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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21

꿈의 화석 - 콘 사토시 : 별점 2.5점

꿈의 화석 - 6점
콘 사토시 지음/미우(대원씨아이)

2010년 사망한, 일본의 애니메이션 감독 콘 사토시가 발표했던 단편 만화들을 모아놓은 작품집. 작가가 20대 초, 중반 대학생 시절의 80년대 중반~후반 발표된 작품들입니다. 모두 15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는데 부제가 "콘 사토시 단편전집" 인 것을 보면 단편은 이 15편이 전부인 듯 싶군요.

일단은 오토모 가즈히로 스타일의 화풍이 눈에 뜨입니다. 사실적인 극화체에 디테일한 펜선으로 그려진 인물들과 배경들은 오토모 가즈히로 작품이라고 해도 될 정도에요. 오토모 가즈히로의 어시스턴트 경력을 볼 때 당연한 일이기도 하겠죠.
그러나 내용 만큼은 오토모 가즈히로와는 사뭇 다릅니다. 오토모 가즈히로 작품 중 읽어본 것은 딱 두작품, <아키라>와 <동몽> 밖에는 없기에 제대로 된 평가를 할 수 없습니다만, 디스토피아 SF로 대표되는 오토모 가즈히로와는 달리 굉장히 밝은 분위기의 작품들이 많이 수록되어 있거든요. 디스토피아 SF도 <카브>와 <감옥 전/후편> 의 두편이 수록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 외의 작품은 코믹한 느낌의 소품 등으로 큰 차이를 보입니다.
분위기만 다른 것이 아니라 폭넓은 장르를 손대고 있는 것도 특이한데, 청춘 열혈 스포츠 코미디 <얼빠진 대소동>, 열혈 청춘 드라마 <한여름 밤의 긴장>, <날 다 밝았네>, 일상계 탐정물(?) <포커스>, 유괴 코미디 <KIDNAPPERS>, 코믹한 폭주 추적물 <태양의 저편>, 따뜻한 홈 멜로 드라마 소품인 <JOYFUL BELL>에 전국시대 크리쳐 호러물인 <와이라>까지 실려있다는 것에는 조금 놀랬습니다. 수준도 괜찮은 편이고요.

그러나 콘 사토시라는 이름에서 기대했던, 전매특허나 다름없는 꿈과 현실이 오묘하게 조화되는 작품이 별로 없다는 점, 그리고 작가 인생 초기작이라 그렇겠지만 아무래도 "만화적"으로는 많이 부족하다는 것은 아쉬운 점입니다. 주인공 캐릭터들의 구분이 어렵다던가, 컷 구성이나 전개가 부족한 등 기대에 미치지 못한 작품이 제법 되는 편이거든요. 작화 자체의 기본기는 뛰어난데 그걸 만화로 잘 살리지 못했다는 점에서는 이케가미 료이치의 작품들이 떠오르기도 하네요.
그래도 뒤로 갈 수록 확실히 좋아지는 것이 역시나, 훗날의 거장 답기는 합니다. 그야말로 무서운 성장세랄까요. 이후 만화가로서 커리어가 이어지지 않았는데 만화가로 계속 활동했더라면 아주 좋은 작품을 발표했으리라 생각될 정도에요.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지금 읽기에는 낡았으며 기대했던 완성도에 미치지 못한 작품이 있어 좋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네요.19,000원이라는 가격도 부담스럽고요. 그래도 몇몇 작품은 지금 읽어도 충분한 재미를 가져다 주는 것은 분명하며, 무엇보다도 애니메이션으로만 접했던 콘 사토시의 색다른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감독 "콘 사토시"를 좋아하시는 분들께 추천드리는 바입니다.

다시 한번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덧 : 단편집 작품 발표 시기와 <아오이 호노오>의 시기가 딱 맞아 떨어지는데 여러모로 비교해서 보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카브>

발표 연대로 볼 때 (1985년) 초기작인데, 오토모 가즈히로 작품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흡사한 디스토피아 SF물입니다. 무려 30년 전 작품이지만 크게 낡았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 탄탄한 기본기가 돋보이네요. X-men 비슷한 설정을 일본 스타일로 변주한 내용도 나쁘지 않았고요. 단, 케이가 기계인간?이 되었다는 반전과 결말은 지금 읽기에는 조금 낡은 내용이기는 합니다. 

그래도 대단원을 장식하기에는 나쁘지 않았던 결말이고 단점보다는 장점이 많은 작품임은 분명해요. 초기작다운 풋풋함과 젊음, 에너지가 느껴지는 것도 좋았고 말이죠. 별점은 3점입니다.

<얼빠진 대소동>
상대팀의 사퇴로 고시엔에 출전하게 된 고교 야구부의 주포인 고로는 사실 난봉꾼이자 불량아. 고시엔을 앞두고 금욕 생활로 스트레스 지수가 높아진 상태에서 모든 관심이 야구부에 쏠린 것을 못마땅하게 여긴 축구부 주장 야마자키의 장난으로 화가 폭발하고, 둘의 다툼으로 인해 전교생이 폭주한다는 내용.
오토모 가즈히로 화풍으로 열혈 청춘 코미디를 그려내었다는 점이 독특한 작품. 사소한 장난이 거대 스케일로 커져가는 과정의 묘사가 설득력 넘칩니다. 화장실에서 숨어서 담배를 피우는 등의 지금보면 순진한 행동이 불량한 행동으로 등장하는 것도 인상적이네요. 시대가 느껴졌달까요. 

문제는 딱히 웃기지도 않고, 전개도 별로 고민한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만화가로서 좀 더 공부가 필요했던 시기의 작품이라 할 수 있겠죠. 별점은 2.5점입니다.

<한여름밤의 긴장>
친구와 자전거 여행을 떠난 요시유키가 우연히 만난 예쁜 누나를 구해준 뒤, 여름날 잊을 수 없는 추격전과 싸움에 휩쓸리게 된다는 내용의 청춘 드라마.
뜨거운 여름날, 1박 2일에 걸친 화끈한 청춘을 역시나 오토모 가즈히로 화풍으로 그려낸 작품. 요시유키, 케이와 케이 전남친 일당이 벌이는 추격전의 화끈한 맛이 좋았습니다. 요시유키와 케이와의 만남과 관계가 전형적인 80년대풍 드라마라는 것도 재미있는 점이었고요. 개인적으로는 <바츠 & 테리>의 한장면이 떠오르더군요.
한마디로, 80년대 청춘 드라마의 교과서적인 작품입니다. 장, 단점이 그만큼 확실하지만 8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낸 저에게는 추억이라고 부를 수 있는 장점이 더욱 강하게 와 닿네요. 별점은 3.5점입니다.

<포커스>
아르바이트로 과외를 하는 대학생 마루야마는 지도 학생인 마시히코 모친에게 별난 의뢰를 받는다. 그것은 바로 마사히코를 미행해 달라는 것. 이유는 요사이 흐트러진 생활 태도의 원인이 무엇인지 알아내기 위함인데....

마사히코가 여자친구를 임신시킨 것이라는 중반까지의 흐름은 일반적이라 조금 지루한데, 마사히코의 모친과 학교 담임선생이 불륜 관계였다는 결말의 반전이 인상적이었던 작품. 당대 유행했던 패션을 걸치고, 동네 노는 형 같이 묘사된 마루야마가 이전 작품들과는 다르게 생생하게 다가와 "주인공" 스럽게 느껴지는 것도 좋았습니다. 이 작품부터 제대로 캐릭터를 표현하기 시작했다고 해도 좋겠죠. 마루야마의 여자친구나 마사히코 등 주변 인물들의 캐릭터도 괜찮았고요.

잘 짜여진 이야기 구조, 확실한 캐릭터라는 기본적인 요소가 제대로 드러난 첫번째 작품으로 별점은 4점입니다.

<태양의 저편>
노인 요양병원에 있는 할머니 침대가 간호사의 부주의로 폭주한다는 내용으로, 콘 사토시가 제작 스탭으로 참여했던 애니메이션 <노인 Z>가 연상되는 작품입니다. 폭주와 그 추격전이 내용의 전부로 이야기는 별게 없지만 이러한 폭주만큼은 잘 그려내고 있기에 만족스럽습니다. 별점은 3점.

그나저나 이 전에 수록된 <KIDNAPPER>도 그렇고, <한여름밤의 긴장>도 그렇고, 당시 콘 사토시가 추격전과 폭주에 상당히 집착했었던 것이 아닌가 싶네요. 

<JOYFUL BELL>
빵집 직원(으로 추측되는) 타카다는 크리스마스에 산타 복장으로 배달을 다니다가 자신을 산타로 믿는 소녀 마이코를 만난다. 그녀의 소원은 아빠를 만나는 것. 그녀와 함께 겨울밤 소소한 에피소드를 겪다가 헤어지기로 했던 아내를 다시 만나게 되는데....

크리스마스에 일어난 작은 기적을 따뜻하게 그린 로맨틱한 소품. 스케일은 굉장히 작지만 설정과 분위기는 <도쿄 갓파더>의 원형이라고 보아도 무방하겠죠. 
SF보다는 이러한 일상계 소품에 더 큰 재능을 지녔던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좋은 작품이에요. 이런 류의 작품이 더욱 많이 수록되었더라면 좋았을텐데 아쉽기까지 합니다.

별점은 5점! 이 단편집의 베스트로 꼽고 싶네요.

<감옥>
개인의 자유와 인권이 극도로 통제되어 모두가 ID 카드로 관리되는 근미래. 유우이치는 담배를 구입하려는 시도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센터 근신" 처분을 받는다.
그러나 센터 근신을 마친 친구들이 흡사 세뇌라도 당한 것 같이 변했다는 것을 알아버린 유우이치는 "마더 컴퓨터"를 파괴하기 위한 테러를 결심한다.


작가 나이 21살 때인 1984년에 발표한 실질적인 초기작으로 치바 데츠야상 수상작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뎃생력으로 지칭할 수 있는 기본기는 탄탄하나 컷 구성, 전개, 캐릭터 묘사 등 만화적으로는 부족함이 많이 느껴지더군요. 아마츄어 티가 다분했달까요? 내용과 분위기 모두 오토모 가즈히로 등의 디스토피아 SF물 그대로라 독특함을 찾아보기도 어려웠고요. 설정이 딱히 신선한 것도 아니고...

그래도 현실과 환상이 오가는 전개는 작가의 감독 시절 대표작들을 떠올리게 만드는 요소가 있었습니다. 거장의 첫 작품으로 감독 작품의 특징이 드러나는, 그야말로 "꿈의 화석"이라는 말에 어울리는 작품이었다 생각되네요. 별점은 2.5점입니다만, 별점만으로 평가하기는 어려운 그런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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