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정 피트 모란 - 퍼시벌 와일드 지음, 정태원 옮김/해문출판사 |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직업은 운전수지만 통신으로 탐정 교육을 받으며 나름대로 좌충우돌 활약을 펼치는 피트 모란을 주인공으로 한 유머 단편집입니다. 통신 교육을 받는 과정을 제목으로 하는 7편의 단편이 실려 있습니다.
"퀸의 정원"에도 선정된, 초창기 황금기 시절 단편의 강자 퍼시벌 와일드의 작품이라 기대가 컸습니다. 이전에 재미있게 읽었던 "클로버의 악당들"도 그렇고, 여러 커뮤니티에서의 평도 좋았으니까요.
그러나 솔직히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좋은 유머 소설이라고는 할 수 있지만, 추리 소설이라고 하기에는 부족했습니다. 유머도 철자법조차 제대로 모르는 멍청한 주인공의 의도하지 않은 행동에서 벌어지는 극적인 결과라는 패턴이 대부분이라 지금 읽기에는 다소 낡아 보였습니다. "핑크 팬더"나 "겟 스마트", "형사 가제트", "미스터 빈" 같은 작품과도 비슷한 설정이라 차별화된 요소를 찾기 어려웠고요. 오히려 억지스러운 부분도 많았습니다.
책 뒷부분의 소개처럼 후반부로 갈수록 추리소설 형식을 띠긴 하지만, 오히려 이야기가 더 이상해집니다. 초반에는 멍청하지만 운이 좋은 피트 모란이 사건을 해결하는 구조인데, 후반부로 가면 피트 모란은 그저 멍청하기만 하고 사건은 다른 사람들이 해결합니다. 이 변화로 인해 단편집의 성격이 모호해졌다고 생각합니다. 추리소설을 표방했더라도 대단한 트릭이 등장하는 것도 아니고요. 차라리 "훈련을 쌓은 탐정이라면 99명은 그대로 지나치게 하더라도 100명째의 남자에게 수갑을 채우는 일쯤은 문제없지" 같은 피트 모란의 대사를 강조하며 초지일관 웃겨주는 게 더 나았을 것 같습니다.
통신으로 탐정 교육을 받는다는 독특한 설정과 멍청한 탐정이라는 콘셉트는 흥미롭지만, 추천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정태원 선생님의 유작이라는 점은 안타깝지만, 이 작가의 작품을 읽고 싶다면 똑같이 단편집이면서 유머러스하면서도 추리소설 형식을 보다 제대로 갖춘 "클로버의 악당들"을 추천드립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수록작별 간단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미행"
통신 교육 강좌로 미행을 학습한 뒤, 마을에서 실습하다가 우연히 마리화나 밀매 조직을 검거하는 데 일조하는 이야기입니다. 이 시리즈의 가장 큰 특징인 피트 모란의 캐릭터와 서간문 형식의 전개, 그리고 의도하지 않은 행동이 뜻밖의 결과를 가져온다는 내용이 모두 잘 표현된 대표 단편입니다. 유머러스한 전개가 적절해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추리법"
사람의 특징을 보고 직업을 간파하는 전통적인 추리법이 주요 설정으로 등장하는 작품입니다. 패러디적인 요소가 있지만, 오히려 추리법 자체는 정확했다는 결말이 다소 애매했습니다. 유머는 좋지만, 억지스러운 전개가 아쉬웠습니다.
"방화범"
피트 모란의 통신 강좌 선생인 주임 경감의 비교적 정확한 조언이 인상적이긴 했지만, 역시나 억지스러운 전개가 거슬렸습니다. 당구가 문제였다면 당구대를 치우는 게 더 싸고, 빠르고 쉬웠을 텐데요...
"호텔 탐정"
피트 모란이 호텔 탐정으로 일하며 벌어지는 이야기인데, 헐리우드 코믹 드라마를 보는 듯한 느낌이 강했습니다. 딱히 인상적이지도, 그렇다고 빠지는 부분도 없는 소품이었습니다.
"협박장"
협박장 사건을 의뢰받은 피트 모란이 마을 목사의 사악한 계획(?)에 걸려든다는 이야기로, 이 작품부터 피트 모란이 실패하기 시작합니다. 나쁘지는 않았지만, 평범한 수준이었습니다.
"다이아몬드 헌터"
파티에서 분실된 다이아몬드를 찾으려는 피트 모란의 활약이 눈부신 단편으로, 수많은 고전 단편물을 패러디하여 인용한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인용된 작가는 코난 도일, 에드거 윌리스, 길버트 체스터튼, 애거서 크리스티, 도로시 세이어즈 등으로, 피트 모란의 활약과 맞물려 상당한 웃음을 선사합니다. 추리적으로도 깔끔한, 이 단편집의 베스트라 할 수 있는 작품입니다. 다만, 추리의 주역이 피트 모란이 아니라 하녀 마릴린이라는 점이 문제겠죠.
"지문 전문가"
'주임 경감'이 일선에서 활약하며 단편집의 대미를 장식하는 작품입니다. 그러나 이야기가 다소 어이없습니다. 지문 채취로 범죄 용의자를 잡아 한몫 보려는 피트 모란의 계획부터가 말이 안 됩니다. 지문을 채취한다고 해도 그것을 검증할 방법 자체가 없으니까요. 의외의 진상이 드러나는 전개도 이제는 힘이 많이 딸리는 느낌이랄까? 이 시리즈도 여기까지구나!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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