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튼 탐정 동물기 - 야나기 코지 지음, 박현미 옮김/루비박스 |
유명 동물학자 겸 소설가 시튼을 주인공으로 한 본격 추리 단편집입니다.
시튼이 주인공이고 작중 모든 사건들이 동물과 관련된 이야기라는 점이 일단 독특합니다. 하지만 주인공과 약간의 설정을 제외하고는 고전 본격 단편 부흥기 분위기와 스타일을 많이 따르고 있습니다. 셜록 홈즈 파스티쉬 물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말이죠.
또 단지 기발한 아이디어로 끝나지 않고 작가가 연구를 많이 한 듯 시튼이라는 캐릭터와 당대의 분위기가 잘 살아있기 때문에, 그리고 제가 워낙 본격 단편 시대의 작품들을 좋아하기에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봤을때 아이디어와 형식에 비하자면 작품의 핵심이라고도 할 수 있는 동물들을 이용한 트릭들은 본격물에 어울릴 정도로 잘 구현되었다고 보기는 좀 어렵다는 단점이 있긴 합니다. 트릭이 딱히 뛰어나지도 않고 억지스러운 것이 많았기 때문이죠. 전반적으로 시튼, 동물이라는 설정에 너무 얽매인게 아닌가 싶네요.
작품별로 상세하게 설명하자면, <카람포의 악마>는 시튼의 동물기에서도 유명한 '늑대왕 로보'가 관련된 작품입니다. 이야기의 시작으로서는 괜찮았어요. 하지만 트릭이 좀 어설펐습니다. 시체를 늑대왕 로보가 죽인 것으로 위장한다는 내용인데 발자국을 조작했다는 작위성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거든요. 그곳에 있는 사람들을 속이기 위해서는 그다지 큰 조작은 불필요했을테고 시튼의 사건 참여는 순전히 우연이기에 앞뒤가 맞지 않는 듯 싶었습니다.
<실버스팟>은 까마귀라는 새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야기에 우연이 너무 많이 개입하고 있어서 높은 점수를 주기는 좀 힘드네요. <랜턴관 도난사건> 처럼 애시당초 새를 이용한 도둑질이었다면 모를까. 그리고 두번째 범행에서도 결정적인 증거는 없는 등 추리적으로 단점이 너무 많았습니다.
<숲 속의 다람쥐>는 이야기의 현실성 측면에서는 가장 괜찮았어요. 가장 현실적인 범죄였기도 했고요. 그러나 다람쥐가 별로 중요한 요소도 아니었을 뿐더러 비약이 심했어요. 역시나 '우연'에 의해 진행된다는 것도 약점이겠죠.
<외양간 밀실과 메기 조>는 두개의 이야기가 담겨있는데 일상계로는 괜찮은 소품이었습니다. 뛰어난 트릭이 등장하거나 이야기가 굉장히 재미있는 것은 아닌데 개척시대를 무대로 한다면 이 정도가 딱 맞는 수준이 아닐까 싶은 그런 작품이었어요.
<로열 아날로스탄 실종사건>도 좋았습니다. 시튼이 실제로 맡았음직한 고양이 실종사건이라는 현실적인 테마도 좋았지만 전체적으로 유쾌하며 길고양이의 습성을 이야기에 잘 녹이고 있어서 설득력이 강했거든요. 로열 아날로스탄이 품평회에서 상을 탔다는 것에 대한 설명이 없다는 점은 좀 아쉽지만 개인적으로는 베스트로 꼽고 싶습니다.
<세 명의 비서관>은 루즈벨트라는 실존인물이 등장한다는 것이 독특했습니다. 스컹크에 대한 애정넘치는 서술 등 동물이 이야기에 잘 녹아있다는 것도 괜찮았고 말이죠. 하지만 과연 이야기에서처럼 잘 됐을지는 잘 모르겠어요. 너무 운에 의지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요. 차라리 스컹크 분무액을 서류에 묻혀 놓는게 현실적이었을것 같아요.
<곰의 왕 잭>은 강력사건이 등장하는데 좀 상식외의 전개라 당황스러웠어요. 곰이 바위를 밀었다는게 트릭으로 설득력이 있었을지는 둘째치고라도 곰이 왼손잡이라서 바위를 밀 수 없었다던가 하는게 무슨 증거가 되는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등으로 밀 수도 있잖아요?
이렇듯 추리적으로는 아쉬움이 많아서 좀 낮은 연령층, 특히 시튼의 동물기를 읽은 독자라면 너무나 좋아할 이야기지만 저에게는 좀 그냥저냥한 평작이었다 생각됩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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