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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30

범죄수학 - 리스 하스아우트 / 오혜정 : 별점 3점

범죄 수학 - 6점
리스 하스아우트 지음, 오혜정 옮김, 남호영 감수/Gbrain(작은책방)

주인공인 수학 천재 라비가 지방 검사인 아버지, 시카고 경찰국의 돕슨 과장을 도와 사건을 해결하는 13편의 단편이 수록된 수학 추리 단편집입니다.

추리소설이라기보다는 수학을 알기 쉽게 소개하는 것이 주목적인 책으로, 이러한 방식으로 수학을 쉽고 재미있게 이해시키기 위해 하나의 이야기로 녹여낸 작품을 몇 편 보아왔습니다. '추리'와 접목시킨 책도 "왓슨. 내가 이겼네!"라는 작품이 있었고요. 추리소설 애호가이자 창작자의 입장에서 바라보자면, 이러한 책의 핵심은 수학을 추리적인 요소에 잘 녹여냈는지가 가장 중요한 요소라 생각합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절반 정도는 성공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특히 "그랜드캐니언의 흰머리 독수리 가족""폭설이 내린 오크가의 아침" 두 편은 수학을 이용한 알리바이 깨기 트릭이 절묘하게 구현되어 있는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약간만 내용을 보강한다면 추리적으로도 뛰어난 작품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될 정도였어요. 그 외의 이야기에서도 도박에서의 확률 계산 같은 요소는 흥미로웠습니다. 충분히 다른 곳에서 활용할 만한 아이디어였습니다. 물론 추리적으로 별로인 이야기들도 있지만, 수학과 결합시켰다는 점에서 눈여겨볼 부분은 분명히 있습니다.

그러나 아쉬웠던 점은 모든 이야기들이 수학적 설명에 많은 분량을 할애한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설명도 재미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트릭을 독자에게 설명하는 데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은, 추리물 창작을 추구하는 제 입장에서는 한계로 보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미드 "넘버스"를 보면서 들었던 느낌과 비슷합니다. "넘버스"는 반대로 '수학'에 대한 설명이 너무 부족한 것이 단점인데, 결국 창작자는 이 두 가지 방법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겠지요. '수학'에 대해 조금만 더 연구한다면, 정말 좋은 추리물을 쓸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주지만, 이러한 한계를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은 더욱 커지네요.

빛나는 아이디어도 있고 재미도 있지만, 아무래도 추리 애호가보다는 수학에 관심이 많은 일반인이 보기에 적합한 책이 아닐까 싶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수학에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학생분들께 추천합니다.

수록작별 소개는 아래와 같습니다.


"그랜드캐니언의 흰머리 독수리 가족"

희귀종인 흰머리 독수리를 잡아간 범인을 잡기 위해 근처에서 운동하던 두 명의 선수가 스쳐 지나간 시간과 각자의 목적지에 도착한 시간을 토대로 계산하여 거짓 증언을 밝혀내는 내용입니다. 추리물에 그대로 적용해도 괜찮을 수준의 이야기라고 생각됩니다. 수학적인 공식이 사건 해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애초에 이 책에 가졌던 기대를 충족시키는 작품이었습니다. 일상적인 분위기도 좋아서 "Q.E.D."가 연상되기도 했습니다.

"카지노에서 일어난 살인사건"

라스베이거스 카지노 사장 슬릭이 살해된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사건의 동기가 도박의 확률과 밀접한 관련이 있죠. 등장하는 도박은 '100장의 카드 중 55장은 성공 / 45장은 실패' - '참가자는 항상 판돈의 절반을 걸고 카드를 뒤집어 '성공'이 나오면 돈을 따고 '실패'가 나오면 돈을 잃는다' - '모든 카드를 다 뒤집어야 게임이 끝난다'라는 방식입니다. 수학적인 설명을 통해 '성공'이 64장 있어야 승산이 있다는 결론이 도출되는데, 아주 재미있었습니다. 조금 응용하면 카드 배틀물에서도 활용할 만한 아이디어라 생각됩니다.

"폭설이 내린 오크가의 아침"

폭설이 내린 날, 유력한 보석 강도 용의자의 알리바이를 깨기 위해 눈이 내린 시간을 알아내는 이야기입니다. 제설차가 오전 6시부터 눈을 치우기 시작해서 처음 한 시간 동안 4블록을 이동하고, 그다음 한 시간 동안에는 2블록밖에 이동하지 못했다는 증언을 토대로 미적분을 동원하여 눈이 처음 내리기 시작한 시간을 밝혀냅니다. 알리바이 깨기의 수학적 응용이라는 측면에서는 백만 점을 주고 싶을 만큼 좋은 아이디어로 보입니다. 다소 어렵기는 했지만, 재미있었습니다.

준플레이오프 1차전 단평 및 2차전 예상

10-5 두산 패 ㅠ.ㅠ

패인 :
1. 어설픈 수비 (특히 런다운 플레이 미스)
2. 정재훈 2실점
3. 임태훈 대삽질
4. 최준석 - 이성렬 양대선풍기 가동

단평 :
투타 키플레이어를 임태훈 - 이성렬 선수로 꼽았는데 투 선수의 대삽질 모드로 대패했습니다.
투수진은 8회까지 홍대민갈(?)을 잘 막아주었고 타격 역시 생각보다는 괜찮았죠. 이종욱 선수의 활약은 값졌고 역시나 큰 경기에서는 두목이 해준다라는 믿음을 확인시켜 줬으며 하위타선의 활약도 쏠쏠했어요. 최준석 - 이성렬 선수만 터졌더라도 쉽게 갈 수 있었는데 아쉽네요.
9회 대량 실점의 빌미가 된 것은 투수진, 특히 임태훈 선수때문이지만 선수를 욕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몸상태 안좋은건 감독이 밝혔었고 번트 상황에서도 스트라이크를 못 던지는데 안바꿔준 감독 잘못이 크니까요.
아울러 9회에도 정재훈 선수를 올린 것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정재훈 선수가 홈런 맞는 순간 솔직히 게임은 끝난 거였어요...

2차전 예상 :
1차전에서의 문제는 두산이 보여준 결정적 수비실책과 중간계투의 붕괴입니다. 롯데와 비교했을때 그래도 나아보였던 상대적 강점이 희석되었다는 점에서 볼 때 앞으로의 전망은 어둡네요.

오늘 김선우 선수가 최소 6이닝 2실점 정도로 막아주지 못하면 중간에 나올 투수도 없고 마무리도 부실하기 때문에 두산이 이길 가능성은 솔직히 적습니다. 김선우 선수 어깨가 무겁겠어요.

두산이 이긴다면 6-4. 패한다면 10-4 정도로 완패하리라 예상합니다. 이기면 좋겠지만 이겨봤자 3, 4차전 역시 암울해서 답이 안 나오네요...

덧 :
이용찬 ㄱㅅㄲ. 넌 까야겠다.

2010/09/28

숫자의 척도 - 요리후지 분페이 / 이은정 : 별점 3점

숫자의 척도 - 6점
요리후지 분페이 지음, 이은정 옮김/스펙트럼북스

이전에 소개한 적도 있는, 좋아하는 일러스트레이터 요리후지 분페이가 직접 쓰고 그린 컬럼집입니다 우리가 평소에 아무 생각 없이 사용하곤 하는 ‘숫자’와 ‘척도’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하는 짤막한 컬럼들을 수록하고 있습니다. 특징이라면 요리후지 분페이의 일러스트가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퀄리티 역시 매우 뛰어나고요.

처음에는 "성인 담배 양성 강좌" 같은 코믹하면서도 독특한 일러스트가 책의 전부일 것이라 예상했는데, 막상 읽어보니 내용 자체도 진지하면서 한번쯤 생각해볼 만한 이야기들로 가득해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특히 ‘척도’에 대한 내용들이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다양한 척도를 시각적으로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 있으며, 눈에 쏙 들어오는 일러스트들이 더해져 더욱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몸을 척도의 기준으로 하여 여러 가지 숫자를 표현하는 내용 역시 인상적이었습니다.

우리는 방송 같은 매체에서 종종 "에베레스트를 몇 번 왕복하는 거리" 같은 단위 설명을 접하지만, 사실 이런 표현이 직관적으로 와 닿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이 책은 자신의 몸을 기준으로 삼아 다양한 단위를 설명하고, 이를 실제 예와 함께 일러스트로 표현해 주어 확실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기대했던 코믹한 요소도 요리후지 분페이만의 독특한 ‘단위’를 다루는 방식에서 기대를 충족시켜 주고 있고요. 

다만, 단위에 대한 내용은 이전에 읽었던 "새로운 단위"라는 책과 상당히 유사해 신선함이 떨어지는 부분이 아쉬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는 접하기 힘든 일러스트 컬럼집으로서, 일러스트의 힘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좋은 책이라 생각됩니다. 요리후지 분페이의 팬이라면 한 권쯤 소장할 만한 가치가 있는 책입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2010/09/27

프로야구 정규 시즌 종료 - 두산 베어스 결산

프로야구 개막~! 10 시즌 두산 베어스 예상
팀순위 : 3위
팀타율 : 2위
팀방어율 : 5위

2010 프로야구 정규 시즌도 드디어 끝났네요. 개인적인 두산 베어스 결산을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투수진 :
선발진 :
합작 21승을 거둔 8개구단 최고의 용병 듀오 투수진과 김선우 선수가 토종 우완 투수 No.1급의 성적을 기록하는 등 지난 몇년간 중에서도 가장 훌륭한, 4명 모두 10승이 가능해보이는 (운이 좋다면...) 1~4선발을 구축하기는 하였으나 원투펀치인 히메네스 - 김선우 선수를 제외하고는 기복이 심했으며 5선발로 투입한 대부분의 선수들이 실패하는 바람에 팀 방어율을 대폭 상승시킨 원인이 되었죠. 특히 이현승 - 홍상삼 선수의 부진이 뼈아팠습니다. B-

불펜진 :
임태훈 선수의 선발 전환 이후에도 정재훈 선수가 중심이 되어 비교적 탄탄히 유지된 편이어서 다행입니다. 고창성 선수가 몇번 뼈아픈 패배를 당하기는 했지만 대체로 좋았고 이용찬 선수도 불미스러운 일이 터지기 전까지는 확실히 작년보다 업그레이드 된 모습으로 마무리 역할을 잘 수행해 주었거든요. B+

결산 :
한마디로 이현승 선수의 부진이 뼈아픈 한해였습니다. 책임을 한명에게만 돌리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지만 이현승 선수가 최소 왈론드 선수 정도의 역할만 해 주었더라도 두산이 2위는 확보할 수 있었을 거에요. 또한 기대했던 신인투수들이 한명도 성장하지 못한 것 등을 포함하면 투수코치진의 능력을 의심하게까지 만듭니다. B


타선 :
주전 - 중심타선 :
주로 3번에 배치되었던 이성렬 선수가 확실히 성장한 것이 굉장히 좋았습니다. 삼진이 많은 공갈포 느낌이긴 하나 장타력은 눈에 띌 정도니까요. 또 신인 양의지 선수가 비록 수비면에서는 낙제점이지만 공격에서 활약해 준 것 역시 대단했죠. 홈런 등 장타력이 강화된 대신 발야구는 줄었지만 개인적으로는 긍정적인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김동주 선수의 노쇠화가 눈에 띄고 김동주 선수 이후 차세대 3루수로 자리잡을 선수가 불확실한 한해였다는 것은 아쉽네요. 김동주 선수 이후의 4번타자를 발굴하는데 실패했다는 것도 계속 숙제로 남을 것 같고요. 아울러 고영민 선수의 부진이 너무나 심각한데 개인적으로는 오재원 선수에 비해 딱히 나은 점을 찾기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내외야 평균해서 A-

백업진 :
두산의 백업진은 역시나 대단했어요. 막판 이종욱 선수의 부상으로 투입된 정수빈 선수의 활약과 타신 임재철 선수의 소금같은 역할 등 타팀에 가면 주전으로 뛸 만한 선수들이 자신의 역량을 기회때마다 보여주었습니다. 하지만 내야진 백업 요원들은 오재원 선수가 좋긴 하였으나 장타력 부재로 아쉬움을 주었고 김재호 선수는 정체된 느낌이라 안타깝더군요. 그래도 모든 포지션의 백업진이 기대치 만큼의 모습은 보여준 한해였어요. A

결산 :
국내 최초 토종 타자 5명이 20홈런을 넘기는 대포군단으로의 변신이 성공한 한해였습니다. 그러나 김동주 선수의 노쇠화가 심각해보이는데 대안이 없다는 것, 2루수 고영민 선수의 극심한 부진이 이제는 부진이 아니라 실력으로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에서 내야의 핵인 2-3루 포지션에 심각한 의문부호를 남기도 했죠. 전체적으로 두산의 강점이었던 수비진도 적시에 에러가 터지는 등 확실히 안 좋아 졌는데 보다 강력한 포지션 경쟁이 재점화되어야 할 필요성이 느껴집니다.
그러나 타격이야 올 시즌 좋았기에 큰 불만은 없네요. 전체적으로는 A급이라 생각합니다.


전체 결산 :
기대에 미치지 못한 투수진, 약간은 아쉬웠던 타선으로 요약된 한해입니다. 시즌 막판의 컨디션 체크용 경기를 제외하고는 5할대 중후반의 승률로도 3위밖에 하지 못한 것은 분명 재수가 없었던 것도 있지만 중요한 경기를 몇번 놓친 것이 너무 컸어요. 김선우 선수를 구원한 히메네스 선수가 역전 홈런을 허용했던 경기라던가 고창성 선수가 홈런을 허용하여 패배한 SK전, 1회초에 6점을 먼저 뽑았지만 선발 홍상삼 선수의 난조로 패배한 롯데전 등이 기억나네요.

어쨌건 전체적인 팀 능력치는 B+급으로 확실한 강점이 느껴지지 않는, 준수하지만 임팩트없는 팀이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아무리 타선이 좋다고 해도 이 정도면 딱히 눈에 띄는 수준은 아니니까요. 뭔가 평범하고 준수한 것 보다는 하나의 강점이 빛나는 팀이 되는게 더 좋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몇년전의 수비 - 발야구처럼요. 공격력은 A+++인 롯데, 투수진이 A+급인 삼성, 전체적인 팀의 완성도가 A급인 SK와 비교한다면 딱히 강점을 찾을 수 없기에 험난한 포스트시즌이 예상되는데 솔직히 큰 기대가 되지는 않는군요. 그래도 선수들의 선전을 기원합니다. 올인V4 허슬~두!

덧 :
레전드라 불리울 수 있는 선수인 양준혁 선수마저 은퇴하였습니다. 제가 정말로 야구를 즐겼던 90년대가 정말로 저물어간다는 느낌이에요. 이제 새천년의 젊은 스타들이 활약을 이어가긴 하겠지만 아쉬움을 지우기에는 좀 모자랍니다. 최고일때 삼성맨으로 떠나는 것이 양준혁 선수다운 모습이지만 몇년 더 활약해 주어도 괜찮았을텐데... 그래도 앞으로 양준혁 선수의 건승을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2010/09/26

도박 눈 - 미야베 미유키 외 / 정태원 : 별점 3점

도박 눈 - 6점
미야베 미유키 지음, 정태원 옮김/태동출판사

카파 노블스 창간 50주년을 기념하여 9명의 작가들이 '50'이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써 내려간 단편들을 모아 놓은 단편 앤솔로지입니다. 추석 연휴 마지막 날을 장식한 따끈따끈한 신간이죠.

이렇게 여러 작가들이 하나의 키워드로 모인 앤솔로지는 이전에 "Y의 비극" 등을 통해 접해본 적이 몇 번 있습니다. 그래서 9명의 작가들이 한자리에 모이기도 어려운, 드림팀이라 부를 만한 저명한 작가들이거나, 어떻게 보면 출판사 기획 도서에 가깝다는 점을 알고 있었기에 기대 반, 우려 반이었는데 생각보다 아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아무래도 정통 추리 단편이 아니라 작가들이 쓰고 싶은 장르의 이야기를 썼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추리뿐만 아니라 괴담이나 일반적인 드라마까지 장르의 스펙트럼이 넓은 편이거든요.

그러나 '50'이라는 키워드를 작품에 잘 녹여낸 작품이 많지 않다는 점은 아쉽더군요. 아야쓰지 유키토와 미치오 슈스케 작품만이 '50'을 이야기의 핵심 요소로 사용했을 뿐, 다른 작품들은 그냥 있으나 없으나 한 설정에 불과하니까요. 하나의 키워드를 가지고 이야기를 창작한다는 게 쉽지는 않겠지만, 이왕 쓴다면 좀 더 작품에 잘 녹아들게 하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개인적으로는 '50번째 임무를 수행하면 자유의 몸이 되는 조직의 킬러' 같은 설정이 떠오르네요.)

전체 평균 별점은 반올림해서 3점. 베스트 작품으로는 재미 측면에서는 "도박눈", 추리 요소로는 "여름의 빛" 두 작품을 꼽겠습니다.

수록작별 간략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절단" - 아야쓰지 유키토

화자가 작가 아야쓰지 유키토라는 것도 특이하지만, 생각보다 심리 스릴러와 크리처물에 가까운 작품이라 무척 의외였습니다. '칼질 50번으로 *****의 사체를 50조각 냈다'는 사건이 발생하는데, 범인은 이미 잡힌 상황이며 단지 '왜 51조각이 아니고 50조각인지?'에 대한 의문만을 탐구합니다.

그러나 역시나 명성에 걸맞은 작품이었습니다. *****의 정체를 끝까지 밝히지 않고, 이게 현실인지 정상적인 세계인지도 알 수 없는 비현실성 속에서도 느껴지는 서늘함이 일품이었습니다. '50'이라는 키워드도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되어 마음에 들었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눈과 금혼식" - 아리스가와 아리스

'작가 아리스' 시리즈로 임상 법의학자 히무라 히데오와 작가 아리스가와 아리스가 등장하는 단편이며, '50'이라는 키워드는 노부부의 행복한 금혼식을 테마로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신본격 단편임에도 불구하고 트릭이 너무나 변변찮고, 추리라고 할 만한 요소가 거의 없어서 높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네요. 다도코로 유지의 당일 행적만 경찰이 조사했더라도 금방 해결되었을 사건이라 왜 히무라 히데오가 등장하는지조차 알 수 없거든요. '50' 역시 억지로 끼워 맞춘 설정에 불과합니다. 금혼식이 아니라 생일이나 결혼기념일이어도 무방하니까요.

한마디로 이 앤솔로지의 워스트. 별점은 1.5점입니다.

"50층에서 기다려라" - 오사와 아리마사

'신주쿠 상어' 사메지마가 등장하는 단편으로, 일종의 도시괴담을 이용한 범죄 사기극을 그리고 있습니다. 내용은 약간 뻔하지만 그래도 재미있게 풀어나간 것 같습니다.

다만 제목 그대로 '50층'을 뜻하는 키워드 '50'이 다소 억지로 쓰인 감이 있습니다. 호텔 50층을 임대하는 비용으로 충분히 사람을 고용할 수도 있었을 텐데, 굳이 이 설정을 사용해야 했을까 싶네요. 별점은 2.5점입니다.

"영국 세필드" - 시마다 소지

작가의 명탐정 미타라이가 등장하는 작품이지만, 추리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작품이었습니다. 뇌성마비 장애인을 다룬 진지한 인간 승리 드라마인데, 이외의 다른 작품들이 장르 문학에 속하는 것과 달라서 이질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소재도 흔하고요.

하지만 '역도'라는 스포츠를 활용한 점이 독특했고, 나름 재미도 있었습니다. 키워드 '50'도 약간 억지스럽기는 하지만 적절히 활용된 편입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여름의 빛" - 미치오 슈스케

요즘 미치오 슈스케의 작품을 자주 읽게 되네요. 초등학생이 마을 들개의 죽음에 얽힌 진상을 밝혀낸다는 내용은 "해바라기가 피지 않는 여름"을 연상케 합니다.

그러나 보다 밝은 분위기에 깔끔한 전개가 돋보이며, 초등학생은 알지 못하는 카메라 용어가 사건 해결의 열쇠가 된다는 점이 재미를 더했습니다. 왜 미치오 슈스케가 요즘 인기가 많은지 알 수 있게 해주는 단편이었습니다. 별점은 3.5점입니다.

"도박눈" - 미야베 미유키

미야베 미유키의 에도물. 정통 괴담에 가깝습니다. 정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간장 도매상 오미야에 찾아온 괴이한 요괴 '도박눈'을 퇴치하는 이야기인데, 에도 시대의 정취가 물씬 풍기면서도 긴장감을 놓지 않는 구성력이 뛰어난 덕분입니다. 특히 요괴의 정체를 밝히지 않은 채 끌고 가는 초반부 이후, 마을 신사의 고마이누를 통해 퇴치 방법을 알게 되고 마지막 결말로 향하는 전개가 아주 흥미진진했어요. 이런 유형의 이야기의 교과서적인 작품이라 생각됩니다. 

그래서 별점은 4점, 이 앤솔로지의 베스트입니다.

"미래의 꽃" - 요코야마 히데오

"종신검시관" 시리즈 단편으로, 병원에 입원한 구라이시 검시관이 협조 요청차 찾아온 경찰이 제공한 자료와 사진만으로 사건의 진실을 밝혀낸다는 이야기입니다. 전형적인 안락의자 탐정물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단서 제공도 공정하고, 이야기 전개도 설득력 있어서 마음에 들었어요.

'50'이라는 키워드의 사용이 억지스럽다는 단점은 있지만, 시리즈 전체적으로 봤을 때 평균 수준은 됩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2010/09/24

아울크리크 다리에서 생긴 일 - 앰브로스 비어스 / 정진영 : 별점 3.5점

아울크리크 다리에서 생긴 일 - 8점
앰브로스 비어스 지음, 정진영 옮김/생각의나무

애드거 앨런 포를 잇는 미국 장르-환상-고딕-호러 문학의 귀재이자 기인인 앰브로스 비어스의 대표 단편선입니다. 최고의 문학 형식은 단편이라는 포의 말을 따르듯, 짤막한 단편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작가의 유명세야 익히 알고 있었고, 작품도 많이 들어왔기에 너무 늦게 읽은 게 아닌가 싶기도 하네요.

전쟁 소설 - "아울크리크 다리에서 생긴 일", "말 탄 자, 허공에 있었다" -부터 전형적인 괴담 - "막힌 창", "표범의 눈", "이방인" 등 -, 일상계 호러 - "인간과 뱀", "덩굴" 등 -와 크리처물 - "요물" - 까지 굉장히 다양한 장르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장르를 하나로 특정하기는 힘들지만, 대체로 환상 호러 소설이라고 보는 게 적합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정말 기괴하고 환상적인 상상력이 발휘되어 있어서 놀랐습니다. 100여 년 전의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낡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로 대단했어요. 뭔가 마약에 취한 듯한 정경과 분위기 묘사들도 일품이었고요. 또, 귀족적이고 근대에 가까운 스타일과 묘사가 많은 고딕 호러의 느낌보다는 '미국적'이라는 생각이 바로 들 정도로 물씬 풍기는 서부 개척 시대 분위기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문체가 약간 다르기는 하지만, 전반적으로는 마크 트웨인이 쓴 호러 소설 느낌입니다.

마지막의 서늘한 반전으로 섬뜩한 느낌을 주는 작품이 많은 것은 현대의 '기묘한 맛' 장르가 떠올랐습니다. 이런 장르물의 선구자격 작품이라 생각되네요.

상세하게 이야기하기에는 실린 작품들이 너무 많고, 모두가 빼어난 맛이 있지만,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개기름", "시체를 지키는 사람", "인간과 뱀", "덩굴", "요물", "말 탄 자, 허공에 있었다"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평범하고 일반적인 상황에서 펼쳐지는 공포와 함께 나름의 반전이 있는 작품들이기 때문입니다. 몽환적이거나 서술이 복잡하지도 않았고요.

특히 "시체를 지키는 사람"은 시체와 함께 하룻밤을 보낸다는 내기의 황당하고 충격적인 결말이 인상적인데, 나름 제 식으로 변주해서 풀어보아도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매력적이었습니다. 크리처물 "요물"은 현대 유사 콘텐츠의 원형을 제공한 듯한 발상이 좋았고요. 투명 괴물이라니!

한마디로 장르문학, 특히 호러 팬이라면 당연히 봐야 할 작품집이 아닐까 싶네요. 책도 아주 예쁘게 나와서 마음에 듭니다. 제가 호러물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기에 별점은 3.5점입니다만, 단지 제 취향의 문제일 뿐입니다.

2010/09/23

용의 손은 붉게 물들고 - 미치오 슈스케 / 이영미 : 별점 3점

용의 손은 붉게 물들고 - 6점 미치오 슈스케 지음, 이영미 옮김/은행나무

소에키다 렌 - 가에데 남매는 계부인 무쓰오를 증오한다. 이웃에 사는 다쓰야 - 게이스케 형제 역시 새어머니 사토에에게 반항하던 상황. 그러던 중 우연히 무쓰오가 살해당했고, 렌은 어쩔 수 없이 사체를 유기했다. 하지만 유기하는 장면을 다쓰야 형제에게 목격당한 뒤, 다쓰야와 동창생인 가에데에게 협박장이 날아왔다. 렌은 동생을 지키기 위해 칼을 들 것을 결심하는데...

"섀도우", "해바라기가 피지 않는 여름"으로 접했던 미치오 슈스케의 장편 소설입니다. 제목이 굉장히 멋진데, 원제는 단순하게 "龍神の雨"더군요. 원제보다 번역된 제목이 내용을 더 잘 드러내면서도 세련된 경우는 드문데, 이번 작품이 그렇습니다.

이 작품은 정통 본격 추리물이라기보다는 범죄 스릴러에 가깝습니다. 정교한 트릭보다는 첫 사건인 무쓰오 살해 사건이 벌어진 후 사체 유기, 그리고 범행 현장이 목격되어 협박장이 날아오는 전개가 긴박하게 진행되어, 계속 손에 땀을 쥐게 만든다는 점에서요.

추리적으로도 무쓰오 살해 사건에 대한 여러 트릭과 사체 유기 과정에서의 디테일은 상당한 수준입니다. 끊임없이 던져지는 다양한 단서들이 나중에 사건의 진상을 밝혀내는 방식으로 연결되는 구조도 잘 짜여져 있어서 추리 애호가를 충분히 만족시킬 수 있습니다. 또한, 다쓰야 형제의 어머니가 사고사한 것에 대한 나름의 추론 역시 하나의 독립적인 소품으로서도 흥미로웠습니다.

"결손 가정"이라는 가족 내 문제를 작품 속에 심도 있게 도입하여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점도 인상적이며, 태풍이 몰아치고, 비가 끊임없이 내리는 축축하고 음울한 분위기 역시 작품 전반에 잘 녹아들어 있었습니다. "경관혐오"를 읽을 때와 비슷한, 뜨겁고 끈적한 긴장감이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몇 가지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특히 "섀도우"와 비슷한 단점이 반복된다는 점이 조금 아쉬웠습니다. 특히 '진범'의 정체가 너무 뜬금없습니다. 물론 작품 속에서 단서와 복선이 충분히 배치되어 있었지만, 독자가 이를 명확하게 판단할 수 있는 수준으로는 묘사되지 않습니다. 이래서야 반전을 위한 장치일 뿐, 공정한 전개로 보기에는 어렵습니다. 굳이 남매와 형제를 얽어놓기보다는, 진범의 정체를 좀 더 정교하게 풀어나갔다면 더 좋았을 것 같습니다.

또한, 렌 남매와 다쓰야 형제를 연결하기 위한 설정이 다소 무리하게 느껴졌고, 마지막에야 소에키다 무쓰오라는 남자의 진심을 렌이 이해하게 되는 전개, 그리고 우연히 만난 친구에게서 전철 치한의 정체를 듣게 되는 과정 등은 다소 작위적이었습니다. 이런 문제들 모두 "섀도우"에서도 느꼈던 단점들과 유사합니다.

전체적으로 태풍과 비라는 요소를 강조하며 상황을 연출하는 방식도 다소 과했으며, 특히 후지공주와 야마타노오로치 전설까지 엮은 것은 지나치게 작위적으로 보였습니다.

이렇게 문제가 없지는 않지만, 이야기의 스릴과 서스펜스는 대단하며 끝까지 몰입하게 만드는 힘이 확실한 작품입니다. 단점보다는 장점이 더 많은 것도 분명하고요. 제 별점은 3점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소설보다는 영화로 제작되었을 때 더욱 빛을 발할 것 같은 작품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영화화된 적이 있는지 한 번 찾아봐야겠습니다.

2010/09/22

시튼 탐정 동물기 - 야나기 코지 / 박현미 : 별점 2.5점

시튼 탐정 동물기 - 6점
야나기 코지 지음, 박현미 옮김/루비박스

유명 동물학자 겸 소설가 시튼을 주인공으로 한 본격 추리 단편집입니다. 시튼이 주인공이며, 작중 모든 사건이 동물과 관련된 이야기라는 점이 독특합니다. 하지만 주인공과 약간의 설정을 제외하면, 고전 본격 단편 부흥기의 분위기와 스타일을 많이 따르고 있습니다. 셜록 홈즈 파스티시물이라고 해도 될 정도죠. 그래도 단지 기발한 아이디어에 그치지 않고, 작가가 연구를 많이 한 듯 시튼이라는 캐릭터와 당대의 분위기가 잘 살아 있어 흥미로웠습니다. 게다가 제가 워낙 본격 단편 시대의 작품들을 좋아하기에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때, 아이디어와 형식에 비해 작품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동물을 이용한 트릭들이 본격물에 어울릴 정도로 정교하게 구현되었다고 보기는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트릭이 딱히 뛰어나지도 않고, 억지스러운 것이 많았기 때문이죠. 전반적으로 '시튼'과 '동물'이라는 설정에 너무 얽매인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거 별점은 2.5점. 다소 낮은 연령층, 특히 시튼의 동물기를 읽은 독자라면 아주 재미있게 읽을 만한 이야기지만, 저에게는 그냥 평작 정도로 느껴졌습니다.

수록작별 간략한 소개는 아래와 같습니다.


"카람포의 악마"

시튼의 동물기에서도 유명한 '늑대왕 로보'가 관련된 작품입니다. 이야기의 시작으로는 괜찮았지만, 트릭이 다소 어설펐습니다. 시체를 늑대왕 로보가 죽인 것처럼 위장한다는 설정인데, 발자국을 조작한다는 작위성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시튼이 사건에 개입하게 된 것도 너무 우연일 뿐이고요.

"실버스팟"

까마귀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흥미로웠지만, 이야기 전개에 우연이 너무 많이 개입해서 높은 점수를 주기는 어려웠습니다. "랜턴관 도난 사건"처럼 애초부터 새를 이용한 도둑질이었다면 설득력이 있었겠지만, 그렇지 않아서 추리적으로 아쉬운 점이 많았습니다.

"숲 속의 다람쥐"

현실성 측면에서는 가장 괜찮았습니다. 그러나 다람쥐가 중요한 요소는 아니었고, 이야기가는 비약이 심산 편입니다. 역시나 '우연'에 의해 사건이 진행된다는 점도 약점이고요.

"외양간 밀실과 메기 조"

두 개의 짧은 이야기가 담겨 있는 작품으로, 일상 미스터리물로서는 무난한 소품이었습니다. 뛰어난 트릭이 등장하지는 않았지만, 개척 시대를 무대로 하면 이 정도 수준이 적당한 느낌이었습니다.

"로열 아날로스탄 실종 사건"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이야기입니다. 시튼이 실제로 맡았을 법한 고양이 실종 사건이라는 현실적인 테마도 좋았고, 전체적으로 유쾌한 분위기 속에서 길고양이의 습성을 잘 녹여낸 점이 설득력을 더했습니다. 개인적인 수록작 중 베스트 단편입니다. 

다만, 로열 아날로스탄이 품평회에서 상을 탔다는 점에 대한 설명이 부족한 점은 아쉬웠습니다. 

"세 명의 비서관"

루즈벨트라는 실존 인물이 등장하는 것이 독특한 요소였습니다. 또한, 스컹크에 대한 애정 넘치는 서술 등 동물이 이야기에 잘 녹아들어 있다는 것도 좋았고요. 그러나 전개가 너무 운에 의존한 느낌이 강했습니다. 차라리 스컹크 분무액을 서류에 묻혀 놓는 방식이 더 현실적이었을 것 같네요.

"곰의 왕 잭"

강력 사건이 등장하는데, 다소 상식 밖의 전개라 당황스러웠습니다. 곰이 바위를 밀었다는 설정이 트릭으로서 설득력이 있었을지는 차치하더라도, "곰이 왼손잡이라서 바위를 밀 수 없었다"는게 어떻게 증거가 되는지 잘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등으로 밀 수도 있지 않나요?

2010/09/21

얼어붙은 섬 - 곤도 후미에 / 권영주 : 별점 3점

얼어붙은 섬 - 6점 곤도 후미에 지음, 권영주 옮김/시작

찻집 호쿠사이야를 운영하는 아야메와 나쓰코, 찻집 단골손님 토끼군, 나쓰코의 애인 무쓰군 등 여덟 명이 여행을 떠났다. 세토 내해의 무인도 별장에 도착한 다음 날, 아야메의 정부인 도리코의 아내 나나코가 밀실 안에서 살해된 채 발견되었다. 이후 그들은 연쇄 살인의 회오리에 휘말리는데...

제4회 아유카와 데쓰야 상을 수상한 곤도 후미에의 데뷔작입니다. 줄거리만 보아도 알 수 있듯, 정통 클로즈드 서클 미스터리물입니다.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구태의연하고 작위적인 설정이기는 하지만, 진부하고 뻔한 작품은 아니었습니다. 여성 작가다운 섬세한 심리 묘사에 더해, 화자가 사건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서술 트릭적인 장치가 녹아 있는 점이 독특했습니다. 또한, 명탐정이 등장하지 않는 것도 현실적이라 좋았습니다. 어중이떠중이들로 구성된 여행객들 사이에 명탐정이 한 명 있다는 설정 자체가 말이 안 되니까요.

클로즈드 서클 미스터리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트릭도 괜찮은 편입니다. 첫 번째 밀실 살인은 간단하지만 효과적인 트릭이었고, 두 번째와 세 번째 사건의 트릭도 논리적으로 타당했습니다. 또한, 이야기의 흐름과 잘 맞아떨어지는 현실성이 돋보였으며, 단서 제공도 매우 공정해서 좋았습니다.

하지만 일행이 섬에 갇히게 된 가장 큰 이유가 무쿠 씨의 독단적이고 즉흥적인 행동과 예상치 못한 날씨 때문이었다는 점, 이후 벌어진 살인 역시 우발적이고 운에 의존하는 측면이 많았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사건의 동기가 애매했습니다. 책을 다 읽고 난 후에도 "왜 죽인 걸까?" 하는 의문이 먼저 들 정도였습니다.

아울러 앞서 이야기한 트릭 역시 결국 정상적인 경찰 수사가 이루어졌다면 쉽게 밝혀질 수 있는 것들이었습니다. 만약 첫 번째 나나코 살인 사건 발생 후 일행이 당황하지 않고 곧바로 경찰을 불렀다면? 구부러진 열쇠라는 단서, 모두의 알리바이와 동기를 조합하면 범인은 금방 밝혀졌을 겁니다. 그렇다면 범인이 굳이 무인도까지 와서 사건을 벌인 의미가 없어지는 것이죠. 차라리 도시에서 사고로 위장하는 것이 훨씬 손쉬웠을 것입니다.

결국 이러한 이유들로 인해 클로즈드 서클 미스터리 특유의 작위성을 극복하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낡은 설정을 뛰어넘을 만한 특별한 요소를 찾기도 어려웠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리소설로서의 완성도는 괜찮은 편입니다. 다른 클로즈드 서클 미스터리물과 달리 트릭에 매몰되지 않고 이야기 전개를 이치에 맞게 풀어가는 솜씨는 데뷔작이라는 점을 잊게 만들 정도였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작가의 다음 작품도 기대해 보겠습니다.

2010/09/20

붉은 오른손 - 조엘 타운슬리 로저스 / 정태원 : 별점 3점

붉은 오른손 - 6점
조엘 타운슬리 로저스 지음, 정태원 옮김/해문출판사
- 이하 리뷰에는 스포일러 있습니다! -

국내 최고의 미스터리 커뮤니티 하우미에서 주도하는 독서클럽 "고등고등열매"에서, "허무에의 제물"에 이어 두 번째로 읽어야 할 작품으로 선정되어 읽게 되었습니다. 평도 좋았지만, 에드워드 D. 호크의 멋진 서문, "만일 당신이 지금 조엘 타운슬리 로저스의 '붉은 오른손'을 처음 접하는 것이라면 나는 지금부터 당신이 겪을 경험에 질투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라는 문장 때문에 기대가 무척 컸습니다.

그런데 실제 작품은 기대와는 많이 달랐습니다. 정통파 고전 퍼즐 미스터리라고 생각했는데, 반전 스릴러적인 성향이 더 강하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먼저, 스릴러적인 성향은 화자인 해리 리들의 수기 형식으로 진행되는 작품 구조에서 비롯됩니다. 해리 리들이 처한 위기 상황에 독자가 쉽게 감정이입하게 만들어 서스펜스와 스릴러적 분위기를 강화하는 데 한몫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나중에 밝혀지는 범인의 정체와 진상이 상당히 놀라와서, 작품을 반전 스릴러로 평가해도 무방하도록 해 줍니다. 메모 하나하나, 대화 하나하나가 모두 의미를 담고 있을 정도로 결말을 위한 복선도 촘촘하게 배치되어 있고요.

그러나 정통파 고전 퍼즐 미스터리로 보기에는 범행이 지나치게 우발적이며 우연에 의지하는 요소가 많다는 점이 단점으로 작용합니다.

우선, 마을에서의 폭주 장면 자체가 다소 무리한 설정이었습니다. 경찰이 존재하는 작은 마을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이 설득력이 떨어졌고, 이후 세인트에이메의 시체가 발견되었지만, 그 시체가 사실은 다른 사람(두 손가락 피트)이라는 것을 마을 사람들이 아무도 알아보지 못했다는 점도 비현실적이었습니다. 또한, '두 손가락 피트'의 눈 색깔이 우연히 검은색이었다는 설정도 개연성이 부족했고, 범인이 해리 리들 앞에서 우니스테어를 살해했는데 이를 전혀 눈치채지 못한 것도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었습니다. 시체가 한 구 더 필요했다는 것도 쉽게 납득되지 않았습니다.
해리 리들이 사실은 범인이 아닐까 하는 방향으로 독자를 유도하는 방식도 작위적입니다. 한두 번 정도 암시하는 수준이었다면 효과적이었겠지만, 반복되다 보니 오히려 반전의 긴장감이 떨어졌습니다.

전개와 묘사 전반에서 낡은 느낌이 드는 것도 감점 요소입니다. 시대적 한계를 감안해야겠지만, 오늘날 독자의 입장에서 보면 다소 구식으로 느껴지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분명 시작부터 마지막 반전과 진상까지 잘 짜인 작품이며, 적당한 긴장감과 스릴을 느끼기에는 충분합니다. 하지만 '퍼즐 미스터리'로 분류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여러 존경할 만한 작가들과 평론가, 애호가 선배들이 극찬을 아끼지 않은 작품이지만, 개인적으로는 그 정도의 작품인지 확신하기 어려웠습니다. 제 내공이 부족한 탓일 수도 있겠지만요.

그래도 해문 출판사와 정태원 씨가 고전 추리 소설을 발굴해 준 노력에는 진심으로 경의를 표합니다. 단, 최근 본 책들 중에서도 돋보일 정도로 디자인이 후진데 다음에는 책의 디자인도 신경을 좀 써 준다면 더욱 좋겠습니다. 제 별점은 3점입니다.

2010/09/18

차폰 잔폰 짬뽕 - 주영하 : 별점 2.5점

차폰 잔폰 짬뽕 - 6점
주영하 지음/사계절출판사

음식 문화와 일종의 역사 의식을 결합시켜 써 나간 독특한 컬럼을 모아놓은 책. 

제목만 보고 중국 - 일본 - 한국의 음식문화의 유사성과 사례를 설명하는 책으로 알았는데 생각과는 전혀 다르더군요. 
예를 들자면 짬뽕과 차폰, 잔폰의 관계를 설명하다가 결론은 한국 사회의 배타적인 정책을 지적하며 앞으로 보다 적극적인 다문화 정책을 펼쳐나가야 한다고 결론내리는 식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음식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기대했는데 다양한 문제 제기가 더욱 많아서 약간 실망스럽더군요.

그래도 다양한 음식 문화를 저자의 실제 체험과 연구를 바탕으로 하여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으며, 글 자체도 쉽게 읽히는 편이라 재미있게 읽기는 했습니다.
특히 일본 아마미 군도의 사탕수수 농법에 대한 역사와 현재를 다룬 이야기인 "음식의 식민지" 이야기는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사쓰마번의 재정을 충당하기 위해 가혹한 수탈을 당하다가, 결국 사탕수수 농장 자체는 황폐화되고 자급할 수 있는 능력이 없어져 버렸다는 결말인데, 많은 것을 느끼게 해 주었거든요.
그 외 고추가루를 사용하는 음식에 대한 이야기, 증류주의 역사와 종류에 대한 이야기도 기억에 남고요.

단순히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지 않고 앞으로의 식문화에 대해 고민하게 만든다는 점에서는 최근의 "맛의 달인"과 비슷한 시각의 책이라 생각됩니다. 기대와는 다른 점이 있어서 별점은 2.5점입니다만 음식에 대해 관심있으신 분들은 한번쯤 읽어보셔도 좋겠습니다.

2010/09/16

성녀의 구제 - 히가시노 게이고 / 김난주 : 별점 2.5점

성녀의 구제 - 6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재인
- 이하 리뷰에는 약간의 스포일러 있습니다! - 

마시바 요시타카가 자택에서 살해되었다. 사인은 아비산 중독. 가장 유력한 용의자인 그의 아내 아야네는 사망 시각 전후에 홋카이도에 있었다는 철벽의 알리바이가 있었다. 여자의 직감으로 아야네의 범행을 확신한 우쓰미는 유가와에게 해결을 요청한다...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의 최신작입니다. 작년 말에 출간되었는데 이제야 읽게 되었네요. 이 작품은 장편이긴 하지만, "용의자 X의 헌신"보다는 "탐정 갈릴레오""예지몽" 같은 단편집의 성격이 강합니다. 별다른 복잡한 전개나 구성 없이 '트릭' 하나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기 때문이죠. 특히나 초반부터 용의자는 아야네가 거의 유일하기 때문에 '범인이 누구인가?'를 밝히는 후더닛 물이 아니라, '어떻게 범행했나?'에 초점을 맞춘 와이더닛 물로, 이야기는 트릭에 집중될 수밖에 없습니다. 

"갈릴레오" 시리즈의 가장 큰 장점은 순수하게 '트릭'에 있기 때문에, 이러한 이야기 구조가 단점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단편 수준의 이야기를 억지로 장편화하면서, 단편으로서 지닐 수 있었던 장점은 퇴색하고 단점이 더욱 두드러진 것 같아 아쉽네요.

이 작품의 가장 큰 단점은 유가와도 지적한 '비현실적인 트릭'입니다. 단편이라면 충분히 성립하고 독자도 수긍할 만한 괜찮은 트릭이지만, 장편에서는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예를 들어, 1년 동안 같은 집에 사는 남편이 정수기 물을 마시지 않도록 감시하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요?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능해 보입니다. 집이 굉장히 넓다는 묘사가 나오고, 아내도 직장에 다니는 사람이니 남편이 혼자 있을 시간이 없었다는 설정은 지나치게 억지스럽습니다. 또한, 치밀한 트릭이 필요했을 당위성도 충분히 납득하기 어려웠습니다.

게다가 단편을 장편으로 억지로 늘린 듯한 전개도 단점입니다. 단편에서는 유가와가 곧바로 배제해버리는 가설들의 수사와 재현에 지나치게 많은 시간이 낭비되고 있고, 구사나기와 우쓰미의 수사도 계속된 탐문과 진술의 반복일 뿐, 이야기의 흐름에 실질적으로 기여하는 부분이 많지 않습니다. 또한, 사건의 핵심 중 하나인 마시바의 전 애인에 대한 이야기가 중반 이후에야 등장하는 것도 이야기의 흐름을 인위적으로 늘리기 위한 장치처럼 보였습니다.

아야네를 범인으로 특정하여 전개할 것이었다면, 차라리 도서 추리물의 형식을 취하는 것이 더 적절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고요.

물론 단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의 장점인 고전 미스터리 황금기의 미덕, 즉 천재라 불리는 물리학자 유가와와의 두뇌게임을 독자와 함께 즐길 수 있도록 한 점은 여전히 매력적입니다. 또한, 샴페인 잔과 주전자의 지문 등 디테일한 부분에서 보여주는 추리적인 요소도 탁월했습니다. 전작에서 볼 수 없었던 구사나기의 말랑말랑한 심리 묘사도 독특했고요.

그러나 아무래도 단편이 더 어울릴 것 같다는 느낌은 지울 수 없습니다. 장편이었던 "용의자 X의 헌신"도 트릭이나 동기 측면에서 비현실적인 요소가 있긴 했지만, 유가와의 라이벌이 등장해 펼쳐지는 불꽃 튀는 두뇌게임, 그리고 시리즈 팬들이 즐길 수 있는 유가와의 학창 시절 묘사 등이 어우러져 장편으로서 충분한 가치를 가졌습니다. 하지만 이번 작품은 장편으로 보기에는 다소 알맹이가 부족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네요. 별점은 2.5점입니다.

2010/09/15

크로스 게임 1~17 - 아다치 미츠루 : 별점 2점

크로스 게임 17 - 4점
아다치 미츠루 지음/대원씨아이(만화)

최근 완결된 아다치 미츠루의 신작입니다. 그런데 이 작품... 한마디로 매너리즘에 빠진 평균 이하의 작품이더군요. 전작의 인기 요소들만 조합해서 이야기를 억지로 이끌어나간 느낌이 강했습니다. 예를 들면,

  • '죽은 소꿉친구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갑자원에 간다' - "터치"
  • '주인공 소녀는 남자 못지않은 운동능력을 지녔지만 여자이기 때문에 메인 무대에 오르지 못하고 주인공의 조력자로만 남는다' - "카츠"
  • '학교의 음모?로 홀대받던 야구 동호인을 모아 팀을 만들고 갑자원까지 진출한다' - "H2"

등의 설정이 그대로 반복됩니다. 그 외의 등장인물 역시 전작들의 캐릭터와 거의 동일한 느낌입니다.

물론 이런 방식이 꼭 나쁜 것은 아닙니다. 전작의 인기 요소를 분석해 새로운 작품으로 승화시키는 것은 다른 작가들도 흔히 하는 일이니까요. 또한, 야구 경기 자체의 긴장감은 여전히 살아 있어 몰입할 만한 재미는 충분합니다. 마지막 대결이 상대팀의 초고교급 4번 타자라거나, 갑자원 결승이 아닌 지구 대회 결승에서 150km를 넘는 강속구 투수들이 맞붙는 등의 작위적인 묘사는 여전하지만, 이는 야구 만화의 한계일 수밖에 없기에 어느 정도는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단순한 야구 만화 이상의 재미, 즉 아다치 미츠루 특유의 개그나 인물 간의 미묘한 갈등, 여운이 남는 감성적인 묘사가 부족했습니다. 라이벌 캐릭터의 비중도 애매하고, 억지스러운 설정이 많은 점도 감점 요소였습니다.

이 작품을 처음 접한 독자들은 충분히 재미있게 볼 수 있겠지만, "터치" 시절부터 그의 작품을 즐겨온 팬이라면 진부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습니다. '야구 만화'로만 본다면 무난한 수준이지만, '아다치 미츠루 만화'로 평가하기에는 아쉬움이 큽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매너리즘에 빠진 원로 작가가 다시 부활할 수 있을지 지켜봐야겠지만, 유사한 사례의 다른 작가들을 생각해 보면 큰 기대는 하기 어렵네요.

2010/09/14

프라모코시로 (プラモ狂四郎) 1~11 : 별점 1.5점

초등학생 시절 다이나믹 코믹스를 통해 접했던 작품을 이제야 완독하게 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자신이 만든 프라모델의 데이터가 시뮬레이션 게임에 그대로 반영된다는 설정으로 유명합니다. 덕분에 프라모델 개조와 디테일 업 방법이 작례처럼 소개되어 있어 아동 모델러들에게 큰 매력을 주었습니다. 예를 들어, 지옹그에 돔의 다리를 달아 '퍼펙트 지옹그'를 만든다든가, 무장의 일부를 금속이나 다른 소재로 교체하는 방식 등이 등장합니다. 또한, 유명 프로모델러였던 오다(스트림베이스) 등이 직접 실명으로 등장하거나, 이후 실제로 프라모델화된 '퍼펙트 건담'이 처음 공개되는 등의 장치도 있어 당시 아동 모델러들에게 인기를 끌기에 충분했습니다. 더불어 ‘마개조’라는 단어도 이 작품에서 처음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예상 외로 건담 이외의 다양한 프라모델이 등장한다는 것도 흥미로왔습니다. 초반에는 『자붕글』과 『다그람』, 중반에는 『단바인』, 『고그』, 『엘가임』 등 선라이즈 계열 로봇들이 한 번 이상씩 모습을 비춥니다.

하지만 프라모델과 관련된 부분을 제외하면 전체적인 이야기는 솔직히 유치합니다. 80년대 근성 열혈 소년 만화의 전형적인 공식에 따라 진행되기 때문입니다. 라이벌이 계속 등장하고, 주인공이 끊임없이 업그레이드를 거듭하는 예상 가능한 전개가 반복됩니다. 그나마도 프라모델과 관련된 내용만 충실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불필요한 클리셰가 잔뜩 들어가 있다는 점도 문제입니다. 예를 들어, 프라모델을 만들기 위해 합숙이나 특훈이 필요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시뮬레이션 요소도 특정 개조 포인트나 스케일 차이, 디오라마 환경에만 집중할 뿐, 총기의 발포 원리나 각 모델별 차이와 같은 기본적인 부분은 설명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설정으로는 현실감을 주기 어렵지요.

무엇보다도 스토리가 진행될수록 무리한 설정이 많아져 점점 보는 것이 힘들어졌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아래의 ‘트리플제타’ 입니다. 이건 뭐 킹기도라도 아니고.... 이런게 거듭되다 보니 몰입감이 깨지고, 결국 짜증이 날 정도였습니다.

다시 보는게 힘들 정도로 시대착오적인 요소가 너무 많네요. 아동 취향의 분위기 역시 적응하기 어려웠고요. 추억은 추억으로 남겨두는 것이 가장 좋다는 말이 새삼 떠오릅니다. 제 별점은 1.5점입니다.

2010/09/13

쏘우 1 (Saw 1) - 제임스 왕 (2004) : 별점 2.5점


호러물은 취향이 아니라 보지 않았으나 추리 소설 좋아한다는 사람이라면 꼭 봐야한다는 이야기를 너무 많이 들어서 의무감으로 감상한 영화.

그런데 기대보다는 그다지 잘 짜여졌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습니다. 작품 전개의 핵심인 '게임' , 특히 메인 게임이 별로 정교하지 못했던 탓입니다. 살인마 직쏘만이 '게임'이라고 주장할 뿐, 단서 하나만 주어진 채 다음 단계,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일방적인 흐름에 불과하니까요. 직쏘의 다른 희생자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더 재미있어 보일 정도였어요. 
또한, 전직 경찰 탭의 존재 및 그의 활동에 대한 정보를 직쏘가 얻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때문에 직소의 계획은 전반에 걸쳐 운과 우연이 많이 좌우합니다. 이는 높은 점수를 주기 어려운 부분입니다.

특정한 사람들을 특정 공간에 집어넣고 누가 살아남는지를 본다는 설정도 유사한 다른 작품들보다 뛰어난 부분이 별로 없습니다. 차라리 '가두는 존재' 자체는 미상의 절대자로 하고, '게임'을 보다 강화하는 것이 더 좋은 선택이었을 겁니다. 예를 들자면 "극한추리 콜로세움""페르마의 밀실", "라이어 게임" 처럼요. 이러한 작품들은 '게임'에 관객이나 독자도 참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 흥미로우니까요. "큐브"도 게임은 아니지만, 나름 빠져나가는 합당한 공식은 있었죠. 
물론 이 경우 '게임'의 완성도에 따라 작품의 수준은 크게 차이날 수 밖에 없고 자칫 게임에 매몰되어 이야기가 부실해질 수 있다는 약점은 있습니다만....

그러나 제가 이 작품의 기본 설정과 반전을 미리 알고 있었다는 것이 재미를 가장 크게 깎아먹었기에 이러한 비판은 정당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전혀 모르고 보았다면 무릎을 치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반전의 아이디어는 대단했습니다. 한정된 예산을 가지고 이만큼의 긴장감을 뽑아내었다는 점도 칭찬받아 마땅합니다. 6년이나 지난 지금에서야 감상한 것이 안타깝네요. 별점은 2.5점입니다.

2010.9.7 ~ 9.12 한주간 두산베어스 단상

좋았던 점 :
1. 홍상삼 - 임태훈 선수의 부활
2. 김성배 선수 호투
3. 백업요원을 중심으로 한 타선 회복세

나빴던 점 :
1. 김선우 선수 최악의 부진
2. 왈론드 선수 부진
3. 롯데에게 약한 모습 재현

기타 감상 :
준플레이오프 준비모드의 한주간이었습니다.
다양한 선수들을 실험해가며 4경기를 치뤘으며 주간 성적은 2승 2패. 김성배 선수가 깜짝 선발 호투를 펼친 SK전과 홍상삼 선수가 무실점 호투한 일요일 롯데전에서의 승리는 좋았습니다만 왈론드 - 김선우 선수가 부진하며 두 경기를 내줬죠.

일단 투수진부터 평가하자면, 홍상삼 선수가 140Km이상의 직구를 낮게 제구하는 모습은 인상적이었고 임태훈 선수 역시 최고의 컨디션으로 3연속 삼진을 잡는 등 젊은 선수들이 준플레이오프를 앞두고 좋은 모습을 보여준 것이 아주 반가왔습니다. 하지만 왈론드 - 김선우 선수의 부진과 이재학 - 유희관 선수의 투구는 물음표를 남겼습니다. 고창성 선수도 썩 좋지는 않더군요.

그래도 타선은 확실한 회복세를 보여서 다행이었어요. 돌아온 타신 임재철 선수를 축으로 정수빈 - 오재원 선수 등 1.5군급 선수들의 활약이 눈에 띄는데 이러한 백업요원의 뎁스가 두산 야수진의 가장 큰 경쟁력이겠죠. 유재웅 선수의 홈런도 좋았습니다.

이번 주 히어로로 투수는 롯데 킬러로서의 모습을 되찾은 홍상삼 선수를, 타자로는 묵묵히 자기 역할을 수행하는 타신 임재철 선수를 꼽겠습니다.

이번 주 예상 :
이번 주는 기아 - 넥센과의 각 2연전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컨디션 조절 차원에서라도 히메네스 - 왈론드 - 김선우 - 홍상삼 선수가 등판하지 않을까 싶은데 김성배 선수같은 깜짝 선발 투입도 가능할 것 같네요.
어차피 승-패가 큰 의미가 없는 잔여경기 일정을 소화하고 있으므로 지더라도 의미를 둘 수 있는 다양한 실험이 계속되었으면 합니다.

이제는 확실한 가을잔치 모드! 착실히 준플레이오프 이후를 대비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올인V4 허슬~두!

덧 :
안쌤 안경현 선수가 은퇴한다고 합니다. 헤어질 때 모양새는 안 좋았지만 전체 프로야구 대승적인 차원에서라도 두산에서 은퇴경기를 치뤄주는 것이 어떨까 싶습니다. SK구단과 잘 협의해야 하고 안쌤 본인의 의견도 중요하겠지만 두산 유니폼을 입은 안쌤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보고 싶네요.

2010/09/10

얼굴에 흩날리는 비 - 기리노 나쓰오 / 권일영 : 별점 4점

얼굴에 흩날리는 비 - 8점 기리노 나쓰오 지음, 권일영 옮김/비채

얼굴에 흩날리는 비 - 기리노 나쓰오

무라노 미로는 어느날 낯선 남자들의 습격과도 같은 방문을 받는다. 그들은 미로의 친구인 르포라이터 작가 우사가와 요코의 행방을 쫓는 조직의 하청업자이자 요코의 애인 나루세와 조직원 기미지마였다. 요코는 1억엔이라는 조직의 거금을 가지고 사라진 상태였다. 미로는 요코의 마지막 전화상대였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일주일안에 그녀의 행방을 찾아 돈을 가지고 와야 한다는 협박을 받았다. 
어쩔 수 없이 나루세와 같이 요오꼬의 행방을 추적하기 시작한 미로는 요코의 사무실과 집, 자주 찾던 점술가까지 조사해 나갔고, 그러던 중에 자신을 협박하고 감시하기 위해 동행하는 나루세에게 호감을 느껴 그에게 자신의 상처받은 과거의 치유를 원하게 되었다.
결국 미로는 요코의 마지막 작품을 통해 사건의 진상과 이 사건의 연관성을 눈치채게 되며 최후의 순간에 진범을 알아내는데....

6년전에 읽었던 작품입니다. 제 39회 에도가와 란포상 최우수 수상작이기도 한 작품이죠. 당시에는 절판된 책을 어렵게 구해서 읽었는데 새로운 번역의 완역본으로 다시 출간되어 미스터리 애호가로서 굉장히 기뻤습니다. 푸대접받던 친구가 금의환향한 느낌이거든요.

남-녀 커플의 시한부 설정 하드보일드 스릴러로 6년전에 읽었을 때도 언급했었지만, 상당히 흔한 설정이기는 합니다. 헐리우드 영화에는 널리고 널린 소재죠. (헐리우드 작품으로는 영화 D.O.A를 강추합니다)
그러나 이 작품은 보통 남자쪽에 포커스가 맞춰지는 다른 작품들과는 다르게, 나루세보다는 무라노 미로가 주인공이라 보다 여성적인 시각으로 전개되며, 이러한 시각을 작가 특유의 섬세한 묘사로 돋보이게 만든다는 점, 아울러 말랑말랑한 러브라인없는 하드보일드다운 묵직하고 건조한 전개로 다른 작품들과 차이를 보입니다.
하드보일드 추리물 자체로도 높은 수준이라는 것 역시 매력적인 부분이에요. 탐정의 딸이기는 하나, 평범한 백수에 불과한 미로의 수사와 추리 과정은 현실적이라 설득력이 높고, 곳곳에 장치된 복선과 단서들을 통해서 복잡한 사건의 구조를 잘 풀어나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의 반전으로 이끄는 과정도 데뷰작으로 보기 힘들 정도의 완성도를 보여주고요. 이러한 단서들이 무라노 미로의 섬세한 시각으로 포착할 수 있는 것들 - 장신구나 의상, 욕실에서의 흔적 등 - 이라는 것도 작품의 분위기와 잘 맞아 떨어집니다.

마지막으로 제대로 된 완역이라는 점도 높이 평가하고 싶습니다. 6년전 작품과는 완전 다른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훨씬 길기도 하지만 추리 소설 역사를 통틀어도 가장 멋진 제목에 어울리는, 깊이 있는 묘사를 즐길 수 있을뿐 아니라 6년전에 읽었을 때 조금 어색했던 미로에 대한 설정과 오버스러웠던 독일 신나치 그룹이 얽힌 사건 역시 완역본으로 읽으니 비어있던 퍼즐이 채워지듯 딱 들어맞는 느낌이었습니다. 가장 아쉬웠던 마지막 단 한번의 목격으로 진범을 알아낸다는 억지스러웠던 전개 역시, 완역본에서는 충분히 설명됩니다.

물론 범인이 어차피 해외 도피를 꿈꾸고 있었는데 구태여 살인을 저지를 필요가 있었는지?라는 의문과 1억엔이라는 돈이 여러가지 일을 벌이기에 매력적인 금액이 아니라는 약점은 있습니다. 그래도 데뷰작 답지 않은 완성도의 작품으로 기리노 나쓰오 작품 중에서도 자신있게 추천할만한, 대중성과 문학성을 모두 갖춘 수작임에는 분명합니다. 
주인공 이름이 6년전에는 무라노 미오였는데 무라노 미로로 바뀐 점, 사라진 돈이 6년전의 4,500만엔에서 1억엔으로 인상되어 있는 등의 세세한 수정사항을 더듬어보는 것도 절판본을 읽어본 독자만의 보너스겠죠. 별점은 4점입니다.

정식 완역본이 너무 늦게 소개된 것이 아쉽기만 한데, 굉장히 독특하고 매력적이었던 무라노 미로를 주인공으로 한 시리즈물의 다른 작품들도 이제부터라도 정식으로 소개가 되기를 바랍니다.

2010/09/09

데스 노트 1~12 - 오바 츠쿠미 / 오바타 다케시 : 별점 3.5점

데스 노트 Death Note 12 - 6점
오바 츠구미 지음, 오바타 다케시 그림/대원씨아이(만화)

'이름을 쓰면 죽는 노트'라는 참신한 설정, 그리고 키라 야가미 라이토와 세계 최고의 탐정 L의 불꽃튀는 두뇌 싸움으로 일세를 풍미한 작품이죠. L의 죽음 이후 만화는 보지 않았던 차에 최근 이런저런 만화를 뒤적이다가 끝까지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L의 죽음 이후 보지 않은게 탁월한 선택이더군요. 마지막 최종보스 N과의 두뇌 싸움은 별볼일 없었고, 재미와 긴장감 모두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마지막 창고에서의 한판 승부에서 아무런 반전의 카드없이 최종 결전에 임한 라이토의 태도는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진짜 노트 한 두 장 정도만 숨겨놓았더라도 완벽했을 것을 왜 구태여 노트의 진위 여부에만 목숨을 걸었는지 당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전에 사신까지 없애버렸던 라이토의 치밀함은 대관절 어디에 갔단 말입니까?! L과의 승부에서는 '시계 속 장치'같은 참신한 최후의 수단이 있었는데, 그러한 변수 하나 없던 마지막 승부는 시시하고 재미가 없었습니다.
또한 L의 캐릭터 속성을 유지하면서도 더욱 비정상적이고 기이한, 거의 에스퍼로 그려진 N도 호감이 가지 않는 등 모든 면에서 단점이 더욱 두드러져서 아쉬웠어요.

결말도 썩 개운치 않네요. 패배한 뒤 땅바닥에서 뒹굴며 루크에게 사정하는 라이토의 모습은 작가의 의도였다 하더라도 작품을 지켜본, 그리고 라이토에게 호감을 가졌던 팬으로서는 아주 실망스러웠거든요. 이보다는 L의 최후의 승부수와 함께 패배하던 영화 쪽 결말이 더 낫네요.

그래도 '데스노트, '사신' 등' 일견 유치해보일 수 있는 아이디어에서 여러가지 제한 조건과 다양한 변수를 통해 진지하고 그럴듯한 두뇌 싸움 스릴러를 만들어 낸 스토리, 그리고 일정 경지에 이른 작화는 높이 평가할 만 합니다. 조금 더 압축해서 L과의 승부로 끝냈더라면 더욱 좋았을텐데 말이죠. 별점은 L과의 승부까지는 5점, 그 이후는 2.5점으로 전체 평균 3.5점입니다.

2010/09/08

이현세 폴리스 6부 : 형사수첩 - 이현세 : 별점 2.5점

오혜성은 유능한 경찰이나 서울에서의 사고로 당분간 휴식을 명령받는다. 마침 그에게 고향에서 일어난 사고를 다룬 신문기사를 보낸 인물이 있었던 차 오혜성은 고향 원주를 방문하고 자신에게 보내진 사고들이 연쇄 살인 사건임을 깨닫는다.

이현세의 "폴리스" 시리즈 6부입니다. 오래전에 구입은 했지만 TV드라화가 되었었던 1부 이후로는 별 관심없어 버려두었던 차에, 형이 6부는 제대로 된 사회파 냄새가 물씬 난다고 해서 읽게 되었습니다.

과연, 생각보다는 괜찮은 사회파 수사물이더군요. '원주 지역 유지들의 연쇄 살인사건 - 살인 사건의 동기인 유언장 파악 - 유언장을 통한 유력한 용의자 체포 - 살인범 체포 / 살인범 자살 - 유력한 용의자가 사건의 동기가 된 과거의 사건 증언 - 모든 진상 파악 후 주범 체포'로 진행되는 이야기가 '경찰 수사'의 틀 안에서 제대로 진행되기 때문입니다. 원주와 서울 간의 공조 수사라던가 여러가지 법의학적인 설명이 곁들여지는 등, 실제 경찰 수사를 보는 듯한 디테일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야기 전개는 썩 매끄럽지는 않습니다. 결정적 단서를 잡아내는 방법이 '불법가택침입'이라는 것도 약점이고요. 무엇보다도 몇 건의 살인 사건은 범인의 계획에 불필요했다는 점에서, 그리고 범인의 실수가 눈에 많이 띈다는 점에서 완벽한 추리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예를 들자면, 범인이 정체를 숨기는데 성조차 바꾸지 않는다던가, 그냥 복수를 하면 되는데 괜히 복잡하게 사건을 만든다는 것 등이 그러합니다.
또한 범인의 계획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유언장' 인데, 어떻게 만들었는지도 제대로 설명되지 않을 뿐 아니라 실제 국내 현실에서는 '유언장'이 이렇게 강력하게 쓰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뭔가 외국의 다른 컨텐츠를 많이 참고한게 아닌가 하는 의심도 생깁니다.

그래도 이 정도라면 '폴리스'라는 이름이 붙을 수 있을 정도의 사회파 수사물이라 생각되네요. 폴리스 시리즈에서 보기드문 해피엔딩도 좋았고요. "블루엔젤"시리즈 보다는 떨어지긴 하지만 90년대 이현세 공장 시절에 양산된 시리즈 작품치고는 볼만한 수준이었습니다. 앞서 말한 단점을 고치고 좀 더 깔끔한 전개를 했더라면 더욱 좋았겠지만.... 별점은 2.5점입니다.

2010/09/07

연기로 그린 초상 - 빌 벨린저 / 최내현 : 별점 2.5점

연기로 그린 초상 - 6점
빌 밸린저 지음, 최내현 옮김/북스피어

대니 에이프릴은 할아버지의 유산으로 작은 채권대행 수금업체를 인수했다. 업체의 고객카드를 정리하던 중 자신이 젊었을때 스쳐 지나갔던, 그리고 자신의 마음속에 깊이 남은 한 여인의 사진과 관련 기사를 발견했다. 대니는 사진과 기사만을 토대로 그녀를 찾아내기 위해 혼자만의 수사에 착수하는데...

빌 밸린저(빌 S 밸린저)의 장편입니다. 이전에 작가의 "사라진 시간", "이와 손톱"을 읽고 리뷰를 올렸었습니다. 이 작품으로 국내 출간된 작가의 작품은 완독하게 되었네요.

작품은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크래시 알모니스키가 미모와 두뇌를 이용하여 주변의 남자들을 도약대로 삼아 성공해 나간다는, 전형적인 헐리우드 팜므파탈물입니다.
너무 뻔해서 솔직히 실망이 컸습니다. 별다른 복선이나 반전이 하나 없어서 결말까지 쉽게 예측 가능합니다. 
그리고 크래시의 계획은 그다지 치밀하다고 할 수 없는데도 쉽게 남자 사냥에 성공한다던가, 피해자들이 피해를 본 이후에 단순한 피해자로 전락한다는건 범죄 스릴러로서의 가치도 없어보입니다. 수긍하기도 어려워요. 주인공 대니 에이프릴은 대단한 능력없이도 시간과 노력으로 결국 그녀를 찾아내니까요. 이런 식으로 피해자 남자들이 멍청한 바보라는게 팜프파탈물의 핵심이기는 하지만, 이 작품은 정도가 너무 심했어요. 

그래도 빌 밸린저 특유의, 주인공과 시간대가 다른 이야기가 서로 교차하다가 '현재'에서 만난 뒤 극적 결말에 이르는 독특한 전개는 좋았습니다. 주인공 대니 에이프릴이 약간의 단서만 가지고 크래시 - 캐서린 - 캐런 - 캔디스 을 추적해 나가는 수사 과정의 디테일은 합리적이면서도 충분한 재미를 선사해 주고요. 마지막 사건에서 의도하지 않은 완전 범죄가 성립되는 것도 마음에 들었던 점입니다.

하지만 확실히 지금 읽기에는 단점이 더욱 도드라지기에 좋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네요. 1950년 작품으로, 이런 류의 팜므파탈물 원조 중 하나일 수는 있습니다만... 하여튼, 별점은 2.5점입니다. 작가의 국내 소개된 작품 중에서는 가장 별로였습니다.

플루토 1~8 - 데즈카 오사무 / 우라사와 나오키 : 별점 3점

플루토 Pluto 8 - 6점 테츠카 오사무 지음, 우라사와 나오키 그림/서울문화사(만화)
데즈카 오사무의 "지상 최강의 로보트"가 원작인, 우라사와 나오키의 SF 추리 스릴러입니다. 완결된지는 꽤 되었는데 마지막권 구입이 늦어 이제서야 완독하게 되었네요. 워낙에 제가 원작의 팬이기도 해서 관심이 가던 기획이었습니다.

발상의 전환이랄까요? 아톰을 주인공으로 하는 대신 세계 제일의 로봇 수사관 게지히트를 주인공으로 한 사회파 수사물 분위기는 정말 마음에 들었습니다. 수사의 과정도 합리적이며, 게지히트 본인에게 있었던 과거의 아픈 경험이 현재의 사건들과 겹쳐지며 벌어지는, ’한없이 인간에 가까운 로봇의 고뇌’도 잘 표현되어 있기 때문이죠. 마지막 흑막의 정체가 밝혀지는 반전 역시 원작팬도 납득할만 한, 최고의 반전이었습니다.

그러나 원작 "지상 최강의 로보트"의 핵심인 플루토와 최강 로보트들 간의 격투, 그리고 아톰이 주인공인 후반부는 별로였습니다. 로봇들 간의 격투는 원작에 비해 너무 심심했기 때문입니다. 리얼한 SF스릴러라는 작품 성격상 어쩔 수 없었겠지만, 그래도 지금보다는 화끈함을 선사해주었더라면 좋았을텐데 말이지요.
그리고 후반부에 밝혀지는 음모의 이유도 납득하기 어려웠습니다. ‘보라’가 거의 인류를 멸망시킬 수 있는데 구태여 플루토에게 먼저 복수를 시킨 이유, 갑작스러운 플루토의 변심(?) 등이 별로 설득력있게 표현되어 있지 않은 탓입니다. 
단순하게 만들 수 있는 이야기를 불필요하고 복잡하게 꼬아놓고, 애매하게 넘어가는 부분들도 거슬렸으며 '이라크전'을 풍자하는 듯한 설정은 너무 노골적이라 작품에 잘 녹아들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그래도 게지히트가 주인공인 부분만큼은 최고의 SF 하드보일드 스릴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이 작품을 '추리물'로 분류하는 이유이기도 하죠. 
또한 작중에 등장하는 '거액을 받고 불가능한 수술을 실현하는 일본인 무허가 천재 외과의사'를 비롯해서 텐마박사, 오챠노미즈박사, 반 슌사쿠 등 많은 데즈카 오사무 캐릭터를 만나는 즐거움도 큽니다. 한없이 인간에 가까운 로보트의 감정이라는 어려운 테마를 자기만의 방식으로 표현한 것도 좋았고요. 별점은 3점입니다.

2010/09/06

2010.8.31 ~ 9.5 한 주간 두산베어스 단상

좋았던 점 :
1. 없음

나빴던 점 :
1. 외국인 투수 부진
2. 임태훈 선수 중간계투 투입
3. 중간계투 필승조의 지속적인 투입
4. SK에게 약한 모습 재현

기타 감상 :
화요일 하루를 쉬고 5연전이 예정되었으나 비로 한경기가 취소되어 4경기만 치룬 한주였습니다. 3위가 확정된 상황이라 아무런 긴장감도 느끼지 못하고 그냥 무덤덤하게 경기를 관전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좋았던 점을 느끼기 어려웠던 한주였어요.

일단 SK와의 시합은 너무나 무기력하게 두경기를 모두 내 주었습니다. 그간 잘 공략했던 카도쿠라 선수에게 꽁꽁 묶였고 왠지 SK에게는 강하다는 이미지의 왈론드 선수 역시 난타당하며 패했네요.
그래도 기아전에서 간만에 보여준 타선 응집력과 백만년만에 본 것 같은 끝내기 홈런 등으로 연승을 하기는 했지만 전체적으로는 별로 좋은 경기내용은 아니었죠.

그리고 임태훈 선수가 포스트시즌을 대비하여 다시 중간계투로 돌아와 투입되는 것은 별로 반기고 싶지는 않네요. 아시안게임도 노리고 있기 때문이라면 모르지만 그래도 최근 선발에 적응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다시 중간계투로 돌아가는게 적절한 선택인지는 의문이거든요. 지금 현재 상황만 놓고 보면 왈론드 선수보다는 임태훈 선수 쪽이 3선발에 더 어울려 보이기도 하고요. 현장의 판단이 더 정확하겠지만 임태훈 선수가 좀 안돼기도 했습니다. 임태훈 선수도 동기부여가 제대로 되지 않고 적응도 아직 부족한 듯 또 홈런으로 실점을 허용하기도 했고요.
아울러 중요하지 않은 경기에서의 필승조가 지속적으로 투입되고 있는데 컨디션 조절 차원인지는 모르겠지만 좀 아껴주었으면 합니다.

마지막으로 김동주 선수의 부진이 너무 오래가서 걱정이네요. 가끔 안타를 쳐 주기는 하나 기대했던 모습이 전혀 아니에요. 빠른 컨디션 회복이 이루어졌으면 하며 포스트시즌 대비용으로 가끔은 이두환 선수같은 젊은 선수를 지명타자로 기용해 보는게 어떨까 싶기도 합니다.

이번 주 히어로로 투수는 지난주 유일한 선발승으로 13승째를 거둔 김선우 선수를, 타자로는 회복세가 뚜렷한 김현수 선수를 꼽겠습니다.

이번 주 예상 :
4경기가 있는데 화-수에 SK와 넥센을, 토-일에 롯데를 만납니다. 화-수 경기는 신인 선수와 그동안 출전하지 못했던 선수들 중심으로 테스트 차원에서 진행한 뒤 주말 롯데와의 2연전은 포스트시즌 대비를 위해서라도 총력으로 맞서는 것이 좋겠죠. 그동안 롯데에게 너무 약했기에 반전의 계기도 삼아야 할 테고 말이죠.

그래서 토-일 경기는 히메네스 - 김선우 원투펀치의 출격이 예상되는데 과연 어떤 경기가 될지 벌써부터 기대가 되네요. 화-수 경기도 신인 선수들을 보는 재미를 마음껏 느끼고 싶기에 이번주는 지난주에 비하면 훨씬 흥미롭게 관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제는 확실한 가을잔치 모드! 착실히 준플레이오프 이후를 대비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올인V4 허슬~두!

2010/09/05

요리의 길을 묻다, 로산진 - 박영봉 / 신한균 : 별점 3점

요리의 길을 묻다, 로산진 - 6점
박영봉 지음, 신한균 감수/진명출판사

"맛의 달인"의 우미하라(가이바라)의 모델로 유명한, 일본 미식과 도예의 거장 로산진을 다룬 일종의 평전입니다. 전반부에는 현대의 일본 요리를 거의 정립하다시피한 요리인으로서의 료산진과 그의 요리에 대한 생각이, 후반부는 평전 형태로 출생에서부터 사망까지의 일대기를 담고 있습니다.

읽어보니 "맛의 달인"의 우미하라는 로산진 그 자체라는걸 잘 알 수 있었습니다. 유아독존같은 성격부터 시작해서, 요리사들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절대미각, '요리'와 '예술'에 대한 마음가짐 등이 모두 이 책에 나오는 로산진과 똑같더라고요. 게다가 우미하라의 '미식 클럽' 역시 로산진이 최초로 연 요리요정 '미식 구락부'에서 이름을 따온 것이고, 실제 구성은 전설의 요리 요정 '호시가오카샤료'를 따 왔다는 것도 처음 알았네요.
그 외에도 세세한 에피소드들 - 예를 들자면 프랑스 오리고기 집에서 소스없이 고기만 달라고 하고 개인 양념을 쳐서 먹는다는 등 - 역시 "맛의 달인"에서 언급했던 기억이 납니다. 한마디로 "맛의 달인"은 '로산진' 없이는 성립할 수 없는 작품인 셈입니다.

때문에 "맛의 달인"을 좋아하신다면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책임에는 분명합니다. 예술인으로서의 로산진의 모습도 풍부하게 담겨있어서 요리 외의 즐길거리도 많고요. 로산진이 조선의 자기를 좋아해서 조선에 방문했다던가(1928), 찰리 채플린을 만났다는 등(1932)이 그러합니다 로산진 특유의 도기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자료적 가치도 높고요. 책의 성격에 걸맞게 도판도 굉장히 충실합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2010/09/04

무한도전 WM7 무척 불편하고 불쾌했다

"무한도전"의 애청자이고 과거 WWE도 열심히 챙겨보았던 프로레슬링 애호가이기도 해서 관심이 가던 기획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전 방영되었던 훈련과정에서 보여지는 어설픔, 안전불감증은 계속 눈에 거슬리던 차에 오늘 경기에서의 모습은 정말 불편하고 불쾌했어요.

갈비뼈에 금이 갔다는 손스타씨나 허리 통증이 있는 정준하씨는 그래도 병원에서 진단을 받고 어느정도 처치도 받았다고 하지요. 그러나 정형돈씨는 정상이 아닌듯 계속 토하고 있는데 의료진이 돌보는 모습 없이 경기를 강행시키는건 정말 아니지 않나요? 정형돈씨의 의지가 아무리 강했더라도 마지막 경기는 취소하고 병원으로 보냈어야 합니다. 현장에 의료진이 있었다면 더더욱 말이죠.
이후 싸이의 연예인 노래 가사에 맞춘 교차 편집으로 감동을 자아내려는 시도는 정말 역겨웠어요. 이 장면에서 '감동적이었다'라는 시청자들도 많긴 합니다. 그러나 정형돈씨 아내나 친지, 친구가 봐도 이 방송이 감동적이었을까요? 아마 내 가족이 그러고 있으면 분명 말렸을거에요.

물론 시합은 모두 정상적으로 끝났으며 정형돈씨도 별다른 이야기는 없는 것 같아서 다행이긴 합니다. 그러나 단지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만약 의료진이 정말로 없었다던가, 있었다 하더라도 정형돈씨에 대한 체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채, 아니면 치료와 더불어 레슬링 불가 진단이 있었음에도 시합이 강행된 것이라면 김태호 PD는 PD로서 역할을 수행하지 못한겁니다. 왠만한 징계는 시원치 않을 정도의 위험한, 제가 보기에는 '살인미수'에 가까운 행위였어요.
그 외에도 세계 최고, 최대의 프로레슬링 단체 WWE에서도 시합 중 사고로 큰 부상을 당하는 경우는 비일비재한데 별다른 안전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것, WWE에서조차 위험하다고 금지되었었던 기술을 태연히 쓰는 장면 모두 제작진의 도덕성을 의심하게 만들었습니다.

뭐 애시당초 기획 자체가 무리였죠. 1년을 수련했다고는 하지만 시간으로 따지면 1주일에 4시간정도 할애했다고 해도 200여시간, 그들이 주장하는 "평균 이하"의 예능인들이 위험한 프로레슬링을 수련하기에 턱도없이 부족한 시간입니다. 사실 이들이 완벽한 프로레슬링을 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예능과 프로레슬링의 적절한 조화를 지향했어도 충분했어요.
그나마도 전문가에게서 제대로 된 체계적인 훈련을 받은 것도 아니죠. 손스타씨가 열심히 하긴 했지만, 전문성 측면에서는 UFC 진출한다고 하면서 연예계 최강 주먹이라는 김창렬한테 교습받는거하고 뭐가 다릅니까? 결국 기본기는 없이 매니아가 좋아하는 화려하지만 위험한 기술만 가득찬 살인 행위가 되어 버렸습니다.

하여간 이래저래 찜찜하고 불편하고 불쾌한 예능이었습니다. "무한도전"은 평균 이하 예능인들의 "도전"을 주제로 삼고 있는 예능 프로그램입니다. "도전"은 "도전" 그 자체로 멋지고 훌륭하지 꼭 어떤 결과를 빚어내야 하는건 아닙니다. 두 경기나마 멋지게 진행했다면 관객과 시청자 모두 납득할 수 있었던, 충분히 성공한 도전이었다 생각되기에 마지막 경기는 정말 이해가 되지 않네요.

모쪼록 애청자로서 앞으로도 마음편하게 시청할 수 있도록 안전관련 대책과 정형돈씨 출전 관련해서는 김태호 PD의 납득할만한 해명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아니 있어야 합니다.

2010/09/03

백야행 1~3 - 히가시노 게이고 / 정태원 : 별점 3점

백야행 3 - 6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정태원 옮김/태동출판사

이 작품은 국내에도 잘 알려진 유명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대표작 중 한편입니다. TV드라마 영화에 이어 소설도 드디어 완독했습니다. 역주행 한 셈이네요.

그런데 드라마와 너무나 다르고, 오히려 망작이라 생각했던 영화가 차라리 더 비슷하다는데 놀랐습니다. 유키호 - 료지의 관계가 마지막까지 전혀 드러나지 않고, 러브라인도 특별하게 그려지지 않는 점, 료지는 노예와 다름없는 냉혹한 살인자 이미지이고 유키호도 팜므파탈이자 악녀 이미지가 강하다는 점, 료지 1인칭에 가까웠던 드라마에 비해 시종일관 제 3자의 객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건조한 묘사 모두가요. 공소시효가 부각되지 않는 설정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인지 솔직히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습니다. 범죄 스릴러와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를 잘 결합했던 드라마와 비교한다면 소설은 단순한 '범죄 스릴러'에 불과했으니까요. 히가시노 게이고라는 작가가 원래 작품 안에 러브라인의 구축과 묘사에 상당히 공을 들인다고 알고 있었는데 사실 좀 의외이기도 했습니다. 작가의 이러한 말랑말랑함을 이전에는 싫어했지만 이 작품에서는 외려 너무 걷어낸 느낌도 드네요. 마지막에 좀 임팩트있게 감정을 한번 터트릴 것 같았는데 말이죠.

물론 '범죄 스릴러'라는 장르소설로 놓고 본다면 나쁜 작품은 아닙니다. 좋은 작품이죠. 신용카드 사기나 송금사기, 게임 위조 등의 전문적인 분야가 섬세한 디테일로 펼쳐지기 때문에 각각의 에피소드만 가지고도 하나의 괜찮은 범죄소설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될 정도거든요. 드라마에서도 등장한 나미에의 송금사기 사건같은 경우는 그 자체로도 완성도가 높으니까요. 단 이러한 사기나 범죄가 이야기의 중심과 상관없는 겉도는 이야기였다는 것은 문제이긴 합니다만...
또한 80년대 일본 분위기를 가득 담고있다는 것도 저같은 80년대 키드에게는 매력적인 부분이더라고요. PC초창기의 모습이라던가 '인베이더', '마리오'의 붐 같은 것들은 묘한 향수를 자아냈습니다.

결론내리자면 TV 드라마에 비하면 아쉬운 점이 많아 별점은 3점입니다. 흡사 <쇼생크 탈출> 영화를 본 뒤 원작인 스티븐 킹의 <사계>를 읽고 든 느낌이에요. 반쯤은 속은 것 같은 느낌이랄까요? 드라마와 영화를 보면서 궁금했던 점을 전부 파악할 수 있던 것은 좋았지만 드라마나 영화를 먼저 감상했다면 원작은 구태여 찾아 읽을 필요는 없을 것 같네요.

2010/09/02

아이리버 스토리 2G 사용기 (2) - 단점 분석 및 총평

사용기 (1)

아이리버 스토리를 잠깐 사용하다가 말았는데 다시 장기임대(?)의 기회가 생겨서 요새 써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전에 사용했을 때 보다도 더욱 더 단점만 눈에 걸리네요. 그 와중에 한 블로거 님이 남긴 소개글에 댓글을 달았다가 댓글이 삭제된 것을 알았습니다. 너무 간단하게, 무성의하게 적어서 삭제된 것 같기에 죄송스러운 마음에 보다 자세하게 단점을 소개하고자 글을 남깁니다.

1. 어두운 화면 :
E-Ink의 한계겠지만 조금만 어두워도 화면을 읽기가 힘들 정도입니다. 사용기(1) 참고하세요.

2. 직사광선 아래에서 화면전환 어려움 :
이건 정말 황당했는데 '밝은 곳'에서만 볼 수 있는 디스플레이임에도 불구하고 강한 직사광선 아래에서는 화면 전환 시 디스플레이가 제대로 되지 않는 문제점을 보입니다. 밖에 있을 때 햇빛이 강하면 기계를 뒤집어서 다음 페이지로 이동하고 다시 뒤집어서 봐야 할 정도로 말이죠. 황당하죠?
* 유사 사례 링크

3. PDF 문서의 가독성 문제 :
사실 이북 관련한 디바이스를 가지게 된 뒤 가장 먼저 한 것이 자주 읽지는 않지만 자료로 두고 싶은 책들을 개인적으로 스캔하여 보관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일부 파일의 경우 스캔 문서의 폰트 표현이 너무나 뒤떨어집니다. 네이버에서 유료로 구입한 논문 자료들 역시 폰트의 오글거림이 심했고요. 눈이 더 나빠질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어요.

PC나 다른 디바이스에서는 깔끔하게 읽히는 것으로 보아 이건 근본적으로 E-Ink라는 솔루션의 한계겠죠.

4. 만화 뷰어로서의 가치 떨어짐 :
앞서 이야기한대로 개인 자료를 스캔하여 사용하는데 만화 역시 마찬가지로 작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만화의 경우도 가독성이 떨어지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은 앞서 말한 화면의 명도 자체가 어둡다는 E-Ink 고유의 특성 때문이죠. 그래도 직접 스캔한 책의 경우는 그나마 낫습니다. 불법 스캔되어 돌아다니는 책들은 스캔 품질이 워낙 좋지 않아서 더더욱 가독성에 문제가 발생합니다.

게다가 화면에 자동으로 꽉 맞춰서 표현해 줄 뿐 확대하거나 가로로 돌리는 기능이 없어서 작은 글씨의 경우 제대로 읽기도 힘들어요. 만화의 경우는 이미지라서 로딩이 더욱 오래 걸리는 것도 짜증났고요.

5. 조작의 불편함 :
느린 로딩과 검색의 어려움 등으로 실제 책을 읽듯이 조작하기가 어렵습니다. 또한 필수적인 북마크 등록 버튼조차 핫키로 구현되어 있지 않은 것도 황당한데 스토리의 경우 하단 키보드가 정말로 불필요하고 좌우 이동키의 위치도 애매합니다. 차라리 기본 핫키만 압축해서 하단에 배열하고 좌우 이동은 화면 옆 부분을 잡고 조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인간공학적으로 더 맞는 설계라 생각되네요.

6. 그외 :
rar 파일을 읽을 수 없다는 점, 지원 해상도 자체가 제한적이라는 점도 굉장히 불편한 부분이었습니다. 지원 해상도 부분은 최근 추세에도 걸맞지 않아 보이더군요. CPU나 메모리 문제일테니 개선의 여지도 없겠지만.

결론 및 총평 :
사용자의 사용 의도에 따라 효용이 명확히 갈릴 제품이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가벼운 무게와 긴 배터리 라이프타임, 그리고 20만원 초반대의 가격은 그 자체가 굉장한 경쟁력을 지니는 것이기도 하죠.

그러나 저와 같이 개인적인 용도의 PDF 파일 등을 많이 이용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잘 맞지 않는 기기임에는 분명합니다. 이미지가 많은 문서나 만화 뷰어로도 별로 적합하지가 않고요. 이 기기는 TXT나 epub 파일을 이용하고자 하는 사람에게만 효용성을 지닐 수 있는 기기일 뿐이었습니다.

4인치 크기의 액정 디바이스가 대부분인 시기에는 6인치라는 화면 크기만으로도 경쟁력을 가질 수 있었겠지만 7인치 이상의 "탭" 시리즈들이 40~50만원대의 가격대로 출시되는 하반기에도 과연 경쟁력을 지닐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네요.

익스펜더블 (2010) - 실베스타 스탤론 : 별점 3점

용병팀을 이끄는 바니 로스는 한 섬나라의 독재자를 암살하라는 정부 요원의 의뢰를 받고 조사 차 섬에 잠입했다. 하지만 정체가 발각되어 탈출할 수밖에 없었고, 접선책이었던 독재자의 딸을 두고 떠난 것에 대한 죄책감과 책임감으로 그녀를 구하기 위해 다시 목숨을 걸고 섬으로 향한다.

이 영화는 액션 영화 팬이라면 누구나 기다려왔을 법한 작품입니다. "람보와 코만도가 싸우면 누가 이길까?" "이소룡과 성룡이 붙으면 누가 강할까?" 같은 이야기를 하며 80~90년대를 보낸 세대라면 더욱 반가울 만한 마초 액션 영화의 결정판이지요. 영화의 스타일 역시 철저히 80년대 스타일을 계승하고 있습니다. 깊이 있는 스토리나 개연성을 고민할 필요 없이, 오직 액션 자체만을 즐기면 되는 전형적인 무뇌 액션 영화입니다. 주인공이 한 여성을 위해 목숨을 거는 이유도, 악당들이 주인공 앞에서 일렬로 달려와 총에 맞는 이유도, 배신자를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받아들이는 이유도 굳이 따질 필요가 없습니다. 영화가 전달하려는 것은 오직 액션의 쾌감이기 때문입니다.

액션의 완성도만큼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습니다. 자극적이고 짜릿한 경험을 선사하며, 80~90년대 영화 특유의 묵직한 타격감을 제대로 살려냈습니다. 스탤론, 제이슨 스태덤, 이연걸, 랜디 커투어, 미키 루크로 구성된 주인공 팀과 이에 맞서는 에릭 로버츠, 돌프 룬드그렌, 스티븐 오스틴, 게리 다니엘스의 악당 팀 조합은 액션 영화 팬들에게 꿈의 대결을 선보입니다. 특히, 실사판 "북두의 권"에서 켄시로 역을 맡았던 게리 다니엘스의 등장과, 스톤 콜드 스티븐 오스틴이 최종 보스로 나서 랜디 커투어와 벌이는 격투 장면은 강렬한 인상을 남깁니다.

다만 아쉬운 점이라면, 바니 로스가 목숨을 걸고 구하려 하는 장군의 딸 캐릭터가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일본 숙녀물 AV에서 볼 법한 이미지가 강해 감정이입이 어려웠다는 점이 개인적으로는 아쉬웠습니다.

그럼에도 전체적으로 보면 기대했던 그대로의 영화였습니다.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지 않고, 오로지 액션을 즐기며 스트레스를 날려버릴 수 있는 영화입니다. 여러모로 힘들고 지친 날, 아무 생각 없이 즐기기에 딱 맞는 작품이었습니다. 별점은 3점. 역시 액션 영화는 이런 맛에 보는 것 같습니다.

2010/09/01

허니와 클로버 1~10 - 우미노 치카 : 별점 3점

허니와 클로버 세트 1~10(완결) - 6점
우미노 치카 지음/학산문화사(만화)

35. 허니와 클로버 (우미노 치카, 2000)
초반부 출간당시 정독하다가 후속권 출간이 늦어지며 잊어버렸던 만화인데 이후 애니메이션, 드라마 등으로 만들어지며 완독해야겠다.. 는 생각을 하게 만든 작품입니다. 완독 결심에 결정타를 날린 것은 블로그 지인 '대산초어'님의 리뷰였고요.
등장인물 모두가 짝사랑을 한다는 독특한 설정에 적절한 유머가 조합되어 있으면서도, 등장인물들의 묵직한 인간적 성장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대산초어님 표현대로 '두터운 당의를 두른 꽤 쓴 약 같은 만화' 가 이 만화를 가장 잘 지칭하는 말이라 생각됩니다.

그러나 나이 30대 후반에 읽기에는 '꽤 쓴 약' 부분이 공감하기 어렵기는 합니다. 제일 큰 어른으로 나오는 교수님조차 지금 제 나이보다 한참 아래이니 그보다도 아래인, 20대 중, 후반 청년들의 사랑 이야기가 제게 와 닿을리가 없지요. 진지한 각자의 감정의 표현조차도 어린아이들의 응석처럼 보일 뿐이었으니까요.
모두가 함께 했던 시간이 추억이 되어버린 아쉬움에 대한 묘사 역시 절친이라도 1년에 한두번, 그것도 경조사에서나 겨우 볼 수 있는 현실에서는 배부른 소리에 불과합니다. 그 외에도 제 나이에서 현실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청춘의 푸념이 작품에 넘쳐나서 거북스러울 정도였어요.

하지만 나이의 갭에도 불구하고 가슴을 울리는 무언가는 있는 만화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작가 우미노 치카의 섬세한 감정표현은 독자를 압도하고, 등장인물 대부분이 결국 사랑에 실패하지만 세상 그 어떤 일이라도 의미가 있다라는 끝맺음은 짙은 여운을 남기니까요.
그리고 저 역시 미대를 나왔기 때문에 즐길거리가 더 많기도 했습니다. 별다른 생각없이 학교를 택한 탓에 주변의 천재들에게 좌절하고, 결국 미술이 아닌 다른 일을 하게 된 저와 다케모토의 모습이 많이 닮아 보였다는 점 외에도 과 전시회를 위한 밤샘, 졸업작품 제작에의 전쟁같은 체험 모두가 제 추억과 함께하는 것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별점은 3점입니다. 지금의 제가 읽기에는 너무 감성적으로 젊은 작품이라 작품에 넘치는 감정의 폭발이 부담스러운 감이 있어서 감점했지만, 좋은 작품임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제가 대학생이었을 때 이 작품을 접했더라면 정말 좋았을텐데... 지나간 시간이 원망스럽기만 할 뿐입니다.

페르시아의 왕자 : 시간의 모래 - 마이크 뉴웰 : 별점 2점


페르시아의 왕자 다스탄은 알라무트 왕국을 점령하는데 큰 공을 세웠지만, 왕을 죽였다는 누명을 쓰고 쫓기게 되었다. 알라무트의 공주 타미나와 함께 도주하던 다스탄은 타미나를 통해 '시간의 모래'에 대해 듣고, 알라무트 정복에서 시작된 모든 사건의 진실을 깨닫는데...

게임 "페르시아의 왕자 - 시간의 모래"의 실사 영화입니다. 무려 1억불이 넘는 제작비를 들였다고 하죠. 그러나 한마디로 별로더군요. 흥행도 실패해서 제작비도 못 건졌다고 하니 저만 이렇게 생각한 것은 아닌가 보네요.

일단 허술한 이야기가 너무 거슬립니다. 연기파 배우 벤 킹슬리가 맡은 악역 니잠은 다스탄과 대적할만한 무예도 갖추고 있지 못하고, 대단한 지략을 보이거나 부하가 많은 것도 아닌, 우리나라 사극의 간사한 노인 악역 정도밖에는 안되는 인물이라 별로 긴장감을 가져다 주지 못합니다.
게다가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시간의 모래'를 이용한 니잠의 왕위 찬탈 작전은 니잠 스스로가 왕과 왕자를 모두 죽여버리기 때문에 필요가 없어져 버립니다. 이래서야 이야기가 성립할 수 없습니다.
게다가 마지막의 너무나 뜬금없는 해피엔딩은 최근 본 영화 중에서도 최악이었어요. 작가가 시나리오를 발로 쓴게 아닌가 의심될 정도로 말이죠. 차라리 세계가 멸망하는 걸로 끝내던가.

그리고 초반부의 전쟁 장면 잠깐을 제외하면 막대한 제작비를 어디다 썼는지 의심하게 만듭니다. 일부 세트를 제외하면 대단한 CG나 방대한 규모의 인원이 동원된 것도 아닌데 돈을 어디다 쓴걸까요? "실미도" 이후 제작비 지출ㅍ내역이 궁금한 영화는 정말이지 오랫만이네요. 감독부터가 블록버스터에 별 소질이 없어보이는 마이크 뉴웰이니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었겠지만요...
게임의 팬으로서 기대가 컸던 아크로바틱 액션도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습니다.\ 그나마 마이크 뉴웰 감독의 장기라 할 수 있는 말랑말랑한 러브라인의 표현 말고는 건질게 없었어요.

그래서 별점은 2점. 작품 자체만 놓고 본다면 적절한 수준의 오락거리가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별로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