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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01

계간 미스터리 2024 봄호 - 김태현 외 : 별점 2점

계간 미스터리 2024.봄호 - 4점
김태현 외 지음/나비클럽

정말 오랫만에 읽어보는 계간 미스터리입니다. 이전 리뷰는 2011년이니 강산이 변해도 벌써 한 번 이상 변했네요. 싼마이틱하지만 강렬한 표지 일러스트에 호기심이 동해 읽게 되었습니다.

인터뷰, 리뷰를 제외하고는 거의 대부분 단편 소설로 구성되어 있는 전형적인 문예지 스타일이라는건 같은 미스터리 잡지"미스테리아"와 확실히 다른 점입니다. 심지어는 특집 기획 르포르타쥬 기사인 "인스타그램 주식 여신"마저도 소설 형식을 빌어 작성되어 있을 정도이니 말 다했죠. 인스타그램에서 주식 고수익을 인증하며 투자자를 끌어들인 뒤, 폰지 사기를 저지른 실화를 가명, 그리고 사건 핵심 관계자 시점의 묘사로 설명하고 있거든요.
그리고 수록 단편 6편 중 무려 5편이 한국 작가 작품이라는 것도 특징입니다. '한국 추리 문학의 본진'이라는 광고가 허언은 아닌 셈입니다.

수록 단편 중에서는 세 편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이 세 편에 대해 스포일러 가득 담아 짤막하게 감상을 남겨보겠습니다. 
첫 번째는 신인상 수상작인 "사이버 니르바나 2092"입니다. 유명 연예인 강준기가 전뇌 합선으로 사망한 사건의 진상을 캐는 전직 경찰의 활약을 그린 SF 추리물이지요. 이미 죽은 강준기의 뇌를 회사, 매니저들이 이용해서 그동안 살아있는 것처럼 꾸며왔지만, 전뇌에 복수 접속하는 사고로 뇌가 타버렸다는 진상은 괜찮았습니다. 하지만 과연 좋은 추리물이냐 하면, 그렇지는 않습니다. 강준기는 전뇌화 수술을 받지 않은 인본주의 인물이었다는 정도의 단서로는 진상을 추리해내는게 독자에게는 불가능한 탓입니다. 최신형 전뇌가 아니어서 과부하가 걸리면 타버린다는걸 독자는 알 도리가 없으니까요. 안티 부디스트 시위, 전뇌, 전뇌 연결, 신체 임플란트 등 "공각 기동대"로 대표되는 사이버 디스토피아 세계관도 지금 읽기에는 식상했어요. 저자의 욕심이 과했습니다.
"낭패불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는 악마가 인간을 타락시키는 이야기입니다. 흔하디 흔한 설정인데 1973년 박정희 유신 당시 경찰서라는 무대에서 펼쳐지니 굉장히 독특하다는게 인상적이었어요. 이 과정에서 빚어진, '경찰이 피라미 노동자를 간첩이라며 고문, 심문하는데 알고보니 그 노동자가 취조하던 형사의 6.25 때 헤어진 동생이었다!'라는 극한의 딜레마도 흥미로왔습니다. 형은 여기서 동생임을 밝히고 노동자를 구해줘야 할까요? 그러면 빨갱이 가족임이 드러나 출세길이 영영 막힐텐데? 아, 정말 쫄깃하더군요. 다만 노동자를 죽이고 말았다는 결론은 다소 식상했고, 악마가 끼어들 이야기였는지는 의문이기는 합니다. 뭔가 거래를 한 것도 아니고... 이런 억지스러운 악마의 등장보다는, 같은 역사 속 비극을 짤막하게 다루었지만 훨씬 깊은 울림을 주는 걸작인 김성종의 "어느 창녀의 죽음"같은 선례를 참고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습니다. 
"아문센의 텐트에서"는 수록작 중 유일한 외국 단편입니다. 존 마틴 레이히의 작품이지요. 남극 탐험대가 미지의 괴생명체를 발견한 뒤 모두 죽고만다는 크리처 물입니다. 러브크래프트의 "광기의 산맥"의 직속 선배라 할 수 있어요. 로버트 드럼골드와 대원들이 느끼는 공포가 생생하게 전달되는 덕분에 몰입감이 장난이 아닙니다. 미지의 괴생명체가 뭔지 제대로 묘사도 하지 않는데도 말이죠. 별점은 4점은 충분합니다. 수록작 중 단연 베스트로 꼽겠습니다.

특집 기사  "인스타그램 주식 여신"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최근 흔히 보아왔던 범죄 이야기이기는 한데, '사기 감별사' 주제한이 범인 '여우비'의 사기를 간파한 방법은 추리물로 보아도 손색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실화라서 설득력도 높고요. 
한국 미스터리를 키워드를 통해 분석한다는 신연재 "로컬리티와 미스터리"에서는 여러가지 주장 중 한국 소설의 공간 중 '시골'에 주목한 부분이 기억에 남습니다. 지역 주민의 텃세와 오지랖, 부조리한 규율이라는 시골적 배타성, 이른바 '부족주의'와 도시인의 충돌이 벌어지는 식으로 시골은 미스터리 무대로 흔히 사용됩니다. 그러나 이는 도시인 기준이라는 주장에 무릎을 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시골 부족주의를 전형화하는 시선 자체가 잘못되어 있는 셈이지요. 이를 극복한 작품으로 황세연의 "내가 죽인 남자가 돌아왔다"를 소개하는 것도 이채로왔고요. 이 작품을 이렇게 볼 수도 있구나, 이런 시선이 추리 비평에 필요하겠구나 싶더군요. 저도 한참 공부가 부족하다는걸 여실히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다른 단편 세 편은 추리물로 보기 어렵거나, 달리 언급할 부분이 없는 범작 수준에 그친다는건 아쉬웠습니다. 전체 평균 별점은 2점입니다. 앞으로는 '계간 미스터리'라는 명칭에 걸맞는 정통 추리물이 더 많이 수록되면 좋겠습니다.

2020/05/24

폐허에 바라다 - 사사키 조 / 이기웅 : 별점 2.5점

폐허에 바라다 - 6점
사사키 조 지음, 이기웅 옮김/북홀릭(bookholic)

"에토로후 발 긴급전"의 작가 사사키 조단편집입니다. 홋카이도 도경 경부보 센도 타카시가 이런저런 부탁으로 개인적인 수사를 벌인다는 이야기들이 담겨 있습니다. "탐정사전"에서 멋지게 소개된 덕에 기억하고 있다가, 우연찮게 읽게 되었네요. 

센도는 이전 사건 때문에 PTSD 장애를 입어 현장에 복귀하지 못하고 장기 요양 중으로, 의사 말에 따르면 "경찰에 관련된 일은 모두 잊어라, 가능하면 신문도 읽지 마라, 책은 읽어도 상관없지만 범죄 소설은 금물이다"라는 상황이지만 주위의 요구에 응해 이런저런 방법으로 수사를 돕습니다.

니세코 스키장, 홋카이도 동부 토카치 온천 여관, 유바리 시, 삿포로 시내, 히다카 등 북쪽 지방 이곳저곳을 자동차로 돌아다니며 사건들을 해결해 나가는데, 관련 묘사들이 인상적입니다. 예를 들어, "폐허에 바라다" 속 소도시는 가공의 마을 같지만 그렇게 생각되지 않아요. 유바리 시 인근 쿠라야마 초 등 현존하는 곳에 대한 상세한 묘사가 덧붙여진 덕분입니다. 마을로 향하는 길에 대한 묘사는, 지금이라도 차를 타고 들어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거든요. 연어 정치망 어업과 가리비 양식이 주인 오오츠크해 연안 항구 마을 역시 마찬가지고요. 이러한 묘사 덕분에 여정 미스터리 느낌도 강하게 전해 줍니다. 또 매 이야기마다 실제 사건을 담당한 형사가 등장하는데, 제각각 독특한 개성을 뽐내는 것도 재미요소에요. 사건 해결을 위해 센도를 이용하는 형사가 있는가하면 센도를 방해꾼 취급하면서 거추장스럽게 여기는 형사도 있고, 애주가도 있고 패션 감각이 빼어난 패셔니스타도 있거든요. 무엇보다도 나오키 상을 수상했을 만큼 문학적인 묘사가 돋보입니다. 사회파스럽게 현실에 대한 고발, 비판 의식을 이야기에 잘 담아낸 솜씨도 빼어나고요.

그러나 현실 고발없이 단순 범죄에 대한 이야기로만 끌고간 몇 몇 작품들은 기대에 미치지는 못합니다. 그냥 멋드러지게 쓴 범죄가 등장하는 드라마일 뿐, 추리 소설이나 범죄, 수사물로 보기에는 영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종합한 별점은 2.5점. 문학적으로는 근사하고, 뭔가 품격이 있어 보이기는 하는데 추리적으로 빼어나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저와 같이 추리물에는 어느 정도 수수께끼 풀이나 트릭같은 요소가 들어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추리 애호가 분들께는 별로 권해드리고 싶지 않네요.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오지가 좋아하는 마을"

60여 페이지에 불과한 짤막한 단편입니다. 이야기도 대단한건 없어요. 센도 타카시가 휴직 중인 탓에 치밀한 수사를 벌일 수도 없고요. 하지만 고작 하룻밤 조사로 아서에게 쏠린 혐의를 돌릴만한 정황 증거를 담당 형사에게 들이민다는건 너무하다 싶었어요. 그것도 잠깐 관계자 옆자리에 동석했던 정도라면, 현재 담당 경찰들이 수사를 등한시 했다는 이야기밖에는 되지 않습니다. 아무리 현지 경찰들이 '오지'에게 한 번 맛을 보여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치더라도, 이건 너무 심하죠. 용의자 아서의 아내는 일본인이고, 그의 자식 역시 일본인일테니 이렇게 푸대접을 받을 이유도 없고요. 특별한 트릭이 등장하지는 않으며, 인간 관계 및 경제적인 이득 등 동기까지 명확하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합니다. 사토미와 아서가 관계를 맺었다는 등의 설정도 불필요했습니다.

스키장 마을의 묘사라던가, 이야기를 쉽고 명쾌하게 전달하는 전개는 나쁘지 않은데 특별히 점수를 줄 만 한 부분도 없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폐허에 바라다"

지독한 가난으로 어린 시절, 여동생을 죽이고 자살하려는 어머니를 목격한 뒤 범죄에 빠져버린 후루카와의 범행을 건조하게 그려냅니다. 후루카와를 한 때는 융성했지만 지금은 쇠락해버려 폐허가 되어버린 탄광촌 마을에 빗대는게 인상적이에요. 후루카와가 바란건 죽음이었고, 결국 자살로 센도 앞에서 생을 마감하는 마지막 장면은, 제목과 겹쳐지고요. 폐허에 바라는건 결국 흉물스러운 모습을 창피하게 드러내어 명줄을 유지하는게 아니라 그냥 사라져 버리는 것이라는 뜻으로 읽히거든요. 이런 내용으로 본다면, 사회 고발 측면이 있다는 점에서 일종의 사회파 소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추리적으로 볼 만한 부분은 전혀 없습니다. 사건이 워낙 명확한 탓이에요. 후루카와와 만나기로 한 센도의 의도를 야마기시가 어떻게 알고 추적했는지에 대한 수수께끼가 있기는 하나, 이야기에 영향을 미치는 부분은 아닙니다.

이렇게 형사가 등장하고, 비참한 현실과 그 때문에 생겨난 비극을 범죄 드라마로 그려내었다는 점에서는 김성종"어느 창녀의 죽음"과 비슷합니다. 드라마로서 볼 만하고, 묘사도 특출난 부분이 있지만 추리적 요소는 거의 없다는 점도 비슷하고요. 일본 내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다는 것도 충분히 수긍이 갑니다. 그러나 일본의 버블 붕괴 및 지방 경기의 몰락을 그렸기 때문에, "어느 창녀의 죽음"만큼이나 우리에게 와 닿기는 힘들지요. 이런 점을 감안하여, 별점은 2.5점입니다.

"오빠 마음"

'토'라는 어부들의 조합 때문에 사건이 벌어지는데 흉기가 어부들이 쓰는 마키리라는 등 어업과 관련된 디테일한 묘사가 돋보입니다. 지저분한 마을 유력자의 음모, 그와 손을 잡은 폭력단의 만행이 동기라는 점에서 사회파 소설이라고 할 수 있지요. 

하지만 사회 고발에만 그치지는 않습니다. 사건 속 수수께끼도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바로 용의자 이시마루가 피해자 다케우치를 폭행한건 인정했지만, 칼은 가져가지 않았다는 주장입니다. 단지 칼을 가져가지 않았을 뿐, 칼로 찌른건 명백한 사실이며 이는 화가 머리 끝까지 치민 끝에 그냥 손에 잡힌 칼로 범행을 저지른 것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이 수수께끼를 밝히기 위한 수사를 진행하면서, 이시마루의 가족들이 이시마루가 범인이라고 못 박은 이유가 드러나는 과정은 볼 만 했어요. 앞서 이야기한 사회파적인 고발이 함께 하고 있기도 하고요.

그러나 단순한 센도의 추측 - 추리라고 하기는 어려운 - 만으로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는 전개는 너무 뜬금없었습니다. 지나치게 쉽고 짧게 소비되어 버린 느낌도 들고요. "붉은 수확" 처럼 마을의 실력자, 여러 세력들 사이에서 분투하는, 장편 사회파 하드보일드물로 그려낼만한 이야기였는데 말이지요.

센도의 추리에 좀 더 설득력을 부여하고, 좀 더 드라마틱한 세력간 갈등을 그려낼 수 있는 장편이었다면 별점 3점 이상도 충분했을텐데, 지금의 결과물은 별점 2.5점입니다.

"사라진 딸"

범행은 강력하게 의심되지만, 시체가 없어서 본격적으로 수사를 할 수 없는 상황을 그리고 있는 작품. 경찰이 직접 일을 벌일 수 없어서 경찰 타나베가 미야우치에게 센도를 소개시켜 준 것입니다. 센도가 사건을 해결한 건 타카다 방에서 발견한 평범한 스냅 사진 속 인물에게 주목했던 덕분이고요. 그 인물의 정체를 알아낸 뒤, 전화 한 통으로 시체 은닉 장소를 알아내게 되거든요. 경찰이 수사 중 간과했던 단서에 주목한게 주효했던 것이지요. 

이렇게 경찰 수사의 디테일 부족으로 사건이 미궁에 빠졌다는 이야기는 꽤 그럴듯했습니다. 추리적으로 대단하지는 않지만 나름 현실적이기도 하고요. 시체가 발견되지 않아서 타카다의 과거를 상세하게 조사할 정도로 경찰이 수사를 확대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점도 설득력을 더합니다.

아주 빼어나지는 않지만, 실감나는 이야기라는건 분명해요. 별점은 2.5점입니다.

"바쿠로자와의 살인"

저자 후기를 보니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에서 영감을 받아서 썼다고 합니다. 아버지에게 아들들이 극도의 증오심을 가지고 있고, 둘째 아들이 아버지를 원수로 여기는 젊은이가 살인을 저지르도록 유도했다는 진상이 좀 비슷하기는 합니다.
여기에 더해 유언장이 주요 동기 중 하나로 등장하며, 지방 영주의 성 같다는 오하타 목장의 저택 묘사, 말을 키우는 목장 묘사 등이 더해져 굉장히 이국적인 느낌을 전해 줍니다. 일본이 아니라 영국 어딘가를 무대로 한 작품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작가의 의도는 러시아였겠지만요.

하지만 이러한 분위기 외에, 추리적으로 건질건 없습니다. 내용을 보면, 17년 전 피해자였던 나가누마의 어린 아들이 장성해서 복수를 한게 뻔해 보이고, 새로 온 잡역부 청년 하라다가 마침 18살이라 수수께끼고 뭐고 이야기할게 별로 없네요. 오히려 하라다에 대해 철저히 수사하지 않은 경찰의 무능함만 돋보일 뿐이에요.

추리 소설이 아니라 범죄에 대한 순문학, 드라마를 그리고 싶었다면 좀 더 길고 풍성한 묘사가 필요해 보였던 작품입니다. 지금의 결과물은 이도저도 아닌 애매한 수준입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복귀 전날"

센도의 PTSD의 원인이 된 사건이 회자되며 센도의 완쾌를 알리는, 단편집의 대단원을 이루는 작품. 그러나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추리적으로 대단한 내용은 전혀 없습니다. 유미코의 전화는 도움 요청인줄 알았지만, 알고보니 하루카가 진범이라는걸 드러내기 위한 목적의 밀고 전화였다는 반전이 있기는 하지만요. 

하지만 이 역시 그렇게 의외의 반전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전화 내용이 사실과 달랐다면, 전화를 건 사람이 거짓말을 한게 당연하니까요. 오히려 왜 이렇게 밀고를 하려 했는지?에 대한 수수께끼라던가, 범행에 무언가 트릭이라도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그런 내용도 없어서 이게 추리 소설인지도 의심스러울 정도에요. 유미코의 동기는, 센도가 처음 만났을 때 손에 반지가 있었지만 지금은 없다라는 디테일과 하루카가 피해자인 나오와 남자 문제로 다투었다는 증언이 순차적으로 드러나니 그리 대단한 수수께끼는 아니거든요. 하루카의 범죄 역시, 짧은 시간 동안 어떻게 나오를 죽이고 불에 태웠는지에 대한 진상은 드러나지 않고 그냥 그녀가 범인일 수 있다는 정황 증거 정도만 추가될 뿐이라 속 시원하게 해결되지도 않고요.

물론 이렇게 추리적으로 허술하다는게 문제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어차피 이 단편집 수록작 모두가 마찬가지이기도 하고요. 또 아는 사람, 잘 해주는 듯한 사람이 더 무섭다라는 명제를 잘 전달하고 있다는 측면에서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이를 위해 억지로 센도를 엮었다는 점입니다. 수록된 다른 작품들은 모두 센도가 사건에 개입되는게 나름 이유가 명확한데, 이 작품은 전혀 그렇지 않기 때문입니다. 유미코 본인이 와인바 사장인 유키에가 겪은 일을 알고 있다면, 그리고 그게 중요한 단서가 될거라고 생각했다면 그걸 그냥 경찰에 제보하면 될 일이었습니다. 구태여 센도를 중간에 연락책으로 사용할 이유가 없어요. 오히려 가족을 밀고한다는 자신의 치부를 아는 사람을 만들 필요도 없고요.

이렇게 시리즈를 위한 억지 투성이인 탓에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드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2017/08/11

대중서사장르의 모든 것 3 : 추리물 - 대중서사장르연구회, 박유희 외 : 별점 3점

대중서사장르의 모든 것 3 : 추리물 - 6점
대중서사장르연구회.박유희 외 지음/이론과실천

한국 영화, 소설, 드라마 등의 매체에 등장했던 추리물의 역사에 대해 개략적으로 정리하여 알려주는 인문학, 문화사 서적입니다. 

"아랑 전설"에서 밀양 부사가 빨간 깃대를 흔들고 가는 아랑에 대해 꿈꾼 후, 범인이 '朱旗'라는 사람임을 가리킨다는 것을 깨닫는다는 이야기, 암행어사 박문수 설화에서 '한각사중계월침, 붕월반월원무심'이라는 점 글귀의 뜻 풀이 같은 것이 소개되는 등, 고전 설화와 각종 야담, 역사서 등에 등장했던 추리 서사부터 소개하고 있기에 그 양과 깊이가 실로 방대합니다.

근대적인 추리 소설, 즉 '정탐 소설'이 처음 등장한 "쌍옥적" 이후의 자료는 더욱 풍부합니다. 처음 알게 된 건 "쌍옥적" 시기에 발표되었던 "박쥐우산"이라는 작품입니다. "르루주 사건"을 번안한 "누구의 죄"를 표절한 느낌이지만, 소개를 보니 범행 동기와 범인 설정을 당시 국내 실정에 잘 맞도록 나름 개선, 발전시킨 부분이 있는 덕분에 한번 읽어보고 싶어졌습니다. 근대 초기에 셜록 홈즈와 같은 정통파 추리물이 아니라 '에밀 가보리오'의 프랑스 소설이 유독 인기를 끌었다는 점도 꽤나 흥미로왔고요.

아울러 근대에 추리 소설이 번안되어 소개되면서 이른바 '탐정 소설'이 높은 수준의 독서력을 가진 독자들이 읽는 지적인 작품으로 어필했다는 것도 신선했습니다. 추리 소설이 항상 싸구려 문학의 대명사로 알려진 80년대 이후를 살아온 저에게는 이해가 안되는데, 사실 어떻게 보면 당연하기도 합니다. 독서라는 취미 자체가 어느정도 지적 수준이 있는 계층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졌을테고, 그 중에서 추리 소설은 트릭을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과학적인 지식이 뒷받침 된 이해력이 필요하니까요. 근대에는 그러한 독자가 상대적으로 적을 수 밖에 없었겠지요.
이렇게 초창기 추리문학에 대한 대중의 인식은 아주 괜찮은 듯 싶어 무척이나 부러웠습니다. '정탐', '탐정'이라는 단어가 일상적으로 사용되었던 당대 분위기를 보아도 쉽게 알 수 있어요. 인용되는 자료들을 보니 각종 신문 기사 헤드라인에서 이 단어들을 찾아보는 것이 어렵지 않을 정도더군요.

그러나 이러한 요소는 부정적인 방향으로 흐르게 됩니다. 대구에 사는 한 소년이 10세 아동을 납치 살해한 후 협박장을 보냈다는 기사가 대표적이에요. 범행도 충격적이지만 이 소년이 '탐정소설만 매일 탐독'했다고 소개되거든요. 이렇게 탐정소설이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상식이 널리 퍼지게 되는 것이죠. 가슴아프게도 이러한 부정적 인식, 앞서 말씀드린 물질 문명에 대한 부분, 거기에 '그로(그로테스크)'로 대표되는 새로운 유행의 결합 등으로 한국 추리 문학이 서서히 선정성, 엽기성이 강조된 싸구려 펄프 픽션화하는 과정이 해방 이후 현대에 걸쳐 상세하게 소개됩니다.
아울러 지적인 영역, 논리적 추론과 과학적 수사 외에도 서구 물질 문명의 유혹 역시 지식인들을 끌어당기는 요소였다고 하는데, 이 역시 후대에 좋지 않는 영향을 끼친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지적인 영역이 아니라 물질 문명에 대한 부분만 확대, 발전해 버린 탓입니다.

그래도 저도 익히 알고 있는, "최후의 증인"이라는 기적으로 대표되는 김성종 시대에서 현재(이 책이 발표된 2010년 기준)까지 이어지는 과정의 마지막 부분 덕분에 아직 한국 추리 문학에 희망이 있구나! 싶은 생각을 들게 만들어 줍니다. 한국 추리문학의 미래로 "경성탐정록"이 소개되었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경성탐정록"이야 말로 한국 현대 추리문학이 이룬 놀라운 성취 중 하나라 생각합니다. 선정성, 엽기성이 사라지고 정통 추리 서사에 기반한 본격물이라는 점에서, 원점에 회귀한다는 측면은 분명히 있죠. 이를 '일제 강점기'를 무대로 하고 있다는 점은 한국 추리문학의 역사 그 자체를 상징하기도 하고요(반은 농담인거 아시죠?).

"경성탐정록" 외에도 고전에서부터 근대, 현대에 이르는 추리 문학 발전 와중에 등장한 수많은 작품이 소개되기 때문에 눈길을 끄는 작품도 적지 않습니다. 몇 가지 예를 들자면, 일제강점기 후반 친일 문학의 홍수 속에서도 나름의 가치를 가지고 추리 서사를 보여주는 김동인의 "수평선 너머로", 친일 문학이기에 다시 읽을 가치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서사면에서는 흥미로와 보이는 김내성의 "태풍", 해방 후 추리 문학계의 1인자였다는 방인근의 작품들(그 중에서도 사립탐정 장비호 시리즈), 허문영의 번개 탐정 시리즈가 있습니다. 아쉽게도 방인근, 허문영의 작품들은 소개만 보아도 앞서 말씀드린 펄프 픽션들에 다름없기에 구태여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까지는 들지 않았지만, 그래도 방인근 작품들에 등장하는 해방 이후 주요 설정들 - 일본인이 해방 후 강제로 쫓겨가며 챙기지 못했던 재산을 되찾으려고 한다던가, 국가 혼란기에 국보를 훔친다던가 등등 - 은 한번 연구해 보고 싶어집니다.

이러한 추리 문학 뿐 아니라 추리 문학을 기반으로 한 영화나 드라마의 흐름 및 주요 작품의 소개 또한 책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는데, 이 역시 읽어볼만 합니다. 007 시리즈의 여러 모방작들 등 재미난 이야기들이 많거든요. 스파이물, 액션 스릴러, 느와르 등 다루는 폭도 넓고요. 제가 관심있는 분야는 아니지만 이쪽 분야에 관심이 많으신 분들이라면 놓치시기 힘들 내용들이었어요.

그런데 소개되는 작품들에 대한 내용이 없는 경우가 훨씬 많은건 단점입니다. 기껏 흥미를 자아내는데, 정작 내용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으니 답답할 수 밖에 없지요. 지금 구하기 쉬운 작품들도 아니니까요. 도판도 부실한 편이고요.

그래도 얻은 것이 훨씬 많은 독서였습니다. 600페이지가 넘는 분량에 3만원이라는 가격도 마음에 들고요. "조선의 탐정을 탐정하다"가 식민지 시대 추리 문학에 집중하고 있다면 이 책은 다루는 폭과 기간이 훨씬 넓다는 차이가 있기에 비교해 읽는 재미도 괜찮습니다. 읽기 전에는 내가 아무리 추리 애호가지만 이런 것 까지 찾아서 읽어야 하나?라는 생각이 없었던 것은 아닌데, 이 정도면 모든 추리 문학, 장르 애호가분들께 권해드릴 만 합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2017/06/11

후쿠오카 살인 - 김성종 : 별점 1점

후쿠오카 살인 - 2점
김성종 지음/뿔(웅진)

국내 추리문학의 거목인 김성종 선생님의 근간입니다만, 단언컨데 그 동안 읽은 책 중에서도 최악을 다툴만합니다. 감히 '작품' 이라는 표현을 붙이기도 어려운 지경의 종이 무더기에요. 얼마전 "하카다 돈코츠 라멘즈"가 '나무야 미안해' 수준이라면 이건 미안하다는 말로 끝낼 수준이 아닙니다. 그 정도로 최악입니다.

지나와 봉수 부부, 세호와 서라 부부가 등장하고 그들이 각자 상대방 배우자들과 불륜을 저지른다는 시대착오적인 도입부 설정부터 가관입니다만, 유지나가 이세호를 시켜 서봉수를 죽이기 위한 일본 여행을 떠나는 본편이 시작되면서 더 걷잡을 수 없어집니다. 먹고살기 힘든 인쇄소 사장에 불과해 보였던 이세호의 정체가 사실은 국내 위조 조직에서도 거물인 범죄자로, 과거 살인을 포함한 수 없이 많은 범죄를 저지른 변장의 달인이자 범죄의 황제라는 진상은 어이를 상실케 만듭니다. 알고 보니 옆집 남자가 팡토마고르고 13이었다는 건데, 이렇게 설정을 변경하려면 최소한의 설득력은 보장해 줬어야 합니다. 뜬금없기가 과거 김삼 화백 만화를 수준이에요.

더 웃기는 것은 이세호가 개중 나은 편이라는 겁니다. 여성들 캐릭터는 모두 삼류 성인 만화에나 나옴직한 색정광들로 이해의 영역을 넘어섭니다. 그 중에서도 형사 구밀라 캐릭터는 최악 오브 더 최악이에요. 섹스 중독증이라는 설정부터가 유치하지만, 등장하는 모든 남자들과 관계를 가지는 상황은 뭐라 말하기도 민망한 수준입니다. 더블맨을 만나기 위해 먼저 위조업자 황사장과 관계를 갖고, 한국과 일본 양국 경찰에게 쫓기는 흉악범이 된 더블맨 이세호와 마지막에 관계를 갖는 식이니까요. 섹스 중독증에 걸린 이유도 어처구니 없습니다. 어렸을 때의 성폭행 때문이라는데 요새 삼류 성인만화도 이렇게 막 나가지는 않을것 같군요. 게다가 이 조교로 육노예를 만든다는 싸구려 성인물 설정을 구밀라 한명 뿐 아니라 미치코라는 다른 여성에게도 써먹는 건 정말이지 어안이 벙벙합니다.

추리적으로도 최악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우선 이세호가 일본에서 위조지폐를 구태여 쓴 행위부터가 설명되지 않습니다. 그깟 잔돈푼이 뭐가 중요해서 청부살인을 앞두고 사건을 일으켰을까요? 자신의 위조 기술을 괴신했다기에는 설명이 너무 부족합니다.
서봉수가 유지나를 청부 살해하는 전개도 억지스럽습니다. 유지나와 이세호가 자신의 목숨을 노린다는 것을 알게 된 시점에서 유지나를 죽일 하등의 이유는 없어집니다. 이혼이 충분히 가능한 상황이니까요. 게다가 유지나가 살해된 이후는 더 문제입니다. 적극적으로 피해자 남편 역할을 수행하지 않고 두 여성 사이에서 왔다갔다 하면서 섹스나 하려고 하는데 이건 말도 안되잖아요. 경찰이 자신을 찾아온 것도 잊어버렸단 말인가요?
서봉수가 문서라의 시체를 발견했을 때의 대응도 최악입니다. 당연히 이세호의 불륜을 눈치채고 쳐들어온 것이라고 둘러댔어야 합니다. 이렇게까지 머리가 돌아가지 않는 주역을 보는 것도 참 오랫만이에요.
그나마 괜찮았던 것은 도다이, 미치코가 유지나를 죽이기 위해 아무런 연고 없는 부랑자를 동원하여 일종의 자살 테러를 하는 정도인데, 이 역시 미치코와 범인간의 관계를 작위적으로 설정했기 때문에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듭니다.

제목처럼 일본 홋카이도에서 후쿠오카에 이르는 장대한 여정을 녹여낸 것 만큼은 나쁘지 않습니다. 등장하는 여행 코스도 꽤 그럴듯하고요. 허나 일본 여행 역시 결정적 문제가 있습니다. 작품과 하등의 관계가 없다는 겁니다. 일본에서 살해하는게 여러모로 더 쉽다? 무슨 근거인지 알 수가 없어요. 일본도 나름대로 유능한 경찰력을 보유한 선진국인데 말이지요. 게다가 이 책을 읽으면 일본에서 살인을 저지르는 것은 무모한 행동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일본 여행 설정은 아무래도 일본에 대해서 잘 알고, 많이 가 봤다는 아는 척에 분량을 늘리기 위한 꼼수가 아니었나 싶어요. '미우라 아야코 문학관'에 대해 장황하게 풀어내는 등 작품과 상관없는 작가 개인 생각이 너무 많이 드러나는 것도 문제였고요.

그래서 별점은 1점입니다. 김성종 선생님이 척박한 한국 추리 문학을 어떻게든 일으켰던 이 바닥의 거목이라는건 분명합니다. 항상 존경하고 있고요. 그러나 이 쓰레기만큼은 도저히 용서가 안되네요. 과거의 좋은 기억만 안고 가는게 훨씬 좋을 뻔 했습니다. 여러분들도 이 쓰레기만큼은 주의하시고 피하시기를 간곡히 요청드립니다.

2014/12/15

반가운 살인자 - 서미애 : 별점 2점

반가운 살인자 - 4점
서미애 지음/노블마인

한국의 여성 추리 작가인 서미애의 단편선입니다. 일상계 범죄 스릴러에 가까운 작품들로 총 10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표제작이 영화화되기도 해서 궁금하던 차에 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영 제 취향은 아니더군요. 이야기들의 설득력이 부족해서 감정이입이 힘들었던 탓입니다. 거의 모든 작품들에서 천편일률적인 똑같은 심리 묘사가 등장하는 것도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고요. 누군가에게 살의를 품은 등장인물들의 심리 묘사는 모두 다른 사람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똑같습니다.

아울러 작품이 추구하고자 하는 바도 잘 모르겠어요. 정통파 본격 추리물도 아니고, 기묘한 맛의 반전물도 아니고, 스릴러도 아니고... 굳이 분류하자면 범죄가 테마인 드라마가 대부분인데 그렇게 접근하기에는 묘사력이나 깊이가 많이 부족했습니다. 도진기 작가의 작품집처럼 최소한 한두 작품이라도 아주 뛰어난 작품이 있었더라면 좋았을텐데 그렇지도 않고요.

그래서 전체 평균 별점은 2점입니다. 정통 추리물이나 스릴러 애호가분들께 상기의 이유로 권해드리기는 어렵습니다.

수록작별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스포일러 포함되어 있습니다.

"반가운 살인자"

보험금 때문에 사고로 죽어야 하는 가장이 자신을 죽여줄 연쇄살인자를 찾아다닌다는 내용입니다. 

솔직히 상식적으로 말도 안 되지요. 이런 상황에 처한다면 사고로 위장한 자살을 연구하는 게 당연합니다. 연쇄살인마가 어디서 나올 줄 알고 헤매고 다닙니까? 그거 쫓아다니면 오히려 운동이 되어서 더 오래 살겠네요. 아울러 재미를 위해서라면 연쇄살인자의 정체라던가, 이야기의 흐름에서 반전이 한번 정도 나와줬어야 합니다. 

영화화가 되었다고 해서 잠깐 조사해보았는데, 사뭇 다른 각색으로 제작된 것 같더군요. 영화는 보지 않았지만 연쇄살인마를 찾아다니는 백수가 연쇄살인마로 몰린다는 영화의 설정이 더 나아 보입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남편을 죽이는 서른 가지 방법"

남편을 죽이는 방법에 골몰하던 주부가 실제 남편이 죽은 것을 알고 당황하다가, 완전범죄 이야기로 넘어가는 작품입니다. 정신과 의사와 주인공의 관계가 드러나면 꼬리가 밟힐게 뻔해서 잘 짜여진 이야기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래도 수록작 중에서 추리물이라고 부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작품입니다. 나름 반전이 있다는 점도 괜찮았고요. 별점은 2.5점입니다.

"냄새 없애는 방법"

냄새에 민감한 여주인공이 이웃집의 개 때문에 이성을 잃어가는 과정을 그립니다. 그런데 주인공부터 정상이라 하기 힘들 정도로 예민해서 감정이입하기 힘들었습니다. 나중에 보면 거의 초능력 수준으로 묘사되는데, 이럴 거면 슈퍼히어로물을 만드는 게 낫지 않았을까요?
또 공동주택에 살면 어느 정도 감수해야 할 것이 있는 게 당연한 상식이며, 단지 6개월치 월세를 선불로 주었다고 이사를 고려하지 않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피냄새를 지우는 방법을 알게 된 204호 남자가 덕분에 연쇄살인을 이어갈 수 있었다는 반전이 있기는 한데 대단하다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딱 하나, 남자의 이름이 "유영철"이라고 밝혀지는 정도만 괜찮았어요. 별점은 2점입니다.

"살인 협주곡"

부부가 서로 상대방을 죽이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는 내용으로 앞서 이야기한 천편일률적인 심리묘사가 이어져서 지루합니다. 서로 미워하는 이유가 제대로 설명되지 않고, 왜 이혼 같은 손쉬운 방법을 택하지 않는지도 설명되지 않아서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도가 높다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차라리 블랙코미디로 풀어나가는 게 나았을 겁니다. 

무엇보다도 이전에 읽었던 "완벽한 부부"가 서로를 죽이기 위해 완전범죄를 계획하다가 둘 다 죽는다는 걸작 단편과 굉장히 유사한 것이 가장 큰 문제예요. 에필로그까지 완벽했던 해당 작품과 비교할 때 완성도도 더 낮아서 도저히 좋은 점수를 줄 수가 없네요. 별점은 1점입니다.

"정글에는 악마가 산다"

파파라치로 돈을 벌려는 찌질이에게 닥친 가혹한 현실을 다룹니다.

최근 이슈인 수원에서 발견된 토막 살인 사건과 약간 겹쳐지는 부분이 조금 있어서 신기했지만,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공통적인 문제는 여전합니다. 장기 밀매를 하는 범인들이 시체를 서툴게 처리한 이유, 주인공이 사건의 핵심에 접근할 때 무방비로 접근하는 이유 등 설명되지 않는 것도 너무 많고요. 채팅 프로그램이 트리거가 된다는 아이디어 하나만 신선했을 뿐입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숟가락 두 개"

평생 중 교도소 생활이 더 길었던 전과자와 벙어리 아가씨가 가족이 된 뒤 벌어진 가혹한 현실을 다룬 일종의 드라마입니다. 김성종 선생님의 "어느 창녀의 죽음"이 떠올랐는데, 약간 억지스러운 감동 외에는 별다른 반전이나 극적 요소가 없어서 감히 비교하기 어렵습니다. 너무 뻔하기도 했고요. 별점은 1.5점입니다.

"그녀만의 테크닉"

친구가 자기의 남자를 빼앗았다고 생각한 여인의 납치극으로 시작되어, 다중인격 백합물로 끝나는 이색작입니다. 아무런 복선 없이 급작스럽게 진상이 드러나는 구성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광기 묘사도 별로 새롭지 않았고요. 차라리 완벽한 서술트릭물로 꼼꼼하게 작업되었더라면 더 좋았을 겁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비밀을 묻다"

불륜 관계였던 친구 남편의 죽음을 파헤치려는 프리랜서 방송작가의 이야기. 촬영 테이프에 찍힌 자동차 번호판과 친구의 지인은 별로 중요한 단서로 생각되지 않으며, 경찰이 유력한 용의자인 아내의 친구에 대해 조사하지 않았다고 판단하는 근거가 설명되지 않는 등의 문제가 있습니다. 그래도 추리적으로는 그나마 조금 괜찮았어요. 별점은 2점입니다.

"경계선"

왕따와 원조교제 소녀의 기이한 교제와 학교 일진의 죽음에 얽힌 진상을 다룬 작품입니다. 핸드폰을 숨겨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반전은 괜찮았지만 그 외의 요소는 사족에 불과합니다. 원조교제 소녀는 당췌 왜 나왔는지도 잘 모르겠네요. 콩가루 집안의 설정은 나쁘지는 않았지만 작품과는 별 상관없는 내용이었으니까요. 가족관계의 회복을 그린 것도 아니고... 뭔가 다른 미디어믹스를 노린 티도 너무 납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거울 보는 남자"

살인자의 관상이 따로 있다는 뻔한 아이디어를 현대적으로 풀이한 설정은 나쁘지 않았지만, 전개의 비약이 너무 심해서 마음에 들지 않네요. 교수의 분노나 주인공의 범죄가 딱히 설득력 있어 보이지도 않았고요. 좀 더 짧고 임팩트 있게, 서늘하게 써야 했을 작품이 아닌가 싶네요. 별점은 1.5점입니다.

2014/10/13

사라진 테니스 스타 - 까뜨린느 아를레 : 별점 2점

사라진 테니스 스타 - 4점
까뜨린느 아를레 지음/추리문학사

테니스 세계랭킹 1위 이반 파첵이 자택 근처에서 조깅 도중 납치되었다. 테니스 협회는 납치범들이 요구한 100만 달러의 몸값을 거절했지만, 이반 파첵의 테니스 생명을 걱정한 세계랭킹 2위 데렉 빌더가 대신 몸값을 지불할 뜻을 밝혔다. 그러나 몸값 지불 장소였던 전미오픈 경기장에서, 데렉 빌더마저 헬기를 이용한 범인들에게 납치되고 마는데…

김성종 최신세계추리소설 시리즈로, "지푸라기 여자"로 유명한 카트린 아를레(까뜨린느 아를레)의 작품입니다. 제목 그대로 납치된 테니스 스타와 몸값 지불을 둘러싼 유괴극입니다. 인질이 세계 랭킹 1, 2위의 프로 테니스 선수라는 설정이 특징이지요. 

내용은 유괴극답게 몸값을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에 촛점이 맞춰져 있는데, 범인들이 거의 성공에 이르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완전범죄극이었던 "지푸라기 여자"의 작가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먼저 납치했던 이반 파첵을 활용하여 더 큰 돈을 다시 벌어들인다는, 몸값 전달 방식에 대한 꽤나 치밀하게 구성된 트릭 덕분입니다. 프로 테니스와 유괴를 결합한 소재 자체도 독특했고요.

그러나 이 몸값 전달 작전을 제외하면, 추리적으로나 내용적으로 크게 특기할 만한 점은 없습니다. 오히려 작가의 명성에 비교하면 납득하기 어려울 정도로 허술한 부분이 많습니다. 전미 랭킹 1위의 프로 선수가 경호도 없이 쉽게 납치된다는 도입부터 현실성이 부족한데, 데렉 빌더가 생중계 중인 테니스 경기장에서 헬기를 이용해 납치되는 장면은 정말이지 황당했습니다. 아무리 경찰이 무능하다 해도, 백주대낮에 납치극이 벌어지는데 수수방관한다는 건 말이 안 되지요. 모든 경찰력을 동원하면 헬기가 내리는 위치를 특정할 수 있었을 테고, 헬기가 영화 촬영에 쓰인 소품이라는 점만 확인했더라도 범인들의 위치를 추적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을 겁니다. 이쯤 되면 경찰이 공범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더군요.

또 범죄의 흑막이 있었다는 식의 마무리도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폴란드 민주화 운동을 위한 자금 확보라는 원래 범죄 의도만으로도 충분히 설득력이 있었기에, 이런 설정은 오히려 사족처럼 느껴졌어요. 후속작을 염두에 둔 복선이었을까요? 어차피 후속작을 볼 일은 없겠지만요.

이렇게 일부 아이디어 면에서는 장점이 있지만 전체적으로 설득력이 부족해서 좋은 점수를 주긴 어렵습니다. 제 별점은 2점입니다. 번역의 완성도도 떨어지니 굳이 찾아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절판되었으니 찾기도 힘들지만요.

2009/07/10

비련의 화인 - 김성종 : 별점 3점

비련의 화인 - 6점
김성종/해난터

잘나가는 상사맨 홍상파와 아내 송묘임의 초등학교 1학년 딸 홍청미가 유괴된다. 형사 허걸과 조태가 전담반으로 편성되어 수사에 나서지만, 범인은 홍상파에게서 몸값 1억을 교묘하게 탈취하는데 성공하고 결국 청미는 시체로 발견된다. 허걸과 조태는 끈질긴 수사 끝에 유력한 용의자로 과거 송묘임의 연인이었던 장만두를 검거하지만 의외의 사실이 밝혀진 뒤 진범이 누구인지 알게 되는데....

80년대 한국 추리소설로 김성종 선생님의 대표작 중 하나로 알고 있습니다. 한국 추리소설에 대한 저 자신의 내공이 너무 부족한 듯 싶던 차에 우연찮게 구하게 되어 읽은 작품입니다.

제목이 뜻하는 바를 잘 모르고 읽었는데, 작품은 상당한 "정통" 유괴극이어서 굉장히 의외였습니다. 당시 (80년대) 유명했던 몇몇 유괴사건 (영화 "그놈 목소리"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었죠?)를 의식한 듯한 설정인데, 전체적으로 상당히 탄탄하고 범인과 경찰과의 두뇌싸움도 치밀하게 그려져서 굉장히 재미있었습니다. 김성종 선생님의 막강한 필력으로 써내려간 유괴당한 아이 부모의 심리묘사도 작품에 몰입시키게 만들어 주고요. 몸값 1억원은 당시 금액으로는 어마어마한, 지금 가치로 한 10억은 되는 돈 같아서 더욱 흥미진진했습니다.

추리적으로도 괜찮습니다. 크게 두가지 트릭이 등장합니다. 가장 중요한 트릭은 유괴범이 돈가방을 바꿔치는 트릭인데 잘 고안되어 있더군요. 약간 어설퍼 보이지만 나중에 이유가 충분히 설명되며, 당시 시대상도 충실히 반영하고 있어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알리바이 트릭도 좋았어요. 트릭 자체는 별거 아니긴 한데 트릭을 밝혀내는 과정이 참신했고 치밀하지 못해서 좀 순진해 보이는, 어설퍼 보이는 트릭이라는 것이 외려 관련된 캐릭터와 잘 어울리고 현실적으로 보였기 때문입니다. 
경찰의 수사 과정 등도 잘 묘사하고 있어서 "추리물"로 보기에 충분한 수준을 갖추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일본 사회파, 특히 모리무라 세이이치 작품 ("한낮의 유괴" 등) 분위기와 유사하다는 느낌도 받았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재미가 절반정도 분량이었다는 겁니다. 결국 청미가 시체로 발견되고 난 뒤부터는 이야기가 뜬금없이, 한마디로 막 나가기 시작해 버리거든요. 쓰면서 이거저거 이야기를 억지로 추가한 티가 팍팍납니다.
예를 들면 범인이 누구인가 하는 점과 범인의 동기에 대해서는 상당히 설득력있게 설명하고는 있지만, 가장 중요한 "동기"에 있어서 이야기 중반에나 등장하는 인물이 핵심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건 공정하지가 못하죠. 아무리 생각해도 페어플레이가 아니에요.
그리고 혈액형 관련 설명은 장황하기는 한데 지금 시점에는 상식이라 지루했으며, 진범의 행동이 "오버" 였다는 점은 쉽게 지나치기 어려운 부분이었습니다. 그냥 이혼을 하면 깔끔했을 것을 왜 이런 거창한 연극을 하는지가 도저히 설명되지 않거든요.
무엇보다도 결국 경찰이 어떤 증거를 포착하지 못하고 잠복을 통해 검거한다는 결말은 너무 쉽게 간 느낌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범인들이 서로 만날 이유가 사실상 전무한데도 불구하고 설명없이 그냥 대충대충 넘어가고 있다는 것도 이해할 수 없고요. 검거 후 결국은 범인의 "자백"을 통해서 사건이 해결되는 결말 역시 제가 가장 싫어하는 결말이기도 해서 당쵀 마음에 들지 않네요.
그 외에도 청미가 죽은 과정이 어처구니가 없고 불필요한 캐릭터들이 많이 등장하는 것 등도 감점 요소였습니다. 조금만 더 치밀하게 전개했더라면 훨씬 좋았을텐데 전체적인 작품의 완성도 측면에서 아쉬움이 많이 남는군요.

국내 추리소설계의 거장이신 선생님의 작품이라 제가 이런 말을 드리는 것도 죄송스럽기는 하지만,
  1. 초반부터 장만두 캐릭터를 드러냈어야 함.
  2. 강치수의 다이잉메시지인 "243"에 대해서 좀 더 디테일하게 설명했어야 함.
  3. 2번과 연관하여 범인에 대한 실질적인 "증거"를 보여줬어야 함
  4. 송태하 같은 불필요한 캐릭터 (송묘임의 동생들)는 싸그리 정리했어야 함.
  5. 홍청미가 죽어야 하는 다른 결정적 이유를 제시하는 것이 더 좋았을 것 같음.
으로 완성되었더라면 더욱 좋지 않았을까 싶네요.

그래도 재미있게 읽었다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김성종 선생님의 인기와 명성이 허언이 아니라는 증명이 될 만한 작품이었으니까요. 별점은 3점입니다. 앞으로도 한국의 80년대 추리소설을 계속 찾아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덧붙이자면, 이 책에서 초등학생 1학년으로 나오는 피해자 홍청미양이 저보다 단지 2살이 어릴뿐이라는 것이 굉장히 신기했습니다. 지금은 한국 나이로 35살......^^

2009/06/21

데니스 루헤인 단편집 "코로나도" - 데니스 루헤인 / 조영학 : 별점 3점

코로나도 - 6점
데니스 루헤인 지음, 조영학 옮김/황금가지

"살인자들의 섬"으로 엄청난 내공을 보여주었던 데니스 루헤인의 단편집입니다. 다른 장편도 유명하기는 하지만 이상하게 손이 가지 않던 차에, 단편집이 있다는 것을 알고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읽고 난 감상은, 기대와는 전혀 다르다는 겁니다. 추리나 스릴러 장르물을 기대했는데, 수록작 모두 깊이 있는 드라마인 탓입니다. 물론 모두 범죄에 관련되어 있으며, 캐릭터와 배경에 대한 묘사도 탁월하고 이야기를 끌어나가는 힘은 여전해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에드 멕베인과 스티븐 킹을 섞은 듯한 숨막힐 것 같은 끈끈한 분위기가 인상적이었던 "들개사냥", 그리고 여러 상을 수상했던 작품으로 독특한 시점과 전개, 묘사가 인상적인 "그웬을 만나기 전" 이 좋았고요.

그래서 제 별점은 3점입니다. 완성도만큼은 4점을 주어도 충분할 정도로 높지만, 아무래도 "추리"와 "스릴러" 쪽으로는 좀 부족했기에 감점합니다. (카테고리는 추리 / 호러 관련입니다) "그웬을 만나기 전"을 희극으로 만든 "코로나도"가 가장 분량이 많은 작품임에 불구하고, 소설에 비해서는 별로 인상적이지 못한 탓도 큽니다.

그래도 좋은 단편집임에는 분명합니다. 김성종 선생님의 "어느 창녀의 죽음"과 비교해 보고 싶을 정도로 문학적인 부분의 성취가 뛰어납니다. 수록작별 간단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들개 사냥 : 

에덴이라고 불리우는, 남부 사우스캐롤라이나에 위치한 그야말로 깡촌 소도시를 무대로 한 작품입니다. 마을 부흥을 위해 "에덴동산"이라는 일종의 테마파크 유치 사업이 막 시작되었다는 것에서 이야기가 시작되지요. 사업을 위해 마을의 골칫거리인 들개 사냥을 맡기려고 시장은 베트남전 참전용사인 블루를 고용합니다. 주인공은 블루의 친구이자 같은 참전용사인 엘진으로, 그는 점차 시간이 흐를수록 블루가 들개 사냥과 더불어 이상한 집착과 광기에 사로잡혀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미국 남부 소도시스러운, 뜨거운 열기가 넘쳐나는 "에덴"과 등장인물들의 묘사, 그리고 이유를 알 수 없는 블루의 광기와 집착이 이글거립니다. 읽으면서 갈증을 느낄 정도로 박력 넘치는 작품이에요. 모든 것이 허무하다는 결말도 작품에 잘 어울렸고요. 덧붙이자면, 주인공들의 심리묘사 등에서 "살인자들의 섬" 느낌도 좀 나더군요.

ICU

정체를 알 수 없는 조직에 쫓기던 남자가 우연찮게 그들을 따돌리고 대형 병원에 숨어들어가 병동을 전전하며 생활한다는 소품입니다. 문제는 주인공과 알 수 없는 조직의 정체나 배경 설명이 전무하다는 겁니다. 때문에 병원에서 스쳐지나간 사람들과의 드라마만 있을 뿐, 정작 스릴러스러운 느낌은 전혀 없어서 좀 실망스러웠습니다.

코퍼스 가는 길

고등학교 풋볼팀의 망나니들이 자신들의 미래가 걸린 시합에서 실수를 한 팀 동료 라일 비뎃의 집에 찾아가 그 집을 박살냅니다. 그리고는 라일의 여동생이자 그 집안에서 내놓은 자식 룰린을 따라 더 큰 집으로 이동하지요. 그런데? 주인공은 무력함을 느낍니다. 그 집의 위세에 압도당해서요. 자신의 상상과 힘을 뛰어넘는 존재에 직면하자마자 좌절하는, 그리고 뒤에서 소심하게 분노하는 모습이 흡사 요즈음의 우리들 같기도 합니다. 성장기이기도 하고 세태풍자로 볼 수도 있는 독특한 작품이네요.

독버섯

10페이지도 안되는 꽁트 수준의 작품입니다. 주인공이 자신의 동생을 실수로 죽게 만든 실베스터라는 악당을 남자친구 KL을 이용하여 살해하는 이야기이긴 한데, 잘 모르겠어요. 과연 주인공이 잘 한건지, 아니면 죽은 동생의 말대로 바보인지... 어쨌건 미래가 전혀 없어보이는 주인공의 말은 씁쓸한 여운을 남깁니다.

그웬을 만나기 전

주인공 바비는 사기꾼인 아버지의 꼬드김으로 여자친구 그웬과 함께 300만달러의 다이아몬드를 우연히 발견한 광부 조지를 속여 다이아몬드를 훔치려다가 사고로 총을 맞은 뒤 경찰에 체포됩니다. 그리고 4년 뒤, 출소한 바비를 찾아온 아버지는 다이아몬드를 어디에 숨겼는지를 집요하게 물어봅니다. 이어지는 아버지와 바비의 짧은 두뇌 싸움 끝에 바비가 승리하고, 모든 사실을 알아낸 뒤 악을 응징해 버리지요. 바비를 2인칭으로 놓고 전개하는 묘사를 비롯해서, 시공을 초월한 중첩되어 전개되는 등 굉장히 특이했던 작품입니다. 장편에서나 볼 수 있는 이러한 특이한 전개 등은 작가의 힘을 유감없이 보여줍니다. 때문에 대표작으로 불러도 무방하다 싶을 정도로 좋았어요. 작가의 말대로 "내츄럴 본 악인" 그 자체인 아버지 캐릭터도 굉장히 인상적이었고요.

작가의 다른 작품들이 다 그렇지만 이 작품은 정말 "영화"에 어울리겠다 싶어 잠깐 조사해봤더니, 역시나, 제작은 진행되고 있는 모양이네요. 2009년 5월 개봉 예정이었는데 소식이 없는걸 보니 어찌된것인지는 모르겠지만요. 이 작품이야말로 "사랑" 이 있는 "잔혹한 복수극" 이자 "순수한 악인"이 등장하는 영화이니 만큼 박찬욱 감독님이 영화화하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아버지 역은 백윤식!

코로나도

"그웬을 만나기 전"을 토대로 희극화 한 극본입니다. 기본 내용은 똑같지만 바비의 부모로 보이는 인물들이 드라마에 끼어들고, 결말 부분에서 약간의 희망을 넌지시 암시하는 등 이야기는 조금 더 풍성해 졌습니다. 원작보다는 대중적으로 다가갈 수 있도록 수정한 느낌도 들고요. 하지만 저는 소설과 같은 날 것 그대로의, 더 적막하고 스산하면서도 여지를 남기지 않는 분위기가 더 좋네요. 바비에게 희망은 사치라 느껴지거든요. 태어날때부터 불쌍한 녀석이니....

2009/04/13

마쓰모토 세이초 걸작 단편 컬렉션 (상)- 마쓰모토 세이초, 미야베 미유키 엮음 / 이규원 : 별점 4점

마쓰모토 세이초 걸작 단편 컬렉션 - 상 - 8점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미야베 미유키 엮음, 이규원 옮김/북스피어

마쓰모토 세이초 선생  (이후 "선생" 생략) 의 계승자이자 애호가로도 유명한 추리소설가 미야베 미유키 여사 (이후 "여사" 생략) 가 직접 선정한 마쓰모토 세이초의 걸작 단편 컬렉션 상권입니다.

마쓰모토 세이초야 뭐 추리 애호가는 누구나 알만한 거장이죠. "일본 사회파"라는 쟝르의 창시자이기도 하고 말이죠. 제가 마쓰모토 세이초 작품을 처음 접한 것은 "점과 선" 이었고, 그 이후 하서 출판사 판본을 통해 "제로의 촛점", "모래그릇" 등을 차례로 읽었고 그 이후 비교적 후기작품인 "나비성"이나 "적색등" 같은 작품까지, 국내 출간된 장편은 거진 다 읽어본 것 같습니다. 하지만 명성과 작업량에 비해 국내 출간된 작품이 수가 적고, 또 단편은 극히 드물어 아쉬움을 느끼던 차에 500페이지가 넘는 분량에 미야베 미유키 여사의 친절한 해설과 짤막한 감상, 그리고 마쓰모토 세이초의 단편이 일정한 기준으로 선정되어 실려있는 풍부한 구성이라 읽고난 후에도 만족이 큰 단편집이었습니다. 거장의 방대하고 어마어마한 작품세계를 알짜배기만 쏙쏙 뽑아 읽는 기획인지라 나름 공부도 된 것 같아 좋더군요.

이 단편 컬렉션 상권은 전부해서 4개의 큰 주제로 구성되어 있는데, 주제별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일단 제 1장인 "거장의 출발점" 은 마쓰모토 세이초의 초기작으로 추리소설은 아닌 순문학 작품 2편이 실려 있습니다. 특히 데뷰작이자 아쿠타카와 상 수상작이라는 "어느 <고쿠라 일기> 전"은 가슴이 먹먹해 지는 이야기 구성은 물론 문체나 자료 조사 등 모든 부분에서 역시나 대단함을 느끼게 한 작품이었습니다. 김성종 선생님의 "어느 창녀의 죽음" 이 떠오르기도 했고요.
두번째 작품인 "공갈자" 역시 좋은 작품이고 재미있게 읽긴 했는데, 지금 읽기에는 좀 낡은 감이 있고 탈옥에 관련된 내용이 반전같이 등장했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더군요. 너무 생각대로 이야기가 흘러가버리기 때문에 별로 상상의 여지가 없어서 좀 아쉬웠습니다. 뭐... 어차피 주제에 맞게 초기작 중에서 선정한 것이니 제 기대와 다른 것은 어쩔 수 없었겠죠. 추리물이 아니기도 하니까요.

2번째 장인 "My Favorite"는 미야베 미유키가 마음에 들어한 추리소설 4편이 실려 있습니다. "사화파"의 창시자답게 본격 정통 추리물들은 아니지만 충분히 설득력있고 지금 읽어도 그럴 듯한 트릭과 설정들이 등장하는, 그야말로 거장의 아우라를 느끼기에 충분한 좋은 작품들이 실려 있네요.
제일 먼저 등장하는 작품은 굉장히 신선하고 독특할 뿐 아니라 지금 읽어도 걸작이라 할 수 있는 "일 년 반만 기다려"입니다. 이 작품은 미야베 미유키도 해설에서 절찬하고 있는데 확실히 찬사가 아깝지 않은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주로 1인칭으로 그려지는 전개도 독특했고 말이죠. 유사한 설정의 작품인 다카키 아키미쓰의 "살의"와 비교해 봐도 재미있을 것 같은데, 다시 찾아봐야겠네요.
그리고 이어지는, 아주 단순한 단서에서 비롯되는 무서운 진상이라는 주제를 잘 표현한 "지방지를 구독하는 여자" 도 좋았습니다. 사실 저는 이 작품이 저는 "일 년 반만 기다려" 보다도 더 낫다는 생각이 드네요. 정말로 사소한 부분에서 불거지는 추리의 과정이 잘 그려져 있을 뿐 아니라 설득력 역시 충분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책의 전체 단편을 통틀어 유일하게 "탐정" 역할이 등장하기 때문에 더 마음에 들었는지도 모르겠네요. 제가 이런 고전적인 요소를 무척 좋아라 하니까요.
세번째 작품인 "이외지리"의 경우는 섬뜩한 맛이 일품인 단편인데, 이 작품의 경우는 에도 시절의 전설과 같은 이야기를 소재로 하였기에 미야베 미유키의 "혼죠 후카가와의 기이한 이야기" 느낌도 살짝 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추리적인 요소는 많이 부족하기 때문에 순전히 미야베 미유키 여사의 에도 취향이 반영된 선정이 아닐까 의심되기는 합니다...
4번째 작품인 역사추리물 "삭제의 복원" 의 경우에는 1장에 실려있던 "어느 <고쿠라 일기>전"과 연결되는 소재, 즉 일본의 문호라는 오가이의 숨겨진 이야기를 파헤치는 형식의 작품인데 역사추리물로의 완성도는 높지만, 오가이라는 인물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기 때문에 흥미가 많이 떨어진다는 것이 아쉽더군요. 소재에 대한 흥미가 제로인지라... 만약 따로 출간되었더라면 구태여 찾아 읽지 않았을 것 같은 작품이었습니다. 이 작품을 통해 "오가이"라는 인물에 대해 흥미가 생긴 것 정도가 수확이네요.

3번째 장인 "노래가 들린다, 그림이 보인다" 는 제목 그대로 노래와 그림에 대한 추리 단편 두편이 실려있습니다. 노래와 그림을 소재로 추리소설을 만드는 것에 대한 일종의 모범 답안 같은 작품들이랄까요?
"수사권외의 조건"은 과거의 히트곡을 테마로 한 단편으로, 누구나 아는 히트곡이지만 시간은 좀 흐른, 그래서 그 노래가 인상에 깊이 남는 상황을 잘 짚어낸 작품이었습니다. 90년대 후반에 서태지의 "난 알아요"를 듀엣으로 흥얼거리는 상황을 예로 들 수 있겠네요. 확실히 엄청 튈것 같기는 합니다.^^
두번째 단편인 "진위의 숲"은 길이가 제법 긴, 단편보다는 중편에 가까운 작품으로 그림 위조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작품으로, 결말이 좀 시시하고 추리물이라고 하기에는 추리적 요소가 부족한, 범죄-사기물이긴 하지만, 마쓰모토 세이초라는 작가의 새로운 면을 접한 것 같아 굉장히 신선하기도 했고 워낙에 소재가 독특해서 아주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갤러리 페이크"의 한 에피소드를 읽는 기분이었달까요? 그러고보니 이 작품의 주인공도 엘리트지만 현재 일본 미술계에서 왕따가 되어버렸다는 측면에서 후지타 레이지와 왠지 겹쳐보이기도 합니다.^^

마지막인 제 4장 "‘일본의 검은 안개’는 걷혔는가" 는 마쓰모토 세이초의 많은 논픽션 시리즈 작품들 중에서 쇼와사 발굴이라는 주제의 2.26 사건 (군부 쿠데타 미수 사건) 관련 글, 그리고 전후 일본의 이른바 "추방"과 "레드퍼지 (좌익 세력 말살) 를 다룬 글, 이렇게 두편의 논픽션을 골라서 실어 놓았습니다. 그러나 솔직히 별 재미가 없어서 대충 읽어버렸네요. 잘 알지도 못할뿐더러 애시당초 별 관심 없는 분야였거든요. "추방과 레드퍼지" 편은 해방 직후 우리나라 상황과 오버랩되는 재미는 좀 있었지만 뭐 그뿐이었습니다. 다양한 쟝르에 손을 댄 "거장" 의 대표작을 엄선했다는 작품집 취지 탓에 당연히 포함된 것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논픽션 대신 추리단편을 더 실어주는 것이 훨씬 나았을 것 같아요. 마쓰모토 세이초의 히트 논픽션인 "일본의 검은 안개" 라는 시리즈 물 제목에서 "검은 안개"라는 말이 처음 등장했다.. 정도만 새롭게 다가온 정도입니다.

덧붙여, 4개의 주제가 모두 끝난 뒷부분에는 마쓰모토 세이초와 같이 일했던 편집자 3인의 짤막한 추억담이 실려있습니다. 일종의 부록같은 느낌인데 거장이 편집자에게 시키는 "자료조사" 라는 것이 상당히 중요한 비중으로 등장하는 것이 인상적이더군요. 앞서 말했던 "고증"과 "자료조사" 가 중요한 이야기들의 방대하고 치밀한 조사 내용을 볼 때. 편집자들의 노고가 느껴져 절로 고개가 숙여질 뿐입니다. 지금이야 인터넷 등으로 업무가 좀 편해졌을 것 같은데 60~70년대의 자료조사는 정말 발로 뛰는 것 밖에는 방법이 없었을테니... 편집자들의 고생을 생각하면 눈물이 앞을 가리네요. 또 이렇게 편집자를 부려먹을(?) 수 있는 "거장"의 "당당한 작업 태도" 는 부러울 따름이고요. 쩝.

결론적으로, 별점은 4점입니다. 기획과 구성은 물론 선정된 작품 거의 대부분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죠. 친절한 해설과 미야베 미유키의 짤막한 감상도 무척 좋았기에 이어질 다음 권들도 기대가 아주 큽니다. 책의 디자인도 그럴듯 했고 말이죠. 3권이 연달아 꽂혀 있는 책장의 모습을 빨리 보고 싶네요^^ 개인적 베스트는 "지방지를 구독하는 여자" 를 뽑겠습니다.

PS : 마쓰모토 세이초 탄생 100주년을 맞아 대표작들의 다양한 영상화가 이루어진다고 하는데 구해보고 싶습니다...

2008/12/29

내가 추천하는 한국 추리소설들

이 기사를 읽고 적어 봅니다.

사실 한국 추리소설의 문제는 다름 아닌 "작품의 질" 그 이상 이하도 아니라 생각합니다. 사실 8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 추리소설계가 이렇게 암담하지는 않았으니까요. 김성종 선생님 작품은 고정팬이 있어서 출간만 하면 몇만부씩 팔린다는 이야기도 있었죠. 그러나 사람들의 관심이 멀어진건 이러한 한국 추리소설들이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성적인 묘사만 난무하는 저질 소설이 대부분을 차지하게 된 이후라 생각됩니다.

이러한 점은 초창기인 김래성 선생님때부터 이미 에도가와 란포의 향취가 느껴지는 등 그동안 계속 일본 추리소설의 영향을 받다가, 80년대 한국 추리소설이 반짝 인기를 끌 때 일본 추리소설의 나쁜 점만 받아들여 문제가 커진 것 같습니다. 제가 별로 안 좋아하는 모리무라 세이이치의 나쁜 점만 극대화한, 예를 들자면 몇작품 안 읽어봤지만 펄프픽션의 대명사라 할 수 있는 가츠메 아츠사, 또는 범위를 넓히자면 시드니 셀던 류의 작품군이랄까요. 더군다나 이러한 성적인 묘사 때문인지 정통물은 아예 발붙이기 힘든 풍토마저 조성되어 고정 독자들도 멀어진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도 암담한 시기에 두각을 나타내었던 몇 작품을 소개해 볼까 합니다. 추천할만한 작품이 아닐 수도 있지만 "한국 추리 소설" 이라는 타이틀을 대표할만한 작품들이기에 한번쯤 읽어보시길 권해 드립니다.

  • 김래성 - 비밀의 문 : 정확하게는 이 단편집의 "타원형 거울" 외 몇편 뿐이지만... 역사적 의미와 더불어 재미도 갖춘 보기드문 작품이라 추천합니다. 선생님의 추리소설 대표작인 "마인"은 추리소설로는 너무 함량미달이라 도저히 추천하기 어렵네요.
  • 김성종 - 최후의 증인 : 누가 뭐래도 한국 추리문학계의 거목이신 김성종 선생님의 대표작이죠. 추리적인 요소는 좀 부족하지만 재미와 더불어 역사의식까지 가지고 있는 좋은 작품입니다.
  • 백휴 - 낙원의 저쪽 (고려원 한국 미스터리 컬렉션) : 심리 스릴러물로 쓱쓱 읽히는 재미는 충분한 작품입니다. 개인적으로 이 작가의 작품은 단편을 더 좋아하긴 하지만요.
  • 김남 - 돛배를 찾아서 (고려원 한국 미스터리 컬렉션) : "미술계"를 소재로 했다는 점도 특이하지만 정통 추리물로 보아도 손색없는 작품으로 추천합니다.
  • 권경희 - 저린 손끝 (고려원 한국 미스터리 컬렉션) : 작가의 데뷰작이죠. 좀 처지는 감은 없잖아 있지만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 정건섭 - 덫 / 5시간 30분 : 김성종 선생님과 반대되는 위치랄까요? 국내에서는 거의 최초로 냉정하고 치밀한 추리물을 선보이신 정건섭 선생님의 이 두 작품은 꼭 읽어봐야 할 작품이라 생각됩니다.
  • 이종호 - 분신사바 : 재미라는 측면에서는 합격점인 호러소설입니다. 마무리가 좀 아쉽긴 했지만....

** 이외에 "경성탐정록" 도 관심가져 주시면 더할나위 없겠죠?^^

2007/11/30

피닉스 - 에이모스 어리처 & 일라이 랜도 / 김성종 : 별점 2점

피닉스 - 4점
에이모스 어리처 & 일라이 랜도 지음, 김성종 옮김/해문출판사

리비아의 독재자 카다피는 친미 성향의 이집트와 손잡은 이스라엘에게 경고하기 위해 내각의 핵심 인물이자 전쟁 영웅 "모세 다얀" 장군을 암살할 계획을 세웠다. 리비아 정보부는 이를 위해 3명의 프로에게 암살을 의뢰했다. 한명은 사교계의 여왕으로 패션 모델 에이전트를 운영하는 마담 샤를로트, 그리고 또 한명은 저널리스트인 깁스코프, 마지막 한명은 정체불명의 사나이 피닉스!

첩보물의 한 갈래이기도 한 암살물은 "자칼의 날"이 가장 유명하겠지만, 이 작품도 나름 저명한 고전이죠. 솔직히 이쪽 쟝르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지만 간만에 간 헌책방에서 싸게 집어왔습니다. 그런데... 읽다 보니 전에 읽었던 책이더군요. ㅠ.ㅠ

국제적인 암살 음모에 고용된 정체를 알 수 없는 킬러와의 한판 승부라는 내용은 자칼과 유사합니다. 다만 자칼의 상대는 경찰이었는데, 이 작품에서는 이스라엘 정보부라는 정도의 차이 뿐입니다.
암살물을 평가하는 데 중요한 요소인 암살 과정의 묘사는 합격점을 줄 만합니다. 피닉스가 모세 다얀을 암살하기 위해 준비하는 여러 과정이 흥미진진하게 전개되며, 디테일도 살아 있습니다. 또한, 정체불명의 킬러에 대한 묘사 역시 슈퍼맨처럼 비현실적이라는 점만 제외하면 매력적인 캐릭터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미 읽었던 작품이지만, 충분히 재미있게 다시 읽을 수 있었습니다.
특이한 점으로는, 이 작품의 번역자가 국내 추리소설의 거장인 김성종 선생님이라는 사실입니다. "번역은 제2의 창작"이라는 말처럼, 작가분이 직접 번역한 점은 긍정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실제로 번역도 매우 매끄러워 읽기 편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점들이 남습니다. 피닉스의 암살 준비 과정은 디테일이 살아 있지만, 방법론 자체가 현실적이지 않다는 점은 감점 요인이었습니다. 특히, 중요한 "고대상자"라는 유물에 대한 설정은 다소 간과된 느낌이었고, 70년대 작품임을 감안하더라도 수사가 지나치게 "제보"에 의존하는 방식은 설득력이 부족했습니다. 결말 역시, 초반부터 잘 묘사해온 피닉스라는 캐릭터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허무한 마무리로, 큰 실망을 안겨줍니다.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 읽는 재미는 충분한 만큼 킬링타임용으로는 적당하다 싶지만, 작품이 지나치게 이스라엘 중심적이라는 점에서 거부감이 들 수 있습니다. 특히, 저처럼 이스라엘에 반감을 가진 독자라면 공감하기 어려운 부분도 많을 것 같습니다.

2006/10/15

Japan 미스터리 걸작선 2 - 한국, 일본 추리작가협회 추천 / 정태원 번역 : 별점 2.5점

1권3권은 이미 이전에 읽었지만 2권만 구하지 못했었는데 블로그 지인인 석원님의 도움으로 드디어! 읽게 된 책입니다. 

전쟁 직후, 주로 약 1950~60년대의 단편들을 모아놓은 앤솔러지로 시대가 시대이니 만큼 전쟁 당시를 배경으로 한 작품도 제법 있는 편입니다. 작가들도 현대보다는 과거의 명작가들이 많이 포진해 있고요. 이름만 아는 작가지만 사노 요, 츠츠이 야스타카, 시마다 가즈오, 도가와 마사코, 오카지마 후타리, 오오야부 하루히코는 워낙 유명한 작가들이라서 목차만 보더라도 무척이나 풍성한 느낌을 줍니다.
정통 추리물보다는 이색적이고 변칙적인 작품들이 많이 실려 있으며 당시의 취향인지는 모르지만 대부분의 단편이 좀 집요하고 처절한 인간 본성을 건드리는 작품들이 많다는 특징이 있고요.

그러나 지금 읽기에는 확실히 낡은 느낌을 주는 것은 어쩔 수 없네요. 정통 추리물 매니아를 자처하는 저에게는 썩 입맛에 맞는 작품들도 아니었고요. 추리소설의 태동기에서 갖가지 실험적인 형식이 적용되던 과도기시대의 작품들이라는 느낌? 또 치정에 관련된 사건이 많다는 것 역시 장점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기대에는 미치지 못한.... 추리적 맛은 덜하나 여운을 남기거나 설정이 재미난 작품들이 많은, 석원님 표현을 빌자면 "별미"에 가까운 작품들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개인적인 베스트는 배경 설정이 탁월하고 재치와 유머가 넘치면서도 정통파적인 매력을 잘 보여주는 아와사카 츠마오의 "기울어진 방", 그리고 사소한 발상이지만 내용 전개가 재기발랄하고 유쾌한 오카지마 후타리의 "늦게 도착한 연하장"을 꼽고 싶네요. 1. 도박 - 사노 요

대학의 조교수인 주인공은 주말 부부로 지내던 중 아내의 자살 사건을 접했다. 유서를 통해 그는 이유가 도저히 들통날 수 없던 자신의 불륜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데... 

굉장히 여성스러운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그러면서도 결말 부분의 여운이 진한 작품입니다. 과연 그녀는 뭐라고 말했을까요? 별점은 3점입니다.

2. 그녀들의 쇼핑 - 츠츠이 야스타카 

한 커피숍에 같은 단지에 거주하는 아줌마들이 모여 교외의 대저택으로 떠난다... 

짧은 길이지만 반전에서 전해주는 인상이 강렬한 소품. 별점은 2.5점입니다.

3. 넹고넹고 - 가야마 시게루

한적한 마을에 식료품이 조금씩 없어지는 절도 사건이 발생하고 주인공 형사는 사건 해결을 위해 탐문하던 중 이상한 노파를 만나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되는데... 

가야마 시게루도 잘 모르는 작가이지만, 내용이 도대체 뭔지도 알 수 없네요. 절도 사건이 소재라 아예 추리물이 아니라 단정짓기는 뭐하나 환상문학에 더 가깝습니다. 별점은 1점입니다.

4. 까마귀 - 다키가와 교

쇠락해 가는 군 장성 가문의 남매는 집안 관리를 위해 하녀를 고용했다. 오빠는 하녀와 관계를 맺게 되지만 결혼을 요구하는 하녀를 살해하려고 결심하는데... 

줄거리만 보아도 내용 전체를 짐작할 수 있는 뻔한 소재와 내용의 작품입니다. 심리묘사와 까마귀에 대한 묘한 공포감을 자아내는 분위기는 그럴 듯 하지만 그 외에는 별로 특출난 부분은 없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5. 안마사 케이 - 시마다 가즈오

주인공은 한 온천에서 옛 하얼빈 특파원 시절에 알게 되었던 안마사 케이를 만났다. 

여자의 집요한 복수를 그린 단편으로 별다른 트릭은 없지만 안마사 케이의 대사 하나로 사건을 압축하는 묘미가 있는 소품입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6. 마지막 인사 - 야마다 후타로

교외의 마을에서 발견된 죽은 쥐가 페스트에 감염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져 마을은 방역때문에 비워졌다. 비워진 마을에 파견된 두 형사는 예전 공습때 소실된 한 마을의 모습을 떠올리는데... 

전쟁 막판의 일본을 무대로 당시의 사회상을 리얼하게 묘사한 작품입니다. 사회파의 선구자적인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추리물보다 순문학에 가깝습니다. 김성종의 "어느 창녀의 죽음"과 비슷했달까요? 별점은 2.5점입니다.

7. 수집광 - 야마구치 마사야

조지 매컬리는 SP음반 수집광으로 취미때문에 가족도 잃고 직장까지 바꿨다. 그런 그가 방문한 한 마을에서 그는 "보물"을 발견한다... 

음반 수집광을 소재로 한 이색 단편. 그러나 내용 전개는 로얄드 달의 "목사의 기쁨" (단편집 "맛"에 수록)과 유사하여 예측 가능한 수준이라 재미는 덜합니다. 개인적으로는 뭔가 반전이 나와줄 것 같았는데 결말이 너무 뻔했어요. 별점은 2점입니다.

8. 방공호 - 에도가와 란포

전쟁 중 공습 때문에 피신한 방공호에서 주인공은 한 미녀와 우발적으로 관계를 맺게 되는데... 

란포 선생의 단편입니다. 1인칭 독백 형식으로 구성된 재치있는(?) 전개와 나름의 반전이 인상적이지만 추리물은 아닙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9. 이중 동반살인 - 사사토 사카에

결혼을 앞둔 공무원이 호스테스와 함께 밀폐된 방안에서 가스를 틀어놓고 죽었다. 사건은 여러 증거를 토대로 자살로 처리되었다. 이의를 제기하던 그의 약혼자마저 시체로 발견되는데...

두건의 이중 살인이 벌어지는 정통 추리물입니다. 하지만 추리적인 가치가 있는 사건은 최초의 사건 뿐입니다. 밀실 트릭과 자살로 보이게 만드는 유언장 트릭이 등장하지요. 

트릭은 나름 괜찮지만 낡았다는 느낌이 강하고 무엇보다 범인역의 인물이 억지스러워서 그닥 높은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두 번째 사건도 별다를게 없고요. 별점은 2점입니다.

10. 보석 - 구스다 쿄스케

야쿠자 보스가 총격으로 죽고 그가 노리고 있던 다이아몬드가 사라지는데... 

여러가지 트릭 및 반드시 필요한 "명탐정"까지 등장하는 정통 추리물입니다. 정황 증거만 가지고 추리하는 탐정의 실력도 놀랍지만 독자에게도 공정하게 정보를 제공하는 점에서 고전 정통 퍼즐 미스테리의 맛을 진하게 풍기네요. 결말 부분에서 반전까지 있어서 만족스러워요. 별점은 3점입니다.

11. 2월 2일 호텔 - 기타카타 겐죠

주인공 사진작가는 아프리카의 2월 2일 호텔에서 과거 운동권 동지를 20년만에 만났지만, 곧바로 수수께끼의 잡상인에게 협박을 받게 되는데... 

솔직히 무슨 내용인지 잘 이해가 안 가더군요. 남자와 남자간에 있을 수 있는 알듯 모를듯한 관계를 그리고 있긴 한데 와닿지 않았어요. "기나긴 이별"의 마지막 부분을 확대한 느낌이랄까요? 절대 추리물은 아닙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12. 어둠 속으로부터 - 도가와 마사코 

주인공은 관계를 맺고 있는 여자가 있지만 명문 가문의 여성과의 결혼을 위해 그녀를 버렸다. 그러나 결혼식장에서부터 그는 그녀의 존재를 느꼈고, 서서히 신혼부부는 공포스러운 상황을 맞이한다... 

뻔하디 뻔한 소재와 상투적인 전개를 지닌 작품입니다. 너무 뻔해서 할말이 없을 정도죠. 반전조차 뻔합니다. 별점은 1점입니다.

14. 기울어진 방 - 아와사카 츠마오

"귀신 단지"라는 별명의 아파트에서 참혹한 살인사건이 벌어졌다. 단지에 살고 있는 직장 후배의 권유로 자리에 모인 주인공 일행은 사건 해결을 위해 자체적인 조사에 나서는데... 

제일 마음에 든 작품 중 하나입니다. 정통 추리물이기도 하지만 "귀신 단지"라는 아파트의 묘사가 너무나 재미난 덕분입니다. 참혹한 사건이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유머러스한 느낌도 많이 묻어나며, 탐정 캐릭터도 독특하고 인상적이에요. 별점은 3점입니다.

15. 상자 속의 당신 - 야마가와 히사오

음.. 굉장히 짧은 소품으로 어디선가 읽은 듯한 느낌이 강한 작품이었습니다. 뭐라 평가하기 어렵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16. 늦게 도착한 연하장 - 오카지마 후다리

시부사와는 출근하자마자 회사내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진 것을 알아챘다. 이유는 그가 포르노를 판매한다는 것이 밝혀졌기 때문인데... 

사소하지만 꽤나 괜찮은 트릭(?)이 등장하는 귀여운 작품으로 재미나게 읽은 작품입니다. 정통 추리물로 보기에는 약간 거리가 있긴 하나 이 정도 수준이라면 누구나 만족할 만한 단편이 아닐까 싶네요. 좀 낡은 감이 있긴 하지만요. 별점은 3점입니다.

17. 손님 - 오오야부 하루히코

기발한 반전으로 로얄드 달이나 스텐리 엘린의 느낌을, 정말 약간... 전해주는 짤막한 소품입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2005/07/29

비밀의 백화점 (추리소설 특급 가이드) - 한겨레21 별책부록

한겨레 21의 여름 특집 별책부록 추리소설 가이드입니다.

별책부록이라고는 하지만 분량으로는 100여페이지 정도이고 폰트 크기도 작은 편이니 외견보다는 많은 내용을 담고는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다양한 저자들을 섭외해서 여러 종류의 글들을 짧게 짧게 실어놓은 책으로 김탁환씨와 성귀수씨와 같은 메이저 작가, 번역가에서 영화평론가들, 그리고 Howmystery.com과 화요추리클럽 분들을 비롯해서 알라딘 전설의 리뷰어 물만두님까지 온-오프라인을 아우르는 기고자들이 면면이 화려하고 워낙 많아서 다양한 취향을 음미하는데에는 상당히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거기에 짤막한 만화까지 포함되어 다양한 쟝르를 포괄하고 있는 점도 좋은 기획으로 보입니다. 척박한 국내 만화계에서 비교적 정통파 추리 만화를 그렸던 한혜연과 석동연씨가 작가진에 있는것이 반가우며 추리 매니아이신 김진태씨도 짧지만 재미있는 만화를 개재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워낙 짧다보니 글의 테마와 종류에 비한다면 그다지 깊이가 없긴 합니다. 조금 페이지를 늘리더라도, 아니면 기고자를 조금 줄이더라도 내용을 더욱 풍성하게 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네요. 물론 별책부록인 만큼 자금과 페이지 사정이 있었겠지만 지금 상태는 좋은 기획의도를 충분히 받쳐주지 못하는 팜플렛에 가까운 결과물이라 생각됩니다. 또한 온라인 추리 동호인들의 의견이 많이 반영된 것은 분명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척박한 풍토에서 고생해온 국내 추리작가들의 비중이 너무 없는 것은 불만스럽습니다. 이젠 원로축에 끼시는 김성종 선생님이나 정건섭 선생님에게는 최소한 한페이지 이상은 의뢰드렸어야 하지 않았을까 싶거든요. 번역계에서도 국내 추리계의 저변 확대에 기여하신 정태원 선생님의 이름이 없어 아쉬웠습니다. 마지막으로 책 권말의 추리소설 목록은 솔직히 불필요한 부분이었다고 보이고요. 어차피 다 싣지 못할 바에야 올해 신간만 리스트업하는게 더욱 좋았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래도 조금만 더 손을 본다면, 그리고 출판사의 의지가 작용한다면 장래에는 국내판 "이 미스테리가 굉장해!" 수준의 책을 뽑아 낼 수도 있겠다는 희망을 던져 주는 책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내 작가의 비중이 보다 높아져야 하리라 생각되고 국내 추리소설계도 분발해야 겠지요. 부디 내년에는 보다 풍성한 내용으로 가득차기를 기대합니다.

마지막으로 저도 포함되어 있는 앙케이트 한번 해  봅니다...

1. 가장 사랑하는 추리소설 1-5
어떻게 다섯개만 뽑을 수 있겠습니까만은, 현재의 베스트는
미야베 미유키 "화차", PD 제임스 "어떤 살의", 피터 러브시 "밀랍인형", 로스 맥도널드 "소름", 크리스티 "화요일 클럽의 살인"

2. 명성에 비해 실망스러웠던 작품
아카가와 지로의 삼색털 고양이 홈즈 시리즈. 명성이라는게 있는지조차 의심스럽지만요.

3. 최고의 작가
레이몬드 챈들러. 두말할 필요 없겠죠...

4. 가장 사랑하는 탐정
모스 경감. 나름 약점도 많고 인간적인 매력이 넘쳐 마음에 듭니다.

5. 가장 인상적인 악당
"유니스의 비밀"의 유니스 파치먼. 전형적인 악당이 아니고 평범한 하녀에서 폭발하는 광기에의 감정 이동이 놀라왔던, 그래서 더욱 무서웠던 인물입니다.

6. 가장 훌륭한 결말 그리고 어처구니없는 결말
훌륭한 결말 - 피터 러브시 "가짜 경감 듀" 납득하기 어려운 점도 있지만 복선과 사건이 완벽하게 정리되며 모두가 행복해지는 멋진 엔딩이라 추천합니다.
어처구니 - 사카구치 안고 "불연속 살인사건" 이렇게 모두 죽어나가면 범인이 누구인지 알 수 밖에 없잖아요?

7. 가장 완벽한 범죄
도널드 웨스트레이크의 "도끼". 범죄자의 자기 합리화를 독자에게도 공유하게끔 하는 설정이 놀랍습니다.

8. 가장 멋진 대사
"정말 잘 가라는 말은 벌써 해 버렸단 말이야. 정말 잘 가라는 말은 슬프고, 쓸쓸하고, 절실한 느낌을 지니고 있을 걸세"
 레이몬드 챈들러의 "기나긴 이별" 마초이즘과 서정성을 동시에 느끼게 하는 명대사.

9. 배신하지 않는 작가 (가장 믿을 만한 작가)
로스 맥도널드, 국내 출간된 작품을 다 읽은 유일한 작가일 뿐더러 작품이 전부 일정 수준 이상입니다.

10. 가장 잘된 추리(미스터리)영화
알프레드 히치콕의 "다이얼 M을 돌려라!" 구관이 명관, 명불허전의 작품입니다.

11. 우리나라에 꼭 소개되어야 할 작품
비교적 소개된 것이 적은 일본 고전 본격물과 신 본격물의 다양한 소개를 기원합니다. 예를 들자면 아리스가와 아리스나 노리츠키 린타로. 다카키 아키미쓰 등이요.

12. 가장 좋아하는 국내 추리소설
많이 읽지는 않았지만 그 중에서라면 김성종의 "최후의 증인"

13. 미스터리 초보에게 추천하는 작품 셋
초보자에게는 단편이 더욱 어울리리라 생각됩니다. 세 편이라면 크리스티의 "화요일 클럽의 살인", 엘러리 퀸의 "엘러리 퀸의 모험" 두 단편집과 황금시대 정통 본격물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딕슨 카의 "황제의 코담배 케이스" 를 추천합니다.

14. 나는 추리소설을 좋아한다. 그 이유
항상 저를 지적인 흥분상태로 몰고 가는 두근두근한 긴장감이 좋습니다. 또 혹시 압니까? 향후 요긴하게 써먹게 될지도..... 기차 시간표를 이용한 알리바이나 한번 만들어 볼까나!

15. 그리고 할 말이 남아 있다.
추리 독자의 저변이 더욱 넓어져서 제가 군침만 삼키던 작품들이 더욱 많이 번역되어 출간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뭔가 기획해서 책을 내보고 싶기도 한데, 저변과 시장이 넓어지면 언젠가는 기회가 되겠죠.

2005/06/25

최후의 증인 - 김성종 : 별점 4점

최후의 증인 김성종 지음/동서문화동판주식회사

과거 빨치산 부역, 그리고 사람을 죽여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가 20년만에 감형되어 출옥한 순박한 노인 황바우의 출소 직후, 양조장 주인 양달수가 살해당한다. 오병호 형사는 사건을 수사하던 중 이 사건이 서울의 변호사 김중엽 살인사건과 연관되어 있고 두 사건은 20년전 과거가 원인이라는걸 알게된다.
황바우가 죽였다는 한동주가 사실은 살아있다는 증언을 확보한 오병호는 한동주의 행적을 추적하기 위해 노력하던 중, 정당방위였지만 살인을 저지르게 되고 경찰에게마저 쫓기는 신세가 되어버리나 끝까지 진상을 밝히기 위해 노력하며 결국 한동주를 검거하는데 성공하는데....

보통 국내 추리작가의 양대산맥으로 "정건섭"선생님과 "김성종" 선생님을 꼽죠. 이 중 정건섭 선생님은 국내 현실에 잘 맞는 정통 추리물 "덫"과 "5시간 30분"을 읽고 좋아하게 되었지만, 김성종 선생님 작품은 김성종 선생님의 그간의 국내 추리계를 위한 노력과 활발한 작품 활동에 비해서 제 노력 부족 탓에 그동안 별로 읽은 것은 없습니다. "여명의 눈동자"를 제외한다면 단편집 "어느 창녀의 죽음" 정도일까요? 그래서 평소에도 무척 아쉽던 차였는데 고려원에서 나온 한국 미스터리 컬렉션으로 구입해서 읽게되었습니다.
읽고나니 과연 명불허전! 거장 김성종 선생님의 진가를 잘 알려주는 걸작입니다. 무엇보다도 한국전쟁 직후의 우리나라의 비참했던 과거를 소재로 하고 있는 등 한국적인 소재와 내용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는게 아주 마음에 드네요. 세세한 설정과 대사에서 토속적인 정감을 물씬 풍기는 작품은 정말 처음 봤습니다. 6.25 직후의 혼란스러운 시대상황에서 빚어진 비극을 이만큼 잘 묘사하고 있는 작품은 다른 장르를 통틀어도 드물것이라 생각되고요. 덕분에 미국식 스릴러와 일본 사회파와는 확실히 차별화됩니다.
아울러 연쇄살인에 대한 트릭없이 "범인이 누구인가?"라는 가장 기본적인 명제를 소재로 하고 있는 후더닛물이라는것 도 한국적이면서도 현실적이라 좋았습니다. 수사 과정도 마찬가지로 오병호 형사가 프렌치 경감처럼 주로 발로 뛰는 타입인데다가 "증언"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에서 현실적이고요. 추리적 요소는 그렇게 크지는 않으나 사건의 실상을 파헤치는 증언이 워낙 충격적이라 지루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습니다. 복잡하게 뒤섞여 있기는 하지만 각각의 이야기마다 연계성이 치밀하게 설정되어 명쾌하게 정리되는 결말 역시 최고 수준이에요.
탐정역의 오병호 형사도 대단한 추리적 능력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끈질기고 현실과 타협하지 않는 약간의 반골 성향에 곁들여 로맨티스트의 감성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그려지는데, 흡사 무협지의 외로운 검객 스타일의 독특함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라 마음에 들더군요. 무엇보다도 그다지 뛰어나지 않은, 평범한 인물이라는 점이 좋았습니다.

하지만 좌익쪽 인물들의 캐릭터가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인물들로 정형화되어 있는건 - 발표된 시대를 미루어 보면 충분히 이해는 가지만 - 아쉬운 부분이었고, 모든 관련자들이 죽는 결말은 감동을 극대화시키려고 무리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또 사건의 동기와 인간의 잔인함을 보여주기 위해 삽입한 장면이기는 하나, 김성종 선생님의 작품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불유쾌한 성적 묘사의 등장은 별로 였어요.

그래도 참 간만에 좋은 독서를 했습니다. 요사이 읽은 책들은 다 대박이었지만 그 중에서도 독보적이네요. 데뷰작이라는 것을 믿기가 어려울 정도로 잘 구성된 작품으로 이 작품이 한국 추리사에 빛나는 작품 중 하나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한국 추리문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읽고 넘어가야 할 작품입니다. 별점은 4점입니다.

PS : 이 작품을 원작으로 영화 "흑수선"이 제작되었다고 알고있는데 영화는 아직 보지 못했지만 간략한 줄거리만 보아도 각색을 굉장히 많이 했더군요. 워낙 긴 작품이고 꽤 긴 기간을 아우르는 작품이라 어느정도의 각색은 반드시 필요했겠지만 그 정도가 지나쳐서 원작에 누를 끼치지나 않았을지 우려되기도 합니다. 굉장히 이 작품을 재미있게 읽은 만큼 한번 구해보기는 해야겠네요. 혹 영화를 보신 분이 계시면 어땠는지 정보 부탁드릴께요^^

2005/06/17

헌책방 쇼핑

간만에 인터넷 헌책방을 뒤져서 몇권 구입했습니다.

사실 우연찮게 찾아간 헌책방 사이트에서 정태원 선생님이 편역한 "악성인자"라는 단편집을 보고 구매한 것이고 다른 책들은 거의 충동구매로 구입했습니다.
'악성인자"는 정말 꼭 보고 싶었던 단편집인데 구해서 기쁘네요.

다른 책들로는 먼저 정태원 선생님이 편역한 "공포특급 6", 일본 작가들의 공포 단편이 실려있는데 정태원 선생님이 편역하신 만큼 기대가 됩니다. 유치찬란 싸구려 책 표지 디자인은 용서가 용납되지 않는 수준이지만요.
로렌스 센더스의 "제 6계명", 좋아하는 작가는 아니지만 평이 좋은 작품이라 싼 맛에...
윌리엄 캐츠의 "마지막 파티", 리뷰들만 보면 꽤 괜찮은 것 같습니다. 역시 싼 맛에...
그리고 김성종 선생님의 "최후의 증인", 얼마전에 관련 리스트를 보기도 했지만 한국 추리소설중에서도 꼭 읽어봐야 할 작품일 듯 해서 구입했습니다.

이렇게 사도 2만원도 안 들었으니 헌책방은 역시 이런 재미에 찾아가는 것 같습니다.
이 책들만 읽어도 다음주도 즐겁게 보낼 수 있겠네요.

2005/06/08

추리소설 필독서 16선이라는 목록을 보고...

추리소설 필독서 16선?! 

산왕님 포스트에서 가져왔습니다. 

추리소설 목록

  1.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 애거서 크리스티
  2. 오리엔트 특급살인 ~ 애거서 크리스티
  3. Y의 비극 ~ 엘러리 퀸
  4. 통 ~ 프리먼 윌스 크로포츠
  5. 바스커빌의 개 ~ 코난 도일
  6. 이집트 십자가의 비밀 ~ 엘러리 퀸
  7. 황제의 코담배 케이스 ~ 존 딕슨 카
  8. 벌거벗은 얼굴 ~ 시드니 셀던
  9. 불새의 미로 ~ 유우제
  10. 애크로이드 살인사건 ~ 애거서 크리스티
  11. 노란방의 비밀 ~ 가스통 르루
  12. 그린 살인사건 ~ S.S. 반 다인
  13. 환상의 여인 ~ 윌리엄 아이리쉬
  14. 최후의 증인 ~ 김성종
  15. 천사와 악마 ~ 댄 브라운
  16. 다빈치 코드 ~ 댄 브라운
모 무가지의 어떤 기자가 작성하셨다고 하는데 이런 류의 글 치고는 국내 추리소설이 2편이나 포함되어 있는 것은 무척 환영할 만 하네요. 저도 무척 좋아하는 "Y의 비극"이나 "황제의 코담배 케이스", 그리고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고전 걸작 "통"이 포함되어 있는 것도 반갑고요.

하지만 걸작이긴 해도 크리스티 여사님의 작품이 3 작품이나 포함된 것은 좀 아쉽고 대체로 작가의 지명도에 많이 기대고 있는 듯 합니다. 예전 "명탐정 추리특급" 어쩌구 류의 백과사전에서 나올법한 정보인거 같기도 하고요.
또한 목록의 5, 6번은 유명세에 비한다면 그다지 높은 평가를 받을 만한 작품은 아니며 홈즈 시리즈의 진정한 걸작은 단편선에 있다고 보고 있기 때문에 좀 의외의 선택으로 보입니다. 아울러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단편선집이 포함되지 않은 장편 위주의 선정이라는 것도 개인적으로는 불만스럽습니다. 얼마전에 읽었었던 쓰레기 "벌거벗은 얼굴"이 대체 왜 포함되어 있는지 모르겠고요. 시드니 셀던이라는 작가 이름 때문일까요?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도 정통파 독자라면 그다지 찬성할 만한 초이스는 아닌 듯 싶군요. 많이 팔린 것은 사실이지만 이런 목록에서 보기에 반가운 작품은 아니라 생각됩니다.

그래도 "추리소설 입문자"를 위한 가이드로는 비교적 적당해 보이기도 합니다. 어차피 공신력은 전혀 없는 목록이긴 하지만 체크해 보니 총 12편을 읽었네요. 반 다인의 작품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 앞으로도 읽을 예정은 없지만 한국 작품 2편은 꼭 읽어 봐야 겠습니다.

* 2013년 1월 8일 추가. 이후 전권을 다 읽었습니다.

2003/12/15

어느 창녀의 죽음 -김성종 명작 소설집- - 별점 3.5점

한국 추리소설계의 대부 김성종씨의 단편선. "김교수의 죽음"이라는 제목으로 나온 것과 같은 책입니다.

작품들은 표제작을 포함해서 전부 9편의 작품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추리소설이라기 보다는 순문학에 가까운 단편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나마 조금 추리소설에 가까운 것은 "어느 창녀의 죽음", "소년의 꿈" 정도고요.
그러나 수록 단편 모두가 상당히 높은 수준의 묘사력과 구성력으로 질곡의 현대사와 거기에 얽힌 민초들의 고생담을 특유의 문체로 디테일하게 그린, 김성종씨의 필력을 짐작케 하는 괜찮은 작품들입니다. 특히 전쟁에서 비롯된 비극을 다룬 "어느 창녀의 죽음" 은 정말 걸작입니다! 강추!

하지만 역시 추리 매니아로서는 조금 불만스럽기는 하네요. 다른 앤솔로지에서 읽었던 추리단편들을 기대했었는데요. 추리 매니아로서 관심포인트는 김성종씨의 탐정 캐릭터 중 한명인 "오병호 형사"가 등장하는 편이 많다는 것 정도에 불과하거든요.

허나 새로운 김성종씨의 모습을 본 것 같아 기쁜 마음이 더욱 큽니다. 요새는 정말 기본도 안되는 작가들이 인터넷 탓으로 쏟아져 나오는데 추리작가, 펄프픽션 작가로 욕은 많이 먹지만 김성종씨의 필력이나 구성력은 정말 본받을 만 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역시 프로라면 프로다와야죠^^ 선생님의 높은 문학적 성취도를 느낄 수 있는 작품집으로 추천합니다. 별점은 3.5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