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고 찢기고 도둑맞은 - 릭 게코스키 지음, 박중서 옮김/르네상스 |
도둑맞거나 여러가지 이유로 파괴되고 소실된 여러 예술품들에 대해 쓴 책.
이런 책처럼 해당 예술품에 대한 범죄 사실을 자세하게 기록한 논픽션이라 생각했는데 실제 내용은 에세이더군요. 희귀 초판본 거래를 업으로 하는 작가가 예술 작품들로 "상실", 그리고 "영원"에 대해 써내려간 것이 핵심이거든요. 예술 작품들이 사라진 과정도 상세하게 적혀있기는 하지만요.
예를 들면 <부재와 갈망이 주는 기쁨>편을 보죠. 여기서 제임스 조이스가 아홉살에 쓴, 최초의 인쇄물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 인쇄물이 어떻게 세상에 알려졌으며 지금 어떤 상황인지를 설명해주기는 하지만 이야기의 핵심은 바로 "수집의 강박" 입니다. 물건 자체의 가치는 0이지만 물신화된 가치에 의해 가격이 100만 달러가 넘을 것이라는 이 인쇄물이야말로 수집의 강박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는 것이며, 수집은 물건 자체의 가치로 재단하면 안된다는 내용이에요. 참고로 저 역시 그 의견에 동의합니다. 마다라메도 말했죠. "가격만 비교해봐야 의미가 없어.소프트의 재미는 결코 가격과 비례하지 않으니까. 스스로의 판단으로 결정하자.'이건 좋은것 '이란 생각이 들면 돈을 내는거야. 난 그렇게 선택해 온 것들에 대한 긍지를 갖고있어.왜냐하면 그건 내것이니까! 그게 야겜이건 동인지건,옷이건 마찬가지야!!"
또 바이런의 자서전과 키츠의 일기를 상속인들이 파기한 일화를 소개하는 이야기도 재미있었어요. 예술 작품과 그 창조자의 개인적 사생활을 결부시키는 행위에 대한 의문을 표명하기 때문입니다. 작품 자체만 가지고 판단해야겠지만 쉬운건 아니죠. 얼마전 이병현 스캔들과 그 때문에 개봉이 연기된 <협녀> 사태가 떠오르기도 하고요. 폰트 "길 산스"의 창조자인 조각가 에릭 길이 사후 일기를 통해 딸들과 관계를 가졌다는 것이 알려졌다는 것은 처음 알았네요. 이 정도 비밀이라면 일기에도 적지 말았어야 할 것 같습니다만, 뭐 이런 썅놈이 다 있나...
이라크 전쟁에서 바그다드 이라크 국립 박물관에서 일어난 약탈 행위를 다룬 편도 인상적입니다. 부시 정권, 그 중에서도 국무부 장관 럼스펠드가 얼마나 무식한 인간인지 적나라하게 보여지거든요. 유적에 있던 문화재를 각 나라가 떼어가 전시하는 행위에 대한 긍정과 부정 역시 읽을만한 내용이었고요. 파르테논에 있는 조상을 떼어간 영국의 "엘긴 컬렉션"을 다루며, 엘긴경이 아니었다면 파르테논에는 조상이 아예 남아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내용인데 일부는 수긍할 만 했습니다. 우리에게도 남의 이야기는 아니고요.
그 외 다른 이야기들 모두 그동안 생각치도 못했던 색다른 시각을 엿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모나리자에 대해 이야기하며 "모나리자 앞에 모여든 인파는 그림을 보는게 목적이 아니라 유명 인사를 보는 것이 목적이다. 심미적 파파라치인 셈이다" 라고 하는 식으로 말이죠.
단점이라면 단순 흥미로 읽기 어렵다는 점이겠죠. 특히나 저와 같이 범죄 관련 논픽션을 기대한 독자들은 많이 당황할 수 있을 것 같네요. 그리고 담고 있는 주제에 걸맞는 도판을 갖추지 못한 것도 아쉬운 점입니다. 이야기마다 한개 정도 대충 실려있는 수준이거든요. 언급되는 작품들이 방대하고 가격도 17,000원이나 한다면 도판도 그에 걸맞는 볼륨을 보여줬어야 하는데 많이 부족하네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입니다. 재미로만 읽을 책은 아닙니다. 미술 역사, 아니면 예술품에 대해 색다른 시각을 느끼고 싶으신 분들께 권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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