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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6/27

콘 비프 샌드위치를 먹는 밤 Season 2 : (8) 카레가 건너 온 추리 소설

카레는 친숙한 요리입니다. 한국군 전투식량에 포함되어 있을 정도로요. 우리와 교류가 적었던 인도의 전통 요리가 이렇게 친숙해진 건, 영국의 인도 식민지 지배로부터 비롯되었습니다. 빅토리아 여왕 시기, 식민지에 진출했던 영국인들이 현지에서 고용했던 요리사들과 함께 귀국하면서 여러 인도 요리가 영국에 들어왔지요. 이후 이 음식들은 영국인의 입맛에 맞게 밀가루를 넣은 스튜 형태로 변형되었고, 때마침 영국 회사 C&B에서 인도 향신료를 배합한 가정용 분말을 출시하면서 널리 퍼졌습니다. 

고기와 채소를 썰어 넣은 걸쭉한 스튜처럼 조리하되, 시판 향신료 분말로 이국적인 맛과 향을 더한 음식. 영국인들은 이를 인도 타밀어로 ‘소스’라는 뜻의 ‘카리(Kari)’에서 따와 ‘커리’라고 불렀습니다. 정작 인도에는 없는, 영국에서 탄생한 인도 요리인 셈입니다. 참고로 커리라는 명칭은 카릴, 혹은 카리라고 불리던 매콤한 남부 인도 요리의 이름에서 비롯되었다는 설도 있습니다.

영국인들의 삶 속에 커리가 얼마나 깊이 들어왔는지는 빅토리아 시대를 무대로 한 셜록 홈즈 시리즈에서도 잘 알 수 있습니다. "경주마 은점박이" 사건에서 마방 조교사 집의 저녁 식사로 양고기 카레가 등장하니까요. 범인은 마굿간 청년들에게 맛이 강한 아편 분말을 섞어 먹이기 위해 이 요리를 택했습니다. 커리의 강렬한 맛이라면 웬만한 약을 숨기기에 적절했을 테니, 범인에게는 최선의 선택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는 홈즈가 사건을 해결하는 결정적인 단서가 되기도 하지요.

"해군 조약"에서는 의뢰인 펠프스와 함께하는 식사 메뉴 중 하나로 닭고기 커리가 나옵니다. 허드슨 부인의 특기처럼 소개되는데, 이렇게 평범한 저녁 메뉴로 등장할 정도라면 당시 영국에서 커리는 우리나라의 김치찌개 정도 위치의 음식이었다고 보아도 무방하지 않을까요?

영국에서 커리의 인기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2001년, 영국 외무부 장관 로빈 쿡은 인도 카레라이스의 일종인 치킨 티카 마살라를 ‘진정한 영국의 국민 음식’이라고 선언했을 정도니까요. 2015년에 발표된 피터 스완슨의 "죽여 마땅한 사람들"에도 정통 인도 커리인 치킨 코르마가 자주 먹는 요리로 소개됩니다. 코르마는 주 향신료인 마살라에 버터와 크림, 요거트 등을 넣어 부드러운 맛을 내는 커리인데 여주인공 릴리는 단골집에서 테이크아웃해 온 치킨 코르마에 견과류를 갈아 넣습니다. 심한 견과류 알레르기가 있는 연인 에릭을 살해하기 위해서요. 에릭은 예상대로 치킨 코르마를 먹은 뒤 발작을 일으키고, 릴리가 치료제를 숨긴 탓에 결국 질식사합니다. 약을 섞지도 않은, 그야말로 완전범죄라는 점이 눈길을 끕니다.

이렇게 영국인의 일상에 깊이 자리 잡은 커리는 다시 일본으로 건너갑니다. 그리고 일본에서 카레는 단순한 서양식 요리를 넘어, 밥과 함께 먹는 국민 음식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

일본에는 1870년대 국비유학생 야마가와 겐지로가 최초로 영국식 커리를 전래했습니다. 이때 일본식 발음으로 ‘카레’라는 이름이 붙었고요. 당시 일본에 여러 서양 요리가 전파되었지만, 그중에서도 카레는 독보적인 인기를 얻었습니다. 때마침 일본 해군이 영국군을 따라 카레를 장병들에게 보급했던 덕이 컸습니다. 일본인에게 익숙한 쌀밥과 함께 먹을 수 있도록 제공한 것이 주요했지요. 고기도 작게 썰어 넣어, 육고기가 익숙하지 않았던 당대 일본인들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이후 다이쇼 시대에 돼지고기와 감자, 당근이 들어가는 현대적인 레시피가 정착합니다. 영국 C&B 카레 가루를 국산화한 카레 가루 제조사도 등장하면서, 우리가 잘 아는 ‘카레라이스’가 가정에도 널리 퍼지게 되었습니다. ‘3분 카레’라는 이름으로 유명한 즉석 카레 역시 1968년 일본 오츠카식품이 레토르트 파우치에 카레를 넣어 판매하기 시작한 것이 시초입니다. 일본은 카레에 정말 진심이었던 모양입니다.

일본에서 카레의 인기는 밥과 함께 먹는다는 개념을 넘어, 여러 음식으로 확장된 모습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카레빵이 대표적입니다. 이름 그대로 속에 카레를 넣은 빵이지요. 도쿄 명화당이 1927년 특허 등록한 양식 빵이 원조라고 합니다. 라쿠고가 엔시 씨가 등장하는 일상계 추리소설 "가을꽃"에서 맛있게 빵을 먹는 삼원칙 이야기가 나올 때도 언급되었지요.

카레 우동은 1909년 와세다대학 옆의 오래된 소바집 ‘산초안’에서 개발한, 메밀국수 위에 카레와 파를 얹은 카레 남만이 발전한 음식입니다. "시인장의 살인" 도입부에서 낯선 여학우가 무슨 메뉴를 주문할지를 두고 아케치와 하무라가 추리 대결을 펼칠 때, 아케치가 선택한 메뉴이기도 합니다. 일본 전통 요리와 카레가 결합된 음식이라는 점에서, 좀비물과 본격 추리물이 절묘하게 결합된 이 작품과도 잘 어울립니다.

이런 나라니 당연히 카레 전문점도 많습니다. ‘아비꼬’나 ‘코코이찌방야’ 같은 일본 카레 전문점은 우리나라에서도 영업 중이지요. 와카타케 나나미의 "광취"에는 ‘파라다이 로스트’라는 카레 가게가 등장합니다. 이 가게는 미나코가 중학생 때 교회 부설 고아원인 ‘성모의 정원’에서 임신했다는 이유로 쫓겨난 뒤 시작한 곳입니다. 그녀의 아들 분지는 정신지체아로, 성장한 뒤 가게에서 함께 일하게 됩니다.
미나코는 성모의 정원으로 돌아가기를 소망하지만, 수녀들은 더럽다는 이유로 그녀를 받아주지 않습니다. 그녀가 성모의 정원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은 근처에서 실종된 어린아이를 찾기 위해 교회에 모인 자원봉사자들에게 카레를 제공했을 때뿐이었지요.
그 뒤 죽어서도 교회 묘지에 묻히기를 거절당한 미나코를 성모의 정원 안으로 들여보내기 위해, 분지는 먼저 어린아이를 유괴합니다. 그리고 이전과 마찬가지로 교회에 모인 자원봉사자들에게 미나코의 사체로 만든 카레를 제공합니다. 고기의 특성을 지울 수 있는 카레였기에 가능했던 이야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처럼 영국에서 태어나 일본의 생활 음식으로 자리 잡은 카레는, 카레는 우리나라에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 본격적으로 소개되었고, 곧바로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일본에서 그랬던 것처럼, 쌀밥과 함께 먹을 수 있다는 점이 컸을 것입니다. 1932년 4월, 상하이 훙커우 공원에서 의거를 일으킨 윤봉길 의사도 경성지방법원에 호송된 뒤 법원 구내 식당에서 카레라이스를 먹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을 정도입니다. 김치가 아주 잘 어울린다는 장점도 빼놓을 수 없겠지요. "사냥개 탐정"의 류몬 다쿠는 후쿠신즈케가 곁들여지지 않은 것은 카레라이스라 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데, 그에게 김치도 한 번 권해 주고 싶네요.

하지만 카레가 세계적으로 이렇게 많은 사랑을 받는 가장 확실한 이유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가슴 따뜻한 드라마 "녹나무의 파수꾼"에서 알려주듯 “날마다 먹어도 질리지 않고, 그러면서도 영양 균형이 좋은 음식”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인도에서 출발한 향신료 요리는 영국에서 스튜가 되었고, 일본에서 밥과 만났으며, 우리나라에서는 김치와 함께 먹는 일상식이 되었습니다.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바뀌었지만, 한 끼를 든든하게 채우고 사람을 편안하게 만든다는 점만은 같았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오늘 저녁은 카레가 어떠신가요? 기왕 먹을 것이라면, ‘컨트리 캡틴 치킨’을 한 번 시도해 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이 요리는 1849년 출간된 책에 실린 ‘리델 박사의 컨트리 캡틴 치킨’ 레시피로 널리 알려졌는데, 시기적으로 볼 때 허드슨 부인이 홈즈를 위해 만들었던 닭고기 커리도 이와 비슷했을 가능성이 높으니까요.

리델 박사의 컨트리 캡틴 치킨
로버트 플라워 리델, "인도 가정과 요리책", 1849

  1. 닭고기를 잘게 썬다. 
  2. 양파는 채 썰어 버터에 갈색이 되도록 볶는다. 
  3. 닭고기에 소금과 커리 가루를 뿌리고 노릇해질 때까지 볶는다. 
  4. 스튜 냄비에 수프 1파인트와 재료를 함께 넣는다. 
  5. 국물이 반으로 줄 때까지 뭉근히 끓인 다음 밥과 함께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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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24

4의 재판 - 도진기 : 별점 1.5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결국 판사가 문제다. 인간의 한계다.

살인에 걸래?가 형사 재판의 물음이라면, 살인에 걸래, 교통사고에 걸래?가 민사 재판의 물음입니다.

선재는 약혼자 지훈이 살해당한 사건에서, 범인 양길의 유죄 판결을 기대했다. 그러나 양길은 무죄 선고를 받았다. 정황 증거 외에 직접 증거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양길은 형사 재판에서의 무죄 판결을 이유로 19억원에 이르는 보험금 수령에까지 성공했고, 선재는 절망에 빠졌다...

'어둠의 변호사' 시리즈로 유명한, 검사 출신 작가 도진기의 신작 장편입니다. 그러나 시리즈 작품은 아니고, 정통 추리 소설도 아닙니다. 한국 사법 시스템의 허점과 판결의 부조리를 드러내는 사회파 소설에 더 가깝습니다. 

여러 유명 사건 - 캄보디아 만삭 아내 살인 사건, 여수 금오도 차량 추락 사망 사건 - 의 판례를 바탕으로 한, 독자의 분노를 자극하는 양길의 완전범죄 설정은 흥미롭습니다. 양길은 누가 봐도 가장 유력한 용의자이지만, 살인을 저질렀다는 직접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형사재판에서 무죄를 받고, 이후 민사소송을 통해 거액의 보험금까지 타내게 됩니다. 뉴스를 통해 비슷한 사건들을 접해는 왔었지만 왜 이런 납득하기 어려운 판결이 나오는지는 몰랐는데, 이 작품을 통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검사 출신 작가답게 판사와 사법 시스템의 문제를 고발하는 시선도 분명합니다. 형사재판과 민사재판의 차이를 비교적 쉽게 설명해 주는 점도 좋았고, 법률가 출신 작가다운 소재 활용도 돋보입니다. 선재가 양길 측 수사 기록을 복사하는 장면이 대표적입니다. 복사 현장에서 적발되었지만 복사지가 스스로 구입한 자신의 물건이고, 변호사 사무소 직원으로 일하고 있었기 때문에 불법 침입이 성립하기 어려워서 죄를 물을 수 없다는 주장은 신선했어요.
양길이 지훈의 어머니를 상대로 고소를 진행하는 부분 역시 빼놓을 수 없습니다. 무죄가 선고된 재판정에서 살인자라는 말을 했다는 이유로, 공공장소에서의 명예 훼손이 성립한다는건 처음 알았네요. 이는 아들을 잃은 피해자 측이 가해자에게 손해배상금을 줘야 하는 상황을 초래하여 양길이라는 인간의 사악함을 극대화한다는 점에서도 효과적입니다.

양길이 일사부재리가 적용되지 않는 필리핀 현지에서 체포된 뒤, 유죄판결을 받는 반전도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었어요.

다만 소설 자체가 아주 잘 쓰였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전개가 심심한 탓입니다. 가장 큰 이유는 주인공 선재가 수백 페이지에 걸쳐 실질적으로 하는 일이 많지 않기 때문이고요. 형사재판 과정에서 선재는 철저하게 방관자에 머뭅니다. 피해자 측 유족인 이상 법정 공방에 직접 개입할 수 없고, 실제 재판은 검사와 양길 측 변호사 사이에서만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형사재판 후에는 문병일의 변호사 사무소에 위장 취업해 사건 자료를 복사해 빼돌리는 활약을 보여 주지만, 그것 역시 재판 결과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지는 못합니다. 이래서야 재미가 있을 수 없습니다.

양길의 재판 과정도 분량에 비해 밋밋합니다. 법정극에서 기대해 봄직한 강한 반전이나 드라마틱한 공방이 전무하기 때문입니다. 양길의 무죄를 뒤집을 만한 뚜렷한 전환점이 없고, 판사의 판단이 전부인 흐름이 이어져 답답합니다. 

등장인물 묘사도 아쉽습니다. 선재가 국가대표 사격선수 출신이라는 설정은 결과적으로 큰 역할을 하지 못합니다. 그냥 맥거핀에 불과해요. 심리 묘사 역시 진부하고요. 게다가 장인규나 서찬휴는 작가 대신 법률 이론과 재판의 불합리함을 설명하기 위한 스피커에 불과합니다. 전혀 생동감을 느낄 수 없었어요. 둘의 이야기는 비슷한게 반복되어 지루하게 느껴지고요.

결말도 신선하지만 갑작스럽습니다. 선재가 불법적으로 총을 손에 넣어 직접 복수를 할 듯한 분위기를 조성한건 불필요했고, 이 과정에서 형식이 정확히 어떤 역할을 했는지도 불분명합니다. 양길의 체포도 묘사에서 긴장감을 느낄 수 없고, 결국 양길이 필리핀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는 결말도 한 줄 설명에 그치며 양길 시점의 묘사가 전무해서 아이디어에 비하면 잘 쓴 결말이라고 하기는 어렵네요.

그리고 검사 출신으로 판사의 신성불가침(?)성에 태클을 걸고 싶어한 작가의 마음은 잘 알겠지만, 작품이 지나치게 편향되어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소개된 사건처럼 여론의 지지를 얻지 못한 판결도 있지만, 시체가 없거나 직접 증거가 없어도 유죄 선고가 내려진 사건도 있으니까요. 부산 시신없는 사건이 대표적입니다.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법과 재판의 허점을 드러내는 사회파적인 성격, 형사와 민사의 차이를 이해하기 쉽게 보여 주는 점, 그리고 법률가 출신 작가다운 세부 설정은 분명 장점이지만 소설로는 영 아니었습니다. 이야기를 대폭 줄이고, 등장하는 사건은 작중에서 상세하게 설명하지 말고 뒤에 별도로  소개하는게 훨씬 좋았을 겁니다.

덧붙이자면, 알아보지는 않았지만 제목의 "4의 재판"은 3심제를 벗어나더라도 네 번째 재판이 남아있다는 의미로 쓴 게 아닌가 싶네요.


2026/02/06

십각관의 살인 - 아야츠지 유키토 / 양억관 : 별점 4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외딴섬 츠노시마의 '십각관'에 K 대학교 미스터리 연구회 회원 일곱 명이 일주일 일정으로 머물게 되었다. 회지 작업 등을 위해서였다. 십각관은 괴짜 천재 건축가로 유명했던 나카무라 세이지가 만든 건물로 그는 반 년 전에 아내, 고용인과 함께 십각관 옆 청옥부에서 불타죽었다. 곧이어 연구회 회원들도 오르치부터 한 명 씩 살해당하기 시작했다.

한편 육지에 남았던 전 연구회원 가와미나미는 시마다라는 지인의 도움으로 나카무라 세이지 사건의 진상 조사에 나섰다. 나카무라 세이지가 보냈다는 괴문서를 받은게 계기였다. 여기에는 같은 연구회원 모리스도 힘을 보태는데...

아주 오래 전, 20년도 더 전에 학산 문화사 출간본으로 읽었던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한스 미디어에서 재간된 버젼으로 '밀리의 서재'에 업데이트되었길래 옛 추억도 떠올릴 겸 다시 읽어보았습니다.

이 작품은 작가의 데뷰작입니다. 엄청난 성공으로 시마다 소지의 "점성술 살인사건"으로 시작된 일본의 '신본격 미스터리'라는 장르를 일으켰던 작품이지요. 클로즈드 서클에서 일어나는 연쇄 살인극이라는 고전적 설정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젊은 작가가 젊은 대학생들을 주인공으로 하여, 괴짜 천재가 만들었다는 기묘한 저택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그려낸 덕분에 지금 읽어도 여전히 흥미로운 구석이 많습니다. 특히 '십각관'은 정말 후속 시리즈가 이어질 수 있는 멋진 아이디어였어요.

추리적으로도 높은 완성도를 자랑합니다. 츠노시마에서 일가가 불타 죽었던 괴짜 천재 건축가 나카무라 세이지가 관련되었던 반 년 전 사건부터 볼거리가 많습니다. 실종된 정원사가 정말 범인이 맞는지, 나카무라 세이지의 아내 가즈에의 왼손은 왜 잘려 나갔는지 등 수수께끼가 가득하니까요.

섬에서 일어난 살인의 트릭은 겉보기에는 단순합니다. 마스터 키를 이용해 방을 열고, 음료나 담배에 독을 넣는 방식이 중심인 탓이지요. 그러나 이 사건에서 트릭보다 더 중요한 건 범인의 정체입니다. 연구회에서 닉네임 ‘밴’을 쓰던 범인은, 육지에서 가와미나미, 시마다와 함께 수사에 참여했던 모리스 교이치였기 때문입니다! 모리스가 밴이었다는게 드러나는 장면은 정말로 대단한 충격을 안겨다 줍니다. 그는 고무보트를 이용해 육지와 섬을 오가며 연쇄 살인을 저질렀고, 범행을 엘러리가 저지르고 자살한 것처럼 위장해 완벽한 완전 범죄를 저지르는데 성공했던 겁니다. 
'십각관'이라는 장소가 사건에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는 못하지만, 모든 컵이 십각형인데 딱 한 개의 컵만 십일각형이었다는걸 독살에 활용한 아이디어도 괜찮았어요.

트릭이나 단서의 제시도 공정한 편입니다. 섬과 육지를 보트로 쉽게 오갈 수 있다는건 진작부터 제시되는 정보이며, 루르가 살해당한 현장의 발자욱을 토대로 엘러리가 펼치는 추리는 결정적이니까요. 여기서 루르는 선착장에서부터 쫓아온 범인에게 살해당했고, 범인은 선착장으로 사라졌다는게 명백히 드러나거든요.
이런 여러 정보와 단서가 있음에도, 초반부터 나카무라 세이지가 살아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독자에게 심어주어서 범인은 학생들 중 한 명이 아니라 나카무라 세이지나 나카무라 고지로일거라는 생각을 독자에게 품게 만드는 전개도 좋습니다. 

아울러 미스터리 연구회 출신 작가다운, 현대 무대 탐정 소설은 클로즈드 서클 물을 쓸 수 밖에 없다는 등의 추리 소설에 대한 여러가지 이론들의 등장도 반가웠던 부분입니다. 나카무라 세이지의 협박장을 워드프로세서로 쓴 것에 대한 분석, 십각관 사건에 대한 연구회원들의 추리 등 소소한 추리들도 재미있었고요.

다만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우선 탐정역인 시마다 기요시는 이 작품에서는 하는게 별로 없습니다. 모리스 교이치의 완전 범죄극이 이야기의 핵심이기도 하지만, 여러모로 시리즈 탐정이 될 정도의 매력은 보여주지 못합니다.
그리고 모리스의 완전 범죄 계획도 큰 구멍이 있습니다. 가와미나미가 나카무라 세이지의 협박장을 받고 모리스를 만나 알리바이를 만들어 주는게 핵심인 탓입니다. 가와미나미가 모리스의 전화도 받지 않고, 독자적인 수사 활동에도 나서지 않았다면 어떻게 했을까?에 대한 답이 없어요. 어떤 식으로든 알리바이를 만들기야 했겠지만, 최소한 중요한 첫 날 알리바이는 날려 버렸을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초반,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 나카무라 세이지가 보낸 듯한 편지 역시 범행 후 엘러리가 보냈다고 주장하기는 어려워 보이고요.
동기도 빈약해요. 치오리가 술을 많이 먹어서 죽었다는건 분명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렇다고 그 술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을 죽일 생각을 품는다? 별로 와 닿지 못합니다. 강제로 술을 먹이는 게임이라도 했다면 모를까요.

또 미스터리 연구회 소속이라는 설정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이 너무 쉽게 살해당한다는 점은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의심 없이 담배를 피우거나 음료를 마시는 장면, 홀로 건물 밖으로 나서는 장면 등은 미스터리 독자답지 않은 행동이어서 당황스러웠습니다.
치오리와 모리스가 연인이었다는 사실, 그리고 치오리가 나카무라 세이지의 딸이라는 걸 오르치조차 몰랐다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르치가 이 사실을 알았다면 섬에 오지도 않았을테고, 처음에 연쇄 살인에 대한 의심이 싹틀 때 이 이야기를 하지 않았을리도 없지요.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에서 모리스가 자신의 범행 계획을 병에 담아 바다에 띄우고, 훗날 그 병을 주워 자백하는 구조는 지나치게 감성적입니다. 완전 범죄를 달성하기 위해 복수심으로 똘똘 뭉쳐 팽팽한 긴장을 유지하던 범인의 감성과는 너무 다른,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부분이었어요. 젊은 작가의 감정 과잉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리고 가장 크게 느꼈던 불만은 번역입니다. 제가 20여년 전에 이 작품을 처음 읽었을 때, 모리스가 첫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모리스'라고만 소개되었습니다. '모리스 교이치'라는 전체 이름이 아니라요. 그래서 '모리스'도 다른 연구회원들과 마찬가지로 유명 추리 작가의 이름을 딴 닉네임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모리스가 밴 다인이었다는게 드러나는 마지막 장면의 충격이 더 컸습니다. 그러나 이번의 번역 버젼은 그런 맛은 부족합니다. 당연하지요. 모리스 르블랑과 밴 다인은 같은 사람일 수 없지만, 모리스 교이치는 밴 다인일 수 있으니까요...

그럼에도 클로즈드 서클의 정수를 보여주면서도 독자까지 완벽하게 속이는 완벽한 완전 범죄물이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별점은 4점입니다. 계속 회자되고, 미디어 믹스가 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지요. 추리소설을 좋아하신다면 읽어보시길 권해드립니다.

2026/01/23

수상탑의 살인 - 김영민 : 별점 2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다년간의 연구 끝에 지구 온난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을 절대 막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린 지구환경과학부 전 교수 박종호는 거액의 돈을 들여 동해 바다에 스스로 떠 있일 수 있는 거대 건물인 수상탑을 만들었다. 

종호는 특별히 선정한 몇몇 사람들을 수상탑으로 초대했는데, 초대한 당일 수상탑에 폭우와 강풍이 덮쳤고 휴대전화도 사용할 수 없게 되었으며 유일한 탈출 수단인 배마저 폭발해 버렸다. 그리고 다음 날 탑 정원 벤치에서 무언가에 찔려 죽은 종호의 딸 가온의 사체가, 종호의 잠긴 방 안에서 종호가 목이 베어 죽은 채 발견되었다.
사건 해결을 위해 마침 지도 교수와 함께 수상탑에 방문한 이론입자물리학 전공 대학원생 한규현이 탐정으로 나서는데...

"법의 체면"에 이어 한국 추리 소설은 올해 벌써 두 번째네요. 한국추리작가협회가 선정하는 제41회 한국추리문학상 대상 수상작이기도 합니다. 

국내 작품 중에서는 보기 드문, 정통 본격 미스터리를 정면으로 내세우는게 특징입니다. 특히 트릭은 공을 많이 들였습니다. 밀실 트릭과 장치 트릭이 사용되었는데, 플랫폼과 밸러스트 등을 이용해 파도에도 흔들리지 않고 물 위에 떠 있는 기묘한 구조의 수상탑 설정과 잘 결합되어 있거든요. 이 설정과 수상탑 방의 비정상적일 정도로 단단한 문, 기묘한 발코니 여닫이 구조가 트릭의 핵심이고요. 

박종호 사건에서 범인 가온은 범행 당시 수상탑을 바다 밑으로 가라 앉힌 뒤, 자기 방에서 5층 종호 방 발코니로 떠 갔습니다. 종호가 놀라 발코니로 나왔을 때 종호의 목을 칼로 그어 살해했고요. 한규현 등이 현장 조사를 했을 때 발코니 문은 열려 있었지만, 5층에서 아래로 내려갈 방법이 없어서 밀실이라고 생각했는데 사실 1층과 다름 없었던 상황이었던 겁니다.
종호의 애인 승희 살인 사건은 더 대담합니다. 가온은 약간의 조작(화약 폭발?)으로 승희 방문이 열리지 않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승희는 욕실 비상구로 탈출하려고 했는데, 위층인 3층 내부는 탑이 가라앉은 탓에 물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그래서 비상구를 열자, 4m의 물기둥이 승희를 직격해 사망하게 되었지요.

이렇게 약간의 특수 설정을 활용한 본격물적인 트릭은 꽤 괜찮습니다. 추리를 위해 필요한 정보와 단서도 공정하게 제공되고요.
수상탑도 본격물 무대로는 완벽합니다. 외부와 단절된 클로즈드 써클이며 그 자체가 트릭의 핵심이기도 하다는 점에서요. 이런 설정은 그간 한국 작품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부분이라서 신선하게 다가왔습니다.

그런데 단점도 명확합니다. 소설로 잘 읽히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전개가 느리고, 이야기를 끌고 가는 힘이 약합니다.
가장 큰 이유는 캐릭터입니다. 주인공 한규현은 현실적인 인물이지만 너무 평범합니다. 심약하고 수동적인 성격이고, 유머 감각도 전무하다시피해서 이야기를 이끌 만한 매력이 없어요. 독특한 공간과 어울리는 인물이 하나 쯤은 필요했지만, 그런 역할을 해주는 캐릭터는 끝내 등장하지 않습니다.
등장인물도 과도하게 많습니다. 석승준 교수, 대학원생 박규리, 음모론자 태용제는 이야기에서 실질적인 역할이 거의 없습니다. 사건 해결에도, 긴장감 조성에도 기여하는 바가 없고요. 분량만 늘리는 인물들로 빼는게 더 나았습니다. 

추리적으로도 문제가 많습니다. 범행 동기는 설득력이 부족합니다. 자신이 후원하던 아이가 아버지의 실험으로 죽었다는 이유로 아버지에게 살의를 품는다? 전혀 와닿지 않습니다. 종호와 승희가 방글라데시 사람들을 차별했다는 설정도 앞부분에서 충분히 설명되지 않고요. 동기는 뒤늦게 억지로 덧붙여진 느낌입니다.

그리고 트릭은 나쁘지 않은데, 세세한 부분에서 문제가 없지는 않아요. 우선 승희 사건은 가온이 사망한 뒤 일어났는데 누가, 어떻게 수상탑을 침수시켜 트릭에 사용될 상황을 만들었을까요? 물론 가온이 종호 사건을 일으킬 때 3층도 침수되었을 수는 있지만, 그 경우 다음날 범행이 발각될 우려가 있습니다. 생존자들이 범인을 찾기 위해 탑 전체를 수색할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종호가 수상탑이 아예 가라앉을걸 예상하고 수상탑의 발코니와 문을 침수에 대비하는 형태로 만들었다는건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수상탑이 가라앉은 건 가온이 완전범죄를 저지르기 위해 억지로 만든 상황입니다. 극한 상황을 고려하여 첫 방문한 한규현이 이상하게 여길 정도의 설비를 갖출 이유는 없습니다. 
이런 거대 구조물을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소녀가 손쉽게 휴대폰 앱으로 가라앉히고, 폭탄으로 보트를 폭파시키고 단단한 문을 봉쇄했다는 등의 설정도 억지스럽습니다. 아무리 천재라는 설정이 있다 하더라도 비현실적이에요.

무엇보다도 범인 가온이 종호 방에서 탈출하다가 청새치의 습격으로 죽었다는 진상은 솔직히 너무 어이가 없었습니다. 지나치게 작위적이니까요. 실제 사례를 좀 찾아보아도, 낚시 중이거나 배 위에서 잡은 청새치의 몸부림에 찔려 죽은 경우는 있어도 바다에서 공격받아 죽은 경우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불빛에 돌격한다는 습성도 없고요. 불가능 범죄를 위해 억지로 만든 설정에 불과합니다.
이후 가온의 시신이 부서진 수상탑의 정원 벤치 위에 놓여 있었다는 결과도 우연입니다. 시체가 떠내려가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정교하게 쌓아 올린 트릭을 이런 방식으로 마무리한건 큰 감점 요소입니다.

정보 제공이 지나치게 공정한 탓에 독자가 진상을 추리하기가 별로 어렵지 않다는 문제도 있습니다. 누가 봐도 '수상탑'의 기묘한 설정이 트릭에 사용되었으리라는걸 알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본격 미스터리로서의 긴장감과 지적인 쾌감을 오래 느끼기는 힘듭니다. "유리탑의 살인"처럼 나름의 반전이라도 선보였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한국 추리 소설로는 보기 드문 본격물이라는 의미는 있지만, 소설로서의 완성도는 낮습니다. 분량을 줄이고 밀도를 높였다면 훨씬 나은 작품이 되었을텐데 아쉽네요.

2026/01/02

법의 체면 - 도진기 : 별점 2점

안녕하세요, 2026년 새해가 밝았네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기 바랍니다.

새해 처음으로 리뷰를 올리는 작품은, 척박한 한국 본격 추리물 시장에서 가장 왕성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는 도진기 작가의 신작 단편집입니다. 모두 다섯 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법의 체면"과 "완전범죄" 두 편은 좋습니다. 법을 잘 아는 작가가 법에 대한 딜레마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는 덕분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도진기 작가만 쓸 수 있을 법한 작품이에요. "완전범죄"는 본격물을 방불케 하는 추리가 펼쳐지기도 하고요.
"애니"는 다소 독특한 설정의 SF인데, 이 역시 설정만큼은 마음에 듭니다.

그러나 "당신의 천국"과 "행복한 남자" 두 편은 한마디로 망작이었고, 앞서의 세 편 역시 전개와 묘사 등 소설적인 완성도 측면에서는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습니다. 빼어난 설정과 아이디어를 제대로 완성하지 못하는 작가의 단점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점수를 줄 만한 흥미로운 지점은 분명 있는데, 아쉽게도 단점이 더 많습니다.

수록작별 상세한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법의 체면

호연정 변호사에게 변상일이 찾아와 자신의 장물 취득 사건 3심 변호를 의뢰했다. 변상일의 유죄가 확실했지만, 시한부 인생이라는 변상일의 청에 못 이겨 호연정은 사건을 맡았다. 그러나 예상대로 상고는 기각되었다.

그러나 상고 기각 확정 후, 변상일이 강원도 홍천에서 일어났던 ‘청테이프 살인사건’의 유력 용의자로 체포되었다. 증거는 현장에서 발견된 변상일의 쪽지문이었다.

호연정 변호사 시리즈 단편입니다. 변상일의 조작으로 유죄가 확정된 장물 취득 사건이 일어난 날짜가 청테이프 살인사건 발생 일자와 같아서, 변상일이 진범이라는게 확실하지만 풀어줄 수 없는 딜레마를 다룹니다. ‘법의 체면’이라는 제목 그대로이지요. 법관들은 체면 때문에 이전 판결을 뒤집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딜레마는 굉장히 흥미롭고, 변상일이 과거 음주운전 사고로 딸과 아내를 잃었는데, 음주운전 가해자 장봉호가 집행유예로 풀려났던 탓에 장봉호와 법에 복수하려고 결심했다는 서사도 설득력 있습니다.

하지만 초반 변상일의 범행 과정을 1인칭의 단순 강도 살인 사건처럼 묘사한건 반칙입니다. 독자는 변상일이 진범이 아니라고 오해하게 되니까요. 전개에 필요했던 부분도 아니니 빼야 합니다. 마지막 변상일의 자살도 좋은 마무리는 아니었고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흥미로운 내용을 잘 풀어냈지만, 불필요한 군더더기가 아쉽습니다.

당신의 천국

국회의원 최명환에게 상담 차 장애가 있는 박성혜라는 젊은 여성이 찾아왔다. 그녀는 명환에게 사람을 죽였다는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내용의 거의 대부분은 막장 드라마를 쓰다가 시민단체로 고발당하고 취조당한 끝에 자살 시도로 몸을 망쳤다는 박성혜의 1인칭 고백입니다.

그러나 장황한 고백은 현실적이지도 않고, 설득력도 낮고 시시합니다. 박성혜가 최명환에게 살의를 품은 이유도 별로 와 닿지 않고요. 무슨 논리인지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최명환을 살해하는 방법도 생수통에 독을 풀었다는 것인데, 한쪽 다리가 불편한 여자가 생수통에 어떻게 약을 풀었는지, 청산가리는 어디서 구했는지에 대한 설명도 없습니다.

그리고 묘사도 문제입니다. 28살 여성의 한 서린 독백으로는 도저히 보이지 않았습니다.

유일하게 건질 만한 점이라면 박성혜가 ‘신시아’라는 필명으로 썼다는 막장 드라마의 내용뿐인 막장 범죄물입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완전범죄

석지연은 동거하던 직원 방미래 과실치사 혐의로 조사를 받았다. 사인은 의심할 바 없는 뇌출혈이었고, 방미래가 술에 취한 줄 알아 방치했다는 변명은 설득력 있어 보였다.

의사 출신 김 검사는 피해자가 거액의 질병 사망 보험에 가입했다는 점을 근거로 부작위에 의한 살인으로 기소하는데...

과실치사로밖에 보이지 않는 완전범죄가 등장하는 본격 추리물이자, 법정에서의 공방이 벌어지는 법정물 단편입니다.
작 중, 김 검사가 풀어야 하는 수수께끼는 아래와 같습니다.

  1. 동기. 단지 직원 방미래에게 숙식을 제공할 뿐인 사장 석지연이 그녀를 살해할 이유는 무엇일까요? 마음에 들지 않으면 내보내면 그만입니다.
  2. 범행 방법. 마침 그 시간에 뇌출혈이 일어날 것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알았을까요?

김 검사는 첫 번째는 거액의 보험으로, 두 번째는 평소 피해자에게 뇌출혈 전조 증상이 있다는 점을 눈치챈 범인이 보험 가입을 유도했고, 뇌출혈이 일어났을 때 방치했다는 답을 내놓습니다. 그리고 방미래의 연인 류소이의 증언 등을 통해 법정에서 전조 증상은 2개월 전 부터 있었다는게 밝혀지고요.

이러한 본격 추리적인 재미에 더해 법적인 딜레마 부분도 무척 흥미롭습니다. 의사 출신인 김 검사는 방미래의 의료 기록을 보고 그녀가 뇌출혈을 일으켰을 때 거의 즉사했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이는 석지연이 방미래를 방치했던건 방미래의 죽음과 인과관계가 없는 행동이기 때문에, 그녀를 살인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의미이지요. 

이렇게 본격물적인 요소와 법의 논리적 허점을 파고드는 딜레마는 정말 괜찮습니다.
그러나 황 판사가 의사인 아내를 통해 방미래의 사인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동성애에 대한 극심한 혐오로 이를 숨긴 채 사형 선고를 내렸다는 결말은 작품을 완전히 망쳐버립니다. 아쉽기만 하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애니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꾸려가던 동한은 금사원 박사의 연구에 피험자로 응모했다. 하룻밤에 한 사람의 한 평생에 대한 꿈을 꾸게 해 주는 ‘영생’ 실험이었다.

설정은 정말 멋집니다. 한 평생의 꿈을 꾸게 하면 결국 그것이 영생에 가깝다는 발상은 정말 혹할 만 하니까요. 친구 수민에게 사 주었던 전기 충격기로 뇌에 삽입된 칩을 제거한다는 결말도 작가의 작품치고는 보기 드물게 깔끔합니다.

하지만 연구로 만들어진 ‘꿈’에 자아가 생겨 본체를 지배하려 한다는 전개는 뻔합니다. 설명도 충분하지 않아 와 닿지 않고요. 애니와의 사투 역시 박진감은 넘치지만, 세 번에 걸쳐 반복되는 탓에 지루하게 느껴집니다.

그럼에도 설정과 마무리가 군더더기 없이 정리되어 있다는 점은 마음에 듭니다. 다른 작품들도 이 정도로만 정리되었다면 훨씬 좋을텐데 말이지요. 별점은 2.5점입니다.

행복한 남자

꽃뱀에게 당한 한 남자의 약 반년에 걸친 일기 형식을 빌린 독백으로 내용도 뻔하지만, 그나마의 설득력조차 낮습니다. 문체가 30대 남자의 글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구식이고, 과장되고 낡은 표현이 많기 때문입니다. 죽음을 맞는 결말 역시 식상하며 전혀 현대적이지 못합니다.

낡은 설정을 낡게 풀어낸, 새로운 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탓에 2025년에 읽을 이유가 없는 망작입니다. 별점은 1점입니다.

2025/10/04

밀실살인게임 마니악스 - 우타노 쇼고 / 김은모 : 별점 1.5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멤버 중 한 명이 불가능 범죄를 저지르면, 나머지가 그 트릭을 추리한다는 설정의 단편 연작집입니다. 예전에 이 시리즈 두 번째 권을 읽고 리뷰를 남겼었는데, 13년 만에 후속권을 읽었네요, 

전작과 마찬가지로 반 두젠 교수를 흉내 낸 반도젠, 제이슨 마스크를 쓴 aXe, 다스베이더 마스크의 두광인, 늑대거북을 대신하는 쟌갸, 흐릿한 형체만 보이는 O44APD까지 다섯 명이 모여 게임을 진행합니다. 이 가운데 aXe, 두광인, 반도젠이 차례로 사건을 일으키고요.

그런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솔직히 많이 실망스럽습니다. 멤버들의 추리 대결을 위한 퀴즈를 만들어내려고 억지로 짜낸 트릭들이 대부분인 탓입니다. 때문에 실제로 가능할 만한 건 거의 없습니다. 도어 로커가 걸린 완전 밀실에서 피해자가 뒤통수를 맞고 죽었는데, aXe에게는 사건 당시 완벽한 알리바이가 있었다는 첫 번째 사건 정도만 퍼즐적인 재미가 있었을 뿐입니다.
정답은 방 안에 둔 로봇을 원격으로 조종해 문을 잠그고, 피해자를 책 더미 위에 올려놓은 뒤 멀리서 전화를 걸어 억지로 깨워서 천장에 머리를 부딪히게 만든 것이었지요.

그런데 ‘와, 이런 아이디어도 있구나’ 싶은 정도이지 현실적으로는 성공 확률이 너무 낮습니다. 피해자가 죽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니까요. 범인조차도 운이 좋아서 성공했다고 말합니다. 게다가 피해자가 누군지는 상관없이 아무에게나 시도할 생각이었다는 점에서 추리적으로는 빵점에 가깝습니다. 동기가 없어져 버리니까요. 무차별 살인과 다를게 없어요.

두광인이 저지른 사건부터는 아예 엉망입니다. 두광인은 자신의 범행에 ‘투명 망토’를 썼다고 주장하거든요. 이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의 진짜 트릭은 끝내 공개되지도 않고요. 트릭을 끝까지 숨긴 것보다 더 나쁜 추리 소설이 있을까요? 

반도젠이 벌인 마지막 사건에서는 이 모든 게 반도젠이 짜낸 연극이었다는 반전이 등장합니다. 다른 참가자들은 모두 가짜였고, 반도젠이 각본을 짜서 연기하게 했다는 것이지요. 중간중간 단서가 있긴 했습니다. 예를 들어 aXe가 차를 몰던 장면에서 반도젠과 두광인이 동시에 없었다든가, 가끔 캐릭터들이 다른 말투를 보였다든가 하는 부분들입니다. 하지만  현실성 부족한 억지 반전이라는 생각밖에는 안 듭니다. 목적도 불분명하고, 동기도 별다른게 없는 탓입니다. 유명해진 밀실살인게임을 따라했다는게 전부거든요. 뭔가 의미가 있음직한 마지막 글을 남기긴 했지만 뻘소리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트릭 퍼즐 게임만 남기고 추리 소설의 다른 재미는 거의 내다버린 수준이니 좋은 점수를 줄 수 없네요. 그나마의 트릭도 완전치가 않고요.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2025/07/05

미치도록 잡고 싶다 - 정락인 : 별점 3점

지금도 해결되지 않은 미제 사건들을 다룬 논픽션입니다. 범죄 전문 칼럼니스트로 잘 알려진 저자는 이 책에서 다양한 미제 사건들을 다시 들여다보며, 사건의 흐름은 물론 왜 지금까지 범인을 잡지 못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이유들을 조목조목 짚어내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1991년에 발생한 "'그놈 목소리' 이형호 군 유괴 살인 사건"의 경우, 저자는 이 사건이 장기 미제가 된 가장 큰 원인을 초동 수사 실패로 지적하고 있습니다. 경찰은 사건 초기 세 번이나 범인을 체포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쳤거든요. 첫 번째는 범인이 돈을 전달하려 할 때 접근했던 수상한 남성을 놓친 것이고, 두 번째는 경찰이 다른 장소에 잠복하느라 범인이 돈을 챙겨 유유히 사라지게 만든 점, 세 번째는 범인이 은행에 돈을 찾으러 왔지만 현장에서 놓친 경우입니다. 오늘날 CCTV 등의 수사 인프라를 생각하면 아쉽습니다.

이 책의 또 다른 강점은 저자의 날카로운 분석과 논리적인 추리입니다. 앞서의 "그놈 목소리" 사건의 경우, 저자는 범인이 최소 세 명일 가능성이 높다고 추정합니다. 범인의 언행, 범행 방식, 통화 기록 등을 종합한 분석이 그 근거입니다. 또한 사건의 최신 수사 현황도 책에 충실히 담겨 있습니다. 이형호 군의 외가 친척인 이 모 씨의 성문이 범인과 완벽하게 일치했음에도 불구하고, 사건 당일 알리바이가 명확해 체포되지 않았다는 사실도 언급됩니다. 그런데 만약 범인이 여럿이라면, 알리바이의 의미가 상대적으로 희석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도 생깁니다. 지금이라도 체포해서 수사할 수는 없는지 독자로서 궁금해지네요. 
"남양주 아파트 밀실 살인사건"에서도 실제로 추리 소설의 소재로 활용될만한 추리가 선보입니다. 14층 피해자의 집까지 찾아가려면 엘리베이터와 계단을 이용해야 하는데, 엘리베이터 CCTV에 범인은 찍히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초인종을 누르면 마찬가지로 비디오폰에 촬영되고요. 그러나 두 카메라 모두에 범인이 찍히지 않았고, 아파트 문을 억지로 열지 않았으며, 범인이 화장실까지 이용했다는 점에서 범인은 피해자와 친분이 있는 아파트 내부자로, 여성일 가능성이 높다는게 저자의 추리입니다. 현관 비디오폰 촬영은 노크를 해서 피했고요. 이 정도면 어느정도 범인을 특정할 수 있지 않을까요?

다만 책에서 다루는 사건들이 대부분 워낙 유명한 사건들이라, 이미 방송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 등에서 여러 차례 다뤄진 내용이 많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다가옵니다. '엽기토끼'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진 "신정동 연쇄 납치 살인 사건"이 대표적입니다. 평소 저자의 '사건 속으로'라는 이름의 칼럼을 꾸준히 읽어온 저에게는 책에 담긴 정보 중 상당 부분이 이미 접했던 것이었고요. 이런 점 때문에 새로운 정보나 미공개 기록에 대한 기대가 컸는데, 기대에 값하지는 못합니다.

그리고 몇몇 사건은 설명이 부족합니다. "홍해 토막 살인 사건"은 남편의 혐의가 짙은 정도가 아니라 명백해 보이는데도 왜 체포하지 못하는지 모르겠거든요. 그리고 "김해, 부산 부녀자 연쇄 실종 사건"은 유력한 용의자가 있지만 사체를 찾지 못해 살인 혐의를 적용하지 못했다는데, 최근에는 '시체없는 살인 사건'도 있었던 걸로 압니다. 최신 판례와 수사 기법을 적용하여 처벌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설명해주면 좋았을 겁니다.
미제 사건과 무관한, 저자의 기자로서의 활약과 소회를 담은 컬럼인 "정락인의 사건 추적"은 책의 성격과 많이 다른 탓에 차라리 추가되지 않는게 좋겠다 싶었고요.

결론적으로 별점은 3점입니다. 미제 사건 자체의 흥미와 저자의 분석력은 충분히 인상적이었지만, 이미 알려진 사건 중심의 구성과 정보의 신선도 부족이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그래도 "완전범죄"보다는 깊이있는 정보가 많고, "표창원의 사건 추적"보다는 추리와 분석 측면으로는 흥미로운 부분이 많아서 읽을 가치는 충분합니다. 

2025/03/22

유골에 대한 기이한 취향 - 엘리스 피터스 / 최인석 : 별점 2점

유골에 대한 기이한 취향 - 4점
엘리스 피터스 지음, 최인석 옮김/북하우스
이하 내용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캐드펠 수사는 수도원의 영예를 위해 성녀 위니프리드의 유골을 가져오려는 로버트 부수도원장의 웨일즈행 여정에 동참했다. 유골이 있다는 웨일즈 귀더린에 도착한 일행은 유골 이전을 반대하는 마을 지주 리샤르트와 갈등을 빚었다. 그래서 논의를 다음날 이어가기로 했는데, 리샤르트는 살해된 시체로 발견되었다. 유력한 용의자는 외지인 엥겔라드였다. 엥겔라드는 평소 리샤르트의 딸과 결혼 문제로 다툼을 벌였으며, 범행에 사용된 흉기도 그의 화살이었다...

영국 작가 앨리스 피터스(Ellis Peters)의 캐드펠 수사(Brother Cadfael) 시리즈 중 한 편입니다. 이 시리즈는 20여 년 전 번역 출간되었던 바 있는데, 이번에 북하우스에서 완역본으로 재출간되었습니다. 이전 번역 출간본 제목은 "성녀의 유골"이었지요. 시리즈 중 대표작입니다. 미국 추리 작가 협회(MWA)영국 추리 작가 협회(CWA)에서 각각 선정한 all time best 100에 포함되었을 정도로요.

시리즈 특징인 12세기 영국의 풍경과 분위기를 생생하게 재현한 묘사는 여전히 뛰어납니다. 시리즈의 다른 작품과 달리 웨일즈 귀더린 지방을 배경으로 하는데, 영국 본토와는 다른 웨일즈 특유의 분위기가 마을과 그곳 사람들의 세세한 묘사를 통해 손에 잡힐 듯 그려집니다.

성녀 위니프리드의 유골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로버트 부수도원장과 마을 지주 리샤르트의 갈등도 흥미로웠습니다. 세속적 욕망으로 변질된 종교가 아무리 권위를 갖추었다 해도, 순수한 신앙과 믿음 앞에서는 얼마나 무력한지를 잘 보여주거든요. 종교가 모든 것을 지배하던, 그리고 수도사가 주인공인 작품의 시대적 분위기와도 잘 어우러졌고요.

추리적인 부분에서도 몇몇 장면은 인상적이었습니다. 리샤르트의 사체 검시를 통해 사건 현장의 조작 여부를 밝혀내는 캐드펠의 추리가 대표적입니다. 나름 과학 수사인데, 12세기라는걸 감안해도 별로 이질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멋진 추리였습니다. 또한, 쇼네드가 범인 콜룸바누스 수사를 추궁하다가 실수로 그를 죽게 만든 뒤, 그를 성녀의 유골과 함께 ‘빛의 세계’로 보낸 것처럼 꾸미는 마지막 장면이 아주 기발했습니다. 수사가 사라진걸 기적으로 포장하는, 시대에 걸맞는 완전범죄였기 때문입니다. 종교적 신념을 세속적 이득을 위해 이용하려 한 수도원에 대한 통렬한 복수로도 해석될 수 있고요. 2년 뒤 모두가 행복해졌다는 에필로그도 만족스러웠어요.

그러나 all time best 100에 포함될 작품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뛰어난 '추리' 소설이라고 보기는 어려운 탓입니다. 가장 큰 문제는 용의자가 지나치게 제한적이라는 점입니다. 리샤르트를 살해할 동기를 가진 사람은 마을 사람들 중에는 없습니다. 다툼이 있었다는 외지인 엥겔라드가 범인일 경우, 그가 현장에 자기 화살을 그대로 남겨둔 것은 이해하기 어렵고요. 현장을 조작할 충분한 시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남는 용의자는 성녀의 유골을 슈루즈베리 수도원으로 옮기려 했던 캐드펠 일행뿐입니다. 리샤르트만 없다면 유골을 쉽게 옮길 수 있으니, 이는 확실한 동기가 됩니다. 그러나 사건 당시 캐드펠과 함께 있었던 수도사들은 범인일 수 없습니다. 결국 기도하러 나갔던 제롬 수사나 콜룸바누스 수사 중 한 명이 범인입니다. 당연히 야망 넘치는 콜룸바누스 수사가 범인일 가능성이 높고요. 

이 정도로 용의자가 좁혀지면, 사실 둘 중 누가 범인인지는 중요하지 않지요. 문제는 둘 중 누가 범인인지 밝히기 어렵다는 겁니다. 콜룸바누스 수사에게 처방했던 양귀비액이 줄어든 것(그가 제롬 수사에게 먹여 잠들게 만들었기 때문)은 증거가 될 수 없어요. 결국 쇼네드가 성녀로 변장한 뒤, 콜룸바누스를 자극하여 자백을 유도하는 식으로 이야기는 흘러갑니다. 이렇게 논리적 증거 없이 심리적 압박만으로 범인을 밝혀내는건, 이 작품을 정통 추리소설로 보기 어렵게 만듭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중세 영국의 역사적 분위기와 종교적 갈등을 효과적으로 담아낸 점에서는 높은 평가를 받을 만합니다. 하지만 추리소설로서의 완성도는 다소 아쉬워 감점합니다. 역사 미스터리보다는 팩션 드라마에 더 가까운 작품이에요. 정통 추리물을 선호하는 저로서는 앞으로 이 시리즈를 더 읽을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2025/01/31

사라지는 아들 - 안도 요시아키 / 오정화 : 별점 2점

사라지는 아들 - 4점
안도 요시아키 지음, 오정화 옮김/하빌리스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가미 호수 가족 여행 중 아들 케이스케가 전생의 기억을 떠올리고 자신이 살해당했다고 말했다. 아들과 최면 치료를 받으러 간 가즈오는, 케이스케가 33년 전 사가미 호수에서 살해당했던 '오이카와'라는걸 알게 되었다. 

알 수 없는 힘으로 33년 전, 사건 직전으로 돌아간 가즈오는 오이카와 사건이 일어나는걸 막았다. 그러나 다시 현재로 돌아온 뒤, 아들 케이스케가 태어나지도 않은 현실에 좌절했다. 오이카와가 죽지 않으면, 케이스케는 태어나지 못할 운명이었다...

타임 슬립, 즉 시간 여행과 환생이라는 소재를 결합하여, 한 가족 관계의 수수께끼와 33년 전 사건의 진상을 풀어나가는 작품. 주인공 가즈오가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33년 전의 사건을 풀어나가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장점이라면 재미있다는 점입니다. 세 번에 걸친 시간 여행을 통해 사쿠마가 아니라 센다가 진범이라는 진상이 드러나고, 후미요의 증언에 의해 센다가 처벌받은 뒤 통해 가족이 다시 회복되는 결말까지 잘 짜여져 있습니다. 

가즈오의 두 가지 딜레마도 흥미를 더해줍니다. 첫 번째는 아들 케이스케는 오이카와의 환생이고, 가즈오는 범인 사쿠마의 환생이라고 믿게 된 상태에서 '전생의 내가 죽인 사람이 환상한 뒤, 내가 환생한 그 사람의 아버지 노릇을 할 수 있을까?'라는 것이고, 두 번째는 '오이카와가 살해당하지만 그를 살리면 아들 케이스케가 태어나지 못하는데 그를 살릴 것인가?'라는 것이다. 두 번째 딜레마는 타임 패러독스로도 꽤 그럴듯한 부분이었어요.

시간 여행을 통해 과거를 바꾸고 현재로 돌아오면, 역사와 기억이 다시 쓰여져서 기억이 사라지고 만다는 설정도 괜찮았습니다.

또한, 33년 전 당대의 배경을 생생하게 재현한 점도 눈에 띕니다. 견직물 공장의 공정은 물론, 하치오지 특산물인 넥타이 직물을 둘러 싸고 벌어졌던, 미국과 일본의 섬유 협상 탓에 어려움에 처한 공장들 분위기가 생생합니다.
소니 트리니트론 텔레비젼, 아이돌 야마구치 모모에, 세이코의 로드매틱 시계 등 소품들도 잘 그려지고 있는데, 특히 자동차들에 대한 언급이 상세합니다. 사쿠마는 히노 자동차의 콘테사, 오이카와는 닛산 스카이라인(원래 GT-R을 가지고 있었다), 센다는 토요타 크라운을 탄다는 식으로요. 그런데 차종과 인물을 잘 배치한 것 같아서 재미있었어요. 약삭빠르고 치고 빠지는데 능한 사쿠마는 소형차이자 레이싱카로도 진화했던 콘테사가, 흑막이자 거물 센다에게는 중후한 토요타 크라운이 잘 어울리니까요. 오이카와가 연인 후미요의 빚을 갚기 위해 차를 GT-R에서 스카이라인으로 바꿨다는건 돈의 흐름을 알려주는 중요한 설정이기도 하지만, 차종만큼은 고집한 점에서 뭔가 남자의 자존심같은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오이카와는 정말 한 우물만 파는 우직한 남자구나! 싶은 생각도 들었고요. 

가즈오가 33년 전에는 통용되지 않는 지폐를 가지고 있고, 당시에는 존재하지 않는 기술과 상표로 만들어진 유니클로 점퍼와 나이키 신발로 오이카와에게 추궁을 받으며, 스마트 폰을 들켜 카메라로 얼버무리는 등 미래에서 와서 겪는 고초도 실감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설정이 정교하지 못한건 단점입니다. 가장 큰 문제는, 초반에 가즈오가 오이카와를 살해했다는 꿈 때문에, 가즈오는 사쿠마의 환생인 것처럼 끌고 가지만 알고보니 그렇지 않았다는 겁니다. 가즈오는 사쿠마는 물론, 오이카와 살해 사건과 전혀 관계가 없었다는게 진상이지요. 이는 앞서의 딜레마 - 나는 살인범의 환생이고, 아들은 내가 죽인 피해자의 환생 - 로 흥미를 주기 위해, 억지스럽게 설정을 집어 넣은 느낌입니다. 가즈오가 이런 꿈을 꾼 이유도 설명해 주지 않으며 대충 수습하는 전개 역시 영 별로였어요.

추리적으로도 별로입니다. 사쿠마가 진범이 아니고 센다가 악인이었다는건 꽤 이른 시간에 눈치챌 수 있을 뿐더러, 사쿠마와 센다의 관계, 센다의 범행 및 동기가 충분히 설득력 있게 묘사되지 않는 탓이 큽니다.
우선 센다가 사가미 호수에서 오이카와를 살해한건 완전 범죄를 노렸을 텐데, 그 자리에 후미요가 있었던간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어떤 식으로든 둘이서만 만났어야 했습니다.

또 센다가 오이카와를 살해할 정도로 후미요를 가지고 싶었다면, 범행 후 그녀와 결혼하거나 살림을 합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흥미와 재미를 위해서라면 후미요와 센다가 합친 미래가 훨씬 나았을 겁니다. 가즈오에게 센다가 '삼촌'이 아니라 '아버지'로 인식되어 있다면 극적인 효과가 배가되었을 테니까요.
같은 이유로 오이카와가 친부라는걸 가즈오가 진작에 눈치챘다면, 앞서 두 번째 딜레마가 더 강하게 와 닿았을겁니다. 이런 부분의 전개는 여러모로 아쉽네요.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입니다. 흔해빠진 시간 여행물이지만, 흥미로운 소재들을 잘 엮어서 소소한 재미를 주기는 합니다. 그러나 핵심 설정 곳곳이 설명이 부족하고 오류가 많아서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듭니다.

2024/08/16

스타일스 저택의 괴사건 - 애거사 크리스티 / 김남주 : 별점 2점

스타일스 저택의 괴사건 - 4점
애거사 크리스티 지음, 김남주 옮김/황금가지
<<아래 리뷰에는 진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헤이스팅스는 전선에서 부상을 입고 휴가를 얻은 뒤, 오랜 친구 존 캐번디시의 초대로 스타일스 저택에 머물게 되었다. 가족의 돈주머니를 틀어쥐고 있는 존의 어머니는 젊은 앨프리드 잉글소프와 갓 재혼한 상태로, 앨프리드는 존과 로렌스 형제 및 다른 가족들의 미움의 대상이었다. 그리고 얼마 뒤, 존의 어머니 잉글소프 부인이 밀실에서 스트리크닌 중독으로 사망했다. 헤이스팅스는 마침 그곳에 머물던 옛 지인이자 뛰어난 탐정 푸아로에게 사건 해결에 도움을 줄 것은 요청했고, 평소 잉글소프 부인에게 도움을 받던 푸아로는 흔쾌히 승락하여 사건에 뛰어들었다. 처음에는 앨프리드 잉글소프의 범행이 명백해 보였지만, 그는 알리바이를 증명하며 혐의를 벗었고 오히려 존이 체포되어 재판을 받게 되었다. 하지만 푸아로는 결정적 증거를 찾아내어 진범을 밝히고 사건을 해결한다.

"가장 간단한 설명이 언제나 사실에 가장 가까운 법이지."
"모든 살인범은 누군가의 오랜 친구일세. 감정과 이성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네."

기념비적인 아가사 크리스티 여사의 데뷰작. 놀랍게도 저는 이 작품을 처음 읽어봅니다. 대표작으로 꼽히지도 않고, 푸아로도 별로 좋아하는 탐정이 아닌 탓입니다.

데뷰작이지만 거장의 편린은 엿보입니다. 잉글소프 부인의 '급작스러운 유언장 변경'과 '말다툼과 고민'이라는 상황의 시간차를 통해, '더운 날씨에도 방 난로에 불을 피운 이유'는 '방금 만든 유언장을 태우기 위해서'였다는걸 밝혀내는 추리가 특히 백미입니다. 고작 30분 동안 심경의 변화를 일으킨 이유는, 우표를 찾다가 남편의 비밀을 알아챘기 때문이며, 이 편지 때문에 메리 캐번디시 부인과 신시아의 수사한 행동이 연쇄적으로 일어났다는 설명도 합리적입니다. 추리를 위한 모든 보는 독자들에게도 공정하게 제공됩니다. 물론 독자들이 알아채기 어렵도록 잘 숨기는 솜씨, 그리고 이야기를 진해하며 다양한 인물들에게 수상한 분위기를 조성하며 이야기를 끌고가는 솜씨도 탁월합니다.
누가 보아도 수상한 앨프리드 잉글소프가 체포되기 직전까지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은 이유에 대한 진상도 시대를 앞서간 측면이 있습니다. 푸아로는 앨프리드 잉글소프가 마을 약국에서 자기 이름으로 서명을 하여 스트리크닌을 샀고, 아내와 격렬한 말다툼을 한 날 아내를 죽일 정도로 멍청한 바보가 아니라며 그의 체포를 막습니다. 하지만 앨프리드 잉글소프는 체포되어 기소되는걸 노리고 있었습니다. 기소되면 알리바이를 증명할 생각으로요. 왜냐하면 한 번 기소되었다가 풀려난 인물은 똑같은 범죄로 기소될 수 없다는 '일사부재리' 원칙을 이용하여 영원한 안전망을 구축할 생각이었거든요. 이야기 하나는 뚝딱 만들 수 있을 정도로 괜찮았던 아이디어입니다.
잉글소프 부인을 극도로 걱정하는, 진짜 친구였던것 같은 하워드 부인과 잉글소프가 내연의 관계를 맺은 공범이었다는 진상도 놀라왔습니다. 특히 이 캐릭터 구성은 여사의 대표작이기도 한 "나일강의 죽음"을 떠오르게 했습니다. 자기 애인을 빼앗아 결혼한 친구를 원망하는 듯 했지만, 알고보니 애인과 공범으로 친구를 죽이고 유산을 독차지하려고 했다는게 똑같거든요. 다만 남들이 바라본 원망의 대상이 결혼한 친구이냐, 그 남편이냐의 차이일 뿐이죠.

그러나 데뷰작답게 부실한 부분도 많습니다. 예를 들어, 잉글소프 부인이 치사량의 스트리크닌을 먹게 된 건, 스트리크닌이 들어있는 강장제를 먹던 습관 때문이었습니다. 이를 알고 있던 범인들은 강장제에 브룸화물을 넣어 스트리크닌이 침전되게 만들었지요. 그래서 마지막에 치사량 - 한 병 전체 분량- 을 한 번에 복용하게 된 겁니다. 이 트릭 자체는 기발한데 문제는 독자들이 이를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점입니다. 
수면제를 복용할 경우, 스트리크닌의 효과가 지연된다는 것 역시 독자들에게 제대로 정보가 제공되지 못합니다. 때문에 독자들은 다른 방법 - 캡슐을 썼다던가 - 을 고민할 수 밖에 없어요. 
결정적 증거인 잉글소프의 편지도 억지스럽습니다. 계획이 어긋나서 쓴 편지를 잉글소프 부인이 갑자기 보게 되었고, 그 편지를 잉글소프가 어떻게든 손에 넣으려고 했던 과정도 억지지만, 기껏 찾은 편지를 바로 없애버리지 않고 점화용 심지로 만들어 숨겼다는건 설득력이 많이 떨어집니다. 몸수색이 두려워서 그렇게 했다고 하는데, 영장도 없이 아무나 몸수색을 한다는게 말이 되는 시대였던걸까요?

"완전공략"에서는 '본격 추리소설'의 원형인 획기적인 작품이라고 합니다. '추리를 만들어내는 과정 자체가 스토리인 소설'이라면서요.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는 역사적인 가치일 뿐, 지금 시점에서는 빛나는 점을 찾기는 어렵습니다. 여사의 대표작이라고 하기는 무리에요. 제 별점은 2점입니다.

2024/08/10

열린 어둠 - 렌조 미키히코 / 양윤옥 : 별점 2.5점

열린 어둠 - 6점
렌조 미키히코 저자, 양윤옥 역자/모모

"회귀천 정사"로 유명한 렌조 미키히코의 단편집. 원제는 "夜よ鼠たちのために (밤이여, 쥐들을 위해)". 모두 아홉 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1983년에 출간된 나름 고전(?)으로 일본에서도 꽤 오래 절판 상태였었는데, "이 미스터리가 굉장해" 2014년 판에서 '복각(재출간) 희망! 환상의 명작 랭킹'에서 1위를 차지한 덕분에 2014년에 복간된 이력이 있습니다. 아야츠지 유키토가 아래와 같이 극찬하는 인터뷰와 글을 남겼을 정도로 좋아했던 작품이기도 합니다.

  • 미스터리의 재미 중 가장 큰 것은 무엇인가 하면, 역시 마지막의 반전, 결말의 의외성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단편에서 그걸 내는 것은 정말 어렵습니다. 그런데, 이 단편집은 모든 작품이 놀라운 반전 구조를 그립니다. 생각할 수 있는 한, 최고의 전개를 실현한 작품들입니다. 마치 네거티브 필름이 포지티브로 바뀌는 것처럼, 결말에서 흑백이 뒤바뀝니다. 모든 작품에서 완전히 속아버릴 수 밖에 없어요. 전후 미스터리 단편집 중에서, 저는 이 책이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인상 깊은 것은 표제작입니다. 미스터리라는 성격상, 스토리를 말하는 것은 스포일러가 되므로 삼가겠습니다만, 제가 만약 단편을 쓴다면 이렇게 쓰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an・an」 1990년 11월 23일호, 아야츠지 유키토 「나의, 한 권. 멋진 반전의 구조. 전후 최고의 미스터리 단편집」에서)
  • 아야츠지: 렌조 작품은, 일반적으로는 나오키상 수상작인 연애소설 『연문』이 유명합니다만, 충격적이었던 것은 역시 먼저, 『회귀천 정사』, 『은밀한 상복』 등의 초기 단편집입니다. 지금은 고분사 문고로 읽을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절대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밤이여, 쥐들을 위해』입니다. 지금은 구하기 어려운 상태입니다. 처음에는 실업지일본사에서 신서판으로 나왔고, 신초문고와 하루키 문고로 차례로 옮겨졌는데, 현재는 절판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고 합니다. 일본 서술 트릭 계열 단편집의 최고봉인데......아깝네요. (「작가의 독서도 제150회: 아야츠지 유키토」에서)

읽어보니 이 정도 극찬을 받을만한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정도 호평은 이해가 됩니다. 서정성과 트릭이 잘 결합되어 있던 작가 최전성기 시절("회귀천 정사" 시절)답게, 추리적으로 굉장히 풍성하기 때문입니다. 트릭이 사용된 정통 본격 추리물에서 유괴극, 복수극, 서술 트릭 반전극, 느와르 등 수록작의 장르도 다양합니다. 과하게 느껴졌던 작가의 묘사도 다른 후기작에 비하면 절제되어 있어서 부담이 덜하고요.
모든 수록작이 다 괜찮은건 아니지만, 더운 여름, 한 번 읽어볼만하다 생각됩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스포일러가 가득하다는 점, 읽으시기 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두 개의 얼굴"
화가 마사키 유스케는 아내 게이코가 신주쿠 호텔에서 살해당했다는 경찰의 연락을 받았다. 그러나 그녀는 자택 침실에서 유스케가 살해해 뒷마당에 파묻었다. 호텔 사건의 여자가 게이코라면, 유스케가 집에서 죽인 여자는 누구인가? 돌이켜 생각해보니, 유스케는 죽인 여자의 얼굴을 그날 제대로 본 적이 없었다. 유스케는 호텔 사건에는 알리바이가 있었기 때문에, 호텔에서 발견된 여자를 게이코로 만들어 버리자고 마음먹었다...

진상은 유스케의 범행을 목격한 동생 신지가 자신을 협박하던 꽃뱀 여자를 함께 처치해 버렸던 겁니다. 마침 몸매가 비슷해서 속일 수 있었지요. 이 때 집 안에 전화가 두 대 있는 것을 이용해서 '순간 이동' 트릭을 선보입니다. 전화가 걸려와 안부를 물으면 당연히 외부에서 전화를 했을거라 생각하지만, 사실 같은 집 안에 있었다는 것이지요. 간단하면서도 현실적이라 마음에 들었습니다.유스케가 살해한 아내의 사체가 이동한 이유도 잘 설명되고 있으며, 사건에 대한 유스케의 심리묘사도 독자의 흥미를 더해주는 요소입니다. 서스펜스가 제법이었어요.
하지만 단편이라서 설명이 부족하며, 작위적으로 전개한 부분은 눈에 거슬립니다. 우선 신지가 사건과 관련이 있다는건 너무 뻔했습니다. 신지를 협박하던 꽃뱀 여자가 유스케 집까지 찾아와 지문을 남긴건 억지스러웠고요, 마지막 신지의 장난도 이유를 알기 어럽습니다. 이야기가 전체적으로 "7인 1역"과 유사하다는 것도 감점 요소입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과거에서 온 목소리"
'나'는 금수저 출신으로 형사일을 견디다 못해 2년만에 그만두었다. 그리고 1년이 지난 뒤, 그만 둔 이유에 대해 강 선배에게 편지를 썼다.
1년 전, 전일항공 부사장 야마후지 다케히코의 외아들 가즈히코 유괴 사건이 일어났다. 범인은 공중전화로 전화를 걸어 부인을 전화기에 붙잡아 놓은 상태에서, 담을 뛰어넘어 아이를 유괴했다. 경찰은 몸값을 확보하고 도주하던 범인을 미행하다 놓치고 말았다. 다행히 몸값을 받은 범인은 아이를 무사히 풀어주었고, 이후 공개 수사로 전환한 경찰에게 정체가 드러난 범인 오카다는 자동차 사고로 죽은 시체로 발견되었다.
그러나 유괴범에게 동정심을 느낀 '나'는 당시 일부러 범인이 도주하도록 수사를 방해했다. 유괴범 중 한 명이 강 선배라는걸 알아챘기 때문이었다...


전화를 건 범인이 '내일'이 금요일인지 토요일인지 정하지 못했던 상황을 통해, 범인이 두 명이며 둘 사이 커뮤니케이션이 원할하지 않다는걸 추리해 내는건 아주 좋았습니다. 두 명 중 한 명이 아이를 유괴당한 탓에 어쩔 수 없이 부잣집 아들을 유괴해 몸값을 받아내려 했다는 발상도 재미있었어요. 실행범은 자기 아이를 유괴한 범인의 요구사항을 자기가 유괴한 사건 피해자에게 그대로 전달만하면 된다는 아이디어인데, 정말 획기적인 아이디어라 생각됩니다. 
강 선배가 오카다를 살해했을거라는 결말도 합리적입니다. 오카다가 체포되면 진상이 드러날 수 있으니, 경찰이 체포하기 전 정보를 흘려 유인한 뒤 살해했다는건 말이 되니까요.

그러나 유괴가 이렇게 겹쳐서 강 선배가 피해자이자 범인이 된다는건 다소 억지스럽다는 문제는 있습니다. '나'가 강 선배의 눈에서 이십 년 전 범인 눈빛을 떠올린 덕에 진상을 깨달았다는 것도 마찬가지고요. '나'가 집 안에 있는 신이치가 사실은 유괴당한 가즈히코라는걸 눈치챈건 앞선 복선으로 설명되지만, 독자는 눈치채기 힘들다는 점에서 공정하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유괴 피해자가 몸값 마련을 위해 유괴범이 된다는 아이디어는 아주 좋았던만큼, 이를 확장한 장편으로 묵직하게 썼다면 "킹의 몸값"과는 또 다른 딜레마를 안겨다주는 좋은 작품이 될 수도 있었을것 같은데 아쉽네요. 그래도 아이디어만으로 별점 3.5점은 충분합니다.

"화석의 열쇠"
하반신 마비 소녀 지즈가 목이 졸려 죽을 뻔 했다. 피해자 집에는 아무도 들어갈 수 없었다. 창문은 모두 안에서 잠겨 있었고, 출입구는 현관문밖에 없는데 열쇠는 관리인 사와가 보관하고 있었다.

지즈가 엄마를 집에 들이기 위해 자물쇠 바꾸는 청년을 속여 헌 자물쇠를 달게 했고, 엄마와 아빠 모두 지즈가 부담되어 살해하려 했다는게 진상입니다.
이를 드러내기 위한 정보 제공은 공정합니다. 지즈가 자물쇠 바꾸는 청년에게 상황에 맞지 않는 초콜릿 부탁을 한 것, 관리인 사와가 엄청나게 청소를 열심히 한다는 등 상황에 대한 공유는 확실하니까요. '열쇠 화석'이라는 말도 단서로서는 좋았습니다. 사와가 이 모든걸 깨닫는 전개는 일상계스러워서 마음에 들었고요.

하지만 아무리 힘들어도 부모 둘이 동시에 딸을 살해할 생각을 한다는건 와 닿지 않았어요. 그리고, 그런 생각을 했다면 자기가 빠져나갈 생각을 할까요? 신파적인 결말도 별로였고요. 별점은 2점입니다.

"기묘한 의뢰"
신소에서 일하는 나에게 쓰치야 마사하루라는 의뢰인이 찾아왔다. 아내 동향 조사 의뢰를 위해서였다. 아내 사야코는 하릴없이 이곳 저곳에서 시간만 보냈다. 알고보니 그녀는 나의 미행을 이미 눈치채고 있었고, 나에게 오히려 남편 쓰치야의 행적 조사를 부탁했다. 알고보니 나를 이용해서 몰래 불륜 행각을 저지르기 위함이었다. 이 역시 쓰치야에게 들켜버렸고, 쓰치야는 자기 행적 조사를 거짓으로 전달하라고 했다. 전달하기 위한 쓰치야의 행적은 애인 유리의 맨션 주소와 연락처로 받으려 했는데, 그 뒤 유리가 살해되었다...

쓰치야는 유리의 다른 애인으로, '나'와 유리의 관계를 알고 유리를 살해했다는게 진상입니다. 조사를 맡긴건 유리와 나의 관계를 확실히 알아내기 위해서였고요.

나의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그리고 냉소적인 심리묘사가 대부분으로 추리적으로 딱히 눈에 뜨이는 부분은 없습니다. 오히려 이 묘사로 '나'의 별로인 모습만 드러나 작품에 몰입하기 힘들다는게 문제입니다. 쓰치야 부부 사이에서 왔다갔다하는 모습은 무능력했고, 유리의 죽음에 대해 아무런 책임을 느끼지 않는 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마지막에 자신이 쓰치야에게 농락당한 것에 불과하다는걸 알아 버렸지만, 그냥 그대로 끝나버리는 결말은 이게 뭔가 싶더군요. 이야기가 완결되었다는 느낌을 전혀 받지 못했어요. 제 별점은 1.5점입니다.

"밤이여, 쥐들을 위해"
어린 시절 불우했던 나는 교정을 받아 사회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아내를 잃은 뒤,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며 복수를 결심했다. 
병원 원장 요코즈미 다다오는 '나'의 협박 전화를 받고 서둘러 집을 나선 뒤 살해당했다. 경찰은 백만엔이라는 돈이 발견된 것으로 보아, '나'의 원한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고 추정했다. 이후 원장 사위이자 내과 부장 이시즈의 사체도 발견되었다.

'나'인 쓰무라의 아내는 불치병 뇌종양이었고, 병원의 과실로 죽은게 아닙니다. 그런데 왜 백만엔이라는 돈을 건네려고 했을까요? 이 수수께끼는 흥미롭습니다. 알고보니 이하라의 아내 후미요에 대한 오진을 숨기려고 원장과 내과 부장이 그녀가 백혈병에 걸리게 만들었다는게 진상입니다. 생각도 하지 못했네요. 쓰무라와 이하라의 정체가 독자가 알고 있던 것과 정 반대라는게 드러나는 반전도 좋았습니다. 잘 짜여진 서술 트릭물로, 독자를 완벽하게 속이는데 성공하고 있습니다. 

단 둘의 흉터는 너무 노골적으로 속이겠다!는 의도가 보여 좀 별로였고, 어린 시절 쥐를 죽였던 원한으로 살인까지 저지른다는건 비현실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이하라는 누군가에게 죄를 뒤집어 씌울 수 밖에 없었으니 억지스럽더라도 죽일 수 밖에 없는 동기를 만들 수 밖에 없었던 작가의 고충은 이해가 되지만, 억지는 억지에요. 그래도 심리 묘사가 탁월한 덕분에 생각보다는 잘 설명되는 편이라 다행입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이중생활"
마키코는 열 여섯살 많은 슈헤이에게 젊음을 바쳤지만, 자신을 버리려하는 슈헤이에게 증오를 느꼈다.

정부인줄 알았던 마키코가 진짜 아내이고, 반대로 나이많은 시즈코가 정부이자 불륜녀라는 반전이 인상적입니다. 이 반전을 결말 부분까지 잘 숨기면서 전개한다는 점에서는 서술 트릭물로 보아도 무방합니다. 
마키코가 남편 슈헤이와 불륜녀 시즈코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살해당한 것처럼 자살한다는 반전, 그리고 이를 위해 데쓰오와 시즈코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는 방법도 잘 짜여져 있어서 범죄물로도 우수한 수준이고요.

그런데 마키코가 정부 데쓰오를 범행에 끌어들인건 억지스럽습니다. 불륜을 저지르다가 살해당한 모양새이니, 마지막 순간치고는 영 폼이 나지 않으니까요. 데쓰오 없이도 현장 상황 - 슈헤이가 받아온 수면제가 들어있는, 슈헤이가 즐겨 마시던 와인 - 과 스토브 지문으로 슈헤이에게 누명을 씌우는건 가능했을것 같거든요. 시즈코마저 옭아매기 위해 데쓰오를 이용했다고보면 말은 돼지만, 이 역시 나이든 시즈코와 데쓰오가 불륜 관계라는 전제조건이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작위적입니다. 조건이 갖춰진 뒤에야 실행 가능한 계획이라는 점에서 좋은 점수를 주기도 힘들고요. 

단편이 아니라 장편이었다면 좀 더 설득력있는 인간 관계를 쌓아올리는게 가능했다는 측면에서, 조금 긴 호흡으로 풀어나가는게 좋았을 것 같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대역"
인기 배우 하세쿠라 슌은 아내 료코와의 이혼 조건을 만족하기 위해 자신과 꼭 닮은 남자 다카쓰 신야를 찾아냈다. 그러나 료코가 슌의 불륜을 알고 있었으며, 이혼할 생각도 없다는걸 알게된 뒤 료코를 죽이기로 결심했다. 다카쓰 신야를 이용한 알리바이를 만들어서였다. 오사카에서 다카쓰를 자신인 척 연기시킨 뒤, 자신은 변장하고 도쿄로 가서 살해하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료코는 없었고, 오사카로 돌아간 뒤 자신의 방에 죽어있는 기누에를 발견했다. 이 모든건 료코와 다카쓰의 음모였었다.


하세쿠라 슌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는 완전 범죄물로는 볼만합니다. 도무지 빠져나갈 방법이 없는 완벽한 계획이었습니다. 하세큐라 슌의 대타가 다카쓰 신야가 아니라, 료코와 기누에 입장에서는 그 반대였다는 반전도 인상적이었어요.
 
하지만 이야기의 현실성이 많이 떨어집니다. 애초에 이렇게 닮은 사람이 있고, 그 사람들 주위에 같은 여자들이 엮이게 된다는 것 부터가 말이 안되지요. 재미있는 아이디어를 떠올리기는 했는데, 말이 되는 이야기로 만드는 데에는 실패한 셈입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베이 시티에서 죽다"
동거녀와 믿었던 아우에게 배신당한 조직원이 출소 후, 둘이 함께 도망친 항구 도시로 찾아가 모두 죽여버린다는 느와르.. 묘사도 멋있고 배신의 진상 - 없던 죄를 뒤집어 쓴게 아니라 원래 내가 지은 죄였다는 - 도 그럴듯하기는 하지만, 딱히 흥미롭지는 않았습니다. 추리적인 맛은 거의 없고, 내용도 신선함이 떨어지는 탓입니다. 그냥 서정적인 '사나이' 이야기를 한 편 쓰고 싶어 쓴 느낌이랄까요. 별점은 2점입니다.

"열린 어둠"
불량 학생들만 다니는 사립 세이에이 고등학교 음악교사인 미즈키 마사는 '마더'라는 별명으로 학생들의 신임을 얻고 있었다. 어느날 퇴학당한 폭주족 블랙호크스 멤버 중 한 명인 노리코가 긴급한 도움 요청을 해 왔다. 리더 다카기가 살해당했다고 했다. 노리코와 함께 현장에 온 마사는 경찰에 신고하려 했지만, 노리코가 유력한 용의자라는걸 알고 한 시간만 더 고민해보기로 했다. 그리고 다카기의 죽음이 학교 체육 교사 아카자와 다케시 살해 사건과 관련이 있다는걸 알게 되었다. 아카자와는 동성애자였다.

불량 고등학생들 사이에서 벌어진 사건을, 학생과 얼마 나이 차이가 나지 않는 열혈 신입 교사가 해결한다는 내용으로 70년대부터 유행하기 시작했던 '청춘 미스터리'의 영향이 가득 느껴집니다. 동성애로 인한 삼각관계가 원인이라는 점은 발표 시기를 감안하면 신선한 편이고요. 요새 이런 설정이 유행이라는데, 나도 한 번 써볼까!라는 생각으로 쓴 듯한데 의외로 괜찮았습니다.

추리적으로도 나쁘지 않습니다. 다카기가 폐소 공포증이라는게 핵심 단서인데 - 아카자와 선생의 차는 비가 오는데도 창문이 열려있었다 -, 이는 여러가지 단서로 독자에게도 공유됩니다. 노리코가 아침에 다카기의 방에서 쫓겨난 건 창문을 닫으려고 해서, 다카기가 초고층 맨션에서 뛰쳐나온건 엘리베이터를 탈 수가 없어서, 다카기가 폭주족이 된 건 차를 타기 싫어서였다는 식으로요. 
미즈키 마사가 학생들 앞에서 추리쇼를 펼쳐 진상을 밝히는 전개도 정통 본격 추리물 스타일입니다. 

그러나 다카기가 스즈타에게 아카자와 살인 혐의를 뒤집어 씌우려고 현장을 조작했기에, 스즈타는 자신이 범인이 아니라는걸 증명하려고 다카기를 살해하고 노리코에게 혐의를 씌웠다는 동기는 설득력이 약합니다. 후더닛 물로는 괜찮았지만, 와이더닛 측면에서는 좋다고 하기 어렵네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2024/08/09

폭포의 밤 - 미치오 슈스케 / 김은모 : 별점 2.5점

폭포의 밤 - 6점
미치오 슈스케 지음, 김은모 옮김/청미래

<<아래 리뷰에는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미치오 슈스케의 연작 단편집. "절벽의 밤"에 이은, '안 된다' 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입니다. 수록작들은 독립적인 단편이지만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게 가장 큰 특징입니다. 제 1장 "묘진 폭포에서 소원을 빌어서는 안 된다"에서 벌어진 여고생 히리카 실종 사건은 마지막 제 4장 "소원 비는 목소리를 연결해서는 안 된다"와 곧바로 이어집니다. 4장에서 히리카의 사체가 발견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제 3장 "그 영상을 조사해서는 안 된다"의 진상이 밝혀집니다. 3장에서 지기는 자신을 학대하던 아들 다카시를 살해한 뒤, 사체를 요메가 숲에 묻은 것처럼 경찰을 속인 것으로 설명되었습니다. 사실은 자기 집 바닥에 사체를 숨겼지만요. 하지만 집 바닥에 사체를 묻으려다가 오히려 히리카의 사체를 발견했던겁니다. 다카시가 히리카를 살해하고 은닉했던 것이지요. 지기는 히리카의 사체를 요메가 숲에 암매장하였습니다. 다카시 사체를 요메가 숲에 묻은 척 했던 건 경찰을 속이려는게 아니라, 히리카의 사체를 찾게 만들어서 히리카 부모에게 진상을 알려주려던 마음이었고요. 

다만 2장 "머리 없는 남자를 구해서는 안 된다"는 독립적인 이야기에 가깝습니다. 1장에서 살아난 것처럼 보였던 모모카가 살해당했다는게 밝혀지기는 하지만, 그 목적보다는 2장의 주인공인 초등학생 신을 4장에서 활약시켜 경찰에게 히리카 사건 진상을 알게 하도록 만든 목적이 더 큽니다. 전개에 필수적인 징검다리 역할인 셈이지요.
 
이렇게 사건 중심으로 연결되어 있을 뿐 아니라, 미고오리 시와 묘진 폭포, 가쿠레이 산과 등산로, 무쿠로 다리, 고코 강, 요메가 숲 등 시의 주요 장소들을 무대로 사건이 일어나고, 묘진 폭포에 소원을 비는 행위가 진상으로 이어지며, 서로 다른 사건들이지만 수사를 맡은건 모두 구마지마 형사라는 식으로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절벽의 밤"과 같은 시리즈답게 '사진'을 이용하여 진상을 드러내는 장치도 삽입되어 있으며, 추리적으로도 괜찮았습니다. 1장에서는 시점과 상황을 속이는 서술 트릭이 사용되었으며, 3장은 일부러 시간 제한이 있는 블랙박스 메모리를 남기는 아이디어가 괜찮았어요. 4장은 다카시의 폭주와 히리카 실종 시점의 일치, 히리카 핸드폰이 잠깐 켜졌던 이유 등에 대한 진상이 설득력있게 밝혀지고요.

각 단편별로 조금 더 내용과 의견을 덧붙이자면,
1장은 제일 처집니다. 모모카가 언니 히리카의 행방을 우연히 발견한 부계정 SNS를 통해 추리해내는건 볼만 합니다만 그 외 전개는 다소 식상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산장 관리인 오쓰키가 냉동고 안에 무언가를 숨기고 있고, 오쓰키 어머니는 실종된게 아니라 아버지가 살해했다는건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나서 흥미를 반감시킵니다. 그렇다면 이를 눈치챈 모모카에게 위험이 닥치는 서스펜스라도 잘 표현했어야 하는데 이 역시 좋지 못합니다. 오쓰키 캐릭터를 잘 표현하지 못한 탓입니다. 아버지가 죽여 은닉한 모친의 사체를 모모카가 발견했다고 그녀를 바로 살해할만한 인물로 보이지는 않았어요. 그 외 단서들 - 오쓰키가 만든 눈인형, 모모카가 입고있던 옷 사진 - 도 평면적입니다. 무엇보다도 사진이 없으면 진상을 완전히 알아내기 어렵다는 단점이 큽니다. "절벽의 밤"에서도 마음에 들지 않았었던, 장난같이 여겨지는 장치라 영 마음에 들지 않네요. 오쓰키를 뻔하더라도 전형적인 단순한 '산장 살인마'로 그리고, 사진의 역할은 배제하는게 서스펜스 스릴러로는 더 나은 선택이었습니다. 제 별점은 2점입니다.

2장은 신의 삼촌이 은둔형 외톨이가 된게 어린 시절 물놀이 사고에서 아버지를 죽게 만든 트라우마라는게 드러나는 일상계에 가까운 소품입니다. 다소 무서운 진상 - 삼촌이 자살하고 말았다는 - 을 사진으로 보여주어서 단점이라 할 수 있는데, 앞서 말했듯 주요 사건과는 관계가 없어서 다행입니다. 사진을 빼고 이야기를 마무리했더라면 더 완성도 높은 단편이 되었을 것 같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3장은 지기 씨가 아들을 살해했다며 자수했지만 사체가 발견되지 않아 풀려나고, 이는 지기 씨 부부가 의도했던(?) 완전 범죄였다는 범죄물입니다. 경찰과 범죄자의 두뇌 배틀물이라고도 할 수 있어요. 지기 씨가 '딱 한 가지 했다는 거짓말'을 형사 구마지마가 알아채고, 이를 통해 다카시의 사체를 찾아내려 하지만 이도 지기 씨의 계획이었다는 전개이니까요. 이야기는 흥미롭고 결말도 깔끔합니다. 다른 작품과의 연결없이 단독으로 읽어도 기승전결이 완벽하다는 점도 마음에 들고요. 다만 딱 한 가지, 정황 증거와 자백까지 있는데 시체가 없다고 용의자를 풀어주는건 가능해 보이지 않았다는 점에서 감점합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4장은 1장의 히리카 사건, 3장의 다카시 사건이 한데 이어져 대단원에 이르는 내용입니다. 어떻게 연결되는지는 앞에서 설명드린 그대로입니다. 특별한 추리없이 지기 씨의 아내 지에코의 회상으로만 진상이 밝혀져서, 흥미롭지만 추리적인 맛과 정교함이 부족한게 아쉬웠습니다. 신이 지에코를 구한 뒤, 히리카 사건의 핵심 열쇠가 되는 핸드폰을 가져다 주는 결말은 앞서의 복선 - 빌린 물건은 제대로 된 상태로 돌려줘야 한다 - 로 설명되는 등 정교한 느낌을 주기 위해 노력한건 좋아요. 하지만 신과 지에코가 엮이는 과정은 작위적이고, 목소리를 잃은 신이 할머니를 구하기 위해 다시 말문이 트였다는건 유치하기까지 합니다. 별로 고민한 느낌을 주지 못해요. 이런 무리수를 두는 것 보다는 구마지마 형사의 추리와 활약으로 해결하는게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등장인물들이 폭포에 빈 소원은 모두 이루어졌지만 그 대신 모모카, 히리카 자매가 모두 죽었다는 결말도 안타까왔고요. 별점은 2점입니다.

이렇게 해서 전체적인 평균 별점은 2.5점입니다. 평이하지만 "절벽의 밤"보다는 좋았어요. "절벽의 밤"은 '사진'을 사용한 실험이 지나쳤는데, 여기서는 이야기 자체에 중심을 두고 있는 덕분입니다. 시리즈 1작은 평균 이하, 2작은 평균 수준은 돼니 3작은 기대해보아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2024/05/18

무너진 세상에서 - 데니스 루헤인 / 조영학 : 별점 3점

무너진 세상에서 - 6점
데니스 루헤인 지음, 조영학 옮김/황금가지

"리브 바이 나이트"로부터 10여년 뒤, 조는 탬파 일대에서 성공한 사업가로 이름을 날렸지만 여전히 조직 최상위 멤버였다. 그런데 누군가 그의 목숨을 노리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살아남기 위해 전전긍긍했다. 그러나 조를 노렸던건 거짓말로 모든건 조직을 송두리째 집어 삼키려고 했던 부하 리코의 음모였다. 리코는 소문을 통해 조를 조직 거점에서 떼어놓고, 보스 디온을 습격해 죽이려했다. 마지막 순간에 음모를 깨달은 조는 보스 디온을 구해내고, 위원회를 통해 리코마저도 없애버렸지만 디온이 조직원들을 FBI에 팔아먹고 있었던 사실을 알아채서 디온을 죽일 수 밖에 없었고, 결국 그 자신도 위원회에 의해 살해당하고 말았다....

"리브 바이 나이트"의 마지막 장면으로부터 10여년 뒤, 표면적으로는 합법적인 사업가로 보이지만 조직의 위원회에서 활동하는 거물이 된 조가 누군가로부터 생명의 위협을 받는다는걸 알게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그리고 약 한 달(?) 남짓 기간 동안 조는 자신을 죽이려는 음모를 파헤치며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치다가 결국 죽고 마는데, 깔끔하고 명확한 서사 덕분에 빚어진 장점은 명확합니다. 누가 조의 목숨을 노리는지? 조직의 배신자는 누구인지?의 수수께끼를 서로 죽고 죽이는 조직의 암투와 함께 긴장감있으면서도 '빠른(!)' 속도로 펼쳐주기 때문입니다. 암흑가 조직원이 정점에서 신뢰따위는 없는 지옥 구렁텅이로 떨어지면서 믿었던 친구에 자기 생명까지 모두 잃는 결말도 일품이었고요. 깡패가 성공하는 이야기는 필요없습니다. 조폭을 미화하는 작품들은 모두 불에 태워버려야 마땅해요!
또 "리브 바이 나이트"보다는 조의 두뇌를 이용한 활약이 많은 것도 장점이에요. 그 중에서도 '두뇌'를 써서 리코를 옭아매는건 무릎을 칠 만 했습니다. 죽어가는 디온과 함께 탈출하려면 한 시가 급한 상황에서 '위조 전문가'를 수배했는데, 그건 리코의 장부를 위조하기 위해서였던 것이었지요. 위원회와의 담판에서 위조 장부를 이용하여 리코를 없애는데 성공하고요. 과연 '두뇌파'라 부를만한 멋진 계획이었습니다.

등장인물들의 서사를 별도로 쌓아올리면서 이런저런 곁가지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도 많지는 않지만 볼 만 했습니다. 조직의 의사 네드의 아내와 장인 관련 이야기가 대표적으로 그냥 이거 하나만으로도 단편 한 편은 뚝딱 나오지 않을까 싶더라고요. 흑인 지역의 보수 먼투스 딕스에 관련된 이야기들도 좋았고요. 프레디 패거리로부터 살아남는 장면도 멋드러지지만, 남자 대 남자로서 조와 면담을 나눈 뒤 이왕이면 개죽음을 당하기 전에 경쟁자를 쓸어버리려고 완전무장한채 출격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사나이' 기운을 뿜어내거든요. 이런 멋진 사나이가 배신자 리코따위에게 폭탄으로 죽어버린다는 것, 그리고 그 설명이 리코의 몇 마디에 그친다는게 너무나 아쉬울 정도로요. 먼투스 딕스가 주인공인 외전이 나와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리브 바이 나이트"와는 다르게, 이 책 한 권만으로 충분히 완결이 된다는 점도 분명한 장점입니다. 다만 "리브 바이 나이트"를 읽지 않고 이 작품만 읽어보라고 권해 드리기 어렵긴 합니다. 디온과 조의 관계와 조가 성공한 이유, 작중 자주 언급되는 '학살의 밤' 등은 모두 "리브 바이 나이트"를 읽지 않으면 알기 어려운 부분이기 때문입니다.즉, 두 권을 합쳐서 읽어야 온전한 감상이 가능합니다. 그렇기에 이 한 권으로 완성된 작품이라고 보기는 어려워요.
아울러 워낙 짧은 기간 동안 벌어지는 이야기라서 "리브 바이 나이트"만큼의 드라마도 없다는 단점도 있고요.

그래도 단순명쾌한 범죄물로서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수작임에는 분명합니다. 제 별점은 3점입니다. "리브 바이 나이트"와 합쳐서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2024/03/12

여태까지 잘못 셌습니다. 정확하게는 1,212번째!

이전에 이런 글을 올렸었는데, 다시 확인해보니 잘못셌더군요. "브라운신부 전집"의 "의심", "비밀", "스캔들"처럼 분명 다른 책인데 한 번에 리뷰를 올려서 같은 책으로 카운트 한 것도 있고, 반대의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숫자를 다시 정리해 보았습니다. 긴 장편이 분권되어 있는건 한 권으로 치고, 같은 책을 두 번 읽은 경우는 출판사가 다르면 카운트를 했지만 아예 똑같은 책은 카운트하지 않았습니다. 
이 기준으로는 얼마전 올렸던 "10호실"은 오른쪽 카테고리 글에는 1,206번째 글이라고 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1,212번째 새롭게 읽은 책이 됩니다. 100번째부터 1,200번째까지 새로 읽고 리뷰를 올린 책들은 아래와 같고요.

100 : "브라질에서 온 소년들" (2004.10.07)
200 : "여류 조각가" (2005.09.05)
300 : "사신 치바" (2008.02.28)
400 : "명탐정 홈즈걸의 책장" (2009.11.25)
500 : "호수 살인자" (2011.02.19)
600 : "손 안의 작은 새" (2013.05.17)
700 : "살인을 부르는 수학 공식" (2015.03.02)
800 : "네버 고 백" (2017.02.17)
900 : "보호받지 못한 사람들" (2019.06.21)
1,000 : "완전 범죄 연구" (2020.11.15)
1,100 : "심야의 손님" (2022.06.25)
1,200 : "스파이와 배신자" (2024.02.24)

숫자를 바로잡은만큼, 앞으로는 카운트를 잘 해가면서 리뷰를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2024/02/16

61시간 - 리 차일드 / 박슬라 : 별점 2점

61시간 - 4점
리 차일드 지음, 박슬라 옮김/오픈하우스

<<아래 리뷰에는 진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갑작스러운 버스 사고로 사우스다코타의 한 시골 마을에 머무르게 된 잭 리처에게 마을 경찰 부서장 피터슨이 도움을 요청했다. 마약 거래 사건의 증인 재닛 솔터의 생명이 위험에 처했기 때문이었다. 잭은 군대 내 후임에게 전화하여 마약 거래를 하는 폭주족들이 머무는 옛 군사 시설의 용도를 알아내려고 노력하는 한편, 노부인 재닛의 경호를 맡아 분투하였다. 그러나 결국 피터슨과 재닛 모두 살해된 뒤에서야 리처는 범인이 누구인지를 깨달았다. 범인은 경찰서장 홀랜드였다.
리처는 홀랜드를 처단한 뒤, 사건의 흑막인 사악한 마약상 플라토마저 없애기 위해 옛 군사 시설에서 한 판 승부를 준비하는데.....


전직 엘리트 군인인 거한 잭 리처가 활약하는 리 차일드의 베스트셀러인 잭 리처 시리즈 14번째 작품. 500페이지가 넘는 장편입니다. 이번 설 연휴는 '잭 리처 week'로 정했기에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시골 마을에 있던 군사 시설에 2차 대전 때 지급되었던 환각제가 대량으로 보관되어 있었고, 시설의 원래 정체는 핵전쟁 이후 생존한 아이들을 수용하기 위한 고아원이었으며, 육군 시설이 아니라 공군 시설이라서 잘 닦인 활주로가 함께 있었다는 등의 스케일 크면서도 대담한 설정이 돋보입니다.
잭 리처가 제대로 된 추리를 선보이는 것도 이채로왔습니다. 그 중 하나는 자신의 후임인 110 부대장 아만다를 도와 후드 기지에서 탈주한 대위가 어디 있는지를 알아내는 것입니다. 너무 멀지 않으면서도 필요한 뉴스를 방송하는 곳, 그러면서도 경찰을 피해 대중교통으로 이동할 수 있는 곳으로 장소를 특정한 뒤 버스 터미널 옆 모텔에 머물고 있을거라고 추리하지요. 과장되기는 했어도 그럴듯했습니다.
피터슨 부서장을 살해한건 경찰이라는걸 곧바로 알아채고, 제닛 솔터마저 살해당한 뒤 범인이 홀랜드 서장임을 깨닫는 추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최초 사이렌이 울렸을 때 재닛 솔터의 집에 처음 나타난게 서장이었다는 등 서장이 앞서 범했던 실수들을 근거로 합리적으로 설명됩니다. 사실 주요 등장인물 중에서 범인이 될 만한 사람은 홀랜드 서장밖에는 남지 않았기 때문에 의외성은 없었지만요(범죄행위에 가담했던 인상을 준 마이애미 출신 경찰은 떡밥치고는 너무 노골적이었어요).

이런 추리와 함께 곁들여지는 살을 에일듯한 사우스다코타 주의 겨울 묘사도 대단했습니다. 재닛 솔터의 사체를 목격한 잭 리처의 얼굴 피부에서 핏방울이 떨어지는 묘사는 정말 인상적이었어요. 얼마나 추워야 공기중 미세한 얼음 알갱이들이 얼굴에 수천개의 상처를 내는게 가능할지, 짐작조차 되지 않네요. 잭 리처가 '무숙자(無宿者)'임을 잘 드러내는, 갑작스럽게 방문한 마을에서 사건에 휘말린다는 도입부도 괜찮았고요.

하지만 이야기 전개에 결정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제닛은 플라토의 부하가 마약을 거래하는걸 목격했다는 증언을 할 예정이었으며, 이를 통해 폭주족들을 일망타진할 생각이었습니다. 그래서 마약 조직의 우두머리 플라토는 제닛을 살해하려고 했고요. 그런데 제닛을 살해하면 상황이 바뀔까요? 마약 거래보다 살인이 훨씬 중죄이고, 심지어 증인에 대한 계획 청부 살인은 차원이 다른 범죄에요. 게다가 경찰 부서장 피터슨마저 살해했으니 이 정도면 지방 정부 중심의 단순 조사로 끝날 일이 아닙니다. 정부 기관이 나서야 할 상황이에요. 이보다는 차라리 수감된 폭주족을 자살하라고 시키는게 더 나은 방법이었습니다. 그리고 플라토가 어차피 러시아인을 물먹일 생각이었다면, 제닛을 살해했다면서 말로 대충 떼우고 일을 진행했어도 됐습니다. 러시아인이 손에 넣은 마약 창고가 텅 비었다는걸 알게 되는게, 약속했던 목격 증인을 실제로는 살해하지 않았다는걸 알게 되는것보다 더 정도가 약하다고 보기는 어려우니까요. 어차피 신뢰를 잃기는 매한가지입니다. 구태여 위험을 무릅쓰고 계획을 진행할 이유는 없어요.
전개 내내 언급되는 61시간이라는 시간 제한도 솔직히 왜 독자에게 알려주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독자가 시간 제한 때문에 긴장을 느낄만한 여지가 없기 때문입니다. 어차피 플라토가 일방적으로 정한 시간이 흘러갈 뿐인 전개이고, 잭 리처가 시간 때문에 위기에 처하는 것도 아니니까요. 무엇보다도 눈이 오지 않는 찰나에만 활주로에 플라토의 비행기가 착륙할 수 있다는 전제가 있습니다. 당연히 날씨는 미리 예측할 수 없고요. 그런데 어떻게 시간 제한을 사전에 정해 전개한단 말입니까? 이건 완전 넌센스입니다.

잔혹한 난장이 악당 두목 플라토도 강하고 카리스마가 있는 것처럼 묘사하지만 글쎄요, 아무리봐도 잭 리처의 상대로 보기에는 역부족이었어요. 마약이 보관된 지하 벙커(?)의 높이가 낮아서 키가 작은 플라토가 조금 유리했다는 건 있지만, 애초에 가진 역량과 피지컬 차이를 뒤집을 수 있어 보이지 않았거든요. 플라토가 마약과 귀중품을 직접 수습하기 위해 나서는 것도 어이가 없었고, 이 와중에 배신자들이 나타나 그를 죽이려 한다는 전개도 당황스러웠습니다. 인기있는 헐리우드 영화 클리셰는 다 가져다 붙인 느낌만 들더군요. 플라토의 최후도 시시하기 짝이 없고요.

마지막에 플라토를 죽인 잭 리처가 어떻게 벙커에서 탈출해서 남은 잔당과 장비를 박살내는지 설명되지 않는 것도 영 별로였어요. "탑건 매버릭"에서 훈련만 줄창하다가, 진짜 작전은 어떻게 되는지 보여주지 않고 매버릭 부하 시점에서 '성공했다'고 언급하고 끝내면 어떻게 될까요? 난리가 날겁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무난하기는 한데, 딱히 권해드릴만한 작품은 아닙니다.

2024/02/09

더는 잠들지 못하리라 - P.D. 제임스 / 이주혜 : 별점 2.5점

더는 잠들지 못하리라 - 6점
P. D. 제임스 지음, 이주혜 옮김/아작

P.D. 제임스 단편집. "겨우살이 살인사건"과 같은 출판사에서 동일한 판형으로, 비슷한 디자인으로 출간한 시리즈 도서. "겨우살이 살인사건"을 아주 재미있게 읽었기에 선택했습니다.

하지만 "겨우살이 살인사건"보다는 별로였습니다. 정통 고전 영국식 본격 추리물보다는 범죄 심리물이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반전이 중심인 몇몇 작품들은 대체로 헨리 슬레사등 미국 단편 전문 작가들 스타일이라 신선함을 느끼기도 힘들었고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대체로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수록작별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내용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으니 읽으시기 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요요
인기없는 선생을 하인이 살해하는걸 목격한 소년은 거짓말을 지어내서 하인을 구해준다.
소년이 본능적으로 거짓말을 꾸며내고, 의도한대로 사건 수사가 흘러가도록 주도한다는 내용의 심리 범죄물. 요요를 통해 옛 추억을 떠올리고, 소년이 이 때 받은 인상으로 법조인이 되었다는 등의 디테일은 좋았습니다. 
그러나 '소악마'라는 측면 외에는 특별한건 없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피해자
완전 범죄 계획을 꾸미고 실행하는 과정이 그려진 범죄 소설이자 도서 추리물. 완전 범죄물로의 가치도 높고, 전처 엘시가 완전 범죄가 가능하게끔 안배했다는 반전도 깔끔합니다.

그러나 거의 30년 전에 다른 추리소설 걸작 단편선 앤솔러지를 통해 이미 읽어보았기에 신선함은 느끼기 힘들었습니다. 결말의 반전을 모두 기억하고 있었던 탓입니다.
물론 30여년 전에 읽었던 작품의 기억이 생생하다는건 그만큼 이 작품이 빼어난 작품이라는걸 증명하지만, 이전 번역은 주인공의 협박 편지 속 오타까지 한글화했었는데 반해 이 책의 번역은 그 맛은 살리지 못해 아쉬웠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산타클로스 살인 사건
추리소설가 찰스 미클도어는 1939년 16살 때의 의붓삼촌 살인 사건의 재조사를 시작했다.
삼촌은 크리스마스 이브날 협박 편지를 받은 뒤 편지대로 그날 밤 살해당했다. 그런데 찰스를 제외한 저택의 초대 손님들과 주변 이웃들도 삼촌을 살해할 동기가 있었다...

저택에서 벌어지는 크리스마스 파티, 다양한 초대 손님들이라는 무대 구성부터 정통 고전 본격 미스터리의 느낌을 강하게 전해주는 작품.
추리적으로는 그리 높은 점수를 주기는 힘듭니다. 범인이 너무 명확하거든요. 찰스가 목격했던 산타는 장갑을 끼고 있었는데, 발견된 삼촌 - 산타로 분장했던 - 은 장갑을 끼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찰스가 목격했던 산타는 누군가가 변장하고 있었다는 의미이며, 그가 범인일 가능성이 제일 높습니다. 손님 중에서 찰스 삼촌과 키가 비슷했던건 콜드웰 뿐이었고요. 콜드웰이 방을 바꾸자고 한 등의 정황증거들도 차고 넘치니 범인은 콜드웰입니다!
범인이 뻔하니 흥미를 돋우기 위해 터빌 부부를 수상하게 보이게 만드는 묘사를 시도했는데, 이는 실패에 가깝습니다. 알고보니 부부가 성모상을 훔쳐갔다는건 드러난 정보로는 추리가 불가능했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한 번 정도 이야기를 꼬아서, 누군가 키높이 구두를 신었다던가 하는 식으로 풀어나갔어야 했어요.
전개도 아쉽습니다. 찰스와 당시 사건 수사 담당이었던 존 포팅어 경감 시선을 오갈 필요는 없었습니다. 관계자들 모두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는 에필로그 역시 불필요했고요.
한마디로 초기작 느낌이 물씬 났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묘지를 사랑한 소녀
어린 시절 고아가 된 뒤 숙모집에 머물게 된 소녀는 묘지에 푹 빠졌다. 어른이 된 뒤 오래전 살던 집을 찾아 나섰다. 그리고 잊었던 기억을 떠올렸다.
옛 집을 찾아가서 어린 시절 봉인되었던 살인 사건의 기억을 다시 떠올린다는 내용의 범죄물. 아버지는 할머니를 살해했다는 죄로 사형당했는데, 사실 할머니를 죽인건 소녀였다는 반전은 미국식 단편 범죄물 느낌인데, 심리 묘사로 잘 드러내서 섬뜩함을 안겨줍니다.
그러나 묘지를 사랑한다는 설정은 비일상적이라 억지스러웠고, 반전과 잘 이어지지는 못합니다. 아버지는 사형수라 감옥 묘지에 묻혀있어 아버지 묘지에 갈 수 없다는걸 드러내는 결말은 작위적이었고요. 별점은 2.5점입니다.

아주 바람직한 거주지
종합 중등학교 교사 해럴드 빈스는 아내 에밀리를 학대하다가, 에밀리 살인 미수 사건을 저질러 유죄판결을 받았다.
동료 교사였던 나는 이혼한 에밀리와 재혼해서 그녀의 소유였던 멋진 주택에 입주했다. 사실 살인 미수 사건은 모두 나와 에밀리가 사전에 모의해서 꾸며냈던 것이었다....

자기가 원하는 것을 차지하기 위해 공을 들였지만, 알고보니 덫에 걸려버렸다는 내용의 단편. 나는 에밀리를 위해 범행을 계획하고 도와주었지만, 에밀리가 먼저 죽으면 해럴드에게 누명을 씌웠던 범죄가 공개된다는 협박(?)을 받고, 원했던 주택마저 에밀리가 파는걸 내버려 둘 수 밖에 없는 채 결혼 지옥이라는 구렁텅이에 빠지게 되지요.
공들인 살인 미수 계획은 눈길을 끌지만, 설정과 전개, 결말 모두 전형적이고 흔한 미국식 범죄 스릴러물 단편을 연상케해서 아쉽습니다. 남편을 지옥에 빠트리는 에밀리라는 캐릭터의 마성(?)도 잘 드러나지 못했고요. 별점은 2점입니다.

밀크로프트씨의 생일
밀드레드와 로드니 남매는 아버지의 생일 파티를 위해 양로원을 찾았다. 아버지는 과거 유산 때문에 동생을 독살했었는데, 비싼 다른 양로원으로 옮겨주지 않으면 이를 폭로하겠다고 위협했다. 남매는 옛날에 살던 저택에서 증거인 비소병을 몰래 회수하려했지만, 오히려 현 주인에게 들켜 약점을 잡히고 말았다.
결국 원하는 양로원으로 옮겨간 아버지는, 친구 '준장'과 함께 작전 성공을 자축하는데....

약간 코믹한 범죄극. 알고보니 아버지가 자식들에게 거짓말을 했고, 약병의 회수와 관련된건 친구 준장과 함께 계획했던 작전이었다는 반전에 이어, 정말 아버지가 모티머 삼촌을 살해했다는 반전까지 이어지는 과정이 깔끔합니다. 별 것 아닌 듯 했던 나무 구멍 속 비닐봉지를 반전으로 이어가는 솜씨는 과연 거장답다 싶었어요. 설득력도 높고요.
수록작 중 최고로 꼽습니다. 별점은 4점입니다.

2024/01/27

초대받지 않은 손님들을 위한 뷔페 - 크리스티아나 브랜드 / 권도희 : 별점 2점

초대받지 않은 손님들을 위한 뷔페 - 4점
크리스티아나 브랜드 지음, 권도희 옮김/엘릭시르

"녹색은 위험", "제제벨의 죽음"으로 유명한 크리스티아나 브랜드의 단편집. 5부 구성으로 모두 16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정통 본격물, 범죄물, 심리 서스펜스 스릴러 등으로 수록작 장르도 다양합니다.

그런데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습니다. 기대했던 정통 본격물의 비중은 무척 적은 탓입니다. 트릭도 거의 등장하지 않으며 추리도 억지스러워서 추리적으로는 점수를 주기 어려운 작품들이 많아요. '기묘한 맛' 장르 느낌으로 마지막 한 줄, 한 문단으로 반전의 매력을 전해주려고 노력한 티는 역력하지만 이 역시 모두 성공한건 아니고요. 그래서 제 별점은 2점입니다.

덧붙이자면, 5부 구성도 1부 코크릴 칵테일을 코크릴 경감 시리즈로만 모아 놓았다는 것 외에는 어떤 의도로 분류하여 구성되었는지 모르겠더라고요. 예를 들어 "살인 게임"은 앙트레로 묶기 어려운, 이 단편집 최고의 메인 요리라 생각되거든요. 오히려 앙트레 선택에 5부 블랙 커피에 수록된 심리물들을 포함시키고, 범죄물을 메인 요리로 묶어 구성하는게 더 일목요연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범죄물도 심리 묘사가 중심이거나 조금 가벼운 이야기와 묵직한 본격물을 구분하여 배치하고요. 제 구성은 다음과 같습니다.

1부 아페리티프(식전주) : 코크릴 칵테일
"사건이 막을 내린 뒤에"
"피를 나눈 형제"
* 기존 구성에서 코크릴 경감의 등장을 알리는 작품 한 편, 그리고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을 선정.

2부 앙트레 선택
"이 집에 축복을"
"수군거림"
"발코니에서"
"더이상 5월 축제는 없다......"
* 심리 묘사 중심의 작품들로 구성.

3부 르 푸아송 (생선 요리)
"말벌집"
"너무나 괜찮은 사람"
"신의 힘"
"곰곰이 생각해보니까"
* 말벌집은 '굴'이 사용되어서 생선 요리로 분류했고 다른 작품들은 심리 중심의 범죄물들.

4부 리플렛 프로스펠 (메인 요리)
"살인 게임"
"희생양"
"여기 잠들다"
"회전 목마"
정통 본격 추리 범죄물들.

5부 데세르 (디저트)
"스코틀랜드에서 온 조카딸"
가볍고 유쾌한 이야기.

6부 블랙 커피
"잔 속에 든 독"
도서 추리물로 '커피'가 핵심 소재라는 점에서 블랙 커피로 분류.


마지막으로 수록작들의 간략한 리뷰는 아래에 요약하였습니다. 일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는 점, 읽으시기 전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1부 코크릴 칵테일.
코크릴 경감이 활약하는, 늙은 형사의 회고담인 "사건이 막을 내린 뒤에", 뺑소니 살인과 정부 살인 사건을 저지른 쌍둥이 형제의 이야기인 "피를 나눈 형제", 성질 고약한 부자 노인이 후처를 맞은 결혼식 날 독살당한다는 "말벌집", 남편의 정부라고 주장하는 여자를 독살한 아내 시점의 도서 추리 소설 "잔 속에 든 독"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모두 범인의 조작을 코크릴 경감이 간파한다는 작품들로 "사건이 막을 내린 뒤에"에서는 유명 극단의 톱 스타 주연 배우 제임스 드래건의 아내가 살해당했는데, 극단 배우들이 모두 나서 경찰 앞에서 연극을 펼칩니다. 이를 통해 제임스 드래건이 경찰에 연행되지만, 알고보니 범인이 제임스가 아니라 그의 아버지 아서 드래건이었다는게 밝혀집니다.
"피를 나눈 형제"에서는 쌍둥이 형제 둘 중의 한 명이 범인이고, 한 명은 알리바이가 확실히 있었다면 누구를 체포해야 하는지?에 대한 딜레마가 흥미롭게 전개됩니다. 둘 다 자기가 알리바이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이를 밝혀내는건 쉽지 않아 보였거든요. 쌍둥이 형제가 서로 상대방의 옷에 증거를 남겼다는 반전도 기발했고, 결국 진흙탕 속으로 서로를 밀어넣어 파멸하는 결말도 깔끔했습니다.
"말벌집"은 1부 수록작 중에서는 제일 처집니다. 1966년 "엘러리 퀸 미스터리 매거진"이 후원한 영국추리작가 협회 회원 대상 단편소설 경연대회 1등상 수상작이라고 해서 기대가 컸는데 말이죠. 이유는 범인 엘레자베스를 체포할 근거가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훈제 연어를 준비하는게 어려웠다'는 말이 그렇게 큰 증거가 된다는건 믿기 힘듭니다. 엘리자베스가 사건을 연출했다는 것도 정황 증거에 불과하며 굴 안에 청산가리 캡슐을 숨겨 먹였다는 트릭도 억지스러웠고요.
"잔 속에 든 독"은 범인 스텔라가 범인으로 몰리자, 임기 응변으로 남편 등을 범인으로 지목한다는 내용으로 도서 추리 소설과 심리 스릴러를 잘 결합한 좋은 작품입니다. 완벽하게 처리한 줄 알았던 독이 든 커피잔이 결정적 증거가 된다는 마지막 한 마디도 좋았고요. 1부 수록작 중에서는 제일 괜찮았어요.

2부 앙트레 선택.
유명한 밀실 트릭이 등장하는 "살인 게임", 일종의 시간차 알리바이 트릭이 등장하는 "희생양", 거짓 증언으로 선량한 히피가 파멸에 이른다는 "더이상 5월 축제는 없다......"의 세 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살인 게임"은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밀실 대도감"에서도 소개되었던 단편이지요. 이전에 다른 단편집을 통해 읽었던 작품이기도 합니다. 범인이 경찰로 변장한 뒤 밀실이었던 현장에 숨어있다가, 밀실 문을 부수고 들어온 경찰 중 한 명으로 위장했다는 트릭이 기발합니다. 마지막에 이야기를 듣던 노인의 한 마디로 그의 정체가 밝혀지는 반전도 서늘했고요. 다만 범죄자의 혈통은 유전된다는 주장이 강하게 녹아들어 있다는건 현재 시점에서 보기에는 낡은 사고방식이라 아쉽네요. 그래도 2부에서는 최고작입니다.
"희생양"은 13년 전, 유명 마술사 미스테리오소가 저격당해 충직한 하인 톰이 대신 죽었던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이야기입니다. 저격용 총의 방아쇠에 묶인 끈에 사과 봉투를 위에서 떨어트린 장치 트릭인 것 처럼 풀어나가지만, 일종의 시간차 트릭이 사용되었습니다. 하지만 트릭이 너무 별로라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드네요. 범인이었던 경찰이 사과 봉투를 터트려 총소리를 위장한 뒤 진짜 저격은 나중에 벌였다는데, 사과 봉투를 터트려 먼 곳에 있는 사람들까지 총 소리로 착각하게 만들었다는 것 부터가 비현실적입니다. 두 번째 총소리는 어떻게 숨겼는지에 대한 설명도 없고요. 마지막에 소년이 미스테리오소를 살해한다는 결말은 이게 뭔가 싶더군요. 마지막에 반전 요소를 집어넣어야 한다는 강박같은게 있었던걸까요? 2부, 아니 수록작 전체를 통틀어서 최악의 작품이었습니다.
"더이상 5월 축제는 없다......"는 웨일스를 무대로, 아이들이 자신들의 일탈이 드러나지 않기 위해 했던 거짓말에서 시작된 거짓말의 연쇄가 진범의 알리바이를 굳건하게 만들며 선량한 히피 무리의 리더 크리스토가 누명을 쓰고 마는 과정이 숨이 턱턱 막히도록 묘사됩니다. 셜리 잭슨이나 퍼트리샤 하이스미스를 방불케할 정도에요. 정통 추리물은 아니지만 볼만한 범죄 심리 스릴러였습니다.

3부 입가심
"스코틀랜드에서 온 조카딸" 한 편이 소개됩니다. 블란쳇 부인의 진주 목걸이를 훔치려는 컴퍼트 양과 스네이스 씨의 작전, 그리고 이들을 농락하는 진짜 '스코틀랜드에서 온 조카딸' 호지 양이 얽힌 재미난 범죄극이 펼쳐집니다. 진짜 도둑은 하녀 글래디스였다는 마지막 반전도 일품이고요. 그야말로 '입가심'에 적절한 유쾌하면서도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쾌작입니다.

4부 프티 푸르
'프티 푸르'는 한 입 디저트라고 하는데, 수록작들 대부분이 완전범죄 계획 살인물입니다. 한 입에 먹기에는 다소 부담스러운 내용들이네요.
하여튼, "여기 잠들다"는 아내를 사고사처럼 위장하여 죽이려는 제럴드의 치밀한 계획을 그립니다. 아내가 수영을 좋아해서 익사시킨다는 계획은 나쁘지 않았어요. 실제로도 거의 성공했고요. 하지만 알리바이를 위해 고용했던 타이피스트 부처 부인이 제럴드를 죽인다는 반전은 뜬금없었습니다. 부처 부인의 외모라던가 성격 묘사를 덧붙여주었다면 훨씬 좋았을 것 같네요.
"회전 목마"는 자신을 협박하던 빈들 씨를 살해한 하틀리 부인의 이야기입니다. 범죄물로도 좋은 수준이지만, 빈들 씨와 하틀리 부인의 꼬마 아이들이 범죄에 대해 모든걸 알고 서로의 속내를 감춘채 진상을 이야기하는 묘사도 서늘했습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까"는 악당 호러호러 족장을 살해한 이야기인데, 계획에 따른 완전범죄는 아니었습니다. 범인이 풀려났던건 목격자였던 존스 부인이 유리창 반사로 일으켰던 착각 탓이었지요.
"발코니에서"는 위에서 자신을 내려다보는 이웃 때문에 히스테리를 일으킨 제닝스 부인이 남편을 살해하기에 이른다는 내용의 심리 스릴러 범죄물입니다. 히치콕의 "이창"을 뒤집어 놓은 설정과 제닝스 부인을 바라보는 이웃 시점의 묘사를 곳곳에 삽입하다가, 이웃들이 실존하지 않았다는게 마지막 반전으로 드러나는 결말이 독특했습니다.

5부 블랙 커피
수록작 네 편 중 세 편은 여자의 심리 중심의 이야기입니다. "이 집에 축복을"은 자신의 집에서 태어난 아이를 예수라고 믿는 여자의 심리를, "너무나 괜찮은 사람"은 그야말로 딱 한가지만 제외하고는 너무나 괜찮았던 남자를 죽일 수 밖에 없었던 여자의 심리를, "수군거림"은 자신의 실수로 거짓말을 지어내서 사촌과 아빠를 죽음에 이르게 만든 여자의 심리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작품 "신의 힘"은 완전 범죄물입니다. 범인 에반스 경관의 범행 계획은 그냥저냥이지만, 딸과 손녀를 죽게만든 범인 젤링크스를 옭아맨 설정은 일품이었습니다. 에반스 경관의 거짓 증언으로 젤링크스는 반박하지 못하고 무죄를 받아들인 뒤 협박받을지 모르는 두려움에 떨게 되었다는건 충분히 설득력있는 이야기였습니다.

2023/12/15

"우먼 인 윈도"에서 소개된 애나 폭스의 영화들

"우먼 인 윈도" 속에서 소개된 애나 폭스의 영화들 목록입니다. 책 뒤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10월 24일 일요일 
나는 비밀을 알고 있다(The Man Who Knew Too Much)
1956년, 미국,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 제임스 스튜어트, 도리스 데이 주연, 히치콕 감독이 자신이 1934년 만든 동명의 영화(영국) 를 리메이크한 작품, 휴가를 보내던 가족이 암살 사건에 휘말리는 내용으로, 극중에서 도리스 데이가 부른 'Que Sera, Sera'로 아카데미 주제가상을 수상했다.

길다(Gilda)
1946년. 미국. 찰스 비도르 감독, 리타 헤이워스, 글렌 포드 주연, 도박꾼 조니는 카지노 사장의 심복이 된다. 사장의 집에 초대받아간 조니는 사장의 부인이 된 전 애인 길다를 만난다. 두 사람은 강하게 이끌리고 선을 넘는다. 리타 헤이워스를 스타덤에 올려놓은 영화이다.

10월 27일 수요일
과거로부터 (out of the Past)

1947년, 미국, 자크 투르뇌 감독. 로버트 미첨, 제인 그리어 주연, 왕년의 사설탐정으로, 지금은 은퇴하고 주유소에서 일하는 제프에게 한 남자가 찾아온다. 조용히 살아가려던 그의 앞날에 과거의 위험한 사랑이 그림자를 드리운다.

에어플레인(Airplane)
1980년. 미국. 데이비드 주커, 제리 주커 공동 감독 및 주연, 택시 기사인 테드 스트라이커는 공군 조종사로 참전한 기억 때문에 비행공포증을 앓는다. 어느 날, 비행 승무원인 여자친구 일레인이 결별을 선언하자 테드는 엉겁결에 그녀를 따라 비행기에 오른다. 그런데 식중독으로 기장이 정신을 잃고, 테드가 조종간을 잡게 된다.

10월 29일 금요일
디아볼릭(Les Diaboliques)

1955년, 프랑스, 앙리 -조르주 클루조 감독, 시몬 시뇨레, 베라 클루조 주연, 폭력적인 남편인 미셸 때문에 괴로워하는 크리스티나에게 미셸의 정부인 니콜이 찾아와 함께 그를 죽이자고 제안한다.두 사람은 성공적으로 미셸을 죽이고 시체를 수영장에 던지지만, 그의 시체가 감쪽같이 사라지고 이상한 일들이 일어난다.

몰락한 우상(The Fallen Idol)
1948년, 영국, 캐럴 리드 감독. 랠프 리처드슨, 미셸 모건 주연, 런던의 프랑스 대사관, 대사관 집사의 아내가 죽고, 유일한 목격자는 어린 소년 필립이다. 유럽 심리 스릴러의 고전.

공포의 내각(Ministry of Fear)
1944년, 미국, 프리츠 랑 감독, 레이 밀랜드, 마조리 레이놀즈 주연, 제2차 세계대전 중 출소한 닐이 뜻하지 않게 첩보전의 소용돌이에 휘말린다.

10월 30일 토요일
39 계단(The 39 Steps)

1935년, 미국,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 로버트 도넷, 매들린 캐럴 주연, 리처드는 자신이 첩보원이라고 주장하는 애너벨라를 돕는다. 다음 날 새벽, 애너벨라가 공격을 받아 죽고, 살인 혐의를 뒤집어쓴 리처드는 도망자가 된다.

이중배상(Double Indemnity)
1944년, 미국 빌리 와일더 감독, 프레드 맥머레이, 바버라 스탠윅 주연, 보험회사 직원인 월터는 고개인 디트리히슨의 집에 방문 했다가 그의 아내 필리스의 유혹에 넘어간다. 두 사람은 디트리히 슨을 죽이는 데 성공하지만, 보험사는 이를 수상하게 여기고 수사에 들어간다.

가스등(Gaslight)
1944년, 미국. 조지 큐커 감독. 샤를르 보와이에, 잉그리드 버그먼, 조셉 코튼 주연. 폴라는 잘생긴 그레고리와 결혼해 상속받은 집에서 신혼 생활을 시작한다. 그레고리는 폴라의 외출을 막고, 그녀를 정신이상자로 몰고 간다. 가스라이팅 (gaslighting)'이라는 심리학 용어와 관련이 있다.

파괴공작원(Saboteur)
1942년, 미국,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 프리실라 레인, 로버트 커밍스 주연, 공장에서 일하던 배리는 화재로 친한 친구를 잃고 방화범으로 몰린다. 배리는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고, 방화의 배후에 있는 거대한 음모를 파헤치려 한다.

빅 클락(The Big Clock)
1948년, 미국, 존 패로 감독, 레이 밀랜드, 찰스 로튼 주연, 어떤 이를 살해한 언론 재벌 얼은 무고한 남자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려 한다. 남자는 자신의 결백을 밝히려 한다.

그림자 없는 남자(The Thin Man) 시리즈
1934~1947년, 미국. 윌리엄 파월, 머나 로이 주연, 은퇴한 경찰인 닉 찰스와 그의 아내 노라 찰스가 사건을 풀어가는 코미디 탐정물, 은퇴한 형사인 닉 찰스는 부유한 집안의 딸 노라와 결혼한다. 닉은 느긋하게 은퇴 생활을 누리고 싶어하지만 스릴을 원하는 노라 때문에 이런저런 사건에 뛰어든다. 대실 해밋의 소설을 원작으로 제작된 시리즈로, 모두 6편이 있다.

도살자(The Butcher, Le Boucher)
1969년, 프랑스, 이탈리아. 클로드 샤브롤 감독, 스테파니 오드런, 장 얀느, 안토니오 파살리아 주연, 시골 학교에 부임한 교사 엘렌은 푸줏간 주인 포폴을 만난다. 포폴은 엘렌에게 반해 사랑을 고백하지만 엘렌은 거부한다. 한편 마을은 연쇄 강간, 살해 사건으로 흉흉해지고 엘렌은 포폴을 의심한다. 히치콕을 모방했으면서도 히치콕보다 더 히치콕답다는 평을 받았다.

다크패시지(Dark Passage)
1947년, 미국, 델머 데이브즈 감독, 험프리 보가트, 로런 바콜 주연, 빈센트는 아내를 살해한 죄로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가까스로 감옥에서 탈옥한 빈센트는 자신의 결백을 입증하려 하고 그런 그를 아이린이라는 여자가 돕는다.

나이아가라(Niagara)
1953년, 미국, 헨리 해서웨이 감독. 마릴린 먼로, 조셉 코튼, 진피터스 주연. 나이아가라 폭포로 여행 온 신혼 부부가 다른 투숙객 부부의 갈등에 휘말린다.

샤레이드(Charade)
1963년, 미국. 스탠리 도넌 감독. 오드리 헵번, 캐리 그랜트 주연, 남편의 재산을 노리는 남자들에게 쫓기는 여자 레지나와 이를 돕겠다고 나선 조슈아가 파리에서 겪는 일을 다룬다.

서든 피어(Sudden Fear)
1952년, 미국. 데이비드 밀러 감독, 조안 크로포드, 잭 팰런스 주연, 상속녀이자 극작가인 마이라는 배우인 레스터를 만나 결혼한다. 그러나 레스터에게는 아이린이라는 정부가 있었다. 레스터는 아이린과 함께 마이라를 죽이고 그녀의 재산을 가로채려 한다.

어두워질 때까지(Wait Until Dark)
1967년, 미국, 테렌스 영 감독, 오드리 헵번, 알란 아킨 주연, 수지는 최근에 시력을 잃었다. 그녀의 남편은 비행기에서 인형을 잠시 맡아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인형 속에는 밀수된 마약이 있었고, 악당들은 수지에게 접근해 인형이 숨겨진 곳을 알아내려 한다.

배니싱(The Vanishing)
1988년, 프랑스, 네덜란드, 조지 슬루이저 감독. 버나드 피에르 도나디우, 기니 베르보에츠 주연, 연인인 렉스와 사스키아는 여행을 떠난다. 중간에 들른 휴게소에서 사스키아가 실종되고 렉스는 그녀를 찾아 주변을 뒤진다. 그리고 삼 년 후, 렉스에게 한 남자가 접근한다. 그는 평범한 교사로 보이지만 실은 정신병자였다.

실종자(Frantic)
1988년, 미국. 로만 폴란스키 감독. 해리슨 포드, 베티 버클리 주연, 파리로 여행을 온 부부, 리처드가 샤워를 하는 사이 호텔방에서 부인이 사라진다. 리처드는 아내의 실종이 바뀐 가방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사이드 이펙트(Side Effects).
2013년, 미국,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 루니 마라, 채닝 테이텀, 주드 로 주연, 우울증 환자 에밀리는 의사인 뱅크스가 처방해준 신약을 복용하고 증세가 호전된다. 하지만 몽유병 증세가 나타나면서 살인을 저지르게 되고, 모든 것이 약의 부작용 때문이라 믿는다.

카사블랑카(Cassablanca)
1942년, 미국, 마이클 커티스 감독, 험프리 보가트, 잉그리드 버그먼 주연, 모로코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릭은 우연히 옛 사랑인 일자를 만난다.

밤 그리고 도시(Night and the City)
1950년, 미국, 영국. 줄스 다신 감독, 리처드 워드마크, 진 티어니 주연, 런던의 밤거리를 헤매는 해리는 은퇴한 세계적인 레슬링 선수를 만나고, 생각지도 못한 음모에 휘말린다.

소용돌이(Whirlpool)
1949년, 미국, 오토 프레밍거 감독, 진 티어니, 리처드 콘트 주연. 마비 증상으로 고통받는 여자가 최면요법을 시도한다. 하지만, 최면에서 깨어난 그녀는 기억에 없는 살인 현장에서 발견되고, 용의자가 된다.

안녕, 내사랑 (Murder, My Sweet)
1944년, 미국, 에드워드 드미트릭 감독. 디 포웰, 클레어 트레버, 앤 셜리 주연, 전직 사기꾼의 여자친구를 찾는 일에 고용된 필립은 거미줄처럼 얽힌 복잡한 미스터리에 빠진다. 레이먼드 챈들러의 소설을 영화화했다.

나이트 머스트 폴(Night Must Fall)
1937년. 미국, 리처드 소프 감독. 로버트 몽고메리, 로사린드 러셀 주연, 브람슨 부인은 고립된 저택에 사는 자산가이다. 그녀는 저택을 돌봐달라며 대니를 고용한다. 그녀의 조카 올리비아는 그에게 끌리면서도 그를 의심한다.

로라(Laura)
1944년, 미국. 오토 프레밍거 감독. 진 티어니, 데이나 앤드루스 주연, 광고회사 디자이너인 로라가 자신의 집에서 살해되고, 한 남자가 유력한 용의자로 떠오른다.

10월 31일 일요일
현기증(Vertigo)
1958년, 미국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 제임스 스튜어트, 킴 노박 주연, 고소공포증 때문에 은퇴한 경찰 스코티는 사립탐정이 된다.그는 사건을 맡았다가 마들레인이라는 여인에게 연정을 느끼고, 마들레인이 자살한 이후 그녀를 너무나 닮은 주디라는 여인에게 강박적으로 매달린다.

제3의 사나이(The Third Man)
1949년, 영국, 캐럴 리드 감독, 조셉 코튼, 알리다 발리 주연, 제 2차 세계대전 직후, 삼류 소설가 마틴스가 친구에게 일자리를 얻으려고 비엔나를 방문하지만, 친구가 의문의 사고로 사망한 것을 알게 된다.

리피피 (Du Rififi Chez Lex Hommes)
1955년, 프랑스, 이탈리아. 줄스 다신 감독, 진 세바이스, 칼 모너 주연, 형기를 마치고 출옥한 토니는 여전히 충성스러운 부하 조를 다시 만난다. 조는 토니에게 보석상을 털자고 제안한다. 이 마지막 한탕을 끝으로 은퇴하자고 말이다.

11월 2일 화요일
스펠바운드(Spellbound)
1945년, 미국.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 잉그리드 버그먼, 그레고리 펙 주연, 정신병원의 의사로 근무하는 콘스탄스는 새로 부임한 의사 에드워드와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에드워드는 사실 에드워드가 아니었고, 죽은 친구의 이름임이 밝혀진다. 남자는 기억하지 못하는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몰려 경찰의 추적을 받는다.

죽음의 항해 (Dead Calm)
1989년, 오스트레일리아. 필립 노이스 감독, 니콜 키드먼, 샘 닐주연, 교통사고로 아들을 잃은 부부가 요트 여행을 떠난다. 조용할 줄만 알았던 여행은 바다 한가운데에서 만난 한 남자로 인해 흔들린다.

레베카(Rebecca)
1940년, 미국,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 로런스 올리비에, 주디스 앤더슨, 조앤 폰테인 주연, 수줍은 여자가 부인과 사별한 남자를 만나 결혼해 대저택에 들어가지만, 남자는 아직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11월 3일 수요일
열차 안의 낯선 자들(Strangers on a Train)
1951년, 미국.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 팔리 그레인저, 루스 로먼 주연, 프로 테니스 선수 가이는 아내를 두고 외도를 즐기며 이혼을 바라고 있다. 어느 날 가이는 기차 안에서 브루노를 만나고, 브루노는 그에게 교환살인을 제안한다. 영화 마지막에 빠르게 돌아가는 회전목마 장면이 등장한다.

위커 맨(The Wicker Man)
2006년, 미국, 닐 라부티 감독, 니콜라스 케이지 주연, 고속도로 사고로 죽어가던 모자를 구하지 못한 죄책감에 괴로워하던 경찰관 에드워드는 실종된 딸을 찾아달라는 옛 연인의 편지를 받는다.

로프(Rope)
1948년, 미국,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 제임스 스튜어트 주연, 두대학생이 재미삼아 동급생을 밧줄로 목 졸라 죽인 후 그의 시체를 아파트에 숨긴다. 이들은 완전범죄를 위해 친구와 가족을 초대해 파티를 연다.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North by Northwest)
1959년, 미국,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 캐리 그랜트, 에바 마리 세인트 주연, 뉴욕의 광고업자가 외국첩보기관에 의해 정부요원으로 오해받아 살해될 위기에 처한다.

숙녀 사라지다(The Lady Vanishes)
1938년, 미국,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 마가렛 락우드, 마이클 레드그레이브 주연, 여행 중인 젊은 여성이 기차에서 한 부인의 도움을 받는다. 두통으로 잠이 들었던 여성은 깨어난 뒤 그 부인이 사라진 것을 발견하고 찾아 나선다. "반드리카 초특급"이라는 제목 으로도 알려졌다.

11월 4일 목요일
아담스 패밀리(The Adams Family)
1991년, 미국, 베리 소넨필드 감독, 안젤리카 휴스턴, 라울 줄리 아, 크리스토퍼 로이드 주연, 아담스 가에 이십오 년간 행방불명이던 친척이 찾아온다. 1964년 TV 시리즈로 방영된 동명의 작품을 영화화한 것으로, 개봉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미스터 에드(Mister Ed)
1961~1966년, 미국, 저스터스 아디스 외(外) 감독. 앨런 영, 코니 하인즈 출연, 미국 CBS에서 인기리에 방영된 TV 시리즈. 말하는 말인 에드와 그 주인의 좌충우돌을 다루었다. 이 소설에서 애나가 올리비아에게 언급한 물론(Of course)이라는 말이 주제가에서 말장난으로 반복된다.

11월 5일 금요일
무법자(The Outlaw)
1943년, 미국, 하워드 휴즈, 하워드 혹스 감독. 잭 부텔, 제인 러셀 주연, 서부의 무법자들이 리오 맥도날드라는 여성의 관심을 끌기 위해 좌충우돌한다. 제인 러셀이 전형적인 핀업걸 이미지로 등장하는 포스터로 유명하다.

열정(Hot Blood)
1956년, 미국, 니콜라스 레이 감독, 제인 러셀, 코넬 와일드 주연, 열정적인 여성 애니와 정략결혼으로 얽힌 형제 이야기, 집시 스커트를 입고 역동적인 자세를 취하는 제인 러셀을 담은 포스터로 유명하다.

11월 7일 일요일
의혹의 그림자(Shadow Of A Doubt)
1943년, 스릴러, 미국,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 테레사 라이트, 조셉 코튼 주연, 미국 소도시에 사는 찰리의 단조로운 삶은 이름이 같은 찰리 삼촌이 찾아오면서 활기를 띤다. 그러나 찰리는 삼촌이 연쇄살인범일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을 가진다.

이창(Rear Window)
1954년, 미국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 제임스 스튜어트, 그레이스 켈리 주연, 다리를 다친 사진작가가 이웃들을 엿보는 것으로 소일하던 중 한 이웃이 살인을 저질렀다고 확신한다.

11월 8일 월요일
싸인(Sign)
2002년, 미국, 나이트 샤말란 감독. 멜 깁슨, 호아킨 피닉스 주연. 미국의 시골 마을에서 옥수수 농장을 운영하는 그레이엄은 어느날 원과 선으로 만들어진 복잡하면서도 거대한 미스터리 서클을 발견한다.

로즈메리의 아기 (Rosemary's Baby)
1968년, 미국, 로만 폴란스키 감독. 미아 패로 주연, 새로운 아파 트로 이사 온 젊은 부부가 이상한 일들을 겪게 되고, 부인이 임신한 후에 더욱 심각해진다.

침실의 표적(Body Double)
1984년, 미국.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 크레그 워슨, 멜라니 그리피스 주연, 단역배우 제이크는 폐소공포증 때문에 배역을 잃는다. 애인에게서도 버림받은 제이크는 다른 사람의 집을 관리해주기로 하고, 그 집에서 이웃 여자를 훔쳐보다가 자신도 모르게 끔찍한 일에 휘말린다.

욕망(Blow-up)
1966년, 영국, 이탈리아.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감독. 바네사 레드그레이브, 세러 마일스 주연, 런던의 사진작가가 황량한 공원에서 찍은 사진을 정리하던 중 의심스러운 것을 발견한다.

2023/05/04

프리즌 트릭 - 엔도 다케후미 / 김소영 : 별점 1.5점

프리즌 트릭 - 4점
엔도 다케후미 지음, 김소영 옮김/살림

<<아래 리뷰에는 트릭과 반전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치하라 교도소에서 수형자 미야자키가 사라지고, 창고에서 약품으로 얼굴과 손가락이 훼손된 시체가 발견되었다. 사건 초기에는 미야자키가 수형자 이시즈카를 살해하고 도주한 것으로 생각되었다. 벽에 붙은 메모 등의 단서 탓이었다. 그러나 다케다 관리관을 비롯한 여러 경찰의 끈질긴 수사를 통해 피해자가 미야자키였고, 도주한 이시즈카는 다른 누군가가 신원을 도용한 가짜였다는게 밝혀졌다.
그 뒤 교도관 노다, 아즈미노 시장이 차례로 살해되고 나서야 가짜 이시즈카의 정체가 드러났다. 그는 미야자키가 음주운전으로 죽게 했던 료코의 남편 무라카미 고스케였다. 무라카미는 독자적인 수사를 이어가던 보험회사 직원 시게노가 경찰의 실수로 총상을 입은 사건 뒤, 수기를 보내 사건의 진상을 공개했다. 그는 복수를 위해 미야자키를 죽였고, 여기에는 친구 도다 가즈요시의 도움이 있었다는 내용이었다.


2009년 제55회 에도가와 란포상 수상작으로, 가장 큰 특징은 현대의 교도소라는 폐쇄 공간에서 일어난 불가능 범죄를 그려냈다는 겁니다. '수형자 (죄수) 중 한 명이 살해당한채 발견되고, 한 명이 사라졌다. 사라진 수형자가 범인일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사라진 수형자가 빠져나간 통로는 있는데, 살해된 수형자가 범행 현장까지 오는 통로는 막혀있었다'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흥미로운 상황에 비한다면, 트릭은 그닥입니다. 조금 자세하게 설명하자면, 트릭의 핵심은 '바꿔치기'입니다. 도다 가즈요시가 교도소에 잠입한 후 무라카미와 미야자키에게 창고에서 잡무를 하라고 지시했습니다. 고위 교도관으로 변장해서요. 그리고 둘은 창고에서 미야자키를 살해했습니다. 일단 시체를 숨긴 뒤, 도다는 미야자키로 변장해서 점검에 임했습니다. 미야자키가 방을 옮기는 '전방일' 이라서 다른 수형자들은 미야자키가 다른 사람으로 바뀐걸 몰랐기에 저녁 점검은 무사히 넘어갈 수 있었지요. 그 뒤 도다와 무라카미는 각자 자력으로 탈옥했습니다. 이 때 무라카미가 미야자키가 탈옥할 때 빠져나왔을만한 통로를 뚫어 놓았어야 했는데, 그걸 깜빡해서 앞서의 불가능 범죄 상황이 만들어졌습니다.
이렇게 외부에서의 침입과 탈옥이 쉬운 공간이라는게 핵심입니다. 곧 있으면 풀려날 경범죄자들이 많아서 그렇다는 설정이죠. 하지만 이는 공정하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누가 교도소를 이런 장소라고 생각하겠습니까? '교도소'라는 일반적인 인식을 깨는, 독특한 장소가 무대였기에 가능했던 트릭이라 좋은 점수는 못 주겠습니다.
범행이 범인 무라카미 1인칭으로 묘사된 것도 공정하지 못합니다. 무라카미는 미야자키를 교도관으로 변장한 도다와 함께 살해했습니다. 도다가 미야자키와 변장했고요. 그런데 그런 설명없이 무라카미 1인칭으로 미야자키와 함께 작업을 끝내고 나온 것으로 묘사한건 반칙입니다.
추리를 위한 단서도 턱없이 부족합니다. 피해자가 방을 이동하는 전방일을 범행의 D-Day로 잡았다는건 꽤 비중있게 설명되고, 1인칭으로 미야자키와 작업 후 토할것 같았다는 묘사 - 살인을 저질렀기 때문 - 는 있지만 이 정도로는 부족했어요.
아울러 검시에 따른 사망 추정 시간 폭이 넓었던 것도 불가능 범죄로 보이는데 일조했는데 (명확하게 저녁 점검 전 살해당한게 드러났더라면 트릭은 더 빨리 간파되었을테니), 바로 발견된 사체의 검시 결과가 이렇게 편차가 심할 수 있을까요? 별다른 외부 요인 (예를 들어 불에 태운다던가)도 없었는데 말이지요. 과학 수사를 너무 얕본게 아닌가 싶습니다.

범행에 대한 설득력도 부족합니다. 교도소에서 범행을 저지른 이유부터 설명이 되지 않으니까요. 작 중에서도 '미야자키가 몇 년 씩이나 교도소에서 썩는 것도 아닌데 굳이 교도소에서 죽일 이유는 없다'고 언급될 정도로 말도 안되는 상황인데, 이유는 등장하지도 않습니다. 무라카미의 정체가 드러나지 않을 완전범죄롤 노릴 수도 없었습니다. 피해자 미야자키는 음주운전으로 사람을 치어 죽이고 수감된 수형자였으니, 상식적으로 피해자의 친인척, 지인이 범인일 가능성이 높잖아요? 도주한 수형자 - 가짜 이시즈카 - 가 범인일텐데, 그 수형자는 누군가가 신분을 도용한 가짜였으니 수형자 얼굴을 미야자키가 일으켰던 사고 피해자 주변인물과 대조해보면 됩니다. 수감 생활을 하면서 자신의 얼굴을 드러냈던 무라카미가 빠져나갈 수는 없습니다.
때문에 트릭을 사용할 이유도 많이 부족해집니다. 저녁 점검을 넘긴 뒤 밤에 몰래 탈옥하기 위한 목적 정도? 그런데 묘사된걸 보면 탈옥은 너무나 쉽습니다. 이럴바에야 밤에 몰래 미야자키를 죽이고 달아나는 것과 다를게 없어요. 구태여 도다가 참여할 이유도 없고요.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한 목적? 도망친 수형자가 범인인게 뻔한데 알리바이가 무슨 소용이 있단 말입니까.... 마찬가지 이유로 교도소에서 수형 생활을 하면서 범행을 기다린 필요도 없었습니다. 백주대낮에 살인을 저지르는 것과 별로 다르지도 않으니까요.

아내의 복수를 위해 범행을 결심한 무라카미의 조력자 도다가 아내를 죽인 범인이었다는 마지막 반전도 뜬금없습니다. 완벽한걸 부수는데 쾌감을 느끼는 정신병자라서, 완벽한 결혼 생활을 하는 친구 무라카미의 아내를 죽였다는 설정은 뭐 그러려니 합니다. 그런데 도다는 왜 무라카미의 범행 - 복수 - 을 도왔을까요? 범인이 자기라는걸 모르는건 확실합니다. 그렇다고 무라카미를 그대로 놔 두면 이 사실이 어떻게든 폭로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무라카미를 죽이는게 가장 깔끔한 해결책입니다. 이런 복잡한 범행을 저질러가며 본인 스스로도 경찰에게 쫓기는 신세가 될 이유는 없어요. 범행에 사용했던 독물 브론 화합물로 무라카미를 죽이고 자살로 위장하는건 어린아이 손목 비틀기보다도 쉬웠을겁니다.

그래도 추리적으로는 트릭이 사용되었으니 나름 점수를 줄 수는 있어요. 더 큰 문제는 전개입니다. 일단, 시점 변화와 등장인물이 굉장히 많은데 이를 잘 정리하지 못하고 이야기에 녹여내지도 못합니다. 대부분 쓸데없는 에피소드로 느껴집니다. 전직 기자였던 도이 화재 직원 시게노 다카유키가 신문기자 아사이 유리를 만난 뒤 미야자키 사건을 개인적으로 조사한다던가, 시게노가 과거 기자시절 다카하시 의원의 비리를 폭로해서 다카하시 의원의 큰 딸이 자살했다던가, 다케다 관리관의 아이가 PTSD를 앓고 있다던가 등등은 모두 사건과 관계가 없습니다. 화룡점정은 음주운전으로 아이들을 죽게 만들었던 수형자 나카지마 이야기입니다. 정말 아무런! 쓸모도! 관계도! 없었던 이야기거든요. 음주운전에 대해 비판하는 내용을 잔뜩 집어넣어 사회파스러운 분위기를 풍기게 만들 의도였던 것 같은데 너무 과했습니다. 없으니만 못했어요.
시게노가 다카하시 의원 비리를 폭로하게 되었던 계기였던 아즈미 토마토 팜 취재는 무라카미 료코 사건과 관계가 없지는 않지만, 이게 사건 해결에 도움을 주는건 전혀 없습니다. 시게노가 사건과 얽힌것도 우연이고요. 게다가 시게노가 시장 살인 사건의 누명을 뒤집어 쓴 뒤, 홀로 조사하다가 경찰의 총에 맞는다는건 너무 억지라서 황당하기까지 했습니다. 작가도 수습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던 것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네요.

그래서 별점은 1.5점. 란포상 수상작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졸작입니다. 딱히 권해드릴 작품은 아닙니다. 

2023/02/04

철벽의 알리바이로 완전범죄 성립!? '교환 살인'을 모티브로 한 미스터리

* 언제나처럼 honto의 북트리 서비스를 통한 추리 소설 추천. 국내 소개된 작품은 4편입니다. 저도 두 편 밖에는 읽어보지 않았는데 찾아봐야겠네요.

'교환 살인'은 죽이고 싶은 사람이 있는 사람들끼리 서로의 살해 대상을 교환하는 것을 말합니다. 다른 사람에 의해 살인이 저질러지고 있는 동안에 철벽의 알리바이를 준비해서 혐의에서 벗어나는 완전범죄를 만들기 위해서이지요. 

그러나 교환 살인이 트러블, 변심이나 배반 등으로 생각대로 잘 흘러가지 않고 그 와중에 드라마가 발생하는건 추리 소설에서 기본적인 테마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그런 교환 살인 미스터리 작품들을 소개합니다. 

<<킹을 찾아라>> 노리즈키 린타로

4중의 교환 살인을 계획하고 실행하는 범인과 사건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노리즈키 경시와 린타로 부자의 활약을 그린 미스터리. 범인 측 시점은 일종의 도서 미스터리로, 노리즈키 경시와 린타로 부자 시점은 본격 미스터리물로 즐길 수 있다. 또 교환 살인으로 '누가', '누구를' 죽였는지에 대한 후더닛 요소도 더해져 있는, 헛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치밀한 플롯이 빛나는 본격 요소가 가득 담겨있는 작품.

<<교환살인에는 어울리지 않는 밤>> 히가시가와 도쿠야

사립탐정 파트, 탐정의 제자 파트, 형사 파트가 순서대로 그려지며 교환 살인물로는 드물게 도서 미스터리 스타일이 아닌 채로 진행된다. 제목에는 있지만 도대체 무엇이 교환 살인인지 궁금해하면서, 가벼운 분위기의 문장에 혹해서 읽다보면 어느새 저자의 속셈에 빠져들고 마는 본격 미스터리.

<<도망자>> 오리하라 이치

교환 살인을 저질렀지만 배신당해서 한 번 체포되었지만 탈주한 뒤 도망자 신세가 된 도모타케 지에코. 그녀와 그녀를 쫓는 형사와 남편, 그리고 인터뷰로 구성되어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도피 행각을 실감나게 그리고 있다. 노골적이며 의미심장한 표현들은 서술 트릭의 대가인 저자의 솜씨를 느끼게 해 준다. 실재로 있었던 사건이 모델인 미스터리 작품.

<<스트레이트 체이서>> 니시자와 야스히코 (국내 미출간)

린지는 바에서 취했을 때 3중 교환 살인 약속을 해 버렸다. 다음날 아침, 자신이 지목했던 살해 대상이었던 상사의 집에서 타살 사체가 밀실 상황에서 발견되는데..... 저자가 SF 설정의 본격 미스터리 작품들을 발표하던 시기의 작품. 수수께끼 아이템이 등장해서 이번에도 SF 설정이구나 싶은 점도 흥미로운 점. 꼭 주인공에 감정이입해서 읽어보시길.

<<낯선 승객>>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교환 살인이 주제인 작품들 중 선구자적인 존재인 이 작품은 히치콕 감독에 의한 영화도 유명하다. 우연히 같은 전철에서 만난 가이와 브루노는 서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고, 브루노가 가이에게 교환 살인을 제안한다는 내용으로 편집광적인 스토커의 무서움을 맛볼 수 있는 심리 서스펜스물.

정보는 모두 당신 손 안에! <<독자에의 도전장>>을 즐길 수 있는 미스터리 작품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