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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25

가구, 집을 갖추다 - 김지수 : 별점 2.5점

가구와 인테리어를 단순히 취향의 대상으로만 보지 않고, 생활사와 주거문화의 변화 속에서 풀어내는 에세이 모음집입니다. 

읽으면서 가장 눈에 들어온 장점은 가구와 인테리어 전문가인 저자의 식견이 곳곳에서 드러난다는 점입니다. 화장대 설명에서 청동기시대의 거울 대체품 이야기에서 출발해, 르네상스 이후 화장 문화의 변화, 17세기의 로보이 화장대, 18세기의 토일렛 테이블, 19세기 빅토리아 시대의 더치스 화장대까지 이어지는 흐름을 자연스럽게 정리하며 화장대가 단순한 가구가 아니라 미의식, 계급 문화, 생활양식의 변화와 함께 발전해 왔다는 점을 알려주는 식입니다.

이런 설명은 서양 가구사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조선 말기의 경대, 유리 거울의 보급, 좌식 문화에 맞추어 발달한 소반의 구조와 쓰임, 사랑채와 안방의 변화를 통해 한국의 주거문화와 가구를 연결해 설명해 주기도 하거든요.
덕분에 읽다보면 왜 과거의 가구들이 작고 이동하기 편한 구조였는지, 왜 안방이 오랫동안 생활의 중심이 되었는지, 또 근대 이후에는 거실과 식탁 중심의 공간으로 어떻게 옮겨갔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온돌의 일반화와 좌식 문화의 정착, 그리고 그에 따라 소반이나 경대 같은 생활 가구가 발달해 나갔단 것이지요. 

현재의 생활 방식과 이어지는 제안들도 흥미롭습니다. 소파보다 식탁에 투자하라는게 대표적입니다. 이는 단순한 인테리어 조언이 아니라, 거실과 부엌을 통합하고 한 공간에서 함께 있으면서도 각자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생활 방식으로의 전환을 의미합니다. 실제로 따라 하고 싶은지와는 별개로, 집을 꾸민다는 일이 결국 어떤 삶을 선택하느냐와 연결된다는 점을 생각하게 만드네요. 이사를 계획 중인데 여러모로 참고가 됩니다.

엠파이어 스타일, 리젠시 양식, 아르데코 같은 서양 디자인사의 흐름을 대중문화와 사회 변화 속에서 풀어내는 대목도 흥미롭게 읽혔습니다. 예술가와 장인, 파리지엔느와 프렌치 시크 등의 설명도 재미있게 읽었고요.

다만 책의 성격에 비해 도판이 부실하다는 단점은 있습니다. 설명을 뒷받침해주는 시각 자료가 꼭 필요한 책인데 말이지요. 저자의 일러스트가 수록될 필요가 있었을지도 의문입니다.
아울러 인문학 서적으로 보기에는 전문성이 조금 부족합입니다. 흥미로운 이야기와 넓은 범위의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정작 근거는 충분히 설명하지 않고 넘어가는 부분이 적지 않거든요. 

그래도 가구와 집을 둘러싼 역사, 문화, 생활양식에 대해 쉽게, 부담없이 읽을 수 있다는 장점이 크기에 별점은 2.5점입니다. 

2025/04/04

미친 항해 - 마이크 대쉬 / 김성준, 김주식 : 별점 4점

미친 항해 - 8점
마이크 대쉬 지음, 김성준.김주식 옮김/혜안

마이크 대쉬가 집필한 역사 논픽션입니다. 1628년, 암스테르담을 출항했던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상선 바타비아 호가 이듬해 6월, 현재의 소호주 해안 인근 암초에 충돌하여 난파한 뒤 생존자 사이에서 벌어졌던 벌어진 대규모 학살 사건을 다룬 작품입니다. 2002년 영국에서 처음 출간된 이 책은 BBC History Magazine과 History Today 등의 권위 있는 역사 전문 매체에서 높은 평가를 받은 바 있습니다.

당시 항해의 실질적인 책임자는 선장이었지만, 직급상 최고 책임자는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관리인 '대상인' 프란시스 펠사아르트였습니다. 선장 야콥스와 펠사아르트 사이의 갈등은 여자 문제 등으로 항해 중부터 깊어졌고, 이러한 틈을 비집고 들어온 이가 바로 '부상인'이자 전직 약제사였던 예로니무스 코르넬리스였습니다. 그는 선장을 꼬드겨 선상 반란을 모의했는데, 바타비아 호가 암초에 부딪혀 좌초하면서 계획이 꼬이게 됩니다.

그러나 사건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펠사아르트가 구조를 요청하기 위해 자바섬으로 떠난 틈을 타서 코르넬리스는 생존자들의 리더가 된 후, 체계적인 학살을 벌이기 시작했습니다. 남은 식량과 식수를 가지고 구조대가 올 때까지 버티면서, 반항할만한 불순분자들을 없애기 위해서였지요. 펠사아르트가 구조대를 이끌고 보물을 회수하러 돌아오면, 그 배를 점령해 해적 생활을 하려는 계획으로요. 그래서 병자와 노약자, 반대 세력을 중심으로 약 115명에 달하는 이들을 죽였습니다. 

계획은 나쁘지 않았습니다. 회수할 보물이 많기에 구조대 인원이 많지 않을거라는 코르넬리스 생각대로 구조대가 움직였거든요. 그러나 말라 죽으라는 의도로 다른 섬으로 보내졌던 위이버 헤이스와 건장한 남성들이 우물을 발견하는 등 예상보다 훨씬 좋은 환경에서 생존에 성공하고, 코르넬리스의 학살을 알게된 후 방어 거점을 구축하자 상황은 급변합니다. 코르넬리스는 친위대를 이끌고 위이버 헤이스를 속이려다가 사로잡혔고, 코르넬리스의 후임이 일당들과 함께 위이버 헤이스 섬을 공격하여 전면전이 벌어졌을 때 대상인 펠사아르트의 구조선이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이 장면은 영화나 소설이라고 해도 억지스럽다고 할 것 같은데, 정말 이런 일이 벌어졌다니 놀라웠어요. 여튼, 위이버 헤이스와 코르넬리스 세력은 각각 펠사아르트의 구조선으로 사람을 보냈고, 빨리 도착하는 쪽이 승리하는 싸움에서 위이버 헤이스가 이겨서 폭도들을 모두 사로잡으며 코르넬리스의 음모는 막을 내립니다.

이러한 난파 후 서사만으로도 영화나 소설로 각색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흥미진진합니다. 코르넬리스가 생존자들의 리더가 된 후 학살을 지시하며 독재자로 거듭나는 과정은 '이세계 전생물'로 바꾸어 보아도 재미있겠다 싶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종교와 조직(동인도 회사)가 절대적인 사회에서 독자적이면서도 설득력있는 종교론과 조직에서의 직위를 무기로 자신만의 왕국을 만든다는게 아주 현실적으로 그려지는 덕분입니다.

저자 마이크 대쉬는 방대한 사료 조사와 기록 분석을 통해, 사고 외에도 각 인물의 생애와 심리, 사회 구조적 배경까지 책에 촘촘히 담아냅니다. 예로니무스 코르넬리스가 왜 그런 끔찍한 일을 벌이게 되었는지, 그가 처한 시대와 개인적 몰락, 종교적 배경까지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으며,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기업 구조와 식민 경영 방식에 대한 설명 역시 뛰어납니다. 실제로 코르넬리스의 생애만 따로 정리한 분량이 35페이지에 달할 정도로 깊이 있는 탐구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또한 모든 관련 인물들의 후일담이 꼼꼼하게 조사되어 기록되어 있는데 이 역시 놀라운 수준입니다. 코르넬리스의 아내에 대해서까지 최대한 조사해서 수록했을 정도니까요.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의 무역, 당시 항해에 대한 전반적인 모든 설명 역시 상세합니다. 개인적으로 관심이 많았던 항해 중 먹거리 설명을 예로 들자면, 우선 바다 고기를 낚으면, 누가 고기를 낚든 매일 맨 처음 낚은 고기는 선장의 몫이었고 그 다음 12마리 정도는 상인과 사관들의 몫으로 돌아갔으며, 전례에 의거하여 인정된 순서에 따라 고기가 돌아갔다고 합니다. 선원들은 신선한 음식을 먹는게 거의 불가능했겠지요. 그래서 선원들은 거의 전적으로 통조림에 든 고기와 콩, 건빵으로 알려진 딱딱한 빵인 비스킷으로 끼니를 때웠는데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경우는 음식의 질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갓 도축한 돼지와 소를 사들여 고깃덩어리를 통째로 피도 빼내지 않은 채 바닷물이 펄펄 끓고 있는 가마솥에 넣어 보존 처리를 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처리된 고기는 쌌지만, 아주 짜서 조리를 하려면 청수에 담가 짠 맛을 빼내야 했는데, 항해 중에는 한정된 식수를 절약하기 위해 바닷물에 넣어 끓였다는군요. 얼마나 짰을지 상상도 되지 않습니다. 말린 생선도 싣고 다녔는데, 대구가 대부분이었다네요. 말린 대구는 스튜로 끓여서 역 시 말린 완두콩이나 강낭콩과 함께 먹었고요. 그 외 먹거리들 모두 형편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타비아 호 선원들은 당시의 기준에서 본다면 잘 먹고 잘 마신 편이라는게 충격적입니다. 부과된 노동을 충분히 감내할 정도의 칼로리를 섭취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었겠지요. 그 외에도 가혹했던 항해에 대한 설명 등 재미있는 정보가 그야말로 넘쳐납니다.

이렇게 재미와 역사적, 자료적인 가치 모두 빼어난데, 코르넬리스가 이단 사상에 빠지게 된 과정에 대한 추측이라던가, 후일담 이후 코르넬리스가 정신병자로 '반사회적 인격장애'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에 대한 설명 비중이 지나치다는건 다소 아쉬웠습니다. 오스트레일리아에 백인들 후예가 살고 있을거라는 추측도 마찬가지고요. 섬에서의 학살도 논픽션이라 어쩔 수 없었겠지만, 극적인 이야기를 그렇게 잘 묘사했다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또 책의 디자인과 구성도 옛스러워서 읽기 불편했고, 도판도 좋은 편은 아니에요. 

그래도 단점은 사소합니다. 별점은 4점입니다. 충격적인 실화를 방대한 자료로 치밀하게 재구성한 뛰어난 논픽션입니다. 난파에 대한 논픽션을 세 권째 읽게 되었는데 - "바다 한가운데서", "메두사 호의 조난" - 대체로 기본 이상은 해주는 장르인 것 같네요. 이런 분야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꼭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2025/02/16

아틀라스 마이오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지도책 - 강민지 : 별점 2.5점

17세기 네덜란드에서 탄생한 "아틀라스 마이오르"는 역사상 가장 웅장하고 아름다운 지도책으로 평가받습니다. 당시 유럽 최고의 기술과 예술이 결합된 결과물로, 단순한 지도책을 넘어 예술 작품으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아틀라스 마이오르"가 어떻게 제작되었으며,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를 알려줍니다.

지도책을 단순한 지리학적 도구가 아니라, 인문학적, 역사적 맥락에서 깊이 있게 분석한다는게 가장 큰 장점입니다. 덕분에 예술, 인문학 서적이자 문화사, 미시사 서적 이라는 성격도 갖추고 있습니다. 지도책에 대한 다음과 같은 설명이 좋은 예입니다. '17세기 네덜란드는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해상 무역국이었으며, 높은 문해율과 학문을 숭상하는 분위기 속에서 서적과 인쇄물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습니다. 이러한 배경 덕분에 지도책은 단순한 실용적 목적을 넘어, 지식을 과시하는 하나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개인 도서 지관을 꾸려 장서를 자랑하는 문화가 퍼지면서 크기가 크고 값비싼 지도책이 인기를 끌었고, 이는 곧 출판 시장에서 고수익을 낼 수 있는 분야로 성장했습니다.'는 것이지요.

지도책 본연의 모습에 대한 소개도 충실합니다. "아틀라스 마이오르"를 중심으로 지도 제작의 발전 과정까지 폭넓게 조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르텔리우스(상업 지도책의 선구자), 메르카토르(현재도 사용되는 평면 도법의 창시자), 블라외 가문(아틀라스 마이오르 제작 명문 가문), 혼디우스 가문(블라외 가문의 라이벌) 등 지도 제작의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인물들이 등장하며, 이들과 이들의 대표작을 통해 지도책이 단순한 정보 전달 도구를 넘어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를 설명해 줍니다. 지도 제작과 출판의 흐름까지 자연스럽게 연결되면서, 한 권의 지도책을 탐구하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역사적 맥락을 함께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요.

책의 또 다른 장점은 지도 제작에 사용된 도판과 인쇄 기술에 대한 상세한 설명입니다. "아틀라스 마이오르"에 대한 방대한 양의 도판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당시 한국을 묘사한 지도가 포함된건 반가왔고요. 또한, 인쇄 방식과 채색 과정에 대한 설명도 흥미로운데, 컬러 인쇄 기술이 없던 시절 '채색사'라는 직업이 존재했다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이들이 단순한 흑백 인쇄물을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완성하는 데 기여했으니, 지금도 그 이름이 전해지는건 당연한 일이겠지요.

아울러 지도책을 단순한 과학적 산물이 아니라 미학적 관점에서도 연구 분석하는데, 그 깊이가 대단합니다. 지도 제작에 사용된 물감을 단순히 색채의 문제로 다루는 것이 아니라, 당시 네덜란드의 유행과 연결해 설명하며, 지도 속 도상(알레고리) 분석을 통해 지도책이 가진 상징적 의미를 해석하는 식이거든요. 특히 지도에 등장하는 문양과 장식 요소를 단순한 디자인이 아니라, 시대적 사고와 권력 관계를 반영하는 요소로 분석하는 과정은 지도책을 또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게 만듭니다.

그러나 "아틀라스 마이오르" 외의 불필요한 내용이 지나치게 많은 구성은 아쉽습니다. 지도책의 유행 이유나 지도 제작 역사를 설명하는 부분은 필수적인 정보지만, 당대 경쟁 지도 제작자의 지도까지 세세하게 다루고, 당시 네덜란드에서 유행하던 문화까지 지나치게 깊이 파고드는건 과했습니다. 특히 60페이지에 걸친 '도상(알레고리)' 설명은 지나쳤습니다. 지도책에 문양이 들어갔다고 해서, 문양의 구성 요소와 의미, 디자인 규칙까지 세세하게 독자가 이해할 필요는 없었으니까요.

도판도 풍성하지만, 내용을 확인하기에는 다소 작은 도판이 많은건 단점입니다. 주요한 도판은 접어 넣는 방식으로라도 보다 크게 확인할 수 있게 해 주었더라면 좋았을 것 같아요.

저자의 가벼운 문체도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저자의 개인적인 경험이나 최신 트렌드를 인용한 비유가 자주 등장하는데, 책의 분위기와 영 어울리지 않았던 탓입니다. 이런 표현은 어느 정도는 교열 과정에서 조정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지도책을 다룬 미시사, 예술사적인 측면에서는 가히 독보적인 결과물이라는건 분명합니다. 허나 지도책을 벗어난 이야기도 많기에 감점합니다. 

2024/07/13

눈의 황홀 - 마쓰다 유키마사 / 송태욱 : 별점 4점

눈의 황홀 - 6점
마쓰다 유키마사 지음, 송태욱 옮김/바다출판사

'많은 발상가들이 생각의 도구로 사용한 ‘개념’이나 ‘형태’, ‘방법’ 등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그 기원을 탐색한 책이다. 다양한 ‘개념’, ‘형태’, ‘방법’ 중에서도 쌍[對]이라는 관념, 속도, 원근법, 나선, 추상 표현, 스트라이프, 콜라주, 레디메이드, 데포르메, 오브제 등 인간의 눈을 현혹해 온 18가지 테마의 기원과 변천을 묻는다. 이 과정에서 마쓰다 유키마사는 비주얼 문화에 대한 심오한 통찰과 인류 가치관의 변천이 갖고 있는 놀라운 반전들을 보여 준다.'는 책 소갯글에 혹해서 구입했습니다. 

이러한 개념, 형태, 방법의 기원에 대해서는 저자의 개인적인 주장이 강하기는 하지만, 뒷받침되는 근거들이 방대하고 역사적인 깊이도 느껴졌습니다. 자기 주장을 그럴듯하게 설명하는데 굉장히 능하기도 하고요.
 
그동안 깊이 생각해본 적은 없었지만, 궁금했었던 부분에 대해 설명해주는 주장들이 특히 흥미로왔습니다. 동양화와 서양화의 차이가 동서 종교관의 차이에 의해서 비롯되었다는게 대표적입니다. 서양의 일신교는 수직 지향이며, 이를 통해 수직선 끝에 한 사람의 신이 있는 소실점이 등장했다고 하는데, 요약만 보면 이해하기 어렵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와 도판, 사료가 많아서 그럴듯하게 설명됩니다.

추상 표현을 기차의 도입과 연결시킨 발상도 기발했습니다. 늘 보던 풍경이 기차의 속도로 왜곡되어 보였고, 이를 차창이라는 사각의 프레임으로 잘라낸게 추상파의 뿌리일 수 있다는건 생각도 못했었으니까요. 그렇다면 이동 속도가 빨라지면서 마크 로스코가 등장하게 된 것일까요?

디자인 전공자라 '폰트'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은 편인데(이런 책을 읽었었지요), 폰트와 타이포크라피의 역사를 색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는 부분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저자의 주장으로는 구텐베르크의 좁고 날카로우며 새까만 블랙 레터체(고딕체)는 성서에 위엄과 무게를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르네상스의 중심지 이탈리아에서는 이는 거칠고 세련되지 못해 경멸했던 고트인의 문자(고딕체)라서 거부했고, 고대 로마 서체야말로 로마인에게 어울린다며 '로마체'를 부활시켜 사용했습니다. 이를 계승하여 프랑스에서 사용된게 올드 로마체를 대표하는 우아하고 기품있는 '가라몽체' 였고요. 그리고 서체, 타이포그라피 요소만으로 아름다운 지면을 만들어내려 했던 영국의 존 바스커빌이 18세기 모던 로마체를 도입했고, 뒤이어 이탈리아의 보도니가 완성하여 산업 혁명에 적합한, 공업 제품으로서의 활자를 만들어 냈다는군요. 이러한 주장과 함께 문자 레이아웃 디자인의 발전사도 설명해주는데, 지금 보아도 기발한 시도들이 많아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이외에도, 청각을 시각화한 것의 대표는 '악보'이다, 토기로 끓이는 요리 때문에 주기성-시간 관념-과 재분배에 의한 문명이 생겨났다는 등 한 번 읽어볼만한 주장이 가득하며, 주장을 설명하기 위한 도판도 많아서 시각적 재미와 함께 자료적 가치도 크다고 생각됩니다. 일본 최초의 자동판매기 설명과 도판은 이런 책이 아니면 어디서든 찾아보기 힘든 자료일테니까요.

대부분 일본 중심으로 동양 부분을 설명하고 있다는 점은 아쉽지만 이는 저자가 일본인이기에 당연한 일입니다. 단점으로 보기는 어렵지요.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류의 주장을 펼 수 있는 전문가가 나와주면 좋겠네요. 제 별점은 4점입니다.

2024/05/11

우리 미술 이야기 2 : 영원한 현재 - 고려 - 최경원 : 별점 2.5점


우리 문화 유산의 아름다움과 자랑거리, 그리고 알아두면 좋을 이런저런 내용을 소개해 주는 책. 저자의 "한류 미학 1"을 재미있게 읽어서 뒤이어 읽게 된 후속 권입니다. 절판 후 재출간되면서 제목이 바뀌었네요.

2권은 고려 청자 중심으로 고려 문화 예술만 소개하고 있는데, '고려의 청자를 비롯한 문화 예술품은 '대량 생산'되었기에 '디자인'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는 주장을 기저에 깔고 있습니다. 장인이 모든 것을 다하는게 '공예', 산업 혁명 이후 기계적 대량생산이 이루어지며 생산품 형태를 고안하는 일이 '디자인'인데, 국가 주도로 대량 생산된 청자는 '디자인'의 산물이라는 것이지요. 이는 '표준화' 경향으로 증명된다며 대체로 유사한 청자의 형태 등으로 주장을 뒷받침하는데 꽤 그럴듯 했습니다. 디자인에 의한 대량 생산품의 우수함은 문화의 우수함을 증명한다는 주장도 아주 억지스럽게 느껴지지는 않았고요.

다양한 청자를 가지고 청자의 우수성과 예술성을 설명해주는 부분도 좋았습니다. 도입부의 '청자의 색' 설명부터 눈길을 끕니다. 고려 청자의 다소 칙칙한 색이 찬양되고 있는 이유를 알려주는데, 고려청자는 '옥'의 색을 겨냥해 만들어진, '비취' 색이었기 때문입니. 옥은 중국에서도 구하기 힘든 보석 중의 보석으로, 송나라에서 처음으로 옥의 색과 질감을 유사하게 재현했었지만 고려 청자가 진짜 비취색을 구현해서 당대의 명물이 되었다고 하네요.

명품 고려 청자의 아름다움을 새롭게 느끼게 해 주는 여러가지 발견과 정보도 볼 만 했습니다. 사진이 아니라 스케치를 통해 그림을 정확하게 보여주는 도판도 매력적이고요. 아래와같이 돋을새김 상감으로 이루어진 문양은 사진으로는 그 형태를 온전히 보기 어려운데, 스케치로 제대로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도자기는 3차원적 형태에 잘 어울리도록 그려지고, 이어진 형태로 감상해야 하는 그림이 많아서 전체를 돌려가며 보아야 된다는 착안도 좋았습니다. 이런건 박물관에서도 전시 시에 활용해주면 참 좋을 아이디어라 생각됩니다. 실제로 천천히 돌려서 전시하는 식으로 말이죠.

저자만의 주장도 눈길을 끄는게 많은데, 그 중 두 가지가 인상적입니다. 첫 번째는 황금 비례는 수학이 진리라고 생각했던 그리스 시대의 정신적 습관으로 만들어진 결과로 특정한 하나의 양식이자 독특한 미적 가설에 불과하다는 주장입니다. 황금 비례가 많이 사용되는건 사람의 눈의 구조가 똑같고, 보편적인 감정이 있어서 대체로 2:3이나 3:4 정도의 비례를 좋다고 느끼기에 그런 조형 결과물들이 많은 것 뿐이라서 특별히 대단한 이론이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지요.
두 번째는 청자를 만들 수 없었던 조선은 문화가 낙후된게 아니라는 일련의 주장입니다. 조선 왕조 500년을 문화 퇴행기로 보는 건 일제 강점기 시기 총독부 소속의 일본 학자 세키노 타다시의 역사 왜곡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조선시대 문신들은 삼강오륜을 앞세운 근엄한 도덕적 생활을 해서 정서가 발달하지 못했고, 경제력도 보잘것 없어서 미술이나 미적 감각을 발전시킬 힘과 여유가 없었다는 김원룡의 시각도 마찬가지로 악의적 편견인 것이지요. 저자는 조선의 경향은 조형 예술 역사에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추상'이라는 개념의 경향일 뿐이라며, 이를 맨 마지막에 소개된 '은진미륵'을 통해 설명해줍니다. 은진미륵은 세계에 관한 관심이 달라진 데에 따라 만들어진 새로운 미적 감각의 표현으로, 인자한 보살의 이미지를 추상적으로 단순화시킨 조형으로 특유의 가치를 느낄 수 있다는걸 여러가지 분석으로 알려주거든요. 이러한 경향이 조선으로 이어지게 된 것일테고요. 또한 청자가 만들어지지 않은건 옥의 모조품이라는 목표가 더 이상 사회적으로 공유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보는게 타당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두 가지 주장은 재미는 있는데 완벽하게 동의하기는 어려웠습니다. 황금비례는 보편적인 아름다움을 이론화 했다는 점에서 분명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되거든요.
은진미륵에서도 추상성에 따른 아름다움은 솔직히 느끼기 힘들었습니다. 예가 좀 잘못된게 아닌가 싶더군요.

이외에도 많은 아름다운 유물을 보는건 좋았지만 청자가 대부분이고, 내용도 비슷한게 많아서 뒤로 가면 갈 수록 지루하다는 문제도 큽니다. 청자의 형태가 유기적으로 이는 최신 디자인 경향과 비슷하다는 주장이 반복되는 탓입니다.
그리고 이전에도 지적했지만 문헌, 사료적 근거가 다소 부족하다는 단점도 있습니다. 저자는 문헌을 분석하는 것 보다 유물 자체를 관찰하고 추론하는게 중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자신의 추론을 문헌을 통해 뒷받침하려는 노력 정도는 해 주는게 보기가 좋았을겁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유물 중심으로 분량을 줄였더라면 훨씬 좋았을겁니다.

2024/04/26

예술에 대한 여덟 가지 답변의 역사 - 김진엽 : 별점 3.5점

예술에 대한 여덟 가지 답변의 역사 - 8점
김진엽 지음/우리학교

작품 그 자체의 아름다움을 설명해주거나, 특정 사조에 대한 설명을 해 주는 책은 많습니다. 그런데 이 책은 '예술이 무엇인지'에 대한 이론을 설명해 줍니다. 딸아이 논술 학원 교제인데, 생각보다 깊이있는 내용이라 깜짝 놀랐네요.
통사적으로는 사물을 그대로 묘사하는 모방론, 모방이 아니라 감정까지 표현한 표현론, 무관심성에서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만드는 색의 조합과 평면성을 강조하는 형식론, 뒤샹의 '샘'으로 논의가 시작되어 결국 예술이란게 무엇인지는 정할 수 없다는 예술 정의 불가론, 마지막으로 예술은 사회적 제도와의 연관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제도론으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예술이 무엇인지에 대한 답은 여러 개 있다는 다윈론, 예술은 인간 생존과 관련이 있어서 탄생했다는 진화 심리학과 예술 관계론이 설명됩니다. '예술은 경험이다'는 주장으로 끝맺고 있고요.

사실주의, 낭만파, 인상파,입체파, 야수파 등 각 미술 사조에 대해서는 어렸을 때부터 들어왔지만 그 사조와 예술, 아름다움의 관계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 어느정도 감을 잡게 된 것 같아요. 예술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술 정의 불가론'에 의거하여 사람들마다 답이 다를 수 밖에 없으니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고민해 보았는데, 예술은 그걸 감상하는 사람들이 아름다움같은 감정을 느끼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싶네요. 표현론과 형식론을 아우르는 것으로, 뒤샹의 '샘'이 어떤 감정을 일으켰다면 - 개인적으로는 참신함과 더불어 '재미'를 느꼈습니다 - 이 역시 예술이라 생각합니다. 이 책의 주장대로 일상 속에서 이런 경험을 하도록 해 준다면 더할나위 없을겁니다. 물론 실제 예술 작품을 실생활에 사용하는건 불가능할테니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라도 특별한 감정을 느끼는 경험을 계속 해야 겠지요. 같은 이치로, 집안에서 쓰는 물건들도 되도록 '예술'에 가까운 감정을 불러일으키는걸 골라야하겠어요. 평상시에도 예술과 함께하는 경험으로 일상과 삶을 살찌우고 풍부하게 만드는게 좋을테니까요. 저는 그동안 인테리어 등에 들이는 돈을 무시하고 가성비를 중시했었는데 많이 반성이 됩니다.
이런 감상 경험에 더해, 작가 스스로 그 작품을 만들며 특별한 경험을 했다면 그 결과물이 예술이라는 관점에도 동의합니다. 그래서 수도 없이 다양한 예술 작품의 장르가 존재하고 계속 발표되고 있는 것이지요.

이렇게 깊이 새겨둘만한 좋은 설명이 많은데, 대상 독자 연령대가 낮은 듯한 편집 디자인은 아쉬웠습니다. 같은 내용을 성인 대상으로 보다 상세하게, 어울리는 디자인으로 출간했더라면 훨씬 좋았을 겁니다. 
그래도 좋은 책이라는건 부인할 수 없습니다. 제 별점은 3.5점입니다. 예술이 무엇인지 궁금하신 모든 분들께 추천드립니다.

2023/12/31

2023 내 블로그 리뷰 총 결산


이글루스 사망으로 구글 이사 후 첫 결산이자, 스무번째 블로그 리뷰 총 결산입니다. 인생 첫 블로그였던 블로그인에서 시작해 꾸준히 달려왔네요.
 
올해 읽은 책 수는 다음과 같습니다. (괄호는 작년)
추리 / 호러 장르문학 61 (71)권, 기타 장르문학 4 (5)권, 역사서 7(5)권, 디자인 or 스터디 4 (4), Food 및 구루메 관련 도서 3 (4)권, 기타 도서 15 (13)권
이렇게 모두 94 (102) 권입니다. 100권을 넘기지 못했고, 작년과 비교해도 약 10% 정도 줄었네요. 만화 관련 포스팅을 39건이나 올렸을 정도로 만화를 많이 읽있고, 영화와 애니메이션도 많이 본 탓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남는 시간은 머리를 비우며 가볍게 보내고 싶어지는데 반성해야 겠습니다.

그럼 언제나처럼 각 항목별 베스트 - 워스트를 소개해드립니다. 언제나처럼, 올해 발표된 작품 기준이 아니라 제가 올 한해 보고 읽은 것들 기준입니다. 아울러 5권 이하로 읽은 분야는 특별한 걸작이나 망작이 없다면 그냥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2023년 베스트 추리소설 :
"황제의 코담뱃갑"
존 딕슨 카의 고전. 구관이 명관. 별점 5점.

2023년 워스트 추리소설 :
"전래 미스터리"
완성품으로 보기 어려운 별점 1점짜리 망작.

2023년 베스트 기타 장르문학 :
"마션"
재미와 지식 전달 모두 훌륭.

2023년 베스트 역사 도서 :
"신의 기록"
all time으로 쳐도 베스트 중 한 권일 수준.

2023년 워스트 역사 도서 :
"산척, 조선의 사냥꾼"
정작 사냥꾼 이야기는 별로 없음.

2023년 베스트 디자인 or Study :
"딕 브루너"
별점 5점! 
그 외의 디자인 관련 도서 3권도 모두 별점 3점 이상.

2023년 베스트 Food / 구루메 도서 :
"식민지의 식탁"
소설들로 알아보는 일제 강점기 식문화

2023년 베스트 기타 도서 :
"해변의 카프카"
무라카미 하루키는 역시.

2023년 워스트 기타 도서 :
없음.

2023년 베스트 Movie :
"서울의 봄"
두말할 나위없는 올해의 베스트.
참고로, 애니메이션 베스트는 "천국대마경".
 
2023년 워스트 Movie :
"명탐정 코난 비색의 탄환"
아동용은 이 정도 수준이라도 괜찮나?

2023년 베스트 Comic :
"리처드 스타크의 파커 : 헌터 / 아웃핏"
미국 카툰의 힘.

2023년 워스트 Comic :
"체셔 크로싱"
돈 받고 팔 수준이 아니었음.

이 글을 마지막으로 2023년을 마무리합니다. 24년 갑진년에 다시 뵙겠습니다.
제 블로그를 찾아주신 분들 모두 새해에는 원하시는 일 다들 이루시기를 바라겠습니다. 

2023/04/09

활자본색 - 이재정 : 별점 3점

활자본색 - 6점
이재정 지음/책과함께

남아있는 조선시대 금속 활자 중심으로 우리나라 활자의 역사에 대해 설명해주는 미시사 서적.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 등으로 근무하며 금속활자 연구를 진행했던 저자의 오랜 연구와 학습이 바탕이 된 상세한 설명이 가득합니다. 어려울 수 있는 내용을 쉽게 풀어내는 글도 마음에 들었고요. 덕분에 그동안 몰랐었던 조선시대 금속 활자에 대해 많은걸 새롭게 알게 되었네요. 
대표적인건 왜 조선에서는 금속 활자를 많이 만들었는지? 에 대한 설명이었습니다. 태종부터 금속활자 계미자를 만든 이유를 인쇄 목적이라고 천명했지만, 어차피 똑같은 서적을 찍을 거라면 목판본으로 만드는게 더 나았을 수 있습니다. 금속 활자로 인쇄할 수 있는건 하루에 많아야 20장 정도가 한계였다니 그다지 가성비가 높다고 보기 어렵고요. 때문에 저자는 왕들이 힘과 돈을 써 가며 금속 활자를 만든 이유를 왕권 강화, 왕의 힘을 과시하기 위해서라는 이유가 컸다고 풀이합니다. 문치주의, 유교 문화 영향 아래에서 사치의 상징으로 내세울게 금속 활자였다는 해석이지요. 정조를 도와 활자 정유자를 만든 서명응이 이를 '부서', 즉 상서로운 징조이자 왕권의 상징이라고 언급하기도 했고요. 제왕의 상징인 '구정'과 같은 구리로 만들어서 그랬다는 해석은 참신했습니다. 때문에 왕권이 강했고, 나름 국력과 왕권이 강했던 시기에 많이 주조되었던게 중요한 근거 중 하나이고요. 활자로 당시 국력을 가늠할 수 있다는게 재미있는데, 이런걸 보면 정조대왕 시기가 일종의 조선 후기 마지막 번영기였다는건 틀림이 없는 사실 같습니다. 화성이라는 거대한 건설 사업에 각종 기록들은 물론이고, 금속활자도 가장 많이 주조했다고 하니까요. 
왕의 서체를 직접 활자에 반영한다던가, '역적' 안평대군의 서체로 만들어졌던 활자를 없애고 새로운 활자를 만들어 그를 대체한 것도 같은 이유였을겁니다. 기껏 애써 만든 활자를 활용해서 많은 책을 출판하지 않은 것도, 왕의 것이라 아낄 수 밖에 없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드네요.
민간에서도 금속활자를 만들었는데, 그 이유 중 하나가 족보를 위조해서 군역을 회피하기 위해서였다는 이야기는 새로왔습니다. 목판은 족보 위조 시 판 하나를 갈아치워야 하지만 금속활자는 이름만 바꾸면 되었기 때문에 간편했다나요. 하지만 결국 민간에서 활자 제작하는걸 막을 수 없었고, 심지어 국력이 약했을 때는 민간 활자를 징발해 책을 만들었다고도 합니다.

각 활자별 분류도 상세합니다. 어떤 왕이 어떤 활자를 만들었고, 각 활자별로 어떤 특징이 있는지를 알려주는데,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 출신답게 조선시대 금속 활자를 망라하고 있는 도판이 아주 좋습니다. 상세할 뿐더러 초반부의 해서체에서 후반부 명조체로 이동하는 일련의 흐름을 잘 보여줍니다. 특히 많이 친숙한 명조체는 원래 송나라 시대 목판 인쇄가 성행하면서 판목에 글자를 새기는 속도를 높이기 위해 만들기 시작했으며, 본격적인 사용은 명나라 시기부터였고, 이 서체가 서양 납활자로 만들어진 후 일본에 도입된게 현재 명조체의 기원이 되었다는 역사는 처음 알았네요.
또 서체의 변화는 한자 서체와 함께 한글 서체도 함께 알려주는데, 한자보다 한글이 서체의 변화가 훨씬 크게 느껴지는게 인상적이었습니다. 그야말로 확실한 디자인 변형을 보여주거든요. 극초기 훈민정음 창제 시기의 서체가 한자 서체와 유사하게 정방형 구조 안에 글자를 넣었고, 창제 원리에 맞게 점, 선, 그리고 네모 형태 기준으로 조합하는 디자인이라 더 모듈화된 느낌을 전해주었고, 그래서 형태적으로는 현대적인 고딕 서체와 거의 동일했다는걸 잘 알 수 있었습니다. 굉장히 모던한 서체였던 셈이네요. 이러한 초창기 맛이 이후 한자 서체의 해서체를 바탕으로 한글 서체가 발전되어 사라졌다는게 조금 아쉽습니다. 다시 현대적으로 재구성해보아도 멋질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 외에도 활자의 제작 방식과 실제 활용 - 출판 - 등에 대한 설명도 빠지지 않습니다. 활자로 책을 어떻게 만들었는지에 대해서는 실제 간행되었던 책들을 기준으로 알려주는데, 한자와 한글이 섞인 책의 레이아웃 구성 비교가 재미있었어요. 글의 중요도에 따라 나누어 인쇄했는데, 현재의 '마스터 페이지' 개념이 적용된 것이라 할 수 있겠지요.
개인적으로 가장 궁금했던 활자 제작 방식은 일종의 모래 거푸집을 활용하여 만들었다고 알려줍니다. 한 번에 많은 양을 만들지는 못했을테니 국가적인 사업이 맞았고, 당연히 왕권이 강했어야 했겠어요. 지금 기술이 온전히 전해지지 않고 있다는게 아쉬운데, 제대로 복원이 되면 좋겠습니다.
또 활자를 어떻게 조판했는지, 어떻게 활자 제작 기술이 발달했는지, 심지어 종이와 먹, 인쇄와 제본, 활자와 책을 만든 장인들과 기관명에 대한 소개까지 이어지는데, 두 종류의 먹 중 소나무를 태운 그을음으로 만드는 송연먹보다 각종 기름을 태운 그을음으로 사용한 유연먹이 금속활자 인쇄에 유리했다는 등의 토막 상식도 재미있었어요. 금속 재질에 기름으로 만든 먹이 더 잘 달라붙었다는 이유 때문이랍니다.
마지막의 활자 보관장은 처음보는 가구인데, 어떻게 활자를 분류해서 넣었는지를 짤막하게나마 알려주어서 좋았습니다. 나름 부수를 통합하거나 분리했는데, 저자는 단지 부수별로 구분하면 글자수 편차가 심하니, 자주 쓰는 글자는 찾기 쉬운 서랍에 넣고, 나머지 글자들은 부수를 줄여 적당히 모아 놓은 방식이었을거라 추측합니다. 그래도 조판하는 사람들은 어떤 활자가 어느 서랍에 있는지 대충은 기억하고 있었어야 했을텐데, 정말 전문가의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초, 중반부까지의 설명에 비해 뒷부분 설명은 다소 부족하다는 느낌은 듭니다. 책 한 권에 너무 많은 내용을 담으려 한 게 아닌가 싶어요. 그래도 조선의 금속활자에 대한 모든걸 망라하여 쉽게 설명해준다는 점에서 비교대상을 찾기 힘든 좋은 미시사 책이었습니다. 제 별점은 3점입니다.

2022/12/29

2022 내 블로그 리뷰 총 결산

열아홉번째 블로그 리뷰 총 결산. 드디어 이 블로그가 성인이 되었습니다. 19금 컨텐츠도 이제 소화할 수 있겠네요.

올해 읽은 책은 권수로는 다음과 같습니다. (괄호는 작년)
추리 / 호러 장르문학 71 (57)권, 기타 장르문학 5 (3)권, 역사서 5 (17)권, 디자인 or 스터디 4 (1), Food 및 구루메 관련 도서 4 (15)권, 기타 도서 13 (24)권
모두 102 (117) 권을 읽었습니다. 작년과 비교하면 약 15% 정도 감소했네요. 코로나 사태가 진정된 덕분으로 외부 활동이 늘었고 대선, 월드컵 등 굵직한 이벤트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추리 / 호러 장르문학은 더 많이 읽었고, 그동안 자주 읽었던 역사서와 음식 관련 도서에 대한 관심이 급감한건 아무래도 짬이 나서 책을 읽는 시간에는 좀 더 흥미 위주의 책을 집어들게 된 탓이고요. 올해 추리 소설 1,100권째 리뷰를 달성하느라 좀 많이 달렸던 이유도 있을겁니다.

그럼 언제나처럼 각 항목별 베스트 - 워스트를 소개해드립니다. 언제나처럼, 올해 발표된 작품 기준이 아니라 제가 올 한해 보고 읽은 것들 기준입니다.

2022년 베스트 추리소설 :
<<디오게네스 변주곡>>
올해는 별점 3.5점을 받은 작품이 두 편 있었습니다. 이 책과 미쓰다 신조의 <<마가>>입니다. 두 작품 다 좋은 작품이지만, 단편집으로 <<추리 소설가의 등단 살인>>, <<숨어있는 X>>라는 두 편의 별점 4점 짜리 단편이 수록된 이 작품을 올해의 베스트로 꼽겠습니다.

아울러 올해 읽은 단편 중 최고의 단편은 <<미스터리를 읽은 남자>> 수록작인 <<엘러리 퀸을 읽은 남자>>입니다. 보기드문 별점 5점짜리 단편이지요. <<디오게네스 변주곡>> 수록작 2편과 교고쿠 나쓰히코의 <<싫은 소설>> 수록작 <<싫은 여자친구>>는 별점 4점으로 아쉽게 선정되지 못했네요.

2022년 워스트 추리소설 :
<<심야의 손님>>
별점 1점짜리 작품이 이렇게 많았던 해도 드물 것 같습니다. A.J 킨넬의 <<퍼펙트 맨>>, 엘러리 퀸의 <<샴 쌍둥이 미스터리>>, 오쿠라 데루코의 <<심야의 손님>>, 모리스 르블랑의 <<수정 마개>>, 시로다리아 교의 <<명탐정에게 장미를>>의 여섯 편이나 되니까요. 최악 중에서도 최악은 <<심야의 손님>>이었습니다. 단편집인데 수록작들은 별점 1점도 못되는 작품들 투성이거든요. 이렇게 뭐 하나 건질거 없는 망작은 정말이지 오랫만에 봅니다.

2022년 베스트 기타 장르문학 :
<<프로젝트 헤일메리>>

2022년 워스트 기타 장르문학 :
<<변덕쟁이 로봇>>

2022년 베스트 역사 도서 :
<<기억의 의자>>
달랑 5권 읽긴 했지만 역사 관련 도서들은 언제나 평타 이상은 쳐 줬었죠. 별점 3.5점을 받은건 이 책이 유일했지만, 다른 책들도 별점 2.5점 이상이었고요. 올해도 워스트는 따로 선정하지 않겠습니다.

2022년 베스트 디자인 or Study :
<<당신이 찾는 서체가 없네요>>
달랑 4권 읽기는 했지만, 그 중에 군계일학처럼 빛나는 별점 4점짜리 책입니다.
그 외 책들도 가장 낮은 점수가 별점 2점이니, 워스트는 역시 선정하지 않겠습니다.

2022년 베스트 Food / 구루메 도서 :
<<혼밥 자작 감행>>
디자인 관련 서적과 마찬가지로 4권만 읽었는데 놀랍게도 모두 별점 3점입니다! 평균 별점으로는 가장 높은 분야네요. 다 좋았지만 제가 사랑하는 만화 <<술 한잔 인생 한입>>의 삶을 구현한 듯한 쇼지 사다오의 에세이 <<혼밥 자작 감행>>을 베스트로 꼽아봅니다.

2022년 베스트 기타 도서 :
<<덜미, 완전범죄는 없다 1>>
범죄 관련 논픽션으로 완벽했던 결과물. <<그것이 알고 싶다>>를 애청하신다면, 흥미롭게 읽으실 수 있는 책입니다.

2022년 워스트 기타 도서 :
<<그 남자의 시계>>
별점 1.5점을 받은 책은 <<그 남자의 시계>>와 <<룸>>의 두 권입니다. 이 중 워스트는 <<그 남자의 시계>>입니다. 두 권 모두 기대했던 내용이 아니어서 실망이 컸지만, <<그 남자의 시계>>가 가격 측면에서는 더 비쌌으니 감점도 더 크게 받아야겠지요.

2022년 베스트 Movie :
<<탑건 : 매버릭>>
한 마디만 하겠습니다. 극장에서 두 번 봤습니다.
워스트는 딱히 꼽을게 없네요...

2022년 베스트 Comic - 추리 or 호러 :
<<BOX ~ 상자 속에 무언가 있다>>
모로호시 다이지로의 상상력이 나름 정교한 이야기와 결합된 수작 모험물.

2022년 워스트 Comic - 추리 or 호러 :
<<C.M.B 박물관 사건목록 44>>
설득력없는 트릭의 향연. 시리즈가 끝난게 다행이다 싶네요.

2022년 베스트 Comic - 기타 :
<<혼자를 기르는 법>>
독특한 작화, 무거운 분위기, 가벼운 개그의 조합. 좋았습니다.

2022년 워스트 Comic - 기타 :
<<지구 멸망 일주일 전, 뭐 먹을까?>>
독특한 설정 외에는 건질게 없었던 망작.


2022년 한 해도 이렇게 저물어가네요. 여러분들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새해에는 원하시는 일 다들 이루시는 그런 한해 되시기를 바랍니다. 작년, 그리고 재작년에도 말씀드렸지만 제 블로그를 찾아주시는 분들이라면 남들이 관심갖지 않는 사소하고 디테일한 것들에도 관심을 가지시는, 정말로 세심한 분일테니 내년에는 더욱 잘 되실게 분명합니다. 사랑합니다~!

2021 내 블로그 리뷰 총 결산

2022/12/25

엔진의 시대 - 폴 인그래시아 / 정병선 : 별점 3점

엔진의 시대 - 6점
폴 인그래시아 지음, 정병선 옮김/사이언스북스

역사에 이름을 남긴 자동차들에 대해 시기별로 소개해주는 책.
그 자동차를 만든 주역이 누구인지와 함께 자동차가 출시되었던 당시 상황, 사회적 분위기를 엮어서 성공했다면 왜 성공했는지, 실패했다면 왜 실패했는지와 그 외 어떤 후폭풍(?)을 불러 왔는지 등 관련된 이야기를 무려 470페이지가 넘는 분량으로, 15편의 이야기를 통해 상세하게 설명해 줍니다.
당대를 대표했고, 큰 인기를 끌었던 자동차에 대한 이야기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읽다보니 시대와 트렌드, 유행이라는 것에 대해 식견을 넓힐 수 있었었어요. 자동차야말로 소비재의 끝판왕 격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요. 미국 중심의 이야기라는 한계가 있고, 소개되는 도판과 책의 편집이 그닥이라는 점은 아쉽지만 여러모로 독서였습니다. 제 별점은 3점입니다.
15편의 소개 중 인상적이었언 몇 편에 대해서, 아래와 같이 짤막하게 소개드리며 리뷰를 마치겠습니다.

<<모델 T대 라살>>
자동차를 일반인도 소유할 수 있게 한 포드의 모델 T의 등장, 그리고 곧 돈이 있는 사람들은 고급진 무언가를 찾게 되었지만 모델 T의 디자인 개선을 등한시했던 포드가 시장을 잃는 과정이 소개됩니다. 모델 T의 개발 과정도 상세하지만, 무엇보다도 헨리 포드에 대한 보다 깊이있는 접근이 돋보였습니다. 자존감이 높은 독재자로 그가 벌였던 여러 행각이 가감없이 소개되며, 차를 개발했던 인물 중심으로 서술되는 책의 정체성을 분명히 알려줍니다. 조금 놀랐던건 모델 T는 완벽해서 더 개량할게 없다고 포드는 믿었다는데, 소개되는 내용을 보니 실제로도 그러했다는 점입니다. 보기에는 아름다웠던 라살이 지금은 거의 잊혀진 차라는 것도 그 사실을 증명하지요.

<<쉐보레 콜벳>>
제네럴 모터스가 업계 최초로 자동차 디자인을 강화하게 된 계기가 되었던 얼의 등장, 매년 디자인을 바꿔 차를 출시하고, 양산하지 않는 프로토타입 개발 등의 혁신적인 조치로 자동차 업계를 리드하는 과정과 콜벳의 아버지 아르쿠스-둔토프와 콜벳의 성공적인 역사를 알려줍니다. 얼은 독재자였지만 확실히 시대를 읽는 눈은 있었나봐요.
"학교를 지나치는데 아이들이 휘파람을 불며 환호하지 않으면 다시 제도판으로 돌아가야 한다."
는 말은 새겨들을 명언입니다.

<<1959년식 캐딜락>>
쉐보레의 업계 선두 지위를 빼앗아 온 크라이슬러의 '테일핀' 전성 시대에 대한 이야기가 그려집니다. 쉐보레가 따라할 수 밖에 없었던 테일핀의 탄생과 그 유행에 대한 이야기인데, 정말로 암 런 맥락이 없더군요. 쓸데없지만 멋있다고 생각되어 유행한 경우인데, 아무래도 2차 대전 후 고도 성장기를 맞아 풍요와 화려함을 상징하는 무언가가 필요했던게 아닌가 싶네요. 그걸 대표하는게 바로 엘비스의 핑크 캐딜락이기도 하니까요.

<<폭스바겐 비틀과 마이크로 버스>>
테일핀과 같은 화려함과 속물 느낌의 감성과 반대되는, 그래서 지식인들의 아이콘이 된 폭스바겐의 비틀과 마이크로 버스의 탄생과 2차 대전 후 하인츠 노르트호프가 회사를 이끌며 살아남아서, 결국 미국 시장까지 진출 후 성공하는 과정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전후 폐허 상태에서 복구하는 폭스바겐의 분투도 볼만했지만, 무엇보다도 미국에서의 성공적인 광고 프로모션이 기억에 남습니다.

<<쉐보레 콜베어 : 소비자의 반란>>
에드워드 콜이 주도했던, 미국인을 위한 비틀이었던 콜베어의 탄생에서 시작하여 콜베어의 오버스티어링 문제 (뒷바퀴 미끌림)로 변호사 찰스 네이더의 주도로 고발과 조사가 시작되어 결국 미국의 소비자 운동이 출범하게 된 콜베어의 사건을 설명해줍니다. 미국에서의 소비자 보호법 - 징벌적 손해배상 등 - 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계기인, 쉐보레 콜베어의 코너 조향 문제가 설명됩니다. 결국 쉐보레가 후기 모델에서 개선 방안을 도입했기에 무죄 판결을 받았다는 결말은 다소 씁쓸했습니다.

<<포드 머스탱 : 아이아코카와 신세대 미국인>>
자동차 세대 교체의 아이콘이었던 머스탱과 함께 그 성공 비결을 알려 줍니다. 1960년대 ~ 70년대 초반의 전후 베이비 붐 세대가 자동차 소비 전면에 나서며 "누구나 원하는 자동차"로 멋진 디자인, 저렴한 가격, 다양한 옵션으로 엄청난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네요. 현대차의 이른바 '옵션질'은 역사가 증명하는 탁월한 마케팅 기법인 셈이지요. 제가 어렸을 때 자서전으로 일세를 풍미했던 리 아이아코카의 활약도 잘 그려지고 있습니다. 당시는 자서전의 시대였었는데, 저도 아이아코카 자서전과 척 예거 (최초로 음속을 돌파했던 비행사) 자서전 두 권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재미있었어요.

<<폰티액의 GTO : 들로리안의 염소>>
두 가지 이야기가 중심입니다. 하나는 머스탱과 전혀 다른 '상남자'를을 노린 들로리안의 머슬카 폰티액의 전성기, 다른 하나는 폰티액의 아버지로 '들로리안 모터스'를 만들었던 업계의 풍운아 들로리안의 흥망성쇠이지요. <<백 투더 퓨처>>의 타임머신으로도 유명한 들로리안의 DMC-12는 청설모의 카툰을 통해 그 탄생과 멸망(?) 과정을 잡해 보았었는데, 훨씬 자세하고 깊이있게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혼다 어코드 : 오하이오 고자이마스>>
전통적인 미국 차와 달랐고, 디트로이트 문화와도 전혀 달랐던 일본차 어코드와 혼다가 어떻게 미국 땅에 성공적으로 정착했고, 미국내 양산에 성공했는지에 대한 이야기.
어코드의 성공 이면에는 독재자같았던 혼다 소이치로를 제어할 수 있었던 2인자 후지사와 다케오가 있었다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흥미로왔습니다. 후지사와 다케오 덕분에 문제가 있었던 공랭식 엔진이 아닌 수냉식 엔진을 탑재할 수 있었다고 하는데, 이 때 후지사와 다케오가 혼다 소이치로와 독대하며 했던 말이 대박이네요.
“혼다, 어떤길을 갈 건가? 자네는 회장인가, 아니면 엔지니어인가?”
인데, 기업 회장이면 엔지니어로서의 자존심을 버려야 한다는 뜻이었지요.
참고로 이때 개발된 엔진이 CVCC 엔진으로 별다른 장치 추가 없이 미국에 새로 제정된 배출가스 기준을 만족하는 유일한 엔진이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혼다의 성공담을 이 책에서는 "애플 컴퓨터"의 첫 등장과 비슷하다고 언급하는데, 실제로도 그런 느낌이에요.
또 그간 읽었던 일본 회사의 성공담은 판타지 <<시마 과장>>은 제껴두더라도 도요타 자동차 성공담처럼 세일즈맨이 주인공으로 등장해서 판매와 마케팅 위주로 이야기가 흘러갔었는데, 일본인 관리자가 미국인 직원을 채용하여 그간 디트로이트의 관행을 깨는 수평적 조직을 만들어 미국 내 생산 기지를 만드는데 성공하는 과정이 상세하게 설명되고 있어서 신선했습니다.

<<크라이슬러 미니밴>>
앞서 말씀드렸던 리 아이아코카의 또다른 히트작을 다루고 있습니다. 오래전 읽었었던 자서전에서도 언급되었던 기억이 나네요.
베이비 부머 세대인 '사커맘' 들이 아이들 여럿을 나르듯 가족이 함께 이동하는데 필요한, 외장이 작으면서도 내부가 큰 그런 차가 새롭게 태어나는 과정을 그리는데, 상품기획자라면 관심있게 볼 내용이라 생각됩니다. 새로운 소비자를 대상으로,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에 걸맞는 기존에 없었던 제품을 내 놓는 과정을 설명해 주고 있으니까요.

<<BMW3 시리즈>>
마케터, 상품기획자라면 흥미롭게 볼 수 있을 내용. BMW 3 시리즈가 '보보스'에게 다가갈 수 있었던건 그들의 기호에 부합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주요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보보들은 화려하지만 저속한 것들은 가지려 하지 않는다. 사치와 낭비를 일삼는다고 동네방네 떠드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그들이 남의 이목에 신경을 쓴다는 인상도 줄 수 있는데, 당연히 싫다. 그들은 희소성을 추구한다. 대중이 몰라야 하고, 디자인이 탁월해 삶이 더 편하고 특별해지는 물건이라면 금상첨화다.……… 그들 중에 저녁식사를 하면서 다이아몬드 목걸이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정찬의 주최자가 사용하는 샐러드 분배용 포크에 아프리카적 감수성이 담겨 있음을 발견하고 화제로 삼는 행위라면 정말이지 멋지다."
라는데, 지금 말로 따지면 '홍대병' 에 걸린 사람들을 위한 차라는 뜻이겠지요? 우리말로 '하차감'이 중요한 사람들을 위한 차라는 뜻도 될 테고요. 이들을 위한 차는 독일차 BMW 3였다는게 결론인데, 여러모로 의미심장합니다. 결국 자동차는 특정 계층 이상에서는 어느 정도 허영의 산물일 수 밖에 없다는 의미도 되니까요.

2022/09/04

당신이 찾는 서체가 없네요 - 사이먼 가필드 / 송성재 외 : 별점 4점

당신이 찾는 서체가 없네요 - 8점
사이먼 가필드 지음, 송성재 외 옮김/안그라픽스

정말 오랫만에 디자인 전공 관련 책을 읽어보았네요. 여러가지 서체를 통해 서체의 역사와 디자인 속성들, 그리고 쓰임새 등에 대해 안내해 줍니다.

제가 이십년도 더 전,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할 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내용이 많았습니다. 헬베티카가 왜 그렇게 많이 사용되는지?에 대한 저자의 해설처럼요. 헬베티카는 불편부당, 중립성, 신선함 등 스위스적 특성을 잘 드러내는 기하학적 인상과 함께 근면하고 정직하다는 느낌을 전해주어 기업의 CI에서조차 친근하고 검소한 인상을 유지하는 장점이 있다고 합니다. 애초 헬베티카는 간결하고 범용적인 알파벳, 그리고 가장 분명한 방식으로 중요한 정보를 표현하기 위해 만들어졌기 때문이지요. 

제가 현역 시절 가장 많이 사용했던 유니버스는 프루티거가 디자인한 서체로 스위스의 완벽함과 프랑스의 우아함, 영국의 고귀함을 종합했지만 조금 엄격하고 융통성이 없는 반면, 프루티거는 좀 더 인간적인 느낌이 담겼다라는 이야기도 좋았습니다. 프루티거를 더 많이 쓸걸 그랬네요. 여튼, 프루티거가 했다는 말, "점심식사 때 사용한 스푼의 모양을 기억한다면, 분명 그 모양은 잘못된 것입니다. 스푼과 글자는 도구입니다. 하나는 그릇에서 음식을 푸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페이지에서 정보를 꺼내는 것입니다. 지극히 평범하면서도 아름다운 글자여서 독자들이 편안하게 느끼는 것, 그것이 좋은 디자인입니다".는 모든 디자이너들이 새겨들어야 하는 말이라 생각됩니다. 평범하지만 아름답고 편안한 것, 그게 궁극의 디자인이라는 건데 정말 공감이 많이 되었어요. 

메타 폰트 등을 디자인한 전설적인 독일 폰트 디자이너 슈피커만이 한 말도 마찬가지에요. "이코노미스트"의 리디자인 작업을 할 때 한 말이라는데, "나는 결코 누군가가 그 서체를 꼭 집어서 '멋진 서체군요.'라고 말하는 것을 원치 않아요. '정말 멋진 기사네요.'라고 말해주기를 바라죠. 나는 소리를 디자인해요. 그 소리는 읽기 쉬워야 하죠". 거장은 역시, 달리 거장이 아닙니다.

이외에도 푸투라, 고담, 타임스뉴로만, 배스커빌, 길산스, 리버풀, 벵돔 등 다양한 폰트의 탄생기와 사용기 등과 서체를 만들 때 어떤 식으로 만들어 나가는지, 어떤 서체가 가독성이 좋은지, 어떤 문구가 서체를 표시하기에 적당한지, 어떤 서체가 어떤 상황에 적합한지와 같은 디자인 방법론, 그리고 헬베티카를 표절한 에이리얼과 같은 표절 및 폰트 저작권이 무시되고 사용되는 행태 등 전문가들이 관심을 가질만한 여러가지 디테일한 정보가 가득합니다. 과연 '헬베티카' 폰트가 없는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지? 와 같은 재미난 이슈들도 포함하고 있고요. 

이 중 기억에 남는건 특정 상황에서 어떤 서체가 어울리는지?에 대한 연구 결과입니다. 감사편지는 자신 있는 분위기와 분명하고 진실한 태도를 보여줘야 하니 제네바가 제격, 사직서의 경우는 회사에서 일하는 동안 즐거웠다면 뉴욕이나 버다나 같이 인간적인 면이 묻어나는 서체를, 일하던 시간이 지옥같았다면 냉정해 보이는 에이리얼이 적절하다고 합니다. 연애편지에 잘 어울리는 폰트는 이상적으로는 O가 큰 폰트가 사랑스러운 느낌을 줄 수 있지만, 조금 고풍스러운 글씨 느낌이 나거나 글을 읽는 사람에게 말을 걸려는 듯 부드럽고 서정적인 이미지를 남기려면 이탤릭체인 휴머나 세리프라이트도 고려해볼 수 있다고 하고요. 절교 편지에는 불쾌함을 주지 않으면서 분명하게 의사를 전달하려면 평범하고 오래된 타임스레귤러, 혹은 살짝 내려놓는 느낌의 이탤릭 폰트도 나쁘지 않다네요. 

그리고 항상 궁금해했던, '왜 아직도 새로운 서체가 디자인되는가?'에 대한 답을 명확하게 알려준다는게 참 좋았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똑같이, 세상이 바뀌고 그 세상의 콘텐츠가 바뀌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항상 새로운 방법으로 새로운 것을 표현하고 싶어하니까요. 음악 앨범, 책 디자인을 이미 세상에 널리 알려져 있는 몇 개의 마스터 페이지로 돌려막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지요.

이렇게 재미와 가치, 두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좋은 책인데, 내용에 약간 두서는 없으며 편집 자체가 좋지 않다는 단점은 있습니다. 언급되는 폰트를 따로 찾아서 확인해보기가 어렵게 만들어져 있거든요. 좋은 서체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이 좋은 디자인을 보여주지 못하니 조금 당황스러웠어요. 당연하겠지만 영문 서체만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도 한국의 디자이너들에게는 조금 괴리감을 전해주고요.

그래도 단점은 사소합니다. 별점은 4점입니다. 제가 젊었을 때, 폰트 디자인을 막 배우기 시작했던 학생 시절이나 아니면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할 때 읽지 못했던게 아쉽기만 하네요. 왜 이 서체가 이렇게 디자인되었는지?를 명확하게 알고 디자인을 했어야 했는데, 단순히 글자 몇 개의 디자인 형태에 매몰되어 대충 아웃라인만 따서 변형하여 작업했던 그 시절이 참으로 부끄러워집니다. 지금이라도 심기일전하여, 좀 더 좋은 디자인을 해 봐야 겠습니다.

2022/04/10

오늘의 의자 - 이지은 : 별점 2.5점

오늘의 의자 - 6점
이지은 지음/모요사

사물들의 미술사 3권. 전 권에 이어 의자를 통한 당대 사회, 문화를 다루는 인문학 서적입니다.

그런데 시리즈 이전 책들보다는 주요 소재인 의자가 주인공인 이야기들이 많다는 차이는 있습니다. 주로 의자 자체의 의미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토네트 14번 의자 이야기가 대표적입니다. 혁신적인 디자인과 설계, 생산 및 운송으로 대량 생산될 수 있었기 때문에, 당대 문화 아이콘이 될 수 있었다는 내용으로 산업이 유행과 문화를 이끌게 되었다는걸 알려주는 식이지요. 이어지는 바실리 체어, 파이미오 암체어, 임스 플라스틱 체어는 각각 금속, 합판, 플라스틱으로 의자 재료가 진화해나갔던 과정이 중심이고요. 

그래서 기대했던, 의자를 통해 당대 문화와 사회를 드러내는 이야기들은 아닙니다. 물론 바실리 체어는 바우하우스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디자인의 태동을, 임스 플라스틱 체어는 전후 대폭발한 미국 중산층의 삶과 플라스틱의 인기를 다루고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이야기 중심에서는 빗겨나 있습니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명백히 의자였으니까요. 바실리 체어의 초기형 디자인이라던가, 임스가 공모전에 제출했었던 원형 임스 체어라던가 초기 모델에 대한 도판 등 몇몇 자료는 흥미로왔지만 책이 지향하는 바와는 좀 거리가 많았어요.

물론 의자보다는 그 의자가 등장했던 시대와 장소에 대한 설명이 더욱 상세한 이야기도 없지는 않습니다. 바그너의 포스트슈파르카세 의자 이야기처럼요. 이 이야기에서는 의자는 당시 최첨단, 모던의 상징이 되었던 소재들 중 하나에 불과한 것으로 소개되며, 내용 거의 전부는 세기말 최첨단 유행의 도시였던 빈의 당시 분위기를 잘 설명해 줍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실망스러웠어요. 명품 의자의 디자인적인, 그리고 디자인사에서의 의미를 다룬 책은 그동안 숱하게 읽어 왔던 탓입니다. 그렇게 새로운 내용이 많지도 않았고요. 분류도 '역사'가 아니라 '디자인' 쪽입니다. 그래서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2022/03/19

기억의 의자 - 이지은 : 별점 3.5점

기억의 의자 - 8점
이지은 지음/모요사

이전에 "액자"를 읽고 꼭 구입하기로 했던 사물들의 미술사 두 번째 책입니다. 제목대로 의자를 다루고 있고요.

의자는 제품 디자인의 꽃이라고도 할 수 있는 소재라서, 의자 디자인에 대해 다룬 책은 저도 그동안 많이 읽어 왔습니다. 그러나 이 책은 역사 속 의미있는 의자에 대해 다룬 미술사 책이라기보다는, 특정 의자를 주제로 하여 그 의자가 있었을 때의 사회상을 조망하는 문화사에 가까운 책입니다. 의자의 디자인은 상세하게 소개되지만, 의자가 주인공은 아니에요. 

책에서 의자와 함께 다루고 있는 시대는 다섯 개입니다. 첫 번째는 중세 시대입니다. 대성당의 의자 스탈의 안장을 접으면 나오는 미제리코드 조각으로 당시 사회 분위기를 설명해줍니다. 두 번째는 루이 14세의 옥좌에서 시작해서 '위대한 은공예품'과 당시 아유타와 왕국 사절단 이야기 등으로 루이 14세가 통치하던 17세기 후반 프랑스에 대해 알려주고요. 세 번째는 등받이가 없는 스툴 형식 의자 '타부레'에 앉을 수 있는 권한이 따로 있었다는, 이른바 '타부레' 권한을 통해 부르봉 왕조 시기 프랑스의 귀족 서열과 예법들을 상세하고 알기 쉽게 설명해 줍니다. 네 번째는 폴란드 왕 스타니스와프의 주문으로 만드는 루이 들라누아의 의자 제작 과정으로 18세기 가구 제작 과정에 대한 이야기였고, 마지막은 전통적인 가구 제작 방식을 뛰어넘어 대량 생산으로 진입하게 되는 계기를 만든 18세기 후반의 토머스 치펀데일에 대한 소개로 마무리되고 있습니다.

잘 몰랐던 새로운 이야기도 많았고, 재미도 있어서 즐겁게 읽을 수 있었는데요. 우선 '미제리코드'가 무엇인지는 처음 알았네요. 엄격한 종교 기반의 사회였지만, 대성당 안 의자 속 미제리코드는 통제받지 않는 자유로운 조각이 가능했다는 것도요. 이렇게 또 하나를 배워갑니다. 도판도 풍부해서 자유분방했던 당시 목수의 솜씨도 충분히 잘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두 번째 이야기는 루이 14세 옥좌에서 시작되지만, 이는 '은'이라는 소재를 끌어내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는게 특징입니다. 위대한 은제품과 왕의 권위 과시가 반드시 필요했던 시대를 다루기 위해서였지요. '위대한 은' 세공품들이 지금도 남아있더라면 아주 좋았을테지만, 그래도 이런저런 도판과 기록을 통해서라도 이렇게 알게되어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세 번째 이야기에서도 '타부레'는 당시 왕실 서열과 예법을 설명하기 위해 등장할 뿐입니다. 그런데 왕의 친척인 친왕들조차 함부로 의자에 앉지도 못했던 태양왕 루이 14세 시절의 베르사이유 궁전 모습이 아주 재미있더군요. 이를 둘러싸고 왕의 정부와 왕의 제수씨의 기싸움 등 세세한 볼거리가 가득했던 덕분입니다. 당시를 다루었던 수많은 컨텐츠들에서 미처 접하지 못했던 디테일이기도 했고요. 저자도 당시 그림에서 이 예법을 지키지 않은 등장인물을 알려주고 있는데, 저도 베르사이유의 장미를 찾아보면서 고증을 되짚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절대 왕권의 대명사같은 루이 14세와는 사뭇 달랐던 루이 16세 시대에는 14세 때 만큼이나 엄격하지는 않았겠지만요. 

네 번째 이야기는 폴란드 왕이 루이 들라누와에게 의자를 주문하는 과정이 전부입니다. 그런데 그 디테일이 압권입니다. 의자 디자인을 어떻게 고르는지와 같은 고객 입장에서의 디테일은 물론, 장인이 되는 과정에서 시작하여 여러가지 비용들, 장인간 협력 관계 등 장인 입장에서의 정보들도 살뜰히 챙겨 알려주고 있는 덕분입니다. 이 모든게 실제 사료 기반이라는 것도 대단하고요. 

마지막 치펀데일 이야기는 그가 성공할 수 있는 이유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설명의 핵심은 치펀데일의 카탈로그였고요. 고객들은 조립식 가구 처럼 카탈로그를 보며 다양한 조합을 고를 수 있었고, 치펀데일도 유행하는 스타일을 모두 갖춰 제공했다는데 정말 시대를 앞서갔던 마케팅이었다고 생각되네요. 책에서 말해준 대로 18세기의 이케아였던 거지요.

이렇게 새롭고, 재미난 내용이지만 단점도 없지는 않습니다. 우선 미제리코드 부분은 관련 사진 설명 뿐이라 좀 지루했습니다. 종교의 통제를 받지 않았다지만, 그걸 입증할 근거도 애매하고요. 그렇게까지 도발적인 풍자가 많다는 인상도 받지 못했습니다. 

'의자' 보다는 관련된 역사, 문화적 배경을 고찰한다는 책 컨셉도 마음에 들고 재미있게 읽었지만, 의자는 단지 소재에 지나지 않을 뿐이라는 것도 약간 아쉬웠던 점입니다. 두 번째 이야기는 의자를 억지로 엮은 느낌이 강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단점은 책의 판형입니다. 작은 판형은 저자의 의도였다고는 합니다. 들고 다니기 편하고 쉽게 볼 수 있도록요. 그러나 도판이 너무 작게 들어가서 식별이 어렵다는 문제가 생겨버렸어요. 그림 속에 있는 의자를 설명하는 도판들이 특히 그러했습니다. 해당 부분만 확대해 주거나, 접이식으로 크게 삽입했어야 했습니다. 나름 비싼 책이고, 도판 수준도 우수한데 이런 세세한 고려가 뒷받침 되지 않은건 너무 아쉽네요.

그래도 워낙 흥미로운 이야기가 많아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제 별점은 3.5점입니다. 문화사, 미시사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이시라면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2022/03/04

시크릿 스파이 - 헤더 베센트 외 / 박지영 : 별점 2점

시크릿 스파이 - 4점
헤더 베센트 외 지음, 박지영 옮김/시그마북스

고대부터 현대까지의 첩보 활동의 역사를 정리해서 알려주는 책으로, 시대 순으로 유명 스파이와 첩보 활동, 주요 활약상 및 스파이들이 사용했던 장치, 암호 등을 소개해 줍니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250여 페이지의 분량을 풀 컬러로 가득 채운, 화려한 도판입니다. 모든 주제를 한 장 안에 도판과 함께 담고 있어서 읽기 쉽다는 점도 장점이고요. 흥미로운 주제를 짤막하게 요약하여, 다양한 도판과 함께 담았다는 점에서 '카드 뉴스'를 연상케 합니다.

역사 속 유명 스파이, 첩보 활동 중 몰랐던 내용도 많았습니다. 남북전쟁 때, 노예해방론자들과 흑인 노예들은 남부 연합 안에서 정보원 활동을 했었고, 반대로 노예제를 지지했던 사교계 인사 로즈 오닐 그린하우는 북부에서 정보를 수집해 전달했다는 이야기처럼요. 영화로 만들어도 좋을 소재네요. 영국이 인도 지형을 조사할 때 고용했던 현지인들 중 가장 유명했던 '1번' 나인 싱 라와트도 보다 상세하게 조사해 보고 싶어졌고요. 

1차 대전 시기부터는 친숙한, 고전적인 스파이 활동 이야기가 많아지기 시작합니다. 소설이나 영화 등으로 익히 알고 있는, 약간 낭만적이기까지도 한 그런 이야기들 말이지요. 외다리였던 몸을 이용하여 측량 기계를 의족을 숨긴 채 독일의 알프스 지역 요양원을 돌아다니며 정보를 캐고 다녔던 미국인 하워드 버넘 이야기가 대표적입니다. 건강 악화로 죽을 때 유언마저도 '독일군은 알프스 산맥에 전선을 구축할 계획이 없다' 였다니, 죽음마저도 고전전이네요. 프랑스에서는 평범한 주부였던 루이즈드 베티니가 첩보망을 조직, 운영하였고, 벨기에에서는 '하얀 여인' 첩보방을 전화 기술자 발테르 드베가 운영했다는 등의 일반인 영웅들 이야기도 인상적입니다. 반면 미국에서는 부유한 사회 지도층 아마츄어들 - 백만장자 빈센트 에스터, 루스벨트 주니어 - 이 뭉쳐서 '더 룸' 이라는 명칭으로 첩보 활동을 했다니 확실히 미국적이다 싶군요. 당시 미국인이 머나먼 유럽 등을 정탐하기 위해서는 큰 돈이 필요했을테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겠지요. 또 러시아에서 활약했다는 영국의 에이스 스파이 시드니 라일리는 사실 별 활약 없이 1925년, 볼셰비키 타도를 목적으로 러시아에 재입국하다가 체포되어 총살되었다는 등의 팩트 체크도 볼거리였고, 치머만 전보의 암호 해독처럼 실제로 전쟁에 큰 역할을 했던 놀라운 성과들도 눈에 뜨였습니다.

2차 대전 때부터는 막강해진 국가별 정보 기관들과 고위층 스파이 '두더지' 들, 상대편 스파이들을 속여서 체포하고, 내부 스파이들을 솎아낸 뒤 처형하거나 변절자로 만드는 (더블 크로스 시스템) 등 현대적인 스파이 작전 이야기가 많아집니다. 이 중에서는 독일 해외방첩청 아프베어의 수장이었던 빌헬름 카나리스 이야기가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반나치 정책을 나름대로 펼친 끝에, 종전 직전 사형당했다는데 과연 살아있는채로 종전을 맞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지 조금 궁금합니다. 아무리 반나치 주의자였다 한들, 방첩조직의 우두머리였다면 처벌을 피할 수는 없었겠지요? 

그런데 미드웨이에서의 일본군 패배와 야마모토 이소로쿠의 전사는 모두 정보가 미리 유출되었기 때문이며, 영국이 에니그마를 해독한게 승리로 이어질 수 있었다는 내용은 좀 과장된 것 같습니다. 연합군의 승리는 필연적인 것이었으니까요. 물론 독일 침공을 사전에 첩보원들이 파악하여 제보했지만, 이를 무시했던 스탈린의 사례를 볼 때, 첩보 활동 자체가 중요하다는건 의심의 여지가 없기는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스탈린이 이렇게 그를 위해 일했던 첩보원들을 전쟁 후 모두 강제 수용소로 보냈다는 후일담이 더 인상적이기는 했습니다만.... 

독일 최고의 스파이로 중립국 터키의 영국 대사 휴 내치불휴게슨의 부하였던 바즈나의 활약도 그냥 지나치기 힘듭니다. 그는 노르망디 상륙 작전 코드네임이 오버로드라는 등의 고급 정보를 넘기는 활약을 했지만, 독일은 그 정보의 진가를 몰라봤다지요. 심지어 그에게 준 30만 파운드의 거액도 작센하우젠 수용소에서 찍어내었던 위조지폐였다고 하고요. 기승전결이 완벽한, 한 편의 영화같은 일화였습니다.

냉전부터는 음모와 배신이 판치는 존 스마일리의 세계가 펼쳐집니다. 로젠버그 부부 이야기 등 익히 잘 알려진 사건들이 많이 소개되는데, 이 중에서는 M16의 수장으로 KGB 스파이였던 킴 필비와 그의 동료들이었던 이른바 케임브리지 5인조와 이스라엘이 시리아 고위층에 침투시켰던 스파이 엘리 코헨의 흥망성쇠가 흥미로왔습니다. IBM과 히타치의 분쟁 등 산업 스파이 이야기도 빼 놓을 수 없는데, F1 레이스에도 산업 스파이가 개입했었다는건 처음 알았습니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겠지요. 자동차 디자인과 설계가 성공의 필수적인 요소이니까요. 페라리의 정비사 나이절 스테프니가 멕라렌에게 정보를 넘겼던 사건인데, 스테프니의 불행한 죽음으로 마무리되어버려 조금 안타깝기도 했습니다. 사이언톨로지교가 자기들의 면세 지위를 회복하기 위해 '백설 공주 작전'이라는걸 벌였다는 것도 재미있었어요. 국세청에서 정보를 수집하고, 연방 검사 사무실까지 뒤졌다니 종교의 힘이 정말 대단합니다. 우리나라도 힘 있는 사이비 종교들이 최근 많아진 듯 한데, 항상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러한 첩보 활동 외. 첩보 기술에 대한 설명들도 볼만했습니다. 동독의 '로미오 스파이' 작전처럼요. 25~35살 사이의 교육을 잘 받은, 잘 생기고 매너 좋은 남자들을 이용하여 서독 여성들을 포섭했다지요. 러시아의 여성 해외 정보 요원 '스패로'는 이와 반대로 남성을 유혹하기 위해 훈련받았다는데, "레드 스패로"라는 영화가 나올 정도로 흥미로운 소재인건 분명해 보입니다. 두 작전 중 어느 쪽이 더 효과가 좋았을지 조금 궁금하기는 합니다. 

카메라, 통신 장비, 암살 장비 등의 소개는 비밀 무기류에 사족을 못 쓰는 제 동심을 자극해 주었습니다. 독침 우산과 청산가리 가스총이 언급되는데, 이 둘을 합친 장비가 "마스터 키튼"에도 등장했었지요. 고양이 몸 속에 배터리, 안테나, 마이크를 장착하여 도청하려는 '어쿠스틱 키티' 계획도 황당하지만 멋졌고요. "쉬리"가 얼마나 좋은 아이디어였는지 새삼 감탄하게 만드네요. 1984년 미국 모스크바 대사관, 레닌그라드 영사관의 타자기에 설치되었다는 키 자동 기록기는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결합한 기묘한 레트로함이 강한 인상을 남깁니다. 타자기 내부에 설치되어 활자 뭉치가 회전하며 일으키는 자기장 교란을 측정하여 입력되었을 법한 글자를 추측한 뒤, 전파를 터트려 도청자에게 수집한 정보를 보내는 장치였다는데, 당시 기술을 생각해보면 엄청난 하이테크 기기였을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재미있고 새로왔던 이야기도 많지만, 아쉬운 점도 많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모든 주제를 한 장으로 요약한 탓에 깊이가 없으며, 스파이와 관련이 없는 이야기도 많다는 점입니다. 특히 고대 시대 이야기는 너무할 정도로 허술했습니다. 한니발의 패배가 스파이 덕분인 것 처럼 써 놓았을 정도로요. 실제 내용을 보면 스파이가 아니라, 단순히 사전 염탐을 한 것에 불과한데 말이지요. 토이토부르크 숲 전투의 패배 역시 정찰이 부족한 탓이었을 수 있겠지만, 이 역시 스파이 활동과는 별 관계가 없습니다. 이슬람교의 패권이 무함마드가 스파이 활동에 통달한 덕분이었다는 언급도 어처구니 없었고요. 

이런 류의 과장은 뒤에도 계속됩니다. 나폴레옹이 아우스테를리츠에서 러시아, 오스트리아 연합군을 격파할 수 있었던게 스파이 카를 슐마이스터가 거짓 정보를 뿌려 오스트리아 군이 속았기 때문이라는건 억지스러웠습니다. 남북 전쟁 당시, 영국에 사무소를 두고 남부 목화 판매 댓가로 전쟁 물자를 구입했던 제임스 불럭을 스파이라고 부르는 것도 억지였고요. 이건 단순한 통상 업무에 지나지 않잖아요? 암살과 테러범들 이야기를 스파이라고 소개하는 것도 별로 와 닿지는 않았어요. 심지어 고급 창부였던 '크리스틴 킬러' 마저도 한 챕터를 차지한다는건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또 암호에 대한 소개가 적지 않은데, 9세기 학자 야쿱 이븐 이스하크 알 킨디가 암호학을 발전시켰고, 그의 가장 중요한 업적은 어떤 글자가 다른 글자보다 많이 사용된다는 원리인 빈도의 원리를 발전시킨 것이라는 등 볼거리가 없지는 않습니다. 관련된 도판도 충실했고요. 그러나 이런 류의 책은 이미 "암호의 과학" 등에서 많이 보아와서 별로 새롭지 않았고, 책의 정체성과는 거리가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입니다. 재미가 없지는 않으나, 가격에 비하면 별로 깊이가 없어서 감점합니다. 이 책 보다는 특정 스파이 활동과 작전, 혹은 암호 등에 촛점을 맞춘 다른 전문 서적을 읽어보는게 훨씬 낫겠습니다.

2022/02/26

세계를 매혹한 돌 - 윤성원 : 별점 3점

세계를 매혹한 돌 - 6점
윤성원 지음/모요사

보석과 주얼리가 주제인 책인데, 이전에 읽었었던 "보석 천 개의 유혹"과는 많이 다릅니다. 이 책은 19세기 후반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보석과 주얼리의 유행과 디자인 변천사를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유행이 사회적인 분위기와 깊은 관련이 있다는건, 얼마전에 읽었던 "감히 넘볼 수 없게 하라"를 통해서도 잘 알 수 있었지만, 이 책은 보석과 주얼리를 통해 그러한 사실을 잘 알려줍니다. 

또 보석과 주얼리는 가격 때문에 사회 지도층이 관련될 수 밖에 없어서, 실제 역사 속 실존 인물들이 대거 등장한다는 점에서 더욱 흥미로왔습니다. 이런 점에서는 단순한 보석, 주얼리 유행 통사가 아닌, 약간 미시사적인 측면도 있다고 느껴졌습니다. 국가별로 달랐던 유행의 이유는 그 국가의 상황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도 했으니까요. 

예를 들어, 베를린 아이언은 철로 만들어진 주얼리로 프로이센의 대 나폴레옹 해방전쟁 당시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기념품이었습니다. 귀부인들이 군자금에 보태기 위해 금 주얼리를 기부하고, 철로 만든 베를린 아이언 주얼리를 대신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독일 민족의식 발현이라는 속 뜻과 무관하게, 적국이었던 프랑스에서는 1 제정 몰락 후 왕정복고기에 문학, 건축 등 전 분야에서 중세 고딕 문화가 유행했던 탓에 베를린 아이언이 유행하게 되었습니다. 왕정복고기에는 고가의 큰 보석을 사용할 수 없었던 현실도 한 몫 했었고요. 

반면 영국에서는 19세기에 16세기 르네상스를 베낀 주얼리가 유행했습니다. 상류층이 19세기의 놀라왔던 예술, 문학, 과학 기술의 진보를 16세기 르네상스 시대와 동일시했던 덕분이었습니다. 영국이 세계에서 가장 잘 나갈 때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유행이었겠지요. 아울러 이 때 로마, 이집트, 헬레니즘 및 에트루리아 유적 발굴로 고고학적 복고 양식도 함께 유행했다고 합니다.

특정 아이템의 변천사도 흥미로왔습니다. 여성의 목을 감싸는 초커는 18세기 프랑스 혁명 이후, 단두대 희생자를 기리는 의미로 유행이 시작되었었습니다. 색깔도 빨간색이었고요. 허나 19세기에 접어들며 검은색 초커는 매춘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이는 마네의 "올랭피아" 등으로 잘 알 수 있고요. 이후 영국 알렉산드라 왕세자비가 갑상선 수술 흉터를 감추기 위해 다이아몬드와 진주가 여러 줄 세팅된 폭넓은 초커를 착용하기 시작한 뒤, 19세기 말 ~ 20세기 초 유럽 상류층의 필수품으로 자리잡게 되었다네요. 지금의 문신 (타투) 유행과도 조금 비슷하지요? 제가 어렸을 때만 해도 문신은 범죄 등 안 좋은 이미지의 대명사였는데 요새는 인스타그램 셀러브리티 등을 통해 일종의 패션 아이템이 되어 버렸으니까요. 초커의 유행은 구스타프 클림트의 그림으로도 잘 알 수 있는데, 클림트의 그림 속 초커 실물은 나치의 압류 이후 사라졌다니 이 역시 하나의 흥미로운 역사 속 일화로 재미있게 읽었던 내용입니다.

이러한 흥미로운 역사 일화는 그 외에도 많이 있습니다.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 인류 역사상 안정과 번영을 가장 길게 누렸고, 그 어느 때 보다 탐미적이었던 '벨에포크' 시대에서 유행을 선도했던 사교계의 중심지 막심 레스토랑을 무대로 화려함을 뽐냈던 3대 고급 매춘부인 라 벨 오테로, 리안 드 푸지, 에밀리엔 달랴숑의 승부 이야기처럼요. 이 일화와 함께 소개되었던 당시 쥬얼리는 도판만 보아도 그 화려함이 남다른 수준이라 과연 '벨에포크'라는 말이 허언이 아님을 새삼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 비슷한 시기, 미국 사교계를 주도했던 에스터 가문의 안주인 캐럴라인과 신흥 부호 밴더빌트 가문의 안주인 알바 밴더빌트의 승부와 거래 역시 흥미롭기는 마찬가지였고요.

그 외에도 벨에포크의 마지막을 장식했던,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성'이었던 오스트리아 엘리자베트 황후와 그녀의 쥬얼리, 영국 메리 왕비가 혼란기에 수집했던 당대 유럽 왕실의 명품 쥬얼리들 이야기도 여러 왕조의 흥망성쇠와 함께 소개되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엘리자베스 여왕의 상징과도 같은 '블라디미르 티아라'가 어떻게 영국 왕실까지 흘러가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대표적입니다. 독일 공주로 러시아 차르 알렉산드르 2세의 셋째 아들 블라디미르 알렉산드로비치 대공과 결혼했던 마리아 파블로브나 '미첸' 블라디미르 대공작 부인이 러시아 혁명 당시 몸을 피하면서 진짜 값비싼 보물을 블라디미르 궁전 비밀 장소에 숨겨두었었는데, 그녀의 친구였던 영국인 예술품 딜러 앨버트 스토퍼드가 노동자로 변장해서 궁에 잠입한 뒤 보물을 꺼내어 런던으로 빼돌렸다는, 혁명과 모험이 모두 들어가있는 낭만적인 이야기입니다. 이를 메리 여왕이 구입하여 지금도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이 공식 석상에 착용하고 나오게 되었다는건 참 많은걸 느끼게 해 주고요. Winners takes it at all 인 거겠지요? 

1차대전 후, 아르누보와 벨에포크 복고풍 로코코는 모두 옛 것이 되었고, 미래지향적이고 기하학적인 모티브의 디자인의 유행은 야수파, 입체파 등의 미술사조, 디자인의 바우하우스의 등장과도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네요. 부족해진 남성들 대신 여성들이 실제 산업 현장에서 일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활동적이고 실용적인 쥬얼리 디자인이 많아졌다는 것도 눈에 뜨이고요. 인도 마하라자들의 어마무시한 쥬얼리 컬렉션들, 1922년 투탕카멘 발굴을 통한 동서양이 융합된 디자인의 유행과 2차 대전 후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주얼리 유행 테마들 소개도 볼만했습니다. 꽤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다이아몬드 제국 드비어스의 탄생과 '다이아몬드는 영원히' 로 기억되는 성공 공식에 대한 설명도 빼 놓을 수 없습니다. 이 광고를 누가 어떻게 집행했는지를 다루는 글은 처음 읽어보기도 했고요.

전문적으로 쓰여진 글로 보기에는 저자의 개인 경험과 개인 생각에 대한 비중이 높으며, 미시사 서적으로 보기에는 쓰여진 내용에 대한 근거가 빈약하다는 약점은 있지만, 이 정도면 별점 3점은 충분합니다. 재미도 있으면서 여러가지 자료적인 가치도 높은 책인 덕분입니다. 도판만 보아도 값어치는 충분히 합니다. 보석, 주얼리에 대해 궁금하신 분들이시라면,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2022/01/23

글록 - 폴 배럿 / 오세영 : 별점 3점

글록 - 6점 폴 배럿 지음, 오세영 옮김, 강준환 감수/레드리버

오스트리아의 자영업자 가스통 글록이 국방부 납품을 위한 새로운 권총을 1년 만에 만들어 납품에 성공한 뒤, 전 세계 권총 신업 패자가 되기까지의 과정과 관련되었던 다양한 인물들과 여러가지 사건들을 설명하고 있는 논픽션입니다.

권총 글록이 아니라, 회사 글록의 성공담인데 과정은 눈여겨 볼 만한 부분이 많습니다. 아무래도 저 역시 성공을 꿈꾸는(많이 늦었지만) 직장인인 탓이지요. 책에 따르면 독창적인 구조로 새롭게 발명되었던 총으로 사격과 관리가 용이했다는게 가장 큰 성공 요인으로 설명됩니다. 특히 총에는 문외한이었던 글록이 1년 만에 권총을 만들어 오스트리아 국방부 납품 경쟁에서 승리했던 비법은 "그는 처음 만들어 봤기 때문에 제대로 해냈다. 기존의 제조업체들은 NIH 증후군 때문에 새로운 디자인을 수용하지 못했다. 그들에겐 기존 권총을 변형하면 되는데 굳이 새로운 것을 만들어야 하느냐는 고집이 있었다." (Not invented Here : 자체 개발한 것이 아닌 기술이나 제품을 배격하는 배타적인 조직문화)"백지에서 시작했다. 그는 고객인 군 전문가의 말을 경청했다. 그는 고객이 요청하는 대로 수정해서 독창적인 것을 만들어 냈다. 그것도 적시에 해냈다."라는 건데, UX 디자이너로서 새겨들을만한 내용이었습니다. 암요, 고객의 목소리가 가장 중요한 법이지요.

하지만 뛰어난 발명품이라도 반드시 성공하는건 아닙니다. 성능면에서 앞섰던 베타가 VHS에게 졌던 역사처럼요. 심지어 글록은 플라스틱 사출물 구성품이 많고, 디자인이 별로였다는 약점도 있었습니다. 정말 못생기기는 했으니까요.

여기서 마케팅의 귀재 발터가 글록에 합류한게 대박의 시작이었던 걸로 설명됩니다. 경찰이 무장한 범인에게 다수 사망한 1986년 마이애미 총격 사건 이후 미국 경찰 전체를 대상으로 권총 교체 바람이 불었는데, 발터의 활약으로 글록 채택이 급증하게 되었거든요. 외부 안전장치가 없는 리볼버와 동일한 시스템을 채용했다는 구조적인 장점도 있었지만, 발터가 사격 교관들을 채용하여 글록에 대한 좋은 소문을 널리 퍼트렸던 덕분이지요. 글록을 구입하면 회사가 현장으로 교관을 파견하여 훈련을 도와주고, 다양한 보상 판매 정책을 실행한 것 역시 주효했었고요. 

헐리우드 진출도 빼 놓을 수 없어요. TV 시리즈 <<이퀄라이저>>에 첫 등장했는데, 이퀄라이저는 발터 PPK를 쓰다가 글록으로 바꿨다는 설정이었다네요. 발터는 "더티해리"로 대박을 친 S&W와 같은 역사를 만들어 주기 위해(아니면 제임스 본드의 발터 PPK) 다른 경쟁 총기업체와 다르게 접근했습니다. 경쟁업체는 영화 관계자에게 정가를 청구했고, 악당이 사용하는걸 거부했지만 글록은 그렇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처음 등장하게 된 영화가 "다이하드 2"입니다. 용병 테러리스트의 무기로 글록이 등장하지요. 여기서 브루스 윌리스가 내뱉는 대사 - "저놈들 내게 글록7을 쐈어요! 뭔지 모르죠? 독일에서 만든 세라믹 권총이라고요. 엑스레이 기계에 걸리지도 않고 당신 한 달 월급을 줘도 못 산다고요!" - 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 뒤 총기 마니아에게 엄청난 인기를 끌게 되었습니다. 현실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 듯한 슈퍼 권총을 의미하는 저 대사 내용은 모두 엉터리였지만요. 이후 승승장구한 글록은 대중 문화 영역에서 독보적 입지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로우 앤 오더"는 장편 글록 광고라고 보아도 무방할 정도로요. 우리나라에서도 원빈이 "아저씨"에서 사용했고요.

이후 글록은 권총을 언급할 때의 고유 명사처럼 사용되기에 이르렀습니다. 글록은 권총계의 구글로 현대의 권총을 처음으로 정의한 브랜드이며, 가스통 글록은 20세기의 콜트인 겁니다!

발터의 신박한(?) 마케팅은 끝이 없었습니다. 1989년, 미국 총기와 탄약 산업 주요 컨퍼런스 SHOT에서 신형 글록 20을 공개하면서, 스트리퍼 샤론 딜런이 직접 홍보하도록 만든 광고가 대표적입니다. 아래 사진이 바로 그 광고입니다. "10점 만점의 인기 절정 (이 번역이 맞나요? 이 도시에서 가장 핫한 10! 이 맞지 않나....) SHOT 쇼에서 글록의 신형 10mm를 만나보세요." 라는 건데, 권총과 섹스를 결합한 전략은 잘 먹혀들었다고 합니다. 단순 홍보 뿐 아니라 실제 구매 대상자를 상대로 한 접대에서도요.

물론 글록에도 위기가 있었습니다. 1992년, 빌 클린턴 당선 이후 정부가 NRA와 대립하며, 여러가지 총기 규제 법안들이 발효되었던게 대표적입니다. 그러나 규제 법안 발효 직전, 앞으로 총을 못 살 수도 있다는 공포 심리에 의했던 총기 수요 폭증 효과도 보았고, 규제를 요리조리 빠져나가는 신제품 출시로 오히려 글록의 매출은 상승했습니다. 클린턴 행정부의 담당자 쿠오모와 총기 업체와의 협상에서 S&W는 굴복하고 말았지만, 버텼던 글록은 NRA의 S&W 불매 운동의 수혜를 보았고요. 쿠오모는 글록이 합의하지 않으면 정부기관 매출 30%를 잃게될거라 협박했지만 글록은 굴복하지 않았고, 심지어 쿠오모 부처 감찰관실 감찰관도 글록을 구입했다니 애초에 이기는 게임이었던 겁니다. 부시 정권으로 넘어가서는 이런 규제는 모두 사라져 버렸습니다. 여러가지 주변 상황을 고려했던, 경영진의 현명했던 판단이 빛납니다. 여러가지 소송을 쏙쏙 빠져나갔던 기발한 아이디어들도 볼거리였고요.

이렇게 마케팅과 경영진의 협상과 판단에 따른 위기 탈출 등은 전형적인 기업 성공담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NRA라는, 주요 소비자가 정치적 이익 단체이기도 한 비교적 특수한 상황에 놓여 있기는 하지만요. 제가 어렸을 때 유행했었던, 도요타 등 일본 회사의 성공담을 그렸던 반쯤은 논픽션에 가까왔던 소설들과 비슷한 느낌이에요. 그러나 뒤이어 이런저런 막장 드라마가 불거지며, 글록의 성공담은 "시마 과장"으로 돌변해 버립니다. 대표적인게 1999년, 가스통 글록의 암살 미수 사건입니다. 70세라는 나이 치고는 건장했던 글록이 암살범을 제압해서 위기에서 벗어났으며, 이는 글록이 세금 탈루를 위해 고용했던 에베르트의 청부였다는게 밝혀지고, 이런저런 복잡한 돈의 흐름이 얽혀있는 영화같은 사건이었지요. 결국 글록은 구속된 에베르트는 물론이고, 글록의 성공을 위해 함께 했던 모든 직원들을 버리게 됩니다. 마케팅 귀재였던 발터는 진작에 회사를 떠났고, 미 정부의 규제에 맞서 현명한 판단을 했던 야누초 등 핵심 임원들 모두를요. 이 때의 동료들은 모두 말로가 좋지 못했다네요. 허나 가스통 글록은 82세 때 31살의 여성과 재혼했고, 여전히 거액의 재산을 누리며 잘 살았다고 합니다. 가스통 글록은 20세기의 콜트가 아니라, 현실 버젼의 시마 과장인 셈입니다. 시마 코사쿠보다 더 비열하고, 자기만 아는 이기적인 인간입니다만.

글록의 성공담도 볼 만 했지만, "시마 과장" 스러웠던 막장 이야기들도 모두 흥미로왔습니다. 한 편의 소설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정도로 재미있었어요. 문제는 '글록'이 이야기의 핵심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관련된 도판이나 설명이 거의 없다는 점입니다. 글록의 시대별 변천 과정과 히트 모델, 경쟁사 모델 등을 도판으로 소개해 주었더라면 훨씬 좋았을 겁니다. 이해도 쉬웠을테고요. 그래서 약간 감점하여 제 별점은 3점입니다. 재미만큼은 확실하니, 총기에 대해 관심이 있으시다면 한 번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2021/12/31

2021 내 블로그 리뷰 총 결산

열 여덟번째 블로그 리뷰 총 결산입니다. 블로그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나이라니 감개무량합니다. 다 컸으니 이제 돈을 좀 벌어 와야 할 텐데 말이지요.

하여튼, 올해도 작년과 마찬가지로 코로나 사태 장기화 탓에 많은 책을 읽었습니다. 그러나 작년보다는 줄었어요. 작년에는 133권을 읽었는데, 올해는 추리 / 호러 장르문학 57 (77)권, 기타 장르문학 3 (4)권, 역사서 17 (9)권, 디자인 or 스터디 1 (4), Food 및 구루메 관련 도서 15 (25)권, 기타 도서 24 (14)권으로 다 합쳐서 117권을 읽었으니까요. 이유는 백신 접종과 위드코로나 정책 덕분에 다른 활동으로 보낸 여가 시간이 늘었던 탓입니다. 올림픽도 열심히 관전했고요. 거기에 더해 작년에는 '추리 소설 1,000권 읽기'라는 개인적인 큰 목표 달성을 위해 더 열심히 달리기도 했었지요. 여러모로 작년이 역대급이었던 셈으로, 당분간은 작년처럼 책을 많이 읽는 해는 오지 않을거라 생각되네요. 그래도 최소한의 목표인 100권은 훌쩍 넘겼으니 만족합니다.

그럼 언제나처럼 각 항목별 베스트 - 워스트를 소개해드립니다.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올해 발표된 작품 기준이 아니라 제가 올 한해 보고 읽은 것들 기준입니다.

2021년 베스트 추리소설 : 

"하드보일드 센티멘털리티
별점 4.5점! 20세기 미국 범죄 소설, 그 중에서도 하드보일드 장르의 흐름을 미국 역사 흐름과 비교하여 분석하는 문학사 서적. 상세 리뷰는 링크 참고하시길.

"나는 언제나 옳다
별점 4점! 복잡한 복합 장르 구성을 재미있게 풀어낸 작품. 단편 분량인 만큼 아직 읽지 않으신 분들께 강력하게 추천드립니다.

2021년 워스트 추리소설 :

"ON 온"
올해의 워스트 후보작은 "그녀는 증인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서술트릭의 모든 것",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밀실 대도감", "가면병동", "최후의 일격, "범죄 캘린더"와"On 온"의 7편이나 됩니다. 모두 별점 1.5점짜리였지요. 거장 엘러리 퀸의 작품이 두 편이나 포함되어 있는게 놀라운데, 한 편은 나이 탓에, 또 한 편은 양산 모드로 쓰여졌기에 어쩔 수 없었던 결과물이라 생각됩니다. 

그래도 "최후의 일격"은 괜찮은 발상의 트릭이 사용되기는 했고, 단편집 "범죄 캘린더"는 별점 2~2.5점짜리 작품이 수록되어 있어서 워스트 급은 아닙니다.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밀실 대도감"은 책 자체 내용 문제보다는 다른 문제로 인한 감점 요인이 더 컸고요. 단편집 "서술트릭의 모든 것"은 "범죄 캘린더"와 같은 이유로 제외하면, 진짜 워스트 후보작은 "그녀는 증인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와 "가면병동", "On 온"의 세 편이 남습니다. 

이 중 올해의 워스트로는 "On 온"을 꼽습니다. 유치한 설정, 합리적이지 못한 전개, 스테레오 타입의 뻔한 주인공들이 어우러진 싸구려 스릴러니까요. 다른 두 편은 약간이나마 추리적인 요소가 들어갔다는 점에서 그나마 "On 온"보다는 조금 나았습니다. 물론 도긴개긴입니다만....

2021년 베스트 / 워스트 기타 장르문학 : 

올해 기타 장르문학도 3권 밖에 읽지 않아서 뽑기가 어렵네요. 재미만큼은 확실했던 별점 3점의 "사라진 세계"가 베스트였어요. 워스트는 따로 뽑지 않겠습니다.

2021년 베스트 역사 도서 :

"나는 황국신민이로소이다"
별점 5점! 역사 바로 세우기 측면에서 모든 분들이 꼭 읽었으면 하는 책입니다. "국보, 역사의 명장면을 담다"와 "영어 조선을 깨우다 1"도 별점 4점을 받은 좋은 책이었는데, 아쉽게도 탈락했네요.

2021년 워스트 역사 도서 : 

"지도로 읽는다 리스타트 한국사 도감"
별점 1점. 편협한 개인 의견을 잔뜩 투입해서 불쾌하기 짝이 없었던, 그냥 '나쁜' 책입니다.

2021년 베스트 / 워스트 디자인 or Study :

딱 한 권 밖에 읽지 않아서, 올해는 평가할게 없네요. 공부가 부족했던 한해네요....

2021년 베스트 Food / 구루메 도서 : 

"홍차 애호가의 보물상자"
올해 이 쪽 분야 책들은 다 고만고만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카레로 보는 인도 문화", "경양식집에서", "홍차 애호가의 보물상자", "음식으로 읽는 중국사", "가스트로노미"의 5권이 별점 3점을 받았습니다. 이 중 재미와 자료적인 가치, 책의 완성도 등 모든 면을 고려하여 "홍차 애호가의 보물상자"를 베스트로 꼽겠습니다. 1부만 한정하면 별점 4점 이상도 충분했던 책이니까요.

2021년 워스트 Food / 구루메 도서 : 

올해는 2점 이하의 별점이 없어서, 워스트는 따로 뽑지 않습니다.

2021년 베스트 기타 도서 :

"이상한 나라의 언어 씨 이야기"
별점 4점을 받은 책은 "1달러의 세계 경제 여행", "이상한 나라의 언어 씨 이야기", "n분의 1의 함정"의 세 권이었습니다. 다 좋은 책이었지만, 이 중 재미에 더해 제 전공 분야인 커뮤니케이션과 상호 작용에 대해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만들어 준 "이상한 나라의 언어 씨 이야기"를 올해의 베스트로 꼽습니다.

2021년 워스트 기타 도서 : 

"과학자는 전쟁에서 무엇을 했나"
별점 1.5점을 받은 올해의 워스트 후보작은 "재미있는 식물 산책 도감", "과학자는 전쟁에서 무엇을 했나", "만화로 보는 99가지 발명품 이야기"의 3권입니다. 이 중 사람 열받게 만드는 가소로운 자기 주장을 담고 있는 "과학자는 전쟁에서 무엇을 했나"가 올해의 워스트입니다.

2021년 베스트 Movie : 

"나이브스 아웃"
훌륭하게 현대에 되살린 본격 추리물! 별점 3점.

2021년 워스트 Movie : 

"철권을 가진 사나이"
황당무계하고 유치했던, 심지어 액션마저 별 볼일 없었던 '가짜' 무협 영화.

2021년 베스트 Comic - 추리 or 호러 : 

전체적인 별점은 고만고만해서 베스트랄건 없네요. 에피소드 기준으로는 "Q.E.D iff 증명종료 14" 수록작 "1억엔과 여행하는 남자"가 오랫만에 별점 4점짜리 에피소드였습니다.

2021년 워스트 Comic - 추리 or 호러 : 

"Q.E.D iff 증명종료 16"
수록작 3편 중 2편이 별점 1.5점, 1편이 별점 1점을 받은 워스트 오브 워스트. 그 외 "씨엠비 CMB 박물관 사건목록 43"의 "앙숙"도 별점 1점짜리 망작이었습니다. 별점 1.5점 짜리 에피소드들은 언급하기도 힘들만큼 숱하게 있었고요. 추리 만화 분야는 영 실망스러웠던 한해였네요.

2021년 베스트 Comic - 기타 : 

"그리고, 또 그리고 1~5"
별점 4점짜리 책은 이 책 외에도 "피너츠 완전판 19 : 1987~1988"이 있었습니다. 이 책을 베스트로 꼽은 이유는 재미와 감동에 더해 미대 졸업생인 저에게 많은걸 생각하게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고요. 하여간, 극히 일부의 예외는 있지만 만화가가 그린 자기 이야기는 무조건 최고에요.

2020년 워스트 Comic - 기타 : 

최저 별점이 2점이라서, 워스트는 따로 꼽지 않겠습니다.

결산평 : 

이상으로 2021년 블로그 결산을 마칩니다. 올 한해는 저 개인적으로는 큰 의미가 있는 한해였어요. 인생의 큰 목표 중 하나였던 '추리 소설 1,000권 읽고 리뷰 쓰기'를 완료했기 때문이거든요. 저도 하루하루, 한달한달, 한해한해가 더욱 소중한 나이가 되었는데, 2022년에도 저 개인적으로 내세울 수 있고 자부심을 가질만한 한 해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제 블로그를 찾아주신 모든 분들께서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의미있고 가치있는 2022년 되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감사했고, 또 감사드립니다!

2020 내 블로그 리뷰 총 결산

2021/10/17

호빵책 : 디 아카이브 Since 1971 - 삼립호빵.어반북스 : 별점 2점

호빵책 : 디 아카이브 Since 1971 - 4점
삼립호빵.어반북스 지음/어반북스

삼립 호빵에 대한 현재까지의 모든 것을 담은 책입니다. 호빵의 역사를 요약하여 설명해 주는 짤막한 만화에서 시작해서, 호빵이 어떻게 개발되어 판매되었고, 현재까지 어떤 신제품들이 개발되었는지에 대한 소개, 호빵을 주제로 이런저런 사람들과의 인터뷰, 호빵 광고의 역사, 호빵 로고 및 패키지 디자인, 호빵을 만드는 데 필요한 기술과 장비들 소개. 호빵을 만드는 사람들에 대한 인터뷰, 호빵에 대한 인포그라피가 이어지도록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책의 장점이라면 뭐니뭐니해도 멋진 디자인입니다. 책 띠지를 호빵끼리 달라붙는걸 방지하기 위해 빵 밑에 붙였던 유산지를 그대로 사용한게 정말 취향 저격이었어요. 내용에서의 사진, 일러스트, 편집도 모두 빼어납니다. 호빵 특유의 쫀득한 생지에 대한 이야기, 호빵의 인기를 견인했던건 전용 찜기의 보급이었지만 지금은 전자레인지 조리도 가능한 1입 스팀팩도 출시되는 시대라는 것, 단팥만해도 무려 4종류에 소다 등 다양한 디저트, 맥앤치즈와 같은 요리까지 안에 집어넣은 다양한 제품이 출시되고 있다는 등 재미있는 내용도 제법 되고요.

하지만 "호빵책"이라는 제목에 걸맞는 디테일은 보여주지 못합니다. 중간에 상당한 분량을 차지하는 인터뷰가 특히 실망스러웠어요. 호빵과는 거의 관련이 없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에 가까왔거든요. 이런 내용은 줄이고, 호빵 신제품이 개발되는 과정에 대해 보다 심도깊게 정리해 주는게 훨씬 나았을 겁니다. 지금의 결과물은 예쁜 디자인에 매몰되어 내용에 깊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여러모로 '디 아카이브'라는 명칭을 붙이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던 결과물이었습니다.

그래서 제 별점은 2점입니다.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삼립 식품의 호빵 홍보용 책이라고 봐야해요. 호빵을 예쁘게 포장해서 대략적으로 좋고, 아름다운 부분만 알려준다는 점에서 말이지요. 이런 기업 홍보용 책자가 유료로 팔린다는게 조금 신기하기도 합니다.

2021/10/10

큐브의 모험 - 루비크 에르뇌 / 이은주 : 별점 2.5점

큐브의 모험 - 6점
루비크 에르뇌 지음, 이은주 옮김/생각정원

큐브를 만들어 냈던 창조자 루비크 에르뇌가 큐브와 본인의 인생, 지론 등에 대해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는 자전적인 책입니다.

큐브를 처음 만들어 냈던 과정을 비롯한 큐브에 대한 이야기들이 가장 재미있었습니다. 저자의 전공 분야였다는 도형기하학이 큐브 개발의 원점이었다는 것처럼요. 잘 모르는 학문이었지만 공간을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3차원의 아이디어를 발견하여 소통 수단으로 삼는 것이라고 합니다. 한 쪽을 바꾸면 다른 모든 3차원 분면의 값이 변한다는 점에서 큐브와 똑같다는데 그럴듯 하다 싶었어요. 큐브를 만들기 시작하며, 루비크가 봉착했던 구조적인 문제와 해결책에 대한 이야기, 큐브에 대한 특허를 출원하고 양산할 때 디테일을 일일이 챙기는 모습도 볼 만 했고요.

큐브의 역사도 흥미롭습니다. 루비크는 초기 판매분으로 5천개를 주문했는데, 첫 출시 후 몇 년 지나지 않은 1979년 말까지 헝가리에서만 30만개가 넘개 팔려서 헝가리를 대표하는 물건으로 유명졌고, 영국에 거주하는 트란실바니아 출신 동업자 크레머를 만난 뒤 세계적인 장난감이 되는 과정이 굉장히 극적이기 때문입니다. 크레머의 주선으로 미국 아이디얼 토이가 유통을 맡게 된 덕분인데, 이 때 이름도 창조자의 이름을 따 루빅스 큐브로 바뀌었다고 하네요. "루빅스"의 어원이 창조자 이름이라니! 창조자로서는 더할 나위 없는 영광이겠지요. 

루비크는 "원 히트 원더"가 아니었다는 것도 처음 알았습니다. 루비크는 큐브 이후에도 우리에게 "스네이크"로 잘 알려진 "루빅스 트위스트", 밧줄 퍼즐로 유명한 "루빅스 탱글" 등을 만들어 냈거든요. 대단합니다. 큐브가 인기를 끌면서 시작된, 스피드 큐빙에 대한 이야기는 넷플릭스에서 관련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어서 더 재미있었던 것 같습니다.

큐브의 발명과 인기에 대한 이야기 외에도, 창조에 대한 저자의 지론들도 되새겨 볼 만 합니다. 무엇보다도 호기심이 중요하고, 현실에서 추상적 개념을 만들어내내어 그 개념을 현실에 적용하는 능력이 필요하다고 하네요. 또 본인 스스로는 창조한게 아니라 기존 요소들 간에 새로운 관계를 만든 것 뿐이며, 다양한 상호 작용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부분은 제 전공이기도 한 UX와 인터랙션 측면에서도 깊이 생각해 볼 만한 주제였다 생각합니다. 교육, 디자인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개인 담론도 나쁘지 않았고요.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한 책에 담아낸 영 두서가 없다는 단점은 큽니다. 글도 가독성이 높지 않아서, 온전히 그 생각을 다 이해했다고 하기는 힘드네요. 일단 편집, 출간하면서 주제별로는 명확하게 글을 분류했어야 했습니다. 또 큐브에 대해 지나치게 과대 평가하는건 그렇게 좋아 보이지 않더군요. 큐브는 인지 능력과 정서적 기술에 기반을 두고 있는데, 이건 21세기 사람들의 학습과 성공을 뒷받침하는 핵심 인자라던가, 큐브의 미스터리라면서 정육면체나 숫자 3, 움직임에 의미를 부여하여 해석해 보려는 노력 모두 가상하기는 했지만 지나쳤어요. 

무엇보다도 도판이 전무하다는게 가장 아쉬웠습니다. 큐브의 역사와 짝퉁들, 아이콘으로 사용된 큐브의 이미지 등은 모두 도판이 함께 했더라면 훨씬 좋았을 겁니다. 책 가격, 분량을 생각한다면 더더욱 말이지요.

그래도 전 세계를 풍미했고, 하나의 아이콘이 된 장난감을 만들어낸 창조자가 직접 밝히는 창조의 비결이라는 점에서 한 번 쯤 볼만했던 책이었다 생각됩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2020/12/29

2020 내 블로그 리뷰 총 결산

열 일곱번 째 블로그 리뷰 총 결산입니다. 블로그 나이가 성인이 될 날도 얼마 안 남았네요.

올해 특징이라면, 독서가 취미이신 모든 분들이라면 마찬가지겠지만 독서량이 엄청나게 늘었다는 겁니다. 이 결산을 시작하고 책을 가장 많이 읽있네요. 코로나 사태로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졌기 때문입니다.
숫자로 정리해보면, 2020년 읽은 책 중 리뷰를 남긴 책은 추리 / 호러 장르문학 77 (48)권, 기타 장르문학 4 (1)권, 역사서 9 (15)권, 디자인 or 스터디 4 (4), Food 및 구루메 관련 도서 25 (11)권, 기타 도서 14 (18)권으로 모두 133 (97)권입니다(괄호는 작년). 작년보다 30% 정도 늘었군요. 분야로 따지면 추리 / 호러 등 장르 문학과 Food 및 구루메 관련 책을 많이 읽은게 눈에 띄고요. 방콕하고 있는 동안에는 아무래도 좀 자극적이고 재미있거나, 주요 관심사를 찾아 읽기 마련이니 당연합니다.

그럼 언제나처럼 각 항목별 베스트 - 워스트를 소개해드립니다.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올해 발표된 작품 기준이 아니라 제가 올 한해 보고 읽은 것들 기준입니다.

2020년 베스트 추리소설 : "흉가" 

올해 읽은 작품 중 별점 3점 이상 작품은 21편입니다. 꽤 수확이 많았던 한해였어요. 읽은 작품 중 1/3 가까이가 수작 이상인 셈이니까요. 이중 올해의 베스트는 "흉가"입니다. 무섭고 재미난 이야기 전개도 훌륭하지만 복잡한 설정, 복선 회수, 결말까지 완벽했습니다. 욕설, 육두문자 없이 초등학생을 주인공으로 끌고간다는 점도 아주 마음에 들었고요. 코로나로 외출도 못하는 더운 여름 휴가철에 탐독할만한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아울러 올해 읽은 단편집 중에서 최고의 단편도 뽑아 보겠습니다. 별점 4점 짜리 작품으로는 아카가와 지로 "유령 열차" 수록작인 "비 옷을 입은 시체", 곤도 후미에의 "타르트 타탱의 꿈" 수록작인 "텅빈 카슐레", 스티븐 킹의 "악몽과 몽상 1" 수록작인 "돌런의 캐딜락", 마쓰모토 세이초의 "현란한 유리" 수록작인 "비와 2층", 미쓰다 신조의 "괴담의 테이프" 수록작인 "빈 집을 지키던 밤", 이사카 고타로의 "남은 날은 전부 휴가" 수록작인 "작은 병정들의 비밀 작전", "세계 미스터리 걸작선 1"수록작인 "탐정 스페이드", "나의 사적인 여자친구" 수록작인 "푸른 히아신스 향기", "뇌물과 부패"가 있습니다.
그러나 별점 4.5점짜리 작품이 무려 2편이나 있어서 4점 정도로는 후보가 될 수 없었어요. 별점 4.5점을 받은 작품은 미야베 미유키의 "희망장" 수록작인 "희망장"과 "세계 미스터리 걸작선 2" 수록작인 "두 개의 양념병"입니다.
이 중 베스트로는 "희망장"을 선정합니다. "두 개의 양념병"도 걸작이지만, 발표된지도 오래되었고 워낙에 유명한 작품이니 양보해도 될 것 같네요.

2020년 워스트 추리소설 : "너무 예쁜 소녀" 

많이 읽은 만큼 실망스러웠던 작품도 많았습니다. 75권 중 별점 2점 이하 작품이 28편이었거든요. 그래도 평균 이하 작품이 2/3를 넘었던 작년보다는 1/3에 불과하니 다행이라고 해야겠지요.

그러나 졸작 오브 더 졸작, 정말로 종이가 아깝고 나무에게 미안한 별점 1점의 작품도 세 편이나 됩니다. "너무 예쁜 소녀", "콜드게임", "루팡의 딸"이 그 주인공이지요. 이 중 워스트로는 "너무 예쁜 소녀"를 선정합니다. "콜드게임"은 잔혹한 왕따 가해자를 편드는 듯한 설정이 문제였을 뿐 재미면에서는 나름 합격점을 줄 만 했고, "루팡의 딸"은 최소한 짧기라도 하니까요. "너무 예쁜 소녀"는 추리도 없고 스릴도 없는데 길기까지한 완벽한 시간 낭비였습니다. 끝까지 참고 읽은 저에게 상을 주고 싶습니다.

2020년 베스트 / 워스트 기타 장르문학 : 

올해 기타 장르문학은 4권만 읽었는데 모두 고만고만했습니다. 별도의 베스트, 워스트는 없습니다.

2020년 베스트 역사 도서 : "일본 과학기술 총력전" 

올해는 아홉 권밖에 읽지 않았는데 일곱 권이 별점 3점 이상이었습니다. 별점 4점짜리 책도 "펜슬 퍼펙트", "일본 과학기술 총력전", "의식주, 살아있는 조선의 풍경"의 세 권이나 되고요. 

이 중 베스트로는 "일본 과학기술 총력전"을 꼽겠습니다. 일본이라는 나라를 알기 위한 핵심적인 정보를 제공해 줄 뿐 아니라, 재미도 있고 가격까지 저렴하기 때문입니다.

2020년 워스트 역사 도서 : 

올해 역사 도서는 작년과 마찬가지로 가장 나쁜 별점이 2점이었습니다. 이 정도로 워스트로 꼽기에는 너무 가혹하기에, 올해는 별도로 선정하지 않겠습니다. 역사 도서는 대체로 선방한 한해였어요.

2020년 베스트 디자인 or Study : "명작순례" 

이쪽 분야 책들은 도판만 괜찮아도 평균 이상은 해 줍니다. 그래서 실패가 별로 없는 분야인데, 이 책은 그 중에서도 올해 유일의 별점 5점을 받은 책이에요.요. 수록된 글들도 좋고, 도판까지 완벽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책을 사지 않으면 무슨 책을 사겠습니까.

2020년 워스트 디자인 or Study : 

올해 이 분야는 네 권 밖에는 읽지 않았는데 가장 나쁜 별점이 2.5점입니다. 그래서 올해는 워스트 도서가 없습니다.

2020년 베스트 Food / 구루메 도서 : "커리의 지구사" 

'지구사' 라는 이름으로 출간된 식문화 역사 시리즈 중 한 권. 제가 읽었던 시리즈 중에서는 최고작입니다. 커리에 대한 역사는 물론, 세계화된 과정과 세계속 커리 요리들, 그리고 커리의 현재까지 쉽게 파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커리를 좋아하는 모든 분들께 추천드립니다.

2020년 워스트 Food / 구루메 도서 : "중세 유럽의 레시피" 

제목에서 기대했던 중세 유럽 요리에 대한 깊이있는 정보는 커녕, 최소한의 재미와 자료적 가치도 기대하기 어려운 별점 1점짜리 망작입니다. 담고있는 내용에 비하면 가격도 어처구니 없는 수준이고요. 저처럼 낚이는 분이 없으면 좋겠네요.

2020년 베스트 기타 도서 : "탱크의 탄생" 

올해 읽은 기타 도서는 특출나게 빼어난 책은 없었지만, 평균 이상 재미를 전해주는 괜찮은 책들이 제법 많았었습니다. "심리 조작의 비밀", "탱크의 탄생", "망령의 기억", "깃털 도둑"이 별점 3점을 받은, 그런 책들이었지요.

다 좋은 책이지만 이 중 베스트로는 "탱크의 탄생"을 꼽겠습니다. 제가 아주 좋아라하는 '도감' 분야의 책으로 도판, 일러스트가 완벽하게 제 취향이었기 때문이에요. 이 책의 가장 단점은 제법 비싼 가격일 뿐이에요. 무기 도감을 좋아하신다면 놓치지 마시길.

2020년 워스트 기타 도서 : "편지" 

히가시노 게이고의 장편인데 장르 문학이 아니라 드라마라서 기타 도서로 분류하였습니다. 작위적이고 뻔한 전개도 감점 요소이지만 무엇보다도 핵심 주제 - 범죄자 가족이 고통을 받아야 하는가? - 에 대해 주인공의 심정을 공감하기 어려웠기에 좋은 점수를 줄 수 없었어요.

2020년 베스트 Movie : "포드 V 페라리" 

많은 영화를 본 건 아니지만 올해 최고의 영화는 코로나 사태 직전 영화관에서 감상한 이 영화입니다. 남자 가슴을 뛰게 만드는 웅장한 화면과 음향 효과가 발군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마 영화관에서 보지 않았다면 베스트 영화는 다른 작품이 되었을거에요.

그나저나, 언제쯤 극장에서 영화를 다시 볼 수 있을까요?

2020년 워스트 Movie : "머더 미스터리" 

'정통 미스터리'라고 소개된 글에 낚였네요. 일견 전형적인 미스터리물로 보이지만, 실제 영화는 전형적인 헐리우드 코미디 영화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추리적으로 건질건 전무해요. 게다가 별로 웃기지도 않고요. 왜 애덤 샌들러를 요새 보기 힘든지 새삼 느끼게 해 준 망작이었습니다.

2020년 베스트 Comic - 추리 or 호러 : 

올 한 해는 "시마 코사쿠의 사건부"를 제외하고는 추리 or 호러 만화는 전통의 시리즈인 Q.E.D와 C.M.B의 후속권을 읽었을 뿐입니다. 이 중 최고는 "씨엠비 CMB 박물관 사건 목록 36" 이었습니다. 수록작 중 "산의 의사"와 "카스미장 사건"이 아주 좋았기 때문입니다. 별점 3.5점은 충분합니다. 

에피소드별로 살펴보자면 "씨엠비 CMB 박물관 사건목록 35" 수록작인 "도토리와 솔방울", "씨엠비 CMB 박물관 사건목록 39" 수록작 "상상 속 살인", "Q.E.D iff 12" 수록작 "재생의 시간"도 별점 3.5점의 좋은 작품들이었습니다.

2020년 워스트 Comic - 추리 or 호러 : 

책 전체 평균 별점은 2점이 가장 낮은데, 이 정도로 워스트로 꼽기는 좀 가혹하지요. 그래서 에피소드로 워스트를 꼽아 봅니다. "씨엠비 CMB 박물관 사건목록 37" 수록작인 "크로스로드"와 "종려나무 동전"이 별점 1점입니다. 동기, 트릭, 진상 모두 작위적이고 납득하기 어려운 졸작이었어요.

2020년 베스트 Comic - 기타 : "모로호시 다이지로 자선 단편집" 

2020년 만화들은 별점 3점짜리가 무려 14편이라서 많아서 한 편을 꼽기 어렵네요. 그래도 이 중에서 딱 한 편!을 꼽으라면 "모로호시 다이지로 자선 단편집"입니다. 다른 단편집에서 이미 접했었던 작품들이 많이 수록된 탓에 감점했을 뿐, 모로호시 다이지로라는 작가에 대해 잘 알려주는 좋은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단편집을 읽어보지 않고 이 책만 읽는다면, 별점 4점도 거뜬했을거에요.

2020년 워스트 Comic - 기타 : "지구빙해사기" 

대가 다니구치 지로의 작품이 불명예스러운 올해의 워스트네요. 당대를 풍미했던 오토모 가즈히로와 미야자키 하야오의 이야기, 설정, 작화와 분위기를 적당히 섞어 만든 하이브리드 혼종이나 결과물은 전혀 그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결산평 : 

이글루스 블로그 운영도 17년 째인데, 올 한해가 가장 변화도 많고 드라마틱했습니다. 다른 해에 비해 유별나게 책을 많이 읽기도 했고요. 그러나 코로나라는 예상치못한 질병 탓이라서 마냥 좋아할 수는 없네요. 코로나 때문에 많은 분들이 힘들어 하셨고, 지금도 계속 힘든 분들이 계실 터라 가슴도 무척 아프고요. 모쪼록 코로나 사태가 빨리 진정되어, 기쁜 마음으로 블로그 운영을 비롯한 일상 생활을 보낼 수 있게 되면 좋겠네요.

여러분들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새해에는 원하시는 일 다들 이루시는 그런 한해 되시기를 바랍니다. 작년, 그리고 재작년에도 말씀드렸지만 제 블로그를 찾아주시는 분들이라면 남들이 관심갖지 않는 사소하고 디테일한 것들에도 관심을 가지시는, 정말로 세심한 분일테니 내년에는 더욱 잘 되실게 분명합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