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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28

클래식 음반세계의 끝 - 노먼 레브레히트 / 장호연 : 별점 4점

클래식 음반세계의 끝 - 8점
노먼 레브레히트 지음, 장호연 옮김/마티

클래식 음반 ("음악" 이 아니라!) 의 역사의 상세한 기록과 클래식 음반 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명반 100선과 똥반 20선을 소개하는 클래식 음반 관련 미시사 - 가이드 북. 책 소개를 보고 관심이 가던 차에 알라딘 중고 서점을 통해 구입하여 읽게 되었습니다. 전부 400여 페이지 정도의 분량인데 음반 역사와 명반, 똥반 소개가 정확하게 반, 반입니다.

이 중 클래식 음반의 역사 부분은 요약하자면, '녹음' 이 실황 연주와 구별되는 독자적 음악 행위로 거듭난 1920년 빌헬름 켐프의 연주에서부터 시작하여 레코딩 산업이 기업 체제가 되어 EMI, RCA, CBS, 도이치그라모폰, 데카, 필립스라는 6대 메이저가 카라얀으로 대표되는 여러 천재들과 시장을 주도했던 1950~60년대 전성기와 팝 음악의 득세 및 후계자들의 부재로 서서히 몰락해가는 70~80 년대, 디지털 음원 발매와 '크로스오버'로 짧게 찾아온 80년대의 마지막 돈잔치, 그리고 90년대 몰락 이후 현재에 이르는 역사인데 이 과정이 정말로 손에 잡힐 듯 상세하게 펼쳐집니다. 역사서, 미시사 서적으로 보아도 무방한 수준이에요.
그리고 새로운 시장이 시작되어 이게 확대되고, 메이저 회사와 그에 속했던 천재들이 주도권을 잡기 위해 승부를 벌이다가 몰락해 버린다는 내용은, 신대륙을 발견한 여러 나라들이 정복을 위해 나라를 대표하는 영웅들과 다양한 신무기로 정면 승부를 벌이고, 서로 연합하기도 하며 싸우다가 같이 멸망한다는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아서 '군웅극' 못지 않은 재미가 느껴지기도 합니다.

아울러 그동안 생각해 보지 못했던, 클래식 음악 몰락 이유도 많은 교훈을 전해 줍니다. 생각해보니 현대에 클래식 음악이 몰락한 건 당연해요. 이미 대단한 해석이 존재하는 고전을 다시 반복하는 건 무의미하니까요. 이 책에 따르면 아마존에서 구입할 수 있는 베토벤 5번 음반은 276 종이나 된다고 하니... 여러 천재 예술가들이 새로운 시각을 찾으려 노력하고는 있겠지만 이를 구태여 새롭게 비용을 들여 제작할 만한 시장은 이미 아닌 것이죠. 클래식 음반 산업을 궤도에 오르게 만든 토스카니니가 새로 작곡된 작품을 연주하고, 하이페츠나 메뉴인, 호로비츠, 루빈슈타인이 전성기 때 프로코피예프, 라흐마니노프, 시벨리우스, 버르토크 등 동시대 작곡가들의 음악을 연주했던 것처럼 현대에도 음악이 계속 작곡되어 흥행하지 않는 한 시장은 성장하지 않을 것이라는 현실은 끝없는 '새로움' 의 추구만이 살 길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명심하게 만듭니다.
물론 '영화 음악' 이라는 비슷한 시장이 아직은 존재하기는 합니다만 영화 음악도 노래 없는 스코어 만으로는 시장이 굉장히 제한적일 뿐 아니라 '죤 윌리엄스', '엔니오 모리꼬네', '한스 짐머' 등 영화 음악 최전성기에 등장한 작곡가들 이후 등장한 유명 신진 작곡가가 딱히 없다는 점에서는 역시나 상당한 위기가 아닐까 싶군요.

이러한 음반 역사 뒤에 이어지는 명반 소개도 재미있습니다. '최고의' 음반이 아니라 음반 산업이 발전하는 데 영향을 끼친 음반 대상이라는 선정 기준이 명확하고 엄격한 덕에 익히 알고 있는 고전 음악가가 아니라 <<바버의 녹스빌>>, <<수크의 아스라엘 교항곡>>, <<바일의 베를린과 미국의 극장 음악>>, <<로드리고의 아랑훼즈 협주곡>>, <<알캉의 피아노 음악>>, <<코릴리아노의 교향곡 1번>> 같은 비교적 현대에 발표된 곡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는게 특징이죠. 심지어 초기 영화 음악의 거장 <<코른골트의 바다매>> 까지 포함되어 있을 정도입니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정말 최고 중의 최고인 완벽한 음반의 소개가 좀 부족하지 않나 싶은 생각은 듭니다만.... (대표적인 예로 한 시대를 주름잡았던 카라얀의 앨범이 한 개도 없습니다!)
소개도 맛깔스럽게 잘 되어 있어 모든 음반들이 관심이 가지만 그 중에서도 유시 비욜링과 로버트 메릴이 RCA 빅터 오케스트라와 함께 한 <<오페라 이중창>>, 레닌그라드 필하모니의 <<차이콥스키 : 교항곡 4~6번>>, 뒤 프레가 런던 심포니와 함께 한 <<엘가 : 첼로 협주곡>>, <<루소 : 거리 음악 ; 블루스 밴드와 교향악단을 위한 세 개의 작품>> 등은 꼭 한 번 찾아 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똥반 소개도 재미있기는 마찬가지인데, 우리에게도 친숙한 안드레아 보첼리의 <<베르디 : 레퀴엠>> 처럼 연주나 노래가 잘못된 음반도 있지만 '기획' 자체가 실패한 음반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는게 눈길을 끕니다. 스콜피언즈와 베를린 필하모니 오케스트라가 협연한 <> 대표적인 예인데, 저도 디자인 쪽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잘못된 기획이 모든걸 망친다' 는 저자의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입니다.

이렇게 재미있고 가치있는 내용이 가득하나 아쉬운 점이 없는 건 아닙니다. 우선 클래식 음반의 역사 부분이 통사적으로 쓰여지기 보다는 주요 이벤트, 사건과 주요 인물별로 구성되어 조금 혼란스럽다는 점, 그리고 도판 및 국내 출시반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는 현지화 측면이 부족하다는 점이 그러합니다.
그래도 클래식 '음반' 에 대해서 A 부터 Z 까지 알려줄 뿐 아니라, 이 책에 나온 말대로 클래식 '음반' 은 이제 거의 죽은 시장이라면 이 책의 내용이 새롭게 업데이트 될 일도 많이 없을테니 그야말로 바이블이라고 해도 무방하기에 제 별점은 4점입니다. 클래식 '음반' 에 대해 궁금하시다면, 그렇지 않더라도 한 거대 산업이 몰락하는 과정에 대해 궁금하시다면 꼭 한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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