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스커레이드 이브 -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현대문학 |
한국 한정 추리 소설의 제왕인 히가시노 게이고의 <<매스커레이드 호텔>> 시리즈 두 번째 작품. 몇 년 전 전편을 읽고 호텔을 무대로 한 일상계 추리 단편이었더라면 훨씬 좋았을 것 같다는 평을 남겼는데 작가도 같은 생각이었던 걸까요? 이번에는 전편 시점에서 수년 전을 무대로 하고 있는 중, 단편집입니다. 전부 4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일상계와 강력 사건이 적당히 섞여 있는 구성인데 특징이라면 모든 이야기가 사람들은 누구나 가면을 쓰고 있다는 주제를 드러내고 있다는 점으로 어색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드러낸다는 점은 좋지만, 추리적으로는 영 별로라 아주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따라서 전체 평균 별점은 2점. 재미가 없지는 않지만 <<루키 형사의 등장>> 편을 제외하면 추리적으로는 점수를 주기 힘든, 작가의 다른 작품이나 시리즈보다는 못한 범작입니다. 작가의 대단한 팬이 아니라면 구태여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은데,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은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가면도 제각각>>
전편의 히로인 야마가시 나오미가 신참 호텔리어로 등장하는 작품. 업무 때문에 투숙한 옛 연인 미야하라가 갑자기 도움을 요청하여 그의 불륜 상대인 니시무라 미에코를 찾아 나서는 이야기입니다.
전편의 주역 중 한 명인 나오미가 신참 호텔리어로 등장하는 작품으로 그녀의 과거사라던가, 신참으로서 호텔리어의 사명감을 이야기하는 부분 등 전반적으로 젊음이 한껏 느껴지는 싱그러움은 좋았어요. 주제 의식을 잘 드러내는 결말도 괜찮고요.
그러나 추리적으로는 그닥입니다. 미야하라의 보스인 전 프로야구 스타 "대장" *오야마가 실제로 불륜을 저지른 장본인이라는 걸 알아내는 장면은 그럴듯하지만, 미에코가 현재 어디 있는지를 알아내는 부분은 나오미가 우연히 본 룸서비스 주문 내용을 통한 것인데 독자에게 공정하게 제공되는 것도 아니고 지나치게 작위적이라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결론 내리자면 별점은 2.5점입니다.
<<루키 형사의 등장>>
전편에 나오미가 등장하니 이번에는 당연히 닛타 형사가 등장할 차례죠? 닛타가 신참 형사일 때 맡았단 요식업자 거부 다도코로 살인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실제 사건만 놓고 보면 범인이 운이 좋아서 당장 체포되지 않은 것 뿐, 경찰 수사가 조금만 더 이루어졌더라면 금방 체포되었으리라는 점에서는 높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다도코로 미치요의 요리 학원 수강생들에 대해 수사만 진행했어도 요코모리 히토시를 유력 용의자로 끄집어 내는 건 어렵지 않았을 테니까 말이죠.
하지만 범행 현장의 특수성에 따라 범인이 자전거를 탔다고 추리한다던가, 현장의 담배 꽁초는 위장이고 어딘가에서 입수한 것이라는 추리는 꽤 그럴듯 했으며, 무엇보다도 다도코로 미치요가 남편 살해를 사주한 진짜 악녀라는게 드러나는 마지막이 아주 괜찮았어요. "입술 틈새로 분홍빛 혀를 살짝 내밀었다. 그 표정은 사냥감을 노리는 뱀을 연상하게 했다" 는 일본식 팜므파탈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묘사와 함께 남자를 조종하여 완전 범죄를 성공시키는 모습은 한 편의 등장으로 그치는 게 아깝다 싶을 정도였거든요.
다도코로 미치요 캐릭터만으로도 읽을 가치는 충분한 작품으로 별점은 3점입니다.
<<가면과 복면>>
코르테시아 도쿄 호텔에 유명 신인 복면 작가 다치바나 사쿠라가 작업 때문에 투숙하고, 그녀의 정체를 확인하고 싶어하는 오타쿠들이 몰려와 한바탕 소동이 벌어지는 이야기.
그런데 핵심 수수께끼인 다치바나 사쿠라의 정체가 중년 아저씨가 아니라 그녀의 딸이라는 건 비교적 쉽게 눈치챌 수 있다는 건 문제에요. 때문에 2 명이 투숙한 상황이라는 진상을 쉽게 눈치챌 수 있고, 중년 아저씨의 외근과 편집자와의 통화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등의 소소한 수수께끼 역시 특별한 게 없거든요.
한마디로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소품, 쉬어가는 이야기입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추리 소설이라기 보다는 <<호텔 퀸시>> 의 또 다른 에피소드 정도로 밖에는 보이지 않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매스커레이드 이브>>
닛타는 공대 교수 오카지마 살인 사건 수사를 위해 교통과에서 지원나온 젊은 여경 호즈미 리사와 팀을 꾸린다.
유력한 용의자는 특허 사용에 따른 거대 이권이 얽힌 준교수 난바라인데, 그는 혐의를 전면 부정하지만 정작 사건 당일의 알리바이는 제시하지 못한다. 불륜을 저지르고 있었다는 핑계와 함께.
사건 당일 난바라가 투숙한 호텔에서 일하는 나오미는 수사를 나온 호즈미 리사에게 자신의 추리를 들려주는데...
표제작이자 작품집의 핵심인 150여 페이지에 이르는 중편.
하지만 대미를 담당하기에는 여러모로 부족했던 작품입니다. 담고 있는 이야기에 비하면 분량도 너무 길고요.
일단 범인이 난바라라는게 너무 명확해서 왜 구속 수사를 하지 않는지 잘 모르겠더군요. 또 "교환 살인" 은 지금 시점에서는 그리 특별한 아이디어도 아닐 뿐더러, 난바라와 함께 투숙한 여성이 하타케야마 레이코라는 게 밝혀지면 구태여 교환 살인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쉽게 해결될 사건이라는 점에서도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이전 사건의 유력 용의자가 경찰 내부 DB에 남아 있지 않을리가 없잖아요? 경찰 내부에서 레이코가 유력한 용의자였던 이무라 유리 사건만 짚어내면 이 사건을 난바라와 엮어 생각하는 건 추리도 뭐도 아니죠.
레이코 일당이 왜 약속한 날이 아니라 그 전날 범행을 저질렀는지도 제대로 설명되지 않아서 답답합니다. 알리바이가 너무 완벽하면 의심을 살 수 있다니 어처구니가 없죠. 이럴거면 차를 옮겨 하루의 시간을 벌 필요도 없었어요. 그냥 두었더라면 호즈미 리사의 말대로 지갑을 가져간 강도의 소행으로 끝났을 수도 있었을 테니까요.
아울러 난바라가 투숙했던 오사카 호텔에서 근무하던 나오미가 난바라와 레이코를 엮어서 생각하게 되는 향수 이야기는 작위적이기 짝이 없어요. 짙은 향수 냄새로 두 명의 관계를 의심하게 된다는 설정이야 말이 안되는 건 아니지만... 타월을 무심코 가지고 나가다가 돌려준다는 건 솔직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생각됩니다.
닛타 형사와 함께 짝을 이룬 명랑하고 단순하면서도 의욕 넘치는 호즈미 리사 캐릭터 하나만큼은 마음에 들긴 했습니다. 문제라면 <<춤추는 대수사선>> 의 아오시마 (오다 유지)와 별로 다를게 없는, 수사 본부에 지원 나온 교통 경찰 캐릭터라는 것이죠. 그동안 너무 많이 보아 온 탓에 읽다보니 식상해 지더라고요. 차라리 호즈미 리사의 단순한 추리가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데 도움을 준다는 식으로 끌어냈더라면 훨씬 좋았을 텐데 말이죠. 이래서야 '캐리어'는 영원히 따라잡을 수 없다는 패배 의식만 심어줄 뿐입니다.
이렇게 단점이 더 도드라지는 작품으로 별점은 2점입니다. 나오미 - 닛타 컴비 시리즈로 만들기 위한 억지만 없었더라도 조금 더 낫지 않았을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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