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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01

장서의 괴로움 - 오카자키 다케시 / 정수윤 : 별점 3점

장서의 괴로움 - 6점
오카자키 다케시 지음, 정수윤 옮김/정은문고

유명한 장서가로 수 만권(2~3만 권 정도?)의 책을 보유한 저자가 장서 보유에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놓은 책입니다. 개인 경험담과 이런저런 생각을 펼쳐보이는 에세이지만, 장서 구입과 관리 등 다양한 팁을 제공한다는 점에서는 실용 서적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책의 성격만 보면 얼마 전 읽은 "책장의 정석"과 비교됩니다. 차이점이라면 "책장의 정석"은 가지고 있는 책을 '관리'하는 팁을 제공한다면(심지어 관리할 수 있는 분량만 보유하도록 적절한 처분법마저 알려주고 있으니까요), 이 책은 '관리'가 불가능한 수준의 장서가를 위한 내용이라는 점입니다.
하지만 '관리'를 위해 책을 어떻게 처분(?)해야 하는지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은 같습니다. 저자 스스로 '책이 너무 많이 쌓이면 지적 생산의 유통이 정체된다. 사람 몸으로 치면 혈액순환이 나빠진다. 피가 막힘없이 흐르도록 하려면 현재 자신에게 있어 신선도가 떨어지는 책은 일단 손에서 놓는 편이 낫다'고 하는데, 이는 "책장의 정석"과 일치합니다.

다양한 일화가 많은 것도 특징입니다. 개인 경험에 기반한 이야기들은 당연히 아주 실감나고요. 헌책방, 고서를 찾거나 구입하는 것에 얽힌 본인의 경험담, 그리고 책을 정리하는 방법과 팁 등은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 읽어볼 만 합니다.

다른 장서가들과의 인터뷰라던가 그들만의 책 보관 방법, 장서가가 등장하는 여러 가지 영화와 콘텐츠 등 장서에 얽힌 굉장히 다양한 이야기들도 가득합니다. 이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책이 사는 집"을 지은 장서가 네기시 씨의 인터뷰였습니다. 이유는 너무 부러웠기 때문이죠.

책을 줄이기 위한 각고의 노력을 소개하면서도, 결국 주체하지 못하고 책이 늘어난다는 이야기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도서관을 잘 활용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그에 관련된 원고를 쓰다가 어쩌다 보니 도서관에 대한 책을 구입하게 되었다는데, 정말이지 저자는 어쩔 수 없는 장서가인 것 같습니다. 참고로 저자가 소개하는 이 분야의 베스트는 오다 미쓰오의 "도서관 산책"입니다.

그리고 책을 줄이는데 제일 효과적일 수 있는 전자 서적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도 눈에 띕니다. 책은 단순히 내용물로만 구성되는 게 아니라 그 자체가 중요하다고 주장하고 있거든요. 동의하는 바가 없지는 않지만 앞으로 전자 서적의 발전 방향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은 듭니다.

아울러 장서가답게 이런저런 책에서 인용하고 있는 이야기들도 많은데 이 역시 눈여겨볼 만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책 정리법(책이 너무 많으면 안 된다)을 송나라 학자 구양수의 시필에 나온 '명창정궤'라는 말로 설명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햇빛 잘 드는 창 아래 깨끗한 책상, 그 위에 책 한 권이면 충분하지 않냐는건데, 이를 12세기 일본의 가인 가모노 조메이의 움막과 연결하는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걸 보면 학식이 참으로 대단하다! 싶어요. 책을 많이 읽으면 저도 이렇게 자연스러운 인용과 연결이 가능할지 궁금해지네요.

그 외에도 주목할 만한 인용이 많습니다. 몇 가지 소개해드리자면 우선 문필가 요시다 겐이치의 말인 "책장에 책이 5백 권쯤 있으면 그걸로 충분하다."라는 말입니다. 하루에 세 권씩 책을 읽는 게 아니라 세 번, 네 번 반복해 읽을 수 있는 책을 한 권이라도 더 가져야 한다는 이야기인데, 참으로 와 닿습니다.
유명한 장서가 다니자와의 명서 감정술도 비슷합니다. "명저라는 홍보에 넘어가 샀던 책은 거의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이류 이하 책을 이것저것 찾아 읽지 않았다면 초일류를 초일류라고 인정할 수 없었을지 모른다"는 것인데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당연하지만 이런저런 책들도 제법 소개되는데 이 중에서는 영화 속 서점과 도서관이라는, 영화 속에 책이나 책장이 나오는 영화를 엮어놓은 책이 가장 끌립니다. 영화 언젠가 책 읽는 날의 후일담을 엮은 동명의 책에서 영화 속 주인공인 독서가 미나코가 좋아한 10권의 책 목록도 마찬가지예요. 아는 책은 에리히 케스트너의 "하늘을 나는 교실"과 앤 모로우 린드버그의 "바다로부터의 선물"밖에는 없는데, 저자 역시 극찬하고 있는 "티보 가의 사람들"은 굉장히 방대한 분량이지만 한번 도전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가장 흥미로워 보이는 책은 실물 크기 일러스트에 의한 "낙엽도감"이지만요. 수집가로서의 장서가를 다룬 '남자는 수집하는 동물' 챕터에서 소개된 "소년소녀 쇼와 미스터리미술관"이라는 책도 꼭 읽어보고 싶고요.

이렇게 많은, 재미있는 이야기가 가득하지만 딱 한 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일본' 기준이라는 점입니다. 앞서 이런저런 유용한 팁이 많다고 말씀은 드렸지만 한국의 거주 문화와 책에 대한 일반적인 경우를 놓고 보면 그렇게 유용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정말로 책을 좋아한다면 꽤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는 것은 보장합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본인이 장서가시라면 한 번 꼭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저 역시 500권도 안 되는, 장서라고 하기는 초라한 수준의 책만 갖추고 있지만 책을 좋아하기에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이 책에 따르면 더 늘리면 안 될 것 같긴 합니다만...

마지막으로 덧붙입니다. 미나코가 좋아한 10권의 책 목록은 아래와 같습니다.

티보 가의 사람들 - 마르탱 뒤 가르 (국내 출간)

안녕, 콜럼버스 - 필립 로스 (국내 출간, 굿바이 콜럼버스)

아름다운 여름 - 체사레 파베세 (국내 출간)

바다로부터의 선물 - 앤 모로우 린드버그 (국내 출간)

실물 크기 일러스트에 의한 낙엽도감 - 요시야마 히로시 / 이시카와 미에코

여자 - 카터 브라운

미국의 송어낚시 - 리처드 브라우티건 (국내 출간)

열두 달 반찬 - 고지마 신페이

하늘을 나는 교실 - 에리히 케스트너 (국내 출간)

사이좋은 부부 - 오다 사쿠노스케

2023/05/11

돈이 되는 중고책에 대한 단상

얼마전 "중고책으로 돈 버는 사람들"이라는 광고를 보고 글을 올렸던 적이 있습니다. 20년 넘게 중고책을 구입해왔던 경험으로, 돈이 되는 중고책이 무엇일지? 잠깐 생각해보았습니다.
저는 되팔기 목적으로 중고책을 산 적은 없고, 단 한 번도 개인간 책 중고 거래를 해 본 적도 없습니다. 오직 알라딘 등에 알라딘 매입가로 팔아 왔을 뿐입니다. 그런데 알라딘에 판 가격보다 중고가가 높으면 살짝 짜증이 나더라고요. (<<꿈의 화석>>은 3,200원에 팔았는데, 중고 가격이 거의 3만원 대네요). 그래서 이런 정보를 좀 알아두는게 좋겠다 싶어 적어봅니다. 여러분께도 참고가 되면 좋겠습니다.

돈이 될 중고책은 당연히 사람들이 찾는 책입니다. 제 생각으로는 아래에 해당하는 책들일 것 같습니다.
  1. 구하기 힘듬. 책이 절판되었고, 이북으로도 출간되지 않음. 당분간 출간 예정도 없음.
  2. 1에 해당하는 책 중에서, 높은 지명도를 갖는 책. 유명한 명작이거나, 유명 작가의 작품이거나 다른 곳에서 많이 언급되는 책.
  3. 2에 해당되는 책 중에서, 수집욕을 강하게 자극하는 책 (그림이 미려하다거나, 정말 희귀하다거나....).
  4. 1, 2, 3에 해당되는 책 중에서, 다른 책으로 대체 불가능한 책
  5. 시리즈라면 전권 (중요 포인트)
이런 항목들을 모두 아우르는 주제로 대표적인건 1980년대 ~ 2000년대까지의 만화입니다. 제가 가진 책 중에서 모두 해당되는걸 꼽자면 <<타임시커즈>>, <<환영박람회>> 입니다. 책 상태도 좋고, 모두 완결편까지 한 Set로 소장하고 있는터라 현재는 제법 값어치가 나갑니다. 단권이지만 <<외천루>>도 1 ~ 4조건을 모두 충족하기에 값이 꽤 비싸고요.




국내에서는 유명세에 비하면 많이 팔리지 않아서 초판 이후 절판된 작가들 - 예를 들어 모로호시 다이지로 - 작품 중 일부도 중고 가격이 만만치 않아요.
반면 이 시기 만화라도 당시 많이 팔려서 구하기 쉬운 탓에 1번 항목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책도 있습니다. <<어쩐지 좋은일이 생길것같은 저녁>>처럼요.

만화 외에도 위의 조건들을 충족시켜 고가를 형성하는 책들은 당연히 많습니다. 매니아 층이 탄탄한 장르 소설의 경우 꽤 높은 가격이 형성되어 있습니다. 재간되기 전 <<점성술 살인사건>>과 <<관 시리즈>>가 그러했었죠. SF도 비슷해서 재간 전 <<별의 계승자>>는 엄청났었습니다. 찾아보니 다아시 경 시리즈 <<마술사가 너무 많다>>도 3만원을 훌쩍 넘네요.
하지만 소설은 투자(?) 목적으로 구입하기는 꺼려집니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 작품은 많이 팔리기도 해서 공급도 많으며, 예상치못한 복간이나 전자책 출간이 이루어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요새는 비파괴 북스캔 후 OCR을 돌려 개인이 전자책처럼 만들 수도 있는 시대이기도 하니, 장기적으로는 경쟁력이 떨어집니다.

인문서의 경우는 아주 유명하다면 절판되는 경우가 적습니다. 재간도 자주 되며, 도서관에서도 구할 수 있고요. 특히 역사책은 4번 항목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서 추천하지 않습니다. 차라리 확실한 매니아층 - 소장 욕구를 불러 일으키는 - 이 있는 책이 괜찮아 보입니다. 밀리터리물, 요리, 자동차나 각종 취미 분야 (예를 들자면 건담) 등에서 독보적(?)인 책은 가격이 괜찮습니다. 제가 가진 책 중에서는 <청설모의 자동차카툰>>이 대표적입니다. 투자는 소설보다는 이 쪽이 나은 선택일 듯 합니다.


아울러 구입하려면 업자가 아닌 알라딘 직접 배송 중고 등 플랫폼 이나 당근 등의 개인 판매본을 노리는게 좋습니다. 업자는 책의 가치를 잘 알고 있으니, 비싼 책을 싸게 구입하는건 거의 불가능하니까요. 가격도 최소 3명 이상의 판매자가 책정한 가격을 기준으로 삼는게 좋습니다.
그리고 중고 구입 시에는 꼭 사전에 중고 플랫폼에서 검색해보세요 (팔 때도 마찬가지). 엄청난 고가라도 시장 가격과 다른 경우가 있거든요. 업자의 경우, 절판이라고 어마무시한 가격을 임의로 붙여놓고 '한 놈만 걸려라' 인 경우도 많으니까요. <<기동전사 건담 일년 전쟁사>>는 상, 하권 낱권보다 두 권 세트 가격이 두배 가까이 비싼데 이런 경우도 주의해야 합니다.

허나 이 이론이 절대적인건 아닙니다. 조건을 대충 충족한 것 같은데 생각보다 가격이 오르지 않는 책도 많아요.
그래서 너무 투자(?)에 연연하지 말고, 좋아하는 작품을 소장하는 개념으로 접근하시는게 속은 편할겁니다. 그러다보면 가격은 오를 수 있으니까요. 제가 좋아하지만 그동안 중고 시장에서는 별로 대접을 받지 못했던, 김진태 만화들도 결국 가격이 엄청 올랐더라고요. 결론내리자면, 존버는 승리한다!
 
그런데 과연 <<대지옥전 진광대왕>>이 얼마나 할지, 살짝 궁금해집니다. 1, 4에 해당되기는 하는데....


2010/10/25

책 사냥꾼 - 존 백스터 / 서민아 : 별점 4점

책 사냥꾼 - 8점
존 백스터 지음, 서민아 옮김/동녘

오스트레일리아 출신의 작가이자 언론인이며 영화인이며, 스스로를 '책 사냥꾼'이라 부르는 존 백스터의 '책 수집'과 그의 인생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의 취미이자 직업이기도 한 '책 수집'이 중심이며, 존 백스터라는 인물의 저작이나 주요 활동은 언급되지 않아 자서전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방대한 책을 읽고 수집하며 다양한 활동을 해온 사람답게 이야기가 너무나 흥미로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습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시골 마을 출신으로 철도 공무원으로 일하다가 책의 세계에 빠져들고, SF 팬이 된 후 언론인과 작가가 되어 세계를 돌아다닌 그의 일생도 흥미롭습니다. 하지만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책 수집'이라는 분야에 대한 저자의 해박한 지식과 생생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 설명입니다. 관련자들과 직접 겪은 경험을 토대로 어디서, 어떻게, 어떤 책을 구했는지를 상세하게 들려주는 것은 물론이고, 이를 다양한 문학작품에 빗대어 이야기하거나 실제 작가들과의 일화를 통해 소개하는 부분에서는 지적인 즐거움까지 선사합니다.

특히, 저자의 인생을 바꿔 놓은 몇몇 작품들은 저도 꼭 구해서 읽어보고 싶어졌습니다. 레이먼드 챈들러의 작품은 이미 읽었지만, 할 클레멘트의 "중력의 임무"나 제임스 블리시의 "지구인, 고향에 오다" 같은 SF 작품, 그리고 트루먼 커포티의 단편집 같은 것들은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노먼 린지의 그림이나 앨런 존스의 그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저자의 삶 자체도 흥미롭습니다. 그의 이야기는 단순한 '책 사냥'에 머무르지 않고, 삶의 다양한 경험까지 아우릅니다. 심지어 '난교 파티' 경험까지 언급할 정도이니, 솔직한 수다라는 점에서는 더할 나위 없는 책이기도 합니다.

저자는 단순히 책을 수집하는 것이 '부'를 축적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책을 구했을 때 느끼는 카타르시스를 위해서라고 설명합니다. 저 역시 오랜 추리소설 애호가로서 절판되었던 구 동서출판사의 책을 선물받았을 때의 기쁨, 시마다 소지의 "점성술 살인사건"을 신촌 '숨어있는 책'에서 발견했을 때의 희열, 하세 세이슈의 "불야성"을 고속터미널 재고떨이 서점에서 발견했을 때의 전율을 잘 알기에, 저자의 감정에 깊이 공감하며 읽었습니다.

또한, 형이 과거 로저 코먼이 방한했을 때, 모 영화제에서 그의 사인을 받은 적이 있는데, 앞으로는 이런 기회가 있을 때 해당 작가의 책을 가져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단순히 책의 가치를 높이는 행위를 떠나, 좋은 기념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보니 과거 이벤트를 통해 증정된 저자 사인본 "경성탐정록"의 가치는 얼마나 될까요?)

그런데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번역입니다. 번역 자체는 좋은 편이고, 작품별로 국내 출간된 정보를 알려주는 세심한 주석도 돋보였지만, 원문을 그대로 살리는 방식이 아쉬웠습니다. 예를 들어, '어메이징 스토리즈'를 '놀라운 이야기들'로 번역하는 식이었는데, 물론 말이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원문 잡지명은 고유명사인 만큼 그대로 표기하는 것이 더 적절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론적으로 별점은 4점. 한 개인의 장황한 수다가 이토록 재미있고 유익할 수 있을까요? 책을 사랑하는 모든 분들께 추천합니다.

그나저나, 가까운 미래에는 전자책이 활성화되면서 자연스럽게 "화씨 451"과 같은 사회가 구현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결국 '책'을 소장한다는 것이 단순히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우표 수집과 같은 취미가 되어버릴 가능성이 크겠죠. 그렇다면 이런 책 사냥꾼들은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남게 될까요? 그 부분도 궁금해집니다.

2021/07/31

서점의 명탐정 - 니타도리 게이 / 이희정 : 별점 2점

서점의 명탐정 - 6점
니타도리 게이 지음, 이희정 옮김/㈜소미미디어

니시후나바시에 있는 작은 서점에서 화자인 고참 아르바이트생 아오이가 탐정역인 점장과 함께 이런저런 사건을 해결해 나간다는 일상계 추리물입니다.

제목과 표지만 보았을 때, 명탐정 홈즈걸 시리즈처럼 '서점에서 일어난 사건'을 다룰 것이라 생각했는데, 역시나 생각대로였습니다. 심지어 책 뒤 소갯글을 보니, 명탐정 홈즈걸 시리즈의 저자 오사키 고즈에가 '서점'으로 테마를 정했던 앤솔러지에 기고했던 것에서 시작된 이야기라고 하네요. 최근 무거운 작품들만 읽어서 기분전환차 집어들게 되었습니다.

서점이 주요 무대이며 점장이 탐정이라는 점에서는 "특정 분야의 전문가가 등장하는 일상계 추리물" 카테고리에 속합니다. 서점을 무대로 한 작품도 많지요. 그러나 이 작품만의 특징이 존재합니다. 바로 "책" 자체가 수수께끼가 되는 이야기는 없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비블리아 고서당 시리즈의 경우는 책들이 중요 소재였던 반면, 이 작품에서는 서점이라는 공간이 이야기의 핵심입니다. 수록작 중 "모든 것은 에어컨을 위해"의 경우, 특정한 책의 도난 사건을 다루고 있기는 하지만 어떤 책인지는 별로 상관이 없다는 점에서 마찬가지에요. 훔쳐낸 방법이 핵심 내용이니까요. 이런 방향도 꽤 괜찮더군요. 서점이라는 장소, 그리고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 이야기를 풀어내는데에는 아주 적합했기 때문입니다. 

수록작 중에서 "일곱 권으로 바다를 건널 수 있다"는 서점과 책의 특성을 잘 살린 좋은 이야기였습니다. "서점이여 영원히"는 서점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이 한 번쯤 생각해 볼만한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고요. 그리고 손님이 원하는 책을 찾아주는 역할이 서점 직원의 중요 업무 중 하나로 등장하는데, 이런 내용의 시리즈가 나와도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래 전 먹었던 요리에 대한 기억만 듣고 추억속 요리를 재현해 주는 "추억을 파는 식당" 처럼 말이죠.

하지만 좋은 작품이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여러모로 문제가 많은 탓입니다. 특히 과장된 캐릭터들은 영 적응이 안되더군요. 점장부터가 그러합니다. ‘니시후나바시 POP 광고의 여왕’ 과 같은 별명, 바쁜 현장에서 빠져나와 게으름을 피우는 모습 등 세세한 설정들은 만화 주인공같은 느낌만 전해 주거든요. 여기에 집사 역할을 수행하는 성실한 고참 아르바이트 아오이 설정은 진부하기 짝이 없습니다. 

추리적으로도 나쁘지는 않지만, 미묘합니다. 등장하는 트릭들이 문제입니다. 대체로 억지스러워서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오히려 별다른 추리가 등장하지 않고, 상황만으로 사건과 이야기를 풀어내는 "일곱 권으로 바다를 건널 수 있다"가 가장 마음에 들더라고요. "서점이여 영원히"도 점장의 어설픈 추리를 뺐더라면 훨씬 좋았을테고요.

한마디로, 전형적인 가벼운 양산형 전문가 일상계 추리물입니다. 가볍게 읽기는 수록작 네 편 중 수준 이하였던 두 편이 점수를 너무 깎아 먹어서 별점은 2점입니다만, 쓱 한 번 읽기에는 적당했습니다. 일본의 서점 관련된 작품들을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한 번 읽어보셔도 괜찮을 듯 싶네요.

덧붙여 실제 서점 근무 경험은 없다는 저자의 후기에는 조금 놀랐습니다. "서점 직원에게 책이 어디 있는지 물어보러 오는 사람들은 대체로 책 제목을 잘못 기억하고 있다"던가, 서가로 문고본을 옮길 때 띠지는 손톱 밑으로 파고들어 다칠 수 있고, 찢어지기도 쉬워서 일부러 빼 놓는다는 등 디테일은 서점 근무 경험이 없다면 알 수 없었을 정보라고 생각했었는데 말이죠. 저자는 구제 반코의 "망나니 서점원 (暴れん坊本屋さん)"을 참고했다는데, 그 외에도 이런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컨텐츠가 많았으리라 생각됩니다. 저도 읽어 보았던 '해골 서점 직원 혼다씨' 처럼요. 이런 점은 조금 부럽네요. 하긴, 소설을 쓰기 위해서 모든걸 직접 경험할 필요야 없는게 맞기도 할 테고요.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일곱 권으로 바다를 건널 수 있다" 

서점 서가에 꽃혀있는 책을 습관적으로 정리하고 있던 손님은, 알고보니 다른 용무가 있었다. 그는 미국 유학으로 장거리 연애를 하게 된 연인으로부터 책들을 받았는데 무슨 의미인지 알 수가 없던 차에, 이 서점에서 주문을 받았다는걸 알고 도움을 청하기 위해서 찾아왔던 것이었다. 연인은 급작스러운 유학 이야기를 들은 뒤 연락 두절 상태였다. 일곱 권의 책은 그림책, 소설, 인문학, SF 등 장르가 다양했고 받았을 당시 제일 위에 "네가 없어도 괜찮아"가 놓여 있었다...

주요 등장인물들과 무대가 되는 서점에 대한 간략한 소개와 함께 시작되는 첫 이야기로, 손님이 '정리꾼'이라는 설정을 활용해서 풀어내는 간단한 암호 트릭이 등장합니다. 책들은 크기별로 놓으면 "스카이프 가입해"라는 메시지가 표시되게 되어 있었습니다. 이를 위해 문고판이 나온 오래전 소설의 단행본을 구태여 주문하는 등의 단서도 등장하고요. 

책을 주문하고 배달된 날짜, "네가 없어도 괜찮아"가 상자 맨 위에 놓여 있었던 이유 등을 근거로 정리꾼의 애인은 서점 아르바이트생 히라노라는 추리도 괜찮았습니다. 주문과 배달에 보통 1주일이 소요되는데, 몇 일 걸리지 않았던게 단서였습니다. 서점에 재고가 있다는걸 완벽하게 파악했어야 하는데, 이를 조사하기 위해 서가를 훝고 다니는 손님은 없었으니 그 연인이 서점 직원이라는건 꽤 그럴듯 했어요. 포장 역시 단서였습니다. 판형이 다른 특정 책이 맨 위에 올라가려면, 직원이 직접 포장했어야 하니까요.

하지만 정리꾼이라는 손님이 책을 선물받고 정리도 하지 않은채 집에 두었을지는 솔직히 의문입니다. 책 제목 앞 글자만 따서 읽으면 되는 간단한 암호라서, 의지만 있었다면 책을 정리하지 않았어도 풀 수 있었을테고요. 경우의 수는 5천개 정도밖에 안되니까요. 무엇보다도 이런걸 물어보려고 서점에 올 것 같지는 않네요.

그래도 서점이라는 특성을 잘 살린 일상계 추리물로 기본은 해 주는 에피소드였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모든 것은 에어컨을 위해" 

서점을 찾은 손님 시마지리는 아르바이트 생 이케베의 친구였다. 그는 서점 직원들에게 이케베가 자신의 소중한 책을 훔쳐간 것 같다며 도움을 요청했다. 문제는 이케베는 도저히 책을 가져갈 수 없었던 상황이었고, 방법에 대해 서점 직원들이 모여 여러가지 아이디어를 내 놓기 시작하는데...

도난품은 유명 라이트노블 작가 하스미 쿄의 사인본으로 시마지리의 가방 속에 들어 있었습니다. 시마지리가 잠깐 쓰레기를 버리러 자리를 비운 사이, 방에 있었던 이케베가 훔쳐갔다는 거지요. 하지만 이케베의 몸 속 어디에도 책은 숨길 수 없었고, 그가 가져갔던 문고본이 가득했던 상자 안에는 책을 더 이상 넣을 방법이 없었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케베가 책을 어떻게 훔쳐내었는지?에 대해 서점 직원들이 각자 추리를 이야기하는, 일종의 추리 배틀이 핵심인데, 나름대로 재미있었습니다. 이를 통해서 정말로 훔쳐낼 방법이 없었다는 상황을 알려주는 전개도 괜찮았고요. 결국 책이 빠져나가기 위해서는, 문고본이 가득찼던 상자 안에 넣는 방법 밖에 없었다는게 증명되거든요. 상자안의 책들 커버를 벗겨서 책 한 권이 더 들어갈 공간을 만들었다는게 진상도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그야말로 서점에서 일하는 사람들만 알 수 있는 지식이 사용된 트릭이라고 할 수 있어요. 덧붙여, 시마지리가 방법을 알기 위해 서점에 찾아온 이유도, 보통 손님들은 서점 직원이라면 ‘무엇이든 알고 있다’고 곧잘 생각한다는 것의 연장선상이라는 것인데 꽤 그럴듯했어요. 이런저런 다른 서점 동료들 캐릭터들도 읽는 재미를 더하고요.

하지만 벗겨낸 책 커버의 처리 방법은 설득력이 떨어지더군요. 상자 골판지 앞, 뒤를 뜯어낸 사이에 집어넣었다는데, 시마지리가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데, 50권이나 되는 책 커버를 완벽하게 안에 집어넣고 재포장하는건 무리라고 생각됩니다. 쓰레기 버리러 갔다 오는게 20분 이상 걸리지는 않았을테고, 설령 시간 내 집어 넣었더라도 티가 전혀 나지 않았을 것 같지도 않았고요. 이보다는 조금 더 큰 다른 상자를 미리 마련해서, 이미 포장해 두었던 박스와 책을 함께 넣었을 거라는 히라노의 추리가 더 그럴듯하게 느껴졌습니다. 시마지리가 상자를 직접 들었기 때문에 그럴리 없다고 했지만, 미묘한 크기 차이를 알아내는건 힘들지 않았을까요?

작가로 성공한 친구 싸인본을 질투심에 버렸지만, 그 작가 친구가 집에 자러올지도 몰라서 싸인본을 훔쳤다는 동기도 이상했어요. 진상을 알고 난 시마지리가 흔쾌히 용서하면서, "또 사서 사인 받으면 된다"고 말하는 장면과 배치되었기 때문입니다. 시마지리는 다시 싸인을 받아도 되고, 이케베는 안 될 이유가 있을까요? 또 이름 부분 필적이 다르면 눈치채지 않을까? 싶기도 했고요. 이렇게 흔쾌히 용서할거면 시마지리가 이런 소동아닌 소동을 일으킬 필요가 있었을지도 의문입니다. 

게다가 애초에 책을 훔치는게 목적이었다면, 이런 상황에서 훔칠리기 만무합니다. 어떤 트릭을 써도 용의자는 자기밖에 없으니까요. 시마지리 집에 놀러가서 몰래 가방에 넣고 오는 것과 같은 상황이니, 상자 골판지를 뜯어내는 등의 불필요한 노력을 할 이유가 없어요. 문고본이 박스안에 정말로 "가득차 있었다"도 우연이었다고 생각되고요. 억지와 우연이 만들어낸 불가능 범죄인 셈입니다.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서점 업무에 대한 여러가지 디테일은 좋았지만 트릭, 동기, 상황 모두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일상 업무 탐정단" 

하스미 쿄의 사인회가 있던 날 밤, 서점에 누군가가 침입하려 했었다. 다음날 출근 때, 정문 쪽에 테디베어가 목매달렸고, 가게 안 쪽에서 붙여놓은 하스미 쿄가 친필 사인한 포스터에는 핑크색 마커로 불경과 낙서가 가득 적혀져 있었다. CCTV 확인 결과 테디베어가 매달리던 새벽 3시 36분에는 포스터에는 낙서가 없었다. 이후 아침에 발견될 때 까지 모든 출입구는 잠겨 있었고, 뒷문 오토록도 열린 기록이 없었는데, 범인은 어디서 들어와 어디로 나갔을까? 

아오이, 히라미, 코미야마 모두 서점 일을 하며 트릭을 파헤치고 범인을 잡자는 결의를 다지던 와중에, 서점의 단골 손님 타와타가 밤 중에 하스미 쿄의 편집자가 도망가는걸 목격했다고 말하는데....

직전 이야기에서 인기 작가로 소개된 하스미 쿄가 주요 소재로 등장합니다. 스토커 타와타가 하스미 쿄의 지문을 노리고 그가 서명한 포스터를 얻기 위해 이런저런 범죄를 저지른다는 내용이지요.

핵심인 포스터 낙서는 자동차 헤드라이트 빛이 핑크색을 띄게 만든 뒤 비치면 핑크색 낙서는 사라져서 보이지 않는다는 트릭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즉, 테디베어를 매달던 시점 전에 낙서를 했던 것입니다. 초등학생 과학 실험같은 느낌인데, 실제로 잘 되었을지도 의문이지만 무엇보다도 작 중에서도 언급되듯, CCTV가 흑백이라는 전제가 있어야 가능하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마침 CCTV가 흑백이었던건 단지 운이 좋았을 뿐이지요. 이 트릭 보다는, 창 밖으로 멀쩡한 포스터를 붙여서 위장했다는 히라노의 아이디어가 더 괜찮았어요. 붙인 포스터를 뗀 건 CCTV에 찍히지 않아서 기각되긴 했지만요.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이렇게 해서 낙서를 언제 했는지를 모르게 만든 이유가 불명확하다는 점입니다. 범인 타와타는 밤중에 낙서를 하고 달아나다가 점장과 아오이에게 목격되었었죠. 이 때 타와타는 자기 정체가 드러났다고 생각하고, 최소한 낙서에 대한 혐의는 벗어나기 위해 이런 트릭을 사용했다고 설명됩니다. 처음 발견한 사람이 낙서를 했다고 의심받았을 거라면서요. 그런데 점장과 아오이가 달아난 사람이 타와타라는걸 알았다면, 이런 공작을 했든 안했든 그녀가 범인이라고 생각했을게 뻔합니다. 현장을 처음 발견한 사람이 아르바이트가 아니라 점장이었을 가능성도 있고요. 타와타가 편집자 유루즈메가 도망치는걸 목격했다고 한 증언도 억지스러워요. 유루즈메가 완벽한 알리바이가 있었더라면 어떻게 할 생각이었을까요? 어차피 자기가 범인으로 특정되지 않았다면, 다른 누군가를 범인으로 몰 까닭도 없고요. 괜히 유루즈메가 수상하지 않다는걸 드러내는 빌미가 되었을 뿐입니다.

낙서로 포스터를 훼손한 동기도 납득이 가지 않아요. 서점이 포스터를 버리면 그걸 손에 넣기 위해서였으며, 하스미 쿄가 사인할 때 손바닥을 찰싹 붙이는 버릇에서 착안하여, 코트지로 만들어진 포스터에서 잔류 지문을 회수하여 집에 몰래 침입할 의도였다는데 그게 과연 가능했을까요? 또 이렇게 엄청난 공을 들여 포스터를 훔치느니, 사인할 때 버릇을 이용하여 직접 사인을 받는게 낫지 않았을까요?

이런 문제들 때문에 서점에 대한 디테일은 여전히 좋습니다만,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별점은 1.5점입니다. 세금 관련되어 히가시노 게이고 작품이 등장하는게 기억에 남을 뿐인 졸작이에요. 히가시노 게이고의 단편 "초세금 대책 살인 사건"은 추리 작가가 세금을 낼 수 없게 되자, 경비를 부풀리기 위해 개인적으로 산 물건, 여행지 등을 억지로 원고에 등장시킨다는 내용이라는데 재미있을 것 같네요.

"서점이여 영원히"

아오이가 일하는 사사쿠라 서점은 경영이 악화되고 있었다. 어떻게든 서점을 살리려고 문예서 담당인 이치노세와 아오이는 힘을 합쳤지만, 점장의 얼굴을 보기도 힘든 하루하루가 이어지고 있었다. 그 때 잡지에 "진열대에서 빼지 않으면 유해 서점으로 간주하겠다"는 협박장을 꽂아놓고 가는 사건이 일어났고. 거액의 사진집이 도난 당한 날에는 "유해 서점으로 지정되었다"며 밤 11시에 뒷문 앞으로 모이라는 협박장이 발견되었다. 그리고 그 시간에 누군가 서점에 불을 지르는데...

약간의 서술 트릭이 도입된 작품으로 점장 이치노세와 고참 아르바이트 아오이가 처음 만났던 '사사쿠라 서점'에서 일어났던 과거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여기서 의욕없고 자리를 자주 비우는 점장은 남자인 사사쿠라 점장인거지요. 이걸 마지막에 드러내고 있는건 꽤 그럴듯 했습니다.

실제 사건에 대한 추리 역시 괜찮은 편이에요. 서점 밖에서 서점 안 화재 경보기를 작동시킨 방법은 유치했지만, 범인이 누구인지에 대한 추리는 합리적이면서, 서점의 특징을 잘 살리고 있거든요. 예를 들어 협박장인 빨간 괴문서는 언제나 반품 직전 잡지에서 나왔는데, 인기 잡지들이라 손님이 먼저 가져갈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한 번도 그렇지 않았다는 점에 착안해서, 협박장을 보낸건 서점 내부 사람이라는걸 밝혀내는 식입니다. 협박장을 꽂은 잡지를 눈여겨 보고 있었다는 뜻이니까요.

여기에 더해, 착화제가 남자 화장실에 버려졌다는걸 단서로 이치노세는 범인이 서점 내부의 남성이라고 확신합니다. 남자 화장실 휴지통에 착화제를 버리고 뚜껑을 닫은건 조작이 아니라 정말로 버린 것이며, 그렇다면 다른 성별로 위장할 필요가 없다는 추리였는데, 아주 그럴듯했어요.

하지만 이 이야기의 가장 큰 장점은 사사쿠라 점장이 불을 지른 동기입니다. 점장은 목적은 보험금 때문이었다면서 서점은 이제 사라질 것이라면서, 아무도 책을 읽지 않게 됐다고 합니다. 책 말고도 오락거리가 넘쳐난다면서요. 문고본과 만화 매출은 늘어나지 않았냐는 이치노세의 반론에, "다 도서관에서 빌려본다, 아니면 중고 서점에서 산다, 요즘은 잘 나가는 책만 들여놓는 편의점 수익이 훨씬 높다. 어차피 인터넷 서점에는 상대가 안된다"며 자신의 좌절감을 강하게 토로하는데, 저도 모르게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저 역시 도서관, 중고 서점을 애용하고, 인터넷 서점으로 책을 사니까요. 동네 서점이 사라지는데 일조하고 있나 싶어 미안한 마음도 들었고요. 

하지만 "책과 서점은 다르다. 서점에서 보고 싶은 책을 발견하는 것이다"는 이치노세의 말과 그 외에도 즐기는 공간으로 바뀌어서, 카리스마 직원의 힘을 빌려서, 전문성을 특화시켜서, 지역 밀착형 등으로 살아남고 명맥을 이어나갈 것이라는 아오이의 생각, 그리고 뒤이어 서점은 없어지지 않을 거라는 희망섞인 기대와 함께 끝나는 결말 덕분에 마음의 평화를 찾았습니다. 암요, 책만 파는 공간은 비디오, DVD 대여점처럼 언젠가 없어질게 분명해요. 살아남으려면, 시대 흐름에 맞춰서 계속 변화해야지요. 어떻게 변화하는게 좋을지는 저도 잘 모르겠지만요. 

그래도 작중 등장하는, 지금의 니시후나바시에 위치한 서점이 꽤 잘 되어가고 있는 것 처럼, 동네 서점들이 꾸준히 살아남아 주면 좋겠네요. 저도 동네에 이런 서점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 밖에도, 암에 걸릴 것 같던 만화책 절도 사건 등 여러가지 디테일도 좋았기에 별점은 3점입니다.

덧붙이자면, 도나 조 나폴리가 썼다는 "도망친 숲의 마녀"라는 책이 중요하게 등장하는데, 한 번 읽어보고 싶어졌습니다. 헨젤과 그레텔 마녀를 주인공을 했다는 소개가 꽤 재미있었거든요. 아쉽게도 우리나라에는 아직 출간되지 않았네요....

2024/04/20

권외편집자 - 츠즈키 쿄이치 / 김혜원 : 별점 3점

권외편집자 - 6점
츠즈키 쿄이치 지음, 김혜원 옮김/컴인

일본의 편집자이자 작가, 사진가인 저자가 자신이 출판계에서 쌓아온 경력을 털어놓는 에세이집.
지금도 발간되고 있는, 저도 아주 좋아하는 잡지인 'popeye'와 'Brutus'에서 시작하여, 독립후 사진까지 직접 맡아 취재하여 발표한 Tokyo Style, 일본의 기묘한 장소들과 같은 기사들과 기사를 토대로 발표한 책들, 지금은 e-mail magazine 작업을 진행한다는 저자의 출판 여정과 함께, 이러한 취재와 창작 과정에서 느꼈던 여러가지 감정들과 단상들을 풀어놓고 있습니다.

그런데 '편집자'라는 제목과는 다르게 기자, 작가, 사진가, 창작자로서의 작업이 훨씬 많은건 의외였습니다. 저자가 원하는 책을 만들지 않고는 못배기는 사람이라서 그렇기도 한데, 여튼 익히 알고있고 친숙한 편집자의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래도 나름대로 파란만장한 이야기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직접 기획해서 만든 기발한 책들 소개도 인상적이었어고요. 아무도 안 만들 것 같아서 만들었다는데, 일본, 미국의 기묘하고 재미있는 장소라던가 러브 호텔 사진집 등 소개만 보아도 재미있는게 너무 많더라고요. 그 중 가장 흥미로왔던 책은 성인 잡지 독자 투고 일러스트에 주목하여 출간한 기획이었습니다. '핀카라타이소 (ぴんから体操)'라는 작가는 그 중에서도 특출났던 덕분에, 출간 후에 유명해져서 전시회까지 정기적으로 열린다고해서 어떤 작품인지 찾아보았습니다. 그런데 보자마자 변태라는 확신이 들더군요...
승자보다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에 주목하는 시선, 판매량과 관계없이 원하는 책을 내고야 마는 열정은 높이 평가받아 마땅합니다. 이런 책을 만들어도 먹고 살 수 있는 문화적 저변도 부럽고요. 물론 저자도 인세로 먹고 살지 못한다고 언급은 하지만, 이런 책을 여러 권 출간한다는 것 자체가 우리나라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지요. (SF 전문 출판사 '불새'의 안타까운 최후가 겹쳐집니다)

백전노장다운 조언, 경험담도 새겨들을만한게 많습니다. 몇가지 소개해드리자면 아래와 같습니다.

'내 돈 주고 구입하기'
무작정 인터넷으로 검색하려 하지 말고 자신의 머리와 주머니의 돈으로 판단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미술이든 문학이든 음악이든 다른 사람의 평가에 의지하지 말고 자신이 직접 문을 두드리고 열어봐야 경험이 쌓인다. 그렇게 성공과 실패를 반복하다 보면 머지않아 주변 의견에 흔들리지 않게 되고 좋다고 느낀 자신의 감각을 확신할 수 있는 날이 온다. 다양한 경험을 통해 남의 이야기에 휘둘리지 않게 자신을 다져가는 과정은 무척이나 중요하다.
: "현시연"의 마다라메의 말이 떠오릅니다.

속독이나 다독은 밥을 급하게 먹거나 과식하는 것과 같다. 편집자를 하고 싶다고 해서 다른 사람보다 책을 많이 읽을 필요는 없다. 그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100번 읽은 책을 몇 권이나 가지고 있느냐 하는 점이다.
: 추리소설 1,000권을 넘게 읽었다고 우쭐했던 저를 반성하게 만드는 명언입니다. 추리 소설 중에 100번 읽을만한 책이 무엇일지 한 번 생각해봐야겠습니다.

젊었을 때는 록만 들을거야라고 고집부리다가 어른이라면 재즈를 들어야지 하다가 마지막에는 고급 노래방에서 언니들과 흘러간 유행가를 부르는 승자 그룹보다, 죽을 때까지 핑크 플로이드를 들으며 만족하는 패자 그룹이 훨씬 존경스러워졌다.
: 성인잡지 독자 투고 일러스트를 모아 책으로 만드는 사람다운 견해였어요. '병신같지만 멋있어!' 느낌의 말이기도 하지요. 패자들을 위한 멋진 헌사라 생각됩니다.

프로란 대신 해주는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예를 들면 사람은 누구나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 걸까', '죽으면 어떻게 되는 걸까' 하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매일 그런 생각만 끝없이 하고 있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런 사람들을 대신해 철학자는 평생 동안 고민하고 생각을 정리해서 책으로 낸다. 그러면 사람들은 대가를 지불하고 책을 읽는다. 이처럼 누군가를 대신해서 깊이 생각하는 사람, 먼 곳까지 가보는 사람, 맛을 연구하는 사람이 필요한 것이다. 프로는 누군가를 대신해서 일을 한 대가로 보수를 받는다.
: 이런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보지 못했는데, 무릎을 치게 만들었습니다. 직장인이 그 업무의 '프로'라서 월급을 받는 것과 비슷한 이치이기도 하니까요.

이외에 실제 책을 여러 권 출간한 '프로'다운 말도 많습니다. "누군가를 인터뷰할 때는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으면 좋겠다라고 대략적인 스케치를 하는 정도가 적당할지도 모르겠다. 인터뷰 준비는 결과를 가정하고 단정짓는 과정이 아니라 기초를 닦아두는 과정이다." 처럼요. 미술 대학을 부정하는 말도 기억에 남네요. 저 역시 아득히 오래 전이지만 미대 졸업생인데, 솔직히 대학에서 예술이나 디자인에 대해서 무언가 배웠다는 실감은 전혀 하지 못하고 있거든요. 그냥 그런 작업을 하는 공간과 같은 분야에 관심있는 친구들을 모아놓은 오프라인 모임에 가깝다는 저자의 말에 동의하는 바입니다.

그러나 전부가 다 볼만하고 좋은건 아닙니다. 꼰대스러움이 글 곳곳에 묻어나는건 별로였어요. 대표적인게 '기획과 여정도 처음부터 모든걸 꼼꼼하게 계획하지 않는게 좋다. 예기치 못한 만남은 예상을 뛰어넘은 장소에서만 가능하다.'는 말입니다. 모든걸 꼼꼼하게 계획해야 하는 취재, 업무가 있는건 분명합니다. 그리고 이는 MBTI가 J인 사람은 견디지 못할 상황이기도 하고요. 업무의 특성과 사람마다 개성이 모두 다른데, 자신에게 잘 맞았다고 남에게도 단정지어 이야기하는건 꼰대지요.
"그들의 삶은 세상에서는 패배자라 하고 부모에게는 근심거리가 될지도 모르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굉장히 건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돈은 많이 못 벌어도 정말로 하기 싫은 일은 하지 않았다."와 같은 글도 영 와 닿지 않았습니다.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살 수 없다는 현실을 알려주는게 저널리스트의 역할이 아닐까 싶은데 말이지요.
그리고 신선했던 취재들도 거듭되다보니 "수상한 취재를 다녀왔습니다"와 비슷해져서 식상해져 버리고 맙니다. 러브돌을 만드는 오리엔트 공업 이야기는 그냥 같은 취재더라고요.

이렇게 단점이 없지는 않지만, 아직도 현역으로 인터넷 메일 형태의 매거진을 정기 간행하는 등 꺾이지 않는 저자의 열정에는 박수를 보냅니다. 제 별점은 3점입니다.

2019/06/16

독서실력 - 오카자키 다케시 / 정지영 : 별점 3점

독서실력 - 6점
오카자키 다케시 지음, 정지영 옮김/생각의집

일본의 유명 장서가이자가 독서가, 서평가 오카자키 다케시의 독서 관련 에세이집입니다. 제목만 보면 책을 읽는 일종의 요령을 알려주나 싶은데 그렇지는 않습니다. 저자가 평상시 가지고 있는 독서에 대한 생각 중심의 에세이들을 모아 놓았을 뿐입니다.
저자의 말대로라면 독서 실력은 별게 아닙니다. 요령이라는게 있을리도 없어요. 그냥 많이, 즐기면서 읽으면 느는게 당연하니까요. '읽을수록 많은 것을 알게 되고, 전에는 몰랐던 것이 갑자기 보이기도 하고, 젊은 시절 읽고 깨닫지 못했던 부분이 나이 들어 다시 읽었을 때 확 와닿기도하는 것'이지요.

원래 저자의 글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책만 읽는 인생도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맞게 쓰였다'라는 말머리부터 마음에 들어서 읽기 시작했습니다. 이 말을 하기 위해 "부두에서 책 읽는 여자" 속 모드의 삶에 대한 이야기도 멋있었고요.
앞서 말씀드렸듯 '독서 실력은 별거 아니다'라는 등 독서에 대한 저자의 여러가지 생각이 상당히 공감됩니다. 몇 가지를 소개해 드린다면, 우선 "책은 효과가 서서히 나타난다. 책은 본디 불편한 것이다."는 것입니다. 책을 읽으려면 집중해야 하는 장소도 필요하고, 시간도 필요하고 기타 등등 필요한게 많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저자는 그럼에도 책을 읽어야 한다고 합니다. 책에 몸과 마음을 맡기고,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기 때문이죠. 저 역시 동의합니다.
"책을 읽을 시간이 없다는건 거짓말이다. 마음이 있다면 얼마간이라도 읽을 수 있다." 는 독서를 하지 않고 핑계만 대는 주위 사람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고, 책을 왜 읽는가? 라는 화두를 던지고 답하는 여러가지 이야기 중에서 "즐기기 위해서"라는 말도 굉장히 와 닿습니다. 읽는 걸 즐기고, 더 알아가는 걸 즐기기 위해서인데 저 역시 마찬가지라 생각하거든요. 같은 이유로 자기개발서적은 즉효성을 기대하는 안일한 생각에 불과하다는 말에도 동의할 수 밖에 없어요. 

이러한 주장을 "즐기지 못하는 정신은 허약하다. 즐기는 일을 허락하지 않는 문화는 미숙하다. 시나 문학을 즐기지 못한다는 점에서 지금 우리가 얼마나 얕은 수준으로 현실 생활을 즐기고 있는지 알 수 있다."는 시인 다니카와 슌타로의 말로 마무리하는 것도 멋집니다. 

'베스트셀러가 존재하는 이유는 독서가 힘든 현대인들이 독서에 투자하는 시간에 대한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검증된 상품을 구입하는 행위 때문이다, 따라서 베스트셀러는 상품이며 화제일 뿐이다'는 "베스트셀러 論"도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습니다. 저 역시 베스트셀러는 별로 좋아하지 않기도 하고요. 그래도 나중에 읽어서 재미있다는 베스트셀러 읽기 방법도 따라해보고는 싶네요. 재미와 가치를 떠나 책이 유행했던 당대의 트렌드와 분위기를 느끼기에는 좋은 방법이라는건 맞을테니까요. 80년대 일본 청춘 만화를 읽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겠지요.
마지막으로 만화를 읽는다고 타박하면 안된다는 것도 제 생각과 똑같아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이유도 같아요. 만화를 읽는 사람은 활자 책에도 손댈 가능성이 높고, 최소한 만화도 안 읽는 사람이 책을 읽을리는 없습니다.

이렇게 독서에 관련된 이야기 말고도 재미있는 이야기는 많습니다. 여러가지 자잘한 서평을 쓴다고 해서 책 추천을 받는건 난처하다는게 대표적인데 저 역시 경험해 본 적이 있어서 와 닿습니다. 최소한 자기가 보고 싶은게 어떤건지는 상세하게 알려줘야 그나마 추천이 가능하다는데, 맞는 말입니다! 저한테 "재미있는 추리 소설을 추천해 줘" 라고 물어본들 고전 본격물을 좋아하는지, 하드보일드를 좋아하는지, 현대 범죄 스릴러를 좋아하는지, 일본 쪽 작품이 취향인지 아니면 유럽 쪽 이야기가 취향인지 등 기본적인 정보는 알려줘야 좋은 추천이 가능하겠지요. 정말 시대를 초월하여 누구나 읽어야 하는 걸작이라면 자신있게 추천하겠지만, 그런 작품은 적으니까요. 저자의 말대로 서평가는 책을 추천하는 자동판매기가 아닙니다. 

독서에 대한 기묘한 발상들도 매력적입니다. 독서를 하면서 감정의 진폭으로 인해 가까이 가거나 멀어지는 것은 정신 쪽으로, 어떤 책이라도 눈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접해야 하고 감정의 진폭은 정신이 그 거리를 안배한다는 색다른 시각이 그러합니다. 책만이 물리적인 거리를 유지하면서 일체화 될 수 있다니 생각해 본 적도 없거든요. 독서가 걷기와 비슷하다는 발상도 마찬가지입니다.
소설을 처음 읽을 때 몰입 전 파장을 맞추기를 튜닝이라 표현한 것도 재미있었고, 서평가로서 서평 쓰는 요령도 짤막하게 실려있는데 이 역시 참고할 만 합니다. 저자는 800자 분량으로 그 책이 저자에게 어떤 책인지 평가하고, 줄거리, 읽을 만한 부분, 핵심 부분의 인용, 마무리 순으로 쓴다고 합니다. 가장 중요한건 그 책을 읽고 싶다는 기분을 북돋아야 한다는데, 많이 반성이 됩니다.

언제나처럼 책 소개도 볼거리입니다. 대부분 국내에 소개되지는 않았지만 국내 소개된 책으로만 한정한다면, 우선은 자신의 학력에 자신이 없다면? 에릭 호퍼의 "길 위의 철학자" (국내 출간명)이 있습니다. 자서전으로 배움에는 그 어떤 한계도 없다는 내용이라는데 딸아이를 위해서라도 읽어봐야겠습니다. 동화책 "코딱지"는 제 딸이 이런 책을 읽기에는 너무 나이가 들긴 해서 아쉽게 패스하지만요.
국내 소개되지 않는 책 중에서는 이소다 가즈이치의 "소재 만다라, 책과 사투하는 사람들"은 정말 땡깁니다. 책에 미쳐 그야말로 책에 파묻혀 사는 사람들의 생활을 일러스트와 함께 소개하고 있다는 데 제 꿈이기도 한 삶이라 어떨지 너무 궁금하거든요. 저자의 말대로 소재는 성채고, 저는 작은 왕국의 국왕이 될 수 있죠. 한 때(1980년대?) 시대의 총아였다는 가타오카 요시오의 여러 작품들은 읽어본 적이 없지만 옛 추억이 하나 떠올라 반가웠어요. 80년대 OVA 황금기에 발표되었던 "바비에 반해서"라는 애니메이션 원작이 가타오카 요시오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자가 꼭 한 명을 고른다면 선택한다는 작가 쇼노 준조의 작품들도 국내 소개된다면 한 권 정도 읽어봐야겠습니다.

이렇게 독서가 취미인 사람들에게 여러모로 공감되고 와 닿는 내용이 많기는 한데, 모든 내용에 공감할 수 있는건 아닙니다. 예를 들자면 버스 운전석 뒤에서 책을 읽는 게 최고로 좋다는 작가의 말입니다. 저는 멀미가 심해서 흉내도 못 내겠습니다.
저자가 일반 취미인 수준을 넘어선 광狂이라서 좀 무리한 주장으로 보이는 내용도 있어요. 책을 쌓아놓고 읽어야 한다는 주장이 그러하죠. 저도 마찬가지이긴하나 너무 과장하고 있어서 썩 공감이 가지는 않더군요. 순수하게 책을 읽기 위해서 여행을 떠난다는 발상도 마찬가지고요. 재미야 있겠지만 뭔가 주객이 전도된 느낌입니다.

그래도 이 정도면 별점 3점은 충분합니다. 독서인분들께 추천드리는 바입니다. 같은 독서인 후배로서, 저자 만큼은 아니지만 저만의 독서 철학과 독서 세계를 언젠가는 정립하여 꾸며보고 싶은 욕심도 드네요.

덧붙이자면, 책의 맨 뒤는 저자의 추천 책 여러 권들이 소개되고 있는데 국내 정식 출간작은 기타무라 가오루의 "하늘을 나는 말" 밖에는 없네요. 소개된 작가도 별로 없고요. 일본 작가의 책이 대부분이고, 우리나라에서는 별로 팔릴 일이 없을 책 관련 에세이 등이 많기는 하지만 조금은 아쉽군요. 그래도 검색하다 찾은 구시다 마고이치의 "사랑하는 나의 문방구", "고전과의 대화"도 기회가 되면 읽어보려 합니다.

2019/06/22

책만 보는 바보 - 안소영 : 별점 3점

책만 보는 바보 - 6점
안소영 지음/보림

정조 때 관리 이덕무와 그의 벗들에 대해 이덕무 1인칭 시점으로 써 내려간 역사, 전기 소설입니다. 기억은 나지 않지만 누군가의 추천으로 읽었는데 꽤 재미있더군요.
장점이라면 우선 이덕무라는 인물에 대해 잘 알게 되었다는 기쁨이 큽니다. '서자' 출신으로 여러가지 활동에 제약이 있을 수 밖에 없었던 이덕무가 괴로움을 버티면서 얼마나 치열하게 살아갔는지가 상세하게 소개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공부와 노력, 그리고 좋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다는 뻔한 해피 엔딩도 마음에 들어요. 이런 해피 엔딩이 거의 불가능했을 조선 후기였다는 점에서요.

두번째로는 이덕무 본인보다도 유명한 이덕무의 벗, 지인들에 대한 이야기가 재미있는 덕분입니다. 이덕무의 스승 격인 연암 박지원과 담헌 홍대용을 비롯하여 "북학의"의 박제가, "발해고"의 유득공, 이덕무의 처남으로 최근 이런저런 드라마 때문에 널리 알려진 "조선무예보통지"의 저자이기도 한 무인 백동수, 신분은 다르지만 순전히 책 사랑 때문에 친해진 이서구, 심지어는 정조까지 등장하는데, 이를 이덕무의 시점으로 상세하게 소개해 줍니다.
예를 들자면 담헌 홍대용이 '절대음감'의 소유자라는건 이런저런 자료를 통해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이덕무 시점에서 홍대용이 거문고를 연주하는 여러가지 장면을 그려내니 훨씬 생생합니다. 게다가 단순한 연주 묘사에 그치지 않아요. 홍대용이 천문, 수학, 과학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는걸 '자연의 이치는 곧 조화'라며 뛰어난 음악 실력과 연결하고 있거든요. 이런 장면들 덕분에 인물들이 더 입체적이고 이해하기 쉬웠집니다. 

또 이런 이야기를 끌고나가면서 이덕무와 친구들에게 명확한 캐릭터성을 부여하고 있다는 점도 눈에 띕니다. 이덕무는 그야말로 책에 미친 책벌레로 책만 있으면 근심걱정 따위는 모두 잊을 수 있는 인물입니다. 박제가는 옳다고 생각하는 일이라면 뜻을 굽히지 않고 올-인하는 혁명가로 그려지고요. 유득공은 어려운 환경에서도 항상 밝은 모습의 명랑한 메모광입니다. 백동수는 지위, 나이 고하를 가리지 않고 모든 사람들과 친분을 맺는 사교성 발군의 낙천적인 무예가죠. 다들 먹고 살기 힘들어 심지어 아끼던 책을 팔아 양식을 삼곤 했지만, 이런 벗들과 책들로 괴로움을 잊을 수 있었다니, 뭔가 "성균관 스캔들" 스럽네요. 그리고 이들의 언행 모두가 굉장히 현대적이라서 읽기도 편합니다. 잘 된 고증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일종의 드라마같은 느낌을 주어서 쉽게 읽을 수 있었어요. 

세번째는 이덕무의 무지막지한 책 사랑입니다. 저도 한 사람의 독서인인 탓에 굉장히 반갑더라고요. 그가 직접 정리한 4가지 책 읽기의 이로움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 첫째, 굶주린 때에 책을 읽으면 소리가 훨씬 낭랑해져서 글귀가 잘 다가오고 배고픔도 느끼지 못한다. 
  • 둘째, 날씨가 추울 때 책을 읽으면, 그 소리의 기운이 스며들어 떨리는 몸이 진정되고 추위를 잊을 수 있다. 
  • 셋째, 근심 걱정으로 마음이 괴로울 때 책을 읽으면 눈과 마음이 책에 집중하면서 천만가지 근심이 모두 사라진다. 
  • 넷째, 기침병을 앓을 때 책을 읽으면 그 소리가 목구멍의 걸림돌을 시원하게 뚫어 괴로운 기침이 갑자기 사라져 버린다.

그야말로 독서 하나면 만사형통인 셈이에요. 배고픔, 추위, 근심걱정, 병을 독서로 잊을 수 있다니, 도대체 얼마나 독서가 좋았으면 이 정도일지 상상도 되지 않습니다. 참고로, 이덕무가 추천하는 우리나라의 좋은 책 세 가지는 이이의 "성학집요", 유형원의 "반계수록", 허준의 "동의보감"입니다. "성학집요"는 기회가 되면 한 번 읽어봐야겠네요.

마지막으로 당대, 즉 정조 시대 시대의 분위기 묘사도 마음에 듭습니다. 실학의 대두, 청나라와의 관계, 정조의 개혁 정치 등이 이덕무에게 닥쳤던 여러가지 상황을 통해 직, 간접적으로 묘사되고 있는데 단순한 지식의 나열이 아니라, 드라마가 함께 해서 더 이해하기 쉬웠기 때문입니다. 가난하게 살던 이덕무가 출세하게 되는게 정조의 개혁 정치와 그대로 겹치기도 하고요.
물론 이 부분은 문제가 없지는 않아요. 너무 이덕무와 백탑파를 좋게만 그리고 있어서 그렇지, 정조가 서자 출신인 이덕무, 박제가, 유득공 등을 발탁한건 신분을 가리지 않고 능력을 보겠다는 취지도 있었겠지만 당파에 좌지우지되던 당시 정국에서 자신만의 세를 키우려는 어쩔 수 없는 상황 탓이 더 컸으니까요. 결국 서자 출신들을 비롯한 이른바 '백탑파' 세력을 끌어올린건, 또다른 붕당을 만든 것과 다름 없는 셈이고요. 결국 서자 출신들은 고작해야 시골 군수 정도가 고작이었으며, 평양 감사까지 출세한건 신분이 높았던 이서구 뿐이었다는건 결국 현실의 벽이 높았다는 이야기라 여러모로 씁쓸합니다. 

아울러 조선에 대한 역사, 조선 사람 시각으로 본 세상 등 '조선' 운운하는 발언이 많은 것도 너무 오버스러웠어요. 솔직히 진위여부도 의심스럽고 말이죠. 애초에 이덕무를 주인공으로 한 일종의 위인전이라는 것 부터가 이덕무의 시선으로 주위 사람들을 높이 평가하고자 하는 일종의 용비어천가스러운 의도가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이렇게 지나치게 백탑파에 편향된 시선, 고증과 진위여부가 모호하다는건 단점이지만 그래도 조선 후기 한 선비의 치열한 삶을 엿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는 좋은 독서였습니다. 제 별점은 3점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단점 때문에 완벽한 역사서라 하기는 어렵고 교훈적인 내용이 많은 위인전에 가깝기에 성인분들보다는 어린 학생들에게 추천하고 싶네요. 제 딸에게도 언젠가 권해줄 생각입니다.

2020/03/21

문학을 홀린 음식들 - 카라 니콜레티 / 정은지 : 별점 2.5점

문학을 홀린 음식들 - 6점
카라 니콜레티 지음, 매리언 볼로네시 그림, 정은지 옮김/뮤진트리

푸주한이자 전직 페이스트리 요리사이자, 뉴욕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한 저자가 자신의 유년시절, 청소년기, 성인 시절에 읽었던 문학 작품들 속에서 인상적인 요리들을 자신이 스스로 만들어 본 레시피와 함께 소개하는 책입니다. 저자의 경력에 딱 맞는 책이네요.

그동안 소설이나 영화 속 요리들에 대해 소개하는 책은 제법 많이 읽어보았습니다. 제가 블로그에서 소개한 비슷한 책만 해도 "죽이는 요리책", "문학의 맛, 소설 속 요리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레시피"가 있지요. 그 외에도 무라카미 하루키, 헤밍웨이의 작품 속 요리에 대해 다루는 등의 많은 책이 출간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런 책들이 그동안 불만스러웠었습니다. 그냥 등장한 요리의 나열일 뿐, 그 요리가 작품 속에서 어떠한 역할을 차지하는지를 제대로 설명해주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또 레시피 소개와 재현에 치중할 뿐 그 요리에 대해 자세히 알려주는 책도 거의 없었고요.
그래서 저 스스로 이 시장에 뛰어들어 추리 소설 속 주요 등장 요리들을 주제로 레시피와 함께 소개하는 "콘 비프 샌드위치를 먹는 밤"이라는 졸저를 출간한 바 있습니다. 제 원칙은 작품 속에서 인상적으로 등장한 요리라 하더라도, 중요하게 사용되지 않았다면 주제로 삼아 글을 쓰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또 그 요리들에 대한 단순 레시피 뿐 아니라 그 요리에 대해 제가 구할 수 있는 정보를 모두 정리하여 해당 요리에 대해 설명하려고 노력했고요.

이 책은 제가 추구한 방향과 어느정도 비슷합니다. 주제로 선정된 요리들이 작품이나 주인공에 대해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는 점에서요. "오만과 편견"에서 "니콜스가 화이트 수프를 흡족하게 만드는 대로" 초대장을 발송하겠다고 한 뜻을 설명해 주는 부분이 좋은 예입니다. 저자 조사 결과에 따르면, 화이트 수프는 역사가 깊은 요리로 부유한 가정에서만 먹을 수 있다고 합니다. 즉, 미스터 다아시나 미스터 허스트 등 프랑스 요리에 정통한 까다로운 손님들을 초대하려면, 화이트 소스를 만들 준비가 되어야 했다는 뜻인 것이죠. 이야기에서 중요한 부분은 아니지만, "오만과 편견" 속 세계관을 이해하는 데에는 아주 좋은 정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레베카"에서 주인공의 사회적 위치를 음식이 서빙되는 순서로 드러내는 장면이라던가, "안나 카레리나"에서 오블론스키가 굴을 탐식하는 장면을 그의 끝없는 성욕과 연결시키는 부분 등도 마찬가지에요.
정말 핵심 소재라서 등장하는 요리들도 많습니다. 저도 딸 아이가 어렸을 때 읽어주었던 모리스 샌닥의 "깊은 밤 부엌에서"에 등장하는 핫 케이크 반죽이 대표적입니다. "위대한 유산"의 유산을 받게 된 계기가 된 음식 중 하나인 '동그란 돼지고기 파이'도 비중만 놓고 보면 충분히 소개해 줄 만 하고요.

아울러 해당 요리의 역사 등에 대한 자료는 부족하지만 요리사이기도 한 저자의 직업 덕분에, 저자 스스로 만들어 본 상세한 레시피들은 제 책이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부분입니다. 저도 제가 주제로 삼은 요리를 실제로 재현해 봤어야 하지만, 전문 요리사도 아니고 재료와 장비의 수급이 어려워 이런 부분에 힘을 쏟지 못했거든요. 이 차이는 "오만과 편견" 속 화이트 수프 레시피를 당시 요리책에서 찾아보고 직접 만들어 본 결과를 소개해주는 부분에서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18세기 레시피는 모두 끔찍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자는 현대의 '화이트 갈릭 수프'를 제안하지요.
그 외에도 남부식 비스킷을 만드는데는 라프 라드가 꼭 필요하다는 팁 등의 유용한 정보도 많아요. 곁들여진 일러스트들도 최고 수준이고요.

그러나 소개되는 모든 요리들이 그러한건 아닙니다. "호밀밭의 파수꾼"에서 처럼, 작품이 아니라 저자의 인생과 관련된 요리가 소개되기도 하고, 또 해당 작품을 읽었을 때의 저자의 경험에 관련된 요리가 소개되는 등 개인적인 경험이 담뿍 담긴, 개인 에세이에 가까운 글들도 많습니다. 원래 개인 블로그에서 시작되어 책이 출간되었다니 어떻게보면 당연한 일이겠죠. 문제는 뒤로 가면 갈 수록 이런 개인적인 글들이 많아진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가면 갈 수록 제 방향성과 맞지 않는 부분이 있어 감점합니다. 그래도 요리에 대한 전문성만큼은 아주 돋보였습니다. 이런 분과 손잡고 추리 소설 속에 등장하는 주요 요리에 대해 합작하면 참 좋겠다 싶네요.

2025/01/19

(번역) 컬럼 : 책 모형을 소재로 한 추리소설 "고양이 혀에 못을 박아라"

전에 읽었던 "고양이 혀에 못을 박아라" 속에 등장하는 츠즈키 미치오의 책에 대한 재미있는 컬럼을 발견해서 소개드립니다. 원문은 이 곳입니다.

책을 만드는 사람이라면 관심있게 읽을 수 있는 주제라 생각합니다. 저는 전자책 버전으로 읽었는데, 책이 이렇게 구성되어 있다는걸 전혀 몰랐습니다. 이런건 - 빌 벨린저의 "이와 손톱"도 마찬가지겠지요? - 정말 전자책으로는 느낄 수 없는 감성인데, 기술 발전과 전자책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걸 새삼 깨닫게 됩니다.


책 모형이란 무엇인가?

책 모형(束見本)은 대량으로 인쇄 및 제본을 시작하기 전에 실제 사용될 종이를 이용해 시험적으로 제작된 책입니다. 몇 부 정도만 인쇄소에 의뢰하여 만들어지며, 이를 통해 완성된 책의 외형과 특징을 미리 확인할 수 있습니다. 책의 두께(등 너비), 무게, 열림 정도, 촉감 등을 사전에 검토할 수 있는 유용한 도구이죠.

이 책 모형은 인쇄 작업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아 표지와 본문 모두 하얗게 비어 있습니다. 최근에는 서점에서도 이러한 백지 책이 판매되고 있습니다. 일기장, 메모장, 혹은 그림책으로 활용하는 등 용도가 다양합니다.

책의 구성은 편집자가 페이지를 배치하고, 디자이너나 책 제작자가 종이를 지정하여 완성됩니다. 특히 고급 제본(上製本)의 경우에는 세부적인 제본 양식을 지정해야 하며, 이 단계에서 속지, 책갈피(스핀), 꽃무늬 천(花布) 등도 결정됩니다. 그러나 책 모형은 대량 생산 과정과는 달라서 최종 완성본과는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외부 상자를 제작할 때는 실제 제작된 책의 크기를 기준으로 해야 한다는 점이 있죠.

추리소설 『고양이 혀에 못을 박아라』

이러한 책 모형을 소재로 한 독특한 추리소설이 있습니다. 일본 작가 츠즈키 미치오(都筑道夫, 1929~2003)의 "고양이 혀에 못을 박아라"는 1961년에 출간된 작품으로, 이후 여러 출판사를 통해 재출간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책 모형의 구조를 활용한 독창적인 트릭과 기발한 이야기로 많은 독자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소설의 줄거리

주인공인 아와지 에이이치(淡路瑛一)는 잡지에 잡문을 쓰며 생계를 유지하는 작가입니다. 그의 집에는 책 모형이 있었고, 주변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을 계기로 그는 책 모형을 일기처럼 활용하기 시작합니다. 독자들은 주인공이 기록한 일기 형식의 글을 읽으며 사건을 따라가게 됩니다.

경찰은 주인공을 용의자로 의심하지만, 그는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고 진범을 찾기 위해 직접 탐정 역할을 맡습니다. 하지만 자신도 누군가에게 생명의 위협을 받으며 피해자가 되기도 합니다. 이 작품은 주인공이 용의자, 탐정, 피해자의 세 가지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는 독특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트릭과 결말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는 몇 장의 공백 페이지가 등장합니다. 책 모형에서 공백 페이지는 자연스러울 수 있지만, 당시 독자들은 이를 인쇄 사고로 오해하여 반품하는 일이 잦았다고 합니다. 특히 초판본은 페이지 번호도 없어서 더 혼란을 주었습니다.

갑자기 공백 페이지가 나타난다. 공백 페이지가 가장 많은 책은 헤이안쇼텐(平安書店) 판본으로 9페이지이며, 고단샤 문고(講談社文庫)는 6페이지, 고분샤 문고(光文社文庫)는 5페이지이다. 이는 접지 방식의 특성 때문일 수도 있다.
책 속 깊숙한 부분에 몇 줄로 조판된 글자가 있다. 그곳에 사건의 진상이 적혀 있다.

소설의 진상은 공백 페이지의 깊숙한 부분에 적혀 있습니다. 단순히 책을 넘기기만 해서는 발견할 수 없도록 만든 주인공의 의도였죠. 이러한 트릭은 소설의 물리적 형식을 활용한 뛰어난 장치로 평가받습니다.

작품이 남긴 의미

저는 대학생 시절 이 작품을 통해 책 모형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이후 편집자로 일하게 되면서 이 책이 제게 미친 영향을 실감하게 되었죠. 이야기의 플롯과 책 제작의 물리적 구조가 서로 맞물려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준 사례였습니다.

하지만 요즘 젊은 세대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면 큰 반응을 얻지 못해 조금 아쉽기도 합니다. 그래도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와, 작품의 배경이 된 신주쿠, 이케부쿠로, 고이시카와 등 익숙한 장소들을 떠올리며 가끔 이 책을 다시 읽곤 합니다. 책 속에 담긴 일본 에도 시대 문화와 언어유희 역시 이 소설을 특별하게 만드는 매력입니다.

추가 이야기 (2016년 2월 27일)

오랫동안 꿈꾸던 "고양이 혀에 못을 박아라"의 초판본을 드디어 손에 넣었습니다. 페이지 번호가 없는 공백 페이지를 실제로 확인할 수 있었죠. 당시 이 페이지는 독자들로부터 반품 요청이 빗발쳤던 악명 높은 부분이기도 했습니다.

이 초판본은 제 서재의 소중한 보물이 되었고, 다른 희귀 서적과 함께 자리 잡았습니다. 또한, 최근에는 이 작품의 전자책 버전도 출간되었습니다. 공백 페이지가 어떻게 디지털화되었는지 확인하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 될 것 같습니다.

2014/04/19

알라딘 중고서적을 잘 찾아보면... 온라인 비블리아 고서당

여러모로 뒤숭숭하고 힘들고 어려운 시기네요. 책도 손에 잘 잡히지 않을 정도로 말이죠. 세월호 생존자 구조가 모쪼록 잘 이루어지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이번에는 읽은 책도 없고 하니,   오무라이스 잼잼 리뷰에서 언급했던 알라딘 중고서적에 대해 조금 썰을 풀어보겠습니다.

개인적으로 알라딘 중고도서 헌터인데 왠만한 책은 알라딘 직배송으로만 구입합니다. 회원 판매가격은 이해불가 가격도 많고 배송비가 얄짤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완벽하게 절판되었고 희귀본이라면? 당연히 회원 판매를 알아봐야죠. 알라딘 판매 회원 중에도 몇몇 절판 희귀본 전문 셀러가 있습니다. "비블리아 고서당"의 온라인 버전인 셈이지요. 그 중 한 셀러의 판매 목록에 들어가서 훑어보니 참 많은 책들이 출간되고 절판되었다는데 놀랐습니다. 이런 책까지 나왔었나? 싶은 책도 있고요. 가장 놀라운 가격의 책은 요거입니다. 출간된 지 10년도 안 된 책인데 가격이 상당해요. 보통 절판 희귀본의 시세는 정가의 1.5~2배인데, 이 책은 3배에 달할 뿐더러 원래 정가도 고가의 책이라 높은 가격이 형성된 듯 싶습니다.

이런저런 정보를 접하니 제가 가진 고서들의 가격이 궁금해져서 저만의 다카키 아키미쓰 컬렉션을 한번 찾아보았습니다. 다른 책은 아예 검색도 안 되고, 그나마 검색된 "제로의 밀월"은 2,000원... 그 외의 추리소설들 모두 가격이 형편없더군요. 재간되기 전의 "점성술 살인사건"과 "관 시리즈", "불야성" 등을 소장했을 때에는 중고가격이 상당했었는데... 다 오래전 일이 되어버렸네요. 아쉽...

제가 가진 책이야 망했지만, 그래도 잘 관심을 가지면 갖고 싶은 책을 건질 수 있는 만큼 앞으로도 중고도서 헌터짓은 계속할 예정입니다. 바로 오늘도 이 책을 5,000원 대에 건졌거든요! 이러니 헌터짓을 그만둘 수 없지요.

2018/04/06

히틀러의 비밀 서재 - 티머시 W.라이백 / 박우정 : 별점 3.5점

히틀러의 비밀 서재 - 8점
티머시 W. 라이백 지음, 박우정 옮김/글항아리

히틀러가 남긴 장서들이 보관되어 있는 의회 도서관, 공공 기록 보관소, 민간 보관소 등을 저자가 직접 찾아다니며 뒤져본 후, 히틀러가 관심을 가졌거나 혹은 영향을 끼쳤을 책들을 골라 소개하는 책입니다. 

'책이 수집가를 보존하며 수집가가 소멸된 뒤에는 그 삶의 증인이 될 수 있다'는 발터 벤야민의 말대로 히틀러의 장서를 통해 히틀러라는 인물의 실체를 알려주려는 시도만큼은 무척 독특합니다. 틀린 말은 아닌게 이 리뷰를 쓰면서 제 책장을 쭉 훝어 보니, 정말 저라는 인물에 대해서 쉽게 알 수 있는 책장이구나 싶더라고요. 요리 관련 서적 20%, 역사서 20%, 과학 관련 서적 10%, 장르문학 30%, 만화책 20% 정도의 구성인데 이 블로그 리뷰 비율과도 비슷하고 실제 제 관심사와도 같으니까요. 장서가 수집한 사람의 취향과 관심사를 개략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해 보입니다.

목차는 열개 항으로 나뉘며, 중요한 책도 열 권이지만 이야기 속에서 등장하는 책들은 그 외에도 많은데 이 중 히틀러에게 영향을 끼쳤거나 관심을 가졌던 책들을 분류하자면 크게 네 가지입니다.
우선 히틀러의 사상과 철학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거나, 최소한 그러한 편린을 엿볼 수 있는 책들이 첫 번째입니다. 오스보른의 "베를린", 직접 쓴 "나의 투쟁", 그랜트의 "위대한 인종의 쇠망", 권터의 "독일 민족의 인종적 유형론", 그리고 그 스스로 자기 최면에 걸릴 수 있도록 한 스벤 헤딘의 "대륙 전쟁 속 미국" 등입니다.
두 번째는 히틀러라는 인물이 형성되는데 있어서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인물, 혹은 히틀러에 대해 증언한 인물들이 관련된 책입니다. 히틀러의 정치 인생 초반에 그를 후원하고 이끌었던 유명 작가 에카르트의 "페르 귄트", 유명 영화인 레니 리펜슈탈이 선물한 "피히테 전집" 이 대표적입니다. "피히테 전집" 은 리펜슈탈과 히틀러 사이에 있었던 에피소드를 소개하는 목적 외에도, 피히테라는 철학자가 히틀러에게 끼친 영향도 약간이나마 설명된다는 점에서 첫 번째 분류와도 조금 겹치는 부분이 있고요.
세 번째는 책 자체가 목적이나 수단이 되어 히틀러 주변에서 움직인 경우입니다. 히틀러가 싫어했다는 로젠베르크의 "20"과 이에 맞서 나치와 카톨릭을 결합시키려 했던 후달의 "민족사회주의의 기초"는 각각 책 소개와 함께 실제 히틀러 주변에서 벌어졌던 역사적 일화가 함께 소개됩니다.
마지막 네 번째는 총통이 실무, 그리고 공부를 위해 읽은 책입니다. "슐리펜", "프리드리히 대왕"과 같은 전기와 각종 전쟁사나 전술 및 각종 무기 관련 서적들 처럼요.
이러한 책들을 히틀러의 성장 과정 순으로 소개하고 있어서 그가 점차 어떤 사상, 철학을 가지게 되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당시 시대상도 대략 설명해 준다는 점에서는 일종의 역사서라고 보아도 무방하고요.

항상 주변 인물들의 증언과 후대 역사가의 사료를 통해서만 접했던 히틀러에 대해서 인간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는 점은 반가왔습니다. 접근 방식이 신선한 덕분입니다. 용감하고 전우애 넘치는, 독일 제국에 충심을 다 한 군인, 생사의 기로에서 짧은 쾌락에 탐닉하지 않고 독서를 통해 자기 계발을 멈추지 않은 노력가, 제대로 된 공부는 하지 못했지만 방대한 독서로 자신만의 이론과 세계를 완성하고 이를 토대로 누구와도 토론이 가능했던 천재의 모습이 잘 드러납니다. 무기 관련 연감을 통독하여 후일 할더에게까지 한 방 먹였다는 에피소드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독재자이고 살인자라고 해도 16,000권이 넘는 장서를 읽고, 중요한 내용은 기억하고 담아두었다가 써먹었다니 흉내도 내기 힘든 일이긴 하지요. 세계와 맞 상대할 수 있었던 제국을 십 년 이상 철권통치한 인물이 보통 인물일리야 없겠지만, 제 생각보다도 훨씬 뛰어날 뿐 아니라 엄청난 노력가라는 점에서 탄복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전성기 때의 모습은 그야말로 반신반인이더라고요. 물론 말도 안되는 민족주의에 우생학을 결합시켜 유대인을 학살한 잔혹한 독재자의 모습, 스스로를 유럽 대륙의 구원자로 생각한 과대망상 독재자의 모습도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히틀러의 독서법도 아주 인상적입니다. 책을 제대로 독파하는게 아니라 스스로 특정 관념을 형성한 뒤, 책의 목차와 색인을 살펴 쓸만한 정보를 조금씩 모으는 방식입니다. 때로는 결론부터 읽기도 할 정도로 책의 내용을 깊숙히 이해하기보다는 필요한 정보만 집중적으로 습득하는 방식인데, 논문을 쓸 때의 방식과 비슷하네요. 스스로의 목표나 관념이 명확하다면 나름 효율적일 수는 있겠다 싶었어요.

그러나 실제로 책의 목적, 그리고 광고 문구 - 1만 6000권 장서 중 단 열 권이 역사를 바꿨다 - 에 부합하는 내용인지는 솔직히 의문입니다. 소개되는 절반 가까이의 책들이 최상의 혈통인 아리아인의 혈통을 보존하고자 하는 우생학적 관점, 이 때문에 유대인을 말살해야 한다는 반유대인주의 형성에 관련되어 있는 탓이 큽니다.
게다가 몇몇 책들은 히틀러가 소장하고는 있었지만, 실제로 읽었는지조차 불분명하다는 점도 심각한 문제에요. 이래서야 저자의 주장을 설득력있게 만들기 위해 의도적으로 책을 선정한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지 않더라도, 특정 인물을 구체화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단편적인 정보일 뿐이고요.
물론 반유대주의가 히틀러의 사상에 큰 영향을 끼친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죠. 허나 이렇게까지 억지스럽게 깊게 파고들 필요는 없었어요. 더 다양한 책들로 다양한 분석을 해 주는게 훨씬 좋았을 겁니다. 제임스 쿠퍼의 "가죽 장화", 대니얼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 카를 마이의 "사막 횡단", 스벤 헤딘의 모험담 등 평소 즐겼다는 모험 소설들도 여러 권 언급되는데, 이런 책들을 좀 더 분석하는 게 더 취지에 맞는 방향이 아니었을까요? 아울러 서재에 각종 추리 소설도 꽂혀 있었다는 증언이 있는데 과연 어떤 책이었을지 너무 궁금합니다. 최소한 제목 정도는 알려주었어야 했어요. 이것도 추리 소설 홀대의 하나인지 궁금하네요.

그래도 한 인물을 다른 각도로 들여다 보게 만드는 좋은 기회가 된다는 점에서는 추천작입니다. 취지에 딱 들어맞는다고 보기는 좀 어렵고, 신뢰성 측면에서도 다소 부족하지만 읽는 재미도 쏠쏠하니 히틀러에 대해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꼭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제 별점은 3.5점 입니다.

덧붙이자면, 책장이 소유자에 대해 대략 알 수 있게 해 준다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요새는 사람들이 정말 책을 안 사고, 안 읽는 시대죠. 모든 컨텐츠 소비가 스마트 폰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으니까요. 앞으로 수십년 뒤에는 "스마트 폰 로그로 분석한 누구누구" 와 같은 책이 나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2017/09/08

독서만담 - 박균호 : 별점 2.5점

독서만담 - 6점
박균호 지음/북바이북

국내의 애서가 박균호씨가 자신의 일상 및 그에 관련된 책을 하나씩 소개하는 독서 관련 에세이 모음집입니다. 이런저런 책도 몇 권 쓰셨고, 이런저런 수상도 하신걸 보면 이 쪽에서는 상당히 유명하신 분으로 보이네요. 인터넷 서점 알라딘의 책 소개를 보고 관심이 생겨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독서를 강요하거나 과시하지 않는 일상적인 이야기이면서도 유명 애서가, 독서가다운 내용이 가득해서 마음에 듭니다. 한국의 오카자키 다케시라고 하기에는 과장이지만, 충분한 내공은 느껴졌어요. 저 역시 독서가 취미라고 자부하고 있기에 공감가는 내용도 많았고요. 이미 절판된 책을 구하기 위한 피나는 노력이 대표적입니다. 제게도 몇몇 희귀본을 구하기 위해 온갖 인터넷 서핑은 물론, 발품까지 팔아가며 헌책방을 순례했던 과거가 있으니까요. 책을 보물처럼 다루는, 정신적 사랑을 하는 애서가와 책을 막 다루는 육체적 사랑을 하는 애서가가 있다는 분류법도 와 닿습니다. 저는 이 분류에 따르면 정신적 사랑을 하는 애서가 쪽인데, 최근 어린 제 딸이 제가 구입한 책을 마구 볼 때 가슴 한 켠이 아련해지곤 하합니다... 

재미난 정보도 많습니다. 그 중에서도 비자금 숨기기 용도로 책을 활용하는 방법이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당연히 책 속에 현금을 꽂아 놓는 방법이 등장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저자는 "사진집"을 사라고 조언합니다. 제 값 받고 쉽게 팔 수 있는, 환금성이 좋기 때문이라네요. 국내 사진가로는 김기찬의 작품, 해외는 마이클 케나의 사진집이 특히나 현금화하기 좋다고 소개해 줍니다. 이 정도면 진정한 꿀팁이겠지요.

저자의 일상 속 에피소드들도 재미있습니다. 일상 이야기가 결국 이런저런 책 이야기로 이어지는 전개도 일품이고요. 서적 버젼의 "오무라이스 잼잼"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에요. 학교 교사 시절 만났던 문제아 '정미소 왕자'와의 추격전이 "백마 탄 왕자들은 왜 그렇게 떠돌아다닐까"로 이어지는게 대표적인 예입니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휴게소에서 너무나 맛있는 오뎅을 먹었는데, 그 휴게소가 보면 볼 수록 기묘한 장소였다는 이야기에서 김갑수의 "나의 레종 데트르"로 이어지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대를 전혀 하지 않았는데 놀라움과 행운을 안겨다 준 책이라는 점에서 같다는 의미인데, 신선한 발상이에요.
이렇게 일상과 함께 소개되는 책들도 당연히 관심이 갈 수 밖에 없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책들과 더불어, 꼭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한 책은 아래와 같습니다.

  • 너무나 사랑해서 무덤까지 가져가고 싶은 한 권인 "숨어사는 외톨박이"
  • 고양이를 좋아한다면 피터 게더스의 "노튼 3부작"
  • 엘리엇 어윗의 사진집. 플립북 형태로 사진을 동영상처럼 감상할 수 있다고 함.
  • 이윤기의 소설 "하늘의 문". 언어의 연금술사라는 별명이 너무나 잘 어울리는 멋진 문장이 가득함.
이렇게는 꼭 구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읽고 좋아했던 책들 소개도 반갑습니다. 같은 책이지만 저자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를 엿볼 수 있는 좋은 기회도 되었고요. 예를 들면 "에이드리언 몰의 비밀일기"가 나름 영국 신자유주의 정책 부작용을 그린 뒷배경이 있다는 것은 처음 알았네요. 제가 읽은 것은 이십 여년 전이라 그 때는 그냥 웃고 넘기고 말았는데, 한 번 다시 읽어봐야 되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중반 이후부터는 아내와의 냉전을 다룬 이야기가 반복되어 많이 지루합니다. 초, 중반부까지의 독특한 시각과 발상도 별로 없고요. 조금 과장해서, 중반 이후는 한 개의 같은 이야기(냉전)를 가지고 소개하는 책만 바뀌는 느낌입니다. 아울러 뒤로 가면 갈 수록 책 보다는 일상 속 에피소드의 비중이 많다는 점도 아쉽습니다. 덕분에 책 소개도 중요 에피소드 정도에 그쳐서 얄팍합니다. 별다른 깊이를 느끼기 힘들어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단점이 없지는 않고, 중반 이후는 많이 뻔해지지만 취미가 독서인 애서가들을 위한 괜찮은 에세이집입니다. 가벼운 에세이를 좋아하신다면 한 번 읽어보셔도 좋겠습니다.

2020/02/22

추리소설 속 트릭의 비밀 - 에도가와 란포 / 박현석 : 별점 2.5점

추리소설 속 트릭의 비밀 - 6점
에도가와 란포 지음, 박현석 옮김/현인

일본의 추리 소설가 에도가와 란포의 전설적인 에세이입니다. 늦은 감은 있지만 드디어 출간되었네요. 오래 전 부터 존재를 알고 있던 책이기도 하고, 저 역시도 추리 소설(요리 중심이지만)에 관련된 에세이를 출간한 경험이 있기에 기쁜 마음으로 구입해 읽었습니다.

책은 1956년에 출간되었으며, 주로 1950년대 "환영성" 등 이런저런 잡지들에 기고했던 에세이들을 모아 놓은 구성입니다. 1953년, 에도가와 란포가 영미 탐정소설에서 예전부터 사용되던 트릭을 800여개 수집하여 쓴 "유형별 트릭 집성"이라는 글이 유래이며, 이 글로부터 여러가지 에세이들이 파생되어 이런저런 잡지들에 수록되었다고 하네요.

목차는 아래와 같습니다.

서 ―이 책의 탄생과정
1. 기발한 착상
2. 뜻밖의 범인
3. 흉기로써의 얼음
4. 특이한 흉기
5. 밀실 트릭
6. 은닉 방법에 관한 트릭
7. 프로버빌리티의 범죄
8. 얼굴 없는 시체
9. 변신 소망
10. 이상한 범죄동기
11. 탐정소설에 나타난 범죄심리
12. 암호기법의 종류
13. 마술과 탐정소설
14. 메이지의 지문 소설
15. 원시 법의학서와 탐정소설
16. 스릴에 대해서

각 주제별로, 에도가와 란포가 직접 이런저런 소설의 예를 충실히 들어가며 설명해 줍니다. 책의 특성 상 당연히 핵심 트릭이 까발려지고요. 노리즈키 린타로의 "나쁜 놈들은 추리 작가가 피를 토하는 노력 끝에 고안한 트릭을 쏙 빼다가 미스터리 가이드북이라는 이름으로 팔아먹는 녀석들이지. 이쯤 되면 기생충 수준이야."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그런 기생충같은 책인거지요.

그나마 다행인건 지금은 읽기 힘든, 오래전 잊혀진 작품들이거나 우리가 접하기 힘든 일본 고전들, 아니면 너무나도 유명한 작품이 많다는 것입니다. 에도가와 란포 자신의 작품 이야기도 많이 소개된다는 점에서는 약간의 면죄부를 줄 수 있지 않나 싶기도 하고요.
또 미스터리 가이드에서처럼 어떤 작품에서 어떤 트릭이 쓰였다고 명확하게 이야기해 주고 있지는 않습니다. 좀 두루뭉실, 애매하게 소개하고 있거든요. 뭐 그래도 알 사람은 다 알겠지만... 

그리고 거장이 쓴 책 답게, 단순히 트릭을 분류하여 정리하는 것에 그치지는 않습니다. 본인 스스로의 분석을 통해 깊이있는 식견을 보이는 글도 많아요. 마지막 16장인 "스릴에 대해서"가 좋은 예입니다. 스릴의 종류를 상세히 분류하여 이를 단계별로 설명하는 내용인데, 실로 이치에 맞고 설명도 적합하여 무릎을 치게 만듭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들을 예로 드는 것도 아주 좋았고요.

그러나 기대에 미치지 못한 글들도 제법 눈에 뜨입니다. 가장 큰 이유는 이 책이 처음 발표된 시점에서 60여년 이상 지난 탓이 가장 큽니다. 대표적인 예는 "이상한 범죄 동기"에서 결코 좋은 작품이라 할 수 없었던 "대통령의 미스터리"를 길게 설명하는 부분입니다. 이 책이 발표되었을 당시에는 일본에는 거의 읽어본 사람이 없는 책이라 특별히 소개했던 모양인데, 지금 상황에는 너무나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암호 기법의 종류"도 마찬가지로, 지금 읽기에는 다른 비슷한 책에 비하면 내용이 굉장히 부실한 편이에요. 메이지 시대 지문을 증거로 삼는 소설이 처음 등장했다는 역사적 사실만 소개하는 "메이지의 지문 소설"도 시대에 걸맞지 않은 이야기였고요.

아울러 하나의 트릭으로 완전히 자리잡은 서술 트릭이 빠져 있는 등, 현대적인 작품 속 최신 트릭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점도 문제입니다. 시대적으로 어쩔 수 없었더라도, 출판사나 후대의 작가가 증보판을 출간하는 선택지는 없었을까요? 제가 가끔 읽는 'oo의 지구사' 시리즈에 주영하 씨가 한국의 상황에 대해 수록한 글처럼, 다른 작가가 부록 형식으로 뒤에 최신 트렌드를 덧붙이는건 얼마든지 가능했을텐데 말이지요.

그 외에도 책의 완성도, 모양새 역시 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고 도판도 부실합니다. 또 책 속에서 소개된 작품이 국내에 출간되었는지 여부, 그리고 출간되었다면 무슨 제목으로, 어디에서 출간되었는지를 따로 소개해 주는 정도의 노력은 필요했어요. 어차피 추리 소설의 애호가들만 구입할 이런 류의 책에서는 필수적인 정보인데 여러모로 아쉽네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나름의 가치는 분명하나 여러모로 지금 읽기에는 낡은 결과물입니다. 책의 완성도도 부족하고요. 추리 소설의 대단한 애호가가 아니라면 구해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물론 추리 소설 애호가시라면 즐길 거리가 제법 되는 만큼, 한 번 읽어보셔도 나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게 누가 되었건, 누군가가 21세기에 걸맞게 내용을 수정하고 덧붙여 개정증보판 형식으로 재출간해 주면 더욱 좋겠습니다.

2017/12/03

독서광의 모험은 끝나지 않아! - 미카미 엔, 구라타 히데유키 / 남궁가윤 : 별점 2.5점

독서광의 모험은 끝나지 않아! - 6점
미카미 엔.구라타 히데유키 지음, 남궁가윤 옮김/북스피어

"비블리아 고서당" 시리즈의 작가 미카미 엔과 "R.O.D"의 작가 쿠라타 히데유키가 여러가지 책에 대해서 이야기한 대담을 모아놓은 책입니다. 얼마 전에도 읽었던 북스피어의 '박람강기' 프로젝트의 한 권이지요.
자연스러운 일상생활 속 대화같은 대담이 인상적입니다. '술집 옆자리에서 두 남자가 주고받는 대화를 귀 기울여 들었더니 꽤 재미있더라'는 책 뒤 소갯글 그대로의 내용이에요. 구라타 스스로도 북 가이드라고 할 수는 없다고 말하기도 하고요.

그런데 이런 시시콜콜한 대담까지 책으로 출간되는 일본 출판 시장이 부럽기도 하네요. 우리나라 같으면 팟캐스트나 유튜브 방송 정도로 소모되고 끝날 내용이거든요. 좋게 말하자면 읽기 쉽고 나름 재미도 있지만, 나쁘게 말하자면 그다지 깊이가 있거나 진지한 내용은 아닙니다.
그래도 독서광 작가들이 모여 수다를 떤 내용이라서, 독서광까지는 아니더라도 독서에 있어 명함을 내밀 정도는 되는 저로서는 여러모로 흥미로운 부분이 많았습니다. 순서대로 한 번 살펴볼까요?

우선 모던 호러가 주제인 수다에는 스티븐 킹, 딘 쿤츠, 클라이브 바커 등 익숙한 작가들의 이름이 많이 나옵니다.
다만 내용은 딱히 새롭지 않아요. 모던 호러라는 주제를 이야기하면 누구나 이야기할만한 내용이었거든요. 뛰어난 작품이라고 생각되지 않는 "롱 워크"를 극찬하는 등 저와 취향이 다른 탓도 크고요. 하지만 잭 케첨 소개는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구라타 히데유키 말에 따르면 "이웃집 소녀"는 구입한 그 날,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책을 다 읽지 않으면 오늘은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을 거야 라고 생각했을 정도라니 꼭 읽어 봐야 겠습니다. 마침 국내에 유일하게 소개되어 있기도 하고요. 그 외에도 소니빈 사건을 소재로 삼았다는 데뷔작 "비수기" 와 후일담 "더 우먼"도 굉장히 재미있을 것 같은데, 이 두 작품은 아쉽게도 국내에는 소개되지 않았네요.

요코미조 세이시와 에도가와 란포, 야마다 후타로를 소개하는 챕터는 너무 뻔하더군요. 다 알고 있는 내용이거든요. 그래도 딱 한 가지, 일본 초등학생이 읽기 힘들어했다는 토로는 색달랐지만요. 구라타 왈, 모르는 단어가 많이 나와서라고 하는데 저는 그런 인상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번역을 잘 한건지 아니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만큼 역사와 과거에 대해서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인지는 모르겠네요. 그냥 일본 초등학생보다는 제가 이해력이 좋기 때문인걸까요?
그래도 좋아한다고 언급하는 작품들이 대체로 저 역시 좋아하는 작품들이라 마음에 들었습니다. "백일홍 나무 아래" 만 빼고 말이죠. 그 외 작품으로는 읽어본 적 없는 식인 테마 작품인 "어둠에 꿈틀거리다"가 궁금했습니다. 국내 출간되었는지 찾아봐야겠군요.
그런데 갑자기 야마다 후타로와 "마계전생" 이야기로 넘어가는건 좀 당황스러웠습니다. 야마다 후타로의 대표작이라는 "인법첩" 시리즈도 영화, 만화로 접한게 전부라 딱히 수다에 공감하거나 이해할 내용도 별로 없었고요.

영화화된 작품 원작에 대한 수다는 가도카와 하루키가 이끌던 가도카와 문고와 영화 전성 시대에 국한되어 있습니다. 작가 시점에서 아카가와 지로를 나름 극찬하는 - 쉽게 대사를 쓴, 일종의 라이트 노벨 선구자라는 등 - 정도만 눈에 뜨일 뿐 특별한 것은 없습니다.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듯한 아카가와 지로가 쓴 크리쳐 호러 소설 "밤"이 그나마 궁금하지만, 최고 걸작이라는 "마리오네트의 덫" 수준을 미루어 본다면 구태여 읽어볼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좌절본은 읽다가 포기하거나 여러가지 이유로 아예 그 생각이 없었던 작품들에 대해 수다를 떠는 챕터로 보통은 어려운 책 - 커트 보니컷의 "제 5 도살장"이나 케플러의 "우주의 신비" 등 - 이거나 너무 길어 포기한 작품들이 대부분입니다. 100권이 넘는 "구인사가", 미완으로 끝났다는 일본의 시대소설 "대보살고개" 등이 그러합니다.
하지만 "제 5 도살장" 이 어렵다는 주장은 동의하기 어렵고 "삼국지" 나 "삼총사" 같이 재미도 있고, 읽기도 쉬운 작품이 좌절본에 포함되어 있는 등 제 생각과는 조금 달라서 의외였습니다. 미카미보다는 구라타 취향이 특히 그런데, 뭐 이런 것이야 말로 개인 취향이겠지요. 허나 오래전 작품이라 요새 취향과 맞지 않기 때문에 읽기 힘들다는 이유로 "반지의 제왕" 은 좌절본이다!라는 의견만큼은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입니다.

이런 류의 독서광들 수다라면 빼 놓을 수 없는 진귀한 책, 기이한 책이 이야기도 물론 들어가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정말 희귀 도서들보다는 재미있는 아이디어의 책들 소개가 더 인상적이었어요. 아와사카 쓰마오의 "산 자와 죽은 자 - 명탐정 요기 간지의 투시술" 이 대표적입니다. 모든 페이지가 16 페이지 단위로 봉해져 있어서 그대로 읽으면 25페이지 짜리 단편이지만, 다 읽고 봉한걸 풀면 새로운 장편 소설이 된다는 책으로 여러모로 신기했거든요.
우리나라에도 소개되다 만 게모노기 야세이의 만화 "Palm" 소개도 기억에 남습니다. 무려 30년간 이어진 연재의 설정을 초기에 확립하여 그대로 끌고갔다니 대단해요. 미카미 엔이 혀를 내두르며 감탄하는게 이해가 되더라고요. 국내에는 절판되어 말 그대로 진귀한 책이 되어버렸는데, 어떻게 다시 구해보고 싶어 지네요.

추억 속에 깊게 남은 인상적이었던 책도 언급하는데, 구라타를 독서가로 이끈 책은 "투명인간", "우주전쟁" 이라고 합니다. 덕분에 SF에 빠졌다가 미스터리로 관심이 이동한 전형적인 장르 애호가 루트를 밟았더군요. 또 다른 추억의 책은 폴란드 아동문학인 "크레크스 선생님의 학교"를 꼽았고요.
미카미 엔은 "마더 구스", 히노 히데시의 만화 "죠로쿠의 기묘한 병"를 이야기하는데 이 책들은 국내 소개되지 않았으니 잘 모르겠습니다. 그나마 미카미 엔이 소설을 쓰자고 마음먹은 계기가 되었다는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단편집 "에렌디라" 속 수록작인 "단순한 에렌디라 와 무정한 할머니의 믿을 수 없이 슬픈 이야기" 정도만 국내 출간되었을 뿐입니다. 마르케스 작품은 많이 읽어보지 못했는데 '일정한 틀의 캐릭터에서 빠져나온 뭔가를 소설에서 배운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라는 미카미의 말이 마음에 들기에 한 번 읽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저런 만화 이야기도 하는데, "블랙잭" 이야기에서는 확실히 두 사람의 깊은 내공이 느껴지더군요. 미카미 엔이야 블랙잭이 "비블리아 고서당" 시리즈 한 편에서도 소개되었으니 그렇다 쳐도, 그에 뒤지지 않는 구라타가 참 대단했습니다.
후지코 후지오 이야기는 제가 좋아하는 작가라 더 반가왔어요. "Utopia"도 아마 "비블리아 고서당" 에서 소개되었었죠? 개인적으로는 "만화의 길" 에서 접했기에 더욱 반가왔고요. 어차피 지금은 복간되어 구하기 그리 어렵지 않기는 하지만요. "모쟈코"와 "에스퍼 마미"는 개인적으로 좋아해서 언급되는게 기뻤습니다. 또 "유혈귀" 라는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의 내용을 상당히 길게 언급하는데 결말이 뭔지 궁금해 미칠 지경으로 만들어서 구해 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흡혈귀는 신인류고, 구인류는 선량한 신인류의 피를 흘리게 만드는 유혈귀였으며 결국 주인공도 신인류?가 되어 즐겁게 살아간다는, 발표 시기를 감안하면 굉장히 시대를 앞서간 호러물이더군요. "만화의 길" 에서는 데즈카 오사무, 이시노모리 쇼타로, 아카츠카 후지오 등 다른 거장들보다 못한 모습으로 그려지지만, 누가뭐래도 후지코 후지오 역시 뒤지지 않는 천재임에는 분명해요. 

그리고 소설가로 계속 활동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도 기억에 남습니다. 소설가가 되고 처음 안 사실은 계속 하는게 정말 어렵다는 점이라는군요. 지금까지의 인생에서 쌓아두었던 것을 토해내면 첫 번째 책은 어떻게든 모양은 갖출 수 있지만, 문제는 그 뒤로 세 번째, 네 번째 때 제대로 쓸 수 있는 사람만이 프로로서 해 나갈 수 있다는 말인데 여러가지 생각할 거리를 많이 전해줍니다. 데뷰작이 가장 좋은 작가들이 많은 이유도 마찬가지겠지요.

책을 사랑해서 벌어진 에피소드들도 이야기하는데, 주로 재미있는 책을 읽었을 때의 경험들에 대한 수다입니다. 미카미 엔이 코니 윌리스의 "항로" 라는 소설을 읽을 때, 절묘한 부분에서 상권이 끝났지만 한밤중이라 문을 연 서점이 없었다는 이야기처럼요. 저도 이런 경험이 몇 번 있습니다. "용오"의 복제 예수 에피소드 다음 권을 사기 위해 업무 중 홍대 앞 한양 문고로 뛰어갔던 적도 있고, "불멸의 용병" 이라는 해적판으로 접한 "베르세르크" 의 그리피스 편 다음을 읽기 위해 한 밤중에 도서대여점을 돌아다닌 적도 있으니까요.
페이지를 접거나 메모하는 행동에 대한 대화도 정말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 이야기같아 좋았습니다. 저는 둘 다 안합니다만. 책 때문에 담배를 끊고 심지어 하루에 라면 한 개로 버틴다는 이야기는 좀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지막의 베스트셀러는 왠지 꺼린다는 미카미와 구라타의 말도 공감이 갔습니다. 저도 좀 청개구리과라서, 인기가 있다고 하면 그냥 좀 싫거든요.

이렇게 다양한 책에 대한 수다가 장황하게 펼쳐지는데, 공감가는 이야기도 있고 동의하지 못하는 이야기도 있고, 재미있는 이야기도 있고 뭐 그렇습니다. 그래도 재미만 놓고보면 나쁘지는 않았어요. 별점은 2.5점입니다.

그러나 "탐정, 범죄, 미스터리의 간략한 역사" 리뷰에서 적었듯이, 수다 중 언급되는 작품들 중 국내 출간된 작품 정도는 조사하여 알려주었어야 했습니다. 하루도 안 걸렸을 것 같은데, 이 정도 수고도 하지 않는 이유를 도무지 모르겠네요.

2009/03/03

주석 달린 셜록 홈즈 1 - 아서 코난 도일 / 레슬리 S 클링거 주석 / 승영조 : 별점 4점

주석 달린 셜록 홈즈 1 - 8점
아서 코난 도일 원작, 레슬리 S. 클링거 주석, 승영조 옮김/북폴리오

드디어 완독했습니다. 1004쪽이라는 방대한 분량, 그리고 분량에 걸맞는 무게를 자랑하는 책이기에 읽는 것 자체가 좀 힘들더군요. 태어나서 읽은 책 중 두껍기로는 순위를 다툴 것 같습니다... 어쨌건 이 책은 명탐정의 대명사인 진퉁 고전 셜록 홈즈 시리즈 중 첫번째, 두번째 단편집인 "셜록 홈즈의 모험" 과 "셜록 홈즈의 회고록" 두개의 단편집에 더불어 작품별 상세한 주석, 관련 자료 등을 추가하여 편집한 책으로 두 단편집 모두 진작에 완독했지만 관련 자료가 워낙에 풍성해서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두 단편집이 제가 가장 좋아하는 셜록 홈즈 시리즈이기도 했고 말이죠.

일단 몇가지 아쉬운 점을 먼저 짚어 보자면, 일단 셜록 홈즈 작품을 접하지 않은 독자들에게는 불친절한 주석이 상당히 많은 편이었습니다. 초반에 범인을 밝혀 버리고 다른 작품 범인도 알려주는 주석이 많다는 것이 그러하고요, 또한 홈즈와 왓슨을 "실존인물"로 단정짓고 주석과 관련 자료를 첨부한 것도 읽다보면 좀 혼란스럽고 "그래서 뭐가 어쨌는데?" 라는 짜증이 날 정도로 너무 세세한 부분에서 별것 아닌 것을 가지고 설명하는 주석도 많더군요. 연구자나 셜록키언을 위한 책이니 감안해야겠지만 왓슨을 "제임스"라고 부른 것에 대한 방대한 논의 같은 것은 정말이지 필요없는 내용이 아니었나 싶어요. 제가 보기엔 그냥 작가의 실수일 뿐인데...
아울러 구입 당시에 먼저 이야기했던 종이질 같은 책의 완성도가 미흡한 것 역시 아쉬웠습니다. 종이질야이 그렇다 치더라도 책을 다 읽을때 쯤 되니 책의 무게 탓인지 제본이 끝부분에서 깨져 나가기 시작했거든요. 이럴거면 왜 이 두께로 냈는지 조차 의심스러워요. 차라리 여러권으로, 최소한 "모험"과 "회고록"을 나눠 2권으로 내 놓았어도 이런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을거 아닙니까? 두께 탓에 폼은 나지만 그 외의 보관, 휴대, 독서, 완성도는 모두 떨어집니다...

불만이 좀 길긴 한데 그래도 "돈 값은 한다" 는 것은 분명합니다. 물론 정가가 아니라 제가 구입한 금액인 17,800원일 때 만족도가 보다 상승하긴 하겠죠. 페이지당 약 17원밖에 안하는 저렴한 가격이 일단 매력적이니까요. 또한 작품들 모두 새롭게 번역되어 다른 판본들과는 다른 맛을 전해 줄 뿐 아니라 셜록 홈즈가 활약한 19세기 후반을 자세하게 설명하는 각종 도판 및 주석, 여러 셜록키언과 셜록 홈즈 연구자들의 짤막한 논문과 주장 등을 책 한권에서 셜록 홈즈 이야기 본편과 함께 만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행복한 일이었습니다. 또한 여러 연구자들이 셜록 홈즈 "정전 (이른바 카논)" 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시각으로 논하며 작품의 단점이나 불합리성을 지적한 부분, 고증에 대해 지적한 부분들은 추리소설을 창작하는 사람 입장에서 정말 눈여겨 볼 항목들이었고요. 예를 들자면 제가 최고 걸작이라 생각하고 있던 "붉은 머리 클럽"의 맹점 -"붉은 머리 클럽을 해산한 시점의 불합리성 / 은행에 보관한 금화의 불합리성 등" - 을 지적한 부분에서는 정말이지 무릎을 칠 만 하더군요.

그 외에도 홈즈 영상물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비롯하여 얼룩끈에 등장한 독사는 무엇이었나에 대한 연구나 홈즈와 왓슨의 권총 연구와 같은 작품에 관련된 셜록키언들의 갖가지 짤막한 논문들과 홈즈 연표까지 실려 있어서 거의 셜록 홈즈 백과사전이라 칭할만 합니다. (물론 나머지 2, 3권까지 갖춰야 진정한 백과사전으로서의 기능을 다 하겠지만요...) 덧붙여 대표적인 셜록키언, 셜록 홈즈 연구자로 추리소설가 도로시 L 세이어스, 도널드 녹스의 예가 등장하는 것도 이채롭고 제가 이미 구입해서 가지고 있는 베어링 굴드의 셜록 홈즈 평전이 비중있게 다루어지고 있는 것도 팬이자 소장자로서 기분좋은 일이기도 했고요. (이 책 헌책방에서 어렵게 구했더랬죠)

한마디로 "정전 (카논)" 에 대해 알고 싶은 모든 팬들은 반드시 구입해야 하는 책이 아닐까 싶네요. 별점은 5점 만점에 4점입니다. 팬으로서 이런 책이 존재하고 출간되었다는 것 자체가 반가운 일이니까요. 그래도 정가대로 2, 3권이 출간된다면 과연 구입하게 될 것인지는 심각하게 고민할 부분이긴 합니다.... 1권을 40% 할인 가격에 파는 것을 이미 봐 버렸으니....

2015/12/01

작은 책방, 우리 책 쫌 팝니다! - 백창화, 김병록 : 별점 1.5점

작은 책방, 우리 책 쫌 팝니다! - 4점
백창화.김병록 지음/남해의봄날

제 오랜 꿈 중 하나가 카리스마 헌책방 주인입니다. 뜨내기 손님이 들어와 책값 좀 깎아보겠다고 하면 "당신한테 내 책은 안 팔아!"라고 호방하게 외칠 수 있는 주인이요. 이 책은 이러한 저의 꿈과 맞물려 있는 듯 하여 호기심에 읽게 되었습니다. 

책은 충북 괴산에 귀촌한 후, 이른바 "가정식 서점"을 표방한 "숲속 작은 책방"을 연 부부가 쓴 자신들의 이야기에 더하여, 비슷하게 동네 서점을 표방한 책방들에 대한 조사와 인터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통영에 있는 것으로 유명한 작은 출판사 남해의 봄날에서 출간되었더군요.

그런데... 아쉽게도 딱히 도움이 되거나 인상적인 내용은 없었으며, 오히려 제 꿈이 현실적으로 무리라는 것만 느껴져 읽는 동안 답답하기만 했습니다. 별다른 아이디어(후술하겠지만 누구나 떠올릴 수 있는)없이 동네 서점이 중요하다, 이런 서점과 책방 하나쯤 동네에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제가 보기에는 전혀 아니올시다였거든요.
저는 1년에 약 백여 권의 책을 읽는, 취미가 "독서"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만, 동네에 책방이 없다고 아쉽거나 제 삶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물론 있으면 좋겠죠. 하지만 여기 나오는 것처럼 특정 주제에 집착하거나 카페처럼 만든 그런 곳이라면 오히려 제 취향과는 맞지 않을 듯 합니다. 저는 그냥 "책" 자체가 좋고 "책"만 많으면 됩니다. 이런 동네 서점보다는 조금 멀어도 교보문고, 혹은 동네 도서관이 훨씬 낫습니다.
설령 동네 서점이 있다손 치더라도 이 책에서 주장하듯 무슨 대단한 동네 문화 허브일 수도 없습니다. 가당치도 않지요. 

또 책 속에 등장하는 꿈같은 동네 서점, 즉 지역 주민들이 사랑하고 도와주는 서점은 한국이라는 현실에서 거의 불가능해 보입니다. 전세난으로 2년마다 이사 다니고, 학원과 직장에 치이는 인생에 무슨 동네 서점이랍니까. 그리고 이런 논리라면 옛 추억이 어린 동네 떡볶이집이나 오래된 어머니들 사랑방 역할의 미용실도 망하면 안 되겠지요.

그나마 등장하는 동네 서점들도 책만 팔아서 먹고살 수 있는, 서점 본연의 모습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 거의 없어 보여서 안타깝기만 했습니다. 특정 주제에 집중해서 골수 단골을 확보하는 전략이 그나마 가능성이 있지만, 동네 장사가 아니라 멀리 있는 손님이 일부러 발품 팔아 찾아올 정도라면 그 자체가 이미 "동네 서점"의 정의에서 벗어난 일종의 맛집 같은 관광 상품에 더 가까워진 것이니, 저자들의 주장과 완전히 배치되는 셈 아닐까 싶습니다. 소개된 서점들 중 다수가 홍대, 연남동 등에 터를 잡은 것도 결국 동네 서점이 아니라 관광지 핫 플레이스를 꿈꾼다는 증거라고 생각되네요.

게다가 책이나 정보는 인터넷으로 훨씬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세상입니다. 세상은 발전하는데 만들고자 하는 서점은 수십 년 전 스타일이라면 곤란하죠. 인터넷 서점은 기본적으로 정가의 10% 할인은 물론, 마일리지에 카드사 할인까지 더하면 거의 20% 할인된 가격에 책을 구입할 수 있습니다. 다양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이벤트는 덤이고요. 과연 경쟁이 될까요? 

이러한 답답함 외에도, 뒷부분의 귀촌 후 서점을 만들어 가는 과정 이야기는 책의 주제와 거의 상관없는, 일종의 DIY 및 인테리어 이야기라 실망스러웠고 전체적인 완성도와 디자인도 감점 요소입니다. 성격에 맞게 동네 서점 같은 편안하고 얌전한 디자인이 좋았을 텐데, 너무 튀고 산만한 느낌이었어요. 실려 있는 사진들도 그닥이었습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1.5점. 동네 책방들에 대해 여러모로 생각해보게 만들기는 했지만, 내용은 전문성이 부족하고 이야기도 왔다 갔다 해서 건질 건 없습니다. 동네 서점에는 미래가 없다는 기존 생각만 더 확고해졌다는 것 정도가 수확이랄까. 이 정도의 내용치고는 책값도 비싼 편이라 추천하기 어렵습니다.

그나저나, 소개된 서점 중 이 잔인한 자영업 사막화 국가에서 2년 뒤까지 얼마나 많은 서점이 살아남아 있을지 조금 궁금하긴 합니다.

덧 1 : 저자들 책방에 들어오면 꼭 책을 사야 한다는 일종의 강매 행위는 정말이지 마음에 들지 않더군요. 둘러보고 살 만한 게 없으면 그냥 나오는 거지,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생각이랍니까. 정착하여 삶을 꾸리는 데 큰 노력을 기울인 것을 날로 먹으려는 외지인들에게도 분명 문제가 있겠지만, 여기는 소매업을 하는 엄연한 가게잖아요? 관광지 비슷한 곳에 무언가 가게를 열면 당연히 받는 질문들인데, 서점만 예외가 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뭔가 서점, 책을 판다는 것에 선민 의식이 작용하고 있는 게 아닌가 의심스럽기까지 합니다.

덧 2 : "동네 서점"이 살아남기 위한 몇 가지 방안을 생각해보라고 할 때, 제가 떠올릴 수 있는 방법들과 이 책에 소개된 동네 서점을 해당 방법별로 분류한 것입니다. 역시나, 크게 별다를 건 없습니다.

1. 특이한 주제에 집중한다.

: 홍대 앞 땡스 북스 (디자인), 서울 마포 짐프리와 서대문구의 일단 멈춤 (여행), 연남동 책방 피노키오 (외국 동화), 일산 알모 (동화)

수요층이 확실한 디자인, 여행, 그리고 어른들을 위한 예쁜 책과 외국 동화들, 아동용 도서로 구분되는데 뻔하디 뻔한 발상이죠.

2. 카페와 결합한다

: 상암동 북바이북 (술 마시는 책방) 외

북카페야 흔하디흔하고 요즘은 그 유행마저 사라졌습니다. 그나마 (소개된 곳 중 유일하게!) "책맥"이라는 맥주 마시는 책방은 좀 신선했습니다. 허나 주객, 아니 주책이 전도된 게 아닌가 싶은데, 매출에서 맥주와 책의 비율이 궁금하네요.

3. 관광지와 결합한다

: 제주에 있는 책방들과 저자들의 "숲속 작은 책방"

역시나... 특별할 게 없어요.

4. 책은 물론 다양한 인문학적 교류가 있는 공간으로 만든다

: 부산 인디고 서원 외

서점이라는 공간에 대한 상식선 끝자락에 위치한 것이죠. 뻔할 뿐더러 이 정도면 동네 작은 책방의 범위를 넘어서는 듯 합니다.

5. 유명인이 참여한다

: 책에는 소개되지 않았지만 홍대 여신이라는 요조가 책방을 냈다죠?

6. 독립 출판물에 집중한다

: 서울 마포 유어마인드, 서촌 더북소사이어티

1번과 유사하지만 성격이 조금 다르므로 별개로 치겠습니다. 이거 하나만큼은 제가 생각하지 못한 신선한 것으로, 일본으로 따지면 동인지 전문 판매숍쯤 되어 보이네요. 독립 출판물만 판매해서는 매출이 나오지 않을 텐데, 수익 모델이 정확하게 무엇인지 조금 궁금합니다.

2020/05/01

무라카미 하루키의 100곡 - 구리하라 유이치로 / 문승준 : 별점 2.5점

무라카미 하루키의 100곡 - 6점
구리하라 유이치로 엮음, 문승준 옮김/내친구의서재

제목 그대로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이런 저런 곡들에 대해 해설해 주는 책입니다.
몇 년 전 "애프터 다크"를 읽었을 때, 이런저런 곡들이 무척 많이 소개되어 리뷰에 따로 적어놓았던 적이 있는데, 이런 책이 나올 정도로 다른 작품 역시 많은 곡들이 쓰였네요. 하긴, 대표작인 "노르웨이의 숲"은 제목부터가 비틀즈의 곡 제목일 정도이니 당연하겠지요? 책은 1960년대적 가치관 소멸을 상징한다는 1980년대 이후의 음악들 (주로 팝), 록, 팝, 클래식, 재즈의 5가지 장르로 하루키 작품 속 곡들을 분류하여 소개하고 있습니다. 

사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은 그렇게 많이 읽어본 편은 아닙니다. 그래서 아는 곡 역시 그리 많지 않았고요. 하지만 짤막한 해설들이 꽤 재미있어서 즐겁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당연히 아는 작품, 아는 곡의 경우는 더욱 반갑더군요.

특히 좋았던건, 곡이 특별한 '상징'이나 '메타포'로 사용된 경우와 그 의미에 대해 설명해 주는 부분들이었습니다. 냇 킹 콜이 불렀다는 'South of border' 소개가 대표적입니다. 노래 속의 이상향으로 등장하는 '멕시코'가 실재하지 않듯이, 이 노래를 냇 킹 콜이 부른 버젼도 실재하지 않고, 그래서 이 곡이 등장하는 장면은 비현실적이지만 이상하게 현실적인, 무라카미 하루키 특유의 판타지를 상징한다는데 이 정보를 알고 책을 읽으면 참 좋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거든요. 이런 부분은 팝 보다는 클래식, 재즈 쪽 소개에 많은 편입니다. 클래식은 저자의 전공 분야인듯 싶고, 재즈는 하루키가 소싯적, 재즈 카페를 운영했을 정도의 재즈 매니아인 덕분이겠지요.

특히 클래식은 곡 마다의 소개도 다른 장르에 비하면 비교적 긴 편이며 내용도 굉장히 충실합니다. 일례로, "태엽갑는 새" 1부의 부제인 "도둑까치"를 통해, 까치의 장난에 이리저리 휘둘리다가 마지막에 행복한 결말을 맞는 오페라 "도둑까치"와 작품의 내용이 연결되며, 각 부마다의 부제 모두 해당되는 오페라와 일맥상통한다는걸 알려주는 식입니다.
단지 곡 뿐만이 아니라, 누가 연주했는지에 따라 각 버젼별로 좋아하는 사람들의 캐릭터를 드러낸다는 디테일도 아주 좋았습니다. "해변의 카프카" 속 호시노가 듣고 반한 "베토벤 피아노 3중주 제 7번 대공"은 야샤 하이페츠 등 '백만불 트리오' 세 명이 조화따위는 무시하고 제멋대로 연주하는 버젼인데, 오시마 씨가 좋아하는건 앙상블에 주축을 둔 수크 트리오의 잘 정돈된 연주라는게 대표적이지요. 정말 아는만큼 보이는 것 같네요.

재즈의 경우는 곡 자체보다는 그 곡의 발표된 배경이나 연주자의 특징 등 좀 더 깊고 디테일한 정보를 작품과 엮었다는 점에서 상당한 깊이가 느껴집니다. 마일스 데이비스의 'A gal in calico'는 마일스 데이비스의 유명하지 않은 1950년대 (1955년) 앨범의 유명하지 않은 곡으로, 소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의 배경인 1970년대에서는 이미 잊혀진 앨범입니다. 때문에 이 앨범을 찾는 '나'의 모습은 '나'의 허영심과, 1970년대 은퇴 선언 후 칩거에 들어간 마일스 데이비스의 모습으로 결코 되돌아갈 수 없는 어떤 시대를 의미하기 위해 사용되었다고 해석합니다. 정말 작가의 의도인건지, 꿈보다 해몽이 좋은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용은 참 좋네요. 저도 음식과 추리 소설에 대한 책을 썼는데, 이런 내용을 많이 담고 싶었습니다. 잘 된 것 같지는 않지만요...

그 외에도, 하루키 작품과는 무관하지만 이런저런 재미있는 정보도 많습니다. 하루키 작품에서 유독 많이 등장했다는 보비 다린이라는 가수는, 이 책에서 소개한 가정사가 아주 놀라왔어요. 키워준 어머니가 사실은 외할머니이고, 누나가 친어머니였다는데, 하드보일드 막장 드라마에서나 봄 직한 설정이지요.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등 그 자신의 인생도 파란만장해서, 이 책에서 소개된 대표곡 'Beyond the sea'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된게 당연하다 싶네요.
 개인적으로는 듀란듀란과 보이 조지에 대한 신랄한 비평 - 특히 "댄스 댄스 댄스"에서 '끔찍하다'의 대명사처럼 인용되었다니 - 이 눈에 띄였습니다. 제 초등학생 때 좋아했던 밴드이고, 특히 컬쳐 클럽의 'Do You Really Want to Hurt Me'는 많이 들었던 곡이었기 때문이거든요. 진짜 팝 애호가라면 좋아하기 힘든 곡일 수는 있지만, 이렇게까지 신랄한 평을 들어야 할 밴드는 아닐텐데, 조금 슬펐습니다.

아는 가수와 곡으로는 밥 딜런, 비치 보이스 소개도 빼 놓을 수 없습니다. 밥 딜런이야 시대의 총아였으니 그렇다 쳐도, 비치 보이스는 좀 의외죠? 비치 보이스의 최고 명반인 'Pet sounds'의 일본 소개 당시 야마시타 타츠로가 라이너 노트를 썼다는 건 처음 알았는데, 정말 잘 어울린다 싶네요. 하지만 무라카미 하루키와 비치 보이스의 리더 브라이언 윌슨이 공통점이 느껴진다며 시작된 소개와 해설은 모두 동의하기는 어려웠습니다. 비치 보이스의 음악은 죽음, 상실과 연관되는 내용이 많다는데, 이는 밴드의 운명과 브라이언 윌슨의 생애와는 별로 관계없는 작가의 기호일 뿐이라 생각되니까요. 덧붙이자면, 개인적으로 비치 보이스의 곡에 관련된 작품으로는 도리 미키의 "크리스마스 이브"라는 단편이 최고라 생각합니다. 비치 보이스의 불운한 싱글인 'Child of winter'를 소재로 한 작품이에요. 비치 보이스의 크리스마스 앨범을 계기로 대학교 동창과 썸을 타는 관계가 되는데, 그녀는 다른 친구의 연인이 됩니다. 그 뒤 졸업을 앞 둔 겨울 방학의 어느날, 그녀가 자취방에 찾아오지만 나는 그녀를 내쫓습니다. 오해받기 싫다는 이유로요. 떠나면서 그녀는 "비치 보이스는 별로 좋아한게 아니었다..."는 말을 남기는, 83년도 단편입니다.

당연히 하루키 작품에 대한 소개, 평도 많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노르웨이의 숲"이 멋지게 마무리된건지는 잘 모르겠네요. 저는 사랑이 이루어졌는지, 아니 '나'의 미도리에 대한 마음이 사랑인지 아닌지도 모를 애매한 결말이었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죠.

하지만 하루키 작품 속 이런저런 곡들을 100곡 채우겠다! 는 의도가 지나친 나머지 무리한 부분도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보비 비의 'Rubber ball'에 대한 설명은 지나쳤어요. "1973"에서 이 노래가 1960년을 상징하는 것 처럼 - 1960년, 보비 비가 'Rubber ball'을 부른 해다' - 언급되지만, 1960년 최대의 히트곡은 다른 곡이라고 알려주죠. 이로써 객관적인 의미의 히트곡이 아니라 등장인물의 사적인 선곡을 단정적으로 말하는 것으로 이는 독자가 각자의 경험에 근거한 곡을 대체할 수 있도록 하여 공감의 회로가 발생한다는데, 설명도 무슨 이야기인지 잘 모르겠을 뿐더러, 이렇게 오타쿠, 매니아만 알 수 있는 기호가 어떻게 공감을 일으킨다는건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단순한 배경 음악에 지나지 않는 곡에 대한 침소봉대식 소개도 적지 않습니다. 이런 곡들은 그냥 제목, 아티스트만 소개하고 작품 소개 및 기타 주변적인 요소에 집중하는데 책의 취지에는 벗어나는 듯 하여 여러모로 별로였습니다. "춤추는 난쟁이" 속 프랭크 시나트라의 "Night and day'가 대표적이죠. 곡에 대해서는 정확한 정보도 없이 4줄 정도의 소개로 그치고, 나머지는 전부 작품에 대한 줄거리와 인용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정보 측면에서 나쁘지 않고, 작품 자체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는 설명도 적지 않지만, 그렇지 않은 내용도 절반 정도 됩니다. 설명도 곡의 장르에 따라 편차가 있는 편이고요. 무라카미 하루키 작품의 팬이라면 꼭 한 번 읽어보셔야 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조금 애매한 책입니다.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곡들이 궁금해서 유튜브에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었습니다. 모든 곡들의 연주자, 발표 버젼이 일치하는건 아닙니다만 대체로 비슷은 하니 궁금하신 분들은 들어보셔도 좋겠습니다. 링크는 여기 입니다.

2025/02/16

아틀라스 마이오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지도책 - 강민지 : 별점 2.5점

17세기 네덜란드에서 탄생한 "아틀라스 마이오르"는 역사상 가장 웅장하고 아름다운 지도책으로 평가받습니다. 당시 유럽 최고의 기술과 예술이 결합된 결과물로, 단순한 지도책을 넘어 예술 작품으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아틀라스 마이오르"가 어떻게 제작되었으며,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를 알려줍니다.

지도책을 단순한 지리학적 도구가 아니라, 인문학적, 역사적 맥락에서 깊이 있게 분석한다는게 가장 큰 장점입니다. 덕분에 예술, 인문학 서적이자 문화사, 미시사 서적 이라는 성격도 갖추고 있습니다. 지도책에 대한 다음과 같은 설명이 좋은 예입니다. '17세기 네덜란드는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해상 무역국이었으며, 높은 문해율과 학문을 숭상하는 분위기 속에서 서적과 인쇄물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습니다. 이러한 배경 덕분에 지도책은 단순한 실용적 목적을 넘어, 지식을 과시하는 하나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개인 도서 지관을 꾸려 장서를 자랑하는 문화가 퍼지면서 크기가 크고 값비싼 지도책이 인기를 끌었고, 이는 곧 출판 시장에서 고수익을 낼 수 있는 분야로 성장했습니다.'는 것이지요.

지도책 본연의 모습에 대한 소개도 충실합니다. "아틀라스 마이오르"를 중심으로 지도 제작의 발전 과정까지 폭넓게 조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르텔리우스(상업 지도책의 선구자), 메르카토르(현재도 사용되는 평면 도법의 창시자), 블라외 가문(아틀라스 마이오르 제작 명문 가문), 혼디우스 가문(블라외 가문의 라이벌) 등 지도 제작의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인물들이 등장하며, 이들과 이들의 대표작을 통해 지도책이 단순한 정보 전달 도구를 넘어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를 설명해 줍니다. 지도 제작과 출판의 흐름까지 자연스럽게 연결되면서, 한 권의 지도책을 탐구하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역사적 맥락을 함께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요.

책의 또 다른 장점은 지도 제작에 사용된 도판과 인쇄 기술에 대한 상세한 설명입니다. "아틀라스 마이오르"에 대한 방대한 양의 도판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당시 한국을 묘사한 지도가 포함된건 반가왔고요. 또한, 인쇄 방식과 채색 과정에 대한 설명도 흥미로운데, 컬러 인쇄 기술이 없던 시절 '채색사'라는 직업이 존재했다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이들이 단순한 흑백 인쇄물을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완성하는 데 기여했으니, 지금도 그 이름이 전해지는건 당연한 일이겠지요.

아울러 지도책을 단순한 과학적 산물이 아니라 미학적 관점에서도 연구 분석하는데, 그 깊이가 대단합니다. 지도 제작에 사용된 물감을 단순히 색채의 문제로 다루는 것이 아니라, 당시 네덜란드의 유행과 연결해 설명하며, 지도 속 도상(알레고리) 분석을 통해 지도책이 가진 상징적 의미를 해석하는 식이거든요. 특히 지도에 등장하는 문양과 장식 요소를 단순한 디자인이 아니라, 시대적 사고와 권력 관계를 반영하는 요소로 분석하는 과정은 지도책을 또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게 만듭니다.

그러나 "아틀라스 마이오르" 외의 불필요한 내용이 지나치게 많은 구성은 아쉽습니다. 지도책의 유행 이유나 지도 제작 역사를 설명하는 부분은 필수적인 정보지만, 당대 경쟁 지도 제작자의 지도까지 세세하게 다루고, 당시 네덜란드에서 유행하던 문화까지 지나치게 깊이 파고드는건 과했습니다. 특히 60페이지에 걸친 '도상(알레고리)' 설명은 지나쳤습니다. 지도책에 문양이 들어갔다고 해서, 문양의 구성 요소와 의미, 디자인 규칙까지 세세하게 독자가 이해할 필요는 없었으니까요.

도판도 풍성하지만, 내용을 확인하기에는 다소 작은 도판이 많은건 단점입니다. 주요한 도판은 접어 넣는 방식으로라도 보다 크게 확인할 수 있게 해 주었더라면 좋았을 것 같아요.

저자의 가벼운 문체도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저자의 개인적인 경험이나 최신 트렌드를 인용한 비유가 자주 등장하는데, 책의 분위기와 영 어울리지 않았던 탓입니다. 이런 표현은 어느 정도는 교열 과정에서 조정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지도책을 다룬 미시사, 예술사적인 측면에서는 가히 독보적인 결과물이라는건 분명합니다. 허나 지도책을 벗어난 이야기도 많기에 감점합니다. 

2017/03/10

북로우의 도둑들 - 트래비스 맥데이드 / 노상미 : 별점 4점

북로우의 도둑들 - 8점 트래비스 맥데이드 지음, 노상미 옮김/책세상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대공황 직후 약 1930년대까지)까지 기승을 부렸던 책 전문 절도범들, 그리고 그들을 잡아 넣기 위한 도서관 특별 수사관들의 활약을 그린 논픽션입니다. 제목의 북로우는 맨해튼 애스터 플레이스에서 유니언 스퀘어까지 죽 이어진 4번가의 여섯 블록을 의미합니다. 책들이 늘어선 거리, Book Row라는 말에 걸맞게 책방들이 꽉 들어차 있었다고 하네요. 도둑들은 북로우 일부 서적상들 및 그들이 지휘하는 도둑들(북 스카우트)을 의미하고요.

북로우에 터전을 잡고 활동하던 악덕 서적상 골드가 뉴욕 공공도서관 소장품인 에드거 앨런 포의 초판본 "알 아라프, 티무르" 초판본을 손에 넣은 뒤(정확하게는 골드 밑에서 북 스카우트로 일한 듀프리가 뉴욕 공공도서관에서 알 아라프, 티무르와 주홍 글씨 초판본, 백경 초판본을 훔친 뒤), 그를 잡기 위해 활약했던 공공도서관 특별 수사관 버그퀴스트의 노력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 외 다른 서적 절도 사건도 다수 언급되며, 희귀본 시장이 어떻게 커져갔는지와 그에 따라 도서관들이 어떻게 책 절도범들에게 노략질 대상이 되었는지에 대한 상세한 배경 설명도 함께 합니다.

책의 가장 큰 장점은 논픽션다운 디테일입니다. 특히 당대 책 절도에 대한 설명은 타의추종을 불허합니다. 책 절도는 대단한 기술이나 전략이 필요치 않다, 도서관과 사서들의 부주의 탓에 절도가 쉬웠다, 필요한 것이라곤 훔친 책을 집어 넣을 수 있는 커다란 코트와 가끔 가다 쫓길 경우 더 빨리 달릴 수 있는 다리 정도였다는, 시대를 연상케하는 언급부터 시작하여 책을 훔친 다음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 - 눈에 띄는 마크나 도장 제거 등 - 와 북 스카우트라고 불리운 도서관 책 절도범들과 책서점 주인이 손을 잡고 사업을 키워가는 과정이 상세하게 설명됩니다.
참고로, 이렇게 도서관 책 절도범이 기승을 부린 이유는 책 절도범을 잡더라도 치안판사들이 고소를 취하하는 등 심각하게 처벌하지 않은 탓이 크다고 하네요. 리스크는 적고 수익은 높아지니 많은 사람들이 뛰어든 것은 당연합니다. 우리네 사고 방식인 "책 도둑은 도둑이 아니다"라는 말과 서울대 출신 책도둑, 공시생 책도둑 등이 선처를 받고 훈방되었다는 뉴스가 떠오르네요.

도둑들을 잡기 위해 뉴욕 공공도서관 설립 된 후 특별 조사관으로 활동한 길야드, 버그퀴스트의 활약의 디테일도 못지 않습니다. 대표적인 것을 꼽아보면, 도서를 대출한 후 반납하지 않고 대출자가 사라진 사건이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길야드는 대출자가 살았던 우체국장에게 우편물을 전송하는 새 주소를 알려 달라고 요청했지만 거절당하자(개인정보 유출 방지 목적?), 옛 주소로 먹지 한 장을 숨긴 등기 서류를 보냈습니다. 등기 서류가 우체국에 도착하면 주소록이 고쳐질 것이라 생각하고, 봉투에 이사 간 곳의 새 주소가 쓰일 때까지 기다렸다가 발송 되기 전 회수한다는 전략이었지요.
버그퀴스트는 뭐니뭐니해도 핵심 이야기인 골드 체포 작전의 활약이 가장 눈부십니다. 수사 권한이 없었기에 함정 수사를 펼치는 등 노력도 눈물겹지만, 끝까지 노력해서 결국 골드에게 실형을 선고받게 만드는 결말이 아주 통쾌한 덕분입니다. 그것도 싱싱 교도소에 수감시켰던만큼, 기쁨이 더 컸을 것 같네요. 이 과정에서(인간의 갱생 가능성에 대해 낙관적 태도를 갖추고 있는) 버그퀴스트의 진심어린 설득에 넘어가 책 절도 박멸에 동참하는 구 절도범 마호니, 윔스와의 인연은 시대를 느끼게 해 주고요. "자네도 볼장 다 봤잖아. 우리 쪽으로 오지그래?" 같은 말이 자연스럽게 오가는, 의리물이 떠오르는 낭만적인 이야기였거든요. 그런 시대였던 것이지요. 
그러나 참고로, 후일담은 조금 씁쓸했습니다. 뻔뻔한 절도범 헤럴드, 절도 조직의 우두머리였던 골드와 스미스 등 악덕 서적상들 모두 범죄가 밝혀진 이후 짤막한 재판과 수형 생활을 거치고나서 다시 떵떵거리면서 살았다니까요. 그나마 골드 사건이 마무리되고 희귀본과 값진 책들은 도난 당하지 않도록 따로 분리해 이용을 엄격히 제한하게 되었으며, 책을 수집하던 사람들도 죽으면서 소장품과 희귀본을 도서관과 대학에 기증하는 사람이 많아져 시장 자체가 사라진 덕에 현재는 이런 류의 절도가 거의 없어졌다고 하니 다행일 뿐입니다. 최근은 도서관 시스템이 잘 되어 있어서 도서관에서 책을 훔치는 것도 많이 어려워졌지요.

그 외에도 다양한 희귀본 관련 재미있는 이야기도 가득합니다. 개인적으로는 포의 작품 관련 이야기들이 재미있었습니다. 뭉텅이로 팔린 책 더미에 "모르그가의 살인사건"이 처음으로 발표된, 표지가 떨어져 나가고 없는 그레이엄스 매거진이 포함되어 있었다던가, 가난하게 살던 노파가 근방 서적상 존 루미스 씨에게 옛날 책을 팔려다가 포의 첫 시집 "알 아라프"를 팔게 되었다는 등입니다.

이렇게 햇수로는 40 ~ 50년에 걸친, 방대하고 자세한 이야기가 펼쳐지고 등장 인물과 사건도 많지만 시대 순으로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으며, 내용도 재미있어서 쉽게 읽히는 멋진 책입니다. 잘 알지 못했던 20세기 초반 책 절도에 대한 지식도 상세하게 알 수 있고요. 
개인적으로는 헌책방을 돌아다니며 희귀본을 탐색하던 추억이 떠올라 더 공감이 갔습니다. 그때 구했던 책들 중 다수 - "점성술 살인사건", "불야성", "석양에 빛나는 감", "얼굴에 흩날리는 비", "내가 죽인 소녀" 등등등 - 거진 다 복간되어 이제는 의미가 없습니다만ㅡ 괜히 그 시절이 떠오르네요. 아 그립습니다.

다만 수사관들이 도둑들에 비하면 열세라 밀고 땡기는 맛이 부족하다는 점은 조금 아쉽습니다. 도둑들이 잘 먹고 잘 살았다는 후일담 역시 씁쓸한데 이 모두 실화에 기초한 만큼 어쩔 수 없는 부분겠지요. 논픽션을 좋아하시는 모든 분들께 추천드립니다. 별점은 4점입니다. 

2017/11/19

탐정, 범죄, 미스터리의 간략한 역사 - 엘러리 퀸 / 박진세 : 별점 1.5점

탐정, 범죄, 미스터리의 간략한 역사 - 4점
엘러리 퀸 지음, 박진세 옮김/북스피어

북스피어의 박람강기 프로젝트 일곱 번째 책입니다. 박람강기(博覽强記)는 국어사전 풀이로는 "여러 가지의 책을 널리 많이 읽고 기억을 잘함." 이라는 뜻으로, 북스피어에서는 장르 소설이 아니라 소설 외의 다른 책들을 이러한 이름으로 펴내고 있지요. 저도 이 중에서 작가의 수입, 지출에 대한 일종의 보고서인 "작가의 수지", 서간문집인 "나는 어떻게 글을 쓰게 되었나", 기행문인 "미야베 미유키 에도 산책"을 읽고 리뷰도 올린 적이 있습니다.

이 책 역시 박람강기 레이블로 출간된 책답게 추리 소설은 아닙니다. 엘러리 퀸이 추리 소설을 연대별로 구분하여 각 연대별로 걸작을 꼽은, 추리 소설의 큰 역사와 대표작을 소개하는 일종의 가이드 북이자 서지 정보 책입니다.

그러나 제목만 다를 뿐, 추리 소설 애호가들에게는 익히 잘 알려져 있는 "퀸의 정원"의 단순 번역본에 불과해서 아주 실망스러웠습니다. 제가 이전에 관련해서 글을 남긴 적이 있을 정도로 이미 이런 저런 곳에서 공개되어 있는 내용이거든요.

물론 저는 일본어 사이트로 접했고, 영어나 일본어를 못하는 독자분들께는 유용한 정보가 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정말로 의미가 있으려면 제가 링크한 일본 사이트처럼 국내에 번역되었는지, 어떤 작품이 수록되어 있는지, 간략한 내용이 무엇인지는 알려주었어야 했습니다. 대충 훝어보니 약 30권 정도만 국내 소개된 듯 한데 간단한 수고 만으로도 이 정도 정보는 제공해 줄 수 있었을 거에요.
한 마디로 돈 받고 파는 책이 공짜 일본 사이트보다 담고 있는 정보가 부실합니다. 이 정도 수고도 하지 않고 그냥 책을 출간한건 솔직히 이해가 되지 않아요. 지금 이 책을 읽어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우리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는, 희귀한 책을 소장하고 있다는 엘러리 퀸의 책 자랑 정도 밖에는 없습니다.

그나마 내용이라도 재미있다면 괜찮겠지만 선정된 125 편의 책 소개 대부분은 작가와 탐정 이야기가 전부입니다. 제일 궁금한 내용은 정작 알려주지 않으니 뭘 어쩌라는 건지 잘 모르겠어요. 스포일러를 방지하기 위한 목적이라면 완벽하게 성공하기는 했습니다만, 이래서야 이게 책 가이드로 의미가 있다고 보기는 힘듭니다.
또 이 책이 발표된 해는 1969년 증보판 기준으로 보아도 이미 50년 전이며, 선정 기준에 "역사적인 중요성"이 중요하게 작용합니다. 게다가 "단편" 이어야 한다는 기묘한 기준도 있기 때문에(아마도 잡지 EQMM의 홍보를 겸한 듯 싶어요) 국내에 소개되었다 하더라도 재미나 완성도 측면에서는 부족한게 많습니다. 제가 읽었던 잘레스키(자레스키) 왕자 시리즈 중 한편인 "오번 가문의 비극"이 대표적이지요. 도저히 눈 뜨고 보기 힘든 수준이었거든요. "아마추어 괴도"(래플스 시리즈)도 마찬가지고요. "뜀뛰는 개구리" 처럼 그 어떤 기준을 들이 대어도 추리 소설이라고 보기 어려운 작품도 선정되어 있는 것도 문제고요. 그래도 이 작품은 재미라도 있으니 좀 낫긴 하네요.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추리 애호가로서 한 번 읽어보고 싶었던 책이 번역되었다는 점 외에는 점수를 줄 만한 부분이 없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이유들에 더해 번역도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고요. 추리 소설 명작 리스트가 궁금하시다면 이런 것 같은, 인터넷에 여러가지 공개된 자료를 참고하시는 것이 훨씬 나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