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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6/27

콘 비프 샌드위치를 먹는 밤 Season 2 : (8) 카레가 건너 온 추리 소설

카레는 친숙한 요리입니다. 한국군 전투식량에 포함되어 있을 정도로요. 우리와 교류가 적었던 인도의 전통 요리가 이렇게 친숙해진 건, 영국의 인도 식민지 지배로부터 비롯되었습니다. 빅토리아 여왕 시기, 식민지에 진출했던 영국인들이 현지에서 고용했던 요리사들과 함께 귀국하면서 여러 인도 요리가 영국에 들어왔지요. 이후 이 음식들은 영국인의 입맛에 맞게 밀가루를 넣은 스튜 형태로 변형되었고, 때마침 영국 회사 C&B에서 인도 향신료를 배합한 가정용 분말을 출시하면서 널리 퍼졌습니다. 

고기와 채소를 썰어 넣은 걸쭉한 스튜처럼 조리하되, 시판 향신료 분말로 이국적인 맛과 향을 더한 음식. 영국인들은 이를 인도 타밀어로 ‘소스’라는 뜻의 ‘카리(Kari)’에서 따와 ‘커리’라고 불렀습니다. 정작 인도에는 없는, 영국에서 탄생한 인도 요리인 셈입니다. 참고로 커리라는 명칭은 카릴, 혹은 카리라고 불리던 매콤한 남부 인도 요리의 이름에서 비롯되었다는 설도 있습니다.

영국인들의 삶 속에 커리가 얼마나 깊이 들어왔는지는 빅토리아 시대를 무대로 한 셜록 홈즈 시리즈에서도 잘 알 수 있습니다. "경주마 은점박이" 사건에서 마방 조교사 집의 저녁 식사로 양고기 카레가 등장하니까요. 범인은 마굿간 청년들에게 맛이 강한 아편 분말을 섞어 먹이기 위해 이 요리를 택했습니다. 커리의 강렬한 맛이라면 웬만한 약을 숨기기에 적절했을 테니, 범인에게는 최선의 선택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는 홈즈가 사건을 해결하는 결정적인 단서가 되기도 하지요.

"해군 조약"에서는 의뢰인 펠프스와 함께하는 식사 메뉴 중 하나로 닭고기 커리가 나옵니다. 허드슨 부인의 특기처럼 소개되는데, 이렇게 평범한 저녁 메뉴로 등장할 정도라면 당시 영국에서 커리는 우리나라의 김치찌개 정도 위치의 음식이었다고 보아도 무방하지 않을까요?

영국에서 커리의 인기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2001년, 영국 외무부 장관 로빈 쿡은 인도 카레라이스의 일종인 치킨 티카 마살라를 ‘진정한 영국의 국민 음식’이라고 선언했을 정도니까요. 2015년에 발표된 피터 스완슨의 "죽여 마땅한 사람들"에도 정통 인도 커리인 치킨 코르마가 자주 먹는 요리로 소개됩니다. 코르마는 주 향신료인 마살라에 버터와 크림, 요거트 등을 넣어 부드러운 맛을 내는 커리인데 여주인공 릴리는 단골집에서 테이크아웃해 온 치킨 코르마에 견과류를 갈아 넣습니다. 심한 견과류 알레르기가 있는 연인 에릭을 살해하기 위해서요. 에릭은 예상대로 치킨 코르마를 먹은 뒤 발작을 일으키고, 릴리가 치료제를 숨긴 탓에 결국 질식사합니다. 약을 섞지도 않은, 그야말로 완전범죄라는 점이 눈길을 끕니다.

이렇게 영국인의 일상에 깊이 자리 잡은 커리는 다시 일본으로 건너갑니다. 그리고 일본에서 카레는 단순한 서양식 요리를 넘어, 밥과 함께 먹는 국민 음식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

일본에는 1870년대 국비유학생 야마가와 겐지로가 최초로 영국식 커리를 전래했습니다. 이때 일본식 발음으로 ‘카레’라는 이름이 붙었고요. 당시 일본에 여러 서양 요리가 전파되었지만, 그중에서도 카레는 독보적인 인기를 얻었습니다. 때마침 일본 해군이 영국군을 따라 카레를 장병들에게 보급했던 덕이 컸습니다. 일본인에게 익숙한 쌀밥과 함께 먹을 수 있도록 제공한 것이 주요했지요. 고기도 작게 썰어 넣어, 육고기가 익숙하지 않았던 당대 일본인들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이후 다이쇼 시대에 돼지고기와 감자, 당근이 들어가는 현대적인 레시피가 정착합니다. 영국 C&B 카레 가루를 국산화한 카레 가루 제조사도 등장하면서, 우리가 잘 아는 ‘카레라이스’가 가정에도 널리 퍼지게 되었습니다. ‘3분 카레’라는 이름으로 유명한 즉석 카레 역시 1968년 일본 오츠카식품이 레토르트 파우치에 카레를 넣어 판매하기 시작한 것이 시초입니다. 일본은 카레에 정말 진심이었던 모양입니다.

일본에서 카레의 인기는 밥과 함께 먹는다는 개념을 넘어, 여러 음식으로 확장된 모습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카레빵이 대표적입니다. 이름 그대로 속에 카레를 넣은 빵이지요. 도쿄 명화당이 1927년 특허 등록한 양식 빵이 원조라고 합니다. 라쿠고가 엔시 씨가 등장하는 일상계 추리소설 "가을꽃"에서 맛있게 빵을 먹는 삼원칙 이야기가 나올 때도 언급되었지요.

카레 우동은 1909년 와세다대학 옆의 오래된 소바집 ‘산초안’에서 개발한, 메밀국수 위에 카레와 파를 얹은 카레 남만이 발전한 음식입니다. "시인장의 살인" 도입부에서 낯선 여학우가 무슨 메뉴를 주문할지를 두고 아케치와 하무라가 추리 대결을 펼칠 때, 아케치가 선택한 메뉴이기도 합니다. 일본 전통 요리와 카레가 결합된 음식이라는 점에서, 좀비물과 본격 추리물이 절묘하게 결합된 이 작품과도 잘 어울립니다.

이런 나라니 당연히 카레 전문점도 많습니다. ‘아비꼬’나 ‘코코이찌방야’ 같은 일본 카레 전문점은 우리나라에서도 영업 중이지요. 와카타케 나나미의 "광취"에는 ‘파라다이 로스트’라는 카레 가게가 등장합니다. 이 가게는 미나코가 중학생 때 교회 부설 고아원인 ‘성모의 정원’에서 임신했다는 이유로 쫓겨난 뒤 시작한 곳입니다. 그녀의 아들 분지는 정신지체아로, 성장한 뒤 가게에서 함께 일하게 됩니다.
미나코는 성모의 정원으로 돌아가기를 소망하지만, 수녀들은 더럽다는 이유로 그녀를 받아주지 않습니다. 그녀가 성모의 정원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은 근처에서 실종된 어린아이를 찾기 위해 교회에 모인 자원봉사자들에게 카레를 제공했을 때뿐이었지요.
그 뒤 죽어서도 교회 묘지에 묻히기를 거절당한 미나코를 성모의 정원 안으로 들여보내기 위해, 분지는 먼저 어린아이를 유괴합니다. 그리고 이전과 마찬가지로 교회에 모인 자원봉사자들에게 미나코의 사체로 만든 카레를 제공합니다. 고기의 특성을 지울 수 있는 카레였기에 가능했던 이야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처럼 영국에서 태어나 일본의 생활 음식으로 자리 잡은 카레는, 카레는 우리나라에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 본격적으로 소개되었고, 곧바로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일본에서 그랬던 것처럼, 쌀밥과 함께 먹을 수 있다는 점이 컸을 것입니다. 1932년 4월, 상하이 훙커우 공원에서 의거를 일으킨 윤봉길 의사도 경성지방법원에 호송된 뒤 법원 구내 식당에서 카레라이스를 먹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을 정도입니다. 김치가 아주 잘 어울린다는 장점도 빼놓을 수 없겠지요. "사냥개 탐정"의 류몬 다쿠는 후쿠신즈케가 곁들여지지 않은 것은 카레라이스라 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데, 그에게 김치도 한 번 권해 주고 싶네요.

하지만 카레가 세계적으로 이렇게 많은 사랑을 받는 가장 확실한 이유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가슴 따뜻한 드라마 "녹나무의 파수꾼"에서 알려주듯 “날마다 먹어도 질리지 않고, 그러면서도 영양 균형이 좋은 음식”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인도에서 출발한 향신료 요리는 영국에서 스튜가 되었고, 일본에서 밥과 만났으며, 우리나라에서는 김치와 함께 먹는 일상식이 되었습니다.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바뀌었지만, 한 끼를 든든하게 채우고 사람을 편안하게 만든다는 점만은 같았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오늘 저녁은 카레가 어떠신가요? 기왕 먹을 것이라면, ‘컨트리 캡틴 치킨’을 한 번 시도해 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이 요리는 1849년 출간된 책에 실린 ‘리델 박사의 컨트리 캡틴 치킨’ 레시피로 널리 알려졌는데, 시기적으로 볼 때 허드슨 부인이 홈즈를 위해 만들었던 닭고기 커리도 이와 비슷했을 가능성이 높으니까요.

리델 박사의 컨트리 캡틴 치킨
로버트 플라워 리델, "인도 가정과 요리책", 1849

  1. 닭고기를 잘게 썬다. 
  2. 양파는 채 썰어 버터에 갈색이 되도록 볶는다. 
  3. 닭고기에 소금과 커리 가루를 뿌리고 노릇해질 때까지 볶는다. 
  4. 스튜 냄비에 수프 1파인트와 재료를 함께 넣는다. 
  5. 국물이 반으로 줄 때까지 뭉근히 끓인 다음 밥과 함께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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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1/10

나이브스 아웃: 웨이크 업 데드 맨 (2025) - 라이언 존슨 : 별점 3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주드 신부는 몬시뇰 윅스 신부가 지배하는 일단의 추종자들 중심의 성당 보좌로 부임했다. 그는 윅스 신부의 비정상적인 운영과 범죄에 가까운 행동에 분노를 쌓아가다가 폭발하고 말았다. 그런데 그 뒤  윅스 신부가 미사 중 밀실에서 살해당하자 범인으로 몰렸고, 유명한 탐정 브누아 블랑이 도움을 주기 위해 나섰지만 윅스 신부의 부활 후 정원사 샘슨의 죽음, 의사 냇 박사의 죽음이 잇달아 일어나는데...

미국 넷플릭스 전용 장편 영화인 '나이브스 아웃' 시리즈 최신작입니다. 그런데 분위기와 접근 방식은 전작들과 꽤 다릅니다. 전작들은 브누아 블랑이 직접 휩쓸린 사건을 추리해 나간다면, 이번에는 주드 신부를 도와 사건을 풀어나가는 조력자일 뿐이라는 점에서요. 작품의 주인공은 주드 신부거든요. 비교적 가볍고 장난스러운 분위기였던 전작들에 비해 종교와 신앙, 개인의 분노와 죄책감 등 묵직한 주제를 전면에 내세운다는 점도 차이점입니다.

추리적으로는 아주 괜찮습니다. 고전 본격물 팬이라면 만족할 수 밖에 없는 밀실 트릭이 펼져지는 덕분입니다.

게다가 정보 제공이 공정하다 못해 노골적입니다. 영화에서 존 딕슨 카의 “할로우 맨(국내 출간명 "세 개의 관")”에 등장하는 밀실 트릭 강좌가 직접 인용되기 때문입니다. 브누아 블랑은 장치 트릭 설명에서 멈추지만, 이 뒤에는 '시간차 트릭(살인이 발생한 시점과 발견된 시점이 다르다)'가 이어지는데 실제 범인은 이 트릭으로 범행을 저질렀거든요. 마사는 흉기인 칼 머리의 악마 장식과 동일한 장식을 윅스 신부 미사복 등에 미리 꿰메 두었습니다. 그리고 밀실로 향한 윅스 신부가 항상 마시는 술에 약을 탔고, 술을 마신 신부가 쓰러진 후 피 주머니를 터트려 죽었다고 착각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의사 냇 박사가 상태를 확인하는 척 하다가 악마 장식을 떼고 진짜 칼로 찔러 죽였던게 진상이지요.
이를 진범이 아니라 주드 신부로 혐의를 돌리게 만드는 전개도 좋습니다.

죽은 줄 알았던 윅스 신부의 부활을 그린 불가능 범죄도 고전 본격물스럽습니다. 당연히 시체를 바뀌치기한 것이고(대역은 당연히 윅스 신부와 닮았고, 관을 만들고 나중에 죽은 샘슨이지요) 트릭은 그리 대단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주드 신부가 신앙심과 개인적인 분노 사이에서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상태라서, 그가 보고 듣는 정보가 어느정도 왜곡되었다는걸 활용하여 관객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솜씨가 기가 막힙니다. 그가 ‘부활한 몬시뇰을 자신이 죽였다'고 믿게 되는 장면이 대표적입니다. 정말 극적으로 잘 연출했어요.

한편으로는 8천만 달러에 달하는 거액의 유산을 둘러싼 보물 찾기도 병행되는데 이 역시 관객에게 필요한 모든 정보가 공정하게 제공됩니다. 유일한 단서인 ‘이브의 사과’를 분해한 뒤, 나중에 그게 일종의 '보석함'이었다는걸 드러내는 식으로요.

동기도 설득력이 높습니다. 마사는 성당을 지키기 위해 윅스를 죽였지만, 동시에 그가 부활한 것처럼 꾸며 성당을 되살리고자 했던 겁니다. 윅스 신부가 입을 열면 경력이 끝장날 위기에 빠진 냇 박사가 실행범으로 동참했고요. 그러나 냇은 8천만 달러짜리 보석 앞에서 욕망을 이기지 못하고 샘슨을 죽인 뒤, 마사까지 죽이려 했지만 되려 그가 죽고 말았습니다. 

이를 그리는 배우들의 연기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워낙 유명배우들이 많이 출연하는 시리즈답게 이번에도 배우들 캐스팅이 엄청 화려한데, 마사 역의 글렌 클로즈는 그야말로 압권입니다. 평생 헌신했으나 내면에 분노를 품은 인물을 압도적인 존재감으로 표현해 냅니다. 주드 신부 역의 조쉬 오코너는 흔들리는 신앙과 불안한 정신 상태를 섬세하게 드러내고, 조쉬 브롤린이 연기한 몬시뇰 윅스 역시 광기와 카리스마를 동시에 보여주며 이야기의 중심을 단단히 잡아줍니다. 다른 배우들 연기도 다 좋아요.

그런데 너무 길다는 단점은 큽니다. 살인 사건이 벌어지기까지 조쉬 신부가 윅스 신부와 그의 추종자들을 만나 여러가지 관계를 쌓아올리는 과정을 장황하게 보여주는 탓입니다. 물론 인물들의 관계를 드러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겠지요. 하지만 윅스 신부가 추종자들을 마지막에 협박했더라도 경력을 잃을 위기에 빠진 냇 박사와 작가 리오 말고는 동기가 있는 인물이 없습니다. 장애가 있는 시몬이 실행범일리는 없고(스스로 일어날 수 있다는걸 보여주어서 어떻게든 살려보려고 노력하지만), 베라 변호사는 아버지와 무슨 문제가 있었는지 설명해주지 않아서 동기를 짐작할 수 없습니다. 즉, 이런 인간관계는 관객 입장에서는 쓸데없는 사족입니다.
신앙심과 개인적 분노 사이에서 갈등하는 주드 신부의 딜레마 역시 흥미롭지만 이렇게 길게 풀어낼 정도로 재미있다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주드 신부의 정신력이 너무 약하지 않나 싶은 생각만 들어요.

브누아 블랑의 매력도 잘 드러나지 못합니다. 그는 진상을 알고 있으면서도 마사의 자백을 유도하는데, 이는 정의 구현에 충실했던 그간의 모습과는 많이 달랐거든요. 피도 눈물도 없는 추리 기계가 갑자기 따뜻한 남자로 돌변할 필요가 있었을지 의문입니다.
마사가 용서와 구원의 이미지를 남긴 채 생을 마감하는 결말 역시 식상할 뿐 아니라, 끝까지 종교적 의미를 강조하는건 별로 마음에 들지 않네요. 마지막에 보석이 주드 신부가 만든 십자가 그리스도 상 안에 숨겨져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는 부분 역시 뻔했고요.

그래도 추리적으로 볼거리가 풍부하다는건 분명합니다. 본격 추리물 애호가라면 즐길거리가 많아요. 별점은 3점입니다. 전작보다는 훨씬 좋습니다.

2025/12/27

어차피 곧 죽을 텐데 - 고사카 마구로 / 송태욱 : 별점 1.5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탐정 나나쿠마 스바루와 조수 야쿠인 리쓰는 시한부 생명의 환자들만 모인 '하루살이 회' 정기 모임 초대를 받아 모임 회장 자야마 교이치의 외딴 별장으로 향했다. 미스터리 애호가인 회원들에게 사건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함이었다.

회원인 자야마, 지로마루, 롯폰마쓰, 가모, 하시모토, 하루나와 함께 즐거운 저녁을 보낸 다음 날, 홀 벽에 걸린 하루나의 그림이 훼손되었고 가모가 사망했다. 의사인 자야마와 지로마루의 검안으로 병사로 추정되었지만, 야쿠인은 타살일 수 있다 여기고 나나쿠마와 조사를 시작했다. 그런데 다음 날 나나쿠마마저도 죽은 채 발견되었다...

제 23회 '이 미스터리가 대단해!' 대상의 문고 그랑프리 수상작입니다. 작가의 데뷰작이기도 하고요. 밀리의 서재에 업데이트 되어서 별 생각없이 읽기 시작했습니다.

특징이라면 현대를 배경으로 하면서도 정통 본격 미스터리의 ‘클로즈드 서클’ 형식을  도입했다는 점입니다. 외딴 별장에서 벌어지는 살인 사건, 기묘한 참석자들, 밀실이라는 공간적 설정 등은 전형적이지만, 외부와의 연락이 단절되지 않았고 피해자가 자연사(병사)로 보이도록 꾸며서 과학 수사나 경찰의 개입이 일시적으로 미치지 않는다는 설정이거든요. 작중 표현 그대로 ‘어정쩡한 클로즈드 서클’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아요. 

나나쿠마 사건은 별게 없지만, 가모 사건은 정통 본격물다운 트릭이 사용되고 있기도 합니다. 사체 발견 당시, 인슐린을 이용한 저혈당성 쇼크 살인이라는 가능성이 제기됩니다. 그러나 이는 나나쿠마의 조사로 곧바로 반박됩니다. 가모가 부착하고 있던 혈당 측정기 데이터가 변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쿠라코는 나나쿠마가 죽은 뒤, 데이터는 가모 것이 아니라 나나쿠마의 것이었다고 추리합니다. 그녀의 측정기가 가모와 동일 기종이었거든요. 가모는 나나쿠마에 의해 인슐린 쇼크로 살해당했고, 이를 나나쿠마가 모든 사람들 앞에서 아니라고 증명하기 위해 조작된 데이터를 보여주었다는 추리이지요. 밀실은 데이터를 보여주려고 가모의 짐을 뒤질 때(측정기를 찾기 위해서) 몰래 가지고 있던 가모 방 열쇠를 가방 안에 있었던 양 꺼내 들었던 것이고요. 현실적이라서 그럴싸하게 느껴졌습니다.

또 두 살인 사건 모두 "어차피 곧 죽을 사람을 왜 살해했나"라는 기묘한 상황에 더해, 사실은 가모와 나나쿠마가 모두 죽은 척 했었고 이는 대충인 검안과 사체 이동 등에서 드러난다는 등 진상 부분에서도 본격물적인 요소가 담겨 있습니다. 

이외에도 나나쿠마가 휠체어를 탄 할머니였고 야쿠인은 그녀의 손자라는 점이 드러나는 장면은 서술 트릭의 맛을 느끼게 해 주고요.

하지만 앞서 언급했던 사쿠라코의 추리를 한 번 더 꼬아서 만든 반전과 진상은 억지스럽습니다. 무엇보다 핵심이 되는 가모 게이타 사건의 진상이 이상합니다. 나나쿠마가 살해한게 아니라 야쿠인이 인슐린을 투약해 죽이려 했던게 진상인데, 그렇다면 혈당 측정기 데이터가 변하지 않았다는 설명과 충돌합니다. 혈당이 실제로 떨어졌다면 데이터가 변했어야 하고, 변하지 않았다면 야쿠인은 무언가 이상하다는 걸 알아차렸어야 했으니까요. 의대생 출신이라는 설정까지 고려하면 당연합니다. 자신의 인슐린 투약이 효과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단순 병사로 믿고, 다음 날 나나쿠마 살해까지 저지른다는 건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밀실도 마찬가지입니다. 야쿠인이 가모에게 인슐린을 투약한 뒤, 가모가 스스로 방을 잠갔다는 설명은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주사에 이상함을 느꼈을 텐데, 그런 상황에서 피해자가 방을 잠글 이유가 있을까요? 인슐린이 가짜라는걸 나나쿠마가 미리 알려주어서 생명에 지장이 없다는건 알았더라도, 문을 잠그면 밀실이 되는데 혹시라도 죽으면 자연사로 보일 수 있으니 잠그지 않는게 당연합니다.

가모 사건 때 하루나의 그림을 훼손한 부분도 설명이 부족합니다. 이미 나나쿠마가 그림을 본 상황에서, 그리고 모델인 사쿠라코가 멀쩡히 살아있는 상황에서 그림만 훼손한다는건 말도 안되기 때문입니다. 나나쿠마를 어차피 살해할 생각이었으니까요. 게다가 가모와 나나쿠마를 '병사'처럼 보이게 만들 생각이었다면, 그림을 훼손하는 실질적인 범행을 저지른 건 자칫 경찰 수사의 꼬투리가 될 수도 있으니 하면 안되는 짓이었어요.

그리고 이 모든 사건이 지로마루가 손녀의 죽음 진상을 밝히기 위해 꾸민 연극이었다는 설정도 혼란스럽습니다. 그렇다면 자야마의 ‘하루살이 회’는 실재했던 것일까요? 자야마는 수년 전부터 블로그 활동을 해 왔던 인물인데, 그 모든 게 연극이었다는 설정은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이렇게 큰 연극을 벌이는 상황에서 정작 가모의 방에 CCTV를 장치해 야쿠인의 범행을 찍으려는 시도를 하지 않은 이유도 설명되지 않고요. 이래서야 무엇을 위한 연극인지도 잘 모르겠어요.

전개나 등장인물들의 설정도 썩 만족스럽지 못했습니다. 나나쿠마 1인칭이 섞이는 묘사는 전개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합니다. 나나쿠마와 사쿠라코의 말투도 의도된 유머일 수 있겠지만, 지나치게 무례하게 느껴졌고 몰입을 방해합니다. 마지막에 하루나가 야쿠인을 독살하는 듯한 묘사 역시 왜 필요한지 알 수 없습니다. 동기가 전혀 없으니까요. 그림을 훼손했기 때문에? 하루나 본인 스스로 습작에 불과해 미련이 없다고 했으니 이는 이유가 될 수 없지요.

정통 본격물을 현대 무대의 클로즈드 서클에 접목하려는 시도는 나쁘지 않았고, 몇몇 볼만한 장면이 없지는 않지만 전체적인 완성도는 한참 모자랍니다. 제 별점은 1.5점입니다. 
'이 미스터리가 굉장해' 수상작은 기대에 미쳤던게 없었는데, 이 작품 역시 마찬가지네요. 앞으로 더 읽어볼 일은 없겠습니다.

2025/04/26

엘리펀트 헤드 - 시라이 도모유키 / 구수영 : 별점2점

엘리펀트 헤드 - 4점
시라이 도모유키 지음, 구수영 옮김/내친구의서재

아래 내용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가가조 의과대학 부속 병원 정신과 의사 기사야마는 배우인 아내 기키, 대학생이자 가수인 큰 딸 마후유, 고등학생 둘째 딸 아야카와 행복한 나날을 보내지만, 가족의 행복이 쉽게 깨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었다. 어린 시절 마술사였던 아버지의 학대로 인한 아픈 기억 탓이었다. 그래서 기사야마는 가족의 행복을 망치려는 원흉을 사전에 제거해 왔고, 최근에는 딸을 취재 목적으로 스토킹하던 방송인 이즈미를 살해했다. 그러나 마후유가 애인 하루를 가족에게 소개시켜 주는 날, 하루가 기사야마에게 돈을 받고 관계를 가졌다는걸 폭로해서 가족은 붕괴되고 말았다. 자포자기한 기사야마는 마약상 에덴으로부터 건네받은 '시스마'를 주사했다. 그런데 시스마가 이상한 효과를 일으켜 시간을 역행한 기사야마는, 하루를 습격해서 입을 막고 가족을 지키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이는 단순 시간 역행이 아니라 시간 분기였다. 결국 두 개의 시스마를 사용해 사태를 해결한 행운아, 한 번 실패해서 시간 역행 효과만 확인한 복원자와 공격받아 입원한 산송장, 모두 실패한 도망자라는 다중 시간축이 생겨났다. 기사야마들은 어느 시간 축에서라도 사람이 죽으면(기사야마가 살해하면), 모든 시간 축 사람이 죽는다는걸 알아내고 나름대로 규칙을 세워 살인을 막으려 했지만, 마후유와 기키, 아야카가 차례대로 끔찍하게 살해되고 마는데....

신예 작가 중 '추리' 장르에서 가장 두각을 드러내는 시라이 도모유키의 최신작.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사건을 여러 시점에서 추리하는 구성이 특징인데, 이번에는 각기 다른 시간축(멀티버스)에 존재하는 동일 인물이 사건을 파헤친다는 점이 새롭습니다. 이처럼 다중 시간축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다는 점, 그리고 시간축이 달라도 죽음의 순간은 동일하게 일어난다는 설정에서 일종의 ‘특수 설정 미스터리’이기도 합니다.

탐정역을 소화하는 기사야마가 미쳐도 단단히 미쳤다는 점도 큰 특징입니다. 가족의 행복을 위해서는 방해물로 생각되는 모든 것들을 죽이고 파괴하는 소시오패스거든요. 아내의 스토커를 잡아다가 능욕하고, 딸 스토커는 살해하는 초반부 단계를 지나 후반부로 갈 수록 걷잡을 수 없이 폭주하는데 그 수준이 정말 어마무시합니다. 

그러나 참신함, 독특함은 설정에 국한될 뿐, 정작 추리의 완성도는 아쉬움이 큽니다. 여러 명의 기사야마가 가족의 죽음을 놓고 펼치는 대부분의 추리는 결국 ‘추리를 위한 추리’에 불과해 억지스럽고 설득력이 떨어지는 탓입니다. 아야카가 폭발한 이유가 알약에 숨겨진 소형 폭탄 때문이라는 추리가 대표적입니다. 사람이 산산조각이 나고, 신체 조각이 날아갈 정도라면 알약 크기 폭탄으로는 어림도 없으니까요. 다중 시간축에 있던 복수의 가족들이 동시에 죽었는데, 죽은 상태가 서로 극과 극이라 사망한 원인의 차이를 없애기 위해 저절로 폭발했다는 추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추리 자체는 그럴싸한데, 상황이 너무 말도 안돼요. 추운 차를 운전하다가 동사하고, 두꺼운 탈을 쓰고 공연하다가 열사병에 걸려 죽는다는게 말이나 됩니까. 여러 명이 추리를 펼쳐봤자 다 억지스럽고 말이 안된다면, 이건 그냥 분량 낭비일 뿐입니다. 이런 류의 대표 걸작 "독 초콜릿 사건"처럼, 모든 추리는 말이 되어야 합니다.

진상 또한 억지스럽습니다. 기사야마들은 가족들이 죽는 순간의 기억을 공유할 수 있어서, 범인 기사야마는 피해자가 죽는 순간에는 손을 대지 않는 '시한 장치 트릭' 더하기 '원격 조종 트릭'을 사용했는데, 상황을 극단적으로 정교하게 맞춰야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자면, 마후유는 '행운아'가 죽였습니다. '행운아'는 마후유가 하루와 자동차 여행을 떠난다는걸 알게된 뒤, '산송장'의 손을 빌어 하루를 죽게 만듭니다. '산송장'의 시간축에서 하루가 죽자, '행운아'의 시간축 하루도 죽는데 마침 운전 중이라 교통사고가 일어나게 되고요. 사고로 차밖으로 튕겨나간 마후유는 공교롭게 지나가던 차량에 머리가 으깨져 죽습니다. 즉, 이 모든건 말 그대로 ‘기적의 타이밍’에 의존하고 있을 뿐입니다. 안전벨트를 하고 있던 마후유가 왜 튕겨나갔는지도 모르겠네요.

아야카 폭사에 대한 진상은 불쾌하기까지 합니다. '도망자' 기사야마가 그녀를 성폭행해 임신시킨 뒤 태아를 불법으로 적출해 폭사시키고, 임신을 유지하던 '두더지' 시간대의 아야카의 뱃 속 아기가 폭발하자 다른 시간축의 아야카들 모두 폭사했다는건데, 이건 추리의 수준을 떠나 인간적으로 거부감이 듭니다. 이렇게 반인륜적인 이야기를 트릭으로 포장한건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합리적으로 설명되어야 할 동기가 불분명하다는 단점도 추리물로는 치명적입니다. 행운아는 마후유를 죽일 이유가 없습니다. 행운아의 시간축에서는 마후유와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으니까요. 소시오패스라서, 자신에게도 문제가 생길까봐 두려워서 죽였다? 정신병자의 과대망상이 동기인 작품이 추리물로서의 가치가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네요. 또 이게 동기라면, 행운아가 마후유를 살해했다는걸 숨길 이유는 없어요. 약속대로 다른 시간 축의 기사야마들이 가족을 죽이면, 손 안대고 위험요소를 모두 제거할 수 있으니까요. 

설정도 편의적이고 작위적입니다. 죽음만 동일하게 적용될 뿐, 상처 등은 시간축에서 공유되지 않는다는게 대표적이에요. 상식적으로는 상처도 동기화되어야지요. 산송장이 중상을 입었을 때, 다른 시간축의 기사야마들도 모두 동일한 상처를 입고 쓰러졌어야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두더지가 도망자를 죽이려고 배에 폭탄을 설치했다는 에필로그도 납득하기 어려워요. 도망자를 죽이려면 그냥 자살하면 됩니다. 시간축에 있는 모든 기사야마가 동일한 운명을 맞을테니까요. 또 에필로그에서처럼 한 시간축에서 터진 폭탄이 다른 모든 시간축에 영향을 미친다면, 앞서의 현란하고 복잡했던 시한 장치 및 원격 조종 트릭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네요. 그냥 하루와 마후유가 탔던 차에 폭탄을 설치하면 되잖아요?

기사야마에 대한 묘사도 이상해요. 기사야마들은 시간축만 다를 뿐 모두 똑같은 사람들입니다. 시간축마다 별개의 인격을 가진듯 보이는건 잘못되었습니다. 심지어 아야카 폭사 때 두더지는 도망자의 부탁을 받아 아야카의 아이를 살려주기까지 하는데, 이건 전혀 와 닿지 않았어요.

시스마를 잔뜩 맞은 탓에 시간축을 오가는 절대자가 된 우라시마도 사건 진상을 추리하기 위한 탐정역이 필요해서, 기사야마를 뛰어넘는 절대자가 필요해서 등장시킨 듯 한데, 인물 설정이나 등장 과정, 묘사 모두가 과장되고 억지스러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상적인 점이 전혀 없지는 않았습니다. 시스마를 맞은 복원자가 첫 번째 시스마 이전 시점으로 돌아가 시간축을 한 번 더 분기시켜 ‘두더지’가 생겨났다는 설정은 참신했습니다. 이즈미 사키와 페페코 등 단순한 희생양으로 보였던 인물들을 활용하여 독자에게 시간 이동을 착각하게 만든 디테일도 눈에 띄었고요. 여러 시간축의 기사야마들이 추리를 펼칠 때, 사이렌 소리와 기키와의 과거사 등을 근거로 산송장이 사실은 아파서 누워있는 척 했다는 추리도 괜찮았습니다.

그래도 제 별점은 2점입니다. 참신한 설정과 캐릭터 구도는 흥미로웠지만, 지나치게 억지스럽고 비윤리적인 트릭과 없다시피한 동기, 개연성 부족의 삼박자는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게 만듭니다. 이전에 보았던 한 추천 리스트에서 언급했듯, 재미는 있지만 최악이에요. 모든 분들께 권해드리기는 좀 어렵습니다.

2025/01/24

가을비 이야기 - 기시 유스케 / 이선희 : 별점 1.5점

가을비 이야기 - 4점
기시 유스케 지음, 이선희 옮김/비채

'현대 호러의 일인자 기시 유스케, 작품 하나하나에 들이는 공이 커서 과작(寡作)으로 유명한 그가 오랜만에 신작 《가을비 이야기》를 들고 찾아왔다. 비가 내리는 가을의 스산한 날씨를 배경으로 벗어날 수 없는 운명에 농락당하고 고통받는 인간의 모습을 그려낸 이 작품은 인간의 무기력과 절망감을 적나라하게 그려내며 공포를 극대화한 기담집이다.
호러에 미스터리 기법을 절묘하게 접목시킨 작가라는 찬사를 받으며, 1990년대 이후 일본 호러소설계를 이끌고 있는 일인자 자리에 오른 기시 유스케가, 이번에는 저항할 수 없는 운명에 농락당하고 괴로워하는 인간의 이야기로 찾아온 것이다. 일상을 통해 드러난 인간의 업에 대해 이야기하는 네 가지 공포담은 인간 근원의 감정을 건드리며 읽는 이로 하여금 좌절과 절망감, 그리고 무력감을 느끼게 하면서 진정한 공포를 선사한다.'
는 책 소갯글을 보고 집어든 작품.

그런데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전혀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저 소갯글에서는 공포, 호러 소설로 소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공포를 느낄 만한 요소나 의외성이 전무한 탓입니다. 정말이지 하나도 무섭지 않았어요. 작가 명성만 놓고 보면 "엠브리오 기담" 정도의 결과물일거라 생각했는데 말이지요.

작품의 소재, 내용들도 "백조의 노래" 외에는 특별히 눈에 뜨이지 않았습니다. 완성도도 그닥이라 좋은 점수는 못 주겠네요. 제 별점은 1.5점입니다. 기시 유스케의 단편들 - "도깨비불의 집", "미스터리 클락" - 은 대체로 실망스러웠는데, 이 책도 역시나군요. 앞으로 기시 유스케 단편은 읽지 말아야겠습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아귀의 논"

아오타는 자기가 전생에 저지른 죄 때문에 사랑을 갈구하지만, 얻지는 못하는 아귀가 되었다고 고백한다. 그에게 호감을 갖고 있던 미하루는 그 말을 들은 뒤 호감이 순식간에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미하루와 아오타가 나누는 이야기가 전부입니다. 미하루가 고백을 끝낸 아오타에 대한 애정이 사라지는걸 좀 더 극적으로 표현했더라면 좋았을텐데, 지금의 결과물은  무섭지도 않고 의외의 반전도 없는 짤막한 소품에 불과합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푸가"

작가 아오야마는 자다가 수십 킬로미터 떨어진 마을로 이동하는 경험을 반복했다. 병원 의사는 마쓰나가에게 '푸가(해리성 전주)'라는 말을 꺼냈다. 자살 명소 수해로 이동하는 등, 생명의 위협을 느낀 아오야마는 영능력자에게 부탁해 침실에 강력한 결계를 쳤다. 그러나 결계에도 불구하고, 아오야마는 침실에서 대량의 물을 남기고 사라졌다. 편집자 마쓰나미는 얼마 후, 아오야마가 어디로 갔는지 알아냈다. 침실을 빠져나가지 못하고, 물침대 안으로 이동했던 것이었다...

마르셀 에메의 "벽으로 드나드는 남자"가 떠오르는 작품. 에메의 작품에서는 벽을 통과하는 능력을 지닌 주인공이 약의 부작용으로 벽에 갇히는데, 이 작품에서는 자면서 순간 이동을 하던 주인공이 결계 탓에 방을 빠져나가지 못하고 물침대 속에 갇혀 죽게 됩니다. 특별한 이유로 이동을 못해서 중간에 갇힌다는 점에서 비슷하지요. 

하지만 전체적으로 유머러스하면서도 짧았던 에메의 작품이 저는 더 낫다고 생각됩니다. 이 작품은 아오야마 시점의 순간 이동 이야기가 대부분인데 너무 길거든요. 읽다보면 비슷한 내용이라 지루해집니다. 긴 분량에도 불구하고 아오야마의 공포심을 잘 표현하지 못한 탓입니다. 거미를 테마로 한 결계 등의 이야기도 지나치게 장황하며, 거미 꿈은 정말이지 나올 필요도 없었습니다. 나오더라도 이렇게 길게 쓸 이야기는 아니었어요. 반면 순간 이동에 대한 설명은 제목의 '푸가' 뿐인데 극히 부족하고요. 분량 조절에 실패한 느낌이에요.

게다가 반전 소재로 사용된 물침대는 너무 생뚱맞았어요. 물침대가 그리 흔하게 사용되는 침구는 아니니까요. 순간 이동이라는 설정을 극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억지 발상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 보다는 함께 자던 동거인 아키 몸 속으로 들어가버렸다는게 더 호러블하지 않았을까요? 별점은 2점입니다.

"백조의 노래"

인기없는 소설가 오니시 레이분은 대부호 사가로부터 미쓰코 존스라는 무명 가수의 전기를 써 달라는 의뢰를 받았다. 그녀는 인간이라고 믿어지지 않는 창법으로 부른 레코드를 남겼다.

탐정 로스의 보고를 통해, 미쓰코 존스의 창법은 사막에서 노래하다가 콕시디오이데스 이미티스라는 풍토병에 걸렸기 때문이라는게 밝혀졌다. 이 병이 성대를 찢어 얇게 만들고, 분할 진동하게 만든 것이었다.

환상이 깨진 사가에게 로스는 자신도 이 병에 걸렸다고 보고했고, 레이분은 의뢰를 거절하기로 결심했다.

오디오와 음악에 대한 전문가적인 설명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콘덴서 스피커는 놀라운 기술이지만 저음이 나지 않는 단점이 있다거나, 스테레오 녹음은 3D 영화 같아서 진기함을 자랑하는 허세에 불과하다는 등 여러가지 내용은 무척 흥미로왔습니다. 소개된 노래들 - 메리 캠프가 무른 마농 레스코의 '홀로 외로이 버려져', 미쓰코 존스가 부른 라크메 중 '종의 노래' -도 실제로 들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 정도였고요. (아래와 같습니다)

전설적인 가수의 창법의 비결이 불치의 풍토병이라는 결말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마구'를 던지는 투수의 비법이 제어할 수 없는 손가락 떨림이었다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마구"가 떠오르기도 했어요. 궁극의 비법을 손에 넣었지만, 짧은 영광만 함께 할 수 있다는 점에서요. 

하지만 앞서의 오디오, 음악에 대한 상세 설명에 비하면, 풍토병에 대한 설명과 설정은 그리 와 닿지 않았습니다. 이 역시 반전을 위한 억지 설정 느낌이 강하게 들었어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고쿠리 상"

2003년 11월 28일, 대형 사고를 쳐서 자살을 결심한 열두 살 다쿠야에게 뇌종양으로 시한부 판정을 받은 친구 하루토가 함께 죽자며 어둠 버전의 고쿠리상을 부르자고 제안했다. 이 주술은 소원을 빈 네 명 중 세 명에게는 새로운 기회를 주지만, 한 명의 생명을 앗아간다고 했다. 다쿠야와 하루토는 친구 가에데와 신이치를 끌어들여 고쿠리상을 불러내는 데 성공했고, 숨을 거둔 하루토 외 세 명은 고쿠리상의 조언으로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되었다. 

그리고 2021년 11월 22일, 성공한 변호사가 된 다쿠야 앞에 주간지 기자 노구치가 나타나 18년 전 하루토의 돌연사, 가에데의 집 전소와 가족의 죽음 및 다쿠야가 저질렀던 사건을 언급하고 돈을 요구했다. 충동적으로 노구치를 살해하고 다급해진 다쿠야는 다시 한 번 고쿠리상을 부르기로 결심하고 가에데와 신이치 등을 다시 불렀다. 이번에 아오모리현 도와다시의 쓰타나나누마로 가라는 답을 받은 다쿠야는 그곳으로 향하는데...

결말에서 밝혀진 사실은 이 주술이 소원을 빈 사람들에게 안락사를 선사하는 것이었다는 것입니다. 다쿠야는 쓰타나나누마의 아름다운 경치에 감동한 뒤 죽음을 맞습니다. 

그런데 이런 류의 작품은 명확한 주술의 조건과 이를 불러낸 존재에 의한 저주와 공포가 필수입니다. 고전 걸작인 스즈키 코지의 "링"처럼요. 그런데 이 작품에서 어둠 버전의 고쿠리상은 조건, 목적은 물론 주술을 일으키는 존재에 대한 설명과 주술 결과 모두 애매하게 묘사되어 혼란스럽고, 전혀 무섭지도 않습니다. 애초에 안락사를 선사하는 주술이었다면, 18년 전에는 왜 그렇게 하지 않은걸까요? 

마지막 순간에 이미 사망한 하루토와의 대화도 무슨 맥락으로 등장하는지 모르겠고, 쓰타나나누마의 경치를 지나치게 강조한 점도 뭐지 싶어요. 아오모리 현에서 돈이라도 받았나... 별점은 1.5점입니다. 무섭지도 않고, 무슨 이야기인지도 모르겠으니 점수를 줄래야 줄 수가 없네요.

2024/05/12

문라이트 마일 - 데니스 루헤인 / 조영학 : 별점 2점

문라이트 마일 - 4점
데니스 루헤인 지음, 조영학 옮김/황금가지

"하지만 옛날처럼 살면 우린 벌써 죽었을 거야."

아내와 딸의 부양을 위해 위험한 일은 지양하고, 양심에 반하는 일까지 닥치는대로 하면서 살고 있던 켄지 앞에 베아트리체가 나타났다. 그녀는 12년 전, 켄지가 찾아주었던 소녀 아만다의 숙모였다. 켄지는 아만다를 사랑했던 납치범 삼촌으로부터 소녀를 되찾아 알콜 중독에 빠진 형편없는 엄마에게 돌려주었었다. 그러나 베아트리체는 아만다가 또 사라졌다고 말했고, 켄지는 돈 한 푼 받을 수 없지만 과거에 종지부를 찍는 의미로 아만다를 다시 찾아나섰다.
그러나 아만다의 실종은 러시아 갱단과 관련이 있었고, 갱단은 켄지의 주소까지 알아내어 아만다가 가지고 사라진 아이와 '벨라루스 십자가'를 찾아오라는 협박을 시작했다...

데니스 루헤인을 대표하는 켄지와 제나로 시리즈 완결편. 책 소개를 보니 "가라, 아이야, 가라"의 후속작 성격이라고 하네요.
켄지와 제나로 시리즈답게 납치, 절도에 살인과 폭력 등 각종 범죄가 난무합니다. 그 중에서도 러시아 갱들이 도박으로 수렁에 빠트린 의사 드레를 아동가족부에 취업시킨 뒤, 어린 임산부들에게 몰래 아이를 낳게 한 뒤 팔아치워왔다는 범죄 행각이 독특하더군요.
범죄들과 관련된 여러가지 죽음들이 끔찍한 시리즈 특징도 여전하고, 돈 때문에 기본적인 인간성을 저버리는 등장인물들에 얽힌 이야기들도 여전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아니, 한 술 더 뜹니다. 심지어 이 작품에서는 주인공 켄지마저도 돈과 가족 때문에 양심을 파니까요. 이런게 이 시리즈의 매력이기는 한데, 역시나 읽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그래도 켄지와 제나로, 딸 가비의 사랑과 유대감, 신뢰에 대한 묘사도 많습니다. 완결편인 덕분이겠지요? 이는 켄지가 탐정일을 완전히 은퇴하는 시리즈 결말에 대한 설득력도 높여 줍니다. 본인이 양심을 팔고 돈을 택했던 몇몇 사건들에 대한 회한과 함께 더 이상 위험과 폭력이 가득한 세상이 아니라, 평범한 삶을 선택할 수 밖에 없는 이유로 지켜야 할 가족보다 완벽한건 없겠지요. 아만다가 딸(?) 클레어를 지키기 위해 사력을 다하는 모습도 보기 좋았습니다.
이런 완벽한 해피엔딩을 위한 결말도 깔끔합니다. 러시아 갱 예핌이 약에 중독된 두목 키릴 등과 인간 쓰레기 아만다의 의붓아버지 케니를 모두 죽이고 켄지와 아만다, 납치했던 소피와 기타 등등을 풀어주고 끝나거든요. 마침 크리스마스이기도 하니 시점도 완벽한 셈입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잘 짜여진 이야기는 아닙니다. 앞서의 해피엔딩은 대미를 장식하기는 하나, 설득력이 떨어지는 문제는 커요. 예핌이 왜 이들을 살려주는지 설명이 없는 탓입니다. 어차피 네 명을 죽인 상황에서 세 명을 더 죽이는게 별 문제도 아니었을텐데, 왜 그러지 않았을까요? 중요 목격자인데요. 다른 악당이라면 다 죽이고 켄지의 집으로 찾아가 가족도 다 죽였을 겁니다.
드레를 아만다가 의도적으로 죽게 만들었다는 것도 억지스러웠어요. 기차가 달려오는 것도 모르고 십자가를 주으러 달려갈만큼 멍청한 사람은 없을겁니다. 직전에 약에 취했다는 묘사가 있기는 한데, 이 정도로는 설명이 부족합니다. 마침 기차가 달려오는 순간을 딱 맞췄다는 것도 작위적이었고요.
대체로 우연이나 특별한 기회를 통해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전개도 그닥입니다. 예를 들자면, 켄지가 아만다의 집을 몰래 들어가 수색하다가 아만다의 가족들과 소피를 만나는데, 그 때 마침 러시아 갱단이 습격해서 소피를 납치해갑니다! 갱을 추격하던 켄지는 면허증을 빼앗겨서 가족이 위험에 처하게 되고요. 이런 전개는 독자가 무언가 추리할 여지를 아예 없게 만듭니다.
그나마 아만다가 보스턴 레드삭스 19번 유니폼을 애지중지 가지고 있었는데, 정작 레드삭스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부분은 약간 추리물 성격을 보이기는 합니다. 알고보니 아만다가 어린 시절 유괴당했을 때 살았던 마을 이름이 '베켓' 이었던 거지요. 좋은 추억만 가득했기에 레드삭스 19번 조쉬 베켓의 유니폼을 가지고 있었던 겁니다. 켄지와 제나로는 베켓에서 아만다를 찾아내지요. 하지만 이 역시, 아만다의 행적을 뒤쫓는데 그리 중요한 단서가 되지는 못해요. 19번 유니폼이 없어도 '베켓'을 찾아가는건 당연한 수순으로 보이니까요.
핵심 인물인 아만다도 와 닿지 않습니다. 어린 시절 혹독한 경험을 했다고 모두가 천재가 되는건 아닙니다. 친구의 아기를 자기 딸인양 돌볼 이유가 생기는 것도 아니고요. 아만다의 현재는 켄지의 심경 묘사 정도의 비중은 할애해서 설명해 줘야 했습니다. 지금은 치기어리고 겁없는 사춘기 10대인지, 어린 시절의 경험으로 복잡한 내면을 갖춘 인물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더군요.

그래서 제 별점은 2점. 킬링타임용으로 적합한 펄프 픽션입니다. 시리즈 팬이시라면 '완결편' 이라는 의미도 있고하니 읽어볼만 하겠지만, 팬이 아니시라면 구태여 찾아 볼 필요는 없습니다.

2023/12/15

"우먼 인 윈도"에서 소개된 애나 폭스의 영화들

"우먼 인 윈도" 속에서 소개된 애나 폭스의 영화들 목록입니다. 책 뒤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10월 24일 일요일 
나는 비밀을 알고 있다(The Man Who Knew Too Much)
1956년, 미국,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 제임스 스튜어트, 도리스 데이 주연, 히치콕 감독이 자신이 1934년 만든 동명의 영화(영국) 를 리메이크한 작품, 휴가를 보내던 가족이 암살 사건에 휘말리는 내용으로, 극중에서 도리스 데이가 부른 'Que Sera, Sera'로 아카데미 주제가상을 수상했다.

길다(Gilda)
1946년. 미국. 찰스 비도르 감독, 리타 헤이워스, 글렌 포드 주연, 도박꾼 조니는 카지노 사장의 심복이 된다. 사장의 집에 초대받아간 조니는 사장의 부인이 된 전 애인 길다를 만난다. 두 사람은 강하게 이끌리고 선을 넘는다. 리타 헤이워스를 스타덤에 올려놓은 영화이다.

10월 27일 수요일
과거로부터 (out of the Past)

1947년, 미국, 자크 투르뇌 감독. 로버트 미첨, 제인 그리어 주연, 왕년의 사설탐정으로, 지금은 은퇴하고 주유소에서 일하는 제프에게 한 남자가 찾아온다. 조용히 살아가려던 그의 앞날에 과거의 위험한 사랑이 그림자를 드리운다.

에어플레인(Airplane)
1980년. 미국. 데이비드 주커, 제리 주커 공동 감독 및 주연, 택시 기사인 테드 스트라이커는 공군 조종사로 참전한 기억 때문에 비행공포증을 앓는다. 어느 날, 비행 승무원인 여자친구 일레인이 결별을 선언하자 테드는 엉겁결에 그녀를 따라 비행기에 오른다. 그런데 식중독으로 기장이 정신을 잃고, 테드가 조종간을 잡게 된다.

10월 29일 금요일
디아볼릭(Les Diaboliques)

1955년, 프랑스, 앙리 -조르주 클루조 감독, 시몬 시뇨레, 베라 클루조 주연, 폭력적인 남편인 미셸 때문에 괴로워하는 크리스티나에게 미셸의 정부인 니콜이 찾아와 함께 그를 죽이자고 제안한다.두 사람은 성공적으로 미셸을 죽이고 시체를 수영장에 던지지만, 그의 시체가 감쪽같이 사라지고 이상한 일들이 일어난다.

몰락한 우상(The Fallen Idol)
1948년, 영국, 캐럴 리드 감독. 랠프 리처드슨, 미셸 모건 주연, 런던의 프랑스 대사관, 대사관 집사의 아내가 죽고, 유일한 목격자는 어린 소년 필립이다. 유럽 심리 스릴러의 고전.

공포의 내각(Ministry of Fear)
1944년, 미국, 프리츠 랑 감독, 레이 밀랜드, 마조리 레이놀즈 주연, 제2차 세계대전 중 출소한 닐이 뜻하지 않게 첩보전의 소용돌이에 휘말린다.

10월 30일 토요일
39 계단(The 39 Steps)

1935년, 미국,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 로버트 도넷, 매들린 캐럴 주연, 리처드는 자신이 첩보원이라고 주장하는 애너벨라를 돕는다. 다음 날 새벽, 애너벨라가 공격을 받아 죽고, 살인 혐의를 뒤집어쓴 리처드는 도망자가 된다.

이중배상(Double Indemnity)
1944년, 미국 빌리 와일더 감독, 프레드 맥머레이, 바버라 스탠윅 주연, 보험회사 직원인 월터는 고개인 디트리히슨의 집에 방문 했다가 그의 아내 필리스의 유혹에 넘어간다. 두 사람은 디트리히 슨을 죽이는 데 성공하지만, 보험사는 이를 수상하게 여기고 수사에 들어간다.

가스등(Gaslight)
1944년, 미국. 조지 큐커 감독. 샤를르 보와이에, 잉그리드 버그먼, 조셉 코튼 주연. 폴라는 잘생긴 그레고리와 결혼해 상속받은 집에서 신혼 생활을 시작한다. 그레고리는 폴라의 외출을 막고, 그녀를 정신이상자로 몰고 간다. 가스라이팅 (gaslighting)'이라는 심리학 용어와 관련이 있다.

파괴공작원(Saboteur)
1942년, 미국,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 프리실라 레인, 로버트 커밍스 주연, 공장에서 일하던 배리는 화재로 친한 친구를 잃고 방화범으로 몰린다. 배리는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고, 방화의 배후에 있는 거대한 음모를 파헤치려 한다.

빅 클락(The Big Clock)
1948년, 미국, 존 패로 감독, 레이 밀랜드, 찰스 로튼 주연, 어떤 이를 살해한 언론 재벌 얼은 무고한 남자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려 한다. 남자는 자신의 결백을 밝히려 한다.

그림자 없는 남자(The Thin Man) 시리즈
1934~1947년, 미국. 윌리엄 파월, 머나 로이 주연, 은퇴한 경찰인 닉 찰스와 그의 아내 노라 찰스가 사건을 풀어가는 코미디 탐정물, 은퇴한 형사인 닉 찰스는 부유한 집안의 딸 노라와 결혼한다. 닉은 느긋하게 은퇴 생활을 누리고 싶어하지만 스릴을 원하는 노라 때문에 이런저런 사건에 뛰어든다. 대실 해밋의 소설을 원작으로 제작된 시리즈로, 모두 6편이 있다.

도살자(The Butcher, Le Boucher)
1969년, 프랑스, 이탈리아. 클로드 샤브롤 감독, 스테파니 오드런, 장 얀느, 안토니오 파살리아 주연, 시골 학교에 부임한 교사 엘렌은 푸줏간 주인 포폴을 만난다. 포폴은 엘렌에게 반해 사랑을 고백하지만 엘렌은 거부한다. 한편 마을은 연쇄 강간, 살해 사건으로 흉흉해지고 엘렌은 포폴을 의심한다. 히치콕을 모방했으면서도 히치콕보다 더 히치콕답다는 평을 받았다.

다크패시지(Dark Passage)
1947년, 미국, 델머 데이브즈 감독, 험프리 보가트, 로런 바콜 주연, 빈센트는 아내를 살해한 죄로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가까스로 감옥에서 탈옥한 빈센트는 자신의 결백을 입증하려 하고 그런 그를 아이린이라는 여자가 돕는다.

나이아가라(Niagara)
1953년, 미국, 헨리 해서웨이 감독. 마릴린 먼로, 조셉 코튼, 진피터스 주연. 나이아가라 폭포로 여행 온 신혼 부부가 다른 투숙객 부부의 갈등에 휘말린다.

샤레이드(Charade)
1963년, 미국. 스탠리 도넌 감독. 오드리 헵번, 캐리 그랜트 주연, 남편의 재산을 노리는 남자들에게 쫓기는 여자 레지나와 이를 돕겠다고 나선 조슈아가 파리에서 겪는 일을 다룬다.

서든 피어(Sudden Fear)
1952년, 미국. 데이비드 밀러 감독, 조안 크로포드, 잭 팰런스 주연, 상속녀이자 극작가인 마이라는 배우인 레스터를 만나 결혼한다. 그러나 레스터에게는 아이린이라는 정부가 있었다. 레스터는 아이린과 함께 마이라를 죽이고 그녀의 재산을 가로채려 한다.

어두워질 때까지(Wait Until Dark)
1967년, 미국, 테렌스 영 감독, 오드리 헵번, 알란 아킨 주연, 수지는 최근에 시력을 잃었다. 그녀의 남편은 비행기에서 인형을 잠시 맡아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인형 속에는 밀수된 마약이 있었고, 악당들은 수지에게 접근해 인형이 숨겨진 곳을 알아내려 한다.

배니싱(The Vanishing)
1988년, 프랑스, 네덜란드, 조지 슬루이저 감독. 버나드 피에르 도나디우, 기니 베르보에츠 주연, 연인인 렉스와 사스키아는 여행을 떠난다. 중간에 들른 휴게소에서 사스키아가 실종되고 렉스는 그녀를 찾아 주변을 뒤진다. 그리고 삼 년 후, 렉스에게 한 남자가 접근한다. 그는 평범한 교사로 보이지만 실은 정신병자였다.

실종자(Frantic)
1988년, 미국. 로만 폴란스키 감독. 해리슨 포드, 베티 버클리 주연, 파리로 여행을 온 부부, 리처드가 샤워를 하는 사이 호텔방에서 부인이 사라진다. 리처드는 아내의 실종이 바뀐 가방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사이드 이펙트(Side Effects).
2013년, 미국,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 루니 마라, 채닝 테이텀, 주드 로 주연, 우울증 환자 에밀리는 의사인 뱅크스가 처방해준 신약을 복용하고 증세가 호전된다. 하지만 몽유병 증세가 나타나면서 살인을 저지르게 되고, 모든 것이 약의 부작용 때문이라 믿는다.

카사블랑카(Cassablanca)
1942년, 미국, 마이클 커티스 감독, 험프리 보가트, 잉그리드 버그먼 주연, 모로코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릭은 우연히 옛 사랑인 일자를 만난다.

밤 그리고 도시(Night and the City)
1950년, 미국, 영국. 줄스 다신 감독, 리처드 워드마크, 진 티어니 주연, 런던의 밤거리를 헤매는 해리는 은퇴한 세계적인 레슬링 선수를 만나고, 생각지도 못한 음모에 휘말린다.

소용돌이(Whirlpool)
1949년, 미국, 오토 프레밍거 감독, 진 티어니, 리처드 콘트 주연. 마비 증상으로 고통받는 여자가 최면요법을 시도한다. 하지만, 최면에서 깨어난 그녀는 기억에 없는 살인 현장에서 발견되고, 용의자가 된다.

안녕, 내사랑 (Murder, My Sweet)
1944년, 미국, 에드워드 드미트릭 감독. 디 포웰, 클레어 트레버, 앤 셜리 주연, 전직 사기꾼의 여자친구를 찾는 일에 고용된 필립은 거미줄처럼 얽힌 복잡한 미스터리에 빠진다. 레이먼드 챈들러의 소설을 영화화했다.

나이트 머스트 폴(Night Must Fall)
1937년. 미국, 리처드 소프 감독. 로버트 몽고메리, 로사린드 러셀 주연, 브람슨 부인은 고립된 저택에 사는 자산가이다. 그녀는 저택을 돌봐달라며 대니를 고용한다. 그녀의 조카 올리비아는 그에게 끌리면서도 그를 의심한다.

로라(Laura)
1944년, 미국. 오토 프레밍거 감독. 진 티어니, 데이나 앤드루스 주연, 광고회사 디자이너인 로라가 자신의 집에서 살해되고, 한 남자가 유력한 용의자로 떠오른다.

10월 31일 일요일
현기증(Vertigo)
1958년, 미국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 제임스 스튜어트, 킴 노박 주연, 고소공포증 때문에 은퇴한 경찰 스코티는 사립탐정이 된다.그는 사건을 맡았다가 마들레인이라는 여인에게 연정을 느끼고, 마들레인이 자살한 이후 그녀를 너무나 닮은 주디라는 여인에게 강박적으로 매달린다.

제3의 사나이(The Third Man)
1949년, 영국, 캐럴 리드 감독, 조셉 코튼, 알리다 발리 주연, 제 2차 세계대전 직후, 삼류 소설가 마틴스가 친구에게 일자리를 얻으려고 비엔나를 방문하지만, 친구가 의문의 사고로 사망한 것을 알게 된다.

리피피 (Du Rififi Chez Lex Hommes)
1955년, 프랑스, 이탈리아. 줄스 다신 감독, 진 세바이스, 칼 모너 주연, 형기를 마치고 출옥한 토니는 여전히 충성스러운 부하 조를 다시 만난다. 조는 토니에게 보석상을 털자고 제안한다. 이 마지막 한탕을 끝으로 은퇴하자고 말이다.

11월 2일 화요일
스펠바운드(Spellbound)
1945년, 미국.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 잉그리드 버그먼, 그레고리 펙 주연, 정신병원의 의사로 근무하는 콘스탄스는 새로 부임한 의사 에드워드와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에드워드는 사실 에드워드가 아니었고, 죽은 친구의 이름임이 밝혀진다. 남자는 기억하지 못하는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몰려 경찰의 추적을 받는다.

죽음의 항해 (Dead Calm)
1989년, 오스트레일리아. 필립 노이스 감독, 니콜 키드먼, 샘 닐주연, 교통사고로 아들을 잃은 부부가 요트 여행을 떠난다. 조용할 줄만 알았던 여행은 바다 한가운데에서 만난 한 남자로 인해 흔들린다.

레베카(Rebecca)
1940년, 미국,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 로런스 올리비에, 주디스 앤더슨, 조앤 폰테인 주연, 수줍은 여자가 부인과 사별한 남자를 만나 결혼해 대저택에 들어가지만, 남자는 아직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11월 3일 수요일
열차 안의 낯선 자들(Strangers on a Train)
1951년, 미국.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 팔리 그레인저, 루스 로먼 주연, 프로 테니스 선수 가이는 아내를 두고 외도를 즐기며 이혼을 바라고 있다. 어느 날 가이는 기차 안에서 브루노를 만나고, 브루노는 그에게 교환살인을 제안한다. 영화 마지막에 빠르게 돌아가는 회전목마 장면이 등장한다.

위커 맨(The Wicker Man)
2006년, 미국, 닐 라부티 감독, 니콜라스 케이지 주연, 고속도로 사고로 죽어가던 모자를 구하지 못한 죄책감에 괴로워하던 경찰관 에드워드는 실종된 딸을 찾아달라는 옛 연인의 편지를 받는다.

로프(Rope)
1948년, 미국,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 제임스 스튜어트 주연, 두대학생이 재미삼아 동급생을 밧줄로 목 졸라 죽인 후 그의 시체를 아파트에 숨긴다. 이들은 완전범죄를 위해 친구와 가족을 초대해 파티를 연다.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North by Northwest)
1959년, 미국,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 캐리 그랜트, 에바 마리 세인트 주연, 뉴욕의 광고업자가 외국첩보기관에 의해 정부요원으로 오해받아 살해될 위기에 처한다.

숙녀 사라지다(The Lady Vanishes)
1938년, 미국,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 마가렛 락우드, 마이클 레드그레이브 주연, 여행 중인 젊은 여성이 기차에서 한 부인의 도움을 받는다. 두통으로 잠이 들었던 여성은 깨어난 뒤 그 부인이 사라진 것을 발견하고 찾아 나선다. "반드리카 초특급"이라는 제목 으로도 알려졌다.

11월 4일 목요일
아담스 패밀리(The Adams Family)
1991년, 미국, 베리 소넨필드 감독, 안젤리카 휴스턴, 라울 줄리 아, 크리스토퍼 로이드 주연, 아담스 가에 이십오 년간 행방불명이던 친척이 찾아온다. 1964년 TV 시리즈로 방영된 동명의 작품을 영화화한 것으로, 개봉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미스터 에드(Mister Ed)
1961~1966년, 미국, 저스터스 아디스 외(外) 감독. 앨런 영, 코니 하인즈 출연, 미국 CBS에서 인기리에 방영된 TV 시리즈. 말하는 말인 에드와 그 주인의 좌충우돌을 다루었다. 이 소설에서 애나가 올리비아에게 언급한 물론(Of course)이라는 말이 주제가에서 말장난으로 반복된다.

11월 5일 금요일
무법자(The Outlaw)
1943년, 미국, 하워드 휴즈, 하워드 혹스 감독. 잭 부텔, 제인 러셀 주연, 서부의 무법자들이 리오 맥도날드라는 여성의 관심을 끌기 위해 좌충우돌한다. 제인 러셀이 전형적인 핀업걸 이미지로 등장하는 포스터로 유명하다.

열정(Hot Blood)
1956년, 미국, 니콜라스 레이 감독, 제인 러셀, 코넬 와일드 주연, 열정적인 여성 애니와 정략결혼으로 얽힌 형제 이야기, 집시 스커트를 입고 역동적인 자세를 취하는 제인 러셀을 담은 포스터로 유명하다.

11월 7일 일요일
의혹의 그림자(Shadow Of A Doubt)
1943년, 스릴러, 미국,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 테레사 라이트, 조셉 코튼 주연, 미국 소도시에 사는 찰리의 단조로운 삶은 이름이 같은 찰리 삼촌이 찾아오면서 활기를 띤다. 그러나 찰리는 삼촌이 연쇄살인범일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을 가진다.

이창(Rear Window)
1954년, 미국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 제임스 스튜어트, 그레이스 켈리 주연, 다리를 다친 사진작가가 이웃들을 엿보는 것으로 소일하던 중 한 이웃이 살인을 저질렀다고 확신한다.

11월 8일 월요일
싸인(Sign)
2002년, 미국, 나이트 샤말란 감독. 멜 깁슨, 호아킨 피닉스 주연. 미국의 시골 마을에서 옥수수 농장을 운영하는 그레이엄은 어느날 원과 선으로 만들어진 복잡하면서도 거대한 미스터리 서클을 발견한다.

로즈메리의 아기 (Rosemary's Baby)
1968년, 미국, 로만 폴란스키 감독. 미아 패로 주연, 새로운 아파 트로 이사 온 젊은 부부가 이상한 일들을 겪게 되고, 부인이 임신한 후에 더욱 심각해진다.

침실의 표적(Body Double)
1984년, 미국.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 크레그 워슨, 멜라니 그리피스 주연, 단역배우 제이크는 폐소공포증 때문에 배역을 잃는다. 애인에게서도 버림받은 제이크는 다른 사람의 집을 관리해주기로 하고, 그 집에서 이웃 여자를 훔쳐보다가 자신도 모르게 끔찍한 일에 휘말린다.

욕망(Blow-up)
1966년, 영국, 이탈리아.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감독. 바네사 레드그레이브, 세러 마일스 주연, 런던의 사진작가가 황량한 공원에서 찍은 사진을 정리하던 중 의심스러운 것을 발견한다.

2023/11/18

명작 추리 소설 5선 : 이 서술 트릭이 굉장해!

소설에 대해 안내하고 소개해주는 일본 사이트 '소설마루' 에서 발견한 글입니다. 가볍게 소개해 드립니다.
"애크로이드 살인사건"의 핵심 트릭이 노출되어 있으니, 읽으시기 전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2023/10/08

블랙 쇼맨과 환상의 여자 - 히가시노 게이고 / 최고은 : 별점 2점

블랙 쇼맨과 환상의 여자 - 4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최고은 옮김/알에이치코리아(RHK)

마술사면서 사기, 거짓말, 위조도 서슴치 않는 안티 히어로 '블랙 쇼맨' 다케시 삼촌이 활약하는 단편집. 전작은 묵직한 장편 추리물이었던 반면, 이번 작품들은 가벼운 단편 범죄 드라마입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실망스웠습니다. 핵심 매력 포인트였던 다케시의 안티 히어로적인 속성이 거의 사라진 탓이 큽니다. 손님들을 위해 솜씨를 발휘하는, '정의의 바텐더'로 캐릭터가 변해 버렸더라고요. 사건들도 대단한 추리력을 필요로 하지 않으며, 결말도 거의 예상대로였습니다. 칵테일이 주요 소재로 쓰이는 등의 소소한 디테일만 괜찮았어요.
제 별점은 2점입니다. 후속작이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별로 기대는 되지 않는군요.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읽기 전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맨션의 여자>>
마요는 손님 우에마쓰 가즈미와의 미팅 장소로 다케시 삼촌의 바 '트랩핸드'를 이용하게 되었다. 다케시는 거짓말과 사기로 가즈미 남편의 지인인 척 했다.
어느정도 마요, 다케시와 친해진 가즈미는 다케시의 바에서 오래전 연이 끊긴 오빠 유사쿠와 만나도 되는지 물어보았다. 흔쾌히 허락한 다케시와 마요는 도청장치로 유사쿠가 가즈미가 가짜라고 협박하는걸 들었다. 다케시는 간단한 조사와 추리로 가즈미는 가짜가 맞지만 진짜와 협력했을거라 생각하고, DNA 검사를 요구하는 유사쿠를 가짜 사진으로 물리친 뒤 가즈미를 통해 진실을 알게 되었다. 나나에는 가즈미의 부탁으로 역할을 수행했고, 그 이유는 췌장암으로 곧 죽게 되는데 유산이 자기에게 끔찍한 짓을 한 오빠에게 상속되는걸 막기 위해서였다.

다케시가 사기꾼으로의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여 가짜 가즈미의 정체를 꿰뚫고, 조작한 사진으로 유사쿠를 물리치는 등의 활약을 보이는 전반부, 그리고 나나에의 입을 통해 가짜 가즈미가 된 이유가 설명되는 후반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탐정(?)의 활약과 범인(?)의 고백이 1, 2부 구성으로 나뉘어져 있다는 점에서는 셜록 홈즈와 같은 고전 추리물을 연상케합니다. 

다케시의 DNA 검사 요구를 퇴치하기 위해, 유사쿠는 아빠의 블륜으로, 가즈미는 엄마의 불륜으로 낳은 자식이라는 사실을 조작한건 기발했는데, 그 외에는 딱히 눈여겨 볼 부분이 없습니다. 나나에와 가즈미가 꼭 닮았다는 우연에 모든게 기반하고 있다는 점도 감점 요소였고요. 이런 우연보다는 가즈미의 재산을 이용하여 나나에에게 성형 수술을 시켜주고, 회복 기간 동안 바꿔치기를 위한 학습을 했다고 풀어가는게 더 현실적이었을거에요. 추리, 범죄물이라기보다는 드라마에 가깝다는 점도 아쉽고요. 제 별점은 2점입니다.

<<위기의 여자>>
나미는 만남 어플로 만난 기요카와로부터 그가 가지고 있다는 하와이 별장 이야기를 듣고, 함께 트랩핸드에 방문해서 칵테일 '블루 하와이'를 마셨다. 연이어 자기 재산을 자랑하던 기요카와는 다케시의 칵테일 한 잔을 더 마신 뒤 미친듯이 졸려하며 화장실로 향했다....

알고보니 기요카와는 어플로 만난 여자에게 재신이 많다는 거짓말로 환심을 산 뒤, 수면제를 먹인 뒤 몹쓸 짓을 하는 악당이었습니다. 이를 꿰뚫어 본 다케시가 술잔을 바꿔치기했던 겁니다. 이 과정에서 칵테일 '블루 하와이'가 트릭의 주요 소재로 사용된게 마음에 들었습니다. 수면 유도제가 범죄에 악용되는걸 막기 위해 물에 녹으면 파랗게 변하게 만들었는데 (일본 이야기겠지요?), 그걸 숨기기 위해 원래 색이 파란 블루 하와이를 선택했다는 아이디어가 괜찮았거든요. 바텐더 다케시에게도 어울리는 소재였고요. <<콘 비프 샌드위치를 먹는 밤>>후속작이 나온다면 추가되어도 좋을 이야기였습니다.

하지만 다케시가 기요카와의 수작을 눈치채고 경고를 하기 위해 '비트윈더시트'를 대접했다는건 억지스러웠습니다. 재료만 듣고 칵테일 이름을 떠올리고, 이게 '경고'라고 느낄 사람은 많지 않을테니까요. 또 같은 재료라도 비율에 따라 여러 결과물이 나오는게 칵테일이라서, 경고의 의미로도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됩니다. 뭐, 이 모든게 다케시 삼촌의 억지라면 할 말이 없지만요.

그래도 나름 트릭도 사용되었고, 다케시의 활약도 빛나며 기승전결도 깔끔했기에 별점은 2.5점입니다.

<<환상의 여자>>
유즈키는 치과의사이자 재즈 콘트라베이스 연주자 도모야와 불륜 관계였다. 그러나 도모야갸 교통사고로 죽은 뒤 삶의 목표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런 그녀를 다독이는 절친 야요이와 함께 트랩핸드를 찾은 유즈키는 도모야가 과거 요코스카에서 연주를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도모야의 과거를 되짚어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요코스카에서 도모야가 '딸'이라는 여성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는걸 알아내는데....

표제작. 도모야가 딸과 함께 보냈던 과거는 모두 조작으로, 유즈키에게 삶의 의욕을 불러 일으키려는 친구 야요이의 계획이었다는 내용.

불륜녀인 친구를 위해 본처를 설득하기까지 한 친구 야요이의 엄청난 노력은 절절이 전해집니다만, 이런 계획이 유즈키의 새로운 시작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더군요. 차라리 요코스카에서도 불륜을 저질렀다는 식으로 조작해서 정나미가 확 떨어지게 했더라면 모를까요. 불륜녀의 사랑이야기라는 소재도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재미도 없고 알멩이도 없는 졸작으로 별점은 1.5점입니다.

2023/08/04

미궁 - 나카무라 후미노리 / 양윤옥 : 별점 2.5점

미궁 - 6점
나카무라 후미노리 지음, 양윤옥 옮김/놀
<<아래 리뷰에는 진범과 트릭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가토 변호사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신견은 바에서 만난 여자와 하룻밤을 보낸 뒤, 여자와 같이 살던 남자를 쫓는 탐정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그리고 여자가 22년전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일가족이 살해당한 히오키 사건 (일명 '종이학 사건')의 유일한 생존자였던 딸 사나에라는걸 알게 되었다. 신견은 히오키 사건을 개인적으로 수사해나가면서, 극복해낸줄 알았던 자신의 어두움에 또다시 함몰되어 가기 시작하는데....

<<쓰리>>로 유명한 나카무라 후미노리의 작품.
종이학 사건이라는 불가능 범죄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추리 소설로 볼 수도 있습니다. 
사건에서 밝혀지지 않은 점은 아래의 두 가지입니다.
  1. 피해자인 아버지와 아들을 구타하고 피부조각을 남긴 왼손잡이 남자는 완벽한 밀실 상태의 집에 어떻게 침입해서 어떻게 사라졌는지.
  2. 다소 강박적이었던 아버지 다케시는 모든 출입구와 창문에 설치했던 방범 카메라를 설치했는데, 사건 당일 다케시가 집에 돌아온 장면은 찍혀있지 않았고 신발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다케시는 어떻게 집 안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는지.
이 두 가지 수수께끼의 답은 하나입니다. 뒷문 방범 카메라가 실제로 촬영하는게 아니라, 원래 녹화된 파일의 날짜만 변경되도록 조작되었던 것이죠. 의처증이 심해진 남편 다케시가 모든걸 감시하는 탓에 가족들 심리가 서서히 붕괴하자, 이를 참지 못했던 아내 유리의 행동이었습니다.
이와 맞물려 가정 분위기를 견디지 못해던 딸 사나에가 뒷문을 몰래 열어두었습니다. 빈집털이가 기승을 부린다는 뉴스를 보고요. 예상대로 빈집털이는 집에 침입해 부모를 결박했는데, 빈집털이가 돌아간 뒤 부모를 증오하던 아들 다이치가 부모를 살해했고말았습니다. 하지만 빈집털이가 되돌아왔고 - 아마도 유리의 미모에 혹해서 -, 다이치가 덤벼들자 그를 구타하고 도주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다이치가 죽기 위해 독극물을 마신 뒤, 사나에가 부모가 묶였던 줄 등의 증거를 태운 뒤 집 밖으로 가져나가 (물론 뒷문으로) 인멸했던겁니다.
사나에의 고백이 전부라는 한계가 있기는 하지만 꽤 설득력 있는 이야기였습니다. 앞서 관계자가 말했던 공범자 설이라던가, 어른이 관절을 빼고 좁은 창문으로 들어와서 범행을 저질렀다는 추리보다는 훨씬 낫더군요.
이후 신견이 사나에와 동거하며 스스로 추리해내는 또다른 진상 - 아마도 더 사실에 가까울 - 도 괜찮았습니다. 신견은 어린 아이가 오빠가 달라는 독약을 가져다 주고, 증거를 인멸한건 이상하다며 일종의 리허설이 있었을거라 추리합니다. 다이치가 가져다 달라고 했던건 그 전에도 스트레스가 심할 때 먹었던 수면제였을거라면서요. 즉, 사나에가 오빠를 살해했다는 거지요.

묘사도 빼어납니다. 특히 사라진 줄 알았던 R이 다시 등장하여 신견이 서서히 폭주해나가는 과정, 그리고 사나에 가정이 붕괴되는 과정 등 극한 상황으로 빠져드는 과정이 아주 실감납니다. 신견의 심리 묘사도 탁월하고요. 아쿠타카와 상을 수상한 작가다운 필력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이런 전개 과정에서 신견이 자기 머리 속에 R이라는 범죄자같은 인격을 품고 있었다는 중2병스러운 설정을 비교적 적절한 복선으로 사용하고 있는게 좀 놀라왔습니다. 마음이 병들어 있던 사나에가 그런 신견을 중학생 때 보고 관심을 가진게 지금 시점에서 둘이 만나게 된 계기였다고 하거든요. 이런 사소한 디테일이 잘 짜여져 있다는 느낌을 전해주는 것 같아요.

그러나 문제가 없지는 않습니다. 솔직히 경찰이 뒷문 방범 카메라가 조작되었다는걸 눈치채지 못했다는건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무려 3명이나 되는 가족이 살해당한 강력 사건인데 , 이렇게 허술하게 수사가 이루어졌다는건 납득하기 힘들죠. 정신과 의사가 다이치가 치료 중 그렸던 그림과 공작이 사건 현장과 동일하다는, 즉 다이치가 범인이라는 명백한 증거를 숨기고 있었던 이유도 석연치 않고요.
또 추리, 범죄물을 기대하고 읽는다면, 다소 지루합니다. 추리, 범죄물보다는 심리 묘사에 중점을 둔 범죄 드라마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2023/06/08

걸작 밀실 미스터리 : 불가능 범죄 베스트 10


짧게 번역해 보았습니다. 오역이 많은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영국의 추리 소설가 톰 미드(국내에 소개된 적은 없네요)가 밀실 미스터리의 장대한 역사와 밝은 미래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먼저 "밀실 미스터리"라는 용어는 정확히 무엇을 의미할까요? 밀실 미스터리를 다른 장르와 차별화하는 요소는 '불가능'이라는 요소입니다. 사실 저는 이 용어를 '불가능한 범죄'와 동의어로 사용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에서 범죄(보통 살인)가 저질러지는 이야기를 의미합니다. 이러한 이야기는 종종 초자연적인 사건과 불길한 분위기로 으스스하고 섬뜩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그러나 (그리고 이것이 중요한 부분입니다.) 결국 모든 것이 기발한 추리와 합리적인 설명에 의해 눈부신 스타일로 풀리게 됩니다.

그렇다면 이 장르는 어디서 시작되었을까요? 에드거 앨런 포의 <<모르그 거리의 살인>>은 최초의 밀실 미스터리로 꼽히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소설은 미스터리라기보다는 공포, 호러 소설에 가깝고 실제로 탐정이 거의 등장하지 않기 때문에 논란의 여지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큰 영향을 미쳤으며 이후 몇 년 동안 장르의 틀을 세우는 데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초기 작품으로는 윌키 콜린스의 단편 소설 <<무시무시하고 이상한 침대>>가 있습니다 (물론 콜린스는 최초의 제대로 된 '탐정 소설'인 <<월장석>>을 쓴 작가로 인정받고 있기도 합니다). 아서 코난 도일의 <<얼룩 띠>>도 마찬가지입니다.
20세기에 접어들면서 밀실 미스터리는 본격적으로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습니다. 이스라엘 장윌의 <<빅 보우 미스터리>>와 가스통 르루의 <<노란 방의 비밀>>은 상승 궤도에 있던 장르의 초기 하이라이트를 장식했습니다.

탐정 소설의 황금기에는 밀실 미스터리의 인기가 붐을 이루었습니다. 밀실 미스터리는 퍼즐이 핵심인 '공정한 페어플레이 미스터리'에서 특히 도전적인 하위 장르이기도 합니다. 아가사 크리스티, 도로시 L. 세이어스, 엘러리 퀸과 같은 위대한 작가들은 독자가 가상의 범죄를 스스로 해결하는 데 필요한 모든 단서를 제공함으로써, 독자와 공정하게 경쟁하는 것을 중요시했는데 이는 밀실 미스터리의 주요 요소이자 오늘날 우리가 이해하는 장르의 중요한 요소이기도 합니다.
존 딕슨 카가 문학계에 충격을 주며 등장한건 1930년대 초, 황금기가 절정에 달했을 때였습니다. 카는 최고의 밀실 미스터리의 대가이자 저에게 끊임없는 영감의 원천입니다. 그는 30년대와 40년대에 걸쳐 걸작을 연이어 썼으며, 그의 경력은 풀리지 않을 것 같은 문제를 놀라운 감각으로 풀어내는는 능력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는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30년대와 40년대 대부분을 영국에서 살았습니다. 따라서 그는 영국 범죄소설 커뮤니티에서 환영을 받았으며, 권위 있는 영국 탐정 협회에 입회한 단 두 명의 미국인 중 한 명이기도 했습니다.

밀실 미스터리는 제2차 세계대전의 여파로 인기가 하락했지만 (이후 수십 년 동안에도 여전히 훌륭한 작품이 많이 출판되었지만), 다시 운이 트이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Jonathan Creek, Monk, Death in Paradise와 같은 TV 쇼는 새로운 세대에게 불가능한 문제의 즐거움을 소개했습니다. 다니엘 스태샤워와 빌 프론지니 같은 작가들이 기억에 남는 상상력 넘치는 작품을 계속 발표하면서 책으로도 계속 인기를 얻고 있고요. 하지만 이 장르를 처음 접한다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요? 시작을 돕기 위해 제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밀실 미스터리 10편의 목록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이 목록은 지난 세기 동안 정말 눈부신 작품을 만들어낸 장르의 최고를 대표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작가당 한 권의 소설만 선정하였고 (그 자체로 거의 불가능한 작업이었죠), 매일 새로운 작품을 발견하여 빠르게 늘어나는 책장에 추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긴장감을 위해 역순으로 제 상위 10권을 소개합니다:

WHISTLE UP THE DEVIL : 데릭 스미스 (1953) (국내미출간)
데릭 스미스에게 특별한 친밀감을 느끼는 이유는, 그도 저처럼 자신이 존경하는 거장들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밀실 미스터리를 쓰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1953년에 처음 출간된 WHISTLE UP THE DEVIL은 두 건의 불가능한 살인 사건으로 이 장르에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모든 것은 비 오는 어느 날 밤, 로저 퀘린이라는 남자가 살해되면서 시작되지요.
슬프게도 이 소설은 스미스의 생애에서 출판 된 유일한 소설이었습니다. 스미스가 워싱턴 포스트에서 걸작으로 칭송받은 WHISTLE UP THE DEVIL로 찬사를 받기 시작한지는 고작 10년밖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BLOODHOUNDS : 피터 러브시 (1996)
피터 러브시는 고전적인 스타일의 퍼즐 미스터리를 대표하는 작가로, 그의 피터 다이아몬드 시리즈는 고전 본격물의 공정함과 경찰 수사를 완벽하게 조화시켰습니다. BLOODHOUNDS는 미스터리 소설 애호가 그룹이 실제 밀실 미스터리에 휘말리는 이야기를 다룬 대표적인 소설입니다. 따라서 존 딕슨 카의 이름이 자주 언급됩니다. 잠겨 있고 뚫을 수 없는 운하 바지선에서의 살인 사건이라는 매우 특이한 문제도 등장합니다. 이 장르가 처음이고, 잘 알지 못한다면 이 작품부터 시작해도 좋습니다.

INVISIBLE GREEN : 존 슬래덱 (1977)
존 슬래덱은 공상 과학 소설계에서 중요한 인물이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뛰어난 불가능한 범죄 소설인 Black Aura와 INVISIBLE GREEN은 오랫동안 외면당해 왔어요. 특히 INVISIBLE GREEN은 작가의 다재다능한 상상력, 생동감 넘치는 묘사, 예리한 논리를 보여줍니다. 고전 본격물의 황금기가 끝난 지 한참 지난 1970년대에 출간되었다는 점에서 이례적인 작품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마추어 탐정 태커이 핀은 에드먼드 크리스핀의 저비스 펜과 같은 수준의 황금기 밀실을 완벽하게 보여줍니다. 슬래덱이 공상 과학 소설을 위해 그를 버리기 전까지 핀은 단 두 편의 소설과 단편 소설에만 등장했을 뿐인데 정말 안타깝습니다. 그가 또 무엇을 성취할 수 있었을지 누가 알겠습니까?

NINE TIMES NINE : H.H. 홈즈 (앤서니 부셰) (1940)
앤서니 부셰는 미스터리 장르의 진정한 학자였으며, 실제로는 미스터리를 거의 쓰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Bouchercon' 덕분에 그의 명성은 계속 높아져 갔습니다. 하지만 그가 쓴 몇 편의 미스터리는 놀라울 정도로 훌륭합니다. NINE TIMES NINE에는 빛의 아이들이라는 사악한 종교가 등장합니다. 이 종교를 믿지 않는 사람이 빛의 아이들을 이끄는, 수수께끼 같은 두건을 쓴 지도자에게 저주를 받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매우 모호한 상황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노란 가운을 입은 의문의 남자가 범죄 현장에서 목격된 후 사라지고요. 우르술라 수녀는 이 복잡한 사건의 여러 얽힌 실타래를 풀 수 있는 유일한 인물입니다.

MR. SPLITFOOT : 헬렌 맥클로이 (1969)
밀실 미스터리에 관한 한, 헬렌 맥클로이의 <<어두운 거울 속에>>는 비평적 논의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작품이며, 당연히 그럴 만합니다. 심리학자 바질 윌링 박사가 등장하는 이 시리즈는 도플갱어의 출현이라는 불가능해 보이는 문제를 다룬 멋진 작품입니다. 매우 불길하면서도 몽환적인 분위기와 잊혀지지 않는 결말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여기에 포함하기로 한 맥클로이 작품은 바질 윌링 시리즈의 후기 작품입니다. 말 그대로 밀실 미스터리에 더 가깝기 때문입니다. <<어두운 거울 속에>>와 마찬가지로 MR. SPLITFOOT 역시 특유의 분위기를 놓치지도 않고요. 예를 들어, 제목은 다름 아닌 사탄에 대한 언급입니다. 
이 소설은 밤을 보낸 사람은 아침에 시체로 발견된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유령의 방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모두의 예상대로, 전설을 시험해 보려는 자원자가 곧바로 등장합니다....

<<혼진 살인사건>> : 요코미조 세이시 (1946)
요코미조 세이시는 일본에서 셜록 홈즈에 버금가는 탐정 긴다이치 코스케를 만들어낸 전설적인 작가입니다. 혼진 살인 사건은 킨다이치가 요코미조의 소설에 출연한 77편의 작품 중 첫 번째 작품으로, 결혼식 날 밤 잔인하게 살해당한 채 발견된 한 쌍의 신혼 부부 사건을 해결하는 내용입니다.

<<모자에서 튀어나온 죽음>> : 클레이튼 로슨 (1938)
마술과 문학을 결합하는걸 전문으로 하는 작가의 놀라운 데뷔작입니다. 그는 마술사이자 존 딕슨 카의 절친한 친구이기도 했습니다. 카처럼 클레이튼 로슨도 해리 후디니와 같은 과거의 전설적인 마술사들을 존경했습니다. 로슨의 탐정인 위대한 멀리니에는 분명히 후디니의 요소가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 멀리니 이야기는 가장 순수한 '미스디렉션'을 보여줍니다.

THE CRIMSON FOG : 폴 할터 (1988)
폴 할터는 종종 존 딕슨 카의 후계자로 설명되는데,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는 독특한 문제를 제시할 뿐만 아니라 긴장감과 불안감을 조성하는 데에도 탁월한 재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의 모든 소설을 강력히 추천하지만, 마술 쇼 중 무대에서 벌어지는 불가능한 살인을 다룬 THE CRIMSON FOG는 그의 작품을 처음 접하는 독자들에게 이상적인 출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대담하니까요! 또 잭 더 리퍼가 직접 카메오로 출연하기도 합니다.

RIM OF THE PIT : 해크 탤벗 (1944)
서프라이즈! 또 다른 마술사, 해크 탤벗은 프로 마술사 헤닝 넬름스가 두 편의 환상적인 밀실 미스터리인 The Hangman’s Handyman과 RIM OF THE PIT을 출간할 때 사용한 가명이었습니다. 두 작품 모두 모험가이자 탐정인 로건 킨케이드가 등장하며, 작가의 기발한 상상력을 풍부하게 선보입니다. 
RIM OF THE PIT에서는 초현실적이고 악마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며, 눈 덮인 시골을 배회하는 섬뜩한 유령이 등장합니다. 하지만 물론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제제벨의 죽음>> : 크리스티아나 브랜드 (1948)
크리스티아나 브랜드는 정말 뛰어난 미스터리 작가였습니다. 더 많은 작품을 쓰지 못한 것이 아쉽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야전 병원으로 사용되었던 영국의 시골집을 배경으로 한 그녀의 책 <<녹색은 위험>>은 그녀의 작품 중 가장 널리 읽힌 작품입니다. 정말 위대한 황금기 미스터리지요. 
하지만 밀실 미스터리와 불가능한 범죄로는 <<제제벨의 죽음>>이 최고입니다. 시리즈 탐정 코크릴 경감이 등장하는 이 작품은 특히나 독특하고 수수께끼 같은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노쇠하고 악연이 깊은 여배우가 무대에서 살해당한 미스터리한 상황을 말이지요. 퍼즐에 대한 해답은 놀랍기 그지없습니다. 반드시 읽어보아야 할 작품입니다!

<<세 개의 관>> : 존 딕슨 카 (1935)
각 작가가 하나의 작품만 선택해야 한다고 강조한 이유가 있습니다. 존 딕슨 카는 "걸작"이라는 범주에 속하는 책을 너무 많이 썼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그의 작품을 낭송하는 것만으로도 목록을 쉽게 채울 수 있지요. <<세 개의 관>>은 아마도 그의 가장 유명한 작품일 것이며, 무한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소설입니다. 처음 읽은 지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 있네요. 기디온 펠 박사가 눈이 내리는 런던의 거리에서 보이지 않는 살인범과 사투를 벌이는 이야기입니다.
아울러, 그는 자신의 이름으로 기디온 펠 미스터리를 썼지만 카터 딕슨이라는 필명으로 다른 시리즈도 썼는데, 이 시리즈에는 친구들에게 H.M.으로 알려진, 거구의 탐정 헨리 메리벨 경이 등장합니다. 이 작품들은 모두 찾아볼 가치가 있습니다. 기디온 펠 이야기와 H.M. 작품들 중 일부는 불가능에 대한 힌트가 없는 단순한 후더닛이지만, 모두 눈부실 만큼 훌륭합니다! 존 딕슨 카와 그의 놀라운 작품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려면 더글러스 그린의 전기 he Man Who Explained Miracles를 강력 추천합니다.

밀실 단편 소설
밀실 미스터리는 장편 소설에만 국한된 것은 아닙니다. 엘러리 퀸 미스터리 매거진과 같은 출판물에서는 과거와 현재의 작품을 계속해서 출판하고 기념하는 등 밀실 미스터리는 단편 소설 형식으로도 활발히 발표되고 있습니다. 저도 여러 편의 밀실 미스터리 단편 소설을 직접 썼기 때문에 (“The Indian Rope Trick”. “The Footless Phantom”은 모두 EQMM에 실렸어요), 불가능해 보이는 문제를 몇 페이지 안에 공정하고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에드워드 D. 호크와 같은 작가를 깊이 존경합니다. 특별한 순서는 없지만, 여기 몇 가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늙은 떡갈나무의 수수께끼>> 에드워드 D. 호크 (1978)
제가 단편 작품 섹션을 포함시킨 주된 이유는 호크 때문입니다. 그는 카에 필적할 만한 상상력을 가졌지만, 거의 전적으로 단편 소설을 전문으로 하여 평생 동안 1,000편에 가까운 작품을 썼습니다. 그의 작품 중 단 한 편을 꼽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지만, 아마도 그의 가장 유명한 시리즈는 작은 마을의 의사가 탐정으로 변신한 샘 호손이 등장하는 시리즈일 것입니다. 호손의 모든 이야기 중에서도 <<늙은 떡갈나무의 수수께끼>>는 독창성과 문학적 성취로 특히 주목할 만합니다.

<<>> 아가사 크리스티 (1937)
황금기 미스터리 관련 글에서 아가사 크리스티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녀는 밀실 추리 소설을 많이 쓰지는 않았지만, 그녀의 포와로 시리즈 작품인 <<에르큘 포와로의 크리스마스>>와 <<메소포타미아의 살인>>에는 교묘하게 고안된, 불가능 문제들이 등장합니다. 그녀의 대표작인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가 밀실 미스터리에 포함되는지 여부에 대한 논쟁도 있고요. 저는 여기에 포함시키지 않기로 결정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걸작인건 분명합니다. 이 작품 대신 벨기에의 작은 회색 뇌세포가 꿈에서 예언된 밀실 살인 사건에 휘말리는 단편 소설 <<꿈>>을 선택했습니다.

<<붉은 밀실>> 아유카와 테츠야 (1954)
일본에서 밀실 미스터리와 본격 미스터리의 신조를 확립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친 (그리고 끔찍한) 이야기입니다.

<<녹색 문은 위험>> 노리즈키 린타로 (1991)
완벽한 퍼즐 미스터리이자 신본격 장르의 주옥같은 작품.

<<The Name on the Window>> : 에드먼드 크리스핀 (1953)
크리스핀은 뛰어난 재치를 지닌 작가이자 저처럼 카의 열렬한 팬이었습니다. 그의 시리즈 탐정인 저비스 펜과 이 깔끔한 밀실 문제를 통해, 크리스핀은 자신이 거장의 제자임을 증명했습니다.

<<The House in Goblin Wood>> : 카터 딕슨(존 딕슨 카) (1947)
헨리 메리 베일 경은 이 진정으로 감각적인 작품에서 불가능해 보이는 실종에 맞서 그의 재치를 발휘합니다.

<<The Border-Line Case>> : 마저리 앨링엄 (1936)
앨링엄은 크리스티와 마찬가지로 밀실이나 불가능한 범죄 이야기를 전문으로 하지 않은 또 다른 '범죄의 여왕'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The Border-Line Case은 이 장르의 훌륭하고 완벽하게 구성된 예입니다.

<<From Another World>> : 클레이튼 로슨 (1948)
강령회가 예상치 못한 기괴한 결과를 낳는 단편 걸작.

<<13호 독방의 문제>> : 자크 푸트렐 (1905)
장르의 초석을 다진 작품. 반드시 읽어야만 합니다.

<<개의 신탁>> : G.K. 체스터턴 (1926)
체스터턴브라운 신부는 홈즈, 포와로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위대한 탐정입니다. 체스터턴 자신이 존 딕슨 카의 기드온 펠의 모델이었다는 사실은 말할 것도 없죠!

<<The X Street Murders>> : 조셉 커밍스 (1957)
조셉 커밍스는 슬프게도 잘 알려지지 않은 또 다른 작가로, 시리즈 캐릭터 브룩스 U. 배너 상원의원은 헨리 메리베일 경의 후계자라 할 수 있습니다.

<<The House of Haunts>> 엘러리 퀸 (1935)
엘러리 퀸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미스터리 작가 중 한 명입니다 (사실 그는 두 명입니다. 사촌 프레드릭 다네이와 맨프레드 리가 만든 가명이었죠). 안타깝게도 두 사람은 밀실 미스터리를 많이 쓰지 않았지만, 그들이 쓴 밀실 미스터리는 모두 읽을 만한 가치가 있었습니다. <<차이나 오렌지의 비밀>>과 <<the Door between>>모두 밀실 문제를 다룬 훌륭한 소설이지만, 두 작품 모두 불가능성이 다른 더 눈부시고 기발한 플롯 요소에 가려져 목록에 포함시키지 않았습니다. 하우더닛보다는 후더닛으로 읽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존 딕슨 카를 읽은 남자>> 윌리엄 브리튼 (1966)
이 책도 꼭 포함시켜야 했어요. 제목만 봐도 알 수 있죠! 마지막에 유쾌한 반전이 있는 멋진 블랙 코미디 작품입니다.

밀실 미스터리의 미래
그렇다면 이제 어디로 가야 할까요? 다행히도 밀실 미스터리 장르가 다시금 르네상스를 맞이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현대 작가들의 새로운 작품이 매일 출간되고 있고, 이 장르에서 부당하게 외면받았던 고전이 재발간되는 것을 보면 정말 기쁩니다. 최근 신작으로는 Gigi Pandian의 Under Lock과 Skeleton Key, 짐 노이의 <<붉은 죽음 살인 사건>> (에드거 앨런 포의 "붉은 죽음의 가면"을 매혹적으로 재해석한 작품!), 제임스 스콧 번사이드의 <<배링턴 힐스 뱀파이어 사건>> 등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또한 마틴 에드워즈의 뛰어난 레이첼 새버네이크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인 <<블랙스톤 펠>>은 밀실 요소가 특징인 것으로 알고 있고, 로버트 소로굿의 아늑한 미스터리 시리즈 두 번째 작품인 <<말로우에 죽음이 찾아왔다>>도 기대가 됩니다. 앞으로도 밀실 미스터리와 불가능한 범죄가 계속 번성하기를 바랍니다.

2023/03/26

죽음의 전주곡 - 나이오 마시 / 원은주 : 별점 2점

죽음의 전주곡 - 4점
나이오 마시 지음, 원은주 옮김/검은숲
<<아래 리뷰에는 진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한적한 시골 마을 펜쿠쿠에서 자선 행사로 교구 교민들이 진행하는 소박한 연극이 진행되던 중, 살인 사건이 벌어졌다. 피해자는 마을의 부유한 노처녀 이드리스 캠패뉼러로, 그녀는 피아노 연주를 하다가 피아노 안에 장치된 총에 맞아 즉사하고 말았다. 런던 경시청 범죄 수사반 로더릭 앨린 경감이 수사를 맡게 되는데.... 

전성기에는 애거서 크리스티, 도로시 세이어즈, 마저리 앨링엄과 더불어 4대 범죄 소설의 여왕이라고 불렸다는 - 누가 불렀는지는 모르겠지만 - 나이오 마시의 장편. 국내에는 첫 소개된 작품입니다. 유명세는 익히 알고 있었지만 500페이지 가까운 분량 때문에 선뜻 손이 가지 않다가 이번에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읽어보니, 지극히 전형적인 황금기 시절 영국 시골 마을 추리물이더군요. 미스 마플 시리즈를 연상케 할 정도로 심도깊은 마을 주민들 묘사가 인상적이에요. 소수의 등장인물들을 많은 분량을 할애하여 꼼꼼하게 설명해주고 있는 덕분입니다. 거기에 더해 앨린 경감의 발로 뛰는 수사 역시 치밀하게 그려집니다. 

하지만 좋은 작품이냐 하면 그렇다고는 이야기 못 하겠네요. 단순 소거법으로만 보아도 범인이 누군지는 상당히 뻔한 탓입니다. 
주요 등장인물 일곱명 중 월터 목사와 그의 딸 다이나, 저닝햄 부자는 일단 제외됩니다. 노처녀들의 목사에 대한 짝사랑은 엄청나지만, 목사가 그 때문에 사람을 죽인다는건 상상하기 힘들고 다이나와 헨리 저닝햄의 사랑을 방해하는건 엘리너 프랜티스이지 이드리스 캠패뉼러는 아닙니다. 조슬린 저닝햄은 아예 동기 자체가 없고요. 의사인 템플렛 박사와 셀리아 로스도 마찬가지, 둘의 불륜을 눈치챈건 엘리너 프랜티스이지 이드리스 캠패뉼러가 아니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이드리스가 죽으면 그녀로부터 유산도 받고, 연적까지 없앨 수 있던 엘리너 프랜티스가 범인일 가능성이 가장 높습니다.
물론 피아노 연주자가 갑자기 바뀌었다는 설정 때문에 엘러너에게 원한을 품은 누군가가 범행을 저지르지 않았을까?라는 추리도 가능합니다. 작품도 당연히 그 쪽으로 몰아가고 있고요. 하지만 연주를 포기한건 엘리너 본인이라는 점에서 이건 수수께끼가 될 수 없습니다. 게다가 수사를 통해 엘리너가 이미 피아노에 장치되었던 물총에 맞았었고, 공연 직전 피아노 연주 때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는게 밝혀진 시점에서 범인은 확정입니다. 물총이 장치된걸 알았던 사람이 총을 바꿔치기 했을테니 그건 엘리너입니다! 

자, 이렇게 범인이 드러났으니 사건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마지막 장치 트릭만 남았습니다. "피아노에 아무도 다가가지 않았는데 어떻게 총을 장치했는지?" 라는 트릭입니다. 그런데 나중에 추리쇼를 통해 밝혀진 진상은, 피아노 뒤에 쳐진 무대막 사이로 손을 넣어서 안전장치를 풀었다는 겁니다. 여기서 독자는 어리둥절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밝혀진 상황만 놓고 보면 무대를 한 번 보면 누구나 알 수 있었을걸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왜 아무도 "무대막 뒤에서 손을 뻗으면 됩니다!" 라고 말하지 않았던걸까요? 이 정도 트릭이면, 아니 트릭이라고 부를 수 없는 단순한 상황을 앨린 경감 등이 기묘한 불가능 범죄처럼 언급하는 이유도 모르겠고, 수사가 이렇게 오래 걸릴 이유도 없습니다. 또 무대에 대한 묘사가 잘 되어 있지 않아서 독자가 추리를 할 수 있는 여지가 전무하다는 점에서 공정함 측면에서는 낙제점을 줄 수 밖에 없고요. 앞부분에 펜처치 지역 지도를 실어놓지 말고, 무대에 대한 그림을 실어주었어야 했습니다.
양파나 상자와 같은 요소에 집착하는 것도 그리 좋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디테일은 나쁘지 않습니다. 허나 이들이 어떻게 된 건지 알아내지 못하더라도, 범인은 충분히 체포할 수 있었습니다. 빅토리아 시기 명탐정 흉내로밖에는 보이지 않았어요.

이에 더해 이야기가 너무 길다는 문제도 큽니다. 특히 초반부, 사건이 벌어지기 전 100여 페이지는 짜증나는 노처녀들의 심리를 장황하게 그려서 도저히 페이지를 넘기기 힘들 정도로 끔찍했어요. 노처녀들에 대한 '살의'를 촉발시킨다는 점에서는 잘 된 묘사일 수는 있겠지만... 독자가 살의를 품어서 뭘 하겠습니까? 

그래서 별점은 2점. 몰랐던 작가의 몰랐던 탐정을 접했다는 역사적 가치 말고는 딱히 건질게 없었습니다. 왜 지금은 잊혀진 작가가 되었는지 잘 알 수 있었네요. 당시에는 먹혔을지 몰라도 지금 시점에서 읽기에는 한없이 지루했습니다. 권해드릴만한 작품은 아닙니다.

2022/12/17

밤에 걷다 - 존 딕슨 카 / 임경아 : 별점 2점

 

밤에 걷다 - 4점
존 딕슨 카 지음, 임경아 옮김/로크미디어

<<아래 리뷰에는 진상과 트릭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파리 경시청 총감 방코랭은 스포츠 스타 살리니 공작으로부터 신변 보호 요청을 받았다. 아내 루이즈의 전남편 로랑이 협박 편지를 보낸 탓이었다. 로랑은 정신병으로 입원했다가 의사를 죽이고, 성형 수술을 한 뒤 도주 중인 위험인물이었다.
공작 부부를 만나러 페넬리의 가게에 방문한 방코랭 일행은 얼마 지나지 않아 완벽한 밀실에서 목이 잘린채 살해된 공작의 시체를 발견했다. 뒤이어 유력한 용의자였던 공작의 친구 보트렐르도 목이 베여 살해되고 말았다.
로랑은 어떻게 유럽 대륙을 건너 밀실에서 살인을 저지르고 깜쪽같이 사라졌을까?


존 딕슨 카의 앙리 방코랭 시리즈 장편. 데뷰작이기도 합니다. 괴이하면서도 신비로운 분위기, 그리고 정신병자 살인마가 괴이한 상황에서 사람 목을 베어 죽이는 간담 서늘한 묘사들은 고딕 호러물 느낌도 전해줍니다. 같은 시리즈인 <<해골성>>과 비슷하게요.

추리적으로는 밀실의 제왕 존 딕슨 카다운 밀실 살인 사건이 서두부터 등장하여 눈길을 잡아끕니다. 펠리니의 가게 3층의 방은 앞, 뒷문 모두 감시가 확실했고 (심지어 문 하나는 방코랭이 직접 감시!), 창 밖으로는 아무도 들어올 수 없었으며 비밀 통로도 일체 없었던 완벽한 밀실이었고, 용의자들의 알리바이도 완벽했거든요. 트릭이 무엇이었을지 아주 궁금하게 만들어 주었어요.
지명수배범인 로랑이 국경을 건넌 방법에 사용된 트릭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대륙에서 공작을 살해한 뒤, 공작으로 변장하고 국경을 건넌 것으로, 간단해서 현실적일 뿐 아니라 단서들 제공이 아주 공정했던 덕분입니다. 유럽 대륙을 갔다온 이후 공작이 180도 변했다는 증언과 단서들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많거든요. 공작이 마약 중독자였다는 설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를 초반부 공작의 짐은 국경에서 검사를 하지 않는다고 이야기와 연결하여 '공작이 마약 밀수를 했다'는 식으로 독자를 이끌지만, 알고보니 스포츠맨 공작은 마약 중독일 수 없으니 다른 사람이라는 결론에 이르는 단서였지요.
탐정으로서 매력은 다소 떨어지지만, 방코랭의 추리법에 대한 소개 등도 추리 애호가로서 볼 만 했습니다. 지식이나 경험없이 타고난 통찰력만으로 수사관이 될 수 없다며, 과학 수사 기법을 비롯하여 분석에 대한 전문가적인 지식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고 일갈하는데, 시대를 앞서간 생각이었어요.

벨 에포크 시대를 정면으로 다루는 배경 설정도 볼거리였습니다.. 공작 등 귀족들이 화려한 옷을 입고 자유분방한 연애를 하며 마약을 빨면서 검술 대결을 펼치는데, 자동차를 타고다니고 전기불이 존재하는 이색적인 세계의 풍광이 잘 묘사되어 있으니까요. 분명 존재했던 과거인데 이상할 정도로 비현실적이라서 이런 곳이라면 명탐정과 미치광이 연쇄 살인범이 있어도 자연스러울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일제 강점기 당시, '마굴'이라 불렸던 상하이 분위기가 비슷하지 않았을까 싶네요.

하지만 딕슨 카의 다른 걸작들에 비하면 많이 처집니다. 추리적인 부분에서의 문제가 너무 커요. 밀실 트릭부터가 알고보면 별게 아니었거든요. 설명도 부족했고요. 공작 (으로 변장했던 로랑)은 이미 11시경에 부인에게 살해당했고, 11시 30분에 목격된 공작은 보틀레르의 변장(?)이었다는 트릭이 사용되었습니다.
문제는 카드룸 입구를 지켜보는 경찰 눈에 뜨이지 않고 흡연실로 들어갈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카드룸 문은 벽 때문에 홀에 서 있는 그 누구라도 문을 볼 수 없었다나요. 그렇다면 이건 밀실이 아니었던 겁니다! 이런걸 현장에 있었던 명탐정 방코랭이 몰랐다는게 말이나 될까요? 게다가 이 중요한 사실이 독자에게는 제대로 설명되지도 않습니다. 맨 첫 장에서 약도가 제공되기는 하나 이 정도로는 부족했어요.
보틀레르가 아무런 변장도 하지 않고 로랑처럼 보였던 이유, 루이즈 부인 몸에 반드시 튀었을 핏자욱은 어떻게 처리했는지 등 설명되지 못한 점도 너무 많습니다. 보틀레르가 가발이라도 썼더라면 모를까, 여러모로 억지스러워서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네요.

처음에 등장해서 살해당했던 살리니 공작은 변장한 로랑이었다는 트릭도 억지스러웠습니다. 아무리 연기력이 뛰어나고 얼굴이 닮았다 하더라도, 주위 사람들이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는건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지금도 아니고, 이 당시 성형수술 수준은 별볼일 없었을텐데 말이지요. 옛 친구야 안 만났다쳐도, 공작 가문의 오래된 변호사 키라르의 눈까지 속였다는건 지나쳤어요.
또 변장에 성공했는데, 자기 자신을 협박하는 편지를 써서 경찰에 신변 보호 요청을 한 이유도 모르겠습니다. 특별히 경찰과 게임을 하고 싶었던 것 같지도 않고, 그나마 생각해 볼만한건 자기 과시지만 그걸 위해서는 잃는게 너무 많아서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 보였습니다. 방코랭의 추리대로 루이즈 부인을 살해하고 도주할 생각이었다면, 경찰을 부를 이유는 없었어요.

루이즈 부인의 자백만으로 마무리되는 결말도 그닥이었습니다. 첫 번째 범행은 그렇다쳐도, 보틀레르를 살해할 때의 증거는 이미 방코랭이 차고 넘치게 모은 것으로 보여서, 구태여 자백은 필요도 없었습니다. 그녀가 남자들에게 농락당한 기구한 인생이라는게 잘 그려지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이용한 남자들을 깔끔하게 살해한 팜므 파탈로 보기에는 범행이 허술해서 이도저도 아닌 캐릭터가 되어 버리고 말았어요.
게다가 루이즈 부인이 모든 트릭과 살해 방법을 스스로 말하는 탓에, 방코랭은 별로 하는게 없다는 문제도 큽니다. 모든 트릭을 알아챘다고는 하지만, 정작 하는거라고는 루이즈 부인의 자백에 추임새를 넣는 것 밖에 없어서 이게 과연 명탐정인가 싶더라고요. 물론 진짜 공작의 시체를 발견하고, 루이즈 부인이 진범이라는걸 알아내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명탐정이라면 마지막 루이즈 부인 자백에서도 뭔가 존재감을 보여주었어야 했습니다. 이런 점이 방코랭을 다른 딕슨 카의 명탐정들만큼이나 기억에 남지 못한 이유가 아니었나 싶네요.
화자인 미국인 제프 역시, '사랑꾼' 으로의 모습 말고는 아무런 활약을 보이지 못해서 인상이 흐릿한건 마찬가지에요.

그래서 제 별점은 2점. 절판된지 오래인데, 구태여 구해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번역 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가독성도 떨어지는 편이고요.
오래전 처음 읽었을 때에는 아주 좋았던 기억이 남아있는데, 나이를 너무 많이 먹었나봅니다. 제가 읽었던 딕슨 카 작품 중에서는 최악입니다.

2022/03/09

블랙 머니 - 로스 맥도날드 / 박미영 : 별점 2점

블랙 머니 - 4점
로스 맥도날드 지음, 박미영 옮김/황금가지

아래 리뷰에는 내용, 진상, 범인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부촌 몬테비스타를 찾은 루 아처는 피터 제이머슨의 의뢰로 수상쩍은 남자 프란시스 마텔의 조사에 착수했다. 피터의 약혼녀였던 지니가 홀딱 반했기 때문이었다. 조사 결과, 마텔의 정체는 몬테비스타 테니스 클럽에서 웨이터로 일했던 가난뱅이 불법 체류자 펠릭스 세르반테스였다. 그는 7년 전, 지니 아버지 로이가 자살한 직후 파리 유학을 떠난 뒤 출세해서 첫 눈에 반했던 지니 앞에 나타난 것이었다. 유학은 라스베가스 도박사 케첨 (레오 스필먼)의 도움 덕분이었고, 마텔이 가지고 있던 현금 십만여달러 역시 레오 스필먼의 돈이 아닐까 생각되었다. 그러나 이런 과거를 더듬어 가는 와중에 지니의 어머니 마리에타, 마텔이 차례로 살해당하는데...

하드보일드 3대장 중 한 명인 로스 맥도날드루 아처 시리즈 장편. 제목의 블랙 머니는 라스베가스에서 도박장을 운영하는 레오 스필먼이 탈세로 빼돌린 돈을 의미합니다. 카지노에서 큰 돈을 잃은 사람들을 찾아가, 할인된 금액으로 수금을 하는 식으로 빼돌렸던 거지요.

거장의 작품답게 읽는 재미는 상당합니다. 별 것 아닌 듯한 의뢰가 점점 커져가고, 이 와중에 등장인물들이 서로 더럽게 얽히고 섥힌 관계가 드러나는 전형적인 하드보일드 스릴러임에도 불구하고, 적절한 완급 조절과 흥미를 돋우는 묘사와 전개로 독자를 몰입하게 만드는 솜씨가 빼어난 덕분입니다.

그러나 완성도는 그닥입니다.  설득력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등장하는 사건을 처음부터 순서대로 풀어보지요.

  1. 7년 전, 레오 스필먼은 도박 빚 대신 딸을 상납하기로 했지만 약속을 지키지 않은 로이 파블론을 구타했습니다.
  2. 혼절한 로이 파블론을 태블론 교수가 수영장 속에 밀어 넣어 살해했습니다.
  3. 펠릭스 세르반테스는 레오 스필먼을 협박해서 유학을 떠납니다.
  4. 펠릭스는 유학 후 프란시스 마텔이라는 가명으로 신분 세탁을 한 뒤, 파나마 영사관에서 일하게 됩니다.
  5. 마텔은 영사관 직원 신분을 이용하여 레오 스필먼의 블랙머니 세탁을 돕습니다.
  6. 7년이 후, 레오 스필먼이 뇌졸증으로 쓰러지자 프란시스 마텔은 모든 블랙머니를 들고 달아닙니다.
  7. 마텔은 몬테비스타를 찾아 첫 눈에 반했던 버지니아 (지니) 파블론의 마음을 사로잡는데 성공합니다.
  8. 지니는 태블론 교수와 불륜 관계로 단지 돈이 필요해서 마텔과 결혼했습니다. 곧바로 이혼하고 위자료를 챙길 셈이었고요.
여기까지가 이야기에서는 후반부에 드러나지만, 전체 시간 순서상으로는 사건의 도입부인 셈인데, 인간들이 서로 엮이게 된 동기가 명확하고 나름 말은 됩니다.

그런데 이 뒤, 현재 시점에서 벌어지게 되는 태블론의 범행들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것도 순서대로 써 보자면,

  1. 지니는 마텔과 결혼해서 집을 떠났습니다.
  2. 이 때 마리에타는 지니로부터 남편 로이 죽음의 진상을 듣게 됩니다.
  3. 마리에타가 무언가 언급하려 하자, 태블론은 그녀를 살해합니다.
  4. 뒤이어 태블론은 마텔을 살해하고 돈을 갖고 도망칩니다.
인데, 우선 태블론은 마리에타를 죽일 이유가 없습니다. 마리에타가 로이의 범행을 폭로할걸 우려했다? 마리에타도 지니에게서 이야기를 들은게 전부일 뿐입니다. 아무런 증거가 없어요. 경찰도 모두 자살이라고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몰락한 알콜중독자 아줌마의 하소연을 누가 제대로 귀담아 들어주었을리도 없습니다.

지니가 7년이 지나서야 태플론의 범행을 어머니에게 털어놓은 까닭도 모르겠어요. 마텔로부터 진상을 들었다 한 들, 그걸 어머니에게 이야기할 필요도 없고요. 마텔을 죽이고 현금을 가지고 도망친 이유 역시 제대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마텔이 블랙머니를 빼돌려 쫓기고 있었다는건 태블론이 알 턱이 없었으니 이를 위장해 살해한다는건 불가능했으니까요. 로이 살인 사건의 유일한 증인인 마텔을 죽이고, 마리에타를 죽인 범죄를 마텔에게 뒤집어 씌우기 위해서였을 수 있긴 합니다. 문제는 그랬다면 마텔의 시체를 숨겼어야 했습니다. 지니의 도움을 받았으면 손쉽게 처리할 수 있었을텐데 왜 그러지 않았을까요? 살인 하나를 덮기 위해 또다른 살인을 저지르고 바로 발각된다는건 바보나 할 범행이지요. 아울러 죄를 뒤집어 씌울 의도였다 한들, 마텔은 이미 지니와 결혼해서 집을 떠났으니 마리에타를 죽일 하등의 동기가 없습니다. 경찰을 속이기는 힘들었을 거에요. 차라리 지니와 함께 도피하기 위한 자금 마련 목적이었다면 말이 되었겠지만, 미적거리며 집에 머물고 있었으니 이 역시 설명으로는 부족합니다.

루 아처가 태블론이 진범이라는걸 깨닫는 과정도 설득력이 약합니다. '추리물'로는 도저히 볼 수 없을 정도였어요. 태블론이 베스와 결혼한 이야기를 들은 정도로 그가 지니와 깊은 관계였다는걸 깨닫기는 불가능한 까닭입니다. 게다가 지니도 단지 돈 때문에 사랑하지도 않는 남자와 결혼했고, 베스는 루 아처를 노골적으로 유혹하며, 레오 스필먼은 남의 아내 키티를 빼앗아 사실혼 관계로 살고 있고, 실베스터 의사의 아내 오드리는 로이 파블론과 불륜 관계인 등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등장인물들이 문란하기 때문에, 이를 태블론만의 문제로 돌릴 이유도 없습니다.

앞서 언급한대로, 모든 면에서 지나치게 전형적이라는 문제도 큽니다. 등장인물들이 너무 비밀을 숨긴 탓에 사건이 커져버린다는 뻔한 전개를 답습하는 탓입니다. 예컨데 지니가 태블론과의 관계만 일찍 밝혔어도 사건은 진작에 해결되었겠지요. 지니가 어머니가 살해된 이후에도 태블론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은건 설명되지도 않습니다. 어머니보다 태블론을 훨씬 더 사랑했다는걸 제대로 묘사하지 못한 탓도 커요. 

탐정이 들쑤시고 다녀서, 모두에게 지옥문이 열렸다는 결말도 다른 하드보일드 작품들과 차이를 보이지 못합니다. 루 아처가 없었다면, 마텔의 죽음은 블랙 머니를 둘러 싼 악당들의 복수극으로 마무리 되었을 수도 있었을겁니다. 태블론은 10만 달러로 가정의 평화와 불륜을 이어갈 수 있었을테고요. 피터 제이머슨의 의뢰는 마텔의 죽음으로 끝난 상황이라서, 루 아처가 사건에 계속 개입할 명분도 없는데 왜 진실을 밝히지 못해서 안달인지 모르겠더라고요. 

캐릭터 설정도 진부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남자들은 도박과 여자 때문에 파멸하고, 여자들은 자신의 미모 때문에 파멸한다는 이야기는 흔하디 흔하지요. 미모를 제대로 활용한 여자가 단 한 명도 없다는건 조금 독특하기는 했지만요. 또 첫 사랑을 되찾기 위해 온갖 더러운 일을 하며 거액을 모은 뒤 살해당하고 마는 프란시스 마텔은 "위대한 개츠비" 설정과 너무 똑같아서 더 실망스러웠습니다. "하드보일드 센티멘털리티"에 따르면 하드보일드 범죄 소설은 시대를 반영한다고 하는데, 이 작품만큼은 전통에만 기대고 있을 뿐 변화된 시대에 걸맞는 이야기는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비교적 후기작인데, 확실히 초기작들보다는 많이 처지네요. 코엔 형제가 영화화한다고 몇 년 전 언급했던데, 영화 버젼이 차라리 더 기대가 됩니다. 무엇보다도 감독이 코엔 형제니 기본 이상은 해 줄거라 확신합니다.

2021/12/26

대실 해밋 - 대실 해밋 / 변용란 : 별점 2.5점

대실 해밋 - 6점
대실 해밋 지음, 변용란 옮김/현대문학

하드보일드의 거장 대실 해밋이 쓴, 아홉 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는 단편집입니다. 작가 인생 초기작들로 유명한 컨티넨털 탐정사 탐정이 등장합니다. 

대체로 액션 모험 활극에 가까우며, 추리의 여지가 별로 없다는 점에서 과도기적인 느낌을 전해줍니다. 몇몇 작품은 영 기대에 미치지 못하기도 했고요. 그래서 전체 평균한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배신의 거미줄" 

외과의사 에스텝 박사가 죽고 부인이 살인 혐의로 체포되었다. 박사가 숨겨왔던 첫 번째 부인이 찾아온 직후 사건이 일어났던 탓이었다. 변호사 리치먼드의 의뢰로 탐정은 의사가 죽기 전 보냈다는 편지를 찾아 나섰다. 첫 번째 부인을 미행한 끝에 탐정은 사건 배후에 사기꾼 제이콥 레드위치가 있다는 것, 그리고 제이콥을 미행하는 또 다른 인물의 존재를 알아챘는데...

"의심이 든다면 미행해라"라는 말 처럼 미행을 통한 단서 찾기와 그 외 탐정 사무소를 통한 조사 및 다른 탐정들과의 분담과 협력 등 탐정의 진짜 업무가 어떠한지를 잘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실제로 탐정으로 일했던 대실 해밋의 생생한 경험담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미행 과정을 통해 당대 샌프란시스코의 여러 거리와 풍경들을 보여주는 장면들도 좋았고요. 이 때부터 중국인들이 샌프란시스코에 자연스럽게 어우러졌다는건 처음 알았네요.

추리적으로도 볼 만한 부분이 있습니다. 일종의 "바꿔치기"트릭이 사용된 덕분입니다. 에스텝 박사는 가짜로, 진짜 에스텝 박사의 의사 면허를 제이콥에게서 구입하여 의사 행세를 해 왔던 겁니다. 첫 번째 부인이라며 나타났던건 진짜 에스텝 박사의 부인이었고요. 제이콥은 에스텝 박사를 수십년 동안 뜯어먹다가, 크게 한 탕 저지를 생각으로 사건을 꾸몄던겁니다. 

제이콥의 계획도 괜찮았어요. 그는 거액을 요구하면, 박사가 자살할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첫 번째 부인을 확보하고 있었기에, 그는 유산을 받아낼 수 있었습니다. 심지어 의도는 아니었지만, 현 부인이 남편을 살해했다고 인정된다면 유산 전부를요!

그러나 계획을 밝혀내는데 있어서는 추리의 여지가 거의 없습니다. 탐정이 제이콥이 살인을 저질렀다는 단서를 잡은 뒤, 협박해서 그의 입으로부터 진상을 듣는게 전부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미행과 감시로 진상을 드러낸다는 점에서는 현실적이기는 합니다. 허나 제이콥이 탐정에게 진상을 술술 이야기할 이유는 없었다는게 문제에요. 증거품인 에스텝 박사의 자살하겠다는 편지를 순순히 내 준 것도 납득하기 어렵고요. 탐정과 제이콥 모두 살인 혐의를 입증하기 힘들다는걸 알고 있는 상황에서 제이콥이 이렇게까지 설설 길 이유는 없잖아요? 도주하던 제이콥이 오가르 경위에게 사살당한다는 마지막 장면도 허무합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불탄 얼굴"

탐정은 밴브룩의 두 딸 가출 사건 조사 중 잠깐 만났던 코렐 부인이 자살했다는 뉴스를 접했다. 둘째딸 루스 밴브룩마저 시체로 발견되었고 탐정은 사건들이 다른 사건들과 연관되어 있을거라 확신했다. 탐정과 팻 형사의 조사 결과 경제적, 사회적 지위가 유사했던 여성들이 자살했던 사건들이 여러 건 있었고, 모두 레이먼드 엘우드가 관련되어 있다는걸 알아내는데....

실종되고, 자살했던 여성들 사건을 독립적으로 보지 않고, 관계된 사건을 모두 조사해 보겠다는 수사 방침에 대한 아이디어는 괜찮았습니다. 하지만 그 외 부분에서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네요. 하드보일드라기 보다는, 액션 모험 활극에 가까운 탓입니다. 탐정과 팻 형사가 레이먼드 엘우드가 자주 방문했던 저택에 침입한 이후부터가 특히 그러했습니다. 

저택에서 사이비 종교와 마약에 빠진 여자들이 난교 파티를 벌이던 사진을 찍어서 협박해 왔다는 진상도 허무하며, 탐정이 팻을 설득해서 주요 증거물인 사진을 모두 소각한다는 결말도 낭만적인 모험 활극과 다를게 없습니다. 팻의 백만장자 아내도 사진에 찍혀있었다는 약간의 반전도 충분히 예상 가능했기 때문에 제 별점은 2점입니다.

"중국 여인들의 죽음"

릴리언 샨은 하녀 한 명과 함께 여행을 떠났다가 취소하고 급작스럽게 귀가했던 날, 낯선 중국인 청년에게 습격당했다. 릴리언은 겨우 살아남았지만 하녀는 죽고 말았고, 신고를 받고 출동했던 경찰은 지하실에서 요리사 완란의 시체도 발견하였다. 탐정은 사건을 의뢰받은 뒤 정보를 캐내다가 사건 배후에 어빙턴 호텔 소유주 코니어스와 차아니타운의 실력자 창리칭이 관계되어 있다는걸 알게 되는데...

차이나타운을 무대로 하는데 단지 이국적인 배경에 그치는 건 아닙니다. 중국을 배신하고 한 몫 단단히 잡은 이민자의 딸이 주인공 중 한명이며, 일본에 대항하기 위한 중국인 독립운동가의 무기 밀수에 편승해서 악당들이 한 몫 잡으려고 했었다는 이야기의 핵심 설정과 전개 모두가 설득력있게 활용되고 있는 덕분입니다. 릴리언의 저택은 해변과 맞닿아 있었는데, 밀수를 위해서는 해변과 맞닿아 있는 저택이 필요했다는 진상도 그럴듯했고요.

그러나 추리적으로는 별 볼일 없었습니다. 탐정이 정말로 하는게 별로 없고 전개는 우연과 억지에 의한게 많은 탓입니다. 탐정이 조사원 중 한명이었던 마약중독자 얼이 수상하다는걸 깨닫는 장면이 대표적이에요. 그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걸 알아챈건 순전히 넘겨 짚은 것에 불과하니까요. 동공? 눈빛? 모두 설득력이 약합니다. 

주요 등장인물들을 필요할 때마다 만나서, 필요한 증언을 얻는다는 전개도 지나치게 작위적입니다. 휘슬러가 일본군을 위해 일하고 있었다고 조작했던 사진을 결정적 순간에 주머니에서 꺼내는 장면처럼요. 탐정이 이 사진을 가지고 다닐 이유는 없었습니다. 

여기에 더해 의뢰인인 릴리언을 무사히 사건에서 빼내고 휘슬러를 포함한 악당들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는 결말은 전혀 하드보일드스럽지 않더군요. 릴리언은 선량했고 선의에 가득찬 인물이었다는 점에서, 위기에 빠진 공주님을 구해주는 기사가 활약하는 영웅담이자 낭만적인 모험물에 더욱 가깝습니다. 아울러 당시 중국인들에 대해 가지고 있던 판타지를 반영한 듯한 창리칭 저택의 복잡한 구조와 기묘한 보디가드들, 은밀하면서도 잔혹한 공격과 미모의 노예 소녀 슈슈에 대한 묘사도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책을 계속 읽어야 할지 망설이게 만드는 지루했던 졸작으로 별점은 1.5점입니다.

"쿠피냘 섬의 약탈" 

탐정은 결혼 선물을 지키는 임무를 맡고, 쿠피냘 섬에서 열린 헨드릭슨 가문의 결혼식에 참석했다. 그날 밤, 폭풍우와 함께 강도단이 섬의 은행과 보석상을 습격했다. 결혼식 하객 중 한명이었던 러시아 공주로부터 이 사건 소식을 들은 탐정은, 선물을 지키는 임무를 헨드릭슨 저택 집사와 운전수에게 맡기고 현장으로 향했다. 그러나 강도단의 도주를 막는데는 실패했고, 헨드릭슨 저택으 복귀 후에 집사와 운전사가 살해당했으며, 결혼 선물은 도난당했다는게 밝혀지는데....

오래 전에 읽었었던 작품인데 내용 자체를 잊어버려서 처음 읽는 기분으로 읽었습니다.

초, 중반부까지는 기관총과 수류탄으로 완전 무장한 강도단과 맞서 싸우는 탐정의 활약을 그린 영웅담으로 보였는데, 실제로는 정통파 추리물과 하드보일드가 잘 결합되어 있어서 놀랐습니다. 그것도 상당한 수준으로 말이지요. 

특히 합리적인 추리가 볼만합니다. 탐정은 강도들이 외부에서 왔다면 일당과 무기 운반을 위해 자동차나 배가 필요했을텐데, 섬 주민의 자동차와 배를 탈취했던 상황에 주목합니다. 그 외의 여러가지 단서를 조합하여 러시아 장군과 공주 일행이 강도라는걸 알아내고 맙니다. 러시아 혁명으로 망명한 후, 현실의 벽에 부딪혀 범행을 저지르고 말았다는 공주 일당의 범행 동기도 시대를 감안해보면 충분히 그럴듯했고요. 이런 추리를 일종의 추리쇼를 통해 선보이는 장면은 정통파 고전 본격 추리물을 떠오르게 만듭니다. 

리고 추리쇼에서 이어지는, 돈 보다 범죄를 해결하는게 더 재미있다며 뱀 같은 공주의 유혹은 무시하고, 심지어 여자를 쏘지 않을거라 믿으며 도망가려는 공주 다리를 쏘아 맞추는 탐정의 모습은 고전 본격 추리물을 넘어선, 하드보일드 장르의 도래를 알리는 명장면이었다 생각됩니다. "난 장애인한테서도 목발을 훔쳤던 사람 아닌가?"라는 말도 희대의 명대사였고요. 구 시대의 화려했던 부르주아들은 모두 현실에 몰락해 버렸고, 이들을 악전고투끝에 살아남은 플로레탈리아가 짓밟는 구성은 시대가 변했음을 잘 느끼게 해 주네요. 마지막에 우연히 사건에 휘말렸던 잔챙이 범죄자 플리포를 탐정과 공주가 서로 자기 편으로 만들려 설득하는 클라이막스도 재미있었습니다. 작위적이라는건 부인하기 어렵지만요.

물론 공주가 탐정을 살려둔 이유가 불분명하다는 큰 문제가 있기는 합니다. 가장 위협이 될 인물이라는걸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듯 한데 말이지요. 그래도 이 정도면 하드보일드 여명기, 장르의 초석을 다졌을 좋은 작품입니다. 별점은 3.5점입니다.

"크게 한탕"

탐정은 어느날 밤 술집에 패디 더 맥스, 블루포인트 밴스, 해피 짐 해커, 빅 버드 레드 오리어리 등 유명한 범죄자들이 모여있는 광경을 목격했다. 시맨스 은행이 습격당할거라는 정보를 전해 준 정보원 비노가 살해당한 다음날 아침, 시맨스 내셔널 은행과 골든게이트 신탁회사가 약탈당했다. 무려 150여명의 프로 범죄자들이 도로를 봉쇄하고 20분도 안 되는 시간동안 현금 수백만달러를 훔쳤고, 경찰 포함 30명 가까운 사망자가 발생했던 대참사였다. 그런데 강도 일당 수십 명의 시신이 차례로 발견되기 시작했고, 현장에서 죽은 강도 중 한 명이 '빅 플로라'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생존자 레드 오리어리를 찾아내 뒤쫓던 탐정은 밴스를 비롯한 다른 강도들의 습격에서 그를 데리고 겨우 탈출했다. 부상당했던 레드 오리어리가 탐정을 이끈 곳은 빅 플로라가 몸을 숨기고 있는 은신처였다....

백명이 넘는 강도단, 수백만 달러의 강탈, 수십명의 죽음 등 어처구니없는 스케일을 보여주는 범죄물. 은신처에 있던 연약해 보였던 노인이 사건의 흑막 파파도풀로스였으며, 경찰에게 은신처가 포위되었기에 무사 탈출을 위해 탐정을 이용했다는 반전은 괜찮았습니다. 탐정사무소 소장인 '영감'이 사건 배후에는 굉장히 머리 좋은 인물이 있을거라고 말했었고, 빅 플로라가 탐정을 죽이지 않았던 이유 등 이런저런 복선이 잘 배치되어 있던 덕분입니다.

하지만 설정에 비하면 내용은 비교적 수수한 편입니다. 탐정도 레드 오리어리를 찾아내 뒤를 쫓는 것 말고는 하는게 없어요. 빅 플로라의 은신처에서 벌이는 목숨을 건 연극도 유치했고요. 빅 플로라가 노인을 하인 대하듯 하는 장면같은 억지도 눈에 거슬렸습니다. 빅 플로라가 우두머리이며 노인은 거의 노예에 불과하다는 인상을 심어주어, 유능한 탐정마저도 속아넘어간 것에 대해 변명거리를 만들 속셈이었을텐데, 속이 너무 빤히 들여다보였어요. 이런 점에서 하드보일드 추리물로 건질만했던건 별로 없었던 작품입니다. 단순 화끈한 마쵸 모험 액션물에 가까운 이야기였어요. 제 별점은 2점입니다.

덧붙이자면 거액을 강탈한 뒤, 공모자들을 죽이고 독차지하려고 했던 계획을 망쳐버린 사랑꾼 빅 레드 오리어리를 징벌하지 않은 이유를 잘 모르겠네요. 파파도풀로스 입장에서는 찢어죽여도 시원치 않았을텐데 말이지요.

"피 묻은 포상금 106,000달러" 

탐정에게 패디 더 멕스의 동생 톰-톰 캐리가 찾아와 파파도풀로스에게 걸려있는 거액의 현상금에 대해 물어보았다. 몇 건의 살인과 습격이 이어진 끝에, 탐정들과 캐리는 백만장자 뉴홀 저택에 은신하고 있던 파파도풀로스를 잡는데 성공하는데...

시원치않았던 전편에서 이어지는 후편인데, 이 작품은 아주 좋았습니다. 탐정의 냉혈한스러운 면모가 빛나거든요. 탐정은 신참 탐정 잭이 파파도풀로스의 꼬임에 넘어가 한 패가 되었다는걸 진작에 눈치챘습니다. 아마도 그리스인 거주지 습격 사건 때 눈치챘겠지요. 그래서 마지막 습격 때 잭을 일부러 대동한 뒤, 모든 진상을 까발려서 잭은 캐리의 손에 의해, 캐리는 다른 탐정이 사살하게 만들었습니다. 자기 손에는 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배신자를 징벌하고 탐정 사무소의 평판을 지켜내는 놀라운 솜씨를 보여준 거지요. 이 와중에 탐정 사무소 다른 탐정들을 동원하고, 잭에게 뒤통수를 맞지 않기 위해 이런저런 안배를 하는 꼼꼼함도 볼만했고요. 

잭이 배신하게 된 계기가 빅 레드 오리어리의 연인 낸시가 사실 백만장자 뉴홀의 딸이었다는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라는 반전도 상당한 놀라움을 가져다 준 좋은 설정이었습니다.

그러나 끝판왕격인 파파도풀로스의 허무했던 최후는 다소 아쉬웠습니다. 탐정이 잭의 배신을 언제 눈치챘는지 명확하게 밝히지 않은 것도 설명이 더 있었더라면 좋았을거에요. 낸시의 이상했던 시선, 잭의 이상했던 눈빛은 증거가 될 수 없었는데 말이지요. 잭이 별다른 증거도 없는데 스스로 자포자기해서 자백을 한 것도 다소 편의적인 전개라 생각되었습니다.

그래도 단점은 사소했습니다. 제 별점은 3.5점입니다. 정교함과 냉혹함이 잘 살아있는 하드보일드 여명기를 대표할만한 수작이라 생각되네요.

"메인의 죽음" 

메인이 출장을 다녀온 날 새벽, 2인조 강도가 습격하여 그를 죽이고 지갑 안의 2만 달러를 강탈해 사라졌다. 현장 근처에서는 흉기인 권총과, 여성 손수건이 들어있는 지갑이 발견되었다. 메인의 보스 군겐에게 고용된 탐정은 손수건이 군겐의 젊은 아내 것이며, 아내의 하녀가 범죄자와 어울린다는걸 알아낸 뒤, 아내로부터 사건 진상을 고백받았다. 그녀와 메인은 불륜 관계였으며, 2만 달러는 불륜을 저지르던 당일 오후에 강탈당했던 것이었다. 범인은 하녀의 애인이었다.

젊은 아내를 옭아맬 속셈으로 사건 수사를 의뢰한 군겐, 방탕한 생활을 하면서 보스의 아내까지 건드리다 파멸한 메인, 불륜을 저지르면서도 당당한 젊은 아내 등 다양한 인간 군상의 묘사는 재미있었습니다. 이들이 얽히고 섥혀 사건을 복잡하게 만든 건 전형적인 하드보일드 스타일로 마음에 들었고요. 불륜 남녀가 돈을 빼앗긴걸 쉽게 털어놓지 못할거라고 생각했던 범인들의 잔꾀도 괜찮은 아이디어였어요.

하지만 범인 일당의 부주의한 행동이 미행으로 이어지고, 이를 통해 진상을 고백받은 형태로 제공된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탐정 수사' 물인데, 미행으로 진범이 누구인지 바로 밝혀내는건 너무 쉬운 전개였습니다. 메인이 좌절한 나머지 자살했고, 보험금 때문에 메인의 아내가 이를 강도 사건으로 꾸몄다는 것도 마찬가지고요. 죽는 것 보다는 차라리 보스에게 사실대로 고백하는게 훨씬 낫다는 점에서, 전혀 현실적이지 않았습니다. 아내가 메인을 죽이고 강도 살해 당한 것 처럼 꾸몄다는게 더 타당해 보이는데, 왜 이렇게 마무리하지 않았는지 의문입니다. 메인의 아내를 비롯, 군겐의 아내까지 사건에 관련 여성에게는 큰 피해를 주지 않으려는 일종의 기사도 정신을 발휘했던걸까요? 여튼, 작품에는 잘 어울리지 않았어요.

그래도 수사물로는 괜찮았던 깔끔한 소품이었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국왕 놀음" 

탐정은 미국인 청년 라이오넬 그랜덤을 찾아 유럽의 소국 모리비아로 향했다. 성인이 되자마자 어머니의 과보호로부터 탈출한 그는, 유럽에서 무려 3백만달러나 되는 돈을 현금화했다. 탐정은 라이오넬이 군대를 장악한 실력자 에이나르손 대령과 함께, 모리비아에 혁명을 일으키고 스스로 왕이 될 생각이 있다는걸 알게 되었다. 3백만 달러는 혁명을 위한 군자금이었다.

유럽 소국 모리비아를 무대로 한 일종의 군웅물이랄까, 여튼 왕이 되려는 사람들의 활약을 그리고 있는 작품. 설정은 기발했고, 왕위를 놓고 여러 세력이 벌이는 암투가 짤막한 분량안에서 잘 그려져 있어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도 많았어요. 일단 에이나르손 대령이 왜 미국인을 끌어들였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네요. 군대를 장악했고, 인기도 많았다면 스스로 혁명을 일으켜서 왕이 되면 그만이었을텐데 말이지요. 3백만 달러는 분명 거액이지만, 일국의 왕이 된다면 그 정도 돈이 문제가 될까요? 

대통령 비서 마흐무드가 에이나르손 대령과 함께 혁명을 모의했다는 것도 납득하기 어려웠습니다. 현 대통령의 통치를 못마땅하는 국민들이 많았다 한들, 절대 권력을 가진 대통령 비서가 이를 쉽게 포기하고 혁명에 바로 몸을 맡기고 급작스럽게 에이나르손을 암살하려고 한다는건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에이나르손이 군대를 장악하여 기껏 혁명을 성공시켰지만, 탐정의 총에 굴복해서 순순히 라이오넬의 대관식을 치룬 것도 그의 야망과 노력을 생각하면 많이 허무합니다. 최후도 허무하기는 마찬가지고요.

그래서 별점은 1.5점. 낭만적인 중세 시대 모험 활극이라면 모를까, 20세기를 무대로 한 이야기에는 여러모로 설득력이 떨어지기에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드네요.

"파리잡는 끈끈이" 

뉴욕의 명문가 햄블턴 가문의 막내딸 수는 범죄자와 도망친 후 소식이 끊겼다. 그리고 1년 후, 돈 1,000달러를 요구하는 전보가 날라왔고 탐정은 돈을 가지고 지정된 장소로 향했다. 하지만 이는 사기꾼 홀리 조의 계획으로 수는 가짜였었다. 

홀리 조로부터 캐낸 수와 베이브의 거처를 찾은 탐정은 그곳에서 수의 시체를 발견했다. 부검 결과 수는 만성 비소 중독으로 죽었다는게 밝혀졌다. 비소는 파리잡는 끈끈이에서 추출한 것이었다. 다시 협잡꾼 홀리 조를 심문해서, 그가 수와 도주할 계획이었다는 이야기를 듣지만 갑자기 나타난 베이브가 홀리 조를 사살하고 달아나는데....

부잣집 철부지 딸의 비참한 죽음, 얽히고 섥혀 서로를 죽이고 마는 애증 관계가 그려진 정통 하드보일드 작품입니다. 

그런데 탐정이 베이브를 추격해서 사로잡는 부분은 액션 활극 느낌도 강하지만, "누가 수를 죽였나?"라는 후더닛 측면에서도 볼만한 추리물입니다. 일단 홀리 조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와 마찬가지인 수를 죽일리 없었어요. 수와 도망칠 계획이었으니까요. 베이브도 오랫동안 비소를 수에게 먹여 죽일만한 인물은 아니었고요. 그렇다고 수가 자살했다고 하기에는, 만성 비소 중독은 여러모로 이치에 맞지 않지요. 그렇다면 진상은? 수는 비소를 오랫동안 조금씩 먹어 내성을 키운 뒤, 한번에 많은 양의 비소를 함께 먹어 베이브를 해치울 생각이었던겁니다. "맹독"에도 나오는 트릭이지요. 콘티넨털 탐정 사무소 소장 영감이 이건 체질이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비웃는 장면, 그리고 파리잡는 끈끈이가 숨겨져 있던 "몽테크리스토 백작"에 이 방법이 나와 있었다는 것도 재미있었습니다.

하지만 전개가 아주 매끄럽지는 않아요. 베이브가 마침 탐정이 심문하던 도중에 나타나 홀리 조를 사살했다는 것도 부자연스러웠고, 애초에 수와 조가 베이브를 죽일 생각이었으면 깔끔하게 사살하는게 나았을겁니다. 비소 내성을 키워 독살하려 한 이유를 잘 모르겠어요. 이렇게 범행을 저지른다고 살인죄가 덮이는 것도 아닐텐데 말이지요

그래도 추리적인 부분에서 볼만했다는 점은 높이 평가합니다. 이전 리뷰에서도 그 부분을 좋게 언급했었지요. 제 별점은 3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