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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7

어페어 - 리 차일드 / 정경호 : 별점 2점

어페어 - 4점
리 차일드 지음, 정경호 옮김/오픈하우스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미시시피에서 젊은 여성이 살해된 사건으로 육군 헌병 수사관 잭 리처가 비밀리에 파견되었다. 범인이 그 마을에 주둔하고 있는 공수부대원일 가능성이 높았고, 부대 중대장이 상원의원 칼튼 릴리의 아들 리드 릴리였기 때문이었다.
마을에는 이전에도 두 명의 미인 흑인 여성이 살해당했었고, 공수부대 근처에서는 비밀리에 통제와 위협이 일어나고 있었다. 잭 리처는 마을 보안관 데버로와 깊은 관계가 되었고, 리드 릴리가 세 명의 피해자와 교제했었다는걸 알아냈다. 그러나 데버로가 리드의 첫 번째 여자였고, 군내부 조사 결과를 통해 과거 해병대원이었던 데버로가 질투로 심각한 폭행 및 음해 사건을 일으켰다라는 보고가 전달되었다.
데버로가 질투심에 리드와 교제했던 여자들을 살해한걸까?


"희망은 최선을 기대할 때 품는 거고 계획은 최악을 대비해서 세우는 거야." 프레이저 대령 (이 말을 처음한게 빌런 프레이저 대령이라는게 놀랍습니다!)

잭 리처 시리즈. 리처가 군을 그만두게 된 이유가 실려 있습니다. 군 치부를 알아내어 주모자 - 릴리 부자, 프레이저 대령 - 를 살해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옷을 벗게 된 것이더라고요.

군부대와 수십 명의 민병대가 엮여 있고, 희생자만 5명이 넘으며 최종 보스는 상원 군사 위원회 위원장인 등 큰 스케일은 돋보입니다. 이를 오롯이 잭 리처의 활약으로 파헤쳐 나가는 과정도 잘 그려져 있고요. 공수부대와 싸우는게 아니라, 사건의 전모를 밝혀내는데 주력하고 있는 덕분입니다. 피해자 채프먼 자택에서의 지문 채취로 그녀가 오드리라는 여성이었다는걸 알아내는 식으로 잭 리처의 탐문, 현장 검증 등이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데 큰 도움을 주기도 하고요.
데버로가 범인일지도 모른다는 단서를 계속 뿌리면서 독자에게 혼란을 일으키는 솜씨도 본격물 작가 못지 않습니다. 그녀가 사슴 사냥꾼으로 사슴의 피를 빼는 가대를 가지고 있었지만 숨겼다던가, 그녀 차에 있던 흙자국(시체를 옮겼을지 모를), 해병대 시절 질투심으로 일으킨 사건에 대한 보고서 등으로 빌드업 하는 전개가 좋습니다. 작중 잭 리처마저도 잠깐이지만 속아넘어갈 정도이니까요.
사건 보고서가 가짜라는걸 반전처럼 등장시킨 장면도 괜찮았습니다. '사진'이 옛날 것이라는걸 포착한건, 그래서 가짜라는걸 알아챘다 - 그녀는 능력이 있으므로 5년이나 진급을 못 했을리 없다 - 는건데 그야말로 헌병 수사관 잭 리처에게 딱 맞는 단서였지요.
팬이라면 반가울 니글리의 활약, 그리고 잭 리처 못지 않은 능력의 헌병대 수사관 문로의 활약도 눈에 띕니다. 문로는 다른 작품에서도 멋진 모습을 보여주었을 법 한데, 제가 읽은 다른 작품에서 접했던 기억이 없네요. 언젠간 한 번 다시 나와줄걸로 생각됩니다.

그러나 500여 페이지에 이르는 분량과 스케일에 비하면 알멩이는 부족합니다. 추리물, 수사물로서의 값어치는 거의 없기도 하고요. 물론 이런 부분에서 큰 기대를 한건 아니지만 그 정도가 너무 심합니다. 데버로가 범인이 아니라면 범인은 리드 릴리일 수 밖에 없는 탓이 큽니다.
데버로 보안관이 능력이 없다시피한 것도 문제입니다. 채프먼 사건의 현장을 제대로 분석하지 못했고, 채프먼의 지문을 채취한 신원 검증도 하지 않았고, 피해자들 모두가 리드 릴리와 교제했다는걸 마을 전부가 알고 있는데 리드 릴리를 아예 수사선상에 올리지 않은 등 사건 해결을 위해 하는게 없어요. 이런 무능력은 외려 본인이 범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불러 일으키기도 하고요.

설명도 불충분합니다. 군이 릴리 사건을 덮으려 했고 범인이 체포되었다며 부대 통제를 풀었다면, 이 시점에 데버로를 체포했어야 했습니다. 부대 통제를 푼 시점에서 진범이 누구인지는 정해지지도 않은건 이상하잖아요? 프레이저 대령이 칼튼 릴리에게 충성심을 보이며 리처를 죽이려 한 이유도 마찬가지에요. 대령이 도청을 했다는게 리처에게 들키기는 했지만, 큰 문제는 아닙니다. 리처에게 대단한 증거가 있는 것도 아니고요. 자기 사무실에서 죽일게 아니라 밖에서 살해 시도를 하지 않은 이유도 납득하기가 어렵습니다. 잭 리처를 그 자리에서 죽일 필요도 없었습니다. 프레지어 대령이 완력에 자신이 있다 한들 잭 리처의 경력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을텐데 말이지요.
또 프레이저는 잭 리처가 배후 인물을 알고 있다고 했으니, 그걸 릴리에게 보고했을 겁니다. 그러나 잭 리처가 사실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는건 프레이저도 죽을 때 알았으니, 그걸 보고할 틈은 없었습니다. 즉, 잭 리처는 살아있는 위험인물입니다. 그런데 그를 그냥 놓아두고 릴리 부자가 사건 해결 파티를 열 정도로 경계심을 풀었다는건 말이 안됩니다.

리드 릴리가 연쇄 범행을 저지른 동기도 단순히 사이코패스였다는게 전부라 식상하며, 다른 설정도 문제가 많아요. 피해자들 모두가 엄청난 미인이었다는건 그나마 리드 릴리의 허영심이 컸기 때문이라는 일종의 동기 측면으로 기능하기는 하지만, 마지막 피해자 채프먼(오드리)은 테드 릴리의 정부이기도 했다는 설정은 억지스러운데다가 불필요하기까지 했습니다.
데버로와의 성관계 묘사도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장황합니다. 이게 이렇게까지 묘사될 일인지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이런 점때문에 이 작품이 펄프 픽션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듭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 전형적인 헐리우드 사이코 연쇄 살인마와의 대결을 잭 리처 시리즈 설정에는 잘 녹여내었지만, 전반적으로 액션이 부족하여 잭 리처스럽지도 않고 수사물로도 가치가 없어 감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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