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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26

적색의 수수께끼 - 나가사카 슈케이 외 / 김수현 : 별점 3점

적색의 수수께끼 - 6점
나가사카 슈케이 외 지음, 김수현 옮김/황금가지

에도가와 란포상을 수상한 작가들의 중단편 5편을 모아놓은 중단편선집입니다. 란포상을 탄 작품은 아니고요. 본격물과 스릴러, 모험물(?) 등 다양한 쟝르가 섞여 있습니다. 본격물은 ""밀실"을 만들어 드립니다" 한 편 뿐이고 "구로베의 큰 곰"은 산악 조난-모험물, "라이프 서포트"와 "가로"는 사회파를 계승한 듯한 일반인의 진상 탐구 추리물, "두개의 총구"는 스릴러입니다.

이 중 개인적으로는 "구로베의 큰 곰" 을 가장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정말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두근두근한 이야기였기 때문입니다. 그 외의 작품들도 재미있게 읽기는 했는데 수준의 편차는 있습니다. 
그래도 국내에서 그동안 접하기 힘들었던 작가들의 중단편을 맛볼 수 흔치 않은 기회였기 때문에 만족스러운 독서였습니다. "희고 긴 복도"의 가와다 야이치로의 작품을 다시 읽을 수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네요. 이런 것이 앤솔로지 단편집의 매력이겠죠.

비슷한 시리즈로 "청색의 수수께끼"도 있는데 읽어봐야겠습니다. 앞으로도 이러한 추리 단편선집의 출간이 계속되기를 바랍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밀실"을 만들어 드립니다 - 나가사카 슈케이
주인공 "나"는 추리소설가로 매주 수요일에 단골 카페 "사쿠"에서 열리는 추리 모임의 멤버. 어느날 "나"는 카페 모임의 주요 게스트인 "상복 부인"에게서 수수께끼 같은 메시지를 받고 뒤이어 벌어진 추리 모임에서 모임의 최 연장자인 회장의 밀실 재현극 해결에 고심한다. 결국 조수와도 같은 가출소녀 피노코의 도움으로 수수께끼를 해결하지만 회장의 밀실 살인 사건을 접하게 되는데...
정통 본격 추리물이면서도 140페이지 가까이되는 중편인데 수록작 중 가장 재미가 떨어집니다. 제목 그대로 "밀실"에 지나치게 집착한 듯한 작위적인 설정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밀실 수수께끼 자체는 재미있었고 마지막 사건의 트릭 자체는 괜찮았지만 여러 캐릭터들의 묘사는 진부했고 동기도 설득력이 없어요. 높은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그냥저냥한 작품이었습니다. 별 2개 정도?

구로베의 큰 곰 - 신포 유이치
구로베의 큰 곰이라 불리우는 나는 오래전의 사고를 계기로 산장지기를 맡아 외롭게 생활을 하고 있는 도중, 예전 자신의 사고와 같은 사고를 접하고 구조를 위해 출동한다.
산악 조난-모험물입니다. 주인공 야가미, 그리고 구로베의 큰곰 히누마를 오가는 시점의 변화가 인상적이었고 워낙 전개가 손에 땀을 쥐듯 긴장감을 전해다 주기에 정말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었던 작품이었습니다. 막판의 시점 변화를 통한 살짝의 반전도 괜찮았고요. 별 4개가 아깝지 않았습니다!

라이프 서포트 - 가와다 야이치로
의료사고 뒤 균형감각을 읽고 휴직중인 의사 요시토는 아르바이트 형식으로 한 부유한 시한부 인생 노부인 히토미의 주치의를 맡아 그녀의 딸을 찾기위한 여정에 동참한다.
가와다 야이치로의 작품으로 "희고 긴 복도" 처럼 역시나 의사가 주인공이지만 실제 내용은 예전에 가출하여 행방불명된 딸의 행방을 찾는 사회파적 구성을 많이 답습하고 있어서 특이했습니다. 120여 페이지에 걸쳐 제법 길게 여러가지 단서를 통해 딸을 찾아내는 과정은 꽤 현실적으로 그리고 있어서 읽는 재미는 충분하지만 사실 그 단서라는 것 들이 너무 뻔한 조사를 통해 이루어지기에 예전의 사립탐정을 통한 조사에서 밝혀내지 못한 것이 외려 미심쩍기도 했습니다. 앞뒤가 조금 안 맞는달까요? 또 막판의 급작스러운 전개는 너무 달려준거 아닌가 싶기도 했고요. 평작 수준의 작품이었습니다. 별 3개.

가로 - 신노 다케시
애인 노리코와의 다툼으로 거리를 배회하던 다쓰야는 급작스럽게 모르는 인물로부터 피습을 당한다. 그러나 그 인물의 자살 후 밝혀진 유서에 예전 원수를 죽이겠다는 표현 때문에 주간지 등에서 피습자인 다사카의 딸 지아키 살인 사건의 범인으로 몰리게 되고 결국 스스로 사건의 진상을 조사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의절한 아버지가 살고 있는 예전 고향 마을로 내려간다.
일단 설정 자체가 참 좋았습니다. 갑작스럽게 습격을 당했는데 습격한 인물의 유서를 통해 외려 피해자가 다른 사건의 가해자 처럼 인식된다는 이야기는 그 자체만으로도 재미있고, 미디어의 횡포를 잘 보여기도 하거든요. 그러나 그 이후 사건의 진상을 찾아가는 과정이 과거 의절한 아버지와의 추억담과 맞물리면서 그닥 마음에 들게 전개되지 못해서 아쉬웠습니다. 또한 지아키가 왜 다쓰야에게 관심을 가졌었는지에 대한 설명도 부족하고요. 뭐니뭐니해도 너무 큰 사건에 대한 주인공의 망각 자체는 설득력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리고 두개의 사건의 진범은 결국 밝히지 않고 끝나는 것도 개운치 못했습니다... 
초반 전개와 설정은 좋았는데 뒷부분이 영 껄끄러워 좋은 점수는 주기 힘드네요. 별점은 2.5점입니다.

두 개의 총구 - 다카노 가즈아키
거리에서 일어난 무차별 총기 난사사건의 범인과 같은 건물에 갇히게 된 청소 아르바이트 주인공은 살아남기 위한 사투를 벌이는데...
스릴러물입니다. 소수의 인물과 닫힌 공간에서의 살의를 다루었다는 점에서는 이전 읽었던 "고백" 과 유사합니다. 흔한 소재이긴 하지만, 이 작품은 나름의 긴장감을 영화와도 같은 구성으로 잘 그려내어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심리묘사도 좋았고요. 
그러나 범인이 "이중인격"이라는 점에 지나치게 집중하여 반전이 연속되는 결말부는 좀 뻔하기도 하고 시시하기도 했습니다. 차라리 우직한 스릴러로 밀어 붙였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네요. 별 3개 줍니다.

2015/11/21

W의 비극 - 나쓰키 시즈코 / 추지나 : 별점 2.5점

W의 비극 - 6점
나쓰키 시즈코 지음, 추지나 옮김/손안의책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의학 재벌 와츠지 가문의 딸 마코의 가정교사인 이치조 하루미는 마코의 박사학위 논문을 도와주기 위해 일족이 휴가를 보내는 후지 5대호, 야마나카 호반의 별장을 찾았다. 그러나 그날 밤, 비명 소리와 함께 와츠지 요헤의 시체가 발견되었다. 마코는 할아버지에게 강간당하기 전, 저항하다가 할아버지를 살해하고 말았다고 고백했다. 일족은 추문을 덮고 마코를 지키기 위해 외부에서 강도가 잠입했다고 진상을 조작하려 하는데...

나쓰키 시즈코의 대표작입니다. 오래전 절판본을 어렵게 구해서 읽었었는데, 고맙게도 재간되었더군요. 몇 년 전 일이긴 하지만 다시 읽게 되니 반가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좀 의외였습니다. 시간이 너무 많이 지나서일까요? 예전에는 상당한 수준의 작품이라 생각했는데, 지금 다시 읽어보니 그 정도는 아니더군요.

물론 아래의 "민법 제 891조 2항"에 기초한 설정과 진상은 여전히 괜찮습니다.

* 민법 제 891조 아래에 해당하는 자는 상속인이 될 수 없다.
2. 피상속인이 살해당했음을 알고 이를 고발하지 않거나 고소하지 않은 자. 단, 그자에게 시비를 변별할 능력이 없을 때나 살인범이 배우자 또는 직계 혈족이었을 때에는 예외로 한다.

유산 상속이 진짜 동기라는 사실을 숨기고 별장에 모인 일족과 관계자들이 사건을 은폐하려고 하는 것, 그리고 이 진상을 독자에게 교묘하게 숨기고 경찰과의 두뇌 싸움을 그린 도서 추리물로 착각하게 만드는 전개도 훌륭합니다. 부담스럽지 않은 분량에 후지 5대호 지방 중 아사히가오카 야마나카코촌을 무대로 여정 미스터리 분위기를 선보인 것도 좋고요.

하지만 민법 제 891조 2항의 존재가 300여 페이지의 분량 중 약 200페이지, 즉 2/3 지점에서 드러나는게 문제입니다. 그 이후 이야기는 예측 가능한 범위 안에서 흘러가며, 급격히 힘을 잃거든요. 이어지는 다쿠오의 조사로 '배우자 또는 직계 혈족은 예외'라는 점까지 밝혀지면서, 이 조항에 해당하지 않는 인물이 단 두 명만 남게 되어버리게 되어 더 뻔한 전개로 흐르고요.

게다가 마지막에 범인인 와츠지 미치히코와 이치조 하루미가 1:1로 담판을 짓는 장면은 실소를 자아냅니다. 오래된 서스펜스 드라마의 하이라이트같은 작위적인 전개의 끝판왕이었어요. 악당이 아무런 실익도 없이 진상을 고백하며 여주인공을 죽이려고 하는데, 그녀를 흠모하는 백마 탄 기사가 나타나 구해준다는건 지금은 멸종해버린 설정이라 생각되는데 말이지요. 이전까지 별다른 암시가 없던 하루미와 쇼헤이에게 갑작스레 연애 감정을 부여한 것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무엇보다도, 쇼헤이는 어떻게 하루미가 어디 있는지 알았을까요? 그것도 경찰보다 먼저요?

상황도 납득하기 힘듭니다. 와츠지 미치히코는 요시에만 잘 회유해서 입을 다물게 한 뒤, 마코의 단독 범행으로 계속 끌고 갈 수 있었습니다. 그가 진범이라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물증은 전혀 없고, 진상을 아는 사람도 요시에와 마코뿐이니까요. 버티기만 했다면 그의 승리는 거의 확실했습니다. 그런데도 하루미를 납치해 살해하려 하다니, 어처구니없습니다.

요시에가 쇼헤이를 유혹하려는 시도 역시 전혀 납득되지 않았습니다. 누군가(하루미)가 엿듣고 있다는 전제에서나 성립하는 작전이기 때문입니다. 마코의 뒤에 있는 인물이 미치히코나 요시에밖에 없다는 점에서 독자의 시선을 요시에 쪽으로 강제로 돌리려는 장치라는 건 알겠지만, 좀 더 설득력 있는 방법이 필요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핵심 설정만큼은 지금 읽어도 충분히 가치 있는 멋진 아이디어지만, 전개가 뻔하고 마무리도 작위적이어서 좋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네요. 예전의 호평에는 절판본을 어렵게 구해서 읽었다는 개인적 감상이 많이 작용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덧붙이자면 예전에 읽었던 모 단편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일족이 모인 파티에서 유이한 두 외부인 중 한 명이 살해당하자, 일족은 다른 한 명을 범인으로 만들려 한다는 서늘한 작품이었지요. 이 작품처럼 제가 와츠지 일족의 일원으로 현장에 있었다면, 이치조 하루미를 범인으로 만들었을 것입니다. 그녀가 와츠지 요헤가 여자를 밝힌다는 소문을 듣고 유혹하려 했다가, 요헤의 모욕적인 거절에 격분해 살해했다. 하지만 요헤의 반격에 함께 죽게 됐다는 시나리오, 제법 그럴듯하지 않나요?

2026/04/18

장송의 프리렌 : season 2 (2026) - 키타가와 토모야 : 별점 4점

넷플릭스를 통해 감상했습니다. 모두 10화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Season2는 거대한 목표를 향해 쉼 없이 달려가는 구성이라기보다는, 각 화가 비교적 독립적으로 완결되는 형식에 가까운 흐름을 보여주는게 특징입니다. 긴 호흡의 대서사 대신 에피소드별로 잔잔하게 여운을 남기는 방식으로 이어지거든요. 특히 프리렌이라는 작품의 핵심인 '과거의 모험을 현재의 시간 위에서 천천히 되짚는다'는 테마를 이야기 전체에 자연스럽게 녹이고 있어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예전에 만났던 사람들과 마을, 예전에 접했던 풍경들, 예전에 함께 보냈던 순간들에 대한 기억이 현재의 만남과 사건을 통해 다시 의미를 얻게 되는데, 화려한 사건이 부각되지는 않지만 그야말로 힐링물로서의 매력을 잘 드러내 줍니다.

그렇다고 해서 마냥 잔잔한 것만은 아닙니다. 웃음을 섞는 타이밍이 좋고, 인물들 사이의 관계에서 나오는 소소한 재미도 살아 있으며, 필요할 때는 액션의 밀도도 충분히 끌어올리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액션 쪽에서의 만족도도 높습니다. 이번 시즌의 핵심인 마족 "신기의 레볼테"와 맞서는 에피소드는 비교적 긴 호흡으로 전개되는데, 묵직하고 진지한 전투 연출에 더해 캐릭터들의 협력 구도가 돋보였습니다. 그 중에서도 슈타르크와 게나우가 연계하여 레볼테와 싸우는 장면은 이번 시즌의 백미라고 부를 만합니다. 각자의 역할이 분명하게 살아 있으면서도 움직임과 타이밍이 잘 맞물린 연출로 마지막 순간까지 긴박감을 자아내기 때문입니다. 

그 외, 주제가도 좋고 작화도 안정적인 등 단점을 찾기 어려운 좋은 작품인데, 아쉬운 점을 굳이 꼽자면 여행, 모험에 대한 목적 의식이 다소 흐릿하게 느껴진다는 점 정도입니다. 게다가 잔잔하기까지 해서 긴 이야기 중간의 쉬어가는 부분의 이야기라는 느낌이 드네요. 다만 이건 단점이라기보다는, 본래 이 작품 특징에서 비롯된 셈이라서 불만은 아닙니다. 

그래서 별점은 4점입니다. 이 분위기를 이어서 다음 시즌이 더 빨리 나와 주기 바랍니다.

2005/06/25

침대특급살인사건 - 니시무라 교타로 / 윤정규 : 별점 2.5점

침대특급살인사건 - 6점
西村京太郞 지음/추리문학사

총기사고로 면직된 전직 경찰 다나베가 사립탐정 업무를 시작한 뒤 어느 날, 한 부인이 자신의 임신한 딸을 에스코트해 줄 것을 의뢰했다. 그는 부인의 딸 유미꼬와 같이 오사카에서 사세베까지의 여행을 떠났지만 그가 의뢰를 완수한 직후, 공갈범 전과가 있는 기구찌 이사오가 살해당했고 피해자의 책상 서랍에서 다나베가 에스코트 의뢰를 수락한 뒤 작성했던 영수증이 발견되었다. 경찰은 영수증을 확보한 뒤 전직 경찰관 다나베가 기구찌를 협박한 증거로 삼아 다나베를 검거했다.
 다나베는 사건 당일 사세베까지의 여행했다는 알리바이를 증명하기 위해 후미꼬와 유미꼬 모녀에게 증언을 요구했지만 모녀는 다나베를 모르는 사람으로, 오히려 유미꼬를 귀찮게 쫓아 다니던 파렴치한으로 몰아갔다. 다나베에게 걸린 혐의는 점점 깊어지던 와중에, 과거 다나베의 상사였던 도쿄 경찰청 수사 1과의 토츠가와 경부가 옛 부하를 구해주기 위해 사건에 뛰어드는데... 

여정 미스터리의 달인이라는 니시무라 교타로의 작품입니다. 기차 시간표 트릭이라는 전통적 소재를 등장시킨 대표작을 작가별로 따져본다면 마츠모토 세이쵸에게는 "점과 선"이, 모리무라 세이이치에게는 "신간센 살인사건"이 있고 니시무라 교타로에게는 이 작품이 있는 것이겠죠. 예전에 읽었었지만 책을 정리하다가 우연히 눈에 띄어 다시 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하네요. 분명 예전 처음 읽었을 때에는 괜찮았었는데 지금 다시 읽으니 장점보다는 단점이 더 눈에 많이 띄거든요. 물론 장점도 존재합니다. 저자가 기차 시간표를 늘어놓고 알리바이를 구상하는 장면이 상상될 정도로 소설의 가장 중요한 트릭인 기차 시간표 트릭은 아주 괜찮고, 모녀에 의해 다나베가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 쓰고 궁지에 몰리게 되는 상황은 꽤 치밀해서 설득력이 높거든요. 아이리쉬의 "환상의 여인"을 연상케 하는 재미도 느껴졌고요.
토츠카와 경부가 직접 발로 뛰면서 수사하여 오로지 사건 해결에만 집중하는 전개도 마음에 든 점입니다. 약간 사회파스러운 분위기로 불필요한 묘사가 거의 없다는 점도 장점이고요.

굉장한 악녀들인 두 모녀의 설정은 정말이지 최고입니다. 과거의 불우한 경험때문에 돈에 대한 엄청난 집착과 인간성이 상실되었다는 점에서 미야베 미유키의 "화차"가 떠오르는데, 훨씬 앞선 시기에 손에 잡힐 듯 그려내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하고 싶네요. 

그러나 단점도 너무 명확합니다. 우선 어수룩한 사립탐정을 범인으로 몰기 위해 치밀한 공작을 하는 모녀가 그 사립탐정이 전직 경찰관이라는 사실을 간과한다는 점은 납득하기 어려워요. 이 때문에 그가 예전에 근무했던 도쿄 경찰이 사건에 뛰어들며, 이후 범행 사실이 쉽게 발각되는 이유가 되어 버리거든요. 작전의 핵심은 마나베를 옭아매는 것이었고 그것을 위해 치밀한 사전 조사와 준비까지 했는데도 불구하고 그의 전직을 몰랐다는 것이 말이 될까요?
기구찌 이사오와 모녀와의 관계도 조금만 조사하면 쉽게 드러나는 동기가 있고, 결국 밝혀진 동기와 과거 때문에 다른 살인 사건들마저 발각된다는 것도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로 허술합니다.

또 관련자들을 전부 죽이다보니 이래저래 너무 많이 죽이게 되는데, 모녀가 살인을 통해 어느 정도 이상의 재력을 손에 넣었다면 청부 살인쪽을 고려하는게 당연합니다. 복잡한 알리바이 트릭을 써가며 몸으로 직접 해결한다는건 납득하기 어려워요. 누군가를 시킨다면 그 누군가의 입을 막아야 할 필요가 생길 수 있다는 현실적인 이유가 있었을지 모르지만요. 

덧붙이자면 기차 시간표 트릭 자체는 괜찮긴 한데 결국 기차를 경찰관들이 "한번만" 타 보고 바로 진상을 꿰뚫는다는 점에서는 좀 허무하더군요. 개인적으로는 소설에 나오는 27분 밖에 없는 시간의 갭이 살인을 저지르고 돌아오기에 별로 여유가 있어 보이지 않았다는 것도 약점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입니다. 번역도 깔끔하고 어느정도 재미도 있지만 저자가 알리바이 트릭을 먼저 개발(?)하고 그 이후에 플롯을 가져다 붙인 듯한 어색함도 느껴지는, 범작 수준에 머무른 작품입니다. 허나 이런 정통 기차 시간표 트릭의 교과서적인 작품임에는 분명한 만큼 이쪽 장르물에 관심이 있다면 한번쯤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네요.

2021/09/03

리처드 매시슨 - 리처드 매시슨 / 최필원 : 별점 3점

리처드 매시슨 - 6점
리처드 매시슨 지음, 최필원 옮김/현대문학

호러, 장르 문학의 거장인 리처드 매시슨의 걸작선. 이전 '리처드 매드슨'이라는 이름으로 소개되었던 단편집은 거의 모두 읽어볼 정도로 좋아하는 작가라 기쁜 마음으로 구입해서 읽어보았습니다.

수록작들 대부분이 좋은 작품들이라 만족스러웠습니다. 무려 33편이나 되는 볼륨도 풍성하고요. SF, 호러, 범죄물, 드라마, 서스펜스 스릴러, 심지어 서부극까지 아우르는 장르적인 스펙트럼도 엄청나게 넓습니다. 전부 걸작이라고 보기는 힘들지만, 별점 5점, 4.5점, 4점의 걸작과 수작도 포함되어 있기에 전체 평균한 별점은 3점입니다.

작품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읽으시기 전 참고하세요.

그나저나 무슨 기준으로 선정된 작품들인지는 궁금하네요. 작가가 직접 선정한 것 같지는 않은데 말이지요. 이전에 읽었던 작품 중 분명 걸작이라고 생각했던 작품이 빠져있기도 하거든요.

"남자와 여자에게서 태어나다" 

흉칙한 무언가가 부모님에 의해 지하실에 쇠사슬에 묶여 갇혀 산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2021년에 읽기에는 많이 뻔합니다. 괴물이 다음 번에는 지하실에서 탈출해서 사람들을 덮친다는 여운을 남기지만, 명확한 결말이 더 낫지않나 생각되고요. 별점은 2점입니다.

"사냥감" 

아멜리아는 애인에게 줄 선물로 기묘한 인형을 샀다. 인형을 구속한다는 금줄이 풀리자, 인형은 아멜리아를 죽이기 위한 공격을 시작하는데...

예전에 읽었던 작품입니다. 일종의 크리쳐물로 20cm밖에 안되는 나무 인형과 사투를 벌이는 묘사가 압권이에요. 시대가 흘렀어도 여전히 멋집니다. 

하지만 결말과 담고 있는 주제가 제 기억과 사뭇 달라서 의외였습니다. 아멜리아가 처참하게 희생된다고 기억하고 있었는데, 아멜리아가 인형을 처단한 뒤, 스스로 사냥꾼이 되어 어머니를 죽이게 된다는 결말이더라고요. 착각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기억과 달라서 더 재미있게 읽은 것 같아요.

예전에는 미처 깨닫지 못했었던 사회적인 메시지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미 장성해서 독립한 자녀를 구속하는게 살의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는 겁니다. 시사적이면서도 대가족에서 핵가족으로 넘어가던 시기였을 발표 시점에는 충분히 공포스러웠을 시의적절한 메시지였다 생각되네요. 이런 메시지를 돌직구로, 매력적으로 한 가운데 꽂아넣는 작가의 솜씨도 대단하고요.

단, 결말에서 어머니를 죽일 결심을 한 아멜리아가 문의 빗장을 쉽게 연 건 좀 안일했습니다. 인형에게서 도망칠 때에는 여러번 실패했던 걸로 묘사되니까요. 그래도 단점은 사소합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사회파' 크리쳐 호러라는 신경지를 장르 문학 초창기에 개척한 명작입니다.

"마녀 전쟁"

군에서 키우는 일곱 마녀가 쳐들어오는 적군을 마법으로 물리친다는 이야기로, 마녀들이 각자 특기로 소환한 불과 물, 거대한 암석, 사자 등으로 적을 잔혹하게 몰살시키는 묘사가 내용의 전부입니다. 단지 이런 파괴적인 묘사를 쓰고 싶었던게 아닌가 싶어요. 이외에는 기승전결이 있지도 않으니까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그래도 파괴 묘사만큼은 확실히 볼 만 합니다. 예전에 읽었던 판본보다 번역이 훨씬 좋은 덕분이지요. 약간 일본 만화나 애니메이션 느낌도 드는데, 이런 설정으로 애니메이션을 제작해도 괜찮지 않을까 싶군요.

"깔끔한 집" 

소설가인 나는 아내 루시와 함께 굉장히 저렴한 아파트로 이사왔다. 하지만 얼마 뒤, 아내는 아파트 지하실에 거대한 엔진이 있고, 관리인은 뒷통수에 눈이 달려있다는 말을 하면서 공포에 사로잡혔다. 나는 처음에는 아내의 말을 믿지 않았지만, 관리인을 미행하여 이 모든게 사실이라는걸 알게 되었다. 친한 이웃 필, 마지 부부에게 이 사실을 알린 뒤 함께 아파트가 이륙을 준비할 때 탈출에 성공하는데....

아파트가 로켓이라는 기상천외한 발상, 그리고 마지가 미치지 않았을까?라는 분위기를 풍기다가 그녀가 말했던게 모두 사실이라는게 드러나는 전개가 아주 일품이었던 SF 단편입니다. 서스펜스가 뭔지 제대로 보여줍니다. 아파트가 아니라 사실은 블록 전체가 우주선이라서 탈출이 불가능했다는 반전도 인상적이었고요. 외계인들이 지구인을 침략하는게 아니라 "빼앗는다"는 점에서는 "보디스내쳐"가 연상되기도 하네요.

독특한 설정, 아이디어와 함께 전개에서 긴장감과 흥미를 동시에 불러 일으키는, 작가의 장점이 잘 드러난 걸작입니다. 별점은 5점입니다.

"피의 아들" 

기묘한 아이 쥴스는 드라큘라가 되고 싶다는 망상에 빠졌다. 쥴스는 학교도 그만두고 배회하다가 동물원에서 흡혈 박쥐를 훔쳐내는데...

꽁트에 가까운 짤막한 단편으로, 분량과 흡혈 박쥐가 진짜 드라큘라였다는 반전으로 전형적인 '쇼트쇼트' 물로 생각됩니다. 하지만 반전은 뜬금없었고, 리처드 매시슨 특유의 긴장감 넘치는 묘사는 찾아보기 힘든 탓에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듭니다. 이야기에 대한 설명도 턱없이 부족합니다. 현재 이야기는 쥴스가 정신병자인지, 진짜 흡혈귀와 관련이 있는지도 잘 모르겠더라고요. 별점은 1.5점입니다.

"뜻이 있는 곳에" 

나는 잠에서 깬 뒤, 관에 갖혀있다는걸 알게 되었다. 이게 적들의 수작이라고 믿은 나는, 관을 탈출하기 위한 갖은 노력 끝에 결국 관 뚜껑을 부수고 탈출하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주유소에서 아내에게 전화를 거는데...

'나'가 관에서 탈출하기 위한 노력이 작가 특유의 긴장감 넘치는 묘사로 잘 그려져 있을 뿐 아니라, '나'는 이미 7개월 전 죽었고, 거울로 본 '나'는 썩은 시체였다는 반전이 굉장히 좋았던 작품입니다. "환상특급" 등의 원작으로도 잘 어울릴 이야기가 아닐까 싶어요. 1인칭에서 3인칭으로 시점 전환되는, 그래서 거울 속 모습에 좀비가 보이는 식의 카메라 워크가 곁들여지면 아주 멋지지 않았을까요?

재미와 충격 외에는 설명이 부족하다는 단점이 있기는 하나 사소합니다. 얼마 전 읽었었던 좀비물 앤솔러지에 수록되었던, 흔해빠지고 수준 이하였던 작품들 보다는 몇 배 뛰어난 작품입니다. 별점은 4점입니다.

"사막 카페"

밥과 진 부부는 여행 중 우연히 사막에 위치한 카페에 들렸다. 진이 잠깐 화장실에 다녀온 사이, 밥이 사라져 버리고 마는데...

외딴 마을에서 맞이한, 남편 밥의 실종과 그에 따른 위기 의식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서스펜스 스릴러입니다. 

여행하던 외지인이 외딴 마을에서 겪는 위기를 그린 작품은 많습니다. 저도 많이 읽어보았고요. 이전 스티븐 킹의 "밴드가 엄청 많더군" 리뷰에서 언급했던 적도 있는데, 보통은 외딴 마을의 기묘한 집단 광기를 그리곤 하지요. 그러나 이 작품은 단순한 범죄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정통 범죄물로, 궁지에 몰린 피해자 진의 심리 묘사를 통해 순수한 공포, 서스펜스를 극대화한다는 점이 차이점입니다.

희생자를 화장실에서 납치하는 것에 불과한 단순한 범죄인데다가, 보안관 등장 후 별다른 위기없이 깔끔하게 해결된다는 건 조금 아쉽지만 단점은 사소할 뿐입니다. 장르물이 주어야 할 요소가 무엇인지를 꿰뚫고 제대로 달려주는 수작이기에 별점은 4점입니다.

"위조지폐"

생계에 지쳐 일탈을 꿈꾸던 윌리엄 O. 쿡씨는 복제인간을 만드는 장치를 개발합니다. 복제인간에게 온갖 귀찮은 일을 시키고 자신은 놀 생각으로요. 그러나 쿡씨의 복제인간답게, 복제인간도 놀고 싶어해서 결국 복제인간이 급증하게 된다는 블랙 코미디 콩트입니다. 전형적인 쇼트쇼트 물이기도 하고요. 설정은 재미있는데 기계가 폭발하고 복제인간이 그냥 사라져 버렸다는 결말은 시시했습니다. 뭔가 반전이 있었더라면 좋지 않았을까 싶어요. 별점은 2점입니다.

"유령선" 

로스 선장과 메이슨, 미키는 외계 행성에 착륙했다. 우연히 목격한 인공물의 정체를 알아내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들이 추락한 우주선으로 밝혀진 인공물 속에서 발견한 건, 그들 세 명의 시체였다...

일행들이 자기들의 시체를 목격하고 느끼는 공포와 현재 상황에 대해 어떻게든 합리적으로 설명하려는 노력이 잘 그려진 SF 단편입니다. 

그러나 자기 시체를 발견한 사람이, 자기는 이미 죽었고 시체를 바라보는 자신은 유령이라는 걸 깨닫는다는 결말은, 발표 당시였다면 모를까 지금 읽기에는 다소 낡은 설정입니다. 제목부터가 스포일러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시체의 춤" 

대학 신입생 페기는 나쁜 선배들에게 이끌려 법적으로 금지된 루피 춤을 보러 갔다가 충격에 기절하고 마는데...

세기말 감성이 살아있는 독특한 SF. 예전에 읽었던 작품인데, 그 때와 평가는 거의 동일합니다. 페기 시점으로 묘사된 광란의 루피 춤 공연 묘사는 아주 좋습니다. 순진한 신입생이 거부하고 싶은 방탕과 쾌락도 끔찍하게, 그러면서도 잘 그려내고 있고요. 일종의 좀비인 루피 바이러스 희생자의 발작을 '춤'이라고 이름 붙여 공연한다는 끔찍한 아이디어도 돋보였습니다.

그러나 페기도 잘 노는 친구들과 어울리다가 방탕함에 빠져버린다는 듯한 결말은 별로였습니다. 이 결말이 루피 춤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도 잘 모르겠고요. 페기가 루피 바이러스 희생자가 되었다던가, 같은 반전이 필요했습니다. 지금의 결과물만 놓고 보면, '호기심으로 좀비를 보러 갔다 왔다. 무서웠다." 정도의 이야기일 뿐이니까요. 별점은 2점입니다.

"몽둥이를 든 남자" 

타임스퀘어에 온 몸이 털로 덮이고 몽둥이를 든 원시인 같은 남자가 나타났다. 출동한 경찰이 총을 쏴서 겨우 원시인을 제압했다.

조금 무식하고 무례한 젊은 마초 양아치 1인칭 대화체로 진행되는 이야기인데 화자 설정도 진부했고, 결말도 뻔했습니다. 핵심은 원시인이 온 곳이 '미래'였을 수도 있다는 건데, 미래에 문명이 퇴화할 거라는 설정의 이야기는 고전 "타임머신"을 비롯해서 너무 많으니까요. 조금 지적인 노인네를 '빨갱이'라고 지칭하는 부분에서 시대가 느껴지기는 했지만 다른 부분은 딱히 건질게 없더군요. 별점은 1.5점입니다.

"버튼, 버튼" 

영화까지 나왔던 작가의 대표작 중 하나로 '부부 사이도 서로 모른다'는 걸 드러내는 작품입니다. 기묘한 설정에 더해 서늘하고 섬찟한 느낌과 반전이 있는, '기묘한 맛'류의 쇼트쇼트입니다. 예전에 읽었을 때에는 박한 평을 했었는데, 지금 다시 읽어보니 '기묘한 맛' 류로는 손에 꼽을 만한 좋은 작품이네요. 왜 나쁜 평가를 했었을까요? 별점은 4.5점입니다.

"결투" 

스티븐 스필버그의 극영화 데뷰작의 원작으로도 잘 알려진 작품. 격렬한 카 체이스를 어떻게 글로 묘사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있다면, 모범 답안이라고 해도 좋을 작품입니다. 주인공이 트럭에 쫓기면서 느끼는 공포와 긴장감 등이 아주 잘 드러나 있으니까요.

그러나 트럭 운전사의 분노가 잘 이해되지는 않고, 마지막 트럭의 최후가 너무 뜬금없다는게 아쉽습니다. 확실한 급커브였다던가 등 속도를 반드시 줄여야 했다는걸 설명해 주었더라면 더 좋았을 겁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심판의 날" 

루크는 심부름을 왔다가 목이 잘린 과부 블랙웰의 시체를 발견했다. 그녀의 아들 짐은 시체를 본 뒤, 극심한 공포로 광란 상태였다. 루크의 아버지 샘은 현장 조사를 통해 과부가 아들을 의도적으로 미치게 만들었다는 증거를 찾아냈다. 그녀는 남편을 너무나 사랑했기에, 남편을 죽게 만든 (물에 빠진 아들을 구하려다가 죽었음) 아들을 증오했었다....

과부 블랙웰이 증오심 때문에 의도적으로 아들 짐이 자신이 없으면 미쳐버리도록 차근차근 준비한 뒤, 자살했다는 충격적인 결말이 놀라운 작품입니다. 미스터리와 서스펜스, 끔찍한 공포가 짧은 분량 안에 모두 포함되어 선명하게 드러나는 걸작이에요. 블랙웰 부인이 목을 멘 칼이 어디 갔을지?에 대한 부분이 설명되지 않은건 약간 아쉽지만, 단점은 미미한 수준입니다. 별점은 5점입니다. 이 단편 하나를 읽은 것 만으로도 돈이 아깝지가 않네요.

덧붙이자면, 엄청난 의지로 저지른 자살이라는 설정은 크리스티 여사님의 걸작 심령 서스펜스 호러물인 "네번째 남자"가 살짝 떠오르기도 합니다. 이 작품도 시대를 앞서간 걸작이었지요.

"죄수" 

1944년, 비밀 연구소에서 핵분열을 연구하던 핵물리학자 필립 존슨은 폭발 사고 후 눈을 뜨자, 자신이 2시간 뒤 사형당할 1954년의 사형수 존 라일리 몸 속에 들어와 있다는걸 알게 되는데...

핵폭발이 시공을 초월할 수 있다는 SF적인 발상을 담은 심리 서스펜스 스릴러입니다. 과연 필립 존슨이 자신이 사형수 존 라일리가 아니라는걸 2시간 안에 증명할 수 있을까?가 서스펜스의 핵심이고요.

그러나 필립 존슨의 노력은 신부를 한참 설득하다가 아내 전화번호를 주는 것 뿥입니다. 그 외에는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아요. 덕분에 긴장감이 급격하게 떨어집니다... 신부가 그의 아내가 실존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하며 마무리되는 결말도 애매했습니다. 진짜 필립 존슨의 아내가 없었는지, 아니면 신부가 귀찮아서 거짓말을 한 건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필립 존슨이 모든걸 체념하는 마지막 장면은 영 별로였습니다. 곧 죽을 상황인데, 어떻게든 발버둥 쳐 봤어야죠..

아이디어, 설정은 좋았지만 끌고가는 힘이 부족했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하얀 웨딩 드레스" 

세상을 떠난 엄마 드레스에 푹 빠진 아이가 친구에게 몰래 엄마 방과 드레스를 보여주다가 폭주한다는 내용의, 미치광이 1인칭 시점으로 그려낸 혼란스러운 심리극입니다.

그런데 익히 보아왔던 설정과 내용이라 진부합니다. 더 큰 문제는 여백이 많아서 완성된 이야기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었고요. 엄마는 못생겼고 드레스도 피투성이에 총 구멍이 나 있었다는게 살짝 드러나기는 하지만, 아이가 친구를 죽였는지, 엄마 사인은 무엇인지, 아이는 지금 어디 갇혀서 어떻게 된건지 설명되지 않는게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이발"

더운 여름날, 조는 기묘한 손님을 맞아 이발을 해 주었다. 손님은 손톱이 계속 자란다는 등 혼잣말을 읆조리고, 역한 냄새가 났다...

손님이 죽은 사람이었다는건 에상 가능했던 결말이었습니다. 지금 읽기에는 너무 낡은 설정이네요. 주머니에서 손을 꺼냈을 때 흙이 떨어진게 아니라, 손은 뼈 밖에 없었다고 하는게 좋지 않았을까요? 신선하지도 않고, 무섭지도 않았기에 별점은 2점입니다.

"2만 피트 상공의 악몽" 

윌슨은 출장을 위해 탑승한 비행기 창문을 통해, 괴물이 비행기 날개 위에 앉아 있는걸 발견했다. 괴물은 다른 사람이 나타나면 숨어버려서 윌슨 눈에만 보였다. 비행기 엔진을 부수려고 시도하는 괴물을 막기 위해서, 윌슨은 비행 중인 비행기 문을 여는데...

영화판 "환상특급" 에피소드로도 잘 알려져 있는 작가의 대표작 중 하나로, 비행기를 타는 것에 대한 공포심, 신경증을 '날아가는 비행기 날개에 앉아서 나를 바라보는 괴물'로 형상화한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윌슨이 커튼을 열고, 비행기 창문을 통해 자기를 노려보는 괴물을 처음 보는 장면 묘사는 정말이지 압권이에요. 비행기 안에서 담배를 피우고, 총을 가지고 비행기를 탈 수 있었던 등의 묘사에서는 시대를 느낄 수 있고요.

괴물에게 결국 총을 쏜 윌슨이 승객들에게 제압 당한 뒤 비행기 착륙 후 옮겨지는 결말은 다소 시시하지만, 아이디어와 묘사력이 발군이기에 추천하지 않을 수 없네요. 별점은 3점입니다.

"장례식" 

클루니스 장례식장 장의사 모튼 실크라인에게 루트비히 아스페르가 찾아와서 최고급 장례식 준비를 요청했다. 그는 고인이 자신이라고 말했고, 장례식 날에는 하인인 곱추 이고르, 마녀, 늑대인간과 다른 흡혈귀들이 찾아 오는데...

드라큘라를 연상케하는 뱀파이어 루트비히 아스페르가 스스로의 장례식을 치룬다는 블랙 코미디로, 마지막에 다른 괴물 손님이 찾아온다는 반전도 좋아서 '쇼트쇼트'로는 더할나위 없었던 작품입니다. 장례식에서의 소동을 우스꽝스럽게 묘사한 것도 좋았고요. 작가의 다른 작품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른데, 코미디의 정체성이 잘 살아있어서 놀랐습니다. 거장은 뭘 써도 거장인 법이겠지요? 오래 전에 읽기는 했었는데, 역시나 그 때도 좋은 평가를 했었네요. 제 별점은 4점입니다.

"태양에서 세번째" 

우주 비행사가 세계 멸망을 앞두고, 다른 행성으로 처자식과 이웃 사람들까지 우주선에 몰래 태우고 출발했다. 그들이 향하는 곳은 태양에서 세 번째 행성이었다...

화자인 우주 비행사와 그 가족들이 다른 행성으로 떠나기 전 겪는 마음 속 불안과 혼란을 그리다가, 마지막에 그들이 있던 곳이 지구가 아니라 향한 곳이 지구라는 반전이 등장하는 짤막한 쇼트쇼트. 일종의 서술 트릭물이라고 해도 되겠네요. 쇼트쇼트로서는 우수한 수작으로 별점은 3점입니다.

"최후의 날" 

최후의 날을 맞아 음주, 난교, 광기어린 파괴 행위 등을 즐기던 리처드는, 가족의 소중함을 께닫고 마지막 순간을 어머니와 함께 보내려 한다.

리처드가 어머니와 함께 최후의 순간을 맞으며 서로 사랑하고 있다는걸 깨닫는다는 드라마. 여동생 가족이 죽음을 택하기 위해 약을 먹는 장면은 찡하면서도 괜찮았지만, 그 외의 내용은 전반적으로 평이했습니다. 소설보다는 "환상특급"과 같이 영상물에 더 잘 어울렸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이런 이야기도 나쁘지 않네요. 별점은 3점입니다.

"장거리 전화" 

몸이 불편한 미스 킨에게 어느날 한 밤중, 폭풍우가 불어올 때 전화가 걸려왔다. 그러나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그 뒤에도 전화는 계속 걸려왔고, 속삭임과 단조로운 흥얼거림에 이어 상대방으로부터 '여보세요'라는 목소리까지 들려오게 되었다. 전화 회사의 조사 결과 이 전화는 묘지에서 걸려온걸로 밝혀지는데...

정체 모를 전화가 계속 걸려온다는건 충분히 공포스러운 일이지요. 이런 설정의 이야기는 많이 있는데, 아쉽게도 이 작품은 다른 이야기만큼 공포스러운 상황을 잘 살리지 못했습니다. 일단 미스 킨의 불안부터가 설득력있게 다가오지 않았어요. 간호사의 말대로 전화를 그냥 끊던가, 수화기를 내려 놓던가, 전화선을 뽑아 놓을 수도 있었으니까요. 피할 수 없는 죽음이 찾아온다는 걸 "제가 댁으로 갈게요." 라는 마지막 전화 목소리로 알려주는 결말은 괜찮았습니다만, 묘지에서 걸려왔다는게 드러났을 때 이미 예상할 수 있었습니다. 설득력 낮은 진부한 이야기라 별점은 2점입니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 

행복한 가정의 아빠인 회계사 로버트 카터는 어느날 면도를 하다가 깊숙하게 베였다. 그리고 상처 속 전선과 기계 장치를 보고, 자기가 로봇이라는 걸 깨달았다. 충격에 거리를 배회하던 카터는 도시가 로봇들로 가득차 있었고, 음식들도 모두 기름이었다는 걸 알아 채는데...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통상적인 의미, 즉 이야기를 모두 해결해 버리는 전능한 존재로서가 아니라 사전적 의미인 "기계 장치의 신"에서 가져온 이야기라는게 독특하네요. 내가 내가 아니라 다른 존재일 수 있다는 흔한 설정을 독보적인 로버트 카터의 심리 묘사로 차별화시킨 솜씨도 거장다왔으며, 이야기를 풀어내는 전개도 괜찮았던 작품입니다.

그러나 로버트 카터가 진짜 로봇인지, 아니면 죽은 뒤 환상을 보는 건 지 알 수 없는 애매한 열린 결말은 좀 아쉬웠습니다. 보다 명확한 설명이 뒤따르고 반전도 있는 결말을 기대했거든요. 물론 로버트 카터가 쓰러지면서 떠올리는 성경 구절 - "하느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의 사람을 만들고..." - 은 그가 기계라는걸 연상케 합니다만, 명확하게 증명된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기계라고 한다면, 그들을 만든 '하느님'이 누구인지도 설명이 필요해 보였고요. 그래서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덧붙이자면, 자신이 기계라고 믿는 주인공 이름이 '로버트'라는게 의미심장하네요. 우리나라로 변주한다면 '노보두 씨' 정도로 부르면 되겠지요?

"기록적인 사건" 

가방끈 짧은 쉰 아홉살의 대학교 건물 관리인 프레드는 어느날 아침 잠에서 깬 뒤 프랑스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게 되었다. 대학교 건물 청소 및 수리를 하면서 대학의 모든 지식을 머릿 속에 넣게 되는데....

갑자기 모든 지식을 머릿 속에 넣게 된다는 독특한 설정과 그 이유가 인상적이었던 소품. 외계인들이 지구의 지식을 손에 쉽게 넣고자 프레드 머릿 속에 대학교 지식을 집어 넣은 뒤 그걸 한 방에 빼 먹은 것이지요. 한마디로 프레드를 일종의 외장 하드로 사용한 셈입니다. 좋은 쇼트쇼트 작품으로, 별점은 3점입니다.

"안에서 죽다" 

돈과 베티 부부에게 '돈 타일러'를 찾는 전화가 걸려왔다. 돈은 자기는 돈 마틴이라고 주장히먀 화를 냈지만, 전화를 건 사람은 돈을 죽이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날 밤, 누군가 부부의 집에 침임했고, 돈을 제압한 침입자는 돈이 저질렀던 과거 범죄와 배신에 대해 추궁하는데....

과거 저질렀던 범죄에서 발을 빼고, 평범하고 행복하게 살아온지 10년 만에 위기가 찾아온다는 서스펜스 범죄물. 돈이 침입자인 심슨과 사투를 벌인 끝에 그를 죽이고, 모든걸 알게 된 아내 베티가 경찰에 빈집털이가 들어와 싸우다 사고가 났다고 신고하는 결말까지 깔끔했던 작품입니다.

그러나 긴장감은 약한 편입니다. 악당 심슨이 침입한 뒤 하는게 없는 탓이에요. 총으로 부부를 위협하고, 과거 이야기를 떠벌이는게 전부거든요. 서스펜스를 끌어올릴 한 방이 필요했습니다. 코넬 울리치가 썼더라면 훨씬 멋진 이야기가 되지 않았을까 싶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정복자" 

1871년, 그랜트빌 잡화상 주인인 나는 남북전쟁 때 죽은 아들 루와 닮은 젊은 청년과 역마차를 함께 타게 되었다. 알고보니 그는 그랜트빌 최고의 총잡이와 싸울 목적이었다. 라이커라는 청년은 그랜트빌의 총잡이 바스 셀커크를 깔끔하게 사살했지만, 습격해 온 셀커크의 부하들에게 난사당해 허무하게 죽고 말았다...

"용서받지 못한 자" 느낌이 드는 현실적이면서도 허무한 서부극입니다. 라이커 캐릭터가 아주 인상적이에요. 서부극 총잡이들이 영웅이 아니라 허깨비라는걸 잘 보여주거든요. 어릴 때 부터 총잡이를 동경하여 연습을 거듭한 끝에 빠른 속사와 사격술을 익혔지만, 정신적으로는 애와 다름없는 철부지로, 1대 1 결투에서는 이겼지만 여섯 명의 악당이 습격하자 울며 애원하다가 총에 맞아서 꼴사납게 죽기 때문이지요. 풍자적이면서도 현실 비판적인 느낌이 좋았던 작품으로 별점은 3점입니다.

"홀리데이 맨" 

데이비드는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내키지 않는 출근길에 나선다...

데이비드가 출근을 하기 싫어했던 이유는 그의 직업이 끔찍했던 탓입니다. 그는 사람들의 죽음을 미리 지켜보고, 사망자 수를 예측하는 일을 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가장 중요한 데이비드의 심리 묘사가 그닥이었고, 업무의 끔찍함도 잘 드러나지 않는게 단점입니다. 이 업무가 아무리 끔찍해도 누군가 해야 한다는 당위성도 느끼기 어려웠고요. 전개가 밋밋하고 반전도 그닥이었기에 별점은 2점입니다. 분명 예전에 읽었었는데, 기억에 남아있지 않은걸 보면 예전에도 별로 인상에 남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뱀파이어란건 없다" 

루마니아에 있는 작은 마을 솔타에 사는 게리아 부인은 어느날 밤, 누군가의 습격으로 목을 물어 뜯겨 피를 빨린채 발견되었다. 게리아 박사는 다음날부터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부인을 지켰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고, 결국 게리아 박사는 후배 미카엘 바레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데...

크리쳐 호러물로 시작해서 깔끔한 범죄물로 마무리되는 작품입니다. 왜 범죄물이냐 하면, 뱀파이어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게리아 박사가 커피에 아편을 타서 아내를 재운 뒤, 목에서 피를 뽑아냈던 거지요. 이유는 그녀가 후배 바레스와 불륜을 저질렀기 때문이었고요. 마지막은 바레스가 뱀파이어인 것 처럼 꾸민 뒤, 그 심장에 말뚝을 박아 넣을 거라며 마무리됩니다. 

기발한 소재와 불륜에 대한 복수라는 동기, 의외의 반전, 내용은 모두 합리적으로 설명되며 비교적 짤막한 분량이라는 점 등 전형적인 미국식 쇼트쇼트의 특징을 모두 갖춘 작품입니다. 트릭도 조금 유치했지만, 뱀파이어 전설이 살아있는 루마니아라는 설정이라서 나름 설득력있고요. 너무 전형적이라서 작가 특유의 긴장감은 찾아보기 힘들다는게 조금 아쉬웠지만, 좋은 작품이었어요. 별점은 3점입니다.

"깜짝 선물"

늙은 호킨스 씨는 집 앞을 지나는 어린 소년들을 부르곤 했다. 소년들에게 "땅을 파면 깜짝 선물을 찾을 수 있다는" 주문을 알려주기 위해서였다. 그러던 어느날, 어니에게는 주문이 아니라 정확하게 어디를 파야 하는지를 알려주었다. 깜짝 선물이 금괴라고 확신한 어니와 친구들은 그 곳을 파기 시작했다...

당연히 선물이 뭔가 나쁜거라는 짐작은 되지요? 어니가 찾은건 일종의 관이었고, 그 안에서 호킨스 씨가 튀쳐 나온다는게 결말입니다. 그러나 결말의 반전은 약했으며 설득력도 없고, 동기도 불분명한 등 설명까지 부족해서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드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어니가 땅을 파게 만드는데 까지의 전개는 좋았는데 아쉽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산타클로스를 만나다" 

켄은 산타클로스를 만나고 싶다고 떼를 쓰는 아들 리처드와 함께 다시 백화점으로 향했다. 아내 헬렌은 차에 남겨둔 채였다. 사실 켄은 이 기회를 빌어 헬렌을 죽일 생각으로 살인청부업자에게는 돈을 지급했었다. 그러나 산타클로스를 만나러 가는 동안, 그는 죄책감, 양심 등으로 심하게 갈등하는데...

아내를 죽이려고 하지만, 실제로 실행하는 순간이 되자, 켄이 겪는 극심한 마음 속 갈등과 혼란이 핵심인 심리 스릴러. 심리 묘사가 아주 빼어나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긴장감을 느끼게 만드는 심리 묘사야 말로 작가의 특기 중 특기지요. 살인과 극명히 대비되는 크리스마스, 산타클로스라는 소재를 적절히 사용하고 있는 것도 좋은 아이디어로, 특히 '착한 일을 해야 선물을 받는다'는 산타클로스와의 약속을 결말에서 제대로 써 먹고 있습니다. 결국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켄의 삶이 조금 더 비참해 졌다는 결말이니까요. 켄은 선물 (아내의 죽음)을 받을 자격이 없다는 뜻으로 읽히는데, 현실적이기도 해서 마음에 듭니다. 별점 4점은 충분한 수작입니다.

그런데 아주 오래전, 강남길 씨가 아내를 죽이려고 노력하던 TV 단막극이 떠올랐습니다. 특히 켄과 리처드가 많이 걷지 않아도 되도록 차를 옮겨 놓겠다는 아내의 말에 켄이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장면에서요. 하지만 강남길 씨 이야기는 해피엔딩이었지만, 켄에게는 지옥이 열릴 거라는 결말은 천지차이이기는 합니다만, 이런게 미국과 한국의 감성 차이인지도 모르겠네요.

"춤추는 손가락"

장거리 버스 여행 중 내 앞에 앉은 여성은 장애인이었다. 그녀는 옆에 앉은 돌보미 여성에게 끊임없이 수화로 이야기를 건넸다. 그러다가 장애인 여성이 내 자리를 빼앗았고, 어쩔 수 없이 원래 그녀 자리에 앉은 나에게, 옆자리 돌보미 여성이 해준 이야기는 자신과 장애인 여성에 대한 이야기였다...

수화로 수다를 떨 수 있다는 발상에서 시작해서, 장애인 여성의 수화 수다로 돌보미 여성이 그녀를 벗어나고 싶어했고, 돌보미를 놓아주기 싫었던 장애인 여성이 괜찮은 남자를 물색해서 노리개로 던져준다는, 일종의 '남자 사냥' 으로 이어가는 전개가 자연스럽고 좋았던 작품. 아이디어 발상에서부터 시작해서, 하나의 이야기가 완성되기까지의 전 과정을 체험한 느낌이 드는 독특한 작품이었어요.

하지만 마지막에 남자를 유혹하던 여성이 갑자기 식어버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원래대로 돌아간다는 결말이 너무 허무하네요. 남자 사냥은 돌보미를 바꾸기 위함이었다던가, 아니면 최소한 남자를 잡아 먹기라도 했어야지요. 지금은 기승전까지는 흥미롭고 재미있는데, 결이 너무 급작스럽고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벙어리 소년" 

시골 마을에 살던 닐젠 부부가 화재로 죽고, 부부의 아들 팔은 보안관 해리와 코라 부부에게 위탁되었다. 학교도 다니지 않고 말도 못했던 팔을 코라는 사랑으로 돌보고, 죽은 자기 아들 대신으로 여겼다. 그래서 코라는 남편이 시도했던 닐젠 부부 지인에게의 연락을 훼방놓았다. 그래서 닐젠 부부가 죽은 뒤 한참 뒤에야 부부의 지인 베르너 교수가 팔을 찾아 왔다. 그러나 그 사이, 학교를 다녔던 팔은 그가 가졌던 독특한 텔레파시 능력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팔은 벙어리가 아니라 부모의 텔레파시 교육을 받았던 텔레파시 능력자였습니다. 그래서 아이는 말을 할 필요가 없었고, 부모는 텔레파시 능력이 훼손될까봐 특정한 이미지, 단어로 설명되는, '말'을 익히는 학교에 보내지 않았던 겁니다. 단어로 이루어지는 교육이 한계가 있다는 발상은 꽤나 시대를 앞서간 느낌이에요.

그러나 이야기 자체는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아요. 닐젠 부부의 사고, 코라가 팔을 양자로 들이고 학교에 보낸 것, 베르너 교수의 방문 등 여러가지 사건이 두서없이 펼쳐지는 탓이 큽니다. 닐젠 부부가 죽은 화재 사고의 원인도 결국 밝혀지지 않고요. 또 팔을 학교에 보내지 않은건 엄연한 아동 학대입니다. 팔이 가진 능력이 대단하고 아름답다고 포장할 이유도 없어요. 실상 대단한 능력이 아니라 그냥 말 없이 생각으로 의미를 전달하는게 전부인데, 이러느니 말로 하는게 더 낫잖아요? 근거리에서만 가능한 듯 싶으니 결국 신문이나 방송을 접하려면 글을 익혀야 하는건 당연하고요. 왜 이렇게까지 팔을 옭아맸어야 했는지 잘 모르겠네요. 마찬가지 이유로 현실 학교 교육이 팔의 정신을 좀먹는다는 묘사도 불필요했습니다. 

팔이 말을 하기 시작해서 텔레파시 능력이 사라졌다는 결말도 맥빠집니다. 어차피 대단한 능력이 아니었으니, 그렇게 아쉬운 일로 느껴지지 않으니까요. 팔에게는 코라의 사랑이 더욱 필요했으니, 앞으로는 행복해질 일만 남아 있을테고요.

차라리 '사랑은 말이 없어도 알 수 있는 감정이다'는 이야기 속에 숨어있는 멋진 설정을 더 부각시키는 쪽으로 갔더라면 어땠을까 싶네요. 팔이 능력의 편린을 유지한채 성인이 되어 여자 마음을 잘 아는 능력자가 된다는 식으로요. 지금은 설정, 이야기가 따로 노는 느낌이라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충격파" 

교체를 앞둔 교회 오르간이 폭주해서 교회를 파괴한다는 내용의 작품.

늙고 낡아버려서, 사랑했고 필요로 했던 것으로부터 배척당하고 교체되는 것에 대한 공포를 그렸다고 봐도 되겠지요? 그런데 딱히 와 닿지는 않았습니다. 공포를 자아내는 맛이 부족한 탓이 큽니다. 파이프 오르간의 폭주는 상식적인 선에 그쳐서 크리쳐물로 보기도, 재난물로 보기도 어려운 애매한 작품이 되어버렸어요. 예전에 읽기는 했었는데, 기억에 남아있지 않을 정도로요. 별점은 2점입니다.

2023/05/14

亂れからくり 복잡한 기계장치 : 10. 밥을 먹는 쥐

亂れからくり (創元推理文庫) (文庫) - 8점 泡坂 妻夫/東京創元社

10. 밥을 먹는 쥐
나라키 경감의 짜증은 누구의 눈에도 선명하게 드러났다. 초기 수사 도중 또 다른 살인이 일어난 것이 나라키의 신경을 더욱 곤두세우게 만든 것 같았다.
"소우지 씨가 역립 인형을 꺼내기 전과 후, 특별히 달라진 점은 없었습니까?"
토시오가 소우지의 방에서 일어난 일을 다 말하자, 나라키가 말했다. 눈썹 사이사이의 주름이 쭈뼛쭈뼛 움직이고 있었다.
"이상한 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소우지 씨는 유쾌했고, 자신의 수집품을 보여주는 것을 즐기는 것 같았어요."
"유쾌하다고? 자기 여동생이 살해당한 직후에 즐거워하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나요?"
"마사오 씨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소우지 씨는 그녀를 어떻게든 기쁘게 만들기 위해 억지로라도 밝게 행동하려고 했습니다."
나라키는 입을 다물었다. 토시오의 말에 설득당한 모양이다. 나라키의 옆에 있는 인품 좋아보이는 남자가 입을 열었다.
"소우지 씨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 기억하십니까?"
"소우지 씨가 인형의 태엽을 다 감았을 때였어요. '아, 아프다'라고........'
"그 뒤는?"
"우리는 인형의 신기한 움직임에 정신이 팔려 있었어요. 정신을 차려보니 소우지 씨가 괴로워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어요."
"그 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나요?"
"네, 소우지 씨도 마지막까지 인형을 보고 있었어요. 인형은 소우지 씨 곁을 지나가려고 했어요. 그 때, ‘멈추지 않는다, 이상하다’고 중얼거렸습니다"
"’멈추지 않는다, 이상하다?’ 나라키 경감님, 인형은 거기서 멈춰야 하는 거 아니었을까요?"
"그렇겠지요."
"그렇다면 인형의 기계가 이상하게 작동하고 있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군요. 아니면 누군가가 일부러 손을 댄 건가?"
나라키는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옆의 남자는 다시 토시오를 바라보았다.
"소우지 씨가 한 말은 그게 마지막이었나요?"
"...... 소우지 씨는 인형을 잡으려고 손을 뻗다가 그대로 쓰러져 버렸습니다. 우다이 씨가 일으켜 세웠을 때 ...... 소우지 씨는 '하지만 훌륭하지 않습니까'라고 말했습니다. 그게 마지막입니다."
"’하지만, 훌륭하지 않습니까?’ 이건 무슨 뜻일까요?"
나라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토시오는 소우지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소우지는 죽기 직전까지 인형에 대해 진심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그들에게 설명하는 것은 헛수고에 가까웠다.
"소우지 씨는 그 역립 인형을 보여주겠다는 것은 예전부터 약속한 것이었습니까?"
나라키가 말했다. 질문의 주도권을 되찾는 듯한 분위기였다.
"약속은 없습니다. 다만 예전에 우다이 씨에게 주모우를 보여주겠다는 약속이라면 들은 적이 있습니다."
"주모우?"
"소우지 씨 방에 있었잖아요. 비누방울을 뿜어내는 자동 인형입니다."
"비누방울을요?"
"그게 계기가 되어 소우지 씨는 카라쿠리에 대해 설명하면서 역립 인형도 꺼냈어요"
"소우지 씨가 역립 인형을 꺼낸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군요."
"그렇게 생각합니다."
"인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더라면, 역립 인형 따위는 보여주지 않았을지도 몰라요."
나라키는 오늘만 아니었으면, 끔찍한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소우지 씨가 역립 인형을 보여주지 않았을 가능성이 더 희박해 보이는데요."
"뭐라고요?"
"역립 인형을 소우지 씨가 복원했다는 것은 최근이라고 합니다. 문헌에도 기록되어 있지 않은 귀중한 인형이라는게 자랑거리 중 하나였어요. 인형은 언제든 꺼내볼 수 있도록 소우지 씨의 책상 위에 놓여 있었고요. 카라쿠리 이야기가 나오면 당연히 역립 인형도 보여주고 싶어질 수밖에 없죠."
"카라쿠리 얘기가 나오지 않으면?"
"소우지 씨의 방은 장난감이 가득 차 있어요. 카라쿠리가 화제가 되지 않을 리가 없습니다."
나라키는 또다시 말꼬리를 잡혔다. 나라키는 험악한 말투로 토시오 일행이 왜 마와리 집에 오게 되었는지 집요하게 물었다. 토시오는 있는 그대로를 차분하게, 자세히 대답했다.
"..... 정말 악랄하고 극악무도한 범행입니다."
나라키가 높은 목소리로 되풀이했다.

토시오와 마이코, 마사오는 카오리의 방에 머물게 되었다. 토시오가 방에 들어서자 마이코와 마사오는 계속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어땠어?"
마이코가 토시오의 얼굴을 보고 말했다.
"정말, 긴장되더군요."
"그렇겠지."
그리고 마사오에게 말했다,
"말하기 싫은건 말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라고 말했다.
수사관이 먼저 데리러 온 것은 마이코 쪽이었다. 마이코는 가방을 들고 일어섰다. 마사오는 침착한 모습으로 의자에 앉아 있었다. 마이코가 나가자 두 사람은 동시에 입을 열었다. 두 사람 모두 침묵을 견딜 수 없었다.
"미안해요."
마사오가 말했다. 토시오는 이 말에는 대답하지 않았다. 어떻게 대답해도 자신의 진심이 전달될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다친 다리는 괜찮으세요? 먼저 물어봐야 했는데요."
"괜찮아요."
마사오는 먼 옛날을 떠올리는 듯 대답했다.
"당신이 침착해서 안심이 되네요."
토시오는 토우이치가 죽던 날 밤을 기억하고 있었다.
"우다이 씨가 저를 위로해 주셨어요. 그 분이 계시지 않았더라면 이렇게까지 버틸 수 없었을 거예요."
"당신을 기쁘고 행복할 때 만날 기회가 없었던게 아쉽습니다."
"....그렇죠. 하지만 어쩔 수 없지요."
"나는 항상 상상하고 있어요. 행복할 때의 당신은..."
"마찬가지에요."
마사오는 토시오의 말을 가로막았다. 거의 발작에 가까웠다.
"나는 항상 이랬어요. 늙어 보이잖아요. 하지만 그 사건 때문만은 아니에요."
"늙어 보이지 않습니다. 나이도 저와 별반 다르지 않고요."
"카츠 씨는 젊어요. 우다이 씨가 말했어요. 아주 순수한 청년이라고."
"순수하지 않아요. 사실 아무것도 모르는 쪽에 가깝습니다."
"그래요, 세상에는 많은 일들이 있답니다. 카츠 씨는 앞으로 더 많은 사람을 알게 될 거예요. 멋진 여자와도........"
"다른 여자 따위는 필요 없어요. 나는........"
"우다이 씨는 경찰관이었군요."
마사오는 토시오의 말을 듣지 않았다.
"우다이 씨가 경찰서를 그만둔 이유도, 토모히로를 쫓은 이유도 말해줬어요. 그 분은 어떤 액운을 만나도 그것을 되돌릴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우다이 씨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왠지 모르게 힘이 솟아나더군요. 카츠 씨는 우다이 씨와 함께 일한 지 얼마나 됐나요?"
"오늘로 엿새째입니다."
"엿새째... 나는 더 오래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조사관이 된 것은 당신을 처음 본 그 날입니다."
"그럼 저와 함께한지도 엿새째군요. 나에 대해서 잘 알 수는 없겠네요."
"알고 있습니다."
토시오는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네, 알아요. 내가 남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우지와 관계를 끊지 못한 더러운 여자라는걸 알고 있죠."
"당신은 소우지에게 협박을 당한 것뿐입니다."
"나는 나쁜 여자야."
"나쁘지 않습니다, 더럽지도 않아요. 괜찮습니다. 단 이틀만 못 만났을 뿐인데 나는......."
"안 돼요. 그런 말을 하려면 좀 더 오랜 시간이 지나야해요"
"오랜 시간? 얼마나 오래요?"
"2년, 아니 3년정도라도"
"그땐 내 말을 들어줄 거죠?"
"들어줄게요. 어떤 일이든요."
"예를 들어 ...... 샹보르관에 초대한다고 해도?"
"어디든 상관없어요."
마사오는 슬픈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것이 위로의 말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토시오는 매우 기뻤다. 동시에 마사오와 정을 통하던 소우지가 살해당하자마자, 마사오에게 이런 대답을 하게 한 자신이 매우 어리석게 느껴졌다.
"죄송합니다. 저는 오늘 이런 말을 할 생각이 아니었어요. 하지만 당신을 보는 동안 마음을 억누를 수 없게 되었어요."
"괜찮아요."
마사오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 목소리는 예전에 들어본 적이 있었다.

"나라 공에게 여러 가지를 물어봤지........"
차 안에서 마이코는 비장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가을이라 해는 이미 지고 있었다. 강한 냉기가 에그 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토우이치는 수면제 중독으로 죽었어. 외상도 없었고 충치 외에는 질병도 없었어. 체질도 정상, 혈액형도 B형.......내가 한 장의 카드를 주기는 했지. 나라공은 토우이치가 마신 약병의 뚜껑이 얼마나 단단한지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으시더군."
"경감은 어떻게 해석했습니까?"
"병의 뚜껑을 연 건 토모히로 자신인 것 같다고 하더라고."
"토모히로가? 그렇다면 토모히로는 집을 떠나기 직전에 수면제를 먹은 셈이네요."
"토모히로는 약을 먹지 않았어. 하지만 마사오의 말에 따르면, 토모히로는 마사오가 산 수면제를 건네주자마자 포장을 뜯어 버렸다고 했는데, 나라공은 그 때 뚜껑도 열지 않았나 싶다네."
"마사오 씨는 병뚜껑을 여는 것까지 보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군요."
"보고 있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다른 일에 정신이 팔려서 그 기억이 없다는군."
"그렇다면 토우이치의 죽음은 순전히 누군가의 과실일까요?"
"글쎄, 아무튼 토모히로는 마시지도 않은 약병의 뚜껑을 열었잖아."
마이코가 토우이치의 죽음에 집착하는 것은 당연하다. 토모히로의 사고에 이은 토우이치의 죽음. 그리고 카오리와 소우지까지 죽었다. 카오리와 소우지의 죽음은 완전한 살인 사건이었으니까 이 죽음의 연쇄 관계는 당연히 파헤쳐야만 했다.
"소우지는 어떻게 살해당한 겁니까?"
토시오가 물었다. 아직도 소우지가 왜 쓰러졌는지 잘 몰랐다.
"소우지는 그 역립 인형에 의해 살해당했어."
"설마 인형이?"
그 때, 소우지는 확실히 인형의 태엽을 감고 있었다. 그리고 인형의 태엽을 감았을 때, 인형에 이상이 있었던 것 같다는 것도 보았다. 하지만 인형이 사람을 죽인다고?
"역립 인형에 독침이 박혀 있었어. 태엽 감는 나사의 중앙에 구멍이 뚫려 있었고, 독을 넣은 가느다란 주사기가 꽂혀 있었지. 테엽이 어느 정도 단단하게 감겨지면 주사기가 튀어나와서 한꺼번에 독액을 주입하고 바로 다시 들어가는 구조야. 기계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그리 어렵지 않은 가공이라고 해. 게다가 노리는 사람을 확실히 찌를 수 있다고 하더군. 나사를 감는 손가락은 반드시 주사바늘 바로 위에 오기 때문이지."
"독은 뭐예요?"
"현재로서는 시신의 상태로 미루어 볼 때 알칼로이드의 일종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어."
"알칼로이드가 뭐죠?"
"모르핀, 스트리키니네, 코카인, 니코틴 같은 것들이지."
"소우지는 역립 인형의 나사를 감을 때 마사오 씨에게 감아보지 않겠냐고 제안했었죠?"
토시오는 자신의 말에 겁이 났다. 만약 마사오가 나사를 감았다면, 살해당한 것은 마사오가 였을 터였다.
"그래. 마사오가 살해당했을 가능성도 있어."
"범인이 죽인 것은 역립 인형을 움직이려고 한 사람이라면 누구든 상관없다는 뜻인가요?"
"그렇게 되겠지. 살해당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은 인형을 다루었던 소우지지만, 그런데 소우지는 마사오에게 인형의 태엽을 감아보라고 권유했었지. 소우지의 행동은 지극히 자연스러웠어. 카라쿠리에 독침을 심을 정도로 철저하게 계획적인 범인이 이 정도 변수를 예측하지 않았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야. 나는 범인의 생각을 도무지 알 수 없게 되어 버렸어."
"만약 우리가 없는 곳에서 소우지가 카라쿠리을 움직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목격자가 없었다면 수사는 상당히 어려웠을거야. 첫째, 사인 규명에도 더 많은 시간이 걸렸을거야. 사인이 밝혀져도 설마 카라쿠리에 독침이 박혀있을 거라는 생각은 쉽게 들지 않았을테고, 역립 인형은 다른 장난감들 속에 섞여버렸을테니까. 만약 방 안쪽에서 열쇠를 걸어 놓았다면 수사는 오히려 더 좁혀질 수 있었겠지. 방 안의 인형을 철저히 조사하면 되니까. 하지만 자물쇠가 걸려 있지 않다면, 상식적으로는 누군가 주사바늘을 들고 소우지의 방에 들어갔다 나왔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지. 수사도 그렇게 진행될 수밖에 없고. 때문에 수사는 난항을 겪게 되었을 거야. 그리고 소우지는 자신의 방에 지금까지 한 번도 자물쇠를 채운 적이 없었다고 하는군."
"범인은 왜 수사를 방해하는 방법을 택하지 않았을까요. 예를 들어 그날만이라도 인형을 잠시 숨기는 등 여러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았을까요? 카오리 씨가 살해당했다면 당연히 많은 경찰관이 출입하는 것은 누구라도 예상할 수 있지 않습니까."
"하지만 범인은 그렇게 하지 않았어. 그럴 수 없는 이유가 있었겠지."
"카오리 씨와 소우지를 죽인 사람이 동일인물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건 뭐라 말할 수 없군."
"토우이치의 사인도 의심스럽지 않습니까?"
"나도 나라공에게 말했어. 만약 이 모든걸 같은 범인이 저질렀다면, 그는 하늘에서 운석을 떨어뜨려 토모히로를 죽이는 것과 같은 엄청난 짓을 할 수도 있을 거라고."
"역립 인형에 독침을 꽂은건 누구였을까요?"
"방금 말했듯이, 소우지는 방에 열쇠를 걸어둔 적이 없어. 낮에는 회사에 출근하기 때문에 소우지는 집에 없고.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인형에 독침을 꽂을 수 있어. 설령 여자라도 말이야."
토시오는 마이코의 말이 신경 쓰였다.
"마사오 씨에 대해 말하는 건가요?"
"네 사람이 죽은 결과, 당연히 결론은 하나야. 즉, 이번에 데츠바가 죽으면 마와리 가문의 유산은 모두 마사오의 것이 된다는 것."
"그런 바보 같은 소리!"
토시오는 자기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마와리 가문의 유산 따위는 있을 수 없어요. 스페이스 레이스의 실패 탓에 조만간 나사 저택도 처분될 거 아닙니까. 설령 처분하지 않더라도 해바라기 공예가 다시 살아난다고 장담할 수 없습니다. 과연 팔릴만한 물건이 계속 나올 수 있을까요?"
"그렇지. 최소한 그것 때문에 사람을 네 명이나 죽인다는건 생각하기 어렵지."
"우다이 씨는 데츠바도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농담이 아니야. 그렇게 놔둘 리가 있겠어? 그러면 내 뇌물죄를 풀어줄 사람이 한 명도 없게 되는 거잖아."
"나사 저택의 경호는 철저하겠죠?"
"그래, 두 사람이 동시에 살해당했으니까. 범인이 어떤 꾀를 부려도 데츠바를 건드리는 것은 불가능할 거야."
"마사오 씨는 어떻게 하실 건가요?"
"당분간은 나사 저택에 머물러야 할 것 같아"
"내일은 토모히로의 초칠일이에요."
"벌써 그렇게 될까? ...... 마사오와 무슨 얘기 했어?"
"그다지 대단한건 ......"
"그래? 마사오는 정말 마음씨 좋은 여자야."
"나도 그렇게 생각해요."
마이코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자신의 말이 이상하게 힘이 들어간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토시오는 생각했다.
"그런데, 역립 인형을 만든 오노 벤키치. 소우지가 죽기 전에 했던 말에 따르면 가나자와 사람이라고 했지."
"기억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가나자와라는 땅이 마와리 가문과 연결되어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우선, 해바라기 공예의 마와리 가문이 만든 장난감이 뭐였지?"
"후쿠나가 씨가 밥 먹는 쥐가 원형이라고 알려준 장난감이었죠"
"밥 먹는 쥐는 어느 지방에서 만든 장난감인지 알아?"
"아뇨.."
"얼마 전에 생각나서 찾아봤더니 가나자와의 장난감이었어. 덴포(天保) 때 마에다 번의 하급무사가 처음 만들기 시작했다는, 작지만 유명한 장난감이야. 가나자와에는 그.외에도 유명한 장난감이 있어. ‘하치만 기아게리’라는 아름다운 기아게리 인형이야. 해바라기 공예의 전신인 츠루슈도(鶴寿堂)의 마와리 사쿠조(馬割作蔵)가 판매한 장난감에 이 기우게리가 들어있었지. ……. 그리고 마와리 가문의 문장을 알아?”
"...... 안은 명아주(藿藿). 하지만 원래는 나사 매화였다고 하네요."
"호오, 대단하군."
"카오리 씨에게 들은 적이 있어요."
"나사 매화는 매화그릇의 가치평가가 높아. 매화그릇으로 유명한 다이묘가 있지. 가가번의 마에다 가가 매병. 가가 백만석의 정문 '자요몬(慈陽門)'. 가나자와는 성곽 마을이야. 가신에게 공적이 있으면 매화 그릇의 대체 문양인 '가에몬'의 사용을 허락해 주었었지."
"그럼 마와리 사쿠조는 가나자와 출신인가요?"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내일이 일요일이었지?"
"맞습니다."
"가나자와에 가볼까?"
"저도 갈게요."
"카츠군은 괜찮아. 이건 일이 아니야. 불필요한 경비를 들일 수 없어."
"에그를 운전해서 가면 됩니다. 물론 당일치기로요."
"가나자와까지 꽤 멀잖아. 24시간 내내 운전할 자신이 있나?"
"네, 있습니다. 가만히 있는 것보다 무언가에 몰두하고 싶거든요."
"그럼 나도 도움이 되긴 하지만."
마이코는 토시오를 다정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나는 그때 사랑에 빠진 척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말한 것뿐이야." 亂れからくり 복잡한 기계장치 : 1 달그락달그락 새 

2013/10/24

시간의 습속 - 마쓰모토 세이초 / 김경남 : 별점 3점

시간의 습속 - 6점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김경남 옮김/모비딕

도쿄 근교의 휴양지 사가미 호수에서 목졸라 살해당한 시체가 발견되었다. 피해자는 "교통문화정보" 신문의 발행인 겸 편집자 도이 다케오였다. 주변 인물을 탐문하던 경시청 수사1과의 미하라 기이치 경위는 굣코 교통의 전무 미네오카 슈이치가 수상하다고 느꼈다. 그러나 미네오카 슈이치는 사건 당시 후쿠오카 근처 모지의 메카리 제사에 참석했다는 완벽한 알리바이가 있었다. 미하라는 이전 사건으로 알게 된 후쿠오카의 도리카이 주타로 형사에게 미네오카의 알리바이를 문의했으나 수수께끼를 밝혀내지 못하던 중, 후쿠오카에서 정체불명의 사체가 발견되는데...

마쓰모토 세이초의 1961년도 발표작. "점과 선" 발표로 일약 인기작가가 된 세이초가 4년 후, "점과 선"이 연재되었던 월간지 "여행"에 다시 연재했던 작품입니다. "점과 선"의 주역인 미하라 - 도리카이 컴비가 다시 등장합니다. 세이초 작품으로는 유일한 속편이라고도 하네요.

전작과 같이 정통 알리바이 파헤치기 추리물입니다. 사건의 핵심인 미네오카 슈이치의 알리바이 트릭, 즉 "어떻게 그가 메카리 제사 사진을 찍을 수 있었나?"와 더불어 미네오카가 도쿄와 후쿠오카를 어떻게 오갔는지, 사건 당일 도이와 함께 있었던 여자는 누구이며 어떻게 현장을 빠져나갔는지, 후쿠오카에서 발견된 피해자는 누구이며 현장에 있던 여성용 양가죽 장갑은 무엇인지, 가짜로 발급한 정기권의 용도가 무엇인지 등 다양한 트릭 및 추리가 화려하게 펼쳐집니다. 수준도 높습니다. 그 중 핵심 트릭인 알리바이용 사진 트릭은 필름 교체 및 재촬영, 조작이라는 복잡한 것인데 전문가적 지식을 활용하여 설득력이 충분할 뿐더러, 미하라 경위의 여러 가지 아이디어 - "TV를 찍은 것이 아닐까?" "예전 사진은 아닐까?" "영화 뉴스를 찍은 것이 아닐까?" 등 - 까지 검증해 주는 꼼꼼함이 돋보입니다. 마지막에 등장하는 원래 사진을 촬영한 가지와라에게 들키지 않고 필름을 빼돌리는 방법 역시 기가 막히고요. 아울러 공범인 여성의 정체, 그리고 그 정체를 밝혀주는 단서가 되는 사체가 끼고 있던 장갑 역시 당시 시대를 앞서갔다고도 보여지는 괜찮은 아이디어였어요.

미하라 경위의 직감에 의지한 추리와 도리카이 형사의 성실하고 꾸준한 수사도 전작 "점과 선" 못지 않게 잘 그려지고 있는 것은 전작의 팬으로 마음에 든 점입니다.

또 연재된 월간지가 "여행"인 탓이었을까요? 서두에 등장하는 모지의 메카리 제사를 비롯하여 사가미 호수, 그리고 그 외의 후쿠오카의 명승지를 소개하는 여정 미스터리로서의 모습도 보이는 것이 이채롭더군요. 심지어는 오사카로 출장 가는 형사들의 기차 여행까지 디테일하게 묘사될 정도니 말 다했죠. 어떻게 보면 예전 작품의 여유로움 같은 게 느껴지는 부분이라 괜히 흐뭇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제법 됩니다. 그중 가장 알 수 없었던 것은 애초에 미하라 경위가 왜 미네오카 슈이치가 수상하다고 생각했는지입니다. 알리바이가 누가 봐도 완벽한데 거기서 의심을 품고 파헤칠 생각에 집착한다는 것은 상식에 어긋나죠. 반대로 해석하면 무죄인 미네오카가 미하라 경위의 편집증적 망상의 희생자가 될 수도 있는 거잖아요? 이 문제는 피해자 도이가 최초에는 나름 인격자로 묘사되는 등, 동기를 드러내지 않은 탓입니다. 최소한 도이에게 흘러간 거금의 일부에 미네오카가 관련되어 있었기 때문에 수사가 미네오카에게 집중되었다는 설명은 필요했습니다. 아니면 차라리 미네오카가 범행을 저지르는 것을 확실하게 독자에게 보여주는 도서 추리물의 형태였다면 더 낫지 않았을까 싶네요.

그리고 두 번째로 미네오카 트릭의 핵심인 메카리 제사 사진 공작도 조금 이상했어요. 원래 사진을 찍은 가지와라가 제사 당일에 컬러 슬라이드로 사진을 찍었을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 것이었을까요? 잡지에서 가지와라라는 이름만 보았을 뿐, 미네오카가 가지와라와 대면한 것은 사건 발생 얼마 전 딱 하루 만난 것에 불과한 것으로 묘사되기 때문에 더더욱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무려 두 건의 살인사건을 저지르는 범행에 대한 확신을 얻어갔다고 보기는 아무래도 힘들지 않을까 싶거든요. 첫 대면 이후에도 지속적인 연락을 취했다는 정도의 부연설명이라도 해 주었더라면 더 좋았을 겁니다.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3점. 사회파 작가로 유명하지만 (뭐 본인은 그닥 좋아한 명칭은 아니라곤 해도) 정통 추리 분야에서도 탁월한 모습을 여지없이 보여주는 좋은 작품이었어요. 장편다운 꼼꼼하고 디테일한 묘사도 인상적이었고요. 작위적이고 억지스러운 부분이 있어서 감점했으나 추리 애호가라면, 특히 알리바이 파헤치기 류에 관심 있으시다면 꼭 한번 읽어보시길 권해드립니다.

2009/11/10

최근 읽은 개그만화들 짧은 감상

바보도 따라할 수 있는 만화교실 - 6점
신조 마유 지음/서울문화사(만화)

전설의 막장 만화가 신조 마유의 만화가 데뷰 일대기를 만화교실 형태로 꾸민 독특한 만화입니다. 사실 학습만화(?) 라고 해도 좋겠지만 신조 마유가 실제로 만화가로 성공하는 내용 자체가 반 이상이 개그라 개그만화로 분류할 수 밖에 없네요. 솔직히 이 작가 작품을 읽어본 적은 단 한번도 없지만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이 만화교실에서 스스로 밝히는 작가의 인생이 드라마틱하고 신념이 확고해서 존경스럽기까지 했습니다.^^ 물장사라니!!!
어떤 분야에서 성공을 거둔 사람은 확실히 뭔가 달라도 다른 법이랄까요? 예전 이시카와 쥰의 "만화의 시간" 이라는 책에서 굴곡많은 인생을 겪은 작가가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고 한 글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그림과 내용은 대충대충 넘긴 경향이 강해서 만화로서 완성도가 높다고 하기는 "불가능"하지만, 신조 마유의 파란만장 일대기를 보는 것 만으로도 그런대로 추천작. 별점은 3점입니다.


햣코 Hyakko 2 - 6점
카토 하루아키 지음/중앙books(중앙북스)

빵빵 터진다기 보다는 잔잔하게 웃을 수 있는 작품으로 고교 신입생 여자아이들의 일상을 다룬 담담한 개그만화입니다. 이런류의 만화야 쎄고 쎘지만 이 작품은 독특한 그림체와 더불어 민폐 캐릭터이기는 하지만 미워할 수 없는 주인공인 토라코의 이유를 알 수 없는 좌충우돌 행동으로 인기를 모은 것이 아닌가 생각되네요. 쉽게 이야기하자면 토모가 주인공인 아즈망가 대왕이랄까요?
그에 더해서 인기를 끌만한 독특한 캐릭터들, 청순파 - 이른바 츤데레 아가씨 - 체육소녀(?) 등등... 이 대거 포진되어 있다는 점은 왠지 약간 스쿨럼블 느낌도 나더군요. 어쨌건 2권까지는 재미있게, 가볍게 읽기 좋은 만화로 추천할만 합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하지만 아이디어가 딸리는지 계속해서 새로운 캐릭터가 등장하는 전개는 왠지 불안감도 가지게 만드는데 3권을 읽어봐야 이후 전개를 조금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싶긴 합니다.


나비효과 - 4점
박성열/중앙books(중앙북스)

국내산 웹툰으로 "반전"을 강조한 만화이긴 하지만 추리닝이나 트라우마같은 선배격 만화와의 차별화 요소가 많지는 않습니다. 이러한 반전 코믹 웹툰이라는것이 지금 읽기에는 조금 낡은 구성이 아닌가 싶기도 하네요. 요사이는 초상식, 몰상식 개그만화로 트렌드가 완전히 이동해 버렸으니까요. 그래서인지 예전에는 재미있게 봤었지만 지금 보니 굉장히 웃긴다, 죽인다 뭐 이런 생각이 전혀 들지 않더라고요. 게다가 이 작품의 경우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이미 웹상으로 너무 많이 접하기도 했고 내용도 지나치게 패러디가 많다던가 (특히 슈퍼 마리오 패러디 등) 동어반복적인 개그가 많은 등 (곰과 호랑이 이야기 등) 알차다고 하기는 어렵기에 책으로 또 읽을 필요를 느끼기는 힘들었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2007/05/02

간만의 북오프 쇼핑

어제, 근로자의 날에 출근했다가 일찍 퇴근하며 간만에 북오프에 들렸습니다. 오랫만에 가니 책이 많이 물갈이가 되어 있더군요.

구한 책은 "아름다운 손목 시계" 2004년 1월호. 각종 명품 시계들의 카탈로그에 가까운 책인데 기계식 시계에 대한 열망이 생길 정도로 멋진 사진들과 정보로 가득해서 마음에 든 책입니다. "갤러리 페이크"의 몇몇 에피소드도 생각나서 재미있더군요. 손목시계의 역사에 대한 짤막한 글도 실려 있는데 설홍주에 씀직한 이야기도 있어서 구상중입니다.

그리고 만화책 몇권, 특히 전에 "미노타우로스의 접시" 포스트에서도 언급한 "기테레쓰 대백과" 문고본 1, 2권은 발견하고 주저없이 집어들었습니다. 반가운 마음에요. 다시 읽어보니 예전만큼 재미는 없었지만 그래도 만족합니다. 또 구한것은 따뜻하고 정감넘치는 그림이 마음에 드는 후쿠야마 게이코의 "동경물어" 1권. 예전 일본여행에서 살까말까 망설였는데 중고가격으로 나와 있어서 부담없이 질러 버렸네요. 추리물로는 좀 애매한 구석이 많이 있지만 쇼와 초기의 도쿄 모습이 가득해서 자료적 가치만으로도 충분하다 생각됩니다.

요새는 바빠져서 찾아가기 쉽지 않지만 한번 찾아갈때마다 보물같은 책을 한두권씩 찾는 재미 때문에 헌책방 순례를 포기하기 어렵다니까요^^ 다음 번에는 언제 찾아가게 될지 궁금하지만 그때도 좋은 책과의 만남이 있었으면 좋겠네요.

2012/06/10

혼진 살인사건 - 요코미조 세이시 / 정명원 : 별점 2점

혼진 살인사건 - 4점
요코미조 세이시 지음, 정명원 옮김/시공사

"혼진 살인사건"은 이미 예전에 동서 추리문고로 읽었지만, 이번에 시공사에서 새로운 번역으로 출간되어 다시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이 책에는 세 편의 중, 단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수록된 작품은 중편인 "혼진 살인사건"과 단편인 "왜 도르레 우물은 삐걱거리나", 중단편 길이의 "흑묘정 사건"입니다.

수록작의 전체 평균 별점은 2점. 표제작 외 다른 두 작품이 점수를 좀 깎아먹은 탓입니다. 이 책에 실린 단편들보다는 예전 동서 추리문고의 "나비부인 살인사건"이 더 좋았습니다. 이쪽은 별점 3점은 충분했던 것 같은데 말이지요. "나만의 요코미조 세이시 순위"에 추가한다면, "혼진 살인사건"은 공동 2위이고 이 책 전체적으로 따지면 7위입니다. 긴다이치 시리즈 팬분들께는 추천드리지만 그냥 추리 애호가분들께는 호불호가 많이 갈릴 수 있다는 점 참고하세요.

수록작 간단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혼진 살인사건"

이 작품은 기념할 만한 긴다이치 시리즈 첫 작품으로 시리즈의 전형적 특징 - 시골 마을 지역 유지 가문에 얽힌 원한 관계와 오싹한 살인사건, 그것을 해결하는 명탐정 긴다이치 코스케! -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밀실 살인사건이 펼쳐지며, 공들인 트릭이 등장하는 본격 추리소설의 모양새를 갖추고 있다는 점도 시리즈 다른 작품들과 같습니다.

그러나 공정함에 있어 큰 문제가 있긴 합니다. 작품 속 공개된 정보만 가지고 트릭을 독자가 풀어내기는 거의 불가능한 탓입니다.

그래도 기념비적인 시리즈의 첫 작품으로 역사적 의미도 확실하며, 지금 읽어도 충분한 재미를 전해줍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왜 도르레 우물은 삐걱거리나"

전형적인 긴다이치 시리즈다운 소품. 긴다이치는 아주 잠깐 언급될 뿐 화자는 혼이덴 가문의 병약한 막내딸 쓰루요로, 그녀의 1인칭 시점 서간문으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그러나 좋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습니다. 추리적으로는 스기 죽음의 진상과 에마를 숨긴 이유를 쓰루요에게 숨긴 이유가 전혀 설명되지 않은 탓입니다. 게다가 오노 가문의 쇼지가 죄를 뒤집어쓰고 자수했다는 결말부는 어이가 없더군요. 강도, 퍽치기 전과가 있는 인간이 약간의 호의 때문에 살인죄까지 뒤집어써 준다는 게 말이 되나요? 협박을 하면 했지...
편지로 진행되는 전개 역시도 몇몇 단락을 제외하면 그냥 소설이라 해도 될 정도로 편지 특성을 살리지 못했고요.

한마디로 쓰루요의 쓸데없는 오해가 내용의 대부분인 작품으로, 일종의 순간이동 알리바이 트릭은 괜찮았지만 그 외의 내용이 너무나 부실하기 때문에 별점은 1.5점입니다.

"흑묘정 사건"

추리소설가 Y가 긴다이치 코스케와 함께 밀실 살인, 1인 2역, 얼굴 없는 시체라는 전통적 추리소설 트릭에 대한 견해를 나눈 뒤, 얼굴 없는 시체에 관련된 사건을 실제로 긴다이치가 해결하고 알려준다는 내용입니다.

얼굴 없는 시체 트릭은 전형적인 피해자·가해자 바꿔치기 트릭에서 한 발자국 정도 더 나아간, 나름 고심한 트릭이 펼쳐집니다. 특히 장지문과 다다미에 묻은 혈흔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이 체계적이고 논리적이라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러나 뜬금없이 오노 지요코라는 여인이 등장해서 딱 맞는 역할을 수행하고 사라진다던가, 그냥 봐도 수상한 변장과 뒤이은 밀회 쇼를 그냥 성격 문제였다는 식으로 얼렁뚱땅 넘기는 부분은 심하게 거슬렸습니다. 트릭 자체도 지금 읽기에는 많이 낡았고요. 아유코와 시게가 동일 인물이라는 것은 너무 뻔했어요. 그 외에도 닛초가 공범이 되는 동기와 이유가 밝혀지지 않는 것도 석연치 않았습니다.

그래도 긴다이치 코스케의 개그스러운 만담과 과거사가 잠깐이나마 펼쳐져 팬으로서는 즐길 거리가 있고, 본격 추리 소설로서는 나쁘지 않습니다. 지금 읽기에는 너무 낡았다는게 아쉽기만 합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2005/01/05

옥스퍼드 운하 살인사건 - 콜린 덱스터 / 이정인 : 별점 5점

옥스퍼드 운하 살인사건 - 8점 콜린 덱스터 지음, 이정인 옮김/해문출판사

과음과 과로로 닥친 위궤양 증상으로 인해 입원하게 된 모스 경감은 무료한 시간을 달래기 위해 소책자 "옥스퍼드 운하 살인사건"을 읽은 뒤 취미삼아 병상에 누운채로 그 과거 사건의 진상을 추리해 나가기 시작한다...

유명한 콜린 덱스터의 "모스경감"시리즈의 기념할 만한 국내 첫 번역본. 예전에, 그리고 지금도 동서나 다른 출판사에서 "우드스톡으로 가는 마지막 버스"나 "사라진 소녀" 등이 나오고 있긴 하지만 이렇게 정식 번역 시리즈가 나오는 것은 처음이죠. 반가운 마음에 당장 구입했습니다. 그런데 올해 처음으로 구입해서 읽은 추리소설이지만 너무 재미있어서 감탄사가 절로 나오네요. 일단 모스 경감 시리즈 중에서도 여덟번째 작품인데 내용적으로 첫번째 작품이라 해도 별 무리 없을 정도로 자연스러우며, 모스경감의 매력을 잘 전해주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도 소탈하면서도 너무나 인간적인 모스경감을 좋아하긴 했지만 이 소설에서처럼 제대로 묘사된 작품은, 아니 제대로 번역된 작품은 이전에 읽지 못했기 때문에 더 재미있었던 것 같네요. 소설 전반에 걸쳐 보여지는 모스 경감의 유머나 재치는 여전하며, 책을 읽다가 스스로 멋진 문구에 감탄한다던가 포르노 소설을 즐기다가도 스스로에게 실망하며 창피해 하는 모습이 자연스럽고도 굉장히 현실적으로 가깝게 느껴져서 좋았거든요.

또 이런 인간적인 매력 외에도 액자 소설식으로 전개되는, 모스 경감이 책을 통해 접하게 된 과거의 사건을 추리해 나가는 과정 역시 탄탄하며, 독자에게 전달해 주는 단서도 각 단락별로 상당히 공정하면서도 매끄러운 편이라 추리적으로도 완성도가 높습니다. 예전에 읽었던 "진리는 시간의 딸" 같은 구성이긴 한데 결정적이다 싶은 단서는 수사를 통해 밝혀 내는 등, 전개 과정은 보다 깔끔하고 설득력 역시 높네요. 마지막 에필로그에서 모든 사건을 정리하는 솜씨 역시 대단했고요.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5점! 중편 정도의 길이 치고는 가격이 상당한 편이지만 추리적 수준은 물론 소설의 재미도 일정 수준 이상입니다. 무엇보다도 모스 경감의 매력을 제대로 느끼려면 꼭 한번 읽어봐야 할 책이 아닐까 싶군요. 모든 분들께 강력하게 추천드립니다.

2014/01/06

베이커 스트리트 살인 - 아서 코넌 도일, 마틴 H 그린버그 외 / 정태원 : 별점 2.5점

베이커 스트리트 살인 - 6점
아서 코넌 도일 외 지음, 마틴 H. 그린버그 외 엮음, 정태원 옮김/단숨

"홈즈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셜록 홈즈를 주인공으로 다양한 후대 작가들이 쓴 단편 소설들을 모아놓은 파스티쉬 앤솔러지. 7년 전에 출간되었던 "베이커가의 살인"과 같은 책으로 표지와 구성이 미묘하게 다르긴 하나 내용은 기본적으로 동일합니다."

그런데 왜 이러한 형태로 재출간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네요. 저는 이전 판본의 편집과 구성, 디자인이 더 마음에 들거든요. 코난 도일 경의 글이 앞에 위치한 배치라든가 디테일한 디자인 등 전체적인 구성이 더 괜찮았기 때문입니다. 무언가 어른의 사정이 있는 거겠죠?

여튼, 내용 리뷰는 같은 책이니 당연히 이전 리뷰와 거의 동일합니다. 서문 및 각종 에세이들의 자료적 가치는 높지만 수록 단편 11편의 수준이 고르지 못하고, 고 정태원 선생님의 번역도 매끄럽지 못한 부분이 눈에 띄어 선뜻 권해드리기는 좀 어렵다는 것까지 말이죠. 특히나 "홈스"라고 번역된 이름은 아무리 읽어도 영 어감이 별로더군요....

그래도 나이가 들고 취향이 약간 바뀐 탓에 예전 리뷰에서 좋게 평했던 작품보다 시원찮게 평가했던 작품이 더 마음에 들기도 했습니다. 이번에 괜찮았던 작품은 아래의 세 작품입니다.

"홈스를 태운 마차"
우연히 홈스를 태우게 된 마부를 화자로 한 슬랩스틱 소동극에 가까운 유쾌한 소품. 추리는 거의 없다시피할 정도지만 유쾌한 분위기에 더해 마부의 고민까지 깔끔하게 해결하는 전개가 좋았습니다.

"아라비아 기사의 모험"
실존 인물인 "천일야화"의 작가 리처드 경을 등장시키고 당대로서는 최첨단 문물인 코닥 카메라, 그리고 역사적 사실은 투탄카멘의 무덤을 엮어 그려낸 괜찮은 역사추리물입니다. 진상을 추리하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홈스가 실재 역사와 교묘하게 엮이는 전개가 아주 매력적인 작품이었어요.

"체셔 치즈 사건"
트릭은 번역으로는 알 수 없는 일종의 삼행시 같은 것이고 설정과 전개는 예전에 읽었던 데이비슨 포스트의 "대암호"와 유사하지만 시대와 장소를 잘 살린 덕에 차별화되는 높은 설득력을 갖게 된 괜찮은 작품입니다.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앞서 권해드리기 좀 어렵다고 쓰기는 했지만, 기본적인 완성도와 재미는 보장하는 만큼 셜록 홈즈의 팬들이시라면 즐겁게 읽으실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2025/06/01

텍사스홀덤 1,2 - 원사운드 : 별점 2점


예전에 어딘가에서 연재되던걸 감상했었는데, 완결되었는지 모르고 있다가 뒤늦게 구입했습니다. 예전 연재작은 흑백이었는데, 웹툰 시대에 맞게 풀 컬러로 리뉴얼되었네요.

만화의 가장 큰 장점은 포커 게임 '텍사스홀덤'을 진지하게 스포츠처럼 다루고 있다는 점입니다. 덕분에 단순한 도박 만화가 아니라, 마치 스포츠 만화를 읽는 듯한 몰입감을 선사합니다. 등장인물인 비비안이 “도박이 아니라 스포츠”라고 주장하는 대사가 단지 허세로 들리지 않을 정도로 짜임새가 아주 탄탄했어요. 초반부 기수와 찰리의 대결, 그리고 마지막 포커 대회에서 펼쳐지는 나노노코와 기수의 결승전은 긴장감 넘치고 손에 땀을 쥐게 할 만큼 흥미롭게 표현되어 있고요.

텍사스 홀덤을 ‘비즈니스’의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는 점도 흥미롭습니다. 프로게이머 출신 갑영이 연봉제로 포커 플레이어들과 계약하여 대회에 출전시키고, 이 중 프로게이머 출신 기수는 프로 시절 보여준 경기를 근거로 스카웃한다는 설정, 온라인 포커 게임을 위한 봇을 만드는 설정이 그러한데 현실적이면서도 설득력이 높습니다. 왜 프로게이머가 포커를 잘 하는지 살짝 알 수 있었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고요.

작품이 단 2권으로 깔끔하게 마무리되었다는 장점도 큽니다. 짧은 분량이지만 주인공 기수의 성장은 뚜렷하게 그려져 성장기로서 손색이 없습니다. 기수와 비비안의 관계를 적절한 여운을 남기며 마무리한 점도 좋았고요.

하지만 단점도 분명합니다. 가장 아쉬운 부분은 작화입니다. 원사운드 특유의, 하지만 극화에 맞게 6등신 이상으로 그려진 인물들 대부분은 헤어스타일을 제외하면 거의 구별이 되지 않아서 몰입을 방해합니다. 인물들의 감정선이나 개성을 시각적으로 드러내지도 못하고요.

또한, 작품 내에 등장하는 텍사스 홀덤 관련 정보가 과도하게 많다는 점도 문제입니다. 이야기의 흐름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정보들이 길게 이어지는 경우가 자주 있거든요. 그렇다고 이 정보들이 독자가 포커에 대해 실제로 잘 알게 만드는 학습 효과가 많은 것도 아니고요. 지루한 설명이 많지만 학습 효과는 떨어지는, 어정쩡한 구성입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분명 추천할만한 요소는 있습니다만, 단점도 확실해서 감점합니다. 스토리 만화보다는 차라리 텍사스 홀덤을 제대로 알려주는 학습 만화로 방향을 잡았으면 더 나았을 것 같습니다.

2016/10/29

서프라이즈 : 사건편 - MBC 신비한 TV 서프라이즈 제작팀 : 별점 2점

서프라이즈 : 사건편 - 4점
MBC 신비한TV 서프라이즈 제작팀 지음/MBC C&I(MBC프로덕션)

MBC의 "서프라이즈"는 최근 잘 보지는 않지만 예전에는 저도 자주 보았던 프로그램이기도 합니다. 제 절친 철호군의 애청 프로그램이기도 하고요. 이 친구가 얼마나 좋아하냐 하면, 예전에 월드컵으로 "서프라이즈"가 결방하자 짜증을 낼 정도였죠. 아 철호야 보고싶다.... 하여튼, 그 "서프라이즈"에 소개되었던 이야기들이 두 권의 책으로 발간되었습니다. 한 권은 "사건편", 다른 한 권은 "인물편"입니다. "사건편"에서는 제목 그대로 "서프라이즈"에 소개되었던 기묘한 사건들 중 약 90여편을 소개해 주고요.

하지만 내용이 의외성이 있다거나, 새로운 이야기는 많지 않습니다. 아틀란티스, 모아이, 마야, 일루미나티, 야마시타 골드, 사해 사본, 코덱스 기가스 등은 이런 저런 곳에서 하도 많이 언급해서, 이제 쉬어버렸다고 해도 무방할 소재들이니까요. 게다가 400페이지 정도 분량에 무려 11개 주제, 90여편의 이야기가 소개되는 탓에 깊게 파고들지도 못합니다. 한 이야기당 4페이지를 할당하기도 버거울 정도이니 당연합니다. 그나마도 소개되는 이야기들도 너무 각색해서 실제 역사가 왜곡되는 듯한 느낌을 전해주기도 합니다. 나폴레옹이 워털루에서 패배한 이유가 병조림 때문이라는 (영국은 더욱 개선된 통조림을 장비) 주장이 대표적입니다. 

무엇보다도 큰 문제는 TV에서 방영한 이야기를 가공한 것임에도 단 한장의 도판도 수록되어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밀림 속 신비의 사원과 같은 고대 유적이나 그림, 주요 문화재와 같은 소재는 도판이 굉장히 큰 도움이 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요. 납득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래도 아주 건질게 없지는 않습니다. 이슬람의 신비의 명검 다마스쿠스 검은 칼 표면의 소용돌이 또는 물결무늬가 특징인데, 이 무늬가 강도와 탄력성을 부여하는 핵심 역할을 한다는 것은 처음 알았습니다. 700도까지 가열한 후 280도에서 담금질을 하였다는 제조법 또한 마찬가지고요. 마지막으로 다마스쿠스 검의 최신 분석 결과로는 탄소나노튜브가 검출되었다고 하니 놀랍기만 할 따름입니다. 오래전에 감상했던 "13번째 전사"에서 안토니오 반데라스가 분한 이븐 파들란이 전투를 앞두고 준비하던 칼이 떠올랐습니다.

중세 집집마다 상비했던 명약 무미야는 사실 이집트 미라를 갈아서 만든 것이라는 것도 기억에 남습니다. 미이라를 만들 때 쓴 "몰약" 성분 덕분이라는데 몰약은 말로는 많이 들었지만 성분이 무엇인지는 몰랐는데 공부가 많이 되었습니다. 동부아프리카 해안 자생 나무에서 추출한 성분으로 살균, 정화 능력이 탁월하다네요.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 속에 암호가 숨겨져 있다는 것도 처음 알게 된 사실입니다. 그림 위에 다섯 줄의 평행선을 그리고 제자들의 손과 빵의 위치에 점을 찍은 후 거울에 반전시켜 40초 분량의 찬송곡이 나왔다는군요. 이거야말로 TV로 보았으면 그림, 음악이 실제로 나왔을터라 더욱 좋았을텐데 아쉽습니다.

그 외에도 나우루 공화국이 인광석을 바탕으로 엄청난 복지를 이루었지만 자원 고갈, 환경 오염 및 섬의 고도가 낮아져 가난과 공포에 휩싸인 삶을 살아간다는 이야기라던가 하트셉수트의 사망 원인이 당뇨병, 온 몸에 퍼진 골암이었다는 이야기 등등도 재미있었습니다.

하지만 TV로 보는게 더욱 의미있는 내용들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습니다. 책으로 읽을만큼 가치가 있는 내용이라 생각되지도 않고요. 책으로서의 완성도 역시 수십년 전 리더스다이제스트에서 발간한 "세계진문기담"이나 "세계상식백과" 등과 비교해보아도 현격하게 처집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궁금하신 주제가 있으시다면 인터넷으로 찾아보시는걸 추천드립니다.

2009/08/14

필독 본격 추리 30선

출처는 간만의 "미스터리베스트" 입니다. 원문은 여기서 보세요. 추리소설 연구가라는 "山前譲" 씨가 선정한 리스트라고 하며, 원래는 아유카와 데츠야의 "유리의 집"에 수록되어 있었던 것이라고 하네요. 2차대전 전부터 소화 30년대까지 쓰여진 일본 본격 추리소설 중에서 선정한 것인데, 국내에서 구하기 힘든 작품도 상당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예전에 올렸던 글인데 뭔가의 실수로 지워져서 다시 업데이트 하는 기분으로 올립니다.

현재 스코어 저는 읽은 작품이 달랑 6개네요. 공부가 부족하기도 하지만 번역된 작품은 다 읽은겁니다...

* 2014년 2월 28일 수정. 9개로 늘었네요. 역시나 번역된 것은 다 읽은 것입니다.


殺人鬼 / 浜尾四郎 / 創元推理文庫 日本探偵小説全集 5 : 제목은 강렬한데 뭘까요...?

船富家の惨劇 / 蒼井雄 / 創元推理文庫 日本探偵小説全集 12 : 역시나 강렬한 제목.

本陣殺人事件 / 横溝正史 / 角川文庫, 創元推理文庫 日本探偵小説全集9 : 요코미조 세이시의 "혼진 살인사건"

高木家の惨劇 / 角田喜久雄 / 創元推理文庫 日本探偵小説全集3 : 예전에는 참극이라는 제목 참 많이 쓰였군요...

蝶々殺人事件 / 横溝正史 / 角川文庫 : 요코미조 세이시의 "나비부인 살인사건".  국내에는 동서판 "혼진 살인사건"에 같이 수록되어 있죠. 솔직히 좀 지루한 작품이었습니다만...

奇跡のボレロ / 角田喜久雄 / 春陽文庫 (未) : 흠... 내용이 궁금해지는 제목입니다.

不連続殺人事件 / 坂口安吾 / ちくま文庫 坂口安吾全集11、角川文庫, 創元推理文庫 日本探偵小説全集10 : 사카구치 안고의 "불연속 살인사건". 저는 영 별로였는데 평론가들은 무지 좋아하네요.

刺青殺人事件 / 高木彬光 / 光文社文庫, 角川文庫 : 다카키 아키미쓰의 "문신 살인사건". 좋은 작품이죠.

古墳殺人事件 / 島田一男 / 徳間文庫 (未) : 고분이라.. 역사추리일까요?

源氏物語殺人事件 / 岡田鯱彦 / 国書刊行会 "薫大将と匂の宮" (未) : 제목이 그럴듯 하네요. 역시나 역사추리물?

人形はなぜ殺される / 高木彬光 / 光文社文庫, 角川文庫 : 다카키 아키미쓰의 "인형은 왜 살해되는가"

上を見るな / 島田一男 / 光文社文庫 (未) : 전혀 짐작도 안가는 제목입니다. ㅎㅎ

黒いトランク / 鮎川哲也 / 角川文庫 : 아유카와 데츠야의 "검은 트렁크". 국내에도 나온다, 나온다하지만 아직 안나온 작품이죠. 꼭 읽어보고 싶은데...

猫は知っていた / 仁木悦子 / 講談社文庫, 大衆文学館 : 니키 에쓰코의 "고양이는 알고 있다". 귀여운 작품이죠. 걸작인지는 아리송하지만.

屍の記録 / 鷲尾三郎 / 春陽堂書店 : 법의학 추리물인가 싶은 제목이군요.

点と線 / 松本清張 / 新潮文庫 : 마쓰모토 세이초의 "점과 선".

招かれざる客 / 笹沢左保 / 角川文庫 : 사사자와 사호도 항상 들어가네요. 국내에 번역이 좀 되었으면 하는 작가 중 한명인데, 이 작품은 데뷰작이기도 한 "초대받지 않은 손님" 입니다.

二人で殺人を / 佐野洋 / 角川文庫 : 사노 요도 친숙한 작가죠. 저도 "금색의 상장"이라는 작품을 읽어봤습니다. 이 작품은 잘 모르겠지만...

りら荘事件 / 鮎川哲也 / 講談社文庫, 角川文庫 ("りら荘殺人事件") : 아유카와 데쓰야의 "리라장 사건"

人喰い / 笹沢左保 / 徳間文庫, 双葉文庫 : 또 사사자와 사호.

風花島殺人事件 / 下村明 / 桃源社 : 모르는 작가네요.

危険な童話 / 土屋隆夫 / 角川文庫, 光文社文庫 : 쓰치야 다카오. "호메로스 살인사건"은 좋은 작품이었죠. 이 작품은 불가능범죄 이야기인 듯 한데 기대되는군요.

枯れ草の根 / 陳舜臣 / 講談社文庫 : "얼룩 화필"로 국내에 소개된 진순신의 작품입니다.

変人島風物誌 / 多岐川恭 / 桃源社 (未)

黒いリボン / 仁木悦子 / 角川文庫 (リバイバル) : 니키 에쓰코 여사. 무슨 작품일지 궁금하네요.

弓の部屋 / 陳舜臣 / 角川文庫 (未) : 진순신도 유명 작가이긴 하군요.

時間の習俗 / 松本清張 / 新潮文庫 : 마츠모토 세이초의 "시간의 습속". "점과 선"의 후속작입니다.

陽気な容疑者たち / 天藤真 / 創元推理文庫, 角川文庫 : "대유괴"의 텐도 신. 이 작품도 제목부터 유머스러운게 범상치 않아 보입니다.

影の告発 / 土屋隆夫 / 光文社文庫, 角川文庫, 講談社文庫, 双葉文庫

孤独なアスファルト / 藤村正太 / 講談社文庫

2006/05/15

에도가와 란보상 수상작가 걸작선 - 이경재 / 정태원 : 별점 2점

에도가와 란보상 수상작가걸작선
이경재 옮김/명지사

에도가와 란보상을 수상한 작가들의 단편을 모아놓은 앤솔로지입니다. 총 11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니시무라 교타로와 니키 에쓰코의 작품이 2편씩 실려 있기 때문에 소개된 작가는 9명입니다.

그러나 에도가와 란보상을 수상한 경력이 있는 작가들의 단편 (수상작이 아닌!)을 아무 생각없이 수록했다고 생각될 정도로 작품 수준 편차가 심하고 작품들의 성격도 천차만별이더군요. 이렇게 소개할 바에야 실제로 에도가와 란보상을 수상한 작품을 시리즈로 하나씩 출간하는게 낫지 않을까 싶은데 말이죠.
또한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작품이 아닌 작품도 여러편 실려 있어서 신선함도 많이 떨어집니다. 그나마 그 작품이 모두의 공감을 얻을 정도로 뛰어난 작품이라면 이야기는 다르지만 진슌신의 "얼룩 화필" 같은 작품은 이렇게 많은 앤솔로지에서 소개될 정도로 뛰어난 작품은 아닌데 솔직히 의외에요. 니시무라 교타로의 "친절한 협박자"역시 마찬가지고요.
무엇보다도 작품의 존재 의미를 알 수 없는 졸작들, 도가와 마사코의 "잠자는 추녀"라는 맥락 없는 어설픈 작품과 추리 퀴즈용 꽁트 수준으로 보이는 "홍콩 힐튼 살인사건" 이 두편은 정말이지 이런 앤솔로지에 속할 수 있는 작품이 아니었다고 생각되요. 도가와 마사코는 자기 자신이 좀 환상적이고 기묘한 설정에 재능이 있다고 생각되는지 예전에 읽었던 "노란 흡혈귀"와 비스무레한 설정으로 작품을 써 내려간 것 같은데 당최 이해가 되지 않는 발상과 전개를 보여줍니다. 이건 단지 제 취향과 맞지 않다고 보기 이전의 문제에요. 무슨 이야기인지 모르겠으니까요.
또 "홍콩 힐튼 살인사건"은 뭐 작품 자체가 말이 안되는 수준이니.... 이런 수준 이하의 작품들을 어거지로 끼워넣는 것은 독자에 대한 모독이 아닐까요?

그래도 니키 에쓰코의 "빨간 고양이" 는 정통 추리 단편의 전통과 설정을 잘 계승한 좋은 작품이라 생각되고 구사카 게이스케의 "꾀꼬리를 부르는 소년"도 섬세한 묘사와 더불어 이야기의 전개가 깔끔한 재미난 작품이었습니다. 특히 "빨간 고양이"는 미스 마플의 일본판 재림을 보는 것 같아 인상적이었는데 이 두 편이라도 최소한의 값어치는 해 주니 다행이었지 안 그러면 정말 화날뻔 했습니다.

결론내리자면 매니아와 일반 독자를 모두 노린 괜찮은 기획이긴 했지만 작품 수준이 어설퍼서 이도저도아닌 실패작이 된 듯 싶네요. 앞서 말한대로 란보상을 실제로 수상한 작품집으로 제대로 출간되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니키 에쓰코씨의 데뷰작이자 란보상 수상작인 "고양이는 알고 있다"가 곧 출간된다고 하는데 이 작품이나 꼭 사 봐야 겠습니다.

PS : 이렇게 엄한 작품들이 하나둘씩 실려있는 앤솔로지보다는 추리 매니아들이 엄선한 단편만 실어놓은 앤솔로지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이 갑자기 드는군요. 아니면 매니아들이 한편씩 번역해서 싣는다던가.... 제가 번역한 "긴 추락"은 어떨까요?^^
한밤중의 살의 - 오타니 료타로
불륜관계에 있던 남자의 아내를 죽였다는 혐의로 고민하던 주인공 가와베 유미코는 남자가 자신과의 정사 후 되돌아가 아내를 죽인 것이 아닐까 하는 단서를 포착하는데...

꾀꼬리를 부르는 소년 - 구사카 게이스케
지방신문 기자 오케다니는 한 남자의 살해혐의로 체포된다. 피해자는 자신이 예전에 쓴 기사로 인해 집안이 몰락한 병원 가문의 외동아들. 오케다니는 자신과 밀회하던 다구치 히사에의 아들 마사오에게 농담삼아 한 말로 꼬투리를 잡히지만...

수험 지옥 - 니시무라 교타로
기무라 마사히코는 T대의 입시 시험날 늦잠을 자게된다. 그는 시험 시작 시간에 도저히 맞추어 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학교에 한통의 전화를 걸게 된다...

친절한 협박자 - 니시무라 교타로
이발사 신키치는 뺑소니 사건의 기억으로 괴로워 하던 중 그 사실을 목격한 한 남자에게 협박받게 된다...

수직의 함정 - 모리무라 세이이치
다카무라는 아들 신이치가 산악부에 들어가는 것을 반대한다. 그 이유는 20여년 전 자신과 친구 에나쓰가 저지른 살인 때문이었던 것. 하지만 아들의 고집을 꺾지는 못하고 결국 아들이 20여년전의 친구 에나쓰의 아들과 위험한 등반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데...

얼룩 화필 - 진슌신
조직 폭력배의 살인현장을 목격한 화가가 그들에게 자살을 가장하여 살해당하지만 그는 한통의 유서와 마지막 유작을 남기는데 성공한다...

빨간 고양이 - 니키 에쓰코
누마데 다카코는 어렵게 살아오던 중 한 노부인의 말벗으로 취직하는데 성공한다. 노부인 이쿠씨는 70대 중반으로 몸도 불편하지만 사실은 뛰어난 추리력을 가진 인물로 다카코의 어린 시절의 살인 사건의 진범을 알아내게 되는데...

엄마는 범인이 아니다 - 니키 에쓰코
어느날 엄마가 같이 사는 불량배를 살해했다는 혐의를 뒤집어쓰고 경찰에 잡혀가게 되지만 "나"는 엄마가 진범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잠자는 추녀 - 도가와 마사코
도망친 아내가 한 병원에서 의식 불명의 상태로 입원해 있다는 소식을 접한 구보다니 고지는 병원을 방문하여 기묘한 환경과 조우하게 되는데...

에노시마 비가 - 사이토 사카에
이시가미는 같은 아파트 단지의 직업 매춘부와의 관계를 끝내기 위해 그녀를 살해할 결심을 한다...

홍콩 힐튼 살인사건 - 도모노 로
추리소설 작가 이치무라 후미히데는 홍콩 여행 중 자신에게 실언을 한 호텔 직원에게 취중 폭언을 하게 되고 그 직원이 살해당하는 소설의 초고를 작성하지만 그 직원이 실제로 살해당하자 유력한 용의자로 몰려 체포당하게 된다...

2008/04/07

이와 손톱 - 빌 S 밸린저 / 최내현 : 별점 4점

이와 손톱 - 8점
빌 밸린저 지음, 최내현 옮김/북스피어

생전에 그는 마술사였다....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것을 성취한 인물이었다.

첫째, 그는 살인범에게 복수했다. 

둘째, 그는 살인을 실행했다. 

셋째, 그는 그 과정에서 살해당했다.

빌.S.밸린저의 고전 걸작입니다. 읽어보고 싶다고 예전 "사라진 시간"에서 언급한지도 2년이 지나서 나와는 인연이 없는 작품이구나... 싶었는데 이번에 다시 재간되어 읽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읽게되니 정말이지 감개무량하네요.

작품은 크게 두 개의 이야기가 병렬적으로 배치되어 전개됩니다. 하나는 마술사 루가 우연히 도와준 탤리라는 아가씨와 결혼했지만 그녀가 살해당한 뒤 복수를 이루기 위해 나아가는 과정을, 또 다른 하나는 뉴욕 지방 형사법원에서 자신의 고용인 아이샴 레딕을 살해한 뒤, 보일러를 통해 시체를 유기한 혐의로 기소된 험프리스라는 인물의 재판 과정입니다. 

그러나 생각만큼 대단한 임팩트는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읽기에는 많이 낡은 탓입니다. 앞서 이야기한 두 개의 이야기가 서로 포개지며 결말로 치달을 것이라는 것은 너무나 뻔하며, 작품의 가장 중요 포인트이기도 한 결말도 속이 훤히 들여다 보였거든요. 출판사 북스피어가 원서 초판 당시의 봉인(결말부를 봉인한 뒤 개봉하지 않고 반환하면 책값을 돌려준다는 이벤트)까지 재현해가며 반전 홍보에 열을 올렸지만, 지금 시점에서는 지나친 설레발이었습니다. 1955년 작, 즉 반세기 전의 작품이기에 발표 당시에는 충격적이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지금 읽으면 솔직히 그 정도는 아닙니다.

물론 좀 낡아보인다고 해서 이 작품의 가치가 뒤떨어지는건 아닙니다. 저는 봉인을 열고 읽었고 그만한 가치는 충분해요. 복수극이야 추리물에서는 발에 채일만큼 많고 진부한 소재이지만 이 작품은 그야말로 복수극의 교과서같은 작품이기도 하니까요. 복수를 위한 치밀한 과정이 너무나 흥미진진하게 묘사되어 끝까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덕분입니다. 또 이런 류의 복수담에는 정교한 플롯이 재미의 가장 큰 핵심적인 요소 중 하나인데 그야말로 "완전범죄"와 "복수" 라는 두가지 토끼를 동시에 잡는 주인공의 기민한 행동은 지금 읽어 보아도 감탄이 절로 나올 만큼 생생하게 표현됩니다. 재판 과정에서의 검사와 변호사의 신경전, 증언과 단서에 의해 드러나는 진상 같은 법정 드라마로의 재미 요소 역시 쏠쏠합니다. 봉인 문제는 단지 좀 귀찮았을 뿐이죠. 칼이 없으면 뜯기도 힘들고...

주인공이 악당(?)을 생각보다 쉽게 찾는다는 것과 몇가지 요소가 우연에 기반하고 있는 등 약간 애매한 부분도 있지만 재미에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며 재미 하나는 명불허전입니다. 별점은 4점입니다.
덧붙이자면 "상복의 랑데뷰"와 비슷한 느낌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복수극이라는 것 이외에는 유사한 점이 거의 없는데, 두 작품 다 주인공의 감정 최하단에 "사랑" 이라는 것을 녹여냈기 때문이겠죠. 이 기회에 "상복의 랑데뷰"나 다시 꺼내어 읽어봐야겠습니다.

아, 마지막으로 역자의 해설을 통해 제목이 가진 중의적 의미를 알 수 있었습니다. 예전부터 제목의 의미가 뭘까 궁금했고, 읽어나가면서 제목이 너무 직접적인게 아닌가 싶었는데 역시나 깊은(?) 의미가 있더군요. "맹렬하게, 필사적으로"라는 구어 표현을 가지고 단서와 연관시킨, 멋진 센스의 제목이라 생각됩니다.

2008/07/12

왓치맨 - 알란 무어 / 정지욱 : 별점 4점

왓치맨 Watchmen 2 - 8점
Alan Moore 지음, 정지욱 옮김/시공사

악당들과 싸우던 슈퍼 히어로들은 킨 법령에 의해 거의 대부분은 은퇴 수순을 밟는다. 그러던 어느 날 "코미디언"이란 히어로가 변사체로 발견되고, 예전 동료의 한명은 "로어샤크"는 예전 동료들을 찾아다니며 히어로들을 파괴하려는 음모가 있다는 것을 서서히 간파하게 된다. 조사의 와중에 "로어샤크"는 경찰에 체포되나 그를 도와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려는 "나이트 아울"은 그를 탈옥시키고 결국 모든 사건과 음모의 주동자가 누구인지를 알게 되는데...

휴고상을 수상하는 등 너무나 뛰어난 작품성을 지닌 걸작이라는 평이 자자했던 왓치맨이 드디어 국내 정발되어 읽어 보게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평단의 평 처럼 대단한 예술성을 느꼈다고 하긴 어렵지만 확실히 재미있더군요. 단순한 권선징악적 이야기가 아닌 복잡한 음모가 이면에 펼쳐지며 절대적으로 선한 인물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 슈퍼 히어로물이라는 점에서 슈퍼 히어로물을 잘 아는 성인을 위한 만화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마지막 부분에서의 지구 평화를 지키기위한 명목하에 벌어진 거대한 음모에 대한 히어로들의 암묵적인 동의, 그에 반발하는 로어샤크의 제거라는 극단적인 결말은 무척 인상적이었고요. 절대 선이 존재하지 않는 디스토피아적인 SF, 그리고 다른 차원의 지구와 세기말 미래 세계에 대한 상상은 유구한 역사를 지니고 있겠지만 친숙한 슈퍼 히어로물에 이러한 세계관을 도입한 아이디어는 높이 사 줘야죠.

아울러 추리 애호가로서는 "추리적" 인 요소가 포함되어 있어서 무척이나 반가왔습니다. 히어로 연쇄 살인사건이라 할 수 있는 중심 사건과 그것을 조사해 나가는 로어샤크의 모습은 하드보일드 물을 연상케 했거든요. 수사 과정 자체는 별거 없는 탐문수사에 그치지만 거대한 음모와 그것을 밝혀나가는 과정은 꽤 흥미진진하고 나름 하드보일드 전통에 충실하다 생각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래픽 노블"이라는 타이틀이 어울릴 정도로 미국 만화 특유의 선을 살리면서도 정교하게 그려지며 화려한 채색이 덧붙여진 데이브 깁슨의 그림도 굉장히 마음에 듭니다. 세부적인 디테일 하나를 놓치지 않는 치밀함 역시 빛을 발하고요.

인터넷을 뒤져보니 이 작품에 대한 방대한 정보와 해석이 넘쳐나는데 그러한 세부 정보가 없이 처음 접하더라도 작품의 수준은 평범 이상을 보여주는 뭔가가 있습니다. 이러한 모든 요소를 종합해 보았을 때 별 4개는 충분한 작품이라 생각되네요.

이번에 영화화되어 개봉할 예정이라는데 스토리를 영화 하나로 압축하기는 쉽지 않으리라 예상되긴 하지만 무척 기대됩니다.

2004/04/26

브라운 신부 전집 3,4,5 : 의심-비밀-스캔들 - G.K 체스터튼 : 별점 3점

의심 - 6점 G. K. 체스터튼 지음, 장유미 옮김/북하우스
비밀 - 6점 G. K. 체스터튼 지음, 김은정 옮김/북하우스
스캔들 - 6점 G. K. 체스터튼 지음, 이수현 옮김/북하우스
단편 추리소설의 황금기의 최고의 명탐정이자 현재까지 그 명성을 유지하고 있는 몇 안되는 탐정 브라운 신부. 명성에 비하면 국내 소개가 잘 안된 편이었지만 북하우스에서 전집이 몇년 전 출간되었었죠. 구입한지는 제법 된 것 같은데 읽는게 좀 늦었습니다. 그 중 1,2권인 결백과 지혜편은 예전 자유추리문고본으로 먼저 읽어 보았기에 3,4,5권을 먼저 읽게 되었네요.

먼저 각 권에서 인상적이었던 작품들만 말씀드리자면,
3편 의심에서는 일종의 알리바이 깨기 트릭인 “기드온 와이즈의 망령”과 불가해한 밀실 살인 사건을 다룬 “하늘에서 날아온 화살”, 역시 밀실 트릭의 일종이지만 사건 현장 근처에 있던 개의 심리를 사건과 결부시키는 걸작 “개의 계시”, 괴기스러운 느낌의 복수극으로 완전범죄를 완성하려는 살인범의 트릭을 파헤치는 “날개달린 단검” 이,

4편 비밀에서는 브라운 신부가 자신의 추리의 비밀을 털어놓는 “브라운 신부의 비밀”, 광기의 복수극을 그린 “보드리 경 실종사건”, 연극에 관련된 밀실 살인 사건인 “배우와 알리바이”, 3편의 “날개달린 단검”과 일맥 상통하는 부분이 있는 “최악의 범죄”, 범인으로 몰린 시인의 누명을 벗겨주는 한편 다른 동기에서 진범을 찾아내는 “판사의 거울” 편이,

5편 스캔들에서는 사람의 인상과 기억의 오류를 바탕으로 한 장난인 “폭발하는 책”과 텅빈 술집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의 진범을 찾는 “퀵 원”, 살인자와 피해자에 대한 오류를 바탕으로 한 “블루 씨를 쫒아서”, 명망있는 제독의 살인사건을 범인의 말 한마디로 파헤치는 “그린맨”, 조그만 마을에 파란을 몰고온 목사 아들의 패륜행위의 뒤에 숨겨진 범죄를 밝혀내는 “마을의 흡혈귀”, 기발한 시체 은닉 트릭이 등장하는 “핀 끝이 가리킨 것”이
좋았습니다.

그외에도 대체로의 단편들이 하나하나가 전부 일정 수준이상을 넘어서는 작품들이라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다른 탐정들과는 다르게 직관과 인상, 정황에 주력하여 자신의 느낌으로만 사건을 꿰뚫어보는 브라운 신부의 특징도 전편에 걸쳐 잘 살아있고요. (참고로 브라운 신부의 추리의 비밀이 4편 “브라운 신부의 비밀”에서 설명되고 있기도 하죠.)

하지만 참으로 읽기는 힘든 작품들이기도 합니다. 단편집이란 모름지기 쭉쭉 읽어나가는 맛이 있어야 되는 법인데 대사나 묘사가 장황하여 한번에 읽어내리기 어려웠어요. 체스터튼이 워낙 당대의 유명 문인이었던 만큼 추리소설이라는 장르문학에서도 뭔가 독특한 자신만의 문체를 도입하여 쓴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예전 다른 문고본에서 읽고 느꼈던 유머러스한 부분이 많이 빠져 있는 것을 본다면 번역 문제인것 같기도 한데 여튼 여러모로 아쉬웠어요.
또 다른 단편집들도 가지고 있는 문제이기는 한데, 하나의 트릭을 변형하여 여러 곳에 쓰고 있는 편입니다. 특히나 “살인자”<>”피해자”의 역할 바꾸기 라던가 잘못된 증언의 오류를 짚어내는 방식이 자주 등장하더군요. 뭐 등장하는 단편마다 다른 상황에서 재미있게 사용하고 있어서 큰 단점으로 보기는 어렵지만요.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3점. 읽는 재미 측면에서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들지만, 전집으로 출간된 것에 대해서는 고맙기만 할 따름이라 점수를 조금 더 얹어 봅니다. 보다 쉽고 재미있는 문체로, 유머스러운 브라운 신부를 보여줄 수 있도록 번역이 조금 수정되면 더욱 좋겠네요.

2023/03/19

亂れからくり 복잡한 기계장치 : 2 스페이스 레이스

亂れからくり (創元推理文庫) (文庫) - 8점 泡坂 妻夫/東京創元社

마와리 토모히로의 집은 조용한 주택가의 한 구석에 있었다. 평범한 목조 모르타르 2층 건물로 나뭇결이 드러나있는 판자벽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바로 옆에는 5층짜리 아파트가, 앞에는 초록색 화장 벽돌로 마감한 신축 주택이 들어서 있었다. 새 건물의 선명한 색감 속에서 마와리 가가 있는 한 귀퉁이만 어둡게 느껴졌다. 인적은 드물었다. 가끔 가방을 걸친 세일즈맨, 장바구니를 든 주부가 지나갈 뿐이었다.

"시간을 맞추지."

마이코가 말했다. 열시 십분, 마이코의 시계가 5분 늦었다. 토시오는 아침에 역에서 확인했으니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마이코가 자신의 시계 바늘을 움직여 맞췄다.

두 사람의 차는 아파트 담벼락을 따라 토모히로의 집을 등지고 멈춰 서 있었다. 백미러로 집 현관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위치였다.

"해바라기 공예 사장, 마와리 데츠바는 올해 예순두 살야. 아직 일할 수 있는 나이지만, 작년에 가벼운 뇌출혈로 쓰러진 이후 업무에서 손을 뗐지. 요코하마 안쪽, 오나와(大縄)에 살고 있고……. 저기, 언젠가 고대 토기가 출토된 땅이지. 데츠바는 특별한 용무가 없는 한 회사에 얼굴을 내밀지 않는다고 하더군. 실제 업무는 아들 마와리 소우지가 담당하고 있어."

마이코의 설명은 토시오에게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의뢰처의 사정까지 조사해야 하는 건가요?"

"조금, 이유가 있어서."

마이코의 표정이 굳어졌다.

"마와리 소우지라고 하면 아까 본 사진에 있는 토모히로의 형제인가요?"

"아니야. 소우지와 토모히로는 사촌 사이야. 토모히로의 아버지는 류키치(龍吉)라고 하는데, 해바라기 공예의 사장인 마와리 데츠바의 동생이야. 류키치는 이미 20년 전에 죽었고, 아직 어린 아이였던 토모히로는 어머니의 손에서 자랐지만, 생활은 데츠바의 도움이 필요했지. 그 어머니도 토모히로가 학생일 때 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그런 인연으로, 토모히로는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해바라기 공예에 입사하게 되었어. 그래서 현재 소우지는 해바라기 공예의 영업부장, 토모히로는 제작부장으로 활약하고 있는데, 이 둘은 원래 사이가 좋지 않았다는군."

사촌 사이지만, 토모히로 쪽은 일찍 부모를 잃고 데츠바의 보호 아래 있었다. 사진 속 모습만 보아도 굴곡진 기질을 가지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두 사람의 성격도 달라. 소우지는 장난감을 수집하는 취미에 몰두하는 낙천적인 성격의 소유자이지만, 토모히로는 오히려 장난감을 다루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현실적인 불평불만가이지. 게다가 토모히로는 데츠바와 소우지에게 큰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기도 했고. 그런 두 사람의 대립이 격렬해진건 한 사건이 계기였어."

술집의 소형 트럭이 토모히로의 집 앞에 정차하고 점원이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백미러에 비쳤다. 곧 몇 개의 빈 병을 적재함에 싣고 반대편으로 달려갔다.

"장난감 업계는 최근 큰 변화를 겪고 있어. 백화점 장난감 매장을 들여다 본 적이 있니? 십만 원이 넘는 호화로운 장난감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고. 장난감의 메커니즘도 현대 과학의 정수가 집약되어 있고. 자동차도 그냥 움직이는 장난감은 이제 과거의 장난감이 되어버렸어. 동력은 배터리로, 조작은 전파나 음파를 통해 멀리서도 움직일 수 있어. 라디오 컨트롤이나 소닉 리모컨이라고 불리는 자동차는 알고 있겠지? 여자아이 인형만 해도 예전 같으면 궁궐에서 공주가 가지고 놀았음직한 화려한 패션 인형이 즐비해. 즉, 대규모 자본을 투입한 광고를 통한 대량 생산과 장난감 자체의 고급화가 이전에는 없었던 장난감 전성시대를 만들어내고 있어."

토시오는 장난감에 대한 관심은 적었지만, 장난감에 대한 광고가 너무 많다는 것은 느끼고 있었다.

"대체로 장난감 산업은 예전부터 가내 수공업이 주를 이루며 규모가 커지기 어려운 것이 특징이었어. 두세 명의 가내 수공업부터 규모가 큰 곳이라고 해도 종업원은 기껏해야 천 명 정도에 불과했지. 이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어느 나라에서나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장난감 산업의 성격이야. 실제로 해바라기 공예의 직원은 20여 명으로 이는 해바라기 공예의 전신인 츠루슈도 (鶴寿堂)시대와 크게 달라진 것이 없어. 달그락달그락 새로 대표되는 이른바 소품 완구 제조 및 판매가 주 업종이었고. 그런데 작년에 시대에 뒤처지지 않으려는 것인지, 아니면 유행에 편승하려 했던 것인지, 해바라기 공예가 경주용 자동차에 손을 댔어. 사장인 마와리 데츠바가 아닌 젊은 후계자의 기획이었던 것 같더군."

"알아요. 레이싱카는 요즘이라면 아이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 수 있을것 같은데요."

"해바라기 공예의 신제품 이름은 스페이스 레이스였어. 다른 업체들이 놀랄 정도의 최고급 제품이었지. 이게 잘되면 해바라기 공예도 비약적인 발전을 이룰 수 있었을거야."

마이코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실패했나요?"

"그래. 경주용 자동차를 달리게 하려면 주행로에 전류를 흘려보내야 하지. 보통은 가정용 전기를 사용해서 변압기로 전압을 10볼트 정도로 낮춰서 한 두 암페어의 전류를 주로에 흘려보내. 자동차는 이 전류를 받아 내장된 모터를 돌려서 달리게 도고. 그런데 해바라기 공예의 스페이스 레이스는 이 변압기에 결함이 있었어. 판매된 제품 중 갑자기 불이 나거나 만지면 감전되는 제품들이 발견되고 말았지."

"그런 일이 어떻게 일어난거죠?"

"변압기는 하청업체에서 만들었기 때문이야. 전부 다 불량품은 아니었지만, 극히 일부라도 위험한 불량품이 있었던 것은 확실했기에 스페이스 레이스는 전면 제조 금지, 전 제품은 회수되어 폐기 처분되었지."

"큰 피해를 입었군요."

"실제로 해바라기 공예는 부도 직전까지 갔어. 업체들 중에는 아직도 해바라기 공예의 존속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있고. 현재 해바라기 공예는 엄청난 빚을 지고 있을거야."

"소우지와 토모히로는 그 책임을 서로에게 떠넘기고 있는 건가요?"

"아까 말했듯이 두 사람은 어릴 때부터 사이가 좋지 않았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폭발을 피한 것은 토모히로가 더 참을성 있었기 때문인 것 같은데, 최근 토모히로가 드디어 참을성을 잃은것 같다고 하더군. 그러니까........"

마이코는 다시 입을 다물었다. 토모히로의 집 출입문이 열리면서 백미러에 한 여성이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보였다.

"...... 마사오다."

마이코는 시계를 보았다.


목적이 있는 발걸음이었다. 백미러 속 마사오는 사진에서 본 것처럼 웃고 있지 않다. 그래서 더 말라 보이는 것일까. 얼굴색이 생각보다 훨씬 더 하얗게 보였다. 마사오는 검은색 코트를 입고 검은색 가방을 들고 있었다. 그는 발걸음을 재빠르게 움직여 차 옆을 지나갔다. 마이코의 에그를 한 번도 쳐다보지 않았다. 마사오는 큰길로 나가자마자 왼쪽으로 돌아서서 보이지 않았다.

"어디로 가는 걸까요?"

"역 방면이야."

마이코는 에그의 문을 열었다.

"아마 역이겠지. 나는 걸어서 마사오의 뒤를 쫓을게. 만약 마사오가 다른 차를 타면 그대로 따라가면서 틈틈이 사무실에 전화를 걸어서 구로사와군에게 상황을 알려주도록 해. 만약 차를 탈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 산인은행 뒤에 주차장이 있으니 그곳에 차를 두고. 그럼 역에서 만나자."

마이코는 말을 마치고 차 문을 닫았다. 큰길로 나와 좌회전하자 마사오의 뒷모습이 금방 보였다. 차를 찾는 모습은 보이지 않고 같은 걸음으로 계속 걷고 있었다. 토시오는 주차장에 에그를 놓고 국철역으로 달려갔다. 역에 도착한 것은 토시오가 더 빨랐다. 잠시 후 마사오와 마이코가 역으로 걸어왔다. 

마사오는 망설임 없이 표를 샀다. 토시오는 자판기 숫자를 읽고 같은 금액의 표를 두 장이나 샀다.

기차는 비어 있었다. 토시오는 마사오가 있는 곳에서 문 두 개 정도 떨어진 곳에 섰다. 마이코가 다가왔다.

"차는?"

"시키는 대로 했습니다."

마사오는 시간이 신경 쓰이는 듯했다. 누군가를 만나러 가는 것일까. 그리고는 가만히 밖을 바라보았다.

중후한 체격에 탄탄한 옆모습을 하고 있었다. 검은 머리카락을 뒤로 예쁘게 묶고 은빛 머리 장식으로 고정하고 있었다. 날카로운 눈매, 그에 어울리는 날카로운 목소리를 상상하게 하는 입매, 미끄러질 것 같은 어깨는 사진에서 보던 그대로였다. 바로 옆에서 보고 처음 알아차린 부분도 있었다. 약간 위로 치켜 올라간 코와 고양이처럼 구부정한 등 굽은 모습이었다.

다음 역에서 골프채를 든 남자가 일어나서 내렸다. 마이코는 빈 자리에 앉았다.

마사오는 그보다 대여섯 정거장 지나 작은 역에서 내릴 기미를 보였다. 토시오는 눈빛으로 마이코에게 알렸다.

소수의 승객들과 뒤섞인 마사오는 예의 그 걸음걸이로 계단을 내려 개찰구를 빠져나가자 곧장 상가를 지나갔다. 상가를 지나자 마사오는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가늘게 이어지는 완만한 언덕길. 붉은 열매를 한가득 맺은 감나무가 무겁게 기울어져 있다. 인적이 드물었지만, 미행을 당할 염려는 없었다. 마사오는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왼쪽으로 돌아서자 그 한 귀퉁이는 작은 호텔, 여관이 즐비한 거리였다. 대부분 깊은 입구 앞에 물을 뿌려놓고 조용히 손님을 기다리는 구조였다.

"어디로 가려는 걸까요?"

토시오는 이런 곳에 발을 들여놓는 마사오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마이코를 비난하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

"보면 모르겠어? 러브호텔이잖아."

마이코는 토시오를 흘끗 쳐다보며 말했다.

"넌 그 반대라고 생각하겠지만, 보라고."

마사오는 흰 블록 담벼락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토시오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상대가 있는 겁니까?"

"당연하지."

"누구일까요?"

"나도 몰라."

토시오는 마사오가 사라진 자리에 섰다. 입구의 흰 벽에 기품 있는 파란색 글씨가 보였다. 

샹보르관.

양쪽에 원통형 날개가 있는 4층짜리 호텔이었다. 벽은 흰색이고, 삼각뿔 모양의 파란 두 지붕 사이로 창문이 보였다. 창문 가장자리에는 복잡한 덩굴 장식이 붙어 있었다.

마이코는 시계를 보고 5분이 지나자 담장 안으로 들어갔다. 토시오는 잠시 머뭇거렸다.

"너도 들어오라고."

마이코가 말했다. 지나가던 주부가 토시오를 본 것 같았다. 토시오는 당황하며 마이코의 뒤를 쫓았다.

검은색 유리로 된 자동문에 들어서자 안은 어두웠고, 따뜻한 공기가 온몸을 감싸고 있었다. 오렌지색 조명에 비춰진 종려나무 화분이 반짝이고 있었다. 갑자기 밤의 세계로 들어선 것 같았다.

"어서 오세요"

작은 체구의 여인이 안쪽에서 슬그머니 나와서 고개를 숙이고는 그대로 옆으로 돌아섰다. 부드러운 카펫을 밟으며 여자의 뒤를 따랐다. 엘리베이터로 4층, 여자는 한 방문을 열었다.

유리로 된 샹들리에, 벽에 장식용 벽난로가 달려 있고, 안에는 전기 난로가 있었다. 방의 장식은 어딘가의 궁전을 모방한 것임에 틀림없었다.

"푹 쉬세요, 천천히……"

홍차를 두고 나가려는 여자를 마이코가 붙잡았다.

"이건, 성의표시."

마이코는 여자에게 지폐를 건네주었다.

"그리고, 5분 전에 이 호텔에 들어왔던 여성분에 대한 이야기인데 말이죠."

여자는 표정이 굳어졌다. 이를 본 마이코는 가방을 열어 검은색 수첩을 슬쩍 보여주었다. 

"기다리는 분은 아직 안 오셨습니까?"

"오셨어요. 바로 옆 방에 함께 계십니다."

여자는 벽을 가리켰다.

"익숙한 손님인가요?"

"네, 뭐, ......."

토시오는 가방을 가리키며 말했다.

마이코는 고개를 돌리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한 가지 부탁이 있는데, 옆 방 손님이 돌아갈 것 같으면 그 전에 알려주실 수 있나요?"

"돌아가기 전에요?"

"그래요."

"알겠습니다."

여자가 나가자 마이코는 의자에 앉아 가방에서 담배를 꺼냈다.

"그렇게 해도 괜찮습니까?"

"이 수첩을 말하는 거야?"

마이코는 담배에 불을 붙였다.

"경찰 수첩 같은 건 아닐거잖아요."

"당연하지."

"만약에 발견되면 어떻게 할 거죠?"

"괜찮아, 그 여자도 그런 건 다 알고 있을 거야"

"뭐라고요?"

"모르겠어? 나는 그 여자가 말하기 쉽도록 도와준 것 뿐이야."

토시오는 어안이 벙벙했다. 지금까지 이런 행동을 하는 여자를 본 적이 없었다.

"당당했지?"

마이코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자, 그럼 모처럼이니까 목욕이나 할까?"

마이코는 담배를 끄고 일어섰다. 침실 문을 열고 전등을 켰다. 침대의 반쪽이 보였다. 침대 옆에는 꽃무늬 스탠드가 은은한 빛을 발하고 있다.

욕실 문을 여는 소리가 들렸고, 이어서 물소리가 들렸다.

마이코는 거실로 돌아왔다.

"자, 어디까지 얘기했지?"

"어디까지라뇨?"

토시오는 마이코의 말을 잘 알아듣지 못했다.

"멍하니 있으면 안 돼. 일 얘기야. 차 안에서 토모히로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잖아."

"......그랬습니다. 최근 토모히로와 소우지의 사이가 나빠졌다, 그 정도였지요."

"그래. 그게 수면 위로 떠올랐다고 했지. 그 전에, 우다이 경제연구회의 손님은 어디서 오는 것 같아?

"주간지 등에 광고를 내는 건가요?"

마이코가 입을 열었다.

"카츠 군처럼 세상이 움직여 주면 정말 도움이 될 텐데 말이야……. 일반인들이 거래 조사 같은 걸 하겠어?"

비야냥거리는 말이라면 익숙해져 있다. 트레이너의 욕설이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 ……이 멍청아, 죽어버려라. 토시오는 입을 다물었다.

"물론 니시키 빌딩의 상호를 보고 뭔가 업무를 물어보는 사람들도 싫어하지는 않아. 하지만 지금 조사 업무는 내가 어려울 때 도와준 선배가 흥신소 소장인데, 그곳의 하청을 받고 있어."

마이코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우연히 내게 들어온 일 중에 마와리 토모히로가 의뢰한 신용조사가 있었어. 조사 내용은 신규 거래와 관련된 상대 회사에 대한 신용조사였지. 개인 이름으로, 특히 해바라기 공예에 대해서는 극비리에 진행해야 하는 조건. 어때?"

"토모히로는 해바라기 공예와 결별하고 거래처를 빼앗은 뒤 자기 회사를 설립하기 위해 사전 작업 중인 걸까요?."

"아마도 그런것 같아. 토모히로는 해바라기 공예와 결별할 준비를 착착 진행하고 있는 셈이지. 그런데 한 가지 의문점은 토모히로가 과연 제대로 독립 자금을 마련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야."

"스폰서가 없나요?"

"내가 알아본 바로는 그래. 그래서 토모히로는 새로운 회사 설립 자금을 조달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가능성을 노리고 극비리에 움직이기 시작한거니. 그렇다고 해도 내가 굳이 그 내용을 파헤쳐서 조사할 이유는 없어."

"마사오의 행적 조사도 토모히로의 의뢰였군요?"

마이코는 이마에 주름을 잡으며 말했다.

"아니, 행적 조사까지는 아니야. 2~3일 전에 토모히로를 만났는데, 그때 마사오를 미행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어. 나는 바로 대답을 하지 않았어. 아무래도 내 스타일이 아니었기 때문이지. 그런데 토모히로는 단 하루만 해도 좋다고 했어. 오늘 아침 10시부터 5시까지. 어렵게 생각할 필요도 없고 그냥 호기심 때문에 나는 승낙했지. ……결국은 신원 조사가 된 것 같지만..."

"토모히로는 전부터 아내의 행동을 의심하고 있었습니까?"

"마사오가 이런 곳에 온 이상, 토모히로도 어느 정도 예상한게 아닌가 싶네."

"두 사람 사이에 아이는?"

"아들이 한 명. 두 살 몇 개월로 세 살은 아직이야. 이름은 토우이치(透一). 마사오의 어머니가 돌보고 있을거야."

이상하게도 토시오는 아직 마사오를 비난할 마음이 들지 않았다. 집에서 나온 마사오의 표정은 남편의 눈을 피해 애인을 만나러 가는 표정이 아니었다.

물소리가 달라졌다.

"물이 가득 찬 것 같군."

마이코는 자리에서 일어나 침실로 들어갔다. 어딘지 모르게 침착하지 못하다. 토시오는 담배를 서둘러 피웠다.

힘찬 물소리가 들린다. 문득 욕실에 면한 벽이 투명하게 비춰졌다. 지금까지는 그저 꽃무늬 벽인 줄 알았던 것이 유리로 된 칸막이였던 것이다. 욕실의 전등을 켜면 반대편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마이코 쪽에서는 그것을 눈치채지 못하는 모양이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가운데 하얀 나신이 어린아이처럼 양손을 높이 뻗고 있었다. 풍만하고 젊은 가슴이다. 살이 통통한 것에 비해 몸 전체가 탄탄했다. 마이코는 크게 기지개를 한 번 켜고 욕조에 뛰어들었다.

토시오는 눈앞이 캄캄해졌다. 유리 칸막이 옆에 커튼이 눈에 들어왔다. 토시오는 서둘러 커튼을 잡아당겼다.

잠시 후 마이코가 수건을 몸에 두르고 침실 문을 열었다.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고 있다.

"카츠군도 목욕하지?"

그 대답은 어렴풋이 기다리는 동안 준비해 두었다.

"아뇨. 마사오가 갑자기 돌아가는 일이 생기면 안 되니까요."

반쯤은 이대로 마사오가 돌아갈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래."

마이코는 문득 커튼을 발견하고 조금 열어 화장실을 보았다.

"흐음 ....... 자네는 꽤나 신사로군."

토시오는 마이코를 곤란하게 해주고 싶었다.

"우다이 씨는 몸매가 좋더군요."

그러자 마이코는 토시오를 보고 환하게 웃었다. 천진난만한 웃음에 토시오의 얼굴이 되려 조금 붉어졌다.

"그래도 스포츠에는 자신 있다고. 유도도 3단 정도 되는 실력이야."

마이코는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닦았다.

"나는 어제 저녁에 잠을 제대로 못 잤어. 이제부터 조금만 더 자고 있을게. 무슨 일 있으면 깨워줘. 한 시간만 지나면 깨어날 거야."

그렇게 말하고 마이코는 침실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안쪽에서 자물쇠를 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토시오는 멍하니 침실 문을 계속 바라보았다.

마사오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같은 욕조에 몸을 담그고 있는 것일까. 남자 쪽은 안이 보이는 유리 너머로 마사오의 나체를 감상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 호텔 여자의 말에 따르면 두 사람은 처음 보는 손님은 아닌 것 같았다. 그렇다면 남자는 같은 욕실에서 마사오와 몸을 씻고, 다른 두 몸은 서로 엉키면서 침실로 ......

토시오는 의자의 팔꿈치 걸이를 잡고 힘을 다해 몸을 띄워 거꾸로 섰다. 신발 끝이 샹들리에에 부딪혔다. 샹들리에가 크게 흔들렸다.

토시오는 의자에서 뛰어내려 TV를 켰다. 모든 채널에서 아이들이 뛰어다니고 있었다. 겨우 뉴스가 나오는 방송을 찾았다. 아나운서는 하호쿠가타(河北潟) 매립 공사에 대한 주민들의 반대 운동의 쟁점을 설명하고 있었다. 하지만 해설의 말이 전혀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토시오의 생각은 마치 자석에 빨려 들어가듯 마사오에게로 향했다. 토시오는 TV 옆에 작은 냉장고가 놓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문을 열자 맥주와 주스가 보였다. 토시오는 맥주를 꺼내어 병뚜껑을 열었다.

정확히 한 시간 후, 마이코가 침실에서 나왔다. 옷차림이 단정하고 표정이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혼자서 너무 많이 놀아 화상을 입은건 같은 얼굴이네. 얼굴이 벌겋다고."

마이코는 테이블 위에 놓인 맥주 병을 보며 말했다. 마이코는 냉장고에서 자신도 맥주를 꺼내 컵에 부어 한 모금 마신 뒤 한숨에 마셔버렸다.

45분이 지난 뒤, 호텔 여직원이 조용히 문을 두드리며 마사오 일행이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샹보르관에서 마사오가 나왔다.

마사오 혼자만 있었다. 얼굴이 달랐다. 피부가 붉게 달아오르고 윤기가 흐르고 있었다. 머리가 풀려 양 어깨에 걸려 있어 순간적으로 마사오로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표정은 똑바로 호텔에 왔을 때와 똑같았다. 걸음걸이도 마찬가지였다. 경기하러 갔다가 경기를 마치고 돌아오는 모습과 비슷했다. 마사오는 몸을 숙여 원래 왔던 길을 걸어갔다.

"상대 얼굴 좀 보자."

담벼락 뒤에서 마이코가 말했다.

5분 정도 기다리자 그 남자가 나타났다.

피부가 하얗고 입술이 붉고 날씬한 체격의 남자였다. 옅은 색의 안경을 쓰고, 흰 코트에 양손을 집어넣고 있었다.

마이코의 얼굴이 긴장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소우지다!"

마이코가 낮게 외쳤다.

마사오의 상대는 토모히로의 사촌인 마와리 소우지였다. 소우지는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며 마사오가 지나간 길을 걷기 시작했다.

마이코는 발걸음이 빨라졌다. 더 이상 소우지에게 볼일이 없었다. 마사오를 쫓기 위해서다. 마이코는 무표정한 얼굴로 소우지를 추월했다. 소우지는 마이코에게 조금 신경이 쓰이는 듯했다. 토시오가 지나갈 때, 소우지는, "오, 주모우......"라고 말한 것 같았다. 반짝, 의치의 금빛이 빛났다.

마사오는 역에서 처음 왔을 때와 같은 표를 샀다.

"소우지가 나를 알아챘어?"

기차 안에서 마이코가 물었다.

"우다이 씨의 얼굴을 알고 있나요?"

"몰라. 모르니까 아무렇지 않게 소우지 옆을 지나칠 수 있었지. 그런데 소우지가 뭔가 혼잣말을 하는 것 같았는데."

"주모우 어쩌구라며 말하는 소리가 들렸어요."

"주모우?"

마이코는 생각에 잠겼다.

"주모우라는 게 뭔데요?"

"들어본 적 있는 이름인데.......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는군."

마사오는 자신의 역에서 내렸다. 역 앞 큰길을 건너 상가로 들어섰다. 이대로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는 것일까. 그렇게 생각하니 주의력이 약해진 것일까. 마사오의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상가는 한낮이라 사람들이 많이 나와 있었다. 두 사람은 얼굴을 마주했다. 토시오는 마사오가 사라진 주변 상점을 하나하나 살펴보며 걸었다. 그 중 약국에서 마사오의 뒷모습을 발견했다.

그리 넓지 않은 가게였다. 토시오는 조심스럽게 문을 밀었다. 마사오는 새로운 손님에게 전혀 무관심했다. 카운터 맞은편에 콧수염을 기르고 흰옷을 입은 남자가 있었다. 나이를 보면 이 가게의 주인인 것 같았다. 지금 막 작은 초록색 상자를 포장하고 있는 중이었다. 토시오는 상자 안의 약 이름을 재빨리 읽었다.

마사오는 돈을 지불했다. 계산대가 울리며 금액이 표시되었다. 토시오는 금액도 기억에 담아두었다. 마사오는 소포를 받아 가방에 넣고 가게를 나섰다. 달콤한 냄새가 남았다.

주인은 새로운 손님에게로 향했다.

"감기약을 ......"

주인은 증상을 듣고 뒤쪽 유리 선반에서 상자 하나를 꺼냈다. 상자는 마사오가 구입한 약과 비슷했지만 브랜드가 달랐다. 토시오는 기억하고 있던 약의 이름을 말했다.

"............"

주인은 손의 움직임을 멈췄다. 다시 한 번 토시오를 탐색하듯 바라보았다. 콧수염이 살짝 움직였다.

"...... 의사의 처방전을 가지고 계십니까?"

"처방전? 가지고 있지 않은데요."

"그럼 유감스럽습니다만, 판매할 수 없습니다."

주인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위험한 약인가요?"

"용도에 따라서는 ...... 수면제니까."

"방금 전에 가게에 있던 사람한테는 팔지 않았나요?"

"그 분은 ...... 제대로 된 처방전을 가지고 있었어요."

토시오는 어쩔 수 없이 감기약만 받았다.

상가를 빠져나오는 길에 마이코를 따라잡았다.

"뭘 샀어?"

토시오는 주머니에서 작은 종이 포장을 꺼냈다.

"감기약입니다."

"또 쓸데없는 걸 샀나 보네. 다음에는 사지 않고 물건을 물어보는 방법을 가르쳐 주지. 마사오도 감기약을 샀어?"

"그 사람이 산 약은 저한테는 안 팔더라고요."

"안 팔았다고?"

"그 사람이 산 건 수면제입니다."

"수면제라니......."

마이코는 괴로운 표정으로 말했다.

"수면제는 의사의 처방전이 없으면 살 수 없는 건가요?"

토시오는 거절당한 것에 대해 여전히 불만이 있었다.

"마사오가 처방전을 가지고 있었어?"

"가게 아저씨가 그렇게 말했지만, 그런 기미는 전혀 없었습니다."

마이코는 약국 주인과 마찬가지로 토시오의 모습을 쳐다보았다.

"사람을 본거야."

"사람을?"

"제대로 된 가정의, 아는 사람이라면 의사의 증명 따위는 없어도 팔 수 있어. 하지만 지나가던 낯선 젊은이에게는 팔지 않아."

"그렇습니까?"

"물론, 마사오라면 처방전을 몇 장 가지고 있어도 이상하지 않아. 그녀는 원래 종합병원의 간호사였어. 그녀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는 의사들이 많았을거야."

"그녀는 수면제가 없으면 잠을 못 자는 건가요?"

"...... 그건 나야 잘 모르지"

마사오는 끝까지 걸음걸이를 흐트러뜨리지 않고 자신의 집 출입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갔다.

"운전은 괜찮아?"

마이코가 물었다.

"괜찮냐니.......?"

"맥주를 마셨잖아."

"저 정도, 이미 깼어요."

지금은 마이코의 얼굴이 더 붉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토시오는 은행 뒤편 주차장까지 걸어가 에그를 마이코에게 돌려주었다. 마이코는 차에 탔다.

"아직도 감시를 계속하는 거예요?"

"그래. 다섯 시까지는 약속이니까."

근처 유치원이 끝났나보다. 교복을 입은 아이와 엄마가 몇 쌍이 지나갔다.

잠시 후, 역에서 온 샐러리맨 같은 남자가 마사오의 집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백미러에 비쳤다. 키가 작고 마른 체격의 남자였다.

"저게 마사오의 남편이야. 마와리 토모히로."

마이코가 말했다.

전에 보았던 사진은 토모히로의 특징을 잘 포착하고 있었다. 튀어나온 이마, 너무 작은 입, 퉁퉁 부은 턱........ 토모히로는 자신의 집에 들어서는 순간, 마이코의 차를 힐끗 쳐다보았다.

토시오는 소우지와 비교했을 때, 토모히로의 표정에서 음흉한 그늘을 느꼈다.

"토모히로가 돌아왔으니 더 이상 감시할 필요가 없을 것 같은데요."

"글쎄, 잠깐만."

마이코는 시계를 보았다.

"토모히로라는 사람…..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잘 모를 부분이 있단 말이지."


亂れからくり 복잡한 기계장치 : 1 달그락달그락 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