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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4/25

루시퍼의 초대 (알라트리스테 시리즈 1) - 아르투로 페레스 레베르테 / 김수진 : 별점 3점

루시퍼의 초대 - 6점
아르투로 페레스 레베르테 지음, 김수진 옮김/시공사

마드리드에서 청부 검술사로 연명하는 백전노장 알라트리스테(Alatriste)는 친한 순찰대장 살다냐에게서 은밀한 의뢰를 받고 의뢰인을 찾아간다. 가면을 쓴 의뢰인은 영국에서 오는 2명의 여행객에게 상처를 입히고 그들의 서류와 짐을 빼앗을 것을 요청하나 직후에 나타난 종교재판소의 최고 책임자 에밀리오 보카네그라 수사는 그 2명을 모두 죽일 것을 명령한다.

이탈리아인 칼잡이 괄테리오 말라테스타와 같이 그들을 습격하여 부상을 입히는데에 성공하는 알라트리스테, 하지만 영국인들의 용기에 감동한 그는 이탈리아인 칼잡이를 제지하여 그들을 살려주고 과거의 전우인 과달메디나 백작에게 찾아가서 도움을 요청하며 그곳에서 두명의 영국인이 영국의 왕세자 찰스와 버킹엄 후작임을 알게 된다.


중대한 음모의 비밀을 알게된 알라트리스테는 곧 생명의 위협을 느끼게 되는데....

몇권 읽긴 했지만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았던 작가 레베르테의 시리즈 역사 활극 장편. 관심이 1피코그램도 없었지만 간만에 간 헌책방에서 새책이 눈에 띄길래 집어들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읽어보니 왠걸! 생각보다는 무척 재미있어서 깜짝 놀랐습니다.
우선 주인공 알라트리스테 대위가 아주 돋보여요. 화자역의 이니고 발보아도 상당한 매력을 뽐내지만 알라트리스테에게 댈건 아니죠. 백전노장이자 현재는 마드리드에서 청부 검술사로 살아가는 퇴락한 군인이라는 설정은 진부할 수 있지만 (크리쉬?) 신중하면서도 과감한, 그러면서도 낭만적인 구시대의 유물스러운 감정이 잘 표현되어 있어서 쉽게 보기힘든 존재감을 보여주거든요. 레베르테의 글빨이 제대로 먹혔다고 할 수 있죠.
이러한 멋진 주인공 알라트리스테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거대한 음모에 찰스왕세자, 버킹엄 후작, 펠리페 4세와 같은 역사속 실존인물들이 교묘하게 배치되어 있어서 대하 서사극으로도 아주 흥미진진합니다. 실존인물과 가공의 인물이 배치되어 펼쳐지는 활극이라면 "삼총사" 시리즈를 빼 놓을 수 없을테고, 이 작품 역시 여러가지 면에서 상당히 영향을 받은 듯 하지만 단순한 모방에 그치지 않은, 상당한 수준의 결과물이라는 것이 대단해요. 작가 자신이 즐기면서 썼다는 것이 느껴질 정도로 전개가 빠르면서도 주인공들이 잘 살아있어서 독자를 매료시키는 것 같습니다.
또 이전 작품에서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던 레베르테의 현학적인 장황한 묘사도 치밀한 자료조사가 덧붙여져 17세기 스페인 마드리드라는 배경에 잘 녹아들고 있기 때문에 현실감을 더해주는 요소로 사용된 것도 마음에 들고요.

아쉬운 점이라면 거대한 국가적인 음모로 보여지던 계획이 별볼일 없는 결말을 맞고 흐지부지 끝나다는 점입니다. 좀 더 여러가지 장치를 덧붙였다면 좋았을 것 같은데 음모가 그닥 복잡하거나 교묘하지 않아서 약간 실망스러웠거든요.
약간 독자에게 공부(?)를 요하게 하는 전개 역시 답답하긴 했어요. 이럴거라면 당시의 역사와 배경을 부록으로 실어주었더라면 훨씬 좋았을텐데 말이죠.
마지막으로 아쉽다기 보다는 문화적 차이랄까... 등장인물들 이름이 너무 길고 장황해서 기억하기가 무척 힘들었다는것도 단점이라 생각됩니다...^^

그래도 재미도 있고 캐릭터도 잘 살아있는, 충분히 다음편이 기대되는 작품임에는 분명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무협지와 유사하구나 하는 느낌도 오는데 그렇기 때문인지 상당히 중독성이 있더라고요. 전부 5부작이라고는 하는데 한편 한편으로 따지면 분량도 그다지 많지 않으니 차분히 구해서 읽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별점은 3점입니다.

PS : 반지의 제왕의 비고 모르텐슨 주연으로 곧 영화도 개봉하는 모양인데 예고편만 봐도 캐릭터가 상당히 근사하게 구현되어 보이는 만큼 영화도 무척 관심이 갑니다.(위의 사진이 포스터입니다)

2006/06/13

검의 대가 (Maestro de esgrima, El) - 아르투로 페레스 레베르테 / 김수진 : 별점 3점

검의 대가
아르투로 페레스 레베르테 지음, 김수진 옮김/열린책들

마드리드에서 혼자 살고 있는 쉰 여섯의 돈 하이메 아스타를로아는 한때는 화려한 시기를 보냈지만, 점차 그 유행과 가치가 퇴색되고 있는 검술을 가르치며 연명하는 검술 교사이다. 

1868년 여름, 이사벨 2세 여왕 정부에 대한 반발 세력들이 정권을 전복시킬 거라는 소문이 파다하며 어수선하던 어느 날 돈 하이메에게 아델라 데 오테로라는 아름다운 여인이 나타났다. 그녀는 돈을 두 배로 주겠다며 돈 하이메가 직접 창안한 '2백 에스쿠도' 검법이라 불리는 공격법을 가르쳐 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그녀가 여자라는 이유로 거절하지만 끈질긴 간청으로 약간의 시험을 거친 뒤 그녀가 뛰어난 검객이라는 사실을 알게되고 검법을 전수해 주었다. 그리고 점차 그녀에게 사랑을 느끼게 되는데...

레베르테의 대표작이라는 "검의 대가"를 드디어 읽었습니다! 이 작가 작품은 네 번째로 읽어보는데 작가의 두 번째 장편이며 제가 읽은 것 중에서는 가장 먼저 발표한 작품이네요.

특징이라면 초기작이지만 다른 작품들 처럼 역시 작가의 뛰어난 자료 조사 능력이 돋보이는 현학적 재미가 엄청나다는 겁니다. "뒤마 클럽"이 고서, "플랑드르 거장의 그림"이 체스라면 이 작품은 "알라트리스테"와 비슷하게 스페인의 근대사를 무대로 하고 있지만 제목 그대로 "검술 (펜싱)" 에 대해서 디테일하게 설명해 줍니다. 19세기 후반의 스페인을 무대로 당시의 격동적인 사회상을 소설 내용에 그대로 반영한 전개는 역시나 레베르테 답다는 탄성이 나오게 할 만큼 잘 짜여져 있고요. 

또한 "뒤마 클럽"이 재미와는 상관없이 고서사냥꾼 코르소라는 독특한 캐릭터를 잘 묘사한 것 처럼 이 작품에서도 돈 하이메라는 정말 "검의 대가"같은 그럴싸한 캐릭터 덕분에 읽는 재미가 쏠쏠하네요. 어떻게 보면 나이든 알라트리스테와 느낌인데 진중한 멋이 느껴지는 멋진 캐릭터라 무척 호감이 갔습니다. "플랑드르 거장의 그림"에서는 체스의 고수 캐릭터가 약했던 측면이 있었는데 두 작품의 장점만 섞어 놓았달까요? 기본 설정과 캐릭터, 묘사에서 일단 먹어주는 작품이었습니다.

하지만 펜싱에 대한 설명이 불필요할 정도로 자세하고 당시 사회상에 대한 묘사, 돈 하이메의 과거사 등에 대한 설명이 과해서 지루한 측면도 없잖아 있었습니다. 현학적인 과시욕 때문이었을까요? 움베르토 에코의 여러 작품들에 비하면 그 정도가 덜한 편이지만 그래도 확실히 2/3 정도로 분량을 줄이는 것이 효과적이었을 것 같습니다. 어차피 메인 스토리 자체는 다른 웅장한 설정이나 묘사에 비하면 많이 약하기 때문에 분량 면에서 더욱 효율적으로 정리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네요.

또한 마지막의 대결 장면은 아무리 진검과 연습용 검의 차이는 있지만 "검의 대가"인 돈 하이메의 캐릭터 때문에 그다지 위기감이 느껴지지 않아 긴장감이 덜한 것 역시 아쉬웠습니다. 이 부분은 제가 우연찮게 케이블 TV에서 방영했던 영화를 먼저 감상했었기 때문에 결과를 미리 알고 있어서 더욱 그랬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울러 책에 등장한 다양한 펜싱의 자세를 약간의 도해로나마 표현해 주었으면 훨씬 좋았을 것 같습니다. 작가 스스로는 "200 에스쿠도"를 눈이 휭휭 돌아갈 정도로 자세하게 설명해 놓고 있는데 머리로는 그 검법이 전혀 그려지지 않거든요. 책 자체는 이쁘게 잘 나왔는데 약간의 배려가 아쉽네요.

그래도 결론내리자면 추천작. 상당히 재미있는 작품으로 별점은 3점입니다. 영화로 먼저 보기는 했지만 잘 이해가 되지 않았었는데 소설을 보니 확실히 정리가 되는 느낌이 드네요. 돈 하이메 캐릭터를 잘 살렸던 영화나 다시 구해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PS : 근데... 이게 "추리물" 인지는 잘 모르겠군요.

2003/06/27

뒤마 클럽 - 아르투로 페레스 레베르테 / 정창 : 별점 2점

뒤마 클럽 - 4점
아르투로 페레스 레베르테 지음, 정창 옮김/시공사
아르투로 페레스 레베르테라는 이름도 어려운 작가의 장편 소설. '제2의 에코'라는 화려한 수식어에서 부터 헐리우드에서 죠니 뎁 주연의 영화까지 나오는 등 잘 팔릴만한 배경은 충분히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겠죠.

책사냥꾼이라는 특이한 직업의 주인공 코르소를 내세워서 알렉산드르 뒤마라는 거장의 육필원고를 근거로 그 뒷 배경을 파헤침과 동시에 '아홉개의 문'이라는 또다른 희귀본을 가지고 악마를 불러올 수 있다는 전혀 다른 스토리를 한꺼번에 전개하고 있는 작가의 욕심과 방대한 자료조사에는 찬사를 보냅니다.

그러나 이 두가지의 스토리가 전혀 맞물리지 못할 뿐더러 삼총사의 주인공에서 빌려온듯한 악녀, 전혀 근거를 알 수 없는 조력자인 '이레네 아들레르'라는 여인 등 유치한 설정이 난무할 뿐 아니라 소설의 내러티브가 뒤죽박죽에 우연투성이이고 이야기의 결말 역시 맥빠지기 이를데 없는 등 작품은 전혀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결론내리자면 중세 유럽 문학 자료집 이상의 가치를 지니지 못한 작품입니다. 작가가 자신의 지식을 자랑하고 싶어하는 현학적인 교만만이 넘쳐날 뿐이에요. 에코 역시 자신의 지식을 과시하긴 하지만 그의 글은 최소한 스토리라인이라는것이 있는 반면 이 작가는 자료조사능력은 있는것 같지만 스토리를 전개하는 기본적인 작가로서의 능력이 많이 부족하다 생각되네요.

색다른 장르와 성격의 책이 국내에 나와준 것은 반가운 일이나 저한테는 시간낭비 이상의 가치를 가지지 못했습니다. 또 책값은 왜 이리 비싼지....... 영화쪽은 평이 그나마 괜찮군요. 영화나 한번 봐 줄까 합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2005/10/25

플랑드르 거장의 그림 - 아르투로 페레스 레베르테 / 정창 : 별점 2.5점

플랑드르 거장의 그림 - 4점 아르투로 페레스 레베르테 지음, 정창 옮김/열린책들

미술품 복원 전문가 훌리아는 곧 경매에 걸릴 플랑드르 시절 거장 반 호이스의 작품 "체스 게임" 복원 중, 엑스레이 촬영을 통해 그림 밑에 숨겨진 수수께끼의 메시지 "누가 기사를 죽였는가?"를 발견했다. 메시지가 그림의 모델인 오스텐부르크 대공과 로제 드 아라, 그리고 부르고뉴의 베아트리체의 관계와 관련된 내용임을 짐작한 훌리아는 조사에 착수했다. 그리고 훌리아는 후원자이자 아버지와 같은 골동품상 세사르의 도움을 받아, 체스 플레이어 무뇨스에게 그림 안에서 기사 (나이트)를 잡은 말이 무엇인지 알아내 줄 것을 부탁했다. 체스 게임과 메시지의 연관성을 풀어내기 위해서였다.
기사를 잡은 말은 흑의 여왕이라는걸 알아는 뒤, 의문의 인물이 그림 속에서 중단된 체스게임을 계속하라고 명령했다. 그리고 연쇄 살인과 그림의 도난 사건이 일어났고, 훌리아와 무뇨스는 범인이 누구인지 깨닫게 되는데....

레베르테의 "플랑드르 거장의 그림" 입니다. 정말 오래간만에 추리 소설을 한 권 읽었네요.

이 작가 작품은 이전에 "뒤마클럽"을 읽어 보았지만, "뒤마클럽"은 기대에 많이 미치지 못했었습니다. 실망이 더 컸지요. 그러나 이 작품은 훨씬 낫더군요. 제법 재미있기 때문입니다. 방대한 자료 조사를 통해 현학적인 지식을 과시하는 특유의 문체는 여전하지만, 이야기의 맥락도 그런대로 명확한 편이고요. 체스를 통한 연쇄살인이란 아이디어도 재미있었습니다. 특히 이야기에 나오는 체스의 행마를 따라가는 재미가 굉장합니다! 
참고로 체스를 소재로 삼은 작품은 캐더린 네빌의 "에이트 (8)"라는 작품도 있었지만, 이 작품은 체스의 말을 움직이는 "행마"를 주요 소재로 삼아서 차별화에 성공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역사 추리"라는 요소는 거의 없습니다. 중반 정도에 흑녀가 기사를 잡은 것을 알게 된 이후에는, 역사속의 인물들과 사건은 별로 중요하게 되지 않거든요. 이후 발생하는 현실의 사건들과 과거의 사건이 아무런 연관성이 없다는 점도 역사 추리물로 평가하기 어렵게 만들고요. 전체적으로 본다면 전반부는 역사 추리, 후반부는 평범한 추리 스릴러물로 양분되는데, 두 사건을 억지로 끼워 맞춘 느낌이 강합니다.
아울러 추리적으로도 단점이 큽니다. 살인의 동기가 비약이 심하다는 점, 그리고 전개가 설득력이 많이 떨어진다는 점입니다. 동기가 불분명해서 범인을 특정할 수 없다는건 작가 입장에서는 범인의 의외성을 강조할 수 있는 방법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독자에 대한 반칙이라 생각되네요.
즉, 추리소설이라고만 본다면 부족한 부분이 굉장히 많습니다.
 
그래도 작가 특유의 방대한 자료 조사를 바탕으로 한 내용 전개에는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는 힘이 느껴집니다. 정말 이 사람은 "프로"작가다! 라는 것이 팍팍 와 닿는달까요? 박진감 넘치는 이야기 전개 덕분에, 긴 분량에도 불구하고 시종일관 흥미를 놓치지 않으며, 마지막 범인의 자백에서 인간의 이중성에 대한 나름의 정의를 이끌어내는 부분도 괜찮았습니다. "강추"까지는 아니더라도 한번 읽어볼만 한 책이에요. "체스"라는 소재를 잘 알고 있다면 더욱 재미있게 즐길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되네요. 별점은 2.5점입니다.

PS : 좀 조사해 봤는데 피터 반 호이스라는 작가는 역시 가공의 인물인 것 같군요.

2015/03/02

살인을 부르는 수학 공식 - 테프크로스 미카엘리데스 / 전행성 : 별점 3점

살인을 부르는 수학 공식 - 6점
테프크로스 미카엘리데스 지음, 전행선 옮김/살림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929년, 수학교사 스테파노스가 살해당했다. 유일한 친구였던 미카엘 이게리노스는 경찰에게 소식을 전해 듣고, 둘의 인연이 시작되었던 1900년 파리 수학자 대회를 떠올렸다.

1900년 파리 수학자 대회에서 힐베르트가 제시한 23개의 문제 중 2번 문제, "산술의 공리들이 무모순임을 증명하라"에 대한 해법을 둘러싸고 벌어진 살인 사건을 다룬 작품입니다.

20세기 초반 수학계의 주요 흐름을 짚는 수학 소설인 탓에, 당대 수학계의 핵심 이론들을 알기 쉽게 설명하는 데 주력하지만 단순히 수학 이론을 설명하는 것에 그치는건 아닙니다. 살인 사건이 등장하는 미스터리 형태를 띠고 있기 때문입니다. 추리물로서의 수준도 높습니다. 힐베르트의 강의가 있었던 날부터 독자에게 동기를 지속적으로 부각시키는 복선에 더해, 범행의 진상도 깔끔했고, 무엇보다 마지막 반전 - 스테파노스의 증명은 범행 직후 발표된 쿠르트 괴델의 논문을 통해 오류가 있는 것으로 밝혀지고, 이게리노스의 범행은 결과적으로 아무런 필요가 없었다 -이 돋보인 덕분입니다.

여러모로 "장미의 이름"과 유사하다는 점도 인상적입니다. "장미의 이름"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희극론"이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것을 막기 위해 책을 숨기고 살인을 저질렀는데, 이 책에서는 이게리노스가 수학의 순수함을 지키기 위해 스테파노스의 논문 발표를 막고자 살인을 저지른다는 동기가 매우 비슷하거든요. 다양한 수학 이론을 설명해 독자에게 현학적인 느낌을 제공하는 점, 주인공 외 실존 인물들이 등장하고 실제 역사와 맞물려 전개되는 팩션이라는 점도 이러한 생각을 더욱 강하게 만들어 주고요.

그런데 핵심 내용 몇 가지를 제외하면 굳이 필요하지 않은 이야기들이 많다는 단점인 큽니다. 파리에서 파블로 피카소를 만난다거나, 이게리노스의 결혼과 이혼, 스테파노스가 우연히 그의 전처 및 정부와 엮이는 등의 설정은 핵심 이야기 전개와 별 관계가 없으니까요. 피카소가 기하학에 관심이 많다는 설정이 입체파의 시작을 알린 "아비뇽의 처녀들"로 이어진다는 발상은 흥미롭지만, 수학자들이 피카소에게 기하학 강의를 해 준다는 내용은 수학 이론을 설명하기 위한 장치에 불과합니다.

물론 이 작품은 추리, 미스터리물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수학 소설"이기에 수학 이론 설명이 중심이 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래서 별점은 3점입니다. 지식 전달을 소설이라는 형식을 통해 시도한 결과물인데 재미와 정보 전달 양쪽 모두 일정 수준 이상을 갖추고 있다는 점이 돋보입니다. "장미의 이름"과 직접적으로 비교하긴 어렵지만, 적어도 레베르테의 작품들처럼 지식을 과시하는 데 치중하는 책들보다는 훨씬 낫네요. 수학에 관심이 있고 추리 소설을 좋아하신다면 꼭 한번 읽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2015/04/04

위험한 책 - 카를로스 마리아 도밍게스 / 조원규 : 별점 2점

위험한 책 - 4점
카를로스 마리아 도밍게스 지음, 조원규 옮김/들녘

케임브리지 대학의 여교수 블루마 레논은 에밀리 디킨슨의 시집을 읽다가 교통사고로 죽었다. "나"는 과거 블루마의 연인이었는데, 그녀 앞으로 보내져 온 조셉 콘래드의 책 "섀도 라인"을 전달받았다. 책은 시멘트가 앞뒤로 발라져 먼지가 끝없이 떨어지는 상태였다. "나"는 책을 보내온 남자 카를로스 브라우어를 찾아 나서는데...

아르헨티나 출신으로 우루과이에서 활동하는 작가의 작품입니다. 정말 오랜만에 읽는 제3세계 문학으로, 100여 페이지를 조금 넘는 정도의 중편 소설입니다. 수집광의 광기를 드라마틱하게 그리고 있지요.

특정 수집광(?)의 변태적인 행위를 그린 작품은 많이 있습니다. 대표작은 "나폴레옹 광"일테고요. 도서 수집광을 소재로 다룬 작품도 당연히 많습니다. 특정 도서의 희귀본을 수집하기 위해 범죄까지 불사하는 인물이 등장하는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 수첩", 책 수집광의 아내가 살해당한다는 "시미가의 붕괴"가 그러합니다. 조금 방향성은 다르지만 레베르테의 "뒤마클럽"에서는 책 사냥꾼이 주인공으로 등장하고요. 이런 작품들에서는 보통 수집광의 수집에 대한 욕구가 핵심 소재로 그려지는데, 이 작품은 책 수집광이 책과 함께 살기 위해 어떤 결론에 도달하는지를 중심으로 그리고 있다는 점이 다릅니다.

그러나 카를로스 브라우어가 책과 함께 살기 위해 "책으로 된 집을 짓는다"는 설정은 그리 새롭다고 보긴 어렵습니다. 수집광들이 자신이 모은 수집품으로 무언가를 만든다는 이야기는 이전에도 종종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책이라는 소재와는 잘 어울리는 설정이었고, 블루마의 요청으로 결국 그 집을 다시 허문다는 결말이나, 핵심만 간결하게 전개되는 압축된 구성은 나름 괜찮았어요. 다만 전체적으로 신선하다는 느낌까지는 들지 않았던게 문제이지요.
무언가의 진상을 찾는다는 점에서는 추리 소설 스타일을 따르고 있고, 책 소개에서도 미스터리 형식이라고 소개하고 있지만 추리적으로는 별볼일 없다는 것도 감점 요소입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입니다. 새로운 무언가를 기대했지만 정작 내용은 별로 건질 게 없었습니다. 이미 절판되었으니 구해보시기 어렵겠지만, 구태여 구해 읽어보실 필요도 없습니다.

2024/04/23

IMBA 선정 20세기 최고의 미스터리 100선

미국 독립 미스터리 전문 서점 협회(Independent Mystery Booksellers Association)의 회원들이 선정한 20세기의 미스터리 소설 100선입니다.
출처는 dcinside 추리소설 갤러리입니다. 원글은 이 곳에서 확인하세요.

100편의 리스트는 아래와 같습니다. 제가 리뷰를 올린 작품은 모두 링크를 걸어두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1. The Tiger in the Smoke - 마저리 앨링엄 (Allingham, Margery) (1952)
4. Aunt Dimity's Death - 낸시 애서튼 (Atherton, Nancy) (1992)
5. In the Heat of the Night - 존 볼 (Ball, John) (1965) / 국내 출간: 밤의 열기 속에서 (하서출판사)
6. Sheer Torture - 로버트 버나드 (Barnard, Robert) (1982)
7. Track of the Cat - 네바다 바 (Barr, Nevada) (1993)
8. The Beast Must Die - 니콜라스 블레이크 (Blake, Nicholas) (1938) / 국내 출간: 야수는 죽어야 한다 (황금가지)
9. When the Sacred Ginmill Closes - 로렌스 블록 (Block, Lawrence) (1986)
11. The Fabulous Clipjoint - 프레드릭 브라운 (Brown, Fredric) (1947)
12. The Thirty-Nine Steps - 존 버컨 (Buchan, John) (1915) / 국내 출간: 39계단 (문예출판사)
13. Black Cherry Blues - 제임스 리 버크 (Burke, James Lee) (1989)
15. The Thin Woman - 도로시 캔넬 (Cannell, Dorothy) (1984)
17. Thus Was Adonis Murderd - 새라 코드웰 (Caudwell, Sarah) (1981)
18. The Big Sleep - 레이먼드 챈들러 (Chandler, Raymond) (1939) / 국내 출간: 빅 슬립 (문학동네)
19. The Murder of Roger Ackroyd - 애거서 크리스티 (Christie, Agatha) (1926) / 국내 출간: 애크로이드 살인사건 (황금가지)
20. The Concrete Blonde - 마이클 코넬리 (Connelly, Michael) (1994) / 국내 출간: 콘크리트 블론드 (알에이치코리아)
21. The Man Who Liked Slow Tomatoes - K. C. 콘스탄틴 (Constantine, K. C.) (1982)
22. The Monkey's Raincoat - 로버트 크레이스 (Crais, Robert) (1987) / 국내 출간: 몽키스 레인코트 (노블마인)
23. The Moving Toyshop - 에드먼드 크리스핀 (Crispin, Edmund) (1946)
24. Dreaming of the Bones - 데보라 크롬비 (Crombie, Deborah) (1997)
25. The Last Good Kiss - 제임스 크럼리 (Crumley, James) (1978)
26. The Yellow Room Conspiracy - 피터 디킨슨 (Dickinson, Peter) (1994)
29. Booked to Die - 존 더닝 (Dunning, John) (1992)
30. Old Bones - 아론 엘킨스 (Elkins, Aaron) (1987)
32. Time and Again - 잭 피니 (Finney, Jack) (1970)
33. Who in Hell Is Wanda Fuca? - G. M. 포드 (Frod, G. M.) (1995)
35. The Hours Before Dawn - 실리아 프렘린 (Fremlin, Celia) (1958)
36. A Great Deliverance - 엘리자베스 조지 (George, Elizabeth) (1988) / 국내 출간: 성스러운 살인 (현대문학)
37. Smallbone Deceased - 마이클 길버트 (Gilbert, Michael) (1950)
38. “A" Is for Alibi - 수 그래프턴 (Grafton, Sue) (1982) / 국내 출간: 여형사 K (큰나무)
39. The Killings at Badger's Drift - 캐롤라인 그레이엄 (Graham, Caroline) (1987)
40. The Man With the Load of Mischief - 마사 그라임즈 (Grimes, Martha) (1981)
43. The Silence of the Lambs - 토머스 해리스 (Harris, Thomas) (1988) / 국내 출간: 양들의 침묵 (나무의철학)
44. Tourist Season - 칼 하이어센 (Hiaasen, Carl) (1986)
46. On Beulah Height - 레지널드 힐 (Hill, Reginald) (1998)
47. A Thief of Time - 토니 힐러먼 (Hillerman, Tony) (1988) / 국내 출간: 시간의 도둑 (고려원미디어)
48. Cotton Comes to Harlem - 체스터 하임즈 (Himes, Chester) (1964)
49. Hamlet, Revenge! - 마이클 이네스 (Innes, Michael) (1937)
53. When the Bough Breaks - 조너선 켈러먼 (Kellerman, Jonathan) (1985) / 국내 출간: 큰 가지가 부러질 때 (청담문학사)
54. The Beekeeper's Apprentice - 로리 킹 (King, Laurie) (1994)
55. Dark Nantucket Noon - 제인 랭턴 (Langton, Jane) (1975)
57. To Kill a Mockingbird - 하퍼 리 (Lee, Harper) (1960) / 국내 출간: 앵무새 죽이기 (열린책들)
59. Get Shorty - 엘모어 레너드 (Leonard, Elmore) (1990)
60. Sleeping Dog - 딕 록티 (Lochte, Dick) (1985)
61. Rough Cider - 피터 러브시 (Lovesy, Peter) (1986)
63. The List of Adrian Messenger - 필립 맥도널드 (MacDonald, Philip) (1959)
65. Bootlegger's Daughter - 마거릿 마론 (Maron, Margaret) (1992)
66. Death of a Peer - 나이오 마시 (Marsh, Ngaio) (1940)
67. Sadie When She Died - 에드 맥베인 (McBain, Ed) (1972)
68. The Sunday Hangman - 제임스 매클루어 (McClure, James) (1977)
69. If I Ever Rreturn, Pretty Peggy-O - 섀린 매크럼 (McCrumb, Sharyn) (1990)
70. A Stranger in My Grave - 마거릿 밀러 (Miller, Margaret) (1960) / 내 출간: 내 무덤에 묻힌 사람 (엘릭시르)
71. Devil in a Blue Dress - 월터 모즐리 (Mosley, Walter) (1988)
72. Edwin of the Iron Shoes - 마르샤 물러 (Muller, Marcia) (1977) / 국내 출간: 세계 여성 작가 서스펜스 걸작선 ‘쇠구두를 신은 에드윈’ (고려원미디어)
73. Death's Bright Angel - 자넷 닐 (Neel, Janet) (1988)
74. Mallory's Oracle - 캐럴 오코넬 (O'Connell, Carol) (1994)
75. Child of Silence - 애비게일 파젯 (Padgett, Abigail) (1993)
76. Deadlock - 새라 패러츠키 (Paretsky, Sara) (1984)
77. Looking for Rachel Wallace - 로버트 파커 (Parker, Robert) (1980)
79. Vanishing Act - 토머스 페리 (Perry, Thomas) (1995)
80. Crocodile on the Sandback - 엘리자베스 피터스 (Peters, Elizabeth) (1975)
81. One Corpse Too Many - 엘리스 피터스 (Peters, Ellis) (1979) / 국내 출간: 99번째 주검 (북하우스)
82. Blue Lonesome - 빌 프론지니 (Pronzini, Bill) (1995)
84. No More Dying Then - 루스 렌델 (Rendell, Ruth) (1971)
85. The Wrong Murder - 크레이그 라이스 (Rice, Craig) (1940)
87. Blood at the Root - 피터 로빈슨 (Robinson, Peter) (1997)
89. A Broken Vessel - 케이트 로스 (Ross, Kate) (1994)
90. Concourse - S. J. 로잰 (Rozan, S. J.) (1995)
91. Murder Must Advertise - 도로시 L. 세이어즈 (Sayers, Dorothy L.) (1933) / 국내 출간: 살인은 광고된다 (블루프린트) (ebook), 광고하는 살인 (동안)
95. Chinaman's Chance - 로스 토머스 (Thomas, Ross) (1978)
96. A Test of Wills - 찰스 토드 (Todd, Charles) (1996)
98. The Sands of Windee - 아서 업필드 (Upfield, Arthur) (1931)
100. Sanibel Flats - 랜디 웨인 화이트 (White, Randy Wayne) (1990)

다른 유사 리스트와 구분되는 특징이라면 한 작가 당 하나의 작품만 꼽았다는 겁니다. 그래서 소개되는 작가들이 다른 리스트에 비하면 훨씬 많고, 다른 리스트에서 찾아보기 힘든 작품들 - 예를 들자면 "스트라이크 살인" - 도 눈에 뜨이지요.

하지만 영미권, 특히 미국 작가에 집중되어 있다는 단점이 큽니다. 몇 안되는 유럽 작품에 "뒤마 클럽"이 속한 것도 납득불가고요. 작가별 대표작들도 동의하기 어려운 것들이 많습니다. '87분서 시리즈'라면 당연히 "살의의 쐐기"를 꼽아야 하지 않을까요? 온갖 하드보일드 작품들을 망라하면서 정작 제임스 엘로이의 작품이 없는 것도 믿기 어렵습니다. 

결론적으로, 참고 수준에 그칠 리스트입니다. 어차피 작품 선정 기준도 제대로 공개되지 않았으니 당연하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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