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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1/24

가을비 이야기 - 기시 유스케 / 이선희 : 별점 1.5점

가을비 이야기 - 4점
기시 유스케 지음, 이선희 옮김/비채

'현대 호러의 일인자 기시 유스케, 작품 하나하나에 들이는 공이 커서 과작(寡作)으로 유명한 그가 오랜만에 신작 《가을비 이야기》를 들고 찾아왔다. 비가 내리는 가을의 스산한 날씨를 배경으로 벗어날 수 없는 운명에 농락당하고 고통받는 인간의 모습을 그려낸 이 작품은 인간의 무기력과 절망감을 적나라하게 그려내며 공포를 극대화한 기담집이다.
호러에 미스터리 기법을 절묘하게 접목시킨 작가라는 찬사를 받으며, 1990년대 이후 일본 호러소설계를 이끌고 있는 일인자 자리에 오른 기시 유스케가, 이번에는 저항할 수 없는 운명에 농락당하고 괴로워하는 인간의 이야기로 찾아온 것이다. 일상을 통해 드러난 인간의 업에 대해 이야기하는 네 가지 공포담은 인간 근원의 감정을 건드리며 읽는 이로 하여금 좌절과 절망감, 그리고 무력감을 느끼게 하면서 진정한 공포를 선사한다.'
는 책 소갯글을 보고 집어든 작품.

그런데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전혀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저 소갯글에서는 공포, 호러 소설로 소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공포를 느낄 만한 요소나 의외성이 전무한 탓입니다. 정말이지 하나도 무섭지 않았어요. 작가 명성만 놓고 보면 "엠브리오 기담" 정도의 결과물일거라 생각했는데 말이지요.

작품의 소재, 내용들도 "백조의 노래" 외에는 특별히 눈에 뜨이지 않았습니다. 완성도도 그닥이라 좋은 점수는 못 주겠네요. 제 별점은 1.5점입니다. 기시 유스케의 단편들 - "도깨비불의 집", "미스터리 클락" - 은 대체로 실망스러웠는데, 이 책도 역시나군요. 앞으로 기시 유스케 단편은 읽지 말아야겠습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아귀의 논"

아오타는 자기가 전생에 저지른 죄 때문에 사랑을 갈구하지만, 얻지는 못하는 아귀가 되었다고 고백한다. 그에게 호감을 갖고 있던 미하루는 그 말을 들은 뒤 호감이 순식간에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미하루와 아오타가 나누는 이야기가 전부입니다. 미하루가 고백을 끝낸 아오타에 대한 애정이 사라지는걸 좀 더 극적으로 표현했더라면 좋았을텐데, 지금의 결과물은  무섭지도 않고 의외의 반전도 없는 짤막한 소품에 불과합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푸가"

작가 아오야마는 자다가 수십 킬로미터 떨어진 마을로 이동하는 경험을 반복했다. 병원 의사는 마쓰나가에게 '푸가(해리성 전주)'라는 말을 꺼냈다. 자살 명소 수해로 이동하는 등, 생명의 위협을 느낀 아오야마는 영능력자에게 부탁해 침실에 강력한 결계를 쳤다. 그러나 결계에도 불구하고, 아오야마는 침실에서 대량의 물을 남기고 사라졌다. 편집자 마쓰나미는 얼마 후, 아오야마가 어디로 갔는지 알아냈다. 침실을 빠져나가지 못하고, 물침대 안으로 이동했던 것이었다...

마르셀 에메의 "벽으로 드나드는 남자"가 떠오르는 작품. 에메의 작품에서는 벽을 통과하는 능력을 지닌 주인공이 약의 부작용으로 벽에 갇히는데, 이 작품에서는 자면서 순간 이동을 하던 주인공이 결계 탓에 방을 빠져나가지 못하고 물침대 속에 갇혀 죽게 됩니다. 특별한 이유로 이동을 못해서 중간에 갇힌다는 점에서 비슷하지요. 

하지만 전체적으로 유머러스하면서도 짧았던 에메의 작품이 저는 더 낫다고 생각됩니다. 이 작품은 아오야마 시점의 순간 이동 이야기가 대부분인데 너무 길거든요. 읽다보면 비슷한 내용이라 지루해집니다. 긴 분량에도 불구하고 아오야마의 공포심을 잘 표현하지 못한 탓입니다. 거미를 테마로 한 결계 등의 이야기도 지나치게 장황하며, 거미 꿈은 정말이지 나올 필요도 없었습니다. 나오더라도 이렇게 길게 쓸 이야기는 아니었어요. 반면 순간 이동에 대한 설명은 제목의 '푸가' 뿐인데 극히 부족하고요. 분량 조절에 실패한 느낌이에요.

게다가 반전 소재로 사용된 물침대는 너무 생뚱맞았어요. 물침대가 그리 흔하게 사용되는 침구는 아니니까요. 순간 이동이라는 설정을 극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억지 발상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 보다는 함께 자던 동거인 아키 몸 속으로 들어가버렸다는게 더 호러블하지 않았을까요? 별점은 2점입니다.

"백조의 노래"

인기없는 소설가 오니시 레이분은 대부호 사가로부터 미쓰코 존스라는 무명 가수의 전기를 써 달라는 의뢰를 받았다. 그녀는 인간이라고 믿어지지 않는 창법으로 부른 레코드를 남겼다.

탐정 로스의 보고를 통해, 미쓰코 존스의 창법은 사막에서 노래하다가 콕시디오이데스 이미티스라는 풍토병에 걸렸기 때문이라는게 밝혀졌다. 이 병이 성대를 찢어 얇게 만들고, 분할 진동하게 만든 것이었다.

환상이 깨진 사가에게 로스는 자신도 이 병에 걸렸다고 보고했고, 레이분은 의뢰를 거절하기로 결심했다.

오디오와 음악에 대한 전문가적인 설명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콘덴서 스피커는 놀라운 기술이지만 저음이 나지 않는 단점이 있다거나, 스테레오 녹음은 3D 영화 같아서 진기함을 자랑하는 허세에 불과하다는 등 여러가지 내용은 무척 흥미로왔습니다. 소개된 노래들 - 메리 캠프가 무른 마농 레스코의 '홀로 외로이 버려져', 미쓰코 존스가 부른 라크메 중 '종의 노래' -도 실제로 들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 정도였고요. (아래와 같습니다)

전설적인 가수의 창법의 비결이 불치의 풍토병이라는 결말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마구'를 던지는 투수의 비법이 제어할 수 없는 손가락 떨림이었다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마구"가 떠오르기도 했어요. 궁극의 비법을 손에 넣었지만, 짧은 영광만 함께 할 수 있다는 점에서요. 

하지만 앞서의 오디오, 음악에 대한 상세 설명에 비하면, 풍토병에 대한 설명과 설정은 그리 와 닿지 않았습니다. 이 역시 반전을 위한 억지 설정 느낌이 강하게 들었어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고쿠리 상"

2003년 11월 28일, 대형 사고를 쳐서 자살을 결심한 열두 살 다쿠야에게 뇌종양으로 시한부 판정을 받은 친구 하루토가 함께 죽자며 어둠 버전의 고쿠리상을 부르자고 제안했다. 이 주술은 소원을 빈 네 명 중 세 명에게는 새로운 기회를 주지만, 한 명의 생명을 앗아간다고 했다. 다쿠야와 하루토는 친구 가에데와 신이치를 끌어들여 고쿠리상을 불러내는 데 성공했고, 숨을 거둔 하루토 외 세 명은 고쿠리상의 조언으로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되었다. 

그리고 2021년 11월 22일, 성공한 변호사가 된 다쿠야 앞에 주간지 기자 노구치가 나타나 18년 전 하루토의 돌연사, 가에데의 집 전소와 가족의 죽음 및 다쿠야가 저질렀던 사건을 언급하고 돈을 요구했다. 충동적으로 노구치를 살해하고 다급해진 다쿠야는 다시 한 번 고쿠리상을 부르기로 결심하고 가에데와 신이치 등을 다시 불렀다. 이번에 아오모리현 도와다시의 쓰타나나누마로 가라는 답을 받은 다쿠야는 그곳으로 향하는데...

결말에서 밝혀진 사실은 이 주술이 소원을 빈 사람들에게 안락사를 선사하는 것이었다는 것입니다. 다쿠야는 쓰타나나누마의 아름다운 경치에 감동한 뒤 죽음을 맞습니다. 

그런데 이런 류의 작품은 명확한 주술의 조건과 이를 불러낸 존재에 의한 저주와 공포가 필수입니다. 고전 걸작인 스즈키 코지의 "링"처럼요. 그런데 이 작품에서 어둠 버전의 고쿠리상은 조건, 목적은 물론 주술을 일으키는 존재에 대한 설명과 주술 결과 모두 애매하게 묘사되어 혼란스럽고, 전혀 무섭지도 않습니다. 애초에 안락사를 선사하는 주술이었다면, 18년 전에는 왜 그렇게 하지 않은걸까요? 

마지막 순간에 이미 사망한 하루토와의 대화도 무슨 맥락으로 등장하는지 모르겠고, 쓰타나나누마의 경치를 지나치게 강조한 점도 뭐지 싶어요. 아오모리 현에서 돈이라도 받았나... 별점은 1.5점입니다. 무섭지도 않고, 무슨 이야기인지도 모르겠으니 점수를 줄래야 줄 수가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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