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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27

어차피 곧 죽을 텐데 - 고사카 마구로 / 송태욱 : 별점 1.5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탐정 나나쿠마 스바루와 조수 야쿠인 리쓰는 시한부 생명의 환자들만 모인 '하루살이 회' 정기 모임 초대를 받아 모임 회장 자야마 교이치의 외딴 별장으로 향했다. 미스터리 애호가인 회원들에게 사건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함이었다.

회원인 자야마, 지로마루, 롯폰마쓰, 가모, 하시모토, 하루나와 함께 즐거운 저녁을 보낸 다음 날, 홀 벽에 걸린 하루나의 그림이 훼손되었고 가모가 사망했다. 의사인 자야마와 지로마루의 검안으로 병사로 추정되었지만, 야쿠인은 타살일 수 있다 여기고 나나쿠마와 조사를 시작했다. 그런데 다음 날 나나쿠마마저도 죽은 채 발견되었다...

제 23회 '이 미스터리가 대단해!' 대상의 문고 그랑프리 수상작입니다. 작가의 데뷰작이기도 하고요. 밀리의 서재에 업데이트 되어서 별 생각없이 읽기 시작했습니다.

특징이라면 현대를 배경으로 하면서도 정통 본격 미스터리의 ‘클로즈드 서클’ 형식을  도입했다는 점입니다. 외딴 별장에서 벌어지는 살인 사건, 기묘한 참석자들, 밀실이라는 공간적 설정 등은 전형적이지만, 외부와의 연락이 단절되지 않았고 피해자가 자연사(병사)로 보이도록 꾸며서 과학 수사나 경찰의 개입이 일시적으로 미치지 않는다는 설정이거든요. 작중 표현 그대로 ‘어정쩡한 클로즈드 서클’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아요. 

나나쿠마 사건은 별게 없지만, 가모 사건은 정통 본격물다운 트릭이 사용되고 있기도 합니다. 사체 발견 당시, 인슐린을 이용한 저혈당성 쇼크 살인이라는 가능성이 제기됩니다. 그러나 이는 나나쿠마의 조사로 곧바로 반박됩니다. 가모가 부착하고 있던 혈당 측정기 데이터가 변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쿠라코는 나나쿠마가 죽은 뒤, 데이터는 가모 것이 아니라 나나쿠마의 것이었다고 추리합니다. 그녀의 측정기가 가모와 동일 기종이었거든요. 가모는 나나쿠마에 의해 인슐린 쇼크로 살해당했고, 이를 나나쿠마가 모든 사람들 앞에서 아니라고 증명하기 위해 조작된 데이터를 보여주었다는 추리이지요. 밀실은 데이터를 보여주려고 가모의 짐을 뒤질 때(측정기를 찾기 위해서) 몰래 가지고 있던 가모 방 열쇠를 가방 안에 있었던 양 꺼내 들었던 것이고요. 현실적이라서 그럴싸하게 느껴졌습니다.

또 두 살인 사건 모두 "어차피 곧 죽을 사람을 왜 살해했나"라는 기묘한 상황에 더해, 사실은 가모와 나나쿠마가 모두 죽은 척 했었고 이는 대충인 검안과 사체 이동 등에서 드러난다는 등 진상 부분에서도 본격물적인 요소가 담겨 있습니다. 

이외에도 나나쿠마가 휠체어를 탄 할머니였고 야쿠인은 그녀의 손자라는 점이 드러나는 장면은 서술 트릭의 맛을 느끼게 해 주고요.

하지만 앞서 언급했던 사쿠라코의 추리를 한 번 더 꼬아서 만든 반전과 진상은 억지스럽습니다. 무엇보다 핵심이 되는 가모 게이타 사건의 진상이 이상합니다. 나나쿠마가 살해한게 아니라 야쿠인이 인슐린을 투약해 죽이려 했던게 진상인데, 그렇다면 혈당 측정기 데이터가 변하지 않았다는 설명과 충돌합니다. 혈당이 실제로 떨어졌다면 데이터가 변했어야 하고, 변하지 않았다면 야쿠인은 무언가 이상하다는 걸 알아차렸어야 했으니까요. 의대생 출신이라는 설정까지 고려하면 당연합니다. 자신의 인슐린 투약이 효과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단순 병사로 믿고, 다음 날 나나쿠마 살해까지 저지른다는 건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밀실도 마찬가지입니다. 야쿠인이 가모에게 인슐린을 투약한 뒤, 가모가 스스로 방을 잠갔다는 설명은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주사에 이상함을 느꼈을 텐데, 그런 상황에서 피해자가 방을 잠글 이유가 있을까요? 인슐린이 가짜라는걸 나나쿠마가 미리 알려주어서 생명에 지장이 없다는건 알았더라도, 문을 잠그면 밀실이 되는데 혹시라도 죽으면 자연사로 보일 수 있으니 잠그지 않는게 당연합니다.

가모 사건 때 하루나의 그림을 훼손한 부분도 설명이 부족합니다. 이미 나나쿠마가 그림을 본 상황에서, 그리고 모델인 사쿠라코가 멀쩡히 살아있는 상황에서 그림만 훼손한다는건 말도 안되기 때문입니다. 나나쿠마를 어차피 살해할 생각이었으니까요. 게다가 가모와 나나쿠마를 '병사'처럼 보이게 만들 생각이었다면, 그림을 훼손하는 실질적인 범행을 저지른 건 자칫 경찰 수사의 꼬투리가 될 수도 있으니 하면 안되는 짓이었어요.

그리고 이 모든 사건이 지로마루가 손녀의 죽음 진상을 밝히기 위해 꾸민 연극이었다는 설정도 혼란스럽습니다. 그렇다면 자야마의 ‘하루살이 회’는 실재했던 것일까요? 자야마는 수년 전부터 블로그 활동을 해 왔던 인물인데, 그 모든 게 연극이었다는 설정은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이렇게 큰 연극을 벌이는 상황에서 정작 가모의 방에 CCTV를 장치해 야쿠인의 범행을 찍으려는 시도를 하지 않은 이유도 설명되지 않고요. 이래서야 무엇을 위한 연극인지도 잘 모르겠어요.

전개나 등장인물들의 설정도 썩 만족스럽지 못했습니다. 나나쿠마 1인칭이 섞이는 묘사는 전개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합니다. 나나쿠마와 사쿠라코의 말투도 의도된 유머일 수 있겠지만, 지나치게 무례하게 느껴졌고 몰입을 방해합니다. 마지막에 하루나가 야쿠인을 독살하는 듯한 묘사 역시 왜 필요한지 알 수 없습니다. 동기가 전혀 없으니까요. 그림을 훼손했기 때문에? 하루나 본인 스스로 습작에 불과해 미련이 없다고 했으니 이는 이유가 될 수 없지요.

정통 본격물을 현대 무대의 클로즈드 서클에 접목하려는 시도는 나쁘지 않았고, 몇몇 볼만한 장면이 없지는 않지만 전체적인 완성도는 한참 모자랍니다. 제 별점은 1.5점입니다. 
'이 미스터리가 굉장해' 수상작은 기대에 미쳤던게 없었는데, 이 작품 역시 마찬가지네요. 앞으로 더 읽어볼 일은 없겠습니다.

2021/08/08

빛의 현관 - 요코야마 히데오 / 최고은 : 별점 2.5점

빛의 현관 - 6점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최고은 옮김/검은숲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거품이 꺼진 뒤 몰락해버린 건축업계에서 친구 오카지마의 도움으로 겨우 설계일을 이어나가던 아오세는, 의뢰인 요시노로부터 '당신이 살고 싶은 집'을 지어달라는 의뢰를 받고 평생의 걸작인 Y주택을 만들게 되었다. 하지만 요시노 가족이 Y주택에 거주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된 뒤, 아오세는 그들의 행적 조사를 시작했다. 그리고 이 사건에 옛 유명 건축가 브루노 타우트의 존재가 깊숙히 개입되어 있다는걸 알아채는데....

원제는 "노스라이트"로 2020년에 발표되었던 요코야마 히데오의 최신작입니다. 2020년 당시, 온갖 순위를 휩쓴 작품이지요. '2020 이 미스터리가 대단해' 국내편 2위, '2020 주간문춘 베스트 미스터리' 1위, '2020 미스터리가 읽고 싶다' 2위 등을 차지했었습니다.

건축가가 주인공인 추리 소설은 보기 드뭅니다. 천재 건축가 나카무라 세이지가 설계한 건물들이 사건의 무대가 되는 아야츠지 유키토의 '관 시리즈'는 건축가가 주인공이라고 볼 수는 없고, "낯선 승객"은 주인공 거이가 건축가지만 내용은 건축과는 무관했지요. 그러나 이 작품에서는 주인공 아오세가 직접 설계한 건축물인 Y주택이 이야기를 시작하게 만드는 결정적 역할을 합니다. 심혈을 기울인 Y주택에 의뢰인 가족이 이사오지 않은 이유?를 궁금해 하며 직접 찾아 나선 설정과 동기는 지극히 건축가스러우니까요.
이 수수께끼를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알게 된 외국인 건축가 브루노 타우트의 인생과 작품에 대한 설명들은 나중에 아오세가 건축가로 더욱 성장하여 미술관 공모전이라는 큰 도전에 좋은 영향을 끼치며, 아오세의 가족 복원에도 도움을 주고요. 이 정도면 건축가가 주인공이며, 건축물이 주요 소재인 추리물이라고 하기 충분하겠죠.

물론 주인공 아오세가 평범한 건축가인 탓에 대단한 추리력이나 수사력을 발휘하지는 못합니다. 그래도 일반인으로서는 최선을 다한 수사와 나름의 결론을 이끌어내는 과정은 꽤 괜찮습니다. 요시노 가족을 찾을 때 '브루노 타우트의 의자' 가 중요한 단서가 되는 것도 좋은 아이디어였습니다. 진품이 희귀한 덕분입니다. 그래서 요시노 도타라는 의뢰인의 뿌리를 알아내는 과정도 타당했고, 아오세가 브루노 타우트를 알아가는 과정은 독자도 함께하는 느낌이라 재미있었습니다. 

Y주택을 짓게 된 의뢰는 요시노 가족이 아니라, 이혼한 전처 유카리의 바램에서 비롯되었다는 진상을 알아내는데까지의 전개도 자연스럽습니다. 아오세와 유카리가 함께 살 때 이야기했던 내용을 복선처럼 앞에서 드러내고 있는 덕분입니다. 따뜻한 가족 관계의 복원을 암시하는 마무리는 완전 제 취향이었고요. 저는 해피 엔딩을 좋아하니까요. 이야기를 시작하는 소재이며 가족 관계 복원의 핵심인, 이른바 '노스라이트'를 끌어들여 빛으로 가득차게 만들었다는 Y주택에 대한 묘사도 엄청납니다. 한 번 가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 정도로 매력적이었어요. 드라마화 된 영상물에서의 모습은 생각보다 작고 볼품없는 모양새라 실망스러웠지만요.

2020년 발표작인데, 아오세와 주변 인물들이 버블로 몰락하고 말았다는 이야기가 많은 것도 특이했습니다. 1990년대 후반~2000년대 극초반을 무대로 하고 있는 탓으로, 이 시기가 무대인건 1930년대 일본에 잠깐 머물렀던 브루노 타우트와 등장인물들이 연결점을 갖도록 만들기 위해서였다고 생각됩니다. 1930년대 당시 브루노 타우트를 어린 나이에 만난 뒤, 요시노 이사쿠는 타협없는 깐깐한 장인의 길을 걷게 되었는데, 그 상황을 목격했던 90대의 야마시타 구사오가 살아서 아오세에게 이야기를 전해 주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요시노 도타는 요시노 이사쿠의 손자라고 설정해도 되고, 야마시타 구사오의 증언도 일기나 편지 등의 형태로 남아있었어도 무리는 없었을겁니다. 이런 점에서는 아오세가 버블 경제의 쓴 맛을 톡톡히 보았다는 설정을 위해 이 시기로 무대를 설정했다고 볼 수도 있겠어요.

하여튼, 이렇게 흥미롭고 재미있는 이야기이기는 한데 아주 좋은 작품이냐?고 묻는다면 선뜻 그렇다고 답하기는 어렵습니다. 일단 '광의의 미스터리'로 볼 수는 있지만, 정통 추리 소설은 아닌 탓이 가장 커요. 요시노 가족의 실종을 추적하는 과정만큼은 추리 소설인데, 진상이 드러나는건 뒤에 다시 설명드리겠지만 결국 주요 등장인물들의 증언이 전부니까요. 

요시노 가족의 실종이 아오세 아버지의 죽음과 관련되어 있었다는 것도 억지스러웠습니다. 요시노 도타의 아버지 이사쿠와 아오세의 아버지가 구관조를 둘러싸고 다툼을 벌이다가 아오세의 아버지가 절벽으로 추락사했던 과거의 속죄를 위해서라는 설정부터가 그닥 현실적으로 보이지 않았거든요. 게다가 요시노가 아버지의 죄책감을 덜어주기 위해 3천만엔의 거금을 쓴다는건 설득력이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아버지에 대해 딱히 대단한 애정을 품지 않았었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살아 생전 듣지 않았던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 거금을 쓴다는건 납득하기 어렵지요.

등장인물들이 서로 인연을 더듬게 되는 이유도 '아오세', '요시노'라는 성이 특이하다는 탓이 큰데, 작위적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일본인이 아니라서 잘은 모르겠지만, 아오세라면 모를까 요시노가 그렇게 특이한 성은 아니지 않나요? 유명한 규동 체인점 이름도 '요시노야'인데.... 이런 이유들 때문에 온갖 순위를 휩쓸었는데에도 불구하고, '2020 본격 미스터리 베스트 10'에는 이름을 올리지 못한 걸로 짐작됩니다.

브루노 타우트 비중이 너무 크다는 단점도 있습니다. 작 중 건축물에 대한 상세한 묘사, 타우트 작품으로부터 영감을 얻는 부분 등은 읽으면서도 한편으로 타우트의 작품을 계속 찾아보게 만들게끔 잘 쓰여져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타우트와 그의 작품들이 이야기에 꼭 필요했냐 하면 그건 아닙니다. 요시노 이사쿠가 브루노 타우트로부터 큰 영향을 받은 장인이라는게 이 작품에서 유일했던 브루노 타우트의 존재 이유인데, 자존심으로 버티는 장인이 딱히 그런 공예가일 필요는 없잖아요? 이런 장인은 널리고 널렸으니까요. 브루노 타우트의 의자가 Y주택에 남아 있던 덕분에 요시노 이사쿠의 과거가 일부 드러나게 되지만, 이 역시 사건을 밝히는데에는 별다른 도움을 주지 못합니다. 오히려 스쳐지나가는 오카지마의 말이 진상을 밝히는 결정적 단서가 되지요. 탐정이 아오세에 대해 조사했다는 말이었는데, 아오세는 이를 통해 탐정을 이용하던 요시노가 전처 유카리를 직접 만났다는걸 알아냅니다. 그리고 유카리가 직접 요시노의 의뢰가 무엇이었는지 알려주고요. 그 뒤 목적이 아버지 죗값을 치루기 위해서였다는건 아오세가 요시노로부터 직접 듣게 됩니다. 

이렇게 진상은 등장인물들의 증언으로 밝혀져서, 추리도 무의미할 뿐더러 브루노 타우트 엮일 이유는 마찬가지로 없습니다. 브루노 타우트와 연인 에리카의 관계도 확대 해석한 느낌이고요. 이런 점을 보면, 작가가 큰 감동을 받은 브루노 타우트를 어떻게든 끌어들여 작품을 쓰려고 했던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생기네요.

아울러 전체 분량의 2/3가 지난 시점부터 클라이막스까지 이어지는, 아오세가 근무하는 오카지마 건축 설계 사무소 이야기는 앞서의 요시노 가족 실종 사건과는 전혀 관계가 없을 뿐더러, 너무 뻔했습니다. 대단치 않은 부정 - 택시비 대납 - 탓에 궁지에 몰린 오카지마가 사고로 죽은 뒤, 그가 남긴 설계안을 바탕으로 사무소 직원들 모두가 힘을 합쳐 공모안을 완성한다!는 내용은 철지난 열혈 청춘 드라마와 다를게 없으니까요.

게다가 아오세를 중심으로 한 직원들이 공모안을 완성시킨 뒤, 이를 공모전에 참여하는 대형 건축 사무소의 소장 노세에게 가져간다는 결말은 솔직히 어이가 없었습니다. 설계안은 무상으로 넘기고, 이름 올려달라는 말도 안 할테니 나중에 오카지마의 아들에게 네 아버지가 지은 건물이라고 말하게 해 달라? 대체 뭘 위한 노력이었을까요? 뻔한 열혈 청춘 드라마도 요새 이렇게 쓰면 욕을 먹을 겁니다. 이미 인생에서 쓴 맛을 여러번 겪었을 아오세가 한 말이라는게 믿어지지 않네요. 이보다는 오카지마는 죽었지만 공모전은 예정대로 진행되었고, 남은 직원들이 힘을 합친 결과물이 선정된다는게 더 나았을겁니다. 후지미야 하루코의 유족이 오카지마를 지지했다는 설정은 남아있는 만큼,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었으니까요. 

오카지마의 아들이 친아들이 아니었다던가, 마유미와 오카지마의 은밀한 관계 등은 구태여 나올 필요도 없었습니다. 가족간의 애정은 꼭 피로 이어질 필요는 없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면, 조금 더 세련되게 풀어냈어야 했어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입니다. 도입부는 흥미로왔고, 건축 관련된 묘사는 인상적이었습니다. 가족이 무엇인지를 되새기가 만드는 메시지도 뭉클했고요. 그러나 브루노 타우트에 관련된 내용 비중이 지나치고, 클라이막스와 결말은 뻔하고 납득하기도 어려워 감점합니다.

2015/12/15

금단의 팬더 - 타쿠미 츠카사 / 신유희 : 별점 2점

금단의 팬더 - 4점
타쿠미 츠카사 지음, 신유희 옮김/끌림
아래 내용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요리사 코타는 아내 아야카의 친구 미사의 결혼식에 참석했다. 미사의 결혼 상대가 '퀴진 드 듀'의 주인이기도 한 나카지마의 손자 기노시타 다카시였던 덕분에, 코타는 피로연에서 지고의 요리를 맛볼 수 있었다.

그런데 그 뒤, 기노시타 가문 회사의 오른팔이라 할 수 있는 마츠노 쇼지가 살해당했고, 사장(다카시의 아버지) 요시아키도 실종되고 말았다. 경찰은 나카지마의 유산에 관련된 사건으로 생각했지만, 현경의 아오야마는 밀수와 관계가 있을 거라는 혼자만의 결론을 내리고 독자적인 수사에 착수하는데...

2008년 고노미스 ("이 미스터리가 대단해!") 공모 대상 수상작입니다. 

그런데 고노미스 대상작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추리적으로 별볼일 없어서 실망스럽네요. 같은 대상 수상작이었던 "바티스타 수술팀의 영광"은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말이지요. 

전개도 엉망입니다. 아오야마가 자신의 생각을 증명하기 위해 하는건 성당에 침입하여 조사하는게 전부입니다. 수사 과정도 짜증나는 심문과 사정 청취가 전부일 뿐 특별한 게 없고요. 딱 하나, 아야카의 옥션 등록 이야기를 복선처럼 활용한 것 하나만큼은 괜찮긴 했는데, 이 역시 너무 자주 등장해서 속이 다 들여다보였어요.

진상 역시 너무 뻔합니다. "워싱턴 조약에 위배되는 불법적인 재료를 조리한 미미극식회라는 모임이 있다", "그 어떤 재료를 가지고도 훌륭한 요리를 만들어 내는 천재 요리사 이시구니", "나카지마 가문의 주변 인물들이 한 명씩 실종된다. 그것도 성별 나이 순으로..." 이 세 가지가 합쳐졌을 때, 다른 진상이 존재할 수 있을까요?
진상이 너무 뻔해서 독자는 모두 다 알지만 주인공들만 모르는, 기묘한 상황이 되는건 좀 웃기기까지 했습니다. 여태까지 제가 알고 있던 추리소설의 정의를 근본부터 흔들었으니까요. 독자를 어떻게 속여 넘길까를 궁리하는 게 아니라 독자에게는 전부 알려주면서 등장인물만 모르게 하다니! 완벽하게 주객전도된 느낌입니다.

아울러 음식, 맛에 대한 묘사를 빼면 다른 묘사는 진부하고 별볼일 없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특히나 탐정역인 현경의 아오야마 캐릭터는 정붙이기 힘든, 자기 멋대로에다가 예의는 찾아볼 수도 없는 재수 없는 인간으로 묘사되어 영 마음에 들지 않더군요. 보다 압도적으로 표현되었어야 할 뱅상 신부와 갓 나카지마 역시 그냥 말 많은 악당으로만 보이고요. 미식에 대한 집착이 대단한 나카지마에 비해 그냥 "젊어지기 위해" 인육을 먹으려 한다는 뱅상 신부의 동기도 전혀 와닿지 않았습니다. 그나마 직업 의식에 충실한 이시구니만 제법 그럴 듯했는데, 여러모로 포스는 부족했어요.

그래도 '미식 미스터리'라는 별칭에 걸맞게 음식과 맛에 대한 묘사는 그야말로 발군이기는 합니다. 코타가 결혼식에서 처음으로 퀴진 드 듀의 셰프 이시구니의 코스 요리를 맛볼 때의 묘사, 그리고 코타의 가게 "비스트로 코타"에 갓 나카지마와 이시구니가 방문했을 때 묘사 이렇게 두 번이 개중에서도 백미입니다. 정말 먹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탁월합니다.
심지어 바로 앞서 말씀드렸던, 인육으로 만드는 실제 요리에 대한 자세한 묘사마저도 유감없이 발휘됩니다. 한 마디로 "특별 요리"를 코스테인 시점이 아니라 스비로스 시점으로 그려낸 작품으로, 이러한 시도는 비교적 참신했습니다. 묘사 역시 여태까지 제가 보아왔던 다른 동일 설정의 작품을 능가한다고 할 수 있고요.

또 요리를 시험해 본 이시구니의 결론 - 인육은 냄새가 강하다. 숙성시키면 그 냄새가 더 심해진다. 가능한 한 신선하고 어린 고기를 사용하는 게 제일이다. 특히 남자 고기는 냄새가 나고 딱딱하다. 여자 고기 쪽이 질이 좋고 냄새도 적고 부드럽다. - 덕분에 기노시타 요시아키 - 나카지마 유리 - 기노시타 미사 - 시바야마 아야카로 이루어지는 유괴의 연계가 설득력을 갖추게 된다는 것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아, 물론 인육이 아니라 모든 고기에 다 해당되는 이야기이긴 하죠? '애저찜'이라는 요리도 있으니)
요리사 코타가 요리사로서의 호기심과 인육이라는 재료의 매력에 굴복하여 페이스트 (혹은 퐁)에 스푼을 꽂는다는 마지막 묘사도 깊은 인상을 남깁니다. 어떻게 보면 요리사이기에 쓸 수 있었던 결말이었다 생각되네요.

마지막으로 주 무대가 고베인데 주요 등장인물 몇 명이 제대로 된 사투리로 이야기하고 있는 것도 아주 마음에 듭니다. "오사카 소년 탐정단" 리뷰에서 사투리를 사용한 번역이 없어서 아쉽다고 적었었는데 역시나, 사투리로 번역하는 게 훨씬 좋군요. 누가 토박이이고, 누가 좀 재수 없는지 등 캐릭터마저도 살아나니까요. 고베에 대한 상세한 풍경 묘사는 약간 여정 미스터리 느낌도 들게 해주었고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뻔한 설정을 실제 요리사인 작가가 자신의 전문 분야를 살려 차별화한 점 하나만큼은 점수를 주지만, 추리적으로는 너무나 기대 이하라 감점합니다.

덧붙이자면, 제목은 영 이해가 안 되는군요. '팬더'가 대나무를 먹게 된 것은 타의에 의해서가 강하고 원래 육식을 좋아하는 동물이었다라는 이야기를 가지고 금기되는 음식을 먹는 행위를 설명하려 하는 것까지는 그렇다 치더라도, 팬더가 팬더를 먹었기 때문에 벌을 받았다는 이야기로 이어지는 것은 순전한 작가의 창작일 뿐이니까요.

2020/06/27

악몽과 몽상 1 - 스티븐 킹 / 이은선 : 별점 2.5점

악몽과 몽상 1 - 6점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엘릭시르

스티븐 킹의 단편집으로 어쩌다보니 2권부터 읽고, 뒤이어 읽게 되었네요. 2권과 마찬가지로 모두 열 두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지만, 모두 완성된 단편이라는 점에서는 차이를 보입니다. 순문학적 작품보다는 박진감넘치는 화끈한 계열이 많다는 점은 2권과 같고요.

하지만 다양한 장르물이 수록된 2권에 비하면, 장르적인 변주는 거의 없습니다. 크리쳐 호러, 범죄 액션 스릴러가 여섯 편이나 되거든요. 게다가 대체로 어딘가에서 보아왔던 설정이 많아서 2권보다는 실망스러웠습니다. 순문학을 추구한건 아니겠지만 도무지 내용을 이해하기 어려웠던 작품도 세 편이나 수록되어 있고요. "돌런의 캐딜락"을 비롯해서, 화끈한 계열 작품들은 나쁘지 않았지만, 비슷한 설정과 분위기의 작품들이 연달아 이어져서 읽으면 읽을 수록 지루해진다는 문제도 큽니다. 강-강-강이 아니라 강-중-약으로 구성하는 편집의 묘가 아쉽더군요.

그래도 전체 평균한 별점은 2.5점입니다. 스티븐 킹 다운 작품들은 여전한 매력을 선사해주니까요.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세요.

"돌런의 캐딜락"

아내를 죽게 만든 갱단 보스 돌런을 향한 초등학교 교사의 집념의 복수극으로 약 80페이지 가량 되는 단편인데, 대부분이라 할 수 있는 거의 60페이지 분량이 복수의 '과정'입니다. 

복수의 방법이 굉장히 황당해서 인상적입니다. 돌런이 이용하는 라스베이거스 고속도로가 공사로 막혔을 때, 그 곳에 캐딜락이 완벽하게 파묻힐 수 있는 거대한 함정을 파는거지요. 그리고 돌런의 차가 지나갈 때 '전방에 우회도로' 표지판을 치우고 돌런의 캐딜락이 함정에 쳐박히게 만듭니다. "루니툰"에서 코요테가 로드러너를 잡기 위해 꾸미는 함정과 비슷한 발상이에요.

계획은 간단하지만, 작열하는 라스베이거스의 태양 아래에서 폭 1.5m, 길이 13미터에 15세제곱미터의 흙을 파내는 과정 묘사는 정말 엄청납니다. 굴착기의 도움을 빌리지만 여러 번 죽을 뻔 하고, 포기할 뻔 하는 모습이 스티븐 킹의 날 것 그대로의 묘사로 생생하게 전해지기 때문입니다. 정말 눈 앞에서 사람이 익어가면서 땅을 파는 모습과 그 열기가 느껴질 정도로 엄청난 묘사였어요.

하지만 돌란이 그 길을 지난다는 걸 알았다면 이런 생고생을 하지 않아도 다른 좋은 방법이 많지 않았을까 싶은데, 지나칠 정도로 공이 많이 드는 복수극이기는 하네요. 제가 본 복수극 중에서도 역대급으로 손에 꼽을 수준입니다. 돌런의 캐딜락이 방탄까지 완벽한 탱크같은 차이며, 항상 2명의 프로 보디가드와 함께 하기 때문에 직접 공격은 여러모로 위험하다는 이유를 드는데 그리 와 닿지는 않았습니다. 다이너마이트를 파 묻는게 더 낫지 않았을까요? 함정을 파는 계산처럼 속도와 시간을 계산해서 넓은 범위를 폭파시키면 충분히 성공할 수 있었을텐데 말이지요.

그래도 재미면에서는 나무랄데 없는 작품이었습니다. 확실한 권선징악이라는 점, 그리고 독특한 복수 방법과 완벽한 완전 범죄라는 점도 좋았고요. 개인적으로 이 단편집의 베스트로 꼽고 싶네요. 별점은 4점입니다.

"난장판의 끝"

하워드의 동생인 천재 바비는 세계 평화를 꿈꾸다가 우연히 '라플라타'라는 마을이 범죄가 전혀 없는 평화로운 곳이라는걸 알게된 뒤, 그 곳의 물에 특별한 성분이 있다는걸 밝혀냈다. 바비는 그 물을 농축하여 화산 폭발을 통해 전 세계로 뿌리는데...

"살인 단백질 이야기"와 "엘저넌에게 꽃을"을 결합한 이야기입니다. 물 안에 뇌와 비슷한 단백질 성분이 있는데, 이것이 치매와 비슷한 증상을 유발한다는건 "살인 단백질 이야기"이고, 천재가 백치가 되어 선한 의도를 가지고 죽는다는 이야기는 "앨저넌에게 꽃을"이니까요. 특히 1인칭 시점의 일기 형태이며, 글쓴이가 바보가 되었다는 결말은 판박이에요.
한 마디로 내용과 전개, 설정에 새로운 부분은 거의 없습니다. 또 엄청난 천재라는 바비가 이 물의 성분이 무엇인지 정말로 알아내지 못하고 엄청난 재앙을 초래한다는 전개는 앞 뒤가 맞지 않아서 실망스러웠어요.

스티븐 킹의 흥미진진한 묘사 덕분에 몰입할 수 있기는 합니다만, 스티븐 킹 만의 무언가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이야기였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어린 아이들을 허락하라" 

소갯글은 '옥수수밭의 사악한 아이들이 돌아온다!'입니다만, 내용은 많이 다릅니다. 아이들이 초자연적인 무언가로 변했다고 믿는 노처녀 교사 시들리 부인이 결국 아이들을 죽이다가 체포된 뒤 자살한다는 이야기거든요. 그래도 초자연적인 존재에게 밀리면서 점차 궁지에 몰리는 시들리 부인에 대한 묘사는 아주 흥미진진합니다. 시들리 부인이 폭주해서 아이들을 살해하는 것 역시 예상대로지만 긴장감넘치게 풀어내고 있어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들리 부인이 진짜 미친건지, 아니면 아이들이 정말로 무언가에 점령당해버려 초자연적인 존재가 된 건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 편이 나았을 겁니다. 결말에서 은근슬쩍 후자일 거라는 여운을 남기는데, 모호한 채로 독자의 상상에 맡기는 결말이 답답하기는 해도 작품과는 더 잘 어울렸을 것 같네요. 지금의 결말은, A급 심리 스릴러가 B급 싸구려 호러물로 끝난 느낌이라 별로였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나이트 플라이어" 

타블로이드 업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민완기자 디스는 경비행기를 타고 다니며 공항에서 살인을 저지르는 흡혈귀 '나이트 플라이어'를 쫓아 위험천만한 비행에 나섰다. 그리고 노스캐롤라이나 월밍턴에서 드디어 '나이트 플라이어'와 조우하는데...

영화화도 된 유명한 작품이지요. 디스가 공항에 착륙하다가 폭풍우와 벼락 등으로 위기에 처하는 장면 묘사는 박진감이 넘치다 못해 터져나갈 정도이고, 월밍턴 공항에서 살육당한 시체를 보고 화장실 세면대에 토악질을 하다가 거울로 흡혈귀 드와이트 렌필드가 소변보는 모습을 확인하는 부분은 그야말로 압권입니다. 흡혈귀는 거울에 비치지 않기 때문에 피에 물든 소변 줄기만 보인다는건데, 정말 기가 막혀요.

그러나 내용은 별게 없습니다. 흡혈귀 드와이트 렌필드의 기원이나 흡혈과 살인의 목적, 동기, 이유가 등장하는 것도 아니고, 결말 역시 경찰이 디스를 체포하는 듯한 묘사가 전부라 어정쩡한 느낌이 들거든요. 디스가 기사를 썼는지 안 썼는지도 제대로 설명되지 않고요. 영화 쪽을 확인해보니 흡혈귀에 대한 설명이 없는건 마찬가지지만, 나름의 의미를 부여한 영화쪽 결말만큼은 소설보다 더 괜찮아 보였습니다. 디스가 살인마이고, 흡혈귀는 그의 상상일 수 있다는 이야기인데 사회 비판적인 의미도 담고 있는 그럴듯한 반전이었다 생각되네요.

동기와 결말이 어쨌건 간에, 흥미로운 전개와 묘사만으로도 읽는 재미는 충분했던 작품. 하긴, 흡혈귀가 피를 빨아 먹고 사람을 죽이는게 무슨 이유가 중요하겠습니까. 그냥 괴물이니까 그런거지. 별점은 2.5점입니다.

"팝시"

처음에는 유괴물로 생각되었습니다. 유괴범 셰리던이 아동 유괴를 시작하게 된 계기, 그로부터 유괴 행각이 이어지는 전개가 흥미롭게 펼쳐지거든요. 그러나 "나이트플라이어"와 마찬가지로 흡혈귀가 나오는 크리쳐 고어물입니다. 크리쳐는 바로 제목이기도 한 '팝시'고요. 팝시는 하늘을 날아다니는, 어디에 있어도 유괴된 이이를 찾아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유괴범 셰리던의 자동차를 찾아내어 습격하는게 작품의 클라이막스인데, 역시나 킹 다운 박진감넘치는 묘사가 일품입니다.
유괴된 아이가 팝시의 손자로 이른바 크리쳐 혈족이라는 살짝의 반전도 나쁘지 않으며,도 아동 유괴범 셰리던에게 처절한 응징을 가하는게 또 다른 악인 흡혈귀라는 설정이 재미있었습니다. 권선징악 측면에서도 마음에 드네요.

스티븐 킹의 장점이 20페이지 안쪽의 분량에 전부 담긴, 공포 소설가 스티븐 킹을 대변할만한 단편입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익숙해질거야"

캐슬록의 노인들이 잡화점에 모여 폐허가 된 뉴올 저택에 대해서 이런저런 추억을 이야기한다는 내용의 작품.

솔직히 뭘 이야기하려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코라 뉴올이 게리 폴슨에게 왜 추잡한 짓을 했는지. 노인들의 기억이 진짜인지, 허구인지도 잘 모르겠어요. 이야기가 완성된건지 아닌지도 헛갈리고요. 뉴올 저택을 다시 짓는 것도 당쵀 무슨 관계가 있는지 알 수가 없더군요.

스티븐 킹이 뭔가 있어보이는 이야기를 하려는거 같기는 합니다만, 저는 기승전결 확실한 괴물 나오는 이야기가 더 좋네요. 별점은 1점입니다.

"움직이는 틀니"

잡화점에서 우연히 손에 넣은 거대한 움직이는 틀니 장난감이 악당을 물리친다는 내용의 작품. 간단한 설정만 보아도 무척 황당해 보이죠? 하지만 이를 박진감 넘치게, 설득력있게 풀어내는 묘사는 정말이지 장난이 아닙니다. 특히나 호건과 브라이언의 사투, 이어지는 브라이언과 틀니의 사투는 그야말로 명불허전이에요. 모래바람과 태풍이 불어오는 와중에 갇힌 차 안에서 두 명의 등장인물만으로 풀어가는 이야기를 이렇게까지 몰입감 넘치게 선사한다는건 정말이지 타고난 재능이 아닐까 싶을 정도입니다.

물론 움직이는 틀니에 대한 아무런 설명도 없고, 이야기의 개연성은 전무하다는 단점은 있습니다. 악마의 소도구였다던가, 누군가의 저주였다던가하는 최소한의 설명마저도 없으니까요. 하지만 이런 류의 이야기에서 그런걸 기대하면 안되겠죠? 그런 점에서는 "나이트 플라이어"와 비슷하지만, 정의가 악을 물리친다는 이 쪽이 더 제 취향이었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헌사"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지 잘 모르겠다 2. 

흑인 하우스키퍼 마서 로즈월이 자신의 아들이 내 놓은 첫 소설책에 대해 친구 다시와 술을 마시면서 하는 이야기인데, 내용이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아이의 친부는 강도짓을 하다가 죽은 조니인게 명확하지만, 흑인 마녀 마마 들로름에 의해서 그 아이의 아버지는 유명한 백인 소설가 피터 제프리스가 되어 아이가 그 능력(?)을 이어받았다는 내용인가 싶기는 한데... 분명하지는 않네요. 설령 그렇다 치더라도, 기승전결로 완결되는 이야기는 아니고요. 모르는 내용에, 완성된 이야기로 보이지도 않아서 별점은 1.5점입니다.

"움직이는 손가락" 

세면대에서 기어나오는 손가락을 없애려고 고군부눝하는 하워드 미틀라의 이야기. 스티븐 킹 특유의 고어 크리쳐물과 궁지에 몰린 주인공의 심리 묘사가 결합된 작품. 킹이 잠결에 화장실에서 나는 소리를 듣고 아이디어를 떠올려 쓴 작품일거라 생각되네요. 변기 속에 손가락을 가두기는 했지만, 쾅쾅거리는 소리에 뚜껑을 열기 직전 이야기는 마무리 되며 독자의 상상에 맡기는 결말이 인상적입니다.

설정 면에서 치밀한 맛은 없고, 개연성도 많이 부족하지만 킹이 크리쳐 물의 대가라는걸 새삼 느끼게 해 주는 작품이었어요. 별점은 2.5점입니다.

"운동화"

무슨 이야기인지 모르겠다 3. 

결국 존 텔은 유령을 만나 직접 이야기를 듣기는 합니다. 하지만 유령은 존 텔 주변 인물에 대해서만 몇 가지 이야기하고 말 뿐이에요. 폴 재닝스가 범인으로 삼만 달러를 넘게 챙겼다고 해도... 그게 존 텔 앞에 나타난 이유가 될 수는 없지요. 그렇다고 존 텔의 성장기로 보기에도 여러모로 애매했고요.

하나의 완성된 이야기라는 점에서 다른 알 수 없는 이야기들보다 낫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좋은 점수를 줄 만한 여지가 있지는 않네요. 별점은 1.5점입니다.

"밴드가 엄청 많더군"

여행객이 길을 잃은 뒤 이상한 마을에 방문하여 위험에 처한다는 내용의 작품은 굉장히 많습니다. 제가 리뷰로 소개했던 작품만 해도 러브크래프트의 "인스머스 (인스마우스)의 그림자"라던가 "히치콕 미스터리 매거진 걸작선" 수록작인 "역사적 오류" 등이 그러합니다. "웰컴 투 동막골"도 위험에 처하지 않다 뿐이지 기본 발상은 마찬가지라 할 수 있을테고요. 그 외에도 수많은 작품에서 사용된 설정이지요.

보통 이런 류의 이야기에서 마을이 숨기고 있는 비밀은 은밀한 의식과 관련이 있는게 보통입니다. 여행객들은 산 제물로 쓰이고요. 그런데 이 작품은 '은밀한 의식'에서 한 발, 아니 두 세 발자욱 더 나아갑니다. '은밀한 의식'이 아니라 난리법석의 로큰롤 공연을 추구하는 마을이었던거지요. 여행객들은 공연에 관객이 없어서 필요했던 것입니다! 엘비스 프레슬리가 시장으로 나오는 등 설정이 워낙에 황당해서 우습기까지 한데, 이런 내용을 스티븐 킹의 묘사로 읽으니 공포가 따로 없다는게 재미있는 점이었습니다. 마을에서 탈출하기 위해 벌이는 자동차 추격신은 여전한 박력을 자랑하고요. 로큰롤 공연을 몇 일 동안 계속 보면 미쳐버릴지도 모르겠다는 점에서는 확실히 공포스럽기도 하네요. 작중에 나오는대로 로큰롤 '헤븐'이 아니라 '로큰롤 헬'인 셈입니다.

딱히 새로운 아이디어가 있지는 않지만 그 어떤 설정과 이야기라도 약간의 변주를 통해 박진감넘치는 호러 소설로 만드는 스티븐 킹의 필력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던 작품이었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가정 분만" 

좀비가 창궐하는 세상에서, 외딴 섬 마을에서 아이를 낳으려는 매디의 이야기.

일단, 기둥이 되는 이야기는 아버지가 중심인 가정에서 살다가, 아버지의 사후 중심축을 잃고 흔들리던 매디에게 성실하고 충직한 남편 잭이 나타나 청혼하는 이야기입니다. 좀비 창궐로 시체가 되어 돌아온 잭을 매디가 도끼로 처단한 뒤, 가정 분만을 결심하는게 결말이고요. 이 이야기에 매디가 사는 섬마을 사람들이 자경단을 조직하여 마을에 하나 있는 공동묘지를 지키며 깨어나는 시체들을 토악질을 해 가며 해치우는 내용이 곁들여져 있습니다.

그런데 두 이야기가 난잡하게 흩어져 잘 정리되지 않은 느낌이에요. 한 개의 이야기를 하다가, 전혀 상관없는 다른 이야기를 하는 느낌이 들 정도로 말이지요. 또 매디가 가정 분만을 결심하는게 딱히 대단해 보이지도 않아서 이게 기둥 이야기가 될 수 있나 싶었습니다. 전 세계에 좀비가 창궐했다면 어차피 다른 대안도 없잖아요? 기승전결로 보더라도, 완전한 '결'로 끝맺지 못한 느낌이라 조금 답답했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차라리 섬 마을 주민들이 힘을 합쳐 좀비를 격퇴하고 섬을 지켜내는 이야기로 끌고가는게 더 나았을겁니다. 마을 공동 묘지에서 되살아난 가족들과 싸우는 이야기는 충분히 드라마가 될 수 있으니까요.

2024/11/30

최후의 증인 - 유즈키 유코 / 한성례 : 별점 2.5점

최후의 증인 - 6점
유즈키 유코 지음, 한성례 옮김/혼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검사 출신 변호사 사가타 사다토는 요네사키 시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 재판에서 검사 마오와 대결을 벌였다. 마오는 피고가 불륜 관계였던 피해자를 살해했다는걸 공판 과정 내내 여러 증인과 증거를 통해 착실히 밝혀나갔지만 사가타는 공판 마지막 날, 전직 형사 마루아먀를 증인으로 불러 놀라운 진상을 밝혔다. 피해자 미쓰코는 8년 전, 피고 시마즈의 음주 신호 위반 사고로 외동아들 스구루를 잃은 뒤 복수를 위해 사건을 계획했던 것이었다...

“최후의 증인”은 일본의 미스터리 작가 유즈키 유코의 법정 스릴러이자 복수극입니다. 제7회 '이 미스터리가 대단해!' 대상을 수상했던 작품으로 변호사(검사) 사가타 사다토 시리즈 중 한 권이라고 하네요.  “고독한 늑대의 피”는 하드보일드였는데 이런 작품도 잘 쓰는군요. 

작품은 한 가족의 비극적인 사고에서 시작해 복수, 법정 공방, 그리고 8년 전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과정까지 세 개의 큰 흐름이 교차하며 진행됩니다. 순서대로 설명드리자면, 타카세 코지와 미쓰코 부부의 외동아들 스구루는 신호를 위반한 음주운전자 시마즈의 차에 치여 사망했습니다. 그러나 시마즈는 자신의 부와 '공안위원'이라는 지위를 이용해 처벌받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기사에 이름조차 나오지 않았지요. 그리고 8년 후, 미쓰코의 시한부 판정을 계기로 부부는 교묘한 복수를 계획합니다. 이후 시마즈는 미쓰코의 의도된 유혹에 빠져들었다가 살인 사건의 용의자가 되고 맙니다. 이 사건의 변호를 받은 사가타와 마오가 법정에서 대결을 펼치고요. 
이러한 이야기를 풀어가는 전개는 깔끔하고, 인물 묘사도 돋보입니다. 특히 주요 악역 시마즈는 독자들이 분노를 느낄 만큼 적절히 그려졌습니다. 그의 특권과 오만함, 그리고 본의는 아닌 사악함은 현실에서도 충분히 상상 가능한 캐릭터로, 독자들이 작품 속 세계에 몰입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미쓰코의 복수극도 강렬한 인상을 남깁니다. 그녀는 자살이라는 수단을 활용해 시마즈를 함정에 빠뜨리는데, 이 수단이 마지막 순간까지 감춰져 있기 때문에 독자들에게 일종의 서술 트릭적인 재미를 제공합니다. 공판 3일째에 피고인의 정체가 드러나는 순간까지는, 피고인이 미쓰코라고 생각하도록 그려지는 덕분입니다. 전개 상 감추기 쉽지 않은 부분인데, 고민을 참 많이했구나 싶었어요.

법정물로도 볼만한 부분이 많습니다. 변호사 사가타가 검사 마오의 논리를 하나씩 무너뜨리는 모습이 매력적으로 예컨대, 시마즈가 사건 직후 호텔에서 택시를 타고 도망친 행위는 오히려 범죄와 무관하다는 논리로 반박되는 부분이 대표적입니다. 불륜 상대로부터 공격받은 뒤 도주하는 상황이라면 사람 많은 호텔 로비를 지나 택시를 탄게 당연하지만, 살인을 저질렀다면 그럴리 없다는 논리인데 그럴싸합니다.
시마즈가 법적으로 무죄 판결을 받으나, 결국 8년 전 사건의 진상이 드러나 처벌받게 된다는 점도 통쾌함을 안겨주고요.

하지만 단점도 존재합니다. 우선 미쓰코의 복수 계획은 서술 트릭을 제외하면 전반적으로 치밀하지 못합니다. 특히 시마즈가 미쓰코의 단순한 유혹에 쉽게 넘어간다는건 설득력이 부족했어요.
또 마지막 공판에서 등장하는 마루야마 형사의 증언도 지나치게 극적이고 억지스럽습니다. 그의 증언이 없더라도 8년 전 사건이 복수극의 동기였다는건 다른 방법으로 충분히 설명 가능했기 때문입니다. 

사가타와 마오 검사에게 부여된 설정도 다소 진부하고 매력적이지 않습니다. 사가타가 검사직을 떠나게 된 계기, 마오 검사의 아버지가 묻지마 살인 사건으로 희생당했다는 서사는 작품의 흐름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으며 불필요하다고 생각될 뿐이었습니다. 이보다는 차라리 사가타가 '어떤 식으로든 의뢰인을 무죄로 만들지만, 지은 죄는 반드시 죗값을 치루게 만드는' 변호사라는 설정을 끌고가는게 더 재미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결론적으로 깔끔한 전개와 강렬한 악역 묘사, 그리고 법정 스릴러의 묘미를 잘 살렸지만 추리적으로 다소 아쉬우며, 작위적이고 진부한 부분도 많아 감점합니다.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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