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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08

걸작 밀실 미스터리 : 불가능 범죄 베스트 10


짧게 번역해 보았습니다. 오역이 많은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영국의 추리 소설가 톰 미드(국내에 소개된 적은 없네요)가 밀실 미스터리의 장대한 역사와 밝은 미래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먼저 "밀실 미스터리"라는 용어는 정확히 무엇을 의미할까요? 밀실 미스터리를 다른 장르와 차별화하는 요소는 '불가능'이라는 요소입니다. 사실 저는 이 용어를 '불가능한 범죄'와 동의어로 사용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에서 범죄(보통 살인)가 저질러지는 이야기를 의미합니다. 이러한 이야기는 종종 초자연적인 사건과 불길한 분위기로 으스스하고 섬뜩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그러나 (그리고 이것이 중요한 부분입니다.) 결국 모든 것이 기발한 추리와 합리적인 설명에 의해 눈부신 스타일로 풀리게 됩니다.

그렇다면 이 장르는 어디서 시작되었을까요? 에드거 앨런 포의 <<모르그 거리의 살인>>은 최초의 밀실 미스터리로 꼽히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소설은 미스터리라기보다는 공포, 호러 소설에 가깝고 실제로 탐정이 거의 등장하지 않기 때문에 논란의 여지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큰 영향을 미쳤으며 이후 몇 년 동안 장르의 틀을 세우는 데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초기 작품으로는 윌키 콜린스의 단편 소설 <<무시무시하고 이상한 침대>>가 있습니다 (물론 콜린스는 최초의 제대로 된 '탐정 소설'인 <<월장석>>을 쓴 작가로 인정받고 있기도 합니다). 아서 코난 도일의 <<얼룩 띠>>도 마찬가지입니다.
20세기에 접어들면서 밀실 미스터리는 본격적으로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습니다. 이스라엘 장윌의 <<빅 보우 미스터리>>와 가스통 르루의 <<노란 방의 비밀>>은 상승 궤도에 있던 장르의 초기 하이라이트를 장식했습니다.

탐정 소설의 황금기에는 밀실 미스터리의 인기가 붐을 이루었습니다. 밀실 미스터리는 퍼즐이 핵심인 '공정한 페어플레이 미스터리'에서 특히 도전적인 하위 장르이기도 합니다. 아가사 크리스티, 도로시 L. 세이어스, 엘러리 퀸과 같은 위대한 작가들은 독자가 가상의 범죄를 스스로 해결하는 데 필요한 모든 단서를 제공함으로써, 독자와 공정하게 경쟁하는 것을 중요시했는데 이는 밀실 미스터리의 주요 요소이자 오늘날 우리가 이해하는 장르의 중요한 요소이기도 합니다.
존 딕슨 카가 문학계에 충격을 주며 등장한건 1930년대 초, 황금기가 절정에 달했을 때였습니다. 카는 최고의 밀실 미스터리의 대가이자 저에게 끊임없는 영감의 원천입니다. 그는 30년대와 40년대에 걸쳐 걸작을 연이어 썼으며, 그의 경력은 풀리지 않을 것 같은 문제를 놀라운 감각으로 풀어내는는 능력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는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30년대와 40년대 대부분을 영국에서 살았습니다. 따라서 그는 영국 범죄소설 커뮤니티에서 환영을 받았으며, 권위 있는 영국 탐정 협회에 입회한 단 두 명의 미국인 중 한 명이기도 했습니다.

밀실 미스터리는 제2차 세계대전의 여파로 인기가 하락했지만 (이후 수십 년 동안에도 여전히 훌륭한 작품이 많이 출판되었지만), 다시 운이 트이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Jonathan Creek, Monk, Death in Paradise와 같은 TV 쇼는 새로운 세대에게 불가능한 문제의 즐거움을 소개했습니다. 다니엘 스태샤워와 빌 프론지니 같은 작가들이 기억에 남는 상상력 넘치는 작품을 계속 발표하면서 책으로도 계속 인기를 얻고 있고요. 하지만 이 장르를 처음 접한다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요? 시작을 돕기 위해 제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밀실 미스터리 10편의 목록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이 목록은 지난 세기 동안 정말 눈부신 작품을 만들어낸 장르의 최고를 대표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작가당 한 권의 소설만 선정하였고 (그 자체로 거의 불가능한 작업이었죠), 매일 새로운 작품을 발견하여 빠르게 늘어나는 책장에 추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긴장감을 위해 역순으로 제 상위 10권을 소개합니다:

WHISTLE UP THE DEVIL : 데릭 스미스 (1953) (국내미출간)
데릭 스미스에게 특별한 친밀감을 느끼는 이유는, 그도 저처럼 자신이 존경하는 거장들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밀실 미스터리를 쓰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1953년에 처음 출간된 WHISTLE UP THE DEVIL은 두 건의 불가능한 살인 사건으로 이 장르에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모든 것은 비 오는 어느 날 밤, 로저 퀘린이라는 남자가 살해되면서 시작되지요.
슬프게도 이 소설은 스미스의 생애에서 출판 된 유일한 소설이었습니다. 스미스가 워싱턴 포스트에서 걸작으로 칭송받은 WHISTLE UP THE DEVIL로 찬사를 받기 시작한지는 고작 10년밖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BLOODHOUNDS : 피터 러브시 (1996)
피터 러브시는 고전적인 스타일의 퍼즐 미스터리를 대표하는 작가로, 그의 피터 다이아몬드 시리즈는 고전 본격물의 공정함과 경찰 수사를 완벽하게 조화시켰습니다. BLOODHOUNDS는 미스터리 소설 애호가 그룹이 실제 밀실 미스터리에 휘말리는 이야기를 다룬 대표적인 소설입니다. 따라서 존 딕슨 카의 이름이 자주 언급됩니다. 잠겨 있고 뚫을 수 없는 운하 바지선에서의 살인 사건이라는 매우 특이한 문제도 등장합니다. 이 장르가 처음이고, 잘 알지 못한다면 이 작품부터 시작해도 좋습니다.

INVISIBLE GREEN : 존 슬래덱 (1977)
존 슬래덱은 공상 과학 소설계에서 중요한 인물이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뛰어난 불가능한 범죄 소설인 Black Aura와 INVISIBLE GREEN은 오랫동안 외면당해 왔어요. 특히 INVISIBLE GREEN은 작가의 다재다능한 상상력, 생동감 넘치는 묘사, 예리한 논리를 보여줍니다. 고전 본격물의 황금기가 끝난 지 한참 지난 1970년대에 출간되었다는 점에서 이례적인 작품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마추어 탐정 태커이 핀은 에드먼드 크리스핀의 저비스 펜과 같은 수준의 황금기 밀실을 완벽하게 보여줍니다. 슬래덱이 공상 과학 소설을 위해 그를 버리기 전까지 핀은 단 두 편의 소설과 단편 소설에만 등장했을 뿐인데 정말 안타깝습니다. 그가 또 무엇을 성취할 수 있었을지 누가 알겠습니까?

NINE TIMES NINE : H.H. 홈즈 (앤서니 부셰) (1940)
앤서니 부셰는 미스터리 장르의 진정한 학자였으며, 실제로는 미스터리를 거의 쓰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Bouchercon' 덕분에 그의 명성은 계속 높아져 갔습니다. 하지만 그가 쓴 몇 편의 미스터리는 놀라울 정도로 훌륭합니다. NINE TIMES NINE에는 빛의 아이들이라는 사악한 종교가 등장합니다. 이 종교를 믿지 않는 사람이 빛의 아이들을 이끄는, 수수께끼 같은 두건을 쓴 지도자에게 저주를 받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매우 모호한 상황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노란 가운을 입은 의문의 남자가 범죄 현장에서 목격된 후 사라지고요. 우르술라 수녀는 이 복잡한 사건의 여러 얽힌 실타래를 풀 수 있는 유일한 인물입니다.

MR. SPLITFOOT : 헬렌 맥클로이 (1969)
밀실 미스터리에 관한 한, 헬렌 맥클로이의 <<어두운 거울 속에>>는 비평적 논의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작품이며, 당연히 그럴 만합니다. 심리학자 바질 윌링 박사가 등장하는 이 시리즈는 도플갱어의 출현이라는 불가능해 보이는 문제를 다룬 멋진 작품입니다. 매우 불길하면서도 몽환적인 분위기와 잊혀지지 않는 결말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여기에 포함하기로 한 맥클로이 작품은 바질 윌링 시리즈의 후기 작품입니다. 말 그대로 밀실 미스터리에 더 가깝기 때문입니다. <<어두운 거울 속에>>와 마찬가지로 MR. SPLITFOOT 역시 특유의 분위기를 놓치지도 않고요. 예를 들어, 제목은 다름 아닌 사탄에 대한 언급입니다. 
이 소설은 밤을 보낸 사람은 아침에 시체로 발견된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유령의 방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모두의 예상대로, 전설을 시험해 보려는 자원자가 곧바로 등장합니다....

<<혼진 살인사건>> : 요코미조 세이시 (1946)
요코미조 세이시는 일본에서 셜록 홈즈에 버금가는 탐정 긴다이치 코스케를 만들어낸 전설적인 작가입니다. 혼진 살인 사건은 킨다이치가 요코미조의 소설에 출연한 77편의 작품 중 첫 번째 작품으로, 결혼식 날 밤 잔인하게 살해당한 채 발견된 한 쌍의 신혼 부부 사건을 해결하는 내용입니다.

<<모자에서 튀어나온 죽음>> : 클레이튼 로슨 (1938)
마술과 문학을 결합하는걸 전문으로 하는 작가의 놀라운 데뷔작입니다. 그는 마술사이자 존 딕슨 카의 절친한 친구이기도 했습니다. 카처럼 클레이튼 로슨도 해리 후디니와 같은 과거의 전설적인 마술사들을 존경했습니다. 로슨의 탐정인 위대한 멀리니에는 분명히 후디니의 요소가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 멀리니 이야기는 가장 순수한 '미스디렉션'을 보여줍니다.

THE CRIMSON FOG : 폴 할터 (1988)
폴 할터는 종종 존 딕슨 카의 후계자로 설명되는데,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는 독특한 문제를 제시할 뿐만 아니라 긴장감과 불안감을 조성하는 데에도 탁월한 재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의 모든 소설을 강력히 추천하지만, 마술 쇼 중 무대에서 벌어지는 불가능한 살인을 다룬 THE CRIMSON FOG는 그의 작품을 처음 접하는 독자들에게 이상적인 출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대담하니까요! 또 잭 더 리퍼가 직접 카메오로 출연하기도 합니다.

RIM OF THE PIT : 해크 탤벗 (1944)
서프라이즈! 또 다른 마술사, 해크 탤벗은 프로 마술사 헤닝 넬름스가 두 편의 환상적인 밀실 미스터리인 The Hangman’s Handyman과 RIM OF THE PIT을 출간할 때 사용한 가명이었습니다. 두 작품 모두 모험가이자 탐정인 로건 킨케이드가 등장하며, 작가의 기발한 상상력을 풍부하게 선보입니다. 
RIM OF THE PIT에서는 초현실적이고 악마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며, 눈 덮인 시골을 배회하는 섬뜩한 유령이 등장합니다. 하지만 물론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제제벨의 죽음>> : 크리스티아나 브랜드 (1948)
크리스티아나 브랜드는 정말 뛰어난 미스터리 작가였습니다. 더 많은 작품을 쓰지 못한 것이 아쉽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야전 병원으로 사용되었던 영국의 시골집을 배경으로 한 그녀의 책 <<녹색은 위험>>은 그녀의 작품 중 가장 널리 읽힌 작품입니다. 정말 위대한 황금기 미스터리지요. 
하지만 밀실 미스터리와 불가능한 범죄로는 <<제제벨의 죽음>>이 최고입니다. 시리즈 탐정 코크릴 경감이 등장하는 이 작품은 특히나 독특하고 수수께끼 같은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노쇠하고 악연이 깊은 여배우가 무대에서 살해당한 미스터리한 상황을 말이지요. 퍼즐에 대한 해답은 놀랍기 그지없습니다. 반드시 읽어보아야 할 작품입니다!

<<세 개의 관>> : 존 딕슨 카 (1935)
각 작가가 하나의 작품만 선택해야 한다고 강조한 이유가 있습니다. 존 딕슨 카는 "걸작"이라는 범주에 속하는 책을 너무 많이 썼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그의 작품을 낭송하는 것만으로도 목록을 쉽게 채울 수 있지요. <<세 개의 관>>은 아마도 그의 가장 유명한 작품일 것이며, 무한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소설입니다. 처음 읽은 지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 있네요. 기디온 펠 박사가 눈이 내리는 런던의 거리에서 보이지 않는 살인범과 사투를 벌이는 이야기입니다.
아울러, 그는 자신의 이름으로 기디온 펠 미스터리를 썼지만 카터 딕슨이라는 필명으로 다른 시리즈도 썼는데, 이 시리즈에는 친구들에게 H.M.으로 알려진, 거구의 탐정 헨리 메리벨 경이 등장합니다. 이 작품들은 모두 찾아볼 가치가 있습니다. 기디온 펠 이야기와 H.M. 작품들 중 일부는 불가능에 대한 힌트가 없는 단순한 후더닛이지만, 모두 눈부실 만큼 훌륭합니다! 존 딕슨 카와 그의 놀라운 작품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려면 더글러스 그린의 전기 he Man Who Explained Miracles를 강력 추천합니다.

밀실 단편 소설
밀실 미스터리는 장편 소설에만 국한된 것은 아닙니다. 엘러리 퀸 미스터리 매거진과 같은 출판물에서는 과거와 현재의 작품을 계속해서 출판하고 기념하는 등 밀실 미스터리는 단편 소설 형식으로도 활발히 발표되고 있습니다. 저도 여러 편의 밀실 미스터리 단편 소설을 직접 썼기 때문에 (“The Indian Rope Trick”. “The Footless Phantom”은 모두 EQMM에 실렸어요), 불가능해 보이는 문제를 몇 페이지 안에 공정하고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에드워드 D. 호크와 같은 작가를 깊이 존경합니다. 특별한 순서는 없지만, 여기 몇 가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늙은 떡갈나무의 수수께끼>> 에드워드 D. 호크 (1978)
제가 단편 작품 섹션을 포함시킨 주된 이유는 호크 때문입니다. 그는 카에 필적할 만한 상상력을 가졌지만, 거의 전적으로 단편 소설을 전문으로 하여 평생 동안 1,000편에 가까운 작품을 썼습니다. 그의 작품 중 단 한 편을 꼽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지만, 아마도 그의 가장 유명한 시리즈는 작은 마을의 의사가 탐정으로 변신한 샘 호손이 등장하는 시리즈일 것입니다. 호손의 모든 이야기 중에서도 <<늙은 떡갈나무의 수수께끼>>는 독창성과 문학적 성취로 특히 주목할 만합니다.

<<>> 아가사 크리스티 (1937)
황금기 미스터리 관련 글에서 아가사 크리스티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녀는 밀실 추리 소설을 많이 쓰지는 않았지만, 그녀의 포와로 시리즈 작품인 <<에르큘 포와로의 크리스마스>>와 <<메소포타미아의 살인>>에는 교묘하게 고안된, 불가능 문제들이 등장합니다. 그녀의 대표작인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가 밀실 미스터리에 포함되는지 여부에 대한 논쟁도 있고요. 저는 여기에 포함시키지 않기로 결정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걸작인건 분명합니다. 이 작품 대신 벨기에의 작은 회색 뇌세포가 꿈에서 예언된 밀실 살인 사건에 휘말리는 단편 소설 <<꿈>>을 선택했습니다.

<<붉은 밀실>> 아유카와 테츠야 (1954)
일본에서 밀실 미스터리와 본격 미스터리의 신조를 확립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친 (그리고 끔찍한) 이야기입니다.

<<녹색 문은 위험>> 노리즈키 린타로 (1991)
완벽한 퍼즐 미스터리이자 신본격 장르의 주옥같은 작품.

<<The Name on the Window>> : 에드먼드 크리스핀 (1953)
크리스핀은 뛰어난 재치를 지닌 작가이자 저처럼 카의 열렬한 팬이었습니다. 그의 시리즈 탐정인 저비스 펜과 이 깔끔한 밀실 문제를 통해, 크리스핀은 자신이 거장의 제자임을 증명했습니다.

<<The House in Goblin Wood>> : 카터 딕슨(존 딕슨 카) (1947)
헨리 메리 베일 경은 이 진정으로 감각적인 작품에서 불가능해 보이는 실종에 맞서 그의 재치를 발휘합니다.

<<The Border-Line Case>> : 마저리 앨링엄 (1936)
앨링엄은 크리스티와 마찬가지로 밀실이나 불가능한 범죄 이야기를 전문으로 하지 않은 또 다른 '범죄의 여왕'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The Border-Line Case은 이 장르의 훌륭하고 완벽하게 구성된 예입니다.

<<From Another World>> : 클레이튼 로슨 (1948)
강령회가 예상치 못한 기괴한 결과를 낳는 단편 걸작.

<<13호 독방의 문제>> : 자크 푸트렐 (1905)
장르의 초석을 다진 작품. 반드시 읽어야만 합니다.

<<개의 신탁>> : G.K. 체스터턴 (1926)
체스터턴브라운 신부는 홈즈, 포와로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위대한 탐정입니다. 체스터턴 자신이 존 딕슨 카의 기드온 펠의 모델이었다는 사실은 말할 것도 없죠!

<<The X Street Murders>> : 조셉 커밍스 (1957)
조셉 커밍스는 슬프게도 잘 알려지지 않은 또 다른 작가로, 시리즈 캐릭터 브룩스 U. 배너 상원의원은 헨리 메리베일 경의 후계자라 할 수 있습니다.

<<The House of Haunts>> 엘러리 퀸 (1935)
엘러리 퀸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미스터리 작가 중 한 명입니다 (사실 그는 두 명입니다. 사촌 프레드릭 다네이와 맨프레드 리가 만든 가명이었죠). 안타깝게도 두 사람은 밀실 미스터리를 많이 쓰지 않았지만, 그들이 쓴 밀실 미스터리는 모두 읽을 만한 가치가 있었습니다. <<차이나 오렌지의 비밀>>과 <<the Door between>>모두 밀실 문제를 다룬 훌륭한 소설이지만, 두 작품 모두 불가능성이 다른 더 눈부시고 기발한 플롯 요소에 가려져 목록에 포함시키지 않았습니다. 하우더닛보다는 후더닛으로 읽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존 딕슨 카를 읽은 남자>> 윌리엄 브리튼 (1966)
이 책도 꼭 포함시켜야 했어요. 제목만 봐도 알 수 있죠! 마지막에 유쾌한 반전이 있는 멋진 블랙 코미디 작품입니다.

밀실 미스터리의 미래
그렇다면 이제 어디로 가야 할까요? 다행히도 밀실 미스터리 장르가 다시금 르네상스를 맞이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현대 작가들의 새로운 작품이 매일 출간되고 있고, 이 장르에서 부당하게 외면받았던 고전이 재발간되는 것을 보면 정말 기쁩니다. 최근 신작으로는 Gigi Pandian의 Under Lock과 Skeleton Key, 짐 노이의 <<붉은 죽음 살인 사건>> (에드거 앨런 포의 "붉은 죽음의 가면"을 매혹적으로 재해석한 작품!), 제임스 스콧 번사이드의 <<배링턴 힐스 뱀파이어 사건>> 등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또한 마틴 에드워즈의 뛰어난 레이첼 새버네이크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인 <<블랙스톤 펠>>은 밀실 요소가 특징인 것으로 알고 있고, 로버트 소로굿의 아늑한 미스터리 시리즈 두 번째 작품인 <<말로우에 죽음이 찾아왔다>>도 기대가 됩니다. 앞으로도 밀실 미스터리와 불가능한 범죄가 계속 번성하기를 바랍니다.

2010/09/20

붉은 오른손 - 조엘 타운슬리 로저스 / 정태원 : 별점 3점

붉은 오른손 - 6점
조엘 타운슬리 로저스 지음, 정태원 옮김/해문출판사
- 이하 리뷰에는 스포일러 있습니다! -

국내 최고의 미스터리 커뮤니티 하우미에서 주도하는 독서클럽 "고등고등열매"에서, "허무에의 제물"에 이어 두 번째로 읽어야 할 작품으로 선정되어 읽게 되었습니다. 평도 좋았지만, 에드워드 D. 호크의 멋진 서문, "만일 당신이 지금 조엘 타운슬리 로저스의 '붉은 오른손'을 처음 접하는 것이라면 나는 지금부터 당신이 겪을 경험에 질투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라는 문장 때문에 기대가 무척 컸습니다.

그런데 실제 작품은 기대와는 많이 달랐습니다. 정통파 고전 퍼즐 미스터리라고 생각했는데, 반전 스릴러적인 성향이 더 강하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먼저, 스릴러적인 성향은 화자인 해리 리들의 수기 형식으로 진행되는 작품 구조에서 비롯됩니다. 해리 리들이 처한 위기 상황에 독자가 쉽게 감정이입하게 만들어 서스펜스와 스릴러적 분위기를 강화하는 데 한몫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나중에 밝혀지는 범인의 정체와 진상이 상당히 놀라와서, 작품을 반전 스릴러로 평가해도 무방하도록 해 줍니다. 메모 하나하나, 대화 하나하나가 모두 의미를 담고 있을 정도로 결말을 위한 복선도 촘촘하게 배치되어 있고요.

그러나 정통파 고전 퍼즐 미스터리로 보기에는 범행이 지나치게 우발적이며 우연에 의지하는 요소가 많다는 점이 단점으로 작용합니다.

우선, 마을에서의 폭주 장면 자체가 다소 무리한 설정이었습니다. 경찰이 존재하는 작은 마을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이 설득력이 떨어졌고, 이후 세인트에이메의 시체가 발견되었지만, 그 시체가 사실은 다른 사람(두 손가락 피트)이라는 것을 마을 사람들이 아무도 알아보지 못했다는 점도 비현실적이었습니다. 또한, '두 손가락 피트'의 눈 색깔이 우연히 검은색이었다는 설정도 개연성이 부족했고, 범인이 해리 리들 앞에서 우니스테어를 살해했는데 이를 전혀 눈치채지 못한 것도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었습니다. 시체가 한 구 더 필요했다는 것도 쉽게 납득되지 않았습니다.
해리 리들이 사실은 범인이 아닐까 하는 방향으로 독자를 유도하는 방식도 작위적입니다. 한두 번 정도 암시하는 수준이었다면 효과적이었겠지만, 반복되다 보니 오히려 반전의 긴장감이 떨어졌습니다.

전개와 묘사 전반에서 낡은 느낌이 드는 것도 감점 요소입니다. 시대적 한계를 감안해야겠지만, 오늘날 독자의 입장에서 보면 다소 구식으로 느껴지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분명 시작부터 마지막 반전과 진상까지 잘 짜인 작품이며, 적당한 긴장감과 스릴을 느끼기에는 충분합니다. 하지만 '퍼즐 미스터리'로 분류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여러 존경할 만한 작가들과 평론가, 애호가 선배들이 극찬을 아끼지 않은 작품이지만, 개인적으로는 그 정도의 작품인지 확신하기 어려웠습니다. 제 내공이 부족한 탓일 수도 있겠지만요.

그래도 해문 출판사와 정태원 씨가 고전 추리 소설을 발굴해 준 노력에는 진심으로 경의를 표합니다. 단, 최근 본 책들 중에서도 돋보일 정도로 디자인이 후진데 다음에는 책의 디자인도 신경을 좀 써 준다면 더욱 좋겠습니다. 제 별점은 3점입니다.

2010/05/20

행각승 지장 스님의 방랑 - 아리스가와 아리스 / 권영주 : 별점 2점

행각승 지장 스님의 방랑 - 4점
아리스가와 아리스 지음, 권영주 옮김/비채

한 지방 촌도시에 있는 바 에이프릴에 토요일 밤마다 다양한 사람들 - 비디오 가게 주인과 사진관 주인 부부, 신사복점 아들, 돌팔이 치과의사 - 이 모인다. 모이는 이유는 토요일 밤, 바를 찾는 슈겐도의 행각승 지장 스님에게서 재미난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였다. 

일본 작가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단편집입니다. 학생 아리스와 작가 아리스 이외의 시리즈가 있는지는 처음 알았네요.

범죄와 미스터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에서 추리 이야기가 펼쳐진다는 설정의 작품은 많습니다. 대표적인 것은 "흑거미 클럽"이겠지요. 에도가와 란포 단편에도 이러한 모임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룬 작품이 몇 개 있고요. 스님 탐정이라는 점에서는 "A 사이즈 살인사건"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고전적인 설정을 도입한 작품답게, 수록된 일곱 편의 단편 모두 고전적이면서도 전형적인 퍼즐 미스터리이자 수수께끼 풀이입니다. "문제"편과 "해답"편으로 이루어져 있는 구성도 고전적이고요.

하지만 좋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습니다. 제가 이런 고전적인 단편들을 좋아라 하는데도 불구하고 말이지요.
첫 번째 문제는 설정입니다. "흑거미 클럽"은 클럽 회원들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독자에게 공정한 단서를 제공해 준다는 점에서 "구석의 노인"같은 이야기 전달자와 탐정 등장 구조에서 한 단계 진보한 설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는 이야기의 화자와 탐정을 모두 행각승 지장 스님이 맡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간단한 의견을 약간 전달할 뿐, 하는게 거의 없어요. 때문에 지장 스님이 등장하는 3인칭 추리 단편으로 만드는 게 나았습니다. 

두 번째 문제는 슈겐도의 행각승이라는 주인공이자 탐정 지장 스님입니다. 강인한 체력에 무술도 어느 정도 갖추고, 술이나 고기도 사양하지 않는 - 좋아하는 칵테일이 "보헤미안 드림"(조사해봤는데 존재하지 않는 칵테일 같네요)일 정도로 - 만화같은 설정도 별로지만, 주인공이 스님이어야 할 이유가 없는 탓입니다. 앞서 언급한 "A 사이즈 살인사건"에서는 그나마 "선문답"이라는 형식을 통해 추리를 피력하는 등 스님 설정의 당위성을 가져가는데 반해, 이 작품에서는 "떠돌이"라는 설정 이외에는 행각승이 주인공이어야 하는 이유가 없습니다. 

그 외에도 전체적인 분위기 모두가 소설이 아닌 TV 단막극에 더 어울리는 내용들이었고, 트릭들도 영상화되는 것이 더 깔끔하게 설명될 수 있을것 같아서 TV 시리즈를 소설로 만든게 아닌가하는 의심마저 듭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입니다 .미스터리 매니아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고전 스타일 구현을 위한 무리한 욕심은 가상합니다만, 썩 잘 만들어졌다고 보기 힘듭니다. 이 작가는 소설가보다는 "원작가"로 활동하는게 더 낫지 않을까 싶기도 하네요. 수록작별 상세 소개는 아래와 같습니다. 개인적 베스트로는 "독 만찬회"를 꼽습니다.

"지방 철도와 신데렐라" 

고전적인 구성과 더불어 독자에게 주는 정보도 공정한 정통 퍼즐 미스터리입니다. 상-하행선이 번갈아 운행하는 시골 기차라는 설정을 바탕으로 한 트릭이 등장하고요. 아이돌과 매니저가 등장하는 설정은 뻔한 감이 없잖아 있지만 재미있었어요. 별점은 3점입니다.

"저택의 가장파티" 

벼락부자 졸부의 가장 파티장에서 배트맨 분장을 한 사람이 피해자를 찾아간 뒤, 다스베이더가 피해자와 배트맨의 시체를 발견한다는 내용입니다.

영상화되는 것이 더욱 어울릴법한 트릭으로 그다지 현실적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범인이 곧바로 밝혀졌으리라 생각도 들고요. 별점은 2.5점입니다.

"절벽의 교주" 

사이비 종교 단체의 절벽 아래 수행장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 이야기입니다. 

공들여 만든 자연적인 밀실을 무대로 한 밀실 살인물인데 설정부터가 억지스러워요. 트릭도 너무 만화같고요. 범행이 작품에서처럼 한 번에 성공했다는 것도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독 만찬회" 

가족 만찬회장에서 벌어진 독살 사건이라는 고전적 설정도 좋지만, 트릭이 굉장히 깔끔하고 기발해서 마음에 듭니다. 동기도 합당하고요. 우연에 의한 일종의 사고라는 문제가 있긴 한데 수수께끼 풀이로는 적당한 수준이었다 생각되네요. 뭐 이런게 더 현실적이기도 하겠죠. 별점은 3.5점입니다.

"죽을 때는 혼자" 

전직 야쿠자가 총에 맞아 죽은 시체로 발견되는데 범인의 도주로는 완전히 차단된 상태였다는 내용으로, 뭔가 거창한 밀실 트릭이 쓰였을 것 같은데 실상 알맹이는 별 게 없어서 아쉬웠습니다. 범인이 중요한 단서를 간과했기 때문에 사건이 복잡해진 것 뿐이거든요. 좀 흔한 내용이기도 하고요. 별점은 2점입니다.

"깨진 유리창" 

일종의 순간 이동 트릭이 등장합니다. 피해자가 사망할 때가 아니라, 범인이 도주하고 나서 사망 시간을 조작하기 위해 유리창을 깼다는 것이지요. 어디서 많이 본 듯 싶어요. 

그러나 트릭이 정말로 조잡하고 유치한 수준입니다... 수사를 통해 곧바로 드러날 장치 트릭이라는 문제도 크지만, 안에서 깬 유리와 밖에서 깬 유리의 형태가 당연히 다를 것이라는 기본조차 망각하고 있는 탓입니다. 별점은 1점입니다.

"덴마 박사의 승천" 

우연히 만난 발명가의 괴상한 죽음의 진상은 무엇인가?에 대한 내용입니다. 자살 같지만, 현장까지 술에 취한 듯한 엉망진창의 피해자 신발 자국이 남겨져 있었다는건데, 수준을 떠나서 솔직히 반칙이었다 생각됩니다. 작위적이면서 억지스럽기도 했고요. 차라리 바 손님들의 아이디어가 진상보다 더 나았습니다. 별점은 1점입니다.

2008/10/09

하얀 토끼가 도망친다 - 아리스가와 아리스 / 김선영 : 별점 3점

하얀 토끼가 도망친다 - 6점
아리스가와 아리스 지음, 김선영 옮김/시작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작가 아리스 시리즈 중,단편집입니다. 이 시리즈의 탐정은 범죄 심리학 조교수 히무라 히데오로 작가 아리스 시리즈라 불리우는 이유는 작품의 왓슨 역이 저자 이름과 같은 추리소설가 아리스가와 아리스이기 때문입니다. 전에 원서로 읽고 리뷰를 남긴 “러시아 홍차의 비밀” 도 같은 시리즈의 한권이죠. 뭐 제가 좋아라 하는 일본 본격 추리 단편집이니 당연한 마음으로 사서 읽었습니다. 작가 아리스 시리즈 대표작은 “국명 시리즈”로 알고 있는데 좀 엉뚱한 시리즈가 먼저 번역되어 소개된 것이 좀 의아하긴 했습니다만.

감상평은 뭐랄까, 좀 애매하네요. “국명 시리즈” 이기도 한 “러시아 홍차의 비밀” 보다 재미와 수준이 떨어지기도 하고요. 전체적인 책 자체의 평균은 비슷하지만 “러시아 홍차의 비밀” 은 수록작품의 편차가 커서 좋은 작품은 굉장히 좋은 반면, 이 책에 실린 작품의 수준은 엇비슷하지만 고만고만한 수준의 작품들이 모여 있어서 딱히 끌리는 작품은 없거든요. 또한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특징이기도 한 정교한 트릭에 매몰되어 이야기 전개가 매끄럽지 않은 부분도 눈에 많이 거슬렸고요. 이런 단점까지 존경한다는 엘러리 퀸을 닮을 필요는 없었을텐데... 어쨌건 별점은 3점입니다. 신본격 대표작가의 정통 추리 단편집을 국내에서 접하기는 쉽지 않기에 가산점을 더했습니다.^^

총 4편의 중단편이 실려있는데 작품별로 자세하게 이야기하자면,

부재의 증명
일종의 알리바이 트릭 + 순간이동 트릭 등이 결합된 정통 퍼즐 미스터리물입니다. 아주 약간의 시간차를 이용한 결정적 단서 포착 부분은 좋았으며 동기와 범행 방식, 범인의 행동도 설득력이 넘쳐서 완성도가 높더군요. 개인적으로는 이 단편집에서의 베스트 작품이었습니다.

지하실의 처형
형사가 수배중인 테러리스트 들에게 사로잡힌채 그들의 처형 의식의 목격자가 된다는 기본 설정은 독특했지만 애당초 범인이 둘중 하나라는 근본적 한계 때문에 꽉 짜여진 긴장감을 느끼기 어려운 작품이었습니다. 히무라의 추리 역시 경찰의 수사 결과를 토대로 이루어지기에 그다지 대단하거나 놀라운 진상이 밝혀지는 것도 아니고요. 차라리 논리 퍼즐 형태의 미스터리로 가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 싶네요. 어쨌건 정통 추리의 맛을 느끼기 어려웠고 그다지 높은 점수를 주기도 어렵기에 이 단편집에서의 워스트 작품으로 꼽겠습니다.

비할 바 없이 성스러운 순간
2건의 다이잉 메시지가 중요하게 사용되는 퍼즐 미스터리입니다. 그런데 2건 중 첫번째 메시지는 너무나 특정한 정보를 나타내는 것이며, 중간의 히무로의 착안이 명확하기에 해당 정보를 알고 있다면 크게 수수께끼로 남을 것 같지 않아 그다지 정교한 트릭으로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무엇보다도 죽어가는 사람이 그런 정교한 도안을 그릴 수 있었을까 하는 근본적인 의문이 생기기도 하고요. 두번째 메시지는 피해자의 행동이 그럴싸 하다는 점에서는 합격점을 줄 만 하고 피해자의 의도와 다른, 하지만 정확한 결론이 도출된다는 점은 신선한 발상이 엿보였습니다. 첫번째 메시지의 작위성만 없었다면 괜찮았을텐데 아쉽네요.

하얀 토끼가 도망친다.
이 책에서 가장 긴, 중편분량의 정통 추리물로 고전적인 시간표를 이용한 알리바이 트릭을 다루고 있습니다. 긴 분량에 걸맞게 트릭 자체는 공들여 잘 만들어진 트릭으로 추리적으로는 만족할 만 한 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야기 전개에 있습니다. 범인이 범행을 하는 동기를 만들어 내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동기가 되는 첫 사건의 동기는 전혀 설명되지 않으며, 애당초 첫번째 범행에서의 증거가 너무나 결정적이기에 두번째 사건이자 주 사건의 알리바이 트릭을 파헤치는 것은 전혀 의미가 없다고 보여지거든요. 한 사건의 범인임이 명백하고 증거도 확실한데 왜 다른 사건에 시간과 공을 들이는지 영문을 모르겠습니다. 또한 작품 전반에 걸쳐 “토끼”라는 상징이 지속적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작품의 내용과는 전혀 상관없어서 나중에는 짜증마저 일었고요. 추리적 완성도가 높은, 잘 짜여진 작품이지만 이야기 전개에 실패한 작품으로 보이기에 아쉬움이 큽니다.

2026/07/10

퍼즐 - 야마다 유스케 : 별점 2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명문 사립 도쿠메이칸 고등학교가 테러범들에게 점거당했다. 최우수 학급인 3-A 반의 담임 야스다와 전학갔던 이전 동급생 미토메가 인질로 잡혔다. 테러범들은 인질들의 목숨을 댓가로 3-A 반 학생들에게 게임을 제안했다. 48시간 내에, 학교에 숨겨져 있는 2,000개의 퍼즐 조각을 찾아 맞추는 게임이었다.  

일본 작가 야마다 유스케의 장편 소설입니다. 만화, 드라마, 영화에 심지어 게임까지 제작되었던 인기작인데 국내에는 아직 정식 소개되지는 않았습니다. 원서로 읽었습니다. 

특징이라면 전형적인 폐쇄형 게임 미스터리 장르의 구조를 갖추고 있다는 점입니다. 폐쇄된 곳은 학교, 게임은 학교 안에 숨겨진 2,000개의 퍼즐 조각을 48시간 안에 찾아서 맞추는 것. 게임의 보상은 인질의 목숨이니까요.

하지만 다른 폐쇄형 게임 미스터리와 비교해 보면, '게임'이 장점입니다. 학교 곳곳에 작은 퍼즐 조각이 숨겨져 있는데, 이를 찾아내서 맞춰야 한다는 현실성도 좋고 예상치 못한 곳에서 퍼즐 조각을 발견하는 묘사도 흥미를 자아내는 덕분입니다. 그리고 퍼즐 조각을 찾아서 맞추기 위해 열 세 명의 학생들이 역할을 분담하는 과정, 이 때 서로 각자가 가진 심리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묘사도 재미 요소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한 조각을 끝내 발견하지 못해서 게임은 실패하는데, 여기서 테러범들의 정체로 이어지는 결말도 그럴싸 합니다. 마지막 한 조각이 미토메의 얼굴이었고, 퍼즐의 원본 그림이 3-A반 학생들의 입학식 사진이라는 단서도 충실하고요. 테러범들은 입학은 같이 했지만 성적 하락으로 낙오하여 전학갔던 동급생들이었습니다. 이 부분은 입시 학원처럼 변한 학교 비판도 담고 있어서, 약간 사회파스러운 느낌도 전해줍니다. 초반에 이탈했던 이케타의 어머니가 다른 애들이 갇혀 있을 때 공부를 따라잡아야 한다고 종용하는 장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게임 외 설정은 납득하기가 어렵습니다. 테러범들이 총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경찰이 48시간 동안 별다른 행동을 하지 못하는 것은 이상합니다. 학생 두 명이 초반에 돌아가는 등 통제도 제대로 되지 않고요. 또 학생들이 왜 계속 게임에 참여해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도 불충분합니다.야스다 선생은 학생들을 성적과 입시 기준으로 대하던 교사입니다. 과거에 낙오한 학생 미토메가 누구인지도 대부분 몰랐고요. 그런데 학생들이 야스다를 위해 노력하는 모습은 부자연스럽습니다. 

테러범들의 목적도 불분명합니다. 이들이 낙오한 가장 큰 이유가 야스다 선생 때문이라면, 복수의 대상은 야스다로 한정하는게 당연합니다. 그런데 학교를 점령하고 학생들에게 퍼즐 게임을 시킨 이유는? 전혀 와닿지 않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퍼즐을 찾는 과정과 학생들의 심리 묘사를 통한 긴장감은 제법이지만, 설정과 동기 등의 측면에서 완성도는 부족합니다. 추천할 만한 작품은 아닙니다. 

2009/12/07

이 미스터리를 읽어라! 해외편 - 본격물 목차 소개

이전에 읽었던 "이 미스터리를 읽어라 - 일본편" 에 이은 해외편입니다. 형이 구입했기에 빌려서 읽게 되었죠^^ (땡쓰~)

무려 100편이나 되는 작품이 총 7편의 큰 주제로 나뉘어 소개되고 있는데 첫번째가 본격물, 두번째가 하드보일드, 세번째가 경찰소설, 네번째가 법정 미스터리, 다섯번째가 서스펜스 스릴러, 여섯번째가 모험 & 스파이물, 일곱번째가 괴기환상 & 패러디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리뷰 전에 이 중 본격물부터 먼저 간략하게 정리해서 목차만이라도 소개해볼까 합니다.

읽은 것은 적색 (그중 리뷰가 있는 것은 링크), 번역 자체가 안된 것은 녹색, 번역되었지만 땡기지 않거나 절판 등의 이유로 아직 읽지 않은 작품은 파란색입니다. 총 30편 중 6편이 번역되지 않았고, 남은 24편 중 4편을 읽지 않았으니 84% 독파니까 나름 선방한 편이군요. 나머지도 어서 읽어봐야 겠습니다.

미스터리라고 한다면 본격물! 저릿저릿한 무서움을 만끽해라!
1. 모든 것은 여기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에드가 알란 포우 - 모르그가의 살인
2. 영국 미스터리의 기념비적 대작 - 월장석

3. 절대 빼놓을 수 없는 홈즈 시리즈, 그 중 최고봉은 "바스커빌가의 개"
4. 준비된 의외의 비장의 카드! 실속이 빛나는 "구석의 노인"
5. "심리적 밀실" 스타일을 창출한 불후의 명저 "노란방의 비밀"
6. 소년의 꿈. 괴도 뤼뺑의 진면목이 떠오르는 "813"
7. 체스터튼의 "브라운 신부의 동심"을 읽지 않은 독자는 가짜다!
8. 큰 논쟁을 불러 일으킨 추리소설중의 추리소설 "애크로이드 살인사건"
9. 크리스티와 인기를 양분했던 도로시 세이어스의 "나인 테일러스"
10. 일본의 여정 미스터리 붐에 불을 당긴 F.W 크로포츠의 "통"
11. 미국 미스터리 중흥의 시조. 회심의 역작 "그린 살인사건"

12. 30년간 베스트 원의 자리를 독점. 엘러리 퀸의 "Y의 비극"
13. "세개의 관"으로 불가능범죄를 풀어나가는 놀라운 쾌감을!
14. 개성파탐정의 필두는 "독사"로 데뷰한 미식가 탐정 네로 울프.
15. 변호사물의 원조 "기막힌 살인사건"은 최고의 유머 미스터리.
16. "본격단편"에 반드시 꼽히는 실력파 "9마일은 너무 멀다"
17. 안락의자 탐정의 고독한 자리를 지키는 브롱크스의 "엄마는 뭐든지 알고 있다"
18. 현재의 쥴리안 소렐이 더욱 숙달시킨 완전범죄. 아이라 레빈의 "죽음의 키스"
19. 전통과 참신한 모험소설의 융합이 호평받은 "사이먼은 누구?"
20. 사상 최저의 무능한 탐정이 책 속으로! "도버 4 / 절단"
21. 순도높은 영국 본격파의 맛. 레지널드 힐의 "뼈와 침묵"
22. 중후하고 고귀한 향기. P.D 제임스 "욕망과 음모"
23. 수많은 상을 모두 획득! 루스 랜들 "장미의 살의"
24. SF 대가 아이작 아시모프가 펼쳐놓는 고도의 수수께끼 "흑거미 클럽 1"
25. 아 이런 방법이 아직 있었다니! 본격 팬들이 감탄한 "호그 연속살인"
26. "숲을 지나가는 길"은 크로스워드 퍼즐을 풀듯이 읽는 것으로도 충분
27. 희대의 명 요리장이 팔을 걷어올리고 만든 일품요리 "초대받지않은 손님들의 뷰페"
28. MWA 최우수 장편상을 수상한 백골의 판타지. 엘킨즈의 "오래된 뼈"

29.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된 궁극의 역사 미스터리 "장미의 이름"
30. 수도사를 탐정으로! 성인들의 역사 미스터리 "수도사 캐드펠"

2021/05/07

통 - 프리먼 월스 크로프츠 / 오형태 : 별점 2.5점

 - 6점
프리먼 윌스 크로프츠 지음, 오형태 옮김/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부두에서 포도주 통 하역 작업을 하던 해운회사 직원 보로턴은 통 한 개 안에 금화와 시체가 들어있다는걸 알아차렸다. 그런데 브로턴이 회사와 경찰에 신고하던 사이에 통을 누군가 가져가 버렸다. 번리 경감의 수사를 통해 통을 가져간 사람인 훼릭스 씨와 통, 그리고 통 속 금화와 시체를 확보하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번리 경감은 파리 경시청 경감 르빠르쥬와 함께 피해자 아네트, 피해자의 남편 보와라크 수사에 나서는데....

1920년에 발표된, 고전 본격 추리 소설 황금기 최고 걸작 중 한 편입니다. 작가 F.W. (프리먼 윌스) 크로프츠의 데뷰작이자 대표작이기도 하고요. 유명세답게 이런저런 리스트에서도 많이 언급되는 편입니다. '주간문춘에서 선정했던 동서미스터리 100'에서는 33위로, '에도가와 란포 본인 선정 미스터리'에서는 9위로 선정했었네요. '히치콕 매거진 선정 세계 10대 추리 소설' 중에서는 무려 2위이고요. 저도 오래 전에 재미있게 읽었었는데, 모처럼 다시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이 작품이 추리 소설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실타래처럼 복잡하게 얽혀있는 용의자들 중 누가 진범인지를 밝혀내는 후더닛, 혹은 불가능해 보이는 범죄를 어떻게 저질렀는지 알아내는 하우더닛과 같은 당대에 유행했던 '두뇌 게임', '퍼즐 미스터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작품 속 피해자 아네트는 단순한 교살로 살해되어 추리의 여지는 없습니다. 범인은 훼릭스가 아니면 보와라크 씨일 수 밖에 없거든요. 이 작품은 한 마디로 말해서, 두뇌 게임이 아니라 '수사를 통한 현실감'이 주는 재미를 처음으로 독자에게 선사한 작품입니다. 그 덕분에 높은 평가를 받는 것이겠지요.
1부에서 통을 누가 가져갔는지에 대한 수사도 볼 만 하지만 2부와 3부에 걸쳐 선보이는 본격적인 수사는 감탄을 자아냅니다. 2부는 번리 경감, 파리의 경시총감 쇼베 씨, 르빠르쥬 경감이 보와라크 씨의 알리바이가 완벽하고, 훼릭스가 범인이라는 증거를 발견하여 그를 체포하는 내용이며 3부는 훼릭스의 변호사가 고용한 탐정 조르쥬 라튀슈의 철저한 조사를 통해 보와라크가 진범임을 밝히는 내용인데, 20세기 초반 시대상을 잘 반영하면서 당시 최신 문물과 단서들을 활용하여 멋지게 표현해 냅니다.

무언가를 수사, 조사하기 위해서는 추리를 통해 가설을 먼저 세우는 덕분에 아예 추리의 여지가 없지는 않습니다만, 이 역시 수사의 영역으로 보는게 타당합니다. 사건 관계자의 증언을 듣고 이를 조사하여 진위여부를 판단하는 탐문 수사가 대부분인 수사 과정은 추리할 부분이 많지 않고요. 2부에서 놓치거나, 간과했던 부분을 3부에서 검증, 보완하여 진상이 드러나게 될 뿐이거든요. 대표적인게 보와르크의 알리바이입니다. 보와르크는 파리에서 집사와 회사에 전화를 걸었다고 증언하고, 집사 등은 그 시간에 보와르크로부터 전화를 받았다는걸 보장합니다. 그러나 라튀슈의 조사로 이 전화는 파리가 아니라 칼레에서 걸려왔다는게 밝혀지게 됩니다. 확실히 추리가 아닌 수사를 통해 깰 수 있는건 범인의 알리바이 밖에 없지요. 이런 점에서 광고 문구 그대로 '리얼리즘 미스터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위와 같은 현실적인 수사 과정에 반해, 고전 본격물에서 흔히 봄직했던, 시체가 들어있던 불길하고 기묘한 '통'의 존재가 결합되어 흥미를 자아내는 설정도 좋습니다. 시체가 들어 있을 수도 있어서 경찰에 신고했지만, 관계자들이 여럿 얽혀 왔다가다 하는 과정이 긴장감넘치고 심지어 웃음까지 자아내는 1부는 아주 흥미로왔으며, 마지막에 시체가 발견되는 클라이막스는 그야말로 압권이었어요.

하지만 앞서 말씀드린 고전 중심의 리스트말고, 'MWA 추천 베스트 미스터리 100'과 같은 최신 작품을 포괄하는 리스트에는 선정되어 있지 않은데 이 역시 당연합니다. 시대를 앞서나가고, 경향을 주도한 당대의 최신작이었지만 지금 읽기에는 많이 낡고, 문제도 많은 탓이에요. 보와르크 씨가 저지른 범죄부터가 설득력이 부족합니다. 그는 살해 후에 충분히 사체를 숨길 수 있었습니다. 훼릭스와 사랑의 도피를 했다고 이미 집사와 하녀가 믿은 상태니까요. 구태여 조각상을 한 개 더 주문하면서, 정체가 드러날걸 각오해가면서까지 통을 파리에서 영국으로, 다시 영국에서 파리로 옮길 수고를 할 이유는 없었습니다. 시체를 통 속에 넣어둔 뒤, 집사 눈에 띄지 않게 처리하는걸 고민하는게 당연하지요. 훼릭스에 대한 복수심 때문에 그랬다는데, 그럴거라면 파리에서 훼릭스가 아내를 살해하고 도주했다고 꾸미는게 낫지 않았을까요?
게다가 훼릭스가 수상해 보이도록 만들어 누명을 씌울 생각이었다는데, 통이 깨져서 금화와 함께 시체가 살짝 드러나지 않았다면 사건이 커지지도 않았을 겁니다. 훼릭스에게 누명을 제대로 씌우려면, 이 작품에서처럼 훼릭스가 찾기 전에 시체가 드러났어야 하지만 이는 순전히 우연이었어요.

그래도 통의 이동은 작품의 핵심이니 그렇다 치죠. 그러나 2부에서 보와라크의 알리바이가 확실하다고 의견을 모으는 장면은 여러모로 어설픕니다. 예를 들어 보와라크가 1시 쯤 내린 집중호우를 맞아서 옷이 젖었다는게 그 시간에 밖에 있었던 증거는 될 수 없습니다. 경시총감 쇼베의 말대로 부인이 1시 전에 집을 나갔다는 것도 증명되지 않고요. 지나치게 보와라크를 무죄로 만드려는 억지로 보였습니다.
세부 설정들도 지나치게 작위적이었습니다. 훼릭스의 복권 이야기를 '우연히' 듣고 이를 사건에 써먹을 생각을 했다는게 대표적입니다. 게다가 훼릭스와 친구 르 고티에 씨는 복권 이야기를 할 때 보와르크 씨가 있었다고 말하지도 않았어요. 이건 공정하지 않지요. 마지막에 보와르크 씨가 라튀슈에게 모든 범행을 고백한 뒤 그를 죽이려고 했지만 실패하고 자살하는 장면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울러 가독성이 떨어지는 동서 추리문고의 번역도 역시나 문제가 많네요. '워타르 로드'는 '워털루 로드'를 말하는 것이겠지요?

이러한 점 때문에 아주 높은 점수를 주기는 힘듭니다. 지금 시점에서 이 작품을 평가한다는게 온당한 처사는 아니겠지만요.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개인적으로는, 2부와 3부를 묶어서 한 편의 이야기를 만드는게 훨씬 나았을 겁니다.

2013/11/08

자물쇠가 잠긴 방 - 기시 유스케 / 김은모 : 별점 2점

자물쇠가 잠긴 방 - 4점
기시 유스케 지음, 김은모 옮김/북홀릭(bookholic)

"유리망치""도깨비불의 집"이라는 두 권의 책으로 접했던 기시 유스케의 에노모토 - 준코 컴비 단편집. 이전 단편집 "도깨비불의 집"은 다소 실망스러웠지요. 그래도 좋아하는 작가이기에 다시 집어들게 되었습니다.

자물쇠 전문가 에노모토 시리즈답게, 밀실 트릭을 다룬 본격 퍼즐 미스터리 4편이 실려 있습니다. 목차는 아래와 같습니다.

  1. 서 있는 남자
  2. 자물쇠가 잠긴 방
  3. 비뚤어진 상자
  4. 밀실 극장

읽고 나서 바로 생각난 것은 바로 히가시노 게이고의 갈릴레오 유가와 시리즈입니다. 두 시리즈 모두 과학을 근거로 한 불가능 범죄를 다룬 정통 퍼즐 미스터리로 영상화 되었을 뿐 아니라 탐정역인 유가와 - 에노모토 모두 시니컬하면서도 자신만의 전문 영역을 확고히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유사하거든요. 대표 장편으로 수작인 "용의자 X의 헌신"과 "유리망치"가 존재하는 점도 동일하고요.

그러나 확실히 히가시노 게이고 쪽이 좀 더 대중적이긴 합니다. 에노모토 시리즈는 트릭에 너무 집중한 탓에 읽는 재미는 떨어지거든요. 범인들의 동기도 너무 확실한 탓에, 밀실 트릭을 사용했다 하더라도 경찰이 수사로 체포하지 못한다는건 직무유기가 아닐까 생각되기도 했고요. 완벽한 알리바이 트릭을 단지 수상하다는 느낌만으로 파헤치던 선배 형사들의 근성은 다 어디 갔는지 모르겠네요.

또, 대중적인 인기를 위함이었는지 개그 욕심이 과한데 작품과 잘 맞지 않더군요. 준코야 그렇다 쳐도 에노모토까지 희화화시킨 것은 실수였습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별점은 전체 평균으로 2점. 쉽게 쉽게 읽히고 보기 드문 밀실 집중 본격물이라는 것은 반갑지만 트릭 외의 부분은 점수를 주기 어려웠습니다. 그나마 두 편은 트릭마저 별로라... 팬이시라면 괜찮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딱히 추천해드릴 작품은 아닙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서 있는 남자"

장례업체 사장의 의문의 자살 사건을 다룬 작품. 

밀실 트릭에서는 거의 보기 힘들었던 일종의 "막"과 시체 강직을 이용한 트릭의 아이디어는 돋보입니다.

허나 너무 복잡하고 장치 의존도가 높아서, 과연 생각대로 잘 됐을까는 의문입니다. 글로 설명하기는 어려운 트릭이라서 만화나 영상물이 더 잘 어울렸을거라는 생각도 들고요. 아울러 마지막 장면처럼 범인을 옭아매는 것은 쉬워 보이지 않았다는 단점도 큽니다. 막에 남은 DNA는 그렇게 유력한 증거로 보이지 않으며, 끝까지 사장이 직접 쓴 유서가 맞다, 자살이 맞다라고 주장하면 결국 명확한 증거가 없기에 유죄 처리하기는 어려웠을 테니까요.

결론적으로 별점은 2점입니다.

"자물쇠가 잠긴 방"

'섬턴 돌리기'라는 전문적인 털이범의 수법이 등장하는 것도 재미있지만, 이러한 등장인물의 직업을 이용하여 보다 완벽한 알리바이 트릭을 꾸민 범인의 천재적 작전이 빛을 발하는 작품.

갈릴레오 시리즈라고 해도 믿을 만큼 과학적인 트릭이 등장하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기도 합니다. 범인이 과학교사인 덕분인데, 정전기와 기압차를 이용한 밀실 트릭은 정말 환상적이었어요. 실제 구현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간단한 조작으로 가능하다는 장점도 크고요.

그러나 너무나 동기가 확실한데 경찰이 그냥 자살 처리했다는건 설득력이 너무 떨어집니다. 또 앞선 트릭들에 비해 자물쇠를 잠그기 위한 종이 테이프 트릭은 잘 와닿지 않았어요. 이 부분은 핵심 증거를 위해 추가적인 장치로 들어갔을 수는 있는데, 과연 증거 능력이 있는 것인지도 잘 모르겠더라고요. "나중에 만든 거다!"라고 범인이 우기면 해명할 방도가 있던 것인지...

때문에 약간 감점하여 별점은 3점. 그래도 표제작답게 이 단편집의 베스트 작품이기는 합니다.

"비뚤어진 상자"

건축업자 탓으로 신혼집이 망가지자, 예비신랑이 살의를 품는다는 내용입니다. 동기인 부실 건축물을 트릭에 활용하는 아이디어는 괜찮고, 조금은 이색적인 도서 추리물의 형태를 띄고 범인에게 감정이입하게 만드는 전개와 묘사도 그럴싸합니다.

그러나 트릭이 너무 작위적입니다. 핵심 설정인 망가진 집이라는 무대가 지나치게 극단적이라 현실적으로 느껴지지 않을 정도거든요. 게다가 공으로 두들겨도 흔적이 남는다는 것은 상식 아닌가요? 범인이 고교야구 감독이고, 집안에서 테니스공이 발견되었고, 외부와 연결된 적당한 크기의 구멍이 있다라는게 다 드러나버리면 트릭도 풀어내기가 별로 어렵지 않고요.

트릭 중심의 작품에서 트릭이 별로이니 점수를 주기도 힘드네요. 별점은 1.5점입니다.

"밀실 극장"

전편에 등장했던 살인 사건의 배경이 되었던 연극단이 등장합니다. 황당한 연극과 함께 살인사건이 벌어진다는 내용이지요.

분위기는 흥미롭고 웃기기까지 하지만 트릭은 별볼일 없고 사건도 우발적으로 벌어진 것이라 정교함이 떨어지는 등 본격물로 보기는 어려운 작품입니다. 캐릭터들의 개그가 만개하는, 그냥 쉬어가는 느낌의 블랙 코미디였달까요? 단 문제는 별로 웃기지 않는다는 것이죠.

기시 유스케의 작품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수준의 졸작입니다. 별점은 1점입니다.

2013/12/30

미타라이 기요시의 인사 - 시마다 소지 / 한희선 : 별점 2점

미타라이 기요시의 인사 - 4점
시마다 소지 지음, 한희선 옮김/검은숲

총 네 편의 중단편이 수록된 미타라이 기요시" 시리즈 초기 작품집.

"점성술 살인사건"은 일본에 추리문학의 새로운 바람을 불러온 걸작임에는 분명합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미타라이라는 탐정을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이후 작품들도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고요. 엘러리 퀸과 반 다인의 뒤를 잇는 잘난척 덩어리에다가, 뭐 하나 못하는 게 없는 잘난 인물로 묘사되니 마음에 들래야 들 수가 없었습니다. 특히나 "마신유희"에서는 그 정점을 찍었었죠.

다행히 이 책 수록작들은 위의 단점이 두드러지지는 않습니다. "점성술 살인사건" 바로 직후에 이어지는 초기작인 덕분이겠지요. 신본격 시대를 연 작가답게 고전적인 퍼즐 미스터리 스타일 정통 본격 추리물들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네 편의 이야기 모두 장르가 조금씩 다른 것도 재미를 더합니다. 첫 번째 작품은 전형적인 알리바이 깨트리기가 밀실 살인과 결합되어 있으며, 두 번째 작품은 일종의 순간 이동 트릭이 등장합니다. 세 번째는 붉은 머리 클럽이 연상되는 일종의 사기극을 그린 소품이고 네 번째는 유괴극이거든요.

또 두 번째, 세 번째 작품의 화자가 이시오카가 아니라는 것도 특이한 점이에요. 물론 두 번째 작품은 화자가 다르다고 해서 딱히 달라진건 없습니다. 미타라이의 경이적인 재즈기타 실력을 설명하기 위한 장치에 불과하고요. 반면 세 번째 작품은 사건이 워낙에 독특하고, 화자의 버릇이 사건의 핵심 중 하나라는 점에서 화자 변경이 꽤 효과적으로 사용된 편입니다.

결론내리자면, 작품마다 편차가 크고 불필요한 설정, 묘사가 많기 때문에 별점은 2점입니다만, 최악이라 할 수 있는 두 번째 작품 "질주하는 사자"만 빠졌어도 별점 0.5점은 더 줄 수 있습니다. 다른 작품들은 비교적 괜찮고, 무엇보다도 트릭만큼은 신본격의 장을 연 작가의 명성에 어울립니다. 본격 퍼즐 미스터리 애호가시라면 한 번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네요. 장르소설의 명가 "검은숲"에서 출간된 책답게 장정과 디자인도 괜찮습니다.

덧붙여, 작가의 후기에서 미타라이 작품의 영상화를 반대하는 이유가 전형적인 일본인과는 정반대의 캐릭터를 구현하고 싶었다는 캐릭터론이 펼쳐지는데, 전형적인 일본인에 대한 설명은 수긍이 가지만 미타라이라는 캐릭터가 그것에 반하는 캐릭터라는 것에는 절대 수긍할 수 없었습니다. 경찰을 싫어하고, 높은 사람을 싫어하는 잘난척하는 독설가에다가 사람의 본성에 관심이 많으며, 음악 등 다방면에 조예가 깊다는 점에서 아무리 봐도 "셜록 홈즈"의 판박이에 불과하니까요.

수록작별 간단한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스포일러 포함되어 있는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숫자 자물쇠"

"점성술 살인사건"에 등장했던 다케코시 형사가 미타라이에게 미궁의 밀실 살인 사건의 해결을 부탁하는 내용으로, "점성술 살인사건" 바로 직후에 이어지는 초기작입니다.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한 순간 이동 트릭(정체되는 도로 위 트럭 짐칸에 있던 범인이 몰래 빠져나와 지하철로 이동하여 범행을 저지르고 다시 복귀!) 만큼은 아주 좋았습니다. 과연 짐칸을 향해 아무도 말을 걸지 않았을지는 의심스럽지만, 습관처럼 계속된 출근 방법이라는 전제가 있으니 딱히 문제라 할 수 없겠지요. 미타라이가 의외의 자상한 면을 드러내는 것도 인상적이었고요.

그러나 밀실 트릭 자체는 별게 아니고, 초반 3단 숫자 자물쇠의 조합에 대한 경우의 수가 의도적으로 잘못 전달되기 때문에 높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총 3자리의 번호가 1부터 0까지로 조합된다면 누가 생각해도 10*10*10으로 경우의 수는 1,000개밖에 없잖아요.

아울러 범인이 왜 번호를 하나씩 시험해가며 문을 열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등장하지 않는 것도 이해불가예요. 어차피 죽일 생각이었고 딱히 미궁에 빠뜨리려는 의도로 보이지 않은 만큼 그냥 힘으로 뜯어도 됐을 텐데 말이죠. 동기 역시 설득력이 약해 아쉽더군요.

때문에 별점은 2점. 숫자 자물쇠 이야기를 빼고 좀 더 짧고 깔끔하게, 설득력 있는 동기로 전개하는 게 좋았을 겁니다.

"질주하는 사자"

재즈 동호인 모임에서 진주목걸이 도난 사건이 벌어졌다. 그리고 유력한 용의자 구도는 기차에 치인 시체로 발견되는데...

구도가 죽는 순간까지 도저히 기차에 치인 장소로 갈 수 없다는 불가사의를 다룬 작품.

앞선 리뷰에서 말씀드렸듯 수록작 중 최악입니다. 일단 트릭부터 설명하자면, 조잡한 장치 트릭입니다. 문제는 작품 내에서의 설명으로는 독자가 떠올리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T자형으로 이루어진 맨션에 대해 작품 내에서 계속 장황하게 설명하기 때문에 미루어 짐작할 수는 있지만요.

범행의 동기도 어이가 없기는 마찬가지예요. 몇 명 없는 모임에서 보석 도난 사건이 일어난다면 용의선상에 오를 건 분명한데 어떻게 빠져나갈지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다는 것도 황당하지만, 사람들이 한둘이 아닌 모임에서 목을 졸라 살해한다는 건 정말 말도 안 돼지요.

작품과는 무관한 미타라이의 세계급 재즈기타 실력 설정 역시 짜증나는 요소였습니다. 이러한 다양한 천재성의 묘사가 캐릭터에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전혀 점수를 주고 싶지 않아요.

결론적으로 별점은 1점입니다. 점수를 준 부분은 진주목걸이 절도와 관련된 마술 트릭과 마지막 숫자 "7"에 대한 가벼운 농담 같은 반전뿐입니다.

"시덴카이 연구 보존회"

화자인 세키네가 부장에게 자기가 겪은 가장 희한한 일을 이야기하는데 옆에 있던 미타라이가 간단하게 그 진상을 풀어 알려주는 이야기.

핵심은 이른바 시덴카이 연구 보존회 회장이라는 젠키치 할아버지의 사기극인데, 미타라이의 추리는 비약이 심해 논리적으로 보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젠키치 할아버지의 웅대한 이상이 너무 맛깔나게 묘사되어 재미있게 읽을 수는 있었습니다.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 추리와 트릭은 영 아니더라도 "시덴카이 연구 보존회"라는 발상에 점수를 줍니다. 희한한 일, 기이한 조직, 그리고 예상치 못한 범죄의 결합이라는 측면에서 "붉은 머리 클럽"에 대한 오마주로 보이기도 하네요.

"그리스 개"

그리스의 일본인 해상왕 아들이 유괴된 사건을 다루는 전형적인 유괴극인데, 유괴극의 가장 큰 숙제인 몸값 전달에 대한 신선한 아이디어가 돋보입니다. 등장하는 암호 트릭도 꽤 기발했고요. 초반의 타코야키 가게 도난 사건까지 엮어 전개하는 짜임새도 괜찮았습니다.

범인이 누군지 피해자가 눈치챈 시점에서 이미 게임은 끝난 거 아닌가라는 문제, 그리고 "개"에 대해 지나치게 비중을 둔 전개는 약간 의아하지만 평작은 됩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2010/06/02

덧없는 양들의 축연 - 요네자와 호노부 / 최고은 : 별점 2.4점

덧없는 양들의 축연 - 4점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최고은 옮김/북홀릭(bookholic)

"인사이트 밀"로 잘 알려진 일본의 젊은 작가 요네자와 호노부의 5편의 단편이 실려있는 신작 단편집.
부유한 가문의 어두운 부분을 다루고 있다는 점과 모두 여자가 주인공이라는 점으로 묶이는 "기묘한 맛" 류의 연작단편집입니다. 일상계 소품이었던 작가의 전작 "봄철 딸기 타르트 사건", "여름철 트로피컬 파르페 사건"과는 분위기가 전혀 다르고, 클로즈드 써클 정통 본격 추리 스릴러였던 "인사이트 밀"과도 전혀 다른 장르로 작가의 도전 정신이 눈에 띕니다.

그러나... 도전은 좋았지만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습니다. 전작들은 '일정 수준 이상의 트릭' 덕분에 추리적으로는 볼 만 했었습니다. 이러한 트릭 창작력은 작가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할 수도 있고요. 허나 이 작품은 추리적인 부분에서 많이 부족합니다. 트릭이 거의 등장하지 않을 뿐더러, 거의 모든 이야기의 동기가 애매하고 설득력이 없는 탓입니다. 물론 장르가 정통 추리물은 아니지만, 그래도 작가의 명성에서 일말의 기대를 했었는데 많이 아쉽더군요. 아울러 "기묘한 맛"류의 작품치고는 반전이나 서늘함 역시 별로 뛰어나다 하기는 어렵다는 것도 문제고요.

그리고 작가의 단점이라 할 수 있는 설정과 전개는 여전히 별로입니다. 일상계 두 편은 아무래도 일상계이기에 비현실적인 설정이 덜했고, "인사이트 밀"은 설정보다는 트릭이 포인트라서 단점을 많이 상쇄시키지만 이 작품에서는 연작이라는 주제에 얽매여 작위적인 설정이 난무합니다. 그래서 단점이 더욱 두드러지는 느낌이에요. 하녀와 메이드, 그리고 광기에 가까운 집착은 너무 만화적인 설정이잖아요? 부유한 가문의 어두운 진실이라는 주제도 현실적이지 못한 낡아빠진 설정이고요.

작품별 상세 분석을 통한 별점은 2.4점입니다. 작가의 단점이 두드러지고 장점은 잘 보이지 않아 감점합니다. 개인적인 베스트는 "덧없는 양들의 만찬"인데 그나마도 별점은 3점에 불과하네요. 차라리 만화 원작이었다면 더 나았을 뻔 했습니다. 다음 작품은 작가가 스스로의 장점을 잘 살린 정통 본격 퍼즐 미스터리를 선보여주었으면 합니다.

덧붙이자면 출판사 홍보문구는

요네자와 호노부의 블랙 미스터리 연작 소설. 상류계급의 영애들만 가입할 수 있는 비밀스러운 독서 모임이 있다. 남들에게 알릴 수 없는 은밀한 이야기들이 오가는 '바벨의 모임'. 명예, 애증, 꿈…. 이 '바벨의 모임'에 소속된 영애들과 그 집안을 둘러싼 차갑고 매혹적인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인데 이거 완전 과장광고예요! 뭔가 온다 리쿠스러운 분위기를 느끼게 해 주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가 않은, 환상이고 뭐고 없는 내용이며 주요 소재인 것으로 보이는 "바벨의 모임"이 중요하게 등장하는 작품도 딱 두 편 뿐이라 연관성을 지녔다고 말하기 힘들거든요. 게다가 "블랙 미스터리"가 뭔지도 잘 모르겠어요... 패트리시아 하이스미스나 로열드 달이 "블랙 미스터리" 작가던가? 홍보 문구에 낚이는 게 한두 번은 아니지만 씁쓸합니다.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집안에 변고가 생겨서"

후키코의 오빠로 부적절한 행실 탓에 집안에서 쫓겨났던 소타가 저택을 습격하다가 한 손을 잃는 큰 부상을 입고 사라졌다. 그 뒤 후키코의 고모와 할머니가 살해당한 채, 그것도 한손을 잃은 상태로 발견되는데...

탄잔 가문의 후계자이자 외동딸인 후키코의 하녀 유우히의 수기 형태로 전개되는 작품. 

일견 전형적인 고전 추리소설과 같은 전개죠? 하지만 급작스럽게 후키코의 지병(?)이라는 동기로 마무리되며 이야기는 안드로메다로 가 버립니다. 정말이지 동기가 이해하기 어렵고 너무나 뜬금없었어요. 몽유병이라는 설정 역시 작위적이었고요. 후키코가 비밀스럽게 읽는 책들을 유우히에게 보여주는 장면이 나중에 동기와 연관된다는 부분 하나만 마음에 듭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북관의 죄인"

무츠나 가문의 정부의 딸로 태어난 나(아마리)는 북관에 거주하는 무츠나 가문의 후계자 소타로의 하녀 겸 간수가 되었다. 절대 북관을 나갈 수 없는 소타로의 부탁으로 다양한 물건들을 구해주지만, 그 물건들의 사용처는 몰랐다. 하지만 소타로가 병으로 사망한 뒤, 남긴 그림을 통해 물건들의 사용처를 알게 된다.

작품들 중 가장 합리적인 동기, 즉 "돈"이 등장합니다. 하지만 작품 자체는 동기와 범죄보다는 소타로가 아마리에게 부탁한 여러 가지 물건들의 사용처를 더 궁금하게 만듭니다. 식초로 시작해서 압정, 실톱, 막자사발, 목재, 니스, 연을 날릴 때 쓰는 실, 마로 된 천, 납, 계란, 피, 라피즈라줄리 원석들 말이죠. 이 물건들이 앞부분에서 등장했던 그림을 그리기 위한 도구였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앞과 뒤가 자연스럽게 연결되는데, 전개가 아주 깔끔해서 마음에 드네요. 그림에 약간의 장치를 통해 서서히 색깔이 변해가도록 했다는 트릭이 사건의 진상, 즉 아마리의 범죄를 드러낸다는 내용도 괜찮았고요.

그러나 그림을 그리기 위한 도구를 구하기 위한 방법으로는 너무 번잡스러웠고, 그림을 그리지 못하게 한 것 자체가 그다지 설득력이 없고 작위적이어서 아쉬웠습니다. 결과적으로 장난스러운 장치 이외의 의미는 없던 트릭 역시 문제였고요. 별점은 2.5점입니다.

"산장비문"

무역상 타츠노의 별장 비계관의 관리인 야시마는 조난당한 등산객 오치를 구해준 것을 계기로, 손님이 없어 활기 없는 비계관에 손님을 찾아오게 할 묘책을 생각해 내는데...

"바벨의 모임"과는 별 관계없는 별장 관리인이 등장합니다. 합리적인 내용과 이야기 전개가 깔끔했던 소품이에요. 

다만 마지막에 입막음의 수단으로 쓴다는 '만지면 손을 벨 것처럼 날카롭고 사람을 때려죽일 수도 있는 벽돌 같은 덩어리'라는 묘사는 지나치게 기교를 부린 느낌이라 별로였습니다. 그냥 간단하게 금괴라고 하던가. 아니면 그냥 죽이던가...

그래도 합리적인 동기와 더불어 오치의 생사를 놓고 도우미 유키코와 두뇌싸움을 벌이는 등 흥미진진한 전개 등으로 평균적인 수준의 재미는 보장합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타마노 이스즈의 명예"

오구리 가문의 외동딸 스미카의 유일한 친구는 하녀 이스즈. 그러나 모종의 이유로 후계자 지위에서 박탈당한 스미카는 집안에 유배되고 목숨까지 위협받게 된다.

할머니에게 지배되는 시골의 명문가라는 설정은 21세기에 들고 나오기에는 너무 낡은 게 아닐까요? 손자 타이하쿠의 죽음과 노마님의 죽음으로 이어지는 사건의 연쇄 역시 그다지 논리적이지 않고요. 또한 스미카의 추측과 추정으로만 진행되고, 이스즈의 심리 묘사가 전혀 등장하지 않는 등 사건으로 성립하는 게 힘들어 보였습니다. 서늘한 느낌은 괜찮았는데 뭔가 좀 미완성인 느낌이 강한 작품으로 별점은 2점입니다.

"덧없는 양들의 만찬"

졸부 오노데라 가문의 딸은 일기에서 "바벨의 모임"의 소멸에 대해 다룬다. 이유는 그녀가 "아밀스턴 양 요리"를 가문의 요리사 나츠에게 시켰기 때문이었다...

일기라는 1인칭 시점으로 전개되는 작품으로, 스텐리 엘린의 걸작 단편 "특별요리", 윌리엄 아이리시의 긴박감 넘치는 소품 "색다른 토끼스튜 (손톱)" 등 명작 추리 소설 속 요리들이 주요 소재로 등장하기 때문에 즐길거리가 많았습니다. '맛'보다 '머리'로 즐기는 것이라는 아밀스턴 양 요리에 대한 설명과 마지막 결말의 서늘한 느낌도 괜찮았고요.

하지만 1인칭의 일기 형태로 작품을 진행시킨 것은 불필요한 설정이라 생각되며, 전개도 지루한 편이라 마지막 반전의 맛이 부족한 것은 좀 아쉽네요. 그래도 "기묘한 맛"류의 작품으로는 일정 수준 이상이라 생각되기에 별점은 3점입니다.

2024/07/27

[번역] 돈돈 다리, 떨어졌다 (1). - 아야츠지 유키토


여름을 맞아 오랫만에 번역글을 올립니다. 아야츠지 유키토의 "돈돈 다리, 떨어졌다."입니다. '독자에의 도전장'이 삽입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는 작가의 초기작입니다. 제목부터 유명 동요인 "London bridge falling down"의 패러디일 정도로 패러디, 인용이 많은게 눈에 띕니다.
번역에는 Chat GPT의 도움을 얻었으며, 문맥에 맞게 가다듬은게 전부입니다. 혹시라도 문제가 되면 삭제하겠습니다.
그럼 즐겨주시기 바랍니다. 여름에는 누가 뭐래도 추리 소설이니까요.

1991년 12월 31일 밤, 기묘한 방문객이 찾아왔다.
12월 31일이라 하면 대개 온천이라도 가서 한가로이 새해를 맞이하고 싶은 법이지만, 마감이 다가온 장편 소설의 원고 때문에 그럴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하루 종일 워드 프로세서 앞에 앉아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이 날 밤에도 작업실로 쓰는 맨션의 방에 틀어박혀 있었지만, 보고 싶지도 않은 연말 방송을 보며 마음만 초조해하고 있었다. 말하자면 '정신적으로만 초 바쁜' 상태였고, 솔직히 말해 이는 몸과 마음에 그다지 좋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 갑자기 방문객이 찾아온 것이다.
시각은 오후 10시 전. 새해 전야의 이 시간에 방문 판매원이 올 리 없다고 생각하며 현관문을 열자, 그가 서 있었다. 가냘픈 몸에 두꺼운 가죽 점퍼를 입은, 피부가 하얀 청년이었다. 나보다 열 살 정도 어린, 대략 20세 정도의 나이로 보였다.
"안녕하세요, 아야츠지 씨."
병약해 보이는 차분한 얼굴에, 머리는 옛 포크 가수처럼 길게 기르고 있었다. 붉게 상기된 볼에 하얀 입김을 내뿜는 그 얼굴은 분명 기억이 있었다. 하지만 누구였더라? 이름이나 나와의 관계가 떠오르지 않았다.
크림색에 녹색 줄무늬가 들어간 풀페이스 헬멧을 작은 겨드랑이에 끼고, 손에는 가죽 장갑, 검은색 데이팩을 메고 있었다. 이 추운 날씨에 오토바이를 타고 온 모양이다.
"저기, 당신은..."
상대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며, 나는 말을 더듬었다. 역시 누구인지 떠오르지 않았다.
"음..."
"오랜만입니다. U입니다. 잊어버리셨나요?"
"아... 아니 아니. U군, 맞아, 그렇지."
고개를 끄덕였지만, 나는 내심 당황했다.
'U'라는 이름은 확실히 익숙한 이름이었다. 왠지 매우 그리운 느낌도 들었다. 그런데도 어째서인지, 명확한 기억이 떠오르지 않았다. 머리의 한 부분에 반투명 커튼을 드리운 것 같은, 정말 기묘한 느낌이었다.
"별로 건강해 보이지 않네요. 일이 힘드신가 보죠?"
U군은 친근하게 미소 지었다.
"조금 시간 내실 수 있을까요? 폐가 되나요?"
그렇게 말하면, 아무리 정신적으로 바쁘다고 해도 무례하게 돌려보낼 수 없는 것이 나의 성격이었다. 분명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적어도 첫 만남은 아니란 것만은 확실했다. 아마도 대학 후배일 거라고 어렴풋이 납득하고, 나는 그를 방으로 들였다.
거실의 소파에 앉자, U군은 손목시계를 힐끗 보며 "딱 좋은 시간입니다"라고 중얼거렸다. 그리고 데이팩에서 한 권의 노트를 꺼내들었다.
"사실은, 아야츠지 씨에게 오늘 꼭 이것을 보여드리고 싶어서 찾아 왔습니다."
테이블 위에 놓인 것은 보통 노트가 아니라, 원고지를 묶어 만든 책이었다. 표지에는 '돈돈 다리, 떨어졌다'라는 제목이 크게 적혀 있었다.
"뭐지? ...소설인가?"
"네, 뭐 그렇습니다."
U군은 머리를 쓸며 부끄러운 듯 말했다.
"좀 생각이 나서, 써봤습니다. 건방진 부탁이지만, 오늘 밤 꼭 아야츠지 씨가 읽어주셨으면 해서."
"미스터리인가?"
탐색하듯 물어보자, "물론입니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역시 이 U군, 대학 후배였던 것 같다.
학생 시절, 나는 '추리 소설 연구회'라는 학내 서클에 소속되어 있었다. 그 열정이 지금의 나를 미스터리 작가로 만들었고, 지금도 가끔 서클 모임에 얼굴을 비추곤 한다. 젊은 학생들과의 접촉이 나름대로 자극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 해도, 여전히 기묘한 감각은 계속되고 있었다.
아무리 요즘 기억력이 떨어진다 해도, 왜 그의 존재를 제대로 떠올릴 수 없는 것일까? 얼굴도 알고 이름도 익숙하다. 분명 여러 번 만난 적이 있다. 그런데도...
"짧은 거라서, 가능하면 지금 바로 읽어주셨으면 합니다만."
U군이 말했다. 나는 원고를 손에 들고,
"어떤 유형의 작품인가?"
전문 작가인 듯한 어조로 질문했다. U군은 약간 긴장한 얼굴로,
"본격 퍼즐 미스터리로 '독자에의 도전'이 붙은..."
:범인 맞추기 소설인가?"
"네, 뭐 그렇습니다."
'범인 맞추기 소설'이란 즉 '범인 맞추기 게임'의 통칭이다. 출제자가 먼저 '문제편'을 낭독하고, "단서는 모두 나왔다. 자, 범인은 누구인가?"라는 도전이 삽입된다. 참가자들의 답을 모은 후 '해답편'이 제시되고, 정답자에게는 상이 주어진다. 옛날, 일본 탐정 작가 클럽 '토요회'의 신년회에서 이 행사가 진행되었던 것은 너무나 유명한 이야기다. 우리 모교의 미스터리 연구회에서도 발족 이후 현재까지 활동의 일환으로 정기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미 모임에서 발표했나?"
내가 묻자, U군은 "아니요"라고 고개를 저었다.
"우선 아야츠지 씨가 읽어주셨으면 해서."
"자신작인가?"
"절대 맞힐 수 없는 것을 쓰겠다는 각오로 썼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조금 자신이 있습니다."
"흠, 대단하네."
담배를 피우며 U군의 표정을 살폈다. 창백한 뺨에 불가사의한 미소가 떠올랐다. 알겠다. 과거 시마다 소우지에게 '범인 맞추기 게임의 명수'라고 칭송받았던 이 나에게, 그는 문자 그대로 도전하려는 것이구나.
"문제 자체는 매우 단순합니다. 복잡하게 만들어 독자를 속이려는 얄팍한 수는 쓰지 않았습니다. 본격 미스터리의 원점으로 돌아가 썼습니다. 물론, 페어플레이 규칙은 엄격히 지켰습니다. '독자에의 도전'에도 명기했지만, 삼인칭 서술에서 거짓된 묘사는 일체 없습니다. 복잡한 기계 트릭이나 의문의 중국인도 등장하지 않으니 안심하세요."
그런 설명을 덧붙이고 나서, U군은 다시 손목시계를 힐끗 보았다.
"그러니, 우선 읽어보시겠습니까?"
"정답일 경우의 상은?"
농담으로 그렇게 말하자, U군은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요. 만약 정확히 맞히면, 앞으로 저를 노예라고 불러 주세요."
농담을 던지긴 했지만, 이는 엄청난 자신감이었다.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나로서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좋아." 기운을 내서 고개를 끄덕이고, 나는 그 원고를 읽기 시작했다.


2008/07/13

외딴섬 퍼즐 - 아리스가와 아리스 / 김선영 : 별점 3점

외딴섬 퍼즐 - 6점
아리스가와 아리스 지음, 김선영 옮김/시공사

에가미 지로와 아리스는 에이토 대학 추리 동호회의 홍일점인 아리마 마리아의 초대로 아리마가의 별장이 있는 섬으로 여름 휴가를 떠나게 된다. 목적은 마리아의 할아버지인 아리마 데츠노스케가 섬에 숨겨두었다는 보물을 찾기 위함. 섬에 휴가 때마다 모이는 가족들과 손님들이 모두 도착하고 즐거운 휴가가 시작되나 곧바로 마리아의 고모부와 사촌누나가 밀실에서 총에 맞아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지고 연달아 살인 사건이 일어난다. 에가미 지로는 최후의 순간에 진상을 꿰뚫고 아리스에게 자신의 이론을 설명하게 되는데…


국내에 두번째로 소개된 학생 아리스 시리즈 작품입니다. 전편 "월광게임"의 경우 아마츄어 미스터리 매니아의 데뷰작이라는 느낌이 너무 강해서 높은 점수를 주기는 힘들었는데 이 작품은 첫 작품에서의 단점을 보완하여 확실히 업그레이드했네요. 물론 클로즈드 서클이라고 불리우기도 하는, 고립된 섬이라는 무대와 일본 추리 소설에서 흔히 보이는 부자 가문의 복잡한 인간관계라는 기본 설정은 골든 에이지 시절의 영국쪽 퍼즐 미스터리와 고전 일본 추리물의 영향을 부인하기 어려울 정도로 뻔했지만 저도 이런 고전적 설정을 무척 좋아하기에 굳이 단점으로 꼽기는 어렵겠죠? 뭐 이런게 정통 아니겠습니까 .

작품은 크게 주어진 단서를 이용하여 섬에 숨겨진 보물을 찾는 이야기와 더불어 3건 (피해자는 4인)의 살인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일단 보물찾기 이야기는 암호 트릭으로 꽤 잘 만들어진 트릭입니다. 작위적이긴 하지만 기본 개념자체는 나쁘지 않았고 독자도 함께 할 수 있는 수준이라는 점에서 마음에 들었어요. 반면 살인사건 트릭은 그냥저냥하더군요. 밀실 트릭은 좀 대충 만든 것 같은 생각이 들기에 높은 점수를 주기는 힘들었고 다이잉 메시지는 그냥 그러한게 있었다 수준이거든요. 그 외에는 별다른 트릭 없이 “범인이 누구인가?” 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등 트릭물로 보기는 좀 어렵기도 합니다. 하지만 떨어진 지도에 남은 자전거 바퀴 자국을 토대로 하여 범인을 이끌어내는 전개는 좋았습니다. 이치에 합당할 뿐더러 전개도 합리적이고 수긍할만 했기 때문에요. 에가미 지로가 범인을 밝히는 마지막 장 앞에 “독자에 대한 도전”이 있는 것이 만용으로 보이지 않을 만큼 공정하면서도 치밀한, 잘 짜여진 이야기라 생각되네요.
그러나 범인이 단 한명으로 좁혀지는 결과를 낳은 것은 굉장히 아쉬웠어요. 전작 “월광게임”이 초딩스러운 불합리한 동기 부여로 작품의 수준이 바닥이었던것에 비교한다면 이번에는 범행의 동기 부여 부분에 있어서는 확실히 진일보하여 설득력을 갖추긴 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설득력을 제공하는 부분이 너무 자세하게 표현되어 버려서 범행의 과정이나 트릭은 몰라도 결국 범인이 누구인지 쉽게 알 수 있었어요. 닫힌 공간에서 연쇄 살인이 벌어진다면 “누가 범인인가?” 부분을 좀 더 흥미진진하게 만들기 위해서라도 캐릭터간의 갈등을 보다 디테일하게 묘사했어야 하는데 이 작품에서는 마키하라 준지 이외의 등장인물들은 갈등 자체가 묘사되지 않아서 마지막 부분에서 동기가 확인되자마자 김이 확 빠져버렸습니다.

그 외에도 실제 범행이 아리스가 이야기하듯 “철인 3종 경기” 같은 체력이 필요했다는 점, 어차피 복수극이었다면 에가미와 아리스 같은 외부 손님이 없는 다른 시기 (몇 년 뒤가 되더라도) 에 범행을 저지르는 것이 더욱 합리적이지 않았을까 하는 것들도 보완해야 할 점입니다. 보물찾기 트릭도 단서가 너무 명확한 장소를 나타내고 있어서 구태여 암호를 풀지 않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몇년간 찾았으면 결국 발견하지 않았었을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시대가 많이 흐른 탓이기도 하겠지만 지금 읽기에는 "김전일"스러운 전개 (혐오스러운 범행때문에 발생한 눈물의 범죄. 동정할 수 밖에 없는 범인 등)가 약간 거슬리기도 했고요.

아쉬운 점들 때문에 재미있게 읽기는 했지만 뭔가 2% 부족한 느낌은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도 전작보다는 확실히 좋아졌기에 별점은 3점입니다. 계속 발전하는 모습이니 다음 작품 “쌍두의 악마”는 이 작품에서 드러나는 몇가지 문제점을 보완하여 그야말로 확실한 정통 고전과 같은 맛을 충분히 전해주지 않을까 생각되어 기대가 큽니다. “쌍두의 악마”는 그렇잖아도 걸작이라는 평도 많으니 올 여름 시즌 지나기 전에 나와주면 좋겠네요.

2009/08/24

골든에이지 미스터리 중편선 - 윌리엄 윌키 콜린스 외 / 한동훈 : 별점 1.5점

골든에이지 미스터리 중편선 - 4점
윌리엄 월키 콜린스 지음, 한동훈 옮김/하늘연못
하아.... 오랫만에 추리소설 포스팅입니다. 최근 바쁘기도 하고 여유가 없어도 통 책 읽을 시간이 없었네요. 이 책도 읽는데 1주일 정도 걸린 것 같습니다. 그럼 리뷰를 시작할께요.

일단 이 책을 소개하기 전에 "골든에이지" 가 과연 어떤 시기인지 정의를 먼저 내려야 할 것 같습니다.

추리소설의 황금시대는 단편 중심의 추리소설의 시대인 19세기 후반~ 20세기 초반의 여명기를 지나 1913년 벤틀리가 "트렌트 마지막 사건" 을 발표하여 성공을 거둔 이후 이든 필포츠의"빨간머리 레드메인즈". 메이슨의 "독화살의 집", 버클리의 "독초콜릿 사건" 등 장편 추리소설 명작들이 속속 발표되고 곧바로 크리스티, 반다인, 엘러리 퀸, 딕슨 카, 크로포츠 등 본격 추리소설의 거장들이 데뷰를 하기 시작한 시기, 즉 1차대전 부터 1930년대 후반까지 사이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 시기에 거장들의 데뷰가 이어지고 본격 추리소설 걸작들이 쏟아져 나왔기에 "황금시대 (골든에이지)"라고 하는 것이죠.

때문에 1차대전 이전의 소설만 담고있는 이 책의 "골든에이지"라는 표현은 전혀!! 어울리지 않아요. 책 소갯글을 보면 "미스터리 문학의 황금기를 연 대표작가 다섯 작가의 소설을 담은 책" 이라고 되어 있지만 사실은 소갯글에 이어지는 바로 다음 문장인 "19세기말에서 20세기 초 사이 개척기에 활동한..." 이라고 설명되는 것이 더욱 적당한, "개척기 (여명기) 미스터리 중편선" 이 더 합당한 표현입니다. 솔직히 이 정도로 잘못된 제목이라면 과장광고를 넘어서서 거의 사기가 아닌가 싶기도 하더군요. 제대로 목차나 내용을 살펴보지 않은 제가 죽일 놈이지만요.

그래서인지 사실 책 내용은 기대와는 많이 달라서 실망이 컸습니다. 이 "골든에이지"라는 시기에 나온 작품들을 제가 워낙 좋아라하기 때문에 비슷한 수준의 흥미진진한 본격추리물을 기대했는데 이 책에 실린 중편들은 실제 추리물로 보기에는 힘든, 추리물 성향을 띈 드라마들로 단지 오래되었다라는 가치 밖에는 없는 탓입니다. 더군다나 5편의 작품들 중 한작품을 제외하고는 실제로 벌어지는 "사건" 을 다룬 것이 아닌 일종의 "창작극"이나 "자작극" 이라서 그런지 더더욱 몰입하기도 어렵고 지루했습니다. 이럴바에야 셜록 홈즈의 라이벌이나 번역해 내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요? 그나마 아노 탐정 중단편이 하나 실려있긴 하지만 많이 부족해요. 작품도 별로였고요.

물론 역사적인 의미는 크고 책 자체의 번역이나 장정, 디자인도 훌륭한 편이라 과장된 제목으로 현혹만 시키지 않았더라도 이렇게까지 실망하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아쉽네요. 물론 그랬더라면 절대 구입하지 않았겠지만요. 별점은 1.5점입니다(솔직히 1점 주려다 책 자체의 가치를 생각해서 참습니다.).

3층 살인사건 / 프랭크 보스퍼 

런던 블룸즈베리의 한 하숙집을 무대로 하여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 제목 그대로 하숙집 3층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을 다루고 있는데 하숙집을 무대로 하여 몇몇 인물들만 등장하여 주로 대화를 통해 이야기가 전개된다는 점에서 굉장히 연극적인 작품이라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아무래도 작가가 배우 출신인 탓이 크겠죠.

그러나... 제목과 뭔가 있어보이는 설정과는 달리 추리소설로 보기는 애매했습니다. 추리소설이라는 장르가 확립되지도 않았고 특히나 퍼즐 미스터리는 등장하지도 않았던 때에 쓰여진 작품이긴 하지만 본격적인 추리물로 정의하기는 확실히 무리였어요. 가장 중요한 목격자의 증언이 범인의 변장을 통해 유도된 것이라던가 하는 간단한 트릭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지금 읽기에는 유치한 수준의 트릭이며, 경찰의 수사 역시 너무 대충이고 전개도 일방적으로 흘러가는 등 범죄와 관련된 부분에서의 설득력이 약했거든요. 더군다나 극중에서 등장인물들의 입을 빌어 추리소설이나 장르문학에 대한 홀대(?)가 묻어나는 것 역시 조금은 불쾌한 부분이었습니다.

때문에 추리소설 초창기의 추리물의 성격을 띈 소설이다.. 라고 하는 것이 더 적당할 것 같네요. 영국 하숙집과 거주민들의 생생한 묘사, 블랙코미디를 연상케 하기도 하는 재기발랄하면서도 요란한 대사들은 재미있었지만 단지 그뿐이었습니다. 전체적으로 너무 뻔하기도 하고요.

애시당초 이 작품 하나밖에 작품이 없는 작가를 "미스터리 문학의 황금기를 연 대표작가" 라고 선전하는 출판사 행태가 더욱 문제겠죠.

데드 얼라이브 / 윌리엄 윌키 콜린스 

영국인 변호사가 미국의 외딴 농장에 휴양차 체류하다가 살인사건에 휘말리는 내용으로 실제 있었던 사건을 바탕으로 쓰여진 소설이라고 하네요. 피해자가 사실은 살아있었다... 라는 아이디어를 토대로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법정 장면에서의 증거를 둘러싼 공방과 감형을 위한 거래로 거짓된 자백이 속출하는 등 드라마는 흥미롭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역시나 추리물은 아닙니다. 사건이 결국 범인(?)의 자백으로 해결된다던가 - 아니 애시당초 사건 자체가 없었지만 - 주요 증인을 찾아 나서는 것도 신문 광고를 통한 제보에 의지한다던가 등으로, 현실적이기는 하지만 추리라는 발상은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래서야 초창기 법정 드라마 정도로 보는 것이 맞습니다. 역사적 가치 이외의 재미를 찾아보기도 힘들고요.

안개속에서 / 리처드 하딩 데이비스 

초면인 사람들도 친구가 되는 영국의 한 클럽에서 살인사건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지는 내용인데, 등장인물들의 "증언 (목격담 / 경험담)" 으로 사건이 이어지는 것이 독특했습니다. 미국인이 간밤에 벌어진 살인사건을 목격한 경험담을 이야기하자 그 살인사건의 피해자인 러시아 공주를 자칭하는 여자도둑과의 인연을 다른 회원이 이야기하고, 살인사건의 또 다른 피해자인 귀족의 변호사가 살인사건의 다른 진상을 이야기하면서 결국 범인이 누구인지 밝혀내는 식으로 증언과 증언이 꼬리를 물면서 이어지거든요.

결국 이 모든 사건에 대한 이야기가 사건에 관심을 보인 클럽회원 준남작이 하원에서의 연설을 하지 못하도록 한 작전이었다는 것, 그리고 그에 따르는 약간의 반전이 밝혀지며 이야기가 마무리되는데 앞선 두 작품에 비하면 확실히 추리라는 과정이 묘사된, 때문에 그나마 "추리 소설" 로는 볼 수 있는 작품입니다.

다만 두 번째 다이아몬드 사건 이야기는 내용에 별반 필요가 없었다는 것, 그리고 추리의 과정은 있지만 결국 경찰 수사를 통해 그 진상이 밝혀지는 뻔한 추리라는 점은 감점 요소입니다. 

그래도 쓰여진 시대를 생각하면 너무 박하게 굴 필요는 없겠죠? 이 정도면 아슬아슬하게 합격선입니다. 그런데 엘러리 퀸의 ‘가장 중요한 추리소설 125편’에 선정된 작품이라고도 하는데 무슨 기준으로 선정했는지 이유를 통 모르겠네요. 그만큼 가치있는 작품은 아닌듯 싶은데...

버클 핸드백 / 메리 로버츠 라인하트 

"나선계단의 비밀"로 유명한 서스펜스 소설의 대모 메리 로버츠 라인하트의 작품입니다. 시리즈 캐릭터이기도 한 간호사 "힐더 애덤스" 시리즈의 한편으로 국내에는 처음 번역된 시리즈 같네요. 작가의 간호사 경험이 그대로 반영된듯한 디테일한 묘사와 별명에 걸맞는 서스펜스, 스릴의 묘사가 일품인 작품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감이 넘치면서도 이야기 전개가 치밀하고 결말도 합당해서 작가의 명성에 걸맞는 완성도를 보여줍니다.

마지막에 너무 급작스럽게 사건이 해결되는 점, 주요 등장인물의 고백(?)에 의해 사건의 전모가 밝혀진다는 점은 아쉽지만 이 정도면 합격점을 줄 만 하죠. 무엇보다도 소설 전체에 흐르는 긴장감이 좋았으니까 말이죠. 이 책 수록작 중에서는 최고로 꼽습니다.

세미라미스 호텔 사건 / 알프레드 에드워드 우들리 메이슨

"독화살의 집"에 등장했던 명탐정 아노 탐정의 중단편입니다. 상당히 좋아하는 캐릭터라 기대가 큰 작품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영 별로네요. 본격물스러운 맛이 없는 탓이 큽니다. 추리의 핵심인 여주인공이 우연히 본 범인의 얼굴을 어디서 보았는지에 대한 설명이 지나치게 심리적인 부분에 기대고 있어서 설득력이 많이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심리소설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입니다. 아노 탐정의 캐릭터도 그다지 두드러지지 않는 등 실망스러운 부분이 더 많았습니다.

초반부 마약을 발견하는 과정과 추리가 여러 단계로 발전하는 부분, 그리고 범인의 이상한(?) 행동과 장물을 숨겨놓는 곳에 대한 아이디어 정도는 괜찮았지만 전체적으로는 함량 미달입니다. 다른 중단편들도 이 정도 수준이라면 구태여 찾아 읽을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2023/07/30

이런 설정은 있을리 없다! 트릭이 변화하는 특수 설정 미스터리!

honto 북트리 서비스를 통한 추리 소설 추천. 오랫만에 소개드리네요. 국내 소개된 작품은 3편입니다. 이 중 '사쿠라다 리셋 3부작'은 라이트 노벨 같은데, 이미 절판되었고 중고 시세는 사악하네요. 구해 읽기는 쉬워 보이지 않습니다만, 뭐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는 법이겠지요.
그나저나 지나치게 일본 작품 위주라는건 좀 거슬립니다. 이런 류라면 '다아시 경 시리즈'를 빼 놓을 수 없었을텐데 말이죠


특수 설정 미스터리란 현실에서는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상황이 처음부터 설정으로 포함되어 있는 미스터리를 말한다. 예를 들어 현실과 다른 물리법칙, 심령현상이나 초능력, 판타지나 공상과학과 같은 설정 속에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미스터리의 트릭과 추리 논리에 특수한 설정으로 인한 구속력이 더해지는 것이 매력이다.

"마법으로 사람을 죽일 수 없다" - 가모우 다츠야
19세기 영국을 연상시키는, 마법이 존재하는 판타지 세계를 배경으로 한 총 6편의 연작 미스터리. 이 세계의 마법에는 엄격한 규칙이 존재하며, 결코 무법천지가 아니다. 마법이 개입된 세계의 법칙에 따라 왕립 마법원 수사관인 데이븐포트가 논리적으로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앨리스 죽이기" - 고바야시 마스미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세계의 주민이 된 꿈을 꾸는 주인공들. 꿈속에서 누군가가 죽으면 현실 세계에서도 누군가가 죽는다는 것을 깨달은 주인공들은 꿈속의 범인을 찾기 시작한다. 여러 사람이 공유하는 꿈과 현실 세계가 연결되어 있다는 설정은 파격적이지만, 세계관은 매우 논리적이다.

"일곱 번 죽은 남자" - 니시자와 야스히코
주인공은 아무런 예고도 없이 같은 하루를 9번 반복하는 특이한 체질을 가진 소년. 그에게는 가끔씩 일어나는 현상이지만, 이번만큼은 상황이 달랐다. 루프에 빠진 두 번째 바퀴에서, 첫 바퀴에서는 무사했던 할아버지가 살해당하고 말았기 때문. 주인공은 루프의 법칙에 따라 할아버지 죽음의 진실을 밝혀낸다.

"명탐정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 아쓰카와 다쓰미
탐정이 경찰 아래 움직이는 조직이 되어버린 세상. 증거를 조작해 죄를 면했다는 의혹으로 명탐정의 탄핵 재판이 열리는데........ 이 책의 특수 설정은 탐정 조직의 존재 뿐 아니라, 특수한 조건에서 죽은 사람이 다른 사람의 몸으로 환생한다는 것. 환생자도 참여하는 탄핵 재판의 행방과 사건의 진실이 복잡하게 펼쳐진다.

"고양이와 유령과 일요일의 혁명 (사쿠라다 리셋 3부작)" - 코노 유타카
주민의 절반이 초능력을 가지고 있는 도시 '사쿠라다'를 배경으로 한 소설. 주인공은 기억을 완전히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을, 그리고 여주인공은 세상을 3일간 되돌릴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초능력자들로 가득한 마을에서 두 사람이 다양한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데, 능력끼리 조합하는 퍼즐 같은 논리성이 매력적.

2015/07/23

큐이디 Q.E.D 50 - 카토우 모토히로 : 별점 2점

큐이디 Q.E.D 49 - 카토우 모토히로 : 별점 2점

아직 국내 출간되지는 않았습니다. 우연찮게 원서로 읽게 되어 리뷰 남깁니다.

이번 권에는 두편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는데 두 작품 평균한 전체 별점은 2점입니다. "50"이라는 권수가 의미가 있는 만큼, 기대가 컸는데 영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습니다. 특유의 일상계스러운 이야기가 없는 것도 아쉽고요. 다음 권을 기대해봐야 겠습니다.

수록작별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관측"

토마의 MIT 공대 시절 동기 샐리 브라이스는 졸업 후 실험 관측장치를 제조하는 브라이스사를 세웠다. 그러나 납품한 냉각장치의 연이은 고장으로 궁지에 몰렸고, 그녀는 토마에게 도움을 요청하는데...

원통 구조의 터널에서 양쪽 입구로 추적대가 진입하였는데 범인은 어디로 도망갔는지? 에 대해 현실적이면서도 참신한 트릭이 등장합니다. 실제로는 여러가지 문제가 있었을 수 있지만, 상황에 대한 설득력만큼은 상당해서 재미있었습니다. 관측에 대한 상세한 설명과 함께 CCD, LHC가 무엇인지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어서 학습만화로서의 가치 또한 높고요. 토마의 과거사를 약간이나마 더 알게된 것도 오랜 팬에게는 선물같은 부분입니다.

그러나 추리만화라기보다는 샐리가 부모님의 속박을 끊고 날아오른다는, 일종의 성장기 만화로 보는게 더 타당합니다. 때문에 재미가 없지는 않지만 대폭 감점하여 별점은 2점입니다.

그나저나... 마지막 장면에서 샐리가 토마에게 뭐라고 말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추후 가나의 라이벌로 다시 등장하게 될지 사뭇 궁금해지네요.

"탈출"

한 소년이 밀실과 마찬가지인 창고에서 살인을 저지른 범인이 기발한 방법으로 탈출하는걸 목격했다. 16년 후, 가나에게 이스케이프 게임을 제작해달라는 의뢰와 함께 설계도와 20만엔이 보내졌다. 게임을 완성한 가나와 토마 앞에 게임에서 우승하면 100만엔의 상금을 주겠다는 전단을 받은 5명의 손님이 나타났고, 가나와 토마는 함께 게임을 진행하는데...

특정 장소를 빠져나가기 위해서는 퍼즐을 풀어야 한다는 전형적인 폐쇄형 게임 미스터리 장르물. 다른 유사 장르물과의 차이점은 이 작품은 정말로 게임이라는 점입니다. 16년 전의 범행을 밝혀내기 위한 일환으로 상황을 긴박하게 몰고가기 위한 일종의 함정이 등장하기는 하지만요.

이런 장르물에서는 그전 리뷰에서도 계속 이야기했지만 퍼즐, 수수께끼가 가장 중요한데 다행히 이 작품에서의 퍼즐은 꽤 재미있는 편입니다. 특히 "今"을 오른쪽으로 돌려놓은 암호문, "A"가 가리키는 색깔을 알아내는 퍼즐은 아주 그럴싸했어요. 중간 중간의 대사, 장면을 복선으로 활용하여 과거의 진범을 드러내는 전개도 기가 막히고요.

그러나 소년이 아무리 트라우마가 있다한들, 본인 돈으로 거대한 장치를 꾸미고 범인을 도발하여 옭아매려 한다는 동기는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또 목적이 명확하다면, 앞선 퍼즐은 사실 나올 필요가 없었습니다. 마지막 밀실로 바로 이동해도 상관이 없으니까요. 무엇보다도 핵심 트릭이라 할 수 있는 마지막 밀실에서 탈출하는 방법은 아주 별로였습니다. 문에 아무런 상처가 나지 않았을지, 경첩이 안전했을지, 뒤로 받쳐둔 나무토막이 제대로 눈에 안 띄게 떨어졌을지 등 문제가 많이 보였던 탓입니다.

때문에 별점은 2점. 주변요소는 재미있지만 핵심이 미흡한, 그런 작품이라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네요.

2006/01/28

[Y]의 비극 - 앤솔로지 : 별점 2.5점

엘러리 퀸의 "Y의 비극"을 테마로 4명의 추리작가에게 의뢰한 중편을 모아 출간한 앤솔러지.
작가의 구성이 꽤나 화려한 것이 먼저 눈에 띕니다. 첫 작품 "어떤 Y의 비극"은 아리스가와 아리스, 두번째 작품인 "다이잉 메시지 Y", 이 작품은 잘 알지는 못하지만 나름대로 지명도는 있는 듯한 (건축탐정 사쿠라이 쿄스케 시리즈가 대표작인 듯 하군요) 시노다 마유미, 세번째 작품 "Y의 비극 - Y가 늘어나다"는 니카이도 레이토, 마지막 네번째 작품은 "이콜 Y의 비극"으로 노리츠키 린타로의 작품입니다. 각 100여페이지 분량의 중편들이죠.
일본 여행에서 구입한 책중 하나인데 우연히 헌책방을 지나다가 발견해서 작가의 면면이 꽤 믿음직하고 제목과 기획 의도도 마음에 들어 구입해서 읽기 시작했습니다.

수록작들의 공통점이라면 모두 "Y"라는 글자가 포함된 다이잉 메시지 해독이 중요 트릭이라는 것, 그리고 엘러리 퀸의 원저 느낌을 많이 가져 오려고 노력한 느낌이 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니카이도 레이토의 쓰레기를 제외하면 다 얼추 읽을만하며 정통 퍼즐 미스터리로서 "트릭"을 푼다는 재미도 제법 있는 편이었어요.
또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히무라-아리스 컴비, 니카이도 레이토의 작품에 등장하는 명탐정 죠우카 박사와 예술연구 그룹 "뮤즈"의 멤버들, 노리츠키 린타로의 노리츠키 경시와 아들 노리츠키 린타로 컴비 등 유명 캐릭터와 다양한 작가들의 새로운 작풍을 접할 수 있다는 것도 나름 괜찮은 수확이라 할 수 있겠죠.

그러나 결론적으로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습니다. 고전걸작으로 명망높은 "Y의 비극"이기에 후배작가들이 존경을 표하고 싶은 마음, 그리고 욕심은 충분히 이해가 되지만 작품의 수준은 아쉽게도 부족기 때문입니다. "이콜 Y의 비극"을 제외한다면 딱히 평가할 부분도 많지 않을 뿐더러 무엇보다도 니카이도 레이토의 작품이 용서가 불가능한 수준이라 점수를 너무 많이 깎아먹기도 하고요.
올해 들어 두번째 읽은 책인데 솔직히 약간은 실망스러웠어요. 뭐 원서를 직접 읽어 보았다는데 의미를 둘까 합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수록 작품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1. 어떤 Y의 비극 - 아리스가와 아리스
인디 록 밴드 "유메노 도구라 마구로"의 기타리스트가 자신의 기타에 맞아 살해당한다. 그가 남긴 것은 벽에 피로 쓴 "Y"라는 글자. 히무라와 아리스 컴비가 다이잉 메시지의 해독에 도전한다.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작품으로 원저의 느낌을 잘 살린 여러 설정 (기타에 의한 죽음이라던가)과 꽤 잘 짜여진 구성은 마음에 들며 나름대로 재미있게 읽긴 했습니다.
허나 결정적 부분에서 일본인만이 이해가능한 요소가 있어서 높은 점수를 주긴 힘드네요. 그 부분 때문에 트릭 자체를 수긍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결론내리자면 그냥 평균적인 수준이었습니다. 별점은 2.5점.

2. "다이잉 메시지 Y' - 시노다 마유미
나는 고등학교 동창이 인터넷 채팅으로 사귄 "EMI"라는 아이의 죽음을 목격했었다. 그녀는 "Y가 죽였다"라는 글귀를 남기고 죽은 시체로 발견되었고 결국 자살한 것으로 처리 되었다. 그리고 2년후, 나는 우연히 신문에서 그 죽음의 장소였던 학교 건물이 철거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다시 그곳을 찾아볼 결심을 하는데....
시노다 마유미라는 여성 작가의 60여페이지 정도의, 단편보다는 약간 길고 중편보다는 약간 짧은 길이의 작품.
굉장히 여성적이라는 느낌의 작품으로 현재와 과거를 넘나드는 구성도 좋았지만 작품 내용에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던 연극에 대한 설정이 치밀하고 괜찮았습니다. 마지막에 진상이 밝혀지며 드러나는 반전도 좋았고요. 
추리적으로 그다지 특기할 것은 없다는 것이 조금 아쉽지만 이 정도면 평균 이상이죠. 별점은 3점입니다.

3. "Y의 비극 - Y가 늘어나다" - 니카이도 레이토
예술 연구 그룹 "뮤즈"의 멤버들은 어느날 핵공격에 대비한 안전시설인 핵 셸터의 안에 갇히고 부장인 마리오가 닫힌 밀실에서 "Y"라는 글자 하나만 남긴채 죽은 시체로 발견된다. 아무도 들어올 수 없는 완벽한 밀실에서의 사건 해결에 명탐정 죠우카 박사가 도전한다!
이름은 몇번 들어본 작가인 니카이도 레이토의 작품. 
작품은 처음 접해보았는데 정말이지 너무하더군요. 이른바 "메타 미스터리"라는 이름하에 주인공들이 독자에게 말을 거는 독특한 전개를 보여준다는 식인데 이러한 구성에 너무 기댄 탓인지 다른 것들은 모두 수준 이하입니다. 트릭도 황당무계할 뿐더러 다이잉 메시지의 의미조차 반은 장난으로 여겨질 정도의 치졸한 작품으로 모든 면에서 그다지 논할 것이 없는 쓰레기였어요. 별점은 1점입니다.

4. "이콜 Y의 비극" - 노리츠키 린타로
세타가야의 맨션에서 아다치 아카네라는 여성이 살해된 시체로 발견된다. 현장에서 발견된 물품 중에 메모지에 볼펜으로 쓴 "=Y"라는 기호의 흔적이 발견되며 유력한 용의자로 피해자 언니의 남편과 그 불륜상대가 지목되지만 그들의 알리바이는 확실한 상태. 사건이 답보상태에 머무르게 되자 사건을 맡은 노리츠키 경시는 자신의 아들 린타로에게 사건의 해결을 요청한다.
신본격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한명인 노리츠키 린타로의 작품. 그의 유명한 시리즈 캐릭터 노리츠키 린타로가 등장하는 본격물입니다. 
일단 "다이잉 메시지"의 의미가 확실하고 그 내용을 작품속에서 치밀하고 논리적으로 구성함으로써 본격 퍼즐 트릭물로서 충분히 제 값을 하는 것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일본이라는 지역적 특성이 살아있는 트릭이긴 하지만 상당히 설득력있는 편이라 꽤 수긍할만 했어요. 앞부분에 등장하는 전혀 상관없었던 짤막한 에피소드가 본편에서 중요한 장치가 되는 구성도 좋았고요.
그러나 다른 부분들, 예를 들자면 범인의 동기라던가 하는 부분에서 빈약함이 많이 느껴지는 것은 분명 약점이기도 합니다. 그래도 이 앤솔로지 최고의 작품으로 꼽고 싶네요. 저는 무척 재미있게 읽었거든요. 개인적으로 시간만 허락된다면 번역의 욕심도 조금 나긴 하는데 너무 일본적인 트릭일 수도 있어서 약간 고민 되긴 하네요. 별점은 3.5점입니다.

2006/07/21

고양이는 알고 있다 - 니키 에츠코 : 별점 2.5점

고양이는 알고 있다 니키 에츠코 지음, 한희선 옮김/시공사

식물학도인 유타로와 피아노를 전공하는 그의 여동생 에쓰코는 생활이 어렵던 차에 싼 가격에 입주할 수 있는 병원 2층 입원실의 방 한칸에 이주하게 된다. 그런데 그들이 이사하자마자 의사의 장모와 입원 환자 한명이 실종되고 곧바로 장모가 살해된 시체로 발견된다. 남다른 추리력을 지닌 남매는 사건에 뛰어들어 사건의 진상에 접근해 나가지만 유력한 단서를 쥐고 있던 병원 간호사마저 살해당하는 것을 목격한다. 그녀는 죽기전에 "고양이가..."라는 말을 남기는데...

참 간만에 읽은 추리 소설입니다. 이 작가 장편은 국내 초역이죠. 이 작품은 "에도가와 란포상"의 3번째 수상 작품 (소설로는 첫 수상)으로, 전에 소개한 적이 있었던 "에도가와 란보상 수상작가 걸작선"이라는 앤솔로지에 실려있던 작가의 단편 2편이 꽤 괜찮았었고 특히나 "빨간 고양이"라는 작품이 굉장히 마음에 들어서 기대가 컸었습니다. 예전부터 계속 읽고 싶던 차에 큰맘먹고 여름 맞이용으로 알라딘에서 지른 책들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읽고나니 괜찮지만은 않네요. 두꺼운 편임에도 쉽게쉽게 읽을 수 있을 만한 재미는 충분히 전해주고 장점도 많은 책이긴 해서 그냥 평가 절하하기에는 난감하긴 하지만요.

장점부터 나열해 본다면 제일 먼저 들고 싶은 것이, 굉장히 읽기가 편한 책입니다. 추리 소설이고 3명이나 죽어나가는 끔찍한 상황을 그리고 있지만 작품의 분위기가 굉장히 따뜻하고 정감이 넘치거든요. 동화작가이기도 한 작가의 이력 때문으로 보이는데 덕분에 참 쉽고 재미나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추리소설 재미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주인공 컴비가 괜찮습니다. 유타로 - 에쓰코 남매로 이루어진 일종의 커플 탐정으로 유타로에게 탐정역이 집중되어 있지만 특유의 기동력(?)과 관찰력, 그리고 돌발행동으로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데 일조하는 에쓰코 역시 귀엽더라고요. 굉장히 독특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성격묘사나 설정이 치밀해서 충분히 시리즈 캐릭터로 지속될만한 매력은 가지고 있는 캐릭터라 생각됩니다. (책 뒤 해설을 보니 시리즈 캐릭터로 단편선이 있다는데 이 단편선도 상당히 궁금해지더군요)
추리적 요소도 화려하여 1950년대 발표된 추리소설답게 당시 전성기였던 영국 미스터리, 그 중에서도 크리스티 여사의 영향을 짙게 받은 듯한 정통 퍼즐 미스터리로서 살인사건 3건에 미수 1건, 작은 절도 사건까지 내용에 등장하며 인간 소실 - 밀실 살인 - 알리바이 깨기 - 다이잉 메시지 해독 - 사체 은닉 등 다양한 트릭이 펼쳐집니다.
그러나... 제일 큰 단점은 "트릭이 후지다!" 라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겠네요. 위에 나온 인간 소실 트릭은 범행 장소 조사를 통해 곧바로 밝혀지는 허무한 수준이었고 밀실 살인과 다이잉 메시지 해독, 사체 은닉은 지나치게 트릭에 의존하여 설득력이 떨어지는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알리바이 깨기 트릭은 괜찮긴 한데 지금 읽기에는 좀 낡았다는 생각이 들고요. 제일 중요한 다이잉 메시지와 그에 따르는 복합적인 트릭은 뭔가 문제가 있어보이는, 운에 의지하는 트릭이라 생각되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거기에 "코브라 독" 이라니.... 비약이 너무 심하잖아요?
그리고 구성도 어설퍼요. 아마츄어가 쓴 첫 장편을 보는 기분이랄까요? 이런 류의 작품은 등장인물 중 한사람이 범인일게 뻔하므로 교묘한 구성이 반드시 필요한데 등장인물들 모두에게 의심스러워 보이도록 하는 장치를 도입하였기 때문에 오히려 지루한 면이 느껴졌으며 작가 스스로 밝혔듯이 범인을 어떻게 보면 즉흥적(?)으로 써내려간 탓에 범인의 정체를 납득하기 어려웠습니다. 범행 동기도 덧붙인 느낌이 강한, 지금 시점에서 본다면 굉장히 애매한 이유로 보였고요.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명망있는 추리 문학상 수상작이기도 하고 작가적 명성이 높은 작가라 기대치가 높았는데 역시 작가의 첫 장편인 티가 확 난다고나 할까요.
전후 일본 추리 소설의 대중화에 공헌하기도 한 히트작이고 여러 일본 추리관련 추천 리스트에 빠지지 않는 작품이지지만 확실히 시대가 많이 변한 느낌입니다. 고즈넉하고 다정다감한, 왠지 느릿느릿한 정서는 포근하기는 하지만 그 외에는 크게 와 닿는 것이 없더군요. 아무래도 역사적 의미가 더 큰 책으로 완독했다는데에 만족해야 할 것 같네요.

아울러 책을 읽고나니 감상과는 별개로 우리나라도 이런 추리 문학상이 많아졌으면 하는 부러움이 생깁니다. "김래성 추리 문학상"이 있었지만 지금도 있는지는 모르겠고 "미스코리아 살인사건" 같은 희대의 쓰레기가 상을 받아서 상의 권위가 많이 떨어지는 느낌이 들거든요. 물론 다른 작품들은 괜찮았지만.

PS : 그래도 시공사에서 나온 책으로 책의 장정이나 여러 해설들이 상당히 좋아서 책 자체는 무척 마음에 들더군요. 일본의 크리스티라 불리운다는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작품 분위기는 크리스티가 아닌 크레이그 라이스의 "스위트 홈 살인사건"과 유사한 분위기라 생각되어 아동용 추리 소설이 더 맞지 않을까 싶었는데 책 뒤 해설을 보니 아니나 다를까 많이 썼더라고요. 이런 다양한 책들이 해설로만이 아니라 실제로 많이 출판되면 좋겠습니다.

2004/01/15

엘러리 퀸의 모험 - 엘러리 퀸 / 장백일 : 별점 4점

엘러리 퀸의 모험 - 8점 엘러리 퀸 지음, 장백일 옮김/동서문화동판주식회사
제가 좋아하는 단편집입니다. 시그마북스 버전으로 “새로운 모험”은 가지고 있었지만 오히려 전반부에 해당하는 이 책은 절판된 후 구하지 못하던 차에 이번에 동서 추리 문고본으로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1. 아프리카 출장 직원의 모험 / 2. 목매달린 곡예사의 모험 / 3. 1페니 검은 우표의 모험 / 4. 수염난 여자의 모험 / 5. 세 절름발이 사나이의 모험 / 6. 보이지 않는 연인의 모험 / 7. 티크 담배갑의 모험 / 8. 쌍두견의 모험 / 9. 유리돔 시계의 모험 / 10. 일곱 마리 검은 고양이의 모험 의 10편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시그마북스 판본에서 “미친 티 파티”가 빠진 모양인데 (확실한 것은 아닙니다) 저는 에드가상 수상 단편선으로 이미 가지고 있어서 별로 아쉽지는 않네요.

첫번째 단편 “아프리카 출장 직원의 모험”은 엘러리 퀸이 모교에 범죄관련 프로그램 강의를 맡아 3명의 학생들과 한 살인사건의 조사를 하는 이야기로, 아프리카에 출장 갔다 온 피해자의 소지품과 현장 검증을 토대로 각각의 추리를 펼치는 이야기로 구성이 독특하고 마음에 들었습니다. 시리즈로 나왔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는데, 아쉽게도 이 한편 밖에 없네요. 약간 “라쇼몽” 같기도 하고 색다릅니다. 뭐.. 추리적으로는 범작이네요.
“1페니 검은 우표의 모험”은 우표 수집상에서 일어난 도난 사건과 색다른 책 도둑을 등장시켜 독자의 허를 찌릅니다.
“수염난 여자의 모험”은 “피해자가 그리던 그림속 여자에게 그려진 수염”이라는 단서만으로 추리하는 정말로! 기발한 작품이고요,
“유리돔 시계의 모험”은 작가 스스로가 “굉장히 쉬운 사건”이라고 강조하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가장 과학적(?)이고 공정한 단편입니다.
마지막 “일곱 마리 검은 고양이의 모험”은 “고양이를 싫어하는 노파가 사간 똑같이 생긴 일곱마리 고양이” 라는 수수께끼 같은 상황에서 펼쳐지는, 작품집을 마무리 하는 단편 답게 최고 수준의 재미와 흥미를 주는 작품입니다. 나머지 작품들도 언급은 하지 않았지만 모두 상당한 수준들이고요.

하나 아쉬운 것은, 각 단편마다 단편집 제목 때문인지 전부 “모험”이라는 말이 붙어있는데 요건 좀 어색한 거 같습니다. 이왕이면 더 멋진 제목을 붙였으면 좋았을 것을… (미국 작가들은 이런 말장난을 즐기는 것 같더라고요)

결론내리자면 제가워낙 단편집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명불허전! 거장의 명성답게 엘러리 퀸과 함께하는, 전통적인 고전 추리 퍼즐 미스터리의 진수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새로운 모험” 보다는 고풍스럽고 전통적인 미스터리라 더욱 좋았던 것 같네요. 시그마 북스 판본으로 사지 못한 것은 조금 애석하지만 뭐 어떻습니까. 이쪽 번역도 괜찮은 편이었고요. 별점은 4점입니다. 정통 고전 본격 추리의 맛을 느끼시고 싶으시다면 강추하는 바입니다.

2013/03/09

인형은 왜 살해되는가 - 다카기 아키미쓰 / 김선영 : 별점 2.5점

인형은 왜 살해되는가 - 6점
다카기 아키미쓰 지음, 김선영 옮김/검은숲

아래 리뷰에는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마술쇼를 위해 준비한 인형의 목이 사라지는 사건이 일어난 뒤, 아야노코지 가문의 딸 유리코가 무대 장치 길로틴으로 목이 잘린 시체로 발견되었다. 마술 협회 회원들이 모인 별장 지수장 근처 철길에서 마네킹이 열차에 치인 뒤, 둘째딸 요시코마저 열차에 치어 죽자 명탐정 가미즈 교스케가 사건 해결을 위해 나섰다.

다카기 아키미쓰의 대표작 중 한 편입니다. 얼마 전 국내에 번역 출간되었지요. "주간문춘 동서 미스터리 100"에도 실려있기에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좋은 점부터 이야기하자면 다채로운 트릭들입니다. 무려 4건의 살인사건이 벌어지는데, 이 모든 사건들에 나름의 트릭이 구사되고 있거든요. 특히나 두 번째 사건의 트릭이 좋아요. 제목인 "인형은 왜 살해되는가"와 부합되는, 그야말로 상식을 깨는 멋진 알리바이 트릭이었습니다. 간단한 소실 트릭이나 현실적이고 "마술"을 테마로 한 작품에 어울리는 첫 번째 트릭, 사건 전체 음모의 핵심이자 배경이 되는 바꿔치기 트릭인 네 번째 사건 트릭도 괜찮았고요.

퍼즐 미스터리의 자존심? 이라고 할 수 있는 독자에의 도전이 수록되어 있을 정도로 완벽한 정통 본격물이라는 점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러나 트릭 외의 부분은 모두 실망스럽습니다. 그간 읽어왔던 작가의 다른 작품과 비교해 볼 때 이야기 수준이 너무 낮은 탓입니다. 우선, 일단 일본 굴지의 명탐정이라는 가미즈 교스케가 너무나 하는 일이 없습니다. 그나마의 추리도 스기우라와 나카타니 죠지가 전한 자료와 단서에 근거하고 있고요. 이 둘보다도 추리력이 떨어진다는 뜻이잖아요? 결국 결말도 죽을 사람들은 다 죽고나서야 범인을 밝혀낸다는 것이니 이래서야 왜 명탐정인지 알 수가 없네요.

작위적인 전개와 설정도 짜증을 유발합니다. 예를 들어 스기우라가 진상에 대해 남긴 글입니다. 누구나 알아볼 수 있는 글이 아니라 암호같은 문구로 남긴건 추리를 위해서만 존재하는 작위적 설정에 불과합니다. 앞서 장점에서 이야기했던 기차 트릭은 분명 걸작이지만, 범행이 실패했다면 결국 요시코와 미즈타니가 결혼하여 아야노코지 가문의 재산을 얻을 기회는 영원히 없었으리라는 점에서 마찬가지로 작위적이었고요. 그 외에도 첫 사건에서의 마술 트릭 후 유리코가 보험에 가입한 이유, 나카타니 죠지의 정체가 무엇이며 무슨 꿍꿍이였는지, 요시코가 준비했다는 덫은 과연 무엇이었는지, 사와무라가 진상을 눈치챘으나 왜 아무런 말도 안하고 혼자 겁에 질려있다가 살해당하는지 등 설명되지 않는 것도 너무 많습니다.

마술이라는 소재도 도입 자체는 나쁘지 않지만, 올드 블랙 매직 어쩌구라는 악마 미사까지 등장시키면서 마법의 영역으로까지 분위기를 몰고가는 것은 지나쳤습니다. 딕슨 카의 고딕 호러 스타일 추리물의 아류작이라는 느낌만 전해 줄 뿐이었습니다. 변격물의 분위기가 남아있는 낡은 스타일의 문체는 작품이 발표된 시기를 감안하면 어쩔수 없었더라도, 지금 읽기에는 촌스러웠고요.

뒷부분에 실려있는 두편의 단편 "무고한 죄인"과 "뱀의 원"도 국내 초역이라는 점은 높이 평가하지만, 두 작품 모두 가미즈 교스케가 하는 일이 별로 없다는 점과 동기나 전개 모두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점에서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뱀의 원"에서 서로의 꼬리를 물고 맞물려 있는 두마리 뱀에 대한 이야기 정도는 괜찮았지만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입니다. 추리적으로는 수준 이상이지만, 완성도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인형을 이용한 트릭을 먼저 떠올리고 억지로 장편으로 끼워 맞춘 듯한 작품이었어요. 고전 추리 애호가분들께는 출간 자체가 기쁜 소식이기는 하지만 지금 출간되기에는 너무 늦은 듯 싶습니다.

덧붙이자면, 띠지에서부터 일본 3대 명탐정 어쩌구하고 광고를 하는데 이런 리스트는 대체 누가 뽑는지 모르겠네요. 맥락도 없고 기준도 없고...

2008/12/31

경성탐정록 - 한동진

오프라인에는 아직 안 깔렸지만 온라인 서점에는 정보가 뜨는군요. 반가운 마음에 바로 포스팅합니다.


이 책은 제가 아이디어와 몇가지 트릭, 시놉을 제공했고 저희 형이 쓴 작품으로, 1930년대 초반의 경성을 무대로 하여 탐정 설홍주와 그의 친구인 한의사 왕도손 컴비가 등장하는 추리 중단편집입니다. 한국 추리문학사에 최초의 시리즈 탐정이 등장하는 단편집이라고 감히 말해 봅니다.

중편 분량인 "광화사", 그리고 단편인 "운수좋은 날"과 "황금사각형", "천변풍경", "소나기"까지 총 5편의 중단편이 실려 있습니다. 이중 "광화사"와 "운수좋은 날"은 이미 파우스트 지면을 통해 소개된 작품이고 다른 3편 중 2편은 온라인에 발표했던 작품입니다. "소나기" 는 미발표 신작 단편이고요.

정교한 트릭이 넘치는 퍼즐 미스터리라기 보다는 과거 황금시대의 단편에 충실한 아날로그 스타일의 유쾌한 작품이라 생각하기에 많은 분들이 즐겨주셨으면 좋겠네요.

아울러 첫 공개의 장이었던 "하우미스터리" 사이트와 운영진 여러분, 많은 추리 매니아 여러분, 학산 출판사 관계자 및 기타 이 책이 나오기까지 도움주신 많은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