로 수준으로 적혀 있어서, 여러모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이러한 폭로나 비평 외에도 치킨 사업 자체를 매우 자세하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쪽에 관심 있는 창업자나 개발자 분들께는 꼭 한 번 읽어보셔야 할 정도로요. 치킨이 정말 돈이 안 남는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고, 예전 통큰치킨 사태 때 공개되었던 원가 구조는 지금도 유효한 듯합니다. 한 마리 팔아봤자 2,000원 정도 남는 수준이라니, 하루 50마리를 팔아도 임대료 내기 빠듯해 보이네요.

또한 "하림"이라는 대기업의 지배하에 있는 양계 산업의 현실도 상당히 놀라웠습니다. 책에 따르면 거의 착취에 가까운 구조였기 때문입니다. 기업형으로 닭을 길러야 프랜차이즈 본사에서 가맹점에 공급하는 염지닭의 공급가를 4,000~5,000원 선으로 유지할 수 있고, 지금 우리가 먹는 치킨값(만원대 후반)이 형성될 수 있다는건 씁쓸했습니다.
"맛의 달인"에서 유우코 할머니가 치매 증세를 보이다가 맛있는 닭요리를 먹고 정신을 차리는 에피소드가 있었는데, 거기서 공장제 닭의 문제를 제기하며 방목해서 키운 닭이 최고라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물론 그런 닭은 맛이 있겠지만, 현실적으로는 한 마리에 4~5만 원 정도는 되어야 가능하겠죠. 어떤 방향이 옳은지 고민하게 만드는 대목입니다.

이렇듯 꽤 재미있고 생각해볼 만한 내용이 많기는 했지만, 기대와는 많이 달랐다는 점, 그리고 책의 구성이 다소 산만하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기는 힘들었습니다. 치킨이 대한민국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치킨 계보로 넘어가고, 이어서 프랜차이즈 사업 이야기, 다시 마케팅 관점에서의 CF와 스포츠 연계 이야기, 마지막에는 양계 산업 이야기로 끝나버리니 역사면 역사, 이론이면 이론, 문제점은 문제점대로 정리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네요. 차라리 프랜차이즈와 양계 산업의 비양심적인 현실을 고발하는 르포르타쥬 형태였다면 더 높은 점수를 줬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은 단지 현황 지적에 그친다는 점이 아쉽습니다.

때문에 별점은 2.5점입니다. 여러모로 예전에 보았던 MBC의 "닭큐멘터리 치킨"이 떠올랐는데, 방송을 보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그래도 치킨집 창업에 관심 있으시다면 꼭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2005/07/29

비밀의 백화점 (추리소설 특급 가이드) - 한겨레21 별책부록

한겨레 21의 여름 특집 별책부록 추리소설 가이드입니다.

별책부록이라고는 하지만 분량으로는 100여페이지 정도이고 폰트 크기도 작은 편이니 외견보다는 많은 내용을 담고는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다양한 저자들을 섭외해서 여러 종류의 글들을 짧게 짧게 실어놓은 책으로 김탁환씨와 성귀수씨와 같은 메이저 작가, 번역가에서 영화평론가들, 그리고 Howmystery.com과 화요추리클럽 분들을 비롯해서 알라딘 전설의 리뷰어 물만두님까지 온-오프라인을 아우르는 기고자들이 면면이 화려하고 워낙 많아서 다양한 취향을 음미하는데에는 상당히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거기에 짤막한 만화까지 포함되어 다양한 쟝르를 포괄하고 있는 점도 좋은 기획으로 보입니다. 척박한 국내 만화계에서 비교적 정통파 추리 만화를 그렸던 한혜연과 석동연씨가 작가진에 있는것이 반가우며 추리 매니아이신 김진태씨도 짧지만 재미있는 만화를 개재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워낙 짧다보니 글의 테마와 종류에 비한다면 그다지 깊이가 없긴 합니다. 조금 페이지를 늘리더라도, 아니면 기고자를 조금 줄이더라도 내용을 더욱 풍성하게 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네요. 물론 별책부록인 만큼 자금과 페이지 사정이 있었겠지만 지금 상태는 좋은 기획의도를 충분히 받쳐주지 못하는 팜플렛에 가까운 결과물이라 생각됩니다. 또한 온라인 추리 동호인들의 의견이 많이 반영된 것은 분명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척박한 풍토에서 고생해온 국내 추리작가들의 비중이 너무 없는 것은 불만스럽습니다. 이젠 원로축에 끼시는 김성종 선생님이나 정건섭 선생님에게는 최소한 한페이지 이상은 의뢰드렸어야 하지 않았을까 싶거든요. 번역계에서도 국내 추리계의 저변 확대에 기여하신 정태원 선생님의 이름이 없어 아쉬웠습니다. 마지막으로 책 권말의 추리소설 목록은 솔직히 불필요한 부분이었다고 보이고요. 어차피 다 싣지 못할 바에야 올해 신간만 리스트업하는게 더욱 좋았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래도 조금만 더 손을 본다면, 그리고 출판사의 의지가 작용한다면 장래에는 국내판 "이 미스테리가 굉장해!" 수준의 책을 뽑아 낼 수도 있겠다는 희망을 던져 주는 책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내 작가의 비중이 보다 높아져야 하리라 생각되고 국내 추리소설계도 분발해야 겠지요. 부디 내년에는 보다 풍성한 내용으로 가득차기를 기대합니다.

마지막으로 저도 포함되어 있는 앙케이트 한번 해  봅니다...

1. 가장 사랑하는 추리소설 1-5
어떻게 다섯개만 뽑을 수 있겠습니까만은, 현재의 베스트는
미야베 미유키 "화차", PD 제임스 "어떤 살의", 피터 러브시 "밀랍인형", 로스 맥도널드 "소름", 크리스티 "화요일 클럽의 살인"

2. 명성에 비해 실망스러웠던 작품
아카가와 지로의 삼색털 고양이 홈즈 시리즈. 명성이라는게 있는지조차 의심스럽지만요.

3. 최고의 작가
레이몬드 챈들러. 두말할 필요 없겠죠...

4. 가장 사랑하는 탐정
모스 경감. 나름 약점도 많고 인간적인 매력이 넘쳐 마음에 듭니다.

5. 가장 인상적인 악당
"유니스의 비밀"의 유니스 파치먼. 전형적인 악당이 아니고 평범한 하녀에서 폭발하는 광기에의 감정 이동이 놀라왔던, 그래서 더욱 무서웠던 인물입니다.

6. 가장 훌륭한 결말 그리고 어처구니없는 결말
훌륭한 결말 - 피터 러브시 "가짜 경감 듀" 납득하기 어려운 점도 있지만 복선과 사건이 완벽하게 정리되며 모두가 행복해지는 멋진 엔딩이라 추천합니다.
어처구니 - 사카구치 안고 "불연속 살인사건" 이렇게 모두 죽어나가면 범인이 누구인지 알 수 밖에 없잖아요?

7. 가장 완벽한 범죄
도널드 웨스트레이크의 "도끼". 범죄자의 자기 합리화를 독자에게도 공유하게끔 하는 설정이 놀랍습니다.

8. 가장 멋진 대사
"정말 잘 가라는 말은 벌써 해 버렸단 말이야. 정말 잘 가라는 말은 슬프고, 쓸쓸하고, 절실한 느낌을 지니고 있을 걸세"
 레이몬드 챈들러의 "기나긴 이별" 마초이즘과 서정성을 동시에 느끼게 하는 명대사.

9. 배신하지 않는 작가 (가장 믿을 만한 작가)
로스 맥도널드, 국내 출간된 작품을 다 읽은 유일한 작가일 뿐더러 작품이 전부 일정 수준 이상입니다.

10. 가장 잘된 추리(미스터리)영화
알프레드 히치콕의 "다이얼 M을 돌려라!" 구관이 명관, 명불허전의 작품입니다.

11. 우리나라에 꼭 소개되어야 할 작품
비교적 소개된 것이 적은 일본 고전 본격물과 신 본격물의 다양한 소개를 기원합니다. 예를 들자면 아리스가와 아리스나 노리츠키 린타로. 다카키 아키미쓰 등이요.

12. 가장 좋아하는 국내 추리소설
많이 읽지는 않았지만 그 중에서라면 김성종의 "최후의 증인"

13. 미스터리 초보에게 추천하는 작품 셋
초보자에게는 단편이 더욱 어울리리라 생각됩니다. 세 편이라면 크리스티의 "화요일 클럽의 살인", 엘러리 퀸의 "엘러리 퀸의 모험" 두 단편집과 황금시대 정통 본격물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딕슨 카의 "황제의 코담배 케이스" 를 추천합니다.

14. 나는 추리소설을 좋아한다. 그 이유
항상 저를 지적인 흥분상태로 몰고 가는 두근두근한 긴장감이 좋습니다. 또 혹시 압니까? 향후 요긴하게 써먹게 될지도..... 기차 시간표를 이용한 알리바이나 한번 만들어 볼까나!

15. 그리고 할 말이 남아 있다.
추리 독자의 저변이 더욱 넓어져서 제가 군침만 삼키던 작품들이 더욱 많이 번역되어 출간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뭔가 기획해서 책을 내보고 싶기도 한데, 저변과 시장이 넓어지면 언젠가는 기회가 되겠죠.

2015/01/07

나를 찾아줘 (Gone girl. 2014) - 데이비드 핀처 : 별점 3점

아래 리뷰에는 영화의 결말 등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모두가 부러워하는 삶을 살아가는 완벽한 커플 닉&에이미.
결혼 5주년 기념일 아침, 에이미가 흔적도 없이 실종된다.
유년 시절 어린이 동화 시리즈 ‘어메이징 에이미’의 실제 여주인공이었던 유명인사 아내가 사라지자, 세상은 그녀의 실종 사건으로 떠들썩해진다.

한편 경찰은, 에이미가 결혼기념일 선물로 숨겨뒀던 편지와 함께 곳곳에서 드러나는 단서들로 남편 닉을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한다. 미디어들이 살인 용의자 닉의 일거수일투족을 보도하기 시작하고, 시간이 갈수록 세상의 관심이 그에게 더욱 집중된다.

과연 닉은 아내를 죽였을까? 진실은 무엇일까? <영화 소개에서 인용>

"셔터 아일랜드" 이후 추리소설 원작 영화로는 가장 큰 흥행 및 비평적인 성공을 거둔 영화이지요. 진작부터 관심이 있었지만 이제서야 감상하게 되었습니다.

영화는 크게 두 개의 부분으로 나뉩니다. 에이미가 장기간에 걸친 완벽한 계획으로 남편 닉을 구렁텅이로 빠트리는 과정이 1부, 그리고 그 사실을 에이미 시점으로 드러내면서 에이미가 도주 중 자금을 강도에게 털린 뒤 옛 애인 데시를 만났다가, 데시를 죽이고 다시 닉에게 돌아오는게 2부입니다.

이 중 1부의 악녀 에이미의 완벽한 계획이 굉장한 볼거리입니다. 이 정도로 치밀하면 정말 벗어나기 힘들겠다 싶을 정도로 꽉 짜여져 있기 때문입니다. 남편의 동기를 장기간에 걸쳐 만드는 과정과 사건 현장의 조작이 대표적이에요. 그 외에도 동네 임산부와 의도적으로 친해진 후 임신했다는 거짓말을 조작하는 생전 처음 보는 트릭이 등장하기도 하고, 별로 대단하지는 않지만 나름의 보물찾기 암호 트릭이 등장하는 등 추리적으로 꽤 풍성합니다. 에이미가 데시를 죽이는 과정도 즉흥적이지만 탄탄하게 짜여져서 만족스러웠습니다.

1부의 내용 전개가 현재 시점은 모두 닉, 그리고 과거에 있었던 일들의 회상은 에이미 시점으로 그려지는데 1부 종료 시점에 과거 회상은 모두 에이미가 창작한 가짜였다는 사실이 밝혀지는 것도 특이했습니다. 일종의 서술트릭인데 상당히 잘 만들어져 있어요.

그리고 에이미의 남편인 닉이 "악마같은 여자"의 찐따처럼 허술하지 않고, 나름 똑똑한 친구로 대결 구도를 형성하여 극적 긴장감을 더해주는게 가장 마음에 들었습니다. 특히 가장 위험한 순간, 즉 자신이 범인으로 전미에 알려지는 상황에서 불륜 사실이 폭로된 직후, 전국 방송 인터뷰를 자처하여 에이미가 원하는 완벽한 모습을 연기해서 에이미가 자기에게 돌아오게 만드는 과정이 백미입니다. 턱에 손을 가져다 대는 제스처도 효과적으로 활용됩니다.

에이미가 돌아온 뒤의 에필로그, 종반부도 상당히 괜찮아요. 위선과 조작으로 점철된 부부생활 연기를 계속한다는 것인데 이것을 하게 만드는 설득력이 장난이 아니거든요. 사는 게 지옥이라는 현실이 절절하게 와 닿기도 하고요. 이런 상황을 뒷받침하는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심리 묘사도 명불허전입니다. 이 감독 영화는 어딘지 모르게 불편하고 불안한 감정을 전해 주는데 이 영화 역시 마찬가지로 보는 내내 조마조마,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감상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아주 뛰어난 드라마냐 하면 그렇지만은 않아요. 애초에 동기 자체가 싸이코 에이미의 집착에 기인하고 있어서 설득력을 완벽하게 갖추고 있지는 않은 탓입니다. 가장 이해가 안 되는 게 와이프가 예쁘고 똑똑한 데다가 돈까지 많다면, 나를 완벽하게 컨트롤하려 한 게 그리 큰 문제일까요? 저 같으면 죽으라면 죽는 시늉이라도 했을 거예요. 게다가 와이프와 멀어졌다고 제자와 불륜이나 저지르다니, 솔직히 죽어도 싼 놈이라고 생각됩니다.
에이미의 처음 계획 역시 그녀가 과연 자살하려 했는지도 의문이고, 자살할 생각이었다면 데시를 죽이는 상황처럼 닉을 죽이고 자살하던가 경찰에 신고하는 게 훨씬 쉽고 깔끔했을 겁니다. 이렇게 일을 벌일 필요는 없었어요. 또 우연에 가까운 강도 사건만 없었더라도 어떻게 되었을지 모른다는 점에서 완벽한 계획인지도 잘 모르겠더라고요. 데시에게 납치되었다는 상황을 자작했을지는 모르겠지만요.

그리고 이건 문제라고 하기는 좀 뭐한데 1부에서 과거 이야기는 모두 에이미가 창작한 가짜입니다. 때문에 현재 시점에서 닉이 주장하는 에이미의 문제와 부부 간의 불화는 제대로 설명되지 않고 끝나버립니다. 부부 관계가 도대체 어땠길래 남편을 사형시키고 자살할 생각까지 했는지는 알 수 없어서 조금 답답했습니다.

아울러 배우진도 좀 아쉽습니다. 아카데미 위너 벤 애플렉은 꽤 괜찮았지만 에이미 역의 로자먼드 파이크는 "잭 리처"에서의 볼륨감이 화면에서 도드라지지 않는 탓에 작중 표현된 대로 치명적인 매력의 소유자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녀에게 집착하는 닐 패트릭 해리스 역시 게이라는 것을 거의 전 세계가 다 아는 상황에서 한 여자에게 집착한다는게 별로 어울리지 않았고요.

그래도 간만에 본 웰 메이드 범죄 드라마임에는 분명합니다.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영화답게 러닝타임이 두 시간을 훌쩍 넘지만 꽉 짜여진 탄탄한 연출과 전개 덕에 시종일관 손에 땀을 쥐고 보았네요. 최근 보기 드문 완전범죄물이라는 측면에서도 좋은 점수를 줄 만 합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덧 1 : "Gone Girl"이 왜 "나를 찾아줘"로 번역된 것일까요? "Girl"이라는 미묘한 단어가 꽤 중요해 보이기도 하는데요.

덧 2 : 원작소설도 평이 좋은데 읽어봐야 할지는 잘 모르겠군요. 원작자인 길리언 플린이 영화의 각본까지 맡은 것으로 보아 원작에 굉장히 충실한 작품이라 판단되거든요. 고민 좀 해봐야겠습니다.

2009/07/01

2009.7.1 두산베어스 대 히어로스 목동경기 요약 - 전 선발투수 2명이 말아 잡쉈수

2009.6.24 두산베어스 대 롯데자이언츠 사직경기 요약 - 눈물과 감동의 승리 ㅠ.ㅠ

<두산베어스의 여신 한채영! 파울볼 유저 Epilogue님의 사진>

제목 그대로입니다. 전 선발투수 2명이 아주 자~알 말아 잡순 경기되겠습니다.

어차피 선발 김성배 선수에게는 큰 기대는 없었어요. 한 4이닝 3실점 정도? 생각보다 일찍 내려가긴 했지만 여기까지는 예상 범위 안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에 나온 김상현 선수가 일반 션~하게 한번 털어주셨죠. 0.1이닝 2실점! (분식회계로 1실점은 김성배 선수에게 얹어주긴 했지만) 낮은쪽으로 너무 제구가 안되니 연신 쳐맞을 수 밖에 없죠. 그렇잖아도 무서운 영웅네 타선인데.... 그래도 두산 타선은 꾸준히, 그리고 상대 실책 등으로 점수를 추가해서 결국 5-4 까지 추격하는데 성공합니다. 여기에는 3.1이닝을 1실점으로 꾸역꾸역 잘 막아준 오현택 선수 공이 컸죠. 그닥 빠르거나 위력이 있어보이지는 않았지만 완급조절과 위기관리가 돋보였습니다. 그러나 운명의 7회말. 두산의 4번째 투수는 전 선발투수 김명제! 느껴지는 뜨거운 불의 기운! 역시나 올라오자마자 최근 드럽게 안맞고 있던 브룸바에게 2루타! 또 2루타! 또 2루타!! 모든 안타를 장타로 쳐맞으며 퐈이아!!!! 그리고 사실상 게임은 끝났습니다. 이거 니코스키 영입이 투수진에는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의 활약들이라 뭐라 할 말도 없네요....

타선은 그 이후 9회초에 3점을 추가하여 7점이나 내 줬으니 할만큼 한거고, 김상현 - 김명제 전직 선발투수 2인의 사실상 실점인 5실점만 덜어냈더라도 해볼만한 경기였을텐데 아쉽네요. 그나마 수확이라면 이보근 - 오재영 - 신철인 선수라는 나름 영웅네의 중간계투를 끌어내 많은 공을 던지게 하며 득점에 성공했다는 정도겠죠.

덧붙여 감독님! 제발 김상현 - 김명제 선수는 아마추어인 제가 봐도 문제가 있어 보이는데 2군으로 좀 내려서 컨디션 조절을 하게 해 주면 좋겠습니다. 이제 두 선수가 나오면 솔직히 전혀 기대가 되지 않습니다. 차라리 오늘 잘 던진 오현택 선수 등을 잘 써먹는게 나을것 같아요. 그리고 이대수 선수가 대체 왜 안나오는 겁니까? 이성렬 선수대신 우익수에 집어넣어도 이대수 선수가 7만배는 잘할 것 같습니다... 제발요~!!!

2020/01/10

Q.E.D iff 5 - 카토우 모토히로 : 별점 3점

Q.E.D Iff 증명종료 5 - 6점
카토 모토히로 지음/학산문화사(만화)

iff도 5권 째에 접어들었네요. 이번 권의 특징이라면 에피소드 두 편 모두 잔혹한 살인 사건(한 건은 미수입니다만)을 다루고 있으며, Q.E.D 특유의 현학적인 재미는 전혀 없다는 겁니다. 그냥 추리에만 집중하고 있어요.
그런데 왠걸, 아주 좋았습니다! 직전 4권에는 간만에 괜찮은 에피소드가 수록되었었다고 소개했었는데 4권의 첫번째 이야기가 장타였면, 이번 5권은 이야기 두 편 모두 장타 이상, 심지어 두 번째 이야기는 홈런 수준입니다. 타점은 2점! 별점은 3점입니다.

상세한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합니다.

"이븐 Even"

대학생 아시카가 렌은 산에서 조난당한 뒤 병원으로 후송되었다. 사고 현장에서 테시마에게 차였다는 내용의 유서가 발견되어 자살을 기도한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병원에서 렌의 산소마스크를 벗기려던 누군가가 도주하다가 막다른 복도에서 사라진 사건이 일어났다.
그 뒤 가나의 탐문 조사를 통해, 렌을 찼다는 테시마가 렌에게 십여만엔의 돈을 빌렸다는걸 알아낸다. 이 사실을 가나에게 알려준 센도는 테시마가 그 빚을 갚지 않기 위해 렌을 죽이려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렌의 병문안을 왔던 또 다른 한 명인 코시모토는 테시마의 연인이었고, 테시마는 성인 클럽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렌의 독일어 노트가 독일어 시험을 볼 때 아주 유용했는데 독일어 시험지가 도난당했다는 사건 등이 연달아 밝혀졌고, 이를 토대로 토마는 진상을 추리해낸다.

등장인물들의 증언을 통해 사건의 진상을 밝혀낸다는 이야기는 Q.E.D에서 흔하게 등장해 왔습니다. 그러나 이 작품은 단 한 번의 증언이 전부가 아니라 가나의 탐문이 이어지면서 계속 새로운 사실이 밝혀지며, 결국 세 명의 유력 용의자들이 모두 수상하게 만들어서 보다 정교한 느낌을 전해 줍니다. 테시마는 자신의 성인 클럽 아르바이트를 숨기기 위해, 코시모토는 연인에게 집적되는 남자를 죽이기 위해, 센도는 테시마를 살인범으로 몰기 위해서라는 동기가 성립하기 때문입니다. 코시모토가 독일어 시험 문제를 훔치다가 렌에게 들켜서 그를 죽이려 했다는 진상도 괜찮고요. 

게다가 가장 놀라왔던건 사건에 대해서는 세 명 모두, 즉 범인까지도 진실만을 이야기했다는 점입니다. 심지어 "렌이 테시마의 손수건 향을 맡고 있었다"는 코시모토의 증언은, 시험 문제를 훔치는 상황에서만 렌을 볼 수 있었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단서가 될 정도입니다. 코시모토가 운동선수를 그만두고 MBA를 목표로 해외로 가려고 하는 상황도 마찬가지고요. 도주 목적이었던 것이지요.

등장하는 트릭은 변변치 않지만, 범인이 병원 막다른 목도에서 사라진 방법은 나름 그럴듯 했습니다. 옷을 집어 던진게 사람이 그 쪽 방향으로 뛰어간 것 처럼 보였다는 이유인데, 우연이라도 실제로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나치게 머리를 쓴 작위적인 트릭보다는 오히려 설득력이 있어 보였거든요. 코시모토가 마라톤 선수라는 설정을 활용한 트릭이었다면 더 좋았겠지만요.

그런데 세세한 문제가 몇 가지 눈에 띕니다. 가장 큰 문제는 병원에서의 살인 미수도 실패로 돌아갔기 때문에, 코시모토는 빠져나갈 수 있는 방법이 없게 되었다는 겁니다. 렌이 식물 인간이 된 게 아니라면, 언젠가 의식을 회복해서 코시모토가 자신을 죽이려 했다는걸 증언할게 뻔하잖아요? 서둘러 해외로 도주하지 않은 이유를 도저히 알 수가 없어요. 이야기 결말을 보면, 토마의 추리 이후 머지않아 렌이 깨어나 사정청취를 한 것으로 묘사되기도 하는데 말이지요.
그리고 렌의 노트가 있으면 독일어 시험에 큰 도움이 되는건 모든 학생이 알고 있으며, 연인 테시마가 그 노트를 빌렸는데 왜 독일어 시험 문제지를 훔치려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또한 토마의 주장도 틀린 부분이 있습니다. 렌의 실족이 살인 미수라는 주장에, 코시모토는 왜 렌의 자살 미수가 아니냐고 물어봅니다. 토마는 병실에 누군가 침입해서 렌을 죽이려 했다는게 증거라고 이야기하죠. 자살 미수였다면, 누군가 침입하지 않아도 본인 스스로 죽으려 했을거라고 단정하면서요. 그러나 바로 직전에 읽었던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에 따르면, 자살을 실행했던 사람은 대부분 자살 시도 자체를 후회한다고 합니다. 통계적인 수준이지만, 토마의 단정은 섣부른 감이 없잖아 있는 셈이지요.

그래도 나름 합리적인 전개는 높이 평가할 만 합니다. 그동안 졸작이 많았기에 이 정도면 평균 수준은 됩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불완전한 밀실"

타카마츠씨가 밀실에서 살해된 채 발견되었다. 밀실 안에는 쓰러져있던 간호사 이타미 사요코가 곧바로 체포되었지만, 다행히 그녀는 풀려났다. 미즈하라 경감이 진짜 범행 장소를 알아낸 덕분이었다. 또 다른 범행 장소가 일찍 발견되지 않았던 이유는 1년 반 전 발생했던 클럽 화장실에서 하치오라는 여성이 살해된 사건 탓이었다. 당시 유력한 용의자로 체포되었던 이타미 다케오는 가혹한 취조를 받은 뒤 자살했는데, 당시 검사가 타카마츠씨였고 이타미 사요코는 다케오의 모친이었기 때문이었다. 명확한 동기 때문에 유력한 용의자로 몰릴 수 밖에 없었다.

초, 중반부까지는 '불완전한' 밀실 살인의 수수께끼를 푸는 이야기로 보이지만, 결국은 복수극이었다는 전개가 독특한 작품입니다. 복수극이었기 때문에 범인인 이타미 사요코는 불완전한 밀실을 만든겁니다. 본인이 용의자로 체포되기 위해서였지요. 이 과정은 지극히 합리적입니다.
또 도화선이 된, 1년 반 전의 하치오 살인 사건은 시체가 아직 살아있는 것 처럼 위장한 뒤, 문 뒤에 숨었다가 구경꾼인 체 한다는 트릭이 사용되었는데 아주 현실적이에요. 복잡하지도 않고, 상황에 대한 설득력도 높으니까요.

물론 CCTV도 있었을 테고, 현장에 있던 구경꾼들의 명단을 경찰이 입수하지 않았을 이유도 없다는 것, 그리고 클럽에 중년 이상의 여성이 숨어들어간게 들통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는 문제는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가장 유력한 용의자가 이타미 다케오였는데, 그가 범인이 아니라면 당연히 가족이나 청부 살인을 의심하는게 당연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문제는 악덕 커리어 경찰 미야코가 이타미 다케오를 범인으로 단정하고 증거까지 조작해가며 그를 몰아붙였다는 이유로 상쇄됩니다. 또 복수귀로 변한 이타미 사요코가 미야코 살해로 복수를 마무리하는 마지막 장면도 아주 좋았고, 이 모든걸 예상했던 것으로 보이는 미즈하라 경감의 모습도 인상적입니다.

아울러 본편과는 상관없지만, 개인적으로는 토마가 경찰청의 타나바타 경위를 처음 만났을 때 '경찰청 형사 분이시죠?'라고 알아채고 묻는 장면도 기억에 남네요. 가나와 타나바타는 토마가 말투, 신발에 묻은 흙같은걸로 대단한 추리를 벌였을거라 생각하지만, 사실은 미즈하라 경감이 토마에게 연락했던 것입니다. 추리라는게 그렇게 대단한건 아니라는 반증으로 보여 흥미로왔어요.

신 캐릭터 타나바타 경위의 등장은 불필요했다는 점, 미야코의 증거 조작 등의 행각은 아무리 만화지만 지나치다는 점은 감점 요소입니다. 그래도 명확한 동기에 트릭도 안정적이며, 전개까지 발군인 아주 좋은 작품입니다. 별점 4점은 충분합니다.

2023/06/07

두산 베어스, 스카우터가 그렇게 잘못했나?



응원팀 두산 베어스의 야수진 구성이 문제가 많다고 이런저런 커뮤니티에서 이야기가 나오더군요. 신인을 제대로 키우지 못해 중간 세대가 없다는 불만이었습니다. 그 중심에는 지난 몇 년 간의 신인 지명에 문제가 많았다는 것이고요.

이런 불만의 핵심은 2020년 신인 지명입니다. 이른바 '전의산 거르고 장규빈' 드래프트가 있던 해입니다. 장규빈 선수에게 너무 높은 순위의 지명권을 행사했다는 의견에는 동의합니다. 하지만 전의산 선수가 그렇게 뚜렷한 성적을 지금 내고 있나? 하면 그렇지는 않아요. 1군 데뷰를 아예 하지 못하고 입대한 장규빈 선수보다야 낫지만, 아직까지 WAR 0.87입니다. 1루수로 그렇게 유의미한 성적일까요? 게다가 두산의 1루수는 지난 10년 이상 확고부동했습니다. 전의산 선수가 양석환 선수를 제친다는건 상상하기 힘들고, 두산의 1루수 백업 김민혁 선수보다도 확실히 나은지도 아직은 확실하지 않아요. 또 1루수는 내년만 되어도 김재환 선수 자리가 될지도 모릅니다.
게다가 장규빈 선수는 이제야 곧 군대를 마치는 젊은 선수입니다. 어떤 모습을 보여줄 지 아무도 몰라요. 설령 포수로 실패하더라도 나균안 선수처럼 포지션을 변경하여 활약할 수도 있고요. 제대로 뛰어보지도 않은 젊은 선수에 대한 비판으로는 너무 가혹한거 같습니다. 오히려 하위 순번에서 양찬열, 안권수 선수를 건졌다는데에서 높은 점수를 줄 수 있는 드래프트가 아닌가 싶기도 한데 말이지요.

2021년을 보면 1차 지명자 안재석 선수의 통산 WAR는 0.81입니다. 역시나 미미한 수준이지요. 그러나 같은 서울 1차 지명 대상자였던 장재영 선수, 강효종 선수보다는 높습니다. 키움의 2차 1지명자인 김휘집 선수를 제외하고는 상위권 지명자 중에 그만한 선수를 찾아보기는 힘들어요. 또 김동주, 최승용 선수라는 지금의 4, 5선발을 지명해서 실패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이 둘 대신 야수 지명자 중에서 그만한 성적을 내는 선수가 있나? 그렇지 않습니다. 
2022년 신인지명부터는, 지금 시점에서 결과를 이야기하기는 너무 이르고요.

애초에 드래프트에서 지명했던 선수들이 모두 성공한다는건 말도 안됩니다. 3~4명 정도만 살아남아도 성공이에요. 또 두산은 선수들을 보통 2군에서 2년 정도 담금질하고 군대를 먼저 보내는 전략을 많이 씁니다. 2020년 지명자들부터는 현재가 아니라 내년, 그리고 내후년 시즌을 보아야 합니다. 평범한 팬보다 더 많은 경험과 식견을 가지고 있는 스카우터들을 단지 그 선수들의 현재만 가지고 비난한다는건 옳지 못하죠.
 
제 생각에는 두산의 신인 야수진 기근은 드래프트 탓이라기 보다는, 1차 지명이었던 외야수 김대한, 내야수 안재석 선수가 부상과 부진으로 부침을 겪고 있는 탓이 가장 큽니다. 두 선수 모두 연고지 1차 지명으로 별다른 이견없이 - 누가 뽑았더라도 - 지명된 최고 수준의 유망주로 김대한 선수가 중견수 백업을 포함하여 외야진 구멍을 두루 메꾸고, 안재석 선수가 김재호 선수 뒤를 잇는 그림을 그였는데 그게 어그러져서 구멍이 커 보이는겁니다. 
그래도 두 선수 모두 부상만 털고 일어나면 분명 좋은 모습을 보여주리라 확신합니다. 군대를 갔다 온 이유찬, 송승환, 양찬열 선수 등이 조금씩 성장해 주고 있으니까요. NC에서 박세혁 선수 보상 선수로 지명했던 내에서 박준영 선수도 있고요. 퓨처스에서 홍성호 선수는 거의 본즈 수준이던데, 내년부터는 1군에서 볼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앞으로 안재석, 김대한 선수를 축으로 두산의 모든 신인 야수들이 좋은 모습을 보여주기를 바랍니다. 특히 장규빈 선수는 진짜로 화이팅!입니다.

2010/03/23

프로야구 개막~! 10 시즌 두산 베어스 예상

 

프로야구 개막~! 09 시즌 두산 베어스 예상

야구의 계절이 돌아오는군요. 매년 해오던 시즌 예상 들어갑니다. 먼저 1군 엔트리부터 뽑아보겠습니다.
투수 (11명) :
선발 : 히메네스, 이현승, 김선우, 홍상삼,
선발 후보 및 롱맨 : 정재훈, 이재우
불펜 : 임태훈, 성영훈, 진야곱 (지승민), 고창성
마무리 : 이용찬
포수 (3명) : 용덕한, 최승환, 이성렬 (or DH)
내야수 (7명) : 최준석 (or DH), 고영민, 손시헌, 김동주, 이원석, 김재호, 오재원
외야수 (5명) : 김현수, 이종욱, 임재철, 민병헌, 유재웅
-이상 26명 -
꼽아보니 선발진은 왈론드 부상이 변수네요. 4~5선발이 아쉬워졌습니다. 시범경기보니 홍상삼 선수도 그다지 안정권은 아닌 것 같던데요. 그래도 1선발 김선우 선수로 버티던 확실히 작년보다는 나아졌고 임태훈 선수를 축으로 한 불펜 - 마무리진은 탄탄해 보입니다. 이외에도 컨디션이 좋지 않다는 김상현 선수도 언제든지 올라올 수 있고 동계훈련과 시범경기에서 자주 언급되고 모습을 보인 조승수, 이재학, 박정배 선수라던가 아바타 장만익 선수의 깜짝 1군 승격도 예상해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작년에도 시즌 초반에는 투수를 많이 가져갔던 기억이 나는 만큼 두고 봐야겠지만 5선발 자리에서 누가 어떤 활약을 하느냐가 중요하겠죠.

변수가 있는 투수진에 비해 내야와 외야는 확실히 선수층이 깊고 풍부해서 마음에 드네요. 1군 선발 출전했던 선수들로 꽉 차 있고 신인급은 주전 선수의 부상공백이 아니라면 당분간 진입하기 어려울 정도로 탄탄한 라인업이에요.^^ 이성렬 선수는 포수로 분류하기는 했는데 당분간 출전한다면 DH나 대타 요원이겠죠? 그리고 시범경기를 보니 양의지 선수도 만만치 않던데 포수자리도 올해는 기대해볼만 하겠더라고요.

일단 간단하게 자체 평가해 보자면,

경쟁력, 혹은 작년보다 나아진 점 :
1. 팀에 거의 보탬이 되지 못했던, 육성형 용병이라는 희대의 신조어를 탄생시켜가면서 둘이 합쳐 8승했던 작년 외국인 투수 듀오보다 최소한 못할것 같지 않은 외국인 투수에 13승을 거두었던 좌완선발까지 보강되었다. 비록 한명의 외국인 투수가 빠졌지만 1-2-3선발은 확실하다. 이게 얼마만이야!
2. 모험이었던 신인 이용찬 선수의 마무리 투입이 예상외로 성공하며 확실하게 성립한 두산의 승리 불펜진. 이른바 K-I-L-L 라인에 성영훈 선수가 가세하고 여러 신인급들의 성장도 눈에 뜨이는 만큼 또다른 성공이 기대된다.
3. 작년에 전체 타격 2위를 차지한 타선의 건재. 뚜렷한 보강은 없지만 특별한 하락의 징후는 보이지 않으며 김현수 선수는 더욱 진화하는 것 같다.
4. 8개구단 통틀어 가장 탄탄해 보이는 백업선수들. 아울러 "화수분"이라 통칭되는 두산 야구답게 올해는 어떤 신인이 활약을 보일지 기대된다.

위험요소 :
1. 왈론드 선수의 부상과 히메네스 선수의 국내 적응 문제. 외국인 선수에게 섣부른 기대는 금물이다.
2. 이현승 선수의 건강 문제. 작년 시즌 후반기의 부진과 동계훈련에서의 부상 소식 때문에 우려를 갖게 만든다.
3. 고영민 선수의 부진은 잘못하면 팀 성적과 직결될 수 있다. 스스로도 이원석 - 김재호 선수라는 대안이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플레이해야할 듯.
4. 기존 필승 불펜진인 김상현 - 이재우 선수의 부재와 부진. 대체자원이 있긴 하지만 기존의 이름값 있던 선수들의 분발이 요구된다.

로또 :
1. 이성렬 선수. 과연 이블성렬로 재탄생하여 지구종말을 가져올 수 있을 것인지?
2. 영원한 유망주 유재웅 선수. 이미 서른이 넘은 그에게 올 시즌은 거의 마지막 기회로 보인다.
3. 용덕한 - 최승환 - 양의지 선수 등 고만고만한 선수들이 각축하는 포수진. 과연 공격력 강화와 수비 안정화라는 두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한해가 될 수 있을지 궁금하다.

순위예상 :
올시즌은 그래도 팀 전력이 간만에 +가 된 스토브리그를 보냈습니다. 정수빈 선수의 부상은 안타깝지만 사실 정수빈 선수보다 보여준 것이 많은 임재철 - 민병헌 - 유재웅 선수가 주전자리를 놓고 각축을 벌이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다행히 큰 전력공백이 우려되지는 않네요.

선발진이 그런대로 갖추어지고 반 이상이 국가대표 주전 선수들로 구성된 타선도 강력하며 중간계투와 마무리는 누가봐도 A급이고, 포지션별로 보아도 좌익수, 중견수, 유격수, 3루수는 수비와 공격력 모두 8개구단 정상급이기에 확실한 에이스의 모습을 히메네스 선수와 이현승 선수가 보여주고 1루수, 우익수, 지명타자 포지션에서 기대했던 타자들이 성과를 내어준다면 우승이 꿈은 아닌 듯 합니다. (2루수는 알아서 잘 하기만 바랄뿐...)

이제 우승을 위해서는 정규시즌 1위를 하는 일만 남았으며, 올해는 반드시 1위를 해야겠죠. 1위 전력은 솔직히 아니지만 팬심으로 올해는 1위로 예상해봅니다.

올 시즌 키-플레이어로는 투수는 히메네스 - 이현승 선수를. 타자로는 이성렬 - 유재웅 선수를 꼽겠습니다. 투수와 타자 모두 두명 중 한명만 터져준다면 우승은 가시권이라 생각되네요.

마지막으로, 매년 등장했던 두산의 신데렐라가 올 시즌에도 나와주기를 간절히 바라며 시즌 전망을 마칩니다. 파이팅 허슬~두!

2021/02/14

이름없는 사나이 (결정적 증거 중) - 로드리게스 오토렌기 (1895)

 <<1>>

사무실에 있던 번스 씨에게 심부름꾼 소년이 손님이 왔음을 알렸다.

"성함은?"

"없는데요!"

"그럴리가. 그건 이름을 대지 않았다는 얘기잖아. 이름은 있기 마련이지. 하여튼, 들어오시라고 해."

곧바로 손님이 들어왔다. 그는 공손하게 인사를 한 뒤 말했다.

"탐정 번스 님 맞으시죠?"

"네, 제가 번스입니다."

탐정은 대답했다.

"성함을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그야 물론 그러고 싶습니다만..."

손님은 계속했다.

"그게 생각이 나지 않아요."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다?"

번스 씨의 눈이 반짝였다. 재미있을 듯한 사건 냄새를 맡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요! 바로 그겁니다. 제 자신이 누군지 잊어버렸어요. 그래서 여기에 왔습니다. 제가 누군지 알아내려고요. 다 큰 어른이니 직업이나 가족 등 과거가 있을텐데, 기억이 텅 비어 버렸어요. 아침에 일어나보니 이렇게 되었더라고요."

"저런."

"그래도 다행히 머리는 또렷한 편이라서요, 명탐정에게 의견을 묻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여러모로 수소문한 끝에 당신을 찾아오게 된 겁니다."

"매우 재미있군요. 아, 이건 제 관점입니다. 당신에게는 불행한 사건이지요. 하지만 전례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비슷한 사건들은 이미 많이 기록되어 있거든요. 일단 안심하셔도 좋습니다. 조만간 기억은 완전히 원래대로 돌아올 거에요. 그래도 수수께끼는 빨리 풀어 버리는 게 좋겠지요?"

"물론입니다."

"그렇다면, 좀 폐를 끼치겠습니다. 몇 가지 질문에 대답 부탁드립니다."

"네, 뭐든지 괜찮습니다. 가능한 한 최선을 다해 대답하겠습니다."

"우선, 당신은 뉴욕에 살고 계십니까?

"전혀 모르겠어요."

"저를 찾아 가라는 말은, 누구로부터 들으셨나요?"

"월도프 호텔의 종업원입니다. 어젯밤에 거기에 묵었거든요."

"제 주소도 호텔 종업원에게 들었겠군요. 여기까지 어떻게 갈 수 있는지, 방법에 대해서도 물어보았나요?"

"아, 아니요. 신기하네요. 확실히 여기까지 어렵지않게 왔네요. 이건 중요한 사실이지요, 번스 씨?"

"그렇지요. 뉴욕에 대해 잘 안다는 뜻이니까요. 하지만 이곳에 살고 계신지 아닌지가 더욱 중요하겠지요. 호텔 숙박부에는 뭐라고 쓰셨었나요?"

"M.J.G, 레밍턴, 시티."

"그렇다면 레밍턴이 당신 이름이겠군요."

"그럴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오늘 아침 식사가 끝나고 종업원이 두 번이나 그 이름으로 불렀는데, 저는 로비를 그냥 지나쳐 버리고 말았습니다. 결국 어떤 남자분 한 명이 어깨를 두드리더니 종업원이 부르고 있다고 알려주었죠."

"그냥 지나쳤다...."

"네, '레밍턴'은 아무리 생각해도 제 이름이 아닌 것 같아서요. 무척 혼란스러웠습니다. 종업원에게 '왜 레밍턴이라고 부르는 거지?'라고 물어보았습니다만, 종업원은 '그렇게 쓰여 있어서요.'라고 대답할 뿐이었습니다. 그 뒤 종업원이 이상한 사람처럼 쳐다보길래, 대충 얼버무릴 수밖에 없었지요."

"호텔에 짐은 없었나요?"

"하나도요. 가방도 없었습니다."

"주머니에 뭔가 단서가 될 만한 것은 없습니까? 편지 같은?"

"찾아보았는데 아무것도 못 없었습니다. 그나마 지갑은 있더군요."

"돈은요?"

"500달러 정도."

번스 씨는 테이블로 돌아앉더니 종잇조각에 무언가를 적었다. 그러는 사이 의뢰인은 금으로 된 회중시계를 꺼내 자판을 힐끔 쳐다본 후, 다시 주머니에 넣으려 했다. 그 찰나 번스 씨가 몸을 돌리며 말했다.

"멋진 시계군요. 그런데 좀 특이하게 생겼네요. 제가 오래된 회중시계에 관심이 많거든요."

의뢰인은 순간 어리둥절해 했지만, 회중시계를 넣으며 답했다.

"별로 특이한 건 아닙니다. 평범한 유품일 뿐입니다. 제가 지금 가진 것 중 가장 가치가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런데 제 사건 말입니다. 번스 씨, 언제쯤 제가 누구인지 떠올릴 수 있을까요? 이름도 모른채 이렇게 사는 건 정말이지 별로거든요."

"물론 그렇겠지요."

탐정은 말했다.

"최선은 다하겠습니다. 그런데 단서가 전혀 없네요. 결과가 어떻게 하면 될지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만, 48시간이면 충분할 겁니다. 그때 쯤이면 뭔가 발견했을 것 같거든요. 모레, 열두 시 정각에 다시 방문해 주시겠어요?"

"상관없습니다. 그때 제가 누군지만 알려준다면요. 그리고 제가 누군지 알려준다면, 당신은 말 그대로 명탐정이라는 뜻이겠지요"

그는 일어서서 떠나려 했다. 그 순간 번스 씨는 발로 테이블 아래 단추를 눌렀다. 부하에게 의뢰인을 몰래 미행시키기 위한 신호를 보내기 위함이었다. 번스 씨는 미행 준비가 갖추어지도록 의뢰인에게 다시 말을 걸었다.

"그런데, 이제부터는 어떻게 시간을 보내실 건가요, 레밍턴 씨? 진짜 이름을 찾을 때까지는 이렇게 불러도 되겠죠?"

"네, 그렇게 하시죠. 48시간 동안 무엇을 할까... 그래, 관광으로 시간을 보내는 게 좋겠네요. 산책하기 딱 좋은 날이니까요. 센트럴 파크를 둘러보도록 하겠습니다."

"좋은 생각입니다. 관광 같은 게 좋지요. 기억이 돌아오기 전까지는, 다른 어떤 일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 당연히 직업을 얻거나, 장사 같은 걸 할 수야 없겠죠."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예를 들면 어떤 상품을 주문했다고 칩시다. 레밍턴이라는 이름으로요. 그렇다면 나중에 진짜 신원이 돌아왔을 때, 사기꾼으로 체포될 수도 있어요."

"오, 그런 건 생각하지도 못했습니다. 제 입장은 생각보다 심각하군요.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이틀 동안 관광으로 시간을 보내는 게 확실히 가장 안전하겠군요."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럼 약속한 날에 뵙지요. 행운을 빕니다. 혹시라도 빨리 당신 신원을 확인한다면, 호텔로 사람을 보내겠습니다."

그리고는 인사말과 함께 번스 씨는 책상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의뢰인이 방을 나설 때까지, 책상 위 종이 조각에 정신이 팔린 척했다. 하지만 의뢰인이 떠나자 곧바로 서랍 속에서 벨이 울렸다. 의뢰인이 건물 밖으로 나갔다는 뜻이었다. 번스 씨는 서둘러 다른 옷으로 갈아 입었다. 머리 색깔도 바꿔서 번스 씨임을 알아보려면 한참을 바라 보아야 할 정도였다.

번스 씨가 거리에 나왔을 때, 의뢰인은 이미 보이지 않았다. 번스 씨는 건너편 건물 현관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파란 펜으로 '북쪽'이라고 쓰여 있었다. 번스 씨는 북쪽으로 향한 뒤, 다음 모퉁이 현관을 조사했다. 그곳에는 '오른쪽'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의뢰인이 어디로 향했는지를 알려 주는 표시였다. 번스 씨가 미행에 나설 때 도움이 되도록, 부하에게 미리 알려 놓은 방법이었다. 번스 씨가 두 번째 표시에 도착할 때쯤이면, 부하가 근처에 있을 것으로 예상했는데, 역시 예상대로였다. 번스 씨는 모퉁이에서 오른쪽으로 돌아 두 블록 정도 나아간 뒤, 쉽게 부하를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직접 의뢰인에게 가까이 다가가 미행하기 시작했다.

의뢰인은 번스 씨와 이야기를 나눈 대로, 관광을 즐기고 있었다. 그는 센트럴파크에 도착한 뒤, 5번가 쪽 문으로 들어가 동물원 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원숭이 산을 관람하는 인파에 섞여 원숭이들을 바라보았다. 번스 씨는 몰래 의뢰인 뒤로 다가가 그의 웃옷 옷자락에서 손수건을 재치 있게 뽑아낸 뒤, 재빠르게 자신의 손수건과 바꿔치기 하였다.

<<2>>

다음날 정오 전, 번스 씨는 서둘러 5번가 호텔 열람실로 향했다. 그곳에는 한쪽에 훌륭한 마호가니로 만들어진 작은 별실 세 개가 있었다. 별실은 윗부분에 유리가 끼워진 이중문으로 입실할 수 있었다. 유리는 노란 비단 장막으로 장식되었고, 중간에 방 번호가 쓰여 있었다. 보통 별실은 전화실로 사용되곤 했다. 사용자가 원하면 문을 꼭 닫고 외부 소음과 차단된 채 은밀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번스씨는 담당자에게 이야기하고 5번 방으로 향했다. 채 5분도 지나기 전에, 리로이 미첼 씨가 열람실로 들어 왔다. 그는 바쁜 표정으로 서류, 쪽지를 훑어보며 날카로운 눈빛으로 주위를 둘러본 뒤, 1이라고 적힌 별실에 들어 갔다. 10분쯤 지나 별실에서 나온 리로이 미첼 씨는 요금을 지불하고 호텔을 나섰다. 번스 씨도 뒤따라 별실에서 나왔다. 그의 얼굴에는 만족스러운 표정이 가득했다. 번스 씨는 미첼 씨를 뒤쫓는 대신, 열람실 옆문을 통해 23번가로 나왔다. 그곳에서 고가 역을 지나 중심가로 향한 번스 씨는, 20분 뒤 미첼 씨의 집 초인종을 눌렀다. 하인이 나와 주인은 부재중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점심 때에는 귀가하시겠지?"

탐정은 물었다.

"그렇습니다."

"미첼 부인은 집에 계신가?"

"안 계십니다."

"로즈 양은?"

"계십니다."

"아! 그럼 기다리지. 명함을 전해 주지 않겠나?"

번스 씨는 호화로운 응접실로 안내되었다. 잠시 뒤 미첼 씨의 양녀 로즈 양이 응접실에 나타났다.

"아빠가 없어서 죄송해요, 번스 씨"

소녀가 말했다.

"그래도 기다리시면 점심 식사에 맞춰 돌아오실 거에요."

"고마워요. 나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제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 생겨서 로즈 양 아버지를 만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별로 중요한 건 아니지만요."

"재미있는 사건인가요, 번스 씨? 사건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아, 유감스럽게도 이야기해 드릴 만한게 아닙니다. 며칠 전에 로즈 양 아버지가 자전거를 사고 싶다고 말씀하신 것 때문에 찾아 왔습니다. 어제 우연히 최신형 자전거를 봤는데, 지금까지 만들어진 것 중에 최고라고 생각되더라고요. 그래서 아직 미첼 씨가 자전거를 사지 않으셨다면, 보고 싶어 하실 것 같아 알려드리려고 찾아왔습니다."

"아쉽지만, 너무 늦었네요. 아빠는 벌써 자전거를 사버렸거든요."

"정말입니까? 어떤 디자인의 제품인가요?"

"전혀 모르겠지만, 보고 싶으시다면 아래 홀로 가시면 돼요. 거기 놓여 있어요."

"아닙니다. 별 의미가 없네요. 미첼 씨가 갖고 싶은 자전거를 발견하고 사셨다면, 제가 구태여 다른 자전거에 대해 이야기 할 필요는 없지요. 구매를 후회하게 되실지도 모르니까요."

"그럴까요?"

"아, 그래도 홀로 내려는가 보고 싶군요. 식당으로 안내해주시겠어요? 미첼 씨가 사냥했다고 자랑한 사슴 박제를 보고 싶어졌거든요. 박제사로부터 돌려받으셨죠?"

"맞아요! 어떻게 아셨어요? 이쪽으로 가시면 돼요."

두 사람은 식당으로 내려갔다. 번스 씨는 사슴 박제와 미첼 씨의 사격 솜씨를 칭찬했다. 그리고 오랜 시간에 걸쳐 홀에 놓여 있는 자전거를 관찰했다. 그 사이 로즈는 식당의 블라인드를 열고 있었다. 그 뒤 두 사람은 응접실로 돌아가 잠시 더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나 미첼 씨가 돌아오지 않은 탓에, 번스 씨는 더 기다릴 수 없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떠나면서 로즈 양에게 말했다.

"미첼 씨에게 내일 정오에 제 사무실에서 보자고 전해 주십시오. 꼭이요."

<<3>>

다음 날, 약속 시각에 맞춰 레밍턴 씨는 번스 씨의 사무실에 찾아왔다. 탐정은 사무실에 있었다. 리로이 미첼 씨는 몇 분 전 막 도착한 참이었다.

"레밍턴 씨에게 들어 오시라고 말해줘."

번스씨가 심부름꾼 소년에게 말했다. 의뢰인이 사무실에 들어왔다. 그가 미첼 씨를 보고 놀라기 전에, 번스 씨가 말했다.

"미첼 씨, 이쪽은 당신을 만나고 싶어했던 신사분입니다.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모티머 J. 골디 씨입니다! 스포츠 애호가들 사이에서는 G.J. 모티머로 알려진 단거리 자전거 경주 챔피언이지요. 바로 최근 400m 트랙에서 1분 56초라는 경이로운 기록으로 1마일을 완주했습니다."

번스 씨는 두 손님을 향해 만족한 표정으로 말했다. 미첼 씨는 몹시 흥분했으며, 의뢰인은 진짜로 놀라 어안이 벙벙하며 번스 씨를 바라보았다. 이윽고 의뢰인은 의자에 쓰러지듯 앉으며 물었다.

"도대체 어떻게 알아내셨나요?"

"그렇게 어렵지 않았습니다."

탐정은 대답했다.

"당신의 과거도 자세히 알려드릴 수 있습니다. 내 말이 진실이라는 걸 알 수 있을 정도로 기억이 돌아왔다면요."

번스 씨는 미첼 씨를 향해 무언가 짐작된다는 듯 윙크했다. 미첼 씨는 한바탕 폭소를 터트린 끝에 겨우 입을 열었다.

"패배를 인정하는 게 좋겠어, 골디. 번스 씨는 우리 힘으로는 어림도 없군."

"하지만 어떻게 알아내셨는지는 꼭 알고 싶네요."

골디 씨가 말했다.

"도대체, 어떻게 우리가 꾸민 수수께끼를 이렇게나 빨리 해결할 수 있었나요?"

"기꺼이 비결을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번스 씨가 말했다.

"제일 먼저, 이쪽 신사 레밍턴 씨가 이틀 전에 저를 찾아와서 기억을 잃었다고 말했지요. 저는 듣자마자 의심했습니다. 그래도 레밍턴 씨가 제 의심을 깨닫지 못하도록 노력했어요. 이런 사건은 드문 일이 아니라고 말하는 식으로요. 이건 당신이 한 말을 제가 믿는 것 처럼 보이게 만들기 위해서였습니다. 하지만 이름 마저 잊어버린 사람이 잊어버린걸 이해한다? 이건 믿기 힘들죠. 저는 들어본 적도 없어요. 기억을 잃어버린 사람이 이름까지 모두 잊어버리는 일은 있겠지만요."

"대단하군, 번스 씨."

미첼 씨가 말했다.

"그렇게 빨리 속임수를 의심하다니, 확실히 매우 날카롭네."

"뭐 그 때는 수상하다고 생각하기까지 한 건 아닙니다. 있을 수 없는 이야기라 곧이곧대로 믿을 수 없었을 뿐이지요. 그래서 그 후 이야기를 나누면서 계속 주의를 기울였습니다. 곧 자기가 누군지는 잊어버렸는데, 뉴욕을 기억하고 있다는걸 알아챘습니다. 별다른 안내 없이 이곳에 왔다고 시인했거든요. 이 역시 간과할 수 없었지요."

"기억납니다."

골디 씨가 답했다.

"네, 뉴욕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 같다고 말씀드렸었죠? 제가 이걸 확신한 건, 센트럴 파크에서 하루를 보낸다고 말한 뒤, 이곳을 나가서 아무런 어려움 없이 센트럴 파크로 향하는 걸 보았을 때였습니다."

"그러니까 저를 미행했다는 말인가요? 뒤에 아무도 없었는데요."

"네, 미행했습니다."

번즈 씨는 웃는 얼굴로 대답했다.

"그러나 처음에 당신 뒤를 쫓은 건 제 부하입니다. 센트럴 파크에서는 제가 미행했지만요. 그리고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저의 추리에 대해 설명하겠습니다. 우선, 호텔 명부에 M.J.G. 레밍턴이라고 쓰셨다고 하셨지요. 이게 가장 큰 단서였습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하고 잠시 뒤, 당신은 회중시계를 꺼냈었지요. 저는 등을 돌리고 있었지만, 책상 거울을 통해 회중시계 뚜껑에 이름이 새겨져 있는걸 알아차렸습니다. 제가 뒤돌아보면서 시계에 관해 물었는데, 당신은 부랴부랴 주머니에 다시 넣으며 그냥 평범한, 낡은 유품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자기가 누군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그걸 알았을까요?" 

"저런, 골디, 완전히 실수했구먼."

미첼 씨가 웃으며 말했다.

"정말 바보 같은 실수였네요."

골디 씨도 웃었다.

"자 이렇게,"

번스씨가 계속했다.

"이름을 잊어버렸다는 건 거짓말이라고 추리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다음에 또 두 가지를 알아챘습니다. 첫 번째는 조끼에 붙어 있는 자전거 배지였습니다. 미국 자전거 연맹 기장이라는 건 바로 알 수 있었지요."

"오!"

미첼 씨가 외쳤다.

"이럴 수가, 골디, 이건 정말이지 완전한 실수라고!"

"배지는 까맣게 잊고 있었어요"

골디가 말했다.

"하지만"

탐정은 계속했다.

"다리를 꼬고 있을 때, 신발 밑창이 움푹 파인 걸 보았기 때문에 배지를 발견하지 못했더라도 당신이 자전거 선수라는걸 추리해내는 건 어렵지 않았을겁니다. 그럼 이제 이름과 그 의미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우선 정말로 당신이 기억을 잃어버렸다면, 호텔 명부에 쓴 이름에서 무언가 의미를 찾는건 불가능했을 거에요. 그러나 당신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린 뒤에는, 선택한 이름 역시 의도가 있다고 추리했지요."

"오! 재미있는 곳에 접어들었는걸"

미첼 씨가 말했다.

"선택한 이름은 아무리 보아도 묘했어요. M.J.G라고 이니셜 3개를 쓴 게 특히 이상했습니다. 기억을 잃어버리고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남자가 그렇게 많은 이니셜을 선택했으리라 생각되지는 않으니까요. 그럼 세 가지 이니셜은 어떤 이유로 선택했을까? 이 세 개의 이니셜이 의미하는 건 무엇일까?"

번스 씨가 계속 말했다.

"가명은 보통 본명을 재정렬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래서 이 세 개의 이니셜은 분명히 본명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다면 레밍턴이라는 마지막 이름은? 레밍턴사는 총, 재봉틀, 타자기와 함께 자전거를 만드는 회사입니다. 여기에 앞서의 배지, 그리고 신발 밑창에서 알아낸 정보를 더해 당신이 자전거 선수라는걸 확신했습니다. 가명의 이니셜로 본명을 택했다면, 이름의 레밍텅도 그만큼 친숙한 단어를 선택한 거지요. 혹시 레밍턴 사 자전거 판매상일 수도 있어서 대화 중에 기억이 돌아올 때까지 아무것도 사지 말라고 조언해 보았는데, 아무것도 사지 않겠다고 곧바로 말씀하시더군요. 그렇다면 확실히 판매상은 아니라고 생각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공원에서 손수건을 훔친 끝에 당신의 정체를 확신했습니다. 손수건의 이니셜도 M.J.G였었거든요."

"이런, 자기 이니셜을 손수건에 새겨 놓다니!"

미첼 씨가 외쳤다.

"너무 바보 같잖아! 교활한 범죄자는 될 수 없겠군, 골디."

"아마 그럴 거예요! 물론 슬프지는 않습니다만."

"이쯤에서 저는 성공을 확신했습니다."

번스씨가 계속했다.

"그런데 다음 단계에서 좌절했어요. 미국 자전거 연맹 명단에는 딱 맞는 이름이 눈에 띄지 않았거든요. 이건 나중에 말씀드리겠지만, 한마디로 말해 재료가 너무 많아 국물이 엉망이 된 것과 마찬가지였던 셈입니다. 손수건이 없었다면 더 잘 할 수 있었을 거예요. 하여튼, 다음으로 레밍턴 카탈로그를 구해서 공인 대리인 명단을 찾아보았는데 이것 역시 실패했어요. 하지만 사무실에 돌아와서 부하의 보고를 받고 난 뒤 길이 열렸습니다. 골디 씨의 연기는 좋았지만 공중전화에 들어가 누군가를 호출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 부하가 전화 교환수에게 뇌물을 주고 정보를 얻어내었습니다. 그런데 5번가 호텔의 별실의 누군가와 통화했다는 것밖에는 알아낼 수 없었어요. 부하는 대수롭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저는 골디 씨가 사전에 전화 상대방과 약속한 시각, 약속한 장소에 전화를 걸어 의논하는게 분명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시간이 정오였기 때문에 다음날, 즉 어제입니다만, 저는 같은 시간 조금 전에 5번가 호텔의 별실로 가서 숨어있었습니다. 전화로 이야기하는 내용을 엿듣고자 했지만 그건 무리더군요. 별실이 워낙 잘 만들어져 있어서 방음이 완벽했기 때문이지요. 그래도 미첼 씨가 룸에 있는 건 확인할 수 있어서 만족했습니다."

"왜?"

"왜냐고요? 당연히 미첼 씨를 보자마자 이 모든 계획을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 재능을 시험하려고, 기분 전환으로 조작한 사건이라는 걸요. 이를 알아채자마자, 미첼 씨가 치과에 있다는 걸 알았기에 곧바로 진상을 파헤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당신 집을 바로 찾아갔던 것이지요. 로즈 양과 수다를 떨려고요. 정보를 캐내기에는 딱 좋더군요."

"아이고, 빌어먹을! 번스 씨"

미첼 씨가 말했다.

"어린아이의 순진함을 이용하다니, 염치도 없구먼!"

"부끄러울 건 없었습니다. 아무튼 잘 됐어요. 현관에서 골디 씨의 자전거를 발견했는데, 짐작대로 레밍턴이더라고요. 번호를 적어서 대리점을 찾아가니 누구의 것인지 쉽게 알 수 있었고요. 586번은 정규 레이싱 팀의 일원인 G.J. 모티머가 타는 자전거더군요. 그리고 여기서 모티머의 본명이 모티머 J. 골디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가명에 대한 추리가 맞았기에 이 역시 반가운 정보였습니다. 자전거를 탈 때는 레이싱 네임으로 성을 바꿔서 사용했기 때문에 아까의 명단에서는 찾아낼 수 없었던 겁니다."

번스 씨가 말했다.

"아까 말했듯이, 슬쩍 실례했던 손수건이 없었다면 더 잘할 수 있었을 겁니다. 저는 미국 자전거 연맹 명단에서 G만 찾았었거든요. 손수건만 없었다면 G는 물론, J, M도 찾았을텐데 말이지요. 그렇다면 곧바로 G.J 모티머를 찾아낼 수 있었을 겁니다."

"잘했어, 번스 씨"

미첼이 말했다.

"한동안 이름 없는 남자를 연기해 달라고 골디에게 부탁한건 나라네. 자네를 한 방 먹여 주고 싶었거든. 그런데 번스 씨가 우리에게 한 방 먹인 것 같구먼. 하지만 만약 내가 주연을 맡았다면, 아무리 자네라도 이렇게 빨리 정체를 간파하지 못했을 걸세."

"어! 글쎄요"

번스씨는 말했다.

"다음에 한 번 시도해 보시지요"

"그래, 다음에 자네에게 함정을 팔 때는 나를 주역으로 발탁할걸세."

"그거 기대되는군요"

번스 씨가 말했다.

"언제든지 환영합니다. 그나저나, 이번 게임에서 지셨으니 최소한 저녁은 사셔야겠습니다."

"기꺼이 한턱내겠네"

미첼 씨가 말했다. 골디 씨가 거들었다.

"아닙니다. 진 건 제가 실수했기 때문이에요. 제가 내겠습니다."

"둘이서 함께 내세요"

번스 씨가 외쳤다.

"그보다 빨리 가시죠. 배가 고파졌어요!"

그들은 곧장 델모니코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덧 : 아주 오래전 읽었던 단편입니다. 모처럼 시간이 나서 번역을 진행해 보았습니다. 언제나처럼 의역 가득한 엉망인 번역입니다. 그래도 즐겁게 읽어주시면 좋겠네요.

2023/09/20

2023.09.12 ~ 09.19 두산 베어스 감상

지난 주에서 어제까지 : 대 한화 1경기, 대 SSG 1경기 (홈), 대 기아 3경기 (원정), 대 NC 1경기 (홈)
성적 : 5승 1패
지난주 포함 7연승 후 NC전 패

좋았던 점
  • 투, 타의 조화로 이어진 연승
  • 부활한 장타력
  • 적절한 우취로 인한 휴식

나빴던 점
  • 김재환 선수의 또 다시 이어지는 깊은 부진
  • 왜 김인태 선수를 중용하지 않는가?

총평과 이번주 예상 (혹은 기대)
지난 주의 우려와는 반대로 중위권 경쟁팀을 상대로 연승을 거두어 4위 자리로 순위가 상승했습니다. 선발진과 불펜진이 한껏 달아올랐던 기아 타선을 대체로 잘 막아주었으며, 오랫만에 깡패곰 시절을 연상케 할 정도로 장타력이 되살아난 덕분입니다. 강승호 선수의 싸이클링 히트를 비롯하여 양의지, 박준영 선수가 연속 경기 홈런을 기록했고, 양석환 선수와 로하스 선수도 홈런을 쏘아올리는 등 해줘야 할 선수들의 활약이 빛났습니다. 기아전에서의 조수행 선수 활약도 빼놓을 수 없고요.
NC전 패배로 연승은 끊겼지만 상대가 현 KBO 최강의 에이스 패디였기에, 그리고 우리는 대체 선발 장원준 선수였기에 어쩔 수 없었다고 봅니다. 오히려 두자릿수 이상 삼진을 당하면서도 패디의 투구수를 늘려서 6회까지만 던지게 만들고, 9회말에는 상대 마무리 투수 이용찬 선수를 상대로 양의지 선수가 홈런을 치며 한 점차까지 압박하는 등 졌지만 잘 싸운 경기였어요.
사실 연승은 SK전에서 이미 끝날 뻔 했는데, 운이 좋았던 측면도 있습니다. 양석환 선수 대타로 이유찬 선수를 쓰는 용병술은 어처구니가 없었거든요. 김인태 선수를 조수행 선수보다 중용하지 않는 운영도 마찬가지입니다. 올 시즌은 아주 큰 차이가 나지 않지만, 기본적으로 타격에서의 기대치가 다른 선수잖아요. 심지어 볼삼비조차 김인태 선수가 훨씬 좋은데 말이지요. 확실한 상황에서 대타 기용이라도 잘 해 주던가....!

그래도 어차피 연승은 끝났고, 이번 주부터는 다시 달려야 합니다. 삼성, 그리고 NC와의 2연전 모두 원정에서 진행는 일정이지요.
이번 주 성적의 핵심은 과연 장타력을 유지할 수 있을지 (김인태 선수가 선발 출장할 수 있을지), 그리고 NC의 일요일 경기에 다시 패디 선수가 출격할지가 관건이라 생각되네요. 투수진은 시즌 내내 비교적 견고했으니, 점수를 잘 내야 이길 수 있겠지요. 로테이션도 브랜든, 최승용, 알칸타라, 최원준 선수 순으로 보이는데 나쁘지 않습니다. 아시안 게임 참가로 곽빈 선수가 빠지는데 최원준 선수가 돌아와 천만다행이에요. 모쪼록 3승 1패를 거두며 안정적인 4위 확보를 기대해봅니다.

화이팅 허슬 ~ 두!

2019/12/08

식민지 조선의 또 다른 이름, 시네마 천국 - 별점 2.5점

식민지 조선의 또 다른 이름, 시네마 천국 - 6점
김승구 지음/책과함께

일제 강점기 시절 식민지 조선의 영화에 관련된 미시사 서적입니다. 단순한 '영화사'는 아닙니다. 영화 관련 문화사 서적에 가깝지요. 연대별로 주요 영화나 영화인에 대해 짚어주는게 아니라, 영화가 상영되는 영화관과 영화의 흥행 방식, 영화 관련 정책과 영화와 관련된 언론 등의 당시 상황 등을 폭넓게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양한 사료가 바탕이 된 것은 물론입니다. 1920년대 후반에도 영화배우의 브로마이드가 널리 퍼져있었다는 근거로 1930년에 발표된 이상의 "십이월 십이일"에서 주인공인 업 청년의 방 안에도 영화 배우의 브로마이드가 붙어 있었다는 묘사를 예로 드는 식으로요.

몇 가지 재미있는 기록들도 눈에 뜨이는데, 우선 당시 영화 입장료에 대한 것입니다. 1929년 춘천군청 고원의 월급이 23원인데, 경성 조선극장의 입장료는 성인 기준 50~80전이었다고 합니다. 영화 구경에 월급의 1/40을 써야 했다는 뜻입니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엄청난 고가입니다. 최저 임금을 8,000원으로하고 하루 8시간, 주 5일 근무에 월 4주 근무한다고 치면, 대충 3만원이 넘는 돈이니까요. 물론 당대 최고의 엔터테이먼트 산업으로 지금의 뮤지컬이나 콘서트 급이라고 한다면, 가격 역시 뮤지컬과 콘서트 급으로 책정되는게 딱히 이상해 보이지는 않지만요.
그리고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초기의 영화관은 여러가지 시설이 미비했는데 특히 냉, 난방이 큰 문제였습니다. 냉, 난방이 완비된 영화관은 1935년에야 세워졌다는데, 1935년 당시 냉방과 난방까지 제공해 주었다면 3만원이라는 입장료는 충분히 납득이 됩니다. 

식민지 조선에서 상영된 영화의 9할 이상이 헐리우드 영화였다는 것도 처음 알게 된 사실입니다. 헐리우드 쏠림이 지금보다도 심하네요. 헐리우드의 대자본 투여 영화와는 지금도 국내 영화가 단순 경쟁이 힘든데, 당시의 한국 영화가 경쟁이 되었을 리가 없었을 테고요. 그러나 일본 영화가 별로 영향을 미치지 못한건 좀 의외입니다.
그리고 당시 개봉된 영화 중 "날개"나 "벤허", "빅 퍼레이드"를 당시 식자층의 평론과 함께 소개해주는 글들도 여러모로 기억에 남습니다. 특히나 "벤허"를 카프계 비평가들이 종교가 억압자와 쉽게 타협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종교의 해독성'을 깨닫게 해 주는 '반동 영화의 전형적 표본' 이라고 평했다는데 아주 독특한 시각이에요. 당시 인기있던 몇몇 배우들의 소개들도 재미있게 읽었고요.

또 영화관 한 곳에서 영화를 독점 상영하며, 지정 좌석제도 아니고 한 번 들어가면 하루 종일 있어도 되었다는 등의 당시 영화관 풍속도는 제가 학생이던 1980년대를 떠올리게 해 줍니다. 영화관 한, 두 곳에서 특정 영화를 독점 상영였으며, 지정 좌석이기는 하지만 내가 구입한 회차가 끝나면 계단에 앉아서라도 계속 영화를 볼 수 있었다는 건 일제 강점기 시절과 별로 다를게 없다고 생각이 되거든요. 그런 내용은 없지만 이러한 흥행 특성 상 - 단관 개봉 - 인기있는 영화를 보려면 일찍부터 가서 줄을 서야 했다는 것도 비슷했을 겁니다. 신문 광고가 주요 홍보 수단이었다는 것도 유사하고요. 즉, 1920~30년대와 80년대까지는 영화 관람 문화가 별로 차이가 나지 않은 셈입니다. 영화 관람 행태가 획기적으로 변한건 멀티 플렉스의 도입, 그리고 인터넷을 통한 예매 문화의 활성화 때문이지요. 거의 반 세기를 이어온 특정 문화 소비 행태가 이렇게까지 극적으로 변한 예가 또 있을까? 싶은 생각도 드네요.

이렇게 일제 강점기 시절 영화에 관련된 다양한 정보를 습득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좋은 독서였습니다. 도판도 비교적 충실하고요. 그러나 앞에 나온 정보가 뒤에 또 소개되는 등 순서가 잘 정리가 되지 않은 느낌은 많이 듭니다. 연대별, 주제별로 내용이 명확하게 구분되지는 않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영화사, 문화사, 미시사에 관심있으신 분들이라면 한 번 쯤 읽어보셔도 좋겠습니다.

2014/02/17

바다 한가운데서 - 나다니엘 필브릭 / 한영탁 : 별점 5점!

바다 한가운데서 - 10점
나다니엘 필브릭 지음, 한영탁 옮김/중심

1920년 실제로 일어났던 미국의 포경선 에식스호의 조난을 둘러싼 이야기로 아주 오래전, 딴지일보였었나... 에서 소갯글을 읽은 뒤 관심을 가지게 된 책입니다. 그러나 폭풍 절판되어서 얼마 전까지는 도저히 구할 길이 없었습니다. 원하는 헌 책을 구입하는 노하우는 제법 갖추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지만, 헌책방은 물론 근처 도서관 어디에서도 구할 방법이 없었더랬죠. 그런데 얼마 전 알라딘에 중고도서 매물이, 심지어 "알라딘 직배송"으로 저렴하게 떴길래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그간 이 책을 찾아 헤맨 시간이 거의 10여 년이라 손에 들어오니 그야말로 감개무량했습니다.

사실 이전의 책 소갯글에서 관심을 갖게 되었던 가장 큰 이유는 표류한 에식스호의 선원들이 결국 식인까지 저지르며 살아남는 과정에 대한 처절함, 그리고 그렇게까지 궁지에 몰린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최초 표류 시 보트의 방향을 "식인종"이 살고 있으리라 여겨진 소시에테 제도가 아니라 남아메리카 쪽으로 잡은 탓이 크다는 아이러니함이 인상적이었기 때문으로, 어떻게 보면 자극적인 소재에 끌린 탓입니다.

그러나 책 자체는 생각과는 약간 달랐습니다. 총 300여 페이지의 분량 중 거의 절반은 에식스 호 선원들의 처절한 표류와 생존기이지만, 그 외의 약 절반은 사건과 관련된 다양한 디테일에 할애하고 있거든요. 예를 들면 19세기 초의 낸터컷이라는 포경의 도시와 포경이라는 조업에 대해 다큐멘터리와 같이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는 점입니다. 당시 포경을 위한 원양 어업의 과정, 어장, 실제 포경의 방법, 잡은 고래의 처리 등 다른 책에서는 접하기 힘들었던 디테일이 한가득이에요. 지도와 사진 같은 도판도 기대 이상이고요.

그리고 에식스호가 향유고래의 공격으로 침몰하게 되고 이후 처절한 표류가 허먼 멜빌의 굴지의 걸작 "백경"에 큰 영향을 주었다는 것도 자세히 소개되고 있습니다. 허먼 멜빌은 "백경" 출간 1년 뒤에 실제로 낸터컷을 방문하여 에식스호의 선장이었던 폴라드와 직접 만나기까지 했다니 이 사건과 사건을 다룬 회고록이 그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주었는지를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을 것 같네요.

물론 당연하게도 표류, 생존에 대한 디테일도 최고입니다. 생존자들이 다음에 먹힐 사람을 결정하기 위한 투표를 했다던가, 뼈만 남은 잔해를 뒤지고 빠개어 골수까지 빨아먹었다는 등의 처절한 행위뿐 아니라 가장 먼저 죽은 4명의 선원이 흑인이었다는 것, 결국 살아남은 최후의 5인은 이른바 "낸터컷 출신자"뿐이었다는 불편한 사실도 가득합니다. 그리고 굶주림과 갈증이 인체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에 대한 설명 및 굶주림으로 체지방이 극한으로 떨어진 살코기를 섭취하면 그다지 효율이 좋지 않다는 것도 인상적이었어요. 순 살코기보다는 적당히 기름이 낀, 마블링 좋은 고기가 더 맛있는 것과 관련이 있는 것...일까요?

그 외에도 실제 바다에서 있었던 각종 사고들의 사례를 들어 함께 설명해 주는 것도 아주 좋았던 부분이에요. 유사한 조난자들이 시체를 다른 방법으로 활용(낚시의 미끼로 사용함)하여 전원 생존한 사례를 함께 설명해주는 식으로 말이죠. 덧붙이자면 바다 사나이들이 왜 바다에서 식재료를 구할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는 참으로 의아한 부분이지만, 이 책에 따르면 그들이 조난하게 된 바다가 극단적으로 물고기들이 없는 해역이었다고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이래저래 재수가 없었던 거죠.

마지막으로 사건에 대한 에필로그도 충실합니다. 폴라드 선장이 조난 후에 다시 포경선의 선장이 되고 , 같이 조난당했던 2명의 선원이 함께 배를 타는 최대급의 신뢰를 얻지만 또 난파당하여 바다 사나이로서의 생명이 끝난 뒤, 낸터컷에서는 하위 계급인 자경단원을 하며 지역사회에 공헌하며 살았다, 1등 항해사로 조난 중에 나름의 카리스마와 지도력을 선보인 체이스는 이후 당당히 선장으로 활약했지만 정신병원에서 말년을 보내게 되었다는 등 모든 생존자들의 후일담도 빠짐없이 알려주거든요. 심지어 "낸터컷"이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해서까지 서술하고 있을 정도니까요. 그나저나, 이런 사고를 겪고도 결국은 다시 바다로 나가다니... 정말 이해하기 힘든 삶이네요.

여튼 결론내리자면 명성에 걸맞는 가치와 재미를 가진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그간 이 책에 대한 갈망을 감추지 못하고 유사한 책을 몇 권 구해 읽어보았으나 모두 완독하기 어려울 정도로 부실하거나 중반에 종교적인 내용 같은 삼천포로 빠지는 책들이었는데 확실히 원조는 다르네요. 10여 년을 기다려 입수했을 때의 기쁨까지 감안하여 별점은 5점! "2000년 최우수 논픽션" 등 여러 논픽션 관련 상을 수상했다는 이력은 허언이 아닙니다. 이런 좋은 책이 나오자마자 절판된 이유를 잘 모르겠지만 아쉽기만 합니다. 해양 조난, 식인, 포경 (그리고 "백경")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어떻게든 구하셔서 꼭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저 개인적으로 삶에 대한 인간의 의지는 무한하다는 것을 다시금 느끼게 된 계기가 되었는데, 저라면 어땠을까요? 저 역시 폴라드 선장처럼 조카를 잡아먹어서라도 살아 남았을 겁니다. 꼭 살아남아서 가족에게 돌아가야 하니까요. 책 내용에서 밝혀지지는 않지만 저는 이러한 원초적인 생존 본능은 돌아갈 곳에 대한 갈망이 자리잡고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