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사 힘멜 일행이 마왕을 물리치고 80년이 지난 후, 엘프 마법사 프리렌이 용사 힘멜의 죽음을 계기로 인간의 감정을 이해하기 위해 떠난 여행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 동명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 애니메이션으로 넷플릭스를 통해 감상하였습니다. 총 28화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작품의 가장 큰 장점은 정통 판타지 설정의 잔잔한 힐링물이라는 점입니다. 프리렌이 추억을 되새기고 새로운 기억을 쌓는 여행 와중에 드러나는 소소한 추억들 - 힘멜이 동상을 세우는 이유, 프리렌이 꽃밭을 만드는 마법을 좋아하는 이유 등 - 은 감동을 불러 일으킵니다. 힘멜이 경련화 반지를 선물하는 장면은 정말 희대의 명장면이었고요.
장명종 종족이 단명종 종족과 헤어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은 "던전밥"의 마르실이 떠오르기는 했는데, 슬픔을 극복하기 어려워하는 마르실과는 다르게 프리렌은 슬픔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면서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마음에 들더군요. 장명종으로 시간을 개의치 않는 성격도 곳곳에서 드러나서 이야기의 설득력을 높여줍니다.
단순한 레벨업 구조를 벗어나, 캐릭터들의 노력을 통해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점도 돋보입니다. 괴물 한, 두 마리 잡았다고 레벨이 오르는게 아닙니다. 꾸준히 연습하고, 노력해서 실력이 오르는 것이지요. 당연히 재능이 있는 사람들이 더 쉽게 성공하기는 하지만, 그건 현실도 그러하니 큰 문제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세계관 최강의 마법사 중 한 명인 프리렌조차 마족을 쉽게 이기기 위해 마력을 숨기는 속임수를 쓰는 등, 마법사들의 대결에서는 레벨 대결이 아니라 목숨을 걸고 갖은 노력을 다해야 한다는걸 일관되게 주장하는 점도 좋았고요.
힐링물임에도 액션의 완성도도 높습니다. 슈타르크와 홍경룡의 격투나 마족 단두대 아우라 일당과의 전투는 강렬한 작화와 연출로 박진감을 더해 줍니다.
소소한 개그씬들, 귀여운 캐릭터들 역시 매력적이에요. 특히 어린 시절의 페른은 너무 귀여웠어요. 피규어가 출시되면 하나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지요. 수천년을 살아왔지만 귀여운 소녀로밖에 보이지 않는 프리렌도 독특한 매력을 뽐냅니다.
다만 중반 이후의 1급 마법사 시험 이야기는 아쉬웠습니다. 정통 판타지의 힐링물이라는 방향성이 흐려지고, 배틀물로 변질된 느낌이 드는 탓입니다. 마법사의 등급 구조나 마법 상성 설정, 마법사들이 주요 마법 하나에 의존한다는 설정은 억지스럽게 느껴졌습니다. 왜 다른 마법을 배우지 않는걸까요? '닌자물'도 아닌데 말이지요.
"오징어 게임"이 떠오르는, 일종의 게임이라고 볼 수 있는 시험을 이렇게 길게 끌고갈 필요도 없었고, 마력의 양으로 승부가 나는 상황도 시험의 필요성을 떨어트린다는 점에서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습니다. 이럴 거라면 목숨까지 걸어가며 시험을 치룰 이유는 없습니다. 그냥 마력 순으로 줄세우기를 하면 되니까요. 애초에 프리렌이 1급 마법사 시험을 치루는 상황 역시 설득력이 낮습니다. 북부 제국은 위험해서 1급 마법사만 갈 수 있다는 이유인데, 현 시점에서 마족을 가장 많이 죽인 마법사는 프리렌입니다. 시험을 보는게 아니라, 하루라도 빨리 보내주는게 타당해요.
그래도 단점은 사소합니다. 누가 보아도 재미있을 작품입니다. 제 딸 아이에게도 추천해주고 싶네요. 제 별점은 4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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