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주신 분들께 안내드립니다.

2004/10/27

호메로스 살인사건 - 쓰치야 다카오 : 별점 3점

동경지검 검사 치구사는 어느날 밤거리에서 한 청년이 "하얀 까마귀(시로이 가라스)"라는 말을 남기고 죽어가는 장면을 목격했다. 청년의 정체는 출판사 백야서원에서 일하는 미토 다이스케. 그는 얼마전 희곡 공모전에 당선되어 밝은 앞날이 보장되어 있던 인물이기에 자살했을리는 없었다. 살인 사건으로 시작된 수사는 원한 관계나 여자 관계를 찾아볼 수 없어서 답보 상태에 놓였다.

한편 시골의 한 중학생이 고급 코트와 그 주머니 속의 손가락 한개를 발견하여 경찰에 신고했다. 코트의 주인은 저명한 평론가 마키 에이스케. 경찰은 손가락이 죽은 뒤 잘라낸 것이라는 사실까지는 알아내지만, 시체를 찾지 못해 이 사건도 미궁에 빠졌다. 

그러던 중 우연히 미토 다이스케의 카메라에 남아있던 필름에 마키 에이스케가 찍혀 있는 사진이 신고되있고, 경/검찰은 두 사건의 연관성에 촛점을 맞춰 나가게 되었다. 

에이스케의 코트 주머니 속에서 나왔던 종이 조각의 "눈먼 까마귀 같이.." 라는 구절과 "하얀 까마귀"의 연관성에 주목한 치구사 검사는, 에이스케에게 평론을 의뢰한 출판사 여직원 요시노 나호코의 도움으로 "눈먼 까마귀"가 시인 "오테 타쿠지"의 시 구절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을 알아냈다. 그리고 에이스케가 오테 타쿠지 평론 작성 시 만났었던 여성이 분신 자살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데.... 

원제는 "눈먼 까마귀"입니다. 별다른 기대 없이 헌책방에서 우연히 구한 작품인데, 예상보다 훨씬 괜찮은 작품이라 깜짝 놀랐습니다.

특히, 실존 인물인 작가 다나카 히데미쓰의 소설 "호메로스의 과일"과 오테 타쿠지의 시 "눈먼 까마귀"를 직접적으로 작품 속에 인용하고, 이를 주요 소재로 활용한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짧은 시 구절을 단서로 사건의 주요 동기를 밝혀내는 전개 방식이 상당한 수준이었으며, 뻔한 암호 트릭으로 활용되지 않았다는 점도 높이 평가할 만합니다. 과하지 않고 설득력 있게 풀어낸 덕분에 깔끔하고 정교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또한, 피해자 중 한 명인 에이스케가 문학 평론가였기에 극 중에서 그가 쓴 짧은 에세이와 평론이 등장하는데, 그 수준이 꽤 뛰어났습니다. 두 작가와 작품에 대한 찬사를 은연중에 드러내면서도, 문학에 문외한인 독자조차도 한 번쯤 원작을 읽어보고 싶게 만들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핵심 트릭인 다잉 메시지 "하얀 까마귀", 미토 다이스케 밀실 살인 트릭, 범인의 알리바이 트릭 세 가지 모두 지나치게 단순하다는 점은 다소 아쉬웠습니다.

"하얀 까마귀"는 말장난 수준이었고, 밀실 살인 트릭은 심리적·상황적 조작에 의한 트릭이라 대단한 느낌이 들지 않았습니다. 그나마 공들인 듯한 도쿄-가루이자와 간의 장소 이동을 이용한 알리바이 트릭은 발상 자체는 좋았으나, 전화 거는 사람의 특이한 버릇 같은 우연의 요소가 많아 어설퍼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학적 향취와 독특한 전개 방식, 잘 짜여진 복선, 그리고 색다른 동기 설정 등은 "문예 추리소설"이라는 별칭에 잘 어울리는 작품이었습니다. 일본 추리소설에 대한 편견(과도한 성적 묘사, 폭력적인 성향, 변태적인 감수성 등)을 깨 주네요. 이런 점에서 추리적 요소가 다소 부족하기는 하지만, 읽을 가치는 충분한 작품입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덧붙이자면, 조사해 보니 이 작품은 "치구사 검사 시리즈"의 한 편이더군요. 쓰치야 다카오의 작품 시리즈가 계속 발간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