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도 - 데니스 루헤인 지음, 조영학 옮김/황금가지 |
"살인자들의 섬"으로 엄청난 내공을 보여줘 인상적이었던 데니스 루헤인의 단편집입니다. 다른 장편도 유명하기는 하지만 이상하게 손이 가지 않던차에 단편집이 있다는 것을 알고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읽고난 감상은, 기대한 것과는 전혀 다르다는 느낌이 가장 컸습니다. 보다 추리나 스릴러쪽에 관련된 이야기를 기대했는데 단편들 모두 심도깊은 드라마였거든요. 물론 모두 범죄에 관련된 작품들로 일정 수준 이상의 깊이를 보여주며, 캐릭터와 배경에 대한 묘사도 탁월하고 이야기를 끌어나가는 힘은 단편에서도 여전히 위력적으로 발휘되고 있어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에드 멕베인과 스티븐 킹을 섞은 듯한 숨막힐 것 같은 끈끈한 분위기가 인상적이었던 "들개사냥", 그리고 여러 상을 수상하기도 한 작품으로 독특한 시점과 전개, 묘사가 인상적인 "그웬을 만나기 전" 이 좋았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인 별점은 3점. 4점은 충분하다 싶을정도로 완성도 높은 단편집이긴 한데, 아무래도 "추리"와 "스릴러" 쪽으로는 좀 부족했기에 이쪽 점수를 좀 깎았습니다. (카테고리는 추리 / 호러 관련입니다만) "그웬을 만나기 전"을 희극으로 만든 "코로나도" 도 가장 분량이 많은 작품임에 불구하고 소설에 비해서는 별로 인상적이지 못해 감점 요소였고요.
그래도 좋은 단편집임에는 분명합니다. 김성종 선생님의 "어느 창녀의 죽음"과 비교해 보고 싶을 정도로 문학적인 부분에서의 성취가 뛰어나다 생각되네요.
들개 사냥 :
이 작품에 등장하는 소도시는 에덴이라고 불리우는, 남부 사우스캐롤라이나에 위치한 그야말로 깡촌입니다. 이 깡촌에서 마을 부흥을 위해 "에덴동산"이라는 일종의 테마파크 유치 사업이 막 시작되었다는 것에서 이야기가 시작되죠. 이 사업을 위하여 마을의 골칫거리인 들개 사냥을 위해 시장은 베트남전 참전용사인 블루를 고용하게 됩니다. 주인공은 블루의 친구이자 같은 참전용사인 엘진으로, 그는 점차 시간이 흐를수록 블루가 들개 사냥과 더불어 이상한 집착과 광기에 사로잡혀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는 내용이죠. 미국 남부 소도시스러운, 뜨거운 열기가 넘쳐나는 "에덴"과 등장인물들의 묘사, 그리고 이유를 알 수 없는 블루의 광기와 집착이 이글거리는 작품으로 읽으면서 갈증을 느낄 정도의 박력이 넘치는 작품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허무하다는 결말도 작품에 잘 어울렸고요.
덧붙이자면, 주인공들의 심리묘사 등에서 "살인자들의 섬" 느낌도 좀 나더군요.
ICU :
정체를 알 수 없는 조직에 쫓기던 남자가 우연찮게 그들을 따돌리고 대형 병원에 숨어들어가 병동을 전전하며 생활한다는 소품입니다. 문제는 주인공과 알 수 없는 조직의 정체나 배경 설명이 전혀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죠. 때문에 병원에서 스쳐지나간 사람들과의 드라마만 있을 뿐 정작 스릴러스러운 느낌은 전혀 없어서 좀 실망스러운 작품이기도 했습니다.
코퍼스 가는 길 :고등학교 풋볼팀의 망나니들이 자신들의 미래가 걸린 시합에서 실수를 한 팀 동료 라일 비뎃의 집에 찾아가 그 집을 박살을 내 놓습니다. 그리고는 라일의 여동생이자 그 집안에서 내놓은 자식 룰린을 따라 더 큰 집으로 이동하게 되죠. 그리고? 주인공은 무력함을 느낍니다. 그 집의 위세에 압도당한거죠. 자신의 상상과 힘을 뛰어넘는 존재에 직면하자마자 좌절하는, 그리고 뒤에서 소심하게 분노하는 모습이 흡사 요즈음의 우리들 같기도 합니다. 성장기이기도 하고 세태풍자로 볼 수도 있는 독특한 작품이네요.
독버섯 :
10페이지도 안되는 꽁트 수준의 작품입니다. 주인공이 자신의 동생을 실수로 죽게 만든 실베스터라는 악당을 남자친구 KL을 이용하여 살해하는 이야기이긴 한데, 잘 모르겠어요. 과연 주인공이 잘 한건지, 아니면 죽은 동생의 말대로 바보인지... 어쨌건 미래가 전혀 없어보이는 주인공의 말은 씁쓸한 여운을 남깁니다.
그웬을 만나기 전 :
주인공 바비는 사기꾼인 아버지의 꼬드김으로 여자친구 그웬과 함께 300만달러의 다이아몬드를 우연하게 발견한 광부 조지를 속여 다이아몬드를 훔쳐내려 하다가 사고로 총을 맞고 경찰에 체포됩니다. 그리고 4년 뒤, 출소한 바비를 찾아온 아버지는 다이아몬드를 어디에 숨겼는지를 집요하게 물어보죠. 그 뒤에는 짧은 아버지와 바비의 두뇌싸움끝에 바비가 승리하고, 모든 사실을 알아낸 뒤 악을 응징해 버립니다.
작품 자체가 바비를 2인칭으로 놓고 전개하는 특이한 묘사를 비롯해서 굉장히 특이하다 싶을 정도로 시공을 초월한, 굉장히 중첩되는 전개를 보여줍니다. 장편에서나 볼 수 있는 이러한 특이한 전개 등으로 작가의 힘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대표작으로 불리워도 무방하다 싶은 좋은 작품이네요. 작가의 말대로 "내츄럴 본 악인" 그 자체인 아버지 캐릭터도 굉장히 인상적이었고 말이죠.
작가의 다른 작품들이 다 그렇지만 이 작품은 정말 "영화"에 어울리겠다 싶어 잠깐 조사해봤더니 역시나, 제작은 진행되고 있는 모양이네요. 2009년 5월 개봉 예정이었는데 소식이 없는걸 보니 어찌된것인지는 모르겠지만요. 이 작품이야말로 "사랑" 이 있는 "잔혹한 복수극" 이자 "순수한 악인"이 등장하는 영화이니 만큼 박찬욱 감독님이 영화화하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아버지 역은 백윤식!
코로나도 :
"그웬을 만나기 전"을 토대로 희극화 한 극본입니다. 기본 내용은 똑같지만 바비의 부모로 보이는 인물들이 드라마에 끼어들고 결말부분에서 약간의 희망을 넌지시 암시하는 등 좀더 이야기는 풍성해졌습니다. 보다 대중적으로 와 닿을 수 있게끔 수정한 듯 보이는데 저는 소설과 같은 날것 같은 느낌, 더 적막하고 스산하면서도 여지를 남기지 않는 것이 더 좋아보입니다. 바비에게 희망은 사치라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요? 태어날때부터 불쌍한 녀석 같으니라구....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