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에서 제작한 13부작 TV 시리즈. 정말 간만에 한 시즌을 완청(?) 하였습니다. 원작은 "본 어게인" 한 편만 읽어보았지만 상당히 마음에 들었더랬죠.
벤 에플렉 주연의 영화 버전과 비교해 본다면 영화는 훨씬 만화 원작 설정에 충실한 반면, TV 시리즈는 보다 현실적인 느낌으로 변주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크 나이트"의 영향일까요? 여튼 MCU 세계관 아래에 존재하지만 기존 마블 슈퍼 히어로 무비와는 확실히 컨셉을 달리한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데어 데블 맷 머독의(마지막 편을 제외하고는) 검은 츄리닝에 비니 비슷한 것을 뒤집어 쓴 복장부터 시작해서, 액션도 와이어 등을 최소화한 실전 액션 스타일의 맨손 타격기만 선보이는 식입니다. 액션은 정말이지 슈퍼 히어로물이 아니라 과거 유행했던 스티븐 시걸류의 액션물이 연상될 정도입니다. 그것보다는 훨씬 잔인하지만요.
맷 머독의 자경단 활동의 목적 역시도 세계를 구하는 거창한 것이 아니라 "헬스 키친"이라는 동네를 조금 더 살기 좋게 만드는 것에 불과합니다. 정의감 넘치는 동네형 정도의 인물이랄까요? 여기에 더해 작중 내내 슈퍼히어로가 아닌 자경단원 "마스크맨"으로 불리는 식으로 기존 만화 캐릭터와 거리를 두고 있습니다.
다른 설정과 등장인물도 마찬가지입니다. 슈퍼 빌런이 따로 등장하지 않고, 악당의 힘은 슈퍼 파워가 아니라 공권력과 미디어를 장악한 권력입니다. 킹핀이 "킹핀"이라는 별명이 아닌 윌슨 피스크라는 본명으로만 불리는 것도 같은 맥락이겠죠. 빈센트 도노프리오의 연기 덕분에 실감나게 표현되고 있기도 합니다. 악의와 인간적인 매력을 동시에 지닌 모습이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현실감이 마냥 좋게 작용한 것은 아닙니다. 눈에 띄는 시각 효과가 없다 보니 슈퍼 히어로물답지 않게 심심하다는 인상을 줍니다. 맷 머독의 감각 능력이 대사나 음향 효과로만 묘사되어 몰입감이 떨어지고, 마지막에 입는 데어 데블 코스튬조차 영화 버전에 비해 폼이 안 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스토리라인도 깔끔하지 못합니다. 헬스 키친을 지배하려는 피스크를 응징한다는 큰 줄기 외에 일본 야쿠자, 삼합회 등 쓸데없는 요소들이 많고, 리렌드 아울슬리의 배신도 와 닿지 않습니다. 디테일도 허술해서 두 변호사의 수입 문제, 카렌의 트라우마 회복 속도, 기사 편집 문제, 요양원 접수처 대응, 피스크의 몰락 과정 등에서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카렌 페이지가 민폐 캐릭터로 그려진 점도 거슬립니다. 괜한 정의감으로 주변에 피해를 주는 모습은 짜증을 유발합니다. 벤은 너 때문에 죽었잖아, 카렌!
"어벤져스"의 뉴욕 사건이 중요한 배경으로 언급되며 동일 세계관임을 보여주기는 하지만, 스틱, 가오 부인, 닌자 등의 요소는 이 시리즈와 잘 어울리지 않습니다.
결론적으로 별점은 2.5점. 현실적인 슈퍼 히어로 구현은 성공했지만, 시각적 쾌감과 이야기 구성 면에서는 아쉬운 점이 많았습니다. 기존 마블 무비와는 방향성이 다르다는 점을 꼭 염두에 두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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