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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10

얼굴에 흩날리는 비 - 기리노 나쓰오 / 권일영 : 별점 4점

얼굴에 흩날리는 비 - 8점 기리노 나쓰오 지음, 권일영 옮김/비채

얼굴에 흩날리는 비 - 기리노 나쓰오

무라노 미로는 어느날 낯선 남자들의 습격과도 같은 방문을 받는다. 그들은 미로의 친구인 르포라이터 작가 우사가와 요코의 행방을 쫓는 조직의 하청업자이자 요코의 애인 나루세와 조직원 기미지마였다. 요코는 1억엔이라는 조직의 거금을 가지고 사라진 상태였다. 미로는 요코의 마지막 전화상대였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일주일안에 그녀의 행방을 찾아 돈을 가지고 와야 한다는 협박을 받았다. 
어쩔 수 없이 나루세와 같이 요오꼬의 행방을 추적하기 시작한 미로는 요코의 사무실과 집, 자주 찾던 점술가까지 조사해 나갔고, 그러던 중에 자신을 협박하고 감시하기 위해 동행하는 나루세에게 호감을 느껴 그에게 자신의 상처받은 과거의 치유를 원하게 되었다.
결국 미로는 요코의 마지막 작품을 통해 사건의 진상과 이 사건의 연관성을 눈치채게 되며 최후의 순간에 진범을 알아내는데....

6년전에 읽었던 작품입니다. 제 39회 에도가와 란포상 최우수 수상작이기도 한 작품이죠. 당시에는 절판된 책을 어렵게 구해서 읽었는데 새로운 번역의 완역본으로 다시 출간되다니 미스터리 애호가로서 굉장히 기쁘네요. 푸대접받던 친구가 금의환향한 느낌이거든요.

남-녀 커플의 시한부 설정 하드보일드 스릴러로 6년전에 읽었을 때도 언급했었지만, 상당히 흔한 설정이기는 합니다. 헐리우드 영화에는 널리고 널린 소재죠. (헐리우드 작품으로는 영화 D.O.A를 강추합니다)

그러나 이 작품은 보통 남자쪽에 포커스가 맞춰지는 다른 작품들과는 다르게, 나루세보다는 무라노 미로를 주인공으로 하여 보다 여성적인 시각으로 전개한다는 것, 그리고 이러한 시각을 작가 특유의 섬세한 묘사로 돋보이게 만든다는 것, 아울러 말랑말랑한 러브라인없이 하드보일드다운 묵직하고 건조한 전개 등의 요소로 다른 작품들과 차별화됩니다.
하드보일드 추리물 자체로만 보아도 높은 수준이라는 것 역시 매력적인 부분이에요. 탐정의 딸이기는 하나 평범한 백수에 불과한 미로의 수사와 추리 과정은 충분히 현실적이라 설득력이 높고, 곳곳에 장치된 복선과 단서들을 통해서 복잡한 사건의 구조를 잘 풀어나가며 마지막의 반전으로 이끄는 과정이 데뷰작으로 보기 힘들정도의 완성도를 보여주거든요. 이러한 단서들이 무라노 미로의 섬세한 시각으로 포착할 수 있는 것들 - 장신구나 의상, 욕실에서의 흔적 등 - 이라는 것도 작품의 분위기와 잘 맞아떨어집니다.

마지막으로 제대로 된 완역이라는 점도 높이 평가하고 싶습니다. 6년전 작품과는 완전 다른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훨씬 길기도 하지만 추리소설 역사를 통틀어도 가장 멋진 제목에 어울리는, 깊이있는 묘사를 즐길 수 있을뿐 아니라 6년전에 읽었을 때 조금 어색했던 미로에 대한 설정과 오버스러웠던 독일 신나치 그룹이 얽힌 사건 역시 완역본으로 읽으니 비어있던 퍼즐이 채워지듯 딱 들어맞아서 그러한 생각을 잊게 만들어 줍니다. 또한 가장 아쉬웠던 마지막 단 한번의 목격으로 진범을 알아낸다는 억지스러웠던 전개 역시 완역본에서는 충분히 설명되고 있더군요.

물론 범인이 어차피 해외도피를 꿈꾸고 있었는데 구태여 살인을 저지를 필요가 있었는지?라는 의문과 1억엔이라는 돈이 여러가지 일을 벌이기에 그닥 매력적인 금액이 아니라는 약점은 있긴 합니다. 그래도 데뷰작 답지 않은 완성도의 작품으로 기리노 나쓰오 작품 중에서도 자신있게 추천할만한, 대중성과 문학성을 모두 갖춘 수작이라 생각되네요. 
주인공 이름이 6년전에는 무라노 미오였는데 무라노 미로로 바뀐 점, 사라진 돈이 6년전의 4,500만엔에서 1억엔으로 인상되어 있는 등의 세세한 수정사항을 더듬어보는 것도 절판본을 읽어본 독자만의 보너스겠죠. 별점은 4점입니다.

정식 완역본이 너무 늦게 소개된 것이 아쉽기만 한데, 굉장히 독특하고 매력적이었던 무라노 미로를 주인공으로 한 시리즈물의 다른 작품들도 이제부터라도 정식으로 소개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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