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 특별기획] 한국 공포 문학의 밤 - 김종일.이종호.신진오.우명희.장은호.유재중.최경빈.백상준.황태환.김민수 지음/알라딘 이벤트 |
알라딘의 여름맞이 이벤트를 통해 무료 e-book으로 읽게 된 한국 공포문학 단편 앤솔러지. 총 10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이종호, 신진오, 김종일 등 최근 한국 공포문학에서는 가장 유명하다 할 작가들이 포진되어 있어 제법 기대가 컸습니다.
그런데 여러모로 실망스럽기만하네요. 가장 큰 이유는 별로 무섭지 않다는 점 때문입니다. 또 어디선가 본 설정이 많다는 것도 문제고요. 몇몇 작품은 호러, 공포문학도 아닐 뿐더러 작품 자체의 완성도도 그닥 높아보이지 않았어요.
결론내리자면, 전체 평균 별점은 2점입니다.아직 한국 장르 문학의 갈 길이 참으로 멀구나... 싶은 생각이 강하게 드는군요.
얼마전 읽었던 하드론의 <기지 살인사건>은 아주 좋았는데, 작가의 유명세에 기대지 말고 이런 언더그라운드 작품을 발굴하여 소개하는게 더 좋지 않았을까 생각되기도 합니다.
작품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아내의 남자> - 이종호
한 남자가 아내의 불륜을 확신하고 아내를 살해하는 과정을 디테일하게 그려낸 작품.
한국 공포문학계에서는 슈퍼스타라 할 수 있는 이종호 작가의 작품. 그러나 기대에는 전혀 미치지 못한 작품입니다.
일단 "다중인격", "해리성 인격 장애" 라는 설정이 너무 뻔합니다. 게다가 일종의 서술트릭 같은 효과를 노린 것인지는 모르지만 다중인격을 숨기기 위한 작위적인 이야기 전개도 거슬려요. 특히나 이런 정신병자와 같이 사는 아내는 도저히 이해불가였습니다. 상식적으로는 정신병원에 보내는게 당연할텐데 말이죠.
이러한 이유로 좋은 점수는 주기 힘듭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압박> - 신진오
사지마비 환자는 어느날 밤부터 굉음소리와 함께 방이 점점 좁아진다는 것을 깨닫는다는 내용.
신진오 작가는 얼마전 영화화된 <무녀굴>의 원작자죠. 작품은 읽어본 적이 없었지만 나름 기대가 컸습니다.
그리고 시작 부분은 제법 괜찮았어요. 무엇보다도 설정이 좋은데, "사지마비 환자"인 주인공의 상황이 이야기에 딱 맞아 떨어져 공포를 선사해 주기 때문입니다. 몸이 움직이지 않는데 방이 좁아진다! 이거 참 두근두근한 설정이죠.
그러나 좋았던 것은 도입부 뿐이고... 작품은 실망스럽기 그지 없네요. 뜬금없이 끝나는 결말은 그 중에서도 최악이고요. 사지마비 환자에게 마약 성분의 약을 먹여 환각을 유발시키고, 죽음의 공포를 느끼게 만드는 실험을 한다는 것인데, 왜 그러한 실험을 하는지에 대한 목적, 이유는 하나도 설명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방이 살아 있었다는 스티븐 킹의 <1408>같은 크리쳐 호러가 낫지 않았을까 싶군요.
도입부 설정 외에는 건질게 없는 작품으로 별점은 1.5점입니다.
<담쟁이 집> - 우명희
귀신들린 마을 외곽 담쟁이 집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기이한 일들과 공포를 여자아이 시점에서 그린 작품.
아이의 머리가 계단을 때리는 장면의 묘사, "넌 내가 아직 네 엄마로 보이니"와 같은 오래된 괴담의 변주 등 볼거리가 없는 것은 아닌데 딱히 특출난 점은 없는 평이한 작품. 딸에게 친구를 만들어 주기 위해 또래 꼬마아이들을 살해한 것이 어디까지 현실이고, 어디까지 귀신의 행위인지가 제대로 밝혀지지 않고 애매하게 끝난 것도 그닥 마음에 들지 않고요.
그래서 별점은 2점. 그냥저냥 읽을만 했다 정도입니다.
<첫 출근> - 장은호
영문도 모른채 전화로 걸려오는 지시만 전달하는 업무를 하는 주인공의 이야기.
일단, 이 작품은 절대로 호러, 공포문학은 아닙니다. 오히려 SF라고 할 수 있죠. 그러나 거대 조직 사회의 톱니바퀴로 인간이 전락한다는 것과 이 조직 사회를 바꾸려 하거나 탈출하려 하는 주인공의 이야기는 쎄고 쎘는데, 그러한 유사 작품들 대비 단 하나의 뛰어난 점이나 차이점을 찾기 어려웠기에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드네요. 별점은 1.5점입니다.
덧붙이자면, 주인공이 속한 사회가 어디며,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전혀 알려주지 않는 것도 불만이에요. 단지 자신이 하는 일에 의문을 가진 주인공에게 위기가 닥치는 내용이 전부일 뿐인데, 이래서야 남에게 보여줄 이야기라고 하기는 어렵죠. 독자에게 자신이 만든 세계관에 대해 설득시키고 공감하게 만드는 노력이 너무나 부족했습니다.
<놋쇠황소> - 김종일
오랫만에 만난 고교 동창에게 과거 그에게 당한 학대를 상기시키는 주인공의 이야기.
한국 공포문학계의 또다른 스타 김종일 작가의 작품. 왕따, 학대 피해자가 복수를 한다는 설정의 작품은 하늘의 별만큼이나 많을 거에요. 어떻게 차별화해서 이야기를 재미있게 만드는지가 관건인데, 유감스럽게도 그닥 성공한 것 같지 않군요. 복수의 이유가 공감가지 않고 복수 역시 어설프기 때문이에요.
특히나 주인공 병구가 자신의 첫사랑 희정이를 박규완에게 빼았긴건 본인이 "좃밥"인 탓인데 박규완에게 복수심을 품는건 정말이지 이해하기 어려웠어요. 강제로 성폭행 한 것도 아니고 엄연히 둘이 사귀다가 헤어진 것인데 그걸 가지고 제 3자가 뭘 어쩐다는게 웃길 뿐이죠. 이러한 과거 이야기를 박규완의 가족에게 들려준다는 복수 역시 그다지 와 닿지 않네요.
읽는 맛은 충분하나 딱히 무섭지도 않은 평이한 이야기라 별점은 2점입니다.
<돼지가면 놀이> - 유재중
유산을 물려준다는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6.25 직후 한 산골마을에서 벌어진 공포의 사건 이야기.
시골의 커뮤니티에 살게 된 외지인이 사실은 사악한 존재였다는 것은 역시나 뻔한 설정이죠. 그런데 "돼지가면 놀이"와 돼지가면을 쓴 인물의 카리스마, 사라진 형제가 손, 발이 잘려 인간 돼지가 되어있다는 등 (<바이올런스 잭>?) 디테일한 묘사가 압도적이라 충분한 공포를 선사해 줍니다. 마지막 결말도 서늘하고요.
단연코 "공포 문학" 이라는 측면에서는 이 앤솔러지 최고의 작품이에요. 별점은 4점입니다. 이 작품 하나만으로도 읽은 보람이 느껴지는데, 모든 분들께 강력 추천드립니다.
<10개월> - 최경빈
여자들이 급작스럽게 남자로 변하게 된 세상을 그린 작품.
공포문학도 아닐 뿐더러 영화 <칠드런 오브 맨>의 변주에 불과한 설정에, 특별할 것도 없는 여러가지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아 지루했습니다. 인류가 멸망할 상황인데, 여자가 남자가 됨으로 벌어지는 성생활 문제에만 집중한 것은 현명한 선택이 아니었고요. 별점은 1.5점입니다.
<섬> - 백상준
좀비물. 한국이 무대이긴 한데 다른 흔한 좀비물과 비교해도 딱히 특별한건 없었습니다. 게다가 주인공이 마지막에 폭주해서 아파트와 함께 자폭한다는 결말은 완전 뜬금없었고 말이죠. 몇몇 한국적 설정이 잔재미를 주기는 하지만 그냥저냥한 평작이랄까, 별점은 2점입니다.
그런데 항상 궁금했던게 좀비는 대체 어떻게 성립하는거죠? 사람을 잡아먹기 위해 습격한다면, 어느 정도 수가 된 좀비가 사람을 덮치면 남아나는게 별로 없을테네 좀비가 더 증가하지 않을테고, 그러면 결국 자연도태될텐데 말이죠. 참으로 궁금합니다.
<옥상으로 가는 길> - 황태환
좀비로 고립된 집단의 생명줄은 옥상으로 전달되는 보급품. 이것을 가져올 수 있는 것은 왜소증 환자인 주인공뿐이라는 이야기.
왜소증 환자 주인공이 집단 내 다른 사람들과 갈등을 빚는게 작품의 핵심입니다. 그런데 주인공의 심리가 너무 변화무쌍해서 별로였어요. 어떨때는 착하고 순진한데, 어떨때는 굉장히 잔인해지는 식으로 캐릭터가 제대로 정립되지 않은 느낌이 들더군요. 자신의 경쟁자가 된 초등학생을 처단한다는 결말은 나쁘지는 않았지만 역시나 감정 변화가 너무 급작스럽다 싶었고 말이죠. 아울러 마지막 장면, 주인공이 좀비가 되어 버린다는 결말은 굉장히 안이하고 뻔했기에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네요. 별점은 1.5점입니다.
<엘리베이터 액션> - 김민수
식량을 찾기 위해 마트로 왔다가 좀비들에게 둘러싸인 주인공의 사투를 그린 작품.
설정과 내용은 뻔하지만 영화를 보는 듯한 묘사가 아주 생생한 작품. 불필요한 묘사는 전부 배제하고 화끈한 주인공의 생존을 위한 모험에 집중한 작가의 선택이 탁월했어요. 호러라기 보다는 모험 소설 같은 느낌으로 덕분에 읽는 내내 몰입해서 읽을 수 있었습니다. 간간히 보이는 유머러스한 요소들도 볼거리였고요. 별점은 3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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