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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5/17

콘 비프 샌드위치를 먹는 밤 Season 2 : (3) 무덤 위 에로그로 식탁

이번에 소개할 작품은 "이단자의 사랑"입니다. 이 작품은 일본 유학 시절이던 1934년에 단편 "타원형의 거울"로 데뷔한, 국내 최초의 본격 추리소설 작가 김내성의 단편입니다. 저는 절판된 지 오래된 단편집 "비밀의 문"을 통해 이 작품을 접했는데, 다행히 최근 복간되어 이제는 쉽게 읽을 수 있습니다. 전자책으로도 출간되었으니 참고하세요.

의사 김철하는 애련과 약혼했지만, 1년에 한 번만 그녀를 볼 수 있게 해 달라는 조건을 걸고 그녀를 시인 추강에게 양보합니다. 추강이 그녀의 첫사랑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애련은 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추강은 그녀의 묘 위에 복숭아나무를 심습니다. 애련의 살과 피로 자라난 복숭아 열매를 김철하가 보는 앞에서 홀로 독점해 맛보기 위해서였지요. 추강은 김철하가 찾아오는 날마다 복숭아를 따 먹으며 그의 앞에서 자신의 승리를 과시합니다.

이 장면은 추강의 광기 어린 독점욕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데, 묘사가 정말 일품입니다. 탐미적이면서도 에로틱하고, 변태스러우면서도 그 과즙이 입안에 흥건하게 고이는 느낌을 줄 정도로 사실적이기 때문입니다. 미녀의 무덤에서 자란 과일로는 복숭아만 한 게 없다는 생각도 듭니다. 복숭아는 원래 미녀를 상징하는 과일이기도 하니까요.

복숭아는 본래 "손오공"에 등장하는 천도복숭아처럼 장수의 상징이자 귀신을 쫓는 신령스러운 과일로 여겨졌습니다. 그런데 언제가부터 농밀한 여인의 이미지가 덧붙여졌는데, 복숭아의 특성과 맛 때문일 겁니다. 맛있는 복숭아를 뜻하는 '수밀도'라는 단어만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껍질이 얇고 살과 물이 많으며 달콤한 맛'이라는 뜻이 미녀와 연결되는 건 자연스러운 흐름이니까요. 뜻 뿐만이 아니라, 높은 당도에도 불구하고 저칼로리에 수분과 식이섬유가 풍부해 다이어트에 좋고, 비타민도 많아서 피부 미용에도 좋으며, 피부의 멜라닌 생성을 촉진하는 타이로시나아제라는 성분을 억제해서 피부 미백 효과도 볼 수 있다니, 미인이라면 놓쳐서는 안 될 과일입니다.

그리고 작품 속에서 추강은 한여름 날 복숭아를 따서 껍질째 먹는데, 이 방식이야말로 복숭아를 제대로 먹는 방법입니다. 껍질에 비타민 E 등 유익한 성분이 많고, 높은 온도에서 단맛이 더욱 증가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추강의 도발에도 불구하고 김철하는 복숭아를 거들떠보지 않습니다. 대신 자신이 가져온 고래고기 통조림만 먹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고래고기의 정체를 알아챈 추강에게 김철하가 "고래고기다!"라고 외치며 이야기는 마무리됩니다.

이 작품이 발표된 1943년은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였던 시절입니다. 당시 고래고기는 가장 싸고 대중적인 고기였습니다. "맛의 달인" 등에서도 전쟁 전후에 고래고기가 저렴한 서민 음식으로 자주 언급되지요. 우리나라에서도 1980년대 이전에는 포획량이 많아 흔한 음식이었습니다. 지금은 포경 금지로 인해 귀하고 비싼 음식이 되었지만요.

고래고기는 육고기와 생선의 중간 맛 정도로,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회나 수육으로 먹었고 일본에서는 스테이크나 꼬치 요리로도 소비되었습니다. 외국 사례를 보면 "모비 딕"에서는 스테이크로 먹는 묘사가 등장하고, 아이슬란드에는 고래고기 꼬치가 전통 요리 가운데 하나라고도 하네요.

콜레스테롤 없는 불포화지방산을 다량 함유하고 있고, 온갖 비타민도 골고루 들어 있어 영양가도 뛰어나지만, 특유의 냄새 때문에 호불호가 갈립니다. 철 성분이 많은 고래의 피가 썩으면서 나는 냄새인데, 고래는 죽자마자 바로 피가 부패되기 시작합니다. 육지 동물보다 산소를 운반하는 헤모글로빈 수치가 높은 탓이지요. 헤모글로빈은 단백질이라 곧바로 썩거든요. 그런데 고래는 정식으로 잡을 수 없어서 그물에 걸려 죽은 경우 등에 한해서만 유통되고 있습니다. 이 경우에는 피를 곧바로 뺄 수 없어서 냄새가 나게 됩니다.

작품에서처럼 통조림으로 만들 때는 냄새가 심한 싸구려 고기를 사용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래서 보통은 진한 양념을 사용해 냄새를 잡고 맛을 균일화하는 조림 방식으로 만듭니다. 대표적으로 일본의 '야마토 조림' 고래고기 통조림이 있습니다. 설탕, 생강, 간장 등으로 조린 이 요리는 냄새를 잡고 고기를 부드럽게 만듭니다. 다만 고기 맛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하지만 짐작하시듯, 작품 속 고래고기 통조림 속의 고기는 고래고기가 아닙니다. 조리 방식도 장기 보존을 위해 소금에 절인 뒤 말렸을 뿐이지요. 같은 재료, 같은 방식으로 만들어진 육포는 야마시로 아사코의 "엠브리오 기담" 수록작 "지옥"에도 등장합니다. 산적들에게 잡힌 주인공이 구덩이에 갇혀, 산적들이 던져 준 육포로 연명하다가 함께 갇혔던 신혼부부 중 신부가 도망친 날, 신선한 고기가 던져졌다는 내용이 압권이지요. 지옥 구덩이에서 주인공이 탈출에 성공해 산적 일가를 구덩이에 가둔 뒤 벌어진 참상도 상상을 초월하고요. 참고로 야마시로 아사코는 "ZOO""GOTH"의 작가 오츠 이치의 또 다른 필명입니다. 작품도 과연 오츠 이치구나 싶어요.

"이단자의 사랑"은 지금 기준으로 뛰어난 작품이라 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당시 유행했던 '에로그로' 코드가 과도하고, 에도가와 란포의 영향이 짙으며, 흔한 삼각관계 치정극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시인과 과학자의 대결 구도도 다소 부자연스럽고요. 그러나 반전만큼은 강렬합니다. 제 아버지께서는 약 50년 전에 이 작품을 읽으셨는데도 이 반전을 아직도 기억하실 정도입니다. 반전을 위해 사용된 복숭아와 고래고기의 대조도 매우 흥미롭습니다. 복숭아는 농밀하고 탐미적인 에로스를, 고래고기는 거칠고 냉혹한 그로테스크를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에로그로'라는 키워드를 음식으로 명확하게 보여 주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리메이크한다면 어떤 통조림이 적합할까요? 저는 골뱅이 통조림을 떠올렸지만, 고기 형태가 너무 달라 쉽게 들통날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통조림이 어울린다고 생각하시나요?

# 시리즈 전체 보기

2025/12/19

오무라이스 잼잼 15 - 조경규 : 별점 2점

이전 권 리뷰에서 더 구입하지 않겠다고 했었는데, 형에게서 생일 선물로 받아 읽게 되었습니다. 책 가격이 2만원을 돌파했네요.

특유의 정감 있는 그림체와 따뜻한 분위기는 여전하고, 다양한 음식에 얽힌 이야기와 정보들은 여전히 흥미롭습니다. 따로 국밥은 6.25 때 밥이 미리 말아져 있는 국밥을 양반들이 체면 때문에 거부해서 생겨났다,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투움바 파스타는 미국 아웃백에서 만들어진 메뉴다라는 등 음식 유래들에 대한 설명이 특히 좋습니다. 그 외에도 이탈리아 정통 알프레도 파스타에는 크림이 들어가지 않고 파르미자노 레자노 치즈와 버터만 들어간다는 등 처음 알게 된 정보들도 많고요. 

그리고 레시피도 꽤 볼 만 합니다. 무엇보다 초코파이 라테 레시피가 가장 눈길을 끌었습니다. 초코파이를 전자레인지에 6초간 데운 뒤, 에스프레소와 우유를 뿌리고 부숴서 먹는 디저트라는데, 이건 꼭 한 번 만들어 보고 싶네요. "연유처럼 끈적이고 달콤한 삶" 편에서 연유의 유래와 함께 소개되는 홍콩의 '버터 돼지'(딱딱한 롤빵에 연유와 버터를 넣은 간식)를 한국 가정에서 만들려면 빵을 플레인 베이글로 대체하면 된다는 등의 꿀팁들도 눈길을 끕니다. 

하지만 이전 권에서도 언급했듯 가족 이야기의 비중이 높아졌다는건 단점입니다. 더 이상 음식과 요리 만화가 아니라 가족 일상툰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에요. 가족끼리 어디 놀러가서 뭘 먹었다는 류의 에피소드 반복은 식상하다는 말도 사치라 느껴질 정도로 뻔하고요.

이미 웹툰으로 읽은 독자가 책을 구입할만한 요소도 여전히 부족합니다. 독자가 뽑은 오무라이스 잼잼 명대사라던가 팬아트 모음은 솔직히 페이지 낭비입니다. 맛집 탐방 및 소개 역시 인터넷 컨텐츠 대비한 장점을 찾기 어려웠어요. 이래서야 가격 인상에 걸맞는 내용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원래 이 시리즈의 장점이었던 음식 중심의 이야기와 정보성이 점점 희석되어 가는데, 다음 권을 구입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대로라면 구입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네요.

2025/11/14

주식시장은 어떻게 반복되는가 - 켄 피셔, 라라 호프만스 / 이건, 백우진 : 별점 3점

책 소갯글을 보면, 원래 성공한 투자자는 책을 쓰지 않는다고 합니다. 실제로 투자에 몰두하다 보면 글을 쓸 시간이 없으니까요. 그래서 투자 책을 쓴 사람은 실전 투자자라기 보다는, 책 판매가 목적인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 켄 피셔는 실제로 큰 성과를 이룬 전문 실전 투자자이자 여덟 권이나 되는 책을 출간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의 주장들은 흘려듣기 어렵습니다.

주장은 간단하지만 확실합니다. 시장에는 영원한 약세장도, 끊임없는 경기 침체도 없었다는 것이지요. 켄 피셔는 과거 데이터를 근거로, 하락장이라 불리는 시기에도 배당까지 포함하면 대부분의 경우 수익이 발생했으며, 침체 뒤에는 빠르고 강한 반등이 뒤따랐다는 걸 보여줍니다. 흔히 말하는 V자 반등입니다. 결국 시장은 순환하고, 위기는 오래가지 않으며, 장기적으로 주가는 반드시 고점을 갱신해 왔다는 것이 주장의 골자입니다.
이런 말이 먹히는 이유는 사람들이 쉽게 비관론에 끌리기 때문이며, 저자는 인간 심리가 본질적으로 비관적인 예측에 더 큰 신뢰를 부여한다고 말합니다. 공포를 자극하는 목소리는 과장되어 보이지만 그럴듯하게 들리는 법이지요. 그러나 시장의 역사는 이런 비관론을 무수히 부정해 왔고, 결국 반등하고 회복하는 흐름으로 이어졌습니다.

이처럼 장기 투자 관점에서 시장을 바라보면, 일시적인 하락에 크게 흔들릴 이유는 없습니다. 오히려 그런 시기를 견디지 못한 투자자들이 더 큰 기회를 놓쳤다는 점을 여러 사례를 통해 설명해 줍니다. 강세장은 대체로 약세장보다 길고, 상승폭도 크며, 평균 수익률을 훨씬 웃도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이유로 투자자는 겁먹지 말고, 분산된 포트폴리오를 유지하면서 시장에 꾸준히 머무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또 '지나치게 빠른 상승은 위험하다'고 생각하지만, 저자는 강세장이 원래 그런 속성을 지녔다고 말합니다. 천천히 오르는 장보다 단기간에 크게 오르는 장세가 오히려 일반적이라는 뜻입니다. 물론 단기 조정은 불가피하지만, 기업의 펀더멘털이 무너지지 않았다면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니라고 덧붙입니다.

아울러 시장 변동성에 대한 접근도 기존 상식과는 결이 다릅니다. 많은 이들이 변동성이 클 때는 투자를 미루라고 말하지만, 피셔는 오히려 그 반대라고 합니다. 높은 수익률을 기대하려면 일정 수준의 변동성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안정성과 수익률은 본질적으로 상충 관계이며, 만약 변동 없는 수익을 원한다면 낮은 금리의 예금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다면서요. 심지어 변동성 없이 고수익을 보장한다는 말은 대부분 사기에 가깝다고 경고합니다. 메이도프의 폰지 사기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투자 지평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에 대한 설명도 현실적입니다. 대부분 은퇴 시점을 기준으로 투자 계획을 짜지만, 저자는 오히려 그 방식이 문제라고 말합니다. 중요한 것은 자산이 얼마나 오래 유지되어야 하느냐이지, 나이가 몇 살이냐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본인의 삶은 물론, 배우자와 가족까지 고려한다면 생각보다 훨씬 더 긴 투자 지평이 필요할 수 있고, 이런 상황이라면 주식 비중을 과감히 줄일 이유도 없습니다.

결론적으로, "다른 어떤 투자보다 주식 투자를 오래, 길게 가져가라는 이야기"입니다.

국가 부채에 대한 시각도 흥미롭습니다. 일반적으로 재정 적자는 경제에 부정적이라고 생각되지만, 피셔는 역사적 사례를 통해 이와 반대되는 결과를 보여줍니다. 예를 들어 미국은 재정 흑자일 때 대공황이 발생했고, 재정 적자 이후에는 오히려 시장 수익률이 개선된 경우가 많았다는 것입니다. 기업에 일률적인 부채 기준이 없는 것처럼, 국가에도 획일적인 부채 한계선은 존재하지 않으며, 국채는 통화 정책을 운영하기 위한 핵심 수단이라는 점도 강조됩니다.

미래를 지나치게 예측하려는 시도에 대해서도 날카로운 시선을 보입니다. 24개월을 넘는 시장 전망은 의미가 없으며, 한때 시장을 이끌었던 종목이나 섹터에 대해 '이제는 끝났다'고 단정 짓는 것도 위험하다고 말합니다. 현재 흐름이나 기존의 가정에 의존한 예측보다는, 데이터와 구조적인 분석을 통해 전략적으로 접근하는 편이 낫다는 의미입니다.

실용적인 조언도 많습니다. 시장 상황에 따라 유망한 자산군이 달라진다는 설명이 대표적입니다. 약세장 바닥을 벗어나는 시기에는 소형주가 강세를 보이며, 장기금리와 단기금리의 차이가 좁아질 때는 성장주가, 차이가 벌어질 때는 가치주가 상대적으로 유리하다는 분석은 실제 투자 전략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내용입니다.

다만 마지막에 등장하는 정치와 주가의 관계에 관한 내용은 그다지 흥미롭지 않았습니다. 정권이 바뀌었다고 해서 시장이 뚜렷하게 반응하지는 않으며, 이 부분은 미국 정치 중심의 설명이라 국내 독자 입장에서는 큰 공감이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주식 투자자라면 흥미를 느낄만한 내용이 많지만 미국 기준으로 서술되었다는건 분명한 한계입니다. 기본적으로 국내 주식 시장은 미국 시장만큼 투명하다고 보기 어려우니까요.
아울러 주식에 대해서는 굉장히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반면, 부동산과 금에 대한 평가가 다소 단호한데 이 역시 납득하기는 어렵습니다. 물론 저자가 이야기한 부동산 관련 투자 근거 - 미국 기준으로 지난 40년간 상업용 부동산의 수익률이 주식의 절반 수준에 불과했고, 주거용은 그보다 더 낮았다는 통계 - 는 충분히 말이 되지만 이건 미국 기준이니까요. 우리나라에서는 최근 10년만 보아도 대출 및 전세라는 레버리지를 활용해서 3~4배(300~400%) 되는 수익을 거둔 사례가 즐비하니 동의할 수 없어요. 앞으로 우리나라에서도 전세 제도가 사라지고, 대출은 어려워지며 부동산의 매매가 실거주와 밀접하게 연결되는 정책이 자리잡으면 모르겠지만요.
금 역시 장기적인 수익률이 낮고, 포트폴리오 다변화에도 큰 기여를 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지만 '안전 자산' 측면에서 충분히 투자 효과가 있다는건 이미 증명된게 아닌가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최근 화제인 전자 화폐에 대한 내용이 없다는 단점도 있습니다. 책의 주제에 걸맞는 오랜 기간, 최소 50년 이상 역사가 없는 탓이겠지만, 최근 10년 정도의 흐름만 짚어 주어도 엄청난 상승률을 보인 자산이라는걸 부정할 수 없을텐데 말이지요. 저자가 이를 '튤립 버블'과 같은 무가치한 거품 자산으로 볼건지, 진지한 투자 대상으로 볼건지 궁금했는데 언급되지 않아 아쉬웠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3점입니다. 여러모로 참고할 내용이 많고 미국 주식 대세 상승론에 대한 이견도 없지만, 저 개인적으로는 금과 국내 증시에도 분산 투자하는게 맞다고 생각됩니다. 코스피는 장기적으로 우상향한다!는 확신을 가지기는 힘드니 미국 주식에 직, 간접적으로 투자해야 하는데, 이 역시 환율과도 연동되는 만큼 국내 투자자로서는 확신을 가지고 장기 투자하기는 어려우니까요. 1:1:1 비율로 분산하는게 그나마 괜찮은 방법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2025/06/14

일본 현지 간식 대백과 - 일본 추억의 대백과 시리즈 편집부 / 수키 : 별점 2.5점

일본 각 지역에서만 만날 수 있는 독특한 간식들을 소개한 책입니다. 관련된 시리즈 중 한 권이지요. 

책장을 넘기다 보면 '먹고 싶다', '한 번 맛보면 어떨까' 하는 마음이 절로 생켜서 기분을 좋게 만들어 줍니다. 그중에서도 꼭 먹어보고 싶은 것들과, 어딘가에서 본 듯해서 반갑거나 기억이 나는 간식들이 유독 눈에 들어왔습니다.

맛이 궁금하거나 꼭 먹어보고 싶은 과자들을 보자면, 우선은 나가사키의 럭키체리마메가 있습니다. 좋은 지하수를 사용해 바삭하게 튀긴 콩을 설탕과 생강, 물엿으로 만든 시럽에 조려낸 간식이라는데, 정성과 기술과 함께 맛이 느껴지는 조합이라 먹어보고 싶어집니다. 나가사키에 가면 카스테라 말고 이 과자도 꼭 사 봐야겠어요. 같은 지역의 아지카레도 흥미롭습니다. 전문가 단 한 사람만이 제조법을 안다는 소개에서 왠지 전설의 비밀 레시피 같은 분위기가 느껴졌거든요. 향신료를 직접 제조한다는 점도 전문 카레점 느낌이라 인상 깊었고요.
오키나와에서는 두 가지 간식이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하나는 단나화쿠루라는 이름의 과자인데, 류큐 왕조 시대 궁정에서 먹던 군펜의 대용품으로 흑당, 밀가루, 달걀 등으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사진으로 보니 검고 진한 계란 과자 느낌인데, 제가 계란 과자를 굉장히 좋아하기 때문에 꼭 한번 맛보고 싶어졌습니다. 과거 궁정에서 먹었다니 호기심도 자극하고요. 또 하나는 시콰사아메라는 캔디입니다. 시큼하고 상큼하면서도 약간 쓴맛이 느껴진다는게 딱 제 취향이었습니다.
홋카이도 기타미의 핫카아메는 박하를 원재료로 만든 사탕입니다.기타미가 한때 세계 최대 박하 생산지였다른건 처음 알았네요. 시원하고 쌉싸름한 맛은 어른에게 어울릴것 같아 선물로 제격이라 생각됩니다.
시즈오카에서는 말차를 넣은 양갱인 오차요칸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저는 평소에도 배스킨라빈스에서도 그린티만 찾는 터라 이건 무조건 제 취향일 거란 생각이 들더군요. 단맛보다 은은한 차향이 감도는 과자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분명 좋아할 같습니다.

후쿠이현 가메야제과의 유키가와는 처음엔 약간 괴식처럼 느껴졌습니다. 구운 다시마에 설탕을 묻힌 과자라니, 조합만 보면 어색한데 실제로는 꽤 인기 있다고 하네요. ‘기왓장 위에 눈이 내린 모습’이라는 말 그대로의 형태도 흥미롭고요.
미에현의 나마 아라레는 굽기 전 상태로 판매되는 생과자로, 집에서 전자레인지나 토스터로 간단히 조리해 갓 구운 상태로 먹을 수 있다는 아이디어가 신선합니다. 요즘 유행하는 밀키트보다도 간편해 보있는데 우리 제과업체에서도 시도해보면 좋겠네요.
고치현의 다마아라레는 점주가 수작업으로 만드는 과자로 직접 고치에 가지 않으면 맛볼 수 없다는게 인상적입니다.

어딘가에서 본 기억이 나서 반가웠던 과자들도 많이 등장합니다. 스즈키 제과의 믹스 젤리의 경우는, 옛날에 먹어본 적 있는 것 같은 식감과 모양이더군요. 젤리와 양갱 사이쯤 되는 촉촉한 식감, 그리고 스즈키가 발명했다는 젤리를 싸는 전분으로 만든 오블라투까지도 예전에 분명 먹어본 기억이 있어요. 왜 이런 젤리 캔디는 우리나라에서 지금은 찾아보기 힘든지 살짝 궁금해지네요.
난부센베이도 어디선가 본 적이 확실히 있습니다. 후쿠이현 에가와의 미즈요칸도요. 사타안다기 역시 이름은 물론, 만화 속 묘사로 익히 들어왔습니다. "아즈망가 대왕"에서 제 기억으로는 튀긴 어묵이라고 소개되었었는데, 사실은 밀가루, 설탕 등으로 튀겨낸 도넛의 일종이라서 조금 놀랐네요. 다카기 나오코의 먹부림 만화에서 봤던 돈돈야키, 젤리프라이, 라디오야키도 책 속에서 다시 보니 무척 반가웠습니다.
에도 시대부터 만들어졌다는 에히메의 타르트 역시 만화나 방송에서 본 기억이 있습니다. 일본 전통 과자인데 롤케잌 형태라는 점이 특이해서 기억에 남았던 것 같습니다.
사쿠라 다이콘은 막과자 만화 "다카시카시"에 등장했었지요. 절임 막과자라는 정체는 만화 속에서 보고도 믿기 어려웠는데, 실제 사진으로 보니 더 놀라웠습니다. 무절임이 과자가 된다는 개념 자체가 워낙 생소해서 신기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정말 한입쯤 먹어보고 싶어졌습니다. 단촛물에 절인 무라니, 치킨무와 비슷한 맛이겠지요?

이렇게 맛있어보이는 다양한 일본 지역별 현지 간식 소개에 이어 책의 말미에는 지역별 간식들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표로 정리해두었는데, 이게 참 마음에 듭니다. 일본 여행 계획을 세울 때 이 페이지만 펼쳐두면 그대로 현지에서 먹어볼만한 간식 리스트가 될 정도로 실용적인 구성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이스크림이나 빵 같은 항목은 이전의 대백과 시리즈와 중복되는 내용이라서 불필요했다고 여겨집니다. 목차와 분류도 종류보다는 지역별로 묶는게 더 낫지 않았을까 싶은 부분도 있었고요.
간식들의 포장지를 소개하는 부분도 별로 와 닿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사진과 함께 추억과 호기심을 자극한다는 점에서는 재미있는 독서였습니다.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2025/02/21

게임북 전용 e-Ink 게임기

자주 찾는 블로그인 자그니님 블로그에서 재미있는 기기를 소개하고 있더군요. 게임북을 즐길 수 있는 휴대용 e-Ink 게임기입니다. 
게임북은 제가 초등학교 때 인기를 끌었던 책입니다. 페이지마다 선택지가 있고, 선택에 따라 페이지를 이동하며 이야기가 진행되는 방식이었지요. 이러한 게임북만을 위한 전용 e-Ink 게임기로 전자책 리더기와 비슷한 형태네요. 화면 크기는 7.5인치에 800*400해상도이고 게임은 SD카드로 별도 판매할 계획인 듯 합니다. 

공식 홈페이지를 들어가보니, 아들에게 책을 읽힐 목적으로 만든걸 사업 모델로 확장한 것이더군요. 아직 양산된건 아니고, 시제품이 준비된 정도고요. 곧(3월 1일) 크라우드 펀딩이 진행될 예정입니다. 그런데 현 시점까지 게임북이 20개 밖에 준비되지 않은건 문제로 보입니다.  어느 정도 플랫폼이 정착되어 누구나 게임북을 만들고 유통할 수 있게 된다면 좋겠지만, 그건 쉬운 일은 아니겠지요. 이보다는 일반 모바일 플랫폼 용으로 아이들을 위한 게임북 앱을 만드는게 더 시장성이 있을겁니다.

그래도 개인적으로는 응원하고 싶습니다. 게임북과 함께 했던 어린 시절 추억 탓도 있지만, 과거 게임북의 단점이었던 한정된 분량(책 한권)을 극복하고, IT 기기에 맞는 재미(인터랙티브한 동작과 사운드 효과 등)으로 재미를 선사해 준다면 어느 정도 반응이 있지 않을까 생각되거든요. 아이들 영어 교육용으로 나쁘지 않을 것 같아요. 최근 깡통 전자 사전이 다시 뜨는 것처럼 말이지요. 

과연 시장 반응이 어떨지, 크라우드 펀딩이 시작되면 눈여겨 보도록 하겠습니다.

2025/01/19

(번역) 컬럼 : 책 모형을 소재로 한 추리소설 "고양이 혀에 못을 박아라"

전에 읽었던 "고양이 혀에 못을 박아라" 속에 등장하는 츠즈키 미치오의 책에 대한 재미있는 컬럼을 발견해서 소개드립니다. 원문은 이 곳입니다.

책을 만드는 사람이라면 관심있게 읽을 수 있는 주제라 생각합니다. 저는 전자책 버전으로 읽었는데, 책이 이렇게 구성되어 있다는걸 전혀 몰랐습니다. 이런건 - 빌 벨린저의 "이와 손톱"도 마찬가지겠지요? - 정말 전자책으로는 느낄 수 없는 감성인데, 기술 발전과 전자책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걸 새삼 깨닫게 됩니다.


책 모형이란 무엇인가?

책 모형(束見本)은 대량으로 인쇄 및 제본을 시작하기 전에 실제 사용될 종이를 이용해 시험적으로 제작된 책입니다. 몇 부 정도만 인쇄소에 의뢰하여 만들어지며, 이를 통해 완성된 책의 외형과 특징을 미리 확인할 수 있습니다. 책의 두께(등 너비), 무게, 열림 정도, 촉감 등을 사전에 검토할 수 있는 유용한 도구이죠.

이 책 모형은 인쇄 작업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아 표지와 본문 모두 하얗게 비어 있습니다. 최근에는 서점에서도 이러한 백지 책이 판매되고 있습니다. 일기장, 메모장, 혹은 그림책으로 활용하는 등 용도가 다양합니다.

책의 구성은 편집자가 페이지를 배치하고, 디자이너나 책 제작자가 종이를 지정하여 완성됩니다. 특히 고급 제본(上製本)의 경우에는 세부적인 제본 양식을 지정해야 하며, 이 단계에서 속지, 책갈피(스핀), 꽃무늬 천(花布) 등도 결정됩니다. 그러나 책 모형은 대량 생산 과정과는 달라서 최종 완성본과는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외부 상자를 제작할 때는 실제 제작된 책의 크기를 기준으로 해야 한다는 점이 있죠.

추리소설 『고양이 혀에 못을 박아라』

이러한 책 모형을 소재로 한 독특한 추리소설이 있습니다. 일본 작가 츠즈키 미치오(都筑道夫, 1929~2003)의 "고양이 혀에 못을 박아라"는 1961년에 출간된 작품으로, 이후 여러 출판사를 통해 재출간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책 모형의 구조를 활용한 독창적인 트릭과 기발한 이야기로 많은 독자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소설의 줄거리

주인공인 아와지 에이이치(淡路瑛一)는 잡지에 잡문을 쓰며 생계를 유지하는 작가입니다. 그의 집에는 책 모형이 있었고, 주변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을 계기로 그는 책 모형을 일기처럼 활용하기 시작합니다. 독자들은 주인공이 기록한 일기 형식의 글을 읽으며 사건을 따라가게 됩니다.

경찰은 주인공을 용의자로 의심하지만, 그는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고 진범을 찾기 위해 직접 탐정 역할을 맡습니다. 하지만 자신도 누군가에게 생명의 위협을 받으며 피해자가 되기도 합니다. 이 작품은 주인공이 용의자, 탐정, 피해자의 세 가지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는 독특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트릭과 결말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는 몇 장의 공백 페이지가 등장합니다. 책 모형에서 공백 페이지는 자연스러울 수 있지만, 당시 독자들은 이를 인쇄 사고로 오해하여 반품하는 일이 잦았다고 합니다. 특히 초판본은 페이지 번호도 없어서 더 혼란을 주었습니다.

갑자기 공백 페이지가 나타난다. 공백 페이지가 가장 많은 책은 헤이안쇼텐(平安書店) 판본으로 9페이지이며, 고단샤 문고(講談社文庫)는 6페이지, 고분샤 문고(光文社文庫)는 5페이지이다. 이는 접지 방식의 특성 때문일 수도 있다.
책 속 깊숙한 부분에 몇 줄로 조판된 글자가 있다. 그곳에 사건의 진상이 적혀 있다.

소설의 진상은 공백 페이지의 깊숙한 부분에 적혀 있습니다. 단순히 책을 넘기기만 해서는 발견할 수 없도록 만든 주인공의 의도였죠. 이러한 트릭은 소설의 물리적 형식을 활용한 뛰어난 장치로 평가받습니다.

작품이 남긴 의미

저는 대학생 시절 이 작품을 통해 책 모형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이후 편집자로 일하게 되면서 이 책이 제게 미친 영향을 실감하게 되었죠. 이야기의 플롯과 책 제작의 물리적 구조가 서로 맞물려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준 사례였습니다.

하지만 요즘 젊은 세대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면 큰 반응을 얻지 못해 조금 아쉽기도 합니다. 그래도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와, 작품의 배경이 된 신주쿠, 이케부쿠로, 고이시카와 등 익숙한 장소들을 떠올리며 가끔 이 책을 다시 읽곤 합니다. 책 속에 담긴 일본 에도 시대 문화와 언어유희 역시 이 소설을 특별하게 만드는 매력입니다.

추가 이야기 (2016년 2월 27일)

오랫동안 꿈꾸던 "고양이 혀에 못을 박아라"의 초판본을 드디어 손에 넣었습니다. 페이지 번호가 없는 공백 페이지를 실제로 확인할 수 있었죠. 당시 이 페이지는 독자들로부터 반품 요청이 빗발쳤던 악명 높은 부분이기도 했습니다.

이 초판본은 제 서재의 소중한 보물이 되었고, 다른 희귀 서적과 함께 자리 잡았습니다. 또한, 최근에는 이 작품의 전자책 버전도 출간되었습니다. 공백 페이지가 어떻게 디지털화되었는지 확인하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 될 것 같습니다.

2024/09/01

정말로 추천하고 싶은 미스터리 소설 (オモコロ(Omocoro)bros)

유머러스한 기사들로 인기가 많은 일본 웹 사이트인 オモコロ(Omocoro)bros 편집부 멤버들이 추천하는 미스터리 소설들입니다. 우리나라에 소개된 작품은 세 편 뿐이라는게 아쉽네요.

브로스 편집부입니다.
8월의 일요일마다 다양한 장르의 "추천 소설"을 소개하는 기사를 전해드리고자 합니다.
이번 주는... "추천 미스터리 소설"! 다양한 미스터리를 즐겨보세요.

**다빈치 오시야마의 추천 호러 소설**
《우주 탐정 노그레이》 (타나카 히로부미)

현실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상황을 전제로 한 미스터리 작품을 "특수 설정물"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마법이 있는 세계"나 "타임루프가 있는 세계"와 같이, 이제는 하나의 장르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특수 설정이라도 "아무거나 가능"한 것은 아니란 점이 중요합니다. 마법이 있다고 해서 "아무도 모르는 워프 마법을 범인만 사용할 수 있었다"라고 하면 흥이 깨지겠죠. 비현실적인 상황이기 때문에, 예상치 못한 결말에도 논리적인 납득이 필요합니다.
《우주 탐정 노그레이》는 다섯 편의 연작 단편집입니다. 우주를 무대로 하는 능력 있는 탐정 "노그레이"가 기묘한 행성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해결하기 위해 동분서주합니다. 단, 이 행성들이 모두 매우 특이합니다.
  • 고지라 같은 거대 괴수만 사는 "괴수 행성 킹고지"
  • 주민들이 거짓말을 할 수 없는 "천국 행성 파라이스"
  • 주민 수가 항상 일정하며, 죽은 자가 다시 태어나는 "윤회 행성 텐쇼우"
  • 모두가 대본대로 연극을 하며 하루를 보내는 "연극 행성 엔게키"
……등, 독특한 행성들만 등장합니다.

예를 들어 미스터리에서 "목 없는 시체"는 흔한 미스터리지만, 그 시체가 무적의 거대 괴수라면? 유쾌한 행성에서 벌어지는 더욱 불가사의한 사건들. 그 해결도 역시 행성의 특수한 성질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결말을 예측하는 것은 매우 어렵지만, 마치 모든 것이 가능한 듯 보이면서도 마지막에 피스가 맞아 떨어지며 규칙의 전체 그림이 보이는 그 기분은 미스터리의 묘미라 할 수 있습니다. 장난감 상자를 들여다보는 듯한 재미가 있는 한 권입니다.

**카마도의 추천 미스터리 소설**
명탐정의 제물: 인민교회 살인사건》 (시라이 토모유키)

플롯부터 너무 멋진 미스터리 작품입니다. 최고입니다!!!!!!!
미스터리 작품 중에 "다중 해결 미스터리"라는 장르가 있습니다. "진실은 언제나 하나"라는 개념과 정면으로 맞서는 것으로, "추리 결과, 여러 진실이 존재한다"라는 것이 이 장르의 특징입니다. 이 시라이 토모유키 선생님의 다중 해결물은 탁월합니다. 미스터리 팬이라면 반드시 읽어봐야 할 작품입니다.
다중 해결물은 매우 집중해서 읽지 않으면 추리가 계속 바뀌기 때문에, 도중에 "이게 뭐야... 방금 추리는 뭐였지?" 또는 "피곤해... 결론만 말해줘..."라는 상황이 될 수 있지만, 이 《명탐정의 제물》에서는 제시된 여러 추리가 모두 강력한 임팩트를 줍니다. 압도적인 해설 파트를 읽으면서 "이 사람, 정말 대단하다!"라고 감탄하게 될 정도입니다. 장인의 기술에 감탄할 정도로 멋진 작품입니다. "다중 해결"의 구조적 약점을 없애면서, 동시에 "다중 해결"이라는 장르 자체에 새로운 빛을 불어넣는 듯한 훌륭한 플롯을 꼭 경험해 보세요.
다른 작품도 읽을 가치가 충분하며, 이 《명탐정의 제물》을 시작으로 깊이 빠져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다음 작품인 《엘리펀트 헤드》는 정말 최악입니다. 물론 나쁜 의미가 아니라, 정말 재미있지만, 진짜 최악입니다. 사람이 이런 걸 써도 되나? 여러 의미에서 머릿속이 어떻게 된 걸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무섭습니다.

**나시의 추천 미스터리 소설**
《세계에서 가장 투명한 이야기》 (스기이 미츠루)

"읽는 동안 자연스럽게 손이 떨리다니" 라는 경험을 한 건, 이 책이 처음이자 마지막인 것 같습니다.
이제는 일종의 상쾌함까지 느낄 정도로, 기분 좋게 압도당했습니다.
훌륭한 독서 체험을 보장하므로, 아직 읽지 않으신 분들은 꼭 서점에서 구입하시길 권합니다.
아니면 Amazon 카트에 담아주세요.
"전자책은 없나요?"라고 낙담할 시간도 없습니다.
지금.
당장.

**마키노의 추천 미스터리 소설**
여섯 명의 거짓말쟁이 대학생》 (아사쿠라 아키나리)

취업을 위해 양산된 듯한 여섯 명의 우수한 대학생들이, 모두 내심 내정받고 싶은 대기업의 최종 면접에 남았으나, 전원이 내정받는다고 생각했지만 마지막 순간에 한 명만 내정된다고 변경되었고, 그뿐만 아니라 최종 토론 중에 우등생들의 "뒷모습"을 폭로하는 고발장이 나오면서, 한 사람씩 가면이 벗겨지는 미스터리입니다.
책의 재미 순위를 석권하고, 만화화, 영화화, 라디오 드라마화까지 이루어졌을 정도로, 정말 재미있습니다! 취업을 위해 드러난 좋은 면과 고발을 위해 드러난 나쁜 면이 교차하며, 사람의 인상이 전혀 믿을 수 없다는 스릴 넘치는 구성에 책을 놓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게다가 엄청 읽기 쉽습니다!).
여러 번 뒤집히는 대학생들의 의혹에 끝까지 예측할 수 없는 교묘한 미스리드, 마지막에 남겨진 고발문의 놀라운 결말, 그리고 모두가 좋아하는 선명한 복선 회수... 말할 것이 없는 소설의 완전체였습니다. 11월에 영화도 개봉된다고 합니다. 꼭 보세요!

**가미죠의 추천 미스터리 소설**
흑뢰성》 (요네자와 호노부)

나오키상을 받은 화제작을 지금 와서 추천하는 것도 뭐하긴 하지만, 너무 재미있어서 소개하고 싶습니다.
배경은 전국시대로, 주인공은 실존 인물인 전국 무장 아라키 무라시게입니다.
…잠깐만요, 이 시점에서 "역사물인가, 흥미 없네"라고 생각한 분들, 조금만 이야기를 들어주세요. 이 소설은 등장인물과 배경만 역사물일 뿐, 내용은 완벽한 미스터리입니다.
주인공 무라시게는 어느 계기로 상사 오다 노부나가를 배신하고, 성에 틀어박힙니다. 그곳에 쿠로다 칸베이라는 엄청나게 뛰어난 지장이 찾아와 무라시게를 설득하기 시작합니다. 성 안에서 둘이 나눈 이야기가 지금으로 치면 실제로 있었던 "밀실 토크"처럼 느껴져, 이 두 사람의 생각을 예상해가며 즐기게 됩니다.
그리고 사실 이 이야기에는, 예측할 수 없는 충격적인 반전이 숨겨져 있습니다. 다 읽고 나서 "설마, 이런 전개가 가능하다니!"라고 생각하며 충격을 받을 겁니다. 요네자와 호노부 선생님의 《흑뢰성》을 강력하게 추천드립니다.

다시 한번, 독서의 즐거움을 느껴보세요!

2024/06/09

대한민국 미스터리 사건 수첩 - 곽재식 : 별점 2.5점

대한민국 미스터리 사건 수첩 - 6점
곽재식 지음/인물과사상사

1950년대 후반에서 1970년대 초반까지의 시기 중, 대한민국에서 일어났던 괴사건 15개를 소개하는 범죄 논픽션. 곽재식 작가의 '미스테리아" 연재물에서 추려냈다고 합니다. 연재된 글들을 재미있게 읽어왔기에, 출간되었을 때 부터 관심있게 지켜보았는데 이제서야 읽어보게 되었네요.

범죄를 다룬 논픽션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미스터리의 계보"처럼 당시 사건을 재구성하여 거의 그대로 전해주는 글, 그리고 "살인범은 그곳에 있다"처럼 여러가지 정보를 짜 맞추어서 의미있는 새로운 추리를 들려주는 글로요. 
이 책은 전자 스타일입니다. 신문 기사와 유사한 글이지요. 기사 스타일로 범죄, 사건 자체는 물론 사건의 배경이라던가 당대 시대상 등 이해를 돕는 상세한 설명이 명확한 근거를 통해 제공됩니다. 
당대 한 시점만 촛점을 맞추지 않는 점도 좋았습니다. 한 사건의 후일담을 10년 이상 지난 다른 신문의 다른 기사를 통해 알 수 있도록 연결해서 소개해주는 덕분입니다. "소매치기 전성시대"를 예로 들자면, 혼자서 범행하는 소매치기는 '특공대'의 일본식 발음인 '독고다이'로, 여러 명이 움직이는 팀은 '회사'라고 불렀다, 교통이 발달하자 소매치기 회사는 대중교통수단에서 범행을 저질렀다는 등의 당시 소매치기 수법에 대한 소개는 1975년 동아일보 기사를 토대하고 있으며, 헌병으로 변장하여 범행을 저질렀던 소매치기였던 '꼬마' 문씨에 대해서 1955년 경향신문과 동아일보, 그리고 10년도 더 지난 1966년 경향신문, 또 10년이 지난 1975년 6월의 다른 기사를 통해 알려주는 식입니다. 한 범죄자의 20여년의 행적을 - 본인인지는 명확하지 않아도 - 어느정도 알 수 있는 셈이지요. 문씨가 "순교자" 영화 제작에 거액을 투자했다는 등 재미있는 정보도 굉장히 많았고요.

당대 시대상과 관련된 사건들도 재미있었습니다. 1959년 남대문 권총강도의 범행 동기가 '영어학원 등록금'을 벌기 위해서였다던가, 1967년 나일론 백이라고 속인 쓰레기를 운반하던 워싱턴 메일호 사건은 '수출보국' 분위기에서 해외 수출 실적을 가짜라 남기기 위해 저질러진 것이었다는 것처럼요. 해방 직전, 일본인들이 명동 어딘가에 전재산을 바꾼 보석을 묻어놓았다는 '명동의 보물을 찾아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글은 연재 당시에도 재미있게 읽었었지요. 마곡사 5층 석탑 꼭대기 구조물의 재료라는, 황금보다 더 귀한 금속이라는 '풍마동'에 대해서는 처음 알았고요.
이런 재미있는 사건들 외에도 어린이 3명이 백주대낮에 실종 후 처참한 모습의 사체로 발견되었던 1960년대 초의 사건, 마을 왈패들이 공공연하게 노리던 젊은 처녀가 잔혹하게 살해당한 1956년의 '보호받지 못한 피해자' 사건같은 끔찍한 사건도 소개됩니다. 참으로 무참했던 시대라는 생각이 들게 만든요.

하지만 소개된 모든 사건이 인상적이거나 재미있는건 아닙니다. 충격적인 사건이 아니라면 다소 흥미가 떨어질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또 진상이 명확하게 밝혀진 사건들과는 다르게, 미제 사건은 아무래도 답답한 느낌이 들 수 밖에 없습니다. 특별한 보강 취재나 조사도 없고, 당시 기사를 정리하여 소개하는 정도에 그치는 탓입니다. 이런 사건은 관련된 기사를 시간과 관계없이 모아서 의미있는 내용으로 전달해주는 , "소매치기 전성시대"와 같은 구성이 필요했는데 아쉬웠어요. 그러기에는 분량이 부족했으려나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잘 알려지지 못했던 오래 전 우리 나라 사건들을 전해준다는 의도와 취지는 마음에 드는데, 몇몇 사건의 경우는, 분량을 더 늘리더라도 보다 깊이있는 취재와 정보가 덧붙여지면 좋겠습니다. 무엇보다도 연재가 앞으로도 쭈~욱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2024/03/06

오무라이스 잼잼 13, 14 - 조경규 : 별점 2.5점 / 2점. 마지막일듯.

오무라이스 잼잼 13 - 6점
조경규 지음/송송책방

신간이 나온지 꽤 되었는데 모르고 있다가 뒤늦게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권은 코로나 펜데믹 시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학교에 가지 못해 급식을 먹지 못한다던가, 좋아하는 농구 직관을 가지 못하다가 어렵사리 강원도 원주까지 원정 직관을 하러 간다는 등의 에피소드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책 가격이 제가 1권을 샀을 때 보다 많이 올라서 이제 정가 19,000원인데, 가격에 걸맞는 볼륨은 갖추고 있습니다. 거의 600페이지에 가까운 풀 컬러 인쇄본이니까요. 웹툰이라 페이지 내 여백이 많아서 정보량은 페이지수 대비 많다고 보기 어렵지만 그래도 가격은 납득이 되는 수준입니다.
작가 가족의 이야기 비중이 높아져서 전형적인 가족 일상툰적인 모습을 많이 보여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음식과 요리에 대한 정보도 기대에 값합니다. 후추의 종류와 제조 방법, 딸기 우유의 빨간색을 내는 방법, 사우전드 아일랜드 샐러드 드레싱의 제조법과 역사, 대파와 양파의 차이 등 잘 몰랐던 여러가지 정보들을 언제나처럼 재미있게 소개해주고 있거든요. 이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건 "초코 다이제 맛있게 먹는 방법"이었습니다. 초코 다이제를 차에 담갔다가 먹는 방법은 '이그 노벨상'까지 수상한 과학적 방법이라는군요. 꼭 한 번 따라해봐야겠어요.
조경규 작가의 그림을 보는 재미도 좋습니다. 다양한 튀김 덮밥들, 치킨 버거들 등등... 왠만한 사진보다 먹음직스럽고 예쁘게 그려져있는 덕분입니다.

하지만 웹툰을 이미 본 독자에게는 중요할 부가 정보는 별로 없습니다. 독자분들이 뽑은 오무라이스 잼잼 베스트 에피소드는 책에 수록할만한 정보는 아니었고요. 
그 외 이런저런 정보 소개도 대부분 식당 탐방 수준이며, 김영환 선수 인터뷰는 농구팬이 아니라면 큰 관심을 가지기 힘든 내용이라 책 성격과는 맞지 않았습니다. 만화와의 연결고리를 가져가기 위한 장치였겠지만, 이보다는 차라리 농구팀 식단같은 정보를 알려주는게 더 나았을겁니다.
아울러 작가 가족 이야기 비중이 너무 과합니다. 예전처럼 조금 독특한 이야기도 없고요. 그냥 가족들과 뭘 먹으러 갔다, 준영이가 많이 먹는다 등의 이야기가 반복될 뿐입니다. 연재가 이어지면서 소재가 고갈된 탓일까요?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오무라이스 잼잼 14 - 6점
조경규 지음/송송책방
13권과 함께 구입한 14권. 14권이 되니까 드디어 20,000원으로 가격이 올랐네요. 물론 536페이지에 풀 컬러의 볼륨이라는 측면에서 비싸다고만은 할 수 없겠지요.

이번 권은 요리 관련 정보보다는 경험담 비중이 높더군요. 물론 요리, 음식 관련 정보가 아주 없는건 아닙니다. 몇가지 소개해드리자면 
  • 해쉬브라운은 1887년 요리책에 '해쉬드 앤 브라운드 포테이토스'라고 처음 등장했는데, 생감자를 강판으로 채 썰고 녹말 제거 후 버터나 기름으로 지져낸 요리였다
  • 우리나라 마라탕은 2012년 대림동의 라화쿵부가 시초
  • 키세스 초콜릿은 키스하는 입 형태에서 따온게 아니라 19세기의 일반적인 작은 사탕의 통칭에서 따 온 이름이다었다.
  • 볶음밥을 달걀로 감싸고 토마토소스를 얹은 오무라이스는 홋쿄쿠세이가 원조로 오믈렛과 흰밥만 먹는 단골을 위해 변주해서 만든 요리가 시초, 렌카테이의 원조 오므라이스는 밥을 날달걀에 먼저 비비고 팬에 지져낸 것이다.
  • 미국식 멕시코 요리 텍스-멕스는 따지고보면 우리나라식 중화요리같은 것으로 이 중 구운 고기와 채소를 토르티야에 직접 넣어 만드는 화이타도 1969년 텍사스주 소도시 카일에서 '화이타 킹' 소니 팔콘이 처음 만들어낸 미국의 발명품.
  • 회오리 감자도 한국인의 발명.
등입니다.
작가와 제가 살아온 시대가 거의 같아서 저 역시 옛 추억을 떠올릴 수 있었던 에피소드도 재미있었어요. 옛날 기차에서 팔던 그물망 포장 삶은 계란과 종이 포장 소금과 군대에서 전자레인지로 데워먹던 냉동 만두처럼요.

하지만 집에서 감동란을 만들어 먹고, 곤지암으로 소머리 국밥을 먹으러 가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마라탕을 먹으러 가고, 태국과 홍콩 등지에서 망고를 먹고, 인생 첫 순대국을 먹으러가고... 하는 식의 경험담은 별로 재미가 없더군요. 보통은 경험과 함께 해당 음식의 역사를 함께 풀어주곤 했었는데 그런 내용도 많지 않고요. 은영이가 투모로우바이투게더를 좋아한다는 이야기는 또 왜 이리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솔직히 재미도 없고, 관심도 가기 어려운 이야기였어요.

이제는 완전히 가족 일상툰이 되어버린 느낌으로 제 별점은 2점입니다. 
다음 권은 연재분을 먼저 확인해봐야겠지만, 이대로라면 더 이상 구입해 읽을 일은 없겠습니다. 조경규 작가 가족 이야기는 딱히 궁금하지 않으니까요.

2023/09/27

그래도 마을은 돌아간다 1~16 - 이시구로 마사카즈 : 별점 3점


마사토끼 등 여러 리뷰어들에게 낚여서 이런저런 만화책을 구입하곤 했는데, 별로 성공을 거두지를 못해왔습니다. 그래서 생각을 바꿨습니다. 재미있게 읽었던 종이책을 전자책으로 다시 구입하기로요. 그래서 첫 번째로 선택한게 바로 이시구로 마사카즈의 히트작인 이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아주 좋아하는 작품이라 선택이 어렵지 않았습니다. 얼마 전 <<천국대마경>>도 재미있게 감상하기도 했고요.

작품은 다시 읽어도 여전히 재미있더군요. 미치오 슈스케의 <<N>> 보다 앞서 시계열을 바꾼 전개를 시도했다는게 가장 눈에 띄었습니다. 띄엄띄엄 발매될 때마다 한 권씩 읽었을 때는 쉽게 알아채지 못했던 부분인데, 한 번에 읽으니 호토리의 헤어스타일 등으로 확실히 알겠더라고요. 몰아 읽은 덕분에 대책없는 동네 말괄량이에서 '탐정'으로 성장해나가는 호토리를 비롯하여, 스스로가 쳐 놓은 울타리를 호토리의 도움으로 하나 씩 넘어서는 콘 선배 등 등장인물들의 성장도 눈에 더 잘 들어왔고요.
학원물로도 볼만했습니다. 예전에는 별 생각없이 넘겼는데, 다시 읽어보니 수학여행, 학원제, 운동회, 부활동 등 청춘 학원물의 필수 에피소드는 빠짐없이 등장하는 덕분입니다. 부 합숙 정도만 빠져있는데 이건 등장인물들이 하리바라를 제외하고는 모두 '귀가부' 소속이기 때문인데, 대신 상점가 여행, 그리고 밴드 '메이즈' 활동이 등장하니 엇비슷하다고 봐야겠지요.

하지만 초반의 번역은 아쉬웠습니다. 일본어 말장난을 억지로 한국말로 바꾼 탓에 "사나다 사카나 사라다 (사나다 생선 샐러드)"같은 언어 유희들이 사라져버리고 말았거든요. 후반부처럼 그냥 일본어로 쓰고 해석을 덧붙이는게 훨씬 나았습니다.

그래도 별점 3점은 충분합니다. 학원물, 청춘물, 추리물, 개그물 등 모든 면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재미를 선사해주니까요. 아직 읽지 않으신 모든 분들께 추천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추리물로 볼 수 있는, 추리가 핵심인 에피소드만 꼽아보며 글을 마칩니다. 
1권 
<<눈>>
모리아키 선생님의 할아버지가 그린 기묘한 그림의 정체는?
호토리가 추리력을 발휘하는 첫 번째 에피소드. 
가족들이 나눠 가졌다는 그림이 한 곳에 모여 있었다면 쉽게 풀 수 있는 문제였습니다.
2권
<<파자마 천사>>
화창한 날 정해진 시간에 선글라스를 끼고 정해진 장소에 나와 시간을 보내는 환자의 목적은?
일종의 일상계 추리물. 현장 조사만으로 풀 수 있는 수수께끼입니다.

4권
<<아라시야마 보물 조사단>>
시즈카 언니로부터 얻은 보물 지도가 품고 있는 보물은?
지도의 나무 그림과 강 형태가 일치하고, '황금 호수'는 안개에 덮인 마을을 의미하는 것이라는 진상 등 소소한 재미가 가득했던 작품. <<C.M.B>>의 한 에피소드가 떠올랐습니다.

5권
<<시내 설방 이야기>>

타츠미야 시로를 찾는 온나 유키는 누구였나?
일상계라면 일상계, 말장난이라면 말장난.

<<학교 미궁 안내>>
학교 관찰 연못 속 괴수 메시의 수수께끼
경비 아저씨의 잘못으로 만들어진 소문으로 보였지만, 알고보니 진짜 괴물이 있다는 반전.

6권
<<환상의 소년>>

도랑 속 수박을 공으로 바꿔치기한 이유는?
일상계. "탐정 교훈 첫째 사람을 겉모습으로 판단하는 놈은 탐정으로서 실격입니다."가 딱 들어맞는 이야기.

8권
<<호토리와 수수께끼 왕국>>

판타지 세계에서 조세핀이 내 놓는 퍼즐을 풀어라!
추리물이라기보다는 <<레이튼 교수>>가 연상되는 판타지 퀴즈물.

<<대괴수 오야 고교에 나타나다>>
영화연구회에서 만든 촬영용 괴수 오야코돈을 부순건 누구?
추리물로 보기는 다소 부족했지만, 후쿠자와가 호토리를 '명탐정'으로 존경하게 되는 에피소드.

9권
<<대량구매 계획>>

베치코 과자는 어디서 만들어서 유통된 것인지?
추리물이라기보다는 SF에 가깝지만 시즈카 언니의 추적 수사는 볼거리.

10권
<<콘 데드엔딩>>

콘 선배가 방에서 살해한 사체를 힘을 합쳐 유기한다!
호토리를 위해 준비한 깜놀 이벤트. 나름의 반전도 좋았다.

<<Detective Girls 2>>
세탁소 아저씨 아라이는 어디로 사라졌나?
호토리의 추리에 탓층이 진심으로 놀라는 (그리고 호토리를 진짜로 인정하게 되는) 에피소드

11권
<<어둠 속에 도사린 목소리>>

옛 구민 센터 자리에서 있을리 없는 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호토리가 타카부라는 별명의 아이를 착각했던게 진상. 
"탐정 교훈 첫째, 사람을 겉모습으로 판단하는 놈은 탐정으로서 실격입니다."

<<헌대판 얼룩 띠의 비밀>>
타케루의 친구 맛키가 줄넘기 줄에 다친 날, 친구들과 같이 쓰는 노트에 '긴 줄로 전원 죽인다'는 섬뜩한 문구가 써 있었다.
우연이 겹쳐 일어난 사건.

12권
<<호토리는 탁상 난로 안에서 추리한다>>

호토리 사촌이 취주악부 합숙을 갔는데, 스키장 통나무 집 1층 객실에 있을 남자아이들이 깜쪽같이 사라졌다...
1층이 2층이었다 - 눈에 파묻힌 1층이 있었다 - 는게 진상으로, 호토리 사촌은 2층을 1층으로 잘못 알았던 것. 추리 퀴즈에 가깝다.

13권
<<폐허촌>>

유령이 나온다는 폐촌 스사비 마을 탐험을 떠난 시즈카, 호토리, 콘은 마을에서 기묘한 조각상과 가면을 쓴 사람들을 목격하고 도주한다....
3부작으로 이어지는 긴 호흡의 모험 추리물. 재미와 흥미 모두를 갖춘 수작.

<<저주받은 비디오>>
오래전 영화 동호회 자료에서 발견된 수수께끼 비디오. 오야 고교의 이상한 풍경이 찍혀 있었다.
오야 고교 7대 불가사의를 찍었던 비디오로, 원래 불가사의였던 우물이 사라지고 화단이 새로 등장한 이유를 밝히는 조사로 이어진다. 세리자와 선생의 고백(?)으로 진상이 밝혀지기 때문에 추리의 맛은 부족하지만, 일상계로는 나무랄데 없다.

15권
<<안경 행방불명 사건의 전모>>

안경을 잊어버렸던 토시코에게 돌아온 안경은 지저분해져 있었다. 수영 보충 수업을 받던 토시코가 사라졌던 사건과 관계가 있었다.
토시코에 빙의(?)한 호토리의 '메소드 추리'가 돋보인다. 일상계로는 나무랄데 없다 (2) 

16권
<<대사건>>
호토리가 협박장을 받았다. 모리아키 선생님과 사귄다고 착각한 누군가로부터였다.
과거 모리아키 선생님을 좋아했다는 여선생이 범인으로, 일상계스러운 추리에 더해 호러블한 작화가 인상적.
<<악>>
모리아키 선생님 할아버지가 남긴 붉은 그림에 블랙 라이트를 비추자 기묘한 그림이 떠올랐다.
1권의 주사위와 조합하여 금고를 여는 방법을 알려주는 암호였다는 내용.
암호도 재미있지만, 할아버지가 연구했던게 '사람을 죽이는 그림'이라는 진상도 이렇게 끝내기에는 아까왔다.

2023/07/14

미술로 읽는 지식재산 - 박병욱 : 별점 3점

미술로 읽는 지식재산 - 6점
박병욱 지음/굿플러스북

유명한 작품, 작가에 대해 소개한 뒤 그와 관련된 특허, 지식 재산권 등에 대해 알려주는 인문학 서적. 모두 20개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특허와 지식 재산권을 유명한 미술 작품과 작가를 통해서 소개되도록 유도하는 구성은 그럴듯합니다. 어려운 길을 조금이나마 쉽게 갈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해 주니까요. 하지만 작품과 작가에서 이어지는 연결고리가 억지스러운 항목이 더 많았습니다. 거미와 거미 관련 신화에서 시작해서 큰 거미 조각상인 루이스 부르주아의 작품 마망으로 이어지다가 작품이 위치한 도시 빌바오에 대한 소개, 여기서 스파이더맨 웹 슈터 특허 이야기로 넘어가는 '루이스 부르주아의 <마망>과 빌바오, 그리고 스파이더맨'이 대표적입니다. 여기서 특허 이야기는 세 페이지 정도 분량에 그쳐서 책 취지에도 맞지 않고요. 고흐 이야기를 하다가 고흐의 <씨 뿌리는 사람>이 뿌리는 씨는 밀 씨일 거라고 한 뒤 몬산토의 종자 분쟁 이야기로 넘어가는 '고흐, 밀레, 그리고 몬산토와 권리 소진', 샤갈에 대해 한참 소개하다가 그의 대표작 <생일>에서 생일 노래 분쟁으로 넘어가는 '마르크 샤갈의 <생일>과 Happy Birthday to You' 등 대부분의 항목이 그러합니다.
단순히 지식 재산에 관련된 항목을 그렸기 때문에 소개된 항목들도 많아요. '앤디 워홀의 '5'와 지식재산 관리'에서 앤디 워홀 작품은 콜라를 소재로 한 그림이 필요해서 소개되었을 뿐입니다. 그래서 작품과 현대 팝아트 이야기를 하다가 그냥 콜라 지식 재산 관련 이야기로 넘어가게 되지요. 구스타브 카유보트의 <비오는 날, 파리 거리>에 돌로 포장된 도로가 그려져 있다고 해서 도로 포장 특허 이야기를 끌고 오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예 관계없는 특허가 소개된 경우도 있습니다. '루벤스의 <촛불을 든 노인과 소년>과 특허 소송을 할 수 있는 자격'은 뜬금없음의 절정입니다. 바로크 양식과 명암 대비 효과에서 촛불 집회로, 그리고 LED 촛불로 이어지는 흐름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이브 클라인의 IKB와 색채 상표'의 경우는 색깔도 상표 출원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다루는데, 이브 클라인은 IKB의 제조법을 출원한거라 성격이 전혀 다르고요. 이에 비하면 렘브란트의 자화상에서 시작해서 셀카봉 특허 소개로 이어지는건 기발해서 마음에 듭니다. 참고로, 셀카봉은 미놀타의 기술자 우에다 히로시가 만들었다고 하네요. 무려 1984년에 출원했답니다. 기술이 아이디어를 따라오지 못한 좋은 예입니다. 돈을 번 사람은 따로 있다니까요.

하지만 많은 이야기를 해 주고 있어서 재미있게 읽은 부분도 많습니다. 튜브 물감의 발견이 인상주의에 큰 영향을 주었다는건 <<화가는 무엇으로 그리는가>>통해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야외활동을 가능하게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라지요. 하지만 이 책을 통해 튜브 물감의 초창기 제품과 이전의 돼지 방광 물감이 어떠했는지 알 수 있던건 수확입니다. 도판으로 수록되어 있어서 확인이 가능한 덕분입니다. 재미있는건 튜브 물감이 먼저였고, 튜브형 치약은 무려 30년 뒤에 나왔다는 사실이지요. 아마 지금처럼 치아 관리가 중요하지 않았던 시기였기 때문이라 짐작됩니다. 또 튜브 물감의 특허권자 존 랜드가 튜브형 치약이 특허를 침해했다고 주장할 수 있는지를 알려주는게 대박이었어요. 튜브형 치약으로 포스터가 특허를 받기는 했지만, 이는 특허가 독점권이 아니라서 가능했습니다. 즉, 존 랜드의 특허를 침해한게 맞다는겁니다. 존 랜드가 특허 출원당시 튜브형 용기에 담기는걸 '물감'이라고 규정하지 않고 '유체'라고 명기했던 덕분인데, 앞으로 특허를 출원할 때 유념해야겠습니다.

코카-콜라 특허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도 많은데, 영업비밀과 관련된 에피소드가 인상적이네요. 2006년 코카-콜라의 라이벌인 펩시콜라는 코카-콜라의 직원으로부터 코카-콜라의 레시피를 수백만 달러에 팔겠다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제안을 받은 펩시콜라는 오히려 이러한 불법행위를 코카-콜라 측에 알려 주었고, 제안을 한 코카-콜라 고위 임원의 비서 등 직원 3명은 150만 달러를 받으려고 나왔다가 FBI에 의해 체포된 뒤 영업비밀을 훔친 죄로 8년 형을 선고 받았다고 하네요. 또 콜라의 상표권과 관련한 소송을 살펴보면, 1988년 코카-콜라는 라이벌인 펩시콜라와 캐나다에서 소송을 한 적이 있습니다. 코카-콜라가 사용하는 필기체와 동일한 "Cola" 글씨를 펩시콜라가 사용했기 때문이지요. “Cola"는 일반적으로 청량음료인 콜라를 지칭하는 일반명사인데, 당시 캐나다 법원은 이러한 일반명사라도 코카-콜라가 사용하고 등록한 글씨체를 똑같이 모방하여 사용하면, 일반 소비자가 펩시콜라를 코카-콜라로 혼동할 수 있으므로 상표권을 침해하였다고 판단했습니다. 일반명사인 "Cola"만으로는 상표로 등록할 수 없는 것이 원칙이나 "Coca-Cola"는 단순히 특정한 제품을 지칭하는 일반명사로 인식되지 않고, 소비자의 입장에서 다른 콜라와 제품의 출처를 구별할 수 있는 식별력이 있으므로 상표로서 등록이 가능했던 겁니다.

생일 축하 노래는 큰 돈이 오간게 핵심인데, 최초 저작권 등록을 거쳐 1988년에 워너/채플 뮤직이 저작권자 써미 컴퍼니를 2,500만 달러에 인수하면서 저작권이 이전되었는데, 인수 당시 저작권 평가액은 500만 달러였습니다. "Happy Birthday to You”는 1935년 미국에서 저작권 등록이 되었으므로, 등록된 때로부터 95년이 지난 2030년까지 저작권이 유효하고요. 워너/채플 뮤직은 2010년 이 노래를 한번 연주할 때마다 700달러의 로열티를 받겠다고 발표했고, 이후 이 노래로 워너 뮤직이 벌어들인 저작권료는 5,000만 달러를 넘는 것으로 추정되어 역사상 가장 많은 저작권료를 번 노래로 기록되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라서, '7급 공무원'에서 남자 주인공이 생일축하 노래를 부르는 장면을 위해 지불한 저작권 사용료는 무려 12,000 달러였다고 합니다. 이거 참 부럽네요.
 
발명의 실험을 위해 공개되었던 도로 포장 특허 소송 이야기도 재미있었습니다. 발명이 공지되기는 했지만 예외적인 상황이라 특허권을 인정받을 수 있었다고 하네요. 선출원주의와 선발명주의의 차이도 잘 알 수 있었고요

항상 궁금했던, '아직 존재하지 않지만 미리 머릿 속으로 발명한 뒤 출원한 경우?'에 대한 사례가 많았던 것도 주목할 만 합니다. 바코드 특허가 대표적으로, 바코드가 특허 출원된 후 보호 기간이 만료될 때 까지 스캐너 등이 개발되지 못해 사업화하여 수익을 올릴 수 없었다는군요. TV와 전자책도 마찬가지였고요. 하지만 이런 발명을 했다면 주변 기술이 개발될 때까지 출원을 미루거나 포기할 필요는 없다는 꿀팁도 전해줍니다. 일단 출원하고, 개량과 주변 기술에 대한 특허를 지속적으로 취득하면 된다네요. 그게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또 바코드 특허를 통해 현대 특허 괴물의 모태인 '레멜슨'에 대해서도 알 수 있었습니다. 레멜슨은 기술적 문제 등으로 상업적으로 이동하기 어려운 점을 간파하여 주변 기술이 성숙될 때까지 등록을 미루다가 마지막에 등록한 뒤 침해 소송을 벌인 인물이라지요. 세상에는 정말 머리 좋은 사람이 많습니다.

상표권에 대한 소개도 충실합니다. 지명이나 일반적인 명칭 - 랩 - 같이 식별력이 없는 상표는 당연히 누구도 독점할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도 '천안 호두과자'가 아마 등록되지 못했었지요? 그러나 '오랜 기간동안 어느 하나의 사업자가 적극적으로 상표를 사용하여 그 상표를 보면 누가 만들어 파는 제품인지 소비자의 입장에서 현저하게 인식되어 혼동할 우려가 없는 경우'는 예외적으로 상표 등록이 가능한데 대표적인게 우리나라는 K2, 유럽은 4 핑거 킷캣입니다. 색채만의 상표도 마찬가지로 아래의 요건을 만족시켜야 합니다.
  1. 타인의 상품과 구분되는 식별력을 가질 것.
  2. 색깔 자체에 기능성이 있으면 안됨. 예를 들어 분홍색 붕대는 피부색과 비슷한 기능성이 있어서 출원 불가.
이는 패션업계에 사례가 많더라고요. 크리스찬 루부탱의 빨간 하이힐 밑창, 그리고 티파니의 푸른 상자와 쇼핑백이 대표적입니다.

건축물도 지식 재산권으로 보호될 수 있을지도 평소에 궁금했었는데, 당연하지만 기존 건축과 구별되는 독창적인 건물의 경우만 인정된다고 명확하게 알려줍니다. 즉, 일률적인 아파트는 당연히 불가능하다는 뜻입니다. 보호되려면 어느 정도 예술성이 요구된다고도 하니까요. 저작권은 인간의 사상과 감정이 표현된 창작물에만 인정되는 권리이기 때문이라는데, 이를 특허 기관에서 어떻게 판단하는지는 잘 모르겠네요. 또 저작권은 '아이디어'를 보호하는게 아니라 '표현;을 보호한다는 것도 기억에 남습니다. 아이디어나 컨셉이 유사해도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표현이 다르면 저작권을 침해한게 아니라는데, 이를 판단하는 기준은 애매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결국 정량적으로, 수치적으로 판단할 수 없는 정보이니까요.

이런 내용들을 한 권으로 읽을 수 있다는건 분명한 장점입니다. 특허, 지식 재산권 이야기만 읽어도 충분히 재미있는 만큼, 구태여 미술 작품을 통해 소개할 필요는 없었다고 생각됩니다. 제 별점은 3점입니다.

2023/07/08

마션 - 앤디 위어 / 박아람 : 별점 3점

마션 - 8점
앤디 위어 지음, 박아람 옮김/알에이치코리아(RHK)

지구로부터 225,000,000km 떨어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곳에서 조난을 당한 남성, 마크 와트니는 화성 탐사 계획에 참여한 식물학자로 1,000여 일 동안 아레스3 탐사선을 타고 무사히 화성에 도착한다. 예정된 탐사를 수행하던 엿새째, 예기치 못한 모래 폭풍에 휩쓸린 와트니와 일행들 사이에 교신이 끊겨버린다. 그가 죽었다고 생각한 동료들은 두려움 속에 귀환하고, 모래 언덕에서 홀로 깨어난 그는 감자 몇 알과 함께 다음 탐사선이 올 때까지 살아남아야 한다. 이보다 더 최악의 생존기가 있을까? 하지만 이 똑똑한 과학자는 화성에 지구 작물을 심고, 물을 만들었으며 산소와 이산화탄소로 경작을 해낸다. 한편 나사 영상 담당 직원은 마크 와트니의 시체가 보일 줄 알았던 영상 기록을 통해 깨끗이 치워진 막사 근처에서 마침내 그의 생존을 확인한다. (알라딘 책소개에서 인용)

화성에 고립된 우주비행사의 눈물나는 과학적인 생존기. 출간되어 이미 시장을 휩쓴지 오래지만, 이번에 유럽으로 향하는 장거리 비행용으로 좀 쉬우면서도 재미있는 읽을거리를 찾다가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전에 읽었던 작가의 다른 작품인 <<프로젝트 헤일메리>>와 비교해 본다면, 정 반대, 대척점에 있습니다. 여기서는 화성에 고립된 단 한 명을 구하기 위해 전 지구가 힘을 합쳐 노력하는 반면,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단 한 명이 지구를 구하기 위해 사투를 벌인다는 내용이니까요. 그러나 여러가지 측면에서 이 작품이 훨씬 낫습니다.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페트로바선, 아스트로파지라던가 비교적 손쉽게 외계인과 커뮤니케이션에 성공하는 등의 비현실적인 설징이 바탕이 된 반면, 이 작품은 상식 선에서 수용 가능한 수준으로 이야기가 이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생각할 수 있는 온갖 방법으로 위기가 찾아오는 극적인 전개도 이 작품이 우위에 있고요. 무엇보다도 엄청 재미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좆됐다. 그것이 내가 심사숙고 끝에 내린 결론이다. 나는 좆됐다."라는 첫 문장부터 독자를 강하게 사로잡아요. 이어지는 화성에 홀로 남은 마크 와트니의 생존을 위한 분투도 엄청 흥미롭고요. <<로빈슨 크루소>> 등과 다름없는 순수한 모험물인데, 고전적인 생존 모험물과는 다르게 치밀한 과학 이론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확실히 차별화되고 있습니다. 다양한 이론의 전문성이 높아서 거의 하드 SF에 가까울 정도인데, 이를 이렇게 재미나게 그려내는건 정말이지 대단한 능력이라 생각됩니다.
또 마크 와트니 시점과 NASA에서 그를 구하기 위해 노력한 사람들 시점을 번갈아 가며 전개해 내는 것도 좋았습니다. 어느 한 쪽은 모르지만 다른 한 쪽은 알고 있는 위기 상황 - 예를 들어 NASA에서 관측한 모래 폭풍 - 을 통해 극적인 긴장감을 불어넣어 줄 뿐 아니라, 마크라는 단 한 명을 구하기 위한 전 지구적인 노력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어서 마지막 마크 구조 순간의 감동이 극대화 되기 때문입니다.
유머 넘치는 마크 위트니 캐릭터도 아주 좋습니다. 곧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조차 유머로 대처하는 강한 멘탈에는 경의를 표할 수 밖에 없어요. 암요, 피할 수 없으면 즐겨야죠. 갖추고 있는 여러가지 지식과 기술도 적절했습니다. 식물학자 겸 기계공학자로 '식물을 갖고 노는 전담 수리공'이라고 언급되는데, 덕분에 생존에 핵심이었던 화성 토양에서 감자 재배에 성공할 수 있었거든요. 각종 장비 수리 및 개조를 하는 모습, 심지어 '육분의'까지 자체 제작하여 화성에서 이동할 때 위치를 측정까지 하는걸 보면 단순한 공학자 수준은 아닌거 같아요. 하긴, NASA의 우주 비행사니까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하지만 구조 이후의 후일담이 없다는건 다소 아쉬웠습니다. 간단하게나마 마크 와트니의 구조 이후의 모습을 그려주었더라면 아주 좋았을텐데 말이지요.
그래도 좋은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발표 당시의 인기가 수긍이 가네요. 제 별점은 4점입니다.

덧붙이자면, 할게 없어서 동료 우주 비행사 짐을 뒤져 크리스티의 전자책을 읽어본다는 디테일이 추리소설 애호가로서 무척 반가왔습니다. <<백주의 악마>> 속 범인을 아예, 터무니없이 잘못 짚기는 했습니다만.

2023/05/11

돈이 되는 중고책에 대한 단상

얼마전 "중고책으로 돈 버는 사람들"이라는 광고를 보고 글을 올렸던 적이 있습니다. 20년 넘게 중고책을 구입해왔던 경험으로, 돈이 되는 중고책이 무엇일지? 잠깐 생각해보았습니다.
저는 되팔기 목적으로 중고책을 산 적은 없고, 단 한 번도 개인간 책 중고 거래를 해 본 적도 없습니다. 오직 알라딘 등에 알라딘 매입가로 팔아 왔을 뿐입니다. 그런데 알라딘에 판 가격보다 중고가가 높으면 살짝 짜증이 나더라고요. (<<꿈의 화석>>은 3,200원에 팔았는데, 중고 가격이 거의 3만원 대네요). 그래서 이런 정보를 좀 알아두는게 좋겠다 싶어 적어봅니다. 여러분께도 참고가 되면 좋겠습니다.

돈이 될 중고책은 당연히 사람들이 찾는 책입니다. 제 생각으로는 아래에 해당하는 책들일 것 같습니다.
  1. 구하기 힘듬. 책이 절판되었고, 이북으로도 출간되지 않음. 당분간 출간 예정도 없음.
  2. 1에 해당하는 책 중에서, 높은 지명도를 갖는 책. 유명한 명작이거나, 유명 작가의 작품이거나 다른 곳에서 많이 언급되는 책.
  3. 2에 해당되는 책 중에서, 수집욕을 강하게 자극하는 책 (그림이 미려하다거나, 정말 희귀하다거나....).
  4. 1, 2, 3에 해당되는 책 중에서, 다른 책으로 대체 불가능한 책
  5. 시리즈라면 전권 (중요 포인트)
이런 항목들을 모두 아우르는 주제로 대표적인건 1980년대 ~ 2000년대까지의 만화입니다. 제가 가진 책 중에서 모두 해당되는걸 꼽자면 <<타임시커즈>>, <<환영박람회>> 입니다. 책 상태도 좋고, 모두 완결편까지 한 Set로 소장하고 있는터라 현재는 제법 값어치가 나갑니다. 단권이지만 <<외천루>>도 1 ~ 4조건을 모두 충족하기에 값이 꽤 비싸고요.




국내에서는 유명세에 비하면 많이 팔리지 않아서 초판 이후 절판된 작가들 - 예를 들어 모로호시 다이지로 - 작품 중 일부도 중고 가격이 만만치 않아요.
반면 이 시기 만화라도 당시 많이 팔려서 구하기 쉬운 탓에 1번 항목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책도 있습니다. <<어쩐지 좋은일이 생길것같은 저녁>>처럼요.

만화 외에도 위의 조건들을 충족시켜 고가를 형성하는 책들은 당연히 많습니다. 매니아 층이 탄탄한 장르 소설의 경우 꽤 높은 가격이 형성되어 있습니다. 재간되기 전 <<점성술 살인사건>>과 <<관 시리즈>>가 그러했었죠. SF도 비슷해서 재간 전 <<별의 계승자>>는 엄청났었습니다. 찾아보니 다아시 경 시리즈 <<마술사가 너무 많다>>도 3만원을 훌쩍 넘네요.
하지만 소설은 투자(?) 목적으로 구입하기는 꺼려집니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 작품은 많이 팔리기도 해서 공급도 많으며, 예상치못한 복간이나 전자책 출간이 이루어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요새는 비파괴 북스캔 후 OCR을 돌려 개인이 전자책처럼 만들 수도 있는 시대이기도 하니, 장기적으로는 경쟁력이 떨어집니다.

인문서의 경우는 아주 유명하다면 절판되는 경우가 적습니다. 재간도 자주 되며, 도서관에서도 구할 수 있고요. 특히 역사책은 4번 항목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서 추천하지 않습니다. 차라리 확실한 매니아층 - 소장 욕구를 불러 일으키는 - 이 있는 책이 괜찮아 보입니다. 밀리터리물, 요리, 자동차나 각종 취미 분야 (예를 들자면 건담) 등에서 독보적(?)인 책은 가격이 괜찮습니다. 제가 가진 책 중에서는 <청설모의 자동차카툰>>이 대표적입니다. 투자는 소설보다는 이 쪽이 나은 선택일 듯 합니다.


아울러 구입하려면 업자가 아닌 알라딘 직접 배송 중고 등 플랫폼 이나 당근 등의 개인 판매본을 노리는게 좋습니다. 업자는 책의 가치를 잘 알고 있으니, 비싼 책을 싸게 구입하는건 거의 불가능하니까요. 가격도 최소 3명 이상의 판매자가 책정한 가격을 기준으로 삼는게 좋습니다.
그리고 중고 구입 시에는 꼭 사전에 중고 플랫폼에서 검색해보세요 (팔 때도 마찬가지). 엄청난 고가라도 시장 가격과 다른 경우가 있거든요. 업자의 경우, 절판이라고 어마무시한 가격을 임의로 붙여놓고 '한 놈만 걸려라' 인 경우도 많으니까요. <<기동전사 건담 일년 전쟁사>>는 상, 하권 낱권보다 두 권 세트 가격이 두배 가까이 비싼데 이런 경우도 주의해야 합니다.

허나 이 이론이 절대적인건 아닙니다. 조건을 대충 충족한 것 같은데 생각보다 가격이 오르지 않는 책도 많아요.
그래서 너무 투자(?)에 연연하지 말고, 좋아하는 작품을 소장하는 개념으로 접근하시는게 속은 편할겁니다. 그러다보면 가격은 오를 수 있으니까요. 제가 좋아하지만 그동안 중고 시장에서는 별로 대접을 받지 못했던, 김진태 만화들도 결국 가격이 엄청 올랐더라고요. 결론내리자면, 존버는 승리한다!
 
그런데 과연 <<대지옥전 진광대왕>>이 얼마나 할지, 살짝 궁금해집니다. 1, 4에 해당되기는 하는데....


2023/01/14

마녀의 은신처 - 존 딕슨 카 / 이동윤 : 별점 4점

마녀의 은신처 - 8점 존 딕슨 카 지음, 이동윤 옮김/엘릭시르

<<아래 리뷰에는 핵심 트릭과 범인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미국인 테드 램폴은 대학 은사의 소개로 영국 시골 채터럼에 거주하는 사전 편찬자 기디언 펠 박사의 집에 머물게 되었다. 그 지방에는 스타버스 가문에서 다스렸던 교도소에 얽힌 저주가 전해지고 있었고, 실제로 스타버스 가문의 주인들은 모두 목이 부러져 죽었다.
램폴은 스타버스 가문의 장녀 도러시와 사랑에 빠졌지만, 가문의 유산 상속을 위해 교도소의 교도소장 방에서 자정에 무언가를 가지고 왔어야 했던 가문의 장남 마틴이 교도소에 간 날 밤 목이 부러져 죽고, 사촌 허버트는 사라지는 사건에 말려드는데....


유일하게 읽지 않고 남겨 두었던 존 딕슨 카의 국내 출간작. 해문의 어린이용 버젼으로 앍어야하나 고민하던 중 엘릭시르에서 나온 전자책이 있길래 냉큼 구입해서 읽게 되었습니다.

딕슨 카의 특기가 유감없이 펼쳐지는 작품으로 가장 마음에 들었던건 추리적인 장치들입니다. 정통 고전 미스터리의 대가다와요. 특히 일종의 순간이동 트릭이 볼만했습니다. 
범인인 손더스 목사는 교도소장 방의 램프 불이 꺼질 때까지 펠 박사와 랜폴과 함께 있었다는 결정적인 알리바이가 있었습니다. 램프 불이 꺼진 직후 램폴과 함께 펠 박사 집을 떠났고, 그 뒤 마틴의 시체가 발견되었으니 범인일 수 없다는 것이었지요. 그러나 펠 박사가 추리해낸 진상은 실종된 허버트가 마틴 대신 교도소장 방으로 갔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교도소장 방의 램프는 마틴이 아니라 허버트가 켜고 껐으며, 마틴은 목사가 펠 박사의 집에 가기 전, 목사관에서 이미 살해해서 마녀의 은신처에 사체를 유기했던 겁니다. 이후 사체 발견 후 목사관에 들렸을 때 허버트도 살해했고요. 이 일련의 과정은 마틴이 굉장한 겁쟁이었다는 것과 허버트의 맹목적인 충성이라는 인간 관계, 그리고 마틴은 골초였는데 교도소장 방에는 꽁초하나 남아있지 않았다는 것, 발코니 창에서 떨어진 것으로 보이지만 창으로는 빗물이 전혀 들이치지 않았다는 등의 세부적인 단서를 공정하게 제공하는 것에 의해 합리적으로 뒷받침되고 있습니다. 허버트가 발명가라는 설정으로 발코니에 특수 장치를 했을 거라는 추론같은 잔재미도 충분하고요.

사건의 동기라 할 수 있는, 우물에 보물이 있다는 펠 박사의 추론 역시 합리적이에요. 그는 지극히 공정하게 독자들에게도 제공되는 정보로 이를 추리해냅니다. 초대 교도소장 앤서니 스타버스는 왜 그렇게 완력이 강해졌는지? 교도소장 방 발코니 석재 난간에 깊숙하게 패인 홈의 정체는 무엇인지? 발코니로 향하는 문 열쇠가 왜 필요했는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가 미워하던 가족들에게 남겨주지 않은 막대한 재산은 어디에 갔는지? 라는 단서를 통해 앤서니가 난간에 밧줄을 묶은 뒤 바로 아래 있는 우물 안에 들어갔다 나오기를 반복했으며, 그 이유는 우물 안에 재산을 숨겨 놓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니까요.
이 추론을 증명하는, 교도소장이 남긴 십자말 풀이같은 암호문도 인상적이었습니다. 형편없는 시를 썼다는 인물 설정에도 부합하면서도, 언어가 다른 국내 독자들도 풀어낼 수 있으리라 생각될 정도로 쉬우면서 합리적인 암호였거든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마지막에 손더스 목사가 범인임을 드러내는 추리쇼 장면이 정말 압권이었습니다. 펠 박사는 경찰서장과 여러 관계자들과 함께 기차역으로 항합니다. 도착하는 인물이 사건의 주요 인물이라면서요. 그리고 기차에서 내리는 사람이 누구냐고 손더스 목사에게 물어보는데 목사는 "당신 미쳤구먼! 나는 저 사람 처음 봅니다! 대체 이게 다 무슨 짓입니까?"라고 답합니다. 여기서 손더스 목사가 가짜라는게 드러나게 되지요. 그 사람은 진짜 손더스 목사의 숙부였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를 아는게 아니라 '모르는 것'이 핵심 증거가 된다는 발상이 아주 신선했고, 이를 추리쇼 형태로 풀어낸 솜씨는 정말로 탄복할만 했어요.
이러한 추리적인 요소들 외에, 딕슨 카의 또 다른 특기인 오컬트적인 부분의 묘사도 빼어납니다. 광기의 교도소장 앤서니 스타버스와 그가 만들어 운영했던 죽음의 교도소, '마녀의 은신처'라고도 불리우는 교수형장 터에 대한 끔찍하면서도 생생한 묘사는 일품이에요. 20세기 초반, 영국 시골 분위기와 음침함이 잘 어우러지고 있습니다. 독자들에게 스타버스 가문에 내려진 저주(?)도 그럴듯하게 느껴지게 만들고요.

하지만 손더스 목사가 저지른 범행의 원인이 된 티머시 스타버스의 행동에는 다소 의문이 남습니다. 티머시 스타버스는 죽기 전에 자기를 죽이려한건 손더스 목사였다는걸 알리지 않습니다. 어차피 티머시 사후 아들 마틴이 가문을 잇게될 때 확인하게 될 금고 안에 손더스 목사의 범행을 증명하는 서류를 넣어두었을 뿐이지요. 왜냐하면 남은 몇 년 간, 손더스 목사가 도망도 가지 못하고 범행이 드러날 때까지 지옥을 맛보게 하려는 생각이었다는데.... 이는 손더스 목사로 하여금 아들과 조카마저 살해하게 하는 결과를 빚고 말았습니다. 조금만 생각하면, 궁지에 몰린 손더스 목사가 마틴을 죽이고 서류를 손에 넣으려고 했으리라는건 충분히 알 수 있었을겁니다. 한 명을 죽이나, 두 명을 죽이나 어차피 별 차이는 없잖아요. 이런 계획을 세우고 서류까지 작성할 정도였으면 정신도 말짱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왜 이런 무모한 (?) 계획을 세웠는지 모르겠습니다.
또 나중에 진술서를 통해 손더스 목사가 왜 도망가지 않았는지에 대해 설명해주는데 그다지 설득력은 없었습니다. 어차피 몇 년 뒤 범행이 드러날거라면, 스타버스 가문의 숨겨진 보물로 거액을 손에 넣을 수 있었으니 여행을 떠난다는 등의 핑계로 마을을 떠나 사라지는게 나았을테니까요. 신분도 손더스 목사로 위장하기 전 원래 신분으로 돌아간 뒤, 원래 머물던 뉴질랜드로 떠났다면 영원히 문제가 없었을 거에요.
그 외에도 티머스 스타버스는 보물의 존재를 알고 있었던게 분명한데, 왜 진작에 보석을 꺼내어 가문의 재산으로 삼지 않았는지도 의문이며, 램폴과 도러시가 만나자마자 사랑에 빠진다던가, 아무리 손더스 목사가 의도적으로 접근했다 한들 마틴이 선뜻 목사 계획에 응했다는 등 설득력이 떨어지는 부분이 적지 않네요.

그래도 추리적으로 워낙 빼어나기에 단점이 두드러져 보이지 않습니다. 오컬트적인 요소가 잘 어우러진 특유의 작풍도 아주 매력적이고요. 제 별점은 4점입니다.

마지막으로, 이전에 올렸던 내용에서 업데이트한, 제가 여태 읽었던 딕슨 카 작품 순위를 공개합니다. 지금 읽으면 별점과 순위는 다소 조정될 수 있지만, 평균 별점이 3점을 넘으니 타율로 따지면 5할 이상! 쳤다하면 장타입니다. 대단하네요.

공동 1위 : 별점 4점
<<해골성>>
<<유다의 창>>
<<흑사장 살인 사건>>
<<화형 법정>>
<<마녀의 은신처>>

공동 6위 : 별점 3점
<<연속 살인 사건>>
<<세 개의 관>>
<<구부러진 경첩>>
<<벨벳의 악마>>
<<아라비안 나이트 살인>>
<<초록 캡슐의 수수께끼>>
<<기묘한 사건, 사고 전담반>>
수록작 중<<은빛 장막 속에서>>, <<합법적인 사형집행인>> 별점 4점
<<사라진 방>>, <<분장실의 시체>> :별점 3.5점
<<투명 인간 살인>> : 별점 3점

13위 : 별점 2.5점
<<모자 수집광 사건>>

14위 : 별점 2점
<<밤에 걷다>>

2022/10/02

미로관의 살인 - 아야츠지 유키토 / 권일영 : 별점 3점

미로관의 살인 - 6점
아야츠지 유키토 지음, 권일영 옮김/한즈미디어

<<아래 리뷰에는 진상과 트릭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추리 소설계의 거장 미야가키 요타로는 환갑을 맞아 자신의 저택 '미로관'에 제자 작가 4명과 평론가, 담당 편집자, 친한 추리소설 애호가를 초대했다. 그리고 미로관에 모인 그들에게 미야가키의 비서 이노 미쓰오가 요타로가 자살했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전했다. 그리고 함께 공개된 유언장에는 4명의 제자 중 한 명에게 거액의 유산을 줄 생각인데, 그 한 명은 앞으로 닷새 동안 미로관에서 그들이 각각 쓴 추리 소설을 함께 참석한 편집자, 평론가, 애호가들의 심사로 결정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사람이 죽기는 했지만, 워낙 거액이 걸려있는 탓에 작가들과 심사 위원들은 요타로의 유언을 따르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 작가 중 한 명인 스자키가 살해당했으며 나머지 생존자들 모두는 미로관에 갇혔다는걸 알게 되었다. 유일하게 사라진건 비서 이노였다. 작가 중 한 명인 기요무라는 이노가 범인이라며, 유언에 따른 추리 소설 창작 대결을 속행할 것을 주장하는데....


신본격의 탄생을 알렸던 아야츠지 유키토의 '관 시리즈' 세 번째 작품. 일본에서는 1988년에 출간되었던 작품이지요.
사실 이 작품은 나름대로는 비교적 빠르게 국내에 소개되었던 편입니다. 1997년에 학산 문화사에서 정식 출간되었었으니까요. 하지만 절판은 더 빨랐었습니다. 이유는 인터넷이 발달했던 시대가 아니어서 정보가 전달되고 소개되는게 많이 늦었던 탓입니다. 저 역시 추리 소설 애호가를 자처하고 있었지만 이 시리즈가 출간되었던 것 조차 잘 알지 못했던, 그런 시대였거든요. 인터넷 서점도 거의 없었고요.
그래서인지 오히려 절판 이후 인기가 폭발하게 되었습니다. 인터넷의 발달 덕분이지요. 덕분에 중고책 가격도 꽤나 올라가게 되었었고요. 그러고보면 이러한 프로세스 '1. 국내 출간 -> 2. 광속 절판 -> 3. 인터넷 등으로 유명세, 가치 상승 -> 4. 중고가 상승'을 거친 책들이 1990년대 후반에 꽤 많았었습니다. <<점성술 살인 사건>>이 대표적입니다.

그래도 저는 절판 직후 연이 닿아서, 2000년대 초반에 <<십각관>>, <<수차관>>, <<시계관>>, 그리고 <<인형관>>을 구해 읽을 수 있었습니다. 내용도 대체로 기억나고요. 그런데<<미로관의 살인>> 만큼은 이상하게도 내용이 전혀 기억 나지 않았습니다. 분명 읽었던 것 같은데 말이지요. 그러던 차, 추리 소설 관련 정보를 조사하다가 한 랭킹에서 마지막 한 줄의 반전이 빼어난 작품으로 <<미로관의 살인>을 꼽고 있는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호기심도 생겼고, 오래된 숙제를 마치는 기분도 느낄 겸 해서 알라딘 전자책으로 구입하여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 오래 전에 읽지 않았던 작품이 맞더군요. 모든 내용이 새로왔기 때문입니다. 당초에 왜 읽었다고 생각했을까요? 사람의 기억이라는게 얼마나 오류가 많은지 다시금 느끼게 되네요.

각설하고 작품에 대해 소개해드리자면, 이야기는 '시마다'가 시시야 가도미라는 작가의 <<미로관의 살인>>을 선물받아 읽는 장면에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미로관의 살인>>이라는 소설 속 소설이 곧바로 이어지는, 일종의 액자 소설같은 구조를 갖추고 있습니다. <<미로관의 살인>>은 건축가 나카무라 세이지가 만든 '미로관'에서 벌어진 연쇄 살인 사건을 그리고 있는 작품이고요. 시마다 기요시가 다른 시리즈들과 마찬가지로 탐정으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우선 미로관의 주인이자 추리 소설계의 거장인 미야가키 요타로가 자살하면서, 4명의 제자 중 가장 뛰어난 인물에게 유산을 넘겨줄 생각으로 그들을 미로관에 불러 모았다는 도입부부터 시선을 확 잡아 끕니다. 이들을 닷새 동안 미로관에 가두고 작품을 쓰게한 뒤, 같이 초대했던 평론가와 편집자, 추리소설 애호가에게 심사 위원 역할을 맡길 셈이었다는 계획은 꽤 그럴싸해 보였거든요. 뛰어난 신진기예 작가들의 실력을 극한으로, 하지만 공정하게 뽑아내기 위해서는 이만한 방법도 없을테니까요. 물론 공정함을 위해 현장에서 동일한 주제 - 무대는 미로관이며 피해자는 작가 본인으로 할 것 - 를 주기는 했지만, 작가 중 누구라도 자기가 쓰려고 했던 다른 작품에서의 획기적 트릭을 유용할 수 있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 실제로 다이잉 메시지를 쓰려고 했던 작가가 있었는데, 이는 장소와 피해자가 누구라도 상관없는 트릭이니까요 - 아주 공정했다고 보기는 힘들긴 하지만요.
이후 4명의 제자들이 각자 작업했던 작품에서처럼 살해당한다는 전개도 무척 흥미로왔습니다.

추리적으로도 볼 만 합니다. 피해자들이 살해당한 현장 등 여러가지 단서들과 정보들 모두가 화자격인 우타야마를 통해 독자들에게 공정하게 제공되는 덕분입니다. 이를 통해 드러나는 진상 역시 합리적이고요.
조금 상세히 설명드리자면, 가장 처음 살해당했던 스자키는 목이 거의 떨어져 나간 상태로 발견되었습니다. 목 부분에는 소 머리 박제가 놓여 있었고요. 하지만 왜 머리를 아예 잘라 놓거나, 아니면 간단하게 박제 머리를 올려놓지 않고 이렇게 어중간하게 현장을 만들었을까요? 시마다 기요시의 추리는 범인이 현장에서 피를 흘렸기 때문에, 피를 피로 덮기 위해서 목을 잘랐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나중에 사실로 판명되고요.
마찬가지로 하야시는 입구에 바리케이트까지 쳐 놓았을 정도로 준비가 철저했었는데, 왜 범인은 쉽게 방 안으로 들여 보냈는지? 후나오카가 살해당한 방은 빗장까지 걸린 완벽한 밀실 상태였는데 범인은 어떻게 도주한 것인지? 에 대한 답은, 미로관의 각 방은 비밀 통로가 있었다는 추리로 이어지게 됩니다. 하야시가 남겼던 다이잉 메시지, 후나오카가 죽기 직전 거울을 가리켰던 행위로 비밀 통로의 존재는 밝혀지고, 이로써 진범은 죽은 줄 알았던 미야가키 요타로였다는게 드러나게 됩니다. 그는 살인이 하고 싶어서 4명의 제자를 죽였다는 유서를 남기고 비밀 통로로 이어지는 방에서 자살한 시체로 발견되지요.
이렇게 기묘한 현장 조작과 밀실 살인, 원격 조종 살인 등이 함께 펼쳐져 추리의 여지가 많다는 점은 높이 평가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그냥 이 정도로 마무리되었다면, 이 작품이 그렇게까지 추리적으로, 그리고 반전에 대해 높은 평가를 받지는 못했을 겁니다. 워드프로세서의 키보드 배치 문제, S가 하나 더 표기된 MINOSS 왕의 철자, 지속적으로 나카무라 세이지가 만든 건축물은 특별한 장치가 있다며 시마다 기요시가 비밀 통로에 대해 수차례 언급하는 등 다이잉 메시지와 비밀 통로에 대해서는 정보가 많이 주어지고 있어서 아주 대단한 추리력을 필요로 하지 않으니까요. 게다가 '비밀 통로'는 트릭으로서는 반칙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작품 내에서도 반칙이라고 언급될 정도지요.
기요무라를 살해한 트릭을 제외하고는 '미로관'이라는 말 그대로 미로를 이용한 트릭이 부족한 것도 조금은 실망스러웠던 부분입니다. 기요무라 살해 트릭도 우타야마의 입을 통해 '통로에서의 위화감'이 계속 언급되고 있어서 특별히 대단한 추리가 필요하지도 않았고요. 아울러 기요무라가 가면이 아니라 평면도를 통해 이동해서 함정에 걸리지 않았다면 어떻게 했을지 등 상세한 내용 설명이 부족해서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하지만 에필로그를 통해 드러나는 반전과 또다른 진상이 이 작품을 특별하게 만들어 줍니다. 작품 전체에서 당연히 남자인줄 알았던 사메지마가 여자였다는 서술 트릭이 사용되었던 겁니다! 이로써 스자키의 목을 잘랐던건 시마다 기요시의 추리가 맞았다는게 판명됩니다. 당시 현장에서 그 누구도 출혈을 일으킬만한 상처가 없어서 범인을 알아내지 못했었는데, 사메지마가 갑자기 생리가 터졌던게 출혈의 원인이라는게 밝혀지거든요. 그녀와 미야가키의 오래된 인연, 장애가 있는 그녀의 아이 등 사건의 동기 역시 모두 공정하게 설명되고 있고요. 자살을 위장해서 미야가키 요타로만 살해할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면 유산의 전부나 일부가 미야가키 요타로가 만들려고 했던 추리상 기금으로 사용될 수 있었으니 그를 살인범으로 몰아 죽게 만들었다는건 충분히 합리적이었습니다. 연쇄 살인마가 만든 추리상을 받고 싶은 작가는 없을테니까요. 액자 소설 형태를 취했던 이유도 알고보니 이 서술 트릭을 위해서였는데, 상당히 깔끔하게 마무리 되고 있어서 완성도도 높고요.
서술 트릭물답게 성별은 물론, 여성이라고 짐작 가능하게끔 사메지마의 이름을 한 번도 언급하지 않는 등 알고보면 억지가 없지는 않지만, 이 정도면 충분히 납득할 만 합니다. 이는 에필로그의 대화를 통해 '일부러 그렇게 썼다'는 작가의 말로 재치있게 빠져나가고 있기도 하고요.

그래서 별점은 3점입니다. 사건의 무대인 미로관과 사람이 죽어나가는 중에 벌어지는 추리 소설 창작 대결 등 비현실적인 소재가 많다는 등 단점이 없지는 않습니다. 그라나 신본격의 중흥을 이끌었던 작가의 당시 대표작다운 재미는 충분합니다. 추리적으로도 기본 이상은 해 주며 그리 길지 않다는 미덕도 크고요. 아직 읽어보지 않으셨다면, 한 번 읽어보기를 권해드립니다.

2022/10/01

변덕쟁이 로봇 - 호시 신이치 / 윤성규 : 별점 1.5점

변덕쟁이 로봇 - 4점
호시 신이치 지음, 윤성규 옮김/지식여행

호시 신이치는 신선하고 기발한 아이디어를 핵으로 논리적인 줄거리와 함께 기상천외한 의외의 결말이 있는 초단편, 이른바 '쇼트쇼트'의 제왕입니다. 저도 좋아하는 작품을 여럿 발표했고요.

하지만 문제라면 워낙 다작이었던 탓에 작품들 수준이 일정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또다른 쇼트쇼트 거장 아토다 다카시와 비교해 보아도 호시 신이치 작품 수준 편차가 훨씬 큽니다. 그래서 국내에서 발표되었던 호시 신이치 쇼트쇼트 모음인 '플라시보 시리즈'도 쉽게 손이 가지 않았습니다. 대체로 지뢰작 모음일 가능성이 높다는걸 알고 있었으니까요. 실제로도 그러했는지 시리즈는 금방 절판되고 말았지요. 그래도 이 시리즈 중 <<봇코짱>>은 괜찮은 작품이 많이 모여 있는, 베스트 오브 베스트라 일컬어지고 있어서 인기가 많습니다. 저도 한 권 구입해서 소장하고 있으며 리뷰도 올린 적이 있는데, 소문대로 괜찮은 책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책, <<변덕쟁이 로봇>>이 <<봇코짱>>과 더불어 최고의 작품집으로 선정하고 있다는걸 알게 되었습니다. 확실한 근거라기 보다는 어딘가의 리스트에 국한된 선정이기는 하지만, <<봇코짱>>이 워낙에 괜찮았기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절판된지 오래고, 인터넷 중고가가 비교적 높게 형성되어 있는 책이라 쉽게 구하지는 못했는데, 우연찮게 알라딘 온라인 중고 매물로 최상급 책이 정가의 절반 가격으로 등록된걸 발견하고 바로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쇼트쇼트 단편집답게 무려 50편이나 되는 작품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중후반부까지는 전형적인 쇼트쇼트인데, 마지막 몇 편은 10 페이지를 훌쩍 넘기는 단편들이었고요. 수록작은 제목처럼 로봇이 등장한다던가, 과학자가 (대체로 F 박사나 N 박사) 이상한 약이나 기계를 만들거나 와계인이 이상한 장치를 가지고 벌이는 소동 등 SF 설정의 이야기가 많습니다.
조금 특이했던건, 엉터리 발명품이 오동작을 일으켜서 사고가 발생한다는 전형적인 이야기보다는 발명품이 생각대로는 작동하는 이야기가 많았다는 점입니다. 의외의 발명품으로 의표를 찌르거나, 아니면 생각대로 작동하는 탓에 문제를 일으키는 식으로 전개됩니다. 전자는 화재를 없애기 위해 불이 있는 쪽으로 날아가는 새를 만들었는데, 태양으로 날아가버리고 말았다는 <<불조심>>, 자면서 학습이 가능한 수면 학습 베개로 배운건 잘 때만 효과가 있다는 <<신 발명품 배게>>가, 후자는 벌레잡는 풀꽃을 만들어냈지만, 먹이를 줘야 해서 벌레를 키워야 한다는 <<편리한 풀꽃>>, 소리를 없애는 장치를 만들어 도둑질을 하려고 했지만 비상벨과 경찰차 사이렌 소리도 없앤 탓에 체포되어 버리는 <<실패>> 등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발명품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사람이 고양이를 돌보는게 아니라, 고양이가 사람을 노예처럼 부리고 있다는, 이른바 '집사' 분들의 현실을 (?) 유쾌하게 그려낸 <<고양이>>, 그리고 불사신이 되었다고 믿었지만, 정신만 살아있는 좀비가 되어버린 사람의 이야기인 <<뼈>> 는 꽤 재미있는 이야기였다 생각되고요.

그러나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습니다. 이야기 전개와 반전이 기발한 작품을 찾기 힘들었던 탓이 큽니다. 책 뒤 후기를 보니 어린 아이들을 위해 쓴 작품이 많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다소 유치하고 말장난같은 느낌이 많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1.5점입니다. <<봇코짱>>과는 비교가 불가능한 수준 이하의 작품들로, 고가로 구입하지 않은게 다행일 뿐입니다. 통상적인 중고가가 제가 구입한 가격보다 높기도 하니, 투자 개념으로 그냥 가지고 있어야겠습니다.

2022/09/04

대단한 밀실 트릭! 신비로운 고전 걸작 5편 소개 (from 'honto')

일본의 전자책 서점 honto에는 책 전문가인 북 큐레이터가 특정한 주제를 가지고 선정하여 소개해주는 서비스 '북트리'가 있습니다. 그 중 밀실 트릭 고전 걸작 소개입니다. '고전 걸작'이라는 말에 어울리는, 고전이면서도 트릭면에서 나무랄데없는 좋은 작품들입니다. 이런 류의 추천치고는 일본 작품 비중이 비교적 낮다는 것도 장점이고요. 이 서비스를 좀 더 이용해 보아야겠네요.

소개작은 아래와 같습니다.

1. "모르그 거리의 살인" 에드거 앨런 포 

밀실에서 일어난 범행이라는 수수께끼, 홈즈의 원형이라고 불리우는 명탐정 듀팽, 논리적인 해결, 의외의 범인 등의 요소로 '추리 소설'이라는 장르의 막을 연 작품.

2. "노란 방의 비밀" 가스통 르루 

"오페라의 유령" 원작자로도 유명한 저자가 그려낸 '완벽한 밀실'인 노란 방에서의 범행, 거기에 두 개의 인간 소실 수수께끼까지 더해져 있다. 고전 모험 활극의 향기도 느껴지고, 밀실 추리물 최고의 걸작이라고 칭송받기도 하는, 올 타임 베스트에 단골 선정되는 명작.

3. "유다의 창" 존 딕슨 카 

엘러리 퀸, 크리스티 여사님과 함께 황금 시대 (골든 에이지) 삼대 거장이라고 불리우는 딕슨 카의 작품. 밀실의 거장이라고도 불리운 카의 작품답게 밀실 살인과 법정 미스터리가 결합되어 있다. 밀실에서 피해자와 함께 있었던 피고를 명탐정인 법정 변호사 헨리 메리베일경이 변호하는 내용으로, 아주 유명한 트릭이 사용되었지만 트릭을 알아채더라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작품.

4. "혼진 살인사건" 요코미조 세이시 

명탐정의 대명사 긴다이치 코스케의 데뷰작. 열쇠도 없고, 장지문으로 만들어져 밀실에는 적합하지 않은 일본 가옥을 무대로 한 최초의 밀실 추리물로도 유명한 불후의 명작.

5. "문신 살인 사건" 다카기 아키미쓰

다카기 아키미츠의 데뷔작으로 명탐정 카미즈 교스케가 처음으로 등장한다. 유명 문신가의 문신을 한 3자매 중 한 명이 토막난 사체로 밀실에서 발견된다. 쌍둥이 자매, 토막난 시체, 욕실이라는 밀실에서의 살인이라는 본격 추리물의 재료가 가득한 작품. 트릭도 훌륭하다.

2022/07/16

니콜라스 퀸의 조용한 세계 - 콜린 덱스터 / 해문출판사 : 별점 2점

니콜라스 퀸의 조용한 세계 - 4점
콜린 덱스터/해문출판사

아래 리뷰에는 범행 동기와 범인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해외 시험 협회에 채용된 청각 장애인 니콜라스 퀸이 독살된 채 발견되었다. 모스 경감은 협회 관계자 중 누군가가 범인이라고 확신하는데....

콜린 덱스터모스 경감 시리즈 다섯 번째 작품입니다. 종이책으로 출간되지 않아서 몰랐었는데, 진작에 전자책으로 출판되었었더군요. 전작들은 모두 좋은 작품들이었지만 어지간히 팔리지 않았나 봅니다.

작품은 모스 경감 시리즈답게 굉장히 고전적입니다. 1건(뒤에 1건 추가됩니다만)의 살인 사건에, 용의자는 극도로 적은 상황에서 주어진 정보들을 조합하여 추리한 뒤, 범인을 밝혀내는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를 잘 정리해서 풀어내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오히려 억지로 이야기를 복잡하게 만드는 느낌이에요. 모스 경감의 조사는 두서없이 전개되고, 제대로 정리되지도 못하거든요. 그래서 불필요하게 길어지기도 했고요. 

게다가 사건도 이렇게 전개해서 어려워 보일 뿐, 사실은 별로 어려운 사건이 아니었다는 것도 문제에요. 왜냐하면 유력한 용의자인 협회원 5인은 모두 오후 4시 이후 알리바이가 없습니다. 누구든 4시 이후에 니콜라스와 함께 그의 집에 가서 독을 먹여 살해했다고 보아도 무방하지요. 그렇다면 다른 단서들로 명확한 살해 동기 - 협회 내에서 누군가 시험 문제를 빼돌리고 있다는걸 니콜라스가 알아챔 - 를 알아냈으니, 유력한 용의자(루프)를 체포하면 사건은 끝입니다. 니콜라스가 6시 직전까지는 살아있었다는게 드러났기 때문에 루프가 오전에 확고부동한 알리바이가 있는건 전혀 중요하지 않으니까요. 루프가 저녁에 니콜라스의 집에 갔던건 사실이었던만큼, 크게 잘못된 체포로 보이지도 않고요.

이렇게 5시 이후에는 알리바이가 아무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니콜라스가 그 전에 살해당했다면서 멀쩡한 알리바이를 건드리는 모스 경감의 수사도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모스 경감의 추리대로 소방 훈련을 이용하여 12시에 니콜라스 퀸을 살해한다? 왜죠? 범인 마틴과 루프가 얻을 수 있는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확고한 알리바이가 생긴게 아니니까요. 시체를 옮기는 어려움과 위험을 무릅쓸 필요도 없어요. 구태여 비가 오는데 코트를 벗어 두었다던가, 바틀렛의 방침을 거스르는 열린 캐비넷같은 실수만 눈에 뜨였을 뿐입니다. 

그 외 독자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세세한 디테일들도 도가 지나쳤습니다. 포르노 영화관에 모든 사건 관계자들이 모였었다는 상황이 굉장히 비중있게 설명되는데, 정작 사건과는 별로 관계가 없다는게 대표적입니다.

또 '누가 니콜라스를 죽였는지?'에 대해 흥미를 갖게 만드는 묘사도 부족합니다. 캐릭터들을 수상쩍게 그려내는데 실패한 탓입니다. 혼자 무언가 조사를 하고, 혼자 거짓말을 한 듯한 오글비 정도가 그나마 가장 수상해 보였을 뿐입니다. 그 역시 살해당하고 심지어 시한부 인생이었다는게 밝혀지면서 용의 선상에서 비교적 일찍 빠져나가기도 하고요. 1년여 밖에 못 사는 사람이 구태여 다른 사람을 죽일 이유는 없잖아요? 그 외의 다른 인물들은 대체로 수상쩍어 보이지 않았습니다.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는 아들 때문에 돈이 필요한 바틀렛 정도만 아슬아슬하계 합격점을 줄 만 합니다. 여기에 더해, 모스의 매력에 푹 빠지는 중년 여성 모니카 캐릭터는 진부하고 평면적이었어요. 모스가 무슨 매력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모스에게 호감을 보이는 듯한 묘사는 억지스럽기까지 했습니다.

그래도 니콜라스가 청각 장애인으로 독순술에 뛰어나서 시험 문제를 빼돌리는 비밀 대화를 알아챘다는 동기는 괜찮았습니다. 독순술로 사람 이름을 잘못 알아들었다는 착상도 아주 멋졌고요. 그런데 여기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독순술과 시험 문제 유출 모두 전개 과정에서 비교적 쉽게 드러난다는 겁니다. 니콜라스의 전임자가 저질렀다는 것까지도요. 작가가 동기를 구태여 숨길 필요가 없었다고 생각한 것 같은데, 포르노 영화보다는 이쪽을 보다 정교하게 숨겨서 전개하는게 더 낫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니콜라스가 청각 장애인이라는걸 숨기는 식으로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입니다. 이 시리즈는 오랫만에 읽어보았는데, 초기작보다는 여러모로 부족했습니다. 현대 수사물을 본격 추리물로 만드려니 생긴 억지들 탓입니다. 불필요한 수수께끼를 자기 멋대로 만들고, 멋대로 해결하고 있으니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드네요. 구태여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2022/03/05

미스테리아 35호 - 미스테리아 편집부 : 별점 2점

미스테리아 35호 - 4점
미스테리아 편집부 지음/엘릭시르

별로 관심은 없었지만, 알라딘 온라인 중고로 미스테리아 36호를 사다가 곁다리로 구입하였습니다. 배송비를 내지 않기 위해서였지요. 

관심이 없던건 '少年'이라고만 적혀있는 뭔지 모를 특집 때문이었는데, 읽어보니 역시나였습니다. 제목의 소년은 "20세기 소년"에서 따온 것으로, "20세기 소년"에서 중요하게 언급되었던 오사카 만국박람회, 그리고 올림픽과 1970년대 전기 소설의 유행을 다루는데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건지도 잘 모를 정도로 두서없는 글들입니다. 전기 소설에 대한 부분만 괜찮았는데, 차라리 이 부분만 조금 더 깊게 파고드는 특집을 꾸미는게 훨씬 나았을 겁니다. 

뒤이은 '피서지에서 생긴 일'이라며 휴가 여행에서 생기는 사건들을 다룬 글은 완전 별로입니다. 앞의 글들과 맥락이 맞지도 않았을 뿐더러, 소개되는 작품 절반 이상이 크리스티 여사님 작품들인 탓입나다. 소개라도 다양했더라면 좋았을텐데 말이지요.

그나마 여기까지는 추리 문학 애호가로서 참고 볼만한 내용이기는 했는데, 영화 "스파이의 아내"에 대한 정성일 평론가의 27페이지에 달하는 리뷰와 분석은 지루함의 끝판왕이었습니다. 보지도 않았고, 볼 생각도 없는 영화 리뷰가 재미있을리도 없지만, "미스테리아"라는 잡지에 이렇게 많은 분량으로 소개될 이유를 도무지 모르겠더군요, 이 영화가 정통 추리물이거나, 혹은 그 쪽 장르에 부합하는 영화일까요? 그 외의 글들도 대부분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나마, 제가 쓰는 글과 코드가 비슷해서 좋아하는 정은지 작가의 '미스터리 속 음식 이야기'가 이번에는 피터 윔지 시리즈 전반을 다루는데 눈여겨 볼 부분이 많있습니다. 저도 미스터리 속 샌드위치에 대한 짤막한 글을 써볼까 하고 있었는데, "부자연스러운 죽음"에서 샌드위치가 결정적 단서라는 글이 특히 눈길을 끌었습니다. 전자책으로 출간된 모양인데, 이번 주말에 읽어봐야 겠습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특집과 인터뷰, 리뷰 등 기사 대부분이 마음에 들지 않아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별점은 2점 정도? 중고책으로 저렴하게 구입해서 별다른 내상은 없기는 한데, 앞으로는 특집이 별로면 절대 구입하지 말아야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수록 단편의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그래도 해피엔딩" 서미애

이트 폭력을 그린 단편입니다. 전기 충격기로 디지털 도어 잠금을 풀 수 있다는 생활 상식(?) 말고 기억에 남는 부분은 없습니다. 전개가 너무 뻔한 탓이었습니다. 도무지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네요. 별점은 1.5점입니다.

"탐정이 살인하는 법을 배우다." 곽재식 

1949년, 탐정은 친분이 있던 이 선생님 행사에 게스트로 초대되었다. 이 선생이 완전범죄 비결을 탐정에게만 - 관객들에게 알려주면 완전범죄가 늘어날거라는 이유로 - 알려주고, 탐정이 비결은 그럴듯했다고 인정하며 마무리되는 행사였다. 그 뒤 누군가 탐정을 납치했다. 완전범죄 비결을 알아내기 위해서였다. 그는 탐정에게 협박과 고문을 가했고, 탐정은 '거래'를 위해 믿을만한 사람이 필요하다며 유명한 해결사 황금지네의 전화번호를 건네주었다. 그러나 전화를 받고 나타난건 복수를 위해 황금지네를 쫓던 사채업자 용산쌍룡이었다....

해방 직후를 무대로 해결사 황금지네, 황금지네에게 원한이 있는 사채업자 용산쌍룡, 정체불명의 남자와 탐정, 완전범죄에 대해 떠벌이는 전직 형사 이선생 등 기묘한 등장인물과 완전범죄 좌담회라는 비현실적인 설정이 가득한 작품입니다. 뭔가 만화같은데, 이런 설정을 잘 살린 묘사만큼은 일품이긴 합니다. 특히 가난하지만 입담하나는 최고인 탐정 캐릭터 묘사가 괜찮았어요. 이 선생이 황금지네였다는 반전도 나쁘지는 않았고요.

그러나 완전범죄 계획은 실망스러웠습니다.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낯선 승객" 등에서 익히 보아왔던, 일종의 살인 대행업을 조금 키운 형태에 불과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아이디어를 다크 웹 형태로 운영한다는 "디 아더 피플" 속 설정과 별로 다르지도 않고요. 양념 정도라면 모를까, 비중있게 가져갈 설정은 아니었습니다. 이보다는 차라리 범죄자들끼리 쫓고 쫓기는 구도를 조금 더 정교하게 배치하는게 더 낫지 않았을까 싶네요.

그래도 유쾌하게 읽을 수 있는 범죄물이라는건 분명합니다. 시리즈를 계속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으니까요. 별점은 2.5점입니다.

"3시 정각" 코넬 울리치 

시계 장인 스텝은 아내의 불륜을 눈치챈 뒤, 그녀를 지하실에 설치한 폭탄을 터트려 죽일 계획을 꾸몄다. 이를 위해 오랫동안 조금씩 화약을 모으고, 장치를 만들어나간 끝에 마지막 D-day에 맞춰, 지하실에 잠입해 자명종을 셋팅했다. 그러나 스텝은 집에 들어온 강도들에 의해 지하실 기둥에 묶이는 신세가 되어버리는데....

스스로 설치한 시한 폭탄 타이머가 눈 앞에서 움직이는걸 보는 상황의 묘사가 실로 일품인 작품입니다. 왜 코넬 울리치 (윌리엄 아이리시)가 서스펜스 스릴러의 제왕인지 다시금 느낄 수 있었던 명편이에요. 지하실에서 아내의 불륜이 사실이 아니라는걸 깨닫고 개과천선하는 장면에서 시작해서, 가스 검침원과 공놀이하던 꼬마를 통해 어떻게든지 살아보려고 몸부림치는 과정의 빌드업이 특히 대단했어요. 희망을 아주 약간 주었다가 곧바로 빼앗아버리는 장면을 이렇게 잘 묘사할 수 있는 작가가 또 있을까요?

스텝이 급작스럽게 강도들에 의해 갇혀버린다는 작위적인 설정, 그리고 결국 스텝은 미쳐버렸고, 아내가 화약을 모르고 버린 탓에 폭발은 없었다는 다소 진부했던 결말은 아쉬운 부분입니다. 그래도 별점 3점은 충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