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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14

이름없는 사나이 (결정적 증거 중) - 로드리게스 오토렌기 (1895)

 <<1>>

사무실에 있던 번스 씨에게 심부름꾼 소년이 손님이 왔음을 알렸다.
"성함은?"
"없는데요!"
"그럴리가. 그건 이름을 대지 않았다는 얘기잖아. 이름은 있기 마련이지. 하여튼, 들어오시라고 해."
곧바로 손님이 들어왔다. 그는 공손하게 인사를 한 뒤 말했다.
"탐정 번스 님 맞으시죠?"
"네, 제가 번스입니다."
탐정은 대답했다.
"성함을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그야 물론 그러고 싶습니다만..."
손님은 계속했다.
"그게 생각이 나지 않아요."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다?"
번스 씨의 눈이 반짝였다. 재미있을 듯한 사건 냄새를 맡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요! 바로 그겁니다. 제 자신이 누군지 잊어버렸어요. 그래서 여기에 왔습니다. 제가 누군지 알아내려고요. 다 큰 어른이니 직업이나 가족 등 과거가 있을텐데, 기억이 텅 비어 버렸어요. 아침에 일어나보니 이렇게 되었더라고요."
"저런."
"그래도 다행히 머리는 또렷한 편이라서요, 명탐정에게 의견을 묻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여러모로 수소문한 끝에 당신을 찾아오게 된 겁니다."
"매우 재미있군요. 아, 이건 제 관점입니다. 당신에게는 불행한 사건이지요. 하지만 전례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비슷한 사건들은 이미 많이 기록되어 있거든요. 일단 안심하셔도 좋습니다. 조만간 기억은 완전히 원래대로 돌아올 거에요. 그래도 수수께끼는 빨리 풀어 버리는 게 좋겠지요?"
"물론입니다."
"그렇다면, 좀 폐를 끼치겠습니다. 몇 가지 질문에 대답 부탁드립니다."
"네, 뭐든지 괜찮습니다. 가능한 한 최선을 다해 대답하겠습니다."
"우선, 당신은 뉴욕에 살고 계십니까?
"전혀 모르겠어요."
"저를 찾아 가라는 말은, 누구로부터 들으셨나요?"
"월도프 호텔의 종업원입니다. 어젯밤에 거기에 묵었거든요."
"제 주소도 호텔 종업원에게 들었겠군요. 여기까지 어떻게 갈 수 있는지, 방법에 대해서도 물어보았나요?"
"아, 아니요. 신기하네요. 확실히 여기까지 어렵지않게 왔네요. 이건 중요한 사실이지요, 번스 씨?"
"그렇지요. 뉴욕에 대해 잘 안다는 뜻이니까요. 하지만 이곳에 살고 계신지 아닌지가 더욱 중요하겠지요. 호텔 숙박부에는 뭐라고 쓰셨었나요?"
"M.J.G, 레밍턴, 시티."
"그렇다면 레밍턴이 당신 이름이겠군요."
"그럴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오늘 아침 식사가 끝나고 종업원이 두 번이나 그 이름으로 불렀는데, 저는 로비를 그냥 지나쳐 버리고 말았습니다. 결국 어떤 남자분 한 명이 어깨를 두드리더니 종업원이 부르고 있다고 알려주었죠."
"그냥 지나쳤다...."
"네, '레밍턴'은 아무리 생각해도 제 이름이 아닌 것 같아서요. 무척 혼란스러웠습니다. 종업원에게 '왜 레밍턴이라고 부르는 거지?'라고 물어보았습니다만, 종업원은 '그렇게 쓰여 있어서요.'라고 대답할 뿐이었습니다. 그 뒤 종업원이 이상한 사람처럼 쳐다보길래, 대충 얼버무릴 수밖에 없었지요."
"호텔에 짐은 없었나요?"
"하나도요. 가방도 없었습니다."
"주머니에 뭔가 단서가 될 만한 것은 없습니까? 편지 같은?"
"찾아보았는데 아무것도 못 없었습니다. 그나마 지갑은 있더군요."
"돈은요?"
"500달러 정도."
번스 씨는 테이블로 돌아앉더니 종잇조각에 무언가를 적었다. 그러는 사이 의뢰인은 금으로 된 회중시계를 꺼내 자판을 힐끔 쳐다본 후, 다시 주머니에 넣으려 했다. 그 찰나 번스 씨가 몸을 돌리며 말했다.
"멋진 시계군요. 그런데 좀 특이하게 생겼네요. 제가 오래된 회중시계에 관심이 많거든요."
의뢰인은 순간 어리둥절해 했지만, 회중시계를 넣으며 답했다.
"별로 특이한 건 아닙니다. 평범한 유품일 뿐입니다. 제가 지금 가진 것 중 가장 가치가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런데 제 사건 말입니다. 번스 씨, 언제쯤 제가 누구인지 떠올릴 수 있을까요? 이름도 모른채 이렇게 사는 건 정말이지 별로거든요."
"물론 그렇겠지요."
탐정은 말했다.
"최선은 다하겠습니다. 그런데 단서가 전혀 없네요. 결과가 어떻게 하면 될지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만, 48시간이면 충분할 겁니다. 그때 쯤이면 뭔가 발견했을 것 같거든요. 모레, 열두 시 정각에 다시 방문해 주시겠어요?"
"상관없습니다. 그때 제가 누군지만 알려준다면요. 그리고 제가 누군지 알려준다면, 당신은 말 그대로 명탐정이라는 뜻이겠지요"
그는 일어서서 떠나려 했다. 그 순간 번스 씨는 발로 테이블 아래 단추를 눌렀다. 부하에게 의뢰인을 몰래 미행시키기 위한 신호를 보내기 위함이었다. 번스 씨는 미행 준비가 갖추어지도록 의뢰인에게 다시 말을 걸었다.
"그런데, 이제부터는 어떻게 시간을 보내실 건가요, 레밍턴 씨? 진짜 이름을 찾을 때까지는 이렇게 불러도 되겠죠?"
"네, 그렇게 하시죠. 48시간 동안 무엇을 할까... 그래, 관광으로 시간을 보내는 게 좋겠네요. 산책하기 딱 좋은 날이니까요. 센트럴 파크를 둘러보도록 하겠습니다."
"좋은 생각입니다. 관광 같은 게 좋지요. 기억이 돌아오기 전까지는, 다른 어떤 일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 당연히 직업을 얻거나, 장사 같은 걸 할 수야 없겠죠."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예를 들면 어떤 상품을 주문했다고 칩시다. 레밍턴이라는 이름으로요. 그렇다면 나중에 진짜 신원이 돌아왔을 때, 사기꾼으로 체포될 수도 있어요."
"오, 그런 건 생각하지도 못했습니다. 제 입장은 생각보다 심각하군요.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이틀 동안 관광으로 시간을 보내는 게 확실히 가장 안전하겠군요."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럼 약속한 날에 뵙지요. 행운을 빕니다. 혹시라도 빨리 당신 신원을 확인한다면, 호텔로 사람을 보내겠습니다."

그리고는 인사말과 함께 번스 씨는 책상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의뢰인이 방을 나설 때까지, 책상 위 종이 조각에 정신이 팔린 척했다. 하지만 의뢰인이 떠나자 곧바로 서랍 속에서 벨이 울렸다. 의뢰인이 건물 밖으로 나갔다는 뜻이었다. 번스 씨는 서둘러 다른 옷으로 갈아 입었다. 머리 색깔도 바꿔서 번스 씨임을 알아보려면 한참을 바라 보아야 할 정도였다.

번스 씨가 거리에 나왔을 때, 의뢰인은 이미 보이지 않았다. 번스 씨는 건너편 건물 현관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파란 펜으로 '북쪽'이라고 쓰여 있었다. 번스 씨는 북쪽으로 향한 뒤, 다음 모퉁이 현관을 조사했다. 그곳에는 '오른쪽'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의뢰인이 어디로 향했는지를 알려 주는 표시였다. 번스 씨가 미행에 나설 때 도움이 되도록, 부하에게 미리 알려 놓은 방법이었다. 번스 씨가 두 번째 표시에 도착할 때쯤이면, 부하가 근처에 있을 것으로 예상했는데, 역시 예상대로였다. 번스 씨는 모퉁이에서 오른쪽으로 돌아 두 블록 정도 나아간 뒤, 쉽게 부하를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직접 의뢰인에게 가까이 다가가 미행하기 시작했다.
의뢰인은 번스 씨와 이야기를 나눈 대로, 관광을 즐기고 있었다. 그는 센트럴파크에 도착한 뒤, 5번가 쪽 문으로 들어가 동물원 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원숭이 산을 관람하는 인파에 섞여 원숭이들을 바라보았다. 번스 씨는 몰래 의뢰인 뒤로 다가가 그의 웃옷 옷자락에서 손수건을 재치 있게 뽑아낸 뒤, 재빠르게 자신의 손수건과 바꿔치기 하였다.


<<2>>
다음날 정오 전, 번스 씨는 서둘러 5번가 호텔 열람실로 향했다. 그곳에는 한쪽에 훌륭한 마호가니로 만들어진 작은 별실 세 개가 있었다. 별실은 윗부분에 유리가 끼워진 이중문으로 입실할 수 있었다. 유리는 노란 비단 장막으로 장식되었고, 중간에 방 번호가 쓰여 있었다. 보통 별실은 전화실로 사용되곤 했다. 사용자가 원하면 문을 꼭 닫고 외부 소음과 차단된 채 은밀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번스씨는 담당자에게 이야기하고 5번 방으로 향했다. 채 5분도 지나기 전에, 리로이 미첼 씨가 열람실로 들어 왔다. 그는 바쁜 표정으로 서류, 쪽지를 훑어보며 날카로운 눈빛으로 주위를 둘러본 뒤, 1이라고 적힌 별실에 들어 갔다. 10분쯤 지나 별실에서 나온 리로이 미첼 씨는 요금을 지불하고 호텔을 나섰다. 번스 씨도 뒤따라 별실에서 나왔다. 그의 얼굴에는 만족스러운 표정이 가득했다. 번스 씨는 미첼 씨를 뒤쫓는 대신, 열람실 옆문을 통해 23번가로 나왔다. 그곳에서 고가 역을 지나 중심가로 향한 번스 씨는, 20분 뒤 미첼 씨의 집 초인종을 눌렀다. 하인이 나와 주인은 부재중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점심 때에는 귀가하시겠지?"
탐정은 물었다.
"그렇습니다."
"미첼 부인은 집에 계신가?"
"안 계십니다."
"로즈 양은?"
"계십니다."
"아! 그럼 기다리지. 명함을 전해 주지 않겠나?"
번스 씨는 호화로운 응접실로 안내되었다. 잠시 뒤 미첼 씨의 양녀 로즈 양이 응접실에 나타났다.
"아빠가 없어서 죄송해요, 번스 씨"
소녀가 말했다.
"그래도 기다리시면 점심 식사에 맞춰 돌아오실 거에요."
"고마워요. 나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제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 생겨서 로즈 양 아버지를 만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별로 중요한 건 아니지만요."
"재미있는 사건인가요, 번스 씨? 사건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아, 유감스럽게도 이야기해 드릴 만한게 아닙니다. 며칠 전에 로즈 양 아버지가 자전거를 사고 싶다고 말씀하신 것 때문에 찾아 왔습니다. 어제 우연히 최신형 자전거를 봤는데, 지금까지 만들어진 것 중에 최고라고 생각되더라고요. 그래서 아직 미첼 씨가 자전거를 사지 않으셨다면, 보고 싶어 하실 것 같아 알려드리려고 찾아왔습니다."
"아쉽지만, 너무 늦었네요. 아빠는 벌써 자전거를 사버렸거든요."
"정말입니까? 어떤 디자인의 제품인가요?"
"전혀 모르겠지만, 보고 싶으시다면 아래 홀로 가시면 돼요. 거기 놓여 있어요."
"아닙니다. 별 의미가 없네요. 미첼 씨가 갖고 싶은 자전거를 발견하고 사셨다면, 제가 구태여 다른 자전거에 대해 이야기 할 필요는 없지요. 구매를 후회하게 되실지도 모르니까요."
"그럴까요?"
"아, 그래도 홀로 내려는가 보고 싶군요. 식당으로 안내해주시겠어요? 미첼 씨가 사냥했다고 자랑한 사슴 박제를 보고 싶어졌거든요. 박제사로부터 돌려받으셨죠?"
"맞아요! 어떻게 아셨어요? 이쪽으로 가시면 돼요."
두 사람은 식당으로 내려갔다. 번스 씨는 사슴 박제와 미첼 씨의 사격 솜씨를 칭찬했다. 그리고 오랜 시간에 걸쳐 홀에 놓여 있는 자전거를 관찰했다. 그 사이 로즈는 식당의 블라인드를 열고 있었다. 그 뒤 두 사람은 응접실로 돌아가 잠시 더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나 미첼 씨가 돌아오지 않은 탓에, 번스 씨는 더 기다릴 수 없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떠나면서 로즈 양에게 말했다.
"미첼 씨에게 내일 정오에 제 사무실에서 보자고 전해 주십시오. 꼭이요."


<<3>>
다음 날, 약속 시각에 맞춰 레밍턴 씨는 번스 씨의 사무실에 찾아왔다. 탐정은 사무실에 있었다. 리로이 미첼 씨는 몇 분 전 막 도착한 참이었다.
"레밍턴 씨에게 들어 오시라고 말해줘."
번스씨가 심부름꾼 소년에게 말했다. 의뢰인이 사무실에 들어왔다. 그가 미첼 씨를 보고 놀라기 전에, 번스 씨가 말했다.
"미첼 씨, 이쪽은 당신을 만나고 싶어했던 신사분입니다.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모티머 J. 골디 씨입니다! 스포츠 애호가들 사이에서는 G.J. 모티머로 알려진 단거리 자전거 경주 챔피언이지요. 바로 최근 400m 트랙에서 1분 56초라는 경이로운 기록으로 1마일을 완주했습니다."
번스 씨는 두 손님을 향해 만족한 표정으로 말했다. 미첼 씨는 몹시 흥분했으며, 의뢰인은 진짜로 놀라 어안이 벙벙하며 번스 씨를 바라보았다. 이윽고 의뢰인은 의자에 쓰러지듯 앉으며 물었다.
"도대체 어떻게 알아내셨나요?"
"그렇게 어렵지 않았습니다."
탐정은 대답했다.
"당신의 과거도 자세히 알려드릴 수 있습니다. 내 말이 진실이라는 걸 알 수 있을 정도로 기억이 돌아왔다면요."
번스 씨는 미첼 씨를 향해 무언가 짐작된다는 듯 윙크했다. 미첼 씨는 한바탕 폭소를 터트린 끝에 겨우 입을 열었다.
"패배를 인정하는 게 좋겠어, 골디. 번스 씨는 우리 힘으로는 어림도 없군."
"하지만 어떻게 알아내셨는지는 꼭 알고 싶네요."
골디 씨가 말했다.
"도대체, 어떻게 우리가 꾸민 수수께끼를 이렇게나 빨리 해결할 수 있었나요?"
"기꺼이 비결을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번스 씨가 말했다.
"제일 먼저, 이쪽 신사 레밍턴 씨가 이틀 전에 저를 찾아와서 기억을 잃었다고 말했지요. 저는 듣자마자 의심했습니다. 그래도 레밍턴 씨가 제 의심을 깨닫지 못하도록 노력했어요. 이런 사건은 드문 일이 아니라고 말하는 식으로요. 이건 당신이 한 말을 제가 믿는 것 처럼 보이게 만들기 위해서였습니다. 하지만 이름 마저 잊어버린 사람이 잊어버린걸 이해한다? 이건 믿기 힘들죠. 저는 들어본 적도 없어요. 기억을 잃어버린 사람이 이름까지 모두 잊어버리는 일은 있겠지만요."
"대단하군, 번스 씨."
미첼 씨가 말했다.
"그렇게 빨리 속임수를 의심하다니, 확실히 매우 날카롭네."
"뭐 그 때는 수상하다고 생각하기까지 한 건 아닙니다. 있을 수 없는 이야기라 곧이곧대로 믿을 수 없었을 뿐이지요. 그래서 그 후 이야기를 나누면서 계속 주의를 기울였습니다. 곧 자기가 누군지는 잊어버렸는데, 뉴욕을 기억하고 있다는걸 알아챘습니다. 별다른 안내 없이 이곳에 왔다고 시인했거든요. 이 역시 간과할 수 없었지요."
"기억납니다."
골디 씨가 답했다.
"네, 뉴욕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 같다고 말씀드렸었죠? 제가 이걸 확신한 건, 센트럴 파크에서 하루를 보낸다고 말한 뒤, 이곳을 나가서 아무런 어려움 없이 센트럴 파크로 향하는 걸 보았을 때였습니다."
"그러니까 저를 미행했다는 말인가요? 뒤에 아무도 없었는데요."
"네, 미행했습니다."
번즈 씨는 웃는 얼굴로 대답했다.
"그러나 처음에 당신 뒤를 쫓은 건 제 부하입니다. 센트럴 파크에서는 제가 미행했지만요. 그리고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저의 추리에 대해 설명하겠습니다. 우선, 호텔 명부에 M.J.G. 레밍턴이라고 쓰셨다고 하셨지요. 이게 가장 큰 단서였습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하고 잠시 뒤, 당신은 회중시계를 꺼냈었지요. 저는 등을 돌리고 있었지만, 책상 거울을 통해 회중시계 뚜껑에 이름이 새겨져 있는걸 알아차렸습니다. 제가 뒤돌아보면서 시계에 관해 물었는데, 당신은 부랴부랴 주머니에 다시 넣으며 그냥 평범한, 낡은 유품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자기가 누군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그걸 알았을까요?" 
"저런, 골디, 완전히 실수했구먼."
미첼 씨가 웃으며 말했다.
"정말 바보 같은 실수였네요."
골디 씨도 웃었다.
"자 이렇게,"
번스씨가 계속했다.
"이름을 잊어버렸다는 건 거짓말이라고 추리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다음에 또 두 가지를 알아챘습니다. 첫 번째는 조끼에 붙어 있는 자전거 배지였습니다. 미국 자전거 연맹 기장이라는 건 바로 알 수 있었지요."
"오!"
미첼 씨가 외쳤다.
"이럴 수가, 골디, 이건 정말이지 완전한 실수라고!"
"배지는 까맣게 잊고 있었어요"
골디가 말했다.
"하지만"
탐정은 계속했다.
"다리를 꼬고 있을 때, 신발 밑창이 움푹 파인 걸 보았기 때문에 배지를 발견하지 못했더라도 당신이 자전거 선수라는걸 추리해내는 건 어렵지 않았을겁니다. 그럼 이제 이름과 그 의미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우선 정말로 당신이 기억을 잃어버렸다면, 호텔 명부에 쓴 이름에서 무언가 의미를 찾는건 불가능했을 거에요. 그러나 당신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린 뒤에는, 선택한 이름 역시 의도가 있다고 추리했지요."
"오! 재미있는 곳에 접어들었는걸"
미첼 씨가 말했다.
"선택한 이름은 아무리 보아도 묘했어요. M.J.G라고 이니셜 3개를 쓴 게 특히 이상했습니다. 기억을 잃어버리고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남자가 그렇게 많은 이니셜을 선택했으리라 생각되지는 않으니까요. 그럼 세 가지 이니셜은 어떤 이유로 선택했을까? 이 세 개의 이니셜이 의미하는 건 무엇일까?"
번스 씨가 계속 말했다.
"가명은 보통 본명을 재정렬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래서 이 세 개의 이니셜은 분명히 본명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다면 레밍턴이라는 마지막 이름은? 레밍턴사는 총, 재봉틀, 타자기와 함께 자전거를 만드는 회사입니다. 여기에 앞서의 배지, 그리고 신발 밑창에서 알아낸 정보를 더해 당신이 자전거 선수라는걸 확신했습니다. 가명의 이니셜로 본명을 택했다면, 이름의 레밍텅도 그만큼 친숙한 단어를 선택한 거지요. 혹시 레밍턴 사 자전거 판매상일 수도 있어서 대화 중에 기억이 돌아올 때까지 아무것도 사지 말라고 조언해 보았는데, 아무것도 사지 않겠다고 곧바로 말씀하시더군요. 그렇다면 확실히 판매상은 아니라고 생각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공원에서 손수건을 훔친 끝에 당신의 정체를 확신했습니다. 손수건의 이니셜도 M.J.G였었거든요."
"이런, 자기 이니셜을 손수건에 새겨 놓다니!"
미첼 씨가 외쳤다.
"너무 바보 같잖아! 교활한 범죄자는 될 수 없겠군, 골디."
"아마 그럴 거예요! 물론 슬프지는 않습니다만."
"이쯤에서 저는 성공을 확신했습니다."
번스씨가 계속했다.
"그런데 다음 단계에서 좌절했어요. 미국 자전거 연맹 명단에는 딱 맞는 이름이 눈에 띄지 않았거든요. 이건 나중에 말씀드리겠지만, 한마디로 말해 재료가 너무 많아 국물이 엉망이 된 것과 마찬가지였던 셈입니다. 손수건이 없었다면 더 잘 할 수 있었을 거예요. 하여튼, 다음으로 레밍턴 카탈로그를 구해서 공인 대리인 명단을 찾아보았는데 이것 역시 실패했어요. 하지만 사무실에 돌아와서 부하의 보고를 받고 난 뒤 길이 열렸습니다. 골디 씨의 연기는 좋았지만 공중전화에 들어가 누군가를 호출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 부하가 전화 교환수에게 뇌물을 주고 정보를 얻어내었습니다. 그런데 5번가 호텔의 별실의 누군가와 통화했다는 것밖에는 알아낼 수 없었어요. 부하는 대수롭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저는 골디 씨가 사전에 전화 상대방과 약속한 시각, 약속한 장소에 전화를 걸어 의논하는게 분명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시간이 정오였기 때문에 다음날, 즉 어제입니다만, 저는 같은 시간 조금 전에 5번가 호텔의 별실로 가서 숨어있었습니다. 전화로 이야기하는 내용을 엿듣고자 했지만 그건 무리더군요. 별실이 워낙 잘 만들어져 있어서 방음이 완벽했기 때문이지요. 그래도 미첼 씨가 룸에 있는 건 확인할 수 있어서 만족했습니다."
"왜?"
"왜냐고요? 당연히 미첼 씨를 보자마자 이 모든 계획을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 재능을 시험하려고, 기분 전환으로 조작한 사건이라는 걸요. 이를 알아채자마자, 미첼 씨가 치과에 있다는 걸 알았기에 곧바로 진상을 파헤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당신 집을 바로 찾아갔던 것이지요. 로즈 양과 수다를 떨려고요. 정보를 캐내기에는 딱 좋더군요."
"아이고, 빌어먹을! 번스 씨"
미첼 씨가 말했다.
"어린아이의 순진함을 이용하다니, 염치도 없구먼!"
"부끄러울 건 없었습니다. 아무튼 잘 됐어요. 현관에서 골디 씨의 자전거를 발견했는데, 짐작대로 레밍턴이더라고요. 번호를 적어서 대리점을 찾아가니 누구의 것인지 쉽게 알 수 있었고요. 586번은 정규 레이싱 팀의 일원인 G.J. 모티머가 타는 자전거더군요. 그리고 여기서 모티머의 본명이 모티머 J. 골디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가명에 대한 추리가 맞았기에 이 역시 반가운 정보였습니다. 자전거를 탈 때는 레이싱 네임으로 성을 바꿔서 사용했기 때문에 아까의 명단에서는 찾아낼 수 없었던 겁니다."
번스 씨가 말했다.
"아까 말했듯이, 슬쩍 실례했던 손수건이 없었다면 더 잘할 수 있었을 겁니다. 저는 미국 자전거 연맹 명단에서 G만 찾았었거든요. 손수건만 없었다면 G는 물론, J, M도 찾았을텐데 말이지요. 그렇다면 곧바로 G.J 모티머를 찾아낼 수 있었을 겁니다."
"잘했어, 번스 씨"
미첼이 말했다.
"한동안 이름 없는 남자를 연기해 달라고 골디에게 부탁한건 나라네. 자네를 한 방 먹여 주고 싶었거든. 그런데 번스 씨가 우리에게 한 방 먹인 것 같구먼. 하지만 만약 내가 주연을 맡았다면, 아무리 자네라도 이렇게 빨리 정체를 간파하지 못했을 걸세."
"어! 글쎄요"
번스씨는 말했다.
"다음에 한 번 시도해 보시지요"
"그래, 다음에 자네에게 함정을 팔 때는 나를 주역으로 발탁할걸세."
"그거 기대되는군요"
번스 씨가 말했다.
"언제든지 환영합니다. 그나저나, 이번 게임에서 지셨으니 최소한 저녁은 사셔야겠습니다."
"기꺼이 한턱내겠네"
미첼 씨가 말했다. 골디 씨가 거들었다.
"아닙니다. 진 건 제가 실수했기 때문이에요. 제가 내겠습니다."
"둘이서 함께 내세요"
번스 씨가 외쳤다.
"그보다 빨리 가시죠. 배가 고파졌어요!"
그들은 곧장 델모니코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덧 : 아주 오래전 읽었던 단편입니다. 모처럼 시간이 나서 번역을 진행해 보았습니다. 언제나처럼 의역 가득한 엉망인 번역입니다. 그래도 즐겁게 읽어주시면 좋겠네요.

이름없는 사나이 (결정적 증거 중) - 로드리게스 오토렌기 (1895) : 별점 3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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