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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27

알고나 먹자 - 전호용 : 별점 2.5점

알고나 먹자 - 6점
전호용 지음/글항아리

딴지일보에 연재되었다는 음식 관련 컬럼 모음집. 존경하는 이웃 블로거 밥과술님이 추천해 주셔서 관심이 가던 차에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호평이 당연하다 싶을 정도로 재미도 있고 장점도 많습니다. 그 중에서도 재료에 촛점을 맞추고 있다는게 가장 마음에 듭니다. 부제인 "본격 식재료 추적 음식문화 박물지"에 어울리는 디테일로 된장, 고추장에서 시작해서 고기와 각종 야채, 곡물까지 대부분의 한국 음식에 사용되는 재료를 일람하고 있거든요. 온갖 농산물에 대해 상세하게 알려주고, 김장이라는 큰 주제로 중간 부분을 마무리하는 목차 구성도 좋고요.

그리고 저자가 실제 농사일을 해왔던 경험을 토대로 썼다는 점도 특별한 장점 중 하나입니다. 글 줄 하나하나마다 저자의 경험이 녹아들어 있는 게 흡사 동네 할아버지가 해 주는 재미난 농산물 관련 옛 이야기 같기 때문입니다. 순수하게 우리나라를 기준으로 한 내용들이라는 것도 마음에 들고요.
이렇게 경험 바탕으로 다른 책들과 상당한 시각 차를 보인다는 점도 재미있었습니다. 예를 들자면, 황교익은 염전은 허구이며 갯벌을 썩게 만든다고 주장했지만, 이 책에서는 경험에 기인한 나름의 긍정적인 부분, 즉 젓갈이 좋았다... 라는 이야기를 해 주는 식이거든요. 장점이라고는 할 수 없어도 경험자의 의견으로는 충분히 받아들일 만한 것 같아요.

저자의 농사 경험 및 실제 요식업에 몸을 담았던 경력에 토대를 둔 노하우를 소개하는 점도 좋습니다. 젓갈을 사러 가면 양념 젓갈은 사지 말라는 것, 이유는 양념 젓갈은 그 상태로만 먹어야 하고 다른 요리에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500그램 한 통 사기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젓갈집 들어가서 이거저거 하나씩 먹어보고 "이거 양념 안 한 것도 있어요?"라고 물어보라는 팁은 그야말로 꿀팁이지요. 양념 안한 젓갈이 있다면, 그건 그 집에서 담근 젓갈일 거라는 뜻인데, 이거야말로 다른 책에서는 알기 어려운 좋은 정보였습니다. 이 챕터는 저자가 곰소에서 산 바지락젓을 이용한 계란찜과 황새기젓의 살을 발라 다진 뒤 청양고추, 마늘을 다져 넣고 발사믹 식초를 넣은 양배추 쌈장의 레시피로 마무리되는데, 한마디로 개인 경험담에서 시작해서 음식 관련 정보 소개, 그리고 레시피로 이어지는 완벽한 구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흔한 음식 관련 서적에서 많이 소개되지 않는 소소한 것들에 대해 자세하게 파고든 것도 큰 장점이입니다. 마늘이나 생강, 각종 향신료, 콩과 잡곡 등에 대해 이렇게까지 자세하게 알려준 책은 여태까지 본 적이 없거든요. 처음 접하는 내용들이라 이래저래 생각할 거리도 많습니다. 다른 곡식을 심었더라면 배는 주리지 않았을 텐데 구태여 쌀을 심은 이유에 대해 논하는 부분이 그러하죠. 쌀은 마약이었다! 라는 결론인데 참신했어요.

겉보리가 꽁보리라던가, 고량주는 수수로 담근다라던가, 전래동화 "해님 달님"의 호랑이가 떨어진 곳이 수수밭의 수수대를 날카롭게 잘라낸 밑동이 있던 자리라는 것, 그래서 호랑이 피가 수수대에 묻은 것이 아직 남아 수수대 밑동이 붉다는 전설 같은 것들도 재미있었습니다.

시시콜콜한 여러 가지 정보들을 제공해 주는 것도 기대에 값하는데, 고기를 맛있게 먹기 위한 방법의 소개, 늙은 고기는 싸지만 보쌈, 수육에는 좋다던가 집에서 쓰는 칼에 대한 정도 등은 다른 곳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것들이지요.

그 외에도 지나치게 우리 농산물을 강조하지 않는 것도 독특했던 점이에요. 중국산 마늘은 씨알이 굵고 매운맛, 향이 강하니 고기 요리나 볶음 요리를 할 때 넣으면 좋다는 것은 아주 유용한 것이죠. 타박만 할 게 아니라 용도에 맞게 쓰라는 것, 암요. 맞는 말이고 말고요.

아울러 전형적인 딴지일보 마인드가 엿보이는 것도 다른 유사 에세이와의 차이점으로, 자신의 삶과 경험을 토대로 자본주의, 계급사회를 비판하는데 설득력 충분하게 쓰여져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시각 자체가 불편한 독자도 분명 있겠죠. 그리고 농산물에 대한 불안을 토로하며 GMO 농산물을 비롯하여 고기 소비, 물고기 양식 등 총체적인 것에 대한 비난은 그 해결책이 없다는 점에서 조금 아쉽긴 했습니다. 생협, 또는 직거래 장터와 같은 단기적인 방안이 크게 실효를 거두리라 생각되지는 않으며, 설령 성공한다 하더라도 유전자 조작 농산물에 대한 해결책은 아니니까요.

그리고 음식 관련 서적으로 보기에는 학술적 근거 대신 개인 생각과 경험이 많이 들어가 있어 적절치 않으며, 요리 서적으로 보기에는 레시피가 거의 없기에 실망하실 수도 있을 것 같네요. 개인적으로 가장 아쉬운 부분도 레시피가 부족하다는 것으로, 간단한 레시피도 몇 가지 소개되고 있긴 하나 실제 집에서 해 볼 수 있을 만큼의 디테일은 보여주지 못합니다. 관심 있으면 따로 찾아보라는 뜻일까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재미있는 글들이라는 것을 부인하긴 어렵습니다만 단점도 있고 일부 기대와 다른 부분 때문에 감점합니다. 재료보다는 조금 더 "요리", "음식" 쪽으로 포커스를 옮긴 후속작이 나와주었으면 하네요.

2022/03/20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면 - 요리후지 분페이 / 서하나 : 별점 2.5점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면 - 6점
요리후지 분페이.기무라 슌스케 지음, 서하나 옮김/안그라픽스

오래 전에 좋아하는 일러스트레이터라고 글을 남겼었고, 몇 권의 책을 읽기도 했던 일본의 디자이너 요리후지 분페이의 에세이입니다. 디자이너로서 디자이너라는 업과 디자인이라는 일에 관련된 여러가지 생각과 가치관을 풀어놓고 있습니다.

현업 디자이너로서 공감이 가는 이야기가 많았는데, 그 중 특히 요리후지 분페이의 대학시절 은사가 한 말은 디자이너로서 새겨 들어야 할 것 같아요. "디자인은 감성적이지 않고 과학적이다"는 말입니다. 감각적으로 좋다고 느끼는 것은 아무런 가치없는 자기만족일 뿐이며, 무언가를 만든다면 왜 그걸 하는지를 언어로 쌓아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은사가 전투적으로 커뮤니케이션했던 전공투 세대였기 때문에 그랬을거라는 부연 설명이 살짝 덧붙여져 있지만, 세대를 떠나 맞는 말입니다. 최소한 왜 만드는지는 생각하고 만들어야하는건 당연합니다. 단지 예뻐서, 멋져 보여서가 아니라요. 요리후지 분페이도 가슴 속 깊이 새겼는지, 이 책을 통해서 자기가 만든 다양한 작업물에 대해 왜, 어떻게 만들었는지를 상세하게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인상적인 작업도 몇 가지 있었는데, 첫 번째는 다양한 요소를 모듈화하여, 이를 조합하는 방식으로 일러스트를 만들고 그 모듈 킷의 사용료를 받는다는 획기적인 발상이었습니다. 조합 가능한 일러스트라는 아이디어는 흔합니다. 제 대학 졸업 작품도 비슷했었지요. 시기상으로 따져보면 거의 동시기라 뭔가 으쓱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를 실행에 옮겨 상용화했다는건 아주 참신했어요. 제 아이디어는 머리, 몸, 다른 유닛을 조합하여 무궁한 몬스터를 만들어낸다는, 비교적 작은 범위의 딱히 효용성 없는 결과물이라 상업화에 성공한 요리후지 분페이의 작업물과 비교하기도 어렵고요. 

짤막하게 스쳐지나가는 2020년 도쿄 올림픽 엠블렘에 대한 아이디어도 아주 괜찮았습니다. 도쿄는 물의 도시이고, 스포츠에서 땀은 빼 놓을 수 없고, 재생이 중요한 시대 환경을 감안하여 1964년 도쿄 올림픽 엠블렘을 색깔만 파란색으로 바꾸어 재활용하는게 어떨까? 라는 건데, 아주 그럴듯했어요. 디자인에 부가되는 이야기를 풀어내어 설명할 수 있는 프레젠테이션 능력이 중요해져 버린 시대 비판을 위해 든 예였지만, 2021년 올림픽 엠블렘으로 사용되어도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디자이너 요리후지 분페이가 풀어놓는 본인의 경력들도 흥미로왔습니다. 디자인 업무를 계속하기 위해서는 실력만 가지고는 안되는데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한 끝에, 경제 구조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겠다고 생각하여 피터 드러커의 책을 열심히 읽었다는 일화에서는 확실히 남다른 부분이 느껴졌고요. 저도 30대에 한 3~4년 정도 디자인 에이전시 사무실을 운영했던 적이 있는데, 당시의 요리후지 분페이보다도 나이가 많았음에도 이런 발상은 하지도 못했었습니다. 시간이 나면 놀기 바빴었지요. 심지어 기껏 읽은 피터 드러커 관련 책은 이거 하나밖에 없고요. 많이 반성이 됩니다. 당시 읽었던 다른 책을 통해 '참신하고 재미있는 아이디어가 하나 있다면, 그 아이디어만으로도 헤쳐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자세를 본받아, 그렇게 일하려 노력했다는 것도 대단해 보였고, 본인 작품을 예로 들어가며 자기의 디자인론을 펼쳐나가고 있는 것도 좋았습니다.

노하우를 참고할 만한, 프로 현업 디자이너로서의 조언들도 제법 됩니다. 그 중 아이디어를 형태로 만들어 나가는 방법론이 기억에 남습니다. 사실 별로 특이한건 아니었습니다. 생각이 막히면 다른 아이디어를 떠올려보라는 등은 너무 당연한 이야기니까요. 그러나 슬럼프가 왔을 때는 방법이 없으니 가장 안정적인 방법으로 일을 하면서 슬럼프를 벗어나기를 기다려야 한다는건 괜찮은 조언이었어요. 홈런보다는 번트라도 대라는 건데, 젊은 디자이너들에게는 굉장히 유용할 조언이었다 생각됩니다. 여러 관련 부서, 담당자와 소통할 때는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자세하게 설명하라는 조언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뒤에, 너무 자세하게 적으면 상대방이 생각을 하지 않게 되니 문제라고 바로 자기 말을 뒤집기는 하는데, 자세히 설명해서 나쁠건 없지요. 저도 한 때 디자이너에 대한 선민의식이 있었던 어린 시절이 있었는데, 많이 반성했습니다. 

그리고 저 역시 요리후지 분페이 말에 동의하는게 하나 있습니다. 전문가에게 맡기면서 정작 인쇄 감리처럼 현장에 가서 지켜보는건 확실히 이상해요. 당연히 믿고 맡겨야지요. 그림은 생각이 20%, 작업이 80%인데 디자인은 반대라는 이론도 좀 특이했고, 북 디자인은 관심이 많은 영역이 아니라서 기억에 많이 남지는 않지만 디자이너의 재능이라는 부분은 상당부분 알고리즘으로 치환될 수 있다는 의견도 굉장히 공감이 많이 갔습니다. 디자인을 하기 위해서 작가가 이 책을 왜 썼는지를 언어화해 두고, 이 책과 어떻게 만나고 싶은지를 상상한다는건 다른 디자인 작업에도 써 먹음직한 내용이었어요. 이는 '경험 디자인'과 같은 맥락이라 생각되네요. 잘 팔리는 책의 가장 중요한 조건이 '큰 제목' 이라는 것도 재미있었고요. 대단한 실력을 갖췄는데도 인정받지 못하는 디자이너를 본 적이 없다던가, 서로간의 네트워크를 유지하는 가장 중요한 행위는 '인사하기' 라던가, 디자인을 포함해 어떤 것을 창조하는 일은 그 사람이 안고 있는 커다란 불안을 원동력으로 한다는 등의 경험이 뒷받침된 말들도 염두에 둘 만 해 보였습니다.

그러나 장점만 있는건 아닙니다. 내용에 두서가 없을 뿐더러, 유명 디자이너가 썼고, 본인 디자인 방법론에 대해서 이야기하는데 도판이 지극히 부실하다는 큰 문제가 있는 탓입니다. 컬러까지는 바라지 않지만 최소한 소개된 작품에 대해서는 도판을 모두 수록해 주었어야 했습니다. 예를 들어 "원소생활"이라는 책을 만들 때 이야기를 꽤 길게 이어가는데, 정작 아이디어를 구체화한 그 결과물은 함께 소개되지 않는건 너무하다 싶어요. 북 디자인이 책 표지만 있는건 아닌데, 표지만 잔뜩 도판으로 수록한 것도 문제이며 북 디자이너로서의 생각을 잔뜩 풀어놓지만 이 책의 디자인도 딱히 마음에 들지 않아서 내용에서 설득력을 느끼기 힘들었습니다. 

이 책 디자인처럼 저자와의 간극이 느껴지는 결과물은 그 외에도 제법 많습니다. 픽토그램 활용한 디자인이 대표적이에요. 솔직히 좋은지 잘 모르겠더군요. 다리 사이의 구멍이 왜 그렇게 큰 완성도를 가져다 주는지 저는 알 수 없었거든요. 본인 스스로 픽토그램은 수도 없이 손 봤다면서, 그 다음에 바로 광고 카피 문구 자간에는 일부러 손을 대지 않았다고 말하는 맥락도 이해가 되지 않았고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입니다. 재미가 없지는 않습니다. 후배 디자이너로서 경외감을 가지고 읽을 만한 부분도 없지 않고요. 그러나 단점도 확실하고, 취향도 많이 탈 것 같아 선뜻 권해드리기는 어렵습니다.

2005/12/05

광식이 동생 광태 - 김현석 : 별점 1.5점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배우 김주혁이 나오기 때문에 보게 된 영화입니다. 요새 꽤 팔리는 듯 하네요.

줄거리는 생략합니다. 뻔하기도 하지만 별로 요약할게 없어서... 순진과 노골을 대표하는 두 형제의 버디무비랄까요?
일단 초반의 광식이 부분은 나름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중반부터! 중반부터는 짜증때문에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봉태규의 광태 파트로 영화가 넘어간 이후에는 정말 보기 힘들 정도로 불쾌했기 때문이에요.
광태라는 녀석은 만화나 인터넷 연재 소설에나 등장함직한 황당무계한, 비현실적인 캐릭터인 데다가 이후 전개도 현실성이나 타당성을 전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리비도로 뭉쳐있다는 점에서는 이전에 보았던 "연애의 목적"의 박해일과 비슷한 캐릭터이기도 하고요. 한마디로 도저히 이해할 수도 없고 공감할 수도 없는 캐릭터라 행동 하나하나, 대사 하나하나에 짜증이 엄청나게 몰려오더군요. 여자를 단순히 성적 대상으로 보는 사고방식과 행동 하나하나가 모두 저를 열받게 했습니다. 매달리는 행동은 스토커나 성 추행범에 진배없는데 이후 떡치는 과정까지는 너무나 일사천리, 이거 여성부에서 항의해야 하는거 아닌가요? 차라리 노골적으로 웃기기나 하던가.... 제가 페미니스트도 아니고 그렇게 보수적인 것도 아니지만 이건 아니라 생각되는, 도저히 즐길 수 없었던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순진한 사랑을 키워온 광식이보다 원나잇 스탠드를 추구하는 광태쪽이 더 해피한(?) 엔딩을 맞는 영화의 결말 역시 끝까지 영화가 마음에 들지 않게 하더군요. 이게 감독이 추구하는 현실이라는 건가? 결국 마지막에 가서 동화도 아니고 어른들을 위한 코미디도 아닌 어정쩡한 소속 불명의 영화가 되어 버리는데 이게 뭔가 싶네요.
혹시 좋아하는 여자가 있으면 무조건 대쉬하고 원나잇 스탠드를 적극적으로 하라는 계몽영화일지도? 여자가 싫다고 하는건 결국은 다 좋다는 표현이니 물고 늘어지라는 뜻? 이런 60년대 마쵸식 사고방식을 가지고 영화를 만드니 영화가 마음에 들 턱이 있겠습니까...

여튼 개인적으로는 간만에 선택한 영화치고는 실패라 생각되네요. 이렇게 영화를 만들것이었다면 과장없이 솔직 담백하게 접근하는게 훨씬 쿨 했으리라 생각됩니다. "싱글즈" 처럼 말이죠. 초반 광식이의 순진한 에피소드들과 마지막 결혼식장에서 영웅본색 "마크의 테마"와 함께 등장하는 광식이의 모습 등 몇몇 장면은 볼 만 하지만 이 정도야 아무리 후진 영화에서도 다 건질 수 있는 수준이겠죠. 제 생각에는 TV에서 봐도 충분한 영화라 생각됩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1점을 주어도 시원치 않지만 광식이 파트 때문에 점수를 약간 더 얹습니다.

PS : 배우들의 연기는 괜찮은 편입니다. 김아중이 예상외로 몸바쳐(?) 연기하더군요. 봉태규의 현실감을 완전히 상실한 연기만 제외한다면....

2016/04/03

세인트 메리의 리본 - 이나미 이쓰라 / 신정원 : 별점 2.5점

세인트 메리의 리본 - 6점 이나미 이쓰라 지음, 신정원 옮김/손안의책

이나미 이쓰라의 단편집으로 표제작 외 5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출판사 손안의 책과 국내 최고의 미스터리 동호인 커뮤니티인 하우미의 콜라보레이션 기획물인 '하우미 컬렉션'의 첫 번째 작품입니다. 하우미에서 기획을 담당했다기에 하우미 회원으로 안 읽을 수가 없더군요. 아니, 외려 읽는 게 늦었다 싶네요. 

작품들 수준은 편차가 있지만 재미있는 편입니다. 주인공들이 모두 '진짜 사나이'들인, 묵직한 남자 소설이라는 기존에 읽어왔던 일본 추리물과도 확연히 구분되는 장점도 명확하고요. 남자 소설이라고 주장하는 작품들은 많았지만 보통은 남자의 탈을 쓴 폭력 성향 가득한 마초물이 대부분이었는데, 이 작품들 속 남자들은 배려할 줄 알고 심지가 굳은 진짜 사나이들이거든요. 그들에 대한 묘사 역시 정말 매력적입니다. 작가가 이런 남자를 그리고 싶었다는 게 문장 하나하나에서 느껴질 정도에요.

이렇게 작가가 쓰고 싶은 이야기를 썼구나! 싶은 부분은 또 있습니다. 바로 이야기가 아니라, 특정 장면, 상황에 집중한다는 것으로 "모닥불"과 "종착역"이라는 작품이 그러합니다. 어떤 이야기에서 가장 재미있는 핵심 장면만 뽑아내서 작품을 쓴다는 발상은 정말 기발하네요. 단 이야기가 완결되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긴 합니다. 긴 이야기의 일부만 읽는 것과 마찬가지니까요.

그리고 읽고나니, 하우미 컬렉션이라는 기획물 의도에 적합한지도 잘 모르겠더군요. '추리물'이라고 부를만한 작품은 딱 하나밖에 없는 탓입니다. 사실 "세인트 메리의 리본" 역시 주인공이 탐정일 뿐, 정통 추리물로 보기에는 무리고요.

그래도 전체 평균 별점은 2.5점입니다. 장점은 확실하니까요.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모닥불"

남의 여자와 도망치던 남자는 여자가 죽은 후에도 계속 쫓기다가 한 노인의 오두막까지 오게 된다...

도주하는 남자가 주인공이지만 핵심은 노인입니다. 개의 행동과 밭을 밟지 않으려는 남자의 행동을 보고 그가 믿을만한 사람이라는 것을 간파하는 장면에서는 깊은 식견을, 남자를 쫓는 조직원들을 한방에 제압하는 장면에서는 고수의 풍모와 함께 큰 카타르시스를 안겨다 주거든요. 짧지만 화끈한 액션에 더해 총에 대한 묘사도 아주 탁월했어요. 주머니에서 방아쇠를 당길 셈이라면 리볼버를 써야 하는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요. 그냥 나가기만 하면 될 것 같은데 말이지요.

하지만 앞서 말씀드린대로 이야기가 완결되지 않는다는 단점은 큽니다. 남자가 도주하게 된 자세한 사정이라던가, 이후 남자가 어떻게 되고 노인이 어떻게 되는지는 전혀 등장하지 않는 탓입니다. 무대가 어디인지, 누가 선인지 악인지도 설명되지 않고요.

그래도 몇몇 장면만으로도 깊은 인상을 남기는, 묵직한 남자 소설임에는 분명합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하나미가와의 요새"

지바의 알려지지 않은 강 주변에서 우연히 전쟁 당시의 토치카를 발견한 사진작가 마쓰무라는 토치카에 머무는 포 할머니와 하라다와 만난 후, 시공을 초월하는 기이한 경험을 하게 된다.

사진작가 마쓰무라가 전쟁 당시 극적인 비밀 계획을 목격한다는 일종의 타임 슬립물입니다.

패망한 일본군 수뇌부가 옮기던 재물을 빼돌리려는 하라다 조장의 작전과 맞물려 진행되는, 동물원 동물 탈주 계획이 핵심일 것으로 생각되었지만, 의외로 이 작품에서 탈주 계획은 거의 언급만 되는 수준입니다. 오히려 증기 기관차의 질주와 질주하는 열차 주변에서 벌어지는 활극에 집중하거든요. 이 부분의 묘사는 정말이지 매력이 철철 넘칩니다.

그러나 단점은 전작과 동일합니다. 전작보다야 이야기로의 완결성은 있기는 하지만 타임 슬립의 이유가 무엇인지, 포 할머니의 정체가 무엇인지, 빼돌린 재물과 탈주한 동물들은 어떻게 되었는지, 하라다 조장은 무사한지 등 상세한 설정은 뭐 하나 설명되는 것이 하나도 없는 탓입니다. 이래서야 솔직히 완성도가 높다고 보기는 어렵죠. 조금 더 길게 쓰더라도 떡밥은 모두 회수하는 게 훨씬 좋았을 겁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보리밭 미션"

영국 뉴베리에 있는 농장주의 남편인 제임스는 B-17F 폭격기 진 할로호의 기장이기도 했다. 목숨을 건 작전은 성공리에 끝났지만, 볼 터렛의 입구가 고장나 사수 제프 가르시아가 갇혔다. 착륙 직전 바퀴의 이상을 알아차리고 동체 착륙 시 제프가 죽는다는 것을 깨달은 제임스는 폭격기 기수를 농장으로 돌렸다. 그리고 농장 가운데 수로 '마시의 리본'에 기체를 포개어 볼 터렛을 으스러뜨리지 않고 착륙하려 하는데...

"파일럿이 되고 싶다면, 되려무나. 남자는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걸 하면 되는 거야." - 제임스. 아들 리처드가 농장주가 아니라 파일럿이 되고 싶다고 하자 하는 말.

2차대전의 독일 본토 폭격전을 그린 밀리터리 항공물입니다. 앞부분 제임스와 리처드 부자가 농장에서 보내는 목가적인 그림과 폭격에 관련된 화약 냄새 물씬나는 화끈한 묘사가 묘한 대조를 이루는 작품이지요.

매력 포인트는 사고뭉치 제프를 구하기 위해 승무원 모두가 목숨을 거는 "전우애", 즉 "싸나이 의리"가 아주 매력적으로 묘사되었다는 겁니다. 이거야말로 밀리터리물의 로망이죠. 결말도 해피엔딩이고요.
2차대전, 항공물, 목숨을 건 작전, 전우애와 해피엔딩이라는 점에서는 오래전 영화 "멤피스벨"이 떠오르는데, 좀 뻔하기는 하지만 전 이런 이야기 아주 좋아합니다.

멋진 드라마에 더해 수록작 중 유이한, 이야기의 완결성이 있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별점을 더 얹습니다. 별점은 3.5점입니다.

"종착역"

도쿄역 아카보(철도 역내에서 승객의 화물 등을 대합실이나 차량 같은 데에 운반하는 사람)의 우두머리인 라이조는 고향 산림에 펜션과 양로원을 짓겠다는 꿈이 있다. 그러나 억 단위의 돈이 필요한 현실 앞에 좌절하고 있던 중, 야쿠자가 운반하는 현금의 존재를 우연찮게 알게되고 그 돈을 몰래 빼돌리는데...

도쿄역에 대한 세밀한 묘사, 뭔가 사연이 있어 보이는 사나이 라이조에 대한 묘사 등에서 작가의 글 솜씨를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작품입니다.

그러나 돈을 빼돌리는 과정의 디테일 외에 라이조가 계획에 성공했는지, 야쿠자들이 어떻게 나올지 등이 설명되지 않는 미완성 작품입니다. 본격적인 장편이라면 첫머리에 불과한 이야기에요. 이러한 점에서 점수를 주기는 어렵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세인트 메리의 리본"

노세 지역의 땅 3만 5천 평을 소유한 류몬 다쿠. 그는 맥주를 좋아하는 애견 조와 함께 잃어버린 사냥개를 찾는 것이 주업인 사냥개 탐정이다. 그런 그에게 이치쿠라 가문의 외동딸이 잃어버린 '맹도견'을 찾는 의뢰가 들어오는데...

표제작. 이 작품집에서 가장 유명한 작품이죠. 1993년 일본모험소설협회대상 최우수 단편상을 수상하고 1994년 '고노미스'에서 3위를 차지한 작품이거든요.

하지만 탐정이 나올 뿐, 추리소설이라고 보기 어려운 점이 많아서 아쉽습니다. 예전에 읽었던 유사 설정의 작품(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탐정으로 등장하는)인 "트랙커 토우마"라는 추리 만화를 읽은 적이 있는데, 그보다도 추리적으로 별로에요. "트랙커 토우마"는 정말로 알려지지 못한 작품이라 안 읽어보신 분들이 많으시겠지만, 이보다 못하다면 정말 심각한 수준입니다. 사건 해결 후 계화가 경위를 듣고 싶어하지만 류몬 다쿠가 거절하는 장면의 묘사, '나는 "기업 비밀입니다"라고만 대답했다. 자랑할 만큼 대단한 추리를 한 것도 아니었고, 모험도 없었을 따름이다.'라는 말 그대로일 정도거든요.
작 중에서 류몬 다쿠가 하는 일이라곤 운 좋게 사건 현장 거의 대부분이 찍힌 비디오에서 수상한 트럭을 발견한 뒤, 트럭을 쫓아 집을 알아내고 개에게 냄새를 확인시키는 게 전부입니다. 다른 탐정 일 역시 마찬가지, 개 '조'의 후각에 의존하거나 친구로부터 들은 정보로 잠복하여 확인한다 밖에는 없어요.

물론 이런 수사가 현실적인 탐정의 수사 방법이라는 것에는 동의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쓰려면 억지스럽게 하드보일드 탐정을 엮지는 말았어야 해요. 애초에 류몬 다쿠는 거액의 재산가이기 때문에 사건에 목숨을 걸고 일희일비하는 하드보일드 탐정하고는 어울리지도 않고요. 그래서인지 조직 폭력배와 얽히는 전개로 끌고가는데 이 역시 무리수로 밖에는 보이지 않아서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류몬의 땅을 노리는 센추리 흥업과 하나비시 구미의 수작질은 CCTV 설치로 충분히 막을 수 있고, 광역 폭력단 효도구미의 김계화와 엮이는 건 완전 억지였던 탓입니다.

게다가 마지막에 메리를 하나에게 선물한다는 결말은 지나칠 정도로 편의적이라 영 마음에 들지 않네요. 수임료보다 비싼 개를 턱하니 선물할 정도의 재산가가 하드보일드 탐정일 리가 있겠습니까? 그냥 낭만적인 자선사업가 산사나이이죠. "캔디캔디"의 윌리엄 아저씨와 다를 게 하나 없어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사냥개 탐정이라는 직업과 자연 속에서 생활하는 모습만큼은 충분히 매력적이고, 류몬의 말투와 행동 하나하나 모두 멋진 사나이를 표방해서 마음에 듭니다. 억지로 하드보일드 탐정물로 엮은게 문제이지요. 그냥 산사나이의 인간 드라마로 그리는 것이 훨씬 나았을 겁니다.

2015/12/01

작은 책방, 우리 책 쫌 팝니다! - 백창화, 김병록 : 별점 1.5점

작은 책방, 우리 책 쫌 팝니다! - 4점
백창화.김병록 지음/남해의봄날

제 오랜 꿈 중 하나가 카리스마 헌책방 주인입니다. 뜨내기 손님이 들어와 책값 좀 깎아보겠다고 하면 "당신한테 내 책은 안 팔아!"라고 호방하게 외칠 수 있는 주인이요. 이 책은 이러한 저의 꿈과 맞물려 있는 듯 하여 호기심에 읽게 되었습니다. 

책은 충북 괴산에 귀촌한 후, 이른바 "가정식 서점"을 표방한 "숲속 작은 책방"을 연 부부가 쓴 자신들의 이야기에 더하여, 비슷하게 동네 서점을 표방한 책방들에 대한 조사와 인터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통영에 있는 것으로 유명한 작은 출판사 남해의 봄날에서 출간되었더군요.

그런데... 아쉽게도 딱히 도움이 되거나 인상적인 내용은 없었으며, 오히려 제 꿈이 현실적으로 무리라는 것만 느껴져 읽는 동안 답답하기만 했습니다. 별다른 아이디어(후술하겠지만 누구나 떠올릴 수 있는)없이 동네 서점이 중요하다, 이런 서점과 책방 하나쯤 동네에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제가 보기에는 전혀 아니올시다였거든요.
저는 1년에 약 백여 권의 책을 읽는, 취미가 "독서"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만, 동네에 책방이 없다고 아쉽거나 제 삶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물론 있으면 좋겠죠. 하지만 여기 나오는 것처럼 특정 주제에 집착하거나 카페처럼 만든 그런 곳이라면 오히려 제 취향과는 맞지 않을 듯 합니다. 저는 그냥 "책" 자체가 좋고 "책"만 많으면 됩니다. 이런 동네 서점보다는 조금 멀어도 교보문고, 혹은 동네 도서관이 훨씬 낫습니다.
설령 동네 서점이 있다손 치더라도 이 책에서 주장하듯 무슨 대단한 동네 문화 허브일 수도 없습니다. 가당치도 않지요. 

또 책 속에 등장하는 꿈같은 동네 서점, 즉 지역 주민들이 사랑하고 도와주는 서점은 한국이라는 현실에서 거의 불가능해 보입니다. 전세난으로 2년마다 이사 다니고, 학원과 직장에 치이는 인생에 무슨 동네 서점이랍니까. 그리고 이런 논리라면 옛 추억이 어린 동네 떡볶이집이나 오래된 어머니들 사랑방 역할의 미용실도 망하면 안 되겠지요.

그나마 등장하는 동네 서점들도 책만 팔아서 먹고살 수 있는, 서점 본연의 모습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 거의 없어 보여서 안타깝기만 했습니다. 특정 주제에 집중해서 골수 단골을 확보하는 전략이 그나마 가능성이 있지만, 동네 장사가 아니라 멀리 있는 손님이 일부러 발품 팔아 찾아올 정도라면 그 자체가 이미 "동네 서점"의 정의에서 벗어난 일종의 맛집 같은 관광 상품에 더 가까워진 것이니, 저자들의 주장과 완전히 배치되는 셈 아닐까 싶습니다. 소개된 서점들 중 다수가 홍대, 연남동 등에 터를 잡은 것도 결국 동네 서점이 아니라 관광지 핫 플레이스를 꿈꾼다는 증거라고 생각되네요.

게다가 책이나 정보는 인터넷으로 훨씬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세상입니다. 세상은 발전하는데 만들고자 하는 서점은 수십 년 전 스타일이라면 곤란하죠. 인터넷 서점은 기본적으로 정가의 10% 할인은 물론, 마일리지에 카드사 할인까지 더하면 거의 20% 할인된 가격에 책을 구입할 수 있습니다. 다양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이벤트는 덤이고요. 과연 경쟁이 될까요? 

이러한 답답함 외에도, 뒷부분의 귀촌 후 서점을 만들어 가는 과정 이야기는 책의 주제와 거의 상관없는, 일종의 DIY 및 인테리어 이야기라 실망스러웠고 전체적인 완성도와 디자인도 감점 요소입니다. 성격에 맞게 동네 서점 같은 편안하고 얌전한 디자인이 좋았을 텐데, 너무 튀고 산만한 느낌이었어요. 실려 있는 사진들도 그닥이었습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1.5점. 동네 책방들에 대해 여러모로 생각해보게 만들기는 했지만, 내용은 전문성이 부족하고 이야기도 왔다 갔다 해서 건질 건 없습니다. 동네 서점에는 미래가 없다는 기존 생각만 더 확고해졌다는 것 정도가 수확이랄까. 이 정도의 내용치고는 책값도 비싼 편이라 추천하기 어렵습니다.

그나저나, 소개된 서점 중 이 잔인한 자영업 사막화 국가에서 2년 뒤까지 얼마나 많은 서점이 살아남아 있을지 조금 궁금하긴 합니다.

덧 1 : 저자들 책방에 들어오면 꼭 책을 사야 한다는 일종의 강매 행위는 정말이지 마음에 들지 않더군요. 둘러보고 살 만한 게 없으면 그냥 나오는 거지,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생각이랍니까. 정착하여 삶을 꾸리는 데 큰 노력을 기울인 것을 날로 먹으려는 외지인들에게도 분명 문제가 있겠지만, 여기는 소매업을 하는 엄연한 가게잖아요? 관광지 비슷한 곳에 무언가 가게를 열면 당연히 받는 질문들인데, 서점만 예외가 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뭔가 서점, 책을 판다는 것에 선민 의식이 작용하고 있는 게 아닌가 의심스럽기까지 합니다.

덧 2 : "동네 서점"이 살아남기 위한 몇 가지 방안을 생각해보라고 할 때, 제가 떠올릴 수 있는 방법들과 이 책에 소개된 동네 서점을 해당 방법별로 분류한 것입니다. 역시나, 크게 별다를 건 없습니다.

1. 특이한 주제에 집중한다.

: 홍대 앞 땡스 북스 (디자인), 서울 마포 짐프리와 서대문구의 일단 멈춤 (여행), 연남동 책방 피노키오 (외국 동화), 일산 알모 (동화)

수요층이 확실한 디자인, 여행, 그리고 어른들을 위한 예쁜 책과 외국 동화들, 아동용 도서로 구분되는데 뻔하디 뻔한 발상이죠.

2. 카페와 결합한다

: 상암동 북바이북 (술 마시는 책방) 외

북카페야 흔하디흔하고 요즘은 그 유행마저 사라졌습니다. 그나마 (소개된 곳 중 유일하게!) "책맥"이라는 맥주 마시는 책방은 좀 신선했습니다. 허나 주객, 아니 주책이 전도된 게 아닌가 싶은데, 매출에서 맥주와 책의 비율이 궁금하네요.

3. 관광지와 결합한다

: 제주에 있는 책방들과 저자들의 "숲속 작은 책방"

역시나... 특별할 게 없어요.

4. 책은 물론 다양한 인문학적 교류가 있는 공간으로 만든다

: 부산 인디고 서원 외

서점이라는 공간에 대한 상식선 끝자락에 위치한 것이죠. 뻔할 뿐더러 이 정도면 동네 작은 책방의 범위를 넘어서는 듯 합니다.

5. 유명인이 참여한다

: 책에는 소개되지 않았지만 홍대 여신이라는 요조가 책방을 냈다죠?

6. 독립 출판물에 집중한다

: 서울 마포 유어마인드, 서촌 더북소사이어티

1번과 유사하지만 성격이 조금 다르므로 별개로 치겠습니다. 이거 하나만큼은 제가 생각하지 못한 신선한 것으로, 일본으로 따지면 동인지 전문 판매숍쯤 되어 보이네요. 독립 출판물만 판매해서는 매출이 나오지 않을 텐데, 수익 모델이 정확하게 무엇인지 조금 궁금합니다.

2006/05/30

무영검 - 용대운 : 별점 1점

무영검 -하 - 2점
용대운 지음/데이즈엔터(주)

읽고도 화가 나서 줄거리는 대충 쓰겠습니다. 사실 줄거리는 한줄이니까요. "무림에 다시 출도한 12신마를 금마옥주 좌혼지가 소탕한다!" 입니다.
아래의 "태극문"과 같은 작가가 쓴 것은 작가이름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습니다. 왜냐면 작품이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부끄러울 정도로 자신의 작품의 좋았던 아이디어를 그대로 베끼고 스케일만 더 키운 어처구니 없는 소설인 탓입니다.

일단 태극문에도 등장하는 "평범한 초식이 고수를 제압한다"라는 아이디어와 "품검 대회"라는 가장 중요한 설정을 그대로 따서 작품을 진행하고 있는데 문제는 이 아이디어와 설정을 좀 더 교묘하고 세련되게 짜 맞추어도 고작 본전일 판에 아이디어와 설정은 이야기의 핵심과 따로 놀고 있다는 점입니다. "평범한 초식이 고수를 제압한다"라는 독특한 발상은 "태극문"과는 다르게 주인공 좌혼지의 강함을 설명하는 곁다리일 뿐이며 좌혼지 자신은 외려 무림 최고 수준의 무공을 몸에 익히고 있습니다. 결국 "평범한 초식"은 진정 극강한 무공을 능가하지 못한다는 스스로의 아이디어를 묵살하는 희한한 전개. 요걸로도 일단 마이너스 백만점.
게다가 "품검 대회"가 마인들을 끌어내기 위한 꼼수라는 전개는 설득력이 제로에 가깝습니다. 일단 극강한 마인들이 3인이상이 모이면 좌혼지를 제압할 수 있다고 하는데 정작 12명이나 있으면서 왜 더욱 고수가 되기 위해 전전긍긍하는지에 대한 묘사가 없거든요. 나 같으면 12명이서 그냥 처들어 가서 쑥밭을 만들어 놓겠다. 3명씩 조를 짜서 제트 스트림 어택이라도 보여주면 될거야냐? 이거 역시 마이너스 백만점.
또 "태극문"의 단점이기도 했던, 왜 등장하는 지도 알 수 없는 여러 고수들은 정말 들러리(!)일 뿐입니다. 어디어디의 최고수, 어디어디의 넘버원이라는 작자들이 등장해서 진정한 마인들에게 일초에 피떡이 되는 장면은 한마디로 기가 막히는 수준이었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장면들이 정말로 수도 없이 계속된다는 점이죠. 이러한 어처구니를 쌈싸먹은 전개의 화룡점정은 이 최고수들을 일초만에 피떡으로 만드는 마인들이 주인공 좌혼지에게 일초만에 피떡이 된다는 전개인데 정말 소설 쉽게 쓰는구나.. 하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습니다. 정말로 이 작품의 무공 대련 장면의 대부분은 "파파박" "크아악!" 이 두줄로도 다 쓸 수 있거든요.
아울러 좌혼지의 정사장면은 사족을 넘어선 작가정신이 의심되는 장면이라 생각합니다. 이런 장면이 꼭 나와줘야 책이 팔린다고 생각했을까요? 아무런 흑심없이 미모의 여인의 옷을 벗겨 치료하다가 눈이 맞아 떡을 친다는 구닥다리 발상은 찰리 채플린 시대에 사라진 줄 알았었는데....
이러한 무의미하며 형편없는 묘사의 난무로 인해 단편 분량의 얄팍한 소설이 그나마의 미덕도 갖추지 못한채 품검대회라는 핑계로 질질 늘어지는 마이너스 삼백만점짜리 쓰레기가 되어 버렸네요.

어쨌건 최근 본 소설 중에서 가장 밑바닥 소설이었습니다. 솔직히 다른 작품을 모방하던 자기 작품을 모방하건 상관은 없습니다. 자존심을 버리고 이거저거 설정을 끌어왔으면 독자에게 최소한의 재미는 안겨줘야죠. 용대운이라는 작가가 요새 무얼 하는지는 모르지만 이 소설 하나만큼은 아무리 욕을 먹어도 무방한 소설이라 생각됩니다.

하나는 괜찮았고 하나는 밑바닥이었으니 "유섬검"과 "탈명검"을 읽어보고 작가에 대한 평가를 해 봐야 겠네요. 그나저나 "검" 시리즈는 거진다 쓰레기라는 평을 봤는데....

2013/09/21

순서의 문제 - 도진기 : 별점 2.5점 (그러나 강추!)

순서의 문제 - 6점
도진기 지음/시공사

현직 판사이시기도 한 추리소설가 도진기씨의 단편소설. 한국 작가로는 보기 드문 정통 본격물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무척이나 좋아하는 작가입니다.

그러나 변호사 고진 시리즈 장편(이거라던가 이거)은 트릭은 인상적이었지만 전개면에서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워낙에 트릭이 뛰어난 작가라서, 차라리 트릭을 잘 활용할 수 있는 단편이 더 낫지 않을까 생각했었는데 역시, 이 책은 그러한 저의 예상이 맞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전체 평균 별점은 2.5점. 작품별 편차가 커서 평균이 깎였지만, 뛰어난 작품은 한국 추리문학 역사에 남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뛰어납니다. 한국 추리문학을 많이 접해보지 않으신 분들께 진심으로 추천드리는 바입니다.

작품별로 상세하게 소개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순서의 문제"

대리운전을 하는 주인공 진구에게 한 손님이 원주 터미널에서 전화 한 통만 걸어주면 50만 원을 준다는 알바를 제의했다. 의뢰를 수락한 진구는 알바의 이면에 뭔가 감추어져 있다는 것을 깨닫고 혼자서 그것을 조사하기 시작하는데...

전 법대생이자 철저한 이성주의자인 주인공 김진구가 첫 등장하여 거액이 얽힌 범죄의 진상을 밝혀내고 범인을 협박하는 이야기. 안티히어로 스타일의 주인공 캐릭터가 독특합니다.

추리적으로도 완성도가 높아서 단순히 원주에서 전화를 건다는 사실과 집주소, 주변 탐문에서 시작하는 개인적인 수사를 통해 진상을 밝혀내는 과정이 설득력 있게 전개됩니다. 강현의 동기인 이른바 '순서의 문제'가 적절하게 사용된 것도 마음에 들고요. 트릭도 순간이동 트릭을 두 가지나 복합해서 사용하고 있어서 풍성합니다.

약간 아쉬운 점이라면 시체를 이동시키는 방법의 설득력이 약간 낮다는 점, 그리고 마지막 강현을 협박하는 장면이 작위적이라는 점입니다. 물론 단점은 사소할 뿐이며 장점이 훨씬 많은 작품이죠. 별점은 3점입니다.

"대모산은 너무 멀다"

진구가 여자친구 혜미가 목격한 지하철의 수상한 남자의 행적을 가지고 순수한 추리를 펼쳐보이는 안락의자 탐정물.

추리적으로 논리정연하고 그럴듯하기는 하나 정말로 그것이 사실로 맞아떨어졌다는 것은 좀 억지스럽더군요. 자기 얼굴이 할퀴었다고 손을 잘라서 버릴 생각을 하는 사람이 정말이지 몇 명이나 될까요? 그것도 잘 모르는 산으로 버리러 간다... 솔직히 현실적이지 않았습니다.

진구의 추리는 그럴듯하나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겠다라는 식으로 마무리하는 게 더 좋았을 것 같습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마추피추의 꿈"

진구가 혜미와의 마추피추 여행에서 비행기를 놓친 뒤의 이야기를 다룬 일상계.

추리물로 보기에는 어려우나 아이디어는 괜찮았습니다. 동으로 가나 서로 가나 결국 목적지는 같다는 콜럼버스적인 마인드가 돋보였어요. 별점은 2점입니다.

"티켓다방의 죽음"

해미의 외숙부가 출장 중 여관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 경찰 조사결과는 자살. 그러나 보험금 문제가 있어서 혜미의 부탁과 보험금의 20%를 조건으로 진구는 타살 여부에 대한 조사에 나섰다.

진구의 목적은 진상을 밝히는 게 아니라 외숙부 양문요가 자살한 게 아니라는 걸 경찰에게 인식시키는 것이라는 설정부터가 독특합니다. 

진구가 벌이는 여러 가지 작전도 상당히 괜찮습니다. 흉기 집중 효과를 응용하여 목격자인 다방아가씨 유현아에게 다른 사람 사진을 보여주어 증언을 헛갈리게 하고, 외숙부 양문요가 첫 자살을 시도할 때 1/3 남아있던 청산가리가 시체 발견 시에는 남아있지 않았다는 사실을 근거로 타살설을 주장하는 식인데 경찰이 흔들릴 수밖에 없을 정도로 그럴 듯 했습니다.

결국 노력이 벽에 부딪힌 뒤 우연히 얻은 단서를 바탕으로 진상에 접근하는 과정과 보온병을 이용한 작전 역시 탁월했고요.

단점이라면 여관주인 여춘길이 5만 원권을 1만 원권으로 바꾸는 것을 우연히 목격한 것이 사건 해결에 결정적 단서라는 점입니다. 이렇게 우연에 의지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여춘길 방에 침입했을 때 관련된 단서를 발견했다는 식으로 전개했더라면 더 깔끔했을 것 같습니다. 여춘길이 1만 원권으로 바꾼 동기도 솔직히 좀 어이가 없었어요. 지폐에 청산가리를 묻힐 생각을 하느니 돈을 숨긴 장소에 숨어 있다가 미행하는 게 더 설득력 있는 행동 아니었을까요?

그래도 마지막에 첫 등장에 보여준 지폐를 이용하여 극적 반전과 함께 독자에게 통쾌함을 선사하는 결말도 아주 좋은, 완성도 높은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별점은 3.5점입니다.

"신 노란방의 비밀"

살인범에게 납치당했다가 탈출한 소녀 은비의 증언은 그곳이 노란색 방이었다는 것. 그러나 유력한 용의자의 집은 노란색과는 거리가 멀어 경찰 수사가 난항을 겪는데...

공감각을 가진 사람이 느낄 수 있는 소리와 시각의 치환을 다룬 소품. 제목은 거창하나 단순한 아이디어 하나만으로 이야기를 벌이는 느낌이라 딱히 와닿지는 않았어요. 외려 진구의 과거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이 더 재미있었던, 쉬어가는 작품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뮤즈의 계시"

진구, 해미는 살인 사건의 증인으로 재판정에 섰다. 해미의 직장 동료 김주희와 그의 동거남 하성남의 집들이 파티 때, 하성남의 아내 선혜영이 살해된 사건 재판이었다.

어떻게 그 짧은 시간에 시체를 옮겼는지? 그리고 어떻게 진구, 해미와 함께 있으면서 살인을 저질렀는지? 라는 두 가지 수수께끼를 만든 트릭이 돋보입니다. 특별한 곳에 위치한 집과 그 집의 구조도를 잘 이용한 순간이동 알리바이 트릭이 이용되었는데 아주 괜찮았거든요. 결정적 단서가 되는 USB 음악 재생 아이디어는 정말 기가 막혔고요. 트릭의 정교함과 아이디어는 고전 황금기 걸작에 비교될 만 합니다. 어둠의 변호사 고진이 등장해서 팬에게 서비스하는 모습도 좋았고, 작가의 경험을 잘 살린 법정 장면 역시 마음에 들었습니다.

과연 살해 현장에서 시체를 옮겼다는 것을 현대 법의학이 알아내지 못했을까? 하는 작은 의문이 생기기는 하나, 단점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개인적으로 이 단편집의 최고 작품이었습니다. 별점은 4점입니다.

"환기통"

보석 도둑을 쫓던 경비원이 살해된 사건의 진상을 다룬 소품.

진구와 해미가 처음 만나게 된 당시에 벌어졌던 사건을 그리고 있는데 트릭은 실제 사건 현장에 대해 디테일하게 설명되었더라면 충분히 풀 수 있는 것이라 생각되기에 그다지 눈여겨볼 건 없습니다.

오히려 살인까지 저지르게 되는 과정이라던가(어차피 체포되었으니까), 환기통 안에서 구멍을 내었는데 그것을 간파하지 못한 이유가 설명되지 않는 등 어색한 부분이 거슬릴 뿐입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2013/09/09

세계 추리소설 걸작선 2 - 아놀드 베넷 외 : 별점 1.5점

세계 추리소설 걸작선 2 - 4점 아놀드 베넷 외 지음, 한국추리작가협회 엮음/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도서출판 한스미디어에서 야심차게 선보인 추리소설 앤솔러지. 유명 고전 작가들의 단편은 물론이고 초창기 추리 이론까지 풍성하게 실려있습니다.
1, 2권으로 출간되었는데 1권은 읽은 작품이 너무 많고 지나치게 고전 취향이라 2권부터 구입하게 되었네요. 2권 역시 다른 책에서 읽어본 작품이 제법 많이 포함되어 있기는 하나 워낙에 목차가 괜찮고 또 국내에서는 보기 드문 고전 황금기 작품들을 주력으로 하고 있기에 선택하였습니다.

그러나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실망스러웠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번역입니다. 일본어 중역 느낌이 물씬 날 뿐더러 그 자체가 별로 매끄럽지 않아 읽기 힘들었어요. 악명 높은 동서 추리문고 최악의 번역도 이거보다는 좋게 느껴질 정도니 말 다했죠. 고전 황금기 걸작이 아닌 몇몇 현대 일본작가 작품이 섞여 있는 것도 기획 의도가 모호해 보여서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고요.

때문에 별점은 1.5점입니다. 기획의도만으로 3점은 충분하지만 번역은 용서가 안되네요. 좋은 기획의도가 번역 때문에 다 망가진 것 같아 안타깝기까지 합니다. 한스미디어의 다른 작품들은 괜찮았었던 것 같은데 대관절 영문을 모르겠군요.

몇몇 작품은 걸작이지만 대부분 다른 책에서 훨씬 좋은 번역으로 읽을 수 있다는 점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수록작별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사라진 기억" | 배리 퍼론

극작가 애닉스터가 완벽한 밀실살인 트릭을 생각했는데, 교통사고로 트릭을 잊어버린 탓에 술집에서 트릭을 알려주었던 사람을 찾아 나선다는 내용.

교통사고로 딱 필요한 기억만 상실한다는 작위적인 설정이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꽤 그럴듯한 전개, 그리고 마지막에 애닉스터가 상황을 깨닫는 장면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 남자에게는 애닉스터만이 유일한 위험인물이었다!

한마디로 서늘한 반전류의 교과서적인 작품입니다. 별점은 3.5점.

"살인!" | 이넉 아놀드 베넷

명백한 살인사건인데, 경찰이 수사 결과 몇몇 남겨진 단서를 통해 자살로 결론 내린다는 내용의 소품. 솔직히 내용을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심리 묘사에 대한 번역에 문제가 많았던 것 같은데 제대로 된 번역으로 다시 읽고 싶습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피트 모란, 다이아몬드 헌터" | 퍼시벌 와일드

"탐정 피트 모란"에 수록된 단편입니다. 그때는 너무너무 재미있게 읽었는데 번역이 너무나 별로인 탓에 작품마저도 후지게 느껴지는 기묘한 체험을 했습니다. 이 책을 읽고 실망하신 분들께서는 "탐정 피트 모란"으로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번역 때문에 별점을 주기조차 어렵네요.

"골초는 빨리 죽는다" | 이자와 모토히코

"역설의 일본사" 말고 읽어본 적은 없지만, 이런저런 상을 많이 수상했던 유명 작가의 단편.

두 명의 대화로만 전개되는 형식과 담배로 촉발된 살의라는 설정은 독특한데, 결말이 너무 심하게 별로였습니다. 반전이라고 보기도 어려운, 좀 어이없는 결말이었거든요. 별점은 2점입니다.

"먹이" | 토마스 테셔

이형 생물체가 등장하는 크리쳐 호러물. 스티븐 킹의 비슷했던 작품(한 소년의 아버지가 점액질 괴물이 된다는 이야기)와 비슷한데, 이 작품은 "애정"이 포함되어 있으며 비극적 결말이라는게 차이점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장르는 아니라서 평하기는 어렵지만 공포도 아니고 심리묘사가 뛰어난 것도 아니고 결말에서 반전이 돋보이는 것도 아닌 그냥저냥한 소품이었어요. 별점은 2점입니다.

"이콜 Y의 비극" | 노리즈키 린타로

제가 개인적으로 번역했던 작품이죠. 읽어보니 원작을 "직역"한 번역으로 읽기가 어렵더군요. 순수하게 작품만 놓고 평가하면 별점은 3점인 좋은 작품인데 안타깝네요. 솔직히 제 번역과도 별 차이가 없다고 생각됩니다.

"그녀들의 쇼핑" | 쓰쓰이 야스타카

다른 앤솔러지에서 접해본 적 있는 이색작. 생활고에 시달리는 주부들이 강도단을 조직한다는 내용입니다. 작품 자체의 수준은 그냥저냥이지만, 작가 특유의 섬뜩한 풍자 하나만큼은 인상적입니다. 특히 마지막 대사가 백미! 순수하게 작품만 놓고 평가하면 별점은 2.5점입니다.

"살의" | 다카기 아키미쓰

역시나 다른 앤솔러지에서 접했던 작품으로, 굉장한 걸작입니다. 이른바 "일사부재리" 원칙의 모순을 정면으로 다루는데, 마지막 반전까지 빼어난 단편의 모범 답안 같은 작품입니다. 별점은 5점입니다.

그러고 보니 "살의"라는 말이 들어간 작품들 ("이런거"라던가 "이런거"라던가 "이런거"라던가....)은 하나같이 괜찮네요.

"아버지" | 토마스 H. 쿡

토마스 H. 쿡의 장편은 몇 권 읽어보았지만 단편은 처음입니다. 추리물이라고 보기는 좀 어렵지만 장편 못지않은 묵직함이 잘 전해지는 묘사가 아주 좋더군요. 별점은 3점입니다.

"무대 뒤의 살인" | 에드워드 D. 호크

총 3편의 초단편 Short-Short로 이루어진 작품.

예전에 읽었던 "4페이지 미스터리"와 유사하나 추리소설로서의 완성도는 훨씬 높습니다. 3편의 이야기 모두 논리정연하면서도 예상을 뒤집는 정통 추리물이거든요.

첫번째 작품은 사진 필름 원판을 가지고 협박하는 협박자가 살해된 이야기, 두 번째 이야기는 이런저런 논리 퍼즐에서 많이 보았던, 다섯 번째 남자마다 처형당하는 상황에서 살아남는 주인공의 이야기, 마지막 이야기는 이집트 전시실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입니다.

첫번째 작품은 에스터가 범인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 대한 논리적인 설명이 돋보였어요. 특히나 1만 2500달러라는 애매한 비용과 30분이라는 시간 공백을 설명하는 게 제법이었거든요.
마지막 작품은 살인사건은 전혀 상관없는 동기 때문에 벌어진 것이라는 반전이 인상적이었고요.

결론내리자면 단편의 제왕 에드워드 D. 호크의 명성에 걸맞는 좋은 작품이었어요. 별점은 3.5점입니다.

"오번 가문의 비극" | 매슈 핍스 실

소문으로만 들어왔던 단편 미스터리 시리즈인 "프린스 자레스키" 시리즈!

그러나 별로 건질 게 없었습니다. 전형적인 안락의자 탐정인 프린스 자레스키 설정은 너무나 만화 같았고 사건도 설득력이 너무 떨어지거든요. 아버지가 광인이 된 것을 왜 숨겨야 하는지도 불분명하고 사건 현장 윗층에서 과학교실을 열고 아무에게도 도움이 안 되는 말도 안 되는 조작을 하는 것도 와닿지 않았어요. 그냥 본인이 자살하는 것이 더 빠른 해결책이었을 텐데 말이죠.

한마디로 수준 이하의 작품. 기대에 전혀 미치지 못한 것은 물론 번역까지 별로라 도저히 점수를 줄 수가 없습니다. 별점은 1점입니다.

"불도그 앤드류" | 아서 체니 트레인

터니게이트 - 애플보이 사이의 영토 분쟁에서 불도그 앤드류가 지나가던 터니게이트를 문 뒤 기소되어 법정에 선다는 법정극.

추리소설로 보기에는 좀 무리지만 유머스러운 일상계 법정극으로는 충분히 읽을 만 했습니다. 재판장의 마지막 한마디를 통해 약간의 반전이 있는 것도 인상적이고요.
번역이 조금만 더 좋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지만 마크 트웨인이 연상되는 재미있는 작품입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아내의 외출" | 자크 푸트렐

"셜록 홈스의 라이벌들"에 수록된 사고기계 시리즈 단편(이 책에 수록된 제목은 "녹색눈의 괴물"이죠). 당대 보기 드문 일상계로 가치 높은 수작입니다.

그러나 별점을 주기 민망할 정도로 번역이 너무 엉망이라서 도저히 읽을 맛이 나지 않네요. "셜록 홈즈의 라이벌들"로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A 분장실의 수수께끼" | 자크 푸트렐

역시나 "셜록 홈스의 라이벌들"에 수록된 것과 같은 사고기계 시리즈 단편. 여배우의 증발사건을 다룬 작품인데 장치적으로는 제법 괜찮은 아이디어가 선보입니다.

그러나 트릭의 핵심이 "최면술"이라는 게 문젭니다. 당시 최면술이 마법처럼 받아들여진 분위기가 반영된 결과물로 생각되는데 지금 읽기에는 너무 설득력이 떨어지니까요. 번역 역시 수준 이하였고요. 별점은 1.5점입니다.

"알리바바의 주문" | 도로시 세이어즈

피터 윔지 경 단편. 다른 앤솔러지에서 읽었던 "검은별"과 동일한 스타일의 모험극. 추리적으로 눈여겨볼 만한 부분은 거의 없는 평균 이하의 작품으로 별점은 1.5점입니다.

"오필리어 살해" | 오구리 무시타로

"흑사관 살인사건"의 오구리 무시타로가 쓴, 범죄학자이자 탐정 노리미즈 린타로가 등장하는 단편. 셰익스피어 스타일 연극 무대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을 다룬 작품입니다. 무대 장치를 이용한 기계장치 트릭에 더해 심리적 착각을 이용한 트릭이 등장하죠.

현실적이지 못한 트릭,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현학적인 전개와 묘사, 거기에 동기까지 애매하여 전체적인 완성도가 낮습니다. 정통추리물로 보기도 어려웠고요. 별점은 1.5점입니다.

"그의 마음은 찢어졌어" | 크레이그 라이스

"스위트홈 살인사건"의 크레이그 라이스가 쓴 단편. 주인공인 술꾼 찌질이 변호사 말론은 시리즈 캐릭터라고 하네요.

의뢰인인 사형수 폴 파머 자살사건의 진상을 파헤치는 내용으로, 폴 파머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 "끊어지지 않았어"를 단서로 마지막에 추리쇼까지 펼쳐 보이며 사건을 해결하는 정통파 추리물입니다.

정통파답게 추리적으로는 상당한 수준을 갖추고 있습니다. 초반부 딕슨 의사와의 대화로 병원에서 탈옥한 죄수가 있다는 단서를 전해주는 등 독자에게 공정한 정보를 제공해 주는 것도 좋았고요.

메들레인 스타가 그냥 폴 파머와 결혼하는 게 가장 쉬운 방법이었을 텐데 성공 확률이 낮은 범죄를 저지른 것에 대한 설명이 부족한 것은 옥의 티이긴 합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2024/03/24

라플라스의 마녀 - 히가시노 게이고 / 양윤옥 : 별점 1.5점

라플라스의 마녀 - 4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현대문학

<<아래 리뷰에는 진범, 진상 및 반전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거물 영화 제작자 미즈키 요시로가 아카쿠마 온천에서 황화수소에 중독되어 사망했다. 나카오카 형사는 요시로의 아내 치사토의 범행을 의심했지만, 경찰 수사 협조를 요청받은 환경 분석 화학 전문가 아오에 교수는 고의로 중독 사건을 일으키는건 불가능하다고 단언했다. 
그러나 도마테 온천에서 유사한 황화수소 중독사가 또 일어났고, 나카오카와 아오에는 피해자들이 영화 감독 아마카스 사이세이와 연관되어 있다는걸 알아냈다. 아마카스도 수년 전 가족을 황화수소 중독으로 잃었던 과거가 있었다. 
뇌수술을 받고 기적적으로 살아났으나 기억상실에 걸렸다는 아마카스의 아들 겐토를 쫓는 소녀 우하라 마도카와 만난 아오에 교수는 마도카와 그녀 주변인물들을 통해 결국 사건의 진상을 깨달았다. 이 모든건 뇌수술로 물리 현상을 예측할 수 있게 된 겐토의 복수극이었다....

"인간은 원자야. 하나하나는 범용하고 무자각으로 살아갈 뿐이라 해도 그것이 집합체가 되었을 때, 극적인 물리법칙을 실현해 내는 거라고. 이 세상에 존재 의의가 없는 개체 따위는 없어. 단 한 개도."

히가시노 게이고 작가 인생 30주년 기념작인 500페이지가 넘는 대장편. 밀리의 서재에 있길래 읽어보았습니다.
 
겐토와 마도카가 가진, 물리법칙으로 미래를 예지하는 능력은 현상에 대한 물리적인 데이터를 구비해야 한다는 전제 조건이 있다는 등으로 꽤 그럴싸하게 설명됩니다.
겐토가 저지른 범죄의 원인인 과거 아마카스가 가족을 살해했던 사건의 동기도 놀라왔습니다. 아마카스가 작성했던 블로그 글과는 사뭇 다른 가족 관계가 밝혀지는 등의 설명으로 반전이 효과적으로 그려지는 덕분입니다. 아마카스가 주장하는 천재 이론 - 대다수의 범용한 인간들은 아무런 진실도 남기지 못한 채 사라져 버린다 - 과는 반대되는 주제의식 - 이 세상에 존재 의의가 없는 개체는 없다 - 도 와 닿았고요. 암요, 천재도 중요하지만 일반 대중들이 있어야 천재도 빛을 보는 법이지요.

그러나 장점은 이 정도 뿐이고 대체로는 실망스러웠습니다. 우선, 전개부터 예상 그대로라 굉장히 평이합니다. 황화수소에 의한 살인은 온천을 방문했던 청년이 일으켰다는건 쉽게 짐작 가능합니다. 그 정체도 읽다보면 아마카스 겐토라는걸 쉽게 눈치챌 수 있고요. 전문가 아오에 교수가 불가능하다고 단언한 황화수소를 이용한 살인을 어떻게 저질렀는지도 대단한 수수께끼는 아닙니다. 마도카의 특수 능력이 초반에 밝혀지는 탓에, 그런 능력을 이용한 범죄라는건 누구나 짐작할 수 있으니까요. 오히려 상상을 초월하는 일종의 '초능력'을 활용한 범죄라는 점에서 추리 소설로 보기 어렵습니다.
히가시노 게이고 작품답지 않게 전개도 깔끔하지 못합니다. 주인공이 많아서 시점이 자주 전환되는게 가장 큰 문제입니다. 마도카 등 다른 인물들 시점으로의 전환은 필요했는지도 의문입니다. 이럴 바에야 아오에 교수, 나카오카 형사를 중심으로 끌고가는게 훨씬 좋았을 것 같아요. 나카오카 형사의 수사가 '위'에서의 지시로 마무리되지 못한다는 것도 억지스러웠고요.

뇌 수술 덕분에 미래를 예지할 수 있게 되었다는 초능력도 앞서 말씀드렸듯 설명은 잘 되어 있지만 신선함은 떨어집니다. 결국은 '머리가 좋아진 것'에 불과하거든요. 즉, 아래와 같이 '아마데우스 조'가 미사일 궤도를 흐트러트리는 것과 똑같아요.
물이 흐른다던가, 공기의 흐름을 이용한다던가 하는 식의 물리법칙 이용은 듀나의 SF 단편 "나비전쟁"에도 유사한 설정이 등장했었고요.
게다가 이 능력에 대한 것 모두는 온갖 설명이 덧붙여져 있기는 하나 결국 과학이라기보다는 판타지입니다. 여기에 특수 능력자를 나라에서 관리한다 등의 설정에 '라플라스의 마녀'라는 코드네임(?)까지 더해지니 이거야 원, X-men과 다른 점을 찾아보기 힘드네요.

등장인물들도 진부하고 평이합니다. 겐토는 특히 문제입니다. 그가 아버지 아마카스를 살해하려는 동기는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하지만 목적 달성을 위해 치사토를 유혹하여 범죄에 끌어들이고 마지막에 함께 죽여버리려고 하면서 정의, 복수를 당당하게 주장하는건 앞뒤가 맞지 않아 보였습니다. 심지어 "존재 의의가 없는 개체 따위는 없다"고 주장하는데 말이죠!
아오에 역시 불가능하다는 말만 해서 전혀 교수답지 않았을 뿐더러, 아오에가 가족 붕괴를 앞두고 있다던가 하는 설정은 불필요했습니다. 
우하라 교수가 딸 마도카의 뇌수술을 하게 된 동기인 '토네이도' 사고도 굉장히 억지스러웠어요. 설령 이런 사고가 있었다한들, 딸에게 검증되지 않은 뇌수술을 한다는게 말이나 됩니까? 겐토의 능력을 최대한 활용할 생각을 해야지....
 
이렇게 추리적으로도, SF적으로도, 전개와 완성도 측면에서 별로이며 문제 투성이라 점수를 줄 여지가 없습니다. 과학과 미스터리의 절묘한 융합이라는 광고 문구는 과대 포장에 가깝습니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히가시노 게이고가 쓴, 뻔하고 유치한 마블 히어로물입니다. 제 별점은 1.5점입니다. 

그래도 영화는 좀 궁금하네요. 예고편을보니 아오에 교수를 주인공으로 해서 복잡했던 시점 분산을 깔끔하게 정리한 듯 보여서 책보다 좋아보이거든요. 평이하고 쉬운 전개는 영화에는 분명 장점일테고, 물리법칙을 이용하는 장면들 - 특히 클라이막스의 '다운버스트' - 은 화면에서는 꽤 그럴싸하게 보일테니, 최소한 소설 후속권보다는 기대가 됩니다.

2009/06/03

몸 - 김종일 : 별점 2점

몸 - 4점
김종일 지음/황금가지

인터넷에서 평이 상당히 괜찮았던 한국작가의 호러단편집입니다. 중고서점에서 저렴한 가격덕분에 충동구매로 구입하여 읽게 되었네요. 한국 호러소설은 "분신사바" 이후 처음이군요.

"몸"에 속한 소재들을 주제로 쓴 단편집이라는 설정은 얼마전 읽었던 "인체 모형의 방" 과도 유사한데... 읽고난 감상은 솔직히 실망스러웠다! 입니다. 모든 단편이 기발한 상황전개나 반전이 있는 작품은 하나도 없이 단지 "이형異形" 이나 "컴플렉스"와 같은 불쾌한 부분에 대한 집요한 묘사로 공포심을 유발시키려고 할 뿐으로 - 예를 들자면, "눈" 은 깡패들에게 한쪽 눈을 잃은 주인공이 의안을 통해 깡패들에게 복수하고 스스로 "눈알" 이 된다는 전개. "입"은 다이어트 때문에 거식증에 걸린 여주인공 몸에 입이 돋아난다는 이야기. "귀"는 남들이 듣지 못하는 사신의 소리를 듣는다는 이야기, "몸"은 키가 작은 것에 대한 컴플렉스가 많은 남편이 PC에 빠져 살더니 결국 PC와 한몸이 된다는 내용... 식으로 - 전체적으로 비스무레하다는 인상만 줄 뿐 큰 재미를 느끼기 어려웠습니다. 자주 등장하는 스플래터, 고어 장면에서의 뻔한 동어반복적 묘사 역시 비스무레하다는 인상만 더욱 강화시킬 뿐이고요. (덧붙이자면 왜 이 책의 등장인물들 욕은 항상 "십할" 일까요???? 이거 하나 때문에 등장인물들 성격마저 똑같아 보입니다!!!)

어차피 "몸"이라는 소재에서만 통일성을 지니는 연작 단편집이라면, 앞서말한 "인체 모형의 밤" 이나 "Zoo" 처럼 꼭 괴물이 등장하거나 신비한 능력이 등장하지 않는, 일상생활에서 느낄 수 있는 공포를 전달해 줄 수 있는 "일상계" 호러물을 포함시켜 강-약을 조절하는 것이 더 나았을 것 같습니다. "손톱"을 소재로 해서 손톱을 깎다가 손톱깎기에 손가락이 잘리는 호러물라던가....^^ (농담입니다) 물론 이 책에도 일상계 호러물이라고 할 수 있는 "손" 이라는 작품이 한편 실려있기는 합니다만 아쉽게도 다른 작품들과 크게 다르게 느껴지지 않는 유사한 묘사 때문에 강약 조절에 실패하고 있습니다.

덧붙여, 작가가 스스로의 글에서 밝히고 있듯이 지나칠 정도로 "이토 준지" 스러운 스타일이라 신선함이 떨어지는 것도 큰 약점으로 보이네요. 이토 준지는 싫어해서 많이 읽지는 못했습니다만 특히 "머리카락"이라는 단편은 아무리 봐도 이토 준지 단편을 그대로 소설로 옮겨놓은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습니다. 그 외의 "이형異形" 묘사들도 대체로 유사해 보이더군요. 하지만 이토 준지의 경악스러운 기묘한 상상력은 따라가지 못한채 단편적인 묘사만 유사하다는 것이 안타까운 부분이겠죠...

그래도 컴플렉스와 일종의 정신착란? 적인 상황을 다루고 있는 "얼굴", 등산 중 조난을 당한 뒤 과거의 망령과 맞부닥친다는 "링반데룽" 정도는 괜찮았습니다. 두 작품 모두 지나칠 정도로 전개와 결말이 뻔하긴 하지만 사뭇 다른 분위기의 작품이라는것이 마음에 들었거든요. 이 두 작품처럼 작품마다 확실히 다른 이미지, 다른 전개를 보여주었더라면 좋았을텐데 아쉽네요. 아직 이 나라에서 호러 소설은 갈길이 멀구나.. 하는 생각을 다시금 갖게 하는 독서였습니다. 정치가 호러라서 사람들이 정작 호러라는 쟝르에서는 별로 공포를 느끼지 못하는 것인걸까요? 별점은 2점입니다.

2011/04/27

로빈슨 크루소 - 다니엘 디포 / 남명성 : 별점 4점

로빈슨 크루소 - 8점
다니엘 디포 지음, 남명성 옮김/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펭귄 클래식 코리아에서 출간된 완역본입니다. 50% 세일행사 때 구입한 것입니다. 충동구매였는데 로빈슨 크루소의 파란만장 표류기 자체만으로도 재미가 넘칠 뿐 아니라 나름의 교훈을 잘 전해주고 있기에 구입을 잘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현재의 삶에 만족하고 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삶이 얼마나 불행한지에 대한 이야기가 인상적이었어요. 동양적인 무송, 안빈낙도의 철학과 맥락이 같기도 하고요. 

또 두꺼운 분량에 걸맞게 옛날 아동용 책으로 보았을 때는 미처 몰랐던 사실들이 정말 많은데, 하나하나가 모두 드라마틱하다는 것도 마음에 듭니다. 로빈슨이 제법 괜찮은 중산층 자식으로 나름 훌륭한 교육을 받았지만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뱃사람이 되어 불운이 시작되었다는 것에서 시작하여, 터키의 포로가 되어 2년 간 노예 생활을 하다가 탈출에 성공한 뒤 브라질에서 농장주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그러나 본인에게는 별 의미없는 항해에 나섰다가 30여년을 살게 되는 카리브해의 무인도로 표류하게 되었다는 등 로빈슨 크루소의 인생역정이 정말로 드라마틱하게 그려지거든요.

그 외에도 프라이데이가 사실은 식인종 출신이라던가, 섬을 탈출하게 된 것은 영국배에서 일어난 선상 반란 진압을 도와주었기 때문이라던가, 이후 브라질 농장을 처분하여 거부가 되어 표류했던 섬을 스스로의 영지로 삼았다는 후일담까지 새로운 내용이 무척 많았습니다.

아울러 아동용에서는 대충 넘어간 표류 생활 자체의 디테일도 발군이더군요. 그야말로 서바이벌 전문가 급의 내공이 보이는 것도 재미의 큰 부분을 차지합니다. 물론 로빈슨 크루소가 표류한 섬은 먹을 것과 식수를 구하는데 별 어려움이 없고, 로빈슨 크루소도 난파한 배에서 이거저거 필요한 물건을 잔뜩 얻는다는 설정이 있는 탓에 베어 그릴스하고 비교하기는 어렵겠습니다만... 그래도 깨알같은 디테일은 놀라울 정도에요. 사냥, 농사, 집을 만드는 과정부터 여러가지 방법으로 의식주를 해결하는 과정이 그만큼 상세합니다. 제일 기억에 남는건 역시나 "담배파이프"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인데, 확실히 담배가 중독성이 강하긴 강한가봅니다.

그러나 쓰여진 시기가 18세기 초반인 만큼 제국주의적인 사고방식(만나는 유색인종은 모두 노예?)과 종교적 색체가 너무 짙은 것은 좀 아쉬웠습니다. 이중 종교적인 부분은 쓰여진 시기와 로빈슨 크루소에게 분명 신이 필요했던 순간이 있었던걸 감안하면 납득이 되지 않는건 아닙니다. 다만 지금 읽기에 정도가 과했던게 문제입니다. 그래도 식인종들을 하나의 인간으로 대해주며 학살하지 않으리라 결심하는 모습 등에서 약간이나마 진보적인 사고방식이 엿보인 것은 다행한 일이라 생각됩니다.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4점. 저도 혼자서 표류하듯 떠나고 싶은 요즈음이라 좀 후하게 준 것 같지만 개인적으로는 정말 읽기를 잘 한것 같아요. 왜 지금까지 이렇게나 많이 읽히는 지를 잘 알려주는 완역본입니다. 아동용 모험물로만 접하셨던 모든 성인분들께 추천합니다.

2005/11/02

강력 1반 - 요코야마 히데오 글 / 토코로 주조 그림 : 별점 3.5점

강력1반 4 - 8점
토코로 주죠 지음/학산문화사(만화)

석원님의 추천으로 보게 된 추리 만화 시리즈입니다.

몰랐는데 원작이 따로 있더군요. 원작자 요코야마 히데오는 일전에 "사라진 이틀"이라는 작품으로 접해 본 적이 있습니다. "사라진 이틀"의 경우 추리소설은 아니라 생각되었던 만큼 원작자가 이 사람인줄 모르고 구입했기에 표지만 보고 이거 또 뒤통수 맞는거 아닌가 싶었지만 의외로 정통적인 경찰 수사물이고 또한 재미까지 있어서 놀랐습니다.
현재 4권까지 발간중인데 1권은 수사 1과 1반, 2권은 2반, 3권은 3반이 각각 권마다 주역이 되어 하나의 이야기가 완결되며, 4권은 수사 1과 과장이 1,2,3반을 통솔하며 3건의 다른 사건을 해결하는 내용으로 하나의 싸이클을 완성하고 있습니다. 다른 만화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상당히 독특한 방식으로, 매 권마다 저마다 특색있는 반원들과 캐릭터성이 강한 반장을 주인공으로 이야기 중심이 이동함으로써  흥미와 재미를 배가시킵니다.
경찰들이 주역으로 등장하는 무게감있는 수사물은 만화에서도 엄청나게 많았지만 보아온 바에 따르면 대체로 주인공의 활약에 기댄 액션 영웅물에 다름아닌 작품들이 태반이었죠. 하지만 이 작품은 수사과정 전개의 대부분을 용의자 취조에 할애하는 등 나름대로 현실감을 잘 살린 설득력있는 전개, 그리고 바스트샷을 위주로 하는 담담하면서도 리얼하지만 조용한 그림 등으로 그러한 한계를 극복하면서도 "웃지않는" 야스마사 반장이나 공안 출신의 냉정한 2반 반장 마사미 같은 만화적인 캐릭터도 스토리에 잘 조합시켜 독특하면서도 성공적인 정통 추리-수사 만화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통 추리물로 보기에는 어설픈 면도 많이 눈에 띕니다. 특히 1권같은 경우에는 트릭이 좀 난데없고 진상을 파악하는 경위도 납득하기 어렵더군요. 그래도 2권 이후부터는 트릭이나 전개, 설정 모두 상당한 수준을 보여줘서 추리 매니아로서도 만족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3권의 이야기가 추리적으로나 이야기의 완성도로나 제일 좋았다 생각되네요. (물론 저는 1반 반장인 "파란귀신" 야스마사가 제일 마음에 들어서 1권도 좋아하긴 합니다만...)

어쨌건 구입하고 후딱 읽어버린 재미난 작품이었습니다. 간만에 기대되는 추리-수사 만화를 하나 발견한 것 같아 기분이 무척 좋네요. 4권 이후가 빨리 나왔으면 합니다. 추천해 주신 석원님께도 감사드립니다.^^

2024/05/18

무너진 세상에서 - 데니스 루헤인 / 조영학 : 별점 3점

무너진 세상에서 - 6점
데니스 루헤인 지음, 조영학 옮김/황금가지

"리브 바이 나이트"로부터 10여년 뒤, 조는 탬파 일대에서 성공한 사업가로 이름을 날렸지만 여전히 조직 최상위 멤버였다. 그런데 누군가 그의 목숨을 노리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살아남기 위해 전전긍긍했다. 그러나 조를 노렸던건 거짓말로 모든건 조직을 송두리째 집어 삼키려고 했던 부하 리코의 음모였다. 리코는 소문을 통해 조를 조직 거점에서 떼어놓고, 보스 디온을 습격해 죽이려했다. 마지막 순간에 음모를 깨달은 조는 보스 디온을 구해내고, 위원회를 통해 리코마저도 없애버렸지만 디온이 조직원들을 FBI에 팔아먹고 있었던 사실을 알아채서 디온을 죽일 수 밖에 없었고, 결국 그 자신도 위원회에 의해 살해당하고 말았다....

"리브 바이 나이트"의 마지막 장면으로부터 10여년 뒤, 표면적으로는 합법적인 사업가로 보이지만 조직의 위원회에서 활동하는 거물이 된 조가 누군가로부터 생명의 위협을 받는다는걸 알게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그리고 약 한 달(?) 남짓 기간 동안 조는 자신을 죽이려는 음모를 파헤치며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치다가 결국 죽고 마는데, 깔끔하고 명확한 서사 덕분에 빚어진 장점은 명확합니다. 누가 조의 목숨을 노리는지? 조직의 배신자는 누구인지?의 수수께끼를 서로 죽고 죽이는 조직의 암투와 함께 긴장감있으면서도 '빠른(!)' 속도로 펼쳐주기 때문입니다. 암흑가 조직원이 정점에서 신뢰따위는 없는 지옥 구렁텅이로 떨어지면서 믿었던 친구에 자기 생명까지 모두 잃는 결말도 일품이었고요. 깡패가 성공하는 이야기는 필요없습니다. 조폭을 미화하는 작품들은 모두 불에 태워버려야 마땅해요!
또 "리브 바이 나이트"보다는 조의 두뇌를 이용한 활약이 많은 것도 장점이에요. 그 중에서도 '두뇌'를 써서 리코를 옭아매는건 무릎을 칠 만 했습니다. 죽어가는 디온과 함께 탈출하려면 한 시가 급한 상황에서 '위조 전문가'를 수배했는데, 그건 리코의 장부를 위조하기 위해서였던 것이었지요. 위원회와의 담판에서 위조 장부를 이용하여 리코를 없애는데 성공하고요. 과연 '두뇌파'라 부를만한 멋진 계획이었습니다.

등장인물들의 서사를 별도로 쌓아올리면서 이런저런 곁가지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도 많지는 않지만 볼 만 했습니다. 조직의 의사 네드의 아내와 장인 관련 이야기가 대표적으로 그냥 이거 하나만으로도 단편 한 편은 뚝딱 나오지 않을까 싶더라고요. 흑인 지역의 보수 먼투스 딕스에 관련된 이야기들도 좋았고요. 프레디 패거리로부터 살아남는 장면도 멋드러지지만, 남자 대 남자로서 조와 면담을 나눈 뒤 이왕이면 개죽음을 당하기 전에 경쟁자를 쓸어버리려고 완전무장한채 출격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사나이' 기운을 뿜어내거든요. 이런 멋진 사나이가 배신자 리코따위에게 폭탄으로 죽어버린다는 것, 그리고 그 설명이 리코의 몇 마디에 그친다는게 너무나 아쉬울 정도로요. 먼투스 딕스가 주인공인 외전이 나와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리브 바이 나이트"와는 다르게, 이 책 한 권만으로 충분히 완결이 된다는 점도 분명한 장점입니다. 다만 "리브 바이 나이트"를 읽지 않고 이 작품만 읽어보라고 권해 드리기 어렵긴 합니다. 디온과 조의 관계와 조가 성공한 이유, 작중 자주 언급되는 '학살의 밤' 등은 모두 "리브 바이 나이트"를 읽지 않으면 알기 어려운 부분이기 때문입니다.즉, 두 권을 합쳐서 읽어야 온전한 감상이 가능합니다. 그렇기에 이 한 권으로 완성된 작품이라고 보기는 어려워요.
아울러 워낙 짧은 기간 동안 벌어지는 이야기라서 "리브 바이 나이트"만큼의 드라마도 없다는 단점도 있고요.

그래도 단순명쾌한 범죄물로서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수작임에는 분명합니다. 제 별점은 3점입니다. "리브 바이 나이트"와 합쳐서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2012/05/29

완전연애 - 마키 사쓰지 / 김선영 : 별점 2.5점

완전연애 - 6점
마키 사쓰지 지음, 김선영 옮김/문학동네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국내에는 처음 소개되는 작가 마키 사쓰지의 작품으로 (굉장히 낯선 작가인데 꽤나 평이 좋아서 읽게 되었네요. 프로필을 보니 오랜 경력을 지닌 작가라서 좀 놀랐습니다) 일본 서양화의 거장 나기라 다다스 화백, 본명 혼조 기와무를 주인공으로 하여 2차대전 직후, 쇼와 43년(1968), 쇼와 61년(1986) 세 건의 사건을 펼쳐 그리는 대하 장편 추리 연애 드라마입니다. 크게 연애물과 추리물, 두 가지로 읽힐 수 있는 작품이죠.

먼저 연애물 속성부터 살펴보지요. 사랑에 절대적으로 복종하여 사건을 저지르고, 복수한다는 설정의 작품은 널리고 널렸습니다. 그러나 혼조의 사랑은 약 칠십여 년에 걸친 그의 일생과 함께 다루어질 정도로 장대하기 때문에 스케일 면에서는 가히 독보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설득력 부분에서 별로 와닿지 않아서 좋다고만은 말할 수 없어도, 최소한 유사 작품들과 차별화는 됩니다. 그리고 제가 연애 소설을 많이 읽은 건 아니지만 딱 한 번의 관계,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과 또 다른 주변인의 존재 등은 "노르웨이의 숲" 느낌도 전해주는 등 연애물로서는 제법 괜찮은 수준이 아닌가 싶었어요.
마지막의 반전도 괜찮았습니다. 어떤 식으로든 마스코가 등장할 것은 예상했지만 KIWAMU => MIWAKU라는 애너그램을 이용한 이름이라는 장치가 꽤 그럴싸했고, 혼조 임종 시의 마지막 말과 그에 얽힌 마스코의 상념은 사람을 울컥하게 만들거든요.

그러나 문제는 결국 진상이 혼조 혼자만의 착각으로 한 여자만 바라본 것이라는 허무한 결말입니다. 이거 참... 무려 세 건의 범죄가 얽힌 한 대화백의 일대기가 고작 장대한 짝사랑 이야기라니 뭐라 할 말이  없네요. 도모네의 밀당에 넘어간 희생자로 보이기도 하는데 과연 여자가 제일 무서운 것 같습니다.

또 낡아 보이는 여러 장치들이 좀 거슬리더군요. 평생 단 한 번 가진 하룻밤 관계로 아이가 덜컥 생겼다는 설정이 대표적이겠죠. 무슨 정자왕도 아니고.... 그 외에 "로미오와 줄리엣"을 연상케 하는 관계 설정도 진부했고요.

추리적 속성도 첫 번째 사건은 혼조 기와무의 시선이라서 사건과 동시에 진상이 밝혀지지만, 이후 두 건은 혼조의 제자 미와쿠의 시선이라 마지막 부분에서 진상이 밝혀지는 독특한 전개 방식은 매력적입니다. 첫 번째 사건의 경우, 식칼로 첫 번째 상처를 위장한다는 트릭과 대나무 조릿대 등의 디테일한 소품 및 미 군정 당시 시대 상황, 피해자의 도착증적인 성벽에 대한 증언과 같은 여러 가지 요소가 잘 맞물리는게 굉장히 좋았고요. 이 사건 하나만큼은 별 네 개가 충분하다 생각될 정도로 말이죠. 

그러나 극한의 밀실이라는 두 번째 사건, 순간이동 알리바이 트릭이 사용된 세 번째 사건은 솔직히 기대 이하였습니다. 두 번째 사건은 진상을 너무 쉽게 눈치챌 수 있습니다. 제가 추리 애호가로 쌓아온 나름의 덕력도 있겠지만, 트릭이 너무 쉽고 의외성이 별로 없어요. 시공을 초월한 단도에 의한 살인과 발자국 하나 없는 밀실이라는 만화 같은 상황 자체가 자살을 반증하는 요소잖아요? 솔직히 경찰 수사를 통해 진상이 밝혀지지 않은 게 더 의외입니다. 별명에 대한 진상 등 디테일한 부분의 장치가 몇 개 눈에 뜨이기는 하나 딱히 특출난 수준도 아니고요.

세 번째 사건은 범인의 오랜 고민과 노력이 투입된 나름 거대한 장치가 사용되었고, 해결에는 여러 관계자 - 미와쿠, 오세키에다가 탐정 마키 사쓰지까지 - 머리를 맞대는 노력이 필요했다는 점에서 가장 공을 들인 트릭이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동기부터 문제입니다. 외도로 아이를 낳았는데, 그 사실을 진짜 남편이 깨달았다고 살의를 품는다는 게 말이 되나요?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게다가 트릭을 만들기 위한 억지도 지나쳤습니다. 용의가 갈 수 없는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모습을 드러내어 피해자를 유인한다는 발상, 알리바이 트릭을 위해 샴쌍둥이까지 등장시킨 설정은 어이를 상실케 했거든요. "쌍둥이를 등장시키면 안 된다"라는 녹스의 규칙을 딱히 예로 들지 않더라도, 집 가정부에게 증언을 시키기 위한 트릭에 들인 공치고는 너무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공정성도 떨어져서, 어렸을 적 자는 모습에 대한 술회라든가 가슴의 상처에 대한 이야기는 독자가 정보를 얻어내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장치였어요. 게다가 3억 엔 사건까지 녹여내려 한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수였습니다.

그래도 혼조라는 인물의 일편단심, 변치 않는 애정을 그리는 장대한 드라마가 당시 일본의 사회상과 얽혀 현실적으로, 그리고 지루하지 않게 그려져 사백여 페이지가 넘어가는 대장편임에도 쉽게 읽히는건 분명합니다. 여러 호평에는 수긍이 가네요. "회귀천 정사"처럼 첫 번째 사건까지만 잘 정리된 중편이었다면 훨씬 좋았겠지만, 현재의 모습으로도 드라마와 추리 모두 평작 수준은 충분히 됩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어딘가 긴 여행을 떠나실 때 적절한 선택이 될 것 같습니다.

2021/12/05

커피점 탈레랑의 사건 수첩 2 - 오카자키 다쿠마 / 양윤옥 : 별점 2.5점

커피점 탈레랑의 사건 수첩 2 - 6점
오카자키 다쿠마 지음, 양윤옥 옮김/㈜소미미디어

이번 권은 미호시의 여동생 미소라가 등장합니다. 그녀도 함께 이런저런 소소한 일상 속 수수께끼들을 풀어내지만, 미소라가 아버지를 찾으려다가 유괴당하는 대사건이 벌어지고 맙니다. 다행히 모든건 잘 수습되고, 아오야마와 미호시의 관계도 한 걸음 더 나아간 느낌을 주며 마무리되지요.

전편과 마찬가지로, 일상계 수수께끼들은 대체로 괜찮았는데, 전체를 관통하는 이야기는 별로였습니다. 유괴는 차원이 다른 중범죄라서 작품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되지도 않았고요. 전체 평균한 별점은 2.5점입니다. 하지만 확 땡기는 맛이 없어서, 후속권을 더 읽을 것 같지는 않네요.

수록 에피소드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제1장 안녕, 미래 님?" 

한 여성이 남자친구가 오사카까지 가는 차표를 사지 못했을 거라는 말을 듣고, 그 진상을 추리하는 내용입니다. 

남자친구가 오사카로 간 게 아니라, 교토에 머물렀을 거라는 미호시의 추리는 그럴듯합니다. 하지만 프로포즈를 했을거라는 추리는 비약이 심했습니다. 단순하게 오사카에 있던 직장을 교토로 옮겼을 수도 있으니까요. 프로포즈임을 확신하려면 다른 단서가 필요했습니다. '여자친구가 외로움을 심하게 타는 성격이다' 정도로는 영 부족했어요.

그래도 이 정도면 일상계로는 괜찮았습니다. 일상 속 수수께끼에 꼭 정답이 있어야 하는건 아니니까요. 별점은 2.5점입니다.

"제2장 여우의 둔갑 바캉스" 

미호시의 동생 미소라가 교토로 찾아왔다. 그러나 그녀 혼자 오야마 순례를 다녀온 후, 보여 준 기념 사진은 기묘했다. 기념 사진에 함께 찍혀있던 중학생은 같은 시간에, 시내에서 식사 중이었던 미호시와 아오야마 앞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미소라의 오야마 순례는 그날이 아니라 전날이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스쳐지나간 중학생 얼굴을 그렇게 잘 기억할 수 있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 외의 부분은 모두 좋았습니다. 단순한 진상 덕분에 이야기는 깔끔했고, '미소라 옷의 향기'라는 단서로 이를 드러내는 전개도 마음에 들었거든요. 더운 날, 순례 코스를 돌고 왔는데 땀 냄새가 나지 않았다는건, 그녀가 다른 곳에 갔다 왔다는 증거로 충분하지요. 함께 소개되는 미호시의 가족에 대한 이야기, 미호시와 아오야마가 이성 친구인지 아닌지 등의 이야기도 재미있었습니다. 미호시와는 정 반대인 미소라 캐릭터도 매력적이었고요. 오야마 순례, 긴가쿠지 등 교토 명승지 순례가 등장한다는 점에서 여정 미스터리 느낌을 전해주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기서부터 뭔가 대단한 수수께끼인듯, 미소라와 누군가의 만남에 대한 이야기가 마지막에 등장하는데, 여러모로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친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라는건 쉽게 짐작할 수 있었거든요. 이렇게 감질나게 등장시켜가며, 또 주인공을 숨겨가며 조금씩 드러낼 필요는 없었습니다.

그래도 본편만큼은 교토의 매력과 적절한 수수께끼가 조합된, 좋은 일상계 추리물이었습니다.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제3장 유백색 하트를 망가뜨리다." 

미호시는 모카와 씨가 데려온, 라테아트를 배우고 싶다는 여고생 진바 하나양에게 1주일동안 라테아트를 가르쳐 주었다. 하지만 열심히 연습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는 누군가 그녀가 만들었던 하트 라테아트를 망가뜨려서 조리부 발표회를 망쳤다며 울고 마는데...

하나 양이 사실은 악역이었기 때문에, 요코가 하트를 망치는 장면을 목격했던 다른 조리부 친구들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는 발상이 좋았던 작품입니다. 아울러 이를 통해 발표회를 촬영하던 카메라에 그 장면이 찍히지 않은 수수께기도 설명됩니다. 망칠 때 잠깐 녹화를 정지시킨 것도 마찬가지로 입을 다문 것이지요. 또 조리부 부원들을 무시하는 듯한 하나의 평사시 말투를 근거로, 겉모습과는 다르게 친구들의 반감을 사곤 했을거라는걸 추리도 좋았습니다.

하지만 라테아트로 잎사귀 하트, 고양이를 그리려고 했던 건, 하나가 좋아하던 남학생 고야네와 사귀게 된 조리부 친구 요코를 비난하기 위해서였다는건 읽으면서 대충 짐작이 갔더군요. 이름에서 따온 단서들이니 일본인이었다면 훨씬 쉽게 진상을 눈치챌 수 있었을 거에요. 물론 쉬운 단서(?)가 큰 단점이 된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그야말로 일상계의 왕도다운 느낌이 마음에 드네요. 제 별점은 3점입니다.

"제4장 커피 탐정 레일라의 사건 수첩" 

미소라의 휴일, 아오야마와 미호시는 미소라가 두고 간 오래전 추리 소설 "커피 탐정 레일라의 사건 수첩"을 읽고 내용에 대해 토론을 벌였다. 그 뒤 미호시는 모카와 씨와 교토 카페에 대해 인터뷰를 진행하고 돌아가려는 프리라이터에게, 그가 "레일라의 사건 수첩"을 쓴 카지마 후미에일 거라고 말했다...

이야기 속에서 추리 소설 "커피 탐정 레일라의 사건 수첩" 이야기도 펼쳐지는, 일종의 액자 소설 형식을 갖춘 작품. "커피 탐정 레일라의 사건 수첩"은 무척 마음에 들었습니다. 커피통에 로스팅한 원두를 가득 담아 두었는데, 정작 판매하는 원두는 로스팅부터 새로 했다던가, 막 갈아낸 원두가루를 봉투에 넣고 밀봉해 버렸다는 것처럼 소설 속 커피점이 벌인 이상했던 행동들을 통해,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는걸 추리해내기 때문입니다. 로스팅 직후 원두가루는 탄산 가스를 방출하며, 가루는 표면적이 불어나 대량의 가스가 빠져나오므로 봉투를 밀봉하면 터질 위험이 있다는데, 이거야말로 제목에 부합하는, 커피 전문가만 알 수 있는 추리라 할 수 있지요! 커피통 속에 시체가 있었고, 커피 봉투에 구멍을 뚫는 송곳이 흉기로 사용되었다는 진상도 합리적이었고요.

본편 에피소드도 좋았습니다. 프리라이터가 카페에 대해 글을 쓰고 있던건 아니라는걸 '제즈베'라는 도구를 통해 확실히 밝혀내는 장면이 특히 인상적이었어요. 미호시와 아오야마 등은 '제즈베'를 모두 터키식 커피를 우려내는 도구 이브라크의 또 다른 이름이라고 생각했지만, 프리라이터는 재즈 베이스로 착각했던 탓에 정체가 드러나게 되었지요. 미호시는 직전에 터키식 커피에 대해 취재했던 프리라이터라면 모를리가 없었을 거라고 말합니다. 이 장면은 약간 추리쇼같은 느낌도 주더라고요. 프리라이터의 이름인 후카미 에이지에서 그가 "커피 탐정" 시리즈 작가 카지마 후미에라는걸 드러내는 것도 나쁘지 않아요. 아주 간단한 애너그램이지만, 본명과 필명을 오가기에 이만큼 효과적인 방법은 없으니까요.

에피소드가 끝난 뒤, 그가 미소라의 친부일지도 모른다는 정보를 살짝 흘리며 2권 전체를 아우르는 큰 이야기 시작을 알리는 에피소드이기도 합니다. 이 부분은 작품과 잘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되기는 했지만 에피소드가 마무리 된 이후 등장하는 사족이었고, 본편은 물론 "커피 탐정" 이야기도 추리적으로는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기에, 무엇보다도 '커피'에 대한 여러가지 정보가 핵심 증거로 쓰였다는 점에서 이번 권의 베스트 에피소드로 꼽겠습니다. 별점은 3.5점입니다.

"제5장 (she Wanted To Be) WANTED" 

미소라의 밴드 후배 무라지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사귀다 헤어졌던 여학생 만다 린과 연락이 되지 않는다는 걱정 전화였다. 그녀는 예대 진학을 계기로 가족과도 멀어졌고, 생활고 탓에 별다른 친구도 없었다. 무라지와 함께 찾아간 그녀 자취방에서 자살 명소 도진보를 체크해 놓은 잡지를 발견한 둘은 서둘러 신칸센을 타고 도진보가 있는 야와로 온천 역으로 향했다...

미소라의 후배 린을 찾는 소동에서 있었던 수수께끼, 여행을 떠나며 자취방 문을 잠갔는데 미소라가 무라지와 함께 찾아갔을 때 문이 열려 있었던 이유가 무엇인지?를 풀어내는 에피소드. 유일한 여벌 열쇠는 고베에 살고 있는 린의 어머니만 가지고 있었다는 설정입니다. 무라지가 다른 여벌 열쇠로 미리 침입했던 거라는 아오야마의 추리는 무라지가 린의 행방을 전혀 몰랐고, 미소라와 함께 자취방을 찾을 때 까지 너무나 태평했었다는 이유로 부정당합니다. 무라지가 몇 만엔이나 되는 여행 비용을 마련할 길이 없어서 미소라 돈으로 비용을 마련하려고 꼼수를 썼을 가능성도 있었지만, 이미 린의 실종 사실을 알고 있었던만큼 그렇게 태평하게 있을 수는 없었으니까요.

진상은 사이가 나빴다는 어머니가 고베에서 자가용으로 밤새 운전해서 린의 집을 찾았던 겁니다. 아무리 사이가 나빠도 부모는 부모라는 이야기거지요. 어머니가 자신을 찾기를 린이 원했다는 여러가지 단서들도 잘 배치되어 있는 편입니다. 책갈피 대신 책장 귀퉁이를 접어 놓는걸 개의 귀에 빗대서 '도그이어'라고 한다는 정보도 귀엽고 반가왔고요.

그러나 독립된 이야기라기 보다는, 부모 자식 관계에 대한 에피소드를 통해 2권 전체를 아우르는 소재인 자매의 아버지를 드러내는, 일종의 징검다리 역할 수행이 더 중요했던 소품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이야기보다도, 뒤에 이어지는 이야기가 더 중요하거든요. 미소라가 '아버지'라고 생각했던 사람을 미호시와 만나게 하려다 위험에 빠지는 내용이 이어지니까요. 뭔가 주객이 전도된 느낌이에요. 별점은 2.5점입니다.

"제6장 the Sky Occluded in the Sun" 

미소라를 납치한 누군가가 협박 전화를 걸어왔다. 경찰에 신고하지 말고 천만엔을 준비하라고 요구했지만, 미호시는 그가 작가 카지마 후미에라는걸 바로 알아채고, 아오야마에게 경찰 신고를 부탁했다. 그런데 아오야마의 폰에는 미소라로부터 문자 메시지가 전송되어 있었다. 빨간색 태양 문자를 통해 레코딩, 녹음, '로쿠온'을 떠올린 둘은 미소라가 긴카쿠지 근처에 있다는걸 밝혀냈다. 처음 미소라를 만났을 때, 아오야마가 미소라에게 긴카쿠지의 정식 명칭이 '로쿠온지'라고 말해주었기 때문이었다...

이번 권의 핵심인 미소라 유괴 사건을 그리고 있는데, 앞서 말씀드렸지만 영 별로였습니다. 추리적으로 특히나 볼게 없어요. 우선 문자 메시지를 통한 약간의 암호 트릭은 억지스럽습니다. 태양에서 로쿠온까지 이어지는 과정이 그리 설득력 높다고 하기 어려운 탓입니다. 그냥 빨간색 동그라미를 보냈다는게 훨씬 설득력이 높았을겁니다. 

이 암호 트릭을 제외하면 전형적인 유괴극으로, 후카미가 몸값을 안전히 전달받고 탈주하려는 나름대로 공들인 계획이 중요하게 묘사되지만 이 부분의 설득력도 낮습니다. 달리는 차에서 돈가방을 던지게 한 뒤 회수하여 탈주한다는건 정교한 계획이라고 부르기 힘드니까요. 경찰에 신고했다면, 돈을 던진 장소 중심으로 차도만 봉쇄해도 교토 시내를 빠져나가는건 불가능했을테지요.

한마디로 스케일과 극적 요소에 비하면 그리 잘 된 이야기는 아니었습니다. 물에 빠져 죽었다는 자매 아버지의 죽음도 작위적으로 보여서 별로 와 닿지 않았어요. 별점은 1.5점입니다.

"제7장 별밤 하늘 밑에서 목숨을 잇다" 

자매 아버지와 가족에 대한 이야기, 자매 아버지 죽음의 계기가 되었던 물에 빠졌던 아이가 누구인지? 왜 미소라가 카지마를 아버지로 착각했는지? 그리고 미소라와 미호시가 쌍둥이였다는게 밝혀지는 약간의 서술 트릭스러운 사실이 밝혀지는 일종의 사건 후일담. 미호시가 아오야마와 미소라의 관계에 대해 오해하는 부분은 귀여웠습니다만 독립된 에피소드라고 보기는 힘드네요. 별점은 딱히 없습니다.

"에필로그 그녀는 카페오레 꿈을 꾼다" 

미소라가 고향으로 돌아가고, 체포된 후카미가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해 설명되는 진짜진짜 에필로그. 6장, 7장과 결합되어 하나의 이야기로 보아야 하기 때문에 따로 별점을 주지는 않겠습니다.

2015/08/05

알라딘 특별기획 한국 공포 문학의 밤 : 별점 2점

[알라딘 특별기획] 한국 공포 문학의 밤 - 4점 김종일.이종호.신진오.우명희.장은호.유재중.최경빈.백상준.황태환.김민수 지음/알라딘 이벤트

알라딘의 여름맞이 이벤트를 통해 무료 e-book으로 읽게 된 한국 공포문학 단편 앤솔러지. 총 10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이종호, 신진오, 김종일 등 최근 한국 공포문학에서는 가장 유명하다 할 작가들이 포진되어 있어 제법 기대가 컸습니다.

그런데 여러모로 실망스럽기만 하네요. 별로 무섭지 않은 탓이 큽니다. 또 어디선가 본 설정이 많다는 것도 문제고요. 게다가 몇몇 작품은 호러, 공포문학도 아닐 뿐더러 작품 자체의 완성도도 그닥 높아 보이지 않았어요.

결론 내리자면, 전체 평균 별점은 2점입니다. 아직 한국 장르 문학의 갈 길이 참으로 멀구나... 싶은 생각이 강하게 드는군요.

얼마 전 읽었던 하드론의 "기지 살인사건"은 아주 좋았는데, 작가의 유명세에 기대지 말고 이런 언더그라운드 작품을 발굴하여 소개하는 게 더 좋지 않았을까 생각되기도 합니다.

작품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아내의 남자" - 이종호

한국 공포문학계에서는 슈퍼스타라 할 수 있는 이종호 작가의 작품으로, 한 남자가 아내의 불륜을 확신하고 아내를 살해하는 과정을 디테일하게 그립니다. 

그런데 기대에는 전혀 미치지 못했습니다. 일단 "다중인격", "해리성 인격 장애" 라는 설정이 너무 뻔합니다. 일종의 서술트릭 같은 효과를 노린 것인지는 모르지만, 다중인격을 숨기기 위한 작위적인 전개도 거슬렸고요. 특히나 이런 정신병자와 같이 사는 아내는 도저히 이해불가였습니다. 상식적으로는 정신병원에 보내는 게 당연할 텐데 말이죠.

이러한 이유로 좋은 점수는 주기 힘듭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압박" - 신진오

사지마비 환자가 어느 날 밤부터 굉음소리와 함께 방이 점점 좁아진다는 것을 깨닫는다는 내용.

신진오 작가는 얼마 전 영화화된 "무녀굴"의 원작자죠. 작품은 읽어본 적이 없었지만 나름 기대가 컸습니다. 시작 부분은 제법 괜찮아서 기대에 값했고요. 무엇보다도 설정이 좋은데, "사지마비 환자"인 주인공의 상황이 이야기에 딱 맞아 떨어져 공포를 선사해 주기 때문입니다. 몸이 움직이지 않는데 방이 좁아진다! 이거 참 두근두근한 설정이죠.

그러나 좋았던 것은 도입부 뿐이었습니다. 작품은 실망스럽기 그지 없습니다. 뜬금없이 끝나는 결말은 그 중에서도 최악이고요. 사지마비 환자에게 마약 성분의 약을 먹여 환각을 유발시키고, 죽음의 공포를 느끼게 만드는 실험을 했다는건데, 왜 그러한 실험을 하는지에 대한 목적, 이유는 하나도 설명되지 않는 탓입니다. 차라리 방이 살아 있었다는 스티븐 킹의 "1408" 같은 크리쳐 호러가 낫지 않았을까 싶군요.

도입부 설정 외에는 건질 게 없는 작품으로 별점은 1.5점입니다.

"담쟁이 집" - 우명희

귀신들린 마을 외곽 담쟁이 집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기이한 일들과 공포를 여자아이 시점에서 그린 작품.

아이의 머리가 계단을 때리는 장면의 묘사라던가, "넌 내가 아직 네 엄마로 보이니"와 같은 오래된 괴담의 변주 등 볼거리가 없는 것은 아닌데 딱히 특출난 점은 없습니다. 딸에게 친구를 만들어 주기 위해 또래 꼬마아이들을 살해한게 어디까지 현실이고, 어디까지 귀신의 행위인지가 제대로 밝혀지지 않고 애매하게 끝난 것도 그닥 마음에 들지 않고요.

그래서 별점은 2점. 그냥저냥 읽을 만 했다 정도입니다.

"첫 출근" - 장은호

영문도 모른 채 전화로 걸려오는 지시만 전달하는 업무를 하는 주인공의 이야기.

일단, 이 작품은 절대로 호러, 공포문학은 아닙니다. 오히려 SF라고 할 수 있죠. 그러나 거대 조직 사회의 톱니바퀴로 인간이 전락한다는 것과 이 조직 사회를 바꾸려 하거나 탈출하려 하는 주인공의 이야기는 쎄고 쎘는데, 그러한 유사 작품들 대비 단 하나라도 뛰어난 점이나 차이점을 찾기 어렵습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덧붙이자면, 주인공이 속한 사회가 어디며,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전혀 알려주지 않는 것도 불만이에요. 단지 자신이 하는 일에 의문을 가진 주인공에게 위기가 닥치는 내용이 전부일 뿐인데, 이래서야 남에게 보여줄 이야기라고 하기는 어렵죠. 독자에게 자신이 만든 세계관에 대해 설득시키고 공감하게 만드는 최소한의 노력이 아쉽습니다.

"놋쇠황소" - 김종일

오랫만에 만난 고교 동창에게 과거 그에게 당한 학대를 상기시키는 주인공의 이야기.

한국 공포문학계의 또다른 스타 김종일 작가의 작품. 왕따, 학대 피해자가 복수를 한다는 설정의 작품은 하늘의 별만큼이나 많을 거에요. 어떻게 차별화해서 이야기를 재미있게 만드는지가 관건인데, 유감스럽게도 그닥 성공한 것 같지 않군요. 복수의 이유가 공감가지 않고 복수 역시 어설픈 탓이지요.

특히나 주인공 병구가 자신의 첫사랑 희정이를 박규완에게 빼앗긴 건 본인이 "좃밥"이기 때문인데, 박규완에게 복수심을 품는 건 정말이지 이해하기 어려웠어요. 강제로 성폭행 한 것도 아니고 엄연히 둘이 사귀다가 헤어진 것인데 그걸 가지고 제 3자가 뭘 어쩐다는 게 웃길 뿐이죠. 이러한 과거 이야기를 박규완의 가족에게 들려준다는 복수 역시 그다지 와 닿지 않았고요.

읽는 맛은 충분하나 딱히 무섭지도 않은 평이한 이야기라 별점은 2점입니다.

"돼지가면 놀이" - 유재중

유산을 물려준다는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6.25 직후 한 산골마을에서 벌어진 공포의 사건 이야기.

시골의 커뮤니티에 살게 된 외지인이 사실은 사악한 존재였다는 것은 역시나 뻔한 설정이죠. 그런데 "돼지가면 놀이"와 돼지가면을 쓴 인물의 카리스마, 사라진 형제가 손, 발이 잘려 인간 돼지가 되어있다는 등 ("바이올런스 잭"?) 디테일한 묘사가 압도적이라 충분한 공포를 선사해 줍니다. 마지막 결말도 서늘하고요.

단연코 "공포 문학" 이라는 측면에서는 이 앤솔러지 최고의 작품이에요. 별점은 4점입니다. 이 작품 하나만으로도 읽은 보람이 느껴집니다. 모든 분들께 강력 추천드립니다.

"10개월" - 최경빈

여자들이 급작스럽게 남자로 변하게 된 세상을 그린 작품.

공포문학도 아닐 뿐더러 영화 "칠드런 오브 맨"의 변주에 불과한 설정에, 특별할 것도 없는 여러가지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아 지루했습니다. 인류가 멸망할 상황인데, 여자가 남자가 됨으로 벌어지는 성생활 문제에만 집중한 것은 현명한 선택이 아니었고요. 별점은 1.5점입니다.

"섬" - 백상준

좀비물. 한국이 무대이긴 한데 다른 흔한 좀비물과 비교해도 딱히 특별한 건 없었습니다. 게다가 주인공이 마지막에 폭주해서 아파트와 함께 자폭한다는 결말은 완전 뜬금없었어요. 몇몇 한국적 설정이 잔재미를 주기는 하지만 그냥저냥한 평작이랄까, 별점은 2점입니다.

그런데 항상 궁금했던 게 좀비는 대체 어떻게 성립하는 거죠? 사람을 잡아먹기 위해 습격한다면, 어느 정도 수가 된 좀비가 사람을 덮치면 남아나는 게 별로 없을 테네 좀비가 더 증가하지 않을 테고, 그러면 결국 자연도태될 텐데 말이죠. 참으로 궁금합니다.

"옥상으로 가는 길" - 황태환

좀비로 고립된 집단의 생명줄은 옥상으로 전달되는 보급품. 이것을 가져올 수 있는 것은 왜소증 환자인 주인공뿐이라는 이야기.

왜소증 환자 주인공이 집단 내 다른 사람들과 갈등을 빚는 게 작품의 핵심입니다. 그런데 주인공의 심리가 너무 변화무쌍해서 별로였어요. 어떨때는 착하고 순진한데, 어떨때는 굉장히 잔인해져서 캐릭터가 제대로 정립되지 않은 느낌이 들거든요. 자신의 경쟁자가 된 초등학생을 처단한다는 결말은 나쁘지는 않았지만 역시나 감정 변화가 너무 급작스럽다 싶었고 말이죠. 아울러 마지막 장면, 주인공이 좀비가 되어 버린다는 결말은 굉장히 안이하고 뻔했기에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네요. 별점은 1.5점입니다.

"엘리베이터 액션" - 김민수

식량을 찾기 위해 마트로 왔다가 좀비들에게 둘러싸인 주인공의 사투를 그린 작품.

설정과 내용은 뻔하지만 영화를 보는 듯한 묘사가 아주 생생한 작품. 불필요한 묘사는 전부 배제하고 화끈한 주인공의 생존을 위한 모험에 집중한 작가의 선택이 탁월했어요. 호러라기 보다는 모험 소설 같은 느낌으로 덕분에 읽는 내내 몰입해서 읽을 수 있었습니다. 간간히 보이는 유머러스한 요소들도 볼거리였고요. 별점은 3점입니다.

2009/06/09

나폴리 특급 살인 - 랜달 개릿 / 김상훈 : 별점 4점

나폴리 특급 살인 - 8점
랜달 개릿 지음, 김상훈 옮김/행복한책읽기

가상의 역사관을 바탕으로 한 대체역사 SF 소설이면서도, 탐정 다아시경이 활약하는 추리물이기도 한 독특한 작품집입니다. 전에 "세르부르의 저주"를 읽고 딱히 취향이 아닌듯 해 관심을 끊었던 시리즈지만 이번의 50% 할인 행사를 놓칠 수 없어 구매하여 읽게 되었네요.

그런데... 정말 안 읽었더라면 엄청 후회할뻔 했습니다. 일단 이 시리즈의 특징이라면 세계관이 아주 독특하면서도 매력적이라는 것을 들 수 있는데, 과학적 마법 문명의 지배를 받는 영-불 제국을 무대로 하여 마법이 증기기관과 공존하는 세계를 그리고 있습니다. 유사한 분위기의 일본 만화들의 원조격 작품이기도 하죠. 그러나 다른 파생 작품들과 가장 큰 차이점이자 가장 마음에 든 점은 이 세계관에서 "마법"은 일종의 보조적인 역할로 쓰인다는 점입니다. 마법은 "전문가" 가 행하는 "전문적인 행위" 이기는 한데, 현대 과학기술에서 관련된 전문가가 행하는 역할과 유사한 점이 있는 일종의 "기술" 처럼 그려질 뿐이거든요. 예를 들면 "방부처리" 라던가 "자물쇠 전문가" 같은 식이죠. 즉 수사가 등장하는 추리 소설에서의 검시관이나 감식관이 수행할 일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거 정말 획기적 발상이 아닌가 싶어요.

또한(어떻게 보면 당연하게도!) 마법이 사건에 별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지 않는 것도 굉장히 마음에 듭니다. 이 작품에서 마법은 단지 설정과 재미를 위해서 존재할 뿐이며, 각 사건들 마다 "마법이 개입된 사건이 아니다" 라는 것을 마법사들이 조사해서 먼저 알려주는 점 등으로 철저하게 추리의 영역과 마술의 영역을 구분함으로서 뻔하디 뻔한 SF-판타지가 될뻔한 작품을 추리물로서도 가치를 지닐 수 있게끔 중심을 잘 잡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약간 바람끼(?)도 보이는 카사노바 다아시경과 강의를 좋아하는 현학적이고도 호기심 많은 마술사 마스터 숀, 현명하고 비범한 결단력의 플랜태저넷 왕가 군주인 노르망디공 리처드 등 고정 캐릭터들을 보는 재미도 뛰어나고, 작가가 상상해 낸 영불제국의 묘사 역시 비범한 편이라 여러모로 즐길거리가 많은 작품이기에 할인행사가 아니었다 하더라도 만족감이 컸을 것 같습니다. 전작에 비해 "추리" 요소가 더욱 풍성해 진 것에 가산점 하나 얹어서 별점은 4점입니다. 첫 단편 "중력의 문제" 는 정말이지 정통 추리팬도 탄복할만한 멋진 밀실 트릭물이에요! 그 외에도 추리 애호가들이 즐길만한 장치도 풍부하니 쟝르 문학을 좋아하신다면 놓치지 않으셨으면 좋겠네요. 수록작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첫 번째 작품이자 밀실 트릭 걸작 중 하나라는 "중력의 문제" 는 앞서도 말했듯 정말 빼어난, 추리적으로 아주 파헤치는 다아시경의 활약을 그린 단편인데, 그야말로 교과서적인 멋진 작품입니다!

일단은 탑 꼭대기에 위치한 방 안에서 누군가에게 떠밀려 추락했지만 방은 그야말로 완벽한 밀실이었다는 무대 설정을 비롯, 유력한 동기를 지닌 것 처럼 보이는 아들에다가 광신도인 딸이라는 기묘한 가족구성, 가스등과 거대한 샹들리에로 대표되는 - 고딕호러스타일도 느껴지는- 배경 묘사가 굉장히 과학적, 합리적으로 잘 짜여진 트릭과 어우러지고 있으며, 동기 및 단서의 제공도 합리적이고 이치에 맞아서 정말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SF로 유명한 "다아시 경" 시리즈이기 때문에 추리적으로 손해를 보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두 번째 작품인 "비터 엔드"도 상당한 수준의 추리적 퀄리티를 보여줍니다. 다아시경의 부하인 마술사 마스터 숀이 우연찮게 말려드는 살인사건에 관한 이야기로 마술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 특징도 있지만, 추리적으로도 괜찮습니다. 불특정 다수의 인물이 모이는 카페에서 범인은 가까이 가지도 않은 상태로 피해자만 콕 집어 독살시킨다는 원격조정 트릭이 설득력있게 등장하는 덕분입니다. 경찰이 약간만 디테일하게 수사한다면 범인은 곧바로 밝혀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헛점은 존재하지만 이 정도면 평균 이상은 된다고 생각되네요.

세 번째 작품인 "입스위치의 비밀"은 좀 애매합니다. 한 남자의 시체가 해변에서 발견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되는데, 총에 맞아 죽은 남자 옆에 발자국은 첫 발견자의 발자국밖에 없었다! 라는 추리적으로 흥미진진한 화두를 던져놓지만, 죽은 남자의 신원이 정보부 소속의 노엘 스탠디쉬라는 것, 그리고 스탠디쉬는 뭔지는 모르지만 굉장히 중요한 "입스위치 파이얼"이라는 물건을 폴란드 제국으로 넘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폴란드 제국의 비밀경찰 세르카 요원을 추적하던 중에 결국 시체로 발견된 거라는 내용으로 이어지면서 이야기가 폴란드 제국과의 스파이 전쟁 첩보물로 확 바뀌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물론 나름 첩보전의 스릴과 더불어 흥미로운 요소 - 스탠디쉬의 다이잉 메시지라던가, 갑자기 별이 사라진 것과 같은 이유를 알수없는 특이한 현상 등 - 이 많이 등장해서 지루하지는 않지만, 폴란드 제국과의 첩보전을 지나치게 길고 장황하게 묘사해서 결과적으로는 추리적으로 흥미로울 수 있던 소재와 트릭이 첩보전에 파묻혀버려 아깝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폴란드의 미녀 스파이가 등장해서 꿍짝을 맞추는 결말도 썩 마음에 들지 않고요. 

그래도 재미는 있고 추리적으로도 버려진 낡은 외투를 가지고 벌이는 추리와 해변가에서 시체가 발견된 트릭의 발상 자체는 좋았기에 평작 수준은 됩니다. 무엇보다도 카사노바 다아시경의 이야기는 그야말로 대폭소! 왠지 피터 웜지 경 같은 느낌을 전해주던 다아시경의 색다른 모습을 보여주어서 마음에 듭니다.

네 번째 작품 "열여섯개의 열쇠"는 영불제국과 루멜리아제국과의 이른바 "해군조약"에 관련된 이야기로, 주 콘스탄티노플 대사였던 복스홀 경이 맺은 조약의 문서가 사라지고 복스홀 경은 엄청나게 나이를 많이 먹은 모습으로 완전 밀실에서 시체로 발견된다는 내용입니다. 다아시경이 곧바로 출격(?) 하여 복스홀 경과 그만이 통과할 수 있는 그의 여름 별장 열쇠 16개를 단서로 사건의 전모를 밝혀내고요.

조금 소품스러운 느낌이기도 한데, 하룻밤의 소동(?)을 재미나게 그려내고 있으며 이야기도 "쾨니히스베르크의 다리 건너기"를 연상시키는 수학적 트릭과 더불어 합리적으로 잘 짜여져 있어서 유쾌한 느낌이 가득해서 좋았습니다. 사람이 기괴하게 죽어나가고 중요 문서가 없어졌는데도 이렇게 유쾌하다니 정말이지 모를 일이네요. 하지만 아쉽게도 트릭 자체는 설득력이 떨어지긴 합니다.

덧붙이자면 "해군조약"은 홈즈, 포와로 등 많은 탐정들이 활약한 전력이 있는 추리계의 완소 아이템 중 하나로, 이 작품에서도 역시나 국가의 명운을 건 중요 조약 문서로 설명되고 있다는 것이 추리 애호가로서 반가운 점이었습니다. 이런게 바로 추리 애호가들이 즐길 수 있는 요소중 하나겠지요.

마지막 작품 "나폴리 특급 살인"은 네번째 작품에 등장하는 "해군조약"을 극비리에 운송하는 특명을 띈 다아시경과 마스터 숀이 탑승한 나폴리행 특급 열차안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을 해결하는 이야기입니다. 비밀 임무이기에 정체가 발각되면 안되는 이 두 컴비는 열차가 로마에 도착하기전에 사건을 대신 해결해 주기로 마음먹고 서둘러 사건해결에 나서게 됩니다. 

제목 그대로 "오리엔트 특급 살인"의 패러디이자 오마주 성격의 작품입니다. 오리엔트 특급 살인의 트릭을 재구성하여 보여주는 정통 트릭물로서의 가치도 높지만, 추리 애호가가 즐길만한 장치가 가득해서 정말이지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작품집의 표제작에 어울리는 좋은 작품이에요. 단서의 제공도 공정하고 복선도 잘 짜여져 있어서 완성도도 아주 높으니까요. "중력의 문제"와 더불어 이 단편집의 투탑, 쌍두마차라 할만한 작품이라 생각되네요.

이 작품 덕분에 작가의 또다른 패러디 - 오마주 작품인 "마술사가 너무 많다"(당연히 오리저널은 "요리장이 너무 많다" 죠)에 대한 관심이 증폭하여, 절판도서임에도 인터넷 헌책방을 뒤져서 겨우 한권 구매하게 되었습니다. 제대로 배송되면 더 바랄게 없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우리 형제의 안팔리는 판타지-추리 소설 "장미빛 인생" 도 유사 쟝르죠. 차이점이라면 우리 작품에서는 마법이 추리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입니다. 그러면서도 정통 추리물처럼 써내려갔으니... 그래서 안팔리는건가?

2016/08/09

사쿠라코 씨의 발밑에는 시체가 묻혀 있다 1 - 오타 시오리 / 박춘상 : 별점 1.5점

사쿠라코 씨의 발밑에는 시체가 묻혀 있다 1 - 4점
오타 시오리 지음, 박춘상 옮김/디앤씨북스(D&CBooks)

소설 리뷰를 하면서 별점을 주는 데에는 나름의 기준이 있습니다. 캐릭터가 얼마나 매력이 있는지, 이야기는 재미가 있는지, 묘사를 비롯한 전체적인 완성도와 설득력, 독특한 아이디어가 있는지, 그 외의 다른 가치가 있는지 등을 놓고 검토합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기준으로 볼 때 이 작품은 점수를 줄 부분이 거의 없습니다.

전통적인 양갓집 아가씨로 엄청난 미인이지만 별난 성격에 "뼈"에 집착한다는 설정의 탐정역인 사쿠라코 씨 캐릭터부터 별로입니다.
양갓집 미인 아가씨라는 것은 진부함의 극치, 그리고 별난 성격은 도가 지나쳐 거북합니다. 누구를 대하더라도 반말조에, 상대방을 위한 배려 등 최소한의 예절도 갖추지 않아서 호감을 갖기 어려운 탓입니다. 만화에서 봄직한, 외계에서 와서 지구 습관을 잘 모르는 미녀 외계인 캐릭터 같은데 만화라면 모를까 현실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어요. 왜 이런 성격이 되었는지에 대한 설명도 전무하고요.
탐정이 건방진건 문제가 아닙니다. 고전 본격물 황금기의 명탐정들은 대체로 잘난 척 대마왕들이기도 했으니까요. 허나 그들은 모두 자신들의 실력, 지위, 실적이 그들의 건방짐을 뒷받침했고, 아무에게나 무례하게 대하지는 않았습니다. 실력, 지위, 실적 중 그 무엇도 갖추지 못하고 그냥 건방지기만 한 사쿠라코 씨는 인간 말종으로밖에는 보이지 않아서 혐오스러울 정도였습니다.

사건에 엮이는 원인이 되는 "뼈"에 대한 집착도 문제입니다. 진부함을 타개하기 위한 작가의 노력은 눈물겹지만 설득력이 부족합니다. 이야기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도 못하고요. 왜 이렇게까지 독특함에 집착했는지 알 수 없지만, 차라리 진부하더라도 뼈와 연관이 있는 전문 직종을 엮는 게 훨씬 좋았을 겁니다.

이렇듯 캐릭터 문제가 너무 심각해서 이야기가 대단히 재미있지 않다면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든데, 재미 역시 합격점을 주기 어렵습니다. 추리적으로도 별볼일 없고요. 세 편 모두 정교함이나 트릭이 돋보이지도 않고 억지가 너무 심하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특이한 점이라면 북일본 아사히카와라는 독특한 지역을 무대로 그곳의 지형이라던가 명소, 특산물 등에 대한 묘사가 이루어진다는 정도인데, 딱히 중요한 부분은 아닙니다. 그냥 지엽적인 묘사에 그칠 뿐이거든요.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라이트*캐릭터*미스터리*읽는 재미'라는 취지로 디앤씨북스에서 나온 시리즈 중 하나인데, 이 중 라이트(가볍게 읽을 만하다는 정도?) 외에는 해당되는 게 없네요. 사쿠라코 씨 신상에 뭔가 변화가 있을 것 같은 암시를 주는 등 노골적으로 시리즈임을 드러내지만, 후속작을 읽을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추리물을 좋아하시는 애호가라면 근처에도 가지 마시고, 제 덕분에 지뢰 하나 피했다 생각하시길 바랍니다.

수록작별 상세한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합니다. 제 리뷰를 여기까지 읽으셨다면 이 책을 읽으시리라 생각은 되지 않지만요.

"아름다운 사람"

화자인 나는 사쿠라코 씨의 호출로 그녀를 찾았다. 그녀가 가자미 뼈를 선물하는 와중에 화자 어머니의 전화가 걸려왔다. 여러 채의 임대 주택을 운영하는 어머니가 연락이 두절된 입주자 방문을 여는데, 입회해 달라는 부탁 전화였다. 내용을 전해들은 사쿠라코 씨는 자신이 사체 전문가라며 동행을 요구했고, 일행은 입주자 미즈시마 키요미의 방문을 열어 그녀의 사체를 발견했다. 그런데 방은 완벽하게 밀폐된 상태였다...

사쿠라코 씨와 주인공 소개와 함께 이야기가 펼쳐지는 시리즈 첫 작품입니다. 

밀실을 만드는 것은 제삼자가 개입했다는 사실을 지우기 위해서로, 얼핏 보아도 살인 사건으로 보이는 상황에서 밀실을 꾸며야 할 이유는 없다는 사쿠라코 씨의 이론만큼은 그럴싸합니다. 

그러나 이 이론은 20여 년 전 "nervous breakdown"에서 이미 접했던 것이라 신선하지는 않습니다. 그 외의 추리적인 내용은 거의 모두 억지스러웠고요. 우선 피해자의 동생 요시미와 피해자의 약혼자 하시구치가 불륜 관계였다는 것을 밝히는 추리부터 억지입니다. 언니의 죽음을 접하고 예비 형부에게 안겨 우는 것이 뭐 그리 이상한 일일까요? 요시미의 스타일을 언급하는 것도 불필요했고요.
또 피해자가 독초 열매를 따먹고 죽은 것이라는 진상은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약사가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약물을 사용하지 않고 식물원까지 가서 열매를 몰래 따는 수고를 감행할 필요는 없으니까요. 극심한 고통도 예상되고, 사후 동공 확장 등으로 아트로핀 과다 섭취가 충분히 의심될 수 있어서 진상을 숨길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그냥 고통 때문에 방이 어질러졌다는 상황을 만들기 위함으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작위적이며 설득력이 낮아요.

때문에 별점은 1.5점입니다. 캐릭터, 내용, 추리 모두 수준 이하로 점수를 줄 만한 부분이 없네요.

"머리"

사쿠라코 씨의 "뼈 줍기"에 동행한 나는 마시케 초로 향했다. 해변에서 사람 두개골의 일부를 발견한 나는 경찰에 신고했다. 출동한 경찰 야마지 씨로부터 동반 자살 시체가 발견되었다는걸 들은 사쿠라코 씨는 잠깐만 사체를 보게 해 줄 것을 부탁했고, 잠깐의 관찰로 사건의 진상을 알려주는데...

오른손잡이가 오른손을 묶은 이유, 보우라인 매듭이라는 독특한 매듭을 사용한 것과 매듭의 위치 정도의 단서로 자살이 아니라 타살임을 주장한다는 내용입니다.

추리만 놓고 보면 나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연히 발견된 변사체에 대한 추리를 펼치는 것이기에 사건성이 있다기보다는 그냥 '여흥'에 불과하다는게 아쉽네요. 매듭을 묶은 손, 매듭의 위치 등 매듭 관련 추리는 이전의 많은 작품에서 반복된 것으로 새로운 무언가를 보여주지도 못하고요.

이 추리보다는 차라리 우연히 발견한 반려동물의 사체를 주인에게 가져다 주며 펼치는 추리가 더 괜찮습니다. 왜 사체가 정류장 지붕 위에 있었는지, 사인이 무엇인지 등을 담담하게 설명하는데 설득력이 아주 높아요. 이 이야기만 가지고 일상계처럼 푸는 게 훨씬 좋았을 겁니다.

이렇게 본편 이야기보다는 곁다리 이야기, 그리고 마시케 초의 먹거리(단새우 등)에 대한 소개가 더욱 돋보였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그나마 수록작 중에서는 베스트네요.

"장미 나무 아래"

나와 사쿠라코 씨는 사쿠라코 씨의 지인인 장미원 운영자 쇼코 씨의 저택으로 향했다. 병문안을 위한 장미꽃을 얻기 위해서였다. 쇼코 씨의 부탁으로 저택에서 진행되는 강령회에 참석한 둘은, 강령회에서 영매를 통해 쇼코 씨의 죽은 남편 아키히토 씨가 사실은 살해당했다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게 되는데...

아... 뭐라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총체적 난국인 작품입니다. '강령회'라는 주요 설정부터가 그러합니다. 이게 현대 일본에서 가당키나 한 것일까요? 게다가 강령회를 이용하여 사기극을 벌인 이유가 사실은 피해자와 동성애 관계였다, 그것을 찍은 은밀한 비디오가 있었다는 진상은 어이를 상실케 만듭니다. 잘나가는 기업가, 정치가, 신부 등이 엮인 단체 동성애 그룹이라니 이거 참 소라넷을 능가하는 어처구니없는 이야기 아닌가 싶네요. 그 외 영매를 가장한 요크 신부의 몇 가지 사기극은 너무나 유치했고요.

현실적이지도 않고, 설득력도 없고, 추리적으로도 뭐 하나 내세울 게 없는 이야기로 별점은 0.5점입니다. 이 시리즈를 다시 볼 이유가 없게 만들었다는 것이 유일한 가치라 할 수 있습니다.

2009/11/01

고백 - 미나토 가나에 / 김선영 : 별점 3점

고백 - 6점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선영 옮김/비채

자신이 근무하던 학교에서 사고로 딸을 잃은 교사가 봄방학을 맞아 마지막 조회에서 학생들 앞에서 충격적 사실을 밝히기 시작한다. "내 딸을 죽인 사람은 우리반에 있습니다"....

* 스포일러가 약간 있습니다. 읽으실 분들은 미리 염두해 주시기 바랍니다.

처음 출간소식을 알았을때에는 그닥 구입생각이 없었는데 인터넷을 통해 너무나 많은 호평을 접해서 구입하게 된 책입니다. 워낙 많은 상을 탔기 때문에 혹한것도 있죠.

그런데 제게는 그냥 평균작 수준이었어요. 대단한 작품이다... 라는 생각을 가지기에는 좀 부족했거든요.
물론 1인칭 시점의 고백으로 시작하는 "성직자"라는 단편은 대단했고, 이 첫번째 단편에서 시작되는 이야기가 등장인물을 바꾸어가며 극단적 1인칭 시점으로 전개된다는 형식도 독특해서 - 두번째 단편 "순교자"는 서간문 형태, 세번째 단편 "자애자"는 일기, 네번째 단편 "구도자"는 1인칭 추억담, 다섯번째 단편 "신봉자"는 유서, 마지막 단편 "전도자"는 전화통화라는 형태 - 이러한 형식으로 이야기를 끌어나가기 위한 작가의 고민과 노력이 눈에 선할 정도에요. 또 그만큼 충분한 재미는 가져다 주고 말이죠.

그러나 기본 설정과 캐릭터가 너무 현실적이지 못해서 끝까지 몰입하기는 좀 어려웠습니다. 특히나 캐릭터들이 하나같이 비현실적인것은 큰 문제로 생각됩니다. 주인공의 한명인 슈야가 대표적이죠. 유년기의 애정결핍으로 삐뚤어진 양심을 지니게 된 천재라는 설정도 뻔하지만 묘사된 캐릭터가 너무 극단적이라 감정이입이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작품 후기 등에서 소개되기를 등장인물 이력서가 있고 그 이력서에 기반하여 작품이 정교하게 짜여져 있는 것처럼 홍보되고 있는데 사실 슈야 캐릭터는 그동안 만화에서 흔히 보아왔던 인물 설정이기도 하죠. 읽자마자 저는 "암즈"의 건방진 천재 쌍둥이 알과 제프가 연상되었거든요. 그나마 요새는 만화에서도 쓰이지 않는 케케묵은 설정이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요. 슈야에 비하면 작위적이기는 하지만 작중에 등장하는 AIDS에 걸린 세상을 바꾸는 철부지 선생이나 다양한 약품을 손에 넣는 중학교 여반장같은 캐릭터는 그나마 약과겠죠...

게다가 아무리 천재라고 하더라도 건물을 날려버릴만한 폭탄을 현실세계의 중학생이 제조한다는 것과 마지막으로 모리구치 유코가 그 폭탄을 옮겨 놓는다는 것은 황당의 극치더군요. 결국 모리구치 유코 역시 자기가 가르치던 학생들 수준으로 자기합리화에만 골몰하는 뻔뻔한 인물이라는 것을 작가가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일까요? 모리구치 유코의 경우 하나뿐인 혈육이 죽었으므로 복수심에 불타는 것은 충분히 이해되긴 하지만 이렇듯 이후의 전개는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당위성이 서서히 희박해져 가는것이 뒤로 갈 수록 너무 막가는거 아닌가 싶었습니다. 이거야 캐릭터들의 설정이 설득력이 없는 것과 연관되어 있는 문제이긴 합니다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단죄라는 것이 현실적으로 이루어지는 만큼 "천사의 나이프"처럼 법적인 저촉을 받지 않는 "촉법소년" 범죄에 대한 이야기도 아니고, 첫 단편 이외의 대부분의 이야기들은 복수극으로 보기도 힘들며 추리물로 보기에도 어려운 작품이었습니다. 분명히 재미있고 독특한 작품이긴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현실성이 떨어지는 등 단점이 확연하기에 그냥 첫번째 단편으로 끝나는 것이 더 좋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네요. 별점은 3점입니다.

2007/04/17

무죄추정 - 스코트 터로우 / 최승자 : 별점 4점

무죄추정 1 스콧 터로 지음, 한정아 옮김/황금가지

킨들군의 검사장 레이몬드의 수석 부관이자 심복인 러스티는 검사장 선거의 혼란한 와중에서 살해당한 동료 검사이자 불륜 상대였던 캐롤린 살해사건의 지휘를 맡는다. 그러나 선거에서 레이몬드가 패한 뒤, 러스티의 옛 동료 니코는 자신의 심복 토미 몰토의 조사에 의해 캐롤린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되어 기소되고 레이몬드는 유능한 변호사 스턴에게 의뢰하여 법정에서의 싸움을 벌여나간다. 재판이 진행될 수록 사건의 배후에 숨겨져 있는 B서류의 정체와 진범이 누구인지에 대한 의문은 점점 커져나가는데...

이번에 개인 사정으로 부산에 잠깐 갔다가 들른 보수동 헌책방 골목에서 구입한 책입니다. "이 미스테리가 굉장해"의 과거 18년간의 베스트 10에도 뽑힌 작품이라 궁금했었는데 찾아내고 반가운 마음에 서슴없이 구입하게 되었네요. 재출간되긴 하지만 제가 구입한 것은 예전의 절판본입니다.

검찰이 주인공 러스티를 기소하여 법정에서 승부하는 내용이 대부분이지만 원래 살인사건의 진범이 누구인지에 대한 의문과 사건 내내 강조되는 "B서류"의 정체라는 두가지의 수수께끼가 밀접하게 연관되어 서술되는 복잡한 구성을 지니고 있는 작품으로 법정 싸움 장면이 무척이나 흥미진진하고 해결 과정 역시 타당할 뿐 아니라 살인사건의 범인과 B서류의 의미 역시 사건이나 중요 복선과 연관되어 명쾌하게 처리되고 있어서 추리적으로 무척 만족스러운 작품이었습니다. 특히 살인사건의 진범이 누구냐에 대한 것은 마지막까지 독자를 속이는 과정이 포함되어 있어서 더욱 마음에 들더군요.
처음 봤을때는 여러모로 제가 싫어하는 부분들이 많이 있어 보이는 책이었지만 읽어보니 역시나 명불허전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잘 짜여진 완성도 높은 작품이라 평할 수 있겠습니다. 특히 사건이 엽기 강간사건으로 등장하는 부분에서는 어라? 이거 흥행을 너무 의식한 의도적 설정 아닌가? 라는 의심이 들기도 했는데 결국 충분히 이해 가능한 범행 방식으로 밝혀지는 결말에서 어느새 작가의 의도적인 속임수에 걸려든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되어 참 놀라왔습니다. 

또 작가 프로필을 보니 역시나 존 그리샴이나 얼 스탠리 가드너 같이 법조인, 특히 이 책의 주인공인 러스티와 같이 검사 출신이던데 그래서인지 책의 중요한 설정 중 하나인 검사장 선거와 검사들간의 세력 다툼, 판사와의 관계 등 재미난 요소들이 참으로 실감나게 묘사되는 것도 큰 장점이라 생각됩니다. 검사 출신답게 다른 법조인 작가인 존 그리샴, 얼 스탠리 가드너의 소설들은 대부분 변호사가 주인공이었었는데 검사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것이 특이했고요.

지나칠 정도로 길다라는 것은 좀 부담되는 요소였고 재판이 시작되기 전 부분인 초반부는 좀 지루하다는 단점이 있기는 하나 감수할만한 수준이었어요. 이 책이 작가의 "킨들카운티(군)" 시리즈의 한권이라고 하는데 다른 책도 궁금해지는군요. 별점은 4점입니다.

덧붙이자면, 번역은 좀 불만스럽네요. 워낙 길고 복잡한 내용이라 번역이 쉽진 않았겠지만 도저히 몰입하기가 힘들정도로 문맥이 엉망이었습니다. 이번에 재 출간된 책은 어떨지 궁금해지는데, 번역이 괜찮다면 새 판본으로 다시 읽어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