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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01

삼월은 붉은 구렁을 - 온다 리쿠 / 권영주 : 별점 3점

삼월은 붉은 구렁을 - 6점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북폴리오

이쪽 바닥(?)에서는 꽤 인기를 많이 모았던 작품이죠. 하지만 정통 추리물이 아니라고 들어어서 크게 관심을 두지는 않았었는데, 할인 행사로 구입해서 읽게 되었습니다. 

제목과 같은 "삼월은 붉은 구렁을" 이라는 환상의 책을 소재로 한 총 4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단편집인데, 소재가 같음에도 장르와 분위기가 작품별로 굉장히 다릅니다. 분위기는 분명 유사하고, "의안의 남자" 와 같은 소재가 연결되어 있어서 "연작"이라는 냄새는 솔솔 풍기지만요. 나만 그런가..

어쨌건 읽고난 소감을 말하자면 "절반의 아쉬움" 입니다. 이 작품집에서 딱 반은 마음에 들었고, 나머지 반은 마음에 들지 않았거든요. 마음에 든 작품은 앞의 두편 "기다리는 사람들"과 "이즈모 야상곡", 마음에 들지 않은 작품은 "무지개와 구름과 새와"와 "회전목마" 였습니다. 제가 지나칠 정도로 추리 애호가이기도 하고, 아무래도 여성적인 이야기는 좋아하지 않아서 뒤의 두 작품은 취향에 잘 맞지 않더군요.

그러나 재미가 있고 없고를 떠나서 분위기를 잡아나가는 솜씨는 그야말로 탁월하고, 뭔가를 "설명하거나 묘사하는" 실력이 대단해서 작가의 다른 작품을 읽어보고 싶어집니다. 그야말로 "책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딱 맞는 작품이 아닌가 싶고 말이죠. 다음번에는 이 책 안에서 묘사된 "삼월은 붉은 구렁을" 이야기 중에서 가장 읽고 싶은 생각이 드는 "흑과 다의 환상" 부터 읽어봐야겠네요.

작품별로 좀 더 상세하게 이야기하자면

"기다리는 사람들" :
평범한 샐러리맨 고이치는 취미가 "독서"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회장님이 주최하는 2박 3일간의 "봄의 다과회"에 초청됩니다. 다과회에 참석한 고이치는 회장님과 다른 3명의 손님들이 "삼월은 붉은 구렁을" 이라는 책을 매개로 이 모임을 갖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되죠. 회장은 고이치에게 이 환상속의 책이 다과회가 열리는 저택 어딘가에 숨겨져 있다는 것을 말해주며, 그 책을 찾는 키워드는 "석류 열매"라는 일종의 다이잉 메시지라는 것을 알려줍니다....

"삼월은 붉은 구렁을" 이라는 독서광들이 찾아 해메는 환상의 책을 찾는 추리적인 재미와 함께, 실존하지 않는 책과 기묘한 저택의 묘사가 몽환적인 느낌을 전해줍니다. 추리적인 요소도 괜찮지만 "소문"을 만들기 위한, 그리고 "소문"이 "전설"이 된다는 전개도 인상적이었고요. 무엇보다도 책 속에서 설명하는 또다른 환상의 책인 "삼월은 붉은 구렁을" 이라는 책에 대한 묘사가 탁월하고 사람을 두근거리게 만듭니다. 이만큼 책 소개를 쓴다면 이 책을 사보지 않고는 못배기겠죠. 별점은 4점입니다.

"이즈모 야상곡"
출판사 편집부에서 근무하는 다카코와 아카네는 전설처럼 전해져오는 책 "삼월은 붉은 구렁을"의 실재 작가를 찾기 위한 여행을 떠납니다. 단서는 다카코가 우연히 발견한 자신의 아버지의 젊은 시절 문집. 그리고 한 술병의 선전용 카드였습니다...

두 여성의 버디 무비이자 로드 무비와 같은 느낌을 풍기면서도, 전설의 책의 실재 작가를 찾기위한 이야기를 추리적으로 그럴싸하게 풀어놓는 작품입니다. 하룻밤 동안의 기차여행을 주로 다루고 있기에 "몽환적"인 느낌은 상대적으로 약하지만 이야기의 논리는 훨씬 더 날이 서 있는, 정교하면서도 치밀한 느낌을 전해주더군요. 또한 작가의 정체에 대한 단서 제공도 공정한 편이며, 다양한 복선이 반전이 포함된 결말로 잘 이끌고 있기에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별점은 3점.

"무지개와 구름과 새와"
두 고교생 소녀가 언덕 밑에서 시체로 발견됩니다. 사고사로 결론내려지지만 소녀의 전 가정교사와 남자친구는 이 죽음의 진상을 알아내기 위해 소녀가 남긴 일기장을 근거로 조사에 착수하며, 소녀들에게 숨겨진 비밀을 알게됩니다...

고교생 소녀들의 심리가 주로 등장하는 하이틴 로맨스 백합물 같은 작품입니다. 그냥 하이틴 로맨스 같았더라면 좋았을 것을 피비린내 나는 사건이 전면, 후면에 배치되어 있을 뿐 아니라, 사건 자체도 너무 엽기적이라 뒷맛이 개운치 않은 작품이었습니다. 오츠 이치에게 더 잘 어울리는 소재가 아니었을까요? 오츠 이치가 이 소재로 작품을 썼다면 소녀들이 비밀을 알게 된 후에는 서로를 난도질한다는 결말이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만.... 어쨌건 저는 이런 류의 이야기는 전혀 취향이 아닙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회전목마"
이 이야기는 두개의 이야기, 즉 "3월의 나라"에 존재하는 "학원제국"에 전학온 여학생 미즈노 리세의 이야기 + "삼월은 붉은 구렁을"을 실제로 써 나가는 작가의 이야기가 결합된 작품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 이야기들이 왜 공존해야 하는지 도저히 이유를 알 수가 없더군요. 재미있는 시도이긴 하지만 연관성도 느끼기 어려울 뿐 아니라 이야기가 따로 노는 느낌이 너무 강하거든요. "학원제국" 이야기는 만화나 판타지에 너무 흔히 등장하는 소재라서 큰 감흥이 없기도 했고 말이죠.

실제 작가가 책을 써 내려가는 부분의 이야기는 다양한 과거의 소품들 - 옛날 만화, 헨리 다거의 그림, 영화 "엘모의 모험", 소설 "컬렉터" 등 - 을 등장시키는 등 상당히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는데, 지나치게 뻔하고 지루한 "학원제국" 이야기가 중간중간 섞여 있다는 것은 정말이지 마음에 들지 않더군요. 배스킨라빈스 아이스크림 통에 맛난 것만 먹고 싶은데 제가 싫어하는 아이스크림이 담겨서 싫어도 섞어 먹게 되는 기분이었어요.

그래도 제가 읽지 못했거나 접하지 못한 컨텐츠를 소개하는 작가의 글빨은 정말로 장난이 아니기에 별점은 3점입니다. "학원제국" 이야기는 빼고 읽죠 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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