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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25

사라진 내일 - 리 차일드 / 박슬라 : 별점 2점

사라진 내일 - 4점
리 차일드 지음, 박슬라 옮김/오픈하우스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펜타곤에서 일한다는 수잔이 뉴욕 지하철에서 자살했다. 잭 리처는 그녀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이야기를 나눈 사람이었는데, 뉴욕 경찰을 비롯한 온갖 정부 관계자들, 그리고 미지의 인물들이 잭 리처를 찾아와 수잔에게 무언가 받지 않았냐고 물어보았다. 잭 리처는 수잔은 협박을 받아 자살했다고 추리하고, 그녀가 받은 협박에 대해 조사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존 샌섬 하원의원이 80년대 초반, 델타포스 시절 아프가니스탄에서 빈 라덴과 손을 잡았던 과거가 관련되어 있다고 생각되었다. 그러나 잭 리처는 그 때 찍었던 사진에 문제가 있었을거라 추리했다. 사진 원본이 파기되었기 때문이었다.......

"1030"에서 이어지는 잭 리처 시리즈 13번째 작품. 원제는 "Gone Tomorrow" 입니다. "1030"에서 딕슨의 초대(?)때문은 아니겠지만, 뉴욕을 방문한 잭 리처가 잠입한 알 카에다 조직원들을 박살내는 이야기지요.

잭 리처가 수잔을 폭탄 테러범으로 착각하고 접근하는 장면에서 시작해서, 수잔의 자살 이유가 알 카에다 테러리스트들과 연결되는 전개는 흥미롭습니다. 자살자 수잔 마크의 유품에 있어야할게 없다면, 마지막 대화를 나누었던 잭 리처가 그걸 갖고 있을거다!라고 생각해서 관계자들이 잭 리처에게 몰려든다는 것도 설득력있고요.
수잔 마크가 빼돌릴려고 했던 정보가 오사마 빈 라덴의 치부를 건드리는 사진이었다는 일종의 반전도 그럴듯했습니다. 상원의원, 그리고 추후 대권까지 노리는 샘손 하원의원의 정치 생명에 타격을 가할 수 있는 정보로 여겨졌지만, 사실은 그 반대로 오사마 빈 라덴에게 위협적인 정보여서 알 카에다가 이를 철저히 없애려 한다는건 확실한 반전 요소라 할 수 있습니다. 정말 생각도 못했네요.

잭 리처 시리즈답게 액션도 화끈합니다. 특이한건 상세한 무장 묘사입니다. 기관단총이 주 무장이라는건 제가 읽어왔던 그간의 잭 리처 시리즈에서는 보기 힘든 설정이었지요. 헤클러 앤드 코흐 MP5SD라는 총인데 좋은 총이라는 찬사와 함께 실전 활약도 멋지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어떤 총인지 궁금해서 공식 사이트에서 모델을 한 번 찾아보았는데, 리처의 묘사 그대로더군요.
"개머리도 개머리판도 없다. 단순한 손잡이와 방아쇠, 서른 발들이 휘어진 탄창을 곶는 공간, 그리고 이중소음장치 덕분에 한층 두꺼워진 15센티미터 길이의 총신 뿐이다."

'나이프'가 결정적 활약을 한다는 것도 그간 잭 리처 시리즈에서는 보지 못했었던 설정이었습니다. 검은색 기계식 손잡이로 12cm 길이의 양날 칼날이 자동으로 펼쳐지는 '벤치메이드 3300' 모델인데, 찾아보니 역시나 멋지더군요. 어머니 호스를 끝장낼 때의 작중 활약도 아주 인상적이었어요.
이런 점들은 확실히 1인 대 테러 작전을 그리고 있는 작품다왔습니다. 잭 리처의 엄청난 폭력에 당위성을 부여하는 아프가니스탄 테러범의 잔혹성에 대한 묘사도 과하기는 했지만 괜찮았고요.

테러리스트 일당을 찾기 위해 포시즌 호텔과 그 주변 - 3번로, 59번가...- 을 샅샅이 훝는 등의 상세한 뉴욕 묘사도 돋보입니다. 뉴욕을 가게 된다면 포시즌 호텔은 한 번 둘러보고 싶어질 정도로요. 지도를 보니 위치가 아주 좋네요. 최저가 150만원에 달하는 숙박비가 문제겠지만....
수잔이 버린 USB 메모리가 어디 있을지?에 대한 추리도 괜찮았습니다. 휴대전화를 갖고 있을 사람 소지품에 휴대전화가 없다면, 그건 어딘가에 버렸고 그렇다면 그걸 버릴 때 USB도 같이 버렸을 거라는건 지극히 합리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설정에 너무나 명확한 약점이 있어서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습니다. 우선, 오사마 빈 라덴의 치부를 드러내는 사진은 수잔 마크가 펜타곤 서버에서 파기했습니다. 현재 남아있는건 원본을 복사한 USB 뿐이에요. 그렇다면 모든게 끝났어야 했습니다. 오사마 빈 라덴은 이 사진을 영구히 없애고 싶어했으니까요. 그런데 왜 쓸데없이 복사본을 만들고, 또 그걸 확보하려고 이 고생을 하는걸까요? 지시가 원본의 파기 뿐이었다면, 수잔이 복사했다는걸 알 수 있는 방법도 없지요. 오사마 빈 라덴의 라이벌 조직이 수잔 마크를 협박했어야 말이 됩니다. 
21세기에 사진 한 장이 그렇게 큰 위협이 된다는 것도 와 닿지 않아요. 합성이나 조작이 얼마든지 가능하니까요.

알 카에다가 펜타곤 시스템을 해킹할 수 있었던 시스템 엔지니어 수잔을 딱 맞게 포착해서 협박했다는 것도 억지스러웠습니다. 그녀의 능력과 기술, 약점을 알 카에다는 어떻게 알아낼 수 있었을까요? 여기에 더해 교통 체증으로 늦은 수잔에게 그녀의 아들 피터를 산체로 해부하는(?) 동영상을 보냈다는게 가장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피터에게 고문을 가할 수는 있지만 그를 죽이는건 말이 안됩니다. 수잔 마크로부터 USB를 넘겨받기 전까지는 말이지요. 잭 리처는 그녀들이 미쳐있었다, 그리고 수잔에게 미행을 붙여 놓았다고 설명하지만, 이 정도로 납득하기는 어려웠습니다. 20명이 넘는 조직원을 뉴욕에 잠입시켜가며 수행한 작전을 이렇게 감정적으로 진행한다는건 있을 수 없는 일이지요.

결말부에서 무려 10명이 넘는 테러리스트들이 잭 리처 한 명에게 간단하게 쓸려나가는 것도 허무했고, 호스 모녀가 잭 리처와 일기토를 벌이는 설정은 그야말로 황당 그 자체였습니다. 우리편 전부를 쓰러트린 키 190cm가 넘는 거인 상대로 총이 있는데 칼만으로 싸운다는건 말도 안됩니다. 호스 모녀는 리처가 등에 벤치메이드 3300을 테이프로 붙여놓은걸 놓쳤다가 낭패에 빠졌지만,설령 리처가 맨손이었다 하더라도 해서는 안될 짓이었어요. 실제로 리처는 마지막에는 칼이 아니라 의자로 상대방의 칼을 떨어트리게 만들었지요.
잭 리처가 테러리스트 일당을 처단하기 위해 출동할 때, 이 모든걸 알고 있던 경찰(테레사 리)과 샘손 의원 측 사람들이 총기 제공 외 다른 협조를 하지 않는 것(테레사 리와 정사를 나누는 것 외에는) 역시 설명이 부족했습니다.
 
그리고 앞서 말씀드렸듯, 포시즌 호텔과 그 주변 등 묘사가 상세한데 이왕이면 지도도 함께 수록해 주었더라면 훨씬 좋았을 것 같습니다. 인터넷에 누가 만들어 놓지 않았을까 싶어 잠깐 찾아봤는데 없더라고요.

그래서 별점은 2점. 도입부, 중반부까지는 무척 흥미로왔는데 후반부는 지나치게 흥행(?)을 의식한듯하여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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