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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10

바텐더 - 윌리엄 래시너 / 김연우 : 별점 2.5점

바텐더 - 6점
윌리엄 래시너 지음, 김연우 옮김/피니스아프리카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떠돌이 바텐더 저스틴 앞에 정체불명의 노인 버디 그래클이 나타났다. 버디는 수 년 전 저스틴 어머니 살인 사건의 범인은 아버지가 아니었고, 자신이 청부를 받아 진행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누가 의뢰했는지 알고 싶으면 1만불을 달라고 요구하는데....

바텐더가 오래전 살인 사건 진상을 찾아나선다는 범죄 스릴러입니다. 예전 어딘가에서 책 소갯글을 보고 장바구니에 담아두었던 책이지요. 제목과 간단한 줄거리 소개가 상당히 흥미로왔기 때문입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제법 두꺼운 장편임에도 불구하고 몰아쳐서 하룻만에 읽어버릴 정도로요. 이야기의 도입부부터 인상적입니다. 어머니의 살인범이 아버지라는걸 고발했던 기억 때문에 정신병원에 입원할 정도로 허우적거리다가 겨우 벗어났는데, 정체불명의 누군가가 나타나 사실은 자기가 어머니를 죽였다고 밝힌다!는 이야기를 짧은 도입부 안에서 긴장감 넘치게, 완벽하게 서술하고 있는 덕분입니다. 정말로 어머니를 죽인 다른 누군가가 존재하는 것인지? 궁금해서 도저히 다음 장을 안 읽을 수 없었습니다. 최근 읽었던 작품들 중 가장 괜찮았던 도입부였다 생각되네요. 

사건을 개인적으로 파고드는 바텐더 저스틴 나름의 수사 활동도 그럴싸합니다. 과거 로스쿨 출신이라는 배경이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평범한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우직한 인터뷰, 탐문 중심의 조사만 벌이는게 무척 현실적이기 때문입니다. 조사를 시작한 후 의미있는 단서를 손에 쥐게 되는 것도 이모와 형과의 인터뷰부터 였다는 점 역시 설득력 높은 전개였고요.

또 이 작품만의 특징인데, 제목에 걸맞게 칵테일 활용이 아주 탁월해서 눈길을 끕니다. 그 중에서도 모든 단락의 소제목을 칵테일과 다양한 술, 음료수 이름으로 구성한 것이 아주 괜찮았어요. 마구잡이로 붙인 것이 아니라 단락의 내용과 절묘하게 맞아 떨어집니다.
내용에도 술이 적절하게 인용됩니다. 알콜 중독자 버디(던)을 낚기 위해 조니 워커 블루 라벨로 유혹한다던가, 아버지의 옛 불륜 상대 애니를 찾아간 저스틴이 그녀의 냉장고 속 다이어트 진저에일, 썩어가는 딸기, 말라 비틀어진 라임, 싸구려 보드카로 스트로베리 뮬을 만들어 준다는 식으로요. 해고된 저스틴이 친구 코디에게 총을 구입해달라며 최고급 데킬라 테존 아녜호를 주는 장면도 빼 놓을 수 없겠군요.
제가 칵테일, 술을 상당히 좋아하는 편이라 더 즐길거리가 많았던 것 같은데, 여튼 이러한 요소들은 던이 코디에게 보험 사기에 대해 이야기해 주는 복선 등에서 활용되는 디테일과 함께 작품의 짜임새를 높여줍니다.

그러나 추리, 범죄 소설로 볼 때 너무 별 볼일 없다는 단점도 명확합니다. 첫 번째로, 아버지의 작전은 너무 별볼일 없습니다. 플린이 증언 철회를 하기 위해 그냥 두어도 되는데 왜 죽였을까요? 그를 죽이면서까지 지키고 싶었던 비밀이 있는 진범이 있다!는 의혹을 불러 일으키는게 과연 합리적인 시나리오인지 의심스럽습니다. 단순 사고로 처리될 위험도 있고, 결국 사람을 더 죽여야 하는 위험부담을 짊어져야 하니까요. 이보다는 플린 증언 철회를 통한 재심을 일단 시도해보는게 더 낫지요. 

또 아내의 불륜과 그에 따른 범행 조작 역시 증거가 너무 빈약합니다. 재닛 모스가 몇년이 지난 후 죄책감으로 자살했다? 죽일만큼 미워한 여자가 죽었으면 두다리 쭉 뻗고 자면 잤지 자살했을리가 없습니다. 설령 그랬더라도 살인을 청부했다는 증거는 절대로 찾을 수 없었을테고요. 한마디로, 유죄 판결을 뒤엎을만한 증거는 전무합니다.

두 번째로, 버디 그래클(던)의 모든 행동이 말이 안됩니다. 제이크를 찾아와 자신이 범인이라고 이야기하는 도입부부터요. 왜 데릭이라는 유능한 하수인을 두고 온갖 범죄를 저지르는 악당이 1만불 때문에 위험을 감수할까요? 푼돈 벌이라도 하려는 의도였다고 칩시다. 그래도 저스틴이 경찰에 신고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지 않은 이유는 도저히 모르겠습니다.
던이 협박, 회유 중에 데릭을 이용하여 제이크를 위협하는 것도 영문을 알 수 없습니다. 저스틴이 사건에 뭔가 있다는 생각을 굳히고 더 열심히 조사에 나서게 만드는 결과만 초래했으니까요. 성과는 없고 뭘 기대했는지도 알 수 없는 어처구니 없는 행동이었습니다. 이럴 바에야 데릭을 시켜 빈집을 터는게 훨씬 나았을테지요. 그나마 여기까지야 괜찮다쳐도, 던이 최후의 순간에 애니의 집에 침입해서 칼부림을 한건 최악 중의 최악입니다. 이유에 대한 설명도 역시나 없지만, 끔찍할 정도로 작위적인 탓입니다. 사랑하는 여인의 집에 살인범이 침입하지만 백마탄 왕자가 구해준다는 진부하기 짝이 없는 클리셰의 반복에 불과해요.

마지막으로 중요한 소품으로 사용되는 죽은 어머니의 장신구들도 도대체 어디서 났는지 도무지 모르겠어요. 어머니 사건이 현재 사건과 연관되어 있다는 중요한 증거품인데 이게 어디서 났을까요? 이렇게 설명되지 않는 요소들이 많은 작품이 좋은 작품이기는 힘들겠지요.

저스틴 캐릭터 역시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하드보일드 황금기를 떠올리게 하는 냉소적인 성격과 입담은 나쁘지 않습니다. 허나 술이나 다른 자극적인 것 모두 입에 대지 않고 고기도 먹지 않으며 오로지 명상과 요가로 자신을 다스리는 구도자적인 인물이라는 것에 대한 묘사가 너무 장황합니다. 사실 작품과 별 상관도 없는 설정인데, 그냥 너무 멋을 부린 느낌이에요. 구도자처럼 사는데 불구하고 여자는 왜 이렇게 밝히는지도 이해가 되지 않고요. 그냥 아픈 과거가 있는 바텐더 정도가 적당하지 않았을까요? "바텐더"의 사사쿠라 류 처럼 손님의 심리와 느낌을 잘 파악하는, 한마디로 '눈치'가 빠르다는 바텐더의 특기를 잘 살려 사건 수사와 연결했더라면 훨씬 더 제목 느낌을 잘 살릴 수 있었을텐데, 책 속 묘사로는 바텐더의 기술과는 무관한 저스틴의 수도승같은 생활이 더 중요하게 묘사되어 아쉽습니다.

마지막으로 던과 다른 청부업자들의 힘 센 도구 역할을 하는 데릭은 도무지 왜 등장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야기에 중요한 역할을 하지도 못하고, 현실적이지도 않아요. 너무 눈에 띌 뿐더러 범행도 지나치게 많이 저지르는데 그냥 공기와 같은 인물이라 아무도 주시하지 않는다는 말도 안되는 이유로 사건에서 손쉽게 빠져나가는 것은 쉽게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이런 비현실적인 인물을 이야기에 개입시키는 것보다는, 던과 데릭을 합쳐 실제로 몸을 써서 사람을 죽이는 보다 사악한 악당을 그려내는게 대결 구도에 훨씬 좋았을 겁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재미 면에서는 나쁘지 않은 작품이지만 여러모로, 특히 추리적으로는 높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킬링타임용으로는 적절한데, 개인적으로는 눈치빠른 바텐더와 미녀 단골 손님이 힘을 합쳐 사건을 해결하는 단편 이야기가 더 좋지않았을까 싶네요. "구석의 노인"의 변주처럼요.

2017/03/04

한잔의 맛 - 김양수 : 별점 2점

한잔의 맛 - 4점
김양수 지음/예담

피키캐스트 연재 당시 가끔 찾아보았던 웹툰인데 단행본으로 나왔기에 구입해 보았습니다. 

프리랜서 기자인 '나'가 인터뷰를 계기로 친해진 바텐더, 그리고 또 다른 손님들과 나누는 술과 잔잔한 일상이 어우러진 이야기들이 펼쳐지는 내용으로 분위기는 "바텐더"와 똑같습니다. 그러나 "바텐더" 쪽 이야기가 더 깊이 있습니다. 에피소드 한편 한편이 더 길며, 오랜 시간 연재하며 캐릭터 설명에도 많은 분량을 할애한 덕이죠.
하지만 일상툰 "생활의 참견"에서 유감없이 선보였던 작가 특유의 개그 감각으로 떨어지는 깊이를 뒷받침 해 줍니다. 특히나 바텐더가 준비한 칵테일에 대해 "시원하게 창공을 가르는 오이 비행기같다고나 할까!", "(죠니워커) 블랙이 돼지갈비라면 더블 블랙은 숯불 바베큐 같은 느낌?"처럼 내뱉는 한마디가 키 포인트입니다. 마스터의 표정도 볼거리고요.

술에 대한 정보 전달 측면도 나쁘지 않습니다. 싱글 몰트는 잠시 두었다 마시면 좋다, 진토닉에 오이를 넣어서 마시는 '헨드릭스 큐컴버'(헨드릭스 진이라는 진을 사용해야 하는 진토닉의 일종) 소개, 그리고 '하이볼' 같이 다른 작품에서 보지 못했던 술과 칵테일이 소개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도 싱글 몰트를 블렌디드보다 좋아하는데, '라가볼린 16년'은 한번 마셔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가격도 10만원 중반대면 적당한 듯?

그러나 딱 한 가지, 중간에 등장하는 마스터의 과거를 다룬 에피소드는 아쉽습니다. 촉망받는 바텐더였지만 바텐더 대회에서 키우던 햄스터 출산 때문에 도전에 실패한 후 세계를 방황했다는 얼토당토 않는 개그가 장황하게 펼쳐지는데 별로 웃기지도, 재미있지도 않았어요. 등장하는 라이벌 역시 어처구니 없는 것은 마찬가지고요. 작가가 개그 작가라는 정체성을 드러내기 위해 무리수를 둔 것 같은데, 작품과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개그 작가로 진면목을 보여주고 싶었다면 일부 심각한 에피소드를 빼고 보다 즐거운 이야기로 전개하는게 더 좋았을 겁니다. 몇몇 에피소드는 코미디 임에도 최루성 드라마를 삽입하여 눈물을 강요하는 한국 코미디 영화의 병폐가 느껴져 별로였거든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전체적으로 읽기 편하고 그런대로 재미도 있지만 말씀드린 단점으로 감점합니다. 작가의 팬이 아니시라면 딱히 읽어볼 필요는 없습니다. 가격도 분량에 비하면 비싼 편입니다.

2007/04/19

바텐더 - 조 아라키 원작 / 나가토모 켄지 그림

바텐더 Bartender 1
조 아라키 지음, 나가토모 겐지 그림/학산문화사(만화)

최근 "신의 물방울" 때문에 와인이 붐이지요. 이 만화도 술 만화입니다. 하지만 와인이 아닌 "칵테일"과 칵테일을 만드는 "바텐더"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솔직히 "신의 물방울"은 와 닿지 않는 고상한 척이 심해서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과장도 지나치고요. 반면 이 작품은 주인공이 전설적인 바텐더 비스무레하긴 하나, 우리 주변에 있을 수 있는 일상적이고 따뜻한 감성을 잘 드러내어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리고 작품 속 "칵테일 한잔"은 사랑을 이루어주고 계약을 이루어주는 등의 마법을 부리지 않습니다. 그냥 인생사에서 조미료 정도로 쓰일 수 있는 바에서의 칵테일 한잔 수준의 이야기들로 꾸며져 있을 뿐입니다. 마시는 사람들의 호들갑도 적당한 수준이고요. 그래서 너무 담담할 수도 있는데, 저는 이런 잔잔한 이야기를 무척 좋아해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주인공 사사쿠라 류도 마음에 들었어요. 전문가적인 지식과 기술을 보여주는 부분에서는 확실한 실력을 보여주는 최고의 실력자인데다가 배경도 나름 화려하고 과거도 뭔가 있는 듯 한데, 드러난 현재까지의 그는 감정에 좀 흔들리기도 하고 부족한 모습도 보여주는 인간적인 캐릭터입니다. 여러가지 이야기에서 나름대로 허술하고 유쾌한 면을 보여주거든요. 다른 요리 만화에서 봄직한 기계같은 인물이 아니고요. "대사각하의 요리사"의 코우 같은 느낌입니다.  
당연히 이야기들도 재미있으며, 칵테일에 대한 정보도 풍부하고 자세합니다. 칵테일에 한번 도전하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요. 

"미스터 퍼펙트"라는 최고의 바텐더가 등장하고, 여주인공은 호텔 사장의 금지옥엽 손녀딸이라는 등의 작위적인 설정은 있으나 뭐 이정도는 만화적 재미를 위해서 충분히 이해할 만한 수준이지요. 제 별점은 3점입니다. 다음번에 독립하게 된다면 집안에 작은 홈 바를 두고 싶네요.....^^

2014/08/25

바텐더 1~21 - 조 아라키, 나가토모 겐지 : 별점 2.5점

바텐더 Bartender 21 - 6점
조 아라키 지음, 나가토모 겐지 그림/학산문화사(만화)

"바텐더" - 조 아라키 원작 / 나가토모 켄지 그림

몰랐었는데 이 만화도 완결되었군요. 주말에 몰아서 완독하였습니다.

작품은 크게 주인공 "신의 글라스" 류가 여러 바를 떠돌아다니며 용병생활을 하는 전반부, 호텔 카디널의 바 이덴홀에서 근무하는 중반부, 그리고 독립하는 후반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이 와중에 바를 찾은 손님들과의 다양한 에피소드가 펼쳐지는 전개이죠.

요리만화 스타일의 배틀이 펼쳐지는 에피소드는 거의 없고, 바를 찾아온 손님들에게 최고의 한 잔을 대접한다는 치유물 계열의 이야기가 대부분입니다. 주인공이 천재라는 점만 빼면 "심야식당"과 비슷한 분위기지요. 이러한 이야기 특성상 주인공 사사쿠라 류보다는 손님과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가 인상적인게 많은데, 개인적으로는 가와가미 쿄코가 등장하는 에피소드들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우연히 바를 찾은 첫사랑에게 고백을 결심하지만 그가 약혼자와 함께 나타나자 "라스트 키스"라는 칵테일을 만들어 주는 에피소드(내내, 내내, 당신을 좋아했습니다), 또 그녀가 어머니를 급작스럽게 잃은 뒤 바텐더 대회에 출전하기 위해 "핑크 리본"이라는 칵테일을 만드는 에피소드가 좋았어요. 이러한 점 때문에 이 작품의 히로인은 미와가 아니라 쿄코라고 생각합니다. 수많은 명언이 등장하는 것도 명언 덕후로서 마음에 들었고요.

그러나 아쉽게도 쿠루시마 타이조가 죽은 뒤 류가 독립하게 되기까지를 그리는 후반부는 재미가 떨어집니다.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인 치유물 분위기가 희석되고, 류의 제자인 와쿠이 츠바사의 성장기와 독립 준비 과정에서 여러 가지 배틀이 중심이 되는 탓입니다. 차라리 쿠루시마 미와와의 관계를 좀 더 진전시키거나, 아니면 ‘미스터 퍼펙트’와의 최종 결전과 같은 빅 이벤트로 마무리했더라면 임팩트는 더 있었을 텐데 이도저도 아니라 좀 아쉬웠어요.

그래도 새로 오픈한 이덴홀을 중심으로 이전처럼 끌고 갈 수도 있었을 텐데, 큰 욕심을 부리지 않고 적절히 마무리한 점은 높이 평가하고 싶네요. 재미고 뭐고 다 없어진 채 좀비처럼 연명하는 일부 만화들보다는 훨씬 나으니까요.

그래서 제 별점은 2.5점입ㄴ비다. 후반부 이야기는 맥이 좀 빠지지만, 전체적으로 잔잔하면서도 푸근한, 그러면서도 칵테일 한 잔을 마시고 싶게 만드는 작품입니다. 이런 류의 이야기를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일독을 권해드립니다.

2016/08/22

일러스트 칵테일북 - 오 스툴 / 황소영 : 별점 3점

일러스트 칵테일북 - 6점 오 스툴 지음, 황소영 옮김, 엘리자베스 그레이버 그림/봄엔

제목에 혹해서 충동구매한 책입니다. 저자는 실제 바를 운영했던 전문 칼럼리스트로, 58종의 칵테일에 대해 유래 및 간략한 관련 에피소드, 레시피일러스트와 함께 전해 줍니다. 7편의 짤막한 칼럼도 함께 수록되어 있고요.

160페이지 정도 분량에 페이지 디자인도 일러스트가 많이 좌우하고 있어서 깊이 있는 이야기가 담겨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단점은 아닙니다. 짧지만 그만큼 정보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는 덕분입니다.

특히 책의 독자를 '홈 바텐더'와 '아마추어'에게 맞추고 있어서 레시피, 도구 등에 대해 쏠쏠한 정보가 많은게 마음에 들었습니다. 집에 바 용품을 구입할 때 어떤 것을 구입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칼럼이 대표적입니다. 웨딩 파티에서 칵테일을 마시는 방법도 마찬가지에요. 버번 & 사과 주스, 데킬라 & 사과 주스 등 정말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의 조합으로 만드는 칵테일을 소개해 주거든요. 그 외의 레시피들 모두 집에서 쉽게 만들 수 있는 팁을 제공합니다. 참고로 저자가 추천하는 칵테일은 '네그로니'입니다. 맛있고 간단하기 때문으로 진, 스위트 베르무스, 캄파리를 동량으로 섞기만 하면 된다고 하는데 꼭 한번 만들어 보고 싶네요.

이러한 정보와 레시피 외에도 애주가들, 그리고 만화 "바텐더"를 재미있게 읽었던 사람이라면 흥미로울 만한 이야기도 제법 많습니다. 몇 가지 예를 들자면 제가 좋아하는 '김렛'이 사람 이름이었다거나, 제임스 본드의 유명한 마티니 주문 방법은 엉터리였고 다니엘 크레이그의 "카지노 로열"에서야 비로소 '베스퍼'라는 진짜 칵테일이 등장했다는 것, 그리고 빌 맥코이라는 주류 밀매업자가 금주 시대에 진품만을 취급하여 좋은 평판을 쌓은 뒤 '리얼 맥코이'라는 표현이 생겨났다는 것 등이 그러합니다. "리얼 맥코이"라는 20년도 더 된 킴 베이싱어 주연 영화를 본 적이 있는데 이런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는지는 정말이지 처음 알았네요.

아울러 엘리자베스 그레이버의 일러스트도 뛰어난 수준으로, 제목에 혹하기는 했지만 후회가 없을 정도로 멋진 그림들입니다. 이 정도면 어른들을 위한 그림책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아요.

물론 단점이 없지는 않습니다. 분량에 비하면 과하다 싶은 가격, 그리고 제본이 유선(?) 제본으로 되어 있어서 쉽게 펼쳐보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살림 지식 총서'나 '시공 디스커버리 문고' 스타일로 제본하고 보다 저렴하게 출간하는게 나았을 거에요 일러스트 칵테일북 -  오 스툴 지음, 황소영 옮김, 엘리자베스 그레이버 그림/봄엔

제목에 혹해서 충동구매한 책입니다. 저자는 실제 바를 운영했던 술 전문 칼럼리스트로, 58종의 칵테일에 대해 유래 및 간략한 관련 에피소드, 레시피를 일러스트와 함께 전해 줍니다. 7편의 짤막한 칼럼도 함께 수록되어 있고요.

160페이지 정도 분량에 페이지 디자인도 일러스트가 많이 좌우하고 있어서 깊이 있는 이야기가 담겨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단점은 아닙니다. 짧지만 그만큼 정보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는 덕분입니다.

특히 책의 독자를 '홈 바텐더'와 '아마추어'에게 맞추고 있어서 레시피, 도구 등에 대해 쏠쏠한 정보가 많은게 마음에 들었습니다. 집에 바 용품을 구입할 때 어떤 것을 구입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칼럼이 대표적입니다. 웨딩 파티에서 칵테일을 마시는 방법도 마찬가지에요. 버번 & 사과 주스, 데킬라 & 사과 주스 등 정말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의 조합으로 만드는 칵테일을 소개해 주거든요. 그 외의 레시피들 모두 집에서 쉽게 만들 수 있는 팁을 제공합니다. 참고로 저자가 추천하는 칵테일은 '네그로니'입니다. 맛있고 간단하기 때문으로 진, 스위트 베르무스, 캄파리를 동량으로 섞기만 하면 된다고 하는데 꼭 한번 만들어 보고 싶네요.

이러한 정보와 레시피 외에도 애주가들, 그리고 만화 "바텐더"를 재미있게 읽었던 사람이라면 흥미로울 만한 이야기도 제법 많습니다. 몇 가지 예를 들자면 제가 좋아하는 '김렛'이 사람 이름이었다거나, 제임스 본드의 유명한 마티니 주문 방법은 엉터리였고 다니엘 크레이그의 "카지노 로열"에서야 비로소 '베스퍼'라는 진짜 칵테일이 등장했다는 것, 그리고 빌 맥코이라는 주류 밀매업자가 금주 시대에 진품만을 취급하여 좋은 평판을 쌓은 뒤 '리얼 맥코이'라는 표현이 생겨났다는 것 등이 그러합니다. "리얼 맥코이"라는 20년도 더 된 킴 베이싱어 주연 영화를 본 적이 있는데 이런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는지는 정말이지 처음 알았네요.

아울러 엘리자베스 그레이버의 일러스트도 뛰어난 수준으로, 제목에 혹하기는 했지만 후회가 없을 정도로 멋진 그림들입니다. 이 정도면 어른들을 위한 그림책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아요.

물론 단점이 없지는 않습니다. 분량에 비하면 과하다 싶은 가격, 그리고 제본이 유선(?) 제본으로 되어 있어서 쉽게 펼쳐보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살림 지식 총서'나 '시공 디스커버리 문고' 스타일로 제본하고 보다 저렴하게 출간하는게 나았을 거에요. 비슷한 스타일의 시리즈로 묶어서 말이죠.

그래도 개인적으로는 재미있게 읽었기에 만족합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구입해서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리기는 애매한 부분이 없지 않으나, 애주가이자 독서가인 친구에게 선물하기 좋은 그런 책입니다.

이번 주말에는 이 책에 실린 대로 대충대충 제 맘대로의 '진 토닉'이나 한 잔 만들어 봐야겠습니다.

2013/06/07

BAR 레몬하트 1 - 후루야 미쓰토시 : 별점 1.5점

BAR 레몬하트 1 - 4점
후루야 미쓰토시 지음, 에이케이 편집부 옮김/에이케이(AK)

인터넷 상에서의 유명세가 상당해서 읽고 싶었던 작품입니다. 이제서야 읽게 되었네요. 그러나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많이 실망스러웠습니다.

술에 대해 박식한 바텐더가 운영하는, 어떠한 술도 마실 수 있는 환상의 Bar "레몬하트"를 무대로 손님들의 드라마가 펼쳐지는 내용으로, "바텐더"와 "심야식당"을 적절히 섞어놓은 느낌입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술"에 대한 정보 전달을 최우선으로 삼고 있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문제는 그 때문에 드라마가 굉장히 약하고, 이야기들도 별로 재미가 없었다는 겁니다. 여러 술들에 대해 알려주는 웹사이트를 하나하나 링크해서 보는 느낌이랄까요. 이런 점은 "에키벤"과 유사하기는 합니다. "에키벤"도 뭔가 있어 보이지만 실상 내용은 철도와 도시락 소개밖에 없으니까요. 그러나 "에키벤"은 디테일한 그림이 덧붙여져서 소장 가치를 불러일으키는 반면, 이 작품은 작화마저도 허술해서 점수를 줄 부분이 없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1.5점. 술에 대해 궁금하신 분들이라면 모를까, 딱히 권해드릴 작품은 아닙니다. 다음 권을 더 읽어볼 일은 없을 듯 합니다.

2014/06/16

소년탐정 김전일 2부 13 - 게임관 살인사건 : 별점 1점

소년탐정 김전일 2부 13 - 4점
아마기 세이마루 지음, 사토 후미야 그림/서울문화사(만화)

유원지에 놀러간 김전일과 미유키는 일행과 떨어져 지나가던 버스를 잡아탔다. 그러나 버스는 통째로 납치당했고, 승객들은 기이한 생존 게임에 참여하게 되는데...

최근에는 이상하게 만화만 읽게 되네요. 여러모로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 해서 마음의 여유가 없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여튼 간만에 읽은 김전일 시리즈입니다. 발표된 지 2년이나 지났지만 제 기준으로는 가장 최신작이죠.

특징이라면 특정한 일련의 사람들을 특정 장소에 모아놓고 펼치는 일종의 '게임'을 다루는 '폐쇄형 게임 미스터리' 장르를 김전일 시리즈에 결합시켰다는 점입니다. 한창 유행했던 장르로 "큐브", "극한추리 콜로세움", "인사이트 밀", "크림슨의 미궁", "페르마의 밀실", "24시간 7일", "쏘우 1", "다우트", "누가 울새를 죽였나", "라이어 게임", "살해하는 운명카드", "다크 존" 등 관련 콘텐츠도 엄청나게 많은데, 김전일 시리즈답게 게임보다는 추리물적인 접근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는 점에서 차별화됩니다.

그런데 이러한 접근은 실패였습니다. 범인이 너무나도 쉽게 드러나는 탓입니다. 마지막 증언에서 버스가 어두워 일행을 못 찾았다는 것이 결정적이었어요. 일행인 딸이나 바텐더가 버스를 한 번도 훑어보지 않았다는 게 말이 될까요? 승객이 열 명도 안 되는데!

또 게임을 벌이는 이유를 설득력 있게 제시하기 위한 동기인 100억의 유산도 그다지 와닿지 않습니다. 거액이기는 하지만 외딴 곳에 이 정도의 시설을 갖춰 놓고 살인 게임쇼를 벌일 정도의 재력과 노력이라면 딸에게 전해주기에 충분했을텐데, 뭐 하러 사람까지 죽이는지 모르겠거든요. 이보다는 사람을 고용해서 그냥 한 명씩 교통사고 같은 걸로 죽이는 게 훨씬 쉽고 싸게 먹혔을 겁니다.

그리고 게임을 벌이는 이유가 밝혀지다 보니, 내용도 어처구니 없어져 버립니다. 게임에 참여한 사람 중 2명을 원하는 순서로 살해하기 위해서라면, 별 관계도 없는 사람들을 끌어들여 게임쇼를 벌이는 것은 말도 안 됩니다. 요새같이 검시가 발달한 상황에서 목격자 증언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테니까요. 무엇보다도 바텐더와 딸까지 끌어들인 이유는 도저히 설명되지 않습니다. 참여한 피해자들의 관계만 조사해도 동기가 손쉽게 들통날테니까요. 아니, 참석하지 않았더라도 무기 마담 주변 인물의 조사만으로도 드러날 동기였기에 애초부터 게임쇼 자체가 불필요했던 행위였습니다.

그렇다면 폐쇄형 게임 미스터리 장르물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게임'이 재미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첫 번째만 게임이고, 두 번째의 고리 풀기, 세 번째의 컵라면과 마지막의 에티켓은 게임이라 부를 수도 없으니까요. 또 에티켓에서의 와인 라벨은 와인에 취미가 없어도 알 수 있는 정보인데 너무 1차원적으로 접근한 듯 합니다. 첫 번째를 제외한 모든 게임에서 피해자를 특정할 수 있었을지도 의문이고요.

물론 아주 건질 게 없는 것은 아닙니다. 트릭과 잘 결합된 첫 번째의 네 자리 숫자 맞추기 게임은 나름 괜찮았습니다. 두 번째 컵라면 이야기에서 컵라면 밑바닥에 열쇠가 없는 상황을 추리에 접목시킨 것도 나쁘지는 않았고요. 첫 번째 게임의 경우 재미있는 추리일 뿐 '증명할 수 없다'는 큰 문제점이 있기는 하지만요.

그래도 이 정도 장점으로는 턱도 없습니다. 전체적인 완성도와 재미는 기대 이하였고, 추리적으로도 별로이며 마지막 결말까지 용서하기 힘들 정도로 억지스러워서 도저히 점수를 줄 수가 없군요. 별점은 1점입니다. '폐쇄형 게임 미스터리' 장르물의 재미가 어디에 바탕을 두고 있는지 전혀 고려되지 않은, 김전일은 이미 끝났다는 것을 다시금 확신시켜준 망작입니다. 돈 주고 사지 않은 게 다행일 뿐입니다.

2023/10/08

블랙 쇼맨과 환상의 여자 - 히가시노 게이고 / 최고은 : 별점 2점

블랙 쇼맨과 환상의 여자 - 4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최고은 옮김/알에이치코리아(RHK)

마술사면서 사기, 거짓말, 위조도 서슴치 않는 안티 히어로 '블랙 쇼맨' 다케시 삼촌이 활약하는 단편집. 전작은 묵직한 장편 추리물이었던 반면, 이번 작품들은 가벼운 단편 범죄 드라마입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실망스웠습니다. 핵심 매력 포인트였던 다케시의 안티 히어로적인 속성이 거의 사라진 탓이 큽니다. 손님들을 위해 솜씨를 발휘하는, '정의의 바텐더'로 캐릭터가 변해 버렸더라고요. 사건들도 대단한 추리력을 필요로 하지 않으며, 결말도 거의 예상대로였습니다. 칵테일이 주요 소재로 쓰이는 등의 소소한 디테일만 괜찮았어요.
제 별점은 2점입니다. 후속작이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별로 기대는 되지 않는군요.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읽기 전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맨션의 여자>>
마요는 손님 우에마쓰 가즈미와의 미팅 장소로 다케시 삼촌의 바 '트랩핸드'를 이용하게 되었다. 다케시는 거짓말과 사기로 가즈미 남편의 지인인 척 했다.
어느정도 마요, 다케시와 친해진 가즈미는 다케시의 바에서 오래전 연이 끊긴 오빠 유사쿠와 만나도 되는지 물어보았다. 흔쾌히 허락한 다케시와 마요는 도청장치로 유사쿠가 가즈미가 가짜라고 협박하는걸 들었다. 다케시는 간단한 조사와 추리로 가즈미는 가짜가 맞지만 진짜와 협력했을거라 생각하고, DNA 검사를 요구하는 유사쿠를 가짜 사진으로 물리친 뒤 가즈미를 통해 진실을 알게 되었다. 나나에는 가즈미의 부탁으로 역할을 수행했고, 그 이유는 췌장암으로 곧 죽게 되는데 유산이 자기에게 끔찍한 짓을 한 오빠에게 상속되는걸 막기 위해서였다.

다케시가 사기꾼으로의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여 가짜 가즈미의 정체를 꿰뚫고, 조작한 사진으로 유사쿠를 물리치는 등의 활약을 보이는 전반부, 그리고 나나에의 입을 통해 가짜 가즈미가 된 이유가 설명되는 후반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탐정(?)의 활약과 범인(?)의 고백이 1, 2부 구성으로 나뉘어져 있다는 점에서는 셜록 홈즈와 같은 고전 추리물을 연상케합니다. 

다케시의 DNA 검사 요구를 퇴치하기 위해, 유사쿠는 아빠의 블륜으로, 가즈미는 엄마의 불륜으로 낳은 자식이라는 사실을 조작한건 기발했는데, 그 외에는 딱히 눈여겨 볼 부분이 없습니다. 나나에와 가즈미가 꼭 닮았다는 우연에 모든게 기반하고 있다는 점도 감점 요소였고요. 이런 우연보다는 가즈미의 재산을 이용하여 나나에에게 성형 수술을 시켜주고, 회복 기간 동안 바꿔치기를 위한 학습을 했다고 풀어가는게 더 현실적이었을거에요. 추리, 범죄물이라기보다는 드라마에 가깝다는 점도 아쉽고요. 제 별점은 2점입니다.

<<위기의 여자>>
나미는 만남 어플로 만난 기요카와로부터 그가 가지고 있다는 하와이 별장 이야기를 듣고, 함께 트랩핸드에 방문해서 칵테일 '블루 하와이'를 마셨다. 연이어 자기 재산을 자랑하던 기요카와는 다케시의 칵테일 한 잔을 더 마신 뒤 미친듯이 졸려하며 화장실로 향했다....

알고보니 기요카와는 어플로 만난 여자에게 재신이 많다는 거짓말로 환심을 산 뒤, 수면제를 먹인 뒤 몹쓸 짓을 하는 악당이었습니다. 이를 꿰뚫어 본 다케시가 술잔을 바꿔치기했던 겁니다. 이 과정에서 칵테일 '블루 하와이'가 트릭의 주요 소재로 사용된게 마음에 들었습니다. 수면 유도제가 범죄에 악용되는걸 막기 위해 물에 녹으면 파랗게 변하게 만들었는데 (일본 이야기겠지요?), 그걸 숨기기 위해 원래 색이 파란 블루 하와이를 선택했다는 아이디어가 괜찮았거든요. 바텐더 다케시에게도 어울리는 소재였고요. <<콘 비프 샌드위치를 먹는 밤>>후속작이 나온다면 추가되어도 좋을 이야기였습니다.

하지만 다케시가 기요카와의 수작을 눈치채고 경고를 하기 위해 '비트윈더시트'를 대접했다는건 억지스러웠습니다. 재료만 듣고 칵테일 이름을 떠올리고, 이게 '경고'라고 느낄 사람은 많지 않을테니까요. 또 같은 재료라도 비율에 따라 여러 결과물이 나오는게 칵테일이라서, 경고의 의미로도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됩니다. 뭐, 이 모든게 다케시 삼촌의 억지라면 할 말이 없지만요.

그래도 나름 트릭도 사용되었고, 다케시의 활약도 빛나며 기승전결도 깔끔했기에 별점은 2.5점입니다.

<<환상의 여자>>
유즈키는 치과의사이자 재즈 콘트라베이스 연주자 도모야와 불륜 관계였다. 그러나 도모야갸 교통사고로 죽은 뒤 삶의 목표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런 그녀를 다독이는 절친 야요이와 함께 트랩핸드를 찾은 유즈키는 도모야가 과거 요코스카에서 연주를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도모야의 과거를 되짚어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요코스카에서 도모야가 '딸'이라는 여성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는걸 알아내는데....

표제작. 도모야가 딸과 함께 보냈던 과거는 모두 조작으로, 유즈키에게 삶의 의욕을 불러 일으키려는 친구 야요이의 계획이었다는 내용.

불륜녀인 친구를 위해 본처를 설득하기까지 한 친구 야요이의 엄청난 노력은 절절이 전해집니다만, 이런 계획이 유즈키의 새로운 시작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더군요. 차라리 요코스카에서도 불륜을 저질렀다는 식으로 조작해서 정나미가 확 떨어지게 했더라면 모를까요. 불륜녀의 사랑이야기라는 소재도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재미도 없고 알멩이도 없는 졸작으로 별점은 1.5점입니다.

2019/01/06

돌이킬 수 없는 약속 - 야쿠마루 가쿠 / 김성미 : 별점 2점

돌이킬 수 없는 약속 - 4점
야쿠마루 가쿠 지음, 김성미 옮김/북플라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유능한 바텐더 무카이는 원래 얼굴의 큰 반점 탓에 사람들이 기피하여 자잘한 범죄를 저지르며 먹고 살다가 야쿠자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었던 범죄자였다. 다행히 도주 중에 만났던, 딸이 잔혹하게 살해된 노부코로부터 거액을 받고 15년 전 호적을 구입해서 재탄생에 성공했다.
그러나 당시 노부코 딸의 복수를 약속했었는데, 노부코의 딸을 죽인 죄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던 두 명의 범죄자가 풀려났다는 편지가 날아왔다. 그리고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그의 가족들에게도 위해를 가한다는 협박이 이어지는데...

란포상 수상작가 야쿠마루 가쿠의 2015년 작품입니다. 무려 15년 전 했던, 지키고 싶지 않은 약속을 지켜야 하는 딜레마가 흥미롭습니다. 평범한 바텐더가 누명을 쓴 후 도주를 하면서 범인이 누군지 더듬어 가는 과정도 박진감있게 묘사되어 있고요. 덕분에 재미있게 읽을 수 있습니다. 범인들의 주소를 알아내기 위해 옛 동창을 가장해서 편지를 보냈다는 아이디어도 좋았어요.

그러나 완성도 측면에서 아쉬움이 많습니다. 제일 큰 문제는 주인공 무카이와 범인, 그리고 피해자라 할 수 있는 가도쿠라와 이이지마의 관계입니다. 책 소개에서 "한 번 죄를 저지른 사람은 새 삶을 꿈꿀 수 없는 것일까?" 운운하는데 소갯글부터 오류투성이에요. 죄를 저질렀기 때문이 아니라 빚을 졌기 때문이고, 그것도 생명을 빚졌다면 생명을 걸고 갚아야 하는게 당연합니다. 한 여인이 죽기 전 전재산을 주면서까지 부탁한 부탁을 들어줄 수 없다는 무카이의 태도는 정말이지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평온한 삶을 놓치기 싫어하는 소시민적인 모습을 부각시키는건 나름 설득력이 있긴 하지만 죽을 뻔한 사람을 구해주고 새 삶을 살게 해 주었다면 은혜갚을 생각을 해야죠. 노부코의 딸을 잔혹하게 능욕하고 살해한 가도쿠라와 이이지마는 죽어 마땅한 놈들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러합니다. "원한 해결 사무소" 급의 화끈한 복수가 이어져도 시원치 않을 판에 청부업자가 양심 운운하며 도망칠 생각이나 하는 판이니 이게 대체 뭔가 싶네요. 

반대로 범인 오치아이가 무카이의 딸을 죽이려고 하는 것도 잘 이해가 되지 않아요. 복수의 대상이 영 잘못됐잖아요? 가도쿠라와 이이지마가 출소하지 않더라도 복수를 하는데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을텐데 15년이나 기다린 이유도 잘 모르겠고, 무카이의 모든 걸 빼앗으려 했다면 지금의 방법을 쓰지 않아도 충분히 가능했을테니까요. 예를 들어 남편의 정체를 알고 배신감에 몸부림치는 무카이의 아내를 꼬셔서 결혼하는 식으로요. 지금의 설정은 여러모로 억지스럽습니다.

전개도 여러모로 짜임새가 부족합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개미지옥에 빠져 우왕좌왕하는 무카이의 심리묘사는 괜찮지만 가도쿠라 살인사건 이후부터는 설득력이 부족합니다. 작위적인 부분이 많은 탓입니다. 이이지마가 서둘러 도주하는 바람에 신발을 버려두고 가는데 신발 안에 GPS가 들어 있었다던가, 도주하다가 정말로 우연히 옛 피해자에 대한 탐문 조사를 벌여 피해자의 아들 이름이 고헤이라는걸 알게 된다던가 하는 이야기들이 대표적입니다.
게다가 오치아이의 복수극임이 밝혀진 후 이어지는 급전개는 정말이지 가관입니다. 연인의 자살이 무카이 탓이라고 믿는 오치아이에게 그녀는 사실 친아버지에게 강간당했다는 진상을 털어놓고, 이를 고헤이가 짠하고 나타나서 사실이라고 말해주는 장면은 황당하기 짝이 없어요. 고작 이 정도로 마무리하려고 300페이지가 훌쩍 넘는 분량을 소모했나 싶어 화가 날 정도입니다.

또 범행 기도 당시 장갑을 끼고 있었기에 칼에 지문이 묻어있다면 당연히 바 내부 인물을 의심해야 하는데 이를 대충 넘긴 것도 문제입니다. 이 부분과 오치아이가 초반에 만난지 15주년을 기념하는 건배를 제의한 날이 실제로는 다른 날이었다는 등의 단서를 연결하면 충분히 범인을 짐작할 수 있었을텐데 말이지요. 하긴 이 정도로 단서를 줘 봤자 오치아이가 15년을 기다린 이유가 설명되지 않아서 알아채기는 어려웠을 테지만...
또 무카이가 다카토 후미야라는걸 아는건 노부코가 외에는 호적을 구해 준 마카베 밖에는 없다는건 분명 합리적 추론인데, 마카베가 이 정보를 십 수년 뒤 복수극에 써먹을 이유는 없습니다. 당연히 노부코가 나갔던 피해자 모임에서 관련된 연결고리가 생겼다고 보는게 타당합니다. 최소한 고헤이에 대해 우연하게 알아채는 것 보다는 이 쪽이 설득력이 높아요. 여러모로 소득없고 전개에 아무런 지장을 주지 않는 마카베 추적은 분량 늘이기에 불과해 보입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읽는 재미만큼은 괜찮지만 여러모로 문제가 더 크기에 감점합니다. 가벼운 킬링타임용 읽을거리 이상의 책은 아닙니다. 구태여 찾아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2023/05/25

에도가와 란포상 베스트 10 : 수수께끼가 수수께끼를 부르는 미스터리로의 초대장 - 柳町正蔵

일본의 주간지 MONO에서 연재되는 柳町正蔵의 미스터리 관련 칼럼인 '미스터리 캐스킷 (ミステリー・キャスケット)' 지난 과월호를 읽다보니 재미있는 주제가 있어 번역해 보았습니다. 
언제나처럼 엉망인 번역이지만, 모쪼록 감안하고 읽어주세요!


매년 여름 더위가 조금 누그러지는 9월 중순, 「에도가와 란포상」수상작이 서점에 진열된다 (올해는 제반 사정으로 9월 말이었다). 내 생일 가까운 날짜인 탓에, 발표와 동시에 일찌감치 수상작을 사서 읽는건 매년 개인적인 행사로 삼고 있다. 만약 그 해 작품이 별로라면 그 해 전체의 이미지에 큰 영향을 줄 정도로 중요한 이벤트이기도 하다. 
올해로 제66회를 헤아리는 이 상은 1954년 에도가와 란포가 창설했으며, 3회부터 신작 장편소설을 모집해서 최종 후보 4, 5편 중 베테랑 작가 5명이 선정한 최고 작품에 상을 수여한다는 현재의 모습으로 만들어졌다. 일반 모집 형태라 이미 작가로서 데뷔한 사람도 응모할 수 있으므로, 특정 해에는 고급스러운 작품이 많이 응모되기도 하지만 대체로는 신인 추리작가의 등용문적 성격이 강하다. 주요 수상작가로는 니시무라 쿄타로, 모리무라 세이이치, 쿠리모토 카오루, 히가시노 게이고, 이케이도 준 등 당대의 빅네임이 줄을 잇는다. 야마무라 미사나츠키 시즈코는 몇 번이나 최종 심사에서 떨어졌고, 나카이 히데오의 대표작 「허무에의 제물」도 수상을 놓쳤을 정도이다. 지금은 예전만큼 주목도가 높지는 않지만 수상하면 베스트셀러가 되는건 분명한, 역사와 권위를 자랑하는 미스터리계 최고의 어워드 중 하나이다.
그럼 여기서 2020년까지의 수상작 총 71편 중 (1957년~2020년. 수상작 없음이 4회. 2편 수상이 11회)  완전히 개인적인 「란포상 수상작 베스트 10」을 선정해본다.

「란포상 수상작 베스트 10」
  • 제10위 「고양이는 알고 있다니키 에츠코 (제3회/1957년). 쇼와 30년 당시, 추리 소설 팬을 10배로 불렸다는 일본의 크리스티의 라이트 미스터리.
  • 제9위 「천사의 나이프야쿠마루 가쿠 (제51회/2005년). 예선부터 최종 심사까지 거의 일사천리로 수상한, 소년법 본연의 자세를 묻는 사회파 문제작.
  • 제8위 「어둠 속에 풍기는 거짓말」시모무라 아츠시 (제60회 / 2014년). 시력을 잃은 남자가 친형 출생의 비밀을 쫓는 서스펜스. 10년에 한 번 있는 걸작이라는 평판.
  • 제7위「암갈색 파스텔」오카지마 후타리 (제28회/1982년). 2인조 작가의 경마 미스터리. 아마추어 여성 탐정 콤비의 활약이 신선!
  • 제6위 「샤라쿠 살인 사건」타카하시 카쓰히코 (제29회/1983년). 수수께끼에 싸인 전설의 우키요에 화가 샤라쿠의 정체를 밝히는 와중에, 학계에 소용돌이치는 권력과 욕망을 그리다.
  • 제5위 「거대한 환영」 도가와 마사코(제8회/1962년). 남자 엄금의 아파트에서 전개되는 인간군상. 란포상 사상 최고 걸작으로 불리는 스릴러.
  • 제4위 「아르키메데스는 손을 더럽히지 않는다」 고미네 하지메 (19회/1973년). 히가시노 게이고가 추리작가를 지향하는 계기가 된, 어두우면서도 경쾌한 청춘 추리물의 금자탑.
  • 제3위 「테러리스트의 파라솔」 후지와라 이오리 (4회/1995년). 일본인 감성의 하드보일드. 주인공 바텐더가 만드는 핫도그가 맛있을 것 같다.
  • 제2위「13계단」타카노 카즈아키 (제44회 / 2001년).  가석방중인 청년과 고독한 교도관이 사형수의 누명 벗기기에 도전하다. 긴박한 타임 리미트가 존재.
  • 제1위「사루마루 환시행」이자와 모토히코 (제26회/1980년) 현대의 대학생이 젊은 날의 오리구치 노부오와 함께 펼쳐나가는 SF+역사+암호가 뒤섞인 전기 미스테리.
'사루마루 환시행'은 그 시마다 쇼지의 명작 '점성술 살인사건'을 이긴 수상이라는 훈장도 받았다.
일본 추리 작가 협회의 사이트에는 심사위원의 선정평이 실려 있어, 선택된 포인트를 잘 알 수 있다 (단 스포 주의). 선정평이 매서운 것은 매번 있는 일로, 특히 낙선작에는 "추리소설로 통하지 않는다.", "설명이 너무 서툴다." "응모자는 소설을 많이 읽지 않는 것 같다." 등 재기불능이 될 것 같은 신랄한 코멘트가 많다. 수상은 실력도 실력이지만 운은 물론이고 심사위원과의 궁합도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2013/05/17

손 안의 작은 새 - 가노 도모코 / 권영주 : 별점 2점

손 안의 작은 새 - 6점
가노 도모코 지음, 권영주 옮김/노블마인

"앨리스 시리즈""유리기린"으로 접했던 일본의 일상계 추리작가 가노 도모코의 최신작. 평범한 회사원 게이스케와 사에의 알콩달콩한 연애담과 함께, 그들 주변에서 벌어지거나 벌어졌던 소소한 사건들을 풀어나가는 전형적인 일상계입니다. 전에 읽었던 "유리기린"처럼 심각한 설정 없이 진짜 일상계스러운 내용으로 작품이 전개되는 건 마음에 들었습니다.

단편집인데 각 단편들이 명확하게 종결되는 구조가 아니라는게 특이합니다.. 모두 다음 작품과 연결되는 연작식 구성을 취하고 있거든요. 1인칭 시점이 두 명의 주인공을 오가는 점도 특이했고요.

그러나 좋은 추리물로 보기에는 문제가 많습니다. 작위적이고 설득력 없는 동기가 난무해서  완성도가 영 별로인 탓입니다. 가장 첫 단편인 "손 안의 작은 새"에서 요코가 자신의 그림이 서서히 망가지도록 금기시된 유화 조합으로 그림을 그렸다는 것부터가 그러합니다. 차라리 그림을 그리지 말던가, 아니면 명확하게 나이프로 그림을 찢어버리던가... "자전거 도둑" 역시 마찬가지죠. 대부호의 손자가 자전거 백미러를 훔친다? 그거 돈 주고 사려면 얼마나 했을까요? "불가능한 이야기"에서 화분의 위치와 빌딩의 반사를 이용하여 원래 찾아갔던 집을 숨긴다는 트릭 역시 잠깐의 착각을 불러일으킬 수는 있지만, 실제로 가능했으리라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결혼반지를 가장하기 위해 150만 엔이나 되는 반지를 훔친다는 "에그 스탠드" 역시 어이가 없었습니다. 살짝 속이려고 감수하기에는 리스크가 너무 크잖아요.

물론 아주 건질 게 없지는 않습니다. 초반부에서 '호무라 사에'라는 이름을 추리해내는 과정, 사에를 기다리던 게이스케가 자신의 우산을 바꿔치기해 간 여고생에 대해 추리하는 부분은 괜찮았어요. 평범한 회사원이지만 비상한 추리력을 가진 게이스케라는 캐릭터 묘사도 호감이 가고요.

하지만 단점이 더 크기에 별점은 2점입니다. 순정만화 스타일의 일상계로 추리소설을 처음 접하는 여성분들에게 적합해 보입니다. 완전 본격물 애호가에게는 추천드리기 어렵네요.

덧붙이자면 작중의 중요 장소인 바 "에그 스탠드"에서 주문하는 칵테일들만큼은 인상적입니다. 한번쯤 맛보고 싶어질 정도입니다. 벚꽃 가득한 가게 분위기로 인헤 사에가 주문하는 "체리 블로섬", 게이스케의 "모스크뮬", 수수께끼의 친근한 노신사가 선물한 샴페인 + 신선한 오렌지 주스 조합의 "미모사", 마지막 이야기에서 사에와 다투고 혼자 방문한 게이스케가 추운 밤에 시키는 에그노그, 에그노그에 쓴 노른자를 뺀 흰자로 바텐더 이즈미가 만드는 "밀리언달러"(오리지널 레시피라며 진 베이스에 흰자를 1/3만 넣는다고 합니다)...

2009/10/18

봇코짱 - 호시 신이치 / 윤성규 : 별점 3점

봇코짱 - 6점
호시 신이치 지음, 윤성규 옮김/지식여행

일본 플레이보이지 선정 "미스테리 - 철야본을 찾아라!"


일본 플레이보이지가 선정한 올타임 일본 미스테리 베스트100에 당당히 선정된 작품으로, 리스트를 접한 뒤 곧바로 구입한 책입니다. 호시 신이치 작품은 20여년전에 읽었던 "신선함을 드립니다" 이후에도 많은 단편 앤솔로지를 통해 접할 기회가 많긴 했지만 장단점이 너무 명확해서 선뜻 구입하기는 망설여졌었는데 제가 귀가 얇은 탓인지 전문가들이 추천하는 이런 류의 리스트에 약해서 선뜻 지갑을 열게 되었네요.

하지만 작품은 역시나, 장단점이 너무나 명확한 호시 신이치의 전형적 작품들로 이루어진 책이었습니다.
장점부터 이야기하자면 뭐니뭐니해도 쉽고 빠르게 읽을 수 있다는 것이 제일 크겠죠. 이른바 "쇼트쇼트"라는 콩트 형식으로만 수록 작품들이 이루어져 있기에 부담없이 접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 싶어요. 그리고 작가 특유의 의표를 찌르는 반전과 이른바 "기묘한 맛" 류의 독특함이 잘 살아 있다는 것, 마지막으로 SF, 추리, 범죄 스릴러, 판타지 등 다양한 쟝르를 선보이고 있다는 것을 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단점도 명확합니다. 너무 많은 작품을 써내려가다보니 생긴 일이겠지만 유사한 분위기와 설정의 작품이 너무 많다는 것이 가장 큰 단점입니다. 작품의 주제도 "미지의 생명체에 대한 진상" 이나 "끝을 알 수 없는 인간의 욕망" 을 그린 작품이 대부분이기도 하고 말이죠.... 또한 뒷끝이 좀 허무하고 씁쓸한 작품도 적지 않다는 것도 다작의 탓이 아닐까 싶네요. 덕분에 작품들의 편차도 제법 큰 편입니다.

그래도 간만에 접한 쇼트쇼트 작품집으로 충분히 쉽고 재미있게 읽었기에 나름 만족합니다. 책도 아주 이쁘고 나와서 마음에 들고요.^^ 별점은 3점입니다. 
하지만 이 작품이 왜 "일본 미스테리 올타임 베스트 100"인지 도무지 모르겠네요. 모든 작품이 쟝르문학이긴 해도 추리 성향을 띈 작품은 정말 몇개 안되거든요. 저처럼 추리쪽을 많이 기대하고 읽으신다면 실망하시게 될 가능성이 높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인상적이었던 작품 몇개를 소개합니다.

"봇코짱" - 표제작으로 바텐더가 만들어 가게 홍보에 사용한 미녀 로보트와 그녀에게 반한 남자, 그리고 예상을 깨는 결말을 다룬 이색 SF입니다. 굉장히 짤막한 쇼트쇼트임에도 너무나 단순한 남자의 마음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이 인상적이었어요.

"이봐, 나와!" - 한 마을에 생긴 끝을 알 수 없는 미지의 구멍, 그리고 그 구멍을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너무나 끝없이 사용하는 인류 앞에 섬뜩한 반전이 펼쳐지는 SF로 "일본 SF단편 올타임 베스트" 에 선정되기도 한 좋은 작품입니다.

"살인청부업자입니다" - 추리성향의 쇼트쇼트로 이색 살인청부 비즈니스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범죄" 자체를 확인할 수 없고 때문에 "범죄"로서도 성립하지 않는 너무나 완벽한 살인청부 비즈니스! 주인공의 직업이 드러나며 밝혀지는 진상과 반전이 깔끔한 작품입니다.

"포위" - 누군가 나를 죽이려한다는 것, 그래서 그 배후를 쫓는 주인공을 그린 쇼트쇼트입니다. 스릴러물에 흔하게 등장하는, "위기에 처한 주인공"에서 시작해서 주인공이 진상을 추적하는 과정까지는 뻔하게 흘러가는데 진상과 반전이 굉장히 이색적이더군요. 아주 현실적이면서도 통념을 깨는 결말이었거든요.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나를 죽이고 싶어한다" 는 것. 충분히 설득력있고 무서운 내용이었어요.

"더위" - "더위"를 참지 못하고 여름마다 곤충 등을 죽이며 겨우겨우 버텨온 남자가 나이를 먹으면서 죽음의 대상도 업그레이드 되어 간다는 내용의 작품입니다. "기묘한 맛" 류의 섬뜩한 느낌을 주는 작품으로 이러한 쟝르 전체를 놓고 따져보더라도 굉장히 높은 점수를 줄만한 명작이죠. 호시 신이치 작품 안에서도 손에 꼽을만한 작품이 아닌가 싶습니다.

"신년축하손님" - 친구의 어려움을 무시한 한 부자에게 친구가 마지막으로 "환생"을 언급한다는 이야기. 짤막하지만 무난한 수준의 반전이 깔끔해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친선키스" - SF와 SEX가 결합한, 농담같은 이야기입니다. 지구인과 흡사한 외모의 외계인들을 만난 우주선 승무원들이 지구의 인사라 속이며 키스를 난무하는데 결국 마지막이 되어서 알게되는 사실은 무엇일까요? 웃기면서도 황당한 결말이 아주 놀라운 작품이었어요.

"추월" - 과거 자신에게 버림받고 자살한 여인의 모습을 보는 한 남자. 추리물 성향을 띄고 있는 쇼트쇼트로 이른바 트릭이라 할 수 있는 자살한 여인의 정체가 아주 효과적으로 사용된 작품입니다. 짤막하지만 복선도 확실해서 설득력도 풍부한 등 이쪽 쟝르물의 교과서적인 작품이라 생각되네요.

PS : 위 작품들 말고도 "이키가미"의 원조와도 같은 "생활유지청"이나 인간 욕망의 끝없음을 극명하게 드러낸 "거울" 같은 작품도 다른 매체에서는 걸작이라고 많이 소개하고 있더군요. 그 외에도 좋은 작품이 많이 실려 있습니다^^

2022/04/17

죽음의 한가운데 - 로렌스 블록 / 박산호 : 별점 1.5점

 

죽음의 한가운데 - 4점
로렌스 블록 지음, 박산호 옮김/황금가지

<<아래 리뷰에는 진범과 트릭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매튜 스커더는 경찰 제리 브로드필드의 의뢰로 창녀 포샤 카가 왜 그를 고소했는지 조사에 나섰다. 그녀는 제리가 매주 100달러를 내 놓으라며 협박했다고 주장했지만, 제리는 자기가 경찰 내 부패 사건에 대해 특별 검사와 협조하고 있는 탓에 함정에 빠졌다고 말했다.
그러나 매튜가 포샤를 만난 다음날, 제리는 포샤 살해 혐의로 경찰에 체포되고 말았다. 그의 은신처에서 포샤의 시체가 발견되었고, 그는 알리바이를 증명할 수 없었다. 제리는 필사적으로 매튜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매튜는 특유의 진실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수사를 맡는데...

얼마전 읽었던 <<아버지들의 죄>>에 이은 매튜 스커더 시리즈 두 번째 작품.
본인 스스로 누구보다 부패한 경찰이면서 제발로 특별 검사를 찾아가 경찰이 부패했다는 사실을 알린 뻔뻔한 허영덩어리 제리 브로드필드 캐릭터가 상당히 매력적입니다. 악당인건 분명합니다. 그런데 자신만의 방식으로 시니컬하게 품위와 스타일을 추구하는게 나름 재치가 넘쳐서 감탄했어요. 구치소에 수감될 때 빼앗길게 뻔한 넥타이를 일부러 매고 갔던것 처럼요. 그는 풀려날걸 확신하며 그걸 매고 갔던 겁니다. 그리고 나올 때 넥타이를 돌려주면, 거울 앞에 서서 천천히 시간을 들여서 제대로 넥타이를 매기 위해서요.

그러나 이외에는 딱히 건질게 없었던 망작입니다. 우선 추리적으로 건질게 아무것도 없어요. 예를 들어 포샤가 처음에 전화를 건게 하디스티였다고 추리했던건 그냥 떠본 것에 불과합니다. 이걸로 사건이 급진전되는데, 이를 "그냥 한번 떠본 거군요" 로 퉁치고 넘어가는건 반칙같아요. 매튜 스커더가 알고 있는, 동성애자들이 찾는 술집 신시아를 제리 브로드필드가 자주 찾았다는 것도 우연에 불과했고요. 바텐더 케니로부터 포사 카가 죽기 직전, 다른 남자를 만났다는 증언을 한 것도 추리와는 무관한, 운에 따른 일이었습니다.
브로드필드의 이상 행동 - 제 발로 검사를 찾아가 경찰이 부패했다는걸 알린 - 과 포샤 카가 살해당한 핵심 동기인 '책'에 대해서 너무 늦게 언급되는 것도 공정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더글러스는 브로드필드의 증언을 바탕으로 '책'을 쓸 예정이었고, 이 책에 대한 아이디어는 포샤가 먼저 제안했었다는건 굉장히 중요한 증언인데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긴 더글러스의 행동은 납득하기 어려웠습니다. 이렇게 명확한건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나는 범인이 누군지 안다, 정확히 설명할 수 없는 육감 덕분이다 어쩌구 하는건 추리 소설로는 명백한 실패작이지요.

전개도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첫 번째 범행이 제리 브로드필드에게 누명을 씌우려던게 아니라, 애당초 포샤 카가 진짜 목적이었다는 반전은 그럴싸하기는 했어요. 하지만 특별검사 프레자니언의 부하 클로드가 진범이었다는건 뜬금없었습니다. 매튜가 클로드가 범인이라며 댄 근거는 그가 제리로부터 포샤 카가 고객 명단을 검사에게 넘기고 있었다는걸 들었다는 것, 그리고 클로드도 포샤 카의 고객이었다는 것 두 가지입니다. 그런데 이 두가지 모두 마지막 추리쇼 이전에는 전혀 언급되지 않습니다! 또 이 논리라면 포샤 카의 고객은 누구나 범인이 될 수 있습니다. 왜 클로드인지?에 대해서는 전혀 설명하고 있지 못해요.
작가 더글러스 퍼맨을 살해한 두 번째 범행은 더 기가 찹니다. 퍼맨이 포샤로부터 클로드의 이름을 입수했다는 내용은 전혀 없었습니다. 즉, 이 범행은 작중에서 동기조차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셈입니다. 퍼맨이 위험을 어떻게 알고 매튜에게 전화를 여러차례 했었는지도 설명되지 않고요. 게다가 제리가 수감된 상태에서 퍼맨을 살해하는건 정말 머저리같은 행동이었습니다.

아울러 매튜 스커더가 쓰레기로 등장한다는 점도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제리의 부패와 문란함을 지적하지만 그 역시 제리의 아내와 곧바로 바람을 피웠으니 누가 누구를 탓한단 말입니까? "오늘은 지금까지 그의 의자에 앉아서 그의 위스키를 마시고, 그의 돈을 받고, 그의 아내와 사랑을 나누었다."라니, 어이가 없을 정도입니다. 심지어 그가 관계를 맺는 창녀 일레인은 그가 경찰이었을 때 경찰이었기 때문에 관계가 시작될 수 있었다고 하고요. 이런 개막장 행태는 살인만은 용서하지 않는다는 나름대로의 정의관, 그리고 보수를 받으면 십일조를 내는 정도로는 합리화하기는 어렵습니다. 쓰레기가 쓰레기를 돕고 사는 그런 세태를 그리고자 했던게 목적일 수는 있겠지만, 영 볼품은 나지 않더군요.

그나마 브로드필드가 특별 검사 프레자니언 전에 연방검사 하디스티를 찾아갔었다는 말을 통해, 경찰 부패는 특별 검사의 일인데 연방 검사를 찾아간건 이상하다고 추리해내는건 괜찮았습니다. 미국 경찰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일지는 모르겠지만, 머나먼 한국의 일반 추리 독자가 보기에는 꽤 괜찮은 착안점이었기 때문입니다.
허나 장점은 극히 일부였을 뿐으로 제 별점은 1.5점입니다. 이후 시리즈가 계속될 수 있었던게 놀라울 정도로 형편없었는데, 다음 작이 터닝 포인트가 되었던건지 조금 궁금해지기는 하네요. 문제는 더 읽어볼 의욕이 들지 않는다는 점이지만요.

2023/11/18

명작 추리 소설 5선 : 이 서술 트릭이 굉장해!

소설에 대해 안내하고 소개해주는 일본 사이트 '소설마루' 에서 발견한 글입니다. 가볍게 소개해 드립니다.
"애크로이드 살인사건"의 핵심 트릭이 노출되어 있으니, 읽으시기 전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2022/04/02

아버지들의 죄 - 로렌스 블록 / 박산호 : 별점 2점

아버지들의 죄 - 4점
로렌스 블록 지음, 박산호 옮김/황금가지

<<아래 리뷰에는 진범 등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케일 해니포드는 매튜 스커더에게 딸 웬디가 살해당한 사건의조사를 의뢰했다. 3년 전 집을 나간 뒤 연락이 두절된 딸이 왜 죽음을 맞았는지를 알고 싶다는 이유에서였다. 매튜는 웬디와 웬디의 룸메이트였으며, 현장 근처에서 유력한 용의자로 체포된 후 얼마 지나지않아 자살해버린 리처드의 과거를 파헤치는데....

1976년에 발표되었었던, 로렌스 블록의 매튜 스커더 시리즈 제 1작. 대표작 <<800만가지 죽는 방법>>보다 무려 10년 전 이야기입니다. 시기가 이른 탓인지 낯선 설정이 몇 가지 있는데 대표적인건 매튜 스커더가 술을 엄청나게 마신다는 점입니다. 술 때문에 어린 아이를 죽게 만들었지만, 그 사건에 대해서 자책하는 느낌은 없어요. 제 3자 입장에서 건조하고 냉정하게, 흡사 의뢰받은 사건을 다룰 때 처럼 본인 사건도 다루는 듯 했습니다. 이렇게 방관자적인 입장을 견지하지 않으면 버티기 힘들어서 그런건지는 모르겠지만요. 창녀 일레인이 아니라 바텐더 트리나와 정신적 교감을 나누는 모습도 새로왔고요.

그런데 내용은 무려 19편의 후속 시리즈가 이어진 작품답지 않게 별로 건질건 없었습니다. 일종의 스포일러인 제목부터가 문제입니다. 작 중에서 등장하는 아버지는 모두 세 명 - 웬디의 의붓아버지 케일 해니포드와 이름도 모르는 웬디의 친아버지, 그리고 리처드의 아버지 마틴 밴터폴 목사 - 입니다. 이 중 웬디의 친아버지는 6.25 전쟁에서 죽었는데, 유부남이었던 주제에 웬디 어머니를 임신시키고 도망갔던 쓰레기지요. 그 탓에 웬디는 아빠뻘 유부남에게 끌리는 비정상적인 성적 기호를 갖게 되었고, 결국 중년 남자들과 관계한 뒤 돈을 받아 생계를 유지하게 되었으니, 아버지가 딸을 창녀로 만든 죄를 지은 셈입니다. 마틴 밴터폴 목사는 한술 더 뜹니다. 본인 스스로 웬디와 관계를 맺은 뒤 이를 자책하다가 그녀를 죽이고, 본인 아들이 죄를 뒤집어 쓰고 죽게 만든 두말할 것 없는 죄인이니까요. 가정의 기둥이 되어야 할 친아버지들이 딸, 아들을 파멸시켜 죽음에 이르게 만든다는건, 베트남 전쟁의 패전과 오일 쇼크를 불러와 국민들을 고통받게 만들었던 미국 정부와 국민과의 관계를 상징하는게 아닌가 싶기도 하네요.
반면 그나마 착한 사람이 웬디의 의붓아빠 케일 해니포드였다는건 조금 의외였습니다. 보통 이런 류의 작품에서는 의붓아빠의 성폭행이 벌어지는게 다반사였는데 말이지요. 케일 해니포드는 다소간의 문제는 있었지만 그래도 절대 선을 넘지 않았고, 오히려 웬디가 왜 죽었는지 알기 위한 조사를 의뢰하여 죄인을 처벌하게 만드는, '죄를 묻는 아버지' 쪽이라는게 새로왔습니다. 이 역시 시대상으로 보자면, 공산주의와도 손을 잡기 시작한 당시 분위기와 겹쳐지는 느낌이에요.

제목처럼 이야기도 간단명료해서 모든건 쉽고 깔끔하게 정리됩니다. 이 역시 먹고 살기 힘들었던 당시, 머리를 많이 쓰지 않아도 되는 읽을거리로 소구되기 위해서라 짐작되네요. 매튜 스커더의 수사 과정도 아주 단순해요. 수사라 해 봤자 관계자를 만나 증언을 얻는게 전부이며, 이 모든 과정은 일반인 이상, 경찰 이하라는 매튜 스커더 수준에 딱 맞는 정도라서 설득력도 높습니다.

그러나 너무 심플하게 끌고나간 탓일까요? 등장 인물 중 범인역을 수행할 인물이 거의 없기도 하지만, 그 중에서도 마틴 벤터폴 목사가 범인이라는 결말은 지나치게 억지스러웠습니다. 그가 범행을 저질렀다는 증거, 그리고 그가 웬디와 관계를 맺고 있었다는걸 추리해낼 만한 증거가 전무했던 탓입니다. 단지 목사가 봄에 웬디를 만났었다, 웬디를 사악한 마녀로 칭하며 섹스를 무기로 삼는걸 경계했다, 재혼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었다는게 전부인데, 이를 통해 봄에 웬디의 유혹에 넘어간 뒤, 관계를 지속하다가 죽였다고 추리하는건 비약이 심해도 너무 심했습니다. 살인을 결심한 이유, 동기도 설명이 부족했고요.
또 매튜 스커더가 강제로 목사가 자살하게 만든다는 결말은 전혀 그답지 않아서 실망스러웠습니다. 매튜 스커더 본인도 죄많은 존재입니다. 그가 누군가를 심판한다는건 상상하기 힘듭니다. 진실을 밝히고 사람들이 평가하도록 만들면 모를까요. 대체 누가 그에게 그런 권한을 주었단 말입니까? 매튜 스커더에게는 어설픈 자경단 역할보다는 냉정한 관찰자가 더 어울립니다. <<더티 해리>>가 아니라요. 당시 사회 분위기가 악에 대한 무조건적인 심판을 바랬다 하더라도, 아무리봐도 무리수였습니다. 시리즈에서 설정이 폐기되어 버린건 너무나 당연합니다.
매튜 스커더에 협박에 못이겨 목사가 자살을 택한 것도 확 와 닿지는 않았습니다. 아무런 증거도 없는 매튜의 중상에 무너져버린 꼴인데, 그럴 필요는 없었어요. 아들이 살고 있는 방에 아버지 흔적이 남는건 당연하니까요.

그나마 중간에 잠깐 등장하는 매튜 스커더의 일종의 메소드 추리법(?) 정도만 인상적이었을 뿐입니다. 그는 웬디와 리처드가 함께 살던 방에 잠입해서, 그들처럼 직접 체험해보고 느껴본 뒤 - "나는 대부분의 시간 동안 이 방 저 방에 다니면서 의자에 앉았다가 벽에 기대기도 하면서, 그곳에 살았던 두 사람의 본질과 접해 보려고 애를 썼다." - 그들 관계에 대해 고민하다가 웬디와 리처드가 섹스가 아닌, 사랑으로 서로를 보완하는 완벽한 커플이었다는걸 알아내게 됩니다. 돈도 없고, 대단한 과학 수사 도구도 방법도 없는 매튜 스커더에게 정말 딱 맞는 추리법이었어요. 후속작에서 이를 잘 계승했더라면 추리 소설사에 한 획을 그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싶은데, 이어지지 못한게 조금 아쉽네요.
또 이런 수사 과정을 통해 리처드가 진범이 아니라는게 자연스럽게, 합리적으로 드러나는 것도 좋았습니다. 리처드는 동성애자인데다가, 웬디와 서로 사랑하고 있었고 동거하고 있었으니 구태여 죽여가면서 섹스를 강제할 이유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장점보다는 단점이 더 많기에 제 별점은 2점입니다. 쉽게 읽을 수 있지만, 좋은 추리 범죄물이라고 보기는 어려웠습니다. 지금 읽기에는 시대가 너무 많이 지나기도 했고요. 시리즈의 팬으로 매튜 스커더의 시작을 알고 싶으신 분이 아니시라면 구태여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2026/05/01

잃어버린 얼굴 - 사쿠라다 도모야 / 최고은 : 별점 3.5점

얼굴이 훼손되고 손목마저 절단된 상태의 신원 불명 사체가 발견되었다. 다행히 피해자의 정체는 전직 탐정이었던 야기 다쓰오라는게 곧바로 드러났다. 고마네에서 벌어진 다른 살인 사건과 연루되었기 때문이었다.

사건 수사에 나선 수사계장 히노 유키히코는 이 사건이 10년 전 실종된 오누마 겐, 그리고 지역 신문에 실린 경찰의 부실 대응을 고발하는 투서와 연결되어 있다는걸 알아냈고 탁월한 추리력을 발휘하여 진상을 밝혀낸다...

"매미 돌아오다"로 좋은 인상을 심어준 사쿠라다 도모야의 장편 추리 수사물입니다. 

굉장히 정통적인 경찰 수사 추리물인데, 복선 회수 방식이 인상적입니다. 앞부분에 툭툭 던져놓은 것처럼 보였던 지역 신문 투고, 부부 싸움 끝에 벌어진 살인 사건, 표백제를 구입한 여성에 대한 이야기 같은 요소들이 나중에는 모두 본 사건과 직접 맞물리기 때문입니다. 읽다 보면 정말 하나도 허투루 사용된 설정이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에요.
이런 복선들과 이어지는 추리, 진상의 몇 가지 예는 아래와 같습니다.

  • 경찰의 부실 수사에 대한 투서 + 수상한 남자가 다이야라는 소년에게 접근했던 사건 + 투서 전 지방지에 실렸던 하야토의 시 + 다이야는 하야토의 친구였다 + 그날, 다이야는 하야토의 집에서 놀다가 나왔다 → 수상한 사람은 하야토의 존재를 시를 통해 알았고, 다이야를 하야토로 착각했다.
  • 시라카와 현장을 발견한 고다 미쓰코가 들고있던 다루마 위스키 병 + 죽은 야기가 구속 전 단골 바 바텐더에게 술을 보관해달라고 부탁 + 야기가 협박에 사용했던 기록은 어디에도 남아있지 않았다. → 야기는 USB를 다루마 병 속에 보관하고 있었다.
  • 오누마 겐이 횡령을 저질렀다 + 오누마 겐은 사채도 쓰고 있었다 + 야기에게 불륜 조사를 의뢰한 사람 중 하나가 쓰지였다 + 쓰지의 아내 가나는 오누마 겐의 직장 동료였다 → 오누마 겐은 가나와 불륜을 저지르다가 야기에게 협박당했고, 쓰지를 살해했다.

이런 식으로 사소해 보이는 흩어져 있는 정보들이 진상으로 정리되는 과정은 아주 만족스럽습니다.

수사계장 히노가 펼치는 추리의 짜임새도 좋습니다. 사소한 지점에서 이상함을 포착한 뒤, 그걸 기발한 방향으로 연결해 나가는 방식인데 신선하고 재미있어요. 대표적인게 시라카와가 살해되었을 당시 문고리가 걸려 있지 않았다는 점에 착안하는 추리입니다. 살인까지 저지른 사람이 그렇게 허술했을 리 없으니 이는 임시 상황이었고 누군가 곧 돌아올 예정이었다고 추리를 전개하는데 설득력이 높습니다. 이는 앞서 나온, 수상한 여자가 표백제를 구입했다는 이야기와 연결되어 범인이 '부부' 였다는걸 드러내게 되지요.
그 외에도 고다 미쓰코가 빼돌리려고 했던 USB가 숨겨진 장소를 밝혀내는 추리 등 히노의 명추리는 볼만한게 많습니다. 

오누마가 10년 전 쓰지를 살해한 뒤 그의 신분으로 바꿔치기해서 살아왔다는 반전도 괜찮습니다. 오누마로 의심되지만 혈액형이 달랐던 신원불명의 사체 등 관련된 정보도 충실히 제공됩니다.
화려한 액션이나 극적인 장치보다는 탐문과 방문 조사, 그리고 차곡차곡 쌓이는 증언을 통해 진상에 접근하는 방식으로 묘사도 꼼꼼하여 수사물로서의 재미도 잘 살아 있고요.

다만 아쉬운 부분도 없지는 않습니다. 우선, 운과 우연이 과하게 작용하는 편입니다. 사건의 발단부터가 그러합니다. 오누마를 야기가 '우연히' 발견하고 뒤를 쫓았던게 시작이었으니까요. 오누마가 '아들일지도 모르는' 초등학생의 시를 지방지에서 읽은 것, 우에무라 교코가 오누마의 접근에 대해 투서를 보낸 것, 시라카와가 걸쇠가 걸리지 않은 야기의 집에 들어가 살해당한 것도 모두 우연입니다. 이런 부분은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지요.

그리고 경찰도 예전 사진을 통해서는 바로 알 수 없을 정도로 외모가 많이 달라졌는데도 불구하고, 야기가 십여 년 전에 조사했던 상대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었다는 것도 쉽게 납득되지 않습니다.

뭐 이건 전직 탐정의 실력이라고 쳐도, 오누마가 쓰지를 살해한 뒤에도 사건 현장 근처에서 계속 살았다는건 정말이지 말도 안됩니다. 작품 안에서 나름대로 설명하려고 애쓰지만 솔직히 잘 와 닿지는 않습니다. 무리한 설정이었다고 밖에는 보이지 않아요.

주인공 히노의 성격도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아요. 오누마 구미에 대한 취조 과정 등에서 엿보이는데 너무 인간적인 탓입니다. 오지랖도 너무 넓어요. 쓰레기를 쌓아두는 폭력적인 사타케의 부친 이야기는 본 줄거리와 큰 관련이 없는데 굳이 이렇게까지 설명할 필요가 있나 싶습니다. 인간미를 부각하기 위한 장치로 보이는데, 하드보일드스러운 사건과는 영 어울리지 않아서 별로였어요. 차라리 좀 더 냉정하게 사건을 바라보는 형사 쪽이 더 좋았을 겁니다. 

그래도 좋은 평가를 받을만한 잘 짜여진 작품이라는건 분명합니다. 제 별점은 3.5점입니다. 추리 애호가라면 한 번 읽어보셔도 좋겠습니다.

2012/01/19

다잉 아이 - 히가시노 게이고 / 김난주 : 별점 1.5점

다잉 아이 - 4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재인

이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바 '양하'의 바텐더 신스케는 손님에게 습격당해 머리에 중상을 입고 간신히 죽을 고비를 넘겼다. 회복한 뒤, 사건의 원인이 자신이 일으킨 1년 반 전의 교통사고에 대한 복수라는 경찰의 수사 결과를 들었다. 그러나 신스케는 그 사고에 대한 기억을 모두 잃어버린 상태였다. 신스케는 어렴풋한 기억을 되찾기 위해 노력하는데...

물만두님의 리뷰 때문에 읽게 된 책. 

그런데 물만두님의 극찬이 전혀 이해가 되지 않네요. 물만두님의 극찬 요지는 양심 없는 가해자들에 대한 사회고발적인 성격이 짙다는 것인데, 딱히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범인인 우에하라 미도리는 정신이상자가 되어버렸고, 동승자이자 사후종범인 기우치는 미쳐버린 약혼녀의 뒷치닥거리나 하는 존재로 전락해버렸으니 사는 게 지옥일 텐데, 양심 없이 사는 가해자라는 건 어울리지 않잖아요.

물론 사고를 잊고 나름 행복하게 살아가던 또 다른 가해자인 신스케와 에지마에게 복수의 철퇴를 내려 경종을 울린다는 해석도 가능하긴 합니다. 그러나 진범이라 할 수 있는 에지마가 걸려든 것은 순전한 우연 - 신스케 살인미수가 루리코의 잠복과 겹친다는 - 에 불과하다는 것은 본질을 벗어난 게 아닌가 싶어요. 이래서야 경종을 울린다기보다는 그냥 재수가 없었을 뿐이니까요.

또 우연이 많이 개입되어 있고, 무리하고 작위적인 설정이 많은 것도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일단 죽어가는 피해자의 눈이 신비한 힘을 발휘한다는 기본 설정부터 작위적입니다. 게다가 우연찮게 머리를 맞고, 우연찮게 사고 및 사고와 관련된 일들만 잊어버렸다... 참 편한 설정이기는 합니다만 말도 안 되죠.

그 외에도 유니버설 맨션이라는 루리코의 거처를 알게 된 순간 경찰에 신고만 해도 범행의 전모를 밝히는 것은 그다지 어려움이 없었을 텐데, 출동한 형사가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혼자 출동한 뒤 우연찮게 실종된다는 것과, 왜 경찰은 형사가 실종되었는데 핸드폰 통화 내역과 발신자 조회도 하지 않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외에도 중간에 신스케가 발견한 레이지의 SF 소설 같은 일기, 신스케의 애인 나루미가 남자가 없었다는 증언과 그녀의 실종을 대비시키는 전개 등 작위적인 요소가 너무 많습니다.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요.

무엇보다도 루리코가 신스케를 유혹하고 정사를 나눈다는 설정은 정말이지... 뭔지 모르겠습니다. 미모의 여자가 몸까지 바쳐가며 초호화 맨션에서 같이 살 것을 요구한다니! 이런 복수라면 오히려 환영하는 피해자가 더 많을 것 같아요.

그냥 순수한 원한과 복수를 서스펜스 스릴러 형태로 그리고 싶었던 것이 작가의 의도였을까요? 그렇다면 범인보다도 범행을 지켜보기만 했던 목격자들을 복수의 대상으로 삼았던 "살인 더하기 다섯"처럼, 미나에 사건의 원인인 고용인을 막 다루는 후카미 집안 사람들도 같이 응징했어야 하는 게 더 합리적이었을 것 같은데, 이건 뭐 신스케에 대한 복수극도 아니고 대체 뭔지도 잘 모르겠어요.

서두의 죽어가는 미나에에 대한 적나라한 묘사와 더불어 '원한의 눈길'이라는 지극히 동양적이면서도 신비한 동기를 서스펜스 스릴러로 포장한 작가의 능력은 인정합니다. 신스케의 사고 - 루리코의 등장 - 나루미의 실종 - 기우치와의 만남 - 감금과 탈출 등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느껴지는 재미도 탁월하고요. 그러나 작가의 장점인 트릭과 플롯의 조화는 사라지고, 작위적인 설정과 우연으로 점철된 전개, 불필요한 자극적인 묘사로 싸구려 펄프 픽션 느낌이 너무 강해서 도저히 좋은 평가를 할 수 없네요. 좋게 봐줘도 흔해빠진 서스펜스 스릴러물 정도니까요.

물만두님의 리뷰는 경애하는 바이지만, 이 작품만큼은 분명하게 다른 견해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제가 읽은 히가시노 게이고 작품 중에서는 최악입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2018/08/24

밤의 파수꾼 - 켄 브루언 / 최필원 : 별점 2.5점

밤의 파수꾼 - 6점
켄 브루언 지음, 최필원 옮김/알에이치코리아(RHK)

아일랜드 경찰 '가르다' 출신으로, 해고 후 사립 탐정이 된 잭 테일러에게 이혼녀 애니가 딸 앤 헨더슨 자살 사건의 진상 조사를 의뢰했다. 경찰로 보이는 덩치들로부터 린치를 당해 가면서도 포기하지 않은 잭은 정보원 캐시로부터 앤이 아르바이트했던 가게 사장 플랜터가 수상하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애니와 깊은 관계를 맺은 후, 친구 서튼과 함께 가게를 관리하는 경비회사 운영자 포드를 찾아가는데...

아이리쉬 하드보일드 누아르의 거장이라는 켄 브루언의 대표작입니다. 많은 작품이 영상화되었으니 상당히 잘 팔리는 작가인 듯 합니다. 이전에 '타탄 느와르의 제왕' 이라는 이언 랜킨의 작품은 읽어본 적이 있는데, 아일랜드 출신의 아이리쉬 누아르 거장이라니 둘이 만나면 좋은 승부가 되겠네요.

솔직히 아무 기대 없이 읽기 시작했는데 페이지가 쭉쭉 넘어가는 맛이 상당해서 놀랐습니다. 이야기는 별 게 없지만 폐인에 가까운 주인공 잭 테일러의 일상을 쫓는 전개가 재미있으며, 특히 길어야 10 페이지 정도인 짧은 단락으로 이어지는 구성이 아주 탁월한 덕분입니다. 짤막한 일상을 연이어 읽으면서 한 사람의 일생과 심리를 들여다보게끔 만드는 묘사가 정말 절묘해요. 짧은 호흡, 토막글에 친숙한 현대인에게 적합한 작법인데 이런 방법으로 긴 장편을 써 낸 솜씨에는 정말이지 박수를 보냅니다. 

이를 빛내주는 글솜씨도 일품입니다. 그야말로 아일랜드 느낌이 왠지 모르게 묻어난달까요? 척박하면서도 거칠고, 즉흥적이면서도 에너지가 넘치는 그런 분위기가 문장 하나하나에서 드러납니다. 알콜 중독자 잭 테일러의 일상을 구성하는 술들과 그의 취미인 독서, 영화 감상, 음악에 대한 디테일도 아주 탁월해서 재미를 더해주고요.

하지만 단점도 명확합니다. 가장 큰 문제는 누아르나 느아르, 범죄 소설이라고 보기에는 이야기에 알맹이가 전혀 없다시피 하다는 점입니다. 기묘한 자살 사건에 대해 20살도 안된 정보원 캐시가 배후를 쉽게 알아내고, 잭이 찾아가자마자 바로 범인이 자백하고, 결국 사건의 진상은 잭을 폭행한 전직 경찰 출신 경비원의 자백으로 밝혀지는 식이거든요. 사건을 밝혀내는 과정이 너무나 허술합니다. 세 명의 소녀를 포함해서 범인들 두 명, 사건 때문에 얽힌 다른 두 명 등 모두 7명이나 죽어나간 대형 사건이고 주요 참고인이자 유력 용의자인 거물 플랜터가 실종되었는데 경찰이 딱히 하는게 없다는 것도 말이 안되고요.  
이야기의 또 다른 축인 잭의 단골 술집 그로건스의 바텐더 숀의 죽음에 대한 진상도 아무런 수사 없이 뜬금없는 증언에 의해 범인이 드러난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입니다. 
앤은 자살한게 맞다는 증언이 뭔지 결국 밝혀지지 않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던 점이에요.
이렇게 범죄에 대한 묘사도 부족하고, 추리라고 부를 수 있는 점이 전무한데 이 작품을 하드보일드 느와르라고 부를 수 있을지 잘 모르겠네요. 

캐릭터도 그닥입니다. 잭 테일러의 알콜 중독 묘사는 나쁘지 않았지만 다른 알콜 중독 탐정들과 비교해서 딱히 특별한 건 없습니다. 오히려 차이점을 만들기 위해 무리하게 멋을 부린 느낌만 듭니다. 문학 소년으로 시를 좋아했다는 식의 설정은 잭의 알콜 중독과 폭력성과 대비되어 극적인 효과를 높여주기는 하지만, 솔직히 불필요했어요. 설득력도 없고요. 금주를 결심했다가 무너진 후 애니와 헤어지고, 런던으로 향할 것을 결심하는 과정도 진부했습니다. "싱 스트리트"도 아니고, 50 가까운 중년 남자가 왠 런던?

아울러 앞서 말씀드렸던 토막글이 이어지면서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구성은 흥미롭지만 억지스러운 부분이 없지는 않습니다. 지나가다 만난 사람에게서 받은 정보로 경마에서 대박이 터진다는 이야기가 대표적이지요. 이 대박으로 잭이 런던으로 떠날 결심을 하면서 사건을 대단원에 이르게 만드는 작위적인 연출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냥 앤에게서 받은 돈으로 런던을 갔어도 충분했을겁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읽기 편한, 적절한 재미에 더한 구성과 전개는 일품이지만 추리적인 성격이 강하지 않다는 점에서 감점합니다. 그래도 영상화 된 버젼은 한 번 보고 싶군요.

2010/06/21

악몽의 엘리베이터 - 기노시타 한타 / 김소영 : 별점 2점

악몽의 엘리베이터 - 4점
기노시타 한타 지음, 김소영 옮김/살림

바텐더 오가와는 불륜관계에 있는 종업원 요코를 집에 바래다 준 날 아내의 긴급한 진통 소식을 듣고 뛰어나가다가 엘리베이터에 갇히게 된다. 오가와와 같이 엘리베이터에 갇힌 사람은 이상한 중년남과 프리터, 운둔형 외톨이로 보이는 여자였다. 그리고 갇힌 상태에서 각자의 악몽이 시작되는데....

<사형대의 엘리베이터>가 연상되는 제목처럼 폐쇄된 공간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이야기, 블랙코미디 속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 생각외로 등장인물들이 얽혀 있다는 점 등 비슷한게 많더군요. 하지만 단순한 아류작은 아닙니다. 굉장히 큰 차별화 포인트가 있는데 바로 배우, 각본가, 연출가로 활약해 온 작가의 성향이 작품에 두드러지게 반영되어 있다는 것이죠. 즉, 한편의 블랙코미디 범죄 연극을 보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이러한 연극적 요소는 작품의 장단점을 확고히 하는데 장점부터 이야기하자면 일단 굉장히 쉽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폐쇄된 공간에서 몇명의 등장인물만 나와 대사로 대부분의 이야기가 전개되는 구조 자체도 단순하지만 대사와 성격, 상황이 희극적으로 강조되어 있어서 책장이 쉽게쉽게 넘어가거든요.
또한 3인칭 시점이 아니라 등장인물들의 시점으로 무대의 막이 나뉘듯 각자 한 꼭지씩 주인공 역할을 수행하는 것도 독자에게 내용을 보다 쉽고 재미있게 전달해주는데 한몫 단단히 하고 있습니다. 피해자 오가와의 시점으로 시작해서 사건의 개요를 일당 중 한명인 마키의 시점으로 정리해주고 마무리를 일당의 리더 사부로가 마무리하는 3막 전개인데 각자 사고방식도 확실하고 전개도 빨라 재미있게 읽을 수 있으니까요.

그러나 사건 자체가 지나치게 작위적이라는 것, 우연에 의한 요소가 많기 때문에 추리-범죄물로 높은 점수를 주기 어렵다는 것은 단점이죠. 반전도 가오루의 첫 등장과 고용과정, 그리고 오가와의 불륜과의 인과관계에 대한 설명이 전혀 없는 우연에 의한 부분이라는 점 때문에 완벽한 반전이라고 보기는 힘들고요. 개인적으로는 재미를 더해주는 요소임에는 확실했다고 생각은 됩니다만...

3막의 연극이나 영화로 각색한다면 좋은 소재가 되겠지만 소설로서는 조금 아쉬운 작품이었다 생각되네요. 무료하고 무더운 일요일 오전을 시간가는줄 모르고 보내게 해 준 재미 하나는 확실하지만 제가 일본식 코미디의 과장과 오버를 싫어하기에, 또 기대했던 추리-스릴러나 서스펜스가 아니라 블랙코미디에 더 치우쳐져 있기에 별점은 2점입니다.

2023/10/13

COCKTAILS WITH PHILIP MARLOWE, SAM SPADE, AND BOGART

예전에 제가 썼던 <<콘 비프 샌드위치를 먹는 밤>>이라는 에세이에서 추리 소설 속 칵테일에 대해 소개했던 적이 있습니다. 추리소설 애호가라면 셜록 홈즈가 연재된 잡지로 영원히 기억할 "The Strand Magazine"에서 비슷하게 하드보일드 탐정들과 칵테일에 대한 칼럼이 있길래 번역해보았습니다. 수준은 엉망이고 의역도 많으니 내용 참고 정도로만 보아 주세요.
"I like liquor and women and chess and a few other things."- 필립 말로우 <<기나긴 이별>>

누아르 속 탐정의 이미지는 샘 스페이드 역의 보가트, 하루 일당을 받고 갱스터와 팜므파탈과 싸우는 하드보일드 탐정 필립 말로우 역의 로버트 미첨에 이르기까지 역사적으로 상징적인 영화와 배우들을 통해 뿌리깊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런 가상의 탐정들 캐릭터는 그들이 선택한 술에서도 많은 것을 알 수 있고요. 분홍색 빨대와 함께 제공되는 프로즌 다이키리는 없습니다. 하드보일드 탐정들은 진하면서 요란하지 않은 클래식 음료를 마셨지요. 지저분하고 어두운 술집이나 구식 호텔 바, 스테이크 하우스 옆 칵테일 라운지, 현지 펍에서요.
"어둡고 연기가 자욱한 바에서 조용히 대화를 나누며 음모를 꾸미고, 비밀을 밝히고, 속삭이는 고백에는 낭만적인 느와르가 있습니다."라고 베스트셀러 미스터리 작가 리사 웅거(Lisa Unger)는 말합니다.
레이몬드 챈들러의 탐정 필립 말로우는 열렬한 애주가였습니다. 그는 항상 사무실에 올드 포레스터 버번 한 병을 보관했습니다. "나는 손을 뻗어 올드 포레스터 병을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병은 3분의 1 정도 차 있었다."라고 소설 <<리틀 시스터>>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작가 토비 위디컴이 쓴 <<레이몬드 챈들러를 위한 독자 가이드>>에는 챈들러 작품 속 등장 음료에 대한 목록이 실려 있습니다. <<핑거맨>>에는 바카디가, <<빅 시티 클루스>>에는 바카디와 그레나딘이 등장합니다. <<더 하이 윈도우>>에는 포 로즈 위스키가 등장하고요. <<라온트 피전>>에는 더블 깁슨이 있습니다. 이 목록에는 올드 그랜드대드 위스키와 브루클린 스카치도 포함됩니다.
칵테일 문화에 대해 말로는 영구히 기여한 바가 있습니다. 바로 김릿에 대해서였습니다. 소설 <<기나긴 이별>>에서 영국 출신이자 열렬한 애주가인 테리 레녹스는 필립 말로우에게 "진짜 김렛은 진 반, 로즈 사(社)의 라임 주스 반을 섞고 그 외에는 아무것도 섞지 않는 거죠. 마티니는 비교도 안 됩니다."라고 말합니다. 그 뒤 말로우가 혼자 바에 갔을 때, "바텐더가 내 앞에 음료를 갖다 놓았다. 라임 주스 때문에 엷은 녹색 기미가 있는 신비한 노란 빛깔이었다. 입을 대 보니 부드러운 단맛과 날카롭게 혀를 찌르는 강한 자극이 있었다. 검은 옷을 입은 여성이 나를 보았다. 그리고 자기 잔을 들어 내 앞에 올려 보였다. 우리는 함께 마셨다. 그제서야 그녀의 음료도 똑같은 것임을 알아차렸다." 라고 했지요.

김릿
진 2온스 
로즈 라임 주스 ¾온스 
얼음과 함께 쉐이커에 넣은 뒤 30초간 세게 흔든다. 칵테일 잔에 따른다.

대쉴 해밋의 사립 탐정 샘 스페이드는 위스키를 즐겨 마셨고, 해밋의 코믹한 부부 범죄 해결사 닉과 노라 찰스는 칵테일 잔을 손에 들고 있지 않은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닉 찰스가 1934년 소설 <<씬 맨>>에서 묘사한 것처럼, 이들은 완벽한 칵테일을 만드는 전문가였습니다. 닉은 "중요한 것은 리듬입니다. 항상 쉐이킹에 리듬이 있어야 합니다. 맨해튼에서는 폭스트롯 음악에 맞춰, 브롱크스에서는 투스텝 음악에 맞춰 흔들지만 드라이 마티니는 항상 왈츠 음악에 맞춰 흔들어야 합니다."라고 말합니다.

작가 제임스 크럼리의 미스터리 소설은 술집과 맥주, 초라한 인물들로 가득합니다. 1975년에 발표한 소설 <<잘못된 사건>>에서 사립 탐정 밀로 드라고비치는 음주에 대해 긴 독백을 합니다. "아들아,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은 독선적인 사람일 가능성이 높으니 절대 믿지 마라. 그는 항상 옳고 그름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일 테니까. 그들 중 일부는 선한 사람이지만 선의 이름으로 세상의 대부분의 고통을 야기한다. 그들은 심판자이자 간섭자야. 그리고 아들아, 술을 마시고도 취하지 않는 남자는 절대 믿지 마라. 그들은 보통 겁쟁이나 바보, 그렇지 않으면 비열하고 폭력적인 무언가를 내면 깊숙이 두려워하고 있는 놈이기 때문이야. 자신을 두려워하는 남자는 믿을 수 없단다. 하지만 가끔 변기 앞에 무릎을 꿇는 남자는 믿을 수 있다. 그는 겸손과 인간 본연의 어리석음, 스스로 살아남는 방법에 대해 무언가를 배우고 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야. 남자가 더러운 변기에 내장을 내밀 때 자신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건 정말로 어려운 일이지."

사람들이 미스터리를 쓰는 한, 술을 좋아하는 탐정은 계속 존재할겁니다. 사립 탐정은 힘든 직업입니까요. 긴 근무 시간과 낮은 급여로 인해 스트레스가 많은 하루를 보내게 됩니다. 가끔은 미키 스필레인의 소설 속 주인공 마이크 해머처럼 술집에 가서 주문을 해 봅시다. "더블 버번 한 잔, 병은 놔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