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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2/04

전설의 자유 추리 문고

원래 제가 중학교때까지 가끔 눈에 띄면 모으던 문고 시리즈였습니다만, 최근 우연찮게 3번 구입하게 되고 책 뒤의 다른 책 소개를 보니 정말 눈이 뒤집히네요.

뭐 목록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지나친 반 다인 취향과 뜬금없이 끼어 있는 어슐러 K 르귄의 "암흑의 왼손"을 제외하고는 정말 추리 역사에 길이 남을 고전 명작을 거진 다 소화하고 있어서 나무랄데 없는 선정으로 보입니다. 크리스티 여사님 책이 한권도 없긴 하지만 여사님 책은 당시부터도 해문 빨간책 시리즈로 전권이 나오고 있었으니 어쩔 수 없이 뺀 것이 아닌가 싶네요. 현명한 판단인 것이 사실 저는 여러 추리 문고 시리즈에 여사님 책이 포함되어 있는 것은 아직도 불만이거든요. 해문 빨간책이 여사님 책 시장은 평정하다시피 했으니 다른 시리즈로 구입하는 사람은 없을 것 같기에 차라리 그 책을 내 놓을 바에야 다른 멋진 작품들을 선정하는 것이 분명 나은 판단이라 생각됩니다.

또한 이 시리즈는 당연히 일어 중역본인 듯 하지만 번역도 의외로 매끄럽고 좋은 편입니다. 교정을 여러본 보았는지 오탈자도 거의 없고 문체도 좋거든요. 제가 보기에는 브라운 신부 시리즈는 최근 출간되었던 정식판보다 이쪽이 외려 번역이 좋았습니다. 정식판은 지나치게 딱딱하고 지루하게 번역했다는 느낌이 강했거든요.

다시금 목록을 보니 어렸을 적에 많이 구입하지 못한 것이 후회됩니다. 그 당시 용돈을 쪼개서 사던 즐거움 중 하나가 추리소설을 구입하는 것이었는데 그렇게 많이 사지는 못했더라고요. 돈이 좀 없더라도 몇권 더 사는건데 그랬습니다... (그래서 지를때 지르지 않으면 훗날 후회가 오나 봅니다)

제가 지금 제일 읽고 싶은 책은 시리즈 26 "눈먼 탐정 캐러더스", 27 "포튠을 불러라", 28 "이와 손톱", 그리고 50번째인 "주정꾼 탐정" 입니다. 헌책방 순례도 어언 10여년 짼데 아직도 발견 못했습니다.

고가 매입...은 힘들겠지만 도움주실 분 계시면 언제든지 연락주세요. 꼭 읽고 싶습니다!

1~2 : 셜록 홈즈의 모험  - 코넌 도일
3 : 뤼뺑의 고백 - 모르스 르블랑
4 : 브라운 신부의 지혜 - 체스터튼
5 : 팔점종 - 모리스 르블랑
7 : 벤슨 살인사건 - 반 다인
11 : 딱정벌레 살인사건 - 반 다인
14 ~ 15 : 클로이든발 12시 30분 - 크로포츠
18 : 새벽의 데드라인 - 윌리엄 아이리쉬

19 : 미궁과 사건부 - 로이 비커즈
20 : 어두운 거울 속에 - 엘런 매클로이 (헬렌 맥클로이)
21 : 즐거운 살인 - 크리스핀
22 : 강철도시 - 아시모프
23 : 움직이는 타깃 - 로스 맥도널드
24 ~ 25 : 카나리아 살인사건 - 반 다인
26 : 눈먼 탐정 캐러더스 - 브래머
27 : 포튠을 불러라 - 베일리
28 : 이와 손톱 - 윌리엄 벨린저
29 ~ 30 : 위험한 여로 - 브랜드
31 : 작은 독약병 - 샬럿 암스트롱
32 : 제 8지옥 - 스텐리 엘린
33 : 케닐 살인사건 - 반 다인
34 : 법정 밖 재판 - 헨리 세실
35 ~ 36 : 도중의 집 - 엘러리 퀸
37 : 싸이코 - 로버트 블록
38 : 흑거미 클럽 - 아시모프
39 ~ 40 : 여자 살인 이야기 - 아일즈
41 : 살인급행 침대열차 - 자프리조
42 : 암흑의 왼손 - 어슐러 르귄
43 ~ 44 : 검은 탑 - P.D 제임스
45 : 가든 살인 사건 - 반 다인
46 : 스카이 잭 - 토니 켄릭
47 : 사람의 덫 - 로저 사이먼
48 : 사라진 시간 - 윌리엄 벨린저
49 : 르윈터 망명 - 로버트 리델
50 : 주정꾼 탐정 - 에반 헌터

자유추리문고 소장중 / 다른 판본으로 소장중 / 못구함, 혹은 안구함...
* 2021.01.02. 리뷰가 있는 작품은 링크 추가합니다. 전부 자유 추리 문고는 아니지만요.

2008/11/08

흑사장 살인사건 - 존 딕슨 카 / 맹은빈 (자유추리문고 12) : 별점 4점

黑死莊の殺人 (創元推理文庫) (文庫) - 8점
カ-タ-·ディクスン/東京創元社

* 자유 추리 문고는 절판이라, 일본판 서적 정보를 올립니다.
블레이크는 자칭 심령학자인 로저 다워스가 주관하는 의심스러운 강령회의 정체를 밝혀달라는 친구 헐리데이의 부탁으로 강령술에 관심이 많은 지인인 런던 경시청 경감 매스터즈와 함께 헐리데이 가문의 저택 흑사장으로 초대받는다. 그런데 그날 밤, 로저 다워스가 아무도 접근할 수 없는 상황, 그리고 완전 밀실인 상태에서 과거 교수형 집행인 루이스 플레이지의 단검으로 살해된 시체로 발견된다. 블레이크는 매스터즈 경감과 함께 알고 지내던 육군성 정보부장인 헨리 메리벨 경을 찾아가 사건 해결을 의뢰하는데...

요새 이래저래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돈도 없어 책도 구입하기 어려운 차에 응모한 모든 이벤트에 다 탈락해서 어쩔 수 없이 예전에 읽었던 고전을 다시 꺼내어 읽고 있습니다. 이 책은 출간된지 22년된 자유 추리 문고의 한권입니다. 첫 직장의 사장님이 제가 추리소설 팬인것을 알고 선물해 주신 책이죠.

이 작품은 존 딕슨 카의 카터 딕슨 필명 사용 시의 명탐정 캐릭터 헨리 메리벨 경, 통칭 H M 이 등장하는 작품이며, 딕슨 카 특유의 불가능 범죄의 향연이 벌어짐은 물론, 괴기스럽고 오컬트적인 설정이 도입된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작품입니다. 오컬트적인 색채는 줄거리에서 알 수 있듯이 당시 영국에서 유행했다는 "강령술"을 중심으로 한껏 펼쳐지고 있습니다. 크리스티 여사님도 가끔 가져다 쓴 소재이기도 해서 미스터리 애호가들에게는 꽤 친숙한 소재이기도 하죠.

또한 추리적으로는 불가능 범죄 중 "밀실 살인" 을 주요 테마로 하고 있습니다. 밀실의 달인 딕슨 카의 솜씨가 유감없이 발휘된, 그야말로 완벽한 밀실을 보여주고 있으며, 독자에게 제공되는 정보도 공정하여 흥미진진한 두뇌 게임을 즐길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주요 사건인 밀실 살인 말고도 추가적인 살인사건 한건과 소소한 사건들이 벌어지는데, 주 사건을 중심으로 유기적으로 모든 사건들이 합리적으로 타당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도 역시 거장의 솜씨를 느끼게 해 줍니다. 특히 흉기 부분에서 아직까지도 사용되는 걸작 트릭이 도입되어 있기도 하고요. 이 모든 추리적 요소에 앞서 말한 오컬트적인 이야기가 잘 결합되어 독자의 시선을 끝까지 끌어당기는 매력적인 작품입니다.

하지만 주요 트릭 중 하나인 "변장" 트릭의 현실성이 무척 떨어진다는 점과 그에 따르는 부연 설명이 약간 부족한 것이 아닌가 싶은 아쉬움이 있긴 하며, 실질적으로 "위증"에 의존하여 불가능한 상황이 발생했다는 점에서는 약간 허무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이 부분은 나름대로는 설득력넘치는 해결책이기에 단점으로 꼽기는 좀 어렵겠죠. 워낙 오래된 작품이라 이후에 유사한 트릭이 많이 등장한 탓일 수도 있으니까요.

어쨌건 고전 황금기 시대의 걸작으로 퍼즐러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당대 최상급의 불가능 범죄의 향연을 맛보는 재미는 다시 읽어도 아주아주 각별한 작품이었습니다. 특유의 오컬트적인 색채는 덤이고요. 몇가지 아쉬운 점 때문에 별점은 4점입니다만 앞서 말했듯 아쉬운 점들은 다 시대가 너무 오래 흘렀기 때문이지 작품의 가치를 떨어트리는 것들은 아닙니다. 이렇게 좋은 작품이 아직 재간되지 않는 것은 의아한데, 속히 황금기 시대 걸작들이 다시 출간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한가지 덧붙이자면, "마이크로포트"로도 불리우는 괴짜 명탐정 H M의 캐릭터가 잘 묘사되어 있어서 읽는 재미를 더하는데, 개인적으로는 아무리 생각해도 H M 과 또다른 딕슨 카의 명탐정 기데온 펠 박사의 캐릭터 차이를 느끼기는 어려웠습니다. 왜 이렇게 창작을 했는지는 정말이지 모르겠습니다. 아시는 분 제보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2006/11/28

즐거운 살인 - 에드먼드 크리스핀 / 박현미 (자유추리문고 21) : 별점 3.5점


옥스퍼드 대학 영문학 교수인 저버스 펜은 다른 일에 손대고 싶은 충동에 시골마을인 샌포드의 하원의원에 입후보하고 그곳에 장기 체류하게 된다. 그리고 선거 운동의 광풍에 휘말리는데 우연히 여관에서 옛 동창생이자 런던 경시청 경감인 붓시를 만나고 그에게서 공갈-독살 사건을 도와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그러나 붓시마저 살해되고 범인으로 그 마을 정신병원에서 탈출한 병자 엘핀스턴이 지목된다.

런던 경시청에서 파견된 경감 험블비와 마을 경찰서장 울프와 힘을 합쳐 연쇄적으로 벌어지는 사건의 수사를 도우면서 그는 점차 정치에 대해 환멸을 느끼고 급기야 마지막 연설회에서 유권자들을 아둔하다고 외치며 투표도 하지 말라는 충격적 연설을 하여 당당히 탈락할 결심을 하지만 그의 색다른(?) 연설에 매료된 유권자들에 의해 당당히 당선되고 펜은 절망한다. 그래도 그는 선거 직후 진범을 추리하여 그를 체포하게 되는데...


한동안 눈씻고 찾아봐도 없던 자유 추리문고가 최근에 이상하게 잘 구해지네요. 이번에 읽은 책은 에드먼드 크리스핀의 "즐거운 살인" (Buried for pleasure) 입니다. 전에 포스팅한 "동서 미스터리 100"이라는 리스트에도 94위로 당당하게 포함되어 있습니다. 일본 제목이 "즐거운 장례식"이라 이 작품이 같은 작품이라는 것은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만... 이렇게 구하게 되어 무척 반갑기도 하네요. 작가의 작품은 킬러물인 단편 "샤프 펜슬"만 읽어보았으나 그렇게 인상적이지 않았는데 이 작품은 어렵게 구한 노력만큼이나 재미있었습니다.

일단 P.D 제임스 여사의 "어떤 살의"가 떠오르더군요. 시골 마을 정신병원이 소재로 쓰이고 있다는 점 이외에 왠지 모르게 영국적이고 시골스러운 전개가 상당히 비슷하거든요. 뭐 이러한 부분은 시골마을과 그 마을의 다양한 계층으로 이루어진 인간 군상들, 그리고 이들을 관조하듯 바라보는 것이 정통 영국 고전 추리물의 맥과 일맥상통하기 때문이겠지만요.

하지만 결정적 차이점이자 이 작품만이 가진 매력은 왠지 모르게 작품에서 풍기는 "유쾌함" 입니다. 정신병원에서 탈출한 환자, 이어지는 연쇄살인, 도저히 정체를 알 수 없는 범인과 흉폭한 범죄라는 굉장히 공포스럽고 무서운 상황이 연발하는데 정작 작품에서는 굉장히 유머스럽게 포장되어 있어요. 정신병원에서 탈출한 환자가 한니발 렉터가 아니라 자신이 미국 대통령 우드로우 월슨이라고 믿는 노출증 환자라는 설정부터 시작해서 모든 사건이 시끌벅적한 선거극과 하나같이 유머스러운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벌어지기 때문에 제목처럼 정말 즐겁습니다. 지루하지 않게 사건과 에피소드들이 적절히 배치되어 읽는 동안 계속 흥미를 붙잡아 놓을 수 있게끔 하고 있는 것도 매력적인 부분이고요.
또한 명성에 걸맞게 추리적인 부분도 무척 만족스럽습니다. 등장인물이 굉장히 적어서 범인이 한정된다는 약점이 있긴 하지만 범인이 정말로 의외의 인물이며,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사소한 요소를 가지고 범인을 추리해 내는 장면은 정말이지 무릎을 칠 정도였어요. 범인이 유력한 용의자로 내세운 인물이 사실은 범행을 저지를 수 없다는 단서가 너무 일찍 나오기는 하지만 진범의 정체는 마지막까지 오리무중이라서 끝까지 흥미를 잃지 않게 만드는 것도 대단했고요. 한마디로 모든 증거와 단서, 맥락이 딱 맞아 떨어지는 고전적이면서도 무척이나 깔끔한 작품이라 할 수 있겠네요.
아울러 주인공 탐정역의 옥스퍼드 영문학교수 저버스 펜이라는 캐릭터는 이상하게도 이러한 시끌벅적한 분위기 한 가운데에 있으면서도 제일 웃기지 않는 캐릭터라 처음에는 호감이 별로 가지 않았는데 읽어 나갈 수록 독특한 매력이 풍겨져 나와 역시 시리즈 캐릭터로서의 존재감을 어필합니다. 마지막 선거 연설 장면에서의 명연설 ("유권자는 우둔한 인물이고 정치가들은 모두 미쳤다")은 그 장면만 따로 읽어도 될만큼 압권이에요. 작품의 스타일을 볼때 약간 모스경감스러운 주인공이 더 어울리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들긴 하지만 상당히 마음에 드는 캐릭터였습니다.

결론적으로 이야기한다면 세계 추리 소설사에 길이 남을 명작이라는 생각까지는 들지 않지만 정통 영국 추리물의 충실한 적자로서 작가 에드먼드 크리스핀의 절묘한 솜씨가 빛나는 좋은 작품입니다. 별점은 3.5점. 저같은 고전 팬은 누구나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작품으로 자유 추리문고치고는 번역도 괜찮은 편이니 구하실 수 있다면 꼭 한번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저자의 다른 대표작인 "사라진 완구점"도 무척 읽어보고 싶네요.

한가지 궁금한 것은... 목사관의 요정의 정체인데... 누구 알고 계신 분 안계신가요?

2006/09/27

스카이잭 (A Tough One to Lose) - 토니 켄릭 / 변명식 (자유추리문고 46) : 별점 3.5점

샌프란시스코 공항을 출발했던 국내선 747 점보 여객기가 360여명의 손님과 함께 사라졌다. 뒤이어 범인들은 2천 5백만달러의 다이아몬드를 요구해왔다.
가난뱅이 변호사 윌리엄 베레커는 옛 전우였던 항공 조사원 필 링롭에게서 우연히 사건을 전해 듣고, 자신이 전날 골프를 쳤던 골프장에서의 비행기 이륙 흔적을 기억해냈다. 그는 전 부인인 비서 애니와 함께 사건에 걸려있을 보험금을 기대하며 조사에 뛰어드는데...

전설의 자유 추리문고 46, 토니 켄릭의 "스카이잭" 입니다. 원제와는 다르게 직접적인 제목을 가져다 붙였네요. 이왕이면 사전 용어인 하이잭이 더 좋지 않았을까요?

하여튼, 잘 모르는 작가의 잘 모르는 작품이지만 눈에 띄는 대로 사고 있는 자유 추리문고인데다가, 워낙 싼 가격(1000원이었습니다)이라서 구입했는데 생각 이상으로 재미있어서 만족스러웠습니다.

장점부터 말씀드리자면, 먼저 우연히 사건에 가담하게 된 변호사 윌리엄 베레커와 전 아내이자 비서인 애니의 활약과 실제 범행을 저지른 인물들을 구분하여 전개되는 구성이 아주 좋습니다. 단순한 이야기의 나열이 아니라 교묘하게 교차되도록 짜여져 있는 덕분입니다. 코믹하거나 별거 아닌 듯 했던 복선들이 결국 인과관계를 이루는 구성도 마음에 들었고요.

또 베레커와 애니의 이야기에서 둘의 티격태격하는 모습도 재미납니다. 스쿠루볼 코미디의 장르를 그대로 이어받은 듯한 감칠맛 나는 대사들이 수도 없이 쏟아지는데, 읽으면서 저절로 웃음을 머금게 만들거든요. 단지 티격태격하는 것만 아니고 사건에 뛰어들면서 닥치는 여러가지 황당한 상황들 - 사이비 종교집단과의 조우, 스튜어디스로 위장했는데 진짜 스튜어디스로 착각되어 비행기에 타게 된다 등 - 역시 굉장히 기발하고 재미납니다(이러한 코믹스러운 상황 중에서 개인적인 베스트는 애니가 납치된 뒤 그 사실을 모르는 베레커와 범인들의 통화 장면이었습니다).

추리적으로도 '승객을 가득 채운 747 여객기를 어떻게 완벽하게 납치, 은폐할 수 있을까?'라는 주제를 꽤 설득력있게 풀어내고 있어서 마음에 듭니다. 군데군데 약점도 많이 보이지만, 꽤 그럴싸한 방법이었어요. 작중에서 표현되듯 범인들이 거액을 요구하지 말고 단지 짐을 빼돌리는 정도로 만족했으면 그야말로 완전범죄가 성립되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 정도로요.

하지만 실제로 베레커의 활약은 몸빵이었을 뿐, 결과적으로 사건의 진상은 범인의 고백을 통해 밝혀진다는건 이 작품을 추리소설로 보기는 어렵게 만듭니다.

전개에서의 문제도 있습니다. 폭탄마의 등장은 없어도 되었을 것 같고, 벽돌이 들어있는 가방은 무슨 의미인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사건의 공범 중 한명이 누구인지가 비교적 초반에 노출되는데, 이후 해당 인물에 대해 별다른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설정도 설득력이 떨어지고요. 뒷부분으로 갈수록 지나치게 헐리우드 영화처럼 통속적으로 흐르는 것도 단점으로 느껴지네요.

그래도 제가 읽은 작품들 중에서도 손에 꼽을만한 스케일의 범죄가 등장하고, 트릭과 수법도 괜찮습니다. 베로커 - 애니 커플의 톡톡 튀는 대사와 여러가지 상황 설정도 재미있고요. 한마디로 부담없이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작품입니다. 별점은 3.5점입니다. 이 작품이 두번째 장편이라는데, 작가의 다른 작품들도 기대됩니다.

2006/12/22

독초콜릿 사건 - 앤소니 버클리 콕스 / 김선옥 (자유추리문고 10) : 별점 4점

독초콜릿사건
앤소니 버클리 콕스 지음, 손정원 옮김/동서문화동판주식회사

유명한 난봉꾼 유스티스 펜퍼더 경은 선물로 도착한 초콜릿을 같은 클럽 회원 벤딕스씨에게 전해 주었다. 그리고 초콜릿을 먹은 벤딕스씨의 부인이 초콜릿에 들어있던 독 때문에 죽고 말았다.

그러나 런던 경시청의 수사는 난항에 빠졌고, 경시청 주임경감 모리스비는 친분이 있는 소설가 로저 셀링검에게 그가 회장으로 있는 범죄 연구회에서 사건의 개요를 설명한 뒤, 그들의 추론이 사건 해결에 도움이 된다면 경시청에 보고해 달라고 부탁했다. 범죄 연구회 멤버 6인은 순번을 정해 차례로 자신들의 추리를 발표하는데...

이번에 구입한 자유추리문고 시리즈 중 한 권입니다. 아주 유명한 고전 명작이지요. 너무 늦게 읽은 감은 있네요.

이 작품 전에 발표되었다는 단편 버젼은 이미 읽어봤지만 이 작품은 단편 버젼의 사건과 상황을 그대로 가져가면서도 6명의 범죄 연구회 회원들이 각자의 추리를 펼친다는 아이디어를 통해 독자에게 다양하고 화려한 추리의 향연을 느끼게 해 줍니다. 추리 클럽 회원들의 추론 및 결과 하나 하나가 각각 추리소설로 쓰이기에 부족함이 없는 완성도를 보여주는 덕분입니다. 이런 설정은 흡사 단편 연작을 읽는 듯한 느낌도 전해 줍니다.
전에 읽었던 "시행착오"의 치터윅씨의 등장도 반가왔고, 각 회원들이 자기 차례가 될 때마다 이전의 추론을 뒤집고 새로운 결론을 발표하는 전개로 독자가 회원들과 동일한 정보를 입수하여 끝까지 함께 두뇌 게임을 펼치게끔 하는 구성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이러한 공정한 승부야말로 정통파 고전 미스테리로서의 최고 미덕이라고 할 수 있으니까요.

무엇보다도 작중 인물들의 대사를 통해 그동안의 추리소설의 탐정들의 추리방식, 즉 하나의 단서만 가지고 단 하나의 추론만 내세우며 그것이 바로 결과가 되는 방식을 비판하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추리 소설이면서도 추리 소설의 헛점을 제대로 꼬집고 있다는 것이 무척이나 신선했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을 보완하여 다양한 추론이 등장하게 한 아이디어가 이 작품을 당시의 기존 추리 소설보다 한 단계 발전한 모습을 지니게 만든 힘이었다 생각되네요.

단 너무 복잡하게 꼬아놓은 나머지 결론이 조금 황당하다기는 합니다. 한두발짝만 더 나아가면 좋았을 것을 대여섯걸음 더 나아간 느낌에요. 그런 면에서는 단편 버젼이 조금 더 설득력이 있었다 생각됩니다. 물론 단편 버젼의 추리도 주요 추론의 하나로 등장하고 있기는 하지만요.

그래도 역시 추리소설사에 이름을 남긴게 당연할 정도로 기발하면서도 재치있는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좋은 작품은 몇년, 아니 몇십년이 지나도 재미있고 좋은 작품인거죠. 별점은 4점입니다. 고전 정통파 추리물 애호가라면 꼭 한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2016/07/04

맹인탐정 맥스 캐러도스 - 어니스트 브래머 / 배지은 : 별점 2점

맹인탐정 맥스 캐러도스 - 4점
어니스트 브래머 지음, 배지은 옮김/손안의책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전 "눈먼탐정 캐러더스"라는 제목의 자유 추리문고로 접했던, 셜록 홈즈의 라이벌들 중 한명인 캐러도스 시리즈 단편집입니다. 모두 8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다행히도 이전 자유 추리문고 버전과 겹치는 작품은 2편밖에 없네요(하서판 걸작선에서 읽었던 "브룩벤드 장의 비극"까지 포함하면 3편이지만요). 

하지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그렇게 좋은 작품들은 아닙니다. 추리적으로 별로인 탓입니다. 고전 황금기 작품답지 않은 수준이에요. 어떤 작품은 비약이 너무 심하고("디오니시우스의 동전" 등), 어떤 작품("나이트크로스 신호등 문제" 등)은 단서 추적이 전부라 추리의 여지가 별로 없습니다. "브룩벤드 장의 비극", "틸링 쇼 미스터리" 두 편은 괜찮지만 양적으로 부족해요. 이전 리뷰에서 언급했던 "추리적으로 그다지 정교한 장치는 없다. 이야기의 논리는 합리적이지만 세밀한 복선이나 반전 없이 한방향으로 흘러가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기에 기복이 별로 없고 드라마도 재미가 없으며, 무엇보다도 사건이 시시하다. 무엇보다도 결말이 너무나 한심스러운 것이 가장 큰 단점이다." 말 그대로입니다.

아울러 캐러도스의 능력에 대한 과장이 너무 심합니다. 제목 그대로 장님이기는 하지만 처음 보는 사람들은 눈치채지 못할 정도의 오감을 지닌 인물로 묘사되거든요. 인쇄된 신문도 손끝으로 만져 읽을 수 있을 정도니까요(너무 작은 글씨는 무리라서 비서에게 낭독을 부탁한다지만). 거기에 막대한 재산, 경찰 수사까지 좌지우지할 수 있는 지위에 더해 심장 고동소리를 듣고 명중시킬 수 있는 총솜씨까지! 이 정도면 "데어 데블"에 필적하는 능력자이지요. 추리 소설이 아니라 마블 혹은 DC 코믹스에서의 활동이 필요해 보입니다.

아무래도 추리 소설에서 뭐가 중요한지를 간과한 느낌입니다. 탐정의 개성에 집중하면 잠깐 흥미거리야 될 수 있겠지만, 오래 가기는 힘들죠. 노래 실력 없이 유행과 퍼포먼스에 치중하는 아이돌을 보는 느낌이랄까요. 국내에 소개조차 제대로 되지 않는 다른 셜록 홈즈의 라이벌보다야 이름이라도 널리 알려졌으니 아주 실패한건 아니지만 여러모로 아쉽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저와 같은 고전 본격물 애호가가 아니시라면 구태여 찾아 읽으실 필요는 없습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디오니시우스의 동전"

이전 자유 추리문고 버전으로 접했던, 탐정 칼라일과 캐러더스가 처음 만나게 되는 시리즈 첫 단편입니다. 전설적인 명탐정이 첫 등장한다는 것 외에 딱히 언급할 만한 장점은 없으며, 추리적으로 비약이 심하다는 단점만이 도드라집니다. 칼라일이 가져온 동전을 캐러더스가 이전에 만져본 적이 있다 하더라도, 알 수 있는 것은 주인이 시스토크 경이라는 것 뿐입니다. 동전의 진위 여부를 감정할 수 있을지는 차치하고서라도, 헬렌 브루네시가 니나 브룬이라는 가명을 계속 써가며 하녀로 일한다는건 추리의 영역도 아니고요. 제 별점은 1.5점입니다.


"나이트크로스 신호등 문제"

"그때 성공을 갈구하는 내 욕망의 잔에 자네의 조롱을 가득 들이붓는 거야." - 캐러더스가 칼라일에게 도와줄 것을 약속하며 하는 말

"지금으로서는 아무리 작은 주택이라도 정부의 합법적인 약탈로부터 안전한 것 같지가 않습니다." - 주식 투자를 하지 말 것을 권유하는 캐러더스에게 답하는 파킨슨의 대답

나이트크로스 역에서 발생한 중앙 교외선의 충돌사고로 6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기관사는 통과 신호를 받았다고 주장했고, 신호원은 정지 신호를 바꾼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칼라일은 기관사 허친스 씨의 의뢰로 조사에 나선 뒤 캐러더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데...

진상은 신호등을 바꿔치기한 범인이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내용을 보면 이게 과연 사립탐정이 나서서 수사했어야 하는지 의문이에요. 두 명의 증언이 모두 사실이라면 제3자의 조작이 있을 것이라고 의심해 보는 것이 상식이니까요. 캐러더스의 추리도 거의 없고, 탐문 수사에 의지하는게 전부입니다. 

마지막에 드리슈나에게 자살을 권유하는 결말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셜록 홈즈라면 이런 인정을 베풀지 않았을 겁니다. 악당은 지옥으로 가야죠. 또 범인에게 유서도 없는 자살의 기회를 제공한다면 대체 불쌍한 기관사는 어떻게 풀어줄 셈인걸까요?

딱 한 가지, 범인 드리슈나가 수십 명의 죽음에 책임을 느끼지 않으며, 되려 영국 정부와 군대가 인도의 죄 없는 수천 명 죽음에 책임이 있다는 논리로 자신이 영웅이라고 주장하는 장면만큼은 인상적입니다. 작품이 발표된 시기를 고려해보면 놀라울 정도죠.

"당신은 당신의 정부와 군대가 내 나라의 죄 없는 수천 명의 죽음에 책임이 있다는 걸 알고 있습니까?"

그래도 저 한 줄로 좋은 점수를 주기는 역부족입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브룩벤드 장의 비극"

크리크와 결혼한 여동생 밀리센트의 생명이 걱정된 홀리어는 칼라일에게 조사를 부탁했다. 현장 조사를 나간 캐러더스는 크리크의 트릭을 눈치채고 범행을 벌일 날짜를 예측하여 잠복하는데...

이런 저런 앤솔러지 등에서도 접해본 나름 대표작입니다. 범인이 공들여 만든 과학적인 트릭이 돋보이지요. 지금 읽기에는 많이 뒤처졌으며, 범인 크리크가 이를 위해 지나칠 정도로 세공을 많이 했다는 단점은 있지만 발표된 시대를 감안하면 큰 단점은 아닙니다. 당시에는 충분히 벼락을 맞아 죽었을 것이라는 주장이 먹혔을 테니까요. 의외성 있는, "사랑과 전쟁"을 연상케하는 막장 결말도 아주 괜찮았어요. 지금 읽어도 낡아보이지 않으며, 크리크의 행동도 살짝 이해할 수 있게 만들거든요.

낡긴 했지만 대표작다운, 읽을만한 작품입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영리한 스트레이드웨이트 부인"

"어떤 상황에서 누가 뭘 할지를 정확히 파악하려면 그 사람의 행동이 지니는 단 하나의 특성만 연구하면 된다는 것이었지." - 캐러더스가 칼라일에게 추리법에 대한 단상을 어느 철학자의 말을 인용하며 하는 말.

"원의 호가 아주 작더라도 그 호를 가지고 전체 원의 크기를 계산할 수 있습니다." - 하인들은 아는 게 거의 없을 거라는 스트레이드웨이트 부인의 말에 대한 캐러더스의 답.

이전 자유 추리문고 버전으로도 읽었던 작품. 다시 읽어도 유치하고 조잡한 사기극입니다. 자기 물건이 아닌 물건으로 보험에 가입한다, 그리고 그 물건을 잃어버린 척 하고 보험금을 타낸다는 건데 발표 당시에는 먹혔을지 모르지만, 지금 읽기에는 너무 순진한 발상이었습니다. 부부의 잘못이 크지만 보험사가 과연 이렇게 허술하게 보험을 가입해 주었을지도 의문이고요.

또 목걸이를 잃어버린 척 위장한 것은 명백한 범죄입니다. 5천 파운드를 편취하려는 사기 행각이니까요. 그런데 남편이 목걸이를 반납하려 했다손 치더라도(그것도 의사를 처음부터 밝힌 게 아니라 캐러더스의 강압에 못 이긴 것), 이를 캐러더스가 받아들인 것은 엄연한 직권 남용입니다.

추리적으로도 언급할 게 별로 없습니다. 캐러더스가 부인 장갑의 향수 냄새가 다른 것을 눈치채고 진상을 알아낸다는 것만큼은 캐러더스의 특징을 잘 살리고 있지만, 문제는 이 정보가 독자에게 공정히 제공되지 않는다는 점이죠.

범죄라 하기도 어려운, 일종의 부르주아 상황극으로 별점은 1.5점입니다.

"배우 해리의 마지막 업적"

루카스 스트리트의 사설 대여금고 회사는 런던에서 가장 견고하고 안전한 장소로 알려져 있다. 매니저만 아는 암호를 먼저 제출해야 하고 그 뒤 본인만이 가지고 있는 열쇠로 여는 방식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대여금고에서 도난 사건이 발생하는데....

이 단편집에서 돋보이는 불가능 범죄물입니다. 진상도 합리적이에요. '범인이 변장하여 12개의 금고를 임대하여 열쇠를 복사하고 반납한다. 이후 아내를 통해 매니저 장부를 몰래 사진을 찍어 암호를 알아낸 뒤, 소유자로 변장하여 방문한다'는 것인데 꽤 그럴싸합니다. 캐러더스의 불에 타지 않는다는 호텔 (결국 화재로 전소해버린)에 대한 견해도 인상적입니다. "그 호텔이 화재에 안전하다고 확신한 조심성 없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인데 이 이야기만 가지고 소설을 쓸 수 있을 정도에요.

하지만 해리의 아내가 사진을 찍을 수 있었던건 운과 우연 덕분이었으며, 변장이 만능처럼 사용된건 문제입니다. 아무리 변장이 특기라도 해도 한두 명도 아닌 열 두명을 변장했다? 무리입니다. 마지막에 범인 해리가 교회 간증회에서 구원을 얻어 훔친 물건을 모두 되돌려 준다는 결말도 어처구니가 없었고요.

또 캐러더스가 범인이 미국인일 것이라고 추리한 이유도 비합리적입니다. 현대 미국의 영민하고 창의적인 분위기가 그를 기발한 장치의 전문가로 키워낸 것이라고? 이건 뭔 말인지도 모르겠네요.

그래도 이 단편집에 수록된 작품 중 몇 안 되는 본격 추리물인 건 분명합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틸링 쇼 미스터리"

매들린 휘트마시는 캐러더스에게 아버지 윌리엄이 재산 때문에 오랜 분쟁이 있어온 조카 프랭크를 쏘고 자살했던 사건의 진상 조사를 부탁했다. 프랭크는 운 좋게 주머니 속 시계에 총알이 박혀 살아났었다. 그녀의 몇 가지 증언 - 아버지 서랍 속 총이 사라졌었던 것, 두 번째 총성은 조금 약했던 것 - 을 토대로 캐러더스는 사건을 재수사해 나가는데...

조금 올드하지만 '팜므 파탈'이라고 부르기에 부족하지 않은 매들린 캐릭터가 돋보였고, 지나칠 정도로 운이 좋은 프랭크에게 의심이 가게끔 하는 전개도 좋았습니다.
우선 매들린부터 살펴보자면, 프랭크가 나쁜 놈이기는 하지만 일말의 죄책감 없이 캐러더스를 이용하여 그를 살인범으로 만드려는 조작을 벌이는 전개가 예상 외라 깜짝 놀랐습니다. 이 당시 추리 소설에서는 보기 드문, 굉장히 활동적이면서도 입체적인 여성 캐릭터로 생각됩니다.

또 매들린의 조작에 의해 프랭크가 범인인 것처럼 보이게 만들지만, 결국 최초 알려진(거짓말같은) 진상이 진짜이며, 의뢰인의 의뢰 후 독자에게 공유된 증언과 증거가 모두 조작되었다는 것 역시 시대를 앞서간 전개였고요.

물론 프랭크의 시계가 독자에게 공정한 단서가 될 수 없다는 것은 단점이긴 합니다. 캐러더스는 여기서 진상을 알고 사건이 조작되었음을 눈치챘지만, 독자는 시계를 물리적으로 확인할 수 없으니 끌려갈 수밖에 없거든요.

그래도 아주 신선하고 놀라운 요소가 많기에 개인적으로 이 단편집의 베스트로 꼽고 싶네요. 별점은 3점입니다.

"파운틴 코티지의 소동"

"사람들은 기이하고 알 수 없는 이런저런 상황들을 운이라는 이름으로 한데 묶어버리곤 하지요" - 엘시가 최근 닥친 불운을 이야기하자.

칼라일의 사랑하는 조카딸 엘시 부부에게 이웃집에서 콩팥 요리를 정원에 던졌고, 멀쩡한 정원사가 저렴한 가격에 일하겠다고 자원하는 등의 기묘한 일이 벌어졌다. 캐러더스는 이 모든 일에 숨겨진 진상이 있다는 것을 눈치채는데...

일종의 일상계. 사실 지금 읽기에는 좀 뻔합니다. 원래 이 집의 집사였던 옆집 남자는 이 집에 세들기를 호시탐탐 노리고, 원래 이 집의 정원사였던 남자가 싼 값에 정원을 가꾸어 주겠다고 자원한다면 그 이유는 뭐겠습니까? 집에 뭔가 숨겨져 있는 것이죠.

그렇다면 독자에게 보물 찾기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해 주어야 하는데... 아쉽게도 거기까지는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암호가 숨겨져 있다는 책인 "돔 너머의 화염"이 독자에게 제공되지 않기에 암호문을 푸는 재미는 전무하고 그냥 캐러더스의 설명에만 의지하고 있거든요.

그 외 콩팥을 던진 이유가 제대로 설명되지 않는 등 석연치 않은 부분에 더해, 도움을 당당하게 생각하는 염치없는 엘시 캐릭터는 정말이지 호감을 갖기 어려워서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드네요.

한마디로 그냥저냥한 소품으로 별점은 2점입니다.

"어둠 속의 게임"

"귀도는 외국인이었고 그 중에서도 최악인 이탈리아인이었다." - 귀도에 대한 소개 중. 발로텔리에게 분노한 영국 팬이 쓴 글인가 싶을 정도로 편파적이라 외려 인상적이군요.

비델 경감이 X 백작부인의 의뢰로 중요한 서류를 훔친 귀도 일당의 체포를 도와달라는 부탁을 해 왔다. 흔쾌히 허락한 캐러더스에게 대영 박물관에서 귀중한 동전이 도둑맞았다는 전화가 걸려왔고, 이후 정체 모를 이탈리아 여인이 귀중한 동전을 발굴했다며 찾아오는데...

첫 번째 이야기인 "디오니시우스의 동전" 사건에 등장했던 위조범 동피에르, 그의 부인 니나 브룬이 등장하여 단편집 대미를 장식하는 작품입니다. 일종의 수미쌍관식 구조라 할 수 있지요.

하지만 사건은 별게 없어요. 동피에르와 니나 브룬이 동전을 미끼로 캐러더스를 유괴한 후, 귀도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가두려는게 전부인 탓입니다. 이후 납치된 캐러더스가 기지를 발휘하여 은신처를 정전시킨 후, 제목 그대로 어둠 속에서 납치범들과 대치한다는 전개로 이어지는데 이래서야 추리물보다는 모험물에 가까와 보입니다.

때문에 추리적으로 특기할 만한 부분은 없습니다. 오히려 마지막에 비델 경감이 어떻게 은신처를 덮쳤는지는 제대로 설명되지 않는 등의 약점만 도드라질 뿐이에요. 비록 캐러더스가 입구에 흔적을 남겼더라 하더라도, 그것만 가지고는 불충분했을 텐데 말이지요. 또 과연 어둡다 하더라도 맹인 1명에게 2명, 아니 3명(니나 브룬까지)의 악당이 꼼짝없이 털리는 것도 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물론 캐러더스의 액션(?)이 펼쳐진다는 점은 놀랍긴 합니다. "데어데블"의 선구자격인 작품이랄까요. 어둠 속 클라이맥스의 긴장감도 대단했고요. 추리물로서 가치는 거의 없지만 만화 같은 극적 전개는 괜찮았습니다. 시대를 앞서간 장님 슈퍼 히어로물이랄까요. 별점은 2점입니다.

2007/07/10

알라딘 추리독자 인터뷰 따라하기~!

원문은 여기에

읽다보니 재미있어서 저도 짤막하게 몇자 적어봅니다. 아.. 이 따라쟁이 정신이란 정말이지....^^

Q. 추리소설을 읽는 이유/추리소설 읽는 즐거움은?

A. 단순히 독서로 끝나지 않는 지적인 사고활동이 곁들여지는 것이 매력이죠. 그래서 저는 정통파 고전 트릭물을 선호하는 편이고요. 작가와의 두뇌싸움이 제대로 펼쳐지는 흥미진진함 때문에 손에서 떼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Q. '내 인생의 추리소설' 5권을 꼽는다면?
A. 5편만 뽑기에는 너무나 어렵지만 "내 인생" 이라는 말이 들어가기 때문에 저에게 영향을 준 작품 위주로 뽑아 보았습니다.
1)  <황제의 코담배 케이스>,  존 딕슨 카 지음
그야말로 황금시대 정통 추리물 최고 걸작 중 하나로 밀실 트릭의 대가 딕슨 카의 역량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독자와의 공정한 두뇌싸움을 초반부터 정직하게 보여주는 정통 고전 퍼즐 미스테리의 진수를 느낄 수 있습니다.

2) <셜록홈즈 전집>, 아서 코난 도일 지음
지금 읽으면 너무 낡은 듯한 느낌도 들지만 시대가 지나도 영원한 명탐정의 상징으로 남은 셜록 홈즈 시리즈는 제 인생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작품이죠. 코난 도일 경에게는 아직도 고마움과 무한한 존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3) <10개의 인디언 인형>,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제가 처음으로 접한 추리와 호러의 만남! 동요와 함께 전해져 오는 오싹한 느낌과 더불어 완전범죄가 무엇인지 보여주는, 크리스티 여사의 필력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작품입니다. 처음 읽고는 며칠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할 정도로 무서웠던 경험이 아직도 떠오릅니다.

4) <점과 선>, 마츠모토 세이쵸 지음
원래 뜨문뜨문 접했던 일본 추리소설이었지만 지나친 성적 묘사 등으로 그다지 흥미를 가지지 않았었던 저에게 일본 추리 소설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준 작품이죠. 이른바 "기차 시간표 트릭"의 선구자적인 걸작이며 사회파로서의 특징 역시 확연하게 보여주는 사회파 추리소설의 금자탑입니다. 이 책 덕분에 이후 본격적인 일본 추리소설 탐독을 시작했기에 "제 인생"의 추리소설에 있어 빼 놓을 수 없는 작품입니다.

5) <8번 종이 울릴때>, 모리스 르블랑 지음
홈즈가 등장했으니 라이벌 뤼뺑 역시 빠질 수 없겠죠? 최근까지도 많이 인용되는 멋진 트릭이 가득 담겨 있는 정통 추리 단편집이면서도 뤼뺑의 매력이 전편에 걸쳐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뤼뺑 시리즈 최고 걸작이라고 하기에는 좀 부족하지만 제 인생에 있어서는 최고의 뤼뺑 작품으로 기억되는 재미난 작품이죠.

Q. '올해 여름, 필독을 권하는 추리소설'이 있다면?
A. 좀 호러 성향이 강한, 오싹한 작품 위주로 생각해 보았습니다.
1) <검은집>, 기시 유스케 지음
올해 영화로도 개봉해서 잘 알려져 있는 바로 그 작품입니다. 일상생활에서 이루어지는 범죄와 공포를 다루고 있기에 사회파적 호러물이라 할 수 있는데 전편에 걸쳐 전해져 오는 오싹함과 서늘함이 일품으로 여름철에 딱 어울리는 책이죠. 영화는 아직 보지 못했지만 소설만으로도 충분히 무섭고 재미납니다.

2) <인생을 훔친 여자 (화차)>, 미야베 미유키 지음
신용불량과 개인 채무, 파산을 소재로 하여 사회파적인 기법의 추리소설로 잘 표현한 수작으로 일상생활과 맞닿아 있는 점에서 본다면 보험악용을 소재로 한 기시 유스케의 "검은 집"이라는 작품과 비교해서 읽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최근 화제가 된 드라마 "쩐의 전쟁"을 일부 연상케도 하고요. 정통파적인 부분은 크게 드러나지는 않지만 범죄의 특성 상 추리 매니아가 몰입할 요소가 많은 만큼 추천하고 싶습니다.

3) <고도의 마인>, 에도가와 란포 지음
일본 추리 소설의 창시자라 할 수 있는 에도가와 란포의 대표작으로 변격물이라 불리우는 란포 특유의 느낌이 잘 살아 있는 작품입니다. 역시 여름철에 읽기에 참 적합하다 할 수 있는, 호러와 추리를 잘 버무린 작품으로 시대를 한참 앞서나갔던 란포의 상상력이 잘 드러나 있지요. 개인적으로는 영화 "닥터 모로의 DNA"가 약간 연상되기도 했습니다.

4) <살인자들의 섬>, 데니스 루헤인 지음
현실과 망상을 오가는 독특한 전개와 정신병원을 무대로 한 서늘한 느낌, 거기에 독자를 빨아들이는 재미와 몰입도에 있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현대 미국 추리 소설의 힘을 잘 보여주는 걸작입니다. 중간에 등장하는 암호 트릭 등으로 정통파적인 재미도 빠지지 않으니 아직 읽지 않으신 추리 매니아가 있다면 꼭 한번 읽어 보시길 권하고 싶습니다.

5) <소름> , 로스 맥도널드 저
하드보일드 삼두마차의 한명인 로스 맥도널드의 최고 걸작입니다. 하드보일드 특유의 강한 드라마로 시종일관 독자의 흥미를 유발하면서도 놀라운 마지막 3페이지의 반전으로 충격과 더불어 한 인간의 잔인성과 비인간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놀라운 작품이죠. 흔해빠진 반전물에 비해 정통 드라마의 요소를 충실히 갖추고 있기에 더욱 작품성이 빛난다 할 수 있습니다. 이후 많은 작품들에 영향을 준 작품이기도 하죠. 미국의 널리고 널린 헐리우드 스타일 스릴러에 식상한 분들에게 꼭 추천해 드리고 싶습니다.

Q. 내 인생의 '첫' 추리소설은?

A. 아서 코난 도일의 셜록홈즈 단편들이 최초죠. 아마 "계림문고"라는 곳에서 시리즈로 나왔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각 단편을 얇은 책 한권으로 만든 구성이었습니다. 아마 저와 같은 나이 또래의 추리 애호가들은 거의 다 비슷하시리라 생각되네요. 요사이 비슷한 판본과 형태로 다시 재간되고 있는 것을 서점에서 보았는데 어린아이들이 많이 접해서 저와 같이 추리소설의 재미를 경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Q. 재출간을바라거나, 국내에 본격적으로 소개되길 바라는 추리소설/작가가 있다면?
A. 재출간이 되기를 바라는 작품이야 너무 많지만 개인적으로 구하고 있었던 자유추리문고가 복간되었으면 합니다. 벨린저의 "이와 손톱"과 에반 헌터의 "주정꾼 탐정"은 정말 너무 읽고 싶은 작품이거든요. 이외에도 다카키 아키미쓰의 "파계재판"과 사노 요의 "완전범죄 연구" 역시 평소 구하던 책입니다. 그리고 국내에 본격적으로 소개되길 바라는 소설이나 작가는 너무나 많지만 개인적으로는 국내 작가들에 대한 지원과 관심이 더욱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때문에...."경성탐정록"의 출간을 원하시는 출판사를 찾습니다!^^

2007/01/07

말더듬이 주교 - E.S 가드너 / 정계춘 (자유추리문고 17) : 별점 1.5점

말더듬이 주교 - 4점
얼 스탠리 가드너 지음, 장백일 옮김/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페리 메이슨 사무실로 멜로리 주교가 찾아와 더듬는 말투로 한 과실치사 사건에 대한 변호를 의뢰하며 억만장자 렌월드 C 블래운리가 관련되어 있다는 것, 상세한 내용은 추후 관련인물들을 통해 알려주겠다고 전한 후 사라진다. 페리 메이슨은 사립탐정 폴 드레이크를 통해 주교에 대한 모든 정보와 과실치사 사건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나 곧바로 주교가 폭행당한 뒤 사라지고 주교에게 고용되었던 간호사 아가씨마저 종적을 감춘다.
페리 메이슨은 주교가 말한 과실치사 사건의 당사자이자 블래운리 가문에서 내쳐진 며느리인 줄리아 블래너와의 만남을 가진뒤 정확한 사건의 개요를 파악하게 되나 곧바로 렌월드 C 블래운리가 살해당하며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 줄리아 블래너가 체포되고 페리 메이슨은 증거를 얻기 위한 활동 덕에 오히려 궁지에 몰리게 되는데...


미국 추리소설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하드보일드 쪽이야 걸작도 많고 이래저래 접한 작품이 많지만 그외의 작품들은 뭔가 흥행을 굉장히 의식한 듯한, 시드니 셀던 류의 작품이 너무 많다고 여겨졌거든요. 때문에 진정한 흥행 대마왕인 페리 메이슨 시리즈 역시 선뜻 손이 가는 작품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자유추리문고 구입에 포함되어 있어 모처럼 주말에 진득하게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위의 그림은 동서문화사 판이지만 뭐 어차피 같은 작품이니까...)

"관리인의 고양이"라는 작품을 포스팅 하는 등 이전에도 페리 메이슨 시리즈는 몇편 읽어보았는데 이 작품은 다른 작품들에 비하면 조금 다른 분위기였어요. 정통 추리적인 부분이 부족하고 외려 하드보일드적인 성격이 상당히 강하기 때문입니다.
페리 메이슨과 하드보일드는 잘 어울릴 듯한 소재는 아니지만 이 작품은 페리 메이슨이 혼자 쳐들어가서 악당을 두들겨 패는 장면이나 악당과의 담판 등 세세한 분위기 및 범행을 풀어나가는 과정이 뚜렷하게 하드보일드적 속성을 지니고 있으며 전개 역시도 여러 인간관계를 바탕으로 씨줄과 날줄처럼 얽힌 사건의 본질을 추적해 나간다는 하드보일드의 기본 원칙에 충실하더라고요.
그래서 정통 추리물을 기대한다면 실망할 수 밖에 없어요. 무엇보다도 사건은 단 한건의 살인 사건만 벌어질 뿐이며 그 동기가 너무 뚜렷하고 악당 캐릭터가 눈에 보일 정도로 도드라져서 정통 추리물로 보기에는 무리가 따릅니다.

물론 어차피 페리 메이슨 시리즈에서 사실 기대하는 것은 정통파적인 요소보다는 법정쇼겠죠. 그러나 이 작품에서는 페리 메이슨 시리즈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라 할 수 있는 "법정쇼" 대신 일종의 속임수로 범인의 자백을 이끌어 내는 결말이기에 역시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물론 법정쇼는 등장하긴 하지만 사건의 해결을 위한 자리가 아니라 "시간을 벌기 위한" 자리였기에 긴장감이 떨어지거든요. 결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다양한 증언과 증거 수집,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법정쇼라는 최대의 매력이 없는 앙꼬없는 찐빵같은 작품이었습니다.

페리 메이슨, 델라 스트리트, 탐정 폴 드레이크라는 고정 캐릭터 3인의 협력 관계 등 시리즈의 팬이라면 즐길 만한 요소가 많고 위에서 이야기한 하드보일드적인 부분때문에 색다른 느낌도 전해주며 페리 메이슨 시리즈의 최대 장점인 "쭉쭉 읽히는" 재미는 여전하지만 단지 추리소설로만 놓고 본다면 높은 수준의 작품은 아니라는 생각이 드네요. 번역도 좀 애매한 편이고요. 제목에서 유래되는 주교의 정체를 밝혀나가는 초반부가 외려 저는 더욱 마음에 들었습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그런데, "주교는 말을 더듬지 않는다"라는 일종의 통설이 구미권에서는 속담처럼 널리 쓰이는 말인가보죠? 제목이 저에게는 크게 와 닿지 않았는데 작품 안에서는 굉장히 중요한 키워드의 하나로 쓰이고 있어서 궁금해지긴 하네요.

2007/07/22

주정꾼 탐정 - 에반 헌터 / 김병선 (자유추리문고 50) : 별점 3점

드디어 어렵사리 구하게 된 자유추리문고의 "주정꾼 탐정" 입니다. 정말로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네요.

작품의 작가 에반 헌터는 "87분서" 시리즈의 작가 "에드 멕베인"입니다. 에드 멕베인은 거장이기는 하지만 워낙 다작인 탓에 실망스러웠던 것도 제법 있었죠. 특히 후반기 작품들은 많이 아니었어요. 그러나 이 작품은 작가의 초기작으로 당시 유행의 끝자락이던 초기 하드보일드 정서를 제대로 전해주는 것과 동시에 정통 본격 추리물스러운 점이 많아서 마음에 들더군요. 서정적인 문체와 묘사도 아주 인상적이었고요. 하드보일드계의 서정시인 로스 맥도널드가 연상되기도 했습니다.

또한 주정꾼 탐정인 주인공 커트 캐넌의 캐릭터가 무척 독특한데 알콜중독 룸펜 탐정으로 "800만가지 죽는 방법"의 매튜 스커더의 형님뻘로 로렌스 블록이 많은 부분 영향을 받아서 매튜 스커더를 창조한 것은 확실합니다 . 탐정 면허증도 없는 알콜중독자로 심리 묘사가 주를 이루고 있다는 것은 유사한 수준을 넘어서니까요. 개인적으로는 과거의 트라우마로 괴로워하는 매튜 스커더보다는 바람난 아내를 응징하려다가 모든 것을 잃게 되는 커트 캐넌이 더 설득력있게 다가왔습니다. 역시 아류가 원조를 뛰어넘기는 힘든 법이에요.

그러나 8편의 단편이 다 추리적 요소를 내포하고 있지는 않을 뿐더러 작품별 편차도 좀 있고, 작가의 히트작인 "87분서" 시리즈와 유사한 스토리, 분위기가 반복된다는 것은 단점이기는 합니다. 특히 몇몇 작품의 세부 묘사는 굉장히 비슷하더라고요. "대중소설" 작가인 에드 멕베인이기 때문인지 거의 모든 편에서 처음 만난 여성과의 정사가 그려지는 등의 통속적 요소도 거슬리는 점이었고요.

그래도 개인적으로는 그동안 기다렸던 만큼, 기대했던 만큼의 재미를 전해주기에 무척 즐겁게 읽었습니다. 명작이나 걸작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부족할 수 있지만 추리소설 황금기 막차(?)의 느낌은 잘 전해주고 있다고 할 수 있겠네요. 별점은 3점입니다. 8편의 단편 중 개인적인 추천작은 "다시 만남"으로 추리적인 요소나 전체적인 분위기가 제일 마음에 들더군요. "주정꾼 탐정" 으로서의 캐릭터가 가장 잘 살아있는 다른 추천작이라면 "나도 산타클로스"를 꼽겠습니다.

1. 떠나지 않는 유령 (Die Hard) 

커트 캐넌은 한 남자로부터 마약중독에 빠진 자기 아들을 구해달라는 의뢰를 받지만 거절했다. 그러나 남자가 자기 눈 앞에서 살해당하는 것을 목격한 뒤, 사건 수사에 뛰어든다.

아마 커트 캐넌 시리즈 제 1작이겠죠? 뉴욕 뒷골목의 묘사와 인물 묘사가 일품이긴 한데 범인이 너무 쉽게 드러나는 약점이 있더군요.

2. 죽은 사람의 꿈 (Dead Men Don't Dream)

소꼽친구 찰리의 장례식에 참석한 커트 캐넌은 다른 친구들로부터 그 지역 건달들에게 상납금을 내지 않아 찰리가 살해 당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건달 소탕에 나선다. 

하드보일드 액션물로 커트 캐넌이 동네 건달들과 한판 벌이는 내용이 전부입니다. 전체적으로는 마이크 해머스러운 느낌으로 추리적으로 특기할 것은 없네요.

3. 프레디는 그곳에 (Now Die in It)

지인 루디가 처제 베티의 임신 사실을 고백하며 상대 남자가 누구인지 밝혀줄 것을 의뢰한다. 처음에는 거절하지만 베티가 살해당한 뒤 사건 수사에 나서게 되는데... 

전형적인 하드보일드 추리물로 룸펜 신분으로 할 수 있는 수사가 어떤 것인지를 잘 묘사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루 아처 시리즈 단편과 꽤 유사한 느낌을 받기도 했는데 범인이 누구인지는 쉽게 알 수 있다는 단점은 있지만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4. 착한이와 죽은이 (Good and Dead) 

룸펜 친구 조이가 살해당한 뒤 커트는 그가 무엇인가를 알고 있어서 살해당한 것이라는 중국인 칭크의 말을 듣고 관련 인물 조사에 나선다. 

한여름 더위의 묘사가 탁월합니다. 역시 "경관혐오"의 작가 답다는 느낌이 물씬 나더군요. 추리적으로는 별다를게 없고 관련 사건의 연결고리가 너무 쉽게 드러나는 단점때문에 높은 점수를 주기는 힘들지만 묘사가 정말 좋아서 읽는 재미 만큼은 끝내줬습니다.

5. 나의 죽음 (The Death of Me) 

커트 캐넌은 신문에서 그가 죽었다는 기사를 읽은 뒤 진상을 파악하기 위해 나선다.

커트 캐넌이 드디어 노숙자 신세로 전락한 시즌의 이야기로 내용은 갱들의 세력 다툼이 대부분이라 추리적 요소는 거의 없습니다. 팜므파탈, 갱, 킬러 등 하드보일드 액션물의 모든 요소가 등장해서 스케일이나 캐릭터에서 영화적인 느낌을 많이 전해주기는 하는데 뭔가 좀 어수선했고요. 아무래도 단편에는 잘 어울리지 않는 소재가 아니었나 싶네요.

6. 나도 산타클로스 (Deadier Than the Mail) 

커트 캐넌은 유년시절 친구 키트 오드닐의 부탁으로 생활보호 대상자들의 복지수표 도난 사건 수사에 착수한다.

영문 원제가 너무 범인을 뚜렷이 암시하고 있으며 범행이 우발적이고 좀 납득되지 않는 부분이 있어서 추리적으로 문제점은 많지만 전체적인 분위기와 묘사가 마음에 들은 작품입니다. 무엇보다도 맹점을 찌르는 맛이 좋아서 추천하고 싶네요.

7. 다시 만남 (Return) 

커트 캐넌에게 헤어진 옛 아내 토니가 다시 찾아와 새출발 할 것을 약속하고 그에 고무된 커트 캐넌은 부랑자 룸펜 생활을 청산하고 다시 탐정일을 제대로 시작할 것을 결심한다. 

커트 캐넌 시리즈의 핵심 인물인 전처 토니가 주연급으로 등장하는 작품으로 정통 하드보일드적인 냄새도 나면서도 여러가지 곁가지 설정들이 양념처럼 재미를 더하는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재미도 재미지만 커트 캐넌의 심리 묘사가 특출나다는 것도 인상적이었고요. 범인의 공작이 너무 얄팍하지 않나 싶은 생각은 들지만 (예를 들자면 저같으면 확실한 알리바이 공작을 하고 있었겠지만)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개인적인 베스트로 꼽겠습니다.

8. 거리에 내리는 주먹비 (The Beating) 

룸펜들을 노리는 테러가 연달아 발생하고 결국 한명이 살해당하게 된다. 경찰 수사를 믿지 못하는 커트 캐넌은 스스로 미끼가 되어 밤거리를 배회하기 시작하는데... 

역시나 여름 묘사가 발군인 단편으로 진상이 밝혀지기까지의 조사과정이 허술할 뿐더러 단서없이 함정수사(?)로 범인을 잡는 결말이라 조금 시시했어요. 커트 캐넌과 부랑자 이웃간의 애정이랄까... 하는 감정만큼은 독특하긴 했으나 그냥저냥한 평작으로 생각됩니다.

2007/01/26

카나리아 살인사건 상/하 - 반 다인 / 전윤경 : 자유 추리 문고 24~25 : 별점 2.5점

카나리아 살인사건
S.S. 반 다인 지음, 안동민 옮김/동서문화동판주식회사

카나리아라는 별명으로 더욱 잘 알려진 브로드웨이의 무희 마거리트 오델이 교살된 시체로 발견되었다. 지방검사 매컴의 요청으로 수사 협력을 위해 파일로 번스는 친구인 변호사 반 다인과 함께 사건 현장과 여러 용의자들의 알리바이를 확인했다. 사건 현장에 남겨진 보석 상자의 흔적으로 전문 절도범인 "멋장이" 토니 스킬의 절도가 의심되나 그의 알리바이를 경찰은 깨트리지 못하고, 오히려 그마저도 살해당해서 사건은 교착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그러나 파일로 번스는 애초부터 다른 인물에 혐의를 두고 있었고, 스스로의 직감과 심리학적 분석으로 진범을 파악한 뒤 알리바이를 벗겨내는데 성공한다.

반 다인의 파일로 번스 시리즈 두번째 작품입니다. 원체 제가 잘난척 하는 탐정을 좋아하지 않아 그동안 읽지 않은 장편인데, 저번 자유 추리 문고 구입 Rush에 편승하여 구입하여 읽게 되었습니다.

읽고난 감상은 역시 파일로 번스는 제 취향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래도 제가 읽은 시리즈, "벤슨" "승정" "가든" 중에서는 "승정 살인사건" 다음으로 꼽을 만한 괜찮은 요소가 많이 있어서 나름 재미나게 읽긴 했습니다.

특징은 파일로 번스의 이른바 "심리학적 분석"이 굉장히 중요하게 쓰인다는 점입니다. 특히 포커 승부를 통해 그 사람의 본질을 파악한다는 것이 꽤 참신하게 쓰이고 있습니다. 사실 그다지 와 닿지는 않았지만 카이지나 타짜 느낌이 약간 묻어나는, 나름 원조격 느낌을 전해주더군요.

그러나 가장 중요한 트릭인 알리바이 트릭은 솔직히 기대 이하였습니다. 경찰의 현장 수사 부족으로 성립되는 트릭이라 무척이나 실망스러워요. 또한 당시 상황에서는 그런대로 과학적인, 이치에 합당한 트릭으로 쓰일 수 있었을지 모르나 지금 읽기에는 상황이 너무 부실하고 증거가 너무 결정적이라는 단점 때문에 더더욱 수긍하기 힘들었습니다. 트릭이 성립하기 위한 복선이 지나치게 묘사되는 탓에 범인을 쉽게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 역시 단점입니다.
그리고 이 작품에서의 가장 획기적 설정인 "살인 사건 현장에 있던 두 사람" 이라는 설정에서, 둘 중 한사람이 범인이라고 할 때 둘 중 누가 범인인지를 특정한다는 사실 자체가 불가능하다는건 큰 맹점입니다. 한 명이 살해당했더라도 죄 값을 받은 것인지, 증거 인멸 차원에서의 범죄인지가 결국은 추리에 의해서만 증명될 뿐이니까요.

이러한 점들 때문에 퍼즐 트릭물로는 많이 부족합니다. 설정은 기발했지만 트릭과 이후 전개가 그에 따르지 못했다 할 수 있겠네요.

아울러 파일로 번스의 장황한 현학적 지식의 나열이나 그에 못지 않는 작가 주석은 그렇지 않아도 긴 작품을 더더욱 짜증나게 합니다. 잘난척도 정도가 있어야지... 화가 날 정도에요. 다양하고 방대한 인용구와 단어들 때문에 번역은 힘들었겠지만 그러한 어려움이 재미에는 전혀 도움을 주지 못했습니다.

결론내리자면 고전 추리물의 걸작이기도 하고 추리사에 나름의 한 획을 그은 작품이기도 하지만 이러한 문제점들 때문에 걸작 반열에 올리기는 힘드네요. 별점은 2.5점입니다. "심리적 분석"이라는 참신한 요소는 굉장히 높이 살 만 하고 몇몇 설정이 돋보이며 재미 역시 그런대로 있는 편이라 고전 추리물 애호가라면 한번쯤 읽어볼 만 하지 않나 싶습니다만... 제가 읽은 바로는 파일로 번스 물은 "승정 살인사건" 만 읽고 넘어가도 될 것 같습니다.

2024/03/23

중간의 집 - 엘러리 퀸 / 배지은 : 별점 2점

중간의 집 - 4점
엘러리 퀸 지음, 배지은 옮김/검은숲

<<아래 리뷰에는 진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엘러리의 지인인 변호사 빌의 매제 조가 살해당했다. 현장을 찾은 엘러리는 피해자가 뉴욕 상류층 사람인 조지프 켄트 김볼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김볼은 조 윌슨이라는 가짜 신분으로 빌의 여동생 루시와 결혼했고, 본래 신분으로는 돈많은 과부 제시카 보든과 결혼했던 중혼자였다.
현장에서 조 윌슨의 아내 루시에 관련된 여러가지 정황 증거들이 수집되었고, 김볼로 가입했던 100만 달러짜리 생명보험 수취인이 얼마전 루시로 변경된걸 근거로 경찰은 루시를 체포했다. 빌은 동생의 변호를 맡아 끝까지 분투했지만 루시는 유죄가 인정되어 20년 형을 선고받고 수감되었다.
하지만 엘러리는 현장을 목격했던 김볼의 의붓딸 안드레아의 결정적 증언을 통해 범인이 누구인지 추리하여 결국 사건을 해결하는데 성공한다.


검은숲의 엘러리 퀸 전집 중 한 권. "도중의 집"이라는 제목의 자유추리문고 버젼도 이미 읽었지만, 오래 전에 읽어서 기억도 잘 나지 않기에 겸사겸사 다시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엘러리 퀸 1기라 할 수 있는 국명 시리즈와 3기 라이츠빌 시리즈 사이에 위치한 2기 시기를 연 작품이라고 하는데, "스웨덴 성냥 미스터리"라는 제목을 붙여도 괜찮았을 거라는 언급이 작중에 등장할 정도로 '국명 시리즈' 속성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후더닛'에 충실한 정통파 본격 추리 소설이며, '독자에의 도전'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국명 시리즈'보다는 드라마의 변화 폭이 넓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중반부는 아예 법정물로 간주해도 될 정도니까요. 법정물로의 수준도 높습니다. 특히 범인의 다분히 고의적이고 어설픈 행동들을 열거하며, 이는 루시에게 누명을 씌우기 위함이라는 빌의 마지막 변론은 굉장히 설득력이 높았습니다. 범인이 충분한 휘발유가 있었는데도 구태여 주유소를 방문해 베일을 쓴 얼굴을 보여줄 이유가 없다는 등의 설득력있는 근거를 제시하기 때문입니다.
검사 역시 유죄 판결을 이끌어낼 만한 좋은 변론을 펼칩니다. '범죄자들은 아둔하며, 뛰어난 지능을 가진 범죄자들은 소설책에서나 볼 수 있다'는 건데 그럴듯했습니다.
거의 빌이 이길 뻔 했지만 흉기에 루시의 지문이 묻어 있있다는 증거를 뒤집는데 실패한다는 결말도 현실적이었고요.

추리적으로도 나쁘지는 않습니다. 핀치의 만년필에 독특한 초록색 잉크가 들어있었다는 것, 범인이 립스틱을 이용하지 않고 구태여 코르크를 태워 필기구로 쓴 것 등 모든 단서가 '독자에의 도전' 단계 전까지 독자들에게 정말로 공정하게 제공된다는건 높이 평가하고 싶네요.
이를 통해
  1. 범인은 남자다.
  2. 범인은 흡연자고, 아마도 파이프 담배를 피운다.
  3. 범인은 자기 정체를 드러낼 내용이 새겨진 성냥갑을 가지고 있다.
  4. 범인은 김볼과 루시에게 적대적인 동기가 있다.
  5. 범인은 필기구를 소지하지 않았거나, 소유한 필기구를 사용하면 정체가 드러날 위험이 있어 사용하기를 꺼렸다.
  6. 범인은 아마도 김볼 쪽 관계자일 가능성이 높다.
  7. 범인은 앤드레아에게는 우호적이다.
  8. 범인은 오른손잡이다.
  9. 범인은 김볼이 보험 수익자를 변경한 사실을 알고 있다.
라는 추리를 끌어내고, 관계자들 중 이에 해당하는 사람을 찾아내는 과정도 그럴듯했습니다.
이런 후더닛 추리 외에도 '중간의 집'으로 명명된 집에 대해서 간단한 조사만으로 그 용도를 꿰뚫어 보는 추리도 볼만한 등, 확실히 '엘러리 퀸'이라는 명성에 값하는 점은 많았어요.

그러나 완성도는 다소 부족했습니다. 일단 추리적으로 억지가 많습니다. 가장 중요한 단서 중 하나였던, 앞서 안드레아가 목격했던 성냥부터가 그러합니다. 이를 토해 엘러리 퀸은 범인은 담배를 피운게 분명한데, 재와 꽁초와 같은 흔적이 없으니 파이프를 피웠다고 추리하지요. 하지만 애초에 엘러리 퀸 스스로가 범인은 현장에서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고 강하게 주장했었습니다. 파이프로 흡연이 가능했다는걸 초반에는 왜 말하지 않았을까요? 성냥 모두가 코르크를 태우는데 사용되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겠지만, 억지이자 반칙같은 느낌을 받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조의 아내 루시가 빌에게 선물하려고 산 문구 세트 칼을 만졌다는 완전한 우연이 재판에서 그녀의 발목을 잡게 된 것, 핀치의 간단한 변장이 주유소 사장이 루시로 잘못 알아볼 정도였다는 것도 현실적이지 못했고요.

전개 면에서는 수수께끼가 모두 엔드레아의 위증에서 비롯되었다는 단점이 큽니다. 앤드레아가 중간의 집을 방문해서 목격했던걸 모두 털어놓았더라면 사건은 보다 빨리 해결될 수 있었을 거에요. 앤드레아가 입을 다문 이유도 납득하기 힘들었고요.
엘러리 퀸 특유의 장황한 대사들은 여전히 짜증스러웠으며, 빌이 엔드레아와 사랑에 빠진다는 것도 어처구니 없었어요. 무고한 동생이 20년형을 선고받은 상황에서, 동생을 구렁텅이로 몰아넣은 악덕 중혼자의 의붓딸과 사랑에 빠져 결혼을 한다는게 말이나 됩니까.

설명도 대체로 부족합니다. 빌이 처음에 '중간의 집'에서 발견했던 앤드레아의 다이아몬드 반지를 숨겼던 이유는?(둘이 원래 알던 사이였는지?) 김볼이 빌에게 자신의 정체를 고백하려고 마음먹은날 앤드레아까지 중간의 집에 부른 이유는? 대체 핀치는 그 날 그 시간에 김볼이 중간의 집에 혼자 있을거라는 사실을 어떻게 알았는지?는 결국 끝까지 설명되지 않더군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대부분의 '국명 시리즈'보다는 낫지만, 전체적으로 그냥저냥합니다.

2006/11/25

미궁과(迷宮課) 사건부 - 로이 비커즈 / 이종수 (자유 추리문고 19) : 별점 2.5점

자유 추리문고로만 접할 수 있는 희귀본이죠. 국내 굴지의 추리 동호회 사이트인 Howmystery.com 회원분의 도움으로 입수하게 되었습니다.

원제는 "The Department of Dead ends". 미궁과는 경시청의 한 부서로 여러가지 미해결 사건이나 증거, 정보들이 모이게 되어 결국 해결하게 된다는 부서로 이러한 설정은 일본 드라마 "케이조쿠"를 생각나게 합니다. 그러나 이 작품의 특이한 점은 단편이지만 전 작품이 모두 범인과 범행과정을 치밀하게 묘사, 서술하고 그 사건이 미궁에 빠진 뒤에 미궁과에서 남겨진 몇몇 단서를 가지고 추리하여 사건을 해결한다는 도서 추리 소설 형태로 쓰여져 있다는 점입니다. 도서 추리 단편집은 처음 접해 보았네요. 그래서인지 범행에 대한 내용이 대부분이라 실제 미궁과의 활약, 특히 미궁과의 수장격인 레이슨 경감의 비중은 굉장히 낮다는 것도 이색적이고요.

또다른 특징은 도서 추리물이기 때문에 범행의 치밀함, 특히 완전범죄를 이루려는 범인의 노력이 주가 되어야 이야기 전개가 매끄러울텐데 이 작품집의 거의 모든 범죄는 "우발적"으로 이루어진다는 것 역시 독특한 부분이었습니다. 전부 10편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는데 "웃은 부인"과 "보트의 푸른 수염", "장님의 망집" 3편이 그나마 범인의 치밀한 범행 계획을 담고 있으며 다른 작품들은 범행 자체가 우발적으로, 즉흥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자면 전체적으로 작품들의 수준이 딱히 우수하진 않더군요. 기대에는 많이 미치지 못했습니다. 실질적으로 "추리"라는 요소가 많이 결여된 느낌이에요. 도서 추리물이기에 범인과 탐정의 두뇌싸움이 보다 치밀하게 그려질 수도 있을텐데 우발적 범행이 주를 이룬다는 특징 때문인지 우연찮게 얻어진 증거로 범행이 드러나게 된다는 구성이 많습니다. 또한 작품마다 비슷한 내용이 반복된다는 것도 실망스러운 부분이었어요.

결론내리자면 엘러리 퀸 마저도 높이 평가한 미궁과의 제 1작 "고무나팔"은 무척이나 신선하고 새로운, 단편으로서 완성도도 높으면서도 이후 시리즈에 기대를 갖게 하는 수작임에는 분명하나 다른 작품들이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기에 전체 별점은 2.5점입니다. 아직 읽지 못하신 분들도 나중에 "고무나팔" 한편만 읽어보셔도 될 것 같네요.

1. 고무나팔
어머니의 과보호 하에서 성장한 유약한 청년 조지는 에셀이라는 아가씨와 마음에 없는 결혼을 한 뒤 노처녀 콜래미어와의 관계 때문에 그녀를 살해한다. 그런데 그가 자신의 존재를 숨기고 에셀과 교제했기에 경찰은 그를 찾지 못하고 사건은 미궁과로 넘겨진다.
기념비적인 "미궁과" 시리즈 1작. 추후 시리즈화된 것이 당연할 정도로 매력적인 요소가 많은 수작입니다. 우발적이지만 완벽한 완전범죄, 그리고 그 범죄가 파헤쳐지는 극히 사소한 단서라는 요소가 교묘하게 결합되어 있거든요. 미궁과의 특징인 "상상력"이 가장 잘 발휘된 작품이기도 하죠. 마지막 문장까지 인상적인 좋은 작품입니다. 별점은 4점입니다.

2. 웃은 부인
유명한 광대 스펜글레이브는 자신의 아내가 자신을 남자로 인식하지 않고 "광대"로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뒤 그녀에게 살의를 품게된다.
전작과는 달리 범인이 범행에 대한 상세한 계획을 세워 실행한다는 것이 차이점인 작품인데 미궁과가 등장할 필요가 없는 강력한 단서가 존재하기에 높은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경찰이 그 차이점을 먼저 깨달았어야 하지 않을까요? 별점은 2점입니다.

3. 보트의 푸른 수염
조지 매커트니는 알고 지내던 하녀와 보트를 타다가 우연히 일어난 사고 덕에 "완전범죄"의 방식을 깨닫게 된 후 아내에게 보험을 가입하게 하고 그녀를 보트사고로 위장시켜 살해하는 수법으로 재산을 늘려나간다. 경찰은 그의 범행을 확신하지만 증거가 없어 체포하지 못하고 사건은 미궁과로 넘어간다.
이 작품도 범인 이름이 조지네요. 작가가 조지라는 친구한테 사기라도 당했었나? 어쨌건 이번에는 연쇄살인극이네요. 그러나 범행 사실을 입증하기 힘들다는 것이 믿기 힘들 정도로 범행 수법이 너무나 뻔하고 얄팍한데다가 사건의 해결이 지극히 우연에 기반하고 있기에 좋은 평을 주기 힘들군요. 별점은 1.5점입니다.

4. 없어진 두개의 다이아몬드
블렌든 집안의 11대째 백작인 헨리 어시웬 경은 희극 여배우 넬리 해이드와 깊은 관계를 맺는다. 그러나 그녀가 결혼을 요구한 직후 살해되고 보석을 훔쳐간 건달 짐이 살인 혐의로 교수형을 받는다. 그러나 2년여의 세월이 흐른 뒤 도둑맞은 보석이 새롭게 발견되고 미궁과는 사건 해결을 위해 헨리경을 다시 찾게 된다.
원제는 "속물의 살인", 우발적 범행을 다룬 작품으로 사건 해결 역시 우연에 의지하고 있습니다. 범행 관련 당시의 물품을 그대로 소지하고 있던 범인의 사고 방식도 이해하기 어렵지만 사건의 결정적 단서 역시도 납득하기 어려운, 평균 이하의 작품이었습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5. 옥스퍼드 거리의 카우보이
앤드류 애머셤은 자그마한 체구의 소심한 사나이로 자신의 아내가 다른 남자와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을 묵인하고 살다가 어느날 분노가 폭발한다...
제목과 설정에서 뭔가 정교한 트릭이 한번쯤 등장해 봄직한 느낌을 전해주는데 트릭이 너무 간단해서 좀 맥이 빠지네요. 사건 해결의 단초가 되는 시계의 묘사와 설정 만큼은 마음에 들었기에 별점은 2.5점. 문제는 이 설정을 이후 계속 작가가 써먹는다는 것이죠...

6. 빨간 카네이션
변호사 웨이컬링은 한때 자신이 사랑했지만 캐스버트라는 인물과 결혼을 약속한 여성 지니를 10여년 뒤 그녀가 출소하는 교도소 앞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녀가 병으로 사망한 후 그는 그동안 만나지 않았던 캐스버트를 찾아가 살해하는데...
역시 우발적 살인을 다룬 작품으로 멜로드라마의 전형같은 범행 동기와 과정이 그려진 것은 특이했습니다. 카네이션과 포장지를 단서화 시키는 식으로 범행의 중요한 단서가 되는 물건을 찾는 이야기도 설득력 있었고요. 그러나 너무 많은 곳에서 범인이 얼굴을 드러냈기 때문에 구태여 미궁과가 출동할 필요가 있었는지는 좀 의심스러웠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7. 노랑 잠바
여자 기숙 학교의 선생인 루스 워틀링턴은 같은 학교의 교사 허버트와 이성으로서가 아닌 우정을 오래 지속하던 중 그가 리타 스티븐즈라는 새로 부임한 선생과 결혼한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진심으로 축하를 전하지만 결혼 선물과 관련하여 리타와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 그녀가 자신과 맞지 않는 가치관을 털어놓자 순간적으로 살인을 저지르는데...
역시 순간적 충동에 의한 범죄, 그러나 그 범죄가 완전 범죄에 가깝게 흘러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래도 동기나 범행 과정에 대해 합리적으로 묘사하고 있으며 정말 사소하고 작은 단서에 의해 사건이 해결된다는 점은 마음에 듭니다. 단, 범인이 빠져나가려고 노력했다면 빠져나갈 수 있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들긴 하네요. 별점은 2.5점입니다.

8. 사교계의 야심가
대부호 은행가 스텐틀러는 해디넘경과 어린 시절 기숙 학교에서부터 친분을 유지했던 관계로 서로의 아들 딸이 곧 결혼을 앞둔 사이이기도 하다. 또한 사교계의 정점에 선 인물들만 가입할 수 있는 클럽 가입에 20여년의 세월을 바쳐 결국 딸의 결혼과 클럽 입성이 눈 앞에 보이는, 행복의 정점에 다다랐다고 믿는다. 그러나 해디넘경과의 식사 자리에서 자신의 클럽 가입이 거부되었다라는 것을 알게 되는데...
원제는 "신분 상승자의 사건" 정도 될까요? 이 작품에서 귀족들 이야기가 많이 나오긴 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 최고위층 인물이라는 것이 독특한 작품입니다. 그러나 사건을 풀어나가는 방식이 너무 뻔해서 조금 실망스러웠어요. "극히 사소한 단서" 라는 전제가 있지만 범인의 아주아주 작은 실수를 통해 드러나는 구조는 이 시리즈 전체에서 너무 많이 반복되는 방식이라 생각되거든요. 별점은 2점입니다.

9. 공처가의 살인
커머튼은 아내 거트루드에게 꽉 잡혀 사는 공처가로 아내와 전혀 다른 타입의 비서 이자벨과 은밀한 관계를 맺는다. 그러나 그 사실이 들통나고 이자벨에게도 많은 돈을 요구받게 되자 그녀를 살해한 뒤 그 사실을 아내에게 털어놓는다.
이 작품은 그간 보아왔던 "미궁과" 시리즈의 전형을 답습하고 있는 작품으로 그다지 좋은 평을 내리기는 어렵네요. 사건을 해결하는 결정적 단서가 너무 뻔할 뿐더러 기존 트릭의 반복일 뿐이었습니다. 평균 이하의 아류작이기에 별점은 1.5점입니다.

10. 장님의 망집
유망한 변호사 로버트는 자신의 변호에 앙심을 품은 여인의 테러로 장님이 되지만 곧바로 성공한 작가로 자리매김한다. 그러나 자신의 아내에게 호감을 가진 웨인이라는 인물때문에 자신의 장애를 깨닫게 된 뒤 그를 살해할 계획을 짜기 시작한다.
역시 비슷한 주제로 비슷하게 써 내려간 전형적 작품. 설정은 두번째 단편 "웃은 부인"의 판박이, 범행 계획 및 실행은 "옥스퍼드 거리의 카우보이", 그리고 해결되는 과정은 "옥스퍼드 거리의 카우보이"와 "사교계의 야심가" 등과 동일합니다. 솔직히 다른 작품으로 보기 힘들 정도에요. 별점은 1.5점입니다.

2021/12/19

고전 추리·범죄소설 100선 - 마틴 에드워즈 / 성소희 : 별점 2.5점

고전 추리·범죄소설 100선 - 6점 마틴 에드워즈 지음, 성소희 옮김/시그마북스

영국 국립 도서관에서 발간한 고전 범죄소설 시리즈를 읽을 때 참고할 안내서입니다. 1901년에서 1950년 사이에 출간된 소설 중 범죄 소설에 초점을 맞춰 모두 102편의 작품을 소개합니다.

시기별, 장르별, 특징별로 상세하게 범주를 구분하고, 범주별로 왜 그 작품을 선정했는지 명확하게 설명하고 있다는게 가장 큰 특징입니다. 덕분에 소개된 작품만 읽어도, 고전 추리, 범죄 소설이 어떻게 시작되어 어떻게 황금기를 지나게 되었는지를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정통 고전 본격물'을 일컫는, 이른바 '페어플레이 미스터리'에 대해서 한 번 살펴보면 저자는 1차대전 이후 전쟁에 지친 대중이 현실 도피와 함께 흥미진진한 게임을 원했기 때문에 이 분야가 탄생했다고 설명합니다. 점점 소설 속 탐정과 지혜를 겨루는 작품이 많아졌으며, 그 결과 오락거리로 즐기는 가벼운 문학의 새 시대가 열린 것이지요. 이른바 범죄 소설의 '황금기'가 바로 이 시기인겁니다. 복잡한 퍼즐, 이야기 속 단서 삽입, 독자를 현혹시키는 여러가지 장치들을 선보이기 위해 장편 형식이 유행하게 된 것도 필연이었고요. 

또 불가능 범죄 미스터리에 대해 설명하면서, 단편 형식이 가장 잘 맞는다는 주장도 기억에 남습니다. 독자가 불신을 유예하는 시간, 즉 사실주의에 입각한 비판을 멈춰놓는 시간이 짧아야 하기 때문이라는 이유인데, 저 역시 동의하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리뷰를 쓸 때는 "생각해보니 억지스럽고 작위적이었다'고는 해도, 최소한 읽는 동안에는 그런 생각을 할 틈 없이 두뇌 게임만을 온전히 즐기려면 이야기가 길면 안 되겠지요.

이런 추리소설 통사적인 측면 말고도, 작품별 소개글도 수준이 높아서 만족스러웠습니다. 진짜 흥미를 자아내는 선까지만 알려주는, 스포일러가 전혀 없는 내용 요약도 일품이며 소개된 작품과 관련된 다양한 정보도 충실히 수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영상화 버젼에 대한 정보가 아주 디테일해요. 영화는 물론, TV 시리즈까지 모두 소개하고 있으며, 심지어 에드먼드 크리스핀의 "움직이는 장난감 가게"에서, 통제 불능 상태의 로터리와 마주치는 두 번째 추격 장면은 히치콕이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열차 안의 낯선 자들"을 각색한 영화에 활용했다는 이야기까지 소개될 정도니까요. 

비슷하거나 영향을 받은 작품에 대한 소개 역시 그 방대함과 깊이가 남다른 수준이며 그 외 여러가지 토막 정보들도 충실합니다. 바로네스 오르치의 "미스 엘리엇 사건"은 1915년 어니스트 섀클턴 경이 남극 탐험을 떠날 때 챙겨갔던 책이었다, 크리스티아나 브랜드가 1979년, "독 초콜릿 사건" 재판본 서문을 쓰면서 사건을 해결할 수 있는 일곱 번째 방법을 발표했다, 우드소프의 1932년 데뷔작 "사립학교 살인사건"은 1934년 미국 사립학교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과 소름끼칠 정도로 닮아있었다는 등의 이야기들 처럼요. 1931년 발표되었던 에블린 엘더의 "흑백 살인"은 주인공 샘 호더가 그린 그림이, 프랜시스 비딩의 1935년 작 "노리치의 피해자들"에서는 용의자들 사진이 중요 단서로 사용되었다는 등의 추리 소설 관련된 아이디어가 이미 20세기 초엽에 정립되었다는 정보들도 재미있었습니다. 읽으면서 저자의 추리, 범죄 소설 분야에 대한 방대하면서 해박한 지식에는 감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추리 소설가들이 작품을 썼던 의도들도 볼만했던 정보입니다. A.E.W 메이슨이 "독화살의 집"을 쓸 때 목표로 했던 건, 미스터리가 모두 해결된 후 추가 설명해야 하는 내용을 가능한 없애겠다는 것처럼요. 페어플레이 추리 소설의 초창기 표본인 "밤중에"를 쓴 고렐 경의 목표는 모든 필수적인 정보를 독자에게도 공정하게 제공하는 것이었다고 하며, 고렐 경의 이 작품에서 건물 평면도, 지도 등이 처음 수록되었다고 합니다. A.A. 밀튼은 추리 소설은 이해하기 쉬운 말로 써야 한다고 주장했고, 또 탐정이 독자보다 특별한 지식을 더 많이 알고 있으면 안된다고 강조했다는데, 과연 곰돌이 푸를 쓴 작가답습니다. 

가장 마음에 든 건 마이클 이네스의 말이었습니다. 그는 "추리 소설은 어쨌거나 순전한 오락물이니 독자를 당황하게 할 뿐만 아니라 즐겁게 해 주겠다는 야망을 저버려서는 안된다"는데 정말이지 맞는 말입니다! 빅터 로렌조 화이트처치가 "다이애나 웅덩이의 범죄"를 쓸 때, 본인 스스로 왜 범죄가 일어났고 누가 범인인지 모르고 있었다는 창작법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독자 뿐 아니라 작가조차도 의미를 모르는 단서들을 살펴보며 수사를 하고 글을 썼다는 건데, 발상이 참 독특했어요.

하지만 이 책의 가장 큰 문제는, 안내서임에도 불구하고 그 안내에 따를 수 없다는 점입니다. 국내 소개된 작품이 턱없이 부족한 탓입니다. 총 102편 중 국내 소개된 작품은 아래의 29편에 불과합니다. 절판된 책도 포함한 것으로, 실제 쉽게 구할 수 있는 책은 그보다도 훨씬 적을 거에요. 이래서야 이 책을 읽는 의미가 많이 퇴색할 수 밖에 없지요.

  1. "배스커빌 가의 사냥개" - 아서 코난 도일
  2. "네 명의 의인" - 에드거 월리스
  3. "브라운 신부의 순진" - G.K. 체스터턴
  4. "오시리스의 눈" - R. 오스틴 프리먼
  5. "하숙인" - 마리 벨록 로운즈
  6. "맹인탐정 맥스 캐러도스" - 어니스트 브래머
  7. "트렌트 마지막 사건" - E.C. 벤틀리
  8. "통" - 프리먼 윌스 크로프츠
  9. "붉은 저택의 비밀" - A.A. 밀른
  10. "스타일즈 저택의 괴사건" - 애거사 크리스티
  11. "증인이 너무 많다" - 도로시 L. 세이어즈
  12. "독 초콜릿 사건" - 앤서니 버클리
  13. "목사관 살인사건" - 애거사 크리스티
  14. "세 개의 관" - 존 딕슨 카
  15. "붉은 머리 가문의 비극" - 이든 필포츠
  16. "녹색은 위험" - 크리스티아나 브랜드
  17. "시행착오" - 앤서니 버클리
  18. "완벽한 살인사건" - 크리스토퍼 부시
  19. "ABC 살인사건" - 애거사 크리스티
  20. "막다른 사건 부서" - 로이 비커스
  21. "살의" - 프랜시스 아일즈
  22. "프랜차이즈 저택 사건" - 조세핀 테이
  23. "데인 가의 저주" - 대실 해밋
  24. "재앙의 거리" - 엘러리 퀸
  25. "붉은 오른손" - 조엘 타운슬리 로저스
  26. "열차 안의 낯선 자들" -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27. "수상한 라트비아인" - 조르주 심농
  28. "이시드로 파로디의 여섯 가지 사건" - H. 부스토스 도메크
  29. "야수는 죽어야 한다" - 니콜라스 블레이크

자유 추리문고에서 출간된 "포튠을 불러라"는 이 책에서 소개한 "포춘 씨, 부탁입니다"와는 다른 단편집으로 생각됩니다. 언급되고 있는 "작은 집"이라는 작품이 포함되어 있으나 그 외 수록작은 다르거든요. 그래서 정식으로 소개된 걸로 치지는 않겠습니다. 게다가 저는 소개된 작품은 한 3~4권 빼고 전부 읽었기에, 별 의미없는 소개였던 셈입니다. 

추리 소설 역사에 대한 자료적 가치는 높지만, 이런 이유로 감점하여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2006/12/28

포튠을 불러라 - 헨리 크리스토퍼 베일리 / 김문해 (자유 추리문고 27) : 별점 2.5점

홈즈 이후 쏟아져 나온 많은 명탐정 중 한명인 포튠 시리즈 단편 걸작선. 단편치고는 길이가 좀 긴 듯한, 중편으로 보기에는 약간 짧은 작품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일단 포튠이라는 탐정이 특이하네요. 이름은 뭔가 요행수가 있어 보이는 네이밍이지만 이름과는 전혀 다르게 증거와 스스로의 추리, 직관에 의지하는 사고기계형 탐정으로 천재형 탐정에게 어울리는 조금 까다로운 성격 역시도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의사라는 직업이 꽤 요긴하게 쓰이고 있는 것도 특징이고요. 학식이 높아보이는 설정이나 추리방법, 그리고 캐릭터는 "9마일은 너무 멀다"의 닉 웰트 교수를 연상케 합니다. 

또 발표된 시대가 1923년에서 36년 동안의 추리소설의 여명기라 그런지 과도기적인 부분도 있고, 과거의 단점을 개선한 부분도 있어서 고전 추리물을 좋아하는 독자에게는 여러모로 유용한 독서가 될 것으로 생각되었습니다. 예를 들자면 명탐정 캐릭터의 진부함과 탐정의 직관에 의존하는 추리법은 분명 낡은 부분이지만, 사건 자체의 핵심만을 파고들고 그 외의 소소한 부분을 건들지 않는 것은 현대적 요소라 할 수 있으니까요. 이 작품은 셜록 홈즈 시리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멜로드라마 같은 설정이 전무하거든요. 대신 사건 그 자체를 보다 디테일하게, 자세하게 파고들며 인간에 대한 관찰을 자세하게 보여줍니다. 당시에는 기본이라 할 수 있었던 "왓슨(와트슨)" 역이 없다는 것도 이색적이고요.

그러나... 명성에 비한다면 수준은 좀 알쏭달쏭합니다. 추리 애호가로서 이 작품을 읽는다는 경험 자체는 무척 즐거웠지만 2% 부족한 느낌이 들거든요. 설득력이 조금 부족하고 애매한 부분이 있는 탓에 논리의 비약이 심한 이야기도 몇 편 있고요. 그리고 여러군데서 보여지는 영국식 잘난척도 약간 거슬렸습니다.

그래도 "작은 집"과 "성스러운 샘"은 분명한 걸작입니다. 그 중에서도 "성스러운 샘"은 여러모로 후대의 많은 작품들이 영향 받은 것이 분명한 독특한 트릭을 선보여 마음에 드네요. 무엇보다도 책 맨 뒤의 "옮기고 나서" 부분에서 작가와 작품에 대해 굉장히 잘 설명하고 있는데, 자료적 가치가 아주 높아서 만족스러웠습니다.

"9마일은 너무 멀다" 쪽이 훨씬 낫다고 여겨지긴 하지만, 포튠이 세계의 명탐정 리스트에 충분히 이름을 올릴 만하다 싶은 생각이 들게 하는 단편집입니다. 추리 애호가라면 한번 읽어봐도 괜찮을 추억의 명탐정 시리즈라 생각됩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스포일러 포함된 점 참고하세요. 머리글 : 

레지널드 포튠씨에 대한 작가의 지나칠 정도로 자세한 설명이 담겨있는 머리글. 장황하기도 하지만 영국식 잘난척이 곳곳에서 묻어나는 글입니다.

알려지지 않은 살인자

레지널드 포튠씨는 약혼자 조온 앤버양의 초대로 크리스마스 다음 날, 한 고아원 파티를 찾았다. 그러나 그곳에서 의사 에밀리 홀 박사가 잔인하게 살해된 현장을 목격했고, 스코틀랜드 야드의 친구 로머스를 찾아가 다른 사건과의 연관성을 피력하는데... 

포튠 시리즈의 대표작 중 하나라는데 제가 보기에는 이 단편집에서 가장 처지는 작품이었습니다. 트릭이 별 볼일 없어서, 추리의 여지가 없는 탓입니다. 

그래도 악녀가 등장하고, 사건이 동시 다발적으로 벌어지면서 복잡한 인간관계가 등장하는 등의 전개와 묘사는 후대의 하드보일드적 분위기가 드러나는건 독특했습니다. 이런 부분이 높은 평가를 받지 않았나 싶네요.

긴 무덤

이자벨 우드올이라는 여성이 포튠을 찾았다. 자신의 고용주 래킨 씨에게 일어난 기묘한 사건 때문이었다. 래킨은 선사시대의 무덤을 연구하는 인물인데, 그의 집 주변에 이상한 현상이 발생한 사건이었다. 포튠은 사건 해결을 위해 그 집을 방문하여 뭔가 이상한 것을 눈치채는데...

일종의 사기극을 다루고 있는데 트릭은 기발하고 훌륭합니다. 하지만 좀 불필요하게 글이 늘어지는 듯 해서 조금 지루하더군요. 그래도 지금 읽어도 꽤 멋진, 재미난 작품입니다.

작은 집

팸버튼 부인은 자신의 손녀딸 비비안의 고양이가 옆집으로 들어간 뒤 사라진 사건을 포튠에게 의뢰했다. 포튠은 사건의 이상한 점을 깨닫고 로머스를 찾는다. 

정말 작은 하나의 사건이 크나큰 범죄를 증명하는 단초가 된다는 이야기를 잘 풀어낸 작품입니다. 그리고 당시에도 마약이 얼마나 위험한 것으로 인식되었는지를 보여주기도 해서 흥미롭더군요. 포튠 시리즈의 특징이 잘 드러난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물론 포튠 시리즈의 특징이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요...

조디악스

블랭케이펠경의 오른팔인 금융업자 아서 뷰어가 시체로 발견되었다. 그는 최근 조디악스 광산 사업 문제로 고민하던 중이었다. 정체불명의 남자가 포튠에게 이 사건 조사를 의뢰했지만 포튠은 거절했고, 로머스와 벨 총경을 찾아가 그 사실을 알려주었다. 곧바로 그 남자가 체포되었고, 그는 조디악스 광산과 관련된 건으로 아서 뷰어와 언쟁을 벌였던 프랭클린 리라는 인물임이 밝혀지는데... 

상당히 이색적인 트릭이 나오는 작품입니다. 다른 곳에서 본 트릭이지만 기억이 잘 나지 않았었는데, 얼마전 "주몽" 특집 총 정리편을 보다가 똑같은 트릭이 나와서 약간 놀랐습니다. 유화부인이 도망갈때 장면에서 사용되었습니다. 방송에서 보니 좀 웃기고 황당했지만 소설에서는 나름 합리적으로, 과학적으로 정리해서 하나의 트릭으로 충분히 가치를 지니게끔 포장해 놓아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새끼 손가락

벨 총경이 포튠을 찾았다. 강도 사건에 대해 도움을 얻기 위해서였다. 본험이라는 지방의 보험 중개인에게 도둑이 든 사건이었다. 용의자 블랜트는 바로 체포했지만 그의 오두막 등에 핏자국이 남아있던 상태였다. 포튠은 벨 총경과 사건 장소를 방문한 뒤 사건의 진상을 꿰뚫어 보게 된다. 

과거의 사건이 현재에 영향을 미치는 작품으로 트릭이나 추리적 장치는 그냥 그랬지만 이야기의 전개가 꽤 괜찮은 작품이었습니다. 권선징악적 해피엔딩이거든요. 또 혈흔에 대한 당시의 사고방식이 잘 묘사되어 있어 자료적 가치가 느껴지기도 하고요. 그러나 그 외에는 그다지 눈여겨 볼 점이 없는 소품입니다.

양피지 구멍

백만장자 블로스는 고서 수집가로 고서 구입차 이탈리아를 찾았다. 그러나 그의 비서 트레벨리가 가짜일 것이라 여겨 구입을 만류한 고서를 샀다가 잠깐의 사고 와중에 그 고서를 분실했다. 그런데 마침 사고 현장에서 블로스를 도와주었던 포튠이 외려 범인으로 몰렸다. 그러나 포튠은 이탈리아 경찰 알노르프와 협력하여 사건을 해결한다.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한 이색작인데 무지하게 지루합니다. 별다른 사건같지도 않은 사기극을 가지고 너무 늘려쓴 티가 나거든요. 추리적으로나 재미로나 별로 건질게 없는 작품이었습니다.

성스러운 샘

미망인 어머니가 아들 살해로 사형 선고를 받았다는 신문 기사를 본 포튠은 곧바로 판결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발견하여 벨 총경에게 판사와 만나게 해 달라고 부탁했다. 포튠의 자료와 근거 제시에 설득된 판사는 사형 집행을 연기했고, 포튠은 벨 총경과 성스러운 샘으로 알려진 현장 마을을 찾아가 진상을 밝힌다. 

수록작 중 최고작입니다. 추리와 트릭모두 굉장히 설득력 넘칩니다. 특히 사건의 동기가 되는 진상은 후대 작품에 많은 영향을 준 것이 분명한 걸작 아이디어입니다. 우리나라 단편 "생인손"도 동일한 소재를 사용했을 정도로요. 복선 및 전개도 완벽해서 추리물로 무척이나 흥미진진하게 즐길 수 있습니다.

조금 이야기가 늘어지는 부분이 있고 포튠과 벨 총경이 생명의 위협을 받는 장면은 불필요하다 생각되지만 그 외에는 다 마음에 듭니다. 정말이지 진상이 기발하거든요. 뭐 지금 읽기에는 좀 낡긴 했지만요. 별점은 4.5점입니다.

2007/08/24

도중의 집 - 엘러리 퀸 / 김민영 (자유추리문고 35-36) : 별점 2.5점

중간지점의 집
엘러리 퀸 지음, 현재훈 옮김/동서문화동판주식회사

10여년만에 우연히 변호사인 친구 빌 에인절을 만난 엘러리 퀸은 빌 에인절의 처남이 살해되는 사건에 휘말렸다. 엘러리 퀸은 기억을 더듬어 빌의 처남 조지프가 사실은 이중결혼 생활 중인 사기꾼(?)이라는걸 밝혀 냈지만, 그의 생명보험 및 이중결혼에 대한 배신감이라는 동기가 부각되어 빌의 여동생 루시가 용의자로 지목되었다. 빌은 루시의 재판에서 스스로 변론을 맡아 뛰어난 솜씨를 보여주지만 재판에 패하고 말았다. 그러나 엘러리는 포기하지 않고 사건 수사를 계속 하는데...

엘러리 퀸 시리즈에서 중간정도 시점에 위치하는 작품입니다. 약간 긴 장편으로 독자에게의 도전이 담겨있는 등 정통 추리물을 표방한 작품이기도 하죠.

개인적으로 몇번 이야기했지만 잘난척 하는 탐정을 싫어해서 엘러리 퀸 시리즈는 썩 좋아하지는 않으나(물론 반 다인에 비한다면야 장난 수준이지만) 그래도 정통의 맛이 잘 살아있다는 점에서는 제 취향이라서 구할 수 있으면 대체로 읽는 편입니다. 그런데 이 작품은 완독까지 제법 시간이 걸렸네요. 그닥 유명하지도 않고 해서 애써 구해보지 않은 탓이죠.
읽어보니 아니나 다를까 이 작품 역시 잘난척 하는 모습이나 유식함을 자랑하는 미사여구가 남발하는 등 여전히 제 취향은 아니었습니다. 그나마 엘러리 퀸의 조금은 색다른 면모 (플레이보이?) 가 보이며, 엘러리의 친구 빌의 로맨스에 대한 묘사가 특이하긴 합니다. 작품에 크게 중요한 요소도 아니고 그다지 잘 표현되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말이죠.

사실 이 작품에서 가장 특이한 점은 엘러리 퀸 작품에서 보기 힘든 "법정 드라마" 적인 요소가 굉장히 많다는 점입니다. 당시 법정물이 유행은 유행이었던 모양이네요. 어쨌건 법정씬이 중반부에서는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할 만큼 분량도 많지만 변호사와 검사간의 논리대결 역시 타 법정물에 그다지 밀리는 수준이 아니라서 무척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유력한 증거"와 "상황 증거"의 차이를 가지고 벌어지는 한판 승부가 무척 재미있었던 덕분입니다. 배심원 제도에 대한 비판도 눈에 띄고요. 그리고 추리적으로는 이름난 정통파 답게 모든 단서를 독자에게 공정하게 제공하면서 논리적으로 사건을 풀어간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네요.

그런데 엘러리 퀸 답지 않게 결정적인 단서가 지나칠 정도로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좀 아쉽습니다. 물론 교묘하게 단서를 숨겨놓기는 했지만 조금만 찬찬히 읽어본다면 확인할 수 있기에 숨겨놓는 방법에서 조금 실패한 느낌이거든요. e-Book 시대가 되어 검색이 용이해진다면 좀 문제가 되지 않을까 싶었어요. 아울러 범인을 밝히는 "추리쇼"가 너무 작위적이었다는 것 역시 아쉬운 부분입니다.

그래도 여전한 고전 정통파적인 면모는 느껴지며 작품의 수준 역시 범작 수준은 되는, 재미있게 읽을 만 한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제목도 멋드러지고 번역이 잘 된 것 같지는 않지만 어느정도 번역자의 의지(?)가 느껴지는 것도 인상적이고요. 제 취향은 아니라는 것 하나만 문제였달까요. 별점은 2.5점입니다.

2006/12/19

눈먼탐정 캐러더스 - 어네스트 브래머 / 장미경 (자유추리문고 26) : 별점 2점

20세기 초반, 추리소설의 여명기에 명탐정 홈즈의 대성공 이후 여러 매거진, 신문 등을 무대로 하여 여러 탐정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그러나 연재물이라는 특성탓인지 단편이라는 형식이나 트릭 중심의 전개 및 추리적인 장치, 방법 모두가 비슷비슷한 도토리 키재기 식의 작품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작품의 형식보다는 기본 설정에 변화를 주는 방법을 택할 수 밖에 없었지요. 그 중에서도 소설의 주인공인 탐정에게 직업이나 외모, 그 외의 여러 장치로 특징적 요소를 부여한 작품이 제일 많았습니다. 아무래도 이런 설정 놀이가 창작하기에 가장 쉬운 탓이었겠죠.
간단한 예를 들어도 서부 개척시대의 탐정인 "엉클 애브너" 라던가, 이름마저 밝혀지지 않은 수수께끼의 인물 "구석의 노인", 신부님인 "브라운 신부", 천재 교수 "반 두젠", 괴도 "뤼뺑" 등등등 셀 수도 없습니다.

이 눈먼탐정 캐러더스 역시 당시 쏟아져 나온 탐정들 중 한명으로 셜록 홈즈와 차별화 되는 요소는 제목 그대로 "장님"이라는 특징 정도입니다. 같은 장애인 탐정으로는 유명한 귀머거리 탐정 드루리 레인이 있는데 레인은 독순술 덕에 일상 생활하는데 큰 지장은 없다는 설정이었죠. 캐러더스 역시 눈 역할을 하는 충실한 관찰자 하인 퍼킨슨이 있어서 추리적으로 모순이 생길 수 있는 상황을 해결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촉각으로 편지나 메모지의 글귀를 읽어내기까지 하니까요. 또한 장애인이기에 다른 감각이 발달했다는 식으로 놀라운 추리력의 이유를 제시합니다. 이 작품집에서도 남다른 촉각과 후각, 청각에 의존하는 단편이 몇 편 있을 정도거든요. 뭐 과학적인 부분에 대한 설명은 전무하지만요.

이 단편집은 이러한 장애인, 장님 탐정 캐러더스의 기념할 만한 데뷰작을 비롯해서 전 단편집 세 권에서 가려 뽑은 총 여덟 편의 단편이 실려 있습니다. 그러나 단편들 하나하나를 본다면 썩 좋은 작품들은 아닙니다. 전에 하서판 걸작선에서 읽었던 대표작 "브룩밴드 장의 비극"은 좋은 작품이었기에 기대를 많이 했는데 솔직히 실망했어요.
일단 주인공이 장님이어야 하는 특별한 이유를 찾아보기도 힘들고 장님이라는 것을 제외한다면 다른 탐정들과 별다른 차이가 없는 탓이 큽니다. 이래서야 차별화를 위해 억지로 장님이라는 설정을 가져다 붙인 것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지요. 드루리 레인은 최소한 "최후의 비극"에서 귀머거리라는 것을 결정적 트릭으로 써먹었는데 말이죠. 

또한 추리적으로 그다지 정교한 장치는 없다는 것도 큰 단점입니다. 이야기의 논리는 굉장히 합리적이지만 세밀한 복선이나 반전 없이 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구조라서 기복이 별로 없고, 드라마도 재미가 없어요. 무엇보다도 사건이 너무 시시합니다. 추리라는 것이 성립될만한 사건이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별로 흥미롭지도 않고요. 

그 외에도 상황 설명으로 너무 긴 분량을 끌고 나가는 탓에, 진상을 밝히는 실제 추리는 굉장히 비중이 적다는 점도 감점 요인입니다. 정작 중요한 내용이 별로 없어요. 결말도 엄청나게 한심스럽고요. 이런 점에서는 사건의 전개에만 치중할 뿐, 결말은 대충 생각했던게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듭니다. 본 이야기가 아닌 부수적 사건이 훨씬 인상적인데, 차라리 보다 가볍고 쉬운 이야기로 꾸며 나가는 것이 더욱 좋았을것 같습니다.

결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굉장히 이색적이고 매력적인 탐정을 창조해 낸 성과는 있지만 단지 그뿐인, 셜록 홈즈의 인기에 편승한 조잡한 기획물에 불과한 실망스러운 수준의 작품입니다. 홈즈와 동시대, 같은 공간에서 호흡했던 다른 명탐정을 만난다는 역사적 의미, 그리고 당시 시대 상황을 소설을 통해 접하는 재미 외에는 건질게 없습니다. 물론 셜록 홈즈도 졸작이 있긴 하지만 걸작은 시대를 뛰어넘어 지금도 영향을 주고 있는데, 캐러더스는 그정도 포스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당대의 아류작일 뿐입니다.

그래도 딱 한 편, "연립주택의 참극"이라는 괜찮은 작품이 실려있기에 별점은 2점입니다. 이 작품 하나는 홈즈 시리즈 최고 걸작과 비교해도 별로 꿀리지 않을 정도입니다. 문제는 다른 수록작들이 다 별로라는 거지만요. 수록작별 간단 소개는 아래와 같습니다.

디오니소스 은화

사립탐정 캐러일은 의뢰받은 사건 때문에 디오니소스 시대의 은화 감정이 필요했다. 그래서 전문가인 리치먼드에 거주하는 윈 캐러더스를 방문했는데, 그가 과거의 지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캐러더스는 캐러일에게 사건의 개요를 듣고 곧바로 사건의 진상을 풀어내는데... 

사건을 의뢰하러 오는 역의 사립탐정 캐러일, 장님이자 부유하며 뛰어난 추리력을 지닌 캐러더스, 그리고 캐러더스의 하인이며 엄청난 관찰력의 소유자인 퍼킨스 등 주요 설정과 인물들이 모두 등장하는 캐러더스 시리즈의 첫 작품입니다. 

그러나 설정과 캐릭터 소개가 이야기의 거의 대부분이고 정작 사건 이야기는 단 몇 페이지에 걸쳐 짧게 언급될 뿐이라 추리적으로 눈여겨볼만한 부분은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사건의 진상에 관한 이야기를 캐러더스가 이미 경험했다는 결말이 너무 맥빠져서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네요.

스트래스웨이트경 부인의 간지 (간교한 지혜) 

보험회사는 진주목걸이 도난 보험에 가입한 스트래스웨이트 경 부인의 목걸이 재감정에 나섰다. 감정인이 교체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처음의 진주목걸이와 재감정한 목걸이가 다르다는 사실을 알아채고 캐러일에게 조사를 요청했다. 그러나 곧바로 목걸이는 도난당했고, 캐러일과 캐러더스는 사건 이야기를 듣기 위해 경 부부를 방문했다. 그리고 캐러더스는 곧바로 목걸이가 어디 있는지 알아냈다. 

당시 유행인가요? 방탕하고 가난한 귀족 이야기는 굉장히 진부할 뿐더러 이야기의 중심인 목걸이 도난 사건 역시 너무 간단한 사기극이라 조금 유치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사건의 가장 중요한 해결책이 되는 단서 역시 빈약하기 짝이 없고요. 첫 작품에서의 단점인 배경과 캐릭터 소개 부분이 많고 정작 사건 이야기는 비중이 적은 단점 역시 여전합니다.

매싱검 장의 유령 

매싱검 장 11호실에 유령이 나타난다는 소문이 돌았다. 가스를 잠갔음에도 불구하고 시도 때도 없이 가스등이 켜졌고, 욕실에서 물이 흘렀기 때문이었다. 캐러일은 사건 조사를 위해 부하를 잠복시켰지만 부하 역시 유령임에 분명하다는 결과를 보고했다. 캐러일은 어쩔 수 없이 캐러더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데...

유령이 등장하는 아파트라는 소재도 독특하고 유령을 등장시키는 방법이 나름 과학적이며, 결말까지 깔끔합니다. 좋은 작품이에요. 

하지만 한 방향으로 흘러갈 수 밖에 없는, 즉 의외의 이야기가 나오기 힘든 내용이기에 정교함이 조금 떨어지고 이 작품만 유별날 정도로 번역이 엉망이라 제대로 집중하기 힘들었습니다. 좋은 점과 나쁜 점이 극명하게 갈리고 뒤섞여 있는데, 번역만 좋았어도 훨씬 좋았을 겁니다. 아쉽습니다.

독버섯 

12세의 소년 찰리 윈폴이 독버섯을 먹고 사망했다. 캐러일의 활약으로 그의 숙부 필립 래우덤의 계획 살인으로 생각되어 그는 체포되었지만, 캐러더스는 캐러일이 잡은 증거를 뒤쫓아 사건의 진상을 밝혀낸다. 

범인으로 지목된 인물의 누명을 벗기는 이야기는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작품은 합리적으로 이야기를 전개하여 이야기의 설득력이 높습니다. 특히 캐러일이 밝혀낸 증거를 하나씩 뒤집어 나가는 과정이 무척 마음에 듭니다. 

그러나 이야기에 별다른 기복이 없고 결국 진상이 너무나 별볼일 없다는 단점 역시 분명합니다. 왜 경찰이 진상을 파악하지 못했는지에 대한 설명도 전무해서 납득하기가 어렵다는 점도 단점이고요. 결말만 좀 더 말끔하고 명쾌했다면 훨씬 좋은 작품이 되었을 겁니다.

헤들럼 고지의 비밀 

1차대전 직전의 미묘한 시기, 퍼킨슨은 우연히 찾아간 박물관에서 그가 예전에 알고 있던 독일 군인 폰 굴트 대위가 정체를 숨기고 일하고 있는걸 알아채고 캐러더스에게 그 사실을 보고했다. 캐러더스는 폰 굴트 대위가 수행하고 있는 작전을 그가 박물관에서 진행하고 있던 프로젝트를 통해 눈치채는데... 

1차대전 직전의 당시 시대 상황 때문인지 홈즈도 그렇고 스파이, 특히 독일 스파이를 색출하고 그들의 작전을 파헤치는 이야기가 당시 소설에 꽤 많이 보이는데 이 작품 역시 그러한 스파이 분쇄물의 하나입니다. 

그런데 스파이의 작전이 너무 보잘 것 없고 내용에서도 중요한 암호가 트릭으로서가 아니라 단지 암호 그 자체로 존재해서 캐러더스의 액션씬(?) 이 등장하는 것 정도가 위안거리일 뿐인, 추리물로서의 가치가 낮은 시시한 작품입니다.

연립주택의 참극 

폴래슈가 캐러일을 찾아 왔다. 신변 보호를 요청하기 위해서였다. 자신이 바람을 핀 일 때문에 정부의 애인에게서 살해 위협을 받고 있다는게 이유였다. 아내에게 밝혀지면 곤란하다는 것을 들어 비밀 유지를 당부했지만 그는 그 직후 살해되고 마는데... 

이 작품집의 베스트로 꼽을 수 있는 작품으로 사건이 치밀하면서도 복선과 전개가 합리적이고 추리적으로도 상당히 높은 수준의 작품입니다. 무엇보다도 캐러더스가 장님인 덕분에 추리가 명쾌해 지는 것이 제일 마음에 드네요. 

지나치게 독자에게 친절한 탓에 중간부분에서 일찍 진상을 파악할 수 있었다는 것이 조금 아쉽지만,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지금은 많이 알려진 트릭이기도 한데 이 작품에서 가장 먼저 선보인 것인지는 조금 궁금하군요.

구두와 은그릇 

세간에 화재가 되고 있는 "원숭이 도둑"에 의해 캐러더스가 고용한 엔덜리의 집에서 은그릇이 도난당하고 말았다. 캐러더스는 엔덜리 부부의 집에 방문해서 그 집에서 일어나고 있는 기묘한 사건들과 여러 증거들을 모아 진상을 밝혀낸다. 

중심 사건인 시시한 도난사건보다는 중간부분의 구두가 바뀐 사실을 통해 밝혀내는 짤막한 치정극 이야기가 훨씬 괜찮은 작품이었습니다. 소품 수준이지만 상당히 기발하고 인상적이거든요. 그러나 도난 사건이 너무 별로이고 결말까지 실망스러워서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컬버 거리 범죄 

컬버 거리에 있는 위도슨 앤드 스텝 상회의 사장 버논이 갑자기 정신이상 상태로 발견되고 상회에는 화재가 발생했다. 경찰은 버논의 정신이상과 화재를 연결짓지만 버논 가문과 친분이 있는 캐러일의 조카딸에 의해 캐러더스가 사건에 뛰어들어 사건을 해결한다. 

초 중반부는 나름대로 인상적인데 중반 이후에 범인이 너무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결정적 약점이 있으며 사건의 단서가 맥락이 좀 맞지 않아 추리적으로 실패한 느낌을 가져다 줍니다. 뭔가 더 정교한 트릭이나 장치가 필요했을 것 같은데 이 시리즈 특유의 원패턴 전개라 조금 아쉽습니다.

2006/12/10

전설의 자유 추리 문고 Update

이전에 포스팅 한 이후, mrkwang님이 보유하신 책을 불하(?) 받아 이빨을 좀 채워넣을 수 있었습니다.

형!^^ 감사합니다.

업데이트 된 부분은

10 : 독 초콜렛 사건 - 버클리 콕스
17 : 말더듬이 주교 - 얼 스텐리 가드너
24~25 : 카나리아 살인사건 - 반 다인
26 : 눈먼 탐정 캐러더스 - 브래머
27 : 포튠을 불러라 - 베일리

입니다.

26, 27은 정말 보물을 얻은 듯한 책이라 너무 기쁘네요.

하지만 이게 끝은 아니고 "이와 손톱", "주정꾼 탐정"을 구할때 까지 노력은 계속됩니다. 쭈~욱.

2004/01/04

유니스의 비밀 - 루스 렌들 : 별점 4점

유니스의 비밀 - 8점 루스 렌들 지음/고려원(고려원미디어)

간만에 추리소설 한권을 독파했습니다. 제목은 "유니스의 비밀", 한때 추리 매니아들의 희망이었지만 현재는 별 소식이 없는 고려원 미스터리 문고 시리즈 9번 입니다.
원제는 "A Judgement In Stone" 이라는 나름대로 멋들어진 울림을 주는 제목인데 한국판 제목은 좀 난데 없네요. 하지만 고려원 미스터리 문고 시리즈 답게 제목을 제외하곤 전체적인 번역이 나무랄 데 없습니다.

"유니스 파치먼은 글을 몰랐기 때문에 커버데일 일가를 죽였다. 아무런 동기도 사전 계획도 없었다. 돈을 훔친 것도, 일신상의 안전을 꽤한것도 아니었다. 범죄 결과 오히려 자신의 무능력이 한 일가와 몇 안되는 마을 사람들, 그리고 온 나라에 알려지게 되었다. 그녀는 그 일로 인해 자신에게 가해진 형벌 말고는 아무것도 얻은 게 없었지만, 마음 한 구석에서는 자기가 아무것도 얻지 못하리라는 것을 처음부터 잘 알고 있었다. 친구인 공범은 미치광이 였지만 유니스는 달랐다. 그녀는 20세기의 인간으로 변장하고 나타난, 격세유전한 원숭이의 무서우리만큼 현실적인 광기를 품고 있었다...." 라는 문장에서 시작되는 이 소설은 유니스라는 뒤틀린 광기를 품고 있는 문맹 여자가 커버데일가의 가정부로 고용되어 스스로의 비밀을 숨기기 위해, 자신의 생활과 자유를 지키기 위해 상황을 부풀려 가다가 결국 폭발하고 마는 상황을 적나라하고 냉정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조금 상황은 다르지만 우리나라 영화 "하녀"가 생각나기도 하네요.)

특히 유니스와 그녀의 미치광이 친구 조안의 광기넘치는 심리 묘사와 첫 문장으로 이미 결과를 알고 있는 독자들을 그 결말로 서서히 이끌면서 소설로 끌어들이는 재주는 역시 루스 렌들 여사! 라는 고수의 필력을 느끼게 해줍니다.
루스 렌들 여사 작품은 읽어 본것이 단편, 장편을 포함해도 몇개 되지는 않지만 뭔가 문제가 있고 뒤틀린 인물들의 이러한 심리 묘사는 정말 탁월 한 것 같습니다. (별로 재미 없었던 장편 "내 눈에 비친 악마" 도 그러한 부분의 묘사는 대단했었죠.)

사실 추리라기 보다는 독특한 심리 서스펜스 스릴러.. 라고 할까요? 하지만 미국식 공포물보다는 조금 격조높고 고급스러운, 영국스러운 분위기의 잘 만들어진 스릴러 물입니다. 특히 읽으면서 서늘한 공포를 느끼게 하는 재미있는 작품이었습니다.별점은 4점입니다.

2025/09/27

돈돈 다리, 떨어졌다 - 문고판 후기

어제 읽은 "돈돈 다리, 떨어졌다" 문고판의 아야츠지 유키토가 직접 쓴 후기입니다. 재미있는 내용이 제법 있어서, 이 부분만 ChatGPT로 번역하여 소개해 드립니다.

문고판 후기

『どんどん橋、落ちた』라는 이 작품집에는 사실 남다른 애착이 있습니다. 일반 단행본 판본이나 고단샤 노벨스판으로 읽어 주신 분들의 반응은 각자 달랐습니다. 가벼운 ‘범인 맞히기’ 단편집으로 시원하게 즐긴 분도 있었고, “바보 같다”라며 불쾌해한 분도 있었지요. 현대 본격 미스터리를 둘러싼 상황에 대한 일종의 비판으로 무겁게 읽은 분도 있었고, 이번 문고판 해설을 써 주신 시노하라 미야코 씨처럼 “애잔한 미스터리”로 받아들이신 분도 있었습니다. 어떻게 읽든 독자의 자유이며, 한 번 손을 떠난 이상 작가가 “이렇게 읽어 달라”고 요구할 권리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이 작품집에 실린 다섯 편 가운데 네 편(제1화부터 제5화)을 1998년 가을부터 1999년 여름에 걸쳐 잇달아 잡지에 발표하던 시절을 돌아보면, 제가 그 작품들을 꽤 절실한 마음으로 썼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합니다. “절실한 마음”이란,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내 ‘존재 방식’이 이대로 좋은가, 라는 물음이었습니다.

내 존재 방식은 이대로 괜찮은가? 결국 그 답은 제5화의 마지막에서 일단 제시되었지만, 그것만으로는 말끔히 매듭지을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이번 문고판이 이 작품집의 최종판이 될 것입니다. 이어서 각 수록작에 대한 짧은 해설을 덧붙입니다.

*

「どんどん橋、落ちた」"돈돈 다리, 떨어졌다."
(초출 = 아유카와 데쓰야·시마다 소지 편 『ミステリーの愉しみ 第五巻 奇想の復活』 릿푸샤, 1992년 9월 10일 초판)

1991~92년에 걸쳐 아유카와 데쓰야·시마다 소지 두 분이 책임 편집한 앤솔로지 『ミステリーの愉しみ』 전 5권이 릿푸샤에서 간행되었습니다. 그 최종권 『奇想の復活』은 띠지에 “헤이세이 본격의 기수”라 내세운 젊은 작가 19명의 신작을 모은 책으로 화제가 되었는데, “문장이나 인물 묘사보다 무엇보다 기상천외하고 전인미답의 발상을 담은 본격물을” 써 달라는 편자 시마다 씨의 요청에 응해 제가 쓴 작품이 이것입니다. 데뷔 이래 “인간이 그려져 있지 않다”는 상투적인 말을 들으며 내심 질려 하던 차였지만, 그 나름의 생각이 있었던 것이겠지요.

애초의 원형은 1984년 여름, 교토대 추리소설연구회 합숙에서 선보인 ‘범인 맞히기’ 단편이었습니다. 기노사키 온천의 어느 여관 큰방에서 십수 명의 회원을 상대로 ‘문제편’을 낭독했을 때의 두근거림은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그 자리에는 젊은 날의 아비코 다케마루 군과 노리즈키 린타로 군도 있었지요. 두 사람을 포함해 거의 모두가 속아 넘어가 주어 무척 기뻤던 기억이 있습니다. 참으로 천진난만했던 때였습니다.

「ぼうぼう森、燃えた」"보우보우 숲, 불타다."
(초출 = 『小説現代メフィスト』 1998년 12월 증간호)

1992년에 「どんどん橋、落ちた」를 썼던 즈음에 떠올려 “언젠가 속편을 써 볼까” 하고 농담처럼 몇 해 동안 품고 있던 아이디어입니다. 제목도 처음부터 이대로 정해 두었지요. 게임 『ナイトメア・プロジェクト YAKATA』 관련 일을 간신히 마무리하고 본업으로 돌아가려 했지만, 마음만 앞서 집필에 집중이 되지 않던 1998년 가을, 반쯤은 재활의 뜻도 담아 『메피스토』에 발표했습니다. 그만한 고생은 있었지만 의외로 즐거운 작업이었습니다. 다만 「どんどん橋」 때와는 사뭇 다른 뉘앙스의 ‘고생’이자 ‘즐거움’이었지요. 참고로 이 작품 속에 삽입된 ‘작중작’에는 블랙 유머와 여러 겹의 숨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전부 알아차릴 독자는 아마 손에 꼽을 정도일 것입니다.

「フェラーリは見ていた」"페라리는 보고 있었다."
(초출 = 『小説現代メフィスト』 1999년 5월 증간호)

본서에서 유일하게 정식 ‘독자에의 도전장’이 들어 있지 않은 작품입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 작가로서 저는 이것이 가장 마음에 듭니다(의외이지요?). 등장하는 ‘U야마 씨’, ‘K코 씨’, ‘A모토 군’은 모두 실재 인물입니다. 사건은 물론 완전한 허구이지만, ‘카사이 씨 댁 신짱’을 둘러싸고 작중에 “암시적”이니 “예견적”이니 하는 말이 오가는 대목에는 작은 원 네타가 깔려 있습니다. 굳이 밝히지 않는 편이 멋일지 모르겠습니다만, 그래도 신경 쓰이시는 분은 가사이 기요시의 『ミネルヴァの梟は黄昏に飛びたつか? ——探偵小説の再定義』(하야카와쇼보, 2001)을 참조하시길.

「伊園家の崩壊」"이소노 가의 붕괴"
(초출 = 『小説現代メフィスト』 1999년 9월 증간호)

중심 아이디어는 아주 오래전부터 갖고 있었지만, 설정이 설정인지라 선뜻 써서 발표할 결심이 서지 않았습니다. 전년에 우연히 고지마 미야코의 만화 『こども地獄』(분카샤, 1998)을 읽은 것이 계기가 되어 등을 떠밀리듯 결심했습니다. 잡지 발표 당시에는 당사자인 고지마 씨께서 훌륭한 삽화를 그려 주셨고, 이번 문고화에서도 그 그림의 재수록을 생각했지만 여러 사정을 고려해 자숙하기로 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가장 문제작일지도 모릅니다. 본격 미스터리로서는 그렇지만, 다섯 편 중에서는 오히려 정통파에 가까운 편이 아닐까 합니다.

「意外な犯人」"의외의 범인"
(초출 = 『IN★POCKET』 1999년 9월호)

원본이나 노벨스판의 후기에 적었던 말을 반복합니다만, 작중에도 언급했듯 이 소설은 1994년 요미우리TV 심야 특집 『真冬の夜のミステリー』의 일부로 제작된, 제가 원안을 제공한 추리 드라마 「意外すぎる犯人」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극중극 부분에 배우 이토 세이코 씨가 등장하는 것은 드라마 그대로지만, 그 밖의 배우 이름은 가공으로 바꾸었습니다. 원안을 만들던 시점부터 언젠가 이 네타를 소설로 쓰고 싶다고 생각해 왔습니다만, 설마 이런 형태, 이런 결말의 이야기로 이어질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정말 인생은 무엇이 어떻게 굴러갈지 모르는 법입니다.

*

이렇게 되돌아보니, 고작 3년 전에 묶은 작품집임에도 어쩐지 이상할 만큼 숙연한 기분이 듭니다. 다섯 편 중 세 편에 등장하는 얄미운 젊은이에 대해서는 일단 이것으로 봉인…할 작정입니다만, 글쎄요.

현안인 『暗黒館の殺人』도 연재를 시작한 지 벌써 2년 반. 헉헉대며 숨이 차오르면서도 슬슬 7합목이 보이는가 싶은 데까지 진행했습니다. 『鳴風荘事件』 이래 무려 7년 만의 장편 『最後の記憶』을 근래에 간행할 수도 있었습니다. 1987년 『十角館の殺人』으로 데뷔한 지 딱 15년. 올가을이 저에게 큰 분기점인 것은 분명하고, 그런 시기에 이 『どんどん橋、落ちた』가 문고화되는 것은, 이것 또한 뭔가 의미심장한 인연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서두에서도 슬쩍 언급했듯 이 책의 해설을 써 주신 시노하라 미야코 씨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아홉 해 전 『海になりたい青』와 『満たされた月』 두 장의 앨범을 잇달아 들었을 때의 감동은 아직도 빛바래지 않았습니다. 노랫말처럼 엮인 “애잔한 해설”, 정말 고맙습니다.

2002년 9월
綾辻行人

2009/03/10

에이브 (ABE)를 아시나요?

"ABE 81 - 샘 아저씨 유산"이 재간된 "웨스팅 게임"을 구입한 기념으로 몇자 적어봅니다.

에이브 (ABE)라는 아동용 문고 레이블을 아시나요? 아마 80년대 중, 후반에 학창시절을 보내신 분들이라면 아시겠지요. 저 역시 당시 초등학생으로, 위인전과 몇 안되는 창작 동화밖에 없던 열악한 국내 도서 시장에서 한줄기 빛과 같았던 에이브의 세례를 제대로 받고 자랐습니다. 억지스러운 감동과 모범적이고 교훈적인 이야기 투성이의 이야기들 속에서 에이브처럼 다양한 종류의 재미를 선사한 시리즈는 정말 그 당시에는 없었으니까요. 소년 모험물, 전쟁의 참상을 전해 주는 반전물, 역사물 및 모험물을 비롯해서 SF에 추리적 성향의 작품까지 가득했던 정말로 좋은 시리즈였습니다.

아직까지도 영국 기숙학교의 유머러스한 일상을 다룬 "제닝스는 꼴찌가 아니다"와 애니메이션까지 나왔던 꼬마 바이킹 이야기 "작은 바이킹". 아동용 판타지의 대표작으로 영화는 물론 국내에서 번안해서 TV 드라마로도 방영했던, 어른들이 모두 사라진 도시의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인 "아이들만의 도시" 등은 기억에 생생하네요. 끔찍한 마녀사냥에 대한 고발과도 같은 "어머니는 마녀가 아니에요"와 정신지체아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보여주는 "어른학교 아이학교" 역시 지금도 생각나고요.

당시는 정말 에이브 넘버만 봐도 그 책 내용이 뭔지 알 정도로, 달달 외울정도로 읽었는데 20년이 넘는 세월동안 뇌리에서 사라져 버렸다는 것이 가슴이 아프군요. 인터넷에서 찾은 아래 목록을 보니 기억이 어렴풋이 나는 작품도 있고 제목부터가 생소한 작품들도 있는데 꼭 다시 구해보고 싶어집니다. 자료를 찾아보니 "웨스팅 게임" 처럼 재간된 작품이 몇개 있던데 하나씩 옛 추억을 들추는 의미에서라도 구입해 봐야겠어요.

저작권 문제 등이 걸리기는 하지만 아이디어 회관 SF 문고를 가지고 DB화를 진행한 "SF 직지 프로젝트" 와 같은 형태로 에이브가 다시 살아난다면 좋겠습니다.

ABE 시리즈 목록

  • ABE 1 : 나의 학교 나의 선생 (조반니 모스카, 허인 역) 
  • ABE 2 : 조그만 물고기 (에릭 크리스챤 호가드, 박순녀 역) 
  • ABE 3 : 형님 (제임스 콜리어, 이가형 역)
  • ABE 4 : 그때 프리드리히가 있었다 (한스 리히터, 원동석 역)
  • ABE 5 : 파묻힌 세계 (앤테리 화이트, 김용락 역) 
  • ABE 6 : 아이들만의 도시 (헨리 윈터펠트, 오정환 역) 
  • ABE 7 : 큰숲 작은집 (로러 잉걸스 와일더, 장왕록 역) 
  • ABE 8 : 시베리아 망아지 (칼라 시니코프, 윤종혁 역) 
  • ABE 9 : 은빛 시절 (추코프스키, 박형규 역) 
  • ABE 10 : 막다른집 1번지 (이브 가네트, 조용만 역)
  • ABE 11 : 횃불을 들고 (로즈마리 서트클리프, 공덕룡 역) 
  • ABE 12 : 어머니는 마녀가 아니에요 (아네 르슨, 유영 역) 
  • ABE 13 : 바닷가 보물 (헬렌 부시, 김인숙 역) 
  • ABE 14 : 마나난 숨은섬 (앨리스 딜런, 이정기 역) 
  • ABE 15 : 산골마을 힐즈엔드 (아이반 사우드올, 이경식 역)
  • ABE 16 : 안네 (에른스트 쉬나벨, 신동춘 역) 
  • ABE 17 : 매는 낮에 사냥하지 않는다 (스코트 오델, 신상응 역) 
  • ABE 18 : 파파 (표도로브나, 채대치 역) 
  • ABE 19 : 칼과 십자가 (피터 카터, 윤태순 역) 
  • ABE 20 : 북극의 개 (니콜라이 칼라시니코프, 문무연 역)
  • ABE 21 : 목화마을 소녀와 병사 (베티 그린, 이우영 역) 
  • ABE 22 : 마더 테레사 (르 졸리, 허문순 역) 
  • ABE 23 : 삼촌생각 (유리 콜리네츠, 최홍근 역) 
  • ABE 24 : 초록 불꽃 소년단 (엔초 페트리니, 양동군 역) 
  • ABE 25 : 대장간 골목 (바클라프 제자치, 맹은빈 역) 
  • ABE 26 : 외딴섬 검은집 소녀 (메이벨 에스터 앨런, 문순표 역) 
  • ABE 27 : 여우굴 (아이반 사우드올, 하종언 역) 
  • ABE 28 : 부엌의 마리아님 (루머 고든, 홍사중 역) 
  • ABE 29 : 룰루와 끼끼 (이누이 도미코, 김선영 역) 
  • ABE 30 : 달나라에 꿈을 건 사나이 (에릭 버거스트, 황종호 역)
  • ABE 31 : 마지막 인디언 (디오도러 크로버, 김문해 역) 
  • ABE 32 : 원시림에 뜬 무지개 (페초르스키, 유성인 역) 
  • ABE 33 : 이를 악물고 (체르드 아데마, 석광인 역) 
  • ABE 34 : 초원의 집 (로러 잉걸스 와일더, 장왕록 역) 
  • ABE 35 : 새벽의 하모니카 (마리안 모네스티에, 방곤 역) 
  • ABE 36 : 우리 어떻게 살 것인가 (제이 베네트, 도창회 역)
  • ABE 37 : 작은 바이킹 (루너 욘슨, 박외숙 역)
  • ABE 38 : 아버지가 60명 있는 집 (마인더트 디영, 이태극 역) 
  • ABE 39 : 눈보라를 뚫고 (수잔 플레밍, 신동집 역) 
  • ABE 40 : 우리들 정글 (존 로우 타운젠드, 이상준 역)
  • ABE 41 : 엄마 아빠 나 (주디블룸, 이종찬 역) 
  • ABE 42 : 마침내 날이 샌다 (마야보이 체홉스카, 최창학 역) 
  • ABE 43 : 맘모스 사냥꾼 (에두알트 쉬돌프, 양광남 역) 
  • ABE 44 : 쥬릴리 (바바라 스머커, 김계동 역) 
  • ABE 45 : 한밤의 소년들 (해리 쿨만, 김종 역)
  • ABE 46 : 바이킹 호콘 (에릭 호가드, 백길선 역)
  • ABE 47 : 늑대에겐 겨울없다 (쿠르트 류트겐, 곽복록 역)
  • ABE 48 : 무인도 소녀 (스코트오델, 채훈 역) 
  • ABE 49 : 우리 읍내 (로러 잉걸스 와일더, 장왕록 역) 
  • ABE 50 : 바람과 모래의 비밀 (앤 드웨이트, 정동화 역)
  • ABE 51 : 먼 황금나라 (야나기야 케이코, 조병무 역) 
  • ABE 52 : 콘티키 (디오하이 에르달, 조익규 역) 
  • ABE 53 : 태양의 전사 (로즈마리 서트클리프, 한혜경 역) 
  • ABE 54 : 헤어졌을 때와 만날 때 (케스트너, 김양순 역) 
  • ABE 55 : 인생 첫걸음 (샤무일 마르샤크, 정명자 역) 
  • ABE 56 : 얀 (얀 세렐리어, 이세형 역) 
  • ABE 57 : 어린 농장주인 (질리언 에이버러, 박승탁 역) 
  • ABE 58 : 신비섬 탐험 (베르이먼, 이정태 역) 
  • ABE 59 : 빵 포도주 마르셀리노 (산체스실버, 탁인석 역) 
  • ABE 60 : 집나간 아이 (커닉스버그, 박옥선 역)
  • ABE 61 : 얼음 바다 밑 노틸러스 (윌리엄 앤더슨, 박용수 역) 
  • ABE 62 : 장닭호 모험 (존 메이스필드, 최영도 역) 
  • ABE 63 :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크레이그 스트리트, 최경림 역) 
  • ABE 64 : 일곱 개구장이 (에델 터너, 김수연 역) 
  • ABE 65 : 16살 선장 (로빈 그레이엄, 양병탁 역) 
  • ABE 66 : 홀로 황야를 가다 (그리피드, 조효진 역) 
  • ABE 67 : 자유지하철도 (힐데거드 스위프트, 이풍우 역) 
  • ABE 68 : 제닝스는 꼴찌가 아니다 (버커리지, 신호웅 역) 
  • ABE 69 : 비챠의 학교생활 (니콜라이 노조프, 박형규 역) 
  • ABE 70 : 검은 램프 (피터 카터, 최종욱 역)
  • ABE 71 : 로키산맥의 울프 (조지 스톤, 한예석 역) 
  • ABE 72 : 지노의 전쟁 (카를 브루크너, 이계병 역) 
  • ABE 73 : 사랑의 길을 떠나다 (케이 엠페이튼, 김진식 역)
  • ABE 74 : 얼어붙은 불꽃 (제임스 휴스턴, 홍준희 역)
  • ABE 75 : 바이킹 소녀 헬가 (에릭 호가드, 박기열 역) 
  • ABE 76 : 인생의 문 (아나톨리 알렉신, 채대치 역)
  • ABE 77 : 조각배 송사리호 (필리퍼 피어스, 강통원 역)
  • ABE 78 : 겨울 떡갈나무 (유리 나기빈, 이철 역)
  • ABE 79 : 바렌랜드 탈출작전 (팔레이 모와트, 김남석 역) 
  • ABE 80 : 사막의 우정 (앙트완 르불, 박경식 역)
  • ABE 81 : 샘 아저씨 유산 (앨런 라스킨, 한명남 역) 
  • ABE 82 : 아버지에게 네 가지 질문을 (호르스트 부르거, 송영택 역)
  • ABE 83 : 뺏을 수 없는 나라 (몰리 헌터, 김종휘 역)
  • ABE 84 : 긴코장이 대항해 (콘스탄틴 이오시호프, 박일충 역)
  • ABE 85 : 밀림의 북소리 (르네 기요, 현광식 역)
  • ABE 86 : 백합 골짜기 (베라, 빌 클리버, 전재근 역)
  • ABE 87 : 어른학교 아이학교 (하이타니 켄지로, 권오현 역)
  • ABE 88 : 할아버지 안녕 (엘 피드네리, 한봉흠 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