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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4/20

낯선 승객 - 패트리셔 하이스미스 / 심상곤 : 별점 2점

낯선 승객 패트리샤 하이스미스 지음, 심상곤 옮김/해문출판사

촉망받는 건축가 거이는 문란하고 애정없는 아내 미리엄이 이혼조차 해 주지 않아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러다가 우연히 같은 기차에서 만난 브루노에게서 "내가 당신 아내를 죽일테니 당신은 나의 아버지를 죽여달라"라는 완벽한 범죄 시나리오를 듣지만 무시해 버린다. 그러나 브루노가 정말로 미리엄을 살해한 후 아버지 살해를 집요하게 요구하고 협박까지 하게되자 거이는 극도의 스트레스 상태에서 결국 범행을 저지른다.

두건의 범죄는 완벽한 알리바이가 보장된 완전범죄로 남게되나 브루노의 아버지가 고용한 사립탐정 제러드의 집요한 추적이 이어지면서 거이의 인생은 파국을 맞게 되는데....

 "태양은 가득히"의 패트리셔 하이스미스의 데뷰작. 기차에서 사람 한명 잘못 만난 것 때문에 인생이 망가지게 된다는 작품이죠.
서로 죽이고 싶은 사람이 있는 2명이 우연히 만나 서로의 원수를 바꿔서 죽여준다는 설정은 프레데릭 브라운의 "교환살인"과도 거의 동일한 아이디어죠. 또 예전에 히치콕 감독 영화로 먼저 접하기도 해서 그동안은 손이 가지 않았었습니다. 그런데 읽어보니 왠걸! 영화와 소설이 굉장히 딴판이라 무척 놀랐습니다. 중반부까지는 같은데 그 이후부터 달라지기 시작해서 결말은 아예 반대더군요. 영화에서 테니스 선수였던 주인공 거이는 건축사로 나오며 영화에서는 결국 교환 살인을 저지르지 않는데 반해 소설에서는 브루노의 협박에 의해 심신 상실 상태에서 범죄를 저지르게 되니까요.
때문에 영화는 거이가 아내 살인범이 자기가 아니라 브루노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과정을, 소설은 범죄 이후 두명의 주인공이 심리적으로 붕괴하는 과정을 (주로 거이 중심이지만) 중반부 이후부터 굉장히 디테일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비교해서 보니 보다 색다른 재미가 있네요.

하지만 추리적으로나 완성도, 재미 모두 영화쪽이 더 낫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소설은 두 사람이 우연히 과거에 서로 만나서 서로가 원하는 사람들을 각각 살해했다..라는 것을 사립탐정이 추리해내지만, 이후 검거 과정에서는 아무런 물증을 제시하지도, 찾아내지도 못하고 단지 마지막에 미행에 의한 도청으로 사건의 전모를 밝혀내는 식이라 별로 정교하게 느껴지지 않았거든요.그러나 영화에서는 거이가 발버둥치면서 끝까지 버티다가 결국 브루노가 결국 아내를 살해했다는 것을 타당하게 밝혀내기 때문에 훨씬 세련되게 전개되었다 생각합니다.

물론 소설도 심리묘사 하나만은 치밀하면서도 극적이므로 충분히 읽으면서 즐길 수 있기는 합니다. 허나 앞서 말씀드린대로 모든 것이 깔끔하게 정리되며 해피 엔딩인 영화가 전개나 결말이 더욱 마음에 드네요. 거이라는 친구에게 연민의 정이 느껴지기에 더더욱 말이죠.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2017/03/03

심연 -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 홍성영 : 별점 2점

심연 - 4점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지음, 홍성영 옮김/오픈하우스

자기 자신을 속이는게 최고의 속임수지. 자신을 굳건히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 - 토스토옙스키. "악령"에서 표토르 스테파노비치 

빅터는 윌슨의 얼굴을 보며 미소 지었다. 세상은 나 덕분에 돌아간다는 음울하고 회한에 찬 윌슨의 얼굴 뒤에는 보잘 것 없고 멍청한 생각뿐이었다. 빅터는 그의 얼굴과 그 얼굴에 나타나는 모든 것을 저주했다. 아무 말도 없이 미소를 지으며 남은 온 힘을 다해 저주했다.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여사의 범죄 소설입니다. 평범한 지역 유지 빅터가 순간적인 분노를 이기지 못해 살인을 저지르는 과정을 디테일한 심리 묘사로 펼쳐나갑니다. 조금 고급진 범죄, 장르문학을 다루는 출판사 오픈하우스의 버티고 레이블에서 출간되었습니다.

"심연"이라는 제목을 처음 봤을 때에는 주인공 빅터가 겉잡을 수 없이 빠져드는 살의를 뜻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두 건의 살인이 모두 '물'과 연관되어 있기도 하니까요. 그러나 읽어보니 독자를 심연에 빠트리겠다는 뜻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만큼 읽는 내내 답답한 마음이 가시지 않았어요. 가장 큰 이유는 빅터와 멜라니, 두 주역의 심리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은 탓이 크고요.
빅터는 아내가 바람을 피우는 것이 명확한데도 불구하고, 그 어떤 질책이나 거부감을 표현하지 않습니다. 딱히 너그럽고 관대해서 그런게 아닙니다. 아내가 바람을 피운 것 까지는 아니라고 애써 위안을 삼으며 작은 마을 공동체 내에서 평판을 유지하는데 골몰할 뿐이지요. 결국 순간적인 분노로 찰리 드 리슬, 캐머런을 차례로 살해하고 마지막에는 아내까지 죽이지만, 이 모든건 먼저 이혼을 했다면 해결되었을 문제입니다. 결혼 생활에 별다른 애정이 느껴지지도 않는데 왜 이혼을 하지 않는지 알 수가 없어요. 딸을 위해서 이혼을 하지 않는다던가, 이혼을 하면 지역 사회에서 매장을 당한다던가 등 설득력있는 이유가 등장했어야 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작중에서도 이혼은 별로 어렵지 않고 양육권 역시 빅터가 보유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라 설명되기까지 하는데 말이지요. 파국이 닥치기 전에 그것을 해결하려는 최소한의 노력도 하지 않는데 독자의 공감을 얻을 수 있을까요? 비슷한 상황에서 아내가 이혼을 해 주지 않아 살의를 품는 "낯선 승객" 쪽이 훨씬 현실적입니다.
아내 멜라니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남편 돈으로 여유롭게 살면서 남편이 바로 옆에 있어도 대놓고 바람을 피우는데, 뻔뻔함이 도를 지나칩니다. 솔직히 이래서야 남편한테 죽어도 싸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게다가 찰리 드 리슬이 죽은 후 남편이 죽은 것이라고 동네방네 떠들고, 심지어 남편 돈으로 탐정까지 고용한 정신머리는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입니다. 이렇게 이해할 수 없는 인물들에 대한 디테일하게 묘사는 읽는 내내 짜증을 불러일으킵니다. 한마디로 발암유발 소설이랄까요.

재미도 별로입니다. 범죄물이기는 하지만 모든 범행은 우발적, 즉흥적이며 뒷수습은 운에 맡기는 부분이 많아서 짜임새가 낮기 때문입니다. 범행보다 심리 묘사를 디테일하게 그리는데 주력하고 있어서인데, 이러한 점에서는 "리플리"와 비슷합니다. 차이점이라면 빅터는 사이코패스가 아니라는 정도고요. 빅터는 타인의 고통에 둔감하지 않고, 자기 자신과 관계없는 일에도 분명한 애정을 보이거든요. 걸인 칼라일을 출판사에 잡역부로 고용한 것처럼요. 또 주변 평판에 굉장히 신경을 쓰고, 그것을 위한 배려 역시 아끼지 않습니다. 책 뒤 소갯글 - 사이코패스의 일상과 그의 머릿속을 소름 끼칠 만큼 담담하게 그려낸 걸작 - 은 제가 봤을 때 잘못 쓰여진 것입니다. 사이코패스인지 아닌지가 재미나 완성도에 영향을 끼치는건 아니기도 하지만요.
혹시 작가의 의도는 평범한 중산층이 급작스럽게 살의를 품는 과정을 그려서 충격을 주려고 했던 것일까요? 그러나 앞서 말씀드린대로 살인 전에 충분히 상식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 (이혼)이 있었기에 전혀 와 닿지 않습니다.

그래도 캐머런의 사체가 발견된 이후 마지막 몇 페이지는 그런대로 서스펜스를 가져다 주기는 합니다. 문제는 이야기에 큰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읽는 사람을 거북하게 만드는 묘사력은 발군으로 셜리 잭슨과 좋은 상대가 될 수 있을 정도지만, 불쾌하기만 할 뿐 그 외 다른 가치는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여사님의 순문학스러운 작품을 좋아하시는 것이 아니라면 구태여 읽으실 필요는 없습니다.

2023/02/04

철벽의 알리바이로 완전범죄 성립!? '교환 살인'을 모티브로 한 미스터리

* 언제나처럼 honto의 북트리 서비스를 통한 추리 소설 추천. 국내 소개된 작품은 4편입니다. 저도 두 편 밖에는 읽어보지 않았는데 찾아봐야겠네요.

'교환 살인'은 죽이고 싶은 사람이 있는 사람들끼리 서로의 살해 대상을 교환하는 것을 말합니다. 다른 사람에 의해 살인이 저질러지고 있는 동안에 철벽의 알리바이를 준비해서 혐의에서 벗어나는 완전범죄를 만들기 위해서이지요. 

그러나 교환 살인이 트러블, 변심이나 배반 등으로 생각대로 잘 흘러가지 않고 그 와중에 드라마가 발생하는건 추리 소설에서 기본적인 테마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그런 교환 살인 미스터리 작품들을 소개합니다. 

<<킹을 찾아라>> 노리즈키 린타로

4중의 교환 살인을 계획하고 실행하는 범인과 사건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노리즈키 경시와 린타로 부자의 활약을 그린 미스터리. 범인 측 시점은 일종의 도서 미스터리로, 노리즈키 경시와 린타로 부자 시점은 본격 미스터리물로 즐길 수 있다. 또 교환 살인으로 '누가', '누구를' 죽였는지에 대한 후더닛 요소도 더해져 있는, 헛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치밀한 플롯이 빛나는 본격 요소가 가득 담겨있는 작품.

<<교환살인에는 어울리지 않는 밤>> 히가시가와 도쿠야

사립탐정 파트, 탐정의 제자 파트, 형사 파트가 순서대로 그려지며 교환 살인물로는 드물게 도서 미스터리 스타일이 아닌 채로 진행된다. 제목에는 있지만 도대체 무엇이 교환 살인인지 궁금해하면서, 가벼운 분위기의 문장에 혹해서 읽다보면 어느새 저자의 속셈에 빠져들고 마는 본격 미스터리.

<<도망자>> 오리하라 이치

교환 살인을 저질렀지만 배신당해서 한 번 체포되었지만 탈주한 뒤 도망자 신세가 된 도모타케 지에코. 그녀와 그녀를 쫓는 형사와 남편, 그리고 인터뷰로 구성되어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도피 행각을 실감나게 그리고 있다. 노골적이며 의미심장한 표현들은 서술 트릭의 대가인 저자의 솜씨를 느끼게 해 준다. 실재로 있었던 사건이 모델인 미스터리 작품.

<<스트레이트 체이서>> 니시자와 야스히코 (국내 미출간)

린지는 바에서 취했을 때 3중 교환 살인 약속을 해 버렸다. 다음날 아침, 자신이 지목했던 살해 대상이었던 상사의 집에서 타살 사체가 밀실 상황에서 발견되는데..... 저자가 SF 설정의 본격 미스터리 작품들을 발표하던 시기의 작품. 수수께끼 아이템이 등장해서 이번에도 SF 설정이구나 싶은 점도 흥미로운 점. 꼭 주인공에 감정이입해서 읽어보시길.

<<낯선 승객>>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교환 살인이 주제인 작품들 중 선구자적인 존재인 이 작품은 히치콕 감독에 의한 영화도 유명하다. 우연히 같은 전철에서 만난 가이와 브루노는 서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고, 브루노가 가이에게 교환 살인을 제안한다는 내용으로 편집광적인 스토커의 무서움을 맛볼 수 있는 심리 서스펜스물.

정보는 모두 당신 손 안에! <<독자에의 도전장>>을 즐길 수 있는 미스터리 작품들

2013/03/17

매스커레이드 호텔 - 히가시노 게이고 / 양윤옥 : 별점 2.5점

매스커레이드 호텔 - 6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현대문학

도쿄에서 의문의 살인 사건이 연이어 발생했다. 피해자는 30세 전후의 회사원, 43세의 주부, 53세의 고등학교 교사였고, 사건 현장에는 수수께끼의 숫자가 남겨져 있었다.

45.761871, 143.803944
45.648055, 149.850829
45.678738, 157.788585

경찰은 이 숫자를 해독해내는 데 성공했다. 숫자는 다음 범행장소를 예고하는 메시지였다. 메시지에 의해 다음 범행장소로 예고된 곳은 최고급 호텔 코르테시아도쿄 호텔이었다.

경찰은 네 번째 살인을 막기 위해 호텔에 수사관들을 대거 급파하고 벨보이, 하우스키퍼, 투숙객 등으로 위장한 형사들이 잠복근무에 돌입했다. 닛타 형사도 호텔의 간판 부서인 프런트 직원으로 위장해 잠입 수사를 시작했다. 진짜 호텔리어처럼 보이기 위해 베테랑 호텔리어인 야마기시 나오미의 지도를 받으며, 둘은 사건 해결을 위해 함께 협력하는데...

히가시노 게이고의 비교적 최신 장편. 기둥 줄거리는 연쇄살인사건이라는 강력 사건이지만, 가운 절도, 장님인 척하는 할머니, 스토커에게 쫓기고 있다는 미인, 끊임없이 어이없는 클레임을 거는 손님이라는 일상계 사건이 연달아 벌어진다는 구성이 독특합니다.

또한 이 일상계 사건들이 모두 나름대로의 트릭이 존재하고, 이 트릭들에서 힌트를 얻어 범행의 진상에 접근해 나가는 전개는 가가 형사 시리즈 "신참자"를 연상케 합니다. 단편 연작물 느낌을 주면서도 기둥 줄거리와 잘 엮어나가는건 판박이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일상계물에 비하면, 본편 이야기인 연쇄살인사건 이야기는 많이 별로입니다. 일단 상관없는 살인들을 연쇄살인사건으로 위장하여 진상을 흐리게 만든다는 설정부터가 "ABC 살인사건" 등 다양한 작품에서 이미 사용되었기에 뭔가 다른 아이디어가 필요했을 텐데, 그런 게 전혀 없다는 문제가 너무 큽니다. "호그 연속살인" 정도의 임팩트는 줬어야 했을 텐데 말이지요.

그리고 암호도 억지스럽습니다. 연쇄살인처럼 보이게 하려면 "살인범 X" 같은 이니셜로도 충분했을 테고, 모방 범죄가 우려된다면 특별한 폰트와 사이즈 정도만 써도 충분했을 텐데 괜히 어렵게 꼬아놓기만 했으니까요. 호텔을 콕 집어 범행 장소로 지정할 이유도 명확하지 않습니다. 경찰의 주목을 끌어서 유리한 점이 뭐가 있을까요?

그 외에도 각 사건별로도 어설픈 점이 많아요. 예를 들면 오카베의 알리바이는 억지스럽습니다. 그때 옛 애인이 전화를 했으리라는 보장도 없을 뿐 아니라, 경찰에서 통화 내역을 조사했더라면 금방 진상을 알아낼 수 있었을 겁니다. 혼자만 PC를 사용하게 만들었다는 것도 말이 안 되고요.

진상도 어딘가에서 본 듯한 내용이며 - "낯선 승객"이 생각나네요 -, 범인의 동기 역시 설득력이 떨어져서 점수를 주기 어렵습니다.

물론 닛타와 야마기시 나오미의 밀당도 재미나고 소소한 일상계 트릭들은 충분히 즐길 만했습니다. 호텔이라는 장소에서 일하는 여러 전문가들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는 점도 좋았고요.  제 별점은 2.5 점입니다. 차라리 호텔을 무대로 한 일상계 추리물이라면 더 좋았을 겁니다. 무리하게 장편을 만든 느낌이에요.

2013/10/30

킹을 찾아라 - 노리즈키 린타로 / 최고은 : 별점 2.5점

킹을 찾아라 - 6점
노리즈키 린타로 지음, 최고은 옮김/엘릭시르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기이한 별명의 네 사람이 모여 교환살인을 모의하고 대상과 순번을 정했다. 방법은 트럼프 카드 뽑기. 첫 번째 범인 와타나베 기요시의 범행을 시작으로 아무 관련 없는, 그러나 유력한 용의자의 알리바이는 명확한 살인사건이 연달아 일어났다. 노리즈키 총경은 아들 린타로와 함께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는데...

노리즈키 린타로 장편. 이 작가 장편은 "잘린 머리에게 물어봐" 이후 두 번째네요.

작품의 시작은 네 명의 사람이 모여 교환살인을 모의하는 장면에서 시작하기 때문에 일종의 도서 추리물 느낌을 전해 줍니다. 이후 범인 중 한 명인 와타나베 기요시의 범행을 디테일하게 묘사함으로써 더욱 그러한 생각을 갖게 만들었고요. 이후는 일반적인 추리물 형식이긴 하지만요.

어쨌거나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전작보다는 쉽게 읽힙니다. 그러나 추리적인 완성도는 별로입니다. 이유는 우연과 작위적인 전개에 더해, 내용에서 경찰 수사의 헛점이 여실히 보이기 때문입니다. 완벽해 보이는 교환살인이 발각되는 이유가 와타나베의 바보 같은 실수였다는게 대표적인 예입니다. 이 실수는 노리즈키 총경이나 주변 증인들의 말을 빌리면, '한 번만 만져보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위조지폐'로 비롯된 것인데, 와타나베는 맨손으로 지폐를 만져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것일까요? 또 지갑에는 어떻게 넣었을까요? 이후 와타나베가 은행에서 도주하다가 차에 치어 죽는다는건 작위적인 전개의 극치입니다. 여기서 체포되었더라면 진상은 한 번에 밝혀졌을 테니까요. 교환살인 추리의 근거가 되는 카드 발견 역시 나라자키가 카드를 남겨두고 도주한 탓으로, 순전히 운에 불과했습니다.

또 카드 발견 이후, 노리즈키 린타로가 등장하여 교환살인에 대해 두 명이 아니라 세 명, 세 명이 아니라 네 명이 얽혔다고 추리하는데 이건 딱히 대단한 추리로 여겨지지 않았습니다. 두 명이 아니라 세 명이었다면 네 명도 당연히 가능하겠죠. 추리라고 부르기도 어려워요.

이러한 점들로 인해 페이지가 중간을 넘어갈 때까지는 솔직히 별볼일 없었습니다. 작가의 이름값에서 기대되는 정통 추리물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였어요.

그러나 후반부, 경찰이 숨통을 조여오고 위조된 협박장을 받은 이후 범인들이 오히려 자수하여 혐의를 축소하려는 공작을 벌이는 부분부터는 괜찮습니다. 첫 장면부터 독자를 범행모의에 끌어들여 앞부분 전개를 지루하게 만들지만, 중요한 정보를 교묘하게 감춘 탓에 독자와의 두뇌게임이 제대로 벌어지는 덕분입니다. 노리즈키 린타로와 독자가 공정한 정보를 제공받는 것은 물론이고요.

덧붙이자면 진상에 대한 아이디어도 탁월합니다. 교환살인을 테마로 한 작품은 많았지만 여태 이런 발상의 작품은 본 적이 없네요. 남겨진 용의자가 "살인을 모의했지만 나는 저지르지 않았다!"라고 주장한다니! 교환살인 모의가 중죄일 수는 있으나 범행 실행 이전이라면 그 형량은 상대적으로 낮을 것이라는 것을 이용한 건데, 교환살인의 가장 큰 맹점인 '첫 범행으로 이득을 본 뒷사람은 범행을 주저하게 되기 때문에 누가 먼저 범행을 저지르냐가 중요하다'를 한방에 해결해 준다는 측면에서도 아주 좋은 아이디어였습니다. 이 작품의 진상과는 살짝 어긋나지만, 누가 살인을 저지른 다음이라면 뒤에 남은 사람은 "사실은 그럴 생각이 없었다. 반은 장난이었다"라고 자수하면서 범행을 불어도 되니 정말로 타당한 발상이죠. 한 가지 궁금한 것은 이 경우에도 보험금을 받을 수 있나라는 것인데, 순수하게 원한 관계였다면 아무 문제 없으리라 생각되네요. 단지 이 맹점만을 가지고 작품을 쓴 게 패트리샤 하이스미스의 "낯선 승객"이라면, 이 작품은 이 맹점을 가지고 두뇌게임을 벌인다는 점에서 발전된 모습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작품의 완성도와는 별개로요.)

허나 탁월한 발상과 빅재미의 후반부 역시 아쉬운 점이 없지는 않습니다. 먼저 앞서 이야기한 대로 경찰 수사의 헛점 부분인데, 세키모토 마사히코에 대해 충실히 수사했다면, 그래서 그의 진짜 동기를 알아내었더라면 사건은 보다 빨리 해결되었을 겁니다. 이런 대형사건이 자수한 용의자의 자백에만 의지하여 수사가 진행된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웠어요. 그리고 나라자키를 살해했다는 내용은 완전히 사족이었습니다. 나름 교묘한 작전으로 혼자서는 충분히 빠져나갈 수 있었던 조시마에게 철퇴를 내리기 위한 작가적 의도로 보이긴 했지만, 좀 오버한 듯 싶더군요.

마지막으로 카드에 이름을 맞추었다는 발상과 그에 따른 진상은 꽤 그럴듯하고 재미도 있긴 하나 작위적이라는 점에서는 감점 요소이긴 합니다. 사실 카드가 킹이냐 조커냐는 별로 중요한 것도 아니었으니까요.

결론적으로 별점은 2.5점. 설정과 전개는 진부하고 사건은 우연이 많이 개입되어 추리적으로 눈여겨볼 부분이 많지 않으나 마지막 부분의 아이디어는 돋보입니다. 후반부 아이디어를 보강하고, 정통파 추리소설보다는 범죄 스릴러로 전개하는 편이 훨씬 나았을 겁니다.

2010/06/19

쌍두의 악마 1,2 - 아리스가와아리스 / 김선영 : 별점 2.5점

 

쌍두의 악마 2 - 6점
아리스가와 아리스 지음, 김선영 옮김/시공사

"이하 내용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마리아는 '외딴섬 퍼즐' 사건 이후 정신적 충격으로 예술가들의 촌락 기사라 마을에 은둔해 버렸다. 그녀를 데려오기 위해 에이토 대학 추리연구회 일동이 출동했다. 하지만 기사라 마을은 여러가지 이유로 외부인을 들이지 않는 탓에, 추리연구회는 심야에 침투작전을 벌여 에가미 선배 홀로 겨우 침투에 성공했다. 아리스를 비롯한 나머지 연구회원들은 예술가 마을 바로 옆의 나쓰모리 촌락으로 후퇴한 뒤 선배와 마리아를 기다렸다.
그러나 기사라 마을의 화가 오노가 살해된 시체로 발견되고, 사건 해결을 위해 잠시 남기로 한 에가미 선배의 전화를 마지막으로 기사라 - 나쓰모리를 잇는 유일한 다리가 폭우로 유실되고 전기와 전화마저 끊겼다. 뒤이어 나쓰모리 마을에서도 카메라맨 아이하라가 살해된 시체로 발견되는데...


일본 신본격 미스터리의 대표 작가 중 하나인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작품. 작가의 두개의 시리즈 중 - 하나는 에이토 대학 추리 연구회 회원인 대학생 아리스가 화자로 등장하고 에이토 대학 추리 연구회의 대선배인 에가미 지로가 탐정으로 등장하는 "학생 아리스"시리즈. 그리고 또 하나는 추리소설가 아리스가 화자이며 그의 친구이자 임상병리학자로 유명한 조교수 히무라 히데오가 탐정으로 등장하는 "작가 아리스"시리즈 - 학생 아리스 시리즈로 그간 읽어왔던 작가의 작품들 중 가장 긴, 800여페이지가 넘는 대장편입니다.
시리즈 작품답게 학생 아리스 시리즈의 전작 설정과 유사하면서도, 신본격 작가다운 고전적인 설정과 전개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시골 마을의 폐쇄적 공동체와 이 공동체가 천재지변으로 고립된다는 전형적인 클로즈드 써클 미스터리거든요. 그리고 연쇄 살인극이라는 것도 전작들과 유사하고요.

그동안 예닐곱편의 작품을 읽어온 것에 따르면, 아리스가와 아리스는 공정한 단서 제공과 합리적인 추리라는 장점과 작위적인 설정이라는 단점을 함께 가지고 있는 작가라 생각됩니다. 그러나 이 작품은 장점이라 생각했던 추리적인 부분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대표작이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요.
첫번째 사건부터 문제에요. 향수를 뿌릴 수 있는 사람이 야기사와 뿐이었다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어차피 우산 안이라면 접혀져 있을때 향기가 나지 않아서 은폐가 가능했을테니까요.
향수를 뿌리는 것이 가능했다 하더라도, 동굴 안에서 살해할 이유가 설명되지 않는 것도 문제에요. 작중에서 설명되듯 그냥 동굴 입구에서 살해해도 되잖아요. 입구가 2개라서 어디서 나올지를 몰랐기 때문이라는 것은 설득력이 약합니다. 향기에 의지해서 어두컴컴한 동굴 속에서 누군가를 미행한다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요? 설령 가능하더라도 피해자에게 발각될 위험성이 너무 높아요. 그러느니 차라리 50% 확률로 입구에서 기다리겠습니다...

그리고 계약에 따라 혐의를 벗겨주기 위한 작위적인 장치 설정도 무리수였습니다. 여자 힘으로 불가능했을 것이다라는 것은 가정일 뿐, 현실적인 단서가 되기는 어려운 탓입니다. 이럴 바에야 확고한 알리바이를 만들어 주었어야 했습니다. 증거로 귀를 잘라낸다는 발상도 썩 와 닿지 않았고요. 차라리 시체를 강물에 던져버렸으면 모든 것이 깔끔했을텐데, 이래서야 범행을 위한 범행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네요. "계약서"라는 것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한다면 "귀"는 무가치하며 외려 범인에게는 불리한 증거물 이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니까요.
두번째 사건인 사진작가 아이하라 살인사건은 그래도 깔끔한 편이지만, 이 사건은 저도 범인을 짐작할 수 있었을 만큼 너무 간단하고 명쾌하다는게 문제입니다. 솔직히 추리적으로는 재미가 너무 부족했어요. 핵심 단서에 대한 정보 제공이 너무나 공정한 탓에, 용의자의 직업만 가지고도 범인을 특정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무로키의 팔레 이데알 이야기도 너무 많이 나와서 뭔가 사건에 연관이 있으리라 생각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트릭이 패트리시아 하이스미스의 "낯선 승객"과 동일한 트릭이라 신선함이 떨어진다는 것도 아쉬웠던 점입니다. 그나마도 중간 과정을 너무 대충대충 넘기고 있기도 하고요.

동기면에서도 오노야 당연히 누구나 죽이고 싶어하는 인물이라 열외이지만 (종유동에 벽화따위나 그리는 놈은 죽어도 싸지) 야기사와의 살의는 살인 말고라도 여러가지 방법 - 돈이나 필름을 회수하거나 하는 방법 - 이 있었을테고 세번째 살인 역시 무로키가 체포된다면 불필요한 살인이기에 무의미해 보여 별로 와닿지 않았습니다. 어차피 경찰 수사가 시작되면 고립된 기사라 마을에서 한정된 인물들 대상으로 범인이 결국 밝혀졌을테고 말이죠.

아울러 작가의 전통적인 단점 역시나 그대로입니다. 고립된 상황을 만들기 위한 작중 설정부터가 억지스러워요. 특히나 몇몇 한정된 선택받은 사람들로만 구성된 외딴 마을의 예술가 공동체는 정말 어처구니 없는 설정이죠. 예술가들이 이런 촌구석에 처박혀서 버틴다는건 이해가 되지 않았으니까요. 지나칠 정도로 "고립"에 집착하는 모습은 과히 좋아보이지는 않네요.

물론 기사라 마을 - 나쓰모리 마을 두개로 나뉘어져 전개되는 방식은 상당히 재미있고, 이렇게 두개의 시점으로 전개되는 사건이 결국 하나로 엮인다는 결말도 굉장히 잘 만들어져 있기는 합니다. 사건도 모두 3건이나 등장해서 대장편다운 풍성함을 전해주고요.
또한 세번째 사건인 음악가 야기사와 살인사건은 주요 단서가 명쾌하고 설득력 넘치게 짜여진 잘 만들어진 이야기였습니다. 사실 트릭이라기 보다는 왜 X가 범인인가? 에 대한 설명이 핵심이지만 굉장히 합리적이고 깔끔하게 전개되고 있을 뿐더러, 고전적이며 본격 추리소설같은 느낌이 잘 전해지기 때문에 마음에 들었어요 . 구태여 변명하려면 변명할 수 있는 단서이기는 하지만...

결론내리자면 공정한 단서제공과 본격 추리소설다운 지적인 재미는 존재하나 하나의 장편으로서의 완성도는 그에 미치지는 못한 작품이라 생각됩니다. 벌려놓은 것에 비하면 알맹이는 빈약한 편이니까요. 엄청나게 긴 분량 역시 감점 요소였어요. 분량에 걸맞게 디테일하지도 못한데 차라리 조금 더 짧았더라면 훨씬 좋았을것 같습니다.개인적으로는 작가 아리스 시리즈가 조금은 더 나아 보이네요. 별점은 2.5점입니다.

현대 사회에 클로즈드 써클 미스터리물을 만들고자 노력한 작 가의 노고에는 경의를 표합니다만 왜 이 작품이 대표작으로 인정받는지는 잘 모르겠군요. 아무래도 작가가 트릭과 추리적인 발상에 비하면, 소설가로서의 글 쓰는 능력은 부족해 보입니다.

2009/02/19

녹색은 위험 - 크리스티아나 브랜드 (크리스티나 브랜드) / 이진 : 별점 3점

녹색은 위험 - 6점
크리스티아나 브랜드 지음, 이진 옮김/시작

2차 대전 당시 런던 대공습의 와중에 마을 외곽의 한 야전병원의 수술대 위에서 우체부로 일하던 히긴스 노인이 사망한다. 이 사건으로 외과의사 문과 저베이스, 마취의 반스, 간호사 마리온과 간호 봉사대원 제인, 프레데리카, 에스더 7명의 작은 공동체에 파문이 일고 경시청에서 커크릴 경감이 파견되어 사건 수사를 시작한다. 이후 간호사 마리온이 살해당한 시체로 발견되고 커크릴 경감은 범인의 정체를 눈치채고 공습의 와중에서 범인을 잡아내기 위해 노력하는데...

크리스티아나 브랜드의 대표작입니다. 국내 출간이 너무 늦은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유명한 작품이죠. 뭐, 이 땅의 장르문학 홀대가 한두해 있었던 일이 아니니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만요. 어쨌건 동서 추리문고를 통해 "제제벨의 죽음" 밖에 소개되지 않았었지만 "제제벨의 죽음" 을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는데, 이 "녹색은 위험"이 더 대표작으로 널리 알려져있어서 기대가 무척 컸었기 때문에 이렇게 읽게 되니 정말 감개무량했습니다.

그러나... 솔직히 작품 자체는 실망스러웠습니다. 기대가 너무 컸던게 아닌가 싶네요. 일단은 전개가 굉장히 고풍스러운 것이 약간 거슬리는 부분이었습니다. 반세기 이전 작품이긴 하지만 글쎄요... 크리스티 여사님 작품을 읽을때와는 확실히 다른 느낌이었어요. 작풍인지는 모르겠지만 심리묘사와 개인적이고도 사변적인 대사가 지나칠정도로 장황하게 난무하는 점도 고풍스러운 느낌에 한몫 거들면서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였고요. 이렇게 장황한 묘사와 대사는 그 사이사이에 중요 단서를 살짝 살짝 끼워넣기 위한 장치이긴 하지만 그래도 정도가 좀 심했습니다. 번역의 문제가 좀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뭔가 매끄럽지도 않고 말이죠.
게다가 커크릴 경감 (콕크릴 경감) 은 이 작품에서는 정말이지 하는게 너무 없어요! 되려 애꿎은 희생자만 늘려버리고 추리보다는 자백에 의존하는 등 명탐정으로서의 역할 수행을 전혀 하고 있지 않습니다. "제제벨의 죽음" 에서 접했던 명탐정과는 전혀 다른사람 같았어요.

동기도 지나치게 오버스러웠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혐의를 두기 위해서 다양한 동기를 등장인물들에게 가져다 붙이는건 고전 추리물로는 당연한 전개겠지만, 문제는 이 동기들이 거의 다 평이한 수준이라 "살의"를 이끌어내는 것은 좀 어려워 보였던 탓입니다. 심지어는 남동생과 누나의 목소리가 비슷하다는 어거지(?)까지 가져다 붙이는 건 영 아니다 싶더군요.

하지만 실망의 가장 큰 원인은 무엇보다도 제가 10년도 더 전에 이 작품의 영화버젼을 이미 감상했던 탓이 가장 큽니다. 화쪽이 더 깔끔하고 간결하게 각본을 구성해서 더 몰입해서, 훨씬 재미있게 볼 수 있었거든요. 사건도 잘 축약하고 내용을 많이 쳐 냈지만 추리적인 맛은 충분히 잘 살려냈던 덕분입니다. 물론 영화에 비해서 훨씬 중첩되어 쌓여있는 복선들, 다양한 단서들, 용의자와 범인을 특정하게 만드는 시간의 굴레에 대한 설정, 특히 "가운" 에 대한 추리적인 발상은 무척 좋았고 곳곳에 숨어있는 영국적인 묘사와 유머들 역시 마음에 들긴 했습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거장의 대표작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겠죠. 영화와는 다른 책의 미덕이라 할 수 있는 심리묘사와 디테일은 확실히 잘 살아 있으니까요. 그러나 지금은 구하기 힘들어도 영화쪽이 더 나은건 분명합니다. 패트리샤 하이스미스의 "낯선 승객" 역시 히치콕 감독의 영화버젼이 훨~씬 뛰어나듯이 가끔은 원작을 능가하는 영화도 존재하는 법이겠죠. 
아울러 이 작품의 가장 큰 트릭은 바로 "제목" 과 동일한데 역시나 영화를 통해 접했기에 신선함을 느끼기 힘들었습니다. 주요 트릭과 범인을 이미 알고 있는 추리소설을 다시 읽는다는 것이 얼마나 지루한 일인지 다시금 느끼게 되었네요. 
영화는 "흑백영화"라서 색깔을 전혀 구분할 수 없었던 탓에 마지막 트릭 공개가 좀 황당했던 기억이 나기는 합니다만... 하여튼 별점은 3점입니다. 영화를 보지 않았더라면 점수가 좀 더 높았을까요? 아직 크리스티아나 브랜드를 접하지 않으신 추리 애호가분들이 계시다면, "제제벨의 죽음" 을 먼저 추천드립니다.

그리고 한가지만 더 덧붙이자면, 이 고전 명작을 출간해 주신 출판사 관계자 분들께는 진심으로 감사드리지만 책 표지 디자인과 본문의 구성은 별로였습니다. 표지 디자인은 "병원이 무대인 소설에 제목은 "녹색은 위험" 이니 이렇게 가야겠다!" 라고 떠오른 첫 생각을 그대로 비쥬얼로 옮겨놓은 듯한, 녹색 바탕에 의사로 보이는 인물이 전면에 배치된 디자인인데 너무 뻔하고 안이하잖아요... 90년대 로빈 쿡 소설이 생각날 정도로 올드하기도 하고요. 가격도 착하고 책도 괜찮았지만 조금만, 아주 조금만 더 신경써 주신다면 더욱 좋을 것 같네요.

2005/04/07

간만에 책 구입 2004.04.07

자주 가는 인터넷 헌책방인 "신고서점"에 어떤 분이신지 소장하시고 계신 추리소설을 왕창 풀은 것 같더군요. 애거서 해문 빨간책 시리즈는 정말 엄청난 양이 올라왔고 최신간도 눈에 띕니다. 저는 이미 구입했지만 최신간 모스 경감 시리즈와 "펠리데" 까지 올라와 있으니 어떤 분이신지 정말 가슴 아프셨을 것 같네요.

대충 훝어보고 해문의 반다인 시리즈 "가든 살인사건"과 해문 미스테리 베스트 "낯선 승객", 그리고 애거서 빨간책 시리즈로 "움직이는 손가락", "삼나무관", "비뚤어진 집", "앤드하우스의 비극"을 구입했습니다.

새책 사기는 조금 망설여지는 선택인데, 헌책방에서는 이렇게 구입도 2만원 안쪽이니 굉장히 뿌듯합니다.
가든부터 읽어봐야겠네요. 이래서 헌책방을 자주 간다니까요...^^

2021/08/08

빛의 현관 - 요코야마 히데오 / 최고은 : 별점 2.5점

빛의 현관 - 6점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최고은 옮김/검은숲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거품이 꺼진 뒤 몰락해버린 건축업계에서 친구 오카지마의 도움으로 겨우 설계일을 이어나가던 아오세는, 의뢰인 요시노로부터 '당신이 살고 싶은 집'을 지어달라는 의뢰를 받고 평생의 걸작인 Y주택을 만들게 되었다. 하지만 요시노 가족이 Y주택에 거주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된 뒤, 아오세는 그들의 행적 조사를 시작했다. 그리고 이 사건에 옛 유명 건축가 브루노 타우트의 존재가 깊숙히 개입되어 있다는걸 알아채는데....

원제는 "노스라이트"로 2020년에 발표되었던 요코야마 히데오의 최신작입니다. 2020년 당시, 온갖 순위를 휩쓴 작품이지요. '2020 이 미스터리가 대단해' 국내편 2위, '2020 주간문춘 베스트 미스터리' 1위, '2020 미스터리가 읽고 싶다' 2위 등을 차지했었습니다.

건축가가 주인공인 추리 소설은 보기 드뭅니다. 천재 건축가 나카무라 세이지가 설계한 건물들이 사건의 무대가 되는 아야츠지 유키토의 '관 시리즈'는 건축가가 주인공이라고 볼 수는 없고, "낯선 승객"은 주인공 거이가 건축가지만 내용은 건축과는 무관했지요. 그러나 이 작품에서는 주인공 아오세가 직접 설계한 건축물인 Y주택이 이야기를 시작하게 만드는 결정적 역할을 합니다. 심혈을 기울인 Y주택에 의뢰인 가족이 이사오지 않은 이유?를 궁금해 하며 직접 찾아 나선 설정과 동기는 지극히 건축가스러우니까요.
이 수수께끼를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알게 된 외국인 건축가 브루노 타우트의 인생과 작품에 대한 설명들은 나중에 아오세가 건축가로 더욱 성장하여 미술관 공모전이라는 큰 도전에 좋은 영향을 끼치며, 아오세의 가족 복원에도 도움을 주고요. 이 정도면 건축가가 주인공이며, 건축물이 주요 소재인 추리물이라고 하기 충분하겠죠.

물론 주인공 아오세가 평범한 건축가인 탓에 대단한 추리력이나 수사력을 발휘하지는 못합니다. 그래도 일반인으로서는 최선을 다한 수사와 나름의 결론을 이끌어내는 과정은 꽤 괜찮습니다. 요시노 가족을 찾을 때 '브루노 타우트의 의자' 가 중요한 단서가 되는 것도 좋은 아이디어였습니다. 진품이 희귀한 덕분입니다. 그래서 요시노 도타라는 의뢰인의 뿌리를 알아내는 과정도 타당했고, 아오세가 브루노 타우트를 알아가는 과정은 독자도 함께하는 느낌이라 재미있었습니다. 

Y주택을 짓게 된 의뢰는 요시노 가족이 아니라, 이혼한 전처 유카리의 바램에서 비롯되었다는 진상을 알아내는데까지의 전개도 자연스럽습니다. 아오세와 유카리가 함께 살 때 이야기했던 내용을 복선처럼 앞에서 드러내고 있는 덕분입니다. 따뜻한 가족 관계의 복원을 암시하는 마무리는 완전 제 취향이었고요. 저는 해피 엔딩을 좋아하니까요. 이야기를 시작하는 소재이며 가족 관계 복원의 핵심인, 이른바 '노스라이트'를 끌어들여 빛으로 가득차게 만들었다는 Y주택에 대한 묘사도 엄청납니다. 한 번 가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 정도로 매력적이었어요. 드라마화 된 영상물에서의 모습은 생각보다 작고 볼품없는 모양새라 실망스러웠지만요.

2020년 발표작인데, 아오세와 주변 인물들이 버블로 몰락하고 말았다는 이야기가 많은 것도 특이했습니다. 1990년대 후반~2000년대 극초반을 무대로 하고 있는 탓으로, 이 시기가 무대인건 1930년대 일본에 잠깐 머물렀던 브루노 타우트와 등장인물들이 연결점을 갖도록 만들기 위해서였다고 생각됩니다. 1930년대 당시 브루노 타우트를 어린 나이에 만난 뒤, 요시노 이사쿠는 타협없는 깐깐한 장인의 길을 걷게 되었는데, 그 상황을 목격했던 90대의 야마시타 구사오가 살아서 아오세에게 이야기를 전해 주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요시노 도타는 요시노 이사쿠의 손자라고 설정해도 되고, 야마시타 구사오의 증언도 일기나 편지 등의 형태로 남아있었어도 무리는 없었을겁니다. 이런 점에서는 아오세가 버블 경제의 쓴 맛을 톡톡히 보았다는 설정을 위해 이 시기로 무대를 설정했다고 볼 수도 있겠어요.

하여튼, 이렇게 흥미롭고 재미있는 이야기이기는 한데 아주 좋은 작품이냐?고 묻는다면 선뜻 그렇다고 답하기는 어렵습니다. 일단 '광의의 미스터리'로 볼 수는 있지만, 정통 추리 소설은 아닌 탓이 가장 커요. 요시노 가족의 실종을 추적하는 과정만큼은 추리 소설인데, 진상이 드러나는건 뒤에 다시 설명드리겠지만 결국 주요 등장인물들의 증언이 전부니까요. 

요시노 가족의 실종이 아오세 아버지의 죽음과 관련되어 있었다는 것도 억지스러웠습니다. 요시노 도타의 아버지 이사쿠와 아오세의 아버지가 구관조를 둘러싸고 다툼을 벌이다가 아오세의 아버지가 절벽으로 추락사했던 과거의 속죄를 위해서라는 설정부터가 그닥 현실적으로 보이지 않았거든요. 게다가 요시노가 아버지의 죄책감을 덜어주기 위해 3천만엔의 거금을 쓴다는건 설득력이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아버지에 대해 딱히 대단한 애정을 품지 않았었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살아 생전 듣지 않았던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 거금을 쓴다는건 납득하기 어렵지요.

등장인물들이 서로 인연을 더듬게 되는 이유도 '아오세', '요시노'라는 성이 특이하다는 탓이 큰데, 작위적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일본인이 아니라서 잘은 모르겠지만, 아오세라면 모를까 요시노가 그렇게 특이한 성은 아니지 않나요? 유명한 규동 체인점 이름도 '요시노야'인데.... 이런 이유들 때문에 온갖 순위를 휩쓸었는데에도 불구하고, '2020 본격 미스터리 베스트 10'에는 이름을 올리지 못한 걸로 짐작됩니다.

브루노 타우트 비중이 너무 크다는 단점도 있습니다. 작 중 건축물에 대한 상세한 묘사, 타우트 작품으로부터 영감을 얻는 부분 등은 읽으면서도 한편으로 타우트의 작품을 계속 찾아보게 만들게끔 잘 쓰여져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타우트와 그의 작품들이 이야기에 꼭 필요했냐 하면 그건 아닙니다. 요시노 이사쿠가 브루노 타우트로부터 큰 영향을 받은 장인이라는게 이 작품에서 유일했던 브루노 타우트의 존재 이유인데, 자존심으로 버티는 장인이 딱히 그런 공예가일 필요는 없잖아요? 이런 장인은 널리고 널렸으니까요. 브루노 타우트의 의자가 Y주택에 남아 있던 덕분에 요시노 이사쿠의 과거가 일부 드러나게 되지만, 이 역시 사건을 밝히는데에는 별다른 도움을 주지 못합니다. 오히려 스쳐지나가는 오카지마의 말이 진상을 밝히는 결정적 단서가 되지요. 탐정이 아오세에 대해 조사했다는 말이었는데, 아오세는 이를 통해 탐정을 이용하던 요시노가 전처 유카리를 직접 만났다는걸 알아냅니다. 그리고 유카리가 직접 요시노의 의뢰가 무엇이었는지 알려주고요. 그 뒤 목적이 아버지 죗값을 치루기 위해서였다는건 아오세가 요시노로부터 직접 듣게 됩니다. 

이렇게 진상은 등장인물들의 증언으로 밝혀져서, 추리도 무의미할 뿐더러 브루노 타우트 엮일 이유는 마찬가지로 없습니다. 브루노 타우트와 연인 에리카의 관계도 확대 해석한 느낌이고요. 이런 점을 보면, 작가가 큰 감동을 받은 브루노 타우트를 어떻게든 끌어들여 작품을 쓰려고 했던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생기네요.

아울러 전체 분량의 2/3가 지난 시점부터 클라이막스까지 이어지는, 아오세가 근무하는 오카지마 건축 설계 사무소 이야기는 앞서의 요시노 가족 실종 사건과는 전혀 관계가 없을 뿐더러, 너무 뻔했습니다. 대단치 않은 부정 - 택시비 대납 - 탓에 궁지에 몰린 오카지마가 사고로 죽은 뒤, 그가 남긴 설계안을 바탕으로 사무소 직원들 모두가 힘을 합쳐 공모안을 완성한다!는 내용은 철지난 열혈 청춘 드라마와 다를게 없으니까요.

게다가 아오세를 중심으로 한 직원들이 공모안을 완성시킨 뒤, 이를 공모전에 참여하는 대형 건축 사무소의 소장 노세에게 가져간다는 결말은 솔직히 어이가 없었습니다. 설계안은 무상으로 넘기고, 이름 올려달라는 말도 안 할테니 나중에 오카지마의 아들에게 네 아버지가 지은 건물이라고 말하게 해 달라? 대체 뭘 위한 노력이었을까요? 뻔한 열혈 청춘 드라마도 요새 이렇게 쓰면 욕을 먹을 겁니다. 이미 인생에서 쓴 맛을 여러번 겪었을 아오세가 한 말이라는게 믿어지지 않네요. 이보다는 오카지마는 죽었지만 공모전은 예정대로 진행되었고, 남은 직원들이 힘을 합친 결과물이 선정된다는게 더 나았을겁니다. 후지미야 하루코의 유족이 오카지마를 지지했다는 설정은 남아있는 만큼,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었으니까요. 

오카지마의 아들이 친아들이 아니었다던가, 마유미와 오카지마의 은밀한 관계 등은 구태여 나올 필요도 없었습니다. 가족간의 애정은 꼭 피로 이어질 필요는 없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면, 조금 더 세련되게 풀어냈어야 했어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입니다. 도입부는 흥미로왔고, 건축 관련된 묘사는 인상적이었습니다. 가족이 무엇인지를 되새기가 만드는 메시지도 뭉클했고요. 그러나 브루노 타우트에 관련된 내용 비중이 지나치고, 클라이막스와 결말은 뻔하고 납득하기도 어려워 감점합니다.

2006/02/12

당신은 우리와 어울리지 않아 -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 민승남 : 별점 3점

당신은 우리와 어울리지 않아 - 6점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지음, 민승남 옮김/민음사

"낯선 승객"과 "리플리" 시리즈로 유명한 추리계의 거장 중 한명인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여사의 단편집. (패트리샤라고 하지 않은 것도 좀 재미나네요)

순문학계열 출판물로 유명한 민음사에서 출간되어 의외라 생각했는데, 읽어보니 이해가 됩니다. 추리쪽 성향이 덜한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추리나 서늘한 맛을 기대했지만 의외로 순문학적인 작품들로 구성되었던 로얄드 달의 "당신을 닮은 사람"과 유사합니다.
하지만 로얄드 달의 단편집은 애초 생각과는 다르게, 정말로 순문학에 가까운 글들이 많았던 반면에 이 작품집은 기대한 만큼의 서늘함을 제공해 주는 작품이 많다는 차이가 큽니다. 대체로 "인간의 본성"을 극한으로 끌어내는 이야기들로 가득차 있는데 몇몇 작품은 읽으면서 감정이입하다보면 저도 모르게 몸서리를 치게 될 정도로 서늘하고 잔인한(?) 이야기들이더라고요. 
그 밖의 평범해 보이는 이야기들도 단순하지만은 않고, 여사만의 독특한 기묘함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도대체 다른 어떤 작가가 바구니짜기나 노인 입양같은 이야기로 이런 극한으로 치닫는 심리 묘사를 그려낼 수 있을까요?
일상 생활에서 벌어질 수 있는 사소한 사건과 살인과 같은 큰 사건 모두 시종일관 긴장감을 잃지 않고, 자신의 사상과 철학을 짧은 길이의 작품 안에 담는 솜씨는 정말 기가 막힙니다. "지적인 암살자(?)" 리플리의 창조주답네요.
이야기들의 배경과 설정이 모두 다르며 다양한 상황을 묘사하고 있는건 여사의 다채로운 생활 환경을 반영한 것 같은데, 이러한 세부 디테일들도 재미있었습니다.

범죄나 추리에 가까운 이야기는 많지 않아 추리쪽 장르로 구분하긴 어렵지만, 여사의 작품을 좋아하는 팬이라면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책입니다. 최소한 지루하지는 않습니다! 다른 단편집 3권도 빨리 구입해서 읽어보고 싶군요. 별점은 3점입니다.

덧붙이자면, 개인적인 추천작은 "검은 천사가 지켜보다"와 "노인 입양"입니다.

작품별 간략한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1. 고양이가 물어온 것
한적한 시골에서의 한때를 보내던 허버트 부부와 손님들 앞에 키우던 고양이가 물어온 것은 사람의 손가락이었다...
우연찮게 발생한 사건에 휩쓸리게 되면서,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를 잘 그려낸 작품.
드라마적인 요소가 강한 소품이지만 순간적인 분노와 폭발하는 심리묘사는 여사님답다는 생각이 듭니다.

2. 당신은 우리와 어울리지 않아
뉴요커들 한 무리가 자신들의 친구지만 왠지 거리가 멀어지고 서먹해진 친구인 에드먼드에게 짖궂은 장난을 치는 음모를 꾸미는데,그 친구는 직장과 아내에 이어 목숨마저 잃게 된다...
한 집단의 이지메와 같은 행동을 통해, 무심코 저지른 행동이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을 그린 작품. 일종의 집단 광기를 일상생활속에 녹여내었다고 할 수 있겠네요.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는 죽는다"라는 속담이 생각납니다. 
맨 뒤의 누군가가 죽은 다음에 찾아오는 일상에 대한 짤막한 묘사도 서늘합니다.

3. 바구니 짜기의 공포
광고 대행사에서 매채 담당자로 일하는 다이앤은 별장에서 한때를 보내던 중 우연히 자신에게 바구니 짜기의 재능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서서히 광기로 빠져들게 되는데..
정말로 기묘한 작품입니다. 한 여성이 우연한 기회에 자신에게 바구니 짜기 재능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그것 때문에 서서히 자신의 통제권을 잃는다는 내용이거든요. 흔히 접할 수 있는 이야기일 수 있는데, 소재가 너무 독특해서 인상적입니다. 하지만 결말은 의외로 현실적이라 조금 시시했어요.

4. 검은 천사가 지켜보다
시카고의 골동품업자 리 맨드빌은 자신의 어머니가 있는 양로원 비용때문에 고향집을 팔기 위해 몇년만에 고향에 찾아간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어머니가 이미 몇년전에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일종의 사기극이지만 피해자의 입장에서 그렸다는게 독특했습니다.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을 흡사 피해자처럼 보이게 하는 전개도 기묘하면서도 색달랐고요. 여사의 특징을 잘 드러내는 작품 중 하나가 아닐까 싶네요.

5. 네 삶을 경멸해
20살이 된 랠프는 록 밴드 생활을 하며 생활고를 겪어서 아버지에게 원조를 요청하지만 의절당한다.
우리나라에도 있을법한, 방탕한 자식과 아버지간의 커뮤니케이션에 관한 짤막한 드라마인데 아들 랠프의 심리묘사가 재미난 작품이었습니다. 결말도 인상적이었고요.

6. 에마 C 호의 꿈
남자들만 있는 요트 에마 C 호에 한 미녀가 표류하다 구조된 뒤, 에마 C 호의 인간들 사이의 관계가 헝클어지기 시작한다...
한 작지만 공고한 집단 안에 찾아온 불청객으로 관계의 붕괴가 일어나는 작품. 기묘하면서도 이상할 정도로 환상적인 느낌을 주는 작품이었습니다.

7. 노인 입양
매킨타이어 부부는 자식도 없던 차에 우연하게 순수한 선의로 포스터 부부라는 노인 부부를 입양하여 돌보게 되는데...
순수한 선의로 진행한 일이 점차 자신들도 통제하지 못하는, 극단으로 치닫는 서늘한 전개에 박수를 보냅니다! 무엇보다도 결말이 대단한 반전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무척이나 참신하고 독특해서 인상적이네요.

8. 로마에서 생긴 일
고위 공무원의 아내인 이사벨라는 남편에 대한 반감과 무료함으로 자신을 쫓아다니는 스토커 우고에게 남편 유괴를 의뢰하는데...
이탈리아를 무대로 미모의 여성과 자작 유괴극이라는 설정이 왠지 "크리시"를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었습니다. 인간 관계의 얄팍함을 다루고 있는데 묘사와 디테일은 좋았지만 결말이 시시한 편이라 좀 아쉽더군요.

9. 양손의 떡
잘나가는 뉴요커 해리는 결혼을 앞두고 두 미녀와의 양다리 관계를 즐기며 두명중 한명을 선택하기 위해 저울질 하던 중 즉흥적으로 두 여인을 모두 초대하게 되는데...
한 남성의 독특한 심리를 보여주는 작품. 전혀 이상하지가 않고 자연스러워 보이게끔 하는 묘사가 좋았습니다. 누구나 한번쯤 해봄직한 고민과 실수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그러한 이야기라 생각됩니다.

10. 연
폐렴으로 죽은 동생 엘지를 그리워하며 월터는 한번도 본적이 없는 거대한 연을 만들어 날리게 된다.
동생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너무 지나쳤고 그 때문에 비극이 발생한다는 내용.
그런데 제가 보기에는 한 소년의 환타지가 어른들에 개입에 의해 비극으로 끝나는 짤막한 동화라 생각됩니다. 소년 시절 환타지는 거의 다 비극이기 마련이지요..

11. 검은집
팀은 마을 술집에서 자주듣는 마을의 흉가 "검은집"의 정체를 밝히려는 시도를 벌이지만...
환상과 현실의 괴리감에 대한 이야기. 책 뒤에 해설에서 여러 정신분석 이론을 가지고 추가로 설명해 주는데 해설 쪽이 더욱 재미있었습니다.

2019/08/02

죽여 마땅한 사람들 - 피터 스완슨 / 노진선 : 별점 2점

죽여 마땅한 사람들 - 6점
피터 스완슨 지음, 노진선 옮김/푸른숲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투자회사를 운영하는 테드 스버슨은 아내 미란다가 건축업자 브래드와 불륜을 저지른다는 걸 알고 실의에 빠졌다. 그 때 우연히 만난 여성 릴리는 그의 이야기를 듣고, 그 둘은 죽어 마땅하다며 테드가 직접 행동에 나설걸 촉구했다. 릴리에게 빠져든 테드는 살인 계획을 세웠지만, 브래드가 선수를 쳐서 테드를 살해해 버리고 말았다. 이 사실을 뉴스로 접한 릴리는 그 둘을 직접 응징하려 하는데... 

이런 저런 곳에서 평이 상당히 좋았던 미국 스릴러입니다. 오쟁이를 진 남편이 살의를 품게 된 계기가 우연히 만난 여성 릴리의 설득 때문이라는 시작은 독특합니다. 퍼트리샤 하이스미스"낯선 승객"이 살짝 떠오르더군요. 책 뒤 해설을 보니 영향을 받은 듯, 안 받은 듯 모호하게 쓰여져 있기는 한데 최소한 작가도 존재를 알고 있었던건 분명하네요. 첫 만남 당시 릴리가 읽고 있던 작품이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1" 이니까요.

평이 좋은 이유는 일단 잘 알 수 있습니다. 재미만큼은 확실하거든요. 흡입력있는 신선한 전개도 아주 좋고요. 중반부까지 테드와 릴리의 시점을 각각 오가는데 테드의 시점은 릴리를 만난 다음부터의 현재이며, 릴리의 시점은 그녀가 첫 살인을 저지른 어린 시절부터 거슬러 올라옵니다. 그리고 두 시점이 합쳐지는 순간, 테드는 살해당하고 이는 독자에게 큰 충격을 안겨다줍니다. 그 뒤에도 릴리와 미란다 시점, 미란다가 살해된 뒤에는 경찰 킴볼 시점과의 교차 전개가 계속되는 것도 괜찮았어요. 독자에게 다양한 시각, 알지 못했던 정보를 제공하는 덕분입니다.
이 과정에서 테드에게 살의를 불러 일으키는 릴리에 대한 설정과 묘사도 인상적입니다. 자신에게 상처를 준 사람들을 죽이는데 주저함이 없는 싸이코패스"나를 찾아줘"의 에이미 스타일인데, 개인의 욕심이나 이기심보다는 제목 그대로 '죽여 마땅한' 사람들만 죽인다는 차이점이 명확합니다. 범행을 계획하고 실행하는 과정의 추진력, 결단력 역시 매력적이고요. 그녀를 실존하듯 그려낸 묘사도 일품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어린 시절부터 추리 소설을 - '낸시 드류' 시리즈를 포함해서 - 좋아했던 소녀로 그려져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녀와 대척점에 있는 '죽여 마땅한' 사람들인 미란다와 브래드 설정도 괜찮습니다. 단순히 불륜 관계가 아니라 테드를 살해한다는 전개는 정말 깜짝 놀랐어요. 사건을 수사하는 경찰 킴볼 역시 잘 그려져 있습니다. 시를 쓰는게 취미일 정도로 문학에 조예가 깊고, 상당한 관찰력과 추리력을 갖추고 있으며 우연히 쓴 음란한 시가 발목을 잡게 된다는 복선도 치밀합니다.

추리적으로도 릴리가 대학 시절 사귀었던 에릭을 살해한 범행만큼은 돋보입니다. 에릭이 견과류 알레르기가 있다는 걸 알고 견과류가 들어간 인도 요리를 먹인 뒤, 치료제를 숨겨 질식해 사망하게 만드는데 사고사로 보이게끔 다양한 조작을 하기 때문입니다. 견과류는 미리 갈아서 요리에 섞어두었고, 범행 전 에릭의 승부욕을 자극하여 펍에서 열리는 술 먹기 대회에 참여하게 만드는 등의 작전이 그러합니다. 그래서 술에 취한 에릭이 실수로 요리를 먹고, 치료제도 찾지 못해 죽었다고 경찰은 생각하게 되지요.
경찰 킴볼이 의외로 유능해서 릴리와 테드의 관계, 릴리의 거짓말과 여러가지 이상한 행동을 파헤치는 과정도 볼거리입니다. 정말 몇 안되는 단서를 통해 릴리를 추적해나가는 과정은 경찰력에 상당한 신뢰를 갖게 만들 정도에요.

그러나 다른 범행은 그닥입니다. 릴리가 미란다와 브래드를 살해하는 핵심 범행부터가 그러합니다. 특히 브래드를 설득해서 미란다를 죽이게 만든다는 계획이 최악이죠. 브래드가 미란다에게 역으로 설득당해 릴리를 죽일 수도 있었으니까요.
미란다, 브래드를 살해한 뒤 먼 거리를 이동하여 사체를 유기하는 장면의 묘사도 나쁘지는 않지만 도로의 CCTV에 촬영되거나 도로 요금소에서 목격당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완벽하다고 보기는 힘듭니다. 미국 도로 CCTV 사정은 잘 모르겠지만 과연 추적이 불가능했을지?에는 의구심이 남습니다.

릴리가 저질렀던 다른 사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린 시절 만났던 유아 성애자 챗을 숨겨진 우물에 떨어트려 죽인 뒤 챗의 모든 짐도 같은 장소에 버린 첫 범행부터 문제가 많습니다. 범행 자체의 설득력부터 부족한 탓입니다. 지형지물을 잘 이용하기는 했지만 챗이 우물에서 떨어져 즉사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했을지에 대한 이야기가 없으니까요. 지나치게 잘 풀린 느낌이에요. 차라리 뚜껑을 덮고 굶어죽도록 놔 두는게 낫지 않았을까요? 또 당장은 살해하는데 성공했더라도 누군가 찾아 나섰다면 충분히 발견할 수 있었다는 점도 문제에요. 정처없이 떠도는 나그네라 아무도 찾지 않았다는 설정으로 대충 넘어갈 뿐입니다.
무엇보다도 마지막에 릴리가 충동적으로 킴볼을 칼로 찔러 체포되는건 정말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백주대낮에 현역 경찰에게 직접 흉기를 휘두르는건 빠져나가기 힘든 범죄니까요. 킴볼을 없애려면 더 철저하게 준비해서 범행을 저질러야 했습니다. 치밀해 보였던 릴리 캐릭터가 막판에 급작스럽게 붕괴되어 버리는데 그래서 얻은 건 아무 것도 없어요. 범죄 천재로 보였지만 그냥 어설픈 정신병자에 불과했다는 결말에 불과합니다.

그 외의 범행들도 어설픕니다. 남편을 죽이고 재산을 가로채려던 미란다의 계획? 당연히 실패했을겁니다. 범행 당시 브래드의 인상착의가 목격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녀가 릴리에 의해 살해되지 않았다면 킴볼 등 경찰의 수사에 의해 진상이 드러나는건 순식간이었을 거에요. 작 중에 등장하는 것 처럼 가짜 증언으로 빠져나갈 수도 있었겠지만 과연 그렇게 쉽게 넘어갔을지는 의문입니다.
테드가 충동적으로 릴리가 근무하는 대학 도시 윈슬로를 방문한 것, 릴리가 테드 사망 후 케네윅을 방문해서 숙박한 것 등의 자잘한 실수도 눈에 뜨입니다. 테드의 실수는 릴리를 곧바로 수사 선상에 올리게 만드니까요. 테드가 미란다보다 선수쳐서 범행을 저질렀다 해도 이래서야 완전 범죄가 성공했을 것 같지는 않네요. 테드와 릴리가 서로 끌렸다는 설정은 바람난 아내와 정부를 응징하겠다는 테드의 계획을 부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라 아니 등장하니만 못했고요.

작위적인 설정도 많습니다. 테드의 아내 미란다가 에릭과 바람이 났던 대학 시절 친구 페이스이며, 우연히 만난 줄 알았던 릴리와 테드의 만남도 어느정도 계획된 것이라는게 밝혀지는 것 등이 모두 그렇습니다. 그냥 우연히 만나서 정말로 범행에 대해 조언을 해 주게 되었다는 식으로 풀어나가도 충분했을텐데 말이지요. 마지막에, 릴리가 시체를 유기했던 초원 지대가 재개발된다는 마무리도 작위적입니다. 이런 류의 개발 계획을 근처에 사는 사람이 몰랐다는게 말이 될까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인물 설정 및 묘사, 그리고 전개는 뛰어나지만 범죄물로는 함량 미달이라 감점합니다. 공들여 쌓아올린 천재 여성 범죄자가 별볼일 없는 정신병자라는 결말도 실망스럽고요. 구태여 찾아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2022/08/05

영국 추리작가 협회 (CWA) 선정, 사상 최고의 추리소설 100선 (The Top 100 Crime Novel)

영국 추리작가 협회 (The Crime Writers' Association: CWA)에서 1990년 발표했던 사상 최고의 추리소설 100선 (The Top 100 Crime Novels of All Time) 입니다. 2022년 현재 시점에서 국내 미 출간작은 회색으로 처리하였습니다. 국내 출간작은 모두 59편입니다. 대부분의 출간작이 상위 50위 이내 (43편) 집중되어 있는데, 아무래도 상위권에 유명 작품이 더 많으니 당연한 결과입니다.

몇 년 전에 미국 추리작가 협회 (MWA) 선정 베스트 미스터리 100을 소개해 드렸던 적이 있는데, 비교해서 보면 더 재미있습니다. 특히 MWA에서는 1위로 꼽은 셜록 홈즈 시리즈 순위가 낮은게 가장 의외였어요. 세 편 선정된 애거서 크리스티 작품 중 "마지막으로 죽음이 온다"가 다른 유명 걸작들을 능가하는 작품인지는 살짝 의심스러웠고요. 미국 작품은 하드보일드 계열만 주로 선정한게 의도인지도 궁금합니다. 소개되지 않은 작품들 중에서는 도로시 L 세이어스의 "학원제의 밤"이라던가, 에드먼드 크리스핀의 "사라진 완구점", 마저리 엘링엄의 작품 등이 눈에 뜨이는데, 언젠가는 국내에 출간되면 좋겠네요.

1위 "진리는 시간의 딸" 조세핀 테이

2위 "빅 슬립" 레이먼드 챈들러

3위 "추운 나라에서 온 스파이" 존 르 카레

4위 "학원제의 밤" 도로시 L 세이어스

5위 "애크로이드 살인 사건" 애거서 크리스티

6위 "레베카" 다프네 뒤 모리에

7위 "안녕 내 사랑" 레이먼드 챈들러

8위 "월장석" 윌키 콜린스

9위 [[the ipcress file]] 렌 데이튼

10위 "몰타의 매" 대실 해밋

11위 "프랜차이즈 저택 사건" 조세핀 테이

12위 "실종 당시의 복장은" 힐러리 워

13위 "장미의 이름" 움베르토 에코

14위 "로그 메일" 제프리 하우스홀드

15위 "기나긴 이별" 레이몬드 챈들러

16위 "살의" 프랜시스 아일즈

17위 "자칼의 날" 프레드릭 포사이스

18위 "나인 테일러스" 도로시 L 세이어스

19위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애거서 크리스티

20위 "39계단" 존 버컨

21위 "셜록 홈즈의 모험" 아서 코난 도일

22위 "살인은 광고된다" 도로시 L 세이어스

23위 "에드거 앨런 포 단편선"

애드거 앨런 포 24위 "디미트리오스의 가면" 에릭 앰블러

25위 [[사라진 완구점]] 에드먼드 크리스핀

26위 [[Tiger in the smoke]] 마저리 엘링엄

27위 "가짜 경감 듀" 피터 러브시

28위 "흰 옷의 여인" 윌키 콜린스

29위 [[A Dark-Adapted Eye]] 바바라 바인

30위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 제임스 M. 케인

31위 "유리 열쇠" 더쉴 해밋

32위 "배스커빌 가의 개" 아서 코난 도일

33위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존 르 카레

34위 "트렌트 마지막 사건" E.C 벤틀리

35위 [[From Russia with Love]] 이언 플레밍

36위 "경관 혐오" 에드 멕베인

37위 "제리코의 죽음" 콜린 덱스터

38위 "낯선 승객"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39위 "활자 잔혹극" 루스 렌들

40위 "세 개의 관" 존 딕슨 카

41위 "독 초콜릿 사건" 앤서니 버클리

42위 "성녀의 유골" 엘리스 피터스

43위 "죽음의 혼례" 엘리스 피터스

44위 "죽음의 키스" 아이라 레빈

45위 "재능있는 리플리"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46위 "브라이턴 록" 그레이엄 그린

47위 "호수의 여인" 레이먼드 챈들러

48위 "무죄 추정" 스콧 터로우

49위 "내 눈에 비친 악마" 루스 렌들

50위 "벨벳의 악마" 존 딕슨 카

51위 "치명적 반전" 바바라 바인

52위 [[The Journeying Boy]] 마이클 이네스

53위 [[A Taste for Death]] P.D. 제임스

54위 "독수리는 날개치며 내렸다" 잭 히긴스

55위 [[My Brother Michael]] 메리 스튜어트

56위 [[Bertie and the Tin Man]] 피터 러브지

57위 [[Penny Blac]] 수전 무디

58위 [[Game, Set & Match]] 렌 데이튼

59위 [[The Danger]] 딕 프란시스

60위 [[Devices and Desires]] P.D. 제임스

61위 [[Under World]] 레지널드 힐

62위 [[Nine Coaches Waiting]] 메리 스튜어트

63위 [[A Running Duck]] 폴라 고슬링

64위 [[smallbone deceased>> 마이클 길버트

65위 [[The Rose of Tibet]] 라이오넬 데이비슨

66위 [[Innocent Blood]] P.D. 제임스

67위 <<맹독>> 도로시 L 세이어스

68위 [[Hamlet, Revenge!]] 마이클 이네스

69위 "시간의 도둑" 토니 힐러먼

70위 [[A Bullet in the Ballet]] Caryl Brahms & S. J. Simon

71위 [[Deadheads]] 레지널드 힐

72위 "제3의 사나이" 그레이엄 그린

73위 [[The Labyrinth Makers]] 앤서니 프라이스

74위 [[the quiller memorandum>>애덤 홀

75위 "내안의 야수" 마거릿 밀러

76위 [[The Shortest Way to Hade]] 새러 코드웰

77위 "질주" 데스몬드 배글리

78위 [[Twice Shy]] 딕 프란시스

79위 [[The Manchurian Candidate]] 리처드 콘돈

80위 [[the killings at drift>> 캐롤라인 그래험

81위 "야수는 죽어야 한다" 니콜라스 블레이크

82위 "고르키 파크" 마틴 크루즈 스미스

83위 "마지막으로 죽음이 온다" 애거서 크리스티

84위 "녹색은 위험" 크리스티아나 브랜드

85위 [[Tragedy at law]] 시릴 헤어

86위 "콜렉터" 존 파울즈

87위 "기데온과 방화마" J.J. 매릭

88위 "대통령의 유산 The Sun Chemist" 라이오넬 데이비슨

89위 "나바론 요새" 알리스테어 맥클린

90위 [[The Colour of Murder]] 줄리안 시몬즈

91위 [[Greenmantle]] 존 버컨

92위 "모래톱의 수수께끼" 어스킨 칠더스

93위 [[wobble to death>> 피터 러브지

94위 <<붉은 수확>> 더쉴 해밋

95위 [[The Key to Rebecca]] 켄 폴렛트

96위 [[Sadie When She Died]] 에드 멕베인

97위 [[The Murder of the Maharajah]] H.R.F. 키팅

98위 [[What Bloody Man Is That?]] 사이먼 브렛

99위 [[Shooting Script]] 게빈 라이얼

100위 "네 명의 의인" 에드거 월러스

2022/03/05

미스테리아 35호 - 미스테리아 편집부 : 별점 2점

미스테리아 35호 - 4점
미스테리아 편집부 지음/엘릭시르

별로 관심은 없었지만, 알라딘 온라인 중고로 미스테리아 36호를 사다가 곁다리로 구입하였습니다. 배송비를 내지 않기 위해서였지요. 

관심이 없던건 '少年'이라고만 적혀있는 뭔지 모를 특집 때문이었는데, 읽어보니 역시나였습니다. 제목의 소년은 "20세기 소년"에서 따온 것으로, "20세기 소년"에서 중요하게 언급되었던 오사카 만국박람회, 그리고 올림픽과 1970년대 전기 소설의 유행을 다루는데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건지도 잘 모를 정도로 두서없는 글들입니다. 전기 소설에 대한 부분만 괜찮았는데, 차라리 이 부분만 조금 더 깊게 파고드는 특집을 꾸미는게 훨씬 나았을 겁니다. 

뒤이은 '피서지에서 생긴 일'이라며 휴가 여행에서 생기는 사건들을 다룬 글은 완전 별로입니다. 앞의 글들과 맥락이 맞지도 않았을 뿐더러, 소개되는 작품 절반 이상이 크리스티 여사님 작품들인 탓입나다. 소개라도 다양했더라면 좋았을텐데 말이지요.

그나마 여기까지는 추리 문학 애호가로서 참고 볼만한 내용이기는 했는데, 영화 "스파이의 아내"에 대한 정성일 평론가의 27페이지에 달하는 리뷰와 분석은 지루함의 끝판왕이었습니다. 보지도 않았고, 볼 생각도 없는 영화 리뷰가 재미있을리도 없지만, "미스테리아"라는 잡지에 이렇게 많은 분량으로 소개될 이유를 도무지 모르겠더군요, 이 영화가 정통 추리물이거나, 혹은 그 쪽 장르에 부합하는 영화일까요? 그 외의 글들도 대부분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나마, 제가 쓰는 글과 코드가 비슷해서 좋아하는 정은지 작가의 '미스터리 속 음식 이야기'가 이번에는 피터 윔지 시리즈 전반을 다루는데 눈여겨 볼 부분이 많있습니다. 저도 미스터리 속 샌드위치에 대한 짤막한 글을 써볼까 하고 있었는데, "부자연스러운 죽음"에서 샌드위치가 결정적 단서라는 글이 특히 눈길을 끌었습니다. 전자책으로 출간된 모양인데, 이번 주말에 읽어봐야 겠습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특집과 인터뷰, 리뷰 등 기사 대부분이 마음에 들지 않아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별점은 2점 정도? 중고책으로 저렴하게 구입해서 별다른 내상은 없기는 한데, 앞으로는 특집이 별로면 절대 구입하지 말아야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수록 단편의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그래도 해피엔딩" 서미애

이트 폭력을 그린 단편입니다. 전기 충격기로 디지털 도어 잠금을 풀 수 있다는 생활 상식(?) 말고 기억에 남는 부분은 없습니다. 전개가 너무 뻔한 탓이었습니다. 도무지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네요. 별점은 1.5점입니다.

"탐정이 살인하는 법을 배우다." 곽재식 

1949년, 탐정은 친분이 있던 이 선생님 행사에 게스트로 초대되었다. 이 선생이 완전범죄 비결을 탐정에게만 - 관객들에게 알려주면 완전범죄가 늘어날거라는 이유로 - 알려주고, 탐정이 비결은 그럴듯했다고 인정하며 마무리되는 행사였다. 그 뒤 누군가 탐정을 납치했다. 완전범죄 비결을 알아내기 위해서였다. 그는 탐정에게 협박과 고문을 가했고, 탐정은 '거래'를 위해 믿을만한 사람이 필요하다며 유명한 해결사 황금지네의 전화번호를 건네주었다. 그러나 전화를 받고 나타난건 복수를 위해 황금지네를 쫓던 사채업자 용산쌍룡이었다....

해방 직후를 무대로 해결사 황금지네, 황금지네에게 원한이 있는 사채업자 용산쌍룡, 정체불명의 남자와 탐정, 완전범죄에 대해 떠벌이는 전직 형사 이선생 등 기묘한 등장인물과 완전범죄 좌담회라는 비현실적인 설정이 가득한 작품입니다. 뭔가 만화같은데, 이런 설정을 잘 살린 묘사만큼은 일품이긴 합니다. 특히 가난하지만 입담하나는 최고인 탐정 캐릭터 묘사가 괜찮았어요. 이 선생이 황금지네였다는 반전도 나쁘지는 않았고요.

그러나 완전범죄 계획은 실망스러웠습니다.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낯선 승객" 등에서 익히 보아왔던, 일종의 살인 대행업을 조금 키운 형태에 불과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아이디어를 다크 웹 형태로 운영한다는 "디 아더 피플" 속 설정과 별로 다르지도 않고요. 양념 정도라면 모를까, 비중있게 가져갈 설정은 아니었습니다. 이보다는 차라리 범죄자들끼리 쫓고 쫓기는 구도를 조금 더 정교하게 배치하는게 더 낫지 않았을까 싶네요.

그래도 유쾌하게 읽을 수 있는 범죄물이라는건 분명합니다. 시리즈를 계속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으니까요. 별점은 2.5점입니다.

"3시 정각" 코넬 울리치 

시계 장인 스텝은 아내의 불륜을 눈치챈 뒤, 그녀를 지하실에 설치한 폭탄을 터트려 죽일 계획을 꾸몄다. 이를 위해 오랫동안 조금씩 화약을 모으고, 장치를 만들어나간 끝에 마지막 D-day에 맞춰, 지하실에 잠입해 자명종을 셋팅했다. 그러나 스텝은 집에 들어온 강도들에 의해 지하실 기둥에 묶이는 신세가 되어버리는데....

스스로 설치한 시한 폭탄 타이머가 눈 앞에서 움직이는걸 보는 상황의 묘사가 실로 일품인 작품입니다. 왜 코넬 울리치 (윌리엄 아이리시)가 서스펜스 스릴러의 제왕인지 다시금 느낄 수 있었던 명편이에요. 지하실에서 아내의 불륜이 사실이 아니라는걸 깨닫고 개과천선하는 장면에서 시작해서, 가스 검침원과 공놀이하던 꼬마를 통해 어떻게든지 살아보려고 몸부림치는 과정의 빌드업이 특히 대단했어요. 희망을 아주 약간 주었다가 곧바로 빼앗아버리는 장면을 이렇게 잘 묘사할 수 있는 작가가 또 있을까요?

스텝이 급작스럽게 강도들에 의해 갇혀버린다는 작위적인 설정, 그리고 결국 스텝은 미쳐버렸고, 아내가 화약을 모르고 버린 탓에 폭발은 없었다는 다소 진부했던 결말은 아쉬운 부분입니다. 그래도 별점 3점은 충분합니다.

2004/10/01

최고의 영화 250개중 내가 본것은?

IMDB 선정 최고의 영화 250 아까짱님 글에서 트랙백 합니다. 저도 꽤나 궁금하기도 하고 나름대로 흥미진진하게 읽었습니다. 하고난 결과라면... 역시 최신작, 흥행작 순위가 높다는 것과 제 예상과는 다른 의외의 순위가 많았다는 것이죠.

히치콕은 역시 꽤나 고순위였고 잉그마르 베르히만이 생각보다 높이 평가되고 있는 것이 이채롭네요.

상위권은 흥행작이 많아 본 작품이 많지만 갈수록 고전과 유럽 영화가 섞이며 확률이 떨어지는군요....

제가 본 영화는 붉은 색으로 표시했습니다. (2021.09.19) 생각보다는 본 영화가 많아서 즐거웠습니다. 뭐 볼 수도 있었지만 지루할 것 같아 포기한 영화도 있으니깐...

저만의 순위도 한번 작성해 보고 싶어집니다.

1. Godfather, The (1972) : 예상대로!
2. Shawshank Redemption, The (1994) : 좋은 영화긴 하지만 좀 의외이기도 합니다.
3. Lord of the Rings: The Return of the King, The (2003) : 이것도 좀 의외...^^

4. Godfather: Part II, The (1974)
5. Shichinin no samurai (1954) : 7인의 사무라이.. 이 정도일 줄이야...
7. Casablanca (1942) : 좋은 영화죠. 저도 무척 좋아합니다.
8. Lord of the Rings: The Two Towers, The (2002)
9. Lord of the Rings: The Fellowship of the Ring, The (2001)
10. Star Wars (1977) : 이것도 약간 의외군요.
13. Star Wars: Episode V - The Empire Strikes Back (1980) : 역시 의외...
14. Pulp Fiction (1994) : 타란티노가 14위! 대단하군요.
16. Dr. Strangelove or: How I Learned to Stop Worrying and Love the Bomb (1964) : 큐브릭 선생도 최근 흥행작에 많이 밀렸네요.
17. Raiders of the Lost Ark (1981) : 저는 사실 레이더스가 스타워즈보다 낫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죠.
18. Usual Suspects, The (1995) : 제가 본 추리계열 영화중에서는 순위가 탑이군요. (위에 있었던 "이창"은 보질 못했으니)
19. Memento (2000)
20. Buono, il brutto, il cattivo, Il (1966) : 웨스턴 1위! 할만한 작품입니다.
21. 12 Angry Men (1957) : ㅎㅎㅎ 엊그제 본 작품인데. 좋네요.
22. North by Northwest (1959) : 히치콕 선생은 꽤나 사랑받는군요. 역시~
25. Psycho (1960) : 역시 히치콕!
26. Fabuleux destin d'Amélie Poulain, Le (2001) : 아멜리에? 정말 의외에요!
28. Silence of the Lambs, The (1991) : 양들의 침묵, 좋은 영화죠.
30. C'era una volta il West (1968) : 옛날 옛적 서부에서, 각본에 다리오 아르젠토가 참여했다는 새로운 사실을 알았습니다.
32. American Beauty (1999) : 좋은 영화죠.
34. Matrix, The (1999) : 매트릭스는 생각보다 순위가 낮더군요.
43. Sen to Chihiro no kamikakushi (2001) : 10여계단 훌쩍 건너뛰어 센과 치히로라... 애니메이션 중 탑 순위군요.(솔직히 의욉니다)
44. Some Like It Hot (1959) : 마릴린 먼로의 걸작 코미디가 44위!
45. Boot, Das (1981) : 좋은 영화죠.
47. Singin' in the Rain (1952) : 역시 클래식, 좋은 영화입니다.
48. Chinatown (1974) : 제이크의 차이나타운..
50. L.A. Confidential (1997) : 역시 느와르
51. Se7en (1995)
59. Saving Private Ryan (1998) : 이 영화도 생각보다 순위가 낮은 편입니다.

60. Raging Bull (1980) : 마틴 스콜세즈 영화도 생각보다 찬밥이네요.
61. Alien (1979) : 리들리 스콧 선생도 겨우 입성했네요.
63. Léon (1994) : "의외!"
64. Wizard of Oz, The (1939)
67. Sting, The (1973)
68. Modern Times (1936) : 채플린 선생도 너무 순위가 낮다고 생각됩니다. 쩝...
70. Reservoir Dogs (1992)
72. Clockwork Orange, A (1971)

73. 2001: A Space Odyssey (1968) : 스트레인지 러브에게 한참 밀리는군요^^
77. Amadeus (1984)
78. Great Escape, The (1963)
79. Finding Nemo (2003)
81. Jaws (1975)
83. Wo hu cang long (2000) : 와호장룡? 미국에서 히트친 덕을 단단히 본다고 생각됩니다.
84. High Noon (1952) : 멋진 웨스턴이죠.
85. Aliens (1986) : 카메론도 겨우 입성하는군요...
86. Braveheart (1995)

87. Metropolis (1927) : 프리츠랑의 고전. 사실 지금 보면 좀 지루하긴 합니다만...
88. Shining, The (1980)
90. Fargo (1996) : 코헨형제가 이제서야 등장하는군요. 역시 컬트
91. Donnie Darko (2001) : 음.. 전 사실 굉장히 지루했던 영화입니다만 순위는 생각보다 무지하게 높네요.
92. Strangers on a Train (1951) : 낯선 승객, 멋진 고전 스릴러라 생각됩니다.
93. Blade Runner (1982)
96. Sixth Sense, The (1999)

97. Great Dictator, The (1940) : 위대한 독재자
98. Nuovo cinema Paradiso (1989)
100. Mononoke-hime (1997) : 미야자키도 대단하네요.
101. Princess Bride, The (1987) : 음악이 굉장히 좋았던 작품입니다.
107. Big Sleep, The (1946) : 솔직히 원작보다는 지루했습니다만...
109. Terminator 2: Judgment Day (1991) : 한 10년만 전이었어도 저 위쪽에 있었겠죠?
112. Forrest Gump (1994)
120. Glory (1989) : 굉장히 인상적이었던 남북전쟁 이야기입니다. 꽤 잘 만들고 좋은 영화인데 국내에서의 인지도는 낮더군요.
122. Once Upon a Time in America (1984) : 이것 역시 보다 순위가 높아야 할 걸작이죠.
124. Unforgiven (1992) : "용서받지 못한 자"
126. Ben-Hur (1959) : 126위? 흠...
129. Star Wars: Episode VI - Return of the Jedi (1983) : 1,2와 차이가 엄청나네요. 뭐 좀 딸리긴 했어요.
130. African Queen, The (1951) : 재밌었습니다^^

132. Green Mile, The (1999) : 좀 지루했죠. 너무 길었어요!
140. Shrek (2001)
141. Back to the Future (1985)
143. Indiana Jones and the Last Crusade (1989) : 흠...
145. Platoon (1986) : 올리버 스톤도 무지하게 낮군요.
149. Gone with the Wind (1939) : 아마 이거 안본 한국 사람 거의 없을것 같아요. 워낙 TV에서 많이 해줘서...
152. Wild Bunch, The (1969) : 상당히 충격적인 웨스턴이었습니다.
154. Young Frankenstein (1974) : 멜 브룩스도 이제야 등장하는군요.
155. Die Hard (1988)
163. Spartacus (1960) : 마지막 장면이 잊혀지지 않네요. "내가 스파르타쿠스다!"
164. Monsters, Inc. (2001)
167. Gladiator (2000)
168. Roman Holiday (1953)
171. Charade (1963) : 재미있었어요.
176. Ed Wood (1994)
177. Toy Story (1995)
178. Conversation, The (1974) : 솔직히 지루했다는....

179. All the President's Men (1976) : 연기파의 대결이라 흥미진진했던 정치드라마였습니다.
181. Brazil (1985) : 테리 길리엄도 그냥 저냥...
195. Stand by Me (1986) : 한참 건너뛰어 이 작품. 너무너무너무 재미있게 보았던 영화입니다.
199. Being John Malkovich (1999)
202. Groundhog Day (1993) : 오잉? 너무나도 의외! 소품이라 생각했는데...
203. Terminator, The (1984)
207. Miller's Crossing (1990) : 잘 만든 느와르랄까.. 마음에 들었던 영화였습니다.
218. 39 Steps, The (1935) : 히치콕이죠^^ 전 원작보다 좋더라고요.
220. Bonnie and Clyde (1967) :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가 제목으로는 더 멋진 듯...
222. Midnight Cowboy (1969) : 걸작이죠!
229. Untouchables, The (1987)
232. X2 (2003) : X맨 2군요.
235. Planet of the Apes (1968) : 리메이크작은 솔직히 쓰레기였습니다.
238. Die xue shuang xiong (1989) : "첩혈쌍웅!"
239. Others, The (2001)
248. Beauty and the Beast (1991)
249. Spider-Man 2 (2004) : 겨우 겨우...

2022/01/14

디 아더 피플 - C.J. 튜더 / 이은선 : 별점 2점

디 아더 피플 - 4점
C. J. 튜더 지음, 이은선 옮김/다산책방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게이브는 혼잡한 고속도로를 타고 귀가하다가 앞 차량에 자기 딸 이지가 납치되어 타고 있는 걸 목격했다. 열띤 추격 끝에 차량을 놓친 게이브는 경찰로부터 아내와 딸이 살해당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2년 뒤, 장인 해리가 시신을 확인했는데도 불구하고 딸이 죽지 않았다고 믿던 게이브는 고속도로 휴게소를 전전하며 전단지를 돌리는 삶을 살던 중, 친구 '선한 사마리아인'의 도움으로 이지가 납치될 때 탔던 차를 기어코 찾아냈다. 차에서 가져온 노트로 응징받아야 할 사람을 대신 응징해 주는 다크웹 '디 아더 피플'의 실체도 알아냈지만 누군가에게 습격당해 단서를 모두 빼앗겼다. 

한편, 게이브의 단골 휴게소에서 일하던 케이티는 앨리스라는 소녀 전화를 받았다. 케이티 언니 프랜의 딸이라며 도움을 요청했고, 앨리스를 보살피면서 그녀가 바로 이지였다는걸 깨달았다. 그러나 케이티 역시 습격을 받고, 겨우 탈출하는데....

이전 "초크맨"으로 접했던 영국 작가 C.J 튜더의 세 번째 장편입니다. 스티븐 킹 작품의 저열한 카피에 불과했던 "초크맨"에 큰 실망을 했던 터라 더 이상 읽을 일이 없을거라 생각했는데, 좋은 리뷰들로 자주 찾는 블로그인 '추리문학쪼개기'에서 이 작품에 대해 호평한 리뷰를 읽고 관심이 생겨 읽어보게 되었네요.

전혀 모르는 차에 내 딸이 타고 있었다!는 충격적인 도입부는 흥미롭습니다. 극도로 몸 상태가 좋지 않아서 게이브가 직접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할아버지 해리가 시체를 확인까지 했는데 이지가 과연 살아있는게 맞는지?라는 수수께끼도 거의 마지막까지 끌고 가면서 독자를 몰입하게 만들어 주고요. 디 아더 피플에 접속하기 위한 암호가 자동차에서 입수했던 성경책과 관련이 있었다던가, 장인 해리가 시신 확인을 하려는 게이브를 막기 위해 약을 썼다는 추리적인 장치들도 괜찮았습니다.

하지만 이 정도를 제외하면 딱히 건질게 없습니다. 따지고보면 딸의 납치를 목격한다는 것 부터가 작위적이에요. 우연히 살인 사건을 목격한 탓에 사건에 휘말린다는 이야기는 하늘의 별만큼이나 많지만, 그 중에서도 작위적인걸로 치자면 첫 손가락에 꼽힐 만 합니다. 대체로 '모르는' 사람이 살해당했던 다른 작품들과는 차원이 다르니까요. 

전개도 엉망입니다. 게이브가 복수를 대행하는 디 아더 피플이 사건을 저질렀다는걸 알아낸 이후의 전개는 특히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이 시점에서 게이브는 누가 살인을 의뢰했는지 바로 알아챘어야 했거든요. 그의 인생 통들어 이렇게 복수를 당할만한 사건은 어린 시절 음주 운전으로 이사벨라를 식물 인간으로 만들었던 사건뿐인데 이사벨라의 모친 샬럿은 이미 죽었으니, 남는건 오랫동안 이사벨라를 돌봤던 간호사 미리엄밖에는 없기 때문입니다. 샬럿으로부터 거액의 유산을 물려받은 게이브와 가족의 유산을 관리하게 되는 것도 미리엄이니 동기도 확실합니다. 매덕 경위가 이지가 살아있다는걸 납득한 순간, 이 사건을 꾸민게 누구인지 충분히 알려줄 수 있었을 겁니다. 아니, 이 정도는 이후 경찰 수사로도 밝혀낼 수 있었을거에요. 

이렇게 중요한 이사벨라 사건, 그리고 이 사건 때문에 게이브가 거액을 물려받았다는걸 거의 마지막까지 드러내지 않는 전개는 추리물 애호가로서 점수를 주기 어렵습니다. 사건의 핵심 정보임에도 불구하고 꽁꽁 숨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내용을 알기 전까지 게이브의 아내가 살해당한 이유는 장인 해리 때문일거라고 생각했었어요. 마침 해리는 저명한 의사이니, 의료 사고에 관계된 원한이 있을거라고요. 마찬가지로 프랜은 가족과 사이가 안 좋았으니, 아버지에게 성폭행같은걸 당해서 복수 의뢰를 했던거고 그 탓에 게이브 가족 살해를 거들다가 이지를 데리고 달아나게 된 거라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이런 추리는 다 헛수고에 불과했어요. 재미 여부를 떠나 반칙이라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습니다. 독자는 추리의 여지가 거의 없는 탓입니다.

또 전개 도중 스티브가 게이브를 죽이지 않고 노트만 빼앗아 간 이유도 모르겠습니다. 심지어 게이브는 습격했던 스티브의 얼굴을 봤는데 말이지요. 게이브가 다크웹 패스워드를 알고 있는 한 접속은 어려운 일도 아니었습니다. 구태여 힘을 써서 노트 따위를 훔쳐갈 이유는 없었어요. 차라리 패스워드를 바꾸는게 더 합리적이었을 겁니다. 여기서 게이브를 죽이지 않았기 때문에, 나중에 스티브가 케이티를 죽이려 하는 것도 설득력이 없어져 버리고 맙니다. 게이브, 프랜, 케이티, 미리엄, 이지 등 등장인물들의 시점을 오가는 전개도 좋다기보다는 혼란스러웠고, 중요 정보를 가리기 위한 꼼수로 여겨질 뿐이었습니다.

"낯선 승객" 설정을 비공개 커뮤니티로 만든 것에 불과한 다크웹 '디 아더 피플' 설정도 어설픕니다. 친족이 아닌 아무나 디 아더 피플에 복수 의뢰를 할 수 있다? 뭐 그건 있을 수 있다 치죠. 그러나 복수 대상이 범행을 저지른 당사자였던 게이브가 아니라 가족이라는건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게이브의 가족을 죽인 살인자가 프렌과 이지를 죽이려다가 살해당한다는 것(같은 차를 몰고 있었던 것으로 증명됨)도 마찬가지입니다. 디 아더 피플은 다른 사람의 복수를 회원 누군가가 해 준다는게 기본 조건입니다. 정해진 킬러가 타겟을 해치우는게 아니라요. 그런데 게이브 가족 살인범도 그렇고, 나중에 게이브가 케이티를 스티브라는 동일 인물이 습격한다? 뭔가 잘못된 거지요. 설정 오류에요. 

디 아더 피플이 교도소 안에 수감되어 있는 범죄자를 자살로 위장하여 살해할 정도로 전능하다는 설정, 이 정도 조직이 신규 회원(?)을 알음알음 구두로 모집하는 설정 등도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이보다는 "원한 해결 사무소"나 "선악의 쓰레기"같은, 주어진 현실 내에서 맡은바 임무를 가하는 복수 대행업자가 나오는 만화가 더 현실적이라 생각됩니다. 

디 아더 피플에 대해 알고 있는 핵심 관계자 케이트와 게이브가 만났고, 케이트의 언니 프렌이 이지를 데리고 있었으며, 게이브를 돕던 '선한 사마리아인'이 프랜의 의뢰로 죽은, 프랜 아버지를 과실치사로 죽게 만든 소년의 아버지였다는 인물 설정과 관계도 비현실적입니다. 특히 선한 사마리아인은 억지가 지나쳤어요. 일단 그가 게이브에게 접근하여 프랜을 찾으려 했다는 동기부터가 말이 안됩니다. 게이브 가족을 죽이는데 프랜이 협조했다는걸 알아낸 방법이 설명되지 않으니까요. 사건 해결에 결정적 역할을 한, 이지를 납치했던 차를 찾아낸 방법 역시 설명이 없는건 마찬가지고요. 

게다가 마지막에 이지가 이사벨라와 영적 교감을 하다가, 마지막에 염동력(?)을 발휘해서 미리엄을 죽이는 결말은 이게 뭔가 싶더군요. 이런 설정이 대체 왜 필요했던걸까요? 스티븐 킹빌 호지스 시리즈같은 싸이킥 스릴러를 생각한 듯 한데, 그만한 설득력도 없고 이야기에도 불필요했습니다. 이런 설정은 아예 빼는게 훨~씬 좋았을겁니다.

결말도 별로입니다. 게이브가 어린 소녀를 식물인간으로 만든 죄를 지은건 사실입니다. 그래서 약 2년간 지옥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혼 위기였던 아내만 죽었을 뿐 딸은 무사히 돌아오고, 오히려 예쁘고 다정한 케이트와 함께 유산으로 물려받은 대 저택에서 행복한 미래를 살아갈 거라는건 개운하지가 않네요. 이 정도로 제대로 된 죗값을 치뤘다고 보기는 힘듭니다. '가해자도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류의 이야기인데, 저는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읽히는 재미는 있지만 단점도 많았기에 감점합니다. 앞으로 이 작가 책을 더 읽어볼 일은 없겠습니다.

2025/02/07

붉은 박물관 - 오야마 세이이치로 / 한수진 : 별점 2점

붉은 박물관 - 4점
오야마 세이이치로 지음, 한수진 옮김/리드비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수사 1과의 데라다 사토시 경사는 수사 중 실수를 저질러 경시청 부속 범죄 자료관(붉은 박물관)으로 좌천되었다. 그곳은 경시청 관내에서 일어난 사건의 증거품과 수사 서류를 일정 기간 경과 후 관할 경찰서에서 받아와 보관하고, 그것을 조사 연구 및 수사관 교육에 활용하여 향후 수사에 도움이 되게끔 하는 곳이었다. 관장 히이로 사에코는 수집된 미해결 사건의 진상을 추리하고, 데라다에게 직접 수사를 맡겨 사건을 해결해 나간다...

오야마 세이이치로의 정통 본격 추리 단편집. '붉은 박물관' 관장 히이로 사에코가 안락의자 탐정으로, 기존 수사 기록과 데라다를 시켜 모은 정보로 미해결 사건을 추리해 낸다는 내용입니다. 모두 5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드라마가 발표되었을 정도로 인기작이었던 모양입니다.

오래 전 미해결 사건에 대한 정보가 모이는 부서에서 사건을 추리한다는 설정은 로이 비커즈의 "미궁과 사건부"와 똑같습니다. 딕슨 카의 "기묘한 사건, 사고 전담반"과도 비슷하고요. '정통 본격 추리물'이라는 장르 성격도 동일합니다. 수록작들 모두 어느 정도 트릭이 사용되었으며, 탐정이 독자들과 똑같이 단서를 제공받는 고전적인 안락의자 탐정물인 덕분입니다. 덕분에 독자도 탐정과 동일한 조건 하에서 추리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언급해드린 고전 명작 수준은 아닙니다. 대부분 작품 속 트릭이나 범행 동기가 별로 현실적이지 않고, 억지스러운게 많은 탓이 큽니다. 트릭도 5편 중 한 편("죽음에 이르는 질문")을 제외하고는 'A인 줄 알았던 사람이 알고보니 아니었다.'같은 사람 바꿔치기일 뿐이고요. 사건을 풀어나가는 전개 방식도 작위적이거나 우연에 기반한게 많아서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습니다.

캐릭터들도 영 별로입니다. 탐정역인 박물관 관장 히이로 사에코는 일본 컨텐츠에 나오는 쿨 뷰티 안경녀의 전형으로, 생생함을 느끼기 힘든 인물이었습니다. 열혈도 아니고, 사명감도 딱히 없어 보이는 미지근한 초식남 데라다도 마음에 들지 않네요.

그래서 별점은 2점. 고전적인 안락의자 탐정물을 다시 불러온 의욕은 좋았지만, 완성도는 고전 걸작들에 미치지 못합니다. 구태여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작품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빵의 몸값

1998년 2월 일어났던 나카지마 제빵 사장 살해 사건이 벌어졌다. 사장은 빵에 바늘을 집어넣은 범인에게 1억엔을 건네주려다 살해당했다. 밖에서 숨어있던 경찰들은, 현장인 저택 내부 방공호의 존재를 몰라 범인을 놓치고 말았다. 

현장인 폐허로 들어갔던건 사장이 아니었습니다. 수사를 위해 차 안에 숨어있던 경찰 도리이였습니다. 그는 출발할 때 차고에서 가발과 안경, 마스크를 착용하여 사장으로 변장했고, 차 안에서는 1인 2역의 연기를 펼쳤습니다. 사장으로 폐가에 들어간 뒤, 변장을 풀고 수사관인척 나타났고요.
사장이 다른 사람을 살해할 때의 알리바이를 만드는게 목적이었습니다. 사장과 도리이는 뺑소니 사고를 일으켜 사람을 사망케 했는데, 함께 있던 야스다가 자수하려고 해서 죽이려고 했던거지요. 하지만 사장은 야스다에게 반격당해서 죽어버렸고, 이 사실을 들은 도리이는 사장인 척 연기에 나설 수 밖에 없었습니다.

사장과 도리이 경부가 바뀌었다는 트릭은 나쁘지 않습니다. 당시 상황 - 협박범에게 돈을 건네주기 위해 이동하던 - 과도 잘 어울리는 편이고요. 그러나 그 외에는 대부분 억지스럽습니다. 경찰이 뺑소니 사망 사고를 일으킨걸 숨기려다 범행을 저질렀다는 동기부터가 말이 안됩니다. 게다가 공범자 중 한 명을 죽이기 위한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해 무려 1억엔의 돈이 걸린 협박 사건을 꾸며냈다? 알리바이는 경찰인 도리이 경부가 거짓말로라도 증명해주면 됩니다. 이런 거대한 사건을 꾸며낼 이유가 없어요. 그야말로 이야기를 만들기 위한 허무맹랑한 설정 놀음일 뿐입니다.

트릭도 운에 너무 많이 기대고 있습니다. 저택 안에 방공호가 없었더라면 어쩔 셈이었을까요? 야스다가 자살같은 사고사를 당하지 않았더라면요? 여러모로 이야기의 완성도가 높아보이지는 않네요. 제 별점은 2점입니다. 


복수 일기

데라다 사토시는 1993년 9월 하치오지시 살인 사건 범인 다카미 교이치의 일기를 읽었다. '헤어졌던 애인 마이코가 살해당했다. 나는 몇 가지 단서를 토대로 범인이 오쿠무라 교수라고 추리했고, 교수와 담판을 짓던 끝에 그를 살해했다.'는 내용이었다. 일기장은 도둑맞았었는데 도둑이 경찰에 신고했고, 다카미는 출동한 경찰을 피해 달아나다가 차에 치어 죽었다.
히이로 사에코는 일기에서 이상한 점을 눈치챈 뒤, 데라다 사토시에게 재수사를 명령했다. 데라다는 명령대로 마이코의 부모님 집으로 찾아가, 오쿠무라 교수 살해 당시 알리바이를 물었다...

히이로 사에코가 일기에서 포착했던 '이상한 점'은 설득력이 있습니다. 꽤 치밀한 범행 계획을 세웠음에도 흉기를 가져가지 않고 현장의 페이퍼 나이프를 쓴건 확실히 이상했어요. 에어컨을 껐다는 묘사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사체가 일기 내용대로 범행 뒤 무더위 속에 방치되었던게 아니라, 시원한 실내에 놓여 있었다면 사망 시각은 훨씬 이전이 될 테지요. 

결론적으로, 오쿠무라 교수는 일기보다 이전에 살해당했습니다. 오쿠무라가 일기를 조작하여 경찰에 보내면서까지 진범을 자처했던건, 진범이 마이코였기 때문이고요. 이틀의 시차를 둔 건, 마이코의 알리바이(이미 사망했음)를 확실하게 만들 목적이었습니다. 이러한 진상을 추리해내는 과정은 나쁘지 않습니다. 

그러나 지금보다야 낙후되었다 하더라도, 90년대 과학 수사가 무려 이틀 이상의 사망 시각 차이를 밝혀내지 못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운에 의지하고 있는 부분도 너무 많습니다. 마이코 자살 사체가 발견되기 전, 다카미가 마이코의 집을 방문했다는걸 아무도 몰랐고, 하숙집에서 가짜 도둑 소동을 일으켰을 때에도 들키지 않았고, 오쿠무라 집의 에어컨 조작을 들키지 않은 것 등은 모두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에어컨 조작의 경우, 전기 사용량을 보면 쉽게 알 수 있었을텐데 말이지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죽음이 공범자를 갈라놓을 때까지

데라다 사토시는 눈 앞에서 일어난 교통사고 피해자 도모베 요시오가 사망하기 직전에, 25년 전 교환 살인을 저질렀다는 고백을 들었다. 조사해보니 실제로 25년 전, 유력한 용의자의 알리바이가 확실하여 해결되지 못했던 사건들이 있었다...

교환 살인을 소재로 한 작품은 흔한데("낯선 승객"), 데라다 사토시에게 죄를 고백한 도모베 요시오는 가짜였고, 도모베 마사요시 살인 사건의 진짜 청부인도 도모베 요시오가 아니라 아내 마키코였다는 바꿔치기 트릭이 합쳐져 신선한 재미를 선사해주는 작품입니다. 마키코는 가짜 도모베 요시오인 사이토 아키히코와 초등학교 동창으로 범행을 모의했습니다. 마키코는 2년 전 도모베 요시오를 살해한 뒤, 사이토 아키히코를 대역으로 삼아 살아왔습니다.
데라다가 들은건 도모베 요시오가 아니라 사이토 아키히코의 고백이었기 때문에, 25년 전 사건 조사를 할 때 혼돈을 일으켰던 것이고요.

진상을 드러내는 추리 과정도 매끄럽고, 단서 제공도 가짜 도모베 요시오의 면허 취득 기간을 감안하면 믿을 수 없는 운전 실력, 폐업 후 지방으로 내려간 상황, 근육질인 마키코의 체형(그래서 25년 전 여성 한 명을 살해하기 용이했다) 등 과할 정도로 제공됩니다. 

때마침 데라다 앞에서 교통 사고가 일어나고, 마침 피해자가 경찰에게 지은 죄를 고백한다는  상황은 작위적이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정통 본격 추리물로는 충분한 완성도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수록작 중 베스트로 꼽고 싶네요. 별점은 2.5점입니다.


불길

사진작가 에미리는 21년 전 부모와 이모를 잃었다. 세 명은 청산가리로 독살당했고, 집과 사체는 범인이 지른 불로 전소해버렸다. 이모의 연인이라는 남자 소행으로 보였지만, 사건은 해결되지 못했다. 사건에 대한 글을 잡지에서 읽은 히이로 사에코는 데라다에게 에미리에 대한 추가 조사를 지시했다. 

에미리의 친모 도모코는 친모가 아니었습니다. 남편과 동생 아키코가 불륜을 저질러 에미리가 태어났지요. 그런데 둘 사이에 또 애가 생기자 복수심에 범행을 저질렀던게 진상입니다. 에미리를 임신했을 때와 겹쳤던 아키코의 유학 및 실종 기간, 아키코의 애인 이야기는 도모코의 말 뿐이었다는 것, 도모코는 연장 보육 제도 이용도 고려했다는 등의 단서 및 이를 통한 추리도 깔끔합니다. 사건의 동기도 끔찍하지만 충분히 설득력있고요. 수록작 중에서는 범행 동기와 과정만큼은 가장 자연스러웠습니다.

그러나 이 작품의 가장 큰 문제는 증거는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사건을 해결했다기 보다는, 그나마 말이 되는 추리를 추가했을 뿐이지요. 그래서 정통 본격 추리물이라기 보다는 추리 퀴즈에 가까와 보이기도 합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죽음에 이르는 질문

26년 전 발견되었던 피살체와 똑같은 상태의 사체가 발견되었다. 피해자는 26년 전 사건의 피해자와 연령이 같았고, 사망 추정 시각 및 사체 유기 현장도 똑같았으며 심지어 흉기마저 일치했다. 이번에도 피해자 스웨터 소매에 피해자가 아닌 사람의 피가 묻어 있었다. 수사 1과는 동일범의 소행이라 여겨 자료관에서 26년 전 자료를 가져갔다. 이런저런 이유로 수사관이 범인일 수 있다는 감사팀의 지시를 받아 데라다는 홀로 사건 수사에 나섰다...

범인은 기자 후지노 준코였습니다. 그녀는 26년 전, 자신을 성폭행하려던 후쿠다 도미오를 살해했습니다. 후쿠다 도미오 소매에 묻은 피는 아버지의 피였습니다. 준코를 학대하던 아버지는 후쿠다를 끌어들였다가 살인 사건에 휘말려 입을 다물게 되었고요.
그리고 26년 후, 그녀는 자신이 아버지의 친자임을 확인하기 위해 범행을 저질렀습니다. 소매의 피는 DNA 조사를 할 테고, 이를 통해 가족 관계가 드러날걸 노렸던 겁니다. 

이를 드러내는 '26년 전 피가 묻었던 소매와 지금 피가 묻은 소매의 위치가 다르다'는 단서도 좋습니다. 당시 신문 기사에는 어느 쪽 소매에 피가 묻었는지 전혀 공개되지 않아서, 범인은 이를 착각했습니다. 그런데 감사팀 생각대로 수사팀 관계자가 범인이었다면, 26년 전 자료에 접근할 수 있었을테니 위치를 틀렸을리가 없지요. 그렇다면 범인은? 피에 대한 경찰 조사 결과를 입수할 수 있는건 보도 관계자일테고, 관련되어 질문을 하는 관계자가 범인일거라는 추리로 이어집니다.

그러나 이러한 추리의 과정은 영 별로입니다. 비약이 심한 탓입니다. 보도 관계자가 범인일 수는 있지만 다른 가능성도 널려있으니까요. 예를 들어 DNA 분석 요원일 수도 있잖아요? 아니면 기자회견을 맡는 수사관이 아닌 경찰 직원이라던가... 기자 회견장에서 후지노 준코가 DNA 조사를 물어본 것도 작위적이었습니다.

추리 과정보다 더 큰 문제도 있습니다. 동기와 범행의 설득력이 낮다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DNA가 범행 당시 핏자욱밖에 남아있지 않다면, 이미 공소시효가 지났으니 자수하고 그 증거로 혈흔이 아버지 것이라는걸 증명하는게 훨씬 간단한 해결책입니다. 억지로 살인이라는 범죄를 저지를 이유는 없어요.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이 시리즈의 가장 큰 장점인 '정통 본격 추리물'로서 기능하지 못하는 망작입니다.

2023/03/19

亂れからくり 복잡한 기계장치 : 2 스페이스 레이스

亂れからくり (創元推理文庫) (文庫) - 8점 泡坂 妻夫/東京創元社

마와리 토모히로의 집은 조용한 주택가의 한 구석에 있었다. 평범한 목조 모르타르 2층 건물로 나뭇결이 드러나있는 판자벽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바로 옆에는 5층짜리 아파트가, 앞에는 초록색 화장 벽돌로 마감한 신축 주택이 들어서 있었다. 새 건물의 선명한 색감 속에서 마와리 가가 있는 한 귀퉁이만 어둡게 느껴졌다. 인적은 드물었다. 가끔 가방을 걸친 세일즈맨, 장바구니를 든 주부가 지나갈 뿐이었다.

"시간을 맞추지."

마이코가 말했다. 열시 십분, 마이코의 시계가 5분 늦었다. 토시오는 아침에 역에서 확인했으니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마이코가 자신의 시계 바늘을 움직여 맞췄다.

두 사람의 차는 아파트 담벼락을 따라 토모히로의 집을 등지고 멈춰 서 있었다. 백미러로 집 현관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위치였다.

"해바라기 공예 사장, 마와리 데츠바는 올해 예순두 살야. 아직 일할 수 있는 나이지만, 작년에 가벼운 뇌출혈로 쓰러진 이후 업무에서 손을 뗐지. 요코하마 안쪽, 오나와(大縄)에 살고 있고……. 저기, 언젠가 고대 토기가 출토된 땅이지. 데츠바는 특별한 용무가 없는 한 회사에 얼굴을 내밀지 않는다고 하더군. 실제 업무는 아들 마와리 소우지가 담당하고 있어."

마이코의 설명은 토시오에게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의뢰처의 사정까지 조사해야 하는 건가요?"

"조금, 이유가 있어서."

마이코의 표정이 굳어졌다.

"마와리 소우지라고 하면 아까 본 사진에 있는 토모히로의 형제인가요?"

"아니야. 소우지와 토모히로는 사촌 사이야. 토모히로의 아버지는 류키치(龍吉)라고 하는데, 해바라기 공예의 사장인 마와리 데츠바의 동생이야. 류키치는 이미 20년 전에 죽었고, 아직 어린 아이였던 토모히로는 어머니의 손에서 자랐지만, 생활은 데츠바의 도움이 필요했지. 그 어머니도 토모히로가 학생일 때 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그런 인연으로, 토모히로는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해바라기 공예에 입사하게 되었어. 그래서 현재 소우지는 해바라기 공예의 영업부장, 토모히로는 제작부장으로 활약하고 있는데, 이 둘은 원래 사이가 좋지 않았다는군."

사촌 사이지만, 토모히로 쪽은 일찍 부모를 잃고 데츠바의 보호 아래 있었다. 사진 속 모습만 보아도 굴곡진 기질을 가지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두 사람의 성격도 달라. 소우지는 장난감을 수집하는 취미에 몰두하는 낙천적인 성격의 소유자이지만, 토모히로는 오히려 장난감을 다루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현실적인 불평불만가이지. 게다가 토모히로는 데츠바와 소우지에게 큰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기도 했고. 그런 두 사람의 대립이 격렬해진건 한 사건이 계기였어."

술집의 소형 트럭이 토모히로의 집 앞에 정차하고 점원이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백미러에 비쳤다. 곧 몇 개의 빈 병을 적재함에 싣고 반대편으로 달려갔다.

"장난감 업계는 최근 큰 변화를 겪고 있어. 백화점 장난감 매장을 들여다 본 적이 있니? 십만 원이 넘는 호화로운 장난감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고. 장난감의 메커니즘도 현대 과학의 정수가 집약되어 있고. 자동차도 그냥 움직이는 장난감은 이제 과거의 장난감이 되어버렸어. 동력은 배터리로, 조작은 전파나 음파를 통해 멀리서도 움직일 수 있어. 라디오 컨트롤이나 소닉 리모컨이라고 불리는 자동차는 알고 있겠지? 여자아이 인형만 해도 예전 같으면 궁궐에서 공주가 가지고 놀았음직한 화려한 패션 인형이 즐비해. 즉, 대규모 자본을 투입한 광고를 통한 대량 생산과 장난감 자체의 고급화가 이전에는 없었던 장난감 전성시대를 만들어내고 있어."

토시오는 장난감에 대한 관심은 적었지만, 장난감에 대한 광고가 너무 많다는 것은 느끼고 있었다.

"대체로 장난감 산업은 예전부터 가내 수공업이 주를 이루며 규모가 커지기 어려운 것이 특징이었어. 두세 명의 가내 수공업부터 규모가 큰 곳이라고 해도 종업원은 기껏해야 천 명 정도에 불과했지. 이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어느 나라에서나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장난감 산업의 성격이야. 실제로 해바라기 공예의 직원은 20여 명으로 이는 해바라기 공예의 전신인 츠루슈도 (鶴寿堂)시대와 크게 달라진 것이 없어. 달그락달그락 새로 대표되는 이른바 소품 완구 제조 및 판매가 주 업종이었고. 그런데 작년에 시대에 뒤처지지 않으려는 것인지, 아니면 유행에 편승하려 했던 것인지, 해바라기 공예가 경주용 자동차에 손을 댔어. 사장인 마와리 데츠바가 아닌 젊은 후계자의 기획이었던 것 같더군."

"알아요. 레이싱카는 요즘이라면 아이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 수 있을것 같은데요."

"해바라기 공예의 신제품 이름은 스페이스 레이스였어. 다른 업체들이 놀랄 정도의 최고급 제품이었지. 이게 잘되면 해바라기 공예도 비약적인 발전을 이룰 수 있었을거야."

마이코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실패했나요?"

"그래. 경주용 자동차를 달리게 하려면 주행로에 전류를 흘려보내야 하지. 보통은 가정용 전기를 사용해서 변압기로 전압을 10볼트 정도로 낮춰서 한 두 암페어의 전류를 주로에 흘려보내. 자동차는 이 전류를 받아 내장된 모터를 돌려서 달리게 도고. 그런데 해바라기 공예의 스페이스 레이스는 이 변압기에 결함이 있었어. 판매된 제품 중 갑자기 불이 나거나 만지면 감전되는 제품들이 발견되고 말았지."

"그런 일이 어떻게 일어난거죠?"

"변압기는 하청업체에서 만들었기 때문이야. 전부 다 불량품은 아니었지만, 극히 일부라도 위험한 불량품이 있었던 것은 확실했기에 스페이스 레이스는 전면 제조 금지, 전 제품은 회수되어 폐기 처분되었지."

"큰 피해를 입었군요."

"실제로 해바라기 공예는 부도 직전까지 갔어. 업체들 중에는 아직도 해바라기 공예의 존속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있고. 현재 해바라기 공예는 엄청난 빚을 지고 있을거야."

"소우지와 토모히로는 그 책임을 서로에게 떠넘기고 있는 건가요?"

"아까 말했듯이 두 사람은 어릴 때부터 사이가 좋지 않았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폭발을 피한 것은 토모히로가 더 참을성 있었기 때문인 것 같은데, 최근 토모히로가 드디어 참을성을 잃은것 같다고 하더군. 그러니까........"

마이코는 다시 입을 다물었다. 토모히로의 집 출입문이 열리면서 백미러에 한 여성이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보였다.

"...... 마사오다."

마이코는 시계를 보았다.


목적이 있는 발걸음이었다. 백미러 속 마사오는 사진에서 본 것처럼 웃고 있지 않다. 그래서 더 말라 보이는 것일까. 얼굴색이 생각보다 훨씬 더 하얗게 보였다. 마사오는 검은색 코트를 입고 검은색 가방을 들고 있었다. 그는 발걸음을 재빠르게 움직여 차 옆을 지나갔다. 마이코의 에그를 한 번도 쳐다보지 않았다. 마사오는 큰길로 나가자마자 왼쪽으로 돌아서서 보이지 않았다.

"어디로 가는 걸까요?"

"역 방면이야."

마이코는 에그의 문을 열었다.

"아마 역이겠지. 나는 걸어서 마사오의 뒤를 쫓을게. 만약 마사오가 다른 차를 타면 그대로 따라가면서 틈틈이 사무실에 전화를 걸어서 구로사와군에게 상황을 알려주도록 해. 만약 차를 탈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 산인은행 뒤에 주차장이 있으니 그곳에 차를 두고. 그럼 역에서 만나자."

마이코는 말을 마치고 차 문을 닫았다. 큰길로 나와 좌회전하자 마사오의 뒷모습이 금방 보였다. 차를 찾는 모습은 보이지 않고 같은 걸음으로 계속 걷고 있었다. 토시오는 주차장에 에그를 놓고 국철역으로 달려갔다. 역에 도착한 것은 토시오가 더 빨랐다. 잠시 후 마사오와 마이코가 역으로 걸어왔다. 

마사오는 망설임 없이 표를 샀다. 토시오는 자판기 숫자를 읽고 같은 금액의 표를 두 장이나 샀다.

기차는 비어 있었다. 토시오는 마사오가 있는 곳에서 문 두 개 정도 떨어진 곳에 섰다. 마이코가 다가왔다.

"차는?"

"시키는 대로 했습니다."

마사오는 시간이 신경 쓰이는 듯했다. 누군가를 만나러 가는 것일까. 그리고는 가만히 밖을 바라보았다.

중후한 체격에 탄탄한 옆모습을 하고 있었다. 검은 머리카락을 뒤로 예쁘게 묶고 은빛 머리 장식으로 고정하고 있었다. 날카로운 눈매, 그에 어울리는 날카로운 목소리를 상상하게 하는 입매, 미끄러질 것 같은 어깨는 사진에서 보던 그대로였다. 바로 옆에서 보고 처음 알아차린 부분도 있었다. 약간 위로 치켜 올라간 코와 고양이처럼 구부정한 등 굽은 모습이었다.

다음 역에서 골프채를 든 남자가 일어나서 내렸다. 마이코는 빈 자리에 앉았다.

마사오는 그보다 대여섯 정거장 지나 작은 역에서 내릴 기미를 보였다. 토시오는 눈빛으로 마이코에게 알렸다.

소수의 승객들과 뒤섞인 마사오는 예의 그 걸음걸이로 계단을 내려 개찰구를 빠져나가자 곧장 상가를 지나갔다. 상가를 지나자 마사오는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가늘게 이어지는 완만한 언덕길. 붉은 열매를 한가득 맺은 감나무가 무겁게 기울어져 있다. 인적이 드물었지만, 미행을 당할 염려는 없었다. 마사오는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왼쪽으로 돌아서자 그 한 귀퉁이는 작은 호텔, 여관이 즐비한 거리였다. 대부분 깊은 입구 앞에 물을 뿌려놓고 조용히 손님을 기다리는 구조였다.

"어디로 가려는 걸까요?"

토시오는 이런 곳에 발을 들여놓는 마사오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마이코를 비난하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

"보면 모르겠어? 러브호텔이잖아."

마이코는 토시오를 흘끗 쳐다보며 말했다.

"넌 그 반대라고 생각하겠지만, 보라고."

마사오는 흰 블록 담벼락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토시오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상대가 있는 겁니까?"

"당연하지."

"누구일까요?"

"나도 몰라."

토시오는 마사오가 사라진 자리에 섰다. 입구의 흰 벽에 기품 있는 파란색 글씨가 보였다. 

샹보르관.

양쪽에 원통형 날개가 있는 4층짜리 호텔이었다. 벽은 흰색이고, 삼각뿔 모양의 파란 두 지붕 사이로 창문이 보였다. 창문 가장자리에는 복잡한 덩굴 장식이 붙어 있었다.

마이코는 시계를 보고 5분이 지나자 담장 안으로 들어갔다. 토시오는 잠시 머뭇거렸다.

"너도 들어오라고."

마이코가 말했다. 지나가던 주부가 토시오를 본 것 같았다. 토시오는 당황하며 마이코의 뒤를 쫓았다.

검은색 유리로 된 자동문에 들어서자 안은 어두웠고, 따뜻한 공기가 온몸을 감싸고 있었다. 오렌지색 조명에 비춰진 종려나무 화분이 반짝이고 있었다. 갑자기 밤의 세계로 들어선 것 같았다.

"어서 오세요"

작은 체구의 여인이 안쪽에서 슬그머니 나와서 고개를 숙이고는 그대로 옆으로 돌아섰다. 부드러운 카펫을 밟으며 여자의 뒤를 따랐다. 엘리베이터로 4층, 여자는 한 방문을 열었다.

유리로 된 샹들리에, 벽에 장식용 벽난로가 달려 있고, 안에는 전기 난로가 있었다. 방의 장식은 어딘가의 궁전을 모방한 것임에 틀림없었다.

"푹 쉬세요, 천천히……"

홍차를 두고 나가려는 여자를 마이코가 붙잡았다.

"이건, 성의표시."

마이코는 여자에게 지폐를 건네주었다.

"그리고, 5분 전에 이 호텔에 들어왔던 여성분에 대한 이야기인데 말이죠."

여자는 표정이 굳어졌다. 이를 본 마이코는 가방을 열어 검은색 수첩을 슬쩍 보여주었다. 

"기다리는 분은 아직 안 오셨습니까?"

"오셨어요. 바로 옆 방에 함께 계십니다."

여자는 벽을 가리켰다.

"익숙한 손님인가요?"

"네, 뭐, ......."

토시오는 가방을 가리키며 말했다.

마이코는 고개를 돌리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한 가지 부탁이 있는데, 옆 방 손님이 돌아갈 것 같으면 그 전에 알려주실 수 있나요?"

"돌아가기 전에요?"

"그래요."

"알겠습니다."

여자가 나가자 마이코는 의자에 앉아 가방에서 담배를 꺼냈다.

"그렇게 해도 괜찮습니까?"

"이 수첩을 말하는 거야?"

마이코는 담배에 불을 붙였다.

"경찰 수첩 같은 건 아닐거잖아요."

"당연하지."

"만약에 발견되면 어떻게 할 거죠?"

"괜찮아, 그 여자도 그런 건 다 알고 있을 거야"

"뭐라고요?"

"모르겠어? 나는 그 여자가 말하기 쉽도록 도와준 것 뿐이야."

토시오는 어안이 벙벙했다. 지금까지 이런 행동을 하는 여자를 본 적이 없었다.

"당당했지?"

마이코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자, 그럼 모처럼이니까 목욕이나 할까?"

마이코는 담배를 끄고 일어섰다. 침실 문을 열고 전등을 켰다. 침대의 반쪽이 보였다. 침대 옆에는 꽃무늬 스탠드가 은은한 빛을 발하고 있다.

욕실 문을 여는 소리가 들렸고, 이어서 물소리가 들렸다.

마이코는 거실로 돌아왔다.

"자, 어디까지 얘기했지?"

"어디까지라뇨?"

토시오는 마이코의 말을 잘 알아듣지 못했다.

"멍하니 있으면 안 돼. 일 얘기야. 차 안에서 토모히로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잖아."

"......그랬습니다. 최근 토모히로와 소우지의 사이가 나빠졌다, 그 정도였지요."

"그래. 그게 수면 위로 떠올랐다고 했지. 그 전에, 우다이 경제연구회의 손님은 어디서 오는 것 같아?

"주간지 등에 광고를 내는 건가요?"

마이코가 입을 열었다.

"카츠 군처럼 세상이 움직여 주면 정말 도움이 될 텐데 말이야……. 일반인들이 거래 조사 같은 걸 하겠어?"

비야냥거리는 말이라면 익숙해져 있다. 트레이너의 욕설이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 ……이 멍청아, 죽어버려라. 토시오는 입을 다물었다.

"물론 니시키 빌딩의 상호를 보고 뭔가 업무를 물어보는 사람들도 싫어하지는 않아. 하지만 지금 조사 업무는 내가 어려울 때 도와준 선배가 흥신소 소장인데, 그곳의 하청을 받고 있어."

마이코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우연히 내게 들어온 일 중에 마와리 토모히로가 의뢰한 신용조사가 있었어. 조사 내용은 신규 거래와 관련된 상대 회사에 대한 신용조사였지. 개인 이름으로, 특히 해바라기 공예에 대해서는 극비리에 진행해야 하는 조건. 어때?"

"토모히로는 해바라기 공예와 결별하고 거래처를 빼앗은 뒤 자기 회사를 설립하기 위해 사전 작업 중인 걸까요?."

"아마도 그런것 같아. 토모히로는 해바라기 공예와 결별할 준비를 착착 진행하고 있는 셈이지. 그런데 한 가지 의문점은 토모히로가 과연 제대로 독립 자금을 마련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야."

"스폰서가 없나요?"

"내가 알아본 바로는 그래. 그래서 토모히로는 새로운 회사 설립 자금을 조달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가능성을 노리고 극비리에 움직이기 시작한거니. 그렇다고 해도 내가 굳이 그 내용을 파헤쳐서 조사할 이유는 없어."

"마사오의 행적 조사도 토모히로의 의뢰였군요?"

마이코는 이마에 주름을 잡으며 말했다.

"아니, 행적 조사까지는 아니야. 2~3일 전에 토모히로를 만났는데, 그때 마사오를 미행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어. 나는 바로 대답을 하지 않았어. 아무래도 내 스타일이 아니었기 때문이지. 그런데 토모히로는 단 하루만 해도 좋다고 했어. 오늘 아침 10시부터 5시까지. 어렵게 생각할 필요도 없고 그냥 호기심 때문에 나는 승낙했지. ……결국은 신원 조사가 된 것 같지만..."

"토모히로는 전부터 아내의 행동을 의심하고 있었습니까?"

"마사오가 이런 곳에 온 이상, 토모히로도 어느 정도 예상한게 아닌가 싶네."

"두 사람 사이에 아이는?"

"아들이 한 명. 두 살 몇 개월로 세 살은 아직이야. 이름은 토우이치(透一). 마사오의 어머니가 돌보고 있을거야."

이상하게도 토시오는 아직 마사오를 비난할 마음이 들지 않았다. 집에서 나온 마사오의 표정은 남편의 눈을 피해 애인을 만나러 가는 표정이 아니었다.

물소리가 달라졌다.

"물이 가득 찬 것 같군."

마이코는 자리에서 일어나 침실로 들어갔다. 어딘지 모르게 침착하지 못하다. 토시오는 담배를 서둘러 피웠다.

힘찬 물소리가 들린다. 문득 욕실에 면한 벽이 투명하게 비춰졌다. 지금까지는 그저 꽃무늬 벽인 줄 알았던 것이 유리로 된 칸막이였던 것이다. 욕실의 전등을 켜면 반대편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마이코 쪽에서는 그것을 눈치채지 못하는 모양이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가운데 하얀 나신이 어린아이처럼 양손을 높이 뻗고 있었다. 풍만하고 젊은 가슴이다. 살이 통통한 것에 비해 몸 전체가 탄탄했다. 마이코는 크게 기지개를 한 번 켜고 욕조에 뛰어들었다.

토시오는 눈앞이 캄캄해졌다. 유리 칸막이 옆에 커튼이 눈에 들어왔다. 토시오는 서둘러 커튼을 잡아당겼다.

잠시 후 마이코가 수건을 몸에 두르고 침실 문을 열었다.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고 있다.

"카츠군도 목욕하지?"

그 대답은 어렴풋이 기다리는 동안 준비해 두었다.

"아뇨. 마사오가 갑자기 돌아가는 일이 생기면 안 되니까요."

반쯤은 이대로 마사오가 돌아갈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래."

마이코는 문득 커튼을 발견하고 조금 열어 화장실을 보았다.

"흐음 ....... 자네는 꽤나 신사로군."

토시오는 마이코를 곤란하게 해주고 싶었다.

"우다이 씨는 몸매가 좋더군요."

그러자 마이코는 토시오를 보고 환하게 웃었다. 천진난만한 웃음에 토시오의 얼굴이 되려 조금 붉어졌다.

"그래도 스포츠에는 자신 있다고. 유도도 3단 정도 되는 실력이야."

마이코는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닦았다.

"나는 어제 저녁에 잠을 제대로 못 잤어. 이제부터 조금만 더 자고 있을게. 무슨 일 있으면 깨워줘. 한 시간만 지나면 깨어날 거야."

그렇게 말하고 마이코는 침실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안쪽에서 자물쇠를 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토시오는 멍하니 침실 문을 계속 바라보았다.

마사오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같은 욕조에 몸을 담그고 있는 것일까. 남자 쪽은 안이 보이는 유리 너머로 마사오의 나체를 감상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 호텔 여자의 말에 따르면 두 사람은 처음 보는 손님은 아닌 것 같았다. 그렇다면 남자는 같은 욕실에서 마사오와 몸을 씻고, 다른 두 몸은 서로 엉키면서 침실로 ......

토시오는 의자의 팔꿈치 걸이를 잡고 힘을 다해 몸을 띄워 거꾸로 섰다. 신발 끝이 샹들리에에 부딪혔다. 샹들리에가 크게 흔들렸다.

토시오는 의자에서 뛰어내려 TV를 켰다. 모든 채널에서 아이들이 뛰어다니고 있었다. 겨우 뉴스가 나오는 방송을 찾았다. 아나운서는 하호쿠가타(河北潟) 매립 공사에 대한 주민들의 반대 운동의 쟁점을 설명하고 있었다. 하지만 해설의 말이 전혀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토시오의 생각은 마치 자석에 빨려 들어가듯 마사오에게로 향했다. 토시오는 TV 옆에 작은 냉장고가 놓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문을 열자 맥주와 주스가 보였다. 토시오는 맥주를 꺼내어 병뚜껑을 열었다.

정확히 한 시간 후, 마이코가 침실에서 나왔다. 옷차림이 단정하고 표정이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혼자서 너무 많이 놀아 화상을 입은건 같은 얼굴이네. 얼굴이 벌겋다고."

마이코는 테이블 위에 놓인 맥주 병을 보며 말했다. 마이코는 냉장고에서 자신도 맥주를 꺼내 컵에 부어 한 모금 마신 뒤 한숨에 마셔버렸다.

45분이 지난 뒤, 호텔 여직원이 조용히 문을 두드리며 마사오 일행이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샹보르관에서 마사오가 나왔다.

마사오 혼자만 있었다. 얼굴이 달랐다. 피부가 붉게 달아오르고 윤기가 흐르고 있었다. 머리가 풀려 양 어깨에 걸려 있어 순간적으로 마사오로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표정은 똑바로 호텔에 왔을 때와 똑같았다. 걸음걸이도 마찬가지였다. 경기하러 갔다가 경기를 마치고 돌아오는 모습과 비슷했다. 마사오는 몸을 숙여 원래 왔던 길을 걸어갔다.

"상대 얼굴 좀 보자."

담벼락 뒤에서 마이코가 말했다.

5분 정도 기다리자 그 남자가 나타났다.

피부가 하얗고 입술이 붉고 날씬한 체격의 남자였다. 옅은 색의 안경을 쓰고, 흰 코트에 양손을 집어넣고 있었다.

마이코의 얼굴이 긴장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소우지다!"

마이코가 낮게 외쳤다.

마사오의 상대는 토모히로의 사촌인 마와리 소우지였다. 소우지는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며 마사오가 지나간 길을 걷기 시작했다.

마이코는 발걸음이 빨라졌다. 더 이상 소우지에게 볼일이 없었다. 마사오를 쫓기 위해서다. 마이코는 무표정한 얼굴로 소우지를 추월했다. 소우지는 마이코에게 조금 신경이 쓰이는 듯했다. 토시오가 지나갈 때, 소우지는, "오, 주모우......"라고 말한 것 같았다. 반짝, 의치의 금빛이 빛났다.

마사오는 역에서 처음 왔을 때와 같은 표를 샀다.

"소우지가 나를 알아챘어?"

기차 안에서 마이코가 물었다.

"우다이 씨의 얼굴을 알고 있나요?"

"몰라. 모르니까 아무렇지 않게 소우지 옆을 지나칠 수 있었지. 그런데 소우지가 뭔가 혼잣말을 하는 것 같았는데."

"주모우 어쩌구라며 말하는 소리가 들렸어요."

"주모우?"

마이코는 생각에 잠겼다.

"주모우라는 게 뭔데요?"

"들어본 적 있는 이름인데.......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는군."

마사오는 자신의 역에서 내렸다. 역 앞 큰길을 건너 상가로 들어섰다. 이대로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는 것일까. 그렇게 생각하니 주의력이 약해진 것일까. 마사오의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상가는 한낮이라 사람들이 많이 나와 있었다. 두 사람은 얼굴을 마주했다. 토시오는 마사오가 사라진 주변 상점을 하나하나 살펴보며 걸었다. 그 중 약국에서 마사오의 뒷모습을 발견했다.

그리 넓지 않은 가게였다. 토시오는 조심스럽게 문을 밀었다. 마사오는 새로운 손님에게 전혀 무관심했다. 카운터 맞은편에 콧수염을 기르고 흰옷을 입은 남자가 있었다. 나이를 보면 이 가게의 주인인 것 같았다. 지금 막 작은 초록색 상자를 포장하고 있는 중이었다. 토시오는 상자 안의 약 이름을 재빨리 읽었다.

마사오는 돈을 지불했다. 계산대가 울리며 금액이 표시되었다. 토시오는 금액도 기억에 담아두었다. 마사오는 소포를 받아 가방에 넣고 가게를 나섰다. 달콤한 냄새가 남았다.

주인은 새로운 손님에게로 향했다.

"감기약을 ......"

주인은 증상을 듣고 뒤쪽 유리 선반에서 상자 하나를 꺼냈다. 상자는 마사오가 구입한 약과 비슷했지만 브랜드가 달랐다. 토시오는 기억하고 있던 약의 이름을 말했다.

"............"

주인은 손의 움직임을 멈췄다. 다시 한 번 토시오를 탐색하듯 바라보았다. 콧수염이 살짝 움직였다.

"...... 의사의 처방전을 가지고 계십니까?"

"처방전? 가지고 있지 않은데요."

"그럼 유감스럽습니다만, 판매할 수 없습니다."

주인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위험한 약인가요?"

"용도에 따라서는 ...... 수면제니까."

"방금 전에 가게에 있던 사람한테는 팔지 않았나요?"

"그 분은 ...... 제대로 된 처방전을 가지고 있었어요."

토시오는 어쩔 수 없이 감기약만 받았다.

상가를 빠져나오는 길에 마이코를 따라잡았다.

"뭘 샀어?"

토시오는 주머니에서 작은 종이 포장을 꺼냈다.

"감기약입니다."

"또 쓸데없는 걸 샀나 보네. 다음에는 사지 않고 물건을 물어보는 방법을 가르쳐 주지. 마사오도 감기약을 샀어?"

"그 사람이 산 약은 저한테는 안 팔더라고요."

"안 팔았다고?"

"그 사람이 산 건 수면제입니다."

"수면제라니......."

마이코는 괴로운 표정으로 말했다.

"수면제는 의사의 처방전이 없으면 살 수 없는 건가요?"

토시오는 거절당한 것에 대해 여전히 불만이 있었다.

"마사오가 처방전을 가지고 있었어?"

"가게 아저씨가 그렇게 말했지만, 그런 기미는 전혀 없었습니다."

마이코는 약국 주인과 마찬가지로 토시오의 모습을 쳐다보았다.

"사람을 본거야."

"사람을?"

"제대로 된 가정의, 아는 사람이라면 의사의 증명 따위는 없어도 팔 수 있어. 하지만 지나가던 낯선 젊은이에게는 팔지 않아."

"그렇습니까?"

"물론, 마사오라면 처방전을 몇 장 가지고 있어도 이상하지 않아. 그녀는 원래 종합병원의 간호사였어. 그녀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는 의사들이 많았을거야."

"그녀는 수면제가 없으면 잠을 못 자는 건가요?"

"...... 그건 나야 잘 모르지"

마사오는 끝까지 걸음걸이를 흐트러뜨리지 않고 자신의 집 출입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갔다.

"운전은 괜찮아?"

마이코가 물었다.

"괜찮냐니.......?"

"맥주를 마셨잖아."

"저 정도, 이미 깼어요."

지금은 마이코의 얼굴이 더 붉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토시오는 은행 뒤편 주차장까지 걸어가 에그를 마이코에게 돌려주었다. 마이코는 차에 탔다.

"아직도 감시를 계속하는 거예요?"

"그래. 다섯 시까지는 약속이니까."

근처 유치원이 끝났나보다. 교복을 입은 아이와 엄마가 몇 쌍이 지나갔다.

잠시 후, 역에서 온 샐러리맨 같은 남자가 마사오의 집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백미러에 비쳤다. 키가 작고 마른 체격의 남자였다.

"저게 마사오의 남편이야. 마와리 토모히로."

마이코가 말했다.

전에 보았던 사진은 토모히로의 특징을 잘 포착하고 있었다. 튀어나온 이마, 너무 작은 입, 퉁퉁 부은 턱........ 토모히로는 자신의 집에 들어서는 순간, 마이코의 차를 힐끗 쳐다보았다.

토시오는 소우지와 비교했을 때, 토모히로의 표정에서 음흉한 그늘을 느꼈다.

"토모히로가 돌아왔으니 더 이상 감시할 필요가 없을 것 같은데요."

"글쎄, 잠깐만."

마이코는 시계를 보았다.

"토모히로라는 사람…..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잘 모를 부분이 있단 말이지."


亂れからくり 복잡한 기계장치 : 1 달그락달그락 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