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사이 추리 소설 시장이 활성화 되고 있지만 거의 번역물이니 국내에도 새로운 작가들이 좀 괜찮은 작품을 많이 발표해 주어야 할 때죠. 그러나 이 책은 현재의 한국 추리 문학계의 침체를 잘 보여주는 결과물이라고도 생각됩니다. 그만큼 완성도가 떨어지는 작품이 너무 많이 수록되어 있거든요. 베스트를 꼽기가 어려울 만큼 단편으로서의 기본 완성도가 의심되는 작품이 절반입니다. 단편이라고 너무 쉽게 생각하는걸까요? 저는 단편이 장편으로 가는 첫 스텝이라고 생각하는데 말이죠...
또 너무 설명적인 부분이 많거나 적고 추리물로서의 가치보다 드라마에 치중하는 경향이 너무 많은 것도 불만스럽네요. 보다 임팩트있는 깔끔한 완성도를 짧은 페이지에서나마 보여줄 수는 없는걸까요?
그나마 최소한의 완성도를 갖췄다고 생각되는 것은 "목격자의 증언은"과 "2시간 10분", "더블 플레이", "다이어트를 하는 여자", "도시의 신기루", "천생연분" 정도이며 개중 베스트는 "다이어트를 하는 여자" 를 꼽고 싶네요.
그러나 이런 책을 제값주고 산다는 것이 너무나 아깝습니다. 수고해주신 다른 작가분들께는 죄송하지만 몇몇 작가는 정말이지 독자에 대한 기본 예의조차 없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였으니까요. 어째 단편만큼은 수십년전의 김래성 선생님때보다도 퇴보한 듯한 느낌만 계속 들어 씁쓸합니다. 별점은 1점입니다.
작품별 상세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정현웅 "목격자의 증언은"
정현웅씨는 그래도 기본기는 있으신 작가이니 만큼 어느정도 단편으로서의 품격과 완성도는 갖추고 있는 작품으로 1인칭 화자에 의해, 그것도 수사관을 주인공으로 해서 신선한 느낌을 주는 본격 트릭 미스터리입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트릭이 그다지 기발하지도 않고 설정면에서 헛점이 조금 있어서 높은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유우제 "2시 10분의 비밀"
새벽 2시 ~ 2시 30분 사이에 벌어지는 연쇄 방화사건에 있어 시간대에 감추어진 비밀을 소재로 하고 있는 작품으로 전개면에서는 동서 추리문고 "특별요리"에 같이 실려있는 "오터모올 씨의 손"이라는 작품이 연상되나 나름 기발한 면이 있어 마음에 들었습니다 . 하지만 주인공 이름을 "C기자", "경찰관 P" 하는 식으로 표현한 것은 왠지 성의가 없어보였고 불필요한 에필로그를 말미에 집어 넣은 것은 군더더기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보다 깔끔하고 임팩트 있는 반전과 내용을 보여주었으면 더욱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한대희 "빠빠라치"
누드 사진작가에게 의뢰가 들어온 부부관계 촬영 요청에 대한 이야기인데 일단 추리물은 아니었습니다.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소재와 이야기로 구성되어 흥미는 조금 가지만 내용면에서 너무 시시하고 허무한, 평균 이하의 작품이었습니다.
김상헌 "당신은 그대를 아는가"
서로 이웃인 두 부부의 여행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루고 있으며 외국 단편에 흔히 봄직한 소재와 전개로 괜찮은 작품이 나올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반전이 시시하고 설득력이 떨어지더군요. 좋은 점수를 주기는 역시나 어려워요.
강형원 "제임스 본드라 불리운 사나이"
한마디로 제임스 본드를 다룬 팬픽, 그 이상의 작품이 절대 아닙니다. 웃기기는 합니다만 인터넷 유머 게시판 수준. 이게 대표작이라니 다른 작품의 수준은 과연...?
안광수 "복수연맹"
제목과 내용이 엇박자로 노는 듯한 작품입니다. 화자가 "복수 대행업"의 타당성을 주장하며 "복수연맹"이라는 회사의 창업 결심에 대한 서론부가 지나면 갑자기 화자가 절대 실패하지 않겠다며 2개의 실패한 범죄극을 서술하는 구조입니다. 2개의 이야기중 2번째 이야기인 "살인게임"은 꽤 독창적이고 재미있지만 결국 2개 다 추리퀴즈 이상의 완성도를 보여주진 못합니다. 하나의 이야기에 집중해서 단편 자체로서의 완성도를 보다 높이는게 좋지 않았을까 싶네요.
장세연 "더블 플레이"
외도하는 남편과 상대자에 대한 짤막한 복수극을 다루고 있는데 여백의 미가 잘 살아있는 작품입니다. 문제는 너무 생략과 여백이 많아 설득력이 떨어지는 점인데 이 정도면 뭐 나름대로 괜찮은 편이에요. 다른 작품들이 워낙에 수준 이하라 괜찮아 보이는걸지도?
강종필 "K의 기록"
한 킬러의 이야기. 제가 보기에는 추리물은 절대 아니며 결말도 허무하기 그지 없습니다. 뭐라 할 말이 없습니다...
백휴 "다이어트를 하는 여자"
다이어트에 집착하는 아내를 가진 한 남자에 관한 단편으로 범죄가 등장하지는 않지만 꽤 유머스러우면서도 반전의 묘미가 살아있는 좋은 작품입니다. 백휴씨 작품은 몇개 읽지 못했지만 항상 기본기는 있는 작가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 작품에서도 평균 이상의 내공을 보여줘서 만족스럽네요.
장근양 "도시의 신기루"
한 유학파 박사가 현금 마련을 위해 은행을 터는 내용인데 은행을 터는 범죄에 대한 설정과 묘사가 굉장히 좋습니다. 하지만 주인공의 과거사와 주변 인물에 대한 불필요한 묘사는 이야기의 본질을 오히려 흐리는 듯 하여 안타깝네요. 결말도 사족이었다는 생각이 들고요. 워낙 범죄장면에 대한 내용이 좋아 더욱 아쉽습니다.
황세연 "천생연분"
서로에게 살의를 품은 부부의 이야기인데 작가가 아무래도 외국 단편을 상당히 많이 읽었다라는 생각이 드는 설정과 내용입니다. 남편이 왜 술을 마셨는지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지만 전체적으로 이야기가 깔끔하고 흥미진진한 좋은 작품입니다. 그래도 앞에 말한 대로 외국 단편들에서 본 듯한 느낌이 좀 강해서 독특함이나 신선함은 별로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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