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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26

도시전설 세피아 (都市伝説セピア) - 2009 : 별점 1.5점

이전에 원작소설을 읽고 구해본 TV 단막극으로 일본 드라마 W에서 2009년 7월에 방영했던 작품입니다. 원작에 실린 5편의 이야기 중 3편을 영상화했더군요. 영상화된 작품은 <올빼미 사내>, <아이스맨>, 그리고 <사자연> 입니다.

그런데 요새 읽고 본 작품들이 전부 그러했듯 실망이 더 컸습니다. 이건 영상화 포인트를 잘못 잡아도 너무 잘못 잡은것 같아요. 재미도 없지만 무섭지도 않고 그렇다고 B급적인 감수성이 있는 것도 아니거든요. 두번째 에피소드 <아이스맨>이 기본은 해주기에 평균 별점은 1.5점입니다만... 전체적으로 봤을때는 그야말로 시간낭비에 불과한 쓰레기입니다. 영상화도 섣불리 기대하면 안되겠다는 교훈을 또다시 안겨주네요. 이것 참 씁쓸.. 합니다.
에피소드별로 짤막하게 소개한다면,

<올빼미 사내>
도시전설을 만들던 남자가 스스로 도시전설이 된다는 내용으로 원작의 1인칭 서술트릭을 극복하지 못한 무성의한 각색과 유치한 결말은 짜증을 불러 일으킵니다. 호러같지 않은 지나칠정도로 담담한 전개도 실망스러웠고요. 제가 원작자라면 화가 나지 않았을까 생각되네요. 별점은 당연히 1점.

<아이스맨>
앞서 이야기했듯이 그나마 가장 낫습니다. 원작에 충실하기도 하고 촬영과 전개 역시 예상 그대로 흘러가기에 부담없이 볼만했으니까요. 별로 무섭지 않다라는 큰 단점과 더불어 과거 회상 부분에 비해 결말이 약하다는 아쉬운 부분까지 그대로 극화했기에 별점은 2.5점입니다만... 그래도 최소한 볼만은 했습니다.

<사자연>
한마디로 망작. 더 무슨 말이 필요할까요? 원작과 유사해서 별다른 각색이 없다는 점은 <아이스맨>하고 똑같긴 한데 화면으로 구현한 결과물이 TV 유치원 수준이더군요... 이 작품에서 점수를 줄만한 것은 에피소드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시체들을 묘사한 그림밖에는 없네요. 차라리 이 그림들로만 화면이 채워졌어도 훨씬 무서웠을 것 같은데 말이죠...
조금이나마 무섭게 하려고 여러가지 노력을 기울이기는 하는데 그 아이디어가 치졸하고 화면발도 저렴해서 외려 웃기더라고요. 유령이 나타난다고 갑자기 파랗게 변하는 모닥불, 전혀 무섭지 않은 훈남 유령 들이 대표적이겠죠. 기대를 벗어나지 않고 훈남 유령이 피해자에게 먼지처럼 파고든다는 결말까지 가증스러운 싼티가 작렬하는 망작 중의 망작입니다. 별점은 1점입니다. (0점 줄까 했는데 그림은 건질만 하니까 봐줬다)

2020/09/06

죽음과 모래시계 - 도리카이 히우 / 정대식 : 별점 1.5점

죽음과 모래시계 - 4점
도리카이 히우 지음, 정대식 옮김/영상출판미디어(주)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중동의 작은 산유국 제리미스탄은 고갈되는 석유 자원 이후의 시대를 대비하기 위해 "감옥 국가"로 거듭났다. 거대한 사형수용 감옥을 만들고, 세계 각지의 사형수들을 돈을 받고 수감한 뒤 사형까지 집행해 주는 시스템이었다. 사형 제도가 쇠퇴함에 따라 흉악 범죄와 무기수의 종신 수용을 위한 비용 증가에 고심하던 각 국은 사형수 한 명당 수만 달러의 비용으로 제레미스탄 "종말 감옥"에 처분을 맡겼다. 

이 "종말 감옥"에 부모를 죽인 죄로 사형 선고를 받은 앨런 이시다가 수감되었고, 그는 사형수로 감방장을 맡고 있는 슐츠의 조수가 되어 감옥에서 일어난 여러가지 사건 해결에 나서는데....

2016 본격 미스터리 대상 수상작입니다. 모르는 작가의 모르는 작품이지만, 본격물의 애호가로서 놓치기 힘든 수상 이력이라 집어들게 되었습니다.

세계 각국의 사형수를 수감하는 "종말 감옥"이라는 설정은 재미있습니다. 감옥의 운영, 죄수의 관리 및 감독 방식 - 죄수 몸 속에 삽입되어 죄수가 특정 지역을 벗어나면 전기 충격으로 기절하게 만드는 마이크로 칩 - 등을 꽤 그럴싸하게 그려내고 있는 덕분입니다. 이런 설정들을 트릭에 잘 활용하고 있기도 하고요. 고작 수만불로 흉악한 사형수를 받아들인다는게 말은 안되지만, 이 정도는 눈 감아 줘야겠지요. 안그러면 이야기가 성립이 안될테니까요.

하지만 그 외에는 건질게 없습니다. 수록된 여섯 편의 단편 거의 모두가 설득력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망작들인 탓입니다. 그나마 처음의 두 편, "마왕 샤보 돌마얀의 밀실"과 "영웅 첸 웨이츠의 실종" 정도만 조금 볼만한 트릭이 나올 뿐이고, 다른 작품들은 이야기하기도 민망한 수준입니다. 본격 미스터리 대상 수상작다운 본격물도 별로 없고요. 읽어보신 분들이 대부분 칭찬하는 마지막 에필로그의 반전도 저는 별로였습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1.5점입니다. 평균 별점은 1점 이하 수준이지만, 종말 감옥의 설정만큼은 그런대로 재미있었기에 0.5점을 더합니다. 강호순 같은 범죄자는 이런 곳으로 보내버리면 좋겠네요.

짤막하게 요약한 수록 단편별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스포일러 가득 담겨있으니 참고하세요.

"마왕 샤보 돌마얀의 밀실" 

맨 몸에서 칼이나 만년필을 끄집어내는 물질화 마술로 '마왕'이라는 별명을 얻었던 샤보는 사형 집행 전날 독방에서 난도잘당해 참혹하게 살해당했다. 맞은편 독방의 용병 출신 사형수 난조는 목이 베여 죽었다. 완벽한 밀실이고 흉기도 발견되지 않은데다가, 사형 집행 전날 살인을 저지를 이유도 불분명한 상태였다...

샤보는 전쟁 때 손상된 엉덩관절을 인공관절로 교체했습니다. 그런데 이 때 장착한 넙다리 인공골두 안이 텅 비어 있있지요. 그래서 그 안에 이런저런 물건을 넣어두었다가 꺼낼 수 있다는게 물질화 마술의 정체입니다. 피부에 작은 구멍을 통해 손을 넣어서 빼낸거지요. 때문에 물질화 마술로 꺼낼 수 있는건 가늘고 긴 물건들(만년필)로 한정되고요. 샤보는 이 트릭으로 몸 속에 숨겨두었던 칼을 꺼내어 던져 난조를 죽였습니다. 앞서 이야기한 전쟁 때 용병 난조에게 가족을 잃었는데, 그 복수를 직접 하기 위함이었지요. 난죠를 죽인 뒤 칼(에 묶어둔 실 따위로)을 회수하여 자신의 몸을 난자한 뒤 실혈사했습니다. 난자한 이유는 마술의 정체를 숨기기 위해서였습니다. 피를 다 흘리기 전에 칼을 다시 숨길 수 있고, 상처가 많으면 칼을 꺼내는 구멍의 존재도 숨길 수 있으니까요. 

이렇게 물질화 마술이라는 흥미로운 설정과 대담한 트릭은 볼 만 하지만 트릭이 그렇게 설득력 높아보이지 않으며, 자살한 뒤 칼을 다시 숨길 이유가 없다는건 눈에 거슬립니다. 마술의 트릭을 밝히지 않는게 마술사의 사명이라 하더라도, 어차피 죽을거 아픔을 감수하면서까지 자기 몸을 난자한다는건 말도 안되잖아요? 구태여 사형 집행 전날 난조를 죽인 이유도 별로 와 닿지 않고요.

그나마 이게 이 단편집 최고 작품 중 하나입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영웅 첸 웨이츠의 실종" 

종말 감옥에서 탈옥한 사람은 딱 한명, 의사 출신의 반체제 정치범 첸 웨이츠 뿐이었다. 그러나 그는 어떻게 마이크로 칩을 무력화하였을까? 그리고 왜 훤한 보름달이 뜬 밤 탈옥을 하였을까? 왜 가장 건장한 경비원 다르위시가 감시탑에서 근무할 때 탈옥을 하였을까? 다르위시는 어떻게 죽였을까? 제레미니스탄의 수장 사리흐 아리 파힐은 슐츠에게 사건 해결을 명하는데...

감옥이 나오니 탈옥 이야기가 안 나올리가 없겠지요. 두 번째 작품이 바로 탈옥물입니다.

첸 웨이츠가 의사 출신으로 중국인 죄수들의 신임을 얻은 뒤, 그들의 사체를 이용하여 마이크로 칩이 어디있는지 알아냈다는 추리는 괜찮았습니다. 100Kg이 넘는 다르위시가 경비하는 날을 노린 이유도 그럴듯해요. 다르위시의 목에 가죽 밴드를 엮은 끈을 걸어 살해하고, 그의 시체를 버팀돌 삼아 감시탑을 올라간게 진상이니까요. 탑을 오르기 위해서는 체중이 제일 무거운 경비원이 필요했던 겁니다. 보름달도 일부러 모습을 드러내어 다르위시의 주목을 끌기 위한 목적이었고요.

하지만, 트릭을 실현하기 위한 과정은 모두 설명도 부족하고 설득력도 낮습니다. 의무실의 허술한 보안으로 메스 한 두개, 죄수 구속용 밴드 여러개를 빼돌려 탈옥에 이용했다는 것부터가 그러하지요. 사형수들이 많은 감방에서 메스조차 제대로 관리하지 않는다는게 말이나 될까요?
3미터 위의 감시원 목에 올가미를 던져 건다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죽어 있는 고정된 목표라면 모를까, 살아있는 경비원이 자신의 목으로 날아오는 올가미를 보고 피하지 않는다는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밝은 보름달 밤이라 죄수를 보고 있는 상황에서라면 더더욱 그러하지요.
이거에 비하면 담을 넘은 뒤 야생 낙타를 올가미로 잡아 사막을 가로질렀다는 탈출 방법은 오히려 쉬워보이네요. 이렇게 거대하면서 대단한 감옥 도시가 CCTV없이 감시원에게만 의지하고 있으며, 감시원도 2인 1조가 아니라 1명만 근무를 선다는 등의 허술함에 바탕을 둔 탈옥이라는 점에서 도저히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듭니다.
아울러 영웅 첸 웨이츠가 탈옥 후 현실의 벽에 부딛힌 나머지 30명이 넘는 사람을 죽이고 진짜 사형수가 되어 종말 감옥에 복귀한다는 결말은 최악입니다. 안 나오니만 못했어요.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발상은 나쁘지 않지만 추리 퀴즈 이상의 이야기는 아니었습니다.

"감찰관 제마이야 칼리드의 도회"

종말 감옥을 감찰하기 위해 찾아온 감찰관이 배를 칼로 찔려 죽은 시체로 발견된다. 유력한 용의자는 감찰에 걸려 좌천될 예정이었단 옥졸 무바라크였다.

악덕 옥졸 무바라크의 혐의가 짙어서 흥미를 불러 일으키지 못합니다. 작중 최악의 빌런이 용의자라면, 없던 죄도 만들어 누명을 씌울 판인데 그를 위해 진상을 밝힌다? 영 와닿지 않아요. 사건을 조사하는 슐츠와 앨런 입장에서는, 감찰관이 자살했건 살해당했건 아무 상관이 없는데 진상을 밝힐 이유도 없고요. 감찰관이 자살하면서 악덕 옥졸인 무바라크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려 했다는 진상도 별로입니다. 업무에 대한 사명감으로 포장하고는 있지만 그렇게 설득력있는 이야기는 아니었어요.

감찰관이 지병을 앓고 있었으며, 이를 그의 삭발과 구토 흔적으로 추리해내는 부분 외에는 점수를 줄 만한 부분이 없네요. 별점은 많이 줘 봤자 1.5점입니다.

"묘지기 라쿠파 걀포의 긍지"

티벳 출신 사형수로 제리미니스탄 어를 익히지 못해 소통이 불가한 죄수 라쿠파 걀포는 홀로 사형 집행된 죄수의 묘를 파는 일에 몰두했다. 그런데 어느날 부터 그가 사체를 다시 파헤쳐 먹었다는 소문이 돌고, 조사를 통해 최근에 묻힌 사형수 사체의 일부가 훼손되어 사라진건 사실로 확인되었다. 슐츠는 고심한 끝에 이를 숨기지만, 사형수 로드리고 소토홀의 시체가 완전히 훼손된게 밝혀지자 걀포 역시 곧바로 사형 집행을 받게 되는데...

소토홀과 걀포가 친구였으며, 티벳인 걀포는 소토홀을 위해 최고의 장례인 '조장鳥'을 치뤄주려 했다는게 진상입니다. 앞서 시체를 훼손했던건 그 고기(?)로 독수리를 모으기 위해서였고요. 이 정도면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서 실소가 나오네요. 애초에 수천명의 사형수의 묘지를 감옥 내에 만든다는 설정부터가 말도 안되지요. 본국 가족에게 인계하거나, 화장하는게 당연하잖아요? 증거도 걀포가 티벳인이라는게 전부입니다.

소토홀이 언어 천재였다는 복선으로 그가 걀포와 친구였다는걸 추리해내는 과정 외에는 뭐 하나 건질게 없는 망작입니다. 별점은 1점입니다.

"여죄수 마리아 스코필드의 잉태" 

남감방과 분리된 여감방의 죄수 한 명이 임신했다게 알려지고, 이 사건 진상 조사를 위해 여감방 의사 라일라는 추리력으로 유명한 슐츠의 도움을 받고자 찾아왔다. 그러나 슐츠는 이야기만 듣고 사건 조사를 앨런에게 위임했고, 앨런은 직접 여감방에 방문해서 임신했다는 여죄수를 만났다. 그런데 그 여죄수는 앨런의 어린 시절 친구였던 마리아였다.

장황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가지만, 교도소 안에서 임신을 할 리 없지요. 그냥 앨런을 끌어들이기 위한 수작이었습니다. 마리아가 어린 시절부터 앨런을 좋아했었고, 정말로 그의 아이를 임신하기 위해 레즈비언 관계였던 여의사 라일라에게 부탁했던 겁니다.

그런데 이유와 동기, 결말 모두가 황당하고 어이가 없습니다. 이런 소문이 난다고 해서, 앨런이 여죄수 감방에 방문한다는건 생각하기 어려우니까요. 슐츠와 앨런에게 사건 의뢰가 전달되지 않았다면 라일라는 거짓말의 뒷 수습을 어떻게 할 생각이었는지도 궁금하고요. 또 이미 임신 3개월이라고 거짓말을 했는데, 그 시점에 앨런의 정자로 마리아를 임신시키면 주차가 맞지 않습니다. 어떻게 해결할 생각이었는지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한 마디로 점수를 줄 수 없는 망작입니다. 이 정도면 나무한테 미안한 수준이에요. 별점은 0점입니다.

"확정수 앨런 이시다의 진실" 

앨런 이시다의 사형이 확정되었다. 그에게 남은 시간은 4일. 그 동안 앨런은 독방에서 사형 선고를 받게 된 부모 살인 사건의 진상에 대해 고민하고, 자신의 친아버지가 누구인지 깊이 생각하게 되는데...

앨런 부모가 죽은 사건에 대한 앨런의 회고라 추리의 여지는 없습니다. 그나마 부모 사건의 도화선이 된 친아버지가 보낸 편지 - 자신이 TS 바이러스의 보균자라는걸 밝히는 - 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고, 친아버지가 슐츠라는걸 알아내는 과정만 추리라 할 수 있지요.
슐츠는 생화학 병기를 연구하던 테러리스트로 신분을 드러낼 수 없어서 앨런의 어머니 앞에서 사라졌습니다. 이후 테러로 사형 선고를 받고 수감된 뒤, 종말 감옥에서 편지를 보냈습니다. 이메일 등을 활용할 수 없었던건 감옥이었기 때문으로, 앨런은 종말 감옥의 편지지 등을 확인하고 자신의 추리가 맞다는걸 확신합니다. 예상대로지만 나쁘지는 않아요.

그러나 이어지는 결말은 최악이었습니다. 제레미니스탄의 수장 파힐이 직접 사형을 집행하는 집행인으로, 홀로 권총 한 자루에 의지해 사형을 집행한다는건 어이를 상실케 합니다. 이런 집행인 상대라면 인간 흉기급 사형수라면 너끈히 제압하고도 남을겁니다. 그게 아니더라도 어차피 죽을거, 발악이라도 해 보는게 당연하고요.
파힐이 앨런에게 신경을 쓰는 틈을 타 몰래 잠입한 슐츠가 파힐을 협박하여 통행증을 받아 앨런에게 건네주고 탈옥시킨 뒤, 파힐을 죽이고 자신도 죽는다는 결말도 마찬가지입니다. 종말 감옥 경비의 허술함, 파힐의 무능함이 합쳐진 결과인데 이 정도라면 진작에 사단이 나지 않은게 이상할 정도입니다.
또 파힐이 전 세계 부호들에게 사형 순간을 생중계해 주는 댓가로 돈을 받고 있었다는 설정은 왜 넣었는지 모르겠어요. 그렇지않아도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아예 안드로메다로 보내버릴 뿐입니다.

이야기가 끝났다는것 하나만 위안이 되는 졸작. 별점은 0.5점입니다.

"에필로그" 

슐츠는 파힐의 시체를 숨긴 뒤 바이러스 발작이 일어남을 느낀다. 그는 갓난아기 앨런에게 TS 바이러스를 주입해 보균자로 만든 과거를 떠올리며 죽어간다...

읽어본 사람들 모두가 인상적이라 칭했던 반전이 등장하는 마무리입니다. 생화학 병기를 이용한 테러를 꿈꾸던 슐츠가 전 세계에 자신이 만든 TS 바이러스를 흩뿌린다는 결말로, 앞서 망작이었던 5, 6편 이야기는 모두 이 반전을 위한 복선이었습니다. 그 두 편이 왜 망작이었는지는 살짝 이해가 됩니다. 반전을 위한 부품에 불과했으니까요.

그러나 위기에서 벗어난 순간 뒷통수를 쎄게 후려치는 의외성은 돋보이지만, 그렇게 빼어난 반전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어차피 앨런이 보균자였다면 투옥되기 이전 생활에서부터 착실히 주변인들에게 감염을 이어왔을겁니다. 앨런의 탈옥이 무슨 계기라도 된 것처럼 부풀릴 필요는 없어요. 잠복기 수십년인 바이러스의 발작이 때마침 마지막 순간에 일어났다는 작위적인 전개도 거슬렸고요.

이런 류의 작품을 너무 많이 읽었나봅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2016/12/31

2016 내 블로그 리뷰 총결산

2015 내 블로그 리뷰 총결산

13차, 열 세번째를 맞는 블로그 결산입니다. 숫자부터 정리해보면, 2016년 읽은 책 중 리뷰를 남긴 책은 추리 / 호러 장르문학 53 (53)권, 기타 장르문학 8 (10)권, 역사서 18 (12)권, 디자인 및 스터디 도서 4 (5)권, Food 및 구루메 관련 도서 9 (7)권, 기타 도서 15 (21)권으로 모두 107 (107)권입니다(괄호는 작년). 작년과 거의 비슷하군요.

각 항목별 베스트 - 워스트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올해 발표된 작품 기준이 아니라 제가 올 한해 보고 읽은 것들 기준입니다.


2016년 베스트 추리소설 : 

"탐정은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 

단평 : 세상은 넓고, 모르는 작가도 많고, 재미있는 작품도 아직 이렇게나 많다! 

올해 추리, 호러 장르물 중 별점 4점 이상 작품은 단 한편도 없습니다. 그런데 별점 3점짜리는 "별도 없는 한밤에", "천사들의 탐정", "미스테리아 8호", "사냥개 탐정", "검은 수도사", "가면 무도회 1,2", "탐정은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 "엠브리오 기담"의 여덟 편이나 됩니다. 

다 좋은 작품들이지만 한편을 꼽기 위해서 우선 잡지인 "미스테리아 8호"를 뺐습니다. 호러 성향이 강한 "별도 없는 한밤에", "엠브리오 기담"과 역사 모험물 성격이 강한 "검은 수도사"도 빼면 네 편이 남네요. 다 좋은 작품들이지만 이 중 추리적으로도 괜찮고 재미도 있으며, 무엇보다도 새로운 발견의 기쁨을 선사한 "탐정은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를 올해의 베스트로 꼽습니다.

2016년 워스트 추리소설 :

"추억의 시간을 수리합니다" 

단평 : '미스터리'가 아니었다... 

2016년에는 별점 2점 이하의 작품이 무려 16편이라고 한탄했는데 올해는 26편입니다! 읽은 작품 중 반 가까이가 수준 이하였다는 이야기지요. 참으로 너무합니다. 최악인 별점 1.5점 이하도 무려 열 편이나 되고요.

하지만 최악 중의 최악인 별점 1점을 획득한 작품은 이 작품 뿐입니다. 최악인 이유는 책의 완성도를 떠나 '미스터리'가 아닌 탓이에요. 그냥 청춘 연애물일 뿐이거든요. 작품의 수준을 떠나 구태여 추리물이라고 소개하여 제 시간을 낭비하게 만든 괘씸한 마케팅 때문에 올해의 워스트로 꼽습니다.

2016년 베스트 기타 장르문학 : 

"제라르 준장의 회상" 

단평 : 시대를 뛰어넘다. 

올해의 기타 장르문학에서는 별점 3.5점의 이 작품이 베스트입니다. 모두 10권도 읽지 않아 한권의 베스트를 꼽기는 좀 애매하지만요. 여튼 코난 도일 경의 실력이 유감없이 발휘된 고전 명작 모험물입니다.

2016년 워스트 기타 장르문학 : 

"양심의 문제" 

단평 : 바탕에 깔린 사상 문제. 

도서출판 불새의 용기있는 행보에는 항상 박수를 보내는 바이지만... 이 작품만큼은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습니다. 역겨운 식민지 시대의 유산인 제국주의적 세계관을 은연 중에 포장하여 강요하기 때문입니다.

2016년 베스트 역사 도서 : 

"신들의 연기, 담배" 

단평 : 교양과 재미의 절묘한 결합. 

이 책은 올해의 유이한 별점 4점짜리 책입니다. 교양과 재미, 두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놀라운 결과물이죠. 제가 꼭 흡연자이기 때문은 아닙니다.

2016년 워스트 역사 도서 : 

"조선의 武와 전쟁" 

단평 :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역사 도서는 좀 가려읽는 편이라 워스트가 대체로 없는 편인데 올해는 이 책이 뽑혔습니다. 단평대로 기대한 내용에 전혀 미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도저도 아닌 결과물이었어요.

2016년 베스트 디자인 / 스터디 도서 : 

올해 이 분야는 달랑 4권만 읽었기에 별도로 평하지는 않겠습니다. 내년에는 이 쪽 분야도 좀 더 열심히 읽겠습니다.

2016년 베스트 Food / 구루메 도서 : 

"백미진수" 

단평 : 실력자가 애정을 담아 쓴 미식 에세이의 진수.

이 책은 올해 유이한 별점 4점짜리 책입니다. 읽는 내내 즐거우면서도 유용한 좋은 에세이였어요.

2016년 워스트 Food / 구루메 도서 :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레시피" 

단평 : 발췌에 이은 레시피 소개에 그친, 날로 먹은 책 

제목 그대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등장한 음식, 요리를 발췌한 후 해당 레시피 소개가 전부인 책. 저자의 아이디어는 눈꼽만치도 들어있지 않습니다.

2016년 워스트 기타 도서 :

"서프라이즈 : 인물편" 

단평 : 이 책이 존재할 이유를 모르겠다. 

올해 기타 도서는 전부 고만고만해서 베스트를 꼽기는 쉽지 않네요. 별점 3점짜리 작품이 있기는 하지만 ("장서의 괴로움") 독보적이라고 하기는 어렵거든요. 하지만 워스트는 확실합니다. 총 4편의 별점 1.5점짜리 망작들 중에서도 이 책이 선명하게 빛나기 때문입니다. 왜 책이 나왔는지 이유 자체를 모를 무의미한 결과물입니다.

2016년 베스트 기타 Comic :

"피너츠 완전판" 

단평 : 발간만으로도 감사한 완전판! 

올해 별점 3점을 넘는 만화는 많았지만 그렇다고 압도적으로 점수가 좋은 작품도 없습니다. 그렇기에 총 4권을 읽었고, 대체로 별점이 우수했던 "피너츠 완전판"을 올해의 작품으로 꼽아봅니다. 단평 그대로 발간된 것 만으로도 감사드릴 따름입니다.

2016년 워스트 기타 Comic : 

"역시 빵이 좋아!" 

단평 : 만화로 보기에는 여러모로 애매했다. 

올해 별점 1점짜리 망작은 본 작 외에 "스파이 vs 스파이", "산적 다이어리 2"가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작품들은 최소한 '만화' 이기는 한데 이 작품은 아무리 봐도 만화가 아닙니다. 빵 소개서를 만화처럼 만든 것에 불과하니까요. 최소한의 이야기와 재미도 없기에 올해의 워스트로 꼽습니다.

그외 영화, 만화 등은 대체로 부분별로 5편 이상 감상한 것이 없기에 올해는 선정하지 않습니다.


결산평 : 

총 독서 권수가 작년과 똑같다는게 놀라운데 여튼 올해도 100권을 넘겼습니다. 이 정도면 취미인으로 할만큼 했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제가 나이가 든 탓인지, 아니면 출간작들의 수준이 갈 수록 떨어지는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평균 이하의 작품들 수가 급증했다는 겁니다. "장서의 괴로움"에 나온 유명한 장서가 다니자와의 명서 감정술처럼 - "명저라는 홍보에 넘어가 샀던 책은 거의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이류 이하 책을 이것저것 찾아 읽지 않았다면 초일류를 초일류라고 인정할 수 없었을지 모른다" - 좋은 작품을 만나기 위한 통과의례일 수는 있겠지만, 몇몇 망작들은 그야말로 읽는 시간조차 아깝기 그지 없었습니다. 뭐 좋게 생각하면 이런 작품들을 소개하는게 제 미미한 블로그의 존재 의미겠죠. 찾아주시는 분들의 시간이라도 아껴야 할 테니까요.

하여튼, 제 블로그를 찾아주시는 여러분들도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내년에는 올해보다 더 많은 것을 이루고 성취하시는 한해가 되셨으면 합니다. 

작년에도 말씀드렸지만 제 블로그를 찾아주시는 분들이라면 남들이 관심갖지 않는 사소하고 디테일한 것들에도 관심을 가지시는, 정말로 세심한 분임이 분명할테니 내년에는 더욱 잘 되실거에요. 사랑합니다~!

2020/01/02

Q.E.D. iff 4 - 카토우 모토히로 : 별점 2.5점

Q.E.D Iff 증명종료 4 - 6점
카토 모토히로 지음/학산문화사(만화)

Q.E.D. iff 3 - 카토우 모토히로 : 별점 1.5점 

전에 읽었던 2, 3권이 전혀 기대에 미치지 못해서 걱정했는데, 이번 권은 다행히 괜찮았습니다. 수록작 중 "아이디"는 망작이지만 "바다의 무녀"가 꽤 괜찮은 덕입니다. 간만에 힘을 내 주었기에 별점은 2.5점 주겠습니다. 

수록된 에피소드 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바다의 무녀"

이즈 제도 남쪽에 있는 작은 섬 아이가시마에서 리조트 찬성파와 반대파가 첨예한 대립을 벌이는 와중에 도쿄에서 온 측량사가 살해당했다. 무녀 유나 아오이가 측량사 시체가 묻힌 섬을 예언한 뒤, 경찰은 그녀를 추궁하기 시작했다. 유나 가문은 섬의 수리권을 가지고 있고, 리조트에 물을 나누기 힘들어 건설을 반대하고 있던 터라 더욱 의심을 샀다.
유나가 섬을 나간 적이 없다고 확신하는 동생 시오미는 가나와 토마에게 사건 해결을 부탁했다. 토마와 가나가 섬을 방문한 뒤, 유나 가문의 수리권 고용한 변호사, 리조트 회사 직원마저 차례로 시체로 발견되는데...

이야기에 대단한 트릭은 없습니다. 시체가 있는 장소를 무녀가 알아낼 수 있던건 범인이 그녀에게 워드 프로세서로 만든 편지(뒤에 밝혀지지만 이것도 조작)를 보냈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인 하마치 변호사가 아무도 들어갈 수 없는 동굴에서 시체로 발견된 사건도 사람들이 잘 모르는 동굴을 이용한 것에 불과하여 공정한 트릭이라 보기 어렵습니다.

그래도 발자국없는 모래밭 한 가운데에서 시체로 발견된 호시즈나 씨 사건은 나름 트릭으로 값어치가 있습니다. 땅에 묻힌 장대를 진동시켜 발자국을 없앴다는 방법이 꽤 현실적이었거든요. 나뭇가지가 부러진걸 트릭과 연결시킨 과정도 좋았고요. 무녀의 전설에 나오는 초능력 - 하늘을 날고 천리안으로 모든 걸 본다 - 을 범행과 연결시키는 전개도 돋보였어요. 세 건의 사건 모두 사람이 날지 않으면 범행이 불가능하다!고 여기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로트카, 볼테르 방정식이라는 수학 이론을 녹여낸 솜씨도 오랫만에 과거 Q.E.D의 향수를 느끼게 해 줍니다. 이야기와 이론이 잘 조화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생태계에 있어 포식자와 피식자의 증감 속도 관계를 표현하여 '조화'를 나타낸 식인데, 조화는 '진동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즉 대화가 없어지면 싸움이 일어나고, 그게 싫어지면 대화로 돌아온다는 이 수학 이론은 무녀 유나 아오이의 의도를 그대로 드러납니다. 그녀는 싸움을 끝내는게 아니라 질릴 때 까지 끌고가는게 목적이었거든요. 물의 양은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사람들이 더 이상 수리권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 상황을 노렸던 겁니다. 심지어 그녀의 동생마저도 섬을 위해 나름의 역할을 다했다는 마지막 장면도 아주 인상적이었어요.

조금 설득력이 부족한 부분도 없지는 않지만 간만에 본 역작입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아이디"

맷은 카지노 홈페이지를 해커의 공격으로부터 지켜내지만 생명의 위협을 받게 된 후, 토마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스케일은 거대합니다. 미국, 일본, 러시아, 두바이, 벨기에를 오가니까요. 그러나 해커의 두목 크래시의 정체는 물론, 증거를 확보하는 과정 모두 설득력이 부족합니다. 가나의 변장을 전가의 보도처럼 쓰는게 영 와 닿지 않네요. 그리고 이전 작품에서 영어도 그리 잘 하지 못하는 걸로 묘사되지 않았었나요? 또 토마의 대학 동창 하산이 토마를 돕는 이유도 잘 모르겠고 말이죠.

그렇다면 Q.E.D 특유의 현학적인 재미라도 있느냐 하면 전혀 그렇지 못합니다. 해킹을 소재로 한 것 치고는 디도스 공격이 메인이라 너무 흔해빠진 정보만 나오거든요. 해커들이 비트 코인도 아니고 현금을 가지고 거래한다는 것도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맷이 사랑하는 아슈라의 딸 클로에가 전설의 해커 위저드라는 것도 억지스럽고요.

도저히 점수를 줄 부분이 없는 망작으로 별점은 1점입니다.

2025/12/28

2025 블로그 리뷰 결산 (스물 두 번째!)

안녕하세요. 어제의 "어차피 곧 죽을텐데"로 올해 블로그 업로드는 마무리하고, 올해 결산을 진행해 보겠습니다. 참고로, 요새 이런저런 플랫폼에서 유행하는 리캡에 편승한건 아닙니다. 제 블로그 연말 결산은 이번이 스물 두 번째이니까요. 

간략한 블로그 통계부터 확인해보겠습니다.

그리고 2025년 독서 결산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올 한 해 읽은 총 책 권수는 82권입니다.

  • 추리 / 호러: 48권
  • 기타: 14권
  • 역사서: 9권
  • 디자인/스터디 : 1권
  • 기타 장르문학: 5권
  • Food / 구루메: 5권

독서량이 작년(110권)에 비하면 30% 가까이 대폭 줄었는데, 영화나 애니메이션 감상이 늘은 탓입니다. 나이가 들다 보니, 아무래도 쉽게 볼 수 있는걸 선택하게 되네요. 추리 소설은 왠만한 작품으로는 신선함이나 재미를 찾기도 좀 어려웠고요. 그동안 너무 많이 읽었던 탓이지요.

그래도 1년에 100권은 읽어야 책 좀 읽는다고 할 수 있으니, 내년에는 좀 더 힘내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래는 카테고리별 베스트, 워스트입니다.


1. 추리 / 호러

베스트: 매미 돌아오다 - 사쿠라다 도모야 : 별점 3.5
- 곤충과 과학, 일상 추리를 결합한 독특함이 인상적이다.

올해 별점 3.5점을 줬던 작품은 이 작품 외에도 오가와 사토시의 "신의 퀴즈"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이 더 정통 본격 추리물에 가깝고, 수록 단편 중 "반딧불이 계획"은 별점 4.5점의 걸작이라서 올해 베스트로 꼽습니다. 

워스트: 신곡 - 가와무라 겐키 : 별점 1.5
- 범죄 스릴러로의 매력은 전무하다.

올해 별점 1.5점의 망작은 모두 여섯 편이지만, 그래도 다른 망작들은 추리물이기는 합니다. 이 작품은 애초에 추리물이 아니에요. '밀리의 서재'에서 '추리, 스릴러' 카테고리로 분류하지만 않았어도 워스트로 꼽지는 않았을텐데, 뒷통수를 맞은 듯한 배신감이 너무 컸네요.

2. 기타

베스트: 그거 사전 - 홍성윤 : 별점 3
- 가볍지만 의미도 있다.

읽은 책 중 절반에 가까운 여섯 권이 별점 3점을 받아서 한 권을 꼽기가 애매하지만, 재미와 정보 모두 좋았던 이 책을 꼽아 봅니다.

워스트: 세계문학단편선 39 윌키 콜린스 (꿈 속의 여인 외 9편) - 윌키 콜린스 : 별점 1.5
- 2025년에 읽기에는 낡고 지루했던, 재미와 가치 모두 압도적인 워스트. 

3. 역사서

베스트: 미친 항해 - 마이크 대쉬 : 별점 4.0
- 충격적인 실화를 방대한 자료로 치밀하게 재구성한 뛰어난 논픽션. 난파 관련 논픽션은 항상 기대 이상!

워스트: 별점 1점대가 없어서 올해는 선정하지 않습니다.

4. 디자인 / 스터디

베스트: 일상 감각 연구소 - 찰스 스펜스 : 별점 3.0
- 일상 감각을 해킹하는 여러가지 팁이 가득.

이 분야는 올해 한 권만 읽어서 워스트는 없습니다.

5. 기타 장르문학

베스트: 거짓과 정전 - 오가와 사토시 : 별점 4.0
- 독특한 세계관과 기발한 아이디어가 SF와 만나 신선한 재미를 선사한다!

워스트: 별점 1점대가 없어서 올해는 선정하지 않습니다. 다 별점 2점이네요.

6. Food / 구루메

베스트: 전쟁은 일본인의 밥상을 어떻게 바꿨나 - 사이토 미나코 : 별점 3.5
- 상세하게 알 수 있는 2차 대전 당시 일본의 식생활.

워스트: 초콜릿어 사전 - Dolcerica 가가와 리카코 : 별점 1.5
- 방향성과 완성도 모두 기대 이해.

2025/11/01

백 인 액션 (2025) - 세스 고든 : 별점 1.5점

넷플릭스 제작 액션 코미디 영화입니다. 전직 비밀 요원 부부가 아이들을 낳고 평범한 삶을 살다가, 정체가 들통나면서 다시 거대한 음모에 휘말린다는 이야기입니다.

초반 비행기 액션은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잘 설계되어 있고, 비행기 내에서의 사투와 추락, 이후 탈출까지의 과정이 설득력있게 묘사된 덕분입니다. 정체가 들통난 가족의 집을 습격한 악당들과의 자동차 추격씬도 볼만합니다. 변변한 무기가 없던 부부가 머리를 짜내 악당들을 상대하는 장면이 펼쳐지기 때문으로, 그 중에서도 멘토스를 넣은 콜라를 악당들 차로 던져넣어서 사고를 유도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에요.
사춘기 딸과 부모가 펼치는 티키타카도 재미있고, 왕년의 명배우 글렌 클로즈가 노익장을 과시하며 등장하는 장면도 기억에 남고요. 전 동료 척이 흑막이라는 반전도 잘 짜여진 편입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볼 때에는 망작에 보다 가깝습니다. 우선, 영화는 전직 요원이 신분을 숨기고 살다 복귀한다는 진부하고 수없이 반복된 구조를 답습합니다. 새로운 점이라고는 찾아보기 어려워요. 사춘기 딸과의 갈등도 "트루 라이즈"의 복사판일 뿐입니다.

그나마도 가족이 영국으로 향한 이후는 각본과 액션 모두 엉망이 되어 버립니다. 척이 사이버 키를 손에 넣고도 가족을 죽이지 않는 상황부터 납득이 어렵습니다. 이미 목적을 달성했다면, 후환을 없애는게 당연합니다. 구태여 부부를 살려두고 아이들을 납치할 이유가 없어요. 척의 정체가 드러나서 MI6 요원 배런이 같은 편임을 알고난 뒤에도, 배런에게 연락하여 같이 행동하지 않을 이유 역시 없고요.
액션의 밀도 역시 한없이 떨어집니다. 총이 있는데도 맨몸으로 싸우는 장면이 반복되는 탓이 큽니다. 맨몸 액션도 최근의 실전 액션 영화들에 비하면 타격감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고요. 

한 마디로, 중반 이후는 모든게 비논리적인 망작입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부부의 정체가 드러나기 전까지는 그런대로 버틸 만하지만, 이후는 도저히 점수를 줄 부분이 없습니다. 후속편을 암시하며 끝나지만 기대감은 전무합니다. 추천하기도 어렵네요.

2023/12/31

2023 내 블로그 리뷰 총 결산


이글루스 사망으로 구글 이사 후 첫 결산이자, 스무번째 블로그 리뷰 총 결산입니다. 인생 첫 블로그였던 블로그인에서 시작해 꾸준히 달려왔네요.
 
올해 읽은 책 수는 다음과 같습니다. (괄호는 작년)
추리 / 호러 장르문학 61 (71)권, 기타 장르문학 4 (5)권, 역사서 7(5)권, 디자인 or 스터디 4 (4), Food 및 구루메 관련 도서 3 (4)권, 기타 도서 15 (13)권
이렇게 모두 94 (102) 권입니다. 100권을 넘기지 못했고, 작년과 비교해도 약 10% 정도 줄었네요. 만화 관련 포스팅을 39건이나 올렸을 정도로 만화를 많이 읽있고, 영화와 애니메이션도 많이 본 탓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남는 시간은 머리를 비우며 가볍게 보내고 싶어지는데 반성해야 겠습니다.

그럼 언제나처럼 각 항목별 베스트 - 워스트를 소개해드립니다. 언제나처럼, 올해 발표된 작품 기준이 아니라 제가 올 한해 보고 읽은 것들 기준입니다. 아울러 5권 이하로 읽은 분야는 특별한 걸작이나 망작이 없다면 그냥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2023년 베스트 추리소설 :
"황제의 코담뱃갑"
존 딕슨 카의 고전. 구관이 명관. 별점 5점.

2023년 워스트 추리소설 :
"전래 미스터리"
완성품으로 보기 어려운 별점 1점짜리 망작.

2023년 베스트 기타 장르문학 :
"마션"
재미와 지식 전달 모두 훌륭.

2023년 베스트 역사 도서 :
"신의 기록"
all time으로 쳐도 베스트 중 한 권일 수준.

2023년 워스트 역사 도서 :
"산척, 조선의 사냥꾼"
정작 사냥꾼 이야기는 별로 없음.

2023년 베스트 디자인 or Study :
"딕 브루너"
별점 5점! 
그 외의 디자인 관련 도서 3권도 모두 별점 3점 이상.

2023년 베스트 Food / 구루메 도서 :
"식민지의 식탁"
소설들로 알아보는 일제 강점기 식문화

2023년 베스트 기타 도서 :
"해변의 카프카"
무라카미 하루키는 역시.

2023년 워스트 기타 도서 :
없음.

2023년 베스트 Movie :
"서울의 봄"
두말할 나위없는 올해의 베스트.
참고로, 애니메이션 베스트는 "천국대마경".
 
2023년 워스트 Movie :
"명탐정 코난 비색의 탄환"
아동용은 이 정도 수준이라도 괜찮나?

2023년 베스트 Comic :
"리처드 스타크의 파커 : 헌터 / 아웃핏"
미국 카툰의 힘.

2023년 워스트 Comic :
"체셔 크로싱"
돈 받고 팔 수준이 아니었음.

이 글을 마지막으로 2023년을 마무리합니다. 24년 갑진년에 다시 뵙겠습니다.
제 블로그를 찾아주신 분들 모두 새해에는 원하시는 일 다들 이루시기를 바라겠습니다. 

2022/11/26

명탐정에게 장미를 - 시로다이라 교 / 김은모 : 별점 1점

명탐정에게 장미를 - 2점
시로다이라 교 지음, 김은모 옮김/문학동네

<<허구추리>>로 유명한 시로다이라 교의 데뷰작. 두 편의 중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결론만 이야기하자면 망작 of the 망작입니다. 올해는 아직 다 가지 않았지만, 올해의 최악으로 꼽겠습니다. 읽어보실 필요는 당연히 없습니다. 제 별점은 1점입니다.

내용이 궁금하시다면 아래의 수록작별 상세 리뷰를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합니다.

<<메르헨 난쟁이 사건>>
'난쟁이 지옥'이라는 독약에 관련된 참혹한 연쇄 살인 사건이 벌어진다. 첫 번째 피해자 후지타 게이코는 난쟁이 지옥을 만들었던 다케바야시의 딸이었고, 두 번째 피해자 구니오는 다케바야시의 조수였다. 두 사람은 각종 언론사 등으로 보내진 <<메르헨 난쟁이 지옥>>이라는 동화 속 모습 그대로 살해당했다.
유력한 용의자인 다케바야시의 또 다른 조수였던 쓰루타는 첫 번째 사건에서의 알리바이가 완벽했다. 오히려 쓰루타는 후지타 가에 나타나 게이코의 딸 스즈카를 동화의 마지막 피해자 한나처럼 죽일 수 있다며 협박하는데...


어떤 이야기와 살인 사건이 맞물려 전개되는 작품은 많습니다. '마더 구스' 동요를 이야기 전개에 써먹었던 크리스티 여사님의 <<주머니 속의 호밀>>이나 밴 다인의 <<비숍 살인 사건>> 처럼요.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도 빼 놓을 수 없을테고요.
이렇게 범인이 무언가를 따라서 범행을 저지르는 이유는 공포심을 자극하기 위해서이거나 범행에 관련된 중요한 무언가를 숨기려고 했다는 등이 있습니다. 단순히 범인이 정신병자여서 그랬을 수도 있고요. 그런데 이 작품에서의 이유는 특이했습니다. 난쟁이 지옥을 팔고 싶은데 독약의 효능 등이 잊혀졌으니, 이를 다시 세간에 알리기 위해 기묘한 잔혹 동화를 창작하여 뿌리고 동화대로 잔혹한 사건을 저지른 것이거든요.
쓰루타는 구니오의 장기말에 지나지 않았는데, 오히려 구니오의 뒷통수를 쳐 그를 살해하고, 신출귀몰한 능력자 범인인양 후지타 가에 나타나 자기는 사람을 마음대로 죽일 수 있다며 협박했다는 진상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세가와 미유키가 사건의 모순을 눈치챈 계기가 된 동화 속 등장 인물 이름인 한나, 니콜라스, 플로라는 모두 후지타 가족 이름과 연결된다는 등, 단서 제공도 공정합니다. 히브리어 뜻까지 알아야 하는 등 좋은 단서로 보기에는 어렵지만요.

명탐정 세가와 미유키도 일본 만화 등에서 흔히 보았던 전형적인 쿨 뷰티, 차도녀 안경 선배 설정이기는 한데 명탐정으로서의 고충 - 진상을 드러내어 오히려 마음에 상처를 입는 - 을 묘사한건 신선하더군요.
물론 명탐정이 마음에 상처 따위는 입어서는 안되지요. 유불란의 말대로 명탐정의 혈관에는 강침이 돌아야 하는 법입니다. 그런 유불란도 감정에 휩쓸려 버리기는 했지만....

그러나 억지가 심합니다. 아이 사체로 만든다는, 주술에 가까운 독약 '난쟁이 지옥'의 설정부터가 억지입니다. 기묘한 동화를 창작하고, 성인 여성을 납치하여 온 몸을 난도질하는 엽기 범죄 역시 마찬가지에요. 너무 비효율적입니다. 독약 광고를 위해서라면 차라리 어떤 장소에 '난쟁이 지옥'을 풀어서 사람들을 심부전으로 죽게 만들고, 매스컴에 '난쟁이 지옥'으로 일으킨 범죄라는 성명서를 내는게 훨씬 손쉽고 깔끔했을겁니다. 게이코에 대한 복수심 때문이었다 하더라도, 후지타 가에 독을 푸는게 더 현실적이었을테고요.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해 게이코에게 '난쟁이 지옥'에 대해 알린 뒤, 범행 현장으로 찾아오도록 시켰던 트릭도 설득력이 약합니다. 게이코가 '난쟁이 지옥'에 대해 업보가 있다고 생각한건 독을 이용하여 친모를 살해한 탓입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죄의식을 느끼고 구니오의 덫에 스스로 빠질리 없지요. 그런데 그 사실을 구니오 등이 알 턱이 없으니 이는 모순입니다. 게이코가 친모를 살해하지 않았다면, 당연히 경찰에 신고했을거에요.

딱히 명탐정이 필요했던 사건도 아니라는 문제도 큽니다. 쓰루타가 게이코 사건에서의 알리바이가 어쨌건 간에, 구니오 사건에 대한 수사만 철저히 진행했어도 사건은 해결되었을테니까요. 게이코는 퇴근길에 납치당한게 아니라, 그녀 스스로 현장으로 이동했기 때문에 구니오의 알리바이가 생겼는데 아를 밝히지 못한건 경찰의 부실 수사로밖에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납치는 못했더라도 공범이 있었다면 범행은 저지를 수 있잖아요. 세간의 화제가 된 강력 사건을 이렇게 허술하게 수사한다는건 전혀 와 닿지 않았습니다.
그 외에도 게이코의 편지를 후지타 가에서 내놓지 않는걸 경찰이 방관하는 것도 납득하기는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1.5점. 기발한 부분은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독배 퍼즐>>
미하시의 후배로 스즈카의 가정 교사를 맡았던 야마나카 후유미가 '난쟁이 지옥'에 독살당했다. 가족이 모두 모인 티 타임에서 차를 마신 직후였다. 조사 결과 티 포트에 '난쟁이 지옥'이 가득 들어있었다. 누가, 왜 포트에 독을 넣었을까? 미하시는 이번에도 명탐정 세가와 미유키에게 사건을 맡기는데....

한마디로 최악. 진상은 명탐정 세가와 미유키를 흠모하게 된 스즈카가 명탐정을 다시 만나기 위해 사건을 일으켰다는 겁니다. 그녀가 어머니의 유품인 '난쟁이 지옥'을 티 포트에 넣었던 거지요.
그런데 스즈카는 중학생입니다. 아무리 명탐정이 보고 싶어도 가족 모두가 먹는 차에 먹으면 바로 죽는 독을 다량으로 푼다는게 과연 말이나 될까요? 차라리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아이가 장난삼아 풀었다면 모를까요. 너무 써서 바로 뱉을 수 밖에 없다는건 증명되지도 않았고, 증명하기도 어렵습니다. 가족이 모여 차를 마시는 자리에서 차가 쓰다고 바로 뱉어낸다는 것도 잘 상상이 안되고요. 야마나카 후유미가 미각 장애가 있어서 차를 삼켰다는 만화같은 설정도 거슬렸습니다.

어쨌건 명탐정은 불렀지만 이유를 알려줄 수 업어서 미하시 등이 내세운 가짜 진상도 황당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스즈카가 계모 교코의 살의를 눈치채고, 독이 묻은 찻잔 흔적을 감추기 위해 독을 포트에 쏟아 부은거라는데, 비상식적입니다. 계모가 자기 목숨을 노리지만 계모와 아버지가 너무 사랑해서 그걸 숨기고 독을 가지고 도박을 한다? 아버지, 아니면 미하시에게 말하고 도움을 구하는게 당연하잖아요? 그리고 교코가 스즈카를 죽이려 했다면 '난쟁이 지옥'을 썼을리도 없어요. 그 독이 어디에 있고 어떤 효과가 있는지 온 가족이 다 아니까요. 의학적으로는 병사로 판단되더라도, 아버지 가쓰히토와 미하시는 의심의 눈초리를 절대 거두지 않았을 겁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미하시가 스즈카를 은밀하게 조종해서 후유미를 살해한 진짜 흑막이었다는 연극도 어처구니 없었어요. 건실한 청년 미하시 캐릭터와 어울리지도 않으며, 그래봤자 스즈카가 실행범이라는건 바뀌지 않으니까요. 이런 억지 연극을 꾸미는 것 보다는 차라리 스즈카의 뇌종양을 미유키에게 알리고, 경찰 고발을 취소해달라고 부탁하는게 나았을 겁니다.

제일 큰 문제는 명탐정 미유키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 스즈카만 걱정하고 피해자 야마나카 후유미는 아예 신경도 쓰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미하시와 미유키에게는 후배이기도 한데 왜 그녀의 죽음은 비통해하지도 않고, 진상을 덮으려고만 할까요? 살인범 스즈카를 무슨 순정만화 속 비련의 피해자처럼 묘사하는 마지막 장면은 황당하기 그지없었습니다. 명탐정이 진실을 밝히는 바람에 비극을 불러왔다 운운하는데, 스즈카가 사람을 죽인건 사실이라서 뭐가 비극인지도 잘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별점은 1점. 명탐정을 부르기 위해 범행을 저질렀다는 만화같은 동기를 비롯하여, 뭐 하나 점수를 줄 부분이 없네요. 시리즈가 더 이어지지 않은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2026/04/11

더 하드웨이 (2019) - 키오니 왁스먼 : 별점 1점

넷플릭스를 통해 찾아 감상한 B급 액션 영화입니다. 

이 영화를 고른 이유는 딱 한 가지였습니다. 런닝머신을 뛰면서 보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그저 아드레날린을 분출하게 만드는 영화일 것이라 생각하고 골랐습니다. 그런데 제 예상보다도 훨씬 엉망인 한심한 망작이더군요. 아드레날린이 아니라 분노가 분출될 지경이었습니다.

B급 영화에서 각본까지 따지는 것은 큰 의미가 없을 테니, 각본에 대해서는 굳이 길게 말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기대했던 액션은 처참함을 넘어서 황당할 지경입니다. 가장 볼 만한 액션이 초반에 존이 자신의 가게에 쳐들어온 양아치들을 참교육하는 장면이니, 더 말할 필요도 없지요.
악당 토로의 조직과 한판 승부를 벌이는 절정부 역시 문제입니다. 맨몸 액션을 기대했는데 총질만 해 댈 뿐이고, 중화기로 무장한 조직원들이 권총 하나만 든 존에게 쓸려 나가는 모습은 어이가 없었습니다.

토로의 정체가 옛 전우 브리그스였다는 반전도 대단치 않습니다. 브리그스 역을 맡은 배우가 옛 UFC 챔피언 랜디 커투어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배우를 캐스팅해 비중 있게 출연시키면서 제대로 된 액션 신을 하나도 보여주지 않을 리가 없으니, 얼굴을 드러내지 않은 토로의 정체는 너무나 뻔했습니다.
존과 브리그스의 마지막 일기토에서는 맨몸 격투가 나오기는 합니다. 하지만 정작 영화에 등장한 맨몸 격투 중에서는 가장 별로였습니다. 랜디 커투어가 나이가 든 탓인지 움직임이 상당히 느리고, 그렇다고 화려한 기술을 보여주는 것도 아니어서 실망스러웠습니다.

이런 영화가 수백만 달러를 들여 제작되었다는게 신기하네요. 최근 본 그 어떤 컨텐츠도 비교될 수 없을 정도의 망작입니다. 별점은 1점입니다. 

2011/07/31

소년탐정 김전일 2부 11~12 연금술 살인사건 - 아마기 세이마루 / 사토 후미야 : 별점 0.5점

소년탐정 김전일 2부 12 - 2점
아마기 세이마루 지음, 사토 후미야 그림/서울문화사(만화)

이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2권을 한 번에 읽었네요. 장편에 조금 못 미치는 길이의 "연금술 살인사건"과 단편 "고도 1만 미터의 살인" 두 편이 실려 있습니다.

먼저 "연금술 살인사건"을 소개하자면, 김전일이 주식 투자로 저축을 날려버린 겐모치 경부의 부탁을 받고, 거액의 금이 숨겨져 있다는 섬 '연금도'로 떠난 후 연쇄살인사건에 휘말린다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정말 해도 너무한 망작입니다. 하나의 통짜 금속으로 이루어진 문을 하룻밤 사이에 원하는 부분만 녹여서 돌파한 뒤, 나오면서 다시 완벽하게 메꾸어 밀실을 만든다는 트릭이라니... 벽을 뚫고 나간 후 다시 메워서 밀실을 만든다는 황당한 아이디어보다도 더 말이 안 되는 , 만화적 상상력에 불과한 이야기였습니다. 아무리 융점이 낮은 금속이라 해도, 하룻밤 만에 이 모든 작업을 완벽하게 마무리한다는 건 범인이 용접의 신이라도 불가능했을 겁니다.

게다가 범인을 옭아매는 단서인 제비뽑기도 설득력이 부족합니다. 종이 한 장의 번호가 다르다는 게 그렇게 중요한 단서인지 납득하기 어려웠어요. 처음에 카미오카가 "나는 후카모리 호타루의 팬이라 참여했다"고 말했던 만큼, 충분히 넘어갈 수 있는 부분이었으니까요.

또한 경찰이 신상만 조사해도 동기가 누구에게 있는지 뻔히 드러나는데, 이런 외딴섬에서 불편하게 살인을 저지를 이유를 찾을 수 없다는 점도 지나치게 작위적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인기 있을 만한 소재들—외딴섬의 저택, 보물찾기, 밀실 살인사건, 연쇄살인, 고정 캐릭터 출연 등—을 긁어모아 작위적인 모래성을 쌓은 것, 그것이 이 작품의 정체입니다. 모든 면에서 부실하고 허술하기 짝이 없어요. 별점은 0.5점입니다.

두 번째 작품 "고도 1만 미터의 살인"도 마찬가지로 어처구니없는 내용이었습니다. 뻔한 전개도 문제지만, 그나마의 증거라는 것이 '냄새'라는 점도 황당했습니다. 무엇보다도, 마약 밀수를 파헤친 부하와 함께 비행하는 기장이 세상천지에 어디 있을지 궁금하기 짝이 없네요. 간만에 등장한 아케치 경시가 또다시 슈퍼맨 같은 능력을 선보이는 것 외에는 건질 것이 없는 작품이었습니다. 별점은 역시 0.5점.

그래서 두 작품 합친 별점도 0.5점입니다. 이제는 정말 이 시리즈가 왜 계속되는지 모르겠네요. 최근 몇 년 사이 계속된 망작들 출간에도 사람들에게 기대감을 남겨준 이름값이 있었지만, 이젠 그마저도 완전히 사라진 느낌입니다. 차라리 김전일이 죽어버려서 시리즈를 끝내는 것이 늦었지만, 남아 있는 유일한 선택이 아닐까 싶네요. 어쨌든 저는 이제 더 이상 이 시리즈를 찾아볼 일이 없을 것 같습니다.

2023/11/29

Q.E.D Iff 증명종료 21 - 카토 모토히로 : 별점 1점

Q.E.D Iff 증명종료 21 - 2점
카토 모토히로 지음/학산문화사(만화)

신작이 나온지 모르고 있었는데 뒤늦게 찾아 읽었네요. 그러나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졸작이었습니다. 20권이 간만에 높은 수준을 보여줬기에 기대가 컸는데 아쉽습니다. 별점은 1점입니다.

수록작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는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디오판토스 방정식"
이즈미 코타는 수학 올림피아드 강화 학습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토마와 가나를 만났다. 토마 덕분에 수학에 관심을 갖게 된 인연이 있었다...

수학 올림피아드 학습 중 일어났던, 합숙생 호즈미가 사유지 건물 옥상에서 사라진 방법을 해결하는 일상계 단편. 
이외에도 합숙 멤버들 책상에 놓여있던 인형의 정체, 그리고 아래의 상황에서 학생이 도망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와 마지막의 논리 퍼즐같은 소소한 수수께끼도 등장합니다.
호즈미 소실과 인형들, 논리 퍼즐은 모두 강사 세키의 계획이었다는게 진상입니다. 학생들이 단순히 수학 문제를 푸는 기계가 아니라 누구도 풀지 못한 수수께끼에 도전하고, 미지의 황야를 나아가기를 바랐는데, 그 때 불안과 고독을 느끼고 패닉에 빠질지도 몰라서 일부러 그런 상황을 만들었던 것이지요. 호즈미는 세키의 제자로 계획에 참여한 공범(?)이었고요.

그런데 '문제를 잘 읽는게 중요하다'는걸 알려주기 위해 인형들을 사용한 것 정도는 그럴싸했지만 (인형에 표기된 글자는 모두 오자였다), 일상 속 불가능 범죄를 푸는게 수학과 도대체 무슨 관계가 있는지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사유지 건물 옥상 트릭은 일종의 숨바꼭질(?)에 불과한 트릭이라서 수학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고요.

마지막의 디오판토스 방적식을 푸는 과정과 어려운 수학 문제를 푸는 기쁨을 표현한 부분만 '학습 만화'로 약간의 가치가 있을 뿐, 추리물로 보기 어려운 망작이었습니다. 제 별점은 1점입니다.

"사후의 편지"
폭력단 코단 조직의 말단 조직원 사사메 켄토가 밀실에서 칼에 찔려 살해당했다. 용의자 와타보시는 투자회사 사장 마다라 에츠코의 사기 피해자로, 마다라 에츠코가 코단 조직을 이용해 누명을 씌웠다고 주장했다.
한편 사사메의 애인 사키의 집에 조직원들이 쳐들어와 켄토가 남긴 물건을 찾기 시작했다. 조직은 켄토가 조직이 시킨 어떤 일의 증거를 남겼다고 여겼다. 사키와 안면을 튼 토마 덕분에 진상이 밝혀지는데....


켄토는 사키의 아이에게 마술을 보여주겠다며 조각이 들어있지 않은 빈 만화경을 샀었습니다. 그리고 켄토 사후에 사키에게 빈 봉투의 편지를 보냈고요. 트릭은 이 두가지를 결합하는 것이었습니다. 빈 만화경으로 봉투를 보면, 봉투에 붙여놓았던 종이의 무늬가 보이게 되는 것이지요. 무늬는 켄토가 사키에게 선물했던 지갑을 의미하는데, 지갑 안에는 SD 카드가 들어있었습니다.
그럼 SD카드에는 무슨 내용이 들어있었을까요? 켄토가 보스 시모아라메의 지시로 와타보시를 죽이려고 잠입했다면 (그리고 역으로 살해당했다면) 이에 대한 증거를 남겼을리 없습니다. 자기 범죄를 증명하게 되니까요. 그래서 토마는 "켄토는 시모아라메의 지시로 와타보시 집에 잠입해서 자살했으며, SD 카드의 내용은 그것을 증명한다"고 추리했으며, 그게 정답이었습니다.

하지만 좋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습니다. 우선 SD카드를 숨긴 곳을 알리는 만화경 트릭부터 실망스럽습니다. 만화경으로 빈 봉투를 들여다본다는걸 누가 떠올릴 수 있을까요? 이런건 단서도 뭐도 아닙니다. 대단한 곳에 숨긴 것도 아니고, 지갑안에 숨겼을 뿐인데 암호를 남긴 것도 억지스럽습니다. 어차피 언젠가는 발견되었을테니까요.
밀실 살인이 아니라 밀실 살인을 위장한 자살이라는 아이디어도 신선하기는 했지만, 일개 조직 폭력배 조직원이 보스가 자살하라고 했다고 선뜻 자살한다? 전혀 와 닿지 않았습니다. 이 정도 카리스마가 있는 보스라면 이미 일본을 제패했을겁니다. 

그래서 별점은 1.5점. 그나마 추리 요소가 있을 뿐, 전작과 다름없는 망작이었습니다.

2022/12/29

2022 내 블로그 리뷰 총 결산

열아홉번째 블로그 리뷰 총 결산. 드디어 이 블로그가 성인이 되었습니다. 19금 컨텐츠도 이제 소화할 수 있겠네요.

올해 읽은 책은 권수로는 다음과 같습니다. (괄호는 작년)
추리 / 호러 장르문학 71 (57)권, 기타 장르문학 5 (3)권, 역사서 5 (17)권, 디자인 or 스터디 4 (1), Food 및 구루메 관련 도서 4 (15)권, 기타 도서 13 (24)권
모두 102 (117) 권을 읽었습니다. 작년과 비교하면 약 15% 정도 감소했네요. 코로나 사태가 진정된 덕분으로 외부 활동이 늘었고 대선, 월드컵 등 굵직한 이벤트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추리 / 호러 장르문학은 더 많이 읽었고, 그동안 자주 읽었던 역사서와 음식 관련 도서에 대한 관심이 급감한건 아무래도 짬이 나서 책을 읽는 시간에는 좀 더 흥미 위주의 책을 집어들게 된 탓이고요. 올해 추리 소설 1,100권째 리뷰를 달성하느라 좀 많이 달렸던 이유도 있을겁니다.

그럼 언제나처럼 각 항목별 베스트 - 워스트를 소개해드립니다. 언제나처럼, 올해 발표된 작품 기준이 아니라 제가 올 한해 보고 읽은 것들 기준입니다.

2022년 베스트 추리소설 :
<<디오게네스 변주곡>>
올해는 별점 3.5점을 받은 작품이 두 편 있었습니다. 이 책과 미쓰다 신조의 <<마가>>입니다. 두 작품 다 좋은 작품이지만, 단편집으로 <<추리 소설가의 등단 살인>>, <<숨어있는 X>>라는 두 편의 별점 4점 짜리 단편이 수록된 이 작품을 올해의 베스트로 꼽겠습니다.

아울러 올해 읽은 단편 중 최고의 단편은 <<미스터리를 읽은 남자>> 수록작인 <<엘러리 퀸을 읽은 남자>>입니다. 보기드문 별점 5점짜리 단편이지요. <<디오게네스 변주곡>> 수록작 2편과 교고쿠 나쓰히코의 <<싫은 소설>> 수록작 <<싫은 여자친구>>는 별점 4점으로 아쉽게 선정되지 못했네요.

2022년 워스트 추리소설 :
<<심야의 손님>>
별점 1점짜리 작품이 이렇게 많았던 해도 드물 것 같습니다. A.J 킨넬의 <<퍼펙트 맨>>, 엘러리 퀸의 <<샴 쌍둥이 미스터리>>, 오쿠라 데루코의 <<심야의 손님>>, 모리스 르블랑의 <<수정 마개>>, 시로다리아 교의 <<명탐정에게 장미를>>의 여섯 편이나 되니까요. 최악 중에서도 최악은 <<심야의 손님>>이었습니다. 단편집인데 수록작들은 별점 1점도 못되는 작품들 투성이거든요. 이렇게 뭐 하나 건질거 없는 망작은 정말이지 오랫만에 봅니다.

2022년 베스트 기타 장르문학 :
<<프로젝트 헤일메리>>

2022년 워스트 기타 장르문학 :
<<변덕쟁이 로봇>>

2022년 베스트 역사 도서 :
<<기억의 의자>>
달랑 5권 읽긴 했지만 역사 관련 도서들은 언제나 평타 이상은 쳐 줬었죠. 별점 3.5점을 받은건 이 책이 유일했지만, 다른 책들도 별점 2.5점 이상이었고요. 올해도 워스트는 따로 선정하지 않겠습니다.

2022년 베스트 디자인 or Study :
<<당신이 찾는 서체가 없네요>>
달랑 4권 읽기는 했지만, 그 중에 군계일학처럼 빛나는 별점 4점짜리 책입니다.
그 외 책들도 가장 낮은 점수가 별점 2점이니, 워스트는 역시 선정하지 않겠습니다.

2022년 베스트 Food / 구루메 도서 :
<<혼밥 자작 감행>>
디자인 관련 서적과 마찬가지로 4권만 읽었는데 놀랍게도 모두 별점 3점입니다! 평균 별점으로는 가장 높은 분야네요. 다 좋았지만 제가 사랑하는 만화 <<술 한잔 인생 한입>>의 삶을 구현한 듯한 쇼지 사다오의 에세이 <<혼밥 자작 감행>>을 베스트로 꼽아봅니다.

2022년 베스트 기타 도서 :
<<덜미, 완전범죄는 없다 1>>
범죄 관련 논픽션으로 완벽했던 결과물. <<그것이 알고 싶다>>를 애청하신다면, 흥미롭게 읽으실 수 있는 책입니다.

2022년 워스트 기타 도서 :
<<그 남자의 시계>>
별점 1.5점을 받은 책은 <<그 남자의 시계>>와 <<룸>>의 두 권입니다. 이 중 워스트는 <<그 남자의 시계>>입니다. 두 권 모두 기대했던 내용이 아니어서 실망이 컸지만, <<그 남자의 시계>>가 가격 측면에서는 더 비쌌으니 감점도 더 크게 받아야겠지요.

2022년 베스트 Movie :
<<탑건 : 매버릭>>
한 마디만 하겠습니다. 극장에서 두 번 봤습니다.
워스트는 딱히 꼽을게 없네요...

2022년 베스트 Comic - 추리 or 호러 :
<<BOX ~ 상자 속에 무언가 있다>>
모로호시 다이지로의 상상력이 나름 정교한 이야기와 결합된 수작 모험물.

2022년 워스트 Comic - 추리 or 호러 :
<<C.M.B 박물관 사건목록 44>>
설득력없는 트릭의 향연. 시리즈가 끝난게 다행이다 싶네요.

2022년 베스트 Comic - 기타 :
<<혼자를 기르는 법>>
독특한 작화, 무거운 분위기, 가벼운 개그의 조합. 좋았습니다.

2022년 워스트 Comic - 기타 :
<<지구 멸망 일주일 전, 뭐 먹을까?>>
독특한 설정 외에는 건질게 없었던 망작.


2022년 한 해도 이렇게 저물어가네요. 여러분들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새해에는 원하시는 일 다들 이루시는 그런 한해 되시기를 바랍니다. 작년, 그리고 재작년에도 말씀드렸지만 제 블로그를 찾아주시는 분들이라면 남들이 관심갖지 않는 사소하고 디테일한 것들에도 관심을 가지시는, 정말로 세심한 분일테니 내년에는 더욱 잘 되실게 분명합니다. 사랑합니다~!

2021 내 블로그 리뷰 총 결산

2019/07/21

귀신나방 - 장용민 : 별점 1점

귀신나방 - 2점
장용민 지음/엘릭시르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브로드웨이의 한 뮤지컬 극장에서 오토 바우만이 열일곱 살 소년을 살해했다. 소년은 좋은 부모에게 좋은 교육을 받은 흠잡을 것 없던 아이였다. 소년과 살인범은 아무 관계가 없어서 경찰은 살해 동기를 찾지 못했다. 하지만 수백 명이나 되는 목격자 앞에서 소년을 죽인 오토 바우만은 사형 선고를 받고 죽을 날만 기다리게 되었다. 사형 집행일을 사흘 앞둔 날 그는 갑자기 특별 면회 요청을 하는데, 상대는 과거 전도유망했던 기자 크리스틴이었다. 갑작스럽게 사형수와 인터뷰를 하게 된 크리스틴은 바우만으로부터 도무지 상상할 수 없던 이야기를 듣게 되는데...

한국 작가 장용민의 장편 소설입니다. 별다른 정보 없이 읽기 시작했는데 히틀러의 부활을 다루고 있어서 의외였습니다. 한국 작가가 섣불리 손 댈 소재는 아니라 생각했으니까요. 또 히틀러의 부활에 대한 창작물은 굉장히 많아서 차별화를 통한 비교 우위를 가져가기도 쉽지 않을테고요. 예를 들어 히틀러의 머리 (뇌)만 따로 보관했다가 다른 몸에 이식한다는 "모레", 클론을 만든다는 "브라질에서 온 소년들"이 있지요.
이 작품에서는 요제프 멩겔레의 뇌이식을 통해 젊은이로 거듭난다는 설정을 보여주는데 아니나다를까, 예상대로 차별화 요소는 거의 없습니다. 방법만 조금 다를 뿐, 유대인 생체 실험을 통해 기술을 터득한 멩겔레가 주도하여 히틀러의 부활을 이끈다는 케케묵은 설정이 반복될 뿐입니다. 그나마 뇌이식에 대한 과학적인 설명도 거의 없어서 실망스럽습니다.

그래도 부활까지는 히틀러의 뒤를 쫓는 비밀 조직 아디 헌터와의 악연 등 재미있는 부분이 없지는 않습니다. 문제는 부활 이후부터입니다. 아담 휘슬러로 새롭게 태어난 히틀러가 미국 정복(?)을 위해 일으킨 사건들과 여러 계획이 펼쳐지는데 어이가 없을 정도로 형편없는 탓입니다.
첫 번째로 아담은 시골 마을에서 6명이 죽는 참극을 일으킵니다. 일종의 심리 조작을 통해서요. 그런데 이 참극을 통해 그가 얻은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대단한 능력을 보였다고 하기도 어려워요. 원래 사이가 좋았던 사람들끼리 다 틀어지게 만든 것도 아니고, 악감정이 있던 두 집안 사이에 불똥을 튀긴 정도니까요. 경제학 서적을 독파해가며 자본주의를 통달한 세기의 악마가 하는 일 치고는, 그리고 사악함을 드러내기에는 지나치게 소박합니다.

그 뒤 미국 연방 준비 위원회를 손에 넣겠다는 두 번째 계획은 그야말로 실소를 자아냅니다. 무려 800톤이 넘는 금괴의 댓가로 하는게 연방준비위원회 의장 밀턴의 비서가 되는 것 뿐입니다! 2019년 7월 현 시세로 금 1kg은 6천만원 정도입니다. 그렇다면 이는 48조의 현금성 자산으로 2019년 기준 세계 부자 순위 20위권이에요. 현금성이라 투자 시 자본 증식과 대출 가능 규모를 감안하면 몇 배가 될 수 있고요. 한마디로 스스로의 돈과 능력으로 세계 금융계를 지배할 수 있는데 고작 비서가 되는게 다라니 이게 말이나 될까요? 비서가 되려는 목적도 루 게릭 병으로 죽어가는 밀턴에게 뇌수술을 알선하는 댓가로 밀턴의 주식을 넘겨받으는건데, 이를 위해서는 구태여 비서가 될 필요도 없습니다. 어떤 경로건 간에 자신이 히틀러라는걸 증명만 하면 죽기 직전인 밀턴이 알아서 접근해 왔을 테니까요.
게다가 연방 준비 위원회 주식을 소유한다고 그가 미국을 지배하는게 되는지도 의문입니다. 어차피 연방 준비 위원회 회장은 대통령이 임명하며 상원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는 문제도 있고요. 이보다는 차라리 세계를 지배하는 대기업 회장이 되려는 계획이 더 설득력이 높아요. 2019년 현 시점에서 연준 위원장은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보다 세계 파워 랭킹 순위가 낮으니까요. 아니면 직접 미국 대통령에 출마하던가....

세 번째 계획인(두번째 계획에서 이어지는) 케네디 암살에 히틀러가 있었다는건 황당하고 어이없는 픽션의 정점입니다. 일단 케네디 암살의 이유는 그가 은본위의 새로운 화폐계혁을 단행하여 연준을 무력화하려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계획을 케네디에게 알려준건? 히틀러입니다! 연준의 권력을 먹으려는게 계획인데, 연준에 괜한 위험을 가하고 그걸 또 스스로 이겨낸다? 이 쯤 되면 이야기의 합리성을 논하는게 무의미해 보입니다. 그리고 대통령 암살이라는 무모한 계획은 리스크도 너무 크고요.

거기에 더해 무리수 설정도 너무 많습니다. 우선 옛 연인 에바 브라운, 그리고 그녀의 전생인 죠안나 이야기는 없으니만 못합니다. 사악한 카리스마만 희석될 뿐입니다. 등장하는 비중에 비하면 아무것도 하는게 없기도 하고요.
하기사, 죠안나 설정은 그나마 낫지 연쇄살인범으로 이루어진 군대를 만든다는 설정은 어안이 벙벙합니다. 특수부대 출신 킬러들을 불러모아도 시원치않을판에 왠 연쇄살인범? 유영철이 UFC 파이터를 이길 수 있을까요? 게다가 연쇄살인범을 찾아내는 방법은 한니발 렉터를 표절한 천재 교수의 설명되지도 않는 수학 공식이고, 그들을 자기 부하로 만드는 방법은 히틀러가 혈혈단신 찾아가 말로 설득하는게 전부니 더 말을 해 무얼하겠습니까.

이와 반대편에 서 있는 경찰 바우만의 집요한 추적도 흥미를 자아내지 못하는건 마찬가지입니다. 고작해아 달라스 경찰서 형사인 그가 온갖 배후 정보에 손을 대 가면서 히틀러를 추적하는 과정부터가 설득력이 전무하기 때문입니다. 또 그가 히틀러라고 확신하고 쏴죽인 애덤이 사실 히틀러가 아니라 뇌수술을 받은 밀턴이라는걸 정작 조사를 시작한 지 몇일 되지도 않은 크리스틴이 밝혀낸다는 이야기도 당황스러워요. 바우만의 반평생은 대체 뭔가 싶거든요.
작위적인 전개도 눈살을 찌푸리게 만듭니다. 케네디 암살 현장에서 모사드 요원이 바우만을 구해주는 장면이 대표적입니다. 그 정도 지켜봤으면 누가 흑막인지 당연히 알아채고 아담을 죽이거나 납치하는게 당연하잖아요? 총 한자루 전해주고 손을 터는건 영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마지막, 히틀러는 살아있다는 극적인 진상이 귀신나방 이야기와 함께 드러나는 장면도 실소를 자아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기껏 자신이 살아있는걸 아는 사람을 다 죽여놓고 퓰리처 상까지 수상한 여기자 크리스틴 앞에서 살아있다는 암시를 남기고 떠난다? 그것도 직접 칵테일을 대접하는 등 있는대로 폼을 잡으면서?

이렇게 어디서 본듯한 설득력없는 설정, 전혀 흥미를 불러 일으키지 못하는 계획들, 작위적인 수사, 개연성없는 전개라는 환장의 4종 셋트가 모인 망작으로 종이가 아까운 수준입니다. 제 별점은 1점입니다. 작가가 희대의 망작 "건축무한육면각체의 비밀"를 발표한지도 수 십년이 지났지만, 발전한 부분은 전무하네요. 앞으로 이 작가 작품을 더 읽어볼 일은 없겠습니다.

2026/01/02

법의 체면 - 도진기 : 별점 2점

안녕하세요, 2026년 새해가 밝았네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기 바랍니다.

새해 처음으로 리뷰를 올리는 작품은, 척박한 한국 본격 추리물 시장에서 가장 왕성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는 도진기 작가의 신작 단편집입니다. 모두 다섯 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법의 체면"과 "완전범죄" 두 편은 좋습니다. 법을 잘 아는 작가가 법에 대한 딜레마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는 덕분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도진기 작가만 쓸 수 있을 법한 작품이에요. "완전범죄"는 본격물을 방불케 하는 추리가 펼쳐지기도 하고요.
"애니"는 다소 독특한 설정의 SF인데, 이 역시 설정만큼은 마음에 듭니다.

그러나 "당신의 천국"과 "행복한 남자" 두 편은 한마디로 망작이었고, 앞서의 세 편 역시 전개와 묘사 등 소설적인 완성도 측면에서는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습니다. 빼어난 설정과 아이디어를 제대로 완성하지 못하는 작가의 단점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점수를 줄 만한 흥미로운 지점은 분명 있는데, 아쉽게도 단점이 더 많습니다.

수록작별 상세한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법의 체면

호연정 변호사에게 변상일이 찾아와 자신의 장물 취득 사건 3심 변호를 의뢰했다. 변상일의 유죄가 확실했지만, 시한부 인생이라는 변상일의 청에 못 이겨 호연정은 사건을 맡았다. 그러나 예상대로 상고는 기각되었다.

그러나 상고 기각 확정 후, 변상일이 강원도 홍천에서 일어났던 ‘청테이프 살인사건’의 유력 용의자로 체포되었다. 증거는 현장에서 발견된 변상일의 쪽지문이었다.

호연정 변호사 시리즈 단편입니다. 변상일의 조작으로 유죄가 확정된 장물 취득 사건이 일어난 날짜가 청테이프 살인사건 발생 일자와 같아서, 변상일이 진범이라는게 확실하지만 풀어줄 수 없는 딜레마를 다룹니다. ‘법의 체면’이라는 제목 그대로이지요. 법관들은 체면 때문에 이전 판결을 뒤집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딜레마는 굉장히 흥미롭고, 변상일이 과거 음주운전 사고로 딸과 아내를 잃었는데, 음주운전 가해자 장봉호가 집행유예로 풀려났던 탓에 장봉호와 법에 복수하려고 결심했다는 서사도 설득력 있습니다.

하지만 초반 변상일의 범행 과정을 1인칭의 단순 강도 살인 사건처럼 묘사한건 반칙입니다. 독자는 변상일이 진범이 아니라고 오해하게 되니까요. 전개에 필요했던 부분도 아니니 빼야 합니다. 마지막 변상일의 자살도 좋은 마무리는 아니었고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흥미로운 내용을 잘 풀어냈지만, 불필요한 군더더기가 아쉽습니다.

당신의 천국

국회의원 최명환에게 상담 차 장애가 있는 박성혜라는 젊은 여성이 찾아왔다. 그녀는 명환에게 사람을 죽였다는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내용의 거의 대부분은 막장 드라마를 쓰다가 시민단체로 고발당하고 취조당한 끝에 자살 시도로 몸을 망쳤다는 박성혜의 1인칭 고백입니다.

그러나 장황한 고백은 현실적이지도 않고, 설득력도 낮고 시시합니다. 박성혜가 최명환에게 살의를 품은 이유도 별로 와 닿지 않고요. 무슨 논리인지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최명환을 살해하는 방법도 생수통에 독을 풀었다는 것인데, 한쪽 다리가 불편한 여자가 생수통에 어떻게 약을 풀었는지, 청산가리는 어디서 구했는지에 대한 설명도 없습니다.

그리고 묘사도 문제입니다. 28살 여성의 한 서린 독백으로는 도저히 보이지 않았습니다.

유일하게 건질 만한 점이라면 박성혜가 ‘신시아’라는 필명으로 썼다는 막장 드라마의 내용뿐인 막장 범죄물입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완전범죄

석지연은 동거하던 직원 방미래 과실치사 혐의로 조사를 받았다. 사인은 의심할 바 없는 뇌출혈이었고, 방미래가 술에 취한 줄 알아 방치했다는 변명은 설득력 있어 보였다.

의사 출신 김 검사는 피해자가 거액의 질병 사망 보험에 가입했다는 점을 근거로 부작위에 의한 살인으로 기소하는데...

과실치사로밖에 보이지 않는 완전범죄가 등장하는 본격 추리물이자, 법정에서의 공방이 벌어지는 법정물 단편입니다.
작 중, 김 검사가 풀어야 하는 수수께끼는 아래와 같습니다.

  1. 동기. 단지 직원 방미래에게 숙식을 제공할 뿐인 사장 석지연이 그녀를 살해할 이유는 무엇일까요? 마음에 들지 않으면 내보내면 그만입니다.
  2. 범행 방법. 마침 그 시간에 뇌출혈이 일어날 것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알았을까요?

김 검사는 첫 번째는 거액의 보험으로, 두 번째는 평소 피해자에게 뇌출혈 전조 증상이 있다는 점을 눈치챈 범인이 보험 가입을 유도했고, 뇌출혈이 일어났을 때 방치했다는 답을 내놓습니다. 그리고 방미래의 연인 류소이의 증언 등을 통해 법정에서 전조 증상은 2개월 전 부터 있었다는게 밝혀지고요.

이러한 본격 추리적인 재미에 더해 법적인 딜레마 부분도 무척 흥미롭습니다. 의사 출신인 김 검사는 방미래의 의료 기록을 보고 그녀가 뇌출혈을 일으켰을 때 거의 즉사했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이는 석지연이 방미래를 방치했던건 방미래의 죽음과 인과관계가 없는 행동이기 때문에, 그녀를 살인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의미이지요. 

이렇게 본격물적인 요소와 법의 논리적 허점을 파고드는 딜레마는 정말 괜찮습니다.
그러나 황 판사가 의사인 아내를 통해 방미래의 사인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동성애에 대한 극심한 혐오로 이를 숨긴 채 사형 선고를 내렸다는 결말은 작품을 완전히 망쳐버립니다. 아쉽기만 하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애니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꾸려가던 동한은 금사원 박사의 연구에 피험자로 응모했다. 하룻밤에 한 사람의 한 평생에 대한 꿈을 꾸게 해 주는 ‘영생’ 실험이었다.

설정은 정말 멋집니다. 한 평생의 꿈을 꾸게 하면 결국 그것이 영생에 가깝다는 발상은 정말 혹할 만 하니까요. 친구 수민에게 사 주었던 전기 충격기로 뇌에 삽입된 칩을 제거한다는 결말도 작가의 작품치고는 보기 드물게 깔끔합니다.

하지만 연구로 만들어진 ‘꿈’에 자아가 생겨 본체를 지배하려 한다는 전개는 뻔합니다. 설명도 충분하지 않아 와 닿지 않고요. 애니와의 사투 역시 박진감은 넘치지만, 세 번에 걸쳐 반복되는 탓에 지루하게 느껴집니다.

그럼에도 설정과 마무리가 군더더기 없이 정리되어 있다는 점은 마음에 듭니다. 다른 작품들도 이 정도로만 정리되었다면 훨씬 좋을텐데 말이지요. 별점은 2.5점입니다.

행복한 남자

꽃뱀에게 당한 한 남자의 약 반년에 걸친 일기 형식을 빌린 독백으로 내용도 뻔하지만, 그나마의 설득력조차 낮습니다. 문체가 30대 남자의 글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구식이고, 과장되고 낡은 표현이 많기 때문입니다. 죽음을 맞는 결말 역시 식상하며 전혀 현대적이지 못합니다.

낡은 설정을 낡게 풀어낸, 새로운 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탓에 2025년에 읽을 이유가 없는 망작입니다. 별점은 1점입니다.

2020/12/29

2020 내 블로그 리뷰 총 결산

열 일곱번 째 블로그 리뷰 총 결산입니다. 블로그 나이가 성인이 될 날도 얼마 안 남았네요.

올해 특징이라면, 독서가 취미이신 모든 분들이라면 마찬가지겠지만 독서량이 엄청나게 늘었다는 겁니다. 이 결산을 시작하고 책을 가장 많이 읽있네요. 코로나 사태로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졌기 때문입니다.
숫자로 정리해보면, 2020년 읽은 책 중 리뷰를 남긴 책은 추리 / 호러 장르문학 77 (48)권, 기타 장르문학 4 (1)권, 역사서 9 (15)권, 디자인 or 스터디 4 (4), Food 및 구루메 관련 도서 25 (11)권, 기타 도서 14 (18)권으로 모두 133 (97)권입니다(괄호는 작년). 작년보다 30% 정도 늘었군요. 분야로 따지면 추리 / 호러 등 장르 문학과 Food 및 구루메 관련 책을 많이 읽은게 눈에 띄고요. 방콕하고 있는 동안에는 아무래도 좀 자극적이고 재미있거나, 주요 관심사를 찾아 읽기 마련이니 당연합니다.

그럼 언제나처럼 각 항목별 베스트 - 워스트를 소개해드립니다.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올해 발표된 작품 기준이 아니라 제가 올 한해 보고 읽은 것들 기준입니다.

2020년 베스트 추리소설 : "흉가" 

올해 읽은 작품 중 별점 3점 이상 작품은 21편입니다. 꽤 수확이 많았던 한해였어요. 읽은 작품 중 1/3 가까이가 수작 이상인 셈이니까요. 이중 올해의 베스트는 "흉가"입니다. 무섭고 재미난 이야기 전개도 훌륭하지만 복잡한 설정, 복선 회수, 결말까지 완벽했습니다. 욕설, 육두문자 없이 초등학생을 주인공으로 끌고간다는 점도 아주 마음에 들었고요. 코로나로 외출도 못하는 더운 여름 휴가철에 탐독할만한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아울러 올해 읽은 단편집 중에서 최고의 단편도 뽑아 보겠습니다. 별점 4점 짜리 작품으로는 아카가와 지로 "유령 열차" 수록작인 "비 옷을 입은 시체", 곤도 후미에의 "타르트 타탱의 꿈" 수록작인 "텅빈 카슐레", 스티븐 킹의 "악몽과 몽상 1" 수록작인 "돌런의 캐딜락", 마쓰모토 세이초의 "현란한 유리" 수록작인 "비와 2층", 미쓰다 신조의 "괴담의 테이프" 수록작인 "빈 집을 지키던 밤", 이사카 고타로의 "남은 날은 전부 휴가" 수록작인 "작은 병정들의 비밀 작전", "세계 미스터리 걸작선 1"수록작인 "탐정 스페이드", "나의 사적인 여자친구" 수록작인 "푸른 히아신스 향기", "뇌물과 부패"가 있습니다.
그러나 별점 4.5점짜리 작품이 무려 2편이나 있어서 4점 정도로는 후보가 될 수 없었어요. 별점 4.5점을 받은 작품은 미야베 미유키의 "희망장" 수록작인 "희망장"과 "세계 미스터리 걸작선 2" 수록작인 "두 개의 양념병"입니다.
이 중 베스트로는 "희망장"을 선정합니다. "두 개의 양념병"도 걸작이지만, 발표된지도 오래되었고 워낙에 유명한 작품이니 양보해도 될 것 같네요.

2020년 워스트 추리소설 : "너무 예쁜 소녀" 

많이 읽은 만큼 실망스러웠던 작품도 많았습니다. 75권 중 별점 2점 이하 작품이 28편이었거든요. 그래도 평균 이하 작품이 2/3를 넘었던 작년보다는 1/3에 불과하니 다행이라고 해야겠지요.

그러나 졸작 오브 더 졸작, 정말로 종이가 아깝고 나무에게 미안한 별점 1점의 작품도 세 편이나 됩니다. "너무 예쁜 소녀", "콜드게임", "루팡의 딸"이 그 주인공이지요. 이 중 워스트로는 "너무 예쁜 소녀"를 선정합니다. "콜드게임"은 잔혹한 왕따 가해자를 편드는 듯한 설정이 문제였을 뿐 재미면에서는 나름 합격점을 줄 만 했고, "루팡의 딸"은 최소한 짧기라도 하니까요. "너무 예쁜 소녀"는 추리도 없고 스릴도 없는데 길기까지한 완벽한 시간 낭비였습니다. 끝까지 참고 읽은 저에게 상을 주고 싶습니다.

2020년 베스트 / 워스트 기타 장르문학 : 

올해 기타 장르문학은 4권만 읽었는데 모두 고만고만했습니다. 별도의 베스트, 워스트는 없습니다.

2020년 베스트 역사 도서 : "일본 과학기술 총력전" 

올해는 아홉 권밖에 읽지 않았는데 일곱 권이 별점 3점 이상이었습니다. 별점 4점짜리 책도 "펜슬 퍼펙트", "일본 과학기술 총력전", "의식주, 살아있는 조선의 풍경"의 세 권이나 되고요. 

이 중 베스트로는 "일본 과학기술 총력전"을 꼽겠습니다. 일본이라는 나라를 알기 위한 핵심적인 정보를 제공해 줄 뿐 아니라, 재미도 있고 가격까지 저렴하기 때문입니다.

2020년 워스트 역사 도서 : 

올해 역사 도서는 작년과 마찬가지로 가장 나쁜 별점이 2점이었습니다. 이 정도로 워스트로 꼽기에는 너무 가혹하기에, 올해는 별도로 선정하지 않겠습니다. 역사 도서는 대체로 선방한 한해였어요.

2020년 베스트 디자인 or Study : "명작순례" 

이쪽 분야 책들은 도판만 괜찮아도 평균 이상은 해 줍니다. 그래서 실패가 별로 없는 분야인데, 이 책은 그 중에서도 올해 유일의 별점 5점을 받은 책이에요.요. 수록된 글들도 좋고, 도판까지 완벽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책을 사지 않으면 무슨 책을 사겠습니까.

2020년 워스트 디자인 or Study : 

올해 이 분야는 네 권 밖에는 읽지 않았는데 가장 나쁜 별점이 2.5점입니다. 그래서 올해는 워스트 도서가 없습니다.

2020년 베스트 Food / 구루메 도서 : "커리의 지구사" 

'지구사' 라는 이름으로 출간된 식문화 역사 시리즈 중 한 권. 제가 읽었던 시리즈 중에서는 최고작입니다. 커리에 대한 역사는 물론, 세계화된 과정과 세계속 커리 요리들, 그리고 커리의 현재까지 쉽게 파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커리를 좋아하는 모든 분들께 추천드립니다.

2020년 워스트 Food / 구루메 도서 : "중세 유럽의 레시피" 

제목에서 기대했던 중세 유럽 요리에 대한 깊이있는 정보는 커녕, 최소한의 재미와 자료적 가치도 기대하기 어려운 별점 1점짜리 망작입니다. 담고있는 내용에 비하면 가격도 어처구니 없는 수준이고요. 저처럼 낚이는 분이 없으면 좋겠네요.

2020년 베스트 기타 도서 : "탱크의 탄생" 

올해 읽은 기타 도서는 특출나게 빼어난 책은 없었지만, 평균 이상 재미를 전해주는 괜찮은 책들이 제법 많았었습니다. "심리 조작의 비밀", "탱크의 탄생", "망령의 기억", "깃털 도둑"이 별점 3점을 받은, 그런 책들이었지요.

다 좋은 책이지만 이 중 베스트로는 "탱크의 탄생"을 꼽겠습니다. 제가 아주 좋아라하는 '도감' 분야의 책으로 도판, 일러스트가 완벽하게 제 취향이었기 때문이에요. 이 책의 가장 단점은 제법 비싼 가격일 뿐이에요. 무기 도감을 좋아하신다면 놓치지 마시길.

2020년 워스트 기타 도서 : "편지" 

히가시노 게이고의 장편인데 장르 문학이 아니라 드라마라서 기타 도서로 분류하였습니다. 작위적이고 뻔한 전개도 감점 요소이지만 무엇보다도 핵심 주제 - 범죄자 가족이 고통을 받아야 하는가? - 에 대해 주인공의 심정을 공감하기 어려웠기에 좋은 점수를 줄 수 없었어요.

2020년 베스트 Movie : "포드 V 페라리" 

많은 영화를 본 건 아니지만 올해 최고의 영화는 코로나 사태 직전 영화관에서 감상한 이 영화입니다. 남자 가슴을 뛰게 만드는 웅장한 화면과 음향 효과가 발군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마 영화관에서 보지 않았다면 베스트 영화는 다른 작품이 되었을거에요.

그나저나, 언제쯤 극장에서 영화를 다시 볼 수 있을까요?

2020년 워스트 Movie : "머더 미스터리" 

'정통 미스터리'라고 소개된 글에 낚였네요. 일견 전형적인 미스터리물로 보이지만, 실제 영화는 전형적인 헐리우드 코미디 영화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추리적으로 건질건 전무해요. 게다가 별로 웃기지도 않고요. 왜 애덤 샌들러를 요새 보기 힘든지 새삼 느끼게 해 준 망작이었습니다.

2020년 베스트 Comic - 추리 or 호러 : 

올 한 해는 "시마 코사쿠의 사건부"를 제외하고는 추리 or 호러 만화는 전통의 시리즈인 Q.E.D와 C.M.B의 후속권을 읽었을 뿐입니다. 이 중 최고는 "씨엠비 CMB 박물관 사건 목록 36" 이었습니다. 수록작 중 "산의 의사"와 "카스미장 사건"이 아주 좋았기 때문입니다. 별점 3.5점은 충분합니다. 

에피소드별로 살펴보자면 "씨엠비 CMB 박물관 사건목록 35" 수록작인 "도토리와 솔방울", "씨엠비 CMB 박물관 사건목록 39" 수록작 "상상 속 살인", "Q.E.D iff 12" 수록작 "재생의 시간"도 별점 3.5점의 좋은 작품들이었습니다.

2020년 워스트 Comic - 추리 or 호러 : 

책 전체 평균 별점은 2점이 가장 낮은데, 이 정도로 워스트로 꼽기는 좀 가혹하지요. 그래서 에피소드로 워스트를 꼽아 봅니다. "씨엠비 CMB 박물관 사건목록 37" 수록작인 "크로스로드"와 "종려나무 동전"이 별점 1점입니다. 동기, 트릭, 진상 모두 작위적이고 납득하기 어려운 졸작이었어요.

2020년 베스트 Comic - 기타 : "모로호시 다이지로 자선 단편집" 

2020년 만화들은 별점 3점짜리가 무려 14편이라서 많아서 한 편을 꼽기 어렵네요. 그래도 이 중에서 딱 한 편!을 꼽으라면 "모로호시 다이지로 자선 단편집"입니다. 다른 단편집에서 이미 접했었던 작품들이 많이 수록된 탓에 감점했을 뿐, 모로호시 다이지로라는 작가에 대해 잘 알려주는 좋은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단편집을 읽어보지 않고 이 책만 읽는다면, 별점 4점도 거뜬했을거에요.

2020년 워스트 Comic - 기타 : "지구빙해사기" 

대가 다니구치 지로의 작품이 불명예스러운 올해의 워스트네요. 당대를 풍미했던 오토모 가즈히로와 미야자키 하야오의 이야기, 설정, 작화와 분위기를 적당히 섞어 만든 하이브리드 혼종이나 결과물은 전혀 그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결산평 : 

이글루스 블로그 운영도 17년 째인데, 올 한해가 가장 변화도 많고 드라마틱했습니다. 다른 해에 비해 유별나게 책을 많이 읽기도 했고요. 그러나 코로나라는 예상치못한 질병 탓이라서 마냥 좋아할 수는 없네요. 코로나 때문에 많은 분들이 힘들어 하셨고, 지금도 계속 힘든 분들이 계실 터라 가슴도 무척 아프고요. 모쪼록 코로나 사태가 빨리 진정되어, 기쁜 마음으로 블로그 운영을 비롯한 일상 생활을 보낼 수 있게 되면 좋겠네요.

여러분들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새해에는 원하시는 일 다들 이루시는 그런 한해 되시기를 바랍니다. 작년, 그리고 재작년에도 말씀드렸지만 제 블로그를 찾아주시는 분들이라면 남들이 관심갖지 않는 사소하고 디테일한 것들에도 관심을 가지시는, 정말로 세심한 분일테니 내년에는 더욱 잘 되실게 분명합니다. 사랑합니다~!

2021/06/11

범죄 캘린더 - 엘러리 퀸 / 배지은 : 별점 1.5점

범죄 캘린더 - 4점
엘러리 퀸 지음, 배지은 옮김/검은숲

엘러리 퀸 단편집으로 비교적 후기작입니다. 엘러리 퀸이 주인공인 라디오 드라마를 책으로 엮은 결과물이라고 합니다.

읽다보니 확실히 라디오 드라마구나 싶었습니다. 설득력있는 동기, 복선으로 뒷받침되는 탄탄한 이야기 구조보다는 극적인 상황을 쉽게 전달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트릭도 정교하기 보다는 말로 전달하기 쉬운 트릭들이고요. 

그런데 문제는 책으로 읽을만한 이야기는 아니라는 겁니다. 트릭들은 추리 퀴즈 수준이고, 이야기 구조가 단순한 탓에 동기와 사건이 벌어진 상황에 대한 설득력도 낮은 탓입니다. "~ 모험" 이라는 제목 때문에 걸작 단편집이었던 "엘러리 퀸의 모험" 수록작 수준이라고 생각했는데, 여러모로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또 '캘린더'라는 제목답게 1월부터 12월까지 매월 한 편씩의 이야기를 수록하고 있는데, 해당 월에 이야기가 진행될 필요가 있었던 작품은 많지 않습니다. 3월의 소득세 신고, 5월의 전몰 장병 기념일 정도만 특정 날짜와 사건이 연결되어 있을 뿐이에요. 10월의 할로윈과 12월 크리스마스에 사건이 벌어지는 두 작품은, 날짜를 사건과 무리하게 연결해서 오히려 거부감이 드는 망작이었고요.

그래서 전체 평균한 별점은 1.5점입니다. 라디오라면 모를까 책으로는 점수를 줄 부분이 믾지 않고, 권해드리기도 어렵습니다. 엘러리 퀸의 이름만 믿고 읽으시면 실망하실 거에요.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내부자 모임의 모험" 

이스턴 대학교의 유서깊은 야누스 클럽의 멤버 빌 업다이크가 엘러리 퀸을 찾아왔다. 야누스 클럽은 13학번들로 이루어진 모임으로, 현재 생존자는 7명 뿐이었는데 그 중 3명이 최근 갑작스럽게 사망했다. 업다이크는 야누스 클럽 안에 5명으로 이루어진 내부자 모임이 20만달러라는 돈을 공유하고 있었으며, 자신과 또 다른 멤버 중 생존자가 모든 걸 갖게 될 것이라고 고백했다. 그리고 48시간 뒤, 빌 업다이크는 살해되고 말았다.

1월의 야누스 클럽 정기 모임 날짜에 맞춰 벌어지는 이야기로 야누스 클럽이니, 내부자 모임이니 뭔가 있어보이는 설정을 장황하게 이야기하고 있지만, 핵심은 암호 트릭입니다. 피해자 업다이크가 내부자 모임 멤버들 이름에 공통점이 있다는 말을 남겼었고, 그 말이 유일한 증거가 되기 때문이지요. 

이 트릭은 미국인이 아니면 풀 수 없는, 하지만 미국인이라면 쉽게 풀었음직한 트릭입니다. 우리나라 식으로 멤버들 이름을 변주하자면, 황연세, 한국민, 양홍익, 김아주, 서인하인 식이지요. 업다이크의 경우는 부부의 이름을 합쳐 윌러임 앤 메리 칼리지라는 약간의 변주가 들어가기는 하지만, 이 역시 우리나라식으로 박성균, 최관이라는 식이니 딱히 정교한 장치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한 마디로 라디오에 적합한, 추리 퀴즈에 가까운 아이디어였습니다. 전개도 정교하지 못하고요. 별점은 1.5점입니다. 3명의 회원이 우연찮게 자연사한 뒤, 살의를 품었다는 동기를 잘 풀어내는게 더 나았을 겁니다.

"대통령의 5센트 은화 모험" 

미모의 아가씨 마사 클라크는 전보로 엘러리 퀸과 죠지 워싱턴 관련 골동품 수집가 패치, 희귀 주화 수집가 체크 남작부인, 희귀 서적 수집가 쇼 교수를 불러모았다. 죠지 워싱턴이 남긴 칼과 은화를 찾기 위함이었다. 이는 오래 전 죠지 워싱턴이 마사의 조상 시미언 클라크를 만났을 때 농장에 묻었던 물건들이었다.

2월 죠지 워싱턴 생일에 맞춰 벌어지는 이야기인데 추리적으로는 눈여겨 볼 부분이 전무합니다. 시미언 클라크가 남긴 일기에 따르면, 워싱턴이 당시 심었던 나무 중 하나 아래에 칼과 은화를 묻었다고 쓰여 있거든요. 이건 암호도 아닙니다. 당연히 별다른 트릭도 없어서 추리의 여지도 없고요.

이 말에 따라 마사 클라크 가족이 워싱턴이 심었다는 나무 12그루 밑을 모두 파 보았지만, 칼과 은화를 발견하지 못했던 이유는 더 황당합니다. 원래 13그루를 심었는데, 한 그루가 죽어 버린 탓이라는데 정삼각형 모양으로 간격까지 정확하게 심은 12그루의 나무는 멀쩡하고, 삼각형 한 가운데 심은 나무만 죽었다는건 지나치게 작위적입니다. 

게다가 13그루 나무를 심었다는 엘러리 퀸의 주장도 설득력이 낮습니다. "미국 건국은 13개 주였기에 나무는 13그루를 심었어야 한다!"라는게 근거의 전부인 탓입니다. 주장을 뒷받침할 증거는 아무 것도 없어요. 또 애초에 농장을 잃을 위기였다면, 나무 밑이 아니라 나무 근처 땅을 모두 파 보는게 정상 아니었을까요? 전개도 이상합니다. 이야기 처음에 패치 등 관계자들을 불러 모을 필요는 없었어요.

이런 문제 투성이의 본편 이야기보다는, 엘러리가 대통령을 만났는데 그게 누구인지 궁금하게 만드는 도입부가 추리적으로 더 볼만했습니다. 돈이 많지만 자동차를 소유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는 이야기인데, 꽤 그럴듯했거든요. 엘러리의 비서 니키가 미인인 마사 클라크를 질투하는 묘사도 재미있었고요. 하지만 그 외에는 건질게 거의 없네요. 추리물이라고 할 수도 없고요. 별점은 1.5점입니다.

"마이클 마군의 3월 15일 모험" 

퀸 경감의 옛 동료였던 사립탐정 마이클 마군이 엘러리를 찾아왔다. 3월 15일 소득세 신고를 앞두고 관련 서류를 도난당했기 때문이었다. 서류 도난 당시, 사무실에서 갑자기 화재가 발생한게 이상하다고 생각한 엘러리 일행은 다시 사무실에 방문하지만 그곳에서 사무실을 관리하는 카슨 부인이 참혹하게 살해된걸 발견하는데...

이야기 초, 중반부까지는 "왜 도둑은 소득세 신고와 관련된 서류를 훔쳐갔을까?"가 핵심입니다. 이는 마군의 서류 중에 사교계 지배자 벤돔 부인의 딸이 도벽이 있다는 증거가 있기 때문으로 밝혀지고요. 이렇게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 기묘한 사건이 특별한 강력 범죄와 연결되는 전개는 재미있었습니다. 소득세 신고일이 3월 15일이고, 소득세 신고용 자료가 협박의 근거가 된다는 식으로 3월이라는 날짜와 이야기를 엮은 방식도 마음에 들었고요.

그러나 마군이 화재 소동을 일으킨 뒤 서류가 도난당한걸로 위장했고, 이를 카슨 부인이 눈치채 죽였다는 진상은 여러모로 불합리합니다. 이게 사실이라면 엘러리를 찾아와 서류가 도난당했다고 하소연할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앨러리를 찾아가지 않았다면 그냥 강도가 살해한걸로 무마할 수도 있었을테니까요. 엘러리 말대로 벤돔 부인을 협박할 생각을 버리고 카슨 부인을 죽인거라면, 더더욱 서류가 도난당했다는걸 드러낼 필요는 없었어요. 협박할 생각을 버렸다면, 카슨 부인에게 불을 지른 이유를 둘러대는게 살인보다는 훨씬 나은 해결책이었을겁니다. 살인을 저지르고 누명을 뒤집어 씌우려고 했던게 오피스를 쉐어하고 있는 사람들이었다는 안일한 발상도 납득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들 모두 알리바이가 확실했다면 어쩔 생각이었을까요?

마군이 서류가 도난당했다고 주장한 시점보다 나중인 신문지가 들어있었던 증거는 명확했지만, 이러한 이유들로 아주 잘 만든 이야기로 보이지는 않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황제의 주사위 모험" 

퀸 경감은 엘러리, 니크와 함께 오랜 친구 짐 해거드의 가족을 만나기 위해 여행을 떠났다. 역으로 마중나온 짐의 아들 마크 해거드는 아버지 짐이 살해당했다며 10년 전 사건 이야기를 꺼냈다. 해거드 가족은 아버지를 쏜 건 가족 중 한 명이라며 지난 10년간 지옥처럼 살아왔다고 말했다. 엘러리는 짐이 죽었을 때 손에 쥐고 있던 '황제의 주사위'에 주목해서 범인을 알아내는데...

짐이 쥐고 있던 주사위는 일종의 다이잉 메시지였습니다. 두 개 중 한개가 항상 6만 표시한다는 의미로, 6번 피스톨에 의해 살해당했다는걸 의미했던 거지요. 그런데 이 뒤는 가관이에요. 6번 피스톨은 왼손잡이가 잡기에 용이해서, 가족 중 유일한 왼손잡이인 딸이 범인이라는 추리가 펼쳐지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됩니다. 총을 쏘는 것도 아니고, 꺼내는데 왼손잡이냐 아니냐가 뭐가 중요할까요? 중요했다 한 들 이 정도로 딸이 범인이라고 주장하는건 불가능합니다. 최소한 그 총은 '왼손잡이만 잡을 수 있었다'는걸 명확하게 알려주었어야 했는데 그런 설명은 전혀 등장하지 않거든요. 칼리굴라와 주사위 속임수에 대해 이런저런 소개도 이야기에는 하등 상관이 없는 쓸데없는 잡지식에 불과했고요.

무엇보다도, 3월 마지막 날에 수수께끼를 풀어내며 이 모든게 퀸 경감과 니키, 해거드 가족이 함께 4월 1일 만우절에 엘러리 퀸을 속이기 위함이었다는 반전은 어처구니가 없었어요. 40년 전 결혼식과 10년 전 40번째 결혼 기념일에 선물을 드렸다는 모순은 말장난이면서도, 너무 명확하게 드러나서 속임수같지도 않았고요.

그래서 별점은 1점입니다. 점수를 주기 어려운 망작입니다.

"게티즈버그 나팔의 모험" 

엘러리가 니키와 함께 한 충동적인 게티즈버그 여행 중에 자동차가 고장나버렸다. 그 때 잭스버그 군수 스트롱이 그들을 도와준 뒤, 마을에서 진행하는 남북전쟁 전몰장병 추모일 행사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 날 남북전쟁 생존자가 게티즈버그 나팔을 부는게 전통이었는데, 작년에 생존자 중 가장 고령이었던 케일럽이 나팔을 불다가 사망했다는 이야기였다. 그는 고령이었지만 건강했고, 다른 생존자 2명과 남북 전쟁 중 찾았던 보물에 대한 비밀을 공유하고 있었기에 군수는 수상쩍음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다음날, 전몰장병 기념일 아침에 또 다른 생존자 애브너 체이스가 뇌졸증으로 사망하고, 기념일에서는 나팔을 불던 마지막 생존자 잭 비글로마저 나팔에 묻힌 독으로 죽고 마는데...

어디선가 읽었던 작품. 4월 전몰장병 기념일에 맞춘 이야기는 깔끔합니다. 노인들이 이야기하던 거액의 보물은 휴지조각과 같은 남부 정부가 발행했던 지폐라는 설정도 좋았고, 애브너 체이스의 손녀 시시가 진범이라는 반전도 그럴듯했거든요. 이를 드러내기 위한 엘러리의 추리도 감탄을 자아냅니다. 잭 비글로가 마지막 생존자로 남게된건 애브너 체이스가 급작스럽게 사망한 우연 덕분이었다는게 핵심이지요.

하지만 이 추리로는 시시가 진범인지, 잭 비글로의 손자 앤디가 진범인지는 드러낼 수 없습니다. 앤디가 할아버지가 남긴 돈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기에, 그 돈을 보다 빨리 갖고 싶어서 할아버지를 죽였을 가능성도 있으니까요. 즉, 엘러리는 그냥 용의자를 한 명 추가한거에 불과합니다. 이래서야 법정에서도 유죄 판결을 내리기는 쉽지 않았을 거에요.

그래도 본격 추리물로는 완벽한 얼개를 갖추고 있고, 이야기도 재미있게 전개되는 수작입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약 손가락의 모험" 

트로이는 딸 헬렌 결혼식에 엘러리를 초대했다. 헬렌을 흠모했던 루즈 때문이었다. 그는 헬렌이 헨리 예이츠와 결혼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살의를 드러내다가, 이후 갑자기 변심해서 사죄하고 신랑 들러리로 결혼식에 참석할 예정이었다. 심한 불안감을 느낀 트로이의 부탁으로 엘러리는 벨리 경사와 결혼식에 참석해서 루즈를 철저하게 감시했다. 그러나 식 직후 헬렌은 결혼 반지 속 독침에 의해 살해되고 마는데...

이 작품의 특이한 점은 엘러리가 범행을 막지도 못했고, 경찰보다 범인을 찾아내는데 늦어버린 완벽한 실패담이라는겁니다. 엘러리는 루즈가 아닌 신랑 헨리 예이츠를 범인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근거는 결혼만 하면 헬렌의 유산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는 것이고요. 하지만 결혼 반지는 왼손에 끼고, 압력을 가해 독침이 튀어나오게 하려면 왼손으로 악수를 해야 했기 때문에 왼손잡이가 범인이다! 라는 논리로 루즈가 범인이라는게 드러납니다. 이 사실은 흉기인 반지 조사로 경찰이 밝혀내고요. 이렇게 엘러리는 체면만 구긴 셈이며, 사건은 경찰 수사를 통해 종료되기 때문에 추리물로는 볼 여지가 많지 않습니다.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1점. 추리적으로 별볼일 없고, 이렇게 길게 풀어낼 필요도 없는 졸작입니다.

"추락한 천사의 모험" 

센터 저택에는 기괴한 키마이라 조각이 튀어나와 있었다. 현재 센터 제약 사장인 마일스의 아내 도로시는 니키의 친구로, 그녀가 니키에게 다른 남자와 사랑에 빠졌다는걸 고백한 뒤 마일스가 저택 지붕에서 떨어진 키마이라 조각상에 깔려 죽을뻔한 사건이 일어났다. 그 조각상은 마일스의 동생 데이비드의 아틀리에 지붕 쪽에 위치했었다. 데이비드를 의심한 마일스는 엘러리 퀸에게 관련된 조사를 의뢰했고, 데이비드 아틀리에를 조사하기 위해 엘러리가 방문한 날 마일스는 총상을 입은 채 발견되었다. 데이비드는 실종되었고, 도로시가 범행을 자백하는데...

도로시의 불륜 상대가 밝혀지기 전 까지, 범인은 데이비드 아니면 마일스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데이비드는 마일스만 없으면 센터 제약과 그 아내까지 손에 넣을 수 있었고, 마일스는 아내의 불륜에 대한 복수심으로 데이비드를 실종으로 위장해서 죽이고, 다친걸로 위장했을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진상은 여자를 차지하기 위해 비서 하트가 폭죽으로 알리바이를 만든 뒤 살해했다는 겁니다. 즉, 도로시가 사랑에 빠진게 마일스의 동생 데이비드가 아니라 비서 하트였다는 반전이 이야기의 핵심인데, 상식을 깨는 맛은 괜찮았습니다. 7월 4일 독립 기념일과 '폭죽'을 연결한 아이디어도 좋았고요. 캘린더라는 주제에도 잘 맞을 뿐더러, 간단한 트릭이지만 효과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진상을 드러내는 핵심 증거 중 하나가 '떨어진 키마이라 조각상'이라는 전개도 마음에 들고요.

물론 편의적인 전개를 위해 설명하지 않고 넘어가는 부분도 없지는 않습니다. 마일스가 총에 맞았을 때, 누가 쐈는지 보지 못했다는게 대표적이지요. 여기서 그가 죽지 않은 것도 단순히 운이 좋았던 것에 불과하다는 것도 작위적이고요. 차라리 죽는게 전개면에서는 더 깔끔했을거에요. 또 45Kg이나 되는 조각상에 데이비드를 죽인 뒤 매달아 물에 빠트리는게 혼자서 어떻게 아무한테도 들키지 않고 가능했을 일인지도 잘 모르겠네요. 도로시가 자기가 범행을 저질렀다고 자백한 이유가, 하트가 총을 쏘는걸 목격했기 때문이었다는 설명도 잘 이해는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정통 본격 추리 단편으로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이 정도면 평작은 충분히 되는, 군더더기가 별로 없는 잘 짜여진 단편이었으니까요. 별점은 2.5점입니다.

"바늘 귀의 모험" 

유명 탐험가 에릭슨은 결혼한 조카딸 잉가의 남편과 그 아버지에 대한 조사를 엘러리 퀸에게 의뢰했다. 잉가의 남편 홉스-왓킨스 부자가 에릭슨이 거주하는 섬에서 잉가와 자기를 살해하지 않을까 의심했기 때문이었다. 그 섬에는 캡틴 키드가 보물을 숨겨 놓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었고, 엘러리는 보물 찾기 핑계를 대고 섬으로 향하는데..

엘러리는 키드가 남겼다는 일종의 암호를 간단히 풀어내고 보물을 찾아내지만 그 보물은 키드가 묻은게 아니었다는 반전이 인상적이었던 작품. 그 증거가 보물 상자 속 '백금' 이라는 것도 좋은 아이디어였어요. 백금은 1900년대 이후 보석 셋팅에 이용되었기 때문으로, 박학다식한 엘러리에게 잘 어울리는 이야기였습니다. 보물은 홉스-왓킨스 부자가 훔친 장물로, 장물을 공식적으로 유통하기 위해 키드 전설을 이용했다는 앨러리의 추리도 감탄을 자아냅니다.

그러나 에릭슨이 죽기 전 쏜 총알이 발견되지 않은 이유는 롱 존의 의족에 박혔기 때문이라는건 많이 뻔했습니다. 그리고 롱 존이 홉스-왓킨스 부자와 공모했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그가 에릭슨을 단순한 탐욕으로 죽였다고 보는게 타당할 수도 있어요. 보물을 묻은게 부자라는게 증명될 수는 있어도, 그들이 에릭슨을 살해할 의도가 있었다는건 증명이 불가능했습니다. 롱 존이 자백한다 한들, 증거는 없으니까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롱 존을 이용해서 에릭슨을 죽이는 전개만 빠졌으면 훨씬 좋았을텐데 좀 아쉽네요.

"세 개의 R의 모험" 발로 대학 학장 발로 박사는 엘러리 퀸에게 편지를 보냈다. 미국 문학을 가르치는 칩 교수의 실종 때문이었다. 니키와 함께 미주리 주에 있는 발로 대학을 찾은 엘러리는 칩 교수 방의 핏자국, 그리고 도서관에서 대출 된 책을 통해 교수가 6월 30일 밤에 살해당했다고 추리했다. 그리고 칩 교수가 여름을 보낸다고 알려진 아칸소 주 통나무집에서 칩 교수의 백골화된 사체와 그가 쓰던 추리 소설인 "세 개의 R의 모험" 원고를 발견하는데...

칩 교수가 쓴 추리 소설대로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는게 핵심입니다. 하지만 이 모든건 연극이어고, 엘러리 퀸은 발견된 시체가 백골이었다는걸 토대로 진상을 추리해냅니다. 고작 10여주 동안 사체가 백골화될 수는 없기 때문이지요. 동기는 칩 교수가 쓴 추리 소설 홍보를 위해서였지요. 유명 탐정이 헛다리를 짚은 이야기를 기사화할 생각이었다고 설명되고 있습니다. 추리적으로 깔끔하고, 주어진 단서도 공정한 괜찮은 본격물이에요.

하지만 교수들이 꾸민 계획은 여러모로 부실했어요. 핏자국을 발견한 시점에 경찰을 부르지 않은 이유부터가 설명되지 않으니까요. 제가 탐정이라면 먼저 경찰에 신고하라고 조언했을 겁니다. 또 백골 사체가 이상하다는 근거도 빈약합니다. 사체를 백골로 만드는 무슨 방법을 썼을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설득력이 부족했기에 감점합니다.

"죽은 고양이의 모험" 

니키 포터 양은 저주받은 검정 고양이 모임 회합에 엘러리 퀸과 함께 참석했다. 10월 31일의 챈슬러 호텔에서의 비밀 회합은 니키의 친구가 개최한 할로윈 파티였었다. 파티 중 추리 게임을 하다가 참석자 중 한 명인 크롬비가 살해당했고, 동기는 그의 무분별한 여자 관계 때문으로 드러나는데...

핼로윈 파티에 대한 장황한 묘사를 빼면, 핵심은 한 가지입니다. 파티를 위해 복잡하게 꾸며놓은 호텔 방을, 불이 꺼져 있었던 추리 게임 당시 문제없이 지나갈 수 있었던 사람은 누구냐는 것이지요. 엘러리 퀸의 추리는 이 방을 꾸민 루시 트렌트가 범인이라는 것이었고요. 

하지만 방을 꾸몄다고해도 과연 어두운 상황에서 문제없이 지나갈 수 있었을까요? 또 파티가 시작하고 한참 뒤에 추리 게임이 시작되었다면, 다른 사람들도 외울 수 있지 않았을까요? 루시 트렌트 범인설은 이렇게 설득력이 약합니다. 복잡한 여자 관계가 동기인데, 정작 당사자가 아니라 그 동생이 복수했다는 설정도 영 와 닿지 않았고요. 

무엇보다도 이런 범행을, 세계 최고의 명탐정을 초대해서 추리 게임을 하는 동안 저지를 이유가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용의자가 될 만한 사람도 몇 명 없는데 말이지요.

그래서 별점은 1점입니다. 추리 게임이라는 작 중 소재처럼, 추리 퀴즈 수준의 졸작으로 점수를 줄 여지는 전무합니다.

"비밀을 폭로하는 병의 모험" 

추수감사절에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선물을 배달하던 엘러리 퀸과 니키는 우연히 방문한 프랑스 레스토랑이 마약을 밀매하고 있다는걸 알아냈다. 그 레스토랑에서 일하던 캐리가 마약 밀매 혐의로 구속되었는데, 그가 누명을 썼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경찰이 체포하기 전에 마약을 건넨 웨이터가 살해되는데...

우연히 방문한 레스토랑에서, 우연히 "샤토 디켐"을 주문하니 마약이 나오고, 우연히 탄 택시에서 그 이야기를 했는데 택시 운전사가 흑막이라서 그가 레스토랑 웨이터를 살해했다는 내용의 작품. 우연으로 점철된 전개로 실소를 자아내는 졸작입니다. 작품이 아니라 입문자용 추리 퀴즈라고 하는게 더 낫지 않을까 싶네요. 별점은 1점입니다.

"황태자 인형의 모험" 

입슨 양이 30년을 쏟아 부어 만든 인형 컬렉션인 '돌렉션'문제로 변호사 본들링이 퀸 부자를 방문했다. 컬렉션 중 가장 가치가 큰, 49캐럿 다이아몬드가 박혀있는 황태자 인형을 유명한 예술품 도둑 코머스가 훔치겠다고 예고했기 때문이었다. 입슨 양 유언으로 돌렉션은 크리스마스 이브에 백화점 전시가 예정되어 있었고, 퀸 부자는 직접 경찰과 함께 철통같은 방어망을 구축했지만, 인형은 결국 가짜로 바꿔치기 당하는데...

크리스마스를 무대로, 예고장을 보내는 전설적인 괴도가 등장한다는 만화같은 설정의 작품입니다. 

진상은 간단합니다. 변호사 본들링이 도둑 코머스였던 것입니다. 그가 마지막에 인형을 직접 바꿔치기 했던 것이지요.

하지만 본들링이 예고장을 보내면서까지 사건을 키울 필요는 없습니다. 과거 꾸준히 예고장을 보내왔다면 모를까, 예고장을 보낸건 이번이 처음이라고도 하니 더더욱 불필요한 행동이었어요. 다른 사람들을 변장시켜 경찰의 시선을 끈 행동 역시, 대역들이 체포되면 금방 드러날 유치한 작전이었고요. 그냥 다이아몬드가 사라진다면 본들링이 무조건 혐의를 받을 테니 그 혐의를 돌리기 위해서였다는 것도 말이 안됩니다. 본들링이 범인이라는 엘러리의 추리는 너무 당연해서, 그의 정체는 어쨌건 드러날 가능성이 높았으니까요. 이런 위험을 짊어질 이유가 있었을까요?

산타클로스로 변장해서 인형을 지켰던 벨리 경사의 우스꽝스러운 모습, 크리스마스를 무대로 한 작품다운 왠지모를 유쾌함과 활기는 좋았지만, 추리 퀴즈 수준밖에 안 되는 작품이에요. 별점은 1.5점입니다.

덧붙이자면 중반에 잠깐 라디오 극본을 그대로 옮긴 듯한 부분이 있는데, 의도인지 잘 모르겠지만 작품과 잘 어울리지는 않았습니다. 원래 라디오 극본이라는걸 알려주기 위한 의도였다면, 극본 전체를 부록처럼 수록하는게 더 낫지 않았을까 싶어요.

2026/03/29

캐시 아웃 (2024) - 렌들 에멧 : 별점 1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스페이드 에이스'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전설적 도둑 메이슨은 FBI 잠입 수사관 아멜리아에게 푹 빠졌다가 체포될 뻔한 다음 은퇴를 택했다. 그러나 자신을 뺀 일당이 동생 숀의 주도로 벌이던 암호화폐 강탈 작전에 문제가 있다는걸 알고 현장으로 향했지만, 곧바로 경찰에게 포위되고 말았다.
메이슨은 협상 전문가로 나타난 아멜리아와 밀땅을 벌이면서도, 안전하게 탈출하기 위한 플랜B를 고민하여 결국 회심의 카드를 손에 쥐게 되는데...

넷플릭스에 떴길래 별 생각없이 감상한 영화입니다. 오랜만에 본 존 트라볼타는 반갑더군요. 잔혹하거나 무겁게 끌고 가지 않아서 가볍게 볼 수 있다는 점도 좋았고요. 존 트라볼타와 크리스틴 데이비스의 중년 로맨스도 귀여워요.

그러나 그 외에는 뭐 하나 건질게 없습니다. 은행을 노리는 케이퍼 무비 장르물이라고 할 수 있는데, 범죄 계획이 케이퍼 무비라고 부르기 민망할 만큼 형편없는 탓이 큽니다. 숀의 계획이라고는 은행장을 데리고 개인 금고를 여는 것 뿐이었으니까요.

그 이후의 전개 역시 치밀한 준비나 단계별 장애물 돌파가 아니라, 우연과 억지로 상황을 이어 붙이는 식으로 흘러갑니다. 메이슨 일당은 개인 금고 안에서 특정 숫자가 찍힌 사진을 확보하고, 그것이 살리자르라는 거물 독재자의 비밀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하지만 개인 금고 속 사진에 표시된 숫자로 거대한 국제적 비밀에 접근한다는 설정부터 설득력이 크게 떨어지고, 애초에 그런 민감한 자료가 왜 그런 방식으로 보관되어 있었는지도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마침 은행장이 개인 서버가 있는 장소를 알고 있다는 설정도 뜬금없고, 그가 메이슨 일당을 그 장소까지 안내하는 상황도 이해가 안되고요. 그냥 모른다고 우겼으면 됐을텐데 말이지요.

결말은 그야말로 어처구니 없음의 결정체입니다. 메이슨 일당은 결국 경찰 특공대에 포위되고, 정상적인 범죄 영화라면 이 지점에서 가장 치밀한 탈출 설계나 마지막 반전이 나와야 합니다. 그런데 영화는 플라워스라는 살리자르의 부하를 불러낸 뒤, 그와 협상하는 방식으로 이 상황을 정리해 버립니다. 그것도 메이슨의 요구가 꽤 무리한데도 불구하고 플라워스가 이를 선뜻 들어주는 식이라서, 관객 입장에서는 긴장감보다 허탈함이 먼저 듭니다. 수많은 경찰과 특공대가 현장에 있었는데 결과적으로 어떻게 입을 막았는지, 어떤 식으로 사태가 수습되었는지도 충분히 설명되지 않고요. 

또한 경찰에게 포위된 상황임에도 느릿느릿한 전개는 분통터질 정도이며, 액션도 뭐 하나 눈에 띄는게 없습니다. 공간도 작은 은행 내부가 거의 전부라 돈을 들인 티도 나지 않아요. 한마디로 별점 1점도 아까운 완벽한 망작입니다. 케이퍼 무비의 외형은 빌려 왔지만, 장르를 이루는 핵심인 계획의 정교함, 실행 과정의 묘미, 반전의 설득력을 거의 갖추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시시하고, 진행 과정도 엉망진창이며, 중요한 설정과 결말까지 납득하기 어려워 장르 영화로서의 재미는 전무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