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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15

마크스의 산 - 다카무라 카오루 : 별점 4점

 

마크스의 산 I - 8점
다카무라 카오루 지음/고려원(고려원미디어)

1976년, 미나미 알프스에서 알콜중독자 노무자에 의한 등산객 살인사건이 벌어진 날, 일가족 자살 시도 사건이 같은 장소에서 일어나며 그 가족 중 아들인 한 소년만이 겨우 구조된다. 이후 1988년, 미나미 알프스에서 신원을 알 수 없는 백골 사체가 발견되어 76년의 범인이었던 이와다가 다시 범인으로 인정되어 구속된다. 그리고 1992년, 전직 폭력단원이던 한 사나이가 알 수 없는 흉기로 두개골이 함몰된 사체로 발견되며 이후 이 사건은 연쇄 살인사건으로 발전한다. 수사 7계의 고다 형사는 사건 해결을 위해 노력하던 와중에 이 연쇄살인 사건이 과거 76년의 사건과 연관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는데...


"석양에 빛나는 감" 이후 다카무라 카오루 작품 두번째 리뷰입니다. 벌써 10여년 전에 한번 읽었던 책이지만 다시 꺼내어 읽어 보니 새로움이 느껴지는 것이 과연 좋은 작품이구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드네요. 이 작품은 "석양에 빛나는 감"의 주인공 고다 형사가 등장하는 "추리소설"로서, "석양에 빛나는 감"이 전의 리뷰에도 썼었지만 순문학에 가까운 작품이었다면 이 작품은 보다 추리적인 요소가 강해서 추리물로 보기에 손색없는 작품입니다.

일단 추리적인 요소만 놓고 본다면, 이 작품은 약간은 도서추리적인 성향을 띄고 있는 일종의 사회파 추리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범인이 범행을 계획하고 실행하는 과정의 행동과 사고를 독자가 공유한다는 점에서는 도서추리적인 성격이 엿보이며, 사회의 모순과 비리 고발성 메시지를 전해주는 것은 물론 경찰, 형사들이 사건을 수사해서 진범을 밝혀 나가는 부분은 전형적인 사회파 추리-수사물의 유전자를 충실하게 계승하고 있거든요.

치밀하거나 잘 짜여진, 범인과 두뇌싸움을 펼치는 완전범죄의 시나리오는 등장하지 않지만, 언뜻 보기에 관련없어 보이거나 그 연관성을 찾을 수 없는 사건들 사이에서 불거진 사소한 단서에서 진상을 뽑아내는 과정이 상당히 잘 짜여져 있어서 수사물로의 완성도가 높고, 덕분에 무척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무려 16년에 걸친 범죄의 복잡한 사슬이 상당히 치밀한 덕분인데 이러한 부분에서는 작가의 능력에 찬사를 보내는 방법밖에는 없을 것 같네요. 그 외에도 우연에 의지한 요소도 별로 없고 드러난 사실이 공정해서 추리적으로는 상당히 잘 만들어진 작품이라 생각됩니다.

그리고 다카무라 카오루 작품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묘사 역시 굉장히 좋은데 그 중에서도 심리, 성격묘사가 극한으로 잘 뽑혀 나온 작품이기도 합니다. 전작에서의 "석양에 빛나는 감"이라는 표현으로 대표되는 시적인 묘사는 없지만 그 대신 범인인 "마크스"의 심리 - 특히 광기 -에 대한 디테일이라던가 7계 반원들에 대한 캐릭터들의 묘사는 현미경으로 보듯 잘 살아있어서 설득력이 넘치는 것이 작가의 필력을 느끼게 해 주더군요. 작품 전체를 지배하는 "산"에 대한 묘사 역시 엄청난 자료 조사와 내공을 보여주었고요.

물론 과거의 사건에서 비롯되는 "마크스"라는 이름은 실존하는 유명 소설 "마크스의 산"을 지나치게 의식한 너무 작위적인 설정이 아니었나 싶긴 했으며 범인인 마크스의 사고방식이나 범행의 동기가 그다지 현실에 기초하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라던가, 범행이 나름 "운" 에 의지하고 있다는 점 등은 약간 아쉬운 부분이긴 한데 작품의 가치를 저해할 정도는 아닌 납득할만한 수준이었습니다. 범인의 병력이 사건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이유라던가 간호사 피격사건 이후 폭주의 과정 등이 설득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겠죠. 사실 가장 큰 단점은 이 모든 사건이 탄탄했던 5명의 원조 "마크스" 중 한명의 유서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조금은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라는 것이었습니다만...

어쨌건 나오키상을 수상하는 등 작가의 명성과 화려한 수상경력에 일조한 걸작답게 십수년이 지난 지금 읽어도 충분히 재미있고 메시지를 전해주는 좋은 작품이라 생각되기에 별점은 4점입니다. 추리적 요소도 충분하기에 추리 매니아도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일 뿐 아니라, 화려한 문체와 심리묘사가 펼쳐지는 순문학적인 특성도 가지고 있어서 추리팬 뿐 아니라 일반 독자들이라도 한번쯤 읽어보시길 권해드립니다. 현재 절판 상태이긴 한데 뭐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는 법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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