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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02

1930년대 한국 추리소설 연구 - 오혜진 : 별점 3점

1930년대 한국 추리소설 연구 - 6점
오혜진 지음/어문학사

6년전에 읽고 리뷰까지 남겼었는데, 어쩌다보니 깜빡하고 다시 구입해서 읽은 책입니다. 5년이 지난 탓에 새로 읽는 것과 다를게 없었네요. 다시 리뷰 남깁니다.

총 5장으로 구성된(5장은 맺음말로 내용은 4장 구성), 해방 전까지의 한국 추리 소설에 대한 연구 결과를 정리한 책으로 문학사니까 일종의 미시사 서적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전에 읽었던 "대중서사장르의 모든 것 3 : 추리물"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해방 전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이 점은 "조선의 탐정을 탐정하다"와 더 비슷한데, 내용이 연대기적으로 구성되어 있고 시각이 일관된 덕분에 더 나은 점도 많습니다. 이전에 유사한 책들을 많이 읽어왔지만, 여전히 눈에 뜨이는 부분도 제법 되고요.

우선 추리 소설을 어떤 기준으로 연구했는지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브 뢰테르의 세가지 분류 - Mystery, Crime novel, Suspense - 를 기준으로 삼고 있습니다)과 서구 추리 소설이 어떻게 발전되었는지를 짤막하게 소개하는 등의 도입부가 마음에 듭니다. 연구서다운 상세한 설명과 접근 방법이 좋더라고요.

이후 실제 한국 추리 소설의 역사 역시 재미있는 내용이 많습니다. 우선 1920년대 중반 "취미"라는 용어가 일상화 되었다는 것은 처음 알았습니다. 원래 있던 단어인줄 알았는데 말이지요. 당시 중산층의 개념이 1년 수입으로 1년간 채무 없이 살 수 있는 정도를 뜻하며, 극히 드물었다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때문에 "취미"에는 돈이 들고, 사람들은 돈이 없어서 값싼 인쇄물을 가까이 하는 책읽기가 그나마 일반적인 취미로 널리 퍼졌다고 하고요.
또한 이러한 출판 산업의 호황에 더해 당시 언론 통제로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기사가 난무한 것, 그리고 "자본주의" 때문에 상업화로 흐른 등 "대중 소설"을 위한 토양이 갖추어져 결국 추리 소설이 등장하게 되었다는 큰 흐름을 읽을 수 있던 것도 좋았습니다.
그나저나 지금 사람들이 책을 많이 읽지 않는 가장 큰 이유가 비싼 책 값 때문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 아울러 당시에도 코난 도일과 르블랑에 대한 편식이 심했다는 것도 재미있었고요.

이후 당시 발표된 여러 추리 소설을 소개하는데 이 역시 흥미로왔습니다. 최독견의 "사형수" 라던가, 신경순의 "피무든 수첩", "제 2의 밀실", 최유범의 여러 작품들이 그러합니다. 특히 최유범의 작품은 비록 일부 표절("브루스 파팅턴 설계도")이 있지만 미스터리 추리 소설로 장르의 규칙을 철저히 수행하고 있다고 하니 놀랍네요. 수수께끼 풀이가 완벽한 수준의 해방전 국내 작품은 그 유래를 찾기 힘든데 말이지요.
그 뒤에 이어지는 다른 작품들은 국내 추리 소설의 한 전형이라 할 수 있는 "사랑과 연애사"가 부각되는 작품들이라는 점에서 최유범의 작품이 더욱 빛을 발합니다. 그 뒤 김동인의 "광염소나타", 박태원의 "우맹", 김유정의 "만무방"과 같은 추리 서사가 도입된 국내 소설 소개가 이어집니다. 염상섭의 "사랑과 죄" 역시 마찬가지죠. 영화에 나온 수법을 따라하는 모방 범죄가 등장하고, 살인 사건이 주요한 내용인 등 꽤 진지한 추리 서사가 도입된 작품이라는데 읽어보고 싶어집니다.

그러나 몇몇 부분은 안타까움을 전해주기도 합니다. 대표적인 것은 "통속 소설", "대중 소설"에 대한 세간의 인식이 당시부터 존재했었다는 점입니다. 추리 소설이 싸구려 통속 소설로 폄하된 이유가 이 땅에 추리 소설이 소개된 시점에서부터 비롯되었다는 것인데, 심지어 추리 소설을 창작, 번역하기까지 했던 일부 작가들조차(염상섭 등) 동일한 인식을 지녔다는 점에서 통탄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원래 과학적, 근대적 사고가 널리 퍼진 것이 논리적인 사고를 기반으로 하는 추리 소설의 유행과 관계되어 있다고 이야기하는데, 이러한 근대적 사고 방식을 토대로 한 작품이 이렇게까지 폄하되는 것도 조금은 이해하기 어려웠어요. 물론 당시 미디어, 작가들의 잘못도 크겠지만요.

마지막 4장에서는 1930년대를 대표하는 세 편의 작품 - 채만식의 "염마", 김동인의 "수평선 너머로", 김내성의 "마인"- 을 상세하게 설명하며 당대 추리 소설의 수준, 그리고 어쩔 수없는 한계를 설명하며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특히 김내성의 여러 작품들을 소개해 주는데, 김내성의 "마인"을 굉장히 높이 평가하고 있는 것이 눈에 뜨입니다. 지금 읽으면 많이 허술하지만 당대 국내 추리 문학계를 대표했던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그 외 작품 소개 모두 읽을만 합니다. 그러나 책의 특성상(일종의 학술 논문) 전편 내용이 수록된 것이 아니라는게 좀 아쉽습니다. 관심이 크다면 별도로 구해 볼 수 밖에 없으니까요.

마지막에는 1940년대로 넘어오면서 전쟁 탓에 스파이 소설이 범람하였으며, 이른바 "친일 문학"으로 여러 작품이 발표된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외국인 여성 마리에가 만드는 센닌바리가 경성의 방공 시설과 반도내 포대 위치를 말하는 모르스 부호가 숨겨져 있음을 폭로한다는 김내성의 "수놓은 송학"이 대표적인데, 꽤 괜찮은 아이디어임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식민지에서의 친일, 매국 문학으로 전락한 작가의 모습은 서글프기까지 합니다. 다른 작품들 역시 마찬가지고요.

그래서 별점은 3점입니다. 이는 6년 전과 같습니다. 다른 유사 자료, 도서와 차별화되는 점도 크고, 나름의 재미는 물론 여러가지 정보와 함께 큰 흐름을 알 수 있게 해 주는 덕분입니다. 추리 소설 역사에 대해 관심이 있으시다면 한 번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네요. 저는 두 번 읽었지만 여전히 좋은 독서였습니다.

2008/12/29

내가 추천하는 한국 추리소설들

이 기사를 읽고 적어 봅니다.

사실 한국 추리소설의 문제는 다름 아닌 "작품의 질" 그 이상 이하도 아니라 생각합니다. 사실 8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 추리소설계가 이렇게 암담하지는 않았으니까요. 김성종 선생님 작품은 고정팬이 있어서 출간만 하면 몇만부씩 팔린다는 이야기도 있었죠. 그러나 사람들의 관심이 멀어진건 이러한 한국 추리소설들이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성적인 묘사만 난무하는 저질 소설이 대부분을 차지하게 된 이후라 생각됩니다.

이러한 점은 초창기인 김래성 선생님때부터 이미 에도가와 란포의 향취가 느껴지는 등 그동안 계속 일본 추리소설의 영향을 받다가, 80년대 한국 추리소설이 반짝 인기를 끌 때 일본 추리소설의 나쁜 점만 받아들여 문제가 커진 것 같습니다. 제가 별로 안 좋아하는 모리무라 세이이치의 나쁜 점만 극대화한, 예를 들자면 몇작품 안 읽어봤지만 펄프픽션의 대명사라 할 수 있는 가츠메 아츠사, 또는 범위를 넓히자면 시드니 셀던 류의 작품군이랄까요. 더군다나 이러한 성적인 묘사 때문인지 정통물은 아예 발붙이기 힘든 풍토마저 조성되어 고정 독자들도 멀어진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도 암담한 시기에 두각을 나타내었던 몇 작품을 소개해 볼까 합니다. 추천할만한 작품이 아닐 수도 있지만 "한국 추리 소설" 이라는 타이틀을 대표할만한 작품들이기에 한번쯤 읽어보시길 권해 드립니다.

  • 김래성 - 비밀의 문 : 정확하게는 이 단편집의 "타원형 거울" 외 몇편 뿐이지만... 역사적 의미와 더불어 재미도 갖춘 보기드문 작품이라 추천합니다. 선생님의 추리소설 대표작인 "마인"은 추리소설로는 너무 함량미달이라 도저히 추천하기 어렵네요.
  • 김성종 - 최후의 증인 : 누가 뭐래도 한국 추리문학계의 거목이신 김성종 선생님의 대표작이죠. 추리적인 요소는 좀 부족하지만 재미와 더불어 역사의식까지 가지고 있는 좋은 작품입니다.
  • 백휴 - 낙원의 저쪽 (고려원 한국 미스터리 컬렉션) : 심리 스릴러물로 쓱쓱 읽히는 재미는 충분한 작품입니다. 개인적으로 이 작가의 작품은 단편을 더 좋아하긴 하지만요.
  • 김남 - 돛배를 찾아서 (고려원 한국 미스터리 컬렉션) : "미술계"를 소재로 했다는 점도 특이하지만 정통 추리물로 보아도 손색없는 작품으로 추천합니다.
  • 권경희 - 저린 손끝 (고려원 한국 미스터리 컬렉션) : 작가의 데뷰작이죠. 좀 처지는 감은 없잖아 있지만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 정건섭 - 덫 / 5시간 30분 : 김성종 선생님과 반대되는 위치랄까요? 국내에서는 거의 최초로 냉정하고 치밀한 추리물을 선보이신 정건섭 선생님의 이 두 작품은 꼭 읽어봐야 할 작품이라 생각됩니다.
  • 이종호 - 분신사바 : 재미라는 측면에서는 합격점인 호러소설입니다. 마무리가 좀 아쉽긴 했지만....

** 이외에 "경성탐정록" 도 관심가져 주시면 더할나위 없겠죠?^^

2010/12/27

Hansang의 2010 올해의 추리소설 Best 3

2010 올해의 추리소설 이벤트

국내 최고의 미스터리 팬덤의 하나인 하우미스터리에서 진행하는 이벤트입니다. 2009년 12월 ~ 2010년에 간행된 책들이 대상인데 확인해보니 이 중에서 읽은 책은 30여 권밖에 안되네요. 너무 적게 읽었나? 어쨌건 제 블로그 정리 차원에서라도 저도 한번 선정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2010년은 아직 며칠 더 남았지만 책을 더 읽기는 힘들 것 같거든요.

그럼 먼저 선정에 앞서 간단하게 2010년 추리소설계를 들여다 보도록 하죠.

2010년 국내 추리소설계는 세 가지 키워드로 설명할 수 있겠네요. "쏠림 현상이 심했고" "뜻깊은 발굴도 있었으며" "국산 추리소설이 모처럼 활기를 띤" 한 해였다고 말이죠.

"쏠림 현상"은 230여 권의 작품 중 100권 정도를 일본 작품이 차지하고 있다는 것으로 일본 추리소설 비중이 너무 높다는 것, 그리고 100권 정도의 일본 작품도 히가시노 게이고, 우타노 쇼고, 미야베 미유키 등 특정 유명 작가에게 많이 치우쳐져 있다는 것, 마지막으로 일본 작품 이외의 작품 역시 기존 유명 작가의 시리즈 작품들과 국내에서 인기가 많은 팩션 장르물이 대부분이라는 것에 기인합니다. 출판사도 책이 팔려야 먹고 사는 경제조직이니 인기 작가 작품이 많은 것은 이해할 수 있고 덕분에 출간된 반가운 작품들도 많았지만 일부 작가는 작품의 수준보다는 순전히 작가의 네임벨류로 선정되어 출간되는 것 같아 조금 아쉽더군요.

"뜻깊은 발굴"은 첫 번째 쏠림 현상의 와중에도 추리 애호가로서 기다려 왔던 반가운 작품들이 속속 번역된 한 해이기도 해서 꼽아보았습니다. 일본 추리소설 중에서는 "아 아이이치로의 낭패"라든가 "리라장 사건"이, 영-미권에서는 "7퍼센트 용액"과 "붉은 오른손", "위풍당당 명탐정 외젠 발몽"과 딕슨 카의 고전들이 출간되었으니까요. 앞으로는 일본과 영-미권에 치우치지 않은, 예를 들면 중국이나 대만 등 제 3 세계권의 추리 소설도 발간되었으면 합니다. 혹시 모르죠. "장미의 이름"처럼 대박이 날 수도 있잖아요?

"국산 추리소설의 활기"는 목록에서 보기 드문 한국 추리 소설이 많이 보였기 때문인데 개인적으로는 아주 반가운 일이었어요. 장르도 훨씬 다양해져서 꾸준히 출간되어왔던 단편집뿐만 아니라 정통 장편 추리물에서부터 팩션, 하드보일드, 그리고 김내성의 과거 고전이 재발간되는 등 질과 양 모두에서 상당히 고무적인 모습을 보인 것은 아주 기쁩니다. 한국 추리 소설도 더욱 성장한 한 해라 생각되며, 부끄럽게도 제대로 읽어본 작품이 아직 없는데 꼭 찾아 읽어봐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네요. 그나저나 여기 "경성탐정록" 2권이 포함되어 있었어야 하는데... 눈에서 땀이나네... ㅠ.ㅠ

그럼 간단한 분석을 마치고, 제 개인적인 "2010 올해의 추리 소설" 순위를 발표하도록 하겠습니다. 두둥~

Hansang의 2010 올해의 추리소설 Best 3

* 2009년 12월 ~ 2010년 출간된 추리소설만 해당됨

"7퍼센트 용액" - 니콜러스 메이어 : 별점 4점 - 셜록키언들에게는 전설과도 같은 작품. 일본 원판으로 구입은 해 놓았지만 10페이지 정도 읽고 손 놓고 있던 차에 국내에 출간되어 너무나도 기뻤습니다. 작품도 역시나 만족스러웠고요.

"얼굴에 흩날리는 비" - 기리노 나쓰오 : 별점 4점 - 과거 구판본으로 읽었을 때도 좋았지만 정식 완역본으로 작품의 참맛을 느끼게 해 준 작품입니다. 제 생각에는 여성 작가의 하드보일드란 이런 것이다! 라는 가이드 역할을 하는 작품 같아요. 첫 맛부터 진하고 독한 위스키라기보다는 부드럽지만 슬프면서도 날카롭고 쓴 뒷맛을 감추고 있는 사케 같은 작품이랄까요?

"유다의 창" - 존 딕슨 카 : 별점 4점 - 고전 걸작. 더 말이 필요 없죠. 제가 읽은 딕슨 카 전 작품 중에서도 첫손에 꼽을 만한 작품입니다.

<아차상>

"마크스의 산 1.2" - 다카무라 가오루 : 별점 4점 - 2010년 재판본이 아닌 예전 고려원 판본 별점입니다. 새 판본을 읽지 못했기에 선정하지는 않습니다만, 좋은 작품이죠.

"아 아이이치로의 낭패" - 아와사카 쓰마오 : 별점 4점 - 별점 4점이기는 한데 개인적인 팬심이 포함되어 있어서 순위에서는 뺍니다.

이상으로 2010 올해의 추리소설 관련 글을 마치며, 내년에는 별점 5점짜리 작품을 선정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2017/08/11

대중서사장르의 모든 것 3 : 추리물 - 대중서사장르연구회, 박유희 외 : 별점 3점

대중서사장르의 모든 것 3 : 추리물 - 6점
대중서사장르연구회.박유희 외 지음/이론과실천

한국 영화, 소설, 드라마 등의 매체에 등장했던 추리물의 역사에 대해 개략적으로 정리하여 알려주는 인문학, 문화사 서적입니다. 

"아랑 전설"에서 밀양 부사가 빨간 깃대를 흔들고 가는 아랑에 대해 꿈꾼 후, 범인이 '朱旗'라는 사람임을 가리킨다는 것을 깨닫는다는 이야기, 암행어사 박문수 설화에서 '한각사중계월침, 붕월반월원무심'이라는 점 글귀의 뜻 풀이 같은 것이 소개되는 등, 고전 설화와 각종 야담, 역사서 등에 등장했던 추리 서사부터 소개하고 있기에 그 양과 깊이가 실로 방대합니다.

근대적인 추리 소설, 즉 '정탐 소설'이 처음 등장한 "쌍옥적" 이후의 자료는 더욱 풍부합니다. 처음 알게 된 건 "쌍옥적" 시기에 발표되었던 "박쥐우산"이라는 작품입니다. "르루주 사건"을 번안한 "누구의 죄"를 표절한 느낌이지만, 소개를 보니 범행 동기와 범인 설정을 당시 국내 실정에 잘 맞도록 나름 개선, 발전시킨 부분이 있는 덕분에 한번 읽어보고 싶어졌습니다. 근대 초기에 셜록 홈즈와 같은 정통파 추리물이 아니라 '에밀 가보리오'의 프랑스 소설이 유독 인기를 끌었다는 점도 꽤나 흥미로왔고요.

아울러 근대에 추리 소설이 번안되어 소개되면서 이른바 '탐정 소설'이 높은 수준의 독서력을 가진 독자들이 읽는 지적인 작품으로 어필했다는 것도 신선했습니다. 추리 소설이 항상 싸구려 문학의 대명사로 알려진 80년대 이후를 살아온 저에게는 이해가 안되는데, 사실 어떻게 보면 당연하기도 합니다. 독서라는 취미 자체가 어느정도 지적 수준이 있는 계층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졌을테고, 그 중에서 추리 소설은 트릭을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과학적인 지식이 뒷받침 된 이해력이 필요하니까요. 근대에는 그러한 독자가 상대적으로 적을 수 밖에 없었겠지요.
이렇게 초창기 추리문학에 대한 대중의 인식은 아주 괜찮은 듯 싶어 무척이나 부러웠습니다. '정탐', '탐정'이라는 단어가 일상적으로 사용되었던 당대 분위기를 보아도 쉽게 알 수 있어요. 인용되는 자료들을 보니 각종 신문 기사 헤드라인에서 이 단어들을 찾아보는 것이 어렵지 않을 정도더군요.

그러나 이러한 요소는 부정적인 방향으로 흐르게 됩니다. 대구에 사는 한 소년이 10세 아동을 납치 살해한 후 협박장을 보냈다는 기사가 대표적이에요. 범행도 충격적이지만 이 소년이 '탐정소설만 매일 탐독'했다고 소개되거든요. 이렇게 탐정소설이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상식이 널리 퍼지게 되는 것이죠. 가슴아프게도 이러한 부정적 인식, 앞서 말씀드린 물질 문명에 대한 부분, 거기에 '그로(그로테스크)'로 대표되는 새로운 유행의 결합 등으로 한국 추리 문학이 서서히 선정성, 엽기성이 강조된 싸구려 펄프 픽션화하는 과정이 해방 이후 현대에 걸쳐 상세하게 소개됩니다.
아울러 지적인 영역, 논리적 추론과 과학적 수사 외에도 서구 물질 문명의 유혹 역시 지식인들을 끌어당기는 요소였다고 하는데, 이 역시 후대에 좋지 않는 영향을 끼친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지적인 영역이 아니라 물질 문명에 대한 부분만 확대, 발전해 버린 탓입니다.

그래도 저도 익히 알고 있는, "최후의 증인"이라는 기적으로 대표되는 김성종 시대에서 현재(이 책이 발표된 2010년 기준)까지 이어지는 과정의 마지막 부분 덕분에 아직 한국 추리 문학에 희망이 있구나! 싶은 생각을 들게 만들어 줍니다. 한국 추리문학의 미래로 "경성탐정록"이 소개되었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경성탐정록"이야 말로 한국 현대 추리문학이 이룬 놀라운 성취 중 하나라 생각합니다. 선정성, 엽기성이 사라지고 정통 추리 서사에 기반한 본격물이라는 점에서, 원점에 회귀한다는 측면은 분명히 있죠. 이를 '일제 강점기'를 무대로 하고 있다는 점은 한국 추리문학의 역사 그 자체를 상징하기도 하고요(반은 농담인거 아시죠?).

"경성탐정록" 외에도 고전에서부터 근대, 현대에 이르는 추리 문학 발전 와중에 등장한 수많은 작품이 소개되기 때문에 눈길을 끄는 작품도 적지 않습니다. 몇 가지 예를 들자면, 일제강점기 후반 친일 문학의 홍수 속에서도 나름의 가치를 가지고 추리 서사를 보여주는 김동인의 "수평선 너머로", 친일 문학이기에 다시 읽을 가치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서사면에서는 흥미로와 보이는 김내성의 "태풍", 해방 후 추리 문학계의 1인자였다는 방인근의 작품들(그 중에서도 사립탐정 장비호 시리즈), 허문영의 번개 탐정 시리즈가 있습니다. 아쉽게도 방인근, 허문영의 작품들은 소개만 보아도 앞서 말씀드린 펄프 픽션들에 다름없기에 구태여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까지는 들지 않았지만, 그래도 방인근 작품들에 등장하는 해방 이후 주요 설정들 - 일본인이 해방 후 강제로 쫓겨가며 챙기지 못했던 재산을 되찾으려고 한다던가, 국가 혼란기에 국보를 훔친다던가 등등 - 은 한번 연구해 보고 싶어집니다.

이러한 추리 문학 뿐 아니라 추리 문학을 기반으로 한 영화나 드라마의 흐름 및 주요 작품의 소개 또한 책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는데, 이 역시 읽어볼만 합니다. 007 시리즈의 여러 모방작들 등 재미난 이야기들이 많거든요. 스파이물, 액션 스릴러, 느와르 등 다루는 폭도 넓고요. 제가 관심있는 분야는 아니지만 이쪽 분야에 관심이 많으신 분들이라면 놓치시기 힘들 내용들이었어요.

그런데 소개되는 작품들에 대한 내용이 없는 경우가 훨씬 많은건 단점입니다. 기껏 흥미를 자아내는데, 정작 내용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으니 답답할 수 밖에 없지요. 지금 구하기 쉬운 작품들도 아니니까요. 도판도 부실한 편이고요.

그래도 얻은 것이 훨씬 많은 독서였습니다. 600페이지가 넘는 분량에 3만원이라는 가격도 마음에 들고요. "조선의 탐정을 탐정하다"가 식민지 시대 추리 문학에 집중하고 있다면 이 책은 다루는 폭과 기간이 훨씬 넓다는 차이가 있기에 비교해 읽는 재미도 괜찮습니다. 읽기 전에는 내가 아무리 추리 애호가지만 이런 것 까지 찾아서 읽어야 하나?라는 생각이 없었던 것은 아닌데, 이 정도면 모든 추리 문학, 장르 애호가분들께 권해드릴 만 합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2009/06/18

[옛날 신문 검색] 불황 소설가 추리소설 바람 - 의외의 작가, 의외의 작품

네이버 옛날 뉴스로 검색을 즐기다가 발견한 1983년 12월 12일자 동아일보 기사입니다.

추리소설 전문 부정기 잡지 [미스터리]의 소개로 시작하는 기사는 이어서 순수소설 작가들의 추리소설 작품을 자세하게 설명해 줍니다. 본격 추리소설로 이병주씨의 "미완의 극"과 "황백의 문", 황석영씨의 "심판의 집", 박범신씨의 "형장의 신", 조해일씨의 "갈수없는 나라", 표성흠씨의 "낙동강 오리알"을 들고 있으며, 시인인 정건섭씨의 "덫"도 포함되어 있네요. 저는 정건섭 선생님을 추리소설 작가로만 알고 있는데 이 당시에는 시인으로 더 잘 알려져 있으셨나 봅니다.^^

그리고 작가 조정래씨의 추리소설 붐에 대한 짤막한 의견 (우리사회가 산업사회화 함에 따라 지적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정신적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추리소설을 찾는다는 의견), 국내 추리소설의 문제점 (엽기적 제목과 지나치게 통속적인 내용 등) 도 이야기하는 등 상당히 풍성한 기사네요.

무엇보다도 본격 추리소설로 소개된 유명작가들의 작품들이 어떤 작품들인지 궁금해집니다. 이런 작품들도 모르고 "내가 추천하는 한국 추리소설" 같은 글을 썼다니 창피할 뿐이네요. 곧바로 조사해봤는데 아뿔싸, 대부분 절판이군요... 빌어먹을 이땅의 장르문학 홀대가 유명작가한테까지 이르렀을 줄이야!!! 그나마 황석영의 "심판의 집" 만 "객지"라는 황석영 중단편전집 3권에 포함되어 있을 뿐입니다. 이병주의 "미완의 극"은 최은희 납치사건을 주제로 한 소설이라는 것 정도만 확인했을 뿐인데 다른 작품들은 과연 어떤 작품들일까요? 헌책방에서 대부분의 작품은 구할 수 있겠지만 일단은 비교적 쉽게 구할 수 있는 "심판의 집"부터 한번 읽어봐야 겠네요.

2013/01/06

1930년대 한국 추리소설 연구 - 오혜진 : 별점 3점

1930년대 한국 추리소설 연구 - 6점
오혜진 지음/어문학사

1930년대 식민지 조선에서 추리소설이 어떻게 형성되었으며, 어떠한 문학적 위상을 지녔는지를 알려주는 논문집.

1930년대 추리소설이 유행하게 된 배경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총독부의 언론 장악이 강하게 이루어졌고, 언론이 경쟁 과열 등으로 급격하게 상업화가 진행되어 독자의 흥미를 강하게 끌어당기는 글들이 많이 퍼질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시대적, 사회적 배경 하에서 추리소설이 어떻게 등장하고 어떻게 발전되었는지를 김동인, 최독견, 방인근, 염상섭, 박태원, 김유정, 김내성 등 당대 유명 작가와 그들의 작품, 그리고 기타 다양한 자료와 인용문을 통해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처음 접하는 작품들이 다양하게 소개되는 것이 큰 장점인데, 이 중에서도 개인적으로는 김동인의 "수평선 너머로"가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상하이에서 독립운동 자금을 얻기 위해 급파된 서인준과 뉴욕에 본부를 둔 범죄집단 LC당이 윤백작 공채를 둘러싸고 대결을 벌이고, 이를 형사 이필호가 쫓는다는 이야기로 스파이 모험소설의 서사를 갖춘 작품인데, 줄거리만 봐도 아주 재미있을 것 같더군요.

또한 1940년대로 넘어가면서 김내성이 친일문학에 손을 대었다는 것도 처음 알게 된 사실입니다. 유불란이 적국 스파이와 대결한다는 "태풍", 그리고 결국에는 유불란이 이름부터 친일스러운 "애국방첩협회" 회장으로 등장하여 미·영의 스파이와 대결한다는 "매국노"라는 작품 발표로 이어졌다고 하는데, 이건 뭐 면죄부를 줄래야 줄 수 없네요.

그 외에도 당시 추리서사의 작품들이 유행하였고 유명 작가들도 많이 창작하기는 하였으나, 대중문학이라서 순수문학에 비해 평가절하당하고 냉대받았다는 것, 동아일보에서 (1934.3.6~7) 세계 10대 탐정 작가로 소개한 작가들의 이름들(오픈하임, 르블랑, 췌스터턴, 반 다인, 필립 포츠, 엘러리 퀸, 프리먼, 레오나드 메릭, 프레챠, 비-스톤), 조선뿐 아니라 일본 추리문학을 짤막하게 소개하는 글들(그중에서도 1918.7.7 중앙공론 정기증간호를 통해 "비밀과 개방"의 '예술적 탐정 소설' 특집이 발표되었으며, 여기에 타니자키 준이치로의 "두 예술가의 대화"(금과 은으로 개제), 사토 하루오의 "지문",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개화의 살인", 사토미 톤의 "형사의 집"이라는 유명 작가 작품이 실렸다는 사실!) 등 유념해서 볼 만한 내용이 많았습니다.

논문집이기에 단지 재미만 따지기는 어렵고, 2만 원에 가까운 가격이 부담스럽기는 하나, 식민지 조선에서의 추리소설이 어떤 시대적·사회적 배경 아래에서 어떠한 작가들에 의해 어떻게 창작되었는지 궁금하신 분들이라면 놓치지 말아야 할 책이라 생각됩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조선의 탐정을 탐정하다"와 함께 읽으면 더욱 좋을 것 같네요.

2009/09/11

절벽 - 현재훈 : 별점 3.5점

거의 백만년만의 추리소설 포스팅이 아닌가 싶습니다. 요새 너무 독서가 뜸했네요. 개인적으로도 바쁘고 여유가 없다보니 책을 지긋이 읽는 것 자체가 좀 무리더군요.

그래서 기분전환도 할 겸 이번에는 단편집에 손을 대 보았습니다. 이 책은 저도 잘 몰랐던 한국 작가 현재훈님의 단편집입니다. 우연찮게 검색을 통해 알게된 작가인데, 이렇게 새로운 작가분들을 알게될 때마다 깜짝 놀라곤 합니다. 척박한 국내 추리 문단에서 작품을 발표해 왔다는게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어쨌건 책 소개를 하자면, 이 책에는 "절벽", "곰팡이", "낙화", "검은 반점", "기만자", "부녀", "모래성", "흑무", "복제인간", "잠꼬대", "목소리", "족적" 이라는 총 12편의 작품이 실려있습니다. 몇몇 작품은 20여페이지 내외의 꽁트 분량이지만 양적으로는 풍성합니다. 수록작 대부분은 일본 사회파적인 느낌이 물씬 납니다. 그러나 암울했던 독재시대인 80년대 당시의 분위기를 작품과 캐릭터, 설정에 드러내면서 이야기와 연관시키는 본격적인 사회파 작품은 아닙니다("검은 반점"에서 노동운동이 약간 표현되는 정도입니다). 분위기만 따라갈 뿐이지요. 그래도 황금만능주의를 주요 테마로 하여, 범행의 동기와 수사의 과정을 치밀하게 보여주는 부분은 정통 사회파 작품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습니다.
또한 "낙화"나 "검은 반점"의 트릭은 작품과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기대 이상의 재미를 선사해 주며, "부녀"나 "모래성"에서의 경찰 수사에 대한 디테일한 설명은 한국 추리문학에 이런 작품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잘 짜여져 있어서 만족스럽습니다. 대부분의 내용을 심리묘사 중심으로 끌고나가는 문장력도 빼어납니다. 순수문학가 출신다운 내공을 유감없이 보여주네요. 한국적인 특색을 살린 몇몇 묘사들도 굉장히 반가웠고요. 그야말로 숨겨졌던 한국 추리문학의 재발견에 가까운 작품이랄까요.

그러나 단점 역시 분명합니다. 무엇보다도 "추리소설"로 보기에는 부족하다는 단점이 큽니다. 수록작 대부분은 '"A"가 저지른 사건에는 "B"과 관련되어 있고 "A"와 "B"가 티격태격하다가 전혀 엉뚱한 "C"에 의해 사건이 밝혀진다.'는, 반전도 아닌 깜짝쇼에 의존한다던가, 결국 범인이 자백하는 것으로 끝나는 작품이 너무 많습니다. 사실상 독자가 추리할 수 있는 여지가 거의 없어요. 

마츠모토 세이초 작품들과 설정 등에서 지나칠 정도로 유사성을 보이는 점도 거슬렸던 점입니다. 대표적으로 표제작인 "절벽"의 예를 들 수 있겠죠. 이 작품은 마츠모토 세이초 걸작 단편 컬렉션 상권에 수록된 "수사권외의 조건"의 설정을 많이 따라했거든요. 사실 백영호라는 인물이 복수를 위해 "8년"의 세월을 기다리며 자신을 감추는 과정과 범행에 대한 디테일(상상이지만)은 거의 똑같습니다. 작품 내에서도 "소설"에서 힌트를 얻었다고 할 정도니까요.
"잠꼬대"라는 작품에서 마츠모토 세이초의 작품과 주요 트릭을 언급하고 있으며, "곰팡이"는 "제로의 촛점"과 캐릭터 면에서 유사한 등 많은 부분이 겹칩니다.

그리고 작품마다 여러 고전과 명대사, 명언등이 언급되고 철학적 주제를 논하기까지 하는데 영 별로였습니다. 순문학에 대한 강박관념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던 탓입니다. 이런 쓸데없는 묘사를 들어내면 작품이 더 깔끔해졌을텐데 아쉽네요. "추리소설"이 그다지 문단에서 인정받지 못하던 70~80년대의 산물이라고 생각하니 씁쓸하기도 합니다.

그래도 아주 색다른 작품들이었고 좋은 독서였습니다. 비록 많이 알려진 작품은 아니지만 한국 추리문학을 논할때 빼놓으면 안되는 작품들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모든 작품이 뛰어난 것은 아니지만 역사적인 의미도 크기에 별점은 3.5점입니다. 85년도에 출간된 책인데 이미 절판되어 정보조차 찾을 수 없는 현실이 야속합니다. 구하실 수 있다면 한번 찾아서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절벽

이승준은 과거 가난했지만 사장의 딸 홍정아와 결혼하여 출세했다. 그러나 과거의 첫사랑과 우연히 조우하여 불륜을 저지르고, 과거 부하 백영호의 아내와도 불륜관계였다가 그 아내를 사망케하고 도주한 과거가 있었다. 이 사건으로 복수심에 불타던 백영호는 때를 기다린다... 

살인을 저지르면서까지 출세하고 싶었던 가난뱅이 청년과 황금만능주의는 "아메리카의 비극" 등 많은 작품에서 볼 수 있는 테마죠. 하지만 이 작품이 특이한 것은 출세를 위해 과거 교제했거나 임신한 여인을 살해한다는 것이 아니라 출세하고 난 뒤에 불륜이 시작된다는, 어떻게 보면 지극히 한국적인 전개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러한 부분들은 지나치게 통속적이 아닌가 싶기도 한데, 그래도 공범자가 있다는 트릭과 주인공들의 심리묘사가 잘 어우러져서 상당한 수준의 사회파 추리물로 만들어 졌습니다.

딱 한가지 아쉬운 점은 "백영호"라는 인물의 설정을 앞서 말했듯 마츠모토 세이초 작품에서 너무나 많은 것을 따왔다는 점입니다. 좀 무리한 설정이 아니었나 싶어요.

"곰팡이"

부유한 저명인사 허진영은 그녀의 과거가 양공주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김학수라는 인물에게 협박을 당하는데.... 

6.25 동란때의 숨겨야 하는 과거와 현재가 밀결합되고 있는 점, 그리고 과거에서 파생된 범죄가 범죄를 낳는 점 등 전형적 사회파 추리소설의 틀을 따르고 있는 작품입니다. 나름의 트릭과 사건 전개, 그리고 범인을 밝혀내는 과정도 상당한 설득력을 지니고 있고요.

그러나 마츠모토 세이초의 "제로의 촛점"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 그리고 협박자와 내연의 관계에 있어 같이 살해당한 여인을 쫓아다녔다(?)는 이유만으로 사건에 적극적으로 뛰어드는 탐정역의 박상호라는 인물이 별로 와닿지 않는다는 단점이 아쉽습니다.

"낙화"

화가인 내가 작품 활동을 위해 머무는 산장에 친구 박희주 부부가 찾아와 머물게 되었다. 박군은 아내 문영과의 사이가 멀어진 뒤 처제 난영과 불륜을 저지르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러던 중 문영이 산장 베란다 밑 절벽으로 떨어져 죽었다. 방은 밀실상태였고 문영의 손에는 박희주의 양복단추가 쥐어져 있던 상태였다. 

밀실 + 심리 트릭이 돋보이는 잘 짜여진 정통 추리물입니다. 지나칠정도로 치정극으로 치우쳐져서 통속적으로 흐를 수 밖에 없는 인물 설정과 상황 묘사들로 추리적인 매력이 많이 희석된게 아쉽지만 나름대로의 동기와 트릭, 범행방법 모두 납득할만한, 완성도 높은 작품이었습니다. 

한 가지 단점이라면 결말부분에서 너무 "끝"을 내려는 작가의 의도가 너무 튀었다는 것인데 그래도 작품에 흠집을 낼 정도는 아닙니다.

"검은 반점" 

신혼여행 중 신부 한미숙이 바닷가에서 실종된 후, 위도라는 섬에서 청산가리를 음독한 시체로 발견되었다. 시체가 입고있던 실내의가 바닷물에 오염되지 않은 점으로 미루어 바닷물로 흘러간 상태는 아니었지만, 구역내의 어떠한 배도 위도로 여자를 실어다 준 배는 단 한척도 없었다. 

시체가 어떻게 그 섬에 있을 수 있었을까? 라는 순간 이동 트릭을 테마로 한 작품입니다.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는 바꿔치기 트릭도 등장하는 등 추리적으로는 즐길거리가 많습니다. 해당 지역에 대한 상세한 조사가 바탕이 된 듯한 디테일도 마음에 들었고요.

하지만 범인이 시체를 은닉하거나 자연스럽게 유기하지 않고 부자연스러운 상태로 만든 이유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는 것과 좀 허무하다 싶을 정도로 맥없이 범인의 자백으로 작품을 마무리 지은 것 때문에 높은 점수를 주기는 좀 힘드네요.

"기만자" 

주인공의 독백만으로 이루어지는 기묘한 작품입니다. 과연 아내 희숙을 죽인것은 또는 죽게 만든 것은 누구인지, 경선을 죽게 만든 것은 누구인지, C군은 어떻게 된 것인지가 뒤엉켜서 흘러가는 복잡한 작품이기는 한데 썩 재미는 없더군요. 참신한 시도는 눈여겨 볼 만 하지만 제 취향은 아니었습니다.

"부녀" 

진아물산 사장 김인호의 큰딸이 밀실에서 청산가리에 의한 변사체로 발견되었다. 여러 정황으로 보아 그녀가 자살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형사 김익수는 치밀한 수사 끝에 여러 정황증거를 토대로 범인이 누구인지 알아내게 되는데... 

과거의 사건에 의한 범죄라는 테마는 사회파 추리소설에 흔히 나오는 것이죠. 이 작품은 과거의 죄를 벗어던지지 못하고 현재에 다시 범행을 저지른다는 줄거리와 더불어 현재 벌어진 사건에 대한 경찰의 치밀한 수사가 디테일하게 그려진 전형적 사회파 추리소설입니다.

작중에 경찰 스스로의 입으로 밝히듯 결정적 증거가 없다!라는 추리소설로서는 사실 치명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고, 결말도 범인의 자백으로 끝나는 등 "추리" 적인 요소로만 본다면 조금 부족하긴 하지만 전체적인 분위기와 전개는 지금 읽어도 충분히 가치가 있는 수작입니다. 디테일한 수사와 여러 단서를 통해 유추해내는 추리가 무척이나 설득력 넘치는 덕분입니다.

"모래성"

H부동산의 회장 신병호가 자신의 저택에서 잔인하게 살해당했다. 수사관 한정수는 제한된 단서와 증언을 토대로 서서히 범인을 추적해 나가는데... 

여러 용의자, 복잡하게 꼬인 단서들과 서로 다른 증언들이 교차되며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수사 추리물입니다. 수록된 작품들 중 가장 긴 작품 중 하나인데도 불구하고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범행을 하기 전 똥을 누면 운이 좋다"와 같은 속설까지 작품에 끌어들일 정도로 세밀한 자료조사를 바탕으로 소설 속 불가능 범죄가 아닌 현실의 실제 있는 강도사건을 보는 듯한 자세한 상황 및 배경 묘사가 일품이기 때문입니다.
발자국이나 침투경로, 새벽에 들은 소리, 왜 비상벨을 누르지 않았는지 등의 다양한 단서들을 필요할 때 마다 하나씩 던져주는 등 전개도 흥미진진하고요.

하지만 신병호의 과거와 현재, 강남 복부인들과의 관계라던가 실제 사건에서의 몇몇 미심쩍은 단서 등 벌려놓은 소재를 미처 수습하지 못하고 서둘러 끝맺은 마무리 부분이 너무나 아쉽네요. 보다 긴 중편 이상 길이의 본격 사회파 추리소설로 전개하였더라면 우리나라 추리문학의 고전으로 길이 남지 않았을까 싶은데 결말이 매끄럽지 못해서 평작에 머무른 것 같습니다. 그래도 다시 읽어봄직한 수작임에는 분명합니다.

"흑무"

문학교수 김용석은 학문에서 좌절하고 부인 이지영과의 관계도 원만치 못하여 술로 고독을 삼키던 중, 단골 술집에서 접근한 한 여인에게 끌려 그녀의 집으로 가게 된다. 

복수극이긴 한데 치밀한 맛이 떨어지는 소품입니다. 주인공의 단골 술집에서 접근한 여인, 그에게 원한이 있는 범인 등 한번 수사를 한다고 치면 걸려들 내용들이 너무 많아서 완전범죄로 가장하기에는 너무 미흡하지 않나 싶더군요. 작가의 순문학에 대한 강박관념이 느껴질정도로 토스토예프스키에 대한 문학적인 이론과 평가가 난무하는 것은 내용에 혼란만 더하고요. 그냥저냥한 평작이었습니다.

복제인간 

2015년 서울 교외의 아파트촌에서 주미리여사가 살해당했다. 사건과 더불어 복제인간 유아 성추행 살인사건이 벌어지는데... 

근미래를 무대로 하고 있지만 흉기가 총이라는 것과 복제인간 아이라는 설정을 제외하고는 SF적인 느낌은 전혀 들지 않는다는게 특이합니다. 사실상 복제인간 아이라는 것도 "쌍둥이"라는 설정을 위해 가져온 것이니 만큼 별다른 것이 없어서 왜 근미래를 무대로 묘사했는지를 도무지 알 수 없어요. 이야기 자체는 평이하고 예상대로 전개되기에 딱히 두드러지는 부분은 없습니다. 소품 수준의 평작입니다.

"잠꼬대" 

최건호는 아내 은영의 불륜을 의심하여 여러가지로 그녀를 시험해본다. 그러던 중 은영이 독극물에 중독되어 숨지고, 사건은 자살로 판명되는 듯 하지만.... 

한마디로 "의처증"을 극단적으로 묘사한 작품입니다. 집요하고 수법이 잔인한 편이라 좀 놀랍더군요. 시대를 앞서간 듯한 강박증에 대한 심리묘사도 대단하고요.

하지만 이러한 의처증 이외의 사건 전개는 너무 막 나가기에 좋은 평가를 하기 어려운 작품이기도 합니다. 사건이 주요 전개 내용과 전혀 상관없는 부분에서 끝나버리거든요. 개인적으로는 의처증 증세의 진상이 폭로되는, 즉 최건호는 의처증으로 의심받아 정신병원에 수용되지만 앞부분에서는 결백한 듯 했던 은영이 실제로 불륜을 저지르고 있었다는 식의 전개가 더 낫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목소리" 

박찬식은 사업과 연애의 라이벌이었던 정진호를 제거하고 그의 아내 미경과 관계를 맺었다. 그러나 미경이 살해되고 모든 정황이 그를 범인으로 지목하게 되는 상황에 빠지자 박찬식은 자신에게 누명을 씌운자가 누구인지 밝혀내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한다. 

도청과 가명에 대한 다양한 이론이 피력되는 복수극입니다. 하지만 "도청" 방법 이외의 추리적인 요소를 찾아보기 힘들기에 정통 추리물로 보기엔 무리가 있네요. 경찰의 수사로 인해 끝나는 결말 역시 많이 허무한 편입니다.

"족적" 

조숙경이 살해된다. 제1용의자는 불륜관계였던 화가 김기오. 그러나 김기오는 스스로 누명에 빠졌다고 강력하게 주장하는데... 

"애크로이드 살인사건" 이 연상되는 이색단편입니다. 화자이기도 한 주인공이 스스로의 진술을 사기친다는 설정이 동일하거든요. 하지만 이야기가 정교하지 않으며 별로 공평하게 전개되고 있지 않아서 굉장히 무리가 많습니다. 그 외에도 경찰이 확실한 정황증거가 있음에도 기소하지 않는 황당한 모습을 보이는 등 여러모로 평균 이하인 졸작입니다.

2012/12/09

조선의 탐정을 탐정하다 - 최애순 : 별점 4점

조선의 탐정을 탐정하다 - 8점
최애순 지음/소명출판

일제 강점기 시절 조선의 탐정소설에 대한 8편의 논문을 모은 한국문학사 서적.

8편의 논문은 각각 '탐정' 소설이 무엇인지에 대한 개론, 소파 방정환의 소년 모험소설, 채만식의 탐정소설 "염마", 김내성의 "백가면", 주요 번역 작품 소개, 번역 작품 중 독보적인 인기였던 모리스 르블랑과 루팡(뤼뺑) 시리즈의 번역 역사, 최서해의 번안 탐정소설 "사랑의 원수"(원작 "노란 방의 수수께끼")와 김내성 "마인"의 관계 연구, 방인근의 "마도의 향불"을 중심으로 한 식민지 조선의 여성 범죄와 팜므파탈 이야기가 주제입니다.

제목만 보아도 흥미진진한데, 내용도 딱딱하지 않고 상당히 재미있어서 쉽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예상 외로 꽤나 인기 있었던 근대 조선의 '탐정' 소설들과 왜 정통 본격물이 유행하지 않고 통속적인 연애 소설과 결합되어 진화하였는지에 대해 밀도 있게 쓰여져 있는 덕분입니다. 이때 조선에 본격물이 안정적으로 정착하였더라면 제가 좋아하는 고전 본격물이 다수 소개되었을 테고, 국내 추리 창작 환경도 많이 변했을 텐데 조금 안타깝기도 하네요.

또 저자가 실제 확인한 자료를 통해 소개하는 다양한 창작 및 번역 작품에 대한 디테일한 설명도 감탄을 자아냅니다. 방인근의 "마도의 향불"에 대한 소개는 마치 작품을 직접 읽은 듯한 느낌이 들 정도예요. 아울러 이렇게 많은 작품들이 존재했음에도, 현재 우리가 직접 읽을 수 있는 작품이 한 손으로 꼽기도 힘들 정도라는 현실도 아프게 다가왔고요.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자료가 풍부하게 실려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소파 방정환과 김내성의 아동 모험물을 다양한 텍스트와 비교 분석한 내용, "노란 방의 수수께끼"와 "마인"을 비교하여 "마인"의 가치를 재조명하는 연구, 그리고 한국형 팜므파탈을 당시 빈번했던 본부 살인 사건과 연계하여 소개하는 연구 등이 추리 애호가로서 특히 마음에 들었습니다. 이런 연구야말로 한국 추리문학사적으로 의미 있는 주제겠죠.

아무래도 모든 분께 추천드리기에는 조금 어려워 보이기는 하나, 식민지 조선을 무대로 한 추리소설을 창작하는 분께는 자료적인 의미에서라도 강력하게 추천드립니다. 그런 사람이 많지는 않겠지만… 그런 사람의 하나로서 별점은 4점입니다. 꼭 창작이나 자료적인 목적이 아니더라도,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분들에게 의미 있는 책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네요.

덧붙이자면, 6.25 전후 한국 추리소설사를 조망하는 후속권이 나와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생깁니다.

2020/02/22

추리소설 속 트릭의 비밀 - 에도가와 란포 / 박현석 : 별점 2.5점

추리소설 속 트릭의 비밀 - 6점
에도가와 란포 지음, 박현석 옮김/현인

일본의 추리 소설가 에도가와 란포의 전설적인 에세이입니다. 늦은 감은 있지만 드디어 출간되었네요. 오래 전 부터 존재를 알고 있던 책이기도 하고, 저 역시도 추리 소설(요리 중심이지만)에 관련된 에세이를 출간한 경험이 있기에 기쁜 마음으로 구입해 읽었습니다.

책은 1956년에 출간되었으며, 주로 1950년대 "환영성" 등 이런저런 잡지들에 기고했던 에세이들을 모아 놓은 구성입니다. 1953년, 에도가와 란포가 영미 탐정소설에서 예전부터 사용되던 트릭을 800여개 수집하여 쓴 "유형별 트릭 집성"이라는 글이 유래이며, 이 글로부터 여러가지 에세이들이 파생되어 이런저런 잡지들에 수록되었다고 하네요.

목차는 아래와 같습니다.

서 ―이 책의 탄생과정
1. 기발한 착상
2. 뜻밖의 범인
3. 흉기로써의 얼음
4. 특이한 흉기
5. 밀실 트릭
6. 은닉 방법에 관한 트릭
7. 프로버빌리티의 범죄
8. 얼굴 없는 시체
9. 변신 소망
10. 이상한 범죄동기
11. 탐정소설에 나타난 범죄심리
12. 암호기법의 종류
13. 마술과 탐정소설
14. 메이지의 지문 소설
15. 원시 법의학서와 탐정소설
16. 스릴에 대해서

각 주제별로, 에도가와 란포가 직접 이런저런 소설의 예를 충실히 들어가며 설명해 줍니다. 책의 특성 상 당연히 핵심 트릭이 까발려지고요. 노리즈키 린타로의 "나쁜 놈들은 추리 작가가 피를 토하는 노력 끝에 고안한 트릭을 쏙 빼다가 미스터리 가이드북이라는 이름으로 팔아먹는 녀석들이지. 이쯤 되면 기생충 수준이야."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그런 기생충같은 책인거지요.

그나마 다행인건 지금은 읽기 힘든, 오래전 잊혀진 작품들이거나 우리가 접하기 힘든 일본 고전들, 아니면 너무나도 유명한 작품이 많다는 것입니다. 에도가와 란포 자신의 작품 이야기도 많이 소개된다는 점에서는 약간의 면죄부를 줄 수 있지 않나 싶기도 하고요.
또 미스터리 가이드에서처럼 어떤 작품에서 어떤 트릭이 쓰였다고 명확하게 이야기해 주고 있지는 않습니다. 좀 두루뭉실, 애매하게 소개하고 있거든요. 뭐 그래도 알 사람은 다 알겠지만... 

그리고 거장이 쓴 책 답게, 단순히 트릭을 분류하여 정리하는 것에 그치지는 않습니다. 본인 스스로의 분석을 통해 깊이있는 식견을 보이는 글도 많아요. 마지막 16장인 "스릴에 대해서"가 좋은 예입니다. 스릴의 종류를 상세히 분류하여 이를 단계별로 설명하는 내용인데, 실로 이치에 맞고 설명도 적합하여 무릎을 치게 만듭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들을 예로 드는 것도 아주 좋았고요.

그러나 기대에 미치지 못한 글들도 제법 눈에 뜨입니다. 가장 큰 이유는 이 책이 처음 발표된 시점에서 60여년 이상 지난 탓이 가장 큽니다. 대표적인 예는 "이상한 범죄 동기"에서 결코 좋은 작품이라 할 수 없었던 "대통령의 미스터리"를 길게 설명하는 부분입니다. 이 책이 발표되었을 당시에는 일본에는 거의 읽어본 사람이 없는 책이라 특별히 소개했던 모양인데, 지금 상황에는 너무나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암호 기법의 종류"도 마찬가지로, 지금 읽기에는 다른 비슷한 책에 비하면 내용이 굉장히 부실한 편이에요. 메이지 시대 지문을 증거로 삼는 소설이 처음 등장했다는 역사적 사실만 소개하는 "메이지의 지문 소설"도 시대에 걸맞지 않은 이야기였고요.

아울러 하나의 트릭으로 완전히 자리잡은 서술 트릭이 빠져 있는 등, 현대적인 작품 속 최신 트릭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점도 문제입니다. 시대적으로 어쩔 수 없었더라도, 출판사나 후대의 작가가 증보판을 출간하는 선택지는 없었을까요? 제가 가끔 읽는 'oo의 지구사' 시리즈에 주영하 씨가 한국의 상황에 대해 수록한 글처럼, 다른 작가가 부록 형식으로 뒤에 최신 트렌드를 덧붙이는건 얼마든지 가능했을텐데 말이지요.

그 외에도 책의 완성도, 모양새 역시 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고 도판도 부실합니다. 또 책 속에서 소개된 작품이 국내에 출간되었는지 여부, 그리고 출간되었다면 무슨 제목으로, 어디에서 출간되었는지를 따로 소개해 주는 정도의 노력은 필요했어요. 어차피 추리 소설의 애호가들만 구입할 이런 류의 책에서는 필수적인 정보인데 여러모로 아쉽네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나름의 가치는 분명하나 여러모로 지금 읽기에는 낡은 결과물입니다. 책의 완성도도 부족하고요. 추리 소설의 대단한 애호가가 아니라면 구해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물론 추리 소설 애호가시라면 즐길 거리가 제법 되는 만큼, 한 번 읽어보셔도 나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게 누가 되었건, 누군가가 21세기에 걸맞게 내용을 수정하고 덧붙여 개정증보판 형식으로 재출간해 주면 더욱 좋겠습니다.

2026/01/23

수상탑의 살인 - 김영민 : 별점 2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다년간의 연구 끝에 지구 온난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을 절대 막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린 지구환경과학부 전 교수 박종호는 거액의 돈을 들여 동해 바다에 스스로 떠 있일 수 있는 거대 건물인 수상탑을 만들었다. 

종호는 특별히 선정한 몇몇 사람들을 수상탑으로 초대했는데, 초대한 당일 수상탑에 폭우와 강풍이 덮쳤고 휴대전화도 사용할 수 없게 되었으며 유일한 탈출 수단인 배마저 폭발해 버렸다. 그리고 다음 날 탑 정원 벤치에서 무언가에 찔려 죽은 종호의 딸 가온의 사체가, 종호의 잠긴 방 안에서 종호가 목이 베어 죽은 채 발견되었다.
사건 해결을 위해 마침 지도 교수와 함께 수상탑에 방문한 이론입자물리학 전공 대학원생 한규현이 탐정으로 나서는데...

"법의 체면"에 이어 한국 추리 소설은 올해 벌써 두 번째네요. 한국추리작가협회가 선정하는 제41회 한국추리문학상 대상 수상작이기도 합니다. 

국내 작품 중에서는 보기 드문, 정통 본격 미스터리를 정면으로 내세우는게 특징입니다. 특히 트릭은 공을 많이 들였습니다. 밀실 트릭과 장치 트릭이 사용되었는데, 플랫폼과 밸러스트 등을 이용해 파도에도 흔들리지 않고 물 위에 떠 있는 기묘한 구조의 수상탑 설정과 잘 결합되어 있거든요. 이 설정과 수상탑 방의 비정상적일 정도로 단단한 문, 기묘한 발코니 여닫이 구조가 트릭의 핵심이고요. 

박종호 사건에서 범인 가온은 범행 당시 수상탑을 바다 밑으로 가라 앉힌 뒤, 자기 방에서 5층 종호 방 발코니로 떠 갔습니다. 종호가 놀라 발코니로 나왔을 때 종호의 목을 칼로 그어 살해했고요. 한규현 등이 현장 조사를 했을 때 발코니 문은 열려 있었지만, 5층에서 아래로 내려갈 방법이 없어서 밀실이라고 생각했는데 사실 1층과 다름 없었던 상황이었던 겁니다.
종호의 애인 승희 살인 사건은 더 대담합니다. 가온은 약간의 조작(화약 폭발?)으로 승희 방문이 열리지 않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승희는 욕실 비상구로 탈출하려고 했는데, 위층인 3층 내부는 탑이 가라앉은 탓에 물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그래서 비상구를 열자, 4m의 물기둥이 승희를 직격해 사망하게 되었지요.

이렇게 약간의 특수 설정을 활용한 본격물적인 트릭은 꽤 괜찮습니다. 추리를 위해 필요한 정보와 단서도 공정하게 제공되고요.
수상탑도 본격물 무대로는 완벽합니다. 외부와 단절된 클로즈드 써클이며 그 자체가 트릭의 핵심이기도 하다는 점에서요. 이런 설정은 그간 한국 작품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부분이라서 신선하게 다가왔습니다.

그런데 단점도 명확합니다. 소설로 잘 읽히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전개가 느리고, 이야기를 끌고 가는 힘이 약합니다.
가장 큰 이유는 캐릭터입니다. 주인공 한규현은 현실적인 인물이지만 너무 평범합니다. 심약하고 수동적인 성격이고, 유머 감각도 전무하다시피해서 이야기를 이끌 만한 매력이 없어요. 독특한 공간과 어울리는 인물이 하나 쯤은 필요했지만, 그런 역할을 해주는 캐릭터는 끝내 등장하지 않습니다.
등장인물도 과도하게 많습니다. 석승준 교수, 대학원생 박규리, 음모론자 태용제는 이야기에서 실질적인 역할이 거의 없습니다. 사건 해결에도, 긴장감 조성에도 기여하는 바가 없고요. 분량만 늘리는 인물들로 빼는게 더 나았습니다. 

추리적으로도 문제가 많습니다. 범행 동기는 설득력이 부족합니다. 자신이 후원하던 아이가 아버지의 실험으로 죽었다는 이유로 아버지에게 살의를 품는다? 전혀 와닿지 않습니다. 종호와 승희가 방글라데시 사람들을 차별했다는 설정도 앞부분에서 충분히 설명되지 않고요. 동기는 뒤늦게 억지로 덧붙여진 느낌입니다.

그리고 트릭은 나쁘지 않은데, 세세한 부분에서 문제가 없지는 않아요. 우선 승희 사건은 가온이 사망한 뒤 일어났는데 누가, 어떻게 수상탑을 침수시켜 트릭에 사용될 상황을 만들었을까요? 물론 가온이 종호 사건을 일으킬 때 3층도 침수되었을 수는 있지만, 그 경우 다음날 범행이 발각될 우려가 있습니다. 생존자들이 범인을 찾기 위해 탑 전체를 수색할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종호가 수상탑이 아예 가라앉을걸 예상하고 수상탑의 발코니와 문을 침수에 대비하는 형태로 만들었다는건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수상탑이 가라앉은 건 가온이 완전범죄를 저지르기 위해 억지로 만든 상황입니다. 극한 상황을 고려하여 첫 방문한 한규현이 이상하게 여길 정도의 설비를 갖출 이유는 없습니다. 
이런 거대 구조물을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소녀가 손쉽게 휴대폰 앱으로 가라앉히고, 폭탄으로 보트를 폭파시키고 단단한 문을 봉쇄했다는 등의 설정도 억지스럽습니다. 아무리 천재라는 설정이 있다 하더라도 비현실적이에요.

무엇보다도 범인 가온이 종호 방에서 탈출하다가 청새치의 습격으로 죽었다는 진상은 솔직히 너무 어이가 없었습니다. 지나치게 작위적이니까요. 실제 사례를 좀 찾아보아도, 낚시 중이거나 배 위에서 잡은 청새치의 몸부림에 찔려 죽은 경우는 있어도 바다에서 공격받아 죽은 경우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불빛에 돌격한다는 습성도 없고요. 불가능 범죄를 위해 억지로 만든 설정에 불과합니다.
이후 가온의 시신이 부서진 수상탑의 정원 벤치 위에 놓여 있었다는 결과도 우연입니다. 시체가 떠내려가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정교하게 쌓아 올린 트릭을 이런 방식으로 마무리한건 큰 감점 요소입니다.

정보 제공이 지나치게 공정한 탓에 독자가 진상을 추리하기가 별로 어렵지 않다는 문제도 있습니다. 누가 봐도 '수상탑'의 기묘한 설정이 트릭에 사용되었으리라는걸 알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본격 미스터리로서의 긴장감과 지적인 쾌감을 오래 느끼기는 힘듭니다. "유리탑의 살인"처럼 나름의 반전이라도 선보였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한국 추리 소설로는 보기 드문 본격물이라는 의미는 있지만, 소설로서의 완성도는 낮습니다. 분량을 줄이고 밀도를 높였다면 훨씬 나은 작품이 되었을텐데 아쉽네요.

2015/06/26

미스테리아 1호 - 엘릭시르 편집부 : 별점 1.5점

미스테리아 1호 - 4점 엘릭시르 편집부 엮음/엘릭시르

장르문학 전문 레이블 엘릭시르에서 새롭게 미스테리 전문 잡지를 출간하기 시작했네요.

그러나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솔직히 기대에 전혀 미치지 못했습니다. 우선 산만한 편집과 어수선한 디자인이 가장 거슬립니다. 엘릭시르 단행본 수준을 생각하면 믿기지 않을 정도입니다. 편집 디자이너가 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엉망이었어요. 내지에 있는, 일반 기사를 검은 바탕에 흰 글씨로 만든 이유는 누가 설명 좀 해 주면 좋겠네요.

수록 기사도 대체로 실망스럽습니다. 일단 앞 부분의 단순 리뷰들부터 문제입니다. 온라인을 통해 쉽게 접할 수 있는 이런저런 책 소개와 하등 다를게 없는 탓입니다. 그나마도 최신작에 집중되어 있고요. 리뷰를 쓴 사람들도 애매합니다. 맥심 편집장이 추리소설을 좋아해서 리뷰를 썼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걸까요? 딱히 새로운 시각이 있는 것도 아닌데. 그녀의 화보라도 같이 실어주었더라면 몰랐겠지만요. 다른 기사들도 대체로 별볼일 없습니다.

제 생각에는 기획 의도부터가 잘못된 듯 합니다. 어차피 이 잡지를 구입한 사람은 정말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애호가일겁니다. 제목부터가 '미스터리(mystery)와 히스테리아(hysteria)라는 단어가 결합되어 '미스터리를 광적으로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뜻' 이라고 설명하고 있으니까요. 때문에 보다 매니악한 주제로 기사를 썼어야 했습니다. 예를 들어 리뷰라면 "온라인 서점 장르문학 MD가 추천하는 한국 추리소설 All-time best 10" 같은 주제로 책들을 선정한 뒤 소개하는 형식으로요. 이런게 한국 미스터리를 보다 성장시키고 싶다는 출간 의지와도 맞물리는 것이겠죠. 이런 점에서는 "판타스틱"의 김내성 특집호가 아주 좋은 예가 될 수 있겠네요. 주제도 매니악하고, 의미도 있으면서도 기사도 아주 좋았던 결과물이었으니까요.

"SCREENSELLER"라는 주제로 영화화된 작품들을 소개하는 기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원작과 작품의 퀄리티에 상관없이 최신작 기준으로 대충 선정한 느낌인데, 데니스 루헤인 인터뷰도 실려있는만큼 "살인자들의 섬"을 가지고 "원작 VS 영화" 형식으로 심도깊게 파고드는게 훨씬 나았을겁니다.

물론 괜찮은 기사도 있기는 합니다. 기존 문학작품을 분석하여 숨겨져있는 추리소설 정서를 파헤쳐주는 "MISSING LINK 집 안의 괴물들" 이라던가 "MAZE 『밀실 입문』 (1), 밀실은 ‘합법적’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그리고 법의학자 유성호의 "NONFICTION 검은 집, 엄마의 비밀"은 재미있게 읽었어요. 다른 곳에서 찾아보기 힘든 컨텐츠들이기도 하고요. 수록된 단편들도 읽을만 합니다.

그래도 다시 말씀드리지만 결론적으로는 기대이하였기에 별점은 1.5점. 2점을 줄 수도 있지만 14,000원에 육박하는 가격과 허술한 디자인과 편집으로 더 감점합니다. "판타스틱"은 5년전 출간물이기는 하지만 보다 두꺼웠는데도 불구하고 만원 이하였었죠. 2호째가 어떻게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상태라면 절대로 구입해 볼 계획이 없습니다. 추리 매니아가 호구는 아니니까요.

수록 단편만 따로 짧게 소개하자면 아래와 같습니다.

"배신하는 별"

비밀리에 보호되던 인물이 암살된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기 위해 그의 일기를 보고 창에서 보이는 "오리온 별자리"를 재구성한다는 내용.

상황 설정과 전개, 결말까지 완벽한 단편입니다. 배명훈 작가 소설은 처음인데 다른 작품도 찾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아주 약간의 단점이라면, 비약이 심하다는 것과 시리즈물이라 모든 설정을 이 단편만 가지고 이해하기는 좀 어렵다는 정도입니다. 별점은 4점입니다.

"누구의 돌"

사랑하던 동생이 실종된 사건을 추적해서 범인들을 알아내어 복수하고 남겨진 원수들은 사는게 지옥이 된다는 내용.

"나는 너가 지난 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 류의 설정인데 흡입력있는 전개와 묘사가 인상적인 작품입니다.

범인들을 알아내는 과정이 작위적이라는 단점 - 몇년전 찍은 사진이 고스란히 남아있고, 그걸 찾아내고, 마침 주인이 그 사람들을 기억하고 있고... - 이 있어서 감점하지만 재미만큼은 최고수준이에요. 별점은 2.5점입니다.

"구석의 노인"

정당 방위일 수 있는 살인사건의 재판을 참관하는 할머니가 제출된 몇몇 증거만으로 진상을 꿰뚫어본다는 내용.

정당 방위와 과잉 방어에 대한 법리학적 설명 등 작가의 전문성을 발휘한 몇몇 디테일은 나쁘지는 않지만 작품 자체는 기대 이하였습니다. 국내 추리소설 작가 중 정교한 트릭 면에서는 첫 손가락에 꼽힐만한 도진기 작가 작품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말이죠.
이유는 억지스러운 설정으로 일관하는 탓이 큽니다. CCTV로 잡은 화면에서 손의 반지가 보인다는 것 부터가 말이 안되죠. 설령 보였다 하더라도 드라마에 푹 빠진듯한 할머니의 추론일 뿐, 별다른 설득력도 없고요. 범인이 정말 스토커였을 수도 있는거잖아요? 때문에 별점은 1.5점입니다.

"신드롬"

외따로 떨어진 아파트 단지에 전염병이 닥치고, 그 와중에 아내가 사라진 상황을 그린 작품.

집단 광증에 대한 분위기, 세부 디테일 - 특히 유치원 버스에서 아이들을 데려가는! - 은 괜찮았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잘 모르겠더군요. 앞집 남자와 화자인 "나"의 시점에서 각각 상황을 설명하려 하는 것 때문에 많이 혼란스러웠어요. 결말도 당쵀 이해가 안되고요. 열린 결말도 정도껏 해야 했을텐데... 별점은 2점입니다.

"말을 탄 사나이 켈러"

매튜 스커더 시리즈 작가 로렌스 블록의 단편.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특히 자기 자신과 싸구려 소설의 카우보이를 동일시하는 도입부에서부터 시작하는, 인물들을 드러내는 묘사는 역시나 대단하다 싶었어요. 매튜 스커더가 직업만 킬러로 바뀐 듯 싶긴 한데, 주변 인물들을 "배려"하고 소모적인 살인을 피하고자 흑막을 죽이기 위한 장거리 여행을 떠난다는 것도 왠지 바보같지만 멋졌습니다. 운명의 수레바퀴는 돌아갈 뿐이라는 결말도 작위적이지만 나쁘지 않았고요.

거장이 심심풀이로 여유있게 써내려간 소품 느낌입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2009/02/08

5시간 30분 - 정건섭 : 별점 4점

5시간 30분 - 8점
정건섭/예술시대

11월 30일, 경부선 야간 특급열차에서 한 손님이 연기처럼 사리지고 그 손님의 침대칸 짐 안에서 인기탤런트 고강진의 시체가 발견된다. 이후 조연배우 진남포의 피습사건, 고강진의 MC파트너 이화영 납치 사건 등 방송국을 둘러싼 다양한 사건이 연이어 발생되며, 박문호 형사는 친구 민형규 기자와 함께 수사와 추리를 거듭한 끝에 사건의 진상을 밝혀낸다.

정건섭 선생님의 80년대 추리소설인 "5시간 30분"을 다시 완독하였습니다. 얼마전 한국 추리소설 몇개를 추천한 적이 있지요. 그런데 기억이 가물가물한 작품이 너무 많아서 추천하면서도 찜찜했었습니다. 그래서 읽은지 가장 오래된 이 작품부터 다시 읽어보았습니다.

박문호 형사 - 민형규 기자 시리즈로 컴비의 데뷰작 "덫"에 이어지는 두번째 작품입니다. 제목에서 느껴지듯 시간차 트릭이 가장 중요한 트릭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그 외에도 다양한 사건이 폭넓게 펼쳐져서 소소한 트릭과 설정의 잔재미가 곳곳에 잘 살아 있습니다. 80년대를 무대로 했기에 아날로그적인, 고전적인 트릭 파헤치기가 아니라 끈기와 집념의 수사를 통한 사건의 해결 과정을 사회파적으로 디테일하게 그리고 있다는 것 역시 매력적이고요.

또한 추리와 트릭이 모두 독자가 이해하기 쉽다는 것 역시 큰 장점입니다. 천재 탐정이 등장하여 자신의 추리를 독자에게 설득시키는 고전적인 맛도 좋지만, 이 작품처럼 추리의 기반을 형사가 미리 세워놓은 뒤 그 추리를 뒷받침하기 위한 수사를 독자와 공유하면서 사건에 대한 흥미와 관심을 계속 끌고가는 것 역시 상당히 흥미로운 전개 방법으로 보였거든요. 이렇게 쉬운 전개가 이어지다가 가장 결정적 트릭을 마지막에 터트리는 장면은 무릎을 치게 만들었고요. 굉장히 단순하지만 간과하고 있던 부분이었기 때문입니다.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인 "진남포 피습사건" 이 사실상 범인의 발목을 죄는 결과였다... 라는 조금은 어처구니 없는 설정이 있기는 합니다만, 그 외에는 사건의 동기, 범행, 트릭, 그리고 해결 과정 모두 최고급인 재미있는 작품입니다. 성적인 묘사와 자극적 설정이 난무했던 80~90년대 한국 추리소설에 실망하셨던 분들이라면 꼭 한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2020/06/13

미스테리아 23호 - 미스테리아 편집부 : 별점 2점

미스테리아 23호 - 4점
미스테리아 편집부 지음/엘릭시르

엘릭시르에서 출간하고 있는 국내 유일의 추리 전문 잡지로 2019년 3월 출간된 과월호입니다. 특집이 "명탐정 코난"이라 예전부터 관심이 있었는데, 알라딘에서 중고를 발견해서 저렴하게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실망에 가깝습니다. 과월호로 산게 다행이다 싶더군요. 특집인 "명탐정 코난"이 전혀 기대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명탐정 코난"이 "소년탐정 김전일"의 대 히트로 기획되어, 당시 신인 만화가였던 아오야마 고쇼에 의해 창작되었다는 첫 출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관련된 모든 정보를 소개해주고 있는 구성은 나쁘지는 않습니다. 문제는 나무위키 등 인터넷 상에 있는 각종 정보들과 별 차이가 없다는 점입니다.
"코난" 속 주요 등장인물 이름과 지명의 유래에 대한 소개가 대표적입니다. 주요 등장인물마다 이 특집 전체 분량만큼을 할애하고 있는 나무위키에 비하면 턱도 없는, 그야말로 기본 정보만 알려줄 뿐이라 무척 실망스러웠어요.
만화 속 에피소드를 클로즈드 서클, 밀실, 암호, 다잉 메시지, 독살, 마술사, 알리바이, 미스터리 투어, 물리 트릭의 8종으로 분류하여 소개하는 내용은 더 별로에요. 일단 분류부터가 말이 안되지요. 클로즈드 서클과 미스터리 투어는 이야기의 '상황' 이고, 밀실, 암호, 다잉 메시지, 알리바이, 물리 트릭은 '트릭' 이며, 독살은 방법, 마술사는 직업이라 아무리 보아도 동일한 수준의 분류가 아닙니다. 주요 소재를 끄집어 내었을 뿐입니다. 이런 식으로 키워드를 도출한 뒤 관련된 추리 소설 등을 풀어놓는건 그다지 어려울 것 같지도 않고요. '마술사'를 이야기하는데 마술사 탐정인 그레이트 멀리니 인용이 없는 등 내용도 부실합니다. 이런건 아무래도 저자 편의에 따른 특집 기사 페이지 보충용 글 뭉치가 아니었나 싶은 의심이 듭니다. 저만 해도 이런 키워드에 '변장'이나 '축구' 를 추가하여 이야기를 풀어내는건 금방 할 수 있거든요. 변장이 등장하는 범죄물은 수도 없고, 축구는 "파리의 밤은 깊어" 정도만 당장 떠오르지만, 다른 스포츠 물도 인용하면 충분히 한 꼭지 글은 만들 수 있으니까요.
이렇게 인터넷을 통해 쉽게 알 수 있는 정보, 무의미한 키워드 도출말고 코난에 대해 의미있는 컬럼이나 분석이 실리는게 더욱 좋았을겁니다. 추리 만화계 전반의 흐름과 함께 코난이라는 작품의 위치를 짚어주어도 좋았을테고요. 이 특집은 구태여 구해 읽을 필요없는 내용이었습니다.

또 특집 기사 외에도 책 소개라던가, 드라마 작가인 도현정 작가 인터뷰도 이번 호는 별로 재미가 없었습니다. 도현정 작가 인터뷰는 두 번째 핵심 기사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의 분량이기는 한데, 드라마들 전부를 보지 못했고 딱히 관심도 없어서, 드라마 중심으로 인터뷰가 이루어지는 내용은 읽어도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 너무 많았어요.

하지만 재미있는 기사와 글이 없는건 아닙니다. 와카타케 나나미의 "헌책방 어제일리어의 사체" 속 음식들을 작품과 함께 재미나게 소개하는 정은지 작가의 컬럼은 언제나처럼 포만감을 주는 좋은 글이었습니다.
법의학을 통해, 상세한 과학 수사를 통해 진상을 밝혀낸 과거 사건을 소개해 준다던가, 옛 사건을 기록한 논픽션들도 마음에 드는데 이 중에서도 1950년대 말, 한국 최초의 텔레비전 방송국 HLKZ의 화재 사건은 몰랐던 사건이라 아주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보험금을 노린 고의 방화인지, 정말 실수인지, 누군가의 음모인지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는 결말도 재미있었어요.
"겨울 여자"를 쓴 조해일의 범죄 소설 "갈 수 없는 나라"에 대한 글도 인상적입니다. 대중 소설의 1인자가 추리, 범죄 소설의 수법을 차용하여 사회파스러운 작품을 일찌기 발표했었지만, 작가 스스로도 한계를 느낀 범작에 머무른 이유를 비교적 정확하게 서술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 통해 해방 후 20세기까지 한국 추리 소설의 한파가 어디서 어떻게 비롯되었는지를 유추해 볼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에 수록된 소설들도 나쁘지 않습니다. 그 중에서도 한국 작가 송시우의 "누구의 편도 아닌 타미"는 엄지 척! 입니다. 작가의 단편집에 등장했던 서행물산 총무부 과장 임미숙이 등장하는 시리즈 단편인데 일상 속에서 벌어진 비일상적인 상황과, 그 속에서 빚어진 범죄를 일반인 임미숙이 해결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서행물산의 문제아 신입사원 추예나의 집을 찾아간 임미숙이, 그녀의 집에서 나타난 수상한 남자의 정체에 대해 궁금해하다가 추예나의 건방진 전화를 받고 진상을 깨다는 부분이 백미에요. 간단한 암호 트릭인데, 그 수준이 높지는 않지만 그래도 설득력은 충분했습니다. 다른 시리즈 작품을 꼭 찾아 읽어봐야겠어요.

실리아 프렘린의 "정말 필요한 경우"는 오싹, 불쾌하면서도 서늘한 반전이 있는 일종의 '기묘한 맛' 류의 작품입니다. 80이 넘은 독신 노처녀가 공짜 전화를 놓는게 위험하다고 말한 이유를 그리고 있는데, 앞 부분의 복선과 함께 하는 반전은 꽤 그럴싸 했습니다. 빼어나지는 않아도, 평균은 되는 좋은 작품입니다. 

마지막의 "가스등"은 히치콕 영화로 유명한 작품 시나리오를 3부작으로 나누어 1부를 싣고 있는데, 영화를 한 번 찾아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흥미진진하더군요. 굉장히 오래되었지만 서스펜스만큼은 명불허전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입니다. 다른 장점들이 없는건 아니지만 특집 때문에 구입했는데, 특집이 마음에 들지 않으니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듭니다. 마음에 들었던 논픽션들만 별도로 출간되기를 기다리는게 훨씬 낫아 보이네요.

2009/07/10

비련의 화인 - 김성종 : 별점 3점

비련의 화인 - 6점
김성종/해난터

잘나가는 상사맨 홍상파와 아내 송묘임의 초등학교 1학년 딸 홍청미가 유괴된다. 형사 허걸과 조태가 전담반으로 편성되어 수사에 나서지만, 범인은 홍상파에게서 몸값 1억을 교묘하게 탈취하는데 성공하고 결국 청미는 시체로 발견된다. 허걸과 조태는 끈질긴 수사 끝에 유력한 용의자로 과거 송묘임의 연인이었던 장만두를 검거하지만 의외의 사실이 밝혀진 뒤 진범이 누구인지 알게 되는데....

80년대 한국 추리소설로 김성종 선생님의 대표작 중 하나로 알고 있습니다. 한국 추리소설에 대한 저 자신의 내공이 너무 부족한 듯 싶던 차에 우연찮게 구하게 되어 읽은 작품입니다.

제목이 뜻하는 바를 잘 모르고 읽었는데, 작품은 상당한 "정통" 유괴극이어서 굉장히 의외였습니다. 당시 (80년대) 유명했던 몇몇 유괴사건 (영화 "그놈 목소리"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었죠?)를 의식한 듯한 설정인데, 전체적으로 상당히 탄탄하고 범인과 경찰과의 두뇌싸움도 치밀하게 그려져서 굉장히 재미있었습니다. 김성종 선생님의 막강한 필력으로 써내려간 유괴당한 아이 부모의 심리묘사도 작품에 몰입시키게 만들어 주고요. 몸값 1억원은 당시 금액으로는 어마어마한, 지금 가치로 한 10억은 되는 돈 같아서 더욱 흥미진진했습니다.

추리적으로도 괜찮습니다. 크게 두가지 트릭이 등장합니다. 가장 중요한 트릭은 유괴범이 돈가방을 바꿔치는 트릭인데 잘 고안되어 있더군요. 약간 어설퍼 보이지만 나중에 이유가 충분히 설명되며, 당시 시대상도 충실히 반영하고 있어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알리바이 트릭도 좋았어요. 트릭 자체는 별거 아니긴 한데 트릭을 밝혀내는 과정이 참신했고 치밀하지 못해서 좀 순진해 보이는, 어설퍼 보이는 트릭이라는 것이 외려 관련된 캐릭터와 잘 어울리고 현실적으로 보였기 때문입니다. 
경찰의 수사 과정 등도 잘 묘사하고 있어서 "추리물"로 보기에 충분한 수준을 갖추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일본 사회파, 특히 모리무라 세이이치 작품 ("한낮의 유괴" 등) 분위기와 유사하다는 느낌도 받았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재미가 절반정도 분량이었다는 겁니다. 결국 청미가 시체로 발견되고 난 뒤부터는 이야기가 뜬금없이, 한마디로 막 나가기 시작해 버리거든요. 쓰면서 이거저거 이야기를 억지로 추가한 티가 팍팍납니다.
예를 들면 범인이 누구인가 하는 점과 범인의 동기에 대해서는 상당히 설득력있게 설명하고는 있지만, 가장 중요한 "동기"에 있어서 이야기 중반에나 등장하는 인물이 핵심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건 공정하지가 못하죠. 아무리 생각해도 페어플레이가 아니에요.
그리고 혈액형 관련 설명은 장황하기는 한데 지금 시점에는 상식이라 지루했으며, 진범의 행동이 "오버" 였다는 점은 쉽게 지나치기 어려운 부분이었습니다. 그냥 이혼을 하면 깔끔했을 것을 왜 이런 거창한 연극을 하는지가 도저히 설명되지 않거든요.
무엇보다도 결국 경찰이 어떤 증거를 포착하지 못하고 잠복을 통해 검거한다는 결말은 너무 쉽게 간 느낌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범인들이 서로 만날 이유가 사실상 전무한데도 불구하고 설명없이 그냥 대충대충 넘어가고 있다는 것도 이해할 수 없고요. 검거 후 결국은 범인의 "자백"을 통해서 사건이 해결되는 결말 역시 제가 가장 싫어하는 결말이기도 해서 당쵀 마음에 들지 않네요.
그 외에도 청미가 죽은 과정이 어처구니가 없고 불필요한 캐릭터들이 많이 등장하는 것 등도 감점 요소였습니다. 조금만 더 치밀하게 전개했더라면 훨씬 좋았을텐데 전체적인 작품의 완성도 측면에서 아쉬움이 많이 남는군요.

국내 추리소설계의 거장이신 선생님의 작품이라 제가 이런 말을 드리는 것도 죄송스럽기는 하지만,
  1. 초반부터 장만두 캐릭터를 드러냈어야 함.
  2. 강치수의 다이잉메시지인 "243"에 대해서 좀 더 디테일하게 설명했어야 함.
  3. 2번과 연관하여 범인에 대한 실질적인 "증거"를 보여줬어야 함
  4. 송태하 같은 불필요한 캐릭터 (송묘임의 동생들)는 싸그리 정리했어야 함.
  5. 홍청미가 죽어야 하는 다른 결정적 이유를 제시하는 것이 더 좋았을 것 같음.
으로 완성되었더라면 더욱 좋지 않았을까 싶네요.

그래도 재미있게 읽었다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김성종 선생님의 인기와 명성이 허언이 아니라는 증명이 될 만한 작품이었으니까요. 별점은 3점입니다. 앞으로도 한국의 80년대 추리소설을 계속 찾아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덧붙이자면, 이 책에서 초등학생 1학년으로 나오는 피해자 홍청미양이 저보다 단지 2살이 어릴뿐이라는 것이 굉장히 신기했습니다. 지금은 한국 나이로 35살......^^

2005/06/15

베스트 미스터리 2000 1, 2 - 일본추리작가협회 편저 / 정태원 역 : 별점 3.5점

베스트 미스터리 2000 - 1 - 8점
일본추리작가협회 편저/태동출판사
베스트 미스터리 2000 - 2 - 8점
일본추리작가협회 편저/태동출판사

소문만 듣던 책인데 인터넷 서점에 마침 재고가 있길래 냉큼 구입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일본 작가들의 단편선이니 구입 안 할 수가 없더라고요. 제목과 서론을 보니 일본 추리작가 협회에서 직접 선정한 2000년도판 베스트 단편선 쯤 되는 것 같은데, 우리나라에서 한국 추리 작가 협회가 매년 출간하는 베스트 추리소설 모음집과 유사해 보입니다. 

워낙 일본이 추리 강국이라 저변과 시장이 넓은 덕분이겠지요? 수록된 작품의 양이 상당합니다. 두 권으로 나누어져 출판되었는데 1권에는 11편, 2권에는 9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작품들 수준도 우수합니다. 재미도 있고요. 정말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읽을 수 있었습니다. 정통 추리물을 비롯해서 형사물, 공포스릴러, 환상단편, 인간 드라마, 심리 서스펜스에서 패러디까지 각종 쟝르를 넘나들며, 전개와 설정도 다양하기 때문입니다. 읽으면서 감탄을 금치 못하겠더라고요.
작가군도 풍성합니다. 사노 요, 노리츠키 린타로, 이마무라 아야, 모리 히로시, 니카이도 레이토 등 유명 작가들은 물론 끝부분 작가 소개에서 "정확한 정보를 알 수 없다"라고 표시된 작가도 상당수 있을 정도니까요. 이렇듯 작가진만 보더라도 정말로 다양한 작품들 중에서 엄선했다는 느낌을 강하게 전해 줍니다. 

전체적으로 우수하지만, 개인적으로 1권의 베스트는 사기극 "영원표묘", 정통추리물에 가까운 "사용중"과 "일곱통의 편지"이며 2권의 베스트는 정통 추리 "흉소면", "까마귀의 계시"였습니다. 물론 다른 작품들도 평균 이상 수준은 충분합니다.

번역이 약간 깔끔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는 점, 조금 더 작은 판형으로 예쁘게 장정하였다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은 있지만 이렇게 번역되어 출판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할 일입니다. 추리 강국으로서의 일본의 진수를 최소한의 노력으로 맛볼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습니다. 수고롭더라도 구해볼 가치가 있는 책으로 별점은 3.5점입니다. 

추후 2000년만 아니라 다른 년도의 베스트 단편 모음집도 소개되면 좋겠네요. 자세한 각 단편 소개는 아래와 같습니다.

1권

1. 잠들 수 없는 밤을 위하여 - 오리하라 이치 : 

 잡지의 "고민 상담실"의 투고와 신문기사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독특한 구성의 작품으로 소품에 가깝습니다. 추리물이라기 보다는 드라마에 가깝지만 마지막의 여운이 인상적이었어요.

2. 거짓말쟁이의 다리 - 사노 요 : 

 형사수사물. 두 형사의 대화로 주거침입- 강간미수 사건의 뒤에 감추어진 진상이 서서히 밝혀지는 전개로 잘 짜여져 있는 작품입니다. 다만 마지막 반전은 약간 억지스럽습니다.

3. 배반의 푸가 - 스즈키 기이치로 : 

영안차 운전수라는 독특한 직업의 인물을 주인공으로 하여 한 여자의 집착을 서늘하게 그린 소품. 약간 로얄드 달 느낌이 드는 기묘한 작품인데, 조금 더 압축했으면 좋았을 것 같습니다.

4. 영원표묘 - 구로카와 히로유키 : 

미술상을 무대로 한 독특한 사기극으로 만화 "갤러리 페이크"같은 느낌을 전해줍니다.
초반에 제공되는 명확한 단서를 통해 결말까지 이끌어내는 추리극적인 성격이 강하면서도, 독자까지 속이는 세련된 전개와 트릭이 돋보입니다. 작가가 미대 출신의 전문가라 그런지 이야기에서 보이는 미술품에 대한 묘사도 괜찮았고요.

5. 지난날의 사랑 - 오사카 쓰요시 :

사립탐정이 여배우의 의뢰로 애인의 불륜 뒷조사를 한다는 내용으로, 별다른 추리적인 요소는 없지만 이야기 전개는 깔끔하고 무난합니다. 베스트로 선정되기에는 지나치게 심심한게 아닌가 싶지만요.

6. 얼음설탕 - 후지모토 유키 : 

한 주부가 과거에 사라졌던 애인과 우연히 재회하면서 자신의 감정을 추스리지 못하고 점점 수렁속으로 빠져드는 서스펜스 드라마입니다. 여성 버젼의 스텐리 엘린 단편같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 정도로 심리 묘사가 탁월하며 반전도 인상적입니다.

7. 야수의 기억 - 고바야시 야스미 : 

호러 스릴러의 성격을 띈 작품입니다. 다중인격의 소유자로 다른 인격일 때의 파괴적인 행동에 괴로워하는 주인공을 잘 묘사하며, 추리적인 부분도 확실한 편이고 반전도 좋습니다.
하지만 독자를 속이기 위해서 전개가 필요 이상으로 복잡한건 감점 요인이네요.

8. 은폐꾼 - 가스미 야스시 : 

사회적 파탄을 불러올 수 있는 불상사를 국가 차원에서 사전에 방지하기 위한 단체가 등장하는 소품입니다. 설정과 전개가 스티븐 킹의 "금연 주식회사"와 유사하지요. 기발한 아이디어는 좋았는데 후반 전개는 좀 뻔해서 아쉽습니다.

9. 사용중 - 노리츠키 린타로 : 

한 추리작가가 살해되었는데, 그가 생각한 추리 소설의 전개대로 이야기가 흘러간다는 독특한 구성의 작품입니다. 스텐리 엘린의 작품을 인용해가며 전개되는데, 밀실 트릭에 대한 생각은 노리츠키 린타로가 직접 이야기 하는 것 같아 더욱 재미있더군요.
결정적 약점이 하나 있기는 하지만 짧은 분량으로 스릴과 서스펜스를 충분히 전해주는, 단편의 교과서 같은 작품입니다.

10. 일곱통의 편지 - 아사기 마다라 : 

동거하던 남자의 어머니와 왕래한 편지로 이면에 숨겨진 살인사건이 밝혀지는 작품으로 전개도 독특하지만 추리적으로도 일품입니다.

11. 먼 창 - 이마무라 아야 : 

어머니의 죽음과 자신이 불구가 된 사고로 환상의 세계에 몰입하는 소녀의 이야기로 "환상특급"에 나올법한 이야기네요. 소녀의 일기로만 전개되는 구성도 독특하고요. 재미도 있고 후반부의 아버지의 일기에서 밝혀지는 진상도 좋습니다. 다만 결말이 예측 가능하다는건 단점이에요.

2권 

시효를 기다리는 여자 - 니이츠 키요미 : 

15년 전에 일어난 살인 사건의 시효가 끝나기 직전 진범의 심리와 사건의 진상을 묘사한 작품. 독자를 속이는 소설만의 효과로서 이루어진 트릭이 인상적입니다. 하지만 반전과 결말은 수긍하기 조금 어렵더군요.

부하 - 곤노 빈 : 

부하를 믿고 신뢰한 경부보가 방화범을 잡는다는 내용의, 인간 드라마와 추리물이 잘 섞여 있는 소품입니다.

흉소면 - 기타모리 코 : 

"미스터리 민속탐정 야쿠모" 처럼 대학의 민속학자가 한 고택의 오래된 가면을 둘러싸고 벌어진 살인사건을 해결하는 본격 추리물입니다. 트릭과 전개도 깔끔하지만, 무엇보다도 단편에서 소홀히 취급되기 쉬운 범인의 동기까지 설득력있게 등장하는게 마음에 듭니다.

독점 인터뷰 - 노자와 히사시 : 

유괴 살인 사건의 중요 참고인이 독점 인터뷰를 진행하다가 사건의 진상이 드러난다는, 약간 사회파 느낌을 전해 주는 작품입니다. 사소한 단서로 진상이 밝혀지는 계기가 마련된다는 구성은 취향이 아니라서 별로였지만, 복잡한 인간관계가 얽힌 드라마가 잘 살아있어서 읽는 재미는 충분합니다.

석탑의 지붕 양식 - 모리 히로시 : 

사이카와와 모에 커플이 등장하는 단편입니다. 하지만 둘이 탐정으로 등장하는건 아닙니다. 모에와 그녀의 친구들이 모여서 사이카와의 수수께끼에 대한 해답을 내놓는 이야기거든요. 결국 정답은 집사가 맞춰버린다는 "흑거미 클럽"과 유사한 결말도 독특하고요.
그러나 고대 인도의 수수께끼의 석탑 지붕 양식에 관한 수수께끼라는 설정이 그다지 흥미롭지는 않았으며 무엇보다도 "정답은 아무도 모르지만 개중 설득력 있는 것"이라는 결말은 반칙이라 생각됩니다. 결론적으로 작가의 명성에 값하는 작품은 아니었습니다.

아가씨 출범 - 와카다케 나나미 : 

메이지시대를 무대로 천방지축 아가씨의 탈출 계획을 막는 하녀의 기지가 발휘되는 소품입니다. 일본어를 이용한 트릭이 하나 등장하지만, 대단한 수준은 아니에요. 유쾌한 분위기는 즐거웠지만요.

까마귀의 계시 - 우타노 쇼고 : 

동네 쓰레기를 마당에 모아놓는 정신병에 걸린 여인이 살해당한 시체로 발견된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정통 추리물입니다. 사건 자체가 백만분에 하나 있을까 말까한 우연에 의해 발생했다는 점만 뺀다면, 독자에게 공정한 단서를 제공하면서도 전개도 깔끔하고 흥미롭게 진행되는 좋은 작품입니다.

생환자 - 츠부라야 나츠키 : 

산악 경비대 대장을 주인공으로, 산에서 발생한 알 수 없는 프로 등산인의 추락사를 놓고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 소재와 설정이 독특하며 등산에 대해 전문가적인 지식이 등장하는 이야기는 재미있는데 아쉽게도 추리적으로는 별로였습니다. 별로 평가할 건덕지가 없었어요.

가스케의 세기의 대결 -니카이도 레이토 : 

사람들이 식사 대신 재미있는 추리소설을 읽는 장소인 "독서 레스토랑"을 무대로 주인공 가스케가 건방진 싸구려 평론가 고토쿠를 추리소설 품평 내기를 통해 혼내준다는 이야기입니다.
독서 레스토랑과 추리소설 품평 내기라는 설정도 참신하고, 등장하는 방대한 추리 작품에 대한 지식도 상세한데다가 무엇보다 유쾌한 꽁트 분위기가 즐거웠던 작품입니다. 작가가 평론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엿보이는 점도 재미있었고요. 

하지만 전개는 로얄드 달의 "맛"에서의 포도주 맞추기 게임과 거의 유사해서 신선함은 떨어집니다. 트릭도 추리적으로 평가하기에는 문제가 많고요. 여러모로 높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습니다.

2005/08/01

대표작가 대표소설 2 - 한국 추리문학 [신예상] 수상작가 대표소설 : 별점 1점

해난터에서 발간한 한국 추리문학 기획 앤솔로지 중 한권입니다. 제목 그대로 "한국 추리 작가 협회"에서 주관하는 신예상을 수상한 작가들의 대표작을 골라 수록한 책입니다.

요사이 추리 소설 시장이 활성화 되고 있지만 거의 번역물이니 국내에도 새로운 작가들이 좀 괜찮은 작품을 많이 발표해 주어야 할 때죠. 그러나 이 책은 현재의 한국 추리 문학계의 침체를 잘 보여주는 결과물이라고도 생각됩니다. 그만큼 완성도가 떨어지는 작품이 너무 많이 수록되어 있거든요. 베스트를 꼽기가 어려울 만큼 단편으로서의 기본 완성도가 의심되는 작품이 절반입니다. 단편이라고 너무 쉽게 생각하는걸까요? 저는 단편이 장편으로 가는 첫 스텝이라고 생각하는데 말이죠...
또 너무 설명적인 부분이 많거나 적고 추리물로서의 가치보다 드라마에 치중하는 경향이 너무 많은 것도 불만스럽네요. 보다 임팩트있는 깔끔한 완성도를 짧은 페이지에서나마 보여줄 수는 없는걸까요?
그나마 최소한의 완성도를 갖췄다고 생각되는 것은 "목격자의 증언은"과 "2시간 10분", "더블 플레이", "다이어트를 하는 여자", "도시의 신기루", "천생연분" 정도이며, 개중 베스트는 "다이어트를 하는 여자" 를 꼽고 싶네요.

그러나 이런 책을 제값주고 산다는 것이 너무나 아깝습니다. 수고해주신 다른 작가분들께는 죄송하지만 몇몇 작가는 정말이지 독자에 대한 기본 예의조차 없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였으니까요. 어째 단편만큼은 수십년전의 김래성 선생님때보다도 퇴보한 듯한 느낌만 계속 들어 씁쓸합니다. 별점은 1점입니다.

작품별 상세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정현웅 "목격자의 증언은"
정현웅씨는 그래도 기본기는 있으신 작가이니 만큼 어느정도 단편으로서의 품격과 완성도는 갖추고 있는 작품으로 1인칭 화자에 의해, 그것도 수사관을 주인공으로 해서 신선한 느낌을 주는 본격 트릭 미스터리입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트릭이 그다지 기발하지도 않고 설정면에서 헛점이 조금 있어서 높은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유우제 "2시 10분의 비밀"
새벽 2시 ~ 2시 30분 사이에 벌어지는 연쇄 방화사건에 있어 시간대에 감추어진 비밀을 소재로 하고 있는 작품으로 전개면에서는 동서 추리문고 "특별요리"에 같이 실려있는 "오터모올 씨의 손"이라는 작품이 연상되나 나름 기발한 면이 있어 마음에 들었습니다 . 하지만 주인공 이름을 "C기자", "경찰관 P" 하는 식으로 표현한 것은 왠지 성의가 없어보였고 불필요한 에필로그를 말미에 집어 넣은 것은 군더더기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보다 깔끔하고 임팩트 있는 반전과 내용을 보여주었으면 더욱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한대희 "빠빠라치"
누드 사진작가에게 의뢰가 들어온 부부관계 촬영 요청에 대한 이야기인데 일단 추리물은 아니었습니다.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소재와 이야기로 구성되어 흥미는 조금 가지만 내용면에서 너무 시시하고 허무한, 평균 이하의 작품이었습니다.

김상헌 "당신은 그대를 아는가"
서로 이웃인 두 부부의 여행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루고 있으며 외국 단편에 흔히 봄직한 소재와 전개로 괜찮은 작품이 나올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반전이 시시하고 설득력이 떨어지더군요. 좋은 점수를 주기는 역시나 어려워요.

강형원 "제임스 본드라 불리운 사나이"
한마디로 제임스 본드를 다룬 팬픽, 그 이상의 작품이 절대 아닙니다. 웃기기는 합니다만 인터넷 유머 게시판 수준. 이게 대표작이라니 다른 작품의 수준은 과연...?

안광수 "복수연맹"
제목과 내용이 엇박자로 노는 듯한 작품입니다. 화자가 "복수 대행업"의 타당성을 주장하며 "복수연맹"이라는 회사의 창업 결심에 대한 서론부가 지나면 갑자기 화자가 절대 실패하지 않겠다며 2개의 실패한 범죄극을 서술하는 구조입니다. 2개의 이야기중 2번째 이야기인 "살인게임"은 꽤 독창적이고 재미있지만 결국 2개 다 추리퀴즈 이상의 완성도를 보여주진 못합니다. 하나의 이야기에 집중해서 단편 자체로서의 완성도를 보다 높이는게 좋지 않았을까 싶네요.

장세연 "더블 플레이"
외도하는 남편과 상대자에 대한 짤막한 복수극을 다루고 있는데 여백의 미가 잘 살아있는 작품입니다. 문제는 너무 생략과 여백이 많아 설득력이 떨어지는 점인데 이 정도면 뭐 나름대로 괜찮은 편이에요. 다른 작품들이 워낙에 수준 이하라 괜찮아 보이는걸지도?

강종필 "K의 기록"
한 킬러의 이야기. 제가 보기에는 추리물은 절대 아니며 결말도 허무하기 그지 없습니다. 뭐라 할 말이 없습니다...

백휴 "다이어트를 하는 여자"
다이어트에 집착하는 아내를 가진 한 남자에 관한 단편으로 범죄가 등장하지는 않지만 꽤 유머스러우면서도 반전의 묘미가 살아있는 좋은 작품입니다. 백휴씨 작품은 몇개 읽지 못했지만 항상 기본기는 있는 작가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 작품에서도 평균 이상의 내공을 보여줘서 만족스럽네요.

장근양 "도시의 신기루"
한 유학파 박사가 현금 마련을 위해 은행을 터는 내용인데 은행을 터는 범죄에 대한 설정과 묘사가 굉장히 좋습니다. 하지만 주인공의 과거사와 주변 인물에 대한 불필요한 묘사는 이야기의 본질을 오히려 흐리는 듯 하여 안타깝네요. 결말도 사족이었다는 생각이 들고요. 워낙 범죄장면에 대한 내용이 좋아 더욱 아쉽습니다.

황세연 "천생연분"
서로에게 살의를 품은 부부의 이야기인데 작가가 아무래도 외국 단편을 상당히 많이 읽었다라는 생각이 드는 설정과 내용입니다. 남편이 왜 술을 마셨는지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지만 전체적으로 이야기가 깔끔하고 흥미진진한 좋은 작품입니다. 그래도 앞에 말한 대로 외국 단편들에서 본 듯한 느낌이 좀 강해서 독특함이나 신선함은 별로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2013/07/22

일본의 검은 안개 (상) - 마쓰모토 세이초 / 김경남 : 별점 2.5점

일본의 검은 안개 - 상 - 6점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김경남 옮김/모비딕

마쓰모토 세이초가 발표하여 일세를 풍미했던 전설적인 논픽션이 드디어 정식으로 번역되어 출간되었습니다. 이런 책까지 읽을 수 있게 되다니, 정말 세상이 좋아졌다는 생각이 듭니다. 본 작품은 총 2권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1권에는 모두 6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목차는 아래와 같습니다.

  • 『일본의 검은 안개』를 헤쳐가는 방법 - 모비딕 편집부 서문
  • 1장: 출근길에 사라진 총재 - 시모야마 국철총재 모살론
  • 2장: 10분간 2,000피트, 고도 유지 - 목성호 추락 사건
  • 3장: 누가 자전거를 쐈는가 - 시라토리 사건
  • 4장: 쓸모 있는 자와 쓸모 없는 자 - 라스트보로프 사건
  • 5장: 혁명을 파는 남자 - 이토 리쓰 사건
  • 6장: 검은 돈의 뿌리, 빙산의 일각 - 2대 부정부패 사건

사회파 추리소설은 사회 고발적인 요소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논픽션과 유사한 면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사회파 추리소설의 거장이자 실제 언론인이기도 했던 마쓰모토 세이초가 쓴 논픽션이, 단순한 사건 추적을 넘어 흥미로운 추리소설을 읽는 듯한 재미를 선사해 주는건 그렇기 때문이겠지요.

다만, 이 책에 실린 사건들은 발표 당시 일본에서는 큰 반향을 일으켰겠지만, 반세기가 지난 오늘날 한국 독자들에게는 다소 생소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는 점은 아쉬웠습니다. 저 역시 이름이라도 들어본 사건은 ‘시모야마 국철총재 사건’ 하나뿐이었거든요. 그런 이유로 별점은 2.5점입니다.

물론 거장의 대표 논픽션이라는 점에서 가치 있는 작품임에는 틀림없지만, 같은 논픽션이라면 국내 추리 애호가 분들께는 다루는 사건 자체가 좀 더 흥미로운 "미스터리의 계보"를 먼저 추천드립니다.

"출근길에 사라진 총재"
‘빌리 배트’에도 등장했던, 시모야마 국철총재가 실종 후 열차에 치인 시신으로 발견된 사건을 다룬 이야기입니다. 수사는 자살로 종결되었지만, 마쓰모토 세이초는 이를 미군정 G2와 GS 간의 권력 다툼에서 비롯된 모략으로 해석하며 다양한 정황과 증거를 통해 설득력 있게 제시합니다.

특히 시모야마 총재의 속옷에만 묻어 있던 기름, 절단된 시신과 멀쩡한 겉옷, 사체에서 나온 색색의 가루 등은 모두 치밀하게 분석되며, 그가 어디에 감금되었는지를 추리하는 장면이나 기차 시간표를 통해 사건을 재구성하는 장면은 마치 본격 추리소설을 읽는 듯한 재미를 줍니다. 논픽션으로도, 재미로도 뛰어난 이야기로, 꼭 한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10분간 2,000피트, 고도 유지"
1952년, 33명의 승객을 태운 채 추락한 ‘목성호’ 항공기의 사고를 다룬 이야기입니다. 유일한 여성 승객이었던 오하라인 요코가 다이아몬드 밀수 공작의 희생양이라는 가설도 등장하지만, 점령기 미군의 실수였을 가능성으로 마무리되어 결말은 다소 싱거웠습니다. 분량도 25페이지 남짓으로 짧은 탓에, 여러모로 큰 인상을 주지는 못하네요.

"누가 자전거를 쐈는가"
삿포로에서 발생한 경찰관 시라토리 사살 사건의 전말을 다루고 있습니다. 공산당 조직을 해체하려는 모략이라는 시각에서 접근하지만, 사건 자체가 한국 독자 입장에서는 그리 흥미롭지 않아 몰입이 어려웠습니다. 유사한 일이 한국에서는 자주 벌어졌던 탓도 있을 것 같습니다.

"쓸모 있는 자와 쓸모 없는 자"
주일 소련 대표부의 라스트보로프가 실종 후 미국으로 망명한 사건을 추적합니다. 처음에는 대단한 인물인 줄 알았지만, 실제로는 이렇다 할 정보도 없는 인물로 밝혀져 다소 허무하게 느껴졌습니다. 냉전기의 일본이 미·소 간의 첩보 충돌 지대였다는 역사적 의미는 느껴졌지만, 지금의 독자들에게는 큰 흥미를 주기 어렵습니다.

"혁명을 파는 남자"
일본 공산당 내 실력자였던 이토 리쓰의 제명 사건을 통해 그의 이중 스파이 행위를 조명한 이야기입니다. 개인적 욕심과 비겁함으로 인해 좌우를 오가며 배신을 일삼는 인물의 행보는 읽는 재미가 있었으나, 스파이 행위 자체는 단순한 이간질에 불과해 큰 임팩트는 없었습니다. 중국에서 27년간 감옥 생활을 했다는 후일담은 충격적이지만, 그만큼의 무게감 있는 인물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검은 돈의 뿌리, 빙산의 일각"
쇼덴 사건과 조선 사건이라는 두 건의 부정부패 사건을 다룹니다. 쇼덴 사건은 GHQ와 관련된 정치적 공작이 얽혀 있어 흥미보다는 복잡한 뒷사정 중심으로 흐르고, 오히려 평범한 고발에서 시작된 조선 사건 쪽이 훨씬 인상 깊었습니다. 결국 수사는 정치적 이유로 흐지부지 마무리되며, 지금의 대한민국 현실과도 유사하다는 점에서 씁쓸함이 남는 이야기였습니다.

2010/07/16

알라딘 서재 : 여름맞이 추리소설 10문 10답 이벤트!

참여는 여기서


1. 가장 최근에 완독한 추리(장르)소설은?
존 딕슨 카 "아라비안 나이트 살인".

2. 당신이 살해당했다고 가정했을 때, 사건해결을 맡아줬으면 하는 탐정은? 반대로 절대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은 탐정이 있다면?
가정은 마음에 안들지만... 일단은 마이크 해머. 이유는 내 복수도 같이 해 줄 거 같아서.
절대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은 탐정은 귀차니스트 네로 울프.

3. "휴가길, 이 책 한권 들고 가면 후회없다!" 널리 추천하고픈 추리(장르)소설은?
여름에는 닥치고 호러!라면 "검은 집".
서스펜스와 스릴을 느끼고 싶다면 "자칼의 날".
하드보일드의 새로운 매력에 빠지고 싶다면 "그리고 밤은 되살아난다".
짤막한 단편의 매력은 "특별요리".
여유가 허락된다면 "경성탐정록"도 한번 읽어주세요~

4. 지금 당장 책 살 돈이 10만원 생긴다면, 가장 먼저 장바구니에 담을 추리(장르)소설은?
"주석달린 셜록 홈즈 2", 이미 담겨 있습니다.

5. 지금까지 읽은 추리(장르)소설 중 가장 충격적인-예상외의 결말을 보여준 작품은?(단, 스포일러는 금지!)
반전이 중요한 서술트릭물이 아닌 장르에서 꼽자면 로스 맥도널드의 "소름".

6. 우리 나라에 더 소개되었으면 하는 추리(장르)소설 작가가 있다면?
일본작가 다카키 아키미츠. 유명세에 비하면 너무 소개가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7. 올해 상반기 출간된 추리(장르)소설 중 최고작을 꼽는다면?
개인적으로 읽은 작품 중 올해 상반기 베스트는 딕슨 카의 "유다의 창".

8. '셜록 홈즈'와 '아르센 뤼팽' 역 배우를 내맘대로 캐스팅해본다면?
홈즈는 로버트 다우닝 주니어가 아주 괜찮았어요. 한국 배우로는 역시나 김명민.
아르센 뤼팽은 뺀질뺀질한, 그야말로 '신사'에 왠지 흑발이어야 될 것 같으니 금성무가 어떨까 싶습니다. 너무 동양적인가...

9. 지금까지 읽은 추리(장르)소설 중 가장 '괴작'이라고 생각하는 작품은?
에도가와 란포의 "고구마벌레".

10. 생사에 관계없이, 실제로 가장 만나보고 싶은 추리(장르)소설 작가가 있다면.
당연히 코난 도일 경!

2015/12/02

재미가 없으면 의미도 없다 - 김홍민 : 별점 2.5점

재미가 없으면 의미도 없다 - 4점
김홍민 지음/어크로스

필명인 마포 김사장으로 유명한 출판사 북스피어 사장 김홍민 씨가 이런저런 매체에 기고한 글과 본인 블로그에 올린 글을 모아 출간한 책입니다. 

저는 마포 김사장 뉴스레터는 물론, 블로그도 RSS로 구독하고 있는 독자입니다. 때문에 그간의 재기발랄한 글들을 책으로 만나볼 수 있게 되어서 아주 기뻤습니다. 다 재미있지만 그 중에서도 제약적인 예산 하에서 지혜를 짜내 자신이 출간한 책을 홍보하려는 노력과 제목이기도 한 그의 철학 "재미가 없으면 의미도 없다"가 더해진 좌충우돌 에피소드들이 가장 재미있었습니다. 1부가 그러한 이야기 중심인데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이와 손톱"의 봉인 페이지에 대한 이야기
  2. 뒷날개를 활용한 등장인물 소개 (이건 정말 필요한 책에는 아주 최고일 듯 싶어요)
  3. 과학 소설 전문 출판사 '불새' 관련 기가 막히는 이야기: 공무원이었던 어느 남자가 로버트 하인라인의 "은하를 넘어서"를 읽고 출판사를 차린 뒤 과학소설을 내놓는다. 일곱 권의 책을 내고 문을 닫는다. 많은 이의 성원으로 재고를 처분할 수 있었다. 그렇게 얻은 수익으로 불새 대표가 뭘 했느냐. 이런 빌어먹을, 다시 책을 펴내기 시작했다. (이 부분만큼은 원 글의 감동을 살리고자 거의 그대로 인용합니다)

또 작가, 출판인을 꿈꾸고 있는지라 여러모로 참고가 되는, 실전에 기반한 에피소드들인 2장의 이야기들도 좋았습니다. 다짜고짜 투고는 옳지 않다(출판사 절차를 따를 것), 공모전에 대한 팁 — 장면 전환에 전화를 이용하지 말라, 진부한 비유는 피하라, 평범한 보통 명사는 제목에 쓰지 말라, 불필요한 묘사로 시작하지 마라, 뻔한 기관 국정원 등을 주요 소재로 삼지 마라, 영화처럼 서술하지 마라(주인공의 시선과 행동만을 쫓아 전개했을 때의 문제), 짧은 장을 반복해서 만들지 마라 등 -, 그리고 책의 마지막 페이지가 왜 4의 배수인지와 판권 페이지 관련 이야기 등은 재미도 있고 유익했으니까요.

허나 몇 가지 의견에는 동의하기 힘들긴 했어요. 미야베 미유키의 "에도물" 출간 논란이 대표적이죠. 일단, 북스피어가 키워놓은 시장을 날로 먹으려고 한 비채는 엄연히 상도의를 어긴 것이며, 도덕적인 면에서 비난받아야 함은 마땅하다는데 동의합니다.
하지만 선인세는 엄연히 작가에게 돌아가는 돈입니다. 작가 입장에서 보면 경쟁으로 내 작품값, 내 몸값이 올라가고, 출판사에서 그만큼 많이 팔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건 지극히 타당하면서도 고마운 일이에요. 즉, 좋은 작품을 썼고, 그것이 좋은 가격을 인정받고, 높은 판매를 보장받았다. 이게 전부입니다. 선인세 경쟁으로 한국 출판사가 글로벌 호구가 되었다! 라고 주장하는 건 말이 안됩니다. 마포 김사장 말대로 적정 금액이 암묵적으로 있다면 그건 담합이죠. 왜 유통사가 콘텐츠 창작자의 창작물 가격을 마음대로 정한답니까? 선인세가 높아서 독자가 피해를 본다는 게 명백하게 증명되지 않는다면(멀쩡한 책의 분책이나 동일 판형, 페이지 단행본 대비 가격 상승, 사재기를 통한 판매 부수 조작 등) 유통사들 간의 분쟁일 뿐, 독자와 작가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뒤가 켕기는 건 출판사지 독자가 아니에요.
통일된 디자인과 판형으로 시리즈를 모으지 못한다는 문제는 있지만 에드 멕베인의 87분서 시리즈도 "아이스" 한 권만 피니스 아프리카에 말고 검은숲에서 출간되었고, 가가 형사 시리즈도 "신참자"만 출판사가 다른 등 이 바닥에 워낙 비일비재한 일이라 문제도 아닙니다. "경성 탐정록"은 같은 출판사에서 나왔음에도 1, 2부 판형부터가 다르니 더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그리고 한국 추리소설에 대해 언급하며, 한국의 히가시노 게이고가 왜 필요한가? 이미 히가시노 게이고가 있는데? 라는 생각을 드러낸 것도 섭섭했습니다. 한국 작가의 추리소설은 투자 대비 성공하기 어렵다는 이유였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장르문학 전문 출판사라면 최소한의 애정은 보여줘야 하지 않았을까 싶거든요. 꾸준히 각종 공모전을 개최하는 장르문학 전문 출판사 황금가지와 너무 비교되는 마인드에요. 이래서야 그냥 장사꾼이지요. 미야베 미유키 작품만 영원히 팔 건가요?

이렇듯 마음에 안 들거나 동의할 수 없는 이야기도 있긴 하지만 그래도 앞부분, 1, 2부의 이야기는 괜찮았어요.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본인, 그리고 출판사를 지지하는 팬층이 두텁다는 것은 알겠고, 그렇게 두터운 팬층을 만든 마포 김사장의 노력에는 박수를 보내며 앞으로도 북스피어의 건승을 기원하겠습니다.

덧붙이자면, 비록 이전에 제안했다가 거절당하기는 했지만(거절의 이유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네요) "경성 탐정록" 장편을 여기서 내 주면 참 좋겠다 싶긴 하네요. 마포 김사장의 재기발랄한 마케팅이라면 뭔가 될지도? 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뭐 그럴 일이야 없겠지만.

2009/05/08

Fantastique 판타스틱 2009.봄 - Vol.20 : 별점 4점

Fantastique 판타스틱 2009.봄 - 8점
판타스틱 편집부 엮음/페이퍼하우스

한국 최초의 추리소설가이신 김내성 선생님의 탄생 100주년 기념 특집호입니다.

월간일때 몇번 뒤적이긴 했지만 이전에는 쟝르문학 전문이라도 SF 성향이 좀 강해서 별로 눈길이 가지는 않았는데 이번호는 구입하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잘 기획된 특집호더군요. 추리소설 애호가로 그냥 지나치기 힘들어서 반드시 구입할 예정이였지만 형이 먼저 구입했길래 낼름 빌려다 하루만에 다 읽어버렸습니다.

김내성 선생님 특집은 총 4편의 단편 및 라디오 방송 대본, 그리고 김내성 선생님의 아들인 카이스트 교수 김세헌의 짤막한 추모담, 김내성 선생님의 일생을 총 망라한 연표, 재일한국인 리켄지의 김내성 선생님의 데뷰 당시 및 해방 후 한국 문단의 분위기를 통해 선생님의 장르문학에 대한 입장을 밝혀주는 역사성 짙은 에세이인 "데뷰시절의 김내성", 마지막으로 전봉관의 경성 스케치 시리즈라 할 수 있는 특집 에세이 "마인 속 경성과 경성문화" 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만큼만 해도 팬으로서 굉장히 충실한 기분이 들 정도의 많은 분량 (220여 페이지) 이니 정말 대단하죠. 페이지에 있어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계간지의 위력일까요?

그러나 선생님 작품의 수준에 대해서는 항상 느껴왔던 아쉬움이 남네요. 아울러 추리물도 좋지만 한편 정도는 "비밀의 문" 에 실려있는 류의 변격물 취향 작품을 실어주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요.

실려있는 작품을 보다 자세히 이야기해 보자면, 제일 앞에 실려있는 "탐정소설가의 살인"은 일단 국내에 처음 번역 소개된다는 점에서 가치는 충분합니다. 실제 연극인들 사이에서 벌어졌던 사건을 탐정소설가 "유불란"이 직접 극본을 쓴 뒤, 사건 주요 인물들을 주연으로 연극으로 상영하여 진상을 폭로한다는 설정도 충분히 재미있고요. 그러나 공들인 설정에 비해서 트릭이 조잡하고 결말이 너무나 유치할 뿐 아니라 유불란 탐정이 한마디로 ㅂㅅ으로 등장하기에 도저히 좋은 평을 해 줄 수가 없더군요.
두번째 작품인 "타원형의 거울"은 너무 많이 소개된 작품이라 좀 식상하죠. 물론 선생님의 기념비적인 데뷰작이자 대표작이라 빼긴 좀 어려웠겠지만 지도를 새로 그린 것 이외에는 새로운 점이 전혀 없어 지루했습니다.
네번째로 실려있는 "히틀러의 비밀"은 셜록 홈즈 시리즈 "여섯개의 나폴레옹 흉상"을 라디오극으로 번안한 작품인데 창작의 여지는 거의 없이 번안에 머물고 있어 평가하기가 난감하더군요. 약간의 창작이 들어간 범인과 피해자의 관계 등의 요소는 추리물로 보기 힘들정도로 설득력도 떨어지고요. 한마디로 완성도가 낮습니다.
그나마 세번째 작품인 "연문기담"이 올드미스의 결혼을 위한 독특한 연애-사기담으로 일정 수준 이상의 완성도를 지니고 있어서 다행이었습니다. 연애편지의 진위에 대한 추리적 요소가 살짝 삽입된 것도 마음에 들었고요. 트릭이라 하기에는 어렵지만 경쾌한 작품에 양념역할은 톡톡히 해 주거든요. 오헨리 필도 살짝 나는 것이 그간 알고 있던 김내성 선생님 작품과 분위기가 달라 무척이나 즐겁게 읽었답니다.

뭐 이러니저러니 해도 작품의 수준이야 익히 알고 있었던 작품이고, 사실 이번 특집은 자료로서의 가치가 높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합격점을 줄 수 있습니다. 방대한 내용 만큼이나 실속있는 내용이 가득하고, 추리소설과 추리소설가를 핵심으로 하는 당대 경성에 대한 자료들이라 경성을 무대로 한 추리소설을 창작하는 입장에서는 반드시 읽어야 할 특집임에 분명하거든요. 개인적으로는 전봉관의 "마인 속 경성과 경성문화" 가 제일 좋았던 것 같지만, 그 외의 글들 모두가 유익했다 생각되네요.

이번호의 거의 절반을 차지한 김내성 선생님 특집을 제외한 나머지 글들 중에서 눈여겨 본 것을 꼽아보자면, 먼저 코넬 울리치의 단편 "세시 정각"이 있습니다. 바람난 아내를 징벌하기 위해 아내가 잠깐 집을 비운 틈에 시한폭탄을 장치하는 남자의 이야기인데 서스펜스의 대가 다운 긴박한 상황의 연출이 일품이었습니다. 그러나 결말부분이 너무 진부한 편이라 평작 수준에 머물고 말았네요. 이런 류의 단편은 워낙에 많이 있기도 하죠.
문영의 단편 무협소설인 "혈도"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무적도인 "혈도"에 대한 강호의 소문과 그 소문의 원인을 다룬 짤막한 단편인데 의외의 요소가 잘 살아있어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소문을 이용하여 돈을 번다는 시장논리가 처음으로 도입된 무협지가 아닌가 생각되기도 하고요. 주인공 캐릭터가 너무 스테레오 타입 -술에 의지해서 살아가는 절망과 고독밖에 없는 무림 최고의 살수 - 이 아닌가 싶긴 한데, 셜록 홈즈 스타일 추리소설 창작가로서 할 말은 아니겠죠..^^;;
그 외에는 원사운드의 만화가 괜찮더군요. 신간소개 위주의 짤막한 만화로 그야말로 쉽게쉽게 막 그린거 같은데도 요점을 잘 짚고 있어서 빠져드는 맛이 있는 것 같아요. "인체모형의 밤"은 덕분에 구입 예정입니다.

결론적으로, 별 4점은 충분히 줄만한 가치가 있는 특집호였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절반 정도는 눈이 잘 가지 않는 연재물이나 기획물로 이루어져 있어서 과연 다음호를 사게될지는 모르겠네요.

그나저나 그나마 잘 나가는 듯 했던 판타스틱이 계간지 전환되었다니 (그리고 지금 보니 절판상태...;;) 일말의 기대를 걸었던 추리 문학 전문 잡지의 꿈 역시 저~ 멀리 사라져 가는것 같네요. 1935년 김내성 선생님의 "타원형 거울"에 등장하는 추리잡지 "괴인"이 1만부가 팔리는데, 70여년 뒤의 대한민국은 1만부는 커녕 3천부도 소화하기 힘든 수준의 시장이 되어버렸으니 선생님께 죄송할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