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거포스트, 1663 - 보급판 세트 - 이언 피어스 지음, 김석희 옮김/서해문집 |
1663년, 크롬웰의 철권 통치가 무너지고 왕당파가 다시 세력을 잡아 찰스 2세가 왕위에 오른 직후, 옥스퍼드에 다 콜라라는 부유한 상인의 아들이자 의학 교육을 받은 이탈리아인이 방문한다.
그는 당대의 저명한 학자인 보일을 비롯하여, 의사 로어, 사학자 우드 등 여러 분야 학계의 사람들과 친분을 쌓게 되고 사교 활동을 활발히 벌이는데, 그러던 와중 대학의 교수인 그로브 박사가 독살당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그리고 여러 증거를 종합하고 스스로 죄를 인정한 그로브 박사의 전 하녀였던 사라 블런디가 교수형을 당하는데 20년뒤 다 콜라의 수기가 발표되고 이를 반박하는 프레스콧의 수기, 월리스 박사의 수기, 그리고 제임스 우드의 수기가 계속 이어지며 서서히 20년전 사건의 진상이 밝혀진다....
그는 당대의 저명한 학자인 보일을 비롯하여, 의사 로어, 사학자 우드 등 여러 분야 학계의 사람들과 친분을 쌓게 되고 사교 활동을 활발히 벌이는데, 그러던 와중 대학의 교수인 그로브 박사가 독살당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그리고 여러 증거를 종합하고 스스로 죄를 인정한 그로브 박사의 전 하녀였던 사라 블런디가 교수형을 당하는데 20년뒤 다 콜라의 수기가 발표되고 이를 반박하는 프레스콧의 수기, 월리스 박사의 수기, 그리고 제임스 우드의 수기가 계속 이어지며 서서히 20년전 사건의 진상이 밝혀진다....
이전의 "옥스퍼드의 4증인"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을 때 부터 무척이나 읽고 싶었던 작품. 재간되었기에 잽싸게 구입하여 읽게 되었습니다.
무려 1000페이지가 넘는 장편이지만 전부 4편의 수기로 각각의 수기는 하나의 작품으로 독립되어 있기 때문에 흡사 4편의 연작들을 읽는 느낌이라 생각보다는 읽기가 쉬워서 좋더군요.
순서대로 본다면 첫번째 "다 콜라"의 증언은 이야기의 첫 시작 답게 중요 등장인물과 20년 전 옥스퍼드에서 발생한 사건을 기술하는 소갯글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야기 자체만 놓고 본다면 콜라의 "수혈법"에 대한 내용의 비중이 큰 편이죠. 때문에 살인사건에 대한 정보도 표면적으로만 훝고 지나갈 뿐이라 사라 블런디의 범행인지 아닌지에 대한 입증조차 해 주지 않습니다. 첫번째 수기만 읽는다면 독자는 영국의 암울한 날씨와 문화, 요리에 대한 편견을 강하게 가질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외국인 시각에서 많은 것을 보고 있거든요.
두번째 "프레스콧"의 증언 수기에서부터 먼저 첫번째 수기의 거짓을 많이 지적하고 있습니다. 특히 콜라라는 인물이 스스로 묘사한 것과 다른 점이 많았다는 것을 밝히는 것과 살인사건보다는 프레스콧의 아버지 제임스 프레스콧 경이 관련되어 있던 왕당파와 의회파간의 음모, 배신 행위를 비중있게 다루더군요. 프레스콧이 명예를 되찾기 위해 자신의 아버지가 배신자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데 수기의 포커스가 맞춰져 있거든요. 이 부분부터 본격적인 음모론적인 이야기가 많이 가미되면서 점차 흥미진진해 집니다. 여기에서 프레스콧의 아버지가 보냈던 "암호편지"의 중요성이 처음으로 대두됩니다.
물론 모든 수기와 사건의 계기가 되는 그로브 박사 살인 사건의 정황에 대한 프레스콧 시각에서의 자세한 묘사도 들어 있습니다. 요약한다면, 지나친 광기에 시달리던 프레스콧은 성직록을 노리던 자신의 친구 켄이 그로브 박사를 독살했다고 믿지만 스스로의 광기가 사라 블런디의 주술 때문이라 생각하고 그녀를 사형시키기 위한 조작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세번째의 "월리스 박사"의 증언 부터는 앞서 나왔던 두 증언의 오류를 파헤치고 스스로 그것에 살을 입혀가는 단계입니다. 암호 해독 전문가로 자신의 인맥을 동원해서 광범위한 정보 조직을 구성한 월리스 박사라는 인물에 맞게끔 왕당파와 의회파에 대한 음모론에 살을 붙여 나가는 과정이 인상적입니다. 특히 콜라라는 인물의 정체에 주목하여 이야기를 진행해 나가고 있네요.
또한 이러한 음모론적인 내용에 맞춰 여러 귀족들간의 역학관계와 과거의 역사까지 들춰내어 결국 첫번째와 두번째 수기에서는 크게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은 사라 블런디에 대한 사형 선고의 실질적 배경, 즉 필연적 선고였다... 라는 결론을 내리고 있군요.
마지막 "제임스 우드"의 증언은 실질적인 마지막 증언으로 앞서 세개의 수기를 모두 읽은 후 본인 스스로 조사한 진상을 첨가하여 발표한 진실의 내용이 되겠습니다. 여기서 충격적인 몇가지 사실이 밝혀지며 나름의 반전도 꽤나 있는 추리소설로 따진다면 일종의 "해답편" 격인 내용인데, 여러 사실들을 종합하고 앞부분에서 빠져있던 여러 내용들이 보충되며
앞부분 수기에서 대두된 몇가지 의문에 대한 해답, 즉
- "그로브 박사를 살해한 사람은 누구인가?"
- "마르코 다 콜라의 정체는 무엇인가?"
- "사라 블런디의 그날밤 행동의 진상과 그녀의 역할은 무엇이었는가?"
- "암호편지는 어디에 있는가? 또 그 내용은 무엇인가?"
- "왕당파의 제임스 프레스콧 경 배신사건의 진상은 무엇인가?"
에 대한 답을 독자에게 전해주는 완벽한 증언으로 마무리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알려진 시대에 대해 음모론적인 이야기를 넣어가며 스토리를 구상하는 것이 보통 작업은 아니라 생각되는데 이 작품은 상당히 성공한 편이며, 무엇보다 4명의 증언이라는 독특한 구성을 통해 독자에게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면서도 선별적으로 판별하게끔 하는 트릭을 보여주는 것이 이 작품의 가장 뛰어난 점이라 할 수 있겠네요. 등장인물들의 관계도 잘 짜여져 있어서 탄탄한 전개를 보여주는 것도 인상적이고요.
또 워낙 탄탄한 고증에 기초한 17세기 영국의 문화를 바로 옆에서 느끼는 듯한 묘사도 압권이었습니다. 영국인이었다면 실존인물들과 역사적 배경까지도 100% 이해하고 즐길 수 있었겠지만 저는 그정도 수준까지는 아니기에 조금 복잡하고 지루한 부분이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영국인이 아니더라도 지적인 흥분과 더불어 읽는 재미까지 느낄 수 있는 보기드문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이 모든 증언과 수기의 발단이 된 마르코 다 콜라의 첫번째 수기의 작성 이유가 납득이 되지 않더군요. 콜라는 이 모든 것을 묻어 버렸어야 하는 입장이었을 텐데 괜히 발표해서 영국에 있는 관계자들의 반박글만 잔뜩 만들게 했잖아요? 이 점은 다 읽고 난 이후에도 그다지 석연치가 않습니다. 때문에 약간 감점하여 별점은 3.5점입니다.
덧붙이자면 읽고 나니 이상하게 영화 "메멘토" 생각이 나기도 합니다. 결과를 먼저 알고 그 진행되는 상세한 내용을 나중에 알게되는 구조가 유사하기 때문일까요? 그런 시각에서 본다면 4번 수기는 제일 나중에 읽어야 하지만 나머지 수기들은 순서대로 읽지 않아도 색다른 재미를 줄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충분한 재미를 느낀 만큼, 작가의 다른 작품도 구입해 보아야 할 것 같군요.
그리고 또 한가지 지적한다면 1,2권으로 나뉘어 있는데 1권 후반에 작품 전체에 대한 역자 후기격의 글이 들어있는데 일종의 스포일러를 제공함으로써 김을 약간 빼 놓더군요. 당연히 2권 후반에 들어가는게 맞지 않았을까요? 번역도 좋은 편이고 장정도 예뻐 마음에 들지만 이런 사소한 부분에 조금 더 신경을 써 주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기는 합니다.
PS : 이제 이런 류의 작품 소개에 "움베르토 에코....장미의 이름..." 어쩌구 하는 말은 더 이상 나오지 않았으면 하네요. 이 작품은 핑거 포스트일 뿐이지 장미의 이름과는 하등의 관계도 없는 작품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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