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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8/30

다시 뽑아보는 3대 미스터리 (from 알라딘)

"3대 미스터리"로 알려진 작품은  엘러리 퀸의 "Y의 비극", 애거서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윌리엄 아이리시의 "환상의 여인"입니다. 그러나 출처와 근거가 불분명하고, 이후에도 많은 미스터리가 발표되었기에 새롭게 3대 미스터리를 정해보자는 기획이 인터넷 서점 알라딘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열두 명의 전문가와 알라딘 미스터리 마니아 100인이 작성한 추천 리스트에서 가장 많은 추천을 받은 세 작품을 선정하였다고 하네요.

선정된 작품은 아래와 같습니다.

"13.67" 찬호께이

"용의자 X의 헌신" 히가시노 게이고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애거서 크리스티

그러나 솔직히 동의하기 어렵네요.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는 걸작이지만, "13.67"과 "용의자 X의 헌신"은 미스터리를 대표하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장르 역사적으로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작품도 아니고요.

전문가라고 초빙된 분들도 아쉽습니다. 일본 소설 번역가, 출판사 대표의 경우 사심이 배제되기 어려울테니까요. 실제로 김은모 번역가의 추천작은 모두 일본 소설입니다. 에세이 작가 김혼비 님은 왜 전문가인지도 잘 모르겠고요. 알라딘 미스터리 매니아 100명의 투표 역시 일본 소설로 쏠려있는 국내 미스터리 시장의 현황이 극단적으로 드러날 뿐입니다.

그나마 아래 하우미스터리 운영자이신 decca님의 추천 정도만 납득할만 했습니다.

물론 이런 리스트는 수많은 매체에서 정리, 발표해 왔기에 큰 의미를 두기는 어렵기는 합니다. 리스트에 선정되었다고 다 좋은 작품들도 아니고요. 이번 알라딘에서 선정된 작품들은 최소한 '재미'만큼은 보장되어 있으니, 오히려 추리 소설에 입문하는 분들에게는 더 좋은 가이드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 "알라딘 선정 정말 재미있는 미스터리" 같은 제목을 붙여서요. '3대 미스터리'는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과한 수식어에요.

마지막으로 저만의 베스트 3을 소개드립니다. 책 소개는 링크의 리뷰로 대신합니다.

2026/05/31

콘 비프 샌드위치를 먹는 밤 Season 2 : (5) 사람먹는 장르 문학

추리 소설을 비롯한 장르 문학에는 식인이 등장하는 작품이 많습니다. 소재 자체가 워낙 강렬하다 보니, 한 번 등장하는 것만으로도 독자에게 충격과 혐오감, 공포감을 동시에 안겨줄 수 있기 때문이겠지요. 하지만 작품 속 식인은 모두 같은 의미로 쓰이지는 않습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대략 네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가장 흔한 형태입니다. 사람을 말 그대로 ‘먹이’나 ‘식량’으로 사용하는 경우입니다. 가장 단순하게는 사람이 평범한 먹잇감으로 취급되는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좀비물처럼 사람을 잡아먹는 크리처가 등장하는 작품들이 여기에 해당하겠지요. 클라이브 바커의 "한밤의 식육 열차", 그러니까 "미드나이트 미트 트레인"은 조금 다릅니다. 작품 속 빌런인 푸주한 마호가니가 깊은 밤 지하철 승객들을 도살해 인육으로 만드는 이유는 직접 먹기 위해서가 아니거든요. 미지의 절대자에게 대접하기 위해서입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면 ‘먹이’가 아니라 ‘미식’의 영역으로 발전한 이야기들도 있습니다. 대표작으로는 전에 소개드렸던 스탠리 엘린의 "특별요리"를 꼽을 수 있습니다. 이 계보를 잇는 타쿠미 츠카사의 "금단의 팬더"는 한술 더 떠서, 아예 인육으로 맛있는 요리를 만드는 방법을 상세하게 알려주는 작품입니다. 소재만 놓고 보면 끔찍하지만, 장르 문학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하지요.

사람을 먹이로 삼는 경우 중에는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인육을 먹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이 경우는 다시 재료의 정체를 숨기고 먹느냐, 대놓고 먹느냐로 나눌 수 있습니다. 정체를 숨기는 대표작은 고전 SF "소일렌트 그린"입니다. 작품 속 “소일렌트 그린”은 인구 폭발과 환경 오염으로 식량이 사라져가는 미래 세계에 등장한 먹거리입니다. 공식적으로는 플랑크톤으로 만들었다고 소개되지만 그 정체는! 영화사에 길이 남은 명대사 “Soylent Green is people!”로 밝혀집니다.

반대로 살기 위해 대놓고 사람을 먹는 작품 중에서는 스티븐 킹의 "서바이버 타입"을 끝판왕으로 꼽고 싶습니다. 무인도에 표류한 생존자가 살아남기 위해 자기 자신을 조금씩 먹어버린다는 엽기적인 이야기인데, 스티븐 킹답게 이 말도 안 되는 설정을 묘하게 설득력 있게 풀어냅니다.

두 번째는 범죄 목적으로 식인을 행하는 경우입니다. 가장 쉽게 떠오르는 것은 증거 인멸을 위한 식인일 것입니다. 로드 던세이니의 "두 개의 양념병"은 한 남자가 거처를 떠나지 않은 채, 함께 살던 동거녀를 감쪽같이 사라지게 만든 사건을 다룹니다. 남자에게 필요했던 것은 장작 패기라는 적절한 운동, 그리고 입맛을 돋우기 위한 ‘두 개의 양념병’뿐이었다는 내용이지요.

히라야마 유메아키의 호러 "오메가의 성찬"은 여기서 한 술 더 뜹니다. 아예 전문적으로 시체를 ‘먹어서’ 폐기하는 괴인이 등장하니까요. 증거 인멸이라는 범죄 목적과 식인이라는 혐오 소재가 결합했을 때 얼마나 기괴한 이야기가 나올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또 다른 범죄 목적은 복수입니다. “원수의 간을 씹어 먹는다”는 옛말처럼, 식인은 복수심의 극단적인 표현으로도 사용됩니다. 노리즈키 린타로의 "카니발리즘 소론"에 등장하는 식인이 바로 이런 목적에 가깝습니다. 다만 시각은 조금 독특합니다. 범인이 동거녀를 죽이고 먹은 이유가, 그녀를 ‘변’으로 내보내기 위해서였기 때문이라니까요. 혐오스럽지만, 그래서 더 잊히지 않는 발상입니다.

세 번째는 의학적 목적의 식인입니다. 우리나라에도 이와 관련된 속설이 구전되어 왔고, 실제 사건도 존재합니다. 일제강점기에 발생한 ‘경성 죽첨정 단두여아 사건’이 대표적입니다. 간질병의 특효약이 아이의 뇌수라는 속설을 믿은 범인이, 아들의 병을 고치기 위해 어린아이의 사체에서 뇌수를 긁어낸 사건이었지요.

비슷한 맥락에서 이우혁의 단편 "손가락"은 ‘문둥이가 아이의 간을 먹으면 낫는다’는 속설을 현대적으로, 그리고 비극적으로 그려낸 작품입니다. 마리 유키코의 "여자친구"도 넓게 보면 이 범주에 넣을 수 있겠습니다. 낙태한 태아의 사체를 섭취함으로써 극한에 이른 스트레스를 달래려는 인물이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순수한 치료라기보다는 병적인 해소에 가깝지만, 몸과 질병, 치유에 대한 왜곡된 믿음이 식인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는 의학적 목적의 식인과 맞닿아 있습니다.

네 번째는 식인을 특별한 의미 없이, 캐릭터 형성을 위한 장치로 사용하는 경우입니다. 식인만큼 ‘광기’를 즉각적으로 드러내기 좋은 소재도 드물기 때문이겠지요. 토머스 해리스가 창조해낸 한니발 렉터 박사가 가장 유명한 예입니다. 사실 한니발의 식인 행위는 이야기의 구조 자체를 크게 바꾸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한니발이 평범한 인간의 윤리와 감각을 초월한 존재라는 사실을 강렬하게 각인시킵니다. 저는 아직도 “내 오랜 친구를 먹으러 가야 하거든”이라는 한니발의 대사만큼 유머러스하면서도 잔혹하게, 동시에 절대자 같은 면모를 드러내는 문장을 본 기억이 없습니다. 식인이 캐릭터의 기괴함과 매력을 동시에 만들어낸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처럼 장르 문학 속 식인은 여러 목적과 형태로 변주되어 왔습니다. 먹이, 미식, 생존, 증거 인멸, 복수, 의학적 속설, 캐릭터의 광기까지. 충격과 혐오감, 공포감을 불러일으키는 데 이만큼 효과적인 소재도 드물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만큼 많이 사용되어 이제는 더 새로운 설정이나 이야기가 나오기 어려울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런데도 와카타케 나나미의 "광취"처럼, 제 분류로는 쉽게 정의하기 어려운 아이디어가 도입된 작품이 발표되는 걸 보면 여전히 놀랍습니다. 저도 언젠가 새로운 아이디어로 도전해 보고 싶은 주제이지만, 러시아의 ‘인육을 먹었다는 살인마 부부 사건’ 같은 뉴스를 접할 때마다 자신이 없어지네요. 과연 실화를 뛰어넘는 창작물을 만들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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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01

댐피어의 맛있는 모험 4 - 토마토수프 / 문기업 : 별점 2점

댐피어의 맛있는 모험 4 - 4점
토마토수프 지음, 문기업 옮김/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댐피어는 데이비스 선장을 떠나 스완 선장의 배 시그넛 호로 옮겨 탔다. 멕시코 일대를 조사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별 수확없이 몇개월을 보내다 말라리아에 걸렸고, 링로즈는 식량을 구하려다가 스페인 군에게 죽었다.
멕시코를 떠나 동인도 제도로 향한 일행은 필리핀 민다나오 섬에 도착했다. 독립 왕조를 유지하던 민다나오 술탄은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에 맞서기 위해 댐피어 일행의 배와 대포를 원했다. 풍부한 식량, 섬의 환대에 일행은 남기로 했지만 댐피어는 영어로 쓰여진 수상한 문구 - 그들은 모두 도둑이다 - 에 미심쩍어했다.
반년의 체류 기간 동안 스완 선장은 섬에 푹 빠져버렸고, 결국 사략선 활동을 계속하려는 선원들은 반란을 일으켜 선장과 몇몇 선원들을 두고 섬을 떠났다.
댐피어는 해적질을 하기 위한 은둔처를 요구받았고 캄보디아 풀로콘도르 섬을 제안했다.


4권은 이전 권들과는 다르게 서인도 제도가 아니라 동인도 제도를 주 무대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그런데 '대항해 시대를 무대론 한 던전밥' 느낌이었던 1~3권보다는 확연히 재미가 떨어집니다. 가장 큰 장점이었던 새로운 장소와 문화, 먹거리에 대한 소개가 줄어든 탓입니다. 특히 새로운 먹거리 소개가 부실합니다. 앞부분의 쥬피시를 이용한 민스파이는 그냥 물고기 파이이며, 옥수수가루로 만든 푸딩도 그리 특별하지 않지요. 새로운건 이야기 절반 정도가 경과한 시점에서야 처음으로 '빵나무 열매'가 소개될 정도입니다. 마지막 민다나오 섬 탈출 직전의 멧돼지 요리는 그냥 bbq일 뿐이며, 구아바나 망고도 지금은 우리나라에서도 흔하게 접할 수 있는 과일이라 그리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못했습니다. '민다나오' 섬에서 빈랑, 사고 등이 소개되지만 이 정도로는 부족합니다. 제목부터가 '맛있는 모험'인데, 맛이 없어어야 되겠습니까.....
또 댐피어가 병에 걸리고 링로즈가 죽으며, 민다나오 섬에서 기묘한 탈출과 그 이후 면허도 없는 사략선 생활은 이전과 다르게 무겁고 심각해서 이전 권들에서의 느슨하며 여유로왔던 분위기를 찾기 어려운 단점도 큽니다.

물론 아예 건질게 없지는 않습니다. 대항해시대 당시의 동인도 제도, 특히 민다나오 섬에 대한 묘사와 설명은 볼 만 했습니다. 이전에 다른 곳에서는 접하기 힘든 내용이었으니까요. 관련된 설명도 충실한 편입니다.

새로운 먹거리와 요리도 양이 문제지 소개 자체는 재미있어요.
이 중에서는 사고 요리가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한 번 먹어보고 싶을 정도로요.
구아바 크리스마스 푸딩은 Panpanya의 "구야아바노 홀리데이"가 떠올랐고요.

하지만 앞서의 단점에 더해, 특유의 둥글둥글한 작화는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네요. 제 별점은 2점입니다. 그래도 다음 목적지인 풀로콘도르 섬은 궁금한 만큼, 다음 권은 구입해 볼 예정입니다.

2023/12/23

기기괴괴공모전 수상작품집 - 백해인 외 : 별점 2점

기기괴괴공모전 수상작품집 - 4점
백해인 외 지음/팩토리나인

"오싹함"이라는 주제의 단편 공모전인 '기기괴괴' 공모전의 입상작 5편을 모은 단편집.
별 기대없이 읽기 시작했는데 다행히 "전래 미스터리"처럼 인터넷 게시판 수준은 아니더군요. 공모전 수상작다운 기본적인 완성도는 갖추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특별한 장점은 없습니다. 오히려 주제와 걸맞지 않게 별로 무섭지 않다는 문제가 도드라지며, 대부분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 전개와 결말이라 의외성이나 반전의 묘미를 찾아보기도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흔한 설정과 전개의 양산형 이야기들이었습니다. 전체 평균 별점은 2점입니다. 구태여 찾아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수록작별 간략한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스포일러 가득한 점 읽으시기 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탈피, 키스" 백해인
원인모를 피부 트러블 탓에 제대로 외출도 할 수 없던 수희는 고운 피부를 되찾았다. 목욕탕에서 만난 여성이 바토리 백작 부인의 축복이라며 욕탕에 뿌린 핏물 덕분이었다. 그러나 핏물이 떨어지고 다시 피부 트러블이 찾아오자, 수희는 자기를 농락한 애인 이진을 죽인 뒤 그 피를 뒤집어 쓴다....
'미'를 쫓다가 금단의 영역에 손을 댄 뒤 파멸한다는 이야기는 너무 흔하지요. 이 공모전과 이름이 같았던 웹툰 "기기괴괴"의 "성형수" 에피소드가 대표적입니다.
흔한 설정이라면 나름대로 변주라도 있어야 했을텐데, '아름다운 사람의 피'가 도구로 활용된다는건 안일한 발상이지요. 여기에 "바토리 백작 부인의 축복"이라는 설정을 덧 씌운 것, 이진이 수희를 등쳐먹는 악질 사기꾼이었다는 설정도 뻔하기 그지 없고요. 별로 기괴하지도, 무섭지도 않았기에 별점은 1.5점입니다.

"수레바퀴 소리가 들리면" 백승빈
궁핍했던 평안도의 어느 마을 노름꾼 아비 밑에서 자란 쌍둥이같이 꼭 닮았던 자매는 천재적인 이야기꾼으로 장날의 인기인이 되었다. 그러자 검은 도포의 남자가 나타나 거액을 주고 언니를 사갔다. 동생은 언니가 해주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겨우겨우 그녀를 찾아갔지만, 언니는 검은 도포의 남자가 피를 빨아먹는 사내들을 집으로 끌고가는 일을 하고 있었다. 그는 사내들의 피를 먹고 사는 불사의 존재였다. 자매는 검은 도포의 남자의 아내의 도움을 얻어 그의 가슴에 말뚝을 박아 쓰러트리는데 성공했지만, 마지막에 언니가 그에게 물리고 말았다....
전형적인 흡혈귀 이야기지만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자매가 '이야기 꾼'이라는 특기를 살려 흡혈귀와 맞선다는 설정은 신선했습니다. 뻔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나름 차별화에 성공했다고 볼 수 있겠지요. 넷플릭스의 "킹덤" 느낌이랄까요? 별점은 2.5점입니다.

"가지치기" 신도윤
뭔가에 물린 뒤 물린 자리에서 사람 머리카락이 나더니 결국 '머리'까지 자라났다. 확인해보니 내 얼굴이었다. 얼굴을 식칼로 잘라내가며 대응했지만 온 몸에 나기 시작했고, 결국 진짜 머리마저 두 갈래가 되어버렸다...
"토미에" 류의 인간 복제(?) 상상력을 일상 이야기와 결합한 작품. 혐오스러운 묘사를 '잘라낸 머리를 음식물 쓰레기 봉투에 넣어 버렸다'는 식으로 현실적이고 담담하게 묘사한건 독특했지만, 자라난 머리가 결국 온 몸을 뒤덮는다는 결말이 예상 그대로라 실망스러웠습니다. 본인의 진짜 머리조차 자라난 머리에 침식당한다는건 "블랙잭"에서의 "인면창" 에피소드와 흡사하니까요. 전개와 결말에서 조금 더 의외성을 주었더라면 좋았을텐데 아쉽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비어 있는 상자" 이승훈
코인 등 투자 실패로 돈이 필요했던 정훈은 이상한 상자를 옮기는 일을 하게 되었다. 상자에 들어있던건 살아있는 껍질같은 사람들로, 부자들이 껍질을 사서 입는 시장으로 옮겨지는 것이었다....
허세에 치중한 인간들은 겉 껍질밖에 없다는 세간의 비유를 그대로 이야기로 풀어내고 있습니다. 비유를 직유처럼 소화하니 색다르네요.
그러나 색다름보다는 진부한 요소가 더 많았습니다. 껍질 상태가 되어서도 허영은 남아서 어떻게든 부자들 눈에 들겠다고 발버둥친다는 반전도 그닥이었고요. 왜 사람들이 껍질만 남는지? 이런 사람들을 어떻게 알고 수집하는지? 이들이 사라져도 세간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지? 등 설정에 대한 설명도 부족합니다. 다소 기발해보이는 아이디어가 전부일 뿐입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무미의 끝" 정현수
강어진은 오래전 친구 준혁의 회고록(?)을 배달받았다. 스트레스와 가정 문제로 미각을 잃은 준혁이 결국 식인까지 저지른 뒤 자살했다는 내용이었다. 어진은 준혁이 자살했다는 장소로 달려갔는데, 그곳에서 완전히 식인 괴물이 된 준혁의 희생양이 되고 만다...
미각을 잃은 준혁이 이런저런 재료를 거쳐 식인에 이르는 과정은 꽤 엽기적으로, 실감나게 묘사되지만, 역시나 신선함, 새로움을 느끼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설정부터가 너무 뻔한 탓입니다. '맛' 때문에 식인을 감행한다는 작품은 워낙에 많으니까요. "특별 요리"도 그렇고, "금단의 팬더"도 별로 다르지 않지요. '최고의 맛'을 위해 식인을 저지르는게 아니라 '잃어버린 미각'을 찾기 위해 식인을 저지른다는 동기 측면의 차이가 존재하지만 결국은 같은 내용입니다.
게다가 식인을 저지르다가 아예 괴물이 되어버린다는 결말은 최악이었습니다. 비교적 현실적인 분위기로 그럴듯하게 끌고가던 초중반부와 동떨어져 있어서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드네요. 처음에는 어진의 회상처럼 시작하는데, 결말이 어진의 죽음이라면 이걸 뭐라고 해석해야 할지 잘 모르겠고요. 제 별점은 2점입니다.

2023/10/15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여운을 즐기자! '기묘한 맛'의 신구 단편 모음집



honto 북트리 서비스를 통한 추천. 대부분 국내 소개된 작품들입니다. 원조이자 대표작인 "특별 요리"를 추천하지 않았는데, 국내 출간되지 않은 마지막 작품 대신 "특별 요리"를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2021/01/24

추리 소설 1,000편 리뷰 분석

추리 소설 1,000번째 리뷰 등록!

염원했던 추리소설 리뷰 1,000편 올리기를 달성했습니다. 1,000편의 리뷰를 작성하면서, 책 한 권을 출간하는 소기의 성과도 있었지요. 1,000편 업로드 기념 및 개인적인 자료 정리 차, 여태 읽었던 추리소설 리뷰 1,000편에 대한 간략한 데이터를 정리하여 공개합니다.

리뷰 갯수 1,000 

당연하겠지요?

책 권수 1,049권 

"브라운 신부""크리시" 리뷰와 같이 여러 시리즈를 한 편 리뷰에서 정리한 경우도 있고, "그것" 처럼 작품 한 편이 여러권으로 이루어져 있어도 리뷰 한 편으로 소개한 경우가 많아서 권수는 더 많습니다.

책 종수 1,008종 

권 수가 많은 이유에 더해, 중복하여 작성한 리뷰도 있어서 이를 빼면 최종적으로 리뷰한 책은 총 1,008종입니다.

국가별 

일본 454, 영미 394, 한국 63, 프랑스 29, 독일 13, 그외 55

예상대로 일본 작품 비중이 거의 절반 가까이이며, 영미 작품까지 포함하면 전체의 85%가까이 되는 압도적인 비중입니다. 국내 출간되는 작품들과 제 취향을 보면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겠네요.

장르별 

본격물 성향 작품 리뷰가 357, 스릴러는 229, 경찰/수사 127, 일상계가 80, 호러 73, 하드보일드 69, 역사 추리 55, 모험물 54 순입니다. 본격물을 좋아하는 제 취향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장르 불문하고 단편집은 137편의 리뷰를 작성하였고요. 

참고로 본격물이면서 수사물인 작품이거나, 본격물이면서 일상계인 작품 등 키워드는 중복하여 체크된 결과입니다.

별점별 

경성탐정록 두 편은 제외한 총 1,006 종의 책 별점 분포는 아래와 같습니다. 

5점 : 4, 4.5점 : 7, 4점 : 71, 3.5점 : 48, 3점 : 271, 2.5점 : 259, 2.4점 : 1, 2.3점 : 1, 2점 : 227, 1.5점 : 88, 1점 : 26, 0.5점 : 1, 0점 : 1, 없음 : 1

평균 이상 별점인 2.5점 이상 작품이 660종으로 전체의 2/3를 차지합니다. 꽤 괜찮은 작품들을 읽어왔었다는 의미지요. 나름 뿌듯하네요. 별점 5점을 받은 작품, Hall of Fame만 별도로 소개해 드리자면 아래와 같습니다. 

"9마일은 너무 멀다" 

"옥스퍼드 운하 살인사건" 

"도끼" 

"특별요리" 

* 특별요리는 2003년도 동서 버젼이었고, 2015년에 다시 읽었던 엘릭시르 버젼은 별점 4점이었습니다.

참고로 책 별점과는 별개로, 단편집 단편별 중 별점 5점을 받았던 단편은 아래와 같습니다. 

"살의" (in "세계 추리소설 걸작선 2")

"무시무시하고 이상한 침대""결산"위험천만한 게임" (in "클래식 미스터리 걸작선")

"우체국에서 생긴 사건" (in "오른쪽 주머니에서 나온 이야기")

"사기꾼의 카드" (in "클로버의 악당들")

"새", "성모상" (in "대프니 듀 모리에") 

"국화의 먼지" (in "저녁싸리 정사")

"죽음" (in "악몽을 파는 가게 1") 

이 역시, 저의 고전 본격물 취향을 잘 드러내 주네요.

작가별 

1. 작가별 리뷰한 작품 갯수 순위

1. 히가시노 게이고 : 48
2. 애거서 크리스티 : 33
3. 요네자와 호노부 : 21
4. 스티븐 킹 : 18
5. 마쓰모토 세이초 / 엘러리 퀸 : 16
7. 존 딕슨 카 (+에이드리언 코난 도일) : 13
8. 요코미조 세이시 : 12
9. 와카타케 나나미 : 11
10. 아리스가와 아리스 / 에드 멕베인 : 10 
12. 미쓰다 신조 / 아서 코난 도일 / 조르주 심농 / 시마다 소지 : 9
16. 다카기 아키미쓰 / 미야베 미유키 : 8
18. 에도가와 란포 / 노리즈키 린타로 / 도진기 : 7
수많은 작가가 있지만, 공통 18위 까지만 선정합니다. 일본, 영미 작가가 많은건 국가별 순위와 동일합니다. 프랑스 작가 조르주 심농이 12위에, 한국작가 도진기가 18위에 위치하고 있을 뿐이네요.

2. 작가별 평균 별점 순위 (5권 이상 작품을 읽은 경우)

1. 콜린 덱스터 : 6권 리뷰, 평균 별점 3.6666...
2. 로스 맥도널드 : 5권 리뷰, 평균 별점 3.6
3. 기리노 나쓰오 : 5권 리뷰, 평균 별점 3.4 
3. 모리스 르블랑 : 5권 리뷰, 평균 별점 3.4
5. 존 딕슨 카 (+에이드리언 코난 도일) : 13권 리뷰, 평균 별점 3.269...
6. 미쓰다 신조 : 9권 리뷰, 평균 별점 3.055....
7. 딕 프랜시스 : 5권 리뷰, 평균 별점 3
8. 다카기 아키미쓰 : 8권 리뷰, 평균 별점 2.875
8. 미야베 미유키 : 8권 리뷰, 평균 별점 2.875
10. 마쓰모토 세이초 : 16권 리뷰, 평균 별점 2.84375
11. 와카타케 나나미 : 11권 리뷰, 평균 별점 2.8181...
12. 우타노 쇼고 : 5권 리뷰, 평균 별점 2.8
13. 요코야마 히데오 : 6권 리뷰, 평균 별점 2.75
14. 코넬 울리치 : 5권 리뷰, 평균 별점 2.7
15. 아서 코난 도일 : 9권 리뷰, 평균 별점 2.6666667
15. 조르주 심농 : 9권 리뷰, 평균 별점 2.6666667
15. 기시 유스케 : 6권 리뷰, 평균 별점 2.6666667
18. 엘러리 퀸 : 16권 리뷰, 평균 별점 2.65625
19. 미치오 슈스케 : 6권 리뷰, 평균 별점 2.583333
20 애거서 크리스티 : 33권 리뷰, 평균 별점 2.5757576
21. 에도가와 란포 : 7권 리뷰, 평균 별점 2.5714286
22. 요코미조 세이시 : 12권 리뷰, 평균 별점 2.541...
23. 미카미 엔 : 6권 리뷰, 평균 별점 2.5
비슷한 주제로 13년 전 글을 올린 적이 있는데 순위가 대폭 바뀌었네요. 최소 2권 이상의 작품을 읽은 작가는 114명, 어느정도 평균을 낼 수 있는 수치인 5권 이상 읽고 리뷰를 남긴 작가는 33명입니다. 이 중 평균 2.5 이상 별점을 유지한 작가는 콜린 덱스터 외 24명입니다. 프로야구로 따지면, 1군 소속 선수의 72% 정도가 평균 이상이었던 셈이니 굉장히 훌륭한 성적이지요. 25명에 들지 못한 8명 중에서도 요네자와 호노부, 시마다 소지, 스티븐 킹, 아리스가와 아리스 등은 평균 2.4점대로 아쉽게 이름을 올리지 못했으니 더욱 그러합니다. 명성이 있는 작가는 확실히 이름값을 한다는 증거죠. 가장 많은 작품을 읽은 히가시노 게이고 작품 평균 별점은 2.32점인데, 이건 어쩔 수 없습니다. 유명한 대표작, 걸작만 추려서 읽은 경우는 별점이 높을테고 많이 읽을 수록 평균 별점은 불리할 수 밖에 없으니까요. 크리스티 여사님 평균 별점이 비교적 낮은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위권을 살펴보면, 5권 이상 읽은 작가 중 꼴찌는 6권 평균 별점이 2.083점인 니시무라 교타로, 전체 꼴찌는 읽은 작품 4권 별점 평균이 1.1점에 불과한 제임스 패터슨이었습니다. 니시무라 교타로는 모르겠지만, 두 번 다시 제임스 패터슨 작품을 읽을 일은 없겠습니다.

탐정별 (5권 이상 읽은 작품만 뽑아봅니다)

1. 탐정별 리뷰한 작품 갯수 순위

1. 에르큘 푸아로 : 15권 리뷰
2. 엘러리 퀸 : 13권 리뷰
3. 셜록 홈즈 : 12권 리뷰
4. 긴다이치 코스케 : 11권 리뷰
5. 가가 (학생 ~ 형사) : 10권 리뷰
6. 87분서 : 9권 리뷰
7. 메그레 경감 : 7권 리뷰
8. 고전부 / 기디온 펠 박사 / 노리즈키 린타로 / 모스 경감 / 히무라 히데오 : 6권 리뷰
13. 미스 마플 / 미타라이 기요시 / 시오리코 / 토츠카와 경부 (+가메이 형사) : 5권 리뷰
2. 탐정별 평균 별점 순위
1. 모스 경감 : 3.66666
2. 셜록 홈즈 : 2.958333...
3. 기디온 펠 박사 : 2.9166...
4. 엘러리 퀸 : 2.6923...
5. 긴다이치 코스케 : 2.6363...
6. 시오리코 : 2.6
7. 고전부 : 2.58333
8. 메그레 경감 : 2.5714...
9. 가가 (학생 ~ 형사) : 2.55
10. 에르큘 푸아로 / 미스 마플 / 미타라이 기요시 : 2.5
13. 87분서 : 2.4444...
14. 히무라 히데오 : 2.41666...
15. 노리즈키 린타로 : 2.25
16. 토츠카와 경부 (+가메이 형사) : 2.2
입니다. 원탑 모스 경감 밑으로 셜록 홈즈, 기디온 펠 박사까지는 평균 이상의 빼어난 별점을 자랑합니다. 확실히 탐정은 영미권 탐정이 더 제 취향이라는걸 알 수 있었습니다.

이로서 간략하게 추리소설 1,000편의 리뷰에 대한 요약 정리를 마칩니다.

2021/01/09

가스트로노미 - 나가오 켄지 / 김상애 : 별점 3점

가스트로노미 - 6점
나가오 켄지 지음, 김상애 옮김/비앤씨월드

제목인 가스트로노미는 '식을 즐기기 위한 광범위한 지식'을 일컫는 단어입니다. 구르망은 미식가를 뜻하는 단어고요. 브리야 사바랭은 "가스트로노미를 논하기 위해서는 과학적 증거가 뒷받침된 고도의 지식이 요구되며, 이러한 지성을 겸비한 (혹은 겸비했다고 여겨지는) 상류 계급만이 이 새로운 단어의 배후에 펼쳐지는 풍부한 세상을 이해하며 얻을 수 있다"고 했다네요. '상류 계급'이라는 말만 빼면 "맛의 달인" 등에 나오는 주인공들의 원형인 셈이지요. 저 역시 이렇게 가스트로노미를 논하는 구르망이 되고 싶네요. 

하여튼, 이 책은 '가스트로노미'를 논하기 위해서는 현대 프랑스 요리를 알아야 한다는 대 전제 아래에서, 프랑스 요리의 역사를 전체적으로 되짚습니다. 간략하게 요약해 보자면 아래와 같습니다.

프랑스 요리는 왕실과 귀족 문화 중심으로 토양을 다지며 발전해 오다가 17세기 라 바렌이 쓴 "프랑스 요리사"로 '오트 퀴진'(고급 요리)의 씨앗이 뿌려지게 됩니다. 기본 요리와 부이용, 허브 등을 조합하여 풍부하고 다양한 요리를 만들어내는 방식이 처음 도입되었지요. 요리가 조직화되고 간소화된 덕분입니다.
라 바렌 이후 요리사들은 이러한 새로운 경향을 '누벨 퀴진'(새로운 요리)라고 불렀고, 그 뒤 17세기부터 부르주아가 세력을 얻으면서 그들이 동경하던 귀족 문화 모방 유행에 따라 식탁 문화 역시 부르주아에게 전파, 보급되며 확장되었습니다.
18세기에 유명 요리사 므농, 라 샤펠 등에 의해 이런 문화들이 더욱 세련되게 다듬어지다가 18세기 후반, 드디어 레스토랑이 출현했습니다. 귀족들이 누리던 식문화를 식당에서 먹을 수 있게 된 거지요. 화려한 인테리어와 조명, 정중한 접객과 서비스, 세련된 오트 퀴진이 조합된 레스토랑에 드나들던 상류층들로부터, 앞서 말한 '가스트로노미'가 탄생하였고요.
여기에 불을 붙인건 프랑스 혁명이었습니다 .혁명으로 귀족들이 몰락하자 고용 요리사, 파티시에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고, 부르주아들이 이권을 차지하여 사치스러운 오트 퀴진 레시토랑이 성황을 이루게 된 덕분입니다.

이후 정통 구르망을 자처하면서 고급스러운 식문화를 전파하고자 했던 그리모 드 라 레니에르가 가스트로노미에 대한 여러가지 기획, 식사회를 거치며 "식통 연감" 등을 발표하며 시작된 '미식 문화' '미식 저널러리즘'은 브리야 사바랭의 "미각의 생리학"이 성공하면서 뿌리내렸습니다. 이들에 의해 '구르망' 이 폭음폭식이 아닌 고상한 단어로 포장되게 되었고, 식 저널리즘은 19세기에는 여러 저널리스트 및 발자크나 뒤마와 같은 인기 작가들에 의해 대중화되어 널리 퍼졌습니다. 이런 흐름은 현대의 "미슐랭 가이드"까지 이어졌고요. 이들에 의해 '가스트로노미'를 위한 다양한 지식과 정보가 제공됨으로써, 가스트로노미 역시 더욱 활성화 되었습니다.

그리고 19세기, 나폴레옹은 탈레랑을 이용해 외교에 요리를 적극 활용하였는데, 탈레랑의 큰 힘이 되어준건 '요리사의 왕' 앙토넹 카렘이었습니다. 카렘의 노력으로 요리사의 사회적 지위가 높아졌고, 카렘이 쓴 "19세기의 프랑스 요리예술"을 통해 그가 구축한 프랑스 요리 체계가 수많은 요리사들에게 이어졌습니다. 여기서부터 요리 왕국 프랑스의 기초가 다져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카렘이 죽은 19세기에도 카렘의 제자 아돌프 뒤글레레와 줄 구페 등에 의해 카렘의 요리도 계속 발전해 나갔습니다. 특히 뒤글레레의 제자격인 위르뱅 뒤부아는 러시아 외교관 오를로프 공의 메트르 도텔 (수석 요리인)으로 일하면서 러시아식 식사 제공법을 보급시켰습니다. 프랑스식은 많은 요리를 한꺼번에 식탁에 나열하는 반면, 러시아 식은 1인분씩 나눈 요리를 코스 순서에 따라 한 품목씩 제공하는 방식이었지요.

프랑스 요리사들의 활약으로 19세기 말, 20세기 초에는 프랑스 요리의 우위는 전 유럽에서 이미 확고한 것이 되었으며 '프랑스 요리의 아버지' 오귀스트 에스코피에의 등장으로 현대 요리계에서 불멸의 지위를 확립하고 있는 프랑스 요리가 정립되어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역사를 만든 백가지 레시피"에 따르면 에스코피에는 본인 능력도 있었지만 '아첨' 하는 능력이 빼어나 요리의 황제 자리를 차지했다고 되어있는데, 아첨도 능력이지요.
참고로 이 책에 소개된 많은 유명 요리사들과 구르망들 - 타이방, 라 바렌, 앙투안 보빌리에, 브리야사바랭, 카렘, 에스코피에 - 이 "역사를 만든 백가지 레시피"에 등장하고 있어서, 비교해서 읽어보아도 좋습니다.

이렇게 프랑스 요리의 역사를 상세히 알려주며, 주요 요리사와 관계자들에 대해서도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고, 도판도 꽤 괜찮은 편이라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프랑스 요리에 대한 '가스트로노미'를 과시하는데에는 더 없이 필요한 책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이 책에 소개된 그리모 드 라 레니에르 이야기를 응용하여 김태권이 썼던 짤막한 글을 "먹히는 자에 대한 예의"에서 접해 보았는데, 이 책 쪽이 훨씬 상세하고 제대로 된 정보를 다루고 있습니다. 김태권 씨에게 이 책을 한 번 읽어보라고 권해보고 싶네요. 제 별점은 3점입니다.

아울러 부록처럼 실려있는 단편 소설인 "바르드 알 딘 왕자의 타르트레트"도 재미있었습니다. 앙토넹 카렘이 정체불명의 흑인 여자가 만든 타르트레트를 맛보고 겪게 되었던 기묘한 사건을 그리고 있습니다. 타르트레트 레시피는 대법관 캉바레세르, 파르마 공이 어린 시절 사랑했던 디아나와 함께 만들었던 것이었지요. 카렘이 흑인 여자를 시켜 만찬에 타르트레트를 내 보낸 덕분에 파르마 공은 디아나의 어린 딸을 만나 돌봐주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내용 자체는 특별할게 없지만, 1840년대에 이미 요리사가 이렇게 대중적인 지명도와 인기를 얻을 정도였다니 놀랍기만 합니다. '타르트레트'는 소형 타르트를 의미한다는데, 살짝 소개되는 재료를 볼 때 별 맛은 없을 듯 하지만 이 당시에 이미 이런 디저트를 이야기 소재로 삼았다는 것도 놀랍고요. 확실히 프랑스가 요리 강국이구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2020/09/13

요리 만화들 짤막한 감상 (6)

먹고 자는 마르타 1 - 4점
타카오 진구 지음/대원씨아이(만화)

포르투칼 대학원생 마르타는 석사 논문을 제출한 뒤에도 일본 도쿄가 너무 좋아서 떠나지 않고 머문다. 그러나 항상 가난뱅이 신세. 돈을 아끼기 위해 있는 재료를 최대한 아껴 쓰고, 비싼 재료는 어떻게든 비슷하게 만든다!는 극빈 유학생의 혼밥 + 궁상 먹방 이야기입니다.
최대한 절약해서 먹는게 핵심으로, 고향 어머니가 보내준 바캴라우 (염장하여 말린 대구)로 튀김을 만들어 먹는다던가, 100엔으로 생크림과 요구르트를 구입하여 사워크림을 만들고, 여기에 바칼라우를 미끼로 낚은 가재를 섞어 사워 크림 딥을 만드는 등의 에피소드가 펼쳐집니다. 

이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건 카레 가게에서 주문할 때의 팁이었어요. 고기를 뺀 카레를 주문하면, 그만큼 카레의 양이 늘어난다고 하네요. 여기에 공짜 락교를 가득 담아 먹는데, 정말 생각도 못한 방법이었어요. 

그리고 아무래도 자급자족에 가까운 내용이니만큼 레시피도 꽤 많은데, 사진 작가 로버트 카파가 헤밍웨이를 초대한 파티에서 선보였다는 칵테일 '빌린' 제조법은 눈길을 끕니다. 복숭아를 자르고 씨와 껍질을 제거한 뒤 어항(또는 비슷한 통)에 담고 브랜디 절반, 샴페인 절반을 채워 만드는 칵테일로 맛있을 수 밖에 없어 보이네요.

그러나 있는 재료로 아는 요리를 최대한 비슷하게, 그럴듯하게 만든다는 내용은 "격식 파괴 요리책 한그릇 더!"와 같습니다. 최대한 근검절약해서 아껴 먹는다는 내용은 "빈민의 식탁"이고요. 때문에 그다지 새롭거나 신선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게다가 현대 일본 도쿄에서 자급자족은 말도 안되니 여러모로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고요. 

작가도 같은 생각이었는지, 뒤로 가면 갈 수록 옆집 아가씨가 재료를 준다던가, 도우미로 일하는 그림 교실에서 칵테일을 만든다던가 하는 식으로 풀어나갑니다. 이런 이야기들은 재미가 없지는 않은데 이래서야 취지에는 어긋나지요.
또 주 재료는 아껴서 산다 쳐도, 온갖 조미료와 도구가 갖추어져 있다는건 억지스러웠습니다. 올리브유나 버터 정도는 포르투칼인이니 구입했다 쳐도, 간장과 미림까지 전부 갖추어 놓는다는건 납득하기 어렵잖아요. 게다가 바닐라 에센스라니? 이건 정말 말도 안되죠.... 아울러 포르투칼 아가씨 마르타가 귀엽기는 한데, 민폐에 가까운 궁상은 영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입니다. 후속권을 더 볼 일은 없을 듯 합니다.

[고화질] 삼국지의 밥상 01 - 4점
혼조 케이/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중화요리집 "누상촌"을 운영하는 삼국지 매니아 아타루와 그의 가족들이 가게를 방문한 신선 '좌자'의 영향으로 삼국지 속 요리를 현세에 재현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도원결의' 속 요리를 재현하기 위해 이런저런 자료 (제민요술)를 찾은 뒤 새끼돼지를 통째로 튀길 수 없어서 돼지고기 덩어리를 사용하고, 천채를 우락으로 볶은 것은 말린 배추 등을 활용하여 재현한다는 첫 번째 에피소드는 좋았습니다. 제 기대에도 부합했고요.

하지만 그 뒤에 이어지는 에피소드와 요리들은 기대에 미치지 못합니다. 일단, 삼국지 본편과 상관없는 요리가 너무 많은 탓입니다. 계륵 (닭갈비)로 만든 닭고기 수프는 삼국지에는 등장하지 않는 아타루의 오리지널이며, 유비가 칼과 바꿨던 낙양의 차는 중요 아이템이지만 마시는 장면이 삼국지에 등장하지는 않으니까요. 조비가 배와 포도로 시를 지었다는 이유로 배와 포도로 디저트를 만드는 등 삼국지에서는 그냥 소재, 재료만 따 온 것도 많습니다. 제갈량의 만두도 마찬가지겠지요. 이래서야 제목과 취지에 걸맞는 이야기들로 보기는 힘듭니다.

또 좌자의 등장까지는 이야기 전개상 그렇다 쳐도, 그의 능력으로 삼국지 시대로 이동해서 당시 요리를 실제로 보고 온다! 는 설정, 그리고 심지어는 주인공 아타루가 실제로 전장으로 이동해서 요리를 만든다는 설정은 불필요했습니다. 아타루가 삼국지 당시 재료와 도구로 최대한 현재의 맛을 재현한다는건 "노부나가의 셰프"와 다를 바도 없고요. 좌자의 말을 듣고 아타루와 가족들이 이런저런 고민 끝에 요리를 만드는 정도로도 충분했습니다. 이야기 전개도 문제가 많습니다. 삼국지의 내용과 본 편의 이야기를 엮는 부분은 억지스러우며, 전개에서도 등장인물들의 감정 과잉이 수시로 드러나는건 영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때문에 별점은 2점. 아이디어는 좋았지만 이야기 전개와 소재들은 여러모로 아쉬웠습니다. 후속권 구입 계획은 없습니다.


전통의 시리즈도 이제 45권째네요. 이번 권에서도 언제나처럼 소소한 일상 속에서 소다츠의 술과 안주에 대한 개똥 철학(?)을 웃으며 즐길 수 있습니다. 꼬치 요리의 재료를 빼야 하는지 그냥 먹어야 하는지? 라던가 왜 이자카야는 월요일에 붐빌까?와 같은 주제에 대한 확고한 견해같은건 나름 그럴듯 했어요. 화이트 와인은 이탈리아, 레드 와인은 칠레 등 남미산이 좋다는 주장은 동의하기는 어렵지만, 이런 의견도 있구나 하는 측면에서는 볼 만했고요.
무엇보다도 소다츠의 절친인 타케노마타가 약혼하고 약혼자를 소개해주는 에피소드는 놀라왔습니다. 소다츠와 카스미도 빨리 진전이 있어야 할텐데 말이지요. 은근하게 분위기만 깔고 가는게 과연 언제까지 계속될지 궁금합니다.

하지만 에키벤 투어 관련 이야기나, 오사카 타코야키 이야기는 다른 책에서도 많이 보아왔던 소재라 별로 재미있지 않았습니다. 소재 고갈 탓도 있겠지만, 이런 기행문스러운 이야기는 한 권에 한 편 정도로만 수록되었으면 합니다. 무엇보다도 타코야키는 무려 3편에 걸쳐 소개할 내용과 분량도 아니었어요. 다카키 나오코의 작품 어딘가에서 소개되었던 분량 정도 만으로 충분했을겁니다. 그 외의 다른 특별한 이야기가 있는 것도 아니고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이제는 재미보다는 팬심으로 읽는 작품이 되었네요. 그래도 소다츠의 개똥 (?) 철학은 언제나 재미있는 만큼, 다음 권은 그런 이야기가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일상계 식도락 만화를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한 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고양이 맘마 - 6점
우오노메 산타 지음, 김진희 옮김/애니북스

다른 음식 만화로 접했었던 우오노메 산타의 작품입니다. 메이지 초기를 배경으로 하여, 당시 갓 들어왔던 새로운 음식들과 당대 풍물들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단지 메이지 시기를 무대로 한 음식 만화라면 특별할게 없겠지만, 이 작품은 주인공을 미식가 고양이로 하여 고양이 시점에서 묘사한다는 점이 차별화 요소입니다. 주인공인 이름없는 고양이가 소설가 메이지노 씨 집에서 함께 살면서 메이지노 선생님과 그 가족, 그리고 주변 식당 등에서 먹는 음식들을 소개하는데, 미식가라서 음식에 정통하고 심지어 반주를 즐기기까지 하거든요.

이야기들도 굉장히 짤막해서 대단한 내용은 없지만, 훈훈하고 잔잔한 이야기들로 가득차 있어서 마음에 들 뿐 아니라, 모리 소바와 자루 소바의 차이를 알려 주는 등 새로운 내용도 제법 많아서 만족스러웠어요. 참고로 두 소바의 차이는 쓰유에 있답니다. 자루 소바는 처음 우러낸 육수로, 모리 소바는 두 번재로 우려낸 육수로 조리한거라 면 자체는 동일해서, 직원이 잘못 나르지 않도록 자루 소바 위에 김을 뿌린거라는군요. 그 외 중간중간 '메이지 시대 미식 탐방기'라는 짤막한 한 페이지짜리 5편의 컬럼도 볼거리입니다. 미식, 요리 뿐 아니라 꽃놀이까지 소개하는 등 이런저런 소개가 많습니다. 오노메 산타의 포근한 그림도 마음에 들고요. 별점은 3점입니다.

2020/01/18

한 권으로 읽는 맛의 달인 미식 특강 2 - 카리야 테츠 / 김숙이 : 별점 1.5점

한 권으로 읽는 맛의 달인 미식 특강 2 - 4점
카리야 테츠 지음, 김숙이 옮김/창해

1권을 오래전 읽었었고, 바로 얼마전에도 읽었었습니다. 별점은 2점이고, 딱히 구입해서 읽어볼 필요는 없지 않을까라는게 감상이었습니다. 그런데 인터넷으로 확인해보니 2권 목차가 상당히 흥미롭더군요. 구입해서 읽어볼 수 밖에 없을 정도로요. 이미 절판되었지만 많이 팔렸는지 중고로 구하기가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습니다.

우선, 저를 낚았던 목차부터 소개해드립니다. 목차는 아래와 같습니다.

제1장 | 시드니에 살면서
제2장 | 세계 맛기행
제3장 | 맛의 나라 일본
제4장 | 유명가게를 찾아서
제5장 | 특별요리 강좌
제6장 | 못 다한 이야기
1장이야 그렇다쳐도, 2장은 카리야 테츠가 전 세계를 다니며 맛 본 맛있는 요리를 소개해 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3장에서는 일본의 맛있는 요리를 소개해주고요. 4장은 유명 가게들에서 맛본 경험담이, 5장은 자신만의 레시피가 등장할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완벽하게 기대를 벗어났습니다. 2장 "세계 맛기행"은 세계를 돌아다니며 맛 본 요리가 나오기는 하지만, 깊이있는 요리에 대한 소개는 거의 없고 개인적인 경험담이 펼쳐질 뿐입니다. 미국 요리의 대표로 스테이크의 예를 들면서 하는 이야기라곤 미국에서는 레어로 제대로 굽지 않더라, 웰던으로 구워져 나왔을 때 항의하면 제대로 갖다 주라, 일본에서는 항의해봤자 미안하다고만 하지 다시 주지 않더라는게 전부에요. 프랑스 3대 진미 이야기도 푸아그라와 캐비아는 그냥저냥이고 트뤼프는 최고라는, 자신만의 기준에 따른 설명 밖에는 없고요. 다른 모든 이야기가 다 이런 식입니다.
심지어 "유명 가게를 찾아서"는 제목과는 전혀 다릅니다. 진짜 유명 가게가 아니라 자기가 갔을 때 최고였던 가게를 소개하고 있거든요. 니기리즈시라면 '스키야바시 지로' 정도는 나와줄 줄 알았는데, 1975년 홋카이도 오타루에서 우연히 방문했던 할아버지, 할머니의 이름도 모르는 초밥 가게가 나오는 식으로 말이죠.
"특별요리 강좌"는 기대대로 레시피가 소개되기는 하나 로스트 비프는 오븐이 없으니 도전하기 어렵고, 채 선 양배추에 마요네즈를 듬뿍 바르고 간장을 조금 친 뒤 잘 휘젓고 먹으라는 요리, 무를 국물 맛이 배도록 푹 끓인 뒤 튀겨 먹는 요리 등은 별로 따라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네요.

게다가 에세이 전체적으로 1권에서도 눈꼴 사나왔던 꼰대 마인드가 지배하고 있는 것도 단점입니다. 이야기 속에서 스스로 심한 말을 한 뒤 '너무 극단적인 말이 아니냐고 나무라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나는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는 남에게 실례가 되든 다툼이 일어나든 개의치 않고 뭐든지 말해버리는 정의의 악한이란 말이다'고 본인을 정당화하는데 참 꼴보기 싫습니다. 정의의 악한은 무슨 개 풀 뜯어먹는 소리인지도 모르겠고요. 나는 저렇게 늙으면 안 되겠다라는 생각만 듭니다.

물론 꼰대 마인드라도 마음에 드는 표현이 없는건 아닙니다. 명품을 이해하지 못하며, 유명세에 좌지우지된다는건 그만큼 자신감이 없는 걸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는 말에는 저도 동의하는 바에요. 영국의 전통있는 레스토랑을 방문했을 때 2층에는 여성 손님 입장이 아직 금지되었다는 말을 듣고 음식이 맛이 없을지도 모르겠다고 걱정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어리석은 관습을 전통이라 자랑하는 듯한 인종에게 섬세한 감정이 있을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라고 생각했기 때문인데, 동의할 수 밖에는 없지요.
음식 전문가로서의 식견이나 경험을 살짝 보여주는 부분들도 간혹 등장합니다. 소바 이야기가 대표적입니다. 도쿄 토박이들이 소바 끝만 살짝 담구어 먹는 이유는 소바의 향과 맛에 소바 국물의 깊은 맛을 살짝 더해서 먹기 위함이라면서, 이 국물에 대해 "맛의 달인"에서도 등장했던 명점 '나미키 야부'의 인터뷰를 회상하는 내용인데 여러모로 볼 만 했습니다.

그래도 장점은 극히 드물고, 자의식 강한 꼰대의 자기 주장, 경험만 가득해서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네요. 제 별점은 1.5점입니다. 구태여 구해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2018/04/29

매스커레이드 이브 - 히가시노 게이고 / 양윤옥 : 별점 2점

매스커레이드 이브 - 4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현대문학

한국 한정 추리 소설의 제왕인 히가시노 게이고"매스커레이드 호텔" 시리즈 두 번째 작품입니다. 몇 년 전 전편을 읽고 호텔을 무대로 한 일상계 추리 단편이었더라면 훨씬 좋았을 것 같다는 평을 남겼는데, 작가도 같은 생각이었던 걸까요? 이번에는 전편 시점에서 수년 전을 무대로 하고 있는 중, 단편집입니다. 전부 네 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일상계와 강력 사건이 적당히 섞여 있는 구성으로 모든 이야기가 사람들은 누구나 가면을 쓰고 있다는 주제를 드러내고 있다는게 특징입니다. 

주제를 어색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드러낸다는 점은 좋지만, 추리적으로는 영 별로라 아주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그래서 전체 평균 별점은 2점입니다.
재미가 없지는 않지만 "루키 형사의 등장" 편을 제외하면 추리적으로는 점수를 주기 힘든, 작가의 다른 작품이나 시리즈보다는 못한 범작입니다. 작가의 대단한 팬이 아니라면 구태여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은데,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은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가면도 제각각"

신참 호텔리어 야마가시 나오미는 업무 때문에 투숙한 옛 연인 미야하라의 급작스러운 부탁으로, 그의 불륜 상대인 니시무라 미에코를 찾아 나서는데...

전편의 주역 중 한 명인 나오미가 신참 호텔리어로 등장합니다. 그녀의 과거사, 신참으로서 호텔리어의 사명감을 이야기하는 부분 등 전반적으로 젊음이 한껏 느껴집니다. 주제 의식을 잘 드러내는 결말도 괜찮고요.

그러나 추리적으로는 그닥입니다. 미야하라의 보스인 전 프로야구 스타 "대장" *오야마가 실제로 불륜을 저지른 장본인이라는 걸 알아내는 장면은 그럴듯 했지만, 미에코가 현재 어디 있는지를 알아내는 부분은 나오미가 우연히 본 룸서비스 주문 내용을 통한 것으로 독자에게 공정하게 제공되지 않고 지나치게 작위적이라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든 탓입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루키 형사의 등장"

전편에 나오미가 등장하니 이번에는 당연히 닛타 형사가 등장할 차례죠? 닛타가 신참 형사일 때 맡았단 요식업자 거부 다도코로 살인 사건을 다룹니다.

실제 사건만 놓고 보면 범인이 운이 좋아서 당장 체포되지 않은 것 뿐, 경찰 수사가 조금만 더 이루어졌더라면 금방 체포되었으리라는 점에서는 높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다도코로 미치요의 요리 학원 수강생들에 대해 수사만 진행했어도 요코모리 히토시를 유력 용의자로 끄집어 내는 건 어렵지 않았을 테니까요.

하지만 범행 현장의 특수성에 따라 범인이 자전거를 탔다고 추리한다던가, 현장의 담배 꽁초는 위장이고 어딘가에서 입수한 것이라는 추리는 꽤 그럴듯 했으며, 무엇보다도 다도코로 미치요가 남편 살해를 사주한 진짜 악녀라는게 드러나는 마지막이 아주 괜찮았어요. "입술 틈새로 분홍빛 혀를 살짝 내밀었다. 그 표정은 사냥감을 노리는 뱀을 연상하게 했다"는 일본식 팜므파탈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묘사, 남자를 조종하여 완전 범죄를 성공시키는 모습은 한 편의 등장으로 그치는 게 아깝다 싶을 정도였어요. 다도코로 미치요 캐릭터만으로도 읽을 가치는 충분합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가면과 복면"

코르테시아 도쿄 호텔에 유명 신인 복면 작가 다치바나 사쿠라가 작업 때문에 투숙하자, 그녀의 정체를 확인하고 싶어하는 오타쿠들이 몰려와 한바탕 소동이 벌어지는데...

핵심 수수께끼인 다치바나 사쿠라의 정체가 중년 아저씨가 아니라 그녀의 딸이라는걸 비교적 쉽게 눈치챌 수 있다는 문제는 큽니다. 때문에 두 명이 투숙한 상황이라는 진상을 쉽게 눈치챌 수 있고, 중년 아저씨의 외근과 편집자와의 통화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등의 소소한 수수께끼 역시 특별할 게 없습니다.

한마디로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소품으로 쉬어가는 이야기입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추리 소설이라기 보다는 "호텔 퀸시" 의 또 다른 에피소드 정도로 밖에는 보이지 않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매스커레이드 이브"

닛타는 공대 교수 오카지마 살인 사건 수사를 위해 교통과에서 지원나온 젊은 여경 호즈미 리사와 팀을 꾸렸다. 유력한 용의자는 특허 사용에 따른 거대 이권이 얽힌 준교수 난바라인데, 그는 혐의를 전면 부정했다. 그러나 불륜을 저지르고 있었다는 핑계와 함께 정작 사건 당일의 알리바이는 제시하지 못했다. 사건 당일 난바라가 투숙한 호텔에서 일하는 나오미는 수사를 나온 호즈미 리사에게 자신의 추리를 들려주는데...

표제작이자 작품집의 핵심인 150여 페이지에 이르는 중편입니다. 하지만 대미를 담당하기에는 여러모로 부족합니다. 이야기에 비하면 분량도 너무 길고요. 

우선, 범인이 난바라라는게 너무 명확한데 왜 구속 수사를 하지 않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또 "교환 살인" 은 지금 시점에서는 그리 특별한 아이디어도 아닐 뿐더러, 난바라와 함께 투숙한 여성이 하타케야마 레이코라는 게 밝혀지면 구태여 교환 살인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쉽게 해결될 사건이라는 점에서도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이전 사건의 유력 용의자가 경찰 내부 DB에 남아 있지 않을리가 없잖아요? 경찰 내부에서 레이코가 유력한 용의자였던 이무라 유리 사건만 짚어내면 이 사건을 난바라와 엮어 생각하는 건 추리도 뭐도 아닙니다.
레이코 일당이 왜 약속한 날이 아니라 그 전날 범행을 저질렀는지도 제대로 설명되지 않아서 답답합니다. 알리바이가 너무 완벽하면 의심을 살 수 있다니 어처구니가 없지요. 이럴거면 차를 옮겨 하루의 시간을 벌 필요도 없었어요. 그냥 두었더라면 호즈미 리사의 말대로 지갑을 가져간 강도의 소행으로 끝났을 수도 있었을 테니까요.

아울러 난바라가 투숙했던 오사카 호텔에서 근무하던 나오미가 난바라와 레이코를 엮어서 생각하게 되는 향수 이야기는 작위적이기 짝이 없어요. 짙은 향수 냄새로 두 명의 관계를 의심하게 된다는 설정이야 말이 안되는 건 아니지만, 타월을 무심코 가지고 나가다가 돌려준다는 건 솔직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생각됩니다.

닛타 형사와 함께 짝을 이룬 명랑하고 단순하면서도 의욕 넘치는 호즈미 리사 캐릭터 하나만큼은 마음에 들긴 했습니다. 문제라면 "춤추는 대수사선"의 아오시마 (오다 유지)와 별로 다를게 없는, 수사 본부에 지원 나온 교통 경찰 캐릭터라는 겁니다. 그동안 너무 많이 보아 온 탓에 읽다보니 식상해 지더라고요. 차라리 호즈미 리사의 단순한 추리가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데 도움을 준다는 식으로 끌어냈더라면 훨씬 좋았을 텐데 말이지요. 이래서야 '캐리어'는 영원히 따라잡을 수 없다는 패배 의식만 심어줄 뿐입니다.

이렇게 단점이 더 도드라지는 작품으로 별점은 2점입니다. 나오미 - 닛타 컴비 시리즈로 만들기 위한 억지만 없었더라도 조금 더 낫지 않았을까 싶네요.

2017/09/03

미스테리아 13호 - 미스테리아 편집부 : 별점 2.5점

미스테리아 13호 - 6점
미스테리아 편집부 지음/엘릭시르

미스테리 장르문학 전문잡지 미스테리아 최신간입니다. 창간 2주년 기념호라 그런지 특별 보급가이기도 하고, 항상 관심있게 찾아보던 주제인 "경성"을 특집으로 하고 있어서 구입했습니다.

특집인 "경성" 관련 기사들은 기대에 값합니다. 1930년대 경성이 어떤 곳이었는지를 '장르 문학'과 관련된 시각으로 설명해주는데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많았던 덕분입니다. "별건곤"에 실렸다는 경성 7대 특수촌이나 5대 마굴에 대한 탐사기는 충분히 하나의 작품 소재가 될 만큼 재미있었어요.
경성을 탐정 소설의 배경으로 바라보고 분석한 기사들도 좋았습니다. 예를 들면 "염마"에 등장하는 서광옥의 X별장은 "체신국 뒤로 해서 개천을 메워가지고 새로 낸 큰길을 단 후 누상동 큰거리에서 언덕 위에 지은 큰집을 찾았다"라는 묘사를 통해 '아방궁'이라 불렸던 친일파 윤덕영의 저택을 모델로 했다고 알려주는 식입니다.
여기에 더해 남촌과 북촌의 특수성과 같은 사회적인 부분, 아편굴과 같은 특수 장소와 같은 당대 경성에 대한 갖가지 디테일이 가득하여 아주 만족스러웠습니다. 박태원의 "최후의 억만장자"는 예전에 읽어봤던 작품으로 내용은 별 볼일 없지만, 삽화를 맡았던 월북 화가 정현웅의 그림은 마음에 들었어요. 목판화 스타일의 삽화는 지금 보아도 전혀 어색하지 않는 수준의 완성도니까요.

물론 이런저런 한국 추리 소설 역사서에 실려있는 내용에서 불과한 기사들도 제법 됩니다. 김동인의 "수평선을 넘어서"에 대한 기사가 대표적이에요. 얼마전 읽었던 "대중서사장르의 모든 것 3 : 추리물"에 수록된 내용과 별로 다르지 않아요. 주제에 맞춰 "경성"이라는 공간, 배경에 집중하지 않고, 당시 사회적 배경을 통틀어 설명하고 있는 탓입니다. 이렇게 풀어내면 다른 유사한 컨텐츠와 변별력을 가지기 힘들지요.

그러나 특집 외의 기사들은 기대 이하의 결과물이 많습니다. 홍보 문구에서 대대적으로 선전하고 있는, 그래픽 디자이너 8인에게 가상 표지를 제안했다는 "세상에 아직 없던 책"은 그 중에서도 최악입니다. 박철희의 "환상의 여인" 정도만 괜찮을 뿐, 그외 표지들은 실제 책이 출간되더라도 구매 욕구가 일어나지 않을 정도로 엉망이에요. 요새 대학생들 과제도 이것보다는 나을 듯 한데, 차라리 왠만한 미술 대학 디자인 학과와 연계하여 결과물을 수록하는게 좋았을 겁니다.

"미스테리아"의 핵심 컨텐츠인 리뷰 형태의 새 책 소개도 이번에는 그냥저냥입니다. 그닥 끌리는 책이 없더군요. 게다가 리뷰어 중 한 분은 직업이 "인형사, 자유기고가"라고 되어 있어서, 대체 이 리뷰가 무슨 기준인지도 헛갈립니다. 꼭 전문가가 좋은 리뷰를 쓴다는 것은 아닙니다만, 인터넷을 통해 무료로 볼 수 있는 컨텐츠가 아니라, 비용을 들여 구입한 책의 리뷰라면 그만큼의 전문성은 보장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미스터리 애호가라면 최소한 인터넷을 통해 잘 알려진 분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잠깐 인터넷을 찾아보았는데 당쵀 뭐하시는 분인지 모르겠더군요. 이 분이 소개하는 기타무라 가오루, 요네자와 호노부의 작품들도 구태여 리뷰가 필요한지도 의문입니다(심지어 요네자와 호노부 작품은 '소시민'시리즈 최신간!). 이 잡지를 구해 읽어볼 정도의 독자라면, 이 두 작품은 딱히 리뷰가 필요없을테니까요. 새책 소개는 다른 곳에서는 잘 소개되지 않는 독특한 작품을 소개하는 것이 바람직한 방향입니다.

뒤 이은 영화 "불한당"의 감독 인터뷰 역시 개인적으로는 별로였습니다. 감독이 SNS를 통해 실수했던 이력만 기억에 남을 뿐으로 이런 인물을 지면을 할애해가며 인터뷰를 한 이유를 모르겠거든요. "불한당"이 국내 범죄, 느와르 영화에서 특기할 만한 성취를 이룬 작품이라서 일까요? 영화를 보지는 않았지만 별로 그랬을 것 같지도 않네요.

특집 외 기사들 중에서는 미스테리 속 음식에 대해 파헤치는 정은지 작가의 컬럼과 3편의 논픽션 정도만이 그나마 괜찮은 편입니다. 정은지의 컬럼에는 국내에는 소개된 적이 없는 형사 몬탈바노 시리즈를 소개하며, 작 중 등장하는 다양한 이탈리아 요리들의 소개가 곁들여지고 있는데 재미도 있고 신선했습니다. 제가 준비 중인 '장르 문학 속 음식 이야기'라는 컬럼과 비교되어 자극도 되었고요.
3편의 논픽션은 법의학자가 분석한 평범한 일상 속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 미국에서 화제가 되었던 살인 매뉴얼, 한강변에서 발견된 시체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 중 마지막 이야기가 가장 강렬합니다. 범인을 조작하려는 경찰의 노력에, 무고한 용의자가 겨우 혐의를 벗는 과정, 그리고 결국 미제 사건으로 범인은 커녕 피해자가 누구인지 밝혀지지 않았다라는 결말까지 모두 충격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3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이 역시 이전 호들과는 다르게 수준 이하의 작품이 더 많네요. 우선 로스 맥도널드의 "사라진 여인"은 국내에 소개되지 않았던 루 아처 시리즈라는 점을 제외하면 특기할 만한 점이 전무한 소품입니다. 루 아처가 묶은 모텔에서 살인 사건이 벌어지고, 루 아처가 진상을 파헤친다는 내용인데 루 아처가 하나씩 손에 넣은 단서를 되짚어가면 진상이 드러나는 전개라 추리의 여지도 없고 이야기도 원사이드하게 흘러갑니다. 선택지가 하나 뿐인 미션을 수행하는 느낌이랄까요? 딱히 반전이 있는 진상도 아니고요. 이 정도면 평범 이하라고 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국내작가 차무진의 "비형도"는 전개는 흥미로우나 좋은 작품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아무런 단서나 복선도 없이 귀신들 사이에 어울린다는 결말이 영 납득이 되지 않거든요. 물론 조상병이 살의를 품은 순간, 그 장소에 있던 귀신들 속으로 들어가 귀신들의 역할극이 벌어진 것에 불과하다고 설명되기는 합니다만... 개연성도 없는 역할극이 전체 분량의 90%에 달하는 작품을 좋은 작품이라고 말할 수는 없죠. 생각한대로 현실이 바뀌는 "열린 우주"라는 핵심 설정 및 이를 통해 벌어지는 온갖 사건들은 아주 재미있었는데 아쉽네요. 하기사 좋았던 부분들도 여러모로 애매하긴 합니다. 사건의 시작은 학예사의 뿔테 안경이 아니라 "껌"이었어야 할 것 같고, 학예사가 목을 메다는 장면은 이게 뭔가 싶으니까요. 여튼, 이 역시 별점은 1.5점입니다.

그래도 피터 러브시의 "오이스터 브라운이 저지른 범죄"는 아주 괜찮습니다. 펄, 오이스터 자매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지 트리거의 의심을 독자에게 공유하게 만드는 전개는 정말로 일품이에요. 분명 언니가 사라졌는데 애써 있는 것처럼 가장하는 오이스터의 행동의 이유는? 평생 써도 다 쓰지 못할 퇴비화 속도가 빨라지는 발효 촉진제를 산 이유는? 집에 아무도 들이지 않는 이유는? 이런 질문들은 가장 설득력 있는 추리, 즉 "펄은 죽었고 오이스터가 그녀를 자체적으로 처리하려 한다"로 이어지니까요.
하지만 진상은 정말로 터무니없었고 황당하다는 점에서 독자의 뒷통수를 칩니다. 거장다운 장난스러운, 그렇지만 또 서늘한 결말도 매력적이에요. 트리거가 어디로 갔는지 정말 아무도 몰랐을지, 그리고 트리거의 차가 집 앞에 있으므로 완벽한 인멸은 불가능 했으리라는 점에서 조금 감점하여 별점은 3.5점입니다만, 거장의 실력만큼은 유감없이 느낄 수 있는 작품입니다.

이렇듯 다양한 기사, 읽을 거리로 가득차 있는데 특집과 정말로 몇 안되는 기사, 한 편의 단편만이 기대에 값하기에 전체 별점은 2.5점입니다. 가격이 저렴하지 않았다면 2점 이상 주기는 힘들었을거에요. 식민지 경성, 그리고 그 공간을 무대로 한 장르 문학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꼭 읽어보셔야 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딱히 추천드리지 않습니다.

2017/06/18

미스테리아 5호 - 미스테리아 편집부 : 별점 2점

미스테리아 5호 - 6점
미스테리아 편집부 엮음/엘릭시르

구하게 되면 읽곤 하는 장르문학 전문 잡지 미스테리아 5호입니다. 작년 초에 출간된 한참 전 과월호지요. 언제나처럼 특집 기사와 신간 소개, 이런 저런 연재 기사, 인터뷰, 수록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가장 관심 있던건 특집입니다. "음식 미스터리"가 주제이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으로 '장르 문학 속 요리'에 대해 진행하는 프로젝트가 있어서 좋은 비교, 혹은 참고가 되지 않을까 싶었거든요.

그런데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아주 별로였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소재가 진부하다는 겁니다. 추리 애호가라면 누구나 쉽게 떠올릴 수 있는 흔해 빠진 내용이에요. 도입부의 식인 천재 범죄자 한니발 렉터, 미식가 탐정 네로 울프가 대표적입니다. 그나마도 인터넷을 뒤지면 알 수 있는 내용일 뿐이고요. 정작 기대했던 내용은 실려있지도 않습니다. 저라면 한니발 렉터의 '전두엽 소테'나 네로 울프의 '소시스 미뉴이'를 소개할 때 최소한 해당 음식의 레시피와 조리 사진을 수록했을 겁니다.
이어지는 애거서 크리스티 작품 속 독약에 대한 소개는 '음식 미스터리'의 범주에 넣기는 무리입니다. 차라리 "크리스마스 푸딩의 모험" 같은 작품 소개가 더 적절했을 것입니다.

작품 속 요리를 재현하는 코너 역시 실망스럽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주제와 연결되는 요리들이 등장하는 것도 아니고, 미스테리아 측에서 별다르게 창작한 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모두 참고 도서 속 - 주로 "미국 미스터리 작가들의 요리책" -  요리를 재현한 것에 불과해요. 그나마 셜록 홈즈가 '해군 조약문'을 극적으로 등장시키기 위한 장치로 사용했던 "해군 조약문" 속 치킨 커리 정도만 어느정도 주제에 값할 뿐, 재현한 요리가 작품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지도 않았고요. 

마지막의 '10권의 맛있는 미스터리' 소개는 실망의 정점을 찍습니다. 기준, 근거를 알기 어려운 탓입니다. 일단 소개작 중 "스위트 홈 살인사건", "우리는 언제나 성에 살았다", "기나긴 이별"은 절대로 음식 미스터리로 포장할 수 없습니다. 억지에요. "어느 백만장자의 죽음"은 아슬아슬하게 음식 미스터리 범주 안에는 들기는 한데, 지금은 절판되어 구하기 힘든 책을 추천 도서로 떡 하니 내미는 행위는 받아들이기 힘드네요. 조앤 플루크의 한나 스웬슨 시리즈는 빈말로도 좋은 작품이라 하기 어렵습니다. 그 외 작품들도 음식 미스터리로는 볼 만 하지만, 추천할만한 수준의 작품인지는 잘 모르겠네요. 개인적으로는 "특별 요리""맛" 외에는 모두 추천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래서 점수를 주자면 1.5점 정도? 제 개인 프로젝트에 필적할만한 내용이 없다는 점에서는 조금 안심했지만, 여러모로 점수를 주기 힘든 기획입니다. 

다행히 특집 외에는 나쁘지 않습니다. 특히 빼어난 리뷰가 많아서 "미스테리아"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신간 소개 코너는 역시나, 사람을 혹하게 만드는 좋은 리뷰들이 많더군요. 솔직히 읽어본 결과에 따르면 좀 과한 홍보의 결과물이라 생각되기는 합니다만, 그래도 이번에 소개된 작품 중 마쓰모토 세이초의 "범죄자의 탄생"은 꼭 읽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원작, 영화를 함께 소개하는 코너에서 "검은 옷을 입은 신부""상복의 랑데뷰"보다 낭만적인 애상으로 넘쳐흐른다는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네요. 완성도 면에서 천지차이니까요. 영상화된 작품이라는 이유로 소개되기는 했지만, 정보는 공정하게 제공해 주면 좋겠습니다.

연재물인 아리스가와 아리스와 건축가 야스이 도시오의 밀실에 대한 대담은 재미있었습니다. 일본에 대한 이야기가 대부분이라 써먹기는 힘들다는 단점은 있지만 참고할 만한 내용이 많았어요. 특히 다다미를 걷어내면 아마추어는 다시 깔 수 없다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아울러 이 코너를 통해 소개되는 정보를 토대로 아리스가와 아리스가 내 놓는 아이디어 - 다양한 기술자들이 등장하는 탐정물 - 도 재미있을 것 같았습니다. 미로관을 예로 들며 전기비가 많이 들었을 것이라는 언급을 하는 등 건축 전문가의 식견이 느껴지는 여러 코멘트들도 기억에 남고요.

한국의 50~60년대 추리 소설을 발굴한 추리소설 평론가 박광규 씨와의 인터뷰 역시 좋습니다. 새로운 사실을 많이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화재 사고와 관련된 논픽션, 폴란드에서 실제로 있었던 젊은 지식인 발라가 자신이 저지른 살인 사건을 바탕으로 쓴 소설 이야기도 아주 흥미로웠는데, 특히 범인 크리스티안 발라와 그의 작품 "아목", 형사 브로블레브스키라는 키워드는 꼭 기억해두었다가 나중에 찾아봐야겠습니다.
 한국 미스터리 소설의 계보를 추적하며 잃어버린 고리를 찾는다는 기획물인 '동아시아 미스터리, 정치적 죄와 서스펜스'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식민지 대중 서사의 최고봉이라는 이병주의 "관부 연락선", "별이 차가운 밤이면"과 김내성의 "청춘 열차"는 틈 나는 대로 한번 읽어봐야 겠습니다.
마지막에 수록된 두 편의 단편도 나쁘지 않았어요.

하지만 전체 별점은 2점입니다. 척박한 한국 장르 문학의 구심점 역할을 해 주는 좋은 잡지이지만, 이번호는 특집이 너무 별로라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듭니다. 

마지막으로 수록된 2편의 단편의 짤막한 리뷰로 글을 마칩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합니다.

"나비 부인의 커튼콜" 

전직 사회부 기자 박희윤과 퇴출 형사 갈호태, 두 남자가 운영하는 카페 '이기적인 갈 사장' 건너편에 '나비 부인'이라는 카페가 개업했다. '나비 부인'은 가면을 쓰고 서빙하는 독특한 컨셉과 인테리어, 커피 맛이 입소문을 타 맛집으로 유명해졌다. 그러던 중, 기묘한 노인이 '나비 부인'에서 진상을 부린 다음 날 '나비 부인' 사장이 살해된 시체로 발견되는데...

최혁곤의 단편입니다. 시리즈 캐릭터로 전직 사회부 기자 박희윤과 퇴출 형사 갈호태 콤비가 등장하는 단편집 "탐정이 아닌 두 남자의 밤"에서 이어지는 시리즈입니다.

전작은 읽어보지 않았지만 한국에서는 보기 드문, 유쾌한 분위기의 버디물인데, 아쉽게도 추리적으로는 그닥입니다. 별로 대단한 트릭이 등장하지 않는 탓입니다. 초반에 나왔던 수상쩍은 노인이 범인으로 체포되는 등 수수께끼의 여지도 없고요. 

특히 후더닛 물로는 영 아니올시다에요. 오히려 인터넷 상에서 사람을 공격하여 죽게 만드는 일종의 '사이버 테러'에 대해 경종을 울리는 사회파적 측면이 강하며, 이것이 동기로 밝혀지는 과정이 이야기의 핵심인 와이더닛물에 더욱 가깝습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좀 가볍고 유머러스한 분위기와 사회파적 설정이 잘 어울리지는 않네요. 인터넷의 비방글로 자살을 한다는 것도 와 닿지 않고요. 또 고3 수험생 투신 사건도 불필요할 정도로 질질 끄는 느낌입니다. 동기 부분을 잘 드러내지 못한다는 점도 와이더닛물로는 치명적인 약점입니다. 진범 검은 뿔테가 살인을 저지른 이유도 불분명하니까요. 남자 친구이기 때문에? 설득력이 낮아요.
진소담의 가족 관계 증명서 정도만 나름 증거일 뿐, 추리가 모두 정황 증거에 기반한다는 약점도 크고요. 

그래서 제 별점은 2점입니다. 읽는 재미는 있지만 추리적으로는 기대 이하였던 범작이었습니다. 그래도 버디물로서는 충분히 즐길만한 캐릭터가 등장하는 만큼, 단편집은 한번 읽어 볼 생각입니다. 

"죽음이 갈라 놓을 때" 

기흥 보리산 자락에 있는 무당의 당집에서 처참한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완벽한 밀실 안에서 홀로 생존한 채 발견된 유홍석이 유력한 용의자로 체포되어 사형이 구형되었다. 그러나 판사에게 유홍석의 편지가 도착하는데...

한국에서 보기 드문 본격 추리물들을 발표하고 계신 도진기 판사님 - 현 시점에서 변호사가 되셨지만 - 의 스탠드얼론 단편입니다.

다른건 몰라도 작가가 뼛속까지 고전 본격물 애호가라는 것이 잘 드러나 있는 작품입니다. 1인칭의 수기 형태로 전개되며, 끔찍한 사건이 초자연적인 현상과 얽혀 일어난다는 점이 완전 고전 스타일이었거든요. 비교하자면 코난 도일경의 "J. 하버쿡 젭슨의 진술"이라던가, 앰브로스 비어스의 "아울크리크 다리에서 생긴 일"에 수록된 작품들이 떠오릅니다. 제가 워낙 고전물을 좋아하기에, 완전 제 취향이라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게다가 단지 스타일을 따온 것에 그치지 않고, 무당 '인문희'가 압도적인 존재감을 뽐내는 덕분에 독특한 한국적 오컬트물로 보아도 손색이 없다는 점도 큰 장점이에요. 특히 그녀가 서상표의 집에 몰래 부적을 붙인게 드러나는 장면은 굉장히 섬찟합니다. 만약 영상화한다면 클라이막스로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어요.

그러나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문희에 비하면 서상표는 전형적인 한국 쓰레기 남자와 다를 바 없어 지루합니다. 무엇보다도 진상은 정말이지 어이가 없었어요. 괜찮은 고전 오컬트물이 갑자기 크리쳐 호러로 변질되는데 영 어울리지 않았던 탓입니다.
게다가 잘린 목이 경동맥을 물어 뜯었다면 부검으로 밝혀지는게 당연한데 간과되고 있고, 유홍석이 현장 문을 잠가 밀실로 만든 이유도 끝까지 설명되지 않는 등 디테일에서도 문제가 많아요.

하지만 한국에서 보기 드문, 고전 스타일 오컬트 호러 스릴러임에는 분명합니다. 취향에 따라 호불호를 굉장히 탈 텐데 저한테는 호 쪽에 가깝습니다. 무엇보다도 앞서 말씀드린 부적이 드러나는 장면 하나만으로도 별점 2.5점은 충분합니다.

2017/03/30

피자의 지구사 - 캐럴 헬스토스키 / 김지선 : 별점 2.5점

피자의 지구사 - 6점
캐럴 헬스토스키 지음, 김지선 옮김, 주영하 감수/휴머니스트

휴머니스트의 '~의 지구사' 시리즈 중 한권입니다. 이전에 읽었던 "치즈의 지구사"는 많이 실망스러웠었기에 걱정이 많았는데 다행히 이 책은 마음에 들었습니다. 제가 원하는 글이었기 때문입니다. 피자라는 음식의 발상에서부터 시작하여, 어떻게 발전하여 세계화가 되었는지를 통사적으로, 시대순으로 상세하게 알려주고 있거든요. 각 시대별 대표 피자와 주요 변곡점도 확실하게 체크하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요. 제목 그대로 이 책 한권만 읽어도 피자의 역사에 대해서는 대충 알 수 있을 정도입니다. 

책은 크게 4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장은 피자의 시작과 초기 발전 과정을 다룹니다. 당연히 이탈리아를 중심으로요. 최초의 피자는 단순한 음식이었습니다. 여러가지 재료를 얹어 구워서 만드는 납작한 빵은 신석기 시대에서도 둥그런 반죽을 구워 먹었다고 할만큼 흔했으니까요. 그러나 누가 먼저 둥글납작한 빵을 그릇으로 만들고 그 위에 소스를 얹거나, 다른 음식을 담는다는 발상을 했는지는 모릅니다. 그나마 비슷한게 고대 그리스의 빵 '플라쿤토스'입니다. 토핑을 바로 빵 위에 올려 굽는 것이지요. 빵을 접시나 그릇으로 사용하여 요리를 담아낸다는 기본 개념은 피자와 같습니다.
이후 이탈리아에 토마토가 재배되고, 18세기에 드디어 피자에 토마토가 쓰이기 시작합니다! 나폴리에서 19세기에 빈민들을 위한 음식으로 인기를 끌게 되고요. 마침내는 이탈리아 국왕 움베르토 1세의 아내 마르게리타 여왕이 나폴리에 방문해 '마르게리타' 피자를 대접받은 후 본격적으로 성장해서, 2차대전 후 인구 이동과 함께 이탈리아 전역에 퍼져나가게 됩니다. 초기에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보잘것 없는 음식이었지만 이민과 관광이 붐을 이루며 널리 전파된 것이죠.
이러한 과정에서 다양한 토핑으로 변주가 일어나자 피자의 기원을 자처한 나폴리의 전통 피자 요리사들이 정통 나폴리 피자를 보호하기 위해 정통나폴리피자협회 (VPM)를 결성했다는 이야기도 재미있었습니다. VPN이 인정하는 정통 나폴리 피자는 마르게리타, 마리나라, 마르게리타 엑스트라 피자 뿐이라는데 엄격한 지침을 따라서 만들어야 한다니 꼭 한번 먹어보고 싶네요.

2장은 미국으로 이주한 나폴리 이민자들을 통해 피자가 미국에 뿌리내리며 대중화되는 과정 - 2차대전 이후 군인, 이민자들에 이해 미국에서 피자 소비가 대중화되고, 피자헛과 같은 피자 체인점과 냉동 피자가 속속 등장하면서 거대 산업을 이루게 되는 - 을 담고 있습니다. 이민자 요리들을 자체적으로 재조형하여 미국 음식을 만들어 낸 방식이 피자에도 제대로 발휘되어 더 이상 이탈리아 전통 에스닉 푸드가 아니라 미국이 사랑하는 음식이 된 것이지요. 산업화되며 대량생산, 규격화, 지속성이라는 3대 원칙을 포함해서요.
하지만 1장만큼 재미있는 이야기는 많지 않고 피자헛, 도미노 등 체인점과 냉동 피자 산업 등 산업화에 대한 이야기가 주로 소개됩니다. 그래도 '시카고 피자'의 유래는 기억에 남네요. 텍사스 출신 아이크 슈얼이 오픈한 레스토랑 '우노'에서 선보인 딥디시 피자가 최초라고 하는데, 예전 삼성동 KOEX 우노에서 먹어본 적이 있기 때문으로 덕분에 아주 오래전 옛 추억이 잠시 떠올랐답니다.

3장은 피자가 미국을 넘어 전 세계로 퍼져나가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피자헛의 세계 진출, 각 지역별 특별식, 엔터테이먼트 ("닌자 거북이"와 같은)와 결합하여 피자 자체가 유행이 되는 과정 등이 소개되며, 마지막 4장은 피자의 미래라는 제목인데 별 내용은 없습니다. '토핑 재료에 제한이 없는 한 피자는 영원할 것이다, 그 독특한 특성과 함께'가 전부니까요. 페이지도 10페이지가 안 될 만큼 짤막합니다. 딱히 언급해드릴게 없네요.

그리고 주영하씨의 "피자, 한국 정복의 역사"가 부록처럼 수록되어 있습니다. 제목처럼 한국에 피자가 진출한 과정을 통사적으로 상세하게 소개한 글입니다. 책 성격에도 부합할 뿐더러 내용도 충실하여 마음에 들었습니다. 전형적인 주영하씨 음식관련 미시사 글이었어요. 뒤에 실린 진짜 부록인 다양한 피자 레시피도 집에서 만들기는 힘들겠지만 읽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운 내용이었고요.

이렇듯 재미도 있고, 자료적 가치도 있으면서도 식욕까지 불러일으키는 좋은 책입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3장, 4장 내용이 좀 부실해서 감점하지만 피자를 좋아하신다면 한번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나저나 읽고나서 가장 안타까운건 우리나라에서 먹을 수 있는 피자의 대부분이 미국에서 산업화한 미국식 피자라는 것입니다. 저렴하고 빠른, 패스트푸드 측면에서 피자 체인점의 역할은 분명 있겠지만 나폴리 사람들이 사랑한, 여왕에게 마친 마르게리타 피자만큼은 쉽게 먹을 수 있어야 하지 않나 싶어요. 한식 요리점에서 퓨전 한식만 팔고 정작 김치는 내어놓지 않는 것과 다를게 없잖아요?

2016/02/20

2015년 하우미스터리 선정, 올해의 추리소설!

2014년 하우미스터리 선정, 올해의 추리소설!

국내 최대의 추리문학 동호회 하우미스터리에서 진행한, 2015년도 출간된 추리소설에 대한 투표 이벤트 결과입니다. 매년 초의 연례 행사죠. 이번에는 모두 33분의 추리 애호가가 투표에 참여하셨네요. 1~3위는 아래와 같습니다. 이외 작품은 링크를 통해 확인하시길.

1위 : "13.67" 찬호께이

2위 : "미스터 메르세데스" 스티븐 킹

3위 : 미치오 슈스케 "랫맨"

후보작은 241권이나 되지만 1인당 3표씩 해도 100표가 안 되는 표의 절대 부족으로 많은 작품이 순위에 오르지는 못했습니다. 그런데 후보작 중 제가 읽은 작품은 극히 일부인 20권에 지나지 않는데도 7위까지의 순위권 작품은 총 10권 중 무려 6권이나 읽었더군요! 60%! 2표, 1표를 받은 작품 모두 포함하면 39권 중 13권을 읽었으니 1/3이나 되는 것이고요. 비슷한 경향의 투표 참여자가 많은 것 같습니다. 과연 추리 애호가들끼리는 서로 통하는 바가 있는지도 모르겠네요.

마지막으로 제가 선정한 작품은 아래와 같습니다.

기준은 제 블로그 리뷰 별점이며, 순서는 무순입니다.

"13.67" 찬호께이 : 잘 알려지지 않은 중국 추리문학의 저력을 알게 해 준 수작

"소름" 로스 맥도널드 : 구관이 명관. 하드보일드 3대장의 귀환!

"특별 요리" 스텐리 엘린 : 구관이 명관 (2). 이 바닥 최고의 유명 요리는 역시 아미르스탄 양 요리!

표지가 가장 마음에 들었던 도서

"두 사람의 거리 추정" 요네자와 호노부

2015/12/31

2015 내 블로그 리뷰 총결산

2014 내 블로그 리뷰 총결산

12차, 열두 번째 블로그 결산 보고입니다.

2015년 읽은 책 중 리뷰를 남긴 책은 추리 / 호러 장르문학 52 (48)권, 기타 장르문학 10 (11)권, 역사서 12 (19)권, 디자인 및 스터디 도서 5 (5)권, Food 및 구루메 관련 도서 7 (10)권, 기타 도서 21 (17)권으로 모두 107 (110)권입니다. (괄호는 작년)

작년에 워낙 많이 읽기는 했지만 올해도 나쁘지는 않군요.

참고로, 하기 베스트 - 워스트는 올해 발표된 작품 기준이 아니라 제가 올 한 해 보고 읽은 것들 기준입니다.

2015년 베스트 추리소설 : 

"대프니 듀 모리에"

단평 : 일상 속 기이한 사건과 우연들을 다룬 고전 걸작들. 단편이란 이런 것이다.

올해 추리, 호러 장르물 중 별점 4점 이상 작품은 세 편입니다. "소름", "특별요리", 그리고 이 작품이죠.

2015년 워스트 추리소설 :

"데인가의 저주"

단평 : 오래되기만 했을 뿐, 작가 명성을 파먹고 사는 좀비.

2015년에는 별점 2점 이하의 작품이 무려 16편입니다. 그중 최악은 별점 1.5점짜리 일곱 편 중 이 작품을 워스트로 꼽겠습니다. 지루한 망작이었습니다.

2015년 워스트 기타 장르문학 :

"펠루시다"

단평 : 이에 비하면 현대의 양판소는 삼국지 레벨일 듯.

2015년 베스트 역사 도서 :

"부르주아의 유쾌한 사생활"

단평 : 재미와 소장 가치 모두 최고! 이런 책은 사야죠.

2015년 베스트 디자인 / 스터디 도서 :

"안자이 미즈마루"

단평 : 안자이 미즈마루의 팬에게는 보석과도 같은 책

2015년 워스트 디자인 / 스터디 도서 :

"젊은 목수들 : 일본의 새로운 가구 제작 스튜디오를 찾아서"

단평 :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책인가?

2015년 베스트 기타 도서 :

"클로디아의 비밀"

단평 : 재미와 교훈 모두를 잡은 최고 수준의 아동 문학

2015년 워스트 기타 도서 :

"작은 책방 우리 책 쫌 팝니다"

단평 : 제목과는 정 반대로 작은 책방의 미래에 대해 좌절감만 안겨준다.

결산평 :

총 독서 권수가 작년에 이어 올해도 100권을 넘겼으니 이 정도면 취미인으로 할만큼 한 해라 생각되네요. 올해 드디어 블로그 방문자도 100만명을 돌파했고요. 줌 닷컴에 인수된 후 뾰족한 서비스의 개선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아 불만인데, 그래도 쌓인 정이 깊으니 어쩌겠습니까. 별 탈 없이 오래오래 가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아울러 제 미미한 블로그에 들러주시는 여러분들도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내년에는 올해보다 더 많은 것을 이루고 성취하시는 한 해가 되셨으면 합니다. 제 블로그를 들러주실 정도라면 남들이 관심 가지지 않는 사소하고 디테일한 것들에도 관심을 가지시는, 정말로 세심한 분임이 분명할 테니 내년에는 더욱 잘 되실 거예요. 사랑합니다~!

2015/12/15

금단의 팬더 - 타쿠미 츠카사 / 신유희 : 별점 2점

금단의 팬더 - 4점
타쿠미 츠카사 지음, 신유희 옮김/끌림
아래 내용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요리사 코타는 아내 아야카의 친구 미사의 결혼식에 참석했다. 미사의 결혼 상대가 '퀴진 드 듀'의 주인이기도 한 나카지마의 손자 기노시타 다카시였던 덕분에, 코타는 피로연에서 지고의 요리를 맛볼 수 있었다.

그런데 그 뒤, 기노시타 가문 회사의 오른팔이라 할 수 있는 마츠노 쇼지가 살해당했고, 사장(다카시의 아버지) 요시아키도 실종되고 말았다. 경찰은 나카지마의 유산에 관련된 사건으로 생각했지만, 현경의 아오야마는 밀수와 관계가 있을 거라는 혼자만의 결론을 내리고 독자적인 수사에 착수하는데...

2008년 고노미스 ("이 미스터리가 대단해!") 공모 대상 수상작입니다. 

그런데 고노미스 대상작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추리적으로 별볼일 없어서 실망스럽네요. 같은 대상 수상작이었던 "바티스타 수술팀의 영광"은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말이지요. 

전개도 엉망입니다. 아오야마가 자신의 생각을 증명하기 위해 하는건 성당에 침입하여 조사하는게 전부입니다. 수사 과정도 짜증나는 심문과 사정 청취가 전부일 뿐 특별한 게 없고요. 딱 하나, 아야카의 옥션 등록 이야기를 복선처럼 활용한 것 하나만큼은 괜찮긴 했는데, 이 역시 너무 자주 등장해서 속이 다 들여다보였어요.

진상 역시 너무 뻔합니다. "워싱턴 조약에 위배되는 불법적인 재료를 조리한 미미극식회라는 모임이 있다", "그 어떤 재료를 가지고도 훌륭한 요리를 만들어 내는 천재 요리사 이시구니", "나카지마 가문의 주변 인물들이 한 명씩 실종된다. 그것도 성별 나이 순으로..." 이 세 가지가 합쳐졌을 때, 다른 진상이 존재할 수 있을까요?
진상이 너무 뻔해서 독자는 모두 다 알지만 주인공들만 모르는, 기묘한 상황이 되는건 좀 웃기기까지 했습니다. 여태까지 제가 알고 있던 추리소설의 정의를 근본부터 흔들었으니까요. 독자를 어떻게 속여 넘길까를 궁리하는 게 아니라 독자에게는 전부 알려주면서 등장인물만 모르게 하다니! 완벽하게 주객전도된 느낌입니다.

아울러 음식, 맛에 대한 묘사를 빼면 다른 묘사는 진부하고 별볼일 없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특히나 탐정역인 현경의 아오야마 캐릭터는 정붙이기 힘든, 자기 멋대로에다가 예의는 찾아볼 수도 없는 재수 없는 인간으로 묘사되어 영 마음에 들지 않더군요. 보다 압도적으로 표현되었어야 할 뱅상 신부와 갓 나카지마 역시 그냥 말 많은 악당으로만 보이고요. 미식에 대한 집착이 대단한 나카지마에 비해 그냥 "젊어지기 위해" 인육을 먹으려 한다는 뱅상 신부의 동기도 전혀 와닿지 않았습니다. 그나마 직업 의식에 충실한 이시구니만 제법 그럴 듯했는데, 여러모로 포스는 부족했어요.

그래도 '미식 미스터리'라는 별칭에 걸맞게 음식과 맛에 대한 묘사는 그야말로 발군이기는 합니다. 코타가 결혼식에서 처음으로 퀴진 드 듀의 셰프 이시구니의 코스 요리를 맛볼 때의 묘사, 그리고 코타의 가게 "비스트로 코타"에 갓 나카지마와 이시구니가 방문했을 때 묘사 이렇게 두 번이 개중에서도 백미입니다. 정말 먹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탁월합니다.
심지어 바로 앞서 말씀드렸던, 인육으로 만드는 실제 요리에 대한 자세한 묘사마저도 유감없이 발휘됩니다. 한 마디로 "특별 요리"를 코스테인 시점이 아니라 스비로스 시점으로 그려낸 작품으로, 이러한 시도는 비교적 참신했습니다. 묘사 역시 여태까지 제가 보아왔던 다른 동일 설정의 작품을 능가한다고 할 수 있고요.

또 요리를 시험해 본 이시구니의 결론 - 인육은 냄새가 강하다. 숙성시키면 그 냄새가 더 심해진다. 가능한 한 신선하고 어린 고기를 사용하는 게 제일이다. 특히 남자 고기는 냄새가 나고 딱딱하다. 여자 고기 쪽이 질이 좋고 냄새도 적고 부드럽다. - 덕분에 기노시타 요시아키 - 나카지마 유리 - 기노시타 미사 - 시바야마 아야카로 이루어지는 유괴의 연계가 설득력을 갖추게 된다는 것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아, 물론 인육이 아니라 모든 고기에 다 해당되는 이야기이긴 하죠? '애저찜'이라는 요리도 있으니)
요리사 코타가 요리사로서의 호기심과 인육이라는 재료의 매력에 굴복하여 페이스트 (혹은 퐁)에 스푼을 꽂는다는 마지막 묘사도 깊은 인상을 남깁니다. 어떻게 보면 요리사이기에 쓸 수 있었던 결말이었다 생각되네요.

마지막으로 주 무대가 고베인데 주요 등장인물 몇 명이 제대로 된 사투리로 이야기하고 있는 것도 아주 마음에 듭니다. "오사카 소년 탐정단" 리뷰에서 사투리를 사용한 번역이 없어서 아쉽다고 적었었는데 역시나, 사투리로 번역하는 게 훨씬 좋군요. 누가 토박이이고, 누가 좀 재수 없는지 등 캐릭터마저도 살아나니까요. 고베에 대한 상세한 풍경 묘사는 약간 여정 미스터리 느낌도 들게 해주었고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뻔한 설정을 실제 요리사인 작가가 자신의 전문 분야를 살려 차별화한 점 하나만큼은 점수를 주지만, 추리적으로는 너무나 기대 이하라 감점합니다.

덧붙이자면, 제목은 영 이해가 안 되는군요. '팬더'가 대나무를 먹게 된 것은 타의에 의해서가 강하고 원래 육식을 좋아하는 동물이었다라는 이야기를 가지고 금기되는 음식을 먹는 행위를 설명하려 하는 것까지는 그렇다 치더라도, 팬더가 팬더를 먹었기 때문에 벌을 받았다는 이야기로 이어지는 것은 순전한 작가의 창작일 뿐이니까요.

2015/12/08

알라딘 독자 선정 2015 올해의 장르소설 Top 10

알라딘에서 올해의 장르소설을 뽑는 투표 이벤트를 시작했네요.

이벤트는 여기서

특이한 점은 모든 회원 대상이 아니라 장르 소설을 실제로 구매하였거나 리뷰를 작성한 회원들에게만 투표권을 부여한다는 점입니다. 구매 권수와 리뷰 작성 건수에 따라 최대 30표까지 차등 지급하는데 개인적으로는 좋아 보이네요. 정말 장르소설에 관심 있는 사람들만 대상으로 한 투표가 될 수 있으니까요.

저는 리뷰 작성이 많아서 최대인 30표를 받았는데 거의 대부분을 "소름""특별요리"에 투표했습니다. 후보작 100권 중 읽은 게 14권뿐인데, 그중 이 두 작품만 모두 별점 4점으로 압도적으로 좋았기 때문이죠. 참고로 다른 12권은 별점 2.5점이 대부분이었습니다.

허나 투표 현황을 보니 두 작품 모두 20위권 내에서는 찾아볼 수 없군요. 추이는 지켜봐야겠지만, 이래서는 좋은 순위는 힘들겠어요. 참 좋은 작품들인데, 역시나 시대를 거스르기에는 역부족이었나 봅니다. 

그래도 아직 읽지 않으신 분들 있으시다면 꼭 한번 찾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정말로 좋은 작품이니까요.

2015/10/21

특별요리 - 스텐리 엘린 / 김민수 : 별점 4점

특별 요리 - 8점
스탠리 엘린 지음, 김민수 옮김/엘릭시르

2003년에 동서 추리문고 출간본으로 읽고 폭풍 감동했던 스텐리 엘린의 걸작 단편선집입니다. 당시 별점은 5점이었지요. 이번에 1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엘릭시르에서 정식 번역본으로 재출간되었기에 다시 구입해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작품들은 여전히 재미있습니다. 그리고 확실히 번역에서도 차이가 나더군요. 제목부터요. 원제를 보니 엘릭시르 번역본이 확실히 제대로 된 번역이네요. "the best of everything"은 "최상의 것"이지 "너와 똑같다"일리 없으니까요. "배반자들 (The Betrayers)"의 경우는 동서판의 "벽 너머의 목격자"라는 제목이 더 와닿기는 했습니다만, 이는 최초 일어판의 초월번역 제목을 그대로 따온 것이겠지요. 번역은 일단 원제에 충실해야 하는 것이 기본이라 생각되기 때문에, 엘릭시르 버전 쪽에 점수를 더 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덧붙이자면 유명한 스빌로스의 아밀스턴 양 요리도 스비로스의 아미르스탄 양 요리라고 번역되어 있는데, 역시 엘릭시르 쪽이 더 그럴듯하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작품들 자체는 10년도 더 전에, 그것도 이미 한 번 읽었기에 신선함이 떨어지는건 어쩔 수 없네요. 아무래도 별점 5점을 줄 때만큼의 감동을 느끼기는 힘듭니다.

그래도 오 헨리를 연상케 하는 반전의 맛은 여전히 살아 있고, 일상적이지 않은 독특한 세계와 인물을 그려내는 설정 역시 빼어납니다. 개인적으로는 각 단편에 등장하는 악당들 대부분이 지옥으로 간다는 결말들도 마음에 들었고요. 한마디로 언제 읽어도 일정 수준 이상의 재미를 전해주는 걸작 단편집입니다. 별점은 4점. 이런 말은 좀 식상하지만, 아직 이 작품을 읽지 않으신 분들이 부럽습니다.

각 작품별 짤막한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특별 요리

스비로스의 아미르스탄 양 요리! 뭐 더할 나위 없는 걸작이지요.

손발의 몫

"미생"이 "완생"이 되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랄까요. 비정한 고용인 때문에 살인까지 저지르지만 본인은 그에 대한 자각 없이 하나의 기계로 동작한다는 작품. 지금의 한국 사회와 딱 어울리는 느낌이라 시대를 앞서간 듯 합니다. 취업을 위해 경쟁자를 살해한다는 도널드 E. 웨스트레이크의 걸작 "도끼"도 떠올랐습니다.

성탄 전야의 죽음

이십여 년에 걸친 무간지옥 이야기. 누가 제시를 죽였는지에 대해 수수께끼를 불러일으키다가 마지막 대사 하나로 놀라운 반전을 터트리는 작품. 이런 류의 서늘한 느낌을 전해주는 반전 단편으로는 교과서라 해도 무방할 수작입니다.

애플비 씨의 질서정연한 세계

아내를 여섯 명이나 죽여가며 자신의 골동품 가게를 지키려던 애플비 씨는 일곱 번째 여자와 결혼하는데, 정작 그녀는 그에 대한 모든 범죄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내용. 조금 작위적이기는 하지만 블랙 코미디 느낌의 반전 결말이 인상적인 단편입니다.

체스의 고수

체스에 몰두하다가 자신의 상대가 될 또 다른 인격을 분열시킨다는 내용. 지금 읽기에는 많이 낡아 아쉬웠지만 평범한 사람의 정신이 붕괴하는 과정 묘사는 탁월해 읽을 만한 가치는 충분했습니다.

최상의 것

"리플리"의 또 다른 버전이랄까요. 자신과 닮은 부잣집 아들을 죽이고 그에게 오는 돈을 가로챈 젊은이에게 파국이 찾아온다는 이야기. 전혀 다른 두 세계가 이어지는 설정, 그리고 반전 역시 좋았습니다.

배반자들

과거 읽었을 때에도 아주 좋았던 작품. 벽 너머에서 누군가 살해당하는 소리를 들은 이웃집 남자의 활약(?)이 비극적으로 끝나는 이야기인데 역시 반전 매력이 돋보였습니다.

하우스 파티

무간지옥 2탄. "사랑의 블랙홀"의 막장물 버전이지요. 반전은 없고 다소 뻔한 내용이지만 시끌벅적한 분위기와, 연극과 무한 반복되는 세계라는 감옥을 연결시키는 설정은 나쁘지 않았습니다.

브로커 특급

아내의 불륜을 눈치채고 불륜남 살인을 실행에 옮기는 이야기. 다 좋은데 결말이 석연치는 않았습니다. 여자가 잘못한 게 뻔한데 진정한 사랑 운운하며 같이 죽는다는 건 납득이 어려웠습니다. 제가 너무 보수적인 걸까요?

결단의 순간

태어나서 고민이라는 걸 한 번도 안 해본 남자가 일생일대의 고민을 앞둔다는 내용으로 열린 결말이 인상적입니다. 피해자와 가해자 입장이 전혀 다르기는 하지만 목숨을 건 딜레마라는 점에서, 아내와 불륜을 저지른 피아니스트를 불타는 집에 수갑을 채워놓고 도끼인지 칼인지를 꽂아놓고 쿨하게 떠나는 남자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어디서 읽었던 걸까요?

2010/07/16

알라딘 서재 : 여름맞이 추리소설 10문 10답 이벤트!

참여는 여기서


1. 가장 최근에 완독한 추리(장르)소설은?
존 딕슨 카 "아라비안 나이트 살인".

2. 당신이 살해당했다고 가정했을 때, 사건해결을 맡아줬으면 하는 탐정은? 반대로 절대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은 탐정이 있다면?
가정은 마음에 안들지만... 일단은 마이크 해머. 이유는 내 복수도 같이 해 줄 거 같아서.
절대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은 탐정은 귀차니스트 네로 울프.

3. "휴가길, 이 책 한권 들고 가면 후회없다!" 널리 추천하고픈 추리(장르)소설은?
여름에는 닥치고 호러!라면 "검은 집".
서스펜스와 스릴을 느끼고 싶다면 "자칼의 날".
하드보일드의 새로운 매력에 빠지고 싶다면 "그리고 밤은 되살아난다".
짤막한 단편의 매력은 "특별요리".
여유가 허락된다면 "경성탐정록"도 한번 읽어주세요~

4. 지금 당장 책 살 돈이 10만원 생긴다면, 가장 먼저 장바구니에 담을 추리(장르)소설은?
"주석달린 셜록 홈즈 2", 이미 담겨 있습니다.

5. 지금까지 읽은 추리(장르)소설 중 가장 충격적인-예상외의 결말을 보여준 작품은?(단, 스포일러는 금지!)
반전이 중요한 서술트릭물이 아닌 장르에서 꼽자면 로스 맥도널드의 "소름".

6. 우리 나라에 더 소개되었으면 하는 추리(장르)소설 작가가 있다면?
일본작가 다카키 아키미츠. 유명세에 비하면 너무 소개가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7. 올해 상반기 출간된 추리(장르)소설 중 최고작을 꼽는다면?
개인적으로 읽은 작품 중 올해 상반기 베스트는 딕슨 카의 "유다의 창".

8. '셜록 홈즈'와 '아르센 뤼팽' 역 배우를 내맘대로 캐스팅해본다면?
홈즈는 로버트 다우닝 주니어가 아주 괜찮았어요. 한국 배우로는 역시나 김명민.
아르센 뤼팽은 뺀질뺀질한, 그야말로 '신사'에 왠지 흑발이어야 될 것 같으니 금성무가 어떨까 싶습니다. 너무 동양적인가...

9. 지금까지 읽은 추리(장르)소설 중 가장 '괴작'이라고 생각하는 작품은?
에도가와 란포의 "고구마벌레".

10. 생사에 관계없이, 실제로 가장 만나보고 싶은 추리(장르)소설 작가가 있다면.
당연히 코난 도일 경!

2010/06/02

덧없는 양들의 축연 - 요네자와 호노부 / 최고은 : 별점 2.4점

덧없는 양들의 축연 - 4점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최고은 옮김/북홀릭(bookholic)

"인사이트 밀"로 잘 알려진 일본의 젊은 작가 요네자와 호노부의 5편의 단편이 실려있는 신작 단편집.
부유한 가문의 어두운 부분을 다루고 있다는 점과 모두 여자가 주인공이라는 점으로 묶이는 "기묘한 맛" 류의 연작단편집입니다. 일상계 소품이었던 작가의 전작 "봄철 딸기 타르트 사건", "여름철 트로피컬 파르페 사건"과는 분위기가 전혀 다르고, 클로즈드 써클 정통 본격 추리 스릴러였던 "인사이트 밀"과도 전혀 다른 장르로 작가의 도전 정신이 눈에 띕니다.

그러나... 도전은 좋았지만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습니다. 전작들은 '일정 수준 이상의 트릭' 덕분에 추리적으로는 볼 만 했었습니다. 이러한 트릭 창작력은 작가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할 수도 있고요. 허나 이 작품은 추리적인 부분에서 많이 부족합니다. 트릭이 거의 등장하지 않을 뿐더러, 거의 모든 이야기의 동기가 애매하고 설득력이 없는 탓입니다. 물론 장르가 정통 추리물은 아니지만, 그래도 작가의 명성에서 일말의 기대를 했었는데 많이 아쉽더군요. 아울러 "기묘한 맛"류의 작품치고는 반전이나 서늘함 역시 별로 뛰어나다 하기는 어렵다는 것도 문제고요.

그리고 작가의 단점이라 할 수 있는 설정과 전개는 여전히 별로입니다. 일상계 두 편은 아무래도 일상계이기에 비현실적인 설정이 덜했고, "인사이트 밀"은 설정보다는 트릭이 포인트라서 단점을 많이 상쇄시키지만 이 작품에서는 연작이라는 주제에 얽매여 작위적인 설정이 난무합니다. 그래서 단점이 더욱 두드러지는 느낌이에요. 하녀와 메이드, 그리고 광기에 가까운 집착은 너무 만화적인 설정이잖아요? 부유한 가문의 어두운 진실이라는 주제도 현실적이지 못한 낡아빠진 설정이고요.

작품별 상세 분석을 통한 별점은 2.4점입니다. 작가의 단점이 두드러지고 장점은 잘 보이지 않아 감점합니다. 개인적인 베스트는 "덧없는 양들의 만찬"인데 그나마도 별점은 3점에 불과하네요. 차라리 만화 원작이었다면 더 나았을 뻔 했습니다. 다음 작품은 작가가 스스로의 장점을 잘 살린 정통 본격 퍼즐 미스터리를 선보여주었으면 합니다.

덧붙이자면 출판사 홍보문구는

요네자와 호노부의 블랙 미스터리 연작 소설. 상류계급의 영애들만 가입할 수 있는 비밀스러운 독서 모임이 있다. 남들에게 알릴 수 없는 은밀한 이야기들이 오가는 '바벨의 모임'. 명예, 애증, 꿈…. 이 '바벨의 모임'에 소속된 영애들과 그 집안을 둘러싼 차갑고 매혹적인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인데 이거 완전 과장광고예요! 뭔가 온다 리쿠스러운 분위기를 느끼게 해 주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가 않은, 환상이고 뭐고 없는 내용이며 주요 소재인 것으로 보이는 "바벨의 모임"이 중요하게 등장하는 작품도 딱 두 편 뿐이라 연관성을 지녔다고 말하기 힘들거든요. 게다가 "블랙 미스터리"가 뭔지도 잘 모르겠어요... 패트리시아 하이스미스나 로열드 달이 "블랙 미스터리" 작가던가? 홍보 문구에 낚이는 게 한두 번은 아니지만 씁쓸합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집안에 변고가 생겨서"

후키코의 오빠로 부적절한 행실 탓에 집안에서 쫓겨났던 소타가 저택을 습격하다가 한 손을 잃는 큰 부상을 입고 사라졌다. 그 뒤 후키코의 고모와 할머니가 살해당한 채, 그것도 한손을 잃은 상태로 발견되는데...

탄잔 가문의 후계자이자 외동딸인 후키코의 하녀 유우히의 수기 형태로 전개되는 작품. 

일견 전형적인 고전 추리소설과 같은 전개죠? 하지만 급작스럽게 후키코의 지병(?)이라는 동기로 마무리되며 이야기는 안드로메다로 가 버립니다. 정말이지 동기가 이해하기 어렵고 너무나 뜬금없었어요. 몽유병이라는 설정 역시 작위적이었고요. 후키코가 비밀스럽게 읽는 책들을 유우히에게 보여주는 장면이 나중에 동기와 연관된다는 부분 하나만 마음에 듭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북관의 죄인"

무츠나 가문의 정부의 딸로 태어난 나(아마리)는 북관에 거주하는 무츠나 가문의 후계자 소타로의 하녀 겸 간수가 되었다. 절대 북관을 나갈 수 없는 소타로의 부탁으로 다양한 물건들을 구해주지만, 그 물건들의 사용처는 몰랐다. 하지만 소타로가 병으로 사망한 뒤, 남긴 그림을 통해 물건들의 사용처를 알게 된다.

작품들 중 가장 합리적인 동기, 즉 "돈"이 등장합니다. 하지만 작품 자체는 동기와 범죄보다는 소타로가 아마리에게 부탁한 여러 가지 물건들의 사용처를 더 궁금하게 만듭니다. 식초로 시작해서 압정, 실톱, 막자사발, 목재, 니스, 연을 날릴 때 쓰는 실, 마로 된 천, 납, 계란, 피, 라피즈라줄리 원석들 말이죠. 이 물건들이 앞부분에서 등장했던 그림을 그리기 위한 도구였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앞과 뒤가 자연스럽게 연결되는데, 전개가 아주 깔끔해서 마음에 드네요. 그림에 약간의 장치를 통해 서서히 색깔이 변해가도록 했다는 트릭이 사건의 진상, 즉 아마리의 범죄를 드러낸다는 내용도 괜찮았고요.

그러나 그림을 그리기 위한 도구를 구하기 위한 방법으로는 너무 번잡스러웠고, 그림을 그리지 못하게 한 것 자체가 그다지 설득력이 없고 작위적이어서 아쉬웠습니다. 결과적으로 장난스러운 장치 이외의 의미는 없던 트릭 역시 문제였고요. 별점은 2.5점입니다.

"산장비문"

무역상 타츠노의 별장 비계관의 관리인 야시마는 조난당한 등산객 오치를 구해준 것을 계기로, 손님이 없어 활기 없는 비계관에 손님을 찾아오게 할 묘책을 생각해 내는데...

"바벨의 모임"과는 별 관계없는 별장 관리인이 등장합니다. 합리적인 내용과 이야기 전개가 깔끔했던 소품이에요. 

다만 마지막에 입막음의 수단으로 쓴다는 '만지면 손을 벨 것처럼 날카롭고 사람을 때려죽일 수도 있는 벽돌 같은 덩어리'라는 묘사는 지나치게 기교를 부린 느낌이라 별로였습니다. 그냥 간단하게 금괴라고 하던가. 아니면 그냥 죽이던가...

그래도 합리적인 동기와 더불어 오치의 생사를 놓고 도우미 유키코와 두뇌싸움을 벌이는 등 흥미진진한 전개 등으로 평균적인 수준의 재미는 보장합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타마노 이스즈의 명예"

오구리 가문의 외동딸 스미카의 유일한 친구는 하녀 이스즈. 그러나 모종의 이유로 후계자 지위에서 박탈당한 스미카는 집안에 유배되고 목숨까지 위협받게 된다.

할머니에게 지배되는 시골의 명문가라는 설정은 21세기에 들고 나오기에는 너무 낡은 게 아닐까요? 손자 타이하쿠의 죽음과 노마님의 죽음으로 이어지는 사건의 연쇄 역시 그다지 논리적이지 않고요. 또한 스미카의 추측과 추정으로만 진행되고, 이스즈의 심리 묘사가 전혀 등장하지 않는 등 사건으로 성립하는 게 힘들어 보였습니다. 서늘한 느낌은 괜찮았는데 뭔가 좀 미완성인 느낌이 강한 작품으로 별점은 2점입니다.

"덧없는 양들의 만찬"

졸부 오노데라 가문의 딸은 일기에서 "바벨의 모임"의 소멸에 대해 다룬다. 이유는 그녀가 "아밀스턴 양 요리"를 가문의 요리사 나츠에게 시켰기 때문이었다...

일기라는 1인칭 시점으로 전개되는 작품으로, 스텐리 엘린의 걸작 단편 "특별요리", 윌리엄 아이리시의 긴박감 넘치는 소품 "색다른 토끼스튜 (손톱)" 등 명작 추리 소설 속 요리들이 주요 소재로 등장하기 때문에 즐길거리가 많았습니다. '맛'보다 '머리'로 즐기는 것이라는 아밀스턴 양 요리에 대한 설명과 마지막 결말의 서늘한 느낌도 괜찮았고요.

하지만 1인칭의 일기 형태로 작품을 진행시킨 것은 불필요한 설정이라 생각되며, 전개도 지루한 편이라 마지막 반전의 맛이 부족한 것은 좀 아쉽네요. 그래도 "기묘한 맛"류의 작품으로는 일정 수준 이상이라 생각되기에 별점은 3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