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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30

범죄수학 - 리스 하스아우트 / 오혜정 : 별점 3점

범죄 수학 - 6점
리스 하스아우트 지음, 오혜정 옮김, 남호영 감수/Gbrain(작은책방)

주인공인 수학 천재 라비가 지방 검사인 아버지, 시카고 경찰국의 돕슨 과장을 도와 사건을 해결하는 13편의 단편이 수록된 수학 추리 단편집입니다.

추리소설이라기보다는 수학을 알기 쉽게 소개하는 것이 주목적인 책으로, 이러한 방식으로 수학을 쉽고 재미있게 이해시키기 위해 하나의 이야기로 녹여낸 작품을 몇 편 보아왔습니다. '추리'와 접목시킨 책도 "왓슨. 내가 이겼네!"라는 작품이 있었고요. 추리소설 애호가이자 창작자의 입장에서 바라보자면, 이러한 책의 핵심은 수학을 추리적인 요소에 잘 녹여냈는지가 가장 중요한 요소라 생각합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절반 정도는 성공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특히 "그랜드캐니언의 흰머리 독수리 가족"과 "폭설이 내린 오크가의 아침" 두 편은 수학을 이용한 알리바이 깨기 트릭이 절묘하게 구현되어 있는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약간만 내용을 보강한다면 추리적으로도 뛰어난 작품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될 정도였어요. 그 외의 이야기에서도 도박에서의 확률 계산 같은 요소는 흥미로웠습니다. 충분히 다른 곳에서 활용할 만한 아이디어였습니다. 물론 추리적으로 별로인 이야기들도 있지만, 수학과 결합시켰다는 점에서 눈여겨볼 부분은 분명히 있습니다.

그러나 아쉬웠던 점은 모든 이야기들이 수학적 설명에 많은 분량을 할애한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설명도 재미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트릭을 독자에게 설명하는 데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은, 추리물 창작을 추구하는 제 입장에서는 한계로 보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미드 "넘버스"를 보면서 들었던 느낌과 비슷합니다. "넘버스"는 반대로 '수학'에 대한 설명이 너무 부족한 것이 단점인데, 결국 창작자는 이 두 가지 방법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겠지요. '수학'에 대해 조금만 더 연구한다면, 정말 좋은 추리물을 쓸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주지만, 이러한 한계를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은 더욱 커지네요.

빛나는 아이디어도 있고 재미도 있지만, 아무래도 추리 애호가보다는 수학에 관심이 많은 일반인이 보기에 적합한 책이 아닐까 싶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수학에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학생분들께 추천합니다.

수록작별 소개는 아래와 같습니다.

"그랜드캐니언의 흰머리 독수리 가족"

희귀종인 흰머리 독수리를 잡아간 범인을 잡기 위해 근처에서 운동하던 두 명의 선수가 스쳐 지나간 시간과 각자의 목적지에 도착한 시간을 토대로 계산하여 거짓 증언을 밝혀내는 내용입니다. 추리물에 그대로 적용해도 괜찮을 수준의 이야기라고 생각됩니다. 수학적인 공식이 사건 해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애초에 이 책에 가졌던 기대를 충족시키는 작품이었습니다. 일상적인 분위기도 좋아서 "Q.E.D."가 연상되기도 했습니다.

"카지노에서 일어난 살인사건"

라스베이거스 카지노 사장 슬릭이 살해된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사건의 동기가 도박의 확률과 밀접한 관련이 있죠. 등장하는 도박은 '100장의 카드 중 55장은 성공 / 45장은 실패' - '참가자는 항상 판돈의 절반을 걸고 카드를 뒤집어 '성공'이 나오면 돈을 따고 '실패'가 나오면 돈을 잃는다' - '모든 카드를 다 뒤집어야 게임이 끝난다'라는 방식입니다. 수학적인 설명을 통해 '성공'이 64장 있어야 승산이 있다는 결론이 도출되는데, 아주 재미있었습니다. 조금 응용하면 카드 배틀물에서도 활용할 만한 아이디어라 생각됩니다.

"폭설이 내린 오크가의 아침"

폭설이 내린 날, 유력한 보석 강도 용의자의 알리바이를 깨기 위해 눈이 내린 시간을 알아내는 이야기입니다. 제설차가 오전 6시부터 눈을 치우기 시작해서 처음 한 시간 동안 4블록을 이동하고, 그다음 한 시간 동안에는 2블록밖에 이동하지 못했다는 증언을 토대로 미적분을 동원하여 눈이 처음 내리기 시작한 시간을 밝혀냅니다. 알리바이 깨기의 수학적 응용이라는 측면에서는 백만 점을 주고 싶을 만큼 좋은 아이디어로 보입니다. 다소 어렵기는 했지만, 재미있었습니다.

2015/03/02

살인을 부르는 수학 공식 - 테프크로스 미카엘리데스 / 전행성 : 별점 3점

살인을 부르는 수학 공식 - 6점
테프크로스 미카엘리데스 지음, 전행선 옮김/살림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929년, 수학교사 스테파노스가 살해당했다. 유일한 친구였던 미카엘 이게리노스는 경찰에게 소식을 전해 듣고, 둘의 인연이 시작되었던 1900년 파리 수학자 대회를 떠올렸다.

1900년 파리 수학자 대회에서 힐베르트가 제시한 23개의 문제 중 2번 문제, "산술의 공리들이 무모순임을 증명하라"에 대한 해법을 둘러싸고 벌어진 살인 사건을 다룬 작품입니다.

20세기 초반 수학계의 주요 흐름을 짚는 수학 소설인 탓에, 당대 수학계의 핵심 이론들을 알기 쉽게 설명하는 데 주력하지만 단순히 수학 이론을 설명하는 것에 그치는건 아닙니다. 살인 사건이 등장하는 미스터리 형태를 띠고 있기 때문입니다. 추리물로서의 수준도 높습니다. 힐베르트의 강의가 있었던 날부터 독자에게 동기를 지속적으로 부각시키는 복선에 더해, 범행의 진상도 깔끔했고, 무엇보다 마지막 반전 - 스테파노스의 증명은 범행 직후 발표된 쿠르트 괴델의 논문을 통해 오류가 있는 것으로 밝혀지고, 이게리노스의 범행은 결과적으로 아무런 필요가 없었다 -이 돋보인 덕분입니다.

여러모로 "장미의 이름"과 유사하다는 점도 인상적입니다. "장미의 이름"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희극론"이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것을 막기 위해 책을 숨기고 살인을 저질렀는데, 이 책에서는 이게리노스가 수학의 순수함을 지키기 위해 스테파노스의 논문 발표를 막고자 살인을 저지른다는 동기가 매우 비슷하거든요. 다양한 수학 이론을 설명해 독자에게 현학적인 느낌을 제공하는 점, 주인공 외 실존 인물들이 등장하고 실제 역사와 맞물려 전개되는 팩션이라는 점도 이러한 생각을 더욱 강하게 만들어 주고요.

그런데 핵심 내용 몇 가지를 제외하면 굳이 필요하지 않은 이야기들이 많다는 단점인 큽니다. 파리에서 파블로 피카소를 만난다거나, 이게리노스의 결혼과 이혼, 스테파노스가 우연히 그의 전처 및 정부와 엮이는 등의 설정은 핵심 이야기 전개와 별 관계가 없으니까요. 피카소가 기하학에 관심이 많다는 설정이 입체파의 시작을 알린 "아비뇽의 처녀들"로 이어진다는 발상은 흥미롭지만, 수학자들이 피카소에게 기하학 강의를 해 준다는 내용은 수학 이론을 설명하기 위한 장치에 불과합니다.

물론 이 작품은 추리, 미스터리물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수학 소설"이기에 수학 이론 설명이 중심이 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래서 별점은 3점입니다. 지식 전달을 소설이라는 형식을 통해 시도한 결과물인데 재미와 정보 전달 양쪽 모두 일정 수준 이상을 갖추고 있다는 점이 돋보입니다. "장미의 이름"과 직접적으로 비교하긴 어렵지만, 적어도 레베르테의 작품들처럼 지식을 과시하는 데 치중하는 책들보다는 훨씬 낫네요. 수학에 관심이 있고 추리 소설을 좋아하신다면 꼭 한번 읽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2010/04/06

하노이의 탑 - 네가미 세이야 / 서혜영 : 별점 1점!

하노이의 탑 - 2점
네가미 세이야 지음, 서혜영 옮김/해나무

수학교수로 일하는 나는 'hanoi'라는 제목의 알수없는 메일을 받는다. 내용은 하노이의 탑이 무너졌다는 것과 이 메시지를 다른 두 명의 수학자에게 보내라는 것. 무시했지만 유학생 도이모이 군과의 만남 등을 통해 하노이의 탑이 실존한다는 것을 알게되고, 붕괴한 탑의 재건을 위한 수학적 공식을 풀어내기 위해 노력하게 되는데...

식탐정 다카노 세이야가 있다면 수학탐정 네가미 세이야가 있다! 이름 하나는 그럴듯한 수학자의 수학 소설입니다. 이름뿐 아니라 제목도 그럴듯 하고 책 소개도 그럴듯해서 읽게 되었습니다.

"하노이의 탑"

실제로 존재하던 64단짜리 하노이의 탑이 붕괴했는데, 재건하기 위해서는 현재 위치를 알아내야 한다!는걸 수학적으로 풀어내는 과정은 좋습니다. 신선하기도 하고요. 2의 64승 빼기 1의 횟수를 움직여야 이동이 가능한 64단짜리 탑인데, 몇번 옮겨놓은 상태인지, 현재 원반들의 위치가 어떻게 되는지에 대한 수수께끼를 풀어내야 한다니 흥미진진할 수 밖에 없지요.

그런데, 이야기가 진행되면 될 수록 완전히 뒤통수를 맞은 느낌입니다. "Q.E.D" 같은 내용을 기대했던 저에게도 잘못이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재미가 있다 없다의 수준을 떠나 소설로서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완성도가 없는 탓이 큽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이 책은 소설이 아닙니다. 그냥 하노이의 탑에 대한 수학적 공식과 이론을 장황하게 설명하는 것에 더해, "초월자가 된 수학자가 세상을 구한다"는 수학자스러운 환상을 유치한 수준으로 살짝 담아낸 개인적 잡문에 불과합니다.

하노이의 탑 문제에 대한 수학적인 이론을 약간이나마 알게 된 것 이외의 가치가 전무하기에 별점은 1점입니다. 차라리 수학 참고서라고 생각하고 읽었더라면 별점이 더 높을 수도 있었을텐데, 기대와는 너무나 달랐어요.
솔직히 이 책이 절판 뒤 재간되고 여러번 증쇄되는 이유조차 잘 모르겠는데, "수학"이라는 타이틀 때문이라면 앞으로 경성탐정록도 "수학 추리소설"이라고 타이틀을 변경하는걸 검토해봐야겠습니다.

2020/12/12

탐정 혹은 살인자 - 지웨이란 / 김락준 : 별점 3점

탐정 혹은 살인자 - 6점
지웨이란 지음, 김락준 옮김/북로드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청은 한때 대만 연극계에서 잘 나가는 교수였지만 술자리에서 주변 사람들을 크게 상처 입혔던 사건을 계기로 교수직을 그만둔 뒤, 슬럼가같은 골목 워룽제로 옮겨갔다. 그리고 허가도 받지 않은 '사설 탐정'이라는 일을 시작했다. 첫 의뢰인 린부인의 의뢰는 갑자기 남편을 미워하게 된 딸아이 행동의 원인을 밝혀달라는 것이었다. 미행과 탐문을 통해 린씨와 불륜 관계로 보였던 미스 추는 병원 대상으로 협박을 일삼던 범죄자였다는게 드러나고, 린부인은 이혼했다.

그 뒤 워룽제 주변에서 일어난 연쇄 살인 사건 용의자로 우청은 체포되었다. CCTV로 피해자들과 근처에 있었다는게 드러났으며, 결정적으로 범인이 우청으로 변장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네번째 사건에서 범인 스스로 변장을 드러내 우청은 풀려난다. 경찰과 수사에 함께 참여한 우청은 범행 장소가 자신(의 집)을 중심으로 정확히 4방향을 그리고 있다는 것, 범인의 변장 기술은 전문가에게 배웠을 거라는 것 등 여러가지 추리를 선보이고, 결국 범인이 자신을 추종하던 극작가 쑤훙즈라는걸 알아낸다. 그러나 경찰은 꼭꼭 숨은 쑤훙즈를 체포하지 못하고, 결국 다섯번째 범행이 벌어지는데....

"내 심경이 어땠냐 하면 좆나 엿같았습니다!"

중국 추리 소설은 몇 편 읽어보았지만 대만 추리 소설은 처음 읽어 보네요. 그런데 아주 재미있었습니다. 재미에는 주인공 우청의 지분이 상당합니다. 독특하면서도 생생한 매력을 그야말로 '분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공 가도를 달리다가 본인 실수로 스스로 루저의 길을 택했다는건 정신병을 앓는 탐정, 주정뱅이 탐정, 패배자 탐정 등 다른 루저 탐정들과 조금은 비슷합니다. 그러나 본인 스스로 '살아있다!'는 걸 생생하게 드러낸다는 차이는 큽니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숨기려고 하는 다른 루저들과는 정 반대지요. 우청 역시 루저가 되는걸 선택한 뒤 워룽제 골방으로 숨어든건 혼자 우울하게, 어둡게 지내보겠다는 취지이기는 했습니다. 한데 뒤로 가면 갈 수록 경찰, 언론은 물론 범인까지 수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맞서 싸우면서 전방위적인 활약을 펼칩니다. 루저가 아니라 시민 영웅인 셈입니다.

또 우청은 사회에 대한 불만도 딱히 없고, 내면에 특별한 분노도 없습니다. 가족과도 그런대로 원만하고 주위 사람들과의 관계도 나쁘지 않아요. 그냥 자연스럽게 루저의 길을 택한 평범한 우리 이웃이라서 현실감이 넘칩니다. 루저가 된 계기인 공황장애라는 병과 연극인들에게 상처를 준 '구이산다오' 사건 설명도 상세하고 현실적이고요. 어린 아이를 죽이거나, 믿었던 아내가 바람나서 도망갔다던가, 가족이 몰살당했다는 상황보다는 훨씬 와 닿는 이유였어요. 

하지만 당연히 그냥 루저는 아닙니다. 명확한 주관이 있으며 추리력도 갖춘 실력자이기도 합니다. 자신만의 생각, 견해를 드러내는 언변과 재치도 대단하고요. 루저 탐정들이 보통 경찰 출신이라서 자연스럽게 먹고 살려고 탐정이 된 반면, 우청이 '사설 탐정'이 된건 지병 탓이라는 독특함도 눈에 뜨여요. 공황장애로 생긴 불면증으로 많은 책을 읽어서 사람 내면을 파악하는 기술을 습득했다는게 이유거든요. 스스로 추리력은 대단하지 않지만, 추리 소설을 셀 수 없이 많이 읽었고 타이완에 대한 독특한 견해를 갖고 있는게 자신의 무기라고 생각하지요. 한 마디로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비범한 루저 탐정입니다. 이런 기묘한 캐릭터를 이렇게 잘 그려낸 작가에게는 경의를 표할 수 밖에 없네요.

추리적으로도 볼 만 합니다. 우청 탐정에 대한 여러가지 설정을 독자에게 소개하는 도입부라고 할 수 있는 린 부인, 천제루가 의뢰한 첫 번째 사건부터 흥미로운 부분이 있거든요. 미행과 탐문, 단도직입적 질문으로 답변을 끌어내어 해결되기 때문에 추리할 여지가 많지는 않지만, 린 선생이 받은 분재 동호회 회원 메일에 포함된 상품 번호가 날짜와 버스 번호, 내릴 정류장을 알리는 일종의 암호문이라는걸 찾아내는건 재미있었어요.

이어지는 본편 사건인 연쇄 살인 사건은 무려 다섯 명이 살해당하는 사건이라서 당연히 추리적으로 훨씬 풍성합니다. 우청이 체포되었을 때 당했던 부당한 처사를 이용하여 경찰 수사에 합류한다는 설정부터 괜찮습니다. 허가도 받지 않은 사설 탐정이 연쇄 살인에 뛰어들어 범인을 잡기 위해서는, 현대 사회에서는 당연히 경찰과 협조해야 하니까요.
이후 수사 과정에서 우청이 단서를 하나씩 짚어내는 과정도 볼만해요. 우청이 7월 7일 타이베이에 없었다는걸 증명한 뒤, 7월 7일 CCTV를 뒤져 자신으로 변장한 범인 행적을 추적하는 식으로요. 이를 통해 범인이 변장의 달인이라는걸 알아낸 우청은 이 정도 변장은 어딘가에서 배웠을 것이다!고 추리합니다. 그래서 관련 세미나와 강의를 뒤져 수강생 명단에서 범인 쑤훙즈를 찾아내게 되지요.

불교의 사상, 이론과 상징을 연쇄 살인 사건에 녹여낸 설정도 인상적입니다. 연쇄 살인 사건이 기독교 상징에 따라 일어난 작품은 있었습니다. 묵시록 예언을 따르는 식으로요. 동요나 그림, 수학 법칙, 음악, 바둑, 체스, 심지어 추리 소설에 따라 일어났거나, 주요 소재가 된 작품도 읽어 보았었고요. 그런데 불교라니! 그동안 제가 읽어왔던 거의 1000편에 가까운 추리 소설 중 이런 작품은 없었습니다.

불교적인 상징이 사용된건 피해자들이 선택된 이유가 만(卍)자에 해당한다는게 대표적인 예입니다. 최초 피해자들은 우청을 중심으로 위도, 경도가 정확한 정4방향 꼭지점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범인이 해당 위치에서 무작위로 희생자를 선택했다고 생각되었습니다. 좌우 대칭의 정사각형이 완성되었으니, 가운데 있는 우청만 남은 셈이지요.
그러나 5번째 사건이 일어난 위치를 확인하여 도형이 정사각형이 아니라 불교의 만(卍)자를 그리고 있다는게 드러나게 됩니다! 범인 쑤홍주가 사건을 일으킨 동기도 우청을 깨우치게 만드는 종교적 목적이었고요. 물론 이는 불교 사상은 아닙니다. 불교를 믿었지만 지금은 자신만의 세계에 사로잡힌, '우리에게는 현생만 있는데 현생은 지옥이라는' 정신병자 쑤홍주 자신만의 주장이지요. 하지만 이 주장에 이르기까지 과정은 불교 사상에 닿아 있으며, 여러가지 소재를 통해 잘 설명되고 있습니다.
특히 핵심 키워드였던 금강경의 한 구절 - "마음이 어딘가에 머물러 있으면 머물러 있는게 아니니라" - 해석은 그 자체만으로도 큰 울림을 줍니다. 사람들은 편안하게 살기 위하면서 겉모습에 미혹된다는 거지요. 즉, 어떻게 사는게 편안한지 모르는 겁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질구레한 일을 걱정하고, 인간관계 때문에 울고 웃는 거고요. 그래서 진짜 편안해지려면, 겉 모습에 사로잡히지 않아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 외에도 불교에 바탕을 둔 깊이 있는 이야기들이 스쳐가듯 등장하는데, 모두 기억에 남을 정도로 좋았습니다.

곁가지로 진행되는 황색 언론의 무책임한 보도와 사회 지도층이 얼마나 썩었는지를 풍자하는 장면들도 재미납니다. 우청이 범인으로 몰렸던 상황에서 언론의 부정확한 추측 보도와 취재 경쟁이 블랙 코미디처럼 묘사되거든요. 우청의 보복 고소에 대한 묘사도 속 시원합니다. "언론 건드려 봤자 좋을 것 하나 없다는 거 잘 압니다. 하지만 이번에 언론이 사람 잘못 건드린 줄 알라고 하세요. 나는 공익을 위해 싸우지 않습니다. 난 그저 법원에서 언론에 한 방 먹이고 싶을 뿐입니다." 라고 일갈하는데, 멋지더라고요. 이런저런 결탁으로 큰 성과를 얻지는 못하지만, 고소라도 한 게 어딥니까. 우리 나라도 이런 고소, 그리고 언론사에 대한 징벌적 손해 배상제가 일상화, 법죄화되면 좋겠네요.

잘 모르는 대만의 복잡한 도시 묘사, 이런저런 문화와 풍습들 묘사도 새로움이 많았습니다. 경찰서에서 풀려난 뒤 족발 국수를 먹어야 한다는 이야기처럼요. 서민적이고 사람사는 느낌 가득한 묘사도 정겨움을 더해 줍니다. 우청과 어머니의 관계는 물론, 우청과 주변의 이웃과 친구들 모두 서민적이고 정감가는 인물들로 그려지고 있거든요. 왁자지껄하면서 잔 정이 넘치는게 우리나라와도 비슷하게 느껴지기도 했고요. 수선스럽고 요란한 점은 옛날 보았던 홍콩 코미디 영화 정서와 비슷하다고 생각도 되네요.

그러나 정교함이 부족하다는 단점은 있습니다. 왜 쑤훙주가 우청을 함정에 빠트렸다가 바로 풀려날 수 있도록 범행을 저질렀는지부터 명확하게 설명되지 않아요. 우청을 고난에 빠트리려면 그를 살인범으로 모는게 당연했을텐데, 너무 쉽게 혐의를 벗겨주는 느낌이거든요. 우청도 이에 대해 고민하지만, 결국 그 이유는 등장하지 않고 작품은 마무리됩니다.
추리도 기발함은 있지만 대단한 트릭이 등장하지는 않아서 정교함을 느끼기 힘든건 마찬가지입니다. 범인 쑤훙주가 변장의 달인이라는게 전부니 어쩔 수 없지요.
경찰도 너무 하는게 없습니다. 우청과 동료들의 노력으로 범인이 쑤훙주라는게 드러난 이후에도 체포하지 못하는 모습은 지나치게 무능해 보였고요. 쑤훙주의 집과 변장한 모습을 우청이 어렵지 않게 알아냈다는 점에서 변명의 여지도 없어요. 대만의 치안이 심히 우려되더라고요.

마지막 결말은 지나치게 전형적입니다. 우청을 사로잡은 쑤훙주가 우청을 죽이기 전에 왜 범행을 저질렀는지 장황하게 설명한 뒤, 때맞춰 나타난 경찰에게 사살당하는데 여러모로 너무 시시했어요.

그래도 독특함, 신선함이 가득차 있는 재미있는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우청 시리즈가 계속 이어지면 좋겠습니다. 제 별점은 3점입니다. 여러모로 영상물에 어울릴 듯 싶은데, 영화가 있는지 한 번 찾아봐야겠네요.

2021/02/07

Q.E.D Season 1 정주행, 내맘대로 Best - part 2

거의 10년 전, Q.E.D 1권부터 30권 까지 중 베스트 에피소드를 정리했던 적이 있습니다. 시즌 1이 50권으로 마무리되었으니, 이어서 나머지 31~50권 중 베스트 에피소드를 꼽아봅니다. 시즌 2라고 할 수 있는 iff도 넘버링이 10을 훌쩍 넘어간 지금 시점에서는 다소 뒤 늦은 감이 있지만요.

"베스트 5" 

32권 "매직 & 매직" 

추리와 마술, '트릭' 이라는 요소가 핵심이라는건 동일하지만, 추리는 트릭을 밝혀야 하는 반면 마술은 트릭을 밝히면 그 가치가 없어져 버린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이 차이를 잘 드러내는 내용으로, 토마마저 놀라게 만드는 반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34권 "모야당" 

두 개의 트릭이 등장하는 본격물. 특히 기발하면서도 독자의 허를 찌르는 첫번째 밀실 트릭이 좋았습니다. 풀장에서 심장 마비를 일으키게 만든 두 번째 트릭도 주요 단서가 명확하게 남아있을 뿐 아니라 다이빙하는 시간을 특정할 수가 없는 등 문제는 있지만 나쁘지 않았고요. 무엇보다도 제목인 '모야당'이라는 전설과 사건 내용을 절묘하게 결합시킨 전개가 일품이었던 작품입니다. 

35권 "크리스마스 선물" 

언제나 기본 이상 재미를 보장해 주는 에나리 회장과 추리 동호회가 등장하는 일상계 작품. 토마가 쓴 각본으로 공연되는 연극 "오각관 살인사건"에 관련된 사건을 다루고 있는데, 다른 추리적인 요소 모두 좋았지만 특히 연극이라는 상황에 최적화되어 있는 "오각관 살인사건" 속 밀실 트릭이 귀엽고 유쾌해서 마음에 들었어요.

42권 "에셔호텔" 

제목 그대로 에셔의 작품을 모티브로 한 기이한 호텔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에 사용된, 에셔의 작품을 응용한 트릭이 좋았습니다. 범인이 살인을 저지른 눈물나는 동기를 듣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진상을 밝히고 범인을 옭아매는 토마의 냉정함도 인상적이었고요. Q.E.D만의 특징을 잘 드러내는 작품이라 할 수 있겠네요.

46권 "순례" 

여러가지 증언 속에서 진실을 찾아낸다는 Q.E.D에 자주 등장하는 전개의 작품. 하지만 일본군과 장개석의 국민당 정부가 전투를 벌이던 당시를 무대로 해서 시대 상황을 이야기에 잘 녹여낸, 완성도 높은 역사 추리물이었습니다. 결말도 깔끔해서 만족스러웠어요.

이렇게 5편이 제가 선정한 후반부 베스트 5입니다. 이전 선정작과 합쳐 저만의 'Q.E.D season 1 (1~50권)의 베스트 에피소드 10'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덧붙여, 아깝게 베스트로 선정되지 못한 가작들도 소개해드립니다.

33권 "추리소설가 살인사건" 

추리 소설가가 트릭 때문에 살인을 저지른다는건 "Nervous Breakdown"에서도 등장했었던 설정이지요. 거기에서도 '미키가 노래하는 미버'라는 초월 번역이 돋보이는 좋은 작품이었지만, 이 작품도 만만치 않아요. 괜찮은 밀실 트릭과 추리 소설가들의 심리를 잘 그려낸 덕분입니다. 아쉽게도 용의자가 너무 적고, 트릭이 만화적이라는 단점 때문에 살짝 감점하나 가작으로는 충분합니다.

35권 "두 용의자" 

강도 사건에 대한 추리물로 이야기 자체는 뻔합니다. 하지만 본 사건과 관계없는 과거의 사건을 들먹여 독자를 속이려고 시도하는, 추리 소설에 흔히 등장하는 전개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 굉장히 인상적이었기에 가작으로 선정합니다.

38권 "17" 

일본 수학인 "화산"을 다루고 있는 일종의 가상 역사 수학물로, 추리적인 요소보다 현학적인 측면에서 큰 만족감을 안겨다 주었습니다. 이런 점도 Q.E.D의 핵심 재미 요소라고 할 수 있겠지요.

40권 "밀실 No.4" 

금고 속 돈을 훔치는 방법에 대한 트릭이 돋보였던 일상계 소품이었던 "4각관계"도 좋았지만, 추리 동호회의 에나리가 등장하는 본격물인 "밀실 No.4"야 말로 진정한 가작입니다. 밀실 살인 사건 해결을 테마로 한 여행 상품 체험 중 벌어진 진짜 밀실 살인 사건에 대한 이야기지요. 여행 상품 속 밀실 트릭은 억지스럽지만 재미는 있었습니다. 실제 살인 사건에 사용된, 촛불을 이용한 시간 착오 트릭도 괜찮은 착상이었고요. 그러나 이 작품의 핵심은 토마가 용의자에게 하는 말이었습니다. 덕분에 가작으로 꼽습니다. 상세 내용은 링크 속 리뷰를 참조하시길.

41권 "카프의 탑" 

추리적으로는 별 볼일 없어요. 그러나 논리 퍼즐에 대한 학습 만화로는 최고 수준이었습니다. 이런 학습 만화적인 부분도 Q.E.D만의 볼거리이자 매력 포인트라고 생각하기에, 가작으로 꼽습니다.

2020/04/05

무증거 범죄 - 쯔진천 / 최정숙 : 별점 2점

무증거 범죄 - 4점
쯔진천 지음, 최정숙 옮김/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3년 전부터 일어나고 있는 연쇄 살인 사건의 범인은 현장에 지문과 ‘날 잡아주세요’란 메시지가 인쇄된 종이 한 장만을 남기고 다른 어떤 허점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연쇄살인범을 잡기 위한 네 번째 특별조사팀마저 성과 없이 해산되자, 경찰은 수학 교수로 일하고 있는 범죄논리학 전문가 옌량에게 도움을 청했다. 한편 한순간의 실수로 불량배를 죽이게 된 청년 앞에 한 남자가 다가와 증거를 없애줄 테니 범죄를 부인하라며 경찰 대처법을 가르쳐주는데……. (출판사 제공 책 소개 수정 인용)

중국 추리 소설은 찬호께이의 작품 3편 - "13 .67", "망내인", "기억나지 않음, 형사" - 과 원샨의 "역향유괴" 만 읽어보았습니다. 찬호께이의 작품은 대체로 평작 이상이었지만 원샨의 작품은 기대 이하였었는데, 이 작품은 어떨까 싶어 집어들게 되었습니다.

특별한 트릭이 존재하는 본격 추리물은 아니며, 범죄자와 탐정의 두뇌 싸움이 핵심인 범죄 스릴러입니다. 그러나 제목의 '무증거 범죄'가 의미하는 완전범죄에 대해 풀어나가는 이야기는 꽤 재미있었습니다. 전前 수사전문 요원이었던 뤄원이 깡패 소태보가 살해된 현장을 조작하는 과정의 디테일, 그리고 이 사건이 범죄논리학자 옌량에 의해 하나씩 단서가 드러나며 진상이 밝혀지는 과정이 볼 만 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2만 위안이 넘는 큰 돈을 하트 모양으로 작게 접어서 사건 현장에 숨겨 놓는다는 아이디어가 기발했어요. 이 돈을 찾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현장에 몰려들어 현장이 훼손되게 만드려는 의도였는데, 아주 설득력 넘쳤습니다.
이 사건과 항저우 시에서 "나를 잡아주십시오"라는 메모를 남기고 벌어진 연쇄 살인극이 맞물리는 전개도 좋습니다. 뤄원이 자신의 아내와 딸이 실종된 현장에 남겨진 지문의 소유자를 찾기 위해, 그 지문의 소유자가 범인인 살인극을 조작하여 일으켰다는 동기였는데 대담한 아이디어일 뿐 아니라, 설득력도 충분합니다. 이러한 설득력 덕분에, 이야기를 끝까지 읽게 됩니다. 

옌량이 추리한, 뤄원이 주후이루와 궈위가 저지른 살인 은폐를 도와준 이유도 그럴듯합니다. 뤄윈이 소태보를 애초부터 살해할 목적이었지만, 선수를 빼앗긴 뒤 은폐를 도와주었다는 이유인데, 여러가지 정황 증거들이 그게 사실이라는걸 암시하니까요. 좀 작위적이기는 해도, 나쁘지는 않았어요. 이외에 익숙치 않은 중국식 묘사들도 흥미로왔습니다. 제목의 '무증거 범죄(완전범죄)'를 비롯하여 상식적이다, 이론적이다라는 말을 '유물론자'라고 표현한다던가, 범인이 경찰 수사에 대해 잘 알고있다는 걸 '역수사 능력' 이라고 표현하는 식입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완성도가 높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앞서 이야기한대로 대단한 트릭이 등장하지도 않으며, 두뇌 싸움이 제대로 펼쳐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옌랑과 경찰이 뤄원을 잡아 넣을 증거를 찾아내는데 결국 실패하는 탓이 가장 큽니다. 옌량의 활약이 없는건 아니지만, 두뇌 싸움의 결과는 일방적입니다. 게다가 고차방정식 운운하며, 증거가 없으니 범인부터 대입해서 시나리오를 짠다는 옌랑의 방법론은 일견 그럴듯하게 보이지만, 실상은 특정 인물을 범인으로 만드는 조작극과 별로 차이가 없어서 아주 실망스럽습니다. 이는 뤄원이 "모든 이야기가 들어맞는다고 해서 내가 범인이라곤 할 순 없어. 자네의 시나리오는 아무한테나 죄를 뒤집어씌운 다음 범행 동기를 설명할 수 있지."라고 통렬하게 부정하지요. 옌랑은 마지막에는 감정에 호소해서 어떻게든 자백을 이끌어내는게 전부로, 한 마디로 뤄원한테 완패한 셈입니다. 이래서야 공정한 두뇌 싸움으로 보기는 어렵죠.
또 뤄원이 연쇄 살인극을 벌이는 와중에, 과연 단 한 번도 경찰 수사 물망에 오르지 않을 정도의 완전범죄가 가능했을지?에 대한 설명도 많이 부족합니다. 뤄원이 대단한 전문가라는걸로 퉁치기는 힘들어요. 실제로 공원에서의 범행은 목격자도 있었는데 말이죠. 하긴, 이는 뤄원의 아내와 딸을 살해한 범죄가 완전범죄가 된 것에 비하면 약과이기는 합니다. 우발적으로 급작스럽게 벌인 범행인데도 불구하고, 경찰 최고의 전문가가 사력을 다해 찾았지만 범인이 누군지 밝혀내지 못할 완전 범죄가 성립된걸 단지 운이라고 치부하는게 가능할까요? 작 중에서 뤄원의 능력이 시종일관 대단한걸로 묘사되는 것과는 배치되는 내용이기도 해서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아울러, 옌랑이 뤄원을 수상하다고 여긴 계기가 된 뤄원의 차에 대한 감상은 억지스럽습니다. 뤄원답지 않은 좋은 차는, 범행을 저지르고 용의선상에서 쉽게 빠져나가기 위함이라고 추리하지만, 뤄원이 과거 출원했던 특허로 성공한 부자라고 설명되는 만큼, 좋은 집과 좋은 차는 그 재력을 생각하면 당연한 결과입니다. 의심을 할 이유는 없어요. 또 그게 수상했다면 좋은 집에 사는 건 왜 트집을 잡지 않았는지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런 단점들은 사소할 뿐, 가장 큰 문제는 책 뒤 해설에서도 실려 있듯이, "용의자 X의 헌신"과 너무나 비슷한 구조라는 점입니다. 수학, 과학과 관련된 천재들의 두뇌 대결, 순전히 선의에 의해 사건 은폐에 가담한다는건 완전 판박이입니다. 애틋한 사랑을 키워나가던 두 청춘 남녀가 결국 파멸한다는 결말까지도 똑같고요. 작가 스스로도 영향을 받았다는걸 인정했다는데, 그렇다면 오리지널을 뛰어넘는 무언가 새로운게 있었어야 했습니다. 공정한 평가를 받기 위해서는요. 그러나 그러한 새로운 요소는 중국이라는 무대의 특성을 제외하고는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한 마디로, 오리지널 만큼의 수작은 아닙니다. 그나마 캐릭터를 가져오려면 제대로 가져왔어야 했는데, 옌량과 뤄원 모두 만족스럽지 못합니다. 갈릴레오 유가와 역인 옌량은 앞서 말씀드렸듯이 범죄자와의 승부에서 이기지 못한다는 결정적 단점이 있으며, 뤄원은 아무리 아내와 딸 실종 사건의 진범을 찾기 위해서라지만, 잔챙이 범죄자들을 다섯 명이나 살해했기 때문에 동정심을 가질 여지가 없으니까요. "용의자 X의 헌신" 속 이시가미처럼 뤄원이 아내와 딸의 실종 이후 얼마나 외롭고 힘든지를 독자에게 잘 공감시키지 못하기도 했고요. 이건 작가가 놓쳤다고 밖에는 볼 수 없겠죠. 어설프게 캐릭터를 베끼지 말고, 초반부에 옌량이 똥이 있는 엘리베이터에 갇힌 뒤 벌어지는 사고는 재미있었던 만큼, 이런 식으로 좀 어설픈 인물로 그려가는게 차별화되고 더 좋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도 듭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입니다. 읽는 재미는 나쁘지 않지만, "용의자 X의 헌신"에 비교하자면 한없이 부족하네요. 중국 추리 소설이 궁금하신게 아니라면, 구태여 구해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앞으로 중국 추리 소설은 찬호께이만 믿고 가야겠습니다.

2018/07/07

사건이랑께! 1,2 - 야스다 코스케 / 김진아 : 별점 2.5, 2점

사건이랑께! 1 - 6점
야스다 코스케 지음, 김진아 옮김/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사건이랑께! 2 - 4점
야스다 코스케 지음, 김진아 옮김/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간사이 사투리를 쓰는 추리소설, 미스터리 매니아이자 학교 최고의 미녀인 시로가네 유리코 선배와 그녀를 흠모해 미스터리 연구 동호회에 가입한 토이리를 중심으로 벌어자는 일상계 학원 개그물입니다.

설정답게 유리코 선배가 거창하게 준비한 이런저런 수수께끼를 내고 그것을 풀게 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그 와중에 벌어지는 소소한 개그들이 볼거리고요. 대놓고 개그 만화라는 점을 뺀다면 "Q.E.D"의 에나리와 멀더, 홈즈 패거리가 바로 떠오르는데, 심지어 유리코 선배가 사다 놓은 딸기 찹쌀떡이 어디로 갔나? 라는 에피소드는 "Q.E.D"에서도 굉장히 비슷한 이야기가 등장했던 적이 있었지요.

하지만 단순한 개그물은 아니고, 나름대로 추리 소재나 추리 관련된 이야기를 잘 녹여낸 부분도 없지는 않습니다. 1권에 특히 많은데 히마와리가 처음 등장했을 때에는 남자 아이인줄 알았는데 사실 토이리를 좋아하는 여자아이였다는 결말을 서술 트릭이라고 설명한다던가, 콜드 리딩을 축구에 접목시켜 설명해주는 발상은 아주 좋았습니다. 이해가 아주 쉬웠으니까요.
또 눈이 나쁜 스미레가 안경을 벗은 이유를 여럿이서 추리하는 이야기는 정말로 일상계 추리물 같았습니다. 유리코와 토이리는 그녀가 안경을 벗은건 수학 시간이라는 점에 착안해 그녀는 앞을 보기 싫을 정도로 수학 선생을 싫어했다는 식의 얼토당토 않는 추리를 늘어놓지만, 히마와리가 수학 선생님한테 예뻐 보이고 싶어서 그랬다는 소녀다운 추리로 마무리하는데 설득력 높은 좋은 이야기였어요.

하지만 2권은 좀 아쉽습니다. 1권과 같은 추리 관련 소재나 설정을 써 먹는 내용이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 이야기에서 다룬, "BL 팬픽과 셜로키언이 유사하다"는 발상은 신선했지만 그 뿐이에요. 특히 유리코의 쌍동이 자매 노바라 등장 에피소드가 많다는게 가장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다른 곳에서 흔히 보아 왔던, 생긴건 같지만 성격은 전혀 다른 쌍둥이 자매 개그의 반복일 뿐인 탓입니다. 떨어지는 작화와 만화적인 구성도 감점 요소고요.

그래서 제 별점은 1권은 2.5점, 2권은 2점입니다. 계속 읽어 볼 지는 잘 모르겠지만... 추리를 좋아하시고, 개그를 좋아하신다면 1권은 한 번 읽어보셔도 괜찮을 것 같네요.

2003/12/15

탐정 아리스토텔레스 - 마가렛 두디 / 이은선 : 별점 3점

탐정 아리스토텔레스 - 6점 마가렛 두디 지음, 이은선 옮김/시공사

아리스토텔레스가 탐정이라면? 이라는 명제를 가지고 시작하는 흥미진진한 역사 추리물입니다.
알렉산더 대왕이 페르시아를 정벌하던 때, 젊은 아테네시민이자 집안의 가장인 스테파노스는 아테네의 명사인 부호 부타데스 살인이라는 억울한 누명을 쓴 사촌을 지키기 위해 옛 스승이었던 아리스토텔레스의 도움을 청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뜬구름 잡는 이야기를 하면서도 사건의 맥락을 짚어내어 스테파노스의 조사와 사건의 해결을 돕고 마지막 재판에 있어서 결정적인 증인과 증거를 제시하여 범인을 밝혀낸다는 이야기죠.

제목에서만 보면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인공인 것 같은데 오히려 아리스토텔레스의 활약상보다는 화자이자 주인공인 스테파노스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으며, 아리스토텔레스라는 역사상의 유명한 캐릭터를 빌려왔을뿐 그의 철학이나 수학적인 지식을 이용하여 사건을 해결하는것이 아니라서 독특한 탐정을 만나는 재미는 기대에 미치지는 못합니다. 수학자라는 설정이 논리적, 논증적인 탐정에 걸맞는다고 작가는 생각했겠지만 제 생각에는 탐정 '소크라테스'나 '플라톤'이었어도 상관이 없었을것 같을 정도로 그다지 캐릭터를 잘 표현해 낸 것 같지는 않더군요.
또 추리소설로 보기에는 추리의 전개가 빈약하고 사건의 해결이 결국 범인의 '일생에 있어서 단 한번의 실수...'라는 것으로 압축될만큼 단순하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하지만 스토리 자체가 다음의 전개가 무척 궁금할만큼 흥미진진하고 당시 아테네의 묘사 또한 디테일하고 리얼해서 재미라는 측면에서는 충분히 합격점을 줄 만 합니다. 드라마 자체만으로는 거의 만점에 가까운 뛰어난 이야기라 생각되거든요. 뭐 추리물보다는 추리적 기법이 들어간 '모험'소설에 가깝지 않을까 싶긴 하지만요.

추리는 약하지만 캐릭터와 배경묘사, 스토리가 그 약점을 커버할만큼 매력적인, 역사추리라는 쟝르에서 나름의 위치를 차지해도 좋을 소설입니다. 앨리스 피터스 추모 단편집 '독살에의 초대'와 비교해서 읽는맛도 각별하네요. 흥미진진한 읽을거리를 찾으신다면 일독을 권합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2010/02/23

천재들이 즐기는 수학 퍼즐 게임 - 한다 료스케 / 이정환 : 별점 3점

천재들이 즐기는 수학 퍼즐 게임 - 6점
한다 료스케 지음, 이정환 옮김/일출봉

제목 그대로 수학을 중심으로 한 퍼즐이 실려있는 책입니다.

그런데 수학 퍼즐은 물론 탱그램이나 도형 퍼즐, 미로 등 실려있는 퍼즐들은 옛날, 한 20년 전에 국내에서 유행했던 퍼즐 백과 문고본 시리즈의 일부만 따다가 실어놓은 듯한 느낌입니다. 장정과 인쇄질, 종이질도 20년 전 수준으로 그리 좋지 않아서 책의 완성도 면에서 높은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하지만 퍼즐 천재 샘 로이드와 퍼즐왕 듀드니라는 양대 인물에 대한 소개 및 퍼즐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책의 구성은 만족스럽고, 실제로 수학과 연관성을 지니는 퍼즐들이 많이 수록되어 있어서 제목에서 느껴지는 기대에는 충붆니 값합니다. 실제 퍼즐이 창작되었을 때를 연상케하는 일러스트도 마음에 들고요. 
사실 "퍼즐"을 즐기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추리소설 창작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더 컸는데 딱 한문제, "몬티홀" 문제가 쓸만해서 나름 만족스럽기도 합니다. ("몬티홀" 문제란 A.B.C 의 문 3개 중 한개를 선택하는 TV쇼가 있답니다. 이 중 한개의 문 뒤에는 보물이 있는데, 내가 문을 한개 선택한 뒤 사회자가 남은 두개의 문 중 하나를 열어 보물이 없는 것을 보여주고 나에게 문을 바꿀 기회를 준다고 합니다. 문을 바꾸는게 유리할까요? 아니면 아닐까요? 하는 문제랍니다.^^)

무엇보다도 알라딘 반값 할인 이벤트로 5천원도 안되는 가격에 구입했다는 장점이 때문에 별점은 3점입니다. 수학 퍼즐을 좋아하신다면 싼값에 한권 구입하셔서 즐길만한 책이 아닌가 싶네요.

그나저나, 학생때는 손도 안대던 수학 책을 나이 30대 후반되서 이렇게나 사게 되다니... 정말 알 수 없는게 인생사에요...

2025/08/01

동트기 힘든 긴 밤 - 쓰진천 / 최정숙 : 별점 2.5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지하철 역에서 살해당한 남자가 들어있는 캐리어를 옮기던 남자가 체포되었다. 그는 유명한 변호사 장차오로, 피해자 장양과 금전 관계로 다투다 살해했다고 자백했다. 그러나 법정에서 그는 경찰의 권위에 눌려 허위 증언을 했다며 범행을 부인함과 더불어 결정적 알리바이를 제출했다. 이런 일련의 과정들 때문에 사건은 전국적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말았다. 

경찰은 장차오가 도대체 왜 이런 짓을 벌이는지 알아내기 위해 수학 천재인 옌량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리고 이 사건은 20여년 전 있었던 허우구이핑 변사 사건 및 초등학생 아이 성상납이라는 추악한 범죄와 깊은 관계가 있다는게 서서히 드러난다...

중국 사회의 구조적 부패와 폭력, 권력형 범죄를 정면으로 다룬 사회파 추리 소설입니다. 초등학생을 성상납하는 추악한 범죄가 이루어졌음에도, 대기업 회장과 고위 정치인이 결탁하여 수많은 살인을 저지르고 증거를 인멸하며, 주요 수사 관계자에게 누명을 씌워 파멸시키는 과정을 거침없이 보여줍니다. 이 모든 일이 20여 년 전인 2001년부터 시작되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으며, 이런 내용을 담은 작품이 중국에서 정상적으로 발매되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는 사실은 놀라울 따름입니다.

작품은 단순한 사회 고발에 그치지 않습니다. 쑨훙원의 비서 후이랑과 공안 리젠궈가 결탁하여 허우구이핑에게 누명을 씌워 죽이고, 유력한 증인이었던 딩춘메이도 살해하며, 딩춘메이를 살해한 왕하이쥔마저 죽이면서 사건을 철저히 은폐하는 과정은 범죄, 수사물로 충분한 재미와 완성도를 갖추고 있으며, 전개도 숨이 턱턱 막힐 정도입니다. 이처럼 극심한 후이랑과 리젠궈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우직하게 수사를 이어가는 장양과 주웨이의 모습은 감동을 불러일으키고요.

결국 사건이 영원히 은폐되나 싶었지만, 장양, 주웨이, 천민장, 장차오가 힘을 합쳐 거짓 살인 사건을 만들어 이를 공론화하는 전개도 매우 흥미롭습니다. 특히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장양이 자살한 뒤, 그 시간에 알리바이를 만든 장차오가 지하철에서 소동을 일으켜 사람들의 주목을 끈 다음, 시체를 드러내는 도입부는 아주 인상적입니다. 단순히 여론을 환기시키는 데서 그치지 않고, 아동 성매매를 했던 고위 정치인 샤리핑의 친자 검사를 비밀리에 진행해, 그가 피해자에게 출산까지 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밝혀내는 이야기 절정 부분의 쾌감도 강렬하고요.
샤리핑이 최종 악역이 아니라, 그 위에 더 큰 흑막이 존재해서 사건에 관여했던 인물들은 모두 자살하거나 사고사로 죽고, 장양의 조력자들도 감옥에 가게 되는 결말은 현실적이면서도 씁쓸한 여운을 남깁니다.

그리고 이야기의 핵심 축인 허우구이핑 사건을 다시 수사해 나가는 과정에서 보여지는 장양과 주웨이, 천민장의 우정과 의리, 정의감은 사나이의 가슴을 뜨겁게 만듭니다. 세상을 지배하는 거대한 악에 맞서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쏟아붓는 이들의 모습에서는 사파가 지배하는 무림을 정의롭게 되돌리기 위해 나서는 영웅호걸들이 떠오릅니다.

그러나 단점도 분명합니다. 작가의 전작에서도 느껴졌지만, 다른 작품에서 본 듯한 설정이 곳곳에 보입니다. 시한부 인생인 주인공이 자살했지만, 이를 살인 사건으로 꾸며 전국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킨다는 설정은 영화 "데이비드 게일"과 똑같아요. 심지어 자살 방법과 동영상으로 자살했다는 진상을 고백하는 장면까지 유사하다는건 아쉽습니다. 게다가 "데이비드 게일"은 사형 집행이 과연 옳은가?라는 주제에 맞는 설정이라서 와 닿는데, 장양이 이런 기묘한 방식으로 여론을 환기할 이유는 솔직히 설득력있게 설명되지는 못합니다. 왜 샤리핑 사진과 사건 진상을 그냥 인터넷에 뿌리지 않았을까요?

아울러 과거 허우구이핑 사건 조사 과정에서 벌어지는 후이랑과 리젠궈의 방해는 너무 뻔해서 뒤로 갈수록 식상합니다. 장양과 주웨이 등이 그들의 덫에 쉽게 걸리는 등의 전개도 설득력이 떨어지고요. 리젠궈가 어떤 식으로든 훼방놓을게 뻔한데, 계속 리젠궈의 방해에 걸려 좌절하는건 솔직히 좀 어이가 없었어요.  

인물 설정과 묘사도 허술합니다. 장차오가 갑자기 등장해서 정의감을 불태우는 이유부터 충분히 설명되지 않습니다. 허우구이핑의 연인이었던 리징과 결혼한 게 그렇게 큰 죄책감을 느낄 일인지 의문이에요. 장차오 때문에 허우구이핑이 죽은게 아니니 연인의 자리를 차지한건 그렇게 큰 문제는 아닙니다. 허우구이핑의 사인이 잘못되었다는 걸 바로 알아챘다 한들, 그 당시에 장차오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고요. 오히려 시간이 한참 지난 뒤 장양을 돕기 위해 갑자기 나타나는 전개가 더 어색했습니다.
반대로, 처음에 장양에게 사건에 뛰어들기를 강요했던 연인 우아이커와의 이별은 너무 급작스럽게 전개됩니다. 그렇게 헤어질 거였다면 우아이커의 비중을 초반에 크게 설정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 시리즈의 주인공격인 수학 천재 옌량이 사실상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는다는 문제는 큽니다. 옌량이 등장하지 않아도 이야기 전개에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그래도 중국의 민낯을 드러낸 강렬함만큼은 놀랍고, 한번 잡으면 손 떼기 힘든 재미를 갖추고 있는건 분명하기에 별점은 2.5점입니다. 사회파 추리 소설을 좋아하신다면 한 번 읽어보시길 권해드립니다.

2012/09/03

춤추는 술고래의 수학 이야기 - 레오나르드 믈로디노프 : 별점 2점

춤추는 술고래의 수학 이야기 - 4점
레오나르드 믈로디노프 지음, 이덕환 옮김/까치글방

주로 확률에 대해 다루고 있는 수학 교양서입니다. 확률, 패턴과 관련된 중요한 인물, 발견을 시대순으로 배열한 역사서적인 측면도 있고요. 

딱딱하고 지루하지 않게 재미있는 사례나 누구나 흥미를 가질만한 이야기를 예로 들어 설명하고 있다는 점은 높이 평가합니다. 이 중 개인적으로 재미있었던 내용들을 몇 가지 소개해 드립니다.

요크셔의 면화공의 몬테카를로 대승부 이야기. 

당시에는 룰렛 기계 자체가 불균형해서 기계마다 나올 수 있는 숫자의 확률이 다르다는 것을 이용한 것이라고 합니다. 즉, 모든 숫자가 공평하게 1/37이 아니라 1/9의 확률이었다는 것인데, 기대이익을 한번 계산해 보고 싶네요.

측정과 오차의 법칙을 설명하면서 와인 평가에 대해 예를 든 부분.

한마디로 "신의 물방울은 구라다!" 라네요. 1990년의 실험 결과로는 전문가들도 감정의 성공률이 70% 정도밖에 안 된다고 하거든요. 어차피 주관적일 수밖에 없는 감정 평가라 생각하기에 믿지도 않았지만, 예상보다도 성공률이 너무 낮아서 실망스럽더군요. 칸자키나 잇세도 별 거 아니군요.

푸앵카레가 제빵사의 범죄행위(?)를 알아차리게 된 계기.

케플러의 법칙입니다. 우연의 패턴은 신뢰할 수 있는 것이어서 그런 패턴에서 벗어나는 자료는 범죄의 증거가 되기도 한다는, 이른바 "범죄 경제학"을 다룬 이야기인데, 추리소설의 한 꼭지로 사용해도 괜찮겠더라고요.

우생학과 평균회귀의 원칙, 그리고 제목에도 사용된 춤추는 술고래의 패턴.

"과거의 성공은 미래의 성공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펀드매니저 분석법은 눈여겨볼 만했습니다.

다만, 이렇게 재미있는 주제들을 설명하는데도 불구하고 내용이 뭔가 매끄럽게 이어지지 못하는건 아쉽습니다. 제가 수학 실력이 젬병인 탓도 있겠지만 좀 더 쉬운 표현으로 설명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지요. 특히 공식이나 수식 설명에서 부족함이 많이 느껴졌는데, 이건 명백히 번역의 문제라 생각됩니다.

좀 긴 호흡의 역사서적인 구성이기 때문에 단순히 비교는 어렵지만, 유사한 주제를 다루었던 "1% 확률의 마술"이나 "기회를 만드는 확률의 법칙"보다는   재미나 실용적인 측면 (도박?)은 약하지만 깊이는 더 있는 책입니다. 아무래도 저와 같은 수학음치에게는 재미가 더 중요한 요소이기에... 별점은 2점입니다만, 깊이가 있는 것은 확실하니 이쪽 분야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한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2008/10/15

사이먼 싱의 암호의 과학 - 사이먼 싱 / 이원근 : 별점 5점

사이먼 싱의 암호의 과학 - 10점
사이먼 싱 지음, 이원근 옮김/영림카디널

이전에 읽었던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의 저자가 쓴 암호의 역사와 원리에 대한 책입니다. "경성탐정록"의 자료로 쓸 까 하고 구입한 책이죠. 목차는 1. 메리 여왕과 엘리자베스 여왕의 암호 대결/ 2. 암호 - 그 신비의 바다 / 3. 보이지 않는 암호 전쟁 / 4. 사라진 언어 / 5. 이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암호 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책 정말 물건입니다. 정말 재미있더군요. 암호도 수학이 근간이 된 과학이기에 딱딱하고 지루하게 쓰지 않았을까 걱정했는데 기우였어요. 암호의 역사를 주요 이슈별로 나누어 생성 방법과 해독 과정, 역사에 미친 파장 등을 재미있게 써서 읽는 내내 전혀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재미 뿐만이 아니라 암호에 대하여 상세하게 잘 설명하고 있어서 이거 한권 읽으니 암호 전문가가 된 것 같아 뿌듯하기까지 하더라고요.^^

딱 하나 아쉬운 점은 유렵과 영미권이 이야기의 중심이라 암호 해독에 동참하지 못한다는 것인데 이건 뭐 어쩔 수 없는 점이겠죠. 상세한 내용 이외에도 풍부한 도판과 암호문의 여러가지 예문들, 다양한 부록도 실려 있기에 정말 별점 5점이 아깝지가 않습니다. 암호에 관심 있으시다면 꼭 한번 읽어보시길 적극 권해드립니다.

1장에서는 제목처럼 메리 여왕의 엘리자베스 여왕 암살 음모에 대한 암호문을 중심으로 암호의 기원부터 중세까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주요 이슈인 메리 여왕 관련 이야기는 한편의 짤막한 역사 첩보 소설을 보는 것 만큼 흥미진진한 이야기였고 그 외의 다른 이야기들, 예를 들자면 고대 암호의 기원부터 스파르타와 로마의 암호 이야기 등도 재미있었습니다. 추리소설 트릭으로 써먹음직 했고 말이죠.
 
2장에서는 크게 두가지의 이슈, 즉 그 당시 해독이 불가능하게 여겨지던 "비즈네르 사이퍼" 와 아직도 그 수수께끼가 밝혀지지 않은 미국의 보물 관련 암호문 "빌 사이퍼" 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비즈네르 사이퍼의 아이디어와 그 해독방법도 흥미진진했지만 모험소설과 같은 분위기가 풍기는 "빌 사이퍼" 이야기는 그야말로 한편의 영화였습니다! 아직도 해독되지 않았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요. 개인적으로는 개인의 창작으로 날조된 문서로 보입니다만...

3장은 독일의 이른바 "이니그마" 시스템에 관련된 이슈가 중심입니다. 해독 불가능으로 여겨지던 이니그마 시스템의 원리를 자세히 설명하는 것은 물론, 그것을 해독하기 위한 폴란드와 영국의 암호해독팀의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재미는 물론 그간 궁금했던 이니그마 시스템에 대해 확실히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이 가장 큰 소득이었습니다. 복잡한 기계이지만 명쾌한 도판과 상세한 설명으로 그간의 궁금증이 싹 가셨거든요.

4장은 영화 "윈드토커"로 잘 알려진 미국 나바호 인디언 암호병에서 시작해서 이와 유사하게 "다른 언어"를 이용한 암호문이라 할 수 있는 고대 언어 해독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짐작대로 "로제타 스톤"과 고대 이집트 언어의 해독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익히 알고 있었던 이야기였지만 세부적인 디테일이 잘 표현되어 마음에 들었습니다. 몰랐는데 샹폴리옹 혼자서 이론을 만들고 해독한건 아니더군요.

5장은 현대 암호 시스템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이른바 "열쇠"를 중심으로 한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암호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보여주는데 사실 여기서부터는 원리는 수학이지만 컴퓨터를 이용한 작성과 해독의 영역에 들어갈 뿐더러 역사적인 사건과 맞물리는 것은 없어서 재미는 가장 떨어지는 편이었습니다. 그래도 "소수"를 이용한 열쇠 만들기에 대한 내용은 경성탐정록에 써먹어 봄직한 이야기라 개인적으로 횡재한 느낌이었어요.^^

2016/10/30

서프라이즈 : 인물편 - MBC 신비한 TV 서프라이즈 제작팀 지음 : 별점 1.5점

서프라이즈 : 인물편 - 4점
MBC 신비한TV 서프라이즈 제작팀 지음/MBC C&I(MBC프로덕션)

MBC의 방송 프로그램 "서프라이즈"에서 다루었던 인물들이 소개되는 책입니다. 그런데 직전에 읽은 "사건편"보다도 더 재미없고 자료적 가치도 없습니다. 두 권이 세트 느낌이라 한꺼번에 읽기는 했지만 역시, 슬픈 예감은 틀리지가 않네요.

그나마 기대에 최소한이나마 값했던 이야기는 피타고라스 이야기 뿐입니다. 피타고라스가 무리수라는 개념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무리수를 발견한 제자 히파수스를 죽였고, 무리수를 아르곤이라고 명명한 뒤 외부로 누설되는 것을 강력히 금지했다. 그러나 무리수의 개념은 얼마후 피타고라스의 발견으로 공식 발표되었고, 오히려 거기서 확장된 개념 - 예를 들어 정오각형의 한 변과 대각선의 비는 1:1.618이라는 황금분할의 비율이다! - 이었다는건데 꽤나 그럴듯했습니다. 뭔가 수학 관련 추리소설 소재로도 쓸만해 보였고요.

그러나 그 외에는 대체로 너무 잘 알려져 있어서 식상한 이야기, 별로 미스터리하지 않은 가쉽과 스캔들, 기묘하고 흥미롭더라도 진위 여부는 의심스러운 이야기들이 대부분입니다. 특히 별 관련 없는 것들을 정말로 중요했던 단서나 진상처럼 포장해서 이야기하는 전개 방식은 정말 짜증납니다. 대표적인게 나폴레옹이 러시아 원정에서 진 이유는 러시아가 오스만 제국과 휴전하고 모든 대군을 프랑스에 쏟아 부었기 때문이며, 이는 나폴레옹을 증오한 오스만 황제의 어머니 에메 뒤비크 때문이었다!는 겁니다. 억지도 정도껏 해야지요... 하긴, "사건편"에서의, 워털루 전쟁 패전 원인은 통조림 대신 병조림을 사용했기 때문이라는 주장보다는 조금 나아 보이기는 합니다만.

아인슈타인을 유혹한 화가의 아내 마르가리타는 사실 소련의 스파이였으며, 그녀에게 아인슈타인이 연구 기밀을 제공한 덕분에 소련이 원자폭탄 개발에 성공했다는 이야기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드라마틱하기는 하지만 소련의 핵개발은 이렇게 단순하게 이루어진게 아니라는건 잘 알려져 있으니까요.

스타들에 대한 이야기들은 개중 나은 편이기는 합니다. 예로는 에디트 피아프와 결혼했던 21살 연하의 테오 이야기를 들 수 있습니다. 에디트가 결혼하고 1년만에 사망하자 테오는 임종 사진 보도에 대한 독점권을 팔았습니다. 당연히 사람들은 이 결혼은 돈이 목적이었다고 비난했고요. 허나 테오가 7년 뒤 사망한 후, 의외의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에디트 피아프가 엄청난 부채에 시달리고 있어서 그 빚을 테오가 대신 갚아 주었다는 것이지요.
장국영 자살 사건을 소개하며 그는 타살당했을지도 모른다는 설이 제기하는 부분도 추리소설 같아서 재미있었습니다. 등장하는 의혹들은 제법 그럴듯한데, 과연 진상이 무엇일지 궁금해지네요.

그런데 이런 스타들에 대한 이야기들은 흥미롭기는 하지만, 가쉽에 가깝다는 문제는 큽니다. "서프라이즈"가 아니라 "연예가 중계"에 가까운 내용들이거든요.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사건편"보다도 가치가 낮아 점수를 줄 만한 부분이 거의 없습니다. 인터넷의 유사 사이트 검색보다 나은 점 역시 전무하고요. 가격까지 비싸니 구태여 찾아 읽지 마시기 바립니다.

덧붙이자면, 개인적으로는 방영 당시 아주 흥미롭게 보았던 일본의 여왕벌 히가 가즈코 이야기가 빠진게 의외였습니다. 검증된 사실일 뿐더러 충격적인 내용으로 이 책에 딱 맞는 소재인데 왜 빠졌을까요?

2009/11/03

100년의 난제 푸앵카레 추측은 어떻게 풀렸는가 - 가스가 마사히토 / 이수경 : 별점 3점

100년의 난제 : 푸앵카레 추측은 어떻게 풀렸을까? - 6점
가스가 마사히토 지음, 이수경 옮김, 조도상 감수/살림Math

언젠가 EBS에서 방영 예고했던 동일한 내용의 다큐를 놓쳐서 무척이나 안타까왔었는데, 간만에 본가에 가니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던 NHK PD 가스가 마사히토가 쓴 책이 있어서 읽게 되었네요.

간략하게 소개하자면, 책은 두 가지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첫 번째 이야기는 제목 그대로 "푸앵카레 추측"이 무엇인지와 이 수학상의 어마어마한 난제를 어떻게 풀게 되었는지를 약 반세기에 걸쳐 관련 인물들과 이론을 추적하며 자세하게 서술하는 것, 그리고 두 번째는 이 푸앵카레 추측을 푼 수학자 페렐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중 첫 번째 이야기는 제가 수학과는 담을 쌓은 사람이라서 완벽한 이해는 불가능했지만, 이 추측의 가장 중요한 핵심인 "우주공간"에서 끈을 당긴다... 라는 것 정도만 머리에 집어 넣어도 이해가 될 수 있을 정도로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는게 굉장히 마음에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영상화된 다큐멘터리에 근거한 책이다보니, 여러가지로 쉽게 설명하려는 노력이 군데군데 묻어나고 있거든요. 이러한 고등수학을 쉽게 설명하기는 정말로 어려운 일이었겠지만 이 책은 상당한 수준으로 잘 해내고 있습니다. 이쪽 바닥의 명저인 과거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라는 책이 연상될 정도로요. 그 외의 Q.E.D에서나 접해봤던 필즈상 이야기라던가 이런저런 친숙한 용어들도 반가운 부분이었고요.

그러나 두 번째 이야기, 즉 수수께끼의 수학자 페렐만에 대한 이야기는 솔직히 기대 이하였습니다. 어려운 수학상의 난제를 해결하고도 수학계의 노벨상이라 할 수 있는 필즈상과 클레이 수학연구소에서 내건 상금 100만불까지 거부하고 현재 고향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은둔하며 사는 페렐만이라는 인물에 대해 피상적인 정보만 쫓을 뿐, 결국 페렐만이 왜 상과 상금을 거부했는지와 지금 뭐하고 사는지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밝혀내지 못한 채 이야기를 마무리하기 때문에 김이 확 빠져버렸어요. 수수께끼만 나열한채 해답없이 끝나는, 2권짜리 추리소설에서 전편만 본 느낌이랄까요?

하지만 첫 번째 이야기가 쉽고 재미있었으며 이런저런 아이디어 같은 것도 얻을 수 있던 만큼 자료적 가치도 있기에 전체적으로는 나쁘지 않았다... 는 것은 명확합니다. 재미없고 실망스러웠던 두 번째 이야기도 이런저런 상상의 여지가 많아 최소한의 흥미거리는 되니까요. 별점은 3점입니다.

그나저나 페렐만 박사는 도대체 뭘 하고 있을까요? 푸앵카레 추측을 발판으로 뭔가 다른 새로운 증명에 돌입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저는 왠지 푸앵카레 추측을 해결하며 쌓은 노하우를 통하여 지구, 아니 우주를 정복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새로운 연구를 하고 있을것 같은 생각이 자꾸 드네요. 이런이런... 만화를 너무 많이 본건가......

2010/04/19

한국 수학사 - 김용국, 김용운 : 별점 4점

한국 수학사 - 8점
김용국.김용운 지음/살림Math

말이 필요없습니다. 제목 그대로 한국 수학의 역사를 기록한 유일무이한 책으로 한국 수학사의 배경과 중국 - 일본수학과 비교한 한국 수학의 특징 설명에서부터 시작해서 한국의 수리사상의 기본개념 부터 삼국시대, 통일 신라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에서 근대까지를 방대한 정보와 자료와 함께 아우르는 그야말로 한국 수학 역사에 대한 바이블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일본 강점기 시대의 수학 전공자 탐정이 나오는 추리소설을 창작하는 입장에서 참고삼아 읽은 책인데 의외로 재미있고 자료로 쓸게 많아서 아주 만족스러웠어요. 주역같은 수리사상의 기본개념이라던가 산가지를 이용한 수식과 숫자들, 개성상인들의 부기 관련한 내용은 그 자체를 그냥 트릭으로 도입해도 괜찮을 정도의 A급 자료들이었으니까요.

물론 저같은 사심(?)이 없더라도 기본적인 내용이 재미있습니다. 여러가지 척도라던가 고대 숫자 발음에 대한 자료, 다양한 과거 시대의 교과서들, 도량형, 역사속 한국 산학 교과서에 실린 여러 문제들 같은 경우 그 자체만으로도 하나의 완성된 주제로 손색이 없기에 충분히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내용이거든요.

무려 600여 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과 3만원이 넘는 가격은 분명 부담스럽기는 하지만 이쪽 관련한 정보에 관심있으시다면 한마디로 필독서라 생각되네요. 미시사 서적을 좋아하셔도 재미있게 읽으실 수 있을테고요. 별점은 4점입니다. 자료로 따지자면 특 A급이라 5점짜리 책인데 도판 관련해서는 조금 더 세밀했으면 하여 약간 감점합니다.

2006/11/23

A 사이즈 살인사건 - 아토다 다카시 : 별점 3점

북오프에서 구입한 책. 저자 아토다 다카시는 "기묘한 맛" 류의 작품으로 잘 알려진 작가죠. 약간 로얄드 달 분위기도 나서 개인적으로 무척 좋아하는 작가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추리물로도 상당히 유명하나 국내에 소개된 것은 없어서 아쉽던 차였는데 우연찮게 북오프에서 발견하여 서슴없이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정통 추리 단편집이라는 표지가 마음에 들었거든요. 그런데 아무래도 일어 원서다 보니 읽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네요. 잡은지 1주일만에 겨우 대충이나마 다 읽게 되어 포스팅합니다.

일단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탐정역의 캐릭터로 탐정이 "묘법사"라는 절의 주지승입니다. 즉, 스님 탐정이죠.(만화 "잇큐"도 있지만 워낙 허접한 만화라...) 작중 스님의 말을 빌리자면 "시체 때문에 먹고 사는 직업"이라는 것은 형사- 스님이 똑같다라는 점이 와닿기도 하네요. 어쩐지 "브라운 신부"하고 일맥상통하는 부분도 있고요.
하지만 단지 직업이 독특한 것에 그치지않고 작품이 진행되어 나가면서 하나씩 성격과 매력이 드러나는데 세속의 여러 풍습과 문화에 굉장히 밝고 술과 고기도 즐기는 괴승으로 주인공 형사와 바둑을 두며 선문답 형식으로 추리를 전개해 나간다는 설정이 이색적이고 새로왔습니다. 장황하지 않으면서도 작가 특유의 감수성이 잘 살아있는, 유머러스하게 묘사된 성격 역시 딱 제 스타일이더군요. 한마디로 이런 독특한 탐정이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로 아주 매력적이었어요.

이 스님이 바둑친구이자 형사인 사사무라가 미해결 사건을 들고오면 사건 이야기를 듣고 추리하며 바둑을 둔다는, 전형적인 안락의자 탐정 스타일 추리물로 추리가 잘 풀리면 바둑이 강해진다는 디테일도 좋고 연재 당시의 계절과 세월의 흐름까지 잘 표현되어 있다는 것도 마음에 든 부분이고요. 또한 트릭들 역시 본격에 가까운 정통적인 퍼즐 미스터리라 딱 제 취향이었습니다. 트릭에 큰 무리가 없으며 인간 심리를 이용하여 범행이 이루어지는 과정의 재구성도 꽤나 합리적이었고요.

물론 스님이 던지는 질문과 그것을 통해 추리를 이어나가는 과정의 설득력이 약간 떨어진다는 점은 약간 아쉽습니다. 그리고 책 소개에도 나와 있는 선문답으로 추리를 진행한다는 설정은 재미있기는 하지만 억지스럽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용의자 중 이과대학 출신의 인물은?" 이라는 질문을 "용의자 중 가장 수학을 잘 하는 사람은?" 이라고 물어보는 식이니까요. 너무 추리물에 어울리게 빙빙 꼬아 놓았다라는 느낌이 강했거든요. 그래도 대체로 작품 모두가 단편으로는 상당한 수준의 추리적, 이야기적 완성도를 보여줍니다.

결론내리자면 아토다 다카시라는 작가의 재발견이랄까요? 기존에 많이 접했던 섬뜩한 느낌의, 또는 기발한 상상력의 중단편보다 저는 이 추리 단편들이 훨씬 마1음에 들었습니다. 좀 상관없는 이야기지만 제 허접스러운 일본어 실력으로도 독해가 가능할 정도로 짤막짤막한 대사들로 구성된, 짤막하게 압축된 작품들이라는 것도 좋았고요. 별점은 3점입니다.
저의 베스트는 트릭이 절묘한 표제작 "A 사이즈 살인사건", 그리고 기묘한 상황과 설득력 있는 트릭이 잘 부합하는 "2LDK 개미지옥" 입니다. 시간이 된다면 한번 번역해보고 싶네요.

그런데 문예춘추사 문고본인데 한자에 독음이 달려 있지 않아 등장인물들의 이름이나 지명을 잘 알아보기 힘들더군요. 아쉽...

PS : 무려 24년전에 발간된 책이긴 하지만 단돈 2천원으로 구할 수 있었다는 것이 사실 제일 마음에 드는 부분이었습니다^^. (북오프 만세!)


1. A 사이즈 살인사건 :
호텔 뒷편 저수조에서 젊은 여자의 사체가 발견된다. 인적이 뜸한 곳이며 동기 등을 본다면 여자가 속해 있던 학생 오케스트라 멤버에 의한 살인으로 보이나 용의자들의 알리바이는 철벽과도 같은 상태.
표제작으로 사사무라가 묘법사에 바둑을 빙자한 사건 의뢰를 하는 첫 작품이기도 합니다. 때문에 관련된 설명이 조금 길게 실려 있긴 하나 무리없이 깔끔하게 흘러갑니다. 무엇보다도 트릭이 상당한 수준이며 정통적인 방법으로 전개된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어요. 단, 제목이 내용에 완벽하게 부합하지 않을 뿐더러 트릭과 별 상관없는 것이라 약간 맥이 빠지긴 합니다. 단편집을 출간하면서 제목을 바꾼 모양인데 원제였던 "A 컵 살인사건" 쪽이 더 나은 것 같습니다. 어차피 그게 그거지만. 어쨌건 좋은 작품. 별점은 3.5점입니다.

2. 2LDK 개미지옥
신혼부부가 신혼여행에 돌아오는데 모르는 남자가 알몸으로 욕조 안에서 죽어 있는 것을 발견한다. 그 남자는 신혼부부와 일면식도 없는 인물. 대체 왜? 그리고 어떻게 살해 되었는가?
모르는 남자가 집 욕조 안에서 죽어 있다... 기발한 발상으로 시작하나 사건 자체는 합리적으로 풀어나간다는 점이 매력적인 작품. 트릭도 상당히 좋은 편입니다. 이 남자를 살해하는 과정의 재구성이 정말 딱딱 들어맞거든요. 딱 한가지 문제점이라면 경찰 수사로도 충분한 내용이었다는 것인데 사사무라가 너무 스님에 의존하는 것 같더군요. 별점은 3점입니다.

3. 구두와 미약과 3인의 여자
한 남자가 독살된 시체로 발견된다. 그는 결혼했지만 3명의 여성과 관계를 맺고 있는 플레이보이. 3명의 여성을 조사하지만 알리바이도 확실하고 동기도 명확하지 않다. 스님은 그 남자의 넥타이와 구두에 주목하는데...
독살 이야기인데 깔끔하게 전개되고 스님의 선문답도 이 작품에서는 그런대로 설득력있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완성도도 높지만 무엇보다도 진상이 정말 의표를 찌르는 것이라 신선하고 재미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야기가 좀 시시한 편이라 약간 소품같은 느낌이 들긴 하더군요. 별점은 2.5점입니다.

4. 이중 인격의 죽음
한 기업 기숙사의 가장파티에 손님으로 참석했던 남자가 창고에서 목을 매단 시체로 발견된다. 자살로 보이지만 사사무라 형사는 자살의 이유가 없다는 점에서 타살이 아닐까 생각하나 유력한 용의자들의 알리바이는 철벽. 그는 스님에게 도움을 청하기 위해 묘법사로 찾아온다.
자살을 가장한 타살은 살인의 가장 편한 방법이지만 추리소설에서 이러한 방법을 설득력 있게 묘사한 작품은 찾아보기 힘들었죠. 이 작품은 그러한 맹점을 잘 파고들은 괜찮은 단편입니다. "가장파티"라는 특정 상황을 이용한 효과적인 트릭으로 보이네요. 별점은 3점입니다.

5. 맨발로 천국에
한 남자가 맨션에서 투신 자살한다. 그러나 사사무라는 죽은 남자가 구두를 정돈하지 않고 엉망으로 해 놓은 점이 계속 신경이 쓰이는데...
투신 자살할 때 왜 신발을 벗어서 가지런히 해 놓는가? 라는 것을 주제로 쓰여진 작품입니다. 이 명제 자체가 흥미로와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단 트릭이 약간 비현실적이고 스님의 선문답 물음의 하나인 "비와호" 관련 질문은 너무 비약이 심한 것 같아 아쉽더군요. 너무 문답을 어렵게 만들려는 속셈이 빤히 들여다 보인달까요? 그래도 작품은 하나의 단편으로 충분한 완성도를 보여줍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6. 고물취향의 사체
골동품 수집이 취미인 한량 대학원생이 자기 방에서 화약으로 머리 반쪽이 날아간 시체로 발견된다. 그러나 폭발을 일으킨 흉기는 없는 상태. 용의자도 애매한 상황에서 사사무라는 다시 묘법사로 찾아가 주지스님에게 사건을 문의하게 된다.
이 단편은 일종의 장치를 이용한 트릭이 등장하는데 장치의 조잡함은 둘째치고서라도 우연(?)에 의지하는 부분이 많아서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흉기를 숨기는 방법에 대한 디테일은 좋았지만 사소한 부분으로 추리적으로 다른 작품들에 비한다면 많이 처져 보입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7. 벛꽃잎의 미로
황실과 친척관계인 명문집안에 협박장이 날아온다. 대단한 내용은 아니지만 긴장한 경찰은 사사무라를 비롯한 형사들을 수사에 투입한다. 그러나 협박 자체 부터가 애매할 뿐더러 그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이 계속되자 사사무라는 주지스님에게 사건을 털어놓고 추리를 부탁한다.
소품입니다. 몇통의 협박장만 가지고 이야기가 이루어지거든요. 그렇지만 누구나 한번쯤 생각해 봄직한 소재이기에 공감이 많이 가더군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8. 하프-문 살인사건
초등학교 교사가 살해당한다. 그녀는 너무나 형편없는 실력으로 학부모들의 반감을 사고 있는 독신 여성. 사사무라는 결정적 단서가 포착되지 않자 다시 묘법사로 찾아간다.
이 작품은 잘 알려진 트릭이 쓰이고 있는 작품입니다. 때문에 새로운 느낌을 별로 전해주진 않고 오히려 주지스님이 본사로 영전하게 되어 작품이 마무리 되는 시리즈의 최종장적인 설명이 더 중심인 듯 싶네요. 그래도 제목과 내용이 잘 어울리고 전개와 추리의 과정이 깔끔하며 합리적인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2011/02/10

아하! 바로 그거야 - 마틴 가드너 / 이충호 : 별점 2.5점

이야기 수학퍼즐 아하! - 6점
마틴 가드너 지음, 이충호 옮김/사계절출판사

이전에 읽었던 "이야기 파라독스"와 시리즈 도서라 해도 무방한, 같은 저자 마틴 가드너의 책입니다. 전작처럼 문제와 해설 중심의 수학 서적 비슷하다는 것 역시 마찬가지고요.

그러나 제목에서처럼 "직관"을 굉장히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는 것이 차이점입니다. 자세하지 않고 쉽게쉽게 넘어가는 편이라 일부 이론의 경우 이해하기 힘들었고, 어려운 문제도 제법 있었지만 넌센스 퀴즈도 많고 기발한 발상의 문제가 꽤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총 논리 - 수 - 조합 - 기하학 - 절차라는 5개 장으로 구분되어 있는데, 그중에서도 1장 "논리의 아하!" 같은 경우는 추리 소설에서 쓰임직한 아이디어가 꽤 많아서 더욱 만족스러웠어요. 얼음을 이용한 트릭이라든가, 부인을 살해한 남자가 고발된 이유 등은 조금만 변형하면 소설에 바로 사용해도 될 것 같았거든요. 뒷부분의 1에서 9까지의 숫자 위에 동전을 차례로 놓아 먼저 15를 만드는 사람이 이기는 시합에서 "마방진 3목트릭"을 이용한다는 야바위꾼의 전략 역시 그럴듯했고요.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전작에 비해 확실히 어렵게 설명된 부분이 많고, 뒷부분의 퀴즈는 해답이 아예 없다는건 불만스러웠던 점입니다. 독자에게 생각을 강요하는 방식도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도저히 답이 떠오르지 않는데 답이 없으니 정말 답답하더라고요. 게다가 뒤로 갈수록 너무 대충 쓴 듯한 느낌이 강하기도 해서 별점은 2.5점입니다.

그래도 쉽고 재미난 부분은 제법 있는 만큼, 수학과 직관에 대해 관심이 있으시다면 한 번쯤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2008/11/27

왜 버스는 한꺼번에 오는 걸까? - 롭 이스터웨이·제레미 윈드햄 / 김혜선

왜 버스는 한꺼번에 오는 걸까? - 4점
롭 이스터웨이·제레미 윈드햄 지음, 김혜선 옮김/경문북스(경문사)

전에 무척이나 재미있게 읽었던 “왓슨, 내가 이겼네!” 에 이은 경문사 수학 오디세이 시리즈 중 한권입니다. 이쪽 분야에 관심도 있을 뿐더러 뭔가 추리소설 창작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구입한 책이죠.

그런데 이 책은 좀 미묘했습니다. 다루고 있는 주제들도 어중간하고 재미도 어중간하고 수학적인 내용도 어중간한 책이거든요. 목차와 책 소개는 대단히 재미있을것 같이 잘 포장해 놓았는데 제가 읽기에는 하여간 뭔가 잘 맞지 않는 듯 싶었습니다. 원래 중-고등학생용 도서라 그랬던 것이지도 모르지만 말이죠.

예를 들자면 통계의 오류와 수학적으로 가능한 추측에 대한 이야기는 재미있었지만, 암호에 관련된 이야기나 도박에 관련된 이야기, 숫자 마술 같은 이야기들은 초보적인 수준에 머무르고 있어서 전체적으로 내용의 편차가 크게 느껴졌습니다. 개인적으로 통계나 게임이론에 대한 이야기가 더욱 많았으면 좋았을 것 같은데 아쉽더군요.

결론적으로 별점은 2점입니다. 솔직히 돈이 조금 아깝기도 하네요... 아무래도 일반인보다는 수학에 흥미가 없는 “학생”들에게 적합한 책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2006/08/02

알렉산드로스의 음모 - 폴 C 도허티 / 한기찬 : 별점 2점

의사 텔라몬은 과거 미에자의 숲에서 알렉산드로스와 동문수학했던 사이지만 전사로서의 삶을 포기하고 의사로 살아가는 인물. 이집트에서의 살인사건으로 마케도니아로 돌아온 그는 알렉산드로스의 어머니 올림피아스에게 협박받은 뒤 헬레스폰토스에서 전군을 소집하여 페르시아로 출정을 앞둔 알렉산드로스를 돕기 위해 떠난다. 한편 다리우스왕과 그리스인인 로도스의 멤논은 알렉산드로스를 저지하기 위한 갖가지 계략을 짜내고 그 계략의 중심에는 알렉산드로스 진영에 침입한 정체불명의 첩자 나이팟이 있었다.

텔라몬이 알렉산드로스와 합류한 직후 길안내를 맡기로 했던 일당들이 살해당하고 그들이 작성한 지도마저 상자안에서 불타버린 재로 발견되며 아테네 여신을 모시는 여사제마저 의문의 죽음을 맞는 등 알 수 없는 죽음이 꼬리를 물지만 알렉산드로스는 출진을 감행하는데...

폴 C 도허티라는 작가의 역사 추리소설. 조사해 보니 이 작품 이외에도 "누가 파라오를 죽였는가"라는 역사 추리물이 출판되었는데 이 작품도 그렇고 제가 처음 접하는 것을 보니 두권 모두 그다지 인기를 끈 것 같지는 않군요. 우리나라에서 역사 추리물이 별 인기가 없는 탓도 있겠지만, 이 책을 읽어보니 단점이 확실히 눈에 들어오기에 이해는 갑니다.

물론 장점이 없지는 않습니다. 역사 추리물이라는 장르에 걸맞게 알렉산드로스의 페르시아 원정 직전의 병영 분위기와 주변 정세, 실존 인물들이기도 한 다양한 등장인물들의 묘사와 디테일에 많은 페이지를 할애하고 있는데 그 묘사의 수준이 생생해서 실제 눈으로 보고 쓴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킬 정도로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특히 다양한 민족으로 구성되어 당시로서는 무적의 전법을 보여주던 알렉산드로스 군대의 여러 묘사와 실존인물들인 다양한 인물들 묘사는 개인적으로 아주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또 이러한 알렉산드로스 관련 "역사물"을 "역사 추리물"로 바꾸기 위해 가공인물인 텔라몬이라는 의사이자 뛰어난 관찰력을 지닌 인물을 탐정역으로 내세워 밀실 살인 (바닥에 단단히 고정되고 입구를 보초가 지키고 있는 천막) 과 순간 소실 (나무로 된 상자안의 지도가 재로 변하지만 상자는 그을리지 않은),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스파이까지 등장시켜서 추리적으로도 꽤 풍성한 편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추리적 부분에서의 단점이 너무 확연합니다. 일단 텔라몬의 관찰력에 의한 결과가 독자들에게 공평하게 전달되지는 않아서 정통 추리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으며, 살인 사건도 여러번 일어나지만 "살인자의 정체"를 밝히는 것이 "살인 행위"의 트릭을 밝히는 것 보다 우선되는 내용도 추리물로서의 가치를 많이 떨어트립니다. 사건에 비하면 트릭도 허술하고요.
무엇보다도 진범, 즉 스파이 나이팟의 정체가 명쾌한 설명 없이 순전히 자백에 의존하고 있어서 설득력이 많이 떨어지는게 치명적이네요. 나름 추리물이라서 나이팟에 대한 단서를 앞부분에서 던져주긴 하지만 그리스 신화에 대해 박식하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는 단서라서 반칙이라는 생각만 듭니다.

결론내리자면 어설프게 추리적 요소를 도입하다 외려 실패한 역사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역사 추리물의 거장 엘리스 피터스의 작품들보다는 스케일이 커서 화려한 맛은 있고, 작가의 자료 수집 등의 노력이 느껴질 정도의 알렉산드로스 군단의 생생한 묘사는 꼭 한번 볼만한 가치가 있으며 당시 알렉산드로스와 페르시아쪽 인물들과 분위기를 이해하는데에는 많은 도움을 주기는 하지만 제 기대에는 전혀 미치지 못했습니다.

덧붙이자면 비슷한 그리스 시대를 무대로 한 "탐정 아리스토텔레스"와 비교할 수 있을텐데 소박하고 평화로운 분위기고 모험물에 가깝지만 내용 전개 등에서 추리물적인 가치가 더 높은 "탐정 아리스토텔레스" 쪽이 제 취향이었습니다.

2014/02/24

비정근 - 히가시노 게이고 / 김소영 : 별점 2.5점

비정근 - 6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소영 옮김/살림

비정근 교사인 주인공이 임시 담임을 맡은 학교와 반에서 벌어진 사건을 해결한다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단편집.

살인사건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일상계에 가깝습니다. 당연하지요. 초등학교에서 대단한 강력 범죄가 벌어질 확률은 낮으니까요. 허나 평범한 일상 속 사건을 흥미진진하게 전개하는 작가의 능력만큼은 확실히 인정할만 합니다. 별거 아닌데 몰입하게 되더라고요.

또 주인공 설정이 괜찮았어요.  뭔가 오래전 "떠돌이 해결사" 느낌을 현대적으로 구현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쿨하고 차갑지만 사실은 따뜻한 남자로, 마을의 위기를 해결하고 떠나는 무사같은 느낌이요. 귀찮은 것을 싫어하지만 냉정하고 분석력이 빠르며, 일을 맡기면 똑 부러지게는 하지만 더 이상의 무언가는 절대로 하지 않을 성격도 마음에 들고요. 사건을 겪으면서 조금씩 "선생님"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점도 좋았습니다. 이렇게 맡는 학교마다 크건 작건 사건이 일어나면 비정근 교사로 먹고살기는 점점 힘들어지겠지만....

그러나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일본인이 아니면 풀 수 없는 트릭이 거의 대부분이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추리에 동참하거나 공감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물론 이 자체는 단점은 아니지만 번역할 때 국내 실정에 맞게 조금 더 신경썼더라면.. 하는 생각은 듭니다.

결론적으로 별점은 2.5점. 작가 특유의 몰입감 있는 전개가 인상적인, 무난한 단편집입니다. 일상계스러운 재미는 충분한 만큼, 일상계 추리물을 좋아하시는 분들께, 또 추리소설을 처음 접하시는 초심자분들께 추천드립니다. 주인공이 독특한만큼 드라마로 만들어도 좋지 않을까 싶네요.

수록작별 간단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6*3"

3개월 한정의 비정근 교사로서 5학년 3반의 담임을 맡게 된 주인공이 기묘한 살인사건을 해결한다는 내용입니다.

주요 트릭이 다이잉메시지인데 원래의 메시지가 있었더라면 범인이 곧바로 체포되었겠지만, 작위적으로 메시지를 변경하여 이야기를 어렵게 꼬아놓았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기 어렵습니다. 그래도 원래의 메시지가 변경된 이유를 설득력있게 설명하는건 괜찮아서 평작 수준은 충분합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1/64"

반 아이들이 나누는 1/64 라는 단어와 반에서 일어난 지갑 도난 사건의 진상을 그린 작품.

평이하고 무난한 일상계지만 아쉬운 것은 "바카도지"라는 일종의 암호입니다. 일본식 암호로 국내 독자가 해석하기에 무리가 따를 뿐더러, 그 자체가 너무 작위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두엘기삼" 같은 건데 이게 우연히 단어처럼 보이게 되었다는건 너무 우연이 심해요. 또 요시오카가 돈을 빼앗긴 것을 밝히지 않은 것도 의문입니다. 그게 도박의 증거가 될 수는 없잖아요? 때문에 별점은 2.5점입니다.

"10*5+5+1"

주인공이 다른 학교 5학년 3반의 임시 담임이 된 뒤 이전 담임 모리모토의 추락사에 대한 진상을 밝힌다는 내용.

나름 무난한 일상계인데 공식의 결과인 56이 모리모토의 체중이었다는게 어머니를 통해 증언되었다면 좀 더 쉽게 풀렸을텐데, 괜히 어렵게 꼰 느낌입니다. 동기 역시도 억지스러웠어요. 이해가 안가는건 아니지만 다른 해결 방법이 얼마든지 있었을 것으로 보이거든요. 때문에 별점은 2.5점입니다. 그래도 인간이란 약한 존재라는 주인공의 독백은 마음에 들었습니다.

"우라콘"

이번에는 반도 시키 초등학교의 6학년 2반을 무대로 하여 학생인 나가세 아키호의 투신자살 미수, 그리고 그와 관련된 “우라콘"이라는 단어의 뜻을 알아낸다는 내용.

처음으로 제목이 공식이나 숫자가 아니라서 의외였던 작품인데, "우라콘"의 뜻만 알면 진상은 쉽게 드러나지만 뜻을 알아내는 과정을 흥미롭게 풀어낸 솜씨가 아주 인상적입니다. 일상계인데 이 솜씨 덕분에 그야말로 미스터리가 됐달까요. 별점은 3점입니다.

한가지 아쉬운 것은 일본식 조어인 "우라콘" 입니다. 한국식으로 "뒷담투"와 같이 번역했더라면, 최소한 각주 정도로 표기해 주었더라면 어땠을까 싶네요.

"무토타토"

이번에는 고린 초등학교 6학년 3반. 수학여행을 중지하지 않으면 자살하겠다는 협박장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트릭은 일본인이 아니면 풀 수 없는 트릭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억지스럽더라도 번역할 때 "이외"라는 한글을 풀어서 "0151"과 같이 표기했더라면 더 낫지 않았을까 싶더군요.
그래도 야노의 계획에 나카야마가 숟가락을 얹어서 사건이 복잡해진 점, 동생을 활용했다는 점, 그리고 그것을 찾아낸 발상은 좋았습니다. 무엇보다도 주인공이 꽤 괜찮은 교사임이 드러나는 결말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이러니저러니해도 주인공은 주인공다워야하는 법이죠! 별점은 2.5점입니다.

덧붙이자면 초등학교 6학년생이 이즈라는 지명을 듣고 마쓰모토 세이초의 작품을 언급하다니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저는 많은 작품을 읽어봤지만 정작 지명은 잘 모르는데... 국내가 아니라서 뇌리에 깊게 남지 않았다 위안을 삼아봅니다...

"신의 물"

이번에는 롯카쿠 초등학교 6학년 3반. 반 학생이 음독으로 쓰러진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내용.

일단 트릭은 "신의물"이라는 페트병에 쓰인 글자가 핵심인데 역시나 일본인만 알 수 있는 트릭입니다. 감점 요소는 아니지만, 아무리 아이들이어도 초등학교 6학년 정도면 음독과 고양이 먹이 주기라는 일의 경중을 파악하기는 어렵지 않았을텐데 경찰에 진상을 밝히지 않은 것은 이해할 수 없네요. 아예 저학년이었다면 모를까... 때문에 별점은 2점입니다. 완성도가 높은 작품은 아니었어요.

"방화범을 찾아라"

고바야시 류타라는 초등학생이 화자이자 탐정역으로 등장하는 짤막한 단편. 주인공은 물론 등장하는 일종의 밀실 트릭도 순간접착제를 이용했다는 진상은 유치할 뿐더러 잘 됐을 것 같지도 않아서 실망스러웠습니다. 작가가 "명탐정 코난"같은 아동용 추리물에 관심을 가진 결과물이라 생각됩니다. 만화였다면 더 나았을지 모르지만 소설로는 영 아니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유령이 건 전화"

고바야시 류타 화자의 일상계. 반 아이들에게 걸려온 장난전화의 진상을 밝혀내는 이야기로 이번에는 탐정역으로 동급생 아사쿠라 도모미가 활약합니다.

단순한 장난이라 추리의 여지가 별로 없는 이야기를 이만큼이나 흥미롭고 풍성하게 만든건 작가의 능력이겠지요. 훈훈하고 따뜻한 괜찮은 소품으로 별점은 3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