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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23

라라미에서 온 사나이 (The Man from Laramie / 1955) - 안소니 만 : 별점 1.5점

라라미에서 온 사나이 - 4점 안소니 만 감독, 제임스 스튜어트 출연/소니픽쳐스

라라미에서 콜로라도 마을까지 생필품 운반을 해온 윌 록하트. 그는 사실 마을 근처에서 아파치에게 학살당한 기병대에 소속되어 있던 어린 동생과 친구의 죽음에 대한 비밀을 파헤치러 온 것이었다. 그러나 마을에 머무르던 그에게 여러가지 위험이 닥치게 되는데...


저는 서부극을 아주아주 좋아합니다. 사나이들이 펼치는 권선징악적인 스토리가 제 취향이기 때문이죠. 무협지도 그래서 좋아하고요. 이 작품은 고전 서부극의 걸작이라고 알려진 작품으로 어딘가의 "죽기전에 꼭 보아야 할 영화 1001" 이라는 목록에도 수록되어 있는 고전이죠. 그동안은 통 볼 기회가 없다가 우연한 기회에 보게 된 작품입니다.

일단, 뉴 멕시코에서 영화를 촬영한 듯 한데 정말 광활한 서부의 이미지를 잘 담아낸 화면은 일품이더군요. 또한 영화 제목과 같은 제목의 흥겨운 주제곡 역시 마음에 들었고요. 무엇보다도 한 마을에 온 이방인 (라라미에서 온 사나이)를 중심으로 그가 마을에 온 목적과 마을 최대의 목장주 집단과의 대립관계, 그리고 이방인을 둘러싸고 잇달아 벌어지는 사건들이 제법 추리적인 얼개를 갖추고 전개되어 중반까지는 흥미진진하게 볼 수 있었습니다. 중반까지는 어쨌건 "미스터리 서부극"이라는 별칭이 잘 어울릴 정도였으니까요.
그러나 영화의 중반 이후는 막장입니다. 진정한 악당이자 게임으로 따지면 최종 보스라 할 수 있는 "데이브"의 이른 퇴장 이후에 억울하게(?) 데이브의 죄까지 뒤집어 쓰게 된 "빅"이라는 캐릭터로 무게 중심이 이동해서, 영화의 힘이 무척 약해져 버리는 탓입니다. 데이브라는 캐릭터가 보스급 풍모를 전혀 갖추지 못한 양아치스러운 모습만 보여주는 것 역시 별로 영화 전개에 도움을 준 것 같지 않네요. 억울하게 누명을 뒤집어 쓰고 결국 죽어버리는 빅 역시 그동안 서부극에서 보기 힘든 악당도 아니고 친구도 아닌 모호한 캐릭터를 보여주는 것은 좋았지만 권선징악적 스토리에 썩 적합한 인물로 보이지 않았고요. 무엇보다도 신나는 총격전이라는 서부극에 가장 중요한 요소를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이 감점 요인이었습니다. 아울러, 추리적 얼개 역시 중반 이후에는 존재하지 않고 우연에 의해 사건이 계속 이어지게 됩니다...

그래도 나름의 복수를 끝낸 라라미에서 온 사나이가 자신에게 푹 빠져서 약혼자는 까맣게 잊어버린 미녀를 놔두고 라라미로 다시 떠나는 엔딩 하나만큼은 진정한 서부극 스러웠달까요?^^
명성에 비하면 부족한 점이 너무 많아 의아했지만 역시 시대가 많이 변한 탓이겠죠.  제임스 스튜어트의 연기와 서부극다운 풍광을 감상하는 것 이외의 가치를 찾기는 좀 힘들었습니다. 고전 작품 하나 감상했다는 것에 의의를 둘 까 합니다.

PS : 조금 조사해 봤는데 라라미는 와이오밍 주에 속해있는, 지금으로 보아도 정말 깡촌 동네더군요....^^;;

2006/05/04

밤 그리고 두려움 (Night & Fear) 1~2 - 코넬 울리치 / 하현길 : 별점 3점

밤 그리고 두려움 1
코넬 울리치 지음, 프랜시스 네빈스 편집, 하현길 옮김/시공사

격조했습니다. 그동안 생각지도 못한 여러 일이 겹친 탓입니다. 요새 책 몇권 구입했으니, 부지런히 리뷰를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5월 리뷰의 첫 빠따(?)는 '윌리엄 아이리쉬'로도 잘 알려진 코넬 울리치의 단편선입니다. 시공사에서 발간되었습니다. 1,2 권으로 분권되어 있는데 크기와 장정은 마음에 듭니다. 외모는 합격점!
내용 역시 알찹니다. 코넬 울리치(윌리엄 아이리쉬) 특유의 분위기를 짙게 풍기면서도 재미도 있는 단편들로 가득차 있기 때문입니다. 전부 국내 초역된 작품들이라는 것도 마음에 들었고요.
작품은 1권에 8편, 2권에 6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1권이 훨씬 좋았습니다. 긴박함과 스릴 가득하고 하드보일드적인 느낌이 물씬 풍기는, 제임스 엘로이의 대선배라 할 수 있는 코넬 울리치의 진가가 잘 보이는 작품들이 많거든요. 제임스 엘로이 작품과는 경찰의 폭력이 독자의 공감을 얻게끔 하는 구성이라는 차이가 있는데, 이 역시 마음에 들었습니다. 제가 권선징악을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재미있게 읽은 작품이라면, 1권에서는 앞서 말한 권선징악적 요소가 잘 드러난 "용기의 대가"와 하드보일드 모험 소설같다는 색다른 느낌을 전해주는 "요시와라에서의 죽음", 작은 사건이지만 서스펜스가 넘치고 심리묘사가 발군이라 거장의 풍모를 느낄 수 있었던 "앤디코트의 딸", 마지막으로 부정을 저지른 형사에 대한 이야기인 "윌리엄 브라운 형사"를 꼽습니다.
2권에서는 경찰의 아들이 대사건에 뛰어드는 "유리 눈알을 추적하다"와 굉장히 이색적인 트릭이 겹치는 "죽음을 부르는 무대"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이 중 "유리 눈알을 추적하다"는 동화적인 요소가 엿보인다는 점에서 코넬 울리치의 색다른 모습을 느낄 수 있기도 하고요. 개인적으로 베스트로 꼽고 싶네요.

그러나 편저자 프랜시스 네빈스가 밝히듯, 작가의 다른 작품 플롯과 분위기를 그대로 차용하여 재생산한 작품들은 모르고 읽는다면 괜찮겠지만 알고 읽으면 뭔가 속았다..라는 느낌도 들기는 합니다. "댄스 한번에 10센트 (춤추는 탐정)"을 그대로 베낀 듯한 작품처럼 말이지요.

그래도 코넬 울리치 탄생 100주념 기념 단편집이라는 부제에 걸맞는 멋진 단편집인건 분명합니다. 추리시장에 한줄기 단비같은, 저같은 단편 추리 매니아에게는 더할나위 없는 선물이었기에 별점은 3점입니다.

덧붙이자면 2권 뒤의 실려있는 편저자 프랜시스 네빈스의 서문도 상당한 분량에다가 내용 또한 코넬 울리치의 삶과 작품세계를 잘 요약하고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높은데, 소개된 작품들 중 다양한 장편들, 특히나 Black 시리즈 작품군이 무척 땡기더군요. 코넬 울리치 명의이건 윌리엄 아이리쉬 명의이건 제가 읽은 장편이라고는 어린이용 "공포의 검은커튼"과 "환상의 여인"밖에 없는데 다시 제대로 번역되어 나오면 좋겠습니다. 번역자 후기에 따르면 번역자도 번역하고픈 마음이 든다니 적극! 추진하시기 바랍니다.

2009/05/07

난파선 메리디어 호 - 하몬드 이네스 / 이태주 : 별점 3점

난파선 메리디어 호 - 6점
하몬드 이네스 지음, 이태주 옮김/동서문화동판주식회사

태풍이 몰아치던 밤, 조난 사업을 막 시작한 존 샌스는 난파선 메리디어호의 구난을 위해 어렵게 탑승했지만 난파에 휩쓸렸다. 메리디어 호에 남아있던 유일한 승무원인 선장 기디언 패치와 함께 폭풍우를 뚫고 어렵게 생환한 그는, 메리디어호와 관련된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하게 되었다. 그리고 고의로 배를 침몰시켰다 의심받는 기디언 패치 선장을 도와 다시 한 번 좌초된 메리디어호로의 목숨을 건 항해에 나서는데...

영국 작가 하몬드 이네스의 유명 고전 해양 모험 활극입니다. 이번 황금연휴 기간 동안 읽었습니다.

내용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존 샌스가 난파선 메리디어 호 구조를 위해 탑승했다가 퇴선하지 못하고 조난당한 뒤, 배에 남아있던 선장 기디언 패치와 함께 메리디어호를 움직여 폭풍우를 빠져나와 생명을 건지게 되는게 1부입니다. 2부는 메리디어 호의 난파에 대한 법정 공방이고요. 그리고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려는 기디언 패치를 도와 존 샌스가 다시 메리디어호를 찾아가면서 벌어지는 3부로 마무리됩니다.

배만 해도 거대한 화물선 메리디어호를 비롯하여 요트, 보트 등 엔진, 돛, 인력(노?)을 이용한 다양한 종류가 등장하고, 조난의 종류 역시 난파선, 무인도 등 폭풍우 속 가혹한 바다를 무대로 생각나는 모든 곳을 건드리니 그야말로 해상 조난물로는 종합선물세트라 할 수 있는데, 이에 걸맞게 바다와 항해, 폭풍우와 해난 사고에 대한 묘사가 굉장히 상세하며 박진감도 넘쳐서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상세한 묘사는 특히 압권입니다. 저자가 정말 뱃사람 출신이 아닌가 싶을 정도니까요. 그 중에서도 지독할 정도의 폭풍우 묘사는 정말이지 읽다가 멀미가 날 정도였어요.

그리고 이른바 메리디어호에 관련된 음모 역시 설득력 있게 잘 짜여져 있습니다. 워낙 바다에 대한 묘사가 많은 탓에 좀 묻히기는 하지만, 한정된 지면 안에서 독자가 충분히 공감할 수 있을 정도로 정보를 잘 제공해 주고 있기 때문에 이해도 쉽고, 이 음모에 따른 주인공들의 절박한 행동도 잘 설명되고 있습니다.

두 주인공, 특히 우직하고 말없으면서도 신념에 목숨을 거는 기디언 패치 선장도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런 류의 작품에 등장하는 선장의 전형을 제시했다 해도 무방할 정도로 과묵하면서도 멋진 캐릭터입니다. 한마디로 바다 사나이 간지 가이~ 였습니다. 중간중간에 샌스에게 떼를 쓰는 장면만 없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말이죠.

그러나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우선 드라마는 좀 약한 편입니다. 법정 장면이 주로 펼쳐지는 2부를 제외한 1부와 3부는 패치 선장과 샌스, 2명 중심의 이야기로 흘러갈 정도로 인물 관계에서 발생하는 드라마는 거의 없거든요. 나머지는 전부 바다에서 벌어지는 사투뿐이니까요. 드라마적으로, 추리적으로 그나마 기대할 수 있는 법정 장면에서도 이른바 "음모"라는 것이 단순하게 주인공들에 의해 독자들에게 여과 없이 전달되기 때문에 조금 실망스러웠습니다. 보다 긴박감 넘치게 음모를 숨겨가며 법정 드라마 식으로 처리해 나갈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말이지요.

아울러 2부에서 3부로 넘어가면서, 끝내 메리디어 호의 조난 위치를 숨기고 샌스에게 난파된 메리디어 호로 데려가 줄 것을 요구했던 패치 선장의 행동이 드라마의 큰 키인데 여러 명이 목숨을 걸만한 비밀로 생각되지는 않았습니다. 살인은 무거운 범죄이지만, 12명이 넘는 사람이 죽은 대형 해난사고에 비하면 비약이 지나친 것이 아닌가 싶었거든요.

그래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다만 제가 기대했던 만큼의 추리적 요소는 없어서 조금 감점합니다. 음모도 설득력 있고 주인공들의 행동도 타당하긴 한데 세련됨이 좀 떨어졌달까요? 그래도 해양 모험 활극이라는 주제와 권선징악적인 전개 등에서 알리스테어 맥클린 - 그 중에서도 꼽자면 "황금의 랑데뷰" - 의 작품이 연상될 정도로 경쾌하고 잘 쓰여진 작품으로 모험 활극을 좋아하신다면 한 번 읽어보시기를 추천합니다. 동서추리문고 치고는 번역도 괜찮은 편이고 가격도 착하니까요.

덧붙여, 영화에 참 잘 어울릴 것 같은 소재라 생각되어 잠깐 조사해보았더니 역시나더군요. "The Wreck of the Mary Deare (1959)"로 게리 쿠퍼와 찰턴 헤스톤을 투톱으로 내세운 작품인데, 이름값에 비해 평점은 별로네요. 대충 보니 원작보다 권선징악적 이야기를 더욱 강조하는 쪽으로 각색한 게 실수로 보입니다. 선장 캐릭터를 더 강화하는 것이 좋았을 텐데...

2020/06/27

악몽과 몽상 1 - 스티븐 킹 / 이은선 : 별점 2.5점

악몽과 몽상 1 - 6점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엘릭시르

스티븐 킹의 단편집으로 어쩌다보니 2권부터 읽고, 뒤이어 읽게 되었네요. 2권과 마찬가지로 모두 열 두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지만, 모두 완성된 단편이라는 점에서는 차이를 보입니다. 순문학적 작품보다는 박진감넘치는 화끈한 계열이 많다는 점은 2권과 같고요.

하지만 다양한 장르물이 수록된 2권에 비하면, 장르적인 변주는 거의 없습니다. 크리쳐 호러, 범죄 액션 스릴러가 여섯 편이나 되거든요. 게다가 대체로 어딘가에서 보아왔던 설정이 많아서 2권보다는 실망스러웠습니다. 순문학을 추구한건 아니겠지만 도무지 내용을 이해하기 어려웠던 작품도 세 편이나 수록되어 있고요. "돌런의 캐딜락"을 비롯해서, 화끈한 계열 작품들은 나쁘지 않았지만, 비슷한 설정과 분위기의 작품들이 연달아 이어져서 읽으면 읽을 수록 지루해진다는 문제도 큽니다. 강-강-강이 아니라 강-중-약으로 구성하는 편집의 묘가 아쉽더군요.

그래도 전체 평균한 별점은 2.5점입니다. 스티븐 킹 다운 작품들은 여전한 매력을 선사해주니까요.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세요.

"돌런의 캐딜락"

아내를 죽게 만든 갱단 보스 돌런을 향한 초등학교 교사의 집념의 복수극으로 약 80페이지 가량 되는 단편인데, 대부분이라 할 수 있는 거의 60페이지 분량이 복수의 '과정'입니다. 

복수의 방법이 굉장히 황당해서 인상적입니다. 돌런이 이용하는 라스베이거스 고속도로가 공사로 막혔을 때, 그 곳에 캐딜락이 완벽하게 파묻힐 수 있는 거대한 함정을 파는거지요. 그리고 돌런의 차가 지나갈 때 '전방에 우회도로' 표지판을 치우고 돌런의 캐딜락이 함정에 쳐박히게 만듭니다. "루니툰"에서 코요테가 로드러너를 잡기 위해 꾸미는 함정과 비슷한 발상이에요.

계획은 간단하지만, 작열하는 라스베이거스의 태양 아래에서 폭 1.5m, 길이 13미터에 15세제곱미터의 흙을 파내는 과정 묘사는 정말 엄청납니다. 굴착기의 도움을 빌리지만 여러 번 죽을 뻔 하고, 포기할 뻔 하는 모습이 스티븐 킹의 날 것 그대로의 묘사로 생생하게 전해지기 때문입니다. 정말 눈 앞에서 사람이 익어가면서 땅을 파는 모습과 그 열기가 느껴질 정도로 엄청난 묘사였어요.

하지만 돌란이 그 길을 지난다는 걸 알았다면 이런 생고생을 하지 않아도 다른 좋은 방법이 많지 않았을까 싶은데, 지나칠 정도로 공이 많이 드는 복수극이기는 하네요. 제가 본 복수극 중에서도 역대급으로 손에 꼽을 수준입니다. 돌런의 캐딜락이 방탄까지 완벽한 탱크같은 차이며, 항상 2명의 프로 보디가드와 함께 하기 때문에 직접 공격은 여러모로 위험하다는 이유를 드는데 그리 와 닿지는 않았습니다. 다이너마이트를 파 묻는게 더 낫지 않았을까요? 함정을 파는 계산처럼 속도와 시간을 계산해서 넓은 범위를 폭파시키면 충분히 성공할 수 있었을텐데 말이지요.

그래도 재미면에서는 나무랄데 없는 작품이었습니다. 확실한 권선징악이라는 점, 그리고 독특한 복수 방법과 완벽한 완전 범죄라는 점도 좋았고요. 개인적으로 이 단편집의 베스트로 꼽고 싶네요. 별점은 4점입니다.

"난장판의 끝"

하워드의 동생인 천재 바비는 세계 평화를 꿈꾸다가 우연히 '라플라타'라는 마을이 범죄가 전혀 없는 평화로운 곳이라는걸 알게된 뒤, 그 곳의 물에 특별한 성분이 있다는걸 밝혀냈다. 바비는 그 물을 농축하여 화산 폭발을 통해 전 세계로 뿌리는데...

"살인 단백질 이야기""엘저넌에게 꽃을"을 결합한 이야기입니다. 물 안에 뇌와 비슷한 단백질 성분이 있는데, 이것이 치매와 비슷한 증상을 유발한다는건 "살인 단백질 이야기"이고, 천재가 백치가 되어 선한 의도를 가지고 죽는다는 이야기는 "앨저넌에게 꽃을"이니까요. 특히 1인칭 시점의 일기 형태이며, 글쓴이가 바보가 되었다는 결말은 판박이에요.
한 마디로 내용과 전개, 설정에 새로운 부분은 거의 없습니다. 또 엄청난 천재라는 바비가 이 물의 성분이 무엇인지 정말로 알아내지 못하고 엄청난 재앙을 초래한다는 전개는 앞 뒤가 맞지 않아서 실망스러웠어요.

스티븐 킹의 흥미진진한 묘사 덕분에 몰입할 수 있기는 합니다만, 스티븐 킹 만의 무언가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이야기였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어린 아이들을 허락하라" 

소갯글은 '옥수수밭의 사악한 아이들이 돌아온다!'입니다만, 내용은 많이 다릅니다. 아이들이 초자연적인 무언가로 변했다고 믿는 노처녀 교사 시들리 부인이 결국 아이들을 죽이다가 체포된 뒤 자살한다는 이야기거든요. 그래도 초자연적인 존재에게 밀리면서 점차 궁지에 몰리는 시들리 부인에 대한 묘사는 아주 흥미진진합니다. 시들리 부인이 폭주해서 아이들을 살해하는 것 역시 예상대로지만 긴장감넘치게 풀어내고 있어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들리 부인이 진짜 미친건지, 아니면 아이들이 정말로 무언가에 점령당해버려 초자연적인 존재가 된 건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 편이 나았을 겁니다. 결말에서 은근슬쩍 후자일 거라는 여운을 남기는데, 모호한 채로 독자의 상상에 맡기는 결말이 답답하기는 해도 작품과는 더 잘 어울렸을 것 같네요. 지금의 결말은, A급 심리 스릴러가 B급 싸구려 호러물로 끝난 느낌이라 별로였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나이트 플라이어" 

타블로이드 업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민완기자 디스는 경비행기를 타고 다니며 공항에서 살인을 저지르는 흡혈귀 '나이트 플라이어'를 쫓아 위험천만한 비행에 나섰다. 그리고 노스캐롤라이나 월밍턴에서 드디어 '나이트 플라이어'와 조우하는데...

영화화도 된 유명한 작품이지요. 디스가 공항에 착륙하다가 폭풍우와 벼락 등으로 위기에 처하는 장면 묘사는 박진감이 넘치다 못해 터져나갈 정도이고, 월밍턴 공항에서 살육당한 시체를 보고 화장실 세면대에 토악질을 하다가 거울로 흡혈귀 드와이트 렌필드가 소변보는 모습을 확인하는 부분은 그야말로 압권입니다. 흡혈귀는 거울에 비치지 않기 때문에 피에 물든 소변 줄기만 보인다는건데, 정말 기가 막혀요.

그러나 내용은 별게 없습니다. 흡혈귀 드와이트 렌필드의 기원이나 흡혈과 살인의 목적, 동기, 이유가 등장하는 것도 아니고, 결말 역시 경찰이 디스를 체포하는 듯한 묘사가 전부라 어정쩡한 느낌이 들거든요. 디스가 기사를 썼는지 안 썼는지도 제대로 설명되지 않고요. 영화 쪽을 확인해보니 흡혈귀에 대한 설명이 없는건 마찬가지지만, 나름의 의미를 부여한 영화쪽 결말만큼은 소설보다 더 괜찮아 보였습니다. 디스가 살인마이고, 흡혈귀는 그의 상상일 수 있다는 이야기인데 사회 비판적인 의미도 담고 있는 그럴듯한 반전이었다 생각되네요.

동기와 결말이 어쨌건 간에, 흥미로운 전개와 묘사만으로도 읽는 재미는 충분했던 작품. 하긴, 흡혈귀가 피를 빨아 먹고 사람을 죽이는게 무슨 이유가 중요하겠습니까. 그냥 괴물이니까 그런거지. 별점은 2.5점입니다.

"팝시"

처음에는 유괴물로 생각되었습니다. 유괴범 셰리던이 아동 유괴를 시작하게 된 계기, 그로부터 유괴 행각이 이어지는 전개가 흥미롭게 펼쳐지거든요. 그러나 "나이트플라이어"와 마찬가지로 흡혈귀가 나오는 크리쳐 고어물입니다. 크리쳐는 바로 제목이기도 한 '팝시'고요. 팝시는 하늘을 날아다니는, 어디에 있어도 유괴된 이이를 찾아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유괴범 셰리던의 자동차를 찾아내어 습격하는게 작품의 클라이막스인데, 역시나 킹 다운 박진감넘치는 묘사가 일품입니다.
유괴된 아이가 팝시의 손자로 이른바 크리쳐 혈족이라는 살짝의 반전도 나쁘지 않으며,도 아동 유괴범 셰리던에게 처절한 응징을 가하는게 또 다른 악인 흡혈귀라는 설정이 재미있었습니다. 권선징악 측면에서도 마음에 드네요.

스티븐 킹의 장점이 20페이지 안쪽의 분량에 전부 담긴, 공포 소설가 스티븐 킹을 대변할만한 단편입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익숙해질거야"

캐슬록의 노인들이 잡화점에 모여 폐허가 된 뉴올 저택에 대해서 이런저런 추억을 이야기한다는 내용의 작품.

솔직히 뭘 이야기하려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코라 뉴올이 게리 폴슨에게 왜 추잡한 짓을 했는지. 노인들의 기억이 진짜인지, 허구인지도 잘 모르겠어요. 이야기가 완성된건지 아닌지도 헛갈리고요. 뉴올 저택을 다시 짓는 것도 당쵀 무슨 관계가 있는지 알 수가 없더군요.

스티븐 킹이 뭔가 있어보이는 이야기를 하려는거 같기는 합니다만, 저는 기승전결 확실한 괴물 나오는 이야기가 더 좋네요. 별점은 1점입니다.

"움직이는 틀니"

잡화점에서 우연히 손에 넣은 거대한 움직이는 틀니 장난감이 악당을 물리친다는 내용의 작품. 간단한 설정만 보아도 무척 황당해 보이죠? 하지만 이를 박진감 넘치게, 설득력있게 풀어내는 묘사는 정말이지 장난이 아닙니다. 특히나 호건과 브라이언의 사투, 이어지는 브라이언과 틀니의 사투는 그야말로 명불허전이에요. 모래바람과 태풍이 불어오는 와중에 갇힌 차 안에서 두 명의 등장인물만으로 풀어가는 이야기를 이렇게까지 몰입감 넘치게 선사한다는건 정말이지 타고난 재능이 아닐까 싶을 정도입니다.

물론 움직이는 틀니에 대한 아무런 설명도 없고, 이야기의 개연성은 전무하다는 단점은 있습니다. 악마의 소도구였다던가, 누군가의 저주였다던가하는 최소한의 설명마저도 없으니까요. 하지만 이런 류의 이야기에서 그런걸 기대하면 안되겠죠? 그런 점에서는 "나이트 플라이어"와 비슷하지만, 정의가 악을 물리친다는 이 쪽이 더 제 취향이었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헌사"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지 잘 모르겠다 2. 

흑인 하우스키퍼 마서 로즈월이 자신의 아들이 내 놓은 첫 소설책에 대해 친구 다시와 술을 마시면서 하는 이야기인데, 내용이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아이의 친부는 강도짓을 하다가 죽은 조니인게 명확하지만, 흑인 마녀 마마 들로름에 의해서 그 아이의 아버지는 유명한 백인 소설가 피터 제프리스가 되어 아이가 그 능력(?)을 이어받았다는 내용인가 싶기는 한데... 분명하지는 않네요. 설령 그렇다 치더라도, 기승전결로 완결되는 이야기는 아니고요. 모르는 내용에, 완성된 이야기로 보이지도 않아서 별점은 1.5점입니다.

"움직이는 손가락" 

세면대에서 기어나오는 손가락을 없애려고 고군부눝하는 하워드 미틀라의 이야기. 스티븐 킹 특유의 고어 크리쳐물과 궁지에 몰린 주인공의 심리 묘사가 결합된 작품. 킹이 잠결에 화장실에서 나는 소리를 듣고 아이디어를 떠올려 쓴 작품일거라 생각되네요. 변기 속에 손가락을 가두기는 했지만, 쾅쾅거리는 소리에 뚜껑을 열기 직전 이야기는 마무리 되며 독자의 상상에 맡기는 결말이 인상적입니다.

설정 면에서 치밀한 맛은 없고, 개연성도 많이 부족하지만 킹이 크리쳐 물의 대가라는걸 새삼 느끼게 해 주는 작품이었어요. 별점은 2.5점입니다.

"운동화"

무슨 이야기인지 모르겠다 3. 

결국 존 텔은 유령을 만나 직접 이야기를 듣기는 합니다. 하지만 유령은 존 텔 주변 인물에 대해서만 몇 가지 이야기하고 말 뿐이에요. 폴 재닝스가 범인으로 삼만 달러를 넘게 챙겼다고 해도... 그게 존 텔 앞에 나타난 이유가 될 수는 없지요. 그렇다고 존 텔의 성장기로 보기에도 여러모로 애매했고요.

하나의 완성된 이야기라는 점에서 다른 알 수 없는 이야기들보다 낫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좋은 점수를 줄 만한 여지가 있지는 않네요. 별점은 1.5점입니다.

"밴드가 엄청 많더군"

여행객이 길을 잃은 뒤 이상한 마을에 방문하여 위험에 처한다는 내용의 작품은 굉장히 많습니다. 제가 리뷰로 소개했던 작품만 해도 러브크래프트의 "인스머스 (인스마우스)의 그림자"라던가 "히치콕 미스터리 매거진 걸작선" 수록작인 "역사적 오류" 등이 그러합니다. "웰컴 투 동막골"도 위험에 처하지 않다 뿐이지 기본 발상은 마찬가지라 할 수 있을테고요. 그 외에도 수많은 작품에서 사용된 설정이지요.

보통 이런 류의 이야기에서 마을이 숨기고 있는 비밀은 은밀한 의식과 관련이 있는게 보통입니다. 여행객들은 산 제물로 쓰이고요. 그런데 이 작품은 '은밀한 의식'에서 한 발, 아니 두 세 발자욱 더 나아갑니다. '은밀한 의식'이 아니라 난리법석의 로큰롤 공연을 추구하는 마을이었던거지요. 여행객들은 공연에 관객이 없어서 필요했던 것입니다! 엘비스 프레슬리가 시장으로 나오는 등 설정이 워낙에 황당해서 우습기까지 한데, 이런 내용을 스티븐 킹의 묘사로 읽으니 공포가 따로 없다는게 재미있는 점이었습니다. 마을에서 탈출하기 위해 벌이는 자동차 추격신은 여전한 박력을 자랑하고요. 로큰롤 공연을 몇 일 동안 계속 보면 미쳐버릴지도 모르겠다는 점에서는 확실히 공포스럽기도 하네요. 작중에 나오는대로 로큰롤 '헤븐'이 아니라 '로큰롤 헬'인 셈입니다.

딱히 새로운 아이디어가 있지는 않지만 그 어떤 설정과 이야기라도 약간의 변주를 통해 박진감넘치는 호러 소설로 만드는 스티븐 킹의 필력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던 작품이었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가정 분만" 

좀비가 창궐하는 세상에서, 외딴 섬 마을에서 아이를 낳으려는 매디의 이야기.

일단, 기둥이 되는 이야기는 아버지가 중심인 가정에서 살다가, 아버지의 사후 중심축을 잃고 흔들리던 매디에게 성실하고 충직한 남편 잭이 나타나 청혼하는 이야기입니다. 좀비 창궐로 시체가 되어 돌아온 잭을 매디가 도끼로 처단한 뒤, 가정 분만을 결심하는게 결말이고요. 이 이야기에 매디가 사는 섬마을 사람들이 자경단을 조직하여 마을에 하나 있는 공동묘지를 지키며 깨어나는 시체들을 토악질을 해 가며 해치우는 내용이 곁들여져 있습니다.

그런데 두 이야기가 난잡하게 흩어져 잘 정리되지 않은 느낌이에요. 한 개의 이야기를 하다가, 전혀 상관없는 다른 이야기를 하는 느낌이 들 정도로 말이지요. 또 매디가 가정 분만을 결심하는게 딱히 대단해 보이지도 않아서 이게 기둥 이야기가 될 수 있나 싶었습니다. 전 세계에 좀비가 창궐했다면 어차피 다른 대안도 없잖아요? 기승전결로 보더라도, 완전한 '결'로 끝맺지 못한 느낌이라 조금 답답했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차라리 섬 마을 주민들이 힘을 합쳐 좀비를 격퇴하고 섬을 지켜내는 이야기로 끌고가는게 더 나았을겁니다. 마을 공동 묘지에서 되살아난 가족들과 싸우는 이야기는 충분히 드라마가 될 수 있으니까요.

2014/05/27

타인의 목 - 조르주 심농 / 최애리 : 별점 2점

타인의 목 - 4점
조르주 심농 지음, 최애리 옮김/열린책들

사형수 외르탱은 사형 직전에 누군가의 도움으로 탈옥에 성공했다. 사실 탈옥은 메그레 경감이 외르탱이 진범이 아님을 직감하고 진범을 알아내고자 벌인 의도적인 작전이었다. 이후 외르탱이 체코인 라데크를 만나려고 시도한다는걸 알아챈 메그레는 라데크를 집중 추궁했다. 하지만 라데크의 혐의를 입증하지는 못하고, 외려 외르탱의 자살 시도 등으로 궁지에 몰린다…

조르주 심농의 메그레 시리즈아홉 번째 작품입니다. 5, 6, 7, 8번째 작품을 건너뛰고 선택하여 읽게 되었는데, 오래전 "황색견"과 함께 국내 소개되었던 몇 안 되는 작품 중 하나라 대표작이겠거니 싶어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이 작품의 가장 독특한 점은 인간의 마음을 조종할 수 있다는 것을 믿는, 증오심으로 똘똘 뭉친 사나이 라데크라는 일종의 소시오패스 악당이 중심인물로 등장한다는 것입니다. 그의 유별난 재능은 사람의 약점을 파악하여 뜻대로 조종하는 능력이라고 묘사되는데, 당대 유행하던 "팡토마스"의 영향이 엿보이기도 합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타인의 목숨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악당이라는 점에서도요. 노파 하나의 생명을 빼앗아 개인적 욕망을 충족시키려 한다는건 "죄와 벌"과도 비슷한데, 라데크는 구원 따위는 믿지 않는 내추럴 본 악당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그 외에도 막장 드라마를 보는 듯한 캐릭터 크로스비도 꽤 인상적이었어요.
그래도 범죄를 단순한 욕망의 충족이 아닌, 세상에 대한 증오심을 표출하기 위해 저지른다는 점과 결국 권선징악으로 마무리된다는 점에서는 최소한의 윤리적 가이드라인이 존재한다는 느낌입니다.

그러나 추리적으로는 유감스럽게도 볼 만한 부분이 거의 없습니다. 정교한 맛도 없고 전개도 뜬금없는 탓입니다. 메그레가 자신의 목을 걸고 외르탱 탈옥 작전을 벌인 이유부터가 석연치 않습니다. 외르탱이 라데크와의 접촉을 시도해서 라데크를 주목하게 된 계기가 된 것은 사실입니다만, 이후의 수사는 지지부진하기 그지없거든요. 라데크가 무전 취식 후 경찰과 함께 나가는 전략으로 외르탱과의 접촉을 무효화시키는걸 메그레가 막지 않는게 대표적입니다. 수고를 덜 수 있었는데 가만히 지켜본 이유가 무엇인지 전혀 알 수가 없어요. 이건 "생폴레옹에 지다"에서 메그레가 다른빈유를 방관하여 자살하게 만들었던 것과 유사한데, 과거의 실수에서 뭔가 배운게 없는걸까요?
또한, 메그레가 진범이 따로 있다는 것을 의심하게 된 가장 큰 이유인 ‘외르탱이 짧은 시간 안에 귀가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한 해답이 단순히 택시를 탔기 때문이라는 설명도 허술합니다. 수사가 부실했다라고 밖에는 생각되지 않으니까요.

마지막으로 라데크가 계속 자신이 범인임을 드러내는 듯한 허세를 부리지 않았더라면 사건이 과연 쉽게 해결되었을지도 의문입니다. 라데크가 최후의 순간에 메그레에게 총을 쏘는 우발적 행동 역시 큰 약점이고요. 이 장면 때문에 그나마 있던 천재 범죄자와의 두뇌 대결 분위기가 무너져 버리고 말기 때문입니다. 라데크가 무계획에 즉흥적인 어린아이에 불과하다는 것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버리거든요. 개인적으로는 이 장면은 L의 죽음 이후 급속도로 힘이 빠진 "데스노트"를 떠오르게 했습니다. 최후의 순간에 찌질한 모습을 보여줘 실망을 안겨준 야가미 라이토와 다를게 없다는 점에서요.

이렇게 좋은 추리소설로 보기는 여러모로 어렵기에 별점은 2점입니다. 물론 멋드러진 제목만큼이나 문학적인 향취는 짙고, 외르탱의 탈옥을 지켜보는 메그레에 대한 묘사는 정말 대단한 등 심농이라는 작가의 필력은 유감없이 느껴지기는 합니다. 차라리 "죄와 벌"처럼 라데크의 심리를 더욱 디테일하게 파고들었더라면 더 나았을텐데 조금 아쉽네요.

2017/10/18

악마의 증명 - 도진기 : 별점 2점

악마의 증명 - 6점
도진기 지음/비채

소설쓰는 판사에서 소설쓰는 변호사가 되신 도진기 작가의 신작 단편집입니다. 여덟 편이 수록되어 있으며, 책 뒤 소갯글에 따르면 주로 초기작들입니다.

익히 알려진 작가의 이력만 보면 한국의 존 그리샴이라고 해도 무방합니다. 작품들도 재판 과정이 핵심이거나, 아니면 일반인이 놓치기 쉬운 법의 맹점을 파고 드는 이야기가 많고요. 그런데 이 단편집 수록작들에서는 "정신자살"에서는 보여주었던 변격물적 취향이 많이 엿보입니다. 몇몇 작품은 김내성의 직계 후예라 해도 좋을 정도에요. 김내성의 본격물이 아니라 "비밀의 문"에 수록되었던 범죄 추리 소설, 또는 환상 소설에 가까운 작품들 말이지요.

물론 작가의 특기라 할 수 있는, 한국 추리 문학계에서 보기 드문 퍼즐러로서의 장점을 잘 드러내는 본격 추리물이 없지는 않습니다. 검사이자 변호사인 호연정 시리즈 2편, 그리고 "구석의 노인"이 그러합니다. 작품들 모두 법정 미스터리 분위기가 물씬 나는 것도 괜찮고요. "킬러퀸의 킬러"도 독자의 의표를 찌르는 맛이 잘 살아있는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외 4 작품은 김내성의 범죄 추리, 환상 소설과 유사하거나, 장르를 특정짓기 어려운 작품인데 개인적으로는 변격물적인 취향은 영 아니다 싶었어요. 몇몇 작품은 습작 수준이라서 좋은 점수를 주기도 힘들고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정통 본격 추리물을 전문가적인 지식을 더하여 써 낸다는 측면에서 항상 응원하고 있기 때문에 작가로서의 시작과 취향을 알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는 책입니다만, 전체 수록작의 평균 완성도는 이 정도에 그칩니다. 그래도 일부 작품은 괜찮은 만큼, 기회가 되신다면 한 번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네요.

마지막으로 수록 작품별 상세 리뷰로 글을 마칩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 부탁드립니다.

"악마의 증명"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 박철은 부대찌게 집을 털려다 우발적으로 살인까지 저지르고 말았다. 경찰에 순순히 체포된 그는 검사 호연정에게 범행을 자백했다. 그러나 법정에서 이 모든 것을 뒤집는데... 

모 드라마에서 표절했다는 시비가 붙었던 작품입니다. 드라마를 보지는 않았지만 "범인이 쌍동이이고, 누가 범행을 저질렀는지 명확하지 않으면 기소가 불가능하다."는 설정을 따라갔다면 표절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도진기 작가 정도의 전문가가 아니면 이만큼 설득력있게 그려내기가 힘든 소재니까요. 물론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법리적인 이론을 바탕에 둔 아이디어라 표절을 증명하기는 어렵다는게 문제겠지만요. 여튼, 표절 시비가 있을 만큼 괜찮은 아이디어였습니다.

그러나 호연정 검사가 박철 기소에 성공하는 후반부는 별로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일사부재리 원칙을 피해가기 위해서 첫번째 사건 기소를 허위로 작성했다는게 핵심인데, 일반 독자가 볼 때 무리수였던 탓입니다. 박철이 법정에서 자백을 뒤집을 것이라는건 호연정 검사의 막연한 추측일 뿐, 명확한 것이 아니니까요.
꼭 이렇게 권선징악적인 결말을 가져가야 했을지도 의문입니다. 법대생 박철을 악의 화신으로 만드는 결말이 더 설득력이 있었을 것 같은데 말이지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작가의 데뷰작으로 이후 활약을 짐작케하는 좋은 소품이지만, 억지스러운 마무리는 아쉽습니다.

"정글의 꿈" 

노인 전문 요양 병원에서 시한부 인생을 사는 광수 노인은 오래전 경험을 토대로 밀림, 타잔 조각상을 만든 후 자신이 타잔이 된 환상 속에서 살아가는데...

광수 노인의 환상 묘사가 이야기의 중심으로, 이는 의학적 실험의 결과물이라는 씁쓸한 결말인데 의학적 실험에 대해 깊이 파고든 것도 아니고, 딱히 특별한 반전이라고 보기도 어려운 미묘한 소품입니다. 습작 수준의 작품이었다 생각되네요. 별점은 1.5점입니다.

"선택" 

검사를 그만두고 변호사를 개업한 호연정에게, 한 할머니가 딸의 죽음에 대한 보험금 수취를 의뢰했다. 딸 백해령은 손녀 현지와 함께 자동차 사고로 죽었는데, 손목을 메스로 그어 피가 전부 빠져나갔기에 보험사는 자살임을 주장하는 중이었다...

보험사에서 자살로 판단하여 보험금 지급을 거부하는 기묘한 사건의 진상을 밝혀내는 이야기로, 호연정 변호사의 끈질긴 수사와 추리가 돋보입니다. 특히 작 중 중요하게 언급되는 '동기' - 살인이든 자살이든 물리 법칙에 맞는 설명보다 더 우선되어야 할 것은 바로 '동기'다. 동기라는 인과를 벗어나 있는 사람은 없다. - 를 드러내는 과정만큼은 정말 괜찮았어요.

하지만 진상의 설득력이 높지는 않습니다. 차가 절벽에 걸린 상태에서 뒷좌석에 앉은 딸아이의 생존을 위해 자신의 손목을 그어 피를 짜낸다는 극한의 모성애가 진상으로, 일종의 시소와 같이 무게 중심이 뒤로 이동하도록 한 고육지책이라고 설명되는데 솔직히 납득이 되지 않았거든요. 전혀 현실적으로 느껴지지가 않았기 때문입니다. 손목을 메스로 그을 정도라면 최후의 순간까지 뭔가 다른 수를 냈어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 말이지요. "김전일"의 한 대사처럼(아마도 "비련호?"), 어떻게든 둘이서 함께 살아날 방법을 찾는게 최선이니까요. 결국 둘 다 죽어버렸다는 결말이니 더더욱 그러합니다. 뭔가 이도저도 아닌 결말이라 씁쓸했어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일종의 불가능한 상황을 추리로 밝혀내는 작가의 특기는 잘 나타나있지만, 진상의 설득력이 약해 아주 좋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네요. 호연정 변호사 캐릭터는 마음에 든 만큼, 작가의 다른 작품에서도 활약해 주기를 바랍니다.

"외딴집에서" 

백수로 미제 사건을 추적하는 취미가 있는 "나"는 우연히 가평군 일대를 공포에 떨게 한 연쇄 토막 살인 사건의 범인을 목격하고 추격했지만, 그에게 되려 습격당해 정신을 잃고 마는데...

10페이지 정도에 불과한 짤막한 꽁트로 1인칭 시점으로 연쇄 토막 살인 현장에 대해 자세하게, 잔혹하게 설명하는 것이 내용의 거의 대부분입니다. 흔해빠진 공포 영화와 다를바 없는 상상력에 기반한 묘사도 진부하지만, 마지막에 화자는 이미 죽어 목이 잘린 상태라는 것이 드러나는 반전은 뜬금없기 그지 없네요.

그래서 별점은 1점입니다. 점수를 줄 여지가 거의 없는 습작으로, 이 단편집 수록작 중 단연코 워스트입니다.

구석의 노인 

개업한지 2년차 변호사 성호는 한 살인 사건을 수임하였다. 국밥집을 남편과 운영하던 강은심 여인이 남편을 죽인 스토커 장만녕을 살해한 살인 사건으로, 성호는 정당 방위임을 확신하고 변호를 진행했다. 강은심 여인은 모든 것을 체념한 듯 의욕이 없었지만, 성호의 노력으로 그녀는 무죄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성호는 사건을 방청한 '구석의 노인' 김옥선으로부터 의외의 진상을 전해 듣는데...

국내에서 보기 드문 법정 미스터리와 안락의자 탐정물이 결합된 이색작입니다. 강은심 여인이 정당 방위로 범행을 저질렀다는 것이 성호의 활약으로 증명되는 부분이 법정 미스터리이고, 김옥선 노인을 통해 의외의 진상이 드러나는 부분이 안락의자 탐정물입니다. 

김옥선 노인 추리의 근거가 되는 단서들은 대체로 독자에게도 공정하게 제공되고 있어서 본격물로의 가치도 높습니다. 특히 장만녕이 스토커로 오해받게 된 이유 - 공중 전화로 자기를 숨기고 연락을 했다는 등 - 가 사실은 둘이 몰래 사랑하는 사이었다는 추리로 이어지는 부분은 아주 괜찮았어요. 재판 과정의 디테일이라던가, 정당 방위와 오상 방위의 차이점이 중요하게 언급되는 등 작가의 법률 지식이 돋보인다는 것도 큰 장점이고요.

그러나 아쉬운 점도 없지는 않습니다. 강은심 여인이 남편에게 폭행을 당하며 살아왔다는 것이 법정이나 주변 인물들을 통해 전혀 언급되지 않는게 대표적입니다. 오로지 김옥선 여사의 관찰로 얻은 정보이며, 최후의 추리에서 소개되기에 독자는 이 정보를 얻기가 불가능하거든요. "형부에게 그렇게나 구박받고 살아왔지만.." 하는 식으로 사건을 의뢰한 강은심 여인 동생으로부터 정보를 제공받는게 보다 공정했을 겁니다.
추리도 비약이 심해서 좋은 점수를 주긴 힘들어요. 마침 사건 당일 반지를 선물받았다는 것은 작위적이며, 이 반지로 강은심 여인의 마음이 갑자기 바뀌었다는건 아무리 보아도 무리입니다.

아울러 장만녕, 강은심 커플의 계획 살인도 어설프기 그지 없습니다. CCTV 필름을 사건 후 회수할 생각이었다는 것이 대표적입니다. 사건의 핵심 증거물이 될 CCTV 필름이 사라진걸 경찰이 과연 허투루 넘겼을까요? 이렇게 대충 설명하기에는 아무래도 무리지요. 차라리 가게 안이 아니라 입구 쪽에서 살해하고 도주했다는 것이 더욱 현실적이었을 겁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국내에서 보기 드문 독특한 형식으로 재미있는 작품이긴 합니다. 단, 추리적으로는 보완이 필요해 보여 감점합니다.

참고로 "미스테리아 1호"에 수록되었던 작품으로, 당시에는 별점을 1.5점 주었었네요. 다시 읽어보니 그 정도로 형편없지는 않습니다.

"시간의 뫼비우스"

기차 여행 중인 민경에게 옆자리에 앉았던 중년 사내가 말을 걸었다. 그는 자신이 지금 마약을 가지고 있다는 말로 시작하여, 과거 108번에 걸친 기나긴 시간 여행에 대해 털어놓는데...

이색적인 환상 소설로 타임 슬립을 다룹니다. 의식만 과거로 돌아가서 자신의 삶을 지켜보기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다른 타임 슬립 SF와는 차별화되고요. 주인공 정영한이 108번에 걸친 인생 반복을 통해 나름의 깨달음을 얻는다는 점에서는 구도 소설이라고 불러도 될 것 같아요. 정영한이 타임 슬립을 하며 두 가지의 미련, 자신을 파멸시킨 악한 김광련과 이철환에 대한 원한과 자신의 실수로 헤어진 첫사랑 채희에 대한 회한을 정리하고 새로운 인생을 사는게 결말이니까요.
"풍뎅이"로 상징되는 타임 슬립 이론도 꽤 괜찮습니다. 머리 속에 영상으로 그려질 정도로 디테일한 묘사가 뒷받침되어 있기도 하고요.

아울러 108번을 살아온 사람다운 독특한 의견이 눈길을 끕니다. 그건 바로 청춘의 방황이라면 차라리 발산하는게 낫다는 것입니다. 안으로, 안으로만 들어가서는 지나고 보면 후회밖에 남지 않는다, 책 천 권을 읽으면서 젊음을 보낸 사람이나 여자 백 명을 만나며 젊음을 보낸 사람이나 지나고 보면 같고, 그 깨달음의 깊이도 다르지 않다는 의견입니다. 카사노바와 칸트가 같은 레벨이라는 뜻인데, 동의는 못하겠지만 특이하긴 합니다.

하지만 단점이 없지는 않습니다. 딱히 과학적인 설명이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타임 슬립 자체가 아니라 정영한에 집중한 이야기 구조는 좀 단순합니다. 108번이나 인생을 되돌아 살아왔던 사람에게 남은게 첫 사랑에 대한 회환과 원수에 대한 복수 뿐이라면 좀 시시하잖아요. 복수를 포기하는 것도 딱히 설명되지 않고요. 저 같으면 복수를 하고, 마지막 기차를 타서 인생을 바꾸려고 했을 겁니다.
이야기를 듣는 민경의 역할도 애매합니다. 정영한 1인칭 시점의 이야기로 풀어내려갔더라면 더 좋았을텐데, 왜 민경이라는 역할을 등장시켰을까요? 화자도 아니고, 딱히 이야기에 도움을 주는 역할도 아닌데 말이지요. 이런 이야기 끝에 영한이 정말로 사라져버렸다면, 이렇게 담담하게 자리를 지킬 수 있을 사람이 있을지도 의심스럽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굉장히 독특한 작품임에는 분명한데, 이야기 완성도면에서 조금 아쉽네요.

"킬러퀸의 킬러" 

헤어디자이너 성희는 킬러퀸이라는 바에서 펀드매니저라는 피터 최를 만나 사귀기 시작했다. 이후 장안일보 윤주현 기자가 살해당했고, 유력한 용의자로 피터 최가 떠올랐다. 마지막으로 윤주현 기자에게 발송된 메시지를 보낸 휴대폰 추적 결과를 통해서였다. 하지만 사건은 답보 상태에 놓이고, 윤주현의 로커룸에서 출처를 알 수 없는 현금 다발이 발견되는 등 꼬여만 갔고, 결국 추리 소설을 쓰는 그의 아내 송지원이 직접 사건 해결에 뛰어드는데... 

호구의 영원한 유행어, '그럴 사람이 아니에요'를 뱉고 마는 성희였다.

이 단편집에서 재판이나 법조계 인물이 등장하지 않으면서도 정통 추리물인 이색작입니다. 수준도 높습니다. 송지원이 입수한 정보는 모두 독자에게도 공정하게 제공되며, 추리 역시 현실적이고 설득력 있는 덕분입니다. 남편과 동명이인인 리틀 윤주현에 얽힌 해프닝도 적절하게 사용되고 있어서 마음에 드네요.

단점이라면 윤주현이 사실은 아내도 모를 정도의 이중 생활을 수년간 벌였다는게 제대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이 정도면 꼬리가 밟혀도 진작에 밟혔어야 할 텐데 말이지요. 그리고 경찰이 "피터 최"의 행적을 제대로 쫓았다면, 결국 그가 윤주현 기자와 동일인물이라는 것도 밝혀졌을 텐데 그렇지 못한 것도 감점 요소입니다. 가끔 추리 소설을 읽다가 드는 생각인데, 작가들이 경찰력을 너무 우습게 보는 경향이 있지 않나 싶어요.

그래도 본 단편집 수록작 중에서는 최고로 치고 싶습니다. 별점은 3.5점입니다.

"죽음이 갈라 놓을 때"

"미스테리아" 5에 수록되었던 단편입니다. 그 당시에도 리뷰를 작성했으며, 제 감상평은 그 때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기에 링크만 겁니다. 궁금하신 분들은 링크를 확인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2025/08/24

스펜서 컨피덴셜 (2020) - 피터 버그 : 별점 1점

경찰 스펜서는 부패한 상관 보일런을 폭행했다가 5년 동안 수감되고 말았다. 스펜서의 출소 직후 보일런은 누군가에게 살해당했고, 선량한 경찰 테렌스가 누명을 썼다는걸 알게 된 스펜서는 룸메이트 호크와 함께 잔상 조사에 나섰다. 그리고 부패한 경찰들이 범죄 조직과 함께 대량의 마약을 유통한 자금으로 카지노 '원더랜드'를 개장하려는 음모를 꾸민다는걸 알아내는데...

로버트 B. 파커가 창조한 보스턴 사립탐정 ‘스펜서’ 시리즈 중 하나인 에이스 앳킨스(로버트 B.파커 사후 원작을 이어서 쓰고 있는 작가)의 "원더랜드"를 원작으로 하는 넷플릭스 장편 범죄 스릴러 영화입니다.

하지만 영화는 단순한 액션물로 범죄 스릴러, 액션, 버디 코미디의 요소를 모두 갖추고 있으나, 어느 쪽에서도 두드러지 못합니다.

특히 기대했던 범죄 스릴러, 수사물로는 최악에 가깝습니다. 일단, 영화 속에서 보여지는 수사는 전개상 거의 의미를 가지지 못합니다. 결정적인 단서들은 스펜서가 찾아낸 것이 아니라 주변 인물들이 우연히 제공해 주니까요. 예를 들어, 사건 해결의 열쇠가 되는 도청 파일을 피해자 테렌스의 아내가 스펜서에게 직접 전해주는 식으로요.
스펜서의 옛 파트너 드리스콜이 악당이라는 사실도 너무 쉽게 밝혀집니다. 초반 살해 현장에서 발견된 이쑤시개 조각이라는 단서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추측이 가능한 수준이라 긴장감 있는 반전은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부패한 옛 파트너, 마약 조직, 조직 내부의 은폐 구조 등 설정들도 지나치게 전형적이고요.

전개 또한 뻔하고 치밀함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중간 보스급인 벤트우드에게 쳐들어가서 물고문을 통해 마약 운송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는게 대표적입니다. 이럴 거라면 은밀한 수사 따위는 필요하지도 않았지요. 게다가 정보를 털어놓았다면 악당들도 운송 시간을 바꾸는건 당연한데, 예정대로 운송하다가 마약 트럭을 스펜서에게 탈취당하는건 대체 이게 뭔가 싶더군요.

스펜서 캐릭터도 원작 붕괴 수준입니다. 원작에서는 문학에 조예가 깊어서 시니컬한 말투, 심리 묘사 측면에서 복잡한 면을 보여주는데, 영화에서는 그냥 말빨(?)좋은 전형적인 마초 헐리우드 경찰, 형사 캐릭터에 불과합니다. 그렇다면 액션에서라도 화끈했어야 했는데, 작중 대부분 장면에서는 적들에게 집단 구타를 당하는 장면만 반복될 뿐입니다. 이럴거라면 권투에 일가견이 있다는 설정은 왜 덧붙였는지 모르겠어요. 마크 월버그도 그리 잘 어울리는 캐스팅이 아니고요.

액션은 다른 부분에서도 전혀 기대에 미치지 못합니다. 격투 장면들 모두 속도감이나 위력이 느껴지지 않는 탓에 맨손 액션의 쾌감을 기대하기 어려운 탓입니다. 호크가 덩치를 활용해 마지막에 잠깐 활약하긴 하지만, 이 역시 일방적인 구타에 가까워 액션적 재미는 떨어집니다.

가장 큰 문제는 이야기의 절정부입니다. 부패 경찰과 범죄 조직이 결탁한 악의 무리와 대단한 결전을 벌여야 할텐데, 스펜서가 트럭을 몰고 악당 본거지에 돌진한 뒤 호크가 몇 명을 때려눕히는 걸로 결전은 대체로 마무리됩니다. 스펜서와 드리스콜의 1:1 맞짱은 너무 작위적이라 어이가 없더군요. 부패 경찰들 때문에 보도도 못하고 사건이 은폐되었었는데, 스펜서와 호크의 활약 이후 사건이 대대적으로 폭로된다는 결말도 이해가 안되고요.

그래도 너무 바보같아서 아무 생각없이 볼 수 있다는건 오히려 장점이기는 하네요. 몇몇 유머 코드는 피식 웃게 해 주기는 하고요. 거인 호크, 조력자 헨리 캐릭터는 캐스팅이 좋습니다. 완전한 권선징악 마무리도 후련했고요.

다만 이 정도 장점은 이 영화의 전반적인 완성도를 보완해주기엔 턱도 없습니다. 별점은 1점입니다. 범죄물로서도, 수사극으로서도, 액션 영화로서도 건질게 없는 졸작입니다. 원작인 탐정 스펜서에 대한 모독이라 할 수 있는 쓰레기로 에필로그에서 후속작, 시리즈의 여운을 남기는데 어림도 없지요. 소리없이 망한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입니다.

2008/07/12

왓치맨 - 알란 무어 / 정지욱 : 별점 4점

왓치맨 Watchmen 2 - 8점
Alan Moore 지음, 정지욱 옮김/시공사

악당들과 싸우던 슈퍼 히어로들은 킨 법령에 의해 거의 대부분은 은퇴 수순을 밟는다. 그러던 어느 날 "코미디언"이란 히어로가 변사체로 발견되고, 예전 동료의 한명은 "로어샤크"는 예전 동료들을 찾아다니며 히어로들을 파괴하려는 음모가 있다는 것을 서서히 간파하게 된다. 조사의 와중에 "로어샤크"는 경찰에 체포되나 그를 도와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려는 "나이트 아울"은 그를 탈옥시키고 결국 모든 사건과 음모의 주동자가 누구인지를 알게 되는데...

휴고상을 수상하는 등 너무나 뛰어난 작품성을 지닌 걸작이라는 평이 자자했던 왓치맨이 드디어 국내 정발되어 읽어 보게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평단의 평 처럼 대단한 예술성을 느꼈다고 하긴 어렵지만 확실히 재미있더군요. 단순한 권선징악적 이야기가 아닌 복잡한 음모가 이면에 펼쳐지며 절대적으로 선한 인물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 슈퍼 히어로물이라는 점에서 슈퍼 히어로물을 잘 아는 성인을 위한 만화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마지막 부분에서의 지구 평화를 지키기위한 명목하에 벌어진 거대한 음모에 대한 히어로들의 암묵적인 동의, 그에 반발하는 로어샤크의 제거라는 극단적인 결말은 무척 인상적이었고요. 절대 선이 존재하지 않는 디스토피아적인 SF, 그리고 다른 차원의 지구와 세기말 미래 세계에 대한 상상은 유구한 역사를 지니고 있겠지만 친숙한 슈퍼 히어로물에 이러한 세계관을 도입한 아이디어는 높이 사 줘야죠.

아울러 추리 애호가로서는 "추리적" 인 요소가 포함되어 있어서 무척이나 반가왔습니다. 히어로 연쇄 살인사건이라 할 수 있는 중심 사건과 그것을 조사해 나가는 로어샤크의 모습은 하드보일드 물을 연상케 했거든요. 수사 과정 자체는 별거 없는 탐문수사에 그치지만 거대한 음모와 그것을 밝혀나가는 과정은 꽤 흥미진진하고 나름 하드보일드 전통에 충실하다 생각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래픽 노블"이라는 타이틀이 어울릴 정도로 미국 만화 특유의 선을 살리면서도 정교하게 그려지며 화려한 채색이 덧붙여진 데이브 깁슨의 그림도 굉장히 마음에 듭니다. 세부적인 디테일 하나를 놓치지 않는 치밀함 역시 빛을 발하고요.

인터넷을 뒤져보니 이 작품에 대한 방대한 정보와 해석이 넘쳐나는데 그러한 세부 정보가 없이 처음 접하더라도 작품의 수준은 평범 이상을 보여주는 뭔가가 있습니다. 이러한 모든 요소를 종합해 보았을 때 별 4개는 충분한 작품이라 생각되네요.

이번에 영화화되어 개봉할 예정이라는데 스토리를 영화 하나로 압축하기는 쉽지 않으리라 예상되긴 하지만 무척 기대됩니다.

2020/03/03

더 포리너 (2017) - 마틴 켐벨 : 별점 2점

넷플릭스를 통해 감상한 영화로 "이퀄라이져 2"와 유사한 미노년 히어로 액션물입니다. 이 장르는 "테이큰" 대박 이후 리암 니슨이라는 배우를 늦게나마 전성기로 이끌었고, "존 윅"이라는 또다른 히트작이 발표되기도 했지요.
그러나 이 작품은 다른 유사 작품들과는 명백한 차이가 있습니다. 주인공 콴이 다른 작품들처럼 세계관 최강자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콴은 과거 특수부대 출신이기는 하지만 너무 늙었고, 그래서 격투를 벌일 때마다 상처입으며, 상대를 그렇게까지 압도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이게 좋게 작용한건 아닙니다. 개인적인 이런 미중년, 미노년 액션의 가장 큰 매력 포인트는 최강자의 모습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무협지에서 은둔 고수가 백발을 휘날리며 등장한 뒤, 악당들을 처단하는 그런 로망을 느낄 수 있도록요. 그러나 이 작품 속 콴의 '나도 많이 맞고 다치는', 그리고 심지어 불쌍하기까지한 전형적인 성룡 스타일에서는 그러한 재미를 느낄 수 없습니다.

또 최강자인 주인공이 악을 철저하게 응징해나간다는 호쾌한 일직선 액션인 다른 작품들과는 다르게, 이 작품은 비극일 뿐 아니라 콴의 주 상대인 아일랜드 총리가 실제로 복수의 대상이 아닙니다. 그냥 총리가 딸을 죽인 테러범의 이름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집요하게 그 주변을 쫓을 뿐 실제 테러범은 아니거든요. 오히려 콴에게 괴롭힘을 당하는게 불쌍하게 느껴지기까지 했습니다. 물론 나중에 총리가 선거용 사면을 위해 테러를 사주했으며, 테러범 일당 중 한 명과 불륜 관계였다는게 밝혀지기는 합니다만, 그가 저지른 행위에 비하면 여러모로 지나친 응징으로 보였습니다. 결국 테러범들의 이름을 알아내어 그들을 다 죽이기는 하지만 이 부분은 지나치게 짧아서 권선징악의 쾌감도 약합니다. 영국 대 테러 부대보다 앞서서 테러범을 다 죽이고 빠져나가는 장면도 납득하기는 어려웠고요.

물론 건질게 없는건 아니에요. 특히 늙고 약해보이는 연기에 성공한 성룡의 연기는 칭찬해 마땅합니다. 단지 늙어보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온갖 고초를 겪고 겨우 남은 단 한 명의 가족인 딸의 죽음 이후 모든 것을 걸고 복수하려는 심리와 그 과정을 드러내는 연기는 정말이지 나무랄데 없어요. 이렇게 연기를 잘 하는 배우인지는 몰랐네요.
악당은 아니지만 성룡의 대척점에 서 있는 피어스 브로스런의 연기도 빼어납니다. 지금의 지위를 지키는데 혈안이 되어 있으면서 여러가지 음모를 꾸미고, 결국 음모에 빠져 파멸하는 모습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이야기에서 핵심은 아니지만, 테러범들이 기자 노트북에 폭탄을 설치하는 장면과 이 폭탄에 대한 서스펜스는 꽤 그럴듯했습니다. 여자 테러범이 몸으로 정보를 수집하고, 테러를 사주하는 모습도 괜찮았고요. 콴의 집요하면서도 지나친 총리 추적극보다는 이쪽 비중을 더 키우는게 좋지 않았을까 싶네요.

하여튼, 제 별점은 2점입니다. 성룡의 연기는 빼어니자만 그 외에는 그렇게 건질게 많지는 않았습니다. 성룡의 팬이 아니시라면, 구태여 구해 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2014/12/26

더 이퀄라이저 (2014) - 안톤 후쿠아 : 별점 3점

홈마트 직원 로버트 맥콜은 새벽에 카페에서 책을 읽곤 했다. 덕분에 어린 콜걸 테리와 친해졌는데, 어느 날 테리는 포주인 러시아 마피아에게 무자비한 폭행을 당해 입원하게 되었다. 테리를 도와주기 위해 맥콜은 마피아를 직접 찾아갔다. 그러나 면전에서 무시당하자 실력 행사에 나서는데...

"테이큰" 대박 이후 하나의 유행이 된 중·노년 액션 무비. 이번에는 딸 같은 어린 소녀를 위해 왕년에 잘나갔던 특수요원이 러시아 마피아를 결딴낸다는 내용입니다. "테이큰"의 아류작으로 보이기도 하는데, 의외로 80년대 인기 TV 시리즈가 원작이라고 하네요. 원작을 보지 않아서 얼마나 원작 느낌을 따왔는지는 모르겠지만요.

여튼, 좋았던 점이라면 제일 먼저 덴젤 워싱턴입니다. 간만에 아주 멋지고 묵직한 캐릭터를 맡아 좋은 연기를 선사해주네요. 저의 페이보릿 배우 중 한 명인데, 과거가 있고 독서가 취미인, 편집증이 있어 보이는 캐릭터를 특유의 매력으로 잘 살려줍니다. 소녀를 위해 싸움에 나서는 상황의 설득력도 충분히 보여주고요.

안톤 후쿠아의 감각적인 액션 연출도 좋습니다. 최근 본 영화들의 심심한 액션과 비교하면 안구 정화 수준이었어요. 처음에 슬라비 일당을 털어버리며 맥콜이 자신을 드러내는 장면은 그 중에서도 손꼽을 만 합니다. 맥콜이 상황을 파악하는 시점의 뷰, 음악과 함께 적절한 슬로우 모션, 촬영과 대사가 결합되어 아주 그럴듯하게 표현되거든요. 맥콜의 집을 테디 일당이 덮쳤을 때의 교차 편집도 인상적이었고요.

아울러 마지막 결투씬이 맥콜의 근무지 홈마트에서 벌어진다는 것도 좋은 아이디어였어요. 인력, 장비 모두 부족하지만 홈 그라운드의 이점을 잘 살려 마트 내부 여러 시설 및 다양한 판매 상품을 이용해서 쳐부신다는 것이 괜찮았습니다. 약간 "맥가이버" 느낌도 나고 말이죠.

그러나 거의 끝판왕에 가깝던 마피아 행동대장 테디가 초중반까지 보여주었던 포스에 비하면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결말에서 시시하게 정리되는 등, 파워 밸런스에는 약간의 문제가 있긴 합니다. 중반부까지는 맥콜과 독대를 하는 장면이 여러 번 등장하는 등 1:1로 충분히 주인공 맥콜과 맞서 싸울 만한 캐릭터로 묘사되는데, 맥콜의 강대함이 업그레이드되는 것에 반해 테디는 인질을 잡는 식의 찌질함으로 일관하다가 마지막 장면에서는 뭐 하나 해보는 거 없이 박살나는 탓입니다. 인간이 아닌 것 같은 맷집의 덩치를 제외하고는 마피아 일당 모두가 맥콜 상대로는 수수깡과 다를 게 없어서 조금 실망스러웠어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장 아쉬웠던 것은 테리의 친구 맨디였습니다. 유일하게 테리를 위해 울어주고 친구를 보호하기 위해 거짓말까지 했다가 살해당하는 기구한 캐릭터인데, 맥콜을 비롯한 그 누구도 그녀를 위해 신경 써주지 않는다니! 테리 캐릭터는 클로이 모레츠라는 빅네임 배우가 맡은 것에 비하면 그다지 효과적으로 드러나지 못하고 비중도 적기에, 차라리 맨디를 잘 살렸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습니다. 맥콜 때문에 죽은 유일한 선인이기도 한데 참 아깝게 소비된 느낌이에요.

그래도 이 정도면 꽤나 괜찮은 액션 영화가 아닐까 싶네요. 액션 화끈하고 권선징악 확실하고 결말도 해피엔딩인, 완전 제 취향 영화로 저는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덴젤 워싱턴의 팬이시거나 "테이큰"류의 중·노년 액션 영화를 좋아하신다면 꼭 한 번 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최근 부진했던 덴젤의 작품치고는 다행히도 흥행 성적도 괜찮은 편인데, 앞으로의 시리즈도 기대해 봅니다.

2024/09/22

레블 리지(rebel ridge)(2024) - 제레미 솔니에르 : 별점 2.5점


전직 해병대원 테리는 사촌 동생 마이크를 풀어주기 위해 보석금을 가지고 가다가 경찰의 황당한 검문을 받고 돈을 압수당했다. 그 마을은 경찰이 수상한 사람의 돈을 압수하는게 당연시되는 곳이었다. 테리는 자신의 능력으로 경찰서장을 압박하여 돈을 회수했지만, 감옥으로 이감된 마이크는 살해당하고 말았다.
경찰서장은 테리를 회유하여 돈을 돌려주면서 마을로 돌아오지 말라고 말했다. 그러나 테리는 유일하게 도와주었던 서머가 위기에 처해서 돌아올 수 밖에 없었고, 둘은 죽을 뻔한 위기를 빠져나와 수상한 법정 기록을 토대로 경찰서장의 악행을 모두 알아챘다. 테리와 서머는 경찰서장을 끝장낼 증거까지 확보하나 서머가 잡혀버리고 마는데...

전직 해병대원이 사회적 부조리에 대항하여 떨쳐 일어난다는(?), 전형적인 권선징악 액션물. 연휴 기간에 넷플릭스를 통해 감상하였습니다.

뻔한 설정이지만 몇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요새 영화치고는 비교적 긴, 2시간 가까운 러닝타임을 가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덕분에 테리의 행동이 잘 설명됩니다. 어떻게든 참고 넘기려 했지만, 경찰서장을 응징하고야 마는 빌드업을 위한 분량은 충분하거든요. 주변인물인 서머에 대한 서사도 마찬가지로 잘 풀어내고 있고요.
두 번째는 요새 영화치고 별로 잔인하지가 않다는 점입니다. 테리가 사람을 죽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모두들 누군가의 아빠, 엄마라는게 강조되고 있기도 하고요. 악에 가담한 무리라면 경중을 따지지 않고 모두 죽이는 "잭 리처"같은 작품만 보다가 보니 아주 신선했습니다.

각본도 괜찮습니다. 우선 경찰서장의 음모가 좋았어요. 파산에 몰리자 무차별적으로 돈과 귀중품을 압수해 시의 재원으로 삼았고, 혹시 모를 소송을 방지하기 위해 무조건 90일 구류기간을 두었다는 - 하드디스크의 체포관련 기록이 삭제되는 기간 - 건데, 참신하면서도 놀라왔어요. 미국은 정말 이렇게 아무나 수상하다고 검문하고 체포해도 되는걸까요? 어떻게보면 무섭기까지 했습니다. 마약범은 언제, 어디서든 심문 및 체포가 가능해야 한다고 생각해왔었는데, 범죄를 불문하고 왜 합법적인 체포 절차가 필요한지 새삼 느꼈습니다.
경찰서 내에 있는 서머의 협력자 '서피코'의 정체가 여성 경관 제시카가 아니라 남자 경찰 에브였다는 반전도 돋보였어요. 아, 정말 생각도 못했네요.

캐스팅도 좋습니다. 추억의 배우 돈 존슨이 악역 경찰서장을 맡았는데, 색다르지만 잘 어울렸습니다. 백인 우월 사상에 빠져있는 남부 꼰대 개저씨를 대표하는 연기였어요.

하지만 액션물로 높은 점수를 주기는 힘듭니다. 전체적으로 액션 장면 분량은 턱없이 부족하고, 스케일도 작은 탓입니다. 해병대 무술 교관 출신의 인간 흉기인 테리의 강함도 잘 그려지지 않고요.
결말에서 제시카가 마지막에 서장을 체포하는건 뭔가 싶었습니다. 에브가 서피코가 아니라 제시카가 서피코였던걸까요? 그렇다면 애초에 테리를 왜 체포하려 시도했는지, 중요한 증거물인 메모리 카드 파손은 왜 방조했는지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결말도 뭔가 시원한 사이다 느낌은 주지 못합니다. 다른 경찰들은 어떻게 됐는지도 모르겠고, 경찰서장만 주경찰에 체포되는 정도로는 많이 부족했으니까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킬링 타임용으로 가볍게 보기 좋은 영화입니다.

2004/08/21

크리스마스 푸딩의 모험 - 애거서 크리스티 / 황해선 : 별점 3점

크리스마스 푸딩의 모험 - 6점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황해선 옮김/해문출판사

네, 바로 이어서 또다른 단편집 "크리스마스 푸딩의 모험"을 읽었습니다. 사실 아주 오래전에 읽기는 했지만 기억도 가물가물하고 어차피 단편집은 좋아하니 소장용으로 구입해도 괜찮다 싶어 구입하게 되었네요.

첫번째 단편이자 표제작인 "크리스마스 푸딩의 모험"은 크리스티 여사가 크리스마스 분위기에 맞춰서 쓴 듯한 경쾌하고 유쾌한 단편입니다. 한 외국 왕자의 스캔들을 해결하기 위해 왕자가 도둑맞은 보석을 찾아달라는 의뢰를 받은 포와로가 도둑이 초대받았다는 영국 시골의 킹스 레이시 저택에 찾아가 레이시 가문 사람들과 크리스마스 파티를 벌이며 사건을 해결하는 내용입니다.
사건 자체가 살인사건이 아니라 소박하기도 하고, 아무도 죽지 않으며 악당만 손해보는 전형적인 권선징악형 스토리 구조로 이루어져 추리소설에 거부감을 가지는 사람들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에요. 포와로의 캐릭터도 잘 살아있어서 아주 유쾌하고요. 특히 아이들과 벌이는 두뇌게임(?)이 재미있습니다.
"완전범죄"형 사건이 아니라서 트릭이랄게 별로 없다는 점이 좀 아쉽지만 별다른 사건과 트릭 없이 복잡한 복선들과 대화들만을 가지고 하나의 수준높은 단편으로 완성했다는 점에서 크리스티 여사의 거장으로의 풍모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두번째 단편 "스페인 궤짝의 비밀"은 밀실에서의 의문의 살인사건을 해결하는 정통파 퍼즐 미스터리 본격 추리물입니다.
리치 대령이 주최하는 파티에 참석 예정이다가 급한 일로 스코틀랜드로 가게되어 불참하게 된 클레이턴씨가 다음날 리치 대령의 집 거실에 놓여있는 스페인 궤짝에서 시체로 발견되고, 클레이턴 부인의 도움을 요청받은 포와로가 "회색의 뇌세포"를 이용하여 사건을 명쾌하게 풀어낸다는 내용이죠.
살인사건의 트릭 자체도 괜찮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레몬양의 캐릭터가 아주 잘 표현되어 있는 작품이기 때문에 마음에 들었어요. 사건의 해결에 아무런 증거가 없다.. 라는 것 정도가 유일한 약점이랄까요? 별점은 3점입니다.

세번째 단편 "꿈"은 매일 특정시각에 자살하는 꿈을 꾸는 백만장자의 상담을 받은 포와로가 실제로 그 시간에 백만장자가 자살하게 되자 참고인으로 불려언 뒤, 그야말로 앉은 자리에서(!) 사건을 해결한다는 내용으로 포와로의 추리력이 빛을 발하는 작품이죠.. 트릭 자체야 신선할게 없지만 독자와의 두뇌게임이 비교적 공정한 편이고 사건의 해결도 깔끔한 우수한 단편입니다. 역시나 별점은 3점.

마지막 작품 "그린쇼의 아방궁"은 마플양이 등장하여 사건을 해결하는 단편입니다. 부유한 노부인 그린쇼 양의 의문의 살인사건을 현장 한번 방문하지 않고 관련자들의 증언과 진술만으로 진상을 짚어내는 마플양 특유의 모습이 잘 그려진 작품이죠. 다만 트릭면으로는 "꿈"과 상당히 유사하기 때문에 "꿈" 바로 뒤에 위치해 있다는 것이 약점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그린쇼 양의 의미없어 보이는 말들과 마플양의 사소한 주변 사건들이 결국 진상으로 연결되는 구조는 역시 명불허전이에요. 역시 별점은 3점입니다.

결론 내리자면 전체 평균 별점은 3점. 포와로와 마플양의 매력을 느끼기에는 부족함이 없는 좋은 단편집입니다. 개인적으로도 예전에 읽었던 기억은 있지만 정말 십년이상 된 듯 하고 그래서인지 트릭이나 내용이 모두 신선하게 느껴져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어요.

그러나 해문측의 편집인지, 아니면 전집에서 원래 그렇게 편집을 했는지 전부 6편의 작품이 실려있는 단편집이 4편만 실려있는 것으로 편집되어 있는데 독자 입장에서는 기분이 나쁘네요. 모처럼 크리스티 여사가 요리에 비유하며 소개글까지 써 놓았는데 2편이나 빠지다니... "패배한 개"는 이번에 단편집을 구입했지만 24마리의 검은 티티새때문에 "쥐덫"을 또 살 생각은 없으니 이빨을 맞추는 일은 영원히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2024/01/17

바후발리 2: 더 컨클루전 (2017) - S.S. 라자몰리 : 별점 3.5점

아마렌드라 바후발리는 마히쉬마티의 여왕 시바가미의 뒤를 이을 왕으로 낙점된 국가적 영웅이었지만, 이복동생 발랄라데바의 흉계에 빠져 궁에서 쫓겨난 뒤 죽음을 맞았다. 발랄라데바는 바후발리의 아내 데바세나를 사로잡고, 둘 사이의 아들 마헨드라까지 죽이려했다. 다행히 시바가미의 목숨과 바꿔 살아난 마헨드라는 장성한 뒤, 아버지의 나라를 되찾고 복수를 하기 위해 발랄라데바에 대항하는 군대를 일으켰다. 그리고 발랄라데바와 일기토를 벌여 결국 그를 무찌르는데 성공한다.

넷플릭스로 감상한 인도 영화. 거액의 제작비와 기록적인 흥행도 유명하지만, 아래의 움짤을 비롯한 장면들이 국내에 퍼지면서 유명세를 탔죠.
하지만 움짤처럼 황당무계하기만 한 코믹 영화는 전혀 아닙니다. 인도 역사 속 영웅담을 영화화한 웅장하고 스케일 큰 작품이에요. 우리도 익히 잘 알고 있는 여러가지 고대 신화, 영웅담과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왕의 핏줄이 사악한 친척 탓에 숨어 살다가, 복수와 자신의 자리를 되찾기 위한 전쟁을 일으켜 승리한다는 이야기거든요.

굉장히 뻔한 이야기이라는 약점은 있지만, 거액의 제작비 덕분에 시각적 쾌감은 상당한 수준입니다. 웅장한 배경을 과시하는 촬영도 그렇지만, 바후발리의 놀라운 무공을 보여주는 장면들은 그야말로 기가 막힙니다. 이는 단순히 화끈한데서 그치지 않고, 필요할 때는 필요 이상의 '멋짐'도 엄청나게 뿜어내는 덕입니다. 아마렌드라 바후발리가 아내 데바세나가 성추행을 하려던 자의 손가락을 자른 죄로 법정에 섰을 때, 아내가 잘못했다며 "목을 잘랐어야지!"라는 말과 함께 성추행범의 목을 베는 장면이 대표적이에요. 죽을 때의 모습도 할 말을 잃게 만듭니다. 끝까지 나라를 생각하며 무릎을 꿇지 않고 왕의 모습으로 죽거든요.
특유의 음악과 춤도 적절히 삽입되어 흥겨움을 더해줍니다. 음악도 좋아요!



이전에 감상했던 "RRR"과 이 영화의 장, 단점은 굉장히 비슷한데 이런걸 보면 인도 영화가 무엇인지 좀 알 것 같습니다. 화끈한 액션, 흥겨운 음악, 확실한 권선징악 이야기로 관객들을 사로잡는 '엔터테인먼트' 그 자체인 것이지요. 2시간이 훨씬 넘는 긴 상영시간도 관객들에게 충분한 즐거움을 주기 위한 필수 요소로 보이네요.
개연성 측면에서는 문제가 많지만, 이렇게 '엔터테인먼트' 정의에는 굉장히 충실하기에 추천작입니다. 2시간 넘는 상영 시간을 오롯이 즐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분들께는 유치할 수 있겠지만, 저한테는 완전히 취향 저격이기도 했고요. 별점은 3.5점입니다. 

다만 1, 2부 구성의 작품이 넷플릭스에는 2부만 올라와있는건 많이 아쉽습니다. 내용을 이해하는데에는 별 지장 없었으나, 온전히 영화를 감상했다는 기분이 전혀 들지 않거든요. 1부까지 봤다면 4점 이상도 충분하지 않았을까... 모쪼록 1부도 빨리 올라오기를 바랍니다.

2020/05/09

이웃집 소녀 - 잭 케첨 / 전행성 : 별점 2점

이웃집 소녀 - 4점
잭 케첨 지음, 전행선 옮김/크롭써클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독서광의 모험은 끝나지 않아"에서 구라타 히데유키가 이 책을 산 그날,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책을 다 읽지 않으면 오늘은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을 거야'라고 생각했을 정도라고 극찬했던 말 때문에 구입해서 읽게 된 책입니다.

그런데 제 취향과는 백만광년정도 거리가 떨어진 작품이더군요. 너무나 예쁜 소녀 메그에게 닥치는 처절한 학대가 이야기의 골자로, 미국 시골에서 벌어지는 무식한 광기를 극한으로 그려내는데 묘사가 너무 끔찍한 탓입니다. 제대로 읽기가 어려울 정도였어요.

시골 촌 사람들의 비뚤어지고 무식한 광기를 극한으로 그려내었다는 점에서는 스티븐 킹의 "1922"가 떠오르기도 합니다. 끔찍한 묘사도 그에 못지 않고요. 그러나 순수한 픽션으로 나름 '공포'라는 감정을 불러일으키는데 성공한 킹의 작품과는 다르게, 저는 이 작품을 읽으면서는 혐오스럽다는 감정밖에는 느낄 수가 없었습니다. 무식한 아이들의 행동거지 하나하나, 학대의 주체인 루스의 언행 하나하나 모두가 혐오스럽기 짝이 없으며, 이들이 벌이는 고문과 폭행도 마찬가지거든요. 왜냐하면 이들의 행동에는 아무런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야말로 순수한 싸이코패스들이 모여서 벌이는 광기의 축제인데, 이를 생생한 작가의 묘사력으로 그려낸 탓에, 더욱 혐오스럽습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점에서 더더욱 그러하고요. 

주인공 데이비드가 이들에 휩쓸리는 과정과, 나름대로 이들에 맞서 펼치는 발버둥도 전혀 와 닿지 않았어요. 뭔가 자기 합리화에 불과해 보여서 기분도 별로였고요. 그나마 루스를 살해하는 데이비드의 행동도, 권선징악의 카타르시스보다는 자위행위와 같은 감정의 배설로만 보일 뿐이었습니다. 이 역시 아무런 의미가 없거든요. 차라리 그녀가 대중의 질타를 받으며 죗값을 받는게 더 큰 형벌이었을텐데 말이지요. 이 정도면 너무 쉽게, 편하게 죽은 셈이라 영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이후의 에필로그, 데이비드의 어정쩡한 인생과 루스의 아들 중 한명인 우퍼가 살인마가 되었다는 뉴스 등도 사족일 뿐입니다. 다른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모두 그리고 있지 않아서 애매하기도 하며, 솔직히 그래서 뭐가 어쨌는데? 라는 생각 밖에는 들지 않아요. 잔혹했던 어린 시절을 보낸 뒤, 정상적으로 살 수 없었다는 결말을 그리려고 한 모양인데 이건 너무 뻔하죠.
이렇게 작가의 의도가 뻔하게 드러나는 설정과 묘사는 그 외에도 많습니다. 루스가 엄청나게 예뻤고, 그림에 대해 탁월한 재능이 있었다는 설정이 대표적입니다. 그렇게 죽기에는 너무나 안타까운 소녀였다는걸 독자에게 각인시키려는 의도였겠지만, 뻔하다는걸 부인하기 힘듭니다. 

전개가 흡입력 있고, 묘사가 걸출하다는건 분명합니다. 그러나 읽는내내 끔찍했고 혐오스러웠기에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드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극단적으로 표현한다면, 하드코어 포르노 혹은 하드고어 호러물과 별 차이가 없습니다. 잔혹함이 극대화되었던 범죄들, 예를 들자면 일본 시멘트 살인 사건을 적나라하게 묘사한다면 이런 작품이 되지 않을까 싶네요. 개인적으로는 소설처럼 재구성하기 보다는, 실제 사건에 대한 논픽션이었다면 차라리 더 나았을것 같습니다. 이런 이야기는 좀 객관화된 시선으로 바라보고 싶다는게 솔직한 심정입니다.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촉법 소년' 들이 일으키는 범죄에 대해서 용서하면 안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초등학생이라도,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해서는 죗값을 치루는게 맞지요. 부디 빠른 시일 내에 어리다는 이유로 무죄 방면되는 어처구니 없는 법이 시정되기를 소망해 봅니다.

2024/03/15

내가 읽은 '잭 리처' 시리즈 별점 순위

미국 작가 리 차일드의 베스트셀러 시리즈. 
나무위키에서는 하드보일드라고 소개되어 있지만, 저는 추리 요소가 가미된 무협지라고 생각합니다. 잭 리처의 인간 사냥, 무쌍 액션을 보는 재미가 굉장히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무협지도 좋아하고, 악이 철저하게 멸망하는 권선징악 복수극도 좋아해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국내 출간작 중 당장 구해볼 수 있는건 대충 다 읽었기에, 제가 읽은 작품들의 별점을 정리하게 되었네요.

현재까지의 제 베스트는 "메이크 미"(별점 3점)이며, 전체 평균 별점은 2점보다 살짝 높네요. 이 정도면 단순 킬링 타임용 액션물치고는 괜찮은 편이겠지요. 최소한 아주 시간 낭비까지는 아니라는 의미니까요. 가볍게 머리를 비우고 시간을 보내고 싶으신 분들께 추천드립니다.
* 2024.08.25. "인계철선" 추가
* 2024.09.28. "어페어" 추가

2017/11/11

최후의 도박 - 로버트 B. 파커 / 강호걸 : 별점 2점

스펜서는 보스턴 레드삭스 관계자 해럴드 애스킨으로부터 유망한 투수 마티 러브가 승부 조작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조사를 의뢰받았다. 조사를 위해 작가로 위장한 스펜서는 락커룸 등에서 관계자 인터뷰를 진행했지만, 그날 고리대금업자 프랭크 두어와 히트맨 월리 호그로 부터 협박을 받게 되는데... 

탐정 스펜서 시리즈 세 번째 작품입니다. 이전에 전작을 읽고 더 읽어볼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모처에서 "프로야구"를 소재로 한 작품이라는 글을 읽고 호기심이 동해 찾아 보았습니다.

한마디로 킬링 타임펄프 픽션입니다. 쑥쑥 읽히는 재미는 있지만, 한번 읽으면 그 뿐입니다. 소재가 된 프로야구도 승부 조작과 도박이라는,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전형에서 한 발자욱도 더 나아가지 못했고요. 

추리물로 보기도 어렵습니다. 이 작품에서 스펜서가 탐정으로서 뭔가 추리(?)하는 부분은 딱 한 장면밖에는 없는 탓입니다. 마티 러브가 아내 린다를 처음 만났다는 상황 - 싸인을 해 달라고 하는 아내에게 한 눈에 반했다 - 을 너무나 작위적이라 느끼는 부분이지요. 이후 스펜서가 벌이는 조사는 모든 것이 그의 생각대로, 순서대로 진행됩니다.
우선 '마티 러브와 아내 린다가 처음 만났다는 이야기는 너무 작위적이다'에서 시작해서 린다에 대한 조사에 나섭니다. 그리고 약간의 트릭(사진을 골라달라고 해서)으로 확보한 린다의 지문을 경찰 친구에게 조사 의뢰하여 그녀의 본명을 알아내고요. 그 뒤 그녀가 어린 시절 가출해서 뉴욕에서 매춘부로 일했었고, 매춘부 시절 포주(?)를 만나 그녀가 매춘부 시절 촬영한 포르노가 협박 거리라는 걸 알게 되는 식입니다.
아울러 포르노 마스터 프린트를 찾으러 온 놈팽이가 레스터 프로이드였다라는 결론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흐름은 한치의 오차도 없이 물 흐르듯 하여 감탄이 나올 정도입니다. 어떻게 단 한 번의 헛발질도 없을까요? 사실 린다가 마약 복용으로 검거된 과거만 없었더라도 첫 단계에서 꽉 틀어 막혔을텐데요. 하기사, 이런 저런 좌충우돌로 분량만 낭비하는 작품들 보다야 이런 깔끔한 전개가 읽기에는 더 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게 펄프 픽션의 미덕이겠지요.

그래도 여기까지는 조사, 수사가 핵심이라 보통의 미국식 하드보일드 탐정물과 비슷하기는 한데, 다음부터는 전형적인 헐리우드 히어로물, 고전 서부극의 현대적 변주로 흘러갑니다. 돈 한 푼 받지 않고 오로지 정의감 때문에 스펜서는 프랭크 두어와 부하 월리 호그를 목숨걸고 처단하고, 버키 메이터드와 레스터 프로이드 컴비까지 응징해 버리거든요. 한 가족을 위해 악을 응징한다! 또 이렇게 세 가족을 위해 목숨을 거는 떠돌이 설정은 "셰인"의 판박이입니다.
물론 과거를 매스컴에 고백하는 린다의 큰 결심도 있기는 하나, 스펜서는 목숨을 걸고 살인까지 저지르는 마당에 이 정도 희생은 미약하기 짝이 없습니다. 이러한 헐리우드스러움은 이외에도 작품 곳곳에 묻어납니다. 도나 발링턴이 가난에 쪄든 고향을 떠나 매춘부가 된다는 이야기는 너무나 전형적인 시골처녀 상경기와 다름 없죠. 포주 패트리셔 애틀리가 도덕심을 발휘하여 마스터 프린트 폐기를 도와주는 것 역시 마찬가지고요.

뭐 그래도 쑥쑥 시원하게 읽히는 맛은 있으니 나쁘다고 폄하하기만은 어렵습니다. 마지막에 레스터를 작살내는 장면은 아주 속이 시원하기도 하고요. 스펜서가 사람을 죽였다는 죄의식에 아주 약간 사로잡혀 있는 묘사도 괜찮았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추리물이라고 보기에는 몇 광년 떨어져 있지만 성공한 펄프 픽션이 무엇인지 잘 보여주는 좋은 예입니다. 메이저리그, 범죄, 도박, 포르노까지 모든 흥행 요소가 갖추어 졌을 뿐더러 읽기도 쉽고 결말까지 완벽한 권선징악 해피엔딩이니 이래서야 실패하는게 더 어려울 듯요. 아, 저도 앞으로는 이런 작품을 써야겠습니다.

덧붙이자면, 작품이 발표된 1975년에는 미국에서도 매춘부라는 직업이 사람들에게 알려지면 문제가 된다는 것이 조금 특이했습니다. 지금은 스포츠 스타가 포르노 배우하고 결혼하는 세상인데, 세상이 변해도 참 많이 변했네요.
그리고 스펜서가 굉장히 요리에 관심이 있는 것으로 그려지는 것도 인상적이었어요. 이전에 읽었던 "약속의 땅"에서도 요리를 통해 사람의 인간성을 파악하는 괜찮은 묘사가 등장했었는데, 여기서는 요리 묘사가 과하다 못해 흘러 넘칠 정도입니다. 매일 매일, 매 끼 무엇을 먹는지를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을 정도거든요. 딱히 전개에 필요한 부분도 아닌데 말이죠. 여튼, "스펜서의 요리책" 이라는 책이 출간된 이유가 충분히 느껴졌습니다. 스펜서의 요리책도 출간되면 좋겠네요.

2006/11/24

퍼니셔 (2004) - 조나단 헨스라이 : 별점 1점

FBI 비밀요원 프랭크 캐슬은 무기 거래상 위장근무 임무를 마지막으로 사랑스런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 평범한 삶을 살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임무 수행 도중 처치한 범인이 무기 밀매, 검은 돈 세탁에 연루된 조직 두목 하워드 세인트의 막내아들이었다. 격노한 하워드는 상상을 초월하는 무자비한 방법으로 프랭크와 그의 아내, 아들 등 가족 모두를 몰살시켰다. 그러나 운 좋게도 가까스로 혼자 살아남은 프랭크는 5개월이 지나도록 법과 정의 조차도 돈과 권력을 방패로 삼은 하워드를 처벌할 수 없음을 깨닫고 스스로 복수를 하기 위해 나서는데...

"퍼니셔"는 마블 코믹스의 장수 캐릭터로 잘 알려진 다크 히어로죠. 미국 만화를 잘 모르는 분들도 옛날 돌프 룬드그렌 주연의 영화로 접해 보셨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나저나 2004년이라는 비교적 최근에 영화가 나왔다는 것은 전혀 모르고 있었는데 케이블 TV에서 방영해 주더군요. 제가 전혀 모를 정도라면 완전히 무시당한, 잊혀진 케이스라 영화가 얼마나 처절하게 망했는지 짐작케 합니다.

뭐 흥행이야 어쨌건 저쨌건, 저는 마블 히어로스 중에서도 퍼니셔는 가장 영화화하기 쉬운 캐릭터라 생각해 왔었습니다. 특수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닌 보통 사람이라는 점이 일단 그러하고 배트맨처럼 돈으로 처바른 특수장비를 쓰지도 않는, 순전히 자신의 전투 기술만 가지고 싸워 나가는 캐릭터이기 때문이죠. 때문에 어느정도 화려한 액션, 주인공에 감정이입을 자연스럽게 하게끔 하는 전형적인 권선징악 스토리, 그리고 비교적 잘 알려진 명성 덕분에라도 영화가 기본만 해 주면 이정도로 망하진 않았겠지만, 이 영화는 철저하게 망했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누가 봐도 뻔합니다. 한마디로 그 옛날 돌프가 나왔던 영화 보다도 재미가 없고 설득력이 전무하다는 것이죠.

재미없는 이유야 쎄고 쎘지만, 일단 너무나도 잘 알려지고 뻔하디 뻔한 퍼니셔의 탄생 배경을 설명하는데 너무나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이야기 전개가 너무 어처구니가 없더라고요. 예를 들면 퍼니셔 프랭크 캐슬이 복수를 위해 자신의 거처에 무기를 장치하고 전투용 자동차를 개조하는 것에 제법 많은 시간을 할애해서 설명하고 있는데 극중에서 프랭크가 1주일을 꼬박 밤새워 제작했다는 전투용 자동차는 영화 안에서 몰고 나간지 두번째 만에 거의 자폭하듯이 아작나고 집안에 숨겨둔 무기는 악당 세인트가 보낸 킬러 "러시아놈" 의 맨 몸 액션에 허무하게 쓸려버립니다. 특히 러시아놈과의 액션씬은 감독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평화롭고 단란한 이웃 친구들의 모습과 병행 편집하는 코미디까지 도입해서 정말 어처구니를 상실케 합니다. 퍼니셔가 몸이 아니라 머리를 쓰는 각본은 솔직히 팬으로서 전혀 이해 되지도 않고 마지막에 단신으로 세인트의 거처를 찾아가 악당들을 쓸어버리는 장면은 통쾌하고 재미나긴 하지만 이렇게 쉽게 쓸어버릴 수 있다면 진작 찾아가지.. 라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더군요.
때문에 별점은 1점. 점수를 주는 것은 힘들 정도로 못만든 영화에요.

그래도 저는 옛날 "만화 원작 영화" 비디오 테이프를 수집한 적이 있던 만큼 관심가는 쟝르라 그런대로 재미나게 볼 수 있었습니다. 퍼니셔 역을 맡은 토마스 제인은 크리스토퍼 램버트의 전성기 시절 몸짱 버젼을 보는 듯한 카리스마가 비쥬얼 적으로 뿜어져 나와 꽤 적역이라 생각되었고요. 해골 마크의 현대적 해석도 아주 좋았습니다. 또한 존 트라볼타가 맡은 세인트라는 악당의 묘사도 탁월했고 최강의 적으로 묘사되는 "러시아놈" 역의 프로 레슬러 케빈 내쉬의 모습을 보는 재미 역시 쏠쏠했어요. 왜 망했는지는 수긍이 가지만 최소한 웃고 즐길 수 있어서 만족스러웠습니다. 돈내고 봤다면 또 모르지만...

PS : 속편을 암시하듯 마지막 장면이 보여지지만 아마... 힘들겠죠?

2004/08/17

하이 윈도 - the High Window : 레이먼드 챈들러 / 박현주 : 별점 2.5점

하이 윈도 - 6점 레이먼드 챈들러 지음, 박현주 옮김/북하우스
-아래 줄거리 및 감상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사립탐정 필립 말로우는 머독부인이라는 괴상한 노부인에게서 집나간 며느리가 훔쳐간 머독 집안의 보물 - 브랴셔 더블린 금화- 을 되찾아 달라는 의뢰를 받는다. 금화를 장물이라 생각해 연락해온 화폐상 모닝스타를 조사하던 중, 얼빠진 초보 탐정 필립스의 협조 제의를 받고 아파트로 찾아가게 되나 그곳에서 필립스의 시체를 발견하게 된다. 시체 발견 시의 정황 때문에 경찰에게도 심문 받는 등 궁지에 몰린 말로우가 모닝스타의 시체까지 발견한 뒤, 머독부인은 사건을 끝내줄 것을 요청한다.
하지만 갱 두목에게서 조사를 요청 받은 머독 부인의 며느리 린다와 친분이 있던 갱 두목 부인의 정부 바니에르와 사건이 관련되어 있음을 깨닫고, 우연히 방문한 머독 부인의 비서 멀 데이비스 덕분에 사건의 진상을 알게 된다....

간만에 읽은 챈들러의 하드보일드 소설. "안녕 내사랑" 읽은 이후 처음이네요. 얼마전에 번역 출간된 북하우스의 시리즈입니다. 출간 자체가 반가운 탓에 기쁜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습니다.
작품은 전형적인 하드보일드의 공식을 따릅니다. 간단해 보이지만 복잡한 복선을 깔고 있는 의뢰, 의뢰를 조사하던 중 점점 커지는 사건, 의외의 등장인물들이 얽혀서 사건의 진상이 드러나는 점 등이 그러합니다.
이런 공식은 대부분의 하드보일드가 따르기에 자칫 잘못하면 진부하거나 식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작품은 오리지널리티가 숨쉬는 거장 레이몬드 챈들러의 작품인 덕에 범작 이상의 재미와 흥분을 전해 줍니다. 또 의외로 말로우 답지 않은 의외의 기사도 정신이 등장하는 후반부, 팜므파탈이 별로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는 점 등 다른 작품과 구별되는 차별화 포인트도 분명하고요. 오히려 머독 부인이라는 노부인이 팜므파탈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는 것도 독특했어요.
중간중간 우연으로 이루어지는 사건 전개, 특히 바니에르의 친구 치기공사 티거와 "브랴셔 더블린"을 연결시키는 핵심적인 트릭은 약간 억지스럽긴 하지만 그래도 역할 분담 및 전개가 무난하며, 챈들러 특유의 문체가 잘 살아있어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권선징악이랄까... 악인이 어떤식으로든 처벌받는 그간의 하드보일드 공식과는 다르게 조금 흐지부지 끝나는 결말은 아쉽습니다. 말로우의 표현대로 그 싸이코 할망구에게 "양손에 야구 방망이 두개씩 든 양키스 팀의 외야수" 정도는 끌고가서 맛을 보여줬어야 하는데... ( 개인적으로는 외야수만으로는 부족할 정도입니다. 그래봤자 3명인데, 최소한 구단 전체 선수는 동원해야...)

여튼 결론 내리자면 별점은 2.5점. 흥미진진하고 몰입하여 재미있게 읽었지만 챈들러 작품치고는 범작이라 생각됩니다. 유별나게 재미있거나 특기할 만한 점은 없거든요. 다만 그다지 사람이 많이 죽지는 않고 사건의 전개도 깔끔하며 나름대로 여성에 대한 미덕(?) 이 살아있는 편이니 여성분들의 입문서로 최적의 소설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데 뒷부분 해설을 보니 흑백시절 2편이나 영화가 제작되었더군요. "빅 슬립"은 영화로 보았는데 이 영화들도 한번쯤은 보고 싶어집니다.

PS : 번역은 무난하지만 북커버와 제목은 조금 불만이네요. "하이 윈도"라.....

2009/06/28

약속의 땅 - 로버트 B 파커 / 최운권 : 별점 2점

약속의 땅 - 4점
로버트 B.파커 지음, 최운권 옮김/해문출판사

사립탐정 스펜서는 사업가 허브 세퍼드로부터 집을 나간 아내 펨을 찾아달라는 의뢰를 받았다. 스펜서는 몇가지 조사를 거쳐 그녀의 거처를 알아냈지만, 그녀가 여성해방 운동가들과 함께 지내며 자발적 의사로 집에 들어가지 않는다는걸 알고 그녀의 거처를 남편에게 알려주지는 않았다. 그러나 펨이 은행강도 사건에 휘말리고, 남편인 허브도 스펜서가 평소 알고 지내던 해결사 호크와 연관된 사채업자들에게 괴롭힘 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나서, 두 명에게 닥친 수난을 한번에 해결하기 위한 작전에 착수한다...

TV 시리즈로 더욱 친숙한 "탐정 스펜서" 시리즈 장편입니다. 저는 방영 당시에 시청한 기억이 전혀 없긴 하지만 TV 시리즈까지 제작되었다는 것은 제법 인기가 있었다는 얘기겠죠? 책 역시 영상화 된 것이 당연하다 싶을 정도로 전형적인 미국식 헐리우드 탐정물이었습니다. 그야말로 전형적인 펄프 픽션이죠.

솔직히 좋은 작품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일단 사립탐정이 활약하는 하드보일드 추리-액션물임에도 불구하고, 어떤 스릴이나 긴장감을 도저히 찾아볼 수 없는 탓입니다. 추리 소설이라고 하기에는 터무니없을 정도로 이야기 구조가 간단하고, 주인은 별다른 위기없이 생각한데로 일이 착착 진행해서 사건을 해결하기 때문입니다. 주인공 스펜서의 일당인 100불은 정말 사기처럼 느껴질 정도에요. 하는 일이 없으니까요.

그나마 스펜서의 수사와 행동에 설득력이라도 좀 있어주었더라면 좋았을텐데 그렇지도 않습니다. 예를 들면 마지막 위기의 순간에 호크가 스펜서를 도와줄 것이라고 어떻게 예상할 수 있었을까요?

이야기도 전형적이고 뻔하게 흘러가며, 선과 악의 구도가 확실해서 의외성을 전혀 느낄 수 없었던 것도 감점 요소입니다. 뻔한 권선징악 스토리가 인기의 원인이었을 수도 있지만, 장편소설 분량으로 끌어가기에는 매력이 부족했습니다. 메인 악당도 찌질한 모습으로 긴장감을 불러오는데 실패했고요.

그래도 완전히 졸작이다, 재미가 없는 지루한 작품이다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나름의 독특한 매력은 가지고 있는 덕분입니다. 제일 큰 매력은 역시나 주인공 "탐정 스펜서"입니다. 전직 헤비급 프로 복서다운 강인한 육체에 굉장한 독서량을 통해 세련되고도 유머스럽고, 정곡을 찌르는 시니컬한 화술을 갖추고 있다는 설정은 비현실적입니다. 속된말로 "청순한 글래머" 같으니까요. 그런데 그만의 인생관, 약점과 실수 등도 디테일하게 묘사하여 꽤 생동감 넘치는, 실존하며 바로 옆에 서 있을 것 같은 현실적인 인물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친구 비슷한 존재인 흑인 호크도 상당히 독특해서 무척 인상적이었고요.

상세한 묘사도 합격점을 줄 만 합니다. 예를 들자면 스펜서가 오징어 튀김을 먹는데, 피망을 튀김 칼집 사이사이 끼워주는 세심함을 눈치채고 그 주방장의 사람 됨됨이를 판단한다는, 짤막하지만 그럴듯한 묘사처럼요. 

하지만 단점이 더 많기에 별점은 2점입니다. MWA(미국 추리작가 협회) 장편상 수상작이긴 하지만 지나친 통속성 탓에 명성에 값하지는 못했네요. 이 시리즈를 더 읽게 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TV 시리즈라면 모를까...

2022/09/03

할거 없어서 몰아본, 요새 핫한 넷플릭스 액션 영화 3편



<<그레이맨>>
한줄평 : 돈을 어디에 썼는지 모르겠다.

넷플릭스에서 사상 최고액 (2억 달러)을 투자하여 제작한 영화.
거대 조직에 의해 킬러로 키워졌지만 그 조직에게 배신당한다는건 너무 흔한 설정이었고, 악의 축이라 할 수 있는 CIA 부문장이 자기 친구이자 사설 용병단 리더인 로이스를 시켜 식스를 뒤쫓게 하는 전개 역시 특별한 반전을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전개에서 설명도 많이 부족했습니다. 전 팀장이었던 피츠로이가 뒷통수를 한 번 쳤음에도 그를 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던가, 자기 경력이 제일 중요했던 미란다가 식스와 갑작스럽게 힘을 합친다는게 대표적입니다. 미란다가 도와줄걸 확신한 것으로 보였던 식스의 행동 - 로이스의 총구 앞에서 신발 사이즈를 묻는 - 도 이해가 되지 않고요. 전 세계를 돌아다니는 것도 돈을 많이 투자했기 때문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뭐 이런 류의 영화에서 특별한 설정이나 이야기를 기대하는건 무리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액션 장면도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시종일관 액션이 이어지기는 하는데, 화끈함과 기발함 모두 평이한 수준이었던 탓입니다.

그래도 프라하 도심에서 펼쳐지는 액션은 볼 만 했습니다. 특히 도심을 가로지르는 '트램'과 추격하는 자동차들이 겹치는 액션 장면이 백미였어요. 복잡한 무대를 효과적으로 잘 활용하고 있거든요. 트램 지붕에 올라간 식스가 트램이 지나가는 건물 유리창을 통해 트램 내부의 적 위치를 인지하고 총으로 쏘는 장면처럼요.
피츠로이와 그 조카를 왜 구하려고 목숨을 거는지도 잘 모르겠지만, 조카 클로이 앞에서 악당들을 물리치고 아무렇지 않은 듯 나타나는 모습은 전형적인 클리셰이기는 하나 꽤 멋졌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 머리를 비우고 보기에는 나쁘지 않은데, 사실 이 영화의 가장 큰 단점은 지나치게 거대한 제작비를 썼다는 겁니다. 로저 코만이 이야기했던 대로, 2억 달러를 썼으면 2억 달러를 쓴 티가 확실히 나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습니다.



<<카터>>
한줄평 : 액션은 좋은데 무슨 이야기를 하고있는지 모르겠다.

<<악녀>> 등의 작품으로 액션 영화의 장인으로 거듭난 한국 감독 정병길의 신작.

이 작품의 문제는 각본입니다. 너무 욕심을 부렸어요. 카터가 왜 기억을 잃고 소녀를 찾아 나서는지, CIA는 왜 남의 나라에서 무리한 작전을 펼쳐가면서까지 소녀를 확보하려 하는지, 북한 쿠데타 세력의 목적은 무엇인지 등에 대해서 제대로 설명되는건 하나도 없습니다. 카터가 누구인지도 불분명하고, 누구랑 왜 싸우는지도 잘 모르겠으니 말 다했지요.

그래도 독특한 촬영과 액션은 괜찮았어요. 이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전체를 하나의 씬으로 찍은 듯한 촬영인데, 중간중간 무리수가 보이기는 해도 아이디어만큼은 높이 평가하고 싶습니다. 이러한 촬영과 결합된 액션도 화끈하기로는 더할 나위 없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 <<그레이맨>>보다는 화끈하지만, 더 잔혹하고 더 말이 안됩니다. 호불호가 많이 갈릴 작품이에요.



<<R.R.R>>
한줄평 : 어이는 없지만 재미는 있었다.

인도산 액션 영화. 영국이 인도를 지배할 때를 무대로 인도 독립 운동가 두 명 - 빔과 라주- 의 활약을 그린 작품.

가장 눈에 띄는건 액션입니다. 화끈함을 넘어서 과장이 정말 심하거든요. 초반 불타는 강에서 빔과 라주가 위험에 처한 소년을 구하는 장면을 필두로 하여 기존 상식과 물리 법칙을 뛰어넘는 액션이 난무합니다. 단 둘이서 활과 창만으로 영국 총독의 군대를 쓸어버리고 총독부 관저(?를 날려버리며 총독마저 없애는 결말의 액션 장면이 화룡정점이라 할 수 있고요. 여기에 액션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인도 영화 특유의 뮤지컬스러운 노래와 군무가 빠지지 않은 것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말이 안되기는 하는데, 재미있게 보기는 했습니다. 두 친구의 고민도 설득력있게 그려지고 있고, 권선징악이 명확한 이야기 구조도 마음에 들었거든요. 우리나라로 따지만 백범 김구 선생이 각시탈로 나와서 일본군을 쓸어버리다가 마지막에 일본 총독마저 없애버린다는 영화인데 이런게 재미가 없을리가 없잖아요? 어이없는 액션도 흥을 돋우는 요소였고요.

그래서 별점은 2점. 누구에게나 권해드릴 수는 없지만 취향이 맞으신다면 꽤 즐겁게 볼 수 있는 영화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